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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17] 맥적과 3양 불고기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17] 맥적과 3양 불고기

     서양인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면 적어도 한 끼니는 불고기를 먹을 것이다. 육식이 주식인 그들이 새삼스럽게 소고기 구이에 이토록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뭘까. 맛의 비밀은 양념에 있다. 서양인들은 안심과 등심 등 맛 좋은 부위만 골라 고기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스테이크로 먹지만, 가축이 귀했던 우리는 나머지 부위까지 알뜰하게 먹여야 했다. 이럴 땐 고기 특유의 누린내를 색다른 맛과 향이 배인 양념으로 잡아야 한다. 얇게 저민 소고기를 양념간장에 재웠다가 불에 굽는 불고기는 본래 돼지고기에 된장을 무쳐 먹던 우리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됐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빨갛게 고추장 양념을 한 제육볶음이 생각난다. 제육볶음은 도톰하게 썬 돼지고기 목살을 고추장과 설탕, 파, 마늘, 생강, 후춧가루, 깨소금, 참기름 등을 넣은 양념에 재웠다가 불판에 구워 먹는다. 고기의 부드럽고 고소한 육질 맛과 매콤·새콤·달콤한 양념 맛, 그윽한 불의 향이 어우러져 푸짐한 느낌을 준다. ● 고구려 선조인 맥족이 먹던 직화구이서 ‘맥적’ 유래 그런데 이 돼지고기 볶음 구이는 고추장이 아닌 된장으로 양념한 뒤 꼬챙이에 꿰어서 직화 구이를 했던 우리의 옛 음식 맥적(貊炙)에서 유래됐다. 고대 중국은 동북방의 ‘맥족’이 먹던 이 돼지고기 구이를 신기하게 여겼으며, 맛이 좋다는 기록을 남겼다. 꼬치구이인 맥적은 돼지고기나 양고기에 된장과 마늘, 부추, 달래, 술, 꿀 등을 발랐다고 했다.  맥족은 고구려인의 선조로 한(韓)족, 예(濊)족 등과 함께 선사시대에 한국인의 형질을 구성하는 사람들로 알려졌다. 고구려 병사들이 막강한 수나라나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적군을 궤멸시킨 데에는, 밤에 불가에 모여 맥적으로 회식을 하면서 사기를 북돋은 저력도 있지 않을까. 그런 전통이 오늘날에 이어져 외국인들도 감탄하는 양념 불고기를 탄생시킨 것이다.  소고기 불고기의 원형은 전통 음식인 너비아니에 있다. 너비아니란 고기가 얇아서 바람에 나부끼길 정도로 너붓너붓 한데서 붙여진 말이라고 한다. 가늘게 저민 살코기를 간장과 꿀, 참기름, 깨소금, 파, 마늘 등으로 재운 뒤 석쇠에 구운 고기다. 다 구우면 잣가루까지 뿌린다. 우리 선조는 몽골의 영향 등으로 고려 시대까지 그런대로 고기를 먹다가 조선에 이르러 농사가 국가정책으로 장려되면서 소의 도축을 함부로 하지 못했다. 소가 늙어서 죽거나 다쳤을 때나 관아의 허락을 받아야 가능했다.  그러나 왕가에서나 양반은 눈 내리는 겨울에 설하멱(雪下覓)이라고 해서 남몰래 맛보았다. 남자 하인이 굽는다고 해서 방자구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는 소고기의 등심과 안심, 갈비, 사태, 양지, 차돌박이, 곱창, 양, 꼬리 등 39가지 부위를 여러 가지 요리법을 통해 먹을 줄 알았다. 오죽했으면 세계적인 인류학자가 “소고기 부위별로 맛을 세분해 내는 고도의 미각 문화를 가진 민족은 한국인과 동아프리카의 보디족만 있다”라고 했을까. ● 日 야끼니쿠의 원조인 한양식 불고기... 언양-광양식과 함께 ‘3양 불고기’ 불고기는 ‘3양(陽) 불고기’가 유명하다. 우선 누리끼리한 청동 불판에 각종 양념을 한 불고기를 넣고 달짝지근한 육수를 자작하게 부어 먹는 한양식(서울식) 불고기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소고기 사육이 늘면서 당시 경성에서 양념 솜씨가 발휘된 불고기다. 이때 우리의 불고기는 일본으로 전해져 야끼니쿠가 된다. 야끼니쿠는 구운 고기를 양념간장 소스에 찍어 먹는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육식을 근세기 이전까지 수백 년 동안 금기했던 일본에선 잊을 수 없는 불고기의 맛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한양식 불고기는 서울 종로에서 강남 압구정로로 본점을 옮긴 76년 전통의 고깃집 H점이나 창경궁로에서 65년째 영업하고 있는 평양냉면 전문 W점 등에서 맛볼 수 있다. 울산의 언양식 불고기가 3양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룬다. 육수가 없는 ‘바싹 불고기’다. 소고기를 배즙에 재웠다가 국간장, 설탕 등 양념으로 버무린 뒤 잘게 다져 석쇠에서 굽는다. 고기 맛을 최대한 느끼기 위해 양념이 강하지 않은 게 특징이다. 언양에는 일제 때 대규모 소고기 도축장이 있었고, 덕분에 신선한 고기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점차 서울 등지에도 그 진가가 전해진다.  나머지 하나는 광양식 불고기다. 얇게 저민 소고기를 불에 굽기 직전에 양념을 부어 빠르게 살짝 구워 먹는 불고기다. 양념에는 그 주변에 흔한 매실이 들어가는 게 특징이다. 1980년대 광양제철소가 건설될 때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근로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불고기다.  결국 불고기는 궁해서 통할 수밖에 없었던 혼이 담긴 음식이다. 넉넉한 서양을 부러워하기만 할 수 없었던 우리식 먹거리다. 혁신은 어려운 현실을 어떻게 하든 뚫고 나가려는 의지에서 나오지 않을까.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시인 안도현   어릴 때, 두 손으로 받들고 싶도록 반가운 말은 저녁 무렵 아버지가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정육점에서 돈 주고 사온 것이지마는 칼을 잡고 손수 베어온 것도 아니고 잘라온 것도 아닌데...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 당신이 치킨에 매번 지는 이유는 ‘유전자 탓’ - 연구

    당신이 치킨에 매번 지는 이유는 ‘유전자 탓’ - 연구

    치킨이나 피자, 햄버거와 같은 정크푸드를 먹고 싶은 욕구와 끝없이 싸우다가 매번 패배한다면, 이제 당신 몸속에 있는 유전자를 탓해야 할 듯하다. 과학자들이 일부 사람의 뇌에는 이런 고지방·고열량 음식을 어쩔 수 없이 원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런 연구를 내놓은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ICL) 연구진은 ‘체지방과 비만 관련 단백질’(FTO 유전자)과 ‘도파민D2수용체 유전자’(DRD2 유전자)로 불리는 두 유전 변이를 발견했다. 이런 변이 유전자가 특정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한 음식 즉 정크푸드를 먹고 싶어하는 욕구가 더 심하게 생기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런 변이 유전자가 뇌의 보상회로를 조절하는 화학물질인 도파민의 수치를 변화시킨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연구를 이끈 토니 골드스톤 박사는 “이런 사람은 고열량이나 고지방, 고당분 음식을 보면 보통 사람보다 먹고 싶어하는 욕구가 더 심한 것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위해 밤새 금식한 유럽 백인 남성 45명을 대상으로, 고열량이나 저열량 음식이 보이는 사진을 보여주고 얼마나 먹고 싶어하는지 그 정도를 조사했다. 또한 연구진은 이때 참가 남성들을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이라는 뇌 스캔 기술로 뇌 활동이 어떻게 다른지 분석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들은 각 참가자로부터 채취한 DNA 표본을 검사하기도 했다. 그 결과, 비만이 되기 쉽게 해 ‘비만 유전자’라고도 불리는 FTO 유전자를 가진 남성들은 고열량 음식을 봤을 때 뇌의 ‘안와전두피질’(orbitofrontal cortex) 활동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또 설문에서도 저열량 음식보다 기름진 고열량 음식을 더 먹고 싶어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이들은 열량이 낮은 건강한 음식을 봤을 때는 뇌 활동에서도 같은 수치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골드스톤 박사는 “흥미롭게도, FTO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고열량 음식을 봤을 때 선조체(striatum)로 불리는 뇌 부위의 활동도 증가했다”면서 “하지만 이런 활동은 이들이 가진 DRD2 유전자에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어 “즉 DRD2 유전자가 뇌에서 도파민 체계의 작용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결과적으로, FTO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뇌에서 도파민 신호가 고열량 음식과 관련한 욕구와 보상을 더 느끼게 유도해 비만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지었다. 골드스톤 박사에 따르면, 이런 변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특정한 비만 치료에서 다른 결과를 보일 수 있다. 따라서 뇌의 도파민 작용을 변화시키는 특정 약물이나 수술, 뇌세포에 도파민이 작용하게 하는 호르몬을 이용하면 비만 치료에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박사는 설명했다. 한편 이번 연구성과는 지난 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비만학회 연례회의’(Obesity Society Annual Meeting)에서 처음 발표됐다. 사진=ⓒ포토리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불국사 석가탑 원형 복원… 되살아난 ‘신라의 미’

