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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자/당조직 직능중심 개편 추진/지방선거 대비 “체질 개선”

    ◎돈안드는 선거체제 확립 겨냥/직능단체 합리적 요구 수용… 득표 제고 민자당이 당조직을 직능중심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중앙당과 지구당 사이의 수직적 계선조직으로 운영되던 시스템을 당과 각 직능단체를 직접 연계하는 수평조직으로 바꾸려는 취지다.우리나라 정당의 운영골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로 여겨지고 있다. 민자당이 이러한 방안을 검토하게 된 이유는 두가지다.첫째는 오는 6월 지방자치선거에서 득표력을 올리기 위한 것이다.둘째 이유는 「돈 안쓰는 정치체제」를 확립하려는 생각에 있다. 이제까지 여권의 프리미엄이라 여겨졌던 조직과 자금은 새로운 통합선거법 앞에서는 맥을 쓸 수가 없게 되어 있다.민자당은 스스로 그러한 이점을 포기한 셈이다.하지만 막상 선거전에 들어가 보니 어려움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여당의 선거운동원은 「돈」이 돌지 않으면 뛰지 않는다.민자당이 모집하고 있는 자원봉사자의 응모율도 극히 저조하다.야당처럼 「바람몰이」에 익숙한 것도 아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강구한 것이 바로 직능조직의 강화이다. 사회 각 부문별로 조직되어 있는 직능단체는 나름대로의 정책 민원을 갖고 있다.당이 그 가운데 합리적인 것을 수용한다면 어느 조직보다 선거전을 도와줄 가능성이 많다.그들은 특별히 활동자금을 요구하지도 않는다고 한 관계자는 밝혔다. 민자당은 우선 전국적으로 1만명이상 회원을 가진 2백50개 직능단체를 대상으로 협력의사를 타진하고 있다.중앙협회 차원에서 협조관계를 공식화 하면 이들 단체의 중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따라서 각 단체 구성원 가운데 민자당 지지세력을 중심으로 「민자당협의회」를 구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이미 미용업 요식업 등 20여개 직능단체에 「민자당회」가 조직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민자당은 이와 함께 이들 직능단체를 대표할만 한 인사들을 이번 지방자치선거에 상당수 공천할 방침이다.광역지방의회 선거에 신설된 비례대표제를 활용하기로 했다.또 여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 직능대표를 많이 공천,지방의회의 전문성을 높일 작정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직능관련 당원수를 늘림으로써 당을 직능조직 중심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비공식 집계로 현재 민자당의 당원수는 2백50만명.이 가운데 중앙위 등을 통한 직능대표 성격의 당원 수는 미미하다.앞으로 직능단체를 매개로 한 당원수를 지구당 당원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 알렉산더 대왕 무덤 진위논쟁/이집트,1월발견…그리스선“아니다”반박

    ◎애/“왕의 두상·희랍문자 출토… 틀림없다”/희/“헬레니즘 시대 유적일뿐 관계없다” 지난 1월초 이집트는 이번 세기들어 또하나의 중대한 발견을 했다고 발표하면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바로 알려지지 않았던 알렉산더 대왕의 무덤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이집트의 파로크 호스니 문화장관은 『이 발견은 이집트 고대왕조의 투탄카멘왕릉을 발견한 것에 비견할 아주 중대한 것』이라고 흥분했었다. 이집트당국은 지난해 말부터 카이로 서쪽 7백50㎞ 떨어진 시와 오아시스에서 고분을 발견,이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바로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의 무덤이라고 발표했던 것. 무덤에서는 정복자의 두상과 그리스 문자가 적힌 돌판 그리고 동물의 석상 등이 함께 나와 그같은 추측을 하기에 충분했던 것. 그러나 알렉산더가 지배했던 마케도니아의 후손인 그리스로서는 그들이 그토록 찾아헤매던 위대한 선조 영웅의 무덤을 이집트사람들의 손에 의해 발견된 것이 무척 자존심 상한 일이었다. 그리스 당국은 즉각 발굴조사단을 현지로 파견해 발굴 현장을 철저히 조사했다.약 2주일에 걸친 현지 조사에서 그들은 『이것은 알렉산더 대왕의 무덤이 아니다』는 짤막하지만 이집트의 발표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발표를 그리스 타노스 미크로치코스 문화장관이 했다. 그는 『이 무덤에서 나온 그리스 문자는 로마나 혹은 헬레니즘시대의 것으로 알렉산더 대왕과는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이집트와 그리스 간의 자존심 대결에서 일단은 그리스가 승리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지역과 서남아시아 그리고 멀리는 인도대륙에까지 그 영토를 넓혀 헬레니즘시대를 연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는 BC 323년 한창인 나이인 32세에 지금의 이란 이라크지역인 바빌론에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돼있으나 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는 비밀에 부쳐졌었다. 따라서 그리스는 물론 세계의 고고학계는 그의 무덤을 찾는 것이 하나의 주요 과제로 돼 있으며 이집트의 말대로 그 발견은 그시대의 중요한 업적으로까지 여겨질 정도이다. 한때 헤프닝으로 끝나긴 했으나 그 진위 여부가 아직 미지수로 남아있는 문제의 발굴지를 시그마를 통해살펴본다.
  • “경수로 한국주도” 한목소리/국회통일외무위 북핵문제 열띤 토론

    ◎“미 의존말고 남북 당사자 해결” 요구/여/“명칭보다 실리를” 유연대처 주문도/야 6일 국회 통일외무위에서는 협상시한을 보름가량 앞두고 북한의 한국형경수로 거부로 진통을 겪고 있는 북한핵문제에 관해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공로명 외무부장관이 출석한 가운데 이날 회의에서 여야의원들은 한국형경수로의 채택과 한국의 중심적 역할이 보장되지 않는 한 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는데 목소리를 같이 했다.그러나 그 관철방법에 대해서는 민자당의원들이 『양보없는 강경대처』라는 원칙론을 고수한 반면 민주당의원들은 『명칭에 집착하지 말고 실리를 얻어 내라』고 주문,시각차를 드러냈다. ○…서정화 의원(민자당)은 『북한이 끝내 한국형을 거부한다면 북한핵문제는 끝난 것』이라고 단정하고 『정부는 미국에만 의존하지 말고 단계적 제재를 포함,확고하고 강력한 자세를 밀고 나가는 길밖에 없다』고 「채찍론」을 전개. 정재문 의원(민자당)도 『미국이 북한에 끌려가고 있음을 우려한다』고 동조하고 『정부는 안이한 자세를 버리고 따질 것은따지라』고 요구.정의원은 『미국이나 제3국을 통한 교섭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정부와 북한간의 직접대화를 통해 경수로문제를 해결하라』고 주문. 구창림 의원(민자당)은 최근 레이니 주한미국대사가 『한국이 북한핵문제를 시혜적 차원에서 다루는 바람에 문제가 꼬이고 있다』고 비판한 것을 지적하며 한국형 채택의 당위성에 대한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설득노력과 국제공조의 강화를 당부. ○…반면 이부영 의원(민주당)은 『협상력제고 차원에서 한국형을 강조할 필요는 있으나 최고책임자를 비롯한 정부당국자들이 협상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발언을 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고 한국형 거부를 대북제재와 직결시키려는 강경론에 반론.임채정의원(민주당)도 『원산지표시와 명칭정도는 우리가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협상론에 무게를 두고는 『남북한의 실질적 관계개선에 도움이 되도록 우리의 기술·인력등이 경수로 건설사업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데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실리론」을 전개. ○…이만섭 의원은 민자당의원으로서는 드물게 『외교는 고집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유연한 자세의 필요성을 강조한 뒤 『제재를 하든 경수로를 제공하든 미국과 확실한 공조가 있어야 한다』고 한미간 의견조율을 우선시. ○…공로명 장관은 이에 대해 『한미일 3국간 공조체제는 결코 느슨하지 않다』고 밝히고 『한국형이 배제되고 한국의 주계약자 역할이 불가능해지면 북한의 경수로 건설에 불참한다는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답변. ◎한/미/「WTO제소」 타당성 논란/통관절차 이미 개선… 문제될 것 없다/한국/“협상불응땐 분쟁 해결절차 착수” 위협/미국 미국이 5일 감귤류 통관문제와 관련,「신속해결절차」에 따른 양자협의를 요청한 것이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한 적절한 「제소」인지 여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그 성격에 따라 한국측 대응방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미측은 플로리다산 감귤류가 우리 검역소의 통관지연으로 다량 부패했다며 우리측에 양자협의를 요청한뒤 5일 이같은 사실을 WTO에 통보했다.미측은한국이 양자협의에 응해오지 않거나 협의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WTO의 분쟁해결 절차에 따른 패널구성을 공식 요청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미측의 이같은 입장표시는 향후 대한 통상관계에서 보다 강경한 자세로 임하겠다는 경고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견해는 다르다.「WTO분쟁해결 규칙및 절차에 관한 양해」에 따라 미측이 요청한 「신속해결절차」는 발동요건이 이미 해소됐기 때문에 양자협의에 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미측은 한국이 10일안에 협의에 응해야 하며 협의요청 후 20일 이내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WTO에 「준사법기관」으로 볼 수 있는 「패널」구성을 공식 요청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대해 한국측은 『미측의 양자협의 요청이 WTO가 정해놓은 「신속해결절차 발동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즉 미측이 요구했던 「선통관 후검사」등의 통관절차 개선조치가 이미 지난 3일부터 시행돼 식품 통관검사기간이 종래의 25일에서 5일로 단축됐으므로 「신속해결」이 불필요해졌다는 것이다.WTO규정의 신속협의절차에해당하는 「급박성」이 이미 소멸했다는 주장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WTO 밖에서 우리제도 개선에 대해 설명하는 성격의 협의를 미측에 요구해놓고 있는 상황』이라고 앞으로의 대응방침을 설명했다.그는 『미측의 양자협의 요청은 향후 쇠고기 유통기한,지적소유권문제등의 협상을 앞두고 나온 미측의 압박전술로 보인다』고 분석했다.실제로 미측은 이달말까지 육류·식품류의 유통기한에 대해 구체적인 개선책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WTO분쟁절차에 회부하겠다고 밝혀놓고 있는 상태다. 문제는 우리가 미측의 「양자협의」요청에 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다.미측은 WTO에 「패널」구성을 공식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는 이것이 신경전 성격의 줄다리기여서 「WTO밖」 협의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 김성동씨 대하소설「국수」1부 집필 끝내

    ◎“1세기전 조선인의 정신·마음 재조명”/예인들의 삶·당시 풍속 실감나게 묘사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씨(48)가 대하소설 「국수」(국수)1부(5권)의 집필을 끝냈다.그동안 「만다라」「길」 등의 자전적인 작품을 주로 써왔던 김씨에게 자신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이 소설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비로소 응어리진 것을 정리하고 자유로와진 느낌입니다.구한말 서세동점의 시기를 배경으로 쓰러져간 조선의 정신과 마음을 되살려보고자 했습니다』 국수는 바둑은 물론 판소리·글씨·그림·의술 등 자기분야에서 1인자의 경지를 구축한 예인(쟁이)들을 총칭하는 말.소설「국수」는 이들 쟁이들의 삶과,문명이 바뀌는 어름인 당시의 풍속을 통해 전통적 가치를 재조명해 보이고 있다.당시의 풍속을 실감있게 그리려 사건위주의 정치사보다는 풍속사·생활사를 중심으로 하고 전통어를 철저히 구사한 점이 이 소설의 특징이다. 언어는 사유의 총화이므로 일본화·서양화된 말로는 당대의 진실에 육박하기 힘들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따라서 가능한한 당시 사람들의 사유에 근접하기 위해 전통어를 철저히 가려 썼다고 작가는 밝힌다. 김씨는 이같은 입장에서 우리가 흔히 쓰는 「가족」,「부부」,「형제」라는 말들이 일본말이라고 주장했다.그것들의 조선적 표현은 「식구」,「내외」,「동기」 등.서열이나 위계의 나눔에 따라 만들어진 일본말과 달리 우리의 전통말은 주역의 음양이치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는 또 『1세기 전의 이야기를 소설에서 다뤘지만 당시의 상황은 지금의 혼란된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면서 『역사에 대한 예인의 영향력은 예나 지금이나 크지 않지만 이같은 중심밖의 삶을 통해 한 시기의 사회상을 올바로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금까지 쓴 것은 밑그림에 불과하다.2·3부를 거치며 일제시대 선조들의 사유까지도 본격적으로 파헤쳐 보이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솔출판사에서 현재 4권까지 출간된 「국수」는 총 15권으로 완성될 예정이다.
  • 불 지스카르가/“피는 못속여”

