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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자유무역협정 조속 매듭을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문화유산으로 흔히 자기를 든다.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작 탐낸 것이 조선의 도공들이었다고 우리는 자랑스레 말하기도 한다.이때 데려간 조선 도공들이 결국 일본의 화려한 도자기 문화를 꽃피웠고,오늘날 전 세계의 앤틱 수집가들의 부러움을 자아내는 가키에몬,이마리,노리다케와 같은 채색 자기를 만들어 냈다.가키에몬과 이마리는 이미 17세기 명청 교대기에 자기 수출이 마비된 틈을 타 네덜란드를 통해 유럽 시장에 팔려 나갔다.하지만 앤틱 가이드 북을 아무리 훑어도 조선의 백자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애써 자위하는 ‘고졸한 맛,단아한 맛’을 서양 사람들이 모르는 것일까.결국 우리의 백자 자랑은 채색자기의 핵심기술인 유상채(釉上彩)기술의 부재를 애써 위안하는 자위에 불과하다.그 좋은 기회였던 명청 교대기에 우리 선조들은 서양 상인들에게 자기 한 점 팔지 못했다.쇄국은 조선의 기술과 국력을 야금야금 갉아 먹고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지난 40년간 한반도는 수출입국으로 단군 이래 최대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자동차,반도체,철강,백색 가전제품에 버금가는 것을 전 세계로 수출한 적이 한국 역사에 어디 있었고,또 코리아 이름을 만방에 더 높인 적이 언제 있었느냐고 자문해보자.개방이 보호주의보다 복지효과가 높다는 것은 우리와 중남미를 비교해 보아도 잘 알 수 있다.우리는 중남미 국가들보다 산업화의 역사가 훨씬 짧지만,지금은 앞서 있다.그 까닭은 중남미가 수입대체산업화와 보호주의에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비한 반면,우리는 일찌감치 수출산업화에 매진하여,외부 기술과 규범에 적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환경은 또 바뀌어 세계무역기구와 자유무역협정의 개방경제 시대로 이행했다.바깥의 환경은 우리나라 같은 약소국이 맘대로 조절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약소국은 적응을 강요당하고,적응할 수밖에 없다.이제 자유무역협정이 없으면 당장 공산품 수출시장이 적지 않게 타격을 입는다.그렇다면 울며 겨자 먹기라도 빨리 국내적 조정을 마무리하여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복수의 협정을 체결해야만 한다.전임 정부 때부터 추진해온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 우여곡절 끝에 협상을 끝내고,이제 국회비준만 기다리고 있다. 우리에게 충격적인 사실은 우리나라 국회의원 과반수 이상이 협정 비준 반대에 서명을 했다는 보도이다.농업부문에 대한 우려와 농민단체들의 반대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하지만 그렇게 많은 국회의원들이 국가 차원의 셈을 버리고,특정 부문의 이익에 매몰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국회의원들의 임무는 국익 극대화 차원에서 수혜집단과 피해 집단의 이해갈등을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조정하는 것이다.정부가 애써 만든 협정안을 국회가 무위로 돌린다면,이는 시대의 방향에 역행하는 것이고,나아가 개방 한국의 기운을 꺾는 것이다. 정부는 일본과 싱가포르와도 자유무역협정을 조기에 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멕시코와의 협정도 중기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만시지탄의 감은 있지만 그나마 확고한 방향을 정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아쉽기 짝이 없다. 전임 정부 말기에 멕시코의 폭스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당시 협정에 큰 관심을 보였다.하지만 20억달러가량 무역흑자를 보이고 있던 우리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그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칠레에 비해서 멕시코와의 협정이 줄 혜택은 대단히 클 뿐 아니라,구조조정의 부담도 훨씬 작은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현 정부가 뒤늦게 멕시코에다 러브 콜을 보내고 있지만,이번에는 그쪽 기업인들의 태도가 싸늘하고,정부측 인사들도 무뚝뚝하게 반응한다고 한다.멕시코는 올해 말까지 일본과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완료할 계획이다.이 협정이 이뤄지면 우리의 철강,타이어,석유화학 및 섬유 제품의 수출은 물론 건설수주도 크게 타격을 입을 것이다.멕시코에서 무역을 하는 세일즈맨들의 한숨소리는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간다.진정 세련되고 수준 높은 통상외교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국회가 참으로 아쉽다. 이 성 형 세종연구소 초빙연구위원
  • 자동차 여행길 ‘확’ 가까워진다/ 장시중著 ‘이지 드라이브’

    길을 떠나고 싶은데 막상 몸을 움직이려 하니 마땅하게 갈 곳이 없다.요즘처럼 길 좋은 세상에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는지.이런 고민으로 당혹감을 느껴 본 사람들을 위해 ‘훌쩍 떠나는 여행길’이란 부제가 붙은 드라이브 가이드 ‘이지 드라이브’ 1∼3권이 출간됐다.중앙M&B 간,장시중 지음,각권 6800원. 난삽하지 않게 오로지 길에 집중한 책이다.1권 서해안 고속도로,2권 영동고속도로,3권 경부고속도로 편으로 만들어졌다.이 책 한권만 손에 쥐면 설령 고속도로를 지나다 길을 잘못 들어도 걱정없다.해당 고속도로 전 구간을 꼼꼼하게 그린 대형 지도로 시작되는 책은 각 나들목(인터체인지)과 갈림목(분기점) 별로 인근의 길과 명소를 빠뜨리지 않고 수록했다. 서해안고속도로의 해미 나들목 편을 보자.해미읍성과 수덕사,개심사,덕산온천을 안내하는 얼개지도가 제법 잘 찍은 사진과 어우러져 있는가 하면 ‘순교자들의 기도소리가 들리는 듯-해미읍성’,‘기원도량보다 수련도량으로 이름높은 수덕사’,‘학이 상처를 치료했다는 전설의 덕산온천’ 식으로인근 가볼 만한 곳을 간결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맛보기로 곁들인 지역별 먹을거리 명소와 맛있는 집 소개도 힘이 된다. 1권 서해안고속도로 편은 서해안의 잘 알려지지 않은 비경과 명소,먹을거리를 손에 꼭맞게 쥐어준다.얼른 간추려 보아도 비봉 나들목의 제부도,대부도,영흥도가 있고,발안 나들목의 월문온천과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송악 나들목의 ‘서해 일출 1번지’ 왜목마을과 삽교호,홍성 나들목의 꽃지해수욕장과 안면도 자연휴양림,간월도가 있다.광천 나들목의 토굴새우젓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어 대천-춘장대-서천-군산 나들목을 거쳐 금산사와 벽골제로 유명한 서김제 나들목이 있으며,채석강과 적벽강으로 유명한 부안 나들목이 나온다.동백으로 유명한 선운사가 있는 선운산 나들목과 굴비촌 법성포가 있는 영광 나들목을 거치면 어느덧 서해안의 여정이 다리를 푸는 목포에 이른다.목포는 다도해의 전진기지이자 영암 월출산과 다산 초당이 있는 강진,땅끝마을이 있는 해남으로 빠질 수 있는 거점도시이며 온갖 먹을거리가 넘치는맛기행의 천국이다. ‘높은 산과 푸른 동해의 태고적 신비’를 주제로 잡은 2권 영동고속도로 편도 알차다.횡성과 둔내 자연휴양림,방아다리 약수터와 오대산월정사,대관령 목장을 거쳐 경포대,정동진,주문진 등 태백 준령과 동해안 곳곳의 명소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3권 경부고속도로 편은 ‘웅장한 대자연과 선조의 숨결’을 주제로 잡아 수원 화성과 한국민속촌,청주의 플라타너스길,청남대와 장용산 자연휴양림,자수정동굴과 통도사,범어사,태종대를 비롯,부산·경남북권의 명소까지 모두 섭렵하도록 돕는다. 드라이브에 초점이 맞춰져 지름길을 안내하는 등 운전자의 편의를 살핀 점이 돋보인다. 심재억기자 jeshim@
  • 관광공사 추천 9월에 가볼만한 5곳/높아진 하늘 아래 들꽃 하늘하늘 가을향기 흠뻑 느껴볼까