    불국사 석가탑 원형 복원… 되살아난 ‘신라의 미’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국보 제21호)이 다음달 3년 4개월간의 전면 해체·보수 작업을 마무리짓고 일반에 공개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4일 불국사 석가탑 보수 현장에서 보수 추진 경과 설명회를 열고 3층 옥개석(屋蓋石·지붕처럼 덮은 돌)을 설치했다. 연구소는 이달 안에 상륜부까지 조립을 완료하고 12월 중 가설덧집을 철거한 뒤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석가탑은 742년(경덕왕 원년) 불국사 창건 때 조성됐다. 백제 석공 아사달과 아사녀의 슬픈 사랑의 전설이 담겨 있는 석가탑은 간결하면서 비례와 균형이 완벽해 통일신라 조형예술의 백미로 꼽힌다. 2010년 12월 정기 안전점검에서 상층 기단 갑석이 깨져 있는 게 발견됐다. 길이 1320㎜, 폭 5㎜ 정도의 균열로, 기단 내부의 적심(積心·20여t에 이르는 탑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채운 흙더미)이 비바람 등으로 유실된 게 원인이었다. 곧장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보수정비사업단이 꾸려졌고 2012년 9월 전면 해체 보수 작업에 들어갔다. 해체한 석가탑은 가설덧집에 보관하면서 지의류·균류, 철산화물, 염류 등 탑 표면 오염물 세척 작업을 했다.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대나무 스틱으로 긁어내거나 스팀을 분사해 씻어냈다. 부식된 철제 은장은 열팽창과 열전도율이 낮고 내부식성과 연성이 뛰어난 티타늄 은장으로 대체했다. 갈라지거나 떨어져 나간 부분은 티타늄 핀 3~5개를 박아 고정시켜 붙이거나 에폭시수지로 틈새를 메웠다. 김덕문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장은 “이번 해체 수리의 특징은 원형 보존과 역사적 진정성 확보, 과학 기술에 근거한 구조 보강과 보존 처리, 자료 제작과 기술 보급”이라면서 “과거와 현재 기술을 융합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석가탑은 1966년 도굴 미수 사건에 따른 후속 조치로 부분 해체·보수 작업이 이뤄졌다. 해체 당시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비롯해 사리장엄구(사리함과 사리병을 비롯해 사리를 봉안하는 일체의 장치), 사리를 담은 금동제외합과 은제내합, 중수문서 등 유물 45건 88점이 수습됐다. 석가탑은 고려 현종 15년(1024) 해체 수리, 정종 2년(1036)과 4년(1038) 지진 피해 보수, 조선 선조 20년(1596) 우레로 탑 꼭대기의 뾰족한 부분인 상륜부 파손(이때 파손된 상륜부는 1972년 복원)에 따른 보수 등 여러 차례 보수를 한 적이 있지만 석탑 기단까지 전부 들어냈다 다시 세우는 전면 해체는 창건 이래 처음이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이순신장군 승전보고서 ‘장계별책’ 되찾았다

     경찰청은 올해 문화유산 사범 척결에 집중한 결과 지난달까지 32건의 사건을 해결해 91명을 검거하고 이 중 6명을 구속했다고 4일 밝혔다.  경찰은 또 수사 과정에서 충남 아산 이순신 종가에서 도난당한 ‘장계별책’(이순신 장군이 선조와 광해군에게 올린 전쟁 상황보고서를 모아 1662년 필사한 책)을 회수하고,국가지정문화재인 경북 경산 ‘임당동 1호 고분’에서 도굴된 금귀걸이 2쌍과 다리미를 되찾는 등 도난·유실 문화재 1673점을 회수했다. 이들 문화재는 시·도 지정 문화재 2점, 문화재 자료 7점, 등록 문화재 3점, 비지정 문화재 1661점 등이었다. 문화유산 사범 91명의 유형을 보면 문화재 도굴 사범이 37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부실공사 유발행위 24명, 모조품 유통 21명, 공무원 비리 9명 등의 순이었다.  경찰은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259호 ‘두릉구택’과 경북도 기념물 제62호 ‘임고서원’ 등 고택에서 도난당한 서동파집과 서호별곡 등 보물급 서적 4점과 지정 및 비지정문화재 359점을 장물아비를 통해 구입해 인터넷 경매사이트를 통해 팔아넘겨 6억원의 이득을 취한 5명을 대전 광역수사대가 검거한 것을 주요 사례로 들었다. 또 광주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문화재 기술자 17명의 자격증을 불법 대여받아 ‘전라병영성 복원공사’ 등 23건의 공사를 수주한 문화재 보수업체 2곳의 대표와 자격증 대여한 기술자 17명 등 19명을 검거했다.  경기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양평·여주·가평 지구 유물산포지 36곳에서 땅파기 금지나 표본·입회 조사 이행 등 문화재 보존대책을 통보받았음에도 이와 달리 공사를 진행한 서울지방국토관리청 공무원 등 8명을 검거했다. 경찰 관계자는 “그동안 문화재전문 수사관 44명을 선발하고 각 지방청에 문화유산 수사자문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수사 전문성 확보에 노력해왔다”며 “앞으로 문화재 도난·도굴, 해외 밀반출 등의 수사에 더욱 역량을 집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국내여행 | 한 템포 느리게 봉화

