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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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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 바이러스 클레이드란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는 1997년 홍콩에서 처음 발생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유전자 변이를 거쳐 10여개의 종류로 다양하게 변종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AI 바이러스를 구분하기 위해 클레이드 개념을 썼다. 클레이드는 공통의 선조에서 진화한 생물군을 뜻하는 것으로 서브클레이드는 클레이드의 ‘아들’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현재 클레이드 0부터 9까지 분류돼 있다. 이 중 ‘클레이드 2’가 전 세계적으로 인체 감염과 사망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클레이드 2는 서브클레이드인 2.1∼2.5로 나뉘고, 이 중 2.3은 다시 2.3.1∼2.3.4로 구분된다. WHO의 AI감염 최종확인 환자 기준을 마련한 과학자들이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 2008년 1월호에 게재한 ‘AI 바이러스가 인체 감염에 끼치는 영향’ 논문에는 인체감염 및 사망을 유발하는 AI 바이러스가 크게 홍콩형, 베트남형, 인도네시아형, 중국 칭하이형과 안후이형으로 구분돼 있다. 시조인 홍콩형 클레이드 0은 감염자 16명 중 7명이 사망했다. 클레이드 1(베트남형)은 2004년 베트남에서 나타난 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번지면서 123명이 감염돼 66명이 숨졌다. 클레이드 2.1(인도네시아형)은 2006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해 감염자 96명 중 76명이 사망했다. 클레이드 2.2(중국 칭하이형)는 중국 칭하이 호수에서 생긴 뒤 유럽, 이집트, 이라크, 나이지리아 등지로 퍼지면서 59명이 감염됐고, 그 중 26명이 사망했다.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대전청사 공무원들 자가용 출근 말라”

    “정부대전청사 공무원들은 자가용으로 출퇴근하지 말라.” 오는 7월 정부대전청사 주차장의 유료화를 앞두고 공무원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지역사정을 무시한 행정에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고유가시대의 에너지절약과 교통난해소 등에 공무원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취지 앞에, 적극 반대할 수도 없는 처지 때문이다. 대전청사 주차장 유료화는 공무원의 자가용 출퇴근 차단에 집중돼 있다. 주차료 월정액제 도입 자체를 배제한 데다 요금을 주변 공영주차장의 2배로 책정한 것 등이 이를 입증한다. 대전청사 주차장은 2448대 주차 규모인 반면 등록차량은 3700여대, 하루 주차차량은 2800여대다. 청사관리소는 이 중 2000여대를 공무원 차량으로 추산한다. 대전청사 공무원들은 ‘선 대책, 후 시행’을 요구한다. 중앙청사처럼 유료화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고 연계교통체계도 미흡해서다. 특히 대전권을 벗어난 원거리 출퇴근자들은 유료화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대변인실 등 조기 출근부서나 야근 부서는 하루 1만 5000원인 주차료가 부담스럽다. 유료화에 따른 후유증도 우려된다. 주변 시설 주차에 따른 민원과 주변 주차장의 요금 인상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민간위탁 운영방식도 불만이다. 수익을 민간에 넘겨줄 것이 아니라 직영해 후생복지에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문이다. 청사관리소도 고민에 빠졌다. 공무원 출퇴근 지원을 위한 셔틀버스(7개 노선 12대) 운행방안을 행정안전부와, 버스 노선조정 및 지하철 주차장 무료이용 등을 지자체와 협의 중이나 실현 및 효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 사무관은 “주변 환경에 대한 고려없이 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강유정의 영화 in] ‘페넬로피’

    [강유정의 영화 in] ‘페넬로피’

    ‘페넬로피’는 오드리 토투가 주연을 맡았던 ‘아멜리아’의 질감을 연상시킨다. 동화적이면서, 두꺼운 유화 같은 느낌 그리고 비약하듯 연결되는 편집방식 말이다. 한 가문에 저주가 내린다. 이 저주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정도 되는 남자가 저지른 실수의 대가이다. 대가는 바로 집안에 여자가 태어나면 돼지 얼굴을 하고 있으리라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 부분 약 10분간 지나가는 이 집안의 간략사는 영화의 매력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이를테면 다행히도 대를 거치면서 아들만 태어나 돼지 얼굴을 볼 일이 없다가 드디어 딸이 태어났을 때의 순간 말이다. 딸이 태어났는데 돼지 얼굴이 아니다. 그렇다면 저주가 효력이 없었던 걸까? 도리도리. 단지 숙모가 남편 윌헌의 아이가 아니라 운전기사의 아이를 가졌을 뿐이다. 선조가 저지른 잘못으로 돼지의 형상으로 태어난 아이? 맞다.‘페넬로피’의 이야기는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과 닮아 있다. 불륜과 오해로 빚어진 사생아들이라는 설정도 비슷하다. 영화 시작 부분의 매력은 마르케스의 마술적 사실주의 기법이 영화적으로 실현된 듯한 기시감을 준다. 고층빌딩과 영국의 고아한 저택이 섞인 거리, 그림으로 덧칠된 유리창을 덮는 또 다른 블라인드 같은 미술도 그렇다. ‘페넬로피’는 미국과 영국의 합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양국간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이해가 묘하게 충돌하고 융합한다. 영화는 저주를 받은 여자와 가난한 남자의 러브스토리를 바탕에 깔고 있다. 페넬로피가 받은 저주를 푸는 현대적 방식도 그렇다.‘우리와 같은 부류의 사람을 만나’ 진정한 사랑을 받는다면, 그때 저주가 풀리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 영화는 ‘우리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항목을 귀족과의 결혼으로 이해한 페넬로피 집안의 저주 풀기 해프닝으로 진행된다. 유명한 귀족 가문의 아들들을 수소문해 거액의 지참금으로 유혹하지만 페넬로피의 얼굴 앞에 모두 기겁을 하고 도망간다. 게다가 엄마는 여러 가지 이유로 페넬로피를 집안의 공주로 가둬 키운다. 페넬로피는 엄마로부터,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격리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남자를 만나 진정한 여성으로 거듭나는 전래동화의 문법을 페넬로피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결국 저주를 풀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해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해석은 현대적이기는 하지만, 최근 들어 진부해진 클리셰에 가깝다. 결혼이 자아 정체성의 출구는 아니라는 설정 말이다. 저주를 푸는 방식만큼은 현대적 윤리에 봉사하고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부조화 혹은 대칭이 묘하게도 영화 ‘페넬로피’의 분위기와 어울린다는 것일 테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마법이 풀린 페넬로피가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페넬로피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데, 듣고 있던 아이들은 들은 이야기에 대한 평가를 남긴다.“이건 딸에게 집착하는 엄마 이야기야.” “아니야, 이건 진정한 사랑 이야기야.”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건 그저 동화일 뿐이라는, 감독의 귀여운 센스이다. 영화평론가
  • 서울~ 경기북부 시내버스 시경계서 ‘스톱’

    서울~ 경기북부 시내버스 시경계서 ‘스톱’

    서울∼경기 북부를 오가며 사실상 광역버스 역할을 하는 서울 시내버스 일부 노선이 다음달 1일부터 시경계까지만 운행된다. 서울시는 지난 7일 버스정책시민위원회 노선조정분과위원회를 열고 서울∼경기를 잇는 노선 등 시내버스 26개 노선을 변경·폐선하는 내용의 ‘2008년 상반기 시내버스 노선조정안’을 확정했다고 15일 밝혔다. 또 버스서비스가 열악한 강남 지역에 12개 노선을 우회·분산시키는 방안도 논의했다. 이에 따라 경기 양주 덕정리∼동대문을 운행하는 1148번(대원여객)은 6월1일부터 도봉산역까지만 운행된다. 또 양주 덕정리에서 종로5가까지 운행되는 1018번(대원여객)도 서울 시내 구간이 없어져 수유역까지, 송추에서 서울역까지 운행되는 7023번(제일여객)도 불광동까지만, 파주 교하와 불광동을 오갔던 7733번(제일여객)도 구파발까지만 운행된다. 중랑구청∼서일대를 운행하는 2214번(상진운수)과 봉천동∼용산역 구간의 5011번(풍양운수)은 승객이 적어 폐선됐다. 서울역∼홍연2교의 7019번(현대교통)과 홍연2교∼마포농수산물센터의 7714번(현대교통)은 노선을 통합했다. 특히 이번 심의에서는 버스 서비스가 열악한 강남 지역의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강남대로를 통과하는 12개 버스 노선을 언주로와 도산대로 등으로 우회·분산시키기로 했다. 이 버스들은 내년 3월 ‘언주로∼도산대로∼테헤란로∼영동대로’에 중앙버스전용차로의 설치와 함께 노선이 변경될 예정이다. 서울시는 이번 조정안을 버스노선 안내 홈페이지(bus.seoul.go.kr)를 통해 자세히 소개한다. 김정선 버스정책 담당관은 “서울∼경기를 오가는 기존 광역버스는 그대로 운행한다.”면서 “경기도와 효율적인 버스노선 네트워크를 형성, 합리적인 수송분담이 이뤄지도록 지속적으로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서울~경기북부 지선버스 시내 못 들어온다

    서울~경기북부 지선버스 시내 못 들어온다

    서울∼경기 북부를 오가며 사실상 광역버스 역할을 하는 서울 시내버스 일부 노선이 다음달 1일부터 시경계까지만 운행된다. 서울시는 지난 7일 버스정책시민위원회 노선조정분과위원회를 열고 서울∼경기를 잇는 노선 등 시내버스 26개 노선을 변경·폐선하는 내용의 ‘2008년 상반기 시내버스 노선조정안’을 확정했다고 15일 밝혔다. 또 버스서비스가 열악한 강남 지역에 12개 노선을 우회·분산시키는 방안도 논의했다. 이에 따라 경기 양주 덕정리∼동대문을 운행하는 1148번(대원여객)은 6월1일부터 도봉산역까지만 운행된다. 또 양주 덕정리에서 종로5가까지 운행되는 1018번(대원여객)도 서울 시내 구간이 없어져 수유역까지, 송추에서 서울역까지 운행되는 7023번(제일여객)도 불광동까지만, 파주 교하와 불광동을 오갔던 7733번(제일여객)도 구파발까지만 운행된다. 중랑구청∼서일대를 운행하는 2214번(상진운수)과 봉천동∼용산역 구간의 5011번(풍양운수)은 승객이 적어 폐선됐다. 서울역∼홍연2교의 7019번(현대교통)과 홍연2교∼마포농수산물센터의 7714번(현대교통)은 노선을 통합했다. 특히 이번 심의에서는 버스 서비스가 열악한 강남 지역의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강남대로를 통과하는 12개 버스 노선을 언주로와 도산대로 등으로 우회·분산시키기로 했다. 이 버스들은 내년 3월 ‘언주로∼도산대로∼테헤란로∼영동대로’에 중앙버스전용차로의 설치와 함께 노선이 변경될 예정이다. 서울시는 이번 조정안을 버스노선 안내 홈페이지(bus.seoul.go.kr)를 통해 자세히 소개한다. 김정선 버스정책 담당관은 “서울∼경기를 오가는 기존 광역버스는 그대로 운행한다.”면서 “경기도와 효율적인 버스노선 네트워크를 형성, 합리적인 수송분담이 이뤄지도록 지속적으로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출근시간대에 승객이 집중되는 구간을 운행하는 ‘맞춤버스’, 일부 정류소만 정차하는 급행 개념의 ‘스킵버스’ 도입을 검토하는 등 시내버스 서비스를 고급화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Local] 울산서 ‘한·일 협력 민속공연’

