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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통신사 해상영접」 호화병풍 발견

    ◎일 실진항마을서… 내항 당시모습 생생히 【도쿄 연합】 일 에도(강호)시대에 조선조정에서 파견된 우호 사절단인 조선통신사의 선단이 효고(병고)현 이보군 미쓰정의 실진항에 정박해 있는 모습을 극명하게 묘사한 호화병풍이 최근 이마을의 구가옥에서 발견돼 귀중한 역사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교도(공동)통신에 따르면 이병풍은 높이 1.5m,폭 1.8m의 2폭짜리로 1764년에 일본을 방문했던 통신사의 모습과 정,부,종의 기를 펄럭이는 통신사선 6척이 묘사됐다. 이와함께 항만에는 시중을 들거나 출영을 위한 일본 선박 3백여척이 바다를 메워 통신사 방문이 이 지역의 큰 경사임을 엿보게 했다 병풍을 발견한 역사연구가 신기수씨(60·오사카부사카이시)는 『사절단의 내항 당시 모습을 한눈에 생생하게 볼수 있는 1급 역사 자료』라고 밝히고 『육로의 행열도는 남아 있으나 「동행천척」이라고 알려진 해상의 출영모습이 그려진 그림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 개성직할시:하(새로 쓰는 북녘 지리지:8)

    ◎전통 한옥 보존… 일부는 관광여관 개조/반경 2㎞ 내에만 도시모양 갖춰/유적지 많아 고려박물관엔 유물 6백점 진열/평양 잇는 고속도 자재 달려 중단 ▷도시개발·시설◁ 시의 도시개발정도와 시설은 아주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도시의 모양을 갖춘 지역은 본래의 개성시 중심부에서 반경 2㎞ 이내에 불과하며 외화내빈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송도·통일·청년거리만이 새로 조성된 주거지로 방문자의 시선을 끌 뿐이다. 그러나 고려의 5백년 도읍지로 수많은 유물·유적과 선조들의 숨결이 스며있는 시는 북한 당국도 그 보존및 관리에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 있는 역사와 문화의 고장이기도 하다. 북한 유일의 한옥보존지구와 많은 유물들이 진열될 고려박물관,대규모 전통 기와집을 그대로 관광여관으로 꾸민 개성민속여관등이 바로 그 예. 그러나 현지를 다녀온 방문자들은 「향기없는 유적」이 너무 많았다고 평가한다. 예컨대 시내 선죽동에 있는 「성균관」이나 자남산 기슭의 「선죽교」는 그 형체는 보존되고 있으나 정신적으로는 버림받은지 오래라는 것이다.미신이란 이유로 제례(제례) 기념식등 관련 행사가 전혀 없을뿐 아니라 정몽주의 충절이 담긴 선죽교의 유래를 아는 시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름아닌 「김일성 유일사상」의 소산이기도 한데 이순신이나 정몽주를 위대한 인물로 주민들에게 알릴 필요도,알 필요도 없는 것이 바로 「북한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시에는 개성의학대학 개성교원대학 개성공업대학등 각급학교가 있으며 7백석의 관람석을 갖춘 학생소년궁전도 있다. ▷산업·경제동향◁ 시의 공업으론 방직과 편직 피복 식품 일용품 인삼가공업종이 대종을 이룬다.특히 이곳은 면방직공업분야에선 북한에서 수준급 시설을 갖춘 대규모 생산기지의 하나로 꼽힌다. 시내 고려동에 있는 개성방직공장(지배인 김용수)에서는 방적사를 비롯,견직 광목 옥양목등 60여종의 천을 생산하는데 면살창무늬천이 대표적.여기서 생산되는 천은 북한 각 지방은 물론 외국에도 수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직공업 다음가는 부문은 식품공업.갖가지 장류 식용류 당과류와 고기 채소과일의 가공품,술 청량음료등의 식료품을 생산한다. 개성인삼주공장에서는 여러종류의 인삼주를 만들고 있으며 특히 개성인삼가공공장등에서는 인삼탕 꿀삼 인삼정액 고려선녀삼 인삼영양정,그리고 인삼차 경옥고 인삼지사정 인삼보양알약 인삼주사약등 다양한 인삼가공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그밖의 주요 공업제품에는 도자기 전기·편직·건설기계 장식용조각품 건축용벽돌 오지관 화강석,그리고 칠감 금빛가루 은빛가루 접착제등이 들어있다. 농업에도 힘을 쏟고 있는 시는 개풍군 신광리를 비롯한 바닷가지역에 수백정보의 간석지를 농경지로 만들고,산간지역에는 1천여 정보의 다락밭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애써 일군 다락밭은 산림만을 황폐시켰을 뿐 식량증산 계획에 큰 차질을 빚게한 원인이 되었다. 각종 채소류와 과일도 생산되는데 과일생산량의 25%를 차지하는 「개성 흰복숭아」는 예부터 이름난 이 지방 특산물이다.「개성 봄무」각종 초물제품도 유명하다. ▷교통·운수◁ 기본은 철도와 자동차운수.평부선(개성∼평양)철길이 시 가운데를 지나고 있으며 개성 개풍 려현역 등이 있다. 도로는 개성∼평양 사이의 포장도로를 비롯하여 개성∼박연,개풍∼공민왕릉 사이 자동차 도로가 있고 모든 군소재지와동·리를 연결하는 도로EH 닦여 있다.평양∼사리원∼개성 사이를잇는 고속도로는 자재난으로 현재 공사가 중단된 것으로 전해진다. ▷유물·유적·경승◁ 시에는 유물·유적과 명승지가 다른 지방에 비해 많다. 고려박물관 공민왕릉 박연폭포 선죽교 만월대 성균관등이 대표적이며 남쪽 8㎞쯤 거리에 판문점이 자리하고 있다. 고려박물관은 고려때 중앙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과 그 주변지역(북한 유일의 한옥 분포지역)으로 이루어졌으며 약 6백점의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다. 공민왕릉은 시의 서북방 13㎞ 거리의 만수단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공민왕릉과 노국대장공주릉은 다른 왕릉에 비하여 보존이 비교적 잘 되어 있다.공민왕릉 경내에는 석조문무인상 동물상 등이 있는데 특히 석등은 걸작으로 꼽힌다. 박연폭포는 시의 북동쪽 24㎞ 거리의 천마산과 성서산 사이에 있다.높이가 34m로 「송도 삼절」(서화담 황진이 박연폭포)의 하나. 박연폭포 주변에는 7㎞에 달하는 대흥산성터를 비롯하여 관음사 대웅전,대흥사등이 있다. 선죽교는 시의 동쪽 자남산(1백3m)기슭에 있다.부근에는 조선시대 후손들이 세운 정몽주의 사당 승양서원(정몽주의 집터에 세움)이 있다. 시의 대표적 숙박시설은 자남산여관과 개성민속여관.자남산여관은 1984년에 지어진 4층의 현대식 건물로서 특실 4개를 포함하여 객실은 모두 43개. 개성민속여관은 99칸의 한옥에 꾸민 것으로 민속식당 오락장 상점 다방 야외무도장등이 갖추어져 있으며 음식점으로는 박연식당이 가장 유명하다.
  • 울산 28개 택시사/내일부터 파업

    【울산=이용호기자】 전국택시노련 경남동부직할사무소(소장 권영주·화진교통노조위원장)소속 28개 택시회사 노조들은 울산시등 관계당국의 두차례에 걸친 알선조정실패에 따라 5일 상오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7일부터 파업에 들어간다는 내용의 쟁의발생신고를 했다.
  • 「구국의 소리」등 흑색선전기구 총집결(새로 쓰는 북녘지리지:7)

