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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전용기에 ‘문화재’ 태운 콜롬비아…밀반출 문화재 안전 운송

    대통령 전용기에 ‘문화재’ 태운 콜롬비아…밀반출 문화재 안전 운송

    해외로 밀반출됐던 콜롬비아의 문화재들이 속속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다. 콜롬비아 공군이 유럽에 있던 문화재 76점을 본국으로 옮겨왔다고 현지 언론이 16일 보도했다. 콜롬비아는 대통령전용기를 띄워 프랑스 파리에서 콜롬비아까지 안전하게 문화재를 운송했다.  남미 고대문명 문화재 76점은 15점 네덜란드, 11점 스위스, 나머지 프랑스 등 유럽 각지에 흩어져 있었다. 외교부 관계자는 “경매 등으로 팔려나갈 문화재가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각국 정부와 접촉해 모든 절차를 마치고 반환을 받은 것”이라며 “나갈 때는 불법으로 나갔지만 들어올 때는 당당히 콜롬비아의 문화재로서 합법적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콜롬비아의 인류학ㆍ역사연구소는 반환된 문화재 76점을 일일이 재검증, 진품임을 확인했다. 문화재는 킴바야 문명, 타이로나 문명, 시누 문명 등 남긴 소중한 유산이었다.  AC 700년부터 1600년까지 지금의 콜롬비아 남서부에 꽃피운 킴바야 문명은 뛰어난 수공예 실력을 가진 문명이었다. 농업이 주업이던 문명이지만 세라믹 기술과 금속제련 기술이 발전하면서 수준 높은 수공예품을 유산으로 남겼다.  인류학ㆍ역사연구소는 “반환된 문화재는 컵과 냄비와 그릇, 목걸이, 물개와 사람의 조형물에 이르기까지 당시 최고의 기술로 만든 공예품들이었다”며 “킴바야 문명은 마야처럼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수공예 기술에서 만큼은 결코 고대 어떤 문명에도 뒤지지 않는 문명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 구스타보 페트로 정부가 출범한 이후 콜롬비아가 고대 문화재를 되찾아온 건 벌써 두 번째다.  앞서 지난 9월 콜롬비아는 미국으로부터 고대 문화재 274점을 돌려받았다. 콜롬비아는 그때도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 중이던 페트로 대통령의 전용기에 문화재를 싣고 왔다.  외교부는 “해외로 몰래 빼돌린 문화재는 하나같이 국보급”이라며 “선조들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소중한 유산을 소중하게 다룬다는 의미로 문화재를 반환할 때 대통령전용기를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콜롬비아가 문화재에 각별한 신경을 쓰는 건 문화재 밀반출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정부에 따르면 2001~2010년 콜롬비아에서 사라져 해외 밀반출이 의심되는 고대 문화재는 최소한 7812점에 달한다.  콜롬비아 정부는 국내에 남아 있는 문화재의 보호와 해외로 나간 문화재 반환받기 등 2중 전략을 통해 문화재 지키기에 애를 쓰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존재가 확인됐지만 아직 반환받지 못한 문화재가 약 400점에 육박한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문화재가 모두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선문대, ‘미래자동차 시대를 열다’ 정책 포럼 열어

    선문대, ‘미래자동차 시대를 열다’ 정책 포럼 열어

    선문대학교(총장 황선조)는 16일 교내에서 ‘2022 미래자동차 신기술 정책 포럼’을 개최했다고 17일 밝혔다. 선문대 LINC3.0사업단과 미래자동차특성화사업단이 주관한 이번 포럼은 ‘친환경 신기술로 미래자동차 시대를 열다’를 주제로 관련 산업 연구·종사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포럼은 미래자동차 보급 확산과 혁신적 모빌리티 제공을 위한 정책 대안 모색, 관련 산업과 자율 주행 등의 동향 및 이슈에 대한 정보 공유 등을 위해 마련됐다. 포럼에서는 선문대 오인열 교수의 ‘천배 향상 센서 반도체와 자율 주행’, 순천향대 박성근 교수 ‘AI· DX 그리고 미래 모빌리티’, 한국교통대 박준수 교수 ‘충주시 미래자동차 관련 인프라 구축·협력 방안’ 등 주제 발표에 이어 기업 사례 공유 등으로 진행됐다. 황선조 총장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대비해 산학연 공유와 협업의 허브를 구축해 선제적이고 혁신적인 대응으로 충청권 미래 산업의 활성화를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오세훈 “이태원 참사, 시·행안부·경찰·소방이 반성해야” (종합)

    오세훈 “이태원 참사, 시·행안부·경찰·소방이 반성해야” (종합)

    오 시장, 시의회서 답변…“신고 통합관리 논의 착수”자치경찰 지휘·통솔권 강조…거듭해서 “책임” 언급오세훈 서울시장이 이태원 참사의 근본 원인으로 서울시·정부·경찰 등 관계 당국의 ‘예측 실패’를 지목했다. 오 시장은 박유진 더불어민주당 시의원이 이날 회의 시정질문을 통해 이태원 참사의 원인을 묻자 이 같이 답했다. 오 시장은 “사고의 원인을 따져보자면 핼러윈 때 이태원, 홍대에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예측하지 못한 데 있다”며 “서울시·행정안전부·경찰·소방이 반성할 부분이다”라고 강조했다. 시·경찰 간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에는 “서울시도 예측에 실패했지만, 경찰이나 소방 쪽도 예측에 실패한 건 마찬가지다”라며 “그래서 처음에 대응하기까지 상당히 시간이 지체됐고 여러 혼선이 빚어진 걸로 짐작한다”고 설명했다. ● 오 시장 “사고 이후에야 핼러윈 문건 확인”“자치경찰 권한 있었다면”…아쉬움 토로하기도 오 시장은 또 사고 이후에야 자치경찰위원회에 용산경찰서가 쓴 핼러윈 관련 문건이 와 있는 걸 확인했다고 말했다. 자치경찰은 지역 특성에 맞는 치안 활동을 펼친다는 명분으로 지난해 1월 개정 경찰법 시행과 동시에 도입됐다. 자치경찰의 총책임자는 해당 지역의 광역지방자치단체장이다. 그러나 자치경찰을 일선 경찰관이 겸하기 때문에 사실상 국가경찰의 지휘·통제를 받게 된다. 오 시장은 “자치경찰위가 파출소나 지구대를 관할하고 지휘·통솔할 권한이라도 있었다면 사전에 계획을 세우고 예방 조치를 하는 데 실효성이 있었을 것이다”라며 아쉬워 했다. ● 오 시장 “재난 예측 시스템 개발” 약속사고 당일, 첫 신고 13분 후 인지 오 시장은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대형사고나 재난을 예측할 수 있도록 관련 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오 시장은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112와 119 신고를 어떻게 통합해서 관리할지에 대한 논의에 들어갔다”며 “인공지능(AI)이나 지능형 폐쇄회로(CC)TV를 도입해 보완하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는 시청사 지하 3층에 재난안전상황실을 두고 24시간 상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 당일 112 신고 상황은 재난안전상황실에서 파악할 수 없었다. 시에서는 그날 오후 10시 15분 119 신고가 처음 들어온 지 13분 뒤인 오후 10시 28분 서울종합방재센터를 통해 사고를 인지했다. 재난안전상황실에는 시내 지능형 폐쇄회로(CC)TV 약 2만 9000대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만, 용산구 내 지능형 폐쇄회로(CC)TV는 해당 시스템에 연결돼 있지 않았다. 오 시장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스템을 고치겠다”고 약속했다.● 이태원역 무정차 통과…공사 vs 경찰 진실공방 오 시장은 사고 당일 이태원역 무정차 통과가 이뤄지지 않은 배경을 두고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이 벌인 진실 공방에는 말을 아꼈다. 오 시장은 관련 질문에 “경찰과 교통공사 사이에서 무정차 통과와 관련해 ‘요청했다’, ‘시간이 언제다’라는 등 각자의 의견이 엇갈리는 걸로 보도됐다”며 “나도 확인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서울교통공사의 입장에 변함이 없어서 수사해 결론을 내야 할 사안으로 본다”고 신중한 답변을 내놨다. 그러나 “공사는 서울시에서 제일 규모가 큰 투자출연기관인 만큼 최종 책임은 시에 있다”고 인정했다. 서울시·소방재난본부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는 “시장의 지휘·통제하에 있다”며 “소방재난본부장은 시장의 지휘·통솔을 받고 사고가 발생하면 시장에게 보고하게 돼 있다”고 답했다. 오 시장은 “선조치 후보고‘ 원칙에 따라 구호·구급 활동을 먼저 하고 현장 상황을 전파한다”고 부연했다. 서울소방재난본부는 서울시 조직이지만 소방청의 지휘를 받고 본부장 인사 권한도 소방청에 있다. 자치경찰과 마찬가지로 ’이중 구조‘로 이뤄져 있어 본부와 서울시 간 빠른 보고와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오 시장은 이날 시정질문에 답하며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 “뭐든 책임지겠다”, “최종 책임은 서울시에 있다”며 여러 번에 걸쳐 책임을 강조했다.
  • 행복위, ‘복지건강국, 경북독립운동기념관, 아이여성행복국, 경북청소년육성재단 행정사무감사’

    행복위, ‘복지건강국, 경북독립운동기념관, 아이여성행복국, 경북청소년육성재단 행정사무감사’

