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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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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철 부당요금 징수 업소/월말까지 집중단속

    ◎시,약관위반·무허영업등 중점 서울시는 4일 본격적인 이사철을 맞아 이삿짐센터의 부당요금징수 등을 막기 위해 이달말까지 자동차운송알선조합과 합동으로 지도단속에 나서기로 했다. 시는 이 기간동안 약관위반,운임 및 요금표의 미게시,무허가알선 및 영업 등을 집중 단속한다. 시는 적발된 업소에 대해 등록취소·사업정지·과징금·과태료처분등 행정조치를 내리고 무허가업소는 형사고발할 방침이다.
  • 수협 오늘 창립 30돌… 성과와 과제

    ◎어민 소득증대·복지증진의 견인차로/조합원수 2배·사업규모 3천배 성장/자체자금 3조원 조성운동… 대약진을 모색/어장 오염·자원고갈등 해결이 숙제로 남아 50만 어민들의 협동조직체인 수산업협동조합이 1일로 창립30돌을 맞는다. 수협은 이를 기념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이날을 전후해 어패류와 식품위생에 관한 심포지엄,수산물을 전시·판매하는 수산물큰잔치,수산물 요리솜씨대회등 각종 행사를 다채롭게 펼친다. 특히 1일에는 서울 63빌딩에서 이병석농림수산부차관·이케지리분지 일본전어련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30주년 기념식과 함께 어촌문화상·새어민상·어민봉사상 시상식을 갖는다. 수협이 창립된 것은 지난 62년4월1일.정부의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시작과 함께 수산개발사업의 추진체로서 출범해 30년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해 왔다. 조합원 수만해도 창립당시 6만3천명이었던 것이 이제는 15만7천명으로 크게 늘어났고 사업규모도 연간 23억원에서 지난해에는 7조2천5백99억원으로 무려 3천1백56배나 신장됐다. 초창기 수협의 사업은 위판장 설치·각종 수산자금의 취급·유류직배사업의 개시 등 사업기반확립이라는 과정을 거쳤고 67년부터는 각종 수산개발사업을 적극 추진해 왔다. ○72년까지 11.5% 성장 이같이 수산개발사업이 적극 추진되면서 대일청구권 자금이 수산업부문에 투입돼 각종 어업시설의 확보와 어선의 대형화가 이루어지는등 수산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됐고 69년에는 협동조합으로서의 정상적인 운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조치로 수협중앙회의 일반수신업무가 개시되는등 수신금융기관으로서의 체제도 완비했다. 이로인해 수협창립이후 72년까지 10년간 수산경제는 11.5%의 높은 성장을 이룩,이 기간중의 국민경제성장률 8%를 웃돌았다. ○내륙에 공판장 개설 그러나 73년부터 몰아닥친 제1차 석유파동으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수산업분야도 큰 타격을 입어 수협의 운영목표가 개발위주에서 경영안정을 위한 쪽으로 전환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수협은 이에따라 영어자금과 각종 어업생산자재의 원활한 공급및 수산물가격의 지지사업,무역사업 등을 전개하는 한편 전국 주요소비도시에 내륙지 공판장을 설치하는등 사업을 다각화해 나갔으며 80년대 들어서는 특히 어민의 소득증대와 복지향상을 위한 각종 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안어장의 대규모 매립과 간척증대 및 산업화에 따른 공장폐수와 생활하수의 연안어장 오염으로 수산자원이 갈수록 고갈되고 최근 들어서는 선박사고에 의한 유류오염 피해도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31일 수협창립 30돌기념 심포지엄에서도 이같은 문제점이 토의되었으며 특히 부산수산대 장동석교수는 어패류가 콜레라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닌데도 아무런 연구자료도 없이 수산물을 마치 수인성전염병의 주범으로 오도해서는 안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또 수협이 자체자금의 조성이 부진한데 따른 사업신장의 둔화와 경영악화,사업개발을 위한 투자미흡 등으로 어민들의 기대와 욕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경영면에서 침체를 계속해온 것도 사실이다. 이에 수협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매년 막대한 예산을 투입,인공어초를 투하하고 치어방류사업을 전개하는등 수산자원의 조성에 적극 노력하고 있다. 또 자주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3개년 계획으로 3조원 자체자금조성운동을 적극 전개하기 시작하는등 수협대약진운동도 벌이고 있다. ○작년 흑자전환 결실 이 운동으로 90년에 기록한 97억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적자를 극복하고 드디어 지난해에는 10억원의 흑자로 돌아서는 값진 열매를 맺어 조합원과 중앙회 직원 모두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수협은 이와함께 지난 88년말에 개정된 새 수협법에 따라 조합장을 직선제로 뽑은데 이어 90년부터는 중앙회장도 민선조합장의 손으로 직접 선출,민주수협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러나 수협의 앞길에는 어민의 소득증대와 복지향상은 물론 금융시장의 개방이라는 넘기 어려운 대내외적인 어려운 난관들이 가로놓여 있다.
  • 조선조 설화집 2권 출간/서울대,「청구야담」등 10여종 정리

    ◎원문을 한글로 요약,고유번호 붙여 조선시대의 설화 3천여 편을 모아 체계적으로 요약,정리한 「조선조 문헌설화 집요」(집문당 펴냄)가 2권의 책으로 출간됐다. 이 책들은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가 벌이고 있는 규장각 연구사업 가운데 서대석교수가 이끄는 조선 후기 문헌설화 정리작업의 보고서 성격을 띠고 있다.지난해 제1권이 나온데 이어 올해 제2권이 선보였다. 「계서야담」「청구야담」「동야휘집」 등 조선조 3대 설화집을 비롯,10여종의 설화집을 체계적으로 정리,분류한 이 책들은 한문으로 된 원문을 번역 요약하고 자료의 고유번호를 부여하여 이본대비를 하였으며 인명·지명 등의 색인을 작성함으로써 앞으로 문헌설화를 공부하려는 이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또 이 책은 국문학 전공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중고등학생들도 어느 정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각 설화를 한글 위주로 번역하여 줄거리를 4,5단락으로 제시하고 있는 점이 특징. 제1권은 「어우야담」「계서야담」「청구야담」「동야휘집」 등 4종의 문헌에 실린설화를 담고 있으며 제2권은 「기문총화」「매옹한록」「천예록」「금계필담」「차산필담」「동패락송」「청야담수」 등 7종의 문헌자료를 싣고 있다.편저자인 서교수는 『조선조의 설화자료는 매우 많으나 비교적 설화자료만을 따로 모아 편집한 순수 설화집만을 정리했다』고 밝혔다. 이 책에 가장 많이 인용된 설화집은 「기문총화」로 6백42개의 설화가 인용됐으며 그 다음으로는 「어우야담」 5백44개,「계서야담」 3백53개,「청구야담」 2백93개 등의 순이다.
  • 고려왕릉 3기 사적지정/21대 희종·24대 원종비·22대 강종비

