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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 석공예 물려줄 기술·경험 많은데… 사람이 없네요”

    “전통 석공예 물려줄 기술·경험 많은데… 사람이 없네요”

    “석공예가 중요한 전통 예술인데 배우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우수 숙련기술자’로 선정한 석공예 장인(匠人) 김진명(67)씨는 19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선조들의 뛰어난 석공예 기술이 석굴암과 마애삼존불 등 자랑스러운 문화재를 많이 남겼는데 서툰 망치질에 상처 난 손으로 석공예를 배우던 우리 때와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의 작업장은 충남 아산시 배방읍에 있다. 집안이 어려워 중학교만 졸업하고 석공예를 배운 지 50년이 훌쩍 넘었다. 석공예로 유명한 충남 보령이 고향이다. 김씨는 “고등학교를 못 가 상심하던 차에 서울 망우리(현재 망우동) 사촌형 석재 공장에 취직했다”며 “망치질이 서툴러 정을 쥔 손에 상처가 나 피를 자주 흘렸는데 졸 때마다 파리떼가 꼬였다”고 회고했다. 이후 망우리가 개발되며 공장이 이전한 아산에 정착했다. 김씨는 얼마 후 독립해 자신의 이름을 따 석재사를 차렸고, 전국에 500여점의 불교작품 등을 남겼다. 그는 “사찰 등 불교계의 주문이 많지만 공공기관에서 조형물도 많이 의뢰한다”고 말했다. 석등과 석탑뿐 아니라 두꺼비, 거북이 등 동물상까지 다양하다. 예산 윤봉길 의사 어록탑, 서울 올림픽공원에도 그의 작품이 있다. 김씨는 자신의 최고작으로 천안 법왕사 ‘지장보살 마애석불’을 꼽았다. ‘월정사 9층 석탑’을 똑같이 재현한 예산 광덕사 9층 석탑도 애착이 크다. 제작기간이 길게는 1년도 걸린다. 김씨는 “그라인더 등 제작 공구가 많이 발전했지만 손을 다 거쳐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라며 “우리 민족의 혼이 배어야 하는 것이어서 모두 국내산 돌을 쓴다”고 했다. 그는 2017년 충남도 기능경기대회 금메달, 이듬해 전국기능대회 2위 등을 했다. 문화재수리기능자로 ‘석축·한옥 석시공 매뉴얼’, ‘조선시대 왕릉 석인상의 크기에 관한 연구’ 등 후진을 위한 책도 저술했다. 김씨는 “전국에 산재한 모든 석공예 작품을 책으로 정리할 생각”이라며 “많지 않은 장인들이 석공예 명맥을 겨우 잇고 있는 상황이어서 내 현장 경험과 기술을 모두 후진 양성에 쏟아붓고 싶다”고 말했다.
  • 스토킹 검경 협의체 신설한다… ‘가해자 즉각 분리’도

    스토킹 검경 협의체 신설한다… ‘가해자 즉각 분리’도

    윤희근 경찰청장이 ‘신당역 스토킹 살해 사건’과 같은 스토킹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해 검경 협의체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즉각 분리하기 위해 가해자 유치 후 법원 판단을 받아 보는 ‘긴급잠정조치’ 신설도 추진된다. 윤 청장은 19일 이원석 검찰총장과의 면담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대검찰청은 경찰청, 지역 단위에서는 지청과 해당 경찰서가 협의체를 만들어 (스토킹 범죄) 발생 초기부터 같이 논의해 일을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잠정조치, 구속영장 신청 때 서류를 통해 검경이 소통했다면 이제는 스토킹 신고가 들어왔을 때부터 검경이 긴밀하게 논의해 처리 단계를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윤 청장은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고 잠정조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훨씬 현실을 알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청장은 또 전국 경찰이 수사 중이거나 불송치 결정한 스토킹 사건을 전수조사해 보복위험이 있는지, 피해자 보호조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전수조사 대상은 서울 기준으로만 약 400건 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범죄 위험도 판단을 위한 체크리스트도 정교하게 만들어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신변보호)를 적극적으로 실시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법 개정이 필요한 장기 과제로 긴급잠정조치 신설, 긴급응급조치 위반 시 과태료(1000만원 이하) 대신 형사 처벌, 보호조치 결정 구조를 기존 3단계(경찰→검찰→법원)에서 2단계(경찰→법원)로 줄이는 방안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기존 법은 긴급응급조치(선조치·사후승인)와 잠정조치(법원 결정 후)를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 긴급잠정조치라는 새로운 제도를 추가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잠정조치 4호를 신청해 가해자를 유치하려고 해도 법원 결정까지는 2~5일이 걸리는 만큼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방법으로 먼저 유치장에 유치한 뒤 사후 판단을 받아 보는 식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 총장도 이날 윤 청장과 30여분간 면담한 후 “최근에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 서로 힘을 합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협력을 강화하는 차원”이라고 경찰청 방문 배경을 설명했다.
  • 스토킹 범죄에 검경 손 잡았다…“초기부터 협의체 가동”

    스토킹 범죄에 검경 손 잡았다…“초기부터 협의체 가동”

    ‘불송치’ 스토킹 사건 전수 재조사‘가해자 유치부터’ 긴급잠정조치 추진 윤희근 경찰청장이 ‘신당역 스토킹 살해 사건’과 같은 스토킹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해 검경 협의체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즉각 분리하기 위해 가해자 유치 후 법원 판단을 받아보는 ‘긴급잠정조치’ 신설도 추진된다.윤 청장은 19일 이원석 검찰총장과의 면담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대검찰청은 경찰청, 지역 단위에서는 지청과 해당 경찰서가 협의체를 만들어 (스토킹 범죄) 발생 초기부터 같이 논의해 일을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잠정조치, 구속영장 신청 때 서류를 통해 검경이 소통했다면 이제는 스토킹 신고가 들어왔을 때부터 검경이 긴밀하게 논의해 처리 단계를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윤 청장은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고 잠정조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훨씬 현실을 알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청장은 또 전국 경찰이 수사 중이거나 불송치 결정한 스토킹 사건을 전수조사해 보복위험이 있는지, 피해자 보호조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전수조사 대상은 서울 기준으로만 약 400건 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범죄 위험도 판단을 위한 체크리스트도 정교하게 만들어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신변보호)를 적극적으로 실시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법 개정이 필요한 장기 과제로 긴급잠정조치 신설, 긴급응급조치 위반 시 과태료(1000만원 이하) 대신 형사 처벌, 보호조치 결정 구조를 기존 3단계(경찰→검찰→법원)에서 2단계(경찰→법원)로 줄이는 방안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기존 법은 긴급응급조치(선조치·사후승인)와 잠정조치(법원 결정 후)를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 긴급잠정조치라는 새로운 제도를 추가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잠정조치 4호를 신청해 가해자를 유치하려고 해도 법원 결정까지는 2~5일이 걸리는 만큼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방법으로 먼저 유치장에 유치한 뒤 사후 판단을 받아보는 식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이 총장도 이날 윤 청장과 30여분 간 면담 후 “최근에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서로 힘을 합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협력을 강화하는 차원”이라고 경찰청 방문 배경을 설명했다.
  • 페루서 1500년 전 ‘제물’로 바쳐진 어린이 무덤 발견

    페루서 1500년 전 ‘제물’로 바쳐진 어린이 무덤 발견

    남미 페루에서 길게는 1500년 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무덤이 발견됐다. 최근 페루 문화부에 따르면 무덤은 카하마르카의 산타아폴로니아 산에서 발굴됐다. 유적이 많은 산타아폴로니아 산은 평소 관광객이 몰리는 인기 명소다. 무덤에선 아이들로 보이는 2구의 유골이 발굴됐다. 석조울타리를 친 뒤 완공을 기념하는 종교의식을 거행하면서 제물로 바쳐진 아이들로 보인다는 게 고고학계의 설명이다. 유골의 입 부분에는 동으로 제작한 브로치가 발견됐다. 브로치에는 사람과 고양이의 형상을 합한 듯한 생명체가 조각돼 있었다. 이 형상이 당시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는지는 학계가 풀어야 할 숙제다. 무덤 주변에선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진귀한 유물이 다수 나왔다. 발굴프로젝트 팀장인 고고학자 솔시레 마스사노는 “실을 짜는 데 사용된 도구들이 다수 나왔다”며 “당시의 기술수준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낙타과 가축과 관련된 증거도 발견돼 당시 가축에서 얻은 털을 방직에 사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며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무덤 주변에는 돌로 친 울타리와 플랫폼 등의 시설 유적도 많이 발견됐다. 조리시설로 보이는 장소에선 발효음료를 만든 것인지 의심할 만한 증거도 나왔다. 무덤은 잉카시대 전 페루에서 꽃피운 카하마르카 문명의 것으로 추정된다. 카하마르카 문명은 AD 500~1300년 지금의 페루 카하마르카에 삶의 터전을 잡았던 고대문명이다. 지금의 지명 카하마르카의 어원은 바로 이 문명이다. 카하마르카 당국자는 “우리의 직접적인 선조들에 대해 더 알 수 있는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건 매우 의미가 큰 사건”이라며 “우리의 마음속에 아직도 살아 있는 선조들이 실제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 같아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앞서 카하마르카에선 지난달에도 고대 무덤이 발견돼 화제가 됐다. 카하마르카 파고팜파 유적지에서 뒤늦게 발견된 무덤은 약 3000년 전의 것이었다. 원추 형태로 깊게 땅을 파고 바위로 입구를 막은 이 무덤에선 악기들이 발견돼 특히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한편 카하마르카 산타아폴로니아 산에선 2차 발굴이 한창이다. 스페인 국제협력에이전시와 하버드대학, 산안토니오 대학 등이 함께 전개하고 있는 2차 발굴은 카하마르카 문명 당시의 생활상 파악을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 [문화마당] 파란색은 잘못 없다/김동명 영화감독

