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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뉴스라인/ 이인제, 중진들과 저녁모임, 이부영, 경선 총비용 공개

    ◆이인제, 중진들과 저녁모임 민주당 이인제(李仁濟) 전 상임고문이 당 경선 이후 공식모임을 삼가던 자세에서 탈피,지난 15일 당내 중진 의원들과 저녁 모임을 가진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정대철(鄭大哲) 최고위원 주선으로 이뤄진 이날 만찬회동에는 이 전 고문을 비롯해 정동영(鄭東泳)·김근태(金槿泰) 의원과 이낙연(李洛淵) 기조위원장 등이 참석했다는 것이다. 한 참석자는 “이 의원이 진념(陳稔) 경기도지사 후보의상임고문직을 맡는 등 당을 위해 뛰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있었다.”고 전했다. ◆이부영, 경선 총비용 공개 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 의원은 16일 “대선 후보등록일인 지난달 5일부터 전국순회 경선 마지막날인 지난 9일 서울대회까지의 경선비용으로 모두 3억 9200여만원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출마선언 당시 4명의 경선주자 중 유일하게 비용공개를 약속,1주일 단위로 공개했던 이 의원은 “깨끗한 정치에 대한약속은 선거결과와 무관하다.”며 이날 전체비용을 결산해공개했다.세부내역으로는 ▲기탁금 및 당비 2억 1200만원 ▲홍보물 제작 및 발송비 5600만원 ▲시·도대회 경비 5000만원 ▲사무실 임대보증금 3200만원 ▲식비 및 촬영장비 임대료 4200만원을 제시했다.
  • 외국인 9·11이후 매도 우위 반전

    올들어 2월 이후 현재까지 외국인투자가의 순매도 금액이 9·11 테러사태 이후 지난 1월 말까지의 순매수 금액을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종합주가지수가 9·11테러사태 때 468.76으로 최저점을 기록한 이후 외국인들은 지난해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3조 4935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그러나 2월 이후 매도우위로 돌아서 지난 13일까지 외국인들의 순매도 금액은 3조 8326억원으로 집계됐다.매도액이 매수액보다 3391억원이나 많다. 특히 외국인들은 지난달 18일 이후 불과 17거래일 동안 1조 4235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미국기업의 실적부진과 미국증시 불안 등의 영향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 2월1일부터 5월13일까지 외국인이 가장 많이 팔아치운 종목은 삼성전자로 3조 632억 8000만원어치나 순매도했다. 그 다음으로 한국전력(3624억 9300만원),POSCO(3525억 9500만원),LGEI(3229억 900만원),삼성전자 우선주(2629억 5400만원) 등의 순이었다. 문소영기자
  • 韓銀 서울지역 화폐 발행 추이

    최근 몇년째 서울 강북은 계속 돈을 대고(공급) 강남은계속 돈을 써(환수) 강남·북간의 화폐수급 불균형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13일 한국은행의 ‘강남·북간 화폐 순발행 추이’에 따르면 올 1월부터 4월까지 강북에서는 9645억원이 순발행(발행금액-환수금액)된 반면 강남에서는 6033억원이 순환수됐다. ●강북은 돈 대고 강남은 쓰고= 지난해 연간으로도 ▲강북은 2조 575억원 순발행 ▲강남은 8021억원 순환수를 기록했다.발권국 관계자는 “Y2K(컴퓨터의 2000년 인식오류 문제)와 은행파업 때 불안감때문에 강·남북 구분없이 돈이환수됐던 것을 제외하고는 이같은 추세가 몇년째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왜 이런 일이= 1차적 이유는 강남·북간 경제력 차이에서 기인한다.아무래도 강남의 소비수준이 높다보니 돈을 많이 쓰는 것.강북사람들이 돈 쓸때는 ‘물좋은’ 강남으로건너가는 것도 강남·북간 화폐수급 격차를 확대하는 요인이다.갈수록 늘어나는 현금지급기에도 원인이 있다.강남·북을 포함해 일산·수원·인천 등 수도권 일대에 설치된‘나이스’ 기기(시중은행 카드를 모두 쓸 수 있는 공용현금지급기)는 2715대.그런데 한국은행에서 돈을 받아 이나이스기기 관리업체(한국전자금융)에 전달하는 업무를 하는 곳은 부산은행 서울지점(을지로 소재) 뿐이다.강북에위치한 은행에서 돈을 한꺼번에 찾아 강남은 물론 경기도현금지급기까지 메우다보니 강북은 늘 ‘돈 공급처’가 될 수 밖에 없다. ●시중은행들의 수익 우선주의도 한몫= 한은은 갈수록 지역간 화폐수급 불균형이 심각해지고 장거리 현금수송에 따른 위험도도 높아져 현금공급 취급 금융기관을 분산시키기로 하고,강남권의 후보를 물색 중이지만 여의치 않다.마진이 박해 인건비도 못건진다며 시중은행들이 손사래를 치고있는 것.관계자는 “은행들이 너무 사익만 따지지 말고 공익도 고려해줬으면 한다.”고 털어놓았다.다행히 인천지역은 한빛은행 인천지점이 14일부터 현금공급 업무를 맡기로 했다. 안미현기자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秘史] (2)오락가락하는 대 한반도 정책

