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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르웨이 헤예르달이 가져간 이스터섬 유물 돌려주기로

    노르웨이 헤예르달이 가져간 이스터섬 유물 돌려주기로

    노르웨이 탐험가 토르 헤예르달은 1947년 발사(balsa)란 나무로 엮은 뗏목을 타고 페루를 출발해 6000㎞ 떨어진 폴리네시아까지 항해했다. 뗏목의 이름은 콘 티키 호. 유사 이전 중남미 인디오가 남태평양 한가운데로 이주해 뿌리를 내렸음을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얼마 뒤 유전자 분석 결과 폴리네시아인들의 뿌리는 서남아시아 쪽인 것으로 증명됐다. 그런데 허예르달은 1955년부터 다음해까지, 1986년부터 88년까지 칠레 이스터섬(원주민 말로 라파 누이)을 찾았다. 그런데 1956년 노르웨이로 돌아가며 인간 뼈와 조각 등 수천 점의 유물을 가져가 오슬로에 콘 티키 박물관을 열었다. 날강도 같은 짓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87세이던 2002년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그의 아들 토르 헤예르달 주니어가 이 유물들을 칠레에 돌려주기로 약속했다고 영국 BBC가 29일(현지시간) 전했다. 주니어가 칠레 수도 산티아고의 국립도서관에서 콘수엘로 발데스 칠레 문화부 장관과 합의문에 서명했다. 그는 AFP 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유물 반환은 아버지가 이것들을 분석하고 (학계에) 발표한 뒤 돌려주기로 한 라파 누이 당국과의 약속을 이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마르틴 비엘 콘 티키 박물관 관장은 “우리의 공통된 관심사는 유물들이 반환돼, 무엇보다도 훌륭한 시설을 갖춘 박물관에 전달되는 것”이라며 모든 과정이 완료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더 자세한 내용은 설명하지 않았다. 발데스 장관은 “장관으로서 문화 유산을 되찾겠다는 라파 누이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은 의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라파 누이 대표단이 박물관 측과 접촉해 논의했는데 펠리페 워드 칠레 국유재산 장관도 참여했다. 그는 당시 “많은 전환점 가운데 첫 번째 것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박물관 대변인은 임대 가능성을 넌지시 비쳤지만, 무기한 유물을 돌려주겠다고 언급한 것도 아니었다. 칠레는 런던 대영박물관도 이스터섬의 웅장한 현무암 석상인 호아 하카나나이를 반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보통 모아이라고 알려진 이 석상들은 섬의 원주민인 라파 누이 사람들이 뛰어났던 선조들의 영혼을 새긴 것으로 각각은 그 사람의 현생으로 여겨졌다. 최근에는 이 석상들이 식수원 위치를 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장미사진관, 백세건강원… 시간이 멈춘 마을

    장미사진관, 백세건강원… 시간이 멈춘 마을

    속수무책으로 빠른 세상에 현기증이 날 때가 있습니다. 며칠 전에 넘긴 것 같은데 달력 한 장을 또 넘겨야 할 때, 하루만 뉴스를 안 봐도 대화에 끼기 힘들 때, 1년 전 유행가를 듣는 것도 겸연쩍을 때. 그럴 때는 빠름과 정반대에 있는 어딘가로 떠나보는 게 어떨까요. 충남 서천의 판교마을은 모든 것이 느린 마을입니다. 마을의 또 다른 이름이 ‘시간이 멈춘 마을’이니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겠지요. 마을은 1970년대 어디쯤 머물러 있는 듯합니다. 오래된 골목 따라 녹슨 철문, 빛바랜 간판, 간판 속 예스러운 글씨가 이어집니다. 간판은 마을에 극장, 사진관, 주조장이 있었음을 일러 줍니다. 해묵은 간판이 말합니다.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에서 아직 변하지 않은 것도 이렇게나 많다고요.키 낮은 집들, 미용실 아랫목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할머니들, 낡은 자전거를 탄 어르신 등 마을의 첫인상은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르지 않다. 정겹고 소박하지만 낡고 허름하다. 하나 이곳은 서천에서 손꼽히게 잘나가던 마을이었다. ●1930년대엔 인구 8000명 넘었던 큰 마을 1930년, 마을 남쪽에 장항선 판교역이 들어섰고 큰 우시장이 열리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마을 인구는 8000명을 넘었다. 우시장이 열리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어깨가 부딪힐 정도였다고. 판교마을의 시곗바늘이 느려진 건 일대가 철도시설공단 부지로 묶이며 건축 제한에 걸리면서부터다. 쑥쑥 크던 마을은 개발이 어려워졌고 1980년대에는 우시장마저 사라졌다. 지금 마을에 남은 이들은 480명 남짓.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젊은이가 떠난 곳에 카메라를 들고 찾아오는 젊은이가 는다. 개발되지 못한 마을은 옛 모습을 간직했다는 이유로 주목받는다. 마을이 입소문을 타는 건 예스러운 분위기 때문이다. 마을 곳곳에 남은 수십 년 된 간판은 과거로 순간 이동을 한 듯, 1970년대를 재현한 영화 세트장을 걷는 듯 특별한 감흥을 선사한다.판교마을 여행은 마을의 옛이야기를 읽어 가는 일이다. 간판에 깃든 이야기를 꺼내어 먼지를 털고 그때를 되짚어 보는 일이다. 수십 년 전 세월을 헤아리느라, 간판에 얽힌 사연을 상상하느라 걸음이 느려지는 것도 당연하다. 마을은 1시간이면 둘러볼 정도로 아담하다. 관광지가 아닌지라 이정표는 없지만, 오성초등학교를 기점으로 마을 중앙에 난 도로를 따라가면 이 골목과도 저 골목과도 이어진다. 판교역이나 판교면행정복지센터에서 스탬프 투어 지도를 챙기는 것도 방법이다. 지도에 가볼 만한 곳이 잘 정리돼 있다. 마을 어귀에 있는 농협 창고는 출발지로 적당하다. 때밀이로 벽을 박박 문지른 듯 외벽은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벗겨졌다. 빨간 철문 위에는 ‘협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판매하자’는 표어가 남아 있다. 표어는 마을 농민들끼리 힘을 모아 잘살아 보자는 의지의 표명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젊은이 핫플레이스 된 옛 풍경 간직한 동네 마을 오른쪽 끄트머리, 판교철공소 맞은편 건물은 ‘공관’으로 불리던 극장이다. 새마을운동 당시에 세워졌으니 50세를 바라보는 극장이다. 극장이 드물던 시절 부여, 보령, 서천 등 인근 주민들도 영화를 보러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어둑한 건물에 영사기가 돌아가고, 관객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극장 문을 열었으리라. 낡은 건물이 극장이었음을 알려주는 단서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같은 1960~70년대 흥행작 포스터와 매표소 창구다. 창구에 새겨진 영화 관람료는 일반 500원, 청소년 200원. 지금의 20분의1 가격이다.공관 건너편, 판교농협하나로마트 옆 골목에 담벼락 벽화가 있다. 사람 반, 소 반, 판교마을에서 열린 우시장을 그린 것이다. 벽화에서 북서쪽 길을 따라가면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을 인 적산가옥이 나온다. 장미사진관,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자 카메라를 든 젊은이들이 인증샷을 많이 남기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동면(판교면의 당시 이름) 주민 5500여명을 쥐락펴락한 일본 부호 11명이 살았다. 광복 후에는 우시장에 온 사람들이 묵는 여관이었다가 그 후 반쪽은 쌀가게, 반쪽은 사진관이 됐다. 간판에 ‘쌀, 잡곡 일절’, ‘사진관’ 글씨가 또렷하다. 드르륵, 미닫이문을 수시로 여닫았을 마을 사람들을 상상해 본다. 쌀 한 됫박을 사서 밥을 안치고 기억하고 싶은 날을 사진으로 남겼을 순한 사람들을 말이다.장미사진관 맞은편의 백세건강원은 낡고 빛바랜 것으로 가득한 마을에서도 으뜸이다. 지붕 슬레이트는 일부가 떨어져 나갔고 벽에 덧댄 나무판자 역시 성한 데가 없다. 건강원 건물은 한때 통닭집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왼쪽 창에 붕어즙, 흑염소 중탕 등 각종 건강식품을, 오른쪽 창에 ‘백숙, 통닭’ 글씨와 ‘근육질’의 닭을 그려 넣었다. 판교마을 여정의 종착지는 마을 북쪽의 주조장이다. ‘동일주조장’ 간판 아래 재미난 숫자가 있다. ‘TEL 45.’ 서천 지역 번호가 041이 아니라 45이던 시절, 그러니까 1996년에 지역 번호가 세 자리로 바뀌기 전에 생긴 주조장이다. 자료에 따르면 건물은 1974년 이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3대째 가업을 이은 주조장은 주민들에게 술을 공급하며 팍팍한 일상을 달래줬다. 쌀이 귀하던 1970년대에 주조장은 밀가루로 막걸리를 빚었다. 덕분에 주민들은 술 마시는 낙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주조장의 시간은 20여년 전에 멈춰 있다. 열린 창 사이로 보이는 달력은 2000년 12월. 주조장은 2000년에 문을 닫았다. 문을 닫았다고 과거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창 사이로 달력 날짜를 짚어볼 때, 마을 사람들이 주조장 앞을 지날 때, 막걸리에 하루의 고단함을 털어버리던 날이 되살아날 때, 주조장은 모두에게 확실한 기억이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 ‘변치 않음’이 판교마을을 지킨다. 1590년대 세워진 문헌서원…4000번을 매만진 한산모시●가정 이곡·목은 이색 정신 깃든 서원 문헌서원은 고려의 대학자 가정 이곡 선생과 목은 이색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는 사원이다. 서원이 세워진 건 1590년대, 조선 선조 때다. 19세기에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됐으나 100여년 뒤 유림들에 의해 지금 자리에 복원됐다. 문헌서원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잡아채는 건 서원을 둘러싼 언덕의 솔숲이다. 대나무처럼 꼿꼿한 소나무 군락이 서원을 에워싸 청신한 기운이 감돈다. 서원은 크게 사당, 강당, 재로 나뉜다. 사당은 선현에 제사 지내는 곳, 강당은 원생들이 공부하는 곳, 재는 원생들이 숙식하는 곳이다.●유생들 모여 학문 논하고 수양하던 진수당 홍살문과 진수문을 지나 마주하는 진수당은 강당에 속한다. 유생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고 자신을 수양하던 강당이다. 훌륭한 건물은 머무는 사람을 담아야 하는 법. 진수당의 건축 양식은 선비 정신을 반영했다. 복잡한 포나 장식을 피하고 단청 색을 줄여 독서하고 사유하기 마침한 공간이 됐다. 진수당을 마주한 방향에서 서쪽으로 가면 이색 신도비, 북으로 몇 걸음만 더 오르면 목은이색선생영당이다. 영당은 목은 이색 선생의 초상(보물 제1215호)을 모신다. 바로 옆 아름드리 배롱나무는 영당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 늦여름 배롱나무에 진분홍 꽃이 환히 피면 한옥과 꽃의 어울림이 아름답겠다.●1500년 역사 자랑하는 대표 공예품 ‘모시’ 모시 풀이 처음 발견된 서천군 한산면 건지산 기슭에 한산모시관이 있다. 한산모시관은 한산모시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전통의 맥을 잇는 공간이다. 한산모시는 1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산의 대표 공예품. 한산모시의 또 다른 이름은 ‘가늘 세(細)’ 자를 써서 한산 세모시, 올이 가늘고 촘촘해 붙은 이름이다. 얼마나 가늘면 ‘밥그릇에 모시 한 필이 다 들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모시짜기 역사부터 제작까지… 한산모시관 한산모시관은 한산모시 전시관, 전통공방, 한산모시 홍보관 등으로 나뉜다.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은 ㄱ자 모양의 전통공방이다. 공방에는 한산모시짜기 기능보유자 방연옥 장인 외 여러 장인이 머물며 모시 짜기 시연을 한다. 눈앞에서 장인이 개량 베틀을 돌리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다. 베틀 주변에 가습기를 몇 대씩 놓고 비닐 천막을 친 건 건조하면 날실이 벌어져 끊어지기 때문이란다. 전시관은 한산모시의 역사, 제작 과정과 사용 도구, 모시로 만든 옷 등 한산모시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 준다. 한산모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모시 한 필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고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수확한 모시풀로 모시의 원재료인 태모시 만들기, 이로 태모시를 쪼개 일정한 굵기로 만들기, 모시 올의 머리와 꼬리를 이어 모시실 만들기 등 베틀로 모시를 짜기 전의 과정만 일곱 가지에 이른다. 한국의 전통 여름 옷감 정도로만 여겼던 모시가, 4000번의 손길 끝에 태어나는 귀한 옷감으로 다시 보이는 순간이다. 글 이수린(유니에스 여행작가) 사진 권대홍(사진작가) ■여행수첩(지역번호 041) →가는 길 : 서울에서 자동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와 천안논산고속도로를 지나 서천공주고속도로를 이용한다. 서천공주고속도로 서부여IC교차로에서 ‘군산, 서천’ 방면으로 우회전한 뒤 대백제로를 따라간다. 수성교차로에서 ‘판교, 현암리’ 방면 좌회전 후 종판로를 따라가면 판교마을이다. →맛집 : 옛 판교역이 있던 자리에 판교음식특화촌이 들어서 식당이 모여 있다. 판교마을 내 삼성식당(951-5578)은 50년 가까이 된 냉면집이다. 메뉴는 단 세 가지로 물냉면, 비빔냉면, 왕만두다. 메밀면을 써서 쫄깃한 식감과 상큼한 육수의 궁합이 좋다. 서천특화시장 맞은편에 자리한 두레분식(953-4305)은 해물칼국수를 잘한다. 바로 앞 수산시장에서 사 온 생바지락이 푸짐하게 들어간다. →잘 곳 : 문헌전통호텔(953-5896)은 문헌서원 안에 자리한 한옥 호텔이다. 8개의 객실이 있으며 호텔 내 식당에서 정갈한 한정식 메뉴를 차려낸다. 휴모텔(952-0077)은 전 객실에서 서해가 보인다. 창밖 경치가 아름다울뿐더러 갯벌 체험이나 바다낚시도 즐길 수 있다.
  • 수성구, 한반도 비핵화와 행복수성 기원 ‘수성사직제’ 봉행

