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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佛 마피아의 김형욱 살해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이달 초 우선조사 대상으로 선정한 7건 가운데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 사건’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 주말 일부 일간지·월간지가 보도한 데 따르면 김 전 부장은 1979년 당시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 전신)의 공작에 따라 거주지인 미국에서 프랑스 파리로 유인됐으며, 그곳에서 중정의 청부를 받은 마피아(조폭)에게 살해됐다는 것이다. ‘김형욱 실종’에 관해서는 그동안 여러가지 시나리오가 제시됐으며 이번에 보도된 피살 과정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는 이번 보도가 여느 때보다 훨씬 구체적인 데다 현시점에서 사건의 실상을 밝혀줄 관련인물이 적지 않게 등장했다고 판단하기에 진상 규명에 큰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이다. 보도를 종합해 보면 사건의 큰 흐름을 간접 증언해 줄 사람이 중정 및 국정원 고위간부 출신 3∼4명, 공작에 참여한 생존 중정요원 8명, 김형욱을 파리로 유인하는 데 동원된 여성 연예인, 파리 현지의 유학생, 그리고 ‘김형욱 회고록’을 집필한 김경재 전 국회의원 등 줄잡아 10명이 넘는다. 우리는 공작에 관여하거나 동원된 중정요원·일반인을 범죄자로 매도할 생각은 없다.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잔악한 권력 앞에 동참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당시의 국가관·애국관이 지금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을 수 있음도 고려할 부분이다. 따라서 그 사건에 개입한 개개인에게 이 시점에서 책임을 묻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사자들도 이제는 자신이 관련된 부분을 솔직하게 밝혀 진상 규명에 적극 협조하기 바란다. 우리는 ‘김형욱 사건’의 실마리가 제시됨에 따라 위원회가 할 일도 분명해졌다고 본다. 보도에 등장하는 개개인의 신원을 확인하고 그들을 만나 설득해, 진술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김형욱 파리 피살설’의 진상 파악이 전반적인 과거사 진상 규명의 효율적인 출발점이 되리라고 기대한다.
  • “가정의 動産문화재도 꼭 장갑끼고 만지세요”

    ‘동산문화재 관리 이렇게 하세요’ 국보나 보물이 아니더라도 집안에 걸려 있는 옛 그림 한 점, 선조 때부터 애지중지 아끼던 백사기 그릇 한 점이라도 파손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할 때가 있다. 손을 대자니 잘못하면 더 망가질 것 같고, 그대로 두자니 안타깝기 때문이다. 이같은 고민을 해소해줄 매뉴얼 ‘동산문화재 보존과 관리’를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함께 발간했다. 매뉴얼은 동산문화재를 병들게 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보관하고 다뤄야 하는지 세세한 요령을 담았다. 이를 테면 도자기를 제외한 일반 유물의 경우 만질 때는 꼭 장갑을 끼어야 한다든가, 유물을 보관할 때는 재질에 맞는 온도와 습도를 유지토록 한다든가, 포장시 유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재질을 사용한다 든가 등등. 종이문화재, 섬유·가죽문화재, 목공예문화재, 석조문화재 등을 구분해 놓아 필요한 정보를 쉽게 찾아보도록 했으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용어를 사용했다. 문화재청은 이 책을 개인소장자와 각 기관 문화재 담당자들에게 배포할 계획이며, 일반인들을 위해 문화재청 홈페이지(www.ocp.go.kr)를 통해 원문을 서비스할 예정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우리동네 이야기] 양화동

    [우리동네 이야기] 양화동

    “버들꽃 눈은 가득차려고 하고(楊花雪欲漫)/복사꽃 붉어 타는 듯하네(桃花紅欲燒)/저녁강 그림 수를 놓았어라(繡作暮江圖)/서쪽하늘에는 지는 해가 남았네(天西餘落照)” 조선시대 선조때 문과에 급제한 차운로(車雲輅)가 읊은 ‘양화석조(楊花夕照)’라는 한시다. 행정구역상으로 옛 양천현 남산면 양화리였던 양화나루 주변의 석양풍경을 노래한 시다. 주변에 버드나무가 많아 양화나루로 불린 것이 오늘날 영등포구 양화동(楊花洞)의 어원이 됐다. 양화동은 행정동인 양평2동에 속해 있는 법정동이다. 양화동은 ‘신선이 노닐던 섬’이라는 뜻을 담은 선유도(仙遊島)로 유명하다. 선유도는 양화대교 중간에 있는 하중도(강위에 있는 섬)로 조선시대 화가인 겸재 정선이 세 편의 진경산수화를 남긴 곳이기도 하다.1978년 정수장이 들어서면서 옛모습이 파괴됐으나 2002년 정수장 구조물을 재활용한 공원으로 꾸미면서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 있다. 선유도공원은 양화대교뿐만 아니라 양평동에서 길이 469m의 무지개모양 다리인 ‘선유교’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시내에서 영등포방향 양화대교를 타면 승용차로 진입할 수 있으나 주차장이 10여면에 불과해 도보로 가는 것이 낫다. 전망대, 선유정, 시간의 정원, 선유나루, 열린마당, 만남의 숲 등 여러 가지 테마공원이 있다. 공원에는 색색 조명이 설치되어 환상적인 분위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영등포구에 유일하게 현존하는 산인 ‘쥐산’도 양화동에 있다. 먹이를 앞에 두고 있는 쥐가 금방이라도 도망갈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의미에서 쥐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해발 50.5m의 야산으로 정상에서 한강, 남산, 북한산, 인왕산, 상암 월드컵축구장 등이 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지만, 입산금지 상태다. 쥐산 아래에는 높이 18m, 폭 98m의 ‘양화인공폭포’가 설치되어 있어 여름철에 시원한 눈요깃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 폭포연못에는 180개의 수중등·투광등을 설치해 황홀한 야경을 이루고 있으며, 폭포 주변에는 300여평의 녹지대가 있다. 한강시민공원의 양화지구(당산철교∼경기 김포시 전호리,11.7㎞)에서는 여름철에 요트, 고무보트, 윈드서핑 등 수상스포츠 활동이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어린이놀이터, 운동장, 유람선선착장, 양화꽃동산 등이 설치되어 있어 시민들의 쉼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儒林(284)-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284)-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이퇴계는 이처럼 옥순봉을 지정함으로써 ‘단양팔경’을 완결할 수 있었는데, 여기에는 재미난 에피소드가 전해오고 있다. 원래 옥순봉은 단양의 소속이 아니고 청풍의 괴곡리였다. 아슬아슬한 경계선상에 있었으나 청풍땅이 분명하였으므로 이퇴계는 직접 청풍부사를 찾아가 옥순봉이 있는 괴곡리를 양보해줄 것을 청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거절당하는데, 이퇴계는 빈손으로 돌아오면서 그 경계에 다음과 같이 각명(刻銘)하였다. “단구동문(丹邱洞門)” 단구는 단양의 옛 이름이고, 이 각명의 뜻은 ‘신선으로 통하는 문’이라는 뜻이었으므로 훗날 청풍부사가 남의 땅에 군계를 정한 자가 누구인가를 알아보려고 옥순봉을 찾았다가 다름 아닌 이퇴계가 쓴 글씨임을 뒤늦게 알고 옥순봉을 단양에 양보함으로써 마침내 ‘단양팔경’이 완결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이퇴계는 비록 9개월밖에 머물지는 않았지만 단양이 신선이 사는 동네이며, 신선으로 통하는 문으로까지 극찬하며 사랑하였다. 오늘날 단양에는 이퇴계의 친필이 두 점 남아 있다. 하나는 천변의 바위 위에 새긴 ‘탁오대(濯吾臺)’란 각자이고, 또 하나는 그 옆 바위 위에 새겼던 ‘복도별업(復道別業)’이란 글자이다. 이 두개의 유물은 댐 공사로 인해 수몰되어 물에 잠길 위험이 있자 수습되어 지금은 따로 전시되어 있는데,‘자신을 씻는 바위’라는 뜻의 탁오대란 문장과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 속에서 도를 이룬다’는 뜻을 지닌 ‘복도별업’이라는 각자를 통해 이퇴계가 이곳에 자연풍경을 얼마나 사랑하였던가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일찍이 초나라의 굴원(屈原)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강에 빠져 자살하였는데, 그는 죽기 전 ‘어부사(漁父辭)’란 비장한 노래를 남긴다. 죄 없이 추방당하고 자살을 결심하고 강가를 초췌한 모습으로 거니는 모습을 보고 어부가 ‘무슨 일인가’하고 묻자 굴원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온 세상 모두가 흐려져 있는데/나 혼자만이 맑고 깨끗했으며/뭇 사람들 모두가 취해 있는데/나 혼자만이 맑은 정신 깨어 있어서/그만 이렇게 추방당한 것이니라.” 그리고 굴원은 결연히 죽을 결심을 말하자 어부는 빙그레 웃으며 돛대를 올리고 사라지기 전에 그 유명한 말을 남긴다. “창랑의 물이 맑을 때라면 이 내 갓끈을 씻을 수 있고/창랑의 물이 더러울 때라면 이 내 발이나 씻어보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어부의 이 말은 세상이 맑을 때에는 갓끈을 씻어 입신양명에 힘쓸 수 있으나 세상이 혼탁할 때는 우선 자신의 발을 씻어 세속을 떠나라는 충고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퇴계가 바위에 ‘탁오대’라고 새겼던 것은 굴원의 어부사를 인용한 것으로 자신도 이제는 갓끈을 씻지 아니하고 자신을 닦고 연마함으로써 오로지 속세를 버리고 학문에 전념하겠다는 결의를 드러내고 있음인 것이다. 실제로 이퇴계는 이곳 단양에서의 결심을 그대로 실천에 옮긴다. 퇴계는 49세 되던 명종 4년에 군수사임장을 감사에게 올린 것을 시작으로 70세 되던 해인 선조 3년 9월에 최후 사장을 올리기까지 21년 동안에 무려 53회의 사퇴원(辭退願)을 내고 자신의 호처럼 ‘물러나 계곡에 머물며 (退溪)’‘자신을 닦고(濯吾)’‘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도를 닦는데(復道別業)’ 정진하였던 것이다.
  • [논술이 술술] 시사 키워드/호주제 폐지

