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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윷/자치기/14명주사위/전통 놀이기구 대량 보급

    ◎문체부,추석절 건전놀이문화 정착겨냥/현대 놀이 정서에 맞게 개조/4천개씩 만들어 무료 공급 추석을 앞두고 신라시대 우리 선조들이 즐겼던「14면 주사위」를 비롯 윷·자치기등 전통 놀이기구 3종류가 현대화돼 대량 보급된다. 문화체육부는 화투놀이등 불건전한 오락문화를 추방하고 가족·직장 단위로 즐길 수 있는 건강한 놀이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14면 주사위등 3종의 놀이기구를 4천개씩 만들어 청소년·시민단체,고궁관람객들에게 나눠주기로 했다. 이 가운데 14면 주사위는 지난 74년 경주 안압지터에서 발굴된 것을 청소년들의 정서와 놀이형태에 알맞게 개조한 작품. 흔히 쓰는 주사위가 6면체인 것과는 달리 이 주사위는 4각형 6면,3각형 8면등 14면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며 각 면에「노래 한곡」「시 한편」「다같이 춤과 노래」등 다양한 지시내용을 담고 있다. 윷은 윷가락·말밭·윷말을 함께 주머니에 넣어,갖고 다니기 편하게 했으며 특히 말밭을 돼지·다람쥐등 동물로 구성해 어린이들도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학교운동장·빈터·강변 잔디밭 등지에서 가족 단위로 함께 즐길 수 있는 자치기는 어미자 50㎝,새끼자 20㎝로 만들었다. 문화체육부는 이번에 만든 놀이기구들을 연차적으로 더욱 늘려 보급하는 한편 이 놀이에 대한 시연대회도 열기로 했다.
  • 9월의 문화인물 난계 박연