    국내여행 | 한 템포 느리게 봉화

    푸름을 간직한 봉화. 분주함도 재촉할 필요도 없다. 기차가 아니면 갈 수 없는 자연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몽룡의 생가, 계서당 조선시대 최고의 로맨스이자 4대 국문 소설로 꼽히는 <춘향전>의 주인공인 이몽룡. 실존인물은 계서溪西 성이성成以性, 1595~1664년이다. 초기 <춘향전>에는 성도령, 성몽룡으로 쓰이다가 나중에 이몽룡으로 고쳐졌다고 전해진다. 아버지 성안의를 따라 남원에서 공부했고 이후 과거에 급제해 암행어사로 출두, 남원으로 돌아와 술 한잔 기울이며 나누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춘향전> 집필 당시에는 양반의 실명을 바로 거론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아 대신 춘향의 이름에 ‘성’씨를 붙여 줬다는 후문이다. 성이성의 일기에는 눈 오던 밤 광한루에 앉아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밤늦도록 잠들지 못했다’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 성이성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하는 계서당으로 가는 길에는 사과와 옥수수 밭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마을 전체가 고요하고 녹음이 짙어 어디를 둘러봐도 눈이 편안하다. 소나무 숲 아래 자리한, 지은 지 400년 넘은 계서당은 큰 벼슬에 비해 소박하고 정겹다. 아래쪽 마당 끝에 대문간채를 두고 북쪽 높은 곳에 사랑채와 안채가 하나로 연결된 조선시대 경북 북부지방 ‘ㅁ’자형 전통가옥의 옛 모습도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13대손이 고택을 관리한다. 권벌 선생의 흔적, 석천정사와 닭실마을 석천계곡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한눈 가득 들어오는 석천정사石泉亭舍. 무릉도원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기분이다.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시원한 바람을 벗 삼아 책을 읽으면 좋을 것만 같다. 안동 권씨의 대표 인물인 충재 권벌 선생의 장남 권동보가 1535년에 지었다는 이 정자는 청암정靑巖亭, 삼계서원三溪書院과 함께 그 경치가 아름다워 사적 및 명승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 정사의 왼쪽 끝자락을 돌면 그 건너편으로 닭실마을이 보인다. 한국의 풍류가들이 손꼽는 곳으로 조선 중기의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경주의 양동마을, 안동의 앞내마을 및 하회마을과 더불어 물가에 사람이 살 만한 조선 4대 길지 중 하나라고 극찬했다. 닭실마을은 풍수학에서 말하는 금계포란(닭이 알을 품고 있는)형의 명당이다. 충재 권벌 선생의 종택이 이곳에 자리 잡고, 제사를 모시면서 기존에 살고 있던 파평 윤씨와 함께 마을을 형성했다. 원래 500여 년 동안 달실마을로 불렸으나 근래 표준어 사용의 적용을 받아(‘달’은 경북 북부지역 닭의 사투리) 현재는 닭실로 쓰이고 있다. 고택의 담장과 푸른 들판이 펼쳐진 마을은 곳곳이 평화롭고 여유로웠다. 깨끗하게 정돈된 길은 인위적이지 않아 더 포근했다. 닭실마을을 떠나며 뒤돌아본 마을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기차도 타고 트레킹도 하고 공기 좋고 물 맑은 봉화에서는 느리게 걸어야 한다. 3구간으로 총 70km에 이르는 낙동정맥트레일 봉화구간 중 2구간을 거닐었다. 낙동강 최상류에서 시작하는 1구간, 외씨버선길과 만나는 3구간보다는 다소 거리가 짧은 2구간은 열차 여행도 함께 할 수 있어 더 매력적이다. 열차가 아니면 갈 수 없는 곳을 누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하다. 분천역에서 승부역까지는 백두대간 협곡열차 V-train(V는 ‘valley협곡’의 약자)을 이용한다.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 만한 분천역의 풍경이 열차를 기다리는 시간마저 즐겁게 만든다. 분천역은 계획적으로 변모했다. 지난해 겨울, 스위스의 체르마트역과 자매결연을 맺고 산타마을로 조성했는데 관광객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원래 한시적으로 운영될 예정이었던 산타마을은 철거되지 않고 지금까지도 봉화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분천역을 출발한 협곡열차는 백두대간 오지구간을 시속 30km로 천천히 달린다. 유리창 너머로는 시원하게 펼쳐진 숲과 협곡이 청정자연을 가감 없이 뽐내기 바쁘다. 승부역에서 내리면 이제부터 트레킹이 시작된다. 배바위고개 마지막 280여 계단의 다소 가파른 여정이 기다리지만 마침내 정상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어느새 가쁜 숨은 희열이 된다. 낙동정맥트레일 구봉산에서 부산 다대포의 몰운대에 이르는 ‘낙동정맥’과 ‘트레일Trail’이 더해져 만들어진 이름이다. 트레일은 트레킹 길 중 산줄기나 산자락을 따라 길게 조성하여 시작점과 종점이 연결되지 않는 길을 의미한다. ▶travel info train백두대간 협곡열차 V-train | 외관은 대한민국 백두대간을 누비는 백호를 표현했다. 1호차 전망실(56석), 2호차 전망·미니카페실(46석), 3호차 전망실(56석)로 구성되며, 열차 전체가 유리창으로 돼 있다. 야광스티커로 꾸민 천장은 26개의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 빛을 낸다. 1호차 맨 뒤는 유리창으로 시원하게 개방돼 지나오는 기찻길을 감상할 수 있다. 운행 내내 주변의 지형지물을 설명해 준다.분천→양원→승부→철암 하루 3차례(왕복) 운행(매주 월요일 운행 없음) 분천-철암 편도 8,400원(약 1시간 10분 소요) www.vtrain.co.kr Museum충재박물관 | 충재 권벌 선생과 후손들이 남긴 1만여 점의 다양한 고서와 유물을 전시 및 보관하고 있다. 2007년, 문중 사람들이 만든 개인 박물관으로 권벌 선생의 후손이 관리한다. 박물관 바로 옆에는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에 드는 아름다운 정자 ‘청암정’이 있다.동절기 5~10월 10:00~17:00, 하절기 11~4월 10:00~16:00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1리 934 054 674 0963 www.darsil.kr Activity봉화 목재 문화 체험장 | 선조들의 목재문화부터 목재의 쓰임새, 생산과정 및 종류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야외에는 산림욕장과 자생식물단지, 목재 놀이시설, 잔디광장 등 다양한 휴식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특히 체험장에서는 간단하게 목재를 활용한 생활 공예품을 만들 수 있다.동절기 09:00~17:00, 하절기 09:00~18:00(폐장 1시간 전까지 입장), 1월1일, 설날·추석연휴, 매주 월요일, 공휴일 다음날 휴무 무료(체험료는 제품별 별도)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구절로 151 054 674 3363 Information Center낙동정맥트레일 봉화구간 숲길 안내센터 | 분천역 근처에 자리 잡고 있으며 다양한 종류의 팸플릿을 비치해 두고 있다. 트레킹 여행자에게 숙소와 샤워실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제공한다. 안내소 주변에 있는 주차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낙동정맥트레일 봉화 제2구간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곳에 주차 후 분천역에서 열차를 타고 승부역에서 내려 트레킹, 다시 분천역으로 돌아오면 된다.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935-81 054 672 4956 에디터 손고은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유리 취재협조 경상북도 관광공사 www.gtc.co.kr, 봉화군청 www.bonghwa.go.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사설] 국정화 확정 고시, 국론분열 후유증 최소화해야

    정부는 어제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형식으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확정 고시했다. 황 총리는 “현행 검정 발행 제도는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또 “더이상 왜곡되고 편향된 역사 교과서로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고 국정화 추진 배경을 밝혔다. 황 총리는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면서 현행 한국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6·25 전쟁 부분이나 3대 세습, 주체사상 등 북한과 관련해 현행 한국사 교과서들의 편향성을 집중 거론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등 건국 세력 등에 대한 평가절하 기술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공박했다. 황 총리는 현행 검정 교과서 8종에 대해 829건을 수정 권고했고, 이 가운데 33건에 대해 법정 다툼 중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헌법 가치에 충실한 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다짐도 했다. 국정화 안이 확정 고시됨에 따라 교육부 산하 국사편찬위원회는 교과서 집필진을 구성하고 편찬 작업에 착수한다. 내년 12월 감수와 현장 적합성 검토를 거쳐 2017년 3월부터 학교 현장에 적용될 예정이다. 예상대로 야당을 비롯해 역사학계 등 각계각층의 반발은 거세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국정화 저지를 위한 항의 농성 돌입에 이어 향후 국회 일정을 보이콧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교과서 국정화를 이슈화해 내년 총선까지 끌고 갈 방침인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19대 마지막 정기국회는 빈손으로 막을 내리고 내년 4월 총선까지 국론은 두 갈래로 찢어지고, 무덤 속에 들어갔던 망국적인 이념 갈등의 망령이 되살아날 것이다. 참으로 암담한 상황이다. 현행 교과서 편향성 문제에 많은 국민이 공감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정부가 국정화라는 ‘극약처방’을 내렸느냐는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올바른 역사 교육을 하겠다는 대의에 공감하면서도 국정화 자체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 여론조사 결과도 찬반이 시소게임을 하듯 갈려 있다. 역사 자체는 원래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한 영역이고 한 가지 기준으로 해석하는 것 자체가 우려스러운 발상이다. 국정화가 자칫 주자학적 관점 이외의 모든 해석을 학문과 나라를 어지럽히는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세웠던 조선조나 오로지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역사를 독점하는 사회주의 체제를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도 가볍지 않다.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통해 사고의 창의성을 키운다는 역사 교육의 취지나 반대편의 목소리도 포용하려는 민주주의 정신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가 모든 국가적 현안을 제쳐 놓고 매달려야 할 사안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시점이다. 당장 국정화라는 블랙홀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시급하다. 우리가 처한 국가적 난제를 고려하면 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투 트랙 접근이 필요하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경제와 민생 현안 처리를 위해 국회의 문은 열어 놓아야 한다. 야당은 수권 정당으로서 국민들에게 교과서의 편향성을 바로잡는 더 현명한 방법을 모색하는 대승적이고도 의연한 자세를 보여 주기 바란다.
  • 인간은 두뇌 10%만 사용?…뇌에 관한 6가지 흔한 오해

