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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대문시장(외언내언)

    서울특별시 중구 남창동.행정구역으로 이렇게 불리는 남대문시장은 이 나라에서 첫손가락 꼽히는 거대한 시장이다.강만길교수가 지은 「한국상업의 역사」에 따르면 남대문주변에 가게가 들어선것은 1414년,조선조 태종 14년.올해로 개장 5백80돌을 맞았다. 그때 조정에서는 지금의 종로와 동대문 그리고 남대문주변에 가게를 지어 상인들에게 빌려준 것이다. 당시 남대문근처에는 금위영,어영청에 딸린 곳간,남창이 있어 지방에서 올라온 곡물을 쌓아두었다.따라서 동대문시장이 무명을 파는 면포전,생선을 파는 어물전,종이를 파는 지전따위가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 일대는 지방에서 곡물을 싣고 올라온 사람들을 상대로 먹거리를 파는 음식시장으로 발달했다.그러다가 일본이 이땅을 강점한 뒤 청과,건어물,육류,생선,일용잡화 등을 파는 본격적인 소비시장이 됐고 이때부터 남대문시장으로 불리게 됐다.그러나 이 시장이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6·25전쟁을 겪은후 월남한 피난민들이 이곳에 삶의 뿌리를 내리면서부터였다. 남대문시장은 밀집한 옷가게등 불에 약한 측면이 많아서 1953년,58년,68년,76년에 큰 불이 났고 올들어서도 불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이 시장의 면적은 1만2천평쯤.점포는 8천6백여개이나 무허가 노점상까지 합치면 1만개가 넘는다.하루에 드나드는 사람은 35만명에서 5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외국관광객도 하루평균 3천여명이 구경을 오는 관광명소이기도 하다.요즈음엔 헝가리,폴란드,루마니아등 동구상인들이 몰려들어 「국제시장」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남대문시장주식회사는 시장의 국제화와 현대화를 위해 오는 10일부터 12일까지 「개장 5백80돌기념 남대문시장대축제」를 펼친다.뜻깊은 행사이다.이 시장은 가장 한국적인 얼굴들이 모여 가장 한국적인 몸짓으로 살아가는 서민생활의 터전이다.국제화도 좋고 현대화도 좋지만 남대문시장의 존재의의는 바로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 시정령 받고 하도급업체 준돈 환수한 대기업 적발

    ◎공정위,4사 고발·1사 시정령 대기업들이 불공정 행위로 시정명령을 받고 하도급 업체에 돌려준 돈을 교묘하게 다시 회수하고 있다.어음할인료나 대금지급 지연이자를 준 뒤,기술지도료라는 이름으로 돌려줄 자금을 공제하기도 하고,장부에만 준 것처럼 기재하기도 한다. 3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불공정 거래에 대한 시정조치 이행상황 점검결과」에 따르면 지난 해 공정거래법 또는 하도급법 위반행위 7백70건의 시정조치 이행실태를 점검한 결과 대우계열의 대우통신,벽산계열의 동양물산기업,삼환기업,대선조선 등 4개 업체가 하도급 업체에 돌려줘야 할 금액을 부당하게 공제하거나,되돌려 받은 혐의로 모두 검찰에 고발됐다. 또 하청업자가 공정위에 부당 하도급 행위를 신고했다는 이유로 하도급 대상에서 빼버린 흥화공업에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 농·수·축협개편 연계돼야(사설)

    농협중앙회가 마련해서 발표한 조직개편안은 개혁의지를 대폭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농협의 개편안은 중앙회장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을 분리하여 독립사업본부체제로 운용하는 것으로 되어있다.농협은 그같은 조직의 이원화를 추진하는 동시에 중앙회 조직과 인원을 현재의 절반가량으로 감량하고 유통자회사의 설립을 추진키로 했다. 회장권한 축소와 중앙회인원의 대폭감축은 조합체제를 현행의 상의하달식에서 하의상달식 체제로 바꾸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동시에 경제사업업무와 신용업무의 분리와 유통자회사 설립은 지금까지 조합의 본원적인 업무인 생산·판매·공동구매 등의 사업을 소홀히 한채 금융업무만 치중해온 폐해를 시정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농협이 현재 안고 있는 문제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스스로 개혁방안을 제시했다는 것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만하다.농협개편안은 다른 생산자단체의 개편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 수·축협의 개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고 정부의 생산자단체 개편방안 수립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농·수·축협등 생산자단체의 개편은 상호연계를 갖고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정부는 종합적인 개편방안을 빠른 시일안에 마련해야 할 것이다.농협개편안이 제시하고 있는 경제사업과 신용사업분리의 경우 궁극적으로는 농·수·축협의 신용업무를 통폐합하여 대형화해야 한다고 본다.그 점에서 농협안은 생산자단체의 신용업무 통폐합에 앞선 실험적 운용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농협의 유통자회사 설립 역시 수·축협의 유통체계 정비와 연계시키지 않으면 안된다.정부는 농산물의 유통혁신을 위해 농·수·축협이 출자하는 유통회사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따러서 농협이 단독의 유통자회사를 설립하기보다는 정부가 설립을 추진하는 유통회사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농협개편안은 중앙회조직의 축소에 따라 감축된 인원을 유통자회사에서 흡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그러나 새로 설립되는 유통회사가 퇴직임직원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회사가 되어서는 안된다.이 회사에는 유통분야 전문경영인을 영입,채임경영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또 농협이 추진하려는 일선조합의 전문경영인제 도입은 절실한 과제이지만 단위조합에 적합한 전문경영인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그러므로 각 생산자단체가 전문경영인의 발굴과 육성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농협 등 생산자단체의 개편에는 기존 조직의 반발 등 여러가지 어려움이 수반될 것이다.그러한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 농지개량조합 공기업화 추진/민자 UR대책위/농업용수 무상제공도

    민자당은 1일 농업용수 지원능력을 높이고 경지정리등 신농정을 적극 뒷받침하기 위해 농지개량조합을 공기업화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민자당 국가경쟁력강화특위 UR대책소위(위원장 신재기)는 이같은 농지개량조합 개편안을 마련,2일 하오 당차원의 최종방침을 확정키로 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2조원이 넘는 농지개량조합 재산과 국가소유 농업용수시설의 현물출자를 통해 시·군산하에 농지개량공사를 지방공기업으로 설치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신농정의 제반업무를 수행할 지방공기업 책임자는 군수가 임명토록하되 현재의 민선조합장은 잔여임기를 마칠수 있도록 경과규정을 두고 조합직원들은 신설 공기업 직원으로 전환근무토록 했다. 또한 농업용수 무상공급을 위한 국가지원은 UR 보조제한 규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공기업 운영이익금으로 농업용수 공급경비의 대부분을 충당함으로써 농민들에게 각종 농업용수를 무상으로 제공키로 했다. 신위원장은 『민간단체인 농지개량조합이 전체의 55%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으나 그나마 전지와 초지는 전혀 손을 못대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이제 농업용수는 정부가 책임지고 무상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우리 가락·우리 춤 “신명의 한마당”