    ◎아악 음체계 정비… 조선조 국악 기틀 마련/“왕산악·우륵과 함께 3대 악성” 문화체육부는 「9월의 문화인물」로 조선시대의 국악인인 난계 박연선생(13 78∼14 58)을 선정했다. 박연선생은 궁중음악인 아악의 음체계를 정비하고 악기제작및 음악제도를 개선하는등 조선조 국악의 기틀을 마련한 장본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어려서부터 대금을 즐겨불었던 그는 태종 때 문과에 급제해 집현전 교리등을 역임한 문관출신이었으나 세종이 즉위한뒤 음악일을 맡는 악학별좌에 임명됐다. 이후 편경 12장과 12 율관을 만들어 음률을 정확히 가다듬었으며 조정의 조회 때 쓰던 향락을 폐지하고 아악으로 대체하는등 궁중음악을 전반적으로 개혁했다. 그 공을 인정받아 부윤·중추원부사를 거쳐 예문관 대제학에 올랐으나 수양대군(뒷날의 세조)이 실권을 장악한 계유정난(14 53년)때 파직돼 낙향했다. 거문고를 만든 고구려의 왕산악,가야금을 개발한 신라의 우륵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3대 낙성의 한분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의 고향인 충북 영동에서는 지난 65년부터 그를 기리는「난계예술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 문화체육부는 국악협회·난계기념사업회·한국문화예술진흥원등 관련단체와 함께 9월 한달동안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펼칠 계획이다. 주요행사는▲전국 국악경연대회(16∼18일 난계국악당.난계기념사업회 주관)▲난계생애 무용극(14일 하오4시 난계국악당.〃)▲전국 남녀 시조경창대회(10∼12일 영동문화원 대강당.〃)▲「박연의 달」기념 읍·면대항 민속놀이 경연대회(12일 낮12시30분 영동공설운동장.〃)▲특별국악공연(12일 상오11시,하오7시 난계국악당.국립국악원)▲추모 국악공연(19일 하오4시 영동중체육관,하오8시 난계국악당.난계국악단)▲악학궤범 편찬 5백주년 기념 학술대회(13∼14일 국립국악원 소극장.국립국악원·한국국악학회)
  • 전 전대통령 대 국민 발표 전문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새정부 출범과 함께 국민 모두가 심기일전해서 열심히 땀흘려 일하고 계신 이때,제가 새삼 재임중의 일에 관해 번거롭게 말씀을 드리게 된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요즘 일기가 불순하여 농사마저 어려워져서 농민 뿐만아니라 많은 국민의 걱정이 더해가고 있는 터에,그동안 정부가 두번이나 바뀐 6∼7년전의 일이 또 다시 시비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대해 그저 민망할 따름입니다. 평화의 댐 건설은 제가 현직에 있을때 대통령으로서 정책판단을 하고 결정했던 일입니다. 평화의 댐과 관련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지난 수년간 국회의 본회의와 관련 상임위원회,특히 1988∼89년의 국회특별위원회 등에서 되풀이 다루어졌고 더러는 일부 정당차원에서의 조사도 있었던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시 평화의 댐 축조에 관계했던 공무원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필요한 자료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답변을 했던 것으로 알고있으며,저 자신도 1989년 12월의 국회증언에서 말슴드린바 있습니다. 그러나 근자에 이르러 정치권과 언론등에 의해 다시 평화의 댐에 관한 의혹들이 잇따라 제기되었고,저 스스로는 침묵으로 일관한 결과 많은 사실들이 왜곡인식되고 있으며,이것이 정부의 안보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우려도 없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안보와 관련된 문제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현상을 전직 대통령으로서 모른척 할 수 만은 없고,또 그것이 저와 관계된 사안인 만큼,이 기회에 평화의 댐 축조를 결정하게 된 경위와 배경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역사를 돌아볼때,조선왕조 선조임금때 일본에 갔던 통신사가 『일본이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고,율곡 이이선생이 10만양병을 제창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다 아는 일입니다. 그때 이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면,비록 국고가 다소 축이 나고 민생이 어려워졌을는지는 몰라도 왜적의 침입을 받아 수년간 전국토와 백성이 유린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파적 입장때문에 『침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잘못 보고한 통신부사의 말을 따른 결과 엄청난 국난을 자초한 셈이 된 것입니다. 만일 그때 10만의 군사를 길러 대비했으면 임진왜란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고,침략을 당했더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후세의 우리들은 어떤 선택이 옳았다고 해야 하겠습니까. 영세중립국도 군대는 갖고 있고,수 백년간 전쟁을 모르고 살아온 나라들도 만일의 외침 가능성에는 철저히 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1953년 휴전이래 북한의 전면남침이 없었다고 해서 40년동안 매년 국가예산의 3분의1을 방위비에 투입하여,북한의 전면전도발에 대비하도록 한 역대 대통령들의 정책판단이 단순히 「세금의 낭비」를 가져왔다고 비난할 수가 있겠습니까. 옛말에 『한나절 싸움에 이기기 위해 1천일에 걸쳐 군사를 기른다』(양병천일 용어일일)고 했는데,9백99일동안은 전투가 없었다고 해서 공연한 정성과 시간을 투입했다고 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국방문제는 본질상 그러한 측면이 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 북한이 금강산주변의 산악지대에 길을 닦고 도수터널 공사를 하는 등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정보를 국내외 관계기관으로부터 처음 입수한 것은 1986년 초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어 같은해 4월에는 북한의 방송이 금강산 발전소계획을 확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뒤 저들이 댐 공사의 착수를 공식 발표한 10월까지 수개월동안 북한의 동향과 의도를 면밀히 주시,분석한 결과 금강산댐이 군사적 목적으로 만드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판단의 근거는 첫째 그들이 전력과 산업용수 확보를 위해 댐을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화력발전소를 만들거나 다른 지역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경우와 비교해서 전력생산단위가 3∼4배 높다는 계산이 나온 것입니다. 다음으로 댐이 완공되면 그들 주장대로 산업용수 확보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댐 건설로 인해 금강군등의 농경지가 수몰되어 22만t 정도의 미곡감산이 예상되는 바,이것은 채산성이 안맞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처럼 경제성도 채산성도 없는 댐을 만들기 위해 그 험준한 지역에 인민무력부 주도 아래 수만명의 군병력을 동원해서 난공사를 강행하는 뜻은 분명히 군사적 목적 때문이며,그것은 우리에게 곧 수공의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당시 북한은 10만 병력의 상호감축을 제의했는데,이것도 감축된 병력을 댐공사에 투입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게 했으며,실제 그들은 5만명을 초기공사에 투입했던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북한공산주의자들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집단인가 하는 사실과,또 그들이 우리에게 기상천외 하고 악랄한 도발과 위협을 얼마나 많이 되풀이 해 왔는가 하는 점은 전 세계가 다 아는 일입니다. 6·25는 물론 1·21사태,남침용땅굴,아웅산 암살 폭파사건,KAL기 폭파사건 등 전쟁광이나 할 수 있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 바로 저들인 것입니다. 이처럼 수많은 전과가 있는 북한이 우리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움직임을 보인다면,그들의 숨겨진 의도가 무엇인가 따져보고 대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위에 열거한 사건 가운데 그 어느 것 하나도 자신들의 소행임을 인정하기는 커녕,모두가 우리의 자작극이라고 덮어 씌워왔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다 아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북한이 서둘러 착공한 금강산댐이 인위적으로 폭파되거나 사고로 무너질 경우 한강수계에 큰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그들의 선의를 믿고 팔짱을 끼고 있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설혹 「수공의도가 전혀 없다」는 그들의 말을 믿어 주고 싶다고 하더라도 그 믿음이 1백% 확실한 것이 아니고,다만 1%의 의심이라도 남는다면,그리고 그 1%가 우리의 생존권에 위협이 된다면 국가안보를 책임진 대통령으로서는 대응책을 찾아 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그 시기는 북한공산집단이 방송등 그들의 선전매체를 통해 『서울올림픽을 결코 수수방관하지 않겠다』고 되풀이 위협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북한의 고위당국자들이 「금강산댐을 만들어서 비상시에 문을 열어 놓으면 서울 시내에서 물에 잠기지 않는 아파트는 하나도 없다」「남조선 것들이 올림픽한다고 우쭐대지만 금강산댐만 만들어 놓는 날에는 서울이 물바다가 될것」이라고 공언했다는 사실을 귀순한 북한관리들이 증언한 바 있습니다. 10여일 전에 귀순했다는 북한군 장교도 엊그제 기자회견에서 「김정일이 인민무력부에 대해 인민군의 전투 준비완성에 큰 몫을 할 금강산댐의 건설을 지시했다」고 폭로했습니다. 그들이 귀순한 것은 제가 이미 퇴임하고 서울올림픽이 끝난 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정권안보를 위해 금강산댐의 수공가능성을 조작했다」고 비난 받는 저를 변명해주기 위해 없는 말을 만들어 하지는 않았을 것 아니겠습니까. 국민 여러분. 오늘에 와서는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로 우리가 얻을 수 있었던 여러 이점들을 지난 몇년간 헛되이 흘려 보냈다는 반성이 있지만,어쨌든 서울올림픽이 우리의 국가발전과정에서 선진국 도약의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저는 지금도 확신하고 있습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서울올림픽을 반드시 성공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당시 우리의 시대적 과제요 국민적 합의였습니다. 아시아 경기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1986년에서 올림픽 때까지의 그 엄청났던 민족적 열의와 고조된분위기가 너무도 허무하게 사그라져 버린 오늘의 시점에서는 실감하기 어렵지만,그때 우리는 올림픽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세였습니다. 1980년 모스크바 대회와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를 연달아 반쪽 올림픽으로 치른 국제올림픽 관계자들도 혹시나 서울올림픽마저 북한의 방해때문에 실패하지 않을까 크게 걱정하고 불안해 했습니다.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소련을 비롯한 동구가 붕괴된 오늘의 상황에서도 북한의 호전적이고 경직된 자세는 변함이 없지만,1986∼87년 당시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승천하는 용」이라는 찬사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던 우리와의 체제경쟁에서 결정적 열세에 몰린 나머지 극도의 초조감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국운이 뻗어 오르던 그 소중한 시기에,만에 하나라도 북한의 침략기도를 사전에 봉쇄하지 못해서 전쟁이 일어날까봐 애를 태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국가안보를 확고히 해야 할 대통령으로서 최악의 상황,있을 수 있는 모든 위협의 가능성까지 철저히 점검해야 했습니다. 국민 여러분. 정부가금강산댐에 관해 처음 발표할때 2백억t이라고 한 것은 정보입수 초기에 댐건설 현장으로 추정되는 위치의 지형자료등을 토대로 계측한 그 지역의 용적의 최대치라고 이해했으며,나중에 외국전문기관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와도 일치한 것으로 보고 받았습니다. 북한이 겉으로 내세우는 건설목적과 규모야 어쨌든 일방적 댐건설이 공유하천이용에 관한 국제관례에도 어긋나는 일인 만큼 정부로서는 공사를 중단하라고 여러차례 촉구하였습니다. 금강산댐이 그들 주장대로 전력과 산업용수를 얻기 위한 것이라면,우리 쪽에서 전력을 공급하는등 충분한 보상을 해 주겠다는 대안도 제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우방 여러나라는 물론 국제연합과 세계 대댐 학회등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의 일방적이고 무모한 댐건설을 중지시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의 이러한 모든 제의를 묵살한 채 공사를 강행하였습니다.그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전쟁을 각오하고 금강산댐 공사현장을 폭격할수는 없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불가피하게 정부는 대응댐의 축조를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측이 공사에 관한 사항을 극비에 부치고 있어서 그 시점에서는 댐의 정확한 위치나 규모등을 모두 추정밖에 할 수 없는 형편이었고,따라서 우리측도 대응댐에 관해 실무자사이에 여러가지 다른 의견들이 나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대응댐 공사를 2단계로 나누어 추진하자는 데는 쉽게 합의를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1단계로는 우선 북한이 3억t 정도 가물막이 공사를 끝냈을때의 위력에 대비하는 규모로 댐을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1984년 홍수때의 수량 9.4억t과 북한의 가물막이댐 3억t을 합쳐 12.4억t 정도의 수량이 될 것인바,이에 대응하는데에는 평화의 댐 5.9억t과 화천댐등 기존댐의 수위조절 저수량 7억t을 합친 12.9억t으로서 최소한의 응급책은 된다고 계산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2단계공사는 금강산댐의 최종적인 규모를 확인해가면서 그들의 공사 진도에 맞추어 추가하여 순차적으로 추진할계획이었던 것입니다. 현재 1단계 공사가 끝난 상태로 있는 평화의 댐이 물을 담고있지 않은 모습으로 있어서,일부에서는 「막대한 국민성금을 삼긴채 쓸모없이 서 있는 거대한 시멘트 구조물」이라고 비판적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만,덩그렇게 그런 모습으로 서 있는것 자체가 평화의 댐의 본래의 「쓸모」인 것입니다. 발전을 하거나 산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댐이 아니라 유사시 북으로부터의 수공을 막는 일종의 「방벽」의 성격이 그 1차적 기능인 만큼 일반적인 댐의 모습과 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최근 대전 엑스포 현장에서도 몇시간의 호우로 인해 적잖은 지장을 초래했었고,서울의 한강변은 몇년에 한번씩 홍수가 져 큰 물난리를 겪는것이 우리 실정인 것입니다. 1984년 홍수때에는 서울을 보호하기 위해 소양댐이 범람하고 파괴되더라도 수문을 열지않고 버텨야 하느냐,아니면 서울이 물바다가 되더라도 수문을 열어야 하느냐하는 심각한 기로에 섰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와 비슷한 상황에서는 2백억t이 아니라 수억t만 더 쏟아져내려와도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금강산댐으로부터 2백억t의 물이 쏟아져 내려오거나 70억t의 물이 쏟아져 내려오거나 서울이 마비될 정도의 피해를 입게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1단계 공사를 조기에 착공한 것은 북한이 초기에는 5만 병력을 투입했으나 1986년 가을에는 15만명의 투입을 결정하는등 공사를 급히 서두르는 징후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이러한 동향은 단기적 군사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보았고 그것은 곧 서울 올림픽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하는 우려를 갖게 한 것입니다. 당국의 분석으로는 3억t 정도의 저수량인 가물막이 댐은 북한이 5개월 안에 만들수 있다는 계산이었고 따라서 정부로서는 올림픽이 열리는 1988년 우기이전에 최소한 10억t 안팎의 수공만이라도 막을 수 있는 5.9억t 규모의 1단계 댐을 조기착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일부 잘못 알려져 있듯이 공사를 하다가 흐지부지 중단된 것이 아니고,예정했던 1단계 공사는 당초 계획대로 1988년 6월에 완공된 것이며,현재도 공사가 계속되고 있는 북한쪽의 공사진도에 따라서는 2단계 공사를 계속할 수 있도록 계획이 서 있는 것입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화천댐등 우리의 기존댐만으로도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평화의 댐은 불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으나,그것은 비현실적인 얘기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다시 말하면 북한의 수공에 대비해서 우리의 댐들을 모두 비워놓고 있어야 하는데,그로인한 경제적 손실은 평화의 댐을 만드는 비용보다 더 많을 뿐 아니라 화천댐은 수공을 받으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지질학적 분석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제가 듣기로는 지난해에만 해도 김일성과 김정일이 금강산댐에 관한 교시를 발표하고 건설사령관인 인민무력부장에게 군병력의 집중투입을 지시하는등 직접 공사를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금강산댐과 수공위협의 가능성은 분명히 실체가 있는 것입니다. 평화의 댐이 지금은 우리의 시급한 관심사가 아니라고 해서,또 평화의 댐을 건설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지금에 와서는 실감할 수 없다고 해서 그때의 일들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속에 지난 일을 오늘의 상황과 기준에 서서 따질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단임의 실현으로 우리 헌정사상 초유의 평화적 정부이양을 이룩하는 것이 저에게 부하된 최대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신념을 시종일관에서 지켜왔고 또 실천하였습니다. 평화의 댐 건설을 착공할 당시 저로서는 잔여 임기를 불과 1년 남짓 앞둔 시기였습니다. 당시의 시국이 다소 어려웠다고 하더라도,있지도 않은 북한의 위협을 날조해가면서까지 1년 남은 정권을 유지해야 할 만큼 그렇게 허약하고 부도덕한 정부는 아니었다고 저는 믿고 있고 또 주장하고 싶은 것입니다. 6·25때 「맥아더」원수가 막료들이 모두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천상륙작전을 결행해서 전세를 일거에 역전시킨 일도 있듯이,최고결정권자는 국가의 이익과 백년대계등을 종합적으로 생각해야하기 때문에 부분적 진실에만 집착하기 쉬운 특정기관이나 특정인의 판단에 구애받아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평화의 댐과 관련한 사항도,모든 정보보고와 판단자료를 제가 검토하고 심사숙고해서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지시한 것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혀 두고자 합니다. 끝으로 한가지 간절히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1988년과 1989년 국민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기회에도 호소한 바 있습니다만,지난 날의 허물과 잘못은 모두 저에게 물어 주시고,이제는 밖의 세계로 눈을 돌리고 미래를 지향하면서,보다 살기 좋고 훌륭한 나라를 만드는데 매진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비록 재임중 과오도 많았고 부덕하고 불민한 이 사람이지만 그 점만은 국민 여러분께서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경제성도 없는 금강산댐을 빨리 만들라고 오늘도 인민무력부장을 다그치고 있는 김일성 부자가 그 대응댐을 만든 전직 대통령의 「저의」를 거듭거듭 따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에 생각이 미치면 안타깝고 답답해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덧붙여거듭 강조해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제가 재임중에 정부와 공직자가 한 모든 일은 그것이 어떤 경로로 입안되어 어떻게 실행되었든,그것은 최종보고받고 결정하고 지시한 것은 대통령이었던 저였습니다. 따라서 그 책임은 비록 퇴임한 후인 지금에 와서도 모두 저에게 귀착된다는 사실입니다. 일부 실무자나 전문가들의 보고,건의와는 다른 내용의 결정을 내린 경우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전두환씨 감사원 회신(전문) 1,본인은 1993년 8월16일자 귀원의 「평화의 댐 감사관련 질문서를」를 받고 본인이 취할 수 있는 합당한 대응방법에 대하여 원로들과도 의견을 교환한 바 있습니다.그런데 법률적 문제에 대하여 조언을 해준 분들은 대통령 소속하에 있는 감사원이 대통령의 정책결정의 배경·경위와 타당성에 대하여 직무감찰을 하는 것은 헌법 제97조와 감사원법 제24조의 규정내용에 비추어 볼때 문제가 있다는 견해를 밝혀 주셨습니다. 뿐만아니라 헌정사의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스럽지 못한 선례가 된다는 점을 우려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귀하도주지하고 계시겠지만 대통령의 국법상의 행위는 문서로써 행하여 지는 것이 원칙이며 평화의 댐에 관련된 정책결정 역시 관련 부처에서 작성된 문서로써 행하여 졌습니다. 따라서 귀원의 감찰활동상 필요한 자료와 사실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보관중인 관련문서를 통하여 확인하는 것이 순리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평화의 댐과 관련한 문제에 대하여는 지난 수년간 국회차원에서도 다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자에 이르러 또다시 세간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칫 정부의 안보정책에 대한 불신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에 본인은 대통령으로서 평화의 댐 축조를 결정한 배경과 경위에 대하여 모든 국민에게 아는대로 설명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별첨한 「평화의 댐에 관하여」는 이러한 목적으로 작성된 것입니다.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호남고속철도 조기 건설/김대통령/「복선화」와 병행…임기중 착공시사

