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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 넘치는 트로트 기대하세요”

    “씨름 인생에서 최고 자리인 천하장사에 올랐습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두 번째 인생에서도 최고가 되기 위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소년 천하장사’ 백승일(30)이 씨름을 접고 가수로 데뷔한다. 백승일 소속사 아람치엔터테인먼트는 6일 “백승일이 1년여 동안 가수 데뷔를 준비해 왔다.”면서 “오는 20일쯤 음반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민속씨름선수로 연예계에 진출한 것은 천하장사 출신 ‘괴동’ 강호동, 백두장사 출신 ‘람바다’ 박광덕에 이어 백승일이 세 번째다. 이번 앨범에는 트로트 곡 ‘나니까’를 포함해 12곡 정도가 담길 예정이다. 기존 트로트 가수 못지않은 시원하고 힘이 넘치는 목소리로 팬들을 찾아 갈 것이라는 소속사의 귀띔이다. 백승일은 선수로 뛰면서도 사석에서 빼어난 노래 솜씨와 드럼 연주를 선보여 씨름계에선 이미 알아줬던 가수다. 그는 1년 전부터 가수 데뷔를 준비하며 하루 6시간 이상 강도 높은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 또 현역 시절 150㎏에 육박하던 몸무게를 50㎏이나 감량, 말쑥한 미남으로 변신했다. 백승일은 순천상고를 중퇴하고 1993년 민속씨름에 뛰어들자마자 역대 최연소인 17세에 천하장사에 올라,‘소년장사’라는 별명을 얻었다.10여년 동안 천하장사 3회, 백두장사 7회 등으로 모래판을 휩쓸었다. 화려한 성적이었지만 그의 씨름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1994년 당시 소속팀 청구와의 갈등으로 방황했고,1998년 진로씨름단을 시작으로 삼익, 신창건설 등으로 팀을 전전해 ‘저니맨’ 신세가 됐다.2000년 LG씨름단에 둥지를 틀며 백두장사에 등극, 재기에 성공했으나 2004년 팀이 해체됐고, 지난해 2월 고향인 전남 순천 소속으로 출전한 설날대회를 끝으로 사실상 모래판을 떠났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달라지는 한가위] 추석때 직장 상사에 선물 “옳지 않아”

    [달라지는 한가위] 추석때 직장 상사에 선물 “옳지 않아”

    수확의 계절,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게 추석의 의미일 게다. 그래선지 연초의 설 때보다도 더 활발하게 선물이 오고 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요즘 직장 동료끼리의 선물 교환은 찾아보기 힘들다. 설사 있더라고 공개적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직장 내 추석 선물에 대한 2030세대의 생각을 들어봤다. # 1. 직장상사가 뭐 선생님이라도 되나 “솔직히 말해 직장에 좀 먼저 들어온 것 뿐이지 선생님은 아니잖아요. 일로 맺어진 인연일 뿐이죠. 그 속에서 존경심이 우러나기는 힘들어요. 요즘 세상은 과거보다 이직도 잦아서 언제 헤어질지도 모르는데….” 대기업 김모(39) 팀장은 직장생활 13년차가 되도록 단 한 번도 회사 상사에게 명절이라고 선물을 해 본 적이 없다. 그에게 상사는 명절 때 정을 주고 받는 상대가 아니다. 그 역시 후배들로부터 선물 받은 기억이 없을 뿐 아니라 기대를 해 본 적도 없다. 김 팀장은 “만날 보는 사이끼리 명절 때 선물 주고 받는 게 얼마나 어색한 일이냐.”면서 “씁쓸하긴 해도 영원한 원수도 친구도 없다는 현실의 반영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30대 후반의 생각이 이럴진대 20대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외국 생활을 오래한 직장인 김모(28)씨는 “명절이라고 상사한테 선물을 보낸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봤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사내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거래업체와 추석이나 설이라고 해서 선물을 주고 받아선 안 된다고 했다.”면서 “마찬가지로 직장 내부에서도 선물을 주고 받는 데 아무런 대가가 없기는 힘들기 때문에 선물 주고받기는 하지 않는 게 맞다.”고 말했다. # 2. 선물은 연말에 한다 대기업 과장 차모(38)씨는 직장 상사와 무언가를 나눌 수는 있겠지만 그 시점으로 추석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연말쯤 간소한 선물로 상사를 포함한 팀원들과 정을 표시하고 있다.“추석이란 게 사실 미국 추수감사절처럼 한해 농사 잘 된 것 자축한다는 의미가 강하잖아요. 농사짓는 분들에겐 의미가 크겠지만, 요즘 직장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싶어요. 회사의 한 해를 마무리짓는다는 차원에서 직장인들에게 의미있는 때는 사실 연말이죠. 한해 동안 수고했다는 표현으로 작은 메모와 함께 재미있는 선물을 주고 받으면 서로 부담없고 좋더군요.” # 3. 솔직히 정말로 돈이 없다 경제적인 이유도 크다. 샐러리맨들의 주머니 사정이 가멸었던 적이 언제 있었겠는가마는 오랜 경기침체도 직장인들의 선물 인심을 더욱 박하게 만든다. 중소기업 직원 황모(28·여)씨가 딱 그런 경우다. 황씨는 상사가 여러 명이다 보니 누구에게는 하고 누구에게는 안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다. 그는 “가족과 친지의 선물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벅찬 마당에 직장 선배들까지 챙기다 보면 지갑이 거덜난다.”면서 “이번 추석도 그냥 이메일이나 한통 보낼까 하는데, 추석 보너스도 안 나온 사정을 주위 분들이 이해해 줄 것”이라고 했다. # 4. 아부하는 걸로 비쳐지면 어떡해요 남의 시선에 대한 의식도 작은 것 하나 건네는 걸 망설이게 하는 이유다. 바닷가가 고향인 최모(31)씨는 “평소 고향에서 부모님이 미역이나 김 등 해산물 좋은 것이 나오면 직장 상사들에 드리라며 보내시는데 보는 눈도 많고 해서 회사에 갖고 오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동료들에게 아부형 인간으로 비쳐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작은 정성 하나 건네는 데도 장애물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3년차 대리 정모(29·여)씨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적이 신경 쓰인다. 그는 “굳이 나만 따로 선물을 해서 ‘잘 보이려고 한다.’는 식의 눈총을 받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래도 명절을 그냥 넘어가기는 좀 뭣해서 팀 전체적으로 돈을 모아 지난 주말 팀장에게 넥타이핀을 선물했다.“따로 선물을 주고 받으면서 개인적인 관계를 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무리 개인적인 존경심이나 애정에서 우러난 것이라고 해도 자칫 ‘왕따’가 되는 수가 있어요.” # 5.“그래도 할 사람은 한다” 그래도 하는 사람도 있다. 공무원 6년차인 조모(32)씨는 집안 어른들 선물보다 직속 상사의 선물에 더 신경을 쓴다.“추석은 묘하게도 인사고과 평가시즌과 맞아 떨어집니다. 한해 풍년 자축하는 추석 때 잘못 했다가는 정말로 직장에서의 한해 농사 망치게 되는 거죠. 다들 서로 ‘난 안한다’고 하지만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가 있어야죠.”공무원들은 통상 10월 말이 인사고과를 정리하는 시점이다. 조씨는 “옛날처럼 전입 순으로 진급하던 시절도 아닌 상황에서 승진을 초월한 사람이 아니라면 추석인사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렇게 살풍경스러운 상황에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도 적잖다. 중소기업 직원 김모(37)씨는 처음 입사했을 때가 그리워지기도 한다.“10여년 전 입사 때만 해도 추석이나 설날이면 오후 느지막이 부장 댁에 모든 부원들이 작은 선물 하나 사들고 가서 음식을 함께 하며 술도 한잔 걸쳤던 기억이 난다.”면서 “그 정도까지는 기대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회사 직원들간 명절 나는 풍습은 이래저래 비인간적인 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유영규 서재희기자 whoami@seoul.co.kr ■ 추석선물 변천사 알아보니 추석 때 선물을 주고 받는 일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신세계백화점이 1965년 이후 추석 선물세트 매출 동향을 분석한 결과, ‘선물용 상품´이 본격적으로 팔리기 시작한 것은 70∼80년대 사이다.50년대와 60년대 초만 해도 추석선물은 계란, 찹쌀, 고추, 소고기, 돼지고기 등 수확한 농축산물을 직접 방문해 전달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상품화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65년 라면 50개들이 한 상자, 맥주 한 상자, 세탁비누 30개 세트, 전기냄비, 다리미 등이 선물로 팔리면서부터다. 특히 ‘삼백(三白)산업’의 하나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설탕이 고급 선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그래-뉴설탕’이라는 이름의 6㎏(780원),30㎏(3900원) 상품이 최고급품으로 꼽혔다. 70년대 들어 식생활과 무관한 화장품, 여성 속옷, 양산 등이 추석 선물로 각광을 받았다. 동서식품의 ‘맥스웰 커피세트’는 다방문화, 커피문화의 신호탄이었고 라디오와 흑백TV, 콜라와 과자가 선물로 보편화됐다. 70년대에는 학용품이 당시 국민학생용 추석선물로 인기를 끌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배달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방문해 선물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어린이용 선물도 준비를 해가야 했던 이유가 큰 것으로 보인다.76년 가격으로는 연필세트가 150∼300원, 연필·필통세트가 350∼400원, 가방이 2200∼3000원에 판매됐다. 추석 선물세트가 본격적으로 다양해진 것은 80년대 들면서다.70년대까지 1000여종에 불과했던 게 3000여종으로 확 늘었다. 식생활의 고급화를 보여주듯 200여종에 불과하던 식품 선물세트가 1000여종으로 가장 큰 폭으로 늘었고 넥타이·지갑벨트세트·스카프·와이셔츠 등 신변 잡화용품이 700여종으로 증가했다. 90년대의 추석선물은 고가제품과 실용적인 중저가 선물세트로 양극화됐다. 저가 ‘할인점 선물세트’가 보급된 반면 96년 이후 고가의 수입양주는 선물베스트셀러 상품으로 등극,130만원을 넘는 ‘레미마틴 루이14세’ 양주와 100만원을 넘는 영광굴비 등 호화 선물들도 나왔다. 선택성, 간편성, 편의성 등 이유로 선물 대용이 된 상품권이 94년 4월 본격 발행돼 점차 이용도가 높아졌다. 2000년대 추석선물은 양극화 현상의 연장으로 분석된다. 고가 백화점 상품과 할인점 중저가 선물세트가 주류가 되고, 상품권이 대표적인 선물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와인 세트가 위스키 세트를 물리친 것도 눈에 띄는 현상이다. 전통적인 한국 명절에 와인은 물론 치즈나 트러플(송로버섯) 등 세계적인 진미상품이 선물로 등장해 인기를 얻고 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설날엔 KTX서 승객 맞았으면…”

