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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구조물 추락 원인은 대체 무엇?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구조물 추락 원인은 대체 무엇?

    부산 크레인 사고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구조물 추락 원인은 대체 무엇? 부산에 있는 옛 조선소 터 야적장에서 해체 중이던 크레인의 철제 구조물 일부가 떨어지는 바람에 근로자 4명이 숨졌다. 21일 오전 9시 46분쯤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에 있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 소유 야적장에 있는 지프 크레인의 3분의 2 지점에 있던 크레인의 중심을 잡는 철제 구조물(40t)이 20여m 아래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철제 구조물 안에 있던 김모(58), 문모(59), 허모(61)씨 등 근로자 3명이 추락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현장에 함께 있던 근로자 박모(57)씨는 철제 구조물에 깔려 소방본부가 2시간 넘게 구조작업을 했지만 끝내 숨졌다. 숨진 사람들은 크레인 해체작업을 하청받은 업체에서 고용한 일용직 근로자로 전해졌다. 사고현장에 있던 한 근로자는 “철거작업을 하다가 쾅하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봤더니 철제 구조물이 추락해 있었고, 비명과 함께 사람이 함께 떨어졌다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본부는 근로자들이 크레인에서 철제 구조물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려고 크레인과 철제 구조물을 잇는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던 중 철제 구조물이 아래로 떨어져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유압 크레인을 불러 철제 구조물을 들어 고정하고 나서 해체해야 하는데 크레인에 고리를 걸어 고정하기 전에 지지대 절단작업을 먼저 하는 바람에 무게를 못이겨 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정확한 사고원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조사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난 크레인은 1974년 일본에서 제작된 것인데다 구조물과 크레인 연결 부위가 심하게 녹슬어 있어 경찰은 장비 노후화가 사고원인의 하나일 수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당시 근로자 3명은 추락한 철제 구조물 위에서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1명은 구조물 안에 있었던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크레인이 있던 곳은 원래 대선조선 소유였으나 지난해 12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에 매각했다. 이 업체는 땅을 사들이고 나서 크레인 3기 등을 중고 크레인 매매업체에 고철로 매각했고, 크레인 매매업체는 다른 업체에 철거를 맡긴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목격자와 해체작업을 맡은 업체 관계자 등을 불러 사고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철거 방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현장 근로자 안전교육과 관리를 제대로 했는지, 안전 수칙을 준수했는지 등에 초점을 맞춰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4명 사망 ‘충격’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4명 사망 ‘충격’

    부산 크레인 사고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사투 벌였지만 4명 ‘안타까운 사망’ 부산에 있는 옛 조선소 터 야적장에서 해체 중이던 크레인의 철제 구조물 일부가 떨어지는 바람에 근로자 4명이 숨졌다. 21일 오전 9시 46분쯤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에 있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 소유 야적장에 있는 지프 크레인의 3분의 2 지점에 있던 크레인의 중심을 잡는 철제 구조물(40t)이 20여m 아래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철제 구조물 안에 있던 김모(58), 문모(59), 허모(61)씨 등 근로자 3명이 추락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현장에 함께 있던 근로자 박모(57)씨는 철제 구조물에 깔려 소방본부가 2시간 넘게 구조작업을 했지만 끝내 숨졌다. 숨진 사람들은 크레인 해체작업을 하청받은 업체에서 고용한 일용직 근로자로 전해졌다. 사고현장에 있던 한 근로자는 “철거작업을 하다가 쾅하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봤더니 철제 구조물이 추락해 있었고, 비명과 함께 사람이 함께 떨어졌다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본부는 근로자들이 크레인에서 철제 구조물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려고 크레인과 철제 구조물을 잇는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던 중 철제 구조물이 아래로 떨어져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유압 크레인을 불러 철제 구조물을 들어 고정하고 나서 해체해야 하는데 크레인에 고리를 걸어 고정하기 전에 지지대 절단작업을 먼저 하는 바람에 무게를 못이겨 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정확한 사고원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조사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난 크레인은 1974년 일본에서 제작된 것인데다 구조물과 크레인 연결 부위가 심하게 녹슬어 있어 경찰은 장비 노후화가 사고원인의 하나일 수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당시 근로자 3명은 추락한 철제 구조물 위에서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1명은 구조물 안에 있었던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크레인이 있던 곳은 원래 대선조선 소유였으나 지난해 12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에 매각했다. 이 업체는 땅을 사들이고 나서 크레인 3기 등을 중고 크레인 매매업체에 고철로 매각했고, 크레인 매매업체는 다른 업체에 철거를 맡긴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목격자와 해체작업을 맡은 업체 관계자 등을 불러 사고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철거 방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현장 근로자 안전교육과 관리를 제대로 했는지, 안전 수칙을 준수했는지 등에 초점을 맞춰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4명 사망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4명 사망