    [논술이 술술] 시사 키워드/호주제 폐지

    헌법재판소가 호주제의 위헌 여부를 심리한 끝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관련 법률 조항이 개정될 때까지만 호주제의 효력을 인정한다는 사실상의 위헌 결정이다. 대법원과 법무부는 이미 호주제를 폐지하기로 하고 민법의 관련 조항에 대한 개정 작업에 착수,1인 1적제를 근간으로 하는 새 신분등록제를 마련해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다. 민법 개정안이 통과될 때까지 호주제는 시한부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인 전통을 이어 받은 우리는 세계에서 드물게 호적 제도를 유지해 온 나라였다. 호주제 폐지는 남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늦은 감이 없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여론이다. 그러나 호주제 폐지가 가족 개념을 붕괴시킨다는 이유에서, 비록 폐지하기로 결정됐다고 해도 폐지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곳곳에서 들린다. 호주제도 폐지에 찬성하고 반대하는 명분과 이유를 살펴본다. ●호주제, 호적이란 호주제는 가(家)를 규정함에 있어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을 구성하는 제도를 말한다. 민법 제4편(친족편)에 호주제의 근간이 규정되어 있으며 절차법으로 호적법이 있다. 호주제도가 규정하는 바에 따라 국민의 출생, 혼인, 사망, 입양, 파양 등 모든 신분 변동 사항을 시간별로 기록한 공문서가 호적이다. 편제 방식은 하나의 호적에 가족 모두의 신분 변동 사항이 기재되며 편제의 기준은 ‘호주’이다. 즉 가족원 모두 호주를 중심으로 상호 관계를 기재한다. ●“호주제 폐지 마땅하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산하 호주제폐지운동본부는 호주제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 호주가 사망하면 아들-미혼인 딸-처-어머니-며느리 순으로 호주승계 순위를 규정하고 있다. 아들을 1순위로 하는 이 제도는 아들이 딸보다 더 중요하다는 법감정을 내포해 남성이 모든 여성에 우선하며 아들을 낳아서 ‘대를 이어야’한다는 남아선호사상을 부추기고 있다. 둘째, 혼인한 여성의 남편호적 입적 및 자녀의 아버지 호적 입적은 여성을 남성의 예속적인 존재로 규정한 것이다.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는 혼인과 가족생활의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자녀라도 호적을 함께 할 수 없다. 전 남편의 자녀를 데리고 재혼을 하면 자녀의 성을 재혼한 남편의 것으로 변경할 수 없어 혼란을 겪는다. 셋째, 남편은 처의 동의없이 혼인 외 자녀를 입적할 수 있지만 처는 남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규정은 부부평등권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아동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넷째, 자녀의 성과 본을 아버지의 성과 본으로만 인정한다는 규정은 모계혈통을 무시하는 여성차별의 핵심적인 조항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부계혈통만을 인정하도록 법적으로 강제해 놓은 나라는 없다. ●헌법불합치 결정 사유 우리 헌법은 혼인의 남녀동권을 혼인질서의 기초로 선언함으로써 가부장적인 봉건적 혼인질서를 용인하지 않고 있고 양성평등과 개인의 존엄은 혼인과 가족제도에 관한 최고의 가치규범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호주제는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로서, 호주승계 순위, 혼인 시 신분관계 형성, 자녀의 신분관계 형성에 있어서 정당한 이유없이 남녀를 차별하는 제도이다.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머니와 누나들을 제치고 아들이, 또한 할머니, 어머니를 제치고 유아인 손자가 호주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혼인을 하더라도 남자는 자신의 가(家)에 그대로 머물거나 법정분가하면서 새로운 가의 호주가 되는 반면, 여자는 자신의 가를 떠나 남편이 속한 가 또는 남편이 호주로 된 가의 가족원이 될 뿐이다. 부부는 혼인관계의 대등한 당사자임에도 처의 부에 대한 수동적·종속적 관계가 정착된다. 모와 자녀가 현실적 가족생활대로 법률적 가족관계를 형성하지 못하여 비정상적 가족으로 취급됨으로써 겪는 불편과 고통은 이혼율과 재혼율이 점차 높아지는 상황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사회문제이다. 숭조(崇祖)사상, 경로효친, 가족화합과 같은 전통사상이나 미풍양속은 얼마든지 계승, 발전시킬 수 있으므로 이를 근거로 호주제의 명백한 남녀차별성을 정당화하기 어렵다. ●“호주제는 계속 유지돼야 한다” 정통가족제도수호범국민연합에 따르면 호주제가 폐지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는 이렇다. 호주제란 가(家)라는 개념이 선후대를 통하여 계속되고, 이를 바탕으로 자녀에게 선조의 성씨를 붙이며 제사를 지내고, 연결된 일족을 일가(一家)로 부르는 제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가 간의 연결 고리에 해당하는 사람을 호주라 이름지은 까닭으로 이러한 가족제도 전체를 호주제로 부르고 있으나, 이는 가족공동체 제도에 다름 아니다. 호주제를 폐지한다는 것은 호주를 통하여 연결되던 집안과 족보와 종중 및 선산과 시제를 모두 폐지하는 것이며, 법률상으로는 가(家), 호주 가족이라는 용어를 삭제하는 것이다. 더 이상 일가(一家)라는 말은 존재할 수 없게 되며, 심지어는 가족이라는 말의 뜻조차 모호하게 된다. 예를 들어 폐지론자 중에는 첩, 사실상 동거자, 동성애 동거자 등을 모두 가족으로 본다는 이도 있다. 가계계승을 남계로 하는 데에는 과학적으로도 이유가 있다. 자녀는 부모의 유전자를 반씩 받으나, 손자녀는 조부모의 유전자를 4분의1씩이 아니라 최대 2분의 1, 최소 0의 범위 내에서 확률상으로만 받게 되어 손자녀부터 조부모의 유전자를 가지지 않는 경우가 생기고, 멀어지면 결국 선후대는 유전자 상으로 연결되지 않게 된다. 그러나 남계혈통의 Y염색체만은 1만대를 내려가더라도 계속 유지되어 과학적으로 남계혈통의 근거가 되고, 검색도 가능하다. 손성진기자 sonsj@seoul.co.kr
  • 울돌목 관광명소로 거듭난다

    충무공 이순신의 명량대첩지로 유명한 울돌목이 관광명소로 탈바꿈한다. 울돌목은 전남 해남과 진도를 잇는 진도대교 사이 폭 253m의 바다로, 충무공이 1597년 9월 정유재란(선조 30년) 때 이곳의 빠른 물살(유속 13노트)을 이용해 판옥선 12척으로 왜선 133척을 격파한 곳이다. 해남군은 문내면 학동리 진도대교 앞 6만여평에 지난 88년부터 전라 우수영 관광단지를 만들고 있다. 국비 절반과 군비·민자 등 253억원을 2008년까지 쏟아 붓는다. 연말까지 청소년 수련원 건설을 마무리짓는다. 이미 명량대첩 전시관과 강강술래 전수관이 문을 열었고 유족공원에는 충무공 이순신장군 동상과 어록비가 세워졌다. 또 울돌목 바다속에 이물을 설치해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쇠사슬 조형물도 전시됐다. 이곳에는 연간 관광객 30여만명이 찾고 있다. 또한 해남군은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울돌목 전적지를 내세워 경남 진해시 소재 해군본부 교육사령부를 유치하기 위한 범 군민운동을 펴고 있다. 진도군도 군내면 녹진리 일대 3만여평에 녹진관광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이곳에는 국내 최대 높이인 20m짜리 충무공 동상을 세운다. 관광 및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달 말 공모작을 선정하고 오는 3월에 군비 15억원을 들여 공사에 들어가 내년 상반기까지 마무리 짓는다. 또한 군은 2007년까지 이 곳에 민자를 유치해 가족호텔과 수상레저 시설을 확충할 예정이다. 한편 해양수산부는 2009년까지 251억원을 들여 울돌목에 국내 처음으로 상업성이 있는 조류발전소를 세우기로 했다. 오는 4월까지 1000㎾급(400여 가구분) 시험용 상용 발전터빈을 만들어 내년 6월까지 울돌목에 설치한다. 2007년부터 시험운용을 하고 2009년부터 9만㎾급(3만 6000가구분) 발전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미 2002년 10월 진도대교 교각 밑에 설치한 10㎾급 시험용 조류발전 터빈은 시험가동에 성공했다. 진도·해남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 모란시장의 먹을거리