    ◎개성직할시(상)/대남 심리전의 전초기지로 활용/주민 70%가 「이산」… 장단군 없애 개성직할시는 동족상잔의 상흔이자 국토분단의 현장인 판문점과 인접한 군사분계선 이북지역 일원이다.면적 약 1천2백㎦,상주인구 약 38만4천명(1991년 추계)의 북한 제3의 도시. 8·15 당시의 「개성」이 개편된 개성시와 인접 개풍·장풍·판문등 3개군(행정구역표 참조)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성시는 서울에서 78㎞의 거리에 있으며 판문점에서는 불과 12㎞(30리)밖에 안되는 지척에 있다. 북한은 전후 개성시를 점차 확대개편하면서 벼를 비롯한 알곡과 전래의 특산물인 면직제품과 인삼제품의 증산을 독려하는 한편 서울과 가까울 뿐 아니라 남부와 서부로 가면서 낮아지는 지형지세를 이용,대남 심리전기지의 대부분을 이 직할시 안에 설치했다. 군사분계선 북쪽에 설치된 고성능 스피커는 물론 대남 모략·비방을 일삼고 공산혁명을 선전·선동하는 소위 「구국의 소리방송」등 평양의 흑색방송을 강력한 전파로 날리는 중계시설과 남한의 가정에서 시청할 수 있도록 NTSC방식(북한에서는 PAL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한국의 TV방송을 시청할 수 없음)으로 운영되는 대남TV방송국도 바로 개성시에 있다.최근에는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FM방송전파도 이곳에서 송출되고 있다. ▷연혁과 개편 추이◁ 시는 대부분의 지역이 38도선 이남에 위치,6·25전에는 남한에 속하였으나 휴전협정에 따라 북한에 속하게 된 곳이다. 북부는 황해북도 토산군과 금천군,임진강을 경계로 강원도 철원군,서부는 예성강을 사이에 두고 황해남도 배천(백천)군,그리고 남·동부는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경기도(남한)연천군·파주군과 잇닿아 있으며 남부는 한강의 하구일대를 경계로 김포군·강화군과 마주하고 있다. 행정구역은 1955년 개편 때 당시 개성시와 개풍군·판문군을 포괄하여 직할시로 승격되었으며 그후 1960년 당시 황해북도에 속해있던 장풍군과 강원도의 일부지역이 또 개성직할시에 편입되었다. 직할시의 일부가 된 개풍군은 여러차례 부분적으로 행정구역이 조정됐으나 해방전의 지명을 지금도 그대로 지니고 있다. 그러나 판문군과장풍군은 해방전에 없던 생소한 이름들.판문군은 1952년 12월 북한당국이 당시 개풍군의 봉동면 임하면 홍교면과 장단(장서)군의 진서면 일부지역을 합쳐 새로 만들었으며 장풍군 역시 1945년 11월 당시 장단군의 5개 면과 개풍군의 2개 면을 합쳐 새로 만든 행정구역이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장단군이란 이름은 세상에서 사라졌으며 현재 개성직할시 거주주민의 70%가량이 이산가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성시 지역은 고구려시대 부소갑(부소갑)·동비홀(동비홀)등으로 불리다가 신라가 점령한 뒤에는 송악군(송악군)이 되었다. 그후 고려시대(서기 919년)에는 수도를 철원에서 이곳으로 옮기고 개주(개주) 개경(개경) 황도 황성 경도등으로 불렸으며,조선조에 들어 수도를 한양(서울)으로 옮긴 뒤에는 송경 중경 송도등으로 불렸다.그 뒤 개성부(부)시기를 거쳐 시제(시제)실시로 개성시가 됐다. ▷자연환경과 생태◁ 시에는 풍덕벌(평야)을 비롯한 넓은 벌과 한강·임진강·예성강·사천강등 큰 강이 있어 농업용수가 풍부하며 기후도 따뜻하고 자원도 비교적다양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의 북부에는 아호비령 산줄기(맥)와 이 산줄기에서 갈라지는 작은 천마산줄기·수룡산줄기가 뻗어있다.여기에는 수룡산(7백16m),천마산(7백62m),화장산(5백58m)등이 솟아 있다. 서부및 남부지역에는 풍덕벌·삼성벌·신광벌등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어 농업에 유리한 편이다. 시의 북부 변두리에는 오랜 세월 풍화작용에 의해 험한 산세가 된 송악산(4백89m)이 솟아 있고 그 남쪽에는 개성분지가 있다. 개성시에는 임진강의 지류인 사천강·사미천등이 흐르고 산림은 시 넓이의 약 55%를 차지한다.산림의 80%가량은 소나무숲인데 그중에는 천연기념물인 「개성백송」도 있다. 산림에는 또 북방및 남방계통의 동물들이 함께 서식하며 종류도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포유동물 30여종,조류 2백50여종이며 천연기념물인 크낙새와 개풍학(개풍학)도 서식한다. 토양은 대부분 지역이 산림적갈색 토양이나 예성강·임진강등 강·하천의 어구에는 충적지토양과 논토양이 분포되어 있다. □개성직할시 행정구역표 ▲개성시=손하리 덕암리 부산동 운학동 만월동 고려동 역전동 태평동 사직동 자남동 북안동 관훈동 동현리 룡산리 남안리 선죽동 동광동 해운동 보선동 삼거리 산성리 남산리 송악동 룡흥리 남문리 내성동 송전동 청석동 마유동 고덕동 송지동 서문동 대원동 ▲개풍군=개풍읍 해선리 묵산리 연릉리 신서리 련강리 광답리 삼성리 남포리 신광리 유릉리 묵송리 광수리 의포리 도원리 신성리 해평리 고남리 려현리 ▲장풍군=장풍읍 십탄리 월고리 장학리 가천리 국화리 서암리 고읍리 구화리 림강리 사시리 자하리 덕적리 장우리 가곡리 석촌리 귀존리 랭정리 석둔리 솔현리 세골리 사암리 라부리 항동리 풍덕리 ▲판문군=판문읍 대룡리 덕수리 림한리 월정리 조강리 신흥리 화곡(노동자구)대연리 상도리 진봉리 선적리 전재리 평화(비무장지구)리 령졍리 상봉리 동창리 판문점리 봉동리
  • 조총련계 재일동포 성묘단,포항·경주등 둘러본 감회

    ◎“번영 조국에 한뿌리 자긍심 뿌듯”/“세계 최대 용광로” 소개에 환호/“「거지소굴」 선전에 속아산 50년 후회돼요”/“일 돌아가 자랑”… 첫 방문 2·3세 촬영 분주 『조국의 품이 이렇게 따뜻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어디 그뿐입니까.발전된 조국의 모습을 직접 보고 나니 제가 한국인이라는 자긍심도 새롭게 갖게 됐습니다』 지난 9일 꿈에 그리던 조국땅을 밟은 재일동포 추석모국방문단 1진 2백여명은 3박4일간 용인민속촌과 경주·포항·울산등지의 관광지와 산업시설을 돌아보면서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경주 불국사와 천마총 박물관등 선조들이 남긴 찬란했던 문화유산들을 돌아본 이들은 『정말 자랑스런 조상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기뻐했다. 『이 용광로가 세계에서 제일 큰 용광로입니다』라는 포항제철에서 안내인의 설명을 듣던 이들이 안내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와』하고 함성를 질렀다. 울산 현대조선소의 대형선박 조선과정과 현대자동차의 승용차 생산라인을 둘러보고는 『이 모든 것이 우리기술에 의해 생산된 국산품이냐』며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는듯 묻고 또 물어 안내인을 땀빼게 하기도 했다. 모국방문단 가운데는 일제때 징용으로 끌려가 50∼60여년만에 처음으로 조국을 찾은 조총련계 교포를 비롯,아버지의 나라를 말로만 들어온 교포 2·3세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청도가 고향인 허만구씨(70·니가타현 거주)는 『고향을 떠날때 헐벗고 굶주리던 보릿고개를 생각하며 아직도 조총련의 말과 같이 곳곳에 거지떼가 있는줄 알았는데 너무나 딴 세상으로 변해 50여년을 속고 살아온 세월이 야속스럽고 후회스럴뿐』이라고 울먹였다. 할아버지 정용이씨(81·니가타현 거주·고향 김천)와 함께 온 영자양(20·대학2년)은 『일본에 가서 조국의 발전상과 찬란한 문화유적을 이야기하면 믿어주지 않을것 같아 사진을 많이 찍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북한을 「조국」이라고 교육받았으나 이제는 대한민국이 조국이란것을 깨닫게 됐다』며 활짝 웃었다. 경북 예천군 예천읍 노상동이 고향인 아버지 김우만씨(83·효고현 거주)와 친척을 찾기 위해 함께 나왔다는 딸 영순씨(42)는 『사진을 많이 찍어 가서 조총련은 물론 일본인들에게도 자랑스런 조국을 소개하고 다음 기회에는 조총련계 부인들과 모국을 찾아 올 계획』이라고 전했다.관광과 산업시찰을 마친 모국 방문단원들은 조국의 발전상을 몸소 체험했다는 가슴 뿌듯한 마음으로 12일 하오 각자 성묘길에 올랐다.
  • 병역제도 개선과 군의 발전(사설)

