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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권선진국으로 가는길](9)한국 인권의 현주소(한국)

    [인권선진국으로 가는길](9)한국 인권의 현주소(한국)

    인권의식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2005년 상반기를 돌아보면 곳곳에 사각지대가 있었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물론 군인·여성·학생 등 우리 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이들의 인권도 그야말로 ‘등잔 밑’에 있었다. 만연한 인권 불감증에 시사점을 던진 주요 사건들을 통해 한국의 인권 현주소를 짚어봤다. 지난 6월 경기도 연천 전방초소(GP)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은 그야말로 커다란 충격이었다. 하지만 파장이 컸던 만큼 군내 인권 문제를 단숨에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렸다. ●쉬쉬하기 급급했던 군 인권 수면 위로 총기 사건 전에도 군 인권 문제는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지난 1월 한 육군훈련소에서 화장실 청결교육을 강조하면서 훈련병 192명에게 인분을 먹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섰다.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대해 부하가 시정을 건의할 수 있고 단체기합을 금지하는 등의 내용을 담아 ‘군인복무규율’을 개정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인분 사건 직후 인권위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인권침해가 심각한 기관 1위로 교도소와 같은 구금시설이 아닌 군대가 꼽혔다. 과거 ‘인분쯤은 나도 먹었다.’‘요즘 군대 많이 편해졌다.’는 식의 주장으로 군 인권 문제를 쉬쉬하고 덮어두려고 했던 것과 비교하면 국민의식이 한층 높아진 것이다. 여기에 GP 총기 사건이 터지면서 군 인권에 대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알몸으로 기합 받는 사진이 잇달아 공개되는 등 안으로 곪았던 문제들이 터져 나왔다. 육군은 이를 계기로 선진 병영문화 조기 정착을 위해 5개 분야 33개의 중·단기 과제를 선정, 추진할 것을 결정했다. ●호주제 폐지, 여성 종중원 인정 양성평등과 관련해 커다란 획을 그은 뉴스는 단연 호주제 폐지다. 지난 2월 부계 혈통주의를 토대로 한 호주제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이어 민법개정법률안이 국회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호주 개념은 삭제하고 대신 가족의 범위를 확대했다. 아내가 남편의 집에 입적하는 조항도 사라졌으며 입양 혹은 재혼 가정을 위한 ‘친양자제도’도 신설됐다. 또 하나 기록할 만한 사건은 여성도 종중원으로 인정받게 된 이른바 ‘딸들의 반란’이다. 대법원은 1958년 이후 “종중은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 남자를 종원으로 하여 구성된다.”는 판례를 유지해 왔으나 지난 7월 이를 변경했다. 재판부는 “성인 남성만을 종중 회원으로 인정하는 종래의 관습은 1970년대 이후 우리 사회와 국민 의식의 변화로 법적 확신이 상당히 약화됐으며 개인존엄과 양성평등을 추구하는 법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호주제 폐지가 가족 내 양성평등을 인정한 사건이라면 여성의 종중인정은 출가외인으로 불리던 기혼여성의 지위를 인정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학생들의 움직임 부쩍 늘어 지난 5월 400여명의 중고생과 시민단체 회원이 서울 광화문으로 쏟아져 나와 학교 내 두발자유를 외쳤다. 이에 앞서 학생들은 인터넷상에서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전교생 앞에서 머리카락을 짧은 스포츠형으로 자르거나 교사가 이발기계로 머리카락 일부를 미는 등의 사례를 공개하면서 학생들의 인권 보장을 외쳤다. 학생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인권위는 지난 7월 교육부총리와 각 시·도 교육감에게 “두발자유는 학생의 기본적 권리”라면서 “두발 제한·단속은 교육 목적상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하라.”고 권고했다. 고등학생들로 구성된 단체도 등장했다. 전국 47개 고교 학생회의 연합체인 ‘한국고등학교학생회연합회’(한고학연)가 지난 6월 출범한 것이다. 개별 학생회의 힘을 한데 모아 위상을 높이고, 고등학생의 생각과 주장을 ‘어른’들에게 적극 알리고 설득하는 압력단체로 키우겠다는 게 목표다. 중고생뿐만 아니라 초등학생의 인권문제도 주목을 받았다. 인권위가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일기장을 검사하는 것은 사생활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는 의견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어린이들의 인권과 사생활의 중요성을 사회 전반에 일깨워 준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이밖에 여성 동성애자의 인권문제를 부각시킨 레즈비언 단체의 연대모임 결성이나 사이버상의 인권에 불을 붙인 ‘개똥녀 사건’ 등도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주요한 인권 현안의 하나였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영역 넓히는 인권위우리 사회에서 ‘인권’이 중요한 이슈로 대두된 계기로는 지난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출범을 빼놓을 수 없다.1993년 빈 세계인권대회에 참가한 민간단체들이 설립의 필요성을 제기한 뒤 2001년 ‘독립적 인권 전담 기구’로 출범한 인권위는 그간 인식하지 못한 각종 침해·차별행위를 ‘인권’의 범주로 해석하면서 우리 사회에 적극적인 인권의 개념을 심었다. 인권위의 진정 사건 현황을 보면 이같은 경향을 짐작할 수 있다.2002년 2790건이던 진정건수는 2003년 3815건,2004년에는 5368건으로 급속히 증가했고, 올해는 7월까지 이미 3323건을 기록하고 있다. 해가 갈수록 인권침해나 차별행위가 심해진다기보다는, 예전에는 인권 문제로 생각지 않았던 사안들에 대해 국민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권리를 찾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개별 진정사건뿐 아니라 국가보안법 폐지, 사형제 폐지 등 굵직한 사안들에 대해 권고·의견표명 등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던 인권위는 차별시정기능의 통합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지난 6월 말 여성부의 성차별·성희롱 조사구제업무가 인권위로 이관됐고, 오는 10월쯤 노동부의 고용차별시정업무도 이관될 예정이다. 또한 올해 말에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권고안을 수립해 정부에 권고할 계획이다. 인권 관련 법·제도·정책을 총괄하는 범국가적 중장기 인권정책 종합 계획인 NAP는 2006년 6월까지 유엔에 보고하도록 돼있다. 지난해 초 실무팀을 구성해 장애인, 여성, 난민 문제 등은 물론 제한적 안락사, 대체복무제, 프라이버시권 등 논의가 가능한 모든 사안에 대해 폭넓게 검토하고 있다. 정부기관 협의를 거쳐 올해 말 NAP가 확정·시행되면 국가 전반에서 인권관련 인식과 정책이 한 단계 도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인권선진국 문턱 국보법 폐지 시급” / 최영애 인권위 상임위원“법과 제도만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인권 수준은 상당하지만, 그것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하는 것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최영애 상임위원은 “세계 속에서 인권 선진국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인권문제를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상임위원은 “지난해 프리덤하우스가 발표한 인권 순위에서 한국은 120개국중 58위에 그쳤다.”면서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고 인정받으면서도 선진사회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법적인 권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드는 비용을 미리 국가가 나눠줘 검진을 받게 한다면 그 사회적 비용은 훨씬 절감될 것”이라면서 “인권 문제 역시 이같은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 단계 도약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국가인권기구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로 그는 ‘인권 감수성’의 함양을 꼽았다. 기독교 학교의 채플이나 여대의 금혼 학칙 등이 차별적 규정이라는 것을 예전에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지만, 이러한 일상의 문제들을 인권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인권 감수성’이라는 것. 최 상임위원은 “이는 교육은 물론 진정사건을 통해서도 키워진다.”면서 “체벌이나 일기장 검사가 인권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진정사건의 처리 결과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감수성을 일깨워 줬다고 본다.”고 말했다. 세계 인권의 흐름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협력의 증가를 꼽았다. 난민·기아 등 초국가적인 인권 현안에 대해 국가인권기구간의 논의가 증가되는 추세라는 것. 예를 들면 한 국가에 전쟁이 발생할 경우 주변국가 인권기구들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를 논의해 해당 국가에 권고하거나, 자연재해로 인한 실향민을 위해 국가인권기구가 실행해야 할 지침 등을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 시점에서 한국이 인권선진국으로 인정받기 위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꼽았다.“지난해 세계인권기구대회때 방한한 70여개국 인권기구 대표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것이 국가보안법의 폐지였다.”면서 “유엔에서도 여러번 권고를 받았던 사안인 만큼 실질적인 효과뿐 아니라 상징적 의미도 매우 큰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결실의 땅’ 한반도/최미숙 증산도 부산당리도장 수호사

    며칠 전 태풍 나비가 한반도 동남 해안을 쓸고 지나갔다. 다행히 한반도를 바로 덮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위력이 대단했었다. 일본의 피해는 컸다고 하는데 이웃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일본은 우리에게 잔인하고도 잦은 침략을 일삼아 왔지만, 공교롭게도 자연재해에 있어서는 방풍림처럼 우리를 막아 온 것도 사실이다. 풍수지리에서 혈(穴)이 되는 자리는 모름지기 좌로는 청룡, 우로는 백호를 끼게 되어 있다. 이때 백호는 만첩백호(萬疊白虎)라 하여 그 산맥이 첩첩이 겹쳐질수록 좋은 상이고, 청룡은 비상청룡(飛翔靑龍)이라 하여 쭉 뻗어나가는 것을 좋은 지세로 본다. 우리나라는 좌로는 일본열도가 비상청룡의 상을 취하여 쭉 뻗어 한반도를 감싸고, 우로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인도네시아에 이르는 만첩백호가 우리나라에 마치 순복(順伏)하듯 옹위하고 있다. 따라서 태평양 일원에서 시작되는 태풍이 북상하여 올라 온다고 하더라도 중국 타이완 일본에 의해 꺾여, 한반도를 바로 타격하는 태풍은 그리 많지 않은 연유도 그런 까닭이다. 동북아시아 끝자락에 매달린 이 한 많고 작은 땅덩어리가 어떤 역활이 있길래 국제적 이목을 집중시키고 풍수지리적으로도 천혜의 요새로써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일까? 역학으로 한반도의 방위는 간(艮)에 배속된다. 간방이란 동북방(東北方)을 말한다. 또한 간은 열매를 뜻하기도 한다. 즉 한반도는 동북방의 결실의 땅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 인류의 발상지로 지목되는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에서 시작된 우리 선조는 고향을 등지고 신령스러운 간방의 땅 한반도로 장구한 시간 이동하여 한과 시련 속에서도 오늘의 문명의 꽃을 피워왔다. 위로는 백두산의 천지로부터 아래로는 한라산의 백록의 영산정기가 한반도를 보호하여 왔고, 그 중간에 위치한 강화도 마니산은 단군시대부터 천상의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던 곳이다. 그뿐인가. 백두대간의 줄기에서 결인(結咽)된 세계의 공원, 금강산 1만 2000봉의 영기는 신비로움을 넘어서서 영험스럽기까지하다. 중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던 시황제가 불로초를 찾아 동남동녀 500인을 보냈던 동방의 신선의 나라 조선. 광명을 숭상하여 눈처럼 흰 옷을 즐겨 입었던 백의의 나라. 이웃이 서로 정을 나누며 한 가족처럼 살았지만, 국난에 이르러서는 선비와 승려, 아낙과 노인 할 것 없이 모두 분연히 일어서 지켜온 나라였다. 며칠 전 정말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너무도 비극적인 참사가 빚어지고 있는 미국 뉴올리언스에 우리 동포들의 눈물겨운 사랑의 나눔이 그것이다. 어느 민족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정. 내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고 서로를 돌봐주는 봉사정신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종교와 국경을 초월해서 면면히 이어져 오는 우리네 민족정신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캐나다의 어느 교과서에는 국가 표시도 되어 있지 않고 주변 강국의 역학관계로 분단되고 왜곡돼 현재는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한반도. 이런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를 필자에게 묻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둔 밤이 지나면 반드시 밝은 아침이 오는 것처럼 밝고 희망차다고 말하겠다. 공자는 설괘전에서 간(艮)을 만물지소성종이소성시야(萬物之所成終而所成始也)라 하였다. 모름지기 만물은 간(艮)에서 매듭을 짓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열매가 한철의 수확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다음철 파종을 대비하는 이치와 같이.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정신에는 가히 지금까지의 문명을 매듭짓고 다가올 후천의 새 문명을 열어갈 저력이 도도한 강물처럼 흐르고 있음을 확신한다. 최미숙 증산도 부산당리도장 수호사
  • [씨줄날줄] 나이 차별/이용원 논설위원

    우리사회에서 전통적으로 나이는 벼슬이었다. 멀리 삼국시대에 이미 고구려·백제·신라가 노인들을 우대한 기록이 남아 있고 고려·조선조 때는 노인우대를 정책으로서 시행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조선의 ‘상치세전(尙齒歲典)’으로,80세이상의 남녀를 특별 대우하되 연령에 따라 차별을 두었다. 즉 100세가 넘은 노인에게는 연초에 쌀을 주었고 매달 고기·술을 따로 지급했다.90세 이상에게는 정초에 술·고기·술잔을 내렸고 80세 이상은 지방관리로 하여금 접대하게끔 했다. 아울러 일정한 나이에 이르러도 벼슬한 적이 없는 백성에게는 명예직을 따로 주었으며 이미 벼슬한 사람은 한 계급 높여주었다. 이러니 나이가 벼슬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 나이는 더이상 벼슬이 아니다. 전철의 무임승차와 경로석 배정 등 나이 대우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제 우리사회에서 나이가 많다는 것은 ‘능력 부족’‘퇴출 대상’과 다름없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가정에서는 귀찮은 존재요 직장에서는 ‘빨리 물러나야 할 상사’쯤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영국의 켄트대학 연구팀이 18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살아가면서 겪는 가장 큰 차별이 인종차별·성차별이 아니라 나이차별이더라는 결과가 엊그제 보도됐다.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 사람 중 무려 65%가 나이 때문에 차별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다양한 연령층에서 오직 35∼44세에서만 차별을 느끼지 못했다고 하니, 인생 80에 10년을 제외하고는 나이 탓에 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양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16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에 그쳤다. 반면 평균 수명은 늘어 2019년에는 고령사회,2026년에는 초고령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인들이 일정한 몫을 해내지 않으면 국가사회가 발전하기는커녕 제자리를 유지하기도 힘든 현실이 눈앞에 다가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노인에게 적당한 일거리와 보수, 복지혜택을 주면서 ‘제대로 써먹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노인과 젊은이가 공생하는 바탕이자 나이차별을 없애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프랑스인들의 지극한 ‘문화유산 사랑’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프랑스인들의 지극한 ‘문화유산 사랑’

