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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사고·특목고 못 가면 대포”… 고3만큼 고달픈 중2 ‘나’를 버리다

    “자사고·특목고 못 가면 대포”… 고3만큼 고달픈 중2 ‘나’를 버리다

    #1. 중학교 2학년 박모(14)양은 인터넷 채팅으로만 이야기한다. 결혼 이주 여성인 박양의 어머니는 딸이 공부를 잘해 성공하기를 바란다. 남편과 나이 차이도 크고, 시댁과 사이도 나빠 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런데 중간고사를 앞두고 공부는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로 채팅만 하는 딸을 보고 어머니는 폭발하고 말았다.‘내가 힘들게 한국으로 시집와서 누구 때문에 험한 일을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노는 딸은 엄마에 대한 배신’이란 생각이 든 어머니는 딸을 때리고 휴대전화를 부쉈다. 그러자 박양이 갑자기 손을 떨고 말을 더듬으며 과호흡증상을 일으켰다. 신경정신과에서는 박양을 공황장애와 전환장애(히스테리성 운동기능 이상)라고 진단했다. #2. “상관없어요. 어차피 고등학교 안 가요”김모(14)군은 학교에서 가장 자주 찾는 곳이 상담실이다. 수업이 싫다며 상담실에 드러누운 김군에게 담임선생님의 허락이 없으면 무단결과란 상담 교사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학교 다니기 싫다며 결국 커터 칼로 자신의 팔을 그어 버린 김군은 “학교에서 자해 소동을 벌인 아이들이 상담실에서 매일 1~2시간씩 쉬는 것을 봤어요. 저도 쉬고 싶었어요”라고 털어놓았다.김군은 전국체전에 출전할 정도로 축구 실력이 뛰어났지만 부모는 ‘운동선수는 부상당하거나 탈락하면 대안이 없고, 진학에 실패할 확률도 높다’며 축구로 유명한 중학교의 스카우트 제의도 거절했다. 부모는 공부만 하라고 하지만, 김군은 교실에 앉아 있으면 숨이 막혔다. 상담 교사의 도움으로 럭비, 승마, 조정 같은 비인기 종목을 추천받은 김군은 다시 활기를 찾았다. 중2병이란 유령이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중2병이란 일본어 ‘추니뵤’(中二病)에서 나온 신조어로 사춘기 청소년들의 반항적인 심리 상태를 빗댄 말이다. 일본에서는 1999년쯤 만들어진 속어로 지난해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란 애니메이션이 제작돼 인기리에 방영됐다. ‘김정일은 방위 때문에, 김정은은 중2가 무서워서 남침을 못 한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로 요즘 중2는 무섭고 거칠 것이 없는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다. 중2병은 인터넷의 발달과 산업구조의 변화에 맞물려 경쟁과 입시 교육이 낳은 병리 현상이다. 중학교 때부터 특목고, 특성화고, 일반고 등으로 학생의 서열화가 낳은 비극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중2병은 타인에 대한 공격 성향 증가, 무기력, 비행, 다양한 중독 등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중2병 청소년들의 자살과 학교폭력, 가출 등 적잖은 문제가 보고되고 있다. 보이스카우트 등 청소년 활동이 발달한 영국에서 청소년 교육을 맡은 수 워커(50) 국제청소년성취포상협회 사무국장은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심각한 경쟁사회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며 ‘중2병은 선진국 청소년들도 겪는 증상’이라고 진단했다. 중2병과 같은 청소년들의 사춘기 증상은 이르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나타난다. 부모들이 겪는 중년의 위기와 겹치면서 증세가 악화된다는 분석이다. 성나경 전국전문상담교육자협회 대표는 “중2병은 청소년 발달 과정의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지만 부부 갈등, 직장 스트레스, 오춘기 등으로 중년의 위기를 겪는 부모와 증폭되면서 심각한 가정 갈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2병의 원인으로 양육 실패, 지나친 학업 스트레스와 왜곡된 입시제도, 사회성을 가르치지 못하는 교육제도, 흔들리는 가정을 꼽았다. 맞벌이 부모들이 ‘제 시간에 밥 먹이고 준비물 챙겨서 학교 보내기’와 같은 기본적인 훈육에 실패하면 아이들은 친구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학교 부적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업주부가 아이를 보더라도 ‘공부를 잘하니까 다 괜찮을 거야’라며 사회성 발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왕따가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대한민국에는 2만여개의 직업이 있지만, 자녀를 기르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일러주는 직업은 공무원, 대기업과 공기업, 의사, 변호사 등 20여개도 안 된다. 특히 일반고 슬럼화 현상이 중2병을 더욱 확산시킨다는 지적이 많다. 정병오 좋은교사운동 대표는 “우리나라는 중학교부터 정식 입시 체제에 들어간다. 내신성적이 고입, 대입과 연결되기 때문에 아이의 부담이 커진다”며 특히 이명박 정부 5년간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고교 다양화 정책 등으로 중2병이 심각해졌다고 분석했다. 일제고사를 치르면서 초등학교 6학년 때 한 차례 성적 스트레스를 받은 아이들은 고교 서열에 좌절하고 만다는 것이다. 고교 다양화 정책은 사실상 고교 평준화를 해체하고, 고등학교 수직화를 가속했다는 게 교육 현장의 중론이다. 예전에는 웬만하면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이 가능했기 때문에, 고입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정도면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 식으로 고교 진학이 거의 결정되기 때문에 ‘대포’(대학 포기) 증상이 중2병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 대표는 “핵가족과 부모의 생활고로 충분한 가정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연과 친구들이랑 어울릴 기회 없이 학원 뺑뺑이만 돌다가 인터넷과 게임에 빠진 아이들이 사회화 기회를 아예 박탈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소년들의 극심해진 스트레스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며 그다음이 교통사고, 암, 심장질환, 익사 순서다. 청소년의 11.2%는 자살 충동을 느꼈으며, 그 원인은 성적과 진학문제, 가정불화, 경제적 어려움 등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청소년들은 도피처이자 정보 획득을 위해 사용하는 스마트폰에 중독된다. 12~19살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사용률은 80.7%다. 전년의 40.7%와 비교하면 1년 만에 배로 늘어났다. 하루 평균 이용시간은 2.6시간이며, 3시간 이상 사용한다는 비율이 36.4%로 가장 높았다. 중학생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블로그, 미니홈피, 커뮤니티 순서였다. 이를 통해 다른 학생들과 비교하면서 중2병은 더욱 심화되기도 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기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는 중학교 2학년은 본격적으로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라며 “사춘기 때는 다 불안하고 우울한데, 또래들과 신나게 뛰어놀고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다루며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는 입시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놀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교 교과목에 예체능 시간을 단순히 늘린다고 해서 중2병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중2병은 일방적인 지식 주입보다는 다양한 활동 기회를 제공하는 공교육의 정상화로 치유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중학교 교사인 김태훈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위원은 “최근 자사고가 늘어나고 일반고의 교육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중학생들에게 입시 스트레스와 좌절감을 심어 주는 것이 문제”라고 밝혔다. 김 위원은 교육과 사회의 근본 환경은 변화하지 않고, 청소년들의 스트레스를 푸는 활동 몇 가지로 중2병을 풀 수는 없다고 말했다. 특목고나 자사고에 들어가는 학생은 좋은 대학에 가고, 사회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주변의 기대로 또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중하위권 학생은 경쟁에서 처졌다는 생각에 미래가 불안하다. 그는 “특목고나 자사고는 교육부 말처럼 학교 다양화가 아니라 대학 입시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일 뿐”이라며 “고교 진학에 중학교 교육이 휩쓸리지 않아야 중학생들의 불안함도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에서 중2병 소녀는 같은 병을 앓았던 선배의 조언으로 중2병을 탈출한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사춘기 청소년들의 반항적 심리 상태 ‘중2병’ 급증

