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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 국토기행] 멋:유교문화의 보고

    [新 국토기행] 멋:유교문화의 보고

    안동은 유교문화의 보고다. 보유한 지정 문화재만도 307점에 이른다. 국가지정 문화재 87점(국보 5점, 보물 39점 등), 경북도도지정 문화재 220점(유형 69점, 무형 5점 등) 등이 있다. 이 때문에 안동을 찾는 많은 관광객은 무엇을 돌아봐야 할지를 몰라 난감해한다. 하지만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봉정사와 한국국학진흥원의 유교목판, 하회별신굿탈놀이 등이 하회마을에 이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돼 이들 문화재만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회마을 연간 100만명이 찾는 명실상부한 안동 관광의 1번지이다.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방문과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다. 강이 곡선을 그리며 감싸는 하회는 풍산 류씨가 600여년간 살아온 동성마을이다. 마을에는 조선 5대 명재상으로 이름 높은 서애 류성룡(1542~1607) 선생이 7년 동안 겪은 임진왜란의 전황을 기록한 징비록(국보 제132호) 등 많은 보물급 유적이 있는 충효당(보물 414호), 풍산 유씨의 대종가 양진당(보물 36호) 등 중요문화재 18점이 있다. 1984년 마을 전체가 국가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됐다. 160여채의 전통 기와집과 210여채의 초가집이 끊어질 듯 연결되는 길, 돌담과 어울려 있다. 마을 서북 쪽에는 해발 64m의 절벽인 부용대가 있다. 하회마을은 물 위에 핀 연꽃처럼 보이는데 그 연꽃을 보는 자리라 해서 이름 붙여졌다. 마을에는 서민들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선유줄불놀이’가 전승되고 있다. ■도산서원·병산서원 도산서원은 사적 제170호로 조선 최고의 유학자였던 퇴계 이황(1501~1570)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동서재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집으로, 전체적으로 간소하다. 당초 퇴계가 1561년에 도산서당을 건립, 후학양성에 힘썼던 ‘성리학의 성지’였으나 선생이 타계하자 후학들이 서당이 있던 자리에 서원을 건립했다. 서원 안에는 400여종에 달하는 4000권이 넘는 장서와 장판 및 이황의 유품이 남아 있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았다. 선조는 도산서원이란 현판을 사액했는데 그 편액은 명필가인 석봉 한호(1543~1605)의 글씨다. 도산서원 앞에는 낙동강이 유유히 흐른다. 강 건너편에는 과거시험을 보던 곳인 시사단이 있다. 서원 인근에는 퇴계가 태어나고 묻힌 태실과 묘소, 종부가 손님을 맞는 퇴계종택, 제자 금난수(1530∼1604)가 지은 고산정, 퇴계의 14대 후손으로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시인인 이육사(1904~1944)의 묘소와 문학관이 있다. 병산서원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권율 등 명장을 등용한 문신 겸 학자 서애 선생이 후학들을 양성하던 곳이다. 제자들이 ‘존덕사’를 지어 위패를 모셨다. 사적 제260호이다. 서원의 만대루나 입교당에 올라서면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병산이 이름 그대로 병풍처럼 자리하고 낙동강이 그 앞을 잔잔하게 흐른다. 고미술연구가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 건축의 백미로 꼽는 이유다. 두 서원은 2011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됐으며 유네스코 실사를 거쳐 2016년쯤 등재가 확정될 전망이다. ■봉정사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625~702)의 제자 능인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이다. 우리나라 목조 건축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전으로 유명하다. 하회마을처럼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다녀간 뒤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다. 사찰 입구 솔 숲길은 여왕이 다녀간 길이라고 해서 ‘퀸스로드’로 이름 붙여졌다. 1987년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동승’ 등 영화를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고려 태조와 공민왕이 다녀간 곳으로 국보와 보물이 가득하다. 극락전(국보 제15호)을 비롯해 대웅전(국보 제311호), 화엄강당(보물 제448호), 고금당(보물 제449호), 대웅전 후불탱화(보물 제1614호),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제1620호), 영상회 괘불도(보물 제1642호), 아미타설법도(보물 제1643호) 등 14점이 있다. 경내 영산암은 사찰이라기보다 사대부가의 아름다운 정원처럼 뛰어난 미를 갖춰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가까이서도 아름답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더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같은 절집이다. 안동시는 2018년까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다는 계획이다. ■국학진흥원 유교목판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쓴 책을 찍어내기 위한 목판 기록물로 우리나라 유교문화를 대표하는 기록유산 중 하나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2월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하는 718종의 유교책판 6만 4226장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국내 후보로 최종 결정했다. 내년 6월쯤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이들 목판의 유형으로는 문집류가 583종(81.2%)으로 가장 많다. 다음으로 성리서 52종, 족보류 32종, 예학서 19종, 역사·전기류 18종, 몽훈·수신서 7종, 지리 3종, 기타 4종으로 유학자들이 만든 기록물이 대부분이다. 유학 집단의 사회적 공론을 거쳐 후손이나 후학이 자발적으로 경비를 모아 책을 인쇄하기 위해 목판을 제작했다는 점과 주요 등재 기준인 진정성, 독창성, 세계적 중요성이 뛰어나 등재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 목판은 현재 자동통풍시스템, 자동항온항습시설, 가스식 자동소방시스템, 출입통제 및 도난방지시스템 등 첨단시설을 갖춘 목판 전용 수장 시설인 장판각에 보관 중이다. 사전 예약(054-851-0764)해야 관람할 수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 하회마을에서 800여년의 긴 역사를 이어 전승돼 온 탈에 담긴 웃음, 풍자, 해학으로 민중의 희로애락을 대변한다. 지배계층인 양반과 선비의 허위성을 폭로하는 서민들의 애환을 풍자적으로 그려 내는 게 특징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하회에 사는 허 도령이 제작했다는 하회탈은 모두 14개였으나 3개가 분실되고 현재 10종 11개가 국보 제121호로 지정됐다. 탈놀이 전 과정은 모두 10개 마당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상설공연(1~2월 매주 토~일, 3~12월 매주 수·금·토·일요일)에서는 6개 마당만 무료 공연된다. 영국 여왕이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당시 직접 관람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 대표 축제 중 하나로 꼽히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의 근간이기도 하다. 예술성과 민중성이 뛰어난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세월이 멎은 듯… 달도 숨다

