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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브란스병원, 위암 내시경치료 진정요법 개발

    세브란스병원, 위암 내시경치료 진정요법 개발

    이상길(소화기내과)·유영철(마취통증의학과) 세브란스병원 교수팀은 위암 내시경치료를 할 때 환자의 각성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진정요법을 개발했다고 1일 밝혔다. 연구팀은 2014년 9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조기 위암 또는 위 선종으로 내시경점막하박리술을 받은 환자 72명을 36명씩 두 그룹으로 나눈 후 대조군 시험을 진행했다. A 그룹은 프로포폴과 체중 1㎏당 미다졸람 0.02㎎을 추가로 투여받았고, B 그룹은 프로포폴만 투여한 채 내시경점막하박리술이 시행됐다. 이후 연구팀은 환자들이 느낀 만족도, 통증을 느낀 정도, 시술 중 각성 여부, 추후 같은 시술을 반복할 시 같은 방식의 진정요법을 요청할 것인지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대부분의 문항에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지만, 시술 중 각성 여부는 차이가 있었다. A 그룹은 시술 내용이나 과정을 기억하는 환자가 0명이었지만, B 그룹의 경우 일부(4명) 환자가 ‘대부분 기억한다’고 응답했다. 따라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주도로 관련 기준에 따라 안전하게 적당량의 미다졸람을 프로포폴과 함께 투여하면 각성 효과가 높아져 환자가 수술받을 때 느끼는 고통과 공포를 줄일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이상길 교수는 “환자에 따라 시술 상황을 기억하는 경우가 있는데 소량의 미다졸람을 추가로 투여하면 각성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외과 내시경지’ 최근호에 실렸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국립민속박물관의 세종이전을 재고해주세요”

    “국립민속박물관의 세종이전을 재고해주세요”

    국립민속박물관을 세종시로 이전한다는 소식에 ‘박물관 지킴이’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종철 전 한국전통문화대 2·3대 총장 등 한국박물관을 사랑하는 박물관 관계자·문화유산전문가 등 11명은 지난 21일 3시간에 걸친 회의를 가졌다. 국립민속박물관 이전문제가 핵심 논의대상이었다. 정부에서 국립민속박물관을 당초 이전 대상지인 용산 미군기지 이전지가 아니라 세종으로 이전하려는 방침을 재고해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다음은 이 총장이 이 회의를 토대로 도종환 문체부 장관에게 보낸 건의문이다. 안녕하십니까? 국민의 사랑 받는 시인이시며, 도종환 국회의원님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취임을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평소 남다른 국정을 펴시는 분이라 여겼으니, 기대 역시 큽니다. 저는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국립광주박물관 연구실장, 국립전주박물관장, 국립민속박물관장을 역임하고, 노무현 대통령 취임 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2ㆍ3대 총장으로 임명되어 41년 간 공직에 봉사했던 이종철입니다. 7월 중순 “국립민속박물관의 세종시 이전 계획이 국정기획위원회에서 보고되었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제 눈과 귀를 의심하였습니다. 풍문에 의하면, 세종시로의 이전 이유가 문화부 소유 용산부지가 너무 좁다는 데 있고, 대안으로 세종시 박물관 단지로 이전하는 한편 용산의 이전 예정부지는 국립문학박물관을 건립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뜬금없는 내용인데, 만일 이러한 성급한 정책이 현실화된다면,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수도권 시민의 문화 향유권이 약해지고 서울을 찾는 외국인의 한국문화 체험 명소가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국립(중앙)민속박물관은 한국인의 5천 년 생활사를 집약 전시한 문화 현장이고 서울·경기의 중심에 자리 잡은 이점이 더해져 외국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대표적 문화체험 공간으로서 명성을 떨쳐 왔습니다. 박물관미술관 진흥법 10조와 65조에는 국립민속박물관은 민속문화를 대표하는 국가 대표박물관으로서, 국립중앙박물관ㆍ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서울에 두고(진흥법상의 묵시적 함의라 생각합니다) 세계 각국의 생황양식의 전시와 교육을 위한 지방박물관을 둘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세종시의 국립민속박물관 이전보다 국제적 경쟁력이 있고 세계문화유산을 소통시킬 수 있는 국립어린이인류학 박물관(6ㆍ25참전국, 아세안 중심의 다문화이해)을 문재인 정부의 이니셔티브로 다시 추진하여 문대통령님 임기내 개관 할 것을 간곡히 건의합니다. 저는 국립전통문화대학교 총장 시절인 2006년 2월부터 세종시 어린이인류학(민족학)박물관 건립 추진위원장을 맡아 문화대국의 기틀을 다지는 데 봉사한 바 있습니다. 이 계획은 연구용역과 건물 설계까지 마무리되어 순조롭게 추진되다가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진행된 대운하 건설과 관련하여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어린이박물관 건립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경애하는 도종환 장관님 문화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어서는 아니 됩니다. 더욱이 ‘국민의 나라, 문화가 숨 쉬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문화정책은 연속성을 지녀야 합니다. 이전부터 준비하고 계획했던 국립민속박물관의 용산 이전을 실행해야 합니다. 국립민속박물관 용산 이전은 김대중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로 기획되었고, 1999년부터 2011년 12년 동안 문화관광부 문화정책국ㆍ한국문화정책개발원ㆍ국립민속박물관ㆍ민속학회와 인류학회 등이 추진하여 한국개발원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현재 진행형의 사업입니다. 2009년 3월 30일, 국가건축정책위원회에서는 국가 상징거리 조성계획에 삼각지의 전쟁기념박물관 근처에 입지 계획을 발표하고, 당년 10월 20일에는 문화관광부 기획재정부 용역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서울시ㆍ건교부 등 관련 기관과 여러 차례 협의를 진행해 왔습니다. 아울러 국립민속박물관은 수장고의 부족을 메꾸기 위해 파주출판문화단지 내 개방형수장고와 경기북부의 문화향유권을 제공하기 위해 야외전시 공간시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종시 이전 발표로 원대한 계획은 하루아침에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습니다. 우리 문화인은 세계인의 문화수도인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이나 미국의 수도 워싱턴의 스미소니안몰과 같은 문화명소를 꿈꿉니다. 문재인 정부의 하이라이트는 국민문화시설 창조이고 문화복지입니다. 숲이 있는 용산공원 내의 박물관 건립은 문화명소를 갖는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문화적 위용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모스크바의 푸쉬킨 시비에 헌화된 공산치하 무명국민의 참배를 기억하시겠지요? 문화는 생명의 길이고 삶의 가치를 지향하는 디자인입니다. 용산이 지닌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우리의 몫입니다. 문화가 집약된 박물관 건립으로 말입니다. 친애하는 도 장관님 문화부의 문화기반 정책국과 국립민속박물관 측에서는 도 장관님께 보고한 내용이나 국정위 결정지시 공문 일체를 소직에게 함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난 7월 26일부터 오늘까지 한 달 여를 고민하면서 문화유산 발굴과 창달에 평생을 바친 공직자의 신념과 양식으로서, 국정위 결정은 미래지향적인 발전 계획이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장관님께 건의를 드리는 것이 도리라 생각하여 어설픈 글로 청원을 올립니다. 최대다수의 국민을 위한 의미 있는 문화정책을 기대합니다. 그럴 때 문화가 숨 쉬는 대한민국이 가능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세종시의 이전 계획을 재고하시고 용산공원 내의 이전 건립을 재확정해 주십시오. 지난 주 입추가 지나고 문화의 계절인 가을이 시작되었습니다. 부디 장관님의 용단으로 아름다운 가을, 문화가 결실을 맺는 문재인 정부의 첫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바쁘신 가운데 저의 청원서를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장관님의 강건과 광영, 문화체육관광부의 무한 발전을 빕니다. 2017년 8월 28일 이종철 올림 *추기 아울러 저의 건의는 한국박물관을 사랑하는 박물관 관계자ㆍ문화유산전문가 등 11명이 모여 3시간에 걸쳐 논의한 끝에 합의한 내용을 간추려 만든 청원서임을 해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강신표 인재대 문화인류학 명예교수 김영종 건축가, 종로구청장 김의정 (사)국립민속박물관회 이사장, 명원문화재단 이사장, 전 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장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김홍남 한국내셔날트러스트 공동대표,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문미옥 서울여대 아동학 교수, 한국 아해어린이박물관장 이선종 원불교 중앙본부 교무, 은덕문화원장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문화재위원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아세아문화중심도시 추진위원장 이종철 전 한국전통문화대 2·3대 총장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큰 바위에 새겨진 ‘공동묘지’… 왕실 여인들의 마지막 흔적일까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큰 바위에 새겨진 ‘공동묘지’… 왕실 여인들의 마지막 흔적일까