    [문화마당] 파란색은 잘못 없다/김동명 영화감독

    초등학교 시절 나는 육상선수였다. 실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묵묵히 참고 오래 달릴 수 있는 끈기는 있었다. 그 덕에 중장거리 선수로 여러 대회에 나갔다. 1등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그래도 끈기 하나는 끝내줬다. 매년 육상대회의 마지막은 도내 동계마라톤대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등부는 일정 거리를 4인이 나누어 바통 터치로 완주하는 릴레이 방식으로 열렸다. 5학년 때였나 싶다. 매번 그렇듯 대회 며칠 전 번호표가 지급됐다. 여자는 빨간색, 남자는 파란색. 허나 나의 남자 같은 이름 때문이었는지 그날따라 파란색 번호가 배달됐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주최 측 실수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파란색 번호를 유니폼에 단 뒤 대회장으로 갔다. 가볍게 몸을 풀다가 점퍼를 벗었다. 이때부터가 문제였다. 나의 파란색 등번호를 보고 또래들이 갸우뚱거림과 동시에 키득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출발선에 서기도 전에 나는 어디론가 숨고 싶어졌다. 전후 사정 상관없이 왜 내가 이질감의 주인공이 돼야 하는지 억울했다. 나의 정체성이 파란색 번호로 비웃음 사는 일이 못 견딜 정도로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구간을 빨리 마무리하고 파란색 번호를 등에서 떼어내 쓰레기통에 패대기쳤다. 등수고 나발이고 상관없었다. 가족사를 거슬러 생각해 보면 나의 남자 같은 이름은 첫째도, 둘째도 딸을 낳은 친정엄마가 겪은 아픔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이번엔 사내아이라고 확신한 엄마의 시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할아버지의 태몽 덕에 나를 낳고도 시댁에 기별조차 넣지 못한 엄마의 설움이 깃든 이름이니까. 할아버지는 손자의 기대를 저버린 나의 탄생을 담배 연기로 꽉 채워 세리머니하셨다고 한다. 1970년대 후반의 남아선호사상은 이렇게 야만적이었다. 야만은 ‘셋째는 기필코 남자아이’라는 숙명을 낳았고, 그 결과 둘째인 나는 남자 같은 이름으로도 부족해 ‘꼭지’라는 별명까지 얻게 됐다. 그 덕인지는 알 수 없으나 5년 후 남동생이 태어났고 동시에 나와 언니는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세월이 흘러 내가 엄마 나이가 되고 딸을 키우게 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파란색의 정체성은 다른 의미로 스며들었다. 여자아이가 핑크의 고정관념을 깨고 파란색을 선호하고, 남자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갖고 놀기를 바라는 마음이 뭉게뭉게 커져 갔던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 여자아이가 남성적인 놀이에 몰입하면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더 우월해 보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일까. 요즘도 몇몇 부모들이 여자아이에게 남자 사주 운운하며 파란색의 허울을 씌우고 있다는 이야기에 못마땅해져 어린 시절 기억부터 끄집어내어 골몰해 본다. 허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 허울의 기원을 명확히 알 길이 없다. 남자아이 같은 이름에서 연유한 파란색의 악몽을 여자아이라면 우월성의 상징으로 가져야 할 덕목의 색인 것처럼 둔갑시킨 나의 요지경이 참으로 미스터리할 뿐. 다만 분명한 것은 파란색 번호표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점이다. 이것을 명명하고 구분해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선호색은 정해져 있는 것처럼 구는 것, 그것도 모자라 파란색을 선호하는 것이 더 우월한 것쯤으로 여겼던 나의 무지함이 잘못이다. 나아가 시나브로 깃든 선조의 망령을 끊어 내지 못하고 전전긍긍 남아를 선호했던 나의 부모 세대의 무지함이 잘못이다. 쓰레기통에 패대기쳐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것들이었다. 파란색은 잘못 없다.
  • 관리비 용도 외 사용 등 아파트 관리 부정 701건 적발

    관리비 용도 외 사용 등 아파트 관리 부정 701건 적발

    아파트 관리비를 용도 외 목적으로 사용하는 등 공동주택 부적정 관리 사례가 경기도 감사에서 무더기로 적발됐다. 경기도는 지난 상반기 공동주택 단지 53곳을 감사해 총 701건의 부적정 사례를 적발, 과태료 부과 121건과 시정 명령 108건, 행정 지도 472건 등 조치했다고 14일 밝혔다. 53곳 중 입주민 등의 요청에 따른 민원 감사는 3개 단지, 기획 감사는 50개 단지다. 공동주택 유지·보수 이력 관련 기록·보관 등의 관리 적정 여부 등을 주제로 경기도가 10개, 시·군이 40개 단지를 각각 감사했다. A단지는 2019~2021년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장기수선충당금으로 집행해야 할 장기수선계획서상 공사비용 18건 4000여만원을 관리비로 집행한 사실이 적발됐다. B단지 관리주체는 2021년 348만원 상당의 전산 업무용역 수의계약을 마치고, 다시 재계약하는 과정에서 기존 사업자의 사업수행실적을 평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동주택 관리규약은 관리주체가 기존 사업자와 재계약 시 계약만료 3개월 전까지 평가 등을 거쳐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의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C단지 관리주체는 외벽 보수 등으로 사용한 장기수선충당금 2억 3000여만원을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사용 날짜의 다음 달 말일까지 관리사무소 및 동별 게시판에 공개해야 하지만 미공개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도는 이번 감사를 통해 발굴한 장기수선충당금 긴급공사 사용 절차 개선, 공동주택 유지보수 실적 등록 시점 의무화, 공동주택 회계감사인 추천 의무화 및 전문교육 실시 등 제도개선안 3개를 올 5~6월 국토교통부에 건의했다. 우선 장기수선충당금 사용계획서 의결 시점이 입찰공고 후 사업자가 이미 정해진 시점이어서 입주자대표회의가 어쩔 수 없이 형식적으로 동의하는 상황이 일어나는 만큼 사용계획서 의결을 입찰공고 이전에 하자고 제안했다. 천재지변 등 긴급하게 장기수선충당금을 사용할 경우 선조치 후보고하는 내용도 덧붙였다.. 고용수 공동주택과장은 “공동주택 관리 분야는 입주민 생활과 직결되는 업무인 만큼 투명하고 효율적인 공동주택 관리문화가 정착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기네스 강국 멕시코, 세계 최대 인원 민속춤 추기 세계신 기록

    기네스 강국 멕시코, 세계 최대 인원 민속춤 추기 세계신 기록

    자타가 공인하는 ‘기네스의 국가’ 멕시코가 또 세계 기록을 세웠다.  멕시코 북부의 중심도시 몬테레이가 ‘세계 최대 인원 동시에 민속춤 추기’ 세계 기록을 수립하고 기네스 공인을 받았다.  올해로 도시 건립 426주년을 맞은 몬테레이는 생일파티를 열면서 기네스 기록에 도전했다.  세계기록 도전에는 몬테레이와 인근 지역에서 모여든 민속춤 댄서 1095명이 참가했다. 11일(현지시간) 오후 6시45분 예정대로 행사가 시작되자 댄서들은 연속으로 연주된 5곡 민속음악에 맞춰 열정적으로 민속춤을 췄다.  현장에서 행사를 지켜본 기네스 측은 곧바로 기록을 공인했다. 종전의 기록은 또 다른 멕시코 도시 모렐리아가 세운 900명이었다.  몬테레이 시장은 “도시의 생일을 맞아 역사와 전통을 기린다는 의미로 준비한 행사가 완벽하게 성공했다”며 “우리뿐 아니라 도시를 건립한 선조들에게도 큰 선물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록을 심사하기 위해 파견된 기네스 검사관 카를로스 타피아는 “복장부터 시간까지 기네스의 기록 요건을 모두 충족했다”며 “무엇보다 공연의 질이 높았고, 기네스 열정이 느껴져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멕시코에선 국민적(?) 협조가 아니면 불가능한 기네스 기록이 최근 연이어 세워졌다. 기네스 열정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난 6월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선 세계 최대 인원 권투수업 참가하기 기네스 기록이 수립됐다. 멕시코시티 중심부에서 열리 행사에는 주민 1만 4299명이 참가, 세계기록을 세웠다. 종전의 최대 기록 러시아의 3000명을 가볍게 넘어섰다. 권투수업에 참가한 주민들은 초록, 빨강, 화이트 등 3색 셔츠를 나눠 입고 대형 멕시코 국기를 만들어냈다. 국회의원, 챔피언을 지낸 전직 권투선수 등이 대거 참여했다.  앞서 8월엔 세계에서 가장 긴 톱밥 양탄자를 길에 깔아 기네스 공인을 받았다.  현지 언론은 “최대 인원을 모아야 하는 기록은 국민적 열정이 없다면 불가능하다”며 “멕시코 국민의 기네스 열정은 기네스에 올려야 할 정도로 특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보도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멕시코가 보유한 기네스기록은 700건에 육박한다. 
  • 명절 차례상 간편해졌나요 ‘꼰대’ 지적에 변화 추구하는 유교

