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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로운 노인 80여명에 점심도시락 대접 7년(이사람)

    ◎독립문공원서 남다른 경노 김종은씨/“셋방살아도 나누는 기쁨 더 크죠”/양복 원단 행상… 수입 60% 떼어 선행/고아원서 불우한 성장… 노모 굶주렸던 사연듣고 결심/보증 잘못으로 전재산 날리고도 돕기 계속해와 넉넉하게 가진 것도 없고 벌이도 시원찮은 한 소상인이 7년째 하루도 거르지않고 외로운 노인들에게 정성을 다해 점심을 대접하고 있다. 양복원단을 마이크로버스에 싣고 다니며 기성복제조업체에 납품해 버는 수입으로 그날 그날 살아가는 김종은씨(44·서울 중구 순화동1의97). 그는 고달픈 떠돌이 장사를 하면서도 매일 낮12시면 어김없이 하던 일을 멈추고 서울 독립문공원을 찾아 이곳에 나와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80여명에게 김밥이며 빵등을 담은 도시락을 대접한다. 행여 도시락사정이 여의치않아 음식을 미처 장만하지 못하는 날일지라도 어김없이 나타나 7백원씩의 음식값을 노인들의 손에 쥐어주며 마치 큰 죄라도 지은듯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그날그날 형편에따라 수입이 다르지만 김씨의 한달평균 벌이는 2백50만원 정도. 이가운데 하루 5만∼6만원씩의 도시락값 1백50만∼1백80만원을 빼면 80만∼90만원정도가 8순노모와 부인(43),고등학교에 다니는 두아들등 다섯식구의 생활비가 된다. 그나마 두칸짜리 셋방의 방세 20만원을 제하고 나면 김씨의 생활비는 5인가족 도시근로자의 평균가계지출비 1백만원수준에도 훨씬 못미치는 형편이다. 김씨가 이처럼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남달리 노인공양에 온힘을 기울이는 것은 어린시절의 불우했던 경험때문. 그는 충남부여에서 태어나 네살때 부모의 가정불화로 고아원에 보내졌다.그리고는 국민학교 6학년1학기만 마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수색근처의 농가굴뚝을 껴안고 잠을 자기도 하고 개천옆의 공중변소 한켠에 판자를 깔고 새우잠을 자기도 했다. 풍선장사·신문팔이등을 하며 겨우겨우 끼니를 이었다.그러다 61년 남대문시장의 한 봉제공장에 들어가 일을 배우기 시작했고 16살이 되던 67년부터는 재단사가 됐다. 마침내 79년에는 18년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미싱 10대를 받아 독립했다.어엿한 「사장님」이 된 것이다.그리고 그의 이름은 자수성가의 대표적인물로 남대문시장 일대에 짜하게 알려졌다. 그러다보니 경사가 겹쳐 어머니도 찾게 됐다. 성공한 아들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칠순의 백발노모를 반갑게 맞은 김씨는 어머니 또한 수도없이 배를 굶주리며 서러움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며칠이고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김씨는 이때부터 「기본생활비」만 떼고는 모든 수입을 털어 양로원과 고아원등을 찾아 김씨 모자처럼 서러운 사람들에게 옷과 음식을 선물하고 오는게 습관화됐다. 지난 85년말부터는 날마다 집에서 가까운 서소문공원을 찾아 외로운 노인들의 찬손을 어루만지며 김밥이나 떡 빵등을 대접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서소문공원의 지하주차장 건설공사로 이 노인들이 독립문공원으로 옮겨가자 함께 따라가게 됐다. 그러나 시련은 또 닥쳤다.지난해말 공장직원이 부탁한 한문투성이의 은행융자보증서에 흔쾌히 도장을 찍어줬다가 5천만원을 날린 것이다. 그는 이때 1천만원짜리 전세방마저 비워야 하는 빈털터이 신세가 됐지만 그래도 노인을 돌보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요즈음엔 고아원시절 이웃 불량배에게 돌로 얻어맞은 왼쪽다리가 부쩍 쑤셔 절뚝거리기까지 하는 김씨는 『부모같은 노인들에게 좀더 나은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데 수입이 크게 늘지않아 늘 안타깝다』고 오히려 미안해하고 있다. 김씨에게 한달째 점심신세를 지고 있다는 진모씨(66·서대문구 천연동)는 『친부모도 나몰라라 하는 요즘 세상에 콘크리트숲사이에 버려진 늙은이들을 이처럼 보살펴주는 김씨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더없이 고맙다』고 대견해 했다.
  • 기업 대북 진출위해 투자보장 선행돼야/김영삼대표 강조

    민자당의 김영삼대표는 28일 상오 국회 귀빈식당에서 최각규부총리로부터 김달현북한부총리의 방문내용을 보고받고 『남북한사이의 경제협력은 핵문제·부속합의서 채택·이산가족상호방문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표는 『우리 기업의 북한진출도 사회 경제적인 구조 차이를 감안,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분쟁해결절차등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면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최부총리의 북한방문은 가능하면 정기국회 개회일인 9월10일 이전에 실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최부총리는 『남북한의 시범사업이 시작되면 북한도 제반사정을 고려,합영법등을 보완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오는 9월 북한에 다녀온 결과를 충분히 검토해 구체적인 투자와 기업진출이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 영·유아 보육사업에 세제혜택/보사부,입법예고

    ◎개인에도 양로원등 설립 허용/사회복지요원 배치 근거 신설/전국 모든 시·군·구에 「사무소」설치/내년부터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전국 모든 시·군·구에 영세민생활보호사업과 복지업무를 전담할 사회복지사무소가 설치된다. 국가·지방자치단체 또는 법인에게만 허용돼 온 양로원등 사회복지법인의 설립이 개인에게도 허용되고,영·유아 보육사업등이 사회복지사업의 범위에 새로 포함돼 여러가지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게된다. 보건사회부는 22일 이같은 내용등을 골자로하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을 마련,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이 입법화되면 90년대의 다양한 복지수요에 대응하는 행정체계를 확보,대국민복지정책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것으로 여겨진다. 개정안은 전국 모든 시·군·구에 복지사무소를 설치해 생활보호법등 사회복지관계법률에의한 복지업무를 종합 통괄토록하고 설치비와 운영비는 국가및 시도 지방자치단체에서 보조토록했다. 보사부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대로 내년7월중 서울·부산등 전국6대도시에 복지사무소를 시범적으로설치·운영,단계적으로 이의 설치를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개정안은 복지수요의 다양화현상을 감안,사회복지사업의 범위에 모자복지법과 영·유아보육법상의 사업,재가복지,정신질환자 사회복귀에관한 사업을 추가,이들 시설들도 사회복지법에 정한 세제감면 혜택을 받도록했다.사회복지사업에 포함될 경우 등록세·법인세를 감면받게돼있다. 개정안은 또 지난 87년부터 일선행정기관에 배치되고 있는 사회복지전문요원의 배치근거를 신설,이들의 활동을 뒷받침하도록 했다.사회복지전문요원은 생활보호사업의 효율성확보를 위해 저소득층 밀집지역 동사무소를 중심으로 배치돼 지금까지 2천명 가까이 일해 오고 있으나 법적근거가 없어 사업의 계속성확보등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보사부는 이번 개정안에서 이밖에도 국가·지방자치단체·법인으로 한정하고 있는 사회복지시설의 설치주체를 확대,보건사회부장관이 정하는 사업의 경우에는 개인도 사회복지시설을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해 복지수요의 다양화및 새로운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입법체계를 마련해두고 있다.
  • 남북경협과 시범사업(사설)

    남북한 경협의 시발로 시범사업이 대두되고 있다.김달현정무원부총리가 『경제협력을 시범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길을 열어 나가자』고 밝힌뒤 시범사업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우리정부는 핵사찰및 이산가족문제와 경협문제를 연계시켜 나가자는 데 반해 북한측은 선경협을 제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정부는 북한의 시범사업제의에 대해 공식적인 언급을 회피하고 있지만 경제계는 시범사업의 성격과 규모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그러나 시범사업이 북한과 국내 재벌그룹간에 합의된 것으로 알려진 남포공단에 우리기업들이 투자하는 것인지,그렇지 않고 김강산개발과 두만강개발까지 포함된 것인지 분명치않다. 일각에서는 시범사업을 표현 그대로 남포공단개발로 보면서 우리정부가 핵문제와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제한적인 시범사업을 허용하지 않겠느냐는 나름대로의 추측을 하고 있다.우리는 여러차례에 걸쳐 경협문제와 정치·안보 문제및 인도적 문제를 분리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북한경제는 경제적 논리보다는 정치적 논리에 의해 좌우된다.비록 남북한간 시범사업이라 하더라도 북한의 정치적 상황이 달라지면 그 사업이 중단될 수 밖에 없다.이것이 선경협을 통한 분단극복이라는 김부총리의 서울발언에 대한 신뢰성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설사 시범사업이라 하더라도 그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국내기업이 북한공단에 진출하려면 최소한 중국과 체결한 정도의 투자보장이 필요하다.대중관계에서는 수교를 앞두고 무역진흥공사등 유관기관차원에서 투자보장협정이 체결된 바 있다.국제관례상 수교가 임박하거나 국교수립이 전제되지 않으면 투자보장협정은 맺어지지 않는다. 김부총리는 선경협을 주창하고 있으나 경협은 냉엄한 논리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협상보다 더 복잡하고 까다롭다.바꿔 말해 정치협상은 양측고위층의 정치적 결단에 크게 좌우될수 있으나 경협은 투자에 대한 보장은 물론이고 과실등 경제적 실익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와북한과의 경협의 경우 투자·세제·고용·경영권·원산지규정·과실송금등에 대해 아무런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이런 상황에서 시범사업은 우리측이 일방적으로 자본 또는 기술을 공여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물론 북한측도 그런 형태의 경협은 원치 않으리라 믿는다. 김부총리의 표현대로 시범사업이 전면적 경협을 위한 것이라면 그사업은 어떤 일이 있어도 성공해야 한다.그러기 위해서 정치적 문제는 물론 경제적 걸림돌을 제거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게 우리의 변함없는 생각이다.또 남북한 경협은 통일을 전제로한 원대한 구도아래서 추진되어져야지,몇개 공장건설을 전제로 해서는 안된다.
  • 남북경협 「시범사업」 논의/어제 첫 부총리회담