    대구 수성구는 28일 오전 노변동 사직단에서 지역 유림과 기관 관계자 및 지역 주민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반도 비핵화와 행복수성을 기원하는 수성사직제(토지신과 곡식신에게 올리는 제사)를 봉행했다. 노변동 사직단은 1998년 고분군 발굴을 시작으로, 2006년 4월 대구시 기념물 16호로 지정됐으며, 2008년 11월 사직단 복원 공사를 착공하여 2010년 1월 준공됐다. 수성사직제는 2010년부터 노변동 사직단에서 봉행해 왔으며, 2013년 수성문화원 “사직제봉행위원회”에서 사직제의 명칭을 “수성사직제”로 변경하여 올해로 10회째 봉행했다. 사직제례 집행은 대구향교에서 진행하고, 사직제례의 집사자들은 대구향교, 경산유림연합회, 성균관유도회가 함께 했다. 또한, 신매동 소재 단비유치원 원생 40여 명과 시지초등학교 학생 20여 명이 참여하여 어린이들이 잊혀가는 선조들의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사직제에 앞서 식전행사로 대구 궁중전통무용 보존회의 태평무 공연, 산이국악합주단의 제례악 공연이 열렸으며, 참여자 모두가 사직제 진행 상황을 확인할 수 있도록 가로 3m, 세로 2m 크기의 LCD 스크린이 설치됐다. 이날 행사에 초헌관으로 참석한 김대권 수성구청장은 “수성사직제 봉행을 통해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주민들의 공동체를 창출하는데 기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어르신들의 나치 부역 내력 밝혀달라” 라이만 후손들이 보인 용기

    “어르신들의 나치 부역 내력 밝혀달라” 라이만 후손들이 보인 용기

    “우리 모두 할말을 잃었고 창피해 낯빛이 파리해졌다. 호도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런 범죄는 질색이다.” 가족이나 조상의 어두운 역사를 솔직히 고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인류 전체를 겨냥해 악행을 저지른 나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독일에서 둘째 가는 부자 집안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330억 유로(약 42조 3500억원)의 자산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는 라이만 집안의 투자 회사인 JAB 홀딩의 사업 파트너이자 대변인 역할을 하는 페터 하르프가 최근 일간지 빌트 암 존탁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 집안의 어두운 역사를 인정하며 1000만 유로(약 128억 3500만원)를 “적절한 기관”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하르프는 “알베르트 라이만과 아들은 유죄 판결을 받아 실제로 감옥에도 갔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집안의 후손 넷이 역사학자 파울 에르커로 하여금 가족의 나치 부역 역사를 밝혀내도록 주선했다고 하르프가 밝힌 점이다. 선조들이 1943년 군수품 공장에 동원한 175명의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번 에르커 보고서는 잠정적인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후손들은 재빨리 고변하는 길을 택했다.JAB 홀딩은 케우릭 닥터 페퍼(Keurig Dr Pepper) 음료회사, 코티 인코(Coty Inc) 미용용품, 제이콥스 다우위 에그버트(Jacobs Douwe Egberts) 커피와 프렛 A 맹거(Pret A Manger) 샌드위치 체인 등 주로 식음료 업체들에 투자하고 있다. 국내에도 제법 알려진 크리스피 크림 도넛도 이 집안이 뒷돈을 댄 회사가 만든다. 빌트 암 존탁은 나치 치하의 동유럽에서 여자들을 노예 부리듯 했는데 라이만 부자도 라인랜드주의 루드비샤펜에서 러시아 여인들을 하녀로 부리며 구타와 성폭력을 일삼았다고 폭로했다. 알베르트는 1954년에, 아들은 1984년 세상을 떠났는데 둘 모두 열렬한 나치주의자였으며 그들의 회사는 노예 노동자들을 부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두 사람이 나치에 부역했던 흑역사가 드러나는 데 70년 이상이 걸렸다. 슬라브계 수백만명이 나치의 공장이나 농장 등에서 강제로 붙들려 임금을 거의 받지 못한 채로 일했다. 많은 유대인이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았지만 일부 유대인들은 노예 노동으로 목숨을 부지했다. 라이만 관련 나치 자료를 본 적이 있다고 밝힌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코퍼는 “라이만 부자는 정치적 기회주의자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나치즘을 확신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990년대부터 유명 독일 기업들이 나치의 인권 유린을 통해 이득을 취했다는 생존자나 그 친척들의 증언이 잇따랐다. 모든 독일 가정이 차 한 대씩 갖게 하겠다는 아돌프 히틀러의 비전에 따라 1937년 창업한 폭스바겐이 대표적이다. 2차 세계대전 중 볼프스부르크의 이 회사 공장은 독일군 차량을 공급했는데 근처 수용소에 수용된 1만 5000명을 노예 노동자로 부렸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선조들 나치 부역 인정” 獨 부호 라이만 가문 140억원 기부

    독일 최대 부호 가문 중 하나인 라이만 가문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협력했던 사실을 인정하며 자선단체에 1100만 유로(약 140억여원)를 기부키로 했다고 AP통신이 24일(현지시간) 전했다. 라이만 가문 대변인인 페터 하르프는 이날 1954년 숨진 알버트 라이만과 1984년 사망한 그의 아들 알버트 라이만 주니어가 전쟁 당시 강제 노동자를 동원하는 방식으로 나치에 부역했다는 언론 보도 내용에 대해 “모두 사실“이라고 밝혔다. 앞서 독일 현지 일요신문 빌트암존탁은 이들이 전쟁 중 독일과 프랑스, 미국에서 러시아 민간인과 프랑스 포로를 강제 징용에 동원했으며 이로 인해 감옥살이를 했다고 폭로했다. 거대 투자사 JAB홀딩 주식의 95%를 보유한 라이만 일가는 자산 규모 330억 유로(약 42조 3000억원)로 독일에서 두 번째로 자산이 많은 가문이다. 크리스피크림도넛과 피츠커피 등 식음료 분야 세계적인 브랜드의 지배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라이만가 후손들은 2014년 뮌헨의 한 역사학자에게 의뢰해 선조들이 1943년 군수품 공장에 동원한 175명의 강제노동자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단독]루니스 선사 “불법환적 의심 선박은 북한 아닌 중국선박”

    [단독]루니스 선사 “불법환적 의심 선박은 북한 아닌 중국선박”

