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선조
    2026-06-06
    검색기록 지우기
  • 한편
    2026-06-06
    검색기록 지우기
  • 기아
    2026-06-06
    검색기록 지우기
  • 과외
    2026-06-06
    검색기록 지우기
  • 한국
    2026-06-0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641
  • 민자 당명변경 제도­인적정비 “시발”

    ◎“깨끗한 정치” 깃발… 후속조치 뭘까/당 조직 직능중심 전환 검토­제도 정비/「흠집 인물」 개혁인사로 대체­인적 정비 민자당의 「새이름 짓기」가 변혁의 시발점이라면 그 종착역은 어디인가.민자당이 구시대와의 청산을 위한 첫 시동을 걸면서 앞으로 변화될 모습에 정치권의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그 진폭과 강도가 여권 내부는 물론 정치권 전체에 미칠 파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민자당은 당명개칭에 이은 후속조치의 확대전망을 경계한다.제도를 바꾸고,이에 따라 사람을 바꾸게 될 것으로 비쳐지면서 총선전열이 흐트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김윤환대표나 강삼재사무총장 등 지도부가 『전국위원회에서 당명개칭 말고는 없다』고 못박고 나선 것도 이를 감안해서다. 후속조치는 제도와 인적 정비라는 두가지 측면으로 요약된다.물론 돈안드는 정치,깨끗한 정치의 구현을 제1목표로 지향한다. 우선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내부적으로 정당구조의 개선,지도체제 및 정계개편 등의 문제를 정리해야 하는 숙제가 산적해 있다.외부적인 과제는 선거구제도등 전반적인 정치제도의 개선이다. 민자당은 정당구조의 개선을 첫 후속조치로 추진할 방침이다.거대 집권당의 군살을 빼고,씀씀이를 줄여보겠다는 계산이다.하지만 내년 총선,내후년의 대선을 앞두고 쉽지 않은 사안이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지역중심,즉 시도지부 및 지구당 중심의 당 조직을 돈이 덜드는 직능중심으로 대폭 전환할 것을 검토중이다.강용식기조위원장은 『일본은 직능 대 계선조직의 비율이 7대3으로 우리는 최소한 5대5 내지 6대4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부적인 과제로 현행 소선구제를 돈이 덜들고,지역감정을 다소 해소시킬 수 있는 중·대선거구제로 전환하는 방안은 유동적이다.야당측의 반대를 무릅쓰고 굳이 강행하지 않겠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지만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서정화 원내총무는 『중·대선거구제는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계개편은 이미 물 건너 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지도체제 개편은 유동적이다.김대표는 『지도체제 개편은 없다』고 미리 못박았다.민주계 한 실세인사도 『김윤환 대표­강삼재 사무총장 체제로 총선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하지만 당 일각에서는 『문패만 새로 달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부총재 제도의 도입을 주장,주목된다. 공천구도를 통해 가시화될 인적 정비문제는 민자당의 진로를 가늠할 가장 민감한 사안이다.당명 개칭이 민자당 창당 주역인 노태우씨와의 단절목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구정치 행태와의 결별은 불가피하다.민자당이 절체절명의 과제로 내세우는 세대교체라는 측면에서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개혁성향 인사의 대거영입은 움직일 수 없는 대세다. 현재로서는 당내에 공존하는 노씨 비자금사건에 연루돼 「흠집」있는 의원들을 포함한 5·6공 세력들이 어느정도 정리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다만 그 폭에 따라 민자당이 새로 태어날 수도,아니면 허물어질 수도 있는 탓에 무척 조심스럽다. ◎“정계개편 서곡” 풍향에 촉각/개혁신당­영입협상 준비/국민회의­총선타격 우려 민자당의 당명 변경을 보는 야권의 시각엔 미묘한 기류가 감지된다.겉으론 「민자당을 탄생시킨 3당합당은 구국의 결단이 아닌 망국의 결단」이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고 있지만,속내는 전혀 그렇지 않다.정치권,특히 야권에 불어올 정치적 풍향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야권은 먼저 당명변경 결정이 비자금정국이후 김영삼 대통령의 첫 처방이라는 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아직 인적·제도적 차원의 민자당에 대한 「대수술 플랜」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현재로서는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해 온 김대통령의 향후 구상을 예측할 수 있는 유일한 단초이기 때문이다. 국민회의·민주당·자민련 할것없이 야권은 김대통령이 의도하고 있건,그렇지않건 간에 이번 결정이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여긴다.김윤환 대표와 강삼재 총장의 『민자당 지도체제 개편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언급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 눈치다.설사 민자당이 지금 당장은 내부 방침을 그렇게 정했다 하더라도 향후 정치권 전반에 미칠 파장의 수위가 그대로 따라줄 지는 미지수라는 판단이다. 벌써부터 개혁신당은 「민자당이 먼저제의해 온다면」의 단서를 달긴 했지만,영입협상에 적극적으로 응할 태세이다.민주당 개혁파 의원들도 『좀 더 지켜보자』며 유보적인 자세이다.자민련의 김종필총재는 『민자당이 중·대선거구제 개편을 정식으로 제의해 온다면 자민련의 생각과 같은 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 민자당과 협상에 나설 뜻임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민자당이 당명개명 이후 깨끗한 정치를 위한 제도개혁과 중·대선구제 개편으로 풍향을 이어간다면 야권 전체가 다시 큰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국민회의 문희상의원의 『벌써부터 정치권 일각에서는 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다』는 분석은 이같은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대목이다. 특히 정계개편으로 이어진다면 그 판이 과거 3당합당과 같은 수뇌부에 의한 단순한 「세규합」에 머물지 않을 전망이다.당간판을 거침없이 내린 점으로 볼 때 이는 정치권의 제 정파를 화학적으로 통합할 「태풍의 눈」이 될 공산이 크다.야권이 민자당의 내부 혁파가 도덕성의 추락과 이전투구의 현 정치판에 염증을 느낀 신진 개혁인사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어진다면 정치권의 세대교체와 지역주의 청산을 요구하는 바람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불 것으로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경우,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될 당은 다음 총선에 모든 승부를 걸어야 할 국민회의측이다.국민회의측이 이날 『민자당 김대표를 위시한 민정계를 팽하기 위한 수단』『대선자금 정국을 흐리기 위한 작전』이라고 공세를 편 것도 사실은 이러한 위기의식의 발로인 것 같다. 노태우씨 비자금사건으로 태풍권에 휩싸여 있는 정치권은 이제 그 위력조차 가늠할 수 없는 또다른 대형 태풍과 맞닥뜨리게 될 형국이다.
  • 제2개척지 보산촌(압록강 2천리:14)

    ◎1인당 연소득 8백원… “조선족 부자마을”/20년간 65만평 개간… 곡물 연32만근 수확/137가구 482명 거주,교육열 높아 석학 많아/노인퉁소대 등 문화예술단 조직… 민속전통 보존 압록강유역의 길림성과 요령성에는 조선족자치현이 1군데,자치향이나 진이 16군데가 있다.자치현은 길림성 장백현이 유일하고 진은 길림성 집안시에 1곳이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요령성에 분포돼 있다.그렇다고 해서 자치지역에 조선족만 사는 것은 아니다.한족과 만족·몽골족이 함께 살아가는 잡거지인 것이다. 그런데 요령성 단동시 관전만족자치현에 속하는 석호구향의 보산촌은 조선족 못자리판이다.비록 만족의 자치현이기는 하나 보산촌에 사는 한족과 만족은 「쌀의 뉘」와 같은 미미한 존재다.조선족이 1백37가구 4백82명인 데 비해 한족과 만족은 10가구 39명에 불과했다.모두가 파란데 하나가 붉다는 만록청중일점홍과 같은 조선족 마을이라고나 할까.보기드문 현상이었다. 보산촌은 망보산 자락 비산비야 지대에 자리잡은 오붓한 마을이다.관전만족자치현성과는 10리가채 못되었다.보산촌 당서기 문영빈(47)씨 집에 짐을 풀고 촌장 배일명(47)씨를 만났다.탱크부대 훈련단장을 지낸 그는 마을현황을 자세히 들려주었다.경작면적이 1.5㎦라는 것과 지난 1981년 현정부가 각지의 조선족을 이주시켜 마을을 만들었다는 사연 등을 이야기했다. ○평야지대의 보금자리 조선족의 마을 보산촌을 일구어낸 주인공 김창영(66)선생은 지금 요령성 단동시에 살고 있다.단동시 조선족노인협 부회장직을 맡아 만년을 보내고 있는 그는 1975년부터 관전만족자치현 상무(상임)현장을 역임하는 동안 보산촌을 세웠다.그는 일찍 보산촌지역에 욕심을 냈다.당시 보산촌일대는 군의 훈련장과 군량미 자급을 위해 개간한 수전지대가 있는 군사지역이었다. 그러나 논농사경험이 없는 군이 더이상 농사를 짓지 못하고 버려둔 상태였기 때문에 눈독을 들일 만했다.김부현장(김창영)은 부대장을 찾아가 훈련장과 논을 지방정부에 돌려줄 것을 요구한 끝에 이를 실현시켰다.중국인민해방군 건군절 8월1일을 상징한 8·1저수지라는 용수원까지 갖춘 군사지역은심양군구의 비준을 받아 결국 지방정부에 이양되었던 것이다. ○군지역 불하받이 정착 이에 따라 단동시는 1981년 봄 군사지역의 논을 조선족에게 풀어주는 일을 착수했다.조선족에게 땅이 돌아가기까지는 조선족의 벼농사기술과 소수민족 우대정책이 맞물렸다.보산으로 이주하는 조선족은 의무적으로 국가에 바치는 징구량을 3년간 면제받는 한편 농업세 역시 면제되었다.그리고 1무(3백평)를 개간하면 50원의 장려금을 대주었다.그리고 성정부에서 2년에 걸쳐 27만원을 들여 도로와 전기·수도 등을 건설했다. 그러니까 보산촌은 선조들의 서북간도 개척에 이은 제2의 개척지다.그 개척의 기수는 물론 당시 부현장이었던 김창영선생이다.그의 말을 들어보면 자신도 조선족이지만 조선족에게 남다른 애정을 기울였다. 『저는 세살을 먹던 해에 부친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 왔디요.고향은 평안북도 초산입네다.관전에 사는 조선족들은 거개가 평북 초산·벽동·창성에서 이주한 사람들였디요.50년대말까지도 많이들 모여 살아서리 그런대로 생활이 편리했댔는데 지금은 그렇디가 않아요.문화혁명 이후 한 마을에 몇 가구씩 끼어사는 신세가 되어 한족에게 급속히 동화하고 말았다 이 말입네다.조선족학교가 엉망이라 말과 글을 제대로 못 배우고,짝 찾아 시집·장가가기도 어려워졌디요.그래서 조선족들이 모여사는 방법을 강구했댔습네다』 지금 보산촌에 사는 한족과 만족은 군훈련장에 붙어살던 사람들이다.조선족의 이주는 1981년 31가구가 보산촌에 자리를 잡는 것으로 시작되었다.요령성과 관전현 이외지역 거주자는 이주할 수 없도록 원칙을 세웠으나 연줄을 대고 찾아와 죽치는 바람에 외지인 13가구도 결국 받아들였다.조선족끼리 살고 싶어서 찾아온 핏줄을 문전박대하지 못한 인심이 가상스러웠다. 내가 보산촌에 와서 머무르던 집주인인 당서기 문영빈씨는 조선족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이다.보산촌으로 이주하기 이전에는 조선말을 못하는 벙어리였다는 것이다.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한량 없다는 이야기를 후회삼아 슬슬 풀어놓았다. 『한국과 민족만 사는 태평소현에서 태어나 자랐으니 조선말을 할 턱이 없었디요.1971년 연변 안도현 북흥촌으로 선보러 갔을 때 중매쟁이가 통역을 했디 뭡네까.나는 한족말만 하고 처가식구들은 조선말 말고는 못하니까 별도리가 없데요.우리 애들도 여기 오기 전에는 조선말 못했디요.이자 나나 애들이나 조선말 유창한 걸 보면 보산촌은 그 자체가 커다란 조선족 학교입네다』 ○비닐공장 등 개설 운영 고생인들 오죽했을까만 보산촌 사람은 모두가 잘 살고 있다.농토가 2천1백73무에 곡물수확량이 32만근에 이르는 부자마을이다.그리고 비닐제공장을 포함한 2개의 공장을 경영하여 36만원의 농공업총생산량을 기록했다.1인당 연간소득이 8백원(한화8만원)이고 학교경영비와 각종 세금을 공장경영이익에서 충당하고 있다.보산촌 소학교 출신 10명이 대학과 전문학교를 나와 2명이 석사학위를 받았다.현재 대학생도 6명이나 된다. 보산촌은 현이 지정한 조선족민족문화촌이다.조선족 고유민속 발굴과 보존은 물론 노인퉁소대와 같은 문화예술공연단체도 조직되었다.요즘은 연변을 통해 백두산을 구경한 한국의 관광단이 압록강을 따라 보산촌을찾고 있다. 그래서 보산촌 사람의 춤과 소리를 구경하고 함께 어울려 「고향의 봄」과 「우리의 소원」을 합창하는 한국관광객을 곧잘 만나게 되었다. 지난 6월20일에는 보산촌을 들른 한국평생교육회가 보산촌노인협회에 중국 인민폐 1만원을 내놓았다.그 돈으로 노인들은 사과나무를 심고 밭머리에 「중·한노인친선사과원」이라는 푯말을 세웠다.사과나무는 3년이 지나면 혈육의 정이 담긴 꽃을 피울 것이라고 한다.그리고 나서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열매를 맺으며 보산촌 노인퉁소대가 「우리의 소원」을 또 연주할 것이다.
  • 제11회 향토문화 대상/대상에 김정명 춘천문화원장