    부산 크레인 사고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사투 벌였지만 4명 ‘안타까운 사망’ 부산에 있는 옛 조선소 터 야적장에서 해체 중이던 크레인의 철제 구조물 일부가 떨어지는 바람에 근로자 4명이 숨졌다. 21일 오전 9시 46분쯤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에 있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 소유 야적장에 있는 지프 크레인의 3분의 2 지점에 있던 크레인의 중심을 잡는 철제 구조물(40t)이 20여m 아래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철제 구조물 안에 있던 김모(58), 문모(59), 허모(61)씨 등 근로자 3명이 추락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현장에 함께 있던 근로자 박모(57)씨는 철제 구조물에 깔려 소방본부가 2시간 넘게 구조작업을 했지만 끝내 숨졌다. 숨진 사람들은 크레인 해체작업을 하청받은 업체에서 고용한 일용직 근로자로 전해졌다. 사고현장에 있던 한 근로자는 “철거작업을 하다가 쾅하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봤더니 철제 구조물이 추락해 있었고, 비명과 함께 사람이 함께 떨어졌다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본부는 근로자들이 크레인에서 철제 구조물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려고 크레인과 철제 구조물을 잇는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던 중 철제 구조물이 아래로 떨어져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유압 크레인을 불러 철제 구조물을 들어 고정하고 나서 해체해야 하는데 크레인에 고리를 걸어 고정하기 전에 지지대 절단작업을 먼저 하는 바람에 무게를 못이겨 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정확한 사고원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조사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난 크레인은 1974년 일본에서 제작된 것인데다 구조물과 크레인 연결 부위가 심하게 녹슬어 있어 경찰은 장비 노후화가 사고원인의 하나일 수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당시 근로자 3명은 추락한 철제 구조물 위에서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1명은 구조물 안에 있었던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크레인이 있던 곳은 원래 대선조선 소유였으나 지난해 12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에 매각했다. 이 업체는 땅을 사들이고 나서 크레인 3기 등을 중고 크레인 매매업체에 고철로 매각했고, 크레인 매매업체는 다른 업체에 철거를 맡긴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목격자와 해체작업을 맡은 업체 관계자 등을 불러 사고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철거 방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현장 근로자 안전교육과 관리를 제대로 했는지, 안전 수칙을 준수했는지 등에 초점을 맞춰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일용직 근로자 안타까운 사고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일용직 근로자 안타까운 사고

    부산 크레인 사고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일용직 근로자 안타까운 사고 부산에 있는 옛 조선소 터 야적장에서 해체 중이던 크레인의 철제 구조물 일부가 떨어지는 바람에 근로자 4명이 숨졌다. 21일 오전 9시 46분쯤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에 있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 소유 야적장에 있는 지프 크레인의 3분의 2 지점에 있던 크레인의 중심을 잡는 철제 구조물(40t)이 20여m 아래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철제 구조물 안에 있던 김모(58), 문모(59), 허모(61)씨 등 근로자 3명이 추락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현장에 함께 있던 근로자 박모(57)씨는 철제 구조물에 깔려 소방본부가 2시간 넘게 구조작업을 했지만 끝내 숨졌다. 숨진 사람들은 크레인 해체작업을 하청받은 업체에서 고용한 일용직 근로자로 전해졌다. 사고현장에 있던 한 근로자는 “철거작업을 하다가 쾅하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봤더니 철제 구조물이 추락해 있었고, 비명과 함께 사람이 함께 떨어졌다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본부는 근로자들이 크레인에서 철제 구조물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려고 크레인과 철제 구조물을 잇는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던 중 철제 구조물이 아래로 떨어져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유압 크레인을 불러 철제 구조물을 들어 고정하고 나서 해체해야 하는데 크레인에 고리를 걸어 고정하기 전에 지지대 절단작업을 먼저 하는 바람에 무게를 못이겨 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정확한 사고원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조사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난 크레인은 1974년 일본에서 제작된 것인데다 구조물과 크레인 연결 부위가 심하게 녹슬어 있어 경찰은 장비 노후화가 사고원인의 하나일 수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당시 근로자 3명은 추락한 철제 구조물 위에서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1명은 구조물 안에 있었던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크레인이 있던 곳은 원래 대선조선 소유였으나 지난해 12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에 매각했다. 이 업체는 땅을 사들이고 나서 크레인 3기 등을 중고 크레인 매매업체에 고철로 매각했고, 크레인 매매업체는 다른 업체에 철거를 맡긴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목격자와 해체작업을 맡은 업체 관계자 등을 불러 사고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철거 방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현장 근로자 안전교육과 관리를 제대로 했는지, 안전 수칙을 준수했는지 등에 초점을 맞춰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4명 사망 ‘안타까워’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4명 사망 ‘안타까워’