    세상은 지금 안팎으로 크게 변하고 있다.그 속에서의 한반도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특히 한반도의 안보환경변화는 더욱 그러하다.이런 가운데 국방부가 발표한 방위병제 폐지및 현역병 복무기간 단축등 병역제 개선내용은 우리 군제도운영상의 문제점과 국방환경의 변화여건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한 획기적인 대책으로 평가될 수 있다. 방위병제도는 당초 보충역 잉여자원을 해소하고 방위예산을 절감한다는 취지에서 시행됐던 것인데 근래에 와서는 병무부조리의 온상이 될 정도로 그 구조적병폐를 드러낸게 사실이었다.실역면에서도 두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복무기간을 놓고 병역의무부과의 형평성 결여라는 지적도 컸다. 그러한 방위병제 폐지와 함께 현역복무기간이 단축된 것은 현역병대상 자원이 늘어난다는 현실에 비추어 합리적인 조정이라 할 수 있다.당국에 따르면 이번 개선조치는 상비병력 13만명감군및 예산절감효과와 함께 전력증강에 필요한 5만여 병력을 충원하는 효과가 기대된다는 것이다.결국 현역복무기간 단축과 상비병력감축의 이중효과 위에서 양적 전력의 질적 전환은 물론 병역의무에 대한 자발적 참여도 높이게 된다는 얘기다. 법령이나 제도란 시대상황과 사회여건 변화에 따라 항상 발전적으로 개선·보완돼야 하는 것이다.더구나 최근 병역면제를 받기 위해 무릎이나 눈수술등 신체손상도 서슴지않는 사태들을 지켜보면서 어떤 효과적인 제도개선책이 있어야겠다는 여론이 컸던데 비추어 이번 방안은 시의적절한 것이라고 본다. 지난 연초에 당국이 국방인사정책발전 방안을 냈을때 우리는 그것이 시대의 흐름과 환경변화에 맞추어 군의 관리개념도 바뀌어야 한다는 시각에서 크게 평가한바 있었다.세계는 지금 탈냉전의 화해시대를 맞아 군축내지는 군비절감을 본격화하는 추세에 있다.또 우리의 남북대화도 작금의 침체상태를 벗어나기만하면 군비통제를 포함한 군축전반의 문제가 큰 현안으로 대두될 전망이기도 한것이다. 이러한 안팎 정세변화에 비추어 국방예산의 조정이나 효율적인 편성의 필요성이 논의되고 있는 현실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우리에게 직접적으로 군축문제가 대두되고있는 장황은 휴전후 40여년 지속해온 「즉응전투력」위주편성의 덩치큰 현역을 유지하는데 한계와 부담을 느끼게 하는 현실의 반영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 안보여건의 변화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임을 알아야한다.북한은 아직도 한반도문제의 전쟁적 해결이나 대남혁명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안팎 정세변화에 대응하는 자세 또한 불투명하다.우리는 여기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즉 국방인력의 근간은 최대로 유지하되 변화에 대처하고 그것을 수용하는 능력을 극대화해야 한다.다시 말해 군의 질적변화와 내실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번 제도개선의 효과도 거기서 찾아져야 한다고 본다.
  • 청기와에 푸른 단청… 전통의 멋 물씬

    ◎청와대 새 본관 어떻게 꾸며졌나/중앙홀 좌우에 문무조화 벽화로 장식/조선총독부 옛 건물은 52년만에 역사속에/대지 조성때 「천하복지」 암각 나온 명당 국정수행의 최고기관인 「청와대」가 신축되었다.대통령이 집무하는 청와대 본관건물이 정통한옥양식으로 새롭게 준공된 것이다.이에따라 일제 조선총독의 사택으로 출발했던 기존 청와대본관은 이제 역사의 장으로 묻혀지게 되었다. ○본채·별채 ㄷ자 배치 ○…4일 준공된 청와대 신본관은 북악산 산자락에 정남향으로 위치해 서울시가지를 한눈에 굽어볼수 있으며 서울시내 중심가 어디에서도 잘 보인다.구본관이 눈에 잘 띄지않는 후미진 곳에 있던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구본관에서 서북쪽으로 약1백50m쯤 떨어져 높은곳에 신축된 청와대본관은 경복궁 근정전지붕과 중앙박물관이 모두 발아래 높이에서 조망된다. 연건평 2천5백64평인 신본관은 중앙에 2층의 한식본채를 두고 그 좌우에 단층한식의 별채를 거느려 ㄷ자모양의 열린 쪽이 남쪽을 바라보는 형상이다.외형적으로는 본채와 별채로 나뉘어진 것같으나 내부는 모두 같은 평면으로 연결되어 있다. 본채와 별채의 지붕높이는 각각 28m와 18m로 팔작지붕 형태이며 섭씨1천1백도에서 구운 15만장의 청기와로 덮여져있다. 용마루 양끝에 세워진 취두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있는 모습인데 이는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건물외벽에 쓴 석재는 경기도 포천에서 나온 화강암으로 거친 정다듬으로 해서 순박한 우리맛을 느끼게 한다.외벽의 창문은 솟을빗꽃살문양의 덧문을 대 고궁의 모양을 본떴다. 대통령이 국빈을 맞을 때 직접 영접하는 본채 현관천장은 푸른색을 주조로 한 단청이 칠해져있어 한국고유미를 느끼게 한다. 본채 정면 아래쪽엔 국빈영접때 의전행사를 할수 있는 장방형의 잔디광장(1천4백80평)이 마련돼 지금까지 청와대에서 의전행사를 제대로 할수 없었던 옹졸함을 씻게 되었다. ○집현전 학사 그림도 ○…지난 89년7월22일 착공,약 2년여에 걸친 공사끝에 이날 준공을 본 청와대 신본관은 근정전(3백평)크기의 약4∼5배가량으로 총공사비는 1백63억원. 1층(1천2백2평)에는 중앙홀·대회의실·대식당·중식당·영부인접견실등이 있고 2층(4백58평)엔 집무실·접견실·회의실·소식당등이 있다. 이밖에 창고 음향실이 있는 중층(76평)중3층(3백32평·창고)그리고 기관실·전기실및 공조실이 있는 지하층(4백96평)등이다. 1층 현관을 들어서면 대청마루의 시원한 느낌을 주는 중앙홀이 나온다.왼쪽 벽면엔 문을 상징하는 높이 3.19m 길이 21m의 행차도 벽화가 걸려있다.오른쪽에는 무를 상징하는 고구려 수렵도가 맞은 편의 행차도와 대칭되게 걸려있다. 중앙홀에서 왼쪽 별채의 대회의실(세종실)로 이어지는 회랑식 복도벽면에는 세종대왕업적에 관한 동판부조와 집현전 학사도가 걸려있어 전체적으로 「문」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역시 중앙홀에서 오른쪽 별채의 대식당(충무실)으로 이어지는 복도벽면에는 이순신장군의 승전등에 관한 부조와 씨름도가 장식돼 「좌문우무」의 조화를 이룬다. 청와대 국무회의등이 열리게 되는 대회의실에는 군학도·흉배·일월도 그리고 훈민정음을 월인천강지곡체로 그래픽한 작품등으로 장식해 전체적으로 통치권자,국정최고 책임자가 주재하는 「어전회의장」분위기를 느끼게 하고있다. 대통령이 집무하는 2층에 오르는 계단전면에 고지도기법으로 대한민국전도를 벽화로 장식했고 천장에는 천문도를 실크프린트하여 은은하게 보이도록 함으로써 대통령이 늘 금수강산 우리 국토와 하늘을 생각하면서 개단을 오르내릴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2층 집무실벽면엔 황금색 대통령의 봉황문장이 벽에 새겨져있고 접견실은 순한식 가구와 장식으로 되어있다. ○고려땐 개경의 이궁 ○…청와대 자리는 지금부터 8백87년전인 고려 숙종9년(1104년)부터 당시 수도이던 개경의 이궁터로 쓰이다가 조선조에 들어와 태조4년(1395년)경복궁이 창건되면서 궁궐의 후원이 되었던 곳이다. 이곳은 일제가 1910년부터 조선총독부 청사부지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공원화했다가 연건평 5백86평의 건물을 짓고 1939년부터 남차낭 등 3대에 걸친 총독관저로 사용했다.해방후에는 미군정이 실시된 약2년3개월동안 하지중장의 관사로 이용됐으며 48년 정부수립이후엔 이승만대통령이 경무대라 이름짓고 관저및 집무실로 사용했다.이후 윤보선대통령은 취임후 경무대라는 이름이 국민들에게 주는 인상이 좋지않다는 이유로 청와대로 개칭했으며 박정희·최규하·전두환대통령에 이어 노태우대통령도 이곳을 계속 사용해왔다. 청와대측은 노대통령의 결심을 얻어 「청와대신축 마스터플랜」을 수립,89년 5월 프레스센터인 춘추관에 이어 7월엔 본관,8월에는 관저의 신축에 들어가 춘추관은 지난해 9월29일,관저는 지난해 10월25일에 준공됐고 집무실인 본관은 이날 완공된 것이다. 신축공사를 위해 대지를 조성하던중 관저뒤 암벽에 3백년전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천하제일복지」라는 암각이 발견(본보 90년 2월23일자 보도」되기도해 신축지가 예로부터 풍수지리상 길지임을 입증했다. 청와대신축계획과 공사를 총지휘한 임재길 청와대총무수석비서관은 이날 『독립한지 45년이 지나도록 국가원수가 일제총독관저로 쓰였던 건물에서 집무를 한다는 것은 국민정서에도 안맞을 뿐아니라 민주자존에도 문제가 아니될 수없었다』며 신축배경을 설명했다. 임수석은 『우리 고유의 건축미에다 화려하지 않은 소박미를 최대로 살리면서도 대통령집무실답게 품위있게 건축하는데 역점을 두었다』면서 『청와대가 서울중심가에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위치한 것 부터가 바로 보통사람시대」에 걸맞는 민주대통령의 집무실임을 뜻한다』고 부연했다.
  • 수산청 흑산도 어촌 지도사 이군승씨(이런 공무원)

