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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 8景’ 선유도 시민공원화

    신선이 노닐었다는 양화대교 중간지점의 섬 선유도(仙遊島)가 생명력이 넘치는 시민공원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서울시는 29일 지난 78년부터 사용돼온 선유정수장이 내년말 폐쇄되는 것에 맞춰 오는 2002년 5월까지 선유도를 공원화하기로 했다. 선유도는 조선조 화가인 겸재(謙齋) 정선(鄭敾)이 한강 8경의 하나로 꼽을정도로 한강 하류의 대표적인 경관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일반 시민들은 출입이 통제된채 양화대교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이번에 마련된 계획에 따르면 섬 중심부에 기존 정수장 건물을 개조한 ‘한강역사관’이 들어서 한강과 관련된 역사를 소개하고 교육하는 주제전시관역할을 하게 된다.또 취수장 건물을 개조한 ‘선유정’을 만들어 섬의 옛 모습을 상징적으로 재현하는 동시에 강북쪽의 망원정과 교감을 가지는 한국적장소로 활용된다. 이와 함께 섬 전체를 환경놀이공간·주제공원·휴식공간·생태기반 및 친수공간 등 4개 영역으로 나누어 다양한 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다. 환경놀이공간에는 비지터센터와 수질정화정원,온실,환경 물놀이장,열린잔디마당 등이 들어서고 주제공원에는 한강역사관을 중심으로 녹색기둥 중정(中庭),수생식물정원,시간의 정원 등이 조성된다.생태기반 및 친수공간에는 습초지,생태 호안,수변데크,선유나루 등이 만들어지고 휴식공간엔 피크닉장,과수원,환경 아틀리에,원형 소극장,만남의 숲 등이 조성된다. 서울시는 특히 한강시민공원 양화지구와 선유도를 잇는 150m 구간에 프랑스 2000년위원회와 공동으로 보행자 전용교량을 건설하기로 했다. 보행자 전용교량은 프랑스 2000년위가 국제 이벤트사업의 하나로 서울시에제안한 것으로,프랑스측에서 디자인을 제공하고 서울시가 세부설계 및 시공을 맡게 된다. 내년 9월 기공식에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도 참석할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원화사업과 보행자 전용교량 공사가 함께 끝나는 2002년에는 선유도가 시민들 뿐아니라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한번쯤 가보고 싶은섬공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순기자 fidelis@
  • 대학생탐사대·70代노병 울릉도서 뜻깊은 만남

    “독도는 선조들이 피와 땀으로 지켜온 우리 땅입니다.독도를 지켜내는 것은 주변 강대국들로부터의 주권수호이며,통일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새 천년을 사흘 앞둔 29일 경상북도 울릉도에서는 뜻깊은 만남의 자리가 마련됐다. 평생을 독도 지키기에 몸바쳐온 ‘독도 의용수비대’ 동기회장 김병렬(金秉烈·70)씨와 대학생 독도지키기 모임인 ‘새 천년 독도 탐사단’ 대학생들의만남이었다. 의용수비대는 지난 53년 일본의 독도 침범 당시 울릉도 출신 전역군인 33명이 모여 일본의 침입을 격퇴시킨 장본인들이다. 김씨는 “당시 일본이 한국전쟁이 끝나고 혼란한 틈을 타 독도에 ‘일본령’이라는 표지를 세워 울릉도 출신 군인들이 독도에 들어가 3년동안 독도를지켰다”면서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은 순수 민간인들이었지만 독도에 대한 사랑은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김씨는 최근 일본 시마네(島根)현 주민들이 독도로 호적을 옮긴 것에 대해“일본의 말도 안되는 억지”라고 일축하고 “일본사람이 우리나라 영토에호적을 옮기는 것은 ‘귀화’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 천년 독도 주권선언과 독도 탐사를 위해 울릉도에 온 15개 대학 80여명의 학생들은 “독도를 위해 몸바쳐 싸운 의용수비대와 안용복씨 등의 독도사랑 정신을 배우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외국어대 동아리 ‘독도문제연구소’ 백승선(白承璇·20·여·인도어학과 2년)씨는 “일본의 억지 주장으로 분쟁구역이 된 독도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끼기 위해 찾았다”면서 “7박8일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독도 지키기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4대째 울릉도에 살면서 독도지키기에 앞장서 온 ‘푸른 울릉·독도가꾸기모임’ 회장 이예균(李銳均·59)씨는 “우리가 아끼고 가꾸어온 독도가 일본의 정치적인 야욕으로 위협을 받고 있다”면서 “독도 수역을 양국 중간관리 수역으로 규정한 잘못된 한·일어업협정은 폐기되거나 개정돼야 한다”고주장했다. 38년을 독도에 거주했던 김성도(金成道·60)씨는 “독도는 내가 22살때 첫인연을 맺은 뒤 혼자서라도 독도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살아온 우리땅”이라면서 “지금은 접안시설이 없어 들어갈 수 없지만 시설이 갖춰지면다시 독도에 들어가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독도 경비대장 윤종도경위(24)는 “최근 일본측의 망언이 나온 뒤 24시간철통경비를 펴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동쪽 끝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30여명의 대원들과 똘똘 뭉쳐 근무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릉도 조현석기자 hyun68@
  • [쉽게읽기] ‘역사의 길목에 선 31인의 선택’

    살아갈수록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상황은 언제나 ‘이것’ 아니면 ‘저것’일 수 밖에 없는 두 갈래 길 앞에 펼쳐져 있는경우가 다반사요,결국 그것을 선택하는 순간으로 인해 모든 것이 결정지어지곤 한다.그런 의미에서 선택은 운명을 낳는 결과에 다름 아니다. 한 개인에게 있어 선택이 곧 운명이라면 국가에 있어서 선택은 역사다.역사의 물줄기는 그 시대를 이끌었던 인물들이 갈림길 앞에서 선택을 놓고 고뇌했던 방향대로 흐르게 마련이다.지난날 우리 역사의 강물이 그토록 험난했던 것도 알고보면 선조들의 선택에 따른 필연적인 대가였을 것이다. ‘역사의 길목에 선 31인의 선택’(푸른역사펴냄)은 삼국시대부터 해방공간까지 전환기를 살면서 한국사회를 이끌어온 역사적 인물들이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했던 흔적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선택을 묻는다.역사의 강물을 거스르다 잘못된 선택을 한 인물들과 새로운 물길을 연 인물들의 선택….그것이 만들어낸 우리의 지난 역사를 때로는 안타까운심정으로,때로는 벅찬 심정으로 읽어 내려가게 된다. 사학자 18인이 선정한 역사적인 인물 31인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만을다루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기존 역사책과 구별된다.나아가 이들 31인은오늘날 시각으로 새롭게 재해석되어 크게 네가지 유형으로 분류되었는데 통일을 향해 나아갔던 인물(연개소문과 김춘추,여운형,궁예와 견훤,왕건),개혁의 갈림길에 선 인물(묘청,정지상,이색,정도전),국가의 존망을 걸고 역사적인 결단을 내려야했던 인물(광해군,최명길과 김상헌,고종과 민비),역사의 국면마다 행위양식에 대해 고민했던 인물(최치원,이규보,이승휴,정약용)들이그것이다.이들 네가지 주제는 지금껏 계속 반복되는 숙제들로,앞서 살다간선조들의 선택과 행동은 오늘날의 지혜로 삼기에 충분하다. 그들이 내린 개인적 결단에 대한 사회적인 책임을 물으면서 진정한 리더십을 생각하게 하는 이 책은 분명히 ‘재미있는 역사책’과는 거리가 있다.그러나 세기말의 혼돈과 새 천년을 목전에 둔 설렘이 뒤섞여 막연한 불안감마저 자아내는 이때 나아갈바를 정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정의 핵심적 위치에 섰던 인물,그리고 지식인들은 민족적인 비극과 세계사의 험난한 파고 앞에서 무엇을 선택했는지,보수와 진보,개혁 사이에서 어떤 고뇌에 찬 결단을 내렸나 그 속뜻을 헤아리는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개인인 나에게도 자못 의미가 깊다.제아무리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지라도 결단이 자신의 생존과 권력기반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에 불과했을 때 역사는 공전할 수밖에 없고,도도한 흐름을 막아내지 못한다는 것을 배우는 일은 새삼스럽지만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20세기를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보내는 길목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그것이 무엇이든간에21세기는 그 결과로써 규정지어질 것이란 것을 이 책에서 배운다. 오미영 방송인
  • [발언대] 과거 냉철히 반성…급변하는 세계질서 대비를

