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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주 민속극박물관(생활속의 박물관·미술관:12)

    ◎“잡귀야 물렀거라 신명난다 인간사”/탈·인형극에 담은 선조들 희로애락/각종 탈·인형 유물 3,000점 전시/짚 방상씨탈 등 희귀자료 가득/전통악기·외국민속탈도 눈길 충남 공주시내에서 연기군 전의면쪽으로 차를 몰아 20분쯤 달리면 의당면 청룡리라는 한적한 마을에 닿는다. 마을로 들어서면 소나무 숲으로 된 이색지대가 눈에 들어온다. 박물관이라기보다는 깨끗하게 잘 가꾼 공원 분위기가 더한 아담한 문화공간.바로 공주민속극박물관(관장 沈雨晟)이다. 마을의 옛 지명 ‘돌마루’ 간판이 걸린 문을 들어서 왼쪽의 자그마한 원두막을 지나면 안쪽에서 농기구자료관과 민속극자료관을 차례로 만난다. 곳곳의 석물(石物)들이 울창한 소나무 숲에 포근히 안겨 민속공원 분위기를 살려준다. 소나무 숲길이 끝날 무렵 주 전시관인 민속극자료관이 나타난다. 자료관 앞 50평 크기의 잔디 놀이마당이 깔끔하다. 놀이마당에서 한차례 탈춤이라도 추고 싶은 기분으로 160평 규모의 2층 전시장에 오르면 온갖 탈이며 인형들의 표정이 정겹다. 우리 민속극은 인형놀이와 탈놀이·놀이굿을 모두 포함한다. 옛 사람들은 민속극으로 삶의 애환과 갈등을 풀어내면서 생활의 활기를 되찾는 멋을 지녔다. 따라서 옛 탈과 인형은 민초들의 정서를 관통하는 그 무엇을 담고 있다. 공주민속극박물관은 이 민속극에 쓰이는 각종 탈과 인형 악기 옷 등 대소도구를 한 자리에 모아놓은 곳이다. 민속극계의 전문가인 沈雨晟씨가 사재를 털어 3,000평 규모의 선산에 세운 공간. 민속극박물관으론 국내 유일하다. 1966년 인사동에서 창립된 한국민속극연구소에서 시작,박물관으로 발전한 것이다. 인형놀이·탈놀이·놀이굿에 쓰이는 관련 유물이 3,000점. 꼭두각시놀음·발탈·만석중놀이·서산박첨지놀이 등 전통 인형극 관련 자료만도 200여점이 들어 있다. 네 면의 벽에 그림자극 인형들이 매달렸고 그 아래 탈춤에 쓰이는 각종 탈들의 모습이 정겹다. 그림자극 만석중놀이의 만석중이 우뚝 서있어 인형에 매달린 끈을 잡아당길 때마다 가슴을 탁탁 치는게 퉁명스럽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각양각색의 탈. 양주별산대부터 하회별신굿,통녕오광대,봉산탈춤 등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제각각이다. 수영·동래들놀음,강령·은율·봉산탈춤,남사당놀이 덧뵈기,처용무,하회별신굿,꼭두각시놀음,통영·고성·기산오광대,강릉관노탈·송파산대·만석중놀이의 등장인물들이 금방이라도 살아날듯 생생한 표정을 머금고 있다. 짚으로 만든 탈들은 박물관의 자랑거리. 방상씨(方相氏)탈,열두띠(十二支)탈,만석중놀이에 쓰인 그림자인형들은 모두 이곳에만 있는 것이다. 짚 방상씨탈은 남사당패 출신인 朴龍泰씨의 고증을 거쳐 재현됐다. 1930년대까지도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방상씨 탈은 장례행렬 앞에서 악귀를 쫓는 역할을 했던 것. 궁중에선 나무,양반들은 종이를 썼던데 비해 서민들은 주로 짚을 썼다고 한다. 인형극에 쓰이는 각종 인형들도 만만치 않고 그림자 인형들이 벽면 윗부분을 빙둘러 장식해 그림자극을 벌이는 것만 같다. 전시품중엔 독지가들의 기증품이 상당수. 沈관장과 뜻을 같이해온 민속극·국악계 인사들의 정이 담긴 것들이다. 국악인 朴範薰 崔태현 李輔亨 金素熙씨의 이름이 눈에 띈다. 서울국악예고가 갖다놓은 장구·북과 李相薰 화백이 기증한 金得洙씨의 북,그리고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이 기증한 갖가지 판소리북·퉁소·단소들이 훈훈한 정을 더한다. 우리 탈과 인형들의 중간중간엔 외국 민속탈이 드문드문 끼어들어 색다른 느낌을 전한다. 미얀마 수문(守門)탈,뉴기니아 구나면(驅儺面),일본의 무악면(舞樂面),인도네시아·베트남 민속탈,브라질의 기우제 탈,중국의 면구(面具)…. 우리 것과는 생김새가 사뭇 다르지만 탈에 담긴 표정과 분위기는 우리 민초들의 희노애락에서 그리 멀지않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민속극자료관을 둘러본뒤 내리막길을 따라 입구 쪽으로 걷다보면 농기구자료관이 기다리고 있다. 沈관장의 연구실과 맞닿아 있는 이곳은 가볍게 둘러볼만한 공간. 학교 교재엔 들어 있지만 사라진 옛 농기구들을 만날 수 있다. 충남 일원에서 쓰였던 재래 농기구와 생활집기 200여점을 모아놓아 인근 학생들의 견학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沈관장은 박물관의 기능이 단순히 옛 물건들을 보여줌에 그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한다.전시품을 매개로 우리민속을 재현,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돼야한다는 것이다. 매주 토·일요일 오후 ‘청소년 어울마당’을 마련,청소년들에게 우리가락·춤·민속이야기를 가르치고 있다. 또 음력 3월15일을 전후해 지내는 계룡산 산신제와 9월 첫째주 금·토·일요일 3일간 개최되는 ‘아시아 1인극제’도 모두 沈관장의 욕심이 일군 알찬 행사들이다. ◎이렇게 가세요 인근에 국립공주박물관,무령왕릉,공산성,계룡산 갑사,마곡사 등 유적지와 명사찰들이 있어 이 곳들과 연계해 가볼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민속극 관련 전시자료를 다양하게 들여다볼 수 있고 토·일요일엔 직접 강좌에 참가해 이론교육과 실기를 체험해볼 수도 있어 교육적 가치가 큰 박물관이기도 하다. 공주버스종합터미널에서 전의쪽으로 방향을 잡아 의당파출소 앞에서 우회전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종합터미널에서 노선버스 18번·20번이 운행되고 있고 승용차로 10분 거리다. 매주 월요일 휴관하며 관람에는 1시간 정도가걸린다. 입장료는 어린이 600원,청소년·군인은 800원,일반은 1,000원. 단체의 경우 어린이는 400원,일반은 800원을 받고 있다. (0416)55­4933. ◎한마디/沈雨晟 박물관장/“우리 전통문화 재창출 구심점 됐으면…”/40년 외길 민속학자/단순한 전시공간 탈피/국제연극제 등 개최 희망 沈雨晟 관장(65)은 민속극계에서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민속학자. 40년간 이 분야에 천착해 살고 있으며 공주 민속극박물관은 그의 고집이 만들어놓은 옹골찬 문화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沈씨의 박물관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 “전국에서 유일한 민속극박물관이란 명칭에 비해 미흡한게 많습니다. 전시장이 작아 보여주지 못하는 소장품이 너무 많지요. 전시품을 매개로 우리 전통문화를 재창출할 수 있는 구심점이 됐으면 합니다” 공주민속극박물관이 민속학자들은 물론 학술답사단까지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있는 민속극의 보고로 성장했지만 더 많은 관람객들이 직접 찾아와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았으면 하는게 沈씨의 욕심이다. 전시에 그치지 않고 전시를 매개로한 문화행사나 국제연극제,학술세미나등을 수시로 열어 그야말로 민속극의 구심점 역할을 해내겠다는 생각이다. “이 정도나마 만든 것도 쉽진 않았습니다. 연구과정에서 모은 자료들이 넘쳐나 친구와 친척들 신세도 많이 졌지요.” 지난 50년대말부터 민속극을 배우기 시작해 민속극 관련단체의 구심 역할을 해왔고 전국민속경연대회 심사위원을 해마다 맡아오고 있다. 전국 답사를 다니면서 하나 둘씩 모으기 시작한 자료들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쌓여 박물관 건립을 계획했고 부친과 자신의 사재 7억원의 비용을 들여 우뚝 세워 놓았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탈만도 전국에 15종이 되지만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우리 탈춤과 인형극을 보기란 쉽지 않지요. 차츰 잊혀져가는 이 민속극은 우리 조상들의 놀이와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있는 유물이란 점에서 많이 찾아와 즐기기를 바랍니다”
  • 銃風 수사 마무리 수순/李會晟씨 소환 안팎