    세월이 멎은 듯… 달도 숨다

    단풍 하면 퍼뜩 떠오르는 곳이 내장산 국립공원이다. 우리나라 단풍 유람의 대표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한데 내장산 국립공원이 전북 정읍 쪽의 내장산뿐 아니라 전남 장성 쪽의 백암산과 입암산을 아우른다는 것을 아는 이는 뜻밖에 적다. 백양사가 깃든 백암산은 그나마 유명세를 얻은 편이다. 입암산을 아느냐 물으면 열에 아홉은 고개를 외로 꼬기 일쑤다. 내장산 국립공원의 한 축인 입암산 일대에 장성새재 옛길이 남아 있다. 세인의 시선에서 살짝 비켜 선 곳이니 한적함이야 더 말할 게 없을 터. 남도 사투리는 이를 ‘다붓한(한적한) 새름길(샛길)’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에 삼한시대 축성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입암산성 가는 길을 덧붙이면 멋진 트레킹 코스가 완성된다. 길의 들머리는 남창계곡이다. 산성골, 새재골 등에서 흘러온 여섯 지류가 합류되는 곳이다. 예부터 ‘과실의 왕은 감이요, 감의 왕은 대봉’이라 상찬을 받아온 대봉감의 산지로도 이름났다. 전남대수련원 입구에서 작은 다리를 건너 남경산기도원 왼쪽 흙길 임도로 들어선다. 넓고 완만한 길이다. 계속 직진해서 새재화장실을 지나면 곧 장성새재 갈림길이다. 전 구간을 통틀어 화장실은 이곳뿐이다. 미리 ‘해결’하고 가는 게 낫겠다.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로 접어든다. 장성새재를 거쳐 백암산과 백양사 또는 순창새재까지 갈 수 있는 길이다. 흔히 새재 하면 경북의 문경새재를 떠올리지만 장성에도 새재가 있다. 한데 이름의 어원은 다소 다르다. 문경새재는 새도 쉬어 넘는다는 조령(鳥嶺)의 순우리말 표현이다. 장성의 새재는 지름길 혹은 샛길의 의미가 강하다. 김채림 장성군 문화관광해설사는 “이 지역에 살던 선조들이 장을 보거나 과거를 보기 위해 정읍으로 넘어갈 때 지름길로 이용했던 길”이라며 “한양으로 가는 삼남대로인 갈재(노령)를 이용하기 곤란한 사람들도 관아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샛길로 장성새재를 이용하곤 했다”고 설명했다. 장성새재 옛길은 장성 쪽 남창계곡에서 전북 정읍 입암공원지킴터까지 5㎞ 남짓한 구간을 이른다. 한데 이 구간을 종주하면 원점회귀가 어려울 뿐 아니라 산행거리도 짧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따라서 옛길 정상인 장성새재까지 3㎞ 정도 걸은 뒤 되짚어 나와 입암산성까지 다녀오길 권한다. 이 경우 산행거리가 약 14㎞로 확 늘어난다. 하지만 경사가 완만해 오르는 데 별 어려움이 없고 볼거리가 많아 좀 더 발품 팔 이유는 충분하다. 장성새재 정상에서도 입암산성 북문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지만 현재는 폐쇄됐다. 김 해설사는 “조금이라도 거리를 줄여 보겠다고 이 코스로 올라붙었다가는 죽을 만큼 고생한다”고 경고했다. 오래전 장성새재 가는 길은 정감 넘치는 오솔길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에 군용도로로 쓰기 위해 폭을 넓히면서부터 주변 환경이 훼손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1970년대 들어 차량 통행은 금지됐고 길은 다시 옛 정취를 되찾아가는 중이다. 옛길은 인적이 드물다. 산행 내내 사람 한 명 보기 어렵다. 그 덕에 길을 독차지하고 걷는 호사도 누린다. 길은 완만한 편. 길 옆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위로는 산새들이 삐쭝대며 날아간다. 가을이 짙어지면서 단풍 빛깔도 한결 요염해졌다. 거리가 짧으니 숨이 찰 까닭도 없다. 산책하듯 ‘싸목싸목’ 걷다 보면 어느새 새재 정상이다. 선조들은 새재를 월은치(月隱峙)라고 불렀다. ‘달이 숨은 고개’란 뜻인데, 숲이 어찌나 깊든지 하늘에 뜬 달이 보이지 않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장성새재 갈림길까지 되짚어 내려온 뒤 입암산성 등산로로 접어든다. 갈림길에서 5분가량 올라가 다리를 건너면 숲 체험장이다. 전남대가 1960년대 조성한 삼나무 숲이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삼나무가 수직의 세상을 펼쳐낸다.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나무의자도 여럿 놓여 있다. 삼나무 이파리 사이로 쏟아진 햇살이 빈 의자 위로 사뿐히 걸터앉는다. 삼나무 숲 끝자락은 계곡이다. 단풍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다. 계곡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면 잠시 가팔라졌다가 다시 완만해진다. 이렇게 몇 굽이를 돌면 은선동 삼거리다. 왼쪽 길은 갓바위(638m), 오른쪽은 입암산성 남문 방향이다. 어느 쪽으로 가도 입암산성을 돌아 원점회귀할 수 있다. 예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몇번의 된비알을 지나면 입암산성 남문이다. 오랜 시간을 버텨왔을 성벽이 어찌나 견고하든지 입에서 쉼 없이 탄식이 쏟아져 나올 지경이다. 입암산성은 호남 내륙의 자연과 선조들의 지혜가 어우러진 천혜의 요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는 “전라도를 방어하는 데 중요한 곳으로 노령산맥에 이어져 전라북도 정읍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성이다. 높이 626m인 입암산의 계곡 능선을 따라 만든 포곡식(계곡을 감싼 형태의 성곽) 산성으로 3.2㎞ 정도 남아 있다”고 적고 있다. 축성 시기는 불분명하다. 다만 ‘고려사’ 등에 1256년 송군비 장군이 몽고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어 고려시대 이전부터 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향토 사학계에서는 삼한 시대에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후백제 때는 견훤이 요새로 쓰기도 했단다. 과거 네 곳의 포루(砲樓)와 두 곳의 성문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남문만 공개되고 있다. 남문 성벽은 수직에 가깝다. 성 안에는 물이 솟는 곳이 예닐곱 곳에 달한다. 양식만 비축한다면 외적의 침입에도 오랜 시간 성을 지킬 수 있는 모양새다. 남문에서 북문 방향으로 조금만 올라가도 곳곳에 옛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성내마을터가 특히 인상적이다. 1980년대까지도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성내마을터를 지나 북문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입암산이란 이름의 근원이 됐던 갓바위(笠岩)로 가는 길이다. 둥근 접시 모양의 갓바위는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갓이다. 갓바위 위는 최고의 전망대다. 드넓은 들녘 한가운데 입암저수지가 보이고 들판을 가로지르는 호남고속도로와 정읍 시가지, 두승산 등이 한눈에 잡힌다. 입암산성 최고의 망루다운 전망이다. 하산길은 어려울 게 없다. 노송들 사이로 능선길을 따라 20~30분 내려오면 은선동 삼거리다. 글 사진 장성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승용차는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나들목으로 나와 백양사 방향으로 가다가 남창(입암산) 방향으로 들어가면 된다. 대중교통은 북이면 사거리까지 어떻게 가느냐가 관건이다. 기차는 사거리에 있는 백양사역에서 내리면 된다. 사거리터미널에서 남창 가는 군내버스는 오전 8시 20분, 10시, 오후 1시 50분, 4시 50분 네 차례 있다. 남창에서 나가는 시각은 여기에 30분을 더하면 된다. 사거리에서 남창계곡을 거쳐 백양사까지 가는 버스도 하루 다섯 차례 운행한다. 고속버스는 장성터미널, KTX는 장성역까지 각각 가야 한다. 장성 시내에서 사거리까지는 20~30분에 한 대꼴로 버스가 오간다. →맛집:장성호 인근의 호반가든(392-8692)은 메기찜이 맛있는 집이다. 시래기를 깔고 갓 잡은 메기를 올린 뒤 갖은 양념을 섞어 졸여낸다. 짭짜름하게 양념이 밴 시래기에 메기를 얹어 먹는 맛이 각별하다. 2인분 2만 5000원. 백련동 시골밥상(393-7077)은 유기농 식재료로 차린 열두 가지 반찬이 맛있는 집이다. 1만원. 청자연(394-9909)도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은 담백하고 정갈한 음식들이 일품이다. 두 집 모두 홍길동 테마파크 인근에 있다. →잘 곳:숲 속에서 아침을 맞고 싶다면 축령산자연휴양림(390-7770)이나 방장산자연휴양림(394-5523)이 좋겠다. 축령산은 편백나무 숲이 깊고 방장산은 고창과 서해 일대가 조망된다. 홍길동 테마파크(394-7240)에도 소규모 숙박시설과 오토캠핑장이 마련돼 있다. 남창계곡에도 오토캠핑장이 있다. →주변 볼거리:주변에 단풍 명소가 많다. 그 가운데 백양사가 가장 가깝다. 장성호관광지에 임권택시네마테크가 조성돼 있다. 전망대에선 장성호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테마파크 인근의 금곡영화마을은 영화 ‘태백산맥’ 등의 배경이 됐던 산골마을이다. 필암서원도 지척이다.
  • 로봇 영재 다 모여라

    로봇 영재 다 모여라

    도봉구는 오는 26일 청사 2층 대강당에서 ‘2014로봇 경진대회’를 개최한다고 5일 밝혔다. 제6회 도봉 창의과학축전의 일환으로 올해 신설했다. 로봇에 대한 초등학생들의 흥미와 관심을 높이고 창의적 탐구력을 함양해 과학적 소양과 도전 정신을 향상시키고자 기획됐다. 종목은 창작 부문 로봇창작 A, 로봇창작 B, 무선조종 부문 분리수거와 로봇퍼즐로 구성된다. 로봇창작 A와 분리수거 종목엔 초등학교 1~2학년, 로봇창작 B와 로봇퍼즐 종목엔 초등학교 3~6학년이 참가한다. 지역 학생 175명을 모집한다. 종목별 2인 1팀을 기준으로 25개팀이 참가한다. 분리수거 종목만 1인 1팀으로 나선다. 오는 14일까지 이메일(swingchip100@dobong.go.kr)로 선착순 참가신청을 받는다. 서식은 제6회 도봉 창의과학 축전 홈페이지(science.dobong.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참가자 명단은 21일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한다. 심사 및 시상은 대회 당일에 진행된다. 종목별 대상 1팀, 금상 1팀, 은상 2팀, 동상 3팀으로 모두 28팀 49명에게 상장 및 메달을 수여할 예정이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씨줄날줄] 손편지와 느린 우체통/정기홍 논설위원

    춘향전에 ‘행인임발우개봉’(行人臨發又開封) 구절이 나온다. 서간(書簡), 즉 편지를 보내려다가 행여 할 말을 다 못하고 보낸 듯해 봉투를 다시 뜯어 본다는 뜻이다. 어사 이몽룡이 남원으로 내려가다 춘향의 서간을 허리춤에 차고 한양으로 가던 어린 심부름꾼을 만나는 과정에서 한 말이다. 당나라 시인 장적(張籍)의 ‘부공총총설부진(復恐???不盡) 행인임발우개봉(行人臨發又開封)’에서 따와 인용했다. 변사또의 수청을 거부해 옥살이를 하던 춘향에게 변고가 생길까봐 조마조마하던 마음을 일순간 풀어 준 매력적 구절이다. 편지 말미에 사용하는 ‘추신’(追伸)에도 ‘행인임발우개봉’과 뜻이 비슷한 데가 있다. 추신은 편지글을 퇴고하면서 놓친 것과 빠진 것을 더 붙여 쓰는 것을 이른다. 먹을 갈면서 생각을 가다듬은 뒤 붓을 들던 게 일상이던 옛날, 고급 한지를 허비하지 않으려던 선조의 글 쓰는 지혜가 녹아 있는 단어다. 추신에는 다른 의도도 다분히 있다. 겸연쩍어 줄곧 풀어내지 못했던 속내를 이를 통해 기필코 드러낸다. 대체로 감성으로 둘러대기보다 직설적이고 반전을 노리는 문구가 많다. 사춘기 때 글이 미덥지 못하고 아쉬워 추신을 이용했던 기억 하나쯤은 다들 갖고 살고 있지 않을까. 현 시절은 편지를 쓰고 받는 이도, 이런 정서도 찾기 어려운 때다. 카카오톡 등 메신저나 문자 메시지가 편지의 자리를 대신해 간단명료해야만 시대를 옳게 사는 것으로 여긴다. 대문호(大文豪) 빅토르 위고가 그의 책을 낸 출판사에 보낸 편지에서 ‘?’로 묻고 출판사가 ‘!’로 초단타로 답했다지만, 낄낄대며 쏘고 되쏘는 전자우편에 비할 바 아니다. 편지를 무수히 썼다는 대문장가에게만 적용되는 형식 파괴가 아닐까 한다. 우정사업본부가 4개 부처와 함께 ‘5000만 편지 쓰기’ 행사를 열고 있다. 손편지 쓰기 캠페인을 통해 명맥만 잇고 있는 아날로그식 소통 문화를 되살려 보려는 의도다. 무엇보다 ‘속도’에 함몰된 청소년에게 또박또박 글을 쓰게 하는 습관이 필요해 보인다. 어릴 때 편지를 주고받으면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사리 판단을 잘한다는 통계도 있다. 편지봉투에 100원짜리 우표를 붙이고 그 밑에다 50원·10원짜리를 또 붙인 뒤 떨어져 전해지지 못할까봐 침까지 발라 눌렀던 어른의 추억도 단절돼선 안 되겠다. 때마침 ‘하얀 종이 위에 쓴 편지를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그 손’이 그리운 가을이다. 요즘 느려터진 편지만을 받는 ‘느린 우체통’이 큰 주목을 받는다고 한다. 손으로 꼭꼭 눌러 쓴 편지를 ‘완행 우체통’에 넣어 보는 여유로움을 가져 보자. 이 가을이 주는 덤일 것이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우리 몸 궁금증 풀어드려요] 피부색 차이는 왜?… 자외선 피해 줄이려 적도 가까울수록 짙어