    ◎6월25일까지 서울놀이마당서 중요무형문화재 발표회/농악·가면극·굿·탈춤·산대놀이 등 공연/27개 종목·34개 보유단체 1천명 출연 우리 민족의 흥과 멋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농악과 굿,가면극등이 5월 1일부터 6월 25일까지 잠실 석촌호수 옆 서울놀이마당에서 잇따라 펼쳐진다.문화재관리국이 주최하고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주관하는 제25회 중요무형문화재 마당종목 발표공연이 그것. 우리 조상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농경사회를 통해 형성된 귀한 문화유산을 직접 보고 배우는 시간이 될 이번 공연엔 모두 27개 종목에 34개 보유단체가 출연한다. 마당에 나서 흥겨운 가락과 장단,춤사위 등으로 신명나는 한판을 벌일 연희자는 예능보유자와 전승자를 합해 1천여명. 특히 「북청사자놀음」의 전광석,「밀양백중놀이」의 하보경,「동해안별신굿」의 김석출,「진도다시래기」의 강준섭 등 67명의 예능보유자는 전통예술의 참맛을 만끽하게 해준다. 또 국악의 해와 한국방문의 해를 기념하여 전국 곳곳에서 이어져온 농악과 가면극,굿등을 같은 종목끼리묶어 하루 2종목씩 선보이고 외국인 관람객들을 위해 공연 프로그램을 영어와 일어로 만들었다. 그리고 선조들의 생활문화와 그 시대의 풍속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전통예술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구경할 수 있도록 공연날자를 매주 토,일요일(5월 오후 3시,6월 4시)로 잡았다. 문화재관리국은 지난 60년부터 예능보유자의 원형보존 상태를 점검하고 이수자의 전수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봄에는 마당종목을,가을에는 무대종목을 각각 무대에 올려왔다. 이를 위해 문화재위원과 전문위원들은 지정된 문화재의 원형이 제대로 보존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 문제가 있을 경우,이를 해당 보유단체에 통보하여 시정토록 하고 있다. 다음은 마당종목 발표 공연 내용이다. 5월 공연 ▲7일=양주별산대놀이,강령탈춤 ▲8일=봉산탈춤,은율탈춤 ▲14일=하회별신굿 탈놀이,가산오광대▲15일= 통영오광대,고성오광대 ▲21일=수영야유,동래야유 ▲22일=강릉농악,남사당놀이 ▲28일=평택농악,진주·삼천포농악 ▲29일=이리농악,임실필봉농악 6월 공연 ▲4일=좌수영어방놀이,밀양백중놀이 ▲5일=고성농요,예천통영농요 ▲11일=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황해도평산소놀음굿 ▲12일=남해안별신굿,동해안별신굿 ▲18일=남도들노래,진도씻김굿 ▲19일=진도다시래기,강강술래 ▲25일=줄타기,택견,대취타,양주소놀이굿
  • 조선 청화백자 24억에 팔렸다/뉴욕 크리스티 경매소서

    ◎도자기 경매사상 세계최고가 기록 조선조초기인 15세기에 만들어진 청화백자 보상당초문 접시(지름 21.9㎝)가 세계도자기 경매사상 최고가인 3백8만달러(한화 24억6천만원)에 팔렸다고 뉴욕의 크리스티경매소가 28일 밝혔다. 크리스티경매소측은 지금까지 국제경매에 부쳐진 한국 예술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이 도자기가 지난 27일 전문가들의 당초 예상가격인 30만∼40만달러의 10배에 달하는 가격에 팔려 전세계의 도자기 경매사상 최고기록을 세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도자기가 형태가 좋고 짜임새가 우수할 뿐만 아니라 무늬도안이 매우 선명하고 드문 모양』이라면서 높이 평가했다. 지금까지 한국 미술품으로서 국제경매장에서 가장 높은 가격에 팔린 것은 지난 91년 10월 1백76만달러(한화 14억원)에 낙찰됐던 14세기의 고려불화 「수월관음도」였다. 또한 도자기중 세계 최고경매가를 기록한 작품은 지난 92년 12월에 2백86만달러(한화 23억원)에 팔린 중국 명대의 항아리와 그 덮개였다. 경매소측은 이번에 팔린 도자기가 현존하는 같은 모양의 도자기 3점 가운데 하나로 나머지 2점은 일본 오사카(대판)의 동양도자기박물관과 야마가타(산형)현의 데와자쿠라박물관에 각각 소장돼 있다고 밝혔다. 이번에 조선조 도자기가 사상최고시세로 팔려나간 것은 예술품경매시장에서 한국도자기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크리스티경매소는 설명했다. 이 당초문접시의 낙찰자 인적사항은 크리스티 경매장 관례에 따라 알려지지 않았으나 경매장 주변에서는 한국인,일본인,또는 한국계 미국인 등 동양계일 것으로 추측했다. 이 경매품의 가격은 두 명의 전화응찰자가 경쟁하는 바람에 더욱 고가로 낙찰됐으며 세계 최고가를 기록하자 경매장의 모든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번 경매에서 관심을 모았던 또 다른 작품은 15∼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분청사기 어문병으로 예상가격 8만∼10만달러였던 이 병은 일본인에게 18만9천달러에 팔렸다. 이날의 경매는 한국 미술품 단독 경매였으며 청자·백자·분청사기등 도자기와 금속공예품·수묵화와 현대회화로 박수근 도상봉 이응로 김흥수 이대원씨등의 작품 1백4점이 출품됐다. 현대화가들의 개수양 대부분 예상가를 웃도는 값에 낙찰된 것으로 알려졌다.
  • 석봉필첩 등 고서기증/김덕안기부장,성대에(조약돌)

    ○…김덕안기부장이 최근 소장하고 있던 조선조의 고서 46종 3백16권을 성균관대 중앙도서관에 기증한 것으로 밝혀져 눈길. 성대도서관측은 『김안기부장이 올해초 고서기증 의사를 밝혀오다 지난 16일 도서관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조선 선조 30년(1597년)때의 목판본인 석봉필첩을 비롯,정조 21년에 발간한 향례합편등 역사적 가치가 있는것으로 판단되는 고서 3백16권을 기증했다』고 발표.
  • 「좋은만화 잔치」 구경 오세요/서울Y,25일부터 교보문고서 열어

    어린이들을 위한 만화를 모니터하고 있는 서울YWCA는 25일부터 5월5일까지 교보문고에서 올해의 좋은만화 잔치를 마련한다. 「어린이 날 선물은 좋은만화로 합시다」를 행사표어로 내건 이 행사는 서울Y 어린이만화 모니터회가 최근 1∼2년동안 동안 선정한 오락·학습만화 57종 1백30권을 전시 판매하는 행사로 수익금은 소년·소녀가장 돕기 기금으로 사용된다. 특히 좋은만화 잔치기간중 이달 30일과 5월1일·5일의 하오2∼4시에는 인기만화가 이향원 이희재 윤승운 이정문 김형배씨등이 현장에 나와 만화를 구입하는 어린이들에게 사인회를 가질 계획이다. 한편 서울Y 어린이만화 모니터회가 선 뵐 주요만화는 다음과 같다.심술북­작가 이정문,겨레인걸(1∼4권)­윤승운,조선시대­윤승운,두손이­이두호, 즉흥환상곡­김형배,천지­한재규,엄마는 요술쟁이­문계주,나의라임오렌지나무 1·2권­이희재,오추매의 0점일기­이진주,악동이 1∼3권­이희재,떠돌이 검둥이 1∼3권­이향원,우리선조의 참다운 삶­이두호,아버지와 아들­이숙희(번역),코망쇠형제들­오원석,돌배군1∼3권­신영식,공룡나라 우리엄마­박수동,날아다닌 바위의전설1·2권­윤승운,검정고무신­이우영,하나뿐인지구­신영식,귀여운쪼꼬미­김수정,신판오성과한음­박수동,8인작가모음집­김수정,아기공룡 둘리­김수정.
  • 조선왕조실록/콤팩트 디스크에 담는다