    이도경(27·여)씨는 KTX 열차를 타러 온 귀성객들을 바라보며 고향의 부모님을 떠올렸다. 올 1월 설 연휴 때의 기억도 생각났다. 좌석을 가득 채운 승객들과 명절의 들뜬 기분을 함께 나눴던 그 때는 바빠도 좋았다. 이씨는 210여일 동안 파업과 농성을 해온 KTX 해고 여승무원 중 한 명이다.3일 그는 열차 객실이 아닌 용산역 철도노조 건물 옆에 임시로 설치된 컨테이너박스로 나왔다. 연휴 동안 머무를 곳이다.고향인 부산에 내려가는 건 아주 오래 전에 포기했다.“이런 모습으로 고향에 가 무슨 낯으로 식구들을 만나겠어요. 당당한 모습으로 마음 편하게 어른들을 뵙고 싶어요.” 여승무원들은 지난 3월16일부터 철도공사에 정규직 고용을 요구하며 파업을 하다가 5월15일 전원 해고를 당했다. 법원 판결로 지금은 서울역과 용산역의 역사(驛舍) 안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금지돼 있는 신분이다. 처음에는 딸이 어떻게든 소망을 이루기를 기원했던 부모들도 파업과 농성이 장기화하면서 “노조에게 세뇌라도 당한 것이냐. 정부가 너희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줄 것 같으냐. 이제 시집이나 가라.”고 채근하고 있다. 항공사 스튜어디스 출신으로 철도노조 KTX 여승무원 지부장을 맡고 있는 맡언니 민세원(33)씨는 현재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수배된 상태. 집이 서울이지만 시멘트 바닥에 장판 하나 깔고 100여명 후배들과 농성을 벌이고 있다.“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KTX 여승무원 문제가 여성 비정규직 문제의 대표격으로 비쳐져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동생들을 볼 때마다 속도 많이 상했지만 지금까지 믿고 따라와주는 게 고마울 뿐입니다.”추석을 맞아 고민이 늘었다.부모님이 자꾸 송편 싸들고 찾아오시겠다고 한다. 체포영장까지 발부된 상태라 극구 거절하고 있지만 마음이 아프다. 2일에는 컨테이너박스에 오랜만에 웃음꽃이 폈다. 추석에 집에 내려가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이웃 선교회에서 송편과 과일을 싸들고 왔다. 이들은 연휴 동안 서울역과 용산역 앞에서 승객안내와 함께 자기들의 주장을 귀성객들에게 알릴 생각이다.“내년 설에는 꼭 정복을 입고 KTX 객실에서 승객들을 맞아야죠.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꼭 보여드리고 싶습니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여야의원 정치자금은 쌈짓돈?

    여야의원 정치자금은 쌈짓돈?

    정치자금으로 구두를 닦은 비용을 지불하고, 속도위반 범칙금을 내는 등 정치자금을 개인 용도로 마구 사용한 국회의원과 정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실사결과 적발됐다. 선관위가 20일 발표한 2005년 1월1일∼2006년 6월20일 사이의 정치자금 수입·지출 내역 결과에서 나타난 것이다. ●술을 마셔야 정치활동? 열린우리당 중앙당은 가요주점의 유흥비와 안경 구입비로 215만원을, 백화점 상품권과 문화상품권을 사들이는데 정치자금 200만원을 썼다. 열린우리당의 한 도당에서는 산하 각종위원회 위원 240명에게 준다며 지난해 추석에는 멸치세트 648만원어치를, 올 설에는 567만원 상당의 민속주 세트를 구입했다. 모두 정치자금에서 썼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374만원, 올해 111만원의 정치자금을 유흥비로 지출했다. 여기에다 한나라당 후원회는 모집금품 3억 4332만원 가운데 1억원 정도를 ‘퇴직 위로금’ 명목으로 후원회장에게 지급했다. 설날 선물로는 350만원을 썼다. 민주당은 구속된 전직 당직자에게 영치금을 50만원 건넸고, 민주노동당은 선거법 위반 벌금 200만원과 속도위반 차량 범칙금 43만원, 유급 사무직원의 건강검진에 570만원을 쓰는 등 모두 1360만원의 정치자금을 다른 용도로 지출했다. ●구두 닦는 것도 정치자금? 일부 국회의원은 정치자금을 엉뚱한 곳에 썼다가 들통이 나 망신을 샀다.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의 회계책임자는 권 의원이 1년 동안 구두를 닦은 비용 24만원과 권 의원의 화장품 구입 비용 4만 6000원 등도 정치자금을 이용해 지불했다가 선관위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같은 당 이윤성 의원은 2004년부터 최근까지 국회의원 후원회의 업무용 승용차를 국회에 등록한 뒤 의원 전용으로 사용해 정치자금 부정수수 혐의로 경고를 받았고, 이 의원의 회계책임자는 정치자금으로 당 관계자에게 선물할 육젓 30개를 200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열린우리당 선병렬 의원의 회계책임자는 후원회 기부금으로 선 의원의 양복을 사는 데 15만원, 노래방 44만원, 선물용 포도주 160상자로 240만원을 부정 지출하는 등 모두 328만원을 전혀 다른 곳에 썼다. 그런가 하면 열린우리당의 임종석 의원의 회계책임자는 정치자금 가운데 300만원을 지인에게 빌려줬다가 반환, 사적 용도 지출 혐의로 경고받았다. 정당별로는 열린우리당이 51건으로 정치자금 관련 불법 건수가 가장 많았고, 한나라당 43건, 민주노동당 20건, 민주당 13건, 국민중심당 7건 등으로 뒤를 따랐다. 그러나 고발 건수는 민주노동당이 가장 많은 3건을 기록,1건씩 고발당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을 앞질렀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씨름판 ‘작은 고추 시대’

    ‘작은 고추’ 박영배(24·현대삼호)가 백두봉 호랑이로 거듭나며 포효했다. 제천장사씨름대회 마지막날 백두장사 결정전이 열린 9일 충북 제천체육관. 최홍만 김영현 이태현 김경수 등 간판급 스타들이 줄줄이 떠나간 초중량급 백두 왕관을 누가 쓰느냐에 온통 관심이 쏠렸다. 주인공은 신세대 씨름꾼 박영배였다. 박영배는 이날 결승(3판 다선승제)에서 강력한 들배지기를 뽐내며 소속팀 선배인 ‘코뿔소’ 하상록(27)을 2-1로 제압, 자신의 시대가 개막했음을 선언했다. 지난해와 올해 설날 백두장사에 잇따라 올랐던 박영배가 정규 대회 백두봉을 정복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백두급 선수로는 작은 키(184㎝)이지만 유연한 허리와 힘, 민첩성이 돋보이는 박영배는 기가 막힌 차돌리기 등으로 김영현 최홍만을 종종 무너뜨리며 ‘골리앗 킬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들배지기 달인으로서의 본색을 드러냈다. 4강 대결은 예상대로 프로팀 현대삼호중공업의 잔치였다. 부상당한 최병두(22)를 제외하고 출전한 3명 모두 4강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영배는 ‘모래판의 귀공자’ 황규연(31)과 마주쳤다.최근 소속팀을 옮기는 과정에서 제 컨디션이 아니었던 황규연은 머리를 짧게 깎고 나와 각오를 다졌으나, 기중기를 연상케 하는 박영배의 들배지기에 두 차례나 모래판에서 나뒹굴었다. 황규연은 뿌려치기로 둘째 판을 따내며 체면치레를 했다. 박영배의 들배지기는 결승전에서도 빛났다. 첫 판에서 142㎏이나 나가는 하상록을 쌀가마니처럼 번쩍 들어올려 쓰러뜨렸다. 하상록의 멋진 뒤집기에 둘째 판을 내줬으나, 셋째 판에서 재차 화려한 들배지기로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박영배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정규 대회 첫 우승을 차지해 홀로 계신 어머니께 선물을 해드린 것 같다.”면서 “원래 들배지기가 특기였고,‘들배지기의 황제’ 신봉민 코치에게 더 배우고 있다. 반드시 천하장사가 되겠다.”고 기뻐했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女談餘談] 바캉스/주현진 산업부 기자

    바야흐로 바캉스의 계절이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온 여름 휴가. 어디서 누구와 만나도 화두는 단연 휴가로 옮겨간다. 8월이면 시내가 텅빌 만큼 서구인들에게 여름 휴가는 1년 중 가장 큰 행사로 통한다. 휴가 기간이 무려 한달가량이나 되기 때문이다. 서유럽인들은 대부분 휴가기간 동안 고향집을 찾아 평소에 읽지 못한 책을 읽고, 아이들과 놀아주며, 건강을 위해 집중적으로 운동하는 등 경제적이고 한가롭게 보낸다고 한다. 부러운 일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국내 모 유통업체가 최근 2만여 고객을 상대로 실시한 여름휴가 설문조사 결과 가족(72.6%)과 함께 2박3일(45.3%) 동안 바다(48.9%)를 찾아 콘도(30.3%)나 펜션(30.2%)에 묵을 계획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온 가족이 인파가 북적이는 바닷가를 찾아 2박3일 동안 지내며 삼겹살을 구워먹는 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표준형 여름 휴가’인 셈이다. 상대적으로 짧고 피곤해 보인다. 바캉스란 개념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30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여름휴가 계획을 잡을 때면 직장에서 눈치 보이기가 일쑤다. 추석 설날 등 우리만의 최대 연중 행사가 별도로 있기는 하지만 여성들은 오히려 ‘명절 증후군’에 시달린다. 밤늦은 야근이나 술자리까지 고려하면 주말은 피로를 풀기에도 부족하다. 휴가를 포함한 육아 조건이 열악하다 보니 국가 차원의 문제로 여겨지는 저출산 현상은 젊은 여성들에게는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프랑스는 일찍이 ‘바캉스’를 국가 정책으로 독려했었다. 동료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직장인들의 생활을 감안할 때 우리도 이제 여름휴가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바캉스란 단어의 어원은 ‘텅 비우다.’란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됐고, 프랑스에서 ‘휴가’란 의미로 쓰이게 됐다고 한다. 바쁘고 스트레스의 연속인 일상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가족들과 한가롭게 보내는 길고 긴 휴가. 기자도 그런 휴가를 떠나고 싶다. 주현진 산업부 기자 jhj@seoul.co.kr
  • 이태현 빈자리 누가 메울까?