    문화부는 경기도 강화군의 고려시대왕릉 3기와 서울 강서구 가양동 양천고성지등 4건을 10일 사적으로 지정했다. 이 가운데 고려왕릉은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에 있는 제21대 희종(11 69∼12 37년)의 석릉과 양도면 능내리에 있는 제24대 원종(12 19∼12 74년)비인 순경대후(충렬왕의 생모)의 가릉,양도면 길정리에 있는 제22대 강종비인 원덕왕후의 곤릉으로 각각 사적 제369호와 제370호,제371호로 지정됐다. 사적 제372호로 지정된 양천고성지는 강서구 가양동 산8의2 일대 올림픽대로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등 문헌상기록으로도 그 존재사실이 뚜렷하고 현재도 적심석과 석재등 성지가 남아있을뿐 아니라 한강변 들판에 우뚝솟아 강건너의 행주산성과 파주 오두산성과 함께 삼국시대이래 한강하구를 지키던 중요한 요새이다.이 성은 조선조 양천현의 주산이었던 해발74m의 궁산정상을 중심으로 축성된 퇴메식 산성으로 북측 급경사 지역을 포함해 보존상태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다.
  • “전산자료 철저관리… 사생활 보호”/정 총리(국무회의:5일)

    ◎“대통령 지방순시 정상적인 국정수행”/최 공보처/“공무원 사기 높이게 특별승진제 확대”/이 총무처 제9회 국무회의는 부처별보고와 토의없이 상정된 7건의 안건만을 처리하고 불과 40분만에 끝났다. 이날 국무회의에는 민자당 전국구 공천을 놓고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진 최각규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이 전날의 당정회의 때와 달리 출석해 항간의 사의설을 일축했다. ○교정직은 자체결정 ◎…이날 상정된 안건은 내무부의 「도로교통법시행령(개)」등 대통령령안 6건과 외무부의 보고안건인 「한일 주변수역에서의 어선조업 자율규제에 관한 서한 교환」등 모두 7건. 이 가운데 특이안건은 총무처가 상정한 대통령령안인 「공무원임용령(개)」과 「교정직·보도직 공무원승진임용규정」(개)」. 이상배총무처장관은 『이들 안건은 공직사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공무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업무실적에 따른 특별승진제도를 확대키로 한 것이 주요 골자』라고 소개. 법안의 주요내용은 일반직 및 기능직 공무원을 업무상 공적을인정해 5급까지 1계급씩 특진시킬 경우 지금까지 대통령의 사전승인을 받도록 하던 것을 국무총리의 승인으로 바꾸고 교도소에 근무하는 교정직과 소년원에 근무하는 보도직 7급이하 공무원은 법무부장관이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법제정 서두르도록 ◎…정원식총리는 안건심의가 끝나자 『지난해 주민등록관리 등 6대 주요행정업무가 전산화된데 이어 국가주요업무가 계속 전산화되어 감에 따라 국민생활이 편리해진 반면 사생활이 피해를 입게 될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러한 전산자료가 유출되지 않도록 개인정보 관리에 철저를 기해줄 것을 당부. 정총리는 이어 『각 부처는 소관별로 지난해 시달된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국무총리훈령을 철저히 이행하고 특히 총무처는 추진중인 개인정보보호법의 제정을 서두르라』고 지시. ○엄정한 중립 유지 ◎…회의가 끝난뒤 정부대변인인 최창윤공보처장관은 대통령의 지방순시문제와 관련,기자들과 만나 『이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대통령의 국정수행행위』라고 전제하고 『너무정치적인 차원에서 이해하지 말아달라』고 당부. 최장관은 『미국·프랑스등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는 총선때 대통령이 국정을 제쳐놓고 지원유세를 하고 다닌다』고 예시한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선거에 있어서 공정성과 엄정한 중립을 유지하기 위해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들어간다하더라도 정부는 정상적인 국정운영에 전념한다는 게 기본방침』이라고 부연. ▷심의안건◁ ◇도로교통법시행령(개)=▲적성검사미필로 운전면허가 취소된 사람이 그 운전면허와 동일한 운전면허를 받고자 할 때에는 종전에는 기능·법령및 구조에 관한 시험을 면제하던 것을 기능에 관한 시험만 면제하도록 함 ▲교통법규를 위반하여 출석지시를 받은 사람은 7일이내에 출석하도록 하던 것을 주거지에 관계없이 10일이내에 출석하도록 함 ▲교통소통에 지장을 주며 많은 교통사고요인을 제공하는 횡단·회전·후진위반운전자 등에 대한 범칙금을 인상조정하고 현재의 도로사정으로는 지키기 어려운 안전거리확보 등에 대한 범칙금은 하향조정함.
  • 고려청자등 471점 첨단시설로 보호

    ◎본사 이헌숙기자,스미소니언박물관 지하창고를 찾다/분청사기·9존도등 대부분 “문화재급”/내년 5월 독립전시실 마련… 일반 관람/안내인,“설립자 프리어가 수집… 한국 기자엔 첫 공개”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의 프리어갤러리 지하창고에 수십년간 파묻혀 있던 문화재급의 귀중한 우리 도자기와 그림들이 드디어 햇빛을 보게 됐다. 스미소니언박물관내 15개 갤러리중 아시아미술관의 하나인 프리어갤러리가 지난87년부터 시작한 보수공사를 오는 93년 5월 마무리짓고 독립된 한국유물전시실을 연다. 이 갤러리에 소장된 한국유물은 도자기 4백71점과 석화 4점. 스미소니언박물관이 마련한 한국예술공연제개막과 새클러갤러리내 고려시대 범종전시 취재차 스미소니언을 찾은 기자는 그곳 관계자들의 협조아래 프리어갤러리 지하창고에 수장돼있는 한국유물들을 접할수 있었다. 프리어갤러리의 도자기담당 큐레이터 루이스 코트여사의 안내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지하창고에 들어서자 그곳은 동양의 보물을 서양의 최첨단보호시설로 감싸안고있는 요술꾸러미속 같았다. 『한국기자는 처음 안내한다』는 코트여사는 먼저 이탈리아 궁전양식으로 꾸며지고있는 프리어갤러리 전시장내 아직은 텅 빈채로 수리중인 50평규모의 한국전시실을 보여준후 지하2층을 더 내려가 창고의 문을 열었다. 수십개의 유리캐비닛안에 9백여점의 일본도자기,8백여점의 중국도자기,그리고 수백점의 중동·기타 아시아지역 도자기들과 함께 한국도자기들이 4개의 유리캐비닛에 빽빽하게 진열돼 있었다. 다양한 형태의 고려청자 2백여점과 조선시대 분청과 백자,금속제품등 2백여점,그리고 그림 4점이 이곳에 묻혀있는 한국 유물들이었다. 유리캐비닛을 열고 조심스레 유물들을 들어보인 코트여사는 『몇년전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했을때 접한 귀중한 문화재급 도자기와 거의 유사한 수준의 것들이 적지않다』고 말했다. 진사무늬가 새겨진 연꽃 형태의 청자주병(30.5×16.7㎝)은 13세기 고려말기 것으로 추정되는데 주병목 부위의 소년상과 손잡이부위의 개구리상 등이 절묘하게 조화된 뛰어난 예술품이었다. 12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청자접시도 60여점 있는데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했다. 또 12∼13세기 고려시대 말기 청자물병(31×13.7㎝)은 형태의 흐름이나 색상조화가 탁월한 것으로 같은 유형의 보물급 청자가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며 이곳에서도 제일 보물로 친다고 했다. 이 한국유물은 이곳 프리어 갤러리를 설립한 미국인 찰스 랑 프리어(CharlesLangFreer,18 54∼19 19)씨가 수집한 것들이다.18 00년대말 미국에서 기차동체를 만들어 엄청난 부자가 된 그는 40세에 은퇴한뒤 예술품수집에 몰두하면서 특히 아시아예술품에 관심을 쏟았다. 프리어씨가 한국유물을 구입한 경위는 대부분 일본을 통해서였는데 18 96년 일본 야마나카와 컴퍼니로부터 일본 가가왕자의 소장품 가운데 고려청자 8점을 사들인 것이 최초였다.이후 19 09년까지 야마나카와 컴퍼니및 또다른 소장자인 호레이스 뉴튼 알렌박사로부터 구입한 대부분의 것들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프리어씨가 사망한 4년뒤 그의 유언에 의해 설립된 프리어갤러리는 지난 87년까지 주로 아시아내 중국·일본유물을 중점적으로 전시했으며 그 틈틈이 간혹 1∼2점씩 한국유물들을 꺼내다 전시하곤 했다. 스미소니언박물관에는 이곳 말고도 가장 잘 알려진 자연사박물관에 조선조 전통의상과 민속화·민속품 등 조선조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유품들이 3천여점 소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이것들 또한 자연사박물관 유물창고에 사장돼 있다.단지 올해 콜럼버스 5백주기를 맞아 이 박물관이 특별히 기획한 「변화의 기원전」(SeedsofChange」의 아시아관련 전시구역 한 귀퉁이에 1평 크기의 온돌방 모습과 고려불상 하나가 전시돼 있는 것이 고작이다. 그나마 프리어갤러리와 함께 아시아 관련관인 새클러갤러리가 지난달말 고려시대 범종을 2년전시 예정으로 지하1층 전시장 입구에 설치한 것이 한국을 알리는데 큰 몫을 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됐는데 이는 지난 87년 새클러갤러리가 아시아미술관으로 설립될 때 우리 정부가 1백만달러 상당의 건립기금을 기증한 덕을 본 것으로 풀이된다. 내년에야 비로소 세계굴지의 박물관내에 처음으로 독립된 한국유물전시실이 마련된다는사실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한국의 자랑스런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일」에 당국의 배려가 그동안 너무 인색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스미소니언 현지에서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 3·1절맞아 선열뜻 기리자/열쇠부대장병,주먹밥 점심(조약돌)