    ◎문체부,최근 국역 완료된 「실록」 98년까지 마무리 하기로/국역본·표점원문 살린것 두종류 간행/방대한 분량의 원본 찾기쉽게 전산화 조선왕조 실록이 읽기전용 콤팩트 디스크인 CD­ROM에 담겨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된다.문화체육부는 올해부터 98년 까지 5개년 계획으로 세종대왕기념사업회,민족문화추진회,서울시템과 공동으로 최근 국역이 완료된 조선왕조실록을 최첨단 과학고 접목시키는 CD­ROM간행사업을 추진한다. 이 사업은 국역본만 담는 것과 국역본에 표점원문 까지 수록한 것 등 두가지로 진행된다.표점은 한문원문에 구두점을 찍거나 인명,지명,관직명 등 고유명사를 나타내 이해를 돕는 기호다. 국역본만을 수록하는 사업은 ▲1차로 올해말 까지 태조부터 성종까지 98책 ▲95년 연산군에서 인조까지 1백58책 ▲96년 효종부터 철종까지 1백45책등 3개년 계획으로 추진하며 97년에 전질 3매를 보급한다. 표점원문을 함께 수록하는 사업은 ▲올해 태조∼태종 3대조 ▲95년 세종∼성종 6대조 ▲96년 연산군∼선조 5대조 ▲97년광해군∼경종 6대조 ▲98년 영조∼철종 5대조 등의 순서로 5년에 걸쳐 완료한다. 수록자료에 대한 교열 및 감수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와 민족문화추진회가 맡고 자료의 입력과 CD­ROM 개발을 위한 프로그램의 제작은 서울시스템이 담당한다.원문표점 등과 같은 연구업무에는 역사학 등 관련분야 연구자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할 계획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 태조에서 철종에 이르는 25대 4백72년동안의 역사를 기록한 것으로 한문원본의 경우 1천8백93책에 수록글자수가 5천3백여만자에 이른다.최근 세종대왕기념사업회와 민족문화추진위원회가 26년만에 완료한 국역본은 모두 4백13권으로 수록된 글자수는 무려 1억5천여만자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이 때문에 찾고자하는 자료에 대한 정확한 사전정보 없이는 자료의 조사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며 가격도 전질의 경우 4백40만원이나 돼 개인은 소장하거나 활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CD­ROM사업은 바로 이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프로그램 제작을 맡은 서울시스템의 이웅근사장은 『치열한 국제경쟁시대에 우리 전통문화와 학문은 훌륭한 자산인데도 소수 동호인들의 기호품 정도로만 취급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면서『이번에 국역이 완료된 조선왕조실록을 첨단산업과 접목,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사업에 참여하게돼 큰 보람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이사장은 『방대한 분량의 실록의 국역이 활용도를 높이는 기초작업이었다면 이번 CD­ROM사업은 이를 완결짓는 작업이니만큼 모든 기술과 인력을 동원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제작 실무책임자인 이 회사 데이터 베이스실장 김현박사도 『오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젊은 한국사학자와 한학자들을 되도록 많이 참여하도록 하는 등 책을 다시 펴낸다는 각오로 훌륭한 작품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문화체육부는 이 사업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 김도현차관(위원장)과 박종국세종대왕개념사업회장,이원순민족문화추진회장,이웅근서울시스템사장,김명곤교육부 대학정책실 학사심의관 등 6명으로 간행위원회를 구성,운영키로 했다.또국역본의 내용이 너무 어렵다는 지적이 많아 실록의 용어를 풀어쓴 용어사전도 개발하기로 했다.
  • 50%가 “결혼 무르고 싶은적 있다”고(박갑천칼럼)

    최근의 영국 인디펜던트지에 실린 해럴드 맥밀런 전총리에 관한 기사가 주목을 끌게 한다.그가 총리로 되기전 30년 동안이나 그의 부인 도로시여사는 정부와 놀아났다는 얘기이다.그 사이에서 계집아이까지 낳았는데도 그는 입적시키면서 감싸고 돌았다.이혼이 정치적 생명과 관계되기에 그렇다고도 하지만 참을성 한번 대단하구나 싶다.결혼 무르고 싶은 마음이 어찌 없었다고야 하겠는가. 경우가 좀 다르긴 해도 이와 관련해서는 왜란·호란등 외침을 당했을 때의 우리 부녀자들 문제를 되짚어 보게 한다.그 내용이 이맹휴의 「춘관지」 등에 적혀 내려온다. 임진란 동안 사부가의 부녀자도 많이 왜병에게 잡혀갔다.난이 끝난 다음 그런 집안과는 혼사를 맺고자 않을 뿐만 아니라 지아비들도 잡혀갔다 온 아내를 내치고 개취하려 한다.이에 대해 선조임금은 실절이 아니라면서 윤허하지 않고 있다.병자호란후 조문수와 인조임금 사이에 있었던 대화도 바로 그 경우였다(조선왕조실록:인조무인조). 이를 도로시여사의 자유분방했던 사례와 같이 생각할 수야 없다.어쩔수 없는 상황속의 실절이었으니 말이다.당시의 양반계급에서는 이혼출처를 하려면 왕의 윤허를 얻어야 했던 것인데 허락이 없어 함께 살아야 하는 고통은 컸다고 할 것이다.왕명에 따라 살긴 살아도 평생을 두고 무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일었겠는가. 이건 물론 부부생활에서의 최악의 경우들이다.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남녀 할것 없이 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문득 하게 되는 것이 결혼생활의 내막 아닐까 한다.얼마전 인천제철에서 사원들을 대상으로 행한 설문조사 결과에도 그런 심리는 나타난다.50%가 무르고 싶은 적이 있었다고 응답했던 것인데 좀더 정직하게 대답했다면 그보다 훨씬 높았던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신이 아닌 사람이고 보면 허물과 허물 속에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더구나 남의 밥에 든 콩은 굵어보이는 법.그 남의「굵은콩」을 보면서 무르고 싶은 충동에 빠져드는 것은 자연스런 사람마음이랄 수도 있다. 결혼 물러버리는 경우들이 늘어만 가는 세태다.그러나 한번 무른 사람은 두번 세번 무를수도 있는 것이 세상사.사실,우수의 철인 키르케고르가 말했듯이 결혼이란 해도 후회하고 안해도 후회하게 된다는 측면을 지닌다.그렇다 할때 결혼한 사람들이 가져야할 중요한 마음가짐은 무르고 싶다는 후회를 무르고 싶지 않다는 확신으로 이끌어가는 노력이다.이해하고 용서하며 참는 가운데서 기쁨을 맛보게 되는게 결혼생활의 실상아니던가.
  • 주점:중/작부있는 「색주가」 세종때 첫등장(서울 6백년만상:25)