    ◎韓씨 등 3명 “허위 자백” 진술로 꼬여/李씨 증거인멸 기도 등 확증 못찾은듯 검찰의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 수사가 21일 李會晟씨(52)의 전격 소환으로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李씨는 사건 초기부터 한나라당의 ‘비선조직’으로 알려진 韓成基씨(39·구속) 등 3명의 배후로 지목돼 왔다.한나라당 지도부와 韓씨 등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검찰수사의 본류로 여겨지기도 했다. 李씨의 개입 여부는 단순히 韓씨 등의 과잉충성에 의한 ‘총격요청’인지, 아니면 한나라당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대선공작’인지를 가리는 단초이기 때문이다. 韓씨가 안기부 조사과정에서 “총격요청 계획을 李씨에게 보고하자 ‘신중히 대처하라’며 여행비로 500만원을 줬다”고 진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李씨에 대한 의혹은 증폭돼 왔다. 하지만 韓씨 등이 검찰에서 “안기부의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이라고 진술을 번복,수사가 꼬이기 시작했다. 검찰은 안기부와 통일부 등의 직원과 진로그룹 張震浩 회장 등을 상대로 광범위한 주변 조사를 했으나 李씨가 개입했다는 뚜렷한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李씨에게 여비 제공과 대선 이후의 증거인멸 기도 여부 등을 따졌지만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선에서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朴相千 법무부장관이 20일 李씨의 소환에 대해 “참고인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점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검찰이 “李씨가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바뀔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귀가 조치할 방침”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때문에 李씨가 총격요청 사건으로 구속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때문에 검찰의 李씨에 대한 소환이 韓씨 등 3명의 기소를 앞둔 시점에서 사건을 마무리하기 위한 ‘구색 맞추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검찰은 이미 韓씨 등에 대한 공소장 및 발표문 초안작성 작업에 들어갔다. 검찰이 기소 만기일인 오는 26일 韓씨 등 3명의 ‘판문점 총격요청’ 혐의 사실만을 확인하고 사건을 마무리할 경우 정치권의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 화폭에 옮긴 성철 스님 다비식/한국화가 김호석씨

    ◎‘그날의 화엄’ 그날의 佛心/높이 365·폭 160㎝ 대작/23일까지 전시/운구행렬·거화 등 시간대별로 묘사/1만2천여 군상 4년 걸쳐 담아내 한국화가 김호석씨가 서울 종로구 견지동 동산방화랑(02­733­6945)에서 23일까지 개인전을 갖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93년 11월 국민들의 관심속에 치러진 조계종 종정 성철(性徹) 스님의 다비식 모습을 높이 365㎝ 폭 160㎝의 화면에 재현한 대작 ‘그날의 화엄’을 선보인다. 전시작품은 단 1점. 한지위에 수묵채색으로 그린 이 작품은 5년전 입적한 성철스님 다비식 운구 행렬로부터 거화(擧火)장면까지 각 시간대별로 모습을 담은 기록화의 성격을 띠고 있다. 단순히 운구행렬과 다비식 과정을 담는데 그치지 않고 다비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과 자태를 통해 우리 시대의 삶을 대서사시로 엮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림의 윗부분은 해인사 전경과 백련암을 담았고 중간부분은 영결식후 스님의 법체를 다비식장으로 옮기는 운구행렬을,아랫부분은 다비식이 진행되는 모습을 담았다. 법체 뒤에는 밖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성철스님의 친필 ‘佛’자가 숨겨져 있다. 작품에 나타나는 인물군상은 1만2천여명. 작가가 하루에 4명씩 꼬박 4년동안 그린 것으로 작가의 남다른 예술혼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이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5년전 막연한 호기심으로 성철스님의 다비식에 참석한 것이 계기가 됐다. 불교신자도 아니었지만 당시의 사회 분위기가 발길을 해인사로 향하게 했다. 그리고 그때 받은 충격은 그로 하여금 다비식 장면을 그리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엄숙한 문화적 이벤트를 한 화면 속에 어떻게 배치할지,정신의 표상을 잃고 슬픔에 잠긴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그려내야 할지 수많은 시간을 고민했다. 마침내 ‘솔개기법’(솔개가 공중에서 내려다 보는 방법)을 취했다. 그리고 운구행렬을 중심으로,땅에 엎드려 절하는 불자들의 모습,떡장사,기자,카메라맨,구경꾼,가야산에 사는 오소리 개 담비 등 동물들,그리고 다비식 장면을 스케치하는 김씨 자신의 모습까지 주변에 각기 다른 표정들을 꼼꼼하게 그렸다. 그는 이 작품을 그가 직접 만든 한지에 그렸다. 색깔도 우울한 느낌을 주기위해 소나무 관솔을 태워 만든 300년된 먹을 구해 사용했다. 채색 또한 전통적 방법으로 직접 재현한 천연안료를 썼다. 일례로 다비식의 붉은 불길은 연지벌레의 내장을 녹여 만든 색깔이다. 미술사가 이태호 교수(전남대)는 “그의 작품은 고구려 고분벽화,고려와 조선조의 불화,정조시대의 ‘수원능행도’같은 조선시대 궁중기록화 등 전통회화의 서술적 표현양식을 토대로 재창조한 현대적 역사기록화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고 말했다. 김씨는 홍익대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나왔다. ‘역사속에서 걸어나오는 사람들’,‘함께 가는 길’이라는 작품으로 한국인물화의 새 장을 여는 등 끊임없이 한국화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왔다.
  • 고양 중남미박물관(생활속의 박물관·미술관:11)

