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선후배
    2026-03-26
    검색기록 지우기
  • 절박함
    2026-03-26
    검색기록 지우기
  • 김대헌
    2026-03-26
    검색기록 지우기
  • 수사 종료
    2026-03-26
    검색기록 지우기
  • 이재용
    2026-03-2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202
  • [2006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당선소감

    [2006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당선소감

    2004년 1월이었습니다. 전 학교 후문에 자리한 ‘차나무 사이로’라는 전통 찻집에 갔었지요. 그 찻집엔 이미 내 앞을 다녀간 수많은 손님들이 자신이 다녀갔다는 흔적이나 추억 등을 한 줄의 글로 정성껏 새겨진 노트가 각 테이블마다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들을 따라 지금은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이상한 차를 기다리며 저의 씁쓸한 마음을 새겨 넣었습니다. 올해 신춘문예도 떨어졌어. 난 역시 작가가 될 자질이 없나봐. 문창과 선후배들 사이에서 성실한 삼촌(동대 문창과 사람들은 절 이렇게 부른답니다)이 아닌 능력 있는 삼촌이 되고 싶었는데. 이런 푸념들을 한 페이지에 가득 구구절절이 늘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노트를 덮으며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면 꼭 다시 이곳을 찾아와 이 노트를 바라보면서 여유롭게 차 한 잔을 마시리라고 다짐했었답니다.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 제 동화가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전 그 때의 다짐을 되새기며 다시 그곳을 찾았지요. 그러나 그 노트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그 노트는 제가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것은 무의미한 기다림이라고 생각하고 야속하게도 훌쩍 떠난 모양입니다. 하지만 전 이렇게 다시 돌아왔는데 말이지요. 제가 등단되는 것은 로또 당첨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말씀하시면서도 당선 소식에 제일 기뻐해 주신 부모님과 내 동생, 늘 저의 등단을 확신하며 격려해준 천하를 제압하는 동대문창 03학번 동기들,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여러 선생님들, 동대문창 희곡분과 여러분들, 결정적으로 이 작품이 탄생하는 데 큰 기여를 해 주신 노경실 선생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약력 ▲1979년 전남 여수 출생 ▲동국대 문예창작과 재학
  • [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 정선민 주연… 국민銀 4연승

    국민은행이 파죽의 4연승을 달리며 단독선두를 질주했다. 국민은행은 28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에서 루키 이경희(11점 5리바운드)의 깜짝 활약과 더블더블을 기록한 정선민(13점 8리바운드 13어시스트)-신정자(16점 14리바운드) 콤비를 앞세워 금호생명을 63-59로 따돌렸다. 당초 중위권으로 평가받던 국민은행은 ‘3강’ 우리은행, 신한은행, 금호생명을 격파하며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반면 의욕적인 전력보강으로 우승을 노리던 금호생명은 1승도 건지지 못한 채 3연패의 늪에 빠졌다. 여름리그에서 2승2패로 팽팽히 맞섰던 두 팀의 승부는 초반 국민은행 쪽으로 기울었다. 이문규 국민은행 감독이 금호생명의 공격첨병 김지윤을 잡기 위해 신인 이경희를 투입한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1쿼터에서 김지윤을 2점으로 묶으며 예봉을 차단한 국민은행은 2쿼터 2분여를 남기고 38-20까지 스코어를 벌렸다. 이후 국민은행은 ‘마산여고 선후배’ 정선민-신정자의 찰떡 호흡과 이경희의 3점포 등을 앞세워 두 자릿수 리드를 이어갔다.금호생명은 4쿼터 막판 겐트(18점)의 연속 득점으로 59-63까지 추격했지만 승부를 뒤집기엔 이미 늦었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데스크시각] 학교폭력 예방 ‘멘토링’ 활용했으면/유진상 공공정책부 차장

    학교폭력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수위도 성인 조직폭력과 다를 바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학교폭력의 피해학생들이 직접 경찰서를 찾는 일까지 있었다. 수사 결과 가해학생들은 교내 폭력조직이었다. 이들이 정기적으로 어울리며 벌인 갖가지 일탈행위는 낱낱이 세상에 공개됐다. 이들이 폭력으로 신고식을 치르는 장면은 방송매체에서 여과없이 방영돼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다. 때를 같이하여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친구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어린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 이제 우리 사회의 학원폭력은 초등학교에서 대학가까지 광범위하게 전염된 상황이 돼버렸다. 청소년기는 감정적으로 불안정하고 소영웅주의에 빠지기도 쉽다고 한다. 따라서 학교폭력을 우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성장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하기에는 피해자의 상처가 너무 크고, 우리 모두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도 너무 많다. 물론 관련 전문가와 사회단체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에도 끊임없이 머리를 맞대고 묘안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 상담기능 강화를 위해 상담인력을 증원하거나, 학교안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 방안, 학교경찰제를 도입하는 방안 등이 거론됐다지만 뾰족한 대안은 없는 모양이다. 이런 아이디어들이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떠오르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교사나 전문가들의 노력을 학생들이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쉽게 얘기해서 영(令)이 서지 않는다는 얘기다. 기성세대를 무조건 거부하려는 청소년기의 속성이나 이유없는 반감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폭력 문제는 새로운 시각의 접근이 필요하다. 부모와 자녀, 교사와 학생 사이의 세대간극과 불신은 의사소통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따라서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선배들로부터 도움을 구하는 멘토링(mentoring) 제도를 적극 활용해보자는 것이다. 멘토링은 그리스의 왕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나간 동안 허약한 아들 텔레마쿠스를 훌륭한 왕의 재목으로 키워낸 스승의 이름 멘토르(Mentor)에서 유래되었다. 멘토링은 나이 많고 경험이 풍부한 ‘멘토르’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멘티(Mentee)’로 하여금 성공에 이르게 하는 능력과 잠재력을 찾아주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선배 멘토르가 1대1로 후배 멘티를 지도하는 일종의 대면(對面)교육이다. 따라서 후배를 지도할 수 있는 열정과 역량을 지닌 동문 선배를 중심으로 멘토르 풀(Pool)을 구성하여 후배들과 지속적인 유대관계를 갖게 하자는 것이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초임 사무관과 전입 공무원 등 17명에게 이 제도를 도입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들은 6개월 동안 자율적인 만남을 통해 직장생활의 고충을 비롯해 진로, 경력개발, 학습동아리 공동참여 등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정보를 공유한다. 선후배 의식이 강한 우리사회의 특성상 청소년들에게 이 제도를 활용하면 상당한 효과가 있으리라고 본다. 연말을 맞아 동창회나 동문회 등이 줄을 잇고 있다. 대개 모임은 모교 발전기금이나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을 모으자고 의기투합하는 데서 시작해 한데 어울려 술 마시고, 가물가물한 교가를 목청껏 부르곤 헤어지기 마련이다. 이렇게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멘토링 제도를 통해 후배들과 상시 유대관계를 갖도록 한다면 어떨까. 선배들이 나서 후배들의 고민을 덜어주고, 나아가 학교폭력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보다 멋진 동문모임이 되지 않을까. 날로 심해지는 청소년들의 폭력이 더 이상 사회문제가 되지 않도록 작은데서부터 다양한 프로그램이 나오길 기대한다. 유진상 공공정책부 차장 jsr@seoul.co.kr
  • [사설] 가출 청소년을 성 노리개로 삼는 사회

    가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각종 범죄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호신에 취약한 가출소녀들은 성범죄에 너무 쉽게 노출돼 국가적·사회적 보호대책을 더 이상 손놓고 있을 수 없는 지경이다. 청소년을위한내일여성센터가 밝힌 ‘가출청소년 성피해 실태조사’를 보면 충격과 함께 우리 사회의 건강성에 실망을 금치 못하겠다.13∼20세의 가출소녀 442명에게 물어봤더니 61%가 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25%는 강요에 의해 성매매를 해봤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성폭력 가해자는 친구·선후배, 채팅으로 만난 사람, 원조교제자 등으로 비교적 단순하다. 가출소녀의 어렵고 다급한 처지를 잘 알아 이를 악용하는 교우들이나, 돈을 미끼로 성적 노리개로 삼으려는 못된 성인남성들이 주류라는 얘기다. 따라서 인터넷·전화 등을 통한 성매매 제안자들을 범행 전 단계에서 법으로 제재할 수만 있어도 상당부분 예방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가출소녀들이 정신적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보호시설의 대거 확충과, 예방적 상담활동 등도 보다 실효성 있게 추진돼야 할 부분이다. 물론 가출소녀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의 책임은 약점을 드러낸 본인에게도 있다. 그러나 책임을 묻기엔 아이들은 세상을 너무 모르고 철이 없다. 이들이 가정환경·학업문제 등의 이유로 가정과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났을 때, 사회와 법이 보호막이 돼 주지 못하면 사회도 국가도 일단의 책임을 다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가출소녀들에게 내 자식처럼 관심과 애정을 보내는 따뜻한 사회가 되는 것만큼 좋은 예방책은 없을 것 같다.
  • 거리에서 짓밟히는 ‘가출 청소년’