    오늘은 서울 근교의 불암산(佛巖山)으로 간다. 서울 동부의 노원구와 경기 남양주시에 걸쳐 있는 불암산은 바위 봉우리가 송낙을 쓴 부처의 모습이어서 이렇게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송낙이란 완만한 삼각 모양의 승려들이 쓰는 모자다. 불암산은 천보산(天寶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산의 동쪽 기슭인 남양주 별내면에는 불암사(佛巖寺), 서쪽 기슭인 노원구 중계동에는 학도암(鶴到庵)이 있다. 두 곳에서는 흔치 않은 마애부도 혹은 마애사리탑을 집중적으로 만날 수 있다.부도(浮屠)란 유골을 안치한 묘탑(墓塔)이다. 산스크리트어의 붓다(Buddha)를 음역한 것이라고도 하고 산스크리트어의 스투파(stupa)나 팔리어의 투파(tupa)가 변형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곧 부처를 가리키거나 부처의 유골을 모신 탑(塔) 혹은 탑파(塔婆)를 의미한다.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국가지정문화재는 이제 ‘부도’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대신 ‘승탑’(僧塔)으로 표기한다. 국보 제53호 ‘구례 연곡사 동(東) 승탑’도 과거에는 ‘구례 연곡사 동 부도’로 불렀다. 흔히 탑이라 부르는 불탑(佛塔)과 승려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묘탑을 구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다만 시·도 지정 문화재는 지금도 부도라는 이름을 쓴다.하지만 부처의 무덤이 아닌 불교식 묘탑은 꼭 승탑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함안 안국사에는 15세기 전반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행호조사 모탑’(行乎祖師 母塔)이 있다. 세종시대 이 절을 중창한 행호조사가 출가하지 않은 어머니의 무덤을 이런 모습으로 조성한 것으로 짐작된다. 실물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이른바 재가신자(在家信者)의 묘탑이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기록은 이보다 훨씬 거슬러 올라간다. 실학자 이중환(1690~1752)은 인문지리서 ‘택리지’에 ‘청평산에 절이 있고 절 옆에는 고려시대 처사 이자현이 살던 곡란암 옛터가 있는데, 그가 죽자 절의 승려가 세운 부도가 지금도 산 남쪽 10리 남짓한 곳에 남아 있다’고 적었다. 이자현(1061~1125)이라면 출가는 하지 않았지만 춘천 청평산에 들어가 암자를 짓고 선학(禪學)을 닦았다는 인물이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승탑의 조성은 선종(禪宗) 불교의 도래와 궤를 같이한다.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선종의 가르침은 때마침 발호하던 호족에게도 ‘세력을 키우면 누구나 왕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자리잡았고 결국 송도 호족 왕건이 신라를 무너뜨리고 고려 왕조를 세우는 바탕이 되기도 했다.통일신라 시대에는 선문(禪門)을 이끌 정도의 고승(高僧) 반열에 올라야 승탑 건립 대상이 됐다. 고려 시대에도 국사(國師)나 왕사(王師)급 지위에 올라야 승탑에 안장될 수 있었다. 그러니 크고 화려한 승탑과 탑비(塔碑)의 건립은 국가적 역량을 한데 모아야 하는 작업이었다. 조선시대 상황은 다르다. 억불(抑佛)의 강도가 높아 불사(佛事) 자체가 위축됐던 초기에는 승탑 건립 역시 부진했다. 하지만 불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위상도 다시 높아졌다. 18세기가 되면 지위가 높지 않은 승려라도 입적하면 묘탑을 다투어 세우게 된다. 불교국가에서 승탑의 건립은 정치적 의미가 큰 의례였지만 역설적으로 유교국가에서는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신자들의 묘탑이 늘어나는 것도 새로운 현상이었다. 18세기 중반부터 본격 조성된 재가신자들의 묘탑은 19세기가 되면 더욱 늘어난다. 이자현 부도나 행호조사 모탑만 해도 고정관념에 매몰되지 않은 신선한 파격이었지만, 이제 신자들의 묘탑을 세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더불어 19세기 서울 주변 지역에서는 마애부도가 다투어 출현한다. 곧 바위에 조각한 부도다. 승려보다 재가신자 것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특징을 지녔다.불암사는 산 아래 별내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찾는 사람이 더욱 많아졌다. 일주문으로 들어서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곧 절이다. 그런데 마애부도를 찾기는 쉽지가 않다. 절의 일을 돕는 보살님에게 그 존재를 물었지만 처음 듣는 얘기란다. 마애부도는 일주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보이는 등산로를 따라가야 만날 수 있다. 작은 시내를 건너 올라가다 보면 큼지막한 바위가 하나 나타난다. 포장도로를 내기 전에는 굽이돌아가는 이 길이 주(主)통행로였을 것이다. 바위에 가까이 다가서면 나란히 직사각형의 구획을 지어 조각하고 그 위에 사리공(舍利孔)에 해당하는 감실(龕室)을 판 흔적이 보인다. 바위 남쪽면의 마애부도는 다섯 기다. 주인공의 이름을 새기지 않은 맨 왼쪽 것은 최근에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네 기는 모두 조선 후기 조성한 것이다. 서쪽면에도 최근의 마애부도 두 기가 있다. 옆에는 역시 근해의 원구형 부도 두 기도 보이니 명실상부한 불암사의 부도밭이다. 일반적인 부도가 개인 묘지라면 큰 바위에 복수로 새겨진 부도는 공동묘지라고 할 수 있다. 서쪽면 부도의 주인공은 오른쪽부터 청신녀 덕원(德元), 청신녀 정심(淨心), 청신녀 상념(常念)이다. 정심의 부도에는 ‘가경(嘉慶) 17년’이라고 새겨져 있으니 1812년 조성된 것이다. 가경은 청 인종의 연호다. 청신녀(靑信女)란 재가 여성신자를 가리킨다. 많은 시주 등으로 절과 깊은 관계를 맺었을 것이다. 그 왼쪽은 청송당(靑松堂) 성감선사(性鑑禪師)의 승탑이다. 조각에서 승려와 신자의 위계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불암사는 세조가 한양 사방에 왕실 원찰(願刹)을 정하며 동불암(東佛巖)으로 낙점했던 만큼 마애부도의 청신녀들은 왕실과 주변 여인들이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불암산 서쪽의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 자락 도선사(道詵寺) 주변에는 ‘김상궁정광화지사리탑’(金尙宮淨光花之舍利塔)이라는 명문이 있는 마애부도가 있다. 서울 서대문 안산 자락의 봉원사(奉元寺)에서도 또 다른 ‘상궁 김씨’의 마애부도를 찾을 수 있다. 상궁을 비롯한 궁인들이 출궁 이후 근교 절에서 여생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음을 방증한다. 학도암의 마애부도 역시 왕실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중계동 아파트 단지와 주택 밀집지역의 골목 사이로 구부러진 도로를 따라 학도암을 찾아가는 길은 복잡하기만 하다. 하지만 학도암에 오르면 서울에 이런 곳에 있을까 싶을 만큼 시원한 풍광이 펼쳐진다. 두 기의 마애부도는 학도암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다리를 건너기 직전 오른쪽 바위에 있다. 왼쪽은 청신녀 월영(月影)의 묘탑, 오른쪽은 환□당(幻□堂) 취근(就根)선사의 승탑이다. 월영탑에는 1819년 조성했음을 알리는 명문이 있다. 조각수법으로 보아 취근선사 것도 비슷한 시기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학도암은 높이 22m의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높이 13.4m의 관음보살로 유명한 절집이다. 마애관음은 1872년 명성황후가 시주해 조성한 것으로 사지(寺誌)는 기록하고 있다. 왕실과 깊은 연관을 맺었음을 알 수 있다. 불암사에서도, 학도암에서도 등산객과 참배객은 대부분 무심하게 마애부도 곁을 지난다. 무심하다기보다 마애부도라는 사실을 모른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더불어 마애부도가 유행한 이유를 밝히는 학계의 노력도 아직은 부족하다.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 부도의 명칭에도 여운이 남는다. 문화재청이 쓰는 ‘승탑’이라는 표현은 재가신자의 묘탑을 수용하지 못한다. 신자의 묘탑 가운데 국가지정문화재가 없으니 용어를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서울시는 시 마애부도를 유형문화재로 지정하면서 ‘마애사리탑’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재가신자의 무덤을 사리탑이라고 부르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마애부도의 성격을 밝히면서 용어의 재정립도 필요하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NC 김경문 감독 “감독은 항상 선수와 함께 하고 있다”

    NC 김경문 감독 “감독은 항상 선수와 함께 하고 있다”

    NC 다이노스의 김경문 감독이 홈구장 라커룸 길목 화이트보드에 써놓은 글귀가 있다. “감독은 항상 선수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다.”김 감독은 지난 2일 한화와의 경기를 앞두고 김평호 수석코치에게 이같은 말을 쓰게 했다. 최근 뇌하수체 양성 종양 진단을 받고 치료를 위해 자리를 비운 김 감독이 선수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NC는 김 감독이 자리를 비운 5경기 동안 NC는 3승2패를 기록하며 나쁘지 않은 결과를 내고 있지만 경기 내용에서만큼은 감독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는 게 야구팬들의 반응이다. 팬들은 김 감독이 얼른 쾌차해 건강히 복귀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  김 감독은 지난달 28일 kt전부터 급체와 어지럼증 증세로 자리를 비웠고 병원 검진을 받았다. 지난 1일 밝혀진 검진 결과에 따르면 김 감독의 뇌하수체에 직경 약 2㎝ 미만의 작은 선종이 발견됐다. 양성 종양으로 당장 외과적 시술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김 감독의 향후 회복 상태를 지켜봐야 한다. 아직 김 감독의 복귀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비디오스타’ 길건 “가슴 확대 수술 NO, 원래 E컵이었다” 루머 해명

    ‘비디오스타’ 길건 “가슴 확대 수술 NO, 원래 E컵이었다” 루머 해명

    가수 길건이 가슴 확대 수술을 했다는 루머에 대해 해명했다. 지난 1일 방송된 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에서는 방송인 하리수, 낸시랭, 가수 길건, 장문복, 뷰티크리에이터 김기수가 게스트로 출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길건은 가슴 확대 수술 루머 때문에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예전에 활동할 때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섬유선종이 발견돼 수술을 했다. 수술 후 한 달 동안 붕대를 감고 생활했다. 그 다음 앨범이 나왔을 때 워낙 가슴이 있다 보니까 수술했냐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며 해명했다. 길건은 이어 “예전에는 E컵이었다. 한국에서 맞는 속옷이 없었다”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사진=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 방송 캡처, 인스타그램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NC 김경문 감독, 뇌하수체 양성 종양…치료 때문에 당분간 결장

