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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 앞세운 中 ‘늑대 외교’… 유연한 대만 ‘고양이 외교’에 판정패

    중국이 미국 대선을 앞두고 연일 대만을 위협하며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고 압박하는 가운데 대만이 중국 ‘전랑(늑대 전사) 외교’를 깨려고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른바 ‘전묘(고양이 전사) 외교’다. 힘의 논리로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중국과 정반대로 부드러움을 무기로 ‘자유와 평화를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확산해 우군을 늘리려는 전략이다. 지난 26일 닛케이아시안리뷰(닛케이)는 “최근 차이잉원 대만 총통(대통령)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2012년 인도 타지마할을 방문한 사진을 올린 뒤 ‘나마스테(안녕), 인도의 경이로운 건물과 생기 넘치는 문화, 친절한 주민들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적었다”고 보도했다. 지난 10일 대만의 국경일인 쌍십절을 맞아 여러 인도 매체가 대만 관련 특집기사를 싣고 우자오셰 대만 외교부장(장관) 인터뷰를 내보낸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반면 뉴델리 주재 중국대사관은 “대만은 국가가 아니다”라고 항의했다가 언론과 누리꾼의 질타만 받았다. 차이 총통은 ‘독립’이나 ‘국가’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도 인도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닛케이는 “최근 중국 정부가 전례없이 공격적인 외교전을 펼쳐 외교관들의 언사도 거칠어지고 있다”고 했다. 지난 5월 미국이 중국의 ‘홍콩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제정에 반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요구하자 장쥔 당시 유엔 주재 중국대사는 “유엔이 미국의 인질이 되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홍콩보안법과 정보기술(IT) 기업 화웨이 문제로 영국과의 갈등이 커지자 류샤오밍 런던 주재 중국대사도 “중국을 적대시하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일에는 중국 외교관들이 태평양의 섬나라 피지에서 열린 대만 쌍십절 행사에 난입해 몸싸움을 벌였다. 전랑 외교에는 원칙주의를 중시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성향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하지만 지나친 강경 외교로 ‘득보다 실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전 세계 14개 선진국 주민 1만 4000여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모든 나라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중국을 싫어한다”고 답했다. 대만의 ‘전묘 외교’는 이런 중국의 실책을 역이용한다. 이 용어는 지난 7월 차이 총통이 미국 대사 격인 샤오메이친 미국 주재 타이베이경제문화대표처장을 임명하며 “유연한 ‘고양이 전사’의 자질이 있다”고 치켜세운 데서 유래했다. 지난 8월 앨릭스 에이자 미 보건복지부 장관의 대만 방문을 두고 중국이 “선을 넘지 말라”고 반발하자 대만 행정원(내각)이 “우리는 그저 민주주의와 버블티를 좋아하는 똑똑한 나라일 뿐”이라고 재치있게 응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을 맞받아치기보다는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하는 데 주력한다. 대만 중앙통신은 서방 외교관의 발언을 인용해 “중국이 전랑 외교로 국제적 이미지가 나빠졌다. 반면 대만은 (중국을 지렛대 삼아) 민주적이고 인권을 중시하는 이미지를 부각시켜 되레 위상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사설] 빛과 그림자 남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어제 78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쓰러진 뒤 6년 만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고인은 부친인 이병철 삼성 창업주 별세 이후 1987년부터 삼성그룹을 이끌며 글로벌 초일류 기업의 기틀을 마련한 경영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각계각층은 추모의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대체로 전경련과 상공회의소 등 재계에서는 고인을 한국 산업의 고도화는 물론 우리 경제 성장의 초석을 닦은 인물로 칭송하고 있지만 정치권과 시민사회 등에서는 엇갈린 시각이 표출된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생전 이 회장의 공로에 초점을 맞춰 경제성장에 기여한 점을 평가했고 정의당이나 일부 시민사회는 정경유착과 노조 탄압 등 재계 리더로서 걸맞지 않은 기업 윤리에 아쉬움을 지적했다. 대한민국 사회의 이런 이중적이고 갈라진 평가는 고인과 삼성 그룹의 자업자득인 측면이 크지만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이 회장 취임 당시 10조원이었던 매출 규모는 2018년 387조원으로 약 39배 늘었고 주식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무려 396배 늘었다.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꾸라”는 이른바 ‘삼성 신경영’은 글로벌 초일류 기업의 목표를 달성하며 한국 경제의 질적 변화를 선도한 것도 사실이다. 반도체 강국을 향한 그의 집념과 결단이 오늘날 한국 경제 발전의 초석을 깔아 놓은 공로는 인정하고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등장한 황제경영은 세습경영의 편법으로 이어져 선진경영의 발목을 잡았고 불법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무모했던 ‘무노조 경영’에 대한 집착은 노조 탄압이란 질곡을 남겼다.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이 말해주듯 기업이익 극대화를 위해 우리 사회에 정경유착의 뿌리를 심어 놓은 과오도 냉정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이 회장이 병석에 있었던 지난 6년 동안 삼성에선 완강했던 무노조 원칙도 허물어졌고 계열사별로 준법감시위원회가 도입돼 투명경영도 강화됐다. ‘경영 세습’을 근본적으로 막는, ‘4세 경영 포기’를 공식화한 것은 그나마 달라진 삼성의 모습이다. 이 회장의 별세로 ‘이재용 부회장 시대’가 열렸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의 불법 행위 등으로 법의 심판대에 서 있는 상황이지만 고인의 업적을 계승하되 굴곡의 그림자는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과감하게 끊고 국민의 사랑을 받는 삼성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 [사설] 국감 저질 언행, 국민은 부끄럽다

    지난 23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방송정보통신위원회(과방위) 국정감사는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의심할 만한 저질 언행으로 얼룩졌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원욱 과방위원장에게 야당 간사인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자신의 발언을 중간에 끊었다고 항의하면서 말싸움이 시작됐다. 박 의원이 “당신이 중간에”라며 언성을 높이자 이 위원장은 “당신? 어디다 대고 당신이야? 여기 위원장이야!”라고 소리쳤고, 박 의원이 “건방지게 반말을 해”라고 발끈했다. 이 위원장이 박 의원 자리 앞으로 다가가자 박 의원은 “한 대 쳐 볼까”라며 팔을 올렸고 이 위원장이 “야 박성중”이라고 소리치자 박 의원은 “건방지게. 나이 어린 XX가”라고 맞받았다. 주위의 만류로 둘은 떨어졌지만 이 위원장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분이 안 풀린 듯 정회를 선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다가 내동댕이쳤다. 이 모습은 국회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국민들에게 그대로 방송됐다. 21세기에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으로 해외에서 선진국 대접을 받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이 벌인 행태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장면이었다. 상스러운 욕설과 폭행 위협을 가하는 대목에서는 저잣거리의 시정잡배와 뭐가 다른지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의 이런 수준을 보고 자라나는 학생들이 뭐를 배울지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한국 영화의 아카데미상 수상과 한국 가수의 빌보드차트 1위로 자부심을 가진 국민들은 한국 국회의원들의 3류 정치를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들은 부끄러움도 못 느끼는 모양이다. 국감은 10여분 뒤 재개됐지만 두 의원은 국민들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사회 각 분야는 선진국을 닮아 가는데 유독 정치만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모습에 국민들은 좌절한다. 수십 년 전 봤던 정치인들의 저질 언행이 여전히 계속되는 건 믿기 힘든 일이다. 정치인들 스스로 수준을 높일 수 없다면 깨어 있는 국민이 나설 수밖에 없다. 시정잡배와 같은 언행으로 국민을 부끄럽게 하는 수준 이하의 국회의원들은 기억했다가 선거에서 준엄히 심판해야 한다.
  • 무한탐구 즐긴 집념의 소년… 글로벌 삼성 ‘제2의 창업’ 이루다