    부산 크레인 사고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사투 벌였지만 4명 ‘안타까운 사망’ 부산에 있는 옛 조선소 터 야적장에서 해체 중이던 크레인의 철제 구조물 일부가 떨어지는 바람에 근로자 4명이 숨졌다. 21일 오전 9시 46분쯤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에 있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 소유 야적장에 있는 지프 크레인의 3분의 2 지점에 있던 크레인의 중심을 잡는 철제 구조물(40t)이 20여m 아래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철제 구조물 안에 있던 김모(58), 문모(59), 허모(61)씨 등 근로자 3명이 추락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현장에 함께 있던 근로자 박모(57)씨는 철제 구조물에 깔려 소방본부가 2시간 넘게 구조작업을 했지만 끝내 숨졌다. 숨진 사람들은 크레인 해체작업을 하청받은 업체에서 고용한 일용직 근로자로 전해졌다. 사고현장에 있던 한 근로자는 “철거작업을 하다가 쾅하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봤더니 철제 구조물이 추락해 있었고, 비명과 함께 사람이 함께 떨어졌다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본부는 근로자들이 크레인에서 철제 구조물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려고 크레인과 철제 구조물을 잇는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던 중 철제 구조물이 아래로 떨어져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유압 크레인을 불러 철제 구조물을 들어 고정하고 나서 해체해야 하는데 크레인에 고리를 걸어 고정하기 전에 지지대 절단작업을 먼저 하는 바람에 무게를 못이겨 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정확한 사고원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조사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난 크레인은 1974년 일본에서 제작된 것인데다 구조물과 크레인 연결 부위가 심하게 녹슬어 있어 경찰은 장비 노후화가 사고원인의 하나일 수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당시 근로자 3명은 추락한 철제 구조물 위에서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1명은 구조물 안에 있었던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크레인이 있던 곳은 원래 대선조선 소유였으나 지난해 12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에 매각했다. 이 업체는 땅을 사들이고 나서 크레인 3기 등을 중고 크레인 매매업체에 고철로 매각했고, 크레인 매매업체는 다른 업체에 철거를 맡긴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목격자와 해체작업을 맡은 업체 관계자 등을 불러 사고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철거 방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현장 근로자 안전교육과 관리를 제대로 했는지, 안전 수칙을 준수했는지 등에 초점을 맞춰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열린세상] 광복 70주년, 2015년과 1875년의 한가운데/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열린세상] 광복 70주년, 2015년과 1875년의 한가운데/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30세면 입지(立志), 40세면 불혹(不惑), 그리고 70이면 고희(古稀)라는 ‘논어’의 옛말을 애용하듯이 우리는 10을 기준으로 세상의 변화를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인간이 지닌 10개 손가락을 바탕으로 고대 이집트에서 ‘십진법’이라는 표준을 제시한 역사를 상기하면 동서양 할 것 없이 ‘몇십 주년’이라는 기억은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 같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광복 69주년이나 광복 71주년과 달리 무엇이 특별해야 하는지 쉽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70주년’이라는 남다른 시점을 계기로 남북한 분단의 근원적인 해결책도 찾아보고,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안고 있는 동북아에서 새로운 지역 질서도 모색해 보자는 취지인 것으로 이해된다. 1945년을 기준으로 7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의 모습을 광복 당시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그야말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변했다. 물질적인 풍요, 정치적 성숙, 사회적 관계, 국제사회에서의 존재감 등 우리의 정체성을 특징짓는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지구상에 이런 현대사를 경험한 나라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매우 갑작스런 성장의 역사를 경험했다. 물론 오늘날 우리 민족의 최대 고민거리인 북한 문제가 바로 그 70년 전부터 시작됐고, 번영과 성숙의 역사적 시간만큼이나 남북한 사이에 이질감과 단절의 역사가 진행돼 왔다. 광복 70주년을 계기로 통일의 의지를 굳게 다짐해 보지만 좀처럼 길이 보이지 않는다. 1945년을 기준으로 오늘날까지의 시간이 흐른 만큼 70년의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보니 매우 흥미로운 역사적 만남과 교착의 데자뷔를 경험하게 된다. 1875년 9월 20일 ‘운요호 사건’이 발발했다. 이 사건은 훗날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일본 조선 진출의 시발점이었던 ‘강화도 조약’ 성립의 결정적 배경이 됐다. 한반도에 고단하고 안쓰러운 개화의 역사가 시작된 해였던 것이다. 또 그해 4월에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가 태어났다고 기록돼 있다. 여기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과를 논할 의도는 없지만, ‘광복 70년’이 ‘성장 70년과 분단 70년’의 동의어라고 가정한다면 이 전 대통령의 공(功)과 과(過)가 1945년을 기준으로 2015년과 1875년 한가운데서 만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의 성공적인 ‘세계화’ 경험도 한·일 관계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한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에 상당 부분 기인하고 있으니, 역시 1945년은 ‘운요호 사건’의 1875년과 ‘2대 수입국과 3대 수출국’이 된 2015년의 한가운데서 만나고 있다. 한국이 경험한 1945년은 비단 우리만의 역사가 아니다. 세계사적 변화의 흐름과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곰곰이 따져 봐야 한다. 1945년 2차대전 종전을 기준으로, 국제사회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 독일, 베트남, 예멘 이렇게 모두 5개의 분단 국가가 생겨났다. 우리 모두 잘 알다시피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의 통일이 이뤄졌으며, 중국 역시 국제사회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수용해 더이상 중국과 대만을 경쟁관계에 있다고 여기지 않고 있다. 결국 한반도는 1945년을 기준으로 아직도 70년 전의 모습과 큰 차이 없이 분단 국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유일한 곳이 됐다. 베트남의 통일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중화학공업에 기반한 수출정책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세계인의 생각과 마음속에 ‘대한민국’이라는 네 글자를 분명히 새기고자 노력한 반면, 북한은 독일 통일 과정을 지켜보면서 핵무기 개발을 포함한 여하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흡수 통일당하는 길은 막아야겠다는 다짐을 곱씹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우리가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은 1945년의 의미가 70년 기준을 전후로 한 1875년과 2015년의 맥락 속에서 비로소 이해되듯이 한반도의 분단 해소는 세계사적 변화의 맥락과 맞닿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1875년과 1945년의 역사는 결국 당시 세상의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우리 선조들 탓이라는 지적을 교훈 삼아 2015년을 맞이하는 지금의 우리는 세계사적 변화의 흐름과 물줄기를 정확히 파악하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4명 사망 이유는?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4명 사망 이유는?