    아듀! 20세기. 연말이 다가오면서 새천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이야기하는 들뜬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한 세기의 마무리이자 한 밀레니엄을 마무리하는 지금,과연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뉴 밀레니엄’의 섣부른 환상 속에서 100년 전 우리의 선조들이 겪었던 아픔과 슬픈 기억들을 송두리째 잊어버린 듯하다.최근의 일만 해도 그렇다.입으로는 IMF체제의 극복을 외치고 있지만 아무도 그끝이 어디인지 모르고 있는 듯하고,경기가 다소 회복되면서 무절제와 과소비가 또다시 망령처럼 되살아나고 있다. 차분하게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면서 급박하게 재편되는 세계질서에 냉철하게 대비하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그저 ‘옷로비’니 ‘파업유도’니 하는 극히 지엽적인 문제에만 온통 관심이 쏠려 연일 방송의 메인뉴스와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단순히 세기말의 징후로만 볼 것인가.우리가 지난 한 세기동안 너무도 힘들게 쌓아온 소중한 결실들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안타깝기 그지없다. 지나온 역사는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요,내일의 나아갈 방향을 가르쳐주는소중한 지침이다.개인이나 단체 또는 국가를 막론하고 과거의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현재의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고,현재에 대한 반성 없이는밝은 미래 또한 결코 보장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구청에서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세기의 마지막 나날들을 차분한 반성의 시간으로 보내는 운동을 조용하게 전개하고 있다.그 반성이란결코 거창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먼저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돌이켜보는 것에서 시작하자는 것이다.나아가 직장의 일원으로서 정말 하늘을 우러러부끄럼없는 처신을 해왔는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새로운 천년,그리고 21세기의 희망찬 미래는 지난 일들을 겸허하게 반성하고 차분하게 갈무리할 때 비로소 우리 앞에 현실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겠다. 성장현 서울 용산구청장
  • 가나아트센터 ‘용띠해 특별전’ 새달16일까지

    가나아트센터는 경진년 맞이 기획전 ‘새천년,용꿈을 꾸다’를 1월16일까지갖는다. 지난 천년의 우리 문화를 조각이라는 미술매체를 통해 되돌아보는 한편 2000년대를 여는 용해를 맞아 선조들의 용 관련 미술품을 모았다.‘용,새천년을 여는 비상’이란 타이틀의 제1 전시장에 용에 관련된 전통회화,도자,공예,조각작품 20점이 전시되고 있다.용이 신령스럽고 괴이한 구름 속에 싸여 꿈틀거리고 있는 ‘운룡도’,임금을 뜻하는 용과 유교적 윤리로서 충성을 강조하는 ‘충자 문자도’,당당하고 힘찬 용이 새겨진 ‘청화백자운룡문호’,종의 꼭대기에 네발을 딛고 종 전체를 물어서 들어 올리는 용형뉴가 달린 범종등이 선보인다. 제2,3 전시장은 ‘한국조각,그 천년의 단면’ 타이틀로 전통미술을 아우르는 조선시대 석조 목조 청동조각 공예작품 40점과 현대를 대표하는 조소작가 권진규 문신 최종태의 작품 20점을 전시하고 있다.특히 죽은 사람이 무엇으로 환생할지를 판단하도록 하는 업경대를 받치는 해태상,은은한 미소를 띠고선정에 든 석조나한상 등의 전통작품들이 볼 만하다. 김재영기자
  • 신흥 민족종교 청우일신회 교세 확장

    경남 통영시 욕지면 동항리 국도(國島).지난 70년대만 해도 80가구 200여주민이 거주할 정도로 번창했던 곳이다.지금은 여객선조차 닿지 않는 남해바다 맨 끝섬이지만 이곳이 바로 한주에 수백명의 신도가 수련에 참가하는 신흥 민족종교 청우일신회(靑羽一新會)의 요람임을 아는 이는 흔치않다. 지난 88년 종전인 연동흠(延東欽·72)씨가 ‘새 시대에 맡는 새 도를 창명(彰明)’키 위해 창도한 청우일신회는 새로운 시대,즉 봄으로 가는 하나의 모임이라는 뜻.서울 부산 수원 광주 등 전국 13개 지부 4만여명의 신도들이 보내오는 회비로 운영하고 있으며 연간 이곳을 찾는 신도만도 1만여명에 달한다. 연 종전은 증산도 강증산 상제의 사상에 접한 뒤 태극도에 입도해 조정산도주의 가르침을 받은 인물.전국을 주유하며 기도터를 찾던 어느날 꿈속에서 남쪽으로 떠나라는 소리를 듣는다.남해로 내려가 섬을 순회하기 시작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국도’다.여기에서 정신개벽의 무자기(無自欺)와 인간개조인 지상신선실현(地上神仙實現),세계개벽인 지상천국건설(地上天國建設)을 큰 뜻으로 삼아 청우일신회를 창도한 것.당시 주민들이 연 종전을 수상한 인물로 신고해 경찰이 몇번씩 섬에 출두했으나 기도처가 너무 험난해 접근을 못하고 돌아가곤 했다고 한다. 연 종전은 섬 개발에 나서 89년말 40평규모의 영대와 회관(건평 200평),숙소 식당을 갖춰 지금은 500여명이 동시에 숙식할 수 있는 ‘살아있는 섬’으로 바꿔놓았다.해안 동북쪽 2곳에 접안시설도 갖췄고 산 비탈을 깎아 대지 1,000여평,건평 500여평에 이르는 각종 건물도 만들었는데 당시 공사는 순전히 도인들의 손으로 이뤄졌다고 한다.동북쪽의 아치형 다리 능파교는 자태가빼어나다. 청우일신회는 신도들 대부분이 주로 수도생활에만 전력해 잘 알려지지 않다가 9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외부행사에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음양합덕’과 ‘해원상생’을 통해 인류의 묵은 원을 없애고 도통진경의새 세기를 건설한다”는 교리가 퍼지면서 전국적으로 신도가 늘어나고 있다. 현재 국도에는 20여명의 종사자들이 상주하며 청우일신회가 신도를 실어나르는 선박이 통영 삼덕항에서 토·일요일 두차례 운항한다. 이들은 인류 마지막 구원의 징표인 ‘해인(海印)’은 자신들의 도맥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그리고 국도가 바로 그 발원지임을 굳게 믿고있다. [국도 김성호기자]
  • 한영우 서울대교수 등 3인 ‘우리 옛지도와‘ 공저