    ◎포주는 지금의 깡패… 여자꾀어 영업/무교동에 많아… 포졸들에 정기상납 작부가 옆에 앉아 노래가락을 곁들여 가며 술 시중을 드는 색주가가 서울에 첫 등장한 것은 조선조 세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색주가는 당시 지금의 홍제동인 홍제원에서 처음으로 문을 열었던 것으로 자료들은 전하고 있다.홍제원은 바로 중국으로 떠나는 길목인데다 서울에서 가까와 사신들을 환송하고 또 출영하는 장소였다.중국 출발에 앞서 사절들이 홍제원 벌판에 머물 때는 여기저기에 천막이 쳐지고 마치 잔치집처럼 사람들이 모여 들끓었다. 사절이하 역관의 천막에는 진수성찬에다 기생들의 풍류소리가 요란한 반면 교군·군졸등은 술잔이나 나누며 쓸쓸하게 보내곤 했다.그래서 먼길을 떠나는 이들 하속을 위안하고자 세종은 한성부에다 영을 내려 홍제원에 색주가를 두게 한 것으로 전해 내려온다.그뒤로 남대문밖 잰배(자암)·낙원동·수운동등에 색주가가 몰려 들었다. 색주가들의 포주는 대개가 왈패들,지금의 깡패들이었다.포도청 포교들의 끄나풀이 많았다고 한다.이들은 범죄자의 딸이나 누이를 위협해 데리고 오기도 했고 시골의 어수룩한 집 여자들을 꾀어 데려와 잡가를 가르쳐 영업을 하게 했다.포주들은 포교나 포졸들에게 정기적으로 상납을 했었다.예나 지금이나 유흥가에는 폭력과 이권이 함께 따라 다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다동과 무교동은 술집동네로 유명했다.이는 관기제도가 없어지자 술자리에서 술시중을 하던 기생들이 이 일대에 「기생조합」을 만들어 모여 살아 일제시대에서 해방후로 이어졌다. 기생에게도 「1패(배)·2패·3패」의 등급이 있었다.1패는 어전에 나가 가무를 하는 최고급 기생이었고 2패는 관가나 재상집에 출입하는 기생,3패는 창기로 몸을 파는 그런 기생이다. 옛날 관기들은 전출오는 관원이 독신으로 부임하기 때문에 객고를 풀어 주는 등 접대 위안하는 신세였다.오입쟁이들이 기생을 만나자면 오늘날처럼 요정이 없던 때라 기생의 집으로 찾아 들었다. 기생집을 찾아가서 이미 와 있는 오입쟁이들에게 인사하는 법이 『편안하오?』이고,기생한테는 『무사한가?』였다.또 먼저 온 놈팽이들이 너무 늘어 붙어 앉았으면 『신입구출 합시다』라고 사뭇 나가주기를 재촉했었다.즉 새로운 사람과 교체하자는 뜻이다. 기생은 반드시 치마를 오른쪽으로 여미는데,남의 첩이라도 되면 왼쪽으로 여밀 수 있었다.그 치마를 외로 입어보는 것이 기생들의 염원이었다. 지난 70년대에 풍미하던 「영자의 전성시대」「별들의 고향」등의 소설·영화가 아니더라도 예부터 술집과 호스티스들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은 수없이 많았다.1926년에 희동서관에서 「강명화 실기」가 상·하 2권으로 발간됐다.이 책의 광고문안은 『천추에 원한을 품고 신성한 연애에 희생된 절대가인,그 다정다한한 정경,비절참절한 하소연,어쨌든 한번 보시오』였다.이 책은 나오자마자 날개돋친듯 팔렸다.
  • 제모습 찾는 경복궁후원(청와대)

    청와대 정문 앞 길건너 맞은편에 신무문이 있다.경복궁의 북문.항상 헌병 두사람이 서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곳이다.그 안에 청와대 경비업무를 맡고 있는 수도방위사령부 제30경비단이 주둔하고 있다. 30년 넘게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던 이곳이 내년말쯤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다.청와대 주변 군부대의 외곽이전 방침에 따라 30단의 본부와 내무반이 모두 서대문구 현저동 제33단 자리로 옮겨가게 돼있어 경복궁의 후원으로 제모습을 되찾게 되는 것이다. 이곳의 넓이는 모두 1만2천평.61년 5·16 때 서울에 들어왔던 군부대가 이곳에 주둔하면서 경복궁후원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일반인 출입금지구역으로 됐다. 30단의 내부는 연병장과 테니스장일대,탱크·차량등이 있는 주차장일대,문화재건물일대등 3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이들 땅의 내력은 서로 다르다. 연병장지역은 경복궁 창건 때 궁중에 상이 나면 시신을 안치하는 건물을 세웠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건물 이름은 태훤전·영사재 등이었던 것으로 구전된다.그러나 정확한 고증자료가 없어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도 복원하지 못했다고 한다. 따라서 5·16 때도 지금의 연병장은 그저 빈터로 남아 있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조선조말에는 이곳이 궁중요리에 쓸 소나 돼지의 도축장으로 사용됐고,일부는 궁궐수비대가 궁중난방용 장작을 쌓아 놓기도 했던 곳이다.이를테면 궁중의 궂은 일을 하는 곳이었다.그래서 터가 세다는 말도 들린다. 주차장지역에는 천체관측을 하는 간이대·규표등의 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역시 건물은 남아 있지 않다. 옛 문화재가 남아 있는 지역은 30단 본부건물 앞.청와대 쪽 담장을 등지고 팔우정.집옥재·협길당이 왼쪽부터 차례로 서 있다. 이들 건물은 모두 궁중도서관겸 서재로 쓰였던 곳이다.집옥재와 협길당은 정면 5칸에 측면 4칸짜리 기와집이다.팔우정은 8각 2층의 중국풍 정자.한때 명성황후의 독서실로 이용됐다고 한다. 이곳에는 보현당이란 건물도 나란히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그러나 1917년 창덕궁에 큰불이 나 복원공사를 할 때 이 건물의 목재를 가져다 쓰느라 헐어버렸다고 문화재관리국의 안내판은 설명하고 있다. 30단본부는 전두환전대통령이 이곳 대대장으로 있을 때인 지난 68년1월에 준공한 2층 슬래브 건물이다.12·12 때 신군부의 주도세력들이 모여 병력이동을 지휘했던 부대장실은 이건물 2층에 있다.또 하나 「현대사의 장」인 셈이다.따라서 이 건물을 과거사의 복원을 위해 헐지,아니면 「역사의 현장」으로 보관할지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듯 하다. 이곳의 명물은 집옥재 앞에 있는 수십그루의 큰 은행나무들.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오래된 문화재들과 어우러져 특이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이곳이 개방되면 시민들의 공간은 그만큼 더 늘어난다. 그러나 청와대 경호실의 부담은 훨씬 더 커진다.아무리 문민시대라 하더라도 군이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경비업무를 맡는 것을 이상하게 볼 필요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무엇보다 군이 철수하면 청와대 경비에 드는 비용이 엄청나게 불어난다.청와대 경비업무의 일부를 맡고 있는 서울지방경찰청 제101경비단만 해도 연간 1백억원이 넘는 비용이 든다.비슷한업무를 맡은 30단의 예산은 그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 일 시장개방 노력/한국선 긍정 평가

    외무부는 30일 일본정부가 발표한 경상수지흑자 감소및 일본시장접근 개선조치를 골자로 하는 대외경제개혁요강에 대해 『일본정부의 내수 확대와 수입 증가등 시장개방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당국자 논평을 냈다.
  • 신춘 춤무대 한국춤 바람/태평무·승무·장고춤서 창작무까지 공연