    ○…73주년 3·1절인 지난1일 중부전선 열쇠부대(부대장 이석복소장)장병들은 선열들의 거룩한 뜻과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주먹밥으로 점심을 때우며 호국의지를 다짐했다. 열쇠부대장병들은 『선조들의 음덕을 기리기 위해 하루 찬밥을 먹으며 제사지내던 풍속을 재현하기 위해 주먹밥 배식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 자기조사 써보기/홍재형 외환은행장(굄돌)

    한 사람의 생애가 최종적으로 평가되는 것은 아마도 그 사람의 죽음 이후가 아닐까 생각된다.때에 따라서는 중간평가가 수시로 이루어지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한 평생을 결산하는 진정한 대차대조표는 죽음과 더불어 작성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 옛 선조들은 죽어서 욕된 이름을 남기지 않기 위해 평소의 삶을 가다듬어왔던 것이리라.물론 꼭 후세에 널리 이름을 남겨야만 훌륭한 생애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생의 삶을 다스리고 절제하는 의미에서라도 죽은 다음의 자신의 이름을 생각해 보는 것은 여러가지로 유익한 면이 있을 듯하다. 비록 유명인사가 아닌 필부라 할지라도 가깝게는 자기 가족·친구·친지들에게 스스로의 이미지가 어떻게 남을 것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길든 짧든 사람의 한 평생은 결국 순간 순간의 단위시간이 이어진 것이므로 이 단위시간이 연결되는 모든 과정을 잘 다스리는 지혜가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언제나 최선의 삶을 살고자 매년 정초에 자신의 유서를 미리 써 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바가 있는데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 영결식장에서 누군가가 읽을 자신에 대한 조사를 스스로의 손으로 미리 한번 써 보는것도 무익하지 않을 것 같다. 조사라는 성격상 평소의 인품이라든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직장의 동료나 상사로서,그리고 교우관계로 보면 친구의 한 사람으로서,또 나아가서는 이 사회와 국가의 일원으로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다는 평가가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조사에서 자신은 어떤 사람으로 묘사되고 싶은가. 우리의 삶이 남에게 평가받기 위해 사는것은 아니지만,적어도 이와같이 깨어있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면 스스로를 지키고 가꾸는 일이나 균형잡힌 하루하루의 생활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게 될 것이라고,또한 이런 삶의 태도야말로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과 이 사회에 널리 유익을 끼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필진이 바뀝니다◁ 3월의 필진이 홍재형(외환은행장) 이동하(문학평론가·서울시립대교수) 김은호(변호사·전대한변호사협회장) 정희경(전계원예고 교장) 최선록씨(본사 편집위원)로 바뀝니다.
  • 과학문명시대의 지방색/정용승 교원대교수(해시계)

    나는 호적에 서울 금호정 출생으로 기록돼 있다.금호동의 무시막이라는 산기슭의 한 절간에서 태어났다 한다.아버지의 고향은 개성,할아버지는 청주태생으로 일제시대 도피생활 때문이라 한다.그러므로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서양식으로 서울이요,우리식으로는 개성 아니면 청주』라 한다.『본이 어디냐』 물으면 광주라고 하면서 『아마 경기도가 아닌 전남 광산군인 것 같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가끔 뿌리찾기가 화제에 오른다.북경에 있을 때 『우리집에는 약1000∼2000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족보가 있으며 나는 21대』라고 하면 놀라고 의아해 한다. 최근까지 족보에 관심이 없었으나 며칠 전 우연히 꺼내 보았다. 조상은 1750년경 청주의 북쪽 15㎞지점에 있는 토성 부근에서 서당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1600년초,즉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7)때는 청주 어느 향골에 정착해 글방을 하면서 한 1백50여년 시골 생활에 묻혀 대를 이어갔다.다시 거슬러 고려말인 1370년에는 개성에도 살았으나 1380년대에는 경기도 양주군인 의정부와 동두천은 물론 포천과 강원도 춘천에도 근거를 두었던 것으로 기록되었다. 제1대는 1300년초 전라도 광주에 근거를 두었다.그 이전 40여대는 경주로 연결된다.조상들은 신라·백제·고구려·고려로 이어지며 선조는 신라 건국공신이라 적혀 있다. 조상은 부계가 개성의 수전노,서울 깍쟁이,경기도 얌체,감자바위,멍청도,전라도,그리고 문뎅이로 구성되어 있음을 미처 몰랐다.모계는 더욱 오색찬란하다.나의 조상은 좁은 반도에서 수백년 또는 2000∼3000년간 각종 성씨와 얽히고 설켰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렇게 총체적으로 피가 섞인 나와 네가 서로 흉을 보자면 어쩌자는 것이냐.내가 전라도를 깔보고,문뎅이와 TK를 왈가왈부하는 것은 누워 침뱉기이다. 50년후에는 지방색이 완전히 사라진다.남한 인구의 3분의1이 수도권으로 이전해 얽혀 살고 있다.교육과 기술 및 직업등 현대과학문명의 결과이다.앞으로 10∼20년이 지나면 3분의2는 더욱 융합된다.더구나 50년이 지나면 민족의 99%가 더욱 잘 혼합될 것이다.이때까지 우리의 지방색은 저절로 사라지며 단합된 한민족으로 될것이 분명 예견된다.
  • 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요지