    역사가 문화를 시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면 지리와 지도는 그 문화를 공간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특히 지도는 지형과 유형문화재를 총체적으로,그리고 회화기법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시각 자료로서 가치가 매우 높다. 이런 의미에서 선조들의 지리관과 우주관,나아가 위정자의 통치철학이 깃들어 있는 옛지도를 접하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서울대 규장각 관장을 역임한한영우 서울대교수 등 3명의 지도 전문가가 쓴 ‘우리 옛지도와 그 아름다움’(효형출판)은 우리의 옛지도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한영우 교수는 서울대 규장각 등에 소장된 옛지도의 자료를 통해 삼국시대에서부터 19세기 ‘대동여지도’와 대원군 때의 지도에 이르기까지 옛지도의 발달과정을 거시적으로 개관한다.지도의 변천과정과 역사적 배경을 다루면서 이에 투영된 선인들의 세계관과 사회적 동인(動因)을 알려준다. 특히 책은 올 상반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정상기의 ‘동국대전도(東國大全圖·일명 조선전도)를 자세하게 다룬다.‘한국본여지도’편에서는 국보급 고도서(古圖書)인 ‘한국여지도’의 제작 경위와 지도의 특징 등을 설명한다. 서울대 안휘준 교수는 옛지도에서 나타난 회화적 특성에 주목한다.지도 제작에 참여한 화원(畵員)들의 시각과 기법을 소개하고,이것이 한국 회화사의흐름과 어떻게 연관돼 있는가를 고찰하고 있다. 그는 도면식 지도에 그려진 바다의 수파묘(水波描)는 18세기에 푸른색으로바뀌게 되고 색채의 화려함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밝힌다. 또 회화식 지도의 회화는 산수화의 시대적 변천과 맥을 같이 하며,조선중기의 절파계 화풍 및 조선후기의 진경산수화풍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청운대 배우성교수는 옛지도에서 엿볼 수 있는 조상들의 국토와 세계에 대한 인식을 검토한다.독특한 세계지도인 천하도(天下圖)의 실체를 밝히면서이는 중화(中華)중심의 세계관을 반영한다고 설명한다. 한 교수는 “옛지도는 도형으로 된 현대 지도에서는 전혀 맛볼 수 없는 색다른 묘미가 곳곳에서 스며 있다”면서 “우리 옛지도는 특히 다른 나라의것에 비해 예술적일뿐 아니라 제작기술의 우수성 또한 입증되고 있다”고 말했다.값 2만원. 한편 효형출판사는 규장각과 함께 옛지도를 소재로 한 2000년도 달력 ‘우리 옛지도의 아름다움’도 발행했다. 정기홍기자 hong@
  • 장편역사동화 ‘고려소년 부들이’

    동화는 ‘꿈과 환상’만을 담고 있어야 하는가.최근 나온 장편역사동화 ‘고려소년 부들이’는 이를 부정해 관심을 끈다.이 동화책은 ‘꿈과 환상’을 제시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비현실적인 관점을 입력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삼성문화재단·문학사상사 공동주관 2,000만원 고료 99삼성문학상 장편동화부문 수상작’이란 큼직한 상을 받은 만큼 시대의 정서와 문학적 향기를 씨줄 날줄 삼아 잘 엮었다. 시대는 구한말.서간도(만주)의 한인촌에 살던 고아소년 부들이는 마적단의횡포를 목격한 후 생전에 아버지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버지의 땅,조선으로 갈 결심을 한다.가까스로 조선사람들이 살던 고려문에 도달한 그는 괴팍한홍삼장수 곰보영감을 만나 평양 솔내마을로 온다.그해 봄,지달해 영감(실존인물-아버지 지택주와 함께 제너럴 셔먼호에 승선했던 사람)을 통해 척화비(1871년)와 제너럴 셔먼호 사건(1866년)을 듣게 된다. 당시 고을수령은 돈을 주고 벼슬을 샀던 사람으로 백성들에게 얼토당토 않은 죄를 뒤집어 씌워 은과 홍삼을 빼앗고 있었다.부들이는 서양인 의사 홀(실존인물-윌리엄 홀,캐나다인 의사.청일전쟁후 과로 등으로 사망)부부를 만나게 된다.곧 청일전쟁(1894년)이 발발,평양은 전쟁터가 되지만 부들이의 재치로 솔내마을은 위기를 넘긴다는 내용이다. 중국땅에 살고 있는 ‘조선족’이 간도지방으로 이주했던 동포의 후예라는점,동학혁명과 서양문물이 들어오던 당시 상황 등을 동화 속에 녹여 상상의동화와 차별된다.구한말의 시대상을 부들이를 통해 ‘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잊혀져가는 풍습도 보여준다.액막이를 위해 놋요강을 사다놓던 것을 비롯해 담장이 반듯해야 재물이 밖으로 안나간다던 선조들의 생각,보릿고개때 가난한 사람이 이웃 마당에 비질을 해놓거나 나물을 뜯어 갖다놓으면 그 사람에게 양식과 된장을 나눠주던 이웃사랑 등도 살려냈다.또 자식을 많이 나은 여인이 인삼씨나 목화씨를 뿌리는 풍숩에서 ‘씨앗각시’라는 말이 나왔다는얘기도 재미있다. 작가 안주영씨는 “멋진 한국을 만들려면 역사를 알아야한다.선조들이 살아온 나날을 더듬어가면 지혜가 쏟아져 나온다”고 말한다.‘잊어버린 과거를되살려 올바른 삶의 태도가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동화’라는 심사평을 얻은이 동화는 어린이에게 새로운 동화세계를 보여준다. 허남주기자 yukyung@
  • [집중취재 탈북자]