    ◎외딴섬에 「기르는 어업」 뿌리 내리기 10년/24세때 모두가 외면하는 곳 자원… 선진어업 가르쳐/김·우렁쉥이 양식 성공… 어민들 “도사” 별명/주민들과 동고동락… 자녀교육 상담까지 서남해의 외딴섬 흑산도.이름 그대로 하늘과 바다가 온통 푸르다못해 검게 보이는 이곳엔 예상과는 달리 회색 빛깔의 인공어초가 즐비하게 쌓여있고 가두리 양식장의 주황빛 부표들이 점점이 떠있다.한때는 고기잡이배들이 수천척씩 몰려 파시를 이루었던 곳이었지만 어선들은 눈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줄어들었고 대신 그 자리에 길러서 잡는 어구와 시설물들로 메워지고 있는 것이다.흑산도를 양식 어업의 중심지로 바꾸어 놓은 주역은 어촌지도사 이군승씨(33)이다. 해풍에 검게탄 얼굴,젊고 자신감 넘치는 그의 표정이 믿음직스럽다.이곳 어민들은 그를 「도사」라고 부른다고 했다. ○목포서 뱃길로 7시간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수산직 기술공무원인 어촌지도사를 부르기 쉽게 줄여 그렇게 부르고 있다는 것.그러나 사실은 그가 외딴섬 어민들에게 새로운양식기술 등을 보급하고 최신 어업경영기법 등을 가르쳐 주면서 고기에 관한한 진짜 「도사」라는데서 붙여진 애칭이라고 한다. 『전에는 이 섬에 부임하면 다음날 부터 도시로 되돌아 가려고 했답니다.제가 10년 가까이 붙박이처럼 이곳에 남아서 어촌지도를 꾸준히 했다고 분에 넘치는 별호를 붙여준 것 같습니다』 이씨는 이 곳에 근무한지 1년만에 승급의 우선권이 주어지자마자 이곳을 떠날 수도 있었지만 「잡는 어업을 기르는 어업」으로 힘겹게 돌려놓았기에 그 열매를 직접 보고싶어 지금까지 남아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가 흑산도로 부임한 것은 82년말.그때만해도 이곳엔 전기는 물론 직통전화조차 없었고 먹는 물사정도 나빴다.또한 목포에서 뱃길로 6∼7시간이 걸려야 닿을수 있는 오지였기 때문에 아무도 이곳 근무를 희망하지 않았다. 수산청 어촌지도소에서는 궁여지책으로 1년이상 근무하면 승진시키고 다른 어촌지도사들의 봉급이나 출장비에서 10%정도를 떼내어 지원해주는 방안까지 제시했다.이같은 특전으로 이씨의 전임자가 부임했었으나그는 1년만에 승진되자마자 곧 철수했고 그뒤로 후임자가 또 없었다. 이같은 사실을 알게된 이씨는 당시 24세의 젊은 나이인데다 근무하고 있던 해남은 이미 선진어법이 보급돼 더이상 자신이 할 일이 없다고 판단,이곳 외딴섬의 근무를 자원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현지에 와보니 넘어야할 어려움과 고충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는 불편한 생활여건 보다도 외딴섬의 특성상 옛 씨족사회의 관습이나 의식이 그대로 남아있고 외지인에 부리는 텃세가 심해 더 안주하기가 어려웠다고 회상했다.『제가 찾은 주민들은 저를 외면했습니다』 특히 주민들은 넓고 주인없는 바다에서 그물만 던지면 고기를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데 무슨 선진어법이 필요하냐면서 그의 지도에 시선조차 주지않으려 했다. 그러나 이씨는 이에 굴하지 않고 주민들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추구했다.그 방법은 선진어법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확실한 지름길임을 실제로 보여주는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그래서 그는 83년 도목리 어촌계에서 김양식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연 소득 1천2백만원 여름에 육지에서 조개껍질에 김의 씨를 뿌려 키운뒤 가을철이 되면 바다속의 시설에 옮겨심어 재배하고 이를 기계로 말리는 방법으로 다음해 1㏊에서 4천만원의 소득을 올려 시설비등을 제외하고 1천만원의 순이익을 남겼다. 이렇게되자 그토록 두껍던 주민들과의 벽이 차츰 얇아졌다.이씨의 성공사례를 눈으로 지켜본 35가구가 그해 김양식사업에 뛰어들었다.7년이 지난 현재 주민들은 김양식으로만 연간 30억원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지난 86년엔 남해·동해안에서만 양식이 가능한 우렁쉥이양식을 이 섬에서도 시도해 보기로 결심,어민후계자인 장현수씨(32)에게 한번 길러보도록 권유했다. 이씨의 지도로 장씨는 50만원을 투자해 2년만에 1백40만원의 순수익을 올리게 됐다. 『혹시 잘못해서 실패라도 하는 날이면 지금까지 쌓아온 공든탑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 제 일같이 일했습니다』이씨는 주민들이 잠자는 밤에도 몇차례씩 양식장을 둘러보곤 했다.그의 이같은 열정에 감복하지 않는 주민이 없었다.그는 어업지도 이외에도 자녀교육이라든가 가족간의 갈등에 관한 상담에도 나섰다.그는 처음엔 몰랐으나 점차 자신을 의지해오는 주민들에게 가르쳐줄 것이 거의 바닥이 나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그래서 어업기술은 물론 철학 심리학 교육학 등에 관한 1천여권의 책들을 사들여 틈틈이 읽고 스스로 터득한 기술과 학문을 주민들에게 나눠졌다.그의 이같은 인간적인 행동으로 주민들은 이제 그가 없으면 살 수 없다고 말한다. 1천1백여가구의 어민들은 이제 기르는 어업으로 연간 가구당 평균 1천2백만원의 소득을 올려 풍요롭고 경쟁력 있는 어촌으로 탈바꿈했다. 『처음엔 어민들중에 물고기나 김의 질병관리를 소홀히 했다가 예상보다 소득을 못올리고는 지도사인 저를 무조건 탓하기도 했습니다.그럴때는 당장 짐을싸 뭍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한두번 마음먹은 것이 아닙니다』 그럴때마다 그는 성공한 어민들을 예로 들면서 실패원인을 같이 정밀분석해 다음해에 높은 소득을 올리도록 도왔다. ○“제2의 고향 지킬터”그는 지금도 소흑산도 홍도를 포함한 11개 유인도와 89개 무인도를 자신의 유일한 발인 90㏄ 오토바이를 타거나 소형어선을 몰고 다니며 밤낮으로 어업지도를 하고 있다.『아마 제가 다닌거리는 지구를 두바퀴이상 돈셈은 될겁니다』 지금은 직급도 6급대우인데다 한달 봉급으로 75만원을 받고 있어 일하는 보람도 그만큼 크다고 말한다.중매결혼한 부인 김영심씨(32)와 국민학교 5학년인 딸,2학년인 아들등 세가족과 함께 그동안 줄곧 셋집에 살다가 지난해말 비로소 융자받은 5백만원을 포함해 1천만원으로 흑산면 예리에 25평 규모의 내집을 장만했다. 취재를 끝내고 흑산도를 떠나는 기자를 배웅하는 이씨는 거센 해풍과 파도에도 꿋꿋하게 뿌리를 내리는 홍도의 풍란처럼 기르는 어업이 자생력을 갖출 때가지 흑산도를 제2의 고향으로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 독립기념관 방문 일 의원 표정

