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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467)-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3)

    儒林(467)-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3)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3) ‘놓아버린 마음(放心)’을 ‘무명지’에 비유한 맹자의 말은 다음과 같다. “지금 무명지가 구부러져서 펴지지 않을 경우 당장 아프거나 일을 해치는 것이 아니고서도 만약 이것을 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진나라나 초나라까지 이르는 길을 멀다 여기지 않을 것이다. 이는 내 손가락이 남들의 손가락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내 손가락이 남들과 같지 않아 구부러져 펴지지 않으면 먼 길을 마다않고 의사를 찾아 가지만 놓아버린 마음을 찾기 위해서는 이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으니, 이는 분별력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놓아버린 마음의 회복(救放心)’, 즉 잃어버린 마음의 회복이 바로 학문의 길이자 인간의 길이며, 바로 본심의 선을 보존하는 것이 도덕의 근원이라는 것이 맹자가 주장하였던 성선지설의 골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맹자의 성선설에 정면으로 대적해 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순자(荀子)였다. 순자의 생몰연일도 맹자처럼 불분명하지만 대략 맹자보다 50년 후에 태어난 또 하나의 유가적 위대한 사상가였다. 본디 공자의 가르침에는 어짐과 의로움, 또는 충성과 믿음과 같은 덕을 숭상하는 내면적인 정신주의와 실행과 예의를 존중하는 외면적인 형식주의라는 두 가지의 양면이 있었다. 정신주의적인 면은 증자(曾子)를 거쳐 맹자에게서 크게 발전되었는데 비해 형식주의적인 면은 자유와 자하를 거쳐 순자에게로 계승되었다. 따라서 맹자가 주관적이고 이상적이었다면 순자는 객관적이고 현실적이었다. 공자의 사상은 맹자와 순자에 의해서 이처럼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더욱 발전되고 이론적으로 체계화되어 마침내 제자백가들의 사상들을 압도하고 수천 년 동안 중국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해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한 것은 순자가 이처럼 맹자와 더불어 거의 동시대적인 선각자로 유가를 발전시키고,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은 위대한 유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유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단자로 취급되어 왔다는 점일 것이다. 순자가 유가의 이단자로 취급을 받고 소외되었던 것은 공교롭게도 맹자의 ‘성선지설’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사람의 본성은 본래부터 악하다.’는 ‘성악지설(性惡之說)’을 주장하였기 때문인 것이다. 순자의 생에 대해서는 사마천이 사기에서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을 기록한 것이 유일한데, 이 열전을 지으면서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맹자와 순자를 평가하고 있다. “맹자는 유가와 묵가의 유문(遺文)을 섭렵하고, 예의와 통기(統紀)를 밝혀 혜왕의 욕심을 단절시켰다. 또한 순경(荀卿:순자)은 과거의 유가, 묵가, 도가의 성쇠를 함께 논했다. 따라서 이처럼 ‘맹자순경열전’을 짓는다.” 사마천의 이 짤막한 촌평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순자가 맹자와 달리 도가(道家)까지도 공부하였음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순자는 오히려 사물의 일부분만을 아는 곡지(曲知)의 제자백가들을 비판하기 위해서 당대의 거의 모든 학파들을 널리 공부하였던 유가에 있어서 또 하나의 맹장이었던 것이다.
  • [신연숙칼럼] ‘평준화’ 소모전 그만하자

    [신연숙칼럼] ‘평준화’ 소모전 그만하자

    올해도 어김없이 고교평준화 찬반진영의 설전이 되풀이되고 있다. 교육부가 ‘평준화·비평준화 지역간 학력 성취도 비교분석 결과’를 통해 ‘하향평준화’주장이 근거없음을 밝히자 평준화 반대론 측이 신뢰도를 문제삼고 나선 것이다. 고교평준화정책은 2001년 한국교육개발연구원(KDI) 등의 경제 전문가들이 해체 논의에 가담하면서 해마다 격렬한 논란에 휩쓸려왔다. 그러나 평준화 해체논리가 어떻든 평준화 논쟁은 실익이 없는 소모전이라고 생각한다. 평준화해체 주장의 최종 지점인 고교입시 부활은 교육적이나, 사회·경제적으로 전혀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다. 고교입시의 부활이 불가능한 것은 1974년 평준화정책 도입 당시로 되돌아가보면 자명해진다. 당시 고입경쟁은 교육적으로 중학생의 정신·신체의 전인적 성장 저해와 중학 교육의 파행화, 고등학교간 교육격차 심화라는 문제를 불렀다. 사회·경제적으로는 재수생의 누적과 과열과외, 학생인구의 도시 집중 등 부작용이 극도에 달했다. 평준화정책은 크게 이런 여섯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따라서 평준화 해체 주장은 우리가 이 시점에서 이런 문제들을 또다시 안을 수 있는가의 문제가 된다. 우리 학부모의 교육열은 지금이 그 당시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80%를 넘는 대학진학률이 잘 말해준다. 명문고 진학을 위해 중학생이 집을 떠나고 재수를 불사하며 중학교실이 입시학원화하는 것을 수용할 수 있는가. 몇몇 명문고 이외의 대다수 고교생들이 10대때부터 2류인생,3류인생의 딱지를 붙이고 좌절과 고통 속에 거리를 방황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과외에 쏟아붓는 사교육비 부담은 필연 중학과정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대입시를 겨냥한 특목고 과외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는 오늘의 상황을 비춰보면 된다. 또한 고교입시를 부활시킨 평준화 해체 논리가 중학교 입시, 초등학교 입시론까지로 확대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학업성취도가 비슷한 학생끼리 가르칠 때의 수업 효율성이야 고교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이땅의 청소년은 물론 어린이들까지 과외와 입시의 지옥에 놓이게 된다. 옛날 여섯살 어린이가 사립초등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져 울고나오던 신문사진의 기억은 다시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이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주로 경제전문가들이 평준화를 공격하지만, 평준화를 해체했을 때 교육양극화로 인해 발생할 사회적 비용의 문제는 왜 고려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교육비를 전적으로 국가가 부담하는 유럽 국가들은 그렇다 치고, 자유주의의 첨병인 미국조차 평준화를 고교교육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것은 고교교육이 국가의 존립기반인 국민통합의 기초를 형성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물론 평준화의 문제점도 분명히 있다. 특히 교육의 획일화, 선택권 제한, 맞춤식 교육의 부재 등은 시장 원리나 다양성 추구와는 거리가 있다. 아직 교육시설이나 환경의 평준화에도 못 미친 지역이 있는 반면, 어떤 고비용을 치르고라도 고품질의 교육서비스를 사고 싶다는 수요가 팽배해 있는 게 사실이다. 평준화 반대론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조건적인 ‘평준화 끌어내리기’보다는 이런 문제의 대안 마련에 나서는 일일 것이다. 선지원후추첨제, 자립형 사립고, 계약학교, 외국학교 등 많은 대안들이 나오고 있다. 소모적인 평준화 논쟁을 할 것이 아니라 이런 다양한 제도들을 어떻게 교육적 기능을 살리며 정착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다. 논설실장 yshin@seoul.co.kr
  • [지금 경북에선] 국제기구본부 첫 유치…지방외교 ‘희망’

    [지금 경북에선] 국제기구본부 첫 유치…지방외교 ‘희망’

    국내에 국제기구의 본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동북아 자치단체연합(NEAR) 상설사무국이 지난 5월 경북 포항공대 내 포항테크노파크에 설치돼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국내 최초의 국제기구 본부로 6개국 40개 지방자치단체가 가입돼있다. 지방자치제 시행 10년을 맞아 국제교류가 잦아지고 있는 가운데 NEAR의 위상강화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사무국 유치는 지방외교의 성과 동북아자치단체연합 상설사무국의 경북 유치는 자치단체가 이뤄낸 지방외교의 성과로 평가된다. 외교라면 으레 중앙정부의 몫으로만 치부돼 온 터이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의 힘만으로 국제기구의 사무국을 유치했다는 점에서 지방자치의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는 쾌거라 할 수 있다. 사무국 유치는 무엇보다 일본 회원단체들의 견제속에 이끌어낸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크다. 경북도는 사무국 유치에는 이의근 지사를 비롯한 당시 대표단의 전략적 승리였다고 자체 분석한다. 지난해 9월7일부터 9일까지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 열린 제5회 동북아자치단체 총회에서 이 지사는 사무국 유치를 통해 동북아에서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판단아래 총회 개최전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와 허난(河南), 산둥(山東), 헤이룽장 등 중국쪽 대표들과 연쇄 접촉을 갖고 지지를 확보했다. 오전 회의를 마친 뒤에는 북한과 몽골 등의 대표들에게도 지원을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 끝에 만장일치로 유치를 확정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5월19일 열릴 예정이던 사무국 개소식은 갖지 못했다. 당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 조례 제정으로 자매결연을 철회한 일본 시마네현에 초청장을 보낸 것이 화근이 되었다. 경북도는 독도문제와 상설사무국 개소식 문제는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결국 여론의 압력에 못이겨 개소식을 무기연기했다. ●다양한 사업추진 개소식은 갖지 못했지만 상설사무국은 회원단체간 실질적인 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는 인프라 기능은 물론 사실상의 본부 성격을 띠게 돼 경북도뿐 아니라 국가 이미지 제고에도 기여하고 있다. 경북도는 상설사무국 개소와 함께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회원단체들의 홍보 전시관을 상설사무국내에 마련했다. 공예품, 특산물, 기념품, 책자, 사진 등을 회원 지자체들로부터 기증받아 전시해 놓았다. 지난 10월5일에는 경주시에서 동북아비즈니스회의를 열었다. 우리나라를 비롯, 중국·일본·러시아·몽골 등 5개국 19개 지자체에서 바이어와 수출업체 대표 등 400여명이 참가해 수출교류 촉진과 상담활동을 벌였다. ‘동북아자치단체연합센터 네트워크’ 구축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회원단체들의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체계적으로 홍보하고 통상교류를 촉진하기 위해서다. 지난 7월1일 경주 현대호텔에서 시연회를 가졌다. 내년 2월에 구축작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그동안 NEAR 활동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백서 발간도 준비하고 있다. 분야별 연대별로 정리해 5개 국어 500쪽 분량으로 만들 예정이다. 또 회원단체들이 제안한 프로젝트의 추진상황 등을 데이터베이스로 제작해 관리해 나갈 방침이다. NEAR 사무국 설치 및 활동현황을 알리는 홍보물을 5개 국어로 제작, 배포하고 있으며 ‘NEAR 뉴스’ 책자를 매달 발간하고 있다. 이와 함께 NEAR 사무국 설치를 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해 그동안 홍보단을 3차례에 걸쳐 회원단체에 보냈다. 홍보단은 사무국 운영에 필요한 자료를 회원단체들로부터 받아오는 임무도 수행했다. 내년 부산에서 열리는 NEAR 제6차총회를 위한 실무위원회 회의가 오는 29일과 30일 이틀동안 부산에서 열린다. 사무국 예산분담방안, 회원단체 직원 상설사무국 파견, 회비제 도입, 연합휘장 제정 등 내년 총회에서 논의될 안건을 정리한다. ●과제도 많아 NEAR가 동북아 대표 국제기구로 위상을 정립해가기 위해서는 회원단체의 확대가 필요하다. 현재 가입된 지자체는 40개로 회원자격을 갖춘 138개 지자체의 29%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비회원 단체를 대상으로 NEAR 홍보 및 가입작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동북아연합센터 건립도 추진되어야 한다. 경북도는 현재 상설사무국이 설치된 포항시에 건평 2500평,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센터를 건립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사업비 400억원의 절반 정도를 국비로 지원받기 위해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이의근 경북지사 인터뷰 “동북아 자치단체연합 상설사무국 유치는 지방자치단체가 어렵게 이룬 성과입니다. 국가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와 언론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이의근 경북지사의 NEAR에 관한 애정은 남다르다. 이 지사는 “21세기의 큰 흐름은 지방화, 세계화이고 참여정부도 동북아 중심국가를 구상하고 있다.”며 “NEAR는 여기에 가장 걸맞은 모임”이라고 말했다. 그가 NEAR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관선 경북지사로 있던 1993년.“일본에서 한국·중국·러시아 등 4개국 11개 광역자치단체장들이 모여 동북아 자치단체회의를 처음 개최했다. 한국에서는 혼자 참석했는데 가서 보니 일본이 동북아 선점을 위해 애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 지사는 “일본에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민선지사 취임직후 1995년 9월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서 열린 회의에서 ‘회의체가 아닌 국제 연합체를 결성하자.’고 먼저 제안했다.”며 “이 제안이 중국·러시아·몽골 등의 전폭 지지를 받아 이듬해 경주에서 NEAR를 출범시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2년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서 열린 NEAR회의에서 이 지사는 하바로프스크 지사와 함께 북한의 가입을 적극 추진, 함경북도와 나선시를 동참시키기도 했다. 이 지사는 “북한의 가입은 민간에만 한정되었던 남북교류를 지방정부로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평가했다. 그는 “현재 경북 행정부지사가 겸직하고 있는 사무총장에 대학이나 외교부,KOTRA 등지에서 능력있는 국제관계전문가를 영입할 계획”이라며 “이달 하순 예정된 실무위원회 회의를 계기로 상설사무국이 활성화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동북아자치단체연합’은 어떤 기구 세계 정치·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동북아시아. 동북아자치단체연합(NEAR)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자치단체의 모임이다. 활발한 교류협력을 통해 공동 발전을 추구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지난 1996년 경주에서 창설모임을 가졌다. 당시에는 한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개국 29개 광역자치단체장이 참석했다. 초대 의장은 이의근 경북지사가 맡았다. 이들 자치단체들은 지난 1993년부터 ‘동북아지역 자치단체회의’라는 모임을 가져왔다. 모임을 더 내실있게 하기 위해 국제기구로 발전시키는 게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NEAR를 출범시킨 것이다. NEAR(North East Asia Regional Government association)는 약칭대로 가깝고 친밀함을 뜻하는 영문 단어이기도하다. 2년마다 순회하며 총회를 개최하고 총회 의장과 순회 사무국은 개최지 자치단체에서 맡는다. 또 경제통상, 문화교류 등 6개의 분과와 각 나라별로 1명씩의 감사를 두고 있다. 의사결정은 회원단체별로 1개의 투표권을 주고 재적회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회원 3분의 2의 찬성으로 이뤄진다. 경북도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지난 2002년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서 열린 총회에서 북한의 함경북도와 나선시가 회원단체로 가입했다. 이로써 6개국 40개 단체로 늘어났다. 한국이 경북을 비롯해 10개, 일본이 니가타현 등 11개, 러시아가 하바로프스크 등 10개, 중국이 헤이룽장성 등 5개, 북한과 몽골이 각각 2개 자치단체 등이다. 제 6차 총회는 내년 부산에서 열린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儒林(466)-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2)

