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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기술의 발달로 영화가 현실로… 생활속 ‘미션 임파서블’

    과학기술의 발달로 영화가 현실로… 생활속 ‘미션 임파서블’

    과학기술의 진보로 2040년에 한국인은 어떤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성균관대 하이브리드컬처연구소가 21일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2040년 한국의 삶의 질’ 보고서는 현재의 과학기술과 앞으로의 개발 능력에 대한 객관적 데이터를 체계화, 2040년에 예상되는 과학기술 혜택을 구체적으로 내놨다. 그때가 되면 한국인들은 정보통신(IT) 등 융합기술의 발달로 첨단 디지털 기능이 추가된 스마트 의류를 입게 된다. 옷과 컴퓨터가 일체화된 웨어러블(wearable) 컴퓨터, 주변 온도에 맞춰 스스로 변하는 지능성 방한복, 주변 환경에 따라 색이 바뀌는 카멜레온 의류, 미아방지용 의류, 더럽혀지지 않는 옷 등이 선보인다. 음식물 대체 캡슐이 보급되면서 음식 문화에도 혁명이 일어난다. 주택의 스마트화가 이뤄져 내부 환기, 온도·습도 조절, 조명 밝기 등은 물론 거주자의 건강상태, 위험상황까지 검사해 알려주게 된다. 재택근무가 늘어나 주택은 잠만 자는 공간에서 업무와 휴식, 자녀교육 또는 가족의 생활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청소·세탁·설거지·음식조리 등을 수행하는 도우미 로봇이 일반화되면서 가사노동 대부분을 로봇이 담당한다. 지능형 로봇은 아이들과 놀아주며 아이에게 필요한 지식을 전달해주고, 운동 파트너나 게임 상대가 되기도 한다. 초고령사회가 됨에 따라 노인 부부 또는 독거노인들이 늘어나면서 노인을 위해 휠체어를 끌어주는 로봇, 음식 먹는 것을 도와주는 로봇, 칫솔질이나 목욕을 돕는 로봇 등도 개발된다. 만국어 번역기가 실용화되면서 더욱 다양한 여행상품이 개발되고 혼자서 세계를 여행하는 한국인이 급증하게 된다. 지구 주위 궤도 우주관광여행이 보편화되면서 많은 사람이 우주여행을 꿈꾸게 된다. 3D업종 대체 로봇과 착용형 로봇이 상용화돼 극한 환경에서의 작용을 개선해 산업재해가 줄어들게 된다. 사이버교육·원격교육도 강화된다. 최신 선진 콘텐츠들이 우리말로 실시간 번역돼 공급되므로 가족을 떠나 외국에 유학을 갈 필요가 없어진다. IT 기술 덕분에 세계적 교육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어 사교육이 사라진다. 연료전지 자동차와 자동운전시스템이 일상화되면서 자동차 간 통신시스템을 활용한 사고 방지 시스템이 보급돼 자동차 사고가 급감한다. 개인의 유전적 특성에 따른 맞춤형 치료가 가능해지고 노화 메커니즘이 규명되고 유전자 특성에 맞는 맞춤 치료가 가능해진다. 뇌의 기억정보를 컴퓨터가 읽어낼 수 있는 시스템이 실용화되면서 범죄가 급감한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숫자로 본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 1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고객센터에서 근무하는 김은비(41)씨는 최근까지도 정기적으로 안부전화를 하면 쌀쌀맞게 대하기만 하는 할머니가 못내 아쉬웠다. 첫 전화 때는 “나는 아무것도, 아무도 필요 없으니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할머니는 7남매를 뒀지만 명절 때조차 아무도 찾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어느 날부터는 통화를 하다 작별인사를 할라치면 “밥은 먹고 일하나. 언제가 전화하는 날이지?”라고 말하며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김씨는 “여전히 차도할(차가운 도시의 할머니)로 불리는 할머니이지만 독거노인이 마음을 열 때면 고된 업무로 인한 중압감이 씻은 듯 사라진다.”고 했다. 보건복지부가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을 시작한 지 어느덧 1주년을 한 달 앞둔 시점이다. 독거노인에게 따뜻한 안부를 전하기 위해 ‘사랑의 전화’ 사업에 참여한 기관이 그 새 42곳으로 늘었다. 제일은행과 국민카드가 협약을 앞두고 있는 등 나눔에 동참하는 기업은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늘고 있다. 사랑의 전화는 주변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기 어려운 노인의 고독사를 방지하고, 외로움을 달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연초부터 현재까지 나눔천사 1만 103명이 독거노인 1만 4667명에게 매주 2~3회씩 정기적으로 안부를 전하고 있다. 1대1 결연사업으로 추진돼 단순히 안부를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인의 건강과 생활문제 등을 심층적으로 상담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직접 만나 돕는 ‘마음 잇는 봉사’에는 2만 1243명의 봉사자가 참여했다. 독거노인 5만 1852명이 후원품을 받거나 설거지, 청소 등 생활에 도움을 받았다. 100만명에 달하는 전체 독거노인 수에 비하면 여전히 작은 규모이지만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시스템을 갖췄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복지부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로 직접 전화를 걸어 자원봉사 신청을 하거나 지원을 연계해 달라는 요청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1월 27일 센터 설립 이래 현재까지 1만 39 34건의 연락이 이뤄졌다. 노인에게 직접 제도를 안내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센터에서 연락을 취한 사례는 9만 5253건에 달한다. 독거노인 사랑 잇기 사업으로 노인의 만족도도 높아지고 있다. 사랑의 전화를 받은 독거노인 1728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실시한 결과 노인의 고독감은 7개월 동안 4.4%가 감소했다. 고독감 정도는 사회복지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UCLA 고독감 척도’를 활용했다. 직접 방문은 제외하고 단순히 노인에게 전화를 한 것만 적용한 것이어서 의미는 컸다. 최진영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과장은 “단기간에 전화만으로도 노인의 고독감이 감소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라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제 소설은 공상이고 망상… 가능성 찾는 자세로 봤으면”

    “제 소설은 공상이고 망상… 가능성 찾는 자세로 봤으면”

    그의 인상은 자매가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신경숙 작가와 닮았다. 하지만 신 작가가 아름다운 문장으로 인간의 내면을 향했다면 소설가 강영숙(44)은 사회에 대한 관심이 더 많다. 신 작가가 ‘국보급’인 데 견줘 자신은 장편소설 2편을 냈고 그중 한편은 일본에서 번역 출간됐음에도 ‘신인급’이라고 손사래를 친다. ●20년 넘게 한 직장 다니며 두 자녀 키워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8월의 식사’로 등단한 강 작가가 ‘빨강 속의 검정에 대하여’ 이후 2년여 만에 네 번째 소설집 ‘아령 하는 밤’을 펴냈다. 가장 처음 실린 단편 ‘문래에서’는 2011년 김유정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구제역’이라고 구체적으로 적시하진 않았지만 구제역으로 수많은 동물을 살처분한 이의 정신적 상처를 다뤘다. 대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아이오와가 배경인 ‘라디오와 강’, 허리케인으로 삶의 터전이 무너진 뉴올리언스에서 펼쳐진 이야기 ‘재해지역투어버스’ 등 올 상반기에 쓴 세 편의 단편이 모두 공교롭게도 자연재해를 다루고 있다. 서울 노원구 일대 주택가에서 치명적인 방사성물질이 검출됐다는 소식을 접한 도시인들로서는 ‘프리퍄트창고’ 역시 눈이 가는 소설이다. 프리퍄트는 치명적인 방사능 누출 사고가 있었던 체르노빌 원자로의 근로자들이 살던 주거 지역이다. ‘프리퍄트창고’에서 주인공은 ‘프리퍄트’를 자신의 심리적 고향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방사능에 노출된 ‘잠재적 암 환자’라고 믿어버린다. “기질인 거 같아요. 아이오와에 가도 누구는 음악에 끌리는데 저는 홍수의 흔적을 찾아다녔으니까요.” 재해로 가득한 도시를 그린 작품을 쓰는 까닭에 대한 작가의 답이다. 미국 아이오와는 국제창작프로그램을 통해 3개월간 머물렀던 도시이기도 하다. 그는 20년 넘게 한 직장을 다니는 생활인이자 두 자녀를 키우는 엄마다. 직장이 사회단체라 자유로운 근무가 가능하지만 하는 일의 중량은 크다. 작가는 ‘노동의 감각’을 놓치지 않고자 직장 생활을 계속한다고 밝혔다. 글은 주로 주말에 몰아서 쓴다. ●“문학, 경향성 안 따졌으면… 다양하면 좋아” 강 작가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신춘문예에 당선되기까지는 8년이 걸렸다. ‘이번이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응모한 신춘문예에서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여성 작가들이 존재론적 문제에만 천착한다는 의견에 대해 “성별의 문제는 아니다. 지금은 뭔가 큰 얘기를 할 수 있는 시점이 아니다. 문학을 하나의 경향으로 몰기보다는 다양하면 좋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공대생들도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나오면 한 권씩 사곤 했다. 문학에 대한 선호도가 점점 떨어진다는 걱정에 대해 소설가도, 문학을 담당하는 신문 기자도 뾰족한 대안을 찾진 못했다. 작가는 “결국 고급 독자가 남지 않겠느냐….”는 비관 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작가 자신도 소설보다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이 더 재미있다고 하면서. ●“인터넷글 소설보다 재미… 고급 독자만 남을 것” “이상한 이야기를 재미있다고 억지로 만들지 말고 가까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부터 써라.” 작가가 소설창작론을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여전히 문학 청년들은 있지만 9·11밖에는 겪은 게 없는 이들에게서 나오는 이야기가 신통하지만은 않다. 김유정문학상, 백신애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을 거푸 수상한 작가는 “잘 쓰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강조했다. “현실에 대입하기보다는 가능성을 찾는 자세로 봤으면 좋겠어요. 제 소설은 결국 다 공상이고 망상이니까요.” 그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말이다. 많은 여성 작가들은 설거지를 끝낸 저녁 식탁에서 작품을 썼다. 그 문학 작품은 노동하는 손에서 나온 것이기에 삶에 대한 끈질긴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野, 논공행상 부심

