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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대북관계 조심스레 개선/프리마코프 외무 「탈서방외교」2달

    ◎원전 등 북 구매력 의식… 남북한 균형접근/구소동맹 부활·위상회복 정책 단계 실천 러시아의 대북한 외교가 조심스럽게 개선조짐을 보이고 있다.지난 10일 재임 2개월을 넘긴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외무장관이 들어서면서부터다.그는 짧은 재임기간이긴 하지만 별다른 파문없이 친서방 외교일변도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외교의 균형잡기에 성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특히 돋보이는 것은 옛소련 동맹국들을 다시 러시아를 중심축으로 묶어내고 있는 것.러시아가 최근 우크라이나,벨라루시와 새 연방관계를 창설하기로 한 것도 그의 외교적 역량에 힘입은 바 크다. 옛 동맹국인 북한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러시아를 슈퍼파워국으로 복원시키려는 관점에서 이러한 시도들이 목격되고 있다.프리마코프 장관은 지난달 16일 모스크바 시내 올림픽펜타호텔과 북한대사관에서 있은 김정일 생일축하연에 잇따라 참석,우리 외교당국자들의 이목을 끌었다.러시아를 방문하는 고위 외교관리들이나 각국 대사들이 그의 집무실 문턱에서 만남을 외면당하기가 일쑤인 점을 감안하면 이는 눈에 띄는 행보다. 최근 러시아측이 한·러,러·북한 경제공동위의 위원장을 한데 묶어 이그나텐코 부총리를 임명하고 한·러 경제공동위원회 회의에 앞서 러·북한 회의를 먼저 개최하려는 것도 러시아의 최근 외교행태와 무관하지 않다. 러시아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의 요청으로 북한과의 경제공동회의를 6월 대통령선거전 개최할 것을 추진중에 있다』고 밝혔다.현재의 한·러 경제규모,러·북한간 경제현안 부재 등에 비춰볼 때 러시아가 우리나라를 북한과 같은 레벨군으로 취급하는 것은 다소 의도적인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한·러 경제공동회의는 우리측이 지난해부터 러시아 채무상환 문제 등과 관련,끊임없이 제의했었으나 『위원장이 임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속 열리지 못해왔다. 또 2월12일부터 3일 동안 모스크바대학 등에서 개최된 「주체사상세미나」에서도 러시아측은 파노프 차관 등 현직 차관급 외교인사들을 대거 참석시키는 등 호의를 보이기도 했다. 이같은 러시아의 남북한 「균형외교」 행보는 평양 러시아무역대표부에서 벌어진 조하사 망명사건 처리 과정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이타르타스통신 특파원에 대한 북한당국의 추방 위협,조하사의 생사 여부를 놓고 러시아당국의 자살발표를 정면으로 부인,반박하고 나선 대목조차도 러시아는 『그냥 넘어가자』며 감싸주고 있다. 모스크바 미국·캐나다연구소의 빅토르 크레메뇩 부소장은 『러시아의 잇단 대북한 유화 제스처는 외교적 실속을 되찾아야 한다는 국내정치권의 압박과 최근 옛 소련권 공산당 부활에 기대가 부풀어 있는 북한의 대러시아 접근이 맞물려 일어나는 현상』으로 진단하고 있다.러시아의 북한접근은 북한이 러시아의 무기 및 원자력발전에 있어 주요시장이라는 점에서도 더욱 강화될 것으로 분석된다.
  • 남대문시장(외언내언)

    남대문시장은 우리나라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거대한 재래시장이다.행정구역으로는 서울특별시 중구 남창동.강만길 교수가 지은 「한국상업의 역사」에 따르면 남대문주변에 가게가 들어선 것은 1414년,조선조 태종 14년.올해로 개장 5백82돌을 맞았다. 당시 조정에서는 남대문과 동대문주변에 가게를 지어 상인에게 빌려주었고 그것이 시장으로 발전됐다고 한다.당시 남대문근처에는 금위영·어영청에 딸린 곳간,남창이 있어 지방에서 올라온 곡물을 쌓아두었다.따라서 동대문주변이 무명을 파는 면포전,생선을 파는 어물전,종이를 파는 지전 따위가 있었던 것과는 달리 남대문일대는 지방에서 곡물을 싣고 올라온 사람을 상대로 먹거리를 파는 음식시장으로 발달했다.그러다가 일본이 이 땅을 강점한 뒤 청과·건어물·옷·일용잡화등을 파는 본격적인 유통시장이 됐고 이때부터 남대문시장으로 불리게 됐다. 그러나 이 시장이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6·25전쟁을 겪은 후 월남한 피난민이 이곳에 삶의 뿌리를 내리면서부터였다.그래서 한때는 「아바이시장」으로 불린 일도 있었다. 남대문시장의 면적은 1만2천여평.등록된 점포는 8천6백여개지만 무허가노점상까지 합치면 1만개가 넘는다.하루에 드나드는 사람은 35만명에서 5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외국관광객도 하루평균 3천명이 넘는다.최근 이 거대한 시장에 비상이 걸렸다.동대문시장에 현대식 상가가 들어서면서 남대문시장 상인이 대거 동대문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기 때문.위기감을 느낀 남대문시장주식회사는 이 재래시장도 초현대식으로 탈바꿈시키기로 하고 준비작업에 착수했다고 한다.그러나 이 발상은 그다지 반갑지 않다. 남대문시장은 가장 한국적인 얼굴들이 모여 가장 한국적인 몸짓으로 살아가는 서민생활의 터전이다.현대화도 좋지만 이 시장의 존재의의는 바로 여기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남대문시장은 현대화하지 않더라도 서민과 함께 얼마든지 번창할 수 있을 것 같다.
  • 말은 사람…「입」의 품위 높이는 선거로(박갑천 칼럼)

    노자의 「도덕경」 마지막 장에 신언과 미언이란 말이 나온다.『신언은 아름답지 못하고 미언은 신의가 없으며 선량한 사람은 말에 능하지 못하고 말에 능한 사람은 선량하지 못하며…』 신언이란 신의가 담긴 말이다.그 말은 진실하다.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말이기 때문이다.다만 꾸미지 않으므로 들리기는 아름답지 못할 수가 있다.미언은 아름다운 말이다.재재재재 잘 주워섬기는 말이다.그러나 그건 입끝에 발린 말이므로 성실성이 없다.「논어」(논어)에 보이는 교언과 같은 겉치레의 발밭은 말이다.동양쪽에서는 진실이 빠진 달변보다는 인간의 무게가 실린 눌변을 값지게 여겼다.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고 했다.이럴 때의 「한마디」는 「신언」이라 할수 있겠다.신언은 긴말 안해도 이쪽 마음을 전달하는 힘을 가졌기에 한마디로 매기단하지 않았는가.감동이 따르기 때문이다.그러기에 신언은 아슬아슬한 위기를 잘 넘기게도 한다.「자해필담」의 다음 얘기도 그중 하나다. 어느날 선조가 자신은 옛날의 어느 임금에 비길수 있겠는가고 신하들에게묻는다.정이주는 요순과 같다고 추켰는데 김성일은 요순도 될수 있지만 걸주도 될수 있다고 토를 단다.그러자 임금은 낯빛을 바꾸고 몸을 비틀거리면서 용상에 몸을 기대므로 좌우가 모두 벌벌 떨었다.이때 유성룡이 나서서 이렇게 두남둔다.『두사람말이 모두 옳습니다.요순에 견준 것은 임금이 그렇게 돼야한다는 말이요 걸주를 들먹인 것은 경계하라는 뜻입니다』.이말에 화색이 돌아왔다는 것이다.기지였다고도 하겠으나 신언이었기에 임금마음을 가라앉힐수 있었던 것이리라. 굳이 철학적으로 구별하여 그렇지 말살이의 현실에서는 아름답지 못한 말이 반드시 신언이고 미언은 하나같이 신의가 없다고 할수야 없겠다.현하지변으로서의 미언도 신언일 수가 있는것.역시 말은 선드러지게 잘해야 한다.잘하고 볼 일이다.제아무리 진실담긴 신언이라 해도 더듬거리면 듣기 답답하고 어리뜩해 뵈는것 아니던가. 말살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품위를 잃지 않아야겠다는 점이다.말은 바로 그 사람이라지 않았던가.하건만 열리는 선거철과함께 격조잃은 말들이 예저기서 튀어나온다.마침 4당의 선대위 대변인들이 기자·작가출신으로 짜이면서 「저질발언 탈피」를 선언하고 나섰다.암,그래야지.하지만 과연 지켜질건지.
  • 콘스탄틴 주예프 러 철학연구소연구원/모스크바타임스기고(해외논단)