    * 실태와 과제 자유를 찾아 남한에 온 북한 이탈주민(탈북자).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했지만 이념과 체제가 다른 우리나라에서 꾸려가는 제 2의 삶은 순탄치 않다. 대부분이 정부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 생활고로 고통을 받는다.주변의 부정적인 시각과 언어의 차이,외로움 등으로 좌절감에 빠지거나 범죄의 유혹에말려들기도 한다.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건도 있다. 통일부가 펴낸 ‘북한 이탈주민 생활실태’에 따르면 올 10월까지 국내로들어온 탈북자 수는 모두 1,048명이다.해방 이후 93년까지 해마다 10명을 밑돌았으나 올들어만 100명을 넘어서는 등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탈북난민보호유엔청원운동본부(본부장 金尙哲변호사)가 지난 10월 중국 현지의 탈북 난민 1,383명을 조사한 결과,중국에 체류하고 있는 탈북 난민이 10만∼2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 단체 관계자는 “중국 체류 탈북자들의 82.4%가 가고 싶은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면서 “국내로 들어 오는 탈북자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만큼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생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탈북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직업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탈북자 가운데 사망자와 이민자를 뺀 국내 거주자 836명 중 직업이 있는 사람은 회사원 123명,공무원·국영업체 직원 51명,전문직 종사자 25명 등 199명에 불과하다.자영업·농업 91명,임시직 101명,학생 76명을 포함시키더라도일자리를 가진 사람이 절반에도 못미친다. 특히 90∼98년의 탈북자 308명 가운데 14%인 43명은 범죄를 저질러 남한사회에서의 부적응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5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했다. 지난 95년 북한을 탈출한 박모씨(38)는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았지만 남한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한데다 후두암까지 걸려 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박씨는 “한달에 40만∼50만원이 드는 치료비는 고사하고 30만원이 넘는 아파트 임대료를 마련하기도 힘들다”고 털어놨다. 탈북자들의 남한 생활을 돕기위해 97년에 만든 북한이탈주민후원회 관계자는 “해마다 크게 늘고 있는 탈북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생계유지를 위한 직장을 보장해 주는 것”이라면서 “취업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적응교육을 실시하고 법정의무고용제도 등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명칭·대우 변천사 탈북자에 대한 대우는 탈북자 숫자가 증가하면서 크게 달라졌다. 보상금과 혜택이 크게 줄었다.최근에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은 과거와 달리따뜻한 시선조차 받지 못한다. 60∼70년대 탈북자는 ‘귀순 월남용사’로 불리며 국가유공자에 준하는 특급 대우를 받았다.거액의 보상금과 주택이 무료로 제공됐다.직업도 알선받았다.정부가 북한의 정보를 캐고 ‘체제경쟁도구’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90년대 들어 탈북자 수가 조금씩 늘어나자 탈북자를 지칭하는 용어가 ‘귀순 북한 동포’로 바뀌었다.보상금은 조금 줄었지만 주택과 직업이 법적으로보장됐다. 94년에는 탈북자 숫자가 52명으로 93년 8명에 비해 6배 이상 늘었다.용어는 ‘북한이탈주민’으로 바뀌었고 주거지원금과 정착금은 1,400만원으로 낮아졌다.또 이들이 제공한 정보에 따라 일정액의 보로금(報勞金)만 주어졌다. 황장엽씨 같은 거물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지원금을 주택 임대보증금과 가재도구 구입비로 사용하고 여분의 돈이 없어 생활고에 시달린다. 하지만 분단국가였던 독일은 ‘동독 난민은 서독 국민과 똑같은 권리를 가진다’는 전제 아래 520만명에 달하는 탈 동독난민 문제를 해결했다. 서독은 90년 10월 독일 통일 전까지 난민들을 국경부근의 베를린과 기센 연방수용소에 거주하도록 한 뒤 16개 주정부 수용소에 분산 배치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관련 예산지원을 분담했다.각종 민간단체들도 이들의서독사회 정착을 도왔다. 탈북자들을 위한 체제적응센터를 운영하는 중앙대 이상만(李相萬)교수는 “탈북자의 90% 이상이 남한 사회 적응에 실패하고 있다”면서 “이는 체제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므로 정부가 제도적인 보완책을 마련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조현석기자] * 탈북 한용수씨 고단한 삶 “처음에는 매일 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힘들었지만 이젠 조금씩 적응이 돼 갑니다” 지하철 2호선 서울 방배역에서 매표원으로 일하는 탈북자 한용수(韓龍洙·25·인천 남동구 만수동)씨는 지난 4년여 동안 자본주의 체제에서 겪었던 어려움들을 털어놨다. 지난 95년 북한 사회의 폐쇄성과 획일성에 염증을 느껴 휴전선을 넘어 귀순한 한씨는 “남한 사회를 배우는 데 꽤 비싼 수강료를 지불했다”며 그동안겪었던 어려움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한씨는 96년 7월 정부에서 알선한 지하철공사에 매표원으로 취직했다.매표창구에서 표를 파는 단순한 업무지만 돈버는 재미와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도배웠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즈음 아는 사람을 통해 소개받은 김모씨(30)등 4명에게 정착금 2,500만원을 빌려줬다가 한푼도 받지 못한 채 고스란히떼였다.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승용차를 빌려줬다가 사고를 내는 바람에 변상도 받지못하고 폐차시킨 적도 있었다. 또 세상물정이 어두웠던 그는 “신용카드를 잠시 빌려달라”는 말에 신용카드를 빌려줬다가 그 사람이 카드로 구입한 자동차와 옷 때문에 연체료를 무는 등 낭패를 보기도 했다. 그렇게 피해를 당한 액수는 무려 4,000여만원이 넘었다. 한씨는 “풍요와 자유가 넘치는 것으로 생각했던 남한 사회가 사기꾼과 강도만 들끓는 것처럼 보였다”면서 “계속되는 사기에 북한을 탈출한 것에 후회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결국 빚 때문에 지난해 5월부터 한씨의 월급은 전액 압류됐다.돈이 없어 이틀을 굶기도 했고,마을버스비 300원이 없어 30분 거리를 매일같이 걸어다녔다.북한에 있을 때만큼 비참한 생활이 계속됐다.서러웠다. 북에 두고온 부모님을 떠올리며 울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자포자기에 빠진 한씨는 ‘잡히면 죽이고 죽겠다’는 심정으로 칼을 품고 자신에게 사기를 친 사람들을 찾아 다니기도 했다. “온통 분노와 증오로 가득차 있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한씨는 지난 8월 한 여인을 만나면서 모든 것을 용서했다.회사 동료들의 도움으로 빚도 조금씩 갚았고 그녀와 결혼도 약속했다. 한씨는 “그녀와 꾸밀 행복한 삶을 생각하면 그동안 겪었던 고통은 절로 잊혀진다”면서 “어려웠던 삶이었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간다면 반드시행복의 순간이 찾아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감하게 됐다”며 활짝 웃었다. 한씨는 “하루빨리 통일이 돼 북한에 계신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불효자식의 짐을 덜고 싶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 [대한시론] ‘시민권의 사회’ 를 향하여

    뉴밀레니엄의 세기라고 말하는 2000년대의 도래가 한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같은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 사회가 어떤 의미로 이 새 천년을 해석하고 있는가를 한번 새겨볼 필요가 있다.뉴밀레니엄을 언급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일반적으로 이 용어를 씀에 있어 일종의 막연한 낙관적 기대,심지어는 무슨인류의 새로운 ‘복음’과 같은 환상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태양은 날마다 떠오르지만,인간은 스스로 설정한 달력·연력에 바탕해 새해를 정하고,누구나 새해 초를 새로운 희망과 각오로 맞이하곤 한다.그 한해의 희망이,한해의 다짐과 각오가 설사 별 볼일 없이 끝난다 하더라도 새로운한해를 맞으면 또다시 한번쯤 새로운 각오를 해보는 것은 ‘인지상정’이라아니할 수 없다.이러한 연도개념에서 볼 때 10년 단위,100년 단위는 누구에게나 더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100년대 단위 정도가 아니라 1,000년대 단위의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되는 설렘이야 항차 설명해 무엇하겠는가? 그러나 인류문명의 발전은 세월이 저절로 가져다주는게 아니다.문명이 정체할 때는 한없는 세월도 어제가 오늘같고 내일도 오늘같이 흘러갈 뿐이다.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민족사에서 보더라도 조선조 500년의 역사보다 최근 50년 우리사회가 훨씬 더 역동적으로 변화하였다.우리의 현대사에서 우리 사회를 급격히 탈바꿈시킨 변화의 축이 어디에서 비롯하였는가를 곰곰이 새겨보아야 한다.불행히 근세 100년에서 오늘날까지 이 ‘변화의 축’은 우리 민족 스스로에게서 비롯된 게 아니고 주로 외세에 의한 것이었고,타율적인 것이었다.조선조 500년이 상징하는 ‘정체성의 문화’가 외세의 근대문명이 상징하는 ‘변화의 문화’에 짓눌리고 밀려나간 이 한국근세사는 요약컨데 민족사적으로 ‘수동의 시대’요 ‘수난의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같은 타율의 역사이자,‘수동의 역사’일 수밖에 없었던 근본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그것은 우리의 중세문명의 강고한 봉건성에서 찾아볼 수밖에 없다.조선 500년은 절대왕권과 유교적 관료주의가 민중 위에 철저히 군림한 전제주의 문명이었다.절대다수의민중은 명령에 길들여지고 관료들의 착취를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이러한 문명 속에선 창의와 변화와 발전이 기대될 수 없으며 결국 조선을 ‘깊은 잠에 빠져든 고요한나라’로 만들었을 뿐이다. 과학문명으로 상징되는 근·현대 문명은 이런 우리 민족사와 관계없이 산업혁명·교통혁명·통신혁명 등을 통해 세계를 점점 더 좁게 만들어왔고,2000년대는 앞으로 세계를 한 나라처럼 오가게 만들 것이다.세계국가,그것은 더이상 공상이 아니라 인류문명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 2000년대의 예고되는 문명사적 대변화가 우리에게 ‘복음’으로 다가올것인가,‘재앙’으로 다가올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민족이 근대 100년사에서 보였듯이,문명사적 변화를 수동적·타율적으로 받아들일 것인가,능동적·주도적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달려있다.우리가 이 변화의 세계에서 변화를 능동적·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려 한다면,무엇보다 먼저 갖추어야 할 전제조건이 있다.즉,우리사회 내부에서 낡은 봉건주의·전제주의의 잔재들을 청소하고 우리 사회를 진정한‘시민사회’로 만들어나가야만 하는 것이다.‘시민사회’는 단지 그 국민들에게 무슨 훈장을 주듯 ‘시민’이라는 칭호를 부여해서 형성되는 사회가 아니라 그 구성원 개개인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시민적 권리’를 보장하고,그 어떠한 권력도 시민의 신성한 권리를 자의적으로 침해하거나 유린할 수 없는 사회를 뜻하는 것이다. ‘시민사회’는 바로 ‘시민권의 사회’이며,‘시민권’이 확고히 보장된사회라야만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주체적이고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문명활동을 할수 있을 것이고,바로 그 힘들이 모였을 때 뉴 밀레니엄의 세계적 문명변화를 우리사회가 능동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우리의 시민운동,그것은 우리사회를 ‘시민권의 사회’로 발돋움하게 하는 운동이며,이러한의미에서 우리의 진정한 시민운동은 21세기가 그 본격적인 출발점일지 모른다. [成裕普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 [외언내언] 我 朝鮮