    동상이몽이다. 자리는 정해져 있는데 머릿수는 너무 많다. 야 5당과 시민단체의 힘으로 야권 단일후보로 당선된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시정을 꾸려 갈 서울시 정무직 인사 라인 문제다. 후보를 내지는 못 했지만 승리의 전리품을 나눠 가지게 된 야당은 논공행상에 부심하고 있다. 박 시장은 지난 3일 야권 단일후보 경선 결과 발표에 앞서 공동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하면서 범야권 ‘연합군’의 서울시정을 공동정부 형태로 운영하는 내용을 담은 합의문을 발표했다. 6·2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김두관 무소속 지사가 경남 도정을 운영하면서 민주당 출신 정무특보, 민주노동당 출신 정무부지사를 기용해 야당과의 협의 채널로 활용한 점을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박 시장은 특별히 정무부시장을 활용하는 방안도 내놨다. 첫 출근 때도 “자문기구를 통한 협치가 박원순 시정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현재 박 시장이 임명할 수 있는 서울시 정무 라인은 정무부시장, 정무조정실장, 시민소통기획관(특보), 대변인 정도다. 우선 정무부시장이 관심이다. 이 자리에는 민주당 인사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정책에 관해 긴밀하게 협조해야 할 서울시 의회의 80%가 민주당 출신인 점이 고려됐다. 캠프 상황실장이었던 김형주 전 의원이 먼저 꼽힌다. 김 전 의원은 28일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제안이 들어오면 생각해 보겠다.”고 밝혔다. 선대위 전략기획본부장으로 맹활약한 박선숙 의원은 “당에 ‘설거지’할 일이 많이 남았다.”며 고사했다. 정무조정실장에는 박 시장과 낙선운동을 같이 하며 인연을 쌓아온 캠프 총괄기획단장 하승창 ‘희망과 대안’ 운영위원장과 캠프 자문 역인 윤석인 희망제작소 부소장, 김기식 ‘혁신과 통합’ 공동대표 등 시민단체 출신들이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과 시민단체 위주로 인사가 짜여질 경우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등에 돌아갈 몫도 마련해야 하는 형국이다.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는 “완전한 연합군 형태였던 만큼 인선 여부를 떠나 결정 과정에 참여, 협의할 필요가 있다.”며 공동정부 구성에 소외될 가능성을 경계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서울시장 보선 D-11] 나경원, 종로·중랑·동대문에 그녀가 떴다!

    [서울시장 보선 D-11] 나경원, 종로·중랑·동대문에 그녀가 떴다!

    공식 선거운동 이틀째인 14일 한나라당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는 비가 오는 날씨 속에 표심잡기에 부심했다. 나 후보는 오전 종로구 종각 부근에서 30여분 동안 출근길 시민들에게 인사를 했다. 우산을 쓰는 대신 비옷을 입고 손등에 빗물이 묻을 때마다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악수를 나눴다. 이어 종로구 경운동의 서울노인복지센터를 찾아 박진·이두아 의원과 함께 점심 배식봉사를 했다. 선거운동 기간 ‘1일 1봉사활동’을 하겠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다. 이날은 노년층의 표심을 집중 공략했다. 오전 11시 센터에 도착한 나 후보는 미리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노인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나 후보는 관장인 청원 스님과 만나 “얼마전 만났던 60세 어르신께서는 제2의 직업을 갖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있다고 하셨다. 어르신들의 여가뿐 아니라 일자리를 위해서도 복지예산이 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나 후보는 주황색 앞치마를 두르고 노인들에게 직접 식판을 나르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설거지를 했다. 노인들은 나 후보에게 직접 “노인들에게는 이곳 같은 공간이 많이 필요하다.”면서 “이런 곳이 좀 더 많이 생길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써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나 후보는 봉사활동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어르신들이 여러 가지 고통을 많이 겪고 있는데 사실상 어르신들의 빈곤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어르신 일자리가 필요하다.”면서 “어르신들의 자긍심, 전문성, 경험을 살릴 수 있는 맞춤형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어르신들이 일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후에는 함께 10·26 재·보선에 도전하는 한나라당 소속 광역·기초의원 후보들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찾았다. 중랑구와 동대문구를 돌며 한나라당 지지자들과의 만남을 가졌고 이후 동대문구 이문동의 이경시장과 청량리 과일도매시장을 찾아 상인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전통시장을 활성화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나 후보는 이날 ‘여성행복공약’이라는 제목의 여성정책을 내놓고 “현재 시행 중인 취약계층 여성에 대한 복지서비스 전반을 검토해서 정책의 사각지대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공약에는 소득 하위 70%의 출산 가정의 경우 시립병원에서 출산비용을 지원하고 미혼모 여성의 경제활동 지원비용을 책정해 사회 진출을 위한 교육과정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나 후보는 또 “만 5세 아동에 대한 무상보육 실시, 0~2세의 영아 전용 국·공립 어린이집 100곳 신설, 민간보육시설의 공공보육시설 전환 등을 통해 여성들의 보육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재보선 선거운동 첫날 서울시장 두 후보의 컨셉트