    미국 재무부로부터 북한과 불법 환적 등이 의심된다고 지목된 ‘루니스(LUNIS)’호 선사가 “유류를 넘겨 준 배는 북한 선박이 아닌 중국 선박”이라고 해명했다. 특히 해당 선사는 지난해 9월 23일부터 10월 15일까지 한국 정부의 합동 조사를 받았고 그 결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루니스호 선사인 ‘에이스마린’ 관계자는 22일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미국 측이 유류를 넘겨 준 것으로 보는 북한 배를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중국 국기를 달고 있던 B선박인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 배가 아니라 중국 선박이기 때문에 혐의가 없다는 판정을 받고 작년 10월에 해양수산부에서 출항보류 해제 통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에이스마린에 따르면 루니스호는 지난해 상반기 중국과 대만 사이의 공해상에서 B선박에 유류를 공급했다. 루니스호는 1999년 건조된 길이 104m, 폭 19m의 선박으로 어선이나 바지선 등에 유류를 공급하는 선박이다. 또 2017년 9월부터 D사에 2년간 대선 계약을 맺고 임대 중인 상태다. 에이스마린 관계자는 “당시 루니스에 미국의 대북제재 선박 리스트와 외교부에서 나온 리스트까지 받아 본선에 전달했다”며 “원칙대로 선박, 선명을 사진으로 찍고 상대 선박의 중국 국기도 분명히 확인했다”고 말했다. 다만 선명을 바꾸고 국기를 바꿔 달 경우 북한 선박임을 확인할 길은 없는 상황이다. 통상 공해상에서 선박의 국적 증서까지 확인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미국 측이 아직 불법 환적을 의심하는 상대 선박을 특정해 발표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에이스마린이 추정하는 B선박을 의미하는 지도 확인해야 한다. 루니스호가 해당 지역에서 유류를 건넨 선박들이 다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출항보류 해제 통지는 승선 조사 당시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을 경우 취해지는 조치다. 정부의 관심 리스트에는 여전히 올라있다는 의미다. 에이스마린에 따르면 루니스에 대한 승선조사는 외교부, 해양수산부, 관세청이 합동으로 진행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당시에 조치를 취할 정도의 조사결과는 없었지만 의심까지 배제할 상황은 아니어서 지속적으로 지켜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21일(현지시간) ‘북한 불법 해상운송과 관련한 주의보’를 발표하면서 정제유 및 석탄의 선박 간 불법환적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및 각국 선박 95척의 명단을 내놨다. 여기에 ‘루니스(LUNIS)’라는 한국 선적, 한국인 선주인 선박이 포함됐다. 미국의 불법환적 리스트 발표는 지난해 2월에 이어 2번째다. OFAC는 “제재 리스트는 아니고 일부 선박은 제재 대상 인물과 이해관계가 있을 수 있지만 리스트에 포함됐다고 해서 OFAC가 제재 대상 인물과 이해관계가 있는 소유물이라고 단정했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의 불법환적 관여 의심 주의보 리스트에 직접적으로 한국 선박의 이름이 오른 것은 처음이다. 이날 외교부 관계자는 “루니스는 그간 한미 간에 예의주시해 온 선박이며, 안보리 결의 위반 여부에 대해서 철저히 조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선거 앞둔 터키… 에르도안, 뉴질랜드 테러 악용

    선거 앞둔 터키… 에르도안, 뉴질랜드 테러 악용

    막말에 외교갈등 비화… 보수 표심 노려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 국면에서 호주 국적 남성이 저지른 뉴질랜드 총기테러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뉴질랜드와 호주 양국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터키와 뉴질랜드, 터키와 호주의 외교갈등으로 비화하는 모양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20일(현지시간) 에르도안 대통령의 막말에 대한 터키 측 입장을 직접 들어보겠다며 윈스턴 피터스 외무장관 겸 부총리를 터키에 보내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호주는 호주 주재 터키대사를 불러 에르도안 대통령의 발언에 항의하고 발언 철회를 요구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15일 뉴질렌드 테러 발발 이후 최근까지 선거 유세장에서 용의자가 직접 촬영한 영상을 반복적으로 보여 줬다. 그는 또 1차 세계대전 당시 뉴질랜드인, 호주인 등 1만명이 학살당한 1915년 터키 갈리폴리 전쟁을 언급하고, “반(反)무슬림 정서를 품고 터키에 오는 뉴질랜드인과 호주인은 선조들처럼 ‘관에 담겨’ 고향에 돌아갈 것”이라고 막말을 해 서방의 빈축을 샀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오는 3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터키 보수 표심을 결집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현장 행정] “독립운동가 희생 기억해 정신 잇겠다”

    [현장 행정] “독립운동가 희생 기억해 정신 잇겠다”

    강남구 3·1절 100주년 기념행사“‘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는 독립선언문 글귀는 여전히 가슴을 뛰게 합니다. 독립유공자들의 애국정신과 희생 덕분에 우리가 세계 10대 선진국, 국민소득 3만 달러 나라의 주인으로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정순균 서울 강남구청장의 울림 있는 목소리에 좌중이 숙연해졌다. 일제강점기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도 있었다. 지난 13일 오전 10시, 강남구 프리마호텔 3층 그랜드볼룸에서 광복회 강남구지회 주관으로 열린 ‘3·1독립선언 100주년 기념행사’에서다. 이날 행사엔 정 구청장을 비롯해 지역에 사는 독립유공자와 후손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기념식은 윤봉길 의사 독립운동 동영상 상영과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로 시작, 3·1독립선언서 낭독, 기념사, 축사 순으로 진행됐다. 정 구청장은 축사에 이어 지역 발전과 보훈가족 복지 증진에 기여한 독립운동가 유가족 5명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 참가자들과 함께 소형 태극기를 손에 들고 만세삼창을 하며 100년 전 독립운동 현장을 재현했다. 정 구청장은 “강남구는 독립유공자들의 명예 선양을 위해 서울 자치구 중 최대 규모인 33억원을 국가유공자와 보훈대상자 위문금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독립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신 독립유공자들의 희생에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그들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서동흡 광복회 강남구지회장은 “우리 선조들이 자신의 재산과 목숨을 희생하며 나라를 되찾고자 했던 정신이 길이길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정 구청장은 “올해부터 지역 내 독립유공자, 민주유공자, 국가유공자 2000여명의 가정을 찾아 ‘국가유공자 명패 달아드리기’를 한다”며 “최근 승병일 애국지사와 김창숙·김찬기 선생 유족 자택을 찾아 명패를 달아드리고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달했다”고 했다. 국가유공자 명패 달아드리기는 국가유공자의 헌신에 보답하고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국가보훈처와 함께 추진하는 사업으로 명패엔 ‘독립유공자의 집’, ‘국가유공자의 집’, ‘민주유공자의 집’ 등이 새겨져 있다. 정 구청장은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독립유공자들의 공훈은 영원할 것이며 우리 강남구민은 그 거룩한 희생정신을 공경할 것”이라며 “독립유공자와 유족들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강남구를 도약시키는 일에 ‘지성무식’(至誠無息)의 정신으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소박함만 한국의 美라더냐… 고려의 호방함 서린 ‘독립운동 성지’