    최근 재일조선인총연합회(朝總聯) 기관지 조선신보가 한·일합방의 정당성을 기술한 일본 어린이용 도서‘我朝鮮’(우리의 조선)을 공개해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책은 조총련계 역사연구가 남영창씨가 일제시대에 약탈된 조선 문화재 관련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입수한 것이다. 책의 제목 ‘我朝鮮’에서 ‘我’는 일본을 가리킨 것이다. 한·일합방 다음해인 1911년 일본이 발행한 이 책의 내용은 조선합방의 전말 및 합방 이후의 이왕가(李王家) 처리문제를 비롯해서 조선의 지리,역사 등 총 90쪽 분량이다. 또 일본의 조선합방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수천년 전부터 정해진 것이라면서 ‘기자(箕子)건국설’을 제시하며 조선의 5,000년 역사도 3,000년으로 깎아내렸다. 특히 조선에 대한 멸시의식을 유포하는 가운데 “조선은 일본천황의 정치아래 들어서야 처음으로 조선인의 행복이 이루어진다”는터무니 없는 강변으로 식민지 정책을 정당화하고 있다. 침략자의 그릇된 우월감을 일본 소년들에게 주입시키고 있으며 조선민족에 대한 철저한 모멸감을 고취시키는 패권주의를 드러내고 있다. 당시 일본의 한반도 식민정책의 치밀함과 교활함을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는 역사적 배경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안고 있다. 100여년 전 일본이 펴낸 ‘我朝鮮’을 보면서 우리는 부끄러운 역사를 반성해야 한다.일본이 한반도 침략을 위해 온갖 흉계를 꾸미고 있을 때 우리 선조들은 과연 무엇을 했느냐 하는 것이다.사색당파 싸움으로 국력을 낭비했고 쇄국정책으로 나라의 운명을 좌초시킨 결과를 초래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20세기 초 세계적인 변혁의 거센 조류가 동아시아로 이동해올 때 일본은 과감하게 개혁과 개방을 수용,근대화에 성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를 포함하는 대동아공영권의 패권을 추구하는 국가로 부상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 우리 선조들이 수구적인 폐쇄성을 탈피하고 좀더 진취적인 개방을 선택했더라면 일제의 강점과 민족분단이라는 비극의 역사는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일본의 ‘我朝鮮’ 공개를 계기로 우리가 다져야할 교훈은 진정한 의미의 극일(克日)의식을 갖추는 일이다. 한·일관계가 호혜평등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한국의 모든 부문에 걸쳐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500여명의 일본인들이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새로운 각오가 절실히 요청된다. 일본인들이 조직적으로 거주지번을 독도로 옮겨놓는 현실상황에서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유행가를 부르는 것만으로는 극일이 요원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겠다. 장청수 논설위원
  • [2002월드컵 준비 현장을 가다] (중)문화 월드컵

    지난해 프랑스 월드컵이 끝난 뒤 르 몽드지는 대회 성공 개최 비결을 다양성과 창의성에 바탕을 둔 ‘문화월드컵’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프랑스는 본선 진출 32개국 작가들의 축구 단편소설까지 모아 별책 특집으로 엮는 등 월드컵이 단순히 축구경기만이 아님을 여실히 일깨워 줬다. 2002년월드컵을 개최할 국내 10개 도시들도 지역의 특성과 멋을 살린 다양한 문화월드컵 준비에 분주한 모습이다. 이미 몇몇 곳은 문화월드컵 행사 준비를 위한 시민단체까지 결성,주민들의역량을 결집시켜 나가고 있다.특히 울산시는 월드컵을 계기로 공업도시에서문화도시로의 이미지를 확고히 심어 나간다는 계획.이를 위해 시민들로 구성된 2002년 문화월드컵 준비위를 구성,각종 문화행사 발굴과 지역 고유의 음식문화 개발 등에 발벗고 나섰다.대회기간중에 ‘처용(處容)설화’를 주제로 한 ‘국제 춤 페스티벌’과 울산예술제 등을 기획,전통가면극과 창작무공연 등을 착실히 준비해 나갈 계획.고원준 울산상공회의소 회장은 “월드컵 성공개최 여부는 이제 경기장시설 못지 않게 숙박 등의 서비스 개선과 다양한볼거리를 제공하는 문화이벤트에 달려 있다”며 “무엇보다 전 시민의 자발적인 동참을 유도해 나가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전주시는 ‘맛과 소리의 고장’임을 내세워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끌겠다는 방침.2001년까지 판소리 전용극장과 전통음식,전통혼례식장을 세울 예정이다. 특히 콩나물비빔밥과 한정식 등 전통음식을 상품화하고 한옥 밀집지구를 중심으로 문화특구를 조성,판소리와 묵향의 이미지를 세계속에 심을 방침. 예향 광주시는 제4회 광주비엔날레 행사를 통해 문화의 본고장임을 과시하겠다는 복안.이때문에 당초 올해 열릴 예정이던 제3회 행사를 내년으로 미루고 제4회 행사를 월드컵이 열리는 2002년 열기로 했다.이밖에 월드컵 수원경기에서는 조선조 능행차가 선보이고 대전에서는 국제타악기 페스티벌이 마련된다. 하지만 각 자치단체가 마련하는 대부분의 전통문화 행사들이 종합적인 기획력이 떨어지는데다 겹치는 것이 많아 종합적인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행사준비에 따른 예산도 문제지만 대부분이 전통놀이에 치우치다 보니 관광객 유치와 직결될만한 무대와 감동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또 각 지역이 개발한 향토음식도 맛만 내세우기보다는 위생상태와 상품성을 높여야 한다는게 중론. 김종희 한국관광공사 해외진흥본부장은 “각 지역의 전통문화행사 준비는우선 숙박과 교통대책 등이 해결된 상태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전통문화발굴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각 자치단체가 공직자 해외연수와 관광객유치단파견 등을 통해 다양한 문화마케팅 능력을 길러 나가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박성수기자
  • 유럽·남미 축구 왕중왕 가린다