    9월은 가을의 문턱이자 결실을 준비하는 달.초록색 들판은 서서히 황금빛 옷으로 갈아 입고,가을 들꽃이 하나씩 얼굴을 내민다.유독 빠르게 다가온 한가위는 일찌감치 가을 분위기를 돋우고,지방에선 앞다투어 축제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이번 달엔 계절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만한 테마를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한국관광공사가 선별한 9월의 가볼만한 곳 5선을 소개한다. ●수확의 땅 김제 김제에서 가을은 지평선 너머로 온다.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 김제.오곡이 무르익는 9월을 맞아 풍성한 수확의 묘미를 느껴볼 수 있는 곡창지대 김제를 찾아보자. 김제엔 망해사를 비롯하여,식도락가들이 몰려드는 심포항,고찰 금산사,도작문화를 꽃피웠던 벽골제 등이 있어 초가을 나들이로 제격이다. 신라 문무왕때 세웠으나 땅이 무너져 바다에 잠긴 것을 조선 선조때 새로 지었다는 망해사는 나무와 갯벌 바다와 어우러져 자연미짙게 풍기는 사찰.사찰 뒤 망해대에 오르면 심포항과 멀리 군산이 보이고,해질녘 석양도 장관이다.심포항엔 생선회와 자연산 조개를 즐기려는식도락가들이 많이 찾아든다. 백제 비류왕때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벽골제엔 수리민속유물전시관,단야루 및 단야각 등이 조성돼 있어 옛 선조들의 도작 문화를 엿볼 수 있다.10월 2∼5일엔 메뚜기 잡기 및 허수아비 만들기 등 다양한 농촌체험 프로그램과 전통 문화행사를 묶은 지평선축제가 펼쳐지므로,좀더 다양한 즐길거리를 원한다면 이 때 김제를 찾는게 좋다.김제시청 문화관광과(063-540-3221). ●전통문화의 보고,경북 안동 한국을 대표하는 민속마을로 자리잡은 하회마을과 조선조 선비들이 학문을 닦던 서원,수백년 연륜의 종택들이 찾아볼 만하다.특히 부용대에서 바라보는 하회마을 전경,영화 ‘취화선’의 촬영지인 병산서원,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극락전이 있고,영화 ‘동승’을 찍은 봉정사 등은 초가을의 운치를 맛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 9월 26일부터 10월 5일까지 낙동강변의 주공연장을 중심으로 안동시 일원에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펼쳐지므로 이때 안동을 찾으면 문화예술의 향기에 취할 수 있다.안동시청 문화관광과(054-8511-6393). ●봉평 문학기행 강원도 평창군 봉평은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 태어난 곳.9월 초 효석문화마을 일대에 가면 소설의 구절처럼 소금을 뿌린 듯 흐드러지게 메밀꽃이 피어 있다. 알알이 익어가는 옥수수밭과 콩밭,시원하게 흘러내리는 흥정천 계곡물과 전나무,소나무 우거진 계곡 등에서 소설속 주인공들의 흔적을 느껴볼 수 있다.또 곳곳에 100여종의 허브가 농장을 가득 메운 ‘허브나라 농원’,봉평을 배경으로 한 회화작품과 조각품을 전시한 ‘평창무이예술관’,‘덕거연극인촌’에 들르면 가을 향기와 함께 예술에 나타난 봉평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평창군청 문화관광과(033-330-2752). ●진천 장터기행 충북 진천은 아직도 수십년전의 넉넉한 시골장터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진천읍내의 백곡천 고수부지 및 여기에 맞닿은 공터에 5일장이 서면 인근 주민들과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몰려 장터 이곳 저곳을 누빈다. 장터국밥에 막걸리 한 잔이라도 걸치고,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장터의 물건 구경을 하다보면 두서너시간은 훌쩍 지나가게 마련이다.신발가게에선 손바닥 반 만한 흰 고무신이 앙증맞아 발을 멈추게 되고,팔려나가길 기다리는 강아지와 고양이,병아리 등이 귀엽고 불쌍해서 쓰다듬다 보면 한 쪽에선 약장수가 ‘신퉁방퉁 만병통치약’을 선전하느라 열을 올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석 다리인 ‘농다리’와 42.7m 높이의 ‘통일대탑’이 있는 사찰 보탑사도 가볼 만 하다.진천군청 문화체육과(043-539-3725). ●용인 야생화 탐방 높아진 하늘 아래 하늘거리는 야생화를 보고 싶으면 경기도 용인시 동남쪽 끝에 자리잡은 한택식물원을 찾아보자.30만여평의 식물원엔 자생식물과 외래종에서부터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식물까지 6000여종의 식물이 살고 있다. 희귀식물로는 꽃 모양의 주머니 같다고 하여 이름이 붙은 ‘복주머니’ 또는 ‘개불알꽃’,다년초인 삿갓나물,근천남성,한라산에 자생하는 한라개승마,진한 자주색을 띤 털부처꽃 등이 볼 만하다.자생 붓꽃과 꽃창포를 전시한 아이리스원,식물원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돌·꽃·식물이 어우러진 암석원도 식물원이 자랑하는 코스다. 한택식물원 말고도 용인에선 어릴적 장승이나 벅수 얼굴을 보고 놀라 도망치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세종옛돌박물관,거대한 불두와 와불이 유명한 와우정사도 들러볼 만 하다.용인시청 문화관광과(031-329-2067) 임창용기자 sdargon@
  • 한·일 도자기 공생을 위하여/양국 도예가 63명 대표작 한자리

    한국과 일본은 도자기에 관한 한 엇갈린 역사를 갖고 있다.고려시대 이후 도자기 선진국이었던 한국은 임진·정유 양란(兩亂)을 거치면서 어려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잘 알려진 대로 내로라하는 도공(陶工)들이 모조리 일본으로 붙잡혀갔기 때문이다. 반면 유약을 씌워 고온에 굽는 자기를 아예 만들지도 못한 채 질그릇 수준에 머물렀던 일본 도예는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도자기가 가장 중요한 수출품으로 부상하면서 유럽에 일본이라는 이름을 뚜렷이 각인시켰다. ‘2003 한·일 도예전-공생을 위하여’는 도자기에 얽힌 두 나라의 역사를 염두에 두었음이 분명하다.‘기술’보다는 ‘창조정신’이 도예문화의 핵심요소가 된 상황에서 400년 전의 앙금을 털어버리고 ‘공생’을 위한 방안을 두 나라 도예가들이 함께 찾아보자는 취지로 읽어야 할 것이다. ●조선 도공 후예 6대 가문 모두 참여 일본의 10대 도예가문 가운데 조선도공을 선조로 둔 6대 가문의 도예가가 모두 참여하는 것도 역사를 통하여 공생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는 전시회의 취지와 무관치 않다. 조선 도공의 후손은 15대 심수관(沈壽官)과 13대 이삼평(李參平),12대 우에노 히로유키(上野浩之),12대 사카 고라이자에몬(坂高麗左右衛門),12대 다카토리 하치잔(高取八山),13대 나카사토 다로우에몬(中里太郞右衛門)이다. 이번 전시회는 새달 3일부터 30일까지 금호미술관,10월4일부터 20일까지 금호아트갤러리에서 열린다.두 나라의 대표적인 도예가 63명.한국이 32명,일본이 31명이 참여하여 대표작 3점씩 모두 180여점을 출품한다.한·일 도자기 교류전 역사상 전시 규모나 작품의 질에서 최고 수준이 될 것이라고 주최측은 장담한다. 전통도예와 도예를 바탕으로 한 조각을 분리했던 관행에서 벗어나 도예의 총체적 양상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있다.두 나라 모두 전통도예 작가와 도자조형 작가가 비슷한 비율이다. 한국에서는 도예의 부흥을 이끌어온 원대정과 도시공간에 예술적 조형미를 추구하는 권순형,서민의 그릇인 옹기를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바탕으로 현대적으로 풀어가는 조정현 등이 초청됐다.이밖에 이왕용 권오훈 박부원 황종례 유혜자 오천학 임무근 유광렬 김장용 박경숙 등이 참여한다. ●日 도예애호가 1000여명 내한 예정 조선도공의 후예인 6대 가문의 일본도공들이 한데 모이는 것은 1993년 대전엑스포의 ‘한국의 도자기 비교 귀향전’이후 꼭 10년만이다.이번 전시회에 심수관은 간결한 아름다움을 강조하면서 일본 감각의 장식성을 가미한 작품을 출품한다.다카토리 하치잔과 사카 고라이자에몬의 작품은 각각 일본의 도자기 전통에 충실하면서 현대적 감각이 물씬 풍기는 채색도자기들이다.반면 나카사토 다로우에몬은 조선 막사발의 원형에 비교적 충실한 찻그릇(茶碗)을 보여준다.그런가 하면 가와카미 리키조(川上力三)와 다지마 에쓰코(田嶋悅子)의 작품은 도자기라기보다는 조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한편 이번 전시회가 갖는 중요성을 보여주듯 일본에서는 1000여명의 도예애호가로 이루어진 대규모 방한단이 새달 5일 전시회장을 찾을 예정이라고 한다.(02)720-5114. 서동철기자 dcsuh@
  • “우표를 벗삼아 병마도 이겨냈어요”40년간 우표 수집 장세영 나주병원장

