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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주일의 어린이 책] 팔만대장경 나무 집, 어떤 사람들이 지었을까

    [이주일의 어린이 책] 팔만대장경 나무 집, 어떤 사람들이 지었을까

    바람을 품은 집/조경희 지음/김태현 그림/개암나무/156쪽/1만 1000원 소화는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었다. 아버지는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며 집 짓는 일을 했다. 홀로 소화를 키우게 되면서 먼 곳까지 일을 하러 다닐 수 없게 됐다. 소화의 젖동냥을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합천에 눌러앉았다. 그토록 좋아하던 목수 일을 접고 남의 매를 대신 맞고 돈을 받는 ‘매품팔이’를 했다. 어느 날, 매를 독하게 치기로 소문난 점백이 나장에게 다른 사람의 매를 대신 맞은 뒤 숨을 거뒀다. 이웃 뱀골 영감은 아버지에게 받을 빚이 있다며 소화네 집을 빼앗아 버렸다. 뱀골 영감은 상인들 사이에서도 인정머리 없고 인색하기로 유명했다. 한순간에 아버지를 잃고 집까지 빼앗긴 소화는 곱게 댕기 드린 머리를 싹둑 자르고서 아버지 친구인 대목장 아저씨를 따라 길을 나섰다. 소화네 일행은 산속 깊이 자리한 절에 도착했다. 대목장 아저씨는 절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내릴 생각도 하지 않고 건물 지을 땅부터 살폈다. 절 경내를 한참 둘러본 뒤 절의 가장 위쪽에 있는 평평한 땅에 건물 지을 자리를 잡았다. 경남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판전 건축 과정을 문학으로 승화한 작품이다. 아버지 품 안에서 해맑게만 자라던 소화가 고난을 딛고 씩씩하게 삶을 추슬러 나가는 과정이 감동적이다. 장경판전은 바람의 드나듦을 조절해 자연적으로 온도와 습도가 적절하게 유지되도록 설계됐다.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1995년 팔만대장경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작가는 “우리 선조들은 장경판전을 지으면서 저마다의 바람을 담았다”며 “장경판전이 오랜 세월 꿋꿋하게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소박하고 순수한 바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초등 고학년.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뱀 두려운 이유, 본능일까 학습일까? (디스커버리 채널)

    뱀 두려운 이유, 본능일까 학습일까? (디스커버리 채널)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물에 대한 개인의 감정은 과거 경험했던 사건이나 평소 인식에 따라 서로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뱀에 대해서만큼은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공포나 혐오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뱀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감정은 과연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미디어와 교육 등에 의해 후천적으로 학습된 것일까? 디스커버리 채널은 10일(현지시간) 뱀에 대한 공포의 근원을 탐구하는 동영상을 자체 온라인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그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뱀 중에는 독을 지닌 종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 이들의 독은 혈액을 응고시키거나 신경계를 완전히 파괴해 버리는 등 끔찍한 치명성을 자랑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 없이도 뱀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많다. 뱀 공포증은 가장 흔한 공포증 중 하나로, 뱀을 직접 목격한 적이 전혀 없음에도 뱀 공포증을 가지는 사례도 있다. 디스커버리에 따르면 이는 진화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초기 인류에게 뱀은 마주치기 쉬운 ‘천적’에 해당했으며 따라서 뱀을 잘 발견하거나 경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물들이 생존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는 것. 자연선택 과정에 의해 선조들의 이런 특성은 후손에게도 전해졌고, 그 결과 현생 인류는 뱀을 빠르게 인식하는 선천적 능력을 가지게 됐다. 이는 과거 여러 연구에 의해 증명된 바 있다. 일례로 한 연구에서 심리학자들은 개구리나 꽃 등 수많은 동식물 사진 사이에 뱀 사진을 섞어 성인 및 아이들에게 제시한 뒤 참가자들의 뱀 식별 능력을 측정해보았다. 이 실험에서 성인들은 물론 아직 뱀에 대한 공포를 학습했을 가능성이 낮은 어린 아이들까지 모두 뱀의 사진을 쉽게 찾아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지난 해 진행된 다른 연구에서도 이러한 이론을 뒷받침할 현상이 관찰됐다. 이 연구는 뱀 공포증이 없는 18세~31세 참가자 24명을 선정해 뱀에 대한 개인의 두뇌 반응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당시 연구팀은 참가자들에 여러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뇌전도검사(EGG)기술로 두뇌를 관찰했다. 그러자 뱀 사진을 보여줬을 때 뇌가 전반적으로 크게 활성화됐으며 특히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뇌 영역 활동이 월등히 강화되는 현상이 확인됐다. 이러한 연구는 모두 인간의 생존본능 속에 뱀을 빠르게 인식하고 기피하도록 만드는 요소가 내재됐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디스커버리는 비록 인간에 치명적 해를 가할 수 없는 뱀 종이 많다 하더라도 뱀에게 공포를 느끼는 것은 이처럼 진화학적으로 합당한 반응이라고 전했다. 사진=ⓒ포토리아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시속 160km로 물 위를 달리는 RC카

    시속 160km로 물 위를 달리는 RC카

    물 위를 달릴 수 있는 RC카가 있다?? 미국 허핑턴포스트는 지난 2015년 12월, 무선조종 취미차량 업체인 트랙사스(Traxxas)사 제작해 유튜브에 올린 수면 위를 달리는 RC카 영상을 기사와 함께 소개했다. 자동차 전문 매체 오토블로그(autoblog)에 따르면 트랙사스사가 만든 RC카 ‘슬래쉬 4X4’(Slash 4X4)가 정지부터 시속 160km에 이르는 데 겨우 4초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그 가속력은 제로백이 3초대인 스포츠카 람보르기니랑 비슷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중의 모든 스포츠카가 수면 위를 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트랙사스사가 만든 RC카 ‘슬래쉬 4X4’에는 발포 고무가 장착돼 물에 가라앉지 않고 수면 위를 달릴 수 있게 해준다. 영상에는 호숫물을 달리던 슬래쉬 4X4 오프로드 차량이 점프대를 날아 올라 나무판자에 착지한 후, 빠른 속도로 수면 위를 달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한편 지난 2015년 8월 20일 유튜브에 게재된 이 영상은 현재 493만 4200 건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사진·영상= Traxxas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늘 푸른 보성의 밤…희망 반짝·낭만 반짝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늘 푸른 보성의 밤…희망 반짝·낭만 반짝

    국내 최대 녹차 생산지인 보성 녹차밭에서 겨울밤을 환하게 수놓는 빛축제가 열린다. ‘2016 보성차밭 빛축제’가 오는 11일 점등식을 시작으로 전남 보성군 회천면 영천리 다향각 차밭 일원과 율포솔밭해수욕장 일대에서 열린다. 빛축제는 새해 1월 24일까지 45일간 이어진다. 어둠이 짙을수록 더욱 밝게 빛이 나는 축제다. 연인들, 가족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겨울 여행의 필수 코스로 평가받는다. 크리스마스, 연말연시는 북적이는 사람들로 장관을 이룬다.  올해 13회째를 맞는 이 축제는 녹차밭을 형형색색 물들인 불빛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축제다. 다향각 주변 13㏊ 차밭을 장식한 300만개의 발광다이오드(LED) 전구가 울긋불긋한 빛을 내뿜는다. 축제 기간 110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남도의 대표 겨울축제로 자리잡고 있다. 관광 비수기인 겨울철인데도 관광객들이 쓰고 간 돈이 429억여원에 이른다. 봄에 생산한 녹차 등을 판매하고, 매년 5월 개최하는 보성다향제 녹차대축제 사전 홍보 효과도 있는 등 지역 경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산 능선을 따라 층층이 자리잡은 녹차밭은 멀리서 보고 있으면 마치 거인이 산에 그림을 그려 놓은 듯 화려하고 웅장함을 보여준다. 산속에 있는 보성 녹차밭 하늘엔 볓들이 총총히 박혀 있고, 땅에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빛들이 서로 비추는 모습을 연출한다. 마치 어릴 적 동화 속에서 보던 세상으로 들어온 느낌을 받게끔 한다. 빨강, 파랑, 노랑, 녹색, 흰색 등 화려하고 멋진 빛들은 추위도 잊게 한다. 눈꽃이 내리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새해 희망을 심어주기에도 충분하다. 연인들과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따뜻하고 낭만적인 겨울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준비했다. 군은 연말연시를 잇는 만큼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올해는 이순신 장군을 주제로 다양한 볼거리를 마련했다. 보성은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해 조선수군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머문 인연이 있는 곳이다. 1597년 8월 선조가 수군을 폐지하려고 하자 이순신 장군이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습니다’(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라는 장계를 올린 곳이 보성이었다. 보성군수 방진의 외동딸이자 이순신 장군의 부인이 어린 시절 보성군 관아에서 자랄 정도로 이순신과 보성군은 각별한 인연이 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의하면 ‘보성군은 임진왜란 당시 백의종군해 수군을 재건할 시기에 군사와 군량미 확보의 거점이었다’고 기록돼 있다.군은 이런 연관성을 빛축제로 연결시켰다. 축제 부제도 ‘차와 이순신과의 만남’으로 정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스토리텔링을 살려 율포솔밭해수욕장에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해 조선 수군 재건의 역사적 기틀을 마련한 구국 혼을 연계한 빛거리도 조성했다. 530m 규모로 거북선 용머리 등을 설치했다. 다향각에서 바로 보이는 멋진 ‘봇재다원’ 녹차밭 풍경은 이미 수많은 사진작가들의 작품으로 많이 알려졌다. 다향각 근처에 마련된 소규모 무대는 축제 기간 매일 행사를 펼친다. 초청 가수들 공연도 이어진다. 주말 상설공연도 마련했다. 빛축제장 입구에서 진행하는 ‘소망 카드에 소원을 빌어보세요’ 코너도 발길을 사로잡는다. 정성스럽게 쓴 소망 엽서들과 지난해 적은 소망카드 찾아보기 시간도 지난 한 해 동안 소중함을 되돌아보게끔 한다. 길이 250m, 폭 2m, 높이 2.5m의 차밭 은하수 터널과 높이 10m의 벚나무와 떡갈나무, 길이 17m에 높이 4m의 용, 높이 5m 공룡, 높이가 4m인 이순신 투구 등 각종 조형물들이 발길을 잡는다. 비룡, 미래와 약속, 선물상자 큐브, 포토존 등 색다른 볼거리와 캠프파이어, 이순신 갑옷 입기 체험 등 다양한 즐길거리로 관광객들을 맞이한다.점등식은 11일 오후 5시 30분 다향각에서 열린다. 운영시간은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후 6~10시, 금·토·공휴일은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다. 오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밤 12시까지, 새해 1월 1일은 다음날 7시까지 불을 켠다. 입장료·주차비 모두 무료다. 제1축제장(봇재~다향각)에는 대형트리, 은하수터널, 포토존 등이 있다. 제2축제장(율포솥밭해변)에서는 연인의 빛의 거리, 주말 상세공연 등이 준비돼 있다. 이용부 보성군수는 “전국 제1의 차 고장에 걸맞게 매년 차밭 빛축제를 열고 이를 브랜드화하고 있다”며 “올해는 온누리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행사로 준비한 만큼 편안한 휴식을 즐기는 최고의 멋진 축제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보성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김치와 우리말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김치와 우리말