    儒林(466)-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2)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2) 이러한 맹자의 설명은 맹자야말로 ‘비유의 천재’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아름다운 우산의 나무를 땔감으로 쓰거나 목재로 사용하기 위해서 도끼로 베는 것은 사욕을 채우려는 인간의 욕망 때문이며, 소나 양을 방목시켜 풀을 뜯게 함으로써 나무를 반질반질하게 고사시키는 것은 인간의 양심이 아닌 금수와 같은 욕망에 맡기는 어리석은 행위라고 비유함으로써 이러한 사리사욕의 탐욕이야말로 성선을 불선으로 바꾸는 곡망(梏亡), 즉 ‘두 손을 꼭 묶는 수갑’이라고 말한 다음,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소행이 양심을 꽁꽁 묶어서 없애버리니, 꽁꽁 묶어서 없애는 것을 반복하면 양심을 보존할 수 없다. 양심을 보존할 수 없다면 짐승과 다름이 없다. 사람들은 그 짐승과 같은 모습만을 보고 일찍부터 높은 재질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본래 모습이겠는가.…공자께서 ‘붙잡으면 보존되고 놓아두면 없어지고 나가고 들어가는 것에 일정한 때가 없어서 그 방향을 알 수 없는 것은 오직 마음뿐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를 두고 하신 것이다.” 맹자가 지적하였던 사람이 불손하게 되는 세 번째 이유는 ‘방실(放失)’이었다. ‘방실’이란 반성할 줄 몰라 마음을 보존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양심이 작용하지 못하는 타락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어리석음, 게으름과 같은 ‘놓아버린 마음(放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놓아버린 마음’이야말로 사람이면 누구나 타고난 성선을 파괴하는 최고의 악행인 것이다. 이에 대해 맹자는 다음과 같이 열변하고 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따르지 아니하며 그 마음을 놓아버리고 찾을 줄 모르니, 아아, 슬프도다. 사람은 개나 닭이 나간 것이 있으면 찾을 줄을 알지만 마음을 놓아버린 것이 있으면 찾을 줄을 모른다. 학문의 길이란 다른 것이 없다. 바로 그런 놓아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맹자의 이 말은 금과옥조이다. ‘학문의 길이란 놓아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學問之道 求其放心而已矣)’이라는 맹자의 말은 맹자 사상의 골수 중의 골수이다. 그 놓아버린 마음을 찾으면 천연적으로 본래부터 사람들이 갖고 있던 어질고 선한 ‘성선지심’이 드러난다고 맹자는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비유의 천재였던 맹자가 이 ‘놓아버린 마음(放心)’에 대해서도 적절한 예를 들지 않았을 리가 없을 것이다. 맹자는 이 ‘놓아버린 마음’을 무명지(無名指)에 비유하였다. 무명지는 다섯 개의 손가락 중에서 네 번째에 해당되는 손가락으로 이름이 없다. 다른 손가락들과는 달리 별로 쓰임새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굳이 사용할 때에는 탕약을 저을 때나 쓴다고 해서 약지(藥指)라고도 불리는데, 하지만 별로 쓸모가 없어 ‘이름 없는 손가락’, 즉 ‘무명지’라고 불렸던 손가락이었던 것이다. 이 무명지를 ‘놓아버린 마음’에 비유하여 가르친 맹자의 설법은 과연 맹자를 유가에 있어서 불세출의 투장이라고 부르게 할 만한 탁월한 것이었다.
  • 儒林(465)-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1)

    儒林(465)-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1)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1) 맹자의 대답 중 안연의 말을 인용한 ‘순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도를 아는 사람은 또한 순과 같다.(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라는 문장은 누구든 성선지심으로 도를 닦으면 순과 같은 성군이 될 수 있음을 드러낸 명언이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맹자의 이런 ‘성선지설’은 서양철학에 있어서도 중요한 사상으로 발전되었다. 스토아학파는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의 자연에 근거하여 공동의 이성법칙을 추구하였는데, 자연의 이성법칙에 따라서 행하기만 하면 이것이 바로 지선(至善)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성선설은 키케로(Cicero), 세네카(Ceneca)에서부터 루소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루소는 인간의 본성은 본래 선한 것인데, 문명과 사회제도에 영향을 받아 악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루소는 ‘자연이 만든 사물은 모두 선하지만 일단 인위(人爲)를 거치면 악으로 변한다. 그러므로 선은 천성에 속하고 악은 인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서양철학에서 루소가 ‘사람은 원래 선하지만 문명과 사회제도와 같은 인위를 거치면 악으로 변한다.’고 주장하였다면 동양철학에서 최초로 성선설을 주창한 맹자 역시 ‘사람은 선천적으로 선을 가지고 있지만 후천적인 환경과 감정의 제약 때문에 불선(不善)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부르짖었던 것이다. 맹자는 사람이 불선하게 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들고 있다. 그 첫 번째는 ‘함닉(陷溺)’으로, 주위환경의 제약에 따라 사람의 마음이 그 속에 빠짐으로써 성선의 기초가 허물어져 드러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맹자가 말하는 주위환경이란 천재지변과 같은 자연환경과 혼란한 사회악과 같은 외부적 상황을 뜻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맹자는 다음과 같이 비유하고 있다. “넉넉한 해에는 자제들이 풍년에 힘입어 온순해지는 것이 많고, 흉년에는 자제들이 포악해지는 것이 많으니, 이것은 선천적으로 자질이 다른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빠뜨리는 것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이 문장에 나오는 ‘그 마음을 빠뜨리는 것’, 즉 ‘함닉’이 인간의 성선을 불선으로 만드는 요인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 두 번째는 ‘곡망(梏亡)’이다. 곡망이란 인의지심(仁義之心)이 일어나지만 사리사욕의 훼방으로 성선의 마음을 잘 보존하여 기르지 못하고 오히려 소멸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맹자는 우산(牛山)의 나무를 들어 ‘곡망’을 다음과 같이 쉽게 설명하고 있다. “우산의 나무는 원래부터 아름다웠다. 그러나 큰 도시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땔감으로 쓰거나 목재로 사용하기 위해 찾아가 도끼로 베니, 어찌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또한 하늘은 비와 이슬을 내려주어 나무를 아름답게 자라나게 하지만 사람들은 소와 양을 방목하여 나무의 잎을 뜯어먹음으로써 반질반질하여진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원래부터 우산에 나무가 없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이 어찌 산의 본래 모습이겠는가.”
  • [여연 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15)한국의 다법

    [여연 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15)한국의 다법

    “스님네가 찾아와서 조주 문을 두드리니/차 이름(茶松)이 부끄러워하며 뒤뜰로 모시네/해남 초의선사 동다송을 진작 읽고/당나라 육우의 다경도 보았네/정성을 다하여 경뢰소를 우려내/손님께 따르니 피어나는 차의 향기/질화로 위 동병 속에 찻물이 익고 나면/한 잔의 금설은 제호보다 낫다네” 다송자 보정 스님의 차시다. 다송자 보정 스님은 전남 순천 송광사로 출가해 80여 수의 차시를 남긴, 근대를 대표하는 차인이다. 한 잔의 차를 마시며 평상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선이다. 차 역시 마찬가지다. 한 잔의 차에는 우주를 그대로 담은 평상심이 깃들어 있고 그 차는 곧 선일 수 있는 것이다. 초의 스님은 자신이 주석하던 큰절 대흥사를 떠나 두륜산 중턱에 작은 암자를 지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일지암이다. 그런 소중한 일지암이 쇠락해지자 초의 스님 상좌와 더불어 그 초암을 복원한후 시 한 수를 읊었다. “연하가 난몰하는 옛 인연의 터에/스님 살림할 만큼 몇 칸집 지었네/못을 파서 달이 비치게 하고/간짓대 이어 백운천을 얻었네/다시 좋은 향과 약을 캤고/때로 원기로 묘련을 펴며/눈앞을 가린 꽃가지를 잘라버리니/좋은 산이 석양 노을에 저리도 많은 것을” 다도는 차를 마시는 정신적, 문화적 행위로 규정된다.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여러 대중들 앞에서 무대예술로 육법공양 등 의식으로도 발전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다법이란 차를 행하는 모든 행위의 총체적인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초의 스님의 다법은 검박한 살림살이 속에서 풍요롭고 맑은 마음자리를 품어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초의 스님의 다법이 일상에 있어서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충만하게 하는 것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깨달음을 얻기 위한 도(道)요, 선(禪)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차를 끓이는 사람은 삿됨이 없어야 하고 중정을 지켜야 한다. 중정이란 곧 삶의 철학이다. 차를 끓일 때 물의 온도, 차의 양, 시간 등 그 어느것 하나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전통적인 다법은 바로 중정의 묘리에 있다. 초의스님은 영혼을 일깨우는 도인의 찻자리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밝은 달 촛불이 되고 또 벗이 되니/흰 구름 자리되고 또 병풍이 되어주네/솔 솔 솔 찻물 끓는 소리 시원하고 고요하니/맑고 찬 기운 뼈에 스며 영혼을 일깨우네/오직 흰 구름 밝은 달 두벗을 삼으니/도인의 찻자리 이보다 빼어날 소냐” 참으로 아름답고 정겨운 풍경이다. 솔 솔 솔 찻물 끓는 소리를 밝은 달과 흰 구름을 벗 삼아 들으며 차를 마실 수 있는 삶의 여유가 바로 도인의 찻자리인 것이다. 인간의 영혼을 일깨우는 찻자리만큼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없다. 그렇다면 찻자리의 미덕은 어디에 있는가. 초의스님은 “손님이 많으면 소란스러우니 고상함을 찾을 수 없다. 홀로 마시면 그윽하고, 둘이 마시면 빼어난 것이요, 셋은 멋이라 하고, 대여섯은 덤덤할 뿐이요, 일곱여덟은 그저 나누어 마시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찻자리는 가능하면 사람이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조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차가 갖고 있는 근본성질이 맑고 조용한 성품과 잘 조화가 됨을 의미한다. 명나라 도륭은 고반여사(考槃餘事)에서 “차를 마실 때는 손님이 적은 것이 좋다. 손님이 많으면 시끄럽다. 또한 소란스러우면 아취가 모자란다. 홀로 마시면 그윽하고, 둘이 마시면 빼어난 것이요, 서넛을 멋이라 하고, 대여섯은 덤덤할 뿐이요, 일곱여덟은 그저 나누어 마시는 것이다.”며 차를 마실 때에는 가능한 한 담백한 자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고반여사에서는 또 차를 마시는 행위를 덕을 쌓는 것과 비교하고 있다.“차는 행실이 바르고 덕을 닦은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음료다. 백석의 맑은 샘물을 길어 끓이는 절차를 법도에 맞게 하여 중도에 그만두는 일이 없이 한결같이 계속하여 그 법식을 완전히 익히고 깊이 음미하여 정신이 융회하고 심취해서 제호나 감로에 비교할 만한 참다운 맛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다도를 훌륭하게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이라 하겠다. 모처럼 좋은 차를 마시면서 그 사람 됨됨이가 미흡하다면 마치 좋은 샘물을 퍼서 잡초에 주는 것과 다를 것이 없으니 이보다 큰 죄가 없을 것이다. 차의 멋을 모르고 꿀꺽 단숨에 마셔 맛의 분간도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 이상 속될 수가 없다.”고 했다. 차는 무척이나 신령스럽다. 그렇다고 해서 하늘 위에서 노니는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신령이라 함은 인간의 영혼을 맑고 담백하게 일깨운다는 것이다. 차는 인간을 위한 것이고 우리 모두를 위한 현재적 존재인 것이다. 차는 또한 적요(寂寥)한 것이다. 적요라는 것은 고요하고 그윽한 경지에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시대의 문화는 자유분방한 가치를 선호하며 율동과 리듬, 그리고 비트로 이어지는 동적인 문화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현대인들은 참을 줄도, 기다릴 줄도 모른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것이 우리의 일상사가 돼버린 지경이다. 그런 점에서 차는 우리들의 들뜬 문화를 가라앉힐 또 하나의 정적인 작용인 것이다. 그렇다면 다도(茶道)의 정의는 명확한 것이 된다.‘다도’란 차나무를 재배하고 찻잎을 따고 차를 만들고 차를 마시고 찻자리를 정리하는 일체의 행위가 되는 것이다. 다도를 좀더 압축적이고 철학적으로 표현한다면 차를 통해 몸과 마음을 닦는 행위로 요약해 볼 수가 있다. 장원은 ‘다록’에서 다도에 대해 “차를 정성들여 만들고 건조하게 저장하며 깨끗하게 우리면 다도를 다한 것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도를 더욱 더 명쾌하게 정의해놓은 것이 바로 불가(佛家)의 다선일미(茶禪一味)다. 풀이해보자면 차와 수행은 하나라는 것이다. 차는 곧 진리요, 진리는 곧 차라는 뜻이기도 하다. 차를 통해 오묘한 진리 길에 다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다도와 다법은 구별되어진다. 다도란 특별한 격식이 없이 차를 통해 심신을 수련, 진리의 길에 이르는 것이고 다법(茶法)은 특별한 격식을 지킴으로써 찻자리의 예절을 전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조주스님의 수행법인 “차나 한잔 마시게,”와 초의스님의 ‘중정의 묘’는 다도의 진수가 어디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다도는 있는가?´라는 물음을 여기저기에서 들을 수 있다. 대답은 ‘당연히 있다.’이다. 삼국의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도는 심신을 수양하는 한 방편으로 작용해온 것이다. 산과 들을 달리면서 활과 검을 쓰며 심신을 단련했던 화랑들도 차를 통해 그 정신세계를 고양시켰으며, 고려시대 스님들과 문인들은 “한잔의 차는 곧 참선의 시작”“차의 맛은 선의 맛”이라며 차를 진리를 고양시키는 도(道)의 동반자로 본 것이다. 조선시대도 마찬가지다. 중정의 묘리를 강조했던 초의스님뿐만 아니라 추사 김정희도 “차를 끓여 마시는 것이 바로 도의 본체를 체득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차는 진리의 문을 여는 것과 같이 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전통의 다도는 ‘차와 진리는 하나’라고 정의해 볼 수 있다. 참으로 고아하고 높은 차의 품격과 일치하는 우리의 전통 다도인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차를 높은 품격의 길로 이끄는 고아한 정신세계를 지녔다. 그런 점에서 차인들의 마음가짐은 무척이나 중요한 것이다. 차의 도가 진리의 길에 있다면 모든 사람을 융섭하는 화합과 자비의 마음이 깊어져야 한다. 차인들은 일상에서 차인으로서 도리를 지켜야 한다. 그래야 그 차인의 찻자리는 시간이 갈수록 높은 품격의 향기를 품어낼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시대에는 우아하고 품격있는 행다법만이 존재한다. 자신의 인격을 고양시키고 수행하지 않는 차인들의 찻자리는 이제 반성되어야 할 부분인 것이다. 차는 오감(五感)으로 마신다고 했다. 귀로는 찻물 끓는 소리를, 코로는 향기를, 눈으로는 다구와 차를, 입으로는 차맛을, 손으로는 찻잔의 감촉을 느끼라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차는 인간이 가진 모든 감각을 통해 그 맛과 향취를 즐겨야 한다. 그렇다면 행다법은 어디에 있는가. 행다법은 차를 잘 우려내고 차의 도리에 맞게 찻자리를 격식있고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과도한 기교나 격식을 차리는 경향이 오늘의 행다에 있는 것은 어쩌면 차의 근본과 배치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행다의 기본은 어디에 있는가. 첫째, 차의 품성에 맞춰 차의 맛을 내는 데 주력해야 한다. 둘째,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되어야 하며 셋째, 차와 다구, 물과 불, 손님과 주인이 모두 하나가 되어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만남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차를 하는 모든 행위를 통칭하는 행다는 차를 끓이는 전다법과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는 공다법(供茶法)이 있다. 공다법은 곧 다례(茶禮)로 볼 수 있다. 다례는 말 그대로 예절을 갖추어 차를 손님에게 대접하는 것이다. 다례는 그 목적에 따라 생활다례(生活茶禮), 접빈다례(接賓茶禮), 의식다례(儀式茶禮)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생활다례는 여러사람이 함께 둘러앉아 마시는 두리차, 혼자 마시는 명상차가 있다. 접빈다례에는 차우들이 함께하는 예다법(禮茶法)인 가회다례(嘉會茶禮), 또 존경하는 사람이나 윗사람에게 차를 올리는 공경다례(恭敬茶禮)가 있다. 의식다례에는 차례(茶禮), 추모헌다례(追慕獻茶禮), 잔치다례, 개천다례, 궁중다례(宮中茶禮)가 있다. 그리고 차의 종류와 행다하는 사람에 따라 잎차행다(葉茶行茶), 말차행다(末茶行茶), 선비차 행다 등이 있다. 다도와 행다의 근원에 대해 초의스님은 우리에게 명쾌한 해답을 준다. “차를 딸 때는 그 현묘함을 다해야 하고, 만들 때는 그 정성을 다해야 하며, 물은 그 참물을 얻어야 하고, 달일 때는 그 중정(中正)을 얻어야 하며, 체(體)와 신(身)이 서로 어우러지면, 건(健)과 영(靈)을 함께 얻는 것이 다도(茶道)의 경지다.” 일지암 암주 ■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다도시연 모든 것은 근원으로 회귀한다. 생멸의 아름다운 공존은 우주만물의 삶을 각성하게 한다. 그래서 생멸은 우리에게 근원적인 물음을 던져주는 또 하나의 화두 같은 것이다. 가을이 되면, 그리고 겨울이 되면 우리는 정신적인 공허에 시달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공허한 영혼을 채우기 위해 이 세상 수많은 선지식들이 기록한 책을 찾는다. 책은 우리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선지식(善知識)이다. 그 선지식의 바다를 헤매는 것만큼 즐거운 일상은 없다.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도서전에 초청을 받아 참여했다.57회째를 맞는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도서전이다. 세계 110개국 30여만명이 참가할 정도로 이번 도서전은 성황리에 열렸다. 우리나라는 그 도서전에서 주빈국이었다. 주빈국 오프닝 행사로 사단법인 초의차문화연구원의 선다도 시연이 열렸다. 주최측의 초청공연이었다. 세계 선종의 본산답게 주빈국 주요 책목록에는 ‘직지´, 서산선사의 ‘선가귀감´ 등 불교의 선에 관한 책들도 많이 소개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오프닝 행사 시연자로 선 다도를 선택한 주최측의 초청에 따라 초의스님의 선다(禪茶)를 시연하게 된 것이다. 주제는 ‘차 한잔에 담긴 느림의 미학’이었다. 선다의 기본은 정(靜)과 적(寂)을 통한 동(動)으로 나아감이다. 그뿐만 아니다. 동은 곧 정과 적으로 부드럽고 원만한 순환을 통한 자연스러운 가라앉힘이다. 선다의 시연은 그런 점에서 정을 근본으로 한다. 그러나 30여만명이 참가한 북새통 같은 곳에서 더구나 작은 공간에서 선다를 시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먼저 대금소리로 자리를 잡았다. 느리면서도 감미로운 선율을 뿜어내는 대금은 혼란스러운 장내를 순간 가라앉혔다. 선다는 원래 특별한 무대장치가 필요없다. 선다의 묘미를 살릴 수 있는 10폭 병풍을 두르고 하얀 백자 찻잔을 준비했다. 하얀 다포, 그리고 담백한 한복을 입은 시연자들의 모습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순식간에 100명이 넘는 관객으로 불어났다. 티(tea)와 커피 그리고 포도주나 맥주를 선호하는 그들에게 조금은 번거로울 수 있는 다도 시연에 생경하기만 한 표정들이었다. 필자의 멘트가 이어졌다. 필자는 관람객들에게 “차 마시는 행위는 젠(禪)을 추구하는 것이다. 젠은 인류의 위대한 스승 붓다가 깨달음을 추구했던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선다도는 자신의 내적 깨달음을 추구하기 위한 방편이요 화두이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의 선 다도는 1300여년간 이어진 불교문화의 진수다. 차, 물 그리고 마음이 하나가 되어 삶의 근원을 찾는 찻자리는 그런 점에서 번뇌에 빠져 자신을 놓쳐버리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매우 정신적인 양식이다. 좋은 찻잔에 좋은 마음으로 차를 담아 손님을 접대하는 행위를 통해 한국의 정서와 문화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관람객들이 선다 시연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초의스님의 정신이 깃든 차인 ‘설아’차의 향기가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푸른 옥색 같기도 하고 연한 연두색 같기도 한 영롱한 찻물이 작고 하얀 찻잔에 담겨 돌아가자 관람객들은 탄성을 그치지 못했다. 그들의 문화적 수준은 매우 높았다. 생활다도를 무대예술로 끌어올린 선다의 독특한 시연을 금방 배우고 익힌 것이다. 총 3차례 열린 이번 선다 시연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곳은 바로 독일 내 언론들이었다. 동양의 변방나라에 수천년에 걸친 문화의 향기가 깃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못한 그들의 눈에 선다 시연은 경이로울 수밖에 없었다. 방송과 신문의 인터뷰와 카메라 세례는 한국불교의 문화, 한발짝 나아가 우리민족의 문화가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 儒林(464)-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0)