    “우표에서 얻는 지식이 학교에서 얻는 것보다 오히려 많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40년 동안 우표를 모아 온 장세영(張世榮·56)씨는 인터넷 경매로 전세계의 희귀한 우표를 사려고 매일 서너시간씩 인터넷을 한다.자신의 병도 우표의 힘으로 이겨냈다. 전남 나주병원의 대표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장씨는 1987년 병원 설립을 위해 동분서주하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왼쪽이 마비됐다.왼쪽손은 아직도 쓰지 못하고 달리기도 하지 못한다.병원일은 건강검진만 도와주고 있다.우표를 붙이는 일은 아내가 돕는다. 병으로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자 정적인 취미를 찾게 됐고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우표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고 장씨는 설명했다. 그는 다음카페 ‘우표와 eBay보물찾기(cafe.daum.net/ebay)’의 주인이기도 하다.우표 수집에 관한 각종 정보를 교환하는 곳이다.회원 숫자는 350여명이며 30∼40대가 많다고 한다.최근 청주 우표전시회에서 10여명이 함께 ‘오프라인’ 모임도 가졌다.모이면 우표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 한다.전국 각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주제의 대화는 피하고 새로 바뀐 우편제도,요금변화 등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눈다. 경매사이트인 ‘이베이’나 ‘질리언스 오브 스탬프’는 우표 수집을 위해 꼭 들르는 곳이다.이베이에는 한국 관련 우표가 많고,질리언스에는 나라별로 수만가지의 우표가 올라와 있다.몇천달러를 내고 조선조 말 대한제국 시대의 우표를 산 적도 있다.이외에도 벌 관련 우표만 모아놓은 사이트 등 여러 우표전문 사이트를 돌아보노라면 서너시간은 후딱 지나간다고 한다. 인터넷은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시작했다.한 손가락으로만 자판을 치는 ‘독수리 타법’이라 속도는 느리지만 서울에서 공부중인 딸과 채팅으로 대화도 나눈다.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대에서 공부하고 있다.자녀들도 우표수집에 관심이 많았지만 지금은 공부가 바빠 시간을 내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인터넷 경매는 워낙 빠른 사람들이 많아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정씨는 “우표 수집가들끼리는 누가 뭘 모으는지 다 알게 된다.”고 말했다.이베이에서 한국과 관련된 특이한 우표가 매물로 오르면 미국에 있는 한국우취회 회장이 꼭 마지막에 가져간다고 설명했다.미주 한국우취회장은 젊은 남성으로 97년에 직접 만난 적도 있다고 했다. 그가 수집한 우표 작품은 20여권에 이른다.의학,야구,남극,적십자,난,쌀,2002년 월드컵 등 각종 주제별로 우표를 수집했다.2003 대한민국 우표전시회에는 구한국 우표를 ‘대조선국과 대한제국의 우정사’란 작품으로 출품,‘대금상’을 받았다.우표수집은 모은 매수는 의미가 없고 주제별로 소장가치를 따져 만든 작품의 숫자를 헤아린다고 한다. 우표는 전시회에 출품이 끝나면 바로 은행에 보관한다.우표는 습기만 안 들어가면 보관에 문제가 없다는 설명도 곁들였다.“수집가들은 어디에 우표를 보관하는지 공개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어떤 수집가는 집안 금고에 보관하던 우표를 몽땅 털린 적도 있었어요.”라고 장씨는 덧붙였다. 장씨는 국제우취연맹(FIP)의 한국 이사이기도 하다.우표 수집을 하는 친구들끼리 모이면 까다로운 우표 수집요강 등을 알려주는 전세계우표수집 관련 소식통이 된다.우표 수집은 오래된 취미인 만큼 세계적으로 체계가 잘 꾸려져 있고 작품 만드는 법이나 전시회에 출품하는 우표 수집법 등이 까다롭다고 한다. 이번 우표전시회에서 음식관련 우표로 금상을 받은 학생은 우표를 통해 음식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고 소개했다.이 학생은 호텔에서 중국요리를 배우고 있는데 우표 하나하나에 그려진 음식들에 대해 알아가다 자연히 전문적인 지식을 쌓게 됐다는 것이다. 구한국 우표를 수집하면서 우편 요금의 변화,우편물의 행선지 등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히 ‘역사의 추적자’가 된다고 장씨는 말했다.신문,방송과 관련된 우표를 모으면 역사관련 기사를 쓰는 기자보다 세밀하게 언론사를 알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처럼 우표를 통해 질병을 극복한 사례도 많다고 그는 말했다.세상에 나온 모든 우표를 수집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거의 실현했던 역사상 최고의 우표 수집가인 페라리 백작도 어렸을 때 몸이 약해 부모가 우표 수집을 권했다는 얘기다. “스포츠나 인터넷 때문에 사람들의관심이 분산되면서 우표를 모으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지요.또 무언가를 모으는 수집 인구는 생활이 어려워지면 줄어들기 마련입니다.”라고 정씨는 예전에는 대중화된 취미였던 우표 수집에 대한 관심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또 우체국에서 업무 편의를 위해 우표대신 증지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우표의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창수기자 geo@
  • ‘조선시대 옥새’ 이렇게 생겼네

    고려·조선시대 때 빈번히 사용됐지만 백성들은 거의 볼 수 없었던 왕의 도장인 옥새가 전통기법 그대로 복원,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지난 19일부터 31일까지의 일정으로 인천 신세계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옥새-오백년 조선옥새의 비밀’전.전통 옥새전각 장인인 민홍규(50)씨가 옛 기법 그대로 복원해낸 고종황제 시대의 옥새 29점,금장 12점,도자기인장 11점,목인 3점,도식그림 10폭,옥새함 2개 등 총 130점이 나와있다. 민씨는 대한제국의 국새 제작자인 황소산에 이어 조선조의 옥새 전각을 계승한 정기호 문하에 16세에 입문하여 전통제작법을 전수받은 인물.일제시대 때 소멸된 ‘대한국새’ 등 옥새 5과를 복원하는 등 전통 옥새의 복원에 공을 들여왔으며 현재 경기도 이천에서 옥새전각연구소와 설성 문화서당을 운영하고 있다. 전시중인 옥새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로서 이전 조선왕조가 중국의 변방국 입장에서 사용했던 거북이 모양 국새에서 벗어나 용의 모양으로 제작한 국새인 ‘대한국새’와 ‘황제지보’‘황제지새’.조선왕조는 중국과의 사대관계로 인해 거북 모양의 국새를 사용했으나 고종황제가 대한제국 선포 후 이전의 옥새를 폐지하고 용모양의 옥새를 새로 제작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성호기자 kimus@
  • 전통매듭 회원전

    한국매듭연구회(회장 김희진)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과 공동으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18일부터 오는 9월1일까지 제15회 회원전을 연다.회원 27명이 우리 선조들의 전통적인 매듭과 창작품을 전시하는 한편,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브로치 목걸이 손가방 머리장식 액자 촛대 등 문화상품도 처음으로 선보인다.
  • [화제의 사이트] www.hanok.org

    “한옥은 박물관에 모셔둬야 할 문화재가 아니라 선조 때부터 이어져 온 우리 삶의 공간입니다.” 평생을 한옥을 알리는 데 앞장서온 목수 신영훈씨가 꾸리고 있는 ‘한옥문화원’(hanok.org)은 한옥을 제대로 알리는 데 앞장서는 사이트다.한옥문화원은 벽돌과 시멘트로 지은 ‘양옥’에는 한국인의 정서를 담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너무 서둘러 진행된 근대화 때문에 우리 고유의 멋이 담긴 한옥이 자취를 감추게 됐다는 것이다. 대들보를 세운 뒤 기와를 덮고 한옥이 제 모습을 찾기까지의 과정을 3차원 동영상으로 보여준다.신씨가 직접 작업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장인의 손놀림도 살짝 엿볼 수 있게 했다.그가 한달에 한번꼴로 쓰는 ‘목수의 이야기 사랑방’을 읽어보면 평생을 한옥을 아끼며 살아온 장인의 삶을 고스란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집을 한 채 짓기 위해 산을 뒤로 하고 호수를 앞에 둔 경치좋은 곳을 찾아다녔던 선조의 지혜를 정리한 ‘자료실’의 문헌을 뒤져보자.한옥이 단순한 가옥형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이 녹아있음을 깨닫게 될것이다. 신씨는 홈페이지에 남긴 글에서 “19세기 이전 지어진 전통적인 한옥을 제대로 연구해 현대 한국인의 삶을 접목시킨 ‘21세기형 한옥’을 짓고 싶다.”고 밝혔다. 박지연 기자 anne02@
  • 편집자에게/ “독립유공자 정부·국회 발벗고 나서야”

    -‘항일은 끝나지 않았다’ 기사(대한매일 8월15일자 1면)를 읽고 15일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58주년 광복기념식에 착잡한 마음으로 참석했다.예년과 달리 광복회원을 위한 좌석이 없어지고 ‘국가유공자 유족석’이 대신 들어섰다.때문에 80대 ‘독립유공자’ 400여명은 이날의 주인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행사장에서는 앉을 자리부터 직접 찾아야 했다.선조의 공을 기리기 위해 새벽부터 움직인 것이 민망하기만 했다.순국선열에 대한 보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에 입법 청원을 해도 늘 “법률적인 시기가 지났다.”며 외면당하는 현실까지 떠올라 속이 상했다. 강제로 징용됐던 태평양전쟁 피해자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15일자 대한매일 기사가 지적했듯이 유족들이 일본과 미국의 법정에서 개별적으로 투쟁을 벌이고 있지만 보상은 쉽지 않다.한국인을 무차별적으로 농락한 뒤 제대로 보상할 마음조차 먹지 않는 일본의 오만함에 치가 떨린다.내년 광복절은 더 이상 서럽지 않았으면 좋겠다.순국선열이 치른 대가를 인정받고,태평양전쟁에서 심신을착취당한 수많은 피해자의 넋이 위로되길 바란다.이를 위해서는 국회와 정부가 발벗고 나서야 한다.희생자와 유족들이 애써 올린 법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하루 빨리 해결해 달라.유족들에겐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남기형 순국선열유족회 사무총장
  • [씨줄날줄] 남도대교

    지리산 맑은 물이 흘러 내려 섬진강과 만나는 곳에 화개장터가 있다.행정구역으로는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 곳은 우리나라 5대 시장의 하나로 꼽혔다.산과 강,바다가 만나는 천혜의 지리적 여건이 만들어낸 ‘섬진강의 보석’이었다. 이 곳에 5일장이 설 때면 내륙지방 사람들은 산나물과 곡식을 가져와 팔고,바닷가 사람들은 뱃길을 이용해 수산물을 가득 싣고 왔다.아랫마을 하동 사람 윗마을 구례 사람이 모여들고,산과 들 바다에서 나는 온갖 것들이 걸쭉한 사투리와 뒤섞여 닷새마다 장을 펼치던 곳이다.그러던 것이 언제부턴지 교류가 뜸해지면서 예전의 활기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강바닥이 높아져 물길은 끊어지고,강 양쪽을 연결해주던 나룻배도 멈췄다.수백년 ‘만남의 장’을 열어주었던 섬진강은 한동안 소통을 방해하는 단절의 장벽으로 변했다. 그 곳에 하동 사람들과 구례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두 지역 주민들은 지난 28일 전남 구례군 간전면 운천리와 경남 하동군 화개면 탑리 사이를 연결하는 남도대교의 개통을 축하했다.나룻배의 정취는 사라졌지만 그 대신 사람과 차가 건너다닐 수 있는 튼튼한 다리가 놓인 것이다. 다리는 통행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건널 수 있게 해주는 교통수단이다.하천뿐만 아니라 호수나 해협,만,운하 등으로 끊긴 길을 연결시켜 주는 물리적 구조물이다.그러나 다리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인류의 선조들은 다리를 물리적인 구조물로만 보지 않고 정신적인 구조물로 인식했던 것으로 추정한다.로마사람들은 다리를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상징’이라고 믿었다는 기록이 있다.실제로 로마시대에 세워진 많은 석조 아치교들은 신관들이 설계해 건설됐다고 한다.불교에서도 다리를 지어 중생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일이 현세에서의 세 가지 공덕 중 하나라고 가르치고 있다.경주 불국사의 청운교(靑雲橋)와 백운교(白雲橋)는 속세와 불국(佛國)을 연결하는 매개체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다리는 왕래와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만약 다리가 없었다면 인류는 아직도 원시적인 고립과 단절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남도대교가 동서로 갈라진 마음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마음의 다리가 되길 기원해본다. 염주영 논설위원
  • “20년 외줄인생 후회는 없어요”최연소 인간문화재 ‘줄광대’ 김대균