    우리는 절인 채소를 겨우내 발효시킨 김치를 먹어야 하는 한국인이다. 김치의 역사는 고조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김치를 가리키는 우리말은 딤치(지) 또는 짐치(지)였다. 김치는 배추 등 채소의 아삭한 풍미, 깔끔한 맛의 소금 간, 중독성 강한 향신료인 고추, 더불어 젓갈의 감칠맛이 어우러진다. 익었을 땐 젖산의 시큼한 맛까지 난다. 발효 김치에서는 아미노산이 젖산균의 먹이가 되고, 이 젖산균이 유해균의 번식을 억제한다. 젖산균이 몸속 소화 효소의 분비를 촉진하고 비타민 함량을 높여 주며 발암 물질까지 제거한다. 예전엔 중국의 호배추가 아닌 갖, 무 등 우리 주변에 흔한 채소로 김장을 담갔다. 김치라는 단어는 한자어 침채(沈菜)에서 유래한 게 아니라 선조들이 딤치(dhim-chi^), 짐치(jim-chi^)라고 일컫던 우리말이다. 치 또는 지(chi^)라는 접미어는 짠지, 묵은지 등처럼 절여서 숙성시킨 채소를 뜻한다. 이는 재야 언어학계에서 눈길을 끄는 한 원로 학자의 주장이다. 그는 우리말이 기원전 인도아리안 어족으로 분류되는 산스크리트어, 특히 그 원형인 ‘실담어’와 비슷하다는 학설을 내놓았다. 우리말이 드넓은 유라시아 일대에서 원시 인류가 쓰던 고어(古語)라는 것이다. 반면 지금 세계 학계는 우리말을 ‘알타이 어족이긴 한데 뿌리를 알 수 없는 언어’로 분류하고 있다. 이 원로 학자는 불교를 연구하기 위해 옛 실담어를 공부하다 1786년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의 총독이자 언어학자였던 윌리엄 존스(1746~1794)가 편찬한 ‘옥스퍼드 산스크리트-영어 대사전’을 접한다. 그런데 300년 뒤 우리 원로 학자가 이 사전을 참조해 ‘실담어-영어-한국어’ 순서로 단어를 정리하다가 깜짝 놀랐다. 옛 실담어가 발음은 물론 뜻까지 우리말과 비슷한 것이다. 그가 발견한 단어가 수백여 개에 이른다. 아무튼 존스는 대사전에서 딤치 또는 짐치에 대해 ‘무 등과 같은 채소’, ‘양념으로 버무린 양배추(cabbage)’ 등이라고 적고 있다. 우리 민요에도 등장하는 도라지는 도라디(doradi^) 또는 도라지(doraji^)라 표기하고 ‘채소의 한 종류’ 또는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옥스퍼드 교수이기도 한 그는 이밥을 니바라(niva^ra)라고 적은 뒤 ‘야생 쌀’이라고 했다. 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는 ‘찹쌀과 상대적 개념의 한자어 이(異)밥’이라고 했던 게 아니다. 본래 우리말이 니(이)밥인 것이다. 우리말과 비슷한 세계 언어의 흔적은 더 있다. 카자흐스탄 등의 스탄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당시 경음화 표시인 ‘ㅅ’을 덧붙인 ‘ㅅ당’으로 지금의 땅을 뜻한다. 카자흐스탄은 카자흐 족의 땅이다. 옛 아즈텍 문명 언어에는 아시끼(asikki)가 ‘사내아이’(a boy)를 뜻했다. 또 지금이라도 인도 남부를 갔을 때 ‘아빠, 엄마, 누나’ 등 현지인 말을 들으면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러나 한두 가지의 추론만 내세워 그들 모두가 한국인과 한 핏줄이라는 일부 학자의 주장은 납득할 수 없다. 그게 아니라 우리가 선사시대 인류의 옛말을 지금도 거의 유일하게 한국어로 쓰고 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김치와 우리말에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긴 역사가 담겼다. kkwoon@seoul.co.kr
  • [열린세상] 통합과 배려의 리더십이 절실하다/장영철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열린세상] 통합과 배려의 리더십이 절실하다/장영철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1900년대 초반,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는 시기에 만들어진 애국가는 일본의 침략을 막을 수 없었던 조선이 하느님께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외치면서 도움을 구하는 소망을 담고 있다. 애국가의 간절한 소망은 비록 바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후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의 폐허를 거치면서 세계 빈곤국 중 하나로 전락하였음에도 이를 비교적 단기간에 극복하고 성공한 것은 선조들의 애국심 덕분이 아닌가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난 나라들이 많지만 우리처럼 아무런 자원이나 산업기반이 없으면서도 이렇게 발전한 나라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우리는 인적 자산을 중요시해 왔으며, 위기 때마다 국민들이 응집하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인들이 국가 발전을 이루겠다는 리더십과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면서 우리 국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갖게 하였다. 그 결과 이제는 외국으로부터 부러움과 배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나라로 바뀐 것은 우리 모두의 커다란 업적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우리의 주력산업이 중국 등 후발국의 추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기업의 수익성도 크게 약해져서 이자도 제대로 못 갚는 기업이 늘고 있다. 그러나 기존 산업을 대체할 새로운 산업은 아직 정착되지 않다 보니 일자리에 대한 근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발전과정에서 나타난 사회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추세이고,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성장 잠재력과 일자리 창출 능력은 더 저하되고 국가의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살기가 어려워졌다고 생각하는 계층이 늘면서 사회에 대한 불만이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어 국가의 미래 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하나의 현상을 놓고 상반된 해결 방안이 제시됨에 따라 신속한 타협이 어려워져 사회적으로도 큰 비용이 발생한다. 마치 임진왜란 직전 일본에 다녀온 사신들이 각기 상반된 보고를 하여 혼선을 빚은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최근의 급격한 환경의 변화는 과거와는 질적으로 크게 다른 것 같다. 정보기술(IT)이 다른 산업을 지원하던 차원을 넘어섰다. 이제는 IT업체가 다른 산업의 제품인 시계, 자동차, 결제지불수단을 직접 만들겠다고 하니 기업 간 경쟁의 양상이 과거처럼 산업 내 기업 간의 경쟁이 아니라 산업 간의 경쟁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어 대응 전략도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자유무역협정(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중국의 주요 2개국(G2) 부상 등 세계적인 환경변화 요인이 커지는 상황에서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생존을 위해서도 이러한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과거 급속한 경제발전과정에서 정립하였던 시스템들을 새롭게 변화된 환경에 맞추어 재편하여야 함은 물론 소외된 계층의 불만을 보듬어 나가는 노력을 지속해 나가야 미래를 향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은 사실 쉽지 않다. 사공은 많지만, 배가 산으로 가지 않고 순항하도록 하는 어려운 일인 것이다. 집단이나 계층 간의 이해관계가 과거보다는 훨씬 더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어 공동의 미래를 같이 설계하도록 하는 통합의 리더십이 우리 사회에 절실하다. 다양성을 포용하면서 미래를 향해 나가는 통합과 배려의 리더십은 열린 마음을 가지고 리더십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이루어질 것이다. 진정한 리더십에는 남을 이끄는 역할뿐만 아니라, 대의를 위하여 리더를 존경하고 겸허히 협력해나가는 팔로십의 자세도 포함된다. 우리의 과거 경제발전도 사실 무일푼에서 어렵지만 서로 힘을 합쳐 극복해 나가는 열린 마음의 자세를 가졌기 때문에 이룩한 성과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그때보다 나쁠 수는 없다. 통합과 배려의 리더십이 잘 구현되어 국가의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하느님이 보우하는’ 나라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명량’ 역사 한눈에

    ‘명량’ 역사 한눈에

    조류가 강한 험로임에도 옛날부터 수많은 선박들이 왕래했던 해상 지름길 ‘명량’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다음달 1일부터 내년 2월 14일까지 전남 목포시 용해동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전시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특별전 ‘명량’(鳴梁)이다. 이번 특별전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실시한 진도 명량대첩로 수중문화재 발굴조사 성과를 소개하기 위해 기획됐다. 명량해협 발굴조사 결과 명량대첩 당시의 흔적뿐만 아니라 삼국시대 토기부터 고려, 조선,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재들이 쏟아져 나왔다. 충무공 이순신이 1597년(선조 30) 명량대첩에서 사용했던 무기류 ‘소소승자총통’과 ‘석환’(돌포탄)을 비롯해 고려 절정기의 최고급 청자향로 등을 발견한 건 큰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전시는 4부로 구성됐다. 명량대첩로 발굴 조사에서 나온 주요 유물 250여점과 명량의 역사를 조명하는 유물과 자료 300여점이 전시된다. 1부 ‘기적의 바다, 명량’에선 진도 명량과 여천 해저에서 나온 ‘소소승자총통’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주요 화포인 ‘중완구’(보물 제858호), 1591년 선조가 충무공 이순신에게 내린 전라좌수사 임명장 ‘사부유서’(보물 제1564-6호), 1597년 선조가 파직된 충무공에게 다시 내린 삼도수군통제사 임명장 ‘기복수직교서’(보물 제1564-3호) 등을 볼 수 있다. 2부 ‘험로의 역사, 명량해협’에선 명량의 해양지리적 환경과 해난사고 흔적들을 소개한다. 3부 ‘성난 파도 속에서 피어난 꽃, 도자기’에선 명량에서 발견된 ‘청자 기린 모양 향로’ 등 최고급 청자부터 소박한 생활도자기 등을 만날 수 있다. 4부 ‘또 하나의 기억, 고려 삼별초’는 13세기 삼별초가 진도 명량 해역에 고려왕궁 ‘용장성’을 건설하고 몽골 침략에 항거했던 격동의 역사를 조명한다. 소재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장은 “내년부터 수중 문화재 발굴 조사를 다시 시작해 명량해협에 잠든 옛 침몰선과 문화재들이 빛을 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제21회 서울광고대상-최우수상] 삼성전자 - 지펠아삭 ‘2016 NEW’