    NC 김경문 감독, 뇌하수체 양성 종양…치료 때문에 당분간 결장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의 김경문 감독이 뇌하수체 양성 종양 진단을 받았다. 김 감독은 치료 때문에 당분간 결장이 불가피하다.NC 구단은 1일 “지난 주말 동안의 입원과 치료로 김 감독의 건강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는 점을 알려드리게 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김 감독의 상태를 전했다. 김 감독은 지난달 28일 급체와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분당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NC에 따르면 병원에서 자기공명영상(MRI)과 각종 혈액검사를 받은 김 감독은 뇌하수체에서 직경 약 2㎝ 미만의 작은 선종이 발견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주치의는 “이 선종은 악성이 아닌 양성 종양이어서 외과적 제거 시술이 당장 필요하지는 않은 상황”이라는 소견을 냈다. 다만 병원은 뇌하수체의 호르몬 분비 기능에 이상이 있는지 추가로 검사했고, 김 감독이 호소한 어지럼증과 구토 증세의 원인은 전해질 수치 저하 때문이었다고 진단했다. NC는 “김 감독은 치료로 기존 증세가 완화됨에 따라 죽·국 등 음식을 서서히 섭취하는 등 건강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 감독은 추가적인 치료를 받으며 며칠간 경과를 지켜볼 예정이다. NC는 “구단 측과 김 감독의 협의에 따라 치료 및 회복 기간에는 지난 주말과 같이 김평호 수석코치가 더그아웃을 책임지기로 했다”며 “김 감독의 쾌유와 많은 성원을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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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부 ◇일반직 고위공무원△대학정책실장 전담직무대리 이진석△정책기획관 최은희△학생복지정책관 정종철△대학정책관 최은옥△학술장학지원관 박성수△지방교육지원국장 신익현△교육부 강영순 ■농림축산식품부 ◇과장직위 승진△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인증관리팀장 김신재◇과장급 전보△식품산업정책실 창조농식품정책관실 과학기술정책과장 이덕민 ■해양수산부 ◇임용△장관정책보좌관 김병운◇과장급 전보△부산지방해양수산청 항만물류과장 강정구 ■기상청 ◇4급 과장급 전보△청장실 이은정△창조행정담당관 전재목△연구개발담당관 정현숙△수도권기상청 예보과장 정종운△기상레이더센터 레이더기획팀장 신언성 ■전남도 ◇승진△청렴지원관 박화현△토지관리과장 박병춘△총무과장 김회필△농업기술원 축산연구소장 정광욱△동부지역본부 환경보전과장 윤의석△해양수산과학원 남부지부장 정경태△국회사무처 파견 강찬석△녹색에너지연구원 파견 김병남△행정자치부 전출 전광호△여수시 전출 최인규◇직위승진△창조산업과장 김종갑△노인장애인과장 윤연화△해양수산융복합벨트추진단장 신영호△비서실장 곽재구△의회사무처 수석전문위원 고동석 정하용△농업기술원 과수연구소장 황인택△전남개발공사 파견 한병선△전남복지재단 파견 송태현◇전보△관광과장 최성진△농업정책과장 김선호△수산자원과장 송원석△회계과장 손점식△도로관리사업소장 장정기△전남에너지공사설립준비단 파견 차주경△광주전남연구원 파견 이기춘△전남환경산업진흥원 파견 김영철△전남테크노파크 파견 신연호△국제수묵화비엔날레사무국 파견 최병용◇전입△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 부장요원 전동호△농업기술원 기술보급과장 정찬수◇전출△농촌진흥청 김희열◇공로연수△나정수 안기홍 김태환 장용칠 윤영진 백창환 서상선 정병준 박상국 차성충 ■국토연구원 △부원장 이상준△국토계획·지역연구본부장 차미숙△도시연구본부장 김명수△주택·토지연구본부장 강미나△국토인프라연구본부장 이백진△국토정보연구본부장 임은선△기획경영본부장 김태환△국토계획평가센터장 이순자△지역경제연구센터장 변필성△한반도·동북아연구센터장 이현주△도시재생연구센터장 서민호△도시방재·수자원연구센터장 이병재△부동산시장연구센터장 변세일△건설경제연구센터장 김민철△인프라정책연구센터장 김종학△국토정보분석센터장 이영주 ■광주대 △대학원장 김창식△보건복지교육대학장 김황용△인문사회대학장 전정환△경영대학장 박종찬△공과대학장 민용기△문화예술대학장 오병욱△총무처장 장기영△호심인재개발원장 윤홍상△정보전산원장 나종회△국제교육원장 이득기△호심기념도서관장 윤정기△교양교육원장 박진영△평생교육원장 조정식△국제교육원 외국어교육센터장 문상화 ■신용보증기금 ◇영업점장 전보△강북 곽도훈△강서 이희창△포천 장기현△파주 구자군△강릉 김정태△원주 진용주△속초 정창훈△동해 박상우△안양 조상무△오산 안승협△군포 이재훈△경기광주 전용찬△인천 인양수△부평 안형순△남동 심상완△시화 정도영△청라 김선모△시흥 이중식△사상 이병복△마산 유광희△통영 한승호△포항 이건수△영주 전만호△성서 고기조△안동 김성헌△순천 한종수△대전 김헌영△청주 김보연△충주 장재준△진천 채병호△아산 문수찬△제천 강신철△보령 현송욱△청주서 이대성△고양재기지원단 장기수△대전재기지원단 김동신△인천신용보험센터 이영조△부산신용보험센터 윤담◇본사 부서장 전보△감사실 감사반장 송주현 ■KEB하나은행 ◇지점장△세종로 권태곤△약수 김민태△목동역 김삼환△교하 김선태△아시아선수촌PB센터 김연준△문수로 김우환△서초동 김인기△영등포금융센터 김종민△가락동 겸 가락 김진국△반포중앙 김창현△신천역 겸 잠실 김춘열△방배금융센터 류승기△일산백마 문승선△전경련 겸 하나금융투자센터 민명기△남가좌동 박순호△부천상동 박영환△동래 겸 온천동 박재목△창신동 박조미△수원서문 박주용△송도금융센터 백승악△구로상가 서준호△압구정 성경록△안산 겸 안산중앙 성재창△응암역 겸 응암동 송일준△종로 신미현△메트로자이 신성훈△화곡역 안방수△청량리 겸 청량리역 안병희△상무중앙로 겸 상무 오명석△부천 유근흥△풍덕천 이경하△도산대로 겸 학동 이기용△문정래미안 이동국△구의역 이동직△서귀포 이병승△공주 이용록△시흥남 겸 시흥동 이용현△사당동 이욱△운정 이재우△노량진 이재우△이매동 이재원△매봉 이지현△호평 이진우△영주 이현직△가스공사 이희창△화정 겸 화정역 임상진△압구정중앙 겸 동압구정 임영노△청계4가 임희철△매탄 정성진△다대동 정순부△영업1부PB센터 겸 영업부PB센터 정원기△구로디지털단지 겸 구로디지털중앙 정인호△봉선동 조영주△도당동 조원철△혜화동 주진숙△논산 겸 논산지원 지우진△전농동 최문형△한남중앙 겸 한남1동 최선종△판교중앙 한병철△신제주 현권수△방배본동 홍성혁◇지점장 겸 RM△강남역금융센터 겸 삼성타운 강재신△목포하당 겸 목포 고병운△김포 겸 김포대로 김상수△주엽역 겸 주엽동 김학석△성수중앙 겸 성수역 김현찬△여의도금융센터 겸 증권타운 박경신△부평 겸 부평중앙 박종렬△용인 배승용△성서 겸 성서기업센터 배종필△충무동 손진△오산 유용무△을지로 이민석△사상중앙 겸 사상 이병직△당산동 이병현△인천금융센터 이창환△신림동 겸 신림역 이한주△평촌스마트 전봉구△전주 겸 전주중앙 전태평△범계역 겸 평촌 정규원△가산디지털 겸 가산디지털3단지 주건영△청주 겸 청주중앙 최용섭△창원 겸 창원기업센터 최장민△수서역 한일석◇RM△평촌역 강성문△수원금융센터 박찬후△경수기업센터 배윤식△반월기업센터 배준원△신촌 심우창△김포구래 안승건△이수역 양철진△시화기업센터 이재호△롯데월드타워금융센터 하송암◇센터장△강남WM센터(Club 1 PB센터) 이재철△방배서래골드클럽 장정옥◇GOLD PB△강남PB센터 김성호◇개설준비위원장△롯데월드타워골드클럽 노승규△한남1동골드클럽 유보영 ■BC카드 ◇부문장 승진 <전무>△영업부문장 김진철◇본부장 승진△가맹점본부장 박상범△글로벌본부장 임남훈◇실장 승진△사업전략실장 전지환◇본부장 전보 <상무>△마케팅본부장 장길동
  •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미륵 자처한 태봉의 왕, 죽주땅 석불로 세워진 궁예의 천년 흔적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미륵 자처한 태봉의 왕, 죽주땅 석불로 세워진 궁예의 천년 흔적