    |파리 함혜리특파원|프랑스인들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은 남다르다. 선조들이 남겨놓은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고 제대로 관리하기 위한 노력도 대단하다. 세계 어느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풍부한 문화유산도 자부심을 더한다. 프랑스 정부는 이같은 국민들의 문화적 열정을 바탕으로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전국에 산재한 문화유산의 정비 및 복원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그 위에 문화재 관련 공공·민간 단체들과 교육기관, 전문가 집단, 그리고 기업 메세나가 이를 뒷받침한다. 온 국민이 똘똘 뭉쳐 사라져갈 위기에 처한 문화재를 복원하는 데 열정을 쏟아붓는 것을 보면 ‘문화예술 대국’이란 명성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베르사유 복원은 거대 국가 프로젝트 파리 남서쪽 약 20㎞에 있는 국립박물관 베르사유궁은 프랑스인들이 가장 아끼고 자랑하는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다. 이곳의 역사적 의미도 깊거니와 찬란했던 프랑스의 영광을 대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루이 14세가 1661년부터 건축가 루이 르보, 화가 르 브룅, 정원사 르 노트르 등으로 하여금 본격적으로 건설하게 한 이 궁전은 1682년 공식적인 프랑스의 왕궁이 됐으며 1789년 대혁명까지 107년간 프랑스의 정치와 문화, 예술의 중심지였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2003년 10월 베르사유 복원계획 ‘그랑 베르사유(le Grand Versailles)’를 수립했다. 오는 2020년까지 장장 17년동안 지속되는 거대 국가 프로젝트다. 베르사유궁 역사박물관 피에르 아리졸리-클레망텔 관장은 “베르사유궁은 프랑스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곳이며,17세기 최고 수준의 예술이 집적된 문화유산”이라며 “그러나 대혁명으로 많은 부분이 훼손됐고,4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수차례의 복원과 개조를 거치면서 본래의 모습을 많이 잃었다.”고 말했다. 때문에 그랑 베르사유 프로젝트의 가장 핵심은 “혁명이전의 모습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국의 전문가도 복원작업 참여 베르사유 복원 작업은 17세기 예술 전문가와 역사학자, 회화 복원 전문가, 조경전문가, 건축가 등으로 구성된 과학자문위와 역사유물 최고위원회, 베르사유궁 행정자문위 등의 의견을 취합해 진행된다. 영국, 이탈리아, 독일 등에도 베르사유궁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양식으로 지어진 궁들이 있기 때문에 외국의 전문가들도 복원작업에 다수 참가하고 있다고 아리졸리-클레망텔 관장은 설명했다. 그랑 베르사유 프로젝트와 별도로 정원 뒤편의 숲에서는 지난 1999년 겨울 태풍으로 쓰러진 떡갈나무를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사정없이 몰아친 강풍에 수령 수백년의 떡갈나무들이 1000그루 가까이 뿌리째 뽑혀 나가자 정부는 즉각 4000만프랑(615만유로)의 특별 지원기금을 조성,10년간 진행될 정원 복원공사를 시작하도록 했다. 정원사들과 수목학자들은 쓰러진 떡갈나무와 같은 품종을 찾아 나무를 키우고, 쓰러진 자리에 다시 심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일부가 내년에 공개될 예정이다. ‘그랑 베르사유’프로젝트는 총 3단계에 걸쳐 진행되며 현재 1단계 사업이 순조롭게 추진 중이다.1억 3500만유로(약 1729억 6300만원)가 투입되는 1단계(2003∼2009년) 사업은 역사적 가치가 높은 부분들의 보존 및 복원작업과 함께 쾌적한 관람환경을 만드는 작업이 중심이 된다. 2단계(2010∼2015년)는 북쪽 날개관과 그랑 트리아농, 프티 트리아농이라 불리는 별궁을 복원하는 작업이 핵심이다. 건설 당시 북쪽 날개관 중앙에는 중앙계단이 있어 거대한 궁전의 동선과 안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1837년 역사박물관 구조변경 작업으로 철거됐다. 이 중앙 계단을 재건하고 내부 뜰을 복원하는 작업이 계획돼 있다. 3단계(2015∼2020년)에는 중앙 날개관을 복원하는 작업과 함께 왕실 마구간을 전시실로 개조하게 된다. 르 노트르의 역작인 정원의 중앙부와 북부, 넵튠 분수의 복원과 그랑카냘(대운하)의 정비작업도 포함됐다. ●기업 메세나의 적극적 후원 그랑 베르사유 프로젝트의 구심점은 국가이지만 재정이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을 충당해 주는 기업 메세나들의 역할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프랑스 기업인들의 뜨거운 문화사랑이 복원사업의 바탕에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주차장 운영 및 건설업체인 뱅시(VINCI)는 프랑스 기업 메세나 사상 가장 큰 액수인 1200만유로를 들여 베르사유궁의 꽃으로 불리는 ‘거울의 방’ 복원작업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대리석, 도금, 청동, 거울 및 크리스털이 주요 장식재료로 사용돼 호화로움이 극치를 이룬 ‘거울의 방’은 특히 르 브룅이 루이 14세의 생애를 고대화풍으로 그린 천장화가 유명하다. 뱅시 메세나의 올가 지아코모니 학예관은 “복원작업은 벽 유리의 손상된 부분을 교체하고, 나무 바닥을 17세기의 나무 마루로 되돌리고, 장식의 먼지를 털어내며, 르 브룅의 천장화를 복원하는 작업들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BNP파리바은행이 귀족의 방 천장화 복원을 지원했으며 로레알은 루이 15세의 옛 목욕실과 화장실을 복원하는 데 50만유로를 쾌척했다. 일본 기업 닛케이는 루이 16세의 의상 보관실을 복원해 주기로 하는 등 국내외 기업 메세나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지고 있다. ●문화유적지 4만여곳에 국보만 13만종 르노 돈느듀 드 바브르 문화장관은 지난 6일 ‘문화유산의 날’ 행사 설명회장에서 “우리의 문화유산은 곧 프랑스의 이미지이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며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가꾸는 것은 미래를 위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임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정부는 2004·2005년도 회기에 총 4억 8500만유로를 문화유산의 복원과 정비에 투입했다. 내년도(2005·2006년)에는 이보다 1억유로 정도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돈느듀 드 바브르장관은 밝혔다. 문화부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 전국에는 4만 2059곳의 보호대상 문화유적지가 있다. 이 가운데 1만 4232곳이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 역사적 유적지로 지정됐고,2만 7827곳이 국가 문화유적지 대장에 등재돼 있다. 또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만 13만종, 국가 문화유적지 대장에 등재된 문화재가 12만 8000종에 이른다. lotus@seoul.co.kr ■ ‘문화유산의 날’ 22돌 |파리 함혜리특파원|프랑스인들은 매년 9월 세번째 주말 전국적으로 ‘문화유산의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날 대통령궁인 엘리제궁부터 상원 회의실 등 공공건물을 비롯해 수도원과 수녀원과 같은 종교 건물, 개인 소유 성(城) 등 전국의 유서깊은 건물과 명소들이 무료로 공개되고 프랑스 국민들은 보기 힘든 명소를 맘껏 둘러보게 된다. ‘문화유산의 날’ 행사는 지난 1984년 당시 문화부 장관인 자크 랑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행사 의도처럼 보다 많은 국민들이 문화유산을 감상하고,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적잖은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엔 약 1200만명이 문화유산의 날 행사를 계기로 문화유적지와 평소 방문하기 힘든 명소들을 찾았을 정도로 매년 행사 참가자가 늘고 있다. 올해로 22번째인 문화유산의 날은 9월17·18일 이틀.‘우리의 문화유산을 사랑한다(J’aime mon Patrimoine)’라는 슬로건을 내건 올해 행사에는 전국의 역사적 건물 1만 5480곳이 공개된다. 지난해에 1만 4000곳이 공개된 것에 비해 1500곳 정도가 늘어났다는 점에서도 이 행사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엿볼 수 있다. 각종 문화재와 박물관, 공공 건물이 밀집한 파리 지역에서만 1329곳이 이날 시민들을 맞이한다. 올해 행사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곳은 파리 그랑팔레(Grand Palais).12년 간의 재정비 작업 끝에 문화유산의 날에 맞춰 다시 문을 연다.‘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라고 일컫는 19세기 말의 화려한 아르누보 스타일을 대변하는 그랑팔레는 1900년 만국 박람회 때 세워졌다. 그러나 곧바로 구조적인 취약점이 드러나고 1910년 센강 범람 때 피해를 입어 몇차례 보수를 받다가 1993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공사에 들어갔다. 총 1억 136만유로가 투입된 재정비 공사에서는 지하에 2000개에 가까운 콘크리트 기둥을 박아 건물 전체를 지지하도록 했고 대형 유리 돔도 복원했으며 야간 조명시설과 음향시설도 새로 갖췄다. 뤽상부르 공원 북측에 있는 상원 건물은 엘리제궁과 함께 문화유산의 날에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는 장소 중의 한 곳이다. 워낙 볼거리가 많은데다 평소엔 입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반원형의 대회의장, 들라크루아의 그림이 있는 도서관, 왕관 전시실 외에 경제부문 법안을 심의하는 클레망소 룸 등 18세기에 지어진 뤽상부르 궁의 구석구석이 공개된다. 상원의장 관저도 공개돼 1625년 마리 드 메디치 왕비를 위해 지어진 왕실 교회당과 겨울궁전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지난해 행사엔 3만여명이 이곳을 찾았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문화유산의 날 행사는 유럽 각국으로 퍼져 ‘유럽 문화유산의 날’로 확대돼 9월 한달 내내 각종 행사와 함께 진행된다. 프랑스인들은 역사적 건물, 미술품, 도서 등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데뿐만 아니라 더 많은 국민들이 문화유산을 향유하도록 하는 제도와 이벤트를 마련하는 데서도 앞서나가고 있음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lotus@seoul.co.kr
  • 출판계가 만들어 가는 사회코드

    ‘인간 심리’와 ‘옛것’, 그리고 ‘숫자’. 요즘 출판계가 선호하는 키워드 세 가지다. 극심한 출판 불황 속에서도 제법 팔리는 책들을 보면 이 세 가지 키워드중 하나를 주제로 삼고 있다. ‘심리’가 유행하는 것은 결국 현대인들의 불안한 심리를 반영한다.‘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란 속담이 요즘처럼 가깝게 다가오는 때가 있을까? 일자리를 얻기 위해, 승진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 반항하는 자녀의 속내를 알기 위해 변덕스러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심리’를 파헤치는 것은 중요해졌다. ‘평생성적, 초등학교 4학년에 결정된다’처럼 책 제목에 숫자를 끼워넣는 것도 이같은 불안 심리의 연장이다. 도덕 선생님 같은 두루뭉수리한 훈계는 싫다. 족집게 강사처럼 하나라도 실제에 도움이 되는 것을 원한다. 신년 하례때 일부 정치인들이나 휘갈려 쓰며 한껏 폼을 잡던 ‘고전’의 문구가 일반에 되살아난 것도 주목할 만한 일.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가 조성모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각광 받았듯, 수천 년, 수백 년 전 선조들이 현대의 각색자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 사람들의 지적 욕구를 자극한다. 옛것도 리메이크하면 새것. 현대인들은 옛것을 통해 오늘을 해석하고, 내일을 내다본다. 베스트셀러는 이같은 사회코드를 들여다보는 프리즘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1) 심리를 공략하라 심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애인이, 상사가, 동료·후배가, 자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사회가 갈수록 복잡다단해지다 보니 더욱 그렇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의 심리 읽기에 열중한다. 이같은 ‘심리 읽기 욕망’을 겨냥한 책들이 바로 요즘 쏟아져 나오는 ‘…심리학’류 책들이다. 남녀가 서로를 유혹하는 데 키포인트는 뭘까?능력도, 자상함도, 잘생김도 아니다. 인간의 유혹은 단지 감각의 산물이다. 약물을 써 동공을 확대시킨 여자들에게 남자들은 한결같이 열광한다. 나이트클럽의 고막이 터질 듯한 음악은 뇌의 호르몬 작용에 관여해 ‘작업’의 성사를 쉽게 한다. 이 모두 추측이 아니라 실험이 증명한 사실임을 파트릭 르무안의 ‘유혹의 심리학’(북폴리오)은 말해 준다. 1964년 미국 뉴욕의 한 동네. 새벽에 20대 여성이 집 앞에서 피살됐다. 그녀는 ‘도와 달라.’고 고함쳤고,38명의 이웃이 창문으로 현장을 보았지만 누구도 도와주거나 신고하지 않았다. 로렌 슬레이터가 쓴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에코의 서재)에선 이 사례에서 책임의식에 대한 현대인의 심리를 본다. 개인의 책임의식은 그들이 소속한 집단의 크기에 반비례한다는 것. 실험에 따르면 오히려 목격자가 한 명밖에 없었다면 피해자가 도움받을 확률이 85%였다. 기업 경영자나 간부들이 어떻게 조직을 이끌어가야 할지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 소비를 지배하는 것도 심리다. 불황인데도 명품이 잘 팔리는 현상엔 ‘실패확률이 낮다.’란 소비자의 안전심리가 깔려 있다. 쇼핑몰에 ‘마지막 한정품’이란 푯말이 자주 붙는 것도 ‘지금 아니면 살 수 없다.’란 불안감을 부추기기 위한 것. 시식코너에 6가지의 햄을 늘어 놓은 날이 24종류의 햄을 늘어 놓은 날보다 매출이 높았다는 실험은 선택의 홍수시대에 지나친 선택을 부담스러워하는 소비자 심리를 잘 보여준다.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자들이 펴낸 ‘마음을 유혹하는 경제의 심리학’(밀리언하우스)은 이처럼 수많은 경제이론 속에 숨겨져 있는 경제의 참모습을 ‘심리’라는 프리즘을 통해 살펴본다. (2) 숫자는 확실하다 지난 연말 출판되어 지금까지 베스트셀러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책이 있다. 번역서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탄줘잉 편저, 위즈덤하우스). 무한경쟁의 시대에 작은 실천으로 큰 행복감을 얻는 행위들을 소개한 책이다. 내용과 함께 궁금한 것 한 가지. 왜 49가지일까?. 이에 대해 출판사측은 ‘나이 쉰이 되기 전’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아 그래, 힘 떨어지기 전에, 쉰이 넘기 전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심리를 겨냥한 것. 불교에서 ‘사십구재’ 등 죽음의 의미가 있는 것도 작용했다. 원서엔 99가지로 되어 있던 것을 출판사에서 49가지만 추려냈다. 한데 이 책만이 아니다.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평생 성적, 초등학교 4학년에 결정된다’(예담)‘상위 1%로 가는 10분 공부법’(파라북스)‘2010 대한민국 트렌드’(한국경제신문)‘2000원으로 밥상 차리기’(영진.COM) 등등. 왜 사람들은 이렇게 ‘숫자’를 좋아하는 걸까? ‘평생성적∼’를 펴낸 예담의 김태영 사장은 “궁금증과 위기의식을 유발하고, 구체적 정보를 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밝혔다.‘그럼 5학년 때부터는 이미 늦어 공부 다했다는 얘기냐?’는 거부감이 들지 않을까? 처음엔 그냥 ‘평생성적, 초등학교때 결정된다’로 했다가 너무 두루뭉수리하고, 힘이 없어 보여 ‘4학년’이란 숫자를 도입했단다. 어쨌든 ‘봐라 4학년이 중요하지 않느냐.’라고 위기감을 준 것이 마케팅에서 주효해 35만부나 팔려 나갔다.‘일곱살부터 하버드를 준비하라’(북센스),‘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랜덤하우스 중앙) 등도 이같은 의도가 깔려 있다. 이같은 숫자 마케팅은 특히 미래담론에서 그 힘을 발휘한다.‘2010 대한민국 트렌드’‘10년후 한국’‘10년후 세계’‘2020 미래한국’ 등등.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대에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궁금증은 높아만 간다. 이런 책들은 구체적 시간, 구체적 내용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의 마음을 잡은 책들이다. (3) 옛것은 ‘오래된 미래’ 홀대받아온 고전, 고리타분하다고 배척받아온 옛 사람들이 부흥기를 맞았다. 서점에 가면 동양고전이 세련된 장정으로 옷을 갈아 입고 유혹의 눈짓을 보낸다. 잊고 지냈던 옛 선조들이 수백년을 뛰어넘어 나와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호통을 친다. 요즘 독자들의 시선을 받는 고전은 ‘옛날이란 시대’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생생히 살아있다. 아니 현실을 넘어 미래를 이야기한다.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동양 고전을 재해석해 풀어낸 책 ‘강의’(돌베개)는 5만부나 팔렸다. 고전책으론 엄청난 기록. 한국의 대표적 진보 학자인 저자는 신자유주의적 패권 질서로 위기에 처한 세계문명의 대안을 동양고전에서 찾는다. 내 나라, 내 가족, 나 자신의 이익만이 판치는 현대에서 이웃과 공생하는 관계론의 시각으로 공자와 맹자, 노자, 장자를 해석한다. ‘옛 공부의 즐거움’(웅진지식하우스)을 쓴 이상국은 고전과 옛 사람들을 ‘놀이의 장’에 끌어 들인다. 노자의 ‘도덕경’을 놓고 김춘수와 유치환, 박경리를 불러내 작품 이야기를 펼친다. 글과 실용의 일치를 주장하고 실천했던 연암 박지원과 다산 박지원을 불러내 공리공론만 일삼고 있는 선학들을 꾸짖기도 한다. 정민의 ‘미쳐야 미친다’(푸른역사), 이덕무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에 나오는 18세기 조선의 학자들은 현대 한국의 지식인 사회가 거울로 삼아야 할 선학들이다. 이덕무씨는 “다산과 연암 등 열린 지식인층이 주류로 편입되지 못하면서 조선 지식인 사회는 성리학 중심이라는 폐쇄회로에 갇혔다.”고 분석한다. 또 오늘날 한국의 지식인 사회도 상아탑의 폐쇄적 권위와 전문분야 지식에 대한 독점적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논술이 술술] 한국인의 과학정신/박성래