    [제21회 서울광고대상-최우수상] 삼성전자 - 지펠아삭 ‘2016 NEW’

    삼성 지펠아삭은 김치를 땅에 묻어 보관했던 선조들의 지혜를 냉기 전달과 보존 능력이 뛰어난 메탈 소재를 적용한 ‘메탈그라운드’로 구현하였습니다. 특히 2016년형 신제품은 시장의 리더답게 업계 최초로 김치 속살이 직접 닿는 김치통까지 메탈로 된 ‘메탈쿨링김치통’을 더해 앞선 정온 기술을 바탕으로 한겨울 땅 속에서 갓 꺼낸 듯 아삭한 김치맛을 소비자들이 누릴 수 있게 했습니다. 이번 신문 광고는 김치통까지 메탈로 업그레이드된 2016년형 지펠아삭 메탈그라운드의 가치를 한국 소비자들이 ‘김치’에 느끼는 정서를 담아 공감 있는 메시지로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론칭’편에서는 ‘지펠아삭이 또 처음인거죠?’ 라는 다소 자신감 있는 물음을 통해 ‘메탈쿨링김치통’으로 더욱 강력해진 ‘메탈그라운드’ 기술력을 각인시키고자 하였으며, 김장시즌에 맞추어 집행한 ‘성수기편’에서는 ‘김치는 딸과 엄마의 합작품’이라는 메시지로 소비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했습니다. 3대의 정다운 김장 모습을 통해 대를 이어가는 소중한 김치의 맛과 정성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좋은 상을 주신 서울신문 관계자와 삼성 지펠아삭을 사랑해주시는 소비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손정환 전무 광고대행사 - 제일기획
  •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조선조 500년 ‘최고의 사랑’ - ‘묏버들 시인’ 홍랑의 사랑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조선조 500년 ‘최고의 사랑’ - ‘묏버들 시인’ 홍랑의 사랑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위의 시는 우리의 가난한 시인 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의 첫 연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때, 위의 시처럼 ‘서러운 사랑’ 이야기 하나를 따라가보기로 하자. 하지만 마냥 서럽기만 한 사랑은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조선조 500년 ‘최고의 사랑’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역사상 가장 긴 배웅길 주인공은 좀 상투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벼슬아치와 기생이다. 선조 6년(1573년) 가을 어느 날, 저 함경도 땅 홍원에서 처음 만난 순간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엮여지게 되었는데, 남자는 문관 출신 시인인 최경창(崔慶昌), 여자는 홍원 관아 기생인 홍랑(洪娘)이다. 그때 홍랑은 나이 열 예닐곱의 갓 피어나는 처녀 몸이었지만, 고죽(孤竹) 최경창은 그보다 17, 8살이나 많은 34살의 중년이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나이차를 가볍게 뛰어넘게 해주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시(詩)와 음악이었다. 29살인 선조 원년(1568년)에 문과에 급제한 최경창은 당대의 문인 이율곡, 정철, 이산해, 양사언 등과 어깨를 나란히 교유하며 시와 문장으로 문명을 떨치고 있었다. 그의 청절하고 담백한 시풍은 멀리 중국에까지 알려졌을 정도였다. 또 고죽은 피리의 고수였고, 홍랑 또한 거문고 연주가 최고수준의 기량이어서, 둘이 음률을 즐기며 시와 술잔을 주거니받거니 하다 보니, 고죽은 이래저래 홍랑에게 대책없이 빠져들고 말았다. 그럼 과연 홍랑은 어떤 기녀였던가, 그 내력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자. 야사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홍랑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마저 열두어 살 무렵에 잃었다. 말하자면 고아가 된 것이다. 그녀를 거두어준 것은 어머니의 병을 돌봐준 마을의 의원으로, 홍랑은 그로부터 글을 배웠다. 나이가 들면서 홍랑은 시와 음률을 가까이하게 되었고, 타고난 미모와 영특함으로 꽃다운 규수로 성장했다. 그러나 가난을 떨칠 수가 없어 기적에 몸을 올리고 홍원 관아에서 지냈다. 최경창이 홍랑을 만난 곳은 임지인 경성으로 가던 중 하룻밤 묵었던 함경도 홍원 관아였다. 당시 경성은 함경도 북부에 웅거하던 여진족들이 자주 출몰하던 곳으로, 말하자면 최전방 지역이었다. 병마절도사가 주재하는 경성도호부에 고죽 같은 문신을 북평사(北評事)로 보내는 것은 무관 출신인 병마절도사를 보좌하기 위함이었다. 홍원 객사에서 하룻밤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은 고죽과 홍랑은 경성으로 가는 길에는 동행하지 못한다. 부임지에 가면서 댓바람에 관기를 데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후 두 사람은 경성의 군막에서 다시 만난다. 우리는 여기서 홍랑의 다릿심을 처음으로 보게 된다. 홍원과 경성은 굽이굽이 험한 산길로 이어지는 천릿길이다. 서울-부산 간 거리와 맞먹는 셈이다. 오로지 사랑하는 낭군을 만나기 위해 홍랑은 남장을 한 몸으로 이 멀고도 험한 길을 주파했던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막중(幕中)에서 두 사람이 마주 섰을 때, 그 감동과 애틋함이 어땠을 것인가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 꿈은 반년을 넘기지 못했다. 선조 7년(1574년)인 이듬해 봄, 고죽이 경성에 부임한 지 6개월 만에 조정의 부름을 받아 한양으로 돌아가야 했다. 경성에서 한양까지는 경흥대로를 따라가는 2천릿길이다. 홍랑은 차마 헤어지기 싫어서 배웅을 나선다. 문 밖 배웅 정도가 아니라,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고 따라 나선 길이 천릿길 홍원을 지나고, 함관령(함흥-홍원 간 고개) 넘어 쌍성(영흥)에까지 이르렀는데, 출발지인 경성에서 무려 1,300리 길이었다. 역사상 최장의 배웅길이 아닐까 싶다. (기네스북에 알려야 한다.) 하지만 다릿심 좋은 홍랑도 여기서는 더이상 갈 수가 없다. 가고 싶어도 못 간다. 나라에서 법으로 금지해놓은 것이다. 이른바 양계(兩界/평안도·함경도)의 금(禁)으로, 두 도의 백성들은 도계를 넘어 남쪽으로 올 수 없었다. 오랑캐의 침입이 잦아 빠져나가는 인구를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관북이 무인지경이 될 것을 염려한 때문이다. 최고의 걸작 시조 ‘묏버들’ 두 사람은 쌍성 고갯마루에서 작별을 고했다. 때는 봄절이어서 골짜기마다 빛 고운 진달래가 무리지어 피어 있다. (이 길은 한 40년 후 백사 이항복이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를 읊으며 귀양간 길이기도 하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하염없이 걷다 보니 함관령 고갯마루다. 날이 저물고 차가운 빗발까지 뿌린다. 홍랑은 발길을 멈추고 길가의 산버들을 몇 가지 꺾었다. 그리고 지필묵을 펼쳐 시조 한 수를 적어내려갔다. 고죽은 자신의 일기에다 함관령의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나와 이별한 뒤, 홍랑이 함관령에 이르렀을 때 날이 저물고 비가 내렸다. 이곳에서 홍랑이 내게 시를 한 수 지어 보냈다”. 이 시조가 바로 유명한 ‘묏버들’ 시조다. 한국문학사상 이보다 아름다운 연시는 없을 것이다. 묏버들 갈해^ 꺾어 보내노라 님의손대^자시는 창 밖에 심거두고 보소서밤비에 새잎곳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갈해/가려 ^님의손대/님에게로) 예전엔 이 시조 역시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국문학자 양주동 박사는 이 시조를 두고 우리 시조사상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했고, 작가 이태준은 “그 뜻의 그윽함과 소리의 매끄럽고도 사각거림이 묘미”라고 극찬했다. 여기에 ‘사각거림’이라고 표현한 것은 시 전편에 ‘ㄱ‘ 음이 반복적으로 나타나 읽는 맛을 더해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버들가지는 옛사람들이 친구나 정인과 이별할 때 꺾어주던 정표이다. 봄에 가장 잎이 빨리 피는 버들가지처럼 빨리 돌아오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홍랑은 묏버들 몇 가지와 이 시조를 보자기에 정성껏 여며 인편으로 고죽에게 보냈다. 고죽은 이것을 받아들고 위와 같은 일기 기록을 남긴 외에도 이 시조의 한역가 ‘번방곡(飜方曲)’을 지었는데, ‘번방’이란 즉석 번역이란 뜻이다. 가람 이병기 시인은 두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다. “이는 그 원가(原歌)가 ‘번방곡’이란 한시보다도 낫게 되었다. 간곡하고 심절한 그 석별의 뜻이 언사에 넘친다. 종래 시가에도 증절류(贈折柳)와 같은 것이 없지 않으나, 이것은 그런 걸 그대로 답습한 것이 아니고, 새로운 한 작품이다. 우수한 것이다. 한 보배이다.” 두 사람은 그후 한 3년간은 서로 만나지 못한 듯하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고 하지만, 그건 요샛말이고, 당시에는 국법으로 도계(道界)도 넘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홍랑의 사랑은 그것마저 넘었다. 한성으로 간 뒤 시름시름 앓던 고죽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자 홍랑은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길을 나섰다. 홍원에서 한성까지는 함관령을 넘고 나서도 천릿길이다. 이 먼 길을 홍랑은 놀라운 다릿심으로 이레 동안 밤낮으로 걸어 마침내 한양에 들어왔다(이것도 기네스북에 오를 기록감이다). 그리고 그리운 고죽을 만났다. 실로 3년 만의 재회였다. 그러나 뼈밖에 남지 않은 고죽은 홍랑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이때부터 홍랑의 눈물겨운 병수발이 시작되었다. 거의 식음을 전폐하고 잠도 자지 않는 필사의 간병이었다. 옆에서 보는 고죽의 본부인도 그 부모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눈물겨운 정성이었다. 그 정성이 통했는지 고죽은 이윽고 건강을 회복하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나 최경창이 건강을 되찾은 기쁨도 오래 가지 못했다. 선조 9년 봄, 사헌부는 최경창의 파직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 홍랑이 관기의 신분으로 지역을 이탈하여 양계의 금을 어겼다는 것이다. 더욱이 홍랑이 최경창을 찾아온 때는 명종의 비 인순왕후가 죽은 지 1년이 안된 국상기간이었다. 선조는 사실 고죽의 팬이었다. 그의 시를 무척 사랑했던 것이다. 그러나 명분을 버리면서 고죽을 감쌀 수는 없었다. 결국 최경창은 파직을 당했고, 홍랑도 다시 고죽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홍랑이 떠나던 날 고죽은 이별의 시 두 편과 ’번방곡‘을 홍랑 손에 건네주었다. 시로 맺어졌던 두 사람이 아니었던가. 고죽이 이별 선물로 건넨 ’송별‘이란 제목의 칠언절구는 다음과 같다. 고운 두 뺨에 눈물지으며 봉성을 나서네새벽 꾀꼬리도 이별이 서러워 그리 우는가비단옷에 말 타고 강 건너 떠나갈 제풀빛만 아득히 외로운 나그네 전송하리  홍랑의 ’묏버들‘ 시조 육필 서첩 발견​ 최경창은 파직당한 얼마 후 복직되어 함경도 종성 부사 등 변방의 한직으로 오래 떠돌았다. 홍랑을 한성으로 불러들일 수 없는 고죽으로서 외직을 자청한 측면도 있었다고 한다. 둘 사이에는 그 동안 연면한 교류가 이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선조 16년(1583년) 봄, 고죽은 경성절도사로 근무하다가 성균관 직강으로 발령받아 한양으로 돌아오던 중 지금의 왕십리 부근에서 객사하고 말았다. 그때 나이 겨우 마흔 다섯이었다. 멀리 함경도 홍원 땅에서 고죽의 부음을 들은 홍랑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다시 길을 나섰다. 객사를 한 만큼 무덤 돌볼 사람이 마땅히 없어 고죽이 홀로 외로이 있을 것을 생각하니 잠시도 지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원래 시묘살이는 움집에서 생활하며 조석으로 상식 올리기를 3년 동안 하는 것이지만, 너무나 힘들어 기한을 지키는 예가 많지 않았다. 대개는 석 달 정도 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파주 한강 옆 고죽의 무덤 곁에 움집을 짓고 시작한 홍랑의 시묘살이는 한강의 매운 바람 속에서 장장 9년이나 계속되었다. 그것은 시묘살이라기보다 숫제 고인과의 동거였다. 세상 무엇으로부터도, 누구로부터도 방해받지 않는. 홍랑은 시묘살이를 하는 중에 혹시 불측한 일이 일어날까 하여 스스로 ’용모를 흐트렸다‘고 한다. 어떤 자료에는 인두로 얼굴을 지졌다고도 하는데, 실상은 잘 알 수 없다. 기나긴 홍랑의 시묘살이를 마감시킨 것은 다름아닌 임진왜란이었다. 최경창이 남긴 시 원고와 유품을 챙겨든 홍랑은 다시 함경도 홍원 땅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전쟁이 끝나기까지의 7년 동안 그녀의 행적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고죽의 시와 문장이 담긴 '고죽집'(孤竹集)이 전해지게 된 것은 오로지 남편의 유고를 생명처럼 아낀 홍랑 덕분인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홍랑은 해주 최씨 문중을 찾아와 최경창의 유작을 전했다. 그리고 자신의 소임을 다한 듯, 고죽의 무덤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멀고 먼 고행으로 이어졌던 고단한 삶을 마감했다. 그녀의 마지막 유언은 자기를 남편 곁에다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임진왜란이 1598년 11월에 끝났으니, 홍랑의 기질로 보아 아마 그 이듬해 봄을 맞아 고죽에게로 떠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그때 홍랑의 나이 마흔 두셋 정도로, 고죽이 떠난 지 16년째의 봄이다. 자신의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 고난과 고행으로 점철되었던 홍랑의 삶은 그렇게 마침표가 찍어졌으리라. 홍랑이 죽자 해주 최씨 문중은 그녀를 집안 사람으로 받아들여 장례를 지냈다. 최씨 문중에서는 홍랑을 작은마님이라고 불렀다 한다. 홍랑의 무덤은 최경창 부부의 합장묘 바로 아래 자리잡게 되었다. 현재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해주 최씨의 문중 산에 고죽의 묘소와 홍랑의 무덤이 있다. 홍랑과 고죽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있어 그 후손이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음이 얼마 전에 밝혀졌다. 그리고 또 지난 2000년에는 홍랑과 고죽의 연시가 수록된 11쪽짜리 서첩이 발견됐다. 이 서첩엔 홍랑의 ‘묏버들’ 원본과, 고죽이 홍랑과 헤어지면서 써준 고죽 육필의 ‘송별’ 등 한시 두 편이 실려 있다. 단아한 글씨의 ‘묏버들’은 홍랑의 친필로 밝혀졌다. 이 서첩을 보고 가람 이병기 시인이 감상기를 적어넣은 발문도 함께 공개됐다. 그 멀고 먼 길을 걸었던 홍랑의 고단한 여정은 그녀가 10년 세월을 보냈던 파주 다율리 산자락에서 마침표를 찍었지만, 그녀의 무덤자리를 찾는 후세인들의 발걸음은 아직까지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모양이다. 홍랑시비도 지난 1981년 무덤을 찾아온 시인들의 손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어느 해 여름이던가, 홍랑 묘를 찾았을 때, 보라색 무릇꽃으로 둘러싸인 그녀의 무덤 앞에 ‘시인 홍랑지묘’라고 새겨진 오석 빗돌이 서 있고, 앞쪽의 아담한 시비에는 홍랑의 ‘묏버들’과 고죽의 번방곡’이 앞뒤로 새겨져 있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400년도 더 지난 지금에까지, 묏버들 피는 봄을 지나 무릇꽃 흔들리는 산자락에서 하나의 아름다운 완결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씨줄날줄] 유불 화해를 위하여/서동철 논설위원