    올해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취업을 준비 중인 A(18)양은 지난 5년이 악몽같다. 중학교 1학년 때 친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충격으로 중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했다. 어린 소녀에게 일자리를 주는 곳은 없었고 결국 생활비를 벌기 위해 회당 10만∼30만원을 받고 성매매를 했다. 낙태를 하기도 하고 성매수자로부터 폭행도 당했다. 지난해 청소년종합지원센터를 통해 쉼터에 입소했지만 아직까지 심리상담을 받으며 치료 중이다. ●성폭력 가해자는 친구·선후배가 46% 성매매나 성폭력에 노출된 가출 청소년은 A양만이 아니다. 가출 청소년 절반 이상이 강간을 포함한 성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청소년을 위한 내일여성센터가 지난 5월부터 11월까지 전국 13∼20세 가출청소년 44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다. 조사에 따르면 가출 청소년 61.8%가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강간 피해 경험도 전체 28.1%나 됐다. 남자친구가 주는 돈으로 고시원에서 생활하던 B(17)양. 남자친구와 헤어지면서 돈이 떨어질 무렵 20대 남자와 채팅을 했다.B양은 법대 출신이며 홀어머니와 살고 있으니 어머니 말동무도 돼줄 겸 들어와서 살라는 이 남자의 제안을 믿고 약속 장소에 나갔다가 강간을 당했다. 성폭력 가해자는 친구·선후배가 46.4%로 가장 많았고 B양의 경우처럼 채팅이나 거리에서 만난 사람이 37.9%, 용돈이나 잠자리 등 도움을 주겠다고 접근한 사람이 16.1%로 그 뒤를 이었다. 가출 청소년은 성폭력뿐만 아니라 성매매에도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전체 43.4%가 성매매를 제안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 24.7%는 실제로 성매매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친구와 단순히 놀고 싶은 마음에 가출한 C(17)양도 성매매에 발을 들이고 말았다. 인터넷 채팅을 하다가 밥과 잠잘 곳, 거기다 용돈까지 준다는 쪽지를 받고 약속장소에 나갔다.C양을 기다린 것은 돈 10만원과 성관계 요구였다. 강간 피해를 경험한 경우는 61.8%가 성매매 경험이 있다고 답했지만 피해 경험이 없는 경우는 9%만이 성매매를 해본 것으로 조사됐다. 성매매 유형은 티켓다방 등 ‘고용형’보다는 인터넷을 통한 ‘개인형’이 3배 가량 많았다. 성매매 동기(복수응답)로는 ‘가출 후 생활비를 벌기 위해’가 52.3%,‘가출 후 잘 곳을 제공해준 사람이 원해서’가 48.6%,‘가출 후 용돈을 준 사람이 원해서’가 37.6%,‘친구가 권해서’가 22%를 차지했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걸프전 참전군인보다 높아 강간 피해나 성매매 경험이 있는 경우 외상후 스트레스장애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란 외상으로 경험될 만큼 심각한 감정적 스트레스를 경험했을 때 나타나는 불안장애를 말한다. 부모님의 무관심을 견디지 못했던 D양은 가출 후 티켓다방에서 일했다. 결국 팔에 상처를 내 자해를 하는 등 심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겪고 있다. 강간 피해를 입은 경우 심각도가 43.18, 성매매 경험자의 경우 41.31로 나타났다. 이는 걸프전 참전군인의 34.8, 아동기 성적 학대 경험을 가진 성인 여성의 30.6보다 높은 수치다. 청소년종합지원센터 김주영 긴급구조팀장은 “성매매의 경우 단순히 제안을 하는 경우에도 처벌을 할 수 있도록 법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가출 청소년들은 큰 피해를 입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가까운 상담센터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줄기세포’진실게임’] 이병천·강성근교수 서울대 수의대 ‘핵심’

    [줄기세포’진실게임’] 이병천·강성근교수 서울대 수의대 ‘핵심’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린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핵심에는 서울대 수의대 이병천 교수와 강성근 교수가 있다. 이 교수는 질병저항동물 생산과 이종간 장기 이식 분야를 맡고 있고 강 교수는 줄기세포 분야를 이끌고 있다. 최근 스너피 복제 성공으로 주목을 받은 이 교수는 1987년 수의학과 졸업과 동시에 황 교수팀에 합류한 창단 멤버다. 이 교수는 1993년에는 국내 최초 시험관 송아지를,1999년 체세포복제 송아지 ‘영롱이’를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강 교수는 2002년 황 교수팀에 합류한 뒤 특정 형질을 갖는 동물을 만드는데 주력했다.DNA에 있는 특정 유전자를 제거하는 ‘녹아웃 기법’의 권위자인 그는 세계 최초로 광우병 내성 복제소 및 장기이식용 무균돼지를 잇따라 생산해냈다. 이 교수와 강 교수는 각각 청주 모 고교의 선후배 사이다. 황 교수의 논문 발표 이후 황 교수의 대변인역을 맡았던 안규리 교수는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로 2002년 황 교수팀에 합류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최종 목적지인 난치병 치료에 적용하기 위해 장기이식 후 면역거부 반응을 없애는 임상시험을 주관할 예정이었다.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문신용 교수는 황 교수와 함께 연구팀을 큰 틀에서 조정, 관리해 왔다. 한양대병원 해부세포생물학실 윤현수 교수, 고려대 생명유전공학부 김종훈 교수 등은 줄기세포 분화ㆍ배양 연구에, 가톨릭의대 신경외과 전신수 교수,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김영태ㆍ이정렬 교수 등은 임상분야에 각각 관여했다.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 보좌관은 정부와 황 교수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해왔다. 박 보좌관은 식물학자이면서도 자신의 전공과 별로 상관없는 황 교수의 연구에 생명윤리에 관해 자문했다는 이유로 2004년 사이언스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이 올랐다.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이사장은 황 교수와 연구를 협조하는 등 매우 가까운 사이였으나 줄기세포 진위 논란이 불거지면서 며칠 전부터 틀어졌다. 황 교수와 노 이사장은 16일 오후 1시간 차이로 기자회견을 갖고, 각각 다른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줬다. 제럴드 섀튼 미국 피츠버그대 교수도 한때 황 교수와 절친한 관계였으나, 줄기세포 진위 논란을 계기로 관계는 틀어졌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이사람] 이종격투기 도전 신종우 한양증권 이사

    [이사람] 이종격투기 도전 신종우 한양증권 이사

    요즘 바쁘게 생활하는 직장인 중에도 틈틈이 운동을 하며 건강을 챙기는 이들이 많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선 체력도 실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업 경쟁이 치열한 증권사의 40대 임원이 가장 격렬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이종격투기(MMA)에 흠뻑 빠져 있다면 보통의 경우는 아닐 것 같다. 신종우(41) 한양증권 법인영업팀 이사가 그 주인공이다. ●내년엔 링에서 1승이 목표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근처의 한 스포츠센터. 각종 스포츠 단련장이 즐비한 이곳에 이종격투기 체육관도 있다.K-1 선수로 변신한 최홍만 덕분에 이미 눈에 익숙한 포즈로 땀을 흘리는 동호인들이 제법 많다. 여성 회원들을 포함해 거의 대부분 직장인들이다. 한쪽 링에서 다부진 덩치(키 173㎝)의 신 이사가 키가 좀 커 보이는 회원과 맞붙었다. 신 이사는 링에 오르자마자 상대방의 무차별 주먹을 안면에 허용했으나 왼발 ‘미들킥’으로 옆구리를 차고 재빨리 목조르기(암트라이앵글초크)에 들어갔다. 이종격투기는 복싱, 레슬링, 무예타이 등 갖가지 무술의 장점을 합친 종합무술이다.K-1과 경기방식이 거의 똑같지만, 선 채로만 경기를 하는 K-1과 달리 레슬링처럼 누워서 조르기 등을 할 수 있다. 신 이사는 법인영업 업무 특성상 저녁식사 약속이 많지만 약속이 없으면 일주일에 2∼3번씩 체육관을 찾는다. 약속이 있어도 오후 3시 주식시장이 끝난 뒤 꼭 몸풀기 훈련이라도 하고 약속 장소에 간다.2년째 이종격투기에 매료된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년의 꿈은 아마추어 대회에서 1승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고픔 잊으려고 다시 운동 신 이사는 어릴적부터 운동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운동이 한때 자살충동에 빠질 만큼 망가졌던 자신을 수렁에서 건져주었기 때문에 지금은 삶의 일부로 여기고 있다. 대구에서 자란 신 이사는 1984년 영남대 법학과에 입학하기 전에 공인 유도 3단, 합기도 2단의 실력을 갖췄다.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그는 대학축제의 ‘A급 MC’로도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대학생의 월 수입이 600만∼700만원이나 돼 술집 출입도 잦았다. 학사장교로 군에 입대, 육군 특공연대에서 특공무술도 익혔다. 군 전역후 투자신탁증권사에 입사했다. 동료들을 앞질러 능력을 발휘하며 몇년 만에 핵심 영업점인 압구정동 지점장으로 나갔다. 적립식펀드와 비슷한 주식형수익증권을 판매하면서 ‘원금보전기법’의 상품을 ‘원금보장’상품이라고 둘러대고 목돈 유치에 과욕을 부리다 그만 사고를 친다. 주가하락으로 각서까지 써주고 끌어들인 고객 계좌와 선후배들의 채무보증이 빚으로 바뀌었다. 갚아야 할 빚이 5억원이나 됐다. 월급은 차압을 당하고 가족과 함께 수원의 월세 단칸방으로 밀려났다. 볼모로 직장생활을 하며 외환위기를 맞았다. 신 이사는 “주머니에 돈이 없어서 직장 동료들이 점식을 먹으러 나가면 혼자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배고픔을 잊기 위해 회사 체력단련장에서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면서 “바벨을 들면서 대학 때 흥청망청 돈을 쓰고, 하루에 수십억원을 주무르던 투신사 지점장의 처지가 처량하고 또 부끄럽기도 해서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운동이 재기의 투지를 불러 그러나 운동을 시작하자 ‘다시한번 해보자.’는 투지가 생겼다. 퇴근하면 증권가에서 ‘투자의 귀재’로 통하는 전문가를 찾아가 돈 버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떼를 썼다. 딱한 사정을 이해한 전문가로부터 장외주식거래, 파생상품 투자 등에 대한 노하우를 배웠다. 또 새벽 3시에 수원 집을 나와 과천의 청계산을 4시간 동안 등반하고 회사에 출근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6개월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차츰 돈벌이가 좋아져 3년여 만에 5억원의 빚을 모두 갚았다. 그는 “빚을 다 갚고 회사를 그만두는 날 남은 재산은 760만원뿐이었다.”면서 “앞으론 빚 없는 세상에서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자문사 등을 거쳐 3년전 한양증권에 둥지를 틀었다. 브라질 유술인 ‘주짓수’ 등 운동은 계속했다. 법인영업은 펀드매니저, 연금 담당자 등을 상대로 수천만원에서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기관 자금의 주식매매를 유치하는 업무다. 어떻게 하든 ‘큰손’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기부는 즐거움이며 책임감 때문 신 이사는 법인영업을 하며 자신이 건네준 명함이 그 자리에서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경험을 수없이 했다. 그러나 그 정도에 기가 죽을 그가 아니었다. 언젠가 한 법인 사무실에 들어선 그는 무작정 한 책임자의 옆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당신 누구냐.”고 책임자가 묻자,“이곳에 아는 사람이 없어 창피해서 그러니 잠시만 앉아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몇분 뒤 꾸벅 인사만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신 이사는 “3∼4번 그렇게 행동하자 나중에 그 책임자가 ‘뭐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먼저 말을 걸더라.”면서 웃었다. 신 이사는 지금 증권가에서도 손꼽히는 수억원대 연봉의 영업전략 전문가다.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가까운 사찰을 찾아 시주하는 게 즐거움이다. 매월 사회복지재단과 노숙자단체에 상당한 금액을 기부하는 것은 힘겹게 보낸 과거를 되돌아보며 어떤 책임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며 말을 아꼈다. 그는 “결코 다시는 인생의 링 위에 쓰러지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서울광장] 파벌 조장하는 리더들/ 이상일 논설위원

