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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재정부 ◇국장급 <전보> △행정예산심의관 소기홍△공공혁신기획관 임해종△성과관리심의관 홍동호<승진>△조세정책관 주영섭△경제정책국장 윤종원△미래전략정책관 최상목 ■국방부 △기획조정실장 우주하 ■환경부 ◇과장급 전보 △해외협력담당관 김용진△지구환경〃 나정균<과장>△정책총괄 홍정기△녹색기술산업 금한승△환경보건정책 박미자△화학물질 이지윤△생활환경 정종선△기후대기정책 박천규△기후변화협력 이민호△교통환경 심무경△대기관리 정덕기△물환경정책 김영훈△유역총량 황석태△수도정책 이성한△생활하수 박응렬△토양지하수 백운석△물산업지원팀장 정복영△자연정책 조병옥△국토환경정책 송형근△국토환경평가 김선호△폐자원관리 최종원△자원재활용 동덕수△폐자원에너지팀장 최병철◇전보△국립생태원건립추진기획단 부단장 박연수△〃 기획팀장 유태철△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사무국장 김두환△국립환경과학원 연구지원과장 방의석△〃 연구기획〃 홍동곤△국립생물자원관 기획전시부 연구기획〃 이호중△〃 전시교육〃 강창원△국립환경인력개발원 교육기획〃 이영기△금강유역환경청 유역관리국장 송호석△대구지방환경청 기획과장 이현재◇과장급 승진△물자원관 생물자원연구부 고등식물연구과장 유호△한강유역환경청 환경감시단장 강선종△영산강유역환경청 〃 문용호△수도권대기환경청 기획총량과장 노희경 ■국토해양부 ◇전보△고객만족센터장 이승길<과장>△주택기금 김수상△주거복지기획 문성요△주택건설 임태모△토지정책 김채규△택지개발 이병훈△기술정책 김일평△국제해사팀장 홍종욱△도시광역교통 장영수△도로정책 권병윤△해양생태 김명운△광역도시철도 권석창<국도관리사무소장>△영주 김종신△전주 김계범<항공안전본부>△항공보안담당관 이윤상△공항기준〃 박희성△공항환경〃 김성영◇파견△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 이철조 정보화△국민임대주택건설기획단 김태호 권상대△국무총리실 새만금사업추진기획단 정경훈△〃 제주특별자치도지원위원회 곽민희△경제자유구역기획단 김홍목△국가균형발전위원회 박건수△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김영한△2012여수세계박람회 조직위원회 장만붕 ■서울시교육청 ◇초등 교원·교육전문직 <교장 승진>△고명초 강팔주△평화초 김귀분△신봉초 김복남△한산초 김수자△은진초 김순규△언주초 김영분△초당초 김영욱△장곡초 김옥배△양천초 김용업△신구로초 김윤희△옥수초 나종국△풍성초 문희철△신북초 박동일△월곡초 박신용△광진초 박의근△송파초 방윤석△염경초 백승란△등마초 백한종△영일초 신순옥△조원초 신영순△영동초 여리성△상천초 오성환△갈현초 오현근△염창초 유정숙△송중초 윤대규△오륜초 윤병희△화일초 이기현△발산초 이대섭△남성초 이상란△배봉초 이상용△탑동초 이성남△영문초 이재문△청파초 이종△한천초 이중순△매봉초 이진철△봉천초 이철호△역삼초 임선숙△대림초 장경자△신기초 장용애△영도초 전정순△백운초 정병훈△노원초 정희열△연희초 조남숙△장월초 조정목△보라매초 주광진△대길초 채현주△연촌초 최연인△동구로초 최용진△한강초 한신종△둔촌초 한예섭△목운초 홍다남△원촌초 홍정숙△흥일초 황금석△수서초 황호진<교장공모제 초빙교장>△난곡초 김문하△한서초 문영혜△노량진초 안종인△상신초 윤상흔△양화초 이명숙△노일초 이형호△명신초 장계분△북한산초 장윤선△경일초 촤상락<교장 중임>△원광초 강대희△유현초 고석천△성내초 권장환△구암초 권혁로△잠동초 김선희△삼각산초 김웅기△쌍문초 김종욱△중목초 나화균△답십리초 박덕진△이문초 백민△상월초 서영석△고덕초 손영옥△신양초 오찬숙△계남초 유희창△강서초 윤식△동명초 이규익△석촌초 이근재△인수초 이연이△장충초 이영이△금화초 이원강△일원초 이정형△충무초 이형렬△거원초 장신수△청덕초 조일호△이수초 조재욱△숭례초 주명식△묵동초 최광규△신월초 최영재△면목초 최창균△창신초 한성교<교육전문직(관급)에서 교장 전직>△서교초 류연수△청담초 김한규<교육전문직(사급)에서 교장 전직>△마장초 오명환△석계초 한상로△계상초 허인수<교장 전보>△송원초 김광구△구현초 김종신△광남초 윤기정<교감 승진>△서부교육청 송택동 윤성한 이계수 이정애 이주영 임희수 정병관 채광수 최성민 허선화△남부〃 김유중 안영희 이경희 이용재 정종원△북부〃 강인혜 양경환 이선호 전수경△중부〃 박동임 박정순△강동〃 박경남 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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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홍구△교학관리처 학생담당 부처장 김영철 ■덕성여대 △기획처장 이옥△교무〃 박현신△학생〃 오헌필△대외협력〃 권문일△입학홍보〃 이용수△인문과학대학장 윤지관△사회과학〃 양옥승△자연과학〃 김건희△정보공학〃 음두헌△약학〃 문애리△예술〃 이원복△교양교직학부장 정미숙△대학원장 이광수△특수〃 조윤옥△종합인력개발원장 정원호△도서관장 유재옥△평생교육원장 성낙돈△언어교육〃 김문규△산학협력단장 유견아△기획부처장 허집 ■서울여대 △입학관리처장 이영섭△바롬교육부장 정동선△교수학습연구원장 박승호△교목실장 장경철△국제협력부장 승현우△대외협력실장 김혜련△아동연구원장 문미옥△학생생활연구소장 김유숙△여성연구소장 이은희△IT국제교육인증센터장 이웅재 ■이대여성암전문병원 ◇센터장△부인암 김승철△유방암·갑상선암 문병인△여성건진 및 건강증진 김정숙 ■코스닥상장법인협의회 ◇승진 <회원서비스본부>△이사 김홍철△연수팀장 양선우△IR팀장 노수찬
  • [신경림 누항 나들이] 옷과 밥과 자유 또는 집