    儒林(464)-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0)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0) 그렇다면 문공은 맹자에게 무슨 말을 들었던가. 어떤 인상 깊은 말을 들었기 때문에 마음에 끝내 잊히지 않는다고 말하고 평생 동안 맹자를 존경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맹자사상의 골수인 성선지설이었다. 그 무렵, 문공은 아직 세자로서 이웃 강대국인 초나라에 사신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말이 사신이지 약소국이 강대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떠나는 진사(陳謝)사절이었던 것이다. 초나라로 가는 길에 송나라를 지나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송나라에는 맹자가 머무르고 있었다. 송나라도 등나라처럼 규모가 작고 땅은 협소하여 인구가 적었지만 송나라의 임금은 술과 여자에만 빠져 있을 뿐 분발하지 않았으므로 맹자 역시 우울한 식객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세자는 강대국 초나라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진사로 나가는 자신의 입장을 한탄하자 맹자는 말끝마다 요순(堯舜)임금을 칭하면서 인간본성의 선함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맹자’에는 맹자가 문공에게 말하였던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 있지는 않지만 전후의 문맥으로 보면 맹자는 ‘인간은 누구나 선한 마음을 갖고 있다. 천하의 성군 요순도 성선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그대도 그 성선을 확장시킬 수만 있다면 반드시 요순과 같은 성군이 될 수 있을 것이다.’는 내용으로 설법하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맹자의 말을 그대로 흘려들었던 세자는 초나라에 가서 굴욕적인 외교를 끝내고 돌아올 무렵에 다시 맹자를 만난다. 이때 세자는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요순과 같은 성군이 될 수 없는데 어째서 자신에게 그런 듣기 좋은 말을 하였는가 하고 따져 물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자 맹자는 대답하였다. 의심하는 세자에 대한 맹자의 명답이 ‘등문공 상편’에 다음과 같이 나오고 있다. “세자는 내 말을 의심하십니까. 도는 하나일 뿐입니다. 일찍이 성간(成 )이 제경공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대도 장부이고 나도 장부이니 내가 그대에게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하였으며, 안연(顔淵)이 말하기를 ‘순(舜)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도를 이룬 자는 또한 이 순과 같다.’고 하였으며, 공명의(公明儀)가 말하기를 ‘문왕은 나의 스승이니 주공(周公)이라도 어찌 나를 속이겠는가.’하였습니다. 지금 등나라는 비록 작다고 해도 국토의 긴 곳을 잘라 짧은 것을 보충하면 오십리가 되니, 그래도 그것을 가지면 좋은 나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만약 약이 몸을 어지럽게 하지 아니하면 그 병은 낫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맹자의 이 대답은 인간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성선지심’이 있는데, 그 마음을 닦아 도를 이루면 반드시 누구나 요순과 같은 성군이 될 수 있음을 분명하게 못 박고 있는 것이다. 이는 좋은 약을 먹었을 때 약 기운으로 말미암아 잠시 어지러운 증상이 있겠지만 참고 기다리면 곧 좋은 결과가 찾아와 쾌유되는 것처럼 비록 지금 등나라는 사방 50리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이지만 인의로써 다스린다면 반드시 요순과 같은 성군들의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음을 확신하는 맹자의 사자후였던 것이다.
  • 儒林(463)-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39)

    儒林(463)-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39)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39) 그뿐인가. 맹자가 주장한 ‘성선지설’의 위대함은 인간이면 누구나 행할 수 있고 도달할 수 있는 실천 가능한 목표라는 점이었다. 묵자의 겸애가 맹자가 말하였던 대로 ‘머리꼭대기부터 발꿈치까지 털이 다 닳아 없어지도록 노력한다.’고 해도, 혹은 장자가 비평하였던 대로 ‘넓적다리에 살이 없고 정강이의 털이 다 없어지도록 노력한다.’고 해도 실천 불가능한 가치관이라면 맹자의 ‘성선지설’은 인간이면 누구나 ‘마음이 똑같이 옳게 여기는 것(心之同然)’을 갖고 있으므로 누구든지 노력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는 것이다. 맹자는 ‘요순도 보통사람과 같다.(堯舜與人同耳)’고 말함으로써 사람은 누구나 노력하면 요순과 같은 성인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성인은 인륜의 극치이며, 순수한 선의 표상이다. 그러나 성인 또한 사람이 이룬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나와 똑같은 부류인 것이다.(聖人與我同類者)’ 맹자는 ‘발을 알지 못하고 신을 만들더라도 나는 그것이 삼태기가 되지 않음을 안다.’라고 비유함으로써 성인과 나의 공통점을 설명하고 있다. 즉 모든 사람의 발은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굳이 그 발을 보지 않더라도 신기료장수는 신을 만들 수 있는데, 마찬가지로 성인이나 나나 모두 태어날 때부터 똑같은 발, 즉 성선지설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본연지선(本然之善)을 충분히 발휘한다면 성인과 똑같은 신을 신을 수 있음을 드러내 보인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맹자는 다음과 같이 부언하고 있다. “…입이 맛을 느끼는데 있어서 똑같이 즐김이 있으며, 귀가 소리를 듣는데 있어서 똑같이 들음이 있으며, 눈이 색깔을 보는데 있어서 똑같이 아름답게 여김이 있다. 그러니 유독 마음에 있어서 똑같이 그러한 것이 없겠는가. 마음이 똑같이 그러한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이(理)와 의(義)를 말함이다. 성인은 자기의 마음이 남과 다 같다는 것을 먼저 터득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와 의가 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은 마치 고기가 내 입을 기쁘게 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맹자의 태도는 등나라의 문공(文公)과 나눈 대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등문공은 20여 년에 걸친 맹자의 주유열국 때 가장 맹자를 믿고 의지하였던 현군중의 한 사람이었다. 문공은 세자 때부터 맹자를 존경하여 아버지 정공(定公)이 세상을 뜬 후에도 추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맹자에게 장례를 치르는 법을 물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등나라로 와 달라고 세 번이나 간청하였던 임금이었다. 이때 맹자는 예순의 나이를 넘긴 노인이었으나 마침내 왕도정치를 펼 기회를 잡은 듯한 희망을 갖고 등나라로 들어가 마지막 순회를 단행한다. 결국 강대국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놓인 약소국 등나라의 입지적 여건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할 수 없음을 깨달은 맹자는 고향으로 돌아옴으로써 마침내 주유천하의 대단원을 맞게 되는데, 어쨌든 문공은 자신이 세자 시절 맹자로부터 들었던 말을 평생 잊지 않고 항상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맹자께서 송나라에서 일찍이 내게 해주신 말은 마음에 사무쳐 잊혀지지 아니한다.(孟子嘗與我言於宋 於心終不忘)”
  • 儒林(462)-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38)

    儒林(462)-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38)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38) 맹자가 주장한 ‘본연의 마음(本然之心)’ 속에 들어있는 ‘배우지 않고도 아는 양능(良能)’과 ‘생각하지 않아도 아는 양지(良知)’와 ‘인의와 충절을 행하고 선을 즐거워하며 게으르지 않는 양귀(良貴)’는 서양철학에서 나타나는 ‘양심’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양심(良心). ‘함께 알다’를 의미하는 라틴어의 conscientia에서 파생된 conscience. 한 개인이 자기 자신의 행위, 의도, 성격의 도덕적 의미를 올바르고 선하게 유지해야 된다는 의무감과 관련지어 파악하는 전인격적인 도덕의식. 중세철학에서는 선에 대한 긍정적 태도와 악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인간이 태어나면서 갖고 있는 도덕의식을 양심이라 일컬었으며, 주로 기독교의 프로테스탄티즘에 의해서 계승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양심은 기독교뿐 아니라 거의 모든 종교에서도 그 존재를 인정하는데, 예를 들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양심이 인도를 벗어나면 반드시 두려움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양심의 명령을 어기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였으며, 힌두교 신자들은 양심을 ‘우리 내부에 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신’으로 생각하고 있어, 이를 어겨서는 안 된다고 행동지침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맹자가 양능과 양지, 그리고 양귀, 즉 ‘양심론’을 주장하였던 것은 묵자의 ‘겸애론’의 모순점을 지적하기 위함이었다. 맹자는 굳이 묵자처럼 머리꼭대기에서부터 발꿈치의 털까지 다 닳아 없어질 만큼 사람을 두루 사랑하고, 사람을 두루 이롭게 하기 위해서 분골쇄신하지 않아도 심즉리(心卽理), 즉 인간의 심성 속에는 이성이 있는데, 이 이성이 바로 인간이면 누구나 본연적으로 갖고 있는 배우지 않고도, 생각하지 않고도 사람의 생명 속에 내재되어 있는 선천적인 선의 뿌리인 선근(善根:양심)이며, 바로 이러한 선한 마음이 ‘성선지설’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맹자는 그 유명한 사단론을 정립하게 된다. 사단지심(四端之心). 이는 맹자의 핵심사상인 성선지설의 골수로서 맹자에 의하면 이 사단은 모든 인간이면 다 가지고 있는 일종의 선천적인 도덕적 능력인 것이다. 맹자는 이 사단지심에서 성선설이 드러난다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공경지심(恭敬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은 모든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다. 측은지심은 인(仁)이요, 수오지심은 의(義)이며, 공경지심은 예(禮)이고, 시비지심은 지(智)이다. 인의예지가 외부에서 나에게 녹아드는 것이 아니요, 내가 본래부터 갖고 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구하면 얻고 버리면 잃는다. 사단지심을 얻거나 혹은 잃어서 선과 악의 거리가 서로 두 배가 되고, 다섯 배가 되어 계산할 수 없는 정도가 되는 것은 이러한 재질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시경(詩經)에 ‘하늘이 백성을 내시니 사물이 있으면 법칙이 있다. 사람들은 떳떳한 본성을 갖고 있어서 아름다운 덕을 좋아한다.’라고 했는데, 공자는 ‘이 시를 지은 사람은 사람의 본성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사물이 있으면 반드시 법칙이 있으니, 사람은 떳떳한 본성을 갖고 있으므로 선한 덕을 좋아하는 것이다.…”
  • [마흔에 떠난 1만4000km 실크로드] 청해호를 지나며