    [뒷골목 맛세상] 모란시장의 먹을거리

    ■ 돼지 부속물 ‘장터 뷔페’ 지금 50,60쯤의 나이에 접어든 이들이라면,1960년대 무렵의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삽화 한 장면을 아직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몇 학년 국어교과서인지조차 까마득히 잊었지만,5일장이 선 시골장터에서 중년의 사내가 눈보라를 맞으며 하염없이 서 있는 삽화이다. 삽화 속 사내는 눈보라를 맞으면서 어머니를 기리고 있는 중이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바로 5일장을 돌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난장에서 보따리 장사를 하여 아들을 대학까지 공부시킨다. 그리고 미처 아들의 성공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뜨고,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기려 난장에 서서 온몸으로 눈보라를 맞고 있다는 줄거리다. ●닷새마다 돌아오는 어른·아이 모두의 축제 그 중년 사내의 삽화가 나에게 언제까지라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사내야말로 나와 한 치도 틀림없는 자화상이기 때문이다.‘아름다운 얼굴’이라는 자전적인 작품에는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장터의 풍경이 나온다. ‘우리 식구는 모두 장돌뱅이였던 셈이다. 어머니는 어물전의 한 귀퉁이에서 길바닥에 거적때기를 깔고 그 위에 역시 거적때기만한 차일을 친 채, 김이며 미역, 멸치, 마른 새우 등의 해산물을 팔았다. 내가 갓난아이였을 때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서 해종일 어머니와 함께 장날을 보냈지만, 조금 커서 네댓살이 되었을 때만 해도 어머니의 등을 벗어나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장돌뱅이가 되어 장터를 헤집고 다녔다. 장돌뱅이에게 있어서, 닷새마다 한번씩 돌아오는 장날이란, 어른 아이 막론하고 축제일 수밖에 없었다. 장날이 돌아오는 나흘 내내 기껏해야 휴지 나부랭이나 회오리바람에 날리곤 하던 쓸쓸한 빈터와 기둥만 앙상하던 빈 가게들이, 장날이 되면 하루아침에 갑자기 사람들이 들끓는 싸전이며 어물전, 포목전, 유기전, 옹기전, 잡화점 등으로 변하고, 노점 음식점들마다 돼지머리와 순대가 산더미처럼 쌓이거나 가마솥이 넘치도록 팥죽이 끓어대는 요술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그런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장돌뱅이들은,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목이 쉬도록 시골 사람들을 불러 하루 벌어 닷새를 먹고 살 돈을 마련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장터의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면서 물건을 훔치거나 아니면 혹시 길에 떨어진 동전 한닢이라도 줍기 위해 해종일 악머구리 끓듯 해댔다. 어린 장돌뱅이의 벌이는 그다지 신통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싸전 근방을 기웃거리며 기회를 엿보다가 어른들의 다리 틈으로 쌀을 한 주먹씩 훔쳐내어 주머니를 가득 채울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었다. 되밀이꾼에게 들켜서 되밀이로 얻어맞거나,‘이 문댕이새끼, 손모가지를 콱 짤라불기 전에 쌀 못 놔?’‘아이고, 전 어떤 장돌뱅이년 구녕에서 나온 새끼여?’ 하는 시골 아낙네들의 막된 욕지거리야 다반사였고, 조금도 개의할 바가 아니었다. 어린 장돌뱅이들은 저만큼 도망치면서 ‘히잇, 니에미 X이다아’ 하고 대거리를 해대는 것으로 그만이었다.’ 어린 장돌뱅이에서 50여년이 훌쩍 지나버린 나이에 이르러서도, 어쩌다 5일장에만 가면 나는 장터 특유의 축제 분위기에 사로잡혀 자신도 모르게 흥분하고 만다. 그리하여 몇 시간이고 좋이 장터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아들에게 한만을 잔뜩 남기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기리기도 한다. 수도권 일대에 조선조부터 유명한 5일장으로는 광주의 사평장, 송파장, 안성의 읍내장, 교하의 공릉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빛이 바랬다. 대신에 내가 즐겨 찾는 5일장은 성남 모란장이다. 평소에는 주차장으로 사용하다가 4일과 9일,14일과 19일,24일과 29일, 이렇게 5일 간격으로 장이 열리는 모란장은 우선 3000평이 넘는 넓은 장터여서 볼거리나 먹을거리가 많기도 하지만, 서울에서 지척이면서도 기이하게 전혀 도회지의 때가 묻지 않은 시골장터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니, 좀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그런 시골장터의 분위기 속에는 누군가에게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의 들짐승 혹은 모질게 살아남는 여름 한낮의 잡초 같은 거친 생명력이 깔려있다. 거친 생명력은 자칫 수상쩍은 기운마저 감돌 정도이다. 이를테면 어디 한군데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채 집안의 우환노릇이나 하면서 거느릴 가족도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역마살의 작은 아버지나 외삼촌 같은 느낌이 없지 않다. 어딘지 모르게 불온하고 어수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살붙이의 정이 가는 식이다. 그런 모란장의 분위기는 어쩌면 성남시 자체에서 태생적으로 연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회지의 때 묻지 않은 시골장터 분위기 도대체 성남이 어떻게 만들어진 도시인가.1960년대에 박정희식 값싼 노동력 위주의 경제개발에 희생되어 실농한 농민들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청계천 등지에 무허가 판잣집을 짓고 살다가, 판잣집에서도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한 채 이번에는 철거민이 되어 광주시 중부면의 허허벌판으로 내몰려 만든 소위 광주대단지의 ‘달나라 별나라’가 시초 아니던가. 먹고 살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나라에서 준다는 20평의 땅에 혹하여 지금의 은행동 일대에 ‘달나라 별나라’를 만들고,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 눈이 뒤집힌 임산부가 자신이 낳은 아이를 삶아먹는 파천황의 굶주림 끝에, 마침내 ‘광주폭동’을 일으킨 비극의 땅이 아니던가. ‘광주폭동’은 작가 윤흥길씨에 의해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라는 작품으로 재현되었다. 이 작품에는 ‘안동 권씨’에 대학까지 나와 출판사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오로지 내 집을 마련해 보겠다는 일념으로 광주단지에 까지 오게 된 주인공이 주로 철거민들을 중심으로 한 데모대를 피해 도망치다가 자칫 데모대의 물결에 휩쓸려 들게 되는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빗속에서 사람들이 경찰하고 한참 대결하는 중이었죠. 최루탄에 투석으로 맞서고 있었어요. 그런데 잠시 지켜보고 있는 사이에 장면이 휘까닥 바꿔져 버립디다. 삼륜차 한 대가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가지고는 그만 소용돌이 속에 파묻힌 거예요. ■ 술값만 내면 양은 맘껏 데몰 피해 빠져나갈 방도를 찾느라고 요리조리 함부로 대가리를 디밀다가 그만 뒤집혀서 벌렁 나자빠져 버렸어요. 누렇게 익은 참외가 와그르르 쏟아지더니 길바닥으로 구릅디다. 경찰을 상대하던 군중이 돌멩이질을 딱 멈추더니 참외 쪽으로 벌떼처럼 달라붙습디다. 한 차분이나 되는 참외가 눈깜짝할 새 동이 나버립디다. 진흙탕에 떨어진 것까지 주워서는 어적어적 깨물어 먹는 거예요. 먹는 그 자체는 결코 아름다운 장면이 못되었어요. 다만 그런 속에서도 그걸 다투어 주어 먹도록 밑에서 떠받치는 그 무엇이 그저 무시무시하게 절실할 뿐이었죠. 이건 정말 나체화구나 하는 느낌이 처음으로 가슴에 팍 부딪쳐 옵디다. 나체화를 확인한 이상 그 사람들하곤 종류가 다르다고 주장해 나온 근거가 별안간 흐려지는 기분이 듭디다. 내가 맑은 정신으로 나를 의식할 수 있었던 것은 거기까지가 전부였습니다.’ ●농·공·축·수산물 없는게 없는 만물상 ‘나체화’의 성남시가 2004년 12월 말 현재 97만 명을 넘어 100만 명이라는 초읽기에 들어간, 나라 안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도시가 되었다. 만일 그대가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만나고 싶다면, 그리하여 그대 또한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나체화’를 느끼고 싶다면, 그대는 지금 당장 모란장으로 오라. 모란장 어디에서건 그대는 너무 쉽게 아홉 켤레의 사내와 나체화를 만나게 될 터이다. 만일 그대가 설 명절을 맞아도 돌아갈 고향이며 가족이 없는 떠돌이라면, 더더욱 망설이지 말고 모란장으로 오라. 와서 그대 또한 기꺼이 벌거벗은 채 나체화 속으로 들어가라. 지하철 8호선과 분당선이 만나는 모란역에서 5번 출구를 나와 20m 쯤 걸으면 길쭉한 직사각형 형태의 모란장 입구가 보인다. 성남이나 분당행 시내버스를 타서 모란역에서 내려도 마찬가지다. 또한 모란역 곁에는 시외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전국의 어디에서건 성남행 시외버스를 타도 마찬가지다. 모란장 입구라고 해서 딱히 무슨 표지판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각종 꽃이며 난이나 동백꽃 같은 화분을 길바닥에 늘여놓은 꽃전이 입구인 셈인데, 꽃전을 지나면 쌀이며 보리, 콩, 조, 수수, 율무 같은 갖가지 잡곡을 파는 잡곡전이 나오고, 당귀며 황기, 인삼, 감초 같은 약초에서부터 지네며 뱀, 심지어 굼벵이까지 파는 약초전이 나오고, 할머니들의 고쟁이 같은 내복에서부터 누비옷이며, 버선, 양말, 양장, 신사복, 점퍼 등을 파는 의류전, 신발전, 고등어, 갈치, 대구, 새우, 꽁치, 삼치, 굴, 동태에서 아구며 가오리 등 온갖 생선을 파는 생선전, 무며 배추, 상추, 시금치에서 사과, 배, 바나나, 곶감, 귤을 파는 야채전을 지나면 드디어 먹거리를 파는 음식전이 시작된다. 아니, 잠깐만 음식전을 모른 척 지나치자. 음식전 옆에는 활어전이 있는데, 주로 붕어며 잉어, 누치, 가물치, 장어, 새우, 자라, 미꾸라지 등 살아 있는 민물고기들이 펄떡펄떡거리고 있다. 활어전을 지나면 고추전이 나오고 다음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값이 싸서 1,2만원짜리도 있다는 각종 강아지를 파는 애견전이 나오는데, 장터의 맨 끝에는 흑염소며 닭, 오리, 토끼, 고양이 등을 파는 가금전이 있다. 모란장을 대강 둘러 보았으면, 다시 먹을거리를 파는 음식전으로 돌아가자. 젊은 남정네가 아내며 어린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있거나, 늙은이 내외가 둘이서 사이좋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음식전에는 팥죽이며 호박죽이 양은솥 안에서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팔팔 끓고, 왕만두, 만둣국, 팥국수, 장터국수, 잔치국수, 칼국수 등이 산더미로 쌓여 있다. 그것들이 모두 2000원에서 3000원 안팎이다. 그런가 하면 옆에서는 가오리찜, 순대국밥, 손만두, 소라, 홍합, 돼지허파, 코다리찜, 돼지머리고기, 문어, 쭈꾸미, 새우 등이 역시 산더미로 쌓여 있다. 두 사람이 먹어도 넉넉할 양의 한 접시가 각각 5000원이다. 문득 가까운 어디선가 굿판이라도 벌어진 듯 둥둥 울리는 북소리와 함께 쇳내 나는 목청으로 누군가가 신명지게 품바타령을 불러대고 있다. 소리 나는 곳을 찾아가면, 만장한 구경꾼들 한 가운데에서 엿장수의 놀이판이 벌어져 있다. 그렇듯 엿장수의 놀이판 주변으로는 뷔페 중에서도 희한한 ‘쌍방울뷔페’의 ‘원주민촌’,‘무진장집’,‘대박집’,‘왕눈이’,‘막썰어집’,‘고향집’,‘은영네 대포집’ 등이 눈에 띈다. 쌍방울이란 돼지 불알을 일컫는 말로, 바로 돼지부속 고깃집들이다. ●음식도 가지가지 입맛대로 골라 포식 이 돼지부속 고깃집들은 부속의 종류에 따라 값이 다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손님의 양에 따라서 얼마를 먹든지 간에 고기 값은 무료이고, 술값만이 다르다. 이를테면 소주 한 병에 3000원, 동동주 한 잔에 1500원인 ‘돼지 잡는 날’에서는 이곳에서 도래기름이라고 부르는 이자와 지라, 콩팥, 염통 등의 돼지부속이 나오고, 소주 한 병에 5000원인 ‘쌍둥이네’에서는 지라며 콩팥, 염통 이외에도 돼지껍데기며 생고기, 새끼보, 불알 등이 더 나온다. 이렇듯 모든 돼지 부속물들이 기다란 철판 위에서 구워지고 있으면, 손님들은 술이 떨어지지 않는 한 이리저리 철판을 옮겨 다니며 얼마든지 포식할 수 있다. 뿐이랴, 바로 쌍방울뷔페 옆에는 내가 빠질 수 있냐는 듯이 왕새우구이, 민물장어, 꽁치구이, 청어구이, 꼼장어에 버섯삼겹살이며 메추리구이, 닭발, 닭똥집, 두부김치 등을 파는 ‘명희네’며 ‘옛사랑집’이 있다. 거기서 잠깐 눈을 돌리면, 커다란 가마솥에서 솔솔 단내를 풍기며 가득히 보신탕이 끓고 있는 ‘은영이네 가마솥 보신탕’이 있다. 그러나 이 보신탕은 장터 반대편 ‘영남흑염소’ 건물 주변이 대여섯 집들이 차일을 잇댄 채 줄지어 서 있다. 보신탕은 보통이 8000원, 특이 1만원이다. 만일 그대가 여기까지 모란장을 돌아 보았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대 또한 성남이라는 사연 많은 도시의 나체화 속으로 껴들어 있는 것을 알아챌지도 모른다. 그대가 낯선 사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지라 한 점을 안주로 한 병에 3000원짜리 소주를 목 안에 깊이 털어넣을 때, 아니면 엿장수들의 음담패설에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자지러지는 칠순 노파 옆에서 그대 또한 키득키득 웃어댈 때, 그대는 이미 그만큼 불온하면서도 어수룩한 살붙이의 정을 느끼며 그들과 함께 한 폭의 나체화를 만들고 있으리라. (작가)
  • 자연의 선택, 지나 사피엔스/레너드 쉴레인 지음