    명절 차례상 간편해졌나요 ‘꼰대’ 지적에 변화 추구하는 유교

    오늘 아침 추석 차례상을 두고 가정불화는 없었는지요. 진작부터 많은 집에서 간소하게 치러왔던 차례상이겠지만 이번 추석부터는 유교 기관인 성균관에서 차례상을 간소화해도 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으니 전 부치다 전쟁 나는 일 없이 가정이 평안하셨기를 기원합니다. 차례는 한자 茶禮처럼 말 그대로 조상에게 차를 올리는 것이 전부였다고 전해옵니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사당에서 차를 올리다가 특정 절기에만 차례를 지내게 되면서 점점 규모가 커졌다네요. 어느 대감집에서 휘황찬란한 차례상을 예의로 규정했는지 몰라도 그 집 며느리 또한 고생도 불만도 많았을 텐데 어찌 대세로 자리 잡았나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조선이 주자의 나라였다고 해도, 경제 규모나 신분제를 생각하면 누구나 상다리 부러지게 차릴 수 있던 것도 아닐 텐데요. 명절이면 방송들은 상다리 부러지게 차례상을 차리는 종가를 찾아다니고, 가족들이(주로 집안 여자들이) 내면의 힘듦을 감춘 채 화기애애하게 전을 부치고 차례상을 준비하는 게 명절의 표본이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에겐 그것이 가문의 자존심이겠으나 어느 이름 높은 집안의 종가 역시 이제는 시대가 변했으니 많이 변하지 않았을까 합니다.주자가례와 경국대전에는 3품 이상은 고조부모까지 4대를 제사 지내는 제례규정이 있다고 합니다. 6품 이상은 3대까지, 7품 이하는 조부모까지, 서민들은 부모만 제사를 지내는 게 기존 관례였습니다. 그러나 1894년 갑오경장으로 신분제가 철폐되고 제사에 제약이 없어지면서 가장 화려하게 지내는 차례를 따라가게 되면서 오늘날로 이어졌다는 게 성균관 측의 설명이었는데요. 박세채(1631~1695)의 삼례의에 기록된 진설도(제사 음식의 배열 위치를 그린 그림)를 봐도 음식은 10가지 정도라고 합니다. 조율이시니 홍동백서니, 그걸 지켜야 집안의 뼈대가 단단해지는 것처럼 여겼던 문화도 사실은 근거가 없다고 하네요. 조선시대에도 반발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천주교가 들어왔을 당시 서학을 접한 이들을 가장 괴롭히던 문제는 제사 문제였습니다. 감히 제사를 거부하다니 유학자들 입장에선 패륜도 이런 패륜이 없었겠고, 당대 신진 세력 입장에서는 꼰대도 이런 꼰대가 없다고 생각했겠지요. 당시는 유학자들이 이겼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져 유학자들의 입지가 좁습니다.현대로 올수록 꼰대와 적폐로 몰리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 유교를 관장하는 성균관의 고민도 컸습니다. 지난 7월 취임한 성균관유도회총본부 최영갑 회장은 취재진과 만나 “현대 유교가 조선시대 유교를 그대로 가지고 온 느낌인데 시대에 맞게 현대화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고리타분한 ‘꼰대 문화’로 인식되는 유교를 현실에 맞게 바꿔 국민에게 행복을 주는 유교로 탈바꿈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최 회장이 들고 나온 비장의 카드가 ‘차례상의 간소화’였습니다. 최 회장은 “우리 차례가 보통 설하고 추석에 두 번 있는데, 우리나라는 차례를 제사상처럼 차리는 게 문제”라며 “원래 차례는 간소하게 지내는 건데 제사상 차림으로 크게 지내는 걸 가문의 영광으로 느껴 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최 회장의 입장 정도였던 차례상의 간소화는 지난 5일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가 표준차례상 발표를 하면서 공식화됩니다. 위원장을 맡은 최 회장은 “유교는 현대화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옛 영화만을 생각하며 선구자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유교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자리잡고 말았다”며 반성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명절 뒤끝에 ‘이혼율 증가’로 나타나는 현상을 모두 유교 때문이라는 죄를 뒤집어써야 했다는 솔직한 고백도 함께였습니다.과일과 나물, 송편 등 간단한 차례상을 선보이면서도 성균관 관계자들은 “이것도 정해진 게 아니다”, “형편에 맞게 하면 된다”, “놓는 순서도 중요하지 않다”고 반복해서 강조했습니다. 차례상을 휘황찬란하게 차리고 자기가 배운 순서를 엄격히 따지는 것이 권위의 근거였던 분들에겐 속상하겠지만, 먹지도 못하는 죽은 사람 배불리자고 산 사람을 잡아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요. 그러다 가정이 파탄 나는 일도 더더욱 있어서는 아니 될 일입니다. 종교와 철학이 점점 외면받는 시대에 한반도에 오랜 근간을 유지해왔던 유교의 입지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최근 성균관이 꺼낸 변화의 방향을 보면 시대와 함께하고픈 성균관의 처절한 노력이 읽힙니다. 내용 못지 않게 목숨 걸고 형식을 중요시했던 조선의 유교를 생각하면, 선조 유학자들이 노할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유교 입장에선 많이 노력한 것 같기는 한데 차례상을 간소화해도 된다고 하니 아예 없애라는 의견도 쏟아지고 있네요. 뒤늦게라도 변화를 추구한 성균관은 간소하게라도 전통문화를 지키자는 바람이 가득한데, 명절마다 집안일 뒤집어쓰느라 한 맺힌 며느리들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도 코로나19가 서로를 고독하게 했던 시대에, 명절에 가족끼리 모여 맛있는 거 먹는 것만큼 좋은 시간도 없지 않을까 합니다. 혹시 기분내는 차원에서라도 하게 되면 전은 드실 만큼만 부쳐 드시고, 안 먹는데 차려야 하는 것 대신 먹고 싶은 것 차려서, 가족끼리 사이 좋고 맛있게 드시는 명절 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 [핵잼 사이언스] 3억 년 전 ‘똥 화석’에 담긴 비밀

    [핵잼 사이언스] 3억 년 전 ‘똥 화석’에 담긴 비밀

    오래전 생물 사체가 광물화된 화석은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는 귀중한 타임캡슐이다. 하지만 생물은 아니지만 관련 흔적도 화석처럼 지층에 기록을 남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발자국 화석이나 배설물이 돌처럼 굳어 광물화된 분석(糞石)은 당시 살던 동물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배설물 화석이라고 할 수 있는 분석은 해당 동물이 누구인지만 알 수 있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먹고살았는지, 어떤 기생충에 감염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 최근 호주 커튼대 과학자들은 3억 600만 년 전 분석의 구성 물질을 분석했다. 이 화석은 미국 일리노이주 메이슨 크릭에 있는 석탄기 지층에서 발견된 것으로 정확히 어떤 멸종 동물의 것인지는 모르지만, 크기로 볼 때 제법 덩치가 있는 동물의 것으로 추정된다.  석탄기는 거대한 양치식물이 빽빽한 숲을 이뤘던 시기로 이 시기 죽은 엄청난 양의 식물이 현재 석탄의 형태로 채굴되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붙었다. 하지만 석탄기 식물과 달리 육지 동물 화석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사지동물의 조상이 육지에 상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매우 원시적인 초기 파충류와 포유류의 선조뻘 동물이 등장했을 뿐 아직 큰 동물은 없었다. 연구팀이 메이슨 크릭 분석 화석의 분자 구성을 확인한 결과 식물성 성분은 없고 콜레스테롤 같은 동물성 유래 성분만 찾을 수 있었다. 따라서 이 배설물을 만들어낸 동물은 순수하게 육식만 하고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뼛조각이나 다른 동물의 유해가 발견되지 않는 점으로 볼 때 주로 절지동물같이 당시 숲에 풍부한 먹이를 먹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곤충과 거미류의 조상이 되는 절지동물들은 척추동물보다 한발 앞서 육지로 진출했다. 석탄기에는 몸길이가 수 미터에 달하는 지구 역사상 가장 큰 육상 절지동물인 아르트로플레우라가 지상을 활보했다. 물론 작은 절지동물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온화한 기후와 높은 산소 농도, 그리고 절지동물의 천적이 될 대형 척추동물이 적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파충류, 조류, 공룡, 포유류 등으로 진화하게 되는 초기 양막류는 이렇게 지상에 풍부한 절지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육지 생활에 적응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배설물을 만든 동물 역시 어떤 종인지 확실치는 않았지만, 그런 이유로 지상에 올라와서 몸집을 키우기 시작한 육식 동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대형 척추동물일 가능성도 있다. 이 시기 이렇게 큰 배설물을 만든 동물이 어떤 종인지 답을 찾기 위해 과학자들은 계속 지층을 조사할 것이다.
  • 尹, 철야 비상대기...대통령실 ‘힌남노’ 대응 총력