    경북도의회 행정보건복지위원회(위원장 최태림)는 14일 행복위 회의실에서 복지건강국, 경북독립운동기념관, 아이여성행복국, 경북청소년육성재단에 대한 행정사무감사를 실시했다. 복지건강국 행정사무감사에서 박선하(비례) 의원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지역 장애인 인권유린시설에 대한 사후조치가 미흡하다고 지적되었다면서 철저한 전수조사, 시설폐쇄, 피해자 분리 등 할 수 있는 모든 대책을 조치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이칠구(포항) 의원은 노인학대는 97%가 가정에서 발생하므로 노인인권보호사 역할을 하는 경로당 행복도우미는 행정 편의적 제도라고 지적하고 사건의 원인 분석을 정확히 하고 개선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촉구했다. 경북독립운동기념관 행정사무감사에서 박영서(문경) 부의장은 독립운동관장을 상근직으로 전환하도록 여러 차례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했으나 여전히 비상근직이라면서 그간의 여러 기관 내부 문제들이 비상근직 기관장에서 촉발이 됐다고 볼 수 있다며 반드시 개선할 수 있도록 당부했다.   김원석(울진) 의원은 독립운동 기념관의 경영평가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동안 최하위인 C등급이라면서 기관존립여부를 심각하게 고려할 수준이라고 강하게 질타하고 선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될 수 있도록 절치부심하는 할 수 있도록 촉구했다.  아이여성행복국 행정사무감사에서 최태림(의성) 위원장은 아동학대가 건수를 매년 줄어들고 있으나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점은 큰 문제라면서 대응방안을 모니터링으로 처리한다고 하는데 적극적인 아동분리 조치와 강력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강조했다. 황명강(비례) 의원은 스토킹과 데이트 폭력 사건 피해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전반적으로 부실하다고 질타하면서 스토킹범죄 관련 조례안이 최근 통과된 만큼 내년도 예산안에도 관련 사업을 반영할 수 있도록 당부했다. 경북청소년육성재단 행정사무감사에서 임기진(비례) 의원은 경영평가결과가 통합 전에는 S등급이었으나 재단통폐합 후 2년 연속 B등급을 받았다고 지적하고 원인을 면밀히 분석하고 등급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개선 방안을 요청했다. 김희수(포항) 의원은 재단 예산 운영상황이 전반적으로 부실하다면서 국고보조금도 일부 사업의 경우 절반 정도 집행했고 재단 운영비도 집행율이 60%정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철두철미한 예산 집행을 주문했다.  
  • 경북도의회 문화환경위원회, 보건환경연구원 행감 실시