    인간은 두뇌 10%만 사용?…뇌에 관한 6가지 흔한 오해

    지난해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루시’는 ‘인간의 평균 두뇌 사용량은 10%에 불과하다’는 가정을 기본 전제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이처럼 인간 두뇌에 대한 ‘속설’을 사실로 가정하는 사례는 우리 일상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과학전문지 ‘파퓰러사이언스’는 2일(현지시간), 많은 이들이 사실로 믿고 있지만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뇌에 관한 오해’ 몇 가지를 해명했다. 그 중 일부를 발췌해 소개한다. 1. 인간은 두뇌의 일부만을 활용할 수 있다.앞서도 언급된 이 유명한 속설의 ‘발단’이 된 사람은 1900년대에 활동한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다. 1907년에 그는 “인간은 주어진 정신적·신체적 역량의 극히 일부만을 활용하고 있다”고 발언했는데, 이후 한 기자가 이 말을 ‘평범한 인간은 전체 정신 능력의 10%만을 개발할 수 있다’고 와전한 이래 이러한 오해가 널리 퍼지게 됐다. 그러나 현대 의학 장비를 이용해 개인의 두뇌 활동을 조사해보면 인간이 자기 두뇌의 전 영역을 고루 활용한다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난다. 두뇌의 일부분만 손상돼도 전반적 정신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2. 클래식 음악은 자녀 두뇌 발달에 좋다이러한 믿음은 1993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 캠퍼스 연구팀이 진행했던 실험에서 비롯됐다. 당시 연구팀은 대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각각 모차르트 음악을 듣거나 긴장완화 체조를 실시하거나 침묵 속에서 대기하도록 한 뒤 IQ 테스트를 치르도록 했다. 연구팀은 실험결과 모차르트의 음악을 청취한 학생들의 점수가 가장 높다는 점을 들어 이 같은 이론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후 여러 과학자들이 이 실험을 반복해 보았지만 이 중 동일한 연구 결과를 얻었던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오히려 1999년 하버드 대학교의 한 연구팀은 유사 연구 16건을 분석한 뒤 이른바 ‘모차르트 효과’가 거짓에 해당한다고 결론내린 바 있다. 3. 성인이 되면 뇌세포 성장이 중단된다1998년, 스웨덴 과학자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장기기억을 관장하는 두뇌영역인 ‘해마’에서 새로운 뇌세포가 생성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최근 2014년에도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과학자들이 운동능력 및 자의식에 관여하는 신경조직인 ‘선조체’가 평생에 걸쳐 새로운 뉴런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4. 남녀의 특기가 다른 이유는 두뇌구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남녀가 서로 다른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생물학적 이유보다는 사회적 이유가 더 크게 작용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이를 잘 드러내는 예시로 1999년 워털루대학교 사회심리학자들이 진행한 실험이 있다. 이 실험에서 연구팀은 남녀 집단에게 동일한 고난도 수학문제를 풀도록 했다. 이 때 첫 시험에서는 여성 참가자들의 성적이 남성들보다 낮았다. 그러나 두 번째 시험에서는 시작 직전 참가자들에게 ‘과거 동일 시험을 진행한 결과 남녀들 사이에 성적차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언급했고, 그러자 여성들의 성적이 남성들과 동일해지는 현상이 관찰된 바 있다. 5. 술을 마시면 뇌세포가 파괴된다.과거 덴마크 바톨린 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사망한 알코올중독자들의 뇌와 일반인들의 뇌를 서로 비교, 그 뉴런 수가 거의 동일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물론 과다하게 복용했을 경우 알코올이 뇌세포를 어느 정도 파괴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다른 화학물질의 경우도 마찬가지며, 적당량의 음주는 뇌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6. 좌뇌가 우세하면 논리적 사람, 우뇌가 우세하면 창의적 사람이 된다좌·우뇌 중 더 우세한 쪽에 따라 개인의 성향이 논리적, 혹은 창의적으로 굳어진다는 믿음은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지만 이를 명확히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는 현재까지 제시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부인하는 결과가 종종 발표되는데, 일례로 2012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 연구팀은 창의적 사고에 있어 좌·우 중 어느 한쪽이 아닌 두뇌 전체의 신경계가 활용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사진=ⓒ포토리아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산은·기은·수출입銀 보유 주식매물 ‘봇물’

    정부가 산업·기업·수출입은행 등이 갖고 있는 비금융회사 지분을 앞으로 3년 안에 대거 정리하기로 함에 따라 국책은행발 주식 매물이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매각 대상에 오른 출자전환기업 5곳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우조선해양, 한국지엠, 아진피앤피, 원일티엔아이 등이 거론된다. 산은 지분율은 KAI 26.75%(약 2608만주), 대우조선 31.46%(6021만주), 한국지엠 17.02%(7070만주)다. 기업은행은 KT&G(지분율 6.93%, 951만주), 수출입은행은 성동조선(70.71%)과 대선조선(67.27%) 지분을 각각 3년 내 매각 대상에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은행이 해마다 매각 계획을 세워 금융위원회에 올리면 금융위는 이를 경영평가에 반영해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등 매각을 적극 유도할 방침이다. 정책금융 지원 장기화를 막고 매각 대금을 재원으로 새로운 투자를 독려하려는 취지다. 하지만 정책적 고려 때문에 지분을 보유했던 곳이나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곳도 있어 실제 매각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예컨대 1999년 항공산업 빅딜로 탄생한 KAI만 해도 두 차례 매각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했다. 정부가 ‘시장가치 매각’ 원칙을 세우면서 장부가격보다 훨씬 싼값에 팔리는 주식이 나올 공산도 있다. 이는 ‘헐값 매각’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호주영어 억양이 다른 이유는 “선조들이 매일 술 마셨던 탓“

    호주영어 억양이 다른 이유는 “선조들이 매일 술 마셨던 탓“

    호주 사람들의 영어 억양은 영국이나 기타 영어권 국가와 비교해 다소 불명확한 편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그런데 최근 한 호주 학자가 이러한 발음 습관이 다름 아닌 자기 선조들의 지독한 음주습관 때문에 굳어진 것이라는 독특한 주장을 내세워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호주 멜버른시 빅토리아대학교의 커뮤니케이션 학자 딘 프렌켈은 최근 현지 신문사 ‘디 에이지’(The Age)에 게재한 기고문을 통해 현대 호주인들의 ‘게으른’ 발음 방식에 대한 한탄을 드러내며 이 같은 이론을 제기했다. 호주는 18세기 말 유럽인들, 특히 영국인들을 중심으로 식민지화 된 이후로 백인 사회를 이루어 왔다. 이 초기 정착기에 영국에서 온 정착민 중 대부분은 본토에서 범죄를 저질러 ‘유배’된 사람들이었다. 프렌켈의 주장은 이들에게 심각한 음주 습관이 존재했고 이것이 현대 호주인들의 발음에까지 영향을 끼쳤다는 것. 일부 호주 사람들에게 있어 이러한 자민족의 유래는 언급하기 싫은 민감한 사안일 수 있으나 프렌켈은 호주인임에도 불구하고 기고문에서 조상들에 관한 문제를 정면으로 언급했다. 그는 “호주 억양의 기원을 한번 제대로 따져보자”며 “우리 선조들은 늘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셨으며 이러한 생활행태가 지속되자 취했을 때 나타나는 불분명한 발음방식이 사람들의 말하기 패턴 전반에 침투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프렌켈은 이어 “결과적으로 이러한 말투는 200년이라는 기간 동안 술에 취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학습되고 전승됐다”고 덧붙였다. 프렌켈에 따르면 현대 호주인들의 발음 습관에서 그러한 흔적을 분명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호주인들은 전체 조음기관(입술·혀·치아 등 말소리를 만들어 내는 신체기관)의 3분의 2밖에 사용하지 않는다”며 “나머지 3분의 1은 항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 라고 전했다. 그는 “호주 사람들이 이러한 습관으로 인해 생략해 버리는 자음으로는 ‘t’(important를 importand로), ‘l’(Australia를 Austraya로), ‘s’(yes를 yesh로) 등이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또한 많은 모음이 다른 모음으로 바뀌어 발음된다. 이러한 대표적 예로는 ‘a’ 발음을 ‘e’발음(standing을 stending으로)이나 ‘i’발음(Wales를 Wyles로), 혹은 ‘oi’발음(night를 noight로) 등으로 바꿔버리는 사례들이 있다” 고 말한다. 그는 앞으로 호주인들의 발음이 보다 명확해지길 바란다며 “이제 우리는 술에서 깰 때가 왔다. 발음으로 인해 실제 가진 지능보다 멍청하게 보이고 마는 상황을 호주 사람들이 더 이상 스스로 용납하지 말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사진=게티이미지/멀티비츠 이미지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징비록´ 쓴 류성룡 15대 종손 취임

    ´징비록´ 쓴 류성룡 15대 종손 취임

     “막상 정식으로 종손이 되고 명문가의 대(代)도 잇게 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조선시대 징비록(懲毖錄)을 쓴 서애 류성룡(1542~1607) 선생의 15대손인 류창해(60)씨는 30일 “종택을 중심으로 선조들이 남긴 학문적 성과와 위업을 이어가고 문중 대표로 권위와 책임을 다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류씨는 이날 서애 선생의 종택인 경북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에서 열린 길사(吉祀)에서 대를 이어 15대 종손이 되는 것을 고유(告由)했다. 길사는 일종의 ‘종손 취임식’으로 충효당에서 40년 만에 봉행됐다.  충효당에서는 길사에 앞선 절차로 지난해 8월 30일 별세한 영하(당시 89세) 공의 기년상(朞年喪·1년상)과 담사(담祀)가 치러졌다. 이날 행사에는 영남 유림과 관광객 등 1000여명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충효당에서는 앞서 1975년에 길사가 봉행됐다. 돌아가신 서애 선생의 13대 종손 시영 공의 3년 상(喪)을 마친 14대손 영하 공이 종손의 계보를 잇는 길사였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와우! 과학] “다 보이네!”…와이파이 이용한 ‘투시기술’ 개발