    재보선 선거운동 첫날 서울시장 두 후보의 컨셉트

    ■나경원 ‘청취 행보’ 10·26 재·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3일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는 박근혜 전 대표와 홍준표 대표의 동시 지원 사격을 받으며 유세의 첫걸음을 뗐다. 나 후보는 이날 서울 구로구 디지털산업단지와 재래시장을 오전엔 박 전 대표와, 오후엔 홍 대표와 각각 누비며 지지를 호소했다. 세 사람의 등장으로 한나라당은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 등 계파를 초월한 이미지를 내세워 일견 총력전을 펼쳤다. 나 후보는 오전에 박 전 대표와 함께 서울관악고용지원센터와 벤처기업협회를 잇달아 방문하며 ‘청취 유세’를 펼쳤다. 구직자들, 벤처기업인들과 간담회를 갖고 고충을 듣는 정책 행보였다. 나 후보는 오전 10시 30분쯤 감색 점퍼에 베이지색 바지 차림으로, 박 전 대표는 짙은 자주색 재킷에 검정 바지 차림으로 이보다 조금 일찍 센터에 도착했다. 센터 내 상담코너에 들어선 박 전 대표는 구직자들에게 “오늘 (나 후보와) 같이 나와 있는데 서울시 고용·복지 쪽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 60대 구직 남성에게는 “우리 (나 후보)….”라고 말하며 손짓으로 나 후보를 소개하기도 했다. 청년실업프로그램 수강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 후보는 “전국 실업률보다 서울의 실업률이 높은 상황”이라며 “(실업률을 낮추는) 일자리 시장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간담회가 끝난 뒤 나 후보의 경쟁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 전 대표는 소리 내어 웃으면서 “그동안 많이 보셨잖아요. 얘기 안 해도….”라는 말로 대신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특히 장애아동에 대해 힘썼던 따뜻한 마음으로 서울시정도 이끌 것으로 본다.”고 한껏 치켜세웠다. 곧바로 인근 마리오타워에 있는 벤처기업협회로 이동한 두 사람은 황철주 벤처기업협회장, 엠텍비전 이성민 회장 등 벤처기업 대표 11명과도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뜻밖에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에게 패하며 야권단일후보 자리를 내준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참석, 박 전 대표 및 나 후보와의 조우가 이뤄졌다. 박 의원은 두 사람에게 “제 지역구를 방문해 줘서 감사하다. 오늘 간담회 잘하고 가시라.”고 인사를 건넸다. 이어 세 사람은 두세 마디 덕담을 나눴고, 박 의원이 먼저 자리를 떴다. 박 의원은 건물 밖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 전 대표가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벤처협회장을 소개시켜 주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박 의원이 돌아가고 ‘ㅁ’자형으로 마련된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간담회를 시작한 나 후보와 박 전 대표는 업체 대표들의 의견을 A4 용지에 깨알같이 메모하는 모습을 보였다. 투자·인력운용 등 벤처기업 경영난에 대해 성토가 이어지자 때론 고개를 끄덕이고 때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나 후보는 “창년 창업뿐 아니라 노인창업,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한 멘토시스템에도 관심을 갖겠다.”면서 “시장으로서 할 수 없는 중앙부처 일은 박 전 대표가 잘 챙겨주실 거라 본다.”고 박 전 대표를 추어올리기도 했다. 오후 들어 나 후보는 홍 대표와 함께 구로2동 중앙시장을 찾아 재래시장 상인들에게 한 표를 호소했다. 홍 대표는 길거리 유세에서 “해방 이후 처음으로 여성 서울시장을 한번 만들어보자.”면서 “서울시장을 한번 만들어보고 내년에 여성 대통령도 만들 수 있을지 어떻게 알겠습니까.”라고 외치기도 했다. 박 전 대표는 홀로 구로 디지털산업단지 일대 카메라렌즈 제조업체 등 벤처기업을 도는 일정을 소화했다. 오전보다 자유로운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안녕하세요’라며 악수하고 얘기도 건네는 등 한층 적극적인 스킨십을 보였다. 구로기계공구산업단지조합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는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는 고충을 듣고 “나 후보가 같이 오지는 못했지만 제가 꼭 전달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박원순 ‘토크쇼 유세’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범야권 단일후보로 나선 무소속 박원순 후보의 유세는 한마디로 이색적이었다. 카페 차양을 단 듯한 유세 차량과 CF송으로 친근한 시민 참여형 유세를 선보였다. 우렁찬 유세 음악으로 주위의 관심을 끌었던 기존 선거유세 방식과는 달랐다. 범야권 단일후보답게 선대위 출정식에는 손학규 민주당·이정희 민주노동당·유시민 국민참여당 등 야당 대표들과 한명숙 전 국무총리 등 유명 야권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박 후보는 “정치에 염증 내는 대한민국 국민과 서울시민들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선거)모습에 반드시 감동할 것”이라면서 “10월 26일 기호 10번 박원순이 서울시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겠다.”고 천명했다. 박 후보는 선거운동이 시작된 13일 0시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을 찾아 상인들에게 첫 신고식을 하며 바닥 민심을 살폈다. 이어 오전 7시 30분 남대문 시장 인근의 지하철 회현역으로 나가 출근길 인사를 나눴다. 상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손 대표도 동행했다. 박 후보는 손가락 10개를 펴보이며 기호 10번임을 강조했다. 오전 9시 선대위 출정식은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진행됐다. 박 후보를 비롯해 야당 의원들, 캠프 관계자, 지지자까지 150여명이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다. 현장에는 소형 트럭을 개조한 일명 ‘카페 박원순’ 유세차가 등장했다. CF송으로 유명한 가요 ‘버블버블’을 개사한 로고송도 울려 퍼졌다. 박 후보의 유세차에는 한 전 총리를 비롯해 손 대표, 이 대표, 유 대표 등 야권의 대표 인사들도 올라 박 후보를 지원 유세했다. 선거기간 대여 형식으로 동원된 49대의 유세차량은 선거운동이 끝나는 오는 25일까지 선거운동원들을 태우고 서울 구석구석을 누빌 예정이다. 차량은 보통 선거에서 쓰는 1.5t 트럭보다 크기가 작은 ‘타우너’, ‘라보’ 차종을 개종했다. 높은 단상에서 후보자가 마이크를 들고 시끌벅적하게 유세하기보다 ‘길거리 토크쇼’를 하고 싶다는 박 후보의 뜻이 반영됐다. 연두빛 앞치마 유세복을 두른 박 후보는 “늘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해 왔기에 유세차도 작게 만들었다.”면서 “늘 낮은 곳에서 시민과 함께 있겠다. 모든 곳이 시장실이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10년 너무나 고통을 안겨준 전시·겉치레 행정의 서울시정을 깨끗이 설거지하겠다. 이 옷을 입고 미래 서울을 요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 유세차가 이렇게 아담하고 작을 것을 예상했느냐.”면서 “박 후보의 철학이 담긴 유세차”라며 소형 유세차를 자랑했다. 한 전 총리는 박 후보의 기호 10번을 무려 6번이나 언급하며 “박 후보가 당선되면 작은 복지가 실현된다. 손을 잡아달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시민들은 유세차에서 박 후보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기념 촬영을 하는 등 기존 유세장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을 연출했다. 박 후보는 유세차에서 시민들과 정책과 비전 등을 솔직히 토론한다는 계획이다. 오후 7시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이 박 후보에게 소망을 말하는 시민유세 ‘시민의 시장이다’가 진행됐다. 박 후보는 물론 손 대표와 유 대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까지 현장에 나타나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지지를 당부했다. 문 이사장은 “선거판에서 마이크를 잡고 지원 유세를 하는 건 생전 처음”이라면서 “이번 선거는 순수하게 살아온 사람이 정직한 방법으로 정치가 가능한지 가늠하는 시험대다. 시민들이 박 후보를 지켜줘야 한다.”고 힘을 보탰다. 소셜 네트워크 효과도 극대화했다. 트위터를 통해 현장 상황을 실기간으로 올리는가 하면 ‘원순닷컴’을 통해 온라인 칭찬댓글을 달고 선거현장에서 노래를 불러줄 ‘희망합창단’, 20~30대에 직접 정책 자문을 얻기 위한 ‘희망2030정책자문단’ 등을 공개 모집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종교 벽 허물고 이웃도 돕고” 난치병 어린이 돕기 축제로

    “종교 벽 허물고 이웃도 돕고” 난치병 어린이 돕기 축제로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너무 많아요. 종교인들이 한마음으로 벽을 허물렵니다.”(대한불교조계종 화계사 수암스님)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위대한 사랑을 실행하는 작은 것들이 있을 뿐입니다.”(한국기독교장로회 송암교회 김정곤 목사) “단순한 모금운동이 아니라 전국적인 정신운동으로 쭉 뻗어나갔으면 합니다.”(천주교 서울대교구 수유1동 성당 정무웅 신부) 단풍이 붉게 타던 지난 8일, 이른 아침부터 강북구 인수동 한신대학원 운동장엔 파란 가을 하늘을 닮은 천막들이 들어찼다. 강북구 기독교·천주교·불교 단체 사람들이 뒤섞여 난치병 어린이를 돕는 종교연합바자회 준비로 달뜬 모습이었다. ●의류·특산품 등 어우러져 5일장 방불 신도들 정성이 그득한 기증품과 사업체 후원으로 마련된 의류, 식료품, 생활용품, 지역특산품, 먹을거리 장터가 한데 어우러졌다. 오전 9시 단풍 구경가던 등산객들, 강아지와 산책 나온 주민들도 발길을 멈추면서 바자회는 5일장을 방불케 했다. 김정애(52·수유1동)씨는 “7000원에 산 등산가방에다 1000원짜리 옷 한보따리를 채웠다.”며 “이웃도 돕고 싸고 질 좋은 물건도 구매해 일석이조”라고 기뻐했다. “경기 안성시 노곡노인복지관에서 노인들이 손수 만든 수제비누를 들고 나왔다.”는 이남희(34·한국기독교총회 소속)씨는 “한마음 된 종교인들을 보니 너무 좋다.”며 웃었다. ●12년간 어린이 201명에게 6억 전달 12회를 맞은 종교연합 바자회에서는 지난해까지 어린이 201명에게 6억 1600여만원을 전달했다. 매년 6000만원을 웃도는 금액을 모은 셈이다. 바자회 수익금 1000만~2000만원에 평소 신자들과 각계 후원금을 얹어서 만든 사랑이기도 하다. 자원봉사에 나선 서효순(53·수유1동 성당)씨는 “신도들끼리 제비뽑기를 해 장터 일을 돕는데 이번엔 음식나르기와 설거지를 맡았다.”며 흐뭇해했다. 아동복 매장을 운영하는 정복순(46·수유동)씨는 “300만원어치 기부할 생각에 신상품까지 바리바리 싸 왔다.”며 “사랑을 선물하는 마음으로 사주면 더없이 좋겠다.”고 말했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사람을 사랑하고 종교의 벽을 뛰어넘는 순수한 축제인 만큼 조건 없는 사랑을 일깨우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며 “많이 팔아주는 것이야말로 바로 참사랑 실천”이라고 말했다. ●아동복 신상품 300만원어치 내놓기도 휘모리풍물단의 공연을 첫머리로 한 행사에는 2500여명이 찾아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오후 5시까지 쌓인 수익금 1500여만원에 후원금을 한데 모아 다음 달 병마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에게 건넨다. 글 사진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깔깔깔]

