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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색공간] 새집증후군과 ‘선조의 지혜’/이지누 시인·사진작가

    얼마 전,봄이 농익어 가는 남도에 다녀왔다.일렁이는 청보리 물결이며 아직 갈아엎지 않은 논에는 자운영 꽃이 보랏빛 구름처럼 드리워 있었다.우리들의 서정은 이 땅의 풍경이 내놓는 아름다움과 척박함을 고루 담보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풍경이 우리들의 서정을 만들어 준 것이고 그 서정의 농밀한 정도에 따라 우리 선조들은 제각각의 문화를 이 땅에 남겨 놓았을 것이다.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우리들 또한 그 기준으로 우리들만의 아름다움에 대한 절대적인 가치와 잣대를 익혀 왔을 것이다. 그것은 어느 누가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지리적인 조건과 환경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예술이나 사상 또한 그것에서 벗어 날 수 없다.또 문화를 보면 반대로 그들이 살아간 자연조건적인 환경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들의 서정은 탈인위의 무엇이기도 하다.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방치해 두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살짝 손을 댄 것뿐이다.기와지붕의 용마루는 제비가 내려앉으려다가 다시 날아오르는 선인가 하면 초가지붕은 뒷동산의 산마루를 빼어 닮지 않았던가. 이는 관(觀)에서 나오는 것이다.자연환경적인 조건을 거부하지 않은 채 물끄러미 그를 눈여겨보는 것이다.무엇이 마음에 맞고 좋으면 그를 차용하여 우리들의 세계로 가져 왔을 뿐 그 스스로를 위하여 무엇을 만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사람들의 모듬살이인 마을이 자연 속에 터를 잡고 다시 그 안에 사람들이 제각각 모여 사는 집은 그런 점에서 사람들의 지혜가 고스란히 모여 있는 문화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또 집을 보면 당시의 사람들이 자연조건과 얼마나 친화적인 상생을 꿈꾸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알아차릴 수도 있다. 요즈음 화제가 되는 새집증후군은 그런 점에서 사람과 자연환경에 대해 소홀했던 만큼 적절하게 보상을 하는 인과응보라 할 수 있다.인구증가에 따른 필연적인 선택으로 공동주택들이 지어 졌다고는 하지만 우리들은 너무했던 것이다.한옥의 집짓기는 자연으로 향한 문을 얼마나 많이 열어 두느냐에 관점이 모아진다.그런가 하면 서양의 생각이 집중된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택들은 옹색한 베란다나 테라스와 같은 것들을 빼면 자연과 얼마나 철저하게 단절할 수 있는가가 관점이다.바람 한점 들어 올 수 없게 꼭꼭 막아 놓은 시멘트 박스 안에서 우리들은 평수를 자랑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던 것 아닌가 되새겨 보아야 할 일이다. 이른 봄 지인들 몇 명과 길을 나섰다가 분매(盆梅)를 구해 돌아 온 적이 있다.지금은 잎이 무성하게 자라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를 바라보는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그날 같이 매화나무를 구해 돌아 온 사람들 중 스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는 그 조그만 나무에서 매실 서너 개가 달렸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똑같은 나무임에도 그이의 것은 열매가 달리고 나의 것은 열매는 달리지 못한 채 잎만 무성하니 어찌 된 일인가 싶어 생각에 매달렸는데 답은 아주 간단했다.스님은 바람과 비와 벌과 나비가 종횡무진 누비는 마당에 매화나무를 심었고,나의 그것은 바람조차도 드나들기 인색한 아파트의 베란다에 두었던 탓이었다.매일 아침 그를 볼 때마다 측은한 생각이 든다.나의 매화나무에게도 새집증후군이 생긴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그래서 다시 한번 생각한다.나무나 사람은 물론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넉넉하게 누리고 소중하게 지켜나가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우리들이 처해 있는 자연지리적인 환경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지누 시인작가˝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8)장(醬)으로 간을 맞춘 한국문화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8)장(醬)으로 간을 맞춘 한국문화

    ‘장 단 집에는 가도,말 단 집에는 가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실속 없이 말로만 친절한 척하는 집안과는 상종하지 말라는 뜻을 지닌 우리 민족의 곰삭은 슬기가 들어 있는 말이다.‘장 내고 소금 낸다.’는 것도 있다.‘장이 달아야 국이 달다.’는 등 다양한 뜻을 지닌 속담들이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의 생활 속에서 생겨나 전해왔다.된장 간장을 가리키는 장 문화가 만들어 낸 은유와 깊은 상징성은 곧 장과 관련된 우리 민족의 지혜가 그려 놓은 인문지도다.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화봉리 389-9번지 ‘서일농원’은 이같은 장의 인문지도를 더욱 새롭고 정밀하게 그려내고 있는 곳이다.우리 민족 장 문화의 자존심을 숙성시키는 거대한 또 하나의 장독이라 할 만한 곳이기도 하다. 올해로 15년째 이곳의 간장과 된장을 만들고 있는 이른바 ‘된장아지매’ 서분례씨를 만났다.한국 장 문화의 전도사이자 명인으로 널리 알려진 서분례씨로부터 현대사회에서 장(醬)의 중요성이 더욱 더 커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그의 독특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맛도 없고 간도 안 맞는 질문입니다만 어떻게 ‘된장아지매’가 되셨는지요. -徐 : 제가 태어나 자란 고향이 경북 영덕이라예.된장아지매가 될끼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예.간장 된장에 반한 것은 우연이었어예. -우연이라면 어떤 경우로 겪게 된 사정이었는지요. -徐 : 어릴 적부터 장독을 그리 좋아했어예.장독이 하도 좋아서 어머니가 장을 담가두신 장독 위에 올라가 앉아 있으면 그리 맘이 편했어예.장을 담아 둔 장독은 자주 닦아주었는데,햇볕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맘이 한정없이 평온해지거든예.하여튼 고향 떠난 뒤로 한시도 장독을 잊어 본 적이 없어예. 그러다가 여행사를 하게 된 뒤로 일본을 자주 가게 되었는데,일본의 양로원 시설을 눈여겨보게 되었지예.방 하나에 노인 두 분씩 지내는데 쾌적하고 편리하더라고예.연세 드신 뒤에 그렇게 삶의 질이 높은 생활 하는 모습에 감동했어예.거기에 비해 우리나라 양로원 시설은 참 안좋지예.일본 양로원 시설만큼 좋은 환경을 가진 양로원을 지어 평생을 봉사하고 싶었어예. 노인들이 날마다 잡수실 음식으로는 좋은 장이 최고라고 믿었고,그럴 기회가 오면 땅을 사서 콩을 직접 농사지어서 장을 담그고,노인들도 소일거리로 콩밭을 가꾸면서 건강도 챙기시고,뭐 그런 꿈을 가지게 되었지예. ●“항아리 숨쉬는 것 돕고자 물수건으로 닦아줘” -양로원을 언제쯤 시작하실 건가요. -徐 : 준비하고 있어예.지금은 우선 기존 시설에서 살고 계신 노인들을 찾아 뵙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어예.올해로 27년째가 되는데 노인들을 모시고 사는 날이 곧 오겠지예. -간장,된장으로 노인들을 봉양하시겠다는 말씀이군요. -徐 : 그럴 계획이지예. -간장 담그는 일을 언제 배우셨는지요. -徐 : 따로 배운 적은 없심니더.어릴 적에 우리 어머니는 10년도 더 넘은 간장을 늘 보관해 오셨는데,채독 걸린 이웃 사람들이 그 간장을 먹으면 채독이 말짱하게 낫는다고 했어예.어머니 장 담그는 솜씨가 내 피 속에 흐르는 모양이지예.시간이 되니까 자꾸 장을 담그고 싶어지데예.그래서 고마 자꾸 장을 담갔지예.장독 20여개에다 장을 담가서 된장도 떴지예.맛이 어떨까 싶어서 차에다 퍼 싣고 다니면서 아는 사람들한테 선물했지예.돈 벌겠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어예.고마 좋았거든예.그런데 된장이며 간장 선물 받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칭찬을 하데예.맛이 없는데 미안해서 공치사하는기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그런 게 아니고 에나 맛이 좋다는기라예.용기도 생기고 더 재미가 났지예. 그렇게 몇 해가 지나니까 선물 받은 분들이 콩값이라도 하라며 돈을 주는기라예.사양할 수 없어서 받고 보니 엉뚱한 생각이 들데예.잘 만들면 돈이 되겠다고 말입니다.돈이 생기면 양로원 짓는 일이 한결 빨라지지 않겠나 싶기도 했지예.고마 그렇게 된기라예. -우리나라 장 문화의 신기원을 고쳐 쓴다는 서분례씨인데,이곳 서일농원의 장이 자리 잡게 된 과정을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비밀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요. -徐 : 비밀은 무슨 비밀이라예.지가 처음으로 만든 것이 아니잖아예.장을 최초로 만든 것은 고구려 사람들이라고 압니다.콩이 고구려 영토이던 만주가 원산지거든예.중국은 본래 콩이 없었답니더.제(齊)나라 환공(桓公)이 만주에서 콩을 얻어다 심은 것이 중국 콩의 원조랍니더. 고구려인들이 지혜로 콩을 가공해서 장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으니까 참 오래된 우리 문화지예.그리 좋은 문화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차츰 멀리하기 시작한 것이 도시화된 생활을 하면서부터였지예.그런 중에 지가 우연히 관심을 가졌던 것 뿐이라예. -그럼 비밀을 좀 말씀해 주시지요. -徐 : 처음에는 장맛이 좋다고 소문난 전국의 명가를 모두 찾아가서 장맛을 보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별것도 없었어예.결국 지가 내린 결론은 콩과 메주,소금 외에 항아리가 가장 큰 비밀 아닌 비밀이라는 것이었지예. 흙의 입자가 중요해예.전국에서 장 항아리 수집을 시작했는데,쓸 만한 것은 100개 중에서 20∼30개 정도밖에 안된다는 것을 알았지예.가마의 첫 칸에서 불을 잘 받아 굽혀진 것이라야만 장독이 되고 그 나머지는 다른 용도로 써야 하는데 그걸 모르고 장을 담으면 장맛이 안 좋아예.항아리는 숨을 쉬어야 하는데,장 담근 지 3∼4개월 사이에 가스가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하거든예.가스가 못 빠져나오면 장에 곰팡이 냄새가 나지예.사람의 몸에 땀이 나는 거랑 같아예.장독을 물수건으로 자꾸 닦아주는 이유가 장독이 숨 쉬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서거든예. 그 다음은 콩인데 콩 농사가 참 중요하지예. 소금은 간수를 빼고 오래 묵혀 둘수록 좋아예.우리집 창고에는 항상 100가마니 이상의 소금이 여러해씩 쌓여 있어예.소금에 관한 연구가 깊을수록 좋은 장을 만들 수 있지예. 메주도 중요한 요소지예.메주는 사람이 밟아야지 기계로 만들면 너무 단단해서 곰팡이균이 자유롭게 번식하기가 어려울 수 있어예.메주가 마르면서 갈라지면 메주 안에 남아 있는 수분이 곰팡이균을 번식시켜 메주가 잘 익어예.메주를 말릴 때 마당에 널어 말리는 것보다 처마 끝에다 매달아서 말리는 것이 더 좋은데,직사광선은 메주를 싸고 있는 짚을 너무 마르게 하지만 처마 끝은 햇볕과 그늘을 적절하게 조절하여 메주의 수분을 알맞게 유지시켜 주기 때문에 짚과 메주 사이에서 생기는 바슬라스균을 활성화시켜 주지예.우리 조상들의 놀라운 지혜가 아니겠어예. 간장은 오래될수록 좋십니더.간장은 1년에 2%씩의 필수아미노산이 증가되는데,지는 95년도부터 간장을 땅에 파묻기 시작해서 지금 10년째 묵히고 있어예.잘못 담근 간장은 불에 달여서 보관하는데,달이지 않은 장이라야 더 좋아예.물은 정수기 같은 것으로 걸러서는 안되고,수돗물이나 끓인 물은 안 좋십니더. ●“간장·된장·김치가 바로 ‘슬로 푸드’” -도시의 현대인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겠지요.들려주시지요. -徐 : 유럽인들이 요즘 슬로 푸드(Slow food) 운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데,우리나라 간장,된장,김치야말로 슬로 푸드의 원류라 볼 수 있지예.빨리빨리라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약한 병을 치료하는데 장보다 더 좋은 약은 없심니더.도시인들이 껍데기만 화려하게 치장하지 말고 몸 안에도 좋은 것을 넣어서 건강한 정신을 지닌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더.특히 어린이들에게 많이 먹여야만 합니더. 그 맛있는 된장을 플라스틱 통에다 넣어 보관하지 말고 숨 쉬는 항아리에 넣어야 제 맛이 유지됩니더.도시화 때문에 생긴 온갖 질병은 좋은 간장과 된장이 있어야 치료됩니더.장을 안 먹으면 도시인의 질병은 근원적인 치유가 불가능해예.김치도 마찬가지지예.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8)장(醬)으로 간을 맞춘 한국문화