    [마흔에 떠난 1만4000km 실크로드] 청해호를 지나며

    우린 바다위에 떠있다. 갑판에서는 흥겨운 생음악이 연주되고, 우린 둘러앉아 캔맥주를 돌린다. 흑기사:대장정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 돌아온 것을 축하하며! 노익장:건배! 잊지 못할 사막의 밤을 위하여! 김원장:1만 4000㎞, 우리가 해냈습니다 파이팅! 한사장 부부:장렬하게 전사한 우리의 발, 지프의 명복을 빌며! 남대장:계속되는 오버랜드 탐험, 그 끝없는 발자국을 위하여! 날이 밝으면 인천항이 보일까? 어두운 바다 저편에 우리가 지나친 실크로드 1만 4000㎞에서 만난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잊지 못할 아름다운 풍광들도. 나는 바다 저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실크로드는 더 이상, 우리와 관계없는 머나먼 서역의 땅만은 아니었다. 캔맥주는 정말 시원했다. ●청해호를 지나며 나는 물을 가르며 달렸다. 아니, 날았다. 눈앞이, 가슴이, 마침내는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활짝 열린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물, 호수를 가득 채운 물뿐이다. 각기 다른 다섯 종류의 푸른 색깔이 얽히고 비껴가며 출렁이는, 아름다운 물뿐이다. 그 푸른 물위로 햇살이 찬란하다. 그리고 그 햇살 위로는 하늘이 얹혔다. 또 다른 느낌의, 푸르디푸른 하늘이. 어디로 갔을까?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바글대던 사람들은? 사람 수만큼이나 많은 사연과, 그 생김만큼이나 각기 다른 상처로 앓고 있던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전설 속에서, 그리고 현실 속에서 만나고 스친 여러 얼굴들이 그 푸른 물에 어른거린다.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던 열일곱의 위구르 소녀. 작년에 결혼을 했다며 수줍게 웃는 그녀의 얼굴 위로 장건의 이름 모를 흉노족 부인 얼굴이 오버랩된다. 정비소에서, 절대로 팁을 받지 않던 한족 청년, 그 청년의 뒷모습은 어쩐지 고선지를 떠올리게 한다. 바람이 분다. 건륭제를 녹일 만큼 대단했다는 향비의 체취는 어떤 종류였을까? 허브? 로즈마리? 아니면 사향? 땀 냄새가 가실 날 없었던 이번 여행, 그 긴 1만 4000㎞를 진두지휘한 오버랜드의 남대장은 어쩌면 전생에 손오공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아니다. 삼장법사였을까? 아, 시원하다! 언제인가, 아니, 내 생애 있기는 있었는가, 현실감이 없을 만큼 아름다운 곳에서, 물고기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이렇게 가슴 서늘할 만큼 마음껏 심호흡을 해본 적이! 그들도 아마 한두 번쯤은 이렇게 위로를 받았으리라. 평생 만리장성만 쌓다 돌아간 진시황의 노예도, 양어머니인 양귀비를 죽게 한 안록산도, 사오정도, 그리고 항우와 유방도 이 실크로드를 오다가다 한 번쯤은 톈산 산맥의 천지든, 금사탄의 보스텅 호수든, 이 청해호든 중국의 그 많은 물가 어딘가에 앉아 세상 번뇌를 내려놓고 이렇게 딴 꿈을 꾸었으리라. 잠시라도. 바람이 분다.‘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우리는 마냥 흔들리고 부대끼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설령 이것이 모두 한바탕의 부질없는 꿈이라 해도, 우리는 또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간다.‘넘어지고 깨어지더라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해호의 물빛은 ‘이것이 정말 꿈이지 싶다’. 지나치게 아름답기 때문이다, 현실이라고 믿기에는. ● 무선통신 날아오다 8월22일 10시 란주를 향해서한동안 양 수백 마리가 차창을 가득 채우더니, 이제는 창밖이 온통 야크 떼다. 수백마리는 됨직한 야크들이 길고 검은 털을 가벼운 바람에 날리며 떼를 지어 길을 건넌다. 우리에게 훅, 노린내를 끼얹으며. 우리는 그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속절없이 그 짐승을 바라본다. 그들의 발소리, 낮고 긴 울음소리가 귓속을 가득 채운다. 마치 동물다큐멘터리 텔레비전 프로그램 속으로 들어 온 듯하다. 8월22일 13시 꿀가게유채꽃이 흐드러졌다. 지금은 8월 22일. 제주의 유채꽃은 이미 진 지 오래겠지? 꿀을 사기 위해 길가 작은 텐트 앞에 차를 세웠다. 꿀벌지기 가족 모두가 갑자기 들이닥친 손님들을 상대한다. 모두들 꿀을 사는데, 나는 꽃가루를 샀다. 열 살 안팎으로 보이는 그 집 아들은 아주 익숙하게 막대 저울을 다뤘다. 저울눈이 조금 넘쳤는지, 아이는 꽃가루 한 주먹을 도로 덜어낸다. 조금치의 덤도 없다. 내가 손을 내저었더니 그냥 씨익 웃고 말았다. 그러나 나도 지지 않는다. 계산을 다하고 돌아서며, 꽃가루 한움큼을 집어 입안에 털어 넣었다. 장군멍군이다. 메롱! 8월22일 17시 속도위반 고도가 낮아지고 있다. 녹지는 어느 틈에 자취를 감추고 황토고원이 슬며시 나타났다.10대 반항아들처럼 음악을 꽝꽝 울리며 매끈한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어디선가 경찰이 나타나 차를 세웠다. 속도위반이란다. 여기까지 와서 속도위반? 하지만 방법이 없다. 선두차가 대표로 벌금 200위안을 물고 풀려났다. 한 번 더 걸리면 한국 돌아가는 데 지장 있다며, 살살 가야한다며, 중국인 가이드는 시속 60㎞를 고집했다. 그게 정말일까? 아무튼 우리는 먼지길이라 씽씽 못 달리고, 과적 차량이 꽉 밀려서 시원스레 못 달리고, 그리고 또 속도위반이라 못 달렸다.‘다시 사막에 가고 싶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미친 듯 속 시원히 달려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냥 생각만 그렇게 했다. 8월23일 14시 은천을 향해 덥다. 수수밭을 지나며 깜빡 졸았는데, 문득 눈을 떠보니 길가 양쪽에 감자가 산처럼 쌓여있다. 옆에도, 앞에도, 그리고 뒤에도, 감자를 가득 실은 트럭이다. 사람들은 모두 감자위에 서있거나 앉아있다.“여기 감자 1t에 얼마인지 아십니까?” 무전기에서 누군가가 물었다. 싸겠지. 그러나 얼마나 쌀까?“1t에 500위안이랍니다.”그러나 그건 정말 믿기지 않았다. 아무리 싸도 그렇지. 아마 중국어를 잘못 알아들은 것이겠지. 동그라미를 하나 덜 붙인 것이 아닐까? 나는 다시 졸기 시작했다. 8월25일 21시 장가구 도착 내몽고지역을 지나쳤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생김이 어딘가 우리와 닮은 사람들. 왠지 정이 간다. 주유소에서, 기름 넣는 그 짧은 시간을 놓치지 않고 볶은 콩을 바구니에 담은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몇 봉지 안 되는 그 물건들을 다 팔아드렸더니 할아버지의 입이 벌어졌다. 콩은 아주 고소했다. 오늘 저녁은 한식이다. “와우!” 아리랑식당에서 소주와 함께 삼겹살과 김치전을 먹었다. 얼마나 맛있었는지!(그런데 사실, 한국에서 난 삼겹살을 먹지 않는다.)우리나라는 잘 있는지, 사랑하는 고국의 동포들은 모두 잘 있는지, 한 달 가까이 한국에 관한 아무런 뉴스도 듣지 못한 우리는, 소주잔을 권커니 잣커니 하며, 나라걱정에 밤 깊어가는 줄 몰랐다. 8월26일 9시 운하를 건너서주유소에 도착해 무심코 문을 여는데, 순간적으로 기분이 이상하다. 콰당! 재빨리 문을 닫고 눈을 크게 떴다. 벌떼다. 시커먼 벌떼가 바로 코앞, 주유기 근처에서 윙윙거리고 있다. 수백마릴까?, 수천마릴까? 정말 별 일이 다 있다. 주유소에서 우린 늘 두 가지를 해결하곤 했다. 차에 기름을 넣고, 몸속의 물을 빼고.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중 한 가지를 할 수가 없다. 아주, 아주 유감이다. 왜냐하면 중국의 화장실은 몹시 유명한데, 그나마 주유소의 그것은 조금 낫기 때문이다. 벌떼 때문에, 우리는 한참 후에 등급이 확 떨어지는 다른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휴…. 8월26일 11시40분 만리장성에서 질린다. 처음 보는 게 아닌데도, 만리장성은 여러모로 사람을 질리게 한다. 8월 27일 1시 45분 천진 도착 차 한 대의 시동이 꺼졌다. 끝내 차를 고치지 못해서, 우린 새벽 1시가 넘어 호텔에 도착했다. 식당은 모두 문 닫았고, 밥을 먹을 경황도 없이 달려온 끝이라, 우린 마지막 비상식량을 털었다. 내게도 컵라면 한 개가 돌아왔다. 그러나 ‘무기’가 없었다. 생각 끝에, 나는 재크 나이프를 빼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사리 먹은 라면은 그대로 얹혔다. 방금 먹은 라면을 도로 토해내면서, 나는 빌었다.‘내 생애, 다시는 라면을 나이프로 먹는 일이 없기를!’ 8월27일 13시 천진에서편안하게 누워 발마사지를 받았다. 여독을 모두 풀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깜찍하게 인천항에 진입하고 싶었다. 아아, 내일이면 배를 탄다!
  • 儒林(461)-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37)

    儒林(461)-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37)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37) 유가에도 묵자의 겸애론과 같은 사랑론이 다음과 같이 나오고 있다. ‘예기(禮記)’에 나오는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식이 부모만을 친애할 수 없고, 자기 자식만을 사랑할 수는 없다.(不獨親其親不獨子其子)” 맹자는 전국시대를 휩쓸고 있던 묵자의 극단적인 겸애론의 대유행에 대해 대항하기 위해서 이러한 유가의 사랑론을 더욱 발전시킨다. “노인을 노인으로 섬기고, 어린이는 어린이로 사랑하며, 친척을 친히하고, 백성을 어질게 하며, 만물을 사랑한다.(老老 幼幼 親親 仁民 愛物)” 맹자는 이러한 말들을 통해 천리의 자연스러움과 인간의 본성을 바탕으로 하는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의 진리를 드러낸다. 또 이와 같을 때만이 천하에 사랑을 펼 수 있고 진정한 인류애를 실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진정한 인류애를 실현할 수 있는 유가의 사랑. 그것이 바로 맹자사상의 결정체인 ‘성선지설(性善之說)’이었던 것이다. 성선설은 이렇듯 20여년에 걸친 주유열국에서 수많은 제자백가 사상가들과 생사가 걸린 사투를 벌임으로써 실전을 통해 체계화된 맹자사상의 금강지였으니, 성선설이야말로 맹자가 남긴 진신사리인 것이다. 무조건 사랑하라는 묵자의 겸애론에 대항하기 위해서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람에게는 배우지 않고도 능한 것이 있는데 이것이 양능이요, 생각하지 않고도 아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양지이다.(人之所不學而能者 其良能也 所不慮而知者 其良知也 ) 어려서 손을 잡고 가는 아이는 그 어버이를 사랑할 줄 모르는 법이 없으며, 자라서는 그 형을 공경할 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처럼 어버이와 하나되는 것은 인(仁)이요,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공경하는 것은 의(義)이니, 다름이 아니라 천하에 두루 통하는 것이다.” 이처럼 육친을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이웃을 측은하게 여기는 양지와 양능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어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고,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선천적인 것으로 사람은 본래 태어날 때부터 선한 것이라는 성선지설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맹자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인의와 충절을 행하고 선을 즐거워하며,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천작이다.” 천작(天爵). 하늘이 준 자리란 뜻으로 남에게 존경을 받을 만한 탁월한 덕행이나 미덕을 이르는 말로 맹자는 이처럼 인의와 충절을 행하고 선을 즐거워하는 마음은 ‘하늘이 준 벼슬’이자 사람이 본래부터 갖고 있는 양귀(良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지닌 ‘본연의 마음(本然之心)’이며, 사람의 생명 속에 내재된 선천적인 ‘선의 뿌리(善根)’이다. 이것은 묵자의 경우처럼 공허한 겸애가 아닌 실제 인간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그 어린아이를 구하려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마음이 바로 측은지심(惻隱之心). 맹자는 인간이 지닌 사단지심(四端之心) 가운데 ‘측은지심’을 그 첫번째로 손꼽음으로써 자신이 주장한 성선설의 핵심이 바로 인(仁)의 단서인 남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임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 儒林(460)-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36)

    儒林(460)-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36)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36) 이렇듯 맹자는 ‘묵자는 머리꼭대기에서부터 발꿈치까지 털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하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면 하였다.’고 묵자를 칭찬하였고, 천하의 독설가였던 장자 역시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묵자는 진실로 천하를 사랑하기는 하였다.’라고 칭찬하여 두 사람 다 묵자가 위대하고 공경할 만한 인격을 갖추고 있었다고 평가는 했지만 그의 겸애사상은 내재적이든 초월적이든 간에 가능성이 있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지 못하였고, 또한 겸애를 실천하는 방법조차 제시하지 못한 매우 원시적인 사상이라고 이를 일축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맹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맹자의 ‘진심하편’에 나오는 이 구절은 맹자가 뛰어난 유가의 투장일 뿐 아니라 시대를 앞질러보는 예언적 선지자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묵자의 학문에서 도망하면 반드시 양자의 학문에 귀의하고, 양자의 학문에서 벗어나면 반드시 유학으로 돌아온다. 돌아오거든 곧 받아들일 따름이다.’” 맹자의 이 말은 묵자의 겸애설은 일견 그럴듯하게 보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다가도 자기를 희생하고 남을 위한다는 것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어서 실현가능성이 적은 것임을 깨닫고 절망하게 된다. 그러다가 양자의 자기만을 위하는 이론은 오히려 더 본질적인 것 같아서 양자의 학설에 심취하게 되는데, 그의 학설은 자기만을 위하고 남을 추호도 배려하지 않는 것이므로 그것도 본질적인 것이 아님을 알게 되어 회의하게 된다. 그러므로 가장 본질적인 유학, 즉 ‘내가 서고자하면 남도 서게 하고(己立立人)’,‘나를 완성하고 만물을 완성하는(成己成物)’ ‘유학의 도’에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맹자는 다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고 있다. “지금 양자와 묵자의 무리들과 논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뛰쳐나간 돼지를 좇는 것과 같으니, 이미 그들은 우리에 들어왔는데도 그만두지 않고 또 이어서 발을 묶어놓는구나.” 맹자는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묵자와 양자의 ‘양묵지도’는 ‘뛰쳐나간 돼지’와 같아서 언젠가는 반드시 우리 안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렇게 ‘돌아오거든 받아들일 뿐’, 즉 반갑게 맞아들이고 포용할 뿐이지 이들을 다시 도망가지 못하게 발을 묶어 얽어매는 것은 학문의 자유를 구속하는 폭력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맹자는 어떻게 해서 뛰쳐나간 돼지로 비유한 양자와 묵자가 언젠가는 반드시 유가의 우리 안으로 되돌아올 것인가를 자신하고 있었던 것인가. 그것은 유학이 이타적인 묵자의 겸애사상이나 이기적인 양자의 사상과는 달리 자기를 위하면서도 남을 위하는 중용(中庸)을 내세우고 있음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가에서 말하는 사랑은 차별성을 유지하며, 또한 보편성을 이뤄낸 것이다. 이것은 인간본성에 근거하여 인성을 따르며 인도에 부합하여 만천하에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인륜관계는 반드시 친소(親疎)와 원근이 있는 것처럼 사랑을 펴는 데도 또한 선후의 순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유가의 논리였던 것이다.
  • [Zoom in 서울] 강북 뉴타운 60층까지 지을 수 있다

    공공기관이 시행하는 서울 뉴타운 사업지구에서는 주거·상업지역 용적률이 최고 500%,1500%까지 완화돼 40∼60층짜리 초고층 빌딩 건립이 쉬워진다. 건설교통부는 24일 “윤호중 의원 등 열린우리당 의원 144명이 발의한 도시구조개선특별법에는 도심 낙후지역을 도시구조개선지구로 지정해 이같은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특례규정이 포함됐다.”고 24일 밝혔다. 이 법이 연내 국회를 통과하면 시행령·규칙을 제정, 내년 6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국토계획법상 용적률 상한은 도시지역의 경우 주거지역 500%, 상업지역 1500%, 공업지역 400%, 녹지지역 100% 이하로 하고 있다. 주거지역 가운데 1종전용은 50∼100%,2종전용은 100∼150%,1종 일반은 100∼200%,2종 일반 150∼250%,3종일반은 200∼300%, 준주거지역 200∼500%로 하며 상업지역 중 중심상업지역은 400∼1500%, 일반 300∼1300%, 근린 200∼900%로 제한돼 있다. 특별법에 따르면 낙후된 도시구조개선을 위해 시장·군수·구청장은 도시계획조례의 적용을 받지 않고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용적률 상한까지 개선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도시구조개선사업지구 상업지역에는 초고층 아파트 건립이 활기를 띨 전망이다. 이같은 특례는 시·도지사가 시장, 군수, 구청장의 신청을 받아 지정한 면적 50만㎡ 이상(역세권 등은 20만㎡이상)의 도시구조개선지구 가운데 공공기관이 사업을 맡은 곳에 한정된다. 특별법은 일반지구지역내 건축물 용도 등의 제한과 용도지역내 건폐율 상한(주거지역 70%, 사업지 90%, 공업지 70% 이하)을 예외로 했다. 이밖에 도시구조개선지구에 부여되는 인센티브는 ▲시행자 지정요건의 주민동의 2분의1 이상으로 완화 ▲소형주택 의무비율 현행 80%에서 60%로 하향조정 ▲특목고 유치 ▲정부 재정지원 등이다. 건교부는 그러나 강남 재건축 아파트는 부동산 투기가 진정되고 개발이익환수제가 정착하기 전까지는 현행 규제를 완화하지 않기로 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속눈썹, 달빛에 떨다