    무한탐구 즐긴 집념의 소년… 글로벌 삼성 ‘제2의 창업’ 이루다

    국내 재계에서 가장 극적인 성공신화를 쓴 총수, 삼성을 글로벌 정보기술(IT) 최강자로 키워 낸 경영인, 무노조 경영을 견지한 자본가, 그리고 은둔의 황제. 이 같은 이름으로 수식돼 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위기의 순간마다 미래를 꿰뚫는 혁신의 리더십, 과감한 결단으로 ‘한국의 삼성’을 ‘세계의 삼성’으로 키우며 우리 경제의 고속 성장을 이끌었다. 아버지인 호암 이병철 선대 회장에게서 혹독한 경영 수업을 받은 그는 수많은 기로에서 발휘한 승부사적 결단, 품질에 대한 집념으로 메모리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TV 등에서 글로벌 1위를 거머쥐며 삼성을 ‘제2의 창업’ 수준으로 발전시켰다.외로운 유년기 바쁜 부모님·日유학으로 외로움에 익숙 자동차·레슬링 등 ‘마니아적 기질’ 키워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박두을씨 사이에서 3남 5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제일비료 회장을 지낸 맹희씨와 고인이 된 창희씨 등 두 명의 형이 있어 아들 중에서는 막내다. 여자 형제로는 인희(한솔그룹 고문), 숙희, 순희, 덕희씨 등 네 명의 누나가 있으며 여동생으로 신세계그룹 회장인 명희씨가 있다. 호암이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서 청과·건어물 무역회사인 삼성상회를 경영하던 시절 사업으로 바쁜 부모를 대신해 경남 의령의 할머니댁에서 세 살 때까지 자랐다. 국내에서 초등학교를 다섯 차례 옮겨 다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진국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엄명에 따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중학교 때 귀국해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한 뒤 다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와세다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966년 동양방송에 이사로 입사해 법무·내무부 장관을 지낸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의 딸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과 결혼했다. 결혼 후 삼성 비서실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삼성그룹의 큰 그림을 보게 된다.회장된 3남 두 형 제치고 46세에 삼성그룹 회장 취임 승부사적 결단·혁신으로 韓경제 신화 써 1966년. 이 회장의 둘째 형인 창희씨가 ‘한비 사건’(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구속되고, 맏형인 맹희씨도 밀수에 관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청와대 투서 사건 등 혼란이 이어진 가운데 호암은 1971년 막내아들 건희에게 삼성을 맡기기로 결단을 내린다. “장남 맹희는 경영에 뜻이 없고 차남 창희는 많은 기업을 하기 싫어한다. 3남 건희도 당초에는 사양했으나 마지막에는 역량은 부족하나 맡아 보겠다는 뜻을 가져다 주었다. 삼성그룹의 후계자는 건희로 정한 만큼 건희를 중심으로 삼성을 이끌어 갈 것이다.” 호암이 유언장에 남긴 말이다. 1987년 11월 19일 호암이 노환과 폐암의 합병증으로 78세의 일기로 별세하자 삼성그룹 사장단은 이건희 당시 부회장을 제2대 삼성그룹 회장으로 추대했다. 그의 나이 46세 때의 일이다.어린 시절 환경이 자주 바뀌며 홀로 보내는 시간에 익숙했던 고인은 마니아적 성격으로 집중력이 강했는데 이런 기질로 자라난 집념은 세계 1위 삼성의 원동력이 됐을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취미와 관심사는 다방면에 뻗쳐 있었다. 일본 유학 시절 고인의 외로움을 달래 줬던 건 프로레슬링이었다. 와세다대 재학 시절 역도산을 직접 만날 만큼 레슬링에 몰두했던 그는 눈자위가 찢어지는 부상으로 그만둘 때까지 1년여 동안 레슬링을 하면서 치열한 목표 의식을 키웠다. 그의 레슬링 사랑은 1996년 대한레슬링협회 회장,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지내며 이어졌다. 일본 유학 3년간 1200편의 영화를 봤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각종 기계를 직접 분해, 조립하면서 작동 원리를 파악하는 것도 즐겼다. 이에 평생 즐겨 쓴 휘호가 ‘무한탐구’였다. 미국 유학 시절에는 1년 반 동안 차를 죄다 뜯어 보며 차를 6대나 바꾸기도 했다. 1987년 취임과 함께 그는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일성을 내놨고 그 약속을 지켰다. 흑백 TV가 삼성의 주력이던 1974년 호암이 반도체산업 진출을 선언하도록 설득하며 사업을 주도한 것도 그다. 당초 동물적인 사업감각의 소유자였던 호암도 아들이 반도체 얘기를 꺼내면 “이놈아, 그 돈이면 TV를 몇백만 대나 더 만들 수 있는데 그 쪼그만 것 만드는 데 쓰겠다는 거냐”며 답답해했다고 한다. 1970년대 미국 실리콘밸리를 누비면서 첨단 하이테크 산업만이 살길이라고 믿은 그는 뜻을 굽히지 않고 호암의 지원을 이끌어 내 오늘날의 삼성을 만든 것이다. 삼성이 글로벌 일류기업이 된 뒤에도 ‘2등 구제불능론’(2등은 현상 유지밖에 못 한다. 조금이라도 지면 완전히 진 것이다) 등 늘 위기론을 부각시키며 ‘초격차’를 위한 고삐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13년 사상 최대 실적에도 이듬해인 2014년 신년사에서 “다시 한번 바뀌어야 한다.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며 체질과 구조를 총체적으로 혁신하는 ‘마하경영’을 화두로 제시했다. 그의 마지막 신년사이기도 했다.어두운 유산 정관계 로비로 퇴진, 위기론 들고 복귀불법 승계 의혹, 삼성의 리스크로 남아 성공만큼 시련도 끊이지 않았다. 특히 검찰과 질긴 악연을 이어 가며 재임 기간 세 차례나 법정에 섰다. 1996년에는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재판을 받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공소시효 완료로 무혐의 결정이 났지만 2005년 안기부 엑스파일 사건 때도 검찰 수사를 받았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폭로는 삼성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전직 법무팀장이던 김 변호사는 삼성 비자금 50여억원을 자신이 직접 관리해 왔다고 폭로했다. 삼성의 비자금 조성 방식과 정치인, 법조인에 대한 전방위적 로비 등이 공개되며 지탄을 받았다. 2008년 4월 22일 이 회장은 대표이사 회장과 등기이사직을 내놓으며 경영에서 손을 뗐다. 이듬해 재판부는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고인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했다. 이어 2010년 3월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이 무너지고 있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며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고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정관계 불법 로비, 불투명한 지배구조, 노조 설립 불허 등 그의 체제에서 이뤄진 삼성의 각종 문제들은 지금도 삼성과 재벌에 대한 불신을 만든 ‘어두운 유산’으로 남았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이건희 회장 “불량은 범죄”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 호통친 이유