    세계축구의 양대산맥 유럽과 남미의 프로축구 최강팀이 격돌하는 99도요타컵 축구대회가 30일 오후 7시10분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펼쳐진다. 올해로 20회째를 맞는 이 대회에 출전할 팀은 유럽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영국)와 남미의 팔메이라스(브라질).맨체스터는 121년 역사를 지닌 잉글랜드 리그 최고의 명문으로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와 함께 FA컵도 석권한 유럽최강이고 팔메이라스 또한 남미 최고의 클럽선수권 우승팀. 지난해까지 유럽이 4회연속 정상에 오르는 등 10승9패로 앞서 있는 가운데올해 역시 드와이트 요크 앤디 콜이 공격의 최전방에 서고 데이비드 베캄 등 미드필더들이 후방에 포진하게 될 맨체스터의 우세가 점쳐진다.그러나 콜롬비아 출신의 아스프리야가 공격을 이끌고 98프랑스월드컵에서 활약한 삼파이오와 바이아노 등이 버티고 있는 팔메이라스 역시 남미 특유의 개인기로 세계축구 평정을 노리고 있어 승부 예측이 쉽지 않다.대회 상금은 엄청난 액수일 것이라는 추측만 낳을뿐 밝혀진 것이 없어 호사가들의 흥미를 더욱 자극한다. 한편 올 대회는 다음달 7일 도쿄에서 열릴 2002년월드컵축구 대륙별 예선조추첨에 앞서 치러지는 축제이기도 해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등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관할 예정이다.
  • “名醫 허준 시대극으로 새롭게 창출”/MBC 창사특집 작가 최완규

    “지난해 KBS-2TV ‘야망의 전설’을 끝낸 뒤 허리병이 도져 한의원을 들락거리고 있었습니다.때마침 ‘허준’을 집필하라는 섭외가 들어오더군요.하늘의 뜻인가 했죠.”MBC가 창사특집 드라마로 2년동안 치밀하게 기획해 22일 밤9시55분 첫회를내보내는 40부작 ‘허준’(이병훈 기획,이병훈·이정표 연출)의 작가 최완규씨(35)는 19일 시사회장에서 처음 맡은 사극 집필이 적잖이 부담스러운 눈치였다.제작진도 ‘국희’의 인기를 이어가야 한다는 점 때문에 굳은 표정을짓기는 마찬가지. “사극보다는 시대극을 지향하고자 합니다.‘집념’‘동의보감’등 허준을다룬 드라마에서 볼 수 없던 궁궐안 의녀(醫女)제도와 허준의 정치적 신념등을 밀도있게 그려나갈 생각입니다.에피소드는 무궁무진합니다.”선조의 적자인 영창대군을 옹립하려는 세력과 세자 광해군을 지지하는 무리사이에 끼어 허준이 핍박 받는 대목,당시 궁궐 안에 항상 도사린 독살음모등을 스릴러 기법으로 풀어간다는 복안도 있다.소설 ‘영원한 제국’이 모델.줄거리를 꿰고 있는 이들을 붙들어매기 위한 극적 장치다. 시사회에서 뚜껑을 열어보니 빠른 전개를 기대한 시청자들은 조금 실망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었다.극 후반부에 무게를 둔 탓인지 흡인력에서 부족한 점을 드러낸 것이다. 제작진은 허준이 유의태 밑에서 의학수업을 쌓으며 민초들의 현실에 눈떠가는 3부부터 건강·의학정보를 접목해 눈길을 사로잡는다는 계획이다. “40·50대를 브라운관에서 쫓아내지 않을까 걱정하는 시선도 있지만 금방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오히려 새로운 시대극 스타일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젊은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호흡을 맞출 이정표PD의 신선한 감각과 우리 가락을 풍부하게 집어넣은 음악감독 이시우의 재능도 젊은 층에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94년 MBC ‘종합병원’으로 혜성처럼 나타나 그동안 ‘간이역’‘그들의 포옹’‘야망의 전설’을 집필해 성가를 높여왔다.신촌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종합병원’을 집필한 일화는 전설처럼 전해온다. 그의 와병을 두고 MBC안에서 소문이 증폭되는 바람에 노성대사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을 정도로 ‘귀하신 몸’이 됐다. 임병선기자 bsnim@
  • 농림부, 畜協 종합감사

    농림부가 오는 25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10일동안 축협중앙회와 회원조합에대해 종합감사를 실시한다고 17일 밝혔다. 농림부는 이번 감사에서 예산 및 자금집행 실태와 주요 정책사업 추진상황,조직 및 인력관리 실태,지시사항 이행 및 민원처리 실태,신용사업을 제외한축협 업무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점검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농림부는 이번 감사가 협동조합 통합에 반대하고 있는 축협중앙회에 대한압박용이라는 일부의 시선을 의식,매년 실시하는 정기감사의 일환이고 농협중앙회에 대해서도 24일부터 감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림부 관계자는 “지난해 일선조합 위주의 감사를 실시했지만 올해는 협동조합 통합의 취지와 다르게 중앙회 사업을 확대해온 축협중앙회의 업무실태를 중점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균미기자 km
  • 농·축·인삼협 통합중앙회 기본골격 마련

    정부는 중복인력 880명을 감축하는 등 농·축·인삼협 통합중앙회의 기본골격안을 마련,16일 발표했다. 축협중앙회의 참여거부로 농림부와 농협중앙회 주도로 마련된 기본구상안은 통합중앙회의 슬림화와 일선조합의 규모화가 주내용이다.기본구상안은 의견조정과 심의절차를 거쳐 내년 2월 말까지 확정된다. ■중앙회 경제사업 일선조합 이관 내년부터 3년 이내에 농·축협중앙회의 경제사업(전체 매출액 9조3,000억원) 중 66%를 회원조합으로 이관 또는 자회사로 독립시킨다.중앙회 직원의 47% 수준인 1,700여명도 회원조합 등으로 소속이 바뀐다.경제사업장 100개 중 농협중앙회의 양곡사업,영농자재·생활물자공급사업,하나로마트 등과 축협중앙회의 사료공장,축산물가공공장,수입쇠고기 판매사업 등 70개도 이관된다. ■조직개편 농·축협 중앙회의 시·도지회는 농협 신용사업본부 4개와 축협시·도지회 10개를 폐쇄,16개 광역행정단위로 운영하거나 농협의 광역시 지역본부 3개를 추가로 폐쇄해 10개 시·도로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농협중앙회 시·군지부도 회원조합의 합병에 대비,2∼3개 시·군을 관할하는광역 시·군지부로 개편하거나 중앙회 신용사업지점으로 전환된다.농·축협중앙회의 금융점포 중 300m 이내에 중복되는 점포 43개는 현지실사 등을 통해 비교우위가 없는 점포는 폐쇄가 불가피해보인다.또 축산경제 대표이사의업무집행을 지원하기 위해 설치되는 축협조합장 대표회의는 지역축협 및 업종축협 조합장 12명 이내로 구성키로 했다. ■중복인력 감축 중앙회 통합으로 잉여인력 880명의 감축이 불가피하다.또입사연도와 승진고시 합격연도 등을 기준으로 객관적인 직급·호봉조정 방안을 마련하고 퇴직금 제도를 일원화하기 위해 통합 전에 자체적으로 중간정산을 실시할 계획이다.현재 기능,서무,생산직 등 단순노무직을 비정규직이나계약직으로 전환,인건비 등 고정비용을 절감하기로 했다.축협은 41%가 생산·기능직에 종사한다. 농림부는 인력감축과 관련,“자연감소,정년단축,희망퇴직 등으로 일단 추진하되 내년 6월 말까지 정리가 안되는 여유인력은 자연감소될 때까지 끌고나가는 등 고용안정에 치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역조합 규모화 유도 지역조합의 최소 조합원수를 현행 1,000명에서 1,500∼2,000명으로 상향조정할 방침이다.조합의 출자금 규모도 1억원에서 지역농협의 경우 3억원 이상,지역축협과 품목조합은 5억원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김균미기자 kmkim@
  • [대한광장] 전문대가 중요한 시대