    자외선은 DNA를 생산하는 데 꼭 필요한 엽산을 파괴하지만, 반대로 피부에서 신체 칼슘 대사에 중요한 비타민D를 합성한다. 엽산이 부족하면 세포분열에 필요한 DNA가 잘 생산되지 못해 생식능력이 떨어지고, 비타민D가 부족하면 신체 칼슘 대사에 장애가 생기면서 뼈가 약해지고 생식능력도 떨어진다. 햇빛을 맞자니 내 몸의 세포가 걱정되고, 햇빛을 피하자니 뼈가 걱정되고 두 경우 모두 생식 능력 저하가 걱정되는 아주 난감한 상황이다. 우리 몸은 왜 이렇게 모순된 쪽으로 진화한 걸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세상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처럼 ‘엽산이냐, 비타민D냐?’ 잔인한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다행히 모순을 깰 열쇠는 우리 피부 속 멜라닌 세포에 있다. 동물은 온몸이 털로 덮여 있어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지만, 털이 없는 사람은 피부색을 결정하는 색소인 멜라닌이 이 역할을 대신한다. 자외선이 엽산을 파괴하려면 일정량 이상의 햇빛이 무방비 상태의 피부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때 멜라닌이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한다. 선크림 같은 일광차단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외선이 강한 지역에 사는 원주민은 엽산과 DNA가 손상되지 않도록 피부의 멜라닌량을 최대한 늘리는 쪽으로 진화했다. 미국의 인류학자 니나 자블론스키는 저서 ‘스킨’(Skin·피부)에서 아프리카 적도 지역 원주민의 피부색이 짙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설명한다. 짙은 색 피부는 자외선의 위험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지만, 동시에 비타민D 생산 과정을 크게 지연시킨다. 짙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이 비타민D를 만들려면 피부색이 옅은 사람보다 훨씬 긴 시간 햇빛을 받아야 한다. 고대 조상 대대로 살아온 자외선이 강한 지역에 그대로 거주하고 있다면 문제가 안 되나, 극지방 쪽으로 이주한 경우라면 비타민D 합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적도 부근을 떠나 극지방으로 이주한 인류의 고대 선조는 자외선이 적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반대로 피부색을 옅게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그 결과 적은 양의 햇빛으로도 비타민D를 합성할 수 있게 됐지만 강한 자외선에는 취약해졌다. 물론 피부가 자외선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활동성 멜라닌 세포 수가 증가해 더 많은 멜라닌이 생산된다. 하지만 본래 옅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태닝을 해도 선천적으로 피부가 짙은 사람의 광(光)방어 능력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한다. 한국인 정도의 피부 색깔을 지닌 사람들이 너무 자주 자외선에 노출되면 진피의 단백질이 파괴돼 주름살만 는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지구촌 책세상] 톨스토이인 듯 뒤마인 듯… 佛 신예의 소설

    [지구촌 책세상] 톨스토이인 듯 뒤마인 듯… 佛 신예의 소설

    카르파티아/마티아스 메네고즈 지음/ POL 프랑스 출판계의 신간 발매 시기에 맞춰 출간된 수많은 소설 중 마티아스 메네고즈(46)의 첫 번째 소설이 평단의 주목을 끌고 있다. 프랑스 현지에서 여러 문학상 후보로 동시에 거론되고 있는 소설 ‘카르파티아’는 1830년대 트란실바니아가 배경이다. 이국적인 소재에 대해 프랑스 문학이 취하곤 하는 지독한 자기중심적 태도가 보이지 않는 데다 내면의 비밀을 간직하는 듯한 인물의 비중도 상대적으로 적다. 과학자이기도 한 작가는 심리 묘사 대신 객관적인 엄정한 문체를 앞세운다. 그는 선조의 땅을 되찾기 위해 빈의 화려한 삶을 포기한 젊은 공작과 그의 약혼녀의 운명을 놀라운 역사적 프레스코화 속에서 되짚는다. 헝가리인 대위 알렉산더 코르바니는 제국 군대를 떠나 오스트리아 여인 사라 본 암프레히트와 혼인한다. 뻔뻔스러울 정도로 대담한 그녀는 가문을 복원하고 권위를 되살리겠다는 야심을 지닌 젊은 공작을 따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경계인 카르파티아 지역에 터를 잡는다. 그러나 이곳은 계몽사상이나 서유럽을 강타한 산업혁명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채 봉건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당시 지역 정세는 발라치족, 색슨족, 마자르인, 보헤미아인 등 소수민들 사이에 충돌이 촉발되기 직전이었다. 젊은 커플의 출현은 이내 불의와 해묵은 원한을 구체화하는 계기가 된다. 코르바니 부부는 가차없이 복잡하게 뒤얽힌 투쟁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 이런 싸움에서는 오로지 힘센 자가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 법이다. 톨스토이와 알렉상드르 뒤마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소설 ‘카르파티아’는 러시아 문학의 유장한 서사적 형식미를 더욱 가깝게 취했다. 엄격한 고전주의적 문체와 유려한 서술은 서스펜스, 전쟁, 빠른 스토리 전개를 골고루 배치하며 700쪽이 넘는 방대한 소설의 긴장감을 반감시키지 않는다. 등장인물은 차례로 등장해 일종의 원무를 춘다. 각자 속한 공동체에 충성을 서약한 이들이 풀어내는 각각의 이야기들은 소설의 결말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메네고즈의 책이 트란실바니아에 관한 전통적 민속 연구 소설은 아니다. 작가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지역을 소설 배경으로 등장시킴으로써 그 장소가 갖고 있는 위험하고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고자 했다. 메네고즈는 알렉산더 코르바니라는 주인공을 통해 지난날의 특권은 물론, 퇴보되고 불신으로 얼룩진 공동체의 논리를 포기하지 못하는 귀족 정신을 탐구했다. 코르바니의 이런 모습은 현대 프랑스인들의 상황까지 미뤄 짐작할 수 있도록 한다. 래티시아 파브로 주한프랑스문화원 출판진흥담당관
  • [방글라데시 현장 르포] “처음엔 정부 행정시스템 있는지 의문…적극적 대외원조 요청에 진정성 느껴”

    [방글라데시 현장 르포] “처음엔 정부 행정시스템 있는지 의문…적극적 대외원조 요청에 진정성 느껴”

    스스로 “무던한 성격”이라고 하는 이병철 안행부 행정한류담당관(과장)에게도 방글라데시의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 이번 방글라데시 방문이 8월에 이어 두 번째인 그는 당시 느낌을 설명하며 “심란했다”는 표현을 되풀이했다. “빈곤국인 건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정부 행정시스템이 있기는 한 건지 의문이 들 정도였죠. 도로에는 차와 인력거, 사람이 뒤엉켜 있었고 신호등과 차선조차 없는 곳이 많았습니다.” 방글라데시 정부 관계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첫인상은 기대와 희망으로 바뀌었다. 이 과장은 “이 나라가 대외 원조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건 사실이지만 자기 치부를 드러내는 걸 누가 좋아하겠느냐”면서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자료를 요청하거나 궁금한 걸 물어보면 하루 이틀 만에 상세한 답장이 오곤 했다”며 “국민 안전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의지가 대단했다”고 밝혔다. 이 과장은 8월 방문을 통해 현지 수요를 조사하고 자료를 모은 뒤 2개월 동안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방글라데시 소방방재청 회의실에 총집합한 알리 아흐메드 칸 청장 이하 간부들 20여명 앞에서 발표한 소방방재시스템 개편안이 호평을 받았다. 이 과장은 “안행부뿐만 아니라 외교부,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서울시, 학계가 힘을 합쳐 노력한 덕분 아니겠느냐”며 “길게 보고 좋은 성과를 거두고 싶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지난 4월 신설 부서인 행정한류담당관을 맡기 직전까지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연구기획과장으로 일했다. 행정 분야 공적개발원조(ODA)와 소방안전시스템을 함께 고민하기에 적임자인 셈이다. 그는 “한국이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해 주는 나라가 된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공공행정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행복한 장수 비결은 덕이지요

    행복한 장수 비결은 덕이지요

    노년의 풍경/김미영 외 지음/글항아리/352쪽/2만 5000원 ‘100세 시대’라는 말이 현실이 된 요즘 웰빙과 웰다잉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 것이 잘 늙어가는 것, 즉 ‘웰에이징’이다.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지, 노년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보다 평균수명은 훨씬 짧았지만 우리 선조들은 노년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한국국학진흥원 교양총서 ‘노년의 풍경’은 늙음이라는 오래된 고민을 중심으로 우리 선인들의 사유와 지혜를 들여다본다. ‘노인의 열 가지 좌절이란 대낮에는 꾸벅꾸벅 졸음이 오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으며, 곡할 때에는 눈물이 없고 웃을 때에는 눈물이 흐르며, 30년 전 일은 모두 기억되어도 눈앞의 일은 문득 잊어버리며, 고기를 먹으면 배 속에 들어가는 것은 없이 모두 이 사이에 끼며, 흰 얼굴은 도리어 검어지고 검은 머리는 도리어 희어지는 것이다.’(성호 이익) 노년은 이렇듯 신체의 파멸과 쇠퇴를 가져오며 비탄에 빠지게 한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으로는 장수(長壽)에 대한 바람으로 인해 행복의 지표로 받아들여졌다. 조선시대 행복 지표로 오복(五福)을 들었는데 오래 사는 복인 수(壽)를 첫째로 내세운다. 오래 사는 것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최대의 복으로 여겨졌지만 목숨의 길고 짧음이 하늘의 뜻에 달려 있는지라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장수를 기원했다. 십장생도를 담은 병풍을 두고, 수(壽)를 기하학적으로 형상화해 가리개, 베개, 수저통 등의 생활용품에 자수를 놓거나 새겨 놓고 항상 가까이했다. 하지만 마냥 오래 산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건강이 뒤따르지 않으면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조선의 왕 중에서 83세의 장수를 누린 영조(1694~1776)는 수라상 대신 밥과 김치, 약간의 장류로 구성된 간소한 밥상으로 소식을 했고 술도 마시지 않았으며 비단 대신 명주로 만든 이불을 사용했다. 70세까지 장수한 퇴계 이황(1501~1570)은 평소 두서너 가지의 음식과 잡곡밥으로 식사를 했으며 몸과 마음의 조화를 중시했다. 퇴계는 활인심방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정신의 약인 ‘중화탕’(中和湯)을 장생의 처방으로 제시했다. 여기에는 ‘마음에 거짓을 없애라, 시기하고 샘내지 말라, 마음을 맑게 하라, 욕심을 줄여라, 부드럽고 순해져라, 겸손하고 화목하게 살라, 만족하라, 어진 마음을 간직하라, 분노하지 않도록 경계하라, 탐욕을 경계하라’는 가르침이 들어간다. 조선의 명재상이자 청백리의 귀감이었던 황희(1363~1452) 정승은 좀처럼 화를 내는 일이 없었으며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며 항상 웃음으로 남을 대했다. 그는 90세까지 건강하게 살았다. 건강한 장수를 위해서는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마음의 여유로움을 지녀야 한다는 얘기다. 축복받은 장수의 삶은 어떤 것일까. 전통적인 오복에 따르면 ‘적절한 부유함을 갖추고(富), 큰 질병과 시름 없이(康寧), 덕을 쌓으면서(攸好德), 장수를 누린 뒤(壽) 고통 없이 편하게 숨을 거두는 것(考終命)’이다. 맹자에는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존경의 대상이 되는 세 가지를 지위, 나이, 덕망이라고 했다. 종합하면 덕을 쌓으며 장수를 누리는 것이야말로 축복받은 장수에 이르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총 8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각 장마다 다양한 인물, 그림, 풍속, 고전작품 등을 곁들인 책은 여러 분야에서 사회적 명성을 얻은 거장들의 노년을 사는 방식에도 주목한다. 오랜 기간 관직에 머물며 왕을 보좌한 황희와 신개, 일찍이 은퇴하고 낙향해 자연 친화적 삶을 즐기며 노년을 보낸 김상헌과 이현보는 노년을 지내는 방식에 여러 가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노욕(老慾)을 경계하며 자신이 설 자리를 객관적으로 살피는 미수 허목(1595~1682)의 태도는 노년에 대한 성찰의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노인의 사업’과 ‘노령의 인사’라는 두 편의 글을 남긴 여현 장현광(1554~1637)은 사람이 태어나 장성하는 것은 무에서 유가 되는 것이고, 노쇠하고 나이 드는 것은 유에서 무로 돌아가는 것으로 지극히 당연한 이치이니 늙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나이 듦을 탄식하거나 희화화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지를 고민했던 그는 노년을 비록 몸은 쇠하지만 도(道)가 완숙될 수 있는 시기로 보았다. 그는 사무를 멈추고 억지로 몸을 쓰지 말고 음식을 가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대신 성정을 기르고 심기를 보양해 도의 경지로 들어가 남은 해를 보내는 것이 노인의 사업이라고 썼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新 국토기행] 걸어 볼까요, 마음까지 내려놓고…