    3m 높이의 팽팽한 줄 위로 한발 한발 내딛는다.이내 얼음을 지치듯 한가운데로 나가 부채를 펼치며 몸을 솟구친다.위아래로 출렁거리는 줄을 타며 동작은 더욱 현란해진다.줄광대는 갑자기 소리와 재담을 섞어가며 갖가지 잔재주를 부린다.숨죽이고 지켜보던 구경꾼들은 어느새 신명나는 줄박자에 빠져든다. 른 셋이라는 나이에 최연소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일명 인간문화재)가 된 김대균(37·경기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씨.사람들은 그를 이 시대의 마지막 ‘줄광대’로 부른다.하지만 20여년 동안 스무 걸음 남짓한 줄 위를 걸어 온 ‘외줄인생’의 서러움이 싫어 고단한 여행이지만 함께 나설 길동무를 찾고 싶어한다. “스승님의 그늘없이 홀로 줄타기 원형을 보존하고 지켜내는 일은 마치 1300년 세월의 무게로 다가오는 그런 압박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줄 위에 오르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천년의 맥을 이어온 위대한 예술,우리 고전 줄타기의 화려한 부흥을 꿈꾸기 때문이다.그 밑거름은 ‘줄타기의 대중화’에서 비롯된다는 신념을 갖고 안성의시골마을에서 첫발을 내딛으려 한다.바로 예비 줄광대들을 키우는 터전을 그 곳에 마련하는 것이다. ‘줄타기 판줄’은 줄광대가 두 길 높이의 공중에 매단 줄 위에서 삼현육각의 반주에 맞춰 재담을 하고 춤도 추며 잔재주를 보여주는 연희예술.곡예만 보여주는 서양의 서커스와는 다르다.조선조 말까지만 해도 임금님 앞에서 공연했을 정도로 마당놀이의 꽃이었다.일제의 문화말살 정책에 의해 수많은 명인들이 사라졌지만,줄타기 판줄은 조선 영조 때 명인인 김상봉 이래 최상천·김관보에 이어 스승인 김영철에서 김씨로 이어지는 계보를 갖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옛 것,자기 것만 고집하려는 올곧은 성격이 너무 강했어요.기술은 서로 공유해야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해서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처음 줄을 만났을 때만 해도 외로움을 아는 사람만이 제대로 줄을 타는 것으로 여겼다.그래서인지 배우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50여년의 긴 세대간 공백이 생겼다. “제게 기술을 전수해준 스승님이 살아계신다면 80세가 되는데40∼60대 전수자 없이 곧 바로 저한테 넘어왔습니다.” 자신이 포기하면 이땅에 전통 ‘판줄’이 사라질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마음을 급하게 만들었을까? 공연이 없는 날이면 후원회나 문화재 관계자들을 만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2000여평 규모의 땅을 확보해 그 곳에 줄타기 놀이마당과 전수관을 짓겠다는 것이다.안성시가 관심을 보이고 있어 “일이 잘 될 것같다.”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그 곳을 아이들 놀이마당으로 개방하고,줄타기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해 보다 많은 전수자들을 키우고 싶어한다.나아가 초등학교와 중학교 1곳씩을 ‘줄타기 지정학교’로 선정해 예비 줄광대들이 예술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하는 계획도 세웠다. 발을 굽히고 한발을 줄밑으로 늘어뜨리는 외홍잽이.몸을 날려 돌아 앉는 거중틀기.외발을 꿇고 오른발을 세우는 무릎꿇기 등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하면서도 입으로는 연신 걸쭉한 재담을 쏟아낸다. 김씨는 1967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아홉살 되던 해 판소리와 북을 다루며 예인의 길을 꿈꾸던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용인으로 올라왔다.아버지가 일하던 용인민속촌에 자주 놀러갔다가 그곳에서 줄을 타며 후계자를 찾고 있던 김영철 선생(1920∼1988)의 눈에 띄어 줄 위에 올려진다.이후 15세 때 처녀공연을 가졌으며,87년 20세 때 줄타기 전 과정을 이수한 전수조교 자리에 올랐다. 중요문형문화재로 선정되던 지난 2000년 7월,국내 모든 매스컴이 역대 최연소 인간문화재의 탄생을 앞다퉈 보도했다.그는 당시 “줄 위에 서있을 때의 어려움보다는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이 더 나를 외롭게 했다.”며 줄타기의 명맥을 꼭 잇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축제의 계절인 봄과 가을에는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와 놀이공원 등에서 공연 제의가 쇄도하는 바람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일년에 서너차례 준비되는 해외공연에도 나서야 한다.여름철인 요즘,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지만 연습시간 말고는 집에 머물 때가 거의 없다.줄타기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을 펴내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틈틈이 원고도 쓰고 있다. 줄타기보전회장도 맡고 있는 김씨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전통 향기를 느끼게 하고 싶어요.그럴려면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며 말을 맺었다. 안성 김병철기자 kbchul@
  • [中서부 대개발 현장을 가다](2)다시 열리는 비단길