    ◎“노선조사 재원 내년예산 반영”/박 비서실장 김영삼대통령은 24일 『경부고속전철에 이어 호남고속철도를 가능한한 빨리 건설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날 취임 6개월을 맞아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히고 『이 문제를 박관용비서실장과 논의한 바 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호남고속철도의 건설시기등과 관련,『재원을 완전히 확보된 뒤에 한다면 아무 일도 못한다』면서 『현재 진행중인 호남선 복선화나 서해안고속도로 건설과 필요하면 동시에 할 수도 있다』고 밝혀 늦어도 자신의 임기중에 건설이 시작될 것임을 시사했다. 김대통령은 경부고속철도건설과의 시차에 대해서도 『검토해야 할 문제이나 해낼 저력이 있다』고 밝혀 동시건설이 추진될 것임을 시사했다. 박실장은 이와관련,『타당성 조사와 노선검토를 위한 재원을 내년 예산에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어 정계개편 가능성에 대해 『그런 문제에 대해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고 이를 부인했다. 김대통령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시기에 대해서는 『선거때 약속대로 95년도에 할 것이며 이 약속은 금융실명제 약속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지켜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공무원처우개선과 관련해서는 『올해 공무원 임금을 동결하면서 내년에는 다소 인상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한만큼 약간 올려 사기를 진작시키겠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번 주에도 기업인을 한사람 따로 만나 투자를 부추기도록 할 계획』이라면서 『금융실명제로 미래에 대한 확실한 지표를 경제인들에게 주었기 때문에 마음껏 일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한국 옛인쇄문화 발자취 한눈에/70여점중 「동국정음」등 눈길

    ◎27∼9월25일 청주고인쇄박물관서 전시 우리나라 출판 인쇄문화의 발자취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한국 옛 인쇄문화 특별 전시회」가 27일부터 9월 25일까지 청주 고인쇄박물관에서 열린다. 책의 해 조직위원회가 마련한 이 특별전은 찬란했던 우리나라 출판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회.특히 청주는 대전과 이웃한 도시라는 점에서 엑스포를 찾는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의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하게 됐다. 이 특별전에 출품될 유물은 모두 70여점.분야별로 보면 신라와 고려,조선의 목판인쇄물 13점과 고려와 조선시대 금속활자인쇄물 35점,조선시대 한글활자인쇄물 8점 및 목활자인쇄물 9점 등이다. 이 가운데 현재 남아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불조직지심체요절」을 비롯하여 국보 제120호 「무구정광대타라니경」,국보 제142호 「동국정운」,보물 964호 「정원신역화엄경소」,보물 398호 「월인천강지곡」,보물 제772호 「김강반약파라밀경」,보물 758호 「남명천화용증도가」 등이 특히 눈길을 끈다. 또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계미자,갑인자 활자판 등이 옛 모습 그대로 진열되는가 하면 「한성순보」,「성경직해」,「동의보감」,「오륜행실도」,「자치통감강목」등 우리 출판문화사에 빼놓을 수 없는 조선조 말기의 귀한 자료들도 선을 보인다. 전시회가 열릴 고인쇄박물관이 자리잡은 곳은 「불조직지심체요절」을 찍은 흥덕사 터.문헌으로만 알려졌던 흥덕사 터는 지난 85년 10월경 청주대 박물관팀의 발굴 작업에서 「흥덕사지」라 명기된 금구조각이 발견됨에 따라 이듬해 5월 이 일대 2만8천여평이 사적지로 지정됐으며 지난해 고인쇄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 한국화가 송수남씨(이세기의 인물탐구:34)