    [주말 인사이드] 사춘기 청소년들의 반항적 심리 상태 ‘중2병’ 급증

    #1. 중학교 2학년 박모(14)양은 인터넷 채팅으로만 이야기한다. 결혼 이주 여성인 박양의 어머니는 딸이 공부를 잘해 성공하기를 바란다. 남편과 나이 차이도 크고, 시댁과 사이도 나빠 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런데 중간고사를 앞두고 공부는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로 채팅만 하는 딸을 보고 어머니는 폭발하고 말았다.‘내가 힘들게 한국으로 시집와서 누구 때문에 험한 일을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노는 딸은 엄마에 대한 배신’이란 생각이 든 어머니는 딸을 때리고 휴대전화를 부쉈다. 그러자 박양이 갑자기 손을 떨고 말을 더듬으며 과호흡증상을 일으켰다. 신경정신과에서는 박양을 공황장애와 전환장애(히스테리성 운동기능 이상)라고 진단했다. #2. “상관없어요. 어차피 고등학교 안 가요”김모(14)군은 학교에서 가장 자주 찾는 곳이 상담실이다. 수업이 싫다며 상담실에 드러누운 김군에게 담임선생님의 허락이 없으면 무단결과란 상담 교사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학교 다니기 싫다며 결국 커터 칼로 자신의 팔을 그어 버린 김군은 “학교에서 자해 소동을 벌인 아이들이 상담실에서 매일 1~2시간씩 쉬는 것을 봤어요. 저도 쉬고 싶었어요”라고 털어놓았다.김군은 전국체전에 출전할 정도로 축구 실력이 뛰어났지만 부모는 ‘운동선수는 부상당하거나 탈락하면 대안이 없고, 진학에 실패할 확률도 높다’며 축구로 유명한 중학교의 스카우트 제의도 거절했다. 부모는 공부만 하라고 하지만, 김군은 교실에 앉아 있으면 숨이 막혔다. 상담 교사의 도움으로 럭비, 승마, 조정 같은 비인기 종목을 추천받은 김군은 다시 활기를 찾았다. 중2병이란 유령이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중2병이란 일본어 ‘추니뵤’(中二病)에서 나온 신조어로 사춘기 청소년들의 반항적인 심리 상태를 빗댄 말이다. 일본에서는 1999년쯤 만들어진 속어로 지난해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란 애니메이션이 제작돼 인기리에 방영됐다. ‘김정일은 방위 때문에, 김정은은 중2가 무서워서 남침을 못 한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로 요즘 중2는 무섭고 거칠 것이 없는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다. 중2병은 인터넷의 발달과 산업구조의 변화에 맞물려 경쟁과 입시 교육이 낳은 병리 현상이다. 중학교 때부터 특목고, 특성화고, 일반고 등으로 학생의 서열화가 낳은 비극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중2병은 타인에 대한 공격 성향 증가, 무기력, 비행, 다양한 중독 등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중2병 청소년들의 자살과 학교폭력, 가출 등 적잖은 문제가 보고되고 있다. 보이스카우트 등 청소년 활동이 발달한 영국에서 청소년 교육을 맡은 수 워커(50) 국제청소년성취포상협회 사무국장은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심각한 경쟁사회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며 ‘중2병은 선진국 청소년들도 겪는 증상’이라고 진단했다. 중2병과 같은 청소년들의 사춘기 증상은 이르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나타난다. 부모들이 겪는 중년의 위기와 겹치면서 증세가 악화된다는 분석이다. 성나경 전국전문상담교육자협회 대표는 “중2병은 청소년 발달 과정의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지만 부부 갈등, 직장 스트레스, 오춘기 등으로 중년의 위기를 겪는 부모와 증폭되면서 심각한 가정 갈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2병의 원인으로 양육 실패, 지나친 학업 스트레스와 왜곡된 입시제도, 사회성을 가르치지 못하는 교육제도, 흔들리는 가정을 꼽았다. 맞벌이 부모들이 ‘제 시간에 밥 먹이고 준비물 챙겨서 학교 보내기’와 같은 기본적인 훈육에 실패하면 아이들은 친구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학교 부적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업주부가 아이를 보더라도 ‘공부를 잘하니까 다 괜찮을 거야’라며 사회성 발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왕따가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대한민국에는 2만여개의 직업이 있지만, 자녀를 기르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일러주는 직업은 공무원, 대기업과 공기업, 의사, 변호사 등 20여개도 안 된다. 특히 일반고 슬럼화 현상이 중2병을 더욱 확산시킨다는 지적이 많다. 정병오 좋은교사운동 대표는 “우리나라는 중학교부터 정식 입시 체제에 들어간다. 내신성적이 고입, 대입과 연결되기 때문에 아이의 부담이 커진다”며 특히 이명박 정부 5년간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고교 다양화 정책 등으로 중2병이 심각해졌다고 분석했다. 일제고사를 치르면서 초등학교 6학년 때 한 차례 성적 스트레스를 받은 아이들은 고교 서열에 좌절하고 만다는 것이다. 고교 다양화 정책은 사실상 고교 평준화를 해체하고, 고등학교 수직화를 가속했다는 게 교육 현장의 중론이다. 예전에는 웬만하면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이 가능했기 때문에, 고입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정도면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 식으로 고교 진학이 거의 결정되기 때문에 ‘대포’(대학 포기) 증상이 중2병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 대표는 “핵가족과 부모의 생활고로 충분한 가정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연과 친구들이랑 어울릴 기회 없이 학원 뺑뺑이만 돌다가 인터넷과 게임에 빠진 아이들이 사회화 기회를 아예 박탈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소년들의 극심해진 스트레스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며 그다음이 교통사고, 암, 심장질환, 익사 순서다. 청소년의 11.2%는 자살 충동을 느꼈으며, 그 원인은 성적과 진학문제, 가정불화, 경제적 어려움 등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청소년들은 도피처이자 정보 획득을 위해 사용하는 스마트폰에 중독된다. 12~19살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사용률은 80.7%다. 전년의 40.7%와 비교하면 1년 만에 배로 늘어났다. 하루 평균 이용시간은 2.6시간이며, 3시간 이상 사용한다는 비율이 36.4%로 가장 높았다. 중학생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블로그, 미니홈피, 커뮤니티 순서였다. 이를 통해 다른 학생들과 비교하면서 중2병은 더욱 심화되기도 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기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는 중학교 2학년은 본격적으로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라며 “사춘기 때는 다 불안하고 우울한데, 또래들과 신나게 뛰어놀고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다루며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는 입시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놀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교 교과목에 예체능 시간을 단순히 늘린다고 해서 중2병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중2병은 일방적인 지식 주입보다는 다양한 활동 기회를 제공하는 공교육의 정상화로 치유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중학교 교사인 김태훈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위원은 “최근 자사고가 늘어나고 일반고의 교육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중학생들에게 입시 스트레스와 좌절감을 심어 주는 것이 문제”라고 밝혔다. 김 위원은 교육과 사회의 근본 환경은 변화하지 않고, 청소년들의 스트레스를 푸는 활동 몇 가지로 중2병을 풀 수는 없다고 말했다. 특목고나 자사고에 들어가는 학생은 좋은 대학에 가고, 사회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주변의 기대로 또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중하위권 학생은 경쟁에서 처졌다는 생각에 미래가 불안하다. 그는 “특목고나 자사고는 교육부 말처럼 학교 다양화가 아니라 대학 입시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일 뿐”이라며 “고교 진학에 중학교 교육이 휩쓸리지 않아야 중학생들의 불안함도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에서 중2병 소녀는 같은 병을 앓았던 선배의 조언으로 중2병을 탈출한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기존과 다른 길…자립이 나를 키워”