    ◎본상 개인 5명·단체 1곳 선정/새달 1일 시상식 서울신문사가 전통문화 계승과 지역문화의 창달에 힘써온 숨은 일꾼을 찾기 위해 제정한 제11회 향토문화대상 수상자가 22일 결정됐다. 전통문화부문과 현대문화부문으로 나누어 전국의 시·군 문화공보실과 문화원·예총·향토사학자들이 추천한 단체 및 개인을 대상으로 심사한 결과 영예의 대상에는 김정명 춘천문화원장(75)이 선정됐다. 본상중 전통문화부문에는 ▲김상곤(남원애향운동 본부장·58·전북 남원) ▲대구향토문화연구소(대표 김택규·66) ▲최종덕(양양 오색국교교사·52·강원 양양)씨등 3명이,현대문화부문에는 ▲이윤수(시인·82·대구시) ▲이은구(이천문화원장·52·경기 이천) ▲심우성(극단 서낭당 대표·62·충남 공주)씨등 3명이 뽑혔다. 대상에는 상금 3백만원,본상에는 각각 2백만원씩의 상금이 주어진다. 올해 심사는 구상(시인)·차범석(극작가)·임동권(중앙대 명예교수·민속학)·정영호(한국교원대 교수·역사학)·이중한(서울신문 논설위원)씨등 5명이 맡았다. 서울신문사 주최,LG전자 협찬,문화체육부 후원으로 열리는 이번 향토문화대상 시상식은 오늘 12월 1일 하오 4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열린다. ◎대상 수상자 김정명 춘천문화원장/「소양제」 부활·예술행사 활성화/민속자료실 만들고 삼악산성 복원 앞장 『큰 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지역에 묻혀버린 향토문화의 발굴,보존에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대상 수상자로 결정된 강원도 춘천문화원장 김정명씨(75)씨는 『선인들의 얼이 담긴 향토문화를 보존하고 전승하는 작업이 너무 미흡해,후손으로서의 도리를 하려고 애썼을 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양구군수·강릉시장·도청 상공국장,중소기업 협동조합 도지부장 등을 거쳐 지난 87년 춘천문화원장으로 부임했다.그 때 문화원은 봉의동 도청 앞의 건물에 3평짜리 사무실를 임대해 쓰고 있었다.인원은 여직원 한명과 원장 뿐이었다. 문화재를 간수하는 유일한 기관인 문화원의 당시 역할과 위상을 말해주는 사례이다.『조상들의 발자취와 손때 묻은 유품들을 추스리려는 노력이나 의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때마침 시립도서관이 새 건물을 짓자,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해 사무실을 도서관으로 옮기고 민속자료실과 영상오디오 자료실·미니 도서실 등을 만들고 지역의 예술·문화 행사를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흐지부지됐던 춘천의 향토문화 축제인 「소양제」를 77년부터 부활하고 정월 대보름 놀이와 청소년 유적답사 등도 알차게 추진했습니다』 향토문화를 지키고 가꾸려면 주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시급하다고 보고 솔선하기 시작했다.스스로 강원도 전역을 누비며 선조들의 생활도구와 유물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은 베틀,소 구유,재래식 쥐틀 등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6백여점의 유물들을 의상,음식,생활,생활방식,습관 등으로 나뉘어 민속자료실에 전시했습니다』 대부분 지금은 볼 수 없는 물건들이다.학생들과 주민들이 문화원을 향토문화의 학습장으로 활용할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 요즈음은 스러져가는 산성 복원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춘천 덕두원리에 10여m 정도만 남아 있는 고대 맥국의 마지막 유적인 삼악산성의 복원 작업을 서두르고 있습니다.맥국은 삼국시대 이전의 고대 왕국으로 강원도의 뿌리입니다』 춘천,나아가 강원도의 뿌리인 맥국의 보존을 위해 3년 전 조사위원회를 만들었고,오는 연말까지는 신북읍 발산1리에 맥국터비를 세우기로 했다. 이에 앞서 몽고 침략에 맞서 결사적으로 싸웠던 항몽터전으로,허물어져 자취를 잃어가는 봉의산성을 2차례에 걸쳐 복원했다. 『국립 강원박물관을 세우고,지역 인사 17분이 모여 한일합방에 반대하는 시를 읊던 국사봉에 망배도 세워 선조들의 참된 얼을 배우고 잇는 곳으로 활용토록 하겠습니다』 정선아리랑 등 전통문화를 12분야로 나눠 책으로 펴내기 위해 서두르는 등 제 2문화운동을 펼치고 있는 김원장은 『강원도에 제 2의 김유정과 이효석이 배출될 수 있는 문화의 터전을 만들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춘향제」를 전국규모의 축제로/김상곤 남원애향운동본부장 지난 85년 춘향문화선양회를 발족해 해마다 춘향제를 창의적으로 유치,전국적인 규모의 축제가 되도록 했다.91년 춘향제부터는 춘향문화대상(학술·예술·여성·언론분야)을 제정해 올해까지 상을 시상해오고 있다.92년 춘향제 때는 「춘향제 60년사」를 발간했으며 93년에는 「춘향전 관계사 학위논문선집」「춘향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발간했다. 투철한 향토애를 바탕으로 남원의 문화전통을 가꾸고 남원인의 품위향상을 위해 애쓰는 것은 물론 현재 춘향제를 세계적인 관광문화축제가 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사당 놀이」 등 문화재지정 공헌/심우성 극단 서낭당 대표 59년 사라져 가던 「남사당 놀이」의 연희를 수합해 재연한 이래 특히 전통 인형극과 탈놀이의 발굴조사를 통해 무형문화재의 지정에 공헌해 왔다. 저서로 「남사당패 연구」「무형문화재 총람」「한국의 민속극」「한국의 민속놀이」「민속문화와 민중의식」「탈」등이 있으며 「조선무속의 연구」「역과 점의 과학」「연극의 역사」등 20여권의 역저가 있다. 현재는 문화체육부 문화재 전문위원,극단 서낭당 대표,한국민속연구소 소장,공주민속극박물관 관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69년 창립… 「향토문화」 회지 발간/대구향토문화연구소 69년 6월 향토사 및 향토문화의 조사연구에 관심있는 교수와 향토사가들이 모여 창립됐다.같은해 12월 회지인 「향토문화」를 육필사본으로 간행하는등 연구회의 발전을 꾀했으며 85년 7월부터는 대우학술재단의 지원을 받아 모임을 활성화 하고있다. 현재 회지는 제7집까지 간행됐으며 조사보고서로는 「경상감사 도임행차순력 복원」「화랑문화의 신연구」「낙동강 유역사」등을 출간할 예정이다.이밖에도 향토사 사료 윤독회,향토사적 답사 등으로 대구 경북지역의 향토문화연구에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87년부터는 각 지역의 향토문화 연구단체를 결집해 우리 문화유산을 발굴·보존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76년 청파요 개설… 도예발전 헌신/이은구 이천문화원장 우리 전통도예의 맥을 이은 분청사기의 장인으로 76년 이천읍 사음리에 청파요를 개설해 도예문화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 왔다. 91년 1월 이천문화원장에 취임한 이래 각종 문화사업을 통해 지역문화 발전은 물론 지방문화원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공헌했다.특히 이천문화원이 해마다 10월에 개최하는 이천도자기축제를 국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한 문화관광축제로 적극 육성,올해 제9회 이천도자기축제의 경우 외국인 1만5천명을 포함한 25만명의 관광객 유치에 성공했으며 4억3천만원의 도자기 판매실적과 함께 도예작품전·한국의 잔 특별전·도자기 제작실연등 각종 행사를 마련해 도예문화 보급에 크게 기여했다. ◎농악대 구성… 전통민속 보존 힘써/최종덕 양양 오색국교 교사 63년 교육계에 투신한 이래 투철한 교육관으로 전통민속예술과 우리 뿌리찾기 교육에 열과 성을 다해왔다. 전통민속예술의 창달 및 계승발전을 위해 사라져 가는 향토민속의 발굴에 힘써 강원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종합최우수상 3회,종합우수상 2회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체육부장관상을 3차례 수상했다. 양양군 전통민속보존회와 어린이·청년·노인 농악대를 각각 구성해 농악보급 및 보존에 힘쓰고 있으며 청소년 어울마당 지도교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여름 피서철에는 해수욕장에서 고장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전통민속을 공연함으로써 볼거리를 제공하고 향토민속을 관광자원화해 주민소득 증대에도 기여하고 있다. ◎광복뒤 첫 월간시집 「죽순」 창간/이윤수 시인 지난 45년 「죽순시인구락부」창립 이래 현재까지 대표로 있으면서 46년 광복 최초로 월간 동인시집 「죽순」을 창간했다.48년 한국문단 최초로 「상화시비」를 대구달성공원에 건립했으며 50년에는 문총(현 예총)구국대 경북지부를 조직했다.79년 동인시집 「죽순」을 복간했으며 83년에는 「전선시첩」1·2·3 합본을 발했다. 85년 상화시인상을 제정,올해로 10회째를 맞고 있으며 90년부터는 상화시 전국백일장을 해마다 실시하고 있다.92년 2월부터 한동안 서울신문에 「향토시인 이윤수 특집」이라는 글을 게재해 필력을 과시했으며 지난해 5월에는 한·일 국교수립후 처음으로 한·일 친선합동시화전을 주일 한국총영사관 초청으로 열었다.
  • “일 국보 상당수 한국인 작품”