    ◎김세일라·국수호씨 창작무용 선보여/윤덕경·이윤자씨 충주·정주·부산서 춤판 중견춤꾼들의 의욕적인 춤무대가 신춘무용계를 잇따라 장식,관심을 모으고 있다.김세일라(김세일라무용단 단장),국수호(중앙대 무용학과교수),윤덕경(서원대 무용학과교수),이윤자씨(부산대 무용학과교수)등이 그들.공연을 앞두고 막바지 연습이 한창인 이들은 모두 한국춤 분야에서 독자적 세계를 구축하고있는 중진들이어서 한층 묵직한 무대가 될것으로 보인다. 「김세일라무용단」은 28·29일(하오7시30분) 93년 공연예술창작활성화 지원작품인 「파야」를 서울 국립극장 대극장무대에 올린다.신라시대 「파야」라는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 권력의 광기와 숭고한 사랑의 힘을 절제된 춤언어로 풀어낸 이 작품은 특히 산사에서의 종춤이 압권.이는 인간의 심리적 갈등과 고뇌를 불교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것으로 한국무용만이 갖는 독특한 「정중동의 흐름」을 읽게한다. 국수호교수는 춤인생 30년을 결산하는 개인전「춤」을 오는 4월22일(하오7시30분),23일(하오4시·7시30분),24일(하오4시) 서울 국립극장 대극장무대에서 펼친다.우리 민속춤의 동작과 호흡법을 기초로 의욕적인 안무활동을 해온 그가 선보일 무대는 조선조 5백년의 진혼무인 45분짜리 대작「명성황후」를 비롯,독무「신무1­신고」,베트남전의 원혼들에게 바치는 「혼의 바다」등.이 가운데 특히 서울정도 6백년 기념무대로 마련된 「명성황후」는 한국판 진혼곡인 종묘제례악과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합성,동서양음악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윤덕경무용단」은 30일부터(하오7시)사흘간 충주(충주문화회관),대전(우송문화회관),정주(정읍사예술회관)등 3개시에서 지방순회공연을 갖는다.승무·태평무·살풀이·장구춤등 전통무용 외에 「보이지 않는 문」등 창작춤도 선보일 이번 공연은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인 윤교수의 11년 안무생활을 중간점검해보는 무대.왕성한 실험정신으로 우리춤의 주제찾기에 골몰해온 그는 『죽음과 삶을 동질적으로 보는 한국인의 심성을 삶의 통과의례를 통해 표현하는데 안무의 역점을 뒀다』고 말했다. 이밖에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이수자로 우리춤의 맥을 잇기위해 노력해온 이윤자교수의 다섯번째 개인춤판이 29일 하오7시30분 부산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다.「이윤자 춤­화두」로 명명된 이번 공연에서는 우리 근대무용의 시조라할 한성준옹이 다양한 춤사위를 집대성해 만든 전통민속춤 「태평무」를 비롯,창작무용「제행무상,늘 새로운 현재여!」「히말라야 설음」등 3편의 작품이 선보인다. 한편 중견춤꾼들의 이같은 풍성한 봄맞이무대는 대부분 인간적 삶의 근원을 모색하는 완성도높은 대작들로 꾸며지고있어 한 무용가의 개인적 자화상을 엿보는것 이상의 철학적 의미를 갖게한다.
  • 「임정 구지」 현판 만지며 감회 젖어(김대통령 방중여로)

    ◎「한민족 독립운동의 성전」 기념휘호 남겨/연도의 중국인,김대통령 알아보고 박수 ▷상해시장 접견및 만찬◁ ○…김영삼대통령내외는 상해도착직후 임정청사를 둘러본뒤 숙소인 신금강호텔 4층 백옥란청에서 황국상해시장 일행을 접견,10여분간 환담한뒤 황시장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 김대통령은 황시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처음 중국을 방문하는 것이지만 공항에서 오면서 1천3백만 인구의 상해시가 생동감으로 가득차 있다고 느꼈다』며 『특히 우리나라 주요기업들의 간판이 거리 곳곳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대단히 반가웠다』고 상해방문 소감을 피력. 김대통령은 『우리나라와 중국은 수교역사가 불과 1년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도 놀라운 교역량 증가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상해시는 중국 발전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큰 희망이 있다』고 언급. 김대통령은 또 『우리나라의 임시정부청사를 돌아보면서 선조들이 그 좁은 장소에서 독립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는 사실에 큰 감명을 받았다』며 감회가 깊은 표정. 김대통령은『상해시는 바로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와 중국을 잇는 큰 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임정청사를 잘 보관해온데 대해 매우 감사하다』고 사의를 표명. 황시장은 이에앞서 『대통령의 상해시 방문은 한국기업의 중국진출등 양국간의 경제협력 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인사. ▷임정청사방문◁ ○…상해의 숙소인 신금강호텔에서 한시간의 휴식을 취한 김대통령내외는 승용차편으로 상해시 노만구 306동4호에 있는 상해 임시정부청사를 30여분 방문. 김대통령은 청사건물 골목을 걸어들어가 건물입구의 흰대리석에 새겨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란 현판을 손으로 만져보며 잠시 감회어린 표정을 지은뒤 건물관리소장인 장명목씨의 안내를 받으며 3층 건물내부를 돌아봤다. 김대통령은 장소장으로부터 임시정부 원년인 1919년 첫 임정국무원 요원들이 기념촬영한 사진설명을 듣고는 『너무 젊을때 사진이라 잘 알 아 볼수가 없다』고 안타까움을 표시. 김대통령은 특히 신익희선생의 모습을 보고는 『어제도 와세다대학에서 선생님 얘기를 했었는데…』라며 『그분을 모시고 정치를 처음 시작했었다』고 회고. 이어 3층에 올라가 요인숙소를 둘러본후 『이렇게 좁은집에서 많은 분들이 함께 지냈으니 얼마나 어려웠겠느냐』고 임정요인들의 애국심을 되새기기도. 이어 숙소옆방에 마련된 전시실로 자리를 옮긴 김대통령은 임정수립당시의 활동상황이 실린 당시 신문기사·사진·그리고 도산 안창호선생의 친필휘호 「애기 애타」등을 어루만지며 관심을 표명. 김대통령은 장관리소장에게 『귀중한 자료들을 잘 보관해주었다』고 감사의 뜻을 표시하고 1층회의실에 내려와 회의용 탁자에 준비된 방명록에 「한민주 독립운동의 성전」이라고 기념휘호. 임정청사는 건평 44평에 3층연립주택형 벽돌건물로 현재 상해시가 「노만구 문물보호」건물로 지정,관리하고 있는데 비교적 깨끗이 관리되고 있는 상태. 한편 김대통령 내외가 청사방문을 마치고 나오자 큰길 양편에 몰려있던 수백명의 중국인들이 김대통령을 알아보고 박수를 보냈고 이에 김대통령은 특유의 제스처로 손을 흔들어 답례. ▷상해도착◁ ○…김영삼대통령은 26일 하오 도쿄를 출발한 지 3시간만에 상해에 도착,4박5일의 중국 공식방문일정을 시작. 김대통령은 윤해중상해주재총영사와 중국의 전차장의 기상영접을 받고 트랩을 내려오며 태극기와 오성홍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교민 1백여명에게 손을 들어 답례. 이어 트랩을 내려와 영접나온 황국상해시장과 장정연주한중국대사내외등 중국측 인사와 반갑게 악수를 교환하고 상해시 남녀화동 2명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서는 이들의 뺨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시. 김대통령은 이어 「선진조국의 영도자 김영삼대통령」「성공적인 중국방문을 기원합니다」라고 쓴 플래카드를 걸고 환호하는 교민들에게 다가가 특히 앞줄에 선 어린이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숙소인 신금강호텔로 출발. ▷현지반응◁ 중국의 각 신문들은 이날 일제히 김대통령의 약력과 치적등을 중심으로 방중관련기사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기 시작. 당이론지 광명일보는 「김영삼,누적된 폐해(적폐)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란 제목의 특집기사를 통해 여론조사결과 대다수 한국인들이 김대통령의 지난 1년간의 정치개혁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보도. 이 기사는 김대통령이 그동안 한국병의 근원적인 치료를 위해 고위공직자들의 재산공개와 금융실명제등을 추진해왔고 계속적인 개혁을 통해 문민통치하의 「청렴정치」를 실현해가고 있다고 소개. 당기관지 인민일보도 이날 1면에 김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약력등을 소개하고 2면과 3면에서도 한국관련 특집기사를 게재. 인민일보는 이어 2면에서 「합작을 확대,공동발전한다」는 제목으로 서울주재특파원이 쓴 특집에서 중국은 한국의 가장 큰 해외투자대상국이자 세번째로 큰 파트너가 됐다고 지적.이 기사는 또 요즘 한국에서는 중국붐이 일어나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인기를 누리고 있는가 하면 도로표지판에 한자가 등장하고 한자소프트웨어가 개발되는등 사그러들던 한자들이 다시 부활되고 있다고 소개.
  • 김 대통령 출국인사 요지