    ●가부장제 근원찾아 문자문명시대 이전으로 가부장제적 누습의 전형으로 비판받아온 호주제가 폐지된다고 한다. 가부장제는 우리뿐만 아니라 인류역사적으로도 뿌리깊게 자리잡아온 성차별적 사회제도이다. 더 나아가 ‘여성혐오’라는 성차별적 사회통념도 마찬가지다. 태어나 처음으로 어머니의 젖을 빨면서 어머니에 대한 사랑으로 일생을 시작하고,‘어머니’란 단어로 말문을 열기 시작하는 동물이 인간인데도 대부분의 인간사회에서 가부장제와 여성혐오가 팽배해 있다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자연의 선택, 지나 사피엔스’(레너드 쉴레인 지음, 강수아 옮김, 들녘 펴냄)는 이같은 아이러니의 비밀을 풀어줄 열쇠를 찾고자 하는 동기에서 쓰여졌다. 외과의사이면서 인류학·고고학자인 지은이는 이미 전작 ‘알파벳과 여신’에서 가부장제와 여성혐오가 지구촌에 자리잡는 데 문자의 발명과 종교의 탄생이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논증을 폄으로써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그는 애초 제기한 물음에 대한 답을 완결하지 못했다는 느낌과 함께, 여성에 대한 남성의 심술궂은 태도는 훨씬 뿌리깊은 것이라는 일부 학자들의 비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후 여성혐오와 가부장제의 근원을 찾아 문자문명의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기로 했다. 그 연구의 결실이 바로 이번 책이다. ●‘임신·출산의 주체’ 여성이 원시문화 이끌어 ‘지나 사피엔스’(Gyna Sapiens)는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에 속한 선조 여성들을 의미한다. 인류진화에서 남성보다 여성의 적응이 결정적이었다고 보고, 책 전반에 ‘현명한 남자’란 뜻의 호모 사피엔스에 대비되는 지나 사피엔스란 용어를 사용했다. 지은이는 논지를 풀어나가기에 앞서 4만년 전 최초의 태음력이 탄생하면서 호모 사피엔스가 꽃피운 원시문화의 주역이 여성, 즉 지나 사피엔스였음을 밝힌다. 여성은 번식, 즉 임신과 출산의 주체로서 진화를 이끌어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인류는 점차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이 과정을 설명하는 데 핵심 키워드로 ‘철’(Iron)과 여성의 ‘월경’이 등장한다. 신체적으로 강하지 못한 인간은 생존의 방편으로 지능이 높아지고, 이를 위해 뇌(머리)가 점점 커지는 진화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때부터 여성은 거대한 태아의 머리로 인해 출산 중 죽음의 위협에 직면한다. ●여성통해 호모사피엔스 시간·죽음개념 터득 이같은 위험은 자연스럽게 여성들이 성 충동을 멀리하고 섹스에 대한 거부권을 갖게 하지만, 거부권 행사는 여성에게 절대 필요한 철분을 얻는 길까지 막아버렸다. 월경과 출산, 수유의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철분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여성으로선 건강 유지를 위해 철분 섭취는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철분은 식물보다 동물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성분으로, 출산과 양육을 도맡았던 지나 사피엔스는 사냥을 주업무로 하던 호모 사피엔스에게 부족한 철분을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왜 여성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월경이 진화과정에서 사라지거나 축소되지 않았을까?’하는 점이다. 그리고 무언가 이같은 불리함을 상쇄할 만한 ‘선물’을 여성에게 제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나오는데, 지은이는 결국 그것은 달마다 피흘리기를 반복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시간’이란 결론을 내린다. 시간의 개념을 파악한 지나 사피엔스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도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되고, 이같은 능력은 결국 지구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포식자가 되게 한다. 그러나 시간의 자각과 함께 남성은 언젠가 죽어야 하는 유한한 운명임을 깨닫게 된다. 죽음의 공포와 더불어 여자들의 임신에 자신들이 기여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부성(父性)과 부권의 개념이 싹트고, 이는 자연스럽게 가부장제 문화의 동력이 됐다는 게 이 책의 핵심 뼈대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저자의 전작 ‘알파벳과 여신’ 저자는 책 끝머리에 ‘…지나 사피엔스’를 쓰게 된 동기가 전작인 ‘알파벳과 여신’ 출판 후, 애초 제기한 물음(가부장제와 여성혐오의 원인)에 대해 답을 완결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이번 책이 전작의 완결편인 셈이다. 따라서 그의 전작인 ‘알파벳과 여신’의 내용을 파악하고 있어야 ‘…지나 사피엔스’를 이해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알파벳과 여신’은 가부장제와 여성혐오가 문자의 발명과 종교의 탄생과 더불어 본격화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역사 기록이 시작되었던 5000년 전까지만 해도, 아니 그 이후의 로마·이집트·일본·중국·인도·그리스·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시기만 해도 그 중심엔 여신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 신격의 시대였다는 점을 밝힌다. 그리고 이는 여성의 문화적 권리와 특권을 의미하는 것이었음을 설명한다. 그러나 갑자기 모든 것이 뒤틀리는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 변화의 동력으로 서양에서 발생한 3대 유일신 종교, 즉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가 강력하게 작용한다. 이 각각의 종교는 세상에 오직 단 하나의 신격만 존재한다는 유일신 개념을 핵심 전제로 삼는 한편 그 신은 명백히 남성이었고, 여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지은이는 특히 문자는 여성성인 아니마를 희생하고 남성성인 아니무스를 강화시켰다는 가설을 세우는데, 도그마(교의, 정론)로 고착된 구약성서나 신약성서·코란 등을 대표적 예로 든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사설] 국정원 과거규명 객관성 중요하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어제 ‘김대중 납치사건’ ‘KAL 858기 폭파사건’ 등 7건을 우선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대상 사건은 대부분 현대사의 고비에서 발생해 정치·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고 그만큼이나 정보기관이 공작했다는 의혹을 받아온 사안이다. 따라서 이 의혹사건들의 진상을 밝혀냄으로써 권위주의 정권 당시의 반민주적이고 인권유린적인 폭력이 이땅에서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다만 우리가 우려하는 부분은 과거사 진상규명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런 이유에서 ‘부일장학회(현 정수장학회) 강제헌납 사건’이 우선조사 대상에 포함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부일장학회 사건에 의혹의 소지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100건 가까운 조사대상 사건의 경중을 따져 볼 때 굳이 최우선으로 선택할 만하지는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진실위원회는 결국 정수장학회 이사장인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겨냥했다는 의혹을 떠안고 출발하는 부담을 지게 됐다. 우리는 과거사 진실규명이 관련 가해자를 색출해 단죄하는 데 목표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강조한다. 진상을 밝히는 목적은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유가족의 한을 풀어주며 역사를 바로잡아 뒷날의 교훈으로 삼는 데 있다. 그러므로 진실위원회는 진상규명 작업을 하면서 객관성을 철저히 유지해야 할 것이다. 행여 정치색을 드러낸다면 진상을 파헤치더라도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리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의혹사건에 관련된 인사들도 진상규명에 적극 협조해 과거의 그늘에서 스스로 벗어나기를 기대한다.
  • [7개 과거사 진상규명] 박근혜 “의연하게 대처해 나갈것”

    [7개 과거사 진상규명] 박근혜 “의연하게 대처해 나갈것”

    국가정보원 진실위원회가 앞으로 본격조사할 과거사 7건 가운데 정수장학회 사건이 포함됨으로써 조사 방향과 정치적 의도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그 동안 여권과 언론관련 시민단체는 정수장학회와 관련, 중앙정보부가 개입해 부일장학회를 국가에 ‘강제 헌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진상 규명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장학회를 세운 박정희 대통령의 맏딸인 박근혜 대표를 겨냥한 정치적으로 악용된 과거사 규명”이라며 맞서왔다. 사안의 민감함을 반영한 듯 국정원도 정수장학회 문제를 이날 공개한 사건에 포함할지를 놓고 고심한 것으로 보인다. 전날만 해도 우선조사대상에서 제외될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았으나 이날 최종 결정된것만 봐도 그렇다. 이에 대해 전여옥 대변인도 “정수장학회의 조사 대상 포함 여부를 놓고 우왕좌왕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역사를 이긴 자의 역사로 뜯어고치려는 위험스러운 정치적 의도”라고 비난했다. ●朴대표, 이사장직 사퇴 이미 표명 다만 박 대표가 이날 “이미 지난 1일 이사회에 이사장직 사퇴 의사를 표명했고 이달 말 이사회에서 처리될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정수장학회 문제는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박 대표는 그 동안 여론에 떼밀려 이사장직을 내놓을 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법적 처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박 대표가 “그 동안 이사장직에 미련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큰 비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라고 소회를 털어놓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날 스스로 ‘표적’이 될 짐을 벗어버림으로써 한나라당이 과거사문제에 당당하게 대응하기 위한 길을 열어놓은 형국이다. 그 동안 박 대표의 정수장학회 이사장 겸직은 은근히 한나라당의 대응을 엉거주춤하게 만드는 ‘악재’였다는 점에서다. ●“국정원 조사 객관성 의심… 정면대응” 이와 관련, 박 대표는 “국정원에서 부일장학회를 우선 조사 대상으로 정한 것은 의도적이고 정파적이며 객관성도 의심스럽다.”면서 “이 문제는 국민이 지켜볼 것 이고 또 하나의 과거사가 되어서 후대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꿋꿋하고 의연하게 대처해 나가겠다.”고 정면돌파 의지를 내비쳤다. 특히 박 대표는 “지금까지 수차례 조사했는데도 결론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았다.”면서 “정부가 조사한다니 응할 수밖에 없지만 결론은 법원에서 날 것”이라며 진상 규명 과정에서 문제가 없으리라는 자신감을 보였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민청학련·정수장학회 포함

    민청학련·정수장학회 포함

    지난 1987년 115명의 목숨을 앗아간 KAL 858기 폭파사건에 대해 민·관 합동의 본격적인 진상조사가 시작된다. 민청학련·인혁당, 동백림 유학생 간첩단,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 김대중 납치, 부일장학회 강제헌납 및 경향신문 강제매각(정수장학회), 중부지역당 사건 등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3일 서울 국정원 청사에서 우선 조사 대상 7건을 발표했다. 특히 정수장학회, 민청학련·인혁당, 중부지역당 사건 등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 등 여야의 차기 대선 주자들은 물론 열린우리당 이철우,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 등 정치인들이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어 정치적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아울러 사건의 진상 규명을 둘러싸고 관련 당사자들간에 의견 대립이 심화될 경우 책임론 및 보상 논란과 함께 법적 공방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정치적·사회적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충일 위원장은 “부끄러운 역사를 감추고 싶지 않기에 진실 앞에서 고통을 가지고 이 일을 시작했다.”면서 “진실 고백과 용서 그리고 화해의 길을 통해 우리는 새 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실위원회는 향후 2년간 과거 정보기관이 개입해 조작했는지 여부에 대해 집중적인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진실위원회는 국가정보원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의혹사건 가운데 사회적으로 의혹이 큰 사건과 시민·사회단체, 유가족 등이 지속적으로 의혹을 제기한 사건을 우선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진실위원회는 또 의혹이 제기된 90여건에 대해서도 기초 조사를 바탕으로 이번 조사 진행 상황을 감안해 계속 선정해 나갈 계획이다. 한편 진실위원회는 지난해 11월2일 출범 이후 민간 조사관 10명과 민간조사지원팀 2명 이외에 국정원 직원 10명 등 민관 합동으로 조사단을 구성했으며, 그동안 12차례의 회의를 가졌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미리 가본 ‘아파트 종갓집’의 설