    ◎“교류확대 긴밀 협조”/핵문제등 현안해결 강조/남/「남포공단」 먼저 추진하자/북/김부총리,삼성반도체­대우자 시찰 최각규부총리와 김달현 북한정무원 부총리는 20일 남북간의 경제교류를 더욱 촉진키로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경협촉진을 위해 남북이 긴밀히 협조해나가기로 합의했다. 서울방문 이틀째인 김부총리는 이날 과천정부종합청사로 최부총리를 방문,상오9시50분부터 10시25분까지 35분간 회담,이같이 합의하고 김부총리가 산업시찰을 다녀온후 양측이 구체적인 협의를 계속하기로 했다. 이날 회담에서 김부총리는 서울방문에 대한 답방형식으로 최부총리를 평양에 공식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최부총리는 이를 수락했다.방북날짜와 절차는 남북한의 대화통로를 통해 협의하기로 했다. 우리측은 이날 회담에서 이미 구성이 완료된 쌍방의 차관급을 위원장으로 하는 「남북경제교류 협력공동위원회」를 가동하여 남북경협에 따른 제도적인 틀을 정비하고 구체적인 협력사업을 추진해나가자는 기본입장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경제협력을 활발히 하기위해서는 전반적인 남북관계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현재 쌍방간에 이견을 보이고 있는 핵문제등 현안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부총리회담에는 우리측에서 최부총리와 한갑수 기획원차관 김태연 대외경제조정실장 강희복 대외경제조정실 제1협력관 최황섭 통일원자문역이,북한측에선 김부총리와 정운업 삼천리총회사 총사장 리성대 중국주재무역참사 김동국 정무원 책임지도원 림태덕 대외경제협력추진위 서기장등 5명이 참석했다. 김부총리일행은 이날 최부총리와의 회담을 마친뒤 우리측 경제실상을 파악하기위한 산업시찰에 나서 기흥의 삼성반도체공장과 인천지역의 대우중공업 대우자동차공장을 시찰했다. 이어 하오에는 서울로 돌아와 유창순 전경련회장등 경제5단체장이 여의도 63빌딩에서 주최한 만찬에 참석했다.
  • 김인수씨 구속영장 요지

    피의자는 84년 11월 사기죄로 징역10월을 선고받는 등 동종죄등의 범죄전력이 3회 있는 자로서 약 15년간 목수로 일해 오다 91년부터 부동산 알선행위를 하여온 속칭 토지브로커이다.피의자는 91년 12월 합참 군사자료실장인 김영호,토지브로커인 곽수렬·신준수·임환종 등을 알게 됨을 기화로 군대이전계획이 이미 백지화됐을 뿐 아니라 공공기관이나 공공단체가 아닌 민간인에게 수의계약으로 불하된다는 것이 불가능한 정보사령부의 부지 불하를 구실로 남의 금원을 편취할 것을 기도했다.이를 위해 김영호는 국방부장관의 대리인격으로 행세하면서 공문서를 위조하는 등 실질적인 범죄의 주도자 역할을,임환종은 김영호의 지시로 관인을 위조하는등 하수인 역할을,곽수렬은 부지 매수인 모집의 총책임자 역할을,신준수는 매수인 모집책중의 한사람으로 피의자와 곽수렬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다.피의자는 김영호와 신준수등의 연결고리로서 부지의 공동매수인을 가장하고 매수인의 전면에 나서 일을 추진할 능력이 있음을 과시하는 역할을 맡았다.이어 곽수렬·신준수등은 정명우·정건중 형제에게 정보사부지를 불하해주겠다며 매수인으로 끌어들였다. 92년 1월31일 김영호의 사무실에서 정보사 1만7천평중 1만평은 정명우에게,7천평은 피의자에게 매도하되 총 매매대금을 7백65억원으로 한다는 등의 부동산 매매계약서를 위조했다. 피의자는 이 계약서를 정명우에게 교부하여 정으로부터 김영호는 즉석에서 계약금 명목으로 76억5천만원을 교부받고 피의자는 차용금 명목으로 금 10억원을 교부받았다.또 피의자는 같은날 저녁9시 정명우로부터 차용금 명목으로 금 20억원을 교부받고 곽수렬은 같은달 23일 정건중으로부터 불하추진비용 명목으로 금 30억원을 교부받아 합계 금 1백36억5천만원을 교부받았다.이 가운데 김영호는 81억5천만원,곽수렬은 30억원,피의자 18억원,신준수 4억5천만원,임환종 2억5천만원씩 분배 편취했다. 92년 4월27일 김영호의 사무실에서 정명우에게 위 정보사부지를 7백65억원에 매도하며 양 당사자는 92년 4월부터 오는 10월까지 추진계획을 충실히 이행한다는 내용등으로 기재한 합의각서를 작성했다.또 같은해 5월7일 김영호의 사무실에서 정명우에게 위 매매계약의 중도금 지불을 준비하라고 협조를 요청하는 내용으로 타자된 「천리마계획 중도금 준비안」을 만들어 정건중에게 교부하는 등의 범행을 저질렀다.
  • 북한 부총리의 서울방문(사설)

    북한정무원 부총리겸 대외경제위원장 김달현씨의 서울방문을 계기로 남북한간 경협문제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남북한은 지난해 12월 13일 역사적인 남북사이 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에 따라 지난 3월 경협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경제협력·교류공동위원회가 구성된 바 있다. 이른바 경협공동위 설치를 전후하여 남북한 경협에 대한 기대가 국내에 팽배했었다.그렇지만 세계적인 관심사항인 북한의 핵사찰문제와 인도적 차원에서의 남북한간 이산가족 재회문제등으로 인해 상호간 경협은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한 상황이다. 교착상태에 있던 남북한경협문제가 북한의 김부총리 서울방문을 계기로 또 다시 경제계는 물론 많은 국민들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그러나 남북한간의 현안문제들은 어느 한 부분을 별도로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게 되어있다. 우리의 안보와 직결되는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남북한간 경제협력은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고 인도적 차원에서의 노부모 방문단교환 사업조차 성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실질적인 경제협력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정부 역시 이번 김부총리의 서울방문에도 불구,『핵문제에 관해서는 상호 사찰의 실시가 남북관계개선의 우선적 과제라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핵문제와 이산가족재회 문제는 경협의 선행과제라 하겠다.이들 과제가 타결된후에야 새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이는 남북한경협문제 또한 여러가지 극복해야 할 사항이 적지 않다.경제체제가 서로 다른 데서 오는 이질적인 장애요인 이외에도 제도면에서 선결되어야 할 사항들이 있다.경제협력을 위해서는 최소한 통신·통행·통상등의 협정이 체결되어야 한다. 인적및 물적교류가 없이는 경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보장할 수 있는 3개의 협정은 남북한경협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김부총리의 서울방문은 남북한 경협의 전단계로서 북측 고위 관료가 우리측 경제와 산업의 실상을 올바로 이해하고 새로운 인식을 갖게하는 의의를 갖는다.이번 방문이 남북한문제 해결에 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되지는 않는다. 남북한간 경제교류를 본격화시키기 위해서는 앞서 밝힌 3통협정 이외에도 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청산등과 같은 구체적인 협정체결이 필요하다.이런 과제들은 북한의 자세여하에 따라 해결속도가 빨라질수도 있고 늦어 질수도 있다.북한은 남북한간의 신뢰회복을 위해 핵사찰을 수용하고 통행협정의 전단계로 볼수 있는 이산가족재회 문제에 적극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인적교류가 없는 경협은 불가능하다.그 점에서 우리는 8·15이산가족 노부모방문단 교환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북한이 진정으로 남북한경협을 원하고 있다면 선행과제들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있어야 할 것이다.한편 국내기업인이나 일반국민들도 현단계에서 남북경협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삼가야 한다.대북경협의 경우 인내와 끈기를 갖고 섬세한 매듭을 푸는 신중한 자세가 요구된다.
  • “파병 본격화”… 독,국방정책 대변환/유고에 구축함등 파견 의미