    시안 둔황 오일만특파원|산시(陝西)성의 성도(省都) 시안(西安)은 한(漢)·당(唐) 등 1180여년 13개 왕조의 국도(國都)였다. 중국 대륙의 정중앙에 위치한 시안은 예부터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거점인 동시에 실크로드의 출발점이기도 했다.고대 중국은 실크로드를 개척해 동서 교류를 촉진했고 적극적인 서역(西域) 경영으로 한·당이 세계 대제국으로 발돋움하는 물적 기반을 마련했다. 1000여년이 흘러 시안∼란저우(蘭州)∼둔황(敦煌)∼우루무치로 이어지는 고대 실크로드는 서부대개발과 더불어 이제 새로운 중흥기를 맞았다. 중국 정부가 서부대개발의 ‘교두보’로서 시안에 대한 본격적인 개발을 선언했기 때문에 고대 실크로드는 어떤 의미에서 현대적 복원이 시작된 셈이다.지난 99년 6월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이 “새 천년의 역사적 기회를 맞아 서부지역의 개발을 가속화하자.”고 서부대개발을 공식 선언한 장소가 바로 시안이다. ●고대와 현대의 퓨전도시 시안 시안은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秦)나라의 고대 유적과 한·당의 수도 창안(長安)의 체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36도를 넘나드는 무더위 속에서 시안 함양공항에서 자동차로 1시간을 달려야 시내가 나온다.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높이 12m,총길이 12㎞의 장방형 성벽이 고풍스러운 자태를 드러낸 위로 첨단 빌딩들이 어울려 신구의 조화가 이채롭다. 중국 대륙의 정중앙답게 전국을 관통하는 9개의 국도와 주요 철로,항공로도 시안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하루에 대략 10만대 이상의 각종 차량이 시안을 거쳐간다는 것이 시 관계자의 전언이다. 도시 외곽으로 나가면 온통 공사판이다.서부대개발의 일환으로 지난해 시안∼난징(南京)을 잇는 1500㎞의 시난철도 등 3∼4개의 대형 프로젝트들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교통의 요충지로서의 장점을 더욱 개발해 서북부 최대 경제도시로 발전하겠다는 야심찬 구상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시안은 교통개발에 만족하지 않는다.지난 10여년 동안 첨단기술 개발을 발판으로 ‘IT혁명’의 기치를 들었다. 시내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로 30분 정도 이동하면 시안이 자랑하는 첨단기술산업개발구가 자리잡고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 개발구에 4991개의 기업이 활동 중이고 외자기업은 541개에 달한다. 연 30%의 성장률을 자랑하는 이곳의 지난해 공업총생산액은 330억위안(약 5조원).소프트웨어와 위성·항공기 관련 국방 정밀산업이 유명하다. 자오훙(趙紅專) 첨단기술개발구 부주임은 “시안에만 40∼50개의 대학이 있을 정도로 풍부한 고급인력과 유리한 지리적 이점을 갖춘 곳”이라며 “외자기업에 최대한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지난 3월 시안 경제대표단을 이끌고 서울을 방문했던 리잔수(栗戰書) 중국 산시성 부당서기 겸 시안시 당서기는 “시안시는 인프라 구축을 위해 120억위안(15억달러)을 투입했고 앞으로도 외자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경제개발구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시안의 투자 유치 노력은 정말 눈물겹다.리 당서기를 단장으로 30여명의 투자유치단이 올 3월 도쿄와 서울을 거쳐 지난 7월초 독일 프랑스 핀란드 등 유럽 7개국을 순방했다. 지난 6월 말에는 상하이(上海)·항저우(杭州)·원저우(溫州)) 등 연안 경제지구를 방문,중국 기업들을 상대로도 투자를 호소했다. ●산시성의 자원 개발 시안을 성도로 둔 산시성은 에너지 자원의 보고다.특히 석탄자원은 매장량과 탄질 면에서 중국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서전동송(西電東送·서부의 전기를 동부로 보내는 프로젝트)의 핵심 기지가 됐다.향후 10년 내에 500만㎾급 화력발전소 3∼4개를 건설할 계획이다.시안에서 북쪽으로 600㎞ 떨어진 위린(楡林) 근처의 진제(錦界)발전소가 지난해 착공됐다. 금속자원으로는 몰리브덴이 중국에서 가장 많이 매장돼 있다.이외에 진령산맥을 중심으로 금광이 많이 산재해 있어 최근 성(省) 정부는 호주와 합작,연간 10t의 금광을 채굴 중이다. 대한광업진흥공사 권태호(權泰浩·46) 시안사무소장은 “산시성 북부 전체에 석탄 자원이 매장돼 있어 서전동송의 핵심 기지”라고 설명했다.특히 시안에서 북쪽으로 600㎞ 떨어진 위린 에너지화공기지가 중심지다.. 대한광업진흥공사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모색하고 있으며 올 하반기에 채색 원료인 희토(稀土) 생산 사업에 1억위안(150억원) 규모를 투자할 계획이다. ●관광자원의 보고 간쑤성 시안을 떠나 간쑤(甘肅)성으로 들어가면 대지의 색깔이 달라진다.초록색은 점차 엷은 갈색으로 변하고 어느 순간 자갈밭 사막이 펼쳐진다.본격적인 실크로드에 들어선 것이다. 고대 실크로드는 톈수이(天水)로부터 시작되며 친안(秦安),란저우(蘭州),주취안(酒泉),자루관(嘉褥關),위먼관(玉門關),둔황(敦煌) 등 풍부한 문화 유적지가 도처에 깔려 있다. 이 비단길을 따라가면 석굴문화,채도문화,간서문화 등이 관광객들의 눈을 부시게 한다.둔황시 관계자는 “선조가 남겨준 유산은 이용하지 않으면 그 귀중한 가치를 잃은 것과 똑같다.”며 간쑤성의 살 길이 관광자원 개발임을 강조했다. 이 때문에 간쑤성은 성도 란저우를 비롯해 둔황·자루관·톈수이 등 8개 주요 관광도시 재건작업에 착수했다.고대 실크로드의 주요 도시를 잇는 룽하이(龍海)선을 복선으로 건설,보다 많은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복안이다.란저우에서부터 하서주랑을 따라 1200㎞의철도를 전면적으로 건설할 계획이다. 둔황시 서쪽 외곽에 자리잡은 관광경제개발구는 올해 1억위안(150억원)의 자금을 관광 기초시설 건설에 투자했다.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인 웨야취안(月牙泉) 기초시설 건설 등 15개 프로젝트가 국가투자 계획에 들어갔다.유네스코 문화유적으로 지정된 막고굴과 대상들의 주요 이동로였던 밍사산(鳴沙山) 등이 주요 대상이다. oilman@ ■신장성의 소수민족들 |우루무치 오일만특파원|둔황에서 우등열차로 12시간을 달려가면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의 구도(區都) 우루무치(烏魯木齊)가 나온다. 우루무치는 톈산(天山)산맥 북쪽 기슭 해발 915m의 고지에 있으며 ‘투쟁’이란 뜻을 갖고 있다.일찍이 중가르부와 후이족(回族)이 격렬한 싸움을 벌인 곳이라고 전해진다. 서역 특히 신장의 소수민족들은 서구적인 외모에서부터 생활풍습,언어까지 중원의 한족과 확연히 구별된다.주로 12개 소수민족이 살고 있고 위구르족과 카자흐족,후이족,몽골족,키르키스족,타지크족 등이 주요 구성원이다. 서역은 민족의 흥망이 계속된곳으로 시대가 변함에 따라 지배민족도 달라졌다.기원 전에는 아리아인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9세기 키르키스족에 쫓겨 내려온 위구르인들이 톈산산맥의 남부와 동부에 정착을 하면서 위구르인들이 신장의 지배 민족이 됐다. 위구르족의 인구는 720여만명으로 중국에서 4번째로,신장 최대의 소수 민족이다.신장 전역에 퍼져 있다. 종교는 이슬람교이며 돼지고기는 엄격히 금지되나 술에 대해서는 아랍민족들보다 덜 엄격하다.우루무치는 49% 정도가 위구르족이나 자동차로 3시간 거리의 투루판(吐魯番))의 경우 90%가 위구르족이다. 위구르는 ‘연합’ 또는 ‘단결’이란 뜻으로 민족 기원은 BC 3세기 북아시아 터키계 유목민족이 조상이다.10세기쯤 전파된 이슬람교에 의해 불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했다.17세기 이후 중원의 청왕조 영향 아래 놓이게 됐다. 20세기 들어 독립혁명운동을 전개했지만 1949년 인민해방군의 우루무치 진주로 무산됐다.지난 97년 신장내 카스 등에서 산발적으로 독립운동이 일어났으나 중앙정부의 대대적인 탄압으로 표면적으로는 평온한 상태로 들어간 상태다.현재 과거와 같은 적극적인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으며 중국 정부는 적극적인 동화정책을 펴고 있다. ■신장성 발전계획위 런춘메이 부처장 |우루무치 오일만특파원|지난 99년부터 시작된 서부대개발 열풍은 중국의 서부 오지인 신장(新疆)성에까지 거세게 불고 있다.신장성 발전계획위원회 런춘메이(任春梅) 부처장을 만나 경제개발 등 서부대개발이 미친 영향을 들어봤다. 서부대개발 이후 신장성의 경제현황은 어떠한가. -석유와 천연가스를 상하이(上海) 등 동부 연안지역으로 보내는 서기동수(西氣東輸)의 핵심지역이다. 파이프라인의 총연장은 4200㎞로 서울∼부산 고속도로(425㎞)의 10배에 달한다.신장 3대 분지에 퍼져 있는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은 전국의 28.9%와 32.5%로 중국 최대다.석탄 매장량은 2조 2000억t으로 중국 전체의 40.6%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대외개방이 끊임없이 확대돼 지난해 수출입 무역총액이 25억위안(3750억원)에 달했다.전년보다 41.7%가 늘었다.이곳에 들여온 금융자금은 대부분 기초시설 건설에 이용되고 있다.농업,수리,석유화공,교통,에너지,문화교육,위생 등에 사용됐고 100여개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신장의 경제환경 가운데 우수한 점은. -신장에는 양호한 투자 우대정책과 투자환경이 있다.최근 들어 투자 환경 개선에 총력을 다해 여러가지 외자 투자 우대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시장과 자원을 최대로 개방해 유동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신장은 40여개 소수민족이 어울려 살고 있으나 주요 민족은 12개 민족이다. 신장이 갖고 있는 어려움은. -신장은 아직도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다.아직까지 건설자금이 부족하며 인적 자원도 날로 확대되는 개발 목표에 비해 부족하다.향후 서부대개발 과정에서 국내외자금,기술,인재와 경험있는 관리를 많이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신장이 중점을 두고 있는 서부대개발 사업은. -수자원 이용과 교통,에너지 등 기초 인프라 사업은 물론 경제구조를 적극적으로 조정해 특색있는 경제와 산업을 발전시킬 것이다.특히 우루무치와 톈산(天山) 이북의 경제구역을 중점으로 발전시켜 경제발전의견인차로 삼을 것이다.
  • 이런책 어때요 / 계축일기

    작자 미상 / 조재현 옮김 서해문집 펴냄 ‘계축일기’는 왕위를 지키고자 친형을 죽이고 여덟살 난 어린 이복동생까지 죽인 광해군과 그 치하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산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그리고 그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 나인들의 이야기다.조선시대 3대 궁중문학의 하나로 꼽히는 ‘계축일기’는 광해군 대와 조선중기의 정치·사회·문화적 상황을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다.또한 모두 언문으로 씌어져 있어 조선중기 언어를 연구하는 데도 유용하다.‘이야기문학’을 강의하는 역자는 이 기사문(記事文·사실을 보고 들은 그대로 적은 글)을 현대감각에 맞게 새로 썼다.8500원.
  • [씨줄날줄] 天池 괴물

    전설과 신화 속에는 많은 괴물이 등장한다.그들중에는 인간의 상상력이 꾸며낸 허구도 있고 존재가 확인된 동물들도 있다.전설 속의 괴물은 늘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한다.그래서 상상의 생명체를 찾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끝없이 계속되고 있다.그런 동물을 연구하는 학문도 있다.신비동물학(cryptozoology)이다.벨기에 동물학자 베르나르트 회벨만스는 1955년에 쓴 책 ‘미지의 동물을 찾아서’에서 신비동물학 개념을 정립했다. 회벨만스는 히말라야산맥의 설인(雪人)으로 불리는 예티 등 미지의 동물 100여종을 체계적으로 분류했다.신비동물학자들은 전설이나 신화에 나오는 괴물들이 그럴만한 근거가 있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연구를 하고 그들을 찾아 나선다.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은 1300만 종으로 추정되는데 그중에 겨우 170만 종만 발견됐다.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생명체가 발견된 생명체보다 7.5배 이상 더 많다.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괴물도 많다. 그런 괴물이 백두산 천지에 또 나타났다고 해서 화제다.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14일 천지에 괴물로 보이는 20여마리의 동물이 동시에 출현한 것을 관광객들이 봤다고 보도했다.천지의 괴물 이야기는 조선조(청조) 말부터 계속돼 왔다.당시 4명의 사냥꾼들이 뿔이 달리고 긴 목에 머리가 거대한 황금빛 동물 한마리가 천지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봤다는 것이다. 천지의 괴물은 1994년에도 보도된 바 있다.홍콩의 영자신문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그해 5월18일자에서 최근 천지에서 괴물을 봤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북한은 괴물을 봤다는 목격자들이 끊이지 않자 조사단을 파견했다.그때 동물을 발견했으나 괴물이 아니라 곰들이 수영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괴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영국 스코틀랜드의 네스호에 있다는 네시다.네시는 목이 뱀처럼 길고 머리가 작은 거대한 동물의 모습이라고 전해오고 있다.노르웨이의 셀요르드 호수에도 50m 길이의 거대한 뱀의 모습을 한 전설의 괴물 셀마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이러한 괴물들의 이야기는 첨단 과학의 시대에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그러나 괴물의 신비함을 인간의 상상 속에 오래도록남겨두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창순 논설위원
  • [길섶에서] 영어단어 1천개