    민속씨름이 다시 샅바를 동여맨다. 오는 6일부터 4일 동안 충북 제천체육관에서 2006제천장사씨름대회가 열리는 것. 태백 금강 한라 백두 등 네 체급 장사 결정전이 치러진다. 3월 안동대회 이후 넉 달 보름 만에 열리는 이번 대회는 23개팀 161명의 장사들이 출전해 역대 최다 규모다. 무엇보다 ‘무주공산’이 된 최중량급 백두봉에 누가 우뚝 서느냐가 관심이다.10여년 동안 백두봉에서 호령했던 ‘황태자’ 이태현(30),‘들소’ 김경수(34)가 모래판을 떠났기 때문이다. 천하장사 타이틀을 한 차례 차지했던 노장 황규연(31·현대삼호)이 남아 있지만 새 물결이 거셀 전망이다. 선두주자는 박영배(24·현대삼호). 백두급으로는 다소 작은 183㎝의 키이지만 유연한 허리와 민첩성으로 자신보다 월등히 큰 선수들을 모래판에 누이며 ‘골리앗 킬러’로 불리고 있다. 번개같은 차돌리기가 일품이다. 정규 대회는 아니지만 설날 대회에서 두 번이나 백두봉을 정복했다. 소속팀 해체 등으로 그동안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황규연도 최근 소속팀을 옮기고 자기 관리에 힘쓴 만큼 저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변이 없는 한 강력한 우승후보인 둘은 4강에서 격돌하게 된다.‘코뿔소’ 하상록(27)도 백두봉의 주인을 놓고 벌이는 현대삼호의 집안싸움에 가세한다. 여기에 ‘왕눈이’ 염원준(30·마산시체육회)과 강성찬(28·구미시체육회)도 다시 샅바를 고쳐맸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주말화제] 연봉 1억 보험설계사 “피눈물의 결실입니다”

    [주말화제] 연봉 1억 보험설계사 “피눈물의 결실입니다”

    #사례1. 보험사에 근무하는 설계사 A씨.2년째 밤 10시만 되면 간호사인 아내가 일하는 중소 도시의 대형병원으로 밤참을 들고 출근(?)한다. 쉬는 날은 설날과 추석 당일 이틀뿐이다. 보험 가입하라는 말은 한마디도 안 하고 “힘드시죠?”라는 말과 함께 간단한 먹을거리를 건넨다. 일주일에 한두통씩 그 병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로부터 보험가입에 대한 전화를 받는다. #사례2. 특정 회사에 전속되지 않은 독립 설계사로 뛰고 있는 B씨. 지난달 꽃값으로만 70만원이 들었다. 계약자들의 결혼기념일에 맞춰 꽃바구니를 보냈기 때문이다. 연봉 1억원이 넘는 보험설계사들이 속출하고 있다. 정년 걱정할 필요 없는 평생 자기 사업이라는 생각에 보험설계사로 전업을 꿈꾸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실제로 설계사가 첫 직장이거나 20대 설계사는 드물다. 하지만 ‘화려해’ 보이는 보험설계사들의 일상을 한꺼풀만 들춰보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설계사의 첫 고비는 영업을 시작하고 1∼2년쯤 뒤 찾아온다. 이때쯤 되면 주위에 더 이상 보험 가입을 부탁할 사람이 없다. 고비를 넘긴 사람들이 만난 돌파구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왔다. 경력 8년의 C씨.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설계사로 근무한 지 1년. 더이상 계약이 성사되지 않아 대학시절 아주 친했던 선배 사무실로 찾아가 무릎을 꿇었다. 주유소를 운영하는 믿었던 선배는 거절했다. 설계사는 “어디 한번 해보자.”라는 오기가 생기면서 머리가 오히려 맑아지더라고 회고했다. 남아있던 자존심의 마지막 벽을 넘었기 때문이다. 설계사의 꿈인 백만불원탁회의(MDRT) 실적의 3배인 COT(Court of the Table)에 두번이나 오른 10년 경력의 설계사 D씨. 설계사를 시작한 지 2년 동안 계약금보다 빚이 많아져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그러던 중 의사인 친구가 전화를 걸어 크리스마스 기간에 스키장 예약이 안된다며 투덜댔다.‘기회다.’ 싶어 카드로 대출받고, 사채까지 끌어 500만원을 들고 문제의 스키장 예약담당자를 찾아갔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체면 불구하고 사정을 설명하며 부탁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며칠 뒤 친구에게서 “보험료를 얼마 내면 되느냐.”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 뒤로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물꼬는 예상치 않게 터지지만 이른바 ‘보험대상’ 반열에 오르는 설계사들의 일상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삼성화재의 이영주(43) 설계사. 매주 30만원 이상의 신계약 체결을 178주째 이어오고 있는 베테랑이다. 아침 6시30분이면 서울 중구 사무실에 도착한다. 하루에 만나는 고객은 최소 3명. 저녁 7시 사무실로 돌아와 그날 통화한 사람의 목록, 다음날 만날 사람들 목록을 정리한다. 퇴근은 10시 이후다. 또 계약자들에게 한달에 최소 3번씩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봄에는 구충제, 여름 휴가철이면 전국 지도와 차량용 휴대전화 충전기, 연말이면 달력과 가계부 등을 1000여명의 고객들에게 보낸다. 주말이 손없는 날이라도 되면 2∼3건의 결혼식, 회갑·고희연 참석은 기본이다. 상가·병원 방문, 돌잔치 참석 등도 마찬가지다. 계약자 전화에 “제가 지금 바빠서요.”라는 말은 금기다. 상담중이거나 진짜 바빠도 나중에 전화를 걸겠다고 양해를 구한 뒤 1∼2시간안에 연락을 해야 한다. 설계사들은 또 자신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린다. 저녁시간을 쪼개 세무·부동산 강의를 들어 지식을 늘리는 게 최선의 방책이다. 이나마 안 되면 고객이 물어올 때 소개시켜 줄 네트워크라도 갖고 있어야 한다. 법률 상담이 가능한 변호사 확보는 필수다. 이처럼 고된데도 일을 계속하는 까닭은 뭘까. 이씨는 “보험 속성상 다양한 사람들, 그중에서도 잘 안 풀린 사람들을 만날 경우가 많다.”면서 “그때마다 건강하고 할 일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설계사들이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는 까닭도 그래서인 모양이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가장 아름다운 사랑?…34세男· 61세女 부부

    가장 아름다운 사랑?…34세男· 61세女 부부

    “이 정도의 사랑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요?” 중국 대륙에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27살이라는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한 30대 남성이 아버지가 끝내 결혼을 받아들이지 않자,자신들의 사랑을 꽃피우기 위해 아내와 함께 방랑길에 올라,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1월 결혼한 남편 위쥔즈(喩軍志·34)씨와 아내 장야오어(張要娥·61)씨 부부는 아버지 위정마오(喩正茂·62)씨가 자신보다 겨우 한 살 적은 며느리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대의 뜻을 굽히지 않자,아버지가 허락할 때까지 집을 떠나 중국 대륙 전역을 발섭하는 방랑길에 올랐다고 소상신보(瀟湘晨報)가 21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위씨와 장씨 부부는 조그마한 시내를 사이에 두고 이웃 동네에 살아 오랫동안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물론 나이차가 무려 27살인 만큼 어릴 때부터 사이좋게 지내는 소꿉친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들 부부가 처음 알게 된 것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위씨는 핑장(平江)현 창서우(長壽)진의 길거리에서 신발 수리점 점원이었다.이때 아내의 전 남편인 팡청취안(方成全)씨가 이 가게의 단골손님이 되면서 서로 알게 됐다.이들 두 사람은 알게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죽이 맞아’ 나이차는 넘어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급속히 가까워졌다. 팡씨는 고기잡이를 호구지책으로 삼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애옥살이 살림이었다.이를 안타깝게 여긴 위씨는 일이 끝나면 먹을 거리를 사서 팡씨 집에 들리곤 하면서 이들 부부와 가까워졌다. 그러던중 지난 2000년,고기잡이를 나갔던 팡씨가 그만 물에 빠져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집안의 가장을 잃고 힘들게 살아가던 장씨는 엎친데 덮친격으로 물을 끓이다가 쏟는 바람에 왼쪽 다리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때문에 다리의 신경이 없는 등 완전히 못쓰는 장애인이 돼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위씨는 팡씨와의 우정을 생각해 그녀를 곁에서 따뜻하게 보살펴줬다.위씨는 “그녀의 국가 생활보조금이라야 기껏 1년에 450위안(약 5만 8500원)인데,그 돈으로 어떻게 먹고 살겠습니까?.그래서 제가 조금씩 도와줬다.”고 말했다. 이렇게 위씨는 순전히 그녀를 동정하는 마음에서 도와주다 보니,확실치는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 호감을 갖게 됐다.그는 “나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호감을 갖게 되고,이때부터 같이 생활하고 싶었다.”며 “그녀에게 이말을 전하니까,그녀도 흔쾌히 동의해 결혼을 하기로 결심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올 1월 9일,위씨는 장씨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핑장현 민정국에 혼인신고를 하고 결혼증을 받았다.민정국 직원들도 이들 부부를 뜨악한 눈초리를 보냈지만,이들은 일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위씨의 이런 행동은 곧 아버지를 속이는 일이었다. 설날이 얼마 남지 않은 1월 20일쯤,장씨의 집이 너무 낡아 비가 새는 바람에 도저히 장씨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위씨는 곧바로 장씨의 집으로 달려가 집안의 간단한 가재도구를 챙겨 셋째 형님 집에 방을 하나 빌려 신접살림을 차렸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아버지 위정마오씨는 “왜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느냐.어떻게 스물 일곱살이나 많은 여자와 결혼을 하느냐?”며 펄펄 뛰며 노발대발했다. 분노한 아버지를 말려줄 사람은 없었다.해서 위씨는 동네 원로인 촌주임을 찾아가 구원의 손길을 요청했다.촌주임은 곧장 달려가 “그들은 이미 부부가 됐다.당신은 자식 하나 없는 셈치고 신경쓰지 말고 내버려 두라.”고 설득했다.하지만 이런 노력도 허사였다.아버지 위씨의 분노는 조금도 너누룩해지지 않았다. 도저히 아버지를 설득할 수 없다고 느낀 위씨는 하는 수 없어 아내와 함께 고향을 떠나 방랑길에 오르기로 결심했다.조그마한 자전거에 간단한 신발수리 기구 등 호구지책 도구만 챙긴채로….아버지가 허락하는 날까지 중국 전역을 발섭하기로 한 것이다. 고향 창서우촌을 떠난 이들은 가는 곳마다 길거리에서 신발을 수리해주고 받은 고린전으로 연명했다.이들은 이처럼 신산(辛酸)의 삶에도 꿋꿋한 의지는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혼인은 자유의사로 한 만큼 법률의 보호를 받는다.’고 민정국에서 말했습니다.이말이 무엇보다 지금의 어려움을 견뎌내는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아내 장씨를 태우고 천천히 자전거를 몰고 가던 위씨의 얼굴에는 앞날에 대한 희망으로 흘러 넘쳤다.이런 의지 덕분인지,이들을 알아보고 먹을거리며 옷가지 등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주는 사람들도 하나둘 나타나 이들의 무거운 어깨를 가볍게 해주고 있다. 위씨는 “비록 우리 두 사람의 나이차는 많지만,진심으로 사랑해서 결혼했다.”며 “아버지 등 집안 식구들이 자신을 이해해 하루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 춘향·몽룡의 여름나기 배워볼까