    ‘신라 말기에 정치가 거칠어지고 백성들이 흩어져 왕도 지역의 바깥 고을은 반란을 일으키거나 지지하는 것이 반반이었다. 원근에서 도적의 무리들이 벌떼처럼 일어나고 개미처럼 모여드는 것을 보고 선종(善宗)은 어지러운 때를 타서 백성을 모으면 가히 뜻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진성왕 5년(891) 죽주적괴(竹州賊魁) 기훤에게 투탁하였다.’●‘죽주적괴’ 기훤 휘하에 1년 남짓 머물러 ‘삼국사기’ 궁예열전의 한 대목이다. 선종은 세달사의 승려였다는 궁예의 법명이고 죽주적괴는 죽주의 도적두목이라는 뜻이다. 기훤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신라의 왕족 출신인 궁예가 그 휘하로 들어갔다는 것은 당시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죽주는 오늘날의 경기도 안성 동부 지역으로 죽산, 일죽, 삼죽 같은 땅이름이 역사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궁예는 ‘기훤이 업신여기고 예로 대하지 않으므로, 근심하며 안심하지 못하고 있다가 몰래 기훤 휘하의 원회와 신훤 등과 결탁하여 벗을 삼았다’고 ‘삼국사기’는 전한다. 이후 궁예가 죽주에서 포섭한 세력을 이끌고 오늘날의 강원도 원주인 북원(北原)의 초적(草賊) 양길에게 다시 의탁한 것은 한국사 교과서에서 배운 바와 같다. 이것이 진성왕 6년(892)이라니 궁예가 죽주에 머문 기간은 한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궁예는 독자적인 세력을 키워 898년 오늘날의 개성인 송악에서 자립의 기초를 닦는 한편 휘하에 들어온 왕건으로 하여금 양길을 물리치게 한 다음 901년 고려를 세우고 904년 마진, 911년 태봉으로 국호를 바꾼다. 수도를 강원도 철원으로 옮긴 것은 905년이다. 이후 태봉은 북쪽으로는 평양 부근, 남쪽으로는 공주와 상주를 아우르는 영토를 갖게 된다. 궁예는 918년 왕건 세력에게 축출되었으니 그의 시대 불과 20년 남짓이다. ‘태봉시대 미술’이 존재하기는 쉽지 않은 기간이다. 그럼에도 비무장지대 내부인 철원 풍천원의 태봉 도성에는 궁예세력이 조성한 석물(石物)이 남아 있다. 지금은 사진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대형 석등은 일제강점기 국보로 지정되기도 했지만 6·25전쟁 이후에는 행방을 모르고 있다. 학계는 정권의 존속 기간은 짧았어도 궁예가 승려 출신으로 스스로를 미륵불이라고 칭했던 만큼 불상을 비롯한 불교 조각의 조성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안성의 옛 죽주 지역에는 ‘궁예미륵’이라고 불리는 불상이, 그것도 복수로 전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이 조각들이 궁예와 실질적인 연관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어 흥미롭다. 안성시 삼죽면 기솔리의 국사봉 아래에는 기솔리 석불입상과 국사암 석조여래입상이 1㎞ 남짓 거리를 두고 자리잡고 있다. 지역에서는 두 불상을 모두 궁예미륵이라 부른다. 기솔리는 삼국시대 이후 죽주의 읍치(邑治)였던 죽산에서 7~8㎞ 떨어져 있다. 죽산에는 통일신라 이후 조선시대까지 천혜의 요새로 알려진 죽주산성이 있다. 그런데 기솔리 계곡은 북쪽 해발 438m의 국사봉을 정점으로 역(逆)U자의 지형을 보인다. 남쪽만이 좁은 통로로 열려 있을 뿐이니 방어에 유리하다.●비무장지대엔 태봉 시대 석물 남아 있어 기훤 휘하 시절 궁예도 기솔리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학계는 추측한다. 기솔리 석불입상 주변에는 지금 쌍미륵사라는 절이 터를 닦았다. 국사암은 여기서 산길을 한참 더 올라야 한다. 국사봉이라는 이름을 보면 일대는 안성 지역 민간신앙의 성지(聖地)로 봐야 할 것이다. 도적떼에 불과한 기훤의 세력을 사실상 무너뜨리고 후고구려를 창업한 궁예는 죽주의 산신(山神)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었을 것이다. 쌍미륵사라는 절 이름에서 보듯 기솔리 석불입상은 높이 5.8m 안팎의 부처 두 분이 10m 남짓 사이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정면에서 볼 때 오른쪽 석불은 남미륵, 왼쪽 석불은 여미륵이라고 한다. 한 장(丈) 여섯 척(尺) 크기의 이른바 장육상이라면 경제력은 물론 상당한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정치적 배경이 없으면 조성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역민이 십시일반 추렴해 세웠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뜻이다. 기솔리 석불입상의 조성 연대를 충남 논산 개태사 삼존불상보다 다소 앞서는 것으로 추정하는 연구도 있다. 개태사와 삼존불이라면 고려 태조 왕건이 황산벌에서 벌인 후백제와의 마지막 결전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상징물이다. 그런데 기솔리 입상은 통일신라 금동불의 표현을 보수적일 정도로 꼼꼼하게 모방한 반면 개태사 삼존불은 새로운 외래양식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솔리 석불입상의 상호, 즉 얼굴을 분석한 연구는 주목할 만하다. 남미륵의 입술을 보면 입꼬리는 수평으로 길게 뻗어나왔고 아랫입술과 윗입술은 벌어져 있다. 그런데 입을 벌리고 있는 불상은 우리나라는 물론 인도나 중국, 일본에서도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여기에 아랫입술과 윗입술 가운데는 도드라진 세로선이 새겨져 있다. 한마디로 남미륵의 입은 화살을 장전한 활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의 해석은 이렇다. 궁예(弓裔)는 글자 그대로 ‘활의 후예’라는 뜻이다. 여기서 활은 주몽을 뜻한다. 곧 주몽의 후예란 뜻이다. 궁예가 고구려의 후예를 표방한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태봉시대 궁예가 자신이 현세의 미륵불임을 보여 주려는 의도에서 조성한 것이 곧 기솔리 석불입상이라는 것이다.●석불과 궁예 연관성 불분명… 추가 연구 필요 국사암 석조여래입상의 높이는 본존이 310㎝, 좌협시가 245㎝, 우협시가 230㎝ 남짓하다. 궁예는 약병 같은 것을 들고 있는 좌협시를 문관, 칼을 들고 있는 우협시를 무관, 본존은 자신을 상징하도록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한 인상으로 조각 솜씨도 소박하다. 국사암 삼존상 역시 궁예미륵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조성 시기는 일반적으로는 고려 후기, 늦으면 조선시대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런 만큼 궁예 시대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해도 좋다. 그럼에도 쌍미륵보다 오히려 더 높게 표현된 머리의 책(幘)모양 보개(寶蓋)는 ‘삼국사기’ 기록처럼 ‘금책(金幘)을 쓰고 방포(方袍)를 입었다’는 궁예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책과 방포는 고구려의 왕실 인사나 귀족이 썼던 모자와 겉옷이다. 안성에서 궁예를 만나는 것은 조금 뜻밖이다. 물론 기솔리 석불입상이 궁예가 직접 발원해 만든 것인지는 조금 더 진전된 연구가 필요하다. 국사암 삼존상과 궁예의 관계도 조금 더 밝혀져야 한다. 그럼에도 옛 죽주땅 안성 기솔리에 남은 궁예의 흔적은 너무나도 뚜렷하다. 글 사진 논설위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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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부 ◇일반직 고위공무원△대학정책실장 전담직무대리 이진석△정책기획관 최은희△학생복지정책관 정종철△대학정책관 최은옥△학술장학지원관 박성수△지방교육지원국장 신익현△교육부 강영순 ■농림축산식품부 ◇과장직위 승진△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인증관리팀장 김신재◇과장급 전보△식품산업정책실 창조농식품정책관실 과학기술정책과장 이덕민 ■해양수산부 ◇임용△장관정책보좌관 김병운◇과장급 전보△부산지방해양수산청 항만물류과장 강정구 ■기상청 ◇4급 과장급 전보△청장실 이은정△창조행정담당관 전재목△연구개발담당관 정현숙△수도권기상청 예보과장 정종운△기상레이더센터 레이더기획팀장 신언성 ■전남도 ◇승진△청렴지원관 박화현△토지관리과장 박병춘△총무과장 김회필△농업기술원 축산연구소장 정광욱△동부지역본부 환경보전과장 윤의석△해양수산과학원 남부지부장 정경태△국회사무처 파견 강찬석△녹색에너지연구원 파견 김병남△행정자치부 전출 전광호△여수시 전출 최인규◇직위승진△창조산업과장 김종갑△노인장애인과장 윤연화△해양수산융복합벨트추진단장 신영호△비서실장 곽재구△의회사무처 수석전문위원 고동석 정하용△농업기술원 과수연구소장 황인택△전남개발공사 파견 한병선△전남복지재단 파견 송태현◇전보△관광과장 최성진△농업정책과장 김선호△수산자원과장 송원석△회계과장 손점식△도로관리사업소장 장정기△전남에너지공사설립준비단 파견 차주경△광주전남연구원 파견 이기춘△전남환경산업진흥원 파견 김영철△전남테크노파크 파견 신연호△국제수묵화비엔날레사무국 파견 최병용◇전입△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 부장요원 전동호△농업기술원 기술보급과장 정찬수◇전출△농촌진흥청 김희열◇공로연수△나정수 안기홍 김태환 장용칠 윤영진 백창환 서상선 정병준 박상국 차성충 ■국토연구원 △부원장 이상준△국토계획·지역연구본부장 차미숙△도시연구본부장 김명수△주택·토지연구본부장 강미나△국토인프라연구본부장 이백진△국토정보연구본부장 임은선△기획경영본부장 김태환△국토계획평가센터장 이순자△지역경제연구센터장 변필성△한반도·동북아연구센터장 이현주△도시재생연구센터장 서민호△도시방재·수자원연구센터장 이병재△부동산시장연구센터장 변세일△건설경제연구센터장 김민철△인프라정책연구센터장 김종학△국토정보분석센터장 이영주 ■광주대 △대학원장 김창식△보건복지교육대학장 김황용△인문사회대학장 전정환△경영대학장 박종찬△공과대학장 민용기△문화예술대학장 오병욱△총무처장 장기영△호심인재개발원장 윤홍상△정보전산원장 나종회△국제교육원장 이득기△호심기념도서관장 윤정기△교양교육원장 박진영△평생교육원장 조정식△국제교육원 외국어교육센터장 문상화 ■신용보증기금 ◇영업점장 전보△강북 곽도훈△강서 이희창△포천 장기현△파주 구자군△강릉 김정태△원주 진용주△속초 정창훈△동해 박상우△안양 조상무△오산 안승협△군포 이재훈△경기광주 전용찬△인천 인양수△부평 안형순△남동 심상완△시화 정도영△청라 김선모△시흥 이중식△사상 이병복△마산 유광희△통영 한승호△포항 이건수△영주 전만호△성서 고기조△안동 김성헌△순천 한종수△대전 김헌영△청주 김보연△충주 장재준△진천 채병호△아산 문수찬△제천 강신철△보령 현송욱△청주서 이대성△고양재기지원단 장기수△대전재기지원단 김동신△인천신용보험센터 이영조△부산신용보험센터 윤담◇본사 부서장 전보△감사실 감사반장 송주현 ■KEB하나은행 ◇지점장△세종로 권태곤△약수 김민태△목동역 김삼환△교하 김선태△아시아선수촌PB센터 김연준△문수로 김우환△서초동 김인기△영등포금융센터 김종민△가락동 겸 가락 김진국△반포중앙 김창현△신천역 겸 잠실 김춘열△방배금융센터 류승기△일산백마 문승선△전경련 겸 하나금융투자센터 민명기△남가좌동 박순호△부천상동 박영환△동래 겸 온천동 박재목△창신동 박조미△수원서문 박주용△송도금융센터 백승악△구로상가 서준호△압구정 성경록△안산 겸 안산중앙 성재창△응암역 겸 응암동 송일준△종로 신미현△메트로자이 신성훈△화곡역 안방수△청량리 겸 청량리역 안병희△상무중앙로 겸 상무 오명석△부천 유근흥△풍덕천 이경하△도산대로 겸 학동 이기용△문정래미안 이동국△구의역 이동직△서귀포 이병승△공주 이용록△시흥남 겸 시흥동 이용현△사당동 이욱△운정 이재우△노량진 이재우△이매동 이재원△매봉 이지현△호평 이진우△영주 이현직△가스공사 이희창△화정 겸 화정역 임상진△압구정중앙 겸 동압구정 임영노△청계4가 임희철△매탄 정성진△다대동 정순부△영업1부PB센터 겸 영업부PB센터 정원기△구로디지털단지 겸 구로디지털중앙 정인호△봉선동 조영주△도당동 조원철△혜화동 주진숙△논산 겸 논산지원 지우진△전농동 최문형△한남중앙 겸 한남1동 최선종△판교중앙 한병철△신제주 현권수△방배본동 홍성혁◇지점장 겸 RM△강남역금융센터 겸 삼성타운 강재신△목포하당 겸 목포 고병운△김포 겸 김포대로 김상수△주엽역 겸 주엽동 김학석△성수중앙 겸 성수역 김현찬△여의도금융센터 겸 증권타운 박경신△부평 겸 부평중앙 박종렬△용인 배승용△성서 겸 성서기업센터 배종필△충무동 손진△오산 유용무△을지로 이민석△사상중앙 겸 사상 이병직△당산동 이병현△인천금융센터 이창환△신림동 겸 신림역 이한주△평촌스마트 전봉구△전주 겸 전주중앙 전태평△범계역 겸 평촌 정규원△가산디지털 겸 가산디지털3단지 주건영△청주 겸 청주중앙 최용섭△창원 겸 창원기업센터 최장민△수서역 한일석◇RM△평촌역 강성문△수원금융센터 박찬후△경수기업센터 배윤식△반월기업센터 배준원△신촌 심우창△김포구래 안승건△이수역 양철진△시화기업센터 이재호△롯데월드타워금융센터 하송암◇센터장△강남WM센터(Club 1 PB센터) 이재철△방배서래골드클럽 장정옥◇GOLD PB△강남PB센터 김성호◇개설준비위원장△롯데월드타워골드클럽 노승규△한남1동골드클럽 유보영 ■BC카드 ◇부문장 승진 <전무>△영업부문장 김진철◇본부장 승진△가맹점본부장 박상범△글로벌본부장 임남훈◇실장 승진△사업전략실장 전지환◇본부장 전보 <상무>△마케팅본부장 장길동
  • [장수철의 생물학을 위하여] 질소, 요오드 그리고 생물