    [와우! 과학] “다 보이네!”…와이파이 이용한 ‘투시기술’ 개발

    와이파이 전파를 이용해 벽 너머의 사람 움직임을 식별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 MIT에 의해 개발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MIT 산하 컴퓨터공학 및 인공지능 연구소(Computer Science and Artificial Intelligence Lab, 이하 CSAIL) 연구팀은 2013년부터 지속된 연구를 통해 ‘RF-캡처’(RF-Capture)라고 불리는 ‘투시 장치’를 개발해 냈다고 밝혔다. RF-캡처의 작동원리는 다음과 같다. 먼저 기기의 무선신호 송출기가 신호를 발사하면 이 신호는 벽 너머의 사물들에 부딪힌 다음 반사된다. 그 뒤엔 RF-캡처의 수신기가 이렇게 반사된 신호들을 빠짐없이 수집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물들과 달리 인간의 신체에는 느리게나마 무선신호를 반사해 수신기로 되돌려보내는 부위가 많지 않다. 따라서 이 차이를 분석하면 벽 너머 인체의 위치나 움직임을 잡아낼 수 있다. 결론적으로 RF-캡처를 사용하면 무선신호가 닿는 범위 내의 인체 윤곽을 확인 하는 것이 가능하다. 더 나아가 개인별 신체 윤곽의 특징, 즉 그 크기나 형태에 대한 정보를 RF-캡처에 축적·학습시키면 나중에는 이 장치가 15명 정도의 사람을 90%확률로 서로 구분해 낼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한편 RF-캡처의 동작인식 능력의 경우 호흡에 따른 가슴 움직임 정도마저 식별할 수 있는 수준으로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벽 너머의 사람이 공중에 쓰는 글자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까지 성공했다. 연구에 참여한 디나 카타비는 “사실상 반사된 무선신호 자체를 통해 얻어낼 수 있는 데이터는 많지 않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하지만 우리가 개발한 일련의 알고리즘을 통해 이 데이터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최대한 제거하고 나면 그 안에서도 의미 있는 신호를 추출해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역시 연구에 참여한 박사과정 연구생 파델 아딥은 “이 기술의 활용 방안은 매우 광대하다”고 말한다. 향후 이 기술은 부모들이 옆 방에 있는 어린 자녀나 노인들의 안위를 확인할 때, 혹은 소방관들이 벽 너머 생존자의 존재를 확인할 때 등 실질적 상황들에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또한 이 기술은 집안 어디든 무선신호가 도달하기만 하는 곳이라면 인간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는 만큼, 각종 가전기기의 무선조종이나 비디오 게임 등에 응용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연구팀은 전하고 있다. 사진=ⓒCSAIL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교과서 사회 논의기구 만들자” 문재인 제안… 與는 즉각 거부

    “교과서 사회 논의기구 만들자” 문재인 제안… 與는 즉각 거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얼굴) 대표가 29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역사 교과서 국정화 고시 중단을 촉구하는 한편 사회적 논의 기구를 구성해 역사 교과서 발행 개선 방안을 백지에서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즉각 거부했다. 문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확정고시 전에 대통령에게 마지막으로 역사 교과서 문제 해결을 위한 제안을 드린다”면서 “정부·여당이 현행 검인정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니 역사학계와 교육계 등 전문가와 교육 주체가 두루 참여해 역사 교과서 발행 체제의 개선 방안을 백지상태에서 논의하는 사회적 논의 기구를 구성해 보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신 대통령은 국정화 확정고시 절차를 일단 중단해 주기 바란다”며 “사회적 논의 기구 결과에 따르는 것을 전제로 그때까지 정치권은 교과서 문제 대신 산적한 민생 현안을 다루는 데 전념하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사회적 기구가 바로 집필진 구성”이라며 “문 대표께서 사회적 기구 구성을 필요로 느꼈다는 것은 곧 현행 역사 교과서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교과서 문제를 논의하는 사회적 기구 구성 제안은 교과서 문제를 정치의 한복판으로 끌고 와 정쟁을 지속시키겠다는 정치적 노림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한편 새정치연합은 이날 카카오톡 등을 통해 문 대표의 부친이 친일 전력자이고 인민군이었다는 주장을 담은 글이 확산되는 것과 관련해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유포된 글에는 “문 대표의 아버지가 일제시대 흥남 농업계장으로 친일 공무원이었고 6·25전쟁 때는 북괴군 상좌였다”고 적혀 있다. 또한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철수 새정치연합 의원 등 야권 유력 인사 선조의 ‘친일 행적’을 주장하고 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Wi-Fi 이용...벽 너머 인간 보는 ‘투시기술’ 개발 (MIT)

    Wi-Fi 이용...벽 너머 인간 보는 ‘투시기술’ 개발 (MIT)

    와이파이 전파를 이용해 벽 너머의 사람 움직임을 식별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 MIT에 의해 개발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MIT 산하 컴퓨터공학 및 인공지능 연구소(Computer Science and Artificial Intelligence Lab, 이하 CSAIL) 연구팀은 2013년부터 지속된 연구를 통해 ‘RF-캡처’(RF-Capture)라고 불리는 ‘투시 장치’를 개발해 냈다고 밝혔다. RF-캡처의 작동원리는 다음과 같다. 먼저 기기의 무선신호 송출기가 신호를 발사하면 이 신호는 벽 너머의 사물들에 부딪힌 다음 반사된다. 그 뒤엔 RF-캡처의 수신기가 이렇게 반사된 신호들을 빠짐없이 수집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물들과 달리 인간의 신체에는 느리게나마 무선신호를 반사해 수신기로 되돌려보내는 부위가 많지 않다. 따라서 이 차이를 분석하면 벽 너머 인체의 위치나 움직임을 잡아낼 수 있다. 결론적으로 RF-캡처를 사용하면 무선신호가 닿는 범위 내의 인체 윤곽을 확인 하는 것이 가능하다. 더 나아가 개인별 신체 윤곽의 특징, 즉 그 크기나 형태에 대한 정보를 RF-캡처에 축적·학습시키면 나중에는 이 장치가 15명 정도의 사람을 90%확률로 서로 구분해 낼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한편 RF-캡처의 동작인식 능력의 경우 호흡에 따른 가슴 움직임 정도마저 식별할 수 있는 수준으로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벽 너머의 사람이 공중에 쓰는 글자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까지 성공했다. 연구에 참여한 디나 카타비는 “사실상 반사된 무선신호 자체를 통해 얻어낼 수 있는 데이터는 많지 않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하지만 우리가 개발한 일련의 알고리즘을 통해 이 데이터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최대한 제거하고 나면 그 안에서도 의미 있는 신호를 추출해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역시 연구에 참여한 박사과정 연구생 파델 아딥은 “이 기술의 활용 방안은 매우 광대하다”고 말한다. 향후 이 기술은 부모들이 옆 방에 있는 어린 자녀나 노인들의 안위를 확인할 때, 혹은 소방관들이 벽 너머 생존자의 존재를 확인할 때 등 실질적 상황들에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또한 이 기술은 집안 어디든 무선신호가 도달하기만 하는 곳이라면 인간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는 만큼, 각종 가전기기의 무선조종이나 비디오 게임 등에 응용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연구팀은 전하고 있다. 사진=ⓒCSAIL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호주인 특이한 발음…“선조들이 매일 술 마셨던 탓“