    ◎“전 대통령 아버지 맥 잇겠단 아들·딸 정계입문/지스카르,증조부 유지 계승 소도시 시장 출마 프랑스민주동맹(UDF) 당수인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70)은 오는 23일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고 일찌감치 선언했었다.그러던 그가 최근 선조의 고향인 인구 13만6천명의 도시 클레르몽 페랑의 시장으로 출마할 뜻을 밝혔다. 프랑스 중남부 도시 클레르몽 페랑은 1871년부터 1881년까지 10년 동안 그의 증조부가 시장을 지낸 곳이다.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은 이제 증조부의 유지를 이어받아 여생을 고향발전에 바치겠다는 생각이다. 프랑스에서는 중앙 정계 거물이 시골 시장이나 시의원을 겸직하고 있는 경우가 보통이다.그렇지 않더라도 중앙 정치무대에서의 활동이 끝났을 때 출신지에 내려가 지방 정계에서 향토 발전을 위해 일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이 조그마한 시의 시장이 되겠다고 한 것보다는 그의 둘째 아들 루이씨(36)가 최근 정계 투신 선언을 했다는 것이 더 큰 관심의 대상이다.루이씨는파리에서 출판사를 경영해오다가 클레르몽 페랑 부근의 로야시 시장출마의사를 밝혔다. 이미 딸 안 에몬(42)이 클레르몽 페랑시의 농업문제담당 자문위원을 맡아오고 있어 지스카르 데스탱 집안은 아버지와 두 자녀가 동시에 정계에 몸담는 정치가문이 될 판이다. 현 로야 시장은 장 클로드 퐁스씨.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과 같은 정당 소속인 재선의 퐁스 시장은 이제 더이상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다.퐁스 시장은 89년 선거에서 유권자의 62% 지지를 받은 강력한 지역유지다.루이씨로서는 시장직을 물려받다시피 하는 셈이다. 한편 루이씨는 『당선을 서두를 것은 없다』며 『사람은 정치적인 삶의 과정에서 살아간다는 게 우리 가문의 전통이기 때문에 정계에 입문하게 됐다』고 시장선거출마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 탤벗 선생님의 교실/김영화 한림대 교수·영어학(굄돌)

    탤벗 선생님은 「Mrs.Talbot's」라는 명찰이 붙여진 교실에서 일학년 학생들만 가르치고 있다. 자신의 교육철학에 따라 책상과 걸상을 배치하고 교실안에 자동차 모형의 칸막이를 해놓고는 일상적인 학습이 아닌 상담이나 기타 창의적인 생각을 할 계기가 생길때 그안의 테이블로 일부 학생들과 자리를 함께한다. 아이들이 짝을 지어 모형자동차안에 들어가서 놀이를 할때도 있는데 그때에는 순서대로 들어가기,남한테 방해되지 않게 놀기 등의 질서도 지키게 된다. 텔벗선생님은 아침 첫수업을 국기에 대한 맹세로 시작한다. 아이들은 미국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부끄럼없는 자랑스러운 미국인임을 다짐하며 긍지를 가지고 살것을 맹세한다. 미국에서 유아기를 보내고 있는 한국계 어린이들에게 『너 한국인이냐 미국인이냐』하고 물으면 서슴없이 『미국인』하고 답이 나오는 것을 이해할 만하다. 미국의 어린이들이 피아노를 배울때 처음 치게 되는 곡은 모두 「아메리카」에 관한 곡들이다. 미국은 자유와 정의의 나라,미국의 역사를 이룬 선조들은 훌륭하며 우리는 미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내용들이다. 그러니 미국인들이 한국에 옮겨놓고 운영하는 유치원에서 성조기 그리기를 시키는 것은 정해진 과정대로 하는 것일 뿐이다. 어린이들을 영어 한마디 배우러 보냈다가 미국사람 만들어 버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될 일이다. 과밀학습에서 성적순위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끝나자마자 학원으로 뛰어가 경쟁력을 키워야만 되는 우리 어린이들을 생각하며 교육개혁은 국민학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아니할 수 없다. 대대적인 투자를 국민학교교육에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미래를 보장하는 길이 될 것이다.
  • 문민지도자의 역사적사명/이수윤 한국교원대 교수(서울광장)

    우리사회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진정한 민주국가로 발전해 나가느냐 아니면 계급차별적인 전통적 귀족국가 체제를 새로운 형태로 되살아 나게 하느냐가 결정되는 심각한 국면에 우리사회는 직면하고 있다.우리사회가 어디로 향하게 되느냐 하는 것을 좌우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문민지도자의 역사적 사명의식이다. 우리 전통사회의 역사적 전형은 중국사회가 아니라 인도사회이다.전통적 중국사회는 국민적 평등성을 인정하는 동질적 가족주의 사회이다.전통적 인도사회는 출생과 더불어 사회적 신분이 결정되는 이질적 계급주의 사회이다.우리 전통사회도 세습적 신분제도에 입각한 귀족전제적 계급사회였다.우리 전통사회의 계급주의적 특성은 국민분열을 촉진했다.그것은 언제나 국가발전의 장애물로 작용했다.조선조의 몰락원인도 우리 전통사회의 철저한 계급차별적 구조에 의한 국민분열에 있다.해방이후 우리 전통사회의 계급구조는 철저히 붕괴되었다.우리가 경제발전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실현해 낼 수 있는 가장 큰 저력은 전통사회의 계급구조가해체된 토대위에서 국가발전 목표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졌던 데 있다. 지금 우리사회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신귀족주의의 대두로 인한 국민분열이다.국민적 노력의 결과인 경제성장은 소수재벌에로의 엄청난 경제력 집중을 가져왔다.그것은 전통적 귀족체제가 붕괴된 상황에서 신귀족사회를 형성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원래 귀족사회는 폐쇄된 혼인관계에 의해 유지된다.그동안 우리사회에는 재벌과 재벌·상식과 양식을 초월한 국가권력자와 재벌 사이의 자녀결혼을 통한 혈연적 유대관계가 있어왔다.그것은 사회적·경제적·정치적 힘이 혼연일체가 되어 집중화되는 현상을 촉진한다.그것은 신귀족사회 형성 가능성의 극적 표현이다.문민지도자의 역사적 사명은 우리사회가 전통적 귀족사회 체제로 복귀하는 것을 막고 진정한 민주국가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경제민주화가 반드시 요구된다.인간사회에서의 모든 것의 기초가 경제에 있듯이 민주화를 향한 모든 개혁의 근본은 경제민주화 개혁에 있다.문민지도자는 『20년 걸릴 개혁을2년만에 해냈다』는 식의 낯 간지러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한다.국민들이 차갑게 웃는다.국민들은 근본적인 것이 아닌 그 어떠한 개혁도 곧바로 부정의한 현실에 알맞도록 변질되고 만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6공화국 말기에 정부에서 재벌해체를 연구하고 있다는 신문기사가 있었다.그 소식은 국민들로 하여금 국가장래에 관해 밝은 희망을 갖도록 하였다.국민들은 물론 당시의 지도자가 재벌해체를 단행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국민들은 곧 등장할 새로운 문민정부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문민지도자의 개혁은 국민들을 열광시켰다.국민들은 재벌해체의 소리가 언제 들려오나 하면서 관심과 주의를 집중하고 있었다.들려오는 것은 개혁의 소리이기는 한 데 재벌해체의 소리는 아니었다.때로는 재벌만세 비슷한 소리가 교육개혁아닌 교육개악이 확실한 고교평준화 해제를 외치는 소리와 짝을 이루면서 들려왔다.그 두소리는 분명히 신귀족사회의 대두를 알리는 신호였다.그 두소리는 국민들을 절망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문민지도자가 그의 역사적 사명을 외면할 때 우리사회는 형식적으로는 국민에 의한 민주국가이면서 내용적으로는 재벌을 위한 신귀족국가로 진전될 가능성이 있다.국민들은 아직도 문민지도자에 대한 기대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있다.현재 직·간접으로 우리사회의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모든 정치가들 중에서 지금의 문민지도자만이 국민자유와 국민행복과 국가경쟁력의 참다운 초석인 경제민주화를 통한 국민화합을 실현해 낼 수 있는 불퇴전의 용기와 놀라운 담력과 순수한 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은 확신하고 있다.
  • 한국의 정치­중앙집권과 민주화/개리 레드야드(해외기고)