    ◎“감시할동만” 명분 불구,참전가능성/사민등 야당선 “위헌이다” 반발 조짐 독일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유고봉쇄작전참가를 위해 아드리아해에 승무원 2백68명의 최신예 구축함 「바이에른」호와 「브리키트 아트란트」형 조기경보기 3대를 파견함으로써 그동안 관심이 집중되어온 독일전투병력의 해외파병이 가시화됐다. 독일은 2차대전이후 나토회원국으로 유럽지역내 합동훈련과 비전투 활동에만 독일군을 참여시켜왔으나 이번 전투함등의 파견으로 나토역외 국제분쟁지역으로의 전투병력 파병 문호를 연것이다. 통일독일은 91년 5월 이라크전쟁이 끝나자 걸프만에 기뢰제거 목적의 소해정 3척을 파견했었고 지난 5월 캄보디아 유엔평화유지군에 1백50명 규모의 의무부대를 보냈지만 이는 비전투요원이나 장비였던 것에 비해 이번 파병은 막강한 화력을 보유하고 있는 최신예 전투함이라는 점이 큰 차이가 난다. 이때문에 이번 파병을 두고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어디에 어떤 목적으로 파병하느냐 하는데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킨켈독일외무장관은이점을 의식,독일군 역할은 나토와 서유럽동맹(WEU)범주내에서의 합동작전에 국한되며 장병들에게는 항해선박감시 임무만 주어져있지 전투행위는 엄격히 금지돼 있다고 강조했다.킨켈장관은 따라서 이런 목적의 파병은 독일 헌법인 기본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그러나 「바이에른」호가 공격을 받게되면 자연 전투가 벌어질 것이고 독일군의 참전은 불가피해진다는 점에서 이번 전투함 파견은 전투병력의 해외파병 선례를 기정사실화하려는 독일국방정책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독일기본법은 「방어목적이외의 전투병력 파병은 기본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금지한다」(87조ⓐ)고 규정하고 있다.이같은 이유로 야당인 사회당(SPD)은 해외파병은 위헌이라며 법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집권 연정 기민(CDU)·기사당(CSU)은 「독일군은 동맹체제의 안보를 수호하기 위한 임무를 수행한다」(24조)는 조항을 들어 나토동맹국들과의 합동작전에 동참하는 것은 위헌으로 볼 수 없다는 이론을 내세워 이번에 해군을 파견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여야의 시각차 때문에 SPD는 독일군이 유엔평화군에 소속돼 활동하는 것도 법적으로는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CDU는 유엔목적의 군사활동은 집단안전시스템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이다. SPD는 이때문에 2주전 독일군의 해외파병은 나토와 서유럽동맹지역내에 한해서 평화유지를 목적으로 할때만 허용하도록 명문화하는 기본법 개정안을 제출해 놓고있다. 독일은 일본과는 달리 유럽집단안보체제 일원인데다 통일후 이웃국들의 의구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기회있을 때마다 유럽에서의 패권주의 포기를 강조하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는 유럽공동체(EC)범주에서,군사적으로는 나토등 집단안보체제 안에서만 활동할 것을 다짐하고 있어 해외파병이 국내외적으로 큰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지는 않다. 이때문에 야당도 해외파병 자체를 반대하기보다는 파병 목적·대상지역을 명시하도록 기본법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일본과 다른 분위기이며 이웃나라들도 동맹체 안에서 독일군의 공동군사활동을 불가피한 추세로 인식하고 있다. 독일이 전투임무가 따르는 유엔평화유지 활동에 참여하는 기본법 개정은 현재로서는 94년 총선이후 차기 연방의회에서 처리될 전망이지만 이번 해군함정 파견을 계기로 유엔활동 지원목적과 합동군의 역할이라는 전제조건만 있으면 앞으로 세계분쟁지역 어느곳에라도 전투병력을 파견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고 하겠다.
  • 공무원의 당직근무 내일부터 줄이기로

    총무처는 11일 공무원당직및 비상근무규칙을 개정,오는 13일부터 인원이 적은 2개 이상의 행정기관이 같은 건물을 사용하는 경우 기관별로 1명,총 2명이상 당직근무를 하던 것을 최소 1명까지 통합해 당직근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총무처는 또 인원이 극히 적은 일선행정기관의 소속 공무원이 주 1회이상 당직근무를 하게되는 경우 해당 기관장이 무인전자경비시설이나 전화자동수신장치를 설치하는등 보완조치를 강구,당직근무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 과열경기 진정세 뚜렷/통계청,5월 산업동향/강력한 냉각정책 주효

    ◎생산·소비·투자 전반적 둔화/동행·선행지수 89년이후 첫 동반하락/재고 작년보다 16%늘고 제조업가동률 78% 정부의 강력한 경기진정책에 따라 최근 산업생산을 비롯한 국내경기의 주요지표가 지난해보다 크게 둔화되고 있다. 5월들어 생산·소비·투자가 현저히 둔화되고 경기지표도 동행지수와 선행지수가 지난89년 2월이후 처음 동반하락세로 돌아섰다. 정부는 이같은 경기둔화가 지난해 5월 산업활동이 이례적으로 활발했기 때문이며 6월에는 다시 견조한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3일 통계청이 발표한 「5월중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산업생산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5.3%가 늘었으나 지난4월보다는 3.1%가 감소했다.출하도 전년동기대비 5.1%상승에 그쳤다.이에따라 제품재고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16.4%가 늘었으며 제조업가동률은 78.2%로 지난해 6월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투자부문에서는 설비투자의 선행지표인 기계수주가 전년동기대비 5.8% 줄고 기계류수입허가와 내수출하도 각각 45.3%,2.1%의 감소세를 나타내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건설투자는 건축허가면적이 상업용건축규제로 전년동기대비 31.3%가 줄었으나 건설수주는 도로·항만등 사회간접자본시설의 투자확충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가 늘었다. 높은 수준을 보여온 소비도 도·산매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가 늘어나는데 그쳤고 내수용 소비재출하도 1.2%의 낮은 증가에 머물렀다. 현재의 경기상태를 보여주는 경기동행지수는 4월보다 0.5%가 하락,2개월연속 떨어졌고 3∼6개월뒤의 경기를 예고해주는 경기선행지수도 지난해 4월이후 처음으로 하락세로 반전,0.4%가 떨어졌다. 경제기획원은 그러나 업종별로 섬유 식료품 의복 음료등 노동집약적 산업의 생산이 부진한 반면 석유정제 운수장비 화학제품등 자본집약적 산업이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는데다 지난해 5월의 생산활동이 이례적 활황(전년동기대비 12.4%)을 보였던 점을 들어 경기불황이 아니라 경기진정세가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 해양정책조정위 설치의 뜻(진단)

    ◎해양자원 확보·환경보호 「다각 허방」/면적 국상 4.5배… 「바다보고」 개발박차/관리형어업 전환,행정기능도 일원화 정부가 2일 정원식국무총리 주재로 「해양행정개선 종합대책」을 위한 관계장관 회의를 열어 「해양정책조정위원회」를 구성키로 한것은 상대적으로 뒤진 해양정책의 개발과 이를 뒷바침할 행정기능을 갖추기 위한 것이다. 「해양정책조정위원회」는 정부의 해양정책기능을 활성화하고 이를 적극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 앞으로 바다에 대한 정부정책이 종합적으로 입안·추진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비록 늦은 감은 있으나 정부가 해양정책의 중요성을 감안,종합적인 행정기구를 갖춘 것은 다행스런 일이며 일관된 정책추진으로 효율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관할가능해역이 국토의 4·5배에 이르고 1만2천㎞의 해안선과 3천2백개의 섬을 보유해 좋은 해양환경을 갖추고 있음에도 여건상 행정기능이 그 중요성을 따라가지 못한 채 그대로 방치되다시피 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연안해역 이용에 관한 종합적인 계획이 없어 해양행정이 과기처·동력자원부등 12개부처와 수산청등 3개청에 분산된채 임해공단개발과 공유수면매립등 연안공간자원이 개별법령에 따라 이뤄져왔고 이에따른 환경영향평가및 경제성검토는 미약했다. 또 해양과학기술분야에 대한 투자가 적어 해양에너지·해양생물공학기술등 첨단기술분야에서 선진국 보다는 약7∼8년 뒤진것으로 알려졌고 해운정책은 항만청에서,조선행정은 상공부에서 관장하는등 선원·선박및 해운행정에 일관성이 미흡했던게 사실이다. 이에반해 미국은 지난72년 「연안역관리법」을,프랑스는 지난63년 「공공연안역법」등을 선포해 연안수역을 합리적으로 관리해오고 있다. 정부도 이같은 점을 인식,지난87년 「해양개발기본법」을 제정하고 과학기술처 산하에 해양개발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으나 방대한 해양행정을 과기처에서 종합조정하는 데는 한계점이 노출돼 위원회는 구성조차 하지 못했었다. 신설된 해양정책조정위원회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고 관계장관및 민간전문가가 참여,해양발전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정책기능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심의·확정하게 되어 운용에 따라 우리나라도 해양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는 우선 내년부터 오는 97년을 「해양발전종합계획」년도로 잡아 올해말까지 총리실·경제기획원등 관계부처와 민간전문가가 참여하는 공청회등을 거쳐 중장기 추진방안과 사업우선순위·연차별투자계획 등을 담은 종합계획을 수립할 방침이다. 종합계획안에는 해양자원의 개발·이용·해양과학기술개발등 해양정책 전반에 대한 시책이 모두 포함 된다는 것이 정부측의 설명이다. 수산자원과 해양에너지자원의 경우에도 연근해어업자원을 적극 조성하고 간척·매립을 신중히 하는등 지금까지의 채취어업에서 「자원관리형어업」으로 전환하며 대륙붕탐사 등에서 탐사방향을 재정립하는 한편 연안역관리법을 제정해 육지의 그린벨트와 비슷한 「블루 벨트」를 설정,해양환경보전효과와 동시에 자원을 확보토록 할 계획이다. 특히 해양환경보전 측면에서 해운항만청·해양경찰청·수산청 등으로 분산된 환경보전기능을 해운항만청으로 일원화시켜 오염방지기능이 효율적이 되도록 했고,인천·군산·목포등 3개지역을 특별관리해역으로 지정해 수질측정망을 확대 관리키로 했다. 정부는 이와함께 대내외 여건상 범정부적인 위원회를 구성,대처하기로 했으나 앞으로 21세기를 대비한 정부조직개편시 해양전담부설치도 장기적으로 신중히 검토하기로 했다.
  • “국회권능 강화에 최선 다할터”/14대국회 박준규의장(인터뷰)