    尹, 철야 비상대기...대통령실 ‘힌남노’ 대응 총력

    윤석열 대통령이 5일 태풍 ‘힌남노’ 북상에 대비해 철야 비상대기에 들어가는 등 용산 대통령실이 ‘24시간 비상근무’ 체제로 전환됐다. 이날 오전 청록색 민방위복 차림으로 출근한 윤 대통령은 취재진과의 문답에서 “정부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태풍 대비태세를 강조했다. 이어 각 재난관리 당국자들에 대해서는 전날에 이어 ‘선조치-후보고’ 원칙을 재확인했다. 윤 대통령은 취재진에게 되도록 태풍 관련 질문만을 해달라고 당부하는 등 재난 대응 태세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늘은 제가 비상대기를 할 생각”이라며 다음날까지 대통령실에 계속 머물 것임을 처음 시사한 윤 대통령은 관저 입주 시기를 묻는 질문에는 “관저가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다. 나중에 이야기 하죠”라고도 했다. 이어진 수석비서관회의와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도 주된 의제는 태풍 대비 태세였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오후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오늘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초강력 태풍 ‘힌남노’ 상황을 집중 논의했다”며 “힌남노가 내일(6일) 새벽에 한반도 상륙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윤 대통령은 오늘과 내일 대통령실에 머물면서 종합 상황을 보고받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점검에 나설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대통령실 직원들은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면서 비상근무를 할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에서 취침한다는 뜻이냐’는 질문에 “단단히 준비를 하고 오신 것 같다는 말씀으로 갈음해 달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한 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도 ‘힌남노’ 관련 정부 대비 상황을 보고받고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없어야 한다”며 “위험 지역 안전 조치 등 철저하게 대응해 달라”고 지시했다. 한 총리는 이 자리에서 원전 산업 재도약 방안 등도 보고했다. 윤 대통령이 전날 대통령실 국가위기관리센터(지하 벙커)에서 힌남노 대비 회의를 직접 주재한데 이어 태풍의 북상에 맞춰 철야 비상대기에 나선 것은 자칫 태풍 대응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민심 악화를 부를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더불어 지난달 8일 수도권 집중 폭우 당시 ‘재택 지시’로 논란을 일으켰던 전례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중도 읽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수도권 폭우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은 것이냐‘는 질문에 “긴급한 위험에 처했을 때 국민 곁에 서 있어야 하는 공직자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지금 길게 말씀드릴 수 있는 상황이 없을 정도로 태풍이 근접했다”고 답했다.
  • “국가 존망 위기 어찌 몸 아끼랴”…육순 老시인 구국 순절의 칼[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국가 존망 위기 어찌 몸 아끼랴”…육순 老시인 구국 순절의 칼[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고경명은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의 한 사람이다. 그의 시는 ‘바람을 읊고 이슬을 날리며 은하수를 뛰어넘고 안개를 올라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왜란이 일어나고 왜적이 도성을 점령하자 전라도관찰사 이광은 그에게 의병을 모으기 위한 격문(檄文)을 요청했다. 고경명은 그만큼 대(大)문장가인 동시에 호남을 대표하는 지성이었다. 고경명의 간절하면서 감동적인 격문은 이르는 곳마다 뜻있는 사람들의 궐기를 이끌었다. 60세 노(老)시인은 붓을 쥐던 손에 칼을 잡고 의병장이 됐다. ●간절하고 감동적인 마상격문 ‘임진년 6월 전라도 의병장 고경명은 삼가 각 도 수령과 백성들과 군인들에게 급히 통고한다. 근자에 국운이 불길하여 섬 오랑캐가 불시에 침입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와 약속한 맹세를 저버리더니 나중에는 통째로 집어삼킬 야망을 품었다. 우리 국방이 튼튼치 못한 틈을 타 기어들어 하늘도 무서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북상하고 있다.…경명은 비록 늙은 선비지만 나라에 몸바치려는 일편단심만은 그대로 남아 있어 밤중에 닭의 소리를 듣고는 번민을 이기지 못하여 강 한복판 배의 노를 치면서 스스로 의로운 절개를 지키려 한다. 한갓 나라를 위하려는 성의만 품었을 뿐, 자기 힘이 너무나 보잘것없음을 모르는 바 아니나 이제 의병을 규합하여 곧장 서울로 진군하려 한다.’ 마상격문(馬上檄文)의 한 대목이다. 고경명은 1592년 5월 29일 담양 추성관에서 전라도 21개 지역 61명의 사림 대표가 모인 가운데 전라좌도 의병장에 추대된다. 6월 1일 한양을 향해 출발한 6000명의 호남의병은 전주에 이르렀을 무렵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상황을 판단하고자 훈련을 하며 잠시 머무른다. 고경명이 다시 북상을 시작하면서 6월 24일 지은 것이 마상격문이다. 글자 그대로 ‘말 위에서 지은 격문’이라는 뜻이니 그만큼 급박한 위기상황이었다는 뜻이다. 고경명은 ‘국가존망의 위기에 어찌 감히 하찮은 제 몸만을 아끼려고 하겠느냐’고 마상격문에 적은 그대로 우리가 아는 것처럼 7월 10일 금산 전투에서 왜적을 공격하다 장렬하게 순절한다.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1533~1592)은 전라도 광주 제봉산 아래 압보촌에서 태어났다. 현재는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이다. 이곳에는 고경명과 두 아들 종후와 인후, 종사관 유팽로와 안영을 기리는 포충사(褒忠祠)가 있다. 1601년 세웠고, 1603년 사액됐다. 1865년 대원군의 서원·사우 철폐령에도 장성 필암서원과 함께 살아남았다.포충사는 지금 로제와인색 배롱나무꽃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포충사가 자리잡은 제봉산은 해발고도 165.5m로 높지 않지만 나지막한 곡선이 아름답다. 짐작처럼 제봉이라는 고경명의 아호는 이 고향 마을의 뒷산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고경명의 무덤이 있는 전남 장성 영천리의 오동촌 뒷산 역시 제봉산이다. 장성 제봉산은 고경명의 무덤이 옮겨진 뒤 그를 기려 붙여진 이름이다. 광주 제봉의 정기가 고경명을 낳고 다시 그의 의기가 장성 제봉에 이식된 셈이다. ●“시 가운데 그림이” 明도 인정한 시인 고경명은 26세이던 1558년 식년문과에서 장원급제했다. 성균관 전적에 이어 홍문관 부교리, 부수찬, 교리에 이르는 5년 동안은 평탄하게 승진했다. 하지만 당대 대표적 외척의 한 사람인 이량이 사림의 탄핵으로 실각하는 과정에서 불똥이 튀었다. 이량의 전횡을 논죄하는 데 참여한 제봉은 관련 정보를 당사자에게 유출했다는 이유로 울산군수로 좌천되곤 곧 파직됐다. 이 사건으로 고경명은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을 조정에서 쓰임을 받지 못했다. 대신 낙향한 제봉은 호남의 문인들과 폭넓게 교유하며 산수를 유람하는 시간을 가졌으니 시인으로 크게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것도 역설적으로 향리에서 한가롭게 머물던 시절이 그만큼 길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봉은 1581년(선조 14) 영암군수로 다시 기용됐다. 곧바로 종계변무주청사 김계휘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서장관(書狀官)이란 외교 문서의 기록을 담당하는 직책이다. 당대 명나라 문신 장응회(莊應會)는 고경명의 시를 두고 ‘시 가운데 그림이 있고 그림 가운데 시가 있는 것 같아서 원진(元)·백거이(白居易)·위응물(韋應物)·유우석(劉禹錫)과 비교해 명나라와 조선의 표준을 세울 수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제봉의 시가 명나라에서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고경명은 이후 서산군수와 종부시 첨정, 한산군수, 사복시 첨정, 순창군수 등을 역임하고 1591년 동래부사에 임명됐지만 곧 파직돼 고향으로 돌아갔다. 후임 동래부사 송상현은 이듬해 부산포에 상륙한 왜군에 맞서 영웅적으로 수성전(守城戰)을 벌이다 전사한다. 천문에도 조예가 깊었던 제봉은 임진년 초 “올해는 장성(將星)이 분명히 보이지 않으니 장수(將帥)가 이롭지 못하겠다”며 국가의 환란을 예고했다. 장성은 북두칠성의 두 번째 별 천선(天璇)을 가리킨다. 고경명이 추성관 추대 직후 지은 격문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나는 경전의 장구(章句)나 따지는 우활한 선비로 병법에 어두우나 장수를 뽑는 이 자리를 위촉받아 망령되이 대장에 추대되었으니, 이미 흐트러진 사병들 마음을 수습하지 못해 동지들의 수치가 될까 두려워한다. 다만 신하의 의리로 마땅히 국난에 죽어야 하는 것이고, 군대는 의리상 곧은 것을 세다고 여기니 그 수효의 많고 적은 것에 달려 있지 않다.…무릇 우리 도내 사람들은 아비가 아들에게 일러 주고 형이 아우에게 권면하여 의로운 군대를 규합해서 함께 일어나, 용맹스럽게 결단을 내려 선(善)에 따를 것을 바라나니 미혹되어 자신을 그르치지 말게 하라.’신경(1613~1653)의 ‘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에는 ‘격문이 이르는 곳마다 사대부들이 감격해 울면서 분연히 궐기했다. 고경명이 개연히 의병장에 올라 늙고 병든 것을 사양치 않으니, 응모하는 자가 날로 모여들었다’고 했다. 고경명은 전라도 의병군의 결성 보고와 함께 왜적을 격퇴하겠다는 출사표를 서해 뱃길로 조정에 전달토록 한다. 의병군은 6월 22일 전주에서 여산으로 진을 옮긴 데 이어 27일 은진으로 북상해 왜적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는데 황간·영동의 왜적이 금산을 점령한 데 이어 장차 곡창 호남의 심장부인 전주를 침범할 계획이라는 정보를 입수한다. 휘하 장수들이 먼저 도내의 적을 토벌한 뒤에 북쪽을 정벌하자고 다투어 청하자 제봉은 당초 계획을 바꾸어 7월 1일 연산으로 군사를 돌린다. 의병은 9일 진산을 거쳐 금산성의 초입에서 전라도방어사 곽영의 관군과 좌·우익으로 진을 편성했다. 당시 금산의 왜군은 전주를 공격하려다 이치에서 황진 장군의 조선군에 크게 패하자 물러나 금산성에 웅크리고 있었다. 선조수정실록은 금산 전투의 전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때 왜적은 금산으로 퇴각하여 진을 두터이 치고 있었다. 경명이 방어사 곽영과 재를 넘어 험한 곳으로 들어가 곧장 금산성 밖에 육박하였는데 곽영이 먼저 날랜 장사 수백 명을 보내어 적을 시험하다가 물러나자 경명이 북을 울리며 전투를 독려하여 도로 적병을 성 밖에서 위축시키고 화포를 쏘아 적이 주둔하던 관사를 불태우니 적이 감히 나오지 못했다.’ 이튿날 동틀 무렵 고경명은 다시 곽영과 군사를 진격시켜 각각 북문과 서문을 공격했다. 왜적이 군사를 총동원해 약해 보이는 관군진영을 공격하니, 관군 선봉장인 영암군수 김성헌이 말을 채찍질해 먼저 도망치자 관군이 크게 패했고 의병도 대오가 무너지며 흩어졌다. 이때 제봉이 말에서 떨어졌는데 말이 달아나 버리자 종사관 안영이 자기 말을 타게 하고는 걸어서 따라갔다. 또 다른 종사관 유팽로는 대장이 나오지 못했다는 소식에 말을 채찍질해 어지러운 군사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수정실록은 이들의 최후를 이렇게 적었다. ‘이에 경명이 팽로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나는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그대는 말을 달려 빠져나가라’ 했다. 팽로가 ‘어떻게 차마 대장을 버리고 살기를 구하겠습니까’ 하고는 안영과 함께 경명을 에워싸고 있다가 모두 전사했다. 경명의 둘째아들 인후도 달려가 싸우다가 전사했다’. 큰아들 고종후는 복수군(復讐軍)을 조직해 제2차 진주성전투에 참전해 순절한다. 고경명의 시신은 40일 만에 찾아 금산 산중에 묻었다가 10월 화순 흑토평에 장사지냈고, 1609년 3월 임금이 내린 사패지(賜牌地)인 장성 오동촌 산 아래로 이장했다.
  • 尹 “한발 앞서 완벽 대응”… 중대본, 출근시간 조정·원격수업 요청