    ‘과학·기술’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서양을 중심으로 생각하게 된다. 오늘날 세상을 움직이는 과학·기술이 바로 17세기 이래 서양에서 크게 발달했고, 전 세계가 철저하게 ‘서양’의 과학 기술을 배우고 발전시키려 애를 써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과학사’라고 할 때에도 탈레스와 아르키메데스에서 시작해서 갈릴레이·뉴턴·아인슈타인 등을 중심으로 한 서양의 과학사만을 유일한 것으로 떠올리게 된다. 그것만이 인류의 역사에서 유일한 과학 발전의 역사인 양 절대화해서 배워왔고 인식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서양 중심의 과학사 인식은 세계 역사의 발전에 비추어 볼 때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우선 17세기 무렵까지 인류 문명에서 과학과 기술이 가장 발달했던 곳은 서양이 아니라, 오히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였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근대 이전까지 각 사회는 나름의 사회적 역사적 환경 속에서 독자적인 과학 기술을 발달시켜 왔다. 그 흔적은 지금도 신비스럽게 남아 있는 고대 이집트와 잉카 문명의 여러 유적과 유물 등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일찍부터 농경과 중앙집권적인 국가 체제가 발달한 중국과 우리나라 등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나름의 과학 기술 문명을 크게 발달시켜 왔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무시한 서양 중심의 과학사 인식은 결국 ‘합리적인 서양’과 ‘비합리적인 동양’이라는 왜곡된 이분법적 구도를 만들고 있을 뿐 아니라,‘과학과 기술’을 우리 자신의 생활을 근거로 주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수동적인 수용의 대상으로만 여기게끔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전통 과학에 대해서 올바르게 인식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스스로 자신의 과학적 전통을 바르게 인식해야 ‘과학’을 인간 활동의 한 구성 부분이자 산물로써 주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고, 나아가 ‘서구화’라는 추종의 길을 벗어나 우리 삶의 필요와 목적에 걸맞은 과학기술 문명을 발달시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이분법적인 구분과 대립을 뛰어넘어 우리 자신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올바른 자긍심의 회복도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을 쓴 박성래씨는 현재 한국외국어대에서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한국인의 과학정신’은 글쓴이가 우리의 독자적인 과학 발전을 고대하면서 선조들의 지혜를 찾아 내고 그 의미를 밝히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제1부 ‘한국인의 과학 정신을 보여 주는 과학자’ 편에서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되짚어 볼 만한 과학인을,2부 ‘한국인의 과학 정신을 보여 주는 과학유산’에서는 문화 유산의 과학적 가치를 다루고 있다.3부에서는 우리가 소중히 여기지 못했지만 과학적 가치를 가진 전통 과학을 재평가하고 있고,4부에서는 새삼스레 민족 과학의 정신을 밝혀보려고 하는 이유를 다루고 있다. 짧은 글들을 모아 놓았기 때문에 손에 잡히는 대로 뒤적이며 하나하나 읽어도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www.unidream.co.kr) ●생각해보기-우리의 전통 과학자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누구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서양의 천문학적 지식에 큰 관심을 보이고 받아들였던 이익과 홍대용 등은 전통적인 세계관과 새로운 지식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글쓴이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버리고 ‘구고의 정리’를 찾아야 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나. -우리가 잃어버렸던 조상들의 과학 유산 가운데 오늘날 되살려 쓸 만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음력과 양력의 특징과 의의에 대해 써보자. -우리 민족의 과학기술 전통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되살려야 하는 까닭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써보자. ●독서지도시 참고사항-대상 학년:중2∼고3 -관련 교과:고등 국사, 한국근현대사, 고등 사회, 윤리와 사상, 전통 윤리 -함께 읽어볼 고전 및 원전:한국과학사(박성래), 이야기 과학사(〃), 민족과학의 뿌리를 찾아서(〃), 중국과학의 사상(〃), 칼럼으로 쓴 과학(〃), 한국의 과학문화재(전상운·민음사), 살아있는 과학(현종오 외·청년사), 사회 속의 과학 과학 속의 사회(이관수, 오동훈), 열하일기(박지원), 이야기 한국철학 1∼3(한국철학사상연구회), 한국의 사상(정용선·한샘출판사) -기출논제:1998학년도 고려대 자연계 논술, 사범대 자연계 논술.
  • 0.7m의 전율…견지낚시

    0.7m의 전율…견지낚시

    더위를 피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계곡들이 고요함과 적막함으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그곳은 강태공들의 차지. 견지낚시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하나 둘 계곡으로, 강으로 손맛을 즐기러 떠납니다. 조상들의 멋과 여유를 간직하고 있는 견지낚시. 아름다운 자연과 한 몸이 되어 강물이 흐르는 곳이면 어디서나 세월을 낚을 수 있는 견지낚시는 릴낚시나 대낚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또다른 맛이 있습니다.‘꾼’만 하는 낚시가 아닙니다. 짧은 낚싯대에 큼직한 고기를 낚는 재미도 좋지만, 맑은 물 흐르는 계곡에서 하루를 보내다보면 스트레스까지 말끔히 날아갑니다. 현대인을 위한 웰빙 레포츠이자 온 가족이 함께 하는 가족형 레저로 견지낚시는 더욱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견지낚시는 물에 들어가서 하는 흘림낚시와 배에 앉아서 하는 배낚시로 나뉩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의 ‘여울과 견지’, 견지협회 회원들과 함께 견지의 맛을 보러 떠났습니다. 가평 글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300년이 넘은 낚시 정확하게 견지낚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의 ‘소요정’이란 그림에 견지낚시가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오래전부터 사랑을 받아 왔음은 분명하다. 일본인 미쓰사키 메이지가 쓴 조기백과에는 1730년대 평양에 사는 홍씨가 견지낚시를 발명했다고 적고 있다. 역사가 최소한 300년 이상 되는 셈이다. ●숏다리, 잡으면 대물 견지대는 불과 70㎝. 세계에서 가장 짧은 낚싯대다. 낚싯대보다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것은 견지대 하나밖에는 없다고 한다. 그 구조를 살펴 보면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전후 원대(손잡이 부분)에 나무빗살을 스무 두어 개 박은 것으로, 그 모양은 파리채와 비슷하다. 원대의 직경은 겨우 3∼4㎜. 빗살의 위와 아래가 서로 반대방향으로 약간씩 비틀려 어느 낚시도구에서도 찾아 보기 어려운 절묘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바로 이 ‘비틀림’ 때문에 낚싯줄이 고르게 감긴다. 또 큰 고기가 걸리면 낚싯대가 휘면서 줄이 풀릴 때 탄력을 줘 매달린 물고기에게 충격을 가한다. 그 작은 낚싯대가 큰 물고기를 끌어 올릴 수 있는 비결은 여기에 있다. 과거에는 대나무와 등나무, 아카시아나무 등이 쓰였으며 지금은 솔리드 글라스대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국내 유일한 배 견지터 청평댐 앞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배 견지낚시를 할 수 있는 곳이다. 견지낚시는 흐르는 물에서 해야 하므로 댐의 수문을 열지 않으면 낚시를 할 수 없다. 청평배견지(011-745-3342)에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1만5000원이면 OK! 낚시도구에 미끼까지 1만원이면 충분하다. 견짓대 한 대에 수십만원짜리도 있지만 줄을 포함해서 2000∼5000원짜리 보급형도 있다.2만∼3만원이면 사림이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을 구할 수 있다. 칠칠낚시(www.77fishing.co.kr)에서는 미끼와 밑밥을 담은 목걸이형 주머니(1000원), 낚은 고기를 담아 두는 살림망(3000원), 미끼를 담아 물고기를 유인하는 썰망세트(8000원) 등 기본 장비를 판다. 수장대(7000원)는 여울견지에서 몸을 지탱하게 하거나 살림망을 걸어두는 필수 장비. 사고에 대비한 구명조끼(3만원선)와 체온유지를 위해 바지장화(4만원)도 준비해야 한다. # 지금이 ‘딱’이에요 아침 10시 우리나라 유일한 배 견지터인 청평댐을 찾아갔다. 벌써 많은 강태공들이 북한강 지류에서 배를 타고 견지낚시를 하고 있었다. 함께 나간 이들은 강대식(71)·이정훈(56) 씨를 비롯해 짧게는 10년, 길게는 40년 이상 견지낚시를 즐긴 도사급들이다. “이맘때가 견지낚시를 하기에 제일 좋은 시기”라는 강대식씨는 “물고기들이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먹이 사냥 움직임이 활발해져 씨알이 굵은 놈들이 자주 나온다.”고 말한다. 그는 “물도 그다지 차지 않고 무엇보다 피서객들이 없어 한가로이 세월을 낚을 수 있기 때문에 꾼들은 이맘때를 항상 기다린다.”고 덧붙였다. 옆에 있던 이정훈씨는 “낚시의 종착역이 바로 견지낚시”라며 “견지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고 거든다. 웃음으로 반겨 주는 꾼들의 얼굴에선 한 점의 각박함이나 스트레스를 읽을 수 없었다. 일단 깻묵과 구더기를 4대1정도로 섞어 밑밥을 만든다. 그 다음 밑밥을 넣은 썰망에 추를 달아 강에 던진다. 흐르는 강물을 타고 썰망이 저만치 가라앉는다.“이게 고기들을 유인하는 겁니다. 썰망 사이로 빠져 나가는 미끼를 먹으려고 고기들이 썰망 앞쪽에 모이죠. 자, 손맛을 볼까요….” 손을 강물에 넣어 보았다. 물살이 꽤 빨랐다.“추가 좀더 무거워야 할 것 같은데….”그는 중간 노란 고무에 추를 달고 바늘에 구더기 3마리를 끼우고 강물에 바늘을 던졌다. 순간 “어, 왔네. 역시 바로 오네.” 금방 고기가 물었다. 이씨의 환호에 덩달아 들떴다. 설장(견지대의 머리부분)이 휘청이며 ‘투두둑´ 줄이 풀려 나간다.“견지대를 옆으로 뉘어서 몸쪽으로 쭉 당기세요. 오른손으론 대를 돌려 줄을 감아요. 조심 조심! 줄이 설장 밑으로 감기면 휘어지지 않아 대가 쉽게 부러져요.”뭔가 도울 게 없을까 대를 쥐고 있던 내게 이씨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내가 들고 있는 대가 20만원이나 하는 고가품이라며…. 하지만 물고기가 이리저리 움직이니까 폭이 10㎝도 안되는 설장에 보이지도 않는 낚싯줄을 감는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 찌릿찌릿 전기가 오르는 손맛 물고기의 퍼덕거림에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설장이 휘청휘청, 놈이 바늘을 물고 물속으로 들어가려 할 때마다 손을 타고 온몸에 전율이 전해졌다. 갑자기 이씨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왔다. 저기저기….” 정말 푸른 물 속에 검은 물체가 하나 보였다. 표면에 모습을 드러낸 놈은 누치였다.30㎝는 족히 넘어 보인다. 놈도 위험을 직감했는지 마지막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견지대를 머리 위로 올려서 공기를 마시게 해요. 물고기 힘빠지게….” 뭔가 못마땅하다는 듯 이씨는 내게서 낚싯대를 잡아챘다. 순간, 누치는 바늘을 빼고 사라졌다. 아, 그 아쉬움이라니…. 또 다시 바늘을 바닥에 드리우고 견지대를 몸 안쪽으로 당겼다 밀었다하는 스침질을 하며 바닥을 훑었다. 스침질을 할 때마다 설장을 반바퀴씩 돌려 줄을 풀어 준다. 견지로 반평생을 살아온 이씨의 스침질은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몸짓처럼 부드러웠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이렇게 입질이 없을 때는 뭔가 잘못된 겁니다. 줄을 감아 미끼가 있는지 아니면 이물질이 붙지는 않았는지 한번 살펴 보세요.”역시 선배의 말은 들어야 한다. 바늘에 청태(파래같은 물이끼)가 잔뜩 묻어 있다. 새 미끼로 갈았다. 바로 그때 옆자리에선 또 환호성이다.“왔다.” 견지대를 쭉 당겼다 밀면서 감기를 몇 번. 이번엔 20㎝가 넘는 누치였다. 신기했다. 이렇게 작은 낚싯대로 큰 고기를 건져 올리다니…. 내가 잡은 것은 아니지만 신기하고, 우리 배에서 잡았다는 자족감에 젖었는데 이번엔 옆 배에서 환호성이 들렸다.“멍짜(50㎝가 넘는 물고기)야. 멍짜가 왔어.”박찬화(50)씨는 휘어진 견지대를 두 손으로 잡고 소리친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20분이 흘렀을까, 놈이 실체를 드러낸다.60㎝ 가까운 녀석이라 뜰채로 건져 올렸다. 우리 선조들은 참 대단한 것 같다. 어떻게 이런 낚싯대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이렇게 짧은 낚싯대로 그처럼 큰 고기를 건져 올리다니…. 나는 다시 한번 집중했다. 어깨너머 구경하는 것으로만 만족할 수는 없는 일. 또 한마리를 더 잡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아 먹었다. # 물고기도 사람을 알아 본다네 이상도 하지. 같은 배에 나란히 앉아서 스침질도 비슷하게 하는데 왜 내 바늘에는 소식이 없을까. 욕심탓인가, 내 낚시바늘은 여전히 가뿐한데 옆사람은 5분에 한 마리씩 잡아올렸다. 정말 고기에게도 눈이 있다더니…. 누치는 미끼가 흘러갈 때 문다. 그래서 스침질을 할 때마다 줄을 조금씩 풀어줘 썰망 앞에 있는 녀석들을 유인해야 한다. 추를 달아 썰망 앞 2m 정도에서 스침질을 해야만 물고기의 입질을 받을 수 있다. 무작정 던져 놓고 물고기가 물어주기를 기다리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라나. 역시 어느 분야든지 고수는 다른 법. 우리 배에서만 누치 20여마리를 잡았다. 물론 내가 잡은 것은 한 마리도 없다. 하지만 내가 건진 것은 ‘많았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기 전, 일행은 잡았던 누치를 모두 놓아 주었다.“원래 우리는 손맛을 보려고 오지. 또 누치는 가져가 봐야 별로 쓸 데가 없어요.”올 때처럼 역시 빈바구니였다. 아, 이것이야말로 자연과 하나된 삶의 모습이구나. # 자연과 내가 한 몸 청평에서 차를 몰고 약 1시간을 달려 홍천 팔봉산 앞 계곡으로 들어갔다. “요즘 계곡에는 피서객들이 지나간 뒤라 입질이 자주 없지만 대물이 종종 출현해 손을 즐겁게 해주지요.” 바지장화를 입고 견지대를 뒤에 꽂고 가는 김정교(50·견지협회 사업국장)씨의 모습이 멋스럽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줄을 강물에 띄워 보내며 스침질을 한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계곡물이 가슴까지 시원하게 만든다.“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어요. 줄을 풀어 주기만 하면 되니까요. 맑은 공기, 깨끗한 물, 좋은 사람들….” 김군학(51·건축업)씨는 한창 견지낚시 예찬론을 늘어놓는다. “경제적이지요. 낚싯대가 2만원이면 되는데 대낚시나 바다낚시와는 비교가 안되죠. 초보자도 배우기 쉽고….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점은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견지를 하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스트레스가 없어져요.” 섬유수출업에 종사하는 권재구(55)씨의 견지낚시에 대한 자랑은 끝이 없다. #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즐거움 정말 산그늘에서 반짝이는 강물을 보고 있노라니 온갖 근심걱정이 사라진다. 그냥 물 흐르는 대로 살아가면 된다는 듯, 강물은 그렇게 흘러간다. 계곡 얇은 곳에는 아이들과 견지낚시를 하는 가족들이 눈에 띈다.“아빠 잡았어. 이것 봐. 물고기야.”하는 들뜬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와 반바지를 입고 스침질을 하던 황소윤(9·고양초등학교)양의 목소리다. 불과 2∼3㎝도 안되는 피라미를 잡고는 너무 좋아한다.“견지낚시는 아이들에게 집중력을 키워 주고 자연과 함께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효과가 있지요. 정말 아이들이 쉽게 배우고 바로 손맛을 느낄 수 있어 가족 레포츠로 그만이에요.” 황선태(38·식당운영)씨의 견지예찬론이다. “어허 왔네.” 조그마한 피라미를 들어 올리는 김정교씨의 웃음은 결코 커다란 누치를 잡을 때에 비해 작은 것 같지 않다. 피라미의 손맛은 누치와는 또다른 묘미가 있다. 견지대는 70㎝도 안 될 정도로 작아 손에 오는 느낌이 대낚에 비해 훨씬 살아 있다. 찌를 쓰지 않고 오직 줄을 타고 오는 느낌만을 손으로 감지하기 때문에 예민하고 섬세하다. 그래서 민물, 바다, 루어 등 낚시를 웬만큼 안다는 사람들이 찾는 마지막 코스다. 또 루어나 플라이처럼 물고기를 찾아 이동하지 않고 한 곳에서 물고기를 유인하므로 체력 소모가 적다. 자연과 벗하며 짜릿한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견지를 하며 다가 오는 가을을 준비하면 어떨까.
  • [친일 3090명 명단공개] “명단 정치적이용 않기를”