    ‘장 단 집에는 가도,말 단 집에는 가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실속 없이 말로만 친절한 척하는 집안과는 상종하지 말라는 뜻을 지닌 우리 민족의 곰삭은 슬기가 들어 있는 말이다.‘장 내고 소금 낸다.’는 것도 있다.‘장이 달아야 국이 달다.’는 등 다양한 뜻을 지닌 속담들이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의 생활 속에서 생겨나 전해왔다.된장 간장을 가리키는 장 문화가 만들어 낸 은유와 깊은 상징성은 곧 장과 관련된 우리 민족의 지혜가 그려 놓은 인문지도다.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화봉리 389-9번지 ‘서일농원’은 이같은 장의 인문지도를 더욱 새롭고 정밀하게 그려내고 있는 곳이다.우리 민족 장 문화의 자존심을 숙성시키는 거대한 또 하나의 장독이라 할 만한 곳이기도 하다. 올해로 15년째 이곳의 간장과 된장을 만들고 있는 이른바 ‘된장아지매’ 서분례씨를 만났다.한국 장 문화의 전도사이자 명인으로 널리 알려진 서분례씨로부터 현대사회에서 장(醬)의 중요성이 더욱 더 커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그의 독특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맛도 없고 간도 안 맞는 질문입니다만 어떻게 ‘된장아지매’가 되셨는지요. -徐 : 제가 태어나 자란 고향이 경북 영덕이라예.된장아지매가 될끼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예.간장 된장에 반한 것은 우연이었어예. -우연이라면 어떤 경우로 겪게 된 사정이었는지요. -徐 : 어릴 적부터 장독을 그리 좋아했어예.장독이 하도 좋아서 어머니가 장을 담가두신 장독 위에 올라가 앉아 있으면 그리 맘이 편했어예.장을 담아 둔 장독은 자주 닦아주었는데,햇볕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맘이 한정없이 평온해지거든예.하여튼 고향 떠난 뒤로 한시도 장독을 잊어 본 적이 없어예. 그러다가 여행사를 하게 된 뒤로 일본을 자주 가게 되었는데,일본의 양로원 시설을 눈여겨보게 되었지예.방 하나에 노인 두 분씩 지내는데 쾌적하고 편리하더라고예.연세 드신 뒤에 그렇게 삶의 질이 높은 생활 하는 모습에 감동했어예.거기에 비해 우리나라 양로원 시설은 참 안좋지예.일본 양로원 시설만큼 좋은 환경을 가진 양로원을 지어 평생을 봉사하고 싶었어예. 노인들이 날마다 잡수실 음식으로는 좋은 장이 최고라고 믿었고,그럴 기회가 오면 땅을 사서 콩을 직접 농사지어서 장을 담그고,노인들도 소일거리로 콩밭을 가꾸면서 건강도 챙기시고,뭐 그런 꿈을 가지게 되었지예. ●“항아리 숨쉬는 것 돕고자 물수건으로 닦아줘” -양로원을 언제쯤 시작하실 건가요. -徐 : 준비하고 있어예.지금은 우선 기존 시설에서 살고 계신 노인들을 찾아 뵙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어예.올해로 27년째가 되는데 노인들을 모시고 사는 날이 곧 오겠지예. -간장,된장으로 노인들을 봉양하시겠다는 말씀이군요. -徐 : 그럴 계획이지예. -간장 담그는 일을 언제 배우셨는지요. -徐 : 따로 배운 적은 없심니더.어릴 적에 우리 어머니는 10년도 더 넘은 간장을 늘 보관해 오셨는데,채독 걸린 이웃 사람들이 그 간장을 먹으면 채독이 말짱하게 낫는다고 했어예.어머니 장 담그는 솜씨가 내 피 속에 흐르는 모양이지예.시간이 되니까 자꾸 장을 담그고 싶어지데예.그래서 고마 자꾸 장을 담갔지예.장독 20여개에다 장을 담가서 된장도 떴지예.맛이 어떨까 싶어서 차에다 퍼 싣고 다니면서 아는 사람들한테 선물했지예.돈 벌겠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어예.고마 좋았거든예.그런데 된장이며 간장 선물 받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칭찬을 하데예.맛이 없는데 미안해서 공치사하는기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그런 게 아니고 에나 맛이 좋다는기라예.용기도 생기고 더 재미가 났지예. 그렇게 몇 해가 지나니까 선물 받은 분들이 콩값이라도 하라며 돈을 주는기라예.사양할 수 없어서 받고 보니 엉뚱한 생각이 들데예.잘 만들면 돈이 되겠다고 말입니다.돈이 생기면 양로원 짓는 일이 한결 빨라지지 않겠나 싶기도 했지예.고마 그렇게 된기라예. -우리나라 장 문화의 신기원을 고쳐 쓴다는 서분례씨인데,이곳 서일농원의 장이 자리 잡게 된 과정을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비밀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요. -徐 : 비밀은 무슨 비밀이라예.지가 처음으로 만든 것이 아니잖아예.장을 최초로 만든 것은 고구려 사람들이라고 압니다.콩이 고구려 영토이던 만주가 원산지거든예.중국은 본래 콩이 없었답니더.제(齊)나라 환공(桓公)이 만주에서 콩을 얻어다 심은 것이 중국 콩의 원조랍니더. 고구려인들이 지혜로 콩을 가공해서 장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으니까 참 오래된 우리 문화지예.그리 좋은 문화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차츰 멀리하기 시작한 것이 도시화된 생활을 하면서부터였지예.그런 중에 지가 우연히 관심을 가졌던 것 뿐이라예. -그럼 비밀을 좀 말씀해 주시지요. -徐 : 처음에는 장맛이 좋다고 소문난 전국의 명가를 모두 찾아가서 장맛을 보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별것도 없었어예.결국 지가 내린 결론은 콩과 메주,소금 외에 항아리가 가장 큰 비밀 아닌 비밀이라는 것이었지예. 흙의 입자가 중요해예.전국에서 장 항아리 수집을 시작했는데,쓸 만한 것은 100개 중에서 20∼30개 정도밖에 안된다는 것을 알았지예.가마의 첫 칸에서 불을 잘 받아 굽혀진 것이라야만 장독이 되고 그 나머지는 다른 용도로 써야 하는데 그걸 모르고 장을 담으면 장맛이 안 좋아예.항아리는 숨을 쉬어야 하는데,장 담근 지 3∼4개월 사이에 가스가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하거든예.가스가 못 빠져나오면 장에 곰팡이 냄새가 나지예.사람의 몸에 땀이 나는 거랑 같아예.장독을 물수건으로 자꾸 닦아주는 이유가 장독이 숨 쉬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서거든예. 그 다음은 콩인데 콩 농사가 참 중요하지예. 소금은 간수를 빼고 오래 묵혀 둘수록 좋아예.우리집 창고에는 항상 100가마니 이상의 소금이 여러해씩 쌓여 있어예.소금에 관한 연구가 깊을수록 좋은 장을 만들 수 있지예. 메주도 중요한 요소지예.메주는 사람이 밟아야지 기계로 만들면 너무 단단해서 곰팡이균이 자유롭게 번식하기가 어려울 수 있어예.메주가 마르면서 갈라지면 메주 안에 남아 있는 수분이 곰팡이균을 번식시켜 메주가 잘 익어예.메주를 말릴 때 마당에 널어 말리는 것보다 처마 끝에다 매달아서 말리는 것이 더 좋은데,직사광선은 메주를 싸고 있는 짚을 너무 마르게 하지만 처마 끝은 햇볕과 그늘을 적절하게 조절하여 메주의 수분을 알맞게 유지시켜 주기 때문에 짚과 메주 사이에서 생기는 바슬라스균을 활성화시켜 주지예.우리 조상들의 놀라운 지혜가 아니겠어예. 간장은 오래될수록 좋십니더.간장은 1년에 2%씩의 필수아미노산이 증가되는데,지는 95년도부터 간장을 땅에 파묻기 시작해서 지금 10년째 묵히고 있어예.잘못 담근 간장은 불에 달여서 보관하는데,달이지 않은 장이라야 더 좋아예.물은 정수기 같은 것으로 걸러서는 안되고,수돗물이나 끓인 물은 안 좋십니더. ●“간장·된장·김치가 바로 ‘슬로 푸드’” -도시의 현대인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겠지요.들려주시지요. -徐 : 유럽인들이 요즘 슬로 푸드(Slow food) 운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데,우리나라 간장,된장,김치야말로 슬로 푸드의 원류라 볼 수 있지예.빨리빨리라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약한 병을 치료하는데 장보다 더 좋은 약은 없심니더.도시인들이 껍데기만 화려하게 치장하지 말고 몸 안에도 좋은 것을 넣어서 건강한 정신을 지닌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더.특히 어린이들에게 많이 먹여야만 합니더. 그 맛있는 된장을 플라스틱 통에다 넣어 보관하지 말고 숨 쉬는 항아리에 넣어야 제 맛이 유지됩니더.도시화 때문에 생긴 온갖 질병은 좋은 간장과 된장이 있어야 치료됩니더.장을 안 먹으면 도시인의 질병은 근원적인 치유가 불가능해예.김치도 마찬가지지예. ˝
  • 기네스감 1.5㎞ 문자 퍼포먼스