    [서울광장] 파벌 조장하는 리더들/ 이상일 논설위원

    고최종현 SK회장은 생존때 늘 챙기는 친지 K씨가 있었다. 나이와 봉급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단순한 업무를 처리하는 K씨를 배려하자고 부회장과 사장들이 최 회장에게 공동 진언했다.“K씨에게 그럴듯한 직책을 맡겨 체면도 살려주고 보람도 갖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어느 원로는 아예 계열사의 경영을 맡기자고 주장했다. 그를 측은히 여긴 탓도 있지만 다분히 아부 섞인 발언이었다고 최 회장의 전 비서실장은 전했다. 최 회장은 말을 잘랐다.“K씨가 친지에다 선량하다는 이유만으로 중책에 기용할 순 없어요…. 차라리 실력에 맞는 일거리를 맡기고 그에 상응하는 봉급을 주는 게 낫지요. 경영부실과 적자 누적, 투자자들의 손실을 각오한다면 몰라도….” 올 들어 정부가 부산·경남 출신의 이른바 PK인사들로 요직을 채운다고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다 부산상고 출신은 국방부 장관, 관세청장 등 10여명에 이른다. 청와대 인사수석은 “비슷한 시기에 인사가 교체된 것뿐이며 우연의 연속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얼마 전 대법원장, 국정원장, 대통령비서실장과 법무장관 등에 전남출신이 임명되자 ‘호남 편중인사’라고 언론이 비판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사실 PK인사만 문제는 아니다. 부산상고 인맥에 더해 특정 고교나 대학 학벌들도 득세한다고 공무원들은 지적한다. 정권 후반기에는 정실 인사 의혹이 늘 제기돼 새롭지 않다. 굳이 ‘우연’을 강조한 게 어색할 뿐이다.‘지역주의의 희생자’요, 명문고·명문대 출신이 아닌 노무현 대통령에게 지역주의와 학교파벌 개혁을 기대한 국민은 배신감을 느끼지만 특정 인사를 봐줘야 할 저간의 사정을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의구심이 드는 것은 SK처럼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넣어 대접해도 될 텐데 표가 나게 봐줘 그렇지 않아도 낮은 지지율을 더욱 떨어뜨리고 인심을 잃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인사는 해당 부처의 여론과 상식을 존중하면 무리는 없다. 그렇지 않기에 잡음이 난다.SK 가신처럼 웃사람과 친한 인사를 봐주자고 아부하는 가신이 있는지, 아니면 지역과 학벌의 대부가 자신의 선후배와 동창을 사적으로 챙기는 것인지 궁금하다. 과거에는 사적 파벌의 리더들도 관가에 적지 않았다. 모 총리와 장관급 인사는 각각 자신의 A고교 후배를 챙겼고 모 부총리는 B교를 챙겼다.S법대와 상대간의 인맥 싸움도 있었다. 대통령 비서실장에 따라 특정 대학 출신의 고위직 부침이 심했다는 설도 파다하다. 끗발 있는 자리에 간 인사가 기회가 생기면 자기 학교출신을 챙기는 풍경도 낯설지 않다. 그 명분은 “워낙 특정대학과 특정 고교의 독과점이 세다 보니, 대항하기 위해서….”다. 한 공무원은 “정말 파워있는 학교를 나오지 않으면 승진이 어렵다.”고 토로할 정도다. 지금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들도 기존 정치인이나 공직자 성향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이런저런 커넥션에 웬 학교 선·후배가 그리 많은가. 한 기업 임원은 “전 직장에서 대학 후배만을 집중적으로 챙겨 문제된 사람은 대통령이 돼선 안 된다.”고 소리를 높였다. 이런 인사들이 다수 포진해 있는 한 앞으로도 학벌과 지역파벌 개선은 쉽지 않을 듯하다. 그저 파벌과 학벌 인맥이, 자리를 잡은 정부와 공기업을 거덜내지 않고 세금을 덜 축내길 바랄 뿐이다. 앞으로 선거에서는 먼저 파벌의 대부들을 찍지 않고 배제하는 데 중점을 두었으면 싶다. 누구나 능력은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이상일 논설위원 bruce@seoul.co.kr
  • ‘장군잡은 여경’ 청부수사 의혹

    재작년 6월 인천공항 외곽경계 공사와 관련, 전·현직 군장성들이 뇌물을 수수했다는 이른바 ‘장군 잡은 비리 수사’를 제보했던 사람들이 건설사의 약점을 잡아 금품을 뜯어내려던 하청업체 사장과 법조 브로커였던 사실이 밝혀졌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김경수)는 24일 10억원을 주면 공사수주 비리를 수사 중인 경찰에 더 이상 제보하지 않겠다고 협박,H건설로부터 거액을 뜯어낸 건설업체 회장 이모(48)씨와 법조브로커 윤모(53)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공갈 혐의로 구속했다. 이씨는 경찰청 특수수사과 직원들과 고향 선후배 관계 등으로 얽힌 윤씨와 함께 2003년 5월 H건설이 수주한 인천공항 외곽경계공사 관련 비리를 특수수사과에 제보했다. 이들은 동시에 H건설측에 이 사실을 알리고 수사 무마 명목으로 모두 9억원을 뜯어냈다. 또 이 사건을 수사해 ‘장군잡는 여경’이라는 칭호를 얻은 강순덕 당시 경찰청 특수수사과 경위는 이씨를 경찰청 사무실이 아닌 윤씨의 개인 사무실에서 조사하고 진술 조서를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당시 이씨는 다른 6건의 사건으로 지명수배 중이었지만 체포되지 않고 그대로 귀가했다. 검찰은 아울러 윤씨가 “국회의원, 군·검찰·경찰 고위간부와 정·관계 인사와 잘 알고 있다.”면서 대형 형사사건을 해결해 주는 법조브로커 역할을 했던 점을 중시, 윤씨의 추가 혐의 등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검찰은 특히 최근 윤씨가 강원랜드에서 도박을 통해 자금세탁을 했다는 정황을 확보, 강원랜드에 대해 압수수색과 윤씨의 계좌추적 등 자금의 사용처를 수사하고 있다.김효섭 박지윤기자 newworld@seoul.co.kr
  • 한길 가는 김수간·김민정 잉꼬부부

