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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집이 맛있대] 송파구 신천동 감자탕집 ‘예솔’

    [2집이 맛있대] 송파구 신천동 감자탕집 ‘예솔’

    서민음식의 대표라면 단연 감자탕이 첫 손에 꼽힌다. 해장국에 선지가 들어가 먹기를 꺼리는 이들도 감자탕이라면 별 거부반응 없이 먹는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먹는 감자탕은 좀 과장하면 ‘국민음식’이라 할 만하다. 사시사철 찾는 메뉴지만 요즘처럼 쌀쌀한 때에는 더욱 생각나는 음식이다. 서울 송파구 신천동 감자탕 전문식당 ‘예솔’은 감자탕 매니아들에게는 제법 알려진 곳이다. 저마다 자기 집이 ‘원조’요 ‘본가’라고 내세우지만 5년 역사의 ‘예솔’은 오로지 구수한 감자탕 국물과 소박한 정성으로 승부하는 진정한 맛집이다. ‘예솔’의 감자탕이 다른 곳과 뚜렷이 다른 점은 된장을 많이 풀어넣는다는 것이다. 화학조미료는 물론 사용하지 않는다.“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구수한 맛을 내는데는 역시 된장이 최고지요. 당귀 같은 한약재를 쓰면 냄새를 빼는데는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몸에 그리 좋을 게 없어요.” ‘예솔’ 대표 백승종(43) 씨는 “요즘 너도나도 음식 이름 앞에 ‘한방’이란 수식어를 붙이는데 이는 고객의 판단을 흐리게 할 뿐”이라고 말한다. 감자탕은 생각보다 공이 많이 드는 음식이다. 이 집의 감자탕 조리법은 이렇다. 돼지뼈를 먼저 12시간 이상 물에 담가 핏물을 뺀 뒤 솥에 넣고 센 불에서 한소끔 끓인다. 팔팔 끓으면 체에 쏟아 물을 버리고 돼지뼈는 찬물에 여러번 헹궈 깨끗이 씻는다. 돼지 특유의 냄새와 기름기를 없애기 위해서다. 그런 뒤에 다시 된장과 고추장, 생강, 후추, 콩가루 등 19가지 재료를 넣고 4∼5시간 끓인다. ‘예솔’에서는 돼지 등뼈와 목뼈를 3대 1의 비율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돼지 등뼈를 주재료로 하는 감자탕에는 단백질과 칼슘, 비타민 B1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때문에 성장기 어린이의 발육이나 노인들의 기를 보하는 데도 좋은 음식이다. ‘예솔’의 또다른 인기 메뉴는 뼈해물찜. 돼지 등뼈에 꽃게와 미더덕, 낙지, 홍합, 쭈꾸미, 콩나물 등을 넣고 문문하게 쪄내 맛이 깊고 그윽하다. 술안주로 특히 인기다. 글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2005 뜬별 & 진별

    2005 뜬별 & 진별

    2005년도 저물어간다. 언제나 그렇지만, 욱일승천의 기세로 올 한해를 자신의 해로 만든 부류는 누구인가. 반대로 급전직하의 참담함을 맛본 부류는 또 누구일까. 서울신문은 연말 특집으로 정치, 경제, 문화 분야에서 극과 극의 행보를 보인 이른바 승자(Winner)와 패자(Loser)를 선정했다. ■ 존 매케인 vs 칼 로브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올해 ‘세계의 정치 수도’인 워싱턴에서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와 같은 확실한 승리자와 패배자를 탄생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권을 잡은 공화당 내에서는 존 매케인을 비롯한 중도적 의원들이 상대적으로 크게 부상했고, 조지 부시 대통령의 권력 기반인 ‘텍사스 사단’은 눈에 띄게 힘을 잃었다. 매케인 의원은 이라크 전과 같은 안보 이슈에서는 철저하게 부시 대통령을 옹호하고 지원하며 보수성을 과시해왔다. 매케인 의원은 그러나 최근 테러리스트로 지목돼 억류된 포로에 대한 고문을 반대하는 입법을 주도하는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중도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민주당측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올 한해 매케인 의원이 직접 제출한 법안과 결의안만도 80건에 이른다. 또 미 상원 의원들은 법안을 제출할 때 정치적 영향력이 큰 매케인 의원이 함께 서명해주기를 원해 그의 서명이 들어간 법안 수는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이같은 노력이 인정을 받아선지 지난 10월말 퓨 리서치 센터가 공화·민주당원 및 무소속 유권자를 상대로 조사한 2008년 대선 후보 여론조사 결과, 매케인 의원은 공화당 후보 가운데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공화당에서 2위를 기록한 루돌프 줄리아니 역시 중도적 성향의 정치인이다. 반면 부시 대통령의 텍사스 사단 가운데서도 중심 인물이었던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의 신분을 유출한 ‘리크게이트’ 사건에 연루돼 수사 대상에 오른 상태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부시 대통령의 신임도 떨어졌다고 미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로브의 힘이 빠지면서 한때 탄력을 받았던 ‘보수세력 장기집권론’도 서서히 잦아들고 있다. 역시 텍사스 출신으로 부시 대통령이 주지사 시절부터 법률 자문을 해온 해리엇 마이어스 백악관 법률고문도 2005년이 오욕으로 점철된 해였다. 마이어스는 부시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으로 지명됐지만, 부족한 경력과 불투명한 성향 때문에 논란이 빚어지자 스스로 물러났다. 마이어스의 상원 인준을 앞두고 ▲판사 경험이 전혀 없는데다 ▲앨 고어 등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기부했던 적이 있고 ▲낙태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입장이 불분명하다는 문제점이 지적돼 보수층으로부터 사실상 외면당했다. dawn@seoul.co.kr ■ 도요타 vs GM 도요타자동차는 내년 3월 결산에서 일본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매출액이 20조엔대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순이익도 3년 연속 1조엔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세계 자동차업계 1위인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는 판매부진과 경영악화로 부동의 1위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급기야 릭 왜고너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내년부터 북미지역 공장 9곳을 폐쇄하고 2008년까지 종업원 3만명을 줄이겠다는 처방을 내놓았다.11월 주가는 한때 18년만의 최저치로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부도설까지 나돌았다. 올 한해 도요타와 GM의 엇갈린 성적표다. 그래서 ‘빠르면 2006년 도요타가 GM을 넘어선다.’는 예상도 나온다.2008년이었던 도요타의 목표보다 2년 빠른 것이다. 도요타는 내년 예상 판매대수를 900만대로 잡고 있고 공장을 폐쇄해야 하는 GM은 이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일시적이기는 하나 도요타가 북미시장 점유율에서 GM을 추월하기도 했다. 도요타는 이제 ‘기업’ 이상의 위치를 차지했다. 일본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도요타 배우기’ 열풍이 분 지 오래다. 순이익 1조엔은 이른바 빅3라는 GM,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순이익을 전부 합친 것의 2배 가까운 규모다. 일본 언론은 “도요타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아주고 있다.”며 ‘일본경제 부활의 구세주’로 묘사하고 있다. 도요타의 힘은 낭비요소를 없앤 생산방식에서 비롯된다. 세계적 부품업체들과의 유기적 협조,50년간 노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노사관계, 철저한 품질 및 인적관리 시스템도 승승장구의 비결이다. 조 후지오 도요타 부회장은 “글로벌시대에는 국가별로 현지 문화 및 고객 기호에 부합하는 고품질 저가격 제품 생산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성공 비결을 역설했다. 반면 GM의 추락은 미국 제조업의 쇠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 제조업의 자존심이던 GM의 신용등급은 ‘정크 본드’ 수준으로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다. 여기에다 아성으로 여겨졌던 북미시장마저 일본 경쟁업체들로부터 위협받자 왜고너 회장이 직접 북미시장을 챙기기에 나섰다.‘직원용 할인가격’을 일반 소비자들에게 적용하는 ‘제살깎기식’ 무한경쟁에 나섰지만 추세를 돌려놓기엔 역부족이었다. GM 추락의 주요 원인으로 우선 낮은 소비자 만족도를 들 수 있다. 과다한 직원 복지후생 부담도 발목을 잡고 있다.GM은 차를 한대 만들 때마다 1500달러씩의 후생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이래서는 도저히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오프라 윈프리 vs 마이클 잭슨 “그녀가 출마한다면 미국 정치의 심장과 얼굴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다.” 지난주 미주리주에서 ‘오프라를 대통령으로’란 문구가 새겨진 물품만을 파는 가게를 낸 패트릭 크로의 말이다. 물론 윈프리는 출마를 거부했지만, 여성이 미국을 움직이는 것은 보고 싶다고 말했다. 통큰 선행으로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후보로까지 거론되는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이미 전세계 여성들의 친구이자 ‘대통령’으로 군림하고 있다.21년 동안 전세계 121개국 이상의 여성들이 그녀의 토크쇼를 보며 울고, 웃고, 열광하고 있다. 윈프리는 가난한 사생아로 태어나 다이어트에 성공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실은 17살때 미인 선발대회 왕관을 썼고 3살도 안돼 책을 읽었다. 지난해 토크쇼 방청객 전원에게 자동차를 나눠주는 깜짝쇼를 연출한 데 이어 올해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재앙이 닥치자 연방 정부보다 재빨리 구호활동에 나섰다. 루이지애나주 슈퍼돔으로 달려가 이재민들을 안고 위로했으며 100만달러를 기부했다. 특히 3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을 나중에 토크쇼에 초청, 다이아몬드가 박힌 시계 등 210만달러 어치의 선물을 안겨줬다. 하지만 같은 흑인으로 팝의 제왕이었던 마이클 잭슨에게 올해는 최악의 한해였다. 아동 성추행 소송사건에 휘말리면서 전세계 매스컴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법정 출두를 미루다가 체포 영장을 발부하겠다는 판사의 경고에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나타난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제이 레노, 매컬리 컬킨 등 유명 인사들의 대량 증언과 고액 변호사를 앞세워 결국 소송에서는 승리했지만 자택인 네버랜드를 팔아야 할 정도로 경제적 곤궁에 처했다. 변호사 비용만 500만달러를 썼으며, 빚은 4억달러가 넘는다. 잭슨은 미성년 아동과 같은 침대에서 잔 사실은 인정했지만, 성적 접촉은 부인했다. 비록 재판관은 그가 무죄라고 선언했지만, 잭슨이 결백하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전세계 어린이들의 우상이었던 잭슨은 아동 성추행 재판으로 팝의 제왕에서 언론의 웃음거리로 단숨에 추락했다. 팬들은 그가 음악활동을 재개할 것을 바라고 있지만, 대중은 이제 잦은 성형수술로 무너질 위기에 처한 그의 코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교보생명-故신용호 창립자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교보생명-故신용호 창립자家