    서울 도봉산 기슭에서 지금 유림(儒林)과 불문(佛門) 사이 갈등이 움터 가고 있다. 도봉구가 도봉서원 복원을 추진하면서 벌인 발굴 조사에서 불교 의례용구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국가지정 문화재로도 손색이 없는 금강령과 금강저를 비롯한 유물은 77점에 이른다. 도봉서원은 조선 중종시대 도학정치를 주창하다 사사된 정암 조광조를 추모하고자 선조 6년(1573) 창건됐다. 하지만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명맥이 끊겼고 1972년 일부가 복원됐다. 이후 창건 당시 유구를 찾는 조사에서 불구(佛具)가 출토된 것이다. 도봉서원은 영국사라는 절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유물이 나온 곳은 큰법당으로 추정되는 중심 건물터다. 출토 당시 유물은 대형 청동솥에 담겨 있었다고 한다. 불교계는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유림이 영국사를 훼손하고 도봉서원을 세운 증거라고 해석하고 있다. 불교계는 도봉서원의 복원을 반대하고 나섰다. 조계종은 지난 8월 도봉구에 사찰의 존재를 무시하고 서원을 복원하는 계획은 재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서원이 번듯하게 제 모습을 찾는 날을 기다리던 유림은 유림대로 날벼락을 맞은 꼴이다. 이러다간 어떤 갈등으로 비화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양쪽 모두 냉정함을 되찾아야 한다. 영국사의 폐사가 실제로 숭유억불 때문인지부터 따져 봐야 한다. 금속공예 전문가들이 금강령과 금강저를 비롯해 향로, 향완, 발우 등 영국사 유물의 연대를 12세기 이전 고려시대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서원에서 불교 유물이 쏟아져 나온 것은 처음이 아니다.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이 그렇다. 소수서원은 통일신라 사찰인 숙수사가 있던 자리에 중종 38년(1543) 세워졌다. 서원 입구에는 지금도 당당한 모습의 당간지주가 보인다. 숙수사에 쓴 석재는 서원 기초로 재활용됐다. 그런데 1953년 소수서원 곁에 학교를 짓다가 당간지주 북쪽에서 커다란 항아리에 담긴 25점의 소형 불상이 한꺼번에 나왔다. 학계는 불상이 고려 고종 41년(1254) 몽골의 침입 당시 묻힌 것으로 추정했다. 절이 불타고 스님도 모두 죽거나 잡혀가 불상을 수습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영국사 폐사도 숙수사와 같은 시기, 같은 원인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숭유억불 정책이 폐사 이유라면 귀중한 공양구는 훗날이라도 다시 파냈을 것이다. 그런 만큼 불교계와 유림이 공동으로 영국사의 폐사 원인을 규명해 보면 어떨까 한다. 외적의 침입으로 절터가 수백 년 동안이나 폐허로 남아 있어 근본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서원 건축에 엄청난 적대감을 느낄 일은 아닐 것이다. 유림도 이곳에 고려시대 중요한 사찰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서로 이해하면서 영국사와 도봉서원의 명예를 함께 높일 방법은 없는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사설] 의원 릴레이식 쪽지 예산 부끄럽지 않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산하 예산안조정소위원회(옛 계수조정소위)는 정부가 제출한 새해 예산안의 개별 사업을 심사해 증·감액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기구다. 많은 국회의원들이 예산안 심사철만 되면 자기 지역구의 사업 예산 확보를 위해 소위에 참여하는 동료 의원들에게 사업 이름과 액수만 적은 쪽지를 집중하여 전달해 이른바 ‘쪽지 예산’이 범람하곤 했다. 대부분 선심성 사업일 뿐이어서 비판 여론이 높았다. 이에 여야 공히 소위의 투명한 운영을 다짐해 왔지만 오히려 수법만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 올해는 ‘인간 쪽지’라는 기상천외한 방법까지 나왔다. 소위 정원(여당 8명, 야당 7명)을 한 명씩 증원하려던 여야의 시도는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예산 때문에 인원을 늘렸다”는 역풍을 맞고 무산됐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헌정 사상 초유의 편법을 동원해 ‘꼼수 증원’을 강행했다. 소위 위원으로 8명을 할당한 뒤 사·보임을 통해 ‘순번제’로 매일 한 사람씩 빠지게 한 것이다. 쪽지 예산을 없애겠다고 다짐하더니 아예 인간 쪽지를 매일 집어넣는 것과 다름없다. 듣도 보도 못한 황당한 방법이 부끄럽고 어색했는지 그제 배재정 의원 대신 소위 위원이 된 정성호 의원도 “쑥스럽다”고 하지 않았는가. 여당인 새누리당도 호남 몫으로 이정현 의원을 순번제로 막판에 투입하려다 슬그머니 철회했다고 하니 여야의 예산 욕심에 할 말을 잃을 정도다. 386조원에 이르는 새해 예산안은 국민이 피땀 흘려 납부한 혈세를 바탕으로 짜인 것이다. 한 푼도 허투루 사용돼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쌈짓돈인 양 불요불급한 지역구 사업에 투입하겠다는 국회의원들의 발상이 기가 막힐 따름이다. 혹여 국가 예산은 ‘따먹는 사람이 임자’라는 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야 모두 자성해 보길 바란다. 불요불급한 예산 파티의 최대 희생자는 바로 국민이다. 그렇지 않아도 19대 국회는 개원 이래 지금까지 뭐하나 제대로 한 일이 없다. 얼마나 한심하면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가 나오겠는가. 그런데도 마지막 예산안조차 나눠 먹기에 골몰하고 있으니 이젠 아예 국민의 따가운 시선조차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뜻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국회에 예산 심의권을 부여한 목적은 지역의 선심성 예산을 챙기라는 것이 아니다. 정부의 씀씀이를 심사해 불요불급한 지출을 방지하라는 것이다. 19대 국회는 제발 이제라도 사익(私益)을 앞세워 예산 파티를 벌이는 부끄러운 행태를 중지해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란다.
  • 전통건축이 품은 하늘과 땅, 사람