    자그마치 길이 1.5㎞에 이르는 ‘문자 행위예술’ 퍼포먼스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펼쳐진다.세계 기네스북에 기록 등재도 함께 추진된다. 사단법인 한국서예협회 서울지부는 2004 Hi-Seoul 페스티벌 기간인 8일 오후 3시 우리나라 전통식 ‘문자 행위예술’ 행사를 갖는다고 6일 밝혔다. 시내에 천을 펼칠 만한 장소가 없어 한꺼번에 하지 못하고 서울시청 서울광장∼지하철 을지로역 인근 롯데호텔 앞에 이르는 150m 구간에서 10차례로 나누어 진행한다. 300명의 서예인과 시민대표 700명이 참여해 너비 1.5m,길이 1.5㎞의 천에 붓으로 휘호를 쓰거나 가훈 탁본을 뜨는 행사다. 워낙 규모가 커 하루에 끝내지 못하고 당일 오후 8시까지 진행하다가 멈춘 뒤 다음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다시 이어진다. 완성하는 데 모두 17시간이나 걸린다.150m 각 구간은 다시 네 구역으로 나눠져 행사가 이어진다. A구역에는 변영문,전명옥씨 등 초대 서예가들이 나선다. B구역에서는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로 시작하는 ‘서울의 찬가’를 한 사람이 한 자씩 붓으로 써 나가는 이벤트가 마련된다.이명박 서울시장과 임동규 서울시의회 의장,탤런트 최불암씨,두산 박용성 회장 등이 직위를 떠나 서울의 찬가 제목과 가사 76자를 한 자씩 적어 대화합을 노래한다. C구역에서는 유병리·최승룡씨 등 전문 서각가들이,D구역에서는 서화가들이 나와 각종 슬로건 등을 플래카드 형식으로 써 나간다. 서각가 전우천씨는 “우리나라의 오랜 전통으로,역사·문화 학습의 마당인 서예를 널리 알려 사라져 가는 선조들의 정신을 되살리는 기회로 삼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
  • ‘광해군, 탁월한‘ 저자 한명기 교수

    “이라크 파병 논란은 380여년 전 명나라에 의해 촉발된 조선조 광해군 때의 파병논란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역사적 교훈 차원에서 반추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파병 논란의 묘수가 ‘380년 전의 메시지’에서 풀어질 수 있을까.평전 ‘광해군,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의 저자 한명기(43·명지대 사학과) 교수. 그는 최근의 이라크 추가파병 논란과 관련,찬반을 떠나 이 시점에서 광해군의 ‘외교술’을 한번쯤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우선 6·25전쟁을 도운 ‘미국’과 임진왜란때 조선에 원군을 보낸 ‘명’이라는 ‘슈퍼파워’가 파병요청을 해왔다는 현실과 역사적 상황이 그렇다. 또 파병에 앞서 파병지에 대한 정보수집의 노력과 파병후 여러 돌출변수의 수습과정 등도 흥미롭게 비교될 수 있다고 한 교수는 설명한다. “명나라는 후금의 기세에 눌려 위기에 처하게 되자 조선에 임진왜란때 원군을 보낸 은혜를 갚으라며 파병요청을 끈질기게 해왔지요.그러나 광해군은 ‘사나운 후금과 노회한 명의 싸움에 끼어들면 망할 수밖에 없다.’며 명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그러면서 광해군은 명을 설득시키려 애를 쓰고 다른 한편으로는 후금을 다독거리는 양면적 외교정책을 구사했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정에는 ‘임진왜란때 구원해준 명의 요청을 거절해서는 안된다.’는 찬성론이 거셌다.게다가 명 역시 계속 거부할 경우 조선을 먼저 치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한 교수는 “광해군은 마지못해 강홍립 장군에게 1만 3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출전토록 명령을 내리면서 압록강 국경에서 대기토록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면서 “그러나 나중에 작전권과 지휘권이 명에 넘겨지면서 강홍립은 후금과의 전투에서 참패당해 결국 투항하고 말았다.”고 상기시켰다. 그는 또 “광해군은 이후에도 계속된 명의 추가파병의 요구를 일축하면서 사신과 첩자를 동시에 보내 명과 후금의 동향을 살피고 정보를 수집하고자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한 교수에 따르면 당시 광해군은 ▲명의 주력군이 너무 멀리 떨어진 사천성에서 동원된다는 정보를 알고 명의 패배를 예견했으며 ▲조선군 파병요청시 후금과의 전투에서 10만명을 출전시키겠다는 당초 약속과는 달리 7만명밖에 동원시키지 않는 등 국익차원의 외교를 펼쳤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우리보다 파병 결정에 훨씬 자유로운 일본은 파병에 앞서 민·관조사단이 이라크 현지에 12차례나 파견돼 치밀한 사전조사를 실시했다.”면서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고작 두 차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군이 이라크 현지에서 저항세력의 공격을 받아 사상자가 발생하고 테러 위협이 생길 경우 국내 정치상황에도 큰 파장을 몰고올 수밖에 없습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조선의 문인이 걸어온 길/이종호 지음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문인으로 태어나 문인으로 살다 문인으로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문예는 조선 사대부들의 삶 그 자체이자 필생의 화두였다.유교라는 거대한 주제 아래 그들은 치열하게 책을 읽고 문장을 닦았다. 퇴계 이황 같은 이는 완물상지(玩物喪志),즉 하나의 사물에 몰두하는 것은 학문의 본질에서 멀어지는 길이라 해 문장에 지나치게 매혹되거나 몰두하는 것을 경계했지만 대부분의 사대부들에게 문예는 학문과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문예를 논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부였던 것이다. 안동대 한문학과 이종호(49) 교수가 펴낸 ‘조선의 문인이 걸어온 길’(도서출판 한길사)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조선조 사대부들을 탐구하고 해석한 책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어떻게 ‘자신만의 문장’을 키웠고 어떤 문장에 빠져들었으며 또 비판의 시선을 보냈을까.저자는 조선조 문인들의 작업을 낱낱이 추적하며 그들의 문장을 독해하고 그 안에 담긴 문예인식과 비평의식을 읽어낸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분석 대상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이다.정약용이나 김시습,박지원 같은 조선 한문학의 ‘간판스타’들로 구색을 맞추기보다는 일반에겐 좀 낯선 인물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남긴 개성의 자취를 훑어간다.영남 사림의 거두인 점필재 김종직을 비롯해 조선중기 한문 4대가 가운데 한 명인 상촌 신흠,홍길동전의 작가 허균,18세기 안동지역의 처사 권구,신유한,최성대,조구명,송백옥 등이 그들이다. 저자는 조선의 문예는 고려 중기 문예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여말 익재 이제현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말한다.이제현은 최씨 무신정권기의 문예를 칼날 앞에 붓이 줏대를 잃고 형식과 기예의 노예로 전락한 ‘껍데기’ 문예로 보았다.그 대안으로 제창한 것이 성리학적 세계관에 기초한 실용적인 고문 창작이다.조선의 문예는 숭유억불의 화신인 삼봉 정도전이나 양촌 권근 같은 이제현의 정신적 계승자들에 의해 시작됐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책은 15세기 조선 한문학의 거목 김종직을 조선조 문예 흐름의 원류에 속하는 인물로 규정한다.경상도 산골 출신의 선비인 김종직은 온건한 품성과 남다른 문장으로 훈구세력이 주도하는 ‘본류적 흐름’에 뛰어들어 그들을 압도했다.저자에 따르면 김종직이 씨앗을 뿌린 ‘도문(道文)합일론’은 주자학적 세계관을 구현하고자 했던 퇴계와 율곡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유교적 문학관은 이내 한계와 문제를 드러낸다.여기에 신흠이 등장해 양명학과 노장사상에 심취하게 된다.신흠이 문을 연 개방적인 사고는 허균에 와선 열정과 광기로 폭발하고,이어 18세기엔 다양한 인간상을 펼치는 작가군이 크게 늘어난다.권구는 민중의 삶을 담고자 했으며,조구명은 ‘나만의 글’을 쓰고자 했고,신유한은 일천한 가문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문학적 재능으로 극복하고자 몸부림쳤다. 저자는 이처럼 구체적인 인간 형상을 중심에 두고 그들의 문예를 논한다.76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미시적인 접근으로 통사에 버금가는 성찰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3만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조선시대 평상복 부인상 첫 공개 영조때 화가 강세황 작품