    ◎“선열의 자결정신 계승… 통일시대 열자” 73년전 오늘 우리겨레는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자존을 되찾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습니다. 기미독립운동이 있었기에,수많은 열사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의 자랑스런 나라를 갖게 된 것입니다. 선열들이 고대하던 세계는 모든 민족이 자결을 바탕으로 공존공영하면서 독창적인 문화창조로 인류 사회에 기여하는 새로운 천지였습니다. 임시정부를 거쳐 대한민국으로 계승된 이러한 이념은 우리민족이 나갈 길을 밝히는 영원한 빛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의 모든 나라와 교류협력하고 인류의 평화와 번영에 적극 기여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고난의 역사를 살면서 우리 선조가 만들고자 했던 나라… 온 겨레가 한 나라로 사는 통일조국,모두가 자유 복지를 누리는 민주 선진국이 우리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피땀흘려 이룬 민주주의와 번영의 힘이 반세기동안 남북을 갈라온 대결과 불신의 벽을 허물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유엔에 함께 들어가고 「기본합의서」와 「비핵화선언」을체결함으로써 한반도는 어두운 냉전의 시대를 벗어나 민족화해와 통일의 밝은 새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3·1운동에서 선열들이 외친 민족자결의 정신은 통일만은 반드시 겨레의 자주적인 역량으로 이루겠다는 우리의 굳은 결의속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이제 남과 북은 「합의서」와 「선언」의 내용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겨 민족공동체를 회복하고 통일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우리 정부는 이 합의와 선언을 성실히 준수하고 실천해 나갈 것임을 이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밝힙니다.나는 북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실한 자세로 이를 실천하는데 함께 나설 것을 촉구합니다. 특히 겨레의 생존자체를 위협하는 핵무기 개발과 관련하여 북한은 하루속히 국제 사찰을 받아 한점의 의혹도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3·1정신은 나라를 위하여 모두가 하나가 되는 정신,겨레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는 희생정신입니다.소이를 버리고 대동단결하고,대의를 위해 소아를 버려야 합니다.우리 모두가 남을 탓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채찍질 해야 합니다. 우리 앞에 닥친선거를 깨끗하고 공명하게 치러 참된 민주주의를 이루는 일을 내가 먼저 실천해야 합니다. 선열들이 몸바쳐 지킨 높은 뜻을 오늘의 우리가 완수하여 다가오는 2000년대를 한민족 영광의 세기로 만들어 나갈 것을 다함께 다짐합시다.
  • 각 종교단체 3·1절 메시지

    ◎불교 조계종 “선조의 이상 받들어 정신적 개혁을”/천도교/“3·1정신 지주삼아 통일로 이어가야” 제73주년 3·1절을 맞아 불교·기독교·천도교 등 각 종교단체는 기념메시지를 발표했다. ▲서의현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사회전반에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와 무질서,과소비풍조가 만연하고 있다.우리선조들이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생사를 초월하여 일제와 싸운 높은 이상을 받들어 정신적 개혁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우백암 태고종 종정=민족선각자들의 숭고한 애국애족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민족대각성운동을 전개하여 건전한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일본정부는 정신대문제에 대한 사과와 배상 등을 통해 한일간의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근린국가로서의 우의를 구축,동북아시아의 평화달성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다. ▲오익제 천도교 교령=3·1운동은 두터운 종교의 벽을 넘어 천도교와 불교,기독교가 하나가 되고 당시 2천만 동포가 한마음이 됐던 인류역사상 유례없는 민족자주독립운동이었다.이 정신을 지주로 삼아 분단의 장벽을 허물고 통일로 나아가야할 것이다. ▲권호경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조선사람이 자주민임을 선언했던 선열들의 목소리는 전세계의 민족이 서로 지배하고 수탈하는 구시대의 잔재를 청산하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구현돼야 한다. ▲정진경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그동안 교회가 빛된 삶을 통하여 국가·사회에 공헌하지 못해왔다.선인들이 남긴 순수하고 숭고한 3·1정신을 계승하여 교회가 본질적 사명을 다해야 한다.
  • 음악이 필요한 사회/문두훈 서울시향단원(굄돌)

    요즈음 우리 모두가 동방예의지국의 국민답게 예의바르고 인내심이 강하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거짓말 하지말라고 이야기한다.그때문인지 교육당국자들은 도덕교육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외치고 또한 이점에 골몰 하는 모습을 보게된다.그래서 청소년 교육에 도덕이나 국민윤리라고 하는 과목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자녀들은 대학입시에 시달리게 되었고 고등학교 3학년쯤되면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예능과목은 아예 찾아볼수 없게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에 진학학수 있는 인원은 4분의1정도 밖에 안된다고 하는데 그 4분의1 때문에 나머지 4분의3이 너무나도 중요한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교과과목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옛날에도 음악은 필수과목으로 취급하였던 우리의 옛 선조들의 깊은 생각이 잘못된 생각이란듯이 말이다.부모들은 누구나 자녀들에게 『바르게 살아달라』고 아무리 이야기 해 보아도 부모가 스스로 본을 보여 행동할수 없다면 자녀들의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불행히도 우리 기성세대나 지금 자라나는 청소년들도 음악이 얼마나 중요한 교육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물론 지금 우리가 음악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이 다 청소년 교육에 도움을 주는것은 아니다.그 가운데서도 우리가 고전음악이라고 부르는 서양의 음악과 우리의 전통음악이 우리의 정서를 건전하게 이끌어 준다고 믿는다.처음 고전음악이나 전통음악을 들을때 그 깊은 맛을 모른다면 지루하기가 이루말할 수 없을것이나 계속적인 관심으로 그 음악의 깊은 맛을 알게되면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는 대중음악과는 달리 천천히 달아 오르고 식는것 또한 더딘 용광로처럼 대단한 절제와 그곳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즐거움을 배우게된다. 이렇듯 깊은 맛을 아는 청소년이 자라면 우리가 지금 중병을 앓고 있는 퇴폐·향락·무질서를 극복할수 있는 믿음직한 성인이 되어 절제되고 고상하고 예의바른 우리 사회를 만들어갈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 청소년 탈선조장/노래연습장 단속

    내무부는 14일 최근 서울·부산등 대도시에서 성업중인 「노래연습장」이 심야 변태영업 등으로 청소년들의 탈선을 조장하고 있다는 여론에 따라 법적 규제근거를 마련,강력히 단속키로 했다. 내무부는 이를 위해 「노래연습장」을 풍속영업규제에 관한 법률시행령에 대상업종으로 규정하고 건축법시행령에 상업지역인 위락시설에서만 허가가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 소설 「뿌리」 흑인수난사 조명/10일 사망한 알렉스 헤일리의 문학