    [新 국토기행] 걸어 볼까요, 마음까지 내려놓고…

    행주누리길 등 7개 코스 ‘고양힐링누리길’ 도심 생활에 지친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고양힐링누리길은 평소에는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던 산, 들판, 하천 등이 흥미로운 역사와 문화 이야기로 소개돼 느린 걸음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고양힐링누리길의 특징은 걸으며 경치를 감상하고 역사문화유적을 체험하며 유명 맛집을 들를 수 있도록 문화 관광 트렌드에 맞춰 조성됐다는 점이다. 행주누리길, 서삼릉누리길, 송강누리길, 고양동누리길, 고봉누리길, 한북누리길, 행주산성누리길 등 모두 50.8㎞ 7개 코스가 있다. 대표 코스인 행주누리길은 3호선 원당역에서 출발해 한강변 행주산성에 이르고 전체 길이 11.9㎞, 소요 시간 3시간 20분인 코스로 해발 100m 미만의 산, 마을과 논, 밭길 및 제방길이 이어져 있어 고양시 역사를 탐방하며 지겹지 않게 걸을 수 있다. 성사천 제방길을 걷다 보면 개울과 양어장 옆에 피어난 들꽃과 갈대밭, 코스모스가 걷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강매동 봉대산 꼭대기에서는 한강과 북한산, 서울의 안산과 관악산, 고봉산 및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을 한눈에 볼 수 있다(원당역~성라공원~장미란체육관~배다골테마파크~성사천~봉대산~강매석교~행주산성). 서삼릉누리길은 원당역에서 배다리술박물관 앞을 거쳐 서삼릉을 지나 삼송역까지 이르는 길로, 전체 길이 8.28㎞에 소요 시간은 2시간 15분이다. 중간에 솔개약수터에서 걷다가 흘린 땀을 시원한 약수로 식힐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과 세종대왕 등 조선 왕의 태를 묻어둔 태실이 있는 서삼릉에 잠시 들러 조선의 역사를 둘러보는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원당역~배다리술박물관~수역이마을~서삼릉~종마목장~농협대학~솔개약수터~삼송역). 산책·조깅하기 가장 좋은 ‘일산호수공원’ 고양시 하면 호수공원을 떠올릴 정도로 일산호수공원은 고양시의 랜드마크가 된 지 오래다. 공원 면적 99만㎡(약 30만평), 호수면적 30만㎡로 자연과 함께하는 친환경 생태공원이다. 사계절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수도권 최고의 휴식 공간이자 관광 명소로 꼽힌다. 호숫가를 따라 조성된 4.7㎞의 자전거 도로와 5.8㎞의 산책로, 드넓게 펼쳐진 잔디밭은 늘 가족과 연인들로 북적인다. 여름날엔 연꽃이 만발한 물속에 살며시 발을 담그며 바쁘고 피곤한 현실을 잠깐 내려놓기도 한다. 자연과 사람, 문화가 함께 어우러지는 호수공원은 특히 해 질 무렵 아름답다.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 촬영 장소일 뿐만 아니라 고양국제꽃박람회, 고양호수예술축제 등의 문화예술행사가 열린다. 외국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한류 명소이기도 하다. 4월부터 10월까지는 화려한 조명과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노래하는 분수대’도 눈길을 끈다. 이 때문에 수도권에서 산책과 조깅을 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계절마다 색 달리하는 울창한 ‘북한산’ 조선 후기 영·정조 최고의 문장가 이옥이 1793년 가을 북한산을 유람하고 쓴 기행문 ‘중흥유기’를 보면 총론에서 아름답다는 의미의 ‘가’(佳) 자를 51번 반복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왔다. 아름답지 않다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기행문을 마감한다. 북한산은 흔히 서울에 속한다고 알지만 면적 90% 이상이 고양시에 있다. 최고봉인 백운대 일대와 삼각산은 행정구역상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1-1이다. 세계에서 드물게 도심에 자리한 북한산은 높이 836.5m의 웅장한 산세와 계절마다 색을 달리하는 울창한 숲이 장관이다. 계곡은 백두산, 지리산, 금강산, 묘향산과 함께 대한민국 오악(五嶽)에 꼽힌다. 최고봉인 백운대를 중심으로 인수봉과 만경대, 일명 삼각산 구역이 가장 아름다운 명승지다. 백운대의 운해와 삼각산을 감싼 구름도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절경 중 하나다.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뤄진 암봉 사이로 시원한 물줄기가 초록빛 숲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빚어내는 북한산은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능선에는 조선조 숙종 때 쌓은 북한산성이 있다. 체험 명소 ‘쥬쥬동물원·배다골 테마파크’ 테마동물원 쥬쥬는 고양시의 대표 동물원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살아 있는 동물박물관으로 2003년 서울시교육청에 의해 현장 학습 체험 지정 기관으로 인증받았다. 아이들이 오랑우탄과 원숭이, 뱀, 오리 등을 만져 보고 먹이를 줄 수도 있다. 악어, 뱀 등 다양한 파충류와 함께하는 이색 공연, 체험 프로그램도 있어 아이들과 함께 가족 나들이 하기에 좋은 장소다. 배다골 테마파크는 비단잉어를 주요 테마로 한 가족 체험 공간으로 자연 친화적인 잉어마을과 민속박물관, 식물원, 옹기마을, 수영장 등을 갖췄다. 특히 잉어마을에는 사람의 발걸음 소리만 듣고도 먹이를 주는 줄 알고 몰려드는 엄청난 잉어 떼를 볼 수 있고, 식물원에는 2000여개의 현무암 70t이 열대 식물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과일나무와 야생화 등 500여점을 볼 수 있다. 수목 향기로 삼림욕 즐기는 ‘행주산성’ 행주산성은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으로 유명하다. 권율 장군을 주축으로 한 2000여명의 관군, 승병, 민간인들이 3만여 정예 왜군을 물리친 곳이다. 부녀자들이 앞치마에 돌을 담아 날라 맞선 행주치마 이야기로도 알려졌다. 권율 장군의 사당인 충장사와 행주대첩비, 기념관 등이 있고 정상에 오르면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덕양정이 있다. 행주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풍광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산성 주변에 울창한 수목의 향기로 삼림욕도 즐길 수 있다. 행주산성 덕양정에서는 한강을 배경으로 자유로 차량과 방화대교 조명이 연출하는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다. 행주산성 근처에는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455호인 행주성당과 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71호인 행주서원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한강 하류를 바라보며 장어, 웅어 등의 토속 웰빙음식을 즐길 수 있는 행주산성 일대 맛집들도 놓치지 말아야 할 필수 코스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연극 ‘나는 너다’ 송일국, 강남역+이태원,+홍대 뜬다 ‘게릴라 핸드프린팅’

    연극 ‘나는 너다’ 송일국, 강남역+이태원,+홍대 뜬다 ‘게릴라 핸드프린팅’

    연극 ‘나는 너다’ 출연진들이 지난 20일부터 5박6일동안의 백두산 국토대장정을 마치고 바로 안중근 의사 거사일에 맞춰 10월 26일 서울 도심 일대에서 게릴라 핸드프린팅을 진행한다. 연출자인 연극배우 윤석화를 비롯해 대한민국만세 아빠 송일국, 대한의군들이 참여하고, 장소 별로 특별한 게스트가 깜짝 합류해 독립군가를 부르며 시민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핸드프린팅 및 다채로운 행사도 이어질 예정이다. 게릴라 핸드프린팅은 26일 오후 1시부터 강남역 9번 출구 앞, 3시 이태원, 5시 홍대 일대에서 펼쳐진다. 이와 함께 동아제약 박카스에서는 박카스 10000병을 협찬해 게릴라 이벤트 현장에서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줄 계획이다. 연극 ‘나는 너다’는 민족열사 안중근과 일제에 의해 철저히 훼절된 삶을 살았던 그의 아들 안준생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적 고뇌를 그린 작품으로, 송일국은 1인 2역으로 안중근과 그 아들의 역할을 동시에 맡는다. 송일국은 행사 취지에 대해 “대한민국이 존재하기까지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수 많은 선조들이 독립을 외쳤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윤택한 삶이 그들의 숭고한 희생 위에 얹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안중근 의사의 거사일을 기념하여 작은 행사이지만 젊은이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연극 ‘나는 너다’는 11월 27일부터 압구정동 BBCH홀에서 막이 오른다. (예매:인터파크1544-1555, 문의:돌꽃컴퍼니 02-3672-3001) 사진 = 돌꽃컴퍼니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이번엔 ‘은피아’ 도마에