    부산 크레인 사고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4명 사망 이유는? 부산에 있는 옛 조선소 터 야적장에서 해체 중이던 크레인의 철제 구조물 일부가 떨어지는 바람에 근로자 4명이 숨졌다. 21일 오전 9시 46분쯤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에 있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 소유 야적장에 있는 지프 크레인의 3분의 2 지점에 있던 크레인의 중심을 잡는 철제 구조물(40t)이 20여m 아래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철제 구조물 안에 있던 김모(58), 문모(59), 허모(61)씨 등 근로자 3명이 추락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현장에 함께 있던 근로자 박모(57)씨는 철제 구조물에 깔려 소방본부가 2시간 넘게 구조작업을 했지만 끝내 숨졌다. 숨진 사람들은 크레인 해체작업을 하청받은 업체에서 고용한 일용직 근로자로 전해졌다. 사고현장에 있던 한 근로자는 “철거작업을 하다가 쾅하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봤더니 철제 구조물이 추락해 있었고, 비명과 함께 사람이 함께 떨어졌다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본부는 근로자들이 크레인에서 철제 구조물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려고 크레인과 철제 구조물을 잇는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던 중 철제 구조물이 아래로 떨어져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유압 크레인을 불러 철제 구조물을 들어 고정하고 나서 해체해야 하는데 크레인에 고리를 걸어 고정하기 전에 지지대 절단작업을 먼저 하는 바람에 무게를 못이겨 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정확한 사고원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조사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난 크레인은 1974년 일본에서 제작된 것인데다 구조물과 크레인 연결 부위가 심하게 녹슬어 있어 경찰은 장비 노후화가 사고원인의 하나일 수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당시 근로자 3명은 추락한 철제 구조물 위에서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1명은 구조물 안에 있었던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크레인이 있던 곳은 원래 대선조선 소유였으나 지난해 12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에 매각했다. 이 업체는 땅을 사들이고 나서 크레인 3기 등을 중고 크레인 매매업체에 고철로 매각했고, 크레인 매매업체는 다른 업체에 철거를 맡긴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목격자와 해체작업을 맡은 업체 관계자 등을 불러 사고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철거 방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현장 근로자 안전교육과 관리를 제대로 했는지, 안전 수칙을 준수했는지 등에 초점을 맞춰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힘겨운 사투 ‘쾅’ 소리 뒤 사고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힘겨운 사투 ‘쾅’ 소리 뒤 사고

    부산 크레인 사고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힘겨운 사투 ‘쾅’ 소리 뒤 사고 부산에 있는 옛 조선소 터 야적장에서 해체 중이던 크레인의 철제 구조물 일부가 떨어지는 바람에 근로자 4명이 숨졌다. 21일 오전 9시 46분쯤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에 있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 소유 야적장에 있는 지프 크레인의 3분의 2 지점에 있던 크레인의 중심을 잡는 철제 구조물(40t)이 20여m 아래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철제 구조물 안에 있던 김모(58), 문모(59), 허모(61)씨 등 근로자 3명이 추락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현장에 함께 있던 근로자 박모(57)씨는 철제 구조물에 깔려 소방본부가 2시간 넘게 구조작업을 했지만 끝내 숨졌다. 숨진 사람들은 크레인 해체작업을 하청받은 업체에서 고용한 일용직 근로자로 전해졌다. 사고현장에 있던 한 근로자는 “철거작업을 하다가 쾅하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봤더니 철제 구조물이 추락해 있었고, 비명과 함께 사람이 함께 떨어졌다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본부는 근로자들이 크레인에서 철제 구조물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려고 크레인과 철제 구조물을 잇는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던 중 철제 구조물이 아래로 떨어져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유압 크레인을 불러 철제 구조물을 들어 고정하고 나서 해체해야 하는데 크레인에 고리를 걸어 고정하기 전에 지지대 절단작업을 먼저 하는 바람에 무게를 못이겨 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정확한 사고원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조사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난 크레인은 1974년 일본에서 제작된 것인데다 구조물과 크레인 연결 부위가 심하게 녹슬어 있어 경찰은 장비 노후화가 사고원인의 하나일 수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당시 근로자 3명은 추락한 철제 구조물 위에서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1명은 구조물 안에 있었던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크레인이 있던 곳은 원래 대선조선 소유였으나 지난해 12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에 매각했다. 이 업체는 땅을 사들이고 나서 크레인 3기 등을 중고 크레인 매매업체에 고철로 매각했고, 크레인 매매업체는 다른 업체에 철거를 맡긴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목격자와 해체작업을 맡은 업체 관계자 등을 불러 사고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철거 방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현장 근로자 안전교육과 관리를 제대로 했는지, 안전 수칙을 준수했는지 등에 초점을 맞춰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2시간 사투 ‘안타까운 상황’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2시간 사투 ‘안타까운 상황’

    부산 크레인 사고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2시간 사투 ‘안타까운 상황’ 부산에 있는 옛 조선소 터 야적장에서 해체 중이던 크레인의 철제 구조물 일부가 떨어지는 바람에 근로자 4명이 숨졌다. 21일 오전 9시 46분쯤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에 있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 소유 야적장에 있는 지프 크레인의 3분의 2 지점에 있던 크레인의 중심을 잡는 철제 구조물(40t)이 20여m 아래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철제 구조물 안에 있던 김모(58), 문모(59), 허모(61)씨 등 근로자 3명이 추락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현장에 함께 있던 근로자 박모(57)씨는 철제 구조물에 깔려 소방본부가 2시간 넘게 구조작업을 했지만 끝내 숨졌다. 숨진 사람들은 크레인 해체작업을 하청받은 업체에서 고용한 일용직 근로자로 전해졌다. 사고현장에 있던 한 근로자는 “철거작업을 하다가 쾅하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봤더니 철제 구조물이 추락해 있었고, 비명과 함께 사람이 함께 떨어졌다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본부는 근로자들이 크레인에서 철제 구조물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려고 크레인과 철제 구조물을 잇는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던 중 철제 구조물이 아래로 떨어져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유압 크레인을 불러 철제 구조물을 들어 고정하고 나서 해체해야 하는데 크레인에 고리를 걸어 고정하기 전에 지지대 절단작업을 먼저 하는 바람에 무게를 못이겨 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정확한 사고원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조사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난 크레인은 1974년 일본에서 제작된 것인데다 구조물과 크레인 연결 부위가 심하게 녹슬어 있어 경찰은 장비 노후화가 사고원인의 하나일 수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당시 근로자 3명은 추락한 철제 구조물 위에서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1명은 구조물 안에 있었던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크레인이 있던 곳은 원래 대선조선 소유였으나 지난해 12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에 매각했다. 이 업체는 땅을 사들이고 나서 크레인 3기 등을 중고 크레인 매매업체에 고철로 매각했고, 크레인 매매업체는 다른 업체에 철거를 맡긴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목격자와 해체작업을 맡은 업체 관계자 등을 불러 사고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철거 방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현장 근로자 안전교육과 관리를 제대로 했는지, 안전 수칙을 준수했는지 등에 초점을 맞춰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사투 벌였지만…4명 숨져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사투 벌였지만…4명 숨져