    ◎9년간 혈통추적… 77년 퓰리처상/「말콤엑스」등 히트시킨 대중작가 10일 미국 시애틀의 한병원에서 사망한 소설 「뿌리」와 「말콤 엑스」의 저자 알렉스 헤일리(70세)는 문명의 격류속에서 잊혀지기 쉬운 혈통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불멸의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헤일리는 지난 76년 선조들의 족적을 좇아 아프리카 서부 감비아의 한 마을에 대한 끈질긴 사실추적과 잘 다듬어진 픽션으로 「뿌리」를 완성,77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당시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된 12시간 짜리 미니시리즈 「뿌리」는 미국 텔레비전 방송사상 최대 기록인 1백30만명의 심금을 울린 역작이었다. 헤일리는 흑인노예들의 생활에 관한 주변 가족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장장 9년여동안 6대에 걸친 모계측 내력을 세밀히 추적,심혈을 기울여 「뿌리」를 캐냈다. 그는 1921년 뉴욕 이타카에서 출생,30년대말 노스 캐롤라이나 소재 엘리자베스 시립사범대학을 중퇴하고 해안경비대에 입대,20년동안 군인생활을 했다. 37세의 나이로 군복무를 마친뒤 「다이제스트」,「플레이보이」잡지 등의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기도 했던 헤일리는 「뿌리」의 인기가 절정에 달할 무렵,작품표절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으며 일부에서는 흑인의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판까지 받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뿌리」외에도 「말콤 엑스」가 7백여만부나 팔리는 등 인기작가로서의 자리를 확고하게 굳혔다.
  • 작년 인쇄물수출 8천5백만불(출판가)

    ◎조선시대 서사시모음집 상·하로 나와/동아 「곰돌이…」,카자흐공서 출판요청/90년비 18.4% 증가 ○…지난해 우리나라의 인쇄물 수출실적은 45개사에서 총 8천5백87만7천1백66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대한인쇄공업협동조합연합회의 91년도 인쇄통계에 따른 것으로 90년에 비해 18.45% 늘어난 액수이다.그러나 이같은 수치는 몇개 회사의 큰 성장률에 힘입은 것에 불과하며 80년대 들어 매년 40%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던 인쇄물 수출이 88년을 고비로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인쇄물 수출실적의 부진은 관련업계의 전반적인 경기불황과 인건비를 비롯한 제작비의 상승 등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원문·해설 함께 수록 ○…조선시대 서사시들이 한데 묶여져 두 권의 책으로 선보였다.성균관대 임형택교수가 최근 펴낸 「이조시대 서사시」(창작과비평사) 성간(1427∼1456)·김시습(1435∼1493)에서부터 이건창(1852∼1898)·황현(1855∼1910)에 이르기까지 조선조 시인들의 서사한시 1백4편을 원문과 번역 해설등과 함께 수록하고 있다.크게 6부로 나누어 1·2·3부에는 체제모순과 삶의 갈등을 다룬 시들을 수록하고,4·5·6부에는 국난과 애국의 형상,애정갈등과 여성,예인 및 시정의 모습들을 형상화한 시들을 각각 정리 수록했다. ○초판 저작권료 면제 ○…동아출판사는 최근 카자흐스탄공화국의 카자흐스탄출판사로부터 동아판 「곰돌이 그림동화」(전10권)의 러시아어판 번역전제 출판허가 요청을 받고 이를 승인했다. 이와 함께 카자흐스탄출판사측은 이 책의 러시아어판이 공화국내의 어린 한인교포들에게 한민족의 긍지를 심어주게 될 것이라는 공의적인 측면을 들어 저작권료의 면제방안을 의뢰해 왔는데,동아출판사측은 양국의 우호증진을 위해 초판에 한해 이를 허락했다고 밝혔다. ○출협 오늘 회장선거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제40대 회장선거를 10일 하오2시 출판문화회관 4층 출협강당에서 실시한다.
  • 「폭탄주」는 이제 그만(사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술을 약주라고 했다.적당히 마시면 약이 되지만 지나치게 마시면 독이 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일깨워 주고 있다.그러나 지금의 우리 사회에는 약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독주를 마시는 악습이 팽배해 있다.이 때문에 몸을 망치고 가정을 파괴하는 일들을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된다. 우리가 고쳐나가야할 사회적인 병폐는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음주문화를 개선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이다.그런데 최근 군에서 음주악습을 추방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육군본부는 지난해 12월초 김진영참모총장이 취임한 이래 「군음주·회식문화 개선운동」을 펼치고 있는데 요즈음 이것이 각 예하부대로 번져가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를 환영하면서 이 운동이 사회 각계에 파급되기를 기대한다.우리 사회의 음주문화는 사실상 군에서 비롯된 점이 적지않아 군이 앞장설 경우 그 파급효과는 클 것으로 생각한다. 군은 혈기방장한 젊은이들의 거대한 집단인만큼 술을 많이 마시게 되고 그런 중에 음주악습이 생겨나 그것이 사회로 파급되는것으로 보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폭탄주」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육군본부가 최근 내놓은 「건전한 음주문화 확립방안」도 폭탄주 추방을 첫 과제로 삼고 있다.80년대에 등장한 폭탄주는 음주악습의 전형으로 지금 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다.이 방안은 또 술잔을 놓거나 마신후 털지말라는 「놓털카」,술잔을 입술에서 떼거나 오래 붙들고 있지 말라는 「찡떼오」등 술자리에서의 갖가지 악습도 없앨 것을 제창하고 있다.이와 함께 건전한 음주모형도 제시하고 있다. 군에서 마련한 이같은 추방사례와 음주모형은 군인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술꾼들이 한번 생각해 볼만한 계명이다. 경제기획원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57%가 술을 마시고 있으며 이중 5.8%는 거의 매일,12.4%는 주 2∼4회씩 마시고 있다.술소비량은 지난해의 경우 출고가 기준으로 2조4천4백48억원에 이른다.인구 1인당 5만6천원 꼴이다.그러나 이 액수는 하수일 뿐이다.도매상에서 출고된 술이 유흥업소로 옮겨지면 5∼6배로 뛰고 안주값까지 합친 「진짜술값」은연간 1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것이 국세청의 판단이다.술집에서 팁으로 뿌려지는 돈도 연간 3천5백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술 과소비현상은 퇴폐·향락산업을 부추겨 심각한 사회문제를 유발시키고 있으며 산업구조까지 왜곡시키고 있다.육군본부는 군인범죄의 70%가 술때문에 빚어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 사회 전체범죄에 적용해도 무방하리라 생각한다.술마시는 것까지 경쟁하는 파행적 음주악습이야말로 술 과소비의 주범이다.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셔야 호기롭게 받아들여지는 우리네 음주풍토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음주문화의 개선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그러나 파행적인 음주악습이 개인의 건강과 가정의 평화,나아가 사회를 좀먹는 망국병임을 자성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어 나간다면 건전한 음주문화도 서서히 뿌리를 내릴 것으로 믿는다.그런 의미에서 군이 앞장서고 있는 음주문화 개선운동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 두륜산/천년고목·운무 어우러진 선경