    ◎화폭에 시정 가득… “시인같은 화가”/수묵현대판화 개척… 「남천산수」는 독보적 경지/유연하면서도 예리한 운필로 화력 30년 빛내/가장 한국적인 소재에 집착… “동서양 넘나드는 화격” 꿈꿔 남천은 시인같은 화가다.그는 그림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다.그의 그림만 봐도 알 수 있다.먼산 먼강 안개 서린 먼동,잔잔한 금강이며 섬진강 얼어붙은 겨울산하까지도 그의 그림속에는 교교한 시정이 담겨있다.공간에 뜬 몇개의 산이 담묵 농묵으로 꿈결같은 원근을 이루거나 또는 보석처럼 빛나는 수묵채색일 때도 아름다운 여백을 살려 화면전체에 서정시가 흐르는 듯한 향수를 품고 있다. 그가 쓰는 먹은 모든 색의 출발이자 모든 색깔을 포함한 색채다.어둠이 흩뿌리는 혼묵,비내리는 잿빛하늘의 회묵일지라도 단순한 검은색인가 하면 전혀 검은 색깔이 아닌 현묘 심묘의 먹색일색이다.그는 눈부시게 하얀 백지위에서 먹으로 백색을 백답게 살리고 먹색을 가장 먹답게 표현할 줄 아는 화가다. 색깔과 색깔을 배합해서 얻어지는 효과와는 달리 물과 먹의 비율은그 농도를 계산할 수는 없으나 모필이 한지에 닿는 순간의 유연성과 날카롭고 경쾌한 선조,그 번짐이 내는 의외의 조형에 흠뻑 빠져든듯 그는 지난 수년간 수묵을 매재로 하는 긴 실험과 모색의 시기를 거쳐왔다. 그리고 수묵추상 발색산수 동양화판화에서 다시 발묵산수로 이어지는 그의 수묵작업은 이제 포만과 방출의 단계를 통과하여 그만의 독자적인 「남천산수」를 이루고 있음을 인정받고 있다. ○충격던진 첫 개인전 그의 이런 실험정신은 그가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할 때도 일관되게 지켜지던 그만의 방법이다. 이대입구 신촌 하숙집 골방에 틀어앉아 낙엽이란 낙엽은 모조리 주워다가 수북하게 쌓아놓고는 이를 화면에 이리저리 꼬아 붙이는 나뭇잎 콜라주,켄트지에 유화 한지에 수채화등 그가 무엇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를 스스로 모색하고 타진한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때의 「높지도 낮지도 않은 고향의 뒷동산」과 「강언덕 버들개지 꽃샘바람에 한바탕 춤추고 나면 온산은 진달래가 물들어」샤갈과 드가를 변주한 듯한 영롱한 색채는 그가 범상치않은 화가로 탄생될 것을 그의 주변에 일찍이 예감시켰다. 화력 30년의 화가로서나 대학교수로서나 그는 이제 중진의 위치다. 그러나 스승의 문하에서 스승의 화풍을 이어받은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혼자서 자신의 세계를 암중모색으로 성취한 편에 속한다.이에대해 그 자신도 「누구에게 배운 적도 영향을 받은 바도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초기 「한국화」전이란 타이틀로 그가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는 한지와 먹,탑이나 기와지붕등 동양화재료와 한국적 테마를 택하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의 동양화에서의 설채와 운필을 벗어나 서양추상화를 보는듯한 충격을 던졌다. 원로미술평론가 이경성씨는 『시류에 영합하지 않은 송수남 한국화는 새로운 공간예술을 실천한 예로서 70년대 화단에서 독보적인 위치로 우뚝 설것임』을 다짐했었다. 70년대후반 실경산수가 한창 붐 일때도 그의 산은 진채표현의 중량감을 과시하여 적묵산수의 특징을 강조했고 담백한 여운을 느끼게 하는 수묵과는 달리 강렬한 발색산수에서 중성적 느낌을 안겨주는 다채로운 채색과분방한 화풍을 구사해 보였다. 야트막한 구릉과 하천을 부드러운 선과 극도로 절제된 간결한 구성으로 암시하는가 하면 상상을 초월하리만큼 거대한 산봉은 휘염의 범람인듯 화면을 압도하기도 한다. 그곳에는 시의 빛과도 같은 섬세한 장식이 둥우리를 틀고 우뚝한 삼각형,묵취와 묵광,산정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빨갛고 동그랗고 자그마한 해만으로 먹구름같은 화면에 눈시린 청량감을 뿌렸다. ○동양화서 추상 시도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동양화가로서는 드물게 「산」을 주제로한 판화를 제작,목판·석판·실크스크린·모노타입등 4종류를 찍어 수묵화의 수묵현대판화로서의 새로운 화경을 열었고 88년 「자연과 도시」전도 빼놓을수 없는 탁발한 전시로 손꼽힌다. 굵거나 묽은 선으로써 시작과 끝을 흐려뜨리면서 드로잉적인 필선과 발묵의 번짐으로 독특한 도시의 서정을 구현,울창한 잡목숲과도 같은 어지러운 도시의 여러 풍경을 특징적으로 묘사해 냈다. 도시나 산하외에 그가 즐겨 그리는 미루나무는 먹으로 화면을 가득채운 동양화의 현대추상을 시도한 선시리즈와 고향으로 가는듯한 휴식을 살린 첨단과 향수의 두면을 대비적으로 선보여주고 있다. 붓끝에 힘을 주어 사군자를 치는듯한 한계를 자유하여 그는 이제 모필만이 갖는 유연성으로 동서양을 넘나드는 그만의 화격을 이루는것이 꿈이다. 남천으로서는 어느구석에도 그 겉모습에선 화가의 티는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그런 「티」는 그에게는 지난 시절의 치기일지도 모른다.문학과 철학에 빠져 세상을 온통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니힐리스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이른바 가난이면 가난, 슬픔이면 슬픔, 외로움이면 외로움이었던 회오리가 한바탕 지난후 거추장스러운 껍질을 훨훨 벗고 「평범」과 「무심」을 과장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굵은테 안경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 그런거지 세상이란 그런거지」털털 웃으면서 술잔을 기울이는 그를 바라보노라면 지난 날이 흔적없이 허무하게 느껴진다는 수류운공이 떠오른다. ○단체활동 개입 안해 그러나 그는 여전히 어눌하고 치밀하지 못하여 지난 90년 한 신문사가 주는 예술대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상을 제정해주신 신문사에 감사한다」는 인사말을 여러차례 연습까지 해놓고는 막상 단상에 올라 다른 신문사 이름을 들먹이며 중언부언하는 바람에 관계자와 좌중을 난처하게 했었다. 또 두주불사로 학생들과 어울려 춤을 추고 사심없이 놀다가도 갑자기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한국적이란 무엇일까.중국하면 도가 떠오르고 인도하면 명상이 떠오르듯이 「한국」하면 뭐가 먼저 생각나지?』심각하게 추궁하여 주위를 당혹케하기 일쑤다.이런 한국적인데 대한 집착은 75년 스웨덴 스톡홀름국립박물관 초대전이후 수십차례의 세계미술전에 참가하면서 생긴 징후다. 그는 전북 전주에서 농가 송대석씨의 3남매중 외아들.조부가 쓰던 먹과 벼루가 있는 환경에서 자라나 일찍이 그림에 재능을 보였고 그의 소원은 언제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을 성취하는 일이었다.소원대로 지금은 서교동 그의 집에 마련된 80여평의 드넓은 화실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고 바로 이를 이루기 위해 그는 끝없이 노력해왔다고 할 수 있다.가족은 부인 백명희교수(이대사대학장·54)와 1남2녀.그림을 그리는 자녀는 없다. 화가친구보다는 옛날 신촌하숙방에서 함께 뒹굴던 소설가 이제하 시인 강위석 등과 즐겨 어울리고 80년대 수묵화운동을 함께 했던 후배 제자들이 있지만 화단에서의 단체활동등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 화가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남천을 소탈하고 소박하다고 말한다.대체로 자신의 일에만 충실할뿐 그는 만사에 서툴고 머뭇거리는 형이다. 그러나 가까이 화단일부에서 그의 후배들이 말하는 남천은 뚝심과 정열,실험정신이 투철하여 기왕에 있어온 타성을 묵살하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도전적 욕망이 꿈틀대는 야심파다.또는 감정이 격하고 제스처가 명확하며 일을 벌이면 끝장을 내고 한번 눈밖에 난 사람은 끝끝내 돌아보지않는 독선적인 면이 지나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림의 완성을 설계 어느것이나 화가로서 인간으로서 그가 지닌 일면일 것이다.사람이 나이들면 환경과 시대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듯이 아마도 남천 역시 그런 여러 측면을 복합적으로 지닐 수도 있다.그래선지 그는 다른 예술과는 달리 미술은 음악처럼 세계도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서슴없이 긍정한다.그리고 한때 지나치게 탐닉했던 화려한 색채를 단순하게 저버린것이 아니라 이를 오채의 먹으로 종합한다는 의지다. 그는 결국 시와 철학으로 살찌운 마음속에다 그의 수많은 붓들을 담가두었다가 어느날 하얀 한지위에 먹만의 조형으로 세계화단에 발돋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그는 그림의 완성,그의 그림의 끝을 알고있는 이시대 소중한 화가의 한사람임에 틀림없다. □연보 ▲1938년 전북 전주출생 ▲전주중앙국교 서중­공고졸업 ▲1956년 홍대 서양화과 입학 ▲군복무후 1961년 동양화과로 전과 ▲1963년 홍대 졸업 ▲1962년 국전입선후 신광여고­이대부고교사 ▲1967년 제9회 동경국제비엔날레 출품(동경) ▲1969년 송수남 「한국화」전(신문회관화랑) ▲1970년 인도 트리엔날레 출품(뉴델리) ▲1972년 한국현대작가7인전(샌프란시스코 아시아재단화랑) ▲1973년 송수남 개인전(신세계화랑) ▲1973년 상파울루 국제비엔날레(상파울루)한국 동양화10인전(동경) ▲1974년 양지화랑 초대개인전 ▲1974년 현대 화랑 기획전(현대화랑)현대한국동양화전(나고야) ▲1975년 스웨덴 스톡홀름국립박물관 초대개인전 ▲1976년 한국현대 동양화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77년 한국 미술대상 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78년 맥향화랑 초대전 ▲1978년 뉴욕 한국화랑 초대개인전 ▲1978년 한국미술20연 동향전(국립현대미술관) ▲1979년 한국미술­오늘의 방법전(문예진흥원 미술회관) ▲1980년 하와이대 한국학센터 개관기념 초대전 ▲1981년 백상미술대전 한국현대작가 드로잉전(뉴욕 브루클린미술관) ▲1983년 송수남전(현대화랑) ▲1983년 초대 송수남 개인전(뉴런던 코네티컷대,뉴욕브루클린대 시카고 스코키시립미술관) ▲1984년 송수남 개인전(뉴욕 한국문화원) ▲1985년 송수남 판화전(조선화랑) ▲1986년 한국화,오늘과 내일 전망(워커힐미술관) ▲1986년 한국화 100연전(호암갤러리) ▲1986년 동양화 초대전(강남현대화랑) ▲1986년 송수남 초대전(부산진화랑) ▲1988년 자연과 도시전(동산방화랑) ▲1989년 남천 판화전(청작미술관)해마다 국립현대미술관 주관 현대미술초대전,한국의자연전,서울미술대전,현대작가초대전 등 단체전 수회출품 동아미술제심사위원,문예진흥원 미술대전심사위원,운영위원 역임〔현재〕서울 미술대전 운영위원,서울시 예술위원,홍대교수(홍대박물관장) 중앙예술대상수상 「수묵화」「동양화」「자연과 도시」「남천사군자(상·하)」
  • 유난히 뜻깊은 올 광복절/「8·15」48주년을 맞으며

    ◎구총독부 철거 순국선열들도 반길것 오랫동안 새삼스럽지 않던 일이 어느 날 새삼스러워질 때가 있다.내일 맞이하는 8·15가 바로 우리들에게 새삼스러워지는 날이다.1945년이후 근 5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러간 오늘에 이르기까지 올해만치 이날의 의미와 뜻이 새삼스럽게 되새겨지는 날도 별반 없었다는 느낌이 강하다.우리민족에게는 그때마다 새삼스러워야 할 오늘의 의미와 뜻이 국민들의 가슴에 뜨겁게 와닿지 못했던 것은 여러갈래의 해석이 있을 수 있다. 8·15의 의미가 우리들 국민정서를 송두리째 사로잡지 못한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는 해방당시 들어선 정부가 일제의 잔재를 청산시킬 아무런 의지도 갖고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후 48년이란 세월이 흘러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청산의 의지는 별달리 피부에 와닿았던 적이 없었다는 데 있다. 그 청산이란 반드시 피비린내나는 숙청과 보복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일제의 관청에서 관리로 녹을 먹던 사람이 해방된 조국 정부의 요직에 그대로 들어가 앉아 나라의 살림을 도맡아 처리하였고 일제가 쓰던 건물에 그대로 들어앉아 공무를 보았으니 의자나 책상 역시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었다. 독립투사의 후손들은 달동네의 사글세방에서 끼니를 굶으며 병고의 시달림을 받고 있는데 일제에 부역하거나 거기에 빌붙어 호사를 누린 사람들의 후손은 각계각층의 요직에 앉아 권세를 누려왔다.누구도 그런 사람들의 구차스러움과 야비함을 꾸짖지 않았다.심지어는 그런 사람들이 순국선열들의 영령들을 애도하는 행렬의 앞줄에 서서 분향까지 하는 웃지 못할 사태까지도 우리는 여러번 목도해왔다. 아픔도 역사라는 어눌한 궤변과 건축사적 사료가 된다는 이유 때문에 일제의 총독부건물에 나라의 중앙관청이 들어서고 총독의 살림집에 대통령이 또한 살림집을 차려왔다. 이러한 모든 청산의욕의 뜨뜻미지근함은 해마다 맞이하는 8·15의 의미와 뜻을 퇴색시켜온 것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이웃나라 땅에서 올바른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던 선열들의 뼈가 얼마전 환국하여 그분들이 몽매에도 그리던 고국의 땅에 다시 묻히게 되었다. 해방당시 지체없이 결행되어야 할 일이 해방 48년이란 장구한 세월이 흘러간 지금에서야 그 뜻을 받들게 되었다는 것은 부끄럽고 가슴아픈 일이다.그 분향소에만은 일제에 녹을 먹었던 사람들이 출입하지 말았으면 했는데 처음부터 지켜보지 못했으니 그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때늦은 감은 없지 않으나 중국땅에 묻혀 있던 선열들의 영령을 모셔오는 일도 일제의 청산이며 총독부건물과 그 총독의 집이었던 청와대의 구본관을 철거하는 것도 일제청산의 길이다.대청기둥뿌리밑에 숨어 있는 개미집을 발견하여 헐어낸 속시원한 오늘의 8·15로 기억되기 충분하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는 매우 착잡하다.조선시대부터 우리의 선조들에게 총칼을 들이대고 위협과 약탈을 일삼다가 결국은 일제치하 36년이란 치욕스러운 역사를 우리에게 안겨준 일제.그들의 만행이 아직도 우리들의 뇌리에 역력하건만 그들은 망한 적이 없다. 지지리도 못난 꼴을 보이고 망조가 들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이다.사람이 짓는 선악의 업보에 따라 과보가 주어진다는 인과응보란 말 어디를 뒤져보아도 일본이란 나라에 망조가 든 징조는 보이지 않는다.일본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점이 이 시점에서 우리를 당혹스럽게,그리고 착잡하게 만든다. 해방된 지 48년.이젠 경제만이 나라가 살아나갈 일이란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일이 되었다.경제논리만이 오늘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고,이런 논리는 장차도 좀처럼 뒤바꿔질 것 같지가 않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일제의 잔재를 철저하게 청산하되 오늘날 일본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모습을 주의깊게 바라보면서 우리가 섭취해야할 것이 무엇인가를 새삼스럽게 살펴보아야 할 처지에 우리는 놓여 있다.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런 심정적 갈등을 하루 빨리 해소시키기 위해서도 우리들 주변에 버젓이 산재한 일제의 잔재부터 청산하는 일이 시급하다.
  • 브라질 남부 3개주 주민/“분리독립” 높은 목소리