    이건희 회장 “불량은 범죄”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 호통친 이유

    삼성전자를 글로벌 IT 기업 최강자로 키워낸 이건희 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바꾼 우리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할 정도로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았다. 과감한 돌파력과 끈질긴 인내, 사업에 대한 통찰력은 이런 다채로운 삶을 통해 차츰 완성되고 굳건해졌다. 이건희 회장은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 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호암이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서 청과·건어물 무역회사인 삼성상회를 경영하던 시절이다. 어린 건희는 경남 의령 친가로 보내져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다. 1945년 해방되고 어머니와 형제를 만날 수 있었다. 형으로는 제일비료 회장을 지낸 맹희씨와 고인이 된 창희씨, 누나로는 인희(한솔그룹 고문), 숙희, 순희, 덕희씨가 있다. 신세계그룹 회장인 명희씨가 유일한 동생(여동생)이다. 그는 사업가인 호암을 따라다니며 유소년기를 보냈다. 유년기를 대구에서 보내다 사업확장에 나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1947년 상경했다. 혜화초등학교에 다녔다. ●무슨 물건이든 뜯어보고 해부해봐야 직성 풀려 부산사범부속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53년, 선진국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명에 따라 일본 도쿄로 유학을 떠났다. 이 회장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유독 과학탐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슨 물건이든 손에 잡히면 뜯어보고 해부해봐야 직성이 풀렸다. 그런 성격이 삼성그룹의 발자취에 큰 영향을 미쳤다.당시 첫째 형이 도쿄대학 농과대학에, 둘째 형이 와세다대학을 다니고 있었으며 어린 건희는 둘째 형과 같이 지냈다. 그러나 나이 차이가 아홉 살이나 났던 만큼 외로움을 많이 느낄 수밖에 없었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 외로움을 타다 보니 개를 길렀다. 개 기르기는 취미가 돼 1979년엔 일본 세계견종종합전시회에 순종 진돗개 한 쌍을 직접 출전시키기도 했다. 순종을 찾느라 150마리까지 키워보기도 했다고 한다. 영화에 심취해 일본 유학 3년간 1200편 이상을 본 걸로 알려져 있다. 일본 막부시대 사무라이 영화가 많았다. 3년간의 일본 유학생활을 마치고 서울사대부속중학교에 편입했고 서울사대부속고등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시절 레슬링부에 들어갔으며 2학년 때는 전국대회에 나가 입상하기도 했다. 일본 와세다대학 유학 중엔 당시 전설로 불리던 한국계 프로레슬러 역도산을 만난 일화도 있다. 럭비에도 심취했다. 당시 스포츠와 맺은 인연을 계기로 대한레슬링협회장을 지내는 등 아마스포츠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1996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되는 영광으로 이어졌다. ●경영 철학에 핵심이 된 ‘미꾸라지와 메기’ 이론 호암은 학창시절의 이건희 회장에게 ‘미꾸라지와 메기 이론’을 주입시켰다. 이것은 그의 경영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어떤 농부가 한쪽 논에는 미꾸라지만 풀어놓고, 다른 쪽 논에는 미꾸라지와 메기를 같이 풀어놓았다. 천적인 메기와 뒤섞여 풀어놓은 미꾸라지는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튼실했다. 살아남으려면 메기보다 빨라야 했기 때문이다. 서울사대부고를 나온 뒤에는 연세대학교에 합격했으나 호암의 권유로 일본 와세다대학 상학부로 진학했고, 와세다대학 졸업 후에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부전공으로 매스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이 시절 이 회장은 자동차에 심취했다. 자동차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자동차 구조에 관한 한 전문가 수준이 됐다. 미국에서 어느 대사가 타던 차량을 4200달러에 사서 한참 타다가 600달러를 더 받고 판 적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서울대 응용미술과에 재학 중이던 홍라희 여사를 만나 맞선을 봤다. 1967년 1월 약혼을 하고 홍 여사가 대학을 졸업한 후인 그해 4월 결혼에 골인한다. 결혼 후 삼성 비서실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삼성그룹의 큰 그림을 보게 된다. 1970년대 이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를 누빈다.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첨단 하이테크 산업으로의 진출을 모색하던 때였다. 당시 ‘반도체’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조악한 집적회로로 전자시계를 만들던 한국 반도체가 파산 위기에 직면했을 때 ‘삼성이 인수하자’고 건의했으나 호암은 고개를 저었다. 서른둘의 이건희는 순전히 자기 돈으로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했다. 그리고는 실리콘밸리를 50여 차례 드나들며 반도체 기술이전을 받아오려 애썼다. 페어차일드사에는 지분 30%를 내놓는 대신 기술을 받아오기도 했다. 256메가 D램의 신화는 이때부터 싹을 틔웠다. ●호암의 반대에도…‘반도체 신화’의 시작 삼성그룹 후계자로서의 본격적인 경영수업은 1978년 8월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시작됐다. 이병철 창업주가 위암 판정을 받고 약 2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창업주는 1977년 니케이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건희가 후계자”라고 공식화했다.이어 이듬해에는 삼성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해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28층에서 일을 시작했다. 창업주의 집무실 바로 옆방이었다. 호암은 “건희는 취미와 의향에서 기업 경영에 열심히 참여해 공부하는 것이 보였다”고 회고했다. 이 회장이 삼성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것은 부회장이 되고도 9년이나 지난 뒤였다. 그가 삼성의 경영권을 승계하기까지는 엄청난 풍랑이 몰아쳤다. 입사 이후에도 20년 넘게 우여곡절을 겪었다. 애초 호암은 이 회장에게 중앙매스컴을 맡길 작정이었다. 와세다대학 재학 시절부터 이를 권했고 실제로 이 회장은 1966년 첫 직장으로 동양방송에 입사한다. 하지만 그해 불거진 이른바 ‘한비 사건(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이 삼성그룹의 후계구도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다. 사카린 원료 밀수가 적발된 한비 사건은 호암의 장·차남인 맹희·창희 씨가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사건 직후에는 차남인 창희씨만 구속됐다. 이후 호암은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제계에서 은퇴한다. 눈물을 머금고 한비 지분 51%를 국가에 헌납해야 했다. 서른여섯이던 맹희씨는 삼성의 총수 대행으로 10여개 부사장 타이틀을 달고 활동했다. 당시만 해도 장자상속이 대원칙이던 시절 삼성의 경영권이 장남인 맹희씨로 넘어갈 듯 보였다.호암은 사장단을 향해 “맹희 부사장이 거부하면 세 번 얘기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내게 가져오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호암자전에선 “주위 권고와 본인 희망이 있어 맹희에게 그룹 일부의 경영을 맡겨봤는데 6개월도 채 못돼 맡긴 기업은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져 본인이 자청해 물러났다”고 썼다. 반면 맹희씨는 자신이 6개월이 아니라 7년간 삼성을 경영했다고 달리 기술했다. 이어진 그룹의 혼란과 청와대 투서 사건 등의 여파로 장남 맹희씨는 호암의 신임을 잃고 해외로 떠돌게 된다. 몇 차례 복귀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날아갔고 호암은 1971년 일찌감치 이건희 회장에게 삼성을 맡기기로 결단을 내린다. 이건희 부회장에게도 1982년 아찔한 순간이 닥친다. 그해 가을 어느 날 푸조를 몰고 양재대로를 달리던 그의 눈앞에 덤프트럭이 나타난다.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늦었다. 차 밖으로 튕겨 나간 이 회장은 외상이 심하지 않아 2주 만에 회복했지만 항간에는 교통사고를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 불호령 나온 이유 회장 취임 5년차인 1993년. 삼성 역사에 남을 중요한 해가 밝았다. 그해 2월. 삼성이 8㎜ VTR을 막 개발해 시장에 내놓던 시기다. 이 회장은 임원들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가전매장을 찾았다. GE, 필립스, 소니, 도시바 등 선진국 전자회사들의 휘황찬란한 제품 진열장 한 귀퉁이에 삼성 제품이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LA 센추리프라자 호텔 회의장에서 이 회장은 78가지 전자제품을 갖다놓고 당장 분해하라고 했다. 삼성 제품은 싸구려로 취급당했기 때문이다. 회의장에는 내내 이 회장의 호통과 불호령이 이어졌다. 그리고 세탁기 사건이 터졌다. 삼성사내방송 SBC의 몰래카메라 영상물에는 세탁기 뚜껑 여닫이 부분 부품이 들어맞지 않자 직원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칼로 2㎜를 깎아내고 조립하는 장면이 나왔다. 심지어 교대자를 바꿔가며 이런 식으로 제품을 대충 끼워 맞추는 장면이 카메라에 적나라하게 잡혔다.이 회장은 득달같이 이학수 비서실 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녹음하시오. 이게 그토록 강조했던 질 경영의 결과란 말이요. 당장 사장과 임원들 모두 프랑크푸르트로 집합시키시오”라고 지시했다. 윤종용, 김순택, 현명관 등 삼성의 주요 CEO와 고위 임원들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캠핀스키 호텔에 모였다. 이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압축되는 신경영 선언을 했다. 불량 부품을 칼로 깎아 조립하는 것을 보고 격노했던 그가 삼성의 제2 창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 회장은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한다. 모든 변화의 원점에는 나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변화의 방향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에세이에 썼다. 이 회장은 “전자산업의 경우 불량률이 3%에 달하면 그 회사는 망한다. ‘불량은 암이다. 악의 근원이다’라고 되뇌면서 일하라고 했다”고 불호령을 내렸다. 그 때 ‘불량은 범죄’라는 신조가 만들어졌다. 이 회장은 1990년대 들어 그룹의 주요 사업체를 분리하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그룹의 소유와 경영 체제를 명확히 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1991년 11월에는 신세계와 전주제지(현 한솔제지), 1993년 6월 제일제당(현 CJ)을 분리했고 1995년 7월에는 제일합섬을 떼냈다. ●“불량은 범죄” 부숴버린 15만점의 삼성제품들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신경영 선언 이후에도 그룹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자 이 회장은 또 결단한다. 1995년 3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에 직원들이 모였다. 운동장 중앙엔 무선전화기 등 삼성 마크가 붙은 전자제품 15만점이 놓였다. 해머를 든 직원들이 제품을 모조리 때려 부쉈다. 이윽고 무선전화기엔 불을 붙였다. 삼성전자 부회장을 한 이기태 당시 데이터사업본부 이사는 “내 혼이 들어간 제품이 불에 탔다. 그런데 그 불길은 과거와의 단절이었다”고 회고했다.1994년 국내 4위였던 삼성의 무선전화기 시장 점유율은 1년 뒤 시장 점유율 19%를 달성하며 1위에 올라섰다. 1990년대 중반에 일기 시작한 ‘애니콜 신화’는 국내 시장을 휩쓸고 세계로 뻗어나갔다. 당시 휴대전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자랑하던 모토로라가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고지를 점령하지 못했다. 애니콜의 인기는 전략 스마트폰인 갤럭시S 시리즈 등 모바일 기기의 혁신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반도체에 대한 이 회장의 남다른 집념도 결실을 봤다. 1992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64메가 D램을 개발하면서 반도체 강자가 됐고 이후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 번도 글로벌 1위를 내주지 않고 질주했다. 이 같은 체질 개선과 미래 산업에 대한 집중투자는 삼성을 크게 변화시켰다. 이 회장 취임 당시 9조9천억원이었던 그룹의 매출은 2013년 390조원으로 25년 만에 40배나 성장했으며 수출 규모도 63억 달러에서 2012년 1567억 달러로 25배 커졌다. 시가 총액은 1987년 1조원에서 2012년 300조원을 넘어섰다. 총자산은 500조원을 돌파했다. 고용 인원(글로벌 기준)도 10만여명에서 42만 5000여명으로 늘었다. 계열사 수도 비상장사를 포함해 17개에서 83개로 증가했다. 이는 신세계, 한솔, 새한 등 계열 분리된 기업을 제외한 것이다. 브랜드 가치도 급신장했다. 브랜드 컨설팅 그룹인 인터브랜드는 삼성의 브랜드 가치를 세계 9위인 329억 달러로 추산했다. 삼성은 부품과 세트(완제품)에서 모두 글로벌 1위를 제패한 전무후무한 IT 전자 기업으로 우뚝 섰다. 1969년 흑백 TV를 생산한 이후 37년 만인 2006년 글로벌 TV 시장에서 소니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고, 2012년에는 갤럭시 시리즈로 애플을 따라잡고 스마트폰 시장 세계 1위를 달성했다.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LSI 등 반도체 부문은 일찌감치 세계 1위 고지를 점령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재계 최고의 리더가 떠났다” 재계 애도물결