    ◎해남서 12㎞… 정상까진 4시간/대흥사 둘러싼 동백군락 “장관”/전통다도 명맥잇는 일기암도 가볼만 끝없이 펼쳐지는 망망대해엔 올망졸망한 섬들이 표주박처럼 떠있고 아스라이 이어지는 수평선 너머로 제주 한나산이 희미하게 보여 한 폭의 명화를 감상하는 듯하다.구름이 끼어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계곡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안개구름이 산세와 어우러져 선경을 연출해 낸다. 오우가와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고산 윤선도와 임진왜란 때 승병대장으로 호국에 앞장섰던 서산대사의 발자취가 서린 전남 해남 두륜산 정상(7백3m)­. 산정으로 오르는 길목마다 천년을 넘는 고목과 5m도 넘어보이는 해묵은 동백나무 군락이 산행을 반긴다.그중에서도 금방이라도 화사함을 드러내 보일 듯이 꽃망울을 한껏 부풀리고 있는 동백꽃은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전남 해남읍에서 12㎞ 떨어진 곳에 자리한 전남도립공원 두륜산은 대흥사를 품에 안고 있어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해남읍에서 남동쪽으로 자동차로 20분가량 달리다보면 대흥사입구인 장춘리에 닿고 이어 대흥사 경내로 들어서게 된다.제일장춘교에서 대흥사앞에 이르는 2·5㎞는 대낮에도 컴컴할 정도로 온통 거목의 긴 터널을 이루어 그야말로 장관이다.고목으로 우거진 사잇길을 따라 해탈문을 들어서면 고색창연한 기와지붕이 천년풍상을 견디어 온 고찰의 풍모를 대변한다. 두륜산 정상까지는 두 길이 나 있다.하나는 진불암을 거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북암을 먼저 거치는 코스다.어느 길을 택하더라도 4시간 가량이면 정상까지 갔다올 수 있다.오르막길에는 천연바위로 이뤄진 구름다리가 가로질러 하늘에 오르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다. 하산은 노승봉,가련봉을 거쳐 북암쪽을 택할 수도 있으나 길이 험해 만일암터길로 내려오는 것이 보통이다.만일암터에는 천년 묵은 거목이 빈 터를 지키며 그날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하산길에 천연기념물 173호인 왕벌나무와 동백나무로 둘러싸인 대흥사를 관람하는 것은 두륜산 산행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신라 진흥왕 5년(서기 544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대흥사 경내에 들어서면 대웅보전·보련각·천신암·일주문 등 34개 건물과 보물 4점 등이 보는 이를 압도하며 가람의 풍채를 자랑하고 있다. 또 이웃 표충사에는 서산대사가 생전에 입었던 금란가사를 비롯,밥그릇으로 사용했던 옥발 3점,칠보염주 1점,신발 2켤레,서산대사 친필인 정선사가록,임금이 내린 교지,도끼,창,승군단표지물,신호용 나팔 등이 전시되어 대사의 큰 뜻을 일러준다. 이와 함께 조선조말 초의스님이 기거하며 전통다도의 명맥을 이어온 일기암도 꼭 가볼 만한 곳이다.귀로에는 조선시대 유명한 화가 공재 윤두서 자화상과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등 유물 2천5백여점을 보관 전시중인 고산유적지도 돌아볼 수 있다.특히 이 유물관 뒷산은 천연기념물 241호인 비자나무숲으로 덮여있다.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우리 나라 육지 땅끝인 토말과 명량대첩지 우수영을 돌아보고 해남읍 천일식당(전화 0634­536­4001)에서 한식을 맛보는 것도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서울에서 대흥사를 가려면 호남고속도로 비아 인터체인지에서 송정∼나주∼영암∼성전∼옥천∼해남∼장춘등을 잇는 코스가 지름길이다.
  • 설/4년전 부활… 민속놀이 보급(오늘의 북한)

    ◎민족고유명절 북녘에선 어떻게 보내나/혁명정신·집체역량 강화에 활용/널뛰기·활쏘기·씨름·윷놀이 권장/아이들은 단천지방서 유래한 단심줄놀이 즐겨 「봉건적 잔재」란 이유로 민족명절에서 제외됐던 음력설이 북한에서 부활된지 올해로 4년째를 맞는다. 지난 88년 추석을 민족명절로 복원한 북한은 89년에는 설날(음력설)·한식·단오등 우리 고유명절을 모두 되살린데 이어 「민속놀이」의 보급을 크게 장려하고 있다. 특히 지난 89년 제13차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때는 대성산유원지에 건국 이후 최초로 「국제민속놀이장」을 건설,씨름·그네뛰기등의 행사를 펼치기도 했으며 이후 매 명절때마다 선전매체를 통해 북한주민들이 민속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자주 보도해왔다. 북한에서의 민속놀이는 「건전한 취미」의 기능과 함께 「문화성」「인민성」「집체성」의 내용이 강조되면서 상당부분 변형되거나 없어진 것이 사실.그러나 「민속」만큼 민족공동체의 동질성회복을 부축해 줄 요소도 그리 많지 않다는게 민속학자들의 견해다. 우리민족 최대의명절인 음력설을 계기로 살펴본 북한의 민속놀이는 다음과 같다. 북한에서 민속놀이는 지난 61년 9월 로동당 4차대회에서 김일성주석이 『선조들이 남겨놓은 아름답고 진보적인 것을 찾아내어 그것이 우리시대에 활짝 꽃피도록 하여야겠습니다』라고 교시한 이후 인민의 「생산력과 전투력향상」에 복무하고 혁명사업과 관련,「집체성」을 강조하는데 중점이 주어져 발굴·장려돼오고 있다. 북한의 민속놀이는 가무놀이 경기놀이 겨루기 아동놀이로 구분돼 있으며 세시풍속에만 국한되지 않고 정권수립일(9·9절),국제노동자의 날(5·1절)등 각종 「사회주의 명절」행사나 군사훈련·체육경기종목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농악◁ 전통명절뿐 아니라 기념행사·생산현장 등에서 흥겹고 일체적인 분위기 고조를 위해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다.특히 협동농장에서는 추수가 끝난 다음 볏짚을 쌓아두고 농민들이 농악대와 함께 한판 춤판을 벌이기도 한다. 북한에서는 농악을 「인민의 낙천적·전투적 기질」을 반영하는 민족의 자랑스런 유산을 해석,당·정차원에서 장려하고 있다. ▷돈돌라리◁ 푸른 바다와 소나무,깨끗한 해변으로 유명한 함경남도 북청·신창군 등지의 모래밭에서 전래적으로 행해져온 군중가무놀이인데 88년초 북한체제에 맞도록 새롭게 개작,전체 주민들이 즐기도록 장려하고 있다. 한식 단오등 명절때 모래판에 군중들이 둘러앉는다.그중 여러사람이 춤판의 한복판에 뛰어들어가 춤을 추고 주위사람들은 피리 퉁소로 반주를 맞추면서 노래 손뼉으로 흥을 돋운다.본격적으로 흥이 돋워지면 모두 춤판에 뛰어들어 둥그렇게 원을 짓는 흥겨운 놀이.이 춤의 특징은 우리나라 민족무용동작인 날씬하고 우아한 춤사위와는 대조적으로 움직임이 잦고 경쾌한 것.팔을 옆으로 들고 고개를 숙인채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며 다리를 뒤로 살짝살짝 들어주는 재미난 춤. ▷그네뛰기◁ 전통명절이나 8·15해방기념일,5·1절등 북한이 기념하는 중요명절때마다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흥겹게 행해지고 있는 대표적인 민속놀이의 하나. ▷널뛰기◁ 북한은 널뛰기놀이를 봉건적 속박을 반대한 여성들의 염원및 봉건사회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특이하게 풀이하고 있다.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게된 이 놀이에 대해서 북한은 민속절에 여성뿐아니라 남성들도 즐길수 있도록 당국이 앞장서 문화·체육정책적 차원에서 발전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널뛰기는 북한이 자랑하는 평양곡예단의 곡예의 한 종목으로도 인기가 높다. ▷윷놀이◁ 음력설과 대보름날 가정이나 동네공터에서 주로 판이 벌어지는 윷놀이는 「손가락꼽기」「산가지따기」(자강도 희천지방),「콩따기」(함경북도 무산)등 고장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다른게 특색. ▷단심줄놀이◁ 주로 아이들이 즐기는 놀이로 함경남도 단천지방에서 유래.대보름날 소나무에 여러가닥의 줄을 드리운 다음 아이들이 한끝씩 쥐고 돌아가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원무형태의 가무다.북한에서는 항일무장혁명투쟁시기 유격대원들과 그 근거지 아이들이 혁명정신을 고양하면서 함께 즐긴 놀이로 풀이, 지금도 주요 행사때 집단체조형식의 아동유희로 행사장 무대위에서 자주 공연하고 있다. ▷씨름◁ 북한에서는 씨름을「수박·태껸·날파람등과 함께 옛날 인민들이 평소에 신체를 단련하고 부지런히 무예를 닦아 유사시에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창안한 경기」라 하여 지금도 적극 권장하고 있으며 특히 지난 89년 평양축전때 그네뛰기·널뛰기와 함께 시범경기를 해보여 참가한 외국인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활쏘기◁ 활쏘기도 장려되고 있으나 미국을 표적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이밖에 수박따기,진놀이등 전체 성원이 긴장한 가운데 행동통일 훈련과 집체적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춘 민속놀이등이 아이들에게 장려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북한이 발굴·보급하고 있는 민속놀이가 상당부분 그들의 체제논리에 꿰어맞춰져 해석되고 있긴 하지만 더러는 원형대로 온전히 보존되고 있다고 말한다.
  • “올 설엔 가족끼리 전통놀이를”