    ◎어! 한국속에 중남미 있었네/국내유일의 외국문화 전문관/잉카·마야 유물 등 1,500점 전시/각종 생활용품 라틴문화 한눈에/전통가면 우리탈 보는듯 친근감 가을에는 훌쩍 떠나고 싶다. 발길 가는 곳으로 가자. 지구 반대편까지 갈 수 있다면…. 라틴 아메리카로 떠날까. 마음은 그래도 너무 멀어 라틴 아메리카로 가을여행을 떠나기란 버겁다. 그래,중남미 여행대신 ‘중남미박물관’으로 문화여행 떠나자. 침략자의 눈으로는 ‘발견한’ 땅. 그러나 BC 5,000년부터 이미 감자와 고추를 재배했고 마야문명과 잉카문명을 꽃피운 현란한 문명의 땅이었다. 오늘날엔 천연자원의 보고이지만 늦어진 산업화로 가난에 파묻혔던 이 곳은 현재 ‘새로운 땅’으로 불린다. 베링해를 건너간 2만5,000년 전,선조들이 아시아인이라 그런지 여러모로 우리와 닮았다. 지구 반대편의 그곳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와 닮았음은 일종의 문화충격이다. 마야와 잉카문명,아즈텍으로 대표되는 중남미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곳,경기도 고양시 고양동에 위치한 중남미박물관은 외국문화 전문 박물관으론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곳이다. 아시아에서 유일한 중남미 전문 박물관이다. 붉은 벽돌 스페인풍의 건축물,잘 가꿔진 정원에는 멕시코의 대표적인 조각가 빅또르 구띠에레스의 여인상을 비롯 곳곳에 놓여진 조각품들이 멋스럽다. 5,000평의 대지에 총 건평 1,600평의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꾸며졌다. 우선 중남미 독특한 문양이 새겨진 묵직한 나무 문을 열고 들어선 박물관 실내는 경쾌한 라틴 음악과 후엔 데쓰라 불리는 분수대,중남미의 상징인 태양신 아즈텍의 문양이 천장을 장식하고 있어 중남미 분위기를 단번에 느낄 수 있다. 박물관의 라틴 문화유산은 총 1,500여점. 아즈테카 잉카문명 등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남미 각국의 찬란했던 문화유산과 역사 생활상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잉카문명의 토기 석기 목기 등 고대유물은 이 박물관의 첫번째 자랑. 가면과 도자기,가구와 민속공예품과 그림,영상물,전문서적은 물론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중남미의 모든 것이 있다. 이 박물관은 전직 외교관 부부의 콜렉션에서 시작됐다. 전 멕시코대사를 지낸 이복형(李福衡) 박물관장은 “혼을 넣어 만든 곳”이라 자랑한다. 30년을 골동품 시장과 벼륙시장을 뒤져 모았고,전장이라도 유물만 있다면 달려갔다. 그리고 94년,퇴직금으로 박물관 건물을 지어 박물관을 개관했다. 중남미에서만 30년동안 외교관생활을 했기때문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도 있지만 ‘순수하고,따뜻하며 상대적 빈곤감도 느낄 줄 모르는 풍요로운’ 그곳 사람들을 사랑하게 된 것이야말로 박물관 탄생의 첫번째 이유이다. 토기는 중남미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인디오 또또낙 족의 토우를 비롯 마야의 ‘고행하는 사제’,올 메까족의 ‘손가락을 빠는 토우’, 아즈텍시대의 ‘풍요의 신’도 있다. 또 8세기 엘살바도르의 요초아와 요호아상,3세기 따이노족의 토기 파편과 멕시코 꼴리마 지방의 ‘다산의 여신’도 자랑거리이다. 목기와 석기,구리로 생활소품을 많이 만든 멕시코 지방의 구리공예와 청색자기도 함께 볼거리이다. 이 박물관에서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인 곳은 가면의 방이다. 남미 전통의귀신탈과 우리의 천하대장군과 비슷한 멕시코 마추와 칸의 나무탈이 있고 나무와 종이,뿔과 돌,비취와 가죽,구슬 야자수 등 소재가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두려움의 대상인 표범과 사슴 독수리 게의 탈도 있다. 죽음의 가면과 쌍가면 등,가면을 반으로 나눠 표정이 두가지 이상을 담고 있는데 이는 오랫동안 수탈을 당해온 민족의 한과 정복자에 대한 반감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중남미 역사에서 식민지배를 빼놓을 수 없듯 이 박물관에서도 루이 15세가 사용하던 바로크 가구세트가 눈길을 끈다. 스페인 정복실에는 기독교와 무력,부에 대한 욕망이 담겨 있는데 그중에는 인디오가 그린 마리아와 스페인 종교화의 대가인 무리요의 화법을 흉내낸 멕시코 과달라하라 대성당 수사들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거칠게 만들어진 목각 예수상,18세기의 천사도 남미문화의 소박함을 엿보게 한다. 안데스 인디오의 대표적인 민속악기 삼뽀냐,케냐,땀볼과 아즈텍 시대의 목각 타악기까지 악기들도 전시되어 있다. 이 박물관은 유물의 전시 뿐아니라 살아있는 문화의 현장.중남미의 대표적인 음식강습이 매일 열리는가 하면 중남미 의상전시회,음악회도 열린다. 지난해 개관한 미술관은 중남미 작가들에게 아시아 진출의 발판이 되고 있다. ◎한마디/李福衡 박물관장/라틴문화 ‘공유정신’도 함께 배우고 가길 기대/멕시코 등 4국서 대사/30여년 수집품 등 모두 문화원재단에 기증 중남미박물관에서는 중남미의 문화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李福衡(67) 洪甲杓(65) 전직 대사 내외의 중남미 문화에 대한 사랑과 집념,그리고 무소유의 인생관도 배울 수 있다. “이 박물관은 아내의 집념과 초인간적인 열의로 이뤄졌어요”라고 李관장은 말한다. 그는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코스타리카·도미니카 등 4개국 대사를 지낸 중남미 전문가. 李관장 내외의 공식명칭은 아내 洪씨가 중남미 문화원 이사장,李씨가 부설 박물관장. 격으로 보면 부인이 한수 위다. 남편 은퇴 후를 미리 준비한 아내에 대한 지극한 애정의 표현이다. 박물관을 지은 터는 30년 전 평당 300원씩을 주고 산 땅이다. ‘은퇴후 살 곳’으로 사뒀던 곳이지만 테마박물관으로 뜻을 정한 후,소유가 아니라 ‘공유의 즐거움’을 실천하게 됐다. 8원씩 사서 심고 펌프물을 길러 키웠던 묘목들도 자식같아 이 곳에 박물관을 세웠다. 자신을 ‘유노동 무임금’성실한 정원사라 말하는 李관장의 손은 막일꾼의 손이다. 땅과 유물까지 ‘엄청난 재산’을 중남미 문화원재단에 기증했고,사후 장기기증까지 결정했다는 이들에게선 중남미의 화려한 문화 뿐아니라 삶의 지혜와 아름다움도 배울 수 있다. “문화의 빈곤이 우리나라의 갖가지 위기를 갖고 왔어요. 있는 자들이 소유하려하지 않고 함께 공유하려는 생각을 해야 해요” “이 다음에 네 아들을 데리고 또 와다오. 그때 이 박물관 만든 할아버지·할머니 만났던 이야기를 아들에게도 해줘야 해” 엘살바도르 민속토기를 싸게 사기 위해 게릴라들이 점거하고 있는 지역에 밤늦게 들어가기도 했던 용감한 콜렉터 洪이사장은 관람온 한 중학생에게 당부한다. ◎이렇게 가세요 경기도 고양시 고양동 302의 1번지 중남미 박물관은 서울에서 통일로를 따라 문산방면으로 가다 필리핀 참전기념비와 벽제읍을 지나 고양동파출소에서 좌회전해서 마을로 들어간다. ‘이 곳에 박물관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아파트가 들어선 마을길을 따라가면 박물관 안내판이 길을 가르쳐준다. 고양향교와 이웃하고 있다. 개관 시간은 아침 10시부터 저녁 5시까지. 년중무휴. 단 평일의 점심시간(12:00∼14:00)은 초등학생이하 어린이는 관람불가. 관람에 필요한 시간은 1시간 정도. 관람료는 어른이 2,500원,학생은 1,000원. 전화 (0344)962­9291·7171
  • 총격전이 벌어졌다면?/한충목 열사 범추위 집행위원장(굄돌)

    지난 대통령선거 때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의 이회창후보가 비선조직을 통해 판문점에서의 총격을 요청했다는 안기부의 주장은 참으로 가공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일어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만약에 선거를 하루이틀 앞둔 상황에서 총격전이 발생했다면 국가 전체는 준전시 상태로 되고 국민은 공포에 질린 상태로 투표장에 가야만 했을 것이다. 기표소에서 붓뚜껑을 들고 우리 구민은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 열 중 아홉은 후보자의 공약이나 정견을 판단기준에서 제외시키고 유일하게 북을 상대로 한판 싸움을 벌일 수 있는 절대 반공주의자를 선택하리라는 상상은 너무 지나친 것일까? 1987년 6월항쟁의 성과로 이룬 대통령 직선 때 양김은 분열했다. 거기에다 KAL기 격추사건의 주범 김현희가 김포공항으로 들어오는 장면이 전국에 TV를 통해 생중계되었고 바로 며칠후 투표가 있었다. 선거결과는 노태우 후보의 승리였다. 만약에 양김이 분열하지 않고 단일후보로 선거에 나선 상황이라도 김현희가 등장했다면 단일후보가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을까라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지난 50년동안의 분단상황은 분단에 기생하는 권력층을 형성해왔고,지금도 그러한 상태는 지속된다. 통일이 없는 민주화나,민주화가 없는 통일에서는 모두 절름발이 민주화나 절름발이 통일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지난 군사독재 시절 반공으로써 국민을 길들이고,선거 때만 되면 간첩이 등장하는,그래서 현재 대통령이 되어 있는 분조차 한때는 용공조작에 시달린 사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4,000만 국민과 7,000만 겨레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5년동안의 집권을 보장받으려 했다면 이는 천형에 처해도 부족할 민족적 반역행위다. 안기부의 고문설을 포함하여 이번 사건의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하고,관련 책임자를 엄하게 다스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제2건국 열린 가슴으로/崔一道 목사·다일공동체 대표(서울광장)