    1884년 조·러 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1910년 한일합병전후까지 러시아의 대(對)한반도정책은 현상 유지(독립국가 유지)와 무력점령,38선을 중심으로 일본과의 남북 분할점령 등 3개안을 기본으로 변화해 왔다. 그런가하면 국내외의 정치 상황과 역학관계에 따라 중립국안,완충지대안,만주 및 몽고와의 거래에 의한 양보안까지 오락가락하기도 했다.특히 일본이 1896년 처음 제기한뒤 러시아도 솔깃해진 일본과의 남북 분할점령안은 광복및 6·25전쟁과 함께 남북 분단으로 현실화됨으로써 한국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서울에서 체결한 조·러 수호통상조약문을 동봉한다.외무성은 조선과의 수교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정치적 상황이 여의치 못해 이를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었다.그러나 독일과 영국이 조선과 통상조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 황제 폐하(니콜라이2세)의 윤허를 얻어 서울에베베르(전권위원,초대 대리공사)를 보내 조약을 체결했다.이 조약은 독일과 영국이 체결하지 못한 영사관 설치문제가 제2조에 명문화돼 있으며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청국 영사관의 불만을 피하기 위해 그곳에 조선영사관을 허용하지 않은 특징이 있다.(1884년 10월8일 기르스 외무상이 톨스토이 내무상에게 보낸 조·러 수호통상조약 13조 전문 등23쪽에 달하는 극비문서) 이 문서는 제정러시아 문서보관국에서 찾아낸 방대한 분량의 한국 관련 문서 가운데 시기적으로 가장 앞서는 문서 중 하나로 한국과 러시아의 최초 공식 외교협정인 조·러 수호통상조약의 체결배경에 대한 러시아측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이 문서를 통해 러시아의 1차적인 관심은 조선의 종주국이었던 청나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데 있다는 사실을알 수 있다.물론 수교불가피론의 근저에는 영국과 독일 등 열강에 뒤지지 않으려는 몸부림과 함께 남하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부동항의 획득에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조선을 점령하는 것이 러시아에 바람직한가.점령하게 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1888년 4월26일 아무르 총독과 외무부 아시아국장의 특별회의록).러·일간 우호확립에 유일한 방해요인은 대한제국 문제이다.일본 천왕의 총애를 받는 야마가타(山縣有朋) 원수는 대한제국 분할에 관한 러·일간의 협정체결이 양국간의 우호증진을 위한 바람직한 해결책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그는 일본이 대한제국의 수도를 포함한 남부를 차지하고 동해안과 서해안의 항구와 대부분의 대한제국 영토를 러시아에 양보할 준비가돼 있다고 한다.그러나 이는 대한제국의 완전독립과 모순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1899년 2월9일 외상이 황제에 상주한 문서). 이들 문서로 미루어 볼 때 러시아는 1896년 로바노프 외무상과 야마가타 특사 사이에 체결된 모스크바의정서는 물론,1898년 로젠-니시협정으로도 대한제국의 독립을 일본측으로부터 완전히 담보받지 못했다고 여기고 있으며,남북분할점령안을 거부했지만 여전히 매력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당시 일본이 주도한 명성황후 시해사건(1895년)과 이로 인해 촉발된 고종의 러시아공사관 피신(아관파천·1896년)으로 곤경에 빠진 일본 대신 러시아가 대한제국의 조야를 주무르던 때였다. 하지만 이후 러시아의 대한제국 독립국가 유지정책은 조금씩 후퇴하는 조짐을 보인다.여기에는 100만명에 달하는러시아군의 대부분이 유럽지역에 주둔하고 있어 극동지역에서의 군사력 약세를 인정하는 측면도 있었다.병력을 신속히 이동시킬 수 있는 시베리아철도가 완성되기 전까지외교적으로만 대한제국의 독립을 지원,현상유지시키겠다는 속셈도 작용했다. 만주와 극동에서 러시아가 굳건한 기반을 확립하고 만주를 러시아 영토로 편입시키는데 25∼30년이 걸릴 것이다.만주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러시아가 일본의 민족적 자존심에 손상을 주지 않고 대한제국을 일본에 양보하는것이 불가피하다고 본다(1902년 12월 뷔테 재무상이 람즈돌프 외무상에게 보낸 러·일 협상관련 비밀문서).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삼아 철도 및 은행 등을 장악하는것은 무의미하다.문제는 대한제국을 무력으로 장악해야 하는데 대한제국 남부의 점령은 우리의 힘이 미치지 못하므로 대한제국 전역을 지배할 수 있는 기회를 엿봐야 한다.그런 의미에서 먼저 만주를 지배하지않으면 안된다(1902년 10월8일 도쿄(東京)주재 러시아 공사인 로젠 남작이 니콜라이2세에게 상주한 보고서).황제(니콜라이2세)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북쪽으로는 두만강,서쪽으로는 압록강까지점령해도 좋다는 결심을 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황제는대한제국을 일본에 양보하면 군사충돌을 피할 수 있다고생각한다.(1903년 6월11일 해군제독 아바자가 베조브라조프에게 보낸 전문). 로젠 공사의 보고서에 대해 파블로프 공사도 의견서를 통해 “러시아는 실제적으로 국익에 손상을 입지 않고 대한제국 문제 해결을 명분삼아 일본정부에 대한제국의 행정감독은 물론 철도,우편,전신 등에 유리한 권한을 인정하면서 재정과 군사부문까지 참여를 허용해야 하며 러시아는 만주문제에 대한 일본의 불간섭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맞장구쳤다.니콜라이2세는 문서 상단에 ‘파블로프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친필로 남겼다. 니콜라이2세는 1904년 1월26일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에게친필서명이 든 전문을 보내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하는것보다는 일본이 먼저 시작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일본이 먼저 개전하지 않으면 일본군이 대한제국의 남해안 혹은 동해안으로 상륙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만약 38선 이북 서해안으로 상륙병과 함대가 북진해오면 적군의 첫발포를 기다리지 말고 공격하라.”고 긴급지시했다. 러시아의 정책이 대한제국의 양보쪽으로 서서히 방향을틀고 있는 가운데 일본군이 38선 이북 서해안으로 상륙하면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마지노선’을 암시하고 있다.1902년 1월 런던에서 체결된 영·일동맹은 러시아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이 시기를 전후해 대한제국의 중립화안이고개를 든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러시아 군부는 대한제국 전역 혹은 북부지역의 무력 점령안을 적극 지지하고 있었다. 대한제국에서 러시아는 일본뿐 아니라 어떤 국가에게도영향력을 허용해서는 안된다.러시아가 대한제국을 점령해러시아에 합병시켜야 한다(1900년 두바소프 태평양함대사령관이 니콜라이2세에게 상주한 극동의 정치상황).일본은전 병력을 만주전선에 투입했다.러시아는 대한제국으로 진격해야 한다.현재의 16개 부대로는 병력이 부족하다.진격계획은 8월로 연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1904년 6월 아무르 군관구 참모부에서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에게 보낸 전문). 일본군이 만주전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틈을 이용해대한제국 영토에서 군사적인 승리를 거두겠다는 국지전(局地戰) 계획이긴 하지만 점령안을 지지하는 군부의 의사를엿볼 수 있다.무력점령안에 따른 진격계획은 보다 구체성을 띠고 있었다.이들 부대는 러·일전쟁 당시 한반도로 진출했으며 평양 일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전쟁불사’를 외치는 군부 및 일부 외교라인의 강경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1903년 6월 여순에서 베조그라조프 등 극동정책수립에 전권을 위임받은 수뇌부가 참석한가운데 특별회의를 갖고 한반도정책의 기조를 다음과 같이 정했다. 회의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러시아가 대한제국의 전역혹은 북부 일부지역을 점령하는 것은 이익이 되지 못한다.▲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점령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일본이 점령하면항의는 할 수 있으나 자국군대를 투입해서는 안된다.▲일본의 점령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해만주와 대한제국은 별개의 문제임을 선언하고 독립을 지원해야 한다(1903년 7월4일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이 로젠 주일공사에게 보낸 비밀전문). 대한제국 러·일 분할점령안에 따른 중립지대(완충지대)설정에 대한 극비메모도 흥미롭다. 중립지대 설정에 대한 자료는 외무성에 없으며,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니콜라이 1세의 손자) 대공의 1899년 3월6일자 극비메모에는 아무르강 하구에서 원산만까지,그리고 서울과 제물포를 포함하고 있다(1903년 3월11일 외무상이황제에게 보낸 상주서). 다소 오락가락하긴 하지만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일본으로 넘어간 뒤 러시아는 대한제국의 독립국 유지를사실상 포기한 채 이권 챙기기에 주력했음을 다음의 외무성 훈령은 보여준다. 러시아의 이해관계나 대한제국의 심각한 하소연이 없는한 일본 통감부의 지시에 가급적 관여하지 말 것.일본 당국에 대한 한인의 불만에 개입하지 말고 열강의 최혜국 국민으로서 법적인 권리를 사수하라.열강이 영사관을 개설하는 지역에 러시아영사관 개설의 필요성 여부의 의견을 상신하라.특히 러시아제국 정부에 전폭적인 충성심과 믿음을 보인 고종이 실현불가능한 기대를 갖고 러시아에 요구를해올 때 일본과의 사이가 악화되지 않도록 어떠한 약속도자중하라(1906년 외무상이 대한제국에 부임하는 플란손 총영사에게 내린 훈령). 러·일전쟁에서 패배,일본과 굴욕적인 조약을 맺음으로써 대한제국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한 러시아의 비탄과 몸조심은 더욱 두드러졌다.플란손은 1905년 12월 작성한 비망록에서 “러시아는 지난 10년간 대한제국에서 이룩한 외교적 성공을 잃어버렸다.”고 자탄했다.니콜라이2세는 같은해 11월 고종의 계속되는 독립유지 지원 호소에 대해 “고종 황제에게 ‘패전 이후 혁명세력의 확장으로 더이상 도와줄 수 없다.’는 전문을 보내라.”는 칙령을 외무성에 내렸다. 제정 러시아는 신흥 일본제국주의에 패배해 눈물을 흘리며 물러갔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훗날을 기약하고 있었다.로젠 당시 미국대사는 1906년 외무성에 보낸 문서에서 “러시아가 남으로는 우크라이나에서 동으로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국토를 확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그 영향이 이제 대한제국에까지 미쳤으나 러·일전쟁의 패배로 30∼40년 후퇴했을 뿐이다.”라고 기록했다. 이같은 지적은 40년 뒤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러시아)의 38선 이북 점령으로 현실화됐다. 노주석기자 joo@ ■러 당시 외교라인 대한제국 말 러시아의 한반도정책이 오락가락한 이유는무엇일까? 가능하면 일본이나 청과의 전쟁을 피하되 대한제국에서의 정치적·경제적 이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실리 위주의 외교정책에 1차적인 원인이 있지만 당시 매파와 온건파로 양분됐던 외교라인의 분열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당시 한반도정책의 최고 결정자는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였다.이번에 발굴된 러시아 극비문서에 따르면 그는 1901년 파블로프 대리공사가 “서울에서 개에 물려 광견병 예방주사를 맞으러 도쿄에 왔다.”고 보고하자 “휴가를 줘 충분한 치료를 받게 하라.”는 시시콜콜한 것부터 “일본군이 서해 38선을 월선해 상륙하면 즉각 발포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내릴 정도로 모든 사안을 직접 챙겼다. 니콜라이2세가 극동관련 문제에 대해 보고를 받는 공식외교라인은 외무상의 직접 보고,극동총독의 상주서,일본·청·조선주재 공사들이 황제 또는 외무상에게 올리는 보고서 등 크게 세 가지 경로였다.이밖에 황실근위연대 기병장교출신으로 상서(명예 무임소장관)의 직위를 가지고 있던측근 베조브라조프 극동특별위원장,황족인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뷔테 재무상 등 비선(秘線)보고도 영향을 끼쳤다. 니콜라이2세는 모든 보고서를 빼놓지 않고 탐독한 뒤 자신의 의견을 보고서에 남겨 정책에 반영토록 했다.하지만대한제국의 독립국가 유지,일본과의 분할점령안,전역 점령안 등 상황에 따라 바뀌는 외교정책의 큰 틀에 대해서는개인적인 판단은 갔다. 다음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훈령을 통해 각국주재 공사를 통제하고 황제에게 의견을 올린 외무상이었다.기르스,로바노프,람즈돌프 등 역대 외무상들이 대체로 온건파여서 일본과의 전쟁을 피하자는 주장이 득세한 것으로 드러났다.여기에 뷔테 재무상과 쿠르파트킨 육군상 등이가세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과의 일전불사,한반도 무력점령을 주장한 매파로는베조그라조프 극동특별위원장과 아바자 극동특별위원회 사무총장,플라베 내무상,알렉세이예프 극동총독,두바소프 태평양함대 사령관 등이 대표적이다.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은 극동정책 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1903년 여순에 설치된 극동총독부는 외교권을포함,극동관련 사무의 1차적인 처리권을 보유하고 있었으며,러·일전쟁 발발 직전까지 러시아의 극동정책은 외무성과 극동총독부가 공동으로 관여하는 2중구조로 돼 있었다.극동총독부의 설치와 권한부여는 당시 러시아의 신(新)극동정책을 주도한 베조브라조프 극동특별위원장의 작품이었다. 로젠 주일공사도 일본에서 한반도정책을 원격 조정하는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로젠 남작은 세 차례에 걸쳐 일본주재 공사를 역임했으며 1904년 러·일전쟁 당시에도 일본공사였다.이후 미국대사로 승진,1905년 포츠머스 러·일강화조약 당시 러측 협상부대표를 맡았다. 노주석기자
  • 한나라당 전당대회 이모저모/ 후보수락 연설후 ‘큰절’