    ◎관직명 적은 말밭서 윤목 숫자대로 승진/승경도놀이/심심풀이 노리개/유객주/조각그림 맞추기/칠교놀이 설날을 앞두고 잊혀져가는 전통놀이들이 현대적인 놀이방법으로 재구성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화부가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잇고,이를 바탕으로 건전한 놀이문화를 보급시키기 위해 펴낸 「전통놀이 모음집」에는 선조들이 즐긴 15가지 대표적인 전통놀이의 놀이요령이 실려 있다. 이 책자에 수록된 놀이들은 지금까지 전문가의 연구대상이거나 민속박물관 등의 전시자료에 머물렀던 놀이들 가운데 현대인이 즐기기에 손색이 없는 놀이들이 선별된 것이다. 이 책자에는 「유객환」과 「유객주」를 비롯,「고누」 「칠교놀이」 「산가지」 「망차기」등 비교적 생소한 전통놀이의 기원과 유래,놀이규칙의 상세한 소개와 함께 간단한 놀이의 경우 직접 놀이기구를 만들 수 있도록 기구제작방법도 실려 있다. 문화부 정태진 생활문화과장은 『가족이나 친지·동료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대중놀이가 워낙 드물어 이 책자를 만들게 됐다』면서 『내년 설날 때까지는 놀이사랑문화 가족을 통해 놀이기구까지 보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부는 이 책자를 이미 관련 단체와 학교·모임에 배포했으며 개별적으로 신청하는 사람들에게는 무료로 제공한다. 책자에 실린 몇가지 놀이를 소개한다. ▷승경도놀이◁ 말밭에 관직의 이름을 차례로 적어 놓고 윤목을 던져 나온 숫자에 따라 승진,문과를 택한 사람은 영의정을 거쳐 임금이 은퇴를 기념하는 선물로 안석과 지팡이를 선물한다는 사궤장에 이르는 사람이,무과로 택한 사람은 도원수의 자리를 거쳐 사퇴하면 이긴다.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에도 비가 오거나 날씨가 궂으면 장교들과 이 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양반의 자제들은 이 놀이를 통해 나아가야 할 벼슬길과 선비의 자세를 익혔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놀이로는 말판에 전국의 명승고적을 적어넣어 유람을 다니는 승람도놀이와 고을 이름을 적어넣은 고을모듬놀이,전국의 유명한 정자나 누각을 적어넣은 누각도놀이 등이 있는데 이처럼 말판의 내용을 시대적 맥락에 맞게 현대화한다면 누구나즐길 수 있는 생활놀이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문의 720­3816 문화부 생활문화과) ▷유객주◁ 「손님을 머무르게 하는 구슬」이라는 이름처럼 집이나 관청에 찾아온 손님을 기다리게 할 경우 다과와 함께 내놓던 심심풀이 노리개이다.매듭을 사이에 둔 두개의 구슬을 한쪽으로 모으는 놀이로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결국은 넘어가는 길을 발견하게 된다. ▷칠교놀이◁ 이미 4천년전에 발명됐다는 놀이로 요즘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그림맞추기 놀이와 비슷하다.모으면 정사각형이 되는 7개의 나무판을 칠교도라는 교본모양으로 배열하는 놀이이다.풍부한 상상력이 요구된다. ▷쌍륙◁ 두 사람이나 두 편이 각자 15개의 말을 가지고 2개의 주사위를 굴려 말이 먼저 나는 측이 이기는 놀이로 장기와 윷의 성격을 두루 지니고 있는 놀이이다.매월당의 「쌍륙」이라는 시조와 혜원의 풍속화 「쌍륙 두는 남녀」에서 보듯이 백제시대 이후 최근세까지 전해져 왔으나 놀이방법이 제대로 전해져 있지 않았다.그러나 국제규칙이 정해져 있을 정도로 지금은전세계적으로 놀이방법이 통일되어 있다. ▷산가지◁ 수효를 세는데 이용되었던 길게 깎은 가는대를 이용하는 놀이로 매우 세심한 주의와 관찰,극도의 섬세한 손놀림이 요구된다.수십개의 가지를 흩어 쌓아놓고 다른 가지를 건드리지 않고 누가 많이 가지를 모으느냐로 승부를 가린다.색색의 가지 가운데 녹색 가지를 모으면 방해가 되는 다른 가지 하나를 떼어갈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 본사 이기동 모스크바특파원 현장르포/(원동 러시아를 가다:4)