    부산 크레인 사고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사투 벌였지만 4명 ‘안타까운 사망’ 부산에 있는 옛 조선소 터 야적장에서 해체 중이던 크레인의 철제 구조물 일부가 떨어지는 바람에 근로자 4명이 숨졌다. 21일 오전 9시 46분쯤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에 있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 소유 야적장에 있는 지프 크레인의 3분의 2 지점에 있던 크레인의 중심을 잡는 철제 구조물(40t)이 20여m 아래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철제 구조물 안에 있던 김모(58), 문모(59), 허모(61)씨 등 근로자 3명이 추락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현장에 함께 있던 근로자 박모(57)씨는 철제 구조물에 깔려 소방본부가 2시간 넘게 구조작업을 했지만 끝내 숨졌다. 숨진 사람들은 크레인 해체작업을 하청받은 업체에서 고용한 일용직 근로자로 전해졌다. 사고현장에 있던 한 근로자는 “철거작업을 하다가 쾅하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봤더니 철제 구조물이 추락해 있었고, 비명과 함께 사람이 함께 떨어졌다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본부는 근로자들이 크레인에서 철제 구조물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려고 크레인과 철제 구조물을 잇는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던 중 철제 구조물이 아래로 떨어져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유압 크레인을 불러 철제 구조물을 들어 고정하고 나서 해체해야 하는데 크레인에 고리를 걸어 고정하기 전에 지지대 절단작업을 먼저 하는 바람에 무게를 못이겨 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정확한 사고원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조사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난 크레인은 1974년 일본에서 제작된 것인데다 구조물과 크레인 연결 부위가 심하게 녹슬어 있어 경찰은 장비 노후화가 사고원인의 하나일 수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당시 근로자 3명은 추락한 철제 구조물 위에서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1명은 구조물 안에 있었던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크레인이 있던 곳은 원래 대선조선 소유였으나 지난해 12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에 매각했다. 이 업체는 땅을 사들이고 나서 크레인 3기 등을 중고 크레인 매매업체에 고철로 매각했고, 크레인 매매업체는 다른 업체에 철거를 맡긴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목격자와 해체작업을 맡은 업체 관계자 등을 불러 사고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철거 방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현장 근로자 안전교육과 관리를 제대로 했는지, 안전 수칙을 준수했는지 등에 초점을 맞춰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사투 벌였지만 4명 ‘안타까운 사망’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사투 벌였지만 4명 ‘안타까운 사망’

    부산 크레인 사고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사투 벌였지만 4명 ‘안타까운 사망’ 부산에 있는 옛 조선소 터 야적장에서 해체 중이던 크레인의 철제 구조물 일부가 떨어지는 바람에 근로자 4명이 숨졌다. 21일 오전 9시 46분쯤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에 있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 소유 야적장에 있는 지프 크레인의 3분의 2 지점에 있던 크레인의 중심을 잡는 철제 구조물(40t)이 20여m 아래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철제 구조물 안에 있던 김모(58), 문모(59), 허모(61)씨 등 근로자 3명이 추락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현장에 함께 있던 근로자 박모(57)씨는 철제 구조물에 깔려 소방본부가 2시간 넘게 구조작업을 했지만 끝내 숨졌다. 숨진 사람들은 크레인 해체작업을 하청받은 업체에서 고용한 일용직 근로자로 전해졌다. 사고현장에 있던 한 근로자는 “철거작업을 하다가 쾅하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봤더니 철제 구조물이 추락해 있었고, 비명과 함께 사람이 함께 떨어졌다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본부는 근로자들이 크레인에서 철제 구조물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려고 크레인과 철제 구조물을 잇는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던 중 철제 구조물이 아래로 떨어져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유압 크레인을 불러 철제 구조물을 들어 고정하고 나서 해체해야 하는데 크레인에 고리를 걸어 고정하기 전에 지지대 절단작업을 먼저 하는 바람에 무게를 못이겨 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정확한 사고원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조사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난 크레인은 1974년 일본에서 제작된 것인데다 구조물과 크레인 연결 부위가 심하게 녹슬어 있어 경찰은 장비 노후화가 사고원인의 하나일 수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당시 근로자 3명은 추락한 철제 구조물 위에서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1명은 구조물 안에 있었던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크레인이 있던 곳은 원래 대선조선 소유였으나 지난해 12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에 매각했다. 이 업체는 땅을 사들이고 나서 크레인 3기 등을 중고 크레인 매매업체에 고철로 매각했고, 크레인 매매업체는 다른 업체에 철거를 맡긴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목격자와 해체작업을 맡은 업체 관계자 등을 불러 사고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철거 방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현장 근로자 안전교육과 관리를 제대로 했는지, 안전 수칙을 준수했는지 등에 초점을 맞춰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급박했던 현장상황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급박했던 현장상황