    조선시대 평상복 차림의 부인상이 처음으로 공개됐다.단국대 ‘석주선 박물관’은 27일 전주 이씨 문중이 소장하고 있던 선조의 고손자인 밀창군(密昌君·선조 칠남 인성군의 증손)의 부인 오씨의 초상화를 공개했다.이 초상화는 조선 후기 남종문인화를 정착시킨 첨재 강세황이 오씨가 86세 때인 1760년에 그린 것으로 부인이 평상복을 입고 화문석 자리 위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모습이다.이원복 국립광주박물관장은 “조선시대 평상복 차림의 여성 초상화는 처음 공개된 것”이라면서 “한국미술의 전성기였던 영조시대에 당대의 유명화가 강세황이 그린 작품이라 더욱 소중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장택동기자 taecks@
  • 儒林(80)-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儒林(80)-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어느덧 조광조를 태운 수레는 능성에 가까워지고 있었다.‘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한양에서부터 능성까지의 거리는 758리. 능성현의 원래 이름은 이릉부리(爾陵夫里).백제의 옛 이름으로는 죽수부리(竹樹夫里),혹은 인부리(仁夫里)라 하였다.훗날 선조 때 조광조를 기리기 위해 세운 죽수서원은 백제 때의 옛 지명을 따서 지은 이름으로 이곳은 예부터 궁벽한 땅으로 알려져 있었다. 가라앉는 배. 머나먼 유배 길에서 줄곧 자신의 지난 행적을 떠올려 보던 조광조에게 마지막으로 떠오른 목소리는 수수께끼의 말을 던지고 사라진 최수성의 할(喝)이었다.옛 선승들이 수행자의 망상이나 삿된 사견(邪見)을 꾸짖어 단숨에 정신을 차리도록 외치는 소리처럼 조광조를 향해 ‘가라앉는 배’라고 외친 최수성의 목소리는 줄곧 조광조의 뇌리를 뒤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가라앉는 배. 결과적으로 조광조는 최수성의 말대로 침몰하고 있었던 것이다.바로 자신이 단행한 정국공신의 개정으로 삭훈된 훈구파들의 반격으로 조광조의 배는 가라앉게 되었던 것이다.그러나 조광조는 하늘을 우러러 붉은 해를 쳐다보면서 중얼거려 말하였다. ―결과적으로 내 행동은 과격하긴 하였지만 다른 사사로운 마음은 전혀 없지 않았던가.저 하늘의 밝은 해는 거짓 없는 내 충정을 낱낱이 비추고 있지 않은가. 수레는 연주산(連珠山) 밑을 지나고 있었다. 구슬이 연하여 있는 모양이라 하여서 연주산이라 불리는 산 밑에는 영벽정(映碧亭)이란 작은 정자가 하나 있었다.일찍이 김굉필의 스승이었던 김종직(金宗直)은 이곳을 지나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연주산 위에 뜬 달은 소반 같은데 풀과 바람 나무 간 곳 없고 이슬 기운만 가득 차네. 천뭉치의 솜구름 모두 흩어지고 한 덩이 공문서(公文書) 보잘 것 없도다. 시절은 다시 깊은 가을이라 아름답긴 하지만 나그네의 회포를 오늘 밤 누가 달래줄 것인가.” 스승 한훤당의 스승이었던 김종직.문장과 경술에 뛰어나 이른바 영남학파의 종조(宗祖)가 되었던 조선조의 뛰어난 성리학자.학문적으로는 조광조의 할아버지뻘 되는 김종직이지만 정치적으로도 조광조가 이끄는 신진 사림파의 시조였던 것이다.이로 인해 죽은 후에 무오사화가 일어나 무덤이 파헤쳐져 참시를 당하는 비극의 주인공이고 보면 조광조의 유배는 신진 사림파들이 반드시 겪어야 되는 운명의 대물림인 것인가. 정몽주는 격살 당하였고,그의 제자인 김종직은 부관참시를 당하였고,또 그의 제자인 한훤당은 유배 중에 사사 당하였고,막내격인 조광조 자신은 가라앉는 배를 타고 이처럼 유배를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아,김종직이 지은 시처럼 연주산은 깊은 가을이라 핏물을 뚝뚝 듣는 듯한 만산홍엽으로 물들어 아름답지만 나그네의 깊은 회포는 그 누가 달래줄 것인가. 마침내 유배지인 능성에 도착한 조광조는 그 즉시 그곳 현감에게 인계되었다.현감은 비봉산(飛鳳山) 아래 작은 민가를 구해 놓고 시중을 들 관동을 미리 준비해 두고 있었다.다행인 것은 제자 장잠을 비롯하여 생활에 필요한 일을 도와줄 하인들이 조광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헤어질 무렵 자신을 이곳까지 무사히 호송하고 온 나장들과 일일이 손을 잡고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때가 11월 26일. 조광조가 한양에서 유배 길을 떠난 것이 11월 17일이었으니,정확히 열흘 만에 최종 목적지인 능성에 도착한 것이다.
  • 儒林(80)-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어느덧 조광조를 태운 수레는 능성에 가까워지고 있었다.‘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한양에서부터 능성까지의 거리는 758리. 능성현의 원래 이름은 이릉부리(爾陵夫里).백제의 옛 이름으로는 죽수부리(竹樹夫里),혹은 인부리(仁夫里)라 하였다.훗날 선조 때 조광조를 기리기 위해 세운 죽수서원은 백제 때의 옛 지명을 따서 지은 이름으로 이곳은 예부터 궁벽한 땅으로 알려져 있었다. 가라앉는 배. 머나먼 유배 길에서 줄곧 자신의 지난 행적을 떠올려 보던 조광조에게 마지막으로 떠오른 목소리는 수수께끼의 말을 던지고 사라진 최수성의 할(喝)이었다.옛 선승들이 수행자의 망상이나 삿된 사견(邪見)을 꾸짖어 단숨에 정신을 차리도록 외치는 소리처럼 조광조를 향해 ‘가라앉는 배’라고 외친 최수성의 목소리는 줄곧 조광조의 뇌리를 뒤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가라앉는 배. 결과적으로 조광조는 최수성의 말대로 침몰하고 있었던 것이다.바로 자신이 단행한 정국공신의 개정으로 삭훈된 훈구파들의 반격으로 조광조의 배는 가라앉게 되었던 것이다.그러나 조광조는 하늘을 우러러 붉은 해를 쳐다보면서 중얼거려 말하였다. ―결과적으로 내 행동은 과격하긴 하였지만 다른 사사로운 마음은 전혀 없지 않았던가.저 하늘의 밝은 해는 거짓 없는 내 충정을 낱낱이 비추고 있지 않은가. 수레는 연주산(連珠山) 밑을 지나고 있었다. 구슬이 연하여 있는 모양이라 하여서 연주산이라 불리는 산 밑에는 영벽정(映碧亭)이란 작은 정자가 하나 있었다.일찍이 김굉필의 스승이었던 김종직(金宗直)은 이곳을 지나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연주산 위에 뜬 달은 소반 같은데 풀과 바람 나무 간 곳 없고 이슬 기운만 가득 차네. 천뭉치의 솜구름 모두 흩어지고 한 덩이 공문서(公文書) 보잘 것 없도다. 시절은 다시 깊은 가을이라 아름답긴 하지만 나그네의 회포를 오늘 밤 누가 달래줄 것인가.” 스승 한훤당의 스승이었던 김종직.문장과 경술에 뛰어나 이른바 영남학파의 종조(宗祖)가 되었던 조선조의 뛰어난 성리학자.학문적으로는 조광조의 할아버지뻘 되는 김종직이지만 정치적으로도 조광조가 이끄는 신진 사림파의 시조였던 것이다.이로 인해 죽은 후에 무오사화가 일어나 무덤이 파헤쳐져 참시를 당하는 비극의 주인공이고 보면 조광조의 유배는 신진 사림파들이 반드시 겪어야 되는 운명의 대물림인 것인가. 정몽주는 격살 당하였고,그의 제자인 김종직은 부관참시를 당하였고,또 그의 제자인 한훤당은 유배 중에 사사 당하였고,막내격인 조광조 자신은 가라앉는 배를 타고 이처럼 유배를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아,김종직이 지은 시처럼 연주산은 깊은 가을이라 핏물을 뚝뚝 듣는 듯한 만산홍엽으로 물들어 아름답지만 나그네의 깊은 회포는 그 누가 달래줄 것인가. 마침내 유배지인 능성에 도착한 조광조는 그 즉시 그곳 현감에게 인계되었다.현감은 비봉산(飛鳳山) 아래 작은 민가를 구해 놓고 시중을 들 관동을 미리 준비해 두고 있었다.다행인 것은 제자 장잠을 비롯하여 생활에 필요한 일을 도와줄 하인들이 조광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헤어질 무렵 자신을 이곳까지 무사히 호송하고 온 나장들과 일일이 손을 잡고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때가 11월 26일. 조광조가 한양에서 유배 길을 떠난 것이 11월 17일이었으니,정확히 열흘 만에 최종 목적지인 능성에 도착한 것이다.˝
  • [건강칼럼] 피부 평온을 깨는 ‘팽창의 흔적’ 튼살

    ‘미스’와 ‘미시’가 헷갈리는 시대,특히 감탄스러운 것은 ‘미시’들이다.결혼해 출산까지 했음에도 오히려 미스들보다 더 탄력있는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그러나 “그것도 여름 전까지”라며 자괴감을 토로하는 미시들이 많다.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불어난 체중은 열심히 운동해 ‘정리’한다지만 고민스러운 미시의 흔적 ‘튼살’까지 지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팽창선조’라 불리는 튼살은 말 그대로 피부가 팽창해 선이 나타난 증상이다.임신 중 부신피질호르몬이 늘면서 피부 내 콜라겐섬유와 엘라스틴섬유가 변성돼 나타나는 일종의 흉터.성장기 여성 4명 중 1명,임산부의 75∼90%가 이런 튼살을 경험한다.아랫배와 허벅지,그리고 종아리에 처음엔 붉은 빛의 울퉁불퉁한 조직으로 나타났다가 방치하면 하얗게 변한다.그러나 감쪽같이 치료가 되므로 걱정은 접자. 붉은 기가 도는 초기에는 붉은 색에만 반응하는 ‘V-star레이저’를 이용해 다른 조직을 거의 손상시키지 않고 치료할 수 있다.통증도 없고,효과도 즉시 나타나는데,한달에 4∼6회 정도 치료하면 된다.이미 하얗게 변한 경우에는 ‘V-star레이저’와 ‘색소형성 레이저’를 병행하면 치료 효과가 높다.레이저로 피부 조직을 매끄럽게 한 뒤 하얗게 탈색된 피부조직을 회복시키는 방법이다.이후 ‘어븀야그 레이저’를 이용해 남아 있는 자국을 제거하면 치료 끝. 레이저 치료법은 진피의 섬유세포를 자극해 피부의 재생을 돕고,탄력을 높여 탄탄하고 매끈한 피부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출산 후 늘어난 복부가 문제라면 고주파를 이용해 피부의 콜라겐 재합성을 촉진하는 ‘서마지 리프트’가 제격이다.이쯤에서 경고 하나-튼살을 어찌 해보겠다고 의사 처방없이 스테로이드연고를 장기간 사용하는 것은 금물임. 튼살은 무리한 체중 증가가 부르는 고통의 아우성이다.물론 치료법은 많지만,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꾸준한 체중관리로 피부의 고요를 지켜가는 것이다.무엇이든 깨지면 소리가 난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4)내 마음의 등잔불빛(上)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4)내 마음의 등잔불빛(上)