    [신경림 누항 나들이] 옷과 밥과 자유 또는 집

    김 소월의 널리 알려지지 않은 시에 ‘옷과 밥과 자유’가 있다. 사람의 생존의 기본 조건인 의식주를 빌되 ‘주’ 자리에 ‘자유’를 넣는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여기서 자유는 바로 주의 개념이나 같다. “초산 지나 적유령/ 넘어 선다// 짐실은 저 나귀는 왜 넘니?”의 행간에 일제의 강점으로 집을 빼앗기고 자유를 찾아 험한 재 적유령을 넘어 만주로 가는 피난민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생뚱맞은 말로 들리겠지만, 나는 이번 용산 참사를 보면서 나귀에 초라한 이삿짐을 싣고 삼삼오오 적유령을 넘는 피난민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들의 수중에는 남은 돈도 별로 없고 만주로 간다지만 거처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삶의 터전이 되었던 곳에서 대책없이 쫓겨나는 철거민들의 처지나 심경 또한 어찌 이들과 같지 않았으랴. 재개발의 필요성을 덮어놓고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내가 그 입장에 처했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도 역시 자해 위협으로 시너를 준비하고 점거 농성을 하는 둥 살기 위한 온갖 몸부림을 다했을 것이다. 적유령을 넘자 해도 노자가 필요하고 만주에 가서도 정착할 최소한의 자금은 있어야 하니까. 이 과정에서 귀한 목숨 여섯을 잃었다. 당국은 사건의 내용을 철저히 밝힌다며 뜸을 들였지만 누구의 눈에도 진실은 너무나 명백했다. 철거민들은 제시된 보상금 가지고는 도저히 이주해 살 길을 마련할 수 없으니까 점거 농성을 벌인 것이고, 농성 벌이고 불과 몇 시간도 안 되어 경찰이 이를 성급하게 진압하는 과정에서 대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과실치사다. 그런데도 검찰은 가해자인 경찰은 내버려 두고 철거민 농성자만 구속자 5명을 포함하여 20명을 기소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그러면서 강조한 것이 “공권력은 존중되어야 한다.”였다. 당연히 공권력은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그 공권력이 정당성을 가졌을 때만 존중될 수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일 제 강점기의 공권력은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명분이 되었으며, 옛 영국 통치하의 남아공화국에서는 당국의 조정에 따라 광부들이 술을 먹고 춤을 추는 이른바 마인댄스를 피하거나 비판하면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다스렸다. 물론 이 비유는 공권력이 국민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을 때 존중되기 어렵다는 극단적인 예로 우리의 경우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연쇄 살인범 강호순 사건이 터졌을 때 당국은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마침내 이것을 용산 참사의 여론 무마, 말하자면 국민들의 눈을 딴 데로 돌리는 호재로 삼으려는 어리석은 시도가 있게 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는 이때까지 내세웠던 공권력이 당당하지 못했음을 스스로 자백하는 것이 되고 만다. 과실치사인 용산 참사를 광주학살 못지않은 국민학살로 과장하는 막말이 등장하고 시정잡배의 싸움질 같은 행태가 정치판을 휩쓰는 데는 이런 그릇된 공권력 행사와 남의 말에는 아예 귀를 막는 벽창호식 리더십이 나무와 넝쿨처럼 얽혀 있다는 사실도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에 계층이나 종교를 넘어 온 겨레가 슬퍼하는 것을 보는 감동은 크다. 1949년 백범 김구 선생 서거 이후 처음 보는 광경이다. 그분이 평소 우리 사회의 약자들, 소외된 사람들,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과 생각을 같이하고 삶을 같이하지 않았더라면 볼 수 없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생각과 처지가 다른 사람과도 소통하고 보듬는 그분의 통합적 리더십은 바로 여기서 생겨난 것이리라. 문득 공권력도 “밭에는 밭 곡식/ 논에는 물베/ 눌하게 익어서 숙으러졌”(‘옷과 밥과 자유’)지만 나귀에 짐을 싣고 “초산 지나 적유령”을 넘어서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보듬으면서 그들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배려할 때 제대로 지켜질 수 있을 것이요, 광복 직후처럼 좌우로 갈갈이 찢어져 서로 물고 뜯는 우리 사회에도 화해와 통합의 훈훈한 바람이 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 신경림
  • 2월16일은 ‘장기기증의 날’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뜻을 기리는 차원에서 김 추기경이 선종한 2월16일이 ‘장기기증의 날’로 제정됐다.대한이식학회는 지난 21일 무주리조트에서 개최한 동계심포지엄에서 이같이 결정했다고 24일 밝혔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KLPGA 회장에 선종구 사장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는 24일 선종구(62) 하이마트 사장을 만장일치로 3년 임기의 제10대 회장에 추대했다. 협회는 지난해 9대 회장에 취임한 홍석규(53) 보광 회장이 임기를 3년 남기고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새 회장을 뽑게 됐다고 설명했다. 선 신임 회장은 2002년 하이마트 골프단을 창단, 신지애(21·미래에셋)를 비롯한 차세대 스타들을 길러냈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학력평가 서열화 보도 자제해야/김경모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옴부즈맨 칼럼] 학력평가 서열화 보도 자제해야/김경모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지난 한 주 동안 우리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계기로 자신과 주위를 겸허하게 되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우리 시대의 큰 어른을 떠나보내는 전국적 추모의 물결 속에서 ‘죽음으로써 가르침’을 내리는 지도자의 진면목을 목격했을 뿐 아니라 낮은 곳으로 임하는 ‘바보’의 사랑과 나눔의 실천이 주는 잔잔하지만 거대한 감동을 경험했다. 진정한 삶의 가치와 행복이 결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님을 누구나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사정과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듯 서울신문은 김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경건하면서도 매우 비중 있게 다뤘다. 하지만 실제로 지난 한 주, 김 추기경의 영면 소식에 파묻혀 넘어가기엔 너무나 그 파장이 큰, 많은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났다. 청와대 홍보지침 파문으로 용산참사가 새로 도마에 오르는가 싶더니, 난데없이 판교 터파기 공사장 붕괴로 아까운 생목숨을 잃는 사고가 터졌다. 환율 급등에 금융 불안이 다시 고개를 들고, 북한 미사일 발사 조짐으로 정세 긴장이 더했으며, 개발시대에나 있음 직한 고속철 부실공사 소식에 비판 여론이 비등했다. 이 모두 오만과 독선, 그리고 무책임과 과욕이 빚어낸 인재(人災)이자 갈등이고 보면, 새삼 고 김 추기경의 가르침에 고개를 숙이고 옷깃을 여미게 된다. 이처럼 일들이야 많았지만, 교육과학기술부의 전국 학업성취도 평가를 둘러싼 파장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언론이 좀 더 분석적이고 치밀한 관점으로 이 사태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지속적이고 비판적인 보도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 할 중대한 사안이다. 여느 언론도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우선 서울신문은 관련 소식을 “임실 ‘공교육의 힘’”이라는 1면 머리기사(2월17일자)로 내보냄으로써 ‘결과적으로’ 큰 오보를 내고 말았다. 원래 부실했던 교과부의 평가 관리 방식과 오류투성이 발표 자료에 근거했던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만큼 결과적인 오보였을 뿐 신문의 책임은 미미하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제작시간에 쫓긴다는 이유로 교과부의 보도 자료를 주는 그대로 받아 적은 이른바 ‘발표 저널리즘’의 관행적 폐해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는 아닐까. 임실교육청의 담당자도 처음엔 ‘보고 시간에 쫓겨 급하게 자료를 취합하다 보니 일어난 실수’였다고 변명하지 않았던가. 사실 이번 학업성취도 평가는 시작부터 반대 여론도 만만찮았고, 최초의 전수조사 결과 발표라는 점에서 예상 파급력 때문에 사회적 관심도 매우 컸던 문제였다. 그런 만큼 처음부터 교과부의 발표 과정에 대해 더욱 신중하고 비판적으로 접근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예를 들어, 이번 평가결과 공개의 주된 목적을 어디에 두고 조사결과를 보도했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고려해 보자. 서열화를 부추긴다는 비판 때문에 교과부도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기초학력 미달이나 지역·계층 간 격차 해소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기초자료 수집이 학력평가의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교과부 발표 바로 뒤인 서울신문의 2월17일자 관련 보도(4∼5면)는 오히려 서열화를 강조하는 프레임으로 사안을 다루는 것 같은 인상이 짙다. 제목부터 어디가 1위인지 강조하고, 상위권부터 ‘전국 꼴찌’까지 세세하게 알리는 평가결과표와 내용이 지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가 신뢰도라는 문제로 불똥이 튀어버려 사태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됐지만, 앞으로 관련 보도는 좀 더 부지런한 별도 취재를 통해 기초학력 미달이나 지역·계층간 격차가 발생하는 이유와 그 패턴의 해석에 초점을 맞추는 분석적 기사를 실어주길 바란다. 김경모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 [박대출 선임기자 정가 In&Out] 바보 스테파노와 정치인

