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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북 막기 안간힘/3개 감시조직 신설… 사회 통제 강화

    ◎「공작원제도」 「안전소조」 「통보원제도」 만들어/주민동향·재외공관원 체크… 중­북 국경경비 보강 북한은 탈북자와 망명자가 잇따라 발생하자 3개의 감시조직을 신설하는 등 주민들에 대한 통제와 국경경비를 대폭 강화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경제파탄에 최악의 식량난까지 겹쳐 민심이 흉흉한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이같은 일탈현상이 빈발하자 주민들을 여러갈래의 감시망으로 묶어놓고 있는 것이다.북한 당국은 또 주민들의 사상적 동요를 우려,최근 수재지원과정에서의 자본주의 풍조와 남한에 대한 정보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내외통신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공작원제도」,「안전소조」,「통보원제도」등 3개의 감시조직을 새로 만들어 통제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북한엔 이들 조직외에 「주민순찰대」,「비사회주의그루빠」,「6·4그루빠」,「유동그루빠」 등의 통제기구들이 있지만 당국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별도 기구를 만들어 감시체제를 대폭 보강한 것이다. 「공작원제도」는 국가안전보위부 산하에 설치된 조직으로 각 시 군에 40∼50명의 공작원을 두고 주민감시업무를 수행하고 있다.「안전소조」는 사회안전부에 소속돼있으며 인민반안에 5명의 소조원을 두어 주민들의 동향을 안전원에게 보고하는 일을 하고 있다.인민반은 동,리,읍 및 노동자구 인민위원회의 통제아래 반원의 생활지도와 사상동향파악 및 반내 외부방문자 감시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최말단 조직으로 20∼40가구 단위로 구성돼있다.또 「통보원제도」는 동사무소가 인민반에 각 1명의 감시원을 두어 주민들의 동향을 직접 보고토록 하는 제도이다.이들 신설 감시통제기구는 별도의 보고체계를 유지하면서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다.특히 인민반은 반장 등 기존의 조직외에 안전소조원 5명,통보원 1명 등 10명이상의 요원들이 서로를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조 차단은 사상교육을 통해 주로 이뤄지고 있다.이와 함께 남한에 대한 정보 유입을 막기 위해 주민들에게 우리쪽에서 수재구호물자가 지원된 사실을 철저하게 감추고 있다.최근 북측이 남한에 대해 가공물자보다는 쌀이나 현금으로 지원해주도록 요청해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북한적십자회는 남한이 제공하는 대북수해구호물자중 라면 등 가공식품과 담요는 더 이상 받지않겠다는 입장을 최근 국제적십자사연맹을 통해 우리쪽에 전달해왔다.북측은 물자를 수재민들에게 전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동력이 든다고 궁색하게 거절 이유를 대고 있으나 실은 라면 등에 부착되어있는 남한 제조회사의 상표와 원산지표시를 일일이 제거하기가 번거롭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북한은 그동안 중국에서 보내온 라면은 그대로 주민들에게 배포했으면서도 우리로 부터 받은 라면 10만개는 일일이 포장에서 꺼내 나눠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주민들의 심적 동요를 일으킬 남한상표에 대해 과민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북한당국은 이러한 내부 단속과 병행,재외공관에 극비 훈령을 내려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많은 외교관,무역일꾼,유학생이나 밖에 나가있는 고위층자녀들을 대상으로 성분분석작업을 다시하고 그중 일부는 소환했거나 소환할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북한측은 부인하고 있지만 최근 마카오주재 북한 무역대표부인 조광무역의 고위간부가 평양에 불려간 것도 이와 무관치않은 것으로 파약되고 있다.
  • 편모슬하 장애인 이대 “영광”/전기대 입시 화제의 합격자들

    ◎경희한의대 인기 반영… 학사출신 19명/두딸 둔 37세주부 삼육대학 전체수석 서울시내 8개 대학에서 96학년도 일반 및 특별전형합격자를 발표한 22일 편모슬하에서 자란 지체장애자를 비롯,두딸을 둔 30대 주부 수석합격자,40대 사업가 등 이색합격자가 속출,대학마다 화제가 만발했다. ○…이날 이화여대가 발표한 장애인특별전형(특수교육대상자)합격자가운데 사범대 과학교육과에 붙은 한성숙양(20·인천 부평여고 졸)은 3살때 강원도 정선 탄광촌에서 살면서 갱로에서 놀다 탄차에 깔려 두다리를 잃은 2급지체장애인. 한양은 설상가상으로 지난 91년 가을 광부였던 아버지를 갱붕괴사고로 잃었지만 보험사 영업직원으로 일하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용기를 잃지 않고 학업에 정진,합격의 영광을 차지. ○…또 삼육대 약학과에 응시,전체수석을 차지한 임경숙씨(37·경기도 구리시 교문동)는 초등학생 두딸을 둔 37살의 주부. 임씨는 낮에는 시립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집에서 교육방송을 보며 독학을 해 5백점 만점에 4백39.24점(수능 1백54.9점)을 획득. 지난 84년 숙명여대 수학과를 졸업한 임씨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모두 입학해 가정생활 말고 뭔가 전문직 활동을 하고 싶어 대입에 지원하게 됐다』고 설명. ○…고려대 법학과에 합격한 광주 광덕고 3년 강남석군은 동급생보다 2∼3살이 어린 만15세. 80년 4월생인 강군은 4살때 누나를 따라 국민학교 수업을 청강하다 「재능」을 인정한 교사들의 권유로 국민학교에 정식 입학. 중·고교 6년동안 줄곧 전교 1·2등을 놓친 적이 없는 강군은 서울대 경영학과에 복수지원한 상태. 또 고려대 물리학과에 합격한 김훈기씨(40·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부흥동)는 지난 75년 한양공고를 졸업,이듬해에 연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나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중단했다가 11년만에 다시 대학에 입학한 의지의 만학도. 지난 85년부터 컴퓨터업에 손을 대 소프트웨어및 하드웨어 개발회사인 「K컴」을 경영하고 있는 사업가. ○…경희대 한의대에는 명문대학을 졸업한 합격자들이 19명이나 나와 높은 인기도를 다시 한번 확인. 합격자 가운데 지난 93년 서울대 무기재료공학과를 졸업한 김경구씨(27)는 5백점 만점에 4백70.35점(수능 1백80.6점)으로 경희대 전체수석을 차지. 특히 김씨는 지난 특차전형에서 이 학과에 미리 합격한 김기준씨(26)와 서울대 무기재료공학과 동기생인 것으로 밝혀져 이들은 두번째 같은 학과 동기생이라는 기연의 주인공이 되기도. 이번 합격자가운데는 서울대출신이 9명,연세대 4명,이화여대 2명,포항공대·고려대·과기대·전남대가 각각 1명이었다. ○…올해 수능시험에서 1백86.2점으로 여자 전체수석을 차지,연세대 의예과에 지원한 김은기양(19·서울과학고 3년)은 본고사에서도 1백60점의 높은 점수를 획득,총점 9백32.4점으로 수석의 기쁨을 차지. ○…22일 합격자를 발표한 숙명여대에는 지난해 5월 기혼자입학금지규정을 없앴기 때문인지 기혼여성들이 상당수 합격해 주목. 특히 가장 인기를 끈 약학대학의 경우 지원자가운데 30명이 대학을 졸업한지 5년이상이 지난 20대 후반 내지 30대 초반. ○…KBS 쇼코미디프로 「슈퍼 선데이」 보조사회자로 활동중인 슈퍼모델출신 탤런트 홍진경양(18·정의여고 3년)은 중앙대 안성캠퍼스 연극학과(연기전공)에 합격했다. 28대 1로 중앙대 최고경쟁률을 보인 연극학과 연기전공에는 현재 연예활동을 하고 있는 9명의 청소년 스타들이 지원했으나 홍양만이 유일하게 합격.
  • 일 「침략미화」 9명 입각/첫 각료회의선 반전평화 다짐

    【도쿄 연합】 보수·우익 성향인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총재가 일본 연립내각의 총리로 취임하면서 자민당내 골수 국수주의 의원들이 대거 입각한 것으로 12일 밝혀졌다. 총리를 포함한 21명의 각료중 자민당 출신은 12명으로 이중 지난해 종전 50주년 국회결의에 맹렬히 반대한 「종전 50주년 국회의원연맹」에 가입한 의원이 하시모토 총리를 포함해 모두 9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종전 50주년 국회의원연맹」 소속 의원중에서도 지난해 일본의 침략전쟁을 「선전(성전)」으로 미화하는 입장에서 역사를 왜곡한 책을 출판한 「역사검토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하시모토 총리를 비롯해 사실상 내각의 2인자로 정부대변인 및 비서실장격인 가지야마 세이로쿠(미산정육) 관방장관,구라타 히로유키(창전관지) 자치상,가메이 요시유키(구정선지) 운수상,나카오 에이이치(중미영일) 건설상 등 5명이나 포함되어 있다. 【도쿄 연합】 일본의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내각은 11일 밤 첫 각료회의를 열어 『우리는 두번 다시 전쟁의 참화를 되풀이하지않는다는 평화결의로 평화입국,평화공헌,평화창조를 기본이념으로 한다』는 총리담화를 결정했다.
  • 북경에서의 신년/천진환LG그룹중국본부장(서울광장)