    ◎“국민 생각하는 초당적 의정활동 절실” 『과거에는 정부가 국회를 「통법부」로 만들었는데 최근에는 정당이 국회를 그 모양으로 만들고 있습니다.앞으로 국회가 정당위에 서는 풍토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3대국회 후반기에 이어 29일 14대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재선출된 박준규의장(67)은 국회의 권능강화를 제1의 소명으로 꼽았다. 박의장은 『국회의원 개인은 당명위에 국회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해야할 때』라면서,『국회운영도 여야대표의원(총무)간 결정에만 따를 것이 아니라 유럽선진국가처럼 장시간 논의를 거치는 협의제(합의제)로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연임된 소감은. ▲지난 2년동안의 경험을 살려 시정할 것은 과감히 고쳐나가겠다.하루 한가지씩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다는 기분으로 선진 국회상을 정립해 나가겠다. ­국회운영 개혁방안은. ▲국회운영이 각 당 총무중심의 과두적 형태에서 벗어나야 한다.의원 개개인의 양심에 의거한 초당적 의정활동이 절실히 요구된다 하겠다.단순한 다수결원칙에 따른 강행통과나 실력저지등은 지양해야 한다.힘들더라도 오랜 토론과 타협과정을 거쳐 국민 누구나가 수긍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실현이 어려울 것 같은데. ▲이번 대통령선거 이전에는 힘들겠으나 선거이후에는 점차 정착되어갈 것이다.국민정서가 양당제에서 멀어지고 있으므로 대선후에는 정계재편이 일어나고 국정운영도 내각제적 협의형식으로 해나가게 될것이다. ­의장이 당적을 내놓는 방안은. ▲여야가 협의해서 결정할 문제다.당적을 보유하더라도 운영은 초당적으로 하겠다. ­개원벽두부터 단체장선거문제로 파행이 예상되는데. ▲반드시 타협점을 찾아 원만한 국회운영이 되리라 확신한다.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가는 사람은 대선에서 큰 불이익을 당한다는 사실을 각 당이 깨닫는 다면 서로 협력하게 될 것이다. ­14대 국회에 바라는 바는. ▲크로스 보팅,자유질의·토론이 가능하도록 국회법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국회의장이 발언권을 주는데 각당 총무의 동의를 얻어야하는 국회가 세상 어디에 있는가. 박의장은 지난 60년 민주당의원으로 정계입문한 이래 구공화당·민정당·민자당을 거치며 8선을 기록했다.스스로 「의회주의자」라 칭할 만큼 국회안에서의 정치협상을 중시하며 실제 여야를 불문,친화력이 대단하다.미콜럼비아대박사과정 수료후 잠시 서울대 정치학교수를 지냈고 정계입문후 구공화당의장,민정당대표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 민족성의 창조/이용성 중소기업은행장(굄돌)

    하나의 민족에게도 개인과 같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불변의 민족성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점은 잘 모르겠지만 한 시대를 살아가는 민족의 특징적인 면모는 구별되는 것 같다.그래서 영국인은 걸으면서 생각하고,프랑스인은 생각하고 나서 뛰며,스페인사람은 뛰고 나서 생각한다는 등 민족성에 관한 재담들이 회자되곤 하는가 보다. 우리나라의 민족성에 대해서는 일본사람들이 우리 역사의 몇몇 치부만을 들취내서 그것이 마치 우리 민족의 전부인 양 게으르고,싸움질 좋아한다는 등 극히 부정적인 상을 새겨놓았다.일제시대에 교육을 받은 세대들은 아마도 귀가 따갑게 이 말을 들었을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한국인상은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하다는 일본인들을 게으르게 보이게 하는 유일한 민족」이란 찬사로 바뀌게 되고,최근에는 다시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비아냥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보면 타고난 민족성이란 본래 없는 것이고,오히려 시대상황과 그 시대의 사회구조에 따라 민족성은 변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인간이나 국가의 행동양식이 꼭 민족성과 같이 선악 등의 윤리적 가치판단만에 의해 규정되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한 때 그토록 우려했던 과소비풍조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이에따라 국제수지 적자 폭도 개선될 기미가 보인다니 오랜만의 희소식이다 바야흐로 삼페인 소리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물론 아직도 경제전반에 많은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 근대민족사처럼 문제점과 위기,그리고 격랑으로 점철된 경우도 없었을 것이다.그렇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이를 극복해 온 것이며 최근 경제발전 과정의 숨가쁜 고비를 그때마다 용케도 극복해 왔다.그리고 그러한 사실들은 앞으로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강한 기대와 자신감을 가지게 한다.민족성이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면,과거에도 이룩해 왔으니까 미래에도 성취할 수 있다는 가정은 현재에도 뛰고 미래에도 뛰어야 한다는 전제가 선행되어야 한다.그리하여 20세기 후반기에 우리 민족은 「뛰면서 생각하고,생각하며 뛴 민족」으로 기억되길 기대해 본다.
  • 「6·29선언」 5년의 의의와 과제/교수 정담