    이재오 전 의원은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지난 16일이다. 서울에 있는 두 측근과 통화했다.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과 또 다른 측근이다. 두 사람은 가까운 이들에게 물었다. 그 반응을 모아 전했다. 찬성이 많았다. 이 전 의원은 80%라고 했다. 하지만 뜻을 접었다. 중국 베이징을 떠나지 못했다. 20%가 부담스러웠다. 이 전 의원은 김 추기경과 인연이 있다. 지난 1979년 오원춘 납치사건 때 맺어졌다. 추기경이 강연을 요청했다. 이 전 의원은 강연 후 구속됐다. 추기경은 변호사를 선임해줬다. 영치금도 넣어줬다. 그래서 조문을 원했지만 포기했다. 정치적인 시선이 걱정됐다. 측근은 그가 달라졌다고 했다. “돌이 깨질 때까지 돌다리를 두드린다.”고 했다. 추기경과 인연을 맺은 정치인들은 많다. 제정구 전 의원은 빈민운동의 대부였다. 추기경의 애정이 각별했다. 추기경은 “그의 삶이 아름답다.”고 했다. 그는 추기경을 자주 찾았다. 위안을 받고, 세배도 다녔다. 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당시 막내로 따라다녔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국장(國葬)을 두 번 치렀다. 부모님이 서거했을 때다. 국장 때는 종교별 의식이 있다. 가톨릭의 장례 미사는 김 추기경이 집전했다. 김무성 의원도 선친 장례미사를 추기경이 맡았다. 선친은 해촌 김용주 선생이다. 전남방직 창업주다. 최형우 전 의원은 가톨릭 신자였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심부름을 자주 했다. 김 추기경은 ‘국민 어른’이다. 영역은 무한이다. 누구나 달려갔고, 매달렸다. 김태정 전 검찰총장 때다. 일진회로 불리는 학교 폭력이 극심했다. ‘자녀 안심하고 학교보내기 운동’을 주창했다. 국민재단을 발족시켰다. 추기경에게 재단이사장을 요청했다. 추기경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5년간 이사장을 맡았다. 정치인들은 더 많이 기댔다. 2006년 7월26일이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인사하러 갔다. 유기준 대변인이 수행했다. 추기경으로부터 ‘반가운 얘기’를 들었다. “정권 교체가 중요하다.”는 언급이었다. 유 대변인은 즉각 공개했다. 정치적 파문으로 이어졌다. YS는 애도의 무대에서 정치를 했다. DJ보다 먼저 대통령이 되라고 추기경이 말했다는 것이다. DJ는 영치금을 받은 인연을 소개했다. 추모행렬이 ‘사랑의 강’을 이뤘다. 온 나라가 애도했다. 하지만 통하지 않는 세계가 있다. ‘이념의 강’, ‘정치의 강’을 건너면 변질된다. 추기경의 말을 아전인수로 해석한다. ‘정권교체’는 분열의 정치를 탓하는 얘기였다. 한나라당은 정치적으로 써먹었다. 노무현 정권은 불쾌해했다. 국민 어른을 비판하는 철부지 386들도 있었다. 인터넷에는 증오의 부유물도 떠다닌다. ‘국민 어른’마저 매도한다. 물론 많지는 않다. 절대 다수가 애도의 글이다. 추모열기를 보도한 언론을 ‘광기’라고 한 글도 있다. 시체 애호증이라는 표현도 있다. 허탈하다. 섬뜩하다. 정치권은 바보되기를 꺼려 한다. 상대만 바보라고 몰아붙인다. 반성은 없고 ‘네 탓’만 있다. MB법 공방이 그러하고, 용산사태 논란이 그러하다. 추기경은 바보를 자처했다. ‘내 탓이오.’를 실천했다. 스스로 바보가 돼라. 바보 스테파노가 정치권에 남긴 교훈이다. dcpark@seoul.co.kr
  • [나눔 바이러스 2009] 목사 125명 사례비 5% 기부키로

    한국 개신교계 목회자들이 사례비의 5%를 경제위기로 고통받는 국민들을 위해 기부할 것을 결의하는 등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나눔운동’에 동참했다. 최병남(예장합동 총회장) 목사, 김삼환(예장통합 총회장) 목사, 서경석(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 목사 등은 23일 프레스센터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계기로 확산되는 사랑나눔 운동에 목회자들이 동참하고자 한다.”며 “125명의 목사들이 사례비의 5%를 떼어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쓰기로 했다.”고 밝혔다. 목회자들은 또 “고통분담 운동이 교회 안으로 확산돼 일반 평신도도 함께 동참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나아가 범국민적인 고통분담 운동이 일어나 고정봉급자들처럼 특별한 어려움이 없는 시민들이 소득의 1~3%를 내어 놓아 그 돈들이 고통분담에 사용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회견에서 올 한해 동안 ▲수입(사례비)의 5%를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사용하고 ▲교회 재정 가운데 구제비는 크게 늘리되 국외 선교비를 줄이지 않으며 ▲작은 교회들이 어려운 이웃을 섬기도록 협력하는 등의 3개 항을 실천하기로 했다. 김삼환 목사는 “경제위기를 단시일 내에 극복하기 어려울 것 같아 목회자들이 이같은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며 “우선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는 작은교회 목회자들을 돕고, 또 여러 국민들과도 어려움에 함께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나눔운동에는 곽선희 소망교회 원로목사,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 김선도 광림교회 원로목사, 김성관 충현교회 목사, 김정민 금란교회 목사, 손인웅 덕수교회 목사, 오정현 사랑의교회 목사, 이수영 새문안교회 목사,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 최성규 순복음인천교회 목사 등 주요 교회 목회자들이 대부분 참여하고 있다.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서울신문 연중기획-나눔 바이러스 2009] ‘더불어 살기’ 바람 분다