    그리움이 그리워 등잔을 닦습니다 불을 켜면 고요히 무릎 꿇는 시간들 영혼의 하얀 심지를 가만 가만 돋웁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음이 먼저 글썽이던 기다림을 먹고 크는 불꽃의 동그란 집 잊었던 사유의 뜰이 다시 환히 빛납니다. 그 위로 한 우주가 나직히 둘리는 밤 여린 몸짓으로 바람을 타이르며 등잔은 지친 가슴마다 별을 내어 겁니다. ●산부인과 의사의 외도 ‘등잔박물관’ 한국등잔박물관에서 펴낸 ‘등잔’이란 도록에 실려 있는 정수자의 시다.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 258의 9번지에 있는 ‘한국등잔박물관’을 방문한 것은 지난 15일이었다.며칠 전 약속한 오전 10시에 맞추기 위해 문 밖에서 5분 정도를 기다렸다.등잔박물관 뜰에는 한 노인이 나무와 꽃들에게 물을 뿌리고 있었다. 한 달 넘게 비가 내리지 않는 건조한 날씨여서 새순이 돋는 나무들이나 봄꽃들의 색깔이 갈증을 머금고 있었다.노인은 천천히 물을 뿌리면서 울타리 너머 방문객을 두어 번 바라보았다. 잠시 뒤 할머니 한 분이 앞치마를 두른 채 집 뒤쪽에서 마당으로 걸어왔다.필자가 할머니께 인사를 건네며 관장님을 뵈러 왔다고 알렸다.할머니가 물을 뿌리고 있는 노인 곁으로 다가서서 필자의 방문을 말씀드리는 것 같았다.마침 물 뿌리는 일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할머니께서 문을 열어 주신다.물 뿌리던 그 할아버지가 뵙기로 약속한 한국등잔박물관 김동휘 관장이었다. 10시 조금 지나서부터 등잔에 관한 말씀을 듣고,박물관에 진열된 등잔들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서 두 시간 가량의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다.선생께서는 1940년 세브란스 의과대학을 마친 뒤 1981년 은퇴하신 산부인과 전문의 면허 5번의 의사였다. 문:올해 연세가 얼마나 되셨는지 질문드려도 되겠습니까? 金:우리 내외 나이를 합치면 169년을 살아온 셈입니다.우리는 늘 함께 해왔기 때문에 나이도 합쳐서 먹는 셈이지요.그러는 것이 좋더군요. 문:저도 심심유곡 빈한한 농촌 가정에서 태어나 1950년대 소년기를 거치는 동안 등잔 불빛의 아득한 정취를 먹고 오늘에까지 다다랐습니다.관장님께서 수많은 민속품들 가운데서 유달리 등잔에 애정을 품게 되었고,마침내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고의 한국등잔박물관을 세우시기까지의 내력을 듣고 싶습니다. 金:전기라는 괴물이 우리 생활을 점령하게 되었지요.그러자 수천년 동안 우리 선조들이 누려온 온유하고 유구한 삶의 역사가 하루 아침에 돌변하는 변화를 겪었지요.말이 변화이지 사실은 참담한 추방이고,소외이며,회복하기 불가능한 상실이자 파괴였단 말입니다.전기가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조급하고 나쁜 버릇이 또 재발한 때문이지요.어제까지 그토록 소중하게 우리 삶을 지켜주던 등잔을 아궁이 속에 던져 넣어버리거나 고물장수에게 주어버린 것입니다.이게 무슨 문화를 지닌 민족의 태도라 할 수 있습니까.실은 그런 이유보다는 내 어머니의 모습과 마음을 내 안에 영원히 모셔두기 위해서 등잔들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등잔불에 어른거리는 어머니 모습 문:등잔불과 어머니는 한국인의 마음 속에 아로새겨진 그리움의 공통분모이기도 합니다만 관장님께서 간직하고 계신 마음의 등잔불빛은 어떻게 빛났을지 궁금합니다. 金:등잔을 모으다 보니 우리 어머니 생각이 점점 간절해지더군요.대여섯 살 적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지요.그때는 초저녁부터 잠자리에 들었지요.언제나 어머니 곁에서 잠이 들었어요.한참 자다 깨어보면 어머니는 등잔불 곁에서 바느질을 하고 계셨어요.아,어머니가 곁에 계시는구나 싶어지면 한없이 편안해지고 행복감에 휩싸여서 다시 단잠에 빠질 수 있었어요.그러다가 또 깨어보면 어머니는 아직도 바느질을 하고 계셨어요.가만히 어머니를 쳐다보면 등잔불이 가물거립니다.등잔불이 흔들리기도 합니다.희미한 불빛이 어두워서 어머니는 등잔불 바짝 가까이 다가 앉아서 촘촘히 바느질을 하기 때문에 어머니 콧김에 등잔불이 흔들리는 것이지요.그러나 결코 등잔불은 꺼지지 않습니다.어머니는 그냥 옷을 만드는 바느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뭐랄까요,오랜 수도생활을 한 수도승의 참선과도 흡사한 침선(針禪)이라고나 할까.그런 깊은 경지에까지 몰입해 있어서 산 사람의 일반적인 숨쉬기와는 어딘가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 어린 나는 어머니께 그만 주무시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어머니,이젠 좀 주무세요 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가 않았습니다.등잔불빛에 비친 어머니 얼굴이 너무나 예뻤기 때문에 그 말을 잃어버린 것입니다.등잔불을 마주하고 앉아 계신 어머니 얼굴의 절반은 참으로 은은하고 감동적인 실루엣으로 처리되고 나머지 절반은 등잔불빛을 받아 뭐라 형용할 수 없이 곱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니까 더욱 예뻤겠지요.지금도 눈을 감으면 어머니가 떠오릅니다.등잔불 하나하나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십니다.내 마음의 등잔불은 꺼지지 않습니다.거기엔 어머니가 계십니다. ●케케묵은 옛것 아닌 새로운 문화의 바탕 문:등잔불이 곧 어머니라는 말씀은 불이(不二)라는 말과 선다일미(禪茶一味)라는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어머니라는 말이 지닌 불멸성,상징성이 등잔불의 역사성과 하나가 되어 전깃불 아래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잔잔하고 지워지지 않는 문화의 새벽빛을 보게 해줄 것 같습니다. 金:등잔에는 조상들의 삶이 들어 있습니다.등잔이 만들어져서 쓰여지고 사람들과 숨쉬어온 생활 가치가 깃들어 있다는 얘기지요.문화에는 그 나라의 총체적인 힘과 역사가 집약되어 나타나는 데 등잔은 전깃불이 들어오기 이전 수천년 동안 우리 민족의 힘과 역사를 길러주고 지켜온 문화의 모체였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불을 켜는 도구라는 의미보다 더 인간적인 상징성이 큽니다.등잔불은 그냥 빛나는 것이 아니예요.가만 바라보고 있으면 사람을 불빛 속으로 데리고 들어갑니다.불빛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립고 아름다운 세계가 보입니다.새로운 세계가 펼쳐집니다.등잔은 결코 케케묵은 옛것이 아니라 느끼고 깨닫는 만큼 새로워지게 하는 문화의 바탕입니다. 문:등잔불빛과 느림의 관계를 말씀하시려고 하는군요. 金:맞습니다.요즘 사람들은 새 것을 너무 좋아해요.신(新),뉴(New),새로움 등을 강조하다보니 전통과 정체성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단 말입니다.새로운 것을 좇는 삶은 자칫 심성이 천박해지고,생활이 낭비와 방탕으로 흘러 세상에 큰 부담을 끼치고 독소가 될 수도 있겠지요. 옛 것의 값어치는 시간의 값어치라기보다 역사를 진지하게 이해하는 데서 오는 기쁨이자 만족입니다.빨리 변화하는 삶을 추종하다 보면 자신의 모습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남은 것은 껍데기 뿐일것입니다. 무엇보다 등잔불은 평등합니다.동서남북 사방을 힘 자라는 데까지 평등하게 비추지요.밝다는 것보다는 빛이라는 것,어둠을 밀어내거나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어둠과 공존하려는 평등성 같은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등잔박물관 안내 문의:(031) 334-0797, 인터넷주소 : http://www.deungjan.or.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4)내 마음의 등잔불빛(上)