    ◎“일제 36년 침탈 부끄러울뿐”/생체실험 「마루타」 앞선 말 못잇고/「역사의 진실」 깨우쳐 한·일 새 관계의 책임절감 방한중인 일본 사회당의원등 일행 13명이 17일 충남 천안군에 있는 독립기념관을 방문,자신들의 선조가 저지른 역사의 죄악상을 「목격」하고 『참회와 부끄러움 뿐』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북한만을 한반도의 공식국가로 인정해오던 일본 제1야당인 사회당이 한국정부를 인정한뒤 한반도에 대한 정치적인 입장을 현실화한 상황에서 가진 이번 방문은 그들에게 한일관계의 새로운 개안을 가져다주는 듯했다. 내한한 사회당 의원은 모두 11명이었으나 이가라시 코조(오십강광삼)의원등 3명은 다른 일정때문에 동행하지 못하고 센고꾸 요시토(선곡유인),이토 히데코(이동수자)의원등 나머지 8명의 의원과 비서관 5명등 모두 13명일 독립기념관을 찾았다. 2시간동안 독립기념관을 둘러본 이들은 한 목소리로 지나간 한일 양국의 과거사를 통탄하며 선조들의 잘못에 대해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배정책을 그대로 재현해 만들어 놓은 「일제침략관」에서 고문과 학대를 받으며 숨져간 수많은 한국민의 모습을 보고 몸서리쳤으며 생체실험에 동원됐던 한국인 「마루타」들의 사진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참회했다. 『우리 선조가 36년의 침탈기간동안 얼마만큼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그 실상을 정확히 목격했다』고 방문소감을 밝힌 센고쿠 요시토(선곡유인)의원은 일본이 한국에 대해 행한 참혹한 행위가 상상을 초월했는지 『뼈저리게 가슴아프다』는 말 이외에는 더이상 말을 못했다. 사회당의원 일행의 단장이기도 한 그는 『일본교과서에서는 전혀 언급도 되지 않았던 역사의 진실을 여기서 알게 됐다』며 부끄러워 했다. 지난 64년부터 89년까지 25년동안 NHK­TV 정치부기자를 역임했던 이케다 모토히사(지전원구)의원은 『과거 일본이 한국에 대해 저지른 만행은 그 어떤 사과로도 충분치 않다』면서 『일본이 한국에 대해 갚아야 할 빚은 국가대 국가간의 배상만으로 결코 해결될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일본 사회당은 사할린거주 한국인들과원폭피해자들에게 개인적 배상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노대통령이 지난해 일본을 방문했을때 일왕이 「통석의 염」이란 표현으로 미흡한 대한사과를 한데 대해 못마땅해 하는 그는 『한국에 대한 과거사 사과는 단계적으로 조금씩 하기보다는 화끈하게 매듭짓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회당 강제연행문제특별위원회 부위원장 쓰쓰이 노부다카(통정신육)의원은 『한일간의 과거사 문제가 우선 백일하에 공개되고 해결돼야 양국관계가 원만해 질것』이라며 『일본이 아시아에서 공존하기 위해선 한국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지역 국가들에도 대동아전쟁 당시 일본이 자행했던 만행들에 대해 사과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시아 주변국들이 일본의 재무장과 군국주의부활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의 장래를 주변국들과 상의해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1운동관」과 「독립전쟁관」에서 독립선언서와 피에 젖은 태극기를 둘러보며 한국인의 독립정신과 불굴의 민족정기를 체험한일사회당 의원들은 자신들이 앞으로의 한일관계에 막중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득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독립기념관 방문을 마친뒤 센고쿠의원은 『새로운 한일관계는 이 자리에서 벌써 시작됐다』고 말한뒤 『한국인의 저력은 독립의지 뿐만아니라 예술적 능력에서도 드러난다』면서 독립기념관에 존치하고 있는 모든 조형물까지 극찬했다.
  • 잼버리성공 걷기 대회 성황/부산/서울신문사 주최

    【부산=김세기기자】 제17회 세계잼버리대회의 성공다짐 부산시민걷기대회가 11일 상오10시 해운대구 수영만의 올림픽동산∼동백섬∼솔밭공원을 잇는 4·6㎞구간에서 김영환부산시장·우명수부산시교육감등 부산시내 각급 단체 기관장·시민·학생등 6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서울신문사 부산지사와 한국방송공사 부산방송본부가 공동주최한 이날 대회에는 에어로빅동호인 40여명이 특별출연,에어로빅시범을 보여주었고 무선조종사 오은환씨(33)의 헬리콥터 곡예비행도 선보였다.
  • 선거법의 개선조건(사설)