    ◎“러시아 민주주의 험난하다”/대통령·측근에 권력 집중… 의회·사법부 무력/체첸사태 관련 옐친의 독단은 러 현실 반영 러시아가 소련붕괴이후 민주주의를 실천해 오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초보단계에 그치고 있을뿐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의 위기감까지 느낄 수 있다고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산하 철학연구소의 콘스탄틴 주예프 수석연구원이 최근 모스크바 타임스지에 기고한 「러시아 민주주의의 위기」에서 지적했다.다음은 이 글의 내용이다. 러시아는 지금 비록 정부당국이 일관성없는 정책을 펴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이같은 주장을 하는 이들은 우선 헌법이 민주주의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다양한 견해,언론의 자유등 민주주의의 기본요건들이 어느정도 충족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러시아가 언론의 자유를 누리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국민들이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 객관적인 정보를 접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체첸사태 보도 때 여실히 드러났듯이 실제로 언론의 자유로인해 많은 정보들이 왜곡되거나 임의로 취사선택되고 있다.민주헌법이 있다는 점을 금과옥조로 내세울 수도 없다.브레즈네프나 스탈린시대의 헌법도 여러 가지 면에서 헌법조문만을 놓고 볼 때는 민주적인 헌법이었으나 시민들의 실제생활은 법과 관계없이 많은 반민주적 제약을 받았었다. 러시아의 현재 상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권력이 지금 누구의 손에 가 있는지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의심할 여지없이 러시아의 권력은 지금 행정부,나아가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의 손에 집중돼 있다.현재의 두마(러시아하원)는 지난 93년 막을 내린 옛소비에트(최고회의)와 마찬가지로 유명무실한 존재다.심지어 의원들의 봉급도 대통령행정실에서 지급한다. 국가권력의 한 축인 사법부 역시 거의 문을 닫은 것과 마찬가지로 하는 일이 없으며 따라서 이미 잊혀진 존재가 됐다.우연히 그렇게 된 게 아니다.대통령 측근의 몇몇 인사들이 중요국사를 모두 주무르기 때문에 입법부나 사법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가 없게 된 것이다. 계속되고 있는 체첸사태의 비극은 러시아 민주주의의 한계를 그대로 말해준다.순전히 이념적인 동기로 시작됐던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러시아지도자들은 교훈을 얻었어야 했다.그래서 이번같은 위험천만하고 무의미한 정치군사적 모험을 또다시 저지르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지금 어느 면에서는 아프간전쟁때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르는 새로운 전쟁으로 빠져들고 있다.체첸전쟁은 비록 한 지방에 국한된 전쟁이지만 아프간전보다도 더 참혹한 내전이 될 것이다.더구나 지금 러시아역사상 가장 위험한 정책을 수행하며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바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과 그의 명령에 따르는 안보위원회 위원들이다.이들이 취하는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태도는 알려진 그대로다.예를 들어 니즈니고로드지역 전체주민 4백만명가운데 1백만명이 체첸전쟁의 중단을 대통령에게 촉구하는 문서에 서명했다.하지만 대통령은 이를 무시했다.지난번 다게스탄지역에서 일어났던 체첸반군들의 인질사건 때 러시아군의 무자비한 무력진압행위에서 보듯 옐친 대통령은 군인이건 일반시민이건국민의 생명을 털끝만큼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이 인질사건에 대한 정부의 공식논평은 어리석음을 넘어 차라리 웃지못할 코미디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초보적인 민주주의국가라 하더라도 그같은 일을 정당하다고 강변할 수는 없다.수천만명의 국민이 이 인질사건으로 충격을 받았는데도 사건경위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았을뿐 아니라 이 사태로 고귀한 생명을 앗긴 희생자 가족들에게 공식적인 사과조차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옐친 대통령은 이런 사태에 대해 옛날 수법을 동원해 엉뚱하게 화살을 나라밖으로 돌려 만일 유럽의회가 러시아를 유럽이사회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는 체첸의 테러리스트들을 도와주는 격이라는 식의 말을 했다. 재정러시아의 니콜라이 황제는 러시아 의회민주주의 탄생에 상당한 기여를 했었다.당시 문을 열었던 4차례의 두마는 지금 러시아두마의 선조격이다.그러나 그들은 한번도 전제정치의 폐해에 대해서는 논박하지 않았다.당시 차르(러시아황제)에 대해 쓴 글들을 보면 『황제폐하,당신은 러시아땅의 지배자이십니다』라고 쓰고 있다.스탈린 역시 러시아의 지배자였다.그리고 형식적인 집단지도체제방식으로 권력이 제한되기는 했지만 스탈린 이후의 여러 당서기장들도 마찬가지였다.불행하게도 지금 러시아의 「지배자」인 옐친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다. 정치분석가들이 옐친 대통령의 수석보좌관인 빅토르 일류신,알렉산드르 코르차코프 경호실장을 러시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정치인으로 꼽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올해초 많은 분석가들은 코르차코프 경호실장을 체르노미르딘 총리에 이어 러시아에서 세번째로 정치적 영향력이 큰 인물로 꼽았다.물론 대통령도 자기가 뽑은 인물과 얼마든지 자주 접촉할 수는 있다.그러나 러시아의 민주주의 정착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대통령을 보좌해야 한다.지금 러시아의 민주주의는 이름뿐이다.이런 식으로는 안정된 발전도 이룰 수 없을 뿐 아니라 러시아와 러시아국민 모두가 앞으로 엄청난 위험에 빠져들 우려도 없지 않다.
  • 독도를 지켜온 사람들/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서울논단)