    울산시는 14일 한·일 두 나라의 화해와 협력을 다지는 대규모 민속공연행사를 17일 울산대공원 SK광장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처음으로 일본 구마모토에서 행사를 한 데 이어 올해는 무대를 한국 울산으로 옮겨 ‘울산·구마모토 무지개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두번째 개최한다. 공연에는 일본 구마모토 출신 민요가수와 울산에서 활동하는 전통 공연팀이 중심이 돼 울산과 구마모토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민요, 전통 춤, 악기연주 등을 선보인다. 앞서 16일 오후 3시 울주군 서생면 서생포 왜성에서는 정유재란 당시 희생된 한국과 일본, 명나라 등 3개 나라 병사와 울산 의병의 혼을 달래는 합동 위령제가 한·일 공동 주최로 열린다. 서생포 왜성은 선조 26년(1593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돌로 쌓은 왜성이다.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꽃미남’ 이동욱의 대변신…터프가이라 불러줘요

    ‘꽃미남’ 이동욱의 대변신…터프가이라 불러줘요

    이동욱(27)이 달라졌다. 언제까지나 부드러운 ‘꽃미남’ 이미지에 갇혀 있을 것 같았던 그가 이번엔 확실히 변했다. 그는 지난 3일 첫방송한 MBC 주말 드라마 ‘달콤한 인생’에서 열등감과 욕망에 휩싸인 청춘의 표상 이준수 역을 맡아 강렬한 눈빛 연기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2년 전 드라마 ‘마이걸’ 성공 이후, 재벌 2·3세 캐릭터 제의가 물밀듯이 들어왔어요. 하지만 한 캐릭터에 안주하다 보면 바닥이 금세 드러나고 결국은 ‘제 살 깎아먹기’가 될 것 같아 일언지하에 거절했죠.” 한 살이라도 어릴때 다양한 장르에서 색다른 연기를 경험해보고 싶었다는 이동욱. 하지만 “‘내 안에 악마가 있다’라는 드라마 원제가 맘에 들어 출연을 결심했다.”는 그의 이번 드라마는 결코 쉽지 않았다. 그가 맡은 준수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친구를 수족처럼 따라다니다 막상 친구의 죽음과 맞닥뜨리자 혼란에 빠지는 인물.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알랭 들롱이나 ‘리플리’의 맷 데이먼이 맡았던 캐릭터에 가깝다. “사람들이 누구나 마음속 깊이 갖고 있는 이중성을 다룬다는 것이 좋았어요. 주인공의 자살로 시작해 역순으로 풀어가는 구성도 흥미로웠고요. 하지만 준수가 대사가 별로 없다보니 주로 눈빛이나 표정, 몸짓으로 내면을 표현해야 하는 것은 좀 힘드네요.” 그를 만나러 경기도 의정부에 위치한 드라마 녹화장을 찾은 것은 지난 5일. 이동욱은 사흘 전 자신의 팬카페에 올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관련 글로 인해 상당히 곤혹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그 글을 쓰고 나서 시류에 편승해 인기를 얻으려 한다는 시각이 있을까봐 무척 부담스러웠어요. 전 사실 투표도 꼬박꼬박하고 신문도 꼼꼼히 읽으며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은 편이거든요.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지킨 조국인데, 나라가 잘 돼야죠. 그런데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연예인이 정치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있는 것 같아요. 불특정 다수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연예인이 호·불호를 뚜렷이 하게 되면 고립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여전히 자신을 사랑해주는 팬들이 있기에 배우라는 자신의 직업에 만족한다는 이동욱. 이번 작품에 들어가며 좀더 성숙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수염을 길렀다는 그는 열 살 차이가 나는 대선배 오연수와의 멜로연기로 화제를 모았다. “소재가 통속적이긴 해도 드라마의 지향점은 미스터리 멜로예요. 멜로드라마 남자주인공으로서 판타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죠. 오연수 선배는 촬영 때 서로 반말을 할 정도로 편하게 대해 주세요. 그동안 이민영, 현영, 송윤아씨 등 연상의 여배우들과 연기를 많이 해서 그런지 어색하지 않아요.” 고3때 데뷔한 이동욱은 ‘부모님 전상서’‘러빙유’‘마이걸’ 등의 드라마에서 어렵게 얻은 기회를 뒤로하고 영화 ‘아랑’‘최강로맨스’등 신인의 자세로 영화계에 뛰어들어 나름의 성과를 이뤘다. “좌우 비대칭형인 얼굴도 불만이고 머리 크다는 얘기도 신경쓰이죠. 하지만 이제 꽃미남 배우,‘밀키보이´라는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 50,60대까지 대중의 사랑을 받는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20&30]가정의 달 5월의 스트레스를 아시나요

    [20&30]가정의 달 5월의 스트레스를 아시나요

    가정의 달 5월은 푸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보내며 아이들은 활짝 웃고 부모들은 자식들을 대견스러워한다. 징검다리 연휴에 모처럼 온 가족이 나들이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변으로 눈을 돌려보면 어쩔 수 없이 속앓이를 감내하는 사람들도 많다. 만만찮은 자금 지출에 고민하는 직장인들도 있고, 싱글들은 주위에서 몰려드는 결혼 소식에 남몰래 한숨을 쉬기도 한다. 황금연휴를 취업공부로 보내야 하는 대학생들은 ‘잔인한 5월´을 실감한다. 가정의 화목 속에 가려진 보통 사람들의 ‘5월 스트레스´를 들어 보았다. 사건팀 kdlrudwn@seoul.co.kr ●‘가정의 달´ 여기저기 돈쓸 곳 넘쳐나고… 직장생활 10년차이자 결혼 9년차인 박모(39) 과장은 5월을 맞아 소박한(?) 결심을 했다.‘마이너스 통장´만은 피해 보자는 것이다. 노동절부터 어린이날까지 이어지는 황금연휴에도 박씨는 부인에게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다는 핑계로 금요일인 지난 2일 회사에 출근했다. 돈도 아끼고 번잡한 나들이도 피해 보자는 심사였다. 사무실에 들어선 박씨는 깜짝 놀랐다.“연휴 잘 보내라.”며 부하직원들에게 살갑게 인사했던 부장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이심전심´으로 배시시 웃는 박씨에게 부장은 “다음주 단기방학은 어떻게 넘어가야 되냐.”고 걱정했다. 박씨는 나들이를 포기한 대신 8살 아들에게 15만원짜리 휴대용 게임기를 선물했다. 하지만 아들은 “게임팩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다.”며 혼잣말을 여러번 했다. 그는 “아들이라도 얄미워서 꿀밤이라도 먹여 주고 싶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어버이날도 은근히 걱정된다. 동생은 100만원짜리 안마기를 사서 부모님께 보냈다.“도대체 5월에는 보너스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직장인 최모(26·여)씨는 5월의 지출예상 가계부를 작성하다 자신의 재정 능력을 한탄했다. 백화점에 가보니 작은 핸드백 하나도 10만원이 훌쩍 넘었다. 그렇다고 부모에게 현금을 드리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최씨는 주말 동안 명동을 뒤졌지만 마음에 드는 물건은 거의 다 30만원대였다. 결국 최씨는 한 달 50만원짜리 적금을 이번 달에는 넣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월급은 빠듯하다. 최씨는 “5월이 되니 제 자신이 너무 무능해 보여요. 선물은 마음으로 하는 거라지만 능력이 안 되니 너무 섭섭해요. 좀 더 노력해서 좋은 직장에 입사했더라면….”이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회사원 조모(27·여)씨는 최근 전주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를 가려다 뜻을 접었다.5월 들어 지갑이 급속도로 얇아지고 있는 게 보이기 때문이다. 연휴 때 남들은 놀러 간다고 난리지만 조씨는 여기저기 결혼식 쫓아다니느라 바쁘다. 이번 달만 결혼식이 네 차례로 축의금만 20만원 정도 나가야 하는 데다, 5월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식장에 가기 위해 보세 원피스를 5만원에 새로 장만했다. 휴일 외출을 포기하다 보니 술자리를 찾게 되면서 술값도 어지간히 지출했다. 월급명세서를 보니 이번 달엔 건강보험료도 올라 월급 봉투도 부쩍 얇아졌다. 어버이날 외식비로 수만원이 나갈 예정이고, 좋은 날씨에 성화를 부리는 친구들의 권유로 모꼬지도 갈 예정이어서 그 비용도 만만찮을 것 같다.“어버이날 선물은 그냥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고, 6∼7월에 연달아 있을 부모님 생신 때 좋은 거 사드리려고요.” ●부쩍 늘어난 행사 “차라리 내 몸이 두개였으면” 전자업체에 근무하는 박모(38)씨는 5월이면 ‘가정의 달´이라는 슬로건 때문에 퇴근시간만 되면 조바심이 난다. 박씨는 기술개발 부서에서 일하고 있어 밤을 새우거나 회사 기숙사에서 자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혼 초에는 부인의 신세한탄이나 구박이 심했다. 대개 “이럴 거면 왜 결혼했느냐.”는 핀잔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인도 서서히 포기하는 듯했다. 하지만 5월이면 아내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진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에 친척들 결혼식까지, 챙겨야 할 행사가 부쩍 늘기 때문이다. 박씨는 연초마다 “올해 5월에는 가족 행사나 결혼식에 빠짐없이 참석하겠다.”고 부인에게 다짐하곤 한다. 하지만 다른 회사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신기술을 개발해 시장에 내놔야 한다는 중압감에 일터를 쉽게 비우지 못한다.“퇴근시간이 다가오면 못 들어갈 줄 알면서도 괜히 조바심이 납니다. 혹시나 퇴근할 수 있을까 싶어서. 그러다가 야근에 돌입하면 부인에 대한 죄책감으로 바뀌죠.” 대학원에서 군 위탁교육을 받고 있는 육군 대위 김모(30)씨는 휴일에도 대학원 수업을 하는 바람에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줄었다. 김씨는 가족에게 어린이날을 맞아 아들과 놀이공원에 놀러 가기로 몇 번씩 다짐했다. 하지만 교수 사정 때문에 어린이날에도 수업은 계속됐다. 아들은 아빠가 약속도 지키지 않는다며 울먹였고, 김씨 부부는 아들을 달래느라 어린이날 하루 전 진땀을 빼야 했다. 김씨는 아들과 놀이공원에 못 가는 대신 평소 아들이 갖고 싶어 했던 무선조종비행기를 선물했다. 가정도 없이 휴일에 수업하는 교수가 공연히 미워지기도 했다.“자기가 가족과 보내기 싫으면 그만이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아이들에게는 일 년에 하루밖에 없는 날이잖아요.” 직장인 박모(27)씨는 5월만 되면 선물을 고르느라 스트레스를 받는다. 완벽주의자로 불리는 박씨는 상대의 마음에 맞는 선물을 고르기 위해 인터넷을 3주 정도는 뒤져야 직성이 풀린다. 박씨가 챙겨야 할 날은 많기만 하다. 어버이날, 어린이날, 스승의날에 3년째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의 생일까지 겹쳐 있다. 맏아들인 박씨는 올해 어버이날을 맞아 일본 관광 여행을 준비했다. 지난 3월 퇴직한 아버지가 평소 일본 여행을 가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는 수십 가지의 관광상품을 분석해 일정을 비교하는 표까지 만들었다. 그는 “여유롭게 쉬면서 기억에 남을 만한 여행을 고르고 싶어 3주간 일도 손에 안잡히더라고요.”라고 말했다. 박씨는 2명의 조카를 위한 선물을 찾기 위해 동네 완구점부터 인터넷, 백화점 등을 점심시간이면 틈틈이 찾기도 했다.“애인 생일선물도 골라야 하는데 벌써 골치가 지끈지끈해요. 힘들어도 선물을 받을 때 상대가 웃는 모습을 상상하며 참는 거죠.” ●솔로에게 더 잔인한 5월 항공업체에서 일하는 이모(36·여)씨는 잇따른 결혼식으로 자금 사정이 휘청거린다. 이씨는 지난 3일 서울에만 두 곳, 4일에는 부산과 청주에 각 한 곳씩의 예식장을 찾았다. 모두 직장 동료의 결혼식이었다.5월에만 주말이면 평균 2곳 정도의 결혼식에 얼굴을 내밀어야 한다. 미혼인 이씨는 줄줄 새는 축의금에도 속이 쓰리지만, 다른 사람의 축하 자리에 들러리만 서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처량하게 여겨진다. 더구나 남의 결혼식을 찾아다니느라 최근 교제를 시작한 사람과 이별까지 감수해야 했다. 지난달 말 직장 후배의 소개로 만난 남자는 직업이나 성격도 좋아 마음에 들었다. 이달 들어 주말마다 동료나 학교 후배들의 결혼식이 줄줄이 잡혀 있는 터라 이씨는 그 남자에게 “주말에는 모두 약속이 있다.”고 말해 버렸다. 하지만 그는 이씨의 말을 사귀기 싫다는 퇴짜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어느 순간 연락이 끊겼다. 이씨는 “밥 한 번 같이 먹은 적 없는 사람들이 생글생글 웃으며 청첩장을 들이밀 때는 정말 어이가 없어요.”라고 푸념했다. 직장 4년차로 미혼인 전모(30) 대리는 이번 5월도 외로운 빈털터리 신세다. 토요일은 물론 일요일, 어린이날, 석가탄신일을 포함해 결혼식만 열 건이 넘는다. 평소 소주 한잔하자고 전화하면 바쁘다고 피하던 친구들이 친한 척하며 전화해서는 결혼식을 ‘고지´해댄다. 대학을 졸업하고 전혀 연락조차 하지 않고 지내던 여자 동기들은 어떻게 알아냈는지 미니홈피에다 결혼 소식을 알렸다. 나름대로 친했던 친구는 5만원, 별로 친하지 않았던 친구는 3만원으로 정리해도 축의금만 모두 30만원이 훌쩍 넘는다. 주말마다 말끔하게 차려입고 결혼식에 갈 때면 부모의 성화도 심해진다.“위기가 기회라고 남들 결혼식에서 좋은 여자와 만남을 가져 보려고요. 저도 올가을에는 꼭 장가가렵니다.” ●어린이날에 용돈을 받다니… 백수의 비애 백수 2년차인 이모(26·여)씨는 지난해 5월 어린이 취급을 받았다. 없는 돈을 모아 부모와 외식 자리를 마련했지만 아버지는 “어차피 이 돈 나한테서 나간 거 아니냐. 내 돈 주고 사 먹는 밥 별로다.”라며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도 “자기가 돈 못 벌고 결혼 안 하면 어린애나 매한가지”라고 꼬집었다. 결국 예약은 이씨가 했지만 비용은 결혼한 오빠가 냈다. 또 이씨가 세 살 조카에게 용돈을 주자 오빠는 오히려 다른 사람 안 보는 곳에서 이씨에게 용돈을 10만원이나 건넸다. 이씨는 올해도 어린아이 취급을 받을까봐 어버이날 외식을 먼저 제안할 것인지 망설이고 있다.“취직해야 사람 취급을 받는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어요. 요즘에는 따가운 햇살마저도 되레 우울하게 느껴져요.” 대학원생 강모(26)씨는 봄에 공부하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른한 봄날 캠퍼스에서 팔짱을 끼고 다니는 연인들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춘곤증 때문에 잠 조절이 되지 않아 멍한 상태에서 스트레스가 더 쌓인다.“일주일에 두세 번 밤 11시에 온라인으로 하는 조모임이 있는데, 깜박 잠이 들어 참여하지 못하는 바람에 교수에게 꾸지람을 들었어요.”
  • 4회 부산국제모터쇼 12일까지