    여야정당의 일각에서 대선거구제주장 등 선거제도의 개혁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중앙선관위가 25일 「국회의원선거법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이란 주제를 놓고 토론회를 개최,관심을 끌고 있다. 언제나 국회의원임기 막바지에는 국회의원선거법개정문제가 정가의 가장 큰 쟁점으로 대두하던 전례에 벗어나지 않게 이번에도 임기 약9개월을 남긴 시점에서 활발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특히 이번은 민주화가 상당부분 추진되어 정치권주변의 환경 또한 과거와 달리 크게 변해 있기 때문에 보다 혁신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들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정당주변에서 나오고 있는 중·대선거구제,시·도별 명부제,소선거구와 시·도별 비례대표제의 혼합형 등 선거제도와 관련된 문제는 다분히 정략이 섞여있는 느낌이라 아직 좀더 논의의 추이를 주시해 볼 필요가 있다.1구2인이나 1구1인을 뽑아온 유권자들로서는 1구6∼9인을 뽑는 대선거구제나 시·도마다 정당별 후보명부를 만들어 득표에 따라 명부순서대로 당선자를 결정하는 시·도별 비례대표제 등이매우 생소할 수 밖에 없다.충분한 검증없이 채택하기에는 여러가지 무리가 따를 가능성이 많다. 중앙선관위의 토론회에서 제기된 문제들은 역시 선거관리와 관련된 것들이다.후보자와 유권자의 접촉기회를 확대하면서도 선거의 과열과 타락을 막자는 생각에서 개인연설회와 지원연설의 허용,선거벽보와 선전용장식·착용물 등의 허용과 확대,신문·방송광고의 허용 등 여러가지 선거운동방법론이 제시되었다. 법과 현실의 괴리를 줄이고 보다 원만한 선거관리를 해보려는 중앙선관위의 이같은 노력을 평가한다. 우리는 과거의 선거제도나 선거법논의가 너무 정략에 치우치고 그나마 충분한 심의없이,심지어는 정치인끼리의 야합에 의해 오히려 훼손되고 왜곡된채 결정되고 만 경우들을 여러번 보아왔다.이번에는 보다 원칙에 충실하고 국민본위의 심의가 이루어져야겠다는 생각이다. 이 문제들을 논의함에 있어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가 민주적 방법에 의해 가장 바르게 반영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이 원칙에 부합하면 어떤 제도나법이라도 논의될 수 있으며 채택여부는 현실과 무리없이 조화될 수 있느냐의 관점에서 가려져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의 선거풍토는 최근 지자제선거에서 드러났듯이 수많은 법적제약에도 불구하고 너무 돈이 드는 나쁜 방향으로 줄달음질쳐왔다.이의 개선은 이제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말았다.최근의 대선거구제논의도 돈이 적게 든다는 명분속에 제기되었으나 이점이 검증되지 않았고 오히려 돈이 더 든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중앙선관위가 후보자와 유권자의 접촉기회를 확대한다는 입장도 타락선거를 부채질할 가능성을 높여주는 역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다만 신문·TV광고의 활용과 합동연설회의 축소,플래카드 등 선전수단의 확대 등은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이와 아울러 모든 후보자를 거짓말장이로 만드는 법정선거비용 상한선을 대폭 조정하는 방안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유권자의 의식개혁을 위한 부단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남아공,20년만에 국제무대 복귀/미,경제제재 철회의 함축

    ◎인종차별 폐지노력 긍정평가/ANC선 “정치범 석방안해 시기상조” 반발 미국이 지난 5년간 계속돼온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10일 해제함으로써 남아공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재가입에 이어 국제무대에 완전복귀하게 됐다. 부시 미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기자회견을 통해 『남아공은 미의회가 지난 86년 대남아공 제재조치를 하면서 제시했던 해제에 필요한 5개항의 전제조건을 충족시켰다』고 밝히면서 『남아공이 인종차별 없는 민주주의를 향해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이 이날 남아공에 대한 경제제재조치를 해제하면서 내세운 가장 큰 이유는 데 클레르크대통령이 집권한 이래 남아공에서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폐지를 향한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현지 분석가들은 정치범석방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같은 해제조치를 내린 것은 그동안의 제재조치가 실효를 거두지 못했으며 때문에 미국은 더이상 「명분」에 시달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사실 지난달 남아공이 주민등록법을 폐지한 것과 때를 같이해 일본은 매년 20%이내의 범위에서 남아공과의 무역을 확대키로 했으며 이보다 앞서 EC(유럽공동체)는 지난 4월 남아공과 무기거래를 제외한 모든 상품의 교역을 허용한 바 있다. 미 의회는 지난 86년 6월 남아공정부가 소웨토흑인폭동 10주년을 앞두고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자 EC·유엔 등과 함께 남아공에 대한 경제제재조치를 취하면서 ▲인종차별법 폐지 ▲비상사태 해제 ▲야당등 정당의 합법화 ▲인종차별 없는 정부구성을 위한 흑인세력들과의 협상개시 ▲정치범석방 등 5개 조건이 충족될 경우 언제든지 제재를 해제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남아공정부는 이 가운데 이미 4개를 충족시켰다. 인종차별법 폐지와 관련해서는 올해초 거주지역 분리법을 폐지한데 이어 지난 6월 주민등록법을 폐지시킴으로써 법적인 개선조치를 취했고 비상사태해제건은 지난해 6월 4년간 실시했던 비상사태령을 해제했었다. 때문에 이번 미국의 제재조치 해제는 비록 1백% 조건이 충족되지는 않았지만 적절한 조치로 평가되고있다. 남아공에서 아직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정치범석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남아공 최대의 흑인단체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아직도 1천여명에 가까운 정치범이 구속돼 있는 상태에서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의 제재조치가 남아공에 변화를 가져오는데 도움이 됐다고 주장하며 흑인의 투표권을 포함한 추가개혁조치가 이루어지기 위해선 남아공정부에 대한 계속적인 압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또 미국내 민주당의원들을 포함한 진보주의 세력들도 남아공정부가 취한 5가지 조건의 「기술적인 수락」만을 보고 경제제재의 「정신」을 무시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1천여명의 정치범이 석방됐으며 남아공의 개혁정책은 계속 진전될 것이라고 애써 강조하는 부시대통령의 대남아공정책은 미국의 뒤를 이어 조만간 해제조치를 취하겠다는 일본·이스라엘 등의 동조행위와 함께 지난 20년간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어 위기에 몰렸던 남아공을 국제무대에서 「복권」시킨 셈이다.
  • 부시 11월 방한 검토/일 교도통신

    【도쿄 연합】 부시 미국대통령의 일본방문이 오는 11월에 실현될 전망이며 이때 한국과 호주도 방문하게 될 것이라고 일 교도(공동)통신이 3일 미정부 당국자의 말을 인용,보도했다. 이 당국자는 부시대통령이 노태우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연내에 동아시아지역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향을 표명한 사실에 대해 『일본 방문은 11월의 전반에 이루어 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이어 『크게 지연되고 있는 모스크바 미소정상회담 개최와 균형문제도 있고해서 방일 시기가 다소 지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관련,교도통신은 『방문국은 한국 일본 호주가 확실하다』고 밝히고 『부시대통령은 중국 방문도 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인권문제등 중국측의 개선조치가 없다면 현재의 냉각된 미·중관계로서는 지극히 곤란한 실정』이라고 전했다.
  • 북한의 대미 미소 접근(사설)