    [장수철의 생물학을 위하여] 질소, 요오드 그리고 생물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원소들의 값은 얼마일까.” 10만원대 초반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 몸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산소, 탄소, 수소, 질소를 포함한 25가지 원소들의 양을 기준으로 매긴 값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 값은 선뜻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다. 식물은 질소가 부족하면 성장이 저하되는 ‘결핍 현상’이 나타난다. 그 이유는 재료인 질소가 부족해서 생물을 구성하는 주요 분자인 DNA와 RNA 같은 핵산이나 단백질이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 중에 질소가 풍부한데 왜 부족한 상황이 발생할까. 대기 중의 질소는 분자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식물이 흡수할 수 없다.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와 카를 보슈가 ‘하버?보슈 공정’을 통해 고온과 고압의 조건에서 질소 분자를 분해해 식물이 사용할 수 있는 암모니아 비료를 만들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많은 양의 농산물 생산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과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질소 비료가 없었다면 지금 인류의 3분의1, 25억명 정도는 생존이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요오드(I)는 적은 양이라도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원소다. 갑상선에서 혈압, 심장 박동, 근육 탄력, 소화, 생식 등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 관여하는 타이록신과 삼요오드티로닌 등 호르몬을 합성하는 데 핵심 재료가 요오드이기 때문이다. 요오드가 부족하면 혈액 내에 이 호르몬들의 농도가 낮아지고 시상하부는 이를 감지해 뇌하수체 후엽에 명령을 내린다. 뇌하수체는 계속 갑상선자극호르몬을 분비하게 되는데 그 결과 갑상선이 비대해져 목이 붓고 몸의 여러 기능이 정상에서 벗어나는 갑상선종이 생기게 된다. 성인의 경우 평상시에 매일 15~20㎎의 요오드만 섭취해도 갑상선종을 예방할 수 있다. 폭탄먼지벌레는 딱정벌레의 일종이다. 이 벌레를 건드리면 몸에서 뜨거운 액체를 뿜어낸다. 이 벌레는 몸속 두 개의 샘에 과산화수소와 하이드로퀴논을 따로 저장하고 있다가 자극을 받으면 이 액체들을 섞고 효소를 더해 100도의 뜨거운 액체를 만들어 낸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 몸 안에서 화학 반응으로 나타난 것이다. 놀랄 만한 생물 다양성으로 유명한 아마존의 어느 지역에서는 광대한 숲에 한 가지 목본식물만 자라는 기이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원주민들은 이곳을 악령들이 관리하는 ‘악마의 정원’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과학자들의 관찰에 따르면 개미들이 자신들의 서식처를 제공하는 이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포름산을 분비해 다른 종류의 식물을 모두 죽이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향수병을 열면 우리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곤충은 이러한 능력이 출중하다. 한 마리의 곤충에서 방출되는 페로몬을 수㎞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곤충이 인식할 수 있다. 향수병의 향수와는 비교가 안 되는 너무도 낮은 농도임에도 그렇다. 이렇게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생물의 몸이 분자의 입체구조를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모르핀과 엔도르핀이 우리 몸에서 비슷한 효과를 나타내거나 우리의 혀가 단맛, 짠맛, 감칠맛, 신맛 등을 인식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이다, 이처럼 원소들은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수없이 많은 유용한 화학분자들을 만드는 재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구성하는 모든 원소들의 값은” 따질 수 없다. 필자가 지도교수로 있는 동아리 소속 한 학생이 일반생물학을 수강해 열심히 공부하더니 A+ 학점을 획득했다. 인문사회계열인 이 학생이 일반생물학 수업에서 얻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학기가 끝난 후 물어보았다. 그 학생은 “화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답했다. 이 학생은 정말 생물학이 지닌 가장 기본적인 본질 중 하나를 꿰뚫어 보고 있다. 튼튼한 화학의 토대에 생물학이 곧게 설 수 있기 때문이다.
  • [인사]

    ■교육부 ◇부이사관△교육부 박준성◇서기관△장관비서실장 박대림△기획담당관 고영종△대학정책과장 김현주 ■농림축산식품부 ◇과장직위 승진△국립종자원 동부지원장 김기연◇과장급 전보△국제협력총괄과장 박상호△창조행정담당관 김재형△정보통계정책담당관 배상두△식생활소비정책과장 정현출△농림축산검역본부 인천공항지역본부 화물검역과장 이재훤△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시험연구소장 오상균△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전북지원장 이장의△국립종자원 경남지원장 강민철△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소비안전과장 박정훈 ■경기도 △부천부시장 오병권△용인부시장 양진철△안산부시장 이진수△기획조정실장 직무대리 조청식△예산담당관 전하식△행정심판담당관 이강태△규제개혁추진단장 홍용군△지역정책과장 김기세△안전기획과장 고봉태△식품안전과장 김종규△여성정책과장 길관국△북부여성비전담당관 이동재△기획예산담당관 정정화△과학기술과장 김평원△관리과장 최동후△주택정책과장 한대희△따복하우스과장 송해충△환경정책과장 엄진섭△의회사무처 복승규 이인용 최영환△도로건설과장 홍중화△북부도로과장 안재명△건축시설과장 박기종△도서관정책과장 이왕수△언제나민원실장 김진기△균형발전담당관 박상일△특화산업과장 김정문△국제통상과장 송용욱△사회복지담당관 지주연△수질정책과장 조준식△도로관리과장 김형목△도로정책과장 이안세△황해경제자유구역청 개발과장 장태호△교통정보센터장 배홍수△특별사법경찰단장 직무대리 김종구△철도물류정책과장 직무대리 윤명수△공정경제과장 직무대리 조창범△기동안전점검단장 직무대리 이성기△농업기술원 지도정책과장 윤종철△농업기술원 기술보급과장 김현기△농업기술원 농촌자원과장 이기택△DMZ정책담당관 김동욱△황해자유구역청 투자유치과장 정용암△장애인복지과장 이병우 ■KBS △라디오센터 R프로덕션1담당 김우석 ■이화여대 △의무부총장·의료원장 심봉석△대학원장 김은미△국제대학원장 김영훈△통역번역대학원장 손지봉△경영전문대학원장 양희동△의학전문대학원장·의과대학장 이지희△디자인대학원장 조영식△정책과학대학원장 유의선△공연예술대학원장·음악대학장 윤승현△임상치의학대학원장 김선종△인문과학대학장 윤보석△자연과학대학장 이외숙△조형예술대학장 강애란△사범대학장 홍용희△경영대학장 김정권△약학대학장 하헌주△스크랜튼대학장 김세화△목동병원장 정혜원 (이상 8월 1일자) ■GSK ◇상무△임상연구팀 박수연◇이사△영업기획팀 박진경△백신 마케팅부 윤영준△홍보 대외협력부 김정식△학술부 민성준◇본부장△백신 학술부 장현갑△학술부 홍우성△홍보 대외협력부 양수진 ■GSK 컨슈머 헬스케어 ◇상무△리테일 영업부 김진성◇본부장△공급관리팀 신용문△개발허가팀 박선주
  • 김국영이 뛰면 대한민국이 빨라진다