    경북도의회 문화환경위원회, 보건환경연구원 행감 실시

    경상북도의회 문화환경위원회(위원장 김대일)는 지난 11일 보건환경연구원에 대한 행정사무감사를 실시했다. 보건환경연구원으로부터 2022년 주요업무 추진상황과 2023년 주요업무추진계획을 보고받은 위원들은 감염병 병원체 검사 시스템과 식품 안전성 확보 등 안전하고 쾌적한 생활환경 조성과 관련된 연구원의 업무 전반에 대한 다양한 질의를 통해 강도 높은 감사를 진행했다.  임병하 위원(영주)은 낙동강 수질오염에 따라 먹는물 수질관리를 철저히 해줄 것과 코로나를 대비하여 노약자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했다. 또한, 연구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연구와 활동을 위한 장비 등의 연구환경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며, 전문가들에 대한 지원이 전폭적으로 이루어져야 우리나라가 선진국 수준의 건강과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경민 위원(비례)은 경로당이나 양로원 등 복지시설에 사용되는 공기청정기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의뢰되는 장소에만 실내공기질 검사를 하기보다는 자체적인 대상선정을 통한 검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또한, 먹는물 수질검사 시 재검사에서 적합 판정이 나온 후 다음 정기검사에서 다시 부적합 판정이 나오는 경우가 반복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므로 경고조치 등 특별한 조치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연규식 위원(포항)은 연구원 페이스북의 ‘좋아요’가 직원 수에도 못 미친다고 언급하고, 잘하는 건 알릴 필요가 있고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므로 모든 정보에 대해 직원들 전체와 공유하기를 주문했다. 또한, 물휴지에서 검출된 CMIT,MIT는 가습기 살균제로도 사용된 물질이며 물휴지는 아이가 입에도 댈 수 있는 민감한 제품이기 때문에 물휴지에 대한  검사횟수를 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현 위원(구미)은 감염병 예방을 위한 선제적 감시체계 구축은 잘하고 있는 사업이라고 칭찬하며, 사업대상을 중증환자 복지시설 등에까지  확대해 줄 것을 요구했다. 또한, 공기를 단축해야 공사를 맡기는 사람이나 시공을 하는 사람 모두에게 이익이라며 감염병 분석센터 건립을 차질 없이 추진해 주기를 당부했다. 아울러, 코로나 검사능력은  검사장비에 달려있으므로 이를 갖추기 위한 예산확보에 최선을 다해 줄 것을 강조했다.  김경숙 위원(비례)은 방사선조사식품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언급하고, 우리가 흔히 먹고 있는 감자, 양파, 마늘에 세균이나 싹, 미생물을 죽이기 위해 쓰고 있는 방사선을 정부에서는 무해하다고 하나 인체에 분명히 해가 있다고 역설했다. 또한, 방사선 조사식품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으로, 내년부터는 후쿠시마에서 방사능오염수를 방류한다고 하므로 수산물을 포함한 식품의 방사능검출에 대한 연구가 도민과 우리나라의 건강을 위해 더욱 필요함을 강조했다.  박규탁 위원(비례)은 경상북도 생물안전위원회에 외부위원이 1명 밖에 없다고 지적하며 좀 더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려면 1명의 외부위원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역설했다. 또한, 골프장 농약이 맹독성은 없으나 잔류농약이 많으므로 한 골프장 내 사용할 수 있는 농약의 총량관리가 필요하다며 그 부분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 줄 것을 촉구했다. 끝으로, 연구원에서 순수한 연구분야를 좀 더 강화해야 한다며, 생산되는 시험결과를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유의미한 자료로 만들고 이를 국가산업 등 많은 부분에 활용해 줄 것을 주문했다.  이동업 위원(포항)은 연구원의 검사나 조사가 의뢰에 의한 것들이 많다며 선제적으로 조사하는 부분을 늘려가야만 조사건수도 늘리고 불편한 부분들도 찾아내어 도민의 건강한 삶에도 도움이 될 거라며 역설했다. 또한, 악취제거가 필요한 농축산가가 경북에 많으므로 커피찌꺼기를 이용한 악취 제거에 문제가 없도록 커피찌꺼기 확보에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아울러, 미나리가 요소비료만 뿌리면 급성장함을 언급하고 생식을 많이 하는 식품이니 농약검출에 더욱 신경을 써줄 것을 주문했다.  도기욱 위원(예천)은 업무보고에서 2022년 사업은 기대효과가 아닌 결과를 적어야 하며, 2023년 사업은 기대효과를 적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중증장애인 생산품 구매실적이 낮다며 1%를 구매해주면 장애인의 취업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삶의 질까지 높아진다며 이 부분에 각별히 신경 써 줄 것을 당부했다. 끝으로, 지난 3년 동안 코로나로 연구원의 모든 직원들이 고생했다며 격려했다.  끝으로 김대일 위원장(안동)은 “연구원에서 생산된 데이터나 개발한 기술을 바탕으로 효과 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예산이 많이 투입되고 있는 커피찌꺼기 사업 또한 축산농가의 악취저감에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마무리했다. 
  • 의병연합부대 지휘, 성 주둔 적 궤멸시켜… 왜군 상주로 퇴각, 경상좌도 안전 확보[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의병연합부대 지휘, 성 주둔 적 궤멸시켜… 왜군 상주로 퇴각, 경상좌도 안전 확보[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경북 영천은 금호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고을이다. 금호강 둔치에 조성된 영천생태지구공원에서 바라보면 건너편으로 우뚝한 조양루가 그림자를 강물에 드리우고 있다. 조양루의 원래 이름은 명원각이었다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버리는 바람에 1638년 다시 짓고 이름도 새로 지었다고 한다. 조양루 뒤편의 나지막한 언덕 일대에 조선시대 영천성이 자리잡고 있었다.영천은 동쪽으로 포항, 남쪽으로 경주, 서쪽으로 대구, 북쪽으로 안동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중심이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한양으로 향하는 왜군이 반드시 거쳐야 했던 요충이었다. 하지만 당시 경상좌병사 이각이 울산병영성을 버리고 도주하면서 가토 기요마사가 이끈 왜군의 제2군은 영천성에 무혈입성했다. 영천성은 왜침의 기운이 높아지면서 축성작업에 들어가 왜란 바로 전해인 1591년 완성했는데 허무하게 내준 것이다.가토는 2만 2800명에 이르는 자신의 병력 가운데 일부를 영천성에 남겨두고 신령, 의흥, 용궁을 거쳐 조령으로 북상했다. 영천성 주둔 병력을 두고 일본 학계에서는 500명에서 2000명까지 다양한 주장이 있는데,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우리 쪽 기록을 종합하면 1000명 안팎으로 보는 게 무리가 없을 듯하다.영남 성리학의 양대 축은 경상좌도의 퇴계 이황과 경상우도의 남명 조식이다. 5월 5일 경상도 초유사 김성일의 격문도 지역의 학문적 배경부터 파고들었다. 김성일은 ‘영남은 본래부터 인재가 많은 고장으로 퇴계·남명 두 선생이 한 시대에 같이 나서 도학을 제창해 사람의 마음을 밝히고 사람의 기강을 바로잡는 일을 자기 책임으로 하자, 선비들도 그 감화에 점점 물들어 본받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또 평소엔 허다한 성현의 책을 읽어 그 얼마나 자신만만한 사람들이었더냐’고 도학의 본향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하루아침에 변란을 당하자 오직 살길이나 탐내고 죽음을 회피하는 일만 서둘러, 임금을 버리고 어버이를 뒤로 돌리는 죄악에 스스로 빠져 버리니 구차스러이 세상에 산다 한들 어떻게 머리로 하늘을 이고 살고, 죽어 지하에 가서도 어떻게 선대 현자(賢者)들을 뵈올 것인가’라고 했으니 떨쳐 일어서지 못하고 있는 경상도 선비들을 질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경상우도에서는 의령 의병장 곽재우가 일찍이 4월 22일 거병해 5월 18일 기강 전투와 5월 26일 정암진 전투로 왜적의 호남 진공을 틀어막고 있었다. 고령의 김면과 합천의 정인홍도 잇따라 창의해 6월 6일 무계전투를 시작으로 낙동강 서쪽의 왜적에 큰 타격을 가하게 된다. 경상좌도에서도 비슷한 시기 비슷한 움직임이 일었는데 김성일의 초유 활동이 한몫을 했을 것이다. 영천 일대에서도 의병 조직이 본격화됐다. 초기에 주목할 의병 활동이 한천 전투다. 5월 6일 의병이 신녕현 한천 대동에서 왜군 13명과 이들과 내통한 관노 희손 일당 등 30명을 소탕한 것이다. 오늘날 신녕은 영천의 일부지만 당시에는 신녕현으로 영천군과 분리되어 있었다. 한천 전투를 주도한 의병장이 권응수다. 전투 소식이 알려지면 주변에서도 창의에 속도를 냈다.백운재(白雲齋) 권응수(權應銖·1546~ 1608년)는 1583년 별시 무과에 급제한 무인이다. 왜란 발발 당시 경상좌도수군절도사 박홍 막하의 무관이었다. 박홍은 4월 13일 왜적이 부산포에 침입하자 동래의 경상좌수영을 불태우고 군선을 가라앉힌 뒤 후퇴했다. 경상좌수영 군사는 산산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권응수도 이때 고향 신녕으로 돌아갔는데 왜란 초기 우리 관군의 상황이 대략 이랬다. 전장에서 왜적과 맞붙어 전멸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위세에 놀라 궤산한 것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관군 패잔병은 이후 고향 땅에서 다시 의병에 가담하게 된다. 권응수는 4월 27일 신녕에서 동생 권응전·권응평·권응생을 비롯해 이온수·우응거 등과 창의했다. 날짜를 보면 고향에 돌아가자마자 거병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듯하다. 권응수는 활을 잘 쏘았고, 특히 일반적인 전투용 화살의 절반 길이인 편전에 능했다고 ‘국조인물고’는 적고 있다. 그런데 영천성 공성전을 보면 권응수는 도끼를 무기로 쓰는데도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권응수는 다양한 병기를 다루면서 기백도 출중한 무인이었다. 한천 전투 직후부터 영천에서는 세아·정대임·정담·조희익 등이 거병했다. 하양의 신해, 의흥의 홍천뢰, 자인의 최문병, 경산의 최대기 등 주변 지역에서도 창의가 잇따랐다. 6월 초순에는 왜란 발발 당시 밀양부사로 이후의 전공으로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로 승진한 박진이 신녕을 찾기도 했다. 동시에 영천성 탈환을 위한 지역 의병의 조직화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영천성 탈환작전은 사실상 의병과 관군의 연합작전이었다. 경상좌병영의 화기(火器) 지원이 있었고, 무엇보다 경주판관 박의장, 영천군수 김윤국, 신녕현감 한척, 하양현감 조윤신의 관군이 참전했다. 본격적인 공성전은 7월 25일 시작됐지만, 영천성으로 이어지는 왜군의 보급선을 끊는 작전이 일찍부터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권응수 의병이 7월 14일 박연에서 왜적을 치고 22일 소계와 사천까지 추격해 격파한 것도 이런 노력의 하나였다.각각 소규모 왜적을 상대로 전투를 치르던 경상좌도 의병장들은 영천성 공격을 앞둔 7월 24일 창의정용군(倡義精勇軍)이라는 일종의 의병연합부대를 결성한다. 지역 의병이 한데 모인 만큼 자칫 실전에서 작전 능력이 미치지 못하고 지휘체계도 부실할 수 있음을 우려했을 것이다. 창의정용군은 총지휘관 선정을 박진 경상좌병사에 맡겼다. 박진이 ‘의병대장’으로 권응수를 임명한 것은 뛰어난 북방에서 여진족을 상대로 쌓은 전투 경험에 언제나 앞장서 돌격하는 리더십이 걸출하고, 관군과 의병이라는 두 조직 사이 소통에도 적임이라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공성군은 4000명 남짓이었는데 영천성에 웅크리고 있는 왜적을 공격하기에 결코 충분한 숫자가 아니었다. 권응수는 공성 과정의 이탈이나 소극적 전투자세를 경계했다. ‘두려워하여 말을 어지럽히면 목을 벤다. 적을 보고 다섯 걸음 물러나면 목을 벤다. 직무를 마음대로 하여 장수의 명령을 어기면 목을 벤다. 전투에서 대열을 이탈하면 목을 벤다’는 엄격한 군율을 세웠다. 영천성 탈환작전의 개요는 선조수정실록을 참고한다. 실록은 ‘영천성의 왜적은 안동의 적과 일로(一路)를 형성하고 있었다. 영천의 사민(士民)이 여러 곳에서 일어선 의병과 연결해 공격하고자 박진에게 원조를 요청하자, 박진이 별장인 주부 권응수를 보내어 공격하게 했다. 영천성에 이르니 적이 성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권응수가 군사를 합쳐 포위하고 성문을 공격하여 깨뜨렸다. 권응수가 큰 도끼를 가지고 먼저 들어가 적을 찍어 넘기니 여러 군사들이 용감하게 달려들어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면서 진격했다’고 적었다. 실록은 이어 ‘적병이 패해 관아 창고로 들어가자 관군이 불을 지르니 적이 모두 타서 죽었고, 도망쳐 나온 자도 우리 군사에게 차단되어 거의 모두 죽었으며, 탈출한 자는 겨우 수십 명이고 머리를 벤 것이 수백 급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영천성을 수복해 아군의 위세가 크게 떨쳐졌다. 안동 이하에 주둔한 적이 모두 철수해 상주로 향했으므로 경상좌도의 수십 고을이 안전하게 됐다’고 했다. 실록은 특히 권응수를 두고 ‘용맹스러운 장수로 과감히 싸우는 것은 여러 장수들이 따르지 못했다’고 했다. 영천성 탈환작전은 7월 27일 마무리됐다. 왜적으로부터 200필의 말과 900자루의 총통 등을 노획하는 대승리였다. 1000명의 주둔병력 가운데 수십 명이 간신히 달아났을 뿐이니 사실상 적군을 궤멸시킨 것이다. 우리 피해는 전사자 80명에 부상자 230명 남짓이었다. 권응수는 영천성 탈환의 공로로 경상좌병사의 참모장인 우후가 됐다. 이듬해 2월에는 문경 당교에서 왜적을 대파하고 경상좌병사로 승진한다. 이후 정유재란까지 수많은 승리를 거뒀다. 1603년 선무공신 2등에 책록됐고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졌다. 1607년 공조 판서에 올랐다. 시호는 충의공(忠毅公)이다.
  • ‘일방통행’ 우면산터널 버스, 10년 만에 서초 양방향 부릉~

    ‘일방통행’ 우면산터널 버스, 10년 만에 서초 양방향 부릉~

    “10분 거리를 30~40분 걸려 귀가하니 힘들었는데 10년 묵은 체증이 확 뚫리는 것 같습니다.” 서울 서초구는 ‘우면동~교대역’ 구간의 우면산터널을 양방향으로 다니는 4435번 지선버스가 오는 21일부터 운행을 시작한다고 6일 밝혔다. 2012년부터 우면동에서 서초동 방향으로 우면산터널을 편도 운행하는 버스가 운행을 시작했지만, 반대 방향의 노선은 없었다. 이에 우면산터널 양방향을 운행하는 노선을 신설해 달라는 주민들의 요청이 많았다. 우면산터널을 경유하면 약 10~15분이면 가는 거리를 1~2회의 환승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40여분이 걸렸다. 버스노선 결정 권한은 서울시에 있다. 구는 지난 10년간 우면산터널 양방향 버스노선 신설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2019년에는 서울시 노선조정심의회에 양방향 노선조정안이 상정됐으나, 끝내 부결돼 무산 위기에 놓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구는 노선 신설을 위해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전성수 서초구청장은 최호정 서울시의원과 함께 지속적으로 주민 의견을 청취했다. 또 전 구청장은 서울시 관계자를 만나 우면동의 열악한 대중교통환경 개선 및 버스노선 신설을 요청했다. 4435번 버스는 21일부터 ‘개포동~양재역~우면동~우면산터널~서초역·교대역’ 노선으로 양방향 운행한다. 첫차와 막차 시간은 각각 오전 4시 20분, 오후 11시 30분이다. 전 구청장은 “버스 운행 개시 후에도 모니터링을 통해 이용 불편사항이 없도록 서울시와 지속 협의해 개선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문화유산 속마음까지 찾아낸 문화재 보존의 비밀