    [친일 3090명 명단공개] “명단 정치적이용 않기를”

    “무엇보다 이번 명단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거나 왜곡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 윤경로(58·한성대 총장) 위원장은 29일 “인명사전편찬은 역사적·학술적으로 친일에 대해 확실히 짚고 정리하자는 것”이라고 그 의미를 밝혔다. 그는 “해방 직후 만들어진 반민특위 정신과 역사성을 잇고 있지만 당시 활동이 정치적 성격을 띠었고 처벌을 목적으로 했던 것과 이번 작업은 성격이 다르다.”면서 “당사자 처벌은 물론 그들의 후손에 대한 연좌제적 비판도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03년 10월 2대 편찬위원장으로 취임한 그는 그동안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선정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친일 사실 자체는 사료를 바탕으로 규명하면 되지만 사전에 누구를 포함시키고 배제할 것인가를 정하는 데는 많은 토론이 필요했다.”면서 “논란은 있겠지만 일단 정한 기준을 바꾸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친일행위 자체에 대한 객관성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하더라’는 식의 전언이 아닌 사료를 근거로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유족 등이 항의하는 경우에는 각 사안마다 자료를 만들어 내겠다.”면서 “아직까지는 소송 움직임은 없지만 만약의 경우에는 민변 변호사 등의 자문을 얻어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명단 선정과정에서 일부 후손들의 불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반면 선조의 친일행위를 인정하고 편찬 활동에 힘을 실어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편찬위는 사전을 출판할 때 명단과 함께 친일행위를 반성한 경우 그 사실을 함께 기록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윤 위원장은 “정확한 비율은 말할 수 없지만 (반성한 경우는)매우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며 씁쓸해 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이순신 장군 알고보니 과학자

    이순신 장군 알고보니 과학자

    인기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만 알려져 있던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 고뇌는 물론, 당시의 사회·정치적 배경, 임진왜란의 전개과정 등을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임진왜란 개전 초기 육지에서 일본의 신무기인 조총 앞에 맥없이 무너지던 조선이 유독 이순신 장군이 지휘한 해전에서만 ‘23전 23승’이라는 전승신화를 일궈낼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이는 이순신 장군이 훌륭한 전략가이자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였을 뿐 아니라, 과학기술을 이해하고 실전에 활용한 과학자였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 해군이 승리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조선의 배가 일본의 배보다 전투에서 훨씬 뛰어났던 점, 뛰어난 화기를 이용해 효율적인 화포공격을 감행한 점, 조수나 물살의 세기 등 지형적 조건을 이용한 전술과 진법을 구사했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조선 수군의 주력 전투함인 판옥선과 전투용 돌격선인 거북선은 과학적으로 우수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중 노를 젓는 1층과 함포를 발사하는 2층으로 이뤄진 판옥선은 전투의 효율성을 높인 것이다. 당시 일본의 전투방식은 배를 가까이 붙여 상대편의 배에 올라타 전투를 벌이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판옥선은 이를 막기 위해 배를 높게 만들고 화포공격으로 적의 접근을 막았다. 일본의 군선도 2층 구조였으나 갑판이 좁고 견고하지 못해 화포를 장착하기 어려웠다. 또 조총은 사거리가 짧아 사거리가 길고 파괴력이 높은 조선의 화포를 당해낼 수 없었다. 거북선은 판옥선 위에 개판을 씌워 배에 탄 모든 군사를 보호할 수 있는 장갑함이었다. 개판에는 송곳을 촘촘히 꽂아 적이 배에 올라타는 것을 막았다. 전후좌우 사방으로 화포를 배치해 막강한 화력을 자랑했다. 거북선 창제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이순신 장군이 판옥선을 실전에 적합하도록 개조한 것이라는 견해가 가장 유력하다. 판옥선과 크기나 구조는 거의 동일하나 판옥선보다 견고하게 만들어져 적의 선체를 격파할 수 있다. 아울러 거북선은 조수간만의 차가 큰 얕은 바다를 다닐 수 있도록 물에 잠기는 부분이 적었으며, 돛을 자유롭게 눕혔다 폈다 하면서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어 기동성도 갖췄다. 거북선의 활약상은 이 충무공 전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신이 일찍이 왜적의 난리가 있을 것을 걱정하고 특별히 거북선을 만들었사온대 앞에는 용머리를 붙여 아가리로 대포를 쏘고 등에는 쇠못을 꽂았으며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어도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고 적선 수백척 속에라도 뚫고 들어가 대포를 쏠 수 있는데 이번 길에 돌격장이 타고 나갔습니다. 그래서 거북선에 명령하여 적진 속으로 들어가 천·지·현·황의 포를 쏘게 했습니다.” 또 이순신의 조카 이분은 이순신 행록에서 “적이 거북선을 에워싸고 엄습하려 하다가도 (거북선이)좌우 앞뒤에서 한꺼번에 총을 쏘니 적선이 아무리 바다를 덮어 구름같이 모여들어도,(거북선이)마음대로 드나들며 가는 곳마다 쓰러지지 않는 (왜)놈이 없기 때문에 항상 승리했다.”고 기술했다. 이처럼 뛰어난 과학기술을 가졌던 선조들의 전통을 찾아내고 음미하다 보면 드라마를 통해 또 하나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문정 서울 숙명여고 교사
  • [스포츠 라운지] 하계U대회 은메달 딴 한국경보 희망 김현섭

    [스포츠 라운지] 하계U대회 은메달 딴 한국경보 희망 김현섭

    ♥깡마른 시골 소년은 마냥 뜀박질이 좋았다. 강원도 속초에 살던 초등학교 시절, 학교가는 버스가 없어 20분 거리를 늘 뛰어다녔다. 운동회가 열리기만하면 계주에 바짓가랑이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런 그였지만 이젠 더이상 달리기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빨리 걷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하루에도 30㎞를 걸으며 비지땀을 뻘뻘 흘린다. 경기 용인 삼성전자 육상단 숙소에서 만난 그에게 왜 하고 많은 종목 중 경보를 하느냐고 물었다.“달리기를 좋아만 했지 재능은 없었거든요.”라며 씨익 미소로 답한다.176㎝,58㎏의 마른 체구의 이 청년은 지난 16일 터키 이즈미르에서 열린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남자 경보 20㎞에서 대회 경보 사상 최초로 한국에 은메달을 안긴 ‘한국 경보의 희망’ 김현섭(20·경운대 2년)이다. ●달릴 수 없어 슬픈 소년, 걷기에 목숨걸다 2000년 속초 설악중학교 체육부실.3학년 김현섭은 코치 앞에 불려가 ‘협박 아닌 협박’을 받았다.2년전 한눈에 ‘제법 뛸 것 같다.’는 느낌으로 자신을 육상부로 끌어온 이 코치가 이젠 “너 운동 그만둘래 아니면 경보할래.”라며 심드렁하게 물어온 것. 달리고 싶어 시작한 육상이었지만 김현섭은 시·도대회 중거리 달리기에서 예선조차 통과 못하는 그저 그런 축에도 못드는 선수였다. 뛸 수는 있었지만 더이상 뛸 수 없게 된 김현섭은 그날부터 이를 악물고 걷기에 몰두했다.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단 생각도 잊을 만큼 보다 완벽한 폼만들기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뜀박질에 가렸던 재능이 머리를 내밀기 시작한 건 고교 2학년 때인 2002년 3월 전국중고육상선수권대회. 그는 이 대회 남자 1만m에서 고등부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한번 빛을 본 재능은 멈출 줄 몰랐다. 지난해 7월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1만m에서 몇 걸음 차이로 3위에 올라 변방에서 우울해하는 한국 육상인들을 흥분시켰다. 성인 데뷔 무대인 지난 6월 국제육상연맹 경보챌린지대회 20㎞에선 1시간22분37초라는 자신의 최고 기록으로 당당히 톱10(8위)에 진입, 세계적인 건각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김현섭은 “유니버시아드에선 앞서 열렸던 세계선수권에서 3위를 차지한 스페인 선수에게 36초 차이로 아깝게 밀렸지만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며 기뻐했다. ●한국 육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향해… 자기와의 고독한 싸움을 해야 하지만 김현섭은 활달한 스무살 ‘B형 남자’다. 팀의 막내로 선배들과 지낼 땐 말이 많아 시끄럽다는 핀잔을 들을 정도다. 하지만 경보만 생각하면 사뭇 진지한 청년으로 돌아온다. “가끔 시간날 때 싸이홈피를 둘러보는 시간과 어떻게 하면 경보를 좀더 잘할 수 있나하는 생각을 빼면 다른 건 내 머릿속에 들어올 공간이 없습니다.” 김현섭의 꿈은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메달을 품는 것. 경보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골반과 허리의 유연성이 탁월해 세계 무대의 전문가들이 “완벽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폼을 구축했다. 때문에 그는 불완전한 폼으로 경고에 의해 탈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경보만의 ‘아픔’을 한번도 겪지 않았다. 어린 나이 탓에 아직 모자란 지구력과 파워를 늘린다면 한국 육상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 세계기록에 5분가량 뒤져 있습니다. 매일 매경기 조금씩 땀을 보탠다면 언젠가 좋은 소식을 전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며 주먹을 불끈 쥐는 그의 모습에서 믿음이 느껴진다. 글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김현섭 프로필 생년월일 - 1985년 5월31일 강원도 속초 출생 체격 - 176㎝ 58㎏ 출신학교 - 속초 대포초-설악중-속초상고-구미 경운대 사회체육학과 2년 가족 - 김동성(47)씨의 1남1녀 중 둘째 취미 - 인터넷 채팅 경력 - 2003년 전국체육대회 1만m 2위,2004년 세계주니어육상선수권대회 1만m 3위,2005년 국제육상연맹 경보챌린지대회 20㎞ 8위, 터키 유니버시아드 20㎞ 2위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3)묘청은 ‘정감록’의 숨은 뿌리였다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3)묘청은 ‘정감록’의 숨은 뿌리였다