    [서울신문 연중기획-나눔 바이러스 2009] ‘더불어 살기’ 바람 분다

    우리 사회가 외환위기 이후 11년만에 다시 국난(國難)에 직면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선진국 및 신흥국을 포함한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가장 낮은 마이너스 4%로 전망했습니다. 이미 지난해 가을 이후 경기침체 속에 실업과 신빈곤층이 급증하는 등 사회적 경보가 울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위기를 기회로 삼자는 국민적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김수환추기경 선종(善終)을 계기로 ‘나눔’의 기운이 사회 곳곳에 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울신문은 국난 극복의 에너지를 결집하고, 나눔을 통한 위기 극복을 위해 연중 캠페인 ‘나눔 바이러스 2009’를 시작합니다. 일자리를 비롯해 기술·정보·경영 노하우 나누기는 물론 사회 각계의 기부 및 정(情) 나누기 현장을 소개함으로써 나눔운동의 전국민적 동참을 모색할 예정입니다. 이번 캠페인은 지식경제부, 보건복지가족부, 노동부가 후원합니다. ●확산되는 일자리 나누기 정부는 올해 일자리가 지난해에 비해 20만개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안 좋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먹고사는 최소한의 생계에도 곤란을 겪는 영세·서민층의 고통지수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고 있다. 자살률의 상승 등 사회불안의 일반적 현상들이 지표로 속속 현실화할 가능성도 우려된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국내 자살률은 10만명당 18.4명으로 전년에 비해 40% 늘었었다. ●사회 안전장치 미흡 위기가 닥쳤을 때 바람직한 것은 우리 힘으로 이를 극복해 내고, 또 회복에 이르는 시점까지 사회의 각종 안전장치들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다. 우선 전세계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경제위기는 우리의 역량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소규모 개방경제(small open economy)’인 우리 시스템은 다른 나라보다 외부 충격에 훨씬 취약하다. 위기가 진행되는 동안 폭풍우 속에서 사회 구성원들을 보호할 바람막이와 우산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복지예산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주요 선진국의 절반 수준인 10%선에 불과한 것이 단적인 예다. 실직자의 생계 유지를 위해 지급하는 실업급여 수혜율도 2007년 기준 35%로 대부분 50% 이상인 유럽에 비해 훨씬 낮다. 액수도 실업 전 평균임금의 43%에 불과,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 D) 평균치 54%에 크게 못 미친다. 이런 안팎의 여건에서 지금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나눔이다. 한정된 일자리와 부(富), 기술, 정보 등을 사회 구성원들간 양보와 배려를 바탕으로 나누고 공유함으로써 위기 극복과 재도약의 길을 찾는 국민적 컨센서스가 절실한 시점이다. ●상생의 구조조정 인식 확산 다행히 그런 방향으로 사회적 역량이 결집되기 시작했다. 나눔 바이러스의 확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직원을 쫓아내는 적자생존의 구조조정보다는 임금을 줄이더라도 일자리를 나누는 상생의 구조조정에 공감대가 형성 되고 있다. 많게는 수만명씩 대량해고에 나서는 외국기업과 달리 고통분담을 통해 일자리를 유지하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기술·정보·경영노하우를 공유하려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사간 화합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하고 고용을 유지하려는 노사 등 곳곳에서 ‘2인3각’의 더불어 살기 노력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끝난 ‘희망 2009 나눔 캠페인’에서는 극심한 경기 불황 속에서도 10만원 이하 소액기부가 27만 5942건(86억원)으로 전년 22만 1740건(69억원)에 비해 24%나 늘었다. 지난 16일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계기로 부각된 나눔의 정신이 다양한 형태로 구체화할 조짐을 보이는 것도 긍정적이다.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마다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상황이 되면 사회가 더욱 불안해지고 결과적으로 다 같이 어려워지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서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이익을 쟁취하겠다는 자세를 버리고 공존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사회의 안정과 발전에 이롭다는 생각이 이번 위기를 계기로 사회 전반에 뿌리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후 원 : 지식경제부, 보건복지가족부, 노동부
  • [식지 않는 김추기경 추모열기] 추기경 신드롬 어떻게 발전시키나