    한길 가는 김수간·김민정 잉꼬부부

    부부가 한 직장에서 일하면 좋은 점이 많을까, 나쁜 점이 많을까. 개인의 성격과 처한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르겠지만 여기 한 쌍의 지하철 기관사 부부만큼은 좋은 점이 많은 듯 하다.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사장 음성직)의 김수간(34)·김민정(30)씨는 유명한 부부 기관사다. 먼저 유명세를 탄 것은 아내. 동기 기관사 120여명 가운데 유일한 여성 기관사인 그는 귀여운 외모의 소유자여서 ‘미녀 기관사’로 통한다. 남편 김수간씨는 올해 처음 도전한 도시철도공사 최우수 기관사 시험에서 월등한 성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아내에 대한 주변의 높은 관심 때문에 분발한 탓도 있다. 다음에는 아내가 최고에 도전한다. 김민정씨는 남편의 경험을 바탕으로 2년쯤 뒤에 최우수 기관사에 도전하려고 마음을 굳혔다. 학교 선후배이자 직장 동료·동기이고 인생을 함께 하는 부부이기도 한 김수간·김민정씨.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차’를 모는 자신들을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사진은 김수간씨 부부가 일을 마친뒤 7호선 온수역에서 다정스럽게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 ‘지하 세계’에서 사는 부부가 있다. 남편과 아내 모두 하루 종일 어두컴컴한 땅아래로만 달리고 있으니 ‘지하 세계에 산다.’는 표현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 이 둘은 도시철도공사(지하철 5~8호선) 지하철 기관사 부부이다. 남편 김수간(34)씨는 8호선을, 아내 김민정(30)씨는 7호선을 운전한다. ●부부간 대화도 지하철 이야기 김수간씨는 도시철도공사가 지난달 실시한 ‘2005 최우수 기관사 선발대회’에서 2위 그룹과 20점 차이를 보이는 우수한 성적(총점 428점)으로 1위를 차지하며 최우수 기관사의 영예를 안았다.. 최우수 기관사 평가는 이론·기능·응급사항 대응능력 등 지하철 운행에 관한 전 분야에 걸쳐 치러졌다. 특히 올해는 자신이 운전하지 않는 다른 호선의 전동차 고장 조치와 같은 새로운 분야가 시험 과목에 포함되기도 했다. 도시철도공사의 지하철 5∼8호선은 지하철 재원과 특징이 각 호선마다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운행하지 않는 열차에 대해 숙지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김수간씨는 이를 평가하는 필기 시험에서 2위와 10점 이상 차이를 내며 좋은 점수를 받았다. 그는 이같은 공(功)을 모두 아내에게 돌렸다. “아내가 지하철 기관사이다 보니 집에서 서로 나누는 대화도 지하철에 관한 내용이 많아요. 부부간의 대화가 곧 공부가 되는 셈이죠.” ‘아내의 힘’이 위력을 발휘한 것은 비단 이번 최우수 기관사 선발대회에서만은 아니다. 김수간씨가 기관사가 되기까지는 아내이기 이전 연인이었던 김민정씨의 힘이 많이 작용했다. 둘은 입사이전부터 사귀고 있던 안양과학대학 캠퍼스 커플이다. ●도시철도공사 입사 전엔 캠퍼스 커플 대학시절 연인인 김수간씨를 기관사의 길로 이끈 것은 김민정씨였다. 김수간씨는 도시철도공사에서 기관사 채용 공고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상황에서 먼저 기관사 시험을 보기로 결심한 김민정씨가 꼼꼼히 챙겨준 것이다. 김민정씨는 “처음 기관사 시험을 보도록 한 것은 저였지만 함께 공부하면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웠다.”면서 “남편이 있었기 때문에 합격할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함께 공부를 시작한 둘은 첫 시험에서 보란듯이 합격했다. 특히 김민정씨는 120여명의 동기생 기관사 가운데 유일한 여성으로 합격했다.‘홍일점’이자 미모를 겸비한 김민정씨에 대한 사내(社內)의 관심은 남달랐다. 덩달아 연인인 김수간씨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둘은 단번에 도시철도공사의 유명 인사가 됐다. 도시철도공사에 기관사 부부는 의외로 많다. 전체 여(女)기관사 17명가운데 5명이 부부기관사이다. 도시철도공사 박창규 홍보실장은 “근무시간도 불안정하고 거의 지하에서만 살다 보니 연애할 시간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기관사들끼리 맺어지는 것은 근무 형태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대학시절보다 더욱 가까워진 김수간·김민정씨 부부는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시험은 같이 봤지만 남편보다 1년쯤 늦게 임용된 김민정씨는 남편의 생생한 경험을 전수받아 실수 없이 기관사 생활을 해 오고 있다. 남편이 먼저 거쳐간 기관사 연수원과 5호선 7호선 근무를 그대로 이어서 따라가고 있다. “남편은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설명해 줘요.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그런 설명들이 저한테는 큰 도움이 되죠.” 김수간씨 역시 “아내에게 직장에서의 전문적인 일들을 편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행복하다.”면서 “아마 2년쯤 후에는 아내가 최우수 기관사가 돼 있을 것”이라고 웃었다. 지금까지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구 서울지하철공사)와 5∼8호선을 운영하는 도시철도공사에서 여성 최우수 기관사는 단 1명도 배출되지 않았다. 글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저희 결혼해요] 신랑 강진수·신부 이수진

    [저희 결혼해요] 신랑 강진수·신부 이수진

    “결혼이 시험이라면 좋겠다. 공부라도 실컷하게….”이런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만큼 서른여섯 노처녀인 제게 결혼은 손에 잡히지 않는 환상과 같았죠. 누구보다 바빴다고 자부하는 20대에 버티기 힘들다는 방송국에서 경력 12년차 메인작가라는 고지에 오르기까지 참으로 힘든 여정을 거쳐야만 했으니까요. 당연히 제 일상에 연애라는 달콤함은 끼어들 틈이 없었고 점차 혼자서 밥도 먹고 영화도 보는, 화려해 보이지만 말 그대로 속빈 강정인 싱글 생활에 익숙해져 가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멀리서 찾지 말라는 얘기, 모두 아시죠?프리랜서라는 직업의 특성상 우연히 일하게 된 케이블 방송사에서 일생일대의 운명의 남자를 만나게 되리라곤 정말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사실 연애의 시작은 생각보다 그리 근사하진 않았습니다. 그냥 방송국에서 작가와 PD 사이로 일면식만 있던 우리는 딱 한 달 동안 같은 프로를 했으니까요. 그 한 달이 인생에 있어 커다란 전환점이 될 줄이야…. 인연은 서로 알아차릴 수 없이 그렇게 다가오는 모양입니다. 다섯 살이나 연상이며 방송경력도 7년이나 많아 대선배격인 저에게 그는 마치 초등학교 때 마음에 둔 여자애를 괴롭히는 남자애처럼 짓궂은 농담을 던지며 저의 관심을 끌더군요. 사실 연하남과의 결혼은커녕 연애도 상상하지 않던 제게 그는 한마디로 신선한 충격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가진 회식자리. 오랜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된 우리는 마치 큐피드의 화살에 맞은 듯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습니다. 직장 동료, 선후배들의 눈을 피해가며 하는 연애라 그런지 둘만 아는 사랑의 공감대는 어느덧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 있더군요. 흔히 연하의 남자친구에겐 ‘나보다 어리다, 뭘 모른다.’는 선입견을 갖기 쉬운데, 저에게 그는 어떤 친구나 오빠보다도 이해심 많은 든든한 연인이자 확실한 내 편이 되어 주었습니다. 무뚝뚝함의 대명사라 자부했던 저에게 어디서 이런 애교가 생겼을까요. 언제부터 주위에서 우리를 최고의 닭살 커플로 인정했을까요. 사랑을 하면서 혈액순환이 달라짐을 느낍니다. 이제야 제 길을 찾은 듯 안정감도 느낍니다. 여러분, 이제 우린 한마음으로 한곳을 바라보며 영원히 예쁘게 살아보려 합니다. 오는 27일이면 나의 귀여운 보호자가 될 그에게 크게 외쳐봅니다. “자기야, 예쁘게 사랑하며 살자!좋아 가는 거야∼!”
  • [이수일 前국정원차장 자살] “이런 상황서 살아야 하나”

    [이수일 前국정원차장 자살] “이런 상황서 살아야 하나”

    20일 변사체로 발견된 이수일(63)씨는 최근 “내가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살아야 하나.”며 괴로운 심정을 지인들에게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건 전 국정원장의 재임기간인 2001년 3월부터 2003년 4월 사이에 2차장으로 재직한 이씨는 지난 11일 검찰에 세번째로 소환돼 조사를 받은 뒤 외부와 접촉을 아예 끊은 것으로 전해졌다. 14일 서울 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이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은 그가 조사에 응해 진술한 지 바로 사흘뒤다. 이씨와 절친했던 정치권의 A씨는 “그의 성격은 결백에 가까울 정도로 깔끔한 편”이라면서 신건 원장의 구속 방침발표이후 직장 선후배로부터 ‘배신자’라는 말을 듣는 모멸감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너무나 여린 성격으로 상황이 만들어내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국정원 관계자도 있었다. 특히 이씨는 행정고시 합격후 경찰에 투신, 경찰청 정보국장을 역임하는 등 줄곧 경찰 관료를 지내다 같은 호남인 신건 전 국정원장에 의해 요직인 2차장으로 발탁된 케이스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자신을 발탁한 신건 원장이 도청 사실을 검찰에서 시종 부인하고 있는데, 자신은 사실 관계를 말해야 하는 심적 부담이 엄청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11일 마지막 소환 이전에 열린 대학 관련 조찬모임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연락을 아예 두절했다. 이달 초 이씨는 김은성 차장과 신건 전 원장을 만나 “사실대로 말하고 국민들에게 용서받자.”고 설득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2차장을 마친 203년 12월 제8대 호남대 총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내년 3월 임기가 끝난다. 전북 완주 출신으로 중동고·서울 법대를 졸업했다.10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경찰에서 20년간 일했다. 그 뒤 차관급인 감사원 감사위원과 한국 감정원장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정란씨와 2남. 녹조근정훈장, 홍조근정훈장, 황조근정훈장, 보국훈장국선장을 서훈했다. 김수정 구혜영기자 crystal@seoul.co.kr
  • 내년 지방선거 ‘방폐장 희비’?

    내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둔 지역 정가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7일 경북도 및 해당 지자체에 따르면 지난 2일 경주시로 방폐장 입지가 정해진 이후 연임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자치단체장이 기사회생하는가 하면 방폐장 후폭풍으로 입지가 흔들리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이 경주시장과 관련된 선거 판세다. 경주시장 선거 출마 예상자 가운데 현재 유력주자는 최윤섭 경북도기획관리실장과 황진홍 경북도환경산림수산국장 등 2명이다. 경주고와 행정고시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누가 먼저 출사표를 던지고 기선을 잡느냐에 그동안 관심이 쏠렸었다. 현 백상승 시장의 경우 고령 등의 이유로 단임이 유력시 되면서 이들 보다 한발 뒤처져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평가였다. 하지만 방폐장 유치로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이 지역 정가의 분석이다. 백 시장이 방폐장을 유치한 기세를 내년 지방선거까지 가져갈 경우 경주시장선거는 치열한 접전이 예상된다. 경주와 반대로 울진은 방폐장으로 현직 군수가 위기에 몰렸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원자력발전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방폐장 유치신청조차 하지 않은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다 강력한 도전자인 임광원 전 경북도 경제통상실장이 일찌감치 현지에서 표밭갈이 중이어서 현 김용수 군수의 입지가 좁아진 상태다. 반면 영덕과 포항은 방폐장 유치실패가 지방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덕은 비록 예상에는 미치지 못한 찬성률을 기록했지만 높은 투표율에다 군수가 끝까지 최선을 다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포항의 경우 정장식 시장이 일찌감치 경북지사 출마로 기수를 돌린 데다 출마가 거론되는 인사들도 방폐장 유치실패와 연계시킬 만한 요인이 없다는 평가다.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탑 헬리건’에 박봉식 소령