    ◎백인들 우월의식 팽배… 소득도 월등/“북부 못살아 피해” 팜파스국 내걸어 한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국가의 속성과는 반대로 최근 브라질에서는 브라질을 두개의 나라로 가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주로 경제적인 이유에서 움트기 시작한 이같은 국가분리 움직임은 최근들어 각 주의 소득의 격차가 더욱 두드러지면서 남부주의 일부 도시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묻는 찬반투표단계까지 비화되고 있다. ○찬반투표 준비중 국가분리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단체는 「팜파스연방공화국 추진모임」.대부분 남부지역 백인들로 구성된 이 단체의 요구사항은 남부지역의 리오그란데 도술,파라나,산타 카타리나등 3개주를 묶어「팜파스 연방공화국」을 만들자는 것. 이 단체가 만들려고 하는 이 「공화국」의 면적은 3개주를 합해 브라질 전체 면적의 6.8%인 57만7천㎦로 한반도의 약 2.5배. 인구는 1억5천만 브라질 인구의 15%정도로 살기좋은 「팜파스공화국」을 만들어 아예 독립하자는 것이다. 이들 브라질 남부지역 주민들이 국가분리를 처음 구상하게 된 것은 같은 브라질이지만 3개주 주민의 선조가 독일이나 이탈리아계 백인들로 구성돼 있어 북부지역(대부분이 메스티조 또는 흑인)과는 다르다는 점이 명분으로 작용했다. ○독·이인후예들 살아 그러나 「분리」를 내세우는 실제 이유는 따로 있다.즉 경제적인 소득격차나 문화수준의 차이가 커 『뭔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정서가 남부사람사이에 팽배하고 있는 것이다. 남부 3개주의 1인당 연평균소득은 4천달러.브라질의 평균 3천달러 보다 1천달러가 높고 대부분이 농부,광원인 북부지역보다는 무려 2.5배나 많다. 여기에 남부 3개주의 평균수명도 북부보다 10살이나 많은 67세여서 이같은 생활패턴의 우위도 다른 지역과 구분지으려는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때문에 남부사람들에게는 북부사람들이 「하루벌어 하루먹는 사람」「틈만나면 카니발에만 빠지는 촌뜨기」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감정대립으로 비화 북부사람들은 『인종주의적 편견에 가득찬 사람들』이라며 남부사람들을 깎아내린다.또 『남부지역 사람들이 자원이 풍부한 북부의 원자재를 싸게 사다 완제품을 만들어 북부사람들에게 비싸게 팔아먹는 몰염치한 사람들』이라고 싸잡아 비난한다. 북부지역주민들도 남부지역이 「독립」운동을 펴는 한 이에 맞서 원자재의 공급을 중단하는등의 분리주의 운동으로 대응하자는 쪽으로 여론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부지역 주민들의 국가분리운동은 아직 행동으로 옮겨질만큼 폭넓은 지지를 받고있는 것은 아니다.
  • 도자기/전통재현보다 창조가중요/일 조선사기장 후예5명 광주요 방문

    ◎전통기법으로 빚은 청자보고 “시큰둥”/“과거흉내로 자연스런 색 나올수 있나”/“독특한 그릇은 남에게 배워 만들수 없다”교훈 남겨 일본 최고의 도예가라면 우리도 존경해야할까.모든 아름다움의 기준이 그렇듯 일본사람들에게는 대단해 보이지만 우리에게는 좋기는 커녕 거부반응이 느껴지는 물건도 있을수 있다.그럼에도 우리는 임진왜란때 끌려가 이제는 일본도공이라고 밖에 말할수 없는 조선사기장의 후예들에게는 거의 짝사랑에 가까운 일방적인 지지를 보내왔다.그 이유 가운데 중요한 부분은 바로 그들의 도움을 받아 잃어버린 도자기 왕국의 전통을 되살려보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지난 8일 경기도 이천의 광주요를 방문한 조선사기장의 후예 5명도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 우리에게 존경을 받아왔다.12대 다카토리 팔산(고취팔산)과 13대 이참평,12대 사카고라이자에몽(판고려좌가문),13대 나가사토다로에몽(중리태랑가문),11대 아가노사이스키(상야재조)가 그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광주요를 방문한뒤 우리 도공들에게 남긴 교훈은 바로 『그 시대그 사회만의 독특한 그릇은 남에게 배워서는 만들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들과 14대 심수관 등 6명은 「’93 대전 엑스포」문화행사의 하나인 「한국의 도자기 비교·귀향전」에 출품자로 지난7일 있은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조상의 나라에 왔다. 이들이 광주요측의 방문요청을 받아들인 것은 「선조들이 그릇을 굽던 방법 그대로를 고향 땅에서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향수어린 것이 아니었다.진짜 이유는 『아직도 과거 영화롭던 시대의 재현에 머무르고 있는 한국도자기의 현실을 직접보고 광주요의 도공들에게 한수 가르쳐주겠다』는 것이었다고 한 조선도공의 후예는 고백했다. 광주요의 도공들도 이들의 방문이 확정된뒤부터 이날까지 거의 매일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조선도자기의 전통을 이어받은 세계적인 거장들로부터 무언가 확실한 것을 하나쯤은 건질수 있겠거니 하는 기대에서였다.이에따라 요즘은 생활도자기를 가스가마에서 구워내는 광주요이지만 전통기법으로 그릇을 빚은뒤 먼지쌓인 등요에 불을 지펴 이들의 방문에 맞추어 가마의 문을열 준비를 해놓았다. 손님들이 도착했다는 전갈을 받은 광주요 도공들의 표정은 긴장 그 자체였다.그러나 전시실을 거쳐 가마앞에서 이들이 구워낸 분청사기와 청자를 마주한 거장들의 표정에서는 「역시 별것 아니군」하는 「안도」가 스쳤다.그러나 광주요 도공들에게는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눈에 들지 않을수록 거장들은 할말이 많을 것이고 그만큼 배울것도 많은 법.도공들의 질문도 쏟아졌다. 이들이 돌아가고 난뒤 광주요의 한 도공은 이들로부터 두가지를 인상적으로 느꼈다고 말했다.찻그릇(다완)을 살펴본 나가사토씨의 『찻그릇이 너무 얇다.차를 부으면 그릇이 금방 뜨거워져 어떻게 들고 마시겠느냐』는 것과 사가씨의 『청자의 색을 너무 인위적으로 만든다.고려시대 전성기 청자를 의식해 색을 내려고하면 자연스런 색이 나올수 있겠느냐』는 지적.찻그릇에 대한 지적은 바로 실생활과 유리된 우리 도자기 연구의 실상을,청자에 대한 지적은 새시대에 맞는 그릇의 창조보다는 과거에 대한 흉내에만 아직도 매달리고 있는 상황을 아프게 꼬집은 것이아니겠느냐는 것이다. 14대 심수관은 평소 『내가 한국 도자기에 대해 할수 있는 것은 호의적인 무관심 뿐이다』라고 말하곤 한다.이 시대에 맞는 한국 그릇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일본도공인 자신이 아니라 한국사람이라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 주부 부업사기 피해 급증/소보원 접수

