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493)-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5)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5)
가도의 변명을 듣고 난 후 한유가 물었다.
“그대의 시가 어느 부분에서 막혔는가.”
그러자 가낭선은 자신이 지은 시를 낭송하고 그 마지막 문장인 ‘중은 달 아래 문을 민다.’고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중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린다.’라고 하는 것이 좋을까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던 것이다.
이에 그 당시 ‘당송팔대가’로 지칭될 만큼 명문장가였던 한유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내 생각엔 ‘민다(推)’보다는 ‘두드린다(敲)’가 낫겠네.”
그러고나서 한유는 수행원들이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이에 가도를 말에 다시 오르라고 명령한 후 말머리를 나란히 하여 함께 시를 논하며 길을 가는 것이었다.
이후로 문학작품에 자구를 여러 번 생각하여 손질하고 고치는 것을 ‘퇴고(推敲)’라고 이르게 되었으며, 이처럼 일자일구도 소홀히 하지 않고, 고음(苦吟)하여 창작하는 시풍을 가진 가낭선의 창작태도에서 ‘퇴고’라는 고사성어가 태어난 것이다.
명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듯 이율곡이 이 무렵 ‘이 세상은 바로 가낭선이 되었네.’하고 한탄하였던 것은 출가와 환속을 거듭하며 방황하는 가낭선과 같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민다(推)’와 ‘두드린다(敲)’라는 문장을 놓고 심사숙고하던 가낭선처럼 자신도 인생의 문을 밀 것인지, 두드릴 것인지 도저히 판단이 서지 않는 암야행로(暗夜行路)와 같은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율곡의 참담한 심정은 훗날 그가 지은 ‘이일분수부(理一分殊賦)’라는 시 속에 드러나고 있다. 제목이 가리키듯 서정시라기보다는 일종의 철학시였고, 이 장시에서 율곡은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방바닥 꽉 들어차서 빈구석이 없음이여,
고부(姑婦) 간에 싸움이 벌어지도다. 살려는 욕심뿐이요, 죽기는 싫어함이여. 눈에 가시가 들어오고,
마음의 병이 생기는 것도 달갑게 여기는도다.…”
물론 율곡을 괴롭힌 사람은 아버지의 첩이었으니 굳이 말하면 서모일 것이다. 그러므로 두 사람의 관계는 시에서 보듯 ‘고부(姑婦)’ 사이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율곡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싸움이나 ‘서모나 자식’의 갈등을 모두 ‘방이 좁아서 싸운다.’는 ‘발계(勃谿)’로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발계란 말은 장자에서 나오는 ‘방이 텅 비지 않고 좁아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싸운다.(空無空虛 則婦姑勃谿)’라는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가정의 모든 불화는 ‘방마다 꽉 들어차서 빈 구석이 없기 때문’에 시작되는 것이며, 이것은 가정들이 모두 ‘죽기는(희생하는 것) 싫어하고 오직 자신의 욕심만을 앞세워 살려는 욕심(이기주의)’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며, 이로써 ‘눈에 가시가 들어가고 가족들의 마음에 병이 생기는 것이다.’라고 경책하고 있음인 것이다.
그렇다.
이 무렵 청년 율곡은 나갈 것인가(進), 물러설 것인가(退), 밀 것인가(推), 두드릴 것인가(敲), 오를 것인가(高), 내릴 것인가(低)의 양극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껍질을 찢는 탈바꿈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