    2008 부산국제모터쇼가 ‘자동차, 생활을 넘어 문화로’라는 주제로 지난 2일 부산 벡스코(BEXCO)에서 개막됐다. 연도 끝자리가 짝수인 해에 열리는 부산국제모터쇼는 홀수해에 개최되는 서울국제모터쇼와 함께 국내 2대 자동차 박람회로 올해가 4회째다. 12일까지 계속될 이번 행사에는 우리나라와 독일, 일본 등 10개국에서 156개 업체가 참가,24개 브랜드 156대의 자동차를 출품했다. 컨셉트카 11개 모델, 친환경 자동차 12개 모델, 획기적으로 연비개선을 이룬 디젤차 22대 등이다. 이 중 22대는 아시아(12대)와 한국(10대)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국내에서는 현대차, 기아차, 르노삼성,GM대우, 쌍용차 등 5개 승용차 브랜드와 대우버스, 현대상용, 기아상용 등 3개 상용차 브랜드가 나왔다. 현대차는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로 도약하는 신기원’이란 테마로 친환경 컨셉트카 ‘아이모드(i-Mode)’와 ‘아이블루(i-Blue)’, 정통 스포츠쿠페 ‘제네시스 쿠페’를 포함한 17대의 완성차와 신기술 8종을 출품했다.‘아이모드’는 친환경소재인 폴리카보네이트와 최고출력 215마력의 2200㏄ 디젤엔진을 적용했다. 기아차는 디자인과 기술력을 선도하는 글로벌 일류 메이커 도약을 뜻하는 ‘디자이놀로지(디자인+기술)의 개척자’를 기본 컨셉트로 스포츠 쿠페 컨셉트카 ‘키(KEE)’와 ‘소울(SOUL)’ 3총사 등 완성차 16대, 신기술 7종을 선보였다. GM대우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본사에서 개발한 미래형 수소연료전지차 ‘에퀴녹스’와 함께 하반기에 나올 양산차들을 출품했다. 르노삼성차는 첨단 기술력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내건 ‘웨이브 아트(ART·진보된 르노삼성 기술)’를 슬로건으로 SUV ‘QM5’를 비롯한 9대의 차를 내놓았다. 쌍용차는 ‘체어맨W’와 미래 디젤 하이브리드 기술을 선보였다. 수입차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 렉서스, 혼다, 폴크스바겐, 푸조 등 14개 브랜드가 참가해 세단, 컨버터블,SUV, 쿠페 등 68개 모델을 전시했다. 자동차 전시 외에 모형자동차·미니카·튜닝카 전시, 자동차 아트 페인팅, 카오디오 페스티벌, 무선조종 자동차경주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펼쳐진다. 매일 1대씩 자동차 경품 추첨행사가 열려 국산차 8대, 수입차 2대 등 총 10대가 관람객들에게 제공된다. 입장료는 어른 6000원, 초·중·고생 3000원이다. 미취학 아동,65세 이상, 국가유공자,1·2급 장애인은 무료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8) 작은 학교 서당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8) 작은 학교 서당