    병자년의 새 아침이 이곳 북경에도 어김없이 밝았다.처음으로 북경에서 맞는 새해는 이전과는 또다른 감회를 갖게 한다.새해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져 나갈때 우리 한반도의 정치,경제와도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는 중국 대륙과 대만을 연결지어 양안 해협의 정세를 회고하고 앞으로의 관계를 전망하는 것도 시의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한가지 분명한 것은 세계 각처에서 불화로 인해 마주 싸우던 나라들이 관계의 완화를 향하여 줄달음치고 있다는 사실이다.보스니아,중동,북아일랜드 등 모두 평화의 서광이 서서히 비치고 있다.냉전후 각 나라들이 경제발전 전략을 내세워 몇년 남지 않은 새 세기를 맞느라 분망하다. 지난 수년간 중국대륙과 홍콩 그리고 대만 국민들도 21세기의 경제 기적을 창조하기를 기대하고,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중국 화교들도 양안의 교류와 협력을 기대하며 이것이야말로 중화민족의 부흥의 기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그러나 과거 일년간 양안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대만해협에 전운이 감돌기도 하여 새해를 맞는 국민들은 좋은 전기가 마련되어 중화인들의 경제가 다시 한번 웅비의 기회를 맞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중국은 지난 일년간 최고층의 권력승계가 이미 마무리되었고 등소평은 정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강택민은 진정한 제3세대 지도자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잘 수행하여 지난 수년간 거시조정을 통해 과열된 경제를 성공적으로 냉각시키게 되었다.작년도 전국물가 상승지수와 국내 총생산의 성장률등을 유효적절히 통제하였을 뿐 아니라 대외 무역도 계속 성장하였고 외환보유고도 증가하여 7백30억달러에 이르렀다.따라서 중국 정부는 거시경제 측면에서 대체적으로 연착륙을 실현하였다고 대서특필하였다.그러나 이러한 표면적인 안정정국의 배후에는 아직도 불안한 요소들이 내포되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작년 한햇동안 국내의 치안상태는 더욱 악화되었으며 범죄율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추세다.중국 정부의 강력한 반부정부패운동에도 불구하고 관의 부정부패 풍조는 기본적으로 여전한 상황이다. 국가경제 운영 측면에서 볼 때 국영기업의 개혁과 농업 발전 문제는 가장 어려운 숙제로서 이의 해결이 현안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전국에 산재된 국영기업 중 작년 기준 적자를 기록한 기업이 전체의 44%이상으로 확대되었고 그들의 부채비율도 이미 80%선을 넘어섰다.실제로 전국 국영기업의 총부채액은 3조1천억 인민폐(3천8백30억 달러)로서 이는 국가 전체 경제성장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농업분야 역시 어려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양곡생산의 증가속도는 매년 약 1천4백만명으로 추산되는 인구증가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게다가 전국의 경작면적도 매년 감소 추세로 작년에는 5백96만9천무(무·12억평)로 평가되었으며,식량생산은 19 90년 이래 증가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이상의 여러 문제들이 바로 현 중국 정부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라 할수 있다. 금년은 중국의 「9차 5개년 계획」의 첫 해이다.중국 정부는 「대기업은 더욱 엄격히 관리하고 소기업은 관리를 완화한다(조대방소)」는 원칙하에 국영기업의 개혁을 추진하고 소기업은 개방을 확대하고있다.또한 은행 대출과 재정지원을 줄여가는 한편 부실기업들은 생산중단,파산 혹은 재정비의 수단을 통하여 개혁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우려되는 점은 실업자 수가 크게 증가되는 것이다.현재 전국의 취업인구 수는 8천만명이고,정식으로 등록된 실업자 수는 약 2천만명이다.그러나 여기에 각지에서 생산 중단 또는 장기적인 무직공의 수를 포함시키면 그 수는 두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므로 금년 한햇동안은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에게는 냉엄한 시험장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따라서 강택민 주석은 필수적으로 이러한 사회,경제 등의 난제를 능히 해결하여야만 국민들로부터 신임을 얻게되고 97년 국무원 총리를 경질하는 시기에도 권력분배를 원만히 치를 수 있을 것이다. 한편,대만의 경우는 작년 계속되는 정치 풍파를 경험한 바 있다.우선 집권당인 국민당내에서만도 두명의 부주석이 이등휘 총통에 도전하여 결국은 분열이란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또한 국민당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입법의원 선거에서 과반수를 차지하지못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으며 설상가상으로 서로 대치해 경쟁하던 두 야당이 돌연히 연합하는 사태도 발생하였다.이 모든 사건은 국민당이 집정지위를 크게 흔들어 놓았고 정국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경제 측면에서는 거품경제의 쇠퇴를 비롯하여 위기가 도처에 잠복해 있는 실정이다.특히 금융사고,임금의 급증,법 기강 해이등으로 투자 환경이 계속 악화되고 자금이 해외로 유출되는 현상을 초래하였다.금년 3월의 총통 선거에서 누가 총통이 되느냐보다는 과연 어떻게 이러한 난제들을 극복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과거와 마찬가지로 경제 위주의 정책 방향으로 속히 회귀할 수 있을 것인지,또는 각 지방인 간의 화합이 성취될 수 있을는지,또는 각 당파간의 모순으로 조성된 사회 긴장을 어떻게 해소할수 있을 것인지등의 문제가 남아 있다. 작년 이등휘 총통의 방미이후 양안관계는 시종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중국 정부는 대만에 대해 「무력으로 협박하여 평화를 유지한다(이무핍화)」는 정책을 채택하여 대만에서는 두차례전운이 감돌았다.중국 정부의 목적은 소위 실무 외교를 적극적으로 저지하는 한편 순수 국내 문제를 국제 문제로 비화시키려는 대만의 노력에 쐐기를 박으려는 심산인 것 같다.비록 중국 정부가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의도는 분명히 밝혔으나 실제로 무력으로 대만을 침공하는 사례는 아직 없으리라 보여진다.무력운운은 압력의 수단으로 판단되며 아마도 금년 3월 대만의 총통 선거 이후 당락이 판정나면 그때야 중국은 양안관계를 다시 평가하게 될 것이다.
  • 유엔 「국제 빈곤추방의 해」… 북녘의 실상

    ◎북한 함경도 주민 등 13만 “아사 위기설”/곡물 부족량 259만t… 절취·유랑구걸 속출/3월말 식량난 피크 예상… 체제붕괴설 확산 95년 여름 사상최악의 수해발생 이후 북한의 식량난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설이 계속 확산되고 있다. 96년에는 식량위기가 더욱 심화되어 김일성 사후 북한체제가 벼랑끝에 설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의 식량난과 관련해 한가지 주목되는 현상이 있다.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평가가 상당히 차이가 난다는 점이 그것이다.외신,특히 미국언론들은 북한의 식량난이 체제붕괴 일보직전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를테면 지난 연말 국제적십자사의 한 고위관리는 북한주민 약 13만여명이 5개월간 식량배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굶주림에 직면하고 있다고 보고했다.국제적십자사의 피에트로 칼비 파라세티 북한수해 조사단장의 증언이었다. 최근 수재 구호품 전달차 북한에 다녀온 버나드 크리셔 뉴스위크지 전 도쿄지국장의 증언도 같은 맥락이다.그는 『앞으로 3개월 이내에 획기적인 식량구호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50만명 정도의 주민이 죽어가는 상황을 맞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지난 연말 워싱턴발 외신은 이보다 한술 더떠 북한이 식량난으로 인해 일촉즉발의 주민폭동 위기를 맞고 있다고 보도했다.익명의 미국방부 관리의 말을 인용한 이 보도는 북한군부가 이같은 소요를 우려해 경찰기능까지 떠맡고 있다고 밝혔다. ○“실태 과장” 시각도 그러나 우리측 당국은 북한의 식량부족사태에 대한 국제기관들의 평가가 다소 과장됐다는 입장이다.북한이 국제사회에 식량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당장의 먹거리만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재고량 부족분을 메우기 위한 계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이다. 북한은 아직 비축중인 군량미는 요지부동으로 풀지 않고 있다.때문에 아직은 절대절명의 위기상황은 아니라는 분석도 없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얼마간의 체감지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북한 식량난이 심각하다는데는 국내외적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이대로 간다면 단순한 식량수급의 불균형 차원을 떠나 김정일체제의존망이 걸린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140만t 수입 불가피 정부는 당초 북한이 95년 식량부족분이 2백59만t에 이를 것으로 보았다.한해 곡물소요량이 6백72만t으로 추정되나 북한의 94년도 식량생산량은 4백13만t에 불과한 탓이다. 따라서 배급량을 줄이는 등 내핍을 통해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인다고 하더라도 최소 1백40만t의 곡물수입이 불가피하다는게 정부의 분석이었다. 이에 따라 북한은 95년 한국으로부터 쌀 15만t,일본으로부터 50만t(실제 인도분은 12월말 현재 32만여t)의 무상지원을 받았다.태국으로부터 수입한 싸라기쌀을 포함해도 외국으로부터 도입분은 89만3천t에 불과해 부족분을 메우기에는 크게 역부족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7,8월 「1백년」만의 수마가 곡창지역을 포함한 북한전역을 훑고 갔다.미국 정보기관은 터무니없이 부풀렸다고 결론지었지만 유엔조사단도 북한면적의 75% 수해를 인정했다. 세계식량계획(WEP)은 50여만명 북한 이재민의 90일분의 식량원조를 위해 8백80만달러를 모금,2만t의 쌀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하지만 20만여달러밖에 걷히지 않는 바람에 자체 긴급기금에서 2백여만달러를 조달,5천여t을 북한에 보내는데 그쳤다. 이로 인해 함경도 등 변방지역에서는 식량절취 행위가 빈발하고 있다는 게 관계당국에 입수된 첩보다.북한주민들이 식량을 얻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유랑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96년에도 이같은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데 있다.우선 유엔조사단이 수해로 인한 북한의 95년 곡물생산손실분이 1백7만∼1백45만t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국제적십자사측은 13만명의 북한주민이 아사위기를 넘기기 위해선 96년 10월 수확기까지 매달 2천여t의 곡물을 원조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우리측 당국도 북한이 96년에도 심각한 식량난에 허덕일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다.그러나 통일원·안기부·농촌진흥청 등 부처별로 북한의 구체적인 식량부족분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내놓고 있다.예컨대 통일원은 북한의 내년도 식량부족분이 3백만여t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으나 농업경제연구원은 이보다 훨씬 많은 3백62만여t으로 잡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95년 연말 북한의 95년 한해 곡물생산량을 약 2백60만6천t인 것으로 잠정 추정했다.이는 북한의 5개월분 소요량에 불과하다.96년도 북한 식량소요량을 내핍생활을 감안해 최소 6백22만4천t으로 보았을 경우다. 이중 쌀은 2백23만7천t,옥수수는 66만1천t이 부족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농경연 분석에 따르면 북한의 올해 쌀생산량은 평년수준인 1백28만5천t보다 41%나 적은 76만1천으로 단보당 생산량이 남한(4백45㎏)의 28%에 불과한 1백27㎏에 그쳤다. 이같은 추계가 사실이라면 96년 3월이면 전량이 소비돼 본격적인 춘궁기가 시작될 전망이다.물론 북한이 95년에 외부로부터 무상지원받은 쌀이 이미 전량 소비됐다는 것을 전제로 한 얘기다. 다만 통일원·농촌진흥청 등은 북한의 95년 곡물생산량이 이보다 많은 3백50여만t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연초부터 국제사회를 상대로 식량구걸 행각에 동분서주하지 않고는 한해를 넘길 수 없다는관측이다. 물론 이같은 북한의 식량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농업생산성 저하에 따른 수년간의 생산부진과 외화난 등 만성적인 경제난의 누적으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의 김운근 수석연구위윈은 『북한의 식량난이 지난 80년대 중반부터 그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90년대에 와서 그 심각성이 한층 고조됐다』고 지적했다. 물론 80년대 중반 이전이라고 해서 북한의 식량문제가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다.단지 이때만 해도 구소련과 중국 등 동맹국으로부터 유류나 곡물을 무상지원,또는 국제가격의 절반수준으로 수입할 수 있었다. 더욱이 당시 북한의 전반적인 경제사정도 지금보다는 나았다.그래서 북한은 국제가격이 월등히 비싼 쌀을 매년 20∼30만t씩 수출하고 그대신 2∼3배나 값이싼 밀가루와 옥수수를 수입해 식량부족분을 메우는 「요령」을 부릴 여력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사정은 급격히 달라졌다.93년에 심한 냉해를 입은데 이어 94년에 우박피해,95년에 사상최대 규모의 물난리를 겪는 등 잇따른 자연재해가 북한농촌을 빈사상태로 빠뜨린 것이다. 인구의 자연증가 등으로 북한의 곡물소요량은 매년 늘어났다.그러나 곡물생산량은 91년 한해동안 4백42만7천t,92년 4백26만8천t,93년 3백88만4천t,94년 4백12만5천t으로 매년 하향곡선을 그었다. ○생산량 급전 직하 따라서 해마다 엄청난 식량부족 사태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예를 들면 94년도 총 곡물수요량을 6백67만t으로 추정할 때 부족분은 무려 2백78만6천t이었던 셈이다 여기에다 과거 「혈맹」이었던 중국마저 95년초부터 식량지원을 끊기 시작,북한의 식량난을 최악의 상황으로 만들었다.중국도 94년 자연재해로 인한 곡물 생산부진으로 대북 식량원조는커녕 동북3성과 북한과의 물물교환을 통한 음성적인 식량지원조차 금지했던 것이다. 그런데다 대외식량도입도 여의치 않았다.이 기간중 북한경제가 계속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외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외미(외미)현금구매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외채 미결제로 국제신용도가 땅에 떨어져 식량의 외상거래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북한의 실질경제성장률은 90년대 들어 줄곧 하종가를 기록했다.즉 ▲90년-3.7% ▲91년 5.2% ▲92년-7.6% ▲93년-4.3% ▲94년-1.7% 등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던 것이다. 이처럼 북한의 식량난이 가중된 원인은 여러가지로 분석된다.50년 후반부터 건설된 관계시설의 노후화 및 다락밭 건설이라는 무리한 자연개조 사업도 그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북한식량난의 근본적인 원인은 비능률적인 「주체농법」과 「우리식 사회주의」의 비효율성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우선 이윤동기가 없는 국영 내지 집단농장의 노동생산성이 낮은 것을 지적할 수 있다. 또 시장경제체제에 경쟁이 안되는 폐쇄적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로 경제 전부문의 활력을 얻기 어렵고,그같은 상태에서 농업부문만 유독 발전하기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다는 지적이다.예를 들자면 경제사정이 나빠 비료나 농약투입도 덩달아 어려워졌던 것이다. 따라서 북한주민들을 기아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폐쇄적 껍질을 벗고 개혁·개방에 나서는 길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 12살진희 눈에 비친 세상살이/은희경씨 장편소설「새의 선물」출간