    “이 사통팔달, 한국 제일의 목에 방황하는 청소년을 위한 멍석을 깔아줍시다. 와서 사람과 만나고, 책과 만나고, 지혜와 만나고, 희망과 만나게 합시다. 이곳에 와서 책을 서서 보려면 서서 보고, 기대서 보려면 기대서 보고, 앉아서 보려면 앉아서 보고, 베껴 가려면 베껴 가고, 반나절 보고 가려면 반나절 보고, 하루종일 보고 싶으면 하루종일 보고, 그리고 다시 제자리에 꽂아 놓고 사지 않아도 되고, 사고 싶으면 사 들고 가도 좋습니다.” 고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는 ‘대산(大山) 신용호’라는 평전에서 당시 세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금싸라기 땅인 종로 1가 1번지 교보빌딩 지하에 교보문고를 세운 일에 대해 이같은 논리로 동의를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한국의 미래를 모토로 만든 교육보험에도 청소년들의 지적 수준과 나라의 성장은 비례한다는 확신이 담겨 있다. 창업 이념도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 형성이다. ●독립운동 집안에서 태어난 다섯째 아들 신 창립자는 1917년 8월 전남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솔안 마을에서 부친 신예범 선생과 모친 유매순 여사의 6남 중 5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며 잦은 옥살이를 하는 바람에 어머니가 가장 노릇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곱살 때는 폐병에 걸려 죽는다는 선고도 받았다. 열살 즈음 병이 나았지만 학교를 가진 못했다. 형편이 어려운 데다 형들이 각종 애국 운동으로 집안을 돌보지 않아 어린 마음에도 그가 살림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낮에는 밭에서 일하는 대신 ‘책속에 길이 있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밤에는 책을 읽었다. 동생의 책은 물론 주변에 보이는 책은 닥치는 대로 가져다 보았다. 겨울엔 잠과 싸우기 위해 방에 불도 때지 않고 책을 읽다 동상에 걸리기 일쑤였다. 당시 ‘천일독서’를 목표로 각종 위인전, 철학서, 고전, 사서를 섭렵했다. 비록 학교 문턱에는 가지 못했지만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독서철학으로 스스로 내실을 다졌다. 함께 교보생명 창업을 도운 막내 동생 신용희(83) 전 회장을 제외하고 다른 형제들은 대부분 애국운동에 몸담았다. 큰형인 고 신용국옹은 일제시대에 항일운동을, 광복 후에는 청년 노동운동을 했다. 그 큰아들인 신동재씨가 2000년까지 교보의 부동산관리 전문 자회사인 교보리얼코의 회장을 지냈다. 둘째 형 고 신용율씨도 항일운동에 몸담았으며, 그의 둘째 아들 신평재(67)씨가 현재 교보생명 교육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일은행 상무로 재직하다 1991년 제의를 받고 교보생명 사장 등을 역임했다. 셋째 형 신용원옹은 도쿄 음악학교를 졸업한 뒤 항일음악가로 활동하다 납북했다. 넷째 형 고 신용복옹은 일제 당시 조선생명지사장을 지냈다. 막내 동생 신용희 전 회장은 목포상고를 나와 산업은행에서 일하다 한국전쟁 이후 줄곧 신 창립자를 도와 함께 일했다.1967년 교보생명 창립 이후에는 30년간 교보에 몸담으며 부사장, 회장 등을 지냈다. 그의 아들인 신인재(39) 보드웰 인베스트먼트 사장(8%)과 함께 교보생명 지분을 13.25% 갖고 있다. 신 사장은 고 신 창립자로부터 경영권을 승계받은 큰아들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으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자신의 길을 고집했다. 신 사장은 최근 이동통신사에 솔루션을 공급하는 코스닥 상장업체 무선인터넷솔루션 회사인 필링크의 대표이사 직함도 얻게 됐다. ●교육열을 사업으로 연결한 기지…교육보험의 탄생 문학가를 꿈꿨지만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사업에 뜻을 세웠다. 약관이 되던 해에 서울로 갔고 이어 1936년 중국에서 양곡 수송 사업을 벌였지만 광복과 함께 10년간 닦은 기반을 버리고 빈손으로 귀국했다.1946년. 귀국후 첫 사업으로 전북 군산에 ‘민주문화사’란 출판사를 냈으나 외상 책값이 회수되지 않아 간판을 내렸다. 그렇게 몇 차례 사업에 실패한 뒤 문득 중국에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논 한 뙈기 없어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강한 교육열이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은 무형원자재인 것이다.‘생·로·병·사’중 유일하게 보험이 빠져 있는 ‘생’ 부문에 교육보험을 끼워넣어 상품화하기로 했다. 당시 보험에 대한 인식은 형편 없었다. 일제시대 보험은 수탈 방식이자 보신(保身) 방편이었다. 더욱이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50달러도 미치지 못해 보험에 들 여유가 없었다.1954년 정부가 보험업을 재개시켰으나 기존 생명보험 회사들이 대부분 휴면상태에 있을 만큼 보험업은 쑥대밭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험난해서인지 국민의 80%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그의 재기가 번뜩였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찾아가 “담배를 끊고 그 돈으로 보험을 들면 아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설득한 것이다. 창업 당시에는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넣지 못했다.1958년 종로1가 60번지 2층짜리 건물에서 직원 46명과 함께 먼저 ‘태양생명보험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교육보험이란 업종상 생명보험으로 분류돼 상호에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넣을 수 없었다. 교육열을 자원으로 만든 상품이었고 당시 생명보험에 대한 인식도 열악해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포기하지 않았다.1958년 1월 창업한 뒤 관계 공무원을 끊임없이 설득, 같은 해 7월 상호변경 승인을 얻어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을 출범시켰다. ●슬하 2남2녀의 혼맥 1943년. 중국에서 한창 양곡수송 사업을 크게 벌이던 신 창립자는 당시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급히 귀국했다. 도착해 보니 아버지는 건강한 모습으로 그를 맞아주셨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내일 모레가 네 장가가는 날이다.”는 아버지의 한마디. 결혼을 시키려고 거짓 소식을 보낸 것이다. 당시 남자 26세는 혼기를 놓친 나이였지만 그는 벌인 사업 때문에 아직 결혼할 때가 아니라고 여겼다. 도망칠 마음까지 먹었다고 고백하며 배려를 바랐으나 아버지가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눕는 바람에 결혼식을 치렀다. 부인 유순이(81)씨는 당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2년제 전수학교까지 마친 명문가 출신 규수. 사업에 전력을 쏟느라 가정에 소홀했던 남편을 탓하지 않고 어려운 형편 속에서 묵묵히 2남2녀를 길러냈다. 자녀들의 혼사도 그와 비슷하다. 막내 아들을 제외하고 모두 중매 결혼이다. 명문 대가와의 정략 결혼은 눈에 띄지 않는다. 큰딸 신영애(56)씨는 전 서울대학교 의과대 의학과 마취과학교실 교수 함병문(58)씨와의 사이에 현진(32), 지훈(31), 세훈(25) 등 2남 1녀를 두었다. 신영애씨는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지분 평가로 지난 2004년부터 단번에 350억원대 자산을 보유, 연말마다 언론에서 선정하는 여성 부호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둘째 딸 신경애(54)씨는 법조인에게 시집가 1남1녀를 낳았다. 남편 박용상(61)씨는 서울대 법대에서 박사까지 마친 뒤 사법시험에 합격,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 활약한 뒤 방송위원회 위원,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국회 공직자윤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변호사박용상법률사무소를 운영중이다. 박용상씨의 큰형 용설씨는 내외빌딩관리㈜ 대표, 동생 용삼씨는 내외엔지니어링 대표다. 고 신 창립자의 자리를 이어받은 큰 아들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은 부인 정혜원(48) 봄빛여성재단 이사장과의 사이에 중하(24)·중현(22)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인 신 회장은 불혹이던 지난 1993년 교보에 발을 들여놓은 뒤 현재 직계 중 유일하게 교보에서 일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왔다. 막내 신문재(44)씨는 이정숙(44)씨와의 사이에 딸 혜진(18)을 두고 있다. 형제들 중 유일한 연애 결혼이다. 미국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1991년부터 2005년 8월까지 광화문 교보문고내 문구 액세서리 음반 팬시용품 등을 판매하는 400여평 매장의 문보장을 비롯해 전국 6개 교보문보장을 운영해 왔다. 교보문고가 직접 문보장을 운영하기 위해 신씨로부터 지난 8월 문보장 사업권을 회수했다. 현재 새 사업을 구상중이다. ●지독한 완벽주의와 파격 인사 고 신용호 창립자는 지독하다 싶을 만큼 완벽하고 집요하다는 평을 받는다. 땅을 고를 때도 좋은 날, 궂은 날, 비온 다음날 등 두루 살피는 완벽주의자다.77년 명예회장,85년 창립자 등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1990년대 후반까지 신입사원 면접에 직접 들어왔다. 사업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나도 실적이 저조해 본사 부장, 실장, 중역까지 나서 손을 들라고 권하자 그들을 나가게 한 뒤 ‘급료는 후불로 주겠다.’는 광고를 통해 간부 사원을 다시 구한 일화는 아직도 회자된다. 창업 10년 만인 1967년 회장으로 물러난 뒤 2000년 아들 신창재씨가 교보생명 회장에 취임하기까지 33년간 무려 사장이 19번이나 바뀌었다. 평균 수명이 1.7년이었다. 경영 안정을 위해 최고경영진을 쉽게 바꾸지 않는 업계의 관행과는 다른 것이다. 교보의 임원 인사는 상식을 뛰어넘어 기발하고 파격적이란 평이 나오는 이유다. 신창재 회장의 인사 스타일도 재계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002년 5월 취임한 장형덕 대표이사 사장의 경우 사장직을 폐지하는 형식으로 취임 10개월 만에 퇴임시켰다. 단일 지도체제가 더 효과적이라며 사장을 없애고 대신 부사장 3명을 임명해 집단경영체제로 개편했던 것. 그때부터 ‘대표이사 회장’ 밑에 ‘대표이사 사장’ 없이 ‘대표이사 부사장’ 체제로 가고 있다. 이어 지난 2004년 2월 박성규 부사장을 선임,‘집단경영체제’는 다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맨손으로 생나무를 뚫어라’ 고 신용호 창립자는 ‘죽고 나면 손해’란 보험에 대한 당시 인식을 바꾸는데 초점을 맞춰 교육보험 1호인 ‘진학보험’을 세계 처음 내놓았다. 죽어야 혜택을 주는 게 아니라 부모가 돈을 적립해 자녀가 초·중·고등학교를 진학할 때마다 학자금을 주는 상품이다. 먼저 단체들을 공략했다. 군인 단체 저축성 보험인 일명 ‘화랑계약’을 고안했다. 잦은 군의 이동에 탈락계약이 늘어 성과는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군 이동에도 추적·관리되는 시스템을 도입,1967년 육군과 170억원의 단체 계약을 맺었다. 파죽지세로 해군·한전 등 대형 단체들과 꾸준히 계약하는 개가를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판매 창구도 강화했다. 종로기독청년회관(YMCA)에서 대학생을 모아 보험강좌를 실시한 것을 계기로 대학지부를 설치, 대학생도 판매 채널로 끌어들였다. 지방유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기관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상품에도 그의 기지가 엿보인다. 암 상품은 그가 처음 개발했다. 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성인병도 하나씩 보험상품으로 만들었다. 보험업계 전산화 발상을 추진한 최초의 인물도 바로 그였다.1974년 학자금 선지급 업무를 처음 전산화했고 “컴퓨터를 모르면 간부가 될 수 없다.”며 전 사원을 상대로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인증제’도 실시했다. 그가 인생을 이야기할 때 전반은 ‘맨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는 과정’이고 후반은 ‘생나무 뚫는 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인 과정’이라 비유했다. 인생은 장애의 연속이지만 강한 정신력만 있다면 아무리 높고 힘든 목표라도 달성할 수 있다는 게 그만의 철학이다. 이같은 열성과 집념으로 1958년 당시 6대 생보사 중 막둥이로 태어난 교보생명은 창립 5년 만에 보유계약 56억원으로 업계 3위,1964년엔 보유계약 100억원 돌파로 업계 2위에 오른 뒤 1967년 설립 9년 만에 업계 정상에 섰다.‘맨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은’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인생의 다른 한 축…교보문고 교육 보험은 대세가 아니었다.80년 들어 경제성장과 함께 늘어나는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는 시절이 오면서 보험만으로 교육비를 해결할 수 없게 됐다. 변하는 고객 욕구에 따라 양로보험, 종합보장생활보험 등 일반 생명보험 상품의 비중이 커졌다. 교육보험만으로 경쟁력이 떨어지자 1995년 ‘교보생명’으로 사명을 바꾸었다. 삼성생명의 약진으로 교보는 1974년부터 업계 1위에서 2위로 밀려났다. 자산이 늘어나면서 관련 계열사도 속속 설립했으나 모두 보험으로 맡긴 고객의 돈을 운용하기 위한 금융 계열사였다. 부동산관리 전문회사인 교보리얼코(1979), 교보증권(1994) 등 총 9개 자회사를 세우면서 교보를 오늘날 35조원 규모의 금융 자본으로 성장시켰다. 그 중 금융과 동떨어진 업종이 하나 있다. 바로 교보문고(1980)다. 교육을 통한 민족부흥을 창업 이념으로 삼고 있는 만큼 따지고 보면 업종의 본질은 같다는 설명이다. 1980년 종로 1가 1번지에 사옥 교보빌딩이 세워지자 그는 지하에 서점 설립을 제안했다. 온갖 연줄을 동원하며 지하아케이드 자리 쟁탈전이 벌어지던 때였다. 간부들은 채산성이 약하다며 서점이 들어서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의견을 냈고, 손해가 나면 보험회사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당시 허가관청인 재무부도 반대하고 나섰다. “우리 회사가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다면 이 자리에는 당연히 으리으리한 고급상가를 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 값진 땅에 책방을 크게 열어 청소년과 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토록 한다면 그 효과가 어느 정도나 될지 상상해 보시오.” 손해가 나더라도 청소년의 정신역량을 키우는 일인 만큼 자신이 떠맡겠다고 설득했다.1985년에는 일반 독자뿐 아니라 학자들을 위해 80만종의 세계 논문도 공급했다. 지방사옥이 세워질 때마다 학생과 시민들이 교보문고 지점 설치를 요구했을 정도다. 대전, 성남, 대구, 부산, 부천, 강남 등에 속속 지점을 열었다.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를 찾는 고객 수는 일평균 4만 5000여명, 연간 1500만명에 달한다. 삶의 두 축이 교보생명과 교보문고라고 지적했을 정도로 애착도 컸다. 그러나 말년을 맞아 또다시 병마가 찾아 왔다.77세가 되던 1993년. 회사 정기건강 검진에서 간 기능에 석연치 않은 증후가 발견됐다. 담도암이었다. 의사들은 그에게 맛있는 음식 많이 먹고, 기운 있을 때 여행을 다녀오라는 처방을 내렸다. 사형 선고였던 셈이다. 그는 암과 싸우며 여생을 보내느니 살든 죽든 결판을 내겠다고 마음먹고 불가능하다는 담도암 수술을 감행했다. 수술후 그는 중환자실에서 목에 구멍을 뚫고 2개월이나 암흑 속에서 지내야 했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뒤 재활물리치료 반년 만에 골프장에 다시 나갈 수 있었다. 근력운동과 식이요법으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90년대 후반까지 업무를 보고받는 등 경영에 관여했다. 그러나 8년 뒤 암이 간으로 전이되면서 몸이 약해졌다. 결국 2003년 9월 19일 오후 6시1분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86세였다. jhj@seoul.co.kr ■ 신창재회장과 정혜원 여사 “내조만 하며 살아온 탓에 사회공헌 사업은 꿈도 꿔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제의로 사회공헌 사업을 시작하게 됐지요. 내조와 아이들 뒷바라지에도 벅차지만 소명으로 여기며 열심히 하고 있어요.”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의 부인 정혜원(48)씨는 요즘 사회활동에 바쁘다. 그는 남편과 두 아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해온 전업 주부였다. 남편 신 회장으로부터 사회공헌 사업을 해보라는 제의를 받고 2004년 4월 성매매 피해여성 보호단체를 지원하는 봄빛여성재단을 창립,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순전히 남편 신 회장의 사재로 시작한 사회공헌 사업이다. 서울 종로구 적선동 사무실로 매일 출근하면서도 아이들이 완전히 홀로서기할 때까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며 걱정이 많다. 그는 한사코 취재를 거부했다. 사회 활동은 하고 있지만 언론 대응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화여대 영문과 출신인 그는 소탈하면서도 적극적인 성격으로 책임감이 강하다는 평을 받는다. 중매를 통해 남편을 만났다고 밝혔다. 평범한 집안에서 데려온 며느리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고 신용호 창립자의 수수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남편 신 회장이 양복도 맞추러 갈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쁘다고 했다. 실제로 신 회장은 아버지의 유업인 교보문고와 교보생명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 아버지만큼 골프를 좋아하지만 교보로 옮긴 이후 거의 필드에 나가지 못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 교보생명은 지난 2000년 5월 신 회장 취임과 함께 ‘질´경쟁을 선언하면서 업계 2위에서 3위로 밀려난 뒤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먼저 교보문고는 교보생명이 증자해 전자책 등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지식문화 전문회사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는 포부다. 출판업이 사양산업으로 전락하다 보니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교보문고는 현재 부채비율이 416%로 은행으로부터 신규 여신이 어려운 처지다. 교보생명은 기존 주주가 여력이 없어 제3자 배정 방식으로 5000억원을 증자할 계획이다. 다른 생보사보다 상대적으로 지급여력비율(160%)이 낮다. 자기자본 확대가 이유다. 그러나 2대 주주인 자산관리공사가 난색을 표명하고 있어 문제다. 자산관리공사 소유·관리지분(41.26%)의 가치가 희석되지 않는 상태에서 잘 팔릴 수 있도록 협조해야 증자에 동의한다는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업계는 신 회장이 과연 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교보생명의 한 임원은 신 회장에 대해 “아버지를 닮은 완벽주의자”라고 말했다. 경기고, 서울대 의대를 나와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로 살아오다 불혹이던 지난 1993년 아버지 고 신용호 창립자의 뜻에 따라 그간 배운 의학 공부를 포기하고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으로 교보생명에 발을 들여놓았다.1996년 11월 교보생명 부회장,2000년 5월 교보생명 회장으로 취임한 뒤 변화와 혁신을 기치로 삼고 전력 질주 중이다. 박성규 교보생명 부사장은 “과연 의사 출신이 기업을 어떻게 경영할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를 보면 답이 나온다.”고 전했다. 의사 출신답게 깊은 통찰력과 분석력을 갖춘 데다 책을 많이 읽는 덕분에 멀리, 넓게 보는 안목이 있다고 평가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야나기·아사카와 평전 /나카미마리·다카사키 소지 지음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는 요즘 한국인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비애의 미’를 발견한 인물로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일찍이 조선의 예술을 위대한 것으로 보고, 일본의 문화동화정책을 거세게 비판했던 사람이다. 그래선지 그는 한·일 양국에서 자주 비판받는 인물이 되어 있다. 아사카와 다쿠미(1891∼1931)는 야나기 무네요시와 함께 조선민족미술관을 세워 조선의 민예를 연구했던 사람이다. 조선총독부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었음에도, 조선인을 유달리 사랑했고, 조선에 묻히길 원했던 인물이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 특히 문화사에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두 일본인의 생애를 조명한 평전이 효형출판에서 각각 번역 출간됐다. ●조선 예술서 남성적 미 발견 ‘야나기 무네요시 평전-미학적 아나키스트’(나카미 마리 지음, 김순희 옮김)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사상과 행동을 총체적으로 파악해 그 핵심을 명확히 하면서, 특히 국제관계 사상이라는 관점에서 재평가한 책. 저자는 근래에 야나기에게 가해지는 한국 학자들의 비판이 대부분 그의 활동 전체를 시야에 두지 않고, 어느 한 국면만을 거론한 것이라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그가 조선에서 ‘비애의 미’를 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조선의 예술에서 강력한 남성적 미를 발견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 총독부의 광화문 철거 반대와 석굴암 수리 비판 등 조선인의 입장에서 조선인의 주체성을 인정했다고 분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조선의 독립투쟁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던 이유에 대해선 일체의 군사력 행사를 부정하는 ‘절대평화 사상’에서 찾는다. 이같은 평화사상은 즉 ‘세계 평화는 한 가지 색이 아니라 모든 민족이 제각기 개성을 발휘하는 것’이라는 야나기의 핵심 사상인 ‘복합의 미’로 연결된다. 하지만 이같은 논리가 한국에서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질지는 여전히 의문이다.1만 8000원. ●일본의 문화동화정책 비판 ‘아사카와 다쿠미 평전’(다카사키 소지 지음, 김순희 옮김)에 대해 저자는 ‘아사카와의 삶이 주는 울림에 사로잡힌 사람들과 함께 쓴 책’이라고 한다. 겸손의 표현이지만 책 곳곳엔 아사카와에 매료된 많은 이의 애정이 완곡하게 스며 있다. 산림학자이자 민예 연구자였던 아사카와는 총독부 공무원이면서도 ‘조선인과 일본인은 똑같은 무게를 지녔다.’는 신념을 가졌던 인물. 그는 조선이 독자적으로 발전해왔음을 인정했고, 조선에 동화를 강요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우리 말을 유창하게 구사했으며, 한복에 바지저고리를 입고 긴 담뱃대를 사용했다. 1931년 그가 사망하자 이웃의 조선 사람들이 서로 상여를 메겠다고 나섰으며, 유언에 따라 장례도 조선식으로 치러졌다. 그는 조선의 흙이 되어 지금도 서울 망우리에 묻혀 있다.1만 7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자격증 없어도 교장 된다