    김홍도의 그 유명한 그림 ‘서당’이다. 앞에 사방관을 쓰고 도포에 검은 띠를 띠고 있는 근엄한 선생님이 앉아 있다. 앞에는 서안이 있고, 오른쪽에는 연상(硯床)이 있다. 선생님의 서안에 책이 없는 것은, 아마 그 책이 선생님의 머릿속에 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의 교육은 원래 텍스트를 외는 것을 기본으로 삼기 때문에 초학자를 가르치는 책쯤이야 다 외우고 있다. ●김홍도의 서당그림 당시의 글방 풍경 그려 그림 왼쪽에 머리를 땋은 아이 셋이 있고, 오른쪽에 넷이 있다. 오른쪽 맨 위에 역시 땋은 머리 넷이 있다. 그리고 그 위쪽에 초립을 쓴 약간 나이가 든 학생이 있는 바, 이 놈은 관례를 치른 놈이다. 서당의 학생은 모두 9명이다. 그런데 김홍도가 그린 서당 그림은 서당 안만 보여주고 있다. 제대로 된 서당의 전체 모습을 보려면, 작자 미상의 또 다른 그림 ‘서당’을 보라. 제법 규모가 잡혀 있다. 김홍도의 서당 그림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그림 중간의 매를 맞고 훌쩍이는 놈이다. 학생들이 모두 책을 한 권씩 앞에 놓고 있는데, 이 녀석은 책을 등 뒤에 두고 훌쩍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서안 왼쪽에 가는 회초리가 있는데, 아마도 이 회초리로 맞았을 것이다. 요즘 같으면 학생들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포도청에 전송해서 폭력 교사를 고발했겠지만, 조선시대에는 아쉽게도 그런 문명의 이기가 없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필자 연배 이상의 분들은 기억할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가 학교에서 맞고 오면, 속이야 쓰라렸겠지만 병원에 가서 입원치료를 받을 정도가 아니면, 도리어 네가 맞을 만하니까 맞았지 하고 자식을 나무랐다. 이건 조선시대로부터 물려받은 관념이다. 즉 선생은 자기 자식을 윤리적 인간으로 성장시키기에 ‘사람 되라고’ 체벌을 가했다는 그 관념은 조선시대의 유물이었던 것이다. 교사의 체벌이 결코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식이 체벌을 받았다 해서 학교로 찾아가 선생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 역시 정당화될 수 없다. 초학자를 가르치는 서당의 교육은, 선생님이 먼저 한문으로 쓰인 교과서를 천천히 읽고 한자의 음과 뜻을 일러주면, 학생들은 따라 읽고 머릿속에 새긴다. 그리고 선생님이 문장의 뜻을 천천히 새겨준다. 간단히 말하면 이것으로 끝이다. 학생들은 그 날 배운 한자를 반복해 쓰고, 문장을 외운다. 서당에 따라서는 그 날 배운 것을 그 날 테스트하는 경우도 있고, 다음날 테스트하는 경우도 있다. 테스트할 때 책을 등 뒤에 두고 전날 배운 부분을 암송하고, 번역하고 뜻을 풀이해야 한다. 만약 못하면 당연히 회초리가 따른다. 위 그림의 훌쩍이는 녀석은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기에 맞은 것이다. ●16세기 지방사림이 만든 성인교육기관 민간의 서당처럼 작은 학교의 존재는 저 멀리 삼국시대까지 소급되지만, 우리가 서당 하면 떠올리는 그런 모습의 서당은 16세기 어림에 지방 사림들이 주동이 되어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서당은 원래 성인들의 교육기관이고, 어린아이들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안동의 도산서원도 원래 퇴계 선생이 열었던 도산서당 자리에 세운 것이다. 퇴계 선생의 문인이었던 황준량이 쓴 ‘자양서당기(紫陽書堂記)’란 글은, 김응생(金應生)이란 사람이 세운 서당의 기념문이다. 김응생은 여러 차례 과거에 낙방한 뒤 고향에서 서당을 열어 후진을 양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건물이 10칸이나 된다고 하였으니, 어지간한 규모의 학교였다.‘자양서당기’에서 황준량은 서당이 학문과 도덕을 닦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명분일 뿐이고 사실 과거 준비가 더 큰 목적이었다. 조선중기 관료이자 학자였던 김응조(金應祖)의 ‘의산서당기(義山書堂記)’를 보면 의산서당에서 문장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진사시와 문과에 합격한 사람이 쏟아졌다고 하니, 원래 서당이란 교육시설이 없는 지방에서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학교였던 것이다. 물론 퇴계의 도산서당처럼 도학을 공부하는 곳이 있기도 했지만, 조선시대 양반들의 교육이란 것이 과거를 지향하기 때문에 서당은 자연히 과거 준비를 하는 곳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인훈장 등 월사금 받아 생활비로 김홍도가 살았던 18세기 후반이면 서울과 지방 모두 서당이 적잖이 생겨났을 것으로 보인다. 또 양반이 아닌 사람 역시 서당에 다닐 수가 있었다. 서당을 설립하는 것이나, 서당에 입학하는 데 무슨 자격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또 양반이 아닌 사람이 교육자로 나서는 일도 흔했다. 정조 때 천수경(千壽慶)이라는 사람은 양반은 아니고 서리층에 속하는 사람인데, 지금의 인왕산 아래 누상동 누하동 부근에 서당을 열었다.‘희조일사’란 책에는 그가 열었던 서당 규모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송석(松石, 천수경의 호)은 원래 가난하여 늙은 어머니를 봉양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동네 아이들을 모아 가르쳤는데, 자신의 한 달 생활비를 학생들의 수로 나누어 받았다. 얼마 안 있어 학생들이 점점 불어났고, 월사금은 점점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한 달에 60전만 내게 하니, 사람들이 “하루에 글을 읽는 값이 어찌 동전 두 잎 밖에 안 된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학생들이 점점 더 불어나 많을 때는 300명이나 되었고, 좀 나이가 든 학생들이 어린 학생들을 다시 가르치니, 마치 군대에서 군법을 세운 것처럼 질서가 있었다.” 천수경은 양반이 아니니, 과거를 칠 필요가 없었다. 그는 평생을 시인으로 보낸 사람이다. 어머니를 모시고자 하여 서당을 열었던 것인데, 교육 내용이 괜찮고 또 월사금이 저렴했기에 학생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것이다. 천수경과 같은 사람은 이 시기에 많이 있었다. 양반 아닌 중인이나 서리들 사이에서 천수경처럼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생활의 방편으로 삼는 훈장님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천수경의 친구 장혼이란 사람은 교서관의 서리였는데,‘아희원람’‘계몽편’ 등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과서를 짓고 출판을 했으니, 이런 책들은 아마도 천수경의 서당에서 사용되었을 것이다. 천수경이나 중인 서리들이 연 서당에서 배운 사람들이 양반일 리는 없고, 역시 자신들의 자제들이나 시정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즉 천수경의 서당은 비양반층의 교육열을 반영해서 생긴 것이다. ●조선말 일반 상민들도 서당 열어 서당은 조선조 말이면 일반 상민들까지 다니는 교육기관이 된다.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를 보면 서당을 상민들이 어떻게 여는지 잘 알 수 있다. 상민이라 하여 천대를 받는 것이 억울했던 백범은 자신도 글을 배워 진사가 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아버지를 조른다. 백범의 부친은 동네에 서당이 없고, 또 이웃 고을의 양반 서당에서는 받아 줄 리가 없으니, 아예 서당을 차리기로 한다. 문중과 동네 상놈 아이 몇을 모아 자기 집에 서당을 열고 청수리의 이생원을 선생으로 초빙한다. 이생원은 양반이지만 글이 짧아 양반에게는 초빙되어 가지 못하고 상놈서당의 선생이 된 것이다. 석 달 뒤 서당은 신씨 성을 가진 사람 집으로 옮겨가는데, 얼마 있지 않아 그는 이생원을 해고한다. 이유는 이생원이 밥을 많이 먹는다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자기 손자는 열등생인데 백범은 최우등의 학생인 것을 시기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서당의 훈장은 가을에 쌀과 보리를 강미(講米)라고 하여 받기로 하고 초빙되었다. 백범의 회고를 들어보면, 아무 선생은 ‘벼 열 섬짜리’ 아무 선생은 ‘다섯 섬짜리’로 일컫는다 하였으니, 수강료의 다소가 그 선생의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었던 것이다. 백범이 전한 청수리 이생원처럼 조선후기 서당의 훈장을 하는 사람은 대체로 몰락한 양반이거나, 양반은 아니지만 지식이 있던 사람이었다. 지식을 파는 것 외에 다른 생활수단이 없는 사람들이 훈장으로 나섰던 것이다. 서당 교육은 20세기 전반까지 성행했고, 시골에는 1950년대까지 있었다. 필자가 한문학을 하다 보니, 과거 서당에서 글(한문)을 배우신 선생님들을 종종 만나 뵌다. 그분들은 가끔 과거 서당에서 공부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들려주곤 한다. 이제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서당에 대한 기억도 거의 사라질 것이다. 서당은 작은 학교다. 어떻게 보면 선생님과 학생이 얼굴을 맞대고 가르치고 배우는 그 작은 학교가 정말 학교일 것이다. 나에게는 오직 대학입시를 위해 맹진하는 요즈음의 학교는 학교가 아니라, 수용소로 보인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Seoul In] 도봉구 가족사랑 한마당 축제

    도봉구(구청장 최선길) 4일 ‘2008 도봉가족사랑 한마당 축제’가 창동운동장(창4동)에서 열린다. 공연·과학·로봇·여가·먹거리 등 다섯가지 주제로 꾸몄다. 특히 과학체험마당에서는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종이해시계, 사이펀 원리 실험, 소리나는 빨대 물레방아, 탱탱볼 만들기 등 다양한 가족참여 행사를 준비했다. 또 집게로봇 이동시범, 로봇축구대회, 기타 배틀로봇, 공룡로봇 등 다양한 무선조종 로봇체험 체험도 기획했다. 가정복지과 2289-1040.
  • 조선시대 명문가의 가훈과 유언

    “벼슬 길은 산보다 어렵고 물보다 험하다. 도도한 벼슬 바다에서 나아가기만 하고 그칠 줄 모르다가 마침내 풍파를 맞는 것은 무슨 마음이란 말인가?” 조선 선조 때 이조참판을 지낸 유희춘이 자식들을 위해 쓴 훈계의 한 대목이다. 최근 정부 인사들이 불미스러운 일로 중도하차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한번쯤 음미해 볼 만한 경구다. ‘한국판 안씨가훈(顔氏家訓)’으로 읽힐 만한 책이 나왔다. 조선시대 명문가의 가훈과 유언을 한 데 묶은 ‘호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정민·이홍식 엮어 옮김, 김영사 펴냄)가 그것이다.‘안씨가훈’은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대 말기의 명재상 안지추가 자손들을 위해 지은 교훈서다. ‘호걸이 되는 것은’는 고산 윤선도의 ‘기대아서(寄大兒書)’, 유희춘의 ‘십훈(十訓)’, 신숙주의 ‘가훈(家訓)’ 등 여러 문집 등을 샅샅이 뒤져 골라낸 조선시대 명문가의 가훈과 유언 31편을 우리말로 옮기고 해설을 덧붙인 것.“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다. 사람의 일도 늘 가득 찼을 때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산 윤선도가 큰아들 인미에게 주는 훈계),“마음은 생각의 지배를 받고, 행동은 생각의 결과다.”(조선 중기 문신 허목이 자손들에게 내린 훈계),“젊어 노력하지 않으면 무정한 세월 앞에 안타까운 탄식만 남는다. 인생을 빈 배에 싣지 마라. 큰 뜻을 품어 그 길로 매진하라.”(조선 중기 문신 권시가 두 아들에게 남긴 유서) 등 시간을 뛰어넘는 삶의 지혜와 원칙이 녹아들어 있다. 이 같은 교훈적인 이야기가 조금은 고답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읽는 이들에게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1만 3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열린세상] 도(道)이름을 바꾸자/강효백 경희대 중국법 교수