    속눈썹, 달빛에 떨다

    경·이·롭·다. 새 벽 두시, 난 홀로 일어나 아얼친산에 섰다. 그리고 경, 이, 롭, 다, 그렇게밖에 말 할 수 없는 내 표현력의 한계를 절감했다. 산이, 풀 한포기 없는 산이 있을 수 있다니, 아니, 이렇게 높을 수 있다니, 이렇게 산맥을 이룰 수 있다니,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 냄새도 없다. 움직임도 전혀 없다. 진공 상태가 이럴까? 쿡쿡, 크고 작은 바윗돌들만 군데군데 박혀 있을 뿐, 풀 한포기 없는 모래산이 산맥을 이루고, 그 산맥의 산 어딘가에, 그 계곡 어딘가에 우리 일행이 텐트를 치고 이렇게 있다. 장대한 산맥이 우리를 담쑥 안고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다음 세상에서, 난 바람이 되고 싶었다. 그 무엇에게도 잡히지 않고, 그 어떤 것도 잡을 수 없는 바람이, 바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아얼친산에 둘러싸여 나는 생각했다. ‘할 수만 있다면 바람이 되어 이곳에 한동안 머물고 싶다.’고. 그들도 바람이 되었을까? 서시. 월나라인인 그녀는 적국 군왕을 유혹하는 임무를 띠고 오나라로 보내진다. 그리고 계획대로 오나라 국왕 부차의 애첩이 되어 그를 파멸시킨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녀는 한 번도 흔들림이 없었을까?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을 사랑해주는 부차를 그녀는 정말 조금도 사랑하지 않았을까? 사랑했지만 나라를 위해서 눈을 질끈 감았을까? 오나라를 멸망시킨 뒤, 그녀는 누군가와 다시 진실한 사랑을 했을까? 아님, 바람이 되었을까? 당 현종. 그는 양귀비를 사랑해 자신의 나라와 그녀를 맞바꾸었다. 그러나 그는 양귀비 이전에 한 여자를 사랑했다. 무혜비였다. 사랑했던 그녀가 죽고 시름에 빠져 있던 그에게, 여덟째아들의 첩인 양귀비가 눈에 띠었다. 그는 아들은 변방에, 며느리는 절에 보낸다. 그리고 오년 동안 양귀비를 찾아다니며 공을 들였다. 그는 양귀비와 십여년을 꿈같이 살았다. 그러나 그후, 그는 양귀비를 처형해야 한다는 여론에 밀려 폭도상태의 그들에게 양귀비를 내주고, 그녀는 목을 매어 자살한다. 만약 지하에서 그들 셋이 만난다면 당 현종은 누구를 옆에 둘까? 아님 바람이 되어 그냥 스쳐 지나갈까? 향비, 그녀는 청나라 건륭제의 비이다. 용모가 뛰어나고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몸에서 향긋한 향이 난다고해서 향비라는 이름이 붙은 그녀는, 원래 신장성 남부 어느곳의 공주, 혹은 왕비였다. 공주, 혹은 왕비의 나라는 청나라의 건륭제에게 멸망당하였고 향비는 포로가 되어 중원으로 끌려온다. 건륭제는 부귀영화를 약속하고 그녀를 거두려하지만, 그녀는 황제를 거절한다. 건륭제는 향비가 고향을 멀리 바라볼 수 있도록 망향루를 지어주기도 하고, 위구르의 재료를 날라다 그녀만을 위한 음식을 만들어 주기도하는 등 온갖 정성을 들였지만, 그녀는 결국 자결함으로써 끝끝내 황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고향에서 성녀로 추앙받았다. 어쩌면 한줄기 바람이 되어 그곳을 맴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아얼친산에 둘러싸여 그 산을 바라보고 섰다. 달빛이 흐른다. 그리고 작은 바람이 일었다. 나는 속눈썹조차 움직이지 못한다. 산은 그 이전부터 그 이후까지 그대로인데, 바람은 일어났다 스러지곤 했다. 이 세상에는 없는, 듬직하고 아름다운 ‘그 사람’의 어깨 같은 아얼친 산에서 나는 사랑을 떠올린다. 함부로 부질없다 말 할 수 없는 사랑을. 그것은 ‘그’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아아, 장대한 아얼친 산인, 그가. 8월16일 7시. 우루무치 아침 먹으러 가려는데 호텔 앞마당, 우리 차 옆에서 기웃거리는 한국인을 만났다.“아니, 여길 다 지나 오신 모양이네!” 차를 뺑뺑 돌아가며 써 놓은 우리들의 행선지를 가리키며 입을 벌린다. 인천-천진-북경-서안-난주-무위-금창-바단지린사막-주천-장예-돈황-하미-투루판-우루무치-쿠얼러-타클라마칸사막-민풍-치에머-아얼친산-거얼무-청해호-난주-은천-혹호트-북경천진-인천 “아, 예! 반 좀 지났나요?”한 보름 만에 목청 큰 한국인 아저씨를 만나니, 우리도 무척 반갑다. 김치 공장을 한다는 그 아저씨는 차 옆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김치를 한 뭉치 주고 갔다. 역시 우리는 배달민족, 한겨레다. 배급 담당은 나다. 모두들 눈을 반짝이며 내 손끝만 바라본다. “빨리 빨리!” 김치를 자르는 손길이 가볍게 떨렸다. 8월16일 12시 쿠얼러 가는 길 해발 0m인 사막을 지난다. 길가에 느닷없이 공룡, 말, 코끼리 모양의 조각상들이 드문드문 서 있다. 석고로 만들었을까, 모습이 희다. 가이드의 말이 그것이 예전에, 수천년 혹은 수만년 아니면 수십만년 전에 해당 지역에 그 동물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라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라고.‘공룡?’‘코끼리?’나는 새삼스레 끝없는 모래벌판을 둘러본다 8월17일 14시 창밖의 풍경이 반복된다. 사막에서 초지로, 초지에서 다시 사막으로. 그런데 지금 창밖의 풍경을 뭐라고 해야 할까? 사막에 아름드리 고사목이 숲을 이뤘다.3000년을 산다는 호양림이다. 중국에서는 생일날 ‘이 나무처럼 오래 살아라!’라고 덕담을 한단다. 나무의 모습이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처럼 기기묘묘하다. 혹시 팬터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면 이런 곳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직업병이다. 8월19일 15시 아얼친 산을 향해 사막 한가운데로 길이 뻥 나있다. 길 양쪽에는 풀이 조경되어 있고, 길 가에는 전봇대가 끝없이 연결되어 있다. “사막은 사막 그대로 놔둬야 자연보호가 아닌가요? 사막을 억지로 초지로 만들려고 하는 거, 저것도 자연 훼손이라니까요! 아, 안 그래요?” 아버지 흑기사의 말이 옳다. 우리는 인간이 손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고 싶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우리의 이런 마음을 어떻게 생각할까? 8월20일 17시 톈산산맥을 바라보며 3000,3500,3900m…. 고도가 계속 높아진다. 멀리 톈산의 만년설이 둘러섰다. 전봇대만 늘어서 있는 황량한 사막을 지나고, 소금밭을 지나고, 유전을 지나 달렸다.8월 중순인데, 춥다. 점퍼를 두 개나 껴입고 뒷좌석에서 한참을 잤다. 눈을 떠보니 고도는 여전히 3000대에서 오르락내리락한다. 우리의 백두산이 2744m인 것이 생각났다. 여기가 이 정도인데 저 톈산은 어떨까? 나는 눈을 들어 톈산을 바라보았다. 고선지 장군이 저 톈산산맥을 넘었다고? 그 옛날에?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8월21일 14시 청해호 가는 길 고도계가 고장 난 것일까? 하루 종일 달려도 고도는 3500m이다. 양을 방목하고 있는 장족 텐트를 만났다. 아줌마는 후덕하게 웃으며 자기 텐트를 열어 보인다. 유목민의 간단한 살림살이. 누가 이들을 안쓰럽다고 하는가. 그것은 정말 터무니없는 우월감이다. 조심해라, 조심해라. 나는 내 자신에게 타일렀다. 8월21일 23시 청해호 도착 초대소에서 자기로 했다. 한국으로 치면 여관, 혹은 여인숙에 해당된다고 한다. 근처에 마땅한 호텔이 없기도 했고, 초대소에서도 한 번 자 보겠다는 모험심의 발로였다. 한 방에 서너개의 침대가 있고, 침대 한 개당 10위안이라는데, 전기장판까지 깔려 있었다.(성능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초대소 마당에서 캠프파이어를 했다. 나무 한 짐을 다 태우고 나자, 주인 아줌마가 말똥 말린 것을 가져다 인심을 썼다.‘말똥?’그러나 말똥은 역겨운 냄새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아주 잘 탔다. 별은 또랑또랑 한 밤 내 반짝이고, 우리는 말린 말똥 한 자루를 다 태울 때까지 잠들지 못했다. 글쓴이 이윤희 교수는 동화작가, 문학박사, 어린이 문화전문지 ‘아침햇살’발행인. 인천재능대 아동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작품집으로는 ‘네가 하늘이다’‘꿈꾸는 호랑이 우화’를 비롯한 철학동화시리즈 18권이 있다.
  • 30대 OL 30명의 촛불잔치

    30대 OL 30명의 촛불잔치

      2월 27일 밤「코리어·하우스」에서 30명의 30대 여성이 9개의 촛불에 불을 밝혔다. 32만 명의 전세계 직업여성「클럽」회원들과 한결 같은 자매임을 다짐하는 촛불의식이란다. 아무래도 무슨 재미있는 음모가 꾸며지고 있나 보다. 이 30명의 30대들이 야심있고 유능한 각 직업분야의 예비 명여류들인 걸 보면 - . 서울 직업여성「클럽」회원들 - 이 30대들의 직업은「클럽」의 이름 그대로 다양하고 총괄적이다. 회장인 김현자씨는 대한YWCA연합회 이사, 제1부회장 박순양씨는 대한YWCA 총무, 제2부회장 이경희씨는 상호「미싱」자수학원장, 그러니까 제2부회장은 사업가다. 직업여성「클럽」의 약칭 BPW는 B가 사업가(Business), P가 전문직(Professional), W가 여성(Women)의 머릿글자. 수많은 직종과 대명(代名)을 대충 훑어보면 화가 박근자·심숙자·조기영씨, 문필가 허근옥·안경선씨, 대학교수 김인자씨. 비서직으로는 김혜순·나은실씨,「패션·디자이너」김승옥씨, 여기자 김소영·김지자씨, 여성단체의 사무직종으로는 서신숙·최영방·유정숙·장진순·윤용자씨 등이다. 국제친선행사의 촛불은 2월 마지막 주간의 하룻밤을 택해서 켜지는 것이 관례. 무엇인가 상징하는 촛불 각양각색의 이 여류직업인들이 가진 이날 밤의 촛불행사는 여간 상징적이 아니다. 10개의 초가 네 갈래로 나뉜다. 3개씩 셋, 그리고 한 개만 따로, 하나는 국제연맹의 상징이고 3가락씩 둘은 6대주, 나머지는 한국의 상징이다. 거창하게도 32만 명의 세계여성과 손을 잡았다는 이 30명 여성의 유일한 공통점이란 사실은 모두가 직업을 가졌다는 것. 거의가 30대며 그 분야에서 10년쯤 묵었다는 공통성은 재미있는 우연일 뿐. 봉사 선도(善導), 계몽 등의 소위 여걸스러운「여성단체」냄새를 이들은 풍길 여유가 없다. 그런 점에서 서울직업여성「클럽」은「여성단체적」이 아니다. 회원 모두 자기 자신의 매우 바쁜 본직을 가졌을 뿐더러「클럽」의 목적도 남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이는 것은 한 달에 한 번씩만. 그것도 직장생활에 지장 없는 저녁시간을 택한다. 모임의 내용은 30대답지 않게 진지하다. 잡담이나 포식이 아니라 회원만의「세미나」. 이「세미나」는 각 직업분야에서의 여성위치를 철저하게 분석한다. 회원들이 자기소속분야의 실태를 철저하게 분석한다. 『서로 신비스럽게 생각했던 타 직업분야를 알게 되니까 재미있어요. 그러나 이「세미나」는 직업여성「클럽」이 장차 그 본연의 활동을 하기 위한 기초작업이죠』 회장 김현자씨의 말이다. 「클럽」목표는「지위향상」 「여성단체적」이 아니기는 이 점도 마찬가지.『우리「클럽」은 회원들 자신이 직장에서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나, 이 사회에서 직업여성의 고충은 무엇인가, 직장과 가정은 어떻게 양립시키나 따위 우리 자신의 문제가 우리「클럽」의 당면 문제예요』 이경희씨의 설명이다. 이들 말대로 직업여성「클럽」의 작업은 직업여성의 지위향상. 50년 전에 미국「센트루이스」에서 처음 결성된 한 개의 작은「클럽」이 지금의 50개국 32만 명 회원의 연맹을 만든 시조(始祖)다. 50년 역사 가진「클럽」 역사가 깊어선지 미국의 직업여성「클럽」은 업적도 다양하다. 1963년에는 남녀차별없이 보수를 주도록 하는 무차별봉급법을 통과시켰다. 주(州)마다 때는 다르지만 배심원에 여성을 참석시키지 않는 법령을 점차로 폐기시켰다. 군대에서는 여군이 대령 이상 승급하지 못하던 금기도 폐지시켰다. 『꼭 이렇게 거창한 일을 한다는 건 아니지만…』총무 김혜순씨는 뒷말을 삼킨다. 적어도『우리 직업여성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알기나 하자』는 목적이 금년 안에 철저히 달성될 모양. 68년 10월 말에 탄생한 4개월 생 갓난이치고는 그러니까 목적이 아주 실제적이다. 벌써 두 번「세미나」를 가졌다. 한 번은『화가와 작가의 고민』또 한 번은『「매스콤」종사자의 실태』를 주제로. 앞으로도 한 달에 한 직업분야를 시험적으로 다룰 작정. 물론「클럽」안의 일이므로 공개「세미나」는 아니다. 촛불행사에 참석해준 BPW 국제연맹부총재「마일스」박사와 주한미국직업여성「클럽」회원 30명은 그것 외에 또 한 가지 일로 서울「클럽」의 옆구리를 찔렀다. 서울에 또 한 개 직업여성「클럽」을 만들라는 것. 한 나라가 세계연맹의 정회원이 되려면「클럽」이 셋 이상 있어 연합회가 돼있어야 한다. 여성 30대 30명의 69년 계획은 그러고 보니 꽤 대단한 음모였다. [ 선데이서울 69년 3/9 제2권 10호 통권 제24호 ] ※ 사단법인 전문직여성클럽 한국연맹 홈페이지 : http://www.bpw.or.kr
  • 도시구조 특별법 재개발사업 활력소 되나