    10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정권교체’를 외치는 함성으로 들썩였다.이회창(李會昌)대선후보를 지명하고 7명의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동안 대의원 등 1만 2000명의 참석자들은 연호와 함성,박수로 대선체제의 출발을 자축했다. ●대선후보 지명 안팎= 행사는 철저히 ‘국민과 함께하는정당’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단상에는 주요당직자 대신 소년소녀 가장과 장애인,광산근로자,환경미화원 부부,농민,의사,약사,대학생,낙도주민,영호남 부부 등 ‘국민’ 39명이 자리했다.이 후보의 부인 한인옥(韓仁玉)씨는 단상 대신 청중석에 대의원들과 섞여 앉았다.이 후보의 ‘귀족 이미지’를 털어내고 권력형 비리에 따른 국민들의 박탈감을 파고 들려는 제스처로 풀이된다.이후보는 체육관 옆 잔디밭에 둘러앉아 이들과 도시락으로점심식사를 들면서 “국민과 함께 출발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초대했다.우리 당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증인이 돼달라.”고 당부했다. 대선후보에 지명된 이 후보는 수락연설을 위해연단에 섰으나,감격에 겨운 듯 잠시 목이 메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또 연설을 마친 뒤에는 “국민을 하늘같이 떠받들라는명령으로 알겠다.”며 큰절로 인사,청중들의 환호를 이끌어 냈다. 이 후보 연설에 이어 최병렬(崔秉烈) 이부영(李富榮) 이상희(李祥羲) 의원 등 나머지 3명의 경선주자들이 잇따라등단,단합을 다짐했다. ●최고위원 경선= 후보들은 공식적으로는 유일한 홍보수단인 ‘7분간의 연설’에 온 힘을 쏟았으나,상당수는 이를통해 민주당과 노무현(盧武鉉) 후보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청중도 호응하자,비난의 수위는 갈수록 높아져 질 낮은 표현이 속출했다.특히 “노 후보는 친북좌파”“노무현을 낙동강 오리알로 만들겠다.” “노풍은 선풍기 바람만도 못한 NO풍” “노풍이라는 신품종 벼가 있었으나 쭉정이밖에 나오지 않았다.노풍 뽑아 쭉정이 정권을 만들겠느냐.”는 등 인신공격성 발언도 나왔다. 또한 “새천X,자민X,경실X 등 미친X 셋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거나 “‘홍(弘)3’ 세 뿌리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있다.” “불가사리 정권,도둑정권 잡으러 어민들이 청와대로 간다.”고 한 후보도 있었다.정형근 후보는 “노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새 정당을 만들어 후보를 바꾼다는 말이 여권 내부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진경호 이지운기자 jade@
  • 삼성전자 자사주 매입 1주38만원에 154만주

    삼성전자는 최근 보통주 133만주,우선주 21만주 등 자사주 154만주를 매입,보통주의 경우 주당 평균 38만 176원에 모두 5056억원,우선주는 20만 7345원에 435억원어치를 산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당초 다음달 28일까지 5018억원을 투입해 자사주를 매입할 계획이라고 공시했었으나 단시간에 취득을끝내는 대신 매입금액은 계획보다 500억원 가까이 더 사용했다.
  • [러 외교문서로 밝혀진 구한말 비사] (1)초대 대리공사 베베르의 수기