    ◎6월까지 155건… 지난해 총건수 초과/판로 등 살피고 경험자에 자문 구하도록 □피해사례 고소득 보장 등 광고로 호기심 유발/입회비·도구 구입비 등 준비금 요구/일거리 제공약속 파기·불성실 이행/사전 통고없이 사업장소 폐쇄·이전 최근 부업으로 가계에 보탬을 주려는 선량한 주부들의 심리를 악용하는 주부대상 악덕부업상술이 성행,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부업과 관련,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상담 및 피해구제 청구건수는 92년 1백7건,올들어 6월까지 1백55건으로 그 사례가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소비자 피해사례가 된 주요부업은 컬러마블·광섬유공예·동판공예등이며 지역에따라 카드색칠·진주구슬공예·알파자수와 컬러유리공예도 있는것으로 나타났다.수법으로는 일감제공을 빙자,고액의 준비금을 요구하고 당초 약속한 일감은 제공하지 않는것이 대부분이었다. 악덕업자들이 부업 희망자들을 유인하는 수법은 먼저 신문보다는 광고비가 저렴한 무료 지역생활정보지등에 『고소득 보장』『경험이나 자본이 필요없다』『집에서도 할 수 있다』는등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문구의 광고를 낸다.그다음 이에 현혹된 소비자들이 문의를 하면 부업일감을 약속하고 입회비·기술이전료·도구구입비·재료비등의 명목으로 준비금을 요구,몫돈을 챙긴다.그후 소비자가 완성품을 만들어오면 『잘못 만들어 받을 수가 없다』혹은 『갑자기 주문이 줄어 일거리가 없다』는등으로 부업제공 약속을 불성실하게 이행하거나 때로는 까다롭고 힘든 부업거리를 제공,소비자 스스로 포기하게 한다는것. 소비자보호원은 소비자들의 이런 고발사례와 지역 생활정보지등에 소개된 부업내용을 분석한후 소비자들에게 컬러마블·동판공예·광공예등은 부업인을 모집해 생산할만큼 수요나 판로가 확보돼있지 않을뿐아니라 모집광고 내용도 실제보다 과장된 경우가 많다고 그 결과를 밝혔다.따라서 만일 부업을 하려고 할땐 사업자의 말에만 현혹되지 말고 예상소득이나 판로·작업과정등에대해 꼼꼼히 따져보는 동시에 경험자에게 자문을 구하는것이 좋다고 당부했다.이와함께 준비금 지급시에는 사업자가 당초 약속한 내용을 지킬 수 있도록 계약서에 계약조건이나 부업알선조건등을 명시,나중에 약속을 이행치 않을때 이를 근거로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사업자와의 약속이 지켜지지않을 것으로 생각될 경우엔 7일이내에 철회권을 행사,해약이 가능케해야 한다고 주의를 촉구했다.
  • 한민족 역정과 내일 한눈에/대전엑스포의 얼굴 「정부관」어떤 곳인가

    ◎기둥없이 지은 하이테크건물/꽃길·비단길등 6개의 길꾸며/상징통해 주제 「새도약」 생생히 엑스포내 정부관이 6일 상오11시 김영삼대통령을 비롯한 3부요인및 고위관계자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문을 열었다. 국내전시관 가운데 마지막으로 개관된 정부관은 대전엑스포의 주제인 「새로운 도약에의 길」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비상하는 새의 형태를 표현한 정부관은 연면적 2천7백여평,높이 22.4m의 지상 3층 크기로 기둥이 하나도 없는 최첨단 하이테크 전시관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근대화 과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정부관은 「새길을 찾아서」라는 표어아래 6개의 상징적인 길을 꾸몄다. 1층에 들어서면 자연을 벗삼아 평화로이 살던 우리 선조의 농경생활을 그린 「꽃길」이 나오고 해방뒤 6·25동란을 거쳐 60년대의 근대화 과정을 표현한 「지름길」이 이어진다. 동서문물의 교류와 우리 고유의 과학기술을 선보인 「비단길」,산업화에 따른 환경오염과 자원 고갈을 그린 「벼랑길」이 뒤를 잇고 과거와 미래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사색의 길」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시한다. 끝으로 「새길」(무지개길)에서는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한국인의 의지와 과학예지를 보여준다. 6개의 길을 벗어나면 우리 기술로 개발한 조각 로봇이 관람객들을 반겨 맞는다.1장의 사진만으로도 웃고 울고 찡그리는 갖가지 모습을 그릴 수 있고 세라믹 조각으로 10분안에 인물상도 만든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대전엑스포의 얼굴인 셈이다.
  • 경제행정/규제완화/제3차 계획안 주요내용

    ◎기계식주차장 건폐율 적용 제외/수도권 중기 신·증설 허용 확대/석유대리점 판매지역제한 폐지 정부가 24일 발표한 제3차 경제행정규제완화계획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괄호 안은 시행시기). ▲금융·외환·보험=현재 사전신고제로 돼 있는 주력업체의 무상증자 또는 주식배당에 의한 주식취득을 사후신고대상으로 바꾼다(93·7).피보험자의 사망보험 가입금액한도(현행 1인당 3억원)를 높인다.(94). ▲국고·예산회계=3천만원이상의 공사계약은 20∼30%의 선금을 주어야 하는데도 특례규정을 들어 지급하지 않는 관행을 개선한다(93·8). ▲통관·세관=수입승인을 받아 관리가 쉬운 보세 건설장 물품은 세관장의 반입허가를 생략한다(93·12).견본품·시험용 자재등 무환수입물품 중 기업의 생산과 관련된 물품에 대해서는 자가 보세구역에도 반입을 허용한다(93·10). ▲세제=기존 주류제조회사가 별도의 법인을 설립하지 않고 다른 주류를 제조할 수 있도록 면허를 허용한다(93·12).관련 법령간에 내용이 다른 비업무용토지 판정유예기간을 재조정한다(93·12). ▲유통=양곡 도·소매업에 대한 점포면적기준을 없앤다(93·12).비료생산업허가제를 등록제로 바꾼다(94 상반기).석유대리점 허가시 판매구역제한을 없앤다. ▲수출입=무역업 등록업무를 시·도에서 무협(본부·지부)으로 옮긴다.무협이 매년 실시하는 무역업 효력확인제를 2년 주기의 무역업 등록경신제로 바꾼다(93·7). ▲에너지·자원=석유제품 수출입계약에 대한 상공자원부장관의 승인을 건별 승인에서 반기별·유종별 포괄승인제로 바꾼다(94·1).가정용 보일러시공확인시 소비자가 부담하는 수수료징수제를 없애고 확인기관의 하자공동책임을 명문화한다(93·11). ▲공장 신·증설 및 토지이용=수도권내 중소기업규모의 도시형 업종(의류포함)의 신·증설허용대상을 늘린다(94·3).공장용지 대금을 완납한 경우 등기 전이라도 은행융자가 가능하도록 토개공이 대금완납증명서를 내주도록 한다(93·9). ▲건축 및 주택=기계식 주차장의 높이를 현재 6m에서 8m로 높이고 건폐율 적용대상에서 뺀다(94·9).건축사 1차시험 합격의 유효기간을 두번까지 인정한다(94·3). ▲직업안정=해외취업근로자 모집시 사전승인제도를 없애고 자율모집을 허용한다(93·7). ▲육상 수송=중고자동차매매업을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꾼다(94·6).유조차에 대한 공간용적 제한 및 적재품목 제한을 완화,유조차의 활용도를 높인다(93·12). ▲해운·항만=예선조정제를 없애고 등록제를 도입한다(94·4).도선사 수급계획제(정수제)를 없애고 도선수습생 및 도선사면허시험을 절대펑가제로 바꾼다(94·4).예선사용·도선대금은 인가제에서 자율요금제로 바꾼다(93·12).
  • “개혁으로 공동체의식 복원해야”/「공개협」 의식개혁세미나 중계

    ◎이기주의 배제… 국민참여 필요한 시점/사정 효율적 추진후 미래준비 자세를 공동체의식개혁 국민운동협의회(공개협·의장 김지길목사)는 23일 서울 세종홀에서 오린환공보처장관등이 참석한 가운데 「공동체 의식개혁과 우리의 자세」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가졌다.새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것이 민간단체의 자율적 의식개혁운동이라는 점에서 이날 토론은 관심을 모았다. 다음은 오장관의 주제발표및 토론자의 토론요지. ○지식인 허리역 긴요 ▲오공보처장관=김영삼대통령이 점화한 개혁은 이제 국민 모두가 동참하는 과정에 들어서고 있으며 국민의 의식개혁을 통해 개혁이 본격화되는 단계에 들어섰다.개혁과 경제활성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계속적인 개혁과 점진적인 경제활성화라는 두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지금부터 추진해야할 본격적인 개혁은 두줄기의 큰 흐름으로 가야한다.첫째,대통령으로부터 점화된 개혁이 법과 제도로 구체화되고 이것이 국민의식의 개혁으로 이어지며 국민적 추진력을 얻을 때 개혁은 성공할 수 있다.둘째,우리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업인·종교인·언론인·학자·공직자등 지식인층이 중간 역할을 해주어야한다. 개혁을 마무리하는 원동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국민이 원동력이 되기위해서는 의식개혁을 통해 국민적 합의를 끌어낼수 있어야한다. 역사적으로 우리 선조들은 남다른 공동체의식을 실천한 훌륭한 전통을 갖고 있다.이 훌륭한 전통을 되살려 가족이기주의,집단이기주의,그리고 지역이기주의를 극복하고 공동체의식을 진작해가는 것이 우리가 추진하려는 의식개혁의 큰 줄기가 된다. ○법치주의를 존중을 ▲안동일변호사=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운동은 정상으로의 회복,공동체의식을 회복하는 운동이어야 한다.신정부는 현재 강력한 개혁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무리 좋은 개혁정책이라도 법과 제도를 통해 이뤄지지 않는다면 문민독재라는 지적을 받게된다.조금 더디게 추진하더라도 법치주의를 존중하면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의식개혁운동은 민간주도로 이뤄져야 성공할 수 있으며 정부가 해야할 일은 제도개혁이다.교육비리를 고치려면 교육제도를,부동산투기를 막으려면 세제를 개혁해야할 것이다. 의식개혁운동은 우리 모두 과거의 불행한 역사의 반성에서 출발해야 하지만 새로운 역사인식이 없이는 미래가 열리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김영삼대통령은 4·19,5·16,5·18,6·10운동에 대해 새로운 역사적 평가를 내렸지만 진상규명과 책임자의 처벌없이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고 한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다.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우지 않고서는 민족정기를 바로 세울 수 없다. ▲박홍서강대총장=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정책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가 암담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1백% 지지한다. 새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과거정권하에서는 제도적,구조적인 여러가지 폭력이 있었다.지금은 이에대한 역폭력이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민주화의 이름으로 비민주적인 행위가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정축재 환원 유도 최근들어 우리 공무원들은 풀이 죽어있다.봉급은 동결됐으며 사정활동으로 가만히 업드려 겁을 내고 있는 것같다.따라서 사정활동은 효율적으로 추진,가능한한 빨리 끝내고 미래지향적으로 나갈 수 있는 공동체의식을 확립하는데 주력해야 할것이다. 또한 과거에 잘못이 있더라도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사람은 용서하는 것도 필요하다.일례로 재산을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한 사람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해 재산을 사회복지등을 위해 희사하는등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 「기록물전시실」 오늘 오픈/정부보관 희귀문서 등 8백여점 공개