    육군의 공격헬기 최우수 조종사인 ‘탑 헬리건’에 3군 11항공단 소속 박봉식(35·3사 28기) 소령이 선발됐다. 2일 육군에 따르면 박 소령은 지난달 10일부터 비승사격장에서 실시된 ‘2005년 육군항공 사격대회’에서 대회 사상 처음으로 250점 만점을 기록해 올해의 ‘탑 헬리건’에 선정되는 영예와 함께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됐다. 박 소령은 “헬기 정비분야에서 애쓰는 선후배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면서 “앞으로 후배들이 최고 조종사가 되도록 교육하는 데 힘쓰겠다.”고 소감을 피력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연극으로 풀어본 대학생 ‘친밀감 표현의 性差’

    연극으로 풀어본 대학생 ‘친밀감 표현의 性差’

    “여자들은 만나면 ‘어머, 너 왜 이렇게 예뻐졌니.’라면서 ‘오버’를 하잖아요. 반면 남자들은 오랜만에 봐도 등 한번 툭 치고 ‘당구나 한 게임 하자.’는 게 전부이고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2일 오후 서울대 문화관 중강당. 잘난 척으로 유명한 ‘지자랑’ 박사의 일장 연설이 시작됐다. 남성과 여성의 친밀감 표현방식이 어떻게 다른지가 연설의 주제. “남성간 관계는 역량의 우열(優劣)에 따라 상하로 짜이기 때문에 여성들에 비해 친밀감을 표현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죠. 여자들끼리는 팔짱끼고 다녀도 뭐라는 사람 없지만 남자들은 변태취급 받는 것도 거기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이날 무대는 서울대 인류학과 학생들이 ‘2005인류문화제-남성·여성 그들만의 친밀감 표현방식 차이’ 연구발표회에서 마련한 패널토론 형식의 연극. ‘지자랑’의 주장에 극단적 여성해방론자인 ‘빡세진’이 “여성들도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자기 외모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외모 위계질서’를 따른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논리적인 여성해방론자 ‘현명해’가 이를 재반박했다. 그는 “남성은 컴퓨터 게임을 할 때에도 자기보다 실력이 좋은 친구와 같은 편을 먹으면 마음 한편에 위축감이 드는데, 여성들은 예쁜 것이 관계형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예쁜 사람이 자신을 낮추고 집단에 녹아들어 가려고 노력하는 등 남성과 다른 방식으로 친밀감을 표현한다.”고 말했다. 다시 마이크를 잡은 ‘지자랑’은 “남녀 모두 친밀감 표현에 심적 부담을 갖고 있다.”면서 “남자들은 친밀감을 표현할 필요가 없도록 화제를 게임·당구 등 제3의 것으로 돌림으로써, 여자들은 인위적이고 과장된 표현을 함으로써 각각 그 부담을 해소하려는 것”이라고 새로운 논리를 내놓는다. 예쁘고 시집 잘가는 것이 최고라는 ‘맹공주’는 “여자 선후배끼리 지나가다 만나면 굉장히 반가워하며 칭찬도 많이 해주지만 사실 돌아서면 ‘호박씨’ 까는 사이도 많다.”고 맞장구를 쳤다. 출연자들은 “여성은 공동육아 등을 위해 협동으로 친밀감을 형성하는 경향이 짙고,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의 양육방식과 문화를 학습하기 때문에 남녀가 친밀감 표현에 차이를 보인다.”는 결론을 내리고 토론을 마무리했다. 이와 관련,‘지자랑’은 “한국 사회는 공식적인 행사에 남성만을 앞세우고, 여성들은 사적이고 가정적인 영역에만 있도록 강요한다.”면서 “그러다보니 사적 영역의 특성이 강한 여성들에게 친밀감 표현이 더 자유로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토론의 시나리오는 난자 수가 정자 수보다 적기 때문에 여성은 자기의 귀한 유전자 생존을 위해 공동육아 집단에서 다른 여성에게 친밀감을 표현하고 동업관계를 맺는다는 ‘익스펜시브 난자론’ 등 문화인류학적 개념들을 총동원해 학생들이 구성했고 같은 과 박순영 교수가 감수했다. 행사를 총괄한 2학년 이송현(21)씨는 “우연히 카페에 갔다가 남·여, 여·여 커플은 많은데 남·남 커플은 하나도 없는 데 착안해 주제를 선정했다.”면서 “사소한 일상에서 접근을 시작, 미시사에서 거시사를 바라보는 인류학의 관점을 알기 쉽고 깊이 있게 전달하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우리는 맞수 CEO] 조대호 월드건설 사장 vs 이석준 우미건설 부사장

    [우리는 맞수 CEO] 조대호 월드건설 사장 vs 이석준 우미건설 부사장

    중견 건설업체에 2세 경영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가운데 월드건설 조대호 사장과 우미건설 이석준 부사장이 패기 넘치는 경영을 펼치는 CEO로 떠오르고 있다. 건설업계는 두 사람 모두 중견 주택업체의 2세로서 실무를 다진 뒤 경영권을 물려받을 준비를 하고 있어 차세대 중견 주택업체를 이끌 재목으로 꼽는다. 조대호(37) 사장은 경영학을 전공한 뒤 밑바닥에서 실무를 다진 정통 경영자의 자질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석준(41) 부사장 역시 전기전자 분야를 전공한 뒤 LG산전에서 근무하다 경영에 참여한 실무형 CEO로 통한다. ●중견 주택 전문업체 ‘젊은피’로 두각 두 사람은 주택업계 ‘젊은피’로 떠오르는 2세 경영인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공교롭게도 부친이 직업 군인 출신이라는 점도 같다. 둘 다 주택사업을 공격적으로 펼치고 있다는 것도 닮은꼴이다. 대학은 선후배 사이다. 조 사장은 1998년부터 경영수업을 쌓기 시작했다. 서울대를 나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인디애나주립대를 졸업한 뒤 해외사업본부에서 첫발을 내디디면서 사이판 월드리조트사업 등을 이끌었다. 아울러 주택개발사업과 전반적인 경영도 함께 배웠다. 우미건설 이 부사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와 한국과학기술원 전기전자공학과를 나온 공학도다. 곧바로 우미로 들어와 직장생활을 하지 않았다. 일반 기업에서 4년 동안 근무한 뒤 1993년 우미건설 기획실장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두 사람은 매우 친한 사이다. 때로는 사업 고민도 함께 나눈다. 몇몇 중견업체 2세들의 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멤버다. 또 텃밭에서 탈피, 다른 지역으로 사업을 넓히고 있다. 다른 지역 사업이 부쩍 늘어나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두 CEO가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때와 일치한다. 두 사람은 아직 경영권을 넘겨받지는 않았다. 월드 조규상 회장과 우미 이광래 회장은 아직도 경영일선에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으며, 중요한 사업은 직접 의사결정을 내린다. ●실력 경쟁에는 양보없다 사업면에서는 둘도 없는 경쟁 관계다. 월드건설이 주택개발사업을 중심으로 화려한 브랜드를 무기로 삼는다면 우미건설은 견고함과 편리성을 따진다. 월드건설이 부지를 사들여 개발사업을 활발히 펼치는 동시에 외주 사업에 주력하는 반면 우미건설은 택지지구 아파트사업을 고집한다. 그래서 주택 철학도 다소 다르다. 이 부사장은 “우미는 집을 짓지 않고 마음을 짓는다.”고 말한다. 당장 눈에 들어오는 화려함을 추구하기보다는 살면서 정이 배어 나오는 집을 짓는다는 각오로 주택사업을 펼친다. 모델하우스도 고급 자재로 치장하지 않아 종종 고객들로부터 오해를 사기도 한다. 이 부사장은 “마케팅 능력은 월드에 뒤진다.”며 “조 사장에게 한 수 배운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하지만 가격 경쟁력과 경험에 있어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월드는 비록 중견업체지만 아파트 브랜드만큼은 대형 건설사에 뒤지지 않는다. 브랜드파워가 6∼7위 안에 든다. 고품격 아파트가 월드 메르디앙의 트레이드 마크다.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을 때 오히려 개발사업에 뛰어드는 등 공격경영을 펼치면서 아파트 브랜드를 키웠다. 당시만 해도 몇몇 업체를 빼고는 별도의 아파트 브랜드가 없었다. 조 사장은 “숱한 개발사업을 펼친 경험과 브랜드가 무기”라면서 “빈틈없는 프로젝트 관리와 소비자들의 신뢰가 주택사업을 이끌어가는 바탕이 된다.”고 말했다. 월드건설이 수도권에서 다진 경험을 바탕으로 대구·울산 등 지역 아파트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비해, 우미건설은 광주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수도권으로 진출해 기반을 다지고 있다. 당장 월드는 대구 사업에 매달리고 있으며, 우미는 이달 중 동탄 신도시에서 공급할 아파트 사업에 눈코 뜰새 없다. 월드가 디벨로퍼로서 개발사업에 더욱 치중할 계획인 반면 우미는 토목·건축업을 기반으로 일반 건설업체 틀을 다져가고 있다. 서로에게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조 사장은 “우미 이 부사장은 시공 원가 경쟁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치켜세웠다. 우미는 자체 자금 비율이 높아 금융비용이 적게 들고 군살을 빼는 등 부대 비용을 절감하는 경영으로 유명하다. 이 부사장은 “경영을 전공한 조 사장이야말로 따뜻하고 겸손한 경영자인 데다 투명 경영을 실천하고 건설업에 대한 균형감각을 지녔다.”고 말했다. 조 사장과 이야기를 나눠본 사람은 그가 해박한 부동산 지식을 지녔다고 평한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원그룹-김재철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원그룹-김재철 회장家