    도시구조 특별법 재개발사업 활력소 되나

    도시구조개선법 발의로 재개발·뉴타운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재개발 투자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특별법은 도시 재개발사업 활성화를 위해 사업 단계를 줄이고 정부 재정을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공기관이 사업시행자로 참여할 수 있고, 지구 개념의 대규모 개발을 꾀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지지부진했던 재개발사업에 생기가 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존 뉴타운지역과 달리 각종 투기 억제 수단이 작동하기 때문에 무분별한 투자는 어려울 전망이다. ●개발 방향 호재…사업 탄력 예상 특별법에 따르면 지금까지 구역 주민에게만 맡겨왔던 도시재개발사업이 정부가 나서서 지원하는 방식으로 변한다. 도시구조개선지구에는 공공성이 가미되는 셈이다. 개별 재개발사업에는 적용되지 않는 용적률·층고 제한 등 건축규제 완화, 요건 미달지역의 사업지역 편입 허용, 도시개발구역의 입체환지 허용, 소형 의무비율 완화와 같은 메리트도 주어진다. 작은 규모로 쪼개져 추진되던 재개발사업을 덩어리로 묶어 개발하면 기반시설이 잘 갖춰진다. 구역별 아파트 건설이 아닌 작은 개념의 도시계획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도로가 뚫리고 공원·문화시설 등도 제대로 들어선다. 쾌적한 주거환경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서울의 경우 강북을 강남 수준으로 개발하겠다는 취지다. 서울시가 추진 중인 뉴타운사업도 특별법으로 추진할 수 있다. 재개발 사업에 공공성이 더해지면 주민들의 이익은 지금보다 커질 수 있다. 투기꾼들의 잔치로만 끝났던 재개발 이익을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업을 둘러싼 비리도 상당 부분 줄어드는 이점이 있다. 사업 단계가 간소화되는 것이 무엇보다 호재다. 개선지구로 지정되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등 관련법상의 계획을 받은 것으로 처리된다. 사업 시행자 지정 요건도 3분의 2에서 2분의 1로 완화된다. 이렇게 되면 재개발 사업을 준비하는 기간만 2년 이상 단축시킬 수 있다. ●규제는 강화…실수요 투자 유리 거래는 예상과 달리 활기를 띠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부터 서울 뉴타운 지역 토지거래는 면적에 관계없이 허가를 받게될 전망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주거 지역은 54평 이상에 대해서만 허가를 받고 있지만 앞으로는 10∼20평의 토지도 허가를 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주택을 사고파는 것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센티브를 받는 대신 기반시설부담금이 부과돼 개인 투자수익률은 그만큼 줄어든다. 여기에 재개발·재건축 입주권을 주택으로 보아 이를 사고팔 때 무거운 세금을 물리고, 양도세를 실거래가로 부하는 등의 규제가 따르면 재개발 지분 거래는 숨을 쉬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수요가 줄어 가격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중한 투자가 요구된다. 전문가들은 지분 여러 개를 나누어 투자하는 것보다는 감정평가액이 많이 나오는 길가에 접한 돈 되는 지분 하나를 사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재개발 투자의 성패는 사업추진 속도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조합원간 갈등이 있는 곳은 지리멸렬한 싸움으로 중간에 사업이 중단될 수 있다. 가능하면 규모가 큰 곳을 골라야 한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50만㎡이상 재개발 국고지원

    서울 뉴타운 사업 등에 국고가 지원될 수 있는 길이 열려 대도시 재개발 사업이 활기를 띨 전망이다. 열린우리당 윤호중 의원은 13일 낙후된 구시가지의 재개발 등 각종 정비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고 도시기반시설을 개선하기 위한 ‘도시구조개선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특별법안은 ‘8·31대책’ 발표시 제시된 것으로, 시·도지사가 시장·군수·구청장의 신청을 받아 면적 50만㎡ 이상의 낙후지역을 ‘도시구조개선지구’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곳에는 도로·공원 등 기반시설 설치 비용을 국가 예산으로 지원하거나 국민주택기금에서 융자할 수 있다. 역세권 등 집약 개발이 필요한 곳은 지구 지정 기준을 20만㎡로 완화했다. 도시구조개선특별법에 따라 추진하는 사업은 국고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도시정비법·도시개발법·국토계획법 등을 밟은 것으로 간주돼 사업 기간이 1∼2년 단축되는 효과가 기대된다. 이 법은 최종 확정된 정부·여당안으로 국회에서 통과되는 대로 내년 상반기 대통령령 등 하위 규정을 만들어 하반기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는 뉴타운 사업에 대한 서울시의 국고지원 요청에 ‘서울만 잘 살게 할 수 없다.’,‘특정지역의 개별 사업에 국고지원은 불가능하다.’던 건교부의 기존 입장을 번복한 것으로 향후 이에 대한 논란과 함께 각 지자체의 예산지원 요구가 봇물을 이룰 전망이다. 지구로 지정되면 2년내 개발면적, 기간, 토지이용, 용적률, 임대주택건설 규모 등을 담은 개선계획을 마련해야 한다.2년내(1년 연장 가능) 개선계획이 수립되지 않으면 지정 효력이 상실된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0)정감록의 어머니 음양오행설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0)정감록의 어머니 음양오행설

    ‘정감록’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기둥은 음양오행설이다. 엄밀히 말하면, 음양과 오행은 별개다. 사전에서는 대개 이런 식으로 정의한다. 삼라만상을 음과 양이 자라나고 없어지는 원리로 설명하는 것이 음양설이다. 음양설의 영향을 받아 만물의 생성과 소멸을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의 이치로 설명하는 것이 다름 아닌 오행설이다. 이 두 가지는 하나로 통합되기도 한다. 이것이 음양오행설이다. 이를 줄여서 음양설이라 부르기도 한다. 과거 동아시아에서 유행한 온갖 종류의 예언과 점에 음양설이 남긴 자취는 뚜렷하다.‘정감록’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역술가들은 모든 사물을 음양과 오행으로 풀이해 상생 또는 상극관계를 찾아낸다. 달리 말하면 점치고자 하는 어떤 사물이 있을 때 이름, 빛깔, 형태 및 성질을 음양 또는 오행으로 구별해 점괘를 벌려놓는 것이다. 그 방법은 우선 사물에 각기 하나의 숫자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추수(推數)라 한다. 점을 치려면 이를 다시 5진법(오행) 또는 2진법(음양)으로 번역한다. 그런 다음 최종적으로 길흉을 판단한다. 음양설을 신봉하는 역술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5진법과 2진법으로 환산된 사물의 상생 또는 상극관계다. 그들에게는 구약 성경에 가끔 선보이는 신의 계시 같은 것이 없다. 그런 점에서 역술가들은 보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것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래도 한 가지 본질적인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호박의 색깔이 붉다 해서 양이요 화(火)로 치부한다면, 이것이 과연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라 주장할 수 있을까. ●서북의 술사들, 왕조의 운명을 추수(推數)하다 ‘정감록’을 구성하는 여러 예언서 가운데 ‘동국역대기수본궁음양결’이 있다. 무학대사가 추수했다고 하지만 그 말을 곧이듣기는 어렵다. 이 책에는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에 이어 삼한이, 그 다음은 신라가 아니라 고려가 등장한다.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왕조는 당연히 조선이다. 신라를 우리역사의 큰 흐름에서 제외한 점으로 볼 때, 서북지방 술사들의 손끝에서 나온 예언서가 아닐까 한다. 그들은 기자조선과 고구려 또는 고려를 강조하는 경향이 유별났다. 역시 ‘정감록’에 실려 있는 ‘역대왕도본궁수’란 것도 비슷하다. 여기에는 단군조선을 빼놓고 기자조선으로 우리 역사의 처음을 삼았다. 이어 삼한이 등장할 법하지만 그 대신 어쩐 일로 신라를 등장시켰다. 신라에 이어 고구려와 고려가 연달아 나온다. 고려를 고구려의 후계자로 보았기 때문이다. 고려의 뒤를 이어 조선이 추수돼 있는데, 이 점은 ‘동국역대기수본궁음양결’과 동일하다. 그러나 두 예언서가 추수한 결과는 다르다. 먼저 언급한 예언서에서는 조선왕조를 4745로 추수했다. 나중 것은 9357로 보았다. 전혀 다른 숫자가 동일한 왕조의 운을 예언하는 기준이 되었다. 그 내용을 읽어보자. 전자는 “음으로 음에 이바지하니 왕씨보다 수명이 부족하다. 양을 합하고 양을 잉태했으므로 마지막은 삼한과 경우가 같아 불(火)에 속해 물(水)을 꺼린다.”고 했다(동국역대). 이에 비해 후자는 조선의 운세를 이렇게 점쳤다.“상(象)을 보니 앞이나 뒤가 모두 금(金)이다. 숫자를 놓고 볼 때 위나 아래나 모두 불(火)이다. 공자의 도가 무력에 굴복해 마침내 번신(藩臣)이 되고 말리라. 양으로 음에 이바지하니 도둑이 궁궐을 불태울 것이고, 음을 합하고 음을 잉태하므로 덕도(德島)에 군사를 보내리라.”(역대왕도) 조선 왕조의 운명에 관한 두 예언서의 점괘는 판이했다.‘동국역대’는 음으로 음에 이바지하므로 수명이 짧다 했지만 ‘역대왕도’는 그와 정반대였다. 양으로 음에 이바지해 도둑이 궁궐을 불태운다 했다. 이뿐인가.‘동국역대’는 양을 합하고 양을 잉태한다 했으나,‘역대왕도’는 음을 합하고 음을 잉태한다고 풀이했다. 이처럼 추수하는 것, 달리 말해 사물의 이름·형태와 성질에 따라 일정한 숫자를 부여하는 행위는 그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치달았다. 둘 중의 하나가 옳았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도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추수 행위 자체가 억지일 수도 있다. 예언의 결과를 두고 평가한다면 조선왕조의 수명이 고려보다 짧다고 했기 때문에 ‘동국역대’는 완전히 틀린 셈이다. 고려왕조는 34대 474년 동안 유지됐고, 조선의 역년은 27대 518년이었다. 그밖에도 ‘역대왕조’는 조선이 숭문(崇文)에 힘쓰다가 결국 남의 나라의 속국이 된다든가, 역적(도둑)이 궁궐에 불을 지른다는 둥 제법 그럴싸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이유만으로 ‘역대왕조’의 예언이 맞았다고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동국역대’는 조선왕조가 망할 징조를 드러내기 훨씬 전에 쓰였다고 추정해 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역대왕조’는 왕조의 패색이 짙어가던 19세기말의 저작일 수가 있다. 이런 의혹은 ‘정감록’을 연구하면서 몇 차례 제기된 문제다. 어떤 예언서의 내용 가운데 용케 사실과 일치하는 부분은 실상 지난 일을 마치 예언처럼 꾸며놓은 것으로 봐야 할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예언은 무조건 다 틀린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중간중간에 들어맞는 수도 있다. 우연히 적중하는 수가 있고, 동일한 문구라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실과 부합되어 보이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수수께끼 같은 편년체 예언서 “원계용처 수맹구(猿鷄用處 隨猛狗)”란 정감록 예언이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해 ‘칠언고결’이란 예언서의 한 구절이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원숭이와 닭이 쓰이는 곳에 사나운 개가 따라간다.’는 것이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일제시기 역술가들은 이 구절을 기발하게 해석하기도 했다. 원숭이는 신(申)년, 닭은 유(酉)년, 개는 술(戌)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 개해의 운세가 몹시 사납다고 풀이했다.1944년은 마침 갑신년이었다. 어떤 역술가들은 그 해 운세가 을유년인 1945년과 비슷하다고 보았고,1946년 병술년은 몹시 흉하다고 예언했다. 알다시피 한국은 1945년 일제의 쇠사슬에서 해방되었다. 해방된 해를 1944년과 마찬가지라고 본 것은 누가 보아도 전혀 틀린 예언이었다. 그러나 1946년이 1945년보다 나쁘다고 예측한 것은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 어찌 보면 신빙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다. 위안과 희망을 주는 것이 예언의 존재 이유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칠언고결’의 한 대목을 예로 꺼내든 데는 다른 목적이 있다.18세기 이후 한국의 예언서가 대체로 편년체를 취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조선 전기나 고려시대의 예언서는 한시 또는 무슨 운문체의 사부(辭賦)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것들이 대종을 이뤘다. 그러다 조선 후기에 와서는 마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마냥 편년체 연대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 전형적인 것으로 ‘서계이선생가장결’이 있다.‘무학비결’도 부분적으론 역시 마찬가지다.‘무학비결’의 일절을 보면,‘기사년에는 쥐처럼 훔치는 도둑을 면하기 어렵다. 경오년에는 용이 슬피 우는 것을 보리라.’고 했다. 기사년에 간신이 조정에 들어와 경오년엔 임금이 엄청난 곤경에 빠진다는 것이다. 꼭 이런 식으로 매년 일어날 정치적 사건을 간결한 문체로 요약했다. 편년체 역사를 방불케 한다. 편년체라면 얼른 떠오르는 것이 ‘자치통감강목’이다. 성리학의 대가 주자가 쓴 책이다. 