    “재계 최고의 리더가 떠났다” 재계 애도물결

    “대한민국 경제를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은 재계 최고의 리더가 떠났다.” 25일 이건희(사진)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 소식에 재계는 그의 업적을 기리며 일제히 애도를 표하고 있다.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이건희 회장은 남다른 집념과 혁신 정신으로 반도체 산업을 한국의 대표 먹거리 산업으로 이끌었고,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하면서 국격을 크게 높였고, 사회 곳곳의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상생의 정신을 몸소 실천했다”고 강조했다. 전경련은 이어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회장님의 혁신 정신은 우리 기업인들의 가슴 속에 영원토록 남아 있을 것”이라며 “그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경제가 처한 위기를 경제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경영계는 불굴의 도전 정신과 강한 리더십으로 우리나라 산업 발전을 견인했던 재계의 큰 별,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 소식에 존경심을 담아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경총은 삼성전자 40년사 발간사에 실렸던 “산업의 주권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도전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고 이 회장의 발언을 언급하며 “생전에 기술 발전에 대한 열정이 높았던 이 회장은 흑백 TV를 만드는 아시아의 작은 기업 삼성을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을 선도하는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고 평했다. 경총은 이어 “위기마다 도전정신과 강한 리더십으로 한국 경제의 지향점을 제시해줬던 고인의 기업가 정신을 이어받아 지금의 경제 위기 극복과 경제 활력 회복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라며 “삼성도 노사화합과 경영혁신을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해 갈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한국무역협회도 “무역업계는 한국 경제계에 큰 획을 그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이건희 회장은 삼성그룹을 세계 최고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우리나라가 무역강국이자 경제선진국이 될 수 있도록 크게 기여했다”고 애도 메시지를 냈다. 한 재계 고위 임원은 “선친인 이병철 회장이 삼성의 초석을 세웠다면, 이건희 회장은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시킨 불세출의 기업가로 응축할 수 있다”면서 “특히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전자 분야에서 세계 정상의 글로벌 회사로 도약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경영사에서 큰 획을 그은 기업가로 평가될 수 있다”고 회상했다. 이어 “무엇보다 고인은 ‘기업은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끊임없이 변신하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는 위기의 존재’라고 갈파했는데 그 유명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한마디는 변화와 혁신을 강조한 것으로 함축할 수 있다”고 정의했다. 또다른 재계 고위 임원 역시 “대한민국 산업발전 역사는 이건희 등장 전과 후로 나뉜다”면서 “고인은 반도체 진출 등 과감한 사업 결단과 통찰로 오늘날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는 데 큰 견인차 역할을 한 거인이었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삼성왕국’ 이건희·‘세계속 LG’ 구자경·‘정도경영’ 구본무…저무는 창업 1·2세대 별들

    ‘삼성왕국’ 이건희·‘세계속 LG’ 구자경·‘정도경영’ 구본무…저무는 창업 1·2세대 별들

    27년간 삼성왕국을 이끌어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별세하면서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기인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던 창업 1·2세대 별들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 14일에는 ‘인화’(人和·여러 사람이 서로 화합)의 기업 문화로 ‘세계속의 LG’를 일궈낸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94세 일기로 영면했다. 구인회 LG 창업주의 장남인 구 명예회장은 1950년 락희화학(현 LG화학)에 입사하며 평생 ‘LG맨’으로 살아왔다. 1970년부터 25년간 LG그룹의 수장을 맡으면서 취임 당시 260억원이었던 매출을 30조원대로 1150배 키워놨다. 2만여명이던 직원은 10만여명으로 늘었다. 현재 LG의 주력사업인 전자·화학 부문도 이때 기틀이 마련됐다.이보다 한 해 전인 2018년 5월엔 고 구자경 명예회장의 장남인 구본무 엘지(LG)그룹 회장이 향년 73세로 타계했다. 구 회장은 취임과 함께 전문경영인에 의한 자율경영체제 구축, 소유구조 개선을 통한 국민기업 지향, 정도경영 추구 등 이른바 ‘실체개혁’을 단행했다. 이때 추진했던 개혁의 결과가 현재 엘지의 긍정적인 기업 이미지, 안정적인 지배구조의 바탕이 됐고, 다른 재벌그룹과 달리 뇌물이나 비자금 사건 등도 거의 일어나지 않게 했다는 평가가 지금도 나온다.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도 올해 1월 19일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48년 일본 도쿄에서 껌 사업을 시작한 신 명예회장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식품, 유통, 관광, 화학 분야를 아우르는 대기업을 일궜다. 롯데그룹은 신 명예회장의 창업 등에 얽힌 이야기를 정리한 ‘신격호의 도전과 꿈’이라는 책을 지난 6월 발간하기도 했다. 현재 롯데그룹은 ‘형제의 난’을 거쳐 둘째 아들인 신동빈 회장이 이끌고 있다.지금은 간신히 흔적만 남았지만, 한때 재계순위 2위까지 올랐던 대우그룹 창업주 김우중 전 회장도 지난해 말 타계했다. 31세의 나이로 자본금 500만원을 갖고 시작해 사업을 점점 키워 창업 5년 만에 수출 100만 달러를 달성했다. 전자, 자동차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삼성, 현대 등 국내 굴지의 재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업으로 키웠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그룹은 공중분해됐다. 현재는 대우조선해양, 대우건설, 미래에셋대우 등 일부 기업들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정도다. 재계 관계자는 “창업 1·2세대인 고인들은 대한민국이 무역강국이자 경제선진국이 될 수 있도록 크게 기여했던 인물들”이라며 “빛과 그림자는 있겠지만 경제산업 전반에 걸친 고인들의 업적과 정신만큼은 역사 속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라고 평가?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무역협회 “이건희 회장 별세 깊은 애도…삼성 세계 최고기업으로 성장”

    무역협회 “이건희 회장 별세 깊은 애도…삼성 세계 최고기업으로 성장”

    한국무역협회는 25일 이건희 삼성 회장이 별세한 것에 대해 대해 “한국 경제계에 큰 획을 그은 이건희 회장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무역협회는 이날 “이 회장은 삼성그룹을 세계 최고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우리나라가 무역강국이자 경제 선진국이 될 수 있도록 크게 기여했다”면서 ”무역업계는 고인의 업적과 정신을 기려 무역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국경제의 중심축으로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이날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별세했다. 향년 78세. 삼성전자에서는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면서 “이에 조화와 조문은 정중히 사양하오니 양해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등이 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미 보건장관의 황당 발언 “한국 대형교회 접촉자 체포에 軍 동원”

    미 보건장관의 황당 발언 “한국 대형교회 접촉자 체포에 軍 동원”