    ◎우리사회 「민주화개혁의 불」 댕기고 보편가치 추구로 국민통합길 열다 6·29 민주화선언은 우리사회를 권위주의체제에서 민주국가로 출발하게 한 역사적 대전환의 동인이었다.지난 5년동안 우리의 정치·경제·사회등 모든 분야는 엄청난 변화를 초래했다.정권의 정통성 시비를 해소하고 평화적인 정권을 창출했으며 북방정책,남북 기본합의서 채택,유엔가입등이 성공리에 추진되고 이뤄졌다.형식적 민주주의에서 실질적인 민주화로 이행되는 기반도 구축했다.6·29의 의의와 성과,과제등을 나종일(경희대 ·정치학)김영섭(한양대·행정학)신의순박사(연세대·경제학)등 3명의 교수들의 좌담을 통해 들어본다. ▷참석자◁ 김영섭교수 한양대 행정문연소장·행정학 나종일교수 경희대 대학원장·정치학 신의순교수 연세대 상경대·경제학 ◎형평분기등 국민욕구 수렴 “큰 뜻”/새 국제질서 대응,예측 가능한 정책 펼쳐야 ▲나종일교수=6·29 선언은 우리사회를 정체된 권위주의체제에서 민주화과정으로 들어서게 한 중요한 계기라고 볼 수 있읍니다.즉 권위주의 정부에서 민주주의 정부로 이전,이것이 6·29의 중요 정신인 것입니다.선언이후 권위주의적인 헌법이 철폐됐고 직선에 의해 대통령이 선출됐습니다. ○권위주의체제 청산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민주화의 정착입니다.라틴아메리카 처럼 혁명과 쿠데타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모처럼 조성된 민주화가 왜곡된다면 그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어쨌든 학문적인 입장에서 접근한다면 6·29의 가장 큰 의의는 정권의 형식적인 정통성을 확립했다는 데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영섭교수=6·29가 정치·사회발전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상존합니다.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정권의 정통성이 확립됐다는 것입니다.또 국민 개개인이 가치관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그동안 권위주의 정치체제에 찌든 국민들의 가치관이 보편주의가 지배하는 가치관으로 전환됐다고 볼 수 있지요.이것이 민주주의의 큰 토양이 됐고 너와 내가 동일하다는 자유의 개념도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긍정적인 면도 잘못되면 사회혼란과 무질서의 방향으로 흐를 위험이 있습니다.6·29가 어디까지나 금지됐던 자연적 자유회복에 불과하지 적극적인 사회발전의 규범적 질서는 가져오지 못했다는 견해가 6·29의 부정적인 측면입니다.정치지도 이념의 적극적인 제시가 없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경제적 안정이 배경 ▲신의순교수=그동안 학계·언론계·정계 모두 6·29에 대한 고찰을 정치적인 측면에서만 해온 게 사실입니다.물론 당시 상황이 정치·사회적으로 혼란스럽긴 했지만,경제적인 측면에서의 고찰이 전혀 없었던 점은 경제학자로서 아쉬운 대목입니다. 6·29선언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근본적으로 「3저호황」으로 인한 경제적 안정이었습니다.만약 당시 상황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다면 민주화를 요구하는 정치적욕구 분출이 과격하거나 급격히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경제적 번영은 정치적 안정을 필요로 합니다.6·29 이후 우리 경제는 오히려 성장추세가 둔화되는 부작용을 낳지않았나 생각됩니다.경제적 안정의 상실을 담보로 정치적 민주화를 가져왔다고 볼 수있죠.경제의 정치적 측면이 크게 부각된 87년의 노사분규와 급격한 임금인상이 그 좋은 예입니다. 그러나 이는 부정적인 측면일 뿐 직종별 임금격차가 줄어들고 생산직·저학력 근로자의 임금이 상승하는등 분배 측면에서 보면 긍정적인 부분이 많습니다.경제의 요체는 효율과 형평인데 형평의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했다는 점,이것이 6·29의 또 다른 경제사적 의의로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사분규등 부작용 ▲나교수=신교수의 분석에 동감입니다.효율성을 강조하던 지난 30년간의 경제구조하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자기몫」이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시민사회의 영역이 커졌다는 얘기입니다.이런 점에서 볼 때 6·29는 일견 통치 정예세력이 시민세력에 밀려 양보한 것으로 분석할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6·29는 이렇게 간단히 정의할 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그렇지않은 부분도 있는 복합적인 사건이었지요.사건 자체는 선제 기습적인 면이 많지만 이 선언의 이면에는 통치권 엘리트의 자신감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6·29이전의 정권은 명분이나 정통성은 없었지만 그러나 그동안의 치적이 나쁜 것은 아니었습니다.국민의 요구에 따라 정국주도권을 획득하는 과감한 결단에도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이같은 자신감은 6공의 괄목할만한 성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무엇보다도 정권에서 군부의 그림자가 퇴색했다는 점입니다.87년 당시만해도 정치에 군부의 그림자가 있었습니다.그러나 이제 쿠데타의 위험이나 군부의 압력등은 정치적 변수에서 제외된 것이 큰 변화라고 볼 수 있지요. ▲김교수=좋은 지적이라고 생각됩니다.6·29는 언론의 자유,결사의 자유,누구든지 입후보할 수 있는 피선거권 행사의 자유,집단이익을 자유로이 표출할 수 있는 자유등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자유권에 대한 신장을 가져왔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우리 민주정치 발전사에 거보를 내디디는 계기가 됐지요. 그러나 진정한 민주화,즉 민주적 발전이란 시민의식의 혁명적 변화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타협·양보정신 절실 시민의식의 변화는 위로부터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며,그 중에서도 정치 엘리트와 관료 엘리트의 변화가 창조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유감스럽게도 이 부분이 다소 뒤떨어진 느낌입니다. 단적인 예로 민자당의 대통령 경선과정에서 보인 모후보의 파행적인 자세를 들 수 있습니다.민주적 결정이란 타협과 양보가 전제되어야 하고 자기 희생을 필요로 합니다.민주주의는 종교적 가치와 달리 절대적 선을 추구한다기 보다는 상대적인 선을 추구하는 과정이기 때문이죠. ▲신교수=일본 경제학자인 타이라교수의 「타이라 수수께끼」라는 게 있습니다.정치적으로는 독재국가인데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국가가 성공한 사실을 얘기한 것이지요.과거 한국·대만·일본등이 독재적 성격이 강한 나라이면서도 자본주의가 성공한 나라로 꼽힙니다.정치의 완전한 민주화 보다는 어느 정도의 통제가 자본주의의 성공을 가져왔다고 보는 것입니다.이런 체제가 5공까지의 우리의 원칙이었습니다.이 원칙이 6·29를 통해 전환기가 마련됐지요.정치가 민주화되고 경제도 시장중심체제로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평화적 정권창출로 정통성 확보/표현자유등 기본권 신장… 국민자신감 얻게 그이전에는 정부가 자금배분이나 중점사업 육성등 모든 경제 주체에 작용했습니다.6·29 이후 정치민주화와 관련,경제분야에서도 임금인상등 자기몫 찾기가 활발해져 기업운영이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언젠가는 겪어야할 과도기이지만 이같은 경제적 전환기에 맞춰 정부의 정책에 일관성이 결여되지않았나 하는 지적들이 있습니다.정책의 일관성과 불확실성의 극소화가 무척 절실히 요청되는 때입니다. ▲나교수=앞서 지적했 듯이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민주화정착의 과제입니다.김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언론과 표현의 자유등 기본적 인권이 신장된 것은 사실입니다.또 정치체제도 공개적인 성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법정의의 실현및 개선 부분은 아직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봅니다.특히 법죄혐의자를 다루는 과정에서 기본적인 인권보장이 완벽하게 실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공포감이나 치욕을 주는 실재가 아직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여겨집니다.뜻과 법률이 있다고 해서 민주화가 정착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관행이 세워져야 합니다.올드 볼셰비키인 치타아코프스키의 다음과 같은 얘기는 그런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혁명은 성공했지만 민주화 실현은 어렵다.범죄자를 다루는 관행이 아직 마련되어 있지않다』 우리의 현실도 아직은 이 부분에 대한 개선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홍보기능 중요 ▲김교수=정치나 행정을 발전 시각에서 보면 수직적 개념과 수평적 개념의 틀을 쌓아가야 하는 것입니다.수직적 개념이란 쉽게 말해 규범적 성격이 강조되는 전략·전술적 차원의 통치행태로 국민통합과 조화가 그 목적입니다.이를 위해선 규범적 차원에서의 정치이념이 먼저 정립되고 정치체제의 「목적지향성」이 갖춰져야 합니다. 수평적 차원에서의 정치발전은 그 사회가 바람직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또는 되어 있는가를 측정하는 겁니다.물론 바람직한 지적구상을 선도해야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정치지도층입니다.이런 점에서 정부의 홍보기능은 매우 중요하지요.그런데 우리 정부의 홍보기능이 전환기적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왔는가,이 질문에는 의문이 갑니다.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전략차원의 단기적인 이익에만 급급한 나머지 무질서와 파행적인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는데,이를 얼마만큼 단시일에 극복하느냐가 6·29의 남은 과제중 하나라고 봅니다.6·29는 민주화의 시발일뿐 완성이 아닙니다. ▲신교수=6공이 경제적으로 내세우는 가장 큰 치적중의 하나가 경제정의 실현입니다.부의 균배,정경유착의 부조리 척결,대기업의 집중완화 등을 그 주된 이유로 들고 있죠. 그러나 부동산 투기및 주식투자를 통한 이른바 「재테크」의 성행,상속에 의한 경제집중 심화,비생산 분야로의 노동력 이동등의 부작용도 없지 않았습니다.모두 힘들고 어렵고 더러운 일을 기피하고 쉽게 돈버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거죠. ○지역감정 해소 시급 정치적 민주화와 안정은 구분되는 것입니다.과거와 비교할 때 정치적 민주화는 달성됐지만,안정을 이룩했느냐는 믿음에는 부정적입니다.정치적 불안정에서 배태된무질서와 개인주의,지역적 이기주의등이 사회전체에 무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무관심은 곧바로 경제적 부작용으로 나타났습니다.개인적으로는 일하는 것을 싫어하게 되고,국가적으로는 국제경쟁력 약화,무역역조,물가불안등의 현상을 야기시킨 것입니다. 사실 이같은 부작용은 80년대 후반들어 학계에서부터 예견되어 왔습니다.정부가 실기를 한셈이죠.정치민주화와 북방정책,올림픽등에 치중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지금의 세계경제는 동구권의 붕괴지역블록화 현상,신보호주의 등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추세입니다.정치적 안정과 경제문제에 정부가 보다 더 신경을 쓰는 것이 6·29의 참된 의미를 되살리는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라교수=신교수가 정치민주화와 안정을 구분했는데 저는 이 부분에 대한 견해를 달리합니다.근본적으로 민주화와 안정은 같이 가는 겁니다.권위주의적인 정부와 경제부분의 강력한 리더십은 구별되는 것이지요. 6·29의 성과로 또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비교적 공정한 선거입니다.지난 광역선거때 야당이 참패를 했으나 시비가 전혀없었습니다.참정권이 공정했느냐,물론 이 부분에는 이견이 있을수 있습니다.하향식 공천,금권선거,부재자 투표시비,전국구헌금 공천등은 없어져야 할 관행이기 때문입니다.또 6·29 이후 적나라하게 반영된 지역성 문제는 민주주의 정착을 요원하게 하는 망국적 병폐로 정치지도자들에게 치유의 무거운 책무가 있다고 봅니다. 민의 수렴을 위한 정당구조의 안정및 선출직이 아닌 관료사회에 대한 견제와 균형 회복등도 앞으로 해결해야될 과제중 하나입니다. ▲김교수=국가정책 결정에 인간적인 요소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봅니다.「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것을 국가정책 결정의 기본으로 삼았으면 합니다.또 우리의 대통령은 국민에게 「정치와 경제보고」만을 하고 있는데,바람직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사회보고」도 이뤄졌으면 합니다.끝으로 미래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교육제도를 혁신했으면 해요. ○장기적 안목서 대응 ▲신교수=분배측면에서 평등을 확산시키고 주택 2백만호 건설과 토지공개념 정착등으로 어느 정도 경제정의를 실현했습니다.양면성이 있지만 대외 경제의 개방 폭을 넓혀 우리의 기업을 세계경쟁 속으로 편입시키기도 했습니다.즉 경제자유화의 기틀을 마련한 셈이죠.다만 점진적인 경제구조 개편,기술집약능력확보 등이 시급한 과제들입니다.경제부문의 불확실성을 과감히 줄여나가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할 문제이지요.
  • 대기업(경제 거품 걷히는 현장:6)

    ◎「과소비」 줄자 매장마다 “재고더미”/가전사들,내수둔화로 경영난 심화/기업들 기구축소·경영합리화등 자구책 몸부림/군살빼고 전문화해야 경쟁력 회복 「에어컨을 세일합니다」 서울시내 주요 백화점과 대리점의 가전제품 매장에는 요즘이 연중 에어컨 최대성수기임에도 창고마다 재고가 쌓여 10%에서 최고 30%까지의 가격인하판매를 알리는 선전문구들이 요란하다.전반적인 수출부진 속에서도 연 20∼30%의 견실한 내수신장으로 재미를 보았던 국내가전3사가 이제는 극심한 내수부진에 시달리고 있다는 증거다. 내수둔화 현상은 가전부문에 국한되지 않고 대기업이 손대고 있는 거의 모든 업종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국제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지난 90년이래 고도첨단기술을 응용한 고가품은 일본산에 밀리고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저가품은 동남아산에 쫓겨 한국산제품이 해외시장에서 설땅을 잃어가고 있는 판에 내수시장마저 예전같지 못하다는 것이 대기업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국내대기업들은 수출부진에다 내수둔화까지 겹쳐 고통스런 불황국면을 맞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의 경우 30대그룹의 제조업부문 평균 매출액신장률은 18%에 달했다.그러나 올 상반기 중에는 업종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10%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관련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재계의 올상반기중 경영실적전망을 그룹별로 보면 삼성이 해외건설·반도체 분야에서 20∼30%의 매출액신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될뿐 섬유·가전·컴퓨터·중공업분야는 지난해보다 신장률이 크게 둔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그룹도 해외부문은 비교적 호조를 보이고 있으나 자동차 내수부진,철강재고누적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럭키나 대우등도 뚜렸한 호황업종이 없는데다 가전및 자동차의 극심한 내수부진으로 매출액신장률이 크게 둔화될 것으로 보고있다. 재계는 수출이 되살아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내수마저 위축되고 있어 이같은 추세가 하반기에도 계속될 경우 국내 경제는 심각한 불황국면에 빠질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임동승삼성경제연구소 소장은 『기업의 설비투자가 급격히 냉각되고 있으며 경기선행지표인 기계류의 국내수주및 수입이 대폭 둔화되는 등 불황을 예고하는 신호들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면서 『각종 거시경제지표들이 더이상 악화되기 전에 신속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기악화로 고전은 하고 있지만 대기업들의 자금사정이 악화되는 조짐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지난해까지만 해도 변칙금융인 하루짜리 타입대를 수백억원씩 끌어다 썼던 일부대기업의 경우 올들어서는 타입대이용이 자취를 감췄다.대우그룹 계열사의 한 자금담당임원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올해의 경우 최소한 돈걱정은 별로 안하고 있다.자금이 잘 돌아서가 아니라 기업의 투자의욕 자체가 꽁꽁 얼어붙어 투자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30대그룹가운데 연초에 세웠던 설비투자계획을 예정대로 추진하고 있는 그룹은 10여곳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특히 10대그룹의 경우는 금년도 설비투자목표를 10∼35%까지 축소 조정했다.그 결과 대형신규프로젝트는 대부분 경기전망이 불투명해짐에 따라 추진을유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현대·대우등 주요그룹의 올상반기 계획대비 설비투자 실적은 70%선에 그치고 있다.롯데·기아등은 올해 시설투자계획의 30%를 이미 내년으로 연기한 상태다. 재계는 불황국면의 진입이 점차 가시화됨에 따라 각그룹별로 불황을 이겨내기 위한 몸부림을 본격화 하고있다.불황타개를 위해 각그룹들이 펼치고 있는 경영합리화 노력의 골자는 각종경비의 절감,호황기에 필요이상으로 비대해진 기구와 인원의 축소등 고통을 수반하는 감양경영으로 나타나고 있다.수출부진과 긴축정책의 지속에 따른 수입수요의 감퇴로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는 각그룹에는 감원바람까지 불고있다. 이같은 재계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진단과 처방은 다르다.매년 20∼30%의 매출신장률이 줄어들고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수준이 결코 낮거나 불황은 아니라는 것이다.오히려 일시적인 고충이 따르더라도 그동안 방만하게 벌여놓은 사업들을 정리,군살을 빼고 전문화를 이루어야만 경쟁력이 회복되고 착실한 성장을 지속할수 있다는 진단이다.
  • 「통합유럽」 의지 재확인 할듯/리스본 정상회담 뭘 다루나