    ◎60년대 시골마을 무대… 당시 세태 비판 「소설이 너무 어려워진다」거나 「사설만 길고 알맹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찾아볼만한 소설.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인 은희경의 「새의 선물」은 바로 아기자기한 소설적 재미를 듬뿍 얹은 요즘 드물게 「얘기다운」 얘기다. 개발경제의 기치가 드높던 69년 자그마한 시골마을을 무대로 한 소설의 화자는 열두살 진희.이 꼬마는 「사랑방손님과 어머니」의 옥희보다 배는 조숙하지만 「양철북」의 오스카에 견주면 한결 또래다운 깜찍함이 반짝인다. 그 나이에 더 이상 성장할 게 없을 만큼 삶을 알아버렸다고 단언하는 영리한 진희.그 뒤엔 엄마가 전쟁통에 실성,딸을 집의 나무기둥에 묶어두고 자살해버린 상처체험이 감춰져있다.다락방에 깔린 대학생 삼촌의 책을 죄다 읽어치운 진희앞에서 어른들은 함부로 속을 드러낸다.고고한체 하는 이들의 심술과 허세가 남달리 통찰력있는 아이의 시선으로 익살스러우리 만큼 적나라하게 들춰지는 묘미가 읽는 이의 배를 움켜쥐게 만든다. 어디서든 볼 법한평범한 등장인물들의 사연엔 당시의 세태와 삶을 굴절시키는 구조적 힘에 대한 비판도 은연중 묻어나고 있다. 남편의 술주정과 폭력에 시달리는 광진테라(양복점)아주머니는 아이를 들쳐업은 채 터미널을 떠나는 버스가 일으킨 먼지구름속에 망연히 서서 고달픈 삶을 훌쩍 벗어나고픈 심사를 달랜다.육군상사였던 남편이 사병들을 기합주다 못을 밟아 파상풍으로 죽었어도 아들에게 뒤를 받들 장군이 되라고 당부하는 「장군이」엄마는 군사정치가 만연했던 당시의 웃지못할 삽화다. 그런가하면 윤정희·신영균 주연의 「여진족」이며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암호를 제목으로 딴「도라 도라 도라」 따위 영화,이성교제의 요긴한 수단이었던 펜팔 등이 당시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진희의 대학생 허석에 대한 아련한 첫사랑,피부하얀 현석과의 키스 등은 이 책을 한편의 깔끔한 성장소설로 읽기에도 부족함이 없도록 하고 있다. 지난 여름 전북 무주 적정산의 안국사에 틀어박혀 어떤때는 하루 2백장씩 써내려가며 두달만에 작품을 완성한 지은이는 이번 작품에잠시 얼비치고 있는 진희의 성년시대도 별개의 소설로 풀어 써 볼 계획이다.
  • 과도정부와 제2공화국(새로쓰는 한국현대사:48)