    尹 “한발 앞서 완벽 대응”… 중대본, 출근시간 조정·원격수업 요청

    윤석열 대통령이 4일 한반도로 북상하는 제11호 태풍 ‘힌남노’와 관련해 “정부가 한발 앞서 더 강하고 완벽하게 대응해 달라”고 지시했다. 중앙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민간 분야에는 출근 시간 조정을, 각 학교에는 휴업과 원격수업 전환을 요청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지하 국가위기관리센터(벙커)에서 열린 힌남노 대비상황 점검회의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강인선 대변인이 전했다. 회의엔 김대기 비서실장 등 대통령실 참모들이 참석했으며 한덕수 국무총리와 14개 부처 장관과 청장, 17개 시도 단체장은 영상을 통해 회의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집중호우의 상흔이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태풍 힌남노가 북상하고 있어 국민들 걱정이 더 크실 것”이라며 “추석을 앞두고 이번 태풍이 발생해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이어 “재난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피해와 고통으로 다가온다.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태풍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저도 끝까지 상황을 챙기겠다”며 “반지하 주택지와 해안가 저지대 등 취약계층과 취약지역에 대한 점검을 강화해 달라”고 했다. 지난달 중부권 폭우 사태 당시 초동 대처 미흡 논란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앞선 집중호우 피해 지역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비로 지반이 약해진 데다 복구가 아직 완전하게 이뤄지지 않아 위험요인이 더 많을 수 있으므로 선제적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했다. 또 “태풍 피해 농가의 재해보험 손해평가를 즉시 진행해 보험금을 선지급하는 등 농민들께서 조속히 영농에 복귀하실 수 있는 대책을 세밀하고 신속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실효적 지원 차원에서 재해보험금 선지급, 추석 전 신속한 재난지원금 지원이 이뤄지도록 독려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정부가 내 가족을 챙긴다는 심정으로 ‘선조치 후보고’로 대응해 달라고 당부하며 회의를 마무리했다”고 전했다. 중대본은 최근 5년간 발생한 태풍 16건 중 처음으로 1단계에서 즉시 3단계로 상향했다. 이상민 중대본부장은 “지자체와 관련 공공기관도 최고 수준의 대응 단계를 가동할 것”이라면서 태풍 상륙이 예상되는 6일 민간 분야는 출근 시간 조정을 권고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도 시도 부교육감 회의에서 “휴업, 원격수업 전환, 단축수업 등으로 적극 조정해 달라”고 강조했다.
  • 尹대통령, ‘힌남노’ 북상에 “국민 안전 최우선…선조치 후보고” 지시