    최근 한국에서의 지방자치선거와 관련된 정치적 논란들은 나에게 한국역사에 있어서 일반적인 중앙집권적 국가권력의 문제들을 떠오르게 한다.중앙정부가 도지사와 군수를 임명하고 지방세에 대한 국가적 통제를 가하는 현재의 행정체계는 한국의 정치문화와 과거 왕조시대의 제도적 구조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과거에 국가의 왕은 도와 군단위에 대한 독점적인 임명권을 갖고 있었다.지역등급에 따라 존재하던 부사·군수·현감 등 지방행정관은 왕의 대리인으로 지역내 재판권·질서유지·방위·병력충원·부역·토지 등기·토지등급및 징세·교육,심지어는 제사의식 등 모든 것에 대한 권한을 부여받고 있었다.판사이자 장군·행정가·성직자의 역할까지 모두 맡은 것이다. 물론 지방민도 스스로의 힘과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양반은 향안과 향약이라는 제도를 통하여,또 서당에서 선생님 역할을 통해 지역사회내에서 효율적인 지도력을 행사해왔다.이들의 지방문제에 대한 비공식적인 감독과 중재는 종종 중앙정부가 개입하기 전에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그러나 당시 법은 왕의 법이요,군대는 왕의 군대이고,세금은 왕의 세금이었다.행정관은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어떤 면장이나 이장도 파면할 수 있었다.지방의 양반은 자신들의 영향력과 토지소유권보호를 위해 행정관에 협조했다.심지어는 그들이 종종 지방민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결과 지방사회 보호자로서의 그들의 역할이 축소되었다. 현대에 들어서 군수는 전통적인 행정관보다 더 잘 교육받은 행정전문가다.지방자치단체에 영향을 미치는 법은 보다 합리적이고 제한적이 되었다.불평등한 사회적 신분의 폐지는 지방사회내 긴장과 갈등을 제거시켰고 사법적·군사적 권한도 더이상 지방에 의해 행사되지 않는다.그러나 아직도 군수는 중앙정부내의 조직으로 남아 있다. 최근까지도 정치적·행정적 개혁을 위한 조치들이 도나 군단위 행정분야에까지는 확산되지 못한 것 같다.지방민은 아직 자신들의 공공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그 까닭은 무엇일까.먼저 전통의 힘이 강하다는 것이다.국가권력이 분산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한국인의 정치의식에 깊이 남아 있다.지방자치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고,또 수세기동안 지방에 대한 중앙의 지배가 문제시돼오지 않은 국가에서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지방민통제의 도입시도는 과거를 과감히 단절하는 것이 된다.그러한 변화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근대적인 경험이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국가행정에 높은 가치를 두어왔다는 사실이다.안보위협은 국방에 대한 단합된 통제를 필요로 했고 또 그것은 정치체제유지의 구실이 되기도 했다.경제정책의 국가적 통일성과 경제관련 법과 규제에 있어서의 국가권위,그리고 경제성장에 있어 국가적 이익에 반할지도 모르는 지방의 법과 규제의 제거로 인해 보다 효율적이고 능률적인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지난 40여년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경제가 발전하고 복잡화해 지나친 중앙의 간섭은 성장의 원동력인 시장기능을 저해할 수도 있다.정치적으로 많은 개혁조치는 일반적으로 공정한 선거와 중앙정부의 보다 큰 민주화,언론과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보다 큰 자유를가져왔다.주민은 자신들의 투표권을 통해 국가의 정치에 중요한 지렛대를 얻었다. 이 민주화운동이 현재 지방자치단체의 영역으로 향해 퍼지고 있다.진정으로 민주주의의 중심은 개인이 스스로의 통치에 참여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다.지방과 지역사회에서의 상응한 정치적 발전 없는 국가적 민주화는 모순이라고 주장한다. 조선조시대와 마찬가지로 지방의 사정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지방주민이다.지방자치단체의 민주화와 더불어 이들 지방민이 스스로를 통치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길을 놓더라도 그들이 어디에 놓을 것인지 말할 것이다.산업발전계획이 수립되더라도 자신들이 선출한 지도자가 그 결정과정에 참여할 것이다.지역적 조건에 적합하지 않은 국가환경관계법률이 자신들의 자치단체에 의해 강화될 수도 있다.경쟁적으로 지방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장기적으로 지방생활의 질이 개선되고 지방경제의 효율성과 나아가 국가경제가 강화될 것이다. 지방의 선거를 치르면서 또는 일단 선출된 후 정치적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과정에서이익단체가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이러한 단체가 없이는 선출되기도 어려울 뿐더러 설사 독자적인 힘으로 당선된다 할지라도 일단 업무수행을 해나가는 데 있어 민주적 여론수렴과정에서 필요할 것이다. 이같은 단체들은 정치적 특성을 지니게 될 것이며 성공적인 단체들은 항구적 정치조직으로 변신시킬 능력을 갖게 된다.자신들의 후보가 선출되면 그 조직은 번창하게 될 것이다.많은 민주국가의 국가적 정당들이 이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나타난다.그러나 그들의 후보가 낙선하거나 통치에 실패하면 그들은 대중으로부터 보다 많은 지지를 받는 조직에 의해 밀려나게 될 것이다.지방선거를 조직하는 것은 정치적인 과정이다.그렇다면 정당이 이 과정에 참여해야 할 것인지가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한국사를 배우고 가르쳐본 입장에서 나는 현재 지방자치를 둘러싼 쟁점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일면 그것은 분명 여야간의 정치적인 대결이다.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그것은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을 지도해온 정치적 중앙집권주의와 분산되지 않은 국가의정치권력을 둘러싼 논쟁이다. □약력 ▲한국사 전공·컬럼비아대 한국학연구소장 ▲저서:「화란인의 한국상륙」·「14 46년의 한국 언어개혁」등 다수
  • 「사단법인 한배달」(산하 파수꾼)

    ◎문화유적지 돌며 환경보전캠페인/고창 동학전적지·미사리 등 찾아 말끔히/어린이 계절학요 열어 환경중요성 교육 『선조들이 남겨주신 훌륭한 홍익인간의 정신을 바탕으로 후손들이 행복과 번영을 누릴 터전인 국토 사랑운동을 펼치기로 했다.이에 따라 환경에 대한 국민들의 애정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현장 캠페인과 정신함양운동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 민족사를 바로잡는데 목적을 둔 사단법인 한배달(회장 박선우)은 주로 문화유적지를 대상으로 환경정화운동을 벌이고 있다.이들의 활동은 서울신문사 「깨끗한 산하지키기」 운동의 환경감시위원단체에 동참하면서 더욱 활발해졌다. 지난해 여름 서울신문사와 함께 국민학생을 대상으로 「전국 어린이 깨끗한 산하지키기 글짓기대회」를 가진데 이어 오는 4월1일 경기도 광주읍 경안천을 비롯한 전국적인 봄철 현장캠페인과 오는 여름방학중 어린이 글짓기대회에도 적극참여키로 했다. 『환경운동을 민족생존을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전개하고 있다』는 한배달은 다양한 환경운동계획을 수립해 실천에 옮기고 있다.지난 19일 경기도 안성의 칠정사,유기장터,서운산성 등에서 1백여명이 쓰레기 수거를 실시했으며 매월 1회씩 갖는 문화유적지 답사때 반드시 깨끗한 산하지키기 실천운동을 전개키로 했다. 또 자체에서 발간하는 회보와 계간 「한배달」을 통해 한경보전의 필요성을 계몽하고 여름,겨울방학동안 두차례 실시하는 「어린이 계절학교」에서 환경교육을 시키는 등 국민 실천운동으로 확산해 나간다는 환경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3천5백여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한배달은 86년 설립돼 환경의 중요성을 일찍 인식하고 91년 12월 안성길(유니슨코리아대표)씨를 위원장으로 하는 환경위원회를 구성,꾸준히 환경운동을 펼쳐 왔었다. 지난해만도 오대산,제천 칠의사총,공주 우금치,고창 동학전적지,미사리 유적지,춘천 사자골 등지에서 쓰레기줍기와 잡초제거 등 환경정화운동을 벌였다.그뿐아니라 중국의 광개토대왕비 주변과 장군총묘역,백두산 천지 등 외국에서까지 활동을 전개했다. 안 위원장은 『자연과 내가 둘이 아니고 풀 한포기 생명이나 나의 생명이나다름이 없음을 몸으로 실천해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 4월 「과학의 달」 행사 다채/광복50돌 맞춰 「과거∼현대」재조명

    ◎TV 특별프로 편성·학술행사 마련 4월은 「과학의 달」.과학의 달을 맞아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 이해를 넓히고 과학기술 혁신분위기를 확산시킬수 있는 각종 행사들이 준비되고 있다.올해 「과학의 달」행사는 광복50주년에 초점을 맞춰 과거와 현대 국내 과학기술을 재조명하고 21세기의 꿈과 희망을 줄수 있는 행사가 집중적으로 준비되고 있는게 특징.주요행사를 소개한다. ◇4월의 문화인물 「최무선」기념행사=고려말 화약의 발명자인 최무선을 4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향리인 경북영천에 기념비를 건립하고 기념학술세미나(6일 하오2시 KOEX소회의실),기념강연회(15일 하오2시 서울과학관),자료전시회(1∼30일 국립중앙도서관 로비)등 기념행사가 다채롭게 펼져진다. ◇TV과학프로그램 상영=▲최첨단 헬리콥터 ▲채소기름으로 달리는 차 ▲초고속운전 ▲우주로부터의 리포트 ▲항법장치 고속도로등 첨단과학지식과 재미가 담긴 과학기술 프로그램 9편이 소개된다.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 협조로 EBS에서 매주 금·토요일하오 7시45분에 전파를 탄다. ◇학술행사=선조들의 독창성을 확인할수 있는 「전통과학기술의 재발견」세미나가 22일 상오10시부터 국립중앙과학관 세미나실에서 열린다.▲경주 황남동 출토 유리용융도가니및 유리구슬에 대한 연구 ▲한국수공예 공구에 관한 연구등 논문 6편이 발표된다.그밖에도 79건의 학술행사가 집중적으로 열린다.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17일부터 23일까지 과학주간중 국립중앙과학관과 서울과학관이 무료로 개방되고 23일 대전 엑스포과학공원에서는 어린이와 학부모가 함께 참여,모형첨성대쌓기등 13종류의 과학실험과 공작놀이를 즐길수 있는 「과학축전」이 열린다.▲조류·포유류 표본전시회(17∼30일 국립중앙과학관) ▲마르코니 라디오발명1백주년기념 특별전시회(15∼30일 서울과학관) ▲우주인 초청 강연회(16일 서울대) ▲별의 축제(15일 한강둔치)등 청소년의 과학 탐구심을 키울수 있는 행사도 마련된다.
  • 점령군의 실리 챙기기(새로쓰는 한국현대사:12)