    오늘은 일흔일곱해째를 맞는 3·1절이다.만만치 않은 세월이 흘렀건만 역사에 각인된 그날이 조금도 마모한 흔적이 없다.더구나 일본이 우리 동해 먼 바다의 섬 독도를 이러쿵저러쿵하는 통에 더욱 새로워질 뿐이다. 우리는 그동안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주장하는 일본의 망언을 못된 잠꼬대 정도로 여겼다.그런데 요즘 일본 고위관료들의 잇따른 망언은 사정이 달랐다.어떤 계략을 망언의 복선으로 깔았다는 사실이 이내 드러나고 말았다.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주장하면서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선포한다는 것이 그 계략이었던 것이다.주권국가의 영토를 넘보는 일본에 대해 분노를 느끼지 않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이제 극일이니 반일이니 하는 따위의 감상적이고 관념적인 감정차원을 넘어섰다.독도문제는 국민의 생존과 직결되어 스스로 지키지 않을 수 없는 한계상황에 도달한 느낌이다.그래서 세개의 작은 바위섬이 뚜렷하게 떠올랐고,옹색한 섬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잦아졌다.그 절해고도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국토 사랑에 있다.머나먼 섬일지라도 마음속에 좀더 가까이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다. 국민 누구인들 독도를 생각하지 않을까마는 어민들의 심정을 더 헤아려본다.남쪽 제주도 북제주군 어민들이 일본 망언을 규탄하러 독도로 떠날 것이라는 뉴스가 며칠전 신문에 났다.선조들이 띠배를 저어 파도와 싸우면서 바다를 지켰을 때 입었던 제주도 전통의 갈옷차림으로 떠날 것이라고 했다.독도를 지키지 않으면 생존의 터전 동해어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뱃길을 재촉했을 어민들의 절박한 얼굴을 보는듯 눈에 선하다. 조선시대 숙종때 부산사람 어부 안용복은 일찍 독도에 눈을 돌렸다.태어나고 죽은 연대가 불분명한 하찮은 신분이었지만 그는 선각자였다.16 93∼96년까지 울릉도·독도 근해에 출어하면서 몰래 고기를 잡는 일본어민을 힐책하고 배를 내쫓았다.심지어는 일본어선을 추격,일본땅에 들어가 담판까지 지은 인물이다.그뿐이 아니라 근래에도 독도를 지킨 민간인들이 있다.삼대에 걸쳐 울릉도에 살면서 19 53년 독도의용대를 조직한 홍순칠이라는 이가 바로 그다. 오늘날 주권국가들이 선포를 서두르는 EEZ도 수산자원과 해저광물자원을 보존하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특히 수산자원은 해저광물자원에 비해 곧바로 손을 댈 수 있는 가시자원이어서 우선은 수산자원을 중시하는 경향이다.그래서 수산업계의 어민들의 생존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것이 EEZ라 할 수 있다.일본이 만약 독도를 기선으로 EEZ를 설정한다면 어민들의 장래는 뻔한 것이다. 그러나 경상북도 울릉군 도동 3번지 독도는 사수의지가 살아있는 한 엄연한 우리땅이다.고대 사료나 영유권을 확인하기 위해 조선시대에 만든 각종 관찬자료는 이를 역사적으로 증명하고 있다.또 지리나 지질학,국제법과 같은 현대학문을 동원해도 우리가 독도를 영유하기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그리고 독도를 늘 임시 어로기지로 삼았던 울릉도 사람들은 독도를 가지도라 했다.울릉도 방언으로 물개가 「가제」니까,가지도는 물개가 많은 울릉도 말의 우리 섬인 것이다. 일본이 독도를 일러 부르는 다케시마는 말도 안되는 소리다.일본의 왜구들은 중·근세를 통해 노략질한 우리땅 모두를 뭉뚱그려 다케시마라고 하지 않았던가.침략의 치부만을 드러내는 의미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아무쪼록 일본은 2일 한·일 정상의 방콕대좌에서 우리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기 바란다.그것은 과거 침략의 역사에 대한 반성이자 아시아 역사 발전에 기여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 일제에 뺏겼던 창가집 “햇빛”/보훈처,일서 찾아 영인본 펴내

    ◎만주 광성중학서 음악교재로 사용/잊혀진 「조국생각」 등 1백52곡 담겨 구한말부터 1914년까지 국내외에서 널리 불리던 「국기가」를 비롯,「애국」「대한혼」 등 창가를 악보로 정리해놓은 「최신 창가집」이 최근 발굴돼 영인본으로 나왔다. 국가보훈처 해외독립운동 사료발굴 조사팀은 1914년 이동휘 선생이 교장으로 있던 만주 광성중학교의 음악교재인 「최신 창가집」을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서 찾아냈다. 이 창가집은 일제가 민족의 노래를 부르지 못하도록 압수했던 창가집의 하나로 추정된다.창가집에 실린 1백52곡에는 그동안 전해지지 않던 「조국생각」,「단군가」,「학생애국」 등 민족혼을 노래하고 독립과 애국사상을 고취하여 조국광복을 쟁취하겠다는 의지로 가득찬 창가가 대부분이다. 창가집의 내용을 검토한 서울대학교 신용하 교수(사회학)는 『한국독립운동사는 물론 개화사,애국계몽 운동사,국문학사,음악사의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이번에 영인본으로 발간됨으로써 선조들이 민족의 수난기를 어떻게 대처했는 지를 새삼스럽게체험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이 창가집의 부록에는 1913년 10월 이동휘선생이 북간도로부터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2백여명의 동포들에게 행한 연설문도 수록돼 있다.
  • 브라질 원주민 인디언 자살 급증

    ◎82년이래 236건 발생… 대부분 10살 안팎/전통문화 상실에 가난·학대 못 이겨/“영혼안식의 길” 문화적 배경도 한 몫 브라질 남부 작은 마을에 살던 9살박이 인디언소녀 루시아나 오르티즈양은 최근 별다른 이유 없이 나무에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칠 뒤에는 20세의 안드레 파울로군이 동이 틀 무렵 같은 방법으로 목을 맸다. 브라질 원주민인 구아라니 인디언들이 사는 마을에서는 수년래 이런 자살사건이 그치지 않고 있다.82년부터 지금까지 적어도 2백36건의 자살사건이 일어났고 자살자 대부분은 루시아나 또래의 어린이들이었다.지난해만 보더라도 2만3천명의 구아라니 인디언 가운데 54명이 음독이나 목을 매는 방법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인디언들의 자살이 잇따르자 브라질 국립인디언보호기구등 정부당국은 원인규명에 나서는등 바짝 긴장하고 있다.당국은 인디언들에게 번지는 자살현상을 「조용한 반항」이라고 부르며 대책마련을 서두르고 있다.일단 인류학자등 전문가들은 인디언들의 자살이 선조로부터 내려온 토지의 박탈과 전통문화의 상실에 따른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한 탓으로 풀이하고 있다.더욱이 인디언들이 겪는 학대와 가난도 주요원인일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한마디로 인디언들은 극단적인 절망에 빠져 자살을 도피구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구아라니 인디언들의 생활은 처참하기만 하다.26만명에 이르는 이들 인디언은 파라과이 이웃에 위치한 섬에서 대부분 살고 있다.이들의 집은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움막들이다.수입이라고는 하루종일 콩이나 사탕수수 농사일을 하고 받는 3달러16센트가 고작이다.이들은 이 돈을 맥주를 마시는데 다 써버리고는 돈이 떨이지거나 할 일이 없으면 자살을 통해 삶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이들에게 풍부한 것은 오로지 아침에 나무잎새로 비치는 햇살뿐이라고 한 관계자는 말했다. 인디언들의 자살에는 문화적 배경도 한 몫을 하고 있다.이들은 자살만이 그들의 영혼을 「악마없는 땅」(Terra Sem Mal)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인류학자들은 이런 생활고와 문화등을 종합 분석한 결과 인디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자살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브라질정부는 이에 따라 인디언들에게 더 넓은 땅과 생활자금을 지원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그러나 인디언들의 자살이 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인디언들이 요구하는 것은 자본주의도 산업화도 아닌 자연속의 조용한 삶이기 때문이다.
  • 지일·극일 3·1절 특집 다양