    문화유산 속마음까지 찾아낸 문화재 보존의 비밀

    ‘계영배’는 아주 특별한 조선 백자다. 경계할 계(戒), 찰 영(盈), 잔 배(杯)에서 보듯 ‘가득 참을 경계하라’는 가르침이 담겼다. 술이 7할 정도 차면 더 채워지지 않는 특별한 구조에 의해 술이 저절로 빠져나간다. 이 비밀스러운 구조를 확인하려면 단면으로 잘라야 하는데, 하나뿐인 문화유산을 훼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때 필요한 게 컴퓨터단층촬영이다. 비파괴 검사로 내부 구조를 파악하고 제작 기법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계영배’ 입장에선 새 생명을 얻는, 후손으로선 선조들이 미래에 전한 메시지를 획득하는 순간이다. ‘과학으로 보는 문화유산’은 흔히 ‘과거를 미래에 전하는 학문’이라 일컫는 보존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문화재에 담긴 삶과 정신을 과학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문화재 보존과학자는 종종 의사에 비유된다. 문화재를 발굴, 진단, 처리, 보존하는 과정이 의료 현장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광주 신창동 출토 목기를 예로 들자. 땅에 묻힌 목재는 썩지만 저습지에 묻히면 다르다. 목재 세포에 물이 채워지고 공기와 차단돼 썩지 않는다. 이런 ‘수침목재’도 땅 위로 발굴되는 순간, 수분이 증발하며 눈 깜짝할 사이에 형태가 변한다. 잠깐의 실수로 수천년을 견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다. 목재 같은 유기물이 출토되면 물이 담긴 용기에 담아 신속하게 보존처리실로 옮겨야 한다. 이런 일을 하는 이들이 보존과학자다. 책은 금속, 토기, 목재 등 소재별로 나눠 문화재 보존 처리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한국 고고학사의 위대한 발견이라는 명성과 졸속 발굴이라는 오명을 동시에 안은 충남 공주 무령왕릉, 서양 우월주의 ‘모비우스 학설’을 폐기하게 만든 경기 연천 전곡리 주먹도끼 등 흥미로운 발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저자는 “보존과학은 오랜 시간 먼지 아래 숨어 있던 본래의 가치와 의미가 드러나게 하는 분야”라며 “역사를 보는 또 하나의 시선인 과학을 통해 우리는 미래를 꿈꿀 수 있다”고 말했다.
  • 동대문구, ‘구민의 발’ 마을버스 노선 재정비한다

    동대문구, ‘구민의 발’ 마을버스 노선 재정비한다

    서울 동대문구가 주민 친화적 교통 환경을 조성하고자 마을버스 노선 체계 재정비에 나선다고 2일 밝혔다. 구는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악화 및 기사 인력난 등으로 마을버스 운영에 대한 민원이 증가함에 따라 마을버스 노선을 전면 재검토하는 ‘2023 마을버스 노선 정비 연구용역’을 추진한다. 용역을 통해 마을버스 노선 운영 현황을 재검토하고 합리적인 노선 조정안을 도출해 주민 수요에 따른 마을버스 운행과 체계적인 교통 대책을 수립하겠다는 방침이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노선 체계를 도출해 ‘마을버스 재정비 5년 로드맵(2022년~2026년)’을 수립하며 2024년 마을버스 노선조정심의위원회를 거쳐 서울시 승인을 받을 계획이다. 서울시 승인 이후 동대문구 마을버스 4개 노선(동대문01, 동대문02, 동대문03, 동대문05)을 운행 중인 3개 운수업체에 대하여 사업개선명령을 시행해 변경된 노선을 적용하게 된다. 이번 노선 재정비로 주택 재개발·재건축 사업 등으로 변화해 온 도시 여건과 지하철 확장, 새로운 이동수단의 등장 등 새로운 교통여건을 반영할 수 있는 효율적인 마을버스 노선 체계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이필형 동대문구청장은 “구민의 수요에 맞게 마을버스 노선을 정비해 마을버스 이용자를 늘리고 주민친화적인 교통 환경을 조성하겠다”며, “우리 구민의 발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을버스 노선 정비를 시작으로 GTX, 청량리역 광역환승센터, 드론 택시 등 첨단 미래교통체계 구축을 위해 열심히 뛰겠다”고 밝혔다.
  • 선문대 ‘세계와 미래를 향한 도약’…건학 50주년

    선문대 ‘세계와 미래를 향한 도약’…건학 50주년

    선문대학교는 26일 아산캠퍼스에서 ‘선문 50년, 세계와 미래를 향한 도약’을 주제로 건학 5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황선조 총장을 비롯해 선학학원 송용천 이사장과 김지철 충남도교육감을 비롯해 인근 대학 총장 등이 참석했다. 선문대는 이날 건학 50주년을 기념해 기존보다 단순화시키면서 전통성을 이어가는 디자인으로 제작한 심볼 마크를 변경개 공개했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1972년부터 현재까지 50년의 역사를 약 25만 점의 사진 중에서 엄선한 137점의 사진으로 정리해 3D로 구현된 4개의 주제별 온라인 사진전이 열렸다. 황선조 총장은 비전 선포에서 2012년 이후부터 약 2300억 원의 국책사업 지원을 통한 탄탄한 교육 재정,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대전·충남·세종에서 유일한 최우수 A등급을 시작으로 세 차례에 걸쳐 최우수 등급을 획득한 검증된 교육역량, 선도적인 국제화 역량, 지역과 동반 성장하는 지역 공생 대학 등의 성과를 강조했다. 선문대는 건학 50주년 기념 홈페이지(https://50th.sunmoon.ac.kr)를 개설하고, 건학 50주년 엠블럼과 온라인 사진전, 선문대 박물관 특별 전시 영상 등을 공개했다. 황선조 총장은 “선문대는 ‘세계와 미래를 향한 도약’을 위해 새로운 50년을 위한 출발을 시작한다”며 “건학이념의 기반한 선문대 공동체 정신으로 함께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 ‘모든 것 공정하게’ 군자 정신 일깨운 호남인맥 중심지[이동구의 서원 산책]