    교직 경험이 없는 전문가나 교장 자격증이 없는 교사도 교장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교육인적자원부는 24일 현재 교장 자격증이 있는 교원을 대상으로만 시행하고 있는 초빙교장제도를 대폭 개선, 자격증이 없어도 교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장 초빙·공모제’를 내년 2학기부터 시범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이를 위해 농어촌 지역 1군(郡) 1우수고교 육성학교와 대도시 저소득층 밀집지역에 있는 교육복지투자 우선지역 학교, 행정구역 통합에 따른 농어촌 복합도시 지역의 학교 등 모두 150여개교를 시범 학교로 선정, 운영 결과에 따라 확대 시행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 제도를 통해 교장이 될 수 있는 사람은 교장 자격증을 가진 교원은 물론 일반 교원,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없는 외부 전문가 등이다. 김진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은 “교장이 되기 위해 준비해온 교원을 배려해 현행 교장자격증 제도의 골격을 유지하되 학교를 개혁할 수 있는 열정을 가진 교원이나 외부 전문가들에게도 교장의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이와 함께 교원의 주당 평균수업시수를 2014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수준인 초등 20시간, 중 18시간, 고 16시간으로 줄이기로 하고, 현재 학급수 기준으로 배정된 교원 정원을 표준수업시수로 전환하는 법 개정도 내년에 추진할 방침이다.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지금 그곳은]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지금 그곳은]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개관 한 달째를 맞은 전국 최초의 달동네 박물관인 인천시 동구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의 인기가 뜨겁다. 수도국산 박물관측에 따르면 23일 현재 누적 방문객 수는 모두 2만 6951명이다. 하루 평균 1000명정도가 이 곳을 찾은 셈이다. 이달 말까지 단체관람객만 1680여명이 예약돼 있다.22일 오후, 개발 붐 속에 달동네는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그 흔적을 찾는 사람들은 줄을 잇고 있었다. ●박물관 자체가 살아있는 교육장 박물관은 한 때 판잣집이 즐비했던 송현동 수도국산(해발 53m) 근린공원에 있다. 지하철 1호선 동인천역에서 내려 주공아파트 단지를 지나면 동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자리잡은 박물관을 찾을 수 있다. 지하1층, 지상 1층, 연면적 300여평 규모로 전시실은 지하1층에, 교육실과 방송실 등은 1층에 마련돼있다. 계단으로 내려가 지하1층의 유리문을 지나 박물관으로 들어간다. 문을 열면 ‘딴 세상’이 펼쳐진다. 평일 오후인데도 박물관 안에는 초등학생부터 60대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박물관을 관람하고 있었다. 어두컴컴하고 좁은 골목, 담벼락에는 반공 벽보가 닥지닥지 붙어 있다.‘공화당 달력’과 흑백 가족사진이 걸려 있는 단칸방, 구린내가 날 것 같은 공동 변소……. 당시 주민들이 사용했던 문패, 다듬이돌, 인두 등 수백여 점의 옛 생활용품들도 놓여있다. 진짜 사람들처럼 자리잡고 있는 마네킹들은 현실감을 더해준다.TV 앞에 모여 앉은 식구들은 김일의 레슬링 한 판 승부를 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종이를 기워 성냥갑을 만들고 있는 아주머니들도 눈에 띈다. “와, 진짜 똑같네.”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감탄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러나 젊은 학생들은 이런 풍경이 낯선지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이들을 위해 달동네의 역사와 정의를 친절하게 설명해 놓은 게시물이 입구 옆에 설치돼 있다. 골목 중간에 놓여 있는 ‘터치 스크린 컴퓨터’를 누르면 달동네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어 볼 수 있다. 교복 입어보기, 물장구 지어보기 등 체험 코너도 마련돼 있다. 큼지막한 교복에 모자까지 써본 이재준(13)군은 “이런 것은 역사 책이나 교과서에서도 보지 못했다.”면서 “너무 재미있고 신난다.”고 말했다. 위일환 동구 박물관팀장은 “박물관 자체가 살아있는 교육장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노인분들은 향수에 이끌려, 어린 아이들은 교육 차원에서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기웃’ 달동네 박물관의 인기가 소문 나자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충북지역의 모 지자체에서는 달동네박물관의 계약, 공모방법 등에 대해 묻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문화재과에서도 달동네박물관를 들여다보고 갔다고 박물관측은 전했다. 위 팀장은 “다양한 교육 강좌와 이벤트를 통해 달동네박물관이 인천의 ‘명물’로 자리잡도록 할 계획”이라고 고 말했다. 박물관 개장 시간은 오전 9시30분∼오후 5시30분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박물관은 이달 말까지 무료로 시범 운영한 뒤 다음달 초부터는 어른 500원, 청소년 300원, 어린이 2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032)770-6131.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18)일본의 차 문화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18)일본의 차 문화