    김국영이 뛰면 대한민국이 빨라진다

    “2018년 자카르타아시안게임에서는 반드시 9초대에 진입하겠다.”김국영(26·광주시청)이 한국인으로는 처음 100m를 10초0대에 달렸다. 이틀 만에 자신의 다섯 번째 한국기록을 경신하며 오는 8월 런던세계선수권 출전권도 손에 쥐었다. 한국 선수로는 첫 9초대 진입까지 겨냥했다. 김국영은 27일 강원 정선종합경기장에서 열린 2017 코리아오픈 국제육상경기대회 남자 100m 결선에서 10초07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틀 전 같은 곳에서 열린 KBS배 육상대회 준결선에서 작성한 자신의 네 번째 한국신기록(10초13)을 다시 100분의6초 앞당겼다. 런던대회 출전 기준 기록(10초12)도 단숨에 넘어섰다.이날 예선에서 출발할 때 발이 미끄러지고도 10초22를 기록하며 예열을 마친 김국영은 6레인을 달린 결선에서 바로 옆 7레인의 몽골 선수가 부정 출발하는 악재에도 침착하게 출발해 다소 반응속도가 늦었지만 30m 지점부터 가속을 시작해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속도를 늦추지 않아 쾌거를 이뤘다. 전광판에는 10초08이 새겨졌다가 나중에 10초07로 정정됐다. 뒤바람도 초속 0.9m로, 이틀 전 KBS배 결선 때 10초07에 결승선을 통과하고도 초속 3.6m의 뒤바람 탓에 공인되지 못한 아픔도 비켜 갔다.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이후 2년 가까이 한국기록 경신 행진을 멈춘 김국영은 지금까지 출발은 좋으나 막판으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고 가속이 붙지 않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중거리 훈련에 역점을 둬 왔다. 상대적으로 작은 키(176㎝)에 짧은 주폭으로 발을 많이 움직이던 것에서 탈피, 주폭을 늘리며 손발 동작을 예전 빠르기대로 움직이는 주법으로 바꿨다. 지난해부터 남자 110m 허들의 간판이었던 박태경(37) 광주시청 플레잉코치와 호흡을 맞춘 덕도 보고 있다. 스타트 후 큰 동작으로 지면을 세게 밟아 그 탄력으로 가속하는 주법을 익히고 있어 효과를 보고 있다. 윤여춘 대한육상연맹 부회장은 “김국영은 출발 반응속도가 느릴 때도 20∼30m 지점에서 속도를 끌어올리는 특이한 선수”라며 “막판 스퍼트가 점점 좋아지고 있는데 30m 지점까지 끌어올린 속도를 마지막까지 유지한다면 기록 단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국영은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의 진선국 이후 20년 만에 100m를 뛰었지만 10초37을 기록, 조 9명 중 7위에 그쳐 예선에서 탈락했다. 물론 김국영의 인생 목표는 한국인 최초의 9초대 진입이다. 그는 “언제나 내 목표는 9초대 진입”이라며 “오늘 9초대 고지 앞인 10초0대로 들어섰으니까 9초대를 향해 자만하지 않고 노력하는 선수가 되겠다. 그래서 내년 자카르타아시안게임에서는 반드시 10초의 벽을 허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그는 우선 8월 런던세계선수권에서 한국인 최초의 준결선 진출을 노린다. 올 시즌 최고의 기록(9초82)을 작성한 크리스티안 허먼(미국)이나 10초03이 시즌 최고기록인 우사인 볼트(자메이카) 등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하기엔 무리라는 평가를 받지만 일본 최고의 스프린터인 사니 브라운 압델 하키무(18)와 다툴 만하다. 가나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니 브라운은 사흘 전 일본육상선수권 100m 결선에서 10초05의 역대 일본 선수 6위 기록으로 우승했다. 김국영과의 격차는 겨우 100분의2초라 둘의 경쟁은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조선 후기 불교조각의 美, 국보 된다

    조선 후기 불교조각의 美, 국보 된다

    “고요한 미적 감각·개성 보여줘…다른 목각탱 보물 6점의 근원” 조선 후기 불교조각의 정수를 담은 문경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이 국보가 된다. 문화재청은 1973년 12월 보물 제575호로 지정된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과 관계 문서 가운데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만 국보로 승격 지정 예고한다고 26일 밝혔다.1675년 제작된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현존하는 조선 후기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불화와 조각을 절묘하게 접목했다 해서 흔히 목각탱이라 부르는 이런 양식은 조선 후기에 유행했다. 현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1684년 예천 용문사, 상주 남장사, 서울 경국사, 1692년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1782년 남원 실상사 약수암 등에 6점이 남아 있으며 모두 보물로 지정돼 있다. 김은영 유형문화재과 연구관은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다른 목각탱에 비해 규모도 가장 크고 도상의 수도 33개로 가장 많다”며 “부처와 보살상의 표현 기법뿐 아니라 작품 전체의 격이 높아 다른 목각탱의 근원이 되는 작품으로 여겨져 국보로 가치가 인정됐다”고 설명했다.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고요하고 깨끗한 미적 감각을 바탕으로 강직하고 개성 넘치는 묘사력을 선보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는 17세기 후반에 활약했던 조선의 조각승 단응(端應)과 탁밀(卓密)의 조각 기법이기도 하다. 문화재청은 이날 선종영가집 언해본과 자치통감 57~60권, 재조본 사분율 47~50권을 함께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이번에 국보와 보물로 지정 예고된 문화재는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뒤 국가지정문화재로 확정된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오늘의 경기]

    ■프로축구 K리그 챌린지 안산-부산(오후 7시 30분 안산와스타디움) 서울 이랜드-대전(오후 8시 잠실종합운) ■여자축구 WK리그 보은상무-이천대교(보은종합운) 서울시청-경주한수원(잠실보조구장) 구미스포츠토토-수원시시설관리공당(구미종합운) 인천현대제철-화천KSPO(인천남동경기장 이상 오후 7시) ■태권도 세계선수권대회(오전 9시 무주 태권도원) ■수영 동아대회(오전 9시 남부대국제수영장) ■육상 KBS배 전국대회 겸 국제오픈대회(오전 10시 정선종합운)
  • 10초07… 뒤바람에 한국新 날린 김국영

    10초07… 뒤바람에 한국新 날린 김국영

    세계선수권 출전엔 0.01초 미달… 내일 코리아오픈서 런던행 도전‘아, 뒤바람만 세지 않았어도….’ 잊힐 만하면 한 번씩 ‘일을 내는’ 김국영(26·광주광역시청)이 25일 강원 정선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BS배 전국육상대회 남자 100m 결선에서 10초07에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뒤바람이 초속 3.6m로 불었던 것으로 확인돼 공인받지 못했다. 육상에서는 초속 2m 이하의 바람을 업고 달린 기록만 공인된다. 몇 시간 전 준결선에서 10초13을 기록, 2015년 7월 9일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자신이 작성한 종전 한국기록(10초16)을 100분의3초 앞당겼던 김국영은 결선에서 다섯 번째 한국기록 경신과 함께 오는 8월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세계육상선수권 출전 기준기록(10초12)을 노렸지만 뒤바람 때문에 다음으로 미뤘다. 27일 같은 경기장에서 시작하는코리아오픈 국제육상대회에서 재도전한다. 7년 전 고 서말구(1955~2015) 전 해군사관학교 교수의 한국기록을 31년 만에 경신했던 김국영은 이날 준결선까지 네 차례나 한국기록을 고쳐 썼다. 19살 때부터 육상 단거리의 불모지인 한국을 대표하는 스프린터로 버텨 온 그는 “솔직히 그래서 더 힘들 때가 많았다. 내 기록이 좋지 않으면 ‘한국 단거리가 뭐 그렇지’라는 말이 들려왔으니까”라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김국영은 2010년 10월 7일 대구에서 열린 전국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 예선에서 10초31로 서 전 교수가 1979년 멕시코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세운 한국기록(10초34)을 31년 만에 넘어섰다. 그리고 곧바로 준결선에서도 10초23으로 두 번째 한국기록을 세웠다. 한국 육상 단거리는 ‘르네상스’를 기대했고 김국영은 꾸준히 10초3대 기록을 내며 기대에 부응하는 듯했다. 훈련할 때는 10초1대 기록을 내기도 했고, 국내에서는 적수가 없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국내 육상계는 남자 100m 메달을 갈망했지만 김국영은 준결선에서 자신의 최고 기록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10초35로 결선에 오르지도 못했다. 그러면서 김국영에 대한 기대를 거두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탈수 증세에 시달릴 정도로 고강도 훈련을 이어 가 이듬해 7월 9일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10초16으로 한국기록을 앞당겼다. 동시에 2015 베이징세계선수권과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기준기록(10초16)을 충족했지만 베이징대회 예선에서는 10초48에 그쳤고, 리우올림픽 예선에서는 10초37로 준결선에도 못 올랐다. 그러나 김국영은 좌절하지 않고 “우사인 볼트 같은 세계적인 선수와 뛰어보고 실패도 해 봐야 큰 무대에서도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다”며 런던세계선수권 출전을 새 목표로 세웠다. 남자 100m 올 시즌 최고 기록은 크리스티안 콜먼(미국)의 9초82, 볼트의 시즌 최고 기록은 10초03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주말의 경기]

    24일(토) ■프로야구 한화-삼성(대구) KIA-NC(마산) kt-SK(문학) LG-넥센(고척) 롯데-두산(잠실 이상 오후 5시) * 25일도 계속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제주-포항(오후 6시 제주월드컵) 광주-전남(광주월드컵) 울산-인천(울산문수 이상 오후 7시) K리그 챌린지 경남-성남(김해운) 부천-수원FC(부천종합운 이상 오후 7시) ■태권도 세계태권도연맹(WTF) 세계선수권대회(오전 9시 무주 태권도원) * 25일도 계속 ■수영 동아대회(오전 9시 남부대국제수영장) * 25일도 계속 ■사격 한화회장배 전국대회(오전 9시 청주종합사격장)* 25일도 계속 ■육상 KBS배 전국대회·국제오픈대회(오전 9시 정선종합운) * 25일도 계속 25일(일)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수원-강원(오후 6시 수원월드컵) 서울-상주(서울월드컵) 전북-대구(전주월드컵 이상 오후 7시) K리그 챌린지 안양-아산(오후 7시 안양종합운)
  •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 비움의 경지에서 만족을 배우다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 비움의 경지에서 만족을 배우다