    “김재철(70) 회장은 자신을 장보고라고 생각하는 몽상가였다. 김 회장이 서울 농대를 포기하고 부산수산대를 지원한 것은 어쩌면 바다에 대한 동경이 아니면 힘든 선택이었을 것이다. 거칠고 험한 바다를 꿈의 대상으로, 기업의 대상으로 삼은 기업인은 우리 사회에 드물다.”소설가 최인호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 원양어선을 타고 5대양을 주름잡던 마도로스 출신의 김 회장에 대해 건전하고 꿈이 있는 몽상가라고 평했다.2000년 당시 해상왕 장보고기념사업회를 이끌던 김 회장은 최인호씨에게 장보고를 소설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최인호씨는 장보고가 흥미있는 인물이지만 권력을 꿈꾸다 암살(삼국사기)당했던 만큼 내키지 않았지만 김 회장의 설명을 듣고 장보고에 깊이 빠져 소설 ‘해신(海神)’을 쓰게 됐다. ●바다와의 인연…장보고를 꿈꾸며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벤처 비즈니스맨의 전형이다. 서울대 입학을 마다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좇아 바다 인생을 택했기 때문이다. 성실과 불굴의 투지, 그리고 개척자 정신으로 바다와 싸워 성공을 거뒀고 식품가공업과 금융부문 등으로 그룹을 키워내며 자신의 꿈을 이뤘다. 김 회장의 삶은 이처럼 바다를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1935년 전남 강진 농촌에서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큰아들이 잘 돼야 한다는 당시 시대적인 분위기에 따라 동생들 대신 학교를 다닌 셈이다. 어린 동생들은 후에 김 회장이 학비를 대주었지만 기대와 책임감을 한몸에 안고 유년시절을 보냈다. 걸어서 두 시간이 족히 걸리는 강진농고를 결석 없이 다니면서 우등생 자리도 놓치지 않았다. 진로를 고민하던 고3 시절.“바다는 무진장한 자원의 보고다. 우리 젊은이들이 무궁무진한 자원의 보고인 바다를 개척해야 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이끌려 망망대해로 인생의 나침반을 돌렸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계기로 그는 수산대에 진학해 바다로 나가기로 했다. 당시 서울대 농대에 장학생으로 입학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였다. 김 회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시골 학교에서 서울대에 들어간다면 큰 경사인데 갑자기 지방에 있는 뱃사람 학교에 가겠다고 하니 부모님을 비롯해 주위에서 반대가 많았습니다. 또 졸업하고 나서 배를 탈 때도 장애가 많았습니다. 정식 학부 졸업생이 배를 탄 것은 제가 처음이었거든요. 당시 수산대 졸업생들은 수산청이나 수산업협동조합 같은 관계기관에서 근무하거나 교사가 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때 저도 여수수산고 교장으로 계시는 고등학교 은사로부터 교사로 와달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원양어선을 타겠다고 하자 처음에는 백면서생의 객기쯤으로 받아들이는 듯했습니다. 결국 항해중에 사고가 나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겨우 승선할 수 있었습니다.” ●‘참치 잘 잡는 마도로스’ 1958년은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원양어업을 시작한 뜻깊은 해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 첫 원양어선인 ‘지남호’의 승선자이기도 하다. 기업가로 변신하기 전 김 회장은 8년간 실제로 마도로스 생활을 했다. 항해사로 시작한 뱃사람 생활에서 곧 능력을 인정받아 3년 만에 ‘지남2호’의 선장이 됐다. 파격적인 승진이다. 다른 배보다 빨리 만선을 기록한 데 대한 보상이었다. 그때부터 국내외 원양어선 업계에서 그는 ‘참치 잘 잡는 선장’으로 소문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나라 수산업을 일으켜 보겠다는 각오로 배를 탔고 한 마리라도 더 잡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출어에 나섰다.”면서 “고기떼를 찾아 바다를 헤맬 때나 조업을 앞둔 새벽이면 목욕재계를 하고 기도를 드리곤 했다.”고 강조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그 뒤의 일은 신의 섭리에 맡긴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신조로 삼았던 마음 가짐 때문인지 승승장구했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대충대충’‘괜찮아’다. 1964년 고려원양 수산부장으로 스카우트돼 물품판매, 차관업무, 선박도입 등 수산업 관련 업무를 익혔다. 당시 원양어선이 잡은 참치는 대부분 현지에서 수출됐는데 그때 외국상선들과 거래하며 쌓은 신용은 나중에 창업할 때 큰 도움이 됐다. 1969년.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조업과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동원 산업을 창업했다. 당시 사업 밑천은 1000만원. 배는 일본 기업에서 공짜로 빌렸다. 일본에서 어선 구입비로 37만달러의 차관을 도입했는데 담보나 정부·은행의 지불보증 없이 신용만으로 빌린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10여년간 쌓아온 신용의 결과였다. 사장이 된 뒤에도 그는 직접 배를 몰고 고기잡이에 나섰다.‘참치 잘 잡는 선장’이라는 별명이 무색치 않게 동원산업의 원양어선은 월등한 어획고를 기록했다. 창업 2년만인 1970년 외화 획득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과 수산청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70년대 초 몰아닥친 1차 석유파동은 동원산업을 비롯해 모든 원양어선 업계에 타격을 주었다. 불황으로 도산하는 기업체가 속출하는 가운데 감원·감량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동원은 오히려 투자를 늘리는 등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일본에서 4500t급 초대형 트롤어선을 구입했다. 당시로서는 큰 모험이었지만 그는 바다생활을 통해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배를 타면서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 당시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당시만 해도 기상정보가 정확지 않아 예보없이 폭풍우를 만나는 일도 많았지만 바람이 온다고 일일이 피해 다니다보면 고기를 잡을 수 없다. 배를 삼킬 듯한 거대한 파도와 싸워 이기고 났을 때처럼 감격스럽고 벅찬 희열도 없다. 폭풍우와 맞서 싸운 경험들이 인생을 성장시켰고 여물게 해준 것 같다.” 그는 해양에 관한 풍부한 경륜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85∼91년 한국수산업 회장,90∼92년 원양어업협회 회장을 지냈다. ●식품과 금융업으로의 확장 다른 원양회사들이 낡은 배를 가지고 ‘본전뽑기’식 조업을 하는 동안 동원은 조업을 끝낸 선박은 현지에서 매각하고 최신형 장비를 갖춘 선박을 구입하는 공격적인 경영으로 업계 선두주자가 됐다.30여척의 원양어선과 함께 연간 10만t의 어획량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 수산업체로 키운 것이다. 동원산업에서 참치캔을 내놓으며 식품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82년. 다랑어란 본명을 가진 참치는 참치의 일본명인 ‘마권(眞黑)’에서 ‘참(眞)’을 따고 우리나라 생선 대부분의 이름처럼 끝에 ‘치’를 넣어 참치로 부른 것이 유례가 됐다. 참치잡이는 그가 배를 타던 지난 1958년부터 시작됐지만 참치 가격이 비싸고 일반인들에게 낯선 고기여서 전량 수출됐다. 그는 “1981년 하버드대학 최고경영자 코스에서 몇달 공부하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달러가 되면 참치통조림을 먹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그럼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참치통조림을 먹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서 참치캔을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당시 어획고 전량을 일본·태국 등 외국에 전량 수출하다 보니 가격 결정권이 전혀 없었다. 한국에서 소비가 된다면 동원의 힘을 키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국내 다른 업체들이 참치통조림을 만들어 팔다 실패한 뒤의 도전이었지만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참치가 원래 우리나라 근해에서 잡히지 않는 고기라 낯설기 때문에 통조림에 참치 모양을 그려 넣고 텔레비전 광고를 시작했다. 등산로 입구에서 참치통조림 시식회를 하는 등 참치를 알리는 데 총력을 쏟았다. 출시 이후 4∼5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88올림픽과 함께 국민 식품으로 자리잡으면서 동원은 명실공히 식품 업계 강자로 부상했다. 동원 참치캔은 국내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식품업을 시작한 1982년. 김 회장은 증권업에도 뛰어들었다. 역시 하버드대학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공부하며 들었던 얘기가 동기가 됐다. 하버드대학 MBA출신들이 어떤 분야에 주로 취업하는가를 조사해 봤더니 우수한 사람들이 증권회사나 투자은행을 선호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라는 것이다. 그는 어선을 더 사려고 준비했던 돈으로 증권회사를 샀다. 당시 국내 증권회사의 인식이 좋지 않아 원양어선 한 척 값(80억원대)으로 중견 증권회사인 한신증권을 살 수 있었다. 한신증권을 낙찰받으면서 김 회장은 본격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신증권은 1996년 동원으로 개명했다. 지난 2004년 12월에는 아예 동원그룹에서 분리되어 한국투자증권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투자금융지주로 재탄생했다. 99년 무역협회 23대 회장에 취임한 이후 그룹의 일들은 주요 사항만 보고받고 있다. 무협 직원 절반가량을 줄이는 등 조직 슬림화를 단행하는 한편 전자무역 인프라 구축, 세계적인 전시 컨벤션 육성, 수출입물류비개선 , 국제물류센터 추진 등을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아들들에 밑바닥부터 경영수업 김 회장은 부인 조덕희(67) 여사와 사이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선장시절인 1962년 당시 초등학교 동창이던 조 여사의 오빠 조영채(70)씨의 소개로 만나 6개월 만에 결혼했다. 조 여사의 아버지는 김 회장이 졸업한 군동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을 지낸 분으로 김 회장을 사위로 맞는 것에 대해 매우 흡족해했다. 김 회장은 2004년 12월 그룹을 각각 금융과 식품의 양대 지주회사로 분리하면서 큰아들에게는 금융을, 작은아들에게는 식품을 맡도록 했다. 장남인 김남구(42)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장은 2004년 3월 동원증권 대표이사 사장이 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섰다. 이듬해인 지난 6월 자사보다 덩치가 훨씬 큰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하며 기존 동원금융지주보다 시가총액이 두배나 많은 1조원대의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설립했다. 고려대 경영학과(83학번)를 졸업하고 1987년 동원산업 사원으로 입사한 후 91년 동원증권 대리, 기획담당 상무, 부사장을 거쳐 2003년 동원금융지주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금융지주 지분 33%를 소유하고 있다. 동원F&B 등 식품 계열의 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는 김 회장의 차남인 김남정(32) 경영지원실장(직급 차장)이 물려받았다. 고려대 사회학과 92학번인 김 실장은 회사 지분 44.98%를 갖고 있다.97년 동원산업에 입사, 동원엔터프라이즈 과장 등을 거쳤다. 아버지가 만든 참치캔 이후 업계를 선도할 새 베스트셀러를 내는 게 목표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장남 김 사장은 입사하기 앞서 6개월간 남태평양과 베링해에 나가 참치배를 타며 동원을 이해하기 위한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쳤다.”면서 “하루 16시간 중노동을 하면서 그물을 던지고 참치를 잡는 한편 참치를 삶고 냉동시키는 과정에서부터 갑판청소 등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차남 김 실장 역시 1997년 경남 창원 참치통조림 공장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시작, 동원산업 영업부 평사원으로 시내 백화점에 참치제품을 배달하는 등 밑바닥부터 배웠다. 두 아들 모두 아버지를 닮아 체구가 좋고 남들이 보면 구두쇠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근검절약 정신이 투철하다는 평이다. ●정·관계로 이어지는 화려한 혼맥 건설교통부 장관부터 국정원장까지 동원가의 혼맥은 화려하다. 큰 아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장은 집안끼리 알고 지내던 고병우(72) 28대 건교부 장관의 딸인 고소희(37·이대 전산학과 86학번)씨와 1992년 4월 공항터미널 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고려대 김동기 교수가 주례를 섰다. 두 사람 사이에 동윤(12)과 지윤(7) 1남1녀가 있다. 고 전 장관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동아건설 회장 등을 역임하다 현재 한국경영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재철 회장과 같은 호남 출신. 쌍용증권 회장 재직시절부터 김 회장과 가깝게 지냈다. 김남구 커플은 ‘괜찮은 사람이니 한 번 만나보라.’는 양가 어른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8개월간 연애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이대 서양학과 84학번인 첫째 딸 김은자(40)씨는 1989년 서울지검에 재직중이던 정택화(44·고대 법대 79학번) 검사와 중매로 결혼했다. 김은자씨는 내성적이고 일 욕심이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에서 초등학생을 겨냥한 사설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정 검사는 광주지검 부부장검사, 대구지검 안동지청장, 부산고검 부부장검사, 의정부지검 형사1부 부장검사 등을 역임한 뒤 현재 대구 고검 검사로 재직하고 있다. 올해 열두살된 외동아들 연욱이 있다. 둘째 딸 김은지(37·이대 정외과 87학번)씨는 고 김택수 전 의원의 4남인 서울 법대(81학번) 출신의 김중성(43)씨와 지난 1992년 10월 김상협 전 국무총리의 주례로 식을 올렸다. 성격이 명랑하고 친정과 시댁의 집안 대소사를 두루 잘 챙겨 어머니 조덕희씨의 자랑이 자자하다. 두 사람은 김 회장과 평소 친분이 있는 천신일 세중여행사 회장이 1988년 여행사에서 어린이들을 인솔하고 외국으로 떠나는 프로그램(CISV)의 대학생 리더로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나라종합금융 상무이사를 지낸 김씨는 지난 2001년 미국 뉴저지로 건너가 투자관리회사인 세인투자관리를 설립,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민선(12)과 현선(6) 두 딸이 있다. 막내 김남정(32) 실장의 아내는 33대 법무부 차관과 25대 국정원장을 지낸 신건(64) 세계종합법무법인 변호사의 셋째 딸 신수아(33·이대 장식미술학과 91학번)씨. 대학교 4학년 때 동아리 선배의 소개를 통해 누나-동생 사이로 만난 뒤 6개월만에 연인 사이로 발전,3년 열애끝에 결혼했다. 김상하 삼양사 회장 주례로 지난 1998년 10월 워커힐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동찬(5)과 서연(2) 남매를 두고 있다. 사돈인 신건 전 국정원장은 김 회장의 셋째 동생인 김재국(63) 전 동해하이테크 사장의 친구이기도 하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뛰어난 문장가’ 김재철 회장 “재웅아! 우리는 드디어 만선(滿船)을 했다. 우리 배는 지금 어창(魚倉)마다 고기를 가득 싣고 사모아로 돌아가는 길이다. 푸른 하늘엔 흰 구름 떠가고 바다엔 새하얀 우리 배가 물결을 가르면서 달린다. 물위에 떼를 지어 놀던 고기들이 놀라서 달아나고 한가로이 물에 떠 있던 고래도 배를 피해 점잖게 물 속으로 자맥질을 한다. 엊그제까지도 바다는 성난 파도로 꿈틀거렸는데 오늘은 우리의 만선귀항을 축하라도 하는 듯 잔잔하구나.”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소개된 김재철 회장의 ‘남태평양에서’의 한 구절이다. 김 회장은 책을 많이 읽는 독서광으로 유명하지만 문장가로서도 이름이 높다. 젊은 시절 바다에서 생활하면서 간결하고 생동감 있는 글을 많이 썼다. 이밖에 ‘바다의 보고’,“거센 파도를 헤치고’ 등 그의 글은 초·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소설가 정비석씨는 ‘사상계(思想界)’에 발표한 김 회장의 글을 보고 “이 정도 글 솜씨라면 작가로 데뷔해도 좋겠다.”고 평했다. 김 회장 스스로도 기업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문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서로는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국인의 미래가 보인다’가 있다. 그는 원양어선 선장시절 선용품을 사기 위해 시모노세키 등의 항구에 기항하면 책방에 가서 헌책들을 무게로 달아 구입해 배 안에서 끊임없이 읽었다. 덕분에 김 회장은 문학적 표현을 자연스럽게 구사할 만큼 일본어 실력이 뛰어나다. 지난 2004년 일본 미쓰비시 그룹 회장·사장단으로 구성된 모임인 ‘금요회’에서 ‘나의 인생과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주제로 일본어 특강을 했다. 요즘도 월 평균 10∼20권의 책을 읽는다. 경제·경영·역사·심리 등 분야가 다양하다. 회계학도 독학으로 배워 재무제표도 꼼꼼히 본다. 직원들에게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동원산업 사내 게시판에는 책 요약 서비스까지 제공된다. 처남인 박인구 동원F&B 사장도 국내 출장이나 여행 때는 반드시 KTX를 탄다.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자식들에게도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강조했다.1주일에 적어도 한 권씩은 읽도록 했다. 정독이 안되면 통독을 하라고 가르쳤다. 책을 주고 A4용지 4∼5장 분량의 독후감도 받았다. 내용이 부실하거나 느낀 점이 부족하면 느껴야 될 점과 핵심 등을 설명해 주었다. 장남인 김남구 사장은 오래전에 독후감 제출을 졸업했지만 김 사장보다 열살 어린 동생 김남정 실장은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독후감 제출 대상이었다. 김 실장은 “일본 대하소설 ‘대망’을 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얼마나 고생해 지도자 자리에 올랐는지 토론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최근에는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를 추천받았는데 유익했다.”고 말했다. jhj@seoul.co.kr ■ 동원출신 CEO들 ‘반짝반짝’ 김재철 회장은 소식·금연·절주 등 절제된 생활로 유명하지만 인재 욕심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 ‘좋은 인재=좋은 실적’이란 생각에서 1980년대 후반 증권업계 최초로 성과급제를 도입했고 금융권 최초로 스톡옵션제를 실시했다. 동원이 인수한 한신증권은 90년대 한번에 특별성과급을 400%씩 지급, 업계의 부러움을 샀다. 참치를 많이 잡으면 선장에게 돌아가는 몫이 많듯 선장을 지낸 그의 삶에 성과주의가 깊이 배어있는 것이다. 때문에 동원증권 출신들 중에는 스타급 인사가 많다. 동원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 CEO(최고경영인)는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 대신증권에서 김 회장에게 한신증권으로 스카우트된 그는 1998년 동원증권 사장 재직 당시 금융권 최초로 10만주의 스톡옵션을 받았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주택은행장으로 영전돼 권리 행사는 하지 못했다. 오너와 전문경영인이 즐겁게 일한 뒤 행복하게 헤어진 모범 케이스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동원이 놓아주지 않으려 애를 먹은 것으로 유명하다. 나이 마흔이 되면 창업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이사 재직 시절인 서른 아홉이 되던 해에 동원증권을 나왔다. 그를 놓아줬다는 이유로 화가 난 김 회장이 김 전 행장과 무려 6개월 동안 말도 하지 않고 지낸 일화는 아직도 금융권에서 회자되고 있다. 김 전 행장은 한신증권 이사로 일하면서 박 회장을 동원에 영입했다. 두 사람은 절친한 광주일고 선후배 사이다. 재경부 공무원 출신의 정태석 광주은행장(전 동원증권 상무), 장인환 KTB 자산운용 사장(전 동원증권 차장), 송상종 피데스 투자자문 사장(전 한신증권 대리), 조승현 전 교보증권 사장(전 동원창업투자 사장)도 모두 한때 동원증권에 적을 뒀다. 지금도 동원에 몸담고 있는 스타 CEO들이 많다. 서두칠 동원시스템즈 사장은 2002년 초 김 회장의 영입제의를 받고 통신장비업체인 이스텔시스템즈(옛 성미전자) 사장으로 왔다. 동원시스템즈는 지난 3월 이스텔시스템즈와 동원EnC가 합병한 회사다. 그는 1997년 말 한국전기초자의 전문경영인으로 부임해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 퇴출위기에 몰렸던 회사를 3년만에 우량기업으로 변신시킨 주인공. 김범석 한국투자신탁운용 사장은 금융관료 출신으로 2002년 합류했다.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은행구조조정팀장과 구조개혁기획단 은행팀장을 지냈다.2000년 초 키움닷컴 사장을 지냈다. 김 회장의 두 아들을 제외하고 동원에서 일하는 인척은 김 회장의 셋째 동생 김재운 동영콜드프라자 대표이사 회장, 둘째 처남인 동영콜드프라자 최재열 상무와 셋째 처남인 동원F&B 박인구 사장 등이다. 박 사장은 1997년 산자부 상무관 시절 동원정밀 부사장으로 동원에 합류했다. 외환위기 당시 이익을 낸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동원F&B 사장이 됐다. 박 사장은 “김 회장은 항상 동생들과 가족들에게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우리가 희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박 사장의 부인이 아직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 없이 사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라고 덧붙였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동원출신 CEO들 ‘반짝반짝’