    춘향·몽룡의 여름나기 배워볼까

    오는 31일은 단오. 지금은 아스라해진 우리네 고유명절. 조상들은 이날 보양식을 먹고 한바탕 신나게 놀면서 다가올 무더위에 대비해 몸을 추슬렀다. 오늘날. 에어컨을 사는 것 말고 여름을 이기기 위해 우리들이 준비하고 있는 것은 무얼까. 물질문명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명절이 아니라 명절속에 담긴 조상들의 지혜가 아닐까. 건강한 여름나기를 준비했던 조상의 슬기를 찾아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향단이가 준비해놓은 창포물 앞에 앉은 춘향. 솜털이 보송보송한 귀밑머리까지 한올한올 정성들여 머리를 감는다. 행여 한방울이라도 흘릴세라 여간 조심하지 않는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머리를 매만지며 이번엔 화장대앞에 앉아 분을 바른다. 예사로운 분이 아니다. 아침 해뜨기전 텃밭의 상추잎에 맺힌 이슬을 모아 개어 놓은 분이기 때문. 얼굴에 바르면 버짐이 피지 않고 피부가 아기의 그것처럼 고와진다. 분단장 마친 춘향.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머리를 찰랑대며 어서 나가자고 향단이를 채근한다. 오늘은 단옷날. 집안에만 갇혀 지내다 모처럼 자유롭게 바깥을 돌아다닐 수 있는 날이다. 이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려왔던가. 은근한 눈초리로 힐끔대는 뭇남정네들의 시선을 한껏 즐기며 신나게 그네를 탄다. 옷고름이 휘날리는 모양새가 마치 하늘에라도 닿을 듯하다. 저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이몽룡. 마치 그네를 타는 선녀라도 보듯 넋이 빠져있다. 저고리 앞섶이 보일 듯 말 듯 나풀거리는 모습에 애간장이 탄다. 하릴없이 허리춤에 괸 창포뿌리만 매만진다. 단옷날 남정네들은 창포뿌리를 허리에 차고 다녔다. 사악한 기운을 쫓는 효험이 있다는 믿음 때문. 단오선(端午扇)을 부쳐대며 안달복달하는 이몽룡을 보다 못한 메신저, 방자가 춘향에게 다가가 수작을 걸어본다.“아씨, 저희 도련님께서 호젓한 곳에 가서 수리떡이나 같이 드시자고 하십니다요.” 아마도 이몽룡과 성춘향은 이렇게 단옷날을 즐기지 않았을까. 예로부터 단오는 추석과 설에 버금가는 명절이자 축제날. 모내기를 마치고 잠시 쉬며 다가올 뜨거운 여름을 준비하는 날이었다. 이날 먹었던 음식이나 행했던 풍속들을 보면 여름을 이기기 위한 조상들의 슬기가 가득 배어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오며 잃어버린 우리의 소중한 전통. 단오를 제대로 알면 건강한 여름을 보낼 수 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도움말 김흥술 강릉시청 학예연구사, 김경남 민속학자, 조규돈 강릉단오보존회 회장 단오가 지나면 곧바로 무더위와 장마가 이어진다. 단오에 벌어지는 풍속들은 더운 여름철에 건강을 유지하는 지혜와 재액을 멀리하고 풍농을 기원하는 습속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 창포물에 머리감기 창포는 기름의 유화작용과 분산작용이 뛰어난 천연세제. 해마다 단오무렵이면 논주변이나, 연못 등에 무성하게 자라났다. 머리카락의 때를 빼고(샴푸), 부드럽게 해주는 것(린스)은 물론, 영양을 공급(트리트먼트)해주는 다양한 기능을 가졌다. 그래서 단옷날이면 부녀자들이 창포뿌리 삶은 물을 희석시켜 머리를 감았던 것. 비듬이나 피부병을 없애주는 효과도 있었다. 또 머리를 감은 다음엔 은은한 향을 발산해 향수대용으로도 그만이었다. ● 단오장(端午粧) 화려한 외출을 위해서, 또 나쁜 귀신을 쫓는다는 주술적인 의미에서 여인네들은 단옷날 아침 공들여 치장을 했다. 먼저 아침해가 뜨기전 창포나 상추에 맺힌 이슬을 모아 분을 개 얼굴에 발랐다.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 것은 물론, 얼굴에 버짐이 피지 않고 피부가 고와진다고 믿었기 때문. 창포뿌리를 잘라 비녀를 만들어 꽂기도 했다. 두통을 없애 머리를 맑게 하고, 서캐 등의 기생충을 물리치는 효과가 있었던 것. 비녀에 수(壽)와 복(福)자를 새겨 복을 기원하기도 했다. 요즘도 강릉단오제 때에는 할머니들이 머리에 창포비녀를 꽂고 나오기도 한다. 남자들은 창포뿌리를 허리에 차고 다녔다. 물론 재액을 멀리한다는 주술적인 의미에서다. ● 대추나무 시집보내기 농촌에서 설날이나 정월대보름에 과일나무 시집보내기를 하듯, 단옷날 오시(午時, 오전 11시30분∼낮12시30분)에는 대추나무 시집보내기 행사를 벌였다. 단오는 대추가 막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계절. 여성을 상징하는 대추나무 가지사이에 남성을 상징하는 둥근 돌을 끼워넣어 풍년과 다산(多産)을 기원했던 것이다. ● 단오부채 선물하기 부채는 더위를 식히고 파리나 모기 등의 해충을 쫓는데 유용한 도구. 조선시대에는 국왕으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단오부채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5월부채 동지책력’이라 해서 왕은 단오선이란 부채를 신하들에게 골고루 나눠주었고, 영호남의 지방관리들은 각지역 특산부채를 왕에게 진상하기도 했다. 재료는 달랐지만 평민들도 단오부채를 주고받았다.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라는 의미를 담았음은 물론. ● 기타 단옷날 오시에 목욕을 하면 무병한다고 해서 단오물맞이를 하고 모래찜을 하기도 했다. 부녀자들은 음식을 장만해 창포가 무성한 못가나 물가에 가서 물맞이 놀이를 즐겼다. 또 설날이나 추석처럼 어른아이할 것 없이 모두 단오빔을 해 입기도 했다. 단오를 앞두고 밀린 공사대금 등은 모두 정리했고, 머슴들에게는 동짓날 ‘겨울살이’처럼 옷과 용돈 등 ‘여름살이’가 지급됐다. 노인들은 모아놨던 용돈을 이날 하루에 모두 써버리기도 했다. 약으로 사용하기 위해 쑥과 익모초 등을 뜯는 날이기도 했다. 익모초는 더운 여름날 즙을 내 마시면 입맛을 돋우는 효능을 가진 식물. 이맘때 나는 단오쑥은 특히 약효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슬 맺힌 쑥을 캐다 막걸리를 뿌려 말린 다음 환으로 만들어 먹으면 식중독이나 배탈 등에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 마당에 쑥불을 피워 전염병을 옮기는 모기 등의 해충을 쫓기도 했다. 소에게는 코를 뚫는 ‘성년식’의 날. 간장을 소의 코에 뿜어 소독한 다음, 날카로운 나무로 소의 코를 뚫었다. 천방지축 날뛰던 송아지가 비로소 양순하고 일 잘하는 어른소가 되었던 것. ■ 강릉단오 29일 절정 경산·영광서도 열려 # 단오놀이 그네뛰기는 여인네들이 즐겼던 대표적인 놀이. 누가 더 멀리 뛰는가를 겨뤘다. 멀리 뛸수록 하늘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주술적인 의미도 있었다. 춘향전에서 보듯, 그네를 타는 곳은 일종의 남녀간 미팅장소이기도 했다. 모처럼 외부출입이 자유로웠던 단옷날, 여인네들은 그네를 타며 남자들과 수작을 벌이기도 하고, 세상밖을 구경하기도 하며 해방감을 만끽했던 것. 강릉지역에서는 파리와 모기 등의 해충을 쫓기 위해 그네를 타기 시작했다는 일화도 전해온다. 반면 남정네들은 씨름을 즐겼다. 각희, 각력이라는 별칭처럼 다리의 힘을 주로 겨루는 경기. 농번기를 앞두고 다리힘을 기르는데 씨름처럼 좋은 놀이가 없었다. # 단오음식 단옷날 먹는 음식들은 미각을 돋울뿐만 아니라 여름을 건강하게 날 수 있는 영양식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음식이 수리떡.‘수리’는 태양을 상징하는 고어(古語)다. 즉, 양기가 가장 성한 날 태양모양의 떡을 만들어 먹었던 것이다. 주재료는 산에서 뜯어온 쑥. 솜털이 나있어 솜쑥이라고도 불린다. 들에서 나는 쑥보다 뛰어난 약효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금님은 이날 제호탕을 마셨다. 제호탕은 여러 한약재를 달여 꿀을 섞은 것으로 여름철 건강을 유지하는데 탁월한 효능을 보였다. 팥죽도 만들어 먹었다고 전해진다. 예로부터 붉은색의 팥은 귀신을 쫓는데 사용한 곡식. 대문이나 장독대 등에 널어두었던 팥으로 단오팥죽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이밖에 송홧가루에 꿀을 섞어 갈증해소를 위해 마셨던 송화밀수나 초여름 보양식 준치만두, 그리고 앵두화채, 수리취떡 등도 단오때 먹던 제철음식들이었다. # 가볼 만한 단오행사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된 강원도 강릉단오제(danoje.festival.org)는 최대의 단오축제. 신주빚기 등 사전 행사가 열리는 5월2일부터 6월2일까지 강릉시 남대천변 단오장과 지정행사장에서 열린다. 영신제 등 본행사가 열리는 5월29일부터가 절정. 창포 머리감기, 그네타기 등의 체험행사는 물론, 관노가면극과 학산 오독떼기 공연 등 놀거리와 볼거리가 풍성하다. 정동진 등 유명관광지가 인근에 산재해 있어 5월 나들이코스로는 제격이다. 문의 강릉단오제위원회 (033)641-1593.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된 경북 경산시의 자인단오제(gyeongsan.go.kr)도 가볼 만하다.3m에 달하는 화려한 화관을 들고 추는 여원무와 가장행렬인 호장굿 등이 장관.5월31일부터 6월2일까지 자인면 계정숲에서 열린다. 문의 경산시청 문화관광과 (053)810-6062. 전남 영광의 법성포단오제(yeonggwang.jeonnam.kr)는 5월28부터 31일까지 법성포 숲쟁이공원 주변에서, 충남 대전의 금강단오제(dano.or.kr)는 6월3일 대청댐 잔디광장에서 각각 열린다. 서울의 국립민속박물관(nfm.go.kr), 남산골 한옥마을(hanokmaeul.org)등에서도 단오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 단오의 유래 입하(立夏)를 지나 태양의 열기가 뜨거움을 더해가는 음력 5월5일. 모내기를 마치고 첫번째 김매기를 앞둔 사이에 거행된 단오는 여름철 세시풍속의 중심적인 명절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설과 추석, 한식 등과 함께 4대명절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음양사상에 따르면 오(五)가 두번겹치는 5월5일은 일년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 홀수를 양의 수라 하여 길수(吉數)로 여겼던 전통사회에서 단오는 길일중의 길일이었다.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날이기도 했지만, 신분의 높낮음에 관계없이 모두가 일상의 시름을 털고 한바탕 신나게 노는 축제의 날이기도 했다. 머슴이라 할지라도 배불리 먹고 즐기는 해방된 날이었던 것. 단오제로 유명한 강릉지역에서는 “단오장에서 돌베개 베고 안 자본 사람 없고, 안 망가진 보리밭 없다.”는 말이 전해질 만큼 음주가무가 어우러진 질펀한 축제의 장이었다. 특히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던 부녀자들에게는 모처럼 외부출입이 허용된 특별한 날이기도 했다. 남쪽으로 갈수록 추석을 성대히 치른 반면, 단오는 북쪽으로 갈수록 더 큰 명절로 여겨지기도 했다. 원인은 기후.5월이 되어서야 추위가 사라지는 북쪽지역에서 내복을 벗는 날인 단오는 가장 경사스러운 날이었던 것. 단오의 유래에 대해서는 중국 유입설이 유력하다. 초나라의 충신 굴원이 멱라수에 몸을 던져 자결한 날이 5월5일. 중국인들이 굴원을 기려 제사를 지내던 풍습이 우리나라의 단오가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견도 만만치 않다.‘수릿날’이라고도 하는 단오는 고대 마한시대부터 시작되었다는 것. 마한시대의 습속을 다룬 ‘위지(魏志)’에 기록된 ‘5월제’가 단오의 시초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명절이자 농사와 관계있는 절기인 단오를 특정인의 제삿날과 연관짓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다. 특히 강릉단오제는 지난 2005년 중국의 공동등재 요청에도 불구하고, 단독으로 유네스코(UNESCO)의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지정됐다. ■ 남녀노소·빈부귀천 없이 단오엔 모두가 한마음 강릉의 단오제를 지켜본 유네스코 심사위원들이 “아직도 인류에 이런 축제가 남아 있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표현했듯, 단오는 모든 사람들이 상하귀천 없이 함께 어우러진 축제의 장이었다. 거나하게 술이 오른 사람들은 너나없이 돌베개를 벤 채 흐드러지게 잠을 자고, 그새 눈이 맞은 남녀들은 단오장 주변 보리밭이 남아나지 않을 만큼 질펀하게 놀곤했다. “창포꽃 피는 단옷날이 오면 동네 어귀에 있는 송백수 가지에/ 높이 높이 그네줄 매어놓고 붉은 댕기 비단치마 바람에 나부끼며/ 그네뛰던 옛고향이 그리워지기도 한다.”는 어느 시인의 탄식처럼 이제는 세인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는 단오. 기억 저편으로 보내기엔 너무도 소중한 전통이다. 단오와 관련된 자료사진들을 모아봤다. 아스라해진 기억의 한 자락을 되돌아볼 겸 잊혀져가는 우리의 고유명절을 다시한번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 자료제공 강릉시청·강릉문화원
  • [교정대상 수상자] 특별상 수상자 명단