    수출입은행의 퇴직자들이 줄줄이 수은과 거래했던 기업으로 옮겨가 ‘은피아’(은행+마피아) 비판을 사고 있다. 부실 채권도 급격히 늘어 건전성 지표에 노란불이 켜졌다. 수출입은행이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최재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수은 퇴직자 8명이 성동조선해양과 대선조선의 등기이사 및 감사로 선임됐다. 성동조선과 대선조선은 모두 수은의 주 거래 기업이다. 성동조선에는 수은뿐 아니라 또 다른 채권기관인 우리은행과 무역보험공사 출신도 1명씩 근무하고 있다. 최 의원은 “채권은행들이 ‘갑’의 위치를 이용해 거래기업으로 재취업하는 사례가 빈번해 은피아 논란이 커지고 있다”면서 “국책은행 채권이 퇴직자들의 재취업 통로로 악용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수은 측은 “채권단 주도의 기업 경영정상화 추진을 위해 관련 직원을 보낸 것”이라고 해명했다. 수은의 건전성 지표도 크게 나빠졌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원리금 상환이 석 달 이상 연체된 수은의 부실 채권(고정이하여신)은 올 9월 말 현재 1조 7476억원이다. 2012년 말(5550억원)과 비교하면 3배가 넘는다. 돈을 떼여도 얼마만큼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부실 채권 커버리지 비율(대손충당금÷고정이하여신)은 올 9월 말 기준 117.7%로, 2012년 말(489.4%)보다 371.7% 포인트나 급락했다. 수은 측은 “수출입금융을 취급하는 특성상 선박, 건설 등 경기 민감 업종의 채권이 많은데 최근 경기 침체로 이들 기업의 업황이 크게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의원은 “민간 금융사와 달리 수은은 국책은행이어서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어떻게든 이를 보전해 줄 것이라는 안일한 사고도 (건전성 악화의) 한 요인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꼬집었다. 수은의 유망 기업 육성 프로그램 ‘히든 챔피언’도 난타당했다. 오제세 새정치연합 의원은 ‘히든 챔피언’으로 선정된 267개 기업 가운데 93개(34.8%)가 선정 1년 전보다 매출이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특히 갑작스러운 법정관리 신청으로 ‘실적 조작’ 혐의를 받고 있는 모뉴엘도 2012년 수은의 히든 챔피언이었다. 같은 당 김영록 의원은 “모뉴엘이 히든 챔피언 기업으로 선정된 뒤 2472억원의 금융지원을 받았다”면서 “히든 챔피언 인증으로 모뉴엘을 ‘히든 폭탄’으로 만든 게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안미현 기자 hyun@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의미있는 변화와 혁신, 누가 시작할까/안혜련 주부

    [옴부즈맨 칼럼] 의미있는 변화와 혁신, 누가 시작할까/안혜련 주부

    서울신문을 2년 가까이 구독하고 있다. 그동안 눈길 한번 가지 않았던 면이 두 면 있다. 서울신문만이 아니라 어느 신문을 막론하고 요사이 그 두 면에는 눈길이 가지 않는다. 인터넷 검색과 휴대전화 이용이 일상화되고 홈쇼핑과 종합편성채널이 늘 우리 곁에 있게 된 최근 몇 년 사이에 생긴 변화다. 광고에 던지는 단 몇 초의 시선조차 받지 못하는 두 개의 지면, 그것은 TV프로그램 편성면과 증권시세면이다. 어느 한 채널, 어느 한 개의 프로그램을 정해놓고 찾아서 보는 것이 언제 적 일인지 모른다. TV를 켜는 순간 우리는 온갖 뉴스와 광고와 영화와 드라마에 둘러싸인다. 손끝만 까딱하면 보기만 해도 엔도르핀이 샘솟는 멋진 연예인들이 내게 웃음을 보내고, 손끝만 까딱하면 화려한 경력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세계경제 분석과 주식 시황을 실시간으로 전해주며 내 돈을 확실히 불려줄 것만 같다. 손안에 휴대전화가 있을 때는 TV조차 거추장스럽다. 손가락 몇 번 쓱쓱 하면 온갖 정보와 지식과 연예계 정보가 마구 밀려온다. 별도의 추가 요금 없이. 새로운 변화는 어느 것에서나 시작된다. 그리고 누군가 그 변화와 혁신을 시도하고 시작한다. 혁신이란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 새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시되는 신문의 가로쓰기도 1980년대 중반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90년대 증면 경쟁이 가열되면서 12면이었던 지면이 48면까지 늘어나고 1995년 10월 중앙일보가 섹션체제를 도입해 전면 가로쓰기를 시도하면서 본격적인 가로쓰기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2009년 3월 일간지 판형을 베를리너판으로 바꾼 중앙일보의 시도도 획기적이었다. 현재 프랑스의 르몽드(Le Monde), 영국의 가디언(The Guardian), 이탈리아의 라 레푸블리카(La Republica), 스페인의 스탐파(La Stampa) 등이 채택할 만큼 베를리너판은 세계적인 추세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윤전기 교체 시기라는 현실적 문제로 가로쓰기만큼의 파급력은 갖지 못하는 것 같다. 수십 개의 TV채널과 내 손안의 모바일이 동영상과 실시간 정보를 전해주는 시대다. 아침마다 신문의 엷은 잉크 냄새로 하루를 시작하던 일은 이제 어쩌면 추억 속의 한 장면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신문에서 새롭게 얻는 정보와 지식, 신문지에 그냥 버려지는 정보의 차이는 무엇일까. 신문은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그 차이를 찾고 차별화를 이뤄낼 수 있을까. 속도와 영상에서 방송과 휴대전화 같은 매체를 따라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인 이상, 신문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실시간 정보들을 유의미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읽히지 않는 지면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대중성을 담보하면서도 정보 가치가 높은 지면 만들기를 고민해야 한다. 방송과 온라인과의 연계성을 지속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필요한 한 대안일지도 모른다. 일부 종합편성채널에서 시도하고 있는 일간지 신문기사 비교 분석을 역으로 접근해 신문에서 각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을 비교분석할 수도 있고, 인터넷에서 호응이 좋은 무명작가들에게 소설이나 소품을 연재할 지면을 제공할 수도 있다. 경쟁적으로 개최되는 방송사 각종 오디션, 체험 프로그램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아이템 위주로 풀어보아도 좋겠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고민해서 서울신문이 의미 있는 변화와 혁신을 하나라도 먼저 시작해 보길 기대한다.
  • 해외여행 | 실크로드를 따라 1,200km를 달리다