    미리 가본 ‘아파트 종갓집’의 설

    조상들의 신주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 딸린 종가는 대개 외진 곳에 있다. 심하게는 돌보는 후손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살지 않는 종가는 곧 생명력을 잃은 집이다. 더욱이 문화재라도 지정되면 박제된 느낌이다. 조상은 후손이 돌보지 않는 고대광실의 사당보다는 자손과 함께 숨쉬는 초옥을 더 정겨워하지 않을까. 이 시대의 대표적 주거 형태인 아파트에 조상의 신위를 모신 종가도 있다. 대유학자 율곡 이이를 배출한 덕수이씨 가문이다. 율곡 하면 강릉 오죽헌을 생각하지만 오죽헌은 율곡의 생가이지 종가는 아니다. 아파트 종가는 21세기에 변해 가는 종가의 대표적인 미래 모습임에 분명하다. 설을 며칠 앞두고 율곡의 15세손 이천용(64)씨가 지키고 있는 아파트 종가를 찾았다. 글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사진 오정식 남상인기자 oosing@seoul.co.kr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 강선마을 한 아파트에 있는 덕수이씨 종가. 솟을대문도, 세월의 이끼가 낀 대들보도 없다. 여느 아파트와 겉모습은 똑같다. 현관을 들어서자 왼쪽 벽에는 10만양병을 주장한 내용과 함께 율곡 선생을 성균관 문묘에 배향할 수 있도록 명한 교지가 표구된 채 걸려 있다. 아파트 거실 한 쪽에는 황해도 석담에 있는 옛 종가의 빛바랜 흑백사진 등이 걸려 있다. 부엌으로 들어가자 키를 넘는 장에는 잘 닦여진 유기 제기가 황금빛으로 반짝거렸다. 비로소 예사로운 집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율곡의 15세손 이천용(64) 종부 서경옥(61) 부부의 단아한 미소도 남달랐다. 부드러운 눈매가 초가지붕과 닮았다고 할까. 이씨가 현관 오른쪽 방문을 “서재 겸 사당”이라며 열어주었다. 율곡 선생과 부인 곡산 노씨의 위패를 모신 방이다.400여년 전에 만들어진 위패는 상스러운 흰빛이었다. 이씨는 “전통 한옥으로 친다면 안채 동편 뒤에 사당이 있으므로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신주를 모셨다.”고 말했다. 신주를 모시는 감실을 벽에 붙였다. 감실 둘레에는 짧은 휘장을 드리웠다. 감실 맞은편에는 컴퓨터가 놓여 있다. 클릭 한번으로 지구촌이 연결되는 첨단과 누대에 걸친 전통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이곳은 함부로 드나들 수 없도록 평소에 문을 닫아두는 곳이다. 율곡은 선생의 처가가 있는 황해도 해주시 석담에 정착했고, 수백년 동안 후손들이 그곳에서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사유재산을 한창 몰수하던 1947년 14대 종손 이재능(79년 작고)씨가 율곡의 신주와 교지를 품에 안고 월남했다. 이씨는 불천지위(不遷之位·통상 4대까지만 제사를 지내는 유교 관례에서 벗어나 후손들이 영원히 제사를 받드는 신위)를 비롯해 한해 10여차례의 제사를 받들고 있다고 했다. 예전 같으면 봉제사와 함께 제수를 장만할 재산도 상속받았겠지만 그는 아무 유사없이 제사만 물려받았다.‘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 밥은 굶어도 조상 제사는 지낸다. 그는 “일산에 자리잡은 이유는 1시간 거리인 황해도 종가와 가깝고 율곡 할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와 지척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설 차례에는 출가한 딸 내외와 종친회 몇 사람이 찾는다. 종가를 찾는 문중의 숫자도 많이 줄었지만 “조상을 섬기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대유학자의 집안이니 차례상에 오르는 제수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율곡은 불천지위이므로 차례나 제사때 가장 먼저 지낸다. 이씨는 “할아버지가 저술한 격몽요결(擊蒙要訣)의 제의초(祭儀抄) 기록대로 제사를 행하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제례상을 각각 차린다.”고 말했다. 제의초에만 제수 5열 진열을 처음 선보였고, 요즘 대부분이 이에 따르고 있다. 설 차례상 첫줄에는 떡국을 올린다. 둘째줄에는 제기 하나에 닭고기와 쇠고기, 숭어 한 마리를 순서로 올리고 하얀 화선지로 십자 모양의 적사지로 숭어를 감싼다. 이어 절편을 본편으로 하여 그위에 화전을 올린다. 셋째 줄에는 탕이, 넷째 줄에는 포와 삼색나물(숙주·고사리·시금치)·간장·나박김치·식혜를, 다섯째 줄에는 대추·밤·배·감·사과 5가지의 과일만 올린다. 꼭 올라야 하는 기본 제수품으로 정갈하고 단출한 상차림이다. 서씨는 “할아버지는 고기를 그다지 드시지 않았던 분이라고 해요. 그래서인지 손이 많이 가는 전과 가짓수가 많은 떡과 같은 제수품이 많지 않아 제사 모시는 일이 결코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슝늉 대신 차를 올린다며 차례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이 정도면 신세대 주부들도 차례상 차림이 그다지 어렵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종가와 차례의 의미가 많이 퇴색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전세계가 인정하는 한민족 고유의 풍속인 종가와 차례가 아름다운 전통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어 보였다. ■ 율곡의 가문 덕수 이씨는 율곡의 가문 덕수 이씨는 조선시대에 크게 부흥했다. 덕수는 임진강 연변의 파주를 이르는 지명으로 덕수부원군인 4세 이윤온 때부터 가문을 덕수 이씨라 부른다고 했다. 덕수 이씨는 뛰어난 인물을 많이 배출한 가문이다. 세기의 사상가 율곡이 있고, 무공 충무공 이순신이 역시 이 가문 출신이다. 조선조 여인상 신사임당도 이 가문의 며느리다. 율곡과 충무공은 같은 시대의 인물로 율곡이 9세 더 많지만 세대로는 율곡이 13세, 충무공이 12세손으로 아저씨와 조카뻘이다. 촌수는 19촌간. 종손 이씨가 들려준 이들 간에 구전되는 일화 하나. 어느 날 둘이 만나기로 하고 충무공이 찾아왔으나 율곡이 나오지 않는 대신 호수에 거북이 모양의 기름종이를 띄웠고, 충무공은 이에 착안해 거북선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신사임당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율곡은 명종 19년(1564년) 호조 좌랑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 홍문관 교리로 임명된 후 당시 국제정세를 파악, 국방의 안전을 위해 십만양병설을 강력히 주장했다. 한때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파주시 율곡리에서 호 ‘율곡’을 따왔다. 1584년 1월16일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평생을 청렴하게 산 그는 저승갈 때 입을 수의마저 없었고, 수중에 값나가는 물건이라곤 부싯돌 하나밖에 없었다고 전해진다. ■ ‘차례 차례’ 배우면 쉬워요 정말 복잡하고 어려운 게 제례문화다. 명절 때마다 낯설다. 그러나 어려운 의례에 끌려다닐 수는 없는 일. 올 설날을 앞두고 제례문화를 익혀 보자. 황의욱 성균관 전례연구위원은 “제사 음식을 담는 그릇을 제기라 한다. 반드시 목기나 유기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 쓰는 그릇을 깨끗하게 씻어 사용해도 된다.”고 말했다. 또 “과일을 다 깎아야겠지만 윗부분만 깎는 것은 깎았다는 시늉을 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김행 한국전례원장은 “차례상에 음식을 놓는 위치는 곧 음양의 질서”라며 “차례 때마다 음식의 위치가 바뀌면 신경을 덜 쓰는 것처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차례는 제사와는 달리 술을 한번만 올리고 축문을 읽지 않는다. 설 차례에는 떡국을 올린다. 상차림은 지방마다 가정마다 조금씩 다르다.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은 “차례상에는 복숭아를 올리지 않고, 붉은 팥으로 떡고물을 만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차례 음식은 양념을 진하게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윤소장과 함께 차례상 차리는 법을 점검한다. 우선, 제주가 차례상을 바라보아 앞쪽이 북쪽, 왼쪽을 서쪽, 오른쪽을 동쪽으로 한다.(실제 방위와는 다를 수 있다.) 차례상을 차리는 순서는 가장 먼저 신위 앞으로 잔과 시접을 놓고 제5열부터 안으로 들어가면서 둔다.5열 과일을 두는 순서는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과일은 동쪽, 흰색 과일은 서쪽에)니 조율이시(棗栗梨枾·왼쪽부터 대추·밤·배·감의 순서)니 하지만 정확한 원칙은 없다. 가풍대로 하면 된다. 대개 꽃받침자리가 위로 가게 한다. 그 다음은 제4열로 포·나물·간장·침채·식혜 등을 둔다. 이때는 건좌습우(乾左濕右·마른 것은 왼쪽, 젖은 것은 오른쪽)와 생동숙서(生東熟西·김치는 동쪽에, 나물은 서쪽에)를 따른다. 식혜는 건더기만 건져서 쓴다. 제3열은 육탕·소탕·어탕을 둔다. 제2열은 국수 육적·소적·어적·떡을 놓는다. 탕과 적의 숫자를 같게 하는데 보통 3개나 5개를 둔다. 또 어동육서(魚東肉西·생선은 동쪽, 육류는 서쪽에)와 두동미서(頭東尾西·생선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를 따른다. 생선의 배쪽이 신위쪽으로 가게 한다. 제1열은 떡국·잔·시접·잔·떡국 순서로 놓는다. 접동잔서(接東盞西)라 하여 접시는 동쪽에 잔은 서쪽에 놓는다. 철상의 순서는 떡국을 물리고, 신위(또는 지방)를 제자리에 둔 다음 상 그대로 내려 먹으면 된다. 황 연구위원은 “‘감 놔라, 배 놔라.’는 할 수는 없다. 형식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가가례로 정성을 다하면 된다.”고 말했다.
  • [우리구 올해는] 김현풍 강북구청장

    김현풍 강북구청장의 관심은 온통 ‘행복이 가득한 동네’를 만드는 일에 쏠려 있다. 강남지역에 비해 개발은 안됐지만 강북구를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고장으로 가꾸겠다는 복안이다. 김 구청장이 문화를 강조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삼각산’ 옛이름 찾기 나서 김 구청장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삼각산(三角山·북한산의 옛 이름)명칭 복원 사업이다. 삼각산은 인수봉·백운봉·만경봉 등 세 봉우리가 삼각형으로 나란히 솟아 있어 붙은 이름이다. 조선시대 선조들이 이곳에서 단군제례를 올리는 등 민족사적인 의미도 깊어 2003년 국가 지정문화재(명승 제10호)로 지정됐다. 김 구청장은 “도시화를 거치면서 도시 자체가 삭막해지고 있지만 강북구는 삼각산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며 “올해 삼각산 축제·국제학술포럼·국제산악문화제·우이령마라톤대회 등을 통해 주민들에게 먹을거리·볼거리·쉴거리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구청장 역시 매일 아침 2시간정도 삼각산을 오를 정도로 ‘삼각산 사랑’이 뒤지지 않는다. 이와 함께 강북구는 교육 시설이 부족한 점을 감안,2007년 개교를 목표로 올해 삼각산고등학교, 솔샘중학교 건립에 착수한다. 또 구청에 교육지원팀을 올 상반기부터 운영하면서 교육환경개선사업 등을 벌이고, 유치원∼고등학교에 교육경비 보조금을 3억원으로 확대한다. ●우이~신설동 지하경전철 착공 또 올해부터 미아6·7동 뉴타운 개발로 집중되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우이동∼신설동역 10.7㎞ 구간의 지하경전철 건설이 시작된다. 미아삼거리 일대는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된 만큼 이 지역에 상업시설을 집중 유치할 계획이다. 김 구청장은 “서울뿐 아니라 의정부 등 경기 북부지역주민들도 서울 도심으로 나가지 않고도 모든 생활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강북구는 2015년까지 지속적으로 수행해야할 10대 전략과제를 채택하기 위한 ‘강북비전 2015’ 연구 용역도 실시하고 있다. 구청장이 바뀔 때마다 구정이 갈팡질팡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구 이미지 개선방안·지역문화·경제 활성화 대책 등의 세부 내용은 이달중 나온다. 김 구청장은 “주민들의 상대적인 박탈감을 완화시켜 떠난 사람도 돌아오고 싶게 만드는 동네를 만들고 싶다.”며 “강북구를 전통·현대가 조화되고, 성장·복지가 균형을 이루며 자연이 살아 숨쉬는 생태 환경 도시로 가꿔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연휴 어디로? 외암리 민속마을