    “기존과 다른 길…자립이 나를 키워”

    14살 고졸 검정고시 합격, 부산외국어대 법학과 4년 장학생 및 3년 만의 조기 수석 졸업, 19살 동아대 로스쿨 최연소 합격…. 이런 과정을 밟아온 충북 충주시 손빈희(22·여)씨가 제2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손씨는 다음 달 중순 ‘국제거래 전문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지금껏 이룬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것이다. 그는 10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많아져 우리나라도 국제 무역이 급증했는데 전문 변호사는 부족하다”며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거래 전문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손씨가 변호사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사업가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갔을 때 법을 잘 몰라 사기당하는 한국인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손씨는 “그때 무얼 하든지 법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면서 “선진국이라고 믿었던 우리나라도 국제거래법에서는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알고 더 큰 꿈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로스쿨에 입학했지만 10살 넘게까지 차이 나는 동기들과 당당히 경쟁했다. 모의고사 시험에서 여러 번 1등을 했고, 86명 중 2등으로 졸업했다. 손씨는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질 상황을 만들어준 부모 덕에 수없이 좌절을 했어도 극복할 수 있었다”면서 “나이는 어리지만 깊고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학원 등을 전전하며 스펙쌓기에만 열중인 국내 교육 풍토에서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것이다. 손씨는 “부모가 맏이인 나를 비롯한 초등학생 딸 셋을 중국에 두고 먼저 귀국해 타국에서 살림살이 등을 스스로 책임졌던 경험이 자립을 일찌감치 배우는 기회가 됐다”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웃었다. 충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韓銀 7개월 만에 전격 금리 인하] 경기 부양·글로벌 통화 정책 ‘공조’… 일부 “실기 아쉽다” 평가

    한국은행은 9일 시장의 예상과 달리 기준금리를 내리면서 글로벌 금리 인하 대열에 동참했다.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으로 경기부양에 나선 정부와도 보조를 맞췄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선제적이고 중기적인 정책보다는 ‘따라가는’ 모양새다. 한은이 경기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봤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기도 하다. 그래서 큰 효과를 거두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중앙은행(ECB)과 호주 중앙은행은 최근 사상 최저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내렸다. 제로금리 상태인 일본은 돈 풀기에 몰두하고 있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국제 공조란 선진국과 같은 수준으로 가는 것”이라며 “다른 나라들이 변화할 때 같이 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다만 “기축통화가 없는 나라는 자본 유출입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며 거리를 뒀다. 빠르게 진행되는 엔저(엔화가치 약세)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총재는 “다른 나라 환율에 맞춰 통화정책을 하지 않는다”면서도 “(엔저) 폭이 큰 것도 문제지만 너무 급하게 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8일 4년 8개월 만에 100엔당 1100원 선이 깨진 원·엔 환율은 이날 1100원대로 다시 올라섰으나 재추락 가능성이 여전하다. 한은은 추경으로 성장률이 0.3~0.4% 포인트 올라갈 수 있다고 본다. 금리 인하에 따른 성장률 제고 효과는 0.2% 포인트다. 정부 전망치(2.3%)에 추경과 금리 인하 효과분을 더하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은 2.8~2.9%로 올라간다. 그렇더라도 한은이 추정한 잠재성장률(3.3~3.8%)보다는 낮다. ‘실기’ ‘뒷북 인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물가 오름세가 예상보다 약한 점도 김 총재의 ‘변심’을 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한은의 올해 물가 전망은 2.3%다. 실제 물가 상승폭은 1%대다. 김 총재는 “유가 등 상품값이 생각보다 낮게 유지되고 있다”며 “경기 침체 외에 전반적인 구조의 변화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가가 너무 낮으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내려 경기를 떠받쳐야 한다. 추가 금리 인하 요구에 직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경기 회복세가 미약한 것도 문제다. 올 1분기 민간소비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 늘었지만 지난해 4분기보다는 0.3% 줄었다. 3월 광공업생산은 전월보다 2.6% 줄어들면서 3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다. 그래도 한은은 하반기로 갈수록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상저하고’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주요 국제 기관들이 세계 경제를 상저하고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의 예산자동삭감(시퀘스터)이 변수다. 전문가들은 뒤늦은 금리 인하를 반기면서도 아쉬움을 표시했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흥시장도 금리 인하 추세라 우리도 여기에 뒤처지면 안 된다”면서 “만시지탄”이라고 말했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여러 번 금리 인하 기회가 있었는데 아쉽다”며 “올해 안에 실물 부문에서 효과가 나오기에는 이미 (인하 타이밍이) 늦었다”고 지적했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정부와 한은의 금리 인식이 비슷해져 앞으로 추가 인하까지는 아니더라도 신용정책이 더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총재의 워딩(말)을 보고 이달 금리 인하를 전망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면서 “갑자기 태도를 바꾼 데 대해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내년 4월) 임기 등을 의식해 정부와 정치권의 압박에 굴복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 WTO 새 사무총장 아제베두

    [피플 인 포커스] WTO 새 사무총장 아제베두

    세계무역기구(WTO) 차기 사무총장에 호베르투 아제베두(55) WTO 주재 브라질 대사가 선출됐다. 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로이터 등 외신들에 따르면 아제베두 당선자는 이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치러진 WTO 사무총장 선거에서 세 차례 투표 끝에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지지를 받은 유력 후보인 에르미니오 블랑코(62) 전 멕시코 통상장관을 제치고 당선됐다. WTO 사무총장에 남미 대륙 출신이 선출된 것은 1995년 기구 창설 이후 처음이다. 로이터는 아제베두 당선자가 선거 기간 “WTO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대결 구도로 가져가지 말자”고 호소함으로써 미국과 EU 일부 국가를 제외한 모든 회원국의 폭넓은 지지를 끌어낸 것이 당선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그는 브라질의 보호주의 통상 정책을 의식한 듯 “WTO 회원국이 국가(브라질)와 후보의 차이를 구분할 것으로 믿는다”면서 “당선되면 무역 협상을 중립적으로 이끌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아제베두 당선자는 30년간 통상 분야에서 근무한 베테랑 외교관 출신이다. 2001년부터 4년간 브라질 외교부 분쟁조정관을 거쳐 2005년에는 외교부 경제국장과 경제담당 차관을 지냈다. 2008년 WTO 대사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브라질과 미국 간 면화 보조금 분쟁 등 통상외교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개발도상국 출신의 신임 수장을 맞은 WTO의 앞날은 밝지만은 않다. 자유무역협정(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양자·다자간 협상으로 급속하게 변하는 세계 교역질서의 큰 흐름을 되돌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FT는 “아제베두 당선자는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에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WTO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임기를 시작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아제베두 당선자는 오는 8월 임기가 끝나는 파스칼 라미 사무총장에 이어 9월 1일 공식 취임한다. 임기는 4년이며 한 차례 연임할 수 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韓·美 주도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제안