    소박함만 한국의 美라더냐… 고려의 호방함 서린 ‘독립운동 성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으며 가장 주목받는 문화재는 단연 경북 안동의 임청각(보물 182호)이다. 경술국치 직후 집주인 이상룡은 일가 친족을 이끌고 서간도로 망명했다. 막대한 재산을 처분한 자금으로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무장독립운동의 주역들을 양성하고, 임시정부 제3대 대통령 격인 국무령을 역임했다. 오랫동안 방치되던 임청각은 독립운동의 성지가 되어 대대적으로 복원 정비할 예정이다. 이 집은 올해 창건 500주년을 맞으며, 고려 주택의 전통을 가진, 매우 드물고 소중한 건축 유산이기도 하다.●고성 이씨 법흥파종택… 이명이 1519년 창건 임청각은 고성 이씨의 한 분파가 안동 법흥동에 건립한 파종택이다. 하나의 옛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가문의 역사를 들추는 수고를 해야 한다. 집은 곧 인격의 표현이고, 종택은 오랜 시간의 축적물이기 때문이다. 고성 이씨의 시조는 고려 문종 때 호부상서를 지낸 이황이다. 그는 거란의 침략을 막아 내는 큰 무공을 세워 철령군(철령은 경남 고성의 옛 이름)에 봉해졌다. 이 가문은 고려조에 정승급만 5명이나 배출한 명문가로 성장했고, 조선 초 좌·우의정을 지낸 이원이 용헌공파를 이루게 된다. 그의 아들들은 전국에 걸쳐 번성했는데, 6남인 이증(1419~1480)은 안동부 남문 밖으로 이주해 안동 지역의 입향조가 됐다. 그의 차남인 이굉은 낙동강 건너 현 정상동에 귀래정을 지었고, 이 일대는 고성 이씨의 씨족 마을로 발전했다. 이증의 3남 이명은 1519년 영남산 남록, 법흥동의 낙동강변에 정자를 지어 임청각이라 이름하니, 현재의 군자정 건물이다. 1540년, 여기에 본격적인 살림채와 가묘를 세워 파종택으로 정착시킨 이는 이명의 6남인 또 다른 이굉이다. 임청각 정착의 역사는 한 가문이 어떻게 명문가로 성장하는지, 그리고 어떤 건축적 장치가 필요했는지를 보여준다. 소수 귀족만이 성씨를 가졌던 고려시대에는 국가적 공헌을 이뤄 성씨를 하사받았다. 성씨와 동시에 일정 지역을 식읍으로 받는데, 곧 본관이 된다. 왕조가 바뀌는 조선 초는 기존 명문가들의 명암이 엇갈리는 시기였다. 새 왕조에 참여한 가문은 더욱 번창하게 되지만, 반대의 경우 멸문지화를 입던지 재야의 향반으로 전락하게 된다. 조선 초의 향촌은 고려적 장원 체제가 해체되고 새로운 체제로 전환하는 큰 변혁기를 맞았다. 이 시기에 번창한 가문의 자손들은 전국 각지의 새로운 소유지를 찾아 분파하게 되며, 파종가들이 출현했다. 종가가 되려면 종택을 짓고, 시조를 제사할 사당을 세워야 한다. 또한 향촌의 절경 곳곳에 개인 소유의 정자를 세운다. 지역의 경관을 소유하는 자가 바로 지역의 세력가가 되기 때문이다. 임청각은 별장인 정자로 시작해서 살림집과 사당을 가진 종택으로 확장한 경우다. 가문을 연지 500년 만의 결실이며, 그로부터 또 다른 500년이 흘렀다. ●고려 한옥의 또 다른 흔적, 온돌이 드문 2층집 우리의 건축들은 임진왜란 때 거의 파괴되어 현존하는 대부분은 17세기 이후에 지어진 것이다. 임란 이전의 것으로 임청각같이 큰 집이 온전히 남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 집은 오래되고 거대할 뿐만 아니라 후대의 다른 살림집과 확연히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을 갖는다. 남아 있는 부분만도 1층 50칸, 2층 12칸의 큰 규모로 후대의 한옥이라면 적어도 5채의 독립 건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 집은 별채인 군자정을 제외한 모든 살림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하늘에서 보면 마치 불완전한 용(用)자와 같이, 5개의 안마당을 중심으로 기와지붕의 선들이 이어진다. 평면 구성만도 밀집되고 복잡한데, 경사지를 활용한 3차원적 구성은 더욱 복합적이다.임청각의 눈에 띄는 특징은 2층 구조가 주를 이룬다는 점이다. 현재 2층 공간은 12칸이 남아 있지만, 원래는 20여 칸이나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머리가 부딪힐까 걱정해야 하는 다락이 아니라 충분히 생활이 가능한 정식 2층 공간이다. ‘한옥은 단층’이라는 상식은 임청각에서 여지없이 깨진다. 김시습의 ‘금오신화’ 중 ‘이생규장전’은 고려 말 개성을 무대로 전개되는 연애기담이다. 2층루가 있고 이들을 은밀한 복도가 연결하는 것으로 여주인공의 집을 묘사했다. 아마도 이 소설을 쓴 조선 초까지, 개성과 한양의 큰 살림집의 일반적인 모습이었을 것이다. 임청각의 2층 바닥은 물론 1층 대부분도 마루 바닥이었다. 한옥의 가장 큰 특징이라는 온돌은 총 70칸 중 5칸에 불과했다. ‘한옥은 온돌’이라는 상식도 깨진다. 후대에 온돌로 개조한 부분까지 다해야 겨우 10칸이다. 서울 종로의 공평지구 재개발 때 조선 전기의 한옥 마을을 발굴하게 되었다. 보통 10여 칸 집에 단 1칸만 온돌방이며 마루가 주된 바닥을 이룬 집들이었다. 온돌이 한옥의 주된 바닥형식이 된 것은 17세기 이후이다. 이 집의 창호들 역시 후대의 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창틀이 벽 가운데 떠 있는 것 같이 보이는 이른바 ‘액자창’들이 대부분이며, 아예 벽의 일부에 창을 끼운 것 같은 붙박이창도 여럿이다. 2짝 여닫이창들은 예외 없이 가운데에 문설주를 둔 ‘영쌍창’들이다. 이러한 액자창, 붙박이창, 영쌍창은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이며, 18세기 이후의 한옥에서는 보기 힘든 오래된 기법들이다.한마디로 임청각은 고려 살림집의 전통을 간직한 호방하고 웅장한 집이다. 흔히 한국적 미학이라 일컫는 ‘소박하고 단순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 수도 개성의 풍물을 그린 ‘고려도경’의 묘사와도 같이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건축이다. 13칸 행랑채의 수평적 장대함, 거의 3층 높이 안채의 수직적 당당함, 오래된 창호형식의 고졸함, 낙동강의 풍경을 감싸 안는 군자정의 넉넉함…. 이제는 거의 사라져 임청각만이 간직하고 있는 우리 건축의 또 다른 전통이다. ●보수 속 혁신… 남자는 군자정·여자는 살림채 써 임청각의 500년 세월 가운데 수차례 대대적 수리를 했지만, 후손들은 선조의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않는 원론적 보수는 아니었다.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마루들을 온돌방으로 개조했다. 남자 주인들은 별당인 군자정을 거처로 삼아, 살림채 대부분의 사용권을 여자 가족과 하인들에게 넘겨주었다. 옛 형식은 지키되, 새로운 내용을 수용한 은밀한 혁신의 결과다.석주 이상룡(1858~1932)은 이 가문의 가장 혁신적인 인물이다. 퇴계학파의 정통을 이은 안동의 큰 유학자로서 을사늑약 때부터 의병활동과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섰다. 1911년 노비를 해방하고 조상들의 위패를 묻은 뒤 서간도에 망명, 만주 땅에서 74세로 운명할 때까지 무장독립 투쟁에 헌신했다. 노비 해방과 제사 철폐는 정통 유림에게 있을 수 없는 패륜이다. 심지어 종손으로서 종가인 임청각을 팔아 독립운동 자금으로 썼다. 그러나 그는 군자정의 주인답게 진정한 ‘군자’였다. 군자란 누구인가? 세상의 문제와 해답을 깨달은 사람, 더 나아가 깨달음을 온몸으로 행하는 지행합일의 인간이다.1700년대 언저리, 이 집안의 두 형제가 분가해 임청각 좌우로 탑동파종택과 평지파종택을 세웠다. 1941년 일제는 고성 이씨 3형제 동네 앞에 중앙선 철도를 부설했다. 임청각의 대문채 등이 파괴되었고, 탑동파종택 앞의 법흥사지7층전탑(국보16호)은 기울어졌으며, 철도 노선에 포함된 평지파종택은 아예 흔적이 사라졌다. 일가족 10명이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불령선인의 가문에 대한 야만적 보복이었다. 1913년 임청각을 한 일본인에게 2000원(현 가치 200억원 추산)에 팔았는데, 이를 알게 된 고향의 일가들이 합심하여 3000원에 곧 되사 보존할 수 있었다. 이 거액 매입을 주도한 이는 석주의 20촌 동생인 평지파종택의 이태희였다. 그는 일제 식민 치하의 수모를 감내하며 자신의 방법으로 고향과 가문을 지켰다. 보수와 혁신은 한몸이었다. 정통 유림이 무장투쟁가로 변신하고, 해방된 노비가 독립군이 됐다. 망명해 딴 나라에서 순국한 이도 있고, 고향에 남아 은밀히 독립운동을 도운 이도 있다. 비록 모두를 추서할 수는 없어도, 모두가 애국자이다. 280억원의 예산으로 임청각 일대를 복원 정비한다고 한다. 철도 이설과 임청각 정비뿐 아니라 사라진 평지파종택을 비롯해 외거 노비들의 가랍집까지 복원해야 한다. 이들 모두가 보수의 전통 속에서 혁신을 꿈꾸고 몸 바쳤던 역사이기 때문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건축학자
  • 450년 전 퇴계 이황의 마지막 귀향길은 어땠을까

    450년 전 퇴계 이황의 마지막 귀향길은 어땠을까

    450년 전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의 마지막 귀향길을 재현하는 행사가 열린다. 도산서원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은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새달 9일부터 21일까지 퇴계 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 행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위대한 발자취, 경(敬)으로 따르다’라는 제목의 행사는 선생이 1569년 음력 3월, 한양 경복궁에서 안동 도산서당으로 돌아온 귀향길을 따라가며 재현한다. 1568년 6월, 선생은 조정의 부름을 받고 서울에 올라가 만년 벼슬살이를 했다. 당시 선조 2년, 임금의 나이는 17세였다. 이후 선생은 우찬성, 판중추부사 등의 고위 관직을 받고 경연에서 강의하며 소년 임금을 보좌했다. 그해 12월, 평생의 학문적 공력이 담긴 ‘성학십도’를 편찬해 임금에 올린 선생은 고향에 돌아가 학문과 수양에 전념하며 만년을 보내고자 했다. 임금과 중신들의 만류가 이어졌으나 몇 달에 걸쳐 사직 상소를 올린 끝에 1569년 3월 4일 선조는 선생에게 일시적인 귀향을 허락했다. 선생의 귀향길에는 조정 중신들이 한강으로 나와 전별하고 기대승, 윤두수 등의 당대 명사들이 시를 지어 이별의 아쉬움을 전했다. 때문에 귀향길이 늦어진 선생은 동호의 몽뢰정과 강남의 봉은사에서 유숙했다. 당시 선생은 박순과 기대승에게 화답시를 지어 석별의 정을 표했다. 이후 광나루~미음나루를 지나고 남한강의 한여울, 베개나루(이포)를 거쳐 충주 가흥창까지 관선을 이용하였는데, 이는 임금의 배려에 의한 것이었다. 충주에서 하산한 선생은 이후 말을 타고 청풍~단양~죽령~풍기~영주~예안 도산의 경로로 돌아왔다. 가는 곳마다 배웅 나온 제자, 영접 나온 관원 및 친구들과 시를 주고 받는 등 13일의 여정에서 상세한 기록을 많이 남겼다. 행사는 도산서원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에서 선생이 남긴 기록을 근거로 고지도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이뤄진다. 선생이 유수갰던 봉은사를 기점으로 육로 250여㎞를 12일에 걸쳐 걷고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옛길 70여㎞는 선박을 이용하는 식이다. 개막 행사로는 9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이광호 국제퇴계학회 회장 등의 강연이 열린다. 이어 광나루, 여주 기천서원, 충주 가흥창, 충청 감영, 청풍관아, 단양관아 및 영주 관아 등에서 퇴계학 연구자들이 주관하는 강연이 계속된다.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은 “퇴계선생의 마지막 귀향길을 따라 걸으며 선생이 남긴 삶과 정신적 가치를 널리 공유하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글·사진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Q. 400년 역사 해동화놀이 전승방안이 필요해요 A. 농촌축제 공모해 1억 2000만원 책정했습니다