    지난 2000년 고려대 연구팀이 7년간의 연구 끝에 내놓은 ‘한국어 형태소 및 어휘 사용 빈도의 분석’이라는 보고서가 있다.1990년대 전반에 나온 신문기사와 논설,잡지,교양서적 등 127종에 담긴 한국어 150만 어절을 컴퓨터로 분석해 빈도를 조사한 것이다.일반명사는 ‘사람’,고유명사는 ‘한국’,동사는 ‘하다’,형용사는 ‘없다’,접속사는 ‘그러나’가 가장 많이 사용된 것으로 조사됐다.또 사용빈도 상위 1000개의 단어만 알면 한국어의 75%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배움의 첫 단계로 ‘천자문’을 자리매김한 것도 경험법칙상 이러한 결과를 염두에 둔 배려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적잖은 학부모들이 영어 현지 적응훈련을 위해 여름방학 동안 아이들을 외국으로 내보낼 궁리를 하고 있다.영어 실력이 투입 비용에 정비례하는 것처럼 여기는 듯하다.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1000개의 영어단어를 제대로 익히는 것일 텐데. 우득정 논설위원
  • [씨줄날줄] 功臣시효

    한 TV 사극에서 고려 19대 명종을 즉위시킨 무신 쿠데타의 주역 정중부와 이의방에게 벽상공신이란 훈공이 내려진다.이들의 초상화는 궁궐 공신각에 개국공신들과 함께 내걸리고 집과 토지·노비·금 등이 하사된다.예부터 국가·왕실을 위해 공을 세운 사람에게 주는 칭호가 공신이다.중국으로부터 도입돼 신라 이래 고려,조선조에서 수많은 예를 찾을 수 있다.고려의 개국공신·중흥공신과 정변이 많았던 조선은 개국공신·정사공신·정난공신·분무공신에 이르기까지 28종에 이른다. 오늘날 정권교체 때마다 대선에 기여한 공로에 따라 공신들의 논공행상이 이뤄지는 건 마찬가지다.그러면 창업·대선공신의 유효기간은 얼마나 될까.노무현 대통령이 6개월이란 답을 내렸다.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직원조회에서 “지난 인사 중에 과거의 공로가 고려된 인사가 있었겠지만 그 유효기간은 6개월,어떤 경우는 1년이 될 수밖에 없다.”며 “공로에 대한 보답은 기회를 주는 것이지 보장을 해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내가 창업공신’이라는 말을 다 버려 달라.”고도 당부했다.오는 8월말쯤 당·정·청와대의 일부 창업공신은 버리고 정권을 지켜갈 수성공신을 기용하겠다는 뜻이다. 정치권에서 창업,수성공신을 구별해 대통령이 용인술을 구사해야 한다는 얘기는 노태우정부 시절 회자됐다.노정부 태동에 기여한 월계수회 중심의 창업공신들을 쓰고난 뒤 전문가들로 구성된 수성공신들로 국정을 운용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여기서 ‘태양론’과 ‘한신론’이 등장했다.우주에 하나뿐인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면 타죽고 멀리 떨어지면 춥듯이,절대권력자인 대통령을 모시는 공신의 역할과 한계를 함의한 말이다.한신은 한고조 유방을 도와 항우를 물리치고 개국 일등공신에 올랐으나 논공행상이 있던 날 역적수괴로 몰려 죽임을 당한다.너무 용맹한데다 한때 제왕을 칭한 괘씸죄에 걸려 토사구팽된 사람으로,낙향해 살아남은 책사 장량의 처신과 곧잘 비교된다. 대통령의 공신론 언급은 적절한 것 같다.과거 정부가 절반의 성공에 그친 요인의 하나가 창업,수성공신을 구분하지 못한 용인술과 공신들이 시효를 무시하고 욕심을부린 때문은 아니었는지 되새겨볼 일이다.국민의 뜻을 제대로 받드는 수성공신을 보고 싶다. 박선화 논설위원
  • [열린세상] 국적에 관한 인식전환 시급

    김지미의 영화 가운데 ‘명자,아끼꼬,쏘냐’가 있다.주인공 이름의 변천사이지만 이 민족,이 나라의 지난날 자화상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아끼꼬가 명자의 일본 이름이며 쏘냐는 가장 흔한 소련식 이름이다.그나마 극중 명자는 사할린의 북한 국적인이 되어 한국에 돌아오지도 못한다.이 땅에 명자가 어디 한둘이겠는가.그리고 누구나 광복 전 외국에 나갔다면 일장기(日章旗) 사건의 또 다른 손기정이 되었을 터이다. 조선조 말엽 이래 지난 100년의 기구했던 국가 운명에 덩달아 이 민족의 국적도 춤추었다.때로는 스스로,더 많게는 국가 권력의 강제로,하와이에 그리고 러시아령 연해주에,또는 만주와 일본에 보내졌고 끝내 거기에 주저앉아 국적 또한 제각기 달라졌다.남쪽이든 북쪽이든 그동안 이 땅에 머문 사람마저도 지금 예순살 이상이면 한때 일본제국의 국적인이었던 과거를 지울 수 없다. 전쟁 끝에 광복이 되고 어렵게 이룬 국가이기에,바로 그 국가와의 법적 유대관계를 가리키는 국적에 대해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정서적 집착이 강한 것 같다.그 결과 국적문제에 관해서만은 편협한 인종민족주의나,적어도 이중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이를테면 이민은 이기적인 배신자들이 하는 선택이고,국적포기는 반민족 행위로 받아들인다.그런가 하면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골퍼 미셸 위는 국적에 관계없이 이 나라의 딸 ‘장영주’,‘위성미’로 끝없이 감싸안는다. 얼마전 외국국적 취득에 따른 병역면제 문제로 물의를 빚은 가수 유승준의 입출국 뉴스가 신문 지면을 장식하던 그날 모 방송 사장 아들의 국적 문제가 또 논란이 된 일이 있다.악의적인 병역 기피나 기형적인 원정출산이 왜 문제가 아니겠는가.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안고 있는 국적문제의 본질도,전부도 아니다.국가체제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전통적인 영토나 국민,주권개념의 틀이 바뀌고 있는 가운데 그 변천상이 가장 돋보이는 대목이 국적제도이다.현 독일의 집권 사회민주당·녹색당 연립정부는 선거공약으로 ‘국적법’의 대폭 개정을 내걸었고,이를 실현했다. 요컨대 국적에 대한 전향적 인식 전환이 시급히 요청된다.시대착오적이고,반통일적이라고 불러 마땅한,국적법을 포함한 우리 국적제도는 재편돼야 한다.모계혈통 수용,남녀불평등의 개선,미성년자보호와 같은 수준의 개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이미 600만을 넘어선 재외동포 코리안은 지난 역사를 어김없이 반영하는,우리 국적인의 격세유전(隔世遺傳)이다.북한 출생의 북한인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한 ‘이영순사건’의 대법원 판례가 몇년전 나온 바는 있으나,그런 개별적 판단을 더 이상 법원에 맡길 일이 아니다.이에 우리 국민 수의 반쯤 되는 북한주민에 대한 법적 지위를 전향적으로 가늠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중국적이나 그에 따른 우리 국적포기를 무작정 매도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엄청난 수의 유학생,그리고 기업과 기관 주재원 및 근로자 등이 속지주의 국가에 나가 있다.현재의 추세로는 이중국적자의 증가세를 막을 수도,꺾을 수도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오히려 우수한 한국계 해외인력을 적극적으로 불러들여 무한경쟁 체제를 강화해야 하며,이를 위해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국적요건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아울러 재외국민이 국적 요건에 묶여 받게 되는 각종 불이익과 피해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지난날 ‘명자,아끼꼬‥’를 보고,어제 북한인 탈북자를 보며,또 오늘 유승준을 보면서 그 숱한 비극과 갈등의 귀결점이 바로 ‘국적’임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처음에는 우리의 특수한 역사성과 분단 국가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고,지금은 오늘의 세계화 추세에 못따라가는 우리의 국적제도에 새로운 검토가 있어야 하겠다.물론 그에 앞서 더 시급한 것은 인식의 대전환이 아닐 수 없다. 권영설 중앙대 헌법학 교수
  • “전통 삼베로 富農의 꿈★ 이뤘죠”/ 전남 벤처농업연구클럽 연합회장 이찬식씨

