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선종] 어찌 이런 세상을 두고 그 날개를 거두어 가셨는지
오랜 헤맴이었습니다. 헤맴 끝에서 추기경님, 당신의 부음을 듣는군요. 지금쯤 어디까지 가셨는지요? 거기 하늘은 어떠신지요?…… 추기경 님, 당신의 대답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지금 날 인터뷰하는 거요? 허허허” 그런 말씀 말입니다.
오랜 헤맴 끝이란 저의 혼(魂)의 갈증 같은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추기경님께선 그런 저를 보시면, 또 저에게 “날 인터뷰하려는거요? 어떤 말을 듣고 싶소.” 하고 말씀하시면서 저를 부끄럽게 하시겠지요.
정말이지 요즘은 저를 이끌 한마디 말씀이 그립습니다. 추기경님은 그런 말씀을 자주 하시는 분이셨죠. 문제가 있는 우리 사회의 한가운데 서서 언제나 기도하시곤 하셨습니다. 이제 그런 말씀을 들을 수 없다니…….
추기경님의 말씀 생각을 하자니, 추기경 님, 당신은 날개 큰 한 새이셨다는 마음이 마구 달려와 가슴을 때립니다. 그 새의 이름은 붕(鵬), 그 날개의 길이는 삼천 리가 된다지요. 구만 리나 되는 하늘 높이를 난다는 그 새, 장자에 의하면 그 새는 등지느러미가 몇천 리나 되는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변하여 된 새라고 하지요. 그런 붕(鵬)새, 남쪽 큰 바다 천지(天池)로 날아가는 새가 바로 추기경님 당신이셨습니다.
그 길고 큰 날개로 구만 리 하늘을 날며 반도의 하늘을 덮던 그런 새이셨습니다. 이제 그런 큰 날개, 구름 떨어뜨리는 그런 날개를 뵐 수 없으니 정말 슬프군요.
그때 어쭙잖게도 젊은 나이에 추기경님과 대담했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때 햇살 유난히 밝고 눈부시게 들던 방, 추기경님, 당신은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을 하는 저에게 “나를 인터뷰하러 오셨소? 그런 것 말고, 그저 이야기 합시다, 마음 편하게 놓고, 자유롭게 말입니다.”라고 하시던 말씀을 듣고 얼마나 놀랐었는지요? 잔뜩 긴장한 마당에 그렇게 소탈하게 나오시니 처음엔 몸 둘 바를 모르고 당황했었지만, 곧 마구 말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시원한 추기경님의 웃음소리,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붕새의 날개를 구만 리 하늘 높이에서 날게 한 큰 바람(大風)처럼 저의 머리 위에 오랫동안 감돌고 있는 그 웃음소리.
그렇습니다. 자유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소탈하고 심정을 서로 만지는 경험을 하는 것, 그런 쓰다듬음 뒤에 시간의 긴장 모두 놓고 다가오는 것, 오는지도 모르게 오는 것.
이제 언제 그 웃음소리, 깐깐한 말씀 들을 수 있을까요? 저의 이 오랜 헤맴, 어디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요?
어떤 불의한 일이 일어날 때 누가 그 ‘중심’에 서서 말하자면 ‘교통정리’를 하실 수 있을까요?
추기경님 같은 교통정리, 앞으로 어디서 또 뵐 수 있을지?
아, 정말 떠나시다니요? 이런 사회를 두고 어찌 그 날개를 거두어 가셨는지, 지금쯤 어느 하늘에 그 날개 출렁이고 계신지, 아마 그러면 추기경님 당신은 또 말하시겠지요. “강선생, 나를 인터뷰하시려는 거요. 그냥 이야기 합시다. 자유는 그런 이에게 오는 것 아닙니까. 그런 이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 오는 것 아닙니까.” 그러시면서 웃으시겠지요.
고이 가소서. 그 큰 날개, 삼천 리 날개, 이 반도의 하늘에 출렁이시면서. 언제까지나 출렁이시면서…….
강은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