    尹대통령, ‘힌남노’ 북상에 “국민 안전 최우선…선조치 후보고” 지시

    윤석열 대통령은 4일 한반도로 북상중인 제 11호 태풍 ‘힌남노’와 관련해 “정부가 한발 앞서 더 강하고 완벽하게 대응해달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 위기관리센터에서 힌남노 대비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지난 집중호우의 상흔이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태풍 ‘힌남노’가 북상하고 있어 국민들 걱정이 더 크실 것”이라며 이같이 지시했다고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에서 밝혔다. 윤 대통령은 “추석을 앞두고 이번 태풍이 발생해 마음이 무겁다”면서 “재난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피해와 고통으로 다가온다.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태풍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저도 끝까지 상황을 챙기겠다”며 “반지하 주택지와 해안가 저지대 등 취약계층과 취약지역에 대한 점검을 강화해달라”고 지시했다. 집중호우 피해 지역은 특히 꼼꼼히 살필 것을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집중호우 피해지역은 특히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며 “지난 비로 지반이 약해진 데다 복구가 아직 완전하게 이뤄지지 않아 위험요인이 더 많을 수 있으므로 선제적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선제적 대처를 강조하면서 “공직자들은 선조치, 후보고를 해달라. 즉각적인 피해 복구책과 더불어 인명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재해보험금 선지급, 추석 전 신속한 재난지원금 지원이 이뤄지도록 독려하면서 “국민이 조속하게 일상에 복귀할 수 있도록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강구하라”고 덧붙였다.
  • 대(大)시인, 붓대신 칼을 들어 국가를 보전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대(大)시인, 붓대신 칼을 들어 국가를 보전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고경명은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의 한사람이다. 그의 시는 ‘바람을 읊고 이슬을 날리며 은하수를 뛰어넘고 안개를 올라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왜란이 일어나고 왜적이 도성을 점령하자 전라도관찰사 이광은 그에게 의병을 모으기 위한 격문(檄文)을 요청했다. 고경명은 그만큼 대(大)문장가인 동시에 호남을 대표하는 지성이었다. 고경명의 간절하면서 감동적인 격문은 이르는 곳마다 뜻있는 사람들의 궐기를 이끌었다. 60세 노(老)시인은 붓을 쥐던 손에 칼을 잡고 의병장이 됐다. ‘임진년 6월 전라도 의병장 고경명은 삼가 각 도 수령과 백성들과 군인들에게 급히 통고한다. 근자에 국운이 불길하여 섬 오랑캐가 불시에 침입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와 약속한 맹세를 저버리더니 나중에는 통째로 집어삼킬 야망을 품었다. 우리 국방이 튼튼치 못한 틈을 타 기어들어 하늘도 무서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북상하고 있다.…경명은 비록 늙은 선비지만 나라에 몸바치려는 일편단심만은 그대로 남아있어 밤중에 닭의 소리를 듣고는 번민을 이기지 못하여 강 한복판 배의 노를 치면서 스스로 의로운 절개를 지키려 한다. 한갓 나라를 위하려는 성의만 품었을 뿐, 자기 힘이 너무나 보잘 것 없음을 모르는 바 아니나 이제 의병을 규합하여 곧장 서울로 진군하려 한다’  마상격문(馬上檄文)의 한 대목이다. 고경명은 1592년 5월 29일 담양 추성관에서 전라도 21개 지역 61명의 사림 대표가 모인 가운데 전라좌도 의병장에 추대된다. 6월 1일 한양을 향해 출발한 6000명의 호남의병은 전주에 이르렀을 무렵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상황을 판단하고자 훈련을 하며 잠시 머무른다. 고경명이 다시 북상을 시작하면서 6월 24일 지은 것이 마상격문이다. 글자 그대로 ‘말위에서 지은 격문’이라는 뜻이니 그만큼 급박한 위기상황이었다는 뜻이다. 고경명은 ‘국가존망의 위기에 어찌 감히 하찮은 제 몸만을 아끼려고 하겠느냐’고 마상격문에 적은 그대로 우리가 아는 것처럼 7월 10일 금산 전투에서 왜적을 공격하다 장렬하게 순절한다.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1533~1592)은 전라도 광주 제봉산 아래 압보촌에서 태어났다. 현재는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이다. 이곳에는 고경명과 두 아들 종후와 인후, 종사관 유팽로와 안영을 기리는 포충사(褒忠祠)가 있다. 1601년 세웠고, 1603년 사액됐다. 1865년 대원군의 서원·사우 철폐령에도 장성 필암서원과 함께 살아남았다. 포충사는 지금 로제와인색 배롱나무꽃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포충사가 자리잡은 제봉산은 해발고도 165.5m로 높지 않지만 나지막한 곡선이 아름답다. 짐작처럼 제봉이라는 고경명의 아호는 이 고향마을의 뒷산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고경명의 무덤이 있는 전남 장성 영천리의 오동촌 뒷산 역시 제봉산이다. 장성 제봉산은 고경명의 무덤이 옮겨진 뒤 그를 기려 붙여진 이름이다. 광주 제봉의 정기가 고경명을 낳고 다시 그의 의기가 장성 제봉에 이식된 셈이다.  고경명은 26세이던 1558년 식년문과에서 장원급제했다. 성균관 전적에 이어 홍문관 부교리, 부수찬, 교리에 이르는 5년동안은 평탄하게 승진했다. 하지만 당대 대표적 외척의 한 사람인 이량이 사림의 탄핵으로 실각하는 과정에서 불똥이 튀었다. 이량의 전횡을 논죄하는 데 참여한 제봉은 관련 정보를 당사자에게 유출했다는 이유로 울산군수로 좌천되곤 곧 파직됐다. 이 사건으로 고경명은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을 조정에서 쓰임을 받지 못했다. 대신 낙향한 제봉은 호남의 문인들과 폭넓게 교유하며 산수를 유람하는 시간을 가졌으니 시인으로 크게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것도 역설적으로 향리에서 한가롭게 머물던 시절이 그만큼 길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봉은 1581년(선조 14) 영암군수로 다시 기용됐다. 곧바로 종계변무주청사 김계휘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서장관(書狀官)이란 외교 문서의 기록을 담당하는 직책이다. 당대 명나라 문신 장응회(莊應會)는 고경명의 시를 두고 ‘시 가운데 그림이 있고 그림 가운데 시가 있는 것 같아서 원진(元稹)·백거이(白居易)·위응물(韋應物)·유우석(劉禹錫)과 비교해 명나라와 조선의 표준을 세울 수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제봉의 시가 명나라에서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고경명은 이후 서산군수와 종부시 첨정, 한산군수, 사복시 첨정, 순창군수 등을 역임하고 1591년 동래부사에 임명됐지만 곧 파직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후임 동래부사 송상현은 이듬해 부산포에 상륙한 왜군에 맞서 영웅적으로 수성전(守城戰)을 벌이다 전사한다. 천문에도 조예가 깊었던 제봉은 임진년 초 “올해는 장성(將星)이 분명히 보이지 않으니 장수(將帥)가 이롭지 못하겠다”며 국가의 환란을 예고했다고 한다. 장성은 북두칠성의 두번째 별 천선(天璇)을 가리킨다.고경명이 추성관 추대 직후 지은 격문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나는 경전의 장구(章句)나 따지는 우활한 선비로 병법에 어두우나 장수를 뽑는 이 자리를 위촉받아 망령되이 대장에 추대되었으니, 이미 흐트러진 사병들 마음을 수습하지 못해 동지들의 수치가 될까 두려워한다. 다만 신하의 의리로 마땅히 국난에 죽어야 하는 것이고, 군대는 의리상 곧은 것을 세다고 여기니 그 수효의 많고 적은 것에 달려 있지 않다.…무릇 우리 도내 사람들은 아비가 아들에게 일러 주고 형이 아우에게 권면하여 의로운 군대를 규합해서 함께 일어나, 용맹스럽게 결단을 내려 선(善)에 따를 것을 바라나니 미혹되어 자신을 그르치지 말게 하라’  신경(1613~1653)의 ‘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에는 ‘격문이 이르는 곳마다 사대부들이 감격해 울면서 분연히 궐기했다. 고경명이 개연히 의병장에 올라 늙고 병든 것을 사양치 않으니, 응모하는 자가 날로 모여들었다’고 했다. 고경명은 전라도 의병군의 결성 보고와 함께 왜적을 격퇴하겠다는 출사표를 서해 뱃길로 조정에 전달토록 한다. 의병군은 6월 22일 전주에서 여산으로 진을 옮긴 데 이어 27일 은진으로 북상해 왜적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는데 황간·영동의 왜적이 금산을 점령한 데 이어 장차 곡창 호남의 심장부인 전주를 침범할 계획이라는 정보를 입수한다. 휘하 장수들이 먼저 도내의 적을 토벌한 뒤에 북쪽을 정벌하자고 다투어 청하자 제봉은 당초 계획을 바꾸어 7월 1일 연산으로 군사를 돌린다. 의병은 9일 진산을 거쳐 금산성의 초입에서 전라도방어사 곽영의 관군과 좌·우익으로 진을 편성했다. 당시 금산의 왜군은 전주를 공격하려다 이치에서 황진 장군의 조선군에 크게 패하자 다시 물러나 금산성에 웅크리고 있었다.  선조수정실록은 금산 전투의 전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때 왜적은 금산으로 퇴각하여 진을 두터이 치고 있었다. 경명이 방어사 곽영과 재를 넘어 험한 곳으로 들어가 곧장 금산성 밖에 육박하였는데 곽영이 먼저 날랜 장사 수백 명을 보내어 적을 시험하다가 물러나자 경명이 북을 울리며 전투를 독려하여 도로 적병을 성 밖에서 위축시키고 화포를 쏘아 적이 주둔하던 관사를 불태우니 적이 감히 나오지 못했다’ 이튿날 동틀 무렵 고경명은 다시 곽영과 군사를 진격시켜 각각 북문과 서문을 공격했다. 왜적이 군사를 총동원해 약해 보이는 관군진영을 공격하니, 관군 선봉장인 영암군수 김성헌이 말을 채찍질해 먼저 도망치자 관군이 크게 패했고 의병도 대오가 무너지며 흩어졌다. 이때 제봉이 말에서 떨어졌는데 말이 달아나 버리자 종사관 안영이 자기 말을 타게 하고는 걸어서 따라갔다. 또다른 종사관 유팽로는 대장이 나오지 못했다는 소식에 말을 채찍질해 어지러운 군사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수정실록은 이들의 최후를 이렇게 적었다. ‘이에 경명이 팽로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나는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그대는 말을 달려 빠져나가라’ 했다. 팽로가 ‘어떻게 차마 대장을 버리고 살기를 구하겠습니까’ 하고는 안영과 함께 경명을 에워싸고 있다가 모두 전사했다. 경명의 둘째아들 인후도 달려가 싸우다가 전사했다’. 큰아들 고종후는 복수군(復讐軍)을 조직해 제2차 진주성전투에 참전해 순절한다. 고경명의 시신은 40일만에 찾아 금산 산중에 묻었다가 10월 화순 흑토평에 장사지냈고, 1609년 3월 임금이 내린 사패지(賜牌地)인 장성 오동촌 산 아래로 이장했다.
  • 김숭겸과 최전 등 지방의 천재시인 작품 발간, 문학에도 ‘탈중앙’

    김숭겸과 최전 등 지방의 천재시인 작품 발간, 문학에도 ‘탈중앙’