    -한명석(경안동 통장협의회장) “역세권 개발과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로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도로 신속하게 집행달라.” 검토 경안동 소재 미집행시설은 총 63개 노선으로 사업 추진을 위해선 모두 약 1500억원이 소요되는 실정으로 현재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의 실효에 대비해 광주시 도시계획시설 재정비 수립 용역을 추진하려고 계약 중에 있으며 용역 결과에 따라 필요시설에 대한 사업비 확보, 실시계획인가 신청 등 관련 행정절차를 이행하고 필요시설에 대해 조속히 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하겠다. -한남기(경안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민간위원장) “광주~고향마을 구역 가로등과 횡단보도 등 사건 사고 예방과 교통혼잡을 줄이는 교통시설을 해달라.” 검토 해당 구간은 15개의 가로등이 설치돼 있으나 조도 상향을 위해 보안등을 5개 설치·교체했으며 가로등은 청소 예정이다. 야간 순찰을 병행해 미점등 조명을 파악, 보수할 예정이다. 횡단보도 등 노면표시 정비는 교통안전시설(노면표시 등) 단가공사 착공 이후 조치할 계획이다. 다만, 중앙고 굴다리~고향마을 구간은 광주역세권 도시개발사업 구간으로 관련부서와 협의해 조치할 계획이다. -오중근(퇴촌토마토연합회장) “토마토축제 기간 교통·주차문제 심각해 주차장에서 축제장 사이의 하천에 징검다리를 설치하면 좋겠다.” 검토 퇴촌면 오리 80번지 일원 징검다리 설치할 예정이다. 1억원 들여 지난달 실시설계했고, 이달 착공해 다음달 완공할 계획이다. -황수근(광지원리장) “광지원리 해동화놀이가 1605년 조선 선조 38년에 시작돼 400년 역사를 이어온 지역대표 민속놀이로 인정받고 있으나 도시화에 따라 전승단절 가능성이 우려돼 관광자원화를 통한 계승발전을 위해 무형문화재 지정 등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검토 농촌지역 주민들의 화합, 전통계승, 향토자원 특화 등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마을축제로 계승할 계획이다. 2019년 농촌축제 공모 신청해 사업비 1억 2000만원 책정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핵잼 사이언스] ‘핵인싸 냥냥이’ 릴 버브의 ‘메롱’, 분석해보니…

    [핵잼 사이언스] ‘핵인싸 냥냥이’ 릴 버브의 ‘메롱’, 분석해보니…

    ‘SNS 스타 고양이’로 유명한 ‘릴 버브’(Lil Bub)의 시그니처 표정에 대한 과학적 원인이 공개됐다. 마치 메롱을 하듯 혀를 살짝 내민 채 깜짝 놀란 표정으로 전 세계 애묘가들을 사로잡은 릴 버브는 인스타그램에서 200만 팔로워를 거느린 인기스타다. 사실 24시간 내민 귀여운 혀와 깜찍한 표정 뒤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숨겨져 있다. 2011년 6월 미국 인디애나의 한 시골 마을에서 암컷 들고양이로 태어난 릴 버브는 선천적으로 뼈 기형 장애가 있어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혀를 내밀어야 한다. 또 발가락이 정상적인 고양이보다 2개 더 많은데다 다리도 기형적으로 짧아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고 오래 걷기도 어렵다. 릴 버브가 남다른 기형을 갖게 된 원인을 찾기 위해, 독일 베를린에 있는 의료시스템바이올로지 연구센터가 릴 버브의 주인으로부터 혈액 샘플을 기증받아 유전적 구조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연구진이 릴 버브의 유전자 구조를 분석한 결과, 이 고양이에게는 두 가지 선천적 결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첫 번째는 악성 유아 골화석증으로, 뼈를 흡수하기 위한 세포의 기능부전으로 발생하는 유전적 질병이다. 이 질병이 진단될 경우 뼈의 형성과 재형성 과정의 손상으로 뼈가 부러지기 쉽고 성장 장애를 초래한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고양잇과 동물에게서도 악성 유아 골화석증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확인했으며, 이 질환 탓에 다리가 짧은 증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마치 '메롱' 하는 듯 혀를 밖으로 내밀고 있는 것 역시 아래턱 뼈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 것과 연관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로 발견된 선천적 결함은 다지증이다.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정상보다 더 많이 존재하는 선천적 기형인 다지증의 경우 선조부터 유전적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유명한 다지증 고양이는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플로리다에서 키웠던 발가락 6개의 고양이 ‘스노 화이트’가 있으며, 현재까지 스노 화이트의 후손으로 알려진 고양이는 총 54마리다. 연구진은 유전적 특징으로 보아, 다지증을 가진 릴 버브와 스노 화이트가 공통의 조상을 가졌을 확률이 높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우리는 릴 버브의 유전자 지도를 매우 보고 싶었다. 포유류는 뼈 형성과 같은 발달과정이 고스란히 몸에 보존돼 있기 때문에, 돌연변이의 원인을 찾아내면 이 희귀 질환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높일 수 있다고 가설했다”면서 “릴 버브의 게놈에서 발견한 특정 유전 질환들은 인간이 걸리는 희소병의 치료법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생명과학 분야 논문을 정식 출간 전에 수록하는 온라인 저널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먼저 공개됐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고용 성평등 방치한 공공기관 5곳

    고용 성평등 방치한 공공기관 5곳

    한국가스기술공사·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등 공기관 5곳3년 연속 고용 비율 평균 70% 미달…사업주 성명 등 공개한국가스기술공사,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한국원자력의학원, 중소기업연구원, 한국상하수도협회 등 공공기관 5곳이 고용 성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는 ‘세계 여성의 날’(8일)을 맞아 공공기관 5곳을 포함해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를 이행하지 않은 사업장 50곳 명단을 공표했다.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란 여성 고용 비율과 여성 관리자 비율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도록 유도해 고용상 성차별을 없애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2006년부터 공공기관과 50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했다. 지난해 기준 공공기관 338곳, 민간기관 1765곳, 지방공사·공단 43곳 등 총 2146곳이다. 이번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 미이행 명단에 포함된 사업장은 3년 연속 여성 고용 비율이 업종별·규모별 평균 70%에 미치지 못하면서 고용부의 적극적 고용개선 이행 촉구에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곳이다. 고용부는 이들 사업장의 명칭과 주소, 사업주 성명, 전체 노동자 수, 여성 노동자 수와 비율 등을 관보에 게재하고 6개월 동안 고용부 웹사이트에도 공개한다. 명단에 포함된 사업장은 조달청 우수조달물품 지정 심사 신인도 평가에서 감정을 받는다. 고용부는 올해부터 300인 이상 기업도 적극적 고용개선 대상 사업장에 포함키로 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고용상 남녀 차별 해소와 일·가정 양립 확산에 선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할 공공기업이 5곳이나 명단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정부는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의무 사업장의 범위를 더욱 확대하고 미이행 사업장에 대한 강력한 제재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열린세상] 우주의 국가 안보/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우주의 국가 안보/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아베 일본 총리는 국가 안보의 새 영역으로 우주를 꼽았다. 머나먼 곳으로 생각되던 우주 공간이 미래의 국가 안보 영역이 되고 이곳에서 전쟁의 승패를 가늠하게 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인데, 현재진행형이다, 우주 영역이 국가 안보와 직결되면서 일본을 비롯한 우주 선진국들이 우주 공간에 첩보위성, 자체 위치정보시스템(GPS) 인공위성, 상대방 인공위성을 격파할 로켓, 상대방 미사일을 요격할 레이저 시스템 등을 배치함에 따라 국가 안보, 즉 전쟁의 패러다임이 확 바뀌게 된다. 그런 능력이 없는 한국은 잘못하다가는 속수무책의 나라가 될 것이다. 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뀌면 변하는 패러다임을 따라가지 못하는 나라는 나라를 뺏기게 되고 그 국민은 승자의 국가에 속박돼 버린다. 미래를 알려면 과거를 상기해 보아야 한다. 충분히 쉬게 하여 언제든지 최고의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역참제도를 경영한 ‘징기즈칸의 기마 전술’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머나먼 동유럽 헝가리와 폴란드까지 쳐들어 가게 했다. 폴란드는 지금도 몽고군이 쳐들어올 때 높은 성채에서 불었던 나팔 소리를 관광객들에게 들려주는데, 기마전술의 속도전이라는 전쟁의 패러다임을 읽지 못했던 동유럽 국가들은 무방비로 공포스러운 몽고군의 습격을 받았던 것이다. 조선도 활과 창, 그리고 칼로 무장된 정예 군인이 있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조총이란 신무기에 속수무책 무너졌다. 조총의 시대로 변한 역사의 패러다임을 읽지 못한 선조는 도성을 버리고 북쪽 땅끝으로 피난해야 했다. 2019년 현재 우리는 미사일의 시대에 살고 있고, 이지스함이든 첨단 전투기든 GPS의 도움 없이는 정확한 위치 파악이 어렵다. 민간용이라도 정확도가 중요한데, 하물며 미사일 등 군사용 무기는 한 치의 오차가 있어서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한국은 자체 GPS가 없어 민간용이든 군사용이든 24개의 인공위성으로 연계된 미국의 GPS에 의존해 위치 정보를 얻고 있다. 민간용은 비교적 손쉽게 얻어 쓰고 있으나, 군사용은 미국이 판매한 무기체계에 한해 특정의 군사암호용 코드가 들어간 위치 정보를 획득해 쓰고 있다. 그런데 한국이 개발한 유도 미사일은 미국이 무한대로 허용해 준다는 보장이 없다. 한국이 개발한 무기 체계로 유사시에 자유롭고 정확하게 위치 추적을 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한국판 GPS가 있어야 목표를 정확히 찾아가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목표물을 파괴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러시아, 유럽, 중국, 인도, 심지어 자위대의 일본마저도 자체 GPS가 있는데 한국만 자체 GPS가 없는 실정이다. 미국의 GPS에 의존해 살던 일본마저도 그동안 착실히 미래를 준비해 와 2018년 11월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오차 범위가 6센티미터이니 오차 범위가 거의 없이 타깃을 추적한다는 말이다. 그동안 일본은 일본 열도와 호주 상공을 숫자 ‘8’ 형태로 순환하면서 산속이나 고층빌딩 사이에서 스마트폰이 잘 터지지 않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본판 GPS, 즉 ‘준천정위성시스템’을 구축한다고 대외적으로 홍보해 왔다. 4개의 위성으로 GPS의 기본이 완성되자마자 전투기와 군함, 잠수함, 헬리콥터에 이르기까지 모든 무기 체계에 일본판 GPS 정보를 활용한다고 요미우리신문에 1월 16일자 1면 톱으로 공식 선언했다. 앞으로 3개의 인공위성이 더 올라가 7개의 인공위성으로 연계되면 오차범위가 1센티미터로 줄어든다고 하니 오차가 없다는 말이고, 일본 미사일의 공격 정확도는 가공할 능력을 갖게 된다. 한국은 2034년을 목표로 한국형 GPS, 즉 KPS를 구축한다고 계획을 세워 놓고 있지만, 예산이 없어 아직 시작도 못한 단계다. 심지어는 2038년으로 미뤄질 가능성도 제기돼 시간이 늦어도 너무 늦다는 생각이 든다. 계획대로 진행돼도 예산 문제와 기술상의 문제로 우주 개발이라는 것은 더 늦어지는 것이 우주 선진국들의 경험이다. 그러니 앞당겨 실행해도 2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된다. 향후 20년의 시간대에 우주의 국가 안보 상황이 매우 빠르게 변하게 될 터인데, 후손의 미래와 우주의 국가 안보를 위해 시간을 하루라도 앞당겨 한국형 GPS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 오로지 국가·민생 위하여… 18년 유배생활서 ‘실사구시’ 꽃피우다