    [식지 않는 김추기경 추모열기] 추기경 신드롬 어떻게 발전시키나

    김수환 추기경 선종(善終) 이후 추모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한국 천주교는 물론 로마 교황청까지도 놀라게 한 이 추모 열기는 종교와 이념 구별 없이 한국사회 전반에서 번져 이른바 ‘김수환 추기경 신드롬’으로까지 불려진다.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사랑과 나눔의 큰 뜻을 새기고 살려내자는 이 거대한 움직임의 원인은 과연 무엇이고 우리 사회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동력으로 승화시킬 방안은 없을까. 조광 고려대 교수, 천주교주교회의 변승식 신부, 김종회 경희대 교수의 대담을 통해 김수환 추기경 신드롬의 양상을 짚어본다. ▶참석자 조광 고려대 교수 변승식 신부 김종회 경희대 교수 ▶사회 김성호 선임기자 변승식 신부 1. 40만 추모인파 의미 사회 추기경 선종에 일반시민들이 이렇게 많은 관심을 가질 줄 몰랐다. 선종 이후 전국적으로 이념, 종교를 가르지 않고 이어지는 추모 행렬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변승식 모두가 다 놀라고 있다. 추기경께서 장례 미사를 소박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유지를 남기셨다. 그래서 천주교 교회에서는 빈소만 마련했을 뿐, 그 누구도 시민들에게 오라 가라 하지 않았다. 일반 시민들이 추위에 떨면서 이어간 조문 행렬을 보면서 종교계가 깊이 반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일반 시민들이 종교에 대해 바라는 것이 많았고 그것에 대한 답을 보여주신 분이 바로 추기경이었기에 그 아쉬움과 그리움을 표현한 것으로 본다. 김종회 지난 한주간 언론에서 추기경 선종 기사로 지면을 가득 메웠다. 그런 반응은 쉽지 않은 것이다. 시민들이 추기경의 구체적 행적에 대해서 잘 모르다가 언론 보도를 통해 그분의 업적을 알아가면서 감동이 더해간 점도 있다고 본다. 우리는 지금 존경할 만한 지도자가 없는 시절에 살고 있고 그에 따른 정신적 공백을 늘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추기경 선종을 기회로 그의 행적을 되돌아보면서 ‘아 이분이 이런 분이셨구나.’라고 감동하며 그 공백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조광 추기경 선종 이후의 열광적인 추모 양상은 그가 생전 늘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들과 함께하려 한 자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감동한 결과다. 그분은 인권, 민주주의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늘 추구하셨다. 또 종교인으로서 자기 신념만 강조하지 않았고 모든 것들 속에 하느님의 축복이 있다고 생각하며, 신성한 가치를 찾아 다른 것들이 가진 가치를 인정하고자 했다. 그렇게 인정하고 대화하는 자세가 종교를 초월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게 한 이유가 아닌가 한다. 2. 신드롬 일시적 현상인가 사회 추모 행렬이 7일째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비단 한국 천주교뿐 아니라 로마교황청에서도 각별히 받아들이는 것 같다. 정작 한국에서는 수많은 관측이 일고 있다. 김 추기경 신드롬은 일시적 현상인가 아니면 사회적 불안을 반증한 당연한 결과인가. 변 추모객들 중에는 그분을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이런 현상은 일시적이고 감정적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를 해석하고 바라보는 것을 고민해야 할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이다. 첫째로 종교 지도자들은 종교가 줘야 할 것을 주지 못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치·문화 등 각계에서도 이 사람들이 무얼 찾고 있는지를 살피고 각자 해야 할 일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양떼들은 참된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는 성경말씀이 있다. 사람들에게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다면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김 추기경의 동성상업학교 시절 일화는 유명하다. 교사가 ‘황국신민으로서의 소감을 쓰라.’고 하니 ‘나는 황국신민이 아님. 따라서 소감이 없음.’이라고 썼다고 한다. 이분이 그럴 수 있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민주항쟁 때는 성당에 들어온 경찰에 ‘나를 밟고 가야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한 일화도 있다. 결국 우리는 소시민처럼 살고 있는 것인데, 이분은 실천적 용기를 가지고 삶을 사신 것이다. 시대적 양심을 지키고 또 역사의 훗날을 내다보면서 이분은 살다 가셨다. 조 추기경 신드롬은 어떻게 보자면 과거 어둡고 어렵던 시기에 그가 희망을 주었고 희망의 표지가 됐다는 사실에 대한 긍정적 평가다. 현재 우리 사회가 추구할 가치의 방향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가 추구했던 가치가 오늘 우리 사회에서 거듭 요구되는 가치라는 점을 집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추기경 신드롬은 불안한 사회의 심리표현이나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상당히 근거 있는 행동인 것이다. 그것은 추기경이 추구했던 가치에 대한 인정이라 볼 수 있다. 3.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 사회 그렇다면 추기경이 보여주신 사랑의 실천을 이어가야 할 과제가 우리사회에 남겨진 셈이다. 우리가 풀어가야 할 과제라면. 변 사제의 신분으로 추기경님을 회상하고 얘기하다 보면 그게 추기경님 이야기인지 예수님 말씀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정말 그분은 충실히 예수의 길을 따라가셨다. 그분은 늘 신앙을 가지고 고민을 하며 사셨다. 사람들은 책임과 지위가 지워지면 유혹에 빠지지만 추기경님은 늘 욕심 없이 살고자 하셨다. 나를 비롯한 성직자들에게 남겨진 과제라면 끊임없이 그분을 닮도록 노력하는 것밖에 없다.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위해 그분이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따라 그 길을 가야 할 것이다. 김 온 나라가 국장 수준으로 추기경께 존경을 바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앞으로 1주일쯤 지나면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잊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분이 삶을 통해 가르치려던 것을 이어갈 작지만 튼튼한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장으로서 명성이 알려져 있고 지위가 있었지만 이분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인간됨의 실천을 보여주셨다는 점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런 구체적 장치를 각 영역에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조 그가 생전 갖고 보여주었던 가치를 먼저 확인하고 어찌 따라갈 것인지를 진지하게 따져야 한다. 그가 가진 가치 중에는 화해의 정신이 가장 두드러진다. 그는 신앙인이었기에 종교간 화해에 특히 관심이 깊었다. 늘 정의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사랑이 없는 정의는 폭력에 불과하다고 했다. 정의를 강조하면서도 늘 사랑과 함께해야 한다는 입장은 바로 종교 신앙인으로서의 그의 모습을 확연히 보여준다. 이런 정신이 기초가 될 때 우리 사회는 더 건전한 사회로 발전할 것이다. 사회 사회에는 현실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 양극화, 경제위기, 이념대치 등 난제들을 지금의 추기경 신드롬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변 경제위기며 양극화, 남북은 물론 보수·진보간 이념 투쟁으로 사회는 병들고 있다. 사회가 점점 천박해져 가고 무한경쟁 논리에 빠져 각박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노골적으로 돈의 가치에 경도됐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김 추기경님을 바라본 사람들은 마치 고향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무작정 경쟁하고 남을 짓밟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가치, 이것이 원래 종교는 물론 정치, 사회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란 것을 느꼈을 것이다. 추기경 추도 물결은 그런 새로운 인식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지도층에서도 이런 흐름을 인지하여야 할 것이다. 추기경 개인에 대한 얘기는 더 나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분 자체가 당신 이름으로 무엇을 하자 한 게 아니었고 그저 보편적 가치를 따랐던 사람이다. 그가 추구했던 그 가치를 따라가는 것이 옳지 않을까. 김 추기경 선종 이후 우리사회가 할 일에 대해선 사실 모든 이들이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은 ‘상식’일 것이다. 상식을 모두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 하지만 추기경은 그 상식을 삶 속에서 실천하신 분이다. 우리는 이분의 상식을 응원하고 그걸 배워야 할 것이다. 정치 문제나 분단의 문제나 마찬가지다. 상식으로 돌아가서 상식의 차원에서 다시 시작한다면 방법이 달라질 것이다. 조 일반적으로 어떤 큰 업적을 남긴 분이 돌아가시면 기념사업을 하거나 집단 운동의 모델로 삼곤 한다. 물론 그런 것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우리는 자기가 살고 있는 안에서 그분이 추구한 보편적 가치를 어떻게 이어갈지 찾아내고 결단하는 게 중요하다. 그것이 기초가 돼야 기념사업이든 운동모델이든 가능할 것이다. 김 추기경은 IMF때 교회 중심의 금모으기 운동에 앞장섰던 분이다. 주변에 실천 가능성을 문제삼아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분은 끊임없이 노력했고 일반 시민들 사이에도 그 운동을 퍼뜨렸다. 그런 식의 그의 업적과 노력이 재음미되고 평가될 때 우리사회가 더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 정호승 시인이 어디선가 ‘추기경님은 갔지만 우리는 추기경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는 표현을 썼던 걸로 기억한다. 그 말처럼 그분이 남기신 가치를 남은 우리가 잘 읽고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과제가 아닌가 한다. 정리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식지 않는 김추기경 추모열기] 수백억짜리 추모공원 논란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면서 기념사업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김 추기경의 추모공원을 세우는 방안이 나오고 있으나 서울대교구는 “평소 고인의 뜻에 따라 소박한 추모방식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 추기경의 추모미사가 열린 22일 경북 군위군은 300억원을 들여 33만㎡의 땅에 김수환 추기경 추모공원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군위군 군위읍 용대리에는 김 추기경이 4살 무렵부터 8년가량 살던 집이 남아 있다. 군위군은 김 추기경 선종 전부터 이곳에 추모공원을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고 앞으로 5년간 동상, 추모비, 성모동상 등을 세우기로 했다. 이 사업을 위해 김관용 경북도지사도 한승수 국무총리에게 예산 지원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서울대교구는 “별도의 기념관 건립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허영엽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은 이날 “다른 단체나 개인이 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서울대교구에서는 추기경의 이름을 내세우거나 별도의 건물을 짓는 것을 원치 않았던 생전의 유지를 받들어 기념관 건립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현재 교구에서 계획 중인 명동 개발이 이뤄지면 역대 교구장들의 박물관을 건립할 예정인데, 김 추기경은 12대 서울대교구장으로 여기에 포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 국장은 “군위군으로부터 사전 협의나 연락을 받은 적은 없다.”고 밝혔다. 이날 추모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명동성당을 방문한 한승수 국무총리도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할 계제가 아니지 않으냐.”면서 경북도지사의 추모공원 건립 지원 요청과 관련된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천주교 신자들도 호화판 기념사업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유모(40·대구)씨는 “추기경께서 평생을 무소유 정신으로 사셨는데 수백억짜리 추모공원이 웬말이냐.”면서 “종교 지도자를 기린다는 취지 아래 자치단체를 홍보하려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최은정(41·경기 분당)씨도 “선종 직후 열기에 휩쓸리지 말고 추기경님 뜻대로 소박하게 추모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그분이 우리에게 남긴 것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그분이 우리에게 남긴 것