    ◎과도정부­통치권 한계… 과거청산·개혁에 실패/제2공화국­시위 잇따라 사회 대혼란… 「5·16」 초래 1960년 봄 이승만대통령의 하야로 종말을 고한 제1공화국에 이어 과도정부가 탄생 했다.그러나 과도정부는 개헌을 통해 제2공화국을 출범시켰지만 국민들이 열망한 과거청산과 정치혁신을 실현하는데 실패 했다.그래서 약체 정권으로 출범한 제2공화국은 군에 정권을 빼앗기는 비운을 맞고 말았다. 1960년 4월 21일 제1공화국의 운명이 황혼을 맞고 있을 때 이승만대통령은 자신이 평소 신뢰감을 갖고 있던 전 서울시장 허정을 만났다.이승만은 정부의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외무부장관직을 수락하도록 부탁 했다.당시 장면은 이승만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면서 부통령직을 사퇴한 상태였다.대통령이 사임할 경우 부통령이 없는 상황에서 허정이 자연스럽게 대통령직을 맡을 수 밖에 없었다.자유당 세력들도 특별한 세력을 확보하지 못한 허정이 수반을 맡아주기를 사실상 희망하고 있었다. ○허정 내각제 개헌 추진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다음날인 4월27일 대통령서리에 취임한 허정 외무부장관은 우선 내각제 개헌을 떠올렸다.이 내각제 개헌은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린 시민·학생들의 강력한 요구였고 민주당의 오랜 강령이기도 했다.허정은 취임초 첫 기자회견에서도 이 내각책임제 개헌실현의지를 밝혔다.허정은 이 회견에서 내각제 개헌을 다짐하면서 개헌을 이루어낸 뒤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를 실시하겠다고 공약 했다.국회는 4월29일 민주·자유 양당 4명씩과 무소속 1명으로 개헌특위 기초위원회를 구성했다. 국회에 개헌특위가 구성되면서 공법학회는 개헌초안을 만들어 국회에 보내오기도 하고 개헌특위 주최로 공청회를 열어 각계의 의견도 들었다.마침내 개헌특위는 5월9일 개헌요강 작성에 대체로 합의한 뒤 6월10일 본회의에 상정했다.전문 103조로 돼 있던 제1공화국의 헌법중 무려 52개 조항을 고친 이 개헌안은 재적 2백11명중 찬성 2백8표,반대 3표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앞서 허정 과도정부는 5월2일 첫 국무회의를 열고 혼란상태의 정국 수습과 경제위기 타개책을 내놓았다.부정선거 관련자 엄중처벌및 경제사범 엄단,경제적 민주화 지향,중소기업 육성의 재정적 뒷받침,악질 세무관리 엄단등이 그것이다.그러나 조직적 권력을 갖고있지 못했던 과도정부의 통치권에는 한계가 뒤따랐다.특히 군부의 부패 척결과 관련해 허정은 미국과 주한미군사령부의 견제 탓에 끝까지 숙군작업에 손을 대지 못했다.미8군 사령관 C B 매그루더는 허정에게 『한국군의 재편은 현존하는 불안정과 혼란이 종식될 때까지 연기돼야 한다』고까지 말할 정도로 숙군에 제동을 걸었다. 4·19가 요구한 문제점에 대해서도 명쾌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선거부정의 주요 음모자로 9명의 전직 각료와 15명의 자유당 간부를 3·15선거에서의 불법행위로 구속하는 것으로 그쳤다.이어 자유당에 선거자금을 불법 제공한 은행장들도 구속하고 정치·문화계 인사들에 대한 테러를 자행한 정치깡패의 두목들도 우선 잡아들이기는 했다.그러나 자유당 정권과 연결돼 있었던 이들의 처리문제는 다음 정권과 군사정권으로 넘어갔다. 과도정부는 부정축재에 대한 처벌방침도거듭 밝히고 개인 18명과 기업가 66명의 명단을 공개했지만 제2공화국 출범 때까지 아무것도 매듭지은 것이 없다.결국 당시의 정치구도나 법적 기본구조를 깨뜨릴 의지도,능력도 없었던 과도정부는 다음 정권에도 큰 부담을 주었던 것이다. ○부정축재 84명 처벌못해 제4대 국회는 내각제 개헌을 끝으로 해산 했다.그리고 나서 새 헌법의 절차에 따라 19 60년 7월29일 실시한 제5대 민의원 선거와 초대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일단 권력을 잡았다.민주당은 민의원 2백33석중 1백75석,참의원 58석중 31석을 차지했다.나머지 의석은 민의원의 경우 무소속 46석,사회대중당 4석,자유당 2석,한국사회당 1석 및 기타 군소정당 5석 순이었다.참의원의 경우는 무소속 20석,자유당 4석,사회대중당과 한국사회당·민족진보연맹이 각각 1석등이었다. 그러나 무소속 당선자 가운데 상당수가 민주당 공천 탈락자이고 이들 중 다수가 국회개원과 동시에 민주당에 재입당 했다.민주당은 명실공히 실세가 됐다.하지만 선거과정에서 분당론까지 제기됐던 민주당 계파는 여전히 복잡했다.당선자 1백75명 가운데 장면 중심의 신파 78명,그에 반대하는 구파 83명,중도파 14명등 팽팽한 구도를 보이자 신·구파가 각각 당선자대회를 갖는등 치열한 집권경쟁을 벌였다. ○장면내각 민주신파 일색 우여곡절 끝에 8월19일 민의원에서 장면총리 인준투표가 실시됐다.결국 찬성 1백17표,반대 1백7표,기권 1표로 신파일색의 장면내각이 출범했다.장면총리는 구파측에 대해 5명 정도의 인선을 제의했지만 구파의 거절에 부닥쳐 8월23일 신파측 일색의 불안정한 새 내각이 출범했던 것이다. 장면 내각은 이전의 과도정부와 마찬가지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우선 자유당 시절 부정부패의 원흉들을 처벌하는 작업에 착수했다.집중적인 지탄을 받고있던 경찰에 먼저 화살을 돌려 81명의 경찰서장을 포함한 2천2백13명의 경찰관을 파면시켰다.그 결과 독재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경찰의 기능을 상당기간 약화시킬 수는 있었지만 그 이상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미국은 설상가상으로 61년 1월 한국정부에 대해 환율인상을 요구해왔다.장면 내각은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 61년 1월 달러당 6백50환이었던 환율이 1천환으로 평가절하 됐다.이어 2월에 1천3백환으로 다시 평가절하된 판에 미국은 「한미경제기술원조협정」을 받아들이도록 종용하고 나섰다.그 대가로 장면정권은 3천5백만달러의 원조를 받았지만 이 협정은 미국 원조자금이 전체예산의 52%를 차지하던 한국 정부예산에 대한 미국의 통제권 행사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한국주재 미국인 교육자와 기술자들도 모두 한국정부로부터 외교관의 지위를 부여받았다.미국은 이것 말고도 61년 1월 「외자도입촉진법」 제정을 채근했다.이 법은 국내에 투자하는 외국자본에 대해 연간 20%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동시에 이 투자회사들은 한국내의 보유자산에 대해 아무런 세금을 내지않도록 하는 것이었다.이에따라 미국자본의 한국진출이 러시를 이루었다. 장면 정권은 이무렵 「데모규제법」등의 제정을 추진했는데 1960년 7·29총선에서 참패한 사회대중당을 비롯한 정당과 사회단체들이 반대투쟁을 벌였다.이는 극도의 사회 혼란상을 초래 했다.그리고 국민의 기본적 의무보다 권리를 더 중시하는 각종 시위가 꼬리를 물었다.이와 맞물려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는데 주역을 담당했던 학생들은 5월13일 평화통일 구호를 내걸고 「남북학생회담 환영및 통일촉진대회」를 열었다. 1961년 시국위기설이 끊임없이 나도는 가운데 이 학생집회가 열린 것은 민주주의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놓은 5월16일 군사 쿠데타 3일전의 일이었다.물론 제2공화국이 약세의 틈을 보여준 데서 비롯한 쿠데타로 평가되지만 국민들에게도 얼마간은 책임이 돌아가야 할 것이다. ◎군사자문단 「국가팀 회의자료」/“미군철수땐 한반도 적화” 예측/북의 혼란책동 선전공세 면밀 분석/팸플릿 제작 등 심리전 대응책 제시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장면정권 시절 주한미군의 대북 대응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회의자료를 미국 케네디대통령 기념도서관에서 입수했다.이 자료는 19 60년 12월22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합동군사원조자문단(JMAAGK)의 국가반(Country Team)회의자료로 당시 혼란을 틈타 고조된 북한의 선전에 대처하기 위한 주한미군사령부의 대처방안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회의자료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는 일상적인 참석자 외에 주한미군 참모장인 에머리 워첼중장과 본드 장군등이 이례적으로 참석했다.회의주제는 「북한의 선전효과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가능한 대처방안 강구」.회의에서 주한미군측은 『북한측의 선전공세가 매우 교묘하기 때문에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다』고 보고 『대한민국 정부는 경제정책 실패와 자신감 결여,혼란·판단불능 때문에 공산주의선전에 대해 적절히 대처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판단했다.워첼장군은 『군사적인 견지에서는 이승만 정권보다 상황이 더욱 악화돼 있다』면서 『필요하다면 남한의 군사적·경제적 소유물에 대해 통제를 해야한다』고까지 발언했다. 회의자료에는 미군이 철수하면 공산주의자들이 전 한국을 장악할 것으로 예상한 대목도 들어있다.워첼장군은 『미군이 철수하면 전한반도를 공산주의자들이 석권할 수 있을 것인데 왜 북한인들이 자유선거 실시에 동의하지 않는지 알 수 없다』고도 말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결국 미국공보원(USIS)의 전문가 팀이 대한민국 정부와 공동으로 북한의 선전위협에 대응하는데 적극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에 동의했다.자료에 따르면 미국공보원은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사령부가 함께 북한선전에 대응하는 팸플릿을 만들고 양국 정부가 이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요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특히 주한미군사령부는 공산주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인원과 기구정비를 준비했는데 이는 한국군의 정치개입을 초래했을 가능성을 함축했다.
  • 북 폭격기 「서울공습 5분권」 배치/권 안기부장 국회 보고

    ◎“올 겨울∼내년초 가장 위험” 전투기의 전진배치 등으로 서울까지의 공격시간을 종전의 30분에서 5∼6분대로 단축하는 등 북한의 특이한 군사움직임을 볼때 경제위기상황에서도 그들이 전쟁준비를 완료,김정일 및 군부 지도층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 대남도발을 감행할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라고 국가안전기획부가 15일 밝혔다. 권영해 안기부장은 이날 하오 국회 정보위에 참석,북한의 군사동향에 대한 비공개 보고에서 『북한에는 김정일이 권력승계를 뒤로 미룬채 위기관리에 주력하는 과도기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북한내 체제위기가 심화되어 올 겨울과 내년초 춘궁기는 한반도 위기관리의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고 신상우 위원장이 전했다. 권부장은 특히 『내년도는 미국 러시아 일본등이 선거정국에 돌입하고 중국도 등소평 이후체제가 본격 등장하게 되는등 한반도 주변 4각이 전환기 상황에 처하게 되므로 전략환경의 유동성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권부장은 북한의 군사동향과 관련,『올 10월중 4백20대 이상의 전투기,폭격기,수송기,헬기등이 전후방기지로 재배치되면서 90대 이상의 항공기가 비무장지대 40㎞내외의 태탄(황남),누천리(황북 인산),구읍리(강원 통천)등 3개 예비기지로 전진배치됐다』고 보고했다. 권부장은 『이중 IL­28폭격기 1개연대는 의주에서 태탄으로 추진배치됨으로써 서울까지 도달시간이 종전 30분에서 5분으로 줄었다』면서 『또 미그 17기 70여대를 누천리와 구읍리로 전진배치한 것은 구형기인 미그 17기로 1차공격을 감행한뒤 미그 29등 최신예기로 2차공격을 가하려는 전술로 보이며 종전 8분에서 6분이면 서울을 공격할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권부장은 『북한지도층이 대남혁명정세가 유리하게 호전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상황에서,파국에 처한 체제의 총체적 난관과 남침을 위해 강화된 군사력등 복합적 요소가 결합되면 곧 무력도발의 가장 큰 잠재위험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북한이 현재 동계훈련에 돌입하고 있으며 훈련중 공격작전으로 이어질 수 있어 경보시간을더욱 단축하게 된다는 측면에서 경계가 요망되고 있다』고 말했다. 권부장은 이어 『김정일의 직접지시로 전쟁지휘체계를 보강하고 후방 전쟁준비태세를 강화,전시 지휘체계화했으며 전국적으로 2백여개 지하갱도에 3개월간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물자를 채우고 비축용 갱도를 계속 건설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일 자민당 「종전 50주 의원연맹」/“침략 미화” 또 망언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자민당 국회의원 1백70여명으로 구성된 「종전 50주년 국회의원연맹」(회장 오쿠노 세스케 전법무장관)은 8일 도쿄 자민당본부에서 회원 32명이 참석한 가운데 총회를 열고 『일본만 침략행위를 한 것이 아니다』라는 견해를 발표,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이날 견해에서 『엄격한 점령정책과 극동국제군사재판에 의해 일본 혼자만이 침략·잔학행위를 행해온 것과 같은 착각을 받고 있으며 아직도 그 세뇌로부터 깨어나지 못한 자가 적지 않다』고 과거 침략사와 이에 대한 반성의 자세를 전면적으로 부정했다. 망언파동으로 사임한 에토 다카미 전총무청장관이 부회장으로 있으며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낭)자민당총재,히라누마 다케오(평소규부)운수상,모리 요시로(삼희랑)건설상등 현직 각료도 회원으로 가담하고 있는 「종전 50주년 국회의원연맹」은 이날 채택한 견해에서 『오는 18일 열리는 정부 주최의 전후 50주년 집회가 앞선 전쟁에 대한 반성이나 사죄등 일방적인 역사인식을 보이는 장이 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 스키용품 등 6개 품목 간이세율 10%P 인하/내년부터

    내년 1월부터 현재 실거래 가격의 60%를 부과하고 있는 스키용품 등 6개 품목의 간이세율이 50%로 10%포인트 낮아진다.이에 따라 60%의 간이세율 적용대상 품목이 없어지게 돼 현재 7단계(2.5∼60%)인 간이세율 구조가 6단계(2.5∼50%)로 축소된다. 재정경제원은 6일 간이세율의 구성요소인 특별소비세의 최고 세율이 내년부터 25%에서 20%로 낮아지는 것을 반영하기 위해 관세법 시행령을 개정,내년 1월부터 간이세율도 함께 낮추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간이세율이 60%에서 50%로 낮아지는 품목은 설상 및 수상스키용품과 스쿠터,볼링용구,윈드서핑용구,공기조절기,영사기 및 촬영기,텔레비전 영사투사기 및 스크린 등 6개 품목이다.이로써 50%의 간이세율 적용대상 품목은 기존의 녹용 한 개에서 7개로 늘어난다. 간이세율제는 관세와 특소세,부가가치세 등을 합산한 세율을 기초로 하나의 세율을 만들어 관세를 매기는 것으로 여행자의 편의를 돕고 신속한 통관을 꾀하기 위해 여행자 휴대품과 이사물품 및 우편물 등에 적용된다.품목에 따라 2.5%(수리선박),35%(음료 및 피아노),40%(특수화장품),45%(냉장고) 등이다.
  • “정치권 유입 비자금 철저 수사를”/노씨 기소­정치권 반응