    늦가을과 초겨울 하늘은 참으로 투명하고 맑다. 마치 가을걷이를 위해 풍성하게 들어차 있던 들판이 텅비어 버린 것 같이 아름답고 맑아서 눈이 아프도록 시리다. 코발트빛 밤 하늘은 또 얼마나 깊고 청순한지 모른다. 너무 높아서 까치발을 들고 손을 눈썹위 이마에 얹고 쳐다봐야 하는 밤하늘은 마치 술이 술술 익어가는 시골의 마을처럼 우리의 애잔한 삶을 살포시 위로하는 길손같이 정겹기만 하다. 하늘에 떠있는 별은 또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가. 천목(天目) 즉 하늘의 눈 같은 별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우리 중생들에게 혜안(慧眼)의 살림살이를 살 수 있도록 하는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가로등 같은 것이다. 산에 뜨는 달 또한 마찬가지다. 산에 뜨는 달은 등불이 되고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는 마치 관현악의 장중한 울음 같다. 그림자 가득한 뜰을 지나 대나무를 쪼개어 만든 홈통을 타고 졸졸 밤새도록 울어대는 유천의 물을 발우에 담는다. 발우에는 달이 담기고 별이 담기고 영원한 적막이 흐른다. 푸른 돌솥에 찻물을 담아 차를 달여 마신다. 차의 살림살이는 차인의 마음에 따라서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다. 자신이 속한 일상속에서 잠깐 마음의 눈을 돌려 내 안의 나를 바라보는 고즈넉한 시간을 갖게 한다면 차는 내 삶속에 뜨거운 용광로처럼 피어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웰빙적인 측면에서 단순한 음료로 기능한다면 그 삶은 역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도록 메마르고 강파를 것이다. 일본다도의 창시자로 불리는 이큐 소우준 선사는 주광문답(珠光問答)에서 차의 살림살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일미청정(一味淸淨)하고, 법희선열(法喜禪悅)하니 조주선사는 이를 체득했지만, 육우는 이런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사람이 다실(茶室)에 들어가면 겉으로는 남과 나의 구별을 떨쳐버리고 , 안으로는 부드럽고 온화한 덕을 함양하며, 서로 간에 교제함에 있어서는 삼가고(謹), 공경하고(敬), 사념을 품지 않고(淸), 평온해지며(寂) 결국 온 세상이 평안해진다.” 이큐선사의 근, 경, 청, 적은 후일 센리휴에 의해 화(和), 경(敬), 청(淸), 적(寂)으로 바뀌었지만 아직까지 일본다도의 핵심사상이 되고 있다. 이큐선사 이전에 일본에는 ‘다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송나라 때 전해진 음차풍속의 일환인 ‘투차(鬪茶)’가 성행했을 뿐이다. 일본에 맨 처음 말차를 전한 사람은 에이사이스님으로 천태산 만년사에 주석하며 5가7종 가운데 1파인 황룡파의 선을 배우고 귀국하면서부터로 말하나 그같은 것은 현상적인 측면이 강하다. 당시 일본에서는 중국으로 많은 스님들이 유학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의 선가에서는 선수행과 더불어 다양한 음다법이 성행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말차법은 중국에서 귀국한 많은 유학승들에 의해 시작된 문화의 공통분모 같은 것으로 봐야 한다.12세기 일본 사찰에서는 좌선때 애용된 말차가 단순한 음용의 수준을 떠나 하나의 다례로 정착됐다. 당시 일본의 선종사찰에서는 중국 선종사찰에서와 같이 생활규범으로서의 청규가 있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사찰에서 대규모의 차회가 열릴 정도로 끽다법이 일반화됐다고 보여진다. 그같은 선종사찰의 말차법은 현재도 행해지고 있는 건인사의 경우에서 보면 확연해진다. 건인사에서는 매년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네머리의식(四頭·요쓰가시라)’을 진행한다. 그 다례를 살펴보면 맨 먼저 향을 피우는 헌향, 다과(茶菓)와 함께 말차가 들어간 천목이 배치되는 행잔(行盞), 그리고 스님이 정병을 가지고 손님이 천목(찻잔이름)에 끓은 물을 붓고 차를 저어 돌리는 행다(行茶)순으로 되어 있다. 일본교토 상국사에도 사두재연이라는 말차법이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는 것을 보면 당시 선종사찰에서 말차법에 의한 다례가 일상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가마쿠라시대를 거쳐 아시가가 시대에는 송나라로부터 ‘투차’의 풍속이 전해졌다.‘투차’풍속은 일본무사들의 정신적인 성향과 맛물려 당시 사회지배계층의 전형적인 음차문화로 자리잡았다. 무로마치 막부시대에 일본의 다도는 화려한 꽃을 피운다.‘서원차(書院茶)’로 불리는 당시 차문화는 값비싼 차와 다완을 자랑하는 등 외형적인 화려함에 치우쳐 차의 정신이나 형식보다는 차의 품격, 다완의 가격 등 사회적인 부의 수준에 따라 그 차회의 품격이 정해질 정도로 사치스러워졌다. 서원차는 화려할 뿐만 아니라 너무도 귀족적인 차회였던 것이다. 그것은 당시 서원차를 주도했던 무가(武家)와 막 꽃피기 시작한 상업자본가들의 외형적인 자기과시욕 때문이었다. 사무라이들의 근엄하고 권위적인 취향과 상업자본가들의 자기과시욕의 결합은 심지어 차가 도박으로까지 발전할 정도로 지배계층 내부의 극단적인 정신적 사치를 불러왔을 정도다. 서원차의 병폐는 사회경제적 균등을 통해 안정적인 사회의 구축을 이루려는 집권막부에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갔다. 일본 다도의 창시자랄 수 있는 무라다 주코와 이큐 소우준 선사의 만남은 이때 이루어졌다. 주코의 스승인 이큐선사는 고코마쓰일왕의 아들이었다. 그는 어린시절 사찰로 보내졌다. 어린시절 여러 가지 고난을 이겨낸 이큐선사는 조주의 끽다거를 갈파해낸 탁월한 선승이었다. 조주의 끽다거의 공안을 깨쳤던 그는 왕실 막부의 투차의 화려함을 대신해서 원오극근선사의 ‘다선일미’를 다도의 근본형식으로 이끌어냈다. 이큐는 그의 나이 60세 때 30살의 주코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나라출신인 주코는 11살에 출가하였으나 그 단조로운 생활을 견디지 못해 환속, 이곳 저곳 떠돌며 ‘투차’나 여러곳의 ‘다사(茶事)’를 보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주코는 우연히 이큐선사의 설법을 듣고 그 문하에 다시 입문하게 된다. 주코를 조주차의 깨달음으로 이끌었던 이큐선사 일화 한토막을 소개해본다. 이큐는 주코가 ‘끽다거’의 공안을 깨칠 수 있도록 각고의 수행을 주문했다. 천재였던 주코에게도 그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결국 이큐선사는 마지막 방법을 선택했다. 선수행중인 주코를 이큐선사가 불렀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끽다거”. 그러나 주코는 이큐선사의 물음에 답하지 못했다. 이큐선사가 차탁 앞에 놓인 찻잔에 차를 담아 주코에게 건넸다. 주코가 그 찻잔을 받아들기 위해 손을 내밀자 이큐선사는 “끽다거”하며 찻잔을 깨트려버렸다. 공안이 익을 대로 익어 있던 주코는 이큐선사의 벽력같은 소리에 단박에 깨칠 수 있었다. 마침내 조주차의 근원을 알게 된 주코는 이큐선사의 인가를 받았으며 원오극근선사의 묵적을 전수받았다. 이큐선사의 인가를 받은 주코선사는 당과 송에서 전해진 투차의 차 문화를 대체하는, 즉 차와 선이 하나인 일본화된 품차의 정신을 만들어냈다. 주코를 통해서 차가 선이며, 선이 차이며, 끽다가 참선이고 참선이 끽다인 ‘다선일미’를 구현해냈다. 이같은 주코의 차도는 다케쇼오를 커쳐 센리휴에 의해 완성된다. 부유한 피혁상의 아들이었던 다케쇼오는 주코의 제자로부터 다도를 배웠다.36세 때 사카에로 돌아온 다케쇼오는 20세나 아래인 센리휴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다케쇼오는 일본이 다도를 통해 민족적인 정신을 눈뜨게 했다. 교토에서 와카와 다도를 함께 배운 다케쇼오는 와카를 다도에 접목시켰다. 그는 주코의 다도를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선가의 기풍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와카를 표구해 차실에 걸어놓아 일본다도에 민족적인 정신을 심어냈다. 사카에 상인 가문 출신이었던 센리휴는 주코와 다케쇼오의 차 정신을 완성해냈다. “여름에는 차실을 시원하게 하고 겨울엔 차실을 따뜻하게 하며 연료를 찻물이 잘 끓게 넣고 차는 맛있게 우려내는 것이야말로 차정신의 비결”이라고 말한 센리휴는 다다미 스무장 넓이의 넓고 화려한 서원차의 차실 대신 두세 사람이 무릎을 맞대고 겨우 앉아 차를 마실 수 있는 이른바 초암차실을 완성했다. 센리휴는 전국시대의 최고의 무장이었던 오다 노부나가의 차 시종을 거쳐 일본을 천하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차 시종관이 되었다. 센리휴가 일본차계에 그 이름을 떨친 것은 1587년 히데요시가 주관한 천하통일 기념차회와 기타노 신사에서의 차회에서다. 센리휴는 이 차회에서 원나라 때 화가 옥간의 ‘원사만종’을 걸고 최고급 차합과 쌀 4천만섬의 가치가 있다는 ‘송화(松花)’라는 아름다운 다관을 사용했다. 그야말로 서원차의 극치를 보여준 차회였던 것이다.1589년 기타노 신사의 황금차실은 그같은 호화로운 차회의 극점이었다. 온통 황금으로 이루어진 황금차실과 80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차인들의 참석은 ‘거처는 비가 새지 않으면 되고 음식은 배가 부르면 충분하다.’는 센리휴의 생각과 정 반대가 되는 것이었다. 센리휴는 일단 작은 차실을 선호했다. 그리고 중국에거 전래한 천목찻잔이나 청자완보다는 조선서민들이 사용했던 막사발(이도다완)을 즐겨 사용했다. 모양이 고르지 않고 검은 빛을 띠며 무늬가 없는 막사발을 센리휴는 최상의 다완으로 쳤다. 이같은 다도를 통해 센리휴는 마침내 주코의 ‘근경청적’의 정신을 ‘화경청적’으로 완성해낸 것이다. 일본차의 정신은 흔히 ‘와비차’로 표현된다.‘와비’란 이른바 ‘한적(閑寂)’하다는 말로 정신성이 강한 차예절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선차의 첫 번째 목적은 심신을 수련하는 것이다. 차와 선이 상통하는 점은 바로 정신적 경지의 정화와 승화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차를 마실 때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맛을 음미한다. 참선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참선을 할 때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생각을 끊어야 한다. 다도(茶道)와 깨달음은 그것을 직접 실행하는 주체의 맑고 고요한 근원적인 감각에 치중한다. 연차, 자차, 점차, 음차 등 일련의 과정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본체를 드러내며 윤회하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것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선다일미라는 것이다. 다도는 또 근원성의 문화라는 점에서 깨달음과 일치한다. 다도의 완성은 일종의 무형의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이른바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자신이 표현해내는 근원적인 문화양식인 것이다. 다도는 무형의 근원에 도달한 자신의 외재적 표현을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또다른 문화양식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깨달음을 성취한 위대한 선사들이나, 다도를 완성한 차인들은 이미 또다른 문화를 창조한 문화의 창조인들인 것이다. 센리휴선사는 이렇게 말한다.“물을 긷고, 땔감을 하고, 물을 끓이고, 차를 따르고, 부처께 올리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이 마시고, 삽화분향하는 것 모두가 불법을 수행하는 행위인 것이다.” 차와 선의 문화는 그런 점에서 인류 미래문화의 진보를 앞당기는 가교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지암 암주 ■ 日 茶界 최고보물 ‘다선일미’ 묵적…中 송나라때 원오극근선사가 전해 일본차계 최고의 보물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그것을 ‘이도다완’으로 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중국 송나라때 선승으로 유명한 원오극근선사가 직접 썼다고 전해지는 ‘다선일미(茶禪一味)’라는 묵적이다. 서원차와 투차의 화려하고 권위적인 차 문화를 선과 결합시켜 내 ‘다선일미’라는 일본의 차도를 창조해낸 주코가 그의 스승인 이큐선사로부터 차도의 인가증서로 원오극근선사의 묵적을 전해받은 것이다. 이큐선사로부터 묵적을 물려받은 주코는 그것을 다실 안에서 가장 잘 보일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위치인 벽감속에 걸어 두고 사람들이 그의 다실을 드나들 때마다 무릎꿇고 예를 행하여 경의를 표하게 했다. 일본 경도 대각사에 소장되어 있는 ‘다선일미’에 대한 일화는 아주 재미있다. 원오극근선사가 어느날 중국 성도에 있는 소각사에서 설법을 하였다. 원오극근선사는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는 일본 제자를 불렀다. 그리고 직접 그 제자에게 ‘다선일미’라는 네자를 써주었다. 그 제자는 그 글씨를 큰 대통에 담아 귀국하는 배를 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천신만고 끝에 일본에 도착한 그 스님이 탄 배가 항구에서 전복되고 만 것이다. 그 대통과 글귀는 이사람 저사람 손을 전전하다 마침내 이큐선사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큐선사는 그 대통에 든 글귀를 보고 오랫동안 참문을 하였다. 출중한 선승이었던 이큐선사는 마침내 원오극근선사가 쓴 ‘다선일미’의 오의를 깨쳤다. 그리고 그 정신과 묵적을 자신의 수제자였던 주코에게 차도의 인가증으로 전해준 것이다. 주코는 교토에 주광암을 개원했다. 그리고 선종의 중흥조인 육조혜능선사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의 선지를 바탕으로 차를 마심으로써 ‘초암다풍’을 형성한 것이다. 주코는 “차실에 들어가면 밖으로는 남과 나의 구분을 모두 잊고 안으로는 유화의 덕을 쌓으며 서로 응대함에 있어서는 근경청적하고 궁극적으로는 천하태평에 이른다.”고 말한다. 주코는 선을 통해 일본의 다도를 철학이자 종교로 승화시켜낸 것이다. 청담스님은 차의 진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차의 맛이 지닌 진수는 어디까지나 술처럼 교만하지 않고, 커피처럼 자만하지 않으며, 코코아처럼 천진한 기취와는 달리 엄절한 청정미에 있다. 그러기에 다도는 미를 발견하고도 오히려 환희를 감추려는데 묘미를 느끼는 예술이라 할 수 있으며 선을 실행하고도 그 공덕을 숨기는 윤리이자 참을 체득하고도 오히려 빛을 묻는 종교이다.”
  • “위기의 퍼스트레이디들은 친해요”