    “추기경의 손은 달을 가리키는데 우리는 그의 손만 보고 있습니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앞에서 형식적인 추모만 할 게 아니라 불의에 대한 저항, 긍정적인 사회로의 적극적 참여 등 실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추기경이 땅에 묻힌 20일, 각계에서 존경받는 인사들은 “추모 신드롬을 공동체를 위한 겸손과 화합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자기 결함 알자는 메시지 남겨 시인 신경림씨는 “정치·사회 지도자들이 사회통합을 위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어 국민들은 아름다운 삶을 산 ‘큰 어른’의 선종을 더 슬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기경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이 전국적인 추모 신드롬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는 “추기경은 남 탓만 말고, 자기결함도 알자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남기고 가셨다.”고 말했다. 다일공동체 최일도 목사는 “정치·사회단체는 물론 종교단체까지 눈앞의 이익을 놓고 대립하는데, 김 추기경은 소외된 곳에서 겸손을 몸소 실천하는 자세를 보여주셨다.”면서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낮은 곳으로 향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계 인사들은 김 추기경의 선종을 통해 잠시나마 얻은 ‘사회통합의 평화’를 이어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는 “이윤추구에만 골몰하던 현대인들이 추기경의 선종을 통해 갖게 된 ‘자기반성의 시간’을 늘 되새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번 기회에 기복신앙이 돼 버린 종교가 세속화를 넘어 참 종교심을 회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 김 추기경이 ‘good(선함)-god(신)=o(zero)’라고 말하면서 신은 곧 착함이며, 우리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면서 “당연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가르침을 우리는 두고두고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정과 사회통합의 계기로 종단협의회 인권위원장인 진관 스님은 “김 추기경이 사형제 폐지를 주장했듯이 인간의 존엄성을 인식하고 생명존중 사상을 지켜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리사 용인대 사회체육학과교수는 “편가르기를 멈추고 하나가 돼야 한다.”면서 “장기기증이나 사회환원 등도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외국인노동자의 집 김해성 목사는 “추기경의 뜻대로 다인종·다민족·다문화 사회를 고민하고 소외 계층을 보살피는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민영 유대근기자 min@seoul.co.kr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이명박 대통령 추도사

    오늘 우리는 이 나라를 지탱해 온 큰 기둥이셨고, 우리의 나아갈 길을 가르쳐 주신 큰 어른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하려고 합니다. 추기경님의 선종을 온 국민과 함께 깊이 애도합니다. 작년 성탄절 날 저희 부부가 찾아뵙고 여러 말씀을 나눌 수 있었는데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습니다. 힘들어 찾아뵐 때마다 기도해 주시고 용기와 격려를 불어넣어 주신 추기경님의 숨결을 지금도 느낄 수 있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가톨릭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지도자로서 항상 병든 자, 가난한 자, 약한 자와 함께하셨습니다. 산업화 시대에는 소외된 노동자들 편에서 불의와 부정에 맞서 정의를 말씀하고 행동하셨고, 민주화시대에는 국민의 편에서 권위주의에 맞서 정권의 압박을 온몸으로 막아내셨습니다. ‘네 편 아니면 내 편’이라는 이분법이 팽배한 요즘에는 타인을 존중하고 마음을 열고 대화할 것을 가르치셨고, 그러면서도 원칙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권력이 오만해지거나 부패할 때에는 준엄히 꾸짖으셨고, 시류에 휩쓸려 흔들릴 때에는 가야 할 바른 길을 일러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서 소중한 분을 데려가시면서 우리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변화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추기경님이 남기고 간 뜻을 받들어 서로 사랑합시다. 추기경님은 우리 곁을 떠나지만 우리 마음 속에 영원히 함께할 것입니다.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대한민국은 든든한 ‘수호천사’를 얻었습니다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대한민국은 든든한 ‘수호천사’를 얻었습니다

    지난해 김수환 추기경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힘겹게 나누어 주신 말씀 가운데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인류의 그것을 바로 우리의 그것으로 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직자는 물론 신자들도 그래야 합니다.” 아직도 가슴 속에 새기고 있습니다. 오래 전, 제가 서울 혜화동 신학교 시절 김 추기경은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온후하고 기품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곤 하셨습니다. 애숭이 신학생의 눈에는 교수 신부들의 일거수일투족도 하늘의 움직임과 같아 보이는데, 하물며 추기경의 거동 하나 하나는 어떻게 비치었겠습니까. 그의 눈빛과 몸짓에는 깊은 사색과 고뇌와 사람에 대한 자연스러운 존경심이 묻어났습니다. 먼 발치에서였지만 어디에서건 김 추기경이 뜰 때마다 마치 스토커처럼 그에게서 흠모의 시선을 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TV를 보다가 김 추기경이 한 철학자와 대담을 나누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순간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 철학자는 가톨릭과 기독교에 반하는 사상을 거의 독설에 가깝게 펼쳐내고 있던 때였지요. 그러니 “아니 저 양반이 왜 저길 나가셨을까? 봉변을 당하시려고….”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날 덕(德)이 지(智)를 거뜬히 물리칠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추기경은 품으심으로써 이기셨던 것입니다. 김 추기경께서 몸소 전화를 주셨을 때를 기억합니다. 사연인즉슨, 미국의 한 고등학생이 영문으로 편지를 보내왔는데 답변을 해 주어야 하니 도와 달라시는 것이었습니다. 편지를 읽어 보니 인터넷을 뒤지거나 책방에 가서 사전을 찾으면 금세 답이 제공될 정도의 물음이었지요. 불현듯 이렇듯 불성실한 질문에 답을 해 주시려는 추기경님의 자비가 확 덮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김수환, 그는 이렇듯 사제이기 앞서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김 스테파노, 그는 노상 고뇌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사제 김수환 스테파노, 그는 천년 미래의 후배들도 닮고 싶어 할 선배였습니다. 김 추기경, 그는 20세기 조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인이었다. 오늘 저는 엄청난 공허에 휩싸여 있습니다. 하지만 슬픔은 없습니다. 선종 소식을 접하고도 저는 기뻤습니다. “드디어 하느님 품에 안기셨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강의 현장에서 강변하였습니다. 여러분, 그분은 지금 천당에 계십니다. 오히려 그분이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빌어주시기를 기도합시다.” 경기도 용인으로 거처를 옮기신 오늘도 김 스테파노는 대한민국을 위해 축복을 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아니 인류는 이제 한 ‘위대한 인간’을 잃은 것이 아니라 든든한 ‘수호천사’를 새로이 얻은 것입니다. 김 추기경님 편안히 쉬십시오. 추기경님의 뜻은 남은 우리들이 이어받겠습니다. 차동엽 미래사목연구소장
  • [사설] 세상에 큰 사랑 남긴 김수환 추기경