    ■ 면려상 고창원 순천교도소 교위 1984년 소년수들에게 천자문 책자를 보급했다.1989년에는 강간치상 혐의로 수감된 한 수형자에게 자비로 전기드릴 등 직업훈련 도구를 사주며 직업훈련 창호 훈련생으로 추천, 지방기능경기대회에 입상시켰다. 출소한 뒤에는 직업도 구해줬다.1998년 한센병 수용자 격리 사동에 도서 200권을 들이고, 컴퓨터 교육 등을 실시했다. ■ 교정발전 김연행 육군교도소 군무원 1978년부터 기술교육대에서 수용자 2100여명을 가르쳤다.1990년부터 3년간 수용자 위로공연 등을 기획, 심성순화에 힘썼다.1997년 수용자 처우개선을 위해 군복에서 일반교도소와 같은 수용자복으로 착용기준을 바꾸도록 건의했다.2000년 교육기피 종목을 폐지하고, 정보처리·한식조리 기능사 등 첨단기술 직종을 신설했다. ■ 공로상 노정일 청송제3교도소 교화위원 1986년부터 대구연예인협회와 함께 전통가요·무용 등 교화공연을 주선했다.1992년 예능에 소질이 있는 수형자 2명이 연예인 자격증을 받도록 하고, 출소 후 연예활동을 도왔다.1990년부터 무의탁 수용자 78명과 자매결연을 맺고 한달에 한번씩 상담을 했다.1993년 말부터 환자를 위한 격려회를 개최, 용기를 줬다. ■ 자애상 황의병 순천교도소 교화위원 1984년부터 9차례에 걸쳐 수용자 체육대회 등 교화행사를 도왔다.2000년 성서퀴즈대회 등 행사를 후원하고 2002년에는 ‘참다운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연활동을 폈다.2005년 설날 귤을 보내 수형자들이 즐거운 명절을 보내도록 했다. 같은 해 6월에는 천주교 찬송가 경연대회를 후원했다. ■ 자비상 정애선 광주교도소 종교위원 1995년부터 부처님 오신날과 연말연시 무의탁 수형자들에게 내복과 떡 등을 지원했다.1999년 무연고 출소자 7명에게 포장마차를 차려주거나 생계비를 보태줬다.2000년부터 불교법회·봉축법회 등을 열어 8700명에게 불교신앙을 지도하고,2004년부터 모범수형자 40명에 대해 향림사 등 유적지 견학을 주선했다. ■ 박애상 이흥식 대구교도소 종교위원 1983년부터 격주로 기독교 교회를 주관해, 출소 후 사회복귀를 돕고,650만원어치의 성서 및 생활필수품을 지원했다. 무연고 수용자들과 자매결연을 맺고 상담활동을 벌였고, 사형수들이 죄를 뉘우치도록 지도했다.1997년부터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서 ‘사랑의 집’ 무료급식소를 운영, 독거노인 등에게 점심을 제공하고 있다. ■ 교화상 이성우 서울구치소 교회사보 교정판례연구회 창립 멤버로 연구와 실무를 접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2002년부터 255명에 대해 취업상담을 실시,55명에게 출소 후 일자리를 소개시켜줬다. 같은 해 4월부터 자비 300만원을 털어 무의탁·무연고자 200여명에게 속옷 등 생필품을 지원했다. 그해 7월부터는 254만원을 출연해 불우수용자 영치금을 지원했다. ■ 창의상 옥성윤 안동교도소 교위 1996년 안동과학대와 관·학협약을 체결해 교수들이 직접 수용자 정보화교육에 나서게 했다. 수용자 징벌의 객관성 확보를 위해 2001년 외부인사 2명을 영입, 징벌의 공정성·투명성 확보를 꾀했다.2004년 교도소 인근 농가에서 무청을 수거해 염장무청을 만들어 수용자 급식용으로 사용했다.250만원의 예산절감 효과를 냈다. ■ 성실상 윤주호 안양교도소 교위 1997년 병동에 자원근무하다 전문적인 의료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2001년 간호조무사 자격을 취득했다.2001년 환갑을 앞둔 수용자가 지병으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자, 출소할 때까지 10개월간 집에서 미음을 끓여와 돌봐줬다.2005년 ‘아버지 학교’를 유치, 수용자 300여명을 대상으로 인성교육을 했다.
  • [송두율칼럼] 돈의 철학

    [송두율칼럼] 돈의 철학

    37년만에 귀국했다가 뜻하지 않게 서울구치소에서 맞았던 설날 아침, 방안 스피커를 통해서 “부자 되세요.”,“돈 많이 버세요.”라고 하는 여성 아나운서의 명랑한 목소리의 새해인사가 흘러나왔다. 새해 덕담으로 그런 내용의 인사가 상당히 일반화되었다는 것을 후에야 알았다.‘재물 불리기’나 ‘돈벌 욕심’ 정도로 이야기되었더라면 곧 알아들을 수 있었을 단어인 ‘재테크’니 ‘부자마인드’도 그곳에서 처음 들었다. 인류가 돈을 교환과 지불, 그리고 가치저장수단으로 사용한 이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에 대해서처럼 많은 이야기가 있는 대상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우리말의 돈의 어원이 “돌다.”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고, 또 독일에도 “돈은 물보다 더 빨리 흐르고 공기보다 더 가볍다.”라는 속담이 있는 것을 보니 흐름이 돈의 본질적 속성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결국 돈의 흐름 속에서 모든 것이 상품이 되며 그 돈을 사용하는 인간도 그 흐름에서 영영 빠져 나올 수 없게 된다. 인간 생활에 필요해서 생긴 돈이 마침내 인간을 지배하게 된 자기모순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해보려는 종교의 가르침도 있었고, 정치적 이론과 실천도 있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성경 속의 가르침이나, 착취와 비인간화의 상징인 화폐를 폐지하고 그 대신에 ‘프롤레타리아 현물경제’를 도입했던 러시아의 ‘전시공산주의(1918∼21년)’의 실험도 각각 그러한 예에 속한다. “나는 어렸을 적에 돈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이제 늙어서 알게 되었다.”라고 술회한 오스카 와일드(O Wilde)의 솔직한 고백은 바로 돈이 가치를 잃어버릴 때만 인간성이 회복될 수 있다는 통념을 비판하고 있다.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는 그러한 돈은 애초부터 돈으로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또“인간은 그가 죽는다는 것을 유일하게 아는 생물체이면서 동시에 유산(遺産)이라는 이름으로 죽은 이후에도 돈을 계속 관장(管掌)하려는 비밀스러운 상상력을 가진 존재다.”라는 볼테르의 지적처럼 삶에 있어서 절대적 가치로 전제된 돈은 죽음까지도 극복하려는 엄청난 욕망을 지니고 있다. 돈의 형이상학적 본질을 “모든 가치의 가능성을 모든 가능성의 가치”로 만드는 절대적 수단에 있다고 파악한 독일의 철학자 지멜(G Simmel·1858∼1918)은 그의 방대한 저서 ‘돈의 철학’ 속에서 우리는 삶의 수단이어야 할 돈이 삶의 목적이 되고 있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나, 이 수단을 우리 삶의 심미적(審美的)인 질을 적극적으로 고양시키는 전제로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돈이 모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돈 없이는 많은 것이 불가능하다. 단 돈은 어디까지나 고상한 인격과 품위를 지키는 수단이 되어야지 천박스러운 삶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는 주장하면서, 돈이 만들어내는 평준화 속에서 개인의 흔들리지 않는 높은 인격의 질(質)을 변호하고 있다. “우리 모두 부자마인드를 키워 부자 되어봐요.”라는 말이 ‘돈의 철학’의 전부를 설명하는 것처럼 들리는 현실 속에서 ‘돈의 철학’이 ‘삶의 철학’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요구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부정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돈을 벌고, 쌓아놓은 돈을 죽음의 문턱을 뒤로하고서도 계속 관리하고 싶은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완전히 억제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성원 사이에 ‘돈의 철학’과 ‘삶의 철학’을 최대한 서로 근접시키는 사회적 약속은 가능하다. 그러한 가능성을 그저 부자에 대한 가난한 자들의 집단적 보복심리에 의거한 발상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는 한, 우리 사회에서 자주 이야기되는 이른바 높은 사회적 신분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를 요구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단지 그림의 떡일 뿐이다. 돈의 철학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 금혼식 맞아 이혼하려는 70대 부부 속사정은