    ◎회원국 확대·유고내전 주의제로 유럽공동체(EC) 12개국 정상회담이 26∼27일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열린다.연례회담인 이번 회의는 지난해 12월 마스트리히트조약이 체결된지 반년만에,그리고 이 조약이 각국에서 비준되어야 할 시한을 반년 남기고 열린다.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대한 중간 점검의 시점이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1993년 1월1일 발효하게 되어 있다.조약이 발효되려면 회원국이 각기 국내법에 따른 비준절차를 밟아야 한다.현재까지 비준한 나라는 아일랜드 뿐이다.덴마크에서는 의회가 절대다수로 가결했지만 6월2일의 국민투표에서 근소한 차이로 부결되어버렸다. 프랑스에서는 이 조약비준에 선행되어야 할 헌법 개정이 6월23일 상·하 양원합동회의에서 이루어졌고 조약비준 여부는 가을에 국민투표를 실시해 결정하기로 했다.그밖의 다른 나라에서는 의회에서 이를 결정한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탄생하는 과정에서 영국의 완강한 고집으로 이 나라에만 부분적 유보를 인정하는 조항을 따로 두어야 했다.현재도 이 조약은 여러 회원국에서깊은 회의와 높은 반대에 부닥뜨리고 있다. 덴마크의 거부가 준 상처가(아일랜드와 프랑스가 어느 정도 상쇄하기는 했으나)유럽 통합에 여전히 부정적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가운데 리스본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이다.회원국 확대문제토의는 충격적인 덴마크국민투표 결과로 말미암아 일단 뒤로 미루어지던 분위기였다가 6월19일에 있었던 아일랜드 국민투표의 압도적 비준지지에 힘입어 되살아나게 되었다.6월20일 룩셈부르크에 모인 회원국 외무장관들은 유럽공동체 집행위원회가 작성한 회원국확대초안을 검토했다.이 문제는 이번 정상회의의 주요안건이 될것이다. 초안에 따르면 옛 소비에트 연방의 나라들은 발트3개공화국 외에는 검토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터키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나라일 뿐 아니라 가입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평가되었다.키프로스는 분단 상태이고,몰타는 나라가 너무 작고,오스트리아·스웨덴·핀란드는 중립국이기 때문에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되었다. 유럽공동방위문제 논의도 계속될 것이다.이 문제는 6월20일 서유럽동맹(WEO)외무·국방장관들의 회의에서 나온 「페테르부르크 선언」으로 상당히 정리되긴 했으나 좀더 명확하게 다듬어져야 할 부분들이 많다. 마스트리히트조약이 회원국의 주권축소를 강요함으로써 오히려 유럽 통합을 방해하고 있다는 비판과 이 조약에 대한 반대가 곧 유럽통합반대가 될 수는 없다는 비판세력들의 주장들이 덴마크의 거부 이후 자주 나오고 있어,이번 회의에서 정상들의 통합 의지를 재확인하는 태도 표명이 있을 수도 있다. 이밖에 정상회담은 유고내전 체코분리문제 독립국연합(CIS)에 대한 경제원조등 동구 문제등도 논의될것으로 보이며 최근 EC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공동농업정책개혁에 대한 평가,그리고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을 위한 공동전략을 토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 남침에서 「합의서」 채택까지… 그 교훈과 통일 전망 대담