    연휴 어디로? 외암리 민속마을

    설에는 추억이라는 즐거움도 있다.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들과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곱씹는 재미가 쏠쏠하다. 금방 동심으로 빠진다. 마을 앞 개울에서 썰매를 타며 뛰놀던 일, 마을 동산에서 그네타고 널 뛰던 일…. 기억 저편에 있던 아련한 추억으로, 향수로 젖어든다. 그러나 아이들에겐 전통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아득한 옛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고향 마을에는 이미 아파트 등 콘크리트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도심과 다를 바 없다. 이럴 때 아이들과 함께 가까운 민속마을이나 한옥마을을 돌아보면 어떨까. ‘엄마, 아빠가 어렸을 땐 이랬다.’며 어린시절을 아이들에게 들려준다면 아이들은 이번 설을 특별히 추억할 것이다. 어느때 보다 긴 설 연휴. 고향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옥마을을 체험하며 하루를 보내도 좋고, 자투리 시간으로 민속마을을 둘러봐도 좋을 듯하다. 설을 앞두고 옛 모습을 간직한 채 60여 가구가 다정하게 모여사는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민속마을을 찾았다.500년 전의 정취가 살아 숨쉬는 외암리의 풍경속에 빠져보자. ●타임머신을 타고 500년전 과거 속으로 충남 아산시와 천안시의 경계인 광덕산 밑에 자리잡은 외암리 민속마을은 어린시절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옛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주민들이 충청지방 고유 격식인 반가의 고택과 초가, 돌담 등 옛 모습을 지켜나가고 있는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외지인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소박한 충청도의 인심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개울 돌다리를 건너 마을에 들어서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이들의 환호성이 다정하게 메아리쳤다. 마을을 흐르는 개천에서 썰매를 지치는 아이들과 뒷산에서 그네와 널을 뛰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마을은 생동감이 넘쳤다. 겨울 민속마을은 쓸쓸하고 재미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얼음판에서 썰매를 타던 전자홍(15·천안 목천중 2년)양은 “텔레비전에서 보던 초가과 장승, 연자방아를 가까이에서 직접 보고 배울 수 있어 좋았다.”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온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마을을 휘감아 도는 돌담장을 따라 들어가자 고향의 정취가 느껴진다. 일부러 만든 민속마을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마을. 일부 고택을 빼놓고 모두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어 삶의 정취가 묻어난다. 어른 키 높이의 돌담 길이는 모두 5.3㎞. 가옥은 주인의 관직에 따라 참판댁, 병사댁, 감찰댁, 교수댁, 종손댁, 송화댁 등 택호가 정해져 있으며 곳곳에 있는 장승과 연자방아 등이 정겨운 장면을 연출했다. 메주가 널려있는 흙담벽의 초가에 들어가자 주인 내외가 반갑게 맞았다. 전형적인 농촌 가옥에 살고 있는 사람은 이군직(39) 이은숙(39)씨 부부. 마을 총무를 맡고 있다. 이 곳에서 자란 이씨 부부의 마을 자랑이 시작됐다. 이씨는 “옛 사람은 집터를 정하는데 바람과 물, 주변 환경과 지리, 나아가 인심까지 두루 살폈다.”면서 “외암마을에서는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삶터를 정해 수백년을 살아왔는지 읽을 수 있는 곳”이라고 자랑했다. 이 곳은 지난 2000년 1월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 326호로 지정돼 보존중이다. 이씨가 마을을 안내했다. 먼저 찾은 곳은 참판댁. 조선말기 규장각 직학사와 참판을 지낸 퇴호 이정렬공이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아 지은 집이다. 이 집에서는 집안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민속주인 연엽주를 만들어 팔고 있다.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된 연엽주는 누륵에 연근과 솔잎을 넣고 발효시킨 술로 예전에는 매년 봄에 고종에게 진상되던 술이다. 인근의 송화댁은 최근 도둑이 들어 바깥 문짝을 떼가는 바람에 복원하는 홍역을 치렀다. 마을이 보존된 유래도 들을 수 있었다. 이씨는 “초가를 없애던 새마을운동의 개량사업 바람이 덜 미쳤기 때문에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면서 “당시 주민들은 초가지붕만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고 나머지는 그대로 보존해 왔다.”고 설명했다. ●외암리에서는 시인이 된다 외암리의 아침은 고즈넉했다. 닭울음소리가 꿈결인 듯 들려왔다. 조금 뒤 개짖는 소리와 동네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선잠속에 들렸다. 아침밥을 짓는 장작불의 연기가 구수했다. 늦잠을 청했으나 머리맡으로 다가온 햇살이 잠을 깨웠다. 따끈한 구들방을 뒤로 한 채 벌떡 일어나 방문을 나섰다. 초가지붕에 소담하게 쌓인 눈과 앙상한 가지만 드러낸 감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65가구가 모여사는 외암리에서는 초가 체험을 할 수 있는 민박집이 10여가구에 불과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집이 그리 넓지 않아 한 집에 1∼2가족만 묵을 수 있다. 가격은 4만원. 인심좋은 주인을 만나면 아침에 토종 청국장과 된장, 두부 등을 맛볼 수 있다. 예약은 마을 공방(041-541-0844)이나 외암리 민속마을 홈페이지(www.oeammaul.co.kr)에서 하면 된다. 때마침 마을에서 열린 ‘맹사성 시조캠프’를 찾았다. 인근에 조선시대 청백리로 이름난 맹사성의 고택이 있어 올해 처음 개최된 행사. 마을 서당에 모여 앉아 한복을 입고 한시 백일장에 참가한 아이들의 모습이 이채롭다.2박 3일간의 캠프가 끝나고 열린 백일장에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일곱살짜리 소년 윤무창군이 ‘신나는 겨울’이라는 제목의 시조를 지어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한글을 깨치기도 어려운 나이에 운율에 맞춰 시조를 지어냈기 때문. ‘겨울에/친구들과/형들과/함께논다/눈싸움/하고놀고/눈사람/만들면서/너무나/재미있는날/춥지않은/겨울날.’ 무창군은 “형들과 초가에서 잠을 자고 썰매타며 논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내년에도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심사위원장인 한국시조문학진흥학회 김준 자문위원장은 “중학생들도 운율에 맞추지 못하는데 취학전 어린아이가 시조를 지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놀라워했다. 무창군은 이날 심사위원들로부터 장원에 버금가는 ‘차상’을 받았다. 무창군의 형 무제(12·아산 송남초등교 5년)군도 ‘하얀 겨울’이라는 시조로 함께 차상을 받았다. ‘저는요/송이송이/눈같은/마음될래요/불타는/내가슴을/차갑게/지울래요/저같은/검은마음도/하얀마음/될래요.’ 외암리의 아름다운 풍광이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을 시인으로 만들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평가다. 한편 이 곳은 넉넉한 충청도 인심만큼이나 후하다. 주차료와 입장료가 없다. 또 마을 주민들이 다른 민속마을처럼 상업화가 되는 것을 꺼려 흔한 음식점이나 토산품점도 없다. 마을 주차장 앞에는 전통음식인 솔뫼장터(544-7554)가 있는데 수수에 동부콩을 넣어 만든 수수부꾸미(4개 4000원)와 잔치국수(3000원)가 어머니의 손맛을 느끼게 해준다.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를 이용할 경우 아산(옛 이름은 온양)버스터미널에 내린 뒤 강당골행 버스를 타고 가다 외암리에서 내리면 된다.40분 간격이며 40분이 걸린다. 승용차로는 경부고속도로 천안IC와 서해안고속도로 평택IC에서 빠져나와 온양, 송악방면으로 국도를 따라 오면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문의는 외암리 민속마을 관리사무소(041)544-8290. 외암리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이곳도 들러보세요 민속마을에는 아련한 향수가 있다. 고향의 멋과 맛이 스며 푸근한 곳이다. 설 연휴 잠시 짬을 낸다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생활모습과 전통, 문화를 고소란히 만끽할 수 있다. 서울 도심에 위치한 남산골 한옥마을에서는 멋스러운 한옥을 돌아보며 신명나는 전통공연과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다. 이번 설에는 ‘만사형통만복래 설날 한마당’을 벌여 설 연휴기간인 8∼10일 민요 농악공연과 민속놀이 체험뿐만 아니라 차례상 차리기 강좌, 한복 입는 법, 세배하는 법 등도 배울 수 있어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한복을 입은 아이를 동반한 가족에게는 우리집 가훈을 써주는 행사도 열린다.(02)2266-6937. 강원도 고성군 왕곡마을은 북방식 전통한옥인 양통집 21동이 옹기종기 모여있다.19세기 전후에 지어진 가옥들은 송지호 호수 뒤편에 있어 풍광이 아름답다. 5개의 봉우리로 둘러싸여 6·25때도 폭격 한번 당하지 않았다. 속초에서 7번국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송지호를 지나 왕곡마을에 이른다. 문의는 고성군 홈페이지(www.goseong.org)나 대표농가(033)631-1902. 충북 제천의 청풍문화재단지는 충주댐이 생기고 마을이 물에 잠기자 청풍면 일대에 있던 유물을 옮겨와 재현한 마을이다. 마을에 사람이 살지는 않지만 옛 농가의 살림살이를 그대로 볼 수 있다. 보물 528호인 한벽루는 고려 충숙왕때인 1317년 연회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곳. 이 곳에서 보는 호수 풍경이 일품이다. 중앙고속도로 남제천 IC에서 82번 지방도를 따라 청풍방면으로 가면 된다. 제천시 홈페이지(www.okjc.net)나 관리사무소(043)640-5711. 조선시대 경주지방의 유교문화를 볼 수 있는 마을. 고풍스러운 가옥 150채와 정자와 비각, 강학당 등 전통 가옥 15곳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남부지방 가옥의 전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중요민속자료 제 189호로 지정돼 있다. 관리사무소(054)762-4213.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속마을. 낙동강변의 기암절벽과 송림을 배경으로 양진당과 충효당, 북촌댁 등 사대부 전통가옥과 함게 흙벽 초가집 등 130호가 모여 있다. 국내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탈인 하회탈로 유명하며 병산탈과 양반탈 등 9개의 하회탈이 국보 제 121호로 지정돼 있다. 문의는 홈페이지(www.hahoe.or.kr)나 관리사무소 (054)854-3669.
  • 北, 내년 개방 추진

    |베이징 오일만특파원|북한이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내년에 중국과의 접경도시 개방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는 31일 중국 베이징(北京)의 북한 소식통을 인용,“북한 당국이 중국과의 교역 확대를 위해 양강도 혜산시를 중심으로 한 4∼5개 도시의 개방을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내년 개방을 목표로 현재 ‘주민성분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며 “이 작업이 마무리되면 이들 도시에 양강(압록강과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아 중국과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 도시에서는 중국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 미국 등의 해외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국제도시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것이다. 북한 소식통들은 또 “북한 당국이 개인간 주택 거래를 일부 허용하는 내용의 부동산거래 관련법을 마련 중이며 이르면 올 상반기에 시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oilman@seoul.co.kr
  • 儒林(276)-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276)-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이퇴계의 사상과 변화를 기준으로 하여 그의 생애를 구분하면 다음과 같은 세 시기로 압축된다. 제1기는 초년기(初年期)로 이 시기는 그의 출생부터 33세 되던 해까지로 연산군 7년(1501년)으로부터 중종 28년(1533년)까지의 시기인데, 이는 수학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제2기는 이퇴계가 급제, 출신한 33세 때부터 은퇴를 결심하고 단양에 군수로 외직에 나간 후 풍기군수로 재직하다가 경상감사에게 병으로 사직서를 제출하여 해관(解官)을 청한 49세까지이다. 이 시기는 나아가 벼슬을 하였던 출사기(出仕期)였는데, 이는 중종 29년(1534년)으로부터 명종 4년(1545년)까지의 약 15년에 걸친 시기이다. 제3기는 말년기(末年期)로 이퇴계가 50세 되던 해 감사의 허락 없이 임지를 떠날 때로부터 70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도산서원을 통해 제자들을 가르치고 학문에 정진하였던 20년에 걸친 시기였다. 명종 5년 서기1550년으로부터 선조 3년(1570년)에 해당하는 시기인데, 이를 은둔 강학기(講學期)라고 부를 수 있는 시기인 것이다. 이처럼 세 시기로 크게 구분되는 이퇴계의 생애는 놀랍게도 공자의 생애와 대동소이하다. 기원전 551년에 태어난 공자가 학문에 뜻을 두고 공부하다가 나이 35세 때 노나라에 내란이 일어나자 제나라로 1차 망명을 하였던 시기까지를 수학기라고 할 수 있다면 이후 13년 동안이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천하를 주유하였던 시기를 포함하여 출사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공자의 정치적 방황은 기원전 484년 공자의 나이 68세 때 계강자의 초청으로 고향인 노나라로 돌아옴으로써 비로소 끝이 나게 된다. 이후 73세의 나이에 죽을 때까지 공자는 오로지 학문과 경전편찬에 전념하였는데, 그렇게 보면 이퇴계가 단양군수를 자원하여 내려온 것은 공자가 주유열국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시기와 일치되고 있음인 것이다. 물론 이퇴계는 공자의 짧은 공직생활과는 달리 단양의 군수로 내려오기 전에 벌써 14개 아문(衙門)에서 29종의 벼슬을 하였었다. 그 중에서 재직기간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홍문관(弘文館)의 본직 30개월과 승문원(承文院)의 겸직 31개월이었다. 다음으로 장기간 벼슬을 하였던 것은 경연의 24개월, 춘추관(春秋館)의 21개월 벼슬이다. 공자가 스스로 외직을 자청하여 단양군수로 내려오기 전에는 주로 홍문관, 승문원, 경연, 춘추관 네 관아의 벼슬을 중심으로 등용되었던 것이다. 이 관아들은 봉건시대의 군주국가는 임금의 명령으로 국정이 움직여지기 때문에 국왕 및 왕세자를 보좌하는 주무관청이었으므로 이퇴계는 조정의 핵심부서에서 이를 관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퇴계가 단양군수로 내려올 무렵에는 ‘퇴거계상(退居溪上)’, 즉 ‘벼슬에서 물러나 산속의 시냇물’에서 살고 싶다는 자신의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 이퇴계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퇴계가 단양에 군수로 내려온 것은 공자가 천하주유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과 비견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처음에 이퇴계는 청송(靑松)의 군수를 자청하였다. 그러나 청송의 군수는 임명된 지 얼마 안 되었고, 마침 청송과 이웃한 단양군수 자리가 비어있는 것으로 판명되어 단양의 군수로 부임했던 것이다. 이때가 명종 3년 정월. 이퇴계의 나이 48세 때의 일이었다.
  • 달라진 시내버스 서비스