    [열린세상] 도(道)이름을 바꾸자/강효백 경희대 중국법 교수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쯤 남행하면 ‘충청남도’라고 쓰인 도로표지판이 반긴다. 게서 좀 더 내려가면 ‘충청북도’를 알리는 도로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어라, 분명 남쪽으로 줄곧 내려왔는데 ‘북도’라니? 한참을 더 남행하면 다시 ‘남도’였다가 대전을 남동쪽으로 휘감아 돌아 충청도의 최남단에 들어서면, 또다시 충북 옥천군과 영동군에 들어선다. 동서남북 방위 감각이 마구 헝클어진다.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는 것이 사실이라면 충남은 ‘충청서도’로, 충북은 ‘충청동도’로 불러야 마땅하지 않을까. 방위의 정확성을 중시했던 우리 선조들인데 도대체 무슨 곡절이 있는 걸까? 우리가 현재 부르는 도(道)의 이름은 조선시대 태종이 고려 시절 5도 양계를 혁파하여 당시 농경지 면적을 기준으로 전국을 8도로 재편한 것에서 비롯된다. 아다시피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 강원도는 강릉과 원주,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 황해도는 황주와 해주, 평안도는 평양과 안주, 함경도는 함흥과 경원 등 각 도에 소재한 두 중심도시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조선 왕조가 방향감각을 잃은 채 허우적거리며 망국의 심연으로 곤두박질치던 1896년.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뒤 고종이 신변 위협을 느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을 가 있던 아관파천 시절이다. 점령지를 잘게 쪼개어 통치하려는 습성이 있는 제정 러시아의 입김 때문이었을까. 정권을 장악한 친러파는 8도중 5도를 남·북도로 구분,13도제로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였다. 그렇게 창졸간에 획정된 도명이 일본강점기를 거쳐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이다. 한편 광복 이후 인구의 도시 집중과 교통·통신의 급속한 발달로 생활권과 행정권의 괴리현상이 심화되자 정·관·학계 일각에서는 현행 ‘시·도-시·군·구-읍·면·동’ 3단계 지방행정 체제를 ‘광역시-기초행정구역’ 2단계로 간소화하자는 개편안을 꾸준히 제기했다. 그러나 행정구역을 개편한다고 행정중복이 사라지고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며, 전국을 60∼70개의 광역시로 쪼개면 오히려 지자체의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행정구역 개편의 실행에는 지자체간의 이권다툼과 지역이기주의, 전통에 대한 국민의 애착, 선거구 변화를 둘러싼 정쟁으로 변질될 우려 등 넘어서야 할 산이 첩첩이라 쉽지 않을 것 같다. 따라서 행정구역 개편 문제는 쉬운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점진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우선, 도명이라도 현실에 맞게 바꾸길 제안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충청남북도처럼 방위마저 틀리게 이름 붙인 행정구역의 예를 아직 찾지 못했고,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 지금의 충남에는 충주와 청주가 없고 경남에는 경주와 상주가 없다. 지방행정 구역은 삼국시대에서 신라·발해(남북국)시대,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왕조가 바뀔 때마다 개편·개명되어 왔다. 그런데 조선이 망하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왕국이 아닌 공화국, 대한민국이 탄생한 지 60년이 되었는데도 지방행정 구역은 거의 변함이 없다. 중앙정부 조직은 새 정부가 들어서는 5년마다 한 번꼴로 개편·개명되는데 국토도 남북으로 갈라져 대치하는 세계 유일 분단국이라는 처지도 답답한 일인데 도명마저 남북으로 갈라놓은 경계는 분열과 대립의식을 알게 모르게 국민 가슴에 새겨 놓을 수 있다. 끝으로 이제는 이름만 들어도 지긋지긋한 지역대립 구도가 연상되는 경상·전라·충청 등 낡은 도명에 대한 600여년 묵은 집착을 버려야 할 때가 되었다. 그리하여 환갑을 맞는 조국의 품에 현실에 기반하고 미래로 향하는 참신한 도의 이름을 선사하자. 강효백 경희대 중국법 교수
  • 가정의 달 맞이 문화행사 다채

    가정의 달 맞이 문화행사 다채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아 서울광장과 청계천, 서울역사박물관 등에서 다양한 문화 행사가 펼쳐진다. 30일 서울시에 따르면 오는 24일 서울광장에서 다양한 가족들이 참가해 가족의 소중함과 따뜻함을 나누는 ‘서울 별별 가족문화축제’가 열린다. 이번 축제는 입양, 결혼이민자, 한부모, 조손 가정 등 다양한 가족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행사로, 가족이 함께 재능을 선보이는 ‘가족 동아리 공연’과 설치미술가 이성웅씨의 작품을 참가자들이 풍선으로 장식하는 ‘벌룬 페스티벌’, 시민들이 결혼식장을 장식하고 하객으로 축하해 주는 ‘희망 결혼식’ 등의 프로그램으로 꾸몄다. 인기가수의 축하공연과 부모의 발을 닦아드리는 가족 세족식, 다양한 소품을 이용해 가족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감정 해우소, 부부가 묻고 답하며 반성하고 격려해 주는 ‘미안하다 사랑한다’ 코너 등 상설 체험부스도 만든다. 청계천에서는 3일 전통 민속놀이 마당이 열린다. 산대놀이, 판소리, 마당극, 길놀이 등의 재현마당과 체험마당으로 구성했다. 남산골 한옥마을과 북촌문화센터에서도 옛 선조의 삶을 엿보는 전통문화체험이 이어진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매주 수요일에, 청계천문화관에서는 매주 목요일에 영화상영회를 준비했다.‘안녕 형아’ ‘행복을 찾아서’ ‘효자동 이발사’ ‘집으로’ 등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무료로 상영한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질문하는 한국사/내일을 여는 역사 재단 엮음

    모든 사물은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함께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물을 보는 사람에 따라 관점이 극명하게 갈린다. 역사를 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질문하는 한국사’(내일을 여는 역사 재단 엮음, 서해문집 펴냄)는 기존의 역사적 인물 등에 대한 시각을 완전히 뒤집는다. 예컨대 고려말 충신 정몽주는 부적절한 인물을 과거에 합격시키고 고려 우왕과 창왕을 신돈의 자손으로 몰아 죽이는 작업에 뜻을 같이한 만큼 충신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보았고 또 장희빈은 중인 출신이면서 감히 양반 사회에 맞선 탓에 권력다툼의 희생양이 된 비운의 여인으로 재평가한다. 책은 역사 시각의 수정은 물론, 지나치기 쉬운 재미있는 사실(史實)도 소개한다. 고려때 충신이 많은 이유는 불탄 성균관을 다시 지으면서 성리학을 공부하는 생원의 정원을 크게 늘린 까닭이고, 조선 영종·정종·순종이 영조·정조·순조로 바뀐 것은 고종이 왕실의 존엄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직계 선조인 이들의 묘호를 바꿨기 때문이다. 성씨 가운데 김·이·박이 많은 연유는 이렇다. 조선 초기까지 성씨가 없던 천민들이 후기에 성씨를 갖게 됐는데, 이들은 기존 성씨를 사용했다. 이를테면 김씨 집안의 노비는 김씨가 되다 보니 이들 성씨가 급증하게 됐다는 얘기다. 이 책은 삼국시대부터 현대에 걸쳐 ‘상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분명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사실들을 소상히 설명한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한상범, 인권운동가 서승 등 진보적 학자 30여명이 필진으로 참여했다.1만 49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진도의 숨은 비경 ‘조도군도’

    진도의 숨은 비경 ‘조도군도’