    조선 광해군 때였다. 술관 이의신이 상소하여, 경기도 교하현(현재는 파주군 교하)으로 서울을 옮기자고 주장했다. 한양의 지기가 쇠했기 때문이라 했다. 당파싸움과 청나라 세력의 등장으로 골치아파하던 광해군은 이의신의 천도론에 솔깃해 했다. 그러자 예조 판서 이정구는 이의신의 천도론을 거세게 공격했다. 풍수설은 유교 경전과 거리가 먼, 한낱 방술(方術), 아무 근거 없는 낭설이라는 거였다. 이 때 이정구는 멀리 고려 때의 일을 들먹였다.“요승 묘청(妙淸)이 음양가의 설을 빌려 임금을 현혹했습니다.‘송경은 왕업이 이미 쇠하였는데, 마침 서경에 왕기가 있으니 도읍을 옮겨야 한다.’고 하여 서경의 임원역(林原驛)에 새로 궁궐을 짓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변란이 일어났던 것입니다.”(실록, 광해 4년 11월 15일 을사) 이정구의 이 같은 주장으로 이의신의 천도론은 무너졌다. “요망한 승려” 묘청을 연상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한국 역사상 묘청만큼 천도문제를 개혁과 맞물려 철저하게 내세운 이는 없었다. 그는 국정을 쇄신하고 종속적인 기왕의 대외관계를 청산하기 위한 방편으로 천도론을 폈다. 잘 따져 보면 묘청의 천도론은 ‘정감록’과 일맥상통한다. 정감록의 주요 골자는 계룡산에 도읍해 세 세상을 열자는 것인데, 묘청의 생각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예언가 묘청의 비극 묘청은 서경(평양)의 승려다. 그는 인종 5년(1127) 검교소감(檢校少監) 백수한의 천거로 조정에 알려졌다. 서경의 천문 지리 관계 분사(分司)를 이끌던 백수한은 묘청의 제자였다. 이후 8년 동안 묘청은 인종의 신임을 받으며 국정을 좌우하다시피 했다. 그 무렵 내외정세는 무척 혼란했다. 권신이 날뛰고 북방의 금(金)나라가 압력을 가해오는 상황이었다. 인종은 수도 개경 출신의 귀족들을 억제할 생각이 없지 않았다. 혹시 금나라가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그에 대한 대비책도 강구해야만 되었다. 묘청은 인종의 이런 고민을 잘 헤아렸다. 묘청이 제시한 해결책은 서경천도였다. 인종7년(1129) 묘청의 강력한 추진력에 힘입어 서경에 신궁이 낙성되었다. 이 기회를 빌려 묘청 일파는 칭제건원(稱帝建元 황제를 칭하고 연호를 세움)을 주장했다. 금나라에 대한 선제공략도 건의했다. 실로 국가의 명운을 건 과감한 시책이었다. 인종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묘청은 풍수지리설을 비롯해 여러 도참설을 이용하였다. 신비한 이적을 조작하기도 했다. 예컨대 인종이 신축된 서경의 궁궐에 처음으로 자리를 잡는 순간 공중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고 허풍을 친 일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서경 한 가운데를 흐르는 대동강에 상서로운 기운이 나타났다고 야단이었다. 신룡(神龍)이 침을 토해 강물에 오색빛깔이 영롱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신이한 현상에 대해 묘청 측은 위로 천심에 따르고 아래로 인망을 잃지 않은 결과라며 장차 고려는 동북아 최강의 패자로 급부상하던 금나라도 제압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공중에서 풍악소리가 저절로 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일종의 환청 같은 것에 불과했다. 대동강물에 서기가 비친 것도 역시 조작된 것이었다. 묘청 등은 남몰래 큰 떡을 빚어서 속을 빼내고 볶은 기름을 채운 뒤 구멍을 뚫었다. 그런 다음 이 떡을 대동강에 가라앉힌 것이었다. 떡에서 나온 기름방울이 햇빛에 비쳐 오색을 뿜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고려사’, 권 127) 처음에 인종은 묘청의 개혁안에 적극 찬동하였다. 그러나 왕은 결국 묘청과의 약속을 배반했다. 본래 왕의 성격이 우유부단한데다 개경의 구 귀족들이 벌인 반대공작이 큰 역할을 했다. 당시 묘청과 대립한 개경파의 거두는 김부식이었다.‘삼국사기’의 저자로도 유명한 김부식은 문무를 겸전한 인물이었다. 그는 개경의 구 귀족 세력을 결집시켜 우선 인종과 묘청을 이간시키고, 이어서 묘청을 비롯한 서경파를 완전히 제거할 생각이었다. 인종13년(1135) 묘청은 더 이상 인종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자력으로 개혁을 추진하기로 결심해 평양에 새 나라를 세웠다. 국호를 대위(大爲)라 정하고 연호를 천개(天開)라 했다. 묘청의 군대는 천견충의군(天遣忠義軍, 하늘이 보낸 충의로운 군대)이라 불렀다. 그러나 김부식이 이끌던 고려군의 전술적 능란함을 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마침내 묘청은 한 때 그의 충실한 부하였던 조광에게 암살되었다. 이로써 묘청의 개혁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조선말까지도 유학자들은 묘청을 단죄해 왔다. 앞에 예로 든 이정구처럼 유학자들의 눈에 비친 묘청은 한갓 요망한 승려에 불과했다. 예언과 이적을 빌려 나라를 망치려 든 역적이란 것이다. 이런 악평을 처음으로 뒤집은 이는 아마도 단재 신채호(1880~1936)일 것이다. 그는 묘청과 김부식의 대결을 한국사에 있어 자주노선과 사대노선이 격돌한 일대사건으로 보았다. 신채호에 따르면, 묘청의 실패는 한 개인의 패망이 아니라 한민족의 주체성이 외세의존적인 세력에 완전히 무릎을 꿇고만 중대사건이었다. 나는 신채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묘청의 행적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도 없다는 생각이다. 예언가 묘청은 개혁의 웅지를 품었던 역사상의 일대 거인이었기 때문이다. ●서경 궁궐터와 36국 조공설 ‘정감록’을 신봉하는 이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한다.“정씨가 계룡산에 도읍하면 나라의 수명은 6백 년이요,36국의 조공을 받게 된다. 사실상 세계 통일 정부가 한반도에 출현할 시운이 오는 것이다.” 지리산 청학동 골짜기에 있는 어느 신종교의 본부 건물에 부착된 주련(柱聯)에도 비슷한 구절이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세계의 운이 돌고 돌아 이제 동방의 작은 나라로 들어오리라.”는 것이다. 36국이라면 적은 숫자가 아니다.36이란 숫자는 자연수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전통적인 지리 관념에 따르면 이 세상은 동, 서, 남, 북의 4방으로 나뉜다.4통8달이란 말도 있지만 4방은 다시 여럿으로 세분화된다.12 간지를 모방해 지관의 나침반에서 보듯 4방은 다시 12로 나뉜다. 이것이 36으로 더욱 미세하게 갈라지기도 한다. 요컨대 36은 온 세상을 포괄하는 상징적 표현이다. 장차 한국이 36국으로부터 조공을 받게 된다는 말은, 다시 말해 한국이 세계의 중심 국가로 등장한다는 뜻이다. 물론 세상 모든 나라가 한국에 굴복할 거라는 기대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알다시피 고대로부터 중국대륙에는 강대한 정치세력이 연이어 들어섰다. 그들 나라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엔 독특한 세계 질서가 형성되었다. 조공체제란 것이다. 한 편엔 당연하다는 듯 조공을 받는 문명한 큰 나라가 있고, 다른 한 편엔 조공을 바칠 의무를 걸머진 여러 개의 미개한 나라들이 있다고 보는 위계적인 세계관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은 여진과 유구 등 몇몇 나라의 조공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남의 나라에 조공을 바쳐야만 되었던 경우가 좀더 많았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한국 사람들은 언젠가 다른 나라들에서 조공을 받는 날이 오기를 꿈꾸게 되었다. 근원을 헤아려 볼 때 ‘정감록’ 신봉자들이 36국 조공설을 주장하는 것은 민중의 오랜 갈망을 드러낸 것이다. 어찌 보면 그것은 조공 자체에 비중을 둔 것 같지가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새 국가의 건설을 바랐던 염원으로 봐야 옳지 않을까 한다. 36국 조공설을 처음으로 편 사람은 다름 아닌 묘청이었다. 그것도 서경천도론을 펴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인종 6년(1128) 고려 수도 개경의 인덕궁과 남경(뒷날의 한양)에 있던 궁궐이 연이어 화재를 입었고, 이 무렵 묘청은 이렇게 주장했다.“서경에 있는 임원역의 지기를 살펴 보았습니다. 이 곳이 음양가에서 말하는 이른바 대화세(大華勢)입니다. 만약 그곳에 궁궐을 세우고 수도를 옮기신다면 천하를 아우를 수 있습니다. 금나라가 조공을 바치게 되고 저절로 항복해올 것입니다.36국이 모두 조공을 바치게 될 것 입니다.”(‘고려사’, 권 127) 이 말에서 보듯 묘청은 한국의 지세를 하나의 유기적인 조직체로 인식했다.“대화(大華)”란 대화(大花)다. 국토를 한 그루의 나무로 볼 때 가지마다 크고 작은 꽃이 핀다. 이것이 각지의 길지 또는 명당이다. 이들 명당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명당이 큰 꽃이다. 그 자리가 평양 임원역에 있으므로, 그곳에 궁궐을 지으면 나라가 가장 융성하게(大華) 된다는 것이다. 인종은 묘청의 36국 조공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동안 개경의 귀족들에게 억눌려 지내온 자신의 처지를 일거에 개선하고, 나아가 쇠약해진 국운을 개척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왕은 묘청의 건의에 따라 서경에 궁궐을 지은 뒤, 개혁의 꿈을 이렇게 담아냈다.“해동 선현(海東先賢 옛날의 어진이들 즉, 예언가들)이 말하기를,‘대화세(大華勢)에 궁궐을 창립하여 나라의 운명을 연장할 것이다.’고 했다. 이제 이미 그 터를 잡아 새로 궁궐을 지었다. 나는 때때로 그곳을 순회하여 은혜와 덕택이 안팎에 고루 미치게 하려 한다. 이를 기념하여 죽을죄를 범한 자는 감하여 유배형에 처하고, 유배 형 이하의 죄를 지은 자는 모두 용서하겠다.”(‘고려사’, 권 16) 인종이 내린 글에서 보듯, 묘청은 ‘대화세´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앞 시대의 예언서에서 찾아 놓고 있었다.‘해동선현’이 했다는 말이 그것이다. 그런 예언이 묘청 일파에 의해 조작됐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어쨌거나 인종은 서경에서 발견된 대화세 명당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당시 조정 대신들 가운데서도 문공인과 임경청 등 일부 인사들은 묘청을 추종했다. 그들은 묘청을 “성인(聖人)”이라며 떠받들었다. 묘청의 제자 백수한 역시 그들에겐 존경의 대상이었다. 문공인 등은 왕에게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모든 국가의 일을 묘청과 백수한 두 사람에게 일일이 자문한 뒤에 시행하십시오. 그들의 견해를 따른다면 나라가 다스려져 평안할 것입니다.”(‘고려사’, 권 127) 이 말대로 인종은 한동안 묘청의 말이라면 무조건 다 좇았다. 그러나 의심 많고 나약한 왕은 결국 묘청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왕은 신하들이 “성인”이라 추앙하는 묘청의 종교적 카리스마를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훗날 조선조의 중종이 개혁파 조광조를 중용하다가 겁을 내어 처단한 것과 마찬가지로, 고려 인종은 본래 자기의 적이었던 송경의 귀족들을 앞세워 묘청을 제거했다. 묘청의 죽음과 더불어 36국 조공설은 끝장났다. 하지만 그 꿈은 민중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았다. 묘청이 죽은 지 900년 가량 지난 오늘날에도 ‘정감록’ 신도들은 여전히 36국 조공설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묘청의 팔성당과 십승지 묘청이 국토를 한 그루의 나무로 인식했다는 점은 이미 앞에서 말했다.‘대화세´로 집약되는 묘청의 풍수 이해 가운데서 나는 ‘정감록’에 언급된 십승지의 원형을 본다. 이런 짐작은 인종9년(1131) 묘청이 인종에게 올린 글에서 더욱 뚜렷이 확인된다. 그는 궁궐 안에 “팔성당”(八聖堂)을 설치하자고 제안하였다. 국토의 수호신인 여덟 성인을 위해 사당을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이들 여덟 성인은 풍수지리와 관계가 깊었다. 동시에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기도 했다.“팔성”에 관한 묘청의 말은 이랬다. “첫째는 호국(護國) 백두악(白頭嶽 백두산) 태백선인(太白仙人)인데 실체는 문수사리보살(文殊舍利 菩薩)입니다. 둘째는 용위악(龍圍嶽 금강산으로 추정) 육통존자(六通尊者)로 실체는 석가불(釋迦佛), 셋째는 월성악(月城嶽 경주 남산으로 추정) 천선(天仙)으로 실체는 대변천신(大變天神), 넷째는 구려(駒麗) 평양선인(平壤仙人)으로 실체는 연등불(燃燈佛), 다섯째는 구려(駒麗) 목멱선인(木覓仙人 목멱은 남산)으로 실체는 비파시불(毗婆尸佛), 여섯째는 송악(松嶽) 진주거사(震主居士)로 실체는 금강색보살(金剛索菩薩), 일곱째는 증성악(甑城嶽 속리산으로 추정) 신인(神人)으로 실체는 륵차천왕(勒叉天王), 여덟째는 두악천녀(頭嶽天女 이른바 지리산 聖母)로 실체는 부동우파이(不動優婆夷)입니다.”(‘고려사’, 권 127) 묘청의 주장은 ‘정감록’의 십승지설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그가 거론한 지명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백두산을 비롯해 백두대간의 주요 마디가 중시되었다. 백두산, 금강산, 속리산 및 지리산을 비롯해 송악산과 서울 및 경주의 남산 등이 언급되었다.‘정감록’에 언급된 길지들이 이들 여러 산과 관련이 있다는 점은 이미 여러 차례 말했다. 얼핏 보기에 ‘정감록’과 전혀 다른 점도 눈에 띈다. 전국 8대 명산의 실체를 도교의 신선이자, 불교의 불보살로 인식한 점이다.‘정감록’에는 이런 종교적 관점이 쉽게 감지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주 없지는 않다. 부안의 변산이나 보은 속리산처럼 미륵불교의 성지가 십승지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일례로 ‘정감록’의 핵심 예언서에 해당하는 ‘감결’을 살펴보더라도 불교 최고의 성지 금강산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오랫동안 한국인들의 마음속에는 불교의 성지가 바로 최고의 명당이요, 국가의 운명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었다. 이런 믿음이 풍수지리사상과 결합해 팔성당이나 십승지라는 관념을 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후기에는 불교의 위세가 많이 위축되었다.‘정감록’에는 불보살의 존재가 그저 간접적으로 드러나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더욱이 ‘정감록’을 전국에 전파시킨 술사들이 유교적 교양을 갖춘 평민 지식인들이고 보니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나 묘청이 팔성당의 건립을 주장했을 당시만 해도 사정은 아주 달랐다. 왕은 화공을 시켜 팔성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게 했다. 당대 최고의 명문장 정지상은 팔성의 덕을 이렇게 찬양했다.“오직 천명(天命)만이 만물을 제어할 수 있고 오직 땅의 덕(土德)만이 사방에 왕 노릇을 하게 돕는다. 이제 평양 한 가운데 대화(大華)의 지세를 골라서 궁궐을 새로 짓고 음양의 이치에 순응하여 팔선(八仙)을 모시노라. 백두산을 받들어 우두머리로 삼으니 밝은 빛이 어리누나.” 묘청은 한국 풍수지리의 비조(鼻祖) 도선국사의 정맥(正脈)을 이었다고 했다. 도선의 후예답게 그는 팔성당 이론을 폈고, 이는 훗날 십승지설로 다시 피어나게 될 운명이었다. ●묘청의 새 상원(上元)과 후천개벽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정감록’의 이면에 간직된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사상도 실은 묘청에 기원을 두었다는 점이다. 인종10년(1132) 왕이 반포한 글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다.“옛 가르침(예언서)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천지가 생긴 뒤 수만 년이 지나면 반드시 동지(冬至)가 갑자일이 되리라. 그때가 되면 해와 달 그리고 수화목금토 다섯별이 모두 정북(正北,子)에 모여든다. 이 때를 상원(上元)으로 삼아 일력의 출발점을 삼으라. 천지가 열린 뒤 성인(聖人)의 도(道)가 이때부터 행해질 것이다.’(‘고려사’, 권 16) 하늘을 수놓은 일곱 개의 주된 별이 정북에 모이는 동짓날이 되면 후천이 개벽된다는 예언이었다. 이런 예언에 생명을 불어넣은 이는 묘청이었다. 그는 그해 동짓날을 기점으로 후천개벽이 시작된다며 왕에게 정치의 혁신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왕은 결국 묘청의 제안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그건 그랬지만 한국 민중은 묘청이 한 번 싹을 틔운 이상세계의 꿈을 끝내 접지 않을 것이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알림 지난 18일자에 게재된 정감록 32회 기사중 경북 울진 ‘불영사’의 한자 표기는 ‘不影寺’가 아닌 ‘佛影寺’이기에 바로잡습니다.
  • 국립박물관 ‘3館3色’ 조상의 얼과 숨결 촘촘히 느끼세요