    ◎“비리척결에 성역없다” 재확인­여/“대선자금 수사 미흡” 한목소리­야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구속기소에 이어 정치권 비자금 관련자에 대한 수사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5일 정치권은 사정의 폭과 파장을 놓고 술렁대는 모습이었다. ▷청와대◁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날 검찰 발표가 일반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에 『노전대통령 기소시한에 맞춰 일단 발표를 한 것일뿐 수사가 완결된 것은 아니니까 좀더 기다려봐야 한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특히 정치권 사정과 관련,『언론에서 쓰는대로까지 진전될지 여부는 분명치 않지만 노씨 비자금 중 아직 사용처가 밝혀지지 않은 부분을 추적하다보면 무언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다른 비서관은 『오늘 검찰 발표는 안개만 피운 수준 같다』고 평하기도 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이날 상오 11시30분쯤 검찰의 발표문을 처음으로 전달받아 김대통령에게도 그때 보고했다고 한 관계자가 전했다.이 관계자는 『검찰이 독자적으로 수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청와대는 어느기업이 기소되는지도 최종 순간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민자당◁ ○…손학규 대변인은 『우리 헌정사에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안될 부끄러운 일이지만 비리척결에는 성역과 예외가 없음을 다시 한번 일깨운 역사적 교훈』이라고 공식 논평했다.그는 또 『노씨의 비협조적인 자세로 진실이 명확히 밝혀지지 못한 것은 유감』이라고 밝힌뒤 『특히 사용처가 확인되지 않은 8백억∼9백억의 비자금 내역과 정치권에 유입된 자금을 철저히 보강수사해 의혹을 풀어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중진의원 일부가 다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계파간 긴장이 표면화하고 있다.민정계의 동요가 눈에 띄게 심해지고 있다.『누구 누구가 사정대상으로 올랐다더라』하고 구체적인 인물까지 거론하며 검찰수사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치권 사정이 5·18 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탈당을 서두르고 있는 몇몇 민정계 의원을 그대로 눌러앉히려는 의도의 차원에서 불거져 나왔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한 민정계의원은 이와 관련,『재벌총수와 이원조·금진호씨를 구속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한 것을 보면 민정계를 겨냥한 의도적 사정은 없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이와는 별도로 민자당은 비자금 사용처에 대한 검찰의 보강 수사에서 국민회의 김대중,자민련 김종필총재의 연루사실이 드러날 것인지에도 시선이 쏠려있다.이미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구속한 마당에 두 김총재도 사정권에서 벗어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설득력있게 나돌고 있다. 전씨 구속으로 대구·경북의 여론이 악화된데다 내년 총선에서 두 김총재의 건재가 확인되면 설상가상으로 최악의 총선결과가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야권◁ ○…국민회의 박지원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한마디로 정략적인 왜곡수사』라며 김총재의 「20억원 이상 수수설」이 드러나지 않은데 대해 『그동안 이를 주장해온 민자당 강삼재총장은 김총재와 국민회의에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김옥두 의원 등 측근들은 『검찰 수사에서 모든 것을 밝힌다고 해놓고선 아무 것도발표하지 않은 것은 김대통령의 대선자금을 밝히지 않으려는 정략적 의도』라며 다음 단계인 정치인 사정에 대비,역공을 펴기도 했다. ○…민주당 이철 총무는 『이렇게 되면 국민의 의혹만 증폭시키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규택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비자금의 구체적인 사용처를 밝히지 않은 것은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의도를 남긴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원조·김종인·금진호씨의 구속을 촉구했다. ○…자민련은 예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비자금 사건의 조속한 매듭을 촉구하면서도 기대미흡이라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했다. 구창림 대변인은 『민자당은 대선자금 공개 약속을 스스로 밝힐 차례』라고 말했다.
  • 할말잊은채 초조­당혹감 못감춰/당사자 시각

    ◎“대책없다”… 「소급입법」에 불만표시 민자당의 5·18특별법제정 및 관련자 처벌방침이 밝혀지자 연의동의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측은 말을 잊은채 경악하는 표정이었다. 전전대통령은 이날 상오10시 친척집에 간다고 외출해 있다가 보도를 접한 비서진의 보고를 받았으나 구체적인 반응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전전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에는 이날 저녁 장세동 전안기부장,이양우 법률고문 등 측근들과 맏아들 재국씨,동생 경환씨 등이 속속 모여 현상황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한편,앞으로의 대응책을 숙의했다. 이에앞서 이법률고문은 『5·18사태는 13대 국회에서 정치적 종결을 선언했고,현정부하에서도 공소권 없음의 불기소처분을 했다』면서 『헌법을 무시한 중대 잘못』이라고 특별법제정에 강력히 반발. 노씨측에서는 『지금 비자금 사건에 정신이 없는 상황인데 뭐라고 할 얘기가 있겠느냐』고 설상가상이 된데 대해 곤혹스러워 했다.박영훈비서실장은 『노전대통령이 구치소에 있어서 뭐라고 할 얘기가 없다』고 말문을 닫았다. 노·전씨측은 특히 이날 민자당의 강삼재 사무총장이 사법처리 대상으로 전·노씨를 구체적으로 적시해 포함시킨데 대해 몹시 당혹스런 표정이다. 5·18당시 20사단장으로 광주유혈진압에 참여했던 자민련의 박준병의원은 『시효가 지났는데 소급법을 만들어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다』면서 『민자당에도 5·18관련자들이 있는데 특별법이 무슨 내용이며 어떤 의도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허화평의원측은 『지금 앞으로 어찌될 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코멘트할 상황이 아니다』고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 중,대 대만 군사지휘소 창설/병력배치·군사훈련 등 관장

    【홍콩 연합】 중국공산당 중앙군사 위원회는 대만문제를 날로 복잡하게 만드는 불확실요소들로 인해 통일이 위태롭게되자 중앙군사위내에 「대대만군사지휘소」를 창설해 대만에 대한 병력배치,전쟁준비상태 유지,군사훈련 계획,군사전략 연구 등을 「직접」 관장하기 시작했다고 홍콩연합보가 18일 북경발 1면 주요기사로 보도했다. 이 지휘소 창설에따라 종전까지 대대만 전략을 관장해왔던 인민해방군 남경군구의 권한과 역할은 현저히 약화됐다. 북경의 해방군 소식통은 이 지휘소가 앞으로 상설상태에서 잦은 활동들을 벌일 것이라고 밝히고 당중앙군사위는 종전 철수시켰던 대만해협 건너편 복건성과 절강성의 대만을 겨냥한 해방군 상주병력도 재배치해 유사시 상황에 항상 대비중이라고 말했다. 해방군은 이에 그치지 않고 대만의 김문을 점령하고,대만 서부에서 미사일을 발사해 대만의 척추격인 중앙산맥을 가로질러 동부로 날아가게 하고,자체 제조한 중성자탄을 사용해 대만을 공격하고 원자탄작전을 모래로 만든 대만지형의 모형위에서 실시하는 건의까지 했다고 이 소식통은 밝혔다.
  • 일의 정경유착 단절 노력 어디까지

    ◎94년 정자법 개정… 모금 엄격 규제/록히드·리크루트 등 사건으로 총리 잇따라 사임 일본정치는 금권정치다. 자민당의 일당 장기 지배아래서 여당과 경제계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뇌물성 정치자금,리크루트사건,사가와규빈사건으로 총리 등이 줄줄이 물러났다. 금전스캔들이 꼬리를 무는 것은 「정치에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었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정치가는 기업에 손을 벌리고 대신 특정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일쑤였다.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기업은 돈을 통해 정치가를,관료는 행정규제를 통해 기업을,정치가는 당정관계를 통해 관료를 견제한다는 정치가와 관료,기업간의 삼각관계가 유지돼 왔다. 정경유착은 76년 다나카 가쿠에이(전중각영)총리가 연루된 록히드 사건이 터지자 도마위에 올랐다. 당시 다나카총리의 증수회액은 5억엔 남짓. 후임 미키 다케오(삼목무부)총리가 금권정치 체질개선에 노력했으나 결국 정치헌금의 폐지에는 이르지 못하고 정치윤리심사회 설치 및 정치자금에 대한 양적 규제도입에 그쳤다. 또다사 일본정치의치부가 드러난 것은 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가 총리이던 88년 리크루트사건. 처음에는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 전총리가 받은 부분이 문제가 됐다. 리크루트 코스모스사가 정치인들에게 비공개주식을 양도해 부당이익을 취하게 한 사건이었다. 나카소네 전총리는 국회에 소환돼 국민앞에 사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뒤 사건은 다케시타에게도 불똥이 튀어 그도 총리직을 하차했다. 93년 출범한 비자민연립정권의 새얼굴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양희)총리도 사가와규빈사건으로 물러나야 했다. 결국 90년대들어 정경유착의 배경이 되는 정치제도를 바꾸지 않고서는 정경유착의 뿌리를 끊을 수 없다는 여론에 따라 일본은 94년 정치헌금 등을 엄하게 규제하는 방향으로 정치자금법을 고치고 선거구제를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바꾸었다. 게이단렌(경단련)도 94년 정치헌금 모금을 중단했다. 그러나 일본 정치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있다는 징후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최근 지방선거와 참의원선거에서 자민당과 신진당은 여전히 대형 건설업체 등을돌며 선거운동을 벌이는 구태를 되풀이했다. 게이단렌은 1년만에 자민당에 1백억대의 정치헌금을 내기로 최근 결정했다. 정치자금을 개인적 치부수단으로 삼은 가네마루 말고는 비리에 연루된 인물들이 모두 부활해 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죽은 적도 없다. 다나카는 사건후에도 지역에서 화려하게 당선됐고 다케시타,가토 고이치(가등굉일) 자민당 간사장,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 신진당 간사장,모리 요시히로(삼선랑) 건설상 등은 아직 건재하다.
  • 전원도시 베료조브카(시베리아 대탐방:44)