    ◎소 북한서 산업설비 마구 뜯어갔다/「일제 군수공장은 소 전리품」 정령 앞세워/북 식량난속 곡식 6백여만섬 빼내가기도/미는 동척땅 경작시키고 소작료 30% 징수 광복과 함께 한반도 남북에 각각 진주한 미·소 양국은 자국의 이데올로기를 대행할 정치세력 구축과 이를 뒷받침할 경제구조 재편에도 심혈을 기울였다.미국은 궁극적 목표인 반공국가 수립을 위해 남한사회를 자본주의 체제로 재편성하려 했고,소련은 사회주의 체제 달성을 서둘렀다.특히 소련은 북한지역 몇몇 항구를 장기 조차한다든지,일제가 남긴 공업시설을 빼앗아가는 등 경제 실리를 노골적으로 챙겼다. ○연 수십억원 거둬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 설립한 대표적인 경제관련 기관은 남쪽의 「신한공사」(The New Korea Company)와 북쪽의 「조소해운주식회사」였다.이 두 회사의 설립 목적과 업무를 보면 양국이 한반도에서 시도한 경제정책의 실상이 무엇인지 뚜렷이 드러난다.미·소는 「한반도에 남은 일본관련 재산은 전리품」이라는 시각을 갖고 이를 직접 관리하기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이 회사들은 형식상 독립회사의 틀을 갖추었지만 실상 미·소의 직영기관과 다름없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신한공사는 일본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자산을 인수하는 형식으로 1945년 11월12일 출범했다.처음 지위는 군정청의 부속기관이었지만 46년 2월21일 관계법령 제정에 따라 독립회사로 탈바꿈한다.신한공사는 동척의 토지대장과 지적도를 이용,45년 말부터 이듬해 봄까지 전국에서 토지조사를 벌여 해당 토지 대부분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지역 농민들이 큰 반발을 보였는데 이는 지역인민위원회가 일본인 토지를 주민들에게 이미 분배한 뒤였기 때문이다.아무튼 46년 2월말까지 신한공사는 논·밭·산림을 합해 34만7천여 정보의 토지를 보유하게 됐다.이같은 면적은 사실상 일본인이 남긴 토지의 대부분이었다. 신한공사는 이 땅을 55만4천여 농가에게 경작시키고 수확고의 30%를 소작료로 징수했다.그 결과 신한공사는 매년 십수억원의 수입을 올렸으며 47년에 가서는 15억1천여만원이나 거둬들였다.여기서 인건비등 경비를 제외하고도 신한공사는 5억8천여만원의 순익을 남겼다.당시 신한공사는 남한 전체 경지면적의 13·4%,생산고의 25%를 차지했다.그 농지를 소작하는 농가는 전체의 27%에 이를 정도였다. 그러나 신한공사에 대해 『일제의 식민지 수탈과 다름없다』는 비난이 갈수록 거세게 일었다.이에 미군정은 48년 4월 신한공사를 중앙토지행정처로 이름바꾸고 귀속토지를 농민에게 불하하기 시작했다. ○합법 가장해 착취 신한공사는 명목상 독립회사였으나 미군정 직영기관에 불과했다.자본금 1억원을 단독 출자한데다 미군 장교에 한정한 사장 임명권과 회사 해산권을 군정이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를 입증한다.더욱이 관계법령에 『사장은 미국의 이익에 관계 있는 정책문제를 결정하는 전권을 갖고 있다』고 규정,그 성격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북한 경제를 조종한 소련의 수법은 더욱 교묘했다.그럼에도 구소련은 그동안 해방직후의 북한­소련 경제관계를 『소련이 사심없이 일방적으로 원조한 것』이라고 선전해 왔다.즉 식량 원료 연료등을 북한에 무상 제공했다는 것과 전문가 파견을 통한 산업복구 지원,북한유학생 유치에 따른 인력양성등 은혜를 베풀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소장의 북한노획문서들을 보면 소련은 매우 적극적으로 북한지역에서 경제적 이득을 취한 것으로 돼 있다.다만 공산주의 사회 특유의 폐쇄성 때문에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소련측 입장은 46년 1월28일 작성된 「북한에 조소합작주식회사를 설립하는 문제에 대한 소련인민위원회의 정령(정령)」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이 문서는 소련이 전력·흑색금속·유색금속·화학·기계제작·민간항공·석탄·시멘트·어업·철도·해상운수등 모든 산업 분야에서 북조선과 합작회사를 설립한다는 지침을 담았다.곧 「회사 합작」이라는 형식을 통해 북한지역 물자를 마음껏 가져가겠다는 의도였다. 소련은 우선 지침 첫항에서 「북한지역에 있는 일본 군수물생산 관련기업들은 우리의 전리품이므로 소련정부의 재산」이라고 밝혔다.그리고 일본 기업중 일부를 북한에 넘겨주되,대부분은 합작회사로의 전환의도를 분명히 보였다.특히 발전소·흑색금속·유색금속·화학등 주요 분야 합작회사는 소련측에서 주식의 51%를 소유한다는 조항은 수탈 그것이었다.회사의 업무집행 역시 소련이 임명한 지배인에게 맡기기로 했다.이같은 지침에 따라 설립된 합작회사가 조소해운주식회사(모르트란쓰)와 조소석유정련주식회사이다. 소련이 모르트란쓰를 세운 목적은 청진·나진·웅기등 3개 항구를 30년동안 북한으로부터 조차하는 데 있었다.양국은 47년 3월 25일 이 회사 설립에 따른 협정을 맺었다.협정서에는 「북조선인민위원회」전권대표 홍기주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동맹 외국무역성」전권대표 코스토레프스키가 각각 서명했다.홍기주는 조만식의 「조선민주당」출신으로 김일성 세력에 가담해 당시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인물이다. 협정서에 따르면 합작비율은 5대5이다.그러나 자본금을 내지 않는 대신 소련은 화물선 3척과 여객선 1척을,북조선은 3개 항구및 그 부대시설을 회사에 30년동안 각각 임대하는 출자형식을 취했다.소련이 배 4척을 내놓은 대가로 북조선은 3개 항을 내놓았다.이 협정은 실로 엄청난 불균형을 내포했다.또 3개 항구이외의 북조선 항구를 조차할 경우 이 회사에 우선권을 준다는 조항이 포함돼 소련이 나머지 항구도 양도받았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소련이 청진 등 3개 항을 군사적·상업적으로 어떻게 활용했는지,30년만에 조차가 끝났는지,또는 연장됐는지는 관련자료가 발견되지 않아 아직은 정확히 알 수 없다.다만 소련군이 광복 2년이 채 안돼 북쪽의 주요항구들을 「합작」명목으로 장기양도받은 사실은 전통적으로 부동항을 확보하려는 야심을 그대로 실현한 것이다. 이밖에도 소련은 북에 진주한 직후부터 각종 산업시설·식량·원자재를 강제반출했다.45년에만 수풍발전소의 발전기 3대를 비롯해 ▲원산 조선석유회사의 기계 일체 ▲함흥 본궁화학의 6만㎸변압기 ▲청진 일철공장과 미쓰비시제련소의 기계 일체등 주요 설비는 몽땅 뺏어갔다.또 진남포제련소에서는 금 2t과 아연 4백t,동 3백t을,조선은행 원산지점에서는 현금 3천만원을 소련재산화했다.북쪽 땅에서 식량부족이 매우 심각했음에도 불구하고 45년에 2백44만섬,46년에 2백90만섬의 곡식을 빼내갔다. 2차세계대전 종식을 계기로 한국사 전면에 등장한 미·소 양국은 정치는 물론 경제 분야에서도 민족에게 고통을 안겨준 것이 틀림없다. ◎「한소해운」 창립 협정서 서울신문은 국사편찬위원회가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발굴한 「조소해운주식회사 창립에 관한 협정서」전문을 싣는다.19 47년 3월 북한이 청진,나진,웅기항등 3개 항을 소련에 넘겨주기로 한 이 협정서는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본문은 현행 맞춤법에 따라 옮겼고,「조쏘」와 같은 고유명사의 약자도 「조소」 등으로 고쳐 게재했다.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동맹 외국무역성과 북조선인민위원회는 양국간의 경제관계의 발전과 강고를 목적으로 본협정서 체결을 위하여 정식임명한,즉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동맹 외국무역성은 자기 전권대표로서 코스토레프스키를,북조선인민위원회는 자기 전권대표 홍기주를 파견하여 하기와 같이 협약함 제1조 협정체결 쌍방은 평등한 원칙에서 해운의 관리와 경계및 본협정제5조에 지적한 북조선에 있는 항구와 부두시설및 설비를 이용하며 해상수송과 교통을 조직할 목적으로 평양시에 조소해운주식회사(약칭 모르트란쓰)를 창립함.본회사는 본협정에 첨부하는 별지 정관(첨부서류 제1호)에 의하여 운영함.본회사 창립자는 다음과 같음.소련측…화태국립해운국 극동국립해운국(솜흐락드)전동맹연합회 원동운수공사등.조선측…흥남지구어민공장 북조선석탄관리국임 제2조 조소해운주식회사의 주식자본은 2천8백만원으로 정하되 그 내역은 아래와 같음.가.기선조차요금 조선화폐 1천4백만원은 본협정서 제4조에 의하여 소련측이 납입하는 자기주식자본에 충당함.나.부두시설조차요금 1천4백만원은 본협정서 제5조에 의하여 조선측이 납입하는 자기주식자본에 충당함.주식자본금의 결정에 있어서 가,나에 지적한 임차요금의 평가는 19 38년도의 시가로 계산함.회사발전에 의한 주식자본금은 쌍방의 결의에 의하여 증액할 수 있음.이 경우에 조소주주의 균등 참정권은 불변함.회사 이익금은 쌍방투자액의 비율에 의하여 분배함.회사 전주권은기명주권임.주권의 양도는 이사회의 만장일치 결의에 한하여서만 행할 수 있음 제3조 회사창립후 1개월이내에 쌍방에서 각 일천만원을 납입하여 합계 2천만원의 예비자본금을 조성함 제4조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동맹 외국무역성은 회사에 대하여 본협정서에 첨부하는 별지목록(첨부서류 제2호)에 의한 화물선 3척과 객선 1척을 30년간의 기한으로 대여함.전기기선의 조차료는 소련측의 본회사에 대한 출자금으로 충당함 제5조 북조선인민위원회는 본회사에 대하여 본협정서에 첨부하는 별지목록(첨부서류 제3호)의 창고,관할구역,상항건물및 일철공장을 포함한 청진항과 전 부두,창고건물을 포함한 나진항및 계선장,창고건물등을 포함한 웅기항을 30년간의 기한부로서 대여함.전항 항구건물등의 조차료는 조선측의 본회사에 대한 출자금으로 충당함 제6조 본협정서 제4조에 기재된 기선및 제5조에 기재된 항구건물의 1년간 조차료와 30년간 조차료 총액의 결정은 본사 창립까지 창립자간에서 이를 19 38년도 가격에 의하여 정함.본협정서 유효기간인 30년간의 총조차료 결정에 있어서 협정 일방(소련 혹은 조선측)의 납입금이 본협정서 타방의 납입금을 초과할 때는 쌍방납입금을 균등하게 하기 위하여 후방은 6개월내에 차액을 현금으로 혹은 금액에 해당하는 물품으로 납입함 제7조 북조선인민위원회는 웅기,나진,청진 각항의 운영과 적당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대책을 강구하며 자비로서 항도유지에 필요한 수리·준설공사를 수행할 것.제1항 기재의 제항외에 타항구에 관하여 북조선인민위원회는 본회사에 대하여 조차에 관한 우선권을 부여함 제8조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동맹 외국무역성은 본회사에 대하여 본회사 선박이 소련항구에 입항할 시에 소련정부로 하여금 입항징수금에 대하여 최하조건을 적용하도록 대책을 강구할 것 제9조 본회사의 사업운영에 있어서 협정 쌍방은 동등하게 참여함.이사회에는 각방이 동수로 이사 2명씩 선정하고 이사장에는 조선측의 이사가 차에 임하고 부이사장에는 소련측 이사가 차에 임함.집행직무는 소련측에서 임명한 총지배인과 조선측에서 임명한 부지배인에게 일임됨. 제10조 본회사는 사업수행상 조선 국영회사와 동등한 권리와 우대를 향수함.북조선인민위원회는 본회사 창립및 등록에 관한 세금 징수금및 정리를 포함한 추후 회사변동에 관한 일체등록에 대하여도 세금및 징수금을 면제함. 제11조 본회사 사업상 외국에서 선박시설자재등의 구입을 위하여 필요로 하는 외국화폐는 본회사 운영중 수지한 외국화폐에서 특별 지장없이 꺼내 사용할 수 있음.북조선중앙은행에서 외국화폐의 매매를 행할 때는 타회사에 적용하는 최하조건을 동등하게 향유함. 제12조 이사회에서 회사운영상 이의가 발생할 때는 결정적 해결은 본협정 체결자가 행함 제13조 본회사 창립자들은 본협정에 서명하는 동시에 쌍방이 서명일로 부터 15일이내에 북조선 소요기관에 등록할 것 제14조 본협정서의 유효기간은 본협약 서명일로 부터 30년간으로 정함.30년 경과전에 본회사를 청산할 때는 쌍방간의 협약에 의하여 이를 행할 수 있음.30년 경과후 회사 전재산은 조선에 속함 제15조 본협정은 쌍방 서명일로 부터 효력을 발생함 제16조 본협정서는 19 47년 3월25일 평양시에서 노문(노문)과 조선문 각 2장씩 작성함.노문과 조선문은 동등한 효력을 유(유)함 북조선인민위원회 전권대표 홍기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동맹 외국무역성 전권대표 코스토레프스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 기자 ▲김성호 〃 〃 ▲김경운 조사부 〃
  • 고문서·시­화첩등 거의 문화재급/반환목록으로 살펴본 데라우치 문고