    ◎일 전수대 객원연구원 홍윤기씨 「한국인이 만든 일본 국보」서 주장/4∼6세기 백제·신랑니이 문화형성 기여/법륭사 백제관음상·옥충주자가 대표적 일본이 일제강점기는 물론 임진왜란 등 우리나라를 침략한 때마다 숱한 문화재를 약탈해 간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그러나 그것말고도 일본이 현재 국보로서 떠받드는 많은 문화재가 우리 문화유산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일본이 이를 철저히 은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국보 중에서 그 옛날 우리 선조가 남긴 것들을 찾아낸 책 「한국인이 만든 일본 국보」가 최근 출간됐다(문학세계사 펴냄). 일본 문헌에 드문드문 나오는 기록을 추적,이같은 사실을 밝혀내 처음 집대성한 사람은 시인이자 일본문화연구자인 홍윤기씨.한국문인상·월탄문학상들을 탄 바 있는 이 중견시인은 지금 일본전수대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면서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강의한다. 그가 이 책에서 공개한 「한국계 일본국보」는 주로 나라(나양)지방에 집중돼 있다.먼저 고구려 승려 담징의 「금당벽화」로 유명한 법륭사)에는 「백제관음상」「구세관음상」「석가여래삼존상」 등 불상들과,공예품 「옥충주자(비단벌레 불상궤)」가 있다.이 가운데 백제관음은 녹나무를 깎아 만든 입상으로 일본이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예술품. 「옥충주자」는 높이 2m30㎝의 칠공예품으로,비단벌레 2천5백63마리 분의 날개를 붙여 부처 설화를 표현했다.둘 다 백제인의 작품이다. 또 중궁사에는 백제·고구려 여인이 만든 자수 수예품 「천수국 만다라 수장」이,정창원에는 신라화가가 그린 「불상」이 각각 국보로 남아 있다.지난 72년 발굴돼 한일 양국을 떠들썩하게 한 다카마쓰총 고분도 나라에 있다. 국보 1호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 있는 교토(경도) 「광륭사(광륭사)」에는 나무로 조각한 「상투 미륵상」이 안치돼 있다.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 신라작품임을 일본측도 인정하는 것처럼,상투미륵상 역시 신라가 7세기 초 일본에 보내준 것이다. 이처럼 많은 우리 문화재가 일본국보로서 남게 된 까닭은 백제·신라·고구려 등 한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고대 일본문화 형성에 결정적인작용을 했기 때문이다.지은이 홍씨는 『문화 선진국인 백제가 4세기쯤 문자가 없는 왜의 나라지방에 학자를 보내 유학을 편 것이 일본문화 발생의 바탕』이라고 해석했다.이어 6세기쯤 3국이 불교를 본격적으로 전해주면서 일본문화가 비로소 형성됐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 중고교 역사교과서에 화려하게 소개한 대표적인 국보들이 대부분 한국에서 보내준 것과,한국인이 일본에 건너가 만든 것들』이라면서 그런데도 유래를 알 수 없다거나,막연하게 중국 것인양 표현해 이를 바로잡으려고 연구에 나섰다고 밝혔다.
  • 모든 세금신고 우편으로 전환

    세계화추진위원회는 9일 「세계촌 추진방안」「조세행정 개선방안」「아·태시대 주역으로서 우리 외교의 추진방향」을 11월 추진과제로 확정,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했다.「세계촌 추진방안」은 농산물 수입개방의 파고에 맞서 우리 농촌을 경쟁력을 갖춘 특화된 집단으로 육성한다는 방침 아래 「테마마을」 조성이라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조세행정 개선방안」은 관이 주도하는 세정에서 탈피하고 공평부담이라는 조세정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아·태시대 주역으로서 우리 외교의 추진방향」은 아·태경제협력체(APEC) 역내 국가와의 협력 강화를 통해 세계 경제·통상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북한의 개방을 유도한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세계화추진위는 이와 함께 지난 2월 발족 이래 지금까지의 추진실적 점검결과를 공개했다. ◎세추위 확정 3대과제 내용/동아시아·북미연대 강화… 북 개방 유도­외교/고품질 농산물­전통 접목… 신가치 창출­세계촌/세정 전산망 97년 구축… 납세비리 근절­세정 ◇외교방향 94년 11월 아·태 경제협력체(APEC) 보고르 정상회의는 무역·투자 자유화선언을 채택해 APEC의 발전에 하나의 전기를 마련했다.오는 11월 오사카정상회의는 보고르선언 이행을 위한 행동지침을 채택할 예정이다.이 행동지침은 내년 APEC각료회의까지 각국의 자유화 추진계획을 제출하고 97년 1월부터 자유화를 시작해 2010년 또는 2020년까지 자유화 달성을 추진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APEC의 무역·투자 자유화 추진을 위한 당면과제는 APEC이 쟁점을 어떻게 극복하고 실효성있는 행동지침을 채택하느냐에 달려 있다.현재 APEC 내부에서는 자유화대상은 포괄적으로 하되 민감한 부문에 대한 별도의 고려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이런 고려조항의 포함을 반대하는 나라들간의 입장이 대치되고 있다.APEC은 무역·투자 자유화를 추진하면서도 개방된 지역주의를 견지하는 것이 기본목표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역외 국가에 대한 최혜국대우문제와 APEC의 향후 진로 등을 둘러싼 진통이 예상된다. ○기업의 해외진출 확대 우리 외교는 개방적 지역주의를 견지하는 APEC을 주축으로 동아시아와 북미 경제권의 연계 강화에 주력할 것이다.안보협력 측면에서는 한·미간 기존의 양자 동맹관계를 바탕으로 탈냉전시대의 국제안보환경 변화에 따라 이를 보완할 다자협력 필요성에 부응한다.나아가 21세기 통일한국이 계속 추구해야 할 이상으로서의 아·태공동체 실현방안을 강구한다. APEC의 무역·투자자유화 과정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세계화에 기여하고 우리 기업의 아·태시장 진출기회를 확대한다.APEC은 우리가 속한 유일한 다자간 지역경제협력기구이므로 APEC 발전에 대한 기여를 통해 우리의 위상을 강화한다. 북한핵문제 해결을 위한 미·북합의의 성실한 이행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주변 관계국의 지지와 협조를 확보한다.APEC을 역내 사회주의국가의 변화 유도에 활용하고 북한 개방 촉진을 위한 외교협력 강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북한을 남북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낸다.민주화시대에 걸맞게 지역안보협력에 있어 비정부간기구의 역할을 권장하고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적극 활용한다. ○동아주­EU관계 보완 APEC이 WTO·GATT체제 발전의 주춧돌로 기능하도록 추진한다.96년말로 예상되는 OECD 가입을 통해 세계 경제·통상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우리 경제·사회제도의 세계화·선진화에 기여한다.내년 3월 방콕에서 열리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상대적으로 미약한 동아시아와 EU간의 관계를 보완하는데 적극적으로 기여한다. ◇세계촌 추진 급변하는 환경과 새로운 역할에 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농어촌의 공동체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단기적으로 고품질 농산물과 전통고유상품에 농촌지역에 내재하고 있는 문화적 가치를 접목시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생산단지를 조성한다.또 장기적으로 탈산업화와 정보화에 걸맞는 도농통합형의 새로운 한국적 공동체로서 경제·문화적으로 자족하는 세계를 향해 열려진 마을을 조성한다. ○수작업 소량 생산 추구 세계촌 상품은 공장생산보다는 수작업의 고품질 소량 생산을 추구한다.세계촌은 농업생산과 농촌문화를 접목시키는데 주안점을 두기 때문에 개발과보존의 조화를 추구한다.사업 이윤보다는 기업이미지 제고등 문화사업 차원에서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해 사업의 지속성을 유지한다.세계촌사업은 일정 조건을 만족하는 특정 지역의 시범적 개발사업으로 시작해 장기적으로는 전국적 확산효과를 꾀한다.그러나 정부의 역할은 지원과 조장등 간접적 기능에 국한시킨다. ▲이미 세계적인 상품으로 토착화된 품목 ▲우리 풍토와 자연조건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품목 ▲원료 농산물을 가공처리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품목 ▲가능한한 저장성과 수송성이 높은 품목 ▲농촌의 전통문화와 연계시키기에 유리한 품목을 선정해 일류화를 꾀한다.「잣골」 또는 「밤골」등 산림의 자연적 특성과 연계된 테마마을을 조성하고 잣·밤·호도 등을 주재료로 만들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한다.모시·목면 등의 섬유와 염료를 접합시킨 「모시마을」 「전통섬유마을」등 테마마을을 만들고 패션쇼를 유치할 수 있는 공연장을 마련한다.「김치마을」 또는 「발효식품마을」을 만들어 고추장·된장·간장·김치등 발효식품박물관을 건립하고 장아찌 등 절임류와 옹기그릇 등 부엌 생활용품을 연결시킨다.「인삼마을」을 만들고 인삼 이외의 약초나 한방제품을 연계해 생산한다.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배경으로 한 봉평장터와 메밀밭을 재현하고 메밀단지를 조성한다. 도입단계에서는 전국에서 2∼3개 지역을 선정해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테마마을 조성은 제품 생산 성과를 감안해 추진한다.도로등 기반조성비의 일부는 기존 정책지원사업비로 충당한다.통상산업부의 「전통고유기술 세계화사업」,농림수산부의 「특산품 개발사업」,내무부의 「1군 1명품 지원사업」등 관련 사업과 연계해 추진한다. ◇세정개선 ◇업무체제 개편=성실신고장려 등 신고단계에서 일체의 세무간섭을 없애고 각종 신고기준율 운용을 98년까지 연차적으로 폐지해나간다.납세자와의 불필요한 밀착관계를 단절하기 위해 직원의 신고서 작성대행도 단계적으로 폐지할 방침이다.납세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모든 세금신고를 우편신고로 전환하는 대신 소수 불성실 납세자에 대해서는 엄정한 세무조사를 실시한다. ◇세정전산화 및 종합전산망 구축=1천29억원을 투입,세정전반의 전산화와 새로운 통합전산망을 구축해 오는 97년부터 전면 시행할 계획이다.과세자료 및 정보를 개인별·기업별로 5년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누적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방침이다.전국의 세무관서를 온라인으로 연결,세원관리 및 세정의 과학화를 실현한다. ◇세무비리 근절책 마련=통합전산망 구축등 전산에 의한 내부통제기능을 강화하고 불분명한 과세요건이나 기준을 구체화·객관화·명료화해 세무공직자의 자의적 개입소지를 최대한 줄인다.일정액 미만 증여 및 상속에 대한 직접조사 배제범위를 확대하고 임의적 출서 및 자료제출 요구를 금지하는등 납세자와 세무공직자의 접촉·밀착관계를 차단해 나간다.청렴도를 승진·포상등 인사관리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세무조사 연기제 시행 ◇납세자의 권익보호 및 납세편의 위주의 세정강화=회계관습과 기업회계기준을 수용,이와 상충되는 예규는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과소부과에 엄격하고 과다부과에 관용하는 자체감사관행을 고쳐나간다.민주적인 세무조사 절차를 확립하기 위해 조사대상자 선정은 원칙과 기준에 의해 전산으로 선정하고 조사착수전 사전통지제를 엄격히 시행한다.납세자의 형편에 의한 세무조사 연기신청제를 시행하며 명백한 탈루혐의가 없는 한 재조사를 금지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모든 세무조사시 추징세금 확정전 통지제도를 실시한다.PC통신에 의한 광범위한 세무정보 제공체제를 정착시키는등 민원사무 체계를 개편한다. ◇세부담 불균형 적극 시정=고액 상속 및 증여세 행정을 대폭 강화한다.세무서에 음성·불로소득이나 탈세정보자료를 수집·분석하는 전담조직을 설치한다.무자료거래를 근절하기 위해 추적조사 전담반을 운영하는등 종합대책을 추진하며 지역별로 세부담 비교분석자료를 마련,세정운영 기초자료로 활용한다. ○세정지원 전담반 운영 ◇기타=영세자업자에 대한 추계과세 합리화 방안을 한국조세연구원과 합동으로 연구중이다.국제화·개방화에 부응,국제조세 행정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국내 진출 외국기업에 대해 체계적인 세적관리체계를 확립하며 해외진출 국내기업에 대해서는 권역별로 세정지원 전담반을 운영하고 관련기업과 상호 정보교환등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한다. ◎올 20개과제 추진 실적/장애인·노인 의보 기간제한 폐지/97년 국교 영어교육 실시… 3개 시범교 운영/공기업 응시 여성에 가산점… 사회참여 확대 세계화 추진위원회는 지난 2월 46개 추진과제를 선정하고 이 가운데 20개 과제에 대해서는 추진방안을 확정,실천단계에 있다. ▲세계화를 위한 외국어교육 강화 방안(2월)=97년부터 국민학교 조기 영어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지난 3월 연구시범학교 3개를 지정 운영하고 있다.외국인교사 59명을 선발하는 등 준비를 차질없이 진행하고 있다.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영어듣기평가 문항 수를 8개에서 10개로 늘렸다. ▲서울의 동북아지역 정보 및 연구중심지화 방안(2월)=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산업연구원을 각각 중국 및 일본지역 연구 주관기관으로 지정했다. ▲세계화를 위한 정보화 촉진 방안(3월)=정보화 촉진을 위한 법·제도와 추진체제 정비를위해 정보화촉진기본법이 제정·공포되었다.또 정보화 촉진을 뒷받침하기 위한 전산망 보급 확장과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의 법률이 국회에 제출되었으며 정보화관련예산도 95년에 비해 70% 증가한 1조4백3억원을 확보했다. ▲21세기에 대비한 신해양정책방향(3월)=신해양질서의 대응체제 확립을 위해 유엔해양법협약 및 심해저이행협정 비준안과 영해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해양개발기본계획 수립이 당초 일정보다 지연되고 있으나 연말까지는 해양개발위원회를 개최해 확정할 예정이다. ▲법률서비스 및 법학교육의 세계화방안(4월)=법조인 수를 2000년대까지 대폭 확대하는 계획을 확정해 관련법률을 국회에 제출했다.법관윤리강령을 제정했으며 전관예우등 불합리한 법조관행을 개선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한반도의 동북아 국제물류중심화 전략(4월)=가덕도 신항만을 민자유치를 통해 적기에 건설할 수 있도록 관련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사업추진 실무협의체를 구성했으며 광양항 2단계 공사의 내년도 예산도 대폭 확충했다. ▲문화와 관광의 연계방안(4월)=관광호텔에 대한 중소기업 적용기준을 20명 이하에서 1백명 이하로 확대했다.한국적 문화관광상품 개발을 위해 조선조궁중행사 재현과 이천도자기축제 등을 개최했다. ▲사회취약계층 복지증진대책(6월)=장애인과 노인에 대한 의료보험 급여기간 제한을 폐지하도록 하는 의료보험법을 개정했고 사회취약계층 지원 확대를 위한 사업비를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했다. ▲WTO체제에 부응하는 산업지원체제 개편 방안(7월)=국내보조금제도 정비방향을 마련하고 대한무역진흥공사를 무역·투자진흥기관으로 개편했다. ▲고급공무원 임용및 육성의 세계화방안(8월)=직무분석기획단과 중앙공무원 교육원 개편기획단을 민·관 합동으로 구성했다. ▲국가이미지 개선방안(8월)=대외홍보위원회를 구성,운영할 수 있도록 근거규정을 11월중 마련할 예정이다.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방안과 여성의 역할과 지위의 세계화방안(6월)=내년도 공무원 채용때 여성의 비율을 높이고 공기업 신규 채용때 여성에게 가산점을 주는 구체적인 시행지침을확정했다.
  • 「데라우치 문고」 135점 돌아온다