    1884년 첫 수교,1990년 재수교….한국과 러시아가 외교관계를 맺은지 118년이 지났지만 한·러 관계사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첫 수교 이후 한일합방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대한(對韓)정책은 일본과 더불어 38선 남·북 분할점령,한반도 전역 무력점령 및 보호국화,독립국가 유지안을 중심으로 변화해왔다.남·북 분할점령안은 해방 및 6·25전쟁 이후 현실화됨으로써 한국민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대한매일은 박종효 전 모스크바대학 교수가 지난 10년 동안 러시아 각지에 흩어져 있는 20여개 한국관련 문서보관소를 샅샅이 뒤져 수집한 3000여건의 외교,정치,군사,경제관계 보고서 중 1884년 수교 이후부터 1910년 한일합방을전후한 시기의 미공개 외교문서 1000여건을 해제해 최초로 공개한다. 100여년만에 햇볕을 본 이 극비문서에는 조선주재 초대러시아 대리공사였던 베베르의 수기를 비롯,1·2차 군사고문단 파견의 실상,고종과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가 주고받았던 친서,러시아측의 기획외교로 인한 헤이그밀사 파견 실패 등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새로운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주 2회씩 10회에 걸쳐 계속되는 이번 연재물은 그동안 미흡했던 한·러 관계사의 복원은 물론,우리 근세사에서 잘못 알려진 부분들을 바로 잡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러시아문서보관국 서고에 묻혔다가 100년만에 햇볕을 본베베르의 수기 ‘1898년 전후 대한제국’은 러시아의 대한(對韓)정책의 실상과 당시 우리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베베르는 수기 전반부에서 자신이 공사로 재임했던 1898년 이전의 대한제국의 실정과 러시아의 극동정책에 관해기술했다.후반부에서는 1903년 고종재위 40년을 맞아 경축 러시아특사로 다시 찾은 대한제국이 일본의 경제식민지로 전락한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했다.모두 144쪽 분량으로된 이 수기는 자필로 작성됐지만 이를 보고받은 러시아 외무부가 황제에게 보고하기 위해 타이핑했다. 1895년 10월8일 민왕후가 일본인에 의해 잔인하게 시해된 사실이 알려지자 복수를 위해 전국적으로 봉기가 일어났다.민왕후가 시해당한 후 수개월동안 고종왕은 일본군의감시아래 포로처럼 대궐에 갇혀 있었다. 베베르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전말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그는 사건 발생 당시 현장을 목격한 러시아인 건축기사이자 궁궐경비원이었던 사바틴의 증언서와 자신의목격담을 난수표 암호전문 형식으로 러시아 외무부에 잽싸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니콜라이2세 황제는 이 보고서를 읽고 친필로 “천인공노할 사건이니 좀 더 자세히보고하라.”고 지시했다.이어 극동지역에 주둔하던 아무르군관구 사령관에게 비상경계에 들어가도록 지시했다. 민왕후가 시해당한 후 수개월동안 일본군의 감시하에 포로처럼 대궐에 갇혀있던 고종은 1896년 2월11일 아침 7시30분 여인복장으로 변장하고 왕세자와 함께 부인용 가마 두 대에 앉아 공사관으로 피신해오는 데 성공했다.뜻밖의 정변이 발생한 것이다.고종의 탈출소식을 들은 수천명의 군중이 공사관 담벽 아래로 몰려와 국왕의 탈출을 만세로 환호했다.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해온 이후 모든 국사는 러시아제국의 국기가 게양된 러시아공사관에서 경비해군 160명의 호위 아래 행해졌으며,각부 대신들은 공사관건물 안에 병풍을 친 임시 사무실을 사용했고 본인과 협의하라는 왕명을 받으면 어떤 사건이든 대신과 단둘이서 논의할 기회가 주어졌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 옆에 위치한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할 때까지 1년동안 자신이 대한제국의 국사를 사실상 좌지우지했음을 드러낸 대목이다.이때부터 러시아는 이전에일본이 누리던 영향력을 대신했다.베베르가 분석했듯이 러시아는 1884년 수교 이후 10여년간 대한제국 문제에 무관심했다.당시 러시아의 주된 관심은 청국이었으며 시베리아의 경제 여건을 호전시키는 데 있었다.따라서 러시아공사관의 임무는 청과 일본이 대한제국을 ‘독식’하지 못하도록 소극적으로 방어하는 데 있었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1년은 베베르와 러시아에는 더할 나위 없는 호기였지만 고종에게는 암울한 시기였다.당시 러시아공사관 서기였던 쉬테인은[“그는 두개의 방에 왕세자와 각각 따로 앉아공사관 뜰을 무심히 바라보기도 하고 때로는 서서 방안을 이리저리 거닐었다.가끔씩은 두려움에 떨며 이웃 궁궐(경운궁)에 계신 노대비(명헌태후)에게 문안을 드리려고 몰래 세자와 함께 가곤 하셨다.그리고 남은 시간은 방안에 은둔하고 앉아 계셨다.”]고 외무부에 보고했다.고종의 공사관 생활은 수인(囚人)과다를 바 없었다는 증언이다. 청·일전쟁 후 지방세가 서울로 납입되지 않아 국고는 텅 비어 있었다.일본인 재정관리자와 고문관이 떠나버리자국고에 잔액이 얼마 남았으며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관리들의 월급,특히 군인과 경찰관에게 제때 월급을 지불하기 위해서는 탁지부(재무부)의 재정실정을 밝혀야 했다. 베베르는 영국인 해관총무사 브라운을 재정고문으로 천거해 이 일을 맡겼다고 밝혔다.브라운은 지방에서 올라온 수입을 올바르게 수령,장부에 기입하고 지출을 줄여 관리들에게 월급을 지불할 수 있었으며,이때부터 관리에 대한 통제가 이뤄졌다고 기록했다.1896년말 국고는 1,660만엔의여유가 생겼으며,일본에서 차관으로 들여온 300만엔 중 100만엔을 상환하고 이듬해 가을 또 100만엔을 갚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고종이 환궁한 후 신변안전책으로 단행된 조선군의 개편작업에도 베베르가 깊숙이 개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고종왕의 요청을 받아들여 시베리아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군에서 2차에 걸쳐 군사교관단을 초청,대궐시위대 2개 대대를 교육시켰으며 러시아식 군운영체계를 도입했다.여타의 대한제국군들은 러시아교관단이 관리하는 대대로 들어오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베베르는 러시아국가회의 체제로 의정부의 개편,13개 도와 342개 군으로의 행정구역 분할,범법자에 대한 처벌 법규 시행,재정고문 알렉세예프 파견 요청,러시아어학교 개교,러청은행 지점 개설 등 자신의 업적을 열거했다.이 기간동안 서북 석탄광개발과 압록강,두만강변의 벌목이권을러시아가 따낸 사실도 털어놨다. 그는 대표적인 친한파인사로 알려졌지만 고종과 황실인사는 물론,한국과 한국인을 혹평하기도 했다. [대한제국을 떠난 지 5년만에 다시 와보니 거리의 남루한복장은 이전보다 두배나 많았다.…고종황제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엄비(嚴妃)를 따라 미신을 신봉하고 있었다.…정치적인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일본인들이 다시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한국인은 러시아,일본 기타 열강의 국제관계 및 그들의 정치적 의도를 제대로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나라가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제대로 몰랐다.…강대국과 종속관계에 놓여 독립심이 박약하고 의타심이 강하다.…고종은 아주 호감을 주는 인품이지만 많이 쇠약해졌으며,공적과 능력에 따라 관직에 임용되지 않고 뇌물의 액수에 의해 결정됐다. 1903년 다시 서울에 와보니 일본인들은 대한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면서도 정치,경제적 예속화를 촉진시키는 데모든 수법을 동원하고 있었다.한국인들은 일본의 속셈을알지 못했고,러시아는 법적으로 그런 정책을 중지시킬 권한을 보유하고 있지 못했다.일본은 은밀하면서도 조직적으로 대한제국의 조정과 국민자산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의 영향력이 확산될 수밖에 없는 7가지 이유를열거하면서 대한제국이 조만간 일본의 정치적 속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대한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2만명을 넘으며,일본인 1인당 한인 5명이 식모,사무실 서기,잡부,납품상인 등으로고용되다시피 했다.…대한제국 연간 무역액의 72%를 일본이 차지할 정도였다.…1898년 9월 경부선철도 부설권 협정서 중 ‘철도에 필요한 역사,창고 등 대한제국측이 제공하는 부지는 철도회사에 귀속되며 역사는 필요한 곳에 건설하되 역 앞에는 일본인 이외 타민족의 거주를 금한다.’는 불평등 조항 때문에 철도부설과 동시에 대한제국의 철도및 역사주변 땅은 일본의 소유물로 전락했다.…일본은 대한제국과 다른 국가들이 통신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서울∼부산∼일본해저 전신선을 통제했다.…개항지마다 일본은행이 개설돼 일본엔화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노주석기자 joo@ ■베베르는 누구 우리나라에 부임했던 역대 외교관 중 초대 러시아 대리공사 겸 총영사였던 베베르만큼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외교관은 없었다. 베베르는 1885년부터 1897년까지 12년 동안 공사로 재직하면서 고종의 최측근 인사로 통했다.그는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머문 1년 동안 친러시아내각을 출범시키는 등 대한제국의 국정을 사실상 좌지우지했다. 고종은 베베르가 멕시코 공사로 발령나자 ‘이임이 유감스럽다.장기간 유임시켜달라.’는 친서를 니콜라이2세에게 보냈다.니콜라이2세는 고종 재위 40주년 경축식(1902년)에 당시 야인이던 베베르를 사절단장으로 특파하기도 했다. 이번에 발굴된 문서 중에도 ‘베베르는 고종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텁고 한국인들에게 지금도 좋은 평가를 받고있다.’‘베베르를 경축사절단장으로 결정한 것은 고종황제에게 가장 기쁜 일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고종은 서울에 온 베베르를 자문역으로 붙잡기 위해 니콜라이2세에게 서울체류 연장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베베르에 대한 학계의 연구실적은 전무하다시피하다.그의 출생연도와 학력,수기 등도 이번의 문서 공개를 통해 처음 알려지게 됐다. 베베르는 1841년 6월5일에 태어난 독일계 러시아인.부친은 루터교 선교사였다.페테르부르크 제국대학 동양어학부를 졸업하고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5년동안 중국어 공부를 했으며 이후 톈진영사와 일본 총영사를 거쳐 조선주재초대 대리공사로 부임했다. 베베르는 러시아 외무부와 중국,일본 등 주변국 외교가에서 ‘친한파’로 낙인찍힌 데다 수뢰사실(2만엔)이 외무부에 알려지는 바람에 서울을 떠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노주석기자 ■박종효 前모스크바대 교수 “러 문서국 20곳서 10년간 자료 뒤져” “러시아에 산재한 20여개의 국립문서보관소에는 한국과관련된 방대한 양의 비밀문서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돼 있습니다.러시아가 한국 근대사와 현대사에 미친 영향을 감안하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러시아 문서수집 및 번역 부문에서 국내 최고의 권위자로 꼽히는 박종효(朴鐘孝·65) 전 모스크바대학 교수는 지난 90년 한·러 재수교 직후 러시아문서보관소가 외국인에게도 개방되자 가장 먼저 그곳으로 달려갔다.문서보관소는전세계에서 몰려온 학자들로 만원사례를 이뤘지만 한국관계문서를 찾는 학자는 박 전 교수뿐이었다. “문서보관소에 소장된 문서를 조사,열람한 뒤 복사하려면 기록부에 이름을 남기게 되는데 한국 학자들의 이름은본 적이 없어요.” 러시아어와 러시아사,한국사,한·러관계사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학자들이 드문 탓도 있었지만 소장된 문서가외교,군사,경제 등 전문 분야의 필사본이어서 웬만한 학자들은 엄두를 내기도 힘들었다.산더미처럼 쌓인 문서보관소의 서고를 뒤져 한국관련 문서를 찾아내기란 숨은 그림찾기나 마찬가지였다.최근에야 러시아어와 역사를 전공하는소장학자 몇명이 한국관련 자료 수집작업에 합류했다. 박 전 교수는 99년부터 2년 동안 국제교류재단으로부터연구비를 지원받아 문서찾기와 번역,해제작업을 해왔으며,조만간 ‘러시아국립문서국 소장 한국관련 문서 요약해제집’이란 책을 펴낼 계획이다. “러시아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된 비밀문서의 목록을 총망라,문서목록해제집을 간행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일입니다.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군사문서보관소,연방문서보관소의 서고에 숨겨져 있던 문서들을 분석해 보면 러시아가 견지해온 한반도정책의 과거는 물론,현재와미래까지 유추할 수 있습니다.” 박 전 교수는 러시아측의 공개 제한조치로 ‘극비문서’들이 소장된 크렘린문서보관소와 KGB문서보관소에 접근할수 없었던 점을 아쉬워했다.그는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한 뒤 소련 아카데미 러시아역사연구원에서 박사학위와 교수자격(독토르)을 땄고 모스크바대학 객원교수로대학원생들에게 한·러관계사를 강의했다. 노주석기자
  • KT 새달까지 민영화추진