    ◎최치원·정몽주 서신­이수광·김생 시 포함/한일 수교30년 맞아 반환교섭 결실 예상 일본정부가 이달초 데라우치문고 일부 자료의 내용을 수록한 마이크로 필름과 문고 총목록을 우리측에 전달해옴에 따라 일본에 빼앗겼던 우리의 희귀고문서·서화집 등의 반환이 한발 가까워졌다. 일본측이 건네준 데라우치문고의 목록은 2백쪽짜리 단행본 두권분량으로 문화재급 사료 3천여점의 제목이 수록돼 있다.그러나 문고의 규모가 방대한데다 중국·일본의 고문서도 섞여 있고 내용별 분류가 돼 있지 않아 우리측 전문가를 동원,장시간에 걸쳐 우리 문화재를 따로 추려내는 작업을 벌여야 했다. 정부는 완성된 우리측 자료목록을 기초로 대일 협상창구인 한일의원연맹을 통해 반환받기를 바라는 문화재목록을 일본측에 전달할 예정이다.이어 양국간 협상을 통해 귀중한 우리 고문서들이 80년만에 환국하게 된다. 데라우치문고는 일본의 초대 조선총독(1910∼1916)인 데라우치(사내정의)가 조선과 중국·일본 등에서 수집해 일본으로 가져간 문화재급 고문서·서화집등으로 그의 아들 수일이 고향인 규슈 야마구치현의 여자대학교에 기증해 오늘날까지 보관돼오고 있다. 데라우치의 조선문화에 대한 관심은 집요했던 것으로 전해진다.그는 총독으로 부임하기 전인 1902년 조선내 철도회의 의원으로 취임하면서부터 이미 조선의 문화재 수집에 들어갔던 것으로 알려졌다.총독에 취임한 1910년부터는 서적 전문가인 공등장평과 흑전갑오낭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인 고문서 수집에 나섰다. 수집자금은 주로 왕실로부터 받은 하사금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다.데라우치의 고문서수집에는 돈에 눈먼 조선상인들이 동원됐는데 김생과 최치원의 서신을 담아 귀중본 간찰집으로 꼽히는 「명현간독」은 일금 80원에 넘어간 것으로 목록의 해설란에 기록돼 있다.데라우치는 이와 함께 당시 일본 경찰의 조직까지 동원,김석문을 조사하고,해인사 고려대장경판의 조사와 보수·복각 등을 시도하기도 했다.특히 데라우치는 해인사 대장경판을 세부 인쇄,그 한부를 비단으로 싸서 일왕의 명복을 비는 교토 천용사에 봉헌하기도 했다. 데라우치문고가 우리에게 돌아오게 된것은 한일 양국이 국교정상화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교섭을 벌여온 결과다.양국은 정부차원의 교섭이 자칫 양국 국민의 감정을 건드려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한일의원연맹등 행정부 이외의 채널에 협상을 맡겼다. 지난해 데라우치문고가 소장돼 있는 야마구치현립여대를 방문,이들 자료를 점검하고 돌아온 태동고증연구소의 임창순소장은 『목록을 보니 눈이 휘둥그래질 만큼 놀라웠고 한편으로 이것이 일본사람 손에 들어간데 대해 분개하고 애석한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러나 어느 것이 우리에게는 남아있지 않은 자료이며 또 어느 것이 얼마나 귀중한 문화재인지 충분한 검토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반환교섭에 앞서 직접 면밀한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환추진 데라우치문고의 주요 한국문화재 우리정부와 전문가들 분류에 따르면 데라우치문고내의 우리 문화재는 고문서와 책·간첩류·시첩류·개인서첩·서화첩등으로 분류된다. 고문서와 책들은 다시 교지와 녹봉교지·호적단자·명문·화회문기등으로 세분된다.교지는 정부의 사령장으로 1869년 조석여의 황해도관찰사 제수교서,1790년 강세황의 정헌대부교지·녹봉교지등이 포함돼 있다. 호적단자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암행어사 박문수집안인 고령 박씨 종중 1704년부터 1791년까지의 가계를 기술하고 있다.또 전답이나 노비매매문서인 명문은 19건으로 1672년에서 1889년에 이르는 2백년간의 매매문서가 포함돼 역사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화회문기는 재산분쟁을 해결하는 특이한 문서인데,어사 박문수의 할아버지인 박장원의 외가 형제가 모여 유산을 분배하는 과정을 기록한 1건이 수록돼 있다. 물론 이러한 전문적인 문서와 함께 신라·고려와 조선조때 간행된 우리의 대표적 문집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으며,중국에서 발간된 자치통감을 우리나라에서 장정한 서적도 눈에 띈다.또 기사본말 서체로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기술한 작자미상의 「임진란」6책도 있다. 편지모음인 간첩류 가운데는 신라의 김생·최치원을 위시해 고려와 조선초기 인물들의 서신을 작품으로 모은 12첩짜리 「명현간독」이 단연 백미로 꼽힌다.이색·정몽주의 서신도 수록돼 있다. 또 시집인 시첩은 선비들이 연회때 지은 작품,혹은 왕명에 따라 지은 시들이 주류를 이룬다.이와 함께 서울에서 지방으로 전보되어 부임하거나 외국에 사절로 갈 때 동료나 친우들이 지어준 송별시들도 눈에 띈다. 이 가운데 1646년 민성휘가 진하부사로 북경에 갈 때에 이호민·이수광·홍서봉·김육등이 지어준 「정해부연첩」이 백미로 꼽힌다. 서화첩으로는 순조의 왕세자가 태학에 입학하는 의식을 그린 「정축입학도첩」이 중요한 자료로 분류된다. 지난해 정부대표로 데라우치문고를 점검하고 돌아온 문화체육부의 최순희문화재전문위원은 『문고에 소장된 우리나라 도서는 국내에 없는 것이 많고 고려말의 귀중한 문서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고 밝히고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서간문이 많아 데라우치가 서책이나 고문서보다는 서간문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 가고 온 사람들(두만강 7백리:5)

    ◎광복­6·25이후­문혁때 귀향 줄이어/60년대말까지 쉽게 도강… 65% 다시 연변에/“지금은 갈수 없는 땅”강 건너 바라보며 눈물 ○보따리 이고 강 건너 끼룩 끼룩 끼루룩…. 한떼의 기러기가 일찍 얼음이 녹은 강 한구석을 박차고 북한땅을 멀리 돌아 날아간다.걸음을 멈추고 강 건너 마을을 바라보았다.한낱 짐승들도 자유로이 넘나드는 강.그렇지 못한 우리에게 두만강은 늘 한을 던져준다. 「기러기 갈 때마다 일러야 보내며/꿈길에 그대와는 늘 같이 다녀도/이 몸이 건느면 월강죄란다」 옛날 선조들이 불렀다는 「월강곡」을 되뇌어 보았다.나라의 독립을 위해 개척민에 뽑혀 산길을 찾아 나선 선조들은 밀물처럼 강을 건너왔다.그리고 또 광복 후 이주 당사자들과 후손들은 고국이 그리워 피땀으로 일군 삶의 터전을 버리고 다시 강을 되건너 썰물같이 대거 고국으로 돌아갔다. 첫번째 귀향은 광복 당시였다.일제의 말발굽에 짓밟혔던 나라가 독립을 맞자 조선족들은 보따리를 싸지고 두만강을 건넜다.당시 귀향민들은 두가지 부류다.대부분의 사람들은조상들이 묻힌 땅을 찾아 귀향했다.어떤 사람들은 북한의 고향을 찾았지만 살수가 없어 이남으로 곧장 월남했다.광복이 되자 연변과 북한의 공산당 정부는 일제주구 청산부터 시작했다.훈춘의 대지주이고 대동아전쟁때 비행기를 헌납하고 동경에 가서 천황의 접견을 받은 한희삼은 물론 다른 지주와 친일파들은 처단 당했다.항일부대 토벌에 공로가 있는 용정의 박도끼는 북한으로 도망가서 숨어 있다가 청진에서 잡혀 총살당했다고 한다. 화룡현 신선대 대장 김일로는 일제가 연길공원에 동상까지 만들어 세웠던 김동환 다음으로 가는 주구였다.1940년 3월25일 일본인 산림경찰대장과 함께 자기의 병졸들을 휘몰아 독립군을 추격하다가 홍기하에서 매복습격을 받아 1백20여명의 졸개를 잃었다.김일로도 졸개들을 호령하다가 벌린 입으로 탄알이 꿰뚫고 지나갔지만 요행히 목숨은 건졌다.이남으로 건너간 그는 여생을 편히 보내다가 수원에서 일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번째 대 귀향은 1956년부터 1962년까지였다.한국전쟁(6·25)이후의 일인데 전후복구 지원을 위해 많은 조선족들이 북한으로 들어갔던 것이다.화룡시 용화향 상화촌에서만도 49호가 나갔다.그리고 인민공사가 시작되면서 굶어 죽게 되자 다시 살길을 찾아 북으로 건너갔다.용정시 삼합진 북흥촌의 최태경 일가는 19 62년에 함경북도 연사군으로 이사했다.최씨의 막내 딸 최해옥은 연사에서 소학교를 다니던 중 5학년 때 평양으로 뽑혀갔는데 현재 유명한 영화배우로서 「꽃파는 처녀」에서 주인공 꽃분이 역을 맡고 있다고 한다. 인재들이 많이 갔다.중국에서의 반우파투쟁이 지식인들을 잡는 운동이나 다름이 없고 민족심을 가진 사람들은 반동적 민족주의자로 되는 판국이라 떠나들 갔다.유명한 시인 주선우,작곡가 정진옥,소설가 김동구,아동문학가 채택룡 등 문학예술계 인사들도 떠나갔다.용정시 삼합향 승적 신재룡은 길림성 공업학원 학생이고 축구를 잘 했다.지금 그는 조선체육대 교수로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건너왔다 도로 가고 용정시 삼합향 북흥촌 이기희(54)는 연변대학을 다니다가 2학년 때인 1961년 7월 북한에 들어가 만 6년을 살고 다시 돌아왔다.그의 말을 들어보면 북한에 살다가 다시 연변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많다. 『당시 회령의 사탕공장건설은 연변에서 건너간 귀향민이 대부분이였댔습니다.나는 대학을 다니던 사람이라 공무직장에 배치 받았디요.직장장의 이름을 딴 김희진작업반에 배치합데다.그때 국가 철도상이자 함북도 건설사업소 소장으로 파견나왔던 김주봉이 하루는 우리 공장에 와서 연설을 하면서 「중국에서 하루에 백오십명씩 건너오고 또 매일 백여명씩 되넘어갑니다.조국에 왔으면 참답게 살아야지 이것이 뭡니까」라고 비판을 했디.어떤 날 출근하면 많은 사람이 없어집데다.알아보면 중국으로 돌아간거디요.67년 7월에 나도 가정을 데리고 도강을 했으니 아마 이튿날 내 자리가 비어 야단이었을 것이 뻔합데다.이북으로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중국에서는 호구를 붙여주지 않다가 67년 9월 정부에서 한꺼번에 복적시켰댔시요』 세번째 귀향은 문화대혁명시기이다.용정시 대소과수농장만 해도 항일에 참가했던 사람들 70여명 모두가 귀순 분자로 투쟁을 맞았으니 2백50호 중에 70호가 적이된 셈이었다.그중 10여호가 북한으로 도망갔다.용정시 백금향 백금촌 차덕균은 일제시기 동경대학을 나온 지식인이었다.일본에서 공부한 사실이 간첩조건이 되어 투쟁을 맞았다.모진 매를 견디다 못해 온 가족이 북한으로 갔는데 떠나던 날 큰 딸이 친척 집에 가고 없어서 두고 간것이 생이별이 되었다. 용정시 개산툰진 선구촌 사이섬에서 총 사격을 받고 수백명이 종성으로 집체도주 한 일이 대표적 사건이다.선구촌 문영기(54)씨도 그 사건에 끼었던 한사람이다.캉다(강대)요 홍색이요 하는 조직간에 말로하던 시비질이 주먹질,돌팔매질,몽둥이 싸움으로 번졌다. ○“북에 남아라”만류도 1967년7월29일 연길 캉다에서 개산툰에 와 개산툰 캉다와 합세하여 홍색을 쳤다.싸움은 공장울안에서 일어났는데 쌍방은 돌멩이를 던지고 창으로 찔렀다.홍색에서는 열세에 몰리자 해관의 총을 내다 불질을 해댔다.캉다패들은 결국 선구 대안 두만강 복판 사이섬으로 쫓겨나고 말았다.8월2일 홍색은 사이섬을 포위하고 투항하라고 공포를 놓았는데 총소리를 들은 북한땅 종성 사람들이 강변으로 나와 어서 건너오라고 소리를 쳤다.3백여명이 모조리 강을 건너갔으나 여자 하나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북한에서는 대우를 제법 해주었다.그러면서 돌아가면 잘못 된다고 북한에 남으라는 선전을 했지만 몇사람 이외에 모두가 두달 후 되돌아왔다.주모자들은 감옥에 들어가 1년씩 구류를 사는 것으로 그쳤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개혁개방이 이루어지면서 당시의 일들이 억울한 것으로 판명되었다.그때 북한으로 건너가 거주하는 사람들이 중국에 와서 손해배상을 받아갔다.용정시 삼합진 승지촌 김광진은 지방 자위단에 있었다는 죄로 투쟁을 당하다 죽었다.그래서 온 가정이 야간 도주하여 회령으로 건너갔다가 지난 92년에 아들 김상연이 와서 용정시 민정국에 상소,3만원(인민폐)을 보상받았다고 한다. 현재 화룡시 덕화진 남평촌의 내 숙부(유인상·77)는 낮이면 두만강가에 나가 건너 쪽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물을 지으시기 일쑤다.내 고모가 60년도에 조선 청진으로 간 이후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이다.조카들은 60년대 초에 다녀갔고 몇해전까지는 편지라도 오갔는데 벌써 5년째 소식조차 모르고 있다.앞길이 멀지 않은 숙부는 생전에 단 한번이라도 만나보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다.부친(유민상·84년 별세)께서도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을 말끝마다 외우시다가 한많은 세상을 뜨셨다.
  • 골동품 수집 붐(두만강 7백리:3)