    부산 크레인 사고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급박했던 현장상황 부산에 있는 옛 조선소 터 야적장에서 해체 중이던 크레인의 철제 구조물 일부가 떨어지는 바람에 근로자 4명이 숨졌다. 21일 오전 9시 46분쯤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에 있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 소유 야적장에 있는 지프 크레인의 3분의 2 지점에 있던 크레인의 중심을 잡는 철제 구조물(40t)이 20여m 아래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철제 구조물 안에 있던 김모(58), 문모(59), 허모(61)씨 등 근로자 3명이 추락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현장에 함께 있던 근로자 박모(57)씨는 철제 구조물에 깔려 소방본부가 2시간 넘게 구조작업을 했지만 끝내 숨졌다. 숨진 사람들은 크레인 해체작업을 하청받은 업체에서 고용한 일용직 근로자로 전해졌다. 사고현장에 있던 한 근로자는 “철거작업을 하다가 쾅하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봤더니 철제 구조물이 추락해 있었고, 비명과 함께 사람이 함께 떨어졌다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본부는 근로자들이 크레인에서 철제 구조물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려고 크레인과 철제 구조물을 잇는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던 중 철제 구조물이 아래로 떨어져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유압 크레인을 불러 철제 구조물을 들어 고정하고 나서 해체해야 하는데 크레인에 고리를 걸어 고정하기 전에 지지대 절단작업을 먼저 하는 바람에 무게를 못이겨 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정확한 사고원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조사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난 크레인은 1974년 일본에서 제작된 것인데다 구조물과 크레인 연결 부위가 심하게 녹슬어 있어 경찰은 장비 노후화가 사고원인의 하나일 수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당시 근로자 3명은 추락한 철제 구조물 위에서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1명은 구조물 안에 있었던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크레인이 있던 곳은 원래 대선조선 소유였으나 지난해 12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에 매각했다. 이 업체는 땅을 사들이고 나서 크레인 3기 등을 중고 크레인 매매업체에 고철로 매각했고, 크레인 매매업체는 다른 업체에 철거를 맡긴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목격자와 해체작업을 맡은 업체 관계자 등을 불러 사고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철거 방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현장 근로자 안전교육과 관리를 제대로 했는지, 안전 수칙을 준수했는지 등에 초점을 맞춰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철제구조물 제거 사투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철제구조물 제거 사투

    부산 크레인 사고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철제구조물 제거 사투 부산에 있는 옛 조선소 터 야적장에서 해체 중이던 크레인의 철제 구조물 일부가 떨어지는 바람에 근로자 4명이 숨졌다. 21일 오전 9시 46분쯤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에 있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 소유 야적장에 있는 지프 크레인의 3분의 2 지점에 있던 크레인의 중심을 잡는 철제 구조물(40t)이 20여m 아래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철제 구조물 안에 있던 김모(58), 문모(59), 허모(61)씨 등 근로자 3명이 추락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현장에 함께 있던 근로자 박모(57)씨는 철제 구조물에 깔려 소방본부가 2시간 넘게 구조작업을 했지만 끝내 숨졌다. 숨진 사람들은 크레인 해체작업을 하청받은 업체에서 고용한 일용직 근로자로 전해졌다. 사고현장에 있던 한 근로자는 “철거작업을 하다가 쾅하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봤더니 철제 구조물이 추락해 있었고, 비명과 함께 사람이 함께 떨어졌다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본부는 근로자들이 크레인에서 철제 구조물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려고 크레인과 철제 구조물을 잇는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던 중 철제 구조물이 아래로 떨어져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유압 크레인을 불러 철제 구조물을 들어 고정하고 나서 해체해야 하는데 크레인에 고리를 걸어 고정하기 전에 지지대 절단작업을 먼저 하는 바람에 무게를 못이겨 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정확한 사고원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조사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난 크레인은 1974년 일본에서 제작된 것인데다 구조물과 크레인 연결 부위가 심하게 녹슬어 있어 경찰은 장비 노후화가 사고원인의 하나일 수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당시 근로자 3명은 추락한 철제 구조물 위에서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1명은 구조물 안에 있었던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크레인이 있던 곳은 원래 대선조선 소유였으나 지난해 12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에 매각했다. 이 업체는 땅을 사들이고 나서 크레인 3기 등을 중고 크레인 매매업체에 고철로 매각했고, 크레인 매매업체는 다른 업체에 철거를 맡긴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목격자와 해체작업을 맡은 업체 관계자 등을 불러 사고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철거 방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현장 근로자 안전교육과 관리를 제대로 했는지, 안전 수칙을 준수했는지 등에 초점을 맞춰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사투 벌였지만 4명 사망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사투 벌였지만 4명 사망

    부산 크레인 사고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사투 벌였지만 4명 ‘안타까운 사망’ 부산에 있는 옛 조선소 터 야적장에서 해체 중이던 크레인의 철제 구조물 일부가 떨어지는 바람에 근로자 4명이 숨졌다. 21일 오전 9시 46분쯤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에 있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 소유 야적장에 있는 지프 크레인의 3분의 2 지점에 있던 크레인의 중심을 잡는 철제 구조물(40t)이 20여m 아래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철제 구조물 안에 있던 김모(58), 문모(59), 허모(61)씨 등 근로자 3명이 추락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현장에 함께 있던 근로자 박모(57)씨는 철제 구조물에 깔려 소방본부가 2시간 넘게 구조작업을 했지만 끝내 숨졌다. 숨진 사람들은 크레인 해체작업을 하청받은 업체에서 고용한 일용직 근로자로 전해졌다. 사고현장에 있던 한 근로자는 “철거작업을 하다가 쾅하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봤더니 철제 구조물이 추락해 있었고, 비명과 함께 사람이 함께 떨어졌다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본부는 근로자들이 크레인에서 철제 구조물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려고 크레인과 철제 구조물을 잇는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던 중 철제 구조물이 아래로 떨어져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유압 크레인을 불러 철제 구조물을 들어 고정하고 나서 해체해야 하는데 크레인에 고리를 걸어 고정하기 전에 지지대 절단작업을 먼저 하는 바람에 무게를 못이겨 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정확한 사고원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조사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난 크레인은 1974년 일본에서 제작된 것인데다 구조물과 크레인 연결 부위가 심하게 녹슬어 있어 경찰은 장비 노후화가 사고원인의 하나일 수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당시 근로자 3명은 추락한 철제 구조물 위에서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1명은 구조물 안에 있었던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크레인이 있던 곳은 원래 대선조선 소유였으나 지난해 12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에 매각했다. 이 업체는 땅을 사들이고 나서 크레인 3기 등을 중고 크레인 매매업체에 고철로 매각했고, 크레인 매매업체는 다른 업체에 철거를 맡긴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목격자와 해체작업을 맡은 업체 관계자 등을 불러 사고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철거 방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현장 근로자 안전교육과 관리를 제대로 했는지, 안전 수칙을 준수했는지 등에 초점을 맞춰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2시간 넘게 구조작업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2시간 넘게 구조작업