    ◎주말농장서 채소 등 재배… 수입 “짭짤”/직장인들 농장에 가축 위탁사육 늘어/도시 일자리 줄고 물가올라 귀향 러시/집단농장은 중국산 농산물에 밀려 점차 쇠퇴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서쪽으로 1백㎞를 달리면 아름다운 전원도시 베료조브카가 나온다.넓이가 1백∼3백㏊나 되는 엄청난 규모의 콜호즈 「러시아혁명 60주년 기념농장」이 들어선 곳이다. 이 농장을 배경으로 들어선 수백가구의 주말농장이 최근들어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도시로 떠났던 젊은이들이 다시 농촌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농촌 「베료조브카」로 되돌아오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이웃 크라스노야르스크의 군수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일자리가 없어진 탓이다.여기에 도시 물가가 폭등하면서 이를 견디지 못한 일부 시민은 귀향행렬을 서두르고 있기도 하다.또 하나의 「흡입요인」은 「베료조브카」의 땅이 기름진 옥토라는 사실이다.이 옥토는 「체르나좀」이라 불린다.「흑토」라는 뜻이다.비료를 별도로 주지않아도 웬만한 작물은 2∼3모작이가능하다. ○연간 2∼3모작 가능 베료조브카 주말농장의 가축위탁사육도 도시민들로 부터 시선을 끈다.농업이외의 직업을 가진 가축소유주들이 일정한 수고비를 주고 남에게 가축을 맡겨 키우는 방식이다.러시아 전역이 그렇듯 대부분의 시베리안들은 안정된 직장을 제외하고는 직업을 두세개 전전한다.한개의 직업으로는 생활이 어렵기 때문이다.이곳 주말농장에는 젖소나 양 2∼3마리쯤을 소유하고 있는 봉급쟁이가 많다.젖소나 양을 갖고 있으면 이들로부터 나오는 우유가 생활에 짭짤하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도시 직장인이 퇴근할 무렵이면 이 마을에는 초원에 맡겨둔 가축들을 데리고 집으로 오는 행렬이 이어진다. 이 마을 들녘에서 만난 지굴라예프씨(39)는 따로 직장을 갖고 있는 한 젖소주인으로부터 젖소를 받아 하루종일 관리해주는 사람이다.그가 관리하는 젖소는 모두 40마리.하지만 소 한마리를 한달간 맡아주고 받는 돈은 2만루블(4천5백원정도)에 불과하다.주인들은 아침 일찍 젖을 짜고 소를 맡기고 출근한 뒤 다시 회사에서 돌아와 맡긴 소를찾아간다.젖짜는 일까지 맡기면 돈을 더 줘야한다.젖은 1차가공을 거쳐 주인이 직접 시장이나 상점에 내다판다.지굴라예프씨는 『젖소의 개인소유가 10년전부터 시작됐으며 최근 국가농장으로부터 젖소를 불하받아 키우는 개인 소유주가 크게 늘고 있다』고 변화된 이곳 모습을 전했다. 밀레스킨 이바노비치씨(67·보일러공)도 베료조브카의 「체르나좀」 혜택을 톡톡이 보는 농부이자 공장종업원이다.그 역시 식탁에 오르는 모든 야채·과일을 주말농장에서 자급자족한다.뿐만 아니라 짬짬이 생산한 농산물을 팔아 출가한 아들과 딸에게 생활비를 대주기도 한다.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갔지만 아들과 딸가족은 여전히 특별한 직장없이 놀고 있다. ○야채 등 농장서 조달 때문에 그들도 주말마다 이곳으로 직접 와 농사일을 거든다.가족의 유일한 소득 원천이 이곳이기 때문이다.3백여평되는 그의 집 안뜰에는 양배추·오이·붉은무·당근·토마토·파·딸기·마늘등이 가득했다.직접 지어먹는 작물가운데 일부는 시장에 내다 팔고 있었는데 점차 판매량을 늘릴 계획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베료조브카 언덕배기에 있는 그의 농장주택은 「여름주택」과 「겨울주택」으로 나눠져 있다.6·7·8월은 여름주택에서,나머지는 겨울주택에서 보낸다는 것이다.여름주택은 통나무를 이용한 2층 목조가옥으로 모든 방이 통풍이 잘되도록 「원두막」식으로 꾸며져 있었다.겨울주택은 나무를 땔감으로 하는 페치카가 달린 여느 일반주택이었다.주택이 계절별로 따로 있는 이유는 이곳 베료조브카의 계절별 기온차가 크기 때문이다.여름은 아주 덮고 겨울은 몹시 추워 연교차가 섭씨 70∼80도를 오르내린다. 그는 『공장의 일거리가 줄어 일주일에 3일정도만 근무,남은 시간을 주말농장에 투자한다』고 했다.삶의 방편으로 밭농사를 시작했지만 전업농가도 최근 부쩍 늘고 있어 이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그의 아들·딸은 틈틈이 벽돌을 사 이바노비치의 집에 쌓아둔다.도시생활에 별반 소득이 없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다.그는 『이 모든 모습이 페레스트로이카가 망쳐놓은 것』이라면서도 이는 옛소련이 좋다는것은 아니며 단지「공산당이 없는 옛소련」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중국 농산물 밀려와 베료조브카의 「배경」인 「러시아혁명 60주년 기념 콜호즈」(집단농장)는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파종면적·수확량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이는 농산물 가격이 자유화되면서 이전의 정부지정「단골고객」이었던 북쪽 추운지방 사람들이 가까운지역의 싼 농산물을 사먹기 때문이다.1백10㏊의 체르나좀에서 연간 양배추 3천t을 생산한다.2백㏊의 땅에서는 감자를,당근수확량도 연간 2백t에 달하는 엄청난 농장이다.하지만 해마다 10%이상 수확량이 급감,집단농장 관리자들을 당혹하게 만들고 있다.설상가상으로 지난해 겨울에는 수확해놓은 양배추·감자 수십t이 판로를 잃어 창고에서 썩어갔다고 한다. 이처럼 러시아의 상징이던 콜호즈가 갈길을 잃고 있는데 대해 한 관계자는 『소비지인 이웃 크라스노야르스크에 값싼 중국산 농산물이 엄청나게 밀려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농산물의 수급조절을 위해 창고를 늘리려해도,30∼40년된 농기계들을 신제품으로 대체하려해도 예산지원이 없다는 것이 콜호즈관계자의 푸념이었다.8백여명의 인부도 보다 월급을 많이 주는 직업을 찾아 하나 둘씩 떠나고 있다.이 집단농장의 평균월급은 42만루블(95달러)정도.때마침 양배추의 모종을 옮겨심던 콜호즈 인부관리자 게라시모바 옐레나씨(25·여)는 『이 정도의 봉급은 죽지 않고 겨우 살 정도』라면서 『젊은 부부들은 부모가 도와주지 않으면 생활하기 힘들다』며 말끝을 흐렸다.
  • “한­일 합방은 동양 평화 위한 것”/일 자민,망언책자 배포

    【도쿄=강석진 특파원】 한일합방조약은 합법적으로 체결됐다는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의 발언 파문이 날로 확산되는 가운데 일 연정 제1여당인 자민당이 최근 「한일합방은 동양평화와 일본의 자위를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한 책을 소속의원 전원에게 배포한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 자민당의 보수·우익 성향 의원 단체인 「역사검토위원회」는 지난 8월 「대동아전쟁 총괄」이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이 책 첫머리에는 『군국 일본이 있었기에 아시아가 구원됐다』 『일본의 한국병합은 동양의 안정과 평화 및 일본의 안전과 자위를 위한것이었다』는 나카무라 아키라 독협대 교수의 강연내용을 싣고 있다. 자민당 지도부는 역사검토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우익색채가 짙은 「대동아총괄」이라는 이 책을 단체로 구입해 소속의원 전원에게 배포했다는 것이다. 이 모임에는 자민당 총재인 하시모토 류타로 통산상과 전간사장인 모리 요시로 건설상을 비롯 에토 다카미 총무청장관,에토 세이시로 방위청장관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 책은또 『(한일합방까지의) 화란은 모두 조선에 원인이 있었다』며 『일본은 조선을 위해 국운을 건 전쟁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헛이름만 남은 한국의 독립을 취소하고 병합한 것』이란 모욕적인 표현을 담고 있다.
  • 장백현 민간 예인(압록강 2천리:8)