    ●거지의 종류 음력 정초에만 나타난다:설거지. 항상 피해만 입는다: 맞는 거지. 언제나 고개만 끄덕인다:그런 거지. 많이 먹고 복 받는다:배부른 거지. 못생기고 지저분하다:추한 거지. 무엇인가 열심히 한다:하는 거지. 타의 모범이 된다:바람직한 거지. 약간 쑥스럽게 생각한다:미안한 거지. 무지무지 섹시하다:야한 거지. ●어느 착한 곰 이야기 옛날에 아주 착한 곰이 살고 있었다. 어느날 나무꾼이 숲을 지나가는데 곰이 나타났다. 나무꾼은 살기 위해 죽은척 했다. 그런데 나무꾼이 진짜 죽어버렸다. 왜 그랬을까. 답:곰이 너무 착해서 나무꾼이 죽은 줄 알고 묻어줬기 때문.
  • [독거노인 사랑잇기] “독거노인 만족하고 직원들은 안정감 얻고… 사회적 기업 가치창출 효과 커”

    [독거노인 사랑잇기] “독거노인 만족하고 직원들은 안정감 얻고… 사회적 기업 가치창출 효과 커”

    “‘사회적 기업’은 일반적인 단순 기부나 지원을 넘어서 가치 창출 효과가 큰 사회공헌 활동이 가능한 기업입니다. ‘지속 가능한 행복을 만들고 나누는 기업’이라는 SK증권의 사회공헌 전략을 실현하겠습니다.” 이현승(45) SK증권 대표이사는 독거노인들의 실태와 이들이 원하는 복지를 면밀히 파악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독거노인의 고독사를 안타깝게 여기며 ‘신원 안전 확인 서비스’ 등의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독거노인 사랑 잇기 사업에 참여한 계기는. -‘지속 가능한 행복을 만들고 나누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사회공헌 이념을 바탕으로 사회봉사를 통해 생활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방안을 구상하다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종일 전화상담 등의 업무를 진행하다 보면 힘들고 짜증 날 수도 있는데, 독거노인을 직접 도움으로써 자신을 돌이켜 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화 안부를 통해 독거노인이 만족감을 느낀다면 직원들 역시 정서적 안정감과 자기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SK증권의 사회공헌과 관련한 상품은 어떤 것이 있나. -지난 4월 출시한 ‘행복나눔 CMA’가 대표적이다. 증권업계 최초 기부형 상품으로 고객들이 행복나눔 CMA를 통해 단순한 일회성 기부가 아닌 지속적 기부에 동참하며 기부문화를 확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출시했다. 사회공헌후원금을 고객 명의로 기부함에 따라 연말 기부금 공제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이 밖에 진행 중인 사회공헌 사업은. -CEO 및 임직원이 직접 강사로 참여하는 ‘청소년 경제교실’은 정규학교를 대상으로 전국에 강사진을 제공하는 최초의 프로그램이다. 지난 2008년 교회와 인연을 맺어 154명의 임직원이 매월 2회에 걸쳐 배식에서부터 설거지까지 무료급식 봉사 일손을 돕는 ‘독거노인 및 노숙자 무료 급식’은 소외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또 22년 전부터 교회에 매달 쌀을 지원, 서울 영등포 인근 ‘쪽방촌’ 주민 500여명에게 하루 세 끼 무료 급식을 제공하고 있다. 친환경 사회공헌 활동강화 정책에 발맞춰 매달 넷째 주 금요일에는 ‘여의도 한강공원 환경정화’ 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노인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꾸리기 위해 우리 사회가 준비해야 할 것은. -우리나라의 독거노인이 100만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가족 및 이웃과 사회적 교류가 단절된 노인을 위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독거노인의 생활실태를 파악하고, 정기적인 보건·복지생활 연계 서비스와 노인생활교육 서비스 등을 통해 종합적인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사회 공헌과 관련한 향후 계획은. -본사 및 전국 지점별로 실시하고 있는 사회공헌 활동을 지속할 예정이다. 취약계층을 채용하고, 사업 운영으로 얻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으로 발돋움할 것이다. SK증권 프로보노(Pro Bono·‘공익을 위하여’라는 뜻의 라틴어) 10여명이 경영·마케팅 분야뿐 아니라 사진 촬영 등 세세한 부분까지 지원하고 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4)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4)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