    부산 크레인 사고 부산 크레인 사고 “기계실 20m 아래로 추락” 2시간 넘게 구조작업 부산에 있는 옛 조선소 터 야적장에서 해체 중이던 크레인의 철제 구조물 일부가 떨어지는 바람에 근로자 4명이 숨졌다. 21일 오전 9시 46분쯤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에 있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 소유 야적장에 있는 지프 크레인의 3분의 2 지점에 있던 크레인의 중심을 잡는 철제 구조물(40t)이 20여m 아래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철제 구조물 안에 있던 김모(58), 문모(59), 허모(61)씨 등 근로자 3명이 추락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현장에 함께 있던 근로자 박모(57)씨는 철제 구조물에 깔려 소방본부가 2시간 넘게 구조작업을 했지만 끝내 숨졌다. 숨진 사람들은 크레인 해체작업을 하청받은 업체에서 고용한 일용직 근로자로 전해졌다. 사고현장에 있던 한 근로자는 “철거작업을 하다가 쾅하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봤더니 철제 구조물이 추락해 있었고, 비명과 함께 사람이 함께 떨어졌다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본부는 근로자들이 크레인에서 철제 구조물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려고 크레인과 철제 구조물을 잇는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던 중 철제 구조물이 아래로 떨어져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유압 크레인을 불러 철제 구조물을 들어 고정하고 나서 해체해야 하는데 크레인에 고리를 걸어 고정하기 전에 지지대 절단작업을 먼저 하는 바람에 무게를 못이겨 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정확한 사고원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조사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난 크레인은 1974년 일본에서 제작된 것인데다 구조물과 크레인 연결 부위가 심하게 녹슬어 있어 경찰은 장비 노후화가 사고원인의 하나일 수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당시 근로자 3명은 추락한 철제 구조물 위에서 지지대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1명은 구조물 안에 있었던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크레인이 있던 곳은 원래 대선조선 소유였으나 지난해 12월 선박 구조물 제조업체에 매각했다. 이 업체는 땅을 사들이고 나서 크레인 3기 등을 중고 크레인 매매업체에 고철로 매각했고, 크레인 매매업체는 다른 업체에 철거를 맡긴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목격자와 해체작업을 맡은 업체 관계자 등을 불러 사고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철거 방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현장 근로자 안전교육과 관리를 제대로 했는지, 안전 수칙을 준수했는지 등에 초점을 맞춰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치·농업·세금… 향촌 학자의 일기 속 17세기 조선