    ◎일 대학,11일 경남대에 반환/추사작품 등 조선시대 희귀본 많아 【마산=이정규 기자】 초대 조선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사내정의)가 약탈해간 문화재 98종·1백35점이 국내로 돌아온다. 경남대학교(총장 박재규)는 일본 야마구치여자대학 부속 도서관이 소장한 「데라우치문고」 가운데 학술적 가치가 높은 조선시대의 자료를 기증받는다고 7일 발표했다.기증식은 오는 11일 야마구치대학에서 열린다. 국내 반환은 한일의원연맹(한국측 회장 김윤환 민자당대표)과 한일친선협회중앙회(한국측 회장 김수한 민자당고문)가 지난 해부터 공동으로 추진해 맺은 결실이다.일제가 약탈해간 나머지 문화재의 반환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반환되는 자료중 추사 김정희의 완당 법첩주눌인서(원당 법첩주눌인서)와 조선 28대 순조임금의 사자인 익종이 지금의 국교와 같은 선동학교에 입학할 때의 의식을 그림과 글로 엮은 정축입학도첩 등 희귀본도 있다. 주로 조선조 17∼19세기의 서한집과 시집류로 인조때 민성휘가 진하부사로 가면서 지은 무진조천별장첩과 이시발의 차정언은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데라우치 문고는 일본 야마구치여자대학 부속도서관이 소장한 개인문고로 한국의 고문서 1천5백여점과 중국과 일본의 고문헌 수천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자료는 데라우치의 후손들이 야마구치현과 자매결연을 한 경상남도의 대학에 기증하고 싶다는 뜻에 따라 경남대로 오게 됐다.
  • “홍콩의 모자” 차이나 은행(세계의 명소/걸작건축 감상:25)

    ◎기하학적 형상… 이집트 오벨리스크 연상/아래층은 정방형… 상단은 삼각 프리즘 형태/강철·콘크리트 합성골조… 내태풍성 뛰어나/70층에 높이 360m… 홍콩의 스카이라인 상징 홍콩의 차이나은행 정치적으로는 「식민지」,경제적으로는 아담스미스의 꿈을 실현한 「자본주의 천국」이라는 표현은 홍콩의 양면성을 잘 나타낸다.아편전쟁(1841년)과 99년 조차협약(1898∼1997)에 의해 영국의 식민지가 된 홍콩은 내후년 1997년7월에는 중국에 반환된다.「세기의 부동산 인계인수」날짜를 카운트 다운하는 북경 천안문 광장의 대형시계가 멈추는 날 우리는 자유방임의 시장경제가 부패와 통제의 계획경제로 편입되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을 보게 될 것이다.이것이 홍콩의 운명이다. ○중국계 미국인이 설계 차이나은행(중국은행,중국계)은 홍콩섬 빅토리아의 금융지구 중심에 위치하며,한블록을 사이에 둔 홍콩샹하이은행(향항상해은행,영국계)과 함께 홍콩의 노른자위 산업금융을 대표한다.이들은 각기 중국과 영국의 파워를 상징하는 건물이기도 하다.설계를 담당한 건축가도 전자는 중국계 미국건축가 이오밍 페이(IM.Pei),후자는 영국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다.건물의 높이는 정치적 의도를 잘 말하고 있다.건물은 360m 높이에 70층으로서 영국계은행의 2배,아시아에서는 가장 높고,세계적으로 5위다.이 건물의 완성직후에 50층을 상한으로 하는 조닝규제가 신설됨으로써 이 차이나은행은 「홍콩의 모자」로서 먼 장래에까지 스카이라인을 지배할 것을 보장받았다. 순수기하학 형상의 이 건물은 다면체 오벨리스크를 연상케 한다.고대이집트의 기념첨탑인 오벨리스크는 유럽 열강이 이집트 침공시 전승기념물로 약탈하여 본국에 운송함으로써 현재 여러곳에 퍼져있다.(파리의 콩코드광장,로마의 포폴로광장). 건물은 본체 65개층(13개층 기본단위의 5단적층),기단 4개층,꼭지의 펜트하우스 1개층으로 합계 70층이다.이 오벨리스크는 정방형평면으로 시작하지만 위층으로 갈수록 4분할 삼각형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면서 4분의 1크기 삼각프리즘만 남게 된다.모서리 날림은 17층(북면,항구쪽),38층(서면),51층(동면)등에서 생기며,대각선으로 상향연속하여 이룬 꼭지점에는 2개의 마스트를 두고 있다. ○“무주공간”의 내부처리 기본단위를 묶는 X자 가위형태는 중국에서는 불운을 의미했기 때문에,이 부분이 다이아몬드형의 수직적 결합으로 읽혀질 수 있도록 조정하였다. 은행본사로서의 아이덴티티를 파격적 저렴비용으로(약900억원)태풍지역 가운데 고층빌딩으로 구현하는 것은 커다란 도전이었다.홍콩은 풍하중이 뉴욕과 시카고의 2배를 필요로 하는데 강철과 콘크리트 합성거대골조에 의해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건물은 모서리기둥 4개와 중앙기둥 1개가 있고,내부에는 기둥이 일체 없다.중앙기둥은 꼭대기부터 25층까지 외부기둥으로 내려와서는 대각선재를 통해 4개 모서리기둥으로 연결되어 사라진다.이렇게 연직하중을 바깥으로 흘려보냄으로써 내풍력을 확보하며,내부에는 넓은 무주공간을 만든다.공사는 경우 17개월만에 완공되었는 데,종래와 비교해서 용접공사는 4분의 1 철골공사는 2분의 1만 소요되었다.내태풍성을 위한 지하층의 내력벽은 0.9m 두께 철판인데 은행 금고실이 설치되었다. 건물은 경관을 지배하려는 의도를 잘 나타내고 있다.70층 펜트하우스 라운지는 유리 피라미드로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경관장소가 된다.이 공간은 알루미늄 튜브골조에 은색유리와 광선조절 루버로 장치되었는데,대각선폭의 창은 고층건물군을 지나 내항,외항,구룡반도,용솟음치는 산맥,섬 너머 수평선 저쪽의 중국대륙까지를 바라볼 수 있다.회의테이블 상부에서 좁아지는 피라미드는 시야를 확장시켜 하늘을 끌어들이고 있다.비행기 조정석,또는 사원의 첨탑과 같은 이 투명 피라미드는 자신이 지배하는 파노라마 가운데서 거대하고 간결한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행정당국은 건물의 도시적 중요성을 인식하여 부지가 정형을 갖추고 차도를 확보하게끔 도시설계상의 조정을 함으로써 특별한 도움을 주었다.건물 전후로의 탁월한 경관,주입구와 중심가로의 연결도 그 덕택이다.건물은 넓은 물정원과 산책로로 둘러쌈으로써 도로의 번잡함과 소음으로부터 격리를 얻고 있다. 부지는 2천4백평,연면적은 4만평인 내부는 은행업무용 40%,나머지는 임대용이며 45대의 고속 엘리베이터와 저층,중층,고층용으로 구분된 6개 탑승장이 있다. ○바닷가의 염해도 고랴 홍콩에서는 제한급수와 바다로부터의 염해를 고려하여 공냉방식을 채용하며,옥상냉각탑은 미관을 해치므로 채용되지 않았다.층고는 3모듈(3×1,333m)로 하여 건물에 통일감 조성의 논리를 부여한다.유리창의 청소관리를 위해 8대의 곤돌라를 요소요서에 숨긴 플랫폼에 두고 있다. 유리와 알루미늄 피막의 오벨리스크는 태양광에서는 푸른하늘을 반사하고 홍콩 상공이 구름으로 덮여 있을 때에는 회색으로 변한다.그것은 잘 깎여진 보석이며 고층빌딩군에서 솟은 은색 칼날과 같이 홍콩의 스카이라인에서 뛰어난 수직축을 이룬다.다면체이므로 도시 어디에서나 반짝이는 면을 볼 수 있으며,빅토리아산을 배경으로한 70층이기에 더욱 두드러진다. 오벨리스크 다면체는 빛을 반사하다가도 하늘색속으로 사라지는 변화무쌍을 연출하는데,이 변덕에서 불길한 예감마저 들기도 한다.강력한 형태에서 유래하는 갖가지 의미는 무엇으로 해석해야 할까.이것은 억압의 징후인가 또는 해방인가.아마도 1997년 이후의 홍콩이 맞이할 정치적 전기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 청빈한 삶의 가치/서정욱 한국이동통신 사장(시론)