    ◎일 독도 영유권 주장 시점과 맞물려 관심/KBS­재미 다큐작가 크리스틴최의 「남경대학살」/MBC­독도 둘러싼 한·일분쟁 예고 「표충비의 비밀」/SBS­「3·1절 바로세우기」·드라마 「국화와 칼」 방송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한·일 양국이 첨예한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올해 3·1절에는 그 어느해보다 많은 기획특집물이 홍수를 이룰 전망이다. 우선 KBS­1TV는 24일 하오 7시30분 「역사추리­서삼릉 태실에 관한 사연」(이상출 연출)을 방송한다. 태실이란 왕실의 안녕과 국가의 번영을 위해 전국의 명당자리를 골라 임금과 왕자·공주등 왕손의 태반과 탯줄을 봉안해놓은 곳.일제 총독부가 조선조 왕과 왕자·공주의 태반과 탯줄 53위를 모아 공동태실을 만들었던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을 찾아 일제가 공동태실을 만든 이유와 또 태를 넣었던 항아리들이 모두 사라진 이유를 추적해 본다. 25일 하오 8시 1TV 「KBS 일요스페셜」시간에는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작가로 이름을 떨치는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틴 최가 제작한 「제국의 이름으로­남경 대학살의 기록」을 방송한다. 샌프란시스코 필름페스티벌에서 특별심사위원상을 받기도 한 이 프로그램은 학살당한 시체와 강간당한 여인의 모습등 남경 대학살 당시의 참혹상을 생생하게 담고있는 미국인 선교사 존 매기의 기록필름에 뉴욕타임스지 기자였던 틸단 듀어딘,한국인 정신대 송신도 할머니,남경학살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됐던 우에하 후치로,나카토미 하쿠도,아주마 시로 등의 증언을 곁들여 재구성한 것이다. MBC­TV 「논픽션 30」(윤혁 연출)은 25일과 3월3일 상오 8시30분에 2부작 「땀나는 비석­표충비의 비밀」을 방송한다.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려 재난을 경고한 것으로 알려진 경남 밀양의 표충비(일명 영당비)를 찾아 1894년 동학농민전쟁 발생 7일전 처음으로 땀을 흘린 이래 최근까지 1백여년동안 수십차례에 걸쳐 땀을 흘린 기록을 되짚어 보고 비석에 얽힌 비밀을 추적한다.또 지난 1월14일에도 땀을 흘려 독도를 둘러싼 한·일간의 분쟁을 예고했다는 소문의 진상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26∼28일 하오11시에는 우리 민족의 애환과 영광을 담고있는 전통민요 아리랑의 종적을 찾아가는 특집 다큐멘터리 3부작 「아리랑 아라리요」(송승종 연출)를 방송한다. 해외편,김산·나운규편,국내편으로 나누어 국내뿐 아니라 외국인 저자 님 웨일스의 「아리랑」기록들을 통해 미국·일본·중국·러시아·카자흐스탄·필리핀 등지에 퍼져있는 「아리랑」을 찾아 한민족의 징표임을 확인한다. SBS­TV도 29일 밤 12시10분 「시사 포커스」(박래양 연출)시간에 「3·1절 바로세우기」란 주제로 우리가 갖추어야할 바람직한 대일 자세를 되짚어 보는 한편 3월1일 낮 12시30분부터는 일본 극우세력들의 실체를 파헤쳐 호평을 받았던 2부작 드라마 「국화와 칼」(장형일 연출)을 앙코르방송할 예정이다.
  • 「하얼빈의 밤」수놓은 얼음조각축제/22회「하얼빈빙등제」새달초까지

    ◎각국의 궁전·탑·불상 등 상징물 주제별로 전시/1500여작품에 형형색색 전등장치… 마치 「동화의 나라」 선조들이 호령했던 만주땅 한복판 흑룡강성의 성도 하얼빈은 인구 4백80만명의 중공업도시로 중국 10대 도시의 하나이다. 조선족이 7만명이나 되고 안중근 의사의 숨결이 살아있어 우리들에게 낯설게만은 느껴지지 않는 곳이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매서운 추위에다 공장에서 치솟는 시커먼 연기,무질서한 교통 등으로 인상은 그리 좋지 않지만 거리 곳곳의 러시아풍 건물이 이채롭다. 하얼빈의 「명동」 중앙대가를 조금 지나면 빙등제가 한창인 조린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궁전과 탑,불상 등등.저마다 웅장한 자태에 오색찬란한 빛을 발산하는 1천5백여 얼음조각작품이 한자리에 어우러져 화려하게 밤을 수놓고 있다. 하얼빈의 얼음조각축제인 빙등제는 캐나다 토론토,일본 삿포로,스웨덴 등과 함께 세계 4대 빙등제의 하나이며 빙등제의 원조로 규모의 웅대함을 자랑한다. 빙등은 커다란 얼음덩어리 하나하나에 빨강 초록 노랑 등의 전등을 장치한 뒤 형상을 조각해 놓은 것. 공원 입구에는 「남대문」이란 이름의 거대한 얼음문이 서있다.서울의 남대문과 형태마저 비슷하다. 이 작품은 인근 송화강에서 잘라온 8백㎤ 분량의 얼음덩어리와 1천8백개의 전등으로 만들어졌다.가로 20m,높이 11.5m의 당대 성루를 모방한 것이다. 당나라 건축물을 재현한 「침향정」과 물레방아는 그 화려함으로 눈길을 끈다.가로·세로 60㎝의 얼음벽돌 64개가 기둥을 이뤄 천장을 떠받치고 있고 직경 8m의 물레방아는 「침향정」의 온도를 식혀주는 일종의 냉방장치로 중국 최초의 「에어컨」인 셈이다. 「대불상」은 이번 빙등제에서 1등상을 받은 작품이다.석굴 내부에 10m가 넘는 좌불상 주위에 수십개의 각기 다른 표정의 불상이 신비감을 더해준다. 이번 빙등제는 주제별로 8개의 풍경구로 나뉘는데 제3회 동계 아시안게임을 감안해 2개구를 「아시아의 겨울성화」「아시아의 풍치」로 꾸며 아시아 각국의 상징물을 표현했다. 22회째를 맞는 하얼빈 빙등제는 지난달 5일 개막돼 얼음이 녹는 3월 초까지(하오 4시30분∼9시) 계속된다. 빙등제를 본뒤 이웃한 민족호텔내 한국식당에서 우리 음식을 맛볼 수 있다.
  • 분토지언… 역시 왜구의 핏줄인가(박갑천 칼럼)