    미국과 북한의 관계개선 문제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외교 관심의 새로운 초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북한의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동의와 핵사찰 수용의사 표시에 따른 당연한 순서요 관심의 이동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한소 관계 만큼이나 한반도 안보 및 통일환경의 향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란 점에서 특별한 주목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유엔 동시가입과 핵사찰 수용문제는 북한이 갈망하는 대미·일 관계개선의 가장 중요한 장애요인이었다.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 장애요인의 연이은 제거는 미·일과 북한 관계개선의 개시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대미 관계의 개선없는 대일 관계 타결의 전망이 어둡고 「이은혜 문제」라는 새로운 복병에 직면한 북한은 대미·일 관계개선 노력의 역점을 일본에서 미국 쪽으로 옮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것이 최근 북한의 연이은 대미 화해제스처와 관계개선 호소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은 유엔가입 및 핵사찰 수용발표와 병행,대미 관계개선 공세를 활발히전개하고 있다. 한시해 전 유엔 주재 대사를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파미,각계각층의 미국 지도자들과 접촉을 벌이게 하는 한편 관계개선의 돌파구 마련을 위하 「러브·콜」을 연발하고 있다. 시거 전 미 국무차관보를 비롯,미 학자·전직관리·예비역 장성 등의 북한방문이 줄을 잇는 가운데 북한은 한국전 실종 미군유해 2차 인도를 제의,23일엔 판문점에서 11구의 미군유해를 미국측에 인도할 예정이다. 이를 계기로 미·북한간의 미군포로·실종자 문제에 관한 최초의 공식회담도 열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얼마나 열심인가를 보여주는 사태의 전개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초조하고 서두르는 북한에 비해 미국은 비교적 냉정하고 조심스런 태도다. 미국은 대북한 관계개선의 5개항 전제조건을 제시한 바 있다. ①핵안전협정의 서명 ②남·북 대화의 진전 ③6·25 실종 미군유해 반환 ④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⑤국가테러리즘의 포기 등의 그것이다. 북한은 그 동안 격렬한 반발을 보이면서도 결국 이들 조건을 충족시키거나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성의를 보이는 듯해왔다. 북한이 발표한 대로 오는 9월까지 핵안전협정에 무조건 서명하면 미국은 북한과의 외교관 접촉수준 격상 및 인적 교류의 확대 등 관계개선 조치를 확대해갈 것이라는 등의 최근 보도는 북한의 그러한 변화와 노력을 근거로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7월에 있을 한·미 정상회담에선 남·북 문제와 미·북한 관계개선 문제가 중요한 의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한·미 정상의 합의를 기초로 하는 미국의 대북한 관계개선조치 발표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갈망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북한 관계개선 조치가 한·소 수교처럼 극적으로 단행되거나 급속히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미국의 대북한 태도는 단계적이고 신중하다. 핵사찰 문제만 해도 미국은 아직 북한을 신뢰할 수 없다는 자세이며 북한은 아직도 국가테러의 포기를 선언하고 있지도 않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한국과의 대화도 중단시킨 상태로 있다. 북한은 대미·일 관계개선의 가장중요한 돌파구가 남·북 대화의 진전과 남·북한 관계의 실질적인 개선에 있다는 사실을 하루속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한국과의 실질적 관계개선은 미·일과의 관계개선뿐 아니라 그것을 통해 북한이 달성하려 하는 외교적 고립탈피와 경제·기술지원 획득의 상당한 부분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을 북한은 왜 애써 외면하려 하는가.
  • 정치사속의 짧은 홍수·긴 가뭄/김용운 한양대교수(서울시론)

    ◎분수 지켜 자유범람에 대비해야 대원군이 몇개월 전에 TV 사극으로 상영된 적이 있었다. 조선말의 이 나라 지도자와 백성의 사고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컸다. 일본의 근대화,소위 명치유신이 일어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인은 조선을 월등한 문명국으로 보아왔다. 필자는 그러했던 조선이 허망하게도 가엽게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만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사극 대원군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한마디로 조선은 국민국가를 형성하는 데에 사회적 제도는 물론 개인의 정신면에서도 아무런 준비가 없었던 것이다. 국민국가란 지도자는 스스로의 책무를 자각하고 또 저마다의 국민은 자신의 처지를 명확히 의식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국민국가를 성공적으로 이끈 국가에서는 자신의 주장보다는 「국가」를 앞세우는 지혜가 있었다. 영국의 나이트,프랑스의 조블,일본의 사무라이,독일의 융커 등은 전쟁 때 스스로 일선에 서야 할 의무를 자각하고 희생을 특권으로 여겼었다. ○조선조 망국의 원인 대원군이 활약하고 있었을 무렵 일본은 명치유신을 성공시키고 이미 완전한 국민국가의 태세를 갖추었다. 국민국가의 지도자는 자기의 가문이나 지역에 대한 이익보다도 국가의 이익을 앞세워야 한다. 대원군 시대의 지도자는 저마다 자기 가문의 세도에 혈안들이 되어 있었다. 안동 김씨니 전주 이씨니 민씨니 서로가 팔을 자신의 가문에 굽히고 있는 동안 일본은 그 파벌싸움의 구조를 교묘하게 이용했던 것이다. 일본의 특권계급이었던 무사단들은 순순히 자신의 특권을 내놓았는데 조선의 지도자는 일단 손에 들어온 특권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일본 농민들은 자신들의 번에 침입한 적병에 대해서도 전혀 무관심했으며 오직 생업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 조선팔도의 농민은 방방곡곡에서 의병운동을 일으켰다. 정신면에서는 조선 농민이 일본 농민보다 훨씬 애국적이었으나 변변치 못한 지도자 밑에서 의병운동은 나약하기만 했다. 조직적인 전투에서는 지도자가 희생을 해야 하는데 못난 지도자밖에 없었기에 농민 스스로가 나섰던 것이다. 이빨이 없으니 잇몸이나섰던 셈이다. 그러나 잇몸에는 한계가 있다. 세계사상 마르크스·레닌이즘이 나오기 전에 농민 스스로 나라를 위해 나선 나라는 오직 조선의 의병뿐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의병의 성공적인 활동은 임진왜란 때까지였다. 그 후의 의병운동은 한결같이 좌절하고 만 것이다. 근대적인 무기를 지닌 백인 앞에 용감하게 나섰던 인디언의 저항이 모두 좌절했던 것처럼 말이다. 산업사회화가 국민국가의 형성을 요청했다. 그러나 산업사회를 성공시키기 위한 중요한 요소가 분업의 정신이다. 아담 스미스 이래 모든 경제학자들은 분업과 산업의 발달을 같은 차원에서 논했다. 특히 서구와 일본의 경제발전에는 개인마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윤리적 자부심이 크게 기여했음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분업의 윤리성이다. ○장인정신 절실하다 서구 자본주의 정신과 기독교의 윤리(M 베버)에서는 장인의 사명감이 기술을 발전시켰고 자본가에게 있어서의 기독교적인 분배의 정신을 주시하고 있다.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개인의 직업에 대한 윤리성,즉 어떤 분야라도 좋으니 그 분야에서 천하제일의 정신이 있었고 지도자들은 할복자살로 책임을 다하는 책임감이 있었다. 일본이 선진국의 지위를 획득하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대원군 시대,조선의 지도자가 자신의 가문만을 내세우고 또 모든 국민은 자신의 자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 우리의 근대 국민국가의 성장은 역행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19세기말 산업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국민국가 형성에 실패한 한국인은 지난달에 대한 큰 반성의 정신적 작업도 거치지 않은 채 새로운 세계사 조류의 분기점에 섰다.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의 길이다. 해방 이후 역대의 대통령은 저마다의 가문이나 지역에 대한 이기심을 내세웠다가 모두 좌절했다. 망명­암살­은둔,국민국가의 지도자가 조선시대 이를테면 이도령식의 사고를 발휘함으로써 나타난 결과였다. 이도령은 벼슬에 올라 맨 먼저 자기 고향에 내려가 자기의 마누라부터 구했다. 고향,마누라,자기 팔을 안으로 굽히는 범위인 것이다. 오늘날,단순한 농업사회가 아닌현대의 다양한 산업을 기반으로 한 국민국가의 지도자가 조선시대의 출세관으로 정치에 임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북한의 김일성 체제가 멀지 않아 망할 것이라는 예측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가능할 수 있다. ○또다른 가뭄의 조짐 바닥이 얕고 경사도가 낮으며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 나타나는 것이 한국의 강의 모습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강의 대부분은 수일간의 홍수 뒤에 백사장의 긴 가뭄으로 이어지는 모습이었다. 해방 이후 한국의 정치사도 짧은 홍수와도 같은 자유범람과 긴 가뭄과도 같은 강권정치가 번갈아왔다.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서 또 하나의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은 또다른 가뭄을 예견하기 때문이다. 이 가뭄을 막아야 할 길은 분명하다. 지도자는 더 이상 자신의 가문이나 지역을 위해서는 아니되며,국민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여야 한다. 특히 정보화시대의 힘의 원천은 정보이다. 학생에게는 학문과 연구라는 중요한 과제가 있다. 미래의 국가의 번영은 과학·기술을 비롯한 학문적 수준이 가름한다. 학생에게 있어서의진정한 애국의 길은 학문밖에 없다. 돈키호테는 시행착오로 풍차에 돌진하여 신세를 망친다. 학생의 애국적 동기는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그 방법은 시대적인 요청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학문 이외는 그 어떤 것도 지난날의 되풀이만을 가져옴을 알아야 한다.
  • 위용 드러낸 경복궁 근정전/임영숙 문화부 부장급(오늘의 눈)