    김숭겸(1682~1700년)은 조선 숙종 때 시인으로 19세에 요절했다. 경기 양주 출신으로 할아버지는 영의정 김수항, 아버지는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김창협이며, 어머니는 부제학 이단상의 딸로 연안 이씨였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등진 아들의 묘비에 “세상의 악착(齷齪)함을 보고 뜻에 맞지 않으므로 성색(聲色)에 머물지 않고 산수만을 좋아하여 풍악(楓岳)·천마(天摩)·화산(華山) 등을 다녔고, 시격이 기준창로(奇俊蒼老)하여 두보(杜甫)의 격을 터득하였다”고 기렸다. ‘관복암 시고’(觀復菴詩稿)의 한 수를 소개한다. 고적한 칠언절구가 요절한 천재 시인의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十日 杖藜今日又登臺 江上城邊暝色來 叢菊相看亦已老 高歌欲放自成哀 三洲只是聞鴻? 百慮何能去酒杯 野哭村砧俱薄暮 悲秋歎世重徘徊 10일 지팡이 짚으며 오늘 다시 대를 오르니 강가 마을 주위로 땅거미가 지네. 국화꽃 무더기를 보노라니 또한 어느새 시들었고 소리 높여 노래 부르려 하니 절로 슬퍼지네. 삼주는 그저 기러기 소리 들리고 온갖 시름 어이 술잔에 떠나보내리오? 들판의 통곡 소리, 마을의 다듬이 소리에 해도 저물었거든 가을을 슬퍼하고 세상을 탄식하며 거듭 발길 주저하노라. 지만지한국문학(대표이사 박영률)이 천재 시인 김숭겸(경기 양주)과 율곡의 제자로 명나라에서도 극진한 찬사를 얻은 시인 최전(경북 문경) 등 그동안 중앙의 그늘에 가려졌던 지역의 한시(漢詩) 대가 10명의 작품집을 내놓았다. 영남학, 호남학, 기호학 등 지역 고전학을 폭넓게 발굴해 체계적으로 연구, 발간하는 기획으로 우리 문학사에 첫 시도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관방 학자들의 글을 주류로만 받아들이던 풍토를 과감히 벗어나려는 몸짓이다. 정우락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강정화 국립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박순철전북대 중문학과 교수, 김승룡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등이 기획위원으로 머리를 맞댔다. ‘외딴 섬’으로 치부돼 존재 의미조차 갖지 못했던 지역 고전학 작품들이 빛나는 문화유산으로 제대로 대접받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그 의욕 넘치는 시도의 첫 번째로 10권을 발간했다. 울산 최초의 대과 급제자로 18세기 울산을 대표한 학자 이근오의 ‘죽오시선’(竹塢詩選)과 양산 통도사 구하 스님의 ‘금강산 관상록’(金剛山觀賞錄), 김숭겸의 관복암 시고, 최전의 ‘양포유고’(楊浦遺稿), 전북 고창을 대표하는 선비 황윤석의 ‘이재시선(?齋詩選)’ 1 등이다. 김승룡 교수는 “지역의 문화자산을 발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학문적으로 축적해 다음 세대에게 더 다양하고 균형 있는 문화를 전승함으로써 지역 고전학의 초석을 닦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최대 400종까지 확대해 전국적인 학문 지도를 완성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이어 “‘지역’은 인간의 삶이 실질적으로 구현되는 장소이며 시간과 공간의 좌표에 의해 구분되는 인간적, 인문적 영역”이라며 “지역은 ‘지금 이곳’의 다른 말”이라고 덧붙였다. 고전은 시간과 공간에 의해 일차적으로 규정되는데 지금 이곳을 우리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로 전달할 수 있는 텍스트라는 점에서 “고전은 철저하게 ‘지역’에 복무한다”고도 했다. 지만지한국문학은 조선 선조 때 문인이며 경북 청송 출신 조수도의 ‘신당일록’(新堂日錄) 등 14종을 내년 상반기에 선보일 예정이다. 지만지한국문학 고전학 총서 1차 목록(10권) ‘가암 시집’(전익구 지음 김승룡 최금자 옮김, 200쪽 1만 8800원) - 경북 예천 ‘관복암 시고’(김숭겸 지음 노현정 옮김, 608쪽 3만 6800원) - 경기 양주 ‘금강산 관상록’(구하 지음 최두헌 옮김, 290쪽 2만 2800원) - 경남 양산 ‘목재 시선’(홍여하 지음 최금자 옮김, 256쪽 1만 8800원) - 경북 상주 ‘서천 시문선집’(조정규 지음 전설련 옮김, 190쪽 1만 8800원) - 경남 함안 ‘양포유고’(최전 지음 서미나 옮김, 254쪽 2만 800원) - 경북 문경 ‘이재 시선’ 1≫(황윤석 지음 이상봉 옮김, 310쪽 2만 2800원) - 전북 고창 ‘죽오 시선’(이근오 지음 엄형섭 옮김, 210쪽 1만 8800원) - 경남 울산 ‘회봉 화도시선’(하겸진 지음 이영숙 옮김, 252쪽 2만 800원) - 경남 진주 ‘후산 시문선집’(정재화 지음 정우락 옮김, 352쪽 2만 4800원) - 경북 성주
  •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잦은 침수로 나 홀로 묻힌 중종의 정릉/전 국립고궁박물관장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잦은 침수로 나 홀로 묻힌 중종의 정릉/전 국립고궁박물관장

    이달 초순 1907년 관측 이래 115년 만에 내린 폭우로 강남 일대가 쑥대밭이 됐다. 이 지역의 잦은 침수는 조선시대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선릉역으로 잘 알려진 강남에는 성종과 왕비 정현왕후의 선릉과 성종의 둘째 아들 중종의 정릉이 있다. 중종은 3명의 왕비와 7명의 후궁을 두었는데 모두 나 홀로 묻혔다. 중종이 쓸쓸히 홀로 묻힌 결정적인 이유가 잦은 침수 때문이라면 믿을까. 중종은 신하들이 임금(연산군)을 강제로 끌어내린 최초의 반정으로 왕위에 올랐다. 연산군의 폭정과 방탕을 간언했다가 판서에서 졸지에 종9품 말단직으로 밀려난 성희안은 1506년(연산 12년) 9월 영의정 유순정, 박원종 등과 반정을 모의했다. 연산군을 폐위하고 진성대군(중종)을 옹립하기 위해 박원종은 우의정 강구손을 통해 연산군의 매부요 중종의 장인 신수근의 마음을 떠보았다. “좌상은 대감 누이와 딸 중 누구를 더 중히 여기십니까?” 신수근은 “임금은 비록 포악하나 세자가 총명하니 그를 믿고 살 뿐입니다”라며 넌지시 누이 편에 서 임금을 폐하고 사위 진성대군을 세우는 일을 반대했다가 처형됐다. 중종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단경왕후는 죄인 신수근의 딸이라 왕비로 부적격하다는 이유로 책봉 7일 만에 폐위돼 쫓겨났다. 후사 없이 1557년(명종 12년) 12월 71세로 승하한 단경왕후는 양주 신씨 문중 묘역에 안장됐다가 1739년(영조 15년) 복위돼 능호를 온릉이라 했다. 중종은 단경왕후 신씨가 폐위된 이듬해 장경왕후를 둘째 왕비로 맞아들였다. 하지만 1515년 3월 원자(인종)를 낳고 산후병으로 7일 만에 25세로 경복궁에서 죽었다. 온순하고 외모가 단정하며, 밤낮으로 조심한다고 해 시호를 장경, 능호를 희릉이라 했다. 원래 5개월 장을 치러야 하나 나루를 여러 개 건너야 하고 여름철 장마로 강물이 불어날 것을 염려해 두 달 만에 태종의 헌릉 옆 능선에 안장했다. 당시 왕비의 관을 실은 큰 상여는 배 500척으로 부교를 설치한 뒤 한강을 건넜다. 장경왕후의 희릉은 22년 후 정적을 치기 위해 김안로에 의해 1537년(중종 32년) 9월 지금의 서삼릉으로 이장됐다. 풍수지리적으로 돌이 광중 밑에 깔리면 불길한데도 이를 파내지 않고 그대로 묻었다는 것이 이유다. 산후병으로 장경왕후가 요절하자 중종은 문정왕후 윤씨를 세 번째 왕비로 맞아들였다. 중종이 1544년 11월 15일 창경궁에서 왕위에 있은 지 39년, 보령 57세로 승하하자 이듬해 2월 서삼릉 내 둘째 왕비 장경왕후의 희릉 오른쪽 능선에 안장했다. 한 달 뒤 왕비의 문패 아래 왕이 있을 수 없다 하여 능호를 희릉에서 정릉으로 바꾸었다. 장경왕후의 아들 인종이 왕위에 오른 지 8개월 만에 죽자 문정왕후는 자신의 소생을 왕(명종)으로 즉위시키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문정왕후는 강남 봉은사 주지 보우와 짜고 중종을 장사 지낸 지 7년 만인 1562년 9월 멀쩡하게 잘 있는 중종의 정릉을 지금의 강남 선릉 옆으로 옮겼다. 풍수적으로 불길한 땅이라 선왕을 모실 수 없다는 이유였지만, 중종이 둘째 부인 장경왕후와 함께 있는 것을 시기해 사후 자신이 남편과 함께 묻히고자 한 것이다. 막상 옮기고 보니 지대가 낮아 조금만 비가 와도 재실까지 강물이 들어 아무리 흙을 파다 메워도 소용이 없었다. ‘선조실록’은 “정자각 앞의 지세가 낮아 장마가 질 때마다 강물이 불어 홍살문까지 잠겨 배를 타고 다녔다”고 했다. 1565년(명종 20년) 4월 65세로 세상을 뜬 문정왕후는 생전에 남편 중종의 옆에 묻히려고 이장까지 했지만, 끝내 잦은 침수로 남편과 멀리 떨어져 지금의 태릉에 홀로 묻혔다.
  • [여기는 남미] 오래된 성 지하 6m 파보니 1300년 된 고대 무덤이 드러났다