    그리움이 그리워 등잔을 닦습니다 불을 켜면 고요히 무릎 꿇는 시간들 영혼의 하얀 심지를 가만 가만 돋웁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음이 먼저 글썽이던 기다림을 먹고 크는 불꽃의 동그란 집 잊었던 사유의 뜰이 다시 환히 빛납니다. 그 위로 한 우주가 나직히 둘리는 밤 여린 몸짓으로 바람을 타이르며 등잔은 지친 가슴마다 별을 내어 겁니다. ●산부인과 의사의 외도 ‘등잔박물관’ 한국등잔박물관에서 펴낸 ‘등잔’이란 도록에 실려 있는 정수자의 시다.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 258의 9번지에 있는 ‘한국등잔박물관’을 방문한 것은 지난 15일이었다.며칠 전 약속한 오전 10시에 맞추기 위해 문 밖에서 5분 정도를 기다렸다.등잔박물관 뜰에는 한 노인이 나무와 꽃들에게 물을 뿌리고 있었다. 한 달 넘게 비가 내리지 않는 건조한 날씨여서 새순이 돋는 나무들이나 봄꽃들의 색깔이 갈증을 머금고 있었다.노인은 천천히 물을 뿌리면서 울타리 너머 방문객을 두어 번 바라보았다. 잠시 뒤 할머니 한 분이 앞치마를 두른 채 집 뒤쪽에서 마당으로 걸어왔다.필자가 할머니께 인사를 건네며 관장님을 뵈러 왔다고 알렸다.할머니가 물을 뿌리고 있는 노인 곁으로 다가서서 필자의 방문을 말씀드리는 것 같았다.마침 물 뿌리는 일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할머니께서 문을 열어 주신다.물 뿌리던 그 할아버지가 뵙기로 약속한 한국등잔박물관 김동휘 관장이었다. 10시 조금 지나서부터 등잔에 관한 말씀을 듣고,박물관에 진열된 등잔들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서 두 시간 가량의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다.선생께서는 1940년 세브란스 의과대학을 마친 뒤 1981년 은퇴하신 산부인과 전문의 면허 5번의 의사였다. 문:올해 연세가 얼마나 되셨는지 질문드려도 되겠습니까? 金:우리 내외 나이를 합치면 169년을 살아온 셈입니다.우리는 늘 함께 해왔기 때문에 나이도 합쳐서 먹는 셈이지요.그러는 것이 좋더군요. 문:저도 심심유곡 빈한한 농촌 가정에서 태어나 1950년대 소년기를 거치는 동안 등잔 불빛의 아득한 정취를 먹고 오늘에까지 다다랐습니다.관장님께서 수많은 민속품들 가운데서 유달리 등잔에 애정을 품게 되었고,마침내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고의 한국등잔박물관을 세우시기까지의 내력을 듣고 싶습니다. 金:전기라는 괴물이 우리 생활을 점령하게 되었지요.그러자 수천년 동안 우리 선조들이 누려온 온유하고 유구한 삶의 역사가 하루 아침에 돌변하는 변화를 겪었지요.말이 변화이지 사실은 참담한 추방이고,소외이며,회복하기 불가능한 상실이자 파괴였단 말입니다.전기가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조급하고 나쁜 버릇이 또 재발한 때문이지요.어제까지 그토록 소중하게 우리 삶을 지켜주던 등잔을 아궁이 속에 던져 넣어버리거나 고물장수에게 주어버린 것입니다.이게 무슨 문화를 지닌 민족의 태도라 할 수 있습니까.실은 그런 이유보다는 내 어머니의 모습과 마음을 내 안에 영원히 모셔두기 위해서 등잔들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등잔불에 어른거리는 어머니 모습 문:등잔불과 어머니는 한국인의 마음 속에 아로새겨진 그리움의 공통분모이기도 합니다만 관장님께서 간직하고 계신 마음의 등잔불빛은 어떻게 빛났을지 궁금합니다. 金:등잔을 모으다 보니 우리 어머니 생각이 점점 간절해지더군요.대여섯 살 적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지요.그때는 초저녁부터 잠자리에 들었지요.언제나 어머니 곁에서 잠이 들었어요.한참 자다 깨어보면 어머니는 등잔불 곁에서 바느질을 하고 계셨어요.아,어머니가 곁에 계시는구나 싶어지면 한없이 편안해지고 행복감에 휩싸여서 다시 단잠에 빠질 수 있었어요.그러다가 또 깨어보면 어머니는 아직도 바느질을 하고 계셨어요.가만히 어머니를 쳐다보면 등잔불이 가물거립니다.등잔불이 흔들리기도 합니다.희미한 불빛이 어두워서 어머니는 등잔불 바짝 가까이 다가 앉아서 촘촘히 바느질을 하기 때문에 어머니 콧김에 등잔불이 흔들리는 것이지요.그러나 결코 등잔불은 꺼지지 않습니다.어머니는 그냥 옷을 만드는 바느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뭐랄까요,오랜 수도생활을 한 수도승의 참선과도 흡사한 침선(針禪)이라고나 할까.그런 깊은 경지에까지 몰입해 있어서 산 사람의 일반적인 숨쉬기와는 어딘가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 어린 나는 어머니께 그만 주무시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어머니,이젠 좀 주무세요 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가 않았습니다.등잔불빛에 비친 어머니 얼굴이 너무나 예뻤기 때문에 그 말을 잃어버린 것입니다.등잔불을 마주하고 앉아 계신 어머니 얼굴의 절반은 참으로 은은하고 감동적인 실루엣으로 처리되고 나머지 절반은 등잔불빛을 받아 뭐라 형용할 수 없이 곱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니까 더욱 예뻤겠지요.지금도 눈을 감으면 어머니가 떠오릅니다.등잔불 하나하나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십니다.내 마음의 등잔불은 꺼지지 않습니다.거기엔 어머니가 계십니다. ●케케묵은 옛것 아닌 새로운 문화의 바탕 문:등잔불이 곧 어머니라는 말씀은 불이(不二)라는 말과 선다일미(禪茶一味)라는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어머니라는 말이 지닌 불멸성,상징성이 등잔불의 역사성과 하나가 되어 전깃불 아래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잔잔하고 지워지지 않는 문화의 새벽빛을 보게 해줄 것 같습니다. 金:등잔에는 조상들의 삶이 들어 있습니다.등잔이 만들어져서 쓰여지고 사람들과 숨쉬어온 생활 가치가 깃들어 있다는 얘기지요.문화에는 그 나라의 총체적인 힘과 역사가 집약되어 나타나는 데 등잔은 전깃불이 들어오기 이전 수천년 동안 우리 민족의 힘과 역사를 길러주고 지켜온 문화의 모체였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불을 켜는 도구라는 의미보다 더 인간적인 상징성이 큽니다.등잔불은 그냥 빛나는 것이 아니예요.가만 바라보고 있으면 사람을 불빛 속으로 데리고 들어갑니다.불빛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립고 아름다운 세계가 보입니다.새로운 세계가 펼쳐집니다.등잔은 결코 케케묵은 옛것이 아니라 느끼고 깨닫는 만큼 새로워지게 하는 문화의 바탕입니다. 문:등잔불빛과 느림의 관계를 말씀하시려고 하는군요. 金:맞습니다.요즘 사람들은 새 것을 너무 좋아해요.신(新),뉴(New),새로움 등을 강조하다보니 전통과 정체성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단 말입니다.새로운 것을 좇는 삶은 자칫 심성이 천박해지고,생활이 낭비와 방탕으로 흘러 세상에 큰 부담을 끼치고 독소가 될 수도 있겠지요. 옛 것의 값어치는 시간의 값어치라기보다 역사를 진지하게 이해하는 데서 오는 기쁨이자 만족입니다.빨리 변화하는 삶을 추종하다 보면 자신의 모습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남은 것은 껍데기 뿐일것입니다. 무엇보다 등잔불은 평등합니다.동서남북 사방을 힘 자라는 데까지 평등하게 비추지요.밝다는 것보다는 빛이라는 것,어둠을 밀어내거나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어둠과 공존하려는 평등성 같은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등잔박물관 안내 문의:(031) 334-0797, 인터넷주소 : http://www.deungjan.or.kr˝
  • [산악문학인 안재홍의 산오르記] 강화 고려산

    주 5일 근무 시대를 맞아 산을 찾는 인구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이에따라 서울신문 주말 매거진 ‘We’에선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의 산을 찾아가는 산행 페이지 ‘안재홍의 산오르記’를 신설했습니다.필자 안재홍(52)씨는 산학문학가로,주말마다 산을 찾는 등산 애호가입니다. 고려산(高麗山·436m) 정상 부근에 진달래가 한창이다.강화도 읍내에서도 바라보이는 상봉에서 낙조봉까지 온통 진달래로 붉게 물들어 있다.참꽃으로도 불리는 진달래는 전국 어느 산에나 흔한 것이기는 하다.허나,고려산 진달래는 유난히 붉다. 마니산 그늘에 가려 숨겨져 있던 고려산이 진가를 발하고 있다.지난해부터 ‘진달래 축제’가 열리는 것이다.상봉에 군 시설물이 있어 정상에는 오를 수 없으나 상봉에서 낙조봉까지 동서로 늘어진 산줄기 어디나 진달래가 흐드러져 있다.상봉 아래 북사면과 낙조봉 북서사면 부근의 진달래는 압권이다.간간이 잡목을 잘라내어 조망이 뛰어나고,시원스럽게 펼쳐지는 강화도 일원의 풍경이 일품이다.저수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농경지 풍경과 그 뒤로 보이는 석모도와 강줄기 같은 바다에 반사되는 햇빛이 눈부시다.산상의 화원을 이루고 있는 진달래 밭과 함께 이름 그대로 낙조봉(落照峰)의 조망은 고려산에서 으뜸이다.고려산은 한국을 대표하는 진달래 명산이라고 하는 화왕산·영취산·무학산·비슬산 등과 겨뤄도 결코 뒤지지 않는 진달래 명산이다. 고려산의 원래 이름은 오련산(五蓮山)이다.고구려 장수왕 4년(416년)에 고려산을 답사하던 인도의 천축조사가 이 산 상봉 오련지(五蓮池,5개의 연못)에 오색 연화가 핀 것을 보고 오색(白·黑·赤·黃·靑) 연화를 불심으로 날려보내,연화가 낙하한 곳에 가람을 세웠으니,백련사·흑련사(묵련사)·적련사(적석사)·황련사·청련사라 이름하였다. 백·흑·적·황색 연화가 떨어진 곳에는 가람을 지었으나 청색 연화는 조사가 원하던 곳이 아닌 곳에 떨어졌으므로 원하던 곳에 ‘원통암’을 세우고,청색 연화가 떨어진 곳에 청련사를 지었다.그리고 산 이름도 오련산이라 하였다.현재 고려산에는 백련사·청련사·적석사와 원통암 등 세 개의 사찰과 한 개의 암자가 있다. 고려산의 사찰 중에 청련사의 분위기가 뛰어나다.남향에 자리한 사찰은 전등사에 뒤지지 않을 만큼 그윽하고 멋스러운 풍광을 자랑한다.강화는 고려왕조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도읍을 강화로 옮겨 개경(開京,지금의 개성)으로 환도하기까지 38년(1932∼1207,고종 19∼원종 11) 동안 임시 수도였던 곳이다.이 때 ‘고려산’이란 이름을 얻어 지금까지 고려(高麗)와 이름과 한자도 같이 불리고 쓰인다. 고려산 산중에 크고 작은 다섯 개의 우물이 있다.불교가 우리 나라에 들어온 4세기 이전에 축조된 정상의 큰 연못은 하늘에 제를 올리는 제단으로 사용되었고,작은 연못 네 개는 연개소문이 군사 훈련 때 말에게 물 먹이던 곳이다.이 산 북쪽에서 태어난 연개소문이 치마대(馳馬臺)에서 군사를 훈련시키고 오련지(五蓮池)에서 말에게 물을 먹였다 한다.지금도 세 개의 연못과 한 개의 샘이 이 산에 있다고 한다.지난해에 큰 연못이 있던 오련지를 상봉 아래 복원하여 진달래축제에 맞춰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백련사에서 상봉으로 오르는 길 옆에 있다. 고려산 산중의 사찰은 모두 차들이 올라갈 수 있게 도로가 나 있다.정상의 군 시설물이 이용하는 길이 따로 나 있고,백련사 오름 길은 진달래축제에 맞춰 확장·포장을 했다.세 개의 사찰로 오르는 길은 고려산 등산의 들머리 역할을 하고 있다.시멘트 포장길을 걷는 고통만 없다면,야트막한 산이면서 진달래가 산상의 화원을 이루고 오르면 조망이 뛰어난 고려산을 이 봄에 한 번 오를 일이다.가족과 함께,연인과 함께! ●볼거리·먹거리 고려산의 사찰 순례와 등산만으로도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강화도는 유적의 고장이다.고려와 조선조의 유적들이 섬 전체에 산재해 있다.강화대교를 건너면 왼쪽에 만나게 되는 강화역사관을 보고 광성보·덕진진·초지진·마니산을 보는 게 일일 관광코스다.또 하나는 고려궁지·강화산성 북문·오읍약수터·강화지석묘·보문사·전등사를 도는 코스가 있다. 등산코스는 고려산 외에 마니산,봉천산,혈구산 그리고 석모도의 해명산이 있다.강화읍내 중앙시장 골목에 있는 우리옥의 백반이 먹을 만하다.백반 4000원.단체산행한 이들이 종종 이용한다.대로변에 공영주차장이 있다.강화도 특산물인 순무로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또 포구 주변의 횟집에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가는길 강화읍에서 신점·외포리 방향으로 가는 군내버스가 40분 간격으로 있다.부근리 삼거리에서 하차한 후 백련사 도로를 따라 오르면 된다.강화에서 고촌2리(적석사 들머리)행 버스를 이용하여 청련사 입구 하차,적석사는 고촌2리 하차.하루 7회.강화 개인택시 전화 (032)934-7898. 강화로닷컴 http://www.ganghwaro.com/goryeosan ˝
  • 화성 정조御水 관광상품화