    ◎“한국인에 팔면 큰돈 번다”달려들어/연변주변엔 고대유물·발해고분 널려/달러 갖고 강 건너가 북 유물 밀반출도 화룡에서 숭선까지는 90㎞가 떨어졌다.노과진에 이르고 나서부터 국도는 두만강을 따라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진다.가면서 오른쪽은 절벽이요 왼쪽은 두만강인데 벼랑 중간 못미쳐서 펌프물을 자아내듯 하는 작은 폭포가 조용히 떨어지고 있다.얼핏 보기에 엉덩이를 길쪽에 돌려대고 소변을 보는 형상이다.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이 절벽을 외설스럽게 개 무슨바위라고 불러왔다.그러나 요즘은 그냥 개바위라는 점잖은 이름을 붙여놓았다. 1993년8월 이 바위 밑으로 국도를 낼 때 세개의 완전한 공룡화석을 발견했다고 한다.고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먼 옛날 연변땅에 털코끼리가 산 것으로 되어 있다.그런만큼 공룡화석 발견은 고고학연구에서 또 하나의 사건이 됨직한 일이었다.그 공룡화석이 숭선진 남석촌 최진을씨한테 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연변박물관에서 팔라고 해도 한국사람한테 비싼 값으로 팔기 위해 거절했다는 이야기와 함께….나는 물어물어 최씨를 찾아갔다. 최씨는 뒤울안에서 허름한 종이상자를 들고 나오더니 그 속에서 공룡이빨화석 한조와 턱뼈 하나를 꺼내 보였다.이빨의 길이는 40㎝,너비는 10㎝,높이가 15㎝이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밭고랑같이 패어들었다.두 이빨 사이 거리는 40㎝정도였다니 주둥이의 크기가 한아름이 실했을 것이다.턱뼈는 너비가 15㎝,길이가 22㎝,굵기가 7㎝나 됐으나 완전하지 못했다. 『이나마 건진 거이 다행입네다.도로 일꾼들이 막무가내 바수어대는 걸 빼앗아왔디요.큰 일을 치를 뻔했수다.일꾼들 말을 들으면 애초 크기는 10m가 넘었다고 기래요.허리가 휘유둠한 거이 똑 올챙이 같았다고 합데다』 ○공룡이빨 소중히 보관 최씨가 공룡화석을 발견했다는 전갈을 듣고 도로 작업현장에 달려갔을 무렵에는 이미 화석이 몇 동강 박살이 난 뒤였다는 것이다.뼈를 가루내어 먹으면 만병통치라는 말에 공룡화석은 해머로 맞고 불에 그을리기를 여러 차례.그렇게 서너시간 수난을 겪었다.최씨는 가까스로 턱뼈 일부와 이빨 몇점을 건졌다.그런데 최씨는 이화석을 한국인 골동품상에 팔면 큰 돈을 번다는 확신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연변 도처에서는 석기시대 돌도끼·돌자귀 등으로부터 철기시대 유물,그리고 발해시대 유물들을 주워올 수 있었다.내가 태어나 22년을 살아온 화룡시 서성진 북대촌에는 발해시기 무덤들이 수없이 많았다.70년대초까지만 해도 발해 선조들의 해골이 대굴대굴 굴러다녔고 도자기며 동거울이며 장식품들이 발길에 차일 정도였다.화룡시 용화향 상화촌 유인철이란 사람이 자연보석구슬을 얻었다.유리알처럼 투명한데 하늘에 대고 보면 기와집 앞으로 강이 나타난다.빙빙 돌리면 강물이 흐르고 돌리는 속도가 빠를수록 물살이 세찼다.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잃어버렸는데 아마 두만강에서 목욕을 하다가 떨어뜨린 것 같다고 했다. 상화촌에서는 갑옷을 주워왔는데 그때 공교롭게도 마을에 병이 성했다.노인들이 갑옷을 파왔기 때문에 옛 장수가 노하여 벌을 받는 것이라고 해서 점쟁이를 불러다 방책을 하고 갑옷을 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상화촌 허정윤(64)노인은 돼지우리를 짓느라 돌각담을 파헤치다가 석기를 발견했다.돌이 좋은지라 숫돌로 썼는데 물에 숫돌을 넣으면 「웅…」하고 벌이 이사하는 소리를 내더란다.유물들이 큰 돈이 된다는 말을 듣고 올해 찾아보았더니 없어졌다고 아쉬워했다.역사유물에 대해 이만큼이라도 깨닫게 해준 것은 한국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한·중 수교뒤 붐 일어 1992년부터 한국의 골동품 장사꾼들은 중국대륙을 휩쓸고 다니며 골동품에 대한 계몽운동을 일으켰다고 할까….옷보따리를 꿍쳐메고 두만강을 건너가 명태며 오징어며를 힘겹게 지고 가서 팔던 일부 조선족은 골동품을 밀수하기 시작했다.강건너 북한땅 민간에 수장되어 있는 오랜 병풍이며 도자기며 심지어는 장롱 따위도 들여왔다.그리고 나서 고려 청자·조선 백자·고서화 등이 한국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어떤 한국인은 호주머니를 두둑히 채워와서 조선족을 도와준답시고 자금을 대주기도 한다.자금이 많든 적든 한국인이 돈을 대고 중국 조선족이 몸을 던지게 마련이다.돈을 받은 조선족 선봉장들은 달러를 가지고 강을 건너가서는 골동품을 사온다.이런 물건들은 야밤 두만강 도하작전으로 옮겨지기도 하지만 통 크게도 백주에 해관을 통해 운반되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한국의 G실업(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13 D빌딩) 대표라는 김모씨(43)는 19 94년 벽두부터 연변을 넘나든 한국의 골동품상인.그의 말에는 미더운 구석이 하나도 없다. 『벌써 20여년간 골동품과 벗해 살아왔다구.한국에서 나만큼 골동품을 잘 아는 사람도 드물다고 봐야겠지.몇해전에 우리 집에 도난사건이 나 귀중한 골동품 40점을 잃어버렸다구.그 다음부터 골동품과 멀리 했었어.이번에 다시 시작한 것은 국회의원으로 계시는 우리 신우형님의 정치자금 때문이지 뭐야.김영삼 대통령이 실명제를 실시하면서 정치인들이 곤경에 빠졌어.골동품으로 차기 국회의원 선거비자금을 마련해야 할 상황이라구』 ○일본경유 대거 유입 골동품 장사꾼들은 대개 사기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연길시 하남가의 한 사람은 북조선으로 친척방문을 갔다가 조선시대 백자를 사왔다.그런데 한국인한테 팔려고 감정을 해보니 한국에서 요새 만든 물건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골동품 붐이 일자 한국의 골동품 장사꾼들이 가짜를 만들어 일본을 경유하여 북한으로 보내 중국에 팔았다는 것이다.가짜가 어찌나 횡행하였든지 세계적 명품의 바이올린도 연변에 3개나 굴러다녔다. 하여튼 골동품 붐은 한국인,중국 조선족,북한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갈등과 반목을 몰고오고 있다.
  • 여야/대치 풀기 대화 모색/황 의장 “선거법 직권상정 검토”

    ◎이 민주총재,「국회 정치특위」 오늘 제의 민주당의원들의 국회의장단 억류사태가 사흘째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제1백73회 임시국회 개회를 하루 앞둔 8일 여야가 정국대치 상황을 풀기 위한 대화를 모색하고 있어 주목된다. 민자·민주 양당은 막후접촉을 통해 국회안에 정치특위를 구성,통합선거법 개정문제를 논의하는데 어느정도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이기택 총재는 이와 관련,9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여야 3역과 정치개혁입법 당시의 3인대표등 모두 12명으로 구성,합의제로 운영되는 정치특위의 설치를 제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민자당의 이춘구 대표도 이날 『여야 3역회담은 우리당이 이미 제의한 바 있으며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히고 『민주당이 우리 제의를 수용하면 대화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당은 모두 「불법감금 해제」와 「선거법 강행처리 철회」를 우선조건으로 내걸고 있는데다 대화 움직임을 서로의 명분쌓기로 활용하고 있어 성사여부는 매우 불투명하다. 특히 여당과의 대화를 촉구했던 김대중아·태재단이사장이 이날 하오 명동성당에서 있은 한 강연에서 『지자제 선거가 얼마남지 않은 이때 선거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은 정치적 오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법에 의해 정당공천을 금지하는 것은 세계 어디에도 그 예가 없으며 위헌의 소지조차 있다』고 여권을 강력히 비난,정국을 더욱 강경대치국면으로 몰고갈 가능성이 커졌다. 이와 관련,민자당의 현경대 원내총무와 민주당의 신기하총무는 이날 상오 비공식 접촉을 갖고 정국대치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타진했으나 서로의 의견차가 뚜렷해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오늘 개회식 나갈것” 황낙주 국회의장은 8일 밤 『9일 열리는 임시국회에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반드시 나가 국민과 국회에 대화와 타협을 호소할 것』이라고 민주당의 봉쇄를 뚫고 개회식 참석을 강행할 뜻을 분명히 밝혔다. 황 의장은 이날 의장공관에서 민주당의원들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밝히고 『개회사는 모두 준비해놓았으며 국회는 어떤 일이 있어도 열어 놓으라는 것이 국민의 요구』라고 말했다. 황 의장은 이와 함께 『국회가 열리면 2∼3일쯤 내무위의 선거법개정안 심의를 기다려보고 심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에 회부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민자당이 제출한 통합선거법개정안의 본회의 직권상정도 검토하고 있음을 밝혔다.
  • 가계수표/불법 발급/브로커 7개조직 적발/무자격자 은행에 소개