    김재철 회장은 소식·금연·절주 등 절제된 생활로 유명하지만 인재 욕심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 ‘좋은 인재=좋은 실적’이란 생각에서 1980년대 후반 증권업계 최초로 성과급제를 도입했고 금융권 최초로 스톡옵션제를 실시했다. 동원이 인수한 한신증권은 90년대 한번에 특별성과급을 400%씩 지급, 업계의 부러움을 샀다. 참치를 많이 잡으면 선장에게 돌아가는 몫이 많듯 선장을 지낸 그의 삶에 성과주의가 깊이 배어있는 것이다. 때문에 동원증권 출신들 중에는 스타급 인사가 많다. 동원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 CEO(최고경영인)는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 대신증권에서 김 회장에게 한신증권으로 스카우트된 그는 1998년 동원증권 사장 재직 당시 금융권 최초로 10만주의 스톡옵션을 받았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주택은행장으로 영전돼 권리 행사는 하지 못했다. 오너와 전문경영인이 즐겁게 일한 뒤 행복하게 헤어진 모범 케이스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동원이 놓아주지 않으려 애를 먹은 것으로 유명하다. 나이 마흔이 되면 창업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이사 재직 시절인 서른 아홉이 되던 해에 동원증권을 나왔다. 그를 놓아줬다는 이유로 화가 난 김 회장이 김 전 행장과 무려 6개월 동안 말도 하지 않고 지낸 일화는 아직도 금융권에서 회자되고 있다. 김 전 행장은 한신증권 이사로 일하면서 박 회장을 동원에 영입했다. 두 사람은 절친한 광주일고 선후배 사이다. 재경부 공무원 출신의 정태석 광주은행장(전 동원증권 상무), 장인환 KTB 자산운용 사장(전 동원증권 차장), 송상종 피데스 투자자문 사장(전 한신증권 대리), 조승현 전 교보증권 사장(전 동원창업투자 사장)도 모두 한때 동원증권에 적을 뒀다. 지금도 동원에 몸담고 있는 스타 CEO들이 많다. 서두칠 동원시스템즈 사장은 2002년 초 김 회장의 영입제의를 받고 통신장비업체인 이스텔시스템즈(옛 성미전자) 사장으로 왔다. 동원시스템즈는 지난 3월 이스텔시스템즈와 동원EnC가 합병한 회사다. 그는 1997년 말 한국전기초자의 전문경영인으로 부임해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 퇴출위기에 몰렸던 회사를 3년만에 우량기업으로 변신시킨 주인공. 김범석 한국투자신탁운용 사장은 금융관료 출신으로 2002년 합류했다.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은행구조조정팀장과 구조개혁기획단 은행팀장을 지냈다.2000년 초 키움닷컴 사장을 지냈다. 김 회장의 두 아들을 제외하고 동원에서 일하는 인척은 김 회장의 셋째 동생 김재운 동영콜드프라자 대표이사 회장, 둘째 매제인 동영콜드프라자 최재열 상무와 셋째 매제인 동원F&B 박인구 사장 등이다. 박 사장은 1997년 산자부 상무관 시절 동원정밀 부사장으로 동원에 합류했다. 외환위기 당시 이익을 낸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동원F&B 사장이 됐다. 박 사장은 “김 회장은 항상 동생들과 가족들에게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우리가 희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박 사장의 부인이 아직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 없이 사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라고 덧붙였다.jhj@seoul.co.kr
  • 60년선배·햇병아리 경관의 만남