    조선조 정조대왕이 마시던 어수(御水)가 관광상품화된다. 경기도 수원시는 TV 인기드라마 대장금 촬영지인 화성행궁과 정조대왕(1752∼1800)의 영정을 모신 화령전 사이에서 발굴된 어정(御井)의 수질이 식수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21일 밝혔다. 2000년 행궁복원 과정에서 발굴된 어정은 그동안 방치돼오다 최근 우물안의 퇴적물을 퍼낸 뒤 수원 상수도사업소에 수질검사를 의뢰한 결과,일반세균·암모니아성 질소·대장균·맛·색도·냄새 등 전체 46개 항목에서 모두 합격통보를 받았다. 시는 대대적인 우물 청소와 여러 차례 수질검사를 거쳐 화성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시음토록 하는 등 올 상반기중 관광상품화하기로 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 [씨줄날줄] 後苑의 사회학/정인학 논설위원

    창덕궁의 후원(後苑)인 비원의 옥류천 일대가 다시 일반에 공개된다고 해서 세인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옥류천 일대는 병자호란이 일어나던 해인 1636년 인조 14년에 만들어진 후원으로 한국 정원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인류 문명과 함께 등장한 정원은 역사와 문화,민족성과 시대 정신 그리고 기후와 풍토에 따라 모습을 달리해 왔다.단순히 수목을 심거나 조경시설을 갖춘 토지가 아니라 시대적 문화 창출의 현상으로서 총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의 정원은 신선설(神仙說)을 바탕에 깔고 있다.커다란 호수를 파고 물 가운데 산을 만들어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을 연출하려 애썼다.건조지대에서 문명을 일궜던 고대 이집트는 궁궐 가운데 거대한 연못을 만들고 나일강 물을 끌어들여 정원을 꾸몄다.로마 정원은 유럽형 정원을 대표하는 이탈리아 정원의 모델이 됐다.중앙의 분수를 비롯,건물 벽에 붙어있는 조각에서 물이 나오는 벽천(壁泉)에 인공폭포 그리고 곳곳을 화려한 대리석으로 장식한 게 특징이다. 한국의 정원은 세 단계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삼국시대엔 중국의 신선설의 영향을 받았다.연못을 만들고 못 가운데 봉래산을 상징하는 섬을 만드는 식이었다.고려의 정원은 송나라의 영향으로 호화로웠다.연못가에 정자를 짓고 인공폭포도 만들었다.희귀한 정원수를 구해 심고 기암괴석으로 주변을 장식하는 식이었다고 한다.조선조 중엽에 이르면 우리 고유의 정원문화가 형상화된다.그러니까 25년 만에 다시 일반에 공개되는 옥류천 일대가 만들어질 무렵인 셈이다. 한국의 정원문화는 자연주의로 요약된다.사람을 자연의 일부로 보아 정원을 꾸미되 자연 본래의 모습을 고스란히 살려 나간다.정자 하나를 세우더라도 주변의 지형 조건과 하나 되어 동화되도록 배려해 인위적인 색채를 탈색시킨다고 한다.창덕궁의 후원인 비원이 바로 한국 정원문화의 완성이라는 것이다.비원은 다른 후원은 물론 사대부 집안 정원의 모델이 되었음은 물론이다.창덕궁 후원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한국적 자연주의의 구체화된 형상인 셈이다.가뜩이나 억지와 견강부회가 넘쳐나는 요즘이다.봄날이 가기 전에 서둘러 비원 한번 다녀올 일이다.˝
  • 창덕궁 옥류천 25년만에 개방

    일부 지역만 접근할 수 있던 창덕궁 후원(비원)의 관람이 옥류천까지 확대되고 수도권에 소재한 동구릉 등 4개 조선왕릉에 산책로가 조성돼 새달 1일부터 일반에 전면 개방된다. 문화재청은 문화유산에 대한 일반인의 접근을 높이고 활용을 돕는다는 차원에서 창덕궁 후원의 12곳과 동구릉(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서오릉(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융건릉(경기도 화성시 태안읍)·김포장릉(경기도 김포시 풍무동) 등 조선왕릉의 산책로를 추가 개방한다고 20일 밝혔다. 이 가운데 창덕궁은 조선조 3대 임금인 태종5년(1405)에 창건돼 ‘동관대궐’ 또는 ‘동궐’로 불렸던 이궁.1976년까지는 시민들에게 전면 개방됐으나 훼손이 심해지면서 1976∼1979년 공개를 중단한 채 대대적인 복원사업을 시행한 후 후원의 일부 지역을 비공개로 보존해 왔다.창덕궁 후원에서 새로 개방되는 곳은 창덕궁내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임금의 휴식공간인 옥류천을 비롯해 궁궐내의 유일한 부채꼴 정자인 관람정,존덕정,폄우사,취규정,취한정,소요정,청의정,태극정,농산정,청심정,빙천 등 12곳.특히 옥류천 지역은 1979년 이래 25년 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곳이다. 조선 왕릉도 오래 전부터 수도권 시민의 산책 장소로 활용돼 왔으나 80년대 중반부터 산림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 능역만 공개한 채 출입을 제한해 왔다. 문화재청은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창덕궁 후원의 옥류천 지역은 우선 1일 3회 매회 50∼60명씩 인터넷 등을 통한 예약을 받아 관람하도록 했다.동구릉 등 4개릉도 야생조수류 보호와 산림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매주 토·일요일과 공휴일만 개방한다.동절기와 산불 위험시기인 12월1일부터 다음해 4월30일까지는 창덕궁과 조선왕릉은 현재 이용하고 있는 관람지역만 개방하기로 했다. 문화재청은 이번 개방에 앞서 지난해 10월부터 왕릉 외곽의 산책로를 정비하고 산책로 주변에 우리고유 수종인 산철쭉·진달래 등 2000여주를 심었다.특히 동구릉 자연학습장에는 우리나라의 고유수종인 팽나무 등 60종 8100여주가 자라고 있다. 김성호기자 kimus@˝
  • 中, 경협 대가로 ‘核양보’ 요구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의 대북경제 지원 결정은 ‘다목적 카드’의 의미가 있다.북한의 최대 원조국인 중국은 북한의 경제개혁을 지원,개방을 유도하고 이를 북핵 문제 해결에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깔고 있다. 2000년과 2001년의 김정일 위원장 방중 때와 달리 북한측도 이번엔 ‘경제구조 개선’에 상당한 관심을 표명했다는 것이 중국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구조적 결함을 안고 있는 북한경제가 기존의 석유와 식량지원 등 일회적 차원으로는 회생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지한 까닭이다. 김 위원장이 후진타오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부에 신의주특구 개발의 불가피성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런 맥락에서 북·중 양국은 북한의 ‘7·1 경제개혁 조치’ 지원이라는 명분에 주목했다는 것이 중국 소식통들의 전언이다.북한의 체면을 살리면서 북한식 개혁·개방에 중국의 개혁 노하우를 접목시키겠다는 의미이다. 그동안 중국측은 원칙적으로 북한의 개혁ㆍ개방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와 권유를 해왔다.하지만 북한 지도부 내부에서는 중국식 개혁·개방이 체제 붕괴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높아 주저해온 것도 사실이다. 김 위원장의 방중을 계기로 친(親) 시장주의로 한걸음씩 옮기면서 중국의 지원을 통해 구조적 개혁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김 위원장의 2001년 상하이(上海) 방문이 신의주 경제특구 개발계획과 ‘7·1경제관리 개선조치’로 이어졌듯,이번 방중이 새로운 ‘경제개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소 동북아연구실 치바오량(戚保良) 연구원은 “중국은 오랜 동맹국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경제 개발을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며 “중국 개혁ㆍ개방 경험이 북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경제의 구조적 개혁과 관련,가장 유력한 방안이 신의주 경제특구 개발과 동북 3성이나 단둥시와 연계하는 방안이다.랴오닝,지린,헤이룽장 등 노후 공업기지로 변한 동북 3성 재개발에 중국은 약 610억위안(약 9조 1500억원)을 쏟아붓는 100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북한 소식에 밝은 한 소식통은 “북한이 신의주 특구를 단독으로 개발하기보다는 중국 변경도시인 단둥과 연계해 개발하는 방안을 중국측에 제의했다.”며 “중국측도 동북 3성 재개발사업과 관련해 북한측 제의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이같은 지원에 대한 반대급부로 중국측이 핵문제에 대한 전향적 자세를 북측에 종용했을 개연성도 높다.이와 관련,정부의 한 소식통은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지난해 10월 북한을 방문한 뒤 좀 더 일찍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려 했으나,중국측이 핵문제에 진전된 입장이 없으면 굳이 오지 말라고 해 방중이 늦춰졌다.”고 밝혔다. oilman@seoul.co.kr˝
  • [시론] 김정일 중국에 간 까닭은?/고유환 동국대 북한학 교수