    궁핍 속에서 출발한 우리의 경제개발은 잘 살아보자는 의욕이 지나쳐 인간의 소유에 대한 욕구를 과열시켰다.이것을 인간사회의 속성이라고들 하지만 풍족한 삶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황금만능의 풍조를 사회전반에 만연시켰다.삼대를 두고 노력해도 이루지 못할 부귀영화의 꿈을 벼락같이 이뤄 당대발복해 보려는 허영이 우리 사회를 졸속·부실·이기·탐욕 등으로 병들게 만들었다. 이처럼 가공할 사회적 병리를 통감하게 된 것은 물질생활은 풍족해졌지만 우리의 현실이 정신적 풍요나 심리적 화평이 없는 정신문화적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이것은 또한 인간과 자연에 대한 배려없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면 무엇이든 만들고 팔아서 이익을 많이 남기면 된다는 경제효율 지상주의를 금과옥조로 삼았기 때문이다. 단군 이래 처음 이룩한 물질적 풍요이지만,진정한 의미에서 삶의 질이 결코 향상되지 않았음을 우리 모두가 깨닫게 됐다.이러한 현실은 우리에게 소비와 소유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성찰할 반성의 기회가 됐다.사실은 경제적 번영과 물질적 풍요도 그것을 체험하지 않으면 그 악덕을 적발할 수 없고,물자의 과잉생산과 과소비에서 오는 폐해를 당해보지 않으면 청빈한 삶의 가치를 인식할 수 없다. 청빈이라고 해서 단순히 가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청빈은 자신의 사상과 의지로 실천하는 정하고 분수와 격에 맞는 삶을 영위하는 지혜와 용기다.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 있음에도 그것을 자제하고 필요한 최소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 있다.성 프란시스코와 같은 사람이 옥루금전의 삶을 버리고 무소유의 누처에 기거한 것은 그러한 삶이 신의 섭리를 따르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지만,우리도 고된 심신의 절차탁마를 통해 성현과 같은 청빈한 삶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많고 적고 간에 소유의 인과에 대해서 철저하고 겸허한 성찰을 해야 한다.부귀에 대한 원망,소유에 대한 욕망이 극성할수록 사람은 축재를 지상의 목표로 삼고 과분하게 소유하고도 부족해서 더 소유하려는 탐욕 때문에 어떠한 죄악이나 무자비도 자행하게 된다.우리도 한에 맺힌 보릿고개를 넘기는 과정에서 이런 원망과 욕망의 노예가 된 사람을 많이 만들어 냈다. 청빈이라는 말이 사어가 돼 가는 우리 현실에서 「분수와 격에 맞는 가난」의 길을 택하기란 정말 어렵다.청빈낙도란 자유의지로 택해야 즐거운 삶의 길이기 때문이다.사실은 소유욕이 인간의 내면 세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정치와 경제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한 나라,한 사회의 덕목이 틀잡히는 것이다. 굶주림과 헐벗음으로 고통을 겪는 나라나 사회일수록 사람들이 최대의 소유를 추구하고 청빈과 같은 덕목은 정신적 사치라고 비웃는 경우가 많다.극도의 소유욕에 사로잡힌 사람은 재물의 노예가 돼서 여타 인륜지대사에 마음을 쓰지 못한다.이런 사람은 이웃에 대한 배려·사랑·자비와 같이 인간만이 갖고 있는 소중한 속성마저 간직하지 못하고 소유하면 할수록 인색과 탐욕에 빠지기 쉽다. 소유욕으로 마음을 채우면 사물을 판단하는 눈이 흐려지고 청빈낙도에 걸림돌이 된다.소유는 필요한 최소로 억제해야 인간의 정신세계가 맑아지고 자유로워진다.고대의 종교가들은 우주를 지배하는 원리를 「범」이라고 하고 이와 동질의 원리인 「아」가 인간의 내면세계를 지배한다고 했다.「아」는 통상 인색과 탐욕으로 덮이고 가려져 나타나지 못하지만 그것을 발휘하려면 육욕·물욕등 모든 욕망과 단절하고 심신을 청정히 하는 수행을 쌓을때 「범」과 합치해서 인간은 영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자연을 정복하고 인간의 의지에 따르게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용서받지 못할 오만이다.자연을 대상화해서 분석하고 조작함으로써 인류는 과학기술을 발달시켰고 여러차례의 산업혁명을 일으켰다.우리도 과학기술과 산업이 베푸는 물질문명을 누리고는 있지만 무참하게 지구를 파괴하고 말았다는 반성을 하고 있다. 환경·생태·인구·식량·에너지·남북격차·통상마찰 등 지구적 문제군이 표출되기 시작했다.자연을 의지하고 살아야 할 인류가 자연에 대한 애정과 외경심을 되찾지 않고는 지구의 종말을 자초하고 만다.이런 의미에서도 우리 선조들이 사랑하던 자연으로 돌아가 그분들이 추구하던 청빈낙도의 가치관으로 물질만능 풍조와 탐욕으로 왜곡된 우리 사회를 정상화해야 한다.
  • 미,한국인 비자기간 연장 검토/상무부 개선조치 마련… 곧 확정

    【워싱턴 연합】 미국정부는 미입국비자 발급 문제로 불만이 높아져온 한국을 비롯한 6개국에 대해 내년말 이전에 비자 기간 연장 등 개선 조치를 취할 움직임이다. 이같은 사실은 오는 30일부터 이틀간 백악관 주최로 워싱턴에서 처음 열리는 미관광진흥회의에 제출하기 위해 미상무부가 마련한 「국가관광전략안」에 의해 확인됐다. 전략안은 『미국에 많은 방문객을 보내는 한국과 대만 등에 미비자면제 프로그램이 아직 적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비자 발급 지연에 대한 현지의 불만이 크다』면서 따라서 『미국무부는 내년말까지 아르헨티나,호주,브라질,한국,대만 및 베네수엘라에 대해 비자 기간 연장 및 영사 업무 확대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관광산업 진흥 방안을 폭넓게 담고 있는 이 전략안은 빌 클린턴 미대통령도 참석하는 이번 회의에서 확정될 예정이다.
  • 「한일 과거사 논란」에 부쳐/신용하 서울대 교수·사회학

    ◎「기본조약」 고쳐서라도 “합병무효” 확인을 『한일합방은 법적으로 유효했다』는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일본 총리의 망언 이후 한국과 일본간의 과거사 논쟁이 계속 되면서,정부내에서는 한일간의 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 같다. 한일간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일본은 지리적으로 우리와 가장 가까운 나라이며,정치·경제적인 이념도 비슷하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함께 발전해갈 수 있는 이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러한 우호적 한일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과거사 논쟁을 이제 그만 덮어두자는 논리를 세운다면 이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을사5조약과 한일합방조약이 무효라는 원칙을 우리는 굳게 지켜야 한다. 이미 지적했듯이(서울신문 15일자) 한일합방조약이 체결되는 과정은 완전한 불법이며,따라서 원천무효인 것이다. 일본은 지난 65년에 체결된 한일기본조약 2조가 한일합방조약의 성격에 대해 「이미 무효」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규정한 점을 들어 『체결당시에는합법이었고,그 이후 효력을 상실했다』는 논리를 세우는 것 같다. 그러나 표현이 애매하다고 해서 역사적 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지난 세기말 열강이 주변국을 침탈,식민지배한 것은 비단 일본의 경우 뿐만은 아니었다.이 때문에 지난 65년 유엔 총회에서는 「1945년 이전에 제국주의 열강들이 약소국을 식민지화,혹은 반식민지화 하기 위해 맺은 조약은 평등하고 공정한 조약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 무효」라고 결의한 것이다. 이처럼 한일합방조약은 당시의 국제공법이나,대한제국 국내법적 절차는 물론 현재의 국제법이나,국제연합의 정신 등 모든 면에서 무효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정부가 일본에 한일합방의 무효성을 인정하라고 더 강력히 촉구하기 보다는 한일간의 과거논쟁을 서둘러 수습하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기우일지 모르지만,혹시라도 정부가 한일합방조약이 대등한 입장에서 맺어진 조약은 아니지만 형식상 또는 당시의 국제법상 체결된 조약으로 간주하는 일본의 입장을 이해하고서 그에 따른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는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하게된다. 만에 하나라도 정부내에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그것은 또하나의 매국적인 행위임을 명확히 밝혀둔다. 당시의 국제법 뿐만 아니라 한일합방에 반대해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활동,그들이 조국강토에 뿌린 피,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치열하게 전개된 독립운동을 돌이켜볼 때 이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번 기회에 한일합방조약이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사실을 일본으로부터 확인받아야 한다. 만일 일본이 한일기본조약의 2조를 문제삼아 계속 역사를 왜곡하려 한다면 한일기본조약은 당연히 개정돼야 한다. 애매한 조항을 놓고 이웃국가끼리 논쟁을 벌이는 것보다는,이를 명확히 해두는 것이 낫다.안그래도 65년에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은 너무나 많은 중대한 양국간의 현안을 간과한 조약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정신대 문제,징용자 문제,재일교포의 법적 지위등 한일기본조약과 부속협정이 소홀히 다룬 문제들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필자도 누구보다 한일간의 우호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그러나 양국간의 진정한 우호관계는 서로를 존중하는 바탕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일본이 우리나라를 무력으로 침략해 한일합방조약을 강제로 맺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흔쾌히 인정할 때 가능한 일이다. 또 한일합방조약이 무효라는 사실을 일본이 인정하도록 하는 것은 현재를 사는 우리가 후손들에게 매국적 선조로 기억되지 않는 길이기도 하다.
  • 전통 복식의 흐름 한눈에/「2천년전」 내일 민속박물관서 개막

    ◎직물·옷의 변천·장신구 등 7개 분야 전시/화려한 색감·섬세한 바느질 솜씨 엿보여 신석기 시대 실뽑는 도구(방추차)에서부터 조선조 말 의복에 이르기까지 우리 복식문화 2천년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있는 「한국복식 2천년전」이 19일부터 12월4일까지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국내 복식전 사상 최대규모가 되는 이번 전시회에는 의복·장신구·관모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몸에 착용하던 모든 것과 바느질·빨래·염색 분야의 복식관련 유물들이 선보인다.전시되는 유물은 총 4백여점.문헌을 토대로 복원한 옷들 뿐만아니라 상당수는 출토품들을 그대로 전시해 우리 선조들의 손끝에서 나온 생생한 미의식을 그대로 느낄 수있다. 전시분야는 모두 7개.「직물및 염색」전에서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직조기술및 직조도구의 변천사와 함께 우리민족의 전통염색 문화의 진수도 보여준다.또「옷의 변천」전에서는 관복 서민복등 신분별 의상과 해녀복 기생복 승복 수의, 배냇저고리와 돌복,관례·혼례·회갑때 입는 의례복식 등을 보여줘 출생에서부터 장례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일생과 직업에 따른 복식의 특성을 감상할 수 있다. 또 떨잠과 관·망건·족두리·조바위·아얌 등을 모아놓은 「관모·두식」전및 「화장구·장신구」전,「신발」전은 우리 복식문화의 기능적 우수성과 함께 미의식의 화려한 일면을 볼 수있는 코너다. 국립민속박물관 최은수 연구원은 『이번 전시는 우리 민족의 복식이 단지 소박하고 투박하다는 고정관념을 바꿔주는 계기가 될것』이라면서 적·청·흑·백·황의 오방색등 우리 민족이 즐긴 전통색상과 섬세한 바느질법 등을 직접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월간사진 서울클럽(산하 파수꾼)