    ◎역대대통령 취임식 영상시청도 가능 얼마나 급했으면 3군 총사령관임명장을 편지지에 대통령이 직접 썼을까. 23일 문을 여는 「기록물상설전시실」(서울 종로구 창성동소재 총무처 정부기록보존소 1층)에 오면 희귀한 자료들을 다수 접할수 있다.그중 하나가 이승만 전대통령의 친필임명장.50년6월30일 남쪽으로 한창 쫓기던 시절,이 전대통령은 당시 정일권중장을 육해공 3군 총사령관및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면서 편지지에 만년필로 임명장을 직접 써 수여했던 것이다. 정부는 총무처 정부기록보존소(소장 김기옥)가 보관하고 있는 주요 문서와 사진류등 시청각자료 8백여점을 선별하여 일반인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이번에 공개되는 자료는 이 전대통령의 친필임명장 이외에도 대한민국정부수립이후 각급 행정기관이 작성한 주요문서와 조선시대·대한제국·일제시대및 대한민국 임시정부문서등 희귀자료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전시실은 「대통령기념코너」「청백리코너」등의 특별코너와 정부기능에 따른 18개 주제별 코너로 구성되어 있다.문서·사진류와 함께 30년대의 무성기록영화 「경성」및 각종 비디오테이프등 시청각자료도 입체전시되어 있다. 역대 대통령기념코너에는 초대 이 전대통령으로부터 김영삼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결재문서등 핵심적 역사기록들이 처음으로 공개된다.휘호,동정사진등 대통령재임시의 상징적 기록물이 시대순으로 배치·전시되어 있다.특히 컴퓨터시스템에 의해 육성녹음과 취임장면의 시청도 가능하다. 주제별 코너에서는 헌법개정원본등 법제자료,관보 제1호등 행정자료,공문서식변천,상훈자료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중 흥미를 끄는 부분은 수결전시장.역대 대통령과 총리,각 부처 초대장관,조선조 국왕은 물론 케네디,대처,네루,장개석,모택동등 외국 유명인사의 사인이 소개된다.김일성의 수결도 있다.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 관청에서 사용하던 인장류 1백60여종도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일반인들의 관람시간은 평일 상오9시에서 하오 6시까지.토요일은 하오 1시까지 공개한다.개관후 한달동안 일요일에도 관람할수 있으며 방문객이 많을 경우 계속 일요공개를 한다는 방침이다.관람료는 무료이며 문의는 720­2705,4549.역사교육을 위해 학생들의 단체관람을 기대하고 있다.
  • 중기애로타개 합동회의 지상중계

    ◎고용보험제 대상 축소 바람직/의견 수렴… 적용범위 신중결정/중기 종합물류센터 건립 시급/5개권역에 집배송센터 세워 이날 합동회의에는 이경식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 주재로 홍재형재무,김철수상공자원부장관 및 이건영건서부차관,신복영한은부총재,안공혁신용보증기금이사장 등 정부및 지원기관에서 15명이 참석했다.회의의 토론내용을 간추린다. ▲이병서페인트조합이사장=신용보증기금의 소규모 중소기업에 대한 운전자금 신용보증은 매출액 규모에 상관없이 2천만원까지만 해주고 있다.이는 턱없이 부족하다.보증한도를 5천만원까지 높여달라.기업체당 보증한도 상한선인 15억원을 30억원으로 확대해 달라. ▲이부총리·안신용보증기금이사장=한도증액은 재무부및 기획원과 협의해 결정하겠다.그러나 유망한 소기업과 창업중소기업의 어려움을 감안,금년 8월부터 운전자금에 대한 신용보증은 3천만원으로 높이겠다.기업체당 보증한도 상한선을 30억원으로 늘리는 것은 기금 규모의 한계때문에 어렵다. ▲김경오 니트연합회 회장=이전조건부나 개선조건부로 등록된 공장의 이전시한이 금년 11월로 끝남에 따라 이전이 불가피한 공장이 많다.그러나 적정한 입지를 구하기 어렵고 막대한 이전자금 마련이 힘들다. ▲김상공자원부장관=상공자원부·건설부·환경처등 관련기관과 협의,9월말까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개선조건부공장은 이미 90%정도가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어 문제가 안되나 이전조건부 공장은 10%정도만 이전했을 뿐이다.건축·환경법상의 저촉사항이 많아 이의 조화문제가 관건이다. ▲권오현 금형조합 이사장=상업어음 할인시 금융기관에서는 최초 어음 발행자의 상호·사업자번호·업종·업태등의 기재를 요구하고 있다.그러나 최종소지자는 최초 발행자에 대한 기재사항 확인이 여의치 않다. ▲신한은부총재=처음 어음을 할인할 경우 한국은행은 최초 발행자의 진성어음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상호등과 같은 기재사항 요구가 불가피하다.앞으로 어음양식을 바꿔 최초 발행자의 정보가 기재될 수 있는 방안을 전국은행연합회측과 협의하겠다. ▲신상락 피복조합 이사장=고용보험제도는 영세 중소기업에큰 부담을 준다.대상과 시기를 축소 또는 연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훈기 노동부차관=앞으로 입법과정에서 많은 의견을 수렴,적용범위를 신중히 결정하겠다. ▲유현기 골판지조합 이사장=중소기업의 골판지에도 농협에서 생산하는 골판지와 같이 부가가치세 영세율을 적용해달라. ▲홍재무장관=조세부담률을 높이기 위해 면세·비과세·영세율 대상 규모를 축소한다는 것이 신경제의 기본이다.앞으로 농협에 적용되는 영세율을 검토하겠다. ▲김원식 슈퍼마켓 회장=중소기업은 유통구조의 취약및 물류시설의 부족으로 과다한 물류비용을 부담하고 있다.중소기업 종합물류센터 건립이 시급하다. ▲이부총리·김상공자원부 장관=물류비용을 줄이지 않고서는 경쟁력을 회복할 수 없다.전국 5개권역에 공동 집배송센터 건립을 계획하고 있으며 중소기업 물류센터 건설을 위해 중소기업 진흥공단이 융자지원을 하도록 할 방침이다.
  • 미·중 군사교류 곧 재개/천안문사태후 처음/군고위급 상호방문할듯

    【북경 로이터 UPI 연합】 미국은 지난 89년 천안문 사태이후 처음으로 대중국 군사관계 개선조치를 취할 태세가 돼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북경주재 한 서방 외교소식통이 15일 밝혔다. 미국 관리들은 중국군이 지난 89년 천안문 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한데 대한 항의로 내린 군사관계 동결조치를 해제할 필요성에 『거의 의견일치』를 보고있다고 이 소식통은 전하고 『4년간의 (미·중)대화단절을 끝내고 군사적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는 공감이 번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관계개선이 이루어질 경우,그 첫 조치로 고위급인사의 상호방문이 이루어질 것임을 시사하면서 그러나 군사장비 판매,기술이전금지 해제조치등은 아마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첨단과학기술/D­22일(대전엑스포’93)