    지난 15일 문을 연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 앞. 박물관을 관람하러 온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밀려드는 관람객 때문에 첫 개관시간이 오후 4시에서 3시로 앞당겨졌다. 박물관 문이 열렸지만 한꺼번에 입장할 수는 없는 법. 박물관측은 박물관 이미지인 ‘왕실’의 엄숙한 분위기를 살린다는 취지로 한번에 20∼30명씩만 입장시키며 질서를 유지하느라 진땀을 뺐다. 고궁박물관 개관을 계기로 60년 역사의 국립민속박물관과 오는 10월 용산 새 보금자리에서 새롭게 문을 여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어깨를 견주게 됐다. 이른바 ‘3관 시대’가 열리는 것. 비슷한 듯하면서 다른 이들 박물관의 특색을 들여다보자. ■ 국립중앙박물관 경복궁을 떠나 용산으로 옮겨 새 단장한 지 1년 만에 10월28일 재개관하는 중앙박물관은 규모나 소장·전시유물 종류에 있어 다른 박물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전시면적만 8000평이 넘어 소장유물 15만점 가운데 12만점이 동시에 전시될 만큼 넉넉한 공간을 자랑한다. 아무리 유물이 많아도 관심을 끄는 국보·보물은 있기 마련. 최근 10년에 걸친 이전·복원작업을 마친 경천사 10층석탑이나 금동여래입상, 보신각종, 금령총금관 등 200점에 달하는 지정문화재들이 건물 안팎에 숨어 있어 이들을 찾아 감상하는 것도 묘미일 듯. ‘동아시아 중심’ 박물관의 위상에 맞게 새로 선보이는 전시실도 흥미롭다. 아시아 각국의 수준 높은 문화재들만 모아 전시하는 ‘동양관’과 전해 오는 유물이 희귀해 제대로 된 전시실을 꾸리지 못했던 ‘발해실’ 등이 그것. 용산의 넉넉한 자리를 차지한 만큼 박물관 관람뿐 아니라 공연과 음식, 쇼핑까지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난다.870석 규모의 공연장 ‘극장 용(龍)’은 클래식과 무용, 연극, 대중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단순한 기념품이 아닌, 자체 개발한 300여종의 생활·장식용품 등을 판매하는 ‘뮤지엄숍’과 한식과 전통차, 다과 등을 제공하는 8개의 레스토랑·카페에서도 다양한 멋과 맛을 느낄 수 있다. 한 가지 흠이라면 교통이 다소 불편하다는 것. 지하철 4호선 이촌역에서 가장 가깝지만 정문까지 200m 이상 걸어야 한다. 이 때문에 지하철에서 박물관까지 바로 연결되는 지하통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亞 주변국 유물도 전시” 현재 우리 사회는 지식기반사회의 도래, 정보화의 확산, 세계화의 심화, 남북통일문제 등 거시적인 많은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중앙박물관도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 문화교육 강화, 지식정보 공유 및 박물관 네트워크 구축, 사이버박물관 운영, 국제교류 협력 강화 및 남북 박물관 자료교환 및 전시교류 등이 필요하게 됐다. 새로운 사고와 방식의 패러다임으로 가고 있는 박물관, 대한민국의 존재와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정체성을 지닌 박물관, 기술과 문화의 발전을 보여주는 생성형(生成型) 박물관, 통일에 대비한 문화공간으로서의 박물관 구현을 정책목표로 설정했다. 새 박물관은 크게 상설·기획전시실과 어린이박물관으로 구성된다. 아시아 주변국가의 유물을 전시해 역사적 관련성을 비교할 수 있도록 구성된 아시아관을 통해 아시아 문화의 전당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시대 임금과 왕비가 어떻게 지냈나.’ 궁금하다면 최근 개관한 고궁박물관을 찾아보자. 덕수궁 궁중유물전시관과 창덕궁, 종묘 등에 흩어져 있던 조선왕실 문화재 2만여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연말까지 2만점이 추가로 옮겨올 예정이다. 기존 전시공간보다 3배나 늘어난 만큼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유물들이 부드러운 양탄자가 깔린 정갈한 전시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어의와 편경, 가구, 장신구 등 찬란한 왕실문화를 보여주는 화려한 보물들이 눈길을 끈다. 다음달 25일까지 열리는 개관 특별전인 ‘백자 달항아리전’도 세계적으로 20점 남아 있는 달항아리 중 9점을 모아 국내 처음으로 마련된 ‘야심작’이다. 그러나 전시실 모두가 조선시대 유물에 국한되기 때문에 다른 시대 문화재를 보고 싶다면 중앙박물관이나 민속박물관으로 가야 할 것이다. 뮤지엄숍과 카페는 다른 박물관과 비교할 때 규모면에서는 크지 않다. 그러나 ‘아름다운 재단’에 경영을 위탁해 수익금 100%를 환원하기로 했다. 박원순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는 “수준 높은 왕실문화에 맞는 다양한 문화상품을 개발,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통은 가장 편리하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리면 지하도를 통해 바로 박물관 정문 앞으로 연결된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역대 왕조문물 보존·연구”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조의 역사가 존재한 곳에서는 왕실의 문화가 바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정상급 문화였다. 세계 각국이 왕궁을 보존하고 왕궁박물관을 운영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본보기가 되는 것도 역대 왕실문화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가장 밀접한 왕실문화는 조선왕실 문화다. 애석하게도 일제강점에 의해 왕실의 문화유산은 순조롭게 보존되지 못했다. 광복과 함께 조선왕실 문화유산의 보전에 힘을 기울여온 결과 조선왕실 문화는 품격 있고 심오하며 위풍당당하고 화려한 것임을 알게 됐다. 이에 1992년 궁중유물전시관을 세워 부분적으로나마 왕실의 보물을 전시·보존하기 시작했고 올들어 왕실의 문화유산을 총괄보존하고 전시하는 국립고궁박물관을 열게 됐다. 앞으로 역대 왕조 문물의 보존, 전시, 연구, 교육, 홍보에 매진함으로써 전통문화의 가치창출에 앞장설 뿐 아니라 전통문화가 국가발전의 힘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 국립민속박물관 경복궁 북동쪽에 위치한 민속박물관은 한민족의 생활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교육장이자,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최적의 문화공간이다. 다양한 전시실 관람은 물론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어린이박물관과 야외 문화체험장 등에서 이뤄지는 각종 전통체험행사는, 특히 자녀를 둔 부모라면 한번쯤 경험해볼 만하다. 중앙박물관이 고급문화를 보여준다면 민속박물관은 민속의 근간인 서민들의 생활사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친 선조들의 문화유산과 의식주, 생업, 의례 등을 복원해 전시한다. 한민족 5000년의 변화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지난 2003년 개관한 2개층 규모의 어린이박물관은 민속박물관의 자랑거리다. 유치원·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전통민속놀이와 한지·국악 등을 배우는 각종 프로그램이 봇물을 이룬다. 어린이들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체험교육도 40개에 육박한다. 야외 전통문화배움터와 영상민속실 등이 365일 내내 붐빈다. ‘민속’이라고 하면 느껴지는 고리타분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근 변신을 시도했다. 기존 뮤지엄숍과 카페, 벽화갤러리 등을 새 단장해 보다 친근한 편의공간으로 만든 것. 특히 카페 ‘다섯’은 한국 전통음식을 현대적 입맛에 맞게 개발한 퓨전음식을 선보여 ‘입소문’을 타고 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우리전통 뿌리 찾을터”일제 식민지 등 격변기를 거치면서 우리 민족의 소중한 세시풍속, 제사, 조상숭배 등 전통문화와 민속이 경시되고 미신화됐다. 이렇게 사라져 가는 문화를 지키고 왜곡된 민속을 바로잡아 우리의 뿌리를 되찾는 작업이 필요하다. 민속박물관은 먼저 우리 전통의 뿌리를 찾는 역할에 주안점을 두고자 하다. 둘째, 잃어버린 전통의 뿌리를 찾아 국민에게 재교육하고자 한다. 전통문화와 민속을 찾아 복원하고 이를 교육하는 것이야말로 박물관의 사명이다. 이를 위해 전국 100여개의 민속생활사박물관과 협력해 공동교육을 하고 있다. 셋째, 현대 문화다원주의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우리 주체문화를 기리고 키우고 회복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저변에 뿌리내린 문화의 재발견과 재평가가 시급하다. 흔히 ‘고급문화’라고 지칭하는 ‘궁궐문화’도 90% 이상은 서민문화와 민속이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속문화는 고급문화에 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는데, 이제는 같은 비중으로 재평가돼야 한다. 민속박물관은 우리 전통문화의 가치를 재평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 여 “박사모 전사대는 黨조직” 야 “연정론 한나라 파괴공작”

    여야는 22일 두 가지 문건을 근거로 가시돋친 설전을 벌였다.한나라당은 전날 자신들이 공개한 ‘정치지형 변화와 국정운영’ 보고서를 놓고 ‘2라운드 공세’를 펼쳤고, 열리우리당은 ‘박사모 사이버전사대 108조 문건’을 문제삼아 역공에 나섰다. 여야가 이날 쏟아낸 구두성명이나 논평에는 분노를 넘어 경멸에 찬 말들이 난무했다.●‘연정 문건’ 공방 격화 한나라당 김무성 사무총장은 이날 상임운영위 회의에서 “연정 제안이 ‘친노(親盧) 직계’의 치밀한 사전 각본에 의해 진행됐음이 드러났다.”면서 “연정론은 그럴 듯한 명분으로 포장됐지만 사실은 한나라당을 파괴시키기 위한 주도면밀한 시나리오에서 비롯된 정치적 음모임이 백일하에 드러났다.”고 주장했다.이어 “다시는 이런 정치공작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당력을 총동원할 것”이라며 여권의 사과와 문건 작성 경위 해명을 요구했다. 맹형규 정책위의장도 “과거 정권도 힘이 빠질 때 비선조직을 운영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면서 “노 정권이 정상적인 공조직이 아니라 비선조직에 의해 국정을 운영했음이 드러났다.”며 국정 정상화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민병두 전자정당위원장은 “한나라당이 연정에 대해 무대응 전략으로 나오다가 갑자기 출처가 불분명하고, 비본질적인 문건을 제시하면서 연정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반박했다.●‘박사모 사이버전사대’ 날 선 설전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팬클럽인 ‘박사모’ 회원들이 여의도연구소의 문건에 따라 ‘사이버 전사대’라는 조직을 만들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를 근거로 역공에 나섰다. 전병헌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사이버전사대는 지난 2월 작성된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의 ‘2007년 승리를 위한 당 혁신방안’ 문건에서 나온 것”이라며 ”사이버전사대는 한나라당 공조직”이라고 주장했다.그는 “박사모 사이버전사대 108조는 여연이 제안한 1000명의 핵심전위를 만들려는 과정으로 보인다.”며 “박정희 유신시대의 정치공작과 여론조작 왜곡의 망령이 인터넷 상에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자발적인 팬클럽을 유신시대까지 연결시키는 것은 아무도 웃지 않는 코미디”라고 꼬집은 뒤 “여당이 그런 식으로 대응을 한다면 열린우리당 게시판에서 활동하는 온갖 낭인에 대해서도 문제를 삼아야 한다.”고 반박했다.전광삼 박지연기자 hisam@seoul.co.kr
  • [사설] 사상 첫 압수수색 자초한 국정원

    검찰이 어제 대규모 인원을 동원해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 곳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김승규 국정원장이 지난 5일 2002년 3월까지 불법 감청이 지속된 사실을 인정하면서 압수수색 수용의사를 밝힌 지 2주일만이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불법행위의 진원지로 지목돼 압수수색 대상이 된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다. 그런 만큼 압수수색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국정원 역시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압수수색을 계기로 검찰의 수사에 보다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번 압수수색이 잘못된 과거에 대한 단죄인 동시에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이익을 지키는 국정원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는 전기가 되길 기대한다. 그런 의미에서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관련 증거를 확보했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국정원 스스로가 인정했듯이 관련 장비와 증거를 모두 파기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에 맞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관련자들의 증언이다.‘조직 보호’ 등을 이유로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거나 수사 협조를 거부하는 일부 전·현직 간부들은 조직의 건강성 회복을 위해서도 자세를 바꿔야 한다. 과거를 털어야만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검찰은 외부의 ‘가이드라인’에 얽매이지 말고 과거 정권의 불법 감청이 지휘·보고체계를 거친 공식 임무수행의 일환이었는지, 비선조직을 통한 범죄행위였는지부터 밝혀야 한다. 특히 불법 감청 관행이 언제까지 지속됐는지 명확하게 규명해야 한다. 불법으로 취득된 정보가 어떻게 보고되고 활용됐는지도 밝혀야 할 부분이다. 국정원이 자체 개발했다는 휴대전화 감청기술도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답변을 제시해야 한다. 국정원의 수사 협조와 철저한 자기반성이 전제돼야 하겠지만 도청 파문이 국가 정보력의 약화로 귀결돼선 안 된다고 본다. 투명성과 합법성을 담보하는 보완책을 강구하되 국정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단호하면서도 세심한 수사를 촉구한다.
  • 진정한 ‘웰빙음식’ 절에 다있네