    윗사람을 닮아가는 것일까? 알렉스 에이자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이 한국의 코로나19 방역에 대해 정말 얼토당토 않은 발언을 내놓았다. CNN 방송 녹취록에 따르면 에이자 장관은 지난 23일(현지시간) 진행자로부터 한국과 미국은 같은 날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지만 매우 다른 경로를 보였다는 질문을 받았다. 한국이 코로나19 통제에 성공한 반면, 미국은 대유행과 큰 피해를 막지 못했는데 장관으로서 초기부터 좀 더 공격적인 대응이 필요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타박하는 취지였다. 에이자 장관은 이에 한국은 미국과 철저히 다른 유형을 갖고 있다면서 “그들(한국)은 한 대형교회에서 폭발적인 감염 사례가 있었다”면서 “그들은 그 교회를 봉쇄하고 교회의 개인들과 접촉한 모든 사람을 체포하기 위해 군대와 경찰력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의 검사능력을 깔보는 듯한 발언을 이어가더니 한국의 이런 방식은 “그들의 문화적, 법적 맥락에서 그들에게 적합한 것”이라며 미국에서는 실행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치 후진적인 사회인 한국에서는 그런 폭압적인 방식이 어울리지만 미국 같은 선진국은 그렇지 않다는 안하무인식 주장을 펼친 것이다. 우리가 일부 대형교회에서 발생한 집단감염 사례 후 군대까지 동원했다는 주장을 어떻게 펼칠 수 있는지 솔직히 이해가 안 간다. 한국은 집단감염이 생긴 일부 교회에서 방역수칙을 위반한 개별 사례에 경찰 공권력이 개입한 적이 있지만, 에이자 장관의 말처럼 접촉자들을 모두 체포하기 위해 공권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구와 경북 지역에 신천지발 감염이 확산됐을 때 병상 확충과 치료 지원을 위해 군 의료인력이 투입된 적은 있다. 에이자 장관은 이날 진행자로부터 미국이 한국처럼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더라면 미국의 사망자를 크게 낮췄을 것이라는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진행자는 “(미국) 대통령이 처음부터 좀 더 솔직하고, 예를 들어 매우 공격적인 검사와 추적을 하는 한국의 전략을 채택했다면 (미국의) 22만 3000명 이상과 반대로 3000명도 안 되는 미국인이 사망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현재 발병자가 800만명이 넘고 사망자가 22만명을 초과하는 등 발병과 사망에서 전 세계 1위라는 명예롭지 못한 기록을 써나가고 있다. 에이자 장관이 이런 황당한 주장을 편 날, 미국의 하루 신규 확진자는 8만 5000명을 넘어 종전 최대인 지난 7월 16일 기록을 1만명 가량 뛰어넘을 정도로 미국의 재확산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미국 장관의 품격이 그 민낯을 드러낸 것 같아 실망스럽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남운선 의원, 정당발전소 용역 착수보고회 개최

    남운선 의원, 정당발전소 용역 착수보고회 개최

    경기도의회 연구단체 ‘정당발전소’(회장 남운선 의원, 더민주, 고양1)은 22일 경제노동위원회 회의실에서 ‘경기도의회-집행부 간 권력융합형 협치를 통한 도정 운영방안 연구’에 대한 연구용역 착수보고회를 개최했다. 남운선 의원이 회장을 맡고 있는 ‘정당발전소’는 협치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정치양극화 해소를 위한 도의회와 집행부 간의 권력융합형 내각제 도정운영 정책과제 및 제도화 방안을 제안하는 것이 목적으로 ‘지방자치시대를 여는 지방장관제도’라는 부제를 갖고 연구하는 경기도의회 연구 단체이다. 연구 발제자로 나선 사단법인정치발전소의 박상훈 학교장은 지방자치 시행이 30년을 맞았지만, 아직 행정부 중심의 도정으로 운영되고 있기에 의회와 행정부의 불필요한 기관 간 대립을 초래한다고 설명하며 경기도가 지난 2014년 이후 연립정부를 시행한 바 있기에 다양한 해외 지방자치 모델에 입각한 내각제 모델을 개발하여 지방자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현삼 의원(더민주, 안산7)은 연정이 2014년 첫 시행 이후 연속적으로 연구되지 못하고 사장되어 아쉬웠는데, 이번 연구를 통해 미진했던 부분들이 보완되어 다시 한 번 연정을 통해 경기도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의회가 제 역할을 다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김경일 의원(더민주, 파주3)은 작년에 호주 퀸드랜드 주를 연수차 방문 했을 때 지방마다 지방 장관제도가 있어 신선함을 느꼈었는데, 마침 정당발전소의 연구 또한 같은 맥락에서 하게 되어 이번 연구를 통해 선진국의 지방자치제도를 배우는 기회로 삼고 싶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원웅 의원(더민주, 포천2)은 권력이 융합하게 되면, 예산 나누기식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기에 시민의 문화적인 생각도 가능해야 하고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방향이 다르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국민의 선택이 어느 쪽으로 향하느냐 하는 것이기에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연구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남운선 의원은 이번 연구를 통해 지방의회와 행정부 간의 협치 운영이 될 수 있도록 권력융합형 도정운영 모델을 위한 정책 및 제도화 방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같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여 좋은 성과물이 도출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착수보고회에는 회장인 남운선 의원을 비롯하여 경기도의회 김경일, 김미숙, 김인순, 김현삼, 민경선, 이원웅, 진용복, 채신덕, 배수문 의원 등과 사단법인정치발전소의 박상훈 학교장, 이동영 센터장, 유의선 교육국장 등이 참석하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경기도의회 정당발전소, 도의회-집행부 간 권력융합형 협치 도정 연구 착수

    경기도의회 정당발전소, 도의회-집행부 간 권력융합형 협치 도정 연구 착수

    경기도의회 연구단체 ‘정당발전소’(회장 남운선 도의원·더불어민주당·고양1)은 22일 경기도의회 경제노동위원회 회의실에서 ‘경기도의회-집행부 간 권력융합형 협치를 통한 도정 운영방안 연구’에 대한 연구용역 착수보고회를 열었다고 23일 밝혔다. 이날 연구 발제자로 나선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지방자치 시행이 30년을 맞았지만 아직 행정부 중심의 도정으로 운영되고 있기에 의회와 행정부의 불필요한 기관 간 대립을 초래한다”면서 “경기도가 2014년 이후 연정을 시행했기에 연립정부 즉 연정의 경험, 다양한 해외 지방자치 모델에 입각한 내각제 모델을 개발해 지방자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경일 도의원(민주당·파주3)은 “지난해 호주 퀸드랜드 주를 연수차 방문했을 때 지방마다 지방 장관제도가 있어 신선함을 느꼈다”면서 “마침 정당발전소의 연구도 같은 맥락에서 하게 돼 이번 연구를 통해 선진국의 지방자치제도를 배우는 기회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이원웅 도의원(민주당·포천2)은 “권력이 융합하게 되면, 예산 나누기식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기에 시민의 문화적인 생각도 가능해야 하고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방향이 다르다”면서 “결국 중요한 것은 국민의 선택이 어느 쪽으로 향하느냐 하는 것이기에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연구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정당발전소는 협치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정치양극화 해소를 위한 도의회와 집행부 간의 권력융합형 내각제 도정운영 정책과제 및 제도화 방안을 제안하는 것이 목적으로 ‘지방자치시대를 여는 지방장관제도’라는 부제를 갖고 연구하는 경기도의회 연구 단체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한국은행 정초석 논란/이동구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한국은행 정초석 논란/이동구 수석논설위원

    옛부터 궁궐이나 관공서 건물, 사찰이나 가옥 등 건물을 지을 때는 몇 차례의 기념행사를 했다. 집들이나 준공식에 앞서 정초식(定礎式)과 상량식(上樑式)이 있다. 정초식은 건축공사 착수를 기념하고자 건축물에 연월일을 기록한 돌(정초, 머릿돌, 주춧돌)을 설치해 기념하는 행사이다. 반듯한 모양으로 다듬은 돌(머릿돌)에다 정초(定礎)라 쓰고 기공 연원일을 새겨 놓는다. 목조 건물의 중심부인 대들보를 올릴 때는 상량식을 하고 건물주인의 무탈과 복을 기원하는 글귀를 담은 상량문을 넣어 두었다. 지난 5월 국회 본관 뒤편에 걸린 준공기(竣工記)를 LED 화면으로 덮는 공사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1975년 국회 본관이 건립될 당시 만들어진 준공기를 가리는 탓에 ‘박정희 지우기’의 일환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건립 당시 정일권 국회의장 명의로 새겨져 준공기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영단으로 세워지게 됐다”는 내용이 있다. 20대 국회 김종훈 민중당 의원은 정 의장이 친일인명 사전에 등재된 점을 들어 “헌법기관이자 민의를 대변하는 기구인 국회의 얼굴을 일본제국주의 지배에 봉사한 자가 장식하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올 6월에는 경부고속도로 개통 50주년을 기념해 추풍령휴게소에 세운 기념비에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이 빠져 ‘박정희 지우기’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모두 부당한 일이다. 지난해 3월, 서울 종로에 위치한 종묘의 담장에서 일제강점기 당시의 일왕 연호가 새겨진 문구가 여럿 발견돼 논란이 됐다. 종묘는 조선 역대 왕들의 신위를 모신 곳이다. 종묘 내 정전은 세계 최대 규모의 목조 건물로 왕이 직접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신성한 공간이다. 이런 종묘의 정문 바로 옆 담장 아래에 한자로 새겨진 일왕의 연호가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종묘와 담장을 수리한 날을 기록한 것이라면 이해할 측면이 없지 않다. 서울 중구 명동에 자리한 한국은행 구건물은 사적 제280호이다. 그 옛 본관 건물(화폐박물관)에 새겨진 정초라는 글귀가 이토 히로부미의 친필로 확인돼 논란이다. 그가 안중근 의사의 총탄으로 처단된 지 110년이 넘었는데 한국 중앙은행 본관 건물에 그의 글귀를 방치해 두었다는 게 의아할 수 있겠다. 뒤늦은 발굴인 탓이다. 이 정초석의 처리를 두고도 설왕설래한다. ‘일제의 흔적은 말끔히 지워야 한다’는 사람들과 ‘굴욕적인 역사도 남겨야 한다’는 사람들로 나뉘고 있다. 남겨서 반면교사로 삼는 방법을 고려하는 것이 더 선진적인 선택이지 않을까 싶다. 성당(기독교)을 모스크(이슬람)로 바꾸겠다는 외국 정부의 사례에 우리는 비판적이지 않았던가.
  • 日 요시노 마을 재생 일등공신… 연수입 2만 7000弗 ‘삼나무집’