    법정 스님이 가장 사랑했다는 책, ‘월든’! 우리는 흔히 그 책을 나이 지긋한 은자의 기록으로 생각한다. 그러다 막상 책을 펼치면 도처에서 마주치는 신랄한 풍자와 전투적 문체 때문에 깜짝 놀란다. 그러나 이상할 건 없다. 우리가 ‘월든’에서 만나는 주인공은 높은 이상과 패기만만한 열정 이외는 아무것도 없었던 불과 스물여덟의 젊은 청년이기 때문이다. 고작 2년 동안의 숲 생활로 ‘월든’을 쓰고, 단 하루의 감옥 경험으로 ‘시민불복종’을 썼던 자. 그러나 단 두 권의 이 책들로 전 세계에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끼친 사람. 바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 (1817~1862) ●스물여덟살 청년의 독립선언 19세기 초 미국, 하느님의 영광은 자본주의의 영광이 되었다. 고작 인구 2000명 정도의 작은 마을에서조차 사람들은 “호수에서 헤엄을 치거나 그 물을 마시는 대신 호수의 물을 수도관으로 마을까지 끌어와 설거지를 할 생각”이나 하고, 철도는 “귀가 찢어질 듯 비명 소리를 마을 구석구석까지 울리고” 있었다. 또한 사람들은 각종 ‘비즈니스’를 통해 돈 벌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인디언의 땅 콩코드에서 나고 자란 소로. 어디에서나 인디언의 기억과 전통이 배어 있는 부싯돌과 화살촉을 발견할 수 있던 평원에서 여섯 살부터 암소를 몰고 맨발로 쏘다닌 소로가 보기에 이 모든 것은 어리석거나 부질없는 일이었다. 왜 야생딸기를 직접 먹는 대신에 사람들은 딸기를 사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동분서주해야 한다는 말인가. 부자가 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것 아닐까. 그런 산발적 질문을 체계적 사유로, 나아가 글쓰기로 인도한 것은 소위 ‘초월주의 운동’을 통해 미국의 문예부흥을 이끈 19세기의 대표적인 지성, 랄프 에머슨이었다. 물론 누구에게나 직업이 필요하다. 소로 스스로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직업’으로 자기 자신을 학교 교사, 가정교사, 측량기사, 정원사, 농부, 페인트공, 목수, 석공, 날품팔이 일꾼, 연필 제조업자, 사포 제조업자, 작가 또는 삼류시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소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나 자신을 가장 나은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야생자연에 대한 탐구를 유일한 ‘비즈니스’로, 산책을 유일한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살자! 1845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모든 사람들이 축포와 성조기로 ‘미국이여 영원하라’를 외치며 찬양하던 그날, 소로는 신이나 돈 혹은 국가가 아니라 완전한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따르기 위해 숲으로 간다. 스물여덟의 독립 선언! 그리고 ‘가장 단순한 삶’에 대한 위대한 실험이 시작된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이유는 깨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은 정말로 소중하다. 그리고 가능한 한 체념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나는 깊이 있는 삶을 통해 삶의 정수를 모두 빨아들이고, 굵직한 낫질로 삶이 아닌 모든 것들을 짧게 베어버리고 삶을 극한으로 몰아세워, 최소한의 조건만 갖춘 강인한 스파르타식 삶을 살고 싶었다.” 그가 월든 숲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거처인 오두막을 손수 짓는 일이었다. 대부분은 혼자, 가끔씩은 친구의 도움을 받아 다락방과 벽장이 갖춰져 있는 오두막을 완성했다. 오두막에 쓴 비용은 단돈 28달러. 그리고 침대 하나, 식탁 하나, 책상 하나, 의자 셋, 거울 하나, 냄비 하나, 프라이팬 하나, 국자 하나, 세숫대야 하나, 나이프와 포크 두벌, 접시 세 개, 컵 하나, 스푼 하나, 기름단지 하나, 당밀단지 하나와 램프가 그의 전 살림목록이었다. ●삶의 목적은 삶, 그 자체이다 그의 눈에 사람들이 필수품이라 생각하는 물건들은 언제나 “너무” 많았다. 그걸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스스로 자신의 노예감독관이 되어 쉴 새 없이 일을 하고, 쉴 새 없이 물건을 구입하러 다닌다. 비교적 작은 시골마을 콩코드에서도 그랬다. 농부들이 집을 장만하게 되면 부유해지기보다 더 빈곤해진다. 그가 집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집이 그의 주인이 된다. 오우, 가련한 하우스 푸어들! 삶의 모든 곁가지들을 들어내자. 할 수 있는 한 단순하게 살자. 먹는 것은 쌀과 거칠게 간 옥수수 가루와 감자가 전부였으나, 필요하다면 숲에서 잘 익은 월귤을 따서 먹을 수 있었다. 다소 거칠지만 실용적인 옷을 입고 살면 입는 데는 거의 돈이 들지 않았다. 살고 있는 집은 어찌나 단출한지 집안 청소를 위해서는 모든 가구를 밖에 내놓고 오두막에 물을 뿌려 박박 닦은 후, 햇볕과 바람에 집을 말리기만 하면 청소 끝이었다. 그리고 산책과 노동! 매일 아침 숲을 산책하고 모든 관목과 야생 열매와 새와 동물들, 그리고 호수의 변화를 관찰했다. 그리고 땅을 갈아 콩, 감자를 심고 가꿨다. 첫해의 수익은 고작 8달러뿐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돈이 더 필요하면 그때마다 마을에서 날품을 팔면 그뿐이었다. 대신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느낌, 더 많은 감정, 더 많은 만족감을 얻었다. 점점 더 생활의 달인이 되어가는 소로. 그는 걷고, 뛰고, 수영하고, 배를 젓는 데 전문가였고, 거리와 높이를 발과 눈으로 정확히 측정할 수 있었으며, 무게를 손으로 정확히 달 수 있었다. 심지어 커다란 통 속에 있는 연필을 한 번에 열두 개씩 꼬박꼬박 집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척도-되기! 동시에 점점 더 신비해지는 소로. 그는 어떤 사냥개보다도 더 냄새를 잘 맡을 수 있었고, 인디언처럼 땅에 귀를 대지 않고서도 먼 곳의 희미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부시맨-되기! 이제 숲 속의 오두막은 그의 거처일 뿐 아니라 숲 속의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의 거처가 된다. 두 해 후 소로는 월든을 떠난다. 물론 오두막에서의 삶은 자족적이고 충만하였다. 그러나 소로에게 오두막은 마치 외투나 모자 같은 것이었다. 언제나 입을 수도 있고 벗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이 때에 맞춰 무르익는 것! 완전히 무르익은 곡식이 열매를 맺고, 완전히 자란 나무의 열매가 떨어지듯, 그렇게 자신의 삶의 완벽한 자연스러움을 얻는 것. 그것이 소로가 원하는 절대자유, 어떤 공리적 목적도 없는 일체무위의 삶이었다. 소로는 집으로 돌아온다. 자기가 머무는 곳이 자연이 되길 바라면서. ●나는 정부의 통치를 거부한다 1846년 미국은 멕시코 전쟁을 통해 단 1500만 달러로 텍사스, 뉴멕시코, 캘리포니아를 양도받았다. 많은 미국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 전쟁을 지지하였다. 물론 대부분이 노예제도 지지자였다. 소로는 다른 많은 당대의 개혁가들처럼 이런 상황을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위해 타인의 자유와 존엄을 짓밟는 이런 전쟁과 노예제도는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 아닌가? 하지만 말로 하는 반대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소로의 선택은? 세금납부 거부! 소로는 6년간 인두세를 내지 않았고 결국 체포되고 투옥된다. 단 하루 동안! (소로의 동의 없이 가족이 세금을 납부했기 때문에 소로는 하루만에 풀려난다) 그리고 감옥에서 더 절실히 깨닫는다. 감옥 안에는 국가가 없으며 감옥은 결코 자유로운 정신을 가둘 수 없다고. 소로는 면회를 온 에머슨이 “자네, 왜 그곳에 있는가?”라고 묻자 “선생님은 왜 밖에 계십니까?”라고 응수한다. 그리고 그는 그 하루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몇 년 후 ‘시민불복종’을 집필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국가란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들이 상호 공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편의적인 체제’이다. 그런데 그런 편의적인 체제가 갑자기 ‘다수결’의 원칙을 내세워 부당한 질서에 모두를 굴복시키려 한다면? 그때 ‘저항’은 의무이다. 생명을 걸고서라도 그 부당한 국가의 작동을 멈추게 해야 한다. 누가? 바로 내가! 1859년 노예해방론자인 존 브라운이 노예를 도망시키다가 체포되어 교수형에 직면했을 때 존 브라운을 옹호하는 첫 번째 공개강연을 한 것도 소로였다. 아마 소로는 존 브라운을 실질적으로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소유한 생명력과 힘을 자신의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불의에 가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소로의 생각이었다. 월든을 떠나 온 후 소로는 주로 글쓰기와 강연을 하면서 살았다. 물론 생계를 위한 측량기사의 일을 꾸준히 하면서 말이다. 살아 생전, 두 권의 책이 출판되었으나 자비 출판한 첫 책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은 초판 1000권 중 700권이 반납되었다. ‘월든’ 역시 그가 살았을 때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여전히 소로는 간결하고 평화롭게 일상을 살았다. 너무 일찍 찾아온 병마 때문에 마흔여섯의 나이에 세상을 떴지만 “회한은 없었다.” 어떤 것들은 끝마치는 것이 당연히 더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12년간 주로 편지로 소로와 교류했던 신학자 해리슨 블레이크는 소로가 죽은 지 30년 가까이 지난 후에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때때로 그의 편지를 다시 읽어보곤 한다. 그의 글을 거듭 읽으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기도 하고, 전보다 더 강력한 가르침을 받기도 한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그것들은 여전히 개봉되지 않았고, 아직 나에게 완전히 도달하지 못했으며, 어쩌면 내가 죽기 전까지는 도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 서신들은 거기에 담긴 진정한 가르침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 발송된 것이다.” 과연 우리는 소로의 편지를 받을 수 있을까. 우리의 부박한 일상 속에서 ‘월든’을 발견할 수 있을까. 각자 물을 일이다. 이희경 문탁네트워크 연구원
  • 군 병원 청소·설거지 외부 위탁

    국방부는 내년부터 모든 군 병원의 병실 청소와 설거지 등을 외부 용역에 위탁하기로 했다고 8일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최근 기획재정부와의 2012년도 예산 협의 과정에서 2014년까지 모든 군 병원에 확대하기로 했던 급식·청소 업무의 외부 용역을 2년 앞당겨 내년부터 전면 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 자살기도 왜 했나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 자살기도 왜 했나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44)이 수감 중이던 감방에서 자살을 기도해 그 배경에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어머니도 없는그가 지난달 부친이 사망하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것이 아니냐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법무부는 18일 신창원이 오전 4시 10분쯤 경북 북부 제1교도소(옛 청송 제1교도소) 자신의 독방에서 고무장갑으로 목을 조른 채 신음하고 있는 것을 근무자가 발견해 가까운 안동병원에 긴급 후송 조치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1월 설거지와 빨래 등을 위해 교도소 안에서 구입한 고무장갑으로 목을 졸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독방에는 “죄송합니다.”라고 적힌 메모는 발견됐지만 다른 유서는 없었다고 교도소 측은 전했다. 안동병원 측은 이날 오후 1시 공식 브리핑에서 “신창원이 응급실에 실려왔을 당시 의식이 전혀 없는 상태로 혈압이 정상치보다 훨씬 낮았고, 맥박도 분당 130회에 이르는 등 상당히 위급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교도소 관계자들의 보안 속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신창원의 혈압과 맥박 등은 모두 정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혁기 안동병원 신경외과 과장은 “호흡 등은 정상으로,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저산소 증세를 보였기 때문에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하던 신창원이 자살을 시도한 정확한 이유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교도소 관계자는 “교도소 내에서 가혹 행위는 없었다.”면서 “지난달 부친이 사망한 후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교도소 측은 그가 의식을 회복하면 정확한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다. 신창원은 1990년대 신출귀몰한 도피 행각으로 유명해졌다.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1997년 1월 부산교도소에서 화장실 쇠창살을 절단하고 탈옥해 2년 6개월여간 경찰의 추적을 수차례 따돌리며 도피행각을 이어갔다. 1999년 7월 전남 순천에서 검거될 당시 입었던 현란한 디자인의 티셔츠가 인기를 얻는 등 청소년과 인터넷 등에서는 그를 우상화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5월부터는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해 온 점이 고려돼 일반경비시설인 경북 북부 제1교도소로 이감돼 생활해 왔다. 안동 김상화·서울 안석기자 ccto@seoul.co.kr
  • 스스로 목을 졸라 자살시도…신창원 미스터리