    『도자이,도자이!』하고 외치는 일본말이 있다.가령 술자리에서도 누군가 일어나서 『조용조용,자,지방방송들 끄고 날 좀보소』하는 뜻으로 쓴다.가부키(가무기:연극)와 스모(상복:씨름)등에서 나온 말이다.웅성웅성 잡담하고 있는 관객들에게 진행자가 외쳤던 소리.「도자이」는 동서라는 뜻이므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걸쳐있는 구경꾼 여러분』하는 말을 줄인 셈이다. 지구촌 구석구석의 일들이 금방 전파를 타는 세상이기는 하다.그래도 지구촌에 대고 계속 『도자이,도자이』 외치고 싶어지는 심정이다.이쪽 입술에 눈길들이 모아지면 『동네방네 사람들아,독도를 자기네 영토라 억지쓰는 일본사람들의 야살스런 분토지언 들어보소』하고 이을생각.분토지언이란 말은「춘추좌씨전」(양공14)에 나온다.「썩은 흙같은 말」이니 이치에 닿을리가 없다.터무니없는 개다리질이다.저퀴들어 마땅할 넋나간 소리다.「맹자」(등문공상)에 나오는바 왜가리같이 흉악한 소리 내뱉는 남쪽오랑캐의 말(남만격설)이 곧 분토지언.사람이 제정신으로 할수 없는 괴 불알 앓는 소리다. 엉뚱한 일을 가지고 떠세하며 말썽일으키는 분대질이 꼭 과붓집 수코양이 같지않은가.이는 그 조상들이 바다를 갈고다니는 왜구(위구)로 이름을 떨쳤다는 반증일 뿐이다. 이런 그들의 생트집은 우리로 하여금 한번 더 대마도를 생각하게 한다.「패관잡기」뿐아니라 「지봉유설」(병정부)에도 대마도는 신라땅이었는데 언제부터 왜놈들이 차지하게 되었는지 알수 없다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대마도를 거점으로한 왜구가 하도 극성을 부리니까 조선조 세종원년 정벌에 나선다.그러고서 이듬해 정월 경상도관할로 편입한다고 도주에게 통고한다.안방에서 활개치듯한 이른바 시마네켄(도근현)고시라는 것에 비기자면 얼마나 어연번듯한 「영토확인」인가.옛날의 내땅을 내것으로 한다는 뜻이었으리라.그런일 말고도 일본이 「대마」를 「쓰시마」라 읽는 것부터가 「조선식」.「두섬」의 일본식 발음이기 때문이다.대마도는 위아래 두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1909년 간도협약으로 간도를 청에 넘겨준 것이 우리 외교권을 뺏은 일제였다(양태진 「한국변경사연구」).그 일만 생각해도 한이 서리는 판에 『심심한데 좌수볼기나 치자』는 식으로 남의 가랑이 그러안으면서 제 가랑이라니.『개구리새끼는 개구리』라는 그들의 속담이 있다.『왜구의 핏줄은 왜구』와 통하는구나 싶어진다.
  • 북경의 최대공원 「이화원」… 새 관광명소로

    ◎거대한 인공호수 「곤명호」 장관/공원넓이 87만평 규모… 시내서 16㎞ 거리/곳곳 서태후… 주변에 고건축물 즐비 8백년전 중국의 금나라는 민둥산에 흐르는 강조차없는 척박한 땅 북경에 여름 별장을 짓기 위한 엄청난 역사를 시작했다.수만명을 동원해 땅을 파고 물을 채워 곤명호라 이름붙인 거대한 인공호수를 조성했다.파낸 흙으로는 만수산이라는 인공산까지 만들었다.그곳에 호화창연한 누각 전당 문 다리 등의 건축물을 줄지어 세우고 향연을 즐겼다. 중국 북경시내 북서부에 자리한 북경 최대의 공원 「이화원」의 유래다. 이곳은 청나라 건륭제때 대보수됐고 1860년 제2차 아편전쟁으로 영·프연합군에 의해 파괴됐다가 청조말기 절대권력을 누린 서태후(1835∼1908)가 은 3천만냥의 거액의 해군경비를 유용해 재건,현재의 모습을 갖췄다고 한다.이는 결국 막대한 재정 압박으로 청조의 멸망을 재촉했으나 서태후는 이곳에 매료돼 1년내내 머물며 내정과 외교를 지휘했다. 현재 2백90만㎡ 규모로 인공호수가 공원의 4분의3을 차지하는 북경 시민들의훌륭한 휴식처가 되고 있다. 북경의 만리장성 자금성 명13왕릉 등 신비롭고 놀라운 유적들이 그렇듯이 이화원도 당시 백성의 고혈로 이룩된 것이기는 하나 오늘날 후세들에게 선조가 남긴 자랑거리가 됐다. 이화원은 짧은 일정에 쫓긴 관광객들이 지나쳐 버리기 일쑤인 곳이지만 북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이다. 시내에서 16㎞쯤 떨어진 이곳 초입에는 초라하고 색바랜 대문옆 매표소에 내국인 2원(한화 2백원),외국인 35원(3천5백원)이라 적힌 글이 먼저 눈에 띈다.중국 대부분지역이 외국인에게는 내국인 요금의 2배에서 수십배까지 차등요금을 적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입구를 지나 좁은 골목길을 따라 돌면 거대한 호수가 드러난다.여름철에는 이곳에서 뱃놀이를 즐기지만 요즘은 호수가 꽁꽁얼어 내·외국인들이 스케이트와 썰매타기에 한창이다. 동궁내를 들어서면 곧바로 보이는 인수전은 서태후가 정치를 하던 곳이고 그 안쪽 만수산을 배경으로 볼 수 있는 낙수당은 주거가 있던 곳이다. 만수산 정상에 오르면 넓게 펼쳐진 곤명호 서호 남호 등이화원의 전경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어 올라가보는 것이 좋다. 서태후가 뱃놀이를 즐기던 나루터 입구에서 지붕형의 유람선으로 건너편 언덕으로 간다.자세히 살피다보면 하루가 부족할 정도다.개방시간은 상오 7시부터 하오 5시까지이다.
  • 철령의 성주 이씨들(압록강 2천리:24)