    달라진 시내버스 서비스

    #1. 도봉산∼석수역 구간을 오가는 150번 시내버스를 운행하는 버스 운전기사 이성기(47)씨. 운전석 옆에는 어깨에 견장이 달린 회색 제복이 걸려 있다. 작업복을 입고 운전하면 회사로부터 감점경고를 받게 된다. 육중한 굴절버스를 모는 모습이 ‘비행기의 파일럿’을 연상케 한다. #2. 401번(퇴계원∼석계역) 버스에는 ‘불친절한 시내버스 요금 환불해드려요.’라는 안내문이 나붙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승객이 회사에 항의전화할 정도라면 대단히 화난 것”이라며 “환불 접수를 한 사례는 거의 없지만, 서비스 개선 의지를 나타냈다는 점에서 충분한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불친절함의 대명사였던 버스, 버스기사들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7월 버스 준공영제가 실시되면서 안정적인 소득원이 보장되자 서비스와 승객안전에 더 신경쓰는 분위기다. 버스 회사들도 운전기사를 지원하는 이력서들이 넘쳐나면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항공기승무원급 친절교육 실시 굴절·저상버스 24대를 비롯, 모두 231대의 버스를 운영하는 서울교통네트웍 소속 기사 600여명은 매일 30명씩 나눠서 ‘대(對)고객 서비스 교육’을 하루종일 받고 있다. 강사는 대한항공 스튜어디스 출신의 김영희씨 등 서비스 전문가 3명. 교육은 지난 24일부터 3월9일까지 실시되며, 이 회사는 올해 교육 예산으로 1억여원을 잡아놨다. 운전기사들은 강의실에 들어올 때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게임 등을 통해 인사를 습관화한다. 또 사전에 운전 기사들의 태도를 모니터링한 결과를 바탕으로 ‘즐거운 주말입니다.’,‘좋은 아침입니다.’‘오래 기다리셨습니다.’‘조심하세요, 코너돕니다.’ 등의 인사말을 매뉴얼로 만들어 교육하고 있다. 버스기사 10년째라는 문희철(50)씨는 “교육 자체가 흥미롭고 손님들에게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회사 안재천 총무팀장은 “모든 것을 손님의 입장에서 생각하도록 친절 마인드를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불친절 기사’는 옛말 버스회사들이 친절에 때아닌 신경을 쓰게 된 것은 지난해 7월 서울시 교통체계 개편과 동시에 버스 준공영제가 실시되면서부터다. 버스 준공영제는 서울시가 노선조정, 운행속도·시간 등 버스 운영에 관한 모든 사항을 책임지고 버스 운행만 민간업체에 맡기는 것. 서울시가 재정지원을 통해 버스 회사에 연 7.2%(고정비 기준)의 ‘적정이윤’을 보장해주기로 함에 따라 수익성이 높은 노선·시간대에만 버스가 운행되던 부작용이 사라졌다. 김경호 서울시 교통개선총괄반장은 “버스 회사들이 만성적인 적자에서 탈출하고 운전기사도 회사 수익을 높이기 위해 무리하게 손님을 태울 필요가 없어졌다.”며 “여유가 생기는 만큼 서비스 개선에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버스회사=안정된 직장으로 정착 특이한 점은 버스 준공영제 실시 후 버스기사가 되려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것. 서울시의 재정지원에 따라 평균 2600만원 선이던 버스기사의 연봉이 3100만원 선(한달 26일 근무)으로 높아지고, 하루 근무시간도 9∼16시간에서 9시간으로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버스 창문에 붙여져 있던 ‘버스운전기사 구함’이라는 안내문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도원교통 김재섭 총무부장은 “쉽게 들어왔다가 쉽게 나가는 기사들로 인해 그동안 고질적인 인력난에 시달렸지만, 이제는 대기인원만 150여명에 이른다.”면서 “기사들이 정년(57세)을 넘기지 않는 한 퇴직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빈자리가 쉽게 나지도 않는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버스 회사들도 당분간 신규 채용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관계자는 “버스 체계개편으로 중앙버스전용차로제가 실시되면서 버스 운행속도가 최고 2배까지 높아지는 등 운행여건이 좋아지고 있는 데다 저상버스·굴절버스 등 최신형 버스가 도입되는 것도 운전기사의 인기에 한몫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미스터 스마일’ 기사 이강천씨 “쫓기듯 운전하지 않으니 미소가 절로 나오죠.” 도봉산에서 온수동까지 160번 버스를 모는 버스기사 이강천(54)씨의 별명은 ‘미스터 스마일’이다. 손님이 탈 때마다 일일이 인사를 건네고, 노약자가 버스에 타면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출발하는 게 몸에 뱄다.20년 동안 버스 운전을 해왔지만, 요즘처럼 마음이 편한 때가 없었다. “지난해 7월 교통체계를 개편하기 전에는 민간기업이 버스 회사를 경영하다 보니 한정된 시간에 수익을 많이 내려고 빡빡하게 운행할 수밖에 없었죠. 대부분의 기사들은 승객에게 친절하게 대하기는커녕 사고나 안 내면 다행이라고 여겼습니다.” 당시에는 회사가 정한 배차간격에 맞추려면 하루에 ‘5탕(5회 운행)’을 뛰면서 12시간 일할 때도 허다했다. 주말이면 ‘땜빵기사’노릇을 하느라 휴일을 반납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버스 준공영제가 도입된 뒤로는 ‘오전조’에서 하루 8∼9시간 운행하면서 ‘2탕’만 운행하면 된다. 물론 토요일은 쉰다. “주말에 규칙적으로 쉬니까 가족들이 가장 좋아하죠. 또 반나절만 일하니까 회사 근처에 있는 도봉산에 올라가는 일도 많아졌어요. 무엇보다 좋은 점은 고객에게 인사를 건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안전운행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버스개편 이후 월평균 사고건수는 668건에서 512건으로 23.3% 감소했다. 교통체계 개편 이전에는 운전 기사가 차고지에 들어오자마자 다시 일해야 했지만, 휴식시간이 크게 늘었기 때문에 무리한 운행이 줄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만족할 때까지 철저한 프로정신으로 일할 겁니다. 다만 밤 10시를 넘어서면 버스전용차로에 택시, 승용차, 오토바이들이 뛰어드는 때도 있는데, 이런 것들은 고쳐졌으면 좋겠어요.”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김영만칼럼] 광화문 현판의 정치

    [김영만칼럼] 광화문 현판의 정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죽어서까지 많은 사람을 낭패케 한다. 사후 26년이 지나도 그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극단이다. 물적성장을 평가하는 쪽은 ‘한강의 기적’을 폄하하는 사람들에게 소름 돋는다고 한다. 그를 민주주의 가치의 압살자로 도장 찍은 사람들은 반대쪽을 단지 경멸한다. 죽은 이를 놓고 국민 다수가 편을 나눠 서로 억장이 무너진다고 하소연하는 셈이다. 남북분단을 빼고는, 우리 정치·경제판에 벌어지는 애증과 편가르기 대부분이 그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이 정도는 당연한 역사의 설거지거리긴 하다. 난감한 일은 이런 평가의 많은 부분이 출생계급에서부터 체험으로 육질(肉質)화된 것이어서 어떤 범용적 기준을 내놓아도 접점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여권의 과거사 청산이 본격화되기도 전에 광화문에 걸린 박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을 조선조 정조의 글씨로 바꾸기로 한 것을 놓고 또 여론이 나뉜다. 오래 경험해온 대로 이 역시 인간 박정희에 대한 호오(好惡)를 전제한 것이라 접점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영웅이 남긴 것은 역사지만, 독재자가 남긴 것은 재수 없는 흉물이며 청산대상이다. 협량한 역사관일지라도 인지상정이다. 접점 없는 시비는 과거사가 사회적 화두로 있는 한 계속될 것이니 안타깝다. 최소한 두세대에 관한 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기와집 아래서 났는지, 초가집에서 났는지에 따라 다르다. 더 나가면 밥을 먹을 만한 집인지, 밥 먹는 것이 지상과제인 집에서 성장기를 보냈는지에 따라 줄곧 평행선이다. 출생의 계급에 따라 체험의 방향이 다르고,18년이란 오랜기간을 통해 숙성됨으로써 그 평가가 육질화됐다. 몸의 일부처럼 된 생각은 토론이나, 교육을 통해서도 고치기 어렵다. 이러니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상반된, 육질화한 평가관을 가진 세대들이 정치와 가정의 주체에서 벗어나는,10∼20년쯤 후에나 가능할지 모른다. 교육통계연보는 박정희시대가 본격화한 1965년 초등학생의 중학교진학률을 54.3%로 기록했다. 농어촌의 경우만 따로 떼내면 50%를 훨씬 밑돌게 된다. 중학교를 보낼 형편의 기준은 기본먹을거리가 해결되는 집인가 아닌가다. 중학교도 못 간 이 사람들과 당장 먹을 게 없어 중학교에도 못 보낸 학부모들에게 박정희는 영웅이다. 남의 집 식모살이도 어렵던 시절, 차관이든 빚이든 얻어 방직공장에라도 다니게 해서 밥을 굶지 않게 해준 정치지도자에 대한 평가는 다른 어떤 선진화된 주의주장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배불리 먹는 것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많지 않다. 박 전 대통령이 숨진 이듬해인 1980년 우리나라 중학교 진학률은 95.8%로 올라 있었다. 그런가 하면 1965년 우리나라 전문대이상 진학률은 7∼8%였다. 현재는 90%선이다. 고학으로 대학을 나온 사람도 많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먹어야 산다’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계층이 대학을 보낸다. 이 계층에 박정희식의 개발독재는 인권을 유린하고, 미국종속적인 매판자본으로 빈부격차를 늘렸을 뿐이다. 자신들의 경제적 사회적 위상을 높여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날 때부터 밥이란 늘 있는 것이었으므로 고문과 술수를 통한 장기집권이 쟁점이다. 밥을 해결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은 생뚱스럽고, 유치하며 또한 경멸의 대상이 된다. 평가의 성격이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니, 옳다 그르다 하기 어렵다. 이러니 광화문 논쟁도 옳고 그름이 아닌 정치문제다. 광화문 현판 바꾸기는 국민투표 사항이 아니다. 박정희가 자기 뜻대로 한글로 ‘광화문’을 붙였듯이 정부가 정조의 글씨를 집자(集字)해 쓰기로 했으면 그만이다. 다만 일부의 국민은 그런 일에도 억장이 무너진다는 게 현실이다. 죽은자의 망령이 살아있는 양쪽 모두를 지배케 하는, 고단했던 현대사가 모지락스럽다. 논설실장 sangchon@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5)겨울 동해 별미, 도루묵·양미리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5)겨울 동해 별미, 도루묵·양미리