    나라를 다시 세우자는 운동이 한창이다. 여론도 이제껏 지내왔던 틀로는 더이상 곤란하다는 데로 모아지는것 같다. 이런 움직임을 보면서 한가지 다행스러운 사실은 이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현 위기상황의 해법을 경제회복에만 맞추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명의는 아픈 부위만을 치료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환자의 전체를 치료한다. 경제위기로 드러난 우리의 질병도 사회전체에 만연된 기본틀의 총체적인 치료를 필요로 하고 있다. 병에 대한 진단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 병을 어떻게 치료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어디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하는지,지금의 아픔이 잘못된 과거의 열매라면 무엇을 단절해야 하고 어떤 부분을 살려서 접목시켜야 하는 지를 다시 한번 꼼꼼하게 따져볼 때이다. ○튼튼한 공동체 건설 필요 지나치게 강조되어 왔던 것은 무엇이고 상대적으로 왜소하게 움추려 들었던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스스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들을 무시해 왔다. 왜? 그것이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앞으로 선택하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눈앞에 보이는 단기적인 효율보다는 당장은 좀 더디더라도 우리 공동체를 튼튼하게 세워줄 수 있는 장기적이고 영구한 효율성을 추구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에서는 새로운 출발을 다짐해 왔다. 장미빛 청사진을 그 결과물로 약속해 왔다. 그러나 그 때마다 그 다짐들은 민초들의 자발적인 지지를 끌어내는 데 실패해 왔고 장미빛 청사진은 잿빛으로 바뀌는 일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그러한 실패의 반복을 보아온 대다수의 국민들은 나라의 기본틀을 다시 세우자는 이번의 제2건국운동만은 실패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만큼 과거의 틀이 우리 모두에게 고통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강대국 사이에서 치열한 생존의 싸움터를 헤쳐왔던 우리로서는 그 패러다임의 전환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서 각 개체들의 개성을 무시하고 일사 분란한 행진을 강요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과거와는 이제 정말 결별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경쟁과 분리에서 통합으로,획일적인 시스템에서 다양성이 존중되는 구조로 움직여야 한다. 통합과 다양성은 그동안 우리가 너무나 소홀히 여겨왔던 국민재건 필수품이다. 통합과 다양성은 열린 가슴으로,유연한 생각을 존중하는 사회에서만이 그 생명력을 갖는다. ○사회통합·다양성 존중돼야 ‘제2의 건국’의 목표는 너와 내가 분리되지 않는 공동체 건설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 그릇은 다양한 개체들의 성향들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잘못된 전문화는 자기 분야 이외의 영역에 무관심을 낳고 독선을 부른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이 가졌던 장인정신은 자신의 영역에 깊이가 있으면서도 다른 부분들과도 원활한 관계를 맺게 한다. 열린 가슴과 유연한 생각으로 밑바닥에 내려 있는 사람이 올라서 보며,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내려가 보아 눈높이를 맞추며 더불어 함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공동체 건설이 필요하다.
  • 張震浩 회장 어떤 역할했나

    ◎李 후보측 비선조직 연계 ‘총풍공작’ 관여 의혹/국민신당 지원설도 나와 ‘양다리 걸치기’ 의심도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에서 張震浩 진로그룹 회장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검찰은 張회장을 8일 전격 소환,이 부분에 대해 집중 조사하고 있다. 우선 張회장은 지난해 대선 때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측에 상당한 자금을 제공했으며 韓成基씨로부터 판문점 총격요청 공작 내용을 사전에 들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張회장은 검찰에 소환되기전 안기부 조사에서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 진영에서 일을 한다는 韓씨에게 7,000만원을 대줬지만 韓씨가 총격요청 사건을 설명하면서 경비를 달라고 해 거부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문제는 張회장이 대선 때 李후보측에 단순히 자금만 지원했는지 아니면 총풍(銃風)공작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李후보의 당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는지 여부다. 張회장이 韓씨로부터 판문점 총격요청과 같은 중대한 문제를 사전에 보고받았다는 점에 비춰보면 李후보측 비선조직과 상당히 깊은 관계였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특히 대선 이후에도 張회장이 李후보의 동생 會晟씨와 수시로 전화통화를 했다는 의혹도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張회장은 이같은 한나라당 지원설과는 반대로 국민회의 金大中 후보를 돕기 위해 朴燦鍾 전 의원에게 한나라당을 탈당,국민신당에 입당하는 조건으로 韓씨를 통해 20억원을 제공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물론 張회장은 부인하고 있지만 朴전의원에게 직접 돈을 건넸다는 韓씨는 “20억원의 수표 사본까지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 밝혀지겠지만 張회장의 ‘국민신당 지원설’은 대권의 향배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양다리 걸치기 차원의 자금지원일 가능성이 높다.
  • “세종대왕 범패 손수 작곡”/朴範薰 국립국악단장 확인

    ◎김수온 ‘사리영응기’에 기록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작곡한 범패(梵唄)에 관한 기록이 국립국악관현악단 박범훈 단장에 의해 최초로 발견됐다.박씨는 세종 때 학자 김수온의 ‘사리영응기(舍利靈應記)’ 기록을 최근 확인,세종이 불교음악의 근간이 되는 범패를 직접 작곡한 사실을 밝혀냈다. ‘사리영응기’는 1920년대 퇴경 권상노 스님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그 자료를 받아 국학자인 자산 안확이 1930년 ‘불교’라는 잡지에 단편적으로 소개한 적이 있다.그러나 자료 내용의 일부만 소개됐을 뿐 전체가 심층적으로 조명되지는 못했다.우리나라 범패의 시원은 신라시대 진관선사로 알려져 있지만 이때 부른 범패에 대한 실체는 분명하지 않다.‘사리영응기’에 따르면 조선조 범패의 전통은 세종대왕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세종은 자신이 직접 창제한 범패를 가무악으로 공연했다.이러한 사실은 세종이 ‘봉래의’같은 향악 궁중정재와 함께 불교에 바탕을 둔 궁중정재도 만들었음을 보여준다.
  • 李會晟·朴寬用·鄭在文/‘銃風 사건’ 검찰 파악 수사 대상자

    ◎李會晟­韓씨 등과 사건은폐 모의/朴寬用­北京 접촉 배후역할 물증/鄭在文­北 安炳洙 만나 거액 전달 ‘판문점 총격 요청’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의 종착역은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인가. 검찰은 구속된 韓成基씨 등 3인과 李총재의 동생 會晟씨,그리고 李총재간의 얽히고 설킨 연결고리를 찾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또 한나라당 朴寬用·鄭在文 의원 등도 이번 사건에 李총재가 어느정도 개입했는지를 입증하는데 중요한 인물로 분류하고 있다. 會晟씨는 韓씨 등과 대선 직후 여러차례 만나 사건을 은폐하려 했기 때문에 빠른 시일내에 조사가 필요하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다. 세 사람을 李총재의 비선조직으로 관리했는지와 여비조로 500만원을 전달했는지가 핵심사안이다. 朴의원은 韓씨 등이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인사들과 접촉할 때 배후역할을 했다는 물증이 드러난 것으로 사정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지난해 대선때 李후보 캠프의 핵심참모로 활동한 朴의원은 비선조직의 활동범위와 내용에 대해서도 중요한 단초(端初)를 제공할 것으로 검찰은예상하고 있다. 그는 또 지난 96년 4·11 총선 직전에 북한군의 판문점 무력시위를 유도하고 그 대가로 현대그룹을 통해 북한에 3,400t의 밀가루를 제공하는데 일정역할을 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鄭在文 의원도 수사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鄭의원은 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 북한 조평통 安炳洙 부위원장을 만나 360만달러를 전달하고 그 대가로 남북정상회담 추진 합의문을 작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李총재의 장남 正淵씨의 연루 여부도 관심거리다. 正淵씨는 韓씨와 가진 두차례 전화통화 내용에 대해 조사받을 것으로 보인다. 李총재에 대해 이 내용을 직접 보고했는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 임종일씨 역사소설 ‘정도전’ 펴내