    1970년대 말만 해도 ‘철커덕 철커덕’하는 삼베(마포)베틀 소리가 농촌 골목을 가득 채웠다.‘삼베바지 방귀 빠져나간다.’는 말처럼 삼베는 시원하고 까실까실해 옛날 남정네들이 여름을 지내기에 그만이었다.하지만 여인네들에게는 한(恨)의 상징이요,끔찍한 유산이었다.물레질로 밤을 하얗게 지새우기 일쑤였으니 오죽하면 삼밭이 많은 보성으로는 시집가기 싫다고 했겠는가. ●수익 쌀의 3~4배… 염색 삼실 中수출도 이처럼 여인네의 ‘등골을 빼먹던’ 삼베를 예찬하며 ‘잘사는 농촌’을 외치고 있는 자칭 ‘문화대사’가 이찬식(58·전남 보성군 복내면 유정리 옥평마을)씨다.7년 전인 97년부터 ‘보성 삼베랑’이란 상표를 붙여 삼베 한복 등을 지어 판다.누구나 사양사업으로 여기는 삼 농사를 “환금성이 좋아 희망이 있다.”고 고집한다. 그는 “3월 초에 씨를 뿌렸다가 7월 중순이면 수확해 토지 이용률이 높고 자금 순환이 빠르다.”고 말한다. 그가 사는 보성 복내면에는 300여 농가가 대마밭 40㏊를 경작,벼농사보다 최고 3∼4배의 이익을 남기는데,그는 올해 수입된 중국산 삼실에다 전통방식으로 천연염색을 해 중국시장에 700만원어치를 역수출했다고 자랑한다. 지난해엔 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4년 만에 한 번씩 윤달(공달)이 들어 뭣을 해도 동티가 나지 않아 수의를 사두려고 한다는 것.이 때 수의(12m짜리 8필)는 한 벌에 250만∼500만원이나 돼 매출액이 서너배 뛴다고 귀띔했다. ●20년 입는 삼베팬티 1장에 7만원 “삼은 자연통풍이 잘되고 항균성·방염성·흡수성·내구성이 좋아 어떤 화학섬유보다 경쟁력이 있지요.통기성이 좋아 자궁암을 예방하고,삼 자체가 레이더에 걸리지 않아 군복으로도 제격입니다.” 그의 삼베 예찬은 끝이없다. 자신이 직접 지은 삼베 팬티 1장에 7만원을 자신있게 요구한다.“비싸지 않느냐.”는 지적에 “한 번 사면 20년을 입을 수 있고 습진도 안걸린다.”며 손사래쳤다. 할머니·어머니가 삼베짜는 걸 보고 자란 그다.농고·농대를 나와 천생 농사꾼으로 살고 있는 그는 68년 대학 졸업 후 출판사,제과점 등 12년 봉급생활을 청산하고 80년 고향인 보성에 정착했다.이주 3년 동안 공들였던 산간지 개간이 물거품이 되고 빈털터리로 전락했다.예부터 고향인 복내면과 인근 겸백·미력면 등은 삼베 특산지.삼굿(삼을 삶은 솥)이 없는 마을이 없을 정도로 번성했다. 삼베하면 안동포가 알려져 있지만 지금도 보성산 삼베는 전국 유통량의 절반을 웃돈다.97년부터 저질의 값 싼 중국산 삼베가 밀려오면서 그나마 있던 삼밭들이 문을 닫았다.이 영향으로 전국적으로 300㏊ 정도이던 삼밭이 80㏊로 줄었다.국내산은 일교차와 토질 등 영향으로 중국산과 견줄 수 없을 정도로 고품질이다. 그는 97년 정책자금 2000만원과 융자 등 1억여원으로 집 마당에 공장 겸 연구실을 짓고 재봉틀을 들여놨다.전통방식대로 삼베를 짜고 부인(56)이 직접 디자인한 뒤 수를 놓아 한복과 수의,팬티,침대보 등 20여가지를 만든다. 삼 농사는 고된 작업의 연속이다.7월이면 2∼3m로 자란 삼 줄기를 잘라 통째로 삶는다.그런 다음 껍질을 벗겨 삼실을 자아 베틀에 올려 베짜기까지 50여차례 손을 거쳐야 하기 때문.기계화가 안돼 예나 지금이나 수작업이다.이씨는 지난 5월부터 삼베에다 쪽으로 천연염색하기와 길쌈놀이 체험 등 전통문화 추억만들기 프로그램을 손수 마련해 삼베 알리기를 실천하고 있다. ●불량깻잎 1장도 반품… 유통인식 새롭게 시대가 급변하면서 전통농법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그가 틈만나면 “우리 들과 산에는 돈되는 식물이 무궁무진하다.”면서 ‘고부가가치 농법’을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해 월드컵 땐 직접 목화 화분을 만들어 개당 2만원씩 받고 200개를 팔았다.꽃이 하얗게 핀 목화를 줄기째 잘라놨다가 송이당 600원씩 꽃꽂이용으로도 넘겼다.단옷날 머리감는 창포를 샴푸처럼 만들어 각 가정에 팔면 돈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98년부터는 도내 벤처(틈새) 농업인 500여명이 회원인 도 벤처농업연구클럽연합회 회장을 6년째 맡고 있다.이들 가운데 3∼4명은 송이버섯과 불미나리즙 등으로 연간 매출액이 억대에 이른다. “전남 장성에 사는 젊은 농사꾼들은 깻잎 한묶음(700원)에도 하자가 있으면 리콜(반품) 합니다.” 이게 바로 감동 판매요,유통의 기본이라고 들었다.외부에서 강의 요청이 오면 그는 어김없이 이를 사례를 든다.면사무소 2층에서 하는 농민교육도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농민들이 유통을 알아야 합니다.유통이란 게 별겁니까.내 자신의 명예를 지킨다는 생각으로 제품을 팔면 되지요.” ●모시·목화등 자연섬유학교 운영이 꿈 그래서 그는 주문이 들어오면 제주도까지 직접 날아가 자신의 제품을 설명하고 기어이 ‘단골고객’으로 만든다.한 때 그는 삼베 지키는 일에 매달렸다가 가족들한테 외면당했고,이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꿈도 소박하다.삼베와 목화·모시 등을 연구하는 자연섬유학교를 지어 선조들의 얼과 문화가 깃든 우리의 것을 보존하고 이어가는 게 여생에 할 일이란다. 글·사진 보성 남기창기자 kcnam@
  • 포스코 일관제철 가동 30주년