    나는 오늘부터 일주일동안 대통령 취임후 처음으로 일본과 중국을국빈자격으로 공식 방문합니다. 세계화의 조류속에서 오늘의 국제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나라사이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지고 상호의존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특히 UR이후의 새로운 세계무역질서는 무한경쟁에 접어들고 있습니다.이러한 시대변화속에서 한·중·일 세나라가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함께 누리기 위해서는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일본과 중국은 우리의 두번째와 세번째 교역국입니다.중국은 우리의 해외투자가 가장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입니다.경제의 세계화 추세속에서 산업구조와 그 발전단계가 다른 세나라가 협력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세나라는 상호 보완적인 협력과 제휴를 통해 각기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또 이번 방문에서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세나라가 협조할 방안에관해 깊이 있는 협의를 가질 것입니다.특히 북한의 핵문제는 우리의 직접 문제일뿐아니라 동아시아의 안정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IAEA핵사찰을 성실히 받지 않고 남북대화마저 일방적으로 단절하여 한반도의 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심지어 전쟁불사 등의 극언으로 우리 국민을 협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미간의 굳건한 안보협력 체제아래 우리는 저들의 어떠한 도발도 단호히 물리칠 것입니다.우리는 결코 저들의 협박에 굴하지 않을 것입니다.그러나 저들이 언제라도 자세를 바꾸어 대화에 응해올 수 있도록 문호를 열어둘 것입니다. 나는 이번 순방에서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의 개혁·개방을 위해 두나라의 협력을 구할 것입니다.한·중·일 세나라는 북한의 핵문제 해결을위해 각기 해야할 몫을 가지고 있습니다.한반도의 진정한 화해와 평화가 동아시아는 물론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매우 긴요한 일임을 두나라 지도자들에게 설명하고 협조를 구할 것입니다. 이제 한국은 더이상 지구의 변두리 나라가 아닙니다.문민시대를 열고 세계 13위의 경제력을 가진 한국은 21세기의 중심국가중의 하나로 떠오르고있습니다.우리앞에 다가온 태평양시대의 새로운 질서형성에 적극 참여하고 기여하는 나라입니다. 우리 모두 자부심과 함께 사명감을 가집시다.개혁과 국제화로 우리의 꿈을 실현합시다.인류공영과 새문명 창조에 기여하는 나라를 만듭시다. ◎일왕 만찬사 귀국은 우리나라에 있어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서 사람들의 교류는 역사책에 밝혀지기 이전의 먼 옛날부터 이루어져 왔습니다.그리고 귀국으로부터 다양한 문물이 우리나라에 전달돼 우리의 선조들은 귀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이와 같이 양국이 오랫동안 밀접한 교류를 하던 중 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고난을 끼친 한시기가 있었습니다.본인은 몇년전 이러한 점에 대해 매우 슬픈 마음을 표명한 적이 있습니다만 지금도 변치않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전후 우리나라 국민은 과거의 역사에 대한 깊은 반성에 입각하여 귀국 국민과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우정을 쌓기위해 노력하여 왔습니다. 최근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양국민들의 우호협력관계가 여러분야에서 진전되고 재작년 가야문화전을 비롯한 한국문화통신사 사업이나 작년 대전 국제박람회등 양국국민을 잇는 유대가 굳건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한 양국은 우호협력관계를 더욱더 강화시켜 미래에의 길을 개척해가야만 합니다. 「신한국 창조」와 일한 양국관계의 강화를 진지하게 추진하고 계시는 대통령각하의 금번 방일은 양국장래에 있어 커다란 의의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김 대통령 답사 나는 우리 두나라가 마음을 열고 내일을 향해 서로 협력하는,진정한 선린우호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귀국을 방문했습니다.양국관계는 금세기초 역사의 거센 바람과 격랑으로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그러나 더 이상 과거가 미래를 속박해서는 안될 것입니다.과거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진솔하게 받아들일 때 새로운 한일관계가 열리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우리 두나라 국민이 이러한 자세로 여러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해가면 틀림없이 새로운 선린의 장이 열릴 것입니다. 다가오는 21세기는 아시아·태평양시대가 될 것입니다.우리 두나라는 새로운 세대를 여는 동반자로서 상호협력해 나가야 할 역사적 소명을 띠고 있다고 믿습니다.평화와 번영을 위한 양국의 확고한 의지와 경험은 새로운 아시아,새로운 태평양,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인류의 도정에 커다란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 두나라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공통으로 추구하고 있습니다.아시아속의 한일,세계속의 한일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걸맞는 동반자 관계의 구축을 통해 21세기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대장정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과거사 관련 일본측 주요사과발언 발언자 일시·장소 발 언 내 용 히로히토일왕 84년9월6일 금세기의 한시기기에 있어서 양국 전두환대통령 간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방일만찬사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되 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함 아키히토일왕 90년5월24일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 노태우대통령 했던 시기에 귀국 국민들이 겪었 방일만찬사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 의 념을 금할수 없음 가이후총리 90년5월24일 과거의 한 시기,한반도의 여러분 노태우대통령 들이 우리나라의 행위에 의해 견 방일회담 디기 어려운 고난과 슬픔을 체험 하게 된데 대해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를 드리고자 함 호소카와총리 93월11월6일 과거 우리의 식민지지배시절에 한 경주정상회담 반도의 여러분들에게 예를들어 모 국어교육 기회를 빼앗거나 타국언 러을 강제로 사용케하거나 창씨개 명이란 이상한 일이 강제되고 중 군위안부,노동자의 강제연행등 각 종 문제가 있었음. 이러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강요당한데 대해 가해자로서 우리가 한일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며 이번기회에 다시한 번 진사드림 아키히토일왕 94년3월24일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여러분들에게 김영삼대통령 다대한 고난을 끼친 한시기가 있 방일만찬사 었음.우리나라 국민은 과거의 역 사에 대한 깊은 반성에 입각하여 귀국국민과 흔들리지 않은 신뢰와 우정을 쌓기 위해 노력해왔음
  • 일왕/“고난끼친 과거사 깊이 반성”/궁성만찬 연설

    ◎김 대통령/“과거가 미래 속박해선 안돼” 【도쿄=김영만특파원】 아키히토(명인)일왕은 24일 한일 과거사와 관련,일본국민은 과거의 한일사에 깊은 반성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왕이 한일과거사에 대해 구체적이고도 솔직하게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키히토일왕은 이날 궁성에서 방일중인 김영삼대통령내외를 위해 베푼 공식만찬에서 만찬사를 통해 『귀국은 우리나라에 있어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로서,사람들의 교류는 역사책에 밝혀지기 이전의 먼 옛날부터 이루어져 왔다』고 말하고 『귀국으로부터 다양한 문물이 우리나라에 전달되어 우리의 선조들은 귀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밝혔다. 아키히토일왕은 『양국이 오랫동안 밀접한 교류를 하던중 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고난을 끼친 한 시기가 있었다』고 전제,『전후 우리나라 국민은 과거의 역사에 대한 깊은 반성에 입각해 귀국국민과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우정을 쌓기위해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양국은 우호협력관계를 더욱더 강화시켜 손을 잡고 미래에의 길을 개척해 가야한다』고 희망했다. 김대통령은 이에 대해 『양국관계는 금세기초 역사의 거센 바람과 격랑으로 시련을 겪기도 했다』고 언급하고 『그러나 더이상 과거가 미래를 속박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과거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진솔하게 받아들일 때 새로운 한일관계가 열리게 될 것으로 믿는다』면서 『두나라 국민이 이러한 자세로 교류를 확대해가면 틀림없이 새로운 선린의 장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 “한일 자랑스런 이웃되게 지혜모으자”김 대통령(김대통령 방일여로)