    정부는 다음달까지 KT를 민영화하더라도 전문 경영인 체제를 유지토록 할 방침이다. 5일 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정부는 보유중인 KT 지분매각때 30대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매입 한도를 15%까지늘려주되 경영권 장악을 허용치 않기로 했다. 정부는 민영화추진위원회 서면결의를 통해 이같은 방안을 마련하고 6일 기획예산처 장관의 승인을 거쳐 최종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의 민영화 방안에 따르면 대기업이 KT에 대주주로 진출하더라도 KT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사외이사 역할을 크게 강화,선진적 경영구조를 만들 계획이다. 이는 삼성이나 LG·SK 등 정보통신 분야의 대기업들에 KT 경영권 장악을 불허함으로써 KT의 공익적 성격을 유지하고,경제력 집중의 폐해도 막겠다는 두 가지 의도를 담고 있다. 대기업들은 정부의 지분 28.37%(8857만 4429주) 가운데 5%까지를 우선주로 사고,그 두배인 10%까지를 교환사채로살 수 있게 되면서 KT지분 매각 입찰에 관심을 보여왔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방침에 따라 이 기업들의 최종 입찰 참여여부가 다시 불투명해졌다. 정부는 또 최고경영자(CEO)를 해임하려면 이사회 의결 외에 주주총회 특별결의도 거치도록 해 대주주들의 해임권전횡을 제한하도록 했다.아울러 현재 상임 이사 6인,사외이사 7인으로 구성된 이사회에 대해서는 사외 이사를 두명 더 늘리기로 했다. 정부는 대표이사 사장이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는 현 제도를 고쳐 비상임 사외이사 가운데 한 명을 이사회 의장으로 뽑아 사장의 전횡을 견제토록 할 방침이다. 박대출기자 dcpark@
  • 오징어잡이 인력난 심각

    경북 동해안 오징어 채낚기 어선의 선주들이 다음달부터시작되는 오징어 성어기를 앞두고 선원 확보에 어려움을겪고 있다. 2일 포항시 구룡포지역 채낚기 선주협회 등에 따르면 오징어잡이 전진기지인 구룡포항에서 연안과 근해 등지로 출어하는 20∼130t급 어선 100여척에 필요한 선원은 1000여명이지만 지금까지 600여명만 확보된 상태다. 이는 30∼40대들이 위험부담이 있는 선원직을 기피하고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연안 조업에 나서고 있는 진영호(29t급·선주·최상용·56)의 경우 자동조상기 16대가 설치돼 7∼8명의 선원이 필요하지만 확보된 인원은 5명 뿐이다. 오징어잡이 선원들의 월 평균 수입은 기본급 51만원과 오징어 어획량에 따른 성과금 등을 합쳐 150만∼200만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주협회측은 부족한 선원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해 수협을 통해 외국인 선원 84명을 요청했다가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 취소하기도 했다. 영일수협 관계자는 “선원 기피 현상은 지난 80년대 이후 심화되고 있으며 선원들의 평균 연령도 50대에 달해 정상적인 조업에 차질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포항 김상화기자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2000-9595)
  • 대우차 매각 본계약 체결

    대우자동차가 4년여간의 매각협상 끝에 마침내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 팔렸다. 매각가격은 당초 양해각서(MOU)에서 제시한 20억달러보다2억 6100만달러 줄어든 17억 7300만달러로 확정됐다. 대우차는 30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잭 스미스 GM 회장과 이종대(李鍾大) 대우차 회장,정건용(鄭健瑢) 한국산업은행장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우차를 인수하게 될 신설법인(GM대우모터스 오토 앤드 테크놀로지 컴퍼니) 설립을 위한 본계약을 맺었다. 본계약서에 따르면 GM 및 GM 제휴사들이 4억달러,채권단이 1억 9700만달러를 현금 출자해 신설법인을 설립한 뒤 지분은 GM이 42%,채권단 33%,GM 제휴사들이 25%를 각각 갖는다. 신설법인은 연평균 3.5%의 배당이 보장되는 12억달러 상당의 우선주를 발행,지급해야 한다.이와 함께 신설법인이 대우차의 국내외 채무 5억 7300만달러를 인수하고,채권단은 20억달러의 장기 운영자금을 신설법인에 대출해 주기로 했다.신설법인이 인수할 자산은 국내 창원·군산공장과 베트남하노이공장 등 3개 생산시설과 오스트리아·베네룩스·프랑스·독일·이탈리아·푸에르토리코·스페인·스위스·네덜란드 등의 9개 판매법인 등 12개다. 고용은 현재의 수준을 유지하고 국내외에서 판매한 대우차의 사후보증을 신설법인이 책임지기로 했다. 전광삼기자 hisam@
  • 영등포구 주차위반 과태료 상습체납자 ‘거주자 우선주차’ 배제