    “부산 APEC은 정말 훌륭했고 정상들도 아주 멋진 시간을 가졌으며, 따뜻하게 맞아준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에게 감사한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부인 로라 부시 여사는 19일 오후 부산의 한 식당에서 가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부산 APEC 행사를 호평했다. 그는 특히 “18일 저녁 만찬은 APEC의 전체 일정과 모든 프로그램을 축약해 종합선물세트로 내놓은 것 같은 생각이 들 만큼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다.”고 말했다. 로라 여사는 남편에 대한 내조에 대해 “우리 부부는 적잖은 스트레스에 시달려왔지만, 나는 보통 가정의 아내처럼 남편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오랜 결혼 생활 덕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힘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내 미국내 반한감정에 대해서는 “미국 국민 사이에 특별한 반한 감정은 없다고 본다.”면서도 “지금은 어려운 시기다. 미국은 수 차례나 아주 어려운 결정들을 내렸는데 전 세계 사람들 모두 우리의 결정에 찬성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권양숙 여사와의 친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2차례 만나 귀중한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정상의 배우자는 개인 또는 공적인 문제에서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는 사람의 배우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선지 자연스럽게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라 여사는 시어머니인 바버라 부시 여사로부터 퍼스트레이디 역할에 관해 조언을 받고 있느냐는 질문에 “며느리가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 점을 아시고는 자제하는 편”이라고 답했고, 쌍둥이인 두 딸 제나와 바버라가 정계에 진출한다면 지원하겠는가라는 질문에는 “두 아이가 정치에 관심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며 웃었다.부산 특별취재단
  • 무영검 주인공 이서진

    무영검 주인공 이서진

    뭇 여성 시청자들을 ‘다모 폐인’으로 TV앞에 쓰러지게 했던 이서진(32)이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다모’(2003년)에 이은 인기 드라마 ‘불새’(2004년) 이후 1년 만에 돌아온 그는 경쾌해 보였다. 가벼운 청재킷 차림으로 나타나 “국산 무협에 대한 편견을 많이 걱정하며 영화를 찍었는데, 시사회 반응이 좋아 기쁘다.”며 운을 뗐다. 그의 새 영화는 김영준 감독의 무협액션 ‘무영검’(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반지의 제왕’을 만든 할리우드 간판제작사(뉴라인시네마)로부터 제작 전단계에서부터 투자를 받아 화제였던 작품이다.926년 멸망 위기의 발해를 재건하는 마지막 왕자와 그를 목숨걸고 지키는 여자 무사 연소하(윤소이)의 이야기가 기둥줄거리. 그는 정쟁을 피해 14년간 신분을 숨긴 채 중원을 떠돈 비운의 왕자 대정현 역할이다.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고 구석에 틀어박히는 A형”이라며, 배우답지 않은 낯가림을 하는 그와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한국무협에 대한 대중의 기대치가 높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 ‘무영검’은 과장없이 깔끔한 무술 시퀀스,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 등으로 호평을 이끌어냈다. -시사회 다음날 새벽에 정태원(제작사)대표가 흥분해서 전화를 했다. 반응이 생각보다 훨씬 좋다고. 함께 작업하면서 그렇게 이른 시간에 날 깨운 건 처음이었다.(웃음) ▶비운의 왕자인데도 막상 스크린에 구현된 캐릭터에는 ‘껄렁껄렁’해서 제멋대로인 구석이 많다. 경직된 드라마를 이완시키는 유일한 극중 인물이다. 그래서 오히려 힘들지 않았나. -제대로 봤다. 연모의 마음을 숨기고 대정현을 보위하는 연소하, 대정현을 암살하려는 변절한 발해 장군 군화평(신현준), 연소하를 향한 질투심에 불타는 거란 여검객 매영옥(이기용)은 끝까지 일관된 감정을 따라가면 된다. 하지만 대정현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감정을 달리해야 했고, 그 수위조절이 무척 어려웠다. 감독과 가장 많이 논의했던 부분이 그 점이었다. ▶감정의 굴곡이 심해서인지 대정현의 캐릭터가 겉돈다는 느낌도 있다. 대사 톤, 헤어스타일 등도 혼자 튄다. -그런 지적이 있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라. 미천한 도망자 신분에서 왕에까지 이르는 캐릭터인데, 그 변화를 표현할 방법이 달리 뭐가 있을까. 팔짱을 자주 끼거나 하는 잔동작들이 불안한 대정현의 심리를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나로서는 드는데….(몇몇 비판에 대해 조목조목 공들여 반박할 정도로 영화에 애정을 보였다.) ▶젊은 배우들이 사극을 선뜻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다모’의 인기를 프리미엄으로 가져가려는 선입견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고. -내 이미지가 뭣보다 사극에 잘 맞는다고 자평한다. 힘들어서 피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사극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가진 배우도 많지 않다. ‘다모’와 연결지어서들 바라보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영화 초반의 건들건들 풀어진 모습들을 통해 오히려 이전의 이미지를 전복시키겠다는 게 감독이나 나의 노림수였다. ▶대역을 거의 쓰지 않은 액션이 영화의 스케일을 살려냈다. -촬영 전에는 하루 3시간씩 석달을 무술연습에 매달렸다. 중국 현지촬영 때는 마옥성 무술감독(‘황비홍’‘동방불패’등 무협대작 액션 지도)에게 더 지독한 훈련을 받았다. 매일 몸푸는 데만 한 시간씩 걸렸으니까. 다리쪽엔 흉터가 많이 생겼다. ▶다음 작품은 TV드라마인가, 영화인가. -워낙 어린 친구들이 많아서 TV쪽은 앞으로 출연요청이 별로 없을 것같다.(웃음) 다음 영화는 열심히 고르고 있다. 주위 얘기를 잘 안 듣는 까다로운 구석이 있어선지 결정이 쉽질 않다.‘찐한’ 멜로도 잘 할 것같고. 아무튼 새로운 그 무엇을 나도 기다린다. 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책꽂이]

    |실용경제|●평범한 10대 수재로 키우기(정미령 지음, 황금가지펴냄)옥스퍼드대 교수인 저자는 아이의 재능은 10살이후(11∼16살)에 가장 많이 발달한다고 주장한다.9500원.●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이민규 지음, 더난 펴냄)무슨 일이든 함께 하고 싶은 사람,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되기 위한 비법이 담겼다.1만원.●비즈니스 유전자(페터 푹스 지음, 박규호 옮김, 들녘 펴냄)인류학자 겸 민족학자인 저자는 문화적인 인간의 발달과정을 에세이식으로 전개시키고 있다.9000원.●파란 코끼리를 꿈꾸라(월트 디즈니 이매지니어팀 지음, 이상원 옮김, 용오름 펴냄)최고의 창의력 집단으로 꼽히는 저자들은 상상력과 창의력이 꿈을 실현시킨다고 말한다.1만 500원.●마흔살부터 준비해야 할 노후대책 일곱가지(김동선지음, 나무생각 펴냄)건강, 노후자금, 자녀와의 관계, 배우자와의 관계, 사회참여, 취미생활, 죽음준비 등을 제시한다.1만원.|유아·아동|●겨울잠쥐 쿨쿨이의 꿈(도이 카야 글·그림, 고광미 옮김, 아이세움 펴냄) 꿈속에서 모험을 떠난 겨울잠쥐(‘겨울잠쥐 쿨쿨이의 꿈’), 데굴데굴 구르기를 좋아하는 아기 판다(‘데굴데굴 재미난 산책’), 장난치다 혼쭐이 나는 코요테 이야기(‘오늘은 무슨 장난을 칠까?’) 등 3권의 유아용 그림책. 목탄, 색연필 등을 섞은 동물그림들이 포근하고도 재미있다.3∼7세. 각권 7500원.●두더지 자매 시리즈(로슬린 스왈츠 글·그림, 최영림 옮김, 황매 펴냄) 캐나다의 유명 동화작가가 두더지 자매를 내세워 유아들에게 유쾌한 세상탐험을 제안한 그림책 시리즈가 10권으로 완간됐다.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두더지 자매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에 유아독자들의 시선이 꼼짝없이 묶일 5권이 추가됐다.5세까지. 각권 6000원.|초등·청소년|●그림형제 동화집(전3권)(그림형제 글, 펠릭스 호프만 그림, 한미희 옮김, 비룡소 펴냄) ‘그림책 거장’ 그림형제 이야기의 영화 개봉에 때맞춰 그들의 동화 101편을 원전대로 번역한 동화집이 나왔다.‘일곱마리 아기 염소’‘헨젤과 그레텔’‘백설공주’‘황금거위’‘지빠귀 부리 왕자’ 등 주옥같은 작품들이 묶였다.7세∼초등 저학년. 각권 1만 8000원.
  • 儒林(477)-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53)

    儒林(477)-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53)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53) 현존하는 중국의 대표적 계몽철학자 이택후(李澤厚)는 ‘중국고대사상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맹자는 분명히 빛나는 일면을 지니고 있지만 만일 유가가 완전히 맹자의 노선을 따라서 발전해왔다면 일찍이 신비주의의 종교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바로 순자가 강조한 인위와 그것으로써 자연을 개조하는 성악설이 맹자가 추구한 선험적 성선지설과 선명하게 대립하면서 비로소 이러한 신비주의적 경향을 극복하고 투명해질 수 있었다. 동시에 묵가, 도가, 법가 가운데 냉철한 이지와 실제 경험을 중시하는 역사적 요소를 흡수한 것은 유학에서 인위와 사회를 중시하는 전통으로 하여금 더 내실을 기하게 하고 따라서 유가의 적극적·낙관적인 이상을 ‘천지와 함께하는 세계관’의 형이상학으로까지 발전시킨 것이다.” 이처럼 맹자가 공자의 인의(仁義)사상을 보다 구체화시켰다면 순자는 예악(禮樂)사상을 구체화시켰으며, 또한 맹자가 내성(內聖)의 측면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순자는 외왕(外王)의 측면에 주안점을 둠으로써 결국 유학의 종지인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는 새에 맹자는 ‘수기’의 한쪽 날개를 달았으며, 순자는 ‘치인’의 또 다른 한쪽 날개를 달았던 것이다. 이로써 유가는 비로소 양 날개를 가진 동양의 중심사상으로 완성될 수 있었으며, 공자를 서양철학에 있어 소크라테스에 비유한다면 맹자는 플라톤, 순자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비길 만한 성격의 쌍두마차였던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총 189종의 제자백가들이 난무하였던 춘추전국시대 때 이들 백가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임으로써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던 동방불패의 대사상가는 단 한 사람, 바로 맹자인 것이다. 맹자가 없었더라면 공자는 역사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버렸을 것이며, 순자 역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공자가 만든 새에 날개를 달아준 사람은 바로 맹자였으며, 따라서 맹자가 아성(亞聖)으로까지 불려지는 까닭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위대한 맹자가 어떻게 생을 끝마쳤는가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사기는 다만 맹자의 생애를 다음과 같이 짤막하게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맹자는 오직 요순과 삼대(三代) 제왕의 덕을 부르짖어 시세의 요구에 멀었기 때문에 어디에 가서 말을 하여도 받아들여지질 않았다. 물러나와 제자 만장들과 시경, 서경 등을 강술하고 공자의 뜻한 바를 펴서 맹자7편을 저술하였다.” 정확한 맹자의 연보가 없으므로 대략 그의 생애를 종합해보면 맹자가 주유열국을 모두 끝내고 고향인 추나라로 돌아온 것은 그의 나이 62세 때인 BC311년경. 그로부터 84세 때인 BC289년 죽을 때까지 20여년간 오직 사기의 기록처럼 제자들에게 시경과 서경을 강술하는 한편 불후의 명저인 ‘맹자’를 저술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바라는 바는 공자를 배우는 것이다.(乃所願則 學孔子也)’라고 공언하였던 맹자는 바로 이 무렵 20여년 동안 오직 공자의 뜻을 조술(祖述)하고 공자의 가르침을 선양하기 위해서 필생의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 儒林(476)-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52)