    스스로 목을 졸라 자살시도…신창원 미스터리

    무기수로 독방에 수감돼 있던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44)이 18일 새벽 자살을 시도하면서 고무장갑을 도구로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법의학자들은 이를 놓고 과거 탈옥 후 신출귀몰한 도피행각을 벌였던 데서 드러났던대로 신창원의 꾀가 돋보이는 대목이라고 지적한다. 신창원 외에도 악명높은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 등이 갇혀 있는 경북 북부제1교도소(구 청송교도소) 독방은 희대의 흉악범이 모여 있는 곳으로 자살 등을 막기 위해 24시간 CCTV를 통한 감시가 이뤄진다. 그나마 한 독방에 오래 머물면 위험한 물품을 만들 수 있다는 판단에 6개월에 한번씩 방을 바꾼다. 물론 자살 등에 이용할 수 있는 끈 종류는 절대 반입이 불허된다. 이런 상황에서 신씨는 지난 1월 설거지와 빨래를 하려고 교도소에서 산 고무장갑으로 목을 조여 자살을 기도했다. 또 교도소 측이 독방 안에 목을 매달 수 있는 곳(고리나 창살)을 철저히 봉쇄했기에 신씨는 스스로 목을 조르는 자교사(自絞死)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법의학적으로 자기 손으로 목을 졸라 자살하는 자액사(自扼死)는 불가능하다. 자살할 결심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10~15초 후 의식을 잃어가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손의 조르는 힘이 약해져 자살이 불가능해진다. 어렵사리 끈을 마련해도 고무장갑처럼 끈에 탄성이 없다면 목에 가해지는 압력이 풀리면서 전자와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는 “고무장갑처럼 탄성이 강한 물건은 묶지 않고 교차만 시켜놔도 목에 가해지는 압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창원이 교도소 안에서 찾기 쉬운 고무장갑을 고른 듯 하다.”면서 “스스로 목을 졸라 자살을 하는 일은 극히 드믄 일인데다 타살의 혐의도 있을 수 있어 자교사 등은 수사기관에서 부검을 의뢰하는 경우가 적지않다.”고 말했다.  인터넷 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신출귀몰’ 탈옥수 신창원 감방서 고무장갑으로 자살 기도

    ‘신출귀몰’ 탈옥수 신창원 감방서 고무장갑으로 자살 기도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44)이 감방에서 목을 매 자살을 기도했다.  18일 경북 북부 제1교도소에 따르면 신창원은 이날 새벽 4시10분쯤 독방에서 고무장갑으로 목을 조르는 자살을 시도했다. 교도관이 신음 소리를 듣고 그를 곧바로 구조, 안동의 모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았다. 교도소측은 신창원이 의식은 없지만 숨을 쉴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신씨는 지난 1월 설거지와 빨래를 하기 위해 교도소에서 구입한 고무장갑으로 목을 조여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소측은 “신씨에 대한 가혹 행위는 없었다. 다만 지난 달 자신의 부친 사망 이후 적잖은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신씨는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1997년 1월 부산교도소 감방 화장실의 쇠창살을 절단하고 탈옥, 2년 넘게 신출귀몰한 도피행각을 벌이다 1999년 7월 붙잡혔다. 이후 그에겐 22년6월의 형이 추가됐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신창원 자살기도… 영원한 탈옥 꿈꾼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 자살기도… 영원한 탈옥 꿈꾼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이 자살을 기도해 사실상 뇌사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44)은 18일 오전 4시 10분쯤 경북 북부 제1교도소(옛 청송 제1교도소) 독방에서 자살을 기도, 고무장갑으로 목을 조른 채 신음하고 있던 중 교도관에 의해 발견됐다. 설거지용 고무장갑으로 목을 졸라 자살을 시도했던 신창원은 인근 안동병원으로 긴급 후송돼 응급조치를 받았지만 뇌가 심하게 손상되는 등 사실상 뇌사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는 신창원의 독방에서 “죄송합니다.”라고 적힌 메모가 발견됐지만 다른 유서는 없었다고 밝히고 자살 경위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도소 측은 신창원이 지난달 부친의 죽음에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던 정황으로 미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교도소 관계자는 “신창원은 그동안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해왔으며 교도소 내에서 가혹 행위는 없었다.”고 밝혔다. 한편 안동병원 측은 “응급조치 후 호흡 등은 정상으로 돌아와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병원 이송 당시 상당한 저산소 증세를 보였고 현재 의식이 없고 신체도 마비된 상태라서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밝혀 사실상 뇌사상태에 있음을 시사했다.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 형을 살던 신창원은 1997년 1월 부산교도소 화장실 쇠창살을 절단하고 탈옥, 신출귀몰한 도피 행각으로 ‘희대의 탈옥수’란 별명을 얻었으며, 2년 6개월만인 1999년 7월 전남 순천에서 검거됐다. 사진 = 신창원 뇌사상태 병원 이송 (연합뉴스) 서울신문 나우뉴스 nownews@seoul.co.kr
  • [길섶에서] 외식/주병철 논설위원

    외식은 일종의 가족 단합대회였다. 아이들에게는 은근히 아빠의 능력을 과시하는 의식이었고, 설거지 등 집안일에 찌든 아내에게는 생색내기용으로 그만이었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외식은 누구도 싫어하지 않는 행사였다. 먹고 싶은 게 많아 조율하기 바빴다. 외식의 즐거움은 대화였다.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만의 비밀과 애환’을 엿들을 수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아내의 부담도 덜어주고, 아이들과는 나름의 소통도 할 수 있어 주말 저녁 외식은 우리 가족에겐 활력소로 통했다. 그래서 토요일은 ‘외식의 날’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외식 자체가 쉽지 않다. 아내도 이래저래 주말에 바쁘고, 아이들은 고등학생이라 도서관이나 독서실로 가버린다. 그나마 큰딸이 눈치가 있어 가끔 외식에 동참할 뜻을 내비친다. 한때는 외식으로 가족의 인기를 얻었는데, 이제는 같이 가자고 애원할 정도로 관심도가 떨어졌다. 차라리 돈을 달란다. 바쁜 삶이 외식의 즐거움마저 앗아간 것 같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화성인 난장판녀 충격…”벌레 득실거려 끔찍한 이웃”

    화성인 난장판녀 충격…”벌레 득실거려 끔찍한 이웃”

    화성인 난장판녀가 방송에 등장 충격을 줬다. 쓰레기장보다 더한 난장판 집에 살고 있는 화성인 난장판녀가 지난 19일 tvN ‘화성인 바이러스’에 출연한 것. 화성인 난장판녀의 원룸을 방문한 제작진은 화장실 변기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음식쓰레기, 그리고 벌레가 득실거리는 이불이 바닥에 쌓여있어 충격에 빠졌다. 쓰레기가 산을 이룬 거실 겸 침실에는 곰팡이 낀 순대볶음, 닭뼈 등의 음식물 쓰레기가 곳곳에 뒤섞여 있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 주방 싱크대에는 라면이 붙어 말라 비틀어진 수세미와 곰팡이가 핀 음식물 쓰레기가, 냉장고에는 검게 변색된 김치와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 수 없는 썩은 음식이 악취를 풍겨 1년 내내 에어컨을 돌린다고. 2년 전부터 혼자 원룸에 살고 있는 화성인 난장판녀는 패션디자이너 이경은(23) 씨. 이경은 씨는 방안에 득실거리는 벌레 때문에 불을 켠 채, 쓰레기를 옆으로 밀쳐내고 빈 공간을 만들어 잠을 잔다고. 씻지 않은 냄비를 그냥 헹구기만 해 다시 라면을 끓여먹는 등 설거지란 찾아볼 수 없는 생활. ”일이 너무 힘들어 청소를 미루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라는 화성인 난장판녀의 해명에 대해 네티즌들은 “벌레가 득실거려 이웃집이 괴롭겠다”, “직장에서는 괜찮을까?”, “집을 태워버리고 다시 지어라”, “도둑 들 걱정은 없겠다”, “두손 두발 다 들었다. 도대체 어느 별에서 온거냐”라며 충격을 나타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nownews@seoul.co.kr
  • 황석영 작가가 해병대 후배들에게…다시 전우를 생각한다