    남도의 풍광을 보노라면 결구법(못을 사용하지 않고 목재를 짜맞춰 조립하는 방법)으로 지은 사랑채가 떠오른다. 오밀조밀 빈틈이 없으되, 기계적이거나 딱딱하다는 느낌보다 단아하고 따스한 인간미가 느껴진다. 남도의 끝자락 진도가 그렇다. 예전부터 유배의 땅으로 ‘명성´이 드높았던 곳. 수많은 정객들이 이곳으로 유배돼 시인 묵객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들의 재능은 고스란히 후예들에게 이어져 밭고랑에서 풀 뽑는 아낙조차 요청만 하면 즉석에서 그럴싸하게 절창(絶唱)을 뽑아낸다고 했던가. 시, 서, 화는 물론 소리 자랑 말라는 곳이 진도다. # 명량대첩의 울돌목… 강강술래 땅 녹진 미래영화에서나 봤음직한 진도대교 남단의 커다란 무인 카메라가 시선을 끈다.‘진도개´(천연기념물 제53호)의 섬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한 장치다. 목에 손톱만 한 칩이 박힌 진도개가 진도대교를 넘어서는 순간 카메라가 이를 인식하고 차량번호 등 모든 사항을 낱낱이 기록한다. 진도섬 밖으로 유출된 진도개를 굳이 ‘진돗개´란 표현으로 차별을 둘 만큼 각별한 애정을 쏟는 주민들의 심사가 여실히 느껴진다. 진도 여행은 진도대교를 건너 녹진관광지에서 시작된다. 진도의 봄은 유채색 산수화 같다고 했다. ‘바다가 울면 물이 돈다´는 울돌목(명량·鳴梁) 위에 버티고 선 진도대교 주변 풍경은 산수화나 다름없다. 시속 20∼30㎞의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울돌목을 보며 이순신 장군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울돌목의 거센 물살을 이용해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격퇴시킨 명량대첩의 현장. 당시 이순신 장군은 만조와 간조 사이 물이 돌지 않는 1시간20분을 활용해 31척의 왜선을 수장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물살이 겁나게 세지요이. 밀물 끝무렵 들어온 왜선에 뭍과 아군 배 등에 연결된 철삭을 꽂아 댕겨 불믄 썰물때 물살을 못 이겨 물속으로 처박혀 불지라.” 허상무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이다. 강강술래가 등장하는 것도 이때쯤. 허씨는 “부녀자들이 현 녹진관광지 전망대에서 아군에게 노래로 응원을 보내는 한편, 오색 깃발을 이용해 철삭을 쏘고 당기라는 신호를 보냈다.”고 덧붙였다. 강강술래는 응원가이자, 일종의 군사 신호였던 셈이다. # 조도 도리산전망대에 올라 섬을 품다 진도를 방문하고도 조도 도리산전망대에 오르지 않았다면, 이제껏 쌓아둔 진도에 대한 기억은 모두 지우시라. 적어도 풍경에 관한 한 그렇다. 조도군도(鳥島郡島)의 어미섬 격인 상·하조도는 진작부터 외국인의 눈을 통해 아름다움을 인정받았다. 영국 해군의 라이스호 함장이었던 바실 홀은 1816년 저서 ‘조선항해기´를 통해 도리산 전망대에 본 다도해 풍경을 “지구의 극치”라며 격찬했다. 진도 서남쪽 조도군도는 마치 큰 호수에 새떼가 앉아있는 듯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진도군을 이루는 230개의 섬 가운데 절반이 넘는 154개가 몰려 있다. 이 섬들을 모두 합하면 충청북도의 면적보다 넓다. 가사오군도·상조군도·하조군도·관매군도 등 저마다 개성있는 모습이어서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지역으로 꼽힌다. 각 섬의 생성에 대한 허상무 해설사의 설명이 해학적이다.“진도읍 동백사에서 참선하던 스님이 득도 직전 여인의 꾀임에 빠지자 노한 부처가 벼락을 쳐 날려 보냈는디 걸치고 있던 가사가 날아가 장삼도, 윗도리는 상태도, 아랫도리는 하의도가 됐다 안혀요. 목도는 목탁이 떨어져 그리 되었지라.” 팽목항을 떠난 여객선은 30여분 만에 하조도 어류포항에 닿는다.1909년 첫 불을 밝힌 하조도등대가 명물. 어류포 선착장에서 면소재지로 들어가다 왼쪽으로 꺾어 4㎞ 정도 해안절벽을 따라간다. 수평선 너머 진도 본섬과 마주한 하얀 등대가 청잣빛 바다와 어우러지며 운치를 더한다. 등대 뒤편은 ‘만물상´이라 불리는 기암절벽지대다. 주민들은 바위 하나하나의 표정이 부처를 닮았다 해서 ‘만불상´이라 부른다. 하조도 동남쪽 끝의 신전해수욕장도 유명하다. 모래질이 단단해 자동차가 지나가도 바퀴가 빠지지 않는다. 조금 과장하자면 비행기가 내려앉아도 끄덕없을 정도. 하조도의 전망 포인트는 돈대봉(230.8m)이다. 사방이 확 트여 거칠 게 없다. 숨 한 자락 내려놓고 둘러보니 바다위에 보석처럼 박힌 섬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발아래 나래마을 포구는 또 얼마나 정겨운가. 수많은 섬들이 파도를 가로막아 바다는 장판처럼 잔잔하다. # 이곳이 한국의 하롱베이로구나 하조도를 뒤로하고 1997년 조도대교를 통해 하나가 된 상조도로 접어들었다. 진도대교(480m)보다 긴 510m짜리 다리다. 하조도 돈대봉에 버금가는 상조도 전망대는 도리산(210m) 전망대. 상조도분교를 지나 여미항으로 가다보면 전망대로 오르는 길과 만난다. 정상까지는 포장이 돼 있어 차로 오를 수 있다. 폭이 ‘겁나게´ 좁은 것이 흠.KT중계소 정문 앞에 목재 데크로 전망대를 만들어 뒀다. 전망대에 서자 ‘심하게´ 아름다운 풍경의 파노라마가 들이 닥쳤다. 일부 출입이 어려운 곳을 제외하면 360도 원형 스크린과 진배없다. 코앞 나배도를 비롯해 조도대교, 죽항도, 관매도, 동·서거차도, 병풍도, 관사도, 내·외병도, 백야도, 눌옥도 등 다도해의 올망졸망한 섬들이 두 눈을 경이로움으로 가득 채운다. 해무를 두른 섬들의 자태가 무척 몽환적이다. 옛 선조들은 이곳 바다물빛을 보고 청자를 빚었다고 한다. 쪽빛 바다를 수놓은 양식장은 그대로 연초록 파스텔화가 된다.“이곳이 바로 한국의 하롱베이”란 이인곤 진도 부군수의 찬사도 이 장면에서 터져 나왔다. 도리산전망대를 포함해 하조도 등대, 손가락바위, 조도대교, 신전해수욕장, 만물상바위, 맹성리 작은달숲, 목넘애해변 등은 조도 8경에 꼽힌다. # 기네스에 도전하는 신비의 바닷길 5월5∼7일 고군면 회동리 일대에서 ‘제31회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가 연린다. 조수간만의 차에 의해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 사이 2.8㎞ 바다가 폭 40∼60m으로 갈라지는 것을 기념해 열리는 축제. 예년과 달리 축제기간 중 기네스세계기록에 도전하는 행사가 열려 눈길을 끈다. 진도군에 따르면 축제 첫날인 5일 ‘세계 최장 바닷길´과 ‘세계 최대 바닷길 체험 참가자수´부문에 각각 도전한다. 바닷길 길이와 안에 있는 관광객 수를 측정한 다음 각종 기록들을 영국 기네스월드레코드사에 보내 공식 등재를 요청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오후 4시50분까지 신비의 바닷길에 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진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진도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주변 관광지 ▲운림산방 : 조선 말기 남화의 대가 소치 허련(1808∼1893)이 말년에 머물던 곳. 매주 토요일엔 무료 국악공연이 펼쳐진다. 소치와 후손들의 작품을 전시한 전시관 등도 함께 볼 수 있다. ▲용장산성 : 몽고와 항쟁을 벌인 삼별초가 강화도를 떠나 근거지로 삼았던 성이다. 산성과 웅장한 석축으로 꾸며진 행궁터 등이 남아 있다. ▲세방낙조대 : 한국의 대표 낙조 감상 포인트. 다도해의 수많은 섬 사이로 넘어가는 일몰이 장관이다. 진도 서쪽 해안 세방리에 있다. ▲향동재 : 진도 동쪽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일출 조망지로도 알려진 곳. 맑은 날에는 한라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남도석성 : 국내 유일한 수군 성곽.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목포나들목→영산호하구둑→영암·금호방조제→77번 국도→우수영→진도. 농협 철부선 등이 진도읍 임회면 팽목항에서 조도 어류포항까지 하루 5회(성수기 6회) 운항한다.30분 소요. 어른 편도 3000원, 승용차(운전자 무료) 1만 4000원. 어류포항 542-3771, 팽목항 544-5353. 조도 내 대중교통은 버스 3대, 택시 1대. 마을버스가 하루 7회 운행한다.5000원. 대절도 가능하다. 박정환 010-8677-8910. 택시 박사수 542-5071. ▶유람선관광 : 진도읍 쉬미항을 출발해 광대도(사자섬), 주지도(손가락섬), 양덕도(발가락섬) 등을 돌아본다.1시간20분 소요. 대인 1만원, 소인 5000원.544-0075. ▶잘 곳 : 국립남도국악원 사랑채(540-4033) 남강모텔(544-1414) 등이 깨끗하다. 조도면에는 선우장(542-8889), 산수장(542-2445), 신비장(542-5268) 등이 있다. 민박은 40여 가구. 조도면사무소 540-3607. 남도민박(namdominbak.go.kr) 참조. ▶맛집 : 진도읍 사랑방식당은 바지락회무침으로 많이 알려졌다.2만 5000원.544-4117. 옥천횟집은 모둠회가 포함된 한정식을 잘한다. 성게알젓 등 다양한 젓갈이 맛깔스럽다.4인기준 10만원.543-5664.
  • [병자호란 다시 읽기] (67) 유화적인 대일정책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67) 유화적인 대일정책Ⅱ

    ‘야나가와 이켄(柳川一件)’에 대한 최종 판결은 1635년(인조 13) 3월15일에 내려졌다. 도쿠가와 쇼군은 소오 요시나리(宗義成)의 손을 들어 주었다. 하지만 요시나리에게 그것은 ‘찜찜한 승리’였다. 주군인 자신을 배신하고 사지(死地)로 몰아 넣으려 했던 야나가와 시게오키에게 가벼운 처벌이 내려졌고, 자신의 심복이었던 외교승 겐포(玄方)를 곁에서 떠나 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또한 ‘조건부 승리’이기도 했다. 바쿠후(幕府)는 요시나리를 선택하면서 그의 역량을 시험하고, 동시에 조선을 떠보는 조건을 달았다. 조선은 쓰시마의 소오를 다독거리며 바쿠후와의 관계도 안정시킬 수 있는 묘책을 찾아야 했다. ●바쿠후의 의도 ‘조선과 주고받은 국서를 멋대로 고쳤다.’는 혐의에도 불구하고 바쿠후가 요시나리를 처벌하지 않은 데는 까닭이 있었다. 당시 바쿠후는 점차 쇄국(鎖國)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기독교의 유입을 막기 위해 외국과의 무역을 나가사키(長崎)로 집중시키고, 동남아 등지로 가는 무역선(朱印船)의 출항과 일본인의 도항(渡航)을 금지시키는 조처를 구상했다. 바쿠후는 그 같은 흐름 속에서 조선과의 관계도 다시 정비하려고 했다. 무역을 유지하면서도 유럽 국가들을 통한 기독교 유입을 차단하려 했던 바쿠후에게 조선과의 관계는 중요했다. 당시 조선은 일본이 유일하게 대등한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였다. 중국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 조선과 국교를 유지하는 것은 국내적으로 쇼군과 바쿠후의 권위를 높이는데 필수적이었고, 조선과의 교역 또한 매우 중요했다. 바쿠후가 요시나리를 ‘선택’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 가까스로 재개시켜 놓은 조선과의 관계를 다시 원점으로 돌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래 일본에 대해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의식을 가진 데다, 왜란을 겪으면서 일본을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원수(萬世不共之讐)’로 여기고 있는 조선을 상대해 왔던 소오 가문의 경험도 무시할 수 없었다. 바쿠후는 요시나리의 손을 들어 주면서 ‘1636년까지 조선으로부터 통신사(通信使)를 초치(招致)하라.’고 명한 것은 요시나리의 조선에 대한 교섭 역량과 조선의 반응을 떠보기 위한 조건이었다.1635년 8월, 바쿠후는 향후 겐포를 대신하여 조선과의 외교를 담당할 승려들을 직접 선택했다. 교토(京都) 동복사(東福寺)의 승려 인서당(璘西堂)과 소장로(召長老), 천룡사(天龍寺)의 승려 선장로(仙長老)가 그들이었다. 이제 이들 세 사람이 번갈아 쓰시마로 들어가 머물면서 조선으로 보내는 외교문서 작성을 맡게 되었다. 교토에서 온 외교승들이 바쿠후의 지휘 아래 쓰시마의 대조선 외교를 직접 관장하고, 동시에 감시하는 체제가 만들어진 것이다.‘야나가와 이켄’이 종료된 뒤 인서당이 맨 먼저 쓰시마로 건너왔다. ●‘일본위협론’이 다시 제기되다 이미 언급했듯이 ‘야나가와 이켄’이 진행되는 동안 조선은 바짝 긴장했다. 후금의 위협과 명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과의 관계마저 악화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 또한 소오 요시나리를 매개로 유지되어 왔던 조일(朝日)관계에 변동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야나가와 이켄’을 계기로 일각에서는 일본이 쳐들어 올지도 모른다는 위기론이 퍼지고 있었다. 특히 1635년 연말에 재이(災異)가 거듭되면서 ‘일본위협론’은 더욱 힘을 얻었다. 창덕궁 정전(正殿)에 벼락이 내리치고, 한성부 연못의 물빛이 붉게 변하는 변고가 나타났다.11월6일에 열린 경연 자리에서 사간 민응형(閔應亨)은 “옛날부터 나라가 망하려면 괴상한 변고가 이어지는 법”이라며 “선조의 능침(陵寢)이 무너지고, 큰바람 때문에 나무가 뽑힌 것은 장차 전쟁이 일어날 징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구체적으로 임진왜란 무렵을 예로 들었다. 신묘년(1591년)에 풍재(風災)가 극심하더니 이듬해 왜란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재이가 거듭되는 것은 전쟁이 일어날 징조’라는 민응형의 발언에 조정은 술렁였다. 누가 쳐들어 온다는 것인가? 민응형을 비롯한 삼사(三司) 신료들은 일본의 침략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목했다.11월7일, 인조는 비변사 당상과 대신들을 불러 모았다. 인조는 대신들에게 일본이 과연 위험하냐고 물었다. 오윤겸(吳允謙)은, 뚜렷하게 쳐들어올 기미가 보이지는 않지만 일본인들의 성정(性情)이 남에게 지기 싫어한다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만일 야나가와 시게오키가 ‘조선이 일본보다 후금을 우대하고 있다.’고 쇼군에게 참소할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계했다. 또 시게오키가 비록 패했지만 쇼군 주변에 시게오키를 두둔하는 자가 많다는 사실을 우려했다. 이홍주(李弘胄)와 신경진(申景 )은 ‘일본의 침략 가능성이 별로 없지만 수군을 잘 정비하여 뜻밖의 사태에 대비하자.’고 했다. 11일에는 김상헌(金尙憲)이 차자(箚子)를 올려 일본의 침략 가능성을 더욱 강하게 거론했다. 그는 조정이 오로지 서변(西邊)을 막는 데만 급급하여 남변(南邊)의 방어는 거의 팽개쳐 버렸다고 비판했다. 남쪽의 군병은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데다 무기도 엉성하고, 백성들은 가렴주구(苛斂誅求)에 시달려 조정을 원망하고 있다고 실상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조정에 대한 원망이 가득한 백성들을 유사시에 전장으로 내모는 것이 가능하겠냐?’고 반문했다. 김상헌은 남변의 방어 태세를 점검하기 위해 통제사영(統制使營), 경상 좌수영(左水營)과 우수영(右水營)에 감군어사(監軍御史)를 파견해야 한다고 대책을 제시했다. 사실 당시 조선은 일본의 재침 가능성을 별로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일본의 위협을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조정은 후금의 동향이 불온하다고 느낄 때마다 주로 강화도의 방어 태세를 강화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삼남에서 수군과 전선(戰船)을 차출해 강화도 방어에 투입하기도 했다. 심지어 명사(明使) 노유녕(盧維寧)을 접대하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전라도 수군의 입방(立防)을 면제해 주고 대신 포(布)를 받기도 했었다. 일본의 위협을 고려한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위험천만한 방책이었다. ●신료들과 달리 인조는 日에 대해 낙관론 신료들과는 달리 인조는 일본에 대해 대체로 낙관론을 폈다. 그는 ‘관백(關伯)이 전쟁에 싫증을 내서 백성들에게 총포를 쏘지 못하게 하는 데다, 반란을 걱정하여 장수들의 처자를 인질로 삼고 있으니 다른 나라를 넘볼 근심은 없다.’며 ‘일본위협론’을 일축했다. 이렇게 일본의 침략 가능성에 대한 예측이 서로 엇갈리는 상황에서 조정은 수군을 점검하고 방어 태세를 정비하자는 선에서 논의를 마무리지었다. 거의 모든 신경이 서북변 쪽으로 가 있는 상황에서 비롯된 고식책(姑息策)이었던 셈이다. 이제 일본에 대한 대책은 유화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알아 차렸는지 일본은 조선에 대해 공세적으로 나왔다. 겐포를 대신하여 쓰시마에 부임한 인서당은 1635년 12월, 조선에 보낸 문서에서 명의 연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명분은 ‘일본은 명의 신하가 아니므로 그 연호를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과거 쓰시마가 조선의 예조를 ‘합하(閤下)’라고 부르던 것도 ‘족하(足下)’로 바꾸겠다고 했다.‘조선과 일본은 대등한 나라이고 쓰시마 역시 예조와 동등하니 합하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인조는 관례를 어겼다는 이유로 인서당이 기초한 문서를 받지 않으려 했다. 쓰시마는 ‘합하’문제를 거론하여 조선이 자신들을 ‘족하’라 부르는 것을 막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비변사 신료들은 일본과 사단이 생길까 우려하여 그냥 넘어가자고 했다. 조선은 결국 이후부터 쓰시마 도주를 ‘족하’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조선은 통신사의 파견도 수락하고, 바쿠후가 요청한 마상재(馬上才·말 위에서 곡예를 펼치는 유희)를 벌일 인원도 파견하기로 했다. 일본측의 요구를 거의 다 들어 준 것이었다. 모두 소오 요시나리의 낯을 세워 주어 일본과의 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병자호란 직전, 조선은 이렇게 후금의 위협을 의식하여 일본과의 관계를 안정시키려고 부심하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4) 고누와 나무하기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4) 고누와 나무하기