    ‘모든 것 공정하게’ 군자 정신 일깨운 호남인맥 중심지[이동구의 서원 산책]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에 위치한 필암서원은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의 학문과 정신 세계를 추앙, 계승하기 위해 세워졌다. 필암은 김인후의 태생지인 전라 장성부 황룡면 맥호리 맥동마을 입구의 붓바위에서 비롯됐다. 그의 사후 30년이 지난 1590년(선조 23년)에 제자와 문중이 뜻을 모아 서원을 건립했으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등으로 소실되고 현재의 서원은 1672년(현종 13년) 3월에 이건됐다. 앞서 1662년(현종 3년)에는 조정으로부터 필암서원(筆巖書院)이라는 사액이 내려졌다. ●정철·양자징 등이 대표적 후학 김인후는 호남 지역 주자성리학의 흐름을 계승하고 크게 발전시킨 인물이다. 36세 때 인종이 숨지자 벼슬을 버리고 장성으로 돌아와 자신의 철학적 견해를 적극적으로 펼쳐 성리학의 체계를 성립했다. 평생 동안 주자성리학에 충실한 학자로 ‘대학’(大學)을 천 번 넘게 읽었다고 한다. 그는 제자들에게 “대학을 버리고서는 도에 이를 수 없으며 이를 읽지 않고 다른 경서를 보고자 하는 것은 마치 터를 닦지 않고 먼저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설파했다. 도동서원에 추숭된 김굉필이 소학을 중시한 것과 대비된다. 그의 사상은 이기론(理氣論)에서 이(理)의 우의성을 인정하면서 율곡 이이의 학설이 정립되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같은 학문적 성과로 문묘에 종향된 동국 18현 가운데 유일한 호남 유학자가 됐다. 그의 문묘 종향을 결정한 정조(20년, 1796년)와 송시열 등은 “도학과 절의와 문장을 다 갖춘 사람은 오직 김인후 한 사람뿐”이라고 평가했다. 정조는 한 술 더 떠 “동방의 주자(朱子)”라 칭하기도 했다. 김인후의 학문과 도학정신 등 학통을 이은 후학들은 조선후기 붕당정치에서 대체로 서인과 노론의 입장을 취했다. 김인후의 사위로 함께 추향되고 있는 양자징을 비롯해 변성온, 기효간과 가사문학으로 널리 알려진 정철, 소쇄원의 주인이었던 양산보 등이 대표적인 후학들이다. 이들은 영조 이후 노론 주도의 탕평 정국에서 호남 지역의 학문적인 주도권을 강화해 나갔는데, 필암서원이 그 중심 거점이었다. 특히 김인후의 문묘 종향은 필암서원이 호남의 여론 진원지이자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확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고종 8년)에도 훼철되지 않았던 전남 유일의 서원으로 남게 된 배경 또한 필암서원의 확고한 위치와 역사성에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서원 방문객 박영철(예문관 전무)씨는 “옛부터 장성, 창평, 광주 등지에서 훌륭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고 있는 건 필암서원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라고 자부심을 표시했다.●서원의 실질적인 중심 우동사 조선의 서원은 기본적으로 전당후묘(前堂後廟), 전저후고(前低後高)의 원칙하에 건물들이 배치된다. 필암서원은 들판이 펼쳐진 평지에 자리잡고 있어 이런 지형적 특성을 살리지는 못했다. 서원의 정문이자 누각인 확연루(廓然樓)는 군자의 학문은 모든 것을 공정하게 대하는 마음을 배우는 것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김인후의 폭넓은 학문세계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강당인 청절당(淸節堂)은 청렴결백한 절개를 지켜 벼슬길을 끊은 선생의 깨끗한 절개를 표상한다. 강회를 비롯해 서원의 모든 행사가 열리는 핵심공간이다. 특이하게도 다른 서원과 달리 서원 입구 쪽 확연루를 향하지 않고 반대편 김인후와 양자징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인 우동사(祐東祠)를 바라보고 있다. 유생들이 기거하는 공간인 동재와 서재도 북쪽의 우동사를 바라보고 있다. 이는 추향인물을 바라보며 공손하게 예를 표하도록 한 건물 배치로 사당 우동사가 의례적인 서원의 중심이 아니라 실질적인 존엄한 장소임을 깨닫도록 한 것이다.●존경과 신뢰의 증표 묵죽도 인종은 스승인 하서 김인후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생전에 묵죽도, 주자대전, 배 3개를 선물로 하사했다고 전해진다. 인종이 전한 3개의 배는 현재 나주배로 널리 퍼졌다는 설로 남아 있다. 묵죽도와 주자대전은 필암서원 우동사 앞에 세워진 경장각(敬藏閣)과 장서각(藏書閣), 장판각(藏板閣)에서 보관해 왔다. 임금이 하사한 내사본을 비롯해 보물 제587호로 지정된 고문서 ‘필암서원 문적일괄’(14책 64매)과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 기탁 중인 ‘김인후 관련 문서’가 필암서원의 대표적인 고문서로 꼽힌다. 인종 임금이 하사한 ‘묵죽도’(墨竹圖)는 경장각에 보관돼 있었다. 묵죽도는 인종이 세자 시절인 1543년 김인후에게 선물한 것으로 스승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았다. 그림에는 우뚝 선 거친 바위 뒤에 네 그루의 대나무가 서 있다. 그림 왼쪽 아래에는 김인후가 왕의 명에 따라 쓴 시가 담겨 있다. ‘뿌리 가지 마디 잎사귀 모두 정미해/ 돌을 벗 삼은 뜻 그 속에 가득하네/ 이제야 알겠네 성스러운 솜씨가 조화를 짝해/ 하늘 땅이 한 덩이로 어김없이 뭉쳤네(根枝節葉盡精微 石友精神在範圍 始覺聖神모造化 一團天地不能違)’ 그림 속 바위가 대나무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준다는 내용으로 왕과 신하의 관계인 스승에 대한 존경과 신뢰의 증표로 평가되고 있다. 정조는 인종이 하사한 묵죽도의 보관 여부를 확인한 뒤 필암서원에 경장각을 세우게 하고 편액을 내렸다. 현재 필암서원의 관리,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김성수 도유사는 취재진에게 인쇄본 묵죽도를 펼쳐 놓고 그림의 유래와 의미 등을 20분 넘게 설명했다. 김인후의 13세 손인 그가 필암서원과 선조에 대해 얼마나 깊은 자긍심과 존경심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선비문화 세계화 필암서원 역시 후학들과 배향자 후손들의 주도로 서원 설립의 취지를 면면히 이어 왔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전국 유림들이 고산앙지(高山仰止)의 뜻을 모아 산앙계를 결성해 서원의 운영 및 향사에 크게 보탬이 됐다. 2001년 8월에는 전국 각지의 유림 250여명이 모여 필암서원을 성학 수련의 도량으로 영구 보존, 발전시킨다는 결의를 선포하면서 산앙회가 재창립됐다. 이들은 서원과 함께 학술강연회, 서책 발간, 청소년 장학사업 등 각종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9년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후에는 자치단체와 문화재청 등의 지원도 활발해지고 있다. 장성군의 경우 2021년부터 3년간 1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필암서원 선비문화 세계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원에 머물며 선비문화와 역사가치를 체험할 수 있도록 서원스테이를 추진하고 유물전시관을 종합기록관으로 확장해 전남의 서원 기록을 보존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요리 교실과 전통공예 등 지역의 관광명소와 축제 등을 연계한 프로그램 개발에 나서고 있다. 특히 김 도유사는 “황룡강에서 펼쳐지고 있는 자치단체의 꽃 축제와 연계한 서원문화 축제를 검토 중”이라면서 “소나무길과 은행나무 쉼터 등을 조성해 축제 참가자들이 자연스럽게 서원에 들러 선비문화를 체험하고 선조들의 정신 세계를 다시금 느낄 수 있게 할 예정”이라고 했다.
  • 강서 허준박물관에서 선조들의 불로장생의 꿈을 엿보다