    “우리 부부가 결혼한지 이미 50년이 넘었지만 성생활은 말할 것도 없고 살가운 애정마저 거의 없을 정도로 싸늘하게 식어 있어요.이제 얼마남지 않은 인생을 보다 멋있고 즐겁게 보낼려면 우리 부부는 이혼해야지 어떻하겠습니까.” 중국 대륙에 70대 중반의 할아버지가 결혼 50주년(금혼식)을 맞아 아내가 자신의 행동에 너무 간섭하고 시시콜콜하게 따져 가슴이 답답해 살 수가 없어 이제라도 헤어져 좀더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법원에 이혼 소송을 냈다. 중국 중부 충칭(重慶)직할시에 살고 있는 올해 76살의 마윈(馬雲) 할아버지는 최근 결혼한지 50년이나 된 할머니와 헤어져야겠다며 충칭시 장베이(江北)구 법원에 이혼 소송을 냈다고 중경만보(重慶晩報)가 12일 보도했다. 마씨 할아버지는 이혼 소장에서 “최근 몇년 동안 성생활을 하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부부간의 애틋한 감정마저 없어 결혼생활이 즐겁지 못하다.”며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마작이나 댄스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일탈된 행동으로 규정,규제하는 탓에 도무지 자유생활이라곤 없어 이혼을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니 허락해달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심할 경우 마작이나 댄스를 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해 방에다 밀어넣고 문을 잠가버리기도 해 오로지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 이혼하고 싶다.”며 “지난해 설날 때부터 집을 얻어나가 요즘은 집은 거의 들리지 않은채 살고 있다.”고 밝혔다.따라서 이들은 1년 이상을 사실상 별거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할머니 왕잉(王英·71)씨는 마씨 할아버지와 이혼하는 것에 대해 강력히 반대한다.마씨 할아버지가 실제 이혼하려는 이유는 마작이나 댄스를 못하게 막는 것 때문이 아니라,40대의 젊고 예쁜 첩이 있다는 것이다.옆에 있던 세 자녀들도 한결같이 “아버지 곁에 40대의 젊은 여자와 같이 있는 것을 이웃 사람들과 아버지 친구들이 직접 봤다는 얘기를 여러차례 들었다.”고 어머니를 거들었다. 이에 대해 마씨 할아버지는 “이혼하려고 하는 것은 다른 뜻이 있는 것이 결코 아니고 단지 아내가 나를 너무 속박하고 있다는 순수한 감정 때문”이라며 “죽어도 밖에서 죽지,나는 결코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혼 소송을 맡은 판사 모훙(牟宏)은 “올해는 이들 부부가 결혼 50주년을 맞은 해인데,반세기 동안 같은 배를 타고 비바람을 헤치고 살아온 이들이기 때문에 절대 감정적으로 큰 모순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이혼을 반대한다고 판결했다. 그는 그러나 “단지 부인은 남편이 노년을 보다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마작이나 댄스,등산 등의 오락 활동을 비교적 자유스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 국내 유일 파란 눈의 개그맨 샘 해밍턴

    국내 유일 파란 눈의 개그맨 샘 해밍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개그콘서트 연습실. 수십명의 개그맨들이 대기실과 리허설실을 오가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샘, 우리 차례야. 빨리 가자.”개그콘서트의 터줏대감 박준형의 목소리가 들린다. 수첩을 보며 열심히 연습을 하던 샘 해밍턴(27)이 “넵, 형님∼”하며 따라 나선다. 리허설실에서 시작된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인터뷰’에서 해밍턴은 외국자본의 ‘먹튀’를 재미있게 꼬집는다. 김석현 PD와 선배들의 조언을 들은 뒤 무대에서 내려온 그를 만났다. 시종일관 유창한 우리말로 ‘한국에서 외국인 개그맨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풀어놨다. ●“개그는 나의 운명∼” 호주 출신인 그가 우리 안방극장에 개그맨으로 데뷔한 것은 지난해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 ‘하류인생’에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이후 코믹 영어뉴스 코너인 ‘월드뉴스’를 거쳐 올 초부터 ‘인터뷰’의 멤버가 됐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외국인 개그맨이지만 한국말에 막힘이 없고 친근함이 묻어나는 푸근한 인상이 그만의 장점. “배우 출신인 어머니가 호주 방송국 PD로 일하셔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연기를 했어요. 대학때는 튀고 싶어서 한국어와 마케팅을 복수전공하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키웠습니다.”교환학생으로 고려대에서 공부한 뒤 2002년부터 아예 한국에 눌러앉았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생활은 쉽지만은 않았다. 방송 예능프로그램에서 외국인 ‘재현배우’역할을 간간이 맡다가 돈벌이를 위해 건설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나 연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대학로 공연장 등을 돌며 틈틈이 기회를 엿봤다. 회사를 나와 다시 재현배우 생활을 했으나 일감이 별로 없어 방송을 관둬야겠다는 생각도 했다고.“영어학원 강사를 할까 하다가 개그공연에서 도우미를 했는데 한국말을 잘 해서 눈에 띄었나봐요. 덕분에 개그콘서트팀에서 연락이 와 개그맨으로 활동하게 됐어요.” 그러나 첫 고정 출연작 ‘월드뉴스’는 8주만에 막을 내렸다.“코너가 없어져 아쉬웠지만 당시 유행어를 아직도 기억하는 분들이 있어 신기해요.” 앞서 2003년에는 ‘갈갈이’ 박준형측이 연락을 해와 국내 최초로 속담과 ‘콩글리시’를 접목한 영어개그를 시도했다. 그러나 결과는 방송 불가. 박준형과의 재회는 지난해 영어개그를 다시 추진하면서 이뤄졌다. 이번에는 방송에 나가기 전 전국을 돌며 공연을 했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인터뷰’가 방송을 타면서 영어로만 이뤄진 대본에 우리말을 넣었고, 아유미·다니엘 헤니·히딩크·로버트 할리 등 외국인 연예인의 성대모사를 시도, 새로운 영역을 개척 중이다. ●“만능 엔터테이너가 꿈” 그는 외국 개그와 한국 개그가 많이 다르다고 했다. 거침 없는 말로 웃기는 외국 스탠딩 코미디와 달리, 한국 개그는 액션도 필요하고 계속 웃음을 유도하기 위해 빨리 흘러간다는 것. 그래서 집중력도 더 필요하다고 했다. ‘인터뷰’에서 박준형의 말처럼 ‘조금 떠서 설날 외국인 장기대회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됐지만 이제 시작이고 배울 것이 많다며 겸손해했다.“아직 많이 부족해서 한 단계씩 밟아나가려 하지만 나름대로 욕심도 많아요. 시사개그는 물론, 영화나 드라마, 뮤지컬도 도전하고 싶고 미국 등 해외로 진출하는 꿈도 갖고 있습니다.” 그의 가장 큰 소망은 소박한 듯하면서도 쉽지 않아 보였다.“외국인이라서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 역할도 맡아 자연스럽게 인정받고 싶어요. 국적으로 비교되지 않고 제 개그가 재미있고 참신하게 다가갔으면 합니다.” 글 사진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와인 재테크’ 아시나요

    ‘와인 재테크’ 아시나요

    와인이 사랑받는 이유는 많다. 그 중에서 하나가 바로 와인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재테크의 수단이 되는 까닭이다. 유럽에서는 ‘와인펀드’가 이미 나왔을 정도다. 와인의 재테크는 포도의 수확 연도를 나타내는 빈티지 때문이다. 와인을 빚는 기술이 세계적으로 평준화되면서 와인의 원료인 포도의 질이 가격을 좌우하는 까닭이다. 와인 전문가들은 빈티지별로 점수를 매긴다. 그 결과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 되며, 품귀 현상까지 일어난다. 근자에 최고의 빈티지로 불리는 해는 1982년과 2000년이다.82년도 ‘샤토 라투르’,‘무통로칠드’,‘라피트 로칠드’ 등 3종 세트는 지난 설날에 750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명품 와인으로 자리잡았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7∼16일 프랑스의 2000년 빈티지 와인을 한자리에 모은 ‘2000년 밀레니엄 재테크 와인전’을 연다.10만∼250만원 등 다양한 와인이 나오고 정상가보다 15% 싸게 판매한다.200만원대의 ‘샤토 슈방블랑’,‘샤토 라투르’,‘샤토 오종’을 비롯해 100만원대의 ‘샤토 마고’,‘샤토 오브리옹’,40만원대의 ‘샤토 피지악’,‘샤토 코스데스투르넬’ 등 2000년산 프랑스 와인 15가지를 선보인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장묘문화센터 무료改葬 추진

    장묘문화센터 무료改葬 추진

    한식(寒食)을 하루 앞둔 5일 서울 중랑구 망우리 묘지. 무성한 잡초와 나무가 뒤엉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무덤들이 눈에 띈다. 마침 성묘를 하러 온 신희선(43·여)씨는 “그야말로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라면서 “무덤을 관리 못할 거라면 화장(火葬)을 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무연고 묘지가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핵가족화로 가족 구성원이 줄어드는 데다 세월이 흐르면서 관리가 제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핵가족화·세대바뀜의 영향” 서울 시립묘지를 관리하는 서울시 장묘문화센터는 무덤을 무료로 개장(改葬)해서 화장해 주는 고육책까지 동원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매장 위주의 장례문화가 자연장(自然葬·화장한 유골을 수목·화초·잔디 등에 뿌리는 방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판단, 자연장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서울시 장묘문화센터가 2003년부터 최근까지 용미리·벽제리·망우리·내곡리 묘지에서 무덤 주인을 파악하기 위한 신고를 받은 결과 8만 5265기 가운데 3만 8206기(44%)만 접수됐다. 센터측은 신고하지 않은 무덤 4만 7059기 가운데 1만여기(20%가량)를 ‘버려진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머지는 주인이 있으면서도 신고가 안 된 경우다. 벽제리 묘지의 경우 버려진 무덤이 1만 3374기 가운데 753기인 것으로 파악됐다. 묘지 관리자는 “묘지 자체가 경사가 급해서 장마가 심할 경우 흙이 무너져 길을 가로막기도 한다.”고 전했다. 센터는 이처럼 버려진 무덤에 대한 관리 비용으로 연간 6억원 안팎을 투입하고 있다. 센터 김홍렬 소장은 “그나마 시립 묘지라서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것이지 일반 묘지는 더욱 문제가 많을 것”이라면서 “핵가족화와 의식 변화로 이같은 현상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명절 때 묘지를 찾는 성묘객들도 줄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 설날 연휴(1월28∼30일) 시립묘지 성묘객은 7만 398명으로 작년 설 연휴(2월8∼10일) 성묘객인 11만 1646명에 비해 현격하게 줄었다. ●개장비 무료→수목장·산골 유도 이에 따라 윤달이 낀 해에는 자발적으로 무덤을 개장해 화장·납골하는 유족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개장된 무덤은 2001년에는 1736기에서 2004년에는 2177기로 증가했다. 실제로 센터가 성묘객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60명이 비용이 무료라면 개장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전통 매장법이 국토를 심각하게 잠식할 뿐 아니라 환경훼손을 한다는 판단에 따라 자연장 도입을 골자로 하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산림청과 지방자치단체장이 국·공유림을 활용한 30만㎡ 이상의 대규모 수목장(樹木蔣)림을 조성하도록 했다. 또 개인이 자연장 구역을 설치할 경우 면적이 100㎡ 미만이면 관할 시·군·구에 신고만 하고,100㎡ 이상이면 별도의 재단법인을 설립하도록 했다. 서울시 장묘문화센터 역시 무연고 무덤에 대해서는 2009년까지 점진적으로 개장을 권유해 수목장을 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우선 1기당 44만원이 드는 개장 비용을 지원할 예정이다.1만 600기분인 9억 3300만원(잠정)의 예산을 책정했다. 올해까지 일제 신고·접수를 마친 뒤 2007∼2008년 방치된 무덤을 개장하고 2009년 수목장림으로 만드는 등의 묘지 재개발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심재억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이진형 ‘태백의 샛별’