    김홍도의 작품 ‘풍속화’다. 그림 오른쪽에는 상투를 튼 어른이 나무에 기대어 곰방대를 물고 물끄러미 아이들이 노는 장면을 보고 있고, 그림 중앙에는 아이 둘이 웃통을 벗고 놀이에 한창이다. 그리고 그 왼쪽에 아이 둘 역시 구경을 하고 있다. 그림의 위쪽에는 집채만 한 나뭇짐을 얹은 지게 둘을 언덕에 기대어 놓았고, 그 왼쪽에 다시 더벅머리 아이 하나가 나뭇짐을 지고서 오고 있다. ●아무 곳에나 말판 그리고 놀이… 방식도 다양 이 그림은 고누 두는 그림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고누는 흙 마당이나 종이 등 아무 곳에나 말판을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많이 잡아먹거나, 상대의 집을 차지하거나, 상대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 이기는 놀이다. 지방에 따라 꼰, 고니, 꼬니, 꼬누 등 여러 가지로 부르고, 그 놀이의 방식도 다양해서 우물고누, 네줄고누, 밭고누, 호박고누, 샘고누, 강고누, 줄고누, 팔자고누, 십자고누 등 많은 종류가 있다. 장기와 바둑은 놀이하는 판이 정해져 있지만, 고누는 다양한 이름만큼 말판의 종류도 많고, 노는 방식도 다양하다. 또 말판이 간단하여 언제 어디서나 둘 수 있었다. 필자 역시 어릴 적에 적잖이 즐겼다. 한데 이 그림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 이 그림의 고누판은 둥근 원을 그리고 그 속에 다시 십자를 그리고 있는데 이런 고누판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사실 이 그림은 윷판으로 보인다. 윷가락이 없으니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둥근 원형 안에 작은 물건 넷이 보이는데, 이것이 윷일 수 있다. 윷은 꼭 나무로 길게 만든 것이 아니라도 된다. 나는 어렸을 때 동네 어른들이 작은 고동 껍데기를 윷가락 대신 쓰는 것을 보았다. 땅에 살짝 굴려도 도 개 걸 윷 모가 나왔다. 이제 나뭇짐 쪽으로 말머리를 옮기자. 도시에서 나고 자란 50대 이하의 세대는 나무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것이다. 필자 역시 나무를 한 적은 없다. 하지만 아버지 세대, 그리고 주변의 시골출신들은 나무 하러 다닌 기억을 종종 떠올린다. 나무가 없으면 취사와 난방을 할 수 없었으니, 나무는 필수적인 생존 수단이었던 것이다. 필자의 직장인 부산대학이 있는 부산 동래는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다. 조선조 때부터 있던 온천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부터다. 일제시대에 온천장을 소개하는 사진엽서가 만들어졌는데, 사진 속의 금정산을 보면 완전히 민둥산이다. 왜냐고? 땔감 때문에 나무가 남아나지 않았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산이 우거진 것은 연탄을 연료로 쓰면서부터일 것이다. 물론 적극적인 식목정책도 한몫을 했지만. 김홍도가 살던 조선시대는 나무 하기가 쉬웠던가. 조선시대가 지금보다 환경이야 더 깨끗했겠지만, 국토가 온통 나무로 뒤덮인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나무를 할 만한 곳은 모두 개인의 소유로 분할되어 있었고, 그 개인 소유지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히 불법이었다.‘경국대전-공전’을 보면 나무하는 곳, 즉 시장(柴場)이란 곳에 대한 흥미로운 조항이 있다.‘시장’은 땔나무를 하는 곳으로 관청에는 땔나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관청마다 일정한 면적으로 땔나무 하는 곳을 분배해 준다. 예컨대 봉상시·상의원·사복시·군기시·예빈시·내수사에는 모두 사방 20리, 내자시·내섬시·사재감에는 15리, 사포서에는 5리의 ‘시장’을 지급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뒷날 문제를 일으킨다. 명종 9년 12월10일 사헌부에서 올린 상소문의 일부를 보자. 서울 주위 30리의 꼴과 땔나무가 있는 곳은 모두 세도가가 독점하여, 베어가는 것을 금지합니다. 때문에 근방의 나무를 해서 파는 사람들이 그 위세에 눌려 손을 대지 못하고 개울을 건너고 고개를 넘어 가기 때문에 너무나 고생스럽습니다. 그래서 시장에서 파는 나무 값이 극히 비쌉니다. ●나무 할 만한 곳은 모두 권세가들이 독점 권세가가 서울 근처의 나무를 할 만한 곳을 모두 독점해 버려 나무 값이 뛰어오른다는 것이다. 이런 권세가를 한 명 밝히자면, 문정왕후의 오라비였던 윤원형이 있다. 박순(1523∼1589)의 상소에 의하면, 윤원형은 수락산 일대를 독차지하여 주민들의 무덤까지 파헤치면서 주민들을 내쫓은 뒤 시장(柴場)을 만들고는 그곳에서 땔나무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중 일부를 세금조로 바치게 했다고 한다. 원래 수락산은 서울에 가깝기 때문에 누구나 땔나무를 하거나 꿩이나 토끼를 잡기 위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산이었는데, 이것을 윤원형이 독점했던 것이다. 한데 이것은 윤원형과 같은 일부 권세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훨씬 전부터 시장의 독점은 있어왔고, 조선후기에도 사정은 동일하였다. 성종 연간의 인물인 서거정의 시에 나무꾼을 둘러싼 꽤나 진지한 시가 한 편 있다.‘토산(兎山)의 시골집에서 농부의 말을 기록하다’라는 제목의 긴 시를 남기고 있는데, 나무꾼의 하소연을 옮겨 적은 것이다. 앞부분을 요약해 보자. 이 농부는 불암산 기슭에서 농사를 지으며 겨우 살아간다. 그런데 뜬금없이 간교한 자의 토지 소유권 소송에 걸려든다. 교활한 아전들의 협잡질로 오막살이 한 채만 남기고 땅을 죄다 빼앗기고, 근근이 남아 있는 묵은 땅을 경작해 보지만, 흉년까지 든다. 세금을 낼 형편이 아니건만 아전들은 날마다 찾아와서 세금을 내 놓으라 닦달이다. 급기야 산속으로 달아나 숨어 있자니, 굶주린 뱃속에 불이 붙는 듯 아리고, 얼굴빛은 날마다 까맣게 타들어간다. 그래서 나무를 해다 팔기로 한다. 이제 나무꾼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땔나무 하러 산 속으로 들어가면 산중에 땔나무 무성하지요 집에 누런 송아지 한 마리 있지만 한 해 내내 먹지 못해 뼈만 앙상해 나뭇짐 나를 수 없기에 한 발짝에 두 번씩 꼬꾸라지며 걸음걸음 내가 지고 이고 나르니 두 어깨살은 벌겋게 부풀어 올랐지요 해 떨어질 녘에야 성으로 들어와서는 길에서 만난 야박한 장사치가 푼전까지 다투며 나무 값 후리치니 쌀값은 비싸고 내 품삯은 헐하기 짝이 없네요 농부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나무를 한 짐 해서 나오는데, 뼈만 남은 몸이라 등에 지고 오자니 그것도 힘이 든다. 시내에 들어와 팔려하지만, 야박한 장사치가 값을 후리치니, 품삯도 안 나온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자신에게 의지하는 가족들이 있다. 그래도 집에 있는 열 명의 식구 밥 달라고 소리치는 걸 생각하면 한 되든 한 말이든 어찌 따질 수 있겠습니까 그나마 주린 창자를 달래얍지요 집에 돌아와 마누라 자식놈과 마주 앉아 차츰 죽이라도 먹게 되었지만 이렇게 하여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내 삶이 정말 딱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나마 나무를 해 팔아 처자식과 점차 죽이나마 먹게 되었다. 하지만 웬일인가. 사람 고생은 끝이 없다. 얼마 전부터 권세가의 힘이 나무며 돌까지 미쳐 산이란 산은 죄다 제 땔나무 밭으로 차지해 사람들 나무 하고 꼴 베는 것을 막고부터 서쪽 집은 땔나무 한 번 한 죄로 매질 마구 하여 피가 철철 흘렀고 동쪽 집은 소가 밭을 밟은 죄로 아비 아들 나란히 묶여 갔지요 아무런 이유 없이 백성의 재물 약탈해 낫과 도끼까지 모두 빼앗아 갔지요 ●땔나무 한번 잘못하면 가혹한 私刑 힘 있는 권세가의 힘이 나무와 돌에까지 미쳐 산마다 줄을 치고 자기 땔나무 밭으로 삼는다. 만약 그 독점 공간에 들어가 땔나무를 하게 되면, 찾아와서 피를 흘릴 정도로 가혹한 사형(私刑)을 가하고, 낫과 도끼까지 빼앗아 갔던 모양이다. 시를 지은 서거정은 이 비극적 사태를 보고하면서 시의 끝에서 “나는 지금 이 말을 듣고 나서/ 한밤중에 홀로 흐느끼어 우노라”라고 깊은 동정을 표했지만, 조선조 말까지 백성들의 고통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김홍도의 이 한 장의 그림에도 뜯어보면, 사실 조선조 백성들의 삶과 역사가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Local] 5일 스페이스 챌린지 예선