    ◎임란때 출병한 이여송은 성주 이씨 후손/부친 이성량은 요동일대 최고 군수권자/15세손 이영 홍무때 망명,철령에 터잡아/1994년 한국종친회서 소둔촌에 비석 세워 우리는 이여송(?∼1598년)이라는 역사인물을 기억하고 있다.명나라 제독으로 방해어왜총병관이 되어 군사 4만을 이끌고 임진왜란 때 조선에 출병한 무장이다.그런데 왜 이여송을 새삼스럽게 이야기하려는지 더러 의문을 가질 것이다.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가 조선의 성씨인 성주이씨의 후손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 성주 이씨들은 지금 요령성 철령시소둔촌에 많이 몰려 살고 있다.그리고 해마다 조상의 묘역에서 제사를 올리는데 추모 대상은 이여송과 그의 아버지 이성량(1526∼1615년)등이다.한반도에서 대대로 살아온 성주 이씨의 한 갈래가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넘어 온 것은 명나라 연호로 홍무(1368∼1398년)연간이었다.성주 이씨 15대손 이영이 죄를 짓고 아들 4형제를 데리고 철령으로 피신해왔다는 것이다. ○소둔촌 주민 거의 이씨 이영의 망명 이후 제5대손이 이여송의 아버지이성량이다.이성량은 집안이 가난하여 선조들이 세운 군공을 계승하지 못한 채 한 시절을 백면서생으로 살았다.그러다 입신의 기회를 얻어 요동 험산참장이 되었다.또 융경원년(1567년)에는 한 난리를 평정한 공으로 요동부총병의 자리에 올랐다.그 후에 몽골과 여진족을 쳐서 승진을 거듭한 끝에 만력2년(1574년)에는 요동 최고 군사지휘자인 요동총병 지위를 차지했다. 이성량 사후에는 여송,여백,여정,여장,여매등 네 아들이 총병관을 지냈고 다른 네 아들은 참장에 이르렀다.이 가운데 여백과 여매는 임진왜란 때 여송과 함게 조선에 출병하여 전공을 세웠다.그렇듯 이씨 가문이 거머쥔 병권은 대단하여 그들을 모함하는 글발이 황제에게 전해지기도 했다.그들은 실제 도읍의 한 변방을 호령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 틀림 없었다. 이씨 가문의 권세가 당시 어떠했는가는 요령성 철령시 소둔촌 이성량의 묘소에서 확인되었다.소둔촌에서 약간 떨어진 산기슭 그의 묘소 입구에는 돌조각 사자상이며 석인상이 두 줄로 가지런히 늘어섰다.규모는 비록 작아도 북경 팔달령에서 정릉으로 가는 사이에 자리한 선도를 연상케 했다.선도처럼 보이는 길이 끝나는 지점에 비석이 있다. 이성량을 기린 대리석 비석은 지난 1994년 한국의 이씨종친회가 세운 것이다.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지위가 오늘날 같이 높지 않았더라면 과연 비석을 세우도록 허락했을까.여기 사는 이씨들도 한국이 보잘것 없는 나라였다면 조상에 대해 별 집착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2백여 가구 1천여명의 주민들 가운데 70∼80%가 이씨라는 이 소둔촌에서 만난 사람들은 거의가 성주 이씨를 자청했다.그러면서 비록 한족으로 살아가지만 한국의 발전이 자랑스럽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철령현 당시 부현장 자리에 있다가 퇴직한 이유한(67)노인도 성주 이씨라고 했다.그래서 철령 이씨종친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떳떳하게 성주 이씨를 내세울 수 있게 된 오늘의 처지를 고맙게 여겼다. ○누루하치와 사돈지간 『나 자신도 그동안 뿌리를 숨기고 살았습네다.그저 한족으로 행세한 거디요.집안 노인들이 가끔 이성량을 이야기하면서 성주가 본이라고떠들면 핀잔을 줬지 뭡네까.그러다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부터는 술자리에 앉기만 하면 절로 한국과 성주란 말이 튀어나옵데다.그 전엔 창피스럽던 것이 자랑스러워지더란 말입네다.그래서리 퇴직하고 나서 좌상들과 상의해서 종친회를 꾸몃디요』 소둔촌 이성량의 묘소는 어엿했다.봉분도 제법 커서 이성량이 묻혀있는 무덤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그런데 선뜻 납득할 수 없는 몇가지 의문점이 머리를 스쳤다.이씨들이 조상에 관심을 둔 것도 근간의 일이고 역사적으로 청나라를 일으킨 누루하치가 이성량의 무덤을 파엎었다는 설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성량은 살아 생전에 누루하치와 떨쳐버릴 수 없는 악연을 맺었다.이성량이 요동총병관으로 제수되었을 때 누루하치는 15세 소년이었다.그런데 이성량은 자신의 수하장군이었던 누루하치의 할아버지 창안과 아버지 타거를 부하의 밀고로 죽여버렸던 것이다.그 해가만력11년(1583년),누루하치는 21세의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있었다.천명3년(1618년)반기를 들고 마침내 명나라를 뒤엎은 누루하치는 「7대 원한」을 갚겠노라 선언했다.이성량이 첫째로 꼽힌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씨 가문과 누루하치는 사돈간이었다.이성량의 둘째아들 여백이 바로 누루하치의 조카딸을 첩으로 들였던 것이다.그러나 원한이 사무친 누루하치는 천명4년 철령성을 함락하고 이성량 일가를 붙잡아들였다.당시 해를 당한 이씨들 가운데 역사에 기록된 인물만도 24명에 이른다.누루하치 복수의 그물에 든 사람들은 죽고 더러는 도망쳤다.그래서 산동성 임저지구와 광동성 번우지구,사천성,북경 등지에도 성주 이씨들이 지금 살고있다. ○상당수 요직에도 진출 누루하치는 오늘의 중국 동북지방 쪽을 우선 통일하고 나서 수단을 바꾸었다.성주 이씨들을 등용하기 시작한 것이다.그 결과 강희(1662∼1722년)말년 청나라 왕조에서 7품 이상 벼슬을 한 성주 이씨는 자그마치 1백여명이나 되었다.요동시단의 삼노의 한 사람인 이개는 많은 시를 썼고 「상서」등의 역사책을 편찬했다.그의 저서들은 강희말년에 나온 거서「사고전서」에 수록되었다.그리고 태원지사를 지낸 이청서는 서예에 조예가 깊어 그의 「고보현당법서」네권은 지금도 중국 서법의 모범이 되고 있다. 성주 이씨들은 수 백년이 흐른 지금도 만만치 않은 존재이다.철령지구의 경우 현급 간부 14명,국급 간부 13명,과급 간부 18명이 성주 이씨로 되어있다.이들은 지난 1991년에 성주이씨 종친회를 조직하고 한국의 성주이씨 대종회와 정상적인 교류를 해왔다.그리고 「철령성주이씨보계」,「이성량종족역사기년」,「한국성주이씨중국파굴기」등을 펴냈다. 그래서인지 요령성 북령시에는 중국에서 성주 이씨를 명문으로 일으킨 이성량의 흔적이 그런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이성량과 같은 봉건 착취계급의 유산이 문화혁명과 같은 난세를 견디어냈다는 사실이 의아스러울 정도였다.그 하나가 명나라 신종이 명하여 만력8년(1580년)에 세운 공적비 석방이다.높이 9m,너비 13m의 누각형인데 「진수요동총병겸 태자태보령원백 이성량」이라는 글발 등이 들어있다.그리고 용문을 뛰어넘는 잉어,여의주를 굴리는 용,사슴과 꽃 등을 새겨 석방은 호화롭기 그지 없다.명나라 때 중국대륙 동북방에는 분명히 「이성령의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유적이기도 했다.
  • 미,대북관계 추가개선 모색/경제제재 완화 포함