    韓·美 주도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제안

    방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한·미 양국이 주도하는 ‘동북아평화협력구상’(서울프로세스)을 공식 제안했다. 우리나라 대통령으로는 6번째로 행한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에서다.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은 통상 ‘국빈 방문’인 경우에 외국 정상 등에게 주어지는 의전 절차다. 박 대통령의 이번 방문이 ‘공식 실무방문’임을 감안하면 파격적 예우다. 박 대통령은 영어 연설을 통해 “미래 아시아의 새 질서는 역내 국가 간 경제적 상호의존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정치·안보협력은 뒤처진 소위 ‘아시아 패러독스’ 현상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이러한 도전의 극복을 위한 비전으로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미국을 포함한 동북아 국가들이 환경과 재난구조, 원자력 안전, 테러 대응 등 연성 이슈부터 대화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쌓고 점차 다른 분야까지 협력의 범위를 넓혀 가는 ‘동북아 다자 간 대화 프로세스’를 시작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서울 프로세스는 북핵과 같은 경직된 주제에서 벗어남으로써 북한이 자발적으로 동북아 지역 국가들의 대화 테이블로 나오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이런 신뢰를 기반으로 자연스레 개혁·개방의 길에 들어서도록 유도한다는 구상이다. 박 대통령은 30분간 진행된 연설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기반 구축 ▲동북아 지역의 평화협력체제 구축 ▲지구촌 평화와 번영 기여 등 3가지를 한·미 공동비전과 목표로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여기에는 북한도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저는 동북아 지역에서의 새로운 협력 프로세스를 만들어 나가는 데 한·미 양국이 함께할 것으로 굳게 믿는다”며 미국의 협조를 요청했다. 박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기반 구축’과 관련해 “굳건한 한·미 동맹을 토대로 한국경제의 튼튼한 펀더멘털과 한국 정부의 위기관리 역량이 지속되는 한 북한의 도발은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며 “한반도 평화 정착과 통일 기반 구축을 위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견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북한이 도발로 위기를 조성하면 일정 기간 제재하다가 적당히 타협해 보상해 주는 잘못된 관행이 반복돼 왔다”며 “그러는 사이 북한의 핵개발 능력은 더욱 고도화되고 불확실성이 계속돼 왔다. 이제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한·미 간 현안인 원자력협정 개정문제와 관련해 “앞으로 선진적이고 호혜적으로 한·미 원자력협정이 개정된다면 양국의 원자력 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미 의회의 협조를 요청했다. 이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유지해 나가면서 비무장지대(DMZ) 내에 세계평화공원을 만들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워싱턴 오일만 기자 oilman@seoul.co.kr
  • 현오석 “여성이 우리 경제 해결사”

    현오석 “여성이 우리 경제 해결사”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이제 우리 경제가 ‘엄마’라고 외쳐야 할 때”란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자 여가부는 8일 홈페이지에 답장을 올려 화답했다. 현 부총리는 “엄마를 부르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내용의 광고를 재미있게 봤다”며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한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최선의 정책대안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는 것”이라며 조 장관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현 부총리는 “출산율 증대, 노동력 수입, 정년 연장보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여성인력 활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여성 경제활동 확대와 양성평등’을 국정과제로 삼고, 정체 상태인 여성 경제활동참가율과 진검승부를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정부의 노력보다 중요한 것이 양성평등 문화와 ‘앞으로 우리 경제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여성’이란 인식의 확산이라고 현 부총리는 편지를 끝맺었다. 이에 조 장관은 “여성이 일할 좋은 시간제 일자리를 많이 만들지 않으면, 여성들이 만능 슈퍼우먼이 되지 않아도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게 해주지 않으면, 바로 우리 경제가 ‘엄마! 도와주세요’라고 할지 모른다는 현 부총리의 편지가 정말 와 닿는다”고 답했다. 여가부는 추경예산으로 87억원을 확보해 3700여명의 일자리를 추가 창출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항상 기재부로부터 예산을 ‘따기’ 위해 동동거렸던 여가부에 기재부 장관이 직접 격려 편지를 보낸 것은 여성대통령 시대를 맞아 달라진 여가부의 위상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이한구 “韓銀 청개구리나 늘보 안돼야”

    이한구 “韓銀 청개구리나 늘보 안돼야”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한국은행에 기준금리 인하를 또 주문했다. 금리 결정을 하루 앞두고 있는 한은 측은 반응을 자제하고 있다. 한은의 금리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전문가들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원내대표는 8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추경 예산안이 통과됐지만 규모와 내용 면에서는 충분하지 못하다”면서 “민간 투자가 본격화하는 분위기를 위해서는 한은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운을 뗐다. 이 대표는 “한은은 독립이 자기 조직을 위한 독립이 아니라 국민 경제를 위해 필요한 독립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자칫 청개구리 심리를 갖고 있거나, 또는 호주 늘보(나무에 매달려 사는 동물로 움직임이 느리고 굼뜨다)의 행태를 보이는 그런 일은 없도록 고심하고 국민경제 활성화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4월에는 동결했지만 5월에는 알아서 잘 판단하리라 본다”는 발언에 이어 9일 열릴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내리라고 압박한 셈이다. 이 원내대표는 지난 4월 초에도 금리인하를 요구하는 발언을 했다. 선진국들이 속속 금리를 내리면서 한은의 입지도 더 좁아지고 있다. 호주 연방중앙은행은 지난 7일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내린 연 2.75%로 결정했다. 역대 최저다. 우리나라의 역대 최저 기준금리는 2009년 2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유지된 연 2.0%다. 한은 측은 금리 결정을 하루 앞두고 나온 발언에 당황하면서도 “금리는 금통위 결정사항”이라고 강조했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원내대표의 발언을 언급하지 않는 것이 금통위원들에게 부담을 덜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추경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금리를 내려야 하는 것은 맞지만 정치권에서 금리에 대해 말하는 것은 중앙은행에 상당한 부담”이라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중앙은행은 이에 합당한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 [韓·美 정상회담] 원자력협정 조기 타결 공감했지만…