    17일은 대입 수능시험을 치르는 날이다.수능이 쉬워졌다고는 하지만 쉬우면 쉬운대로,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시험을 보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마음을 졸인다.이 날의 성적으로 학생들의 앞날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태어나 걸을 수 있게 되면서 책가방을 메고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지 15년여동안 책에 있는 많은 지식을 달달 외워서 이날 하루 다 토해내야 한다.그러나 외우기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무슨 소용이랴.지금은 무엇을 알고 있는가보다 무엇을 할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시대인 것을…. 20세기 초에 시대가 변하는 줄 모르고,서당에서 사서삼경이나 달달 외우고,양반족보나 내밀면서 에헴 에헴 헛기침이나 해대던 양반네들은 망하지 않았던가.지나고 보니 너무나 당연한 일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아니,알려고도하지 않았을 것이다.21세기가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같다.과외,돈봉투 등 어떻게 해서라도 대학에 들어가고 대졸이력서를내세워 연줄이나 대려고 하는 사람도 어리석은 조선조말 양반네들과 다름없지 않을까.대학 졸업 후에도 계속해서 능력을 키워야 살 수 있는 시대에 18살때의 성적으로 인생의 승부를 정하려 하는 것은 너무 낡은 고정관념이다.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관습을 버리려 하지 않는다. 지식기반사회에서는 고등교육이 중요하다.하지만 온 국민이 대학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사실 갈 수 있는 예산이 없다.그래서 2년제 고등교육기관인‘전문대’가 발전해야 한다. 대학을 못 들어간 학생들이 할 수 없이 가는 전문대는 이미 고등교육기관이 아니다.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패배감에 짓눌려 기회와 희망을 상실한 학생들이 가는 전문대는 소용이 없다.무언가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기 위해 희망찬 학생들이 당당하게 가는 전문대라야 한다. 고등교육정책이 비교적 잘 돼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를 보자.4년제 주립대가 30개,2년제 주립 전문대가 107개 있다.이 전문대에 140만명의 학생이 다닌다.4년제 주립대의 경우 정부예산이 학생 한명당 1만7,000달러부터 8,700달러이다.그러나 전문대의 경우에는 3,660달러이다(1997년도 기준).저렴한 예산으로 많은 학생들에게 고등교육을 시키기 위해 정부가 전문대를 적극 권장한다. 등록금 부담도 다르다.주립대의 경우엔 학생이 부담하는 등록금이 4,200∼2,000달러 정도다.전문대의 경우는 일반대학의 10분의 1 정도인 360달러다.이처럼 전문대 등록금을 파격적으로 줄여 많은 학생들이 전문대를 가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하고 있다.캘리포니아주의 4년제 주립대 대학생 50만명 가운데 60%가 주립 전문대 출신이다. 플로리다주도 10개 주립대 학생 19만8,000명 가운데 80%가 28개 전문대 출신이다.이것이 무슨 뜻인가 하면 등록금이 없거나,고교시절 철이 없어 공부를 하지 않아 전문대에 들어간 학생들이 뒤늦게라도 재정적 여유가 생기거나 더 공부하고 싶으면 4년제 일반대학에 편입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주는 것이다. 대학에 갈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열려있기 때문에 미국에는 입시경쟁이 심하지 않다.이처럼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이 대학에도 가고 전문대에도 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기 때문에 미국의 고등교육은 경쟁력을 지닌다. 지금은 교육경쟁력이 곧 나라의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지식기반사회이다. 나라와 국민의 관심을 대학입시와 대학경쟁력에만 쏟지 말아야 한다.전문대가 활성화돼야 한다. 우리는 이제 더이상 패배자들을 키워서는 안된다.우리나라가 필요한 전문인과 기술자를 배출하기 위해서 전문대의 발전을 보다 강도높게,시급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趙璧 미시간공대 교수·기계공학]
  • 과소평가 된 민족주의자 홍명희

    대하소설 ‘임꺽정(林巨正)’의 작가로 유명한 벽초(碧初) 홍명희(洪命熹). 해방후 북한정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문학적 업적마저 한동안 기피의 대상이 됐던 홍명희가 우리 앞에 되살아나고 있다.상명대 국어교육과 강영주(姜玲珠·47)교수가 지난 10여년동안에 걸친 자료수집과 연구끝에 최근 ‘벽초홍명희 연구’를 펴낸 것. 춘원 이광수,육당 최남선과 함께 ‘조선3재(三才)’로 불린 벽초의 인생역정은 물론 그의 다양한 면모까지 관련자료와 증언을 통해 복원했다는 점에서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근대이후 우리의 역사인물 가운데 벽초만큼 민족적이고 흥미로운 인물도 많지 않다.그동안 그의 면모는 분단 장벽 때문에 많은 부분이 왜곡,내지 축소돼 알려져 왔다.그러나 근대이후 식민지 시대와 해방공간에서 문학인·독립운동가·언론인·학자·정치인으로서 일관된 민족주의 노선과 자세를 견지한그의 삶은 절대로 과소평가될수 없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벽초의 삶을 아우를수 있는 단어는 ‘민족주의자’다.이는 그가 경술국치때 자결로 순국한 홍범식(洪範植)의 아들로 태어났던 것이 한 배경이 됐을 것이다.말년에 그는 자녀들에게 “나는 ‘임꺽정’을 쓴 작가도 아니고 학자도 아니다.홍범식의 아들,애국자이다.일생동안 애국자라는 그 명예를 잃을까봐,그 명예에 티끌조차 묻을세라 마음쓰며 살아왔다”고 토로한 바 있는데 이는 그가 명예와 지조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이같은 사상과 생활신조는 식민지 아래에서 자연스럽게 독립운동과 연관을 맺게 되었다.일본 유학후 상하이를 무대로 민족진영에 발을 들여놓은벽초는 1919년 충북 괴산에서 3·1의거를 주도,1년여 실형을 살았다.출옥후20년대 초반 동아·시대일보 등에서 편집국장,사장 등을 지낸 그는 27년 민족진영의 첫 좌우합작체인 신간회 창립을 주도하기도 했다.일생동안 그는 민족통일전선 노선을 일관되게 견지했는데 해방후 그가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중간파 세력을 규합,민족독립당의 대표로서 남북연석회를 추진한 것도이 연장선 상에서 이해돼야 할 것이다. 양반집안 출신으로 양반계급을 비판하면서도 선비정신은 고스란히 간직한인물이 바로 벽초였다는 것.저자 강 교수는 “벽초는 지나친 결벽 때문에 글을 잘 쓰지 않았으며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임꺽정’ 이외에 단 한편의 소설도 쓰지 않았다”고 밝혔다.조선조말에 태어나 식민지시기를 거쳐 해방과 분단시기를 살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열정을 쏟아낸 벽초. 강 교수는 “벽초의 삶의 복원을 통해 격동기 우리역사의 한 중대한 공백을 메우려고 했다”고 말했다.96년부터 매년 ‘홍명희문학제’가 열리고 있다. 또 작년 가을에는 벽초의 향리 괴산에 그의 문학비가 세워졌다.뒤늦은 일이지만 반가운 일이다. 정운현기자 jwh59@
  • [굄돌] 민화그리기