    ◎현실 무시한 감상적 통일론 경계할때/평양,체제유지 하려 대화채널 이용/상호사찰수용등 「합의서」 이행 급선무/남북신뢰 구축의 지름길은 북의 적화야욕 포기/마찰작은 문화­경제교류 힘써 북의 변화 유도해야 「과거는 지나간 현재이며 미래는 다가올 현재」라는 말이 있다.역사는 항상 연속선상에서 진행된다는 말인 것같다.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이 발발한지 어언 42년이 흘렀다.최근의 남북관계진전은 우리 민족 모두에게 통일에의 꿈을 부풀게 하고 있다.하지만 핵사찰문제에서 알수 있듯이 남북관계는 현실을 무시한채 성급한 결론을 유도하기 힘든 난제가 아닐 수 없다.국군사의 산 증인 채명신 전주월한국군사령관과 북한문제전문가 유석렬외교안보연구원교수의 대담을 통해 「6·25에서 남북합의서 채택」까지의 역사적 교훈과 통일의 전망등을 들어 본다. ▷채명신◁ ▲육본 작전참모부장 ▲주월한국군 총사령관 ▲주 스웨덴·그리스·브라질 대사 ▷유석열◁ ▲미 미주리주립대 정치학박사 ▲미 북 아이오와대 조교수▲현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유석렬외교안보연구원교수=올해로 6·25전쟁 42주년을 맞았습니다. 이 시점에서 6·25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을 최근의 남북관계와 연결시켜 조망해보는 것이 올바른 남북관계를 펼쳐나가고 이해할 수 있는 기틀이 된다고 봅니다. 6·25는 북한이 남한을 침략한 것이지만 어찌보면 남한이 너무 무방비상태였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군사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적으로 혼란한 상황이어서 우리에게도 책임은 있다고 볼수 있는 것입니다. ▲채명신 전주월한국군사령관=저는 6·25가 발발하기 전에 북한에 거주하다 47년에 월남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해방직후 북한사정은 잘 알고 있지요.좌경화된 일부 세력은 6·25가 남침이 아니라 북침이라고 주장하는데 터무니없는 얘기입니다.6·25는 소련군부가 북한 공산군을 육성,치밀한 계획아래 준비한 끝에 일으킨 것입니다.시초단계에서는 소련군이 주도했고 김일성은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진후 남침계획에 참여했다고 보여집니다.46년 2월 본인이 진남포근처 보통학교에서교편을 잡고 있을때 공산당간부훈련기관인 평양학원설립식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그 설립식에서 축사를 한 소련군 사령관과 북한주재대사가 「내년에는 여기에 탱크·공군기가 참여할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했지요.이것은 6·25를 스탈린이 주도했고 김일성이 그 꼭두각시 노릇을 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실입니다. ▲유교수=말씀 중에 북침얘기가 나왔는데 요즘은 많이 들어갔지만 한때 일부 좌경운동권 학생들에 의해 많이 주장됐었죠. 분명한 것은 3일만에 서울이 함락당한 것이나 전쟁 발발당시 전군의 3분의 1만이 근무중이었던 점만을 봐도 북침은 전혀 근거없는 주장으로 생각되는데 채선생님께서 좀더 설득력있게 설명해주시죠. ○수차례 예비도발 ▲채전사령관=소련과 김일성은 6·25 남침을 치밀하게 준비했습니다.저는 장교임관 후 48년 송악산전투 등 인민군과 치열한 정기전을 여러차례 치렀는데 우리쪽 전투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예비도발이었어요.또 2천5백명에서 3천명에 달하는 게릴라부대를 태백산 등지에 남파시켜 후방을 괴롭혔는데 이것도 우리의 군전투능력을 분산시키려는 의도였습니다.게다가 50년 6월25일은 일요일이었으며 3분의 1 이상의 병력이 외출을 나간 상태였지요.농촌출신 군인들은 농번기휴가를 내보냈었습니다.그것도 새벽 4시의 기습남침이었으니 첫날부터 우리의 군전력이 궤멸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요.이때 두가지 미스터리가 아직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첫째는 군비상경계가 6·25전쟁발발 하루전에 해제된 이유와 둘째는 그해 6월10일 전후 대대적 군인사가 단행돼 6·25당시에는 자기 부대순시도 채 못한 전방 연대장·사단장이 많았었다는 점이지요. ○두가지 미스터리 ▲유교수=이제 최근의 남북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90년대 들어 남북한 관계가 어쨌든 호전된 양상을 보여 7차에 걸친 고위급회담이 열렸습니다. 3차회담까지는 기본관계합의서를 먼저 체결하자는 남측과 불가침선언을 먼저 해야한다는 북측의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4차회담에 이르러서 남북 쌍방은 단일안건을 채택하기로 의견을 모았고 5차회담에서 화해불가침교류협력이라는 단일안건을 채택,처음으로 합의를 도출했습니다. 7차회담에서는 북측이 놀랄 정도로 적극적으로 나와 평양에서 모종의 특명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이 이처럼 남북대화에 적극성을 띠게 된 것은 대충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먼저 체제의 위협을 느낀 것 같습니다.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을 막기 위해 제도적 장치로 합의서를 만들자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죠. 또 미국 일본과의 관계개선 및 수교문제가 있습니다.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경제침체와 국제적인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미·일과의 관계개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셋째,김정일에게 권력을 승계하기 위한 사전조정작업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북한은 남북합의서 채택을 「역사적 사변」으로 선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김일성도 공개적으로 크게 만족을 표시했습니다. 이와 함께 합의서채택이 김정일의 주도로 이루어진 업적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죠. 또다른 측면에서 김일성의 80회 생일을 축제분위기 속에서 맞자는 뜻도 포함돼 있습니다. 축제분위기를 만드는데는 남북합의서가 최상의 선물이고 이를 이용,김일성의 생일을 민족 최대의 명절로 부각시키자는 것이죠. 이밖에 남한 주민들의 대북 경계심을 이완시켜 친북세력을 조성하려는 숨은 뜻도 보입니다. 북한은 남한사회를 불안하고 불투명한 사회로 규정하고 대남혁명의 기대를 결코 버리지 않은 상태입니다. 올해 대통령선거와 총선등 2차례의 큰 선거를 치르고 경제가 침체되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 국민과 정부간의 불신을 조장하고 혼란을 일으켜 보자는 거죠. ▲채전사령관=이북 공산주의의 실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북한측 주장이 그럴듯하게 들릴수도 있습니다.하지만 그들이 통일을 외치고 있는 것은 미·일의 경제적 지원을 바라는 절박한 필요성에서 나오는 것이지 진심으로 평화구축을 바라기 때문이 아닙니다.7·4공동성명에 서명하면서 땅굴을 팠다든지 얼마전 3인조 무장간첩침투사건등 그들이 진정으로 평화를 바라지않는 예는 많습니다.KAL기 폭파범인 김현희씨가 엄연히 서울에 살고 있는데도 아직 우리측 조작이라고 우기고 있지 않습니까.그들은 거짓말도 공산혁명을 달성하기 위한 유효한 수단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유교수=현재 남북관계에서는 핵문제의 해결이 선결과제로 등장했습니다. 6·25전쟁으로 얻은 교훈 하나가 북한을 실뢰할 수 없다는 것인데 북한의 핵개발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임시사찰 결과를 검토해보면 영변에 위치한 의문의 건물은 핵재처리시설일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는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남북간의 비핵화공동선언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입니다. 북한은 IAEA의 사찰만으로 핵의혹을 해소하려 하지만 우리로서는 상호사찰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핵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정치군사·교류협력분과위원회가 제대로 활동할 수 없게됩니다. 북한이 진실로 남북간에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원한다면 상호사찰에 응해 핵의혹을 깨끗이 풀어야 합니다. ▲채 전사령관=유교수님 말씀이 전적으로 옳습니다.상호주의 원칙에 의해 의심스러운 곳은 어디든지 개방되어야 합니다.우리가 이제까지 얼마나 북한에 속았습니까.국제적 압력을 총동원,핵문제 만큼은 털끝만한 의심도 남겨서는 안됩니다.작은 땅덩어리,높은 인구밀도의 상황에서 핵무기를 쓰려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봅니다.북한은 또 핵운반수단을 완벽하게 개발해놓았습니다.핵폭탄만 만들면 일본 일부까지 목표물이 됩니다.따라서 사찰대상에는 핵운반수단과 핵폭탄 못지않은 피해를 줄수 있는 화학무기까지 넣어야 된다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유교수=이러한 상황인식 아래 앞으로의 통일정책 방향과 추진과정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남북이 불신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의 통일정책은 쉬운 것부터,상호마찰이 적은 것부터 해결해나가자는 것입니다. 정치·군사문제부터 우선적으로 해결하자는 북한의 주장은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지 않습니까. 남북이 먹고 먹히는 통일이 아니고 한민족이 함께 사는 통일을 이뤄야 합니다. 점진적인 노력을 통해 남북의 합의 사항을 성실히 수행해 나간다면 통일은 반드시 이끌어낼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채전사령관=현실을 무시한 이상론추구에는 위험이 많습니다.북한이 도저히 들어줄수 없는 주장을 할때는 받아들이지 않는 원칙론적 자세가 필요합니다.실천가능한 교류문제는 덮어둔채 정치·군사문제부터 해결하자는 것은 억지입니다.특히 남북한이 당장 몇십만명을 감군하자는 주장같은 것은 합의가 무척 어려운 난제인데 이런 주장을 전제로 내세운 대화는 무의미합니다.그것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하거나 비관할 필요는 없습니다.과거 감정을 들추어내어 앞으로의 대화분위기를 깨서도 안되지요.말장난으로 시간을 끌때는 단호조치를 취해야겠지만 대화의 문은 항상 열어놓아야 합니다.이번 여름 남북이산가족 상호방문도 인원이 너무 적어 답답하긴 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더 남북왕래를 해서 서로를 알겠다는 끈기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공존노력 중요해 ▲유교수=그러한 바탕에서 앞으로의 남북관계를 전망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남북간에는 핵통제공동위를 포함 모두 4개의분과위원회가 설치됐는데 남북합의서에 따른 부속합의서의 채택이 당면과제가 될 것입니다. 정치·군사분과위원회는 국가보안법 폐지 미군철수등을 주장하는 북한의 태도에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만 교류분과위는 북한이 경제교류를 원하고 있어 낙관되지만 결국 핵문제의 해결이 선행돼야만 본격적인 교류가 성사되겠죠. 통일의 시기를 말하기는 매우 조심스럽지만 김일성은 최근 한 연설에서 『95년을 통일의 해로 하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물론 완벽한 통일이 아니고 연방제 등 공존적인 의미죠. 우리도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69%의 국민이 10년 안에 통일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2천년까지 통일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결정적인 기회가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이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해야겠죠. ▲채 전사령관=통일의 기본개념에 있어 우리와 북한이 다릅니다.북한은 공존·공영에 바탕한 평화통일이라기보다는 아직도 적화통일이 우선입니다.국제적 압력이 너무 거세니까 할 수 없이 시늉만 내는 것이지 속마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습니다.그러니까 큰 줄거리는 합의해놓고 세부실천과정에서 계속 트집을 잡아 남북관계진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 아닙니까.저들이 95년 통일을 얘기하고 있는 것도 그때가서는 적화 통일준비가 완성될 수 있다는 생각아래 나온 발언일 가능성도 있지요.핵무기개발뿐 아니라 김일성나이도 생각할때 그때쯤을 적화통일의 호기로 여길 수 있습니다.특히 북한은 남쪽의 혼란을 기대하는 눈치입니다.최근 주체사상·인공기 등이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현상을 보고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겁니다.자기들은 무력강화를 늦추지 않으면서 남쪽의 변화를 주목하고 있는 것이지요.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이 실각하는 북한내부변란이 없는한 통일에 대한 북한의 자세는 크게 달라지지 않으리라 봅니다.일본도 통일한국등장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에 나설 수도 있어 통일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독일의 경우도 엄청난 통일비용을 치르지 않았습니까.우리도 공산당의 실체를 직시하면서 초연한 자세로 통일의 기회가 성숙될때까지 실력을 쌓아야겠습니다. ○국민합의에 최선 ▲유교수=42년이 지난 뒤에도 6·25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북한의 행태로 볼 때 적대감과 불신이 없을 수 없지만 우선 점진적인 신뢰회복이 가장 중요합니다. 독일이나 예멘에서와 같이 금방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감상적인 생각은 한반도의 상황여건을 도외시한 것입니다. 대내적으로는 정치의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북은 우리사회가 어지러울 때마다 갖가지 제안을 내 혼란을 일으키려 합니다. 국민의 합의와 노력을 통해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북한이 동경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그것이 최선의 방책입니다.
  • 김일성정권 어떻게 수립됐나 그 과정 추적/허동찬