    유월 하늘에 날아오를 듯 치켜선 근정전 처마의 전선과 북악의 산 그림자,그리고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듯한 수제천의 유장한 가락이 어울려 만들어낸 아름다운 정경. 5일 상오 10시30분 경복궁 복원 기공식에 참석한 이들은 이 정경 속에서 정일의 한 순간을 맛보았다. 조선조 이후 근정전에서 처음 열린 국가적 공식행사는 그토록 격조가 있었다. 이날 행사의 핵심은 개기고유제. 궁궐을 지을 때나 성곽을 축조할 때 천지신명께 먼저 고하여 시공과정의 무사고와 안택을 기원하는 전통의례인 이 의식이 진행되는 30분 동안 경복궁은 조선왕조 5백년의 위엄을 되찾았다. 비록 등가·헌가의 궁중음악 격식을 제대로 갖추진 못했지만 국립국악원·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KBS국악관현악단연주자 1백20명이 정재국 국악원 악사장의 집박 아래 수제천과 종묘제례악·서일화지전(해령) 등을 연주했고 중요 무형문화재 종묘제례 예능보유자 이은표옹(77)의 집례에 따라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전례연구위원 8명이 엄숙하게 전통의식을 거행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이날 치사를 통해 얘기했듯이 『우리 겨레의 자존과 긍지가 깃든 경복궁을 복원하여 일제에 의해 훼손된 민족사의 정기를 회복』해야 한다는 느낌을 절실하게 와닿게 한 의식이었다. 심지어는 경복궁 안에서 근무하는 문화재관리국 직원들까지도 이날 경복궁의 아름다움과 위용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이처럼 경복궁 복원 기공식이 의식으로서 성공한 것은 의식 자체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근정문의 역할이 크게 기여했다.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근정전을 가로막고 들어선 이후 근정전 출입은 동쪽 행각을 파고 만든 협문을 통해 이루어져왔다. 따라서 근정전의 위엄을 좀처럼 맛보기 어려웠는데 이날 행사를 위해 근정전의 정문인 근정문이 열림으로써 정전·편전·침전으로 이어지는 전통궁궐 양식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총독부 건물이 헐리기 전이라도 일반인의 근정문 출입이 허용된다면 『제대로 된 궁궐 하나쯤 갖는 호사』를 최소한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4백년전 장군 시신/경북 칠곡서 발견/원형 그대로

    【대구=김동진 기자】 4백여 년 전의 무덤에서 부패되지 않은 장군 시신과 원형이 보존된 만장·의류 등 40여 점이 발굴됐다. 31일 하오 3시쯤 경북 칠곡군 북삼면 보평리 산174 토지구획정리지구내에서 선조의 묘 이장작업을 하던 벽진 이씨 후손 이영기씨(62·북삼면 승오2리)가 시신 등을 발견,군당국에 신고했다.
  • 근로청소년대상/어제 시상식

    근로청소년들에게 긍지와 보람을 심어주기 위한 제6회 근로청소년대상 시상식이 30일 상오 11시 프레스센터20층 국제회의장에서 최병렬 노동부장관과 신우식 서울신문사사장,이동찬 한국경영자총협회회장,서기원 한국방송공사사장을 비롯한 관계자 2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대상수상자인 김행철씨(29·명지건설)에게는 대통령표창과 상금 2백만원이,특별상 수상자인 최재순씨(29·여·금성계전)에게는 노동부장관 표창과 상금 1백만원이 수여됐다. 이밖에 조성욱씨(27·대선조선) 등 본상수상자 5명에게는 상패와 상금 1백만원씩이,장려상 수상자 5명에게는 상패와 상금 50만원씩이 각각 주어쳤다. 신우식 서울신문사 사장은 식사를 통해 『우리의 사회는 대결과 반목의 양상이 만연되어 가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수출부진과 무분별한 과소비 등으로 어려운 국면에 놓여 있다』고 지적한 뒤 『그러나 비관하지 않는 것은 인간애를 배우며 근검절약하면서 자기의 앞날을 개척하고 있는 근로청소년들이 있기 때문이며 이들이 진정한 애국자이자 겨레의기둥』이라고 치하했다.
  • 성대등에 “부검협조” 요청/검찰

    ◎「대책회의」측선 “「과잉진압」 선조사” 요구 성균관대생 김귀정양(25·불문과 3년) 사망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형사3부(이광수 부장검사)는 28일 숨진 김양의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 위해서는 사체부검이 필수적이라고 다시 한번 밝히고 「임시대책위원회」측과 학생들에게 부검에 응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검찰은 이날 상오 임채진 검사 등 2명을 김양의 학교인 성균관대에 보내 장을병 총장 등 학교관계자를 만나 협조를 구하는 한편 김양 시신이 안치된 백병원에 보내 부검에 응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부검에 대한 합의를 하진 못했다. 한편 「범국민대책회의」 산하 성균관대생 김귀정양사건 진상조사단(단장 양길승 「인의협」 대외협력위원장)은 28일 상오 서울 중구 백병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진상조사단이 제시한 현장사진들에서 당시 경찰의 폭력진압행위가 구체적으로 입증됐는데도 검찰이 부검을 내세워 사건수사를 회피하는 것은 직무유기이며 과잉진압을 은폐하려는 기도』라고 주장했다. 조사단은 『직접사인을 밝히기위해서는 부검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부검자체가 모든 상황을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조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대상 김행철/특별상 최재순씨/서울신문사·KBS 제정

    ◎「근로청소년대상」 수상자 14명 발표 서울신문사와 한국방송공사·노동부·한국경영자총협회가 공동 제정한 제6회 근로청소년대상 수상자가 27일 최종 결정됐다. 영예의 대상은 홀어머니와 3남매의 생계를 꾸려오면서 중학과정까지 마치고 월급의 70%를 저축,가족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한편 직원들의 인화단결에 힘써온 제주 명지건설 직원 김행철씨(29)가 차지했고 나머지 특별상·본상·장려상·공로상 등 4개 부문의 수상자 13명도 결정됐다. 시상식은 30일 상오 11시 서울신문사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영예의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대상=▲김행철 상금 2백만원 및 대통령 표창 ◇특별상=▲최재순(29·여·금성계전) 상금 1백50만원 및 노동부 장관 표창 ◇본상=▲조성욱(27·대선조선) ▲민정희(26·여·주식회사 대우) ▲신맹성(27·광주고속) ▲서학순(29·주식회사 아이리) ▲이영화(26·여·대한방적) 이상 각 상금 1백만원 및 부상 ◇장려상=▲김숙희(26·여·전방) ▲송기선(29·태일정밀) ▲이상훈(28·한국벨트) ▲심남희(21·여·제일모직) ▲장영미(21·여·화신섬유공업사) 이상 각 상금 50만원 및 부상 ◇공로상=▲김종규(44·동양나일론) ▲신명(45·여·노동부) 이상 상금 1백만원 및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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