    강서 허준박물관에서 선조들의 불로장생의 꿈을 엿보다

    건강과 무병장수를 꿈꾼 선조들의 지혜를 구민들과 공유하는 특별전이 열린다. 서울 강서구는 내년 3월 19일까지 가양동 허준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우리 곁으로 온 역사의 향기 신소장품 특별전 2017~2022’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허준박물관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구입하거나 기증받은 유물 총 452건 1281점 가운데 선조들의 의학 지식이 담긴 각종 의서, 의약기, 자수십장생도 등 엄선된 유물 100여점을 처음으로 한자리에 선보인다. 전시는 ▲프롤로그 ▲1부 전의감, 의약과 관련된 일을 하다 ▲2부 병의 치유를 염원하다 ▲3부 건강과 장수를 바라다 ▲4부 기증, 역사를 공유하다 등으로 구성됐다. 문을 열면 2018년에 구입한 유물로 구를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인 구암 허준의 ‘동의보감’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어 각종 전의감과 관련된 교지, 약을 제조할 때 사용하는 의약기, 일제강점기 이후 치료약, 건강과 장수의 의미가 담긴 백수백복도, 자수십장생도 등 다양한 유물을 통해 선조들의 건강한 삶에 대한 열망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전시연계 체험 프로그램인 ‘십장생 텀블러백 꾸미기’도 3층 로비에서 열린다. 김쾌정 허준박물관장은 “한의학 전문 박물관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허준박물관은 꾸준한 유물 수집과 알차고 내실 있는 전시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 ‘수군 동원 日본토 역습’ 상소한 기개… 변응정, 횡당촌전투 큰 공적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수군 동원 日본토 역습’ 상소한 기개… 변응정, 횡당촌전투 큰 공적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충남 금산 칠백의총의 종용사(從容祠)에는 임진년(1592년)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의사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7월 10일 눈벌전투의 전라도 의병장 고경명, 8월 18일 연곤평전투의 옥천 의병장 조헌과 공주 의승장 영규대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런데 8월 27일 횡당촌전투를 이끈 해남 현감 변응정은 조금 낯설 수도 있겠다. 그는 왜군의 기세가 최고조에 올라 있는 상황에서도 ‘수군을 동원한 일본 본토 역습’을 상소한 기백 있는 젊은 장수였다.● 종용사 방명록 ‘천오백의총 바꿔야’ 필자가 칠백의총을 찾아갔던 날, 누군가 종용사 방명록에 ‘칠백의총이 아니라 천오백의총으로 이름을 바꿔 주세요!’라고 적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연곤평전투 당시 조헌 휘하 칠백의병과 더불어 영규의 의승군이 장렬하게 순절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일 것이다. 기록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600~1000명이었다는 영규의 의승군은 평균해 800명 남짓으로 보곤 한다. ‘천오백’이라는 숫자의 근거가 된다.칠백의사의 시신은 연곤평전투 나흘 뒤인 8월 22일 박정양과 전승업이 거두어 조헌이 군사를 독려한 경양산 어귀에 하나의 봉분으로 모셨다. 1634년에는 금산 군수 김성발과 제원 찰방 조평이 조헌·고경명·변응정은 물론 휘하 막료까지 모두 봉안했으니 칠백의총이라는 이름은 이미 어울리지 않았다. 훗날 사액되며 이름을 종용사로 바꾼 종용당을 이때 세우며 영규대사의 사당도 지었다. 하지만 이제 영규 사당은 찾아볼 수 없다. 칠백의총에 변응정이 향사된 것은 횡당촌전투가 조헌과 영규가 이끈 제2차 금산전투의 연장선 위에 있기 때문이다. 변응정은 당초 조헌과 금산성을 함께 치기로 했지만, 행군에 차질을 빚으면서 뒤늦게 도착했다고 한다. 변응정은 조헌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어찌하여 약속을 하고도 기일을 어겨 함께 죽지 못했다는 말인가” 하며 탄식했다는 것이다. 변응정 부대는 금산성의 서남쪽 조종산성에서 왜군과 맞부딪쳤다. 변응정(邊應井·1557~1592)은 중종반정의 정국공신으로 원양군에 봉해진 무신 변사겸의 증손이다. 1588년(선조 21년) 식년시에 무과에 급제했는데 당시 나이가 32세였다. 과거 합격자의 인적사항을 담은 방목(榜目)은 한양 거주 변응정의 무과 합격 이전 경력으로 충의위(忠義衛)를 들었다. 왕실 측근을 호위하는 충의위는 공신 자손을 등용한 뒤 별다른 역할을 부여하지 않은 채 시간이 지나면 관직을 부여하곤 했던 특수층이었다. ● 32세 무과에… 왕실 측근 호위 충의위 변응정은 왜침(倭侵)의 기운이 높아진 1589년 비변사가 시행한 불차채용(不次採用)에 추천됐다. 전력이나 서열과 관계없이 왜적 방어에 필요한 인물을 등용하는 제도다. 당시 이름을 올린 사람으로는 이순신, 손인갑, 박진, 정담, 정발 등이 있다. 변응정을 추천한 사람은 당대의 맹장이었지만 충주전투에서 왜군에 무참히 패한 신립이다. 변응정은 충의위 시절부터 무인으로 주목을 끌었기에 바로 전해 무과에 급제한 신출내기임에도 불차채용의 추천 대상에 올랐을 것이다. 그가 급제하자마자 월송만호에 부임한 것도 이런 추측을 뒷받침한다. 월송진은 경북 울진군 평해읍에 있던 수군기지였다. 첨사진보다 규모가 작기는 했어도 400명의 군사를 거느린 지역 사령관이다.변응정이 왜란 직전 현감으로 부임한 해남은 전라우수영이 자리잡고 있던 고을이다. 당연히 해남은 우수영 소속 관포의 하나였으니 현감은 수령이면서 동시에 수군 지휘관이었다. 그러니 우수영 핵심 고을의 수령이 당시 전라좌수영의 이억기 수군절도사 휘하 수군이 아닌 육군으로 싸웠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이순신 휘하 전라좌수영의 핵심무장 순천부사 권준이 한때 전라도 관찰사 이광 휘하로 차출됐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박동량(1569~1635)은 일기 ‘기재사초’에 ‘웅치 전투 며칠 전’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변응정이 상소하기를 ‘적이 북으로 함경도, 서쪽으로 평안도에 이르고, 동남쪽 수천리에는 각각 군사를 두어 지키고 있으니, 그 형세가 30만명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작고 추악한 왜적이 군대를 30만이나 내보냈다면 그 나라는 반드시 비었을 것이니, 우리가 수군 4만~5만으로 바람을 이용해 돛을 올리면 순식간에 왜적의 땅에 도착할 수 있고, 곧장 근거지를 쳐부수면 나머지는 저절로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정에서 그 말을 기이하게 여기면서도 계략을 채용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당시 일본 전역에서 동원한 병력은 30만명 남짓이었고 이 가운데 16만~17만명을 조선 침략에 내몰았다는 것은 오늘날에는 상식이다. 그러니 일본에도 13만~14만명의 병력은 남아 있었다. 그렇다고 ‘4만~5만 수군으로 비어 있는 일본 본토 공격’을 주장한 변응정을 철없는 무인으로 대우하는 것은 온당치가 않다. 일본의 병력 상황은 이후에 밝혀진 역사적 사실이다. 당시 조선에서 일본 본토에 남은 왜적의 병력이 어떤 규모였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日 본토 공격’ 기히 여겨… 채용 못해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본거지 역습’을 주장한 조선 장수의 존재는 자랑스럽다. 전라우수영과 전라좌수영이 병력 현황과 훈련 상태에서 상소를 뒷받침할 만큼 전투에 나설 준비 태세가 잘 갖춰져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군인으로서의 변응정의 정체성도 육군보다는 수군에 가까웠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변응정이 전사한 이후 선조가 전라좌수사를 추증한 데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을 것 같다. 횡당촌전투를 두고 연곤평전투에 이어 의리만 앞세운 소수 병력의 무모한 공격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하지만 1596년 4월 6일자 선조실록에는 함흥 판관 신충일의 임진년 당시 행적이 전해진다. ‘신충일은 앞서 강진에 부임했다가 왜란을 당해 변응정과 금산 싸움에 나서면서 사생을 언약했다. 변응정은 신충일의 말만 믿고 먼저 출전해 싸웠다. 적의 형세가 그리 강성하지 못했으니, 신충일이 나아가 구원했다면 변응정이 죽음에 이르지 않았을 것인데 구원 요청을 못 들은 체하고 군사를 물렸다’는 내용이다. 횡당촌전투에는 이보와 소행진이 이끈 익산 의병도 참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두 사람과 뜻을 같이한 의병은 400명에 이르렀는데 이들이 순절한 날이 횡당촌전투가 있었던 8월 27일이다. 이들의 의로운 죽음은 이치 정상에 세워진 ‘임란순국무명사백의병비’로 기리고 있다. 횡당촌전투에는 최소한 해남, 강진, 익산의 관군 및 의병이 연합해 출전한 것이었다. ‘적이 강성하지 못했다’는 실록의 기록대로라면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 변응정이 언제 어디서 순절했는지를 두고는 혼선도 없지 않다. 1594년 4월 3일자 선조실록은 ‘변응정이 몸소 적의 공격을 받으면서 강개한 마음으로 죽기를 맹세하고 싸우다가 웅치 싸움에서 전사했으므로 지금까지도 말하는 자들이 못내 마음 아프게 여기고 있다’는 비변사의 보고내용을 전하고 있다. 류성룡의 ‘징비록’은 물론 송시열이 지은 변응정의 묘표까지 ‘웅치 전사’로 적었다. 하지만 신석겸(1754~1836)은 ‘선묘증흥지’에서 과거 기록을 조목조목 검토해 ‘7월 웅치가 아닌 8월 금산 전사’가 옳다고 봤다.금산에는 당시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제6군에 안코쿠지 에케이가 이끄는 별동대가 합류해 있었다. 안코쿠지(安國寺)의 승려 에케이는 앞서 김해에서 의령을 넘어 전라도를 침공하고자 했지만 곽재우와 김면의 의병에 차례로 막히며 금산까지 북상한 상태였다. 일찌감치 ‘전라감사’를 사칭했던 안코쿠지는 금산에서 ‘대일본 대왕이 정치의 도(道)를 조선에 베풀어 백성들을 구휼하고자 하는데 무슨 까닭으로 바다와 육지의 길을 막아 도리어 원수가 되려 하는가’로 시작하는 포고문을 내걸고 주민 회유에 나서기도 했다. 왜군은 전라도 초입이었던 금산에 들어서는 과정에서부터 거센 저항에 시달려야 했다. 금산 군수 권종은 6월 22일 불과 200명 남짓한 병력으로 충청도 영동 방면에서 금강을 넘으려는 왜군을 막아서다 순절했다. 조선군은 전주로 향하는 왜적과 싸워 7월 7일 웅치에서 선전했고, 7월 8일 이치에서는 승리를 거뒀다. 이후 조선군은 눈벌전투, 연곤평전투, 횡당촌전투에서 잇따라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고, 결국 왜군은 금산에서 철수했다. 변응정의 횡당촌전투는 왜적으로 하여금 호남을 포기하게 만든 마지막 결정타였다.
  • “시험 잘 보세요” 선문대, 주먹밥·김밥 나눔 응원

    “시험 잘 보세요” 선문대, 주먹밥·김밥 나눔 응원

    충남 아산의 선문대학교(총장 황선조)는 교수와 교직원들이 중간고사 기간을 맞아 학생 격려를 위해 ‘사랑의 김밥’을 만들어 나눔 행사를 진행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번 나눔행사에는 선문대 교직원으로 구성된 평화봉사단과 세계평화여성연합 선문대학지부와 선문YSP에서 직접 650개의 주먹밥을 만들었다. 여성 교수로 구성된 한마음교수봉사회에서는 1500개의 김밥을 준비해 중간고사 기간 학생들에게 나눠주며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평화봉사단과 한마음교수봉사회는 매달 후원금 기부를 통해 학생들에게 장학금 지급 등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박정홍 평화봉사단장은 “직접 만든 주먹밥의 정성이 학생들의 마음에 전달됐으면 좋겠다”며 “열심히 공부해 우수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어머니의 마음으로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 ‘더 리치 탈무드’, 세종도서 교양부문 우수도서 선정

    ‘더 리치 탈무드’, 세종도서 교양부문 우수도서 선정

    행복한북클럽은 자사가 출간한 ‘더 리치 탈무드(김정완·이민영·홍익희 지음)’가 세종도서 교양부문 우수도서로 선정됐다고 20일 밝혔다. 세종도서는 출판산업 및 국민 독서문화 증진을 목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사업이다. 매년 우수 학술 도서를 선정함으로써 기초학문에 충실한 도서를 보급하고, 사회적 필수 연구의 지속적인 추진을 장려하고 있다. 세종도서 교양부문 우수도서에 선정된 ‘더 리치 탈무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민족으로 꼽히는 유대인의 부의 비결을 담은 책이다. 모두 63권으로 구성된 책으로, 탈무드 중 가장 널리 읽히면서 부와 행복에 관한 유대인의 철학을 잘 담아냈다고 평가받는 ‘피르케이 아보트’에 담긴 부의 본질을 3명의 인문학자의 해설을 통해 한층 깊이 있고 풍요롭게 소개한다. 이 책은 언제든지 삶의 뿌리가 뽑힐 수 있는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온 유대인 선조들이 생존을 책임질 가장 강력한 수단인 ‘돈’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발전시켜 온 ‘부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출판사 측은 설명했다. 오늘날에도 적용 가능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만들어진 부자가 되는 실천법은 구글의 래리 페이지, 메타(전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등 부의 반열에 오른 수많은 후세 유대인을 탄생시켰다. 행복한북클럽 관계자는 “더 리치 탈무드가 세종도서 교양부문 우수도서로 선정돼 기쁘다”며 “‘당신은 부자가 되고 싶은가?’등 부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7가지 질문과 유대인 선조의 조언을 길잡이 삼아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담은 책을 통해 현실에 갈증을 느끼는 누구나 자신만의 부의 철학을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 [속보] 고양 덕은지구·향동지구 대중교통 편해졌다