    ◎정상회담 예정시간 넘기며 북핵논의/교민리셉션 심수관씨 등 1천명 성황/「고향의 봄」 연주속 왕궁만찬… 가부키 관람도 ▷정상회담◁ ○…김영삼대통령은 일본방문 첫날인 24일 하오 도교에 있는 영빈관에서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일본총리와 1차단독정상회담을 갖고 북한핵문제와 두나라 우호관계증진방안을 1시간25분동안 집중 논의. 김대통령은 이날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회담시작 5분전에 정상회담장인 영빈관내 아사히노마 입구에서 2분먼저 도착해 있던 호소카와 총리내외를 4개월여만에 만나 『다시만나 반갑습니다』 『오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라며 반갑게 인사를 교환하고 기념촬영. 김대통령과 호소카와총리는 별도환담을 위해 옆방인 히가시노마로 자리를 옮겨기는 영부인 및 총리부인과 헤어져 회담장에 입장,양국의 외무부아주국장(유병우,가와시마 유타카)과 통역만을 배석시킨 가운데 단독회담을 시작. 본격 회담에 들어가기 앞서 김대통령과 호소카와 총리는 날씨 등을 화제로 잠시 환담했으며 김대통령은 『서울에서는 출발전눈이 내렸다』면서 「서설」이었다고 소개. ○“서울 서설내렸다” 두 정상은 이어 양국에서 진행중인 개혁작업,특히 정치개혁법에 실천의지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최대 관심사인 북한핵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보조방안과 과거사정리문제,사할린동포귀한,군대위안부 후속조치,인적문화교류확대 등 현안을 진지하게 논의. 이날 정상회담은 두나라 정상이 최대 현안인 북한핵문제에 대해 장시간 논의하느라 예정시간을 10분 초과해 85분간 진행. 이에따라 당초 거론키로 했던 한·일·중 3국간 한자의 국제화를 위한 공동협의체 구성등 3가지 사업은 논의하지 못하고 26일 2차 확대정상회담으로 이관. ○“핵무장 결코없다” 김대통령은 회담에서 과거사문제와 관련,『소위 침략이나 억압을 당한 사람이 수치이지만 침략,억압한 사람도 수치』라면서 『한국은 우리 나름대로 과거치유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만큼 일본도 나름대로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 호소카와 총리는 일본으 핵무장가능성에 대한 일부의 우려를 의식단 듯 『이는 기우』라며 『일본은 핵의 평화적 이용원칙을 견지할 것이며 결코 핵무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언명. ▷환영만찬◁ ○…김영삼대통령내외를 위해 24일 저녁7시30분 왕궁 「호메이덴」연회장에서 아키히토 일왕내외 주최로 열린 국빈 환영만찬은 김대통령내외와 일왕내외의 양측 참석자 접견,만찬,일왕 만찬사및 김대통령 답사,민속공연관람등의 순서로 3시간동안 진행. 김대통령내외는 이날 숙소인 영빈관에서 승용차편으로 궁성 남쪽현관 미나미다마리 입구에 도착,일왕내외의 영접을 받아 나루히토왕세자 및 왕족일행 10여명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마쓰카제노마실로 이동. 이날 만찬에는 우리측 공식수행원 전원이 연미복 차림으로 참석했고 일측에서는 호소카와총리,도이 중의원의장,하라 참의원의장등 3부요인 등이 역시 연미복차림으로 참석. 김대통령내외와 일왕내외는 참석자들이 기립박수를 보내는 가운데 만찬장으로나란히 이동,실내악의 연주속에서 함께 만찬.일왕은 식사가 끝난뒤 후식이 제공되자 통역없이 만찬사를 낭독. 일왕은 만찬사 서두에서 『김영삼대한민국대통령각하께서 이번에 영부인과 함께 국빈으로서 우리나라를 방문하신데 대해 본인은 마음으로부터 환영한다』고 인사. 이어 일왕은 『귀국은 우리나라에 있어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로서 사람들의 교류는 역사책에 밝혀지기 이전의 먼 옛날부터 이루어져 왔다』며 『귀국으로부터 다양한 문물이 우리나라에 전달되어 우리들의 선조들은 귀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양국간의 오랜 역사적 관계를 상기한뒤 과거사에 대한 반성발언을 시작. 일왕은 또 『신한국 창조와 일·한양국관계의 강화를 진지하게 추진하고 계시는 대통령각하의 금번 방일은 양국장래에 있어 커다란 의의가 있다고 확신한다』고 평가. 이날 왕궁만찬의 주메뉴는 양식이었으며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동요인 「고향의 봄」과 일본동요 「사쿠라」등 양국 국민들의 귀에 익은 노래들이 교대로 연주. 김대통령내외와 일왕내외등 양국 참석자들은 만찬이 끝난뒤 20여분동안 일본 민속공연 「가부키」를 관람. ▷도쿄도착◁ ○…이에앞서 김영삼대통령내외는 서울 공항을 출발한 지 2시간반만인 24일 상오 11시30분 도쿄 하네다(우전) 국제공항에 도착,2박3일의 일본공식방문 일정에 돌입. 김대통령은 공항에서 와타나베(도변) 일의전장과 공노명주일대사의 기상영접을 받고 특별기 문으로 나와 환영나온 교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 공항에는 교민 2백여명이 나와 태극기와 일장기를 흔들며 김대통령 내외를 맞이했으며 교민들은 김대통령이 다가서자 『대한민국 만세』 『잘 오셨습니다』 등을 연발하며 환호. ▷환영식◁ ○…김영삼공식환영식은 이날 하오 2십2터 김대통령숙소인 영빈관 정원에서 15분간 거행. 김대통령내외는 영빈관 2층 숙소에 여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다 하오2시 정각 1층 현관홀로 내려와 왕궁에서 승용차편으로 약간 늦게 도착한 아키히토(명인)일왕내외와 인사를 교환. 김대통령은 먼저 아키히토일왕과 악수하며 『반갑습니다』라고 인사. 김대통령내외와 인사를 마친뒤 팡파르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현관밖 테라스로 나와 붉은색 카펫위에 나란히 서서 애국가와 일본국가 「기미가요」를 부동자세로 경청. 김대통령내외는 이어 아키히토일왕내외의 안내를 받으며 테라스 아래로 내려와 대기중이던 나루히토(덕인) 왕세자내외,호소카와 총리내외와 인사를 교환한뒤 사열대에 등단. ○「선구자」 연주 은은히 ▷교민리셉션◁ ○…김대통령내외는 이날 하오 궁성에서 일왕내외를 예방한뒤 뉴오타니호텔로 이동,쓰루노마실에서 열린 교민리셉션에 참석. 김대통령내외는 하오 3시30분 공노명 주일대사,정해용 민단중앙본부단장,신용상민단의장,김창휘민단감찰위원장 등 민단간부들의 안내로 1천여 교민들의 뜨거운 박수와 실내악단의 「선구자」연주가 은은히 울려퍼지는 가운데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면서 리셉션장에 입장. 김대통령은 즉석연설을 통해 『오는 서울에서는 눈이 갑자기 많이 내렸는데 축복을 알리는 단설이라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왔다』면서 『도쿄에 오니 날씨가 그렇게 좋을수가 없다』고 소감을 피력. 김대통령은 또 『이국땅인 도쿄에서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니 진심으로 기쁘다』면서 『3월로 예정됐던 민단 단장선거가 나의 일본방문으로 연기됐다고들었는데 미안하지만 내 일정으로 정단장의 임기가 더 늘어난 것 아니냐』고 농담을 던지자 좌중에 폭소. 이날 교민리셉션에는 민단간부들과 신현호 한일협력위원회위원장, 이승윤 한일협력위사무총장, 김우한 한일친선협회회장, 정석모 한일친선협회 부회장,나웅배 한일의원연맹간사장,유성환의원,도예가 「14대 심수관」씨 등 1천여명이 참석해 성황. ▷정상부인 환담◁ ○…김영삼대통령과 호소카와총리가 단독정상회담을 하는 동안 손명순여사와 호소카와 가요코(가대자)여사는 영빈관 2층 히가시노마실에서 30여분 동안 양국의 정치개혁과 개인적인 관심사를 주례로 환담. 손여사가 『지난해 가을 경주에서 만난뒤 다시 만나게 되니 정말 반갑다』고 인사를 건네자 가요코여사는 『짧은 시간이지만 일본에 계시는 동안 편안하고 유쾌하시기 바란다』고 답례.
  • 통신수단:상(서울 6백년만상:21)