    포스코가 3일 국내 최초의 일관(종합) 제철소인 포항 1기 설비가동 30주년을 맞는다. 일관제철 30주년을 맞는 포스코는 지구둘레를 289바퀴 돌 수 있는 1154만㎞의 열연코일,63빌딩 2331개를 건설할 수 있는 5376만t의 후판제품,소형승용차 2억 8073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1억 843만t의 냉연제품 등 각종 철강재를 공급해 오며 한국 산업발전을 뒷받침해 왔다.30년 포스코 지킴이와 성공신화의 비법 해부 등을 통해 포스코 30년을 되짚어 본다. ■‘30년 고로맨’ 이석인 주임 “정말 일 많이 했습니다.별을 보며 출퇴근하는 것은 당연했고 휴가는 감히 생각도 못했죠.사명감이 없었으면 어떻게 견뎌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로맨’인 이석인(54) 주임은 포스코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1973년 2월 입사해 30년을 고로와 함께 살았다. 그는 “고로의 쇳물을 똑바로 보내기 위해 각목을 이용했는데 무더운 여름철에는 숨이 헉헉 막힐 정도”라며 “화장실 수돗가에는 찬물을 끼얹기 위해 직원들이 줄서며 기다리곤 했다.”며 옛날을 회고했다.지금이야 에어컨 시설과 자동화 시스템이 완벽히 갖춰졌지만 당시에는 사시사철 땀띠를 달고 지냈다고 덧붙였다. 이 주임은 당시에는 기술을 보유한 직원들이 거의 없어서 반장들에게 욕설을 듣는 것은 물론 정강이를 맞으면서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요즘 세상에 그렇게 일을 시킨다면 누가 하겠느냐고 반문하겠지만 그 시절에는 누구나 당연시했고 또 그 만큼 일도 빨리 배우게 됐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 사고는 항상 있었다. 1977년 4월 야간 작업중인 직원이 크레인에서 졸다가 쇳물이 쏟아져 바닥 케이블이 타버린 사건이 터졌다.그 결과 작업은 한달간 중단되고 한동안 임직원들이 야간 순찰을 강화하며 눈이 충혈된 직원들을 보며 ‘당신 졸았지.’라고 묻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그 이후부터 포스코는 매년 4월을 ‘안전의 달’로 선포했다. 이 주임은 또 포스코 직원들의 풍속도도 많이 바뀌었다고 말한다.공장 가동 초기에는 직원들이 30∼40분씩 걸어서 출퇴근하다가 점차 자전거·오토바이로 변하다가 지금은 승용차 이용이 많다. 술에 얽힌 얘기도빼놓을 수 없다.포스코의 노란색 유니폼은 술집에서 보증수표였다.노란색 제복을 입고 포항시내 웬만한 술집에 가면 외상이 통할 정도여서 요즈음의 신용카드가 부럽지 않았다. 한번은 사측에서 술로 인한 각종 말썽이 잦자 ‘퇴근후 술을 마시고 싶으면 유니폼을 벗고 마셔라.’는 엄명을 내렸다.반응은 포항 상가에서 먼저 나타났다.장사가 안된다며 들고 일어나 회사측에 철회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는 요즘에는 일하기가 굉장히 수월해졌다고 말한다.1970년대에는 3교대로 24시간을 일했으며 작업도 대부분 고로 근처에서 했지만 지금은 4교대로 바뀐데다 작업도 기계가 대신 처리해 격세지감이 들 정도란다. 특히 주5일 근무제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 좋지만 정년 퇴임이 가까워지면서 ‘벌써 퇴물인가.’하는 불안감도 커졌다고 밝혔다. 이 주임은 “아쉬운 것도 많지만 국가 경제에 이바지했다는 자부심은 평생 남을 것”이라면서 “1973년 6월 용광로에서 첫 쇳물이 나오는 순간에 터졌던 만세 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하다.”고 말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 ■‘포스코 신화’의 비결 ‘포스코 신화의 비결은.’ ‘산고’끝에 태어난 포스코는 기술·경험·자원이 없는 그야말로 밑바닥부터 출발해 지금은 세계 철강업계의 최고봉에 이르렀다. 외형적으로는 지난 30년간 총 4억 1878만t의 철강재를 생산,우리나라를 세계 5위의 철강 생산국으로 끌어올렸다.또 조선 1위,가전 2위,자동차 6위 등 우리나라 수요산업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다. 내부적으로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지배구조하에서 성공적인 민영화의 기업 모델로 자리잡았다. ●기적의 주춧돌은 ‘우향우 정신’ 포스코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향우 정신’이 큰 보탬이 됐다.제철소 건립이 실패할 경우 몇몇 사람의 사표로써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모두 영일만에 빠져 죽을 각오로 매진하자는 것.당시 건설 현장사무소(롬멜하우스)에서 우향우하면 바로 영일만에 닿기 때문에 우향우 정신이라는 말이 나오게 됐다. 박태준 전 포철 회장은 “4전 5기 끝에 시작한 민족 숙원사업에 긍지와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대일청구권 자금이라는 선조들의 피의 대가로 짓는 제철소 건설이 실패하면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만큼 우리 모두 우향우하여 영일만에 투신해야 한다.”고 책임정신을 역설했다. 당시 103만t 규모의 포항 제철소 1기 사업 규모는 같은 시기에 지어진 경부고속도로 사업 비용의 3배로 모두 1205억원이 투자됐다. ●인사가 만사(萬事) 포스코의 인사 원칙은 청탁이 통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패가 망신’ 정도는 아니지만 인사 청탁자에게는 철저하게 승진,보직,근무지 조정에 불이익을 줬다.일례로 박태준 전 회장이 청와대 고위직에서 인사 청탁을 하자 바로 그 사람을 인사위원회에 회부,권고 사직을 시켰다는 일화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인사뿐 아니라 설비와 자재 구매에서도 철저하게 청탁을 배제시켰다.결국 이같은 원칙은 우수한 인재를 적소에 쓸 수 있는 전통이 되었고 오늘날 포스코의 국제 경쟁력을 유지시킨 밑거름이 됐다.특히 공기업에서 쉽게 나타날 수 있는 무사안일주의도 발을 붙일 수 없도록 만들었다. ●완벽주의 포항제철소 1후판공장에 참여한 고려개발은 기초공사를 부실하게 하고 볼트 조립작업도 대충하다 다른 업체로 교체됐다.또 삼부토건은 자재절약이라는 기본 방침을 어겨 공사 도중에 그만둬야 했다.1977년 발전송풍 설비 공사는 도면보다 콘크리트 기초 작업이 10㎝ 정도 덜 들어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도록 폭파를 시키기도 했다.포스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마다 1∼10개월 가량 공기를 단축시켰다.1기 설비는 3년 3개월,2기는 2년 6개월,3기는 2년 5개월만에 준공시켜 갈수록 시간을 줄였다. ●실패에서 배운다 영일만 신화에는 실패도 있었다.그러나 포스코는 과감히 돌아가거나 물러서면서 신축적으로 대응,피해를 최소화했다. 포스코는 1997년 잘못된 설비 확장으로 경영상의 부담을 초래했다.스틸캔 소재 증강사업은 취소했고,광양 2미니밀,광양 5고로 등 건설중인 사업은 중단시켰다.또 만성적인 적자를 기록한 광양 1미니밀은 전기로를 폐쇄하기도 했다.관계자는 “1990년대 중반 거품경제 때 투자된 과잉설비와 저수익 자산은 98년부터신속하게 처리,경영 손실을 최소화했다.”면서 “그러나 철강전문가들의 면밀한 검토없이 투자에 나선 것은 경영상의 실수였다.”고 토로했다. ●“근로자가 먼저다” 포스코는 당시 정치권과 언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제철소 건립에 앞서 직원용 주택단지를 먼저 조성했다.고급인력 유치와 정착을 위한 장기 포석이었다.박 전 회장은 “직원들의 주거가 안정돼야 정상적인 업무가 가능하다.”면서 “직원들을 현장에 머물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택과 자녀교육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에 따라 포항은 현재 7200가구,광양은 5384가구 등 1만 2584가구가 들어섰다.포스코 임직원이 모두 1만 9169명이니 주택 문제는 사측이 해결해준 셈이다. ●굴뚝과 환경 그리고 IT 포스코는 공해없는 제철소 건설을 위해 지난해까지 무려 2조 3931억원을 쏟아부었다.지난해는 환경설비 운영비로 5000억원을 투자,철강업 고유의 환경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광양제철소 건립 당시에는 한려수도 청정지역의 수질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국내 첫 240m의 오염방지막을 설치했다.포스코는 이와 함께 1998년부터 ‘프로세스 혁신(PI)’을 추진,굴뚝과 IT를 접목시킨 디지털 경영체제를 구축했다.PI는 고객중심으로 업무 프로세스를 재설계하고 최적의 통합시스템을 구축,조직 설계와 기업문화의 혁신을 추구하는 것.기술의 원조격인 신일본제철이 PI를 배워가 기술을 역수출하는 사례를 낳았다. 포스코는 현재 전사 통합 온라인 경영시스템인 ‘POSPIA’를 가동,납품에 걸리는 기간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또 신제품 개발 기간도 종전 4년에서 1.5년으로 단축시켰다. 김경두기자
  • ‘김영완집 사건’ 발표 안팎 / 극비수사 진짜 의뢰인 ‘아리송’

    경찰 최고위 간부들이 청와대측의 부탁으로 ‘김영완씨 집 강도사건’ 수사에 개입하고 수사팀을 움직인 사실이 확인됐다.그러나 극비수사를 의뢰한 진짜 장본인은 청와대 고위간부일 것이라는 의혹이 남아 있는데도 경찰이 더 이상 조사하지 않겠다고 밝혀 파장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경찰내 비선조직 2개 동시에 가동 경찰청은 감찰 결과 지난해 3월 31일 강도를 당한 직후 김씨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파견근무중이던 박종이 경위를 만나 상의했다고 밝혔다.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박 경위는 “1년 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라고 주장했다.박 경위는 지난 98년 사직동팀(옛 경찰청 조사과)에서 활동하던 시절 김씨와 몇 차례 식사를 하며 친분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의 부탁을 받은 박 경위는 이승재 경찰청 수사국장(현 경기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잘 아는 사람이 거액을 털렸는데 수사적임자를 추천해 달라.”고 말했고,이 국장은 이조훈 서울경찰청 강력계장에게 “박 경위의 이야기를 들어봐라.”고 지시했다.다음날 이 계장은 함께 근무한경험이 있던 이경재 서대문경찰서 강력2반장을 박 경위에게 추천했다.이 반장은 바로 청와대를 찾아가 박 경위를 만난 뒤 서울 모 호텔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와 별도로 경찰청은 이대길 당시 서울경찰청장(퇴임)이 비슷한 시기에 김윤철 서대문서장(현 강원 삼척경찰서장)에게 전화해 “안쪽(청와대)과 관련된 사건이니 보안에 특별히 유의하라.”고 지시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김씨 사건 하나를 두고 경찰청 수사국장에서 시경 강력계장으로 이어지는 수사라인과 서울경찰청장에서 서대문서장으로 이어지는 지휘라인이 동시에 가동된 것이다. ●의혹 남긴 감찰조사 발표 경찰의 설명대로라면 박 경위는 청와대라는 배경을 등에 업고 이 국장을 만나 부탁을 했다는 결론이 나온다.박 경위는 지난 98년 DJ정부 출범 이후 경위로 특진,사직동팀에서 근무하다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발탁됐다.김대중 전 대통령 사저경비도 담당했다. 이 사건에 등장하는 경찰관들은 모두 호남 출신이다.이 청장은 전남 완도,이 국장은 광양,박 경위는 구례가 고향이다.하지만 ‘인맥과 실세’라는 점을 감안해도 경찰의 초급 간부인 경위가 개인적 이유와 판단으로 최고 수뇌부를 만나 사건 처리를 부탁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더욱이 경찰청은 당시 이 청장이 이 사건을 알게 된 경위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해 의혹을 사고 있다.그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연루 사실 자체를 부인했고,박 경위도 “당시 이 청장에게 전화하거나 사건을 의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김윤철 서장의 진술대로 당시 이 청장이 지시한 것이 사실이라면 정부 실세인 ‘제3의 인물’이 요청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김씨와 친분이 깊었던 박지원 전 문화부장관이 박 경위를 통해 부탁을 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하지만 경찰청은 “박 경위와 박 전 장관의 관계는 이번 사안과는 관계가 없기 때문에 조사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또 김씨가 도난당한 100억원의 출처,김씨가 범행에 가담한 운전사에게 변호사를 선임해주고 재판과정에서는 범인들의 선처를 호소한 이유 등에 대해서도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다. ●추락한 경찰의 도덕성 이 사건이 불거진 이후 경찰 관계자들은 ‘거짓말’로 일관했다.김씨의 신고로 서대문서가 수사에 착수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이 사건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여러차례 이야기했던 당시 이 국장의 말도 거짓이었다. 또 경찰청은 “피해자의 요청에 의해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서면보고를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지휘라인이 정상적이지 않다보니 보고과정도 엉망이 된 것이었다.실제로 사건 발생 15일 뒤 당시 문귀환 서대문서 형사과장은 사건 내용을 문서로 보고하기 위해 서울경찰청을 찾았다가 “보안사항이라고 하니 보고할 필요없이 그냥 수사하라.”는 김동민 서울경찰청 형사과장의 지시를 받고 그냥 발길을 돌렸다. 또 서대문경찰서 수사팀이 곽모씨 등 피의자 2명을 모텔로 불러내 조사하고 함께 술까지 마셨으며,6일 동안의 숙박비와 식대 등 비용 일체를 피해자인 김씨가 냈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경찰의 입장은 더욱 궁색해졌다. 장택동 이세영기자 tae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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