    이진형(26·울산동구청)이 생애 첫 태백장사 꽃가마에 올랐다. 이진형은 22일 경북 안동체육관에서 열린 안동장사대회 첫날 태백장사 결정전(3전2선승제)에서 손현락(기장군청)을 2-0으로 가볍게 누르고 장사타이틀을 거머쥐었다.민속씨름 데뷔전이었던 지난 설날장사대회에서 예선 탈락했던 이진형은 두 번째 도전 만에 황소트로피를 거머쥐며 태백급의 새로운 강자로 우뚝 섰다. 170㎝에 80㎏으로 출전선수 가운데 최단신인 이진형은 자신보다 5∼10㎝ 가까이 큰 상대들을 맞아 단 한 판도 내주지 않고 전승으로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 첫 판을 알리는 호각이 울리자마자 이진형은 상대를 뽑아들어 균형을 무너뜨린 뒤 밀어치기를 하는 듯하다가 반대방향 잡채기로 모래판에 뉘었다. 두 번째 판 역시 들배지기로 순식간에 상대를 넘어뜨린 뒤 화려한 덤블링 세리머니로 우승을 자축했다. 한편 유일한 프로팀 소속인 김형규(현대삼호중공업)는 금강급에서 체급을 내려 도전했지만 8강에서 탈락했고 지난 2개대회에서 연거푸 우승했던 송상도(구미시청)는 첫 판에서 떨어지는 등 이변이 속출했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이런 천인공노할…” 조카딸 성폭행한 당숙

    “조카딸에게 손을 대다니? 이런 천인공노할 만행이 있나.천벌을 받을 것이여,천벌” 중국 대륙에 오촌 당숙이 어린 조카딸을 수차례에 걸쳐 성폭행하는 짐승만도 못한 일이 발생,충격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중국 서북부 충라이시 쌍위안(桑園)진에 사는 한 남성은 이제 겨우 11살된 그의 어린 조카딸을 몰래 꾀어내 숲속으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로 공안당국에 붙잡혔다고 화서도시보(華西都市報)가 최근 보도했다. 신문은 조카딸을 꾀어 성폭행하는 짐승만도 못한 만행을 저지른 장본인이 바로 이웃에 사는 오촌 당숙 천스구이(陳世貴)씨라고 밝혔다. 피해자의 할아버지 천융쿤(陳永坤)씨에 따르면 그의 조카 스구이는 지난 춘제(春節·설날) 오후 5시쯤 조카딸 루루(露露·가명)를 꾀어내 집 인근에 있는 대나무 숲으로 데려가 루루의 가슴을 만지는 것은 물론,성폭행하는등 여러차례 조카딸을 성폭행해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루루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소극적인 성격으로 바뀌고 밖에 나가 친구들과 어울릴 생각은 하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자폐아’처럼 행동했다. 루루의 이같은 행동이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할아버지 융쿤씨가 루루를 불러 추궁한 끝에 스구이가 이같은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할아버지 융쿤씨는 곧바로 공안당국으로 달려가 조카 스구이의 죄상을 낱낱이 신고했다.공안은 스구이를 불러 조사했으나 그는 “나와는 상관이 없다.아마 아저씨 융쿤씨가 나의 돈을 우려내려고 날조하고 있다.”고 완강히 부인하는 바람에 별다른 의문점을 찾지 못했다.수사가 흐지부지해져 버린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분함을 참지 못한 할아버지 융쿤씨는 할 수 없어 루루를 총라이시 아동보건원으로 데려가 검사를 받았다.그 검사결과 루루는 여러번 성폭행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밝혀냈다. 이 사실을 다시 공안에 전해주자,공안은 사건 현장인 대나무 숲을 10여일 동안 정밀수사한 결과 증거를 찾아내 스구이의 덜미를 잡았다. 온라인뉴스부
  • 모제욱 샅바 다시 잡는다

    #장면1 2004년 10월22일 구리시체육관. 한라장사 결정전에서 팀 후배 김기태를 꺾고 1년5개월 만에 꽃가마를 탄 ‘변칙씨름의 귀재’ 모제욱(31·당시 LG씨름단)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지고 무릎 연골을 다치는 최악의 상황에서 거둔 값진 우승. 하지만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팀은 해체됐고, 모제욱은 ‘무적’ 선수가 됐다.#장면2 지난해 2월10일 서울 장충체육관. 소속팀 해체로 경남 진주를 팀명으로 걸고 출전한 모제욱이 설날장사씨름대회 한라장사 결정전에서 이준우(당시 신창건설·현 마산시체육회)를 꺾고 황소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통산 13번째 한라봉 등극과 함께 1000만원의 상금을 탔다. 하지만 모제욱이 부인 박영주씨에게 돈봉투를 건네 준 것은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정통 다리기술보다는 끌어치기 등 손을 이용한 변칙 기술에 뛰어나 ‘잡초’란 별명을 얻은 모제욱(184㎝,105㎏)은 1995년 프로 데뷔 이래 ‘탱크’ 김용대(28)와 함께 한라급의 간판스타로 군림해 왔다. 정규대회 11번을 포함해 모두 13차례 꽃가마를 탔다. 연봉도 8500만원으로 한라급 최상위였다. 하지만 지난해 설날대회를 끝으로 모제욱은 모래판에서 자취를 감췄다. 소속팀 문제가 계속해서 꼬이자 운동할 의욕을 잃어버렸고, 자연스럽게 몸상태도 조금씩 망가졌다. 모제욱을 모래판에 다시 세운 것은 지난해 6월 태어난 첫딸 모현이였다. “수입은 없고 벌어 놓은 것을 까먹기만 하다 보니 겁이 나더라고요. 이래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라고 모제욱은 당시를 회상했다. 마음을 다잡은 모제욱은 마산시체육회에 합류, 샅바를 다시 잡았다. 하루 6시간씩 하루도 거르지 않고 굵은 땀방울을 쏟아냈다. 쉬는 날은 2주에 한번 서울로 부인과 현이를 보러갈 때뿐. 모제욱은 “1년 넘도록 한 푼도 가져다 주지 못한 무능력한 가장을 묵묵히 기다려 준 아내에게 미안해서 운동을 게을리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모제욱은 오는 22∼25일 열리는 안동장사대회를 통해 13개월 만에 모래판으로 돌아온다. 그는 “몸 상태는 많이 좋아졌지만 실전 감각이 떨어져 4강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도 “연내에 꼭 꽃가마에 올라 모제욱이 살아 있음을 팬들에게 보여 드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31) 세시풍습과 차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31) 세시풍습과 차