    ◎봉화 19세기까지 가장 빠른 연락망/변방서 수도까지 12시간 걸려/근대우편제 1884년 도입 서울에 「벙거지꾼」이 모습을 나타낸것은 1884년 4월 22일. 벙거지꾼은 우체부를 가리키는 옛말로 신식 우편제도의 도입과 함께 우정총국이 설치되면서 부터 장안을 누비고 다니기 시작했다. 우편제도는 갑신정변으로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시민들의 중요한 통신수단으로 사랑을 받았으며 전자정보화시대에에 들어선 요즘도 그 역할과 중요성은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 초창기에 『양반집 사랑과 규방에까지 들어가 우편물을 전달하려다가 봉변을 당했다』는 기사가 독립신문(1897년 7월3일자)에 실리기도 했으며 각 가구마다에는 요즘같은 지번이 없던 관계로 편지봉투에 「경문밖 청패고개 나쥬셔 올라온 양천허씨댁 입랍」이라고 쓰는등 주소가 불분명해 우편물이 잘못 전달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당시 우체부는 보부상조합이나 한강 물지게꾼조합에서 다리가 튼튼한 사람들 가운데서 선발했다. 갑오개혁 직후만해도 보름동안의 서울시내 우편물은 1백37통에 불과했으나 그 편리함이 점차 알려지면서 이들은 들일 하는 곳에 점심도 날라다 주고 친정집에 물건을 전달해 달라는 아낙네의 청을 들어주고 식사를 대접받는등 「인정배달부」역할을 겸하는등 대중속에 자리잡았다. 근대식 우편제도가 도입되기전 한양의 중요 통신수단은 봉화였다.19세기말까지만 해도 서울 남산타워 자리에 있던 봉수대를 중심으로 변방까지 이어졌던 봉화야말로 지역과 지역간의 교신을 가장 신속히 할 수 있는 유일한 통신수단이었다. 봉수대는 국가의 기간통신망이었고 개인이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은 인편뿐이었다.그 당시로서야 농경사회였던 만큼 서민들로서는 요즘처럼 다급히 소식을 전할 일이 별로 없었을 것이고 급하다 해도 달리 뾰족한 방법도 없었던 것이다. 조선왕조가 도읍을 서울로 정했을 때 먼저 시작한 일 가운데 하나가 왜구와 오랑캐의 침입에 대비한 봉수대를 새로 만들고 정비하는 일이었다. 세종때에 와서야 완료된 봉수대정비사업은 서울 목멱산(남산)봉수대를 중심으로 사방팔방으로 군사적 요충지 6백50여곳에 세워졌으며 봉화를 올리는 방식도 4거에서 5거로 늘어 났다.예를 들어 왜구가 나타나지 않으면 1거,나타나면 2거,해안에 접근하면 3거,아군과 해안에서 접전하면 4거,육지에 오르면 5거를 올리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매일 올려지는 봉화가 변방에서 서울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2시간.전보나 전화가 없던 시절 이보다 더빠른 통신수단은 없었다. 서울에서는 강서구 방화2동 개화산,성동구 광나루북쪽 아차산,강남구 원지동 청계산의 봉수대터등에서 아직도 봉화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봉화가 국방상 필요에 의해 이뤄진 시호통신이었다면 우역은 우편·통신기능과 숙박시설을 겸비한 동시에 개인의 이용이 가능했다. 선조 30년(1597년)에 도입된 파발제도는 통신만을 위주로 한 조금은 진전된 통신수단이었으며 말을 이용한 기발과 사람을 이용한 보발로 나눴다.기발은 25리마다,보발은 30리마다 참을 두었다.이로써 교지를 알리거나 장계를 올리는 공문의 빠른 전달이 가능하게 됐다.은평구의 역촌동이나 구파발은 바로 파발제도와 관련된 지명들이다.
  • 푸른 생명을 가꾸자/이배영(굄돌)

    땅에서는 봄기운이 움트고 생명이 싹트는 노래 소리가 들리는 때이다.지금 우리는 행락철을 맞고 있다.언제부터 생겨 연중행사가 되었을까.불과 20년 또는 30년전부터 생겨났을 것이다.이런 현상이 나타나면서 자연은 악성 피부병처럼 파괴당하고 있다.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이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이것을 방치하는 것은 조상들이 대대로 물려준 삶의 방식이 아니다.우리 조상들은 자연과의 조화에서 삶의 지혜를 찾았었다. 하나뿐인 국토,지구를 우리는 자손만대에 물려줄 책임이 있다.가정에서 나오는 쓰레기,공단 주변의 매연가스,폐수,산업용 쓰레기는 하루에도 엄청나게 생겨난다.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이기주의가 지구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을 통해서 인격을 완성하고자 했다.자연을 개발하면 삶이 풍요로워 진다는 그릇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방식을 찾아야 한다.우리는 소비가 만능이라는 사고를 버려야 한다. 우리 주변을 조금만 관심을 갖고 살펴보자.어딜가나 쓰레기가 삶의 터전에 뒤덮여 있다.또한 마음 편히 마실 수 있는 물도 찾기가 쉽지 않다.강물이나 땅속의 샘물까지도 썩어가고 있다.농촌의 들녘에는 메뚜기,방개,미꾸라지,지렁이조차 볼수 없다.농약의 살포로 땅속의 미생물도 생명의 위협을 받은지 오래다.계절이 바뀔 때마다 돌아왔던 철새들은 물론 텃새들의 지저귐 소리도 쉬 들을 수 없다.푸른 나무들은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수천년을 지켜온 산자락도 속세의 문명이 침입하고 있다.지금의 문명이 원시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산속 깊숙이 들어가면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계곡의 우람한 바위,이 바위를 휘감아 흐르는 물소리는 맑게 들린다. 신화를 잃어버린 우리 현대인은 밤하늘의 별,떠다니는 구름,푸른 들길에서 들리는 생명의 노래소리를 듣는 여유조차 없다.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고 산다.녹색을 지키는 일은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1회용 물건을 사용하지 않는 일이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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