    앞으로 영등포구에서 주차위반 과태료를 상습 체납하면 주차에 불이익을 받게 된다. 영등포구(구청장 권한대행 박충회)는 30일 거주자 우선주차구획 배정 과정에서 주차위반 과태료 상습체납자를 제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갈수록 누적되는 주차위반 과태료의 징수율을 높이고 구민들에게 준법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고육책으로 마련한 처방이다. 구는 이에 따라 주차구획 배정을 동사무소에 신청한 주민가운데 3회 이상 주차위반 과태료 체납여부를 조회해 우선리스트를 작성할 예정이다. 구는 이를 근거로 오는 10일까지 과태료 체납내역 및 배정제외 예정안내문을 발송하고 20일까지 납부토록 독려할 계획이다. 이후 납부여부를 가려 6월1일부터 계속 체납할 경우 배정에서 제외할 방침이다. 영등포구의 3회 이상 주차위반과태료 체납자는 모두 1302명이며 이들의 과태료는 모두 4억 9033만원이다. 구 관계자는 “주차위반을 해놓고 배짱으로 과태료를 내지않은 경우가 많아 이같은 제도를 도입하게 됐다.”면서 “주차질서확립과 과태료 징수율 제고 등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덕현기자 hyoun@
  • [씨줄날줄] 노무현의 운명론

    운명(destiny)은 ‘사전에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뜻이다.‘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일이 벌써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일단 ‘운명론자’의 길로 발을 디디는 것이다. 실제 넘기 어려운 높은 벽에 부딪쳤을 때 인간은 비로소운명의식에 눈을 뜬다고 한다.운명론의 뿌리는 깊고 가지도 다양하다.‘사람이 아무리 선행을 베풀어도 신이 미리예정한 멸망을 바꿀 수 없다.’는 기독교적 구원론에서부터 ‘인간사 모두가 운명의 힘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소박한 신앙의 숙명론도 있다.모든 노력을 해봤자 헛일이라는 허무주의(니힐리즘) 역시 바탕에는 운명론을 깔고 있다. 운명을 인정하면서도 적극적인 탈출의지를 강조한 그리스의 에피쿠로스학파도 있다.실존주의자들은 살아봤자 허무하지만 존재의 결단으로 자유를 찾자고 주장한다. 최근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알려지지 않은’ 면모가 집중 소개되고 있다.더 첨부할 요소가 있다면 노 후보의 운명론이다.한 기자는 대선주자 8명을 집중 해부한책에서 “노후보는 운명론자”라고 지적한 대목이 눈길을끈다.이어 그 기자는 “노 후보는 운이 따라줘 대통령이되면 좋고 대통령이 되지 않아도 후회는 없다는 다분히 운명론적 사고를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노 후보는 잔재주를 피우지 않아도 자신에게 운이 따르면 큰 일을 할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노 후보가 갖고 있다는 운명론이 어떤 동기로 형성됐을까.‘비바람 몰아치는 황야에서 잡초처럼 성장해온’ 그는 정말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노 후보의 운명론이 얼마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가늠할수 없다.다만 그가 가망없는 지역을 골라 세번이나 출마해 낙선한 것이나 유력신문을 적으로 삼으면서 노골적인 공격을 퍼부은 심정에는 ‘잘 되면 좋고,안 되도 그만’이라는 운명론이 작용했다는 인상이 짙다.앞뒤를 잰다면 하기어려운 행동이 빈발한 탓이다. 이제 노 후보는 재집권을 노리는 집권여당의 대선주자다.그가 설령 운명론에 기울어 있다고 해도 ‘해보다 안 되면 말고’식으로 행동할 단계는 지났다.그가 낙선하면 그만이지만 대통령으로 선출될 경우 국민의 운명을 바꿀 지도자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그가 설혹 운명을 믿는다 해도 앞으로는 적극적인 의지와 판단력에 따라 행동해야 할 것이다. [이상일 논설위원bruce@
  • “오마니…” 남북가족 금강산 해후

    한반도 최고의 경승지인 금강산에서 마침내 남북의 혈육이 이산의 한을 풀었다.제4차 이산가족 상봉 남측가족 99명은 28일 저녁 금강산여관 2층 로비에 마련된 단체상봉장에서 모두 3시간40여분 동안 북측 가족 183명을 만나 반세기 넘게 삭여온 혈육의 정을 나눴다. 이번 상봉은 지난해 10월로 예정됐다 무산된 후 다시 성사된 것이어서 기쁨이 더욱 컸다.이로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지난해 2월26∼28일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이뤄진제3차 이산가족 상봉단 교환 이후 14개월 만에 재개됐다. 이날 오후 5시27분부터 1시간40여분 동안 진행된 단체상봉에서 당초 방북단에 들었으나 병세 악화로 방북을 포기한 뒤 지난 26일 숨진 어병순(93) 할머니의 딸 이부자(李富子·62·전북 남원)씨가 북측 언니 이신호(66)씨와 통한의 상봉을 했다. 한국전쟁 이후 50여년 동안 수절해온 정귀업(鄭貴業·75·전남 영광) 할머니는 꿈에도 그리던 남편 임한언(74)씨와 감격적인 재회를 했다.그러나 67년 납북된 풍복호의 선주인 최원모(崔元模·92)씨의 부인 김애란(金愛蘭·79·충남 서천) 할머니는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남편 대신 한국전쟁 때 헤어진 여동생 김순실(67)·덕실(58)씨를 만나는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북측 가족 183명과 상봉한 남측 이산가족 99명은 단체상봉에 이어 북측 단장인 최창식 북한 적십자회 중앙위 부위원장 주최의 동석만찬에 참석한 뒤 금강산에서의 첫밤을보냈다. 앞서 남측 가족들은 이날 오후 3시38분쯤 장전항에 도착,선상호텔 ‘해금강’에 여장을 풀었으며 방북 이틀째인 29일 개별상봉과 공동 중식,삼일포 공동참관 등으로 북측 가족과 회포를 푼 뒤 30일 귀환한다. 금강산 공동취재단
  • 이산상봉/ 납북남편 대신 동생 만난 김애란할머니

    “너희들 아버지가 누구야?” “김백련이에요.”“허허맞구나,너희들이 내 동생이구나.” 67년 납북된 풍복호의 선주 최원모(崔元模·92)씨의 부인김애란(金愛蘭·79)씨는 반세기 만에 만난 여동생 순실(67) ·덕실(58·아명 뽀또)씨의 얼굴을 부여잡고 입맞춤을했다.최씨는 연신 눈물을 훔치며 동생들의 손을 쓰다듬으면서도 남편의 소식은 묻지 않았다.이번 상봉 때 혹시 남편을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북쪽으로부터는 ‘확인불가’라는 대답만 받았다. “언니는 기쁜 날 왜 눈물을 흘려?” “내가 무슨 눈물을흘린다고 그래.” 어릴 때 ‘복동이’로 불리다가 ‘뽀또’라는 애칭까지얻었다는 덕실씨는 “언니는 꼭 어머니 같애.”라며 언니의 주름진 손을 마주잡고 놓을 줄을 몰랐다.덕실씨는 연신옷고름으로 언니의 눈을 닦아 주다가는 결국 자신의 눈물도 훔쳤다. 맏언니인 김애란 할머니가 배가 아프다는 말에 동생들은“언니 그저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아야 돼요.”라고 언니의 배를 쓰다듬었다.손자 얘기가 나오자 그제서야 웃음꽃이피어났다. 금강산 공동취재단
  • 월드컵 민·관 마케팅 불꽃