    儒林(476)-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52)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52) 맹자와 더불어 또 하나의 날개였던 순자. 그러나 이처럼 순자는 유가에 있어서 뛰어난 대사상가였으나 이단자로 불린 것은 두 가지의 오해 때문이었다. 그것은 순자의 제자로 일컬어지는 이사와 한비자가 법가를 부르짖음으로써 엄격한 형명주의(刑名主義)를 통치술로 제창한 장본인이라는 오해와, 맹자의 ‘성선지설’에 대항하여 ‘인간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다.’는 ‘성악지설’을 주장함으로써 마치 악마의 화신으로까지 느껴지는 선입견 때문이었던 것이다. 순자는 BC238년경에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순자가 죽은 지 불과 10여년 후인 BC221년. 마침내 진나라의 황제가 천하통일을 함으로써 춘추전국시대는 종말을 고하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주왕실이 낙양으로 천거한 기원전 770년대부터 시작된 춘추전국시대는 시황제가 천하통일을 완수함으로써 550여년 만에 그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순자는 총 189종의 사상적 자유시장이 열렸던 ‘제자백가’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탄생된 사상가였으며, 통일전야(前夜)에 살았던 유자(遺子)였다. 공자와 노자로부터 시작된 백가쟁명의 치열한 경주는 마침내 순자라는 마지막 유복자에 의해서 천하통일의 골인지점에 도착하여 테이프를 끊게 되는 것이다. 순자는 550년에 걸친 대역전 경주의 마지막 릴레이 주자였던 것이다. 곽말약(郭沫若). 20세기 중국이 낳은 뛰어난 시인이자 사학자였던 그는 ‘순자적비판(荀子的批判)’에서 다음과 같이 순자를 평하고 있다. “순자는 제자백가 가운데 최후를 장식한 위대한 스승이다. 그는 유가를 집대성하였을 뿐 아니라 제자백가를 집대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그러나 공정하게 말하면 순자는 사실상 잡가(雜家)의 시조로서 제자백가의 학설을 총망라하였다. 선진의 제자백가 가운데 그의 비판을 받지 않은 이는 거의 없다.… 이러한 점은 진실로 순자가 제자백가에 대해서 초월적인 태도를 보였음을 드러내지만 우리는 그의 학설과 사상에서 제자백가의 영향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다. 다만 어떤 경우에는 정면에서의 수용과 발전이고, 어떤 경우에는 이면에서의 공격과 대립이며, 때로는 종합적인 통일과 변화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순자가 맹자의 성선지설에 ‘공격과 대립’ 양상을 보여 성악지설을 주장하였던 것은 곽말약의 말처럼 제자백가를 집대성하기 위해서였으며, 이로써 ‘인간의 본성은 악함으로 성인의 예의법도에 의해 변화시켜야 한다.’는 ‘화성기위(化性起僞)’의 신학설이 나온 것이다. 맹자가 ‘성선지설’을 주장하였다면 순자는 ‘성악지설’을 주장하였고, 맹자가 그 ‘성선지설’을 지켜내는 방법으로 ‘인간사회의 타락은 인간의 욕심과 두려움 때문이며 그러므로 참된 용기를 함양하여 이를 없앨 수 있다.’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주장하였다면 순자는 ‘성인은 본성을 변화시켜 인위를 일으킴으로써 나쁜 악을 교정할 수 있다.’는 ‘화성기위’를 주장하였던 것이다.
  • 儒林(475)-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51)

    儒林(475)-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51)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51) 서양 철학사에서는 이처럼 원죄설의 뿌리를 둔 성악설이 주류였지만 극소수의 철학자와 교육자 사이에서는 이에 대항하여 성선설이 주장되기도 했었다. 주로 시세로, 세네카 등 철학자라기보다는 웅변가, 정치가들이었던 그들은 ‘인간이 인간다운 까닭은 올바른 이성이 있기 때문이며, 유일한 지선인 덕을 목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라는 명제를 통해 성선설을 제기하였다. 이들이 이처럼 성선설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오로나 성 아우구스티누스와는 달리 기독교인들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그리스철학, 즉 헬레니즘에 입각한 인본주의자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처음부터 기독교 교리 중의 하나인 원죄설을 접할 기회조차 없었던 사상가들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극소수에 의해서 명맥을 유지하던 성선설에 획기적인 이론을 제시한 사람은 바로 장자크 루소(1712∼1778).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유명한 금언을 남긴 루소는 평생 동안 인간의 본성을 자연 상태 속에서 파악하려고 노력하였으며,‘인간은 자연 상태에서는 자유롭고 행복하고 선량하였으나 자신의 손으로 만든 사회제도나 문명에 의해서 부자연스럽고 불행한 상태로 빠져 사악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다시 참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여 인간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하였던 것이다. 루소는 ‘자연이 만든 사물은 모두가 선하지만 일단 인위(人爲)를 거치면 악으로 변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아이fj니컬하게도 순자의 성악설과 극단적으로 위배된다. 순자는 ‘인간은 본래 태어날 때부터 악하지만 인위(작위)를 거쳐야만 바르게 교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서양철학이 원죄설에 뿌리를 둔 성악지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그에 대항하여 뒤늦게 성선지설이 대두되었다면 동양철학에서는 정반대로 맹자의 성선지설이 먼저 제기된 이후 50년 뒤에 태어난 순자에 의해서 성악지설이 대두됨으로써 비로소 인간의 본성을 규명하는 선과 악의 양 날개가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성선설과 성악설을 대립된 사상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두 사상은 어느 쪽이 절대 진리이고, 다른 쪽이 절대 오류라는 식으로 나뉘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성선설과 성악설은 둘 다 절대 진리인 것이다. 따라서 성선설과 성악설은 대립적 사상이 아니라 오히려 병립적(竝立的) 동위개념인 것이다. 양익(兩翼). 새는 한 날개로는 절대로 날 수 없는 것이다. 양 날개가 있을 때 비로소 새는 하늘을 박차고 날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맹자가 성선지설을 주장함으로써 유가사상에 오른쪽 날개를 달았다면 순자는 성악지설을 주장함으로써 왼쪽 날개를 달아 비로소 유가는 힘찬 날갯짓을 하면서 2000년 이상 동양사상의 중심에 서서 획기적인 비상을 펼칠 수가 있었던 것이다.
  • [부산 ‘戀街’/바닷가] 해운대·광안리·태종대로 오이소

    [부산 ‘戀街’/바닷가] 해운대·광안리·태종대로 오이소

    부산은 서울에 이은 우리나라 제2의 도시다. 사람도 많고 땅도 넓다. 효율적으로 다니지 않으면 제대로 즐기지는 못하고 몸만 피곤하기 십상이다. 부산을 찾는 관광객을 위한 부산시 추천 코스를 소개한다. 시간이 반나절밖에 없다면 용두산공원을 시작으로 자갈치시장-태종대-어린이대공원-아시아드주경기장을 찾기를 권한다. 그러나 최소한 하루 이틀 정도는 다녀야 부산의 맛을 봤다고 말할 수 있다. 대표적인 하루 코스는 범어사에서 출발해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을 지나 복천박물관-충렬사-수영공원-UN기념공원-용두산공원을 거쳐 자갈치시장에서 끝난다. 사적보다는 놀거리·볼거리를 즐기는 관광객은 아시아드주경기장-해운대해수욕장-달맞이공원-벡스코-이기대공원-UN기념공원-용두산공원-자갈치시장을 둘러보면 된다. 을숙도와 자갈치시장, 태종대, 초량상해거리, 서면 등을 도는 코스도 있다. 이틀 코스는 더 다양하다. 태종대에서 시작해 자갈치시장과 PIFF광장, 국제시장을 거쳐 용두산공원에서 1박을 한다. 다음날에는 민주공원에서 시작, 어린이대공원-아시아드주경기장-충렬사-복천박물관-광안리해수욕장-UN기념공원-부산박물관을 들르면 된다. 3,4일 정도의 여유가 있다면 부산 이틀 코스에 경남 통도사, 울산 석남사, 경남 부곡온천, 경북 경주, 경남 창녕 등을 함께 다니면 훌륭한 남도 여행이 된다. 부산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부산은 항구다. 이 명제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차량과 사람들로 넘쳐나는 도심보다는 해안가다. 넓은 백사장과 호텔, 술집 등 유흥가가 시민들과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해운대. 비릿한 바다 냄새와 횟집들이 셀 수 없이 들어서 있는 광안리. 그리고 기암괴석의 천국 태종대. 이곳을 들르지 않고서는 항도(港都) 부산에 왔다고 말할 수 없다. ●설명이 필요없는 피서 1번지 해운대 해운대구 중동, 좌동, 우동 일대의 대규모 유원지다. 너무 유명해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한국 8경의 하나로 꼽히는 명승지다. 신라 말기의 대학자 최치원이 해인사로 가던 길에 들렀다가 절경에 반해 자신의 호 해운을 따 이름을 지었다. 조선시대부터 행락지로 유명했던 이곳은 일제시대 때 휴양관광지로 개발됐다. 타원형의 해운대 해수욕장 백사장은 길이만 1.6㎞로 국내 최대 규모다. 동백섬, 해운대온천과 달맞이고개 등이 근처에 있다. 각종 호텔과 콘도미니엄 등 숙박은 물론 휴양시설이 완비돼 있다. 파라다이스 호텔에서는 카지노도 즐길 수 있다. 국제적인 휴양지답게 축제도 끊이지 않는다.1월에는 연날리기와 북극곰 대회를 비롯해 6월 모래작품전,7월 해수욕,8월 해변걷기와 비치발리볼 대회,10월 철인3종 경기가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10월 부산국제영화제는 축제의 백미다. 국내외에서 몰려든 영화 팬들이 남포동과 해운대를 가득 메운다.APEC의 현장인 벡스코도 근처에 있다. 먹을거리 또한 풍성하다. 가장 대표적인 식당은 해운대구청 인근의 금수복국(051-742-3600). 숙취에 좋은 콩나물과 미나리가 복어와 함께 뚝배기 한 가득 나온다. 해장에는 복국에 따라갈 음식이 없다. 맛 자체도 워낙 뛰어나 이곳에서 아침을 해결하는 장기 여행자도 많다. 매운탕보다는 맑고 담백한 지리가 낫다. 냉동복국은 8000원, 황복국은 2만원. 원조할매국밥(051-746-0387)도 지나칠 수 없다. 해운대에서만 40년 가까이 이어왔다. 얼큰한 쇠고기국밥과 깔끔하고 담백한 선지국밥, 따로국밥이 이 집의 모든 메뉴다. 그러나 빼어난 맛과 저렴한 가격에 두 번 놀란다. 국밥 2500원. 리베라호텔 뒤편에 있다. 이밖에 로드비치호텔 근처 서울집(051-742-6245)이나 그랜드호텔 근처 동백섬횟집(051-741-3888)도 고등어구이와 회로 일가를 이뤘다. ●“회 하면 광안리지예∼” 근처 금련산에서 내려온 질 좋은 모래가 백사장을 이루고 있다. 광안리 해수욕장은 해운대, 송정 등과 함께 부산의 대표 피서지로 손꼽힌다. 이곳의 명물은 광안대교.2003년 1월에 개통됐다. 길이만 7420m다. 웅장함과 미려함을 함께 갖추고 있어 개장하자마자 부산의 명물이 됐다. 이 곳에서 회를 안 먹으면 광안리에 왔다고 말할 수 없다. 그중에서도 민락동 회센터가 가장 유명하다. 회센터에서는 직접 횟감을 구입한 뒤 요리를 해 주는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긴다.1인당 2000∼3000원만 내면 회를 떠 주는 것은 물론 해물탕도 끓여준다.1인당 2만원 안쪽이면 충분히 먹는다. 광안리 백사장을 내려다보며 먹는 운치도 싱싱한 맛의 회 못지않게 감칠난다. 광안대교를 좀더 가까이서 보면서 회를 먹고 싶다면 부산횟집(051-753-8881)을 찾으면 된다. 이 집의 회는 유난히 쫀득쫀득하기로 유명하다. 비결은 ‘공기 숙성’. 회를 뜬 뒤 1시간 남짓 냉장고에 놔 두면 회 표면의 물기가 날아가면서 훨씬 쫄깃쫄깃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문어, 멍게 등 함께 나오는 음식도 맛깔나다. 모둠회가 1인당 2만∼2만5000원으로 가격도 부담스러운 편이 아니다. 민락동 회센터에서 바닷가 쪽으로 30m 정도 더 들어가면 된다. 민락동 회센터 맞은 편 새벽집(051-753-5821)은 부산에서 호남식 콩나물국밥을 맛볼 수 있는 집이다. 전남 담양산 간장으로 간을 낸 국밥맛은 깔끔하고 시원하다. 싱싱한 콩나물과 파, 그리고 생달걀이 구미를 돋운다. 서비스로 나오는 두부도 맛있다. 민락동 회센터 맞은편에 있다. ●기암괴석의 향연 태종대 부산 해안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태종대다. 해발 250m의 최고봉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암괴석이 층층이 솟아있는 기이한 절벽이다.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 깎아내린 듯 아슬아슬한 절벽이 한번 보면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 원시 그대로의 태종대를 기대하며 다시 방문한 관광객은 조금은 실망할 수 있다. 방문자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바위를 깎아 평평한 나무 계단이 설치됐다. 절벽 중간중간에 전망대, 카페 등 건물도 지어놓았다. 걷기 편하고 볼거리도 제공하지만 일부러 조성한 공원 느낌이 난다. 색색의 지층, 공룡 발자국 등 한반도 역사의 현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절벽에서 보이는 지층은 어릴 적 색깔 섞인 찰흙으로 빚던 모형처럼 색이 또렷하다. 유적을 설명해 주는 안내판이 있어 미리 공부하지 않고 찾아가도 쉽게 익힐 수 있다. 다만 분별없이 써 놓은 낙서들이 눈을 찌푸리게 한다.‘며칠 철수가 다녀가다’ 유의 글씨를 페인트나 매직, 수정액 등으로 큼지막하게 써놓은 자국이 곳곳에 보인다. 추억은 마음 속에 담아두고 흔적은 일기장에나 남길 것. 동절기에는 오후 8시까지만 개방한다. 부산 이두걸 서재희기자 douzirl@seoul.co.kr
  • 儒林(473)-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9)