    호주인 특이한 발음…“선조들이 매일 술 마셨던 탓“

    호주 사람들의 영어 억양은 영국이나 기타 영어권 국가와 비교해 다소 불명확한 편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그런데 최근 한 호주 학자가 이러한 발음 습관이 다름 아닌 자기 선조들의 지독한 음주습관 때문에 굳어진 것이라는 독특한 주장을 내세워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호주 멜버른시 빅토리아대학교의 커뮤니케이션 학자 딘 프렌켈은 최근 현지 신문사 ‘디 에이지’(The Age)에 게재한 기고문을 통해 현대 호주인들의 ‘게으른’ 발음 방식에 대한 한탄을 드러내며 이 같은 이론을 제기했다. 호주는 18세기 말 유럽인들, 특히 영국인들을 중심으로 식민지화 된 이후로 백인 사회를 이루어 왔다. 이 초기 정착기에 영국에서 온 정착민 중 대부분은 본토에서 범죄를 저질러 ‘유배’된 사람들이었다. 프렌켈의 주장은 이들에게 심각한 음주 습관이 존재했고 이것이 현대 호주인들의 발음에까지 영향을 끼쳤다는 것. 일부 호주 사람들에게 있어 이러한 자민족의 유래는 언급하기 싫은 민감한 사안일 수 있으나 프렌켈은 호주인임에도 불구하고 기고문에서 조상들에 관한 문제를 정면으로 언급했다. 그는 “호주 억양의 기원을 한번 제대로 따져보자”며 “우리 선조들은 늘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셨으며 이러한 생활행태가 지속되자 취했을 때 나타나는 불분명한 발음방식이 사람들의 말하기 패턴 전반에 침투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프렌켈은 이어 “결과적으로 이러한 말투는 200년이라는 기간 동안 술에 취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학습되고 전승됐다”고 덧붙였다. 프렌켈에 따르면 현대 호주인들의 발음 습관에서 그러한 흔적을 분명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호주인들은 전체 조음기관(입술·혀·치아 등 말소리를 만들어 내는 신체기관)의 3분의 2밖에 사용하지 않는다”며 “나머지 3분의 1은 항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 라고 전했다. 그는 “호주 사람들이 이러한 습관으로 인해 생략해 버리는 자음으로는 ‘t’(important를 importand로), ‘l’(Australia를 Austraya로), ‘s’(yes를 yesh로) 등이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또한 많은 모음이 다른 모음으로 바뀌어 발음된다. 이러한 대표적 예로는 ‘a’ 발음을 ‘e’발음(standing을 stending으로)이나 ‘i’발음(Wales를 Wyles로), 혹은 ‘oi’발음(night를 noight로) 등으로 바꿔버리는 사례들이 있다” 고 말한다. 그는 앞으로 호주인들의 발음이 보다 명확해지길 바란다며 “이제 우리는 술에서 깰 때가 왔다. 발음으로 인해 실제 가진 지능보다 멍청하게 보이고 마는 상황을 호주 사람들이 더 이상 스스로 용납하지 말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사진=게티이미지/멀티비츠 이미지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세밀화 추상화…간송미술문화재단 ‘화훼영모… ’展

    세밀화 추상화…간송미술문화재단 ‘화훼영모… ’展

    ‘내 지금 생물을 바라보며 하늘의 마음을 보았노라.’(我今觀物見天心) 조선 전기의 뛰어난 문장가인 매계(梅溪) 조위(曺偉)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우리 선조들은 꽃과 새, 곤충과 물고기들을 자연의 일부인 동시에 우주 만물의 섭리가 함축된 존재로 인식했다. 보고, 기르고, 나아가 글과 그림으로 옮겨 내면서 자연과 생명의 오묘한 이치를 터득하고 자신의 성정을 함양하고자 했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수장 작품 중에서 동식물을 소재로 한 전통 회화작품들을 시기별로 선별해 ‘화훼영모-자연을 품다’전을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고 있다. 화훼영모(花卉翎毛)란 꽃과 풀, 날짐승과 길짐승을 가리킨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1년에 두번씩 열던 소장품전을 DDP 개관과 함께 대중 속으로 들여온 뒤 여는 다섯 번째 기획전으로, 그림을 통해 시대 정신과 기법의 차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오세창 선생이 화첩으로 만들어 소장하던 고려 공민왕(1330~1374)의 ‘이양도’(二羊圖)부터 조선왕조 말기의 이도영(1884~1933)이 그린 ‘백령식록’(百齡食祿)까지 550년의 기간 동안 각 시기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 90여점이 출품됐다. 한국민족미술연구소 백인산 연구실장은 “선조들은 동식물들을 통해 도덕적 이상과 더불어 무병장수나 입신출세, 부귀영화 등과 같은 현세적 욕망을 담아내곤 했다”며 “시대별 화법의 변화와 각 소재들이 담고 있는 상징, 문화적 코드를 맞춰 가며 읽으면 더욱 재미있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려 말 조선 초 주자성리학의 도입과 정착 시기에는 중국 남방 화풍의 강한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출품작 중 김안로의 막내아들 김시(1524~1593)가 그린 ‘야우한와’(野牛閒臥)에서 보듯이 배경은 우리 산수지만 소는 남중국의 물소다. 주자와 송설이 남중국 출신이라는 점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16세기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가 조선성리학을 이뤄내면서 그림에도 진경산수화가 출현하고 화훼영모화의 소재로 우리 주변의 동식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화훼영모화는 진경시대에 이르러 겸재 정선(1676~1759)에 의해 독자적 사생 기법이 완성되고 현재 심사정(1707~1769)이 시도한 조선남종화풍으로의 반전을 거쳐 조선 고유색이 다양한 형태로 극대화된다. 패랭이꽃이 피어 있고 참개구리와 나비가 모여든 한여름의 오이밭 풍경을 담은 ‘과전전계’(瓜田田鷄·오이밭의 참개구리)는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이 70대 후반에 그린 그림이다. 겸재풍의 사생 기법을 계승한 변상벽(1730~1775), 김홍도(1745~1806), 김득신(1754~1822)에 의해 절정에 이른다. 표암 강세황(1713~1791),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청조문인화풍의 함축된 생략 기법을 화훼영모에 도입했다. 조선 말기에 이르면 문화 노쇠 현상과 맞물려 사생력이 후퇴하고, 화려하고 장식적인 측면이 부각된다. 옛사람들은 진흙 속에서도 화사한 꽃을 피우는 연을 보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고고한 군자를 떠올렸다. 시서화 삼절로 명성이 높았던 강세황의 ‘향원익청’(香遠益淸·향기는 멀수록 맑다)은 두 포기의 연으로 청정한 자태를 담아냈다. 화훼영모화가 인기 있었던 이유는 사물들이 지닌 의미에 빗대 많은 메시지를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잉어는 등용문을 뜻하니 과거에 급제해 출사하라는 뜻을, 모란은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등 문화적 의미를 지닌다. 김홍도의 ‘황묘농접’(黃猫蝶·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은 화창한 봄날 뜰에 있던 주황빛 고양이가 패랭이꽃을 보고 날아든 검푸른 제비나비를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다. 평화로운 전원 풍경을 담은 이 그림에는 ‘일흔, 여든이 되도록 청춘을 누리며 뜻하는 대로 이뤄지소서’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전시는 내년 3월 27일까지. (02)2153-0608.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간송문화재단 동식물 소재 동양화 걸작 선보인다

    간송문화재단 동식물 소재 동양화 걸작 선보인다

     ‘내 지금 생물을 바라보며 하늘의 마음을 보았노라.’(我今觀物見天心)  조선 전기의 뛰어난 문장가인 매계(梅溪) 조위(曺偉)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우리 선조들은 꽃과 새, 곤충과 물고기들을 자연의 일부인 동시에 우주 만물의 섭리가 함축된 존재로 인식했다. 보고, 기르고, 나아가 글과 그림으로 옮겨 내면서 자연과 생명의 오묘한 이치를 터득하고 자신의 성정을 함양하고자 했다.  간송문화재단이 수장 작품 중에서 동식물을 소재로 한 전통 회화작품들을 시기별로 선별해 ‘화훼영모-자연을 품다’전을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고 있다. 화훼영모(花卉翎毛)란 꽃과 풀, 날짐승과 길짐승을 가리킨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1년에 두번씩 열던 소장품전을 DDP 개관과 함께 대중 속으로 들여온 뒤 여는 다섯 번째 기획전으로, 그림을 통해 시대 정신과 기법의 차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오세창 선생이 화첩으로 만들어 소장하던 고려 공민왕(1330~1374)의 ‘이양도’(二羊圖)부터 조선왕조 말기의 이도영(1884~1933)이 그린 ‘백령식록’(百齡食祿)까지 550년의 기간 동안 각 시기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 90여점이 출품됐다.  한국민족미술연구소 백인산 연구실장은 “선조들은 동식물들을 통해 도덕적 이상과 더불어 무병장수나 입신출세, 부귀영화 등과 같은 현세적 욕망을 담아내곤 했다”며 “시대별 화법의 변화와 각 소재들이 담고 있는 상징, 문화적 코드를 맞춰 가며 읽으면 더욱 재미있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려 말 조선 초 주자성리학의 도입과 정착 시기에는 중국 남방 화풍의 강한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출품작 중 김안로의 막내아들 김시(1524~1593)가 그린 ‘야우한와’(野牛閒臥)에서 보듯이 배경은 우리 산수지만 소는 남중국의 물소다. 주자와 송설이 남중국 출신이라는 점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16세기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가 조선성리학을 이뤄내면서 그림에도 진경산수화가 출현하고 화훼영모화의 소재로 우리 주변의 동식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화훼영모화는 진경시대에 이르러 겸재 정선(1676~1759)에 의해 독자적 사생 기법이 완성되고 현재 심사정(1707~1769)이 시도한 조선남종화풍으로의 반전을 거쳐 조선 고유색이 다양한 형태로 극대화된다. 패랭이꽃이 피어 있고 참개구리와 나비가 모여든 한여름의 오이밭 풍경을 담은 ‘과전전계’(瓜田田鷄·오이밭의 참개구리)는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이 70대 후반에 그린 그림이다. 겸재풍의 사생 기법을 계승한 변상벽(1730~1775), 김홍도(1745~1806), 김득신(1754~1822)에 의해 절정에 이른다. 표암 강세황(1713~1791),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청조문인화풍의 함축된 생략 기법을 화훼영모에 도입했다. 조선 말기에 이르면 문화 노쇠 현상과 맞물려 사생력이 후퇴하고, 화려하고 장식적인 측면이 부각된다.  옛사람들은 진흙 속에서도 화사한 꽃을 피우는 연을 보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고고한 군자를 떠올렸다. 시서화 삼절로 명성이 높았던 강세황의 ‘향원익청’(香遠益淸·향기는 멀수록 맑다)은 두 포기의 연으로 청정한 자태를 담아냈다. 화훼영모화가 인기 있었던 이유는 사물들이 지닌 의미에 빗대 많은 메시지를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잉어는 등용문을 뜻하니 과거에 급제해 출사하라는 뜻을, 모란은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등 문화적 의미를 지닌다. 김홍도의 ‘황묘농접’(黃猫弄蝶·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은 화창한 봄날 뜰에 있던 주황빛 고양이가 패랭이꽃을 보고 날아든 검푸른 제비나비를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다. 평화로운 전원 풍경을 담은 이 그림에는 ‘일흔, 여든이 되도록 청춘을 누리며 뜻하는 대로 이뤄지소서’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전시는 내년 3월 27일까지. (02)2153-0608.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15] 선어회와 활어회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15] 선어회와 활어회