    60년선배·햇병아리 경관의 만남

    “든든한 후배 모습을 보니 이렇게 귀엽고 자랑스러울 수가 없네.” “경찰의 산 역사라고 할 수 있는 선배님을 이렇게 뵙게 돼 영광입니다.” 경찰의 날(21일)을 이틀 앞둔 19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동 대한민국참전경찰유공자회 사무실에서는 60년 경찰 선후배의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1945년 창설 때부터 경찰에 몸담았던 유공자회 문학동(83) 회장과 올 7월 임용된 새내기 나영삼(29·남부경찰서 독산지구대) 순경. 할아버지와 손자뻘인 두 사람은 다정하게 마주앉아 1시간 이상 경찰의 과거와 미래를 이야기했다. 햇병아리 후배를 본 소감을 묻자 문 회장은 44년 일제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해방 직후 벅찬 가슴을 안고 부산에 돌아왔던 기억을 떠올렸다. 문 회장은 “나는 나 순경보다도 어린 스물셋 나이에 왜정의 순사가 아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경찰이 되겠다는 포부로 경찰에 자원했다.”고 했다. “6·25 전쟁 때 화랑부대에 뽑혀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지. 하지만 일부 군인과 경찰이 월북을 한다며 미군이 한국사람에게는 무기도 안 주더라고. 결국 수통 하나 없이 척후병으로 뛰어야 했어.” “경찰 역사를 배웠어도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생생한 경험담을 들으니 초기 선배님들이 겪었던 어려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문 회장이 “요즘 가장 힘든 게 무엇이냐.”고 묻자 나 순경은 “지구대 근무를 하다 보면 경찰에게 욕을 하며 난동 피우는 취객들을 안정시키느라 치안능력이 낭비돼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문 회장은 “6·25 때 지리산에서는 유엔군, 중공군은 전혀 없이 북한과 남한 군경끼리만 서로 죽이는 상잔의 참상이 벌어졌다.”면서 “요즘 집회 현장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때가 떠올라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에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문 회장은 대화를 마치며 “경찰에 대한 국민 인식이 아직도 좋지만은 않기 때문에 심적 부담이 있겠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민중의 지팡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60년 후배를 다독였다. 나 순경은 “후배들이 노력해 큰 결실을 거두는 과정을 지켜 보시고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따끔하게 충고해 달라.”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프로야구 2005 포스트시즌]삼성·두산 KS ‘배터리 대결’

    [프로야구 2005 포스트시즌]삼성·두산 KS ‘배터리 대결’

    오는 15일부터 열리는 프로야구 한국시리즈(KS·7전4선승제)에서 격돌하는 삼성의 선동열(42) 감독과 두산의 김경문(47) 감독이 화제다. 두 감독은 고려대 선후배 사이는 물론 한 방을 사용했던 ‘룸 메이트’인 데다 ‘부부’와도 비유되는 투수-포수의 배터리를 이룬 남다른 인연을 맺고 있어서다.81학번 새내기 투수였던 선 감독은 4학년이던 김 감독과 여드름 탓에 고민과 치료를 함께하는 등 속내를 감추지 않았던 막역한 사이다. 두 감독의 인연은 프로에서도 이어졌다. 선 감독은 한국야구위원회(KBO) 홍보위원 시절인 2003년 말 당시 두산의 김인식 감독 후임으로 내정됐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두산행이 불발됐다. 그러자 롯데 코치로 자리를 옮기려던 김경문 감독이 전격 사령탑에 앉게 된 것. 결코 선 감독 덕분(?)은 아니지만 자칫 감독직과 인연을 맺지 못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삼성-두산의 KS는 2001년 이후 4년만의 ‘리턴매치’지만 두 감독은 지난해 플레이오프에 이은 두번째 자존심 대결. 그러나 상황은 사뭇 다르다. 선 감독은 당시 수석 코치로 활약했지만 올해는 감독직을 건 ‘승부사’로 나선다. 또 김 감독은 2년차지만 선 감독은 새내기여서 우승을 일궈내야 하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게다가 당시는 KS 진출을 위한 전초전이었지만 이번에는 올시즌 챔피언을 결정짓는 KS 맞대결이라는 점에서 승부욕을 더한다. ‘1점차 승부’에 유독 강한 둘은 “우정은 우정이고 승부는 승부”라며 서로의 우승을 장담한다.‘지키는 야구’의 선 감독은 “두산이 올라올 것으로 예상했다.”면서 “두산이 집중력이 좋은 팀이지만 충분히 대비했다.”고 말했다. ‘믿음 야구’의 김 감독은 “삼성은 한화와 전혀 다른 팀”이라며 긴장하면서도 “오랜 시간을 쉬어 실전 감각이 떨어졌기 때문에 1차전에서 기선을 제압하겠다.”고 강조했다. 김민수기자 kimms@seoul.co.kr [한국시리즈 전문가 전망] ●허구연 MBC 해설위원 예측이 힘들다. 선발은 두산이 약간 우세하고 삼성은 불펜의 도움에 의지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이 우승하려면 5·6차전에서 끝내야 하고 두산은 투수진이 좋아 오래끌수록 유리하다. 두산의 이혜천 금민철, 삼성의 전병호 오상민 등 좌완의 역할이 변수다. 삼성 타선에선 양준혁과 진갑용이, 두산에선 김동주와 최경환의 활약이 필요하다.1·2차전에서 두산이 1승1패하면 유리하고 삼성은 다 잡아야 한다. ●하일성 KBS 해설위원 7차전까지 갈 것 같다. 선발은 두산이, 불펜은 삼성이 앞서 마운드 전력은 비슷해 한 쪽이 일방적으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배영수가 정상이라면 삼성에 한 표 던지고 싶다. 심정수의 포스트시즌 경험도 듬직하다. 두산 박명환은 전시효과일 것 같고, 삼성에 강한 이혜천이 제2선발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선동열 감독은 첫해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시리즈 경험이 많아 벤치 싸움도 백중세다. 대구 1·2차전이 관건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