    儒林(473)-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9)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9) 그렇다면 무엇이 작위인가. 인위(人爲)라고도 부를 수 있는 작위에 대해 순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의 본성이 악하다면 곧 예의는 어떻게 생겨났는가.’하고 물었다. 여기에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무릇 예의라는 것은 성인의 작위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지 본디 사람의 본성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옹기장이가 진흙을 쪄서 질그릇을 만드는데 질그릇은 옹기장이의 작위에서 생겨난 것이지 본디 사람의 본성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또 목수가 나무를 깎아 그릇을 만드는데 그릇은 목수의 작위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지 본디 사람의 본성에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주장한 ‘성악지설’의 골수인 ‘작위’에 대해 순자는 다음과 같은 명쾌한 논리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성인이 생각을 쌓고 작위를 오랫동안 익혀 예의를 만들어내고 법도를 제정한다. 그러니 예의와 법도는 성인의 작위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지 본디 사람의 본성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눈이 색깔을 좋아하고 귀가 소리를 좋아하고 입이 맛을 좋아하고 마음이 이익을 좋아하고 몸은 상쾌하고 편안함을 좋아하는데, 이것은 모두 사람의 감정과 본성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느껴서 스스로 그러한 것이니 어떤 일이 있은 뒤에야 생기는 것이 아니다. 느껴도 그러하지 못하고 반드시 또한 어떤 일이 있은 뒤에야 그렇게 되는 것을 일컬어 ‘작위에서 생겨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본성과 작위가 생겨나게 하는 것들이 같지 않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성인께서는 사람들의 본성을 교화시켜 작위를 일으키고, 작위를 일으켜 예의를 만들어 내고, 예의를 만들어 내어 법도를 제정한다. 그러니 예의와 법도는 성인이 생겨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여러 사람들과 같은 것, 곧 성인이 여러 사람들과 다름이 없는 것이 본성이고, 여러 사람들과는 다르고 훨씬 뛰어난 것이 작위이다.” 물론 순자가 주창한 ‘성악지설’은 어디까지나 그보다 50년 전에 살았던 위대한 유가의 맹장 맹자의 ‘성선지설’에 대한 대립사상이다. 이 점은 서양에서의 철학사상사와는 정반대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서양에서는 ‘성악설’이 먼저 생기고 난 뒤에 ‘성선설’이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탄생되었던 것이다. 서양에서 성악설이 대두된 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라는 개념 때문이었다. 원죄(原罪:Original sin). 이는 기독교의 교리중의 하나로서 처음부터 죄와 죽음이 인간에게 들어왔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의해서 속죄되고 회복되어야 한다는 ‘인류 타락의 교의(敎義)’를 말함이다. 인류의 시초인 아담이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이브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하느님처럼 눈이 밝아져 선과 악을 아는 자’가 됨으로써 하느님의 저주를 받아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추방당하는 것이 바로 원죄의 출발인 것이다.
  • 새 이름에 모여든 유머

    새 이름에 모여든 유머

    한 물건의 이름을 갈 때 현상모집을 하면 엉뚱한「아이디어」들이 수없이 모여 사회명랑화에 큰 도움을 준다.「유머」가 아쉬운 세상에 그것은 한 가닥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상업은행이 보통예금의 이자로 보험에 들게 하는「안심예금」의 이름을 일반에서 공모하여 고치기로 했다. 1월말께 전국의 주요신문에 공고를 냈었다. 당선작 하나의 상금은 자그마치 10만원 정. 공모기간은 2월 한 달 동안. 까다로운 조건이 하나 붙긴 붙어 있었다. 관제엽서에 좋은 이름만 적어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2백자 원고용지로 7장 이상의 설명이 따라야 했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면 전국에서 1천 8백 통의 응모가 있었다. 당선작은 없고 가작 3명에 유감상 1만원씩이 보내졌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월남의「정글」속에서 파월용사까지 군사우편을 띄워「아이디어」를 제공, 국외에서 상금을 휩쓸어 가려는 속셈을 보였다. 이러한 것은 파월용사들이 얼마나 여유 있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가를 말해주는「사이드·스토리」감은 된다. 더욱이 그 병사 -「다낭」지구에 주둔한다는 김태화상병이 보내온 이름이「천하태평예금」이라 상은 관계자들의 배꼽을 쥐게 했다. 포성을 자장가처럼 듣고 있을 일선지대의 군인이 천하태평이라는 낱말을 생각해서 고국에 보냈으니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응모된 이름들 중에서 색다른 것을 골라보면 다음과 같다. 안위(安慰)예금, 너도나예금, 영거(寧居)예금, 노다지예금, 꿀꿀이예금, 화수분예금, 봉황예금, 비둘기예금, 신안(新安)예금, 로터리예금, 해바라기예금, 상은송아지예금, 두꺼비예금, 옹달샘예금, 환생예금(이건 너무 거창하다), 네배예금, 흥부예금(놀부흥부의 흥부다), 개미예금, 원앙예금, 제비예금, 보너스예금, 월상비(月常備)예금, 목돈예금, 삼호(三好)예금, 일석이조예금, 4백%예금, 다목적예금(다목적댐에서 힌트?), 만리성(萬里城)예금, 포퓰러예금, 보배예금, 가보예금, 보구리(寶求利)예금(상당히 욕심스러운 이름이다), 복샘예금, 무궁화예금, 앙코르예금, 풍리(豊利)예금, 부래(富來)예금, 수재비비(壽財備肥)예금, 아폴로예금(아폴로 9호에서 힌트?), 상은예금(공모주에 대한 과잉아부?), 일월(日月)예금, 금실(金實)예금, 디딤돌예금, 엄빠예금(새 낱말이다. 엄마와 아빠가 사이 좋게 예금한다는 뜻에서 새 말을 창조했다), 황소예금, 신안(信安)예금, 일익(日益)예금, 단꿈예금, 명천(明泉)예금, 성주(成柱)예금, 재주(災住)예금, 달나라예금, 계수(桂樹)예금, 단골예금, 오아시스예금, 부부(夫婦)예금, 송죽예금, 노적(露積)예금, 복조리예금, 재치(才致)예금, 귀한(貴韓)예금, 금옥(金玉)예금, 선행(先行)예금, 믿을예금, 공짜예금, 알찬예금, 승공(勝共)예금(저축은 승공에 통한다?), 사슴예금, 배보다큰배꼽예금, 운수(運數)예금, 소소(笑笑)예금, 꿩알예금(꿩먹고 알먹는다는 뜻), 오뚜기예금(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는 뜻), 소복(笑福)예금(소중만복래(笑中萬福來)에 전거(典據)를 대고 게다가『소복소복 모인다』는 우리말의「뉘앙스」도 좋다고). 또 응모자는「소」자와「복(福)」에 얽힌 속담을 인용한다. - 소같이 벌어서 쥐같이 먹으라는 바로 치부의 첩경이라고 해석한다. -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살림살이에 가장 필요한 것이 저축임을 말해준다고 해석. 그러니 은행적금의 이름에는「소」와「복」이 최적이라고 강인색부(强引索附). -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바로 저축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속담이라고 속담에 대한 박람강기(博覽强記)를 과시해 보기도 했다. 1천 8백 명이 응모를 했지만 1천 8백 명이 모두 다른 이름을 추천한 것도 아니었다. 똑 같은 이름이 상당히 많은 사람에 의해 보내졌다. 복지예금이 51명, 보상예금이 19명, 안전예금이 38명, 보험예금이 20명, 보장예금이 14명, 안정예금이 14명, 부리예금이 14명, 오뚜기예금이 22명, 오복예금이 21명이다. 개인응모자만 나온 것은 아니다. 단체응모자도 출현해서 관계자를 감격케 했다. 경남 고성(固城)중학교에서는 학생 1천 2백 명에게 저축심 양양의 교재로 삼아 문제를 내었다. 교직원 50명도 여기에 참가했다. 그 결과, 공제(共濟), 복리(福利), 십자(十字), 복(福), 자성(自成), 복지(福祉), 죽순(竹筍), 안전(安全), 오복(五福)의 9가지 이름이 나왔다. 이것을 국어과와 사회과의 담임선생이 신중히 검토한 다음「오복(五福)」으로 정해서 교사대표 김성화씨의 이름으로 응모해 왔다. 심사결과 복지예금, 안전예금, 오복예금의 3가지가 가작으로 뽑혔다. 이 세 이름을 응모한 사람이 복수(복지 51명, 안전 38명, 오복 31명)여서 3월 중순께 상은 회의실에서 경찰관 입회 하에 요란스러운 추첨을 했다. 제비를 뽑은 사람은「스타」엄앵란양. 행운의 당선으로 상금 1만원을 탄 사람은 복지예금에서는 이명배씨(충남 예산읍 창소리2구), 안전예금에서는 박영찬씨(서울 영등포구 대방동 49의 6), 오복예금에서는 박성주씨(전남 고흥군 봉래면 신금리)의 3씨다. [ 선데이서울 69년 3/30 제2권 13호 통권 제27호 ]
  • 儒林(471)-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7)

    儒林(471)-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7)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 (47) 순자는 이처럼 ‘좋은 법이 있어도 어지러워지는 일은 있으나 군자가 있으면서도 어지러워진다는 말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들어본 일이 없다.(故有良法而亂者有之矣 有君子而亂者自古及今未嘗聞也)’라는 결론을 통해 ‘좋은 법(良法)’보다는 ‘좋은 사람(君子)’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유가의 테두리를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순자는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법(法)’을 매우 중요시하였던 특징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예의법정(禮儀法正)을 강조하는 순자는 세상은 군자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것이 최선이지만 어차피 군자가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불가하므로 인간이 만든 법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차선이라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하였던 현실적 사상가였던 것이다. 순자는 ‘군도(君道)’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법은 다스림의 시작이고, 군자는 법의 근원이다.(法者治之端也 君子者法之原也)” 따라서 국가에는 다스림의 기준이 되는 법이 반드시 있어야 되며, 형벌을 엄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법의 중시가 그의 제자인 한비자에게서 극도로 발전해 법가를 이루었으며, 시황제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였던 순자의 제자 이사는 시황제가 말더듬이 한비자를 총애하자 참언하여 독살시키는 한편 한비자의 법가를 한층 더 심화시켜 ‘형명법술(刑名法術)’을 주로 하는 철혈통치를 단행함으로써 중국역사상 최고의 악인으로 낙인찍혀 그 자신은 물론 스승인 순자까지도 이단자로 몰아버리는 우를 범하였던 것이다. 순자가 이렇듯 맹자와 더불어 유가의 정통을 이은 대사상가였으나 이단자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은 공자의 주관적이고 이상적인 형이상학을 계승한 맹자에 대해 준엄한 비판을 가하면서 특히 맹자가 부르짖었던 ‘성선지설’에 직격탄을 날렸기 때문이었다. 순자는 맹자와 달리 ‘사람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다.’는 ‘성악지설(性惡之說)’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순자는 ‘성악(性惡)편’의 첫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니 그것이 선하다고 하는 것은 거짓이다.(人之性惡 其善者僞也) 지금 사람들의 본성은 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하는데, 이것을 따르기 때문에 쟁탈이 생기고, 사양함이 없어진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질투하고 미워하는데, 이것을 따르기 때문에 남을 해치고 상하게 하는 일이 생기며, 충성과 믿음이 없어진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귀와 눈이 욕망이 있어 아름다운 소리와 빛깔을 좋아하는데, 이것을 따르기 때문에 지나친 혼란이 생기고, 예의와 아름다운 형식이 없어진다. 그러니 사람의 본성을 따르고 사람의 감정을 좇는다면 반드시 다투고 뺏게 되어 분수를 어기고, 이치를 어지럽히게 되어 난폭함으로 귀결될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스승과 법도에 따른 교화와 예의와 법도가 있어야 하며, 그런 뒤에야 서로 사양하게 되고 아름다운 형식을 갖게 되어 다스림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 분명하며, 그것이 선하다는 것은 거짓이다.
  • 경찰 “법적 근거없다” 전면거부

    경찰은 앞으로 검찰이 직접 수사한 사건의 피의자 호송을 전면 거부하기로 했다. 지금은 관행적으로 대신하고 있다. 검·경간 수사권 조정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청은 지난 4일 일선지방 경찰청에 검찰이 직접 수사한 사건 피의자의 유치장 의뢰입감이나 영장실질심사 때 경찰관이 피의자를 호송해온 관행은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공문을 보냈다. 현행 대통령령인 ‘수형자 등 호송규칙’은 수형자나 기타 법령에 의해 구속된 사람의 호송은 교도소 간에는 교도관, 기타의 경우 경찰관이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이 직접 수사한 사건 피의자의 경우, 이 법령의 수형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경찰 해석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법령이 없어 피의자를 호송하는 경찰과 검찰 직원 사이의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선 경찰은 호송문제를 두고 검찰이 수사권을 남용하는 대표적 사례로 꼽으며 꾸준히 개선을 요구해왔다. 경찰청 황운하 수사구조 개혁팀장은 “일선 서에서 검찰이 직접 수사한 사건 호송과 관련 질의가 잇달아 경찰청이 법적 해석을 통해 업무지시를 내린 것”이라면서 “수사하는 사람 따로 있고 잡는 사람 따로 있는 게 아닌 만큼 검찰도 5000여명의 수사인력을 활용해 스스로 호송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검찰청 이동기 형사부장은 “경찰로부터 공식통보가 안 왔다.”면서 “일단 공식적으로 확인해보고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유영규 박경호기자 whoami@seoul.co.kr
  • 이런 사람 테러범 의심