    ◎수수료 4억대 챙겨/목사 등 7명 구속 거액의 CD(양도성예금증서)를 매입,은행의 수신고를 높여주는 대가로 무자격자에게 돈을 받고 가계수표를 발급해준 7개 가계수표 알선조직 14명과 알선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은행직원이 검찰에 적발됐다. 서울지검 동부지청 특수부 조근호검사는 8일 은행으로부터 CD를 매입해주는 대가로 가계수표를 발행받을 수 없는 무자격들에게 1인당 3백만∼5백만원의 돈을 받고 가계수표 개설을 알선해 준 S선교회 목사 이경희(52·여)씨 등 6명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혐의(알선수재)로 구속하고 모집책 이모(33)씨 등 3명을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검찰은 또 자격미달자 41명에게 가계수표를 부정 발급해주고 알선업자 권안자(50·여·구속중)씨로부터 3백50만원의 금품을 받은 J은행 전 신촌 출장소장 권만수(49)씨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혐의(수재)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최씨 외에 가계수표 부정발급과 관련된 3개 금융기관 5개 지점 및 출장소의 명단을 은행감독원에 통보,관련자를징계토록했다. 검찰에 따르면 알선업자 이씨는 94년 4월부터 지난달까지 수신고 실적이 부진한 J은행 신촌출장소 등 5개 점포에서 CD 1백46억원을 매입해주는 대가로 「가계수표 당일발급」이라는 신문광고를 보고 찾아 온 영세 자영업자 이모씨 등 78명에게 가계수표를 부정발급 받도록 알선하고 이들로부터 수수료명목으로 1억9천8백여만원을 받은 혐의이다. 검찰조사결과 이들 7개 조직이 수수료로 챙긴 돈은 모두 4억여원으로 가계수표 개설을 알선한 1백30명중 1백10명의 부도여부를 확인한 결과,82명(74.5%)이 부도를 내 현재 수배중이거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지방선거와 지방행정구조 개편/김석준 이화여대교수·정치행정학(시론)

    대통령의 기자간담회를 계기로 지방행정구조개편과 지방선거를 둘러싼 정치권의 혼란스러웠던 논의가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6월 지방선거는 법대로 실시하고 선거전이라도 생활권과 일치하지 않는 행정구역을 여야협의로 개편토록 일임한 것이 대통령이 밝힌 주된 내용이다.이를 계기로 여야간 정치파국을 우려했던 국민들이 다소 안도하게 된 점은 다행이라 생각한다.그러면서도 개운치만은 않다.정치권이 그동안 해야할 일을 바로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미봉책에 그치게 된 것이어서 아쉬움이 더하다. 지방행정조직을 감축,개편하는 것에 대하여서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면서도 선거일정관계로 뒤로 미루게 되었다면 문제의 본질이 크게 왜곡된 것이다.그동안 지방행정구조를 감축하고자 했던 이유는 첫째,세계화시대의 무한경쟁에 걸맞는 행정조직을 갖춤으로써 행정의 중복과 비효율성을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다.중앙정부에서 도·특별시·광역시­시·군·구­읍·면·동으로 이어지는 3층 또는 4층 구조를 축소하여 2층구조로 하자는 것이 대표적인 주장이다.읍·면·동의 행정단위를 없애는 문제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있지만 시·도의 폐지와 구의 준자치화 및 기초의원 및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에는 견해들이 나뉘고 있다. 둘째,기존의 지방행정구조는 조선조말 이후 일제식민통치기에 정착된 것으로 권위주의 정부의 통제감독을 위한 것이다.이 때문에 지방자치보다는 중앙의 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의도로 정립된 것이다.많은 선진국들이 다층구조에서 2계층구조로 변화시켜 유지하고 있음은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셋째,지방자치가 전면 실시되면 광역과 기초의 2계층으로 구성되는데 현행 지방행정계층구조는 3계층으로 되어 있어서 지방자치와 지방행정사이에 부조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 넷째,지방행정개혁의 차원에서 기업가형·서비스형 정부를 실현하기 위해 인물교체와 관료의 의식개혁이 필요하며 행정구조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없이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다섯째,산업화이후 교통·통신·생활권의 변화가 급격하여 행정구역과 생활권이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고 인구의 도시집중현상이 급속히 추진되면서 지방행정계층구조의 개혁뿐만이 아니라 지방행정구역의 전면 개편이 필연적인 것이었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으나 기본적으로 세계화와 지방화의 적절한 조화를 위해서 지방행정계층구조단축과 지방행정구역개편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세계화와 정보화의 전개에 따라 전세계가 시간적으로 동시적이고 공간적으로 하나의 지구촌에 살게 되면서 행정조직의 경쟁력과 민주성의 조화는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주민들의 이익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지방화와 민주주의를 세계화라는 추세에 적절히 조화시켜야 하는 것이 지금의 국가적인 과제이다. 지금으로서는 지방선거의 완벽한 실시도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통합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과 같은 정치개혁입법을 강력한 실천의지를 가지고 집행함으로써 지방선거를 선거혁명의 표본으로 삼을 수 있게 된다면 정치발전을 위해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다.강력한 실천의지란 정부와 국민이 함께 협력하여 부정선거·불법선거를 끝까지 추적하여근절시키는 일이다. 여기에 더하여 지방선거전이라도 지방행정구역개편이나 읍면동 폐지를 위한 준비작업을 추진하여야 하겠다.그리고 선거이후에 대대적인 지방행정조직과 행정구역 개편작업을 단행하여야 한다.여·야정치권은 당리당략을 떠나 무한경쟁의 세계화시대에 걸맞는 지방행정구조개편을 경쟁적으로 추진해야겠다.더이상 국민과 역사앞에 직무유기를 해서는 안되겠다.선거와 정권은 유한하지만 국가는 우리들의 후손을 위해서도 영원히 발전해야 하기 때문에 정치인들과 국민들은 모두 시대적인 과제를 실천함으로써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성공적인 지방선거실시와 세계화및 지방화에 걸맞는 지방행정개혁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 공무에 지장주는 음주는(박갑천 칼럼)

    러시아의 일간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는 며칠전 한 안보회의 위원과 회견을 가졌다.거기서 『좀처럼 흘러나오기 힘든 사실』을 얻어내어 폭로했다.그 가운데 술얘기도 나온다.옐친대통령은 샤논공항사건후 「안보회의에서는」술취한 것을 본일이 없다는 것이다.『하지만 러시아 최고권력기관의 음주문제는 매우 심각하다』고 덧붙인다. 샤논공항사건이란게 무엇인가.지난해 9월말 옐친대통령이 레이놀즈 아일랜드 총리와의 회담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일이다.미­러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중 샤논공항에 도착한 옐친대통령은 1시간을 기다려도 비행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그래서 건강이상설도 나돌았으나 과음으로 깊은 잠에 빠져버린 결과였다는게 모스크바외교가의 쑤군거림이었다. 술을 마시되 공무수행에 지장을 줄만큼 마시지는 않는다고 그는 말해왔다.하지만 그의 음주실수설은 간간이 전파를 탔다.지난해 8월에는 볼가강 유역 유세중 술김에 경호원에게 대통령공보관을 강물에 빠뜨리라고 명령했다.그 다음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는 오찬석상에서 술에 취해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지휘봉을 뺏는가 하면 마이크를 잡고 노래부르기도.『지장없다』는 큰소리는 역시 주당들의 상투어인 『나 취하지 않았어』쪽이라 봐야 할 것같다. 「지장없어」뵈는 사례들이 더러 있긴하다.조선조 초기의 학자 윤회같은 경우다.그는 문장이 당대 으뜸이었지만 술이 과했다.그를 걱정한 세종임금이 하루 석잔씩만 마시라고 일렀을 정도다.하루는 곤드레가 되어 집에 누웠는데 임금이 급히 불렀다.말에 태우니 근들근들.하건만 임금 앞에서는 취한 빛이 없었다.임금이 선포할 제서를 쓰는데 『붓을 휘두르는 품이 나는 것 같았다』(필원잡기). 손순효도 그런 사람중 하나였다.어느 날 승문원에서 올린 하표문이 마음에 안들자 성종임금은 손순효를 찾았다.그는 몸을 못가누게 취해 있었다.그런 그가 어전에서 고쳐지어 썼는데 『글에 버릴곳이 없고 글자에 고칠 것이 없었다』(오산설림초고).비록 그렇다 해도 맨정신으로 쓴글 같기야 했을 것인가. 술은 백가지 약중의 으뜸(주내백약지장:한서)이라고 한다.하지만 이는 알맞게 마셨을 때의 이야기다.술꾼들은 그 「알맞게」를 못지킨다.그렇다고 공무에 지장을 주는 과음이 용납되는 건 아니다.옐친대통령의 과음도 혹여 정치생명에 영향하는 것 아닐지 모른다.
  • 태권도(한국문화 세계화의 길:5)