    ◎혁명가인가 배신자인가 조선조 개국공신 정도전에 대한 새로운 자리매김을 시도한 장편역사소설이 나왔다.자유기고가 임종일씨가 5년의 작업 끝에 펴낸 ‘정도전’(한림원).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이 소설은 우리 왕조사의 모순구조를 깨뜨리기 위한 정직한 역사읽기의 한 결실이다. 정도전,그를 빼놓고는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이야기하기 어렵다.그는 변방의 한 무장에 지나지 않던 이성계를 혁명에 끌어들여 조선건국을 주도했다.또 정몽주와는 지란지교의 벗이자 혁명동지였다.성리학의 대가로 조선의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종교 교육 어디에도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은 없다. 그러나 그에게는 사대주의자,간신,스승과 친구를 배신한 인물이라는 부정적인 말들이 수식어처럼 따라 다닌다.역사적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작가는 정도전이라는 한 인물의 삶의 궤적을 좇으며 고려말과 조선초로 이어지는 요동치는 역사의 줄기를 짚어간다. 작가는 왕조에 대한 맹목적인 충절보다는 혼돈과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는데 힘을 쏟는 민본주의자로서의 정도전을그리는데 초점을 맞춘다.정도전이 역성혁명을 통해 조선건국을 주도한 것은 천하만민과 민족의 대계를 위한 것이었지 결코 이씨왕조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 자제위가 설치된 배경을 공민왕이 꿈꾸었던 고구려의 고토회복 의지에서 찾고,공민왕의 시역을 원나라와 부원배들의 공작에 의한 것으로 그리고 있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 검찰 수사 쟁점별 중간 점검/北에 총격요청은 사실로 판명

    ◎李 총재 개입·對北지원 의혹/‘고문 조작’ 주장 새 이슈화 지난해 대선 당시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의 ‘비선 조직원’이 북한측에 판문점 총격을 요청했다는 검찰과 안기부의 수사발표로 정국이 엄청난 회오리에 휩싸였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은 韓成基(39·포스데이터 비상임고문)·張錫重씨(48·대호차이나 대표) 2명이 지난해 12월10일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측 관계자 3명에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총격전을 일으켜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는 당국의 발표와 피의자들의 진술이 일치한다. 모의에 가담한 吳靜恩(46·전 청와대 행정관)는 이와 별도로 대선 관련 보고서를 李會昌 후보측에 15차례나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李會昌 총재나 측근이 ‘총격전 요청’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는지 여부가 논란의 핵심이다. 여기에 안기부 커넥션의 실재 여부,수사 과정에서 피의자들이 고문을 받았는지 여부 등도 관심의 대상이다. 검찰과 안기부의 수사내용과 피의자들의 주장을 쟁점별로 짚어본다. ▷李會昌 총재측 인지 여부◁李會昌 총재의 동생 李會晟씨가 지난해 대선 당시 吳씨와 韓씨를 수십 차례 접촉했고 韓씨가 베이징으로 갈 때 500만원을 건넸다는 것이 안기부의 발표다. 검찰은 會晟씨가 ‘총격전 요청건’에 대해 미리 보고를 받았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일부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吳씨 등은 지난해 11월 초부터 12월 초까지 주 3∼4회 정도 모임을 갖고 대선 관련 보고서를 李총재측에 15차례 제출했다. 특히 吳씨는 李후보의 출근때 승용차에 동승해 직접 보고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李총재는 이에 고맙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韓씨는 특히 신한국당 朴燦鍾 고문이 대선과정에서 신한국당과 국민신당을 놓고 저울질할 때 李會昌 후보가 직접 朴고문을 만나 당 잔류를 설득해야 한다며 會晟씨에게 李會昌·朴燦鍾 면담 주선을 자처한 뒤 지난해 12월 초 吳씨와 함께 李후보를 만나 朴고문 집으로 안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韓씨 등은 자신들이 李후보의 비선조직이 아니며 會晟씨로부터 여비를 받았다는 것도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이라고 주장했다. 韓씨는 변호인과의 면담에서 대선 당시 진로 張震浩 회장의 권유에 따라 金大中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朴燦鍾씨를 국민신당에 입당시키기로 했고 이를 위해 張회장이 준 20억원을 朴씨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영국에 체류 중인 朴씨는 그러나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안기부 개입 의혹◁ 전직 안기부 고위관리 등에 따르면 張씨는 안기부가 관리해 온 공작원으로 암호명은 ‘아미산’이었다. 그렇더라도 張씨 등이 군사작전을 요청하면 북측이 이를 받아들일 정도로 비중을 인정받았겠느냐는 것이 의혹 가운데 하나였다. 상대방인 북한측 관계자의 격(格)도 의문의 대상으로 지적됐다. 그러나 張씨 등은 독자적으로 북측 관계자와 접촉한 것이 아니며 안기부 관계자의 협조 또는 묵인 아래 거래할 수 있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지난번 북풍공작 수사 때 옛 안기부 간부 등이 옷을 벗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안기부의 개입의혹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고문 의혹◁ 張씨의 동생 錫斗씨와 韓씨의 변호인은 이들이 안기부에서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사과정에서 무릎을 꿇은 채 구타를 당해 무릎에 상처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사무실 등에서 촬영한 신체 사진을 증거로 제시했다. 고문이 사실이라면 張·韓씨의 진술은 증거 효력을 잃게 된다. 안기부는 이에 대해 張씨 등이 구치소에서 통증을 호소하거나 진료를 받은 사실도 없다는 점 등을 들어 거짓주장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7일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은 張씨가 수사관과 저녁식사를 하고 노래방까지 갔다며 언론에 이 업소를 공개했다. 張錫斗씨는 그러나 “안기부 관계자가 형에게 ‘독한 술을 먹고 자면 멍이 풀린다’고 해 억지로 술을 마시고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북 커넥션 의혹◁ 검찰은 96년 4·11총선 직전 판문점 무력시위 이후 재미교포 金양일씨가 중간에 나서 현대그룹을 통해 3만t 가량의 밀가루를 북한에 전달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선거를 6일 앞둔 4월5일 판문점에서 발생한 무력시위의 배경에도 모종의 ‘뒷거래’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여당은 139석 획득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당시 현대측은 金泳三 정부와의 불편한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돈을 댄 것으로 알려졌다. 의혹의 핵심은 북풍사건에 연루된 재미교포 金양일씨가 우리 정부 누구의 지시로,무슨 이유 때문에 북한에 밀가루를 보내는데 앞장섰느냐는 점이다.
  • ‘총격’ 현장 TV방영도 모의/검찰,韓成基씨 조사

    ◎북과 구체 장소·날짜 논의/이회성씨 주내 소환키로 서울지검 공안1부(洪景植 부장검사)는 6일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과 관련,한나라당 李會昌 총재의 동생 會晟씨(53·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를 이르면 7일 불러 韓成基·張錫重씨 등으로부터 총격요청 계획을 보고받았는지 여부를 조사키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韓·張씨 등이 지난해 12월10일 중국으로 떠나기 전 李會晟씨에게 총격요청 계획의 일부를 보고하고 5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므로 李씨에 대한 소환조사가 불가피하다”면서 “대선 이후 李씨와 韓씨 등의 접촉이 증거인멸을 위한 시도였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특히 韓씨가 지난해 대선 직전 북측에 총격도발을 요청하면서 총격장소와 시기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했는지 여부도 조사중이다. 韓씨는 지난해 12월10일 중국 베이징 캠핀스키 호텔에서 북한 ‘아태위’ 朴모 참사 등을 만나 판문점 공동경비 구역에서의 총격전을 요청했으며 이를 미리 설치한 카메라로 찍어 국내 TV를 통해 방영하면 ‘(대선에)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된다’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韓씨는 朴참사 등에게 국민회의측이 대응할 시간적인 여유를 주지 않고 북풍공작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대선 3∼4일 전인 지난해 12월 14일이나 15일에 총격을 해 달라는 등 총격전 날짜까지 지정해 준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안기부는 이날 韓씨가 총격을 요청하면서 朴참사 등에게 건넨 ‘신한국당 李會昌 총재 특별보좌역 韓成基’라고 새겨진 명함 사본을 공개했다. 검찰은 또 안기부가 지난달 12일 전 청와대 행정관 吳靜恩씨의 집에서 압수한 대선보고서 15종과 관련,吳씨 등을 불러 대선 당시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에게 보고서가 전달된 경위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吳씨는 지난해 11월 초부터 한달 동안 ‘비선조직’과 주 3∼4차례 정도 모여 ‘대통합 정치의 구현’ ‘주요 인사와의 접견 및 협력유도’ ‘합동토론회 대응 방안’ ‘주요정보 보고’ 등의 문건을 작성한 뒤 李후보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서울지법은 지난 3일 밤 한나라당 공동변호인단이 제출한 증거보전신청 가운데 신체검증을 우선 실시한 데 이어 5일 오후 321호 법정에서 洪承徹 판사 심리로 韓·張씨에 대한 신체감정을 실시했다. 감정에서는 법원이 지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李漢榮 법의학과장(40)이 외상부위와 상처 발생 경위 등에 대해 문진(問診)과 시진(視診),사진촬영 등을 했으며 李과장은 추후 감정 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키로 했다.
  • 적과 내통하는 반역아들/金三雄 주필(時論)