    진정한 ‘웰빙음식’ 절에 다있네

    인스턴트·가공식품이 넘치는 현대인의 밥상은 각종 성인병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최근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웰빙’식단이 등장하고 있지만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맛을 내는 사찰음식만큼 완벽한 먹을 거리는 없을 것이다. 소박한 제철 재료를 사용해 수행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조리한 사찰음식은 위나 장에 부담을 주지 않고 담백하다. 케이블채널 불교TV는 연중기획으로 ‘부처님의 말씀에 담김 몸에 좋은 음식이야기, 선재 스님의 사찰요리’를 매주 수요일 선보인다. 첫 방송은 오는 24일 오전 9시20분. 사찰음식의 대가인 선재(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장)스님이 손쉽고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사찰음식과 조리과정을 직접 소개한다. 불가 수행의 한 방편인 사찰음식 속에 담긴 부처님의 가르침과 사찰음식의 특징, 역사를 배움으로써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사찰음식을 계승·발전시키고 건강한 밥상을 차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본다. 24일 첫 방송에서는 먼저 우리나라에 불교가 유입되면서 사찰음식이 어떻게 발달돼 왔는지 알아본다. 불교의 자비사상에서 시작됐다는 사찰음식의 기원과 삼국·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사찰음식의 발달과정을 살펴본다. 이어 첫번째 소개되는 음식은 감자를 이용한 옹심이국과 찜, 그리고 여름철 별미인 노각무침. 여름 식단에 빼놓을 수 없는 감자는 사찰요리에서도 다양하게 쓰인다.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감자 옹심이국과 찜을 배워보고 우리몸에 좋은 감자 이야기를 들어본다. 늙은 오이인 노각 또한 여름 제철음식이다. 새콤달콤하게 무치면 입맛 없는 무더운 여름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시간에는 버섯야채 잡채와 열무 된장 겉절이, 시원한 수박주스 등 여름철 별미가 계속 소개된다. 한효진 PD는 “선재 스님이 직접 사계절 음식을 매주 소개함으로써 1년 내내 웰빙 푸드를 배울 수 있는 좋을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서울 청소년의 숲’ 반드시 조성/정욱채 양천구 의장

    “양천구 의회에서는 10여명의 의원들이 사법고시 준비하듯 열심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보다 더 무섭지요. 이번 회기가 역대 가장 민주적이고 생활 밀착형으로 운영되는 까닭입니다.” 양천구의회 정욱채(63·신월 1동) 의장은 신월동 토박이다.600여년 전 선조들이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번지까지 다 외울 정도로 이곳 사정에 훤하다.2선(2,4대)이지만 의원들의 손에 의해 4대 후반기 의장에 뽑힐 정도로 왕성한 활동력을 인정받고 있다. ●빗물 펌프장 확충… 수해 걱정 덜어 정 의장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4대 임기가 시작된 직후인 2002년 8월의 수해다. 양천구 신월동 등 저지대는 대표적인 상습 침수지역이었다. 장마철이면 하염없이 쏟아붓는 하늘만 원망스럽게 바라봐야 했다. 그해에도 수마(水魔)는 이곳을 비켜가지 않았다. 신월동과 신정동 등에서 4500여가구가 침수 피해를 당했다. 추재엽 양천구청장을 비롯해 수방대책 관계공무원들과 구 의회 의원들이 며칠 동안 수해 현장에서 수재민들과 동고동락했다. 결국 서울시로부터 850억여원의 추가 예산을 지원받아 올해 신정3·신정1 빗물펌프장 시설을 대폭 확충했다. 정 의장은 “이젠 시간당 200㎜가 쏟아져도 끄떡 없다.”면서 흐뭇해했다. ●재산세 감면 조치 ‘1호區´ 재산세 문제도 구 의회에서 중점을 뒀던 사안이다. 양천구는 목동 등 아파트 단지가 많은 지역이라 재산세 부담이 다른 구보다 컸다. 구 의회는 지난해부터 서울시와의 갈등을 감수하면서도 다른 자치구보다 제일 먼저 감면 조치를 취했다. 다른 무엇보다 지역 주민들을 위한 행정이 우선돼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내년 6월이면 4대 양천구의회의 임기도 끝난다. 그러나 정 의장에게 남은 과제가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목동 경전철 사업. 신월동 화곡사거리에서 영등포구 당산역까지 총 12.6㎞를 경전철로 잇게 된다. 양천구는 지난 6월 현대산업개발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사업 성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 의장은 경전철 유치 추진위 공동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적극적이다. ●경전철 유치에도 앞장 정 의장은 “지하철 11호선 건설이 백지화되면서 신월동 등의 교통환경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면서 “인근 강서구 발산동 농산물시장까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경전철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목표는 5만여평의 신월3동 신월정수장 부지를 영어마을이 함께 들어선 서울 청소년의 숲으로 만드는 것이다. 신월동 주변에 녹지 용지가 부족한 만큼, 녹지로 조성하면 서울숲 못지않게 활용할 수 있다고 정 의장은 설명했다. 낙후 지역인 신월 1·3·5동을 신월·신정 뉴타운에 포함시키는 것에도 주력하고 있다. 정 의장은 “고향 땅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게 흐뭇하기만 하다.”면서 “남은 임기동안 의원들과 협력해서 주민들을 위해 펼친 일들을 잘 마무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2)남사고와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2)남사고와 ‘정감록’

    한번은 영조 임금이 대신들에게 “도대체 남사고가 누구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살아생전 그는 미관말직에 종사한 하급관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후 200여년 뒤 조정에서 그 학식과 인품을 둘러싼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큰 인물이었다.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1509∼1571)는 선조 초기 천문 교수로 발탁됐다. 보통 천문을 비롯한 잡학(雜學)의 교수는 중인 출신이 많았다. 하지만 남사고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유학자이면서도 당대 최고의 천문지리가로 평가를 받았다.‘정감록’의 핵심개념인 이른바 십승지설(十勝地·최고의 피란지에 관한 주장)도 그 한 뿌리가 남사고에 닿아 있다. 남사고는 예언서의 저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가 지었다는 ‘남사고비결’이란 책이 18세기 이후 크게 유행했다. 구한말엔 ‘격암유록’이란 예언서도 추가로 발굴됐다. 남사고처럼 이름난 예언가는 역사에 드물다. 그런 비상한 재주에도 불구하고 실상 그는 늘 곤궁했고 박복했다. 몸에 병이 많아 늘 죽음과 직면할 정도로 큰 고통을 겪었고, 한겨울엔 몸에 걸칠 외출복이 없어 친구 집에 문상조차 못 갔다. 너무도 불우했던 남사고는 굽이굽이 용틀임하며 달려가는 산줄기를 그리워했고, 밤하늘 별자리를 바라보며 외로운 마음을 달랬을 것이다. ●남사고와 불영사 남사고는 경북 울진 출신이다. 그는 어렸을 때 자주 불영사(不影寺)를 찾아갔다. 이 절은 산자수명하여 부처를 비춘다는 불영계곡 안에 있다. 전설에 따르면, 소년 남사고는 절간에서 한 노승을 만났는데 그는 소년이 남다른 인물이 될 줄로 짐작해 3권의 비결을 내주었다. 천편(天編)은 별자리의 운행과 그 운세 등 천문에 관한 모든 사항을 항목별로 적어 놓았다. 지편(地編)은 산천의 지세와 명당 등 풍수를 자세히 논한 것이었다. 마지막 인편(人編)은 한번만 사람 얼굴을 쳐다보면 그 명운(命運)을 알아맞히는 방법을 기록한 비밀스러운 책이었다. 노승은 이 책들을 건네주며 신신당부했다. 아무쪼록 덕을 쌓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이야기였다. 그 뒤 어느 날 노승은 남사고의 공부를 점검하러 집으로 찾아갔다. 당연히 제1권인 천편부터 차례로 공부하고 있으리라 짐작했으나, 남사고는 인편에 실린 각종 비술에 빠진 나머지 천편은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었다. 노승은 남사고가 비결을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쓸까 염려한 나머지 남사고의 집에 불을 질러 책을 모두 태워 버렸다. 그러고는 불영사를 떠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남사고의 지리 공부 졸지에 비결을 빼앗긴 남사고는 새 각오로 삼천리강산을 두루 유람하였다. 그제야 지리 공부의 요체를 파악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명당을 얻더라도 결국 덕을 많이 쌓는 사람만이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깨쳤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남사고가 아버지 무덤을 아홉 차례나 이장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그는 지리를 완전히 터득한 고수였던 지라 가장 좋은 자리를 택해 아버지의 묘를 썼다. 그런데 써놓고 보면 더 좋은 자리가 문득 눈에 띄곤 해 옮겨 쓰기를 되풀이하였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비룡승천(飛龍昇天·용이 하늘로 날아가는 모양)형의 명당을 얻어 다시 이장을 하였다. 그때 지나가던 한 술사가 이런 노래를 불렀다. “구천십장(九遷十葬·아홉 번 묘를 옮겨 열번 장사를 지냄) 남사고야, 비룡승천을 좋아 마라. 고사괘수(枯蛇掛樹·말라 죽은 뱀을 나뭇가지에 걸친 모양)가 아닌가?” 남사고는 깜짝 놀라 산세를 다시 살폈다. 죽은 용이 분명했다. 그 술사를 만나 한 수 배우려 했으나 이미 자취를 감춘 다음이었다. 생각 끝에 남사고는 지각유주(地各有主)라, 명당도 저마다 임자가 따로 있어 인력으로 바꿀 도리가 없다는 깨침을 얻었다. 그는 별로 하자가 없어 보이는 평범한 묘 자리를 구해 아버지의 유해를 평안히 모셨다. 요컨대 사리사욕에 사로잡히면 눈이 멀어 명당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고, 설사 요행히 명당을 차지하더라도 발복(發福·복이 나타남)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남사고의 실패를 약간 달리 해석한다. 조상이 지은 죄가 워낙 많아 남사고가 일껏 명당을 잡더라도 쓸모없게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른바 구천통곡(九遷痛哭·아홉 번 옮기고 통곡함)을 통해 남사고는 덕을 쌓는 것이 최우선이란 고승의 가르침을 확인했다 한다. 앞의 이야기는 한낱 설화에 불과하지만 지관 남사고의 면모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남사고의 명예언 지리 공부를 마친 남사고는 서울에 놀러 갔다. 그는 권판서를 비롯해 당대의 석학들과 두루 사귀었다. 그는 이미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터득했기 때문에 서울 친구들에게 몇 가지 예언을 들려주었다. 첫째, 곧 조정에 당파가 생겨날 테니 조심하란 것이었다. 둘째, 왜적이 난리를 일으키는데 만일 용(辰) 해에 전쟁이 일어나면 나라를 구할 수 있으나 뱀(巳) 해에 전란이 시작되면 나라는 영영 망하고 만다. 셋째, 지금 사직동을 둘러보니 왕기(王氣)가 서려 있어 거기서 임금이 나올 것이다. 넷째, 태릉이 들어설 곳을 가리키며 장차 태산에 봉해진다고 하였다. 첫째 예언은 선조 8년(1575)부터 동인과 서인의 분당이 일어나 사실로 입증됐다. 둘째 예언 역시 용 해인 임진년(선조 25)에 왜적이 쳐들어와 꼭 맞아떨어졌다. 셋째도 사직동에 살던 선조가 뜻밖에 대통을 이어 1567년 등극함으로써 적중했고, 넷째는 명종의 모후(母后)인 문정왕후가 죽은 뒤 태릉에 묻혀 기정사실이 됐다. 이처럼 남사고의 예언 능력은 신기에 가까웠다. 그러다 보니 많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한번은 그가 하늘 별자리를 유심히 바라보았더니 자미성(紫微星·어진 사람의 운명을 관장하는 별)이 빛을 잃어버리는 참이었다. 아마 자기가 죽을 날이 다 된 모양이라며 남사고는 서울을 떠나 귀향길을 서둘렀다. 죽어도 집에 가서 죽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도중에 남명 조식이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시 하늘을 바라보니 자미성은 회복세에 있었다. 그제야 남사고는 자미성의 변화가 남명의 죽음을 예고했다는 점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는 끊임없이 수련을 쌓았고 그 결과 자신이 죽을 날을 알아 맞힐 정도가 됐다. 천문 교수 임기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하늘에는 태사성(太史星·천문 담당 벼슬을 상징하는 별)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 현상을 목격한 남사고의 상관은 자기가 세상 떠날 날이 되었다고 지레 짐작해, 동료들을 모아놓고 작별인사를 고했다. 그러자 남사고는 크게 웃으며 “죽을 사람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며칠 뒤 남사고는 태연한 표정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사고와 퇴계 이황의 만남 남사고는 도술에도 능했다 하는데 흥미로운 설화가 전한다. 그가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 퇴계 이황을 방문했을 때였다. 마침 점심식사 시간이었다. 퇴계 집안은 검약하기 그지없어 밥상에는 보리밥과 고추장밖에 다른 반찬이 없었다. 남사고는 도술을 부려 잉어회를 만들었다. 그러자 퇴계는 손사래를 치며 남의 잉어를 빼앗아 먹을 수 없다며 한 점도 먹지 않았다. 설화 속의 퇴계는 실상 남사고보다 예언과 도술에 능통하다. 귀신에게 홀린 제자를 구해 주기도 하고,9대 자손에게 닥칠 위기를 미리 예견한다. 퇴계는 일찍이 여우의 구슬을 삼킨 적이 있어 축지법도 쓸 줄 알았다고 한다. 설화의 세계에서 보는 퇴계는 만능인간, 초월적 존재다. 이는 물론 역사적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 민중은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가 자기들의 편에 서서 따뜻한 보호자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퇴계를 만능의 인간으로 형상화했다. 남사고가 밥상에 올린 잉어회를 퇴계가 거절했다는 이야기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민중은 물론 남사고와 같은 예언가를 기꺼이 믿고 의지한다. 하지만 학덕이 높은 퇴계에게는 그 이상을 요구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남사고가 익힌 지리와 천문이 한낱 기술이라면, 퇴계의 학문은 그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삶의 구원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민중의 인식을 본다. ●십승지는 남사고의 작품인가 그렇다 해도 많은 사람들은 남사고의 특별한 지식과 능력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정감록’의 중심개념인 십승지설이 ‘남사고산수십승보길지지(南師古山水十勝保吉之地)’에서 발견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민중은 남사고 같은 예언가라면 당연히 훌륭한 피란지를 점지해 줄 수 있다고 믿었다. ‘남사고’는 ‘정감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여러 산들 중에서 소백산(小白山)이 으뜸이요, 지리산(智異山)이 다음이다.”라고 했듯, 길지는 주로 소백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의 큰 마디에 몰려 있다. 이를 지역별로 나눠 보면 경상도가 4개, 전라도 3개, 충청도 2개, 강원도 1개다. ‘남사고’의 이런 길지는 ‘정감록’외 다른 예언서에 나오는 한국 최고의 길지들과 대동소이하다.‘정감록’에 언급된 길지를 출현 빈도순으로 정리해보면, 경북 풍기, 충남 공주, 경남 가야산이 각 10회로 으뜸이다. 다음은 경북 안동으로 9회이며, 경북 예천과 전북 운봉은 각 7회, 태백산·소백산 및 충북 보은은 6회, 경북 개령·봉화, 강원 영월, 충청 단양, 전북 무주 및 부안이 각 5회로 각기 정상급 길지로 손꼽힐 만하다. 그밖에 충북 진천도 4회나 된다. 십승지를 비롯한 전국의 주요 길지는 해안선이나 큰길에서 떨어진 곳에 있다. 길지를 선정하게 된 이유가 전쟁, 전염병 및 흉년의 세 가지 피해(三災)를 벗어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해안지방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데다 조선후기엔 이양선의 출몰이 잦았고, 임진왜란이나 정묘호란 때 외적은 큰길을 따라 진군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대로변과 해안은 길지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흉년이 들지 않는 장소를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참 어려웠다. 그런데 최고의 길지 가운데는 전북 부안처럼 해안 고을도 있었다. 부안이 십승지로 부각된 것은 물론 다른 이유에서였다. 신라 말 민중적 미륵불교를 창시한 진표 스님이 미륵보살로부터 간자(簡子)를 받은 곳이 바로 부안이었다. 그때 이후 부안은 세상을 구할 진인이 출현할 땅으로 민중의 가슴속에 길이 기억됐다. 공주는 충청감영(忠淸監營)의 소재지로 조선시대엔 가장 큰 대로변에 위치했다. 그럼에도 계룡산이란 풍수상의 일대명산을 거느리고 있어, 길지 중의 길지로 손꼽혔다.‘정감록’은 계룡산 사상 즉 진인이 계룡산에 도읍해 새 세상을 연다는 예언이 핵심이다. 따라서 공주를 빼놓은 길지란 상상조차 불가능했다. 이쯤에서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위에서 열거한 여러 길지들, 특히 그 대표가 되는 십승지는 과연 남사고가 창안했을까? 이중환의 ‘택리지’를 보면 남사고가 전국을 유람하며 길지를 점지한 것은 사실이었다. 남사고는 전국의 지세를 하나의 유기체로 파악했다.‘산수비경’에서 “한반도는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로 만주 땅을 할퀴는 형상이다. 백두산은 호랑이 코,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했다. 경북 포항의 영일만 동쪽에 있는 호미곶은 우리나라의 동쪽 끝 땅이다. 우리 땅을 용맹스러운 호랑이로 보고 그 꼬리라는 뜻에서 호미(虎尾)라 부른 남사고였다. 그는 전국의 여러 명당 가운데서도 유독 소백산을 중시했다.“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活人山)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남사고’를 보면, 소백산 주변에 십승지의 상당수가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다. 이런 점에서 십승지설은 남사고의 뜻을 상당부분 반영한 것으로 믿어도 좋겠다. 그런데 사실 조선시대의 지관(地官)들은 누구나 전국의 길지를 논했다. 그들에겐 공통된 의견도 있었다. 태백산 이남에 길지가 많다는 것인데, 특히 소백산, 작성상(황장산), 주흘산, 희양산, 청화산, 속리산, 황악산, 덕유산,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남쪽 구간에 명당이 많다 했다. 십승지를 비롯한 전국의 길지는 남사고 한 사람이 모두 찾아낸 것은 아니었다. 남사고는 선배 지관들이 앞서 제기한 논의를 일단 종합했던 것이다. 이것이 다시 후배들에게 이어지면서 길지에 관한 논의는 더욱 풍부해졌다.‘남사고’는 한 사람의 단독 저술로 간주되기 곤란하다. 그것은 18∼19세기 조선의 지관들이 선배들의 다양한 의견을 참작해 만든 공동저작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후배들은 전설적인 지관이며 명예언가인 남사고의 이름을 빌렸던 것이다. ‘남사고비결’도 여러 번 다시 쓰였다 영조 9년(1733)에 적발된 ‘정감록’ 사건엔 ‘남사고비결’이 등장한다. 무신년에는 피가 흘러 내(川)를 이룬다는 등 흉흉한 내용이 나와 있었다(실록·영조 9년8월18일 병인). 마침 영조 4년(1728) 무신년에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 남부지방을 휩쓸었던 터여서 조정은 이 ‘비결’의 등장에 경악했다. 이 ‘비결’과 제목이 똑같은 예언서는 현재도 남아 있다. 당연히 ‘정감록’에 포함돼 있다. 그러면 현존하는 ‘비결’은 영조 때 발각된 것과 같은 내용의 예언서일까? “무신·기유(戊申己酉)년: 제갈량(諸葛亮·제갈공명)이 이미 죽었으니 어느 성 한쪽 금성(錦城)이 피폐하도다. 경시(更始·개혁의 시작)는 자리를 긁고 범증(范增)은 등창이 나는구나.”라고 하였다. 책사(策士)로 유명한 제갈공명과 범증이 이미 죽거나 병들었다 했다. 나라에는 제대로 일을 도모할 만한 신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판국이라 개혁은 제자리를 맴돈다고 했다. 그렇다면 전쟁 또는 반란을 예언했다는 영조 때의 ‘비결’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비록 예언서의 명칭은 ‘남사고비결’이라 했지만 알고 보니 그 내용은 전혀 달랐다. 세상은 날로 바뀌기 마련이다. 따라서 후배 술사들은 새로운 내용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들은 새 예언서가 이미 알려진 예언서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때로 새 술도 헌 부대에 넣으면 값비싼 명품으로 둔갑된다. 이것이 시장의 논리다. ●남사고의 ‘격암유록’과 신종교 남사고는 예언계 최고의 브랜드였고, 그래서 끊임없이 이용됐다.19세기 말엔 ‘격암유록’이란 낯선 예언서가 등장했다.‘정감록’을 상당부분 모방하고, 그 무렵에 태동하고 있던 신종교의 선교에 도움이 될 내용을 덧붙인 것이었다.‘격암유록’은 뒷날 증산교의 종교적 입지를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일부 기독교 계통의 신종교 단체는 남사고가 지었다는 ‘궁을가’를 기꺼이 인용한다. 이 역시 위작(僞作)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궁궁을을”에 전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궁궁”도 십자가,“을을” 역시 십자가라는 것이다. 역사상 남사고는 궁핍한 예언가였다. 하지만 후세의 사람들 중엔 그 이름을 팔아 기름진 음식과 호사를 누리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민중이 남사고에게 걸었던 희망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생각나눔뉴스] 뒤로 가는 ‘강북 교통’?