    해외여행 | 실크로드를 따라 1,200km를 달리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가슴 한 켠에 품고 있을 실크로드. 동양과 서양이 만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용광로 같던 그곳. 건조한 바람만이 퍽퍽하게 불어대는 길을 낙타에 비단을 싣고 한 걸음씩 나아갔을 대상들. 그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실크로드’는 1877년 독일의 리히트호펜이라는 지리학자가 비단이 오갔던 곳이라 하여 붙인 이름. 실크로드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이 길을 통해 오간 것은 비단뿐만이 아니다. 각종 물품과 보석, 불교와 이슬람교가 그 길을 통해 흘러가고 흘러들어왔다. 기원전 한무제 때 장건이 사신으로 서역에 다녀온 후 길이 트이기 시작한 실크로드는 세계무역의 중심지였다. 아름다움만큼 약탈 경쟁으로 인한 아픔을 품고 있는 실크로드. 굽이굽이 내려오고 있는 역사와 문화, 자연과 사람들을 만나며 실크로드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 보자. ●황허의 도시,란저우에서 만리장성의 서쪽 끝, 자위관으로 황토색이 지배하는 간쑤성의 성도 중국 지도를 펼쳐 보면 한가운데에 ‘란저우蘭州’라는 지명이 있다. 이번 실크로드 여행의 출발점은 란저우. 1,400여 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란저우는 실크로드 문화유산이 풍부한 간쑤성의 성도로 교통과 문화, 역사, 경제의 중심지다. 칭하이성에서 발원한 황허가 처음 만나는 대도시로 중국인들이 ‘어머니의 젖줄’이라는 황허가 도시 가운데를 유유히 관통하고 있다. 그래서 란저우에 가면 어디에서든 황토색이 눈에 들어온다. 란저우 시민들과 여행자들은 시내에 있는 물레방아 공원에서 유유히 산책을 하며 황허를 만난다. 란저우를 황토색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황허뿐만이 아니다. 희토류를 비롯한 35종류의 광물이 매장되어 있는 누런 산들이 란저우를 둘러싸고 있다. 황토색 물에 황토색 산, 란저우에 가면 세상이 온통 황토색으로 이루어진 것만 같다. 실크로드의 문화유산이 가득 모여 있는 간쑤성 박물관과 함께 란저우에서 손꼽히는 것 중 하나는 란저우 라멘이다. 중국 다른 지방에 가도 ‘란저우 라멘’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는 음식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고기를 곁들인 란저우 라멘의 맛은 매콤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네 입맛에도 잘 맞는다. 란저우에서 나와 허시후이랑河西走廊을 따라 달린다. ‘허’는 황허를 뜻하는 단어로 허시후이랑은 황허강 서쪽의 긴 복도라는 뜻이다. 한쪽에는 평균 해발 4,000m의 치렌산맥이, 또 다른 한쪽에는 황무지 같은 사막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900km 길이에 폭은 40~100km. 실크로드 상인들은 이 좁고 긴 평지를 따라 비단을 나르고 전쟁을 하고 오아시스를 찾았을 것이다. 일직선으로 뻗은 허시후이랑에는 허시사군으로 불리는 우웨이, 장예, 주취안, 둔황 같은 오아시스 도시들이 이어져 있다. 먼지를 풀풀 내며 달리고 또 달려도 창밖의 풍경은 변하지 않고 사막은 건조하기 이를 데 없다. 버스를 타고 있는데도 온몸이 사막으로 변해 가는데, 그 옛날 대상隊商들은 어떠했을까. 이곳을 말과 낙타를 타고 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절로 머리가 조아려진다. 자연이 그린 수채화 허시후이랑을 따라가다가 장예를 만난다. 장예는 란저우에서 510km 떨어진 도시로 마르코폴로가 1년간 머물렀던 곳이다. 장예에서 꼭 가 봐야 할 곳은 자연이 만든 예술품인 치차이산七彩山. 어떻게 흙에서 저런 색이 날까 의문이 들 정도로 빨간색과 노란색이 섞여 오묘한 빛을 내는 산들이 펼쳐져 있다. 정식명칭은 ‘장예단하국가지질공원’으로 ‘단하’는 붉은 노을을 의미한다. 오랜 세월 동안 풍화와 퇴적작용으로 만들어진 치차이산은 계곡을 따라 510km나 이어져 있다. 전체 공원은 4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 구역마다 조금씩 다른 맛을 보여 준다. 희게 보이는 곳은 소금 성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이 넓은 곳이 과거에 바다였다는 설도 있다. 치차이산의 아름다움에 반해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산에서 뿜어내는 색을 가지고 주름치마를 만들어 입고 싶을 정도로 탐나는 자연의 색이다. 비가 오면 색이 진해져 더 아름답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장예를 찾은 날은 구름만 가득했다. 곽거병의 술샘 치차이산의 감동을 안고 서쪽으로 가다 보니 유인 우주선 발사기지가 있는 주취안酒泉에 닿는다. 주취안이라는 지명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무제가 전쟁에 승리한 곽거병 장군에게 승리의 선물로 술을 한 병 내렸는데 곽거병 장군은 이 술을 혼자 마실 수 없다며 앞에 있는 샘에 술을 부어 부하들과 함께 마셨다는 것. 이 정도의 리더십은 있어야 실크로드에서 장군이 될 수 있는 것이었을까. 곽거병 장군이 술을 부은 샘이 있는 곳이라 도시 이름이 주취안이 되었고 주취안에 가는 대부분의 사람이 꼭 들르는 곳이 그 샘이다. 둔황을 향해 허시후이랑을 따라 부지런히 또 달린다. 이번에 나타난 곳은 만리장성의 서쪽 끝 자위관이다. 웅장하고 장엄하다. 자위관은 서역의 침입에 대비해서 1372년 명나라 때 만든 것으로 높이 10m, 둘레 733m의 거대한 성이다. 자위관의 크기만으로 서역의 군사들이 겁을 먹지 않았을까. 자위관에는 적의 동태를 살피는 3개의 망루가 있으며 박물관에서는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실크로드의 꽃,둔황 세계 불교 미술의 보고 둔황의 백미는 모가오쿠다. 과거 실크로드를 오가는 이들은 거친 땅과 예측할 수 없는 기후, 적들의 침략 속에서 항상 불안했다. 그들은 무사안녕을 빌기 위해 석굴을 파고 그 안에 불상을 세웠다. 그리고 벽화를 그려 넣었다. 그렇게 1,000년 동안 무려 1.7km에 달하는 깎아지른 절벽에 735개의 석굴이 만들어졌다. 석굴 하나는 절 하나와 마찬가지. 735개의 사찰이 아파트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다고 상상해 보자. 처음 석굴에 들어가 벽화를 보았을 때 소름이 돋고 전율이 흘렀다. 모가오쿠가 처음 생긴 것은 16국 시대인 366년. 낙준이라는 승려가 석산 위에 나타난 부처의 상을 보고 만든 것이 시작이다. 이후 14세기까지 여러 시대에 걸쳐 수많은 승려와 조각가가 석굴을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석굴 안의 불상과 벽화에는 당시의 생활상이 상세하게 담겨 있다. 놀랍게도 건조한 기후와 빛이 들어가지 않은 굴 속에 자리해 1,000년 전 신비로운 색이 남아 있다. 까맣게 변한 것도 있고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도 있지만 오묘한 아름다움을 풍기는 옥색이나 자주색, 노란색 등 여러 색이 석굴 안을 아름답게 빛내고 있다. 수많은 석굴 중 가장 중요한 석굴은 17호 굴. 16호 굴에 들어가자마자 오른편에 난 문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17호 굴이다. 고대의 불교경전이 쌓여 있던 굴로 장경동이라고도 불린다. 17호 굴이 발견된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1900년대 초 석굴을 관리하던 왕원록이라는 노인이 모래를 치우다 우연히 작은 굴을 발견했는데 그 안에 책이 가득했던 것. 보물창고를 발견한 것이다. 둔황에서 실크로드의 중요한 문서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들이 세계 각국에서 날아들었다. 영국의 스타인, 프랑스의 펠리오, 일본의 오타니 탐험대, 러시아의 올덴부르그, 미국의 워너가 수만 점의 보물들을 각자의 나라로 빼돌렸다. 문서와 유물을 가져간 것에서 그치지 않고 벽화를 뜯어가기까지 했다. 그래서 모가오쿠에 가면 1,000년 전 벽화의 아름다움에 한번 놀라고 약탈 현장의 처참함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둔황이 아니라 프랑스 박물관에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17호 굴을 보고 난 후에는 61호 굴을 챙겨 봐야 한다. 61호 굴은 현존하는 세계 최대 실사 지도로 꼽히는 오대산지도라는 벽화가 있는 굴로 지도에서 신라 고승의 사리탑으로 추정되는 탑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또 220호 굴과 335호 굴에 그려진 벽화에는 새의 깃털을 꽂은 조우관을 쓰고 있는 인물들이 있는데 조우관은 고구려시대에 흔하게 발견되던 모자다. 우리 선조들도 실크로드를 통해 교류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니 실크로드의 이야기들이 한층 가깝게 느껴진다. ▶모가오쿠 남아있는 석굴은 수백 개에 이르지만 관람객들이 볼 수 있는 석굴은 몇 개 되지 않는다. 미리 예약을 해서 가이드와 함께 1시간 동안 10여 개 정도 석굴을 돌아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특별히 보고 싶은 석굴이 있으면 가이드에게 미리 요청을 해 놓는 것이 좋다. 모래로 만들어진 거대한 산 모가오쿠를 본 후에 사막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둔황 시내에서 남쪽으로 5km 위치에 바람이 불면 모래가 노래를 한다는 밍샤산鳴沙山이 자리하고 있다. 거대한 크기에 입구에서부터 입이 떠억 벌어진다. 높이 1,600m에 동서로 40km, 남북으로 20km나 이어져 있는 모래산. 실크로드 하면 떠오르는 사막을 가르는 낙타의 행렬이 눈앞에 펼쳐진다. 요즘에는 과거 대상들 대신 여행자들이 낙타 위에 앉아 있다. 초승달 모양의 작은 오아시스인 웨야취안月牙泉을 보기 위해 사막을 오른다. 곱고 부드러운 모래에 발이 푹푹 빠진다. 땀이 흐르지만 건조한 날씨에 금세 증발한다. 발가락 사이를 간질이는 모래산에 올라 뒤돌아보니 신비로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2,000여 년 전부터 기록에 등장하는 웨야취안은 오랜 시간 동안 사막의 나그네들에게 생명수를 제공해 주었다. 모래산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수천년간 마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비롭기만 하다. 연간강수량 39mm에 증발량이 2,800mm라니 더욱 놀랍다. 밍샤산에 오르면 웨야취안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멀리 둔황이라는 또 다른 오아시스가 보인다. 모래산을 타고 내려가는 사람들, 모래 사이를 오토바이로 질주하는 사람들, 곱디 고운 모래로 장난을 치는 사람들, 그윽한 눈으로 멀리 둔황시내를 바라보는 사람들. 같은 밍샤산에 올랐지만 이곳을 느끼는 방법은 사람들마다 모두 달랐다. 끝과 시작이 있는 곳 시안西安을 시작으로 란저우와 장예, 자위관을 거쳐 둔황에 도착한 상인들은 이곳에서 서역으로 갈 채비를 한다. 실크로드는 둔황에서 북로와 남로로 갈라진다. 북로로 가려면 옥문관을 통해, 남로로 가려면 양관을 통해서 길을 떠나게 된다. 둔황 시내에서 80~100km 떨어져 있는 옥문관과 양관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다. 비단을 낙타에 실은 상인들에게 익숙한 곳의 끝, 새로운 서역의 시작을 의미한다. ‘옥’이 오갔다고 해서 이름 붙은 옥문관은 거대한 문 하나만 달랑 남아 있고, 서역 남로 입구인 양관은 높이 4.7m의 봉화대만 남아 있다. 옥문관을 넘어 바라보는 길도 아름답지만 양관의 봉화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더 없이 황홀하다. 높은 곳에서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고비사막을 내려다보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길이 안겨 주는 막막함과 그 길을 헤쳐 나가야 하는 비장함이 함께 느껴진다. 당나라 시인 왕유는 양관에서 ‘그대에게 한 잔의 술을 권하니, 서쪽 양관으로 나가면 옛 벗이 있겠는가’라고 읊기도 했다. 익숙한 것과 이별하고 새로운 것을 향해 나가는 두려움. 얼마나 위험한 일이 펼쳐질지,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을 만나게 될지 모르는 그 마음. 실크로드 여행을 마무리하는 양관에서 수천년 전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으로 나간 그들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travel info Airline 동방항공이 인천-란저우 노선을 운영하고 있으며 소요시간은 약 3시간이다. 대한항공 특별 전세기는 인천에서 우루무치까지 약 5시간 소요된다. 두 항공편 모두 10월 초까지 주 2회 운영한다. TIP 시차 베이징과 동일하게 서울보다 1시간이 늦지만 서쪽에 위치해 밤 10시가 되어야 해가 진다. 주의사항 건조하기 때문에 물을 잘 챙겨 마셔야 하며 수분크림과 미스트를 준비해 가면 도움이 된다. 선글라스와 모자는 필수. activity 둔황 야시장도 놓치지 마세요 둔황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해주는 것은 둔황 야시장. 과일과 견과류, 각종 기념품과 먹거리가 넘친다. 함께 여행하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밤을 즐기기 좋은 곳. 여러 먹거리가 있지만 양꼬치가 특히 인기다. 원하는 부위를 고르면 즉석에서 구워 준다. 꼭 맛봐야 할 것이 하미과. 멜론처럼 생겼는데 겉은 노랗다. 둔황에서 세상에서 가장 달달한 메론을 맛보게 될 것이다. 기념품으로 많이 찾는 제품은 밤에도 보인다는 술잔과 실크로드의 아이콘인 낙타인형이다. 그리고 한 땀 한 땀 손으로 파 낸 목판 장식품이 있다. 야시장에서는 낙타의 모습이 담긴 각종 기념품들이 인기다 에디터 손고은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채지형 취재협조 중국국가여유국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남성 여유증 치료, 여유증 원인 파악하는 것이 중요

    남성 여유증 치료, 여유증 원인 파악하는 것이 중요

    요즘 들어 여유증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하게 비만인구의 증가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이를 비만으로 치부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는 마른 몸매임에도 불구하고 여유증을 고민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여성형 유방증은 날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2011년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에 의하면 남성 유방비대증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2007년 8,640명에서 2011년 1만1,070명으로 연평균 6.4%가 증가했다. 특히 10대가 약 3천 1백 명(28.6%), 20대가 약2천 2백 명(20%)으로 전체 진료환자 중 10-20대가 48.6%에 달해 눈길을 끈다. 여유증의 원인은 세 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여성호르몬의 증가’이다. 10대 청소년들은 특히 에스트로겐과 안드로겐 등의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여성 호르몬이 증가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남자임에도 여자처럼 가슴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2차 성징의 발달 상태 및 경과를 지켜 보아야 하고, 혈액검사 및 고환 초음파 등의 남성성징관련 추적관찰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는 과체중이나 과도한 비만으로 가슴에 지방이 축적된 경우다. 이는 특히 10대와 20대 여유증 증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특히 한번 축적된 지방조직은 식이요법이나 운동으로도 그 부피를 줄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흉부근육운동으로 더 도드라지게 보일 수 있다. 여유증의 세 번째 원인은 40~50대 이후의 연령층에서 피부 탄력 저하로 나타나는 ‘노화’로 꼽을 수 있다. 이 외에도 갑상선, 뇌하수체, 부신 등 내분비계나 고환에 종양이 있는 경우에도 여유증이 나타날 수 있다. 이와 관련, 수원에 위치한 더쎈남성의원의 방준호 원장은 “정확한 치료를 위해 여유증 유발 원인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단순히 가슴에 지방이 많은 것이 이유라면 남성 가슴부위의 대흉근을 고려한 지방흡입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지방과 유선조직이 함께 발달한 경우라면 남성 유선제거를 함께 시행해야만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고 재발도 방지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여유증 수술은 남성호르몬 분비 및 2차 성징과 관련한 사항에서 확인이 가능하며, 특히 남성의원에서 시술을 받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시술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지청천 장군 딸’ 故 지복영 여사 회고록 연내 출간