기원전 403년부터 시작해 서기 960년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역사를 정통과 비정통으로 분별해놓고, 매년 중요 사건을 대요와 세목으로 등급을 엄격히 정해놓고 쓴 것이다. 본래 주자는 대요만 썼다 하며 나중에 제자 조사연(趙師淵)이 세목을 완성했다 한다.‘자치통감강목’은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기보다는 의리(義理) 관계를 따지는 데 치중했다. 자연히 사실관계가 너무 단순히 처리됐고, 그 과정에서 앞뒤가 모순되거나 틀린 서술도 적지 않게 되었다. 어쨌든 성리학자들의 도덕사관이 도처에서 피부로 느껴지는 역사서인데, 조선시대 선비들의 필수적인 교양서적이었다. 대부분 평민 지식인이던 술사들 역시 ‘자치통감강목’을 읽었다. 그 탓인지 혹은 그 책이야말로 역사책의 전형이라 믿었기 때문인지, 술사들은 “미래의 역사”를 담는 그릇으로 편년체를 선호했다. 도덕적인 평가가 담긴 간단명료한 예언이야말로 ‘정감록’을 비롯한 조선후기 예언서의 뚜렷한 특색이다. 성리학적 지배질서에 반항하던 술사들도 성리학이 이룩한 문화의 코드를 이용했다. 그러나 예언서가 ‘자치통감강목’은 아니다. 예언서는 본질적인 면에서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미래의 역사에 관한 추정인 만큼 표현방식이 무척이나 상징적이다. 앞에 예로 든 ‘원숭이와 닭이 쓰이는 곳에 사나운 개가 따라간다.’는 간단한 구절만 해도 그렇다. 술사들은 이 한 줄로 미래의 어느 시기 3년간의 운세를 점쳐 놓은 것이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음양오행설이 예언서의 상징적인 표현과 서로 어떻게 맞물려 있었는지를 짚고 넘어가야겠다.‘칠언고시’에 ‘세치백룡 인하거(歲値白龍 人何去) 약탐사미 필흉잔(若探蛇尾 必凶殘)’이란 짤막한 구절이 있다. 우리말로 옮겨보면 대강 이런 뜻이다.“해가 백룡을 만나면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하나. 만일 뱀의 꼬리를 만진다면 흉도(폭도)가 반드시 잔인해질 것이다.” 번역은 되었으되 이 예언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는다.‘백룡’이니 ‘뱀의 꼬리’ 같은 상징적 표현 때문이다. 백룡은 경진년(庚辰年)이다. 그 까닭이 궁금한 사람도 있겠다 싶어 약간 설명을 보탠다. 천간(天干)을 오행으로 배열하면 경(庚)과 신(辛)은 쇠(金)이다. 쇠는 색깔로 치면 하얀(白) 것이 되고, 방향으로는 서쪽에 해당한다. 그런가 하면 진(辰)은 곧 용이다. 따라서 백룡은 경진년이다. 백룡을 만났다 함은 경진년이 된다는 뜻이고 ‘어디로 가야 하나.’고 물은 것은 그 해의 처신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어서 나오는 ‘뱀의 꼬리’란 경진년 다음해인 신사년 말을 가리킨다.‘흉도가 반드시 잔인해질 것이다.’고 했으므로, 그 해 연말에 거사를 일으키면 승산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흉잔(凶殘)’을 흉하고 잔하다 즉, 길하지 못하고 잔약하다 또는 망한다는 뜻으로 봐도 무방하다. 후자의 경우라면 거사를 했댔자 쓸모없는 일이 된다는 뜻이다. 세 글자를 놓고 완전히 상반된 해석이 양립한다. 지금 인용한 문제의 예언을 두고 많은 역술가들은 이렇게 보았다. 경진년(1940)은 일제의 탄압이 극심할 것이며, 그 결과 한국 사람들은 설 곳이 없다고 해석했다. 과연 그 해에 일제는 한국인들에게 창씨개명을 강요했다. 중국에서는 잇따른 일본군의 공격으로 중국정부가 궁지에 빠져버린 바람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역시 충칭으로 옮기는 일대변동이 일어났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어떤 역술가들은 이듬해인 신사년(1941)에 독립운동을 했댔자 소용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한다. 하지만 ‘정감록’은 본디 조선왕조의 멸망을 염두에 두고 저술된 예언서였다. 일제 식민지 지배를 의식한 예언서는 아니었다. 신사년에 관한 해석에서 보듯 ‘정감록’은 본래의 저술의도와는 무관하게 귀에 걸면 귀고리가 될 수도 있는 신축성을 과시했다. 일제 강점기 한국의 기독교 신도들은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를 읽으며 자신들의 운명을 개탄했고,‘요한계시록’을 외며 언젠가 찾아올 해방을 염원했다. 하필 ‘정감록’만 상징적인 고무줄 예언은 아니었다. 그렇다 해서 기독교의 예언서와 ‘정감록’이 동질적이란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전혀 다른 계통에 속했지만 공통된 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신축성이야말로 예언서의 운명이다. ●자꾸만 되풀이되는 비슷한 구절 예언서 ‘정감록’엔 음양오행설로 포장된 상징이 즐비하다. 휴전선 안 비무장지대의 지뢰밭을 연상시킬 정도다. 그곳은 지뢰탐지기가 없이는 누구도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상징체계를 풀어헤칠 도구가 없이는 ‘정감록’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상징은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앞에서 인용한 ‘해가 백룡을 만나면 ….’이라는 구절과 흡사한 내용이 ‘정감록’ 안에서 또 발견된다.‘오백년논사비결’엔 ‘세우백호 인하거(歲遇白虎 人何去) 약탐사미 필잔흉(若探蛇尾 必凶殘)’이라 했다.‘경인년을 만났으니 사람은 어디로 갈거나. 뱀해 말엔 반드시 흉도가 잔인성을 발휘하리라.’는 뜻이다. 뱀 꼬리라면 계사년이다. 이 대목을 두고 역술가들은 6·25의 참극을 정확히 맞혔다며 흥분하기도 했다. 경인년은 전쟁이 터진 1950년이고, 계사년은 가까스로 휴전협상이 마무리된 1953년으로 국내의 상황은 무척 불안했다. 참 신기한 노릇도 있다.‘조선왕조실록’에서 ‘정감록’ 사건을 샅샅이 조사해보면, 지금 문제로 삼고 있는 구절이 이미 순조26년(1826)에도 이미 세상의 주목을 끌었던 사실이 확인된다.‘세월이 백룡(白龍)을 만나면 사람은 어디로 가는가(歲遇白龍人何去). 해(年)가 사미(蛇尾)를 만나면 반드시 흉도가 잔인해질 것이다(年逢蛇尾必凶殘)라는 괴상망측한 시를 퍼뜨렸다.’는 혐의로 술사 정상채 등이 체포됐다. 그 때는 백룡 즉, 경진년(1820)이 지난 지도 6년이나 된 시점이었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상채는 문제의 구절을 순조11년(1811년)에 일어난 홍경래 난과 관련지었던 모양이다.16년 전 평안도 정주 등지에서 반란을 일으킨 홍경래가 아직 살아 있다며 정상채는 이 구절을 인용했다. 아울러 그는 홍경래 일파야말로 역적이 아니라 중국역사에 견주어 말하면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진승 등은 진시황이 세운 진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 농부였다. 정상채는 결국 체제부정적인 유언비어를 살포한 죄로 사형을 받았다(실록, 순조 26년10월27일 을해). 사실 ‘백룡’이니 ‘사미’니 하는 용어가 예언서에 포함된 유래는 생각보다 깊다. 영조24년(1748)년 5월 청주에서 발생한 ‘정감록’ 사건 때도 용과 뱀 꼬리가 거론됐다. 당시 문제가 됐던 것은 ‘용두(龍頭)’와 ‘사미(蛇尾)’였다. 해석하는 방식 역시 위에서 살핀 것과 마찬가지다. 용은 곧 진(辰)해, 뱀은 곧 사(巳)해며, 두(頭)는 정월(正月), 미(尾)는 곧 연말인 12월로 보아 뱀해 초나 뱀해 말에 난리가 일어난다고 했다. 음양설에 기초한 예언의 뿌리는 이렇게 깊고 질기다. 정감록의 원본이라고 하는 ‘감결’에는 문제의 구절을 약간 변형시킨 대목이 있어 다시 눈길을 끈다.‘남도교룡 금안재(南渡蛟龍 今安在) 수종백우 주종성(須從白牛 走從城)’이라 했다. 해석해보면,‘남쪽으로 간 이무기와 용은 지금 어디로 갔나. 신축년이 되자 틀림없이 종성으로 달아났도다.’는 것인데, 기발한 풀이가 있다. 이무기와 용이란 영물인데 이것이 남쪽 즉, 남한으로 들어와 신축년(1961)부터 민족중흥에 앞장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박정희가 제3공화국을 세워 조국근대화 사업을 달성하리란 예언이 정감록에 있다는 해석이다. 해석은 자유다. 그러나 매우 위험하다. (푸른역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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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형가이드-순서의 추리 이 유형은 생략된 정보의 추리 유형과 함께 고전적인 문제에 속한다. 그만큼 글 전체의 전개 양상을 이해하는 능력, 논지 흐름에 따라 내용을 추리하는 능력 등 언어 능력의 핵심 요소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예시유형 문맥과 논지의 흐름을 이해하고 이에 근거해 글의 순서에 맞게 문단을 배열하는 문제 유형. ●해법 /ci0008?순서를 무시한 채 글 전체를 정독해 중심 내용을 파악한다. ?큰 테두리에서 내용에 따라 단락들을 묶는다. ?각 묶음에 속한 문단의 선후 관계를 정한다. ?묶음 사이의 순서를 정한다./ci0000 ●문제 다음 글의 내용 전개가 적절한 문단 배열은? (가)수정란을 완벽한 생명체로 볼 수 없다고 해서 그들을 마구 다뤄도 괜찮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배아 복제 실험을 마친 후 그 배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 각처에서 벌어지는 낙태 시술의 현장을 재현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 이마를 맞대고 이런 모든 순간에서 절대로 생명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생명체의 시작’을 논한다는 것이 공허한 일이며 그 공허하고 모호한 기준에 따라 생명과학자들의 연구 활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일은 더욱 불합리하다. (나)그렇다면 ‘생명체의 시작’은 과연 어디인가. 생명체, 즉 스스로 숨 쉬고 번식하는 독립적인 실체의 시작 말이다.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에는 하나의 수정란이 포도송이와 같은 세포덩어리가 되었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둘로 갈린 후 완벽하게 정상적인 두 개체로 성장한다. 하나의 수정란이 세포덩어리가 되기 이전의 그들을 과연 두 생명체로 봐야 할지 아니면 아직은 하나의 생명체로 봐야 할지 참 애매한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배아는 완전한 생명체로 보기 어렵다. (다)‘생명체의 시작’을 얘기하려면 어쩔 수 없이 유전자로 환원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생명체란 유전자가 더 많은 유전자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낸 매개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생명체란 유전자의 정보에 따라 만들어져 이 세상에 태어나 일정한 시간을 보내곤 허무하게 사라지는 존재이지만 유전자는 세대를 거듭하며 살아남는다. 생명의 역사는 한마디로 DNA라는 기막히게 성공적인 화학 물질의 일대기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은 이처럼 한 생명체의 탄생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온 DNA의 표인일 뿐이다. (라)배아는 유전자가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중간 과정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유전자가 생명 현상을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주고 그 몸이 ‘의식’을 얻어야 비로소 하나의 생명체가 탄생한다고 봐야 한다. 인간은 특별히 완전하지 않은 신경계를 가지고 태어나는 동물이다. 그래서 만일 신경계가 ‘자의식’을 확립하여 하나의 완벽한 ‘영혼’으로 거듭나는 시기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면, 어머니의 몸을 빠져나와서도 한참이 지난 후이다. (마)이처럼 생명체의 시작을 논한다는 것은 공허한 일이다. 생명은 연속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시작은 DNA의 탄생과 때를 같이 한다. 그 태초의 바다에 떠다니던 많은 화학 물질들 중에 어느 날 우연하게도 자기 자신을 복제할 줄 아는 묘한 화학물질인 DNA가 나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십억 년 동안 다양한 ‘몸’들을 만들며 살아온 것이 바로 생명의 역사다. 지금은 비록 인간의 몸속에, 그리고 개미와 은행나무의 몸속에 들어앉아 있지만, 그 모든 DNA는 전부 하나의 조상 DNA로부터 분화한 자손들이다. (바)이런 점에서 생명이란 하나의 생명체의 관점에서 볼 때 분명히 한계성을 지니지만,DNA의 눈으로 보면 태초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온 영속성을 지닌다. 무성생식을 하는 생물들의 경우에는 DNA가 복제된 후 몸이 갈라지기만 하면 번식이 이뤄지지만, 유성생식을 하는 생물들은 자신의 DNA의 절반을 운반하는 난자와 정자를 만들고 그들이 서로 만나야 비로소 수정란이 된다. 난자와 정자도 생명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그들을 별개의 생명체로 보기는 어렵다.DNA가 가진 생명은 생명체에서 생명체로 이어진다. 난자와 정자는 연결고리에 불과하다. 생명은 계속 이어지고 있으나 생명체는 잠시 단절된다. (1)나-다-라-마-가-바 (2)나-라-다-마-바-가 (3)다-나-라-마-바-가 (4)다-나-바-마-라-가 (5)다-라-나-마-가-바 ●해설 각 단락의 중심 내용을 통해 순서를 재조직해 보면, 우선 (라)가 (나)를,(바)가 (마)를 이어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마)의 ‘이처럼’이 (라)의 후반부의 내용, 인간이 생명체로 탄생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마)의 중심 내용으로 이어주고 있다. 한편 지문이 ‘생명’,‘유전자’의 관점에서 ‘생명체의 시작’을 논하는 것이 공허한 이유를 주된 논의의 대상으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다)가 이 글의 화제인 ‘생명체의 시작’을 문제시하는 관점을 제시한 전제 단락에 해당하고,(가)가 이 글의 결론 부분에 해당함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를 종합할 때 ‘다-나-라-마-바-가’의 순서로 정렬할 수 있으므로, 정답은 (3). ●김병구(숙명여대 교수/국문학 박사)
  • 사막에서 길을 묻다