    오로지 국가·민생 위하여… 18년 유배생활서 ‘실사구시’ 꽃피우다

    다산은 유배된 후 할 일이 없어 고금을 연구하고 민생 문제와 국가의 대계에 유념하여 토론하고 저술하였다. 그는 근본적인 것을 규명하여 실제 사용할 수 있는 학문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저술은 모두 후세의 법이 되었던 것이다. -황현, ‘매천야록’ 권1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조선조 후기 실학을 집대성하고, 민과 국가가 처한 위기를 타개하고자 개혁 사상을 내세운 실학자다. 그가 남긴 저술과 제시한 개혁안이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새로운 차원에서 기억되고 호출되고 있는 것은 어째서일까. 이는 그가 남긴 학문적 성취가 현재까지 남아 현재로 이월되었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의 학술적 역량과 개혁적 사유는 ‘여유당전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매천이 다산의 저술을 두고 현실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전범으로 주목한 것은 다산의 실사구시 정신을 주목한 것일 터이다.#시대를 아파하고 민을 노래한 거인 다산은 실학자이기도 하지만, 그가 남긴 시문은 여느 시인과 달리 현실 문제를 소재로 포착하고 있어 진한 울림을 준다. 더욱이 다산의 남시문은 그의 학술적 성취와 안팎을 이룰 정도로 조화를 이룬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요, 시대를 슬퍼하고 세속을 개탄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며, 높은 덕을 찬미하고 나쁜 행실을 풍자하여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한 것이 아니면 시가 아니다. -‘다산시문집’ 권21, ‘아들 연아(淵兒)에게 보냄’ 다산은 일찍이 “나는 조선사람. 조선시를 즐겨 지으리라”라고 해 ‘조선시 선언’을 주장하고, 한편으로는 한시 특유의 음풍농월과 달리 민의 삶을 포착하여 민을 위한 비가(悲歌)로 표출한 바 있다. 나라와 시대를 걱정하고 권선과 징악을 풍자하는 시만이 진실한 시라고 주장한 다산의 사유 속에는 항상 민과 나라가 자리잡고 있었다. 다산은 다른 글에서 “백성들에게 혜택을 주려는 마음이 없는 자는 시를 지을 수 없다”고 단언할 정도로 매우 단호한 문학인식을 보여 줬다. 그 문학적 단호함은 ‘애절양’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군적을 만들어 군포(軍布)를 거두는 폐단을 고치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모두 죽을 것’이라고 확언하면서 ‘애절양’을 인용한 바 있다. ‘애절양’은 조선조 후기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군포 착취로 농민이 스스로 자신의 남근을 자른다는 비참한 내용을 담은 한시다. 다산은 ‘경세유표’ 앞머리에서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야 말 것”이라고 발언하고 있거니와, 이는 남근을 스스로 자르는 비참한 현실을 개혁하려는 의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자 당대 현실의 정확한 진단이다.#좌절을 딛고 고뇌 속에 꽃핀 창조 다산은 유배 생활에서 숱한 좌절을 겪지만, 그 상황에 굴하지 않고 학단을 만들어 제자를 기르는 한편 그들의 학문적 역량을 빌려 저술활동을 하고 개인적 좌절도 이겨 내었다. 그는 유배 기간 내내 학문적 고뇌 속에 창조적 예봉을 마다하지 않았다. ‘경세유표’를 비롯해 ‘목민심서’와 ‘흠흠심서’ 등 500여권의 방대한 저술은 대부분 유배 시기에 구상하거나 저술했다. 학술적 두 축인 경세학과 경학의 성취가 모두 이 시기에 이루어졌음은 물론이다. 다산은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창조적 시간으로 활용해 학술적 역량을 꽃피운 것이다. 유배를 마친 이후에도 다산은 저술을 보완하고 수정을 거듭하며 자신이 구상한 사회개혁과 새로운 국가건설의 대안을 녹여 내었다. 하지만 자신의 학술적 성취가 유명무실해지는 것을 항상 두려워했다. 내 죽은 뒤에 아무리 정결한 희생과 풍성한 안주를 두고 제사를 지낸다 하여도, 내가 진정 흠향하고 기뻐하는 것은 내 책 한 편을 읽고 내 책 한 장을 베껴 주는 일보다는 못할 것이니, 너희는 그 점을 기억해 두어라. -‘다산시문집’ 권21, ‘두 자식에게 보여 주는 훈계’ 유배지에서 학술 교류가 없던 상황이다 보니 자신의 성취를 외면하지 말 것을 자식에게 당부하지만, 언젠가 자신의 저술을 알아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는 민을 위하고 국가를 혁신하는 대안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산의 저술은 민과 국가를 자양분으로 사고한 학술적 꽃이다. 무엇보다 다산 스스로 유배지에서 넉넉한 민의 품성을 재발견하고, 이를 기반으로 국가를 개혁하려 한 역사적 전망을 지녔기 때문이다. 다산이 시문에서 ‘민’을 중심에 놓고 노래한 것이나, 사서삼경과 같은 경전을 재해석한 저술과 ‘경세유표’와 같은 경세서에서 국가를 중심에 놓고 혁신적 안을 마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다산은 ‘자찬묘지명’에서 ‘낡고 오랜 우리 조선을 새롭게 혁신’(新我之舊邦)할 것을 주장했다. ‘경세유표’ 머리글에서는 “지금 곧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야 말 것이다”라는 발언을 거리낌 없이 했다. #난세에 호출되는 ‘여유당전서’ 다산의 저술은 한국학의 거점이자 19세기 학술의 뛰어난 성과다. 그의 저술은 이후 역사 공간에서 비상한 주목을 받는다. 과거사가 아닌 현재진행의 역사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호출된다. 고종은 부강정책에 예의주시하여 경장을 서둘렀다. 그러나 많은 신하 중에서 누구 하나 의지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을유년과 병술년 사이에 ‘여유당집’을 올리라고 하였다. -‘매천야록’ 권1 고종이 부국강병을 위해 다산의 저술을 기억한 것은 새로운 국가체제의 구상에 필요한 대안을 다산의 경세서에서 찾으려 한 것임은 물론이다. 시대의 호출에 다산의 저술이 부활한 것이다. 다산의 혁신적 사유와 개혁적 여러 안들은 갑오농민전쟁 시기에도 다시 주목을 받는다. 1930년대 실학 연구의 선구자인 최익한은 ‘강진읍지’를 인용하면서 전봉준, 김개남 등의 갑오농민군 지도자들이 ‘경세유표’를 활용하였음을 밝힌 바 있다.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 우리는 정약용의 저술이 역사적 변혁기에 재발견되고 호출하고 있는 점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다산의 저술은 일제강점기에 이월돼 조선학 운동을 추동하는 기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1930년대 중반 정인보, 안재홍, 홍명희 등은 ‘신조선사’라는 출판사에서 ‘여유당전서’와 ‘담헌서’ 등을 출간하면서 조선학 운동을 전개했다. 이는 근대적 학술이 식민지 조선에서 본격적으로 전개할 수 있도록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식민지학에 대응한 자국학의 정립에 방점이 있다. 자국학의 구체적 학술적 성과에 ‘여유당전서’를 그 중심에 둔 것은 지금의 한국학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처럼 다산의 저술은 시공을 넘어 수시로 기억된다. 진재교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 ■ 여유당전서는 다산의 저술 정리한 문집 필사·목판본 등으로 간행 다산의 저술은 일찍이 필사본과 목판본, 연활자본 등으로 유통됐다. 다산의 자제와 제자들은 문집 간행을 위해 원고본을 만들었지만 500권 100책에 이르는 저술은 조선조가 끝날 때까지도 간행하지 못했다. 그의 저술 중에서 실용적인 문헌은 19세기까지 필사본으로 유통됐지만, 공식 출판은 19세기말 목판본인 ‘이담속찬’이 유일하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와 일부 학술단체의 일본인들이 다산의 저술을 필사하고 연활자로 간행한 바 있고 이후 장지연, 최남선, 정인보 등 지식인들은 다산의 저술을 재발견해 일부 저술을 연활자로 간행했다. 다산 서거 100주년을 전후로 1934~38년 신조선사에서 154권 76책 ‘여유당전서’를 간행했다. 이 ‘여유당전서’는 정약용 스스로 구상한 체재와 다르게 7집 체재로 돼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는 일찍이 ‘목민심서’와 ‘경세유표’를 번역했고 1982~94년 ‘여유당전서’ 중에서 시문집 22권 10책을 국역 간행했다.
  • [황제의 옥새1]일제 맞서 조선 구하려는 두 명의 서양인