    [여기는 남미] 오래된 성 지하 6m 파보니 1300년 된 고대 무덤이 드러났다

    1000년을 훌쩍 넘긴 고대 와리문명의 무덤이 남미 페루에서 발견됐다. 장인의 무덤으로 보이는 유적에선 장인이 생전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부장품이 대거 출토됐다.  24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무덤은 페루 리마에서 북쪽으로 약 290km 떨어진 앙카시 지방에 위치해 있는 우아르메이 성 지하에서 발견됐다.  우아르메이 성은 와리문명 때 흙과 짚을 섞어 쌓은 토성이다. 199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고고학자들은 7~13세기 지금의 페루 땅에서 꽃피운 와리문명 때 우아르메이 성이 행정의 중심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무덤은 페루와 폴란드 고고학자들에 의해 우아르메이 성 지하 6m 지점에서 발견됐다. 무덤은 약 13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의 주인은 와리문명 엘리트 계층이었다. 20년째 페루에서 고고학 탐사를 하고 있는 폴란드 고고학자 지에르스는 "무덤의 주인이 입고 있는 옷을 볼 때 와리문명 엘리트 계층에 속한, 매우 신분이 높은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와리문명 엘리트 계층의 무덤이 발견된 이번이 처음이다. 고고학자들이 '우아르메이의 영주'라는 애칭을 붙여준 무덤의 주인은 생전에 장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동으로 만든 도구와 칼, 도끼, 금과 은으로 장식한 바구니, 상자 등 무덤에선 그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도구 등 부장품이 대거 출토됐다.  금과 은으로 장식한 귀마개, 거의 완벽한 상태로 출토된 목조상 등은 도구를 사용해 무덤의 주인이 제작한 작품으로 추정됐다.  고고학자들은 "지하 6m 아래 있던 무덤이라 상태가 완전하게 보전돼 있다"며 "부장품들 역시 완벽에 가까운 상태로 발견됐다"고 말했다.  지에르스는 "와리문명 엘리트 계층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부장품이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나온 것도 처음"이라며 매우 소중한 연구자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우아르메이 성에선 엘리트 장인의 무덤과 함께 성인 여자 2명, 청소년 2명, 어린이 1명 등 모두 5명의 무덤이 추가로 발견됐다.  고고학계에 따르면 과거 우아르메이 성에선 선조들을 모시는 의식이 거행되곤 한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성과 주변에는 와리문명 때 무덤이 많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 몸이 제 멋대로 움직이는 헌팅턴병 원인 밝혀냈다

    몸이 제 멋대로 움직이는 헌팅턴병 원인 밝혀냈다

    헌팅턴병은 헌팅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발생하는 것으로 전 세계적으로 10만명당 5~10명이 앓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헌팅턴병에 걸리면 안면경련과 함께 손, 어깨, 다리 등 여러 신체부위가 환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움직여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마치 춤추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무도병’이라고도 불린다. 40세 전후에 발병해 행동학적 이상과 함께 성격 변화, 치매가 동반되고 결국 사망에 이른다. 헌팅턴병은 신경세포의 연결 부위인 시냅스에 문제가 생기고 뇌의 선조체 부위 뇌세포가 파괴돼 질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발병 메커니즘이 밝혀지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명확한 치료법도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 경희대, 미국 보스턴대, 캘리포니아 샌디에고대(UCSD) 공동 연구팀은 헌팅턴병 환자 뇌 조직에서 정상적 시냅스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FAK라는 단백질의 활성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다고 28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신경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악타 뉴로패솔로지카’에 실렸다. 일반인의 뇌에서는 FAK 단백질이 활성화돼 신경돌기 운동성 및 정상적 시냅스 형성을 한다. 이에 연구팀은 헌팅턴병 환자의 세포와 헌팅턴 환자의 뇌조직, 헌팅턴병을 유발시킨 동물모델을 정상적인 뇌와 비교했다. 연구팀은 살아있는 세포에서 FAK 활성을 측정하기 위해 ‘형광공명에너지전달현상’(FRET)을 이용한 형광분자센서를 활용했다. 그 결과, 헌팅턴병이 발생한 사람이나 동물, 세포에서는 FAK 단백질 활성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FAK 단백질이 정상적으로 활성화되려면 세포막에 존재하는 인지질 중 PIP2라는 물질이 필수적이다. 연구팀이 초고해상도 형광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헌팅턴병 세포에서는 PIP2가 돌연변이 단백질과 강하게 결합하면서 정상적인 시냅스 기능을 방해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를 이끈 성지혜 KIST 박사는 “이번 연구는 헌팅턴병 환자의 시냅스 기능장애 메커니즘을 밝혀냄으로써 뇌기능 장애 회복을 위한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밀양박씨 종중의 600년 된 사당 철거 위기

    밀양박씨 종중의 600년 된 사당 철거 위기

    경기 고양시가 600년 된 밀양박씨 규정공파 두응촌 묘역의 사당 등을 원당1주택재개발사업지구에 포함시켜 강제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 밀양박씨 대종회 회원 1000여명은 23일 오전 고양시청 앞에 모여 사당인 ‘추원재’ 철거를 강력히 비판하는 항의집회를 열었다. 집회에 앞서 전남 강진 등 전국 각지에서 출발한 대종회원들은 오전 9시 덕양구 주교동 추원재에 집결해 고양시청까지 풍물패를 앞세워 1.5㎞ 거리행진을 벌였다. 집회 도중 박성훈 대종회장 등 3명은 “추원재 철거 결사반대”를 외치며 삭발식을 갖기도 했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고양시는 두응촌과 추원재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밀양박씨 규정공파 대종회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추원재를 일방적으로 재개발사업지에 포함시켜 철거를 시도하고 있다”며 “고양시의 무책임하고 안이한 행정으로 200만 밀양박씨 성손들은 조상님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치욕스런 지경에 이르렀다”고 탄식했다. 이어 “원당 아파트재개발 사업을 위해 600년 전통의 추원재 철거가 불가피했는지,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고양시에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수 백년간 고양시에서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밀양박씨 종중의 의중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고양시의 가혹하고 무책임한 조치를 더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추원재는 고려말 전법판서 겸 상장군을 지낸 박사경 묘가 1400년대 초 조성된 이래 조선 중기까지 약 200년간 56위의 밀양박씨 선조들을 모시는 두응촌 묘역의 사당이다. 200만 밀양박씨 후손들의 교육·문화공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추원재는 조선 초기에 창건된 뒤 임진왜란,한국전쟁 등 전란으로 소실과 중건을 거듭하면서 1987년 본채(추원재)와 동재(양덕당),서재(신의당),솟을대문(대화문)을 지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고양시는 1989년 두응촌 묘역 중 낙촌공 박충원(1507~1581) 묘역을 향토유적 제26호로 지정했다. 밀양박씨 대종회는 원당 재개발 사업 초기인 2009년 이후 여러 차례 추원재 존치를 요구하는 의견서를 고양시와 경기도,국토부 등에 제출해 왔다. 원당1구역 재개발사업은 덕양구 주교동 일대 12만385㎡에 26~35층 아파트 17개동 2600여 가구를 짓는 사업이다. 재개발조합은 올해부터 내년까지 이주와 철거를 마치고 2024년 착공한다.
  • ‘12척의 배가···’ 장계 쓴 ‘열선루’, 보성 랜드마크로 거듭난다

    ‘12척의 배가···’ 장계 쓴 ‘열선루’, 보성 랜드마크로 거듭난다

    전남 보성군은 충무공 이순신과 인연이 깊은 지역이다. 임진왜란 당시인 1597년 8월 15일 이순신 장군이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는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尙有十二) 장계를 쓴 곳이 바로 보성 열선루다. 그는 사흘 후인 8월 18일 수군을 재정비해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며 조선수군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군사와 군량미를 확보한 득량 선소와 조양창, 보성읍성, 군영구미 등 이순신 역사문화자원이 남아 있다. 장군의 부인인 방씨부인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고장이다. 이같은 역사성이 깃든 열선루를 보성군이 지역 랜드마크로 키운다는 방침이어서 눈길을 끈다. 22일 보성군에 따르면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보성읍 신흥동산 종합개발사업’을 통해 열선루를 역사문화 랜드마크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군은 2018년도부터 열선루 중건사업을 비롯한 보성읍 신흥동산 종합개발 사업을 추진해 왔다. 총 사업비는 118억원이다. 열선루 중건은 지난해 10월 마쳤으며, 현재 신흥동산 주변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열선루를 중심으로 △잔디광장 확대 △전망 휴게시설(테라스가든, 데크정원) △산책로 △주차장 등을 추가 설치했다. 열선루 전망 개선과 산책로 주변 여장(성 위에 낮게 쌓은 담) 조성을 통해 보성읍성의 옛 정취도 되살릴 방안이다. 열선루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조명하고, 이순신 정신을 이어나갈 수 있는 관광 문화 콘텐츠 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김철우 군수는 “열선루는 이순신이 조선 수군을 유지시키도록 선조에게 장계를 올린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곳이다”며 “ 군량미를 확보했던 조양창, 명량으로 출정한 군영구미 등 이순신 관련 역사와 유적지를 콘텐츠화해 하나의 관광 테마로 육성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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