    ◎“환경 훼손현장 사진 통해 고발”/매월 정기촬영때 자연보호 캠페인 펼쳐/수많은 환경사진 보유… 내년 1월 전시회 『사진은 사물을 그대로 보여주는 가식없는 예술이다.이같은 현실표현의 예술을 통해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하고 훼손된 행위를 과감히 사회에 고발함으로써 선조들이 물려준 우리의 국토를 렌즈를 통해 보존하고자 한다』 월간사진 서울클럽(회장 김의배)은 사진을 통해 현장을 고발하는 환경파수꾼이다.이들 42명의 회원들은 카메라를 메고 집을 나설때면 먼저 환경보전의 정신을 머리 속에 깊이 되새긴다.바로 아름다운 대자연이 보존돼야만 걸작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사진클럽은 풍경을 주제로 한 사진동우모임.그러기에 누구보다 수려한 풍경을 중요시하는 이들은 지난해 8월6일 선뜻 서울신문사 깨끗한 산하지키기 운동에 참여하면서 환경보전에 남다른 열의를 보이고 있다. 20대에서 70대까지의 연령층으로 남녀작가들인 이들의 직업은 자유업,회사원,사장,의사,교사,대학교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해 환경에 대한 시각도 그만큼다채롭다.매월 첫째주 일요일 정기촬영을 나설때면 버스안의 스피커에서 「깨끗한 산하지키기」의 로고송이 울려퍼지며 행여 느슨해질까봐 작품활동을 하는 가운데 자연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주지시킨다. 이들은 올해 들어서만도 매월 10여차례에 걸쳐 사진촬영과 함께 환경캠페인을 벌였었다. 출사에 나설때면 서울신문사 깨끗한 산하지키기운동 깃발을 앞세우고 환경관련 사진을 담도록 하고 있다.또 관광객들이나 등산객들이 휴지를 버리거나 환경오염행위를 하면 서슴없이 일깨워주고 돌아올때는 오물수거를 반드시 실행한다는 것. 내년1월 세종문화회관 전시실에서 작품전과 함께 환경사진 전시도 별도로 가질 예정인 이들은 그동안 수많은 환경사진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는 항상 자연보호에 앞장선다는 정신자세를 갖고 작품활동에 임하고 있다.환경을 훼손하는 현장을 보면 이를 못하도록 계도하고 심한 지역은 사진에 담아 서울신문과 월간 사진책에 실어 시정토록 하고 있다』 김회장은 특히 지난 9월3일에는 동해안 추암에서 쓰레기수거작업을벌였고 무릉계곡의 쌍폭포와 용추폭포등의 수려한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도움이 될만한 많은 걸작품을 렌즈에 담았다고 귀띔한다. 월간사진 서울클럽은 지난84년 월간사진 초대작가 4명이 모여 조직된 이래 24명의 회원으로 늘어났고 서울신문사 깨끗한 산하지키기운동 환경감시단체에 가입하면서 사진예술의 틀을 벗어나 환경예술의 첨병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 직지사 고려때 규모의 90% 복원

    ◎30년 중창불사 마무리… 19일 기념 법회/2만6천평에 전각·전우 등 65채 신개축 신라 불교의 요람으로 1천6백년의 역사를 가진 불교 조계종 제8 교구본사 직지사(주지 녹원 스님)가 30년에 걸친 대중창 불사를 마무리짓고 새 모습을 드러냈다. 경북 김천시 황악산 중턱에 자리잡은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2년인 418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사찰로 신라의 자장,고려의 능려,조선의 사명대사등이 머무르면서 한국불교의 지도자적인 위치를 유지해왔다. 고려시대 절정기를 맞은 직지사는 선조 29년인 1596년 임진왜란때 43동의 건물중 전각의 대부분이 소실된뒤 1602년부터 70년에 걸쳐 절을 중건했다. 1681년의 사적기에 따르면 당시의 규모가 8전,3각,12당,3장,4문에 정실만 3백52칸이며 부속암자는 26개가 있었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1805년 사세가 기울기 시작 쇄락을 거듭해 경내는 줄어들고 건물은 허물어져 건물 4∼5개의 작은 사찰이 되었다. 지난 58년 녹원스님이 주지로 취임하면서 직지사 대중창불사의 계획을 세우고 지난 30년간 대지 1만평,전답 1만2천6백평,임야 3천7백평을 매입하고 1백50억원의 예산을 들여 60여개의 건물을 지어 「동국제1가람」이라는 옛모습을 되찾았다. 지난 65년부터 시작된 중창불사는 국제불교회관으로 사용될 만덕전등 전각과 전우 34동을 신축하고 31동을 개축해서 모두 65동의 건물이 들어섰다. 직지사 관계자들은 『사적비 기록을 토대로 30년간 진행된 중창 불사로 고려시대의 웅장한 사찰 모습의 90%를 복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직지사는 오는 10월 19일 만덕전 앞 마당에서 30년의 중창 불사를 마무리짓는 법회를 봉행한다. 이날 법회에는 송월주 총무원장과 중국,일본,스리랑카에서 불교 지도자들이 참석한다. 중창불사의 경축행사는 사진전이 19일까지 열리며 15일부터 19일까지는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염원하는 만등탑 불사가 행해진다. 등탑은 황룡사 9층탑의 모형으로 만들어지며 1만1천개의 등을 장식하는 행사로 신도들의 신청을 받고있다. 15일 하오 3시 잔디광장에서는 정수라,박영미등 인기가수가 참가하는 「산사의 환경음악회」가 열려 환경보호창립대회를겸한다. 17일 하오 1시에는 직지사및 교구말사가 보유한 중요문화재를 전시하는 성보 박물관이 개관되며 하오 2시 설법전에서는 신라 불교를 조망하는 세미나도 열린다.
  • 명성황후 1백주기… 재조명 활발

    ◎추모식·숭모제·뮤지컬·TV 다큐 등 기념행사 다양 오는 8일은 조선조 말 역사의 회오리 속에서 비극적으로 삶을 마친 명성황후의 1백주기가 되는 날.일본인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그 넋을 기려 다채로운 기념행사가 열리는 한편 그동안 부정적으로 평가돼 온 그의 역할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일고 있다.명성황후 현창회(회장 민영복)가 5일 추모식을 가진데 이어 한국여성예림회(회장 이온순)는 8일 비극의 현장 경복궁 녹원에서 숭모제를 열고 「독립정신」에 실린 명성황후의 사진을 바탕으로 황후복을 입은 초상화 영정(그림 권오창)을 제작,발표한다.KBS­1TV는 7일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이라는 특집방송을 하며 뮤지컬 전문 제작사인 「에이콤」은 뮤지컬 「명성황후」를 11월 공연할 예정이다. 역사학자 박성수 교수(정신문화연구원)의 기고문과 뮤지컬·특집방송의 내용을 소개한다. ◎뮤지컬 「명성황후」/일제에 맞서다 참변 당한 국모로 묘사 명성황후(민비)시해 1백주기를 맞아 「국모로서의 민비」에 초점을 맞춘 뮤지컬 한편이 선보인다.소설가 이문열씨의 첫 창작희곡「여우사냥」을 노래위주의 뮤지컬로 꾸민 「명성황후」(11월17∼26일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이씨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소설 「사람의 아들」이 연극으로 공연된 적은 있지만 이씨가 본격적으로 쓴 창작희곡이 무대화되기는 이번이 처음.이씨는 4년전부터 뮤지컬 전문 제작사인 「에이콤」(대표 윤호진)과 함께 올해로 1백주년이 되는 민비시해 사건을 소재로 한 뮤지컬 공연을 준비해왔다. 희곡「여우사냥」은 이씨가 지난 94년 문학전문지「세계의 문학」봄호에 2백자 원고지 7백장 분량으로 발표했던 것으로 이번 공연을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 김광림 교수가 새롭게 각색했다.고종황제의 드센 아내,시아버지 흥선대원군에 맞서는 며느리로서의 민비라는 기존의 도식을 거부하고 민비를 프랑스의 잔 다르크처럼 조국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조선의 국모로 그리고 있는 것이 특징.작가 이씨는 작중인물인 다이장군의 입을 빌려 『온몸으로 껴안으려 한 조국으로부터/오히려 버림받고/홀로 강한 외적과 맞서다/불꽃속에 사라져 간 조선의 잔 다르크』라고 명성황후를 칭송하고 있다. 연출을 맡은 윤호진 교수(단국대 연극영화과)는 『이씨의 창작희곡에서 대사부분을 모두 없애고 이를 노래로 처리해 마치 한편의 오페라처럼 만들어 보고 싶다』면서 『외국의 뮤지컬도 음악과 노래 위주로 흘러가고 있는 추세인 만큼 우리 뮤지컬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이런 시도는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화씨가 타이틀 롤을 맡았으며 영화 「전태일」을 촬영중인 젊은 연기자 홍경인,뮤지컬 전문배우 김민수,성악가 윤치호씨 등이 출연한다.평일 하오4시·7시30분,토·일 하오3시·6시 공연.3452­9055 ◎K­1TV 다큐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사건당시 현장도·증언 통해 진실 추적 1895년 10월 8일 새벽.세계사의 큰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던 조선 왕조의 국모 명성황후가 일본낭인들에 의해 무참히 시해된다. 1백년을 맞는 이날을 기해 KBS­1TV「역사추리」팀은 그동안 일본에 의해 왜곡된 그날의 현장을 재연하고 명성황후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시도한다.「명성황후 시해의 진실」편으로 방송시간은 7일 하오 8시.제작진은 일본정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저질러진 시해사건의 진실을 당시 영국 공사 실리어가 확보하고 있던 「사건현장도」「경복궁 습격도」,시해당시 「일본군위치도」등을 바탕으로 컴퓨터 그래픽화면으로 생생히 되살린다.이를 통해 여전히 시해책임을 부인하고 있는 일본정부의 기만성을 폭로한다는 의도다. 특히 제작팀은 이노우에와 이토 히로부미,야마가타등 당시 일본 천황의 직권을 대행하고 있던 수뇌들이 미우라를 조선에 부임시키고 이어 시해전후 활발한 접촉을 벌인 사실을 증언과 자료집을 통해 제시,일본정치권의 치밀하게 의도된 범행임을 제시한다. 또 당시 미국 다이 장군의 자문으로 활약한 러시아의 건축가 사비틴의 시해당일 상황 증언 테이프를 시청자들에게 공개할 계획.장해랑 PD는 『사비틴 증언의 경우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시청자들이 그동안 일본역사관에 의한 왜곡된 사실에 너무나 익숙해있기 때문에 이를 수정하기 위해 되도록 많은 증언,사진들을 보여줄 생각』이라고 설명한다. 이와관련,1895년 명성황후 시해전 일본신문에 게재된 삽화 몇점도 소개된다.일종의 「풍속화」로 고종과 함께 외국공사를 알현하는 명성황후를 여우의 얼굴을 한 꼭두각시로 폄하하거나 아예 기모노차림을 한 일본여자로 묘사한 것들이다. 프로그램 중간에 삽화형식의 드라마와 함께 김자영 아나운서가 명성황후 연극현장과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명성황후가 누워 있는 「홍릉」을 찾아 리포트한다. ◎명성황후 1백주기를 맞아/“드센 여자·족벌정치가” 일서 왜곡/한국침략에 방해… 장애물 없애려 살해/박성수 정신문화연구원 도서관장 「중전이 밤중에 적도의 독검에 맞아 시해되었다.세상 천지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저상일월)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전인 1895년 10월8일 밤 경복궁 구중궁궐 안에서 국모가 일본군에 살해당한다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우리나라 역사상 처음 있는 변란이었다.그러나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1895년은 동학란이 일어나고 청일전쟁이일어난 이듬해로서 지방에는 민란과 콜레라의 병란이 일어나고 중앙에는 일본군이 가득차 마침내 경복궁을 습격하는 변란이 일어나고 말았다. 사변이 일어난지 1세기가 지난 오늘 살인범의 정체가 누구인지 이미 백일하에 들어났다.다름 아닌 서울 남산에 자리잡고 있던 일본 공사관의 주인공들이 범인이었다.일본 공사 미우라(삼포오루)란 자는 살인 전문가였고 하수인인 구마모토파 깡패는 일본 제일의 야쿠자였다. 그러나 아직도 풀리지 않은 것이 있으니 처참하게 살해당한 민비(명성황후로 추존)자신에 대한 우리들의 역사적 평가이다.오랫동안 민비는 시아버지 대원군과 싸워서 정권을 잡은 비정의 며느리요 민씨 일족을 권좌에 앉혀 온갖 부정부패를 자행하게 만든 족벌정치가로서 비난받아 왔다.심지어는 그녀를 청국말년의 여걸 서태후에 비기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혹평 뒤에는 일제 침략자와 이에 뇌동한 친일파들의 모함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그래서 민비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다시 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 호칭부터 명성황후로 고치고 경복궁 안 침소 옥호루(현재 경복궁 안 민속박물관 옆)자리에 조난비를 세워 그날의 참사를 잊지 않게 하고 일제 침략의 희생자로서의 민비상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있다.특히 금년은 광복 50주년으로서 그녀의 위상을 다른 누구보다 바로 잡아야 하게 되어 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일제가 왜 민비를 죽이려 들었는가 하는 점이다.동학란을 구실로 한국에 파견한 일제는 처음부터 한국 침략의 야욕을 품고 있었다.즉 청일 전쟁을 도발하기 전에 각의에서 한국의 주권을 빼앗기로 결의했다.그러나 전쟁에는 이겼으나 열강의 강한 견제로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민비를 죽여 한국에 있어서의 일본 세력을 만회하려 했던 것이다.간단히 말해서 민비가 침략에 장애물이기 때문이었다. 민비는 당초에 강화도 조약을 맺고 개항을 결심했던 인물이고 일본에 대해서 처음에는 우호적이었다.그러나 1894년의 갑신정변 이후 일본의 침략 야욕을 간파한 민비는 반일정책을 쓰기 시작했다.일제 침략을 막기 위해서는 청국과 러시아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민비의 이러한 대외정책을 지지하는 세력을 수구파라 하고 친일세력을 개화파 또는 독립당이라 부르고 있으나 명칭부터가 잘못되었다. 흔히 구한말 국제정세를 요즘의 국제환경에다 비겨 4강+2약 운운하나 당시의 침략세력은 유일하게 일본이었다고 보아야 한다.친일 개화파는 누가 진정한 적국인가를 알지 못하고 급진적인 개혁을 부르짖어 나라안의 정치싸움을 격화시켰고 외적에게 침략의 틈을 보이고 말았다. 민비가 참살당한 뒤 친일 개화당이 다시 정권을 잡고 단발령을 선포하게 되니 나라안은 뜨거운 솥끓듯 달아 올랐다.그러지 않아도 동학란과 청일전쟁으로 국토가 완전히 폐허로 변했는데 설상가상으로 필요없는 개혁을 시도하여 나라를 어지럽히니 이 나라의 망국이 시작되었다고 모두가 개탄하였다.그래서 전국의 선비들이 무기를 들고 있어났으니 을미의병이었다.을미의병은 독립전쟁의 시작이었다. 만일 민비가 죽지 않고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그리고 나서 최근에 나온 「여우사냥」등 소설을 읽어보아야할 것이다.
  • 5·18/송복 연대 교수·정치사회학(서울광장)