    ‘2002 월드컵,바이 코리아(Buy Korea)’ 월드컵 대회를 한달 남짓 앞두고 정부와 기업의 홍보·마케팅 활동이 본격화하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26일 세계 50여개 기업의 CEO(최고경영자)와 경제 전문가들을 초청,세미나와 월드컵 개막식에 참가토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산자부는 수파차이 세계무역기구(WTO) 차기 사무총장을비롯해 미국 다우코닝사의 게리 앤더슨 회장,독일 BMW사의 헬무트 판케 경영총괄사장,프랑스 알스톰사의 에띠앙 최고경영자,독일 알리안츠사의 쉴테 놀르 회장 등 50여명의세계적 기업 CEO들이 대거 한국을 찾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자부 관계자는 “한국에 투자 의사를 가진 기업들과 추가 투자 가능성이 높은 기업의 CEO들에게 초청장을 발송,상당수 기업으로부터 긍정적인 응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에 초청된 CEO들은 다음달 30일 산자부가 주관하는세미나에 이어 31일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열릴 개막식에참석할 예정이다. 특히 본선 진출국 가운데 한국에서 경기를 갖는 국가의 CEO들에게는 자국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입장권을 주기로했다. 이에 따라 정부 초청으로 방한하는 CEO들은 3∼4일에서길게는 10일 이상 한국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산자부는 이들을 대상으로 우리나라의 경제 여건을 소개하고 다양한투자 유치활동을 벌일 방침이다. 민간 기업들도 월드컵 기간에 해외 주요 바이어를 대거초청,다양한 마케팅과 홍보를 펼친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최근 자사 판매 신장에 크게 기여한 해외 딜러 200여명을 초청,자국 경기 관람과 함께 울산 공장 등 산업현장을 시찰토록 할 계획이다. SK그룹도 에너지·화학·정보통신 관련 해외 인사들을 초청해 주요 경기를 보여주고 산업현장을 방문하는 스케줄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에너지·화학 관련 업체 간부 40여명을 초청,개막식 행사를 관람토록 하고,울산 컴플렉스에 관광코스를 마련하는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개막식 초청 대상은 중국의 사이노펙(sinopec),패트로차이나(petro China),크누크(cnooc)사 등 석유화학업체 간부들과 정부 관료들이다. 이 회사는 또 6월 13일 중국-터키전에 중국 당·정부 인사들과,신식산업부,차이나 모바일,차이나 유니콤,랴오닝성,푸젠성 간부들을 초청할 예정이다. 조선업계도 해외의 주요 선주사를 비롯해 거래업체 관계자들을 대거 초청,‘회사 알리기’에 적극 나선다. 정몽준(鄭夢準) 월드컵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이 고문으로 있는 현대중공업은 ‘영업용’으로 1000여장의 경기 입장권을 확보,선박·플랜트·엔진 등 6개 사업부별 해외 거래업체 관계자들을 초청할 계획이다. 이밖에 삼성중공업은 월드컵 기간과 맞물려 있는 선박 명명식에 선주사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100여명의 바이어를초청하기로 했다.대우조선해양도 주요 선주사 관계자 50∼60명의 월드 참가여부를 확인하느라 분주하다. 전광삼 강충식기자 hisam@
  • 10주년‘4·29 폭동 백서’발간

    미주 이민 100년 사상 최대의 비극으로 기록되는 4·29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의 진실을 밝힌 백서가 나왔다.4·29협회(회장 홍사일)는 25일 (현지시간)로스앤젤레스 호텔에서 출판기념회를 열고 ‘4·29 폭동 백서’를 공개했다. 폭동 피해자인 홍 회장은 “10년전 일어난 LA폭동의 진실을 밝힘으로써 동포사회의 화합을 이루고 후세에 민족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백서를 편찬했다.”고 말했다. 대표집필자인 이선주 크리스턴 헤럴드 주필(전 한국인권문제연구소 회장)은 “폭동의 원인은 흑백갈등과 빈부격차였다.”고 말했다.그러나 미국 언론이 이를 마치 한흑문제로 오도해 타인종 집중 거주지역에서 ‘중간인’ 역할을했던 한인 상인들이 흑인사회의 표적이 됐다고 지적했다. 250쪽 분량의 백서는 폭동 당시의 관련기관 및 단체들의기록,피해자들의 증언,폭동진행 과정과 사후 대책,폭동현장 일지,전문가 대담과 논문 등을 담고 있다. 백서에 따르면 4·29 폭동은 미국에서 발생한 12번째 흑인 소요사태로 사우스 센트럴 지역을 포함해 LA에서 피해를본 한인업소는 2,800개에 달한다.이 지역 전체 업소는1만여개다. LA의 총 피해액 7억1000만달러중 한인 피해액은 약 4억달러로 추산됐다.전체 희생자는 1명의 한인을 포함해 사망자 58명,부상자 2383명이다.당시 미국 전체인구 구성은 백인 70%,흑인 12%,히스패닉 9%,아시아 3%,기타 5%이내였다.한인은 전체인구중 0.3%다.당시 LA경찰국 산하에는 7000명(현재는 9000여명)의 경찰관과 캘리포니아 고속도로 순찰대원 750명이 있었다.백서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왜한인들이 표적이 됐는지 원인을 확실히 모르고 있다.”면서 “그때의 충격으로 육체·정신적 상처를 입어 실의에빠져 있거나 목숨을 잃은 동포들이 있으며,고국으로 돌아간 사람도 몇백명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주현진기자 jhj@
  • 대구·경북 경선 안팎/ 昌 TK서 ‘盧風방어진’ 구축

    대구·경북 경선에서 이회창(李會昌) 후보가 5개 지역경선중 가장 높은 83.7%의 득표율을 기록하자 이 후보측은 환호한 반면 다른 후보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후보는 인사말을 통해 “대구·경북의 동지 여러분이 지켜주신 이회창이 우리모두의 꿈인 정권교체를 반드시 이루겠다.”면서 “대선에서 승리해 무도한 이 정권을 끝내고 조국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날 압승으로 사실상 당내 경선의 대세를 굳혔다.특히 TK지역 압승은 그에게 있어서 다른 지역에서의 승리와 또다른 의미를 지닌다.동진(東進)하며 영남권을 위협하는 노풍(盧風)에 맞서 일단 ‘방풍림(防風林)’을 구축하는데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반면 최병렬(崔秉烈) 후보는 “어제 오후부터 오늘 오전이라는 짧은 시간에 날 지지하는 것으로 파악했던 많은 표가사라졌으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언론이 더 잘알 것”이라면서 ‘줄세우기’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이부영(李富榮) 후보도 “원천적으로 80m 앞에서 출발하는 사람과 100m를 꼬박 뛰는 사람이 있는데 심판이고 뭐고 80m 앞에서 뛰는 사람의 손을 들어주고 다른 조건도 그에게만 유리한 상황”이라며 비판했다. 이에 앞서 이날 경선에는 ‘이회창 살생부’논란이 일었다.이 후보측이 각 지구당 위원장들의 득표활동을 분석,‘충성도’를 평가하고 있다는 최 후보측의 주장을 둘러싼 파문이다. 최 후보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 후보측이 극비리에 지구당위원장 살생부를 작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각 위원장들이 얼마나 충성스럽게 득표활동을 벌이는 지를점검해 동향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이에 이후보의 선대본부장인 신경식(辛卿植) 의원은 “대의원들의노풍(盧風) 견제심리가 이 후보에 대한 몰표로 이어진 것”이라며 최 후보측 주장을 일축했다. 한편 한나라당은 경선직후 행사장에서 800m가량 떨어진 경북도청 입구까지 ‘대통령 세아들 및 부패정권 청산촉구’가두행진을 벌였으나 4명의 경선주자는 개인일정 등을 이유로 불참했다. 대구 진경호기자 jade@
  • 정치 뉴스라인/ “”노무현 내주초 YS방문””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주자인 노무현(盧武鉉) 후보는 오는 28일 대선후보로 최종 확정되면 내주초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을 방문,협력을 요청할 것이라고 신상우(辛相佑)전 국회부의장이 22일 밝혔다. 그러나 노 고문의 유종필(柳鍾珌) 공보특보는 “‘당 대선후보로 확정되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을 찾아뵙고 얘기를 들을 것’이라고 누차 얘기해 왔을 뿐,일정을 조정중이거나 확정된 게 없다.”고해명했다. ●한나라당 소장파 원내외 위원장 모임인 미래연대(공동대표 이성헌·오세훈)가 당 최고위원 경선에 초선인 김부겸(金富謙·경기 군포) 의원을 단일후보로 추대하기로 결정했다.김의원은 23일 출마선언을 한다. 미래연대는 21일 오후 최고위원 경선참여 방식을 집중 토론,이같이 결정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 삼성그룹 시가총액 93조5000억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이 99년말보다 무려 30조원 가량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22일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주가지수가 가장 최근에 1000포인트를 돌파했던 99년 12월28일(1028.07)과 지난 19일(923.95)의 시가총액을 비교한 결과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이이 기간 중 30조 25억원(증가율 47.2%)이 늘어 93조 5717억원을 기록했다.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6.87%였다. LG그룹도 1조 2993억원이 는 20조 7449억원이었으나 SK그룹은 10조 314억원이 준 29조 9761억원에 그쳤다.이 기간중 거래소시장 전체 시가총액은 349조 5040억원에서 348조 2299억원으로 0.36%가 줄었다. 거래소는 99년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른 데는 IT(정보통신)업종의 영향이 컸지만 최근에는 경기회복에 힘입어 내수관련 업종 등 실적개선주가 주가를 견인해 통신업종의 시가총액이 상대적으로 줄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업종별로는 전체 18개 업종 중 14개의 시가총액이 늘었다.기계(116.52%)와 운수장비(111.55%) 업종의 시가총액은 100% 이상 급증했다.반면 통신업의 시가총액은 SK텔레콤과KT(옛 한국통신)의 부진으로 58.54% 격감했다. 시가총액 상위 15개사(우선주 포함) 중 KT와 SK텔레콤,한국전력,담배인삼공사의 시가총액은 줄었으나 삼성전자를비롯한 나머지 11개사는 늘었다.회사별로는 삼성전자가 6.07%로 가장 증가폭이 컸고 현대자동차(2.31%),삼성SDI(1.09%)가 뒤를 이었다. 주병철기자
  • [신경영 트렌드] (16)메리어트호텔의 성공