    우리집 11월 달력에는 민화가 있다.출렁이는 물 위에 산들이 줄지어 서있고 양쪽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우뚝 서있다.왼쪽 나무에는 오색 구름이 드리워진채 흰 달이 밝게 빛나고 오른쪽 나무 위에는 붉은 해가 빛난다.그 아래 단에는 세 그루의 예쁜 꽃나무가 괴석과 함께 피어있어 온 방을 환하게 비추어준다. 민화는 우리 겨레 모두가 사랑했던 그림이다.한 집에 예닐곱 정도의 민화가 붙혀졌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이 그려졌고 사용되었는지 짐작할 만하다.우리 선조들은 집에 화초를 가꾸듯 가까이 민화를 보면서 살았나보다.하지만 지금은 그 맥이 끊어져 개인 수장가들이나 몇몇 박물관 혹은 골동품 가게에서나 볼 수 있고 대개는 책을 통해서 감상할 수 있을 뿐이다. 난 아이들과 미술시간에 민화를 그리기로 했다.각자 인쇄된 민화를 가지고와서 자신의 종이 위에 확대해서 옮겨 그리는 것이다.전통적으로 사용되었던 한지 대신 구하기 쉬운 켄트지로 천연 안료 대신 수채화 물감을 쓰기로 했다.연필로 밑그림을 그린 후에 먹선으로 그위에 다시 그린다.교실에는 먹의향기가 퍼지고 아이들의 손들이 분주해 진다.처음에는 떨리는 손으로 먹선을 긋던 아이들도 점차 익숙하게 선을 긋는다.자신은 그림을 못그린다고 슬며시 나에게 말 걸어왔던 아이도 오늘은 멋지게 민화를 그리고 있다.채색 까지는 몇시간씩 걸리지만 아이들은 모두 재미있게 그리면서 서로의 것을 칭찬해준다. 그 옛날에도 옆에서 그리는 화공의 솜씨를 칭찬하며 손벽치고 즐거워 했겠지.누구는 꽃과 나비를,누구는 봉황을 그려달라고 부탁했을테고.다 된 그림을 벽에 붙이기 시작했다.아이들의 그림들 속에서 잉어는 파도위를 뛰어오르고,용은 구름 속에서 꿈틀댄다.나비들은 떼지어 꽃 위를 날고,해태 두 마리는 어슬렁거리며 바위 위로 기어 오른다.흔들리는 연꽃 사이로 날아드는 새들은 연밥을 쪼아 먹고 그아래 물고기들이 바삐 움직인다. 교실 전체가 생동감에 넘친다.아이들은 신기해 하면서 좋아 떠든다.완성된민화들을 각자 자기 방에 걸어놓을 것이다.자신의 손으로 그린 우리 그림이얼마나 정겹고 반듯하며 아름다운지를 마음속에 간직 하면서. [정혜란 서양화가]
  • KBS ‘태조 왕건’ 세트장서 고려궁 상량식

    ‘문이경사(聞而慶事)’란 말에서 지명이 유래됐다는 경북 문경시에 큰 잔치가 한판 벌어졌다. 10일 오후 백제와 신라를 이어주던 관문이 있는 문경시 새재도립공원안 용사골에 축포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2000년 3월4일 첫 방송을 띄울 KBS 150부작 대하사극 ‘태조 왕건’(극본 이환경 연출 김종선)의 주무대가 될 ‘고려궁’의 상량식이 거행된 것이다. 문경시로부터 2만여평의 부지를 무료로 제공받아 짓고 있는 세트장의 맨 위쪽에 자리잡은 이 궁은 높이 21m의 철골조 건물로 세워져 촬영이 끝나면 철거되는 다른 세트와 달리 영구히 촬영장소로 쓰일 수 있게 했다.아래쪽으로는 사비궁과 궁예궁으로 쓰이게 될 ‘새끼궁궐’을 비롯,47동의 기와집과 48동의 초가집,그리고 성벽 등이 세워진다.건물 면적만 1만2,000여평에 이르러‘고려 민속촌’이란 별칭이 붙어도 좋을 규모다. KBS가 부담하는 세트조성 예산은 모두 22억원.문경시(시장 김학문)가 지반다지기 공사와 도로·교량 개설 등에 12억원을 지원했다.다음달 하순 세트장을 완공해 10년간 KBS가 무상으로 사용하고 시에 소유권을 넘기기로 계약됐다.시는 이 세트장을 주변의 문경온천 등과 연계해 관광상품으로 개발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이날 상량식후 KBS아트비전측은 그동안 고증 등을 통해 복원한 후삼국과 고려시대 의상을 최수종 등 주요 출연진을 통해 선보였는데 은은하면서도 화려한 색채와 활동성을 살린 패션이 조선조 의상과는 또다른 멋을 선보였다.고려 귀족여인의 옷은 현재의 한복과 반대로 치마를 윗저고리 위에 입은 것이특이했다.모두 1,200여점이 이번에 새로 제작됐다. 김 PD는 “해상무역에 일찍 눈을 뜬 왕건은 국제정세를 이용할 줄 아는 혜안을 갖고 있었고 적의 참모를 포용하며 민심을 굽어볼 줄 아는 큰 리더십의보유자”라며 “새천년 대륙으로 나아가는 기상과 민족화해의 통일을 지향하는 시대정신을 담기에 적격”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고려는 사료가 부족하고 당시 생활상에 대한 고증에도 어려움이 많아 TV 사극에서 철저히 외면당해 왔다.500년을 유지한 왕조임에도 조선왕조실록은 400권이 넘고 고려사는 11권에 불과하다.따라서 역사적 사실 여부를 놓고 재야학자들과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그러나 왕건이 29명의 부인과정략결혼 등으로 왕권을 유지해나간 부분과 당시 만연됐던 근친혼 묘사가 제작진의 머리를 아프게 하고 있다. KBS는 편당 1억5,000만원의 제작비,세트장과 의상 재현에 들인 정성과 비용이 남다른 만큼 왕건 이후 역시 150작 분량으로 무신 최충현,삼별초,공민왕등으로 고려사 시리즈를 10년동안 이어간다는 야심찬 포부를 갖고 있다. 문경 임병선기자 bsnim@*'왕건'役 최수종“제왕의 큰꿈 선굵게 연기” “왕건은요,자신보다 10살이 어린 부하에게도 항상 존대를 했대요.잘못을 저지른 부하도 과감히 끌어안을 줄 아는 남자였구요.뜻을 세우고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참을성을 지닌 점에도 많이 끌리더라구요”KBS 대하사극 ‘태조 왕건’의 주연으로 발탁돼 10일 상량식이 거행된 고려궁앞에 고려조 장군의 전투복을 입고 등장한 탤런트 최수종은 배역이 주는중압감 탓인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기 그지 없었다. “왕건에 대한 책도 구해 읽고 있지만 머리 속에 어떤 인물을 그리겠다는 생각은 될 수 있으면 지우려 하고 있다”는 그는 무엇보다도 왕건의 겸손함을부각시키려 노력했다. “해상왕 장보고보다 100년 이전의 사람인 왕건이 제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해상무역을 통해 익힌 국제정세를 보는 감각 덕분이었다”고 나름대로 해석력을 과시한 그는 한국의 영어명 ‘코리아’를 있게 한 고려인들의 기상을안방에 전달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또 한 시대를 호흡하며 뜻을 함께 세우고 경쟁했던 견훤(서인석),궁예(김영철)와의 관계를 그려나가는 데도 중점을 두겠다는 그는 KBS-2TV ‘야망의 전설’에서 얌전한 귀공자 이미지를 벗고 선굵은 연기를 성공적으로 해낸 전력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임병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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