    전통건축이 품은 하늘과 땅, 사람

    우리 전통건축에는 선조들의 정신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주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유교의 자연관, 도가의 비움사상과 불교의 공(空)사상을 빌려와 삶의 공간을 구성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12개의 세계 문화유산을 비롯해 궁궐과 사찰, 전통 마을 등 전통 건축물들이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서울 이태원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19일부터 열리는 ‘한국건축예찬-땅의 깨달음’전은 우리 전통건축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고자 마련된 전시다. 건축물과 관련된 고미술품과 현대사진 작가들의 사진, 영상물과 3D 재현 영상물을 총동원한 융·복합형 전시로 우리 전통건축의 미학과 정신을 심도 있게 재조명한다. 주명덕, 배병우, 구본창, 김재경, 서헌강, 김도균 등 세대를 달리하는 현대사진 작가들과 박종우 영상감독이 2년여의 시간 동안 사계절을 거치며 아름다운 사진과 영상으로 담았다. 삼성문화재단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특별하게 공을 들인 이번 전시는 해인사, 불국사, 통도사, 선암사, 종묘, 창덕궁, 수원화성, 도산서원, 소쇄원, 양동마을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건축 10곳을 선정한 후 우리 선조들이 존중했던 하늘과 땅, 사람의 3개 주제로 묶어 구성했다. 우선 ‘침묵과 장엄의 세계’라는 주제 아래 불교사찰과 종묘를 하나로 엮어 한국인의 정신세계와 우주관, 세계관을 짚어본다. 사찰의 경우 자연특성을 활용한 가람배치와 사찰 건축 특유의 화려함과 장엄미가 주목할 만하다. 원로작가 주명덕은 법보사찰인 가야산 해인사의 비경과 함께 성철스님 생존 당시부터 기록해 온 스님들의 수행 장면을 보여준다. 구본창은 통도사와 금강계단, 전각들을 섬세하게 담아냈고 문화재 전문 사진가 서헌강은 석조건축과 목조건축이 조화를 이룬 불국사의 화려함을 담았다. 또 ‘금동대탑’의 구조와 설계를 보여주는 3D 스캔과 9층으로 추정 복원한 영상, 석굴암의 축조 과정을 3D로 재현한 영상, 해인사와 불국사의 가람배치를 비교 연구한 전봉희 서울대 교수의 ‘사찰의 가람배치’가 선보인다. 조선시대의 왕실사당이자 유교건축의 백미인 종묘는 배병우의 사진과 박종우 감독의 영상으로 그 침묵과 장엄미를 연출했다. 두 번째는 ‘터의 경영, 질서의 세계’를 주제로 통치이념을 건축적으로 어떻게 조영했는지를 살핀다. 창덕궁의 사계를 기록한 배병우의 사진과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국보 249호, 동아대 소장), 김홍도의 ‘규장각도’를 통해 창덕궁의 자연친화적 구성을 들여다본다. 19세기 대원군에 의해 중건된 경복궁과 육조거리를 재현한 한국전통문화대학교의 ‘경복궁과 육조거리’ 모형은 서울의 변화를 역설적으로 짐작하게 한다. 18세기 후반 정조와 정약용이 설계하고 채제공이 축성한 수원화성은 김재경의 사진과 ‘화성능행도’, ‘화성의궤’, 팔달문의 3D 복원영상으로 비교해 볼 수 있다. 또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에 소장된 ‘숙천제아도’가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조선 말기 문신 한필교가 42년 동안 부임했던 중앙 및 지방 관아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 화첩으로 전라도 장성부, 황해도 서흥부, 한성의 종묘 등 부임지의 우물 위치부터 다른 마을로 이어지는 길과 산 이름까지 상세히 기록돼 있다. 세 번째는 ‘삶과 어울림의 공간’이라는 제목으로 서원과 정원, 민가를 하나로 묶었다. 양동마을, 도산서원, 소쇄원을 주명덕, 김도균, 구본창이 각각 사진으로 기록했다. 동영상, 스캔 영상과 함께 18세기 서대문 밖 경기감영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경기감영도 12곡병’, 소쇄원도가 전시된다. 양동마을의 무첨당을 실제 크기로 재해석한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의 ‘한옥구조의 재해석-유첨당’ 등이 소개되어 선조들의 슬기로운 건축 원리가 담긴 전통건축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리움 측은 “하늘과 땅, 사람을 존중하며 자연과 함께해 온 한국 전통건축은 그 자체로 우리가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자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건축이며 우리 시대를 지탱하는 정신이자 지혜의 원천”이라며 “이번 전시가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우리 건축문화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미술관은 방학을 맞은 학생들과 청소년들이 우리 전통건축의 아름다움과 품격을 감상할 수 있도록 평일에 20세 미만 청소년 무료입장 제도를 운영한다. 전시는 내년 2월 6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하늘,땅, 인간의 조화... 한국 전통건축에 담긴 미학과 정신

    하늘,땅, 인간의 조화... 한국 전통건축에 담긴 미학과 정신

     우리 전통건축에는 선조들의 정신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주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유교의 자연관, 도가의 비움사상과 불교의 공(空)사상을 빌려와 삶의 공간을 구성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12개의 세계 문화유산을 비롯해 궁궐과 사찰, 전통 마을 등 전통 건축물들이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서울 이태원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19일부터 열리는 ‘한국건축예찬-땅의 깨달음’전은 우리 전통건축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고자 마련된 전시다. 건축물과 관련된 고미술품과 현대사진 작가들의 사진, 영상물과 3D 재현 영상물을 총동원한 융·복합형 전시로 우리 전통건축의 미학과 정신을 심도 있게 재조명한다. 주명덕, 배병우, 구본창, 김재경, 서헌강, 김도균 등 세대를 달리하는 현대사진 작가들과 박종우 영상감독이 2년여의 시간 동안 사계절을 거치며 아름다운 사진과 영상으로 담았다.  삼성문화재단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특별하게 공을 들인 이번 전시는 해인사, 불국사, 통도사, 선암사, 종묘, 창덕궁, 수원화성, 도산서원, 소쇄원, 양동마을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건축 10곳을 선정한 후 우리 선조들이 존중했던 하늘과 땅, 사람의 3개 주제로 묶어 구성했다. 우선 ‘침묵과 장엄의 세계’라는 주제 아래 불교사찰과 종묘를 하나로 엮어 한국인의 정신세계와 우주관, 세계관을 짚어본다. 사찰의 경우 자연특성을 활용한 가람배치와 사찰 건축 특유의 화려함과 장엄미가 주목할 만하다. 원로작가 주명덕은 법보사찰인 가야산 해인사의 비경과 함께 성철스님 생존 당시부터 기록해 온 스님들의 수행 장면을 보여준다. 구본창은 통도사와 금강계단, 전각들을 섬세하게 담아냈고 문화재 전문 사진가 서헌강은 석조건축과 목조건축이 조화를 이룬 불국사의 화려함을 담았다. 또 ‘금동대탑’의 구조와 설계를 보여주는 3D 스캔과 9층으로 추정 복원한 영상, 석굴암의 축조 과정을 3D로 재현한 영상, 해인사와 불국사의 가람배치를 비교 연구한 전봉희 서울대 교수의 ‘사찰의 가람배치’가 선보인다. 조선시대의 왕실사당이자 유교건축의 백미인 종묘는 배병우의 사진과 박종우 감독의 영상으로 그 침묵과 장엄미를 연출했다.  두 번째는 ‘터의 경영, 질서의 세계’를 주제로 통치이념을 건축적으로 어떻게 조영했는지를 살핀다. 창덕궁의 사계를 기록한 배병우의 사진과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국보 249호, 동아대 소장), 김홍도의 ‘규장각도’를 통해 창덕궁의 자연친화적 구성을 들여다본다. 19세기 대원군에 의해 중건된 경복궁과 육조거리를 재현한 한국전통문화대학교의 ‘경복궁과 육조거리’ 모형은 서울의 변화를 역설적으로 짐작하게 한다. 18세기 후반 정조와 정약용이 설계하고 채제공이 축성한 수원화성은 김재경의 사진과 ‘화성능행도’, ‘화성의궤’, 팔달문의 3D 복원영상으로 비교해 볼 수 있다.  또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에 소장된 ‘숙천제아도’가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조선 말기 문신 한필교가 42년 동안 부임했던 중앙 및 지방 관아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 화첩으로 전라도 장성부, 황해도 서흥부, 한성의 종묘 등 부임지의 우물 위치부터 다른 마을로 이어지는 길과 산 이름까지 상세히 기록돼 있다. 세 번째는 서원과 정원, 민가를 하나로 엮어 ‘삶과 어울림의 공간’이라는 제목으로 묶었다. 양동마을, 도산서원, 소쇄원을 주명덕, 김도균, 구본창이 각각 사진으로 기록했다. 동영상, 스캔 영상과 함께 18세기 서대문 밖 경기감영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경기감영도 12곡병’, 소쇄원도가 전시된다. 양동마을의 무첨당을 실제 크기로 재해석한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의 ‘한옥구조의 재해석-유첨당’ 등이 소개되어 선조들의 슬기로운 건축 원리가 담긴 전통건축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리움 측은 “하늘과 땅, 사람을 존중하며 자연과 함께해 온 한국 전통건축은 그 자체로 우리가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자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건축이며 우리 시대를 지탱하는 정신이자 지혜의 원천”이라며 “이번 전시가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우리 건축문화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미술관은 방학을 맞은 학생들과 청소년들이 우리 전통건축의 아름다움과 품격을 감상할 수 있도록 평일에 20세 미만 청소년 무료입장 제도를 운영한다. 전시는 내년 2월 6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5억 5000만년 전 복잡한 골격 만든 ‘동물의 조상’ 발견