    매국노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이완용과 송병준처럼 외적에게 나라를 판무리가 있는가 하면 적국에 빌붙어 모국을 침략하는 국적도 있다. 고구려 연개소문의 맏아들 男生은 대표적 국적의 하나다. 동생들과의 세력 다툼에서 밀리자 당나라로 도망쳐 적군을 이끌고 와서 형제를 치고 모국을 멸망시켰다. 내외의 정세를 간파한 연개소문이 사망하기 직전 아들 3형제에게 “너희 형제는 서로 사랑하기를 물과 물고기처럼 하거라. 화살이 합치면 강하고 이를 나누면 부러진다”(환단고기)는 유언까지 남겼지만 권력에 눈이 먼 자식들은 골육상쟁끝에 남생의 반역으로 가문과 나라의 멸망을 불러왔다. 조선조 연산군때의 姜弘立은 명나라 원군 요청을 받고 오도원수(五道元帥)에 임명된 장수였다. 임진란 당시 명나라의 은고를 입은 조정은 그를 원정군 사령관으로 삼아 후금(後金)의 징벌에 나섰다. 그러나 명(明)·조(朝)연합군은 일패도지하고, 강홍립은 후금에 투항했다. 일설에는 당시 정세를 꿰뚫은 연산군이 기회를 보아 후금에 합세하라는 밀지 때문이었다고는하지만, 문제는 그후 일어난 일이다. 후금 정벌에 나섰던 강홍립이 적군의 선봉장으로 모국을 친 것이다. 일신의 이해로 적국에 빌붙고 적병을 끌어 모국을 치는 반역행위는 그러나 옛 역사 이야기만은 아니다. ○용공음해 뒤편서 적과 내통 지난해 대선은 과거 어느 선거에 못지않은 이른바 ‘사상논쟁’으로 시종했다. 김대중 후보에 대한 용공음해가 핵심 쟁점이었다. 당시 여권이 총동원되어 융단폭격을 가했다. 북측과 가깝지 않으냐는 음해였던 것이다. 이런 이면에서 지금 재판중인 권영해 안기부장이 벌인 용공조작은 ‘적과의 동침’을 주제로 하는 한편의 첩보영화를 방불케 한다. 상대를 용공으로 매도하면서 뒤편에서 벌인, 적과 내통하는 파렴치성과 반국가행위는 용서받기 어려운 범죄다. 입만 열면 반공과 안보를 떠드는 자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적과도 서슴지 않고 내통하는 범죄는 이적행위 바로 그것이다. ○북한군에 총격요청이라니 그나마 이런 행위는 ‘적대적 공조’ 관계의 고전적 수법이라 한다. 권력에 환장한 자들이 ‘선거용’으로북한군에게 판문점에서 총격을 요청했다니, 이들의 타락과 반국가 행위가 어디까지일지 망연할 따름이다. 그것도 이회창 후보의 친동생과 비선그룹에서 자행된 음모라는 데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과거 선거때나 주요시국이면 어김없이 벌어진 안보사건이 모두 이렇게 북한과 내통하여 ‘짜고 친 고스톱’이었단 말인가. 김현희의 대한항공기 폭파사건과 15대 총선때 판문점북한군총격사건도 ‘적과 내통’한 각본이었는가? 검찰은 북한군총격요청사건을 한점 의혹 없이 규명해야 한다. 배후를 밝히고 사실로 드러나면 관련자 모두를 외환(外患)죄로 엄벌해야 한다. 단순히 선거에 이기기 위해 우리 아들 딸들에게 총을 쏘라고 거래한 반역자들, 자칫 전쟁으로까지 치달을지 모를 도박을 벌인 모험주의자들을 뿌리뽑아야 한다. 국기를 흔드는 엄청난 이적행위가 관련자들의 ‘고문’ 주장으로 희석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노릇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피의자들에게 고문을 했단 말인가. 고문이 자작극이거나 허위로 드러나면 그 교활성도 단죄해야 한다. 북한군총격요청사건은 매국 이적행위다. 결코 ‘고문’ 문제로 양비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고구려 멸망의 아픔과 정묘호란의 비극을 되풀이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 李會晟씨 곧 소환/검찰 ‘판문점 총격 요청’ 관련

    ◎朴寬用 의원 出禁 방침/吳靜恩­會晟씨 통화 증거 확보 서울지검 공안1부(洪景植 부장검사)는 2일 ‘판문점 총격요청설’과 관련,한나라당 李會昌 총재의 동생 會晟 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53)이 이른바 李총재의 ‘비선조직’ 공작에 개입한 혐의를 잡고 조만간 소환,조사하기로 했다. 검찰은 지난 달 28일 李 전원장의 출국을 금지했다. 또 전 청와대 행정관 吳靜恩씨(46)의 외삼촌인 한나라당 朴寬用 의원이 吳씨 등의 계획을 미리 알고 있었는 지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기로 했다. 검찰은 전 포스데이터 비상임고문 韓成基씨(39·구속)가 중국 베이징에서 북측 관계자들에게 건넨 ‘李會昌 후보 비밀정책특보’라고 새긴 명함과 會晟씨와 吳씨 사이에 오간 전화통화 내용 등을 증거물로 확보했다. 검찰은 특히 吳씨와 韓씨가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총격 요청계획을 會晟씨에게 알리고 500만원을 받았다”고 진술한 사실과 관련,이들을 상대로 李총재에게도 이같은 사실을 말했는지 여부 등을 집중 추궁했다. 검찰 관계자는 朴의원 부분에 대해 “吳씨를 청와대에 천거한 朴의원이 구속된 韓씨 등을 만났던 점에 비춰 朴의원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96년 4·11 총선 직전에 발생했던 ‘판문점 무력시위사건’에 구여권 인사들이 개입했는지를 내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져졌다. 검찰은 대북교역업자인 張錫重씨(48·구속)가 대북 정보 등을 수집하기 위 해 안기부에 고용된 공작원이었다는 일부 보도의 사실여부에 대해서도 수사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사정당국은 전직 안기부 고위 간부가 개입했는지 여부를 집중 수사중인 것으로 2일 알려졌다. 여권의 한 소식통은 “지난 6월말 안기부 고위간부 2명이 ‘북풍사건’에 연루됐음이 추가로 밝혀져 사표를 제출했으며 이미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소식통은 “지난 대선 때 이른바 북풍공작이 ‘權寧海 전 안기부장라인’과 ‘李會昌 후보 간여 라인’등 안기부안에서도 두 라인에 의해 이뤄진 혐의가 있다”면서 “최근들어 李會昌 총재측과 연관이 갖고 북풍공작을 벌인 혐의가 있는 인사들을 집중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기부는 張錫重씨가 ‘안기부 공작원’ 출신이라는 일부 보도에 대해 “북한을 왕래하는 張씨로부터 북한내부 소식을 듣는 정도였지 그를 직원으로 채용한 적도,‘공작원’으로 인정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안기부는 “굳이 張씨와 안기부의 관계를 표현한다면 그를 ‘망원(網員)’정도로 지칭해야 할 것”이라면서 “안기부는 이 사건 자체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한편 韓씨의 변호를 맡은 姜信玉 변호사는 “韓씨가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고문을 당해 李會晟 전 에너지경제원장으로부터 500만원을 받았다는 허위자백을 했다는 얘기를 접견할 때 들었다”면서 “가혹행위로 무릎이 터지고 시퍼렇게 멍이 든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안기부는 “국민의 정부아래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한뒤 “특히 張씨가 증거라며 공개한 얼굴없는 사진은 그 출처가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 국정조사 ‘동상이몽’/與 “전모 밝히기 전략”