    日 요시노 마을 재생 일등공신… 연수입 2만 7000弗 ‘삼나무집’

    일본 나라현의 작은 마을 요시노에는 ‘요시노 삼나무집’이라고 불리는 작은 건물이 있다. 삼나무로 지어진 이 건물은 일본 전통 건축물 양식을 따르면서도 창을 크게 내서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다. 1층은 찻집으로 운영이 되고, 2층은 공유숙박 공간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최대 4명까지만 잠을 잘 수 있는 작은 건물이지만 2016년 도쿄에서 열린 ‘하우스 비전’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쇠퇴하던 요시노 마을을 재생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작은 건물이 카페와 공유숙박 운영을 통해 2017년 벌어들인 돈은 2만 7804달러에 이르고 관광객들이 몰려오면서 생긴 일자리만 70개에 이른다. 공유숙박이 오랜된 도시를 다시 살리는 역할을 세계 곳곳에서 하고 있다. 특히 노후 건축물과 쇠퇴한 도시가 많은 선진국에서는 도시재생사업과 맞물리면서 인구 감소를 막고 젊은이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호주는 서부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숙소가 딸린 술집인 ‘컨트리펍’이 에어비앤비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 아트갤러리와 공유숙박 시설로 변신했다. 이탈리아 남부의 작은 도시인 그로톨레는 주민은 300명인데 빈집이 600채나 되면서 전형적인 유령도시가 된 곳이다. 하지만 지역 시민단체가 이탈리아 시골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를 공유숙박 산업과 연계시키면서 여유로운 시골 생활 체험을 하려는 관광객들이 몰려들었고 다시 살아나고 있다. 서원석 경희대 호텔경영학부 교수는 “단순히 공유숙박이 늘어난다고 도시재생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폐공장이나 창고 등을 관광자원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에서는 기존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특히 광산이나 어촌 마을 등은 독특한 주거 양식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공유숙박과 연계한 도시재생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경남 하동군의 경우 공유숙박 플랫폼이 에어비앤비와 협약을 맺고 예약 수수료율을 낮추는 방식으로 공유숙박 산업을 키우고 있다. 윤상기 하동군수는 “기존 빈집을 이용할 수 있고 주민들에게 직접적으로 경제적 혜택이 돌아가게 된다”고 밝혔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발달장애인 진료까지 최장 1년2개월 기다리라니 말 되나요”

    “발달장애인 진료까지 최장 1년2개월 기다리라니 말 되나요”

    거점병원·발달증진센터 등 7곳 평균 석달 이상 대기대기인원도 평균 351명 달해…치료기관 확대 시급장애인과 부모들, 진료 포기하거나 사설기관 의지강선우 의원 “특성과 수요 맞춘 내실있게 운영해야”발달장애인이 거점병원과 행동발달증진센터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평균 3달 이상 기다려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발달장애인들은 오랜 대기 기간 탓에 치료 적기를 놓치거나 진료 자체를 포기하고 있다. 21일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전국 8개 권역 가운데 운영 중인 7개 거점병원·행동발달증진센터의 평균 대기 기간은 약 93일에 달했다. 평균 환자 대기 인원은 약 351명이다. 거점병원·행동발달증진센터는 지난 2018년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 이후 정부가 발달장애인의 특성에 맞는 의료 지원을 위해 8개 권역에 지정·설립했다. 거점병원은 진료과목 간 협진 체계를 구축해 발달장애인의 진료 편의성을 높였다. 진료 조정자인 코디네이터가 상주하며 발달장애인 병원 이용에 대해 종합 안내를 제공한다. 행동발달증진센터는 발달장애인의 자해나 타해 등 행동 문제를 치료하는 보건복지부 지정 의료기관이다. 거점병원·행동발달증진센터 환자 대기 기간은 한양대병원이 평균 9개월 25일로 가장 길었다. 가장 길게는 1년 2개월까지 걸린 것으로 파악됐다. 그 외엔 진료 받기까지 인하대병원, 양산부산대병원, 강원대병원, 서울·전북대병원, 충북대병원 순으로 오래 걸렸다. 김인향 한양대병원 발달의학센터장은 “수도권 환자가 몰리는 탓에 대기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권역 별로 하나밖에 없는 현재 수준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이어 “한양대병원 발달의학센터에서는 기본 6개월로 기간을 잡고 최장 1년까지 치료를 진행한다”면서 “다 나아서 내보내면 좋겠지만 뒤에 대기하는 환자도 고려해야한다. 발달장애인들이 치료받을 기관이 더 많아져야 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성인 발달장애인 부모 한혜승(54)씨는 “대기가 너무 길고 성인은 치료를 꺼리는 분위기여서 거점병원과 행동발달증진센터를 알아보다가 이용을 아예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한씨의 발달장애인 자녀 김모(25)씨는 현재 한 시립병원과 사설 작업치료 서비스를 이용 중이다. 한씨는 “경험상 적절한 시기에 문제행동 치료를 받고 꾸준히 훈련하면 아이의 상태는 좋아졌다”면서 “지금까지는 부모와 다른 발달장애 부모들이 도와가며 해결했는데 국가에서 더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촉구했다. 지난 3월 복지부가 내놓은 거점병원·행동발달증진센터 성과평가체계 개선안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발달장애인 협진 건수’, ‘치료 정보 및 지식공유 건수’ 등이 성과지표 항목에 추가된 점에 대해,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의 정책 방향이 질적 개선보다 양적 개선에 치우쳐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요자 중심으로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면서 “선진국처럼 1대1 케어까지 나아가려면 문제 행동 치료 전문가 양성이 가장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강 의원은 “발달장애 특성과 치료 수요를 고려한 내실 있는 운영이 중요하다”면서 “치료 공간과 인력 확보를 위한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경만선 서울시의원, 제2기 예결위 활동서 강서구 관내 서울시 및 교육청 예산 1,717억 원 확정

    경만선 서울시의원, 제2기 예결위 활동서 강서구 관내 서울시 및 교육청 예산 1,717억 원 확정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제10대 서울시의회 제2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는 경만선 의원(더불어민주당·강서3)은 강서구에 관내 예산 141억 원이 추가로 확정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강서구 예산은 올해 본예산 1,576억 원에 추경예산 141억원이 증액된 총 1,717억 원으로 확정됐다. 강서구 지역 시의원들과 협력해 예산을 확보한 경만선 의원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계수조정소위원회 위원으로 “코로나로 어려움 겪는 시민들을 위해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예산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재정을 합리적으로 배분하고자 노력했다. 특히 학대아동쉼터 등 강서구 지역주민의 복지와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힘썼다”고 말했다. 경 의원에 따르면 이번 제3차‧제4차 추경심사를 통해 편성된 강서구 예산은 ▲학대피해아동쉼터 설치 약 2억 원, ▲푸드서비스 선진화 3천 2백만 원, ▲도로교통 안전총괄실 관련 17억 원, ▲산업경쟁력제고 관련 공공미술 활성화 4억 원, ▲환경보전 서남하수처리구역 보강 13억 8천 4백만 원, ▲도로 교통 승강편의시설 27억 원 ▲강서문화예술회관 건립 관련 5억 3천3백만 원 등을 포함한 약 70억 원 규모이다. 아울러 강서구 제3차‧제4차 추경심사를 통해 편성된 강서구 학교시설 예산은 ▲서울항공비즈니스고 강당관련 1억원, ▲경복여고 옥상방수 8천 4백만원, ▲등서초등학교 급식실 및 학생식당증축관련 2억 5천만원, ▲발산초등학교 증축 1억 2천만원, ▲공진초등학교 교실증축관련 등을 포함한 약 71억원 규모이다. 경만선 의원은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지역구 복지와 민생경제 회복,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을 위해 세심하게 검토하고 예산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앞으로도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시민들을 위해 반영된 예산이 적시에 집행되며 추가로 필요한 예산 확보에도 소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지방 4곳엔 1000석 이상 도서관 ‘0’… 수도권에만 19개 몰려