    [속보] 고양 덕은지구·향동지구 대중교통 편해졌다

    경기 고양시 덕은지구와 향동지구의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해졌다. 고양시는 늘어나는 대중교통 수요에 맞춰 마을버스 022B번을 신설하고 075A번 버스를 2대 증차해 운행하고 있다고 14일 밝혔다. 덕은지구는 향동고등학교로 통학하는 학생들의 대중교통이 불편해 시민들의 불만이 컸던 지역이다. 고양시는 최단 노선인 서울 상암동 경유를 위해 서울시와 협의를 진행해왔으나 협의가 지연되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서울시와 장기간에 걸친 협의 끝에 덕은지구를 경유하는 022B번 마을버스가 서울지역을 진출할 수 있도록 노선조정을 이끌어냈다. 조정 결과 운행횟수가 기존 20회에서 30회로 증가하고 배차 간격도 최소 30분에서 최소 20분으로 줄었다. 향동지구는 단독주택과 상업지구의 준공으로 교통량이 늘어 서울 수색동과 상암동으로 통근하는 주민들이 불편을 겪었으나, 지난 10일부터 향동지구를 경유하는 마을버스(075A번)을 2대 증차해 운행해 늘어난 대중교통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 침수피해 취약계층 보호 나선 관악

    서울 관악구가 지난 8월 침수 피해를 입은 주거취약지역 거주민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해 취약계층 보호에 나선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조사는 침수피해 인정 4821가구를 대상으로 거동이 불편한 재난약자와 저소득가구 등을 발굴해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12월 31일까지 실시된다. 각 동 주민센터와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명예사회복지공무원 인적 안전망을 통해 가정방문, 유선조사 등을 진행한 후 복지와 안전에 대한 욕구를 파악해 일반·복지욕구·고독사 위험·우울 고위험 가구 등으로 구분해 관리한다. 65세 이상 노인, 중증 장애인, 희귀난치성 질환자 등은 고위험가구로 분류해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상시 돌봄과 다가올 겨울철 한파에 대비한 난방용품 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지원·연계하고 지속적인 사후·사례 관리를 통해 주거취약으로 인한 복지사각지대, 재난 피해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할 계획이다.
  • 속도감 내는 1기 신도시 재건축...5개 신도시 MP 지정

    정부가 이달 들어 1기 신도시 재건축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의 약속과 달리 신도시 재건축 사업 추진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는 해당 신도시 주민의 불만을 가라앉히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국토교통부는 11일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등 5개 신도시별 총괄 기획가(MP)를 위촉했다. 이들은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 협력분과 위원으로 참여해 정부·지자체·주민 간 소통창구 역할을 하며, 지자체 정비기본계획 수립에서 자문 역할을 한다. 이달 중 총괄기획가 킥오프 회의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도 시작한다. 이달 말에는 국토부 장관과 5개 신도시 지방자치단체 간 2차 간담회가 열린다. 간담회에서는 1기 신도시 재정비 특별법에 포함될 선도지구지정 구체화 방안과 지자체별 정비기본계획 수립방향을 논의할 방침이다. 선도지구 지정대상, 지정절차 등은 신도시 지자체의 의견과 지역별 특수성을 충분히 반영하기 위해서다. 국토부는 또 이달 중 5개 신도시에서 공동으로 주민설명회를 열어 정비 추진현황과 앞으로 추진계획을 명확하고 상세하게 설명하고 주민 의견도 적극적으로 수렴할 계획이다. 17일에는 중동·평촌신도시, 18일에는 분당·일산·산본 신도시 지자체에서 주민설명회가 열린다. 국토부는 또 내년 2월까지 특별법을 발의하려고 국회에 발의된 법안 분석과 사업추진 절차·체계·특례·선조지구 지정 등을 검토하고 있다. 1기 신도시의 모든 지자체는 이달부터 내년 1월까지 정비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용역을 발주할 계획이다. 한편, 국토부는 2024년까지 지자체별 정비기본계획 등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정비 선도지구를 지정할 계획이다. 선도지구는 노후도·주민 불편·모범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우선하여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곳이다. 문성요 국토도시실장은 “신도시별 MP 위촉으로 정비기본계획 수립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며 “지자체와 주민 여론을 수렴하고 소통하는 창구가 생겨 선도지구 지정, 사업 착수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영규, 휴정 승군 통솔 이전에 공주서 봉기… 청주성 탈환 일등공신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영규, 휴정 승군 통솔 이전에 공주서 봉기… 청주성 탈환 일등공신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영규, 전국 의승 기치 높이 든 기폭제왜군 “승산 없다” 판단 청주서 퇴각청주 앞서 1·2차 금산성전투에 참여 휴정 제자 영규는 동명이인설도당상관 제수 했으나 금산서 전사조선왕조, 전사 영규 유교식 예우무덤 만들고 진영 모시고 제사도임진왜란의 의승장(義僧將)이라면 서산대사 휴정과 사명대사 유정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휴정이 조선 승군을 통솔하기 이전에 공주 의승장 영규가 있었다. 영규대사의 봉기는 전국의 의승이 잇따라 기치를 높이 드는 기폭제가 됐다. 낫으로 무장한 영규의 승군은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근접전의 전력을 당대 최강으로 끌어올린 왜군을 압도하는 전투력을 과시했다. 왜군이 청주성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영규의 승군과 부딪쳐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산대사 휴정의 문하로 20년 공부 기허당(騎虛堂) 영규(靈圭·?~1592)의 흔적이 가장 진하게 남아 있는 고장은 당연히 고향인 충남 공주다. 공주에서 논산으로 가는 국도는 계룡산 자락과 함께 남쪽으로 달리는데 갑사 초입에 계룡면 소재지가 있다. 영규대사를 기리는 한 칸짜리 작은 여각(閭閣)은 계룡면행정복지센터 마당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고 보니 행정복지센터 앞길의 이름도 ‘영규대사로(路)’다. 이 길을 따라 논산 방향으로 조금 더 달리면 영규대사 묘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그런데 ‘스님의 무덤’이라니 좀 생소하다. 고승이 입적하면 화장해 부도에 모시는 것이 불교의 전통이다. 무덤 아래 그의 진영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영정각도 보인다. 조선왕조는 금산성싸움에서 전사한 영규대사를 불교식이 아닌 유교식으로 예우한 것이다. 속성(俗姓)이 밀양 박씨로 알려진 영규는 계룡산 널티(板峙)에서 태어났다. 갑사로 출가하고, 휴정 문하에서 공부를 마치고는 처음 머리를 깎은 갑사 청련암으로 돌아가 무예를 익혔다고 한다. ‘회양 표훈사 청허당 휴정대사비’에는 대사의 제자로 영규라는 이름이 있지만, 두 사람이 꼭 사제 관계였는지는 그다지 분명치 않다는 느낌도 든다. 갑사에 전하는 ‘임진의병승장복국우세 기허당대선사일합영규사실기’(事實記)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영규는 성품이 침착하고 강직했으며, 말수가 적고 용력이 뛰어나며 공부의 진척 속도가 빨랐다. 경전과 그 밖의 책을 20년 남짓 공부하고 나자 휴정은 영규에게 이제 고향인 호서로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는 것이다.갑사로 돌아온 영규는 스스로 불목하니가 돼 장작을 패고 불을 지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절에서 가장 위계가 낮은 불목하니는 영규의 이력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각종 전승에는 영규가 장작을 다루며 무기로 만들어 무예를 익히는 모습을 부각시킨다. 금산 보석사에 1840년(헌종 6) ‘의병승장비’(義兵僧將碑) 건립을 주도한 당시 영의정 조인영도 비석 뒤편 ‘영규대사순의비명병서’에 ‘영규는 본래 신통한 힘이 있어 선승들이 쓰는 지팡이로 무예를 연마했다’고 적었다. ‘사실기’에는 갑사 대중이 “왜 불목하니 역할을 하느냐”고 묻자 영규는 “다른 사람이 반나절 걸리는 일을 나는 단번에 해낼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내가 번거롭더라도 잠깐 동안 열 군데 불을 때면 되는데 어찌 다른 사람을 쓰겠는가”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곧바로 ‘휴정의 제자’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605년(선조 38) ‘선무원종공신’ 명단에는 영규(靈圭)라는 이름을 가진 승려가 둘이다. 당대 의승군으로 활약한 동명이인의 존재를 보여 주는 게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우리가 영규에 주목하는 이유는 당연히 그의 법맥(法脈) 때문이 아니다. ● 영규 천체 움직임에서 국난 조짐 읽어 조선 후기 문인 연경재 성해응(1760 ~1839)은 ‘금산순절제신전’(錦山殉節諸臣傳)에 영규의 봉기 과정을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서술했다. 영규는 천체의 움직임에서 국난의 조짐을 읽었다. 살생을 하지 말라는 불가의 계율에도 국가에 은혜를 갚고자 나무로 무기를 만들고 낫 수천 개를 주조했으며 오백 남짓한 용맹한 승려를 모아 때를 기다렸다. 10년이 지나지 않아 왜적이 침입했는데 승려들이 흩어지려 하자 의(義)를 일으켜야 한다고 호소하면서 3일 낮밤을 통곡하니 감동한 승려 1000명 남짓이 죽기를 각오하고 갑사에서 봉기했다는 것이다. 하이라이트는 임진년 8월 1일의 청주성 전투다. 선조수정실록은 ‘영규는 사람됨이 장건하고 키가 보통 사람의 갑절이나 됐으며 지략과 계책이 있고 많은 무리를 잘 부렸다. 청주 전투도 실로 영규가 지휘하고 계획한 것이었다. 조헌이 금산전투를 굳이 고집하면서 자기의 말을 따르지 않자 틀림없이 패하리라는 것을 알고도 권율에게 서면으로 보고하고 군사를 합쳐 진군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의열(義烈)로 세상에 일컬어졌으니, 불교가 있은 이래 일찍이 없었던 일이었다’고 했다. 청주성 탈환의 일등 공신으로 영규를 꼽은 것이다. 영규와 승군의 청주성전투 과정은 충청도 관찰사 윤선각의 문집인 ‘문소만록’(聞韶漫錄)에 비교적 자세히 담겨 있다. 훗날 윤국형으로 이름을 바꾸는 윤선각은 의병 활동을 방해한다며 조헌이 불만스러워했던 인물이다. ‘문소만록’의 영규 관련 서술도 고위 인사의 냉정한 시각으로 한껏 내려다보는 분위기지만 평가만큼은 정밀하다는 인상이다. 윤선각이 만난 영규의 인상은 이랬다. ‘매우 건장하기는 하나 별다른 지혜나 꾀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녹록한 사람에 비할 바는 아니어서 한 방면을 방어하게 할 만은 했다. 내가 “만일 그대에게 승군 약간 명을 준다면 그대는 이들을 거느리고 가서 적을 치겠소?” 했더니, 그는 기꺼이 승낙했다. 이에 내포의 승군 수천 명을 뽑아서 그에게 거느리게 하고, 승병패두(僧兵牌頭)라 불렀다.’ 윤선각은 ‘영규는 글을 알지 못하고 사람들의 성명 정도만 조금 분별했다’고도 적었다. 윤선각은 ‘영규는 청주성전투로 안팎에서 명성이 났다’고 했다. ‘청주 전투 이후 승병이 곳곳에서 계속 일어났으니, 실로 영규가 불러일으킨 것’이라는 것이다. 조정에 올린 장계에는 ‘영규가 저희 무리를 많이 모았는데, 모두 낫을 가졌고 기율이 매우 엄해 적을 보고도 피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투 과정의 일화도 흥미롭다. ‘영규는 청주에서 적을 칠 적에 관군 수령들이 혹 물러서면 짚고 있던 큰 몽둥이로 등을 치면서 “평일에는 고기를 먹으며 잘 지내더니, 이제 와서는 도망갈 생각밖에 없느냐?” 하니 감히 뒤처지는 수령이 없었다’는 것이다.● 왜적 침입하자 “義 일으켜야” 봉기 선조실록은 “충청도는 적의 요새가 되는 곳이다. 그런데 적이 청주를 차지한 지 벌써 넉 달이 넘었다. 중 영규가 의(義)를 분발해 성 밑으로 진격했는데 제일 먼저 돌입해 마침내 청주성을 공략했다. 그가 호령하는 것을 보면 바람이 이는 듯하여 그 수하에 감히 어기는 자가 없었고 질타하는 소리에 1000명의 중들이 돌진하자 다른 군사들도 이들을 믿고 두려움이 없었다’는 비변사의 보고 내용을 옮기고 있다. 영규의 의승군은 청주성전투에 앞서 전라도 의병장 고경명이 순국한 제1차 금산성전투에도 참여한 듯하다. 고경명의 종사관 유팽로가 남긴 ‘월파집’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해가 질 무렵 성문을 두드리며 들어오는 자가 있었다. 그가 급하게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전일 말씀하신 영규상인(靈圭上人)이 승도 수백 명을 거느리고 왔습니다.” 공(고경명)은 즉시 나가서 맞아들여 인사를 나눈 다음 장수들에게 말했다. “영규가 왔으니 이는 반드시 하늘의 도움이다.”’ 호남의 대표적 유학자 고경명 진영의 불제자 영규에 대한 예우가 깎듯하기만 하다. 제2차 금산성전투의 경과는 ‘문소만록’을 참고한다. 조헌에 대한 윤선각의 시선이 차갑다는 것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영규는 “전라도 순찰사가 군사 수만 명으로 진격하려 하면서 나에게 선봉이 돼 주기를 청했으나 시기가 정해지지 않았으니, 경솔히 나갈 수는 없다”며 조헌에게 순찰사와 날짜를 약속하도록 권했다. 그런데 답장이 오기도 전에 조헌은 적을 속히 쳐야 한다고 고집하면서 금산으로 들어가니 영규도 마지못해 따랐다. 부하들이 “반드시 패할 것이니 가지 마소서” 했으나, 영규는 “가부를 의논할 때는 말을 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먼저 갔는데 따르지 않는다면 누가 구원하겠느냐?”고 했다.’ 당시 금산성의 왜군은 1만명을 헤아린 반면 조선군은 조헌 의병이 700명 남짓, 영규 의승군도 600~1000명 수준에 그쳤다. ‘문소만록’의 영규 관련 서술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청주의 적을 몰아냈다는 보고가 의주에 이르자, 조정은 이를 가상히 여겨 영규에게 당상관을 제수하고 옷감까지 보냈다. 하지만 영규는 이미 금산에서 죽어 받지 못했다.’
  • “핵 위협 극대화 노린 김정은… 한미 ‘강대강’ 해법 한계 노출”