    ◎민족진영 대숙청… 스탈린식 적화/소군 업고 당·정·군 전권 장악/조만식선생 행정조직건설 이용 뒤 “폐기”/「흑백함 투표」 폭력동원… 민의 철저 차단/인민공화국에 민족정통성 투영 흔적 전무 우리는 흔히 북한정권이 1948년 9월9일에 수립된 것으로 알고 있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국명이 이때부터 정식으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같은 해에 대한민국이 건국된 후 종래 북한에 있었던 정권기관을 「남북총선거」라는 기만선거를 거쳐 그 이름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 해방직후부터 북한에는 정권기관이 존재하고 있었다.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와 그 후계조직인 북조선인민위원회가 그것이다. 남한에서는 미군정을 거쳐 1948년에 간신히 대한민국이 건국됐다.이에 반하여 북한은 해방후 반년도 안되는 사이에 「인민정권」을 창출해냈다.우리는 그 신속함에 놀라움과 동시에 어째서 그렇게 빨리 「정권」이 생길 수 있었는가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 의문을 푸는 열쇠는 여러개가 있다.그러나 여기서는 해방전후에 있어서의김일성과 중공·소련의 상관관계를 통해 그 일면만을 풀어보고자 한다. 김일성이 해방직전 구소련 연해주 하바로프스크 교외 브야츠크에 주둔하고 있던 소련 극동군 88여단 여단장 주보중밑에서 제1대대장을 맡고 있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그런데 이 88여단의 중공쪽 명칭은 동북항일련군교도려다. 교도려가 설립된지 3년후인 1945년 8월9일 스탈린은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소련극동군을 구만주와 북한지역으로 침공시켰다.이때 교도려도 실지회복을 위해 출전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단장 주보중은 8월중순 뜻하지 않게 다음과 같은 스탈린의 전보를 받는다. 『동북은 당신들 중국 인민의 동북이다.소련 적군의 임무는 동북을 해방하는데 있고 동북을 건설하는 임무는 당신들에게 있다.명령을 기다리도록 하라』(주보중장군전 조소분저,1988년 중국 해방군출판사간475쪽) 스탈린의 명에 의해 만주로 진격이 저지되자 여단장 주보중은 당시 교도려의 중공 최고간부였던 장수전(개명후는 이조린),최석천(최용건)과 더불어 동북재진공방안을수립했다.그들은 소련군과 협조,동북 57개 주요도시로 진출,거기서 교도려 간부가 소련진주군의 위수사령부 부사령을 맡도록 한 것이다(상동서 476쪽). 이 동북재진공방안에는 평양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왜냐하면 8월18일부터 24일에 걸쳐 소련극동군 낙하산부대를 투하한다는 계획이 8월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실행되진 않았지만 이 계획속에 동북의 여러 도시와 함께 평양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동북항일련군두쟁사간편,이혜저 1987년 중국 해방군출판사간 161쪽). 따라서 김일성은 해방직후인 45년 8월 중순까지 주보중등이 수립한 동북재진공방안이란 전략적 구상의 테두리안에 있었다.실제로 김일성은 45년 9월 평양에 나타나 평양시위수사령부의 부책임자가 되었다. 중국문헌에 의하면 동북재진공방안은 이상과 같이 주보중등 중국인들이 주동이 되어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다. 소련극동군사령관 바시리에프스키는 8월 하순 주보중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리고 있다. 『항일련군부대는 소련의 각방면군을 따라 동북의 각 전략요점을 점령한후 각각 도회지의 소련군 위수사령부 부사령의 직무를 맡도록 하라』 『그 목적은 소련군과 협조,점령지의 질서를 유지하고 신속히 일만잔여분자와 일체 반혁명분자를 숙청하며 중소인민의 우호활동을 촉진하는데 있다』(상동서 같은쪽) 바시리에프스키의 이 명령에는 소련극동군 산하의 88여단이 소련군과 협조하여 점령지 기타를 적화하고 당·군·정을 건설하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교도려의 간부와 대원들은 소련식 공산주의를 소련군 점령지에서 건설하기 위하여 스탈린과 소련군의 의도를 그대로 따랐다.중화민족이나 한민족의 자주성이란 여기에서는 애초부터 유린되어 있었다. 한반도북반부지역에서는 소련군이 평양에 진주한 45년 8월26일 이전에 벌써 자주독립을 위한 정치조직들이 탄생하고 있었다. 8월16일에 함남도인민위원회 준비위원회와 평남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16일에 결성된 신의주임시자치회는 26일 평북도 자치위원회로 발전하였다.또 17일에 결성된 황해도인민위원회 준비위원회는 20일 건국준비위원회 황해도지부로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조직들은 소련군이 진주한 이후 그들의 간섭으로 급격하게 공산조직으로서의 특성을 띠게 된다. 소련군의 지도로 8월31일 평북자치위원회가 평북도임시인민위원회로,9월1일에는 함남조직이 함남도인민위원회로 바뀌었다.9월 2일에는 황해도인민위원회가 성립되었고 9월15일에는 강원도인민위원회가,10월26일에는 함북도인민위원회가 결성되었다.공산세력이 탁월한 조직을 소련군은 「인민위원회」라는 명칭으로 통일하였던 것이다. 이 기간에 소련군 평양위수사령부 부책임자로서 북한적화공작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었던 김일성은 10월10일에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에 들어가 45년12월17일에 있었던 분국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를 통해 당권을 장악하였다. 김일성으로 하여금 당권과 군권을 장악하게 하는 기간중 소련 「민정」은 표면상 조만식을 앞세우는 태도를 취하였다. 소련 「민정」은 45년 1월 19일,조만식으로 하여금 평양에서 각 도인민위원회연합회의를 열게 하여 북조선행정10국을 조직하게 하였다.이 10국은 산업·교통·체신·농림·상업·재정·교육·보건·사법·보안 등의 각국이었는데 도인민위원회들이 설치했던 관료조직을 기반으로 하는 중앙관료조직이었다. 45년 11월 당시 이 행정10국을 운영하는 중앙행정조직은 소련 「민정」이었다.그런데 김일성이 그로부터 한달뒤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장악하게 되자 소련 「민정」은 더이상 조만식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그는 몇달 안가서 숙청된다. 1946년 2월 8일 소련 「민정」을 대신하는 중앙조직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수립되었다. 이 정권의 수립에는 당시의 민의를 반영시키는 선거란 절차가 없었다.소련 「민정」은 이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이미 소련의 의도대로 당권과 군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김일성을 앉혔다. 당·군·정을 장악한 김일성은 그후 이른바 「흑백함선거」를 통해 1947년 2월 22일 북조선인민위원회를,같은 방법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성립시켰다. 스탈린은 본래 공산주의를 모르고 있었던 북한에 김일성을 앉혀 그에게 「인민정권」을 소련군이란 폭력을 가지고 만들어 주었다.김일성은 이렇게 하여 틀어쥔 정권을 「흑백함선거」란 또 다른 폭력으로 지금까지 유지하여 왔다. 그간 민의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우리 민족의 정통성이 민의에 의하여 북한정권에 반영된 일은 이제껏 있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
  • 유고/끝없는 내전… 문화유적지 황폐화

    ◎12세기 성곽·대성당등 쑥대밭/두브로브니크/박물관자리엔 군기지 들어서/사라예보시/관광객 발길끊겨 연20억불 손실 유고연방이 와해되는 과정에서 빚어진 끝없는 민족분쟁으로 엄청난 인명및 경제적 피해와 함께 유서깊은 문화유적지가 갈수록 황폐화돼 가고 있다.더욱이 언제 내전이 끝날지 몰라 복원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지난해 6월부터 시작된 유고연방과 크로아티아의 8개월에 걸친 유혈분쟁으로 중세문화가 보존된 아드리아해안의 두브로브니크시시가 피폐화된데 이어 지난 3월 세르비아계중심의 소연방이 결성되면서 불똥이 다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로 번져 84년 동계올림픽을 치렀던 사라예보마저 다시 쑥대밭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여러 민족으로 구성돼 있는 유고가 연방해체의 길로 들어서면서 각 공화국간의 영토분쟁이 심화돼 전쟁을 피해 서유럽으로 난민의 물결이 줄을 잇고 있는데다 주관광수입원이던 옛 유적지마저 형체를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되자 각 공화국 역시 심한 곤경에 처해있다. 동과 서의교량역할을 하면서 서양민족지배(로마 오스트리아등)아래 있을때는 서양문화를,동양의 지배(터키)아래 있을때는 이슬람문화를 창조하면서 독특한 유럽 모자이크문화를 지니고 있는 유고는 내로라하는 유적지만 하더라도 각 공화국 곳곳에 산재해 있는 유적의 나라다.특히 세르비아공화국의 수도이자 한때 연방공화국의 수도였던 베오그라드는 로마제국의 요지였으나 그때의 유적은 지금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그동안 수없이 치른 전쟁으로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유고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으로는 프레스코 미술관과 정교회유물관등이 있는 세르비아의 국립박물관을 비롯,아드리아해의 진주로 불리는 크로아티아의 고도 두브로브니크,그리고 인근 자다르,시베니크등이 있다. 그중에서 매년 유고 전체 관광수입의 70%에 육박하는 20억달러이상의 외화벌이를 담당했을 정도로 고색창연했던 두브로브니크시는 이미 그동안의 전쟁폐해로 30여개의 유적지가 파괴되었고 4백여개의 교회가 폐허가 되는등 옛모습을 잃은지 오래다.연방군과 크로아티아의 최대격전지였던 이곳은 12,13세기에 세워진 거대한 성벽,르네상스 스타일과 베네치안 고딕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스폰차궁전,라파엘로의 마돈나와 이콘등이 보관된 대성당등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유적지가 전쟁으로 파괴만 될뿐 복원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에 소유고연방소속의 세르비아민병대의 포격으로 올림픽을 위해 지어졌던 올림픽경기장이 3개월동안 계속된 내전으로 거의 황폐화돼버렸다. 이제 사라예보의 주위에 있는 아이스하키와 스케이트경기장,한 바로크풍 빌라에 있는 올림픽박물관도 옛 모습은 간데없고 그자리를 세르비아 민병대의 로켓발사기지가 메우고 있으며 대형 콘크리트 건축물들은 탄흔으로 얼룩진채 흉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이처럼 유고의 유적지가 황폐화되자 역사유물을 수호하자는 각계의 목소리가 커져 가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다.유고의 지식층을 비롯,유럽공동체(EC)각국과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는 유고문화유적복원을 위한 모금운동과 함께 세계적인 지원을 호소하고나선지 오래지만 유고내전이 계속되는 한 이같은 노력은 큰 결실을 거두기는 힘든 실정이다. 이같은 국제적인 노력에도 불구,유고내전의 당사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영토확장에만 혈안이 돼 있다.결국 유고의 문화유적복원은 내전종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교전당사자들이 인식할때 가능해 질 것으로 보인다.
  • 민자 김영삼후보 재산/대선전 공개 방침

    ◎깨끗한 정치풍토 조성 촉진위해 민자당의 대통령후보인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은 깨끗한 정치풍토정착을 촉진키위한 방안의 하나로 자신의 재산내역을 대통령선거전에 공개할 것으로 17일 알려졌다. 김대표의 한 측근은 『정치풍토개선을 위해서는 사회지도층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한다는게 김대표의 생각』이라고 전하고 『김대표의 재산은 이미 국회에 모두 등록돼 있는 만큼 대통령선거전에 공개할 계획이며,어느 시점이 가장 적절한지를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김대표는 또 정권이양기의 통치권누수및 공직사회의 이완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공직사회의 기강확립 ▲사회지도층의 정신개혁운동 ▲각종 민생안정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후보의 또다른 핵심측근은 『공직사회의 부패와 무사안일을 먼저 척결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할수 없으며 아울러 사회지도층이 솔선수범·근검절약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경제재도약을 달성할수 있을 것』이라면서 『위로부터 사회기풍을 진작시킴으로써 「간소하면서도 힘있는 정부」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마스터플랜을 작성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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