    ‘지청천 장군 딸’ 故 지복영 여사 회고록 연내 출간

    ‘8월 29일은 우리 민족의 가장 부끄러운 날, 나라 잃은 날로 이날은 어느 집을 막론하고 굴뚝에 연기가 오르지 않았다.’ 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1888~1957) 장군의 딸인 고 지복영(1919~2007) 여사의 회고록이 연내 출간돼 나라 잃은 우리 민족의 설움, 독립운동의 기개와 애환 등을 엿볼 수 있게 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 여사가 생전에 쓴 A4 용지 160여쪽 분량의 회고록과 별세 1년 전 진행된 구술 인터뷰를 바탕으로 회고록 집필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고 12일 밝혔다. 편찬은 두 아들인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과 저술가 이중연씨가 맡았다. 지 장군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활동하며 신흥무관학교, 서로군정서, 한국광복군 등에 몸담은 대표적인 독립투사다. 해방 이후에는 제2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지 여사 역시 1924년 가족과 함께 만주로 떠나 지린(吉林)성 일대와 장쑤(江蘇)성 난징(南京),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 등으로 옮겨 다녔으며 청년기에는 본인도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특히 1940년 9월에는 아버지가 이끄는 광복군에 입대해 기관지 ‘광복’을 발간하는 데 힘을 보탰다. 회고록에는 항일 활동을 하며 겪은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다. 지 장군이 만주 벌판을 달리며 독립운동에 매진하는 통에 아버지 얼굴조차 볼 수 없었던 어린 시절도 엿볼 수 있다. 지 여사는 “사진 속 아버지 얼굴만 기억했다. 거리에 지나가는 말 탄 사람을 보고도, 양복을 입고 점잖게 지나가는 분만 봐도 ‘아버지 온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준식 연구위원은 “우리가 누리는 삶은 선조가 겪은 힘든 삶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역사 교육 차원에서 젊은 세대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출간 계기를 밝혔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서동철의 시시콜콜] 구봉, 율곡, 우계 역사문화벨트

    [서동철의 시시콜콜] 구봉, 율곡, 우계 역사문화벨트

    삼현수간(三賢手簡)은 구봉 송익필(1534∼1599), 우계 성혼(1535∼1598), 율곡 이이(1536∼1584)가 주고받은 편지를 후대에 4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나란히 한 살 터울인 구봉, 우계, 율곡은 서로 절친한 벗이자 16세기 조선 성리학의 대가(大家)라는 공통점이 있다. ‘세 현인의 손편지’라는 제목처럼 당시의 성리학 이슈를 치열하게 토론한 내용이 담긴 만큼 학술적·문화재적 가치도 매우 높아 2004년에는 보물로 지정되기도 했다.구봉, 율곡, 우계가 살던 곳은 현재의 경기 파주시의 산남리, 율곡리, 눌노리다. 산남리는 출판단지와 맞붙은 심학산 아랫동네다. 심학산은 조선시대 구봉산(龜峯山)으로 불리며 구봉(龜峯)이라는 송익필의 호를 낳았다. 이곳은 지금 파주시지만 조선시대에는 고양 땅이었던 듯 하다. 그대로 율곡(栗谷)의 호가 된 율곡동(栗谷洞)은 임진각에서 멀지 않은 임진강변이다. 율곡동과는 지척인 우계(牛溪)는 임진강으로 흘러드는 눌노천(訥老川)변이다. 한강과 임진강은 오두산 통일전망대 앞에서 합류하니 세 사람은 물길을 따라 사이좋게 줄지어 살고 있었다.개인적으로 파주 교하에 자리 잡은 것이 벌써 10년이 됐다. 내가 살아가는 고장의 역사와 그 자취에 관심이 없을 수 없다. 특히 구봉, 율곡, 우계처럼 우리 정신문화를 업그레이드시킨 주역들의 체취를 가까이서 맡을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실제로 율곡리 화석정과 율곡의 무덤이 있는 자운서원, 우계를 배향한 눌노리의 파산서원을 종종 찾는다. 둘레길이 있는 심학산에도 자주 간다.율곡은 임진왜란 당시 의주로 몽진하던 선조가 강을 건너려 할 때 화석정에 불을 붙여 폭우가 내리는 밤길을 밝혔다. 반면 우계는 달려오지 않아 노여움을 오래도록 샀다. 우계는 깊은 산으로 피란해 몽진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반면 산남리에는 ‘구봉산 아래 크게 문호를 벌여놓고 후진을 양성했다’는 기록에도 불구하고 구봉의 말년이 불우했던 때문인지 유허비 말고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율곡과 우계의 인심도심논쟁(人心道心爭)은 한국 철학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상적 격돌의 하나이기도 하다. 율곡을 기리는 것은 당연하고, 우계를 기리는 것도 당연하다. 그럴수록 친구지만 사상적으로는 방향을 달리했던 율우의 자취를 한데 엮어 의미를 부여하면 관심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구봉의 유적은 본격적인 정비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파주시는 ‘구율우(龜栗牛) 역사문화벨트’를 조성하면 어떨까. 역사적 연관성이 있는 이웃 문화재가 시너지 효과를 거두는 바람직한 모델이 될 수도 있다.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장원 급제의 꿈

    장원 급제의 꿈

    5일 서울 경희궁에서 열린 제21회 조선시대 과거제 재현 행사 참가자들이 열심히 답지를 쓰고 있다. 서울시는 선조의 선비정신을 되새기고자 매년 과거 재현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이호정 기자 hojeong@seoul.co.kr
  • 어울나래의 ‘신나는 예술여행’, 줄타기 한마당

    어울나래의 ‘신나는 예술여행’, 줄타기 한마당

    가을은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 맑고 화창한 날이 계속돼 나들이 하기 좋은 계절로 꼽힌다. 이에 전국 방방곡곡에서는 가을을 맞아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할 풍성한 문화축제가 다채롭게 열리고 있다. 전통연희단 어울나래(대표 이보라)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전국 임대주택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전통연희단 어울나래의 줄타기 한마당’을 진행한다.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인기로 올해는 작년보다 공연 횟수가 늘어, 총 19회가 열릴 예정. 지난 5월 제주에서 시작된 공연은 대구, 분당, 인천, 울산, 부산 등 전국을 거쳐 성황리에 개최됐으며 현재 천안, 사천 등 가을 공연만을 앞두고 있다. 줄타기 한마당은 풍물패의 길놀음을 시작으로, 화려한 개인놀이가 돋보이는 소고춤, 12발 상모놀이, 버나 돌리기 등이 어우러진 전통 예술공연. 삶의 애환을 달래는 창과 판소리, 전통무용인 장검무, 민요와 함께 줄꾼 박회승의 화려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줄타기 공연이 이어져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특히 3m나 되는 줄 위에서 펼쳐지는 줄꾼 박회승의 줄타기 공연은 숨죽여 집중하게 만드는 묘기에 팔도 사투리를 더한 특유의 재담으로 관객 모두에게 웃음과 감동을 전해준다. 공연을 진행하는 어울나래 관계자는 “판소리, 줄타기 등이 어렵고 낯선 것이 아니라 선조들의 삶과 함께 해왔던 전통문화예술공연이라는 점에 착안, 남녀노소 누구나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며 “공연 중간 중간 소리꾼에게 판소리 한 대목과 추임새를 직접 배울 수 있는 시간도 마련해 관객과 하나가 되는 공연이 되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2014 전통연희단 어울나래의 줄타기 한마당은 현재까지 13회의 공연이 성황리에 진행됐으며, 앞으로 6회의 공연이 남아 있는 상태다. 10월에 열리는 순회공연은 ▲청양읍내 1관리소(10월 1일, 16시) ▲천안병천신한관리소(10월 7일, 15시) ▲경남사천벌리1관리소(10월 15일, 14시) ▲칠곡왜관2관리소(10월 18일, 14시) ▲안산고잔1관리소(10월 22일, 13시) ▲대구명곡2관리소(10월 24일, 14시) 등에서 차례로 펼쳐진다. 전통연희단 어울나래의 줄타기 한마당은 ‘2014 복권기금 문화나눔 사업’인 ‘신나는 예술여행’의 일환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어울나래 주관하며 주택관리공단과 SH 공사 협력,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 후원으로 개최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13) 산성(중)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13) 산성(중)