    일본 교토는 ‘천년의 고도’라는 말이 전혀 부끄럽지 않게 긴 역사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유적으로 가득하다. 유적의 대부분은 오래된 사찰들이고, 그 대부분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유명한 교토의 사찰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정원을 보유하고 있다. 료안지(龍安寺)의 석정(石庭)은 그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정원으로 꼽힌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고 연못도 없이 오직 크고 작은 돌과 자잘한 백색 자갈로 ‘마른 산수’를 꾸민 이 정원은 선(禪)의 정신을 표현한 추상조형의 극치로 평가받는다. 료안지는 호소카와 가쓰모토가 1450년 건립한 선종 사찰로 금박의 삼층 누각으로 유명한 긴카쿠지(閣寺)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선종사찰에서 주지 스님이 기거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을 방장이라고 하는데 료안지 방장 건물의 남쪽 정원에 조성된 것이 이 석정이다.다른 방문객들처럼 료안지 방장으로 가서 신을 벗고 석정 앞 긴 툇마루에 앉아 정원을 바라봤다. 동서 25m, 남북 10m 정도의 장방형 공간을 낮은 흙담으로 둘러싸고 그곳에 흰색의 모래처럼 보이는 아주 자잘한 자갈을 깔아 놓았다. 거기에 크고 작은 돌 15개를 드문드문 배치했다. 기이한 모양도 아닌 돌들이 아무런 의도 없이 자연스럽게 놓였다. 돌 주변으로 이끼가 자라 마치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인다. 모래를 고르게 펴면서 만들어진 갈퀴 자국이 잔잔한 물결을 연상하게 한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완벽한 침묵의 공간이다. ●15세기 조성 추정… 그때도 지금도 파격 료안지의 석정이 언제 조성됐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1467년 오닌의 난 당시 불탄 절을 15세기 말에 복원하고 그 즈음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료안지 복원은 호소카와 가쓰모토의 아들인 마사모토가 맡아 1488년 방장건물이 완성됐다. 그 후에 석정이 조성됐을 것으로 본다. 그 작업을 소아미라는 화가가 했다는 설과 당시 료안지의 주지였던 도쿠호 젠케쓰가 사찰의 정원을 만드는 전문가 그룹과 함께 만들었다는 설이 있지만 정확하지 않다. 아무튼 석정이 500년 전 꾸며졌을 당시 파격이었을 것인데 지금 봐도 파격적이다. 나지막한 흙담을 그림의 프레임이라고 한다면 지극히 이지적인 추상미술 작품이고, 조형예술로 본다면 돌과 모래를 이용한 설치미술이다. 바람소리와 새소리가 음향이고, 내리쪼이는 햇살은 마치 조명 같다.료안지의 석정은 ‘젠 가든’(Zen Garden)이라는 이름으로 서구의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안겼다. 대표적인 인물이 전위 음악가 존 케이지(1912~1992)다. 1950년대부터 동양의 선 사상에 심취하면서 공의 개념을 음악으로 실현하고자 했던 그는 1952년 ‘4분 33초’라는 논란의 전위음악을 작곡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케이지는 4분 33초를 초연한 연주자 데이비드 튜더와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와 함께 1962년 일본 연주여행을 하던 중 료안지의 석정을 방문했다. 이 정원에서 본 공간의 비어 있음과 침묵의 가치, 자연스러움의 가치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는 말년의 10년을 온전히 료안지의 석정에서 받은 영감을 미학적으로 표현하는 데 할애했다. 케이지는 1983년부터 세상을 떠난 1992년까지 170점의 연필 드로잉을 그렸다.‘료안지는 어디에?’라는 제목의 드로잉은 석정에 놓인 돌과 같은 숫자인 15개의 돌 이미지를 테이블에 자연스럽게 배치하고 그 둘레를 따라 드로잉을 한 것이다. 무질서한 듯 보이지만 우연처럼 질서 정연함을 유지한 채 배치된 료안지 석정을 통해 자연 그 자체의 질서를 발견하고 표현을 시도했던 케이지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추종자들은 2004년 케이지에게 ‘돌의 역할:료안지를 따라서’라는 제목으로 공동 작업을 헌정했다.포스트모더니즘 건축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한스 홀라인(1934~2014)은 2000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 료안지의 정원을 축소한 모형을 출품했다. 그해의 주제는 ‘덜 미학적인 것이 더 윤리적이다’(Less Aesthetics, More Ethics)로 근대건축의 거장 미스 반데어로에가 단순미를 강조하며 주창했던 ‘적을수록 풍부하다’(Less is More)를 변용한 것이다. 홀라인은 서구 건축에서 윤리적인 것을 찾으려면 단순하고 간결해야 한다는 것을 료안지의 석정을 통해 보여줬다. 일본계 미국인 작가 이사무 노구치(1904~1988)는 뉴욕 체이스맨해튼 은행 광장을 비롯한 여러 공공 프로젝트에 료안지의 석정을 응용한 작품을 보여 주었다. 이처럼 꽃과 나무를 배제하고 돌과 백색 모래만으로 구성된 단순미의 결정판인 석정은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석정의 돌이 15개이지만 어느 자리에서건 14개까지만 보인다는 얘기가 있다. 깨달음을 통해서만 15개가 완전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숫자 15를 두고 돌 더미를 수리적으로 보면 황금분할을 의미한다는 등의 해석을 하기도 한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석정 자체의 미학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을 방해할 뿐이다. 없음(無)과 비어 있음(空)을 조형적으로 표현한 이 정원을 보면서 선사들은 관조의 세계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료안지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이유는 물질만능 시대에 비어 있음의 가치가 더욱 소중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료안지의 석정을 감상했으면 방장 건물을 돌아보자. 크게 6개의 공간으로 나뉘는데 거개의 명찰에 있는 방장 건물과 마찬가지로 미닫이문에는 멋진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메인홀 격인 료안지 방장 건물의 가운데 칸에 그려진 ‘와룡매’가 일품이다. 그 옆방의 미닫이문에 그려진 산수화 속 산세가 낯이 익다. 금강산을 18차례나 다녀왔다는 화가 사스키 가쿠오가 1953년부터 5년에 걸쳐 완성한 ‘금강산’이다. 방장 건물 뒤편으로 돌아오다 보면 뒤뜰에 돌로 만들어진 물확이 있다. 다실로 들어가기 전에 손을 씻는 용도로 만들어진 것인데 웅크려 앉아야 사용할 수 있다. 다실 문을 작게 만들어 들어갈 때 자연히 고개를 숙여 조심스럽게 경의를 표하도록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료안지의 물확은 가운데를 네모로 만들고 사방에 한 글자씩을 써 놓았다. 네모를 입구(口)자로 쳐서 읽어 보니 ‘오유지족’(吾唯知足)이다. 풀어보면 이런 뜻이다. ‘나는 이 정도면 만족함을 알겠노라!’. 그러고 보니 료안지의 방장 입구 12폭 병풍 위에 걸린 작은 현판에도 ‘지족’(知足)이라 쓰여 있다. 모든 괴로움은 욕심에서 나온다. 만족함을 알면 행복은 바로 손안에 있음을 우리는 왜 자꾸 잊을까. ●덴류지·긴카쿠지 정원도 한폭의 산수 교토에서 반드시 가 봐야 할 정원으로 덴류지(天龍寺)의 방장 정원인 조원지가 꼽힌다. 이 절을 세운 무소 소세키(1275~1351) 국사는 난세를 슬기롭게 헤쳐 나간 고승으로 정원 조영에도 뛰어났다고 한다. 불세출의 정원 설계사였던 그는 거주한 사찰마다 훌륭한 정원을 남겼다. 덴류지의 조원지는 마음심(心)자형의 커다란 연못을 조성하고 그 주변으로 산책길을 낸 지천회유식 정원이다. 한쪽 면이 산자락에 바짝 붙어 있어 멀리 아라시야마와 가까이 가메야마의 자연풍광을 그대로 끌어안은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웅장한 방장 건물 앞의 마루에 조원지를 감상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것도 볼거리다. 인공과 자연의 조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조원지는 한 폭의 산수화 같다. 긴카쿠지(銀閣寺)의 정원도 인상적이다. 반듯하게 다듬어진 동백나무가 줄지어 선 길을 따라 경내로 들어가면 정원이 바로 나온다. 흰 자갈 모래를 깔고 굵은 물결무늬를 만들어 놓은 마당 옆으로 금경지라는 이름의 연못이 있다. 마당 한쪽에는 향월대라는 원추형 돌무지가 솟아 있고 정원 왼쪽으로 연못가에 2층 누각인 은각이 우뚝 솟이 있다. 건물과 나무가 하늘과 함께 연못에 비치는 풍경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자그마한 다리를 건너면 자연의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내리막길로 접어들면 나무들 아래 진초록 이끼가 카펫처럼 깔려 있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은각으로 내려와 이제 다 봤나 싶었는데 초록색 이끼 위에 떨어진 분홍빛 연산홍 꽃잎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아름다움에 한숨이 새어 나오며 료안지의 물확에서 본 문구가 다시 떠올랐다. ‘오유지족!’ 글 사진 lotus@seoul.co.kr
  • 남북 종교인 17일 평양서 만남

    남북 종교인 17일 평양서 만남

    남북 종교인들이 오는 17~20일 평양에서 교류 모임을 열기로 합의했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는 지난달 18~22일 중국 베이징 프렌드십 호텔에서 열린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 집행위원회에서 북한 조선종교인협의회(KCR) 대표와 만나 이처럼 합의했다고 1일 밝혔다.이번 회의에는 강지영 회장을 비롯한 조선종교인협의회 최고위 인사 4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KCRP는 “세계적으로 분쟁과 갈등이 점증되는 상황에 남과 북의 종교인들이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를 증진시키고, 남북 교류를 재개해 전 지구 차원의 갈등 지수를 낮추기 위한 것”이라고 교류 모임 취지를 설명했다. KCRP는 회원 종단 간 협의를 진행 중이며,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남북 종교인 교류 모임이 성사되도록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ACRP는 이와 관련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남과 북의 종교인들이 속히 만남을 가질 것을 권유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발표했다. 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도 “대화야말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고, 대화 당사자가 자주 만날 필요가 있다”며 남북 종교인 교류를 환영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생불로 불린 선승 누운 자리에 화려하게 피어난 부도 예술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생불로 불린 선승 누운 자리에 화려하게 피어난 부도 예술