    ◎1863∼64년 한인65명 첫 공식 이주/연해주 이민사/맨처음 정착지 지신하·카자키 창설/1850년대엔 러시아땅 밀정작/중앙아 추방전 하산라이온 주민의 85% 점유/인근 포시예트,해삼위 보조항으로 개발 추진 ○동지이명 가능성도 블라디보스토크역사연구소의 알렉산더 페트로프박사(40)가 갖고있는 러시아 주정부 기록사본에는 연해주에 한인들이 최초로 이주해온곳은 자바이칼스키 카자키라는 마을로 돼있었다.하산 라이온의 수도인 슬라비앙카와 하산읍 중간지점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이곳의 우리동포들은 선조들의 최초이주지를 두만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신하라는 곳으로 믿고있었다.자바이칼스키 카자키와 지신하가 동일장소일 가능성도 배제할수는 없겠으나 어느쪽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힘들었다. 최초이주시기에 대해서도 1863년 12월과 이듬해인 64년 1월의 두가지 기록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연해주 한인들은 당시 선조들이 쓰던 음력과 러시아력 차이로 기록상 그같은 혼란이 생겼을 것이라는 설명을 했다.어쨌든 1863년말에서 1864년초 사이에 한인들의 최초이주가 이루어진 것만은 분명한 것같다. 최초이주자수는 13가구 혹은 14가구라는 기록들이 있으나 총수는 65명이었던 것으로 돼있다.이들은 당시 러시아 국경초소에 정식으로 이주신청을 해,그곳 초소장이 연해주지사에게 이들에 대한 정착허가를 요청,이주허가서를 받아주었다고 한다.최초로 넘어온 한인들은 무척 구차한 농민들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박 표트르옹(77)은 한인이주시기에 대해 이와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박옹은 『사실은 1850년대부터 많은 한인들이 몰래 두만강을 건너와 산지를 개간,곡식을 심고 가을이면 다시 와 추수해서 몰래 가져갔다는 이야기를 어릴 때 많이 들었다』고 했다.당시 러시아는 국경경비를 철저히 하지 않았지만 강을 건너다 잡혀서 죽은 한인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도 했다. 박옹은 어릴 때 노인들로부터 들었다며 이런 이야기도 해주었다.『8명의 조선인이 두만강을 건너려다 조선병졸들에게 잡혀 모두 사형을 당하게 됐는데 그중 한명은 12살짜리 소년이었다.그런데 함께 잡힌 7명의 어른중 한분이거짓으로 그 소년을 자기 아들이라고 말해 그 소년은 목숨을 건지게 됐다.당시 조선형법에서는 부자를 한꺼번에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 소년은 후일 연해주로 넘어와서 살았는데 자기를 구해준 7분의 제사를 같은 날 모두 지내더라』는 이야기였다. ○시베리아철도 연계 우수리스크에 거주하는 전 니콜라예비치옹(90)은 1875년 조부 때 고향인 평양에서 연해주로 이주해온 한인 3대로 하산 라이온의 파타셰란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전옹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하기 전까지 하산 라이온에는 전체주민의 85%정도인 3만여명의 한인이 살고있었다』고 말했다.지금 하산 라이온의 인구는 총4만여명,그러나 대부분이 러시아인들이고 한인은 거의 살지 않고 있다. 하산읍에는 한인으로 유일하게 사할린 출신의 한순옥이라는 중년부인이 철도통역원으로 일하고 있을 뿐이다.크라스키노를 비롯해 포시예트에서 하산읍에 이르는 해안선을 따라 과거 한인들이 농사를 짓던 평야지대는 갈대만 우거진채 전답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수가 없었다.다만 훈춘일대의 중국인들이 간혹 육로로 국경을 넘어와서 농사를 짓는다고 하는데 이들을 위해 훈춘으로 통하는 도로 곳곳에 러시아어와 중국어 표기가 나란히 적힌 이정표가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끈다. 하산역에는 북한·러시아간 농업계약에 의해 아무르주 등에 농사를 지으러 왔다가 겨울휴가를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북한노동자 20여명이 북한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김씨라고 밝힌 30세의 한 북한노동자는 『콩·채소를 주로 재배하는데 7월부터 12월까지 일하고 겨울휴가를 지낸 다음 3월에 다시 아무르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것은 러시아의 철로폭이 북한 것보다 조금 넓어 하산에서 두만강을 건너기 전에 객차를 들어 바퀴를 좁힌 다음 북한쪽 레일에 얻는다고 했다. 승객들은 객실에 그대로 앉아있으면 된다. 스테파노프 하산읍 최고회의의장은 『최근 한 국제기구의 연구조사팀이 와서 하산지역의 동해안 일대를 답사하고 이 일대 해안의 물·공기·모래의 청정도가 관광지로 개발하기에 최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관광지로의 개발가능성에도 큰 기대를 갖고있었다. 연해주 한인들이 목구라고 부르는 포시예트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러시아가 구상중인 소위 「대블라디보스토크」개발계획에서 블라디보스토크의 보조항으로서 큰 역할을 맡게돼있다.특히 슬라비앙카에서 하산읍에 이르는 1백㎞의 도로는 90년말 완공된 비포장 2차선 도로로서 앞으로 포장만 되면 훌륭한 산업도로로서의 기능을 할수있을 것같았다.하산이나 포시예트항을 통과할 하물들이 이 도로를 통해 슬라비앙카로 가면 그곳에서 배편으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될수있기 때문이다.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종착역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철도로 모스크바를 비롯,러시아전역으로의 하물수송이 가능하다. 포시예트는 3개의 선착장을 갖춘 인구 2천명의 소항으로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외국인에게 철저히 폐쇄된 지역이었으나 지금은 완전히 개방,외국투자가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고르부노프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 포시예트 최고회의의장(32)은 『현재 한국·일본등으로 수출되는 석탄이 이 항을 통해 나가고 캄차카 등지로 나가는 연해주산 시멘트가 여기서 배에 실린다. 이 항을 통해 반입돼는 주산품은 일본제 산업용 금속튜브를 들수있다』고 말했다. 고르부노프의장은 그러나 『포시예트를 국제항으로 개발한다는 대원칙은 서있으나 예산이 없어 자체 개발계획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한국·일본·중국이 국제항 건설에 필요한 투자에 참여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로·주택개량 집착 앞으로 대블라디보스토크 개발계획이 가동될 경우 포시예트는 분명 좋은 입지조건을 갖고 있다고 판단된다. 북한·중국·러시아의 3국국경지점인 하산읍까지 자동차로 2시간이고,30분 거리에 우수리스크를 통해 시베리아철도로 연결되는 마할리노역이 있다.특히 바다가 결빙되는 1∼2월을 제외하고는 배편으로 바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된다. 화물선은 6시간,여객선인 경우 3시간이 걸린다. 포시예트를 국제항으로 개발하는 데 가장 큰 과제는 도로·통신·숙박시설 등을 갖추는 일로 보였다.철도역인 마할리노역에서 포시예트까지는 비포장 1차선 도로가 유일한 연결선인데 하루에 몇번씩 부정기적으로 운행하는 소형버스가 유일한 수송수단이다.그외에 낡은 3인승 사이드카 몇대가 눈에 띌뿐이었다. 가장 시급한 것은 호텔.명색이 국제항이라는데 외지인이 묵을 호텔이 단 한곳도 없다.기자도 이곳에 사는 유일한 한인인 김 텔미르선장(58)이 임시로 쓰는 선원숙소에서 이틀밤을 묵을 수밖에 없었다.식당도 물론 없고 상점이 2곳 있었으나 들어가보니 그곳 주민들만 쿠폰을 갖고와서 물건을 사갈수있게 돼있고 그나마 진열대는 거의 텅텅비어 있었다. 시험삼아 서울로 국제전화를 신청하려고 소비예트의장 사무실에서 교환번호를 돌렸는데 2시간 가까이 돌려도 교환수가 나오지 않았다. 고르부노프의장은『개발계획을 마련하는데 일차적인 장애는 바로 포시예트 최고회의 대의원들』이라고 색다른 고민을 토로했다.『부두노동자·사무원·선원·군부대 등 각계 대표 20명으로 최고회의가 구성돼있는데 모두들 출신지역의 도로건설·주택개량같은 것만 우선적으로 요구해 항구전체의개발안은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발계획이 실제로 결실을 맺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지나야 될 것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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