    ◎정부 “남북관계와 연계해야”/오늘 공외무 레이크 보좌관 정책조율 주목 【푸케트=이도운특파원】 미국은 지난해말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북한간의 경수로공급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북한에 대한 제2차 경제제재완화를 포함한 대북관계 개선조치를 이행하겠다는 입장을 우리정부에 타진해온 것으로 4일 알려졌다. 미국이 검토중인 경제제재 완화조치에는 ▲미국기업의 소규모 대북 직접투자 허용 ▲대북 송금 허용규모 확대 ▲미국은행을 통한 신용거래 확대등이 포함됐으며,이를 위해 미 국내법 규정 및 절차도 일부 개정될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측은 또 이러한 경제제재 완화 조치에 맞춰 평양과 워싱턴의 북·미간 연락사무소도 개설한다는 방침을 정했으며,방한중인 앤소니 레이크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이 5일 권오기부총리겸 통일원장관,공로명외무부장관을 만나는 자리에서 이같은 입장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그러나 미국의 대북 관계개선 조치는 북한측의 미사일 생산및 수출 금지·화학무기협정(CWC)가입,남북대화 재개,전방에 배치된 무기 철수등의 조치와 맞물려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양국간 조율결과가 주목된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이 지난해 초 시행한 1차 경제제재 완화조치로 아무런 실질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미국측에 추가조치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미국이 북한에 식량원조를 위해 2백만달러를 지원한 것도 이같은 압력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북한이 남한을 무시하고 미국만을 상대해 살아남으려는 전략에 미국이 호응할 경우 북한의 오판이 우려된다』면서 『북·미관계개선은 남북관계와 병행해 이뤄져야 하며,북한의 의무사항 이행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일본은 「국가 폭력」 핏줄을 잇는가(박갑천 칼럼)

    어느 겨레고 역사는 영욕으로 엇결린다.특히 우리처럼 힘이 약했던 겨레에겐 굽잡혀지낸 아픈 자국이 더 많을밖에 없다.고려때 원나라에 여자를 바쳐야했던 일도 그것이라 하겠다. 고종때 쳐들어온 그들은 동남동녀를 요구한다.그후로도 까딱하면 여자를 바치라 을러대므로 고려조정에서는 「과부처녀 추고별감」이라는 이름의 희한한 관아를 만들어 그일을 맡게 했을 정도다.충렬왕∼공민왕때까지의 80년동안 그 문제로 사신이 50여차례나 갔다왔다 했다지 않던가.원제국을 뒤집어놓은 요화 기황후도 끌려갔던 공녀아닌가 생각되고 있다.쓰린 역사는 근대에 들어서도 더 살똥스럽게 되풀이된다.태평양전쟁때 일제가 군대위안용으로 조선처녀들을 강제로 그러모아 일선으로 보냈던것 아닌가.원나라때는 그래도 왕실이나 귀족의 후궁·궁녀·시첩·시비로 되었다.한데 일제는 불특정다수인의 욕구배설에 충당했으니 버력입어 마땅할 무도함이었다. 제1차 십자군원정(1096∼99)에 따라간 여자가 5천명이었다 한다.또 알브레히트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서 슈트라스부르크에 입성했을때(1298)는 8백명이,스페인 알바공의 네덜란드원정때(1567)는 말탄 여자 4백명과 걷는 여자 8백명이 따라갔다.그러나 그들은 매춘부.한데 일제가 끌어다 망가뜨린건 우리 처녀들이었다. 일제는 그들을 일러 정신대라 했고 지금도 그리 부른다.하지만 「정신」이란 말뜻은 고약하다.소동파의 유후론등에 의할때 『남보다 앞서 자진하여 나아감,솔선함』같이 쓰이니 말이다.끌려간 것도 분하고 억울한데 앞장서 자진해 간 걸로 표현되다니.「조선조」를 「이조」라 하는 따위 독소섞인 그들의 말을 무심코 쓰는 사례가 「정신대」.달리 갈음됐으면 한다. 오는 3월께 유엔인권위가 『이른바 정신대는 국가에 의한 폭력이자 비인도적 전쟁범죄』라 규정한다고 들린다.보상도 「위로금」 아닌 「법적배상」이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한다.그러나 배상으로 된다해서 짓밟힌 한살이가 보상되겠는가.참으로 잔인한 「국가폭력」이었다. 민주화했다는 오늘의 일본이 제국주의 시대의 미화등 국가폭력의 맥을 잇는 작태를 곧잘 내발려온다.독도를 자기들땅이라 우기는 것도 침략주의 조상의 핏줄을 이은 떼거리.이웃으로 생각하려는 마음을 쓰렁쓰렁하게 만드는 그들이 아닌가.시마네켄(도근현) 고시보다 3백60여년이 앞선 「패관잡기」에는 대마도가 우리땅이더라마는.
  • 2백해리 적용 일 검토 3개안

    ⓛ분쟁 각오… 배타적 경제수역 전면 설정 ②한·중 양국에 「배타적 수역」 적용 제외 ③한·중에도 적용… 어선조업 허가 “특례” 【도쿄=강석진특파원】 일본정부는 유엔해양법조약의 이번 회기내 처리를 앞두고 2백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의 적용을 위한 3가지 방안을 놓고 검토에 들어갔다고 일본의 도쿄신문이 28일 보도했다. 일본정부는 유엔해양법조약에 따른 정부방침을 2월중 조정을 마칠 계획이지만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우 한국과는 독도,중국과는 첨각제도로 영토분쟁이 일어날 우려가 있어 조정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이 신문은 예상했다. 일본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3가지 방안은 ▲영토분쟁을 각오하고 배타적 경제수역을 일본주변에 전면설정 ▲77년 「어업수역잠정조치법」과 마찬가지로 한·중 양국을 배타적 경제수역의 적용으로부터 제외 ▲한·중 양국에도 적용하지만 운용상의 특례로서 양국 어선의 조업을 허가하는 방안등이다. 첫번째 방안은 일본 수산청과 통산성이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방안이지만 한국영토인 독도와 중국이영토권을 주장하고 있는 첨각제도를 둘러싸고 한·중 양국과 일본의 관계는 크게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두번째 방식은 영토분쟁이나 어업분쟁이 발생할 우려는 적으나 러시아와의 불평등성으로 러시아와의 관계가 우려된다고 이 신문은 내다봤다. 세번째 방식은 앞선 두 방안의 절충안으로 러시아와의 관계라던가 한·중 양국과의 어업분쟁은 피할 수 있지만 영토분쟁의 재연까지 막을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도쿄신문은 이케다 유키히코(지전행언)외상이 국회답변에서 한·중 양국과 조기에 협의를 벌이고 싶다고 밝혔지만 일본정부 내부의 방침결정에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여 조기개최는 의문시된다고 덧붙였다.
  • 데라우치문고 11점 공개/경남대/일서 80여년만에 반환받아

    【마산=강원식기자】 80여년만인 지난 24일 일본에서 돌아온 데라우치문고의 한국관련 사료 1백34점 가운데 11점이 26일 경남대 본관에 마련된 35평의 임시 전시실에서 공개됐다. 하루만 특별 공개된 사료들은 문화재위원들이 현지조사에서 국보 및 보물급 가치가 있다고 평가한 것들이다.조선후기 추사 김정희가 친필로 쓴 서법첩 「원당법첩조눌인병서」와 조선조 23대조 순조의 왕세자가 9살 때 세자시강원에 입학하는 의식을 채색도로 표현하고 축하시문을 붙인 서화집 「정축입학도첩」 등 2점은 국보급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됐다. 경남대학은 개교 50주년을 맞는 오는 5월21일부터 일반인에 공개할 예정이다.또 올해 착공할 기념관 건물에 과학적 보관시설을 갖춘 전시실을 마련해 영구 보관키로 했다.
  • 통과여객 가장 김포공항 사전답사/중국인 밀입국수법 백태