    지방 4곳엔 1000석 이상 도서관 ‘0’… 수도권에만 19개 몰려

    전국 대형 공공도서관의 시도 간 불균형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소속 윤상현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받아 1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열람석 2000석 이상 대형 공공도서관은 ‘부산시민도서관’, ‘인천중앙도서관’, ‘대전한밭도서관’, ‘경기안양석수도서관’ 등 4곳이었다. 나머지 13개 시도에는 이런 규모의 도서관이 없었다. 열람석 1000석 이상 공공도서관은 전국에 모두 41개관이 있다. 이 가운데 서울에 3개관, 인천에 4개관, 경기에 12개관 등 19개관이 수도권에 자리한다. 특히 경기도 내 12개관 중에는 ‘성남구미도서관’과 ‘성남분당도서관’을 비롯해 성남시에만 5개관이 몰려 있다. 반면 울산, 세종, 충북, 전북에는 1000석 이상 도서관이 없었다. 도서자료 40만권 이상을 소장한 공공도서관은 전국에 모두 12곳이 있었다. 도서자료 10만권 이상 공공도서관은 전국에 403개관이 있다. 이 가운데 서울에 44개관, 인천에 10개관, 경기에 134개관 등 수도권에만 188개관이 분포했다. 전체 공공도서관 1관당 인구수는 선진국에 비해 많은 편이었다. 독일 1만 1151명, 영국 1만 5465명, 미국 3만 4301명, 일본이 3만 8902명당 1관이었지만, 우리나라는 4만 5723명당 1관이었다. 윤 의원은 “정부가 도서관 소외지역에 대형도서관을 우선적으로 건립하고 도서자료를 확충하는 데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文대통령 “유명희, WTO총장 최적임자 확신”

    文대통령 “유명희, WTO총장 최적임자 확신”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무히딘 빈 모하마드 야씬 말레이시아 총리와의 통화에서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세계무역기구(WTO) 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최적임자라 확신한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주에만 말레이시아를 포함해 5번의 정상 통화에서 유 본부장의 지지를 호소하는 총력전에 나설 예정이라고 청와대는 밝혔다. 문 대통령은 20분간 이어진 통화에서 “세계 경제가 큰 어려움에 직면한 상황에서 차기 WTO 사무총장은 WTO 개혁을 통해 자유무역 체제를 수호하고 다자무역 체제의 신뢰를 회복시킬 수 있는 역량과 비전을 갖춘 통상 분야 리더가 선출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서면브리핑에서 밝혔다. 문 대통령은 “유 본부장은 통상 분야 전문성뿐 아니라 현직 통상장관으로 구축한 네트워크와 정치적 리더십 등 뛰어난 역량을 갖추고 있어 선진국과 개도국 간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정할 최적임자”라고 설명했다. 이에 무히딘 총리는 유 본부장이 WTO 사무총장 선출을 위한 최종라운드에 오른 것을 축하하면서 “차기 사무총장은 비전과 리더십이 필요한데 유 본부장은 매우 인상적인 경험과 경력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했다. 유 본부장은 나이지리아의 재무·외무장관을 역임한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후보와 함께 최종라운드에 올라있다. 19∼27일 회원국을 상대로 최종 선호도 조사를 거쳐 늦어도 다음 달 7일 전에는 신임 사무총장이 발표된다.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35개국 이상 정상에게 친서를 보냈고, 이날까지 6개국 정상과 통화를 하는 등 유 본부장의 선출을 위해 전방위 지원을 쏟고 있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미 행정부와 백악관 고위 인사 등을 만나 유 본부장에 대한 지지를 요청했고, 미국은 진지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이애형 경기도의원, 경기학교예술창작소 현장 방문

    이애형 경기도의원, 경기학교예술창작소 현장 방문

    경기도의회 교육기획위원회 이애형 의원(국민의힘·비례)은 지난 18일 경기학교예술창작소 관련 조례 제정을 앞두고 용인에 위치한 경기학교예술창작소 현장을 방문했다. 경기학교예술창작소는 예술교육전문가와 함께 하는 미래융합예술교육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의 예술적 재능과 감각을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해 지난해 5월 8일 용인 성지초 별관을 리모델링해 개관했다. 창작소 프로그램은 심화형과 창의형 2개 트랙으로 미디어, 평면, 설치, 입체 등 시각 4개 영역, 작곡, 힙합 등 청각 2개 영역, 연극연출, 무용, 글쓰기 등 3개 영역을 포함하여 총 9개 교육영역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심화형의 경우 실기심사와 교사추천 등을 통해 영역별 10명 이내 학생을 선발해 보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마스터 클래스를 운영하여 학생들의 진로진학과 연계되는 것도 특징이다. 이애형 의원은 “선진국 교육과정에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강화가 보편적으로 나타나는데 경기교육에서도 미래 사회에 적합한 융합교육차원에서 예술교육을 시도한 것이 정말 의미있다고 본다”고 평가하면서 “오늘 예술창작소 현장에 와서 벽면, 바닥의 소재나 공간 배치 등 모든 것이 기존의 틀을 깨는 창조적 예술공간으로 재구성해 낸 것을 보니 이런 예술창작소가 도내 권역별로 설립되어 학생들이 균등하게 혜택을 볼 수 있도록 ‘경기도교육청 경기학교예술창작소 운영·지원 조례’ 제정을 서둘러야 할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됐다”고 현장방문 소회를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안과 그리움… 마종기의 詩, 무겁고 차가운 외로움 떨치다