    5억 5000만년 전 복잡한 골격 만든 ‘동물의 조상’ 발견

    생명의 역사에서 캄브리아기(대략 5억 4,200만 년 전에서 4억 8,800만 년 전)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현생 동물문(Phylum)의 대부분이 갑자기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이전인 에디아카라 시기에는 기묘하게 생긴 독특한 동물군이 존재했는데, 이들은 넓적하게 생긴 몸통에 단단한 골격이 없는 부드러운 몸을 가진 생명체였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아마도 복잡하고 단단한 골격을 가진 동물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캄브리아기 이전에 이미 그 선조뻘인 동물들이 등장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전자 연구 결과는 단단한 골격의 등장이 사실은 더 이전이라는 가설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최근 에든버러 대학의 레이철 우드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모스크바 대학과의 합동 연구를 통해서 에디아카리 시기에 흔했던 동물 중 하나인 나마칼라투스 헤르마나스테스 (Namacalathus hermanastes)를 연구했다. 예외적일 만큼 잘 보존된 화석의 미세구조를 연구한 연구팀은 나마칼라투스가 작은 탄산칼슘 구조물을 포함한 복잡한 골격(Complex skeleton)을 가진 동물이라고 결론 내렸다. (복원도 참조) 여기서 복잡한 동물이란 해면동물이나 산호 같은 단순한 동물보다 더 복잡한 동물을 의미한다. 이 화석은 5억5000 만 년 전의 것으로 단단한 미세 골격을 가진 화석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 가운데 하나다. 나마칼라투스는 비록 단순한 가시 같은 구조이지만 지구 최초의 복잡한 동물(earliest complex animals on Earth)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를 지니고 있다. 에디아카라 동물군은 매우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살아있을 때 몸이 뜯어먹힌 흔적이 없고 단단한 껍질이나 이빨 같은 구조물이 없다. 이들은 작은 플랑크톤을 먹거나 어쩌면 일부는 산호처럼 광합성을 하는 조류와 공생하는 구조였을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 평화로운 시기를 에디아카라 낙원이라고 부른다. 그러다가 캄브리아기에 이르게 되면 이때부터는 이빨은 물론 단단한 껍질을 가진 동물들이 폭발적으로 등장하기에 이른다. 지금처럼 다세포 동물이 '치열하게 먹고 먹히는 관계'로 발전한 것이다. 이는 진화상의 대혁명이었다. 그런데 이런 대혁신이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될 수는 없다. 에디아카라 낙원이 끝날 무렵 이미 초기 골격이 진화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훨씬 타당한 추론이다. 나마칼라투스의 미세 골격은 단순하지만, 진화상의 거대한 진보를 보여주는 5억5000 만 년 전의 증거다. 비록 복원도에서는 괴상하게 생긴 작은 바다 동물이지만, 수많은 지구 생명체들이 이런 원시적인 조상 덕에 지금의 다양한 골격을 진화시킬 수 있었다. 물론 우리 역시 예외가 아니다.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 5억 5000만년 복잡한 골격을 만든 ‘동물의 조상’ 발견

    5억 5000만년 복잡한 골격을 만든 ‘동물의 조상’ 발견

    생명의 역사에서 캄브리아기(대략 5억 4,200만 년 전에서 4억 8,800만 년 전)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현생 동물문(Phylum)의 대부분이 갑자기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이전인 에디아카라 시기에는 기묘하게 생긴 독특한 동물군이 존재했는데, 이들은 넓적하게 생긴 몸통에 단단한 골격이 없는 부드러운 몸을 가진 생명체였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아마도 복잡하고 단단한 골격을 가진 동물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캄브리아기 이전에 이미 그 선조뻘인 동물들이 등장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전자 연구 결과는 단단한 골격의 등장이 사실은 더 이전이라는 가설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최근 에든버러 대학의 레이철 우드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모스크바 대학과의 합동 연구를 통해서 에디아카리 시기에 흔했던 동물 중 하나인 나마칼라투스 헤르마나스테스 (Namacalathus hermanastes)를 연구했다. 예외적일 만큼 잘 보존된 화석의 미세구조를 연구한 연구팀은 나마칼라투스가 작은 탄산칼슘 구조물을 포함한 복잡한 골격(Complex skeleton)을 가진 동물이라고 결론 내렸다. (복원도 참조) 여기서 복잡한 동물이란 해면동물이나 산호 같은 단순한 동물보다 더 복잡한 동물을 의미한다. 이 화석은 5억5000 만 년 전의 것으로 단단한 미세 골격을 가진 화석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 가운데 하나다. 나마칼라투스는 비록 단순한 가시 같은 구조이지만 지구 최초의 복잡한 동물(earliest complex animals on Earth)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를 지니고 있다. 에디아카라 동물군은 매우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살아있을 때 몸이 뜯어먹힌 흔적이 없고 단단한 껍질이나 이빨 같은 구조물이 없다. 이들은 작은 플랑크톤을 먹거나 어쩌면 일부는 산호처럼 광합성을 하는 조류와 공생하는 구조였을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 평화로운 시기를 에디아카라 낙원이라고 부른다. 그러다가 캄브리아기에 이르게 되면 이때부터는 이빨은 물론 단단한 껍질을 가진 동물들이 폭발적으로 등장하기에 이른다. 지금처럼 다세포 동물이 '치열하게 먹고 먹히는 관계'로 발전한 것이다. 이는 진화상의 대혁명이었다. 그런데 이런 대혁신이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될 수는 없다. 에디아카라 낙원이 끝날 무렵 이미 초기 골격이 진화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훨씬 타당한 추론이다. 나마칼라투스의 미세 골격은 단순하지만, 진화상의 거대한 진보를 보여주는 5억5000 만 년 전의 증거다. 비록 복원도에서는 괴상하게 생긴 작은 바다 동물이지만, 수많은 지구 생명체들이 이런 원시적인 조상 덕에 지금의 다양한 골격을 진화시킬 수 있었다. 물론 우리 역시 예외가 아니다.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 “침팬지, 장애가진 새끼있으면 무리가 함께 돌본다”

    “침팬지, 장애가진 새끼있으면 무리가 함께 돌본다”

    사회적 약자를 함께 돌보는 행동은 인간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동물들 중에도 유사한 습성을 지닌 사례는 없지 않다. 최근 일본 과학자들이 야생 침팬지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사회적 돌봄’ 현상을 발견했다고 발표해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9일(현지시간), 교토대학교 야생동물연구센터 연구팀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서식하는 침팬지 무리에 대한 2년 동안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지난 2011년 탄자니아 마할레 국립공원에서 ‘심각한 장애’가 있는 새끼 침팬지가 포함된 침팬지 무리를 발견, 2013년 새끼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됐을 시점까지 이들의 행동을 관찰·분석했다. 연구팀은 새끼가 안타깝게도 결국 사망했다고 추정하고 철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관찰했던 새끼 침팬지는 인간의 다운 증후군과 유사한 장애를 가지고 있었으며 팔다리를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약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연구팀은 “장애를 가진 새끼를 특별히 돌보려는 어미의 노력과 자매들의 ‘새끼보호행동’(allomothering) 덕분에 이 침팬지는 야생에서 23개월 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새끼보호행동’이란 동물들이 친자식이 아닌 어린 개체를 돌보는 습성을 의미한다. 실제 이 장애 침팬지는 일반 새끼들과 달리 팔다리 힘이 부족해 젖을 먹는 동안 어른의 몸에 매달려 있지 못했는데 이 때 어미는 물론 암컷 형제들도 나서서 새끼의 몸을 받쳐주는 등 도움을 제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무리의 다른 침팬지들도 장애 침팬지를 두려워하거나 혐오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새끼보호행동을 나타냈다. 다만 장애 침팬지의 ‘친모’는 이러한 동료 침팬지들의 도움을 허락하지 않고 새끼를 직접 돌보는 것을 선호했다고 연구팀은 전했다. 미치오 나카무라 쿄토대학교 야생동물연구센터 조교수는 야생 침팬지들의 ‘사회적 돌봄’ 행동을 최초로 관찰한 이번 연구가 인류의 사회복지 발달과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사회적 돌봄의 능력은 인류의 선조에게도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그러나 그 능력이 현생인류로 진화하고 나서 생겨난 것인지 아니면 그 전부터 존재했는지 여부를 두고 논의가 있어 왔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논문은 영장류(Primates) 저널 최신호에 발표됐다. 사진=ⓒ포토리아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시·군·구 69곳, 인구·사회·경제 복합 쇠퇴 겪는다”

    “시·군·구 69곳, 인구·사회·경제 복합 쇠퇴 겪는다”