    ◎감시소홀 틈타 입국심사대 몰래 통과/홍콩서 변조여권 구입… 버젓이 입국도 중국인의 밀입국기도가 중국과 국내에서 활동중인 중국인 밀입국알선조직에 의해 주도면밀하게 이뤄져온 사실이 검찰조사결과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19일 검찰에 적발된 중국인으로 구성된 「복건성 밀입국알선조직」은 밀입국희망자가 미리 2∼3차례 통과여객으로 가장해 김포공항에 도착,공항사정을 답사케 하는가 하면 입국을 거부당한 같은 처지의 사람으로부터 밀입국요령을 배우도록 하는 등 치밀한 준비작업을 거치도록 한 것으로 드러나 이에 대한 보다 철저한 대책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이 조직을 거치지 않은 밀입국자 가운데 상당수는 홍콩에서 여권위조단을 통해 구입한 위조여권으로 밀입국한 것으로 조사돼 여권에 대한 감시체계강화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이번에 적발된 「복건성 밀입국알선조직」은 지난해 5월 산업연수생으로 입국,경기도 안산의 피혁제조회사 공원으로 일하고 있는 정승영씨(22)가 중국 복건성에 사는 정금련(50대중반)씨와 연계해한국에서 취업을 원하는 중국인을 모집해 우리 돈으로 1인당 70만원을 받고 밀입국을 알선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취업희망자가 밀입국하면 국내 브로커인 정씨가 김포공항에서 이들을 안내해 취업을 알선해주었다는 것.최근 밀입국하다가 적발된 중국인 밀입국자도 모두 이들의 소개를 받아 밀입국한 복건성 출신이라고 검찰은 밝혔다. 이들은 주로 통과여객을 가장해 공항에 도착한 뒤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입국심사대를 빠져나오는 전형적인 도주형 밀입국수법을 사용해왔다.최근들어 밀입국하다 적발된 허기평(27)씨등 중국인 밀입국자 모두는 사이판발 항공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한 뒤 높이 1백50㎝인 입국심사대를 밑으로 기어 통과했다. 검찰은 이들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여권위·변조에 의한 밀입국수법이라고 강조했다.이들 대부분은 홍콩인은 입국사증이 없이도 입국할 수 있는 점을 악용,사진을 바꿔치기한 홍콩인 명의의 위조여권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위·변조로 적발된 건수는 91년 1백37명,92년 2백44명,93년 2백59명,94년 3백73명,95년 5백28명으로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지난 한햇동안 밀입국하려다 적발된 외국인은 5천5백28명.중국인은 5백25명이었으며 이들 가운데 3백4명은 위·변조여권으로 밀입국하다 적발됐다. 이와 관련,법무부 출입국관리소의 한 관계자는 『밀입국수법 가운데 위·변조수법이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스탬프로 돼 있는 심사인을 미국이나 일본에서 사용하고 있는 스티커식(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비자를 여권에 덧씌우는 것)으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한국서 취업” 희망자 모아 밀입국/중국인 알선조직 적발

    서울지검 남부지청은 19일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중국인 밀입국사건의 배후에 중국인들로 구성된 「복건성 밀입국 알선조직」이 개입한 사실을 밝혀내고 본격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지난 13일 출입국관리법위반 등(체류자격외 활동)의 혐의로 구속된 중국인 브로커 정승영씨(22)를 상대로 수사한 결과,정씨가 중국 복건성 거주 정금련씨와 짜고 중국에서 취업을 미끼로 모집한 중국인들을 밀입국시켜 취업시키려 한 사실을 밝혀내고 정씨와 함께 국내에서 활동중인 중국인 브로커들을 찾고 있다. 검찰조사 결과,중국 복건성 출신인 이들은 정씨가 복건성 현지에서 『한국 산업체에 취직시켜 주겠다』며 희망자를 모집,착수금조로 1인당 70만원을 받고 국내에 밀입국시키면 국내 브로커인 정씨가 김포공항에서 이들을 안내,취직시켜 주기로 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까지 이들의 알선을 통해 밀입국을 시도하다 적발된 사람은 지난해 12월 적발돼 구속된 진매영(40·여)씨등 7명이다.
  • 간첩의 중국교포 위장 밀입국(사설)

    해안경비에 구멍이 뚫렸다.밀입국자들이 탄 배가 영해를 통과해 들어와 사람을 풀어놓아도 아무 저지를 받지 않는다.밀입국자중에는 북한공작원까지 조선족으로 위장해 들어와 국가안보마저 위협받고 있다.지금부터라도 우리 영해의 감시체계를 강화해 국가주권과 안보가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부산지검이 중국에서 보내온 서신제보에 따라 조선족을 대거 밀입국시켜온 알선조직을 적발해 조사한 결과 밀입국자중 특수훈련을 받은 북한 특수공작원의 잠입혐의가 커 이들을 추적하고 있다.제보에 따르면 북한은 휴전선을 통한 간첩남파가 어렵자 이들을 밀입국자로 위장시켜 잠입시킨다는 것이다.제보에 명시된 간첩혐의자 5명은 밀입국조직이 지난해 남해안을 통해 밀입국시킨 87명의 명단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돼 간첩침투의 가능성이 높다. 밀입국조직은 그동안 여러 차례 중국에서 밀입국희망 조선족 수백명을 모집해 선박편으로 한국에 데려온 것으로 드러났다.문제는 이들이 해안으로 밀입국자를 실어날라도 한번도 검문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해상경비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당국이 그동안 적발한 불법입국 북한인의 수가 30여명이며 파악되지 않는 인원은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10월 부여에서 생포된 간첩 김동식은 두 차례나 서귀포 해안을 통해 서울까지 침투해 각계인사를 포섭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준 바 있다.특히 새벽에 괴선박의 출현을 신고받은 경찰은 뒤늦게 현장을 둘러보고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아 해상경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중국과 국교정상화 이후 밀입국 중국교포가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해상에서 검거된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도 해상경계의 허술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바다의 경계가 철통 같아야 육지의 안보가 확보될 수 있다.육지에서 잠적한 밀입국자를 검거하기 위해 소동을 벌이기에 앞서 해안경비를 철저히 해 침투경로를 차단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 당기구 통폐합 추진/신한국당

    신한국당은 사무총장 산하 16개 위원회 가운데 기능이 비슷하거나 유명무실한 위원회를 통폐합해 10여개로 줄이는 등 일부 당기구를 통폐합하고 직능조직의 개념을 새로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신한국당은 현행 중앙당­시도지부­지구당으로 이어지는 계선조직 중심의 정당조직으로는 다원화되는 사회변화 추세에 적응하기 어렵다고 보고 수평적인 직능조직의 개념을 도입,직능활동을 활성화할 방침이다. 신한국당은 이를 위해 국제협력위등을 세계화추진위로 흡수하고 정책평가위와 교육평가위를 하나로 합치는 방안등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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