    위안과 그리움… 마종기의 詩, 무겁고 차가운 외로움 떨치다

    마종기 시인은 우리 시단에서 퍽 이채로운 위상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생애의 많은 시간을 미국에서 살았지만 그는 슬럼프 없이 균질적 시 쓰기를 해 온 모어(母語)의 사제요, 순수 참여의 틀을 넘어 지성적 사유를 통한 위안의 시 쓰기를 지속해 온 서정의 파수꾼이기 때문이다. 지난 9월 그의 열두 번째 시집 ‘천사의 탄식’이 나왔다. ‘시인의 말’에 “아주 멀고 멀리 산 넘고 바다 건너에 살고 있는 고달픈 말과 글을 모아서 고국에 보낸다”라고 적었던 그 작품들이 실렸다. 30년 동안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일정한 간격으로 귀국해 국내 독자들과 만나고 지인들과 소중한 인연을 이어 왔던 그였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그러질 못했다.시인은 시집 뒤표지 글에서 “시는 사랑의 한 표현 방법이고 체온 나눔이고 생환 훈련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한세상 시를 사랑하며 살았다”라고 했다. 그 세계에 대한 비대면 인터뷰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메일과 카카오톡을 동원해 지난날로부터 이번 성과에 이르기까지 귀한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올해는 봄에 귀국하려고 시집 출간도 그렇게 잡아 놓았는데 갑자기 터진 코로나 난리 때문에 귀국을 못했습니다. 지난달에는 영시집 ‘Forty Two Greens’(마흔두 개의 초록)가 뉴욕의 코드힐 프레스(Codhill Press)를 통해 출간됐습니다.” 거기서도 여전히 그는 현재형의 시인이다.●체온 나눔의 시간들 그리고 사람들 이번 시집에 ‘아내의 꽃’이라는 정갈한 시가 있다. 평생 이국에서의 외로움을 함께해 온 아내에 대한 사랑이 묻어난다. 그에게 아내는 언제나 “따뜻해지고 느긋해져서/ 어깨가 다 가벼워지는” 세월을 나누어 온 반려자일 것이다. “아내는 평범한 여성입니다. 미국에 와서 결혼한 이후 너무 외로워 시를 썼고 서울 친구들에게 발표를 부탁하며 의사 생활을 이어 왔는데 시를 읽어 달라고 할 사람이 없었어요. 아내와는 시에 대해 나누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자신이 바로 그 외로움 때문에 시를 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영화 ‘패터슨’에도 인용된 의사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인이 되는 첫째 조건이 외로움을 아는 사람”이라는 말을 되뇌면서, 어쩌면 아내는 좋은 시를 쓰라고 그동안 자신의 시에 관심을 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요즘 아내가 제 시를 읽겠다고 합니다.” 두 분의 사랑과 체온 나눔의 시간이 지극한 울림으로 전해져 온다.마종기는 1939년 일본 도쿄에서 아동문학가 마해송 선생과 서양무용가 박외선 선생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학문적, 예술적 역량과 감성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게 틀림없을 것이다. 시인은 미국으로 향할 때 손에 50달러를 쥐어주며 헤어졌던 선친의 급작스런 별세 소식에 서러움과 죄책감을 토로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전형적인 문사셨어요. 청빈한 삶을 기리셨고 가난한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전형적인 예술가형이셨지요. 단 한 가지 무용에만 몰두하셨던 분이죠.” 청년 마종기는 연세대 의예과에 입학했고, 1959년 1월에 ‘현대문학’ 초회, 이듬해에 완료 추천을 받고 시인이 됐다. 올해는 그러니까 등단 갑년(甲年)이 되는 셈이다. 마종기는 드뷔시나 사티 같은 인상파 음악을 들으면서 자신의 시도 그 방향으로 가기를 소망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면서 방향이 달라졌다. 우선 살아남아야 했고, 시는 자신에게 먼저 위로가 돼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마종기의 초기시에는, 이국 생활을 예감이라도 한 듯, 처연한 유랑 의식이 암시적으로 드러난다. 시인은 미국으로 거처를 옮긴 뒤에 영원한 떠돎이라는 실존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 그에게 시는 천천히 위안과 그리움의 세계로 번져갔다. 그런 세계를 함께해 준 스승은 누구였을까? “한 분이라면 최민순 신부님을 들겠습니다. 가톨릭계에서는 존경받는 영성 신학자셨고 이탈리아어 ‘신곡’이나 스페인어 ‘돈키호테’를 직역해 세간을 놀라게 한 번역가셨지요. ‘현대문학’ 등단 소감도 신부님께 올리는 편지 형식으로 썼지요. 선친 장례 미사도 명동성당에서 친히 챙겨 주셨습니다.” 문인 중에는 박두진 선생을 들었다. 그분의 착하고 조용하신 성정도 좋아했고 그분의 단호한 강골도 좋아했다. 학생 때부터 선생을 따랐고, 그분이 ‘현대문학’에 등단시켜 주셨고, 첫 시집 ‘조용한 개선’(1960) 서문도 써 주셨다. 그렇게 부모님과 스승에 대한 체온 나눔의 기억으로 그는 이국 생활을 견뎌 왔고 지금까지 ‘마종기’일 수 있었으리라.●‘변경의 꽃’에서 ‘아내의 꽃’까지 1965년 공군사관학교 군의관이었던 마종기는 그해 여름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성명에 이름을 올렸다가 군인은 정치에 관여하면 안 된다는 조항을 위반한 혐의로 심문을 받고 감방에 수용됐다. 기소유예로 풀려난 뒤 미국으로 쫓기듯 나와 산 것이 벌서 55년째다. 그는 1968년과 1972년에 황동규, 김영태와 함께 3인 시집 ‘평균율’을 두 번 펴냈다.“그 친구들과 함께 펴낸 ‘평균율’은 제게 큰 의미가 있지요. 고국을 떠난 게 1966년이었고 5년간 미국에서 수련의로 살아낸 그 시절은 일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고 한편으로는 저를 괜찮은 의사로 만들어 주기도 했어요. 그때 두 친구가 우정의 선물을 준 거죠.” 이번 시집 표지 캐리커처도 김영태가 그린 것이 들어갔다. 언젠가 시인은 “김영태 시인이 보낸 편지가 제일 많더라”고 추억한 적이 있었는데, 그분을 향한 시인의 사랑이 깊게 전해져 온다.1969년에 방사선과 전문의에 합격한 뒤로 그는 의대 교수로서 평화로운 삶을 누린다. 그 과정에서 낸 세 번째 시집 ‘변경의 꽃’(1976)은 이국에서 살아온 이의 떠돌이 의식과 그리움을 담은 결실이었다. ‘변경의 꽃’이야말로 이국에 살던 시인의 초상이 아니었겠는가. 그러고 보니 ‘변경의 꽃’으로부터 그는 ‘담쟁이 꽃’, ‘박꽃’, ‘축제의 꽃’으로 ‘꽃’을 변형해 오다가 이번에 ‘아내의 꽃’에 이른 게 아닌가 싶다. 시인은 가장 아끼는 시집으로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1980)를 들었다. 나도 ‘이슬의 눈’(1997)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시집이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혼돈의 시간을 겪어 정서적으로 시의 도움이 절실하던 때의 시집이라 더 애착이 간다”고 떠올렸다. 한 편 읽어 보자.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바람의 말’) 그 ‘바람의 말’을 넓혀 온 트라이앵글이 의학과 시와 신앙이 아니었을까? ●의사-시인-신앙인 ‘선순환의 삶’ “제 시에서 의학과 신앙이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의사였으니 의학이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것은 자연스럽지요. 신앙 역시 외국에서 살아오느라 더 깊어지거나 흩어졌을지 모르지만 가톨릭 교인으로 60년 살아왔으니까요.” 그는 의학이나 신앙이 시의 모멘텀이 되는 때는 있었지만 가급적 그 몸체가 다 보이는 것은 경계해 왔노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 시집은 조금 달랐다. 시인은 지난봄 원고를 보내고 첫 교정지를 받았는데 팬데믹으로 모든 게 정지되자 다시 찬찬히 원고를 들여다보았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후회가 없겠냐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때 등단 소감에 좋은 믿음의 시인이 되겠다고 썼던 생각이 났고, 몇 편 버리고 서너 편 신앙적 시들을 넣게 됐다고 한다. “의학은 육체의 치유, 시는 정신의 치유, 신앙은 영혼의 치유를 위한 매개체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좋다고 믿음과 시를 합치면 감동이 떨어지게 되고, 의학과 시도 한쪽으로 기울면 둘 다 역할을 못할 것입니다. 서로 우러르고 가까이에서 아끼는 상태가 돼야겠지요.” 그만큼 ‘의사’와 ‘시인’은 어느 하나가 주(主)가 되고 다른 하나가 종(從)이었던 것이 아니라 마종기에게 상호의존적인 수평적 축이었던 셈이다. 선진 의학을 5년간만 공부하고 돌아가겠다고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 틈에 시인은 그 땅에서 반세기 이상을 살았다. 오하이오에서 의사 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플로리다로 옮겨 사는 시인은 아들 셋과 손주들이 멀리 살고 있어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게 전부라고 한다. 평생 고독했지만, 자신의 시에서 위로를 받았다는 분을 만나면 갑자기 자신을 겹으로 싸고 있던 무겁고 차가운 외로움이 다 날아가버린다고 했다. 의사-시인으로 “한길로 살아온 길이 외진 길”(‘이슬의 명예’)이었다지만, 그의 ‘변경의 꽃’으로서의 시작(詩作)은 지금부터 다시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 마종기’의 생으로 시작될 것이다. 위안과 그리움을 “내 나라도 보이던 따뜻하고 편한 그 색깔”(‘노을의 주소’)에 담은 ‘천사의 탄식’이 보내준 소중한 만남이었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서대문 ‘마봄’ 전국 복지 인재 키운다

    서대문 ‘마봄’ 전국 복지 인재 키운다

    “서대문구의 사회복지 분야 노하우가 전국으로 퍼져 나갈 수 있길 고대합니다.”(문석진 서대문구청장) 서울 서대문구에 지난 15일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관계자들이 찾아왔다. 개발원은 보건복지공무원, 민간 보건복지 종사자 등 150만명의 교육생을 교육하는 기관이다. 이날 두 기관은 협약을 맺고 서대문구의 지역복지 우수 사례를 교육 콘텐츠로 제작하고 교육 교재로 활용하기로 했다. 서대문구는 보건복지부 지역복지사업 평가에서 전국 최초로 7년 연속 복지행정상을 받는 등 촘촘한 동네 복지를 자랑하는 곳이다. 특히 동네 복지의 구심체이자 민관 협력 네트워크 조직인 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마봄협의체)가 활성화돼 있어 지역별 특화된 사업을 선보인다. 연희동 마봄협의체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출을 제대로 못 하는 독거노인 55가구와 ‘굿바이 코로나, 반려콩나물 기르기’ 사업을 추진했으며, 남가좌2동 마봄협의체는 저소득 50가구에 생활지원금, 마스크, 생필품 꾸러미를 전하는 ‘추석맞이 해피박스, 행복전함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마봄협의체가 생긴 이래 총 14억 1590만원의 후원금이 모금(연모금액 1억 7458만원)됐으며 연평균 150여개의 동별 맞춤형 복지특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날 협약으로 개발원은 서대문구의 다양한 지역 복지 우수 사례를 교육 콘텐츠로 제작해 전국 교육 교재로 활용한다. 또한 개발원과 서대문구는 ‘보건복지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한 현장 중심의 맞춤형 교육과정 개발’을 위해 상호 협력하고 관련 교육 콘텐츠, 현장 강사진 정보도 공유한다. 협약식에 참석한 허선 개발원장은 “서대문구를 ‘사회복지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콘텐츠 개발 협력기관’ 대도시형 모델로 전국 자치구 가운데 유일하게 선정했다”며 “서대문구와 개발원이 전국의 보건 복지를 함께 선도해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 구청장은 “동 주민센터를 복지의 허브로 만드는 동복지허브화사업, 후원자와 어려운 가정을 일대일로 연결하는 100가정 보듬기 사업 등 외국 선진 사례를 가져다가 배우면서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10년을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다 보니 다양한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이런 기적이 서대문에서만 되는 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타 지방정부도 서대문구를 벤치마킹해 의지를 가지고 추진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전국 사회복지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한 개발에 지속해서 협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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