    우리나라 시·군·구 가운데 30%를 웃도는 69곳이 인구,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 복합적인 쇠퇴 현상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역 쇠퇴 머리 맞대 ‘경쟁력’ 끌어올려야 11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한국과 일본의 지역재생 및 창생’을 주제로 열린 국제 세미나에서 이소영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지역발전연구실장은 이같이 밝혔다. 세미나는 서울신문사와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일본자치체국제화협회가 공동 주최했다. 저출산에 따른 인구감소와 초고령화의 심화로 대도시, 중소도시, 농촌지역을 가리지 않고 국토 전반에서 심각해지는 지역쇠퇴 문제를 고민해 국가발전의 원동력인 지역 경쟁력을 끌어올리자는 취지다. 발표자들은 특히 인구감소에 따른 공동화에 초점을 맞췄다. 이 실장은 228개 기초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한국 지자체의 지역재생 방안’을 발표했다. 쇠퇴지수는 산업경제(재정자립도, 1000명당 종사자, 1인당 지방세, 제조업 종사자 등), 인구사회(연평균 인구 증감률, 노령화 지수, 1000명당 기초생활수급자 등), 물리환경(공가율, 노후·신규 주택비율 등) 분야에서 종합적으로 파악해 산출했다. 그 결과 쇠퇴지역은 전남 16곳, 경북 13곳, 전북 10곳, 강원 9곳, 경남 7곳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군 단위가 57곳으로 단연 많아 심각성을 더했다. 시 8곳, 구 4곳이었다. 이 실장은 국가균형발전특별법과 도시재생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등 관련 정책에도 불구하고 ‘늙어가는 국토’를 개선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는 아쉬움도 곁들였다. 단편적이고 대증요법 격인 정책에 머물러 지자체가 스스로 역량을 발휘할 수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처방으론 먼저 중앙정부에서 포괄적인 재원을 지원하고 지자체에선 해당 지역의 특성에 알맞은 재생전략을 추진하는 ‘자율적 지역 재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또 지역을 위해 자신의 고향에 소득세의 일정액을 납부할 수 있게 만드는 ‘고향 사랑 납세제’도 제시했다. 다카다 히로후미 일본정책연구대학원대학 교수는 ‘지방소멸’을 방지하기 위해 도시 청소년들에게 1~3년에 걸쳐 농어촌거주 경험을 시키도록 하는 일본의 ‘지역부흥 협력단’ 등 시책을 소개했다. 해결책에 대해선 ‘마을·일·사람 창생’ 프로젝트를 꼽았다. 꿈과 희망을 갖고 윤택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마음 놓고 영위할 수 있는 지역사회 형성(마을), 지역사회를 짊어질 다양한 개성파 인재 확보(사람), 지역에 있는 자원을 활용한 취업기회 창출(일)을 통해 국가 장기비전과 종합전략을 짰다는 것이다. 도쿄 일극(一極) 집중 해소, 젊은 세대의 취업·결혼·육아 희망 실현, 지역특성을 즉각 고려한 지역과제 해결로 요약된다. 김현기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기획실장은 “우리나라처럼 협소한 ‘마을’에서 그치지 않고 일과 사람을 불러들여 단기적이지 않고 진정한 지역재생 목표를 이루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공동화’ 초점… 한·일 전문가 7명 토론 이어진 패널 토론엔 주병철 서울신문 논설위원과 사에구사 겐지 일본자치체국제화협회 이사, 니시나카 타카시 일본자치체국제화재단 사가현 총괄 본부장, 이동우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김선조 행정자치부 지역발전과장 등 7명이 참석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新국토기행] 충남 부여

    [新국토기행] 충남 부여

    백제의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고, 종내 멸망의 처절한 아픔을 맞았던 고도(古都). 충남 부여군은 백제 문화의 고갱이가 남아 있는 옛 도읍이다. 부여는 백제 사비시대의 수도로 일본 아스카문화를 전수해 지금도 해마다 일본인 수만명이 자신들의 고향으로 여겨 찾는다. 백제 유적지가 가장 풍부히 보존된 곳이기도 하다. 백제가 멸망한 뒤 의자왕이 당나라로 끌려갈 때 백성들이 몰려와 통곡한 금강변 양화면의 유왕산은 여전히 슬픔을 머금고 있는 듯 처연해 보인다. 당나라에서 병사한 의자왕의 묘를 찾아 고국으로 모시려다 흔적조차 못 찾고 중국 북망산의 흙을 파와 능산리고분에 가묘를 쓸 수밖에 없었던 부여군의 노력은 그 슬픔의 또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지난여름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부여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고풍스러운 백제 유적에 롯데리조트와 아웃렛 등 현대시설이 어우러지면서 연간 방문객이 1000만명에 이르는 등 백제 전성기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백제 수도가 옮겨왔을 만큼 물산도 풍족하다. 금강 줄기 백마강이 옥토를 만들어 양송이버섯과 밤이 전국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고, 방울토마토와 멜론 등 시설농업 천국이다. 볼거리 >> ●백제 왕궁터·부소산성·정림사지 등 세계문화유산 관북리 유적은 백제 왕궁터가 있던 곳이다. 건물터, 공방시설, 도로, 연못 등이 확인됐다. 부소산성은 백제의 마지막 왕성이다. 정치의 중심지고, 최후의 방어진지였다. 당시에는 사비성으로 불렸다. 둘레 2㎞가 넘는 성 안에 낙화암, 사자루 등 많은 유적이 있다. 나성은 수도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둘레 8㎞의 성으로 시가지 외곽을 둘러싸고 있다. 지금은 약간의 흔적만 남아 있다. 정림사지는 백제의 중심 사찰이 있던 자리다. 5층 석탑 등이 남아 있다. 백제가 수도를 옮기면서 창건해 멸망하면서 화재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탑과 금당 등이 남북 일직선으로 배치돼 백제 가람의 전형을 보인다. 능산리고분군은 왕과 왕족의 무덤이 있는 데다. 백제 후기 묘 형태를 알 수 있는 전형적인 석실분들이다. 찬란한 백제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가 1993년 발굴돼 엄청난 반향을 불러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 ‘궁남지’ 백제 무왕이 634년 궁궐 남쪽에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이다. 기록은 “연못을 파고 20여리 수로를 내 물을 끌어들였다. 물가에 버드나무를 심고 가운데에 섬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신선과 불로초가 살고 황금궁궐이 있는 중국의 전설 속 이상향인 삼신산을 본떴다고 한다. 궁남지는 통일신라 문무대왕 때 만들어진 경주 안압지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일본 정원 문화의 원조가 됐다. 서동(무왕)의 탄생 설화와 신라 선화공주 사이의 사랑 이야기가 깃든 곳이기도 하다. 1965년 3분의1 규모로 복원됐다. 군은 2002년부터 이곳에 연꽃을 심어 여름철마다 ‘부여 서동연꽃축제’를 열고 있다. 7~8월 궁남지에는 홍련, 백련, 수련 등 갖가지 연꽃이 활짝 피어 사람들을 황홀하게 한다. ●백제 왕궁 재현한 첫 역사단지 ‘백제문화단지’ 백제 왕궁을 재현한 첫 역사단지다. 1994년 착공됐으나 예산 등 문제로 17년 후인 2010년 완공됐다. 백제시대의 다양한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왕궁인 사비궁, 대표 사찰인 능사, 계층별 주거문화를 보여주는 생활문화마을, 개국 초 궁성인 위례성, 묘제 등이 있다. 2006년 문을 연 백제역사문화관은 전국 유일의 백제사 전문 박물관으로 갖가지 전시실을 갖추고 있어 문화대국이었던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천재시인 김시습이 말년에 머물다가 세상 떠난 곳 ‘무량사’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이 되자 평생 은둔한 천재시인 매월당 김시습이 말년에 머물다가 세상을 떠난 곳으로 유명하다. 김시습 영정(보물 1497호)이 있다. 외산면 만수산 기슭에 위치한다. 언제 창건했는지 정확하지 않으나 신라 말 범일 국사가 세웠고, 수차례 공사를 거쳤다고 전해진다. 고려 때 크게 재건됐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됐다. 이후 극락전 등이 다시 세워졌고, 조선조 명승 진묵대사가 거처했었다. 극락전과 석등, 오층석탑, 미륵불괘불탱 등 보물이 많지만 호젓한 분위기가 가을에 잘 어울려 나들이 장소로 좋다.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촬영지 ‘서동요테마파크’ 요즘 인기 있는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촬영지다. 원래는 2005년 서동과 선화공주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그린 첫 백제 드라마 ‘서동요’의 오픈세트장으로 조성됐다. 이후 ‘대풍수’, ‘태왕사신기’, ‘계백’, ‘조선총잡이’ 등 인기 드라마 촬영도 일부 이곳에서 이뤄졌다. 부지 1만여평에 백제·신라왕궁, 왕궁촌, 태학사, 하늘재, 저잣거리가 조성돼 있다. 계백 장군이 태어난 충화면 천등산 자락에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세트장을 둘러싼 덕용저수지 주변 산책로는 백미다. 세트장 옆에 청소년수련원이 있어 숙박이 가능하고 짚라인 등 모험시설도 갖추고 있다. ●‘신동엽문학관’엔 옷·신분증·도장·편지·육필 원고 전시 ‘껍데기는 가라’를 쓴 신동엽(1930~69) 시인이 부여읍 동남리 출신이다. 생가 옆에 있다. 문학관에 시인이 입던 옷, 신분증, 도장, 편지와 함께 육필 원고 대부분이 전시돼 있다. 시인의 딸이 아버지를 그린 초상화도 있다. 묘는 능산리 앞산에 있다. 경기 파주에 있던 것을 1993년 옮겼다. 서사시 ‘금강’ 등 치열한 창작 속에서 1960년대 김수영과 함께 빼어난 참여시의 지평을 활짝 열었던 현대문학의 거인이 작고한 지 24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시비는 1970년 시인 박두진·구상과 소설가 최일남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백마강 기슭에 세워졌다. 문학관은 매년 봄 신동엽 시인 전국 고교 백일장, 가을에 문학축제를 열어 시인의 시 세계를 기리고 있다. 먹거리 >> ●서동·선화공주 이야기 깃든 연잎밥과 마밥, 그리고 백련차 세 가지 모두 서동(무왕), 선화공주와 관련이 있다. 연잎밥은 찹쌀과 밤, 대추, 잣을 연잎에 싸서 찜통에 쪄낸 밥이다. 연잎 향기가 은은히 배어 있다. 고소하고 찰기도 있다. 연잎에 철분, 비타민 E가 풍부해 성인병 예방에 좋다. 서동이 선화공주의 향수를 달래주려고 배를 띄워 놀았다는 궁남지에 연꽃이 지천이어서 부여 주민들이 이를 따다가 밥을 해먹은 데서 유래한다. 연꽃은 선화공주의 ‘선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연꽃으로 만든 백련차도 부여의 대표 식음료다. 절에서 스님들이 수양할 때 많이 마셔 삶을 음미하면서 즐기는 차로 제격이다. 마밥은 달콤한 마를 넣어 지은 밥이다. 마는 서동의 트레이드 마크다. 생마와 달리 마밥은 담백하고 고소하다. ●조선조 때 왕가에 진상한 물고기 ‘우여회 ’ 위어, 웅어 등 다른 이름도 많지만 부여에서는 ‘우여’라고 부른다. 봄이 오면 금강하굿둑에서 성어가 돼 돌아온 우여를 그물로 잡는다. 이때에는 주로 강어귀에서 머물기 때문이다. 몸길이가 30㎝ 정도로 잔 비늘에 빛깔이 은색을 띤다. 조선조 때 왕가에 진상한 물고기라고 해서 진귀하게 여긴다. 우여를 잘게 썰어 채소와 갖은 양념을 넣어 버무리면 고소하고도 매콤한 맛이 입맛을 사로잡는다. 백제 의자왕도 즐겨 먹었다고 전해진다. 재미있는 것은 백제가 망한 뒤 당나라 군사들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돌 밑에 숨어 의리를 지켰다고 해서 ‘의어’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점이다. 자양강장 효과가 있어 몸이 허해지는 봄철 보양식으로 부여의 여러 식당에서 팔지만 맛을 볼 수 있는 때가 매년 4~5월에 그쳐 아쉬움이 있는 음식이다. ●방울토마토·양송이버섯·멜론·수박·딸기 등 부여 8미(味) 부여군이 지정해 키우고 있는 방울토마토, 양송이버섯, 멜론, 수박, 딸기, 밤, 표고버섯, 오이를 일컫는다. 일조량이 풍부해 하나같이 맛이 뛰어나고, 색깔도 좋다. 백마강변 농토여서 토질이 비옥하고 물 빠짐이 좋아 작물이 잘 자란다. 군에서 공동 출하하는 등 품질관리를 철저히 한다. 공동 브랜드 ‘굿뜨래’로 판매하고 인기도 높다. 특히 양송이버섯은 전국 생산량의 45%에 이른다. 방울토마토는 13%, 표고버섯은 11%, 수박은 8%로 대부분 전국구 특산물이다. 수박은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단물이 풍부하다. 게다가 전국 생산량의 20%인 밤은 ‘맛밤’으로 가공돼 전국 슈퍼마켓, 편의점 등에서 인기가 선풍적이다. 중국산과 달리 밤 고유의 맛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여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현장 행정] 남이장군 나가신다 마을액운 물렀거라