    ●단 한 번도 뚫린 적 없는 난공불락 요새 18세기 방랑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 “경기도 여주 서쪽은 광주로, 석성산에서 나온 한 가지가 북쪽으로 한강 남쪽에 가서 고을이 형성되었으며 읍(광주부)은 만 길 산꼭대기에 있다. 옛 백제 시조였던 온조왕이 도읍하였던 곳으로, 안쪽은 낮고 얕으나 바깥쪽은 높고 험하다. 청나라 군사들이 처음 왔을 때 병기라고는 날도 대보지 못하였고, 병자호란 때도 성을 끝내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그런데도 인조가 성에서 내려온 것은 양식이 부족하고 강화가 함락되었기 때문이었다. 강화가 결정되고 나서도 국도(한양)를 외적으로부터 막아줄 중요한 성이라 생각해서, 성 안에다 절 아홉을 세워 스님들을 살게 하고 총섭(總攝)한 사람을 두어 승대장으로 삼았다. 해마다 활쏘기를 시험하여 후한 녹을 주는 까닭에 스님들은 오로지 활과 살로써 업을 삼았다. 조정에서는 나라 안에 스님들이 많아서 그들의 힘을 빌려 성을 지키고자 한 것이었다”라고 적었다. 인조가 스스로 성문을 열고 내려온 것이지 남한산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남한산성은 한성백제, 통일신라,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단 한 번도 뚫린 적이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13세기 전 세계를 휩쓴 무적 몽골군의 두 차례 공격과 병자호란 당시 12만 대군을 이끈 청 태종의 파상공세도 47일간 막아냈다. 해발 400m를 넘나드는 험준한 지형을 따라 본성과 외성을 합쳐 11.7㎞가 넘는 성벽을 쌓았는데 내부는 넓고 평평했다. 우물이 80곳, 연못이 45개에 이를 정도로 물이 풍부해 군량미와 소금만 잘 비축하면 수만 명의 병력이 장기농성할 수 있는 철벽의 금성탕지였다. 우리나라에는 평지성과 산성을 다 합쳐 3000여개의 성이 있다. ‘삼천리금수강산’이니 1리마다 1개의 성곽을 쌓은 셈이다. 가히 ‘성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 남한산성은 산성 축성기법의 교과서라고 할 만하다. 성곽유산으로는 평지 성인 수원 화성에 이어 두 번째로 지난 6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로써 우리는 모두 11건의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한 문화대국이 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남한산성이 병자호란 등 국제전쟁을 통해 동아시아 무기발달과 축성술이 상호교류한 탁월한 증거이며 조선의 자주와 독립 수호를 위해 유사시 임시 수도로 계획적으로 축조된 유일한 산성도시이며 자연지형을 활용하여 성곽과 방어시설을 구축함으로써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축성술의 시대별 발달단계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을 평가했다. 한 해 100만명 이상의 등산객과 관광객이 몰려드는 남한산성이 세계적 명소로 자리 잡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종묘와 사직을 갖춘 행궁은 남한산성이 유일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약 24㎞ 떨어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있는 남한산성은 행정구역상 광주시에 63%, 하남시에 24%, 성남시에 13%가 속해 있다. 광주는 고려 태조가 이름 짓기 이전까지 한강 남쪽의 넓고 오래된 땅 한산(漢山)이었다. 하남이라는 지명은 한강의 남쪽, 성남은 남한산성의 남쪽에 면했다고 해서 붙여졌다. 서울과 한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남한산성의 지리적, 공간적 존재감을 알 만하다. 남한산성은 전란이 일어났을 때 왕의 안전을 담보하는 보장처였다. 왕의 선택지는 대개 강화 섬이 아니면 남한산성이었다. 남한산성에 대한 기록은 주로 광주행궁이라고 남아 있다. 조선시대 전국 각지에는 23곳에 이르는 행궁이 있었다. 별궁 또는 이궁이라고도 했다. 전란에 대비한 광주행궁, 양주행궁(북한산성), 강화행궁, 전주행궁을 비롯해 능행을 목적으로 화성행궁, 이천행궁, 파주행궁, 고양행궁, 풍덕행궁을 지었다. 왕은 질병 치료와 휴양차 온양행궁, 청주행궁, 목천행궁, 고성행궁, 전의행궁 등에 행차했다. 온양행궁 가는 길인 과천행궁과 수원행궁에도 머물렀다. 행궁의 역사는 오래다. 백제본기에 ‘진사왕이 행궁에서 죽었다’라는 최초의 기록이 남았으며 고려사에는 40건의 행궁에 관한 기록이 전해진다. 종묘와 사직을 갖춘 행궁은 남한산성이 유일했다. 국가에 전란이 일어났을 때를 대비한 임시 수도로서의 위상이다. 조선시대 5군영 중 하나인 수어청의 근거지였으며 광주부가 1917년 경안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290년 동안 광주부 관아가 있던 조선시대 최대의 산악 군사행정 도시였다. 규모도 예사롭지 않았다. 광주행궁은 두 개의 궁으로 나뉘었는데 상궐은 73칸, 하궐은 154칸으로 총 227칸의 당당한 규모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기 전 경복궁은 7715칸, 창덕궁은 4500칸이었다. 화성행궁은 576칸, 북한산성 행궁은 124칸이었다. 대부분의 행궁은 말이 궁이지 왕이 실제 머문 횟수나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에 비해 남한산성 행궁은 인조가 모두 6차례 행차했고 머문 기간도 농성 47일을 비롯해 50일을 넘었다. 이후 숙종과 영조가 서장대를 둘러보았고, 정조는 서성과 남성을 거쳐 북성까지 돌아보고서 서장대에서 군사훈련까지 했다. 이후 철종과 고종 등 모두 6명의 왕이 찾았다. 남한산성이 몽골과 청은 물론 일제에 항거한 외세 저항의 본거지였던 사실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1895년 명성황후시해사건 이후 광주, 이천, 여주 지역 의병 1600명으로 이뤄진 연합의병부대가 주둔하면서 삼남지방 및 강원도 지역 의병 3000명과 합세해 서울로 진격하기로 한 을미의병의 주요 거점이었다. 이후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항거한 을사의병과 1907년 고종 강제퇴위와 군대 해산령에 반발한 정미의병도 이곳에서 일어났다. 일제는 산성 안 행궁과 사찰을 불태우고 철저하게 파괴했으며 광주읍성도 성 아래로 옮겨버렸다. 1, 2차 대몽항쟁의 승전지에다가 척화론을 주장하다 청에 끌려가 죽은 윤집, 오달제, 홍익한 세 학사를 모신 현절사가 세워진 항청의 기운이 항일로 옮아붙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만해 한용운 기념관이 여기에 깃든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남한산성에는 백제의 시조 온조를 모신 숭열전이 있다. 정조실록 등에 따르면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군사를 독려하다 앉아서 잠시 조는 사이 꿈에 온조가 나타났다. “적이 사다리를 타고 북성을 오르는데 뭐하고 있는가”라는 말을 듣고 정신이 들어 군사를 보내 격퇴했으며 이에 감읍해 온조왕의 묘를 지어 제사지내게 했다는 것이다. 덧붙여 이서라는 장군이 배향된 이야기도 재미있다. 환궁한 인조의 꿈에 온조가 나타나 “묘를 세워준 것이 고마우나 혼자서는 지내기 외로우니 이서 장군을 보내 달라”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다음날 아침 이서가 죽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인조는 온조가 이서를 데리고 갔다고 생각해 숭열전에 배향했다는 것이다. ●남한산성은 정말 백제의 왕도였을까 남한산성은 과연 백제의 왕도였을까. 택리지뿐 아니라 조선왕조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야승, 연려실기술, 여지도서, 대동지지 등 대부분의 조선시대 지리서들이 남한산성을 백제의 고성(古城)이라고 기술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고고학적으론 입증된 바 없다. 18세기 홍경모가 지은 ‘중정남한지’에는 “남한산성은 온조가 쌓은 것이라고 하는데 한산 위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도 없고, 문헌에 근거할 것이 없다”면서 “백제의 도읍은 지금의 검단산 아래인 광주의 고읍이며 온조의 고성은 이성산성”이라는 다른 설을 주장했다. 현재까지 하남시 이성산성과 교산동 유적은 물론 남한산성에서도 백제 관련성을 확인할 수 있는 성과는 발굴되지 않았다. 다만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 12년(672년) “한산주(광주)에 주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주장성이 남한산성의 원조일 가능성이 크다. 이 시기는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군사 4만명이 평양에 주둔하고 있던 시기와 일치한다. 주장성은 당의 침입에 대비해서 신라가 쌓은 한강 이남의 방어거점이라는 것이다. 실제 2007년 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보이는 군량미 창고 터가 발굴돼 ‘주장성=남한산성’의 신빙성을 높였다. 남한산성이라는 지명은 선조 대에 자주 등장한다. 조선 초기에는 일장산성이라고 불렸다. 한강과 한양의 북쪽에는 북한산과 북한산성이 있고 남쪽에는 남한산과 남한산성이 있다는 논리에 따른 작명으로 보인다. 남한산성은 ‘인조의 성’이라고 할 만하다. 조선 역사상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와 함께 비운의 임금 1, 2위를 다투는 인조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을까. 반정으로 광해군을 축출하고 즉위했으나 반정공신 이괄의 난 때 공주까지 달아나야 했다. 중립외교를 포기하고 친명배금(親明排) 정책을 내세우다 정묘호란 때는 강화도,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에서 이부자리도 없이 옷을 입고 잠자리에 드는 등 세 번이나 도피행각을 벌였다. 즉위 2년 만인 1624년 남한산성 축성을 명하였고 1626년 성이 완성되자 서부면에 있던 광주부를 옮긴 것도 인조였다. 남한산성은 축성술의 역사를 보여 주는 단순한 세계문화유산이 아니다. 이 땅에는 3000개에 이르는 성이 있었지만, 성의 역할을 제대로 한 성은 평양성과 진주성, 강화성 등 몇 개에 지나지 않았다. 그중 남한산성은 단 한 번도 외세에 빼앗기지 않았던 ‘서울지킴이’ 같은 존재이다. 항몽, 항청, 항일의 구국 혼이 살아 숨 쉰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새정치연 비대위 초반부터 삐걱

    새정치연 비대위 초반부터 삐걱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초반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당내 비노무현 그룹의 반발에 이어지는 데다 내년에 치러질 차기 당대표 선거를 겨냥해 비대위원들 간에 조기 경쟁에 돌입한 모양새다. 친노의 구심점인 문재인 의원이 차기 당권을 향한 발걸음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문 의원의 측근인 문성근 전 민주당 대표와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등과도 최근 교류가 잦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비노무현 측 의원들의 촉각이 곤두서 있는 상황이다. 특히 모바일투표가 차기 전당대회에서 부활할지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모바일투표는 전당대회에서 일반 국민이 휴대전화로 정당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상대적으로 조직력이 강한 친노(친노무현) 진영에 유리하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기 때문이다. 비대위원인 박지원 의원은 이날 트위터에 문 비대위원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모바일투표 재도입을 시사한 것과 관련, “문 비대위원장에게 공사석에서 발언을 조심하라고 말씀드렸다”고 썼다. 박 의원은 “(모바일투표는) 문제가 없는 게 아니라 가장 큰 문제”라며 “특히 비대위에서 논의도 안 됐고, 비대위가 출범하자마자 이런 시비가 시작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날 그의 발언은 차기 당권을 노리고 있는 박 의원이 경쟁 상대인 문재인 의원을 의식해 문 비대위원장에게 경고를 날린 것으로 해석된다. 비대위 구성에서 제외된 당내 중도혁신파 의원들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됐다. ‘민주당의 집권을 위한 모임’ 소속 김성곤·김동철·유성엽 의원은 이날 문 비대위원장과 만나 중도파를 대변하는 비대위원 임명을 추가 요청했다. 세 의원이 거론한 3대 중도세력은 안철수계, 손학규계, 중도파 의원 모임인 ‘민집모’다. 이런 복잡한 계파 간 갈등 속에서 이날 비상대책위원회는 첫 외부 일정으로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과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며 당 혁신 의지를 다졌다. 이날 방문에는 문 비대위원장을 포함해 박영선 원내대표, 정세균 상임고문 등 비대위원 전원과 조정식 사무총장 등 30여명이 대거 참석했다. 문 비대위원장은 방명록에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 선조에게 올린 장계에 나온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한자로 남겼다.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왜군의 330척에 맞선 것처럼 당 상황이 어렵지만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비대위원들은 현충탑 참배에 이어 김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이 자리에는 김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와 아들 홍업·홍걸씨, 권노갑 상임고문, 정균환 전 의원 등이 동행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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