    한·미 정상이 만료 시한을 2년 연장키로 한 양국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을 조기 타결한다는 데 공감해 오는 6월부터 진행되는 추가 협상에서 양국 동맹에 상처를 주지 않는 ‘윈윈 해법’이 마련될지 주목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양국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미 원자력협정이 선진적이고 호혜적인 방향으로 개정돼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가능한 한 조속히 협상을 종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평화적 목적의 원자력이 한국에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한 ‘평화적 목적의 원자력’이라는 표현이 주목된다. 정부 안팎에서는 한·미가 첨예한 입장 차를 보여 온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와 ‘저농축 우라늄 생산’ 쟁점 중 재처리 문제는 현재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인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과 연계해 타협점을 찾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지목된다. 양국 정상의 원칙적인 공감에도 불구하고 실제 협상이 조기 타결로 연결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한·미 정상 간에도 시각차는 존재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선진적이고 호혜적인 개정’에 방점을 찍었고 오바마 대통령은 평화적 목적을 강조했다. 미 정부와 의회가 비핵화 정책을 핵심 기조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 역시 군사적 전용이 가능한 기술(재처리·농축)에 대한 문제 의식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조기 타결보다는 개정될 협정의 내용이 어떻게 합의될 것인가, 원자력산업과 비확산의 균형이 어떻게 도출될 것인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스포츠 인재 육성, 만큼 중요”

    “스포츠 인재 육성, 만큼 중요”

    “금메달만큼이나 스포츠 외교 인재를 육성하는 게 중요합니다.” 한국체육은 그동안 올림픽 1위에만 집중해 왔다. 태릉선수촌으로 대표되는 훌륭한 시설과 집중적인 투자로 달콤한 열매를 따먹었다.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도 금메달 13개로 ‘톱 5’를 꿰찼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스포츠 선진국이라고 내세울 수 있을까. 국제스포츠협력센터(ISC·이사장 김용순)는 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콘래드호텔에서 2013 국제스포츠협력 콘퍼런스를 열고 글로벌 리더 양성 방안을 놓고 머리를 맞댔다. 우칭궈(타이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 겸 국제복싱연맹(AIBA) 회장, 세페리노 아드리안 발데스 페랄타 주한파라과이대사, 라슬로 바이다(헝가리) 2014 인천아시안게임 컨설턴트 등이 한국 체육계의 글로벌 리더 만드는 방안을 조언했다. 신학용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 박종길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김정행 대한체육회장도 함께했다. 빛나는 올림픽 성적이 무색하게 한국 인재 풀(pool)은 빈약하다. 특히 스포츠 외교 분야는 김운용 IOC 전 부위원장, 이건희 IOC 위원, 문대성 IOC 선수위원 등 몇몇에게만 의존하고 있는 현실이다. 우칭궈 집행위원은 기조연설을 통해 “리더는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자리인데, 학위나 국적 등 특정 스펙만으로는 전문성을 정의하기 힘들다”며 “열망, 열정, 책임감, 자신감, 동기, 신념 등 다양한 역량을 어려서부터 철저히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AIBA 회장과 IOC위원에 선출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한 뒤 리더의 변화와 혁신을 역설했다. 우칭궈 집행위원은 “스포츠 리더는 올림픽 정신을 구현해야 하는 만큼 더 큰 자질이 요구된다”면서 “건강한 엘리트 스포츠 토양과 체계적인 리더 양성 프로그램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페랄타 대사는 “리더에게는 주변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고의 유연성, 자아 인식, 다양한 경험, 긍정적인 사고, 창의성 등이 두루 필요하다”며 “외교는 문화·지적·감성 소양이 잘 섞여야 하는데 스포츠 외교는 여기에 국가별 정보까지 추가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은 럭비월드컵 우승을 통해 인종갈등을 없앴고 오바마, 메르켈, 푸틴 등도 스포츠에 대한 강한 애정이 돋보이는 리더”라며 “글로벌 인재가 되려면 언어·문화 차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부단한 노력이 필수”라고 덧붙였다. 바이다 컨설턴트는 “외국어 능력 못지않게 자기 의사를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며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동·하계 올림픽 종목에서 모두 뛰어난 만큼 인재의 풀이 넓고 미래도 밝다”고 말했다. 원도연 연세대 교수는 “나라들 사이에 지속적이고 발전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스포츠 외교가 각광받고 있지만 인재를 발굴하고 역량을 계발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국가 차원의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사설] 공공기관 ‘성과급 잔치’ 언제까지 봐야 하나

    공공기관의 개혁에는 정말 묘책이 없는 것인가. 이번에는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이 인건비를 부당하게 더 챙겨 성과급 잔치를 벌인 사실이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해마다 연구인원을 36~50명씩 부풀려 인건비 58억원을 더 타낸 뒤, 이 돈을 직원들 성과급으로 나눠줬다고 한다. 다른 연구기관 10곳도 비슷한 수법으로 213억원을 더 받아내 성과급이나 연봉 인상분으로 썼다는 것이다. 국가의 두뇌집단까지 조직적 부패가 이 정도이니, 충격적 요법이 아니고는 공공기관의 혁신이 어려운 지경에 이른 것 같다. 고급 두뇌들의 도덕적 해이도 여느 공기업 못지 않다. 원자력연구원의 직원은 133일 동안 허위 출장비로 1250만원을 타내 경마장에서 탕진했다. 원자력연구원 등 7개 기관 직원 284명은 유흥주점 등에서 법인카드로 2억 6000만원을 결제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연구소인지 술 마시는 기관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공공기관들은 생산이나 연구업무를 가릴 것 없이 공(公)은 없고 사(私)만 판치는 행태가 어쩌면 이렇게 닮았을까. 엊그제 기획재정부 발표를 보면 공기업은 변함 없는 ‘신의 직장’이란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주요 8개 금융공기업들은 생산성은 없으면서 독점사업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직원 연봉을 평균 8700만원씩 준다고 한다. 민간기업 중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삼성전자보다 24%나 더 많다. 특히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의 평균 연봉은 1억원이 넘었다. 지난해 말 295개 공공기관의 빚은 493조원이었다. 그런데도 한국정책금융공사 등 7개 기관장의 연봉은 3억~5억원이었다. 295개 공공기관 직원들의 평균 연봉도 6100만원이었다. 공공기관은 빚에 허덕여도 경영자와 직원들은 고액 연봉과 성과급으로 흥청망청하는 모습을 언제까지 인내하며 지켜봐야 하는가. 이런 상황에서 공기업의 선진화니 뭐니 하는 구호는 공염불일 뿐이다. 새 정부는 단단히 각오하지 않으면 공공기관 개혁에 또 실패할 수 있다. 이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바꿔야 한다. 공기업이 국책사업을 맡아 발생한 부채를 제외하고 순전히 방만경영 등으로 생긴 빚에 대해서는 임직원들에게 그 책임을 분명히 묻는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신의 직장’이란 소리가 더는 나오지 않도록 인사와 경영평가부터 엄정한 틀을 갖춰야 할 것이다.
  • 민주 원내대표 경선 3파전