    [황제의 옥새1]일제 맞서 조선 구하려는 두 명의 서양인

    올해는 3·1운동 발발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서울신문은 100주년 기획 시리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국인 독립운동가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을 주인공으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들 소설은 일제 병합 직전 조선을 배경으로 베델이 조선인을 위해 기꺼이 모험에 나서는 내용입니다. 1900년대 초 대한제국을 배경으로 하는 거의 유일한 해외 소설이어서 사료적 가치도 큽니다. 서울신문은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출간·원제 The cat and the king)에 이어 ‘황제의 옥새’(1914년 출간·원제 The Great Cardinal Seal)를 연재 형태로 소개합니다.다음은 러일전쟁(1904~1905)이 끝난 뒤 ‘조선의 형제’를 자처하며 한반도 침탈에 나선 일본이 벌인 일들에 대한 기록이다. 또 수백년 간 조선의 왕들이 비밀리에 간직해 온 유물이자 종종 왕국에서 위대한 일을 해 낸 옥새에 대한 비화이기도 하다. <제1장> 헝클어진 곱슬머리 중년 여인 한때 명쾌하고 정곡을 찌르는 지혜가 가득했지만 지금은 얼간이가 된 나(이 소설의 두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미국인 빌리)는 하등 관계도 없는 작은 나라가 위험에 처하자 조상의 지혜가 담긴 격언에 도전장을 던졌다. 바로 “불에 데인 개는 불을 무서워한다”라는 말을 거스르기로 한 것이다. 이 말은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거나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 본다”처럼 수많은 이들에게 회자된다. 하지만 나는 이 의견에 반대한다. 개도 개 나름이고 불도 불 나름이니까. 내가 아는 ‘해피’(Happy)라는 이름의 개가 있다. 전에 자동차에 치어 눈과 다리를 다친 적이 있다. 그런데 휘발유로 움직이는 마차가 또 한 번 해피에게 달려간다고 하자. 과연 그 녀석은 괴물을 보고 저 멀리 도망깔까. 아니다. 남은 3개의 다리와 한 쪽 눈으로 다시 한 번 그놈과 맞부딪히려고 할 거다.나와 베델은 그런 부류의 인간이다. 우리는 러일전쟁이 끝난 뒤부터 ‘조선의 형제’를 자처한 일본이 대한제국에 지른 불에 심하게 데였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불 속으로 뛰어들 생각이다. 또 한 번 크게 다칠테지만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우둔하지만 행복하고(happy) 유쾌한 개니까. 그 불이 너무 매혹적이어서 가만 보고만 있을 수 없으니까. (번역자주: 소설 속 화자인 빌리가 ‘불에 심하게 데였다’고 말하는 것은 이 소설의 전편인 ‘황제 납치 프로젝트’에서 두 주인공 베델과 빌리가 조선의 황제를 중국으로 망명시켜 을사늑약 체결을 막으려다가 실패한 것을 뜻합니다.)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선조들의 지혜를 거스르는 건 분명 어리석은 일이다. 오직 우리처럼 바보같고 혈기왕성한 청년들만 이런 짓을 한다. 나는 집(뉴욕 브루클린 소재 고급 아파트) 근처 작은 도서관에서 저 아래 아파트에 사는 여자가 축음기로 ‘겨자가 너무 많아요’(20세기 초 발매된 미국 재즈음악)를 듣고 있을지 가늠해보고 있었다. 이곳은 너무도 평화롭고 무료했다. 문득 내 오랜 친구 베델이 슬픔에 잠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조선)에서 다시 한 번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려고 마음먹은 것 같아 걱정이 됐다. 이제 다시 한 번 그를 도와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우리는 친구니까.흔히 보험업자들은 증서 뒷면에 “신의 행위나 화재, 홍수, 공공의 적의 도발” 등에는 지불 의무가 없다는 면책 조항을 적곤 한다. 과연 이들은 일본에게 점령당한 조선 땅으로 다시 들어가 분란을 일으키려는 우리를 받아줄까.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럴 리 없겠지. 몇 년 전 우리는 조선의 황제(고종)를 중국 상하이로 모셔가려고 했다. 나와 소녀(전편에 등장하는 러시아 스파이), 베델은 황제와 함께 서울 성벽을 넘어 자유를 향해 달아나다가 앞에서 소개한 격언이 말해 주던 일(고종이 일본에 지레 겁을 먹고 조선 탈출 직전 망명을 포기)을 실제로 겪었다. 우리가 기획한 ‘황제 납치 프로젝트’는 수포로 돌아 갔다. 이것이 우리의 첫 번째 모험이었다. 일부 아는 분도 있겠지만 나는 최근 이 이야기를 잡지에 발표했다. (번역자주: 이 소설의 전편인 ‘황제 납치 프로젝트’는 1912년 12월 미국의 ‘포퓰러 매거진’에 실렸습니다.) 베델은 조선에서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발간하며 일본을 지독하고도 신랄하게 비난했다. 일본은 늘 그를 감시했다. 영국 대사관을 압박해 징역 1년형을 선고받게도 했다. 그는 중국 상하이에서 옥살이를 했다. 하지만 석방되자마자 서울로 돌아와 신문 되살리기에 열을 올렸다. 끝없이 비틀거리던 제국의 주인(고종)이 한반도를 빠져 나가 전 세계를 상대로 일본을 비난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번역자주: 실제로 베델은 1907~1908년 영국 대사관에서 두 차례 재판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재판에서는 6개월 근신형을, 두 번째 재판에서는 3주간 금고형 뒤 6개월 근신형에 처해졌습니다. 당시 조선에는 영국인 구금시설이 없어 베델은 두 번째 재판 뒤 중국 상하이에서 옥살이를 했습니다.) ‘황제의 옥새’는 2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배틀트립’ 한현민·크리스티안, 서대문형무소 방문..뭉클 소감

    ‘배틀트립’ 한현민·크리스티안, 서대문형무소 방문..뭉클 소감

    ‘배틀트립’ 한현민, 크리스티안이 서대문형문소에 방문, 애국지사들의 애환을 가슴으로 마주한다. KBS 2TV 원조 여행 설계 예능 ‘배틀트립’이 신학기를 맞아 3월 한달 간 ‘세상이 학교다’ 특집을 선보인다. 오늘(2일)부터 2주에 걸쳐 방송되는 ‘세상이 학교다’ 특집 1탄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역사 전문가 설민석이 여행 설계자로 나서, 서울과 부산에서 각각 ‘설민석의 3식 여행’을 선보인다. 서울 편 여행 체험단으로는 모델 한현민과 방송인 크리스티안 부르고스, 부산 편은 배우 정시아와 오승은이 출연할 예정. 이날 한현민과 크리스티안은 설민석의 설계에 따라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 민주 항쟁에 힘썼던 대한민국 선조들의 애환과 의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바로 3.1운동을 주도했던 유관순 열사가 수감되고 순국한 장소로 널리 알려진 서대문형무소 역사 전시관에 방문한 것. 두 사람은 5천매에 달하는 수감자들의 사진과 비좁은 수용시설을 숙연하게 살펴보는가 하면, 미처 몰랐던 역사적 사실들 앞에 놀라움을 감추기 못했다. 뿐만 아니라 한현민과 크리스티안은 서대문형무소에서 가장 무서운 장소로 꼽히는 지하 고문실에 입성해 탄식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옴짝달싹 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가둬두는 고문인 ‘벽관’을 체험한 한현민은 “너무 잔인하다. 다른 것들도 심하지만 이게 제일 고통스러울 것 같다”며 울분을 쏟아냈다. 신장이 190cm에 달하는 한현민에게는 들어가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던 것. 크리스티안은 투어를 마친 뒤 서대문형무소에 걸려있는 대형 태극기을 보며 “태극기 멋있다”며 뭉클한 소감을 남겼다고. 이에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외국인의 마음에도 먹먹한 울림을 안긴 ‘설민석의 3식 투어’에 궁금증이 증폭된다. 한편, KBS2 ‘배틀트립’은 2일 오후 9시 15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김한솔 도운 ‘천리마민방위’, ‘자유조선’으로 이름 바꾸고 선언문 올려

    김한솔 도운 ‘천리마민방위’, ‘자유조선’으로 이름 바꾸고 선언문 올려

    2017년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과 가족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다고 주장해 온 단체 ‘천리마민방위’가 1일부터 이름을 ‘자유조선’(FREE JOSEON)으로 바꿨다. 이날 이 단체 웹사이트 주소(http://www.cheollimacivildefense.org/)로 들어가면 전날까지와는 다르게 엠블럼에 새겨진 단체명이 ‘천리마민방위’에서 ‘자유조선’으로 바뀌었다. 엠블럼 디자인도 모양은 그대로지만 색상 등 일부 달라졌다. 아울러 이 단체는 이날 사이트에 ‘자유 조선을 위한 선언문-2019년 3월 1일’이란느 제목의 한글·영문 글과 함께,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한 여성이 흰색 저고리와 검은 치마를 입고 한국의 고궁으로 보이는 곳에서 선언문을 낭독하는 7분 35초 분량의 영상을 올렸다. 선언문은 “100년 전 오늘, 선조들은 무자비한 박해와 견딜 수 없는 치욕의 구조를 전복하고자, 독립과 자유를 외쳤다”면서 ‘북한을 대표하는 단일하고 정당한 임시정부 건립’을 선언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과거 독재와 억압의 상처를 지닌 국가들’, ‘이상을 함께하는 전 세계 동지들’, ‘노예가 되기 싫은 사람들’ 등에게 연대와 동참을 요청했다. 지난 25일 이 단체는 ‘통지해드립니다’라는 글을 통해 “이번 주에 중대한 발표가 있겠다”라고 예고한 바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그때 그날의 함성과 눈물 따라 가볼까