    서울 시내버스 개편 이후 노선 신설과 폐지가 쉬워지면서 일부 시민들이 불시에 사라지는 버스노선에 아직도 적응을 못하고 있다. 특히 교통여건이 강남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강북지역 버스노선 폐지 숫자가 강남보다 약 3배나 많아 버스노선도 강남북을 차별한다는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1권역 12개노선·4권역 4개노선 폐지 17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지난해 7월 대중교통 체계개편 이후 모두 48개의 지·간선, 광역버스가 폐선된 것으로 조사됐다. 한달 평균 3.62개의 노선이 사라진 셈이다. 이 기간 신설·변경·연장노선은 7개 뿐이다. 이 가운데 앞자리가 1로 시작하는 강북에서 출발하는 버스노선이 전체 폐지노선의 26%인 12개로 가장 많았다. 버스 번호가 1로 시작되는 버스노선(1권역)은 서울의 대표적 ‘강북’ 지역인 도봉·노원·강북·성북구에서 출발한다. 반면 4권역인 강남(강남·서초구) 지역에서 출발하는 버스노선(앞자리가 4로 시작)은 4개 노선(9%)만 사라졌다. 결국 지하철·도로율 등 교통여건이 강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역인 강북지역의 버스노선 폐선이 훨씬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운행노선 수와 비교하면 권역별 폐지노선 수는 10∼12%대로 엇비슷했다.하지만 버스 한대 한대가 ‘시민의 발’임을 감안하면 ‘교통약자’가 많은 강북지역에서 노선폐지가 더 많아 시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밖에 출발지가 2권역(동대문·중랑·성동·광진구)인 노선은 3개가 없어졌다. 또 3권역(강동·송파구)·9권역(경기도권)이 출발지인 노선은 각각 5개씩 없어졌다.5권역(동작·관악·금천구)·6권역(강서·양천·구로·영등포)·7권역(은평·마포·서대문)에서 출발하는 버스노선은 각각 6개씩 폐선됐다. 심야시간 시민들의 이동을 돕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던 심야전용버스 노선도 지난 1년 동안 6개가 폐선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노선조정 합리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조치”라면서 “노선이 폐선되더라도 새 노선버스를 신설하거나 다른 버스의 운행 횟수를 늘려 이를 대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설명했다. 폐선 숫자는 강북지역이 많지만 불만의 강도는 강남지역이 더 높았다.●강남 폐선 항의글 84일째 市홈페이지에 올려 서울시 홈페이지에는 노선폐지를 항의하는 시민들의 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 ‘문인환’이라는 이름을 쓰는 한 작성자는 ‘4011번’ 버스가 폐선된 이후 84일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노선폐지에 대한 항의의 글을 시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리고 있다. 또 ‘김정화’라는 네티즌은 “자주 타던 버스가 폐선돼 2,3개 정거장 도 안 되는 거리를 환승해서 다니게 생겼다.”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녹색교통운동 민만기 사무처장은 이에 대해 “대체노선이 있고 환승에 불편이 없다는 것을 가정, 불필요한 노선을 최대한 폐지하는 것이 원칙상 옳다.”면서도 “노선폐지에 앞서 서울시 관계자들은 시민들의 불편사항이 없는지, 동선이 어떻게 바뀌는지 등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는 자세와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버스노선 폐지에 앞서 이를 알리는 홍보활동도 강화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절벽서 떨어졌다 하기엔 몸이 너무 깨끗했습니다”

    “절벽에서 떨어졌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선생의 몸은 깨끗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재야 운동가인 고 장준하 선생의 변사체가 발견된 장소에 처음 도착했던 전직 경찰관 이수기(59)씨는 “당시 장 선생이 추락사했다는 당국의 조사 결과는 믿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장 선생은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5년 8월17일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약사봉에서 변사체로 발견됐으며, 이씨는 당시 포천경찰서 이동지서에 근무했었다. 이씨는 “당직 근무 중 경기도경으로부터 ‘장준하씨가 추락사했다.’는 연락을 받고 현장에 처음 출동했다.”며 “지서로 첫 신고가 들어오기 전 상급기관인 도경에서 먼저 연락이 온 것은 장 선생의 집이 도청당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장 선생의 변사체 상태는 14m 높이의 절벽에서 떨어졌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며 “귀 뒷부분에 조그만 핏자국 말고는 별다른 상처가 없었으며 머리는 비스듬히 동쪽을, 다리는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의료진으로 보이는 군인 2∼3명이 먼저 와 있었다.”며 “목격자 확보차원에서 동행자가 있었는지를 물었고 그들로부터 김모씨가 동행했다는 말을 들었으나 그를 찾지는 목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사고 직후 각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할 때마다 길 안내를 맡았고,26년 후인 2001년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첫 현장조사에도 동행했다. 또 의문사위의 조사과정에서 목격자인 김씨와 대질신문도 했다. 그는 대질 신문에서 “김씨는 당시 자신이 현장에 있었고 경찰에 신고했다는 거짓말을 하는 데 당황했다.”며 “현장에서 목격자를 찾았을 때 김씨는 없었고, 지서에 신고를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의문사위로부터 9차례의 조사를 받으면서 장 선생의 죽음과 관련, 보고 들은 것은 다 얘기했다.”며 “당국이 발표했던 대로 장 선생이 추락사했다고 믿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장 선생 의문사 사건은 의문사진상규명위 1기와 2기에서 모두 ‘진상규명 불능’ 판정을 받았으며 최근 국정원의 과거사 진상 우선조사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장 선생의 30주기 추모제는 17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광탄리의 천주교 나자렛묘지에서 열린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천지보다 넓은 시루의 마음/최미숙 증산도 부산당리도장 수호사

    며칠전 웰컴투 동막골이란 영화를 보았다. 동막골 사람들의 때 묻지 않은 순박함이 매우 인상 깊었다. 처절한 전쟁이 발발하기 전의 우리네 모습이 그렇지 않았을까?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광명을 상징하는 흰옷을 즐겨 입었고, 온 마을 사람들이 한 가족이 되어 애환을 함께하였다. 삼면으로 둘러싸인 바다만큼이나 널찍했던 사람들은 동막골 사람들처럼 모든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였다. 필자는 그러한 조선의 마음, 한민족의 마음이 시루 같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시루는 밑이 뚫린 솥이다. 시루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만 어떤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그릇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는 많은 것을 받아들여 소화시켰던 민족이었다. 이땅에는 무엇이든 이식하기만 하면 번성하였다. 그러나 그 고유의 본성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불교로 말하자면 1000년 전 처음으로 받아들여진 이후 역경을 딛고 발전하여 지금은 한국 특유의 형태로 자리잡혔다. 유교는 어떤가? 여말 선초 유학의 시대가 열린 이후 성리학에서 실학으로 이어지면서 조선에서 배출된 굴지의 유학자들은 일일이 다 거론할 수 없을 정도다. 마침내 조선말 김일부 선생은 정역을 완성하는 대과를 이루었다. 기독교 또한 조선후기 이땅에 뿌리내린 이후, 처참한 순교의 역사를 거쳐야만 했으나, 이제는 세계에서 한국 교회를 배우기 위해 속속 찾아들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한국의 역사는 시루처럼 이질적인 문명들을 받아들여 전혀 새로운 우리의 것으로 더욱 발전·성숙시켜 왔던 것이다. 전라북도 모악산에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시루를 밟고 서 있는 불상이 있다. 금산사 미륵전의 철수미좌가 그것이다. 신라시대 도승 진표 율사가 생명을 내던진 구도를 통해 미륵으로부터 직접 수기를 받고 세운 것이다. 미륵께서 직접 불상아래 밑 없는 시루를 걸으라 명하셨다고 삼국유사는 전하고 있다. 이는 모든 중생을 용화 세계로 인도하는 구원의 부처인 미륵의 진리 또한 시루의 진리임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미륵의 신앙이 민중에 깊이 뿌리내린 한반도…. 그것은 우리네 사람들의 덕성이 또한 시루와 같이 넉넉해서가 아닐까? 아무튼 이땅에는 진표 율사 이래로 1000년 동안 미륵의 용화세계가 꿈처럼 그려져 온 것이 사실이다. 참 미륵의 도인 증산도의 증(甑)자 또한 시루를 뜻한다. 증산께서는 시루를 일컬어 “세상에서 시루만큼 큰 그릇이 없나니, 황하수의 물을 길어다 부어 보아라. 시루는 황하수를 다 먹어도 오히려 차지 않으니 천하의 그릇 중에 제일 큰 것은 시루니라.”고 하셨다. 이는 당신님의 도법의 경계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심야자는 대어천지라.” 인간의 마음이 곧 천지보다도 더 크다는 말씀으로 미루어볼 때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인간의 심법 또한 시루의 덕만큼이나 위대함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신기한 것은 우리나라 지명중 매우 흔한 것 중의 하나가 증산, 즉 시루산이라는 것이다. 마을에 가장 높은 뒷산은 대부분 시루산이다. 증산 마을도 많다. 국어 사전에도 시루산은 수십 수백 군데나 되기도 한다. 우리네 사람들은 마을 중심에 커다란 시루를 걸어놓고 그 심법을 배우기라도 하려던 것일까? 시루속 떡 익는 냄새만큼이나 구수한 그네들의 인심이 전해져온다. 시루…, 우주를 다 갖다 부어도 차지 않는 시루의 철학은 비워냄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무언가를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워내는 것은 또한 얼마나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인지…. 우리 선조들은 모든 것을 취하면서도 정서에 맞지 않는 것을 버리고 고쳐가며 스스로에 맞는 문화를 재단해 왔던 것이다. 참으로 슬기로웠던 조상님들의 지혜에 머리를 숙인다. 끊임없이 비워냄으로써 영원히 다시 채우는 시루의 덕성으로 온 인류가 하나되길 기원한다. 최미숙 증산도 부산당리도장 수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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