    「5·18」은 우리 현대사의 아킬레스건이다.누가 집권을 하고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위기의 소지는 결코 가시지 않을 것이고,그로 하여 정치는 내내 진통을 겪을 것이다. 「5·18유혈참극」이 있은 8년후 이 비극적 역사를 캐내는 「5공 청문회」가 열렸고 그리고 4년후 대통령선거 때엔 김대중 후보의 「국민대화합」선언도 있었고,그후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에 묻자」는 스테이트먼트도 있었다.그러나 잊을만 하면 다시 상기되고 잊을만 하면 다시 들고 일어나는 것이 「5·18비극」이다. 우리는 그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도 했고 「민족중흥」이라고 할만큼 새로운 역사도 일으켰다.공산주의 콤플렉스,적화통일의 위협에서도 상당한 정도 벗어났고,드디어는 자유민주주의의 빛나는 승리,흡수통일의 위업을 이룩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가졌다.그러나 이 「5·18」의 비극은 그대로 남아 있다.그 참극을 당한 사람들의 그때 그 상처의 치유는 커녕 그 아픔조차도 달래주지 못하고 있다. 야당에서 주장하는 대로 특별법을 제정하고 특별검사제를 도입하면 그때 그진실이 밝혀지고 그 아픔이 줄어들 수 있을까.「5공 청문회」에서처럼 제대로 규명되는 것은 없이 세상만 더없이 소란해지고,정치만 더욱 혼란해지고,이 세계화시대 나라의 위신만 천인단애로 추락하는 것이 아닐까.그리고 다시 역사의 장으로 넘어가게 되지 않을까. 미상불 그렇게 될 것이다.그것이 우리가 겪어온 역사다.우리 역사 뿐아니라 총체적으로 인간의 역사 자체가 개인의 아픔과 관계없이 흘러가고 또 흘러왔다.마키아벨리는 그의 「군주론」에서 개인의 선과 역사의 선을 구분하고 있다.개인에게 있어 선이 역사에서는 얼마든지 악이 될 수 있고,개인에게 있어 악이 역사에서는 얼마든지 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늘상 쓰는 「역사적 행위」라는 말은 그의 이같은 개인 선과 역사 선의 분리에서 나왔다. 우리가 역사를 돌아보며 늘 개탄하는 것은 역사의 현실과 인간의 가치가 이렇게 서로 분리돼 있다는 것이다.역사의 현실은 선한 자의 편에 서 있는 것도 아니고,사람들이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현하며 나아가는 것도 아니다.어느 역사든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은 그 시대,그 사회의 가치지향적 인간들이다.그러나 그 인간들이 만드는 그 역사는 그 인간들이 바라는 가치대로 진행돼 가지 않는다.사람들은 누구나 「역사의 정신」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절규한다.그리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그 정신을 위해 피를 흘리며 싸운다.그러나 그 역사는 그 역사의 논리대로 움직여갈 뿐이다.역사는 오직 역사의 현실이 있을 뿐이다. 조선조 5백년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 전반에서 가장 정통성 없는 왕은 수양대군 세조라 할 수 있다.세조만큼 가장 명분없이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무고한 생명을 희생해가며 왕의 자리에 앉은 군주는 없다.그의 치적도 부왕 세종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그렇게 왕위에 앉고도 재위기간은 13년에 지나지 않는다.그런데도 그의 시호는 아버지 「세종」보다 더 위업을 드러내는 「세조」가 돼 있다.시호는 왕이 죽은 뒤 그의 공덕을 높이 받들어 바치는 이름이다.그 이름이 부왕보다 더 위대했다.그리고 그의 사후 조선조 20대 왕들은 모두 그의 자손들이다. 조선조의 의기로운 남아들이 그냥 넘어갈리가 없다.세조가 죽은 30년 뒤 그의 부당한 왕위찬탈을 고발하는 글을 사초에 올렸다 하여 또 한 차례 값진 생명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비극이 있었다.그것이 역사에서 말하는 무오사화다.그럼에도 오늘날 국민학교 학생들의 역사교과서에까지 세조는 좋은 임금으로 칭송돼 있고,「성공한 쿠데타」는 「성공한 사례」로 그려져 있다. 사마천은 그의 명저 사기열전 제1권 백이편에 이렇게 「역사」를 혹평하고 있다.『사람들은 하늘은 선한 자의 편에 선다고 말한다.그런데 행동이 궤도에 맞는 것이 하나도 없고(조행불궤),세상에서 해서는 안되는 일만 골라서 하는 데도(전범기위),일생이 편안하고 부는 자손대대로 그치지 않고 이어져 가더라(이종신일락 부후루세불절).반대로 땅도 골라서 밟고(택지이도),꼭 때맞춰 발언을 하고,공정한 일이 아니면 절대로 분노하지 않는데도(시연후출언 비공정불발분),재앙을 만나 죽는 자 그 수는 헤일 수가 없더라(이우화재자 불가승수).도대체 이놈의 세상,천도가 있느냐 없느냐(당소위천도시야 비야)』 역사란그런 것인가. 2천년전이나 이제나 하나도 다름이 없다. 역사적 허무주의가 우리의 가슴을 친다.
  • 체첸주둔 러 사령관 피습/무선조종 폭탄테러 당해… 중상

    【모스크바 AFP 로이터 연합】 체첸주둔 러시아군 사령관 아나톨리 로마노프 장군이 6일 수도 그로즈니에서 폭탄테러 공격을 받고 중상을 입었다고 인테르팍스통신이 보도했다. 로마노프 사령관은 이날 새벽 차를 타고 그로즈니 중심부 미누트카의 지하터널을 지나던 중 미리 장치돼 있던 무선조종 폭탄이 터지면서 중상을 입었으며 사령관을 수행하던 수명의 러시아 내무부 소속 장병들이 사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 외씨버선 볼받아 신고(송정숙 칼럼)