    이런 사람 테러범 의심

    “테러범은 모자·마스크·선글라스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특이하게 배가 많이 나온 20∼40대 남성일 가능성이 높다.” 서울경찰청이 6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가며 소개한 ‘테러범 특징과 식별요령’ 일부다. 테러범은 마스크나 수염 등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모자나 선글라스를 쓰는 게 일반적이다. 지나치게 허리나 아랫배가 불룩한 사람은 자살폭탄 테러범으로 의심할 필요가 있다. 복대로 폭탄을 옷 안에 숨기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밖에 ▲일행이 아니면서도 복장과 행동을 맞추려고 애쓰는 젊은 남녀 ▲계절에 안 맞는 두꺼운 옷을 입고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도 요주의 대상이다. 지하철 테러범은 승차권 발급이나 개찰구 출입 때 직원의 눈을 피하고 갑자기 행선지를 변경하거나 선로 주변을 서성거리며 사진을 찍고 줄자 등으로 길이를 측정하려는 특징이 있다. 쓰레기통이나 화장실 등에 가방이나 봉지를 실수인 척 내려놓고 급히 떠나는 사람도 주의해야 한다. 신용카드나 수표 대신 현금을 고집하고 국적이나 숙소를 물으면 거부감을 표시하거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테러범들의 특징이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여연 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16) 차와 건강

    [여연 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16) 차와 건강

    찬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 벌써 겨울이 오고 있다. 산사에도 인적이 드문 드문 해진다. 봄 여름 가을을 지낸 퇴비들을 차나무들에 뿌려준다. 이른바 겨울을 튼튼하게 날 수 있는 방한복 같은 것이다. 생명을 가꾸는 행위는 매우 어렵고 순수한 일이다. 과학적인 실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그 튼실한 알맹이를 안으로 키워내고 과일나무는 주인의 흥얼거리는 즐거운 콧노래를 들으며 맛있는 과즙을 생산해내는 것이다. 생명을 가꾸는 일은 헌신과 자비를 통한 완벽한 동화(同化)를 이룰 때 가능하다. 나를 버리고 이해요구를 버린 따스한 손길은 그 생명을 완전한 아름다움으로 자라게 하는 최고의 비약이다. 차나무도 마찬가지다. 차농사꾼들의 헌신적인 손길을 통해 그 파릇 파릇한 연두색 찻잎들과 우주의 생명을 숨쉬게 하는 색·향·미를 담은 완벽한 나무로 자라나는 것이다. 차나무뿐만 아니다. 모든 것은 바로 생명이다. 그 생명을 가꾸고 길러내는 사람들의 손길은 마치 부처의 마음처럼 늘 평안하다. 요즘 들어 부쩍 차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웰빙이니 헬스니 현대인들이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하면서 차 관련 건강상품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차의 자본화는 이제 세계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것 같다. 차의 대중화와 생활화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차와 건강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차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 중에 가장 신령스러운 생명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중국에서는 차의 효능을 알고 약재로 사용해 오고 있다.4000년 전부터 들차를 채집하였다가 끓여 그 차즙으로 병을 치료하였다고 전하며, 후에 차를 마시면 건강에 좋다는 것을 발견하여 차츰 약재로 사용하게 되었다. 차가 만병을 다스리는 약이라는 말은 당나라 진장기(陳莊器)의 ‘본초습유(本草拾遺)’에서 기원되었다. 이 책에서는 “…제약(諸藥)은 각병지약(各病之藥)이지만 차는 만병지약(萬病之藥)”이라고 하여 차의 효능을 강조하였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차나무의 성질은 조금은 차고 그 맛은 달고 쓰면서 독이 없는 식물이다. 그 성질이 쓰고 차서 기운을 내리게 하고, 체한 음식을 소화시켜 주고, 아울러 머리와 눈을 맑게 하고 소변을 잘 통하게 한다. 또한 소갈증(消渴症)을 멈추게 하며, 잠을 적게 해주며, 화상 입은 데에 독을 없애준다.”고 하였다. 오늘날에도 많은 나라에서 찻잎을 실험재료로 하여 많은 인력과 물력을 투입해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차의 여러 가지 뛰어난 효능이 속속 밝혀지고 있어 차가 만병지약임을 입증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세계의 다양한 음식을 조사한 결과 장년과 노년층에 가장 좋은 음식 중 하나로 차를 꼽았다. 차는 방사성 원소를 흡수하여 배설하게 하고, 사람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보충하여 장수를 돕는 놀라운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찻잎에는 단백질, 지방, 비타민, 그리고 탄닌(폴리페놀), 카페인 등 300여종의 성분이 포함되어있으며, 생리기능을 조절하고, 다양한 약리 작용을 발휘한다고 한다. 찻잎의 카페인 성분은 일종의 혈관확장제로써 호흡을 빠르게 하고 맥박을 바르게 하면서도 혈압은 올라가지 않도록 한다. 또한 신장을 자극하며, 강심(强心), 건위(健胃), 이뇨해독 작용도 한다. 또한 카페인과 탄닌의 협동 작용으로 인체 내에 콜레스테롤이 많아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으며 탄닌은 혈관에서 피를 잘 통하게 한다. 특히, 차의 효과는 성인에게 더욱 좋다. 장년이 되면 쉽게 몸이 비대해지는데, 이는 심장혈관병, 당뇨병, 장암 등 각종 성인별을 초래한다. 날씬해지기 위한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은 차를 마시는 것이다. 운동하기 전에 차를 마시면 에너지원으로써의 지방이 우선적으로 연소되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그만이다. 차 성분 중에 카테킨이 지방 분해 효소의 작용을 도와 기름진 음식을 먹은 후에 차를 마시면 매우 효과적이다. 최근 환경오염으로 인한 알레르기성 질환이 많아지면서 차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차의 알레르기 억제 작용이 일본 시즈오카 현립대학의 스기야마 박사팀에 의해 밝혀져 주목을 끌고 있다. 이들 연구팀은 알레르기 반응에 관여하는 항체를 쥐에 실험할 때, 차를 투여한 후 항원을 주사할 경우 알레르기 억제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한 차는 정신을 분발시키고 피로를 제거하며 항균작용이 탁월해 지친 심신과 스트레스로 인해 야기되는 현대인의 각종 질병에 뛰어난 효과를 발휘한다. 한 연구보고에 의하면 위장 중에 1∼3%의 탄닌이 있다면 방사성 물질인 스트롬튬의 30∼40%를 체외로 배출할 수 있다고 한다. 또 탄닌은 담배에 들어있는 니코틴과 결합하기 때문에 몸에 흡수되지 않고 체외로 배출된다. 이밖에도 수은이나, 납, 카드뮴, 구리 등 중금속과도 결합해 각종 공해로 체내에 축적된 유해성 중금속의 해독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자연환경 오염이 심하고, 생태균형이 파괴된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차를 상용하면 더욱 좋은 것이다. 차와 건강의 연관성 중 잘못 알려진 것이 있다. 바로 차는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같은 우려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차는 어린이들의 발육이나 건강에 매우 필요한 것 중 하나다. 생후 5개월 이후에는 간에서 카페인의 분해속도가 성인과 같아지기 때문에 차를 마시는 것이 전혀 해롭지 않은 것이다. 찻잎에는 어린이들의 성장 발육에 필요한 페놀류의 연생물, 카페인 비타민 단백질 당류와 방향물, 그리고 아연 불소등의 유익한 미량원소를 포함하고 있어 적당하게 마신다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차는 또한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에게 면역력을 키워주는 역할도 한다. 어린이들은 면역력이 약한 관계로 배탈이 자주나고 식중독에 자주 걸린다. 녹차의 카테킨 성분은 식중독을 예방하고 설사를 멈추게 하므로 배탈이 나기 쉬운 여름에 차를 마시게 하는 것은 매우 좋은 담방약 중 하나다. 차는 또 어린이들의 충치를 예방하기도 한다. 사탕이나 초컬릿 등 당류의 섭취가 유난히 많은 현대의 어린이들에게 불소함량이 풍부한 차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차의 권장량은 하루 2∼3잔 정도다. 어린아이가 차를 너무 많이 마시면 체내 수분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수면시간이 줄어들어 많은 영양분을 소모, 성장발육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가 누구에게나 좋을 수는 없다. 임산부나 위가 약한 사람, 몸이 냉한 사람, 불면증환자, 저혈압환자 등은 과한 차의 음용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 차는 정신을 건강하게 하고 육체의 피로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런 점에서 산업화로 인해 공해가 심한 도시생활에서 차는 정신과 육체를 편안하게 하는 평화로운 인도자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요즘들어 불어닥치고 있는 차의 자본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화장품에서부터 베개 속옷까지 무한정 넓혀지고 있는 차의 상품화는 마치 차가 인간의 모든 건강을 책임질 수 있는 만병통치약처럼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차의 정신은 사라지고, 오직 인간의 육체적 이기심을 채워줄 수 있는 많은 상품 중 하나처럼 자리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차는 인간이 마시는 기호음료를 뛰어넘어 인간의 육신과 정신을 담아낸 고귀한 생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차를 통해 우리는 현재와 과거 미래의 삶을 좀더 풍요롭고 따스하게 가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차를 통해 인간과 인간뿐만 아니라 각종 문명과도 평화롭게 조우해야 한다. 일상을 사는 나를 발견하며 내안에 내재해 있는 욕심을 버리고 집착하지 않는 평화를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차인 것이다. 큰 빌딩속에 기계부품처럼 앉아 자신의 삶을 소진해서는 안 된다. 사무실 책상위에 일인용 다구와 차를 준비한 후 가볍게 차 한잔을 하자. 그럼 자신안에서부터 알 수 없는 행복이 솟아오를 것이다. 일지암 암주 ■ 반야병차와 떡차의 전설 지금은 열반했지만 근현대 선지식 중 한 분인 큰 스님이 있다. 송광사에서 주석하면서 크게 선법을 펴신 구산 큰스님이다. 구산스님은 열반할 때까지 손수 자신의 일상사를 챙기며 용맹정진하신 분으로도 유명하다. 구산스님이 제일 좋아했던 차는 바로 떡차였다. 구산스님은 저녁공양 전 작은 암자에 손수 불을 넣으셨다. 당시는 구들방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불을 넣어주어야 했다. 저녁공양 시간이 되면 구산스님은 작은 철주전자를 아궁이 숯불위에 놓고 갔다. 그리고 저녁공양을 한후 펄펄 끓어넘치는 철주전자를 방에 들여와 찻잔에 내어 마셨다. 구산스님이 마셨던 것은 바로 발효차인 떡차였다. 철주전자에 맑은 청수를 넣은 후 떡차 한덩이리를 넣는 것이다. 그리고 대중공양이 끝난 후 펄펄 끓어넘치는 떡차 한잔으로 건강을 지켰던 것이다. 일지암에서는 우리 고유의 차로 불리는 떡차를 생산하고 있다. 이른바 반야병차가 그것이다. 민간에서는 옛날부터 떡차를 긴급한 환자에게 쓰는 담방약으로 썼다. 배가 아픈 어린이, 이빨이 아픈 노인 그리고 배탈환자에게 우리 조상들은 초가집 시렁에 줄을 매달아 걸어놓은 떡차를 쑥 빼서 달여 마시게 했다. 신기하게도 떡차는 큰 효험이 있었다. 떡차는 이른바 발효차이다. 콩을 띄워 메주를 만들 듯이 떡차도 찻잎을 띄워 충분히 발효시킨 뒤 건조한다. 발효차는 평상시 차로써뿐만 아니라 감기를 앓거나 몸이 부실한 사람들에게 큰 효험을 발휘한다. 일지암과 초의차문화연구원에서는 몇 해 전부터 초의스님이 말씀하셨던 반야병차를 조금씩 생산하고 있다. 반야병차는 여름철에는 차게, 겨울에는 뜨겁게 마셔도 된다. 발효된 차이기 때문에 찻물의 온도에 상관없이 언제나 마셔도 되는 것이다.‘돈차’라고 불리는 우리 고유의 발효차는 현대인들의 삶속에서도 건강을 지키는 지킴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좋은 차다. 중국에는 몽정차 백로차 보이차 등 약효의 효험이 있는 차들이 매우 많다. 반야병차 역시 마찬가지다. 떡차로 불리는 반야병차는 약리적인 효능이 높다는 중국의 품격높은 명차들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많은 차인들이 떡차의 완벽한 복원을 위해 애쓰고 있다. 차와 일상의 삶을 연결한 떡차는 옛날 우리 차인들의 마음을 그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민중들의 일상속에서 숨쉬며 우리의 건강을 챙겨온 떡차는 조만간 우리 곁을 지키는 ‘차 건강지킴이’로 태어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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