    황석영 작가가 해병대 후배들에게…다시 전우를 생각한다

    요즈음 해병대에서 일어난 몇 차례의 군기 사고에 대하여 너무도 뻔하고 상투적인 여론이 들끓는 것을 보며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나는 한국의 젊은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병역의 의무를 해병대원으로 치러냈고 베트남 전쟁에까지 참전했던 노병으로서 이번 사태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원래가 해병대는 제국주의 시대에 자국의 영토를 벗어나서 바다 건너 다른 나라를 공략하던 시기에 조직된 군사 편제이다. 한국 해병대의 창설은 한국전쟁이 치열하던 와중에 낙동강 교두보에 몰리면서 인천 상륙작전을 준비하던 미군 사령부의 주도로 제주도에서 급조되었던 것이다. 이들 초기 기수의 해병 대부분이 4·3 항쟁을 겪고 살아남아 가족과 자신의 사상적 알리바이를 온몸으로 보여야 했던 제주도의 청년들이었던 것은 분단에서 비롯된 국군의 태생적 아픔을 상징적으로 안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지금도 유명한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말도 창설되자마자 부산 방어선을 위한 최초의 상륙작전이던 통영 작전을 취재한 미국 기자의 기사에서 시작되었고, 이후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한국 해병대는 한국군 내부에서는 독자적으로, 그러나 내용으로 보면 미국 해병대의 작전 편제 안에서 그 특수성을 견제 혹은 격려받으면서 성장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남베트남이나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의 경우를 보면 육·해·공 지휘 체계의 외곽에서 비정규적 작전권을 갖고 있던 해병대가 언제나 군사정변에 동원되었고 한국의 5·16 쿠데타에서도 역할은 비슷한 것이었다. 따라서 육군이 주도했던 당시의 군사정부는 해병대의 애매한 위치에 대하여 고민을 했던 흔적이 여러 가지 자료에 보인다. 베트남 전쟁 이후 한국 해병대는 해군의 지휘 체계에 들어가면서 예산·진급·작전 모든 면에서 그 독자성을 상실한다. 아무튼, 우리 군대의 아픔이었던 일제 군대의 잔재는 다른 무엇보다도 하급 병사들에게는 내무반에 뿌리 깊게 남아 있었다. 모든 병영 문화의 출발이 내무반에서 시작되기 마련이었다. 겉으로는 미 해병대 캠프에서 훈련받은 젊은 장교 하사관들이 병사들을 교육했지만 일본 육전대의 전통이 내면화되었다. 베트남에서 겪은 일이지만 미군은 전선에서 싸우는 병사 한명에게 거의 열 배에 가까운 군수, 병참, 화력 지원의 역량을 투입했다. 아무리 조건이 나쁜 하급 부대에서도 병사들은 따뜻한 식사와 온수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민주 군대’의 토대는 결국 경제적 역량이었던 셈이다. 전 국민이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에 군대에서 밥이라도 먹였던 것은 만연한 부패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일이었고, 이른바 ‘빳다’를 맞고 기합을 받아도 견디어 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제 나는 그야말로 ‘기수 열외’라는 생소한 용어에 당황한다. 해병대의 기수란 한 달에 한 번씩 자원한 젊은이들을 부대원으로 받아들이는 모병제의 다른 이름이다. 같은 시기에 입대한 젊은이끼리는 서로 ‘동기생’이라고 부른다. 병력의 최소 단위가 되는 소대에서 분대로 나뉘는 편제를 모르면 어째서 기수가 중요한지 이해할 수가 없다. 소대장 아래 분대장인 하사관들이 있고 일개 분대는 스무 명쯤 되며 이는 다시 화기를 중심으로 조장 사수 부사수 소총수로 내려간다. 병장이 부분대장쯤 되고 그 아래로 상등병과 일등병, 이등병이 제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기수는 이러한 편제를 맞추어 나가기에 알맞게 되어 있다. 베트남 전쟁터에서 작전을 나가는 모든 병사는 수통을 두 개씩 허리에 차고 나가도 절약해서 마시지 않으면 어느 때는 오후에 텅 비게 된다. 이때 누군가가 다른 병사에게 물 한 모금 먹자고 하면 계급의 상하를 막론하고 ‘내 피를 달라고 하라’는 핀잔을 듣는다. 그러나 동기생이 달라고 하면 하는 수 없이 내준다. 당시만 하여도 얼차려를 줄 때에도 상급자는 엄동설한에 병사들을 발가벗겨 구보를 시키면 자신도 발가벗었고 얼음물에 처박으려면 자신도 함께 처박혀서 구령을 붙였다. 기수란 체력이나 요령이 부족한 동료를 낙오시키고 내버리고 왔을 때 모든 동기생에게 책임을 묻는 그런 것이었다. 이런 일을 ‘전우애’라고 부른다. ‘기수 열외’란 언젠가부터 극단적인 경쟁을 당연하게 내세우는 우리네 학원의 청소년 문화가 되어버린 ‘왕따’가 병영에까지 스며들었다는 충격을 주는 용어이다. 누군가를 지목하여 병사 모두가 그를 묵살하거나 엄정하게 주어진 계급 따위를 무시하게 한다는 것은 내막적으로는 군기를 어지럽히는 일이다. 나는 이번 사태의 책임에 대하여 하급병사들에게만 엄중하게 묻는 것을 개탄한다. 사실 변죽을 울리면서 한참 동안 해병대의 유래와 특수성을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 이는 일종의 ‘조직 피로’ 증후군이다. 천안함 이래 그리고 연평 포격 사건에 이르기까지 사건의 중심부에 있던 해병대를 온 사회와 정치권이 그리고 지휘 상층이 얼마나 쪼아댔을까. 만만한 게 뭐라고 하급 병사들이 겪는 스트레스와 압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미군식 ‘민주 군대’란 병사 개개인에 대한 막강한 지원 능력과 높은 ‘노임’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우리는 최소한 ‘이만큼 살게 되었으니’ 군대에 안 가면 거의 폐인이 되어 버릴 정도의 강압적 징병제를 책임질 만한 내무반을 창출해 낼 국가적 의무가 있다. 군기를 지키되 장군에서 이등병에 이르기까지 ‘전우’라는 너무도 당연한 생각이 뿌리를 내려야만 한다. 그리하여 자기 직책과 책임에 관한 것만 예외로 하고 모든 사사로운 특권을 철폐해야 한다. 소대장은 당번병을 없애고 자기 구두는 자기가 닦아야 하며 하사관 병장은 제 양말을 빨고 상등병은 자기 식기를 설거지하며 일등병 이등병은 근무 이외에 하인 노릇을 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도 우리가 ‘광주’를 말하며 당시의 신군부를 교훈으로 삼는 것은 ‘국민의 군대’는 정치권력의 사병(私兵)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거의 모든 대한민국 남자가 군대를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민간인이 버젓하게 군복을 입고 거리에 나와 특정한 정치적 집회에 동원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손자는 그의 유명한 저작인 병법에서 전쟁을 피치 못할 최후의 수단으로 규정하면서, 무엇보다도 우선 되어야 할 것은 국가와 백성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진정한 힘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본다면 전쟁과 군대는 국가를 위한 최후의 필요악이라는 말이 된다. ●황석영1943년 만주 출생. 고교 재학 중 단편 ‘입석 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1966년 해병대에 입대해 청룡부대 제2진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에 이때의 경험이 녹아 있다. 1969년 제대한 뒤 ‘객지’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 ‘장길산’ 등을 잇따라 내놓았다. 1989년 방북 후 독일·미국 등지에서 머물다가 1993년 귀국해 5년여 복역했다. 지난달 신작 소설 ‘낯익은 세상’을 발표했다.
  • [특별기고]다시 전우를 생각하며