    사막에서 길을 묻다

    우리는 달렸다. 타클라마칸, 그 죽음의 사막을 향해. 자갈길을 가로지르고 강을 건너 5000여 ㎞를 내달렸다.‘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살고 싶지 않은 자와 미친 자가 아니면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는 그 사막을 향해. 그러나 15박16일을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달려 간 그 사막 입구에는 ‘황량한 사막은 있어도 황량한 인생은 없다’, 그렇게 씌어 있었다. 붉은 글씨로. 아, 아 그렇지! 황, 량, 한 인생, 은 없지…. 마치 달려오던 가속도를 어쩌지 못해서인 듯, 온 몸이 앞으로 울컥 쏠렸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섰다. 등골에서 짜르르 전류가 흐르는 듯하다.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가 홀린 듯 이 먼 길을 내달아 온 것은 이런 글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예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막을 꿈꿔왔다. 아주 오래전부터. 삶의 고비마다 언뜻언뜻 떠오르는 낯익은 영상이었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날카로운 햇살이 온 몸에 쏟아진다. 마른 먼지가 콧속을 파고들며 숨을 막고, 입안에선 으적으적 모래가 씹힌다. 갈증은 이미 오래전에 통증으로 바뀌었고, 모래밭은 펄보다 더 힘겹다.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나름대로 비장하다. 그러나 나는 이 장면에서 한껏 더 상상력을 부풀려 본다. 마침내는 햇살에 바래고 모래먼지에 찌든 내 신발 코 끝에, 죽은 자의 늑골이 아른아른 겹쳐 보일 때까지. 그런 극한점에 맞서보고 싶었다. 이 여행에 대한 제의를 받은 건 7월 초였다.8박9일 일정의 실크로드 패키지 여행을 준비하던 내게, 여행자들이 한국에서 가져간 지프를 직접 몰아 중국 대륙을 횡단한다는 프로그램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더구나 사막에서의 야영이라니! 앞뒤 생각 없이 큰소리로 “네!”해버렸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처음부터 28일 전 일정을 참가해야 한다고 했다면 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 사나흘도 아니고, 일주일도 아니고, 열흘도 아니고. 난 그렇게 오랫동안 내가 없는 우리 집을, 학교를, 나를 둘러 싼 크고 작은 일상들을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전 일정은 한 달쯤 되나 봐요. 하지만 그걸 다 따라 다닐 수 있으시겠어요. 앞 뒤 자르고 한 8박9일 정도면 어떠세요?” 그렇게 시작했지만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일정은 길어졌다. “근데 한 보름은 되어야 그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으시겠어요?” “보름이나 이십일이나…. 근데 이런 여행 쉽지 않거든요.” “따로 돌아오실 비행기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네요.” “29일 날 도착한다고 각오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지막 말을 들었을 때, 난 이미 말라리아와 장티푸스 주사를 맞았고, 짧은 반바지에서 겨울 점퍼까지를 꾸려 짐을 싸둔 다음이었다. 가슴속에서 소용돌이가 일었다. 심호흡을 한 뒤 대답했다. “좋아요.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며 내가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엄살기 가득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여행은 톈진항에서 배를 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현장법사가 불전을 구하기 위해 간 길, 바리데기 공주가 죽은 자를 살릴 샘물을 구하기 위해 지나간 길, 고선지 장군이 서역 정벌을 위해 나선 길, 실크로드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건,‘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가 지나간 길, 실크를 비롯한 동서양의 온갖 것들이 교류한 이 길…. 이 길을 다섯 대의 지프가 달린다는 것이다. 오프로드를 포함해서 하루 몇백㎞를 달리고 또 달리다가, 사막을 만나면 사막에서, 바다만큼 큰 호수를 만나면 호숫가에서 야영을 한다는 것이다. 멋지다. 하룻밤을 배에서 자면서 톈진에 도착한 다음, 베이징, 타이위안, 시안, 란저우, 우웨이, 금창, 바단지린 사막, 가우대, 청수, 주취안, 둔황, 하미, 투르판, 우루무치, 쿠얼러를 빠르게 지나쳐 마침내 타클라마칸 사막에 닿았다. 인천항을 떠난 지 열엿새 만이었다. 그러나 타클라마칸은 예전의 타클라마칸이 아니었다. 사막 한가운데로 잘 닦인 아스팔트가 서늘할 만큼 시원스레 뚫려 있고, 몇㎞ 간격으로 물탱크를 포함한 대피소가 줄지어 있었다. 그 옛날, 나는 새도 통과하지 못한다는 그 타클라마칸은 이미 아니었다. 그러나 여전히 녹록지 않은 타클라마칸은 카라부란으로 우리를 맞았다. 그 옛날 죽음의 모래바람이라 불리던 카라부란이다. 타클라마칸에 진입했다는 흥분을 가까스로 가라앉히며 사막 깊숙이 자리를 잡고 서둘러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려는데, 모래 바람이 일었다. 처음엔 코펠이 뚜르르 굴렀다. 뒤이어 텐트가 뿌리 뽑힌 풀단처럼 힘없이 날아가 버렸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아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흙탕물에 빠진 것처럼 시야가 흐려졌다. 서둘러 지프에 달려 올라가 문을 닫았다. 설마 지프는 안 날아가겠지.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다. 나는 눈을 감았다. 솩, 쉬르르 차창에 부딪치는 모래바람의 소리가 여전했다. 대개 중국쪽 실크로드의 시작을 서안이라고 본다.1000여년 동안 중국의 수도였던 도시. 장안이라는 옛 이름을 가진 이 도시는, 농사짓는 것보다 농사짓다 발견한 유물을 내다 파는 것이 더 낫다는 고도이다. 서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죽은 진시왕의 잔영이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왕.13세의 어린 나이에 진왕에 즉위하였으며 39세에 중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통일 국가를 세운 사람.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스스로를 ‘태황의 황과 오제 제’를 따서 황제라고 칭하고, 자신을 시황제라 부르게 명 한 사람. 그는 선남선녀를 골라 불로장생할 선약을 구해오라는 전대미문의 특명을 내리고, 또 한편으로는 즉위하자마자 죽을 때까지, 자신의 묘가 될 지하궁전을 팠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이 무덤은 ‘관은 동으로 주조했고 무덤 내부에는 각종 보석으로 궁전과 누각의 모형을 세웠다. 수은으로 바다와 강을 흐르게 했고 천장에는 진주를 아로 새긴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들어 달았다.’고 전해진다.30만명이 석 달 동안 왕릉에 보물을 실어 날랐다 한다. 그는 또 죽은 다음에 자신을 지킬 군사들을 만들어 도열시켰다. 보병, 전차대, 포대로 이루어진 신장 180m안팎의 실물크기 흙 인형 수천명으로 지하군단을 만들어 자신의 능에서 1.5㎞ 떨어진 거리에 배치해 두었다.1호 갱에 약 6000명,2호 갱에 약2000면 3호 갱에 68명의 테라코타 병사가 사열해 있다. 결국 그는 여러 형태의 ‘영생’을 준비한 것이다. 하긴 그렇기도 하겠다. 그 넓은 대륙을 통일한 젊은 왕에게 아쉽고 그리운 것이 그 영화를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영생뿐, 더 무엇이 있었을까? 하지만 그것들을 만든 진시황의 백성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그의 나라는 3대 15년 만에(항우에게)멸망하였다. 문자, 도량형, 화폐를 통일하고, 그 시절에 전국적인 도로망을 거미줄처럼 짜고, 운하를 파고 만리장성을 쌓고 아방궁을 짓는 등 어마어마한 일을 해낸 이 황제와 관련된 유적은 그러나 아직 다 발굴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가이드는 그때와 공기가 달라 유물이 상할 염려가 있고, 무덤 안에 함정이 많고 엄청난 양의 수은이 있어 위험하며, 후손들이 먹고 살 관광 자원을 남겨주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고, 한쪽으로는 기술이 부족해서 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에 관한 미확인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준다. 예전에, 중국을 방문한 일본 총리가 그 유적 발굴을 제안했다 한다. 일본의 기술력을 제공할 테니 발굴한 보물의 3분의1을 달라고. 주석이 껄껄 웃으며 ‘이 안에 든 보물이면 네 나라 전부를 살 수도 있을 거다.’고 대답했단다. 그 조상에 그 후손임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벌컥, 차문이 열리면서 남대장이 소리쳤다. “바람 없어졌어요. 나오세요!” 어느새 눈앞에는 사막의 밤이 펼쳐져 있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별이 튕겨져 나올 듯 반짝였다. ‘돌아올 수 없는 곳’이 어디 타클라마칸뿐일까. 때때로 살고 싶지 않고 미칠 듯한 기분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는 심호흡을 하며 다시 사막에 발을 내디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량한 인생은 없다.’는 믿음으로. 죽음의 카라부란은 멈췄고, 모래는 아직 따뜻했다. 그리고 사막의 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신비로웠다. ●글쓴이 이윤희 교수는 동화작가, 문학박사,‘아침햇살’발행인. 인천재능대 아동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작품집으로는 ‘네가 하늘이다’‘꿈꾸는 호랑이 우화’를 비롯한 철학동화시리즈 18권 등이 있다. ■ 무선통신, 날아오다 2004년8월2일 11시, 인천항 실크로드 오버랜드 원정대는 8월2일 오전 11시에 인천항 제2부두에 집결했다. 출발 인원은 총 12명, 한국인 10명과 터키인 2명이었으며, 중국에서 터키인 1명과 중국인 5명이 합류할 예정이다. 거추장스럽고 부피스러운 짐은 이미 지프에 실어 앞서 보냈다. 가벼운 마음으로 배에 올랐다. 순조로운 출항이다. 8월3일 13시. 천톈항 서둘러 천톈항 출구에 섰다. 까마득한 멀리에는 인천을, 가까이에는 25시간 동안 우리를 싣고 온 여객선 진천 페리를 등 뒤에 둔 채다. “와!” 거기, 중화인민공화국 천진항 광장에, 먼저 도착한 차들이 늠름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5대였다.4+4 SILKROAD EXPEDITION.TRANS TACLAMAKAN.ROK 스티커 글씨가 도드라졌다. 눈이 부셨다. 그리고 비로소 가슴이 뛰었다. ‘아아, 드디어 시작이다! 이동거리 1만㎞를 훌쩍 넘는 28일간의 여행. 우리차로 실크로드를 달린다! 중국을 횡단한다!’ 나는 사뭇 뛰었다. 지프를 향해. ★중국의 4대미인은 누구?(답? 곳곳에 숨어있어요^^) 8월3일 15시, 베이징을 향해 우리차가 달린다. 중국 고속도로를 시속 100㎞로. 창문을 모두 열어 젖혔다. 나,58년 개띠. 오프로드 여행 경험 전혀 없음. 대학교수. 유부녀…. 그러나 그 순간 이 모든 것을 잊었다.‘우리는 간다, 하늘도 부른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햇살은 유리처럼 투명했고, 살짝 따가웠다. 승차 배치도 진행차:다이장(중국측 여행사 사장), 도용(현지 가이드). 살인미소(중국인 정비사). 여성스태프 1호차: 남대장(38·오버랜드 대표), 나(유니), 비니(34·스태프, 통역). 진피디(29·스태프, 영상담당)·2호차:한·최 안젤라 부부(47,45·사업가)·3호차:최 노익장(67·독일 국적의 CEO), 김원장(50·복지시설 운영)·4호차:임 흑기사 부자(51,29·사업가, 대학생)·5호차:하칸(29·터키인 사업가)등 터키인 일행 ●답(1) 그녀의 자태에 꽃이 부끄러워 스스로 잎을 말아 올렸다는 양귀비(수화·羞花) 8월4일 14시, 베이징 베이징에서 합류하기로 한 터키인 일행 하나가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었다. 그를 기다리는 사이, 캔맥주가 돌았다. 남대장:수도자가 고행을 하는 마음으로 이런 여행을 합니다. 일종의 종교 의식이지요. 한·최 안젤라 부부:모험이잖아요. 꿈꾸는 듯한. 임 흑기사 부자: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최 노익장:중국을 횡단이라, 정말 멋지잖습니까? 더구나 내 차로 직접 운전을 하는데! 김원장:새로운 패턴의 여행이라서요. 하칸:어린 시절부터 실크로드를 꿈꿔 왔습니다. 이번 여행은 그 꿈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가슴이 뜁니다. 그들의 얼굴이 발그레해진 것이 캔 맥주 탓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맥주를 홀짝거리며 서유기를 생각했다. 불전을 구하러, 혹은 죽은 자를 살릴 생명수를 구하러 이 길을 지났을 삼장법사와 바리데기 공주를 생각했다. 그리고 수많은 상인과 기술자와 병사와 예술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빌었다. 그들의 꿈과 사랑이 먼먼 후손인 내게도 자지러지도록 생생하게 전해지기를. 그리하여 그로인해 내 삶이 얼마간 풍요롭고 따스해지기를. 브라보! 우리는 다시한번 맥주 캔을 맞부딪쳤다. ●답(2) 그녀가 강변에 서서 강물을 바라보니 그 아름다움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물속에 가라앉았다는 서시(침어·沈魚) 8월5일 14시, 시안 가는 길 그러나 정말 쉽지 않았다. 온갖 것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느닷없이 나타나는 ‘공사중’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사실 이것은 그렇다 칠 일이 아니다.‘공사중’이 너무 많았다. 아니 중국 전역이 ‘공사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곳곳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다.(더구나 그들은 지나는 차량에 대해서는 아무 배려가 없었다. 아무런 안내나 대안 제시도 없이 길 전체를 막아버린 곳도 몇 군데 있었다.‘우리는 지금 공사를 하고 있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가라’는 식이었다.)곳곳에서 만나는 비포장도로도 또 그렇다 치자.(왜냐하면 땅이 너무 넓어서 포장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데 할 말이 별로 없으니까.)그러나 포장도로도 비포장 못지않게 차를 널뛰기하게 만든다는 것은 좀 그랬다. 자세히 보니 아스팔트가 바퀴 자국을 따라 깊게 패었다. 과적 차량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과적을 하지 않은 트럭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정말 어마어마한 물동량이 움직이고 있었다!(하긴 우리 팀도 과적을 했다. 우리는 짐에 치여 쪼그리고 앉을 수밖에 없었다.‘28일간의 긴 여행’,‘사막에서의 야영’이라는 점에 모두들 긴장한 탓이었다.) 먼지와 매연도 문제였다. 그리고 따끔거릴 만큼 지독한 햇살과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높은 온도, 장거리 주행 등이 엔진을 과열시켰다. 우리는 심통 난 아이 달래듯 차를 달래가며 몰았다. 그래도 어떤 차는 가끔씩 푸쿠쿡, 키다닥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속력을 떨어뜨렸다. 아슬아슬했다. 8월6일 15시, 화청지 마침내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당 현종과 양귀비가 온갖 사치를 즐기며 장안과 화청지를 오가며 세월을 보내곤 했다는 설명을 듣고 있는데, 터키인 일행의 사고 소식이 날아들었다. 한 이틀 다른 곳을 들렀다가 합류하기로 한 사람들이다. 교통사고. 정비 불량과 과속으로 인한 전복 사고란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지만 일행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이제 막 본격적인 시작인데…. 게다가 그중에는 터키의 ‘정주영’이 섞여 있단다. 선박회사를 17개인가 갖고 있고, 보험회사를 또 몇 개 갖고 있고 그리고…. 그런 사람이 우리와 함께 여행을 하려다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믿기 어려웠다. 터키엔 여행사가 없나?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중국 서쪽, 우리가 흔히 ‘서역’이라고 부르는 그곳이 터키와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나라와 연변 조선족과의 관계와 비슷한. 그래서 터키인들은 그쪽 지방을 여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터키인들이 그들, 소수민족을 부추겨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예를 들자면 독립운동 같은, 중국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동의할 수 없는)을 할까봐 여행을 허가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한국인들 틈에 슬쩍 끼어서 그곳을 가려 했는데 그만 사고가 난 것이었다. 첫 번째 대형 사고였다. 8월7일 10시 40분, 란저우 가는 길 막히는 길을 가까스로 통과해 주유소에 도착했다.“날씨까지 꾀죄죄하네요.”기름을 넣고 있는 차들 뒤에서 고개 돌리기를 하며 가볍게 몸을 풀고 있는데, 아들 흑기사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랬다. 하늘빛은 칙칙하고 우리는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이심전심일까?안젤라의 남편 한씨가 장난기를 발동시켰다. 기름을 넣고 있는 자기 차 보닛에 검은 색 보드마커로 ‘갑시다, 실크로드!’라고 휘갈겨 썼다. 그러고는 부인 안젤라에게 펜대를 넘겼다. 안젤라는 ‘타클라마칸을 향해서!’ 썼다. 모두 신났다. 최 노익장은 당신 차 이마에 해골표시를 그려 넣었다. 남대장은 인천에서 출발하여, 다시 인천까지 오는 전 일정을 차에 뺑뺑 돌아가며 써 넣었다. 나는 자꾸만 꾸르륵거리는 차 콧잔등에 ‘잘 달려라, 착하지. 말썽피지 말고!’라고 썼다. 그리고 슬그머니 쓰다듬어 주었다. 8월9일 12시, 무위 ●답(3) 그녀가 비파를 연주하니 기러기가 그 용모를 보느라 날갯짓하는 것도 잊고 땅에 떨어져 버렸다는 왕소군(낙안·落雁) 8월9일 12시, 무위 그러나 차는 여전히 불안 불안했다. 한 팀은 차를 정비하고, 나머지 한 팀은 장을 본 후 점심을 먹었다. 양갈비찜이 나왔다. 찌그러진 넓적한 양은그릇에 큼지막한 살덩이가 붙은 양 갈비 한 개가 담겨있는 것이, 꼭 개밥 같았다. 저녁에 있을 사막에서의 야영을 위해 준비한 음식들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8월10일 12시30분, 바단지린 사막 야영을 잘 끝내고 사막을 빠져나오려는데, 갑자기 2호차 꽁무니에서 검은 연기가 쿨룩쿨룩 쏟아졌다. 또 다른 대형 사고였다. 엔진은 정지했고,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고장난 차는 1호차가 견인해서 정비소로 가고, 나머지는 사막에서 그들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늘 한점 없는 땡볕아래 햇살은 점점 강해지고, 끼니때가 되었는데도 식당은 멀디 멀었다. 우리는 임시 휴게소를 만들었다. 남은 차 둘을 나란히 대고 , 그 위에 텐트를 덮어 그늘을 만들어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라면을 끓이고 커피를 탔다. “죽인다, 커피향!” 우리는 애써 큰소리로 웃어댔다. ●답(4) 그녀의 미모가 너무 아름다워 달도 구름 뒤에 숨었다는 초선(폐월·閉月) 8월11일 20시, 가욕관에서 둔황으로 결국 그들 차 두 대는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는 차 3대에 짐을 포개고 또 포갠 뒤, 그 사이에 끼어 앉았다. 그리고 일정을 그대로 진행했다.2m앞이 안 보이는 먼지 길 양옆에 아스라한 낭떠러지가 이어져도, 문을 꼭 닫은 차안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기침이 컥컥 나올 만큼 독한 ‘원조황사’가 길을 막아도, 그대로 뚫고 달렸다. 생명 보험을 하나 더 들어놓고 올걸! 나는 콩 튀듯 탕탕 거리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해를 따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나아가는 길, 해는 지지도 못하고 저녁 8시가 넘는 시각에도 낮처럼 환하다. 8월12일 17시, 명사산 아름답다. 달밤이면 모래가 우는 소리를 낸다는 산. 해질녘, 그 산을 낙타를 타고 오른다. 출렁출렁, 낙타의 발걸음에 따라 내 몸이 흔들린다. 방울소리도 흔들린다. 8월13일 18시, 하미 주위에 있는 산들이 온통 시커멓다. 철성분이 많아 그렇단다. 그 산 사이에 난 협곡을 달리고 달려 신장 자치주에 닿았다. 무섭게 바람이 불었다. 이 근처는 사철 그렇게 바람이 많은 곳이라고.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투르판은 ‘불의 땅’ 외에도 ‘바람의 창고’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20시에 하미과로 유명한 하미에 도착해 저녁 대신 과일로 허기를 채웠다. 배가 봉긋해졌다. 8월14일 18시, 투르판 위구르족 민속쇼를 관람했다. 남대장이 모종의 작업을 한 덕분에 나도 위구르족 아가씨로 분장하고 공연에 잠깐 끼어들었다. 위구르의 전통 악기 소리는 맑고 탱글탱글했다. 우거진 포도 넝쿨 아래서, 붉은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면서, 나는 잠시 먼 이국의 여인이 되는 꿈을 꾸었다. 한여름, 축제의 밤은 열기를 더해갔다. 8월15일 11시, 우루무치 포도 농원에 갔다. 위구르 말로 ‘아름다운 목장’ 이라는 뜻을 가진 우루무치는 커다란 오아시스 도시다. 야자수가 두어 그루 있는, 우리가 오아시스라고 하면 흔히 머리에 떠올리는 그런 고즈넉한 풍경이 아니라 포도나무가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20∼30종은 넘어 보이는 건포도가 신기했다. 노랑색, 황금색 외에도 송이째 말린 건포도, 씨가 씹히는 건포도, 달콤한 것, 약간 시큼한 것…. 나는 번개처럼 건포도를 한 짐 싸서 챙겼다.‘아줌마’라 흉을 봐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독하게 맘을 먹었다. 맛보여주고 싶은 고국의 ‘동포’들이 목에 걸리고 눈에 밟혀 어쩔 수 없었다. ■ 지프로 오지를 달리고 싶다면 챌린지 전문탐험 기획사인 ㈜오버랜드 엔터테이먼트(www.overland.co.kr)는 자신의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 실크로드 등 세계 오지를 탐험하는 이색적인 여행 상품을 판매한다. 오버랜드를 운영하는 남기환(38)대표는 1999년 런던∼서울 단독횡단과 2002년 유라시아 횡단팀을 이끈 오지탐험 전문가. 그는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지프를 타고 황량한 들판과 거친 사막, 별이 쏟아지는 초원에서 야영을 즐기는 새로운 형태의 여행 개척하고 있다. 주요 상품은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까지 이어지는 ‘트랜스 타클라마칸’,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끼고 도는 ‘트랜스 히말라야’, 중국 성도에서 티벳까지 찝차을 이용 ‘천장공로 하늘여행’ 등 다양한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오지 캠핑 상품도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국내 산간벽지를 찾아 다니며 캠핑과 야영을 즐기는 1박 2일,2박 3일 오지여행도 정기적으로 진행된다. 비용은 일정에 따라 다른 만큼 오버랜드(02-522-0228)에 직접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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