    ”이번 북·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핵문제해결을 위한 대화 지속을 강조했고,북한은 미국측이 적대적 태도를 바꾼다면 북한도 핵개발을 포기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18일부터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비공식 방문중이다.우리가 그의 방중을 주시하는 것은 이를 통해서 현안인 북핵문제 해결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가 여부와 함께,개혁·개방정책 가속화 차원의 새로운 정책구상을 국제사회에 밝힐 것인가에 대한 관심 때문일 것이다. 북한은 2001년 1월1일을 세기전환의 기점으로 삼아 21세기를 ‘김정일 세기’로 규정하고,‘새로운 사고방식과 관점’을 강조하면서 정책전환의 계기로 삼고자 했다.김 위원장은 그해 1월15일부터 20일까지 중국 상하이 푸둥지역을 둘러보고 “천지가 개벽했다.”면서 중국식 개혁·개방모델을 원용한 경제발전 전략을 구체화하고자 했다.그러나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함께 추진한 미국의 대북 강경책으로 이를 구체화하지 못했다. 9·11테러 이후 미국은 국가목표를 반테러와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에 두고,북한을 ‘악의 축’ 또는 ‘불량국가’로 규정하고 대북 압박을 지속했다.그러자 북한은 2002년 하반기부터 경제관리 개선조치와 신의주특구 설치 등 점진적 개혁·개방정책으로 북한의 변화 의지를 국제사회에 과시하고 미·일 등 적대국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고자 했다.그러나 신의주특구 설치에 대한 중국의 견제와 함께 ‘선 개혁·개방,후 미국으로부터의 체제보장’ 노선이 북한 핵개발 의혹이 다시 불거짐으로써 중대한 기로에 처하게 됐다. 북한이 2002년 7월1일부터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취할 때는 대외관계 확장을 염두에 두고 대내 경제개혁과 특구 개방을 시작했다.그러나 신의주특구 지정,북·일 정상회담,미국특사 수용 등 일련의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고 2차 북핵위기가 불거지면서 북한의 국제적 고립은 심화됐다.지난해 4월부터 미국 중심의 국제사회는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으로 대북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외화 수입원인 무기수출,마약밀매 등 비정상적 거래를 막는 ‘선택적 저지’를 통한 사실상의 대북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유일한 버팀목은 냉전시대 혈맹인 중국이다.2차 핵위기 발생 이후 1년반 동안 북한이 그럭저럭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내부 경제개혁에 따른 일시적 활력과 중국의 경제지원,남한의 인도적 지원 때문일 것이다. 한편,중국이 북핵문제에 대한 외교를 강화하는 까닭은 북핵해결이 곧 중국의 안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최근 미·일이 ‘북한위협론’을 내세우고 미사일방어(MD)체제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또 북한이 핵개발을 강행할 경우 일본의 핵개발 등 동북아에서의 핵개발 경쟁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따라서 중국 입장에서는 핵,미사일 등 현재의 ‘북한문제’는 미래의 ‘중국문제’이기에 방관할 수 없는 처지다. 흔히 북·중관계를 ‘순망치한(脣亡齒寒)’관계라고 한다.따라서 중국은 핵문제 해결과정에서 북한의 내부폭발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중국은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서 북한의 핵개발 포기를 종용하면서 경제지원 약속과 체제유지를 위한 후견자 역할을 자임할 가능성이 높다.중국은 미국이 요구한 북한에 대한 핵포기 설득 등의 성과를 바탕으로 미국에도 적극적 북핵문제 해결 자세를 촉구할 것이다. 19일 열린 북·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핵문제해결을 위한 대화 지속을 강조했고,북한은 미국측이 적대적 태도를 바꾼다면 북한도 핵개발을 포기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 것으로 알려진다.김 위원장의 방중을 계기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빨라질 전망이다.총선 이후 권력재편 등 국내문제로 어수선하지만,북핵해결 과정과 이후 새롭게 형성될 동북아 신질서 구축 등 나라밖에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 교수˝
  • 北·中 ‘核코드’ 조율 구 찾나

    |베이징 오일만특파원|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중국 4세대 지도부의 정점인 후진타오(胡錦濤) 당총서기와 19일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가졌다.김 위원장의 2001년 5월 방중 이후 3년 만의 양국 정상회담이다.이번 정상회담이 어떤 결과를 낳느냐에 따라 북·미 대결로 치달았던 북핵 문제와 북한 경제의 개혁·개방 등에 중대한 돌파구가 마련되면서 향후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상당한 변화가 예고된다. ●북핵·경제개혁 돌파구 중국 지도부가 김 위원장의 방중을 두번이나 공식적으로 초청한 만큼 의제 선정 등에 이미 상당한 물밑 협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김 위원장은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철회할 경우 핵개발을 포기할 것”이라는 북한의 의지를 후 주석에게 전달했다고 중국의 한 외교소식통이 밝혔다. 또 김 위원장이 후진타오 당총서기를 비롯해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상임위원장,쩡칭훙(曾慶紅) 국가부주석 등 새로 출범한 중국의 4세대 지도부와 신뢰를 쌓는다는 의미도 적지 않다. 미국과의 화해없이 북한의 안보와 경제난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김 위원장이 이번 방중에서도 특유의 ‘광폭정치’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 위원장은 이날 베이징에서 서남쪽으로 40㎞ 떨어진 허베이성(河北省) 한춘허(韓村河)의 시범단지를 방문,중국 농촌 현대화 실태를 시찰한 것으로 알려졌다.저녁엔 인민대회당에서 후 주석 주최의 만찬에 참석했다. ●개혁·개방으로 이어질까 중국의 대북 경제지원을 통한 북한의 경제난 극복도 주요 의제로 보인다.미국의 경제봉쇄로 최악의 경제난에 처한 북한은 이번 방중을 계기로 중국과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회복한 뒤 핵심 현안인 핵 문제와 경제난을 직접 매듭짓기 위해 베이징행을 결행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 위원장은 특히 2001년 단행한 ‘7·1경제관리 개선조치’의 모멘텀을 살리기 위한 중국의 ‘대담한’ 경제지원을 역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북한이 미련을 접지 못하고 있는 ‘신의주특구 개발’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중국의 야심찬 동북 3성 개발과 개점 휴업 상태인 신의주특구 개발을 묶는 신사고가 북·중간 물밑에서 논의됐을 경우 북한의 개혁·개방을 지원한다는 명목에서 새로운 ‘그랜드 플랜’이 도출될 가능성도 있다. ●첩보전 방불케 한 비밀행보 중국 당국은 김 위원장의 신변안전을 위해 이동 시 가능하면 무장경찰 부대가 있는 곳이나 비밀 지하통로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중국 당국도 관계자들에게 ‘함구령’을 내린 채 김 위원장을 태운 특별열차가 이날 오전 베이징역에 도착할 것이라는 정보가 노출되자 도착 역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주중 한국대사관과 북한 대사관도 대사 등 극소수 직원을 제외하곤 전혀 눈치채지 못한 분위기다. oilman@seoul.co.kr˝
  • 문경새재 대축제 ‘맨발로 고개넘어 전통차 한잔’

    다음달 1일부터 9일까지 경북 문경시 일원에서 큰 잔치가 열린다.‘제1회 문경새재 대축제’다.그동안 문경지역에서 산발적으로 열렸던 각종 축제가 이 기간에 집중 개최된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전통찻사발 축전’.전통찻사발 전시회를 비롯해 문경수석 명품전,전통다례 시연,선조 도공 추모제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문경읍 도자기 전시관 일대에서 펼쳐진다.도자기 코너와 장승깎기 체험코너 등도 마련돼 참석자들이 직접 도자기와 장승을 만들 수 있다.전통찻사발과 도자기 명품을 할인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도예명장 3명의 작업장을 방문,장작불로 도자기를 굽는 과정도 볼 수 있다. 산악스포츠 행사로 구성된 ‘산악체전’도 열린다.‘문경새재 맨발로 걷기대회’ ‘새재기 등산대회’ ‘전국 클레이 사격대회’ ‘패러글라이딩 대회’ ‘산악자전거 대회’ 등이 개최되고 다양한 산악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산악영화제’가 계획돼 있다. ‘한시백일장’ ‘관광마라톤대회’ ‘씨름대회’가 개최되고 고려대 등 전국 16개 대학 응원단이 힘찬 율동으로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대학응원단 경연대회’가 펼쳐진다. 진남휴게소에서 고모산성까지 4㎞에 이르는 옛길을 걸어보는 ‘영남대로 옛길 문화탐방’과 ‘명승사진전’ ‘수석사진전’ ‘야생화전’ 등이 열리고 ‘향토음식 맛자랑대회’에서는 백두대간 특산물로 만든 음식을 맛볼 수 있다.문경시 관계자는 “관광객 체험 프로그램을 크게 늘린 것이 이번 축제의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문경 한찬규기자 c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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