     십수 년 전 일본 도쿄에서 운 좋게 지인을 따라 정부 청사 근처의 호젓한 곳에 있는 고급 횟집을 간 적이 있다. 일본 관료들이 진짜 전통식 회를 즐기고 싶을 때 마음먹고 찾는 곳이란다. 단아한 분위기에다 꽤 비싼 집인 것 같아서 은근히 맛에도 기대가 됐다.  깔끔하게 모양을 낸 전채요리를 후루룩 먹고 나자 막 바로 주인공인 생선회가 큰 접시에 담겨져 나왔다. 그런데 회 두께가 거의 소고기 등심 스테이크처럼 두껍고, 겉에서 은빛 윤기도 나지 않았다. 머뭇거리다 한 점을 입 안에 넣고 찝는 순간 물컹하면서 퀴퀴한 냄새마저 났다. 아마 한국에서 이런 일을 겪으면 우리는 당장 주인을 불러 “어제 팔다가 남은 회를 손님 상에 내놓느냐”고 항의했을 만하다. 이게 본래 일본식 회란 말인가. ● 일본식 회는 3~4일 낸장 숙성... 독특한 감칠맛 특징 대체로 일본인은 활어에 대나무 꼬챙이 등을 꽂아 즉시 피를 뺀 뒤 냉장 숙성시킨 선어회를 좋아한다. 도톰하게 썬 횟감을 축축한 물수건에 싸서 3~4일씩 보관하기 때문에 독특한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횟감을 다루는 것을 마치 예술 행위처럼 여긴다. 반면 우리는 갓 잡아서 바로 먹는 활어회를 제대로 된 회로 여긴다. 솔직히 복잡한 과정은 없다.  우리 선조들도 술안주로 가끔 회를 먹었다. 고려 때 이색부터 조선 때 이항복, 정약용 등은 시에 인용하기도 했다. 위험하긴 하지만 붕어 등 민물고기까지 회로 먹었다. 물론 섬 국가이자 대양과 접해 있는 일본은 각종 어류가 더 흔했다. 아주 오랫동안 육식을 금기했기 때문에 생선이 거의 유일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그렇다면 이웃한 두 나라 사이에 왜 이렇게 기호에서 차이가 날까. 논리적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 일본 막부시대 운송수단 열악해 영주 밥상까지 수일씩 걸려 일본은 19세기에 막부 정권이 무너지기 전까지 사실상 군사력이 바탕인 영주(성주) 중심의 연맹국 형태였다. 음식 문화의 다양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의 음식 형태에 여러 기법을 동원해 집중한다. 반면 한국에선 왕권 국가로서 왕의 건강을 위해 맛이나 모양보다 약리 작용을 중시하는 음식 문화가 발달했다. 음식 모양만 보면 식재료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에 자칫 볼품없어 보인다. 중국은 황제국이라며 주변의 이질적 문화도 흡수해 화려하고 다양한 음식 향연의 꽃을 피운다. 고급스런 전통 음식은 권력자나 집안 어른의 입맛을 기준으로 발달하기 마련이다.  고대 일본에서는 좋은 생선이 잡히면 이를 손에 들고 영주의 밥상을 차리는 성까지 사람이 뛰어서 가야 했을 것이다. 고구려 등 한반도로부터 유입된 말이 아직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생선이 쉽게 상하는 것을 방지하려면 아예 물수건에 싸서 숙성시키는 게 낫다. 횟감을 미리 얇게 썰어서도 안 된다. 숙성된 회를 먹어 본 영주가 “맛있구나”라고 했다면, 그때부터 이런 회가 맛있는 생선회가 된다. 사실 잘 숙성된 회는 달달하면서도 살살 녹는 맛이 있기는 하다. 퀴퀴한 냄새도 익숙해지면 풍미가 된다. ● 한반도선 날 생선 거의 안먹어 어부들 즉석에서 활어회 먹던 습성 남아 반면 한반도의 왕들은 독성이 남아 있는 날 생선을 거의 먹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배를 탄 어부들은 갓 잡은 생선을 된장에 찍어 먹으며 허기를 달랬을 것이다. 결국 우리에겐 쫄깃쫄깃한 활어회가 참맛이 된다. 중국 황제도 고소한 튀김 요리 등에 둘러싸여 날 생선을 먹었을 리가 없다. 춘추시대 공자가 생선회를 좋아했다고 하지만, 그건 옛말처럼 여겼을 것이다.  늦가을에는 광어, 참돔, 방어가 고소하게 살이 찌는 제철이다. 펄떡펄떡 뛰는 횟감의 껍질을 발라내고 흰 살만 얇게 썰어서 초고추장이나 와사비(고추냉이 뿌리) 간장에 찍어 먹으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또 횟감을 6~7시간 냉장시키면 단백질 구조가 깨지면서 풍미와 감칠맛이 짙어지는 숙성 회(싱싱회)도 된다. 요즘엔 이를 즐기는 식객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본래 일식 횟집의 본고장은 서울 무교동과 북창동 등이었다. ● 무채 독성 흡수 기능... 스키다시 일본엔 없는 우리식 상차림 한편 지레짐작 탓에 오해하는 편견이 있다. 생선회 접시에 깔린 무채는 그냥 모양 좋으라고 나오는 게 아니다. 무는 식품의 독성 물질을 제 몸으로 흡수하는 효능을 지녔다. 따라서 날 생선의 독성을 무가 빼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독성을 고스란히 흡수한 이 무채를 먹어선 안 될까. 무는 독성을 빨아들인 뒤 스스로 비독성 물질로 바꾸기 때문에 생선회와 곁들여 먹어도 괜찮다. 메밀국수와 무즙을 함께 먹는 이치와 같다. 다만 국내 횟집에서는 무채를 아무도 먹지 않기 때문에 다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까, 미심쩍으면 먹지 않는 게 낫다.  또 생선회가 나오기 전 상에 깔리는 스키다시(결들이 음식)는 정작 일본에는 없는 우리식 상차림이다. 1960~1970년대 부산에 대규모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근로자들의 주머니 사정도 넉넉해지자 비싼 사시미(회)를 찾기 시작했다. 이때 튀김, 조림, 구이, 무침 등 여러 반찬을 눈으로 봐야 섭섭하게 여기지 않는 습성이 횟집 문화를 바꾼 것이다. 결국에는 손을 대는 둥 마는 둥 하는데, 마땅치 않은 허례는 버려야 한다.   <붕어회> 조선의 문신, 학자 서거정   서리 내린 차가운 강에 붕어가 통통 살쪄 회칼 휘두르니 흰 살점이 실날처럼 흩날리네 젓가락 놓을 줄 몰라 접시가 이내 텅 비었네 두보 시의 은빛 회가 자주 생각나누나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 성장률 떠받치는 中…기준금리 0.25%P 또 인하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23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다. 인민은행은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24일부터 1년 만기 위안화 대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4.35%로, 1년 만기 예금 기준 금리도 0.25%포인트 내린 1.5%로 조정한다고 밝혔다. 기준금리 인하는 지난해 11월 이후 6번째다. 인민은행은 또 적격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한 지급준비율도 0.5% 포인트 낮췄다. 중국은 지난 8월 26일에도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을 인하한 바 있다. 인민은행은 아울러 상업은행에 대한 예금금리 상한선을 없앴다. 이번 조치는 중국의 성장둔화를 막기 위한 강도 높은 부양책으로 풀이된다. 지난 3분기 경제성장률이 6.9%를 기록하며 올 한해 목표치인 7.0% 달성이 위태로워지자 곧 추가 부양책을 내놓고 성장률 받치기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오는 26일 개막하는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18기 5중전회)를 앞두고 있어 경기부양이 더 시급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인민은행 관계자는 “중국 경제성장에 여전히 하방 압력이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통화정책 운영수단을 선조정할 필요성이 늘어났다”며 “양호한 통화금융 환경을 통해 경제구조 조정과 안정적 경제운용을 도모하자는 게 이번 조치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이날 공산당 중앙당교 연설을 통해 “중국 정부가 통화 정책을 합리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아울러 기준금리 인하와 지급준비율을 낮춰 경제 성장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민은행은 “국내외 경기 하방 압력과 함께 견실한 경제 구조를 위한 구조조정 작업에 통화 완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금리 인하의 이유를 설명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오늘의 눈] ‘이순신 전적’ 23승0패 vs 13승3패/김학준 사회2부 부장급