    사람들은 왜 기를 쓰고 ‘고급 어종’만 찾을까. 고급 어종만이 고급화한 스스로의 미각을 만족시킨다고 믿는 것일까. 평범 속에 진리가 있듯, 흔하디 흔한 물고기들이 외려 우리의 미각에 들어맞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장구한 세월, 그 맛의 유전자가 혀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동해에서 겨울철 진미를 찾아 나섰다. 동해안 겨울 진미는 단연 명태다. 그러나 이곳 명태잡이는 ‘사형선고’를 받은지 오래다.‘북양태’와 ‘일본산’이 득세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만만치 않은 어획량을 유지하면서 서민들에게 가깝게 다가선 ‘도루묵’과 ‘양미리’에 자꾸 눈길이 간다. 그런데 정작 도루묵과 양미리에 관한 일반인의 지식 수준은 의외로 낮다. ●미끈한 생김새에 비린내도 없는 ‘도루묵’ ‘실컷 일을 해놨더니 망조가 들어 그르치는 상황’을 일컬어 ‘말짱 도루묵’이라고들 한다. 도루묵이 오죽 하찮게 보였으면 속담에서조차 이렇게 허투루 비교되고 비하될까. 일설에는 전쟁통에 피란가던 임금이 이걸 먹고는 너무 맛이 있어 은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다. 그 후 전쟁이 끝나 환궁해서 그 맛을 다시 보려고 이걸 청해 먹었는데 옛날 그 맛이 아니었다. 그래서 “도루 물리라.”고 한 데서 도루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그 임금이 선조라는데,‘믿거나 말거나’이다. 그렇지만 이제 더 이상 ‘말짱 도루묵’은 없다. 값이 비싸져 ‘도루묵이나 먹자.’는 말도 쉽게 할 수 없다.‘도루묵을 먹다니….’정도로 바뀌어야 격에 맞게 됐다. 도루묵은 깔끔한 신사 같다. 비린내가 거의 없다. 말쑥하게 차려입고 외출에 나선 미끈한 멋쟁이 같은 생김새다. 맛도 외모를 닮았다. 비린내를 풍기면서 뭉기적거리는 생선이 아니라선지 일본인들은 이 도루묵을 보면 군침을 삼키며 달려든다. 더군다나 알 밴 도루묵은 금값이다.2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도루묵은 상당량 일본으로 수출됐다. 도루묵 값이 비싼 것은 바로 일본 수출 때문이다. 정의철 동해수산연구관은 “우리 수산물 값은 일본으로의 수출 여부가 좌우하는 측면이 있다.”고 해석했다. 그 후 일본 수출길이 막히자 값도 눅어졌다.2년 전쯤의 일이다. 도루묵은 일본 시마네현 쪽에서도 많이 잡힌다. 우리 바다의 도루묵이 산란한 뒤 일본쪽으로 회유하는 것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전혀 다른 생태 조건을 가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기호도가 높은 만큼 일본 학자들의 도루묵에 대한 관심은 높다. 점착성 침성란을 가진 도루묵은 연안 저층성 어종으로 보통 수심 200∼300m 사이에서 서식한다.2003년 연간 생산량은 1900t이었다. 지난 70년대 초반만 해도 해마다 2만 5000t까지 잡혔으나 요즘은 1500∼5000t 정도가 고작이다. ●서해안 전통어법 동해안에서도 행해져 도루묵은 산란기가 가까워지면서 딱딱해진 알을 듬북 같은 해초에 잔뜩 산란해 놓는다. 바람이라도 불 양이면 파도에 밀려온 도루묵알이 거품일 듯 해변을 뒤덮는다. 알을 주워다 파는 일은 불과 얼마전까지 흔했던 해변 풍습. 아예 유리상자로 물 속을 들여다 보며 작업하는 ‘창경바리’로 해초에 붙은 알을 채취해 내다팔기도 했다. 이 모든 게 흘러간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조업 반경은 고성으로부터 속초, 양양, 강릉 등 강원 북부다. 물고기마다 제 집과 고향이 있듯 강원 북부가 도루묵의 원적지쯤 된다. 그 밑에서도 잡히기야 하지만 양도 적고, 맛도 덜하다. 속초항에서 만난 어부 노만선(52)씨는 “예전에는 개도 안 물어갔다.”고 회고한다.‘말짱 도루묵’이란 표현은 그만큼 흔하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으리라. 도루묵은 유자망(흘림그물)이나 기선저인망으로 잡는다. 그런데 강릉 사천진의 김덕중 어촌계장이 재미있는 증언을 했다.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몰려온 놈들을 ‘주벅’으로 잡았단다. 고문헌에 ‘주박(柱泊)’으로 표현되는 우리의 전통 정치망이 동해에서 확인되는 순간이다. 굵은 말뚝을 박고, 그물을 걸쳐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고기를 잡던 전통적인 서해안 어법이 동해안에서도 행해졌다는 새로운 발견. 사천진에서는 ‘물밑 주벅’이라고 하여 닻을 물밑에 고정시켜 그물을 놓았다. 대략 35년 전까지 행해지다 사라진 어법이니, 잊혀지기 전에 이를 기록해 둔다. 주벅으로 잡던 시절에는 부둣가에 가마니를 깔고 잡힌 도루묵을 산처럼 쌓아 뒀다. 오늘날은 기선저인망으로 100m가 넘는 바다 밑을 샅샅이 훑고 다니니 어족고갈은 불보듯 뻔하다. 도루묵 조리법은 의외로 다양하다. 찌개와 구이, 찜은 익히 알려져 있고, 살짝 말려서 볶기, 그리고 뼈째로 토막낸 도루묵회도 별미다. 도루묵회는 도시인들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먹어보니 담백하기 이를 데 없다. 통통하게 알이 밴 도루묵을 석쇠에 올려놓고 노릇노릇 구워 ‘톡톡’ 알터지는 소리를 음미하며 먹는 미각이야말로 겨울철에 동해를 찾아온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별미 중의 별미가 아닐까. 예전처럼 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획 어종인 도루묵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주는 이 없으니, 이른바 ‘고급 어종’이라는 무식한 선별 기준의 비객관성에 대하여 일침을 가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 흔해서 대접 못 받는 ‘양미리’ 이곳의 또 다른 별미 양미리도 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속초 청초호변의 ‘삼숙이 생선구이집’을 찾았다. 주인장 이름이 삼숙이란다. 생선 장사 수십년에 ‘창피한 줄도 모르고’ 자신의 이름을 쓴 간판을 내걸었다. 그녀의 생선장사 스케줄을 보면 동해 어종의 생활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5월 초에 시작한 산오징어 장사가 추석 전까지 이어진다. 추석이 지나면서는 양미리 장사를 하고, 이어 11월20일을 전후해 양미리 성어기가 되면 서서히 도루묵이 잡히기 시작한다. 도루묵 장사는 양미리보다 일찍 시작해 일찍 끝난다. 도루묵 장사는 11월에 시작해 12월 중순이면 대충 끝나며 그 이후에 파는 것들은 모두 냉동 도루묵이다. 양미리 장사도 12월이면 ‘종을 치며’ 그 후로는 냉동 양미리를 말려서 시장에 낸다. 양미리가 제 대접을 못 받는 이유는 단 하나, 너무 흔하기 때문이다. 양미리는 동해안 전역에 세력을 펼친다. 그렇게 흔해선지 사람들은 양미리의 진가를 제대로 모른다. 말려서 볶거나 구워먹기도 하며, 날것으로 김치찌개를 끓이기도 한다. 그런데 양미리를 추어탕처럼 곱게 갈아서 탕으로 끓여먹는 조리법은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수입 미꾸라지탕을 둘러싼 논란이 많은 처지에 동해에서 지천으로 잡히는 100% 국내산 양미리탕에 아무도 관심을 돌리지 않는 게 이상하다. 필자가 음식 장사라면 반드시 염두에 둘 건강식 메뉴다. 확실히 우리는 우리 해산물에 관한 활용도와 이해도가 실망스러울 만큼 저급할 뿐더러 보수적이기까지 하다는 사실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식해도 만들어 먹는다. 가자미식해처럼 좁쌀을 사용해 시원하게 담가 먹는다. 해산물 요리에 관한 고정관념을 이제는 깨끗이 버릴 일이다. ●양미리는 본디 ‘까나리’가 맞아 동해안 수산연구 전문가인 동해수산연구소의 양용수 박사는 우리들이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을 완전히 까뒤집는다. 그에 따르면 양미리는 본디 까나리가 맞다. 양미리는 동해안에서 붙인 이름일 뿐이다. 양미리가 까나리라면 그 누구도 선뜻 동의하기 어려우리라. 까나리답게 양미리는 여름잠을 잔다. 모래밭에 기어 들어가 시원한 여름잠을 즐기는 별난 족속이다. 이 즈음에는 먹이를 먹으려고 잠시 외출했다가 잡히곤 한다.‘발치기’라고 해서 해저의 모래바닥에 그물을 깐 뒤 잠수부가 들어가 발로 모래밭을 밟으면 양미리들이 놀라서 튀어나오는데 이걸 잡아들인다. 산란 전까지는 계속 모래 속에서 살다가 산란기가 가까워 ‘외출’이 시작되면 이 때부터는 ‘누인 그물’이 아니라 ‘세운 그물’로 잡아들인다. 물고기의 삶과 이에 대응하는 인간의 교묘한 머리싸움이 이처럼 어법까지 발달시켰으리라. 그 양미리 값은 얼마나 될까.20마리 1두름에 2000∼2500원 선이다.1마리에 200원꼴이니 이보다 값이 눅은 생선이 있을까. 전국에서 양미리가 가장 많이 건조되는 주문진의 덕장을 찾아가니 줄에 엮는 작업을 하는 아주머니들의 두름당 인건비가 고작 300원이란다. 손이 날랜 이가 200두름, 즉 하루에 4000여마리를 엮고서 6만원 정도를 받는다. 평균은 이보다 못해 고작 100여두름을 엮어 일당 3만원 정도를 번다. 한달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해봐야 100만원 벌이도 안된다. 낮은 양미리 가격이 이처럼 어촌의 저임금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양미리는 명태를 비롯한 각종 낚시미끼로 팔려 나간다. 양식장에서는 광어 등을 시장에 내기 전에 보신용으로 양미리를 먹인다. 그만큼 영양가가 높고 먹을거리로서도 종합적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증거이다. ●도루묵·양미리에서 평범 속의 진리 깨달아 한가한 ‘생선타령’이나 하려고 양미리와 도루묵에 얽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이 아니다.‘고급 어종’ 운운하며 그릇된 상식으로 해산물에 관한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들 밥상문화를 뒤집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말짱 도루묵’은 더 이상 없다. 마리당 불과 200원에 지나지 않는 양미리, 아니 동해까나리의 전방위적 품격과 용도에서 평범 속의 진리를 깨닫는다. 겨울 별미를 찾아 떠난 동해 여행에서 양미리와 도루묵을 살폈으니, 그 새로운 재발견의 기쁨을 어찌 홀로만 즐길 수 있으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였거늘, 관해의 즐거움 중에는 먹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니 하찮은 먹을거리 하나도 제대로 알고 먹을 일이다.
  • [22일 TV 하이라이트]

    ●김약국의 딸들(MBC 오전 9시) 한돌과 다정하게 방안에 있던 용란은 갑자기 용옥이 나타나자 깜짝 놀라고, 이때 용란은 방에 있던 잡지를 들고 나오며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한다. 이에 용옥은 용란과 한돌이 같이 있는 줄로만 착각했다며 돌아선다.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긴 한돌은 흐트러진 이부자리를 보며 괴로워한다. ●라이프n조이(YTN 오전 9시20분) 온갖 기암괴석과 수목이 한데 어울려 진풍경을 자아내는 충남 대둔산으로 떠나본다. 특히 대둔산의 명물인 구름다리는 아찔한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스릴 만점이다. 출렁거리는 다리 위에서 맛보는 짜릿함과 산의 설경도 만나고, 맛이 일품이라는 붕어찜도 먹을 수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찾아가는 IT병원, 원격진료(EBS 오후 5시10분) 얼마 전 발생한 동아시아 쓰나미 피해를 비롯해 오지, 벽지, 전쟁터 등 생명을 다퉈야 하는 한계상황에서 맹활약할 수 있는 원격진료. 응급상황, 의사부재 상황, 명의를 찾거나 말 안 듣는 환자를 꼼꼼히 관리할 수 있는 원격진료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 ●솔로몬의 선택(SBS 오후 6시50분) 종교수업을 거부한 한 학생에게 학교가 제적조치를 내렸을 경우 이 조치가 정당한지를 알아본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치원 교사가 퇴근 후 술과 담배를 즐기며 춤추러 다니다가 학부형 눈에 띈다. 유치원 원장은 이 사실을 알고 유치원을 그만두라고 요구한다. 이런 일이 해고사유가 될까. ●용서(KBS2 오전 9시) 재훈은 6년만에 나타난 형우가 자신보다 더 많은 걸 수민이와 수형에게 해 줄 수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고, 희만은 그런 재훈을 보며 딴 맘 먹지 말라며 다독인다. 수민은 퇴원하는 형우가 수형을 보러 오자 이제 더 이상 수형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며 가라고 말해 형우를 당황하게 한다. ●불멸의 이순신(KBS1 오후 9시30분)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자마자 파직을 당하게 된 원균. 원균의 파직으로 공석이 된 전라좌수사직에 유성룡은 이순신을 천거하지만 동·서 양당 모두의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이에 선조는 아무도 모르게 이순신을 궁으로 불러 원균을 밟고 전라좌수사가 될 생각이 있는지를 묻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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