    ◎전기차서 춤추는 로봇까지… “꿈이 현실로”/태양전지 거북선·자기부상열차 첫선/교통수단/과학위성·로켓 발사… 국제항공축제도/기념행사 경제과학의 박람회로 일컬어지는 대전엑스포. 인류의 미래를 향해 상상의 세계를 현실로 이끌어 지구촌을 한마을로 잇는 「지구의 대잔치」대전엑스포는 첨단기술이 무수히 선보인다. 한국의 저력을 세계만방에 과시하고 이를 계기로 경제도약을 이룩해 선진국대열에 진입하려는 두뇌들의 노력이 곳곳에 역력하다. ○조형·시설도 과학적 각양각색의 조형미를 자랑하는 박람회 사상 세계 어느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특수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고 거기에 최첨단 기술개발품이 어우러져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한반도 중허리 대전에서 열리는 엑스포는 이에따라 과학기술사업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전체의 조형에서 위락시설,자연의 재현까지 모두 과학적으로 꾸며졌다는 게 엑스포조직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과학기술사업은 차세대교통수단·우주항공기술·최첨단로봇·에너지신기술등 개발품과 과학기술행사·학술대회등으로 대별된다. 그러나 개중에는 부분적으로 최첨단기술의 새로운 개발이 아니라 선진국 제품을 모방한 흔적이 엿보여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차세대교통수단은 자원재활용 및 환경보호측면에서 신기술을 개발했다. 『과학기술이 나갈 길은 무분별한 발전이 아니라 환경보호측면에서 개발돼야 한다』고 조직위는 강조하고 있다. 이에따라 출품된 제품은 모두가 무공해 차량. 엑스포장 서넘쪽에 설치,운행되는 자기부상열차는 국내 최초로 개발된 차세대주요교통수단으로 기대가 크다. 아름답게 장식된 길이 17·6m,폭3m,높이 3·8m의 자기부상열차는 40인승 1량으로 엑스포기간중 테크노피아관 남쪽에서 서쪽 주차장 사이 5백60m를 곡선으로 운행한다. 「21세기 꿈의 열차」로 불리는 이 열차는 레일에 일정공간을 두고 떠가는 게 특징. 『저도 타볼 수 있습니까』전기자동차를 놓고 엑스포주변에서 오가는 대화다. 축전지의 전력을 이용한 전기자동차는 매연 소음이 없이 시속 최고 60㎞이상을 달릴 수 있는데 6인승으로 이번 행사에서는 귀빈수송·취재·의료등 특수이용에만 사용되고 있어 관람객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자동차는 공해없는 미래의 교통수단으로서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무진장 쏟아지는 자연의 힘 태양에너지를 이용한 교통수단이 이번 엑스포의 특징. 태양전지판을 차의 표면에 덮어 쏟아지는 햇빛을 전기로 변환,자동차구동력을 발생시키는 1인용·3인용 2대로 관람객들을 승차시켜 미래의 꿈을 실감케 해준다. 거북선은 우리민족의 우월성을 세계에 과시한 발명품중의 하나. 그 거북선이 태양전지를 이용해 20명의 승객을 태우고 검푸른 갑천호수를 배회함으로써 한국인의 긍지를 높이는 한편 외국관광객들에게 특색있는 즐거운 놀이를 제공하게 된다. 무한한 환상과 개척의 세계가 우주. 달나라를 기지로 우주의 무한대한 세계를 펼쳐보기 위한 인류의 노력이 이번에도 눈길을 끈다. 과학위성인 우리별2호를 발사해 1천3백25㎞ 상공에서 지구의 적도와 극지방 사이의 경사궤도를 따라 이동하면서 남극세종기지 지상국과 박람회장내 우주탐험관의 지상국간의 교신,자연탐사·농업작황·환경조사등을 실시해 지구는 하나임을 실감케 해준다. 과학로켓의 활약도 관심사. 길이 6.7m,중량 1천2백99㎏의 이 로켓은 엑스포기간중 각종 첨단장비를 탑재하고 발사돼 최고 66.7㎞ 상공에서 대기권·환경보존·무중력상태등을 연구하며 특히 오존측정용으로 이용된다는 것이다. 한국 고대 로켓인 신기전은 우리선조의 지혜를 대변하고 있다. 고려말 최무선이 제작한 것으로 불화살을 쏘는 무기. 기록을 토대로 그대로 복원해 발사시험을 함으로써 고대와 근대의 과학을 비교할 수 있게 했다. ○무인비행선 떠다녀 또 엑스포기간중에 지상관측용 무인비행선이 5백m상공을 떠다니며 교통소통·관람객이동·각종사고등 돌발사태를 고성능 카메라등으로 모니터닝한다. 대전엑스포에 선보이는 최첨단 로봇은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며 인류에게는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대전엑스포의 상징인 꿈돌이 마스코트 로봇은 홍보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한국기계연구소의 기술지원으로 한국미연이 제작한 이 로봇은 우주비행선 모형안에 숨어 있다가 우주음악에 맞춰 우주아기요정의 모습으로 서서히 밖으로 자태를 드러낸다. 꿈돌이 로봇은 자기소개와 함께 인사를 하면서 눈에서는 광채를 내고 머리와 몸통을 앞뒤와 좌우로 자유롭게 움직인다. 한편 더듬이인 별 안테나가 빙빙돌며 깜박거리는 모습은 마치 동화속의 요술지팡이와 같다. 이 로봇은 각종 문화행사에 등장하게 된다. 즉석에서 20분만에 관람객의 모습을 조각해내는 3차원 조각로봇이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카메라가 2∼3초만에 관람객을 촬영하고 입체영상을 분석해 전달한다. 한순간의 표정을 찍었지만 컴퓨터는 사진의 주인공이 웃는 모습·찡그린 모습·우는 모습등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 보여준다. 당사자가 마음에 드는 장면을 선택하면 로봇이 입체적으로 조각해 사인까지 해서 관람객에게 작품을 건네준다는 것. 변화무쌍한 사람의 표정을 불과 20분만에 조각해내는 로봇의 개발은 세계 최초. 한국과학기술원이 제작해 정부관에 전시하고 있다. 사물놀이 로봇의 춤사위 또한 장관.정부관에 전시된 이 로봇은 북로보·징로보·꽹로보·장로보라 이름붙여 북 징·꽹과리·장구등 4개의 악기를 각각 들고 우리의 전통국악인 사물놀이등을 연주하며 춤을 춘다. 이들이 상모까지 돌리는 장면은 흡사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 ○에너지 신기술 소개 에너지신기술로는 연료전지·태양열주택·열펌프·폐타이어 활용등이 선보인다. 연료전지는 석탄이나 석유등과 같은 화학에너지,즉 연소에너지(수소)를 직접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키는 장치. 미래의 무공해전력으로 실용화단계에 이르고 있다. 또 60평규모의 태양열주택은 태양열을 이용해 냉난방·조명·가전제품사용등 이용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열펌프는 낮은 온도의 열을 압축식이나 흡수식등 2가지 방법의 작동매체에 의해 증발과 응축과정을 통해 일정한 온도까지 상승시킨 응축열 및 그에 따른 냉동효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 폐타이어를 활용한 고무아스팔트는 도로포장용으로 우수함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과학기술행사는 청소년들에게 미지의 세계를 활짝 펼쳐준다. 「창조와 탐험의 우주」를 주제로 8월11일부터 4일동안 엑스포극장에서 열리는 세계우주소년단대회는 20여개국 1천2백명이 참가하며 이어 9월에는 세계로봇경연대회,10월중 3일동안은 국제항공축제를 갖는다. 이밖에 비중있는 학술대회도 엑스포기간중 갖게 된다. 세계의 과학자들이 두뇌를 열고 의견을 교환하게 될 학술대회는 대전엑스포주제심포지엄·전통과학국제심포지엄·세계한민족과학기술자종합학술대회. 이렇듯 대전엑스포는 미래를 향한 환상적인 과학의 세계를 실물과 이론으로 보여줌으로써 무한한 꿈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 여장부 박귀희(외언내언)

    『치마를 둘렀으니 여자지만…』.그의 여장부기질을 두고 주변에서 곧잘 이렇게 말하기도 했던 향사 박귀희(본명은 오계화)여사가 영면했다.40년넘게 살아오는 서울 운니동 79의2 자택에서.이집이 지은지 1백년이 훨씬 넘는 전통한옥이다.조선조때 권세있던 내시가 지었다는 것인데 대청마루 천장을 가로지르는 춘양목 대들보는 잘 손질해온 주인의 정성을 말하는듯 반들반들 세월을 모르는 양하다. 판소리에서도 일가를 이룬다는 가야금병창 예능보유자 무형문화재23호.그는 가야금병창의 보존과 보급을 위해 한평생을 몸바쳐온 국악인이다.『어단성장이라 했어요.붙임새는 짧게 목성음은 길게 뽑으라는 말이지요.동편소리는 너무 꼿꼿하고 서편소리는 좀 느끼한 맛이 있어요.이래서 소리제는 섞어 배워야 제맛을 알게 됩니다』.그는 88년,한국바둑사의 중심무대가 되기도 하는 운당여관을 판돈 20억원을 국악예술고등학교재단에 기꺼이 내놓음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한다.국내 첫여성국극단을 창립했을때 싹틔운 꿈을 이룩하는 쾌거였다고 할 것이다. 『옛날엔 꽤괜찮은 얼굴이었어요.한때 영화배우로도 활약한 때가 있었으니까요』.서른 다섯에 우리나라 최초의 총천연색영화 「선화공주」에서 주연했던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그랬던 이「여장부」도 예순을 넘기면서부터 사진찍히는 것을 싫어하게 된다.얼굴의 주름살 드러나는게 보기안좋다는 데서였다.여장부도 역시 여자임에는 틀림없었다 할까. 훌륭한 스승아래 훌륭한 제자는 배출된다.안숙선·강정숙·김성녀·오갑순…등등 수백명이 그의 문하를 거쳐갔다.호남이 주류를 이루는 국악계에서 경북칠곡출신인 그는 영남의 맥을 이어내린다고도 하겠으나 그의 말투만 놓고보면 영락없는 호남사람이다.『아따,멋땀시 그란다요』 『안그라요 잉』.스승과 동료들이 그쪽인데다 소리또한 그쪽 사투리이기 때문이리라. 우리국악사에 큰발자국을 남기고 간 그를 기린다.평안히 잠드소서.
  • 현대 임금협상 노사대화 계속

    【울산=이용호·강원식·이기철기자】 분규중인 울산지역 현대계열사들은 13일 정세영현대그룹회장이 노조방문을 계속하고 사업장별로 노사협상을 통해 이견을 좁히는데 힘쓰고 있다. 정세영회장은 이날 상오 중전기 노조를 방문,김영일위원장등 노조간부들에게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해 이번 주내에 좋은 일이 생기도록 노력하자』고 당부한뒤 「선조업 후협상」을 촉구했다.
  • 조선 공예품전/한국 민화전/명품 모음전/전통미술전 관객 부른다

    ◎서울 묵화랑·동예헌­부산 「고전」서 민예품 전시 뿌리에의 향수를 달래줄 소담한 전통미술전들이 관객을 기다리고있다.서울 동숭동에 있는 묵화랑(745­3980)의「조선시대 민속공예명품전」(31일까지)과 12일부터 17일까지 고미술경매주식회사 동예헌(730­5550)이 개최하는「한국민화전」. 그리고 부산의 고미술전문화랑 고전(051­751­0671)이 오는 29일까지 마련하는 「조선조 명품모음전」이 그 전시들. 격조있는 민속품을 많이 보유하고있는 묵화랑이 올해 처음 마련한 민속공예명품전에는 선조들의 생활의 지혜와 멋이 면면한 선초 표주박 먹통 화약통등의 민속품, 궁중목단 화조 문방구도등의 병풍류, 책장 약장 반다지등의 목기류, 옥향갑 옥비녀 칠보류등의 패물들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 햇빛을 보고있다. 고미술경매로 체제를 확립하고있는 동예헌의 「한국민화전」에는 선조들의 익살과 꿈이 담긴 아름다운 색채의 민화들이 망라된다. 그림의 내용이 단순명쾌하고 솔직한 민화「연화도」「화조도」「목단도」「호렵도」「책가도」「어해도」「수우도」「작호도」「동자도」등 작품의 보존상태와 작품성이 뛰어난 80여점이 출품된다. 부산지역의 고미술전문화랑으로 새로 문을 연 고전이 개관기념으로 선보이는 명품모음전은 「생활예술의 사랑방」을 표방하는 화랑측이 지난 십여년간 모아온 고미술 명품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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