    30회 공군 참모총장배 스페이스 챌린지 대구·경북 예선대회가 5일 공군 제11전투비행단 비행장에서 열린다. 역대 최다인 2721명의 선수가 참가한다. 이번 예선은 초등1부(1∼4학년)와 초등2부(5,6학년), 중ㆍ고등부로 나눠 고무 동력과 글라이더 2개 부문에 걸쳐 진행된다. 특히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최신예 전투기인 F-15K와 F-4D 항공기를 전시하고 장갑차 탑승 체험, 조종복 입고 사진 찍기, 항공소년단의 무선조종 항공기 전시 등이 마련된다. 예선 당일 일반인의 대구비행장 출입이 가능하다. 부대측은 자유재활원과 대구안식원생 등 40여명의 장애인과 도우미를 초청하기로 했다. 지역예선 통과자에게는 5월18일 공군사관학교에서 열리는 본선대회 참가 자격을 준다.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65) 전란의 전조

    [병자호란 다시 읽기] (65) 전란의 전조

    1634년 말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정은 강학년(姜鶴年) 발언의 파장 때문에 뒤숭숭했다.‘포악함으로써 포악함을 제거했다.’며 인조반정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했던 강학년의 직격탄은 인조와 조정 신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인조와 반정공신들의 실정(失政)을 문제 삼았던 신료들조차 강학년의 발언에 격분했다.1635년 1월 홍문관 신료들은 ‘강학년의 죄는 목을 베어야 할 사안’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언관 자리에 있던 신료들이 동료의 발언을 문제 삼아 ‘목을 베어야 한다.’고 운운하는 것은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었다. ●강학년과 이기안, 인조에게 도전하다 강학년의 발언을 계기로 신료들은 자신들이 인조와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조정에 나아가 벼슬을 하고 권세를 누리게 된 출발점은 인조반정이었다. 그들이 반정을 성공시킨 순간부터 광해군은 ‘극악무도한 패륜아(悖倫兒)’이자 ‘걸(桀) 임금이나 주왕(紂王)보다도 더한 폭군’으로 치부되었고, 광해군을 쫓아낸 반정이야말로 ‘천명(天命)과 인심의 호응 속에 무너진 윤리와 기강을 바로잡은 거사’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강학년이 홀연 백이(伯夷) 숙제(叔齊)처럼 ‘이폭역폭(以暴易暴)’ 운운하면서 인조반정의 정당성을 한 방에 날려 버렸다. 신료들은 강학년을 엄벌하지 않으면 신인(神人)의 공분(公憤)을 풀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조판서로 있으면서 강학년을 조정에 추천했던 최명길은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며 관직에서 물러났다. 인조반정과 인조의 권위를 허무는 사건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1635년 2월 전라감사 원두표가 보내온 보고는 다시 조정을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보고 내용은 삼례(三禮)에 사는 생원 이기안(李基安)이 인조에 대해 무도한 말을 퍼뜨렸다는 내용이었다. 이기안이 사근찰방(沙近察訪) 김경(金坰)과 이야기를 하면서 ‘능양군은 믿을 수 없다. 그가 오래갈 수 있을까?’라고 불경한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기안은 서울로 끌려왔고, 그를 심문하기 위해 추국청(推鞫廳)이 설치되었다. 추국 과정에서 ‘일본인들을 끌어들여 난을 일으키려 했다.’고 말하는가 하면, 남인과 과거 대북파의 잔당들과 연결하여 역모를 꾀하려 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이기안은 처형되었지만 ‘역모 사건’의 파장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능양군은 인조의 잠저(潛邸) 시절 군호(君號)였다. 이미 강학년의 발언 때문에 조정이 뒤숭숭한 상황에서 이기안이 ‘능양군’ 운운한 것은 충격을 배가했다. ●‘천변’의 원인을 둘러싼 공방 강학년의 충격적인 발언과 이기안의 역모 기도 사건을 계기로 인조에 대한 신료들의 비판은 수그러드는 조짐을 보였다. 특히 강학년이 인조가 저지른 3대 실책 가운데 하나로 꼽은 ‘부묘(廟)기도’에 대한 비판도 잠잠해지는 것 같았다. 인조는 ‘강학년을 죽여야 한다.’는 신료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를 엄벌하는 데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말 때문에 죄를 얻은 자를 죽이는 군주가 아니다.’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흘리는 등 ‘강학년 문제’로 빚어진 신료들의 격앙된 모습을 은근히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인조는 ‘서인들의 집권이 오래되고, 그들이 사사건건 왕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기 때문’에 궁극에는 강학년의 발언이 나왔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인조와 신료들은 다시 충돌하고 말았다.1635년 3월 14일 선조의 능(穆陵)에서 능침(陵寢)과 석물(石物)이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간밤에 번개와 천둥이 요란한 상태로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이튿날 선조와 왕비의 능침 일부가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보고를 받은 예조는 서둘러 위안제(慰安祭)를 지내고 대신을 보내 봉심(奉審·무너진 능침을 살피는 것)한 다음 개수한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목릉이 무너진 원인에 대한 진단을 놓고 긴장이 다시 촉발되었다. 사헌부 신료들은 인조에게 목릉이 무너지는 변고가 부묘를 시행하려는 즈음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중시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선대(先代)의 혼령(魂靈)을 위로하기 위해 부묘를 연기하라고 건의했다. 인조는 부묘를 연기하라는 건의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대신들이 목릉이 무너진 것을 ‘하늘이 내린 변고(天變)’라고 규정하자 발끈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조는 ‘봉분을 만든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비가 미친 듯이 퍼부어 스며든 물 때문에 무너진 것’이라며 대신들의 ‘천변’ 주장을 일축했다. 또 원인을 정확하게 구명하지도 않은 채 ‘천변’으로 몰아가려는 대신들의 저의가 불순하다고 질타했다. 부묘를 둘러싼 논란, 강학년의 ‘폭탄 발언’, 이기안의 역모 사건 등이 중첩되어 일어나면서 인조와 신료들은 치열한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인조는 특히 목릉 붕괴의 원인에 대해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천변’ 운운하는 신료들을 계속 파직하는가 하면, 능에서 무너져 내린 사토(莎土)를 다른 곳으로 실어 옮긴 선공감(繕工監) 제조(提調) 신경진(申景 )을 나문(拿問·잡아다가 취조함)하라고 지시했다.‘무너진 흙에 벼락이 내리친 흔적이 분명히 남아 있었는데 그것을 없애기 위해 고의로 흙을 옮겼다.’는 것이다. 인조는 신료들이 목릉의 붕괴를, 국왕의 실정에 대한 하늘의 경고 때문에 빚어진 ‘천재’로 몰아가면서 자신을 압박하려는 것을 차단하려 했던 것이다. ●홍타이지 “조선 신료들 탐욕·부패” 직격탄 목릉 붕괴의 원인을 둘러싼 공방이 수그러들 무렵인 1635년 8월 후금 사신 동덕귀(董德貴)가 평양에 도착하여 국서를 올려보냈다. 홍타이지는 먼저 조선 백성들이 국경을 넘어 후금 영내로 진입하다가 체포되는 사례가 많다고 항의했다. 그는 법을 어기고 월경하는 백성들이 많은 것은 ‘조선 신료들이 탐욕스럽고 부패하여 임금의 총명을 가리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예로부터 신하가 국권을 쥐고, 사실(私室)을 강하게 하고 군주를 업신여기면 나라의 정사가 망가지게 된다.’고 충고했다. 이어 ‘후금은 형제국이므로 직언으로써 충고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거의 국서와는 사뭇 다른 내용이었다.‘권세가 강한 신료들은 조심하라.’며 조선의 내정을 걱정하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서인들의 권세가 너무 커졌다.’고 인조가 푸념했던 것이 어느새 홍타이지의 귀에까지 들어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후금은 이제 조선 내정에 ‘충고’까지 하려고 덤비고 있었다. 사실 이 무렵 홍타이지는 상당히 고무되어 있었다. 차하르(察哈爾) 몽골 원정에 나섰던 도르곤(多爾袞) 등이 차하르의 릭단한(林丹汗)이 가지고 있던 원(元)의 옥새(玉璽)를 노획해 왔던 것이다. 릭단한은 몽골에서 칭기즈칸의 정통성을 잇는 권위를 지닌 인물이었다. 일찍이 원의 마지막 황제 순제(順帝)는 주원장(朱元璋)의 명군을 피해 달아나다가 죽었고 그 와중에 원의 옥새는 행방이 묘연했다. 옥새는 200년이 지난 뒤에야 양치기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어 우여곡절 끝에 릭단한의 손으로 흘러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그 옥새가 홍타이지의 손에 들어갔던 것이다. ‘제고지보(制誥之寶)’라는 글자가 새겨진 옥새를 얻었을 때 홍타이지는 향불을 피우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그러면서 ‘하늘이 역대 제왕들이 사용하던 옥새를 짐(朕)에게 보낸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며 감격해했다. 마치 자신에게 천명(天命)이 돌아왔다고 여길 법도 한 일이었다. 실제로 홍타이지는 사람을 시켜 조선에도 자신이 옥새를 얻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런 사연에서 얻어진 자신감 때문일까? 홍타이지의 국서 내용은 조선의 신경을 더욱 거스르게 만들었다. 거듭되는 천재지변을 둘러싼 논란,‘충고’ 운운하는 후금의 국서에 대한 찜찜함을 뒤로하고 1636년 병자년이 밝아 오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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