    [오늘의 눈] ‘이순신 전적’ 23승0패 vs 13승3패/김학준 사회2부 부장급

    ‘23전 23승.’ 우리가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이순신 장군의 해전 불패 신화다. 하지만 사학자 백지원은 저서 ‘조일전쟁’(임진왜란)에서 16전13승3패로 규정지었다. 전장으로 가는 도중 우연히 조우한 소규모 일본 함선이나 항구에 정박한 빈 배를 격침한 것은 해전에 포함시키지 않고, 전투 의지를 지닌 10척 이상 함선끼리의 전투를 해전으로 간주했다. 백씨는 또 구체적인 사료를 들어 그동안 승전으로 알려진 웅포해전과 장문포해전은 사실상 이순신의 패배로 판단했다. 백씨는 “이순신도 사람인 이상 싸울 때마다 이길 수 없는데 과거 정권이 이순신을 신으로 만들기 위해 전공을 부풀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이순신은 전공을 떠나 탁월한 지혜와 인품, 애민정신 등으로 볼 때 진정한 영웅”이라면서 “그에게 덧씌워진 우상의 더께를 이제는 벗겨 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임진왜란 당시 임금인 선조는 요즘 각종 사극에서 난타당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날 국정 교과서에서 선조는 난을 극복해 묘호에 ‘조’가 붙은, 제법 괜찮은 왕으로 배웠다. 그러나 ‘징비록’을 비롯한 역사서에서 선조는 ‘비겁하고 간교한 소인배’로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선조가 신의주까지 달아난 뒤 중국에 망명을 요청하자 한 신하가 “필부조차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려 하는데 군주가 자신의 안위만 도모한다”고 질타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렇듯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이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은 민주화 이후 역사 연구·해석의 자율성과 다양성이 보장됐기 때문이다. 국정 교과서는 정권과 보수세력에게 불리한 것은 되도록 언급하지 않고, 도움이 될 만한 사안은 부풀리는 도구로 활용돼 왔다. 그러나 검인정 체계 도입으로 역사 해석의 다양성이 보장된 이후에는 과거에 자신이 없는 세력에게 불편한 진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다양성이 팩트를 저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팩트에 보다 접근할 수 있는 유용한 전제가 되고 있다. 여당과 보수학자들이 검인정 교과서의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것은 좌편향과 자학사관이다. 하지만 교과서를 읽어 보면 과거에 비해 북한의 사정을 상세히 설명한 것은 사실이나 전체적 맥락에서 옹호라고 보기는 힘들다. 적확성·균형감 등이 결여된 부분이 더러 있지만 검인정 교과서의 장점을 포기할 만큼 심각한 사안이 아니며, 수정이 가능한 부분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수정이 진행돼 왔다. 자학사관 문제도 그렇다. 독일은 각 주에서 자율적으로 역사 교과서를 편찬하지만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전쟁 범죄를 기술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뼈아픈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두 번의 실수를 경계하자는 성찰이다. 누구도 이것을 자학사관이라 하지 않는다. 문정왕후와 함께 조선을 망친 대표적 왕비로 꼽히는 민비를 “제 한 몸 바쳐 나라를 구하려 한 국모”로 묘사한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면 우리는 역사를 왜 배우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학생들에게 패배감을 심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끄러운 역사를 덮거나 미화하면서 어떻게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판할 수 있을까. kimhj@seoul.co.kr
  • [열린세상] 역사는 심리학이다/조성호 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

    [열린세상] 역사는 심리학이다/조성호 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

    자서전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과거 경험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보다 강조하는 부분이 있고, 간단히 언급만 하거나, 생략해 버리는 부분도 있다. 과거의 일들을 현재의 관점에서 유리하게 평가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아무리 진정한 참회록이라 하더라도 불미스러운 과거사가 모두 다 기록되지는 않는다. 인정할 수 있는 것만 인정하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아예 의식조차 하지 않으려는 것이 인간 심리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이병주는 대하소설 ‘산하’의 끝자락에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月光)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기록자로서의 소설가라는 평가를 받는 그에게 역사란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들의 단순한 총합이 아니다. 현재의 관점에서 선별되고, 강조되고, 채색된 기록이 역사인 것이다. 그 외의 다른 과거의 일들은 역사가 아니라 신화가 될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는 현대의 관점에서 씌어진 사회의 자서전이다. 그렇기에 개인의 자서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심리적 편향들이 사회의 자서전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 개인의 자서전이건 사회의 자서전이건 주관의 편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역사가들의 진술과 법정에서의 목격자 진술은 비슷한 점이 많다. 지나간 사건에 대해 진술한다는 점과 진술의 결과가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흥미로운 점은 교통사고 목격자들이 동일한 사건을 목격했음에도 서로 다른 진술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진실을 말하는지, 아니면 거짓을 말하는지의 차원에서 따질 일은 아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는 진실을 말하는 것일 수 있다. 사건을 지각하고 기억하고 진술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인차와 편향은 매우 일반적인 심리 현상이다. 역사가들의 진술에서도 관점의 차이에 따라 과거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역사 인식과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심리학 연구가 있다. 2006년에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7개 국가 1300여명의 대학생과 성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세계적 사건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졌다. 응답을 분석한 결과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인식 차이가 발견됐다. 예를 들어 성별과 연령대에 따라, 그리고 자신이 속한 문화에 따라 중요하다고 응답한 세계적 사건들이 각기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개인적 또는 사회적 처지에 따라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방식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나타낸다. 법관이 재판을 할 때, 언론이 보도할 때, 그리고 심사위원이 평가를 할 때 객관성과 공정성이 얼마나 발휘되는지는 늘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이런 중요한 일들에 우리 사회가 발전시켜 온 최선의 방안은 다양한 관점과 시각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배심원 제도, 다양한 언론기관, 복수의 심사위원이 몇 가지 예가 된다. 단 한 명의 법관과 심사위원, 그리고 하나뿐인 언론이 범할 수 있는 주관적 편향과 왜곡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역사가들이 과거의 사건들을 모두 동일하게 인식하고 해석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근대사뿐 아니라 멀리는 상고사(上古史)에서부터 가깝게는 바로 얼마 전의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역사가들의 역사관이 한결같지 않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역사가 개개인의 역사 서술은 그것이 그들 자신에게는 진실일지라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아도 절대적 진실이 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가 특정하게 선정된 일부 역사가에게 우리 사회 전체의 역사 서술을 일률적으로 맡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유일하게 옳고, 정당하고, 바람직한 역사관이 있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역사를 바라보는 좀 더 균형 잡힌 자세는 다양한 시각과 해석에 대한 열린 마음이라 할 수 있다. 누군가가 정부가 정한 역사만이 유일하게 옳은 역사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달빛에 물든, 모든 잊혀진 선조들의 신화적 삶을 태양의 뒤꼍으로 영원히 퇴장시켜 버리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모두에게 진실인 유일한 역사는 없다. 선조들의 수만큼 과거 일들이 있고, 역사가들의 수만큼 역사들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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