    ◎민족혼 담긴 「함경도 수박춤」 사라질판/예인 김학천옹 와병… 생활고로 은둔 생활/중앙정부 지원금 적어 유·무형 문화재 관리 엄두 못내/한글판 잡지 「장백」… 재정난으로 발행 중단 장백현에는 문화전반을 총체적으로 관장하는 문화관이 있다.문화예술은 물론 체육과 오락,성인교육활동을 담당해온 장백현문화관은 지난 1949년 10월에 문을 열었다.이 문화관은 현안에 92개 촌단위 문화실과 연계되었다.문화실은 대개 저마다 특색을 가진 문화오락활동을 벌여왔다.반달이나 한달을 주기로 여는 노인무도회·장기대회·문예공연·이야기회의 활동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촌 문화실마다 마치 공통과목과 같은 별도의 활동이 또 있다.어느 촌이든 농악대를 운영하는 것이다.특히 태양촌 농민악대가 유명하다.지난 1989년 길림성 혼강시(장백은 혼강시 관할에 속함) 제2차 농민문예공연에서 1등을 차지한 농악대다.이러한 일련의 성과는 장백현문화관의 문예보도사업의 성과이기도 하다. 그런저런 이유로 해서 장백현문화관은 19 92년부터 3년간 내리 길림성 전체에서 2등 자리에 올라서는 영예를 안았다.기관지로 한족어 위주의 「장백문화보」와 한글판 「장백」잡지를 내고 있다.「장백」은 제5호를 끝으로 마감했다.그 이유는 재정난 때문이었다.국가에서 해마다 주는 16만원의 사업비로는 20명 직원들의 임금을 주고나면 전화비도 충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농악대 촌 단위로 운용 장백현문화관장은 조선족 문단에서 꽤나 문명을 날리는 이성태 선생이다.중편소설 「도도히 흐르는 압록강」을 발표한 이후 여러 문인을 길러냈고 많은 전설과 문화유산을 발굴한 장본인이기도 하다.그는 문화관의 어려운 살림을 하소연 삼아 털어놓았다. 『문화사업은 본래 돈을 들여야 되는 일이 아니겠습네까.그런데 지난달 15일 장백조선족자치현 창립기념 조선족예술절 경비로 문화관 수입이 벌써 거덜이 났디요.문화유산 발굴은 커녕 문화재 관리도 어려운 판이야요.그 유명한 민간예인 한분이 병환에 계신줄 알면서도 도움을 못드리고 있디요.한국 같았으면 인간문화재라 해서 생활보장은 될텐데…』 그의 민간예인이라는 말이귀에 번쩍 들어왔다.아니나 다를까 와병 중이라는 민간예인은 중국 전역에 널리 알려진 김학천(64)노인이었다.그는 장백현문화관장을 지낸 동생 김학현(60)선생과 함께 지난 1990년 요령성 단동에서 열린 전국 소수민족문예콩쿠르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분이다.그 때의 수상작품은 수박춤이었다.대단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심사위원들이 며칠 계속된 콩쿠르에 지쳐 꾸벅꾸벅 졸다 수박춤을 구경하던 관객들의 박수에 놀라깨어 침을 흘리면서 춤에 도취했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김학천·학현 형제는 울로초를 가지고 미니스커트 모양으로 짧게 엮은 치마만을 팬티위에 걸치고 무대에 올랐다.수박춤에는 이렇다 할 악기반주가 없다.다만 주연격인 형이 발가벗은 사지를 이리저리 치면서 입으로 갖가지 소리를 냈다.그 소리는 바람,우레,비,짐승,새 소리 등 무궁무진했다.동생은 함지박 물에 엎어놓은 바가지를 두들겨 형의 손바닥 장단을 따라 맞추었다.흥이 한껏 돋아나면 형이 여러 형태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그리고 형제가 서로 상대방의 몸을 손바닥으로 쳤다.이들 일가는 함경북도 단천군에서 지난 1962년 77세로 작고한 아버지 김달순대에 장백현으로 들어왔다.이주지는 14도구 간구자였는데 슬하에 아들 넷과 딸 하나를 두었다.아버지가 가보로 여긴 수박춤은 셋째 아들 김학천에게 고스란히 전수되었다.이미 고인이 된 맏아들은 목청이 나빠 아버지 마음에 들지 못했고 둘째는 조선(한국)전쟁에 나가 부상을 입고 집에 돌아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부친한테서 전수 받아 그리고 넷째 아들 김학현은 어려서 집을 나와 공부를 하다가 조선전쟁에 참전하는 바람에 면제를 받았다.그렇지만 그 핏줄이 그 핏줄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음악재질이 뛰어났다.넷째는 공부도 제대로 한터라 1959년 장백현문예공작단(문공단)이 생겨나면서 부단장과 단장을 지내고 장백현문화관장을 끝으로 사회공작(사회생활과 일)을 마무리 했다.지금은 농사를 지으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우리 문공단은 통화지구에서 유일한 조선족단체여서 현 밖을 자주 나갔디 않았겠수.통화,유화,임강,혼강,휘남 같은 도시에 나가면 극장이 미어졌수다.인근 농촌 조선족들은 찰떡을 해서리 기차를 타고 버스도 타고 와서 친척집이나 여관에 묵으며 관람을 했지 않슴메.도시공연이 끝나면 농촌을 돌았는데 돈과는 거리가 멀었지비.그래도 인심이 좋아 동구 밖까지 와서 환대했댔수다.어떤 사람들은 타지로 떠나면 짐을 지고 따라와 같은 공연을 며칠씩 보기도 했으니 인기가 대단했디우』 김학현 선생과 함께 그의 형님 김학천 노인을 찾아나섰다.집은 장백현 14도구진에 있었으나 겨울이 오기전까지는 늙은 양주가 더 멀리 떨어진 골짜기에 들어가 과수농사를 짓는 중이라고 했다.차가 더 기어올라갈 수가 없어서 맑디맑은 물이 흐르는 도랑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포수막을 닮은 귀틀집이 보였다.좁은 마당에 배추며 부추가 자랐다.그러나 지난해 옮겨심었다는 사과나무는 몸살에 걸려 아직 사과 한톨도 매달고 있지 않았다. ○올로초 치마입고 춤춰 그 집에서 나오던 김학천 노인은 우리 일행을 보고 반겨 맞았다.나이에 비해 너무 겉늙었으려니와 허리가 잔뜩 굽어 1m67㎝라는 키가 1m20㎝도 안되어 보였다.얼굴의 피부는 소나무껍질 같이 주름 투성이었고 러닝 밖으로 드러난 살결이 무척이나 검었다.설상가상으로 근육위축병에 걸려 손발이 쪼그라 들었다.목불인견의 몰골 그것이었다. 노인은 윗옷을 훌훌 벗었다.그리고 벽에 걸린 울로초 치마를 걸쳤다.모처럼 찾아온 나그네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동생 김학현선생도 따라서 울로초 치마를 걸쳤다.노인은 손바닥으로 앙상한 몸골을 치면서 갖가지 소리를 내고 앙천대소 하기도 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려 희로애락을 연출했다.인간의 마지막 절규로 들려왔다.노인의 눈가에는 땀인지 눈물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운 물기가 어렸다.초점을 잃은 노인의 동공이 풀린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나는 허공을 바라다 보았다.
  • 명성황후 1백주기… 재조명 활발

    ◎추모식·숭모제·뮤지컬·TV 다큐 등 기념행사 다양 오는 8일은 조선조 말 역사의 회오리 속에서 비극적으로 삶을 마친 명성황후의 1백주기가 되는 날.일본인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그 넋을 기려 다채로운 기념행사가 열리는 한편 그동안 부정적으로 평가돼 온 그의 역할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일고 있다.명성황후 현창회(회장 민영복)가 5일 추모식을 가진데 이어 한국여성예림회(회장 이온순)는 8일 비극의 현장 경복궁 녹원에서 숭모제를 열고 「독립정신」에 실린 명성황후의 사진을 바탕으로 황후복을 입은 초상화 영정(그림 권오창)을 제작,발표한다.KBS­1TV는 7일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이라는 특집방송을 하며 뮤지컬 전문 제작사인 「에이콤」은 뮤지컬 「명성황후」를 11월 공연할 예정이다. 역사학자 박성수 교수(정신문화연구원)의 기고문과 뮤지컬·특집방송의 내용을 소개한다. ◎뮤지컬 「명성황후」/일제에 맞서다 참변 당한 국모로 묘사 명성황후(민비)시해 1백주기를 맞아 「국모로서의 민비」에 초점을 맞춘 뮤지컬 한편이 선보인다.소설가 이문열씨의 첫 창작희곡「여우사냥」을 노래위주의 뮤지컬로 꾸민 「명성황후」(11월17∼26일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이씨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소설 「사람의 아들」이 연극으로 공연된 적은 있지만 이씨가 본격적으로 쓴 창작희곡이 무대화되기는 이번이 처음.이씨는 4년전부터 뮤지컬 전문 제작사인 「에이콤」(대표 윤호진)과 함께 올해로 1백주년이 되는 민비시해 사건을 소재로 한 뮤지컬 공연을 준비해왔다. 희곡「여우사냥」은 이씨가 지난 94년 문학전문지「세계의 문학」봄호에 2백자 원고지 7백장 분량으로 발표했던 것으로 이번 공연을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 김광림 교수가 새롭게 각색했다.고종황제의 드센 아내,시아버지 흥선대원군에 맞서는 며느리로서의 민비라는 기존의 도식을 거부하고 민비를 프랑스의 잔 다르크처럼 조국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조선의 국모로 그리고 있는 것이 특징.작가 이씨는 작중인물인 다이장군의 입을 빌려 『온몸으로 껴안으려 한 조국으로부터/오히려 버림받고/홀로 강한 외적과 맞서다/불꽃속에 사라져 간 조선의 잔 다르크』라고 명성황후를 칭송하고 있다. 연출을 맡은 윤호진 교수(단국대 연극영화과)는 『이씨의 창작희곡에서 대사부분을 모두 없애고 이를 노래로 처리해 마치 한편의 오페라처럼 만들어 보고 싶다』면서 『외국의 뮤지컬도 음악과 노래 위주로 흘러가고 있는 추세인 만큼 우리 뮤지컬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이런 시도는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화씨가 타이틀 롤을 맡았으며 영화 「전태일」을 촬영중인 젊은 연기자 홍경인,뮤지컬 전문배우 김민수,성악가 윤치호씨 등이 출연한다.평일 하오4시·7시30분,토·일 하오3시·6시 공연.3452­9055 ◎K­1TV 다큐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사건당시 현장도·증언 통해 진실 추적 1895년 10월 8일 새벽.세계사의 큰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던 조선 왕조의 국모 명성황후가 일본낭인들에 의해 무참히 시해된다. 1백년을 맞는 이날을 기해 KBS­1TV「역사추리」팀은 그동안 일본에 의해 왜곡된 그날의 현장을 재연하고 명성황후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시도한다.「명성황후 시해의 진실」편으로 방송시간은 7일 하오 8시.제작진은 일본정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저질러진 시해사건의 진실을 당시 영국 공사 실리어가 확보하고 있던 「사건현장도」「경복궁 습격도」,시해당시 「일본군위치도」등을 바탕으로 컴퓨터 그래픽화면으로 생생히 되살린다.이를 통해 여전히 시해책임을 부인하고 있는 일본정부의 기만성을 폭로한다는 의도다. 특히 제작팀은 이노우에와 이토 히로부미,야마가타등 당시 일본 천황의 직권을 대행하고 있던 수뇌들이 미우라를 조선에 부임시키고 이어 시해전후 활발한 접촉을 벌인 사실을 증언과 자료집을 통해 제시,일본정치권의 치밀하게 의도된 범행임을 제시한다. 또 당시 미국 다이 장군의 자문으로 활약한 러시아의 건축가 사비틴의 시해당일 상황 증언 테이프를 시청자들에게 공개할 계획.장해랑 PD는 『사비틴 증언의 경우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시청자들이 그동안 일본역사관에 의한 왜곡된 사실에 너무나 익숙해있기 때문에 이를 수정하기 위해 되도록 많은 증언,사진들을 보여줄 생각』이라고 설명한다. 이와관련,1895년 명성황후 시해전 일본신문에 게재된 삽화 몇점도 소개된다.일종의 「풍속화」로 고종과 함께 외국공사를 알현하는 명성황후를 여우의 얼굴을 한 꼭두각시로 폄하하거나 아예 기모노차림을 한 일본여자로 묘사한 것들이다. 프로그램 중간에 삽화형식의 드라마와 함께 김자영 아나운서가 명성황후 연극현장과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명성황후가 누워 있는 「홍릉」을 찾아 리포트한다. ◎명성황후 1백주기를 맞아/“드센 여자·족벌정치가” 일서 왜곡/한국침략에 방해… 장애물 없애려 살해/박성수 정신문화연구원 도서관장 「중전이 밤중에 적도의 독검에 맞아 시해되었다.세상 천지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저상일월)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전인 1895년 10월8일 밤 경복궁 구중궁궐 안에서 국모가 일본군에 살해당한다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우리나라 역사상 처음 있는 변란이었다.그러나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1895년은 동학란이 일어나고 청일전쟁이일어난 이듬해로서 지방에는 민란과 콜레라의 병란이 일어나고 중앙에는 일본군이 가득차 마침내 경복궁을 습격하는 변란이 일어나고 말았다. 사변이 일어난지 1세기가 지난 오늘 살인범의 정체가 누구인지 이미 백일하에 들어났다.다름 아닌 서울 남산에 자리잡고 있던 일본 공사관의 주인공들이 범인이었다.일본 공사 미우라(삼포오루)란 자는 살인 전문가였고 하수인인 구마모토파 깡패는 일본 제일의 야쿠자였다. 그러나 아직도 풀리지 않은 것이 있으니 처참하게 살해당한 민비(명성황후로 추존)자신에 대한 우리들의 역사적 평가이다.오랫동안 민비는 시아버지 대원군과 싸워서 정권을 잡은 비정의 며느리요 민씨 일족을 권좌에 앉혀 온갖 부정부패를 자행하게 만든 족벌정치가로서 비난받아 왔다.심지어는 그녀를 청국말년의 여걸 서태후에 비기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혹평 뒤에는 일제 침략자와 이에 뇌동한 친일파들의 모함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그래서 민비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다시 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 호칭부터 명성황후로 고치고 경복궁 안 침소 옥호루(현재 경복궁 안 민속박물관 옆)자리에 조난비를 세워 그날의 참사를 잊지 않게 하고 일제 침략의 희생자로서의 민비상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있다.특히 금년은 광복 50주년으로서 그녀의 위상을 다른 누구보다 바로 잡아야 하게 되어 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일제가 왜 민비를 죽이려 들었는가 하는 점이다.동학란을 구실로 한국에 파견한 일제는 처음부터 한국 침략의 야욕을 품고 있었다.즉 청일 전쟁을 도발하기 전에 각의에서 한국의 주권을 빼앗기로 결의했다.그러나 전쟁에는 이겼으나 열강의 강한 견제로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민비를 죽여 한국에 있어서의 일본 세력을 만회하려 했던 것이다.간단히 말해서 민비가 침략에 장애물이기 때문이었다. 민비는 당초에 강화도 조약을 맺고 개항을 결심했던 인물이고 일본에 대해서 처음에는 우호적이었다.그러나 1894년의 갑신정변 이후 일본의 침략 야욕을 간파한 민비는 반일정책을 쓰기 시작했다.일제 침략을 막기 위해서는 청국과 러시아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민비의 이러한 대외정책을 지지하는 세력을 수구파라 하고 친일세력을 개화파 또는 독립당이라 부르고 있으나 명칭부터가 잘못되었다. 흔히 구한말 국제정세를 요즘의 국제환경에다 비겨 4강+2약 운운하나 당시의 침략세력은 유일하게 일본이었다고 보아야 한다.친일 개화파는 누가 진정한 적국인가를 알지 못하고 급진적인 개혁을 부르짖어 나라안의 정치싸움을 격화시켰고 외적에게 침략의 틈을 보이고 말았다. 민비가 참살당한 뒤 친일 개화당이 다시 정권을 잡고 단발령을 선포하게 되니 나라안은 뜨거운 솥끓듯 달아 올랐다.그러지 않아도 동학란과 청일전쟁으로 국토가 완전히 폐허로 변했는데 설상가상으로 필요없는 개혁을 시도하여 나라를 어지럽히니 이 나라의 망국이 시작되었다고 모두가 개탄하였다.그래서 전국의 선비들이 무기를 들고 있어났으니 을미의병이었다.을미의병은 독립전쟁의 시작이었다. 만일 민비가 죽지 않고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그리고 나서 최근에 나온 「여우사냥」등 소설을 읽어보아야할 것이다.
  • 북한의 수재 심상치않다(사설)