    ◎野 “會昌 죽이기 입증” 여야는 ‘판문점 총격 요청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해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국정조사 의도와 지향점은 다르지만 국회차원의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데는 한 목소리를 냈다. 국민회의는 3일 상오 간부간담회를 열어 한나라당이 ‘판문점 총격 요청사건’과 관련,공동조사와 특검제를 요구한데 대해 국정조사권 수용이라는 강수를 내놓았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얘기다. 鄭東泳 대변인은 회의가 끝난 뒤 “검찰수사가 끝나는 대로 국정조사권을 발동하겠다”고 말했다. 국민회의는 두가지 관점에서 이 사건의 전모를 밝히기로 했다. 첫째,이 사건을 사실상 국가 전복사건으로 규정한 만큼 사건 실체에 대한 완벽한 총정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둘째,3인조 비선조직은 예비접촉선이라고 보는 만큼 그 배후를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은 국정조사를 통해 이 사건이 ‘李會昌 죽이기’에서 비롯된 ‘신북풍 공작 조작사건’임을 입증한다는 계획이다. 나아가 현여권의 북풍연루설에 대한 조사까지 이끌어내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李會昌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이번 기회에 지난 대선 직전에 제기된 金大中 대통령측의 대북접촉 의혹설에 대한 진상도 철저하게 조사해 밝힐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이번 사건이 관련자들의 고문에서 비롯된 공작정치로 보고 있다. 그런 만큼 수사과정에서 이들에 대한 고문 여부를 집중 추궁해 이 사건이 왜곡됐다는 점을 알리겠다고 벼르고 있다. 하지만 국정조사권 발동은 국회정상화와 맞물려 있는 만큼 실제로 이뤄지기까지는 곡절이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 ‘총격요청’ 배후수사 철저히(사설)

    지난 대선때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 비선조직의 ‘판문점 총격 요청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은 李후보의 친동생이자 비선 사조직 총책임자였던 李會晟 전 에너지환경연구원장이 이 사건 비선조직 공작에 깊숙이 개입한 혐의를 잡고 그를 금명간 소환하기로 했다는 보도다.그리고 李후보의 친인척과 측근인사들도 이 사건에 개입한 증거를 확보하고 수사를 확대해가고 있다고 한다.검찰은 지난해 12월 북측에 직접 총격을 요청했다는 전 포스데이터 비상임고문 韓成基씨가 베이징으로 떠나기 전 李會晟씨에게 총격요청 계획을 보고하고,활동비 명목으로 5백만원을 받았다는 진술도 받아냈다고 한다. 검찰은 특히 李會昌·朴寬用 의원 고리를 주목하며 당시 안기부가 관여했을 가능성도 조사하고 있고,이 과정에서 李會昌 총재의 개입여부에도 초점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한마디로 사건의 윤곽이 한꺼풀씩 벗겨지면서 더욱 국민적 경악과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따라서 국가의 체통을 여지없이 짓밟았고,‘외환(外患)유치죄’에 해당하는 이사건의 비중으로 보아 보다 철저하고 투명한 수사가 요망된다. 새삼 강조할 것도 없이 그동안 중요 선거가 있을 때마다 지배권력은 늘 북의 위협을 내세우며 재미를 보았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이번 사건 역시 얼마든지 그런 개연성이 높다는 국민적 인식이 크다.그래서 이 사건은 한점 가려짐 없이 명명백백히 밝혀져야 할 것이다.정권을 잡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을 해도 꺼릴 것 없다는 오도된 오도된 가치관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이는 반드시 필요하다. 한나라당은 이번 사건을 안기부에 의해 조작된 ‘황당무계하고 근거없는 사건’으로 보고 국정조사권 발동요구 등 정치적 배수진을 치며 투쟁할 것이라고 한다.국민회의는 한나라당이 공동조사를 요구한데 대해 원하면 공동조사에 응하겠지만 지금은 검찰이 수사를 진행중인만큼 조사가 끝난뒤 국조권을 발동해도 늦지 않다는 태도다.그러나 이 문제는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여야가 인식해주기 바란다.여야의 입씨름이 자칫 사건의 본질을 왜곡,엉뚱한 방향으로 증발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검찰수사결과를 보고 나서 국정조사권이든 공동조사든 발동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 그동안 대북 관련 안보위협으로 국민이 고통받았고,야당이 고초를 겪었으며,끝내 대중조작으로 국민의 표가 엉뚱하게 굴절됐던 불행한 시대를 청산한다는 차원에서도 검찰은 역사적 책무로써 이번 수사에 임해야 할 것이다.
  • 李 총재 “吳씨 만나 보고서 받아”/한나라 반응

    ◎“말려들지 않겠다” 他현안과 분리/지도부 李 총재 동생 거론에 당혹 지난해 대선 당시 ‘판문점 총격 요청설’에 李會昌 후보의 비선조직이 관련됐다는 사실이 1일 검찰수사로 드러나자 한나라당은 발칵 뒤집혔다. 한나라당은 ‘李會昌 죽이기 북풍조작 사건’이라며 이를 부인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권 발동을 요구하는 등 즉각 반격에 나섰다. 李총재는 이날 오후 충남 예산 선영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야당을 말살하려는 음모”라고 일축했다. 李총재는 “지난해 대선 당시 吳靜恩 전 청와대행정관이 ‘朴寬用 의원의 조카’라며 찾아와서 몇차례 만나 보고서를 받은 적이 있다”며 “그러나 내 기억으로 총격공작 같은 내용은 없었다”고 밝혔다. 李총재는 “대선 때 많은 사람을 접촉했고 吳씨도 그중의 한 사람”이라며 “비선조직 운운은 터무니없는 모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동생인 李會晟 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의 자금제공 의혹이 보도되자 “동생에게 직접 전화로 확인한 결과 돈을 준 사실이 전혀 없다더라”고전했다. 그러면서도 당 지도부는 李총재의 동생 이름이 구체적 정황과 함께 거론되자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李총재는 그러나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사건으로 향후 정치일정이나 당의 투쟁일정에 특별히 바뀔 것은 없다”고 말해 이 사건을 정국 현안과 분리대응할 뜻을 분명히 했다. “여론몰이식 정치공세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도다. 2일 기자회견에서도 이번 사건보다는 경제와 사정(司正) 등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알려졌다. 吳씨의 외삼촌인 朴의원은 “조카 소개로 韓成基 張錫重씨를 각각 지난해와 재작년 본 적이 있다”며 “무슨 일을 하고 돌아다녔는지 모르지만 총격을 유도하는 일을 북한 참사관급 정도에게 얘기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 구속 3人 누구인가