    『그젯밤에는 나가 자고,어젯밤에는 구경가고 무삼 염치로 무삼 염치로 삼승버선에 벌을 받으라나…』 흘러간 가요를 부르는 TV프로에서 민요 매화타령이 흘러나온다.이 프로에서는 노랫말 자막도 나온다.따라부르기도 좋고 가사내용을 음미할 수 있어서 좋다.날이면 날마다 나가 자기나 하고 구경이나 다니는 사람이 귀밑머리 마주푼 지아비인지 오다가다 만난 남정네인지는 몰라도 바람둥이인 모양이다.바람이나 피우면서 「무삼」염치로 「버선 벌」을 받으라느냐는 사설이다.재미있다.우리 민요는 사설이 이렇게 씹을 맛이 있고 감칠 맛이 있다. 그런데 버선의 「벌」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또 「삼승버선」이란 어떤 버선일까.민속악을 연구하고 「한국 경서도창악 대계」를 엮어낸 황용주씨는 삼승버선이란 「석새베」로 만든,그러니까 「막버선」을 뜻한다고 설명해 준다. 그리고 여기 「벌」이란 「볼」의 잘못된 표기일 것이다.권위있는 공영방송의 자막이 틀린 것이다.옛날 우리네는 버선의 「볼을 받아」신었다.「볼받기」는 헤진 버선을 깁는 방법을 뜻한다.버선의 중앙선인 수눅을 중심으로 대칭을 이룬 양 부분을 「볼」이라고 부른다.얼굴의 볼을 연상하는 이름이다.버선은 그 부분이 쉽게 헤어진다.그 「볼」에 헝겊을 대고 깁는 것을 「볼받는다」고 한다.그러나 헤어진 걸 깁는 일만이 「볼받는」 목적은 아니다.양쪽이 균형되게 헝겊을 덧대고 올을 따라 곱게 감치면 버선의 형태가 예뻐진다.질펀한 마당발도 뾰족한 칼발도 도톰한 「외씨같게」 만들어 준다.「볼받아 신는 버선」.그것은 우리의 생활문화가 지닌 정성성(정성성)을 대표한다. 그래서 모양내는 사람들은 버선을 진솔로 신지 않았다.아예 빨아서 유리알처럼 다듬고는 「볼받기」를 해서 신었다.태식태식한 무명질감의 진솔버선은 예쁘지도 않고 많이 헤어지면 볼대기도 나쁘기 때문이다. 침선을 시작하는 딸들에게는 먼저 버선볼받는 일부터 가르치는 것이 순서였다.조각 헝겊을 모으고 감별하고 손질해서 볼을 대고,올따라 공들여 감침질하기를 익히는 일 그것이 「재색겸비」한 규수의 조건이었다. 우리 버선문화에는 이런 생활의 향기가 배어있다.딸들에게 엄격한 집안에서는 버선 신음새에도 까다로웠다.반달형으로 동그랗게 송편처럼 도려낸 뒤꿈치를 바짝 치켜서 신지 않으면 『기생이냐,버선을 지루신게.바짝 치켜신거라』하고 나무라셨다. 아닌게 아니라 잘잘 끌리는 치마끝으로 살짝살짝 내비치는 새하얀 버선코는 은근히 고혹적이다.모든 민족의상에는 「에로틱 포인트」가 있다고 한다.몸의 윤곽이 드러나는 꾸냥의 옷,잔뜩 젖혀진 목덜미의 기모노.우리의 그것은 치마끝에서 숨바꼭질하는 버선코나 겨드랑 밑에 들락날락하는 하얀치마말기에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옛어른들이 버선으로 딸들을 신칙했던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버선만이 아니라 우리는 모시적삼도 진솔로보다는 처음부터 푸새를 해서 입었다.빳빳하게 풀을 먹여 촉촉할때 꼭꼭 밟아서 상큼하게 다려 입어야 제 모양이 난다.낡아서 손을 댈 수 없을 때까지 손질해 입었다.조심스럽게 정성을 다해 손질하는 「재생(재생)의 예술」은 우리 생활문화의 특성이다.음식도 그렇고 생활방식도 그랬다.위험하겠거나말거나 무모하고 거칠게 대강대강 하는 짓은,그리하여 목숨을 무더기로 파묻는 참사를 저지르는 짓은,원래의 우리 것이 아니다. 매화타령에 등장하는 버선문화는 얼마나 절묘한가.석새베버선이나 신는 주제 바람피우는 일도 분수없고 빛 안나는 막버선에 「볼받기」같은 정성을 요구하는 것은 더욱 당치않다는 뜻이다.문학성이 높은 사설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진솔옷만들기보다 더한 정성으로 기워입기를 했다.빛깔의 조화 씨줄과 날줄의 질서를 엄격하게 믿아 정성을 들였다.그래서 기운옷이 남루가 아니게 기품을 보존하는 지혜.가난을 정성으로 승화시켜 예술이게 한 근검이다. 요즘 TV 역사드라마같은 데서 아무렇게나 넙적한 헝겊을 대고 기운 옷을 입고 나오는 것은 우리의 품위를 모독하는 짓이다.그런걸 알아보지조차 못하게 된 우리가 부끄럽다.「볼받기」도 몰라 「벌받기」로 쓰고…. 그래도 거기 스며있던 옛사람들의 향기는 유전인자처럼 우리의 어디엔가 남아 있을 것이다.식민지시대,분단시대같은 절멸의 시대를 거치지 않았더라면 유전은 이어져서 향기있는 현재로 계승되었을 텐데.정밀성이 떨어지고 마무리에 약하고 날림의 대표사회처럼 되어버린 오늘의 우리가 이런 유전인자를 찾을 수는 없을지.우리속 어딘가에 있을 그 유전인자를 살려 「매사에 정성을 들이는」 노력을 회복했으면 좋겠다.
  • 미에 「한국인 노비자」 요구/공 외무

    ◎미선 발급기간 단축 등 개선 약속/SOFA(주한미군 지위협정) 조기 개정키로 【유엔본부=이건영 특파원】 정부는 최근 미국을 방문하려는 한국인들의 최대 민원사항인 비자발급과 관련,미국정부에 무사증(노비자)제도를 도입해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정부가 공식으로 미국의 한국에 대한 무사증제 실시를 요청하기는 처음이다. 이에 대해 미국정부는 당장 무사증제도로 전환하기는 어려우나 이를 신중히 검토하겠으며 우선적으로 비자발급 기간단축을 위해 획기적 개선조치를 내년초 시행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측의 비자발급제도 개선책에는 ▲전화나 우편을 통한 비자인터뷰 시간 예약제 ▲일정한 요건을 갖춘 신청자들에게 인터뷰를 생략하는 여행사 보증제도(TARP)확대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을 방문중인 공로명외무장관은 2일 하오(한국시간 3일 상오)숙소인 유엔플라자호텔에서 피터 타노프 미국무차관과 만나 한국인들이 주한미대사관 비자발급 지연으로 큰 불편을 겪고 있음을 감안,바람직한 양국관계를 위해서도 무사증제도의 조속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장관은 『현재 우리의 비자 거부율이 7.9%로 무사증제도 기준인 2%에 미달한다는 점은 알고 있지만 이중 유학생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특수상황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며 미국측의 정치적 결단을 거듭 촉구했다. 미국 정부는 EC등 대부분의 서구국가와 캐나다,그리고 동양권 국가로는 유일하게 일본에 대해 단기 방문의 경우 비자면제조치를 이미 실시하고 있다. 이날 회담에서는 또 한·미 두나라간 미묘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개정과 관련,양국은 빠른 시일내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정토록 노력해나가기로 했다고 서대원 외무부 대변인이 밝혔다. 공장관이 형사관할권 문제를 포함,현안에 대한 조속한 해결을 요청한데 대해 타노프차관은 『한국의 민감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서 SOFA의 조속한 개정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 지자체 쓰레기장 76% 관리 부실/국감자료

    ◎1백71곳 침출수 유출… 7곳 폐쇄령 일선 시·군·구가 설치한 쓰레기매립장의 76%가 침출수유출 등으로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가 29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중 환경부와 지방환경관리청 및 환경관리공단이 전국의 2백25개 시·군·구 쓰레기매립장에 대해 합동단속을 벌인 결과 4분의 3이 넘는 1백71개소가 오염물질이 흘러나오는 등 관리가 부실한 것으로 적발됐다. 환경부는 이에 따라 침출수유출이 심한 7개소에 폐쇄명령을 내리고 나머지 매립장에 대해서는 오염물질유출의 정도에 따라 사용정지 또는 개선명령을 내렸다. 폐쇄명령을 받은 전북 임실군 관촌면 매립지 5천9백㎡는 지난 6월에 폐쇄했으며 남원시가 설치한 아영면 매립지 9백㎡,정읍시의 입암면 3천1백㎡ 및 신태인면의 1천9백㎡ 등 3곳은 지난달 문을 닫았다. 붕괴위험이 있거나 침출수오염이 심한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등 나머지 세곳은 이달안에 폐쇄된다. 환경부는 또 전북 임실군 덕치면의 매립장은 연말까지 사용을 중지하면서 침출수유출방지 등 개선조치를 한 뒤 다시 사용토록 하는등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한 두곳의 매립장에 시한부 사용정지명령을 내렸다. 이밖에 1백62곳의 공공매립장은 사용을 허용하되 오염물질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안전시설을 올해안에 갖추도록 개선명령을 내렸다.
  • 「열린 안기부」로 거듭나기/관심 끄는 「통합 새 청사」

    ◎「남산 제모습 찾기」 호응,이미지 제고/대북·통상관련 정보 수집 대폭 강화 국가안전기획부가 정보정치의 상징처럼 불려지던 이른바 「남산시대」를 34년만에 마감하고 「내곡동시대」를 열었다. 안기부는 지난 61년 중앙정보부로 창설,81년 지금 이름으로 개칭되었다.권위주의 시절 중정·안기부를 청사가 위치한 지역 이름으로 「남산」「이문동」이라고 지칭하면 야당 혹은 재야와 관계없는 일반 국민들도 으스스한 느낌을 가질 정도로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던게 사실이다.남북분단이라는 특수상황에서 국가안보에 기여해온 공로에도 불구,정권안보와 막후 비밀공작에 동원됐다는 비난을 떨쳐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안기부측이 내곡동 신청사 이전을 추진한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서울 정도 6백년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남산 제모습 찾기」에의 호응이다. 둘째는 그동안 청사가 남산과 이문동에 분산돼 있어 여러가지 비능률이 있었고 차제에 이 문제점들을 해소해보자는 취지도 있었다.특히 통일시대·정보화시대를 맞아 미국 CIA 등 세계적 정보기관에 버금가는 선진정보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첨단 정보화된 청사가 필수적이었다는 설명이다. 셋째는 이미지 탈바꿈이다.안기부는 문민정부들어 각종 제도개혁을 통해 국내정치분야 개입을 배제하는등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겠다는 의지를 실천해왔다.대북 안보정보수집에 진력하고 국제 통상관련 정보를 수집해 대민지원을 하는등 이미지개선에 주력해왔다. 이번 통합 신청사 이전이 「새탄생」을 더욱 분명히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안기부측은 기대하고 있다.안기부의 한 관계자는 『신청사로의 이전을 단순한 물리적 이전이 아닌 정신적·문화적 이전으로 승화시켜 과거의 어두운 이미지를 불식하고 「국민의 안기부」「열린 안기부」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기부는 청사 이전을 계기로 정치적 중립화,민간과의 정보교류 확대 노력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히고 있다.앞으로는 대공수사와 함께 국제범죄 및 테러 방지 업무에 역량을 극대화시키겠다고 다짐한다.특히 부내에 「21세기 정보발전위」를 설치하여 5년 단위의 선진정보발전계획을 수립,추진할 의사도 밝혔다. 안기부는 전신인 중앙정보부의 초대 김종필 부장 (자민련 총재)을 비롯,지난 34년동안 19명의 「남산의 부장들」을 탄생시켰다. ◎첨단시스템 갖춘 “정보화 빌딩”/안기부 신구청사의 “새 모습”/효율성 중시… 21C·통일시대 수요에 대비/「남산」엔 공원 조성·「이문동」은 연수원으로 서울 서초구 내곡동의 안기부 신청사는 본관과 부속건물 3개동으로 이루어진 정보화빌딩(IBS)이다.건물 외양부터 산뜻한 모습이어서 구시대의 권위보다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첨단 설비를 갖춘 공공건물이란 인상을 준다. 빌딩관리자동화(BA)·사무자동화(OA)·최신정보통신망(TC)등 3가지 첨단기능이 종합되어 연동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또 미래기술을 수용해 확장가능토록 기본설계가 되어 있어 21세기와 통일시대의 정보수요에 충분히 대응할수 있게 했다는 설명이다. 신청사 안에는 테니스장·체력단련시설·목욕탕 등 직원복지 시설도 완비돼 있다.안기부측은 인근 대모산·구룡산의 등산로를 주민들이 불편없이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아래 관련 시설물도 설치했다. 신청사 이전에 따라 남산 1호터널 일대의 옛 청사 부지 및 건물은 서울시로 이관된다.이문동 지역 청사부지와 건물은 문화재관리국에 반환,이관된다. 서울시는 남산 옛 청사 41개 건물을 모두 헐어내고 그 자리에 시민공원을 조성키로 했다.청사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는 서울시는 한때 이 건물들을 교통방송국등 다른 용도로 임시 사용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당초의 남산 제모습찾기사업의 취지를 살려 공원을 조성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문화재관리국으로 이관되는 이문동 청사 일부는 당분간 안기부 부설 교육원인 국가정보연수원으로 사용될 예정이다.안기부는 앞으로 자체 직원뿐 아니라 다른 정부기관 공안 관련 직원들도 이 연수원에서 교육시키기로 했다. 이문동 옛 청사안에 있는 의릉(조선조 숙종과 장희빈 사이에서 출생한 경종이 묻힌 곳)은 문화재관리국이 관리한다.오는 10월3일에는 의릉에서 안기부와 문체부 직원들이 참가하는 KBS의 인기 공개프로그램 「열린 음악회」를 녹화할 예정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