    우수(雨水)다. 땅이 속살부터 풀려가고 있다. 아지랑이는 먼 산등성이부터 피어오르고 대나무 광주리를 인 아낙들이 봄나물을 뜯는다. 머리에는 하늘의 뜨거운 기운을 방지하려는 듯 수건을 동여매고, 호미를 쥔 손은 개미의 발걸음처럼 부지런하다. 얼음이 녹아내린 논두렁 밭두렁에서 봄 나물을 캐는 아낙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 삶의 문화적 원형을 생각하게 된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 민족의 삶은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봄이 가면 여름이 오는 자연의 과학적 법칙에 따른 공동체적 문화를 형성해 왔다.입춘이 오면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고 우수가 오면 땅이 풀리는, 그래서 동면했던 모든 생명들이 세상에 얼굴을 내미는 자연의 윤회는 한 치의 오차도 없다. 그속에는 도전과 응전의 격렬한 내적 운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변화들은 거대한 장강의 흐름처럼 언제나 완벽하게 추동해낸다. 마치 수억만 기가의 용량을 가진 슈퍼컴보다도 더 정확하게 그것들은 짜여 간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이다. 차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매달 차를 만들거나 마시는 문화적 규범을 멋스럽게 가꾸어 왔다. 지금은 차를 만드는 절기를 곡우를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과거에는 중국의 백차와 승설차처럼 경칩 이전에 차를 만들기도 했다. 경칩이 되면 첫 싹이 움튼다. 그 차싹을 이용해 열흘 동안 만들어 황제에게 진상하던 풍습이 중국에서는 오랫동안 성행했다.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조선시대까지 좋은 차를 얻기 위해 경칩이나 보다 이른 때 차를 만들기도 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차인이었던 매월당 김시습과 서거정은 그같은 일이 빈번했음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매월당으로부터 차를 받아 마셨던 서거정은 그 고마움을 다음과 같은 시로 답한다. “봄천둥 울지 않고 벌레는 아직 깨지 않았는데/산의 차나무는 움터서 새싹을 이루었네/경주의 눈빛 종이로 봉지를 만들고/그 위에 초서로 두서너 글자를 적어 봉하였네/봉함을 여니 하나하나 봉황의 혀/살짝 불에 쪼여 곱게 가니 옥가루가 날리네/서둘러 아이불러 다리 부러진 냄비를 씻어/눈물로 담담하게 차를 달이며 생강도 곁들이네.” 서거정은 ‘유다’나 ‘조아차’로 이름 붙여진 차의 모습을 봉황의 혀요, 옥가루라고 표현하고 있다.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이었으면 이같은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선대 차인들이 가졌던 고귀한 차의 정신이 경이로울 정도다. 우리나라 왕실에서는 대대로 매달 새롭게 생산되는 각종 과일과 채소를 조상에게 올리는 ‘천신’제를 행했다. 고려시대때 천신품목 중 하나는 ‘얼음’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2월에는 천신품목으로 생합 낙지 얼음 전복 그리고 작설차를 바쳤다고 한다. 차가 매우 성행했던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차가 천신의 품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에 천신의 품목이었다는 것은 당시 차가 그만큼 귀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2∼3월에도 ‘유다’나 ‘조아차’ 같은 차들이 일상적으로 만들어져 진상됐음을 의미한다. 4월은 현재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차와 꽃의 계절이었다. 진달래가 피면 산으로 나가 ‘화전’을 부쳐 먹으며 차를 마셨다. 청명과 곡우 그리고 중양절의 하나인 삼월삼짇날이 있는 4월은 축복받은 차의 계절이기도 하다.4월을 차의 달로 만든 차의 명인은 신라의 대표적인 고승이자 차승이었던 충담사다. 충담사는 해마다 4월이 되면 경주 남산의 삼화령 미륵부처님께 차를 올렸다. 충담사는 세상 만물이 눈을 뜨는 달을 맞아 미륵부처님께 국가와 민족의 안녕을 기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중양절마다 부처님께 차를 올렸다. 그런 점에서 충담사는 우리 사원다례의 선구자로 볼 수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답청때 차를 마신 기록이 보인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여류시인이자 차인인 영수합 서씨는 삼월삼짇날 답청준비를 위한 차도구를 준비하며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여러해 동안 은근한 불로 작은 화로에 차를 끓였으니/신기하고 영묘한 공덕이 조금은 틀림없이 있을 터요/차 한 잔을 마신 뒤 거문고를 어루만지니/밝은 달님이 나와서 누군가를 부른다네/봄날 차반의 푸른잔에 옥로차를 올리노라니/오래된 벽에 그을음이 앉아 얼룩진 그림이 되었네/잔에 가득 찬 것이 어찌 술이어야 하리/답청 가는 내일은 차호를 가져가리.” 조선시대는 가부장적 권위가 최고조에 달했던 때다. 그러나 답청날만은 여성들의 바깥 출입이 자유로웠을 뿐 아니라 남성들이 손수 여성들을 위해 노동을 해준 날이기도 하다. 답청날 남자들은 곡수연이라 해서 물이 굽이치는 계곡에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러나 사대부집 여성들은 이날 먼 곳까지 나가 물이 좋은 곳에 자리잡고 거문고를 타며 차를 마신 것이다. 다산 정약용의 ‘다신계 절목´에서는 청명과 한식때 차 모임을 시작한다고 되어 있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청명을 봄을 맞이하는 ‘영춘다회일’로 부르며 차의 명절로 지내고 있다. 입하 때는 칠가차를 마시기도 한다. 중국풍습인 칠가차는 우리가 정월 대보름때 오곡밥을 지어 여러 집이 함께 나눠 먹는 것과 비슷하다. 칠가차란 일곱 집에서 각각 잘 만들어진 차를 가져다가 한 주전자에 넣고 우려 여러 사람이 모여 즐겁게 나눠 마시는 차를 말한다. 여러 차를 한꺼번에 한 주전자에 넣고 우려내어 나눠 마시는 것은 각자 고유의 차맛을 잃어버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차의 공동체적 살림살이를 나눈다는 의미에서 매우 유의미한 일이기도 하다. 사대부적 권위가 드셌던 조선시대 여인들이 가졌던 차의 미학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단오날이다. 창포물로 머리를 단정하게 감는 단오날 여인들은 규방을 빠져나와 꽃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차회를 열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 모여 솜털이 곱살거리는 하얀 목덜미를 내밀며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여인들의 모습은 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청량함을 던져준다. 그리고 그 창포 냄새에 취해 벌이는 아름다운 차회의 모습은 차도미학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중국에서도 단오날을 약차절이라고 부르며 창포차를 마시고 약차를 만들기도 한다. 신라 때부터 전해오는 유월 보름의 명절 ‘유두’는 다함께 모여 차를 마시고 차떡을 나눠 마시는 풍습이다.‘차약 먹는 유두놀음’이라는 민요는 ‘유두’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한다.“유월이라 유두날에/작설떡을 차려심더/화개장에 오신 장사/차약 먹는 유두놀음/벌리보세 에헤라/에헤라 상사디야.” ‘동국세시기´를 보면 유두날 떡을 먹는 것은 단오날의 풍습을 옮겨온 것이다. 작설떡은 떡차를 끓여 마시던 것을 변형해 쌀가루와 섞어 만들어 먹은 것으로 보인다. 유두때는 불길한 것을 씻기 위해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기도 하고 액을 막기 위한 술자리도 함께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유두날 역시 차와 작설떡 등의 놀이로 액을 막고 벽사의 의미를 가졌던 것 같다. 추석이나 설 명절의 차례 역시 매우 중요한 세시풍속 중 하나였다. 지금은 대부분 차례를 술로 지내지만 신라시대부터 ‘차’로 ‘차례’를 지냈다. 김수로왕과 허황후 때부터 시작된 차례는 조상들에게 햇곡식과 함께 차를 올렸다. 그런 점에서 현재 우리가 조상들에게 올리고 있는 ‘차례’에 차가 아닌 술이 올라간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하는 대목이다. 옛 차인들은 세시기별로 차를 마셨다. 차와 함께 봄에는 화전이나 진달래차, 가을에는 국화차, 겨울에는 매화차 같은 꽃차와 백로의 이슬 등 절기에 맞춰 자연의 변화를 즐겼다. 그같은 삶은 각박한 우리의 삶을 한층 더 풍요롭게 했다. 옛날이나 현재의 살림살이는 똑같다. 다만 그 환경만 조금 다를 뿐이다. 매일매일 변화무쌍한 삶을 살아가는 중생의 살림살이는 여전히 각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 차인들은 그같은 삶을 차와 자연의 일체를 통해 녹여냈다. 동적인 것을 정적인 것으로 바꾸고 그 가운데서 삶의 지혜와 세상을 맑히는 정신을 내놓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공동체적 삶을 자연과 함께 영위하게 해준 세시풍속은 매우 중요한 문화적 가치라고 보여진다. 외국 자본의 상혼에 물든 ‘초콜릿데이’인 밸런타인데이면 세상은 온통 초콜릿에 물든다. 얼마 전 시골의 한 초등학교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초콜릿데이에 쓰여진 용돈 규모는 한달 살림살이를 전부 투자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문화에는 우리의 정신도 우리의 삶도 내재하지 않는다. 입춘날 부적을 내걸고 단오날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유두날 떡을 함께 먹으며 질펀한 놀이를 함께 즐기는 우리의 삶은 자연과 대지에 깊게 뿌리내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고단한 우리 삶의 의미와 내용을 가치있게 빛내는 것들이었다. 차인들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외형보다는 우리의 삶속에서 차의 변화를 맛깔나게 즐겼던 선대 차인들의 지혜를 본받아 이 시대에 걸맞은 차문화를 만들어내야 할 때다. 그것이 웰빙시대 차 문화를 가꾸어 나가는 차인들의 역할이 아닐까? 일지암 암주 ■ 茶씨앗은 아들 낳는 부적으로 이용하기도 민간신앙과 차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의 문화로서 그 기능과 가치를 확산해 왔다. 일반 백성들은 차를 벽사나 기복의 수단으로 신성시하고 숭배했다.‘차’라는 글자를 부적으로도 썼고, 차를 끓여 신에게 바치기도 했으며 차나무를 신성시해 ‘서초괴’(상서러운 식물중의 괴수),‘왕손초’(王孫草)라고 부르기도 했다. 중국의 노정벽이라는 다인은 심지어 다구를 보고 의관을 갖춰 절을 했을 정도로 민간에서는 차를 신성시했다. 그런 점에서 민중에게 차는 신령스러운 ‘벽사’( 邪)의 능력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 신이 큰 공덕을 준다고까지 믿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차’라는 글자는 나쁜 액을 물리치는 벽사의 부적으로 사용되었다. 홍만종은 그의 저서 ‘산림경제’에서 “단오날 오시(午時)에 붉은 주사로 ‘茶’를 써서 붙이면 사갈이 감히 접근하지 못한다.”고 적고 있다. 빙허각 이씨가 쓴 ‘규합총서’에도 ‘차’자 부적에 관한 글이 나온다.‘규합총서’에는 “단오날 오시에 주사로 ‘차’자를 많이 써 붙이면 뱀과 지네가 없느니라.”고 되어 있다. 당시 민중은 단오날 한 해의 액운을 막기 위해 부적을 써붙이는 것이 하나의 문화적 풍습이었다. 또하나 재미있는 부적은 ‘신다울루’(神茶鬱壘)라는 것이다. 주로 불행이 집안의 문안에 들어오지 못하게하는 문신(門神)의 역할을 한 ‘신다울루’에는 ‘신다울루’라는 글자나 다신의 형상을 그려서 문에 붙였다고 한다. 신다울루는 형제신의 이름으로 중국 동한때 채옹이 쓴 ‘독단’에 나와 있다.‘독단’에 따르면 “바다 가운데 도삭산이 있고, 그 산위에 복숭아 나무 하나가 있다. 그 나무는 3000리 근방까지 서리어 구불구불하다. 낮은 가지의 동북쪽으로 귀신이 다니는 문이 있어 온갖 귀신이 드나든다.‘신다’와 ‘울루’두신이 이 문의 양쪽에 버티고 서서 모든 귀신을 검열한다.‘신다’와 ‘울루’신은 남을 해치는 귀신을 갈대로 꼰 새끼에 묶어 호랑이에게 먹인다.”고 적고 있다. ‘동국세시기’에는 “입춘에는 단오날에 쓸 부적으로 문에 붙이는 첩자에 ‘신다울루’넉자를 쓴다. 옛 풍속에 설날 도부(桃符:복숭아나무 부적)에 ‘신다’와 ‘울루’의 형상을 그려 문에다 걸어 흉악한 귀신을 쫓았다.”고 적고 있다. 이같은 정황을 볼 때 입춘날 ‘신다울루’라는 부적을 써 단오날 문에 붙였던 풍습이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또 부적을 태운 후 찻물과 함께 마시는 풍습도 있었다. 민중은 현세와 내세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왕생정토’ 부적을 태운 후 불전에 올린 찻물에 타서 마셨다. 소원을 이루기 위해 일정한 날에 서쪽을 향해 나무아미타불을 천번 외고, 또 주문을 108번 외운 후, 정토부적을 살라서 그 재를 불전에 올린 찻물인 퇴다수에 타서 마셨다. 그같은 풍습은 부처님이 마신 찻물을 먹으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인간의 염원을 잘 반영한 것이다. 차씨는 또 아들을 낳는 부적으로도 사용됐다. 차가 많이 나는 지방의 민중은 딸이 시집 갈 때 차씨와 함께 보냈다. 차씨는 상서로운 식물의 종자로 귀한 아들을 낳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점제하는 차씨’라는 민간구전요는 이같은 상황을 잘 말해 주고 있다.“영축산록 자장골에/자장율사 따라왔던/자장암의 금개구리/차씨 한 알 토해주소/우리 딸년 시집갈 때/봉채집에 넣어주어/떡판 같은 아들낳게/비나이다 비나이다/그 문중에 꽃이 되고/이 가정에 복을 주소/점제하려 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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