    북한의 수재가 심각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북한은 1백50억달러의 재산피해에 5백20여만명의 수재민이 발생했다면서 유엔에 긴급원조를 요청했다.중요 곡창지대의 피해가 크다고 한다.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겐 설상가상의 타격이 아닐 수 없다. 북한당국은 유엔인도국(DHA)에 수재구호를,보건기구엔 의료진파견을,그리고 국제아동구호기금엔 식량지원을 각각 긴급요청했으며 유엔조사단이 북한에 파견되었다.자세한 실상은 조사결과 드러나겠지만 북한이 피해를 공개하면서 유엔에 체면불구의 원조를 요청하고 나선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그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유엔의 구호와 지원이 가능한 한 신속히 이루어져 북한동포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빨리 덜어주게 되기를 바란다.그러나 유엔의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우리도 가능한 한 구호해야겠지만 같이 수재를 당한 처지다.게다가 쌀제공이 준 상처로 적극적인 요청도 없는 북한을 자청해서 지원하겠다고 나설 입장도 아니다. 유엔이나 우리를 비롯한 국제적 지원이 이루어진다 해도 그것은 일시적 미봉책이지 근본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북한의 이번 수재는 천재인 동시에 인재적 측면도 강하다.만성적 식량난과 함께 이번 수재의 심각한 피해는 치산치수 등 사회간접투자를 무시해온 폐쇄적 북한 사회주의체제의 구조적 모순에도 큰 책임이 있다.금년은 어떻게 넘긴다 해도 내년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식량부족 등 북한이 안고 있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체제변화 말고 다른 데서 찾을 수는 없다.남북화해와 공존속의 중국식 개방·개혁만이 북한의 살길이다.우리는 천재지변이 인간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다.식량난과 수재는 북한이 고립해서는 살 수 없음을 자각케 하고 외부세계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하늘의 명령이라 할 수 있다.우리는 그것이 북한의 진로 및 한반도정세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며 대비해나가야 할 것이다.
  • 일 연정 대폭 개각/관방 노사카·건설상 모리 임명

    ◎핵심각료 3명 제외 17명 교체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무라야마 도미이치총리가 8일 개각을 단행했다. 무라야마 총리는 이날 각료 20명 가운데 17명을 새로 임명하는 등 수적으로는 대폭 개각을 단행했지만 관심을 모아온 외상과 대장상에 고노 요헤이 외상(하야양평 자민당총재)과 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 신당사키가케대표)를 유임시킴으로써 연립정권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날 개각에서는 또 현행 내각과 마찬가지로 자민당 13,사회당 5,신당사키가케 2의 배분비율이 유지됐다. 오는 9월로 예상되고 있는 자민당 총재선거에 고노외상에 맞서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는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낭)통산상도 유임됐다. 이날 개각에서는 모리 요시로(삼희랑)자민당 간사장은 건설상에 임명됐으며 관방장관에는 무라야마총리의 측근인 노사카 고켄(야판호현)건설상이 기용됐다. 또 경제기획청장관에는 민간경제인인 다이와종합연구소 이사장인 미야자키 이사무(궁기용)씨가 기용됐다.그는 신당사키가케의 몫으로 간주됐다. 한편 모리간사장의입각으로 공석이 된 자민당 간사장에는 총재선거에서 고노외상을 지원하는 미쓰즈카 히로시(삼총박)전정조 회장이 기용됐다. 이날 개각은 17명이 새로 임명되고 입각경험이 없는 13명이 입각하는 등 대폭 개편의 의미를 살리는 면도 있으나 선거패배 책임 및 자민당 총재선거와 관련,초점이 돼 온 외상 대장상 통산상등 주요 각료직이 유임됨으로써 부분개각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개각과정에서 3당간 이해가 엇갈림으로써 정권기반이 취약해지는 한편 총리의 우유부단한 결정에 대해 자민당등으로부터 비판이 제기되고 있어 향후 정국운영에 부담을 줄 전망이다. ◎일 개각배경과 전망/수적으로는 「대폭」 내용에선 「부분」/분위기 쇄신 못하고 3당 「나눠먹기」 일본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내각이 8일 「대폭」 개편됐다.이날 개편은 수적으로는 대폭이지만 내용면에서는 부분개각적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개각의 폭을 보면 17명이 새로 임명됐으며 입각경험이 없는 13명을 기용,새롭게 출발하는 모습을 보였다.하지만 내용면에서 보면 무라야마내각이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를 말해주는 주요 포스트,즉 총리 외상 대장상 통산상 등은 모두 유임됐다.바꿔 말해서 기본 골격은 그대로 두고 부품만 대폭 교체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달 23일 참의원선거에서 연립여당이 참패한 뒤 내각총사퇴나 중의원해산등을 대신해 내각의 대폭개편으로 심기일전의 분위기 쇄신을 꾀하겠다던 당초의 의미가 충분히 살지 못한 개각이었다. 개각의 초점은 자민당 총재인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외상과 신당사키가케의 대표 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대장상의 거취였다.다케무라대장상은 선거패배등의 책임을 놓고 지난달 이미 당대표 사의를 표명했다가 철회했다.고노 외상은 9월 자민당 총재선거를 놓고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낭)통산상 지지파의 거센 도전에 맞서기 위해 외상을 내놓고 「무임소 국무위원」을 맡아 총재선거에 전념하려 했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는 개각에 미온적이었다가 대폭 개편을 주장하는 고노외상의 주장에 따라 대폭개각에 합의했지만 개편의 칼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대폭 개각에 이어 당인사까지 행함으로써 총재선거에서 기선을 잡으려는 고노외상과 총재선거후 개각을 주장하는 하시모토파 사이에서 어느 쪽도 편을 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또 다케무라 대장상을 교체할 경우 선거패배의 책임을 둘러싸고 총리에게도 따가운 눈길이 쏠릴 것은 뻔한 일이었다. 이에 따라 무라야마총리는 먼저 다케무라 대장상을,다음에는 고노외상을 각각 제자리에 주저앉히는데 주력했다.또 고노 외상이 그만두면 자신도 통산상을 그만두겠다는 하시모토 통산상을 설득했다.결국 8일까지 개각의 초점이 되는 주요 각료직 3인 모두가 유임으로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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