    호텔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개관 2년도 채 안된한 외국계 특급호텔이 기존 호텔들을 제치고 선두그룹에 올라섰기 때문이다.세계적 호텔체인인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이 2000년 9월 서울 강남 반포동에 개관한 ‘JW메리어트호텔서울’.치열한 경쟁 속에서 단기간에 정상급 호텔로 자리매김해 업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후발주자의 맹공] 이 호텔은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10여년만에 처음 들어선 특1급 호텔이다.호텔을 지은 센트럴시티그룹과 ‘율산신화’의 주역 신선호(申善浩) 회장 등 국내자본이 지분 80%를 갖고 있지만 20%를 투자한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에 경영권을 넘겼다. 개관 당시만 해도 고속버스터미널 부근이라는 좋지않은 입지조건 때문에 주목받지 못했다.그러나 차별화된 시설과 서비스로 최정상 비즈니스호텔로 키우려는 직원들의 노력이객실점유율과 객실평균단가,식음료 부문 등에서 업계정상으로 올려놨다. 특히 매출과 직결되는 객실점유율이 초고속 성장을 이뤄다른 호텔들을 긴장시키고 있다.개관한 지 얼마 되지않아497개의 방이 꽉 찬(객실점유율 100%) 적도 있다.개관 1년만에 객실점유율이 평균 80%선으로 선두권을 유지했다.비수기에도 70%를 넘어선다.대부분 경쟁호텔들이 비수기때 50∼60%대를 유지하는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뷔페 등 8개 레스토랑은 고정고객 확보로 매출이 올들어지난해보다 25% 늘었다.웨딩사업도 고속터미널·지하철·리무진버스 등을 모두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을 살려 매월 10건이상 유치하고 있다. 개관 전부터 판촉직원들이 서울 시내는 물론,분당 등에 있는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홍보하고 판촉활동을 벌인 것이 정상으로 올려놓은 원동력이 됐다.객실 평균면적(12평)이 다른 호텔(9평)보다 넓고 최첨단 인터넷서비스를 제공,전체투숙객의 75% 이상이 비즈니스 고객들이다.재방문 고객도 35%에 이르는 등 단골고객도 늘고 있다. [차별화된 마케팅이 승부 갈랐다] 계절별 패키지 상품과 마일리지 서비스인 ‘메리어트 리워즈(Rewards)’는 메리어트만의 자랑거리다.이 호텔의 휘트니스 클럽은 3개층에 연면적 4300평에 이르는 아시아 최대 규모.최고급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온천과 암벽등반,스쿠버풀,스파마사지 등을 즐길수 있어 인기다. 가격을 탄력적으로 운용하기 때문에 시기를 잘 고르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올 초 겨울패키지상품이 하루에 100여개 이상 팔려 비수기라는 말이 무색할정도였다. 메리어트 체인을 이용할 때마다 포인트가 쌓여 무료숙박이나 항공권 마일리지로 연결할 수 있는 ‘메리어트 리워즈’는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고객보상 프로그램으로 인정받고 있다.연간 숙박일수에 따라 실버·골드·플래티늄 멤버가 되면 할인혜택이나 선물을 받을 수 있다. 관계자는 “지난 1년간 전체 고객의 45%가 마일리지 서비스를 이용했으며 단골고객 증가에 큰 몫을 하고 있다.”고밝혔다. [직원과 고객은 하나] 직원들에 대한 끊임없는 교육과 투자가 고객서비스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객이 ‘내 집처럼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마음에서 우러나는 서비스를 강조한다.지난해 8월 개관 1주년 기념행사때에는 고객들을 연사로 초청,고객의 불만 등을 직접 들었다. 고객별 선호조사결과를 데이터베이스화해 그 고객이 다시 방문했을 때 불편을 줄여주고 있다. 직원의 소리에 항상 귀기울이는 ‘열린 경영’도 착실히실천하고 있다.매월 각 부서 직원들이 총지배인을 만나 의견을 나누고,건의·불만사항을 직접 써서 제출하는 ‘스피크 아웃’제도를 시행 중이다. 김미경기자 chaplin7@ ■마이클 니스키 총지배인에 듣는다 “직원을 잘 보살피면 그들이 결국 고객을 더욱 잘 보살피게 됩니다.” JW메리어트호텔서울의 마이클 니스키(43) 초대 총지배인은 ‘직원 우선주의’가 최고의 경영이념이라고 소개했다.직원에 대한 교육과 신뢰만이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보장한다는 것.아울러 호텔업은 ‘사람장사’이기 때문에 고객의 마음을 제대로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니스키 총지배인은 호텔 골조만 세워져 있던 99년 한국에부임했다.개관 준비부터 직원채용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길이 안닿은 곳이 없다.성공신화의 주역인 셈이다. 17세때 미국 메리어트호텔의 식음료부 말단직원으로 호텔업계에발을 들여 놓은 뒤 98년에는 싱가포르 메리어트호텔총지배인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기도 하다. “사업 초기엔 택시를 타고 ‘메리어트호텔로 갑시다.’하면 호텔위치를 아는 운전기사가 거의 없었습니다.그만큼 인지도를 높이는 일이 시급했지요.” 메리어트는 전 세계 60여개국에 2400여 호텔·리조트 체인망을 갖추고 있지만 한국에는 첫 진출이어서 유수의 특급호텔들과 경쟁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그는 “객실은외국고객이 많고 식음료 부문은 내국인이 많아 양쪽 모두를공략한 마케팅이 효과를 본 것같다.”며 “덕분에 객실점유율과 매출이 최고 수준으로 성장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특히 적재적소에 숙련된 직원을 배치,단골고객을 늘리는 마케팅에 심혈을 기울였다. 니스키 총지배인은 개관 직후 직원 600명을 직접 면접해뽑았다.그는 “경력보다는 뜨거운 열정이 있는 지원자들을선택해 ‘메리어트 정신’을 불어넣었다.”며 “최고의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된 직원들 덕분에 문을 연 지 2년여만에자리를 잡게 됐다.”고 자랑했다.그는 “월드컵을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으며 대회기간중 객실점유율을 95% 이상으로 올릴 계획”이라며 “메리어트서울을 아시아에서는 물론,세계에서 가장 좋은 호텔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미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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