    세상에 큰 사랑의 빛을 던진 김수환 추기경이 우리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 갈등과 분열의 시대에 ‘김수환 추기경 현상’은 기적이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흘간 빈소가 마련된 명동성당을 찾은 행렬은 평화로웠지만 뜨거웠다. 조문객 40만명이 성당 안 빈소에 들어가기까지 2∼3㎞ 줄을 서서 서너 시간씩 기다려야 했지만, 불평을 하거나 실랑이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장례미사가 진행된 어제도 1만여명이 몰렸다. 그들은 김 추기경의 관이 성당을 빠져나오자 “추기경님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노소, 빈부, 종교, 이념을 초월한 ‘국민장’의 모습이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온 국민의 사랑을 받은 김 추기경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큰 울림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선종 2∼3일 전부터 병실을 찾아온 이들에게 되뇐 말이다. 김 추기경은 1969년 한국 최초이자 최연소 추기경으로 서임된 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을 주재하면서 제자들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구속(救贖)하기 위해 당신의 몸과 피를 사랑의 제물로 내놓으며 하신 말씀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스도 사상에 기초해 김 추기경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주제는 ‘인간’이었다. 그 신념은 엄혹했던 1970, 1980년대의 군부통치 시대를 헤쳐 나오면서 절대적인 판단기준으로 작용했다. 1974년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체포돼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을 때에도 “인간의 존엄성은 국가권력도 침범할 수 없다.”며 기독교 복음정신에 입각한 인간관을 피력했다.김 추기경은 그 중에서도 생활고와 병고에 시달리거나 불의에 희생된 사람, 노동자와 농민, 죄수 등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더 사랑했다.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좀 더 몸을 낮추고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 주지 못한 점이 후회스럽다고 했다. 사랑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지 못했다고 겸손해했다. 그런 큰 어른이시면서도 소박하고 꾸밈없는 인간적인 면모가 마음에 와닿는 분이었다. 청중들과 어울려 스스럼없이 ‘애모’, ‘만남’, ‘사랑으로’ 등 대중가요도 즐겨 부르는 친근한 ‘아버지’나 ‘할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얼마 전엔 ‘바보야’란 자화상이 공개돼 화제가 됐다. 남을 사랑하기 위해선 바보가 되고, ‘밥’이 되어야 한다는 넉넉한 다짐이었다.김 추기경이 있었기에 우리는 덜 외로웠고 행복할 수 있었다. 우리는 고인이 보여준 사랑과 나눔, 통합과 화해의 정신을 살려나가야 한다. 김 추기경의 안구 기증은 이미 불씨가 돼 신체의 일부를 내놓기로 약속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고인이 촛불처럼 자신을 태워 우리 가슴에 뿌린 고귀한 선물인 사랑의 씨앗을 키우고 널리 퍼져 나가게 해야 한다. 정치권은 ‘김 추기경 현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되새겨야 한다. 고인의 가르침은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는 새 시대정신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조문행렬에서 평화를 보았어요”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조문행렬에서 평화를 보았어요”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미사가 열린 명동성당에는 지난 나흘 내내 그랬듯 매서운 바람이 불어닥쳤다. 마치 무엇에 이끌린 듯 종교와 이념, 지역을 가리지 않고 40만명 가까운 조문객이 모여들었다. 얼마간의 혼란은 불가피했다. 연인원 3500명에 이르는 평신도 자원봉사자의 역할이 절실했다. 지난 16일 저녁 김 추기경 선종 소식을 듣자마자 명동성당으로 달려온 이기연(54·여)씨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씨는 닷새동안 찬 바람을 맞아가며, 때로는 들머리나 대성당, 때로는 남산 1호터널까지 길게 늘어선 추모 행렬 곁에 섰다. 20일 장례미사를 막 끝낸 뒤 만난 이씨의 눈자위는 붉어져 있었다. 이씨는 “이렇게 많은 분이 찾아오실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한 젊은 아기 엄마가, 시골에서 시부모님이 올라오셨는데 앞 줄에 세워 줄 수 없겠느냐며 간곡히 부탁했던 장면과 원불교 정녀님들이 함께 와서 기도드리던 장면 등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면서 “추기경님이 말씀하셨던 가족간 사랑, 종교간 사랑, 모든 세상의 화합, 평화란 이처럼 소박하게 나타나는 것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이씨에게 김 추기경은 어떤 의미가 있는 사람이기에 이처럼 고생을 자처했을까. 이씨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자전거 뒤에서 등을 꼭 붙잡고 푸근한 마음으로 학교가던 추억이 있다. 추기경님은 아버지처럼 늘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었다.”며 또다시 눈망울을 글썽거렸다. 1999년 김 추기경이 머물던 서울 혜화동 주교관 옆에 있는 가톨릭교리신학원을 다니던 이씨는 어느날 아침 큰 개를 데리고 산책하던 김 추기경을 만났다. 김 추기경은 면식도 없던 이씨에게 “주부가 학교 다니느라 고생이 많다.”고 위로하며 손때 묻은 묵주를 손에 꼭 쥐어줬다고 한다. “며칠 전 술을 먹고 명동성당으로 찾아와 행패를 부렸던 노숙자들이 있었습니다. 따뜻한 차 한 잔 드린 뒤 돌려보냈는데, 돌이켜보니 아마 그 분들이 예수님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네요.”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큰 사랑 고맙습니다… 당신으로 행복했습니다”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큰 사랑 고맙습니다… 당신으로 행복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식이 치러진 닷새동안 대한민국은 종교를 초월한 하나의 거대한 추도식장이었다. 김추기경이 뿌려 놓은 사랑과 희생의 바이러스는 가톨릭신자뿐 아니라 온 국민의 마음 속으로 파고들었고, 그 감동은 다시 따뜻한 손길이 되어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자리잡았다. 이렇듯 2009년 2월의 대한민국은 김 추기경의 선종을 그저 슬픔을 나누는 추도의 장에 머물지 않게 하고 아름다운 축제의 현장으로 변모시키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김 추기경이 선종한 16일부터 용인공원묘지에서 영원한 안식을 찾은 20일까지 이모저모를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 안주영 도준석기자 jya@seoul.co.kr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사랑, 용서… 그 분이 남긴 귀한 유산”