    [현장 행정] 남이장군 나가신다 마을액운 물렀거라

    ‘어떻게 좋으신 줄 모르겠다. 나라 대감님, 우리나라는 대한민국, 도당대감님, 사당대감님, 아래위 대궐 대감들…’ 10일 용산구 용문동 남이장군 사당에 선 이명옥(78·여·서울시 무형문화제 20호)씨가 두 팔을 흔들며 사당굿을 시작했다. 12일 남이장군 출정식과 함께 진행할 사당굿을 예행 연습하는 중이다. 부드러운 팔 동작에 절제미가 있다. 20여명의 풍물패는 걸립(乞立)을 위해 풍악을 울리며 마을을 돌고 있었다. 걸립은 동네 사람들에게서 제수 물품을 기증받는 행위다. 벌써 33회나 된 마을잔치인지라 부담 없이 기부하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씨는 “남이장군 사당제는 모함으로 27세의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남이장군의 넋을 달래고자 선조 18년(1585년)부터 시작된 유래가 있는 행사로 동네 사람들의 무병장수를 비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사당제는 남이장군의 애국정신과 국난 극복의 업적을 기리고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 진흥을 위해 매해 음력 10월 1일에 열린다. 남이장군은 17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세조 때 여진족 토벌에 큰 공을 세웠지만, 예종 때 유자광 등의 시기와 모함으로 역모의 누명을 쓰고 현재 이촌동에서 죽임을 당했다. 이후 민간과 무속에서 신앙하는 장군신의 하나로 여겨진다. 11일 오후 8시부터 꽃등행렬이 열린다. 사당 인근의 산천동부군당에서 여성을 상징하는 꽃을 받아 사당에 올리는 행사다. 12일 오전 11시 30분부터는 장군 출진을 재연한다. 1123명이 참여해 전쟁에 나가던 남이장군의 부대를 재현해 구를 2시간 행진한다. 이날 장군 출진을 앞두고 오전 10시에 열리는 당제(堂祭)는 남이장군에 지내는 제사다. 마을의 평안을 함께 비는 것이 특징이다. 장군 출진 후에는 사당굿을 한다. 작은 마을축제에서 시작했지만, 중국, 일본 관광객들도 찾을 만큼 유명하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전통의 양반굿을 볼 수 있다는 게 매력이라고 구는 설명했다. 굿이 끝나면 수육, 국수, 떡 등 음식을 현장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나누어준다. 한대희(76) 남이장군 대제보존회 회장은 “국가 문화재로 승격돼 강릉 단오제처럼 세계에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성장현 구청장은 “주민들이 화합하는 축제라는 점에서도 사당제는 큰 의미가 있다”면서 “광복 70주년을 맞은 시점에서 후손에게 물려줄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에 참여하면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17] 맥적과 3양 불고기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17] 맥적과 3양 불고기

     서양인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면 적어도 한 끼니는 불고기를 먹을 것이다. 육식이 주식인 그들이 새삼스럽게 소고기 구이에 이토록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뭘까. 맛의 비밀은 양념에 있다. 서양인들은 안심과 등심 등 맛 좋은 부위만 골라 고기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스테이크로 먹지만, 가축이 귀했던 우리는 나머지 부위까지 알뜰하게 먹여야 했다. 이럴 땐 고기 특유의 누린내를 색다른 맛과 향이 배인 양념으로 잡아야 한다. 얇게 저민 소고기를 양념간장에 재웠다가 불에 굽는 불고기는 본래 돼지고기에 된장을 무쳐 먹던 우리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됐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빨갛게 고추장 양념을 한 제육볶음이 생각난다. 제육볶음은 도톰하게 썬 돼지고기 목살을 고추장과 설탕, 파, 마늘, 생강, 후춧가루, 깨소금, 참기름 등을 넣은 양념에 재웠다가 불판에 구워 먹는다. 고기의 부드럽고 고소한 육질 맛과 매콤·새콤·달콤한 양념 맛, 그윽한 불의 향이 어우러져 푸짐한 느낌을 준다. ● 고구려 선조인 맥족이 먹던 직화구이서 ‘맥적’ 유래 그런데 이 돼지고기 볶음 구이는 고추장이 아닌 된장으로 양념한 뒤 꼬챙이에 꿰어서 직화 구이를 했던 우리의 옛 음식 맥적(貊炙)에서 유래됐다. 고대 중국은 동북방의 ‘맥족’이 먹던 이 돼지고기 구이를 신기하게 여겼으며, 맛이 좋다는 기록을 남겼다. 꼬치구이인 맥적은 돼지고기나 양고기에 된장과 마늘, 부추, 달래, 술, 꿀 등을 발랐다고 했다.  맥족은 고구려인의 선조로 한(韓)족, 예(濊)족 등과 함께 선사시대에 한국인의 형질을 구성하는 사람들로 알려졌다. 고구려 병사들이 막강한 수나라나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적군을 궤멸시킨 데에는, 밤에 불가에 모여 맥적으로 회식을 하면서 사기를 북돋은 저력도 있지 않을까. 그런 전통이 오늘날에 이어져 외국인들도 감탄하는 양념 불고기를 탄생시킨 것이다.  소고기 불고기의 원형은 전통 음식인 너비아니에 있다. 너비아니란 고기가 얇아서 바람에 나부끼길 정도로 너붓너붓 한데서 붙여진 말이라고 한다. 가늘게 저민 살코기를 간장과 꿀, 참기름, 깨소금, 파, 마늘 등으로 재운 뒤 석쇠에 구운 고기다. 다 구우면 잣가루까지 뿌린다. 우리 선조는 몽골의 영향 등으로 고려 시대까지 그런대로 고기를 먹다가 조선에 이르러 농사가 국가정책으로 장려되면서 소의 도축을 함부로 하지 못했다. 소가 늙어서 죽거나 다쳤을 때나 관아의 허락을 받아야 가능했다.  그러나 왕가에서나 양반은 눈 내리는 겨울에 설하멱(雪下覓)이라고 해서 남몰래 맛보았다. 남자 하인이 굽는다고 해서 방자구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는 소고기의 등심과 안심, 갈비, 사태, 양지, 차돌박이, 곱창, 양, 꼬리 등 39가지 부위를 여러 가지 요리법을 통해 먹을 줄 알았다. 오죽했으면 세계적인 인류학자가 “소고기 부위별로 맛을 세분해 내는 고도의 미각 문화를 가진 민족은 한국인과 동아프리카의 보디족만 있다”라고 했을까. ● 日 야끼니쿠의 원조인 한양식 불고기... 언양-광양식과 함께 ‘3양 불고기’ 불고기는 ‘3양(陽) 불고기’가 유명하다. 우선 누리끼리한 청동 불판에 각종 양념을 한 불고기를 넣고 달짝지근한 육수를 자작하게 부어 먹는 한양식(서울식) 불고기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소고기 사육이 늘면서 당시 경성에서 양념 솜씨가 발휘된 불고기다. 이때 우리의 불고기는 일본으로 전해져 야끼니쿠가 된다. 야끼니쿠는 구운 고기를 양념간장 소스에 찍어 먹는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육식을 근세기 이전까지 수백 년 동안 금기했던 일본에선 잊을 수 없는 불고기의 맛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한양식 불고기는 서울 종로에서 강남 압구정로로 본점을 옮긴 76년 전통의 고깃집 H점이나 창경궁로에서 65년째 영업하고 있는 평양냉면 전문 W점 등에서 맛볼 수 있다. 울산의 언양식 불고기가 3양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룬다. 육수가 없는 ‘바싹 불고기’다. 소고기를 배즙에 재웠다가 국간장, 설탕 등 양념으로 버무린 뒤 잘게 다져 석쇠에서 굽는다. 고기 맛을 최대한 느끼기 위해 양념이 강하지 않은 게 특징이다. 언양에는 일제 때 대규모 소고기 도축장이 있었고, 덕분에 신선한 고기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점차 서울 등지에도 그 진가가 전해진다.  나머지 하나는 광양식 불고기다. 얇게 저민 소고기를 불에 굽기 직전에 양념을 부어 빠르게 살짝 구워 먹는 불고기다. 양념에는 그 주변에 흔한 매실이 들어가는 게 특징이다. 1980년대 광양제철소가 건설될 때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근로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불고기다.  결국 불고기는 궁해서 통할 수밖에 없었던 혼이 담긴 음식이다. 넉넉한 서양을 부러워하기만 할 수 없었던 우리식 먹거리다. 혁신은 어려운 현실을 어떻게 하든 뚫고 나가려는 의지에서 나오지 않을까.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시인 안도현   어릴 때, 두 손으로 받들고 싶도록 반가운 말은 저녁 무렵 아버지가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정육점에서 돈 주고 사온 것이지마는 칼을 잡고 손수 베어온 것도 아니고 잘라온 것도 아닌데...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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