    민주 원내대표 경선 3파전

    5·4 전당대회에서 당의 새 지도부를 선출한 민주당이 6일부터 본격적인 원내대표 경선 레이스에 돌입했다. 친노(친노무현)계와 호남 인사의 퇴조를 보여 준 이번 전당대회의 결과가 원내대표 경선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민주당은 이날부터 8일까지 사흘간 후보 등록을 시작했다. 경선 후보자 합동 토론회를 거쳐 15일 의원총회에서 의원 127명의 투표로 임기 1년의 새 원내대표를 선출한다. 전병헌(서울 동작갑) 의원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출마선언을 했다. 출마를 결심한 김동철(광주 광산갑), 우윤근(광양·구례) 의원도 7일 각각 후보 등록과 함께 출마 기자회견을 한다. 다수당의 일방적인 국회 운영에 제동을 거는 국회선진화법과 당 대표·원내대표·정책위의장 등의 ‘여야 6인협의체’ 가동으로 야당 원내대표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3선 의원들의 3파전이 됐다. 대여 관계에서 김 의원과 우 의원은 온건파에, 전 의원은 강경파로 분류된다. 전 의원은 출마선언에서도 “존재감이 분명한 강한 야당”을 강조했다. 당 혁신과 대정부·여당 공세를 펼칠 강성 원내대표가 필요하다는 의원들의 공감대가 형성되면 전 의원이 유리하다. 반면 ‘민주당의 텃밭’임에도 새 지도부에 호남 출신이 없다며 ‘호남 원내대표론’이 힘을 얻는다면 호남 출신인 김 의원과 우 의원이 유리해진다. 두 후보는 조만간 만나 후보 단일화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알려졌다. 비주류의 약진에 대해서는 당내 ‘쇄신모임’에서 활동하는 등 비주류로 분류되는 김 의원 측이 고무돼 있다. 김 의원은 지난해 12월 원내대표 경선에서 29표를 얻어 박기춘·신계륜 의원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우 의원은 18대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맡아 여야정협의체가 합의한 개헌 논의에서 협상을 잘 이끌 수 있다는 점과 원내수석부대표 경험이 강점으로 꼽힌다. 전 의원은 정책위의장 시절 무상의료·무상보육·무상급식+반값등록금의 이른바 ‘3+1 보편적 복지’를 이슈화하는 등 정무적 기획력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 [시론] 경기 대책 좌고우면할 때가 아니다/현정택 인하대 경상대 교수

    [시론] 경기 대책 좌고우면할 때가 아니다/현정택 인하대 경상대 교수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전망하면서 주요 아시아 회원국 중 한국이 꼴찌에서 두 번째로 낮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았다. 이 같은 한국 경제의 어두운 전망은 실제 나타난 여러 지표로도 확인되고 있다. 한국 경제성장의 견인차라 할 수 있는 수출은 4월까지 불과 0.5% 늘어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광공업 생산은 두 달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며, 설비투자는 두 자릿수 이상의 큰 폭으로 하락했다. 경기 침체의 여파로 건설·해운·조선 업종을 비롯한 기업의 부실이 확대되고, 이에 따라 주요 금융기관의 순이익도 작년의 반 토막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 경제는 그동안 세계 경제 사이클과 같이 움직였는데, 최근 미국과 중국 등에서 회복 기운이 일고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깊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세계 제일의 경제 대국인 미국에서는 생산·판매·고용 등의 지표가 개선되고 뉴욕 증시의 종합주가지수는 지난 3월 사상 최고치를 달성했다. 유럽의 불안감은 지속되고 있지만, 중국 경제는 견실한 성장을 하고 장기 불황에 시달리던 일본 경제도 아베 신조 총리의 부임 이후 경제 활력을 회복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거시경제정책의 방향을 올바로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럽과 같이 재정구조가 매우 취약한 나라에서도 팽창정책을 펼친 2012년에 상대적으로 재정여력이 있는 한국은 균형재정이라는 목표 달성에 우선순위를 부여해 적극적인 부양정책을 쓰지 않았다. 또 통화정책에 있어서도 지난 2년간의 계속적인 성장률 하락 속에서 단 두 차례 각각 0.25% 포인트의 소폭 금리 조정만 했다. 미국이 2015년까지 제로 금리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나 일본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때까지 무제한의 통화를 방출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뚜렷이 대비된다. 그 결과,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에 그쳤고 올해 성장률은 한국은행 전망대로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2.6%에 불과하다. 한국이 경제발전을 시작한 1960년대 이래 경제성장률이 2년 연속 이렇게 낮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실 2%대 경제성장률은 매우 성숙한 선진국인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수준인데, 문제는 이런 추세가 계속되는 경우 한국이 지속적인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잠재성장률 자체가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경제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경기부양에 두고 정책 역량과 수단을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복지제도 확충, 지하경제 양성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 정립, 미래의 창조적인 성장동력 확보 등 중요하고도 반드시 달성해야 할 국가 경제과제가 많지만 현재 가장 시급한 과제는 경제가 더 이상 가라앉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경기 부양 대책의 효과를 좌우하는 것은 내용보다도 시기와 규모에 있다. 국회에 제출된 추가경정예산안은 지금 통과되더라도 하반기가 돼서야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므로 많이 늦은 셈이다. 더 이상의 지연이 없도록 이번 회기 내에 통과시켜야만 한다. 규모 면에서도 추경 중 실제 부양효과가 있는 것은 세금 감면과 지출 증대를 포함하여 13조원 정도이므로 필요하면 추가 부양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통화정책에서도 최근 유럽중앙은행과 인도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한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물론 재정 지출이 늘어나는 데 따라 나랏빚을 걱정해야 하고 돈을 푸는 경우 인플레이션 압력을 고려해야 하지만 좌고우면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일본이 장기 불황을 겪게 된 근본 원인도 미흡한 경기부양과 때이른 긴축정책을 번갈아 가며 사용했던 데에 있다. 지난달 발표된 국제통화기금의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에는 ‘희망’ ‘현실’ ‘리스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 경제가 처한 현실을 직시해 추락의 위험을 예방하는 정책을 펼쳐나감으로써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 [사설] 더 많은 소신투표 나와야 국회 바로 선다