    ●명진스님(봉은사 주지) 종교인으로서뿐 아니라 인간적인 소탈함이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고 배타적이지 않은 자세가 타종교인들의 머리도 숙이게 했다. 김 추기경이 마지막으로 남긴 “고맙다”는 말씀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그분의 전체 삶을 보여준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메시지이자 물질만 추구하는 시대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박형규 목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 고 김수환 추기경은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언제나 가장 낮은 자리에 관심을 뒀던 분이다. 고생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곁에 항상 머물고자 한 그의 삶은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해 “낮은 곳으로 가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덕(성균관장·한국종교인평화회의 대표회장) 참다운 종교인이면서 종교간의 벽을 허물었던 분이다. 다종교사회인 한국이 별다른 종교분쟁 없이 지내온 것도 따지고 보면 그분의 덕이 크다. 종교간 화합을 위한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를 창립하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했으며, 자신의 종교보다 이웃종교를 더 배려한 마음은 종교인은 물론 모든 국민이 배워야 할 귀중한 정신적 자산이다. ●김남조(시인) 명동성당으로 조문을 갔다 왔는데 추위에 몇시간씩 떨면서 많은 조문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보면서 민중의 아름다움을 봤다. 사람들 마음 속에 더 많은 공감과 더 좋은 유대가 이뤄지게 한 것도 그 분의 유산이다. 고인의 큰 뜻이 후세까지 전달돼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데에 언제나 조언을 제시하는 귀한 유덕(遺德)이 됐으면 한다. ●정호승(시인) 결국 인간은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제일 중요한 사실을 온몸으로 남겼다. 종교의 벽을 넘어서는 추모열기를 보면서 추기경이 종교인 차원이 아니라 한 시대를 이끌어 온 하나의 구심점 또는 우리 삶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우리가 그의 소중함을 너무 뒤늦게 깨닫는 것 같아 안타깝다. ●유안진(시인) 내 삶이 어떠했는가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갈 정도로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삶을 추구한 그의 모습이나 “고맙다.”나 “사랑하라.”는 마지막 메시지는 물질이나 명예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모범이 될 것이다. 종교인의 삶이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이장무(서울대 총장) 그의 선종은 우리 모두에게 큰 슬픔으로 다가온다.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희생과 사랑을 몸소 보여준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은 국민들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또한 마지막까지 실천한 그의 사랑의 메시지는 앞으로 우리 사회의 갈 길을 제시하는 등불이 될 것이다. ●이석연(법제처장) 사분오열된 우리 사회에 진실과 관용에 기초한 공동체적 유대가 필요하다. 추기경은 하느님의 나라로 떠나면서도 그 유대를 복원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공동체적 유대를 회복하고 정부나 국회는 통합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는 국민들 마음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국가가 어려울 때 떠난 그의 정신을 생각해 국정에 임해야 할 것이다. ●강지원(전 청소년보호위원장) 우리 민족이 어려울 때마다 희망의 등불이 돼 줬고 불의에 대해 가차없이 질책했던 분이다. 그러면서 약자에게는 따뜻한 손을 내밀어 준 데 대해 정말 감사를 드리고 싶다. 앞으로도 우리들 마음의 등불이 돼 주기를 기원한다. 국민들이 그의 정신을 깊이 새겨 서로 화목하고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현정은(현대그룹 회장) 개인적으로 김수환 추기경은 외할아버지의 장례미사를 직접 집전해 주신 인연이 있기 때문에 가깝게 느껴진다. 나도 언젠가 김 추기경께서 직접 대중가요 ‘애모’를 부르는 것을 인상깊게 본 기억이 있다. 한국 사회를 위해 애써 오신 그의 선종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아주 커다란 손실이며,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교황 베네딕토16세 고별사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교황 베네딕토16세 고별사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의 선종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을 느끼며 정진석 추기경님과 모든 한국인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랫동안 서울의 가톨릭 공동체를 위하여 헌신하시고 추기경단의 일원으로서 여러 해 동안 교황에게 충심으로 협력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억하며, 저는 여러분과 함께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분의 노고에 보답해 주시고 그분의 고귀한 영혼을 하늘나라의 기쁨과 평화로 맞아들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장례 미사에 모인 김수환 추기경님의 친족과 모든 분에게 주님의 힘과 위로에 대한 보증으로서 진심으로 사도의 축복을 보내 드립니다.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수환 스테파노’ 한국의 104번째 성인 될까

    가톨릭교회에서 ‘성인’은 신자들에게 가장 존경받고, 닮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삶과 인품이 귀감이 됐기 때문에 오래 기억하려고 하고, 세례를 받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택할 수도 있다. 국내 가톨릭 신자의 세례명으로 ‘대건 안드레아’가 많은 것은 한국의 대표적인 성인 김대건 신부의 세례명을 따라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수환 추기경이 성인이 되면 ‘수환 스테파노 성인’의 이름을 딴 ‘수환 스테파노’의 세례명이 생겨나게 된다. 문제는 성인으로 가는 길이 까다롭고 험난하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시복시성’(복자에 올리고, 성인에 올림)은 사후 5년이 지난 뒤에 추진한다. 일단 성인 반열에 오르기 전에 ‘복자’가 돼야 한다. 복자는 성인으로 가는 전 단계로 상당한 수준의 자기희생 등이 입증돼야 한다. 우선 지역(한국) 교구에서 각종 자료와 증거를 찾아서 로마 교황청에 ‘시복시성’을 요구해야 한다. 로마 교황청의 시성성에서는 자료를 검토한 뒤 직접 현장에 와서 실사를 한다. 이때는 증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1~2년씩 걸릴 수도 있다. 자료가 사실임이 확인되면 복자 반열에 오르게 된다. 성인은 그 뒤에 성경에 나타나 있는 예수의 다양한 기적들을 추가로 수집해서 추진해야 한다.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김 추기경의 시복시성 추진을 공식화하지 않는 것은 절차의 복잡성과 엄격함 등으로 일이 더디게 진행될 경우 김 추기경의 명예에 누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여기에 생전에 김 추기경의 자기희생적인 모습은 많지만, 기적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순교자의 경우 기적 여부가 면제되지만, 선종한 경우에는 기적 여부를 따진다는 것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참 자랑스러웠던 아버지 같았던 분”

    ●오스발도 파딜랴 주한 교황대사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교황님과 교황청과 각별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셨습니다. 또 언젠가 “나는 그저 당신 양떼에게 비천한 종일 뿐”이라고 저에게 하신 말씀과는 달리 사제요, 영적 지도자로서 당신에게 맡겨진 양떼에게 충실하고도 선견지명을 갖춘 훌륭한 목자셨습니다. 교구장 지위에서 물러난 후에도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항상 낙천적이고 기쁜 모습을 보여줬던 참 신앙인이셨으며, 당신의 전 생애와 영면을 통해 당신이 참된 하느님의 사람이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주님의 사랑 안에 영원히 머무르실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와 함께 주님께서 김 추기경님을 영원히 사랑하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강우일 주교 온 국민이 마음으로 의지하던 아버지 같은 분을 잃은 슬픔에 젖어 있습니다. 명동만이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심지어 제주에서조차 조문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지금 세상살이가 너무 어렵고 희망은 안 보이고 어디를 봐도 의지할 데가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추기경님의 떠나심이 더욱 안타깝고 우리 모두를 불안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연세가 많아지신 다음에는 도저히 빚을 갚을 길이 없음을 알고 요모양 요꼴이라고 탄식하며 자신에게 ‘바보야’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분명 이렇게 말하실 것입니다. ‘어서 오너라. 내 사랑하는 바보야. 그만하면 다 이뤘다.’ 편안히 가십시오. 주님 나라 들어가시면 평소 불쌍히 여기시던 백성을 위해 주님께 간구해 주십시오. ●최승룡 전 가톨릭대학 총장 추기경께서 돌아가시면서 각막을 기증하셨습니다. 이 기증으로 누군지는 모르지만 두 사람이 빛을 보게 됐다고 합니다. 장기기증 행렬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평소보다 다섯 배 늘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어떤 장관도 본받아서 기증서에 서명했다고 합니다. 추기경님의 배려와 사랑이 주위 사람들에게 감염돼 기증자와 수혜자가 늘게 되고 5000명이 빛을 보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각막 이식 대기자가 모두 빛을 보려면 5년 9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 기간을 1년 혹은 6개월로 단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 마음의 눈이 멀었습니다. 추기경을 모범으로 이 눈을 열게 되면 이는 더 큰 기적이 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한홍순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 이승에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 저희 마음은 한없는 슬픔으로, 그러나 동시에 기쁜 희망과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온 국민이 추기경님의 선종을 애도하는 것을 보며 저희는 평생을 착한 목자의 삶을 사신 추기경님이 자랑스럽고 고맙고, 그리고 이런 목자를 우리 민족에게 보내주신 하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추기경님은 당신 죽음까지도 도구 삼아 우리와 모든 이를 구원의 빛으로 인도하는 영원한 사제요, 선교사이십니다. 저희도 하느님께, 나아가 추기경님을 다시 뵈올 때까지 가르침을 따라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땅에 떨어져 죽는 밀알 같은 삶을 살기로 다짐합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하는 데 이바지하기로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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