    ◎“재미있게” 규칙 개정·장비 개선 필요/동호인 세계 145개국 4천만명… 해마다 늘어/체계적 무도철학 정립,인성교육 도움돼야 무도철학의 신체적 발현인 태권도는 아름다움을 신체적 동작으로 추구하는 사물놀이,탈춤등 처럼 우리의 민족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아마도 한국인이 낳은 문화 가운데 태권도처럼 세계적으로 보급된 문화는 없을 것이다.거창하게 표현한다면 이조의 도자기나 현대의 자동차보다도,어쩌면 김치나 갈비보다도 온세계에 널리 퍼져 침투한 것이 태권도다.예컨대 격투기 인구가 많은 미국에서도 무도체육관의 70%는 태권도가 차지하고 있고 그 비율은 지금도 상승하고 있단다』(일본의 스포츠전문잡지인 「스포츠 그래픽 넘버」의 88서울올림픽특집호). 『현재 세계태권도연맹(WTF)에 가입한 회원국은 145개국이며 수련생은 약4천만명에 이르고 있다.앞으로도 아프리카의 여러나라들이 경제성장에 발맞추어 가입할 것으로 전망되며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으로 수련생의 증가도 예상된다』(WTF이경명사무차장). 태권도가 동양의 다른 타격기(정격기)무도를 제치면서 세계화의 선두를 달리고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수 있었던 까닭은 한마디로 무도의 합리적인 스포츠화에 가장 먼저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금 치러지고있는 태권도는 한국전통무예인 태권도가 아니라 경기스포츠로서의 태권도다.안전성에 대한 배려,알기쉬운 승패,기타 경기를 성립시키는 갖가지 요소를 지금의 태권도는 모두 갖추고 있다』(일본의 격투기전문잡지 「격투기통신」88년12월호). 태권도의 뿌리는 태껸이다.그러나 현재의 태권도는 태껸과 크게 다르다. 『태껸이란 한마디로 한국무도의 근원이다.태권도도 태껸으로부터 태어났다.태껸을 현대적인 스포츠로 만든 것이 태권도다.태껸과 태권도의 차이는 태권도가 직선적인 움직임을 나타내는데 견주어 태껸의 움직임은 곡선적인 것과 종합무도이기 때문에 태껸에는 기술에 제한이 없어 손에 의한 안면공격과 메치기기술도 있다는 점등이다』(정경화태껸지도자). 태권도는 73년5월에 WTF를 창설하고 눈부신 세계화를 이룬끝에 94년9월 파리에서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총회에서 20 02년 시드니올림픽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지구가족으로부터 가장 합리적인 동양의 타격기로 받아들여지도록 태권도를 스포츠화한 것이 세계화 달성의 길을 열어 놓았다고는 하지만 단 20년 남짓 사이에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성장하기까지에는 다음 두가지가 크게 작용했다. 하나는 월남전에 참전한 한국군과 함께 전쟁터로 건너간 태권도가 다른 나라군대에게 실전무도로 소개되어 큰 관심을 모으게 됐고 이를 바탕으로 월남전이후 많은 태권도지도자들이 온세계로 퍼져나갔다. 또 구 서독에 광부로 건너간 사람들 가운데에도 태권도지도자들이 적지않게 끼어있어 광부로서의 계약기간이 끝나자 귀국하지 않고 세계각국에 태권도체육관을 연 사람들이 많았다. 뿐만아니라 미국과 중남미를 향한 이민붐을 타고 많은 태권도지도자들이 남북미대륙으로 건너가 태권도보급에 힘썼다. 또하나는 외국어구사능력과 외교적 수완이 뛰어나 비올림픽경기종목인 태권도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IOC부위원장의 자리에 올라간 김운용WTF총재가 각 국가올림픽위원회(NOC),각 대륙의 스포츠통활체등을 설득해서 선수권대회 창설과 대륙단위종합체전의 정식종목으로 태권도를 채택하도록 만든 것도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으로까지 이끄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할 것이다. 태권도가 세계속에 보다 깊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태권도를 보다 재미있는 경기로 만들기 위한 경기규칙개정과 장비의 개선등이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그와 함께 태권도철학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고 이를 세계화 시키는 것이 앞으로 치러야할 제2단계 작업이라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될 것같다. 『유도의 세계화가 이루어지자 88서울올림픽에서 유도의 종주국인 일본은 금메달을 한개밖에 따지 못했다.어쩌면 이 결과야 말로 유도의 참된 세계화일는지도 모른다.태권도의 세계화도 언젠가는 유도와 비슷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한국이 태권도의 종주국으로서의 위치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경기기술의 부단한 개발과 아울러 태권도철학의 이론적 체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태권도 철학이야말로 태권도를 세계속에 보다깊이 뿌리내리도록 만들어 줄 것으로 생각한다』(민경호·UC버클리교수·초대 미국태권도협회회장). 『미국에서는 이제 학교선생님의 말씀도 잘 안듣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아직도 그들에게 영향력을 미칠수 있는 사람은 신부나 목사등의 성직자와 무도사범뿐이다.태권도지도자들에게도 경기기술뿐만아니라 수련생의 인간교육을 기대하는 부모들이 많다』(메어리 추·재미 여성태권도지도자). 온세계의 많은 청소년들에게 태권도수련을 통해 전인교육이 베풀어질때 태권도의 세계화는 완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태권도의 역사/태껸이 뿌리… 소림사권법보다 3백년 앞서 태권도의 기원은 삼국시대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역사적인 자료가 남아있는 것은 삼국시대부터다. 고구려 제10대 산상왕13년(209년)부터 수도였던 환도산성에 있는 무용총벽화에는 오늘날의 태권도와 같은 자유대련의 모습이 그려져있다. 『이 벽화는 우리 태권도의 역사가 중국의 소림사권법 보다도100년에서 300년이상 앞선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놀라운 역사적 자료다』(김광성,김경지 교수가 함께 지은 「한국태권도사」). 태권도의 원형은 태껸,수박,권법,수박희,수벽타,각저,날파람등 여러가지로 불렸으며 고구려의 청년무사집단인 선배,신라의 화랑등이 이 격투기를 익혔다. 고려와 조선조에 걸쳐 군사를 뽑는 시험과목의 하나로 태권도겨루기가 실시됐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또 옛기록에 보면 몸을 날려 상대방의 상투를 발로 스치는 비각술이라는 것도 있었다. 오늘날의 태권도가 가라데나 쿵후보다도 다채로운 발기술을 많이 쓰고 있는 것도 역시 옛날부터의 전통이 살아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제때 탄압을 받았던 태껸,혹은 수박은 광복후 여러유파의 도장이 난립했으나 61년에 통합을 이루어 대한태수도협회를 탄생시켰고 65년에 명칭을 대한태권도협회로 고쳤다. 태권도의 어원을 살펴보면 태는 발로 뛰고 차고 내려친다는 뜻을,권은 손 또는 주먹으로 친다는 뜻을,도는 철학적 태도 또는 생활방식을 나타내고 있다. ▷전문인이 말하는 태권도의 길◁ ◎새로운 경기기술 개발 노력을/김운용씨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으로 태권도의 세계화는 일단 달성된 것으로 보아도 좋을 듯 싶다. 그러나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계속 살아남기 위해서는 앞으로 열리는 올림픽의 조직위원회들이 그때마다 태권도를 선택해 주어야만 한다. 육상이나 수영등의 기본종목은 조직위원회가 빼버릴수 없지만 유도,복싱,태권도등은 조직위원회만 외면하면 그 올림픽에서는 빠지게 된다. 조직위원회가 종목을 선정할때 그 영향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큰 세력이 있다. 막대한 방영권료를 지불해서 올림픽을 재정적으로 크게 지원해주고 있는 TV방송국이 바로 그것이다. 선수의 뇌에 손상을 준다는 우려와 판정을 둘러싼 말썽 때문에 늘 IOC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복싱이 그래도 올림픽에 머물 수 있는 것은 복싱을 선호하는 미국TV방송국이 바람막이 노릇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태권도는 호구의 착용으로 안전성이 확보되어 있고 전자심판기의 등장으로 판정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 또한컬러도복착용여부를 놓고 의견이 갈라져 있는 유도와는 달리 일찍부터 호구의 컬러화로 TV쪽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다만 팬들과 TV의 관심을 보다 끌기위해 경기규칙과 장비의 개선,그리고 새로운 기술개발에 대한 노력은 지속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스포츠와 무도 융화시켜야/박동근씨 미태권도협 기술분과위원장 『태권도는 스포츠에 앞서 하나의 정신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운동경기의 측면만을 강조해서는 안되고 무도,즉 정신적 측면을 적절하게 융화시켜야 합니다』 25년동안 미국에서 태권도보급을 위해 애써온 미국태권도협회(USTU) 기술분과위원장 박동근(55·뉴욕대·태권도9단)교수는 태권도 세계화의 요체를 정신력강조라면서 『가라데·쿵후 등 미국에 소개된 동양경기중 태권도만 그 주도권을 미국사람에게 빼앗기지 않고 여전히 한국사람이 장악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정신력에서 앞서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내의 태권도가 지나치게 기술위주의 경기력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한 박교수는 『태권도의 세계화를 위해서는단순한 스포츠만이 아닌 무도로서의 체계화와 세계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룰과 폼의 정립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전주서 후학양성 힘쓰는 서예가 송성용옹(향토에 산다)

    ◎“고향서 묵향에 묻혀 사는게 기쁠 따름”/상투 고집하는 「서예의 달인」… 작품전시관·학술재단 설립 앞장 지금 우리 주변에는 태어난 고향을 지키며 살찌운 정신적 양식을 「향토사랑」으로 실천하는 명사들이 꽤나 많다.고향에서의 삶을 통해 건전한 「향토문화」를 정착시키고 나아가 「향토사랑」을 국가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진정한 명사들.그러기에 이들의 삶은 늘 우리네 인생의 귀감이 되고 있다.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 이기주의와 지역성이라는 비뚤어진 향토의식을 바로 잡으며 향토에 살기를 고집하는 이들의 고귀한 삶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고풍스런 전통 한옥들이 즐비한 전북 전주시 교동 남천교 첫들머리에 들어서면 묵향이 물씬 풍긴다.이 시대 최후의 한학자요 최고의 서예가 강암 송성용(83)옹의 체취가 골골마다 묻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조 한학을 지금으로 이어주는 한학자이자 강암체의 원조로 흔히 「서예의 달인」으로 칭송되는 강암선생. 『향리에 묻혀서 정다운 사람들을 만나고 예술의 고장에서 내 예술의 천분을 누릴수 있음이 그저 기쁠 따름』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선생은 일제의 무단통치가 극성을 부리던 19 13년 전북 김제군 백산에서 태어났다.5살때부터 역시 호남의 뼈대있는 한학자였던 유제 송기면 선생으로부터 한학을 배우며 서예를 익혔다. 한국 서예의 일가를 일궈낸 선생의 서예공부 정진은 일제의 단발령에도 목숨걸고 상투를 자르지 않았던 선비의 올곧은 고집이기도 했다.상투를 틀고 갓을 쓴 한복차림의 자세를 한치도 흐트러뜨리지 않은 선생은 아버지가 작고하고 1년이 지난 43살때인 56년 처음으로 국전에 작품을 출품했다. 『입신양명하여 세상과 더불어 사는 재미도 재미려니와 향리에 눌러 앉아 천분을 지키며 사는 것도 또한 재미』라는 가르침을 거스르지 못해 뒤늦게 세상에 강암체를 선보였다. 선생의 작품은 국전 출품과 함께 세상의 이목을 끌었고 10년만인 66년에는 국전 초대작가로 추앙됐다.국전초대 작가가 되면서 선생은 향리를 떠나게 하려는 유혹에 시달렸다. 『향리에 눌러 앉아 천분을 지키고 싶다』는 선생의 고집도전북지방의 서예를 중흥시키자는 동료 서예가들의 강권만은 이겨내지 못했다. 실제로 선생은 전주로 거처를 옮긴 67년 전북도 미술전시회를 만들어 맥을 이어오고 있다. 『방문만 열면 남고산,승암산자락이 어울려 아름다운 산수를 이루고 완산봉 기린봉이 저만큼씩 좌정하고 하늘을 우러러 보고 있는 곳,나는 이 하늘 아래서 숨쉬고 살 수 있다는 것을 행복으로 여긴다』 예술의 분위기가 갖추어진 도시요 내 예술을 키워준 「가장 크고 넓은 세상」이라는게 선생의 향토예찬론. 전주가 가장 크고 넓은 세상이라는 선생의 향토 예찬은 여기서 머무르지 않는다.한국서단에 강직한 선비품격과 마음에서 우러나온 서필로 호남을 대표해온 그는 요즈음 향토문화를 새롭게 일구기 위한 일들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강암서예전시관 건립과 강암서예학술재단 설립이 바로 그것이다.독특한 향토문화를 꽃 피우고 꼿꼿한 선비정신을 이어나가기 위해 평생숙원으로 추진하고 있다. 강암은 예술의 고장 전주를 서예발전의 본 고장으로 뿌리내리기 위해 90년 국내 최초로 서예작품상설전시관건립사업에 착수,오는 4월 준공을 눈앞에두고 있다.93년에는 그동안 모은 재산 6억원을 흔쾌히 기증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서예학술재단을 설립함으로써 서예를 학술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흥,보존하고 후진을 양성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또 20여년전부터 국내에서 가장 큰 서단인 연묵회를 만들어 후배,제자들과 함께 일본,대만,중국 등 동남아를 돌면서 서예교류전을 갖는 등 서예의 세계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전·예·해·행·초서 등 모든 서체와 사군자의 달인,일생을 한복만을 고집하며 유학을 숭상,창씨개명과 단발령에 항거했던 한국의 마지막 선비인 강암. 향리에 눌러사는 재미가 어떠하냐고 물을 때마다 대답 대신 벽에 걸린 글귀를 조용한 미소로 응시한다. 「문여하사 서벽산 소이불답 심자한(왜 산중에 묻혀사느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않고 웃음으로 답하니 마음이 스스로 한가하더라)」 가장 크고 넓은 세상에서 서예를 익혔으니 나머지 여생도 이 고장 후학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겠다는 강암 송성용옹은 슬하에 4남2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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