    ◎吳靜恩­朴寬用 의원 생질… 한때 청와대행정관 선무/張錫重­대북교역가 자처… 옥수수 박사와 함께 방북/韓成基­YS 주치의 알게된 후 의료사업전문가 행세 ‘총격 공작’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진 吳靜恩(46)·張錫重(48)·韓成基(39)씨는 친분 관계를 이용,치밀한 계획을 세워 북한측과 접촉한 것으로 드러났다. ◇吳靜恩씨=80년 연세대 대학원 법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로 유학했다.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한나라당 朴寬用 의원의 생질로 93년부터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해왔다. 韓씨와는 지난해 고려대 언론·정책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만났다. 동기생 50명중 두 사람은 두드러진 활동을 하지 않았고 특별한 친분도 없었으나 대선 캠프에 가담하면서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S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부인 金모씨는 “그런 엄청난 일을 모의했을 리 없으며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張錫重씨=대북교역사업가로 자처했지만 생활고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병으로 1년 전부터 입원중인 부인 鄭모씨(48)의 병원비 마련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웃들의 얘기다. ‘옥수수 박사’로 유명한 金順權 경북대 석좌교수와 함께 지난 1월 북한을 방문,슈퍼옥수수 재배를 위한 의향서를 체결했던 인물. 명지대 무역학과를 졸업,93년 서울 제기동에 ‘대호물산’을 설립해 대북교역사업을 해오다 폐업했다. 서울지법 동부지원에서 공갈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경력도 있다. ◇韓成基씨=95년 1월 당시 金泳三 전 대통령의 주치의 高모 박사를 우연히 알게 된 것을 계기로 의료사업 분야의 전문가로 행세하며 (주)포스데이터 비상임 고문으로 고용되기도 했다. J사 고문,모방송사 PD 등도 사칭하고 다녔다. 포스데이터에서는 96년 1월부터 12월까지 의료분야 소프트웨어 개발의 자문역을 맡았다는 회사측의 설명. 지난해 초에는 진로그룹 회장을 만나 동문 운운하며 포철 상임고문으로 일하고 있다”며 취업을 청탁하기도 했다는 진로측의 설명. 96년 정보통신업체인 P사 등을 상대로 5,400만원을 사취한 혐의로 지난 8월 경찰청에 구속됐다. ◎李會晟씨 누구인가/정세분석팀이끈 대선캠프 ‘실력자’ ‘총격요청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李會晟 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은 李會昌 한나라당총재의 친동생으로 지난해 대선 당시 李후보의 선거캠프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했다. 96년 정·관계의 30∼40대 젊은 인사들로 ‘정세분석팀’을 구성해 ‘李會昌 대통령 만들기’에 발벗고 나섰으며,정기적으로 보고서를 만들어 李후보에게 전달했다.당시 李후보는 이 보고서를 상당히 신뢰했다는 것. 때문에 李씨는 대선 캠프에서 ‘실력자’로 통했다. 정치자금 모금 창구역할을 맡았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특히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합당과정에서 민주당 趙淳 총재의 장남 기송씨와 합당원칙을 논의하는 등 ‘산파역’을 맡았다는 후문이다. 경기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미국 럿거스 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86년부터 95년까지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세차례나 역임하는 등 에너지 분야의 국내 선구자로 꼽힌다. □80년이후 각종선거와 북풍의혹◆13대 대선 ·선거일:87년 12월16일 ·사건일:87년 11월29일 ·의혹사건:대한항공기폭파사건 ·주요내용: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항공기 폭파 사건이 일어나 온 국민이 경악, 초대형 북풍에 당시 김대중 대통령 후보 타격 ◆14대 대선 ·선거일:92년 12월18일 ·사건일:92년 10월 ·의혹사건:남파간첩 이선실 사건 ·주요내용:대선을 2개월을 앞두고 남파간첩 이선실 사건이 터져 김대중 후보 용공시비에 휘말림 ◆6·27지방선거 ·선거일:95년 6월27일 ·사건일:지방선거전 ·의혹사건:대북 쌀지원 ·주요내용:선거를 앞두고 북한 동포를 돕는다는 취지에서 쌀을 지원, 그러나 북한 쌀지원을 선거용으로 무리하게 서둘러 결과적으로 대북정책 실패 ◆15대 총선 ·선거일:96년 4월11일 ·사건일:총선직전 ·의혹사건 ­판문점무력시위:총선직전 여러차례에 걸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 중무장 북한군 무력시위 ­8월 남파된 김동식의 체포로 정치인 접촉:95년 10월 체포된 남파간첩 김동식의 야당 정치인 접촉으로 또 한차례 용공시비 ◆15대 대선·선거일:97년 12월18일 ·사건일:대선기간중 ·의혹사건 ­오익제 편지사건:안기부 11월20일 도착한 편지를 12월5일 압수수색, 11월25일 2차 편지공개 ­김병식 편지사건:12월13일 도쿄에서 공개된 북한사민당 위원장이 김대중 후보에게 보낸 편지. ­김장수 편지사건:11월20일 북한인사 김장수가 국민회의 김원길 정책위의장에게 편지를 보내 김대중 후보에게 전달하라고 한 내용 ­윤홍준 기자회견:12월11일 재미실업가 윤이 베이징에서 가진 기자회견. 김정일이 김대중 후보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내용 ­판문점총격유도공작설:12월12일 이회창 후보 비선조직이 북측과 접촉, 북한측에 총격유도를 제의했다는 내용. 검찰수사
  • 北風 강타… 정국 대파란/검찰 발표 따른 정치권 파장

    ◎대화분위기·국회정상화 수면하 침몰/이회창 총재 연계강도 따라 지각변동 ‘세도(稅盜)정국’이 일순 ‘북풍(北風)’정국으로 돌아섰다. 지난해 대선때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 비선조직이 정권연장을 위해 북한에 총격을 요청했다는 충격적인 검찰발표가 나왔다. 여야간 대화분위기나 국회정상화는 일단 수면밑으로 가라앉게 됐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이번 사건이 던지는 파장이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다. 여권은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을 ‘국가전복음모에 준하는 사건’‘국가안보를 볼모로 한 해방후 최초의 전쟁유발사건’으로 규정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이와 관련,긴급 안보 간부회의를 열어 “국지전을 넘어 전면전 가능성을 감안하면 전쟁의 참극을 불러올지 모를 위태로운 사건”이라고도 했다. 여권의 국방관련 인사들은 “총격을 요청해 북한이 받아들일 경우와 오판을 상상해보라”는 것이다. 여권이 더욱 충격을 받은 것은 ‘북풍사건’이 정권연장을 위해 국가기관과 구여권인사를 조직적으로 총동원했다는 점이 확인된데서다. 모든 북풍사건에는 청와대­안기부 등 권력기관이 개입,동원됐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북풍’은 李會昌 후보의 당선을 위해 11월초부터 1개월반동안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여권의 분석이다. 특히 판문점 총격을 요청한 12월10일은 북한 사민당위원장 김병직의 DJ편지공세가 일어난 12월7일과 ‘김정일이 DJ에게 정치자금을 줬다’고 회견한 윤홍준 기자회견사건(12월10일)사이에 끼어있다는 점에 여권은 놀라고 있다. 이번 사건은 전체의 북풍시나리오 가운데 한토막이라는 추측이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권은 구속된 3인 비선조직의 책임자와 배후,자금책등이 반드시 있을 것으로 추정,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정권연장을 위해서라면 나라까지도 이용하는 반국가적 범죄는 이번으로 반드시 끝내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한나라당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의 수사진행은 향후 정국기상도와 맞물릴 수 밖에 없다. 조사결과 李會昌 후보조직과의 연계 강도가 높을수록 한나라당은 예기치 않은 분열사태를 맞을지 모른다. 李會昌 총재의 정치적 생명과 연관됨은 물론이다.
  • “경악” 철저한 진상규명 촉구/여권 반응

    ◎“한나라 수뇌부 몰랐을지 의구심”/이회창 총재 겨냥 공세수위 높여 여권은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 비선조직의 판문점 총격전 사주 의혹과 관련,경악을 감추지 못하면서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특히 지난 정권 때부터 청와대에 근무하다 지난 6월 퇴직한 민정비서실 吳靜恩 행정관 이름이 등장하자 놀라움을 표시했다. ▷청와대◁ 청와대는 한나라당의 수뇌부를 겨냥하면서 진상 파악에 초점을 맞췄다. 朴智元 대변인은 “참으로 놀랍고 비통한 심정까지 든다”며 “대선 당시 한나라당 수뇌부가 몰랐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몰아붙였다. 특히 朴대변인은 지난 3월 초 吳씨를 불러 96년 4·11 총선 당시 부천 소사에 출마한 자신을 낙선시키려는 흑색선전물 제작에 관여했는지를 물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그는 “모두 용서할테니 사실대로 얘기해보라”며 다그쳤으나 吳씨가 부인했다고 전했다. 李範觀 민정비서관은 “본인이 사표를 냈다”고 말해 불똥이 청와대로 튀는 것을 차단했다. 그러나 吳씨가 사표를 내기 전 안기부에서 J그룹 고문 韓成基씨를 수사하면서 吳씨에 대해서도 수사를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회의·자민련◁ 국민회의 鄭東泳 대변인은 “이번 사건은 북풍공작의 절정에서 일어난 범죄행위”라며 “한나라당 李총재는 이번 사건에 대한 인지 여부를 해명하고 북측과 접촉한 인사들이 李총재와 어떤 관계인지를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鄭대변인은 “이번 사건은 한나라당 의원과 안기부 간부,후보 비선조직 등 여권인사와 공안기관이 총동원돼 벌인 범죄행위로서 국민과 역사앞에 고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민련 邊雄田 대변인도 “李총재는 세도사건 의혹에 이어 적과의 내통 의혹까지 받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국민의 지도자나 야당의 총재로 있을 자격이 없다”고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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