    부도(浮屠)란 고승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부도가 본격적으로 세워진 것은 선종(禪宗)의 전래와 깊은 관련이 있다. 선종은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라고 가르친다. 석가모니가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된 것처럼 누구라도 같은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부처의 사리를 모신 것이 불탑(佛塔)이다. 곧 부처의 무덤이다. 처음에는 진신사리로 불탑을 세웠지만, 불교가 널리 퍼지면서 부처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을 법(法)사리로 탑을 건립한다. 부처의 탑을 세우듯 깨달은 고승의 탑을 짓는 것은 선종이 보편화된 이후에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부도라는 이름부터가 붓다(Buddha)를 음역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부도는 양양 진전사 터의 도의선사탑이라는 공감대가 학계에는 형성되어 있다. 도의는 신라 선덕왕 1년(780) 당나라에 가서 선종의 종통을 이은 서당 지장으로부터 인정받고 헌덕왕 13년(821) 돌아와 진전사에서 수도한 한국 남종선(南宗禪)의 선구자다. 도의선사탑은 불탑과는 달리 팔각형의 탑신(塔身)을 갖고 있다. 하지만 탑 아랫부분은 석탑과 같은 두 단의 사각 기단을 하고 있다. 부도는 전(傳) 흥법사 염거화상탑(844년) 이후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이 대세로 정착한다. 지붕돌 위의 상륜부부터 맨 아래 바닥돌까지 모두 팔각이니 전체적인 평면도 팔각을 이룬다. 사각 가마모양으로 만든 법천사 터의 지광국사현묘탑 같은 예외가 없지 않지만 고려시대까지 부도란 곧 팔각형이었다. 고려 말이 되면 오랜 전형에서 벗어난 부도가 등장한다. 원구형, 석종형, 불탑형 등 다양한 양식의 부도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부도 양식 변화를 촉발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선승(禪僧)이 나옹 혜근(1320∼1376)이다. 나옹(翁)은 ‘게으른 늙은이’라는 뜻이지만 고려 사회에서 그는 생불(生佛)로 추앙받았다.부도는 고려시대까지도 국가에서 임명한 국사(國師)와 왕사(王師)의 지위에 오른 고승의 전유물이었다. 국사와 왕사에서 물러난 고승이 머물렀던 절인 하산소(下山所)나 입적한 절에 세우는 것이 보통이었다. 크고 화려한 부도와 주인공의 일생을 새긴 탑비(塔碑)를 세우는 데는 상당한 노력과 비용도 필요했다. 나옹의 부도는 금강산, 치악산, 소백산, 사불산, 용문산, 구룡산, 묘향산, 천보산, 봉미산 등 9곳에 세워졌다. 이른바 분사리(分舍利)가 이루어진 것이다. 석가가 입멸한 뒤 그 제자들이 사리를 여덟 나라에 나눈 것과 비견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나옹에 붙여진 생불이라는 표현은 높은 경지에 이른 고승에 대한 의례적인 찬사를 넘어선다. 글자 그대로 부처와 동일시한 것이라는 학계의 연구 결과도 있다. ‘나옹화상어록‘에는 이런 대목이 보인다. ‘다비를 마쳤으나, 두골(頭骨) 오편과 아치(牙齒) 사십은 모두 타지 않았다. 향수로 씻을 때는 구름도 없는데 비가 내렸다. 사리가 부지기수였고, 사중(四衆)이 재와 흙을 헤치고 얻은 것 역시 불가승수였다.’ 사람의 이는 32개다. 부처의 32상(相) 가운데 하나가 40개의 치아다. 철저히 나옹을 부처화(化)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불탑 모양으로 승탑을 조성하는 것도 어색할 이유가 없다. 양주 회암사는 나옹이 젊은 시절 4년 동안 용맹정진한 인연이 있다. 나옹은 원나라에서 인도선승 지공에게 배우고 돌아온 뒤 회암사 주지로 있으며 대대적인 중수에 나서기도 했다. 천보산 자락의 회암사는 지금 옛 터만 남아 있다. 절집은 사라졌어도 조화롭게 배치된 석재들의 기하학적 아름다움만으로도 전성기 회암사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들머리에는 절의 역사와 출토 유물을 보여주는 회암사터박물관이 2012년 세워졌다. 절터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회암사 이름을 딴 새절이 나타난다. 오른쪽으로 내민 산줄기에 세 기의 부도와 탑비가 줄지어 자리잡고 있다. 위에서부터 나옹, 지공, 무학의 것이다. 지공은 한때 고려에 건너와 설법을 하기도 했다. 나옹에 앞서 전국에 분사리 부도가 세워진 데서 보듯 당대에 높이 떠받들어졌다. 회암사의 나옹선사 부도는 통일신라 이후의 전통을 그대로 이은 8각원당형이다. 탑신부는 아직 완벽한 구형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구형을 염두에 두고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나옹이 입적하자 공민왕은 선각(禪覺)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나옹의 탑비인 선각왕사비는 부도 건너편의 높은 산등성이에 세워졌다. 특별한 존재에 특별한 대우를 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런데 1997년 보호각이 불타는 바람에 선각왕사비도 크게 훼손됐다. 지금 이곳에서는 복제한 탑비를 볼 수 있다.나옹은 공민왕 시대 불교계 1인자의 위치에 올랐지만, 우왕이 즉위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우왕은 즉위 2년 나옹에게 회암사를 떠나 밀양 영원사로 가라고 명한다. 회암사 중수에 국고를 쏟아부은 것을 문제 삼았다지만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른 일종의 유배령이었다. 밀양이라면 충주까지 수로를 이용한 뒤 육로로 새재를 넘어야 했을 것이다. 이미 쇠약해진 나옹은 배편으로 남한강을 거슬러 오르다 결국 여주 신륵사에서 열반한다. 나옹의 시신은 신륵사 경내 남한강변 바위 위에서 화장됐다. 다비가 이루어졌던 장소에는 작은 삼층석탑과 강월헌(江月軒)이라는 정자가 세워졌다. 강월헌은 나옹이 살던 집의 당호(堂號)라고 한다. 당초 지어진 강월헌은 홍수에 떠내려 갔고, 지금은 콘크리트 구조의 튼튼한 정자가 자리잡고 있다. 신륵사의 극락전을 중심으로 서북쪽 언덕이 나옹의 부도 영역이다. 넓게 다진 터에 석재로 기단을 쌓고 가운데 돌로 깎은 종 모양의 부도를 올려놓았다. 보제존자 석종(石鐘)이다. 보제존자는 공민왕이 왕사로 임명하면서 내린 이름이다. 보제존자 석종은 양산 통도의 금강계단을 연상시킨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통도사 금강계단은 곧 부처의 무덤이다. 나옹의 사리를 모신 부도를 금강계단과 같은 모습으로 조성한 것은 그가 당대 부처와 다름없는 존재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보제존자 석종은 조선시대 크게 유행한 석종형 부도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또 다른 나옹의 부도인 영전사 터 보제존자사리탑은 삼층석탑 모양을 가진 부도의 유일한 사례다. 탑이 있었다는 원주 영전사는 같은 지역에 있는 영천사일 것으로 보고 있다. 쌍탑인 보제존자사리탑은 국립중앙박물관 마당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석종처럼 생불로 추앙받은 나옹이었기에 이런 형태를 가진 부도의 출현도 가능했을 것이다. 글 사진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남북 교류 훈풍… 종교계가 뛴다

    남북 교류 훈풍… 종교계가 뛴다

    남북 교류와 관련해 종교계의 움직임이 부산해졌다. 지난 22일 정부가 인도적 지원을 시작으로 민간 분야의 남북 교류를 유연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종교단체와 각 종단이 북한 종교계 접촉을 시도하는 한편 그동안 중단됐던 사업 점검에 일제히 착수했다.불교,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등 7대 종단 협의체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는 지난 18~22일 중국 베이징 프렌드십호텔에서 북측 종교인들과 함께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 집행위원회를 열고 남북 교류와 관련한 논의를 마쳤다고 25일 밝혔다. 강지영 회장을 비롯해 조선종교인협의회 최고위 인사 4명이 참석한 회의에서 남북 종교인들은 향후 교류가 활성화될 경우 교류 방식과 남북 관계 개선에 기여할 방법 등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에 참석한 KCRP 관계자는 “남북 교류 재개와 관련해 북측 종교계의 관심과 기대가 어느 때보다 컸다”며 특히 “북측 종교인들이 민간 교류에 종교계의 선도적 역할이 필요한 만큼 남측 종교계에 앞장서 줄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남북 관계가 절벽에 가까운 경색에 빠진 이후 남북 종교인들이 이처럼 한자리에서 교류와 관련해 가시적인 협의를 이끌어 내기는 처음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이와 맞물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다음달 중 평양에서 북측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 지도자들과 만나 교류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NCCK는 수년 전부터 중국, 홍콩 등 제3국에서 조그련을 비롯한 북측 개신교인들과 잇따라 만나 교류를 협의해 왔으나 구체적인 시행단계에서 정부의 불허로 답보 상태에 빠지곤 했다. NCCK 관계자는 “지난 부활절에 앞서 중국 선양에서 조그련 관계자들과 만나 인도적 지원 등을 협의했다”며 “광복절을 즈음해 남한이나 북한에서 남북 개신교인들이 8·15 합동예배 행사를 개최하는 방안을 남북 개신교인들이 조만간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한편 불교, 원불교, 천도교, 천주교 등 각 종단은 그동안 북측 종교계와 협의를 마쳤지만 중단된 교류 사업의 재개를 서두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조계종 사회부장 정문 스님은 25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오는 10월 14일 금강산 신계사 복원 10주년을 맞아 남북 불교계가 합동 기념식을 열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며 “이 기념식을 계기로 중단됐던 내금강 불교유적 공동조사며 북한 불교문화재 공동 전수조사, 남북 사찰 간 결연을 통한 평양 불교회관 건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불교는 2003년 평양에 빵공장을 설립해 2006년부터 국수공장으로 전환해 운영하다 2011년 중단된 공장 재가동과 창교주인 소태산 대종사의 북한 지역 흔적이 담긴 순례 코스 마련, 개성 교당 복원을 위해 조만간 북측 원불교와의 연락을 시도할 방침이다. 천도교는 평양 교당 마련과 해주 동학혁명 관련 지역 탐방, 남북 공동연구를 재추진할 태세다. 천주교도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의 교황청 특사 파견과 맞물려 고무돼 있다. 특히 2015년 주교단 방북 때 북측 천주교와 협의한 성당 복원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종교계의 이 같은 기대와 움직임은 정부의 가시적인 조치에 따라 명암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계속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얼마만큼 실효성 있는 교류 방침을 낼지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남북 관계 개선에 종교계가 늘상 앞장서 왔던 만큼 종교계 교류는 낙관적이라는 게 중론이다. 따라서 다음달 6·15 공동선언 17주년을 즈음해 남북 교류 재개와 관련한 종교계의 행보가 봇물을 이룰 전망이 크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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