    [특별기고]다시 전우를 생각하며

     요즈음 해병대에서 일어난 몇 차례의 군기 사고에 대하여 너무도 뻔하고 상투적인 여론이 들끓는 것을 보며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나는 한국의 젊은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병역의 의무를 해병대원으로 치러냈고 베트남 전쟁에까지 참전했던 노병으로서 이번 사태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원래가 해병대는 제국주의 시대에 자국의 영토를 벗어나서 바다 건너 다른 나라를 공략하던 시기에 조직된 군사 편제이다. 한국 해병대의 창설은 한국전쟁이 치열하던 와중에 낙동강 교두보에 몰리면서 인천 상륙작전을 준비하던 미군 사령부의 주도로 제주도에서 급조되었던 것이다. 이들 초기 기수의 해병 대부분이 4·3을 겪고 살아남아 가족과 자신의 사상적 알리바이를 온몸으로 보여야 했던 제주도의 청년들이었던 것은 분단에서 비롯된 국군의 태생적 아픔을 상징적으로 안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지금도 유명한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말도 창설되자마자 부산 방어선을 위한 최초의 상륙작전이던 통영 작전을 취재한 미국 기자의 기사에서 시작되었고, 이후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한국 해병대는 한국군 내부에서는 독자적으로 그러나 내용으로 보면 미국 해병대의 작전 편제 안에서 그 특수성을 견제 혹은 격려받으면서 성장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남베트남이나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의 경우를 보면 육해공 지휘 체계의 외곽에서 비정규적 작전권을 갖고 있던 해병대가 언제나 군사정변에 동원되었고 한국의 5·16 쿠데타에서도 역할은 비슷한 것이었다. 따라서 육군이 주도했던 당시의 군사정부는 해병대의 애매한 위치에 대하여 고민을 했던 흔적이 여러 가지 자료에 보인다. 베트남 전쟁 이후 한국 해병대는 해군의 지휘 체계에 들어가면서 예산 진급 작전의 모든 면에서 그 독자성을 상실한다.  아무튼, 우리 군대의 아픔이었던 일제 군대의 잔재는 다른 무엇보다도 하급 병사들에게는 내무반에 뿌리 깊게 남아 있었다. 모든 병영 문화의 출발이 내무반에서 시작되기 마련이었다. 겉으로는 미 해병대 캠프에서 훈련받은 젊은 장교 하사관들이 병사들을 교육했지만 일본 육전대의 전통이 내면화되었다. 베트남에서 겪은 일이지만 미군은 전선에서 싸우는 병사 하나에 거의 열 배에 가까운 군수 병참 화력 지원의 역량이 투입되는데 아무리 조건이 나쁜 하급 부대에서도 병사들은 따뜻한 식사와 온수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민주 군대’의 토대는 결국 경제적 역량이었던 셈이다. 전 국민이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에 군대에서 밥이라도 먹였던 것은 만연한 부패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일이었고, 이른바 ‘빳다’를 맞고 기합을 받아도 견디어 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제 나는 그야말로 ‘기수 열외’라는 생소한 용어에 당황한다. 해병대의 기수란 한 달에 한 번씩 자원한 젊은이들을 부대원으로 받아들이는 모병제의 다른 이름이다. 같은 시기에 입대한 젊은이끼리는 서로 ‘동기생’이라고 부른다. 병력의 최소 단위가 되는 소대에서 분대로 나뉘는 편제를 모르면 어째서 기수가 중요한지 이해할 수가 없다. 소대장 아래 분대장인 하사관들이 있고 일개 분대는 스무 명쯤 되며 이는 다시 화기를 중심으로 조장 사수 부사수 소총수로 내려간다. 병장이 부분대장쯤 되고 그 아래로 상등병과 일등병 이등병이 제 역할을 논다는 얘기다. 기수는 이러한 편제를 맞추어 나가기에 알맞게 되어 있다.  베트남 전쟁터에서 작전을 나가는 모든 병사는 수통을 두 개씩 허리에 차고 나가도 절약해서 마시지 않으면 어느 때는 오후에 텅 비게 된다. 이때 누군가가 다른 병사에게 물 한 모금 먹자고 하면 계급의 상하를 막론하고 ‘내 피를 달라고 하라’는 핀잔을 듣는다. 그러나 동기생이 달라고 하면 하는 수 없이 내준다. 당시만 하여도 얼차려를 줄 때에도 상급자는 엄동설한에 병사들을 발가벗겨 구보를 시키면 자신도 발가벗었고 얼음물에 처박으려면 자신도 함께 처박혀서 구령을 붙였다. 기수란 체력이나 요령이 부족한 동료를 낙오시키고 내버리고 왔을 때 모든 동기생에게 책임을 묻는 그런 것이었다. 이런 일을 ‘전우애’라고 부른다.   ‘기수 열외’란 언젠가부터 극단적인 경쟁을 당연하게 내세우는 우리네 학원의 청소년 문화가 되어버린 ‘왕따’가 병영에까지 스며들었다는 충격을 주는 용어이다. 누군가를 지목하여 병사 모두가 그를 묵살하거나 엄정하게 주어진 계급 따위를 무시하게 한다는 것은 내막적으로는 군기를 어지럽히는 일이다.  나는 이번 사태의 책임에 대하여 하급병사들에게만 엄중하게 묻는 것을 개탄한다. 사실 변죽을 울리면서 한참 동안 해병대의 유래와 특수성을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 이는 일종의 ‘조직 피로’ 증후군이다. 천안함 이래 그리고 연평 포격 사건에 이르기까지 사건의 중심부에 있던 해병대를 온 사회와 정치권이 그리고 지휘 상층이 얼마나 쪼아댔을까. 만만한 게 뭐라고 하급 병사들이 겪는 스트레스와 압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미군식 ‘민주 군대’란 병사 개개인에 대한 막강한 지원 능력과 높은 ‘노임’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우리는 최소한 ‘이만큼 살게 되었으니’ 군대에 안 가면 거의 폐인이 되어 버릴 정도의 강압적 징병제를 책임질만한 내무반을 창출해낼 국가적 의무가 있다. 군기를 지키되 장군에서 이등병에 이르기까지 ‘전우’라는 너무도 당연한 생각이 뿌리를 내려야만 한다. 그리하여 자기 직책과 책임에 관한 것만 예외로 하고 모든 사사로운 특권을 철폐해야 한다. 소대장은 당번병을 없애고 자기 구두는 자기가 닦아야 하며 하사관 병장은 제 양말을 빨고 상등병은 자기 식기를 설거지하며 일등병 이등병은 근무 이외에 하인 노릇을 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도 우리가 ‘광주’를 말하며 당시의 신군부를 교훈으로 삼는 것은 ‘국민의 군대’는 정치권력의 사병(私兵)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거의 모든 대한민국 남자가 군대를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민간인이 버젓하게 군복을 입고 거리에 나와 특정한 정치적 집회에 동원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손자는 그의 유명한 저작인 병법에서 전쟁을 피치 못할 최후의 수단으로 규정하면서, 무엇보다도 우선 되어야 할 것은 국가와 백성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진정한 힘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본다면 전쟁과 군대는 국가를 위한 최후의 필요악이라는 말이 된다. 소설가 황석영
  • [유통플러스]

    선진포크 돼지고기 ‘반반팩’ 출시 브랜드돈육 선진포크는 한 팩에 2개 부위를 담아 두 가지 맛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신제품 ‘둘이 먹기 딱 좋은 반반팩’(반반팩)을 출시했다. ‘삼겹살+목심, ‘삼겹살+항정살’ 2종, 총 400g으로 2인용으로 알맞다. 회사는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작은 단위의 포장을 요청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어 반반팩을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각각 1만 1900원, 1만 4900원. 1644-9595. 롯데百 ‘쿨비즈 스타일링 서비스’ 롯데백화점은 3~26일 서울 소공동 본점 5층 에스컬레이터 옆에 특설매장을 만들어 ‘쿨비즈 스타일링 서비스’를 진행한다. 남성 의류 스타일리스트 한 명이 상주해 연령·체형색 등에 따라 적합한 스타일을 제안한다. 단순히 아이템 제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매장까지 동행해 구매까지 도와주는 ‘컨시어지 서비스’도 제공한다. LG생활건강 삼색 컬러 샴푸 LG생활건강은 모발 상태와 기분에 따라 매일 골라서 사용하는 ‘엘라스틴 섬머 스페셜 에디션 컬러 샴푸’ 3종을 선보였다. 모발에 활력을 부여하는 빨강색의 ‘바이탈라이징 샴푸’, 손상된 모발을 개선해주는 주황색의 ‘리커버리 샴푸’, 두피 진정·보습 효과가 있는 녹색의 ‘카밍 샴푸’로 구성됐다. 히아루론산, 콜라겐, 피톤치드 성분이 들어 있어 머릿결을 매끄럽고 촉촉하게 가꿔준다. 각 360㎖, 8400원. CJ LION 모과식초 주방세제 CJ LION이 아기 젖병 세정 때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프리미엄 친환경 주방세제 ‘참그린 모과식초 설거지’를 출시했다. 사포닌(천연계면활성제), 유기산, 플라보노이드 등이 들어 있는 천연 모과 식초를 함유해 효과적인 세정력을 자랑한다. 채소와 과일을 씻을 때도 사용할 수 있으며, 과일산 성분으로 사용 후 손이 미끌거리지 않는다. 470g, 3600원. 샘표 발효흑초 ‘백년동안 블랙·블루베리’ 샘표에서 발효흑초 ‘백년동안 블랙∙블루베리’를 출시했다. 기존의 주정식초음료들과 달리 100% 통알곡 생현미를 3단계 자연 발효해 만든 흑초에 북미 야생 블루베리 협회의 인증을 받은 고급 블루베리만을 사용한 고급 제품이다. 샘표 백년동안은 이번에 출시한 블랙∙블루베리와 함께 산머루복분자, 산수유석류, 푸룬, 벌꿀, 홍삼, 모과유자, 원액 등 총 8종으로 구성돼 있다. 500㎖, 5610원, 900㎖ 912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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