    “핵 위협 극대화 노린 김정은… 한미 ‘강대강’ 해법 한계 노출”

    北 전술핵 부대 실전 배치 과시결국 최종 행로는 제7차 핵실험북미 ‘조건없는 대화’ 입장차 커안보리 추가 제재 실효성 낮아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 전투무력의 백방 강화’ 방침을 직접 밝혔다고 전한 10일 노동신문 보도는 지난달 ‘핵무력 법제화’ 이후 전술핵 보유 의지를 한층 명확히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화의 틀’을 통한 해결도 불투명한 가운데 ‘확장억제 강화’를 앞세운 현재의 한미식 해법으론 이미 고착화된 한반도 긴장을 타개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높다. 30일째 행적이 공개되지 않았던 김 위원장은 지난달 25일부터 이날까지 이어진 ‘전술핵운용부대’의 훈련을 모두 참관하며 실전운용태세를 점검함으로써 핵 위협 극대화를 노렸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은 전술핵 운용 부대의 ‘시험’이 아닌 ‘훈련’을 진행하고 실전 배치가 됐다는 점을 과시하며 억제 효과를 끌어올리고 있다”며 “북한이 새로운 전술핵 탄두를 만들었다면 한 번은 실험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결국 최종 행로는 제7차 핵실험”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북한의 ‘핵도발 위협’에 대응하는 윤석열 정부와 조 바이든 미 정부의 확장억제전략이 역으로 북한의 체제·안보 위협으로 작용하고 또다시 안보 불안을 야기하는 역설적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반발하는 미 핵 추진 항공모함 등 전략자산 전개는 미국으로선 대북 대응뿐 아니라 무역 갈등·인도태평양 전략, 우크라이나전으로 각각 대립 중인 중러까지 노린 전략이며 한반도 안보를 한층 복잡하게 하는 요소”라고 말했다. 지난 5일(현지시간) 북핵 문제로 소집된 유엔 안보리 역시 중러의 반대로 비난 성명조차 채택되지 못하는 등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무역 갈등으로 미국과 대립하는 중러의 연합이 한층 공고화된 속에 미국은 원칙적 대화론만 반복하고 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9일(현지시간)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규탄하면서도 “우리는 김정은과 전제조건 없이 다시 대화에 나설 수 있으며, 외교적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놓고 북미 간 입장 차는 극명하다. 미국은 대화 자체를 위해 북한에 보상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이고, 북측은 앞서 지난해 9월 대화의 선조건으로 ‘적대시 정책 폐지’, 즉 한미연합훈련 및 미 전략자산 투입 영구 중단을 요구한 바 있다. 이런 이유로 확장억제 위주의 강대강 해법 또는 유엔 안보리 제재 위주의 해결 시도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대화를 통한 해법 또한 북한과 한미 중 어느 한쪽의 전향적 양보·타협 없이 난망한 상황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대북 군사적 대응과 유엔의 추가 제재는 모두 실효성이 낮다”며 “기존 제재 효과를 높이기 위해 중국에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단체·개인 제재) 카드를 꺼낸다 해도 중국의 반발로 미 경제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결국 외교적 해법으로 북한의 요구사항을 들어줘야 하는데, 현재 한미의 ‘강대강’식 해법으론 외통수에 빠진 국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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