    국회의원들이 최근 쟁점 법안들에 대해 당론투표가 아닌 소신투표를 하는 성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입법이나 현안에 대해 당론에 무조건 따르지 않고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찬반 및 기권 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과 선진 정치문화 구현을 위해 바람직한 현상이다. 요즘엔 과거와 달리 의원들이 여야 합의나 당론을 공개적으로 비판·반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의원들이 정당의 정체성 등을 고려할 때 사안마다 당론과 다른 소신과 원칙을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지도부가 획일성을 강요하는 당론을 지양하고 재량권을 보장·확대해 나갈 때 국회가 바로 설 수 있다고 본다. 며칠 전 국회를 통과한 하도급공정법, 정년연장법, 양도세감면법, 취득세감면법 등 4개 법안에 대한 의원들의 표결을 분석한 결과 여야 의원 절반이 최소한 한 차례 당론투표를 거부했다고 한다. 이들 법안은 여야의 의견 조율과 관련 상임위를 거친 것이어서 당론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정당마다 반대표가 꽤 됐다. 그러다 보니 여야 간 정쟁보다는 당내 싸움이 잦다고 한다. 소신투표 경향을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19대 국회 출범 이후 분위기가 과거와 달라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현상은 ‘1인 지배 정당’의 붕괴와 당지도부의 통제력 약화에 기인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의원들이 국회와 정당의 민주적 운영을 요구하고 실천한 측면에서 의미 있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1952년 정권 연장을 위한 부산 정치 파동과, 1971년 장관 해임을 둘러싼 공화당 항명사태 등은 의정 사상 대표적인 오욕의 역사다. 민주화 이후에도 ‘상명하복’ 식 국회·정당 운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당론투표가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국회의원을 줄세우고 ‘거수기’로 전락시킨다는 점에서 비민주적 요소가 많다. 이제 국회도 절차적 민주주의를 실천할 때가 됐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국회가 가장 비민주적이라면 ‘민의의 전당’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의원들도 자잘한 지역 현안을 나랏일보다 앞세우는 등의 소아적 행태를 버려야 한다. 민주주의를 욕보이는 의사당 난동과 폭언도 당론투표와 함께 사라져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다.
  • [책꽂이]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가야트리 스피박 등 지음, 태혜숙 옮김, 그린비 펴냄) 인도 출신 문학비평가인 가야트리 스피박은 에드워드 사이드, 호미 바바와 함께 탈식민주의 3대 이론가로 꼽힌다. 스피박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개념 ‘서발턴’을 빌려와 차별받은 이들 가운데서도 또 차별받는 여성과 소수자 문제를 제기했다. 이 문제 제기에 호응한 연구들이 이어졌고 2002년 관련 학술대회까지 열렸다. 그 결과물을 모은 책이다. 3만원. 한국사회 불평등 연구(신광영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한국 사회 불평등 문제를 30여년간 추적한 저자는 민주화로 이룩한 성과를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잃어버렸다고 본다. 지니계수로 보면 유럽은 0.20 대, 남미쪽은 0.40 대 정도다. 우리나라는 1996년 0.295로 불평등이 심하지 않은 군에 속했으나 2000년 0.352를 기록하는 등 급속하게 치솟았다. 2005년 소득 상위 10% 대 하위 10%의 비율은 7.44로, 선진국 가운데 가장 불평등하다는 미국의 5.45보다도 더 크다. 때문에 한국은 가장 불행한 사회다. OECD 기준으로 비정규직 비율 1위, 자살률 1위, 노인 빈곤율 1위, 노인 자살률 1위, 불평등 3위, 상대 빈곤율 2위다. 디스토피아가 되어버린 한국에 대한 진단이다. 1만 5000원. 국제법의 역사(아르투어 누스바움 지음, 김영석 옮김, 한길사 펴냄) 국제법 분야 세계적 권위자로서 국제법의 역사를 정리해둔 것이다. 원시시대부터 고대 그리스, 고대 중국·인도, 서양 중세, 서구 근대, 나폴레옹 전쟁 시기, 빈회의에서부터 1차세계대전까지, 베르사유 조약 이후 2차대전시기까지 등 인류 역사 주요 시기마다 등장했던 국제법 문제를 다뤘다. 3만원. 경제학은 어떻게 과학을 움직이는가(폴라 스테판 지음, 인윤희 옮김, 글항아리 펴냄) 기초과학을 두고 순수학문 어쩌고 하지만 실은 연구비 책정 문제에 사활이 걸려 있다. 첨단 과학 프로젝트가 경제학적 논리와 어떻게 맞물려 들어가는지를 설명한 책이다. 이 같은 현상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첨단과학은 날이 갈수록 대단위 실험을 수반하고 있으니까. 따라서 저자는 보상체계, 보조금 지급 구조, 대학원생 지원 방식 등을 세심하게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2만 2000원. 해방공간의 영화·영화인(한상언 지음, 이론과실천 펴냄) 광복에서 6·25전쟁까지 영화인들이 남북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도 민족영화 건설을 위해 벌인 영화 운동을 다뤘다. 좌우익의 분열, 분단과 전쟁의 참화 속에서 살아갔던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1만 3500원.
  • [지금&여기] “을(乙)이 더 미워요”/유대근 사회부 기자

    [지금&여기] “을(乙)이 더 미워요”/유대근 사회부 기자

    “갑(甲)보다 을(乙)이 더 미울 때가 많아요.” 백화점 매대에서 십수년째 화장품을 파는 여성 A씨는 자신의 신분이 “갑을병 순서에서 병(丙)쯤 된다”고 소개했다. 손님이 갑, 백화점이 을이라면 파견직인 자신은 그 밑이라는 설명이다. 위계의 먹이사슬. 그 안에 갇힌 그녀를 더 서글프게 하는 건 손님보다 백화점이란다. 바닥이 보이는 화장품 병을 들고 와 “피부가 되레 상했으니 바꿔달라”거나 막무가내로 욕설을 퍼붓는 손님과 때로는 대거리라도 하고 싶지만 그때마다 백화점이 주입한 교육 내용이 떠오른다. ‘참고 참아라. 그러지 않으면 당신이 일터를 잃을지 모른다’는 것. A씨가 도리 없이 “죄송하다”며 허리를 굽히는 이유다. 베테랑 여승무원 B씨도 사정이 비슷하다. 10년 넘게 일하면서 얼굴에 침을 뱉는 승객도 만나봤다. 그래도 참았다. 승객이 항의 글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면 회사가 자신은 물론 동료들의 인사고과에도 불이익을 주는 까닭이다. 그래서 오늘도 웃는다. ‘라면 상무’와 ‘빵 회장’ 사건 등 이른바 ‘갑질’(위계가 높음을 이용한 부당행위)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여승무원을 때린 임원의 전 소속 기업은 “갑 노릇만 하다가 터질 일이 터졌다”며 자성했다. 하지만 ‘을질’을 강요하는 기업 문화에는 반성과 지적이 거의 없어 우려스럽다. 감정노동자의 비애를 취재할 때 만난 노동자들은 “부당한 고객 요구를 거부하면 회사가 나쁜 평가를 내리기 때문에 노예와 같은 서비스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 고객의 횡포에 직원의 몸과 마음이 병드는 것보다 고객과의 갈등이 알려져 기업 이미지에 해가 될까봐 더 우려하는 것이 우리 기업들의 현실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런 실상을 꼬집으며 기업들에 “선진국처럼 고객 마찰 관리 매뉴얼을 만들고 기준 이상의 부당 요구는 직원이 거절하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국내 기업들도 반품 요구 등에 대한 대응 지침이 있을 테지만 고객의 폭언 등이 쏟아져 현장을 급히 정리하고 싶은 상황이 되면 지침은 휴지 조각이 된다. 결국 기업이 직원의 정당한 대응에 힘을 실어줄 때 현장의 갑을 문화가 바뀔 수 있다. 회장님들이 흔히 말하듯 “직원은 한가족”이라고 생각한다면 끝없이 인내심만을 강요하는 조직문화부터 당장 바꿔야 할 터이다. dynamic@seoul.co.kr
  • “선진국 양적완화 부작용 우려… 공동 대응”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한국, 중국, 일본 3국은 선진국의 양적 완화에 따른 부작용에 맞서 함께 대응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16차 ASEAN+3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의장국 중국·브루나이)에서 회원국들이 이 같은 내용에 합의했다고 3일 밝혔다. 이날 회의에는 김중수 한은 총재와 은성수 기재부 국제경제관리관이 참석했다. 회원국들은 우선 선진국의 양적완화에 대한 자본 유출입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방안을 연구하기로 결정했다. 선진국의 양적완화로 풀린 유동성이 한국과 같은 신흥국으로 흘러들어 오면서 금리, 환율 등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세종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버진아일랜드 등 조세피난처 5곳 계좌정보 공개 합의