    그때 그날의 함성과 눈물 따라 가볼까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된 해다. 순국선열들의 독립정신과 활약상을 되새길 전국의 역사적 장소들이 후손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독립운동의 흔적이 짙게 배인 7개 지역을 3월에 가볼 만한 곳으로 추천했다. 우리 근대사가 기억하는 선조들의 뜨거운 함성과 눈물에 귀 기울여볼 때다.① 서울 독립문… 역사박물관·경희궁 등 일제강점기 흔적 서울에는 도심 곳곳에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등 시대별로 서울의 변화상을 전시한다. 특별전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서울과 평양의 3·1운동’도 열린다. 박물관 옆 경희궁은 아픈 역사가 서린 궁궐이다. 인현왕후와 혜경궁홍씨 등이 거주했던 궁은 일제가 집중적으로 파괴한 대상이었다. 경희궁을 나서면 강북삼성병원 내에 있는 경교장이 금방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이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했던 곳이다. 도심재생예술을 입은 돈의문박물관 마을, 아관파천의 아픔이 서린 정동길 등으로 시간 여행이 이어진다. 3·1운동 열사들이 옥고를 치른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독립선언서를 전 세계에 타전한 앨버트 테일러가 살던 행촌동 딜쿠샤 등을 함께 둘러보면 좋다.② 서울 망우리공원… 만해 한용운·위창 오세창 넋 기린 곳 망우리공원은 뜨거운 역사를 품은 야외박물관이다. 만해 한용운, 위창 오세창, 호암 문일평, 소파 방정환 등 애국지사들이 이곳에 잠들었다.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연보비를 읽다 보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지난해 9월엔 ‘유관순열사 분묘합장표지비’가 세워졌다. 이곳은 20년 전까지 망우리공동묘지로 불렸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약 83만 2800㎡(25만여평) 규모로 문 열어 1973년까지 운영됐다. 2만 8500기가 넘는 무덤이 있었지만 꾸준히 이장해 현재 7400여기가 남았다. 이장으로 생긴 빈자리에는 나무를 심었고 울창한 생태 공원으로 변신했다. 숲이 우거져 고즈넉한 곳에 5.2㎞ ‘사색의 길’도 조성됐다. 망우리공원에는 화가 이중섭, 시인 박인환, 소설가 계용묵, 조각가 권진규 등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 묘지도 있다.③ 충북 괴산 홍범식 고택… 1919년 1500명의 함성 생생히 독립운동가 홍범식은 대한제국이 1910년 한일병탄으로 국권을 빼앗기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결했다. 그는 아들에게 “죽을지언정 친일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마라”는 유서를 남겼다. 아버지의 유훈을 받은 소설가 벽초 홍명희는 고향 괴산에서 3·1운동을 주도했다. 홍범식 고택에 들어서면 홍명희가 3·1운동을 준비했다는 사랑채를 만난다. 그의 주도 아래 1919년 3월 19일 괴산산막이시장 거리에서 1500여명이 목 놓아 만세를 외쳤다. 정면 5칸, 측면 6칸의 ‘ㄷ자형’ 안채는 조선 후기 중부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고택을 둘러봤다면 진주성대첩의 명장 김시민 장군을 모신 충민사, 괴산호의 절경이 아름다운 연하협구름다리 등을 함께 둘러봐도 좋다.④ 충남 천안 유관순 생가와 7개 전시관 있는 독립기념관 천안에는 독립운동의 함성과 결의를 되새길 수 있는 곳이 여럿 있다.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를 살펴볼 수 있는 독립기념관이 대표적이다. 높이 51m ‘겨레의 탑’과 동양 최대 기와집인 ‘겨레의 집’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우리 역사를 시기별로 전시한 7개 전시관은 다양한 문헌자료와 체험시설로 방문객을 맞는다. 꼼꼼히 둘러보려면 5시간 정도 걸리니 미리 동선을 짜서 가는 것이 좋다. 주변 숲과 호수가 어우러진 캠핑 공간에는 꼬마열차, 어린이방 등 편의시설이 있어 한나절 가족 소풍지로도 손색이 없다.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기억할 수 있는 병천에는 유관순 열사 생가가 있다. 유관순 열사가 체포돼 옥사할 당시 전소된 가옥과 헛간을 복원했다. 가까운 곳에 그의 영정을 모신 기념관이 있다.⑤ 전남 완도 소안도 항일운동기념관… 항일운동의 성지 완도 본섬에서 남쪽으로 한참 떨어진 소안도에는 1년 내내 태극기가 휘날린다. 함경 북청, 부산 동래와 함께 항일운동의 3대 성지로 불릴 만큼 치열한 저항정신을 보여준 땅이다. 소안도에 가려면 완도 화흥포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 10~12회 운항하는 배편을 이용해야 한다. 여객선 이름부터 대한호, 민국호, 만세호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에 가면 이곳이 어떻게 항일운동 성지가 됐는지 알 수 있다. 당사도등대 습격사건과 사립소안학교 설립 등을 알게 된다. 인구 6000여명밖에 안 되는 섬에서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유공자가 20명, 기록에 남은 독립운동가가 89명에 이르는 사실도 소안도가 항일운동의 성지였음을 뒷받침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록수림과 몽돌해변 등도 소안도를 방문해야 할 이유다.⑥ 경북 안동 경북도독립운동기념관… 독립지사의 투쟁사 안동은 시·군 단위로 전국에서 독립 유공자(약 350명)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1894년 갑오의병부터 1945년 광복까지 줄기차게 이어진 안동과 경북 독립지사의 투쟁사를 문헌과 자료, 영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유학이 뿌리 깊은 지역이지만 의병활동이 실패한 뒤 신학문을 받아들인 혁신유림이 생겨났다. 이들은 국권을 빼앗긴 후 만주로 건너가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일제의 고문시설인 벽관 체험 등 체험 프로그램이 많아 흥미롭다. 기념관을 나서면 독립운동 성지로 알려진 내앞마을이다. ‘만주벌 호랑이’로 불린 일송 김동삼 생가 등이 있다. 안동의 명소 중 빼놓을 수 없는 곳으로 임청각도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의 생가다. 가까운 월영교의 밤경치도 놓치면 아깝다.⑦ 경남 밀양 의열기념관…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도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밀양은 영화 ‘암살’을 통해 재조명된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의 고향으로 항일 독립운동 요람이다. 의열단은 식민지배자와 민족반역자 처단, 조선총독부 등 식민지배기관 파괴에 집중했다. 의열단원 최수봉이 밀양경찰서를 폭파하고, 나석주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지는 등 모든 투쟁의 배후에 김원봉이 있었다. 김원봉이 태어난 집터에 지난해 의열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단정하고 아담한 건물로 들어가면 영상과 자료들로 그의 삶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일대는 밀양의 만세운동으로부터 태극기 변천사 등을 살펴볼 수 있는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로 꾸며졌다. 이 지역 최초 만세운동이 일어난 밀양 관아지와 보물 147호 밀양 영남루도 독립운동과 연결되는 장소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건강 미인이 대세… 그녀들이 뛴다

    건강 미인이 대세… 그녀들이 뛴다

    이화(梨花)의 여학생들은 며느리로 삼지 않겠다는 풍조가 생겨난 적이 있다.1890년 우리나라 첫 여성 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이 처음으로 체조 교육을 시작할 무렵, 그야말로 파문이 일었다. 손을 번쩍 들고 다리를 쫙 벌리며 하는 운동에 놀란 학부모들은 하인을 시켜 딸들을 업어오기에 바빴고, 가문을 망쳤다며 가족회의를 여는 집안도 많았다. 조선시대에 수도를 관할하는 관청이었던 한성부에서는 이화학당에 체조 교육을 즉각 중단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구한말의 시각으로선 이화학당의 체조 교육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선조들은 상상도 못했겠지만 강산이 13번 바뀐 현재 운동하는 여성들은 가히 역대 최대라 할 정도로 늘어났다.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8 국민생활체육참여실태 조사’(전국 17개 시도 9000여명 대상)에 따르면 1994년 처음 조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여성의 규칙적 생활체육(주 1회 이상·1회 운동 시 30분 이상) 참여 비율이 남성을 앞질렀다. 2014년에는 52.0%였던 여성의 규칙적 생활체육 참여 비율은 매년 꾸준히 증가하더니 2018년에는 62.8%까지 치솟았다. 4년 사이에 10.8% 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2018년 기준으로 61.6%인 남성보다 여성이 1.2% 포인트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남성의 규칙적 운동 참여 비율도 2014년(57.5%)보다 4.1% 포인트 늘었지만 여성의 증가폭이 더 가팔랐다. 연령대별 수치를 보면 40~50대 여성의 규칙적 생활체육 참여가 도드라졌다. 나머지 나이대에서는 남성의 참여율이 더 높았지만 40대 여성 69.8%, 50대 여성 70.0%가 주 1회 이상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고 응답해 남성을 제쳤다. 남성 40대는 61.8%, 50대는 59.0%였다. 특히 여성 50대는 남녀 통틀어 전 연령대 중 주 1회 이상 운동 참여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들이 최근 1년간 한 번이라도 참여한 경험이 있는 체육활동 종목 1위는 걷기(49.0%)이며 2위는 등산(23.7%), 3위 체조(11.2%), 4위 수영(10.7%), 5위 헬스(7.9%)였다. 남성의 1~5위 참여 종목은 걷기(32.6%), 등산(30.6%), 축구(16.9%), 자전거(15.9%), 헬스(14.7%) 순이었다.본래 여성은 노인, 장애인과 더불어 전통적으로 생활체육 참여도가 낮은 집단이었다. 여성이 여가 시간에 운동을 즐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고, 여성들이 즐길만한 운동이 많이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신이나 육아 때문에 생활체육을 중간에 그만둬야 하는 상황도 나왔다.하지만 최근 몇 년간 요가나 필라테스, 에어로빅, 라인·줌바 댄스 등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스포츠가 널리 보급되면서 운동하는 여성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사설 교습소는 물론이고 각 지자체에서 운영 중인 스포츠센터에도 이러한 운동 프로그램들이 계속해 늘고 있는 추세다. 몸매 관리나 다이어트, 건강을 위해서 꾸준히 땀을 흘리는 것이 여성 사이에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은 것도 생활체육 참여율 상승에 한몫하고 있다. 이연종 세명대 생활체육학과 교수는 “옛날에는 운동이 배부른 사람들의 취미 활동으로 여겨졌던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다르다. 적은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시설이 상대적으로 늘어났다. 여성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 종류도 많다”며 “실제로 (지역 주민을 위한) 생활체육 특강을 나가보면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이 할아버지들에 비해 많이 참석하는 것이 느껴진다”고 말했다.대한체육회에서 3년째 운영 중인 ‘미(美)채움 프로젝트’도 여성의 생활체육 참여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여성 체육활동 지원사업’이라고도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임신기(순산운동), 출산기(산후 회복운동), 육아기(틈새운동), 갱년기(갱년기 극복운동) 등 생활체육에 참여하기 어려운 여성의 4단계 생애주기에 맞춰 스포츠 프로그램을 보급하고 있다. 2017년 4개 시도 50개소에서 시작해 2018년도에는 9개 시도 66개소로 늘었다. 2017년 6700명이던 연간 누적 참여 인원이 2018년에는 연간 1만 2174명으로 늘었다. 체조나 스트레칭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뤄지며 수강료는 무료다. 2019년에는 전국에 80~90개소로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육아종합지원센터나 건강가정지원센터에 연락하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체육에 대해 긍정하는 쪽으로 여성들의 인식 변화가 있었고, 저렴한 비용에 운동을 즐길 수 있는 공공 스포츠클럽 등의 프로그램이 많아진 것 또한 영향을 미쳤다”며 “어르신을 대상으로 하는 생활체육 프로그램을 보면 할머니들께서 적극적으로 참석하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이재구 삼육대 생활체육학과 교수(한국체육정책학회 회장)는 “요즘 여성들은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면서 홀로 스트레칭 같은 맨몸 운동을 즐기고 있다. 야외에서 운동을 하면 햇살이 따갑고, 화장 고치는 것도 신경 쓰이는데 집에서 유튜브로 운동을 하면 이러한 문제가 해결된다. 더군다나 요가나 스트레칭은 몸매 관리에도 좋다”며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배구의 김연경,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상화처럼 여성 스포츠 스타의 활약을 보면서 꼭 그 해당 스포츠는 아니더라도 무언가 운동을 해야겠다는 영향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구두를 주로 신고 다니는 여대생들을 위해 대학교에서 운동화를 빌려주거나 체육복으로 환복할 수 있는 탈의실을 운동장 옆에 만드는 등의 운동 여건이 좋아지면 여성의 생활체육 참여가 더욱 늘어날 수 있을 것 같다”며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는 유교적인 생각이 아직까지도 우리사회에 남아 있는데 이것 또한 개선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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