    국제사회에서 조세피난처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압력이 거세지는 가운데 버진아일랜드를 비롯한 영국령 섬 5곳이 앞으로 영국 정부에 계좌 정보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2일 영국 더타임스 등에 따르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와 버뮤다, 앵귈라, 몬트세랫, 터크스케이커스제도가 앞으로 영국 세무당국에 구체적인 계좌 정보를 넘겨주기로 합의했다. 이들이 제공한 정보는 영국 외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과도 자동으로 공유된다. 공개되는 정보에는 계좌 소유주 이름과 주소, 생년월일, 계좌번호, 계좌잔고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불법자금을 숨겨뒀던 사람들은 앞으로 2016년까지 밀린 세금과 10~20%의 과징금을 내면 기소를 면할 수 있다. 조지 오즈번 영국 재무장관은 “이번 합의는 불법자금 및 탈세와의 전쟁에서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들도 조세피난처를 없애기 위한 이러한 노력을 따라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영국 정부는 앞서 영국령인 맨섬과 건지섬, 저지섬과도 정보 공유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번 합의는 해당 섬들이 날로 거세지는 조세피난처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들어 탈세 스캔들이 잇따라 터지고 선진국의 재정위기가 부각되면서 조세피난처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 주요 20개국(G20)은 지난달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와 각종 역외 탈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회원국 간 조세 정보 교환을 강화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기고] 물이용부담금, 상생의 정책이다/최지용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기고] 물이용부담금, 상생의 정책이다/최지용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물 쓰듯이’라는 표현이 있다. 하지만 물은 더 이상 아낌없이 ‘펑펑’ 써서는 안 되는 소중한 자원이다. 산 좋고 물 맑은 우리나라 역시 물 부족 국가이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언제까지 맑은 물을 마실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발행한 ‘환경전망 2050’에 따르면 2050년 물 수요는 400%나 증가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 인구의 40% 이상이 물 부족 스트레스를 겪고, 맑은 물을 마시기 위한 국가 간 경쟁도 가열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우리나라는 1999년 물이용부담금제를 도입했다. 믿고 마실 수 있는 저렴하고 안전한 식수를 지속적으로 공급받기 위한 관리에 필요한 비용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옛 속담을 실천하는 데 지출되는 돈이다. 상수원의 수질을 먹는 물에 적합한 수준으로 보호하기 위한 물이용부담금은 상수원을 이용하는 이용자에게 편익이 돌아간다. 물이용부담금은 지금껏 환경기초시설 설치·운영에 47.1%, 주민 지원에 20.9%, 토지 매수에 19.4% 등 상수원 보호와 관련된 정책에 지출됐다. 이에 따라 부담금 지원 사업구역의 최종 말단 지점인 잠실 수중보의 생화학적 산소요구량(BOD) 농도는 도입 전에 비해 1.3배나 개선됐다. 게다가 주민 지원, 토지 매수 및 수변구역관리, 비점(非點)오염관리 지원 등의 효과까지 고려하면 그 효과는 훨씬 크다. 특히 물이용부담금은 상수원을 자체 보유하지 못한 서울과 인천시에 상수원 관리 수단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상수원 지역인 팔당 상류 유역은 수도권에 인접해 개발 수요가 큰 만큼 각종 규제수단을 통해 오염원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체계적인 관리가 절실하다. 오염총량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개발을 억제하고 수변구역을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물이용부담금이 없어지면 서울과 인천시는 시민들이 마시는 상수원에 대한 관리 수단이 없어진다. 상수원을 지킬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인 셈이다. 주목해야 할 또 다른 하나는 물이용부담금이 정부의 일방적, 강제적인 징수가 아니라 상·하류의 합의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상수원 수질 개선을 위한 재원이라는 화폐적 가치를 넘어 상류 지역과 하류 지역의 상생을 위한 결과물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다. 만약 훼손되면 이후에는 물이용부담금의 수배의 비용을 치르더라도 다시 마련할 수 없을 것이다. 올해는 ‘세계 물 협력의 해’이기도 하다. 물 협력에 대한 가장 우수한 사례가 물이용부담금제가 아닌가 싶다. 많은 나라들도 상수원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각종 형태의 수익자에게 부담을 지우고 있다. 물 관리에서는 선진국으로 꼽히는 영국은 2014년부터 우리와 같은 물이용부담금제를 시행할 태세다. 많은 곳에서 현재 물이용부담금을 둘러싼 상·하류 간의 갈등을 빚고 있지만 공영정신 아래 물이용부담금이 자발적·효율적·안정적으로 이행될 때 상수원 관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사설] 60세 정년연장 형평성 확보 보완책 서둘러라

    ‘정년 60세 연장법’이 국회를 통과해 정년 연장의 큰 방향은 잡혔다. 인구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정년 연장은 필연적이며 다소 늦은 감이 있다. 청년 일자리 부족이 사회문제로 부상한 현실을 도외시할 수 없지만, 세계적인 정년 연장 추세를 보면 더 늦춰서도 안 될 사안이었다. 하지만 이번 혜택에서 제외된 연령대에 대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아 형평성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각종 후속 보완책이 요구된다. 정년 연장법은 300명 이상의 사업장 등에서 2016년 1월부터 시행된다. 300명 미만 사업장에서는 그 다음 해 1월부터 적용된다. 하지만 55~58세가 정년인 사업장의 경우, 1957~1960년생(300인 미만 사업장은 61년생까지)은 이번 혜택에서 제외된 상태다. 55세 정년 사업장의 경우 1960년생은 2015년까지만 일하지만 1961년생은 5년을 더하는 셈이다. 이 같은 차별적 요소에 따른 좌절감이 크다고 한다. 50대 중장년층은 가정경제에서 중요한 때다. 자녀들의 대학 뒷바라지를 해야 하고 결혼도 시켜야 한다. 본인의 노후도 준비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이 같은 형평성 문제가 부각되자 후속 보완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다음 달까지 관련 부처와 논의를 거친 뒤 시행령을 만들어 내년부터 시행하겠다는 방안이다. 후속안에는 임금피크제 도입 등 임금체계 개편안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 법안을 대표발의한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도 “사업장에서 유연성을 갖도록 고용부와 대안 마련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상당수가 퇴직 후 빈곤층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대안 마련은 적극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이들의 박탈감을 줄이는 방안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임금피크제의 적용과 성과급제 도입 등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최근 정년 연장을 하면서 성과급제를 도입한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사례도 있다. 또한 사업장 내에서 이들을 활용할 만한 직무도 적지 않다. 숙련된 기술과 노하우 전수 등이다. 고용에 따른 정부 지원금제도 도입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는 새 정부의 ‘고용률 70% 달성’ 정책과 맞아떨어진다. 청년 일자리 감소가 우려되지만, 그동안 마련해온 대책을 추진하면 큰 충돌은 피할 수 있다고 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근 연구 결과 장년층 일자리가 1% 늘면 청년 일자리가 0.2~0.3%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 성격이 달라 상생 관계에 가깝다는 것이다. 최근 복지선진국에서는 연금 대신 일자리로 경제를 살리는 정책 기조로 전환하는 추세다. 일자리 문제는 단순한 비용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정부는 이들 국가의 성공적 임금체계 사례를 살펴 이번 법안에서 누락된 후속 보완책을 서둘러 내놓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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