    정치·농업·세금… 향촌 학자의 일기 속 17세기 조선

    일기를 통해 본 조선후기 사회사/이성임 외 지음/새물결/275쪽/2만 1000원 조선시대는 장대한 조선왕조실록이 보여주듯이 기록의 왕조였다. 이는 중앙 정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고 지방의 지식인 수준에서도 비근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일기나 서한이라는 형식을 통해 자신의 소우주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일기를 통해 본 조선후기 사회사’는 경상북도 예안 지방에 거주하던 계안 김령(1577~1641)이 39년 동안 기록한 일기를 6개의 상이한 프리즘으로 조명한 연구서다. 한국국학진흥원의 일기 연구 1차 연도 결과물로 다분히 이념이나 전쟁, 당쟁으로만 기억되는 조선 후기에 대해 중앙 무대를 중심으로 한 정사와는 다른 미시적 관점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김령은 퇴계 이황의 고제인 설월당 김부륜(1531~1598)의 1남 3녀 중 외아들로 부친이 상경 종사한 까닭에 서울에서 태어나 5세에 독서를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비교적 어린 나이인 15세에 도산서원 강학에 참여했다. 예안을 대표하는 광산 김씨 가문으로서 선조와 광해군 그리고 인조대의 3대에 걸친 정치적, 사회적 격변기를 산 김령은 26세 때인 1603년 7월 1일부터 64세로 세상을 떠난 해인 1641년 3월 12일까지 일록을 남겼다. ‘계암일록’은 중앙의 정치사와 지방의 정치적 사건들, 그리고 일상사와 생활사가 두루 담겨 있어 조선 후기의 미시사로서 훌륭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17세기 안동은 중앙에서 소외된 변방이 아니었다. 1612년(광해군 4년) 문과에 급제해 승정원 주서가 되었으나 병과 낙마 사고 등으로 벼슬살이를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낙향한 후에도 중앙 정계에서 일어난 일들을 10일쯤의 간격으로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남인, 학파적으로는 범퇴계학파에 속했던 김령의 입장과 판단을 통해 17세기 전반 조선의 정치 변화를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의례문화의 이상과 실제가 어떻게 향촌사회에서 구현되는지, 농업과 세금 수취 과정 및 이에 대한 그의 생각 등을 들여다볼 수 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 읽어라, 청춘] 김만중은 누구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소설가인 김만중(1637~1692)은 가사의 정철, 시조의 윤선도와 함께 조선 3대 고전 문학가로 꼽힌다. 김만중이 구운몽·사씨남정기 등 한글 소설을 쓴 이유는 소설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특이한 점은 유복자로 태어난 김만중이 어린 시절 수준 높은 한문 실력을 갖추고 있던 어머니 윤씨에게 직접 글을 배웠다는 사실이다. 즉 어머니만을 위해서였다면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등의 소설을 굳이 한글로 쓸 필요는 없었던 셈이다. 실제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문학관을 피력했던 그는 이 두 한글 소설로 홍길동전의 허균과 함께 조선 후기 서민 문학의 선구자가 됐고, 이후의 실학파 문학에 큰 영향을 줬다. 28세였던 1665년 정시문과에서 장원급제해 관직에 오른 김만중은 조선조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의 증손자이자 영의정 김반의 손자, 정축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직한 충렬공 김익겸의 아들이었다. 태생부터 기득권 세력인 서인에 속해 있었던 김만중은 관직에 오른 뒤 자연스레 남인과의 권력 투쟁의 중심에 서게 됐다. 이 때문에 홍문관 대제학에 오르는 등 명예로운 자리에 올랐지만, 치열한 권력 투쟁 속에 수차례 삭탈관직과 탄핵, 유배 등 정치적 보복을 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김만중은 성리학이 지배하는 조선에서도 광해군 이후 명분론과 예학을 철저히 옹호하는 입장에 서 있던 보수적 서인 세력의 중심에 있었지만 문학적 기풍만은 파격적이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주자주의에 대한 회의를 내비치기도 하고 불교적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하기도 함으로써 진보적인 성향을 보였다. 또 한글 소설을 연이어 쓰면서 한문으로 써야만 글로 여겼던 당대 분위기에 정면으로 맞섰다. 한편 구운몽은 19세기 청나라에서 ‘구운루’(九雲樓)라는 제목으로 개작됐고, 일본의 메이지 시대에 ‘몽환’(夢幻)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소개되는 등 국제적 인기를 누린 최초의 한글 소설이다. 또 사씨남정기는 200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에서 고전소설 지문으로 등장했고, 2008학년도에 다시 출제되기도 했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1만 년 전 초대형 포유류 ‘마스토돈’ 화석 발견

    1만 년 전 초대형 포유류 ‘마스토돈’ 화석 발견

    무려 1만 년 전 지구에 서식했던 거대 동물의 화석이 발견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USA투데이 등 해외 언론이 12일 보도했다. 미국 미시간주에 사는 남성은 지난 해 11월 이웃인 다니엘 라포인트의 집을 방문했다가 그의 집 마당에서 회색빛의 어떤 물체를 발견했다. 조심스럽게 파보니 길게 휘어져 있었고, 굴삭기를 동원해 이를 발굴한 결과 길이 1.2m의 화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들은 이 화석이 공룡의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체는 다름 아닌 마스토돈(Mastodon)이었다. 마스토돈은 약 1만년 전 선사시대에 번성했다가 멸종된 동물로 코끼리의 먼 친척뻘이다. 어금니 길이만 4~5m 몸무게는 최대 6t정도로 알려져 있다. 집 주인인 다니엘 라포인트와 그의 이웃인 에릭 위츠케는 4일에 걸쳐서 마당을 파헤친 결과 총 42개의 화석이 발견됐다. 이를 조사한 미시간대학교 박물관 고생물학자인 다니엘 피셔는 “이번에 찾은 화석에는 마스토돈의 갈비뼈와 다리, 어께, 엉덩이, 척추 뼈 등이 포함돼 있다”면서 “분석 결과 이 화석의 주인은 1만~4만 년 전, 37년 동안 지구에서 살았던 수컷 마스토돈으로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마도 선사시대 선조에 의해 도살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화석을 최초로 발견한 남성은 “보물을 찾기 위한 여행을 여러번 떠나 봤지만 이웃집 마당에서 이를 찾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며 소감을 밝혔다. 화석을 발견한 사람과 발견된 마당의 집주인은 몇 달 간 이 화석을 자신의 집에 전시하고, 인근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이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최근에는 더 자세한 연구를 위해 미시간대학교 박물관에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발효 조미료’ 된장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발효 조미료’ 된장

    ‘건강, 슬로, 로컬’로 대표되는 식품산업 트렌드 속에서 된장과 청국장 등 우리 전통 발효식품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된장은 콩보다 단백질 함량은 적지만 소화 흡수율이 높아 그냥 콩으로 먹을 때보다 단백질 흡수율이 20% 이상 높아진다. 된장은 우리 음식과 식문화의 뿌리이자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발효식품으로 우리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조미료’다. 한국 음식의 원천이자 은근과 끈기로 대표되는 민족 정서의 보고라 할 수 있다. 된장은 한식의 대표 국물 음식인 찌개부터 장아찌, 쌈장과 고기 양념 등 우리 음식 전반에서 맛을 내는 역할을 맡았다. 우리 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장과 관련된 속담과 이야기, 문화 콘텐츠 등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장맛이 변하면 집안이 망한다, 장맛 보고 딸 준다, 된장과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 등의 속담이 이를 잘 대변한다. 한반도는 콩의 원산지다. 고문헌에 따르면 우리 조상들은 삼국시대 초기부터 장을 담가 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는 ‘고구려인은 장을 담그고 술을 빚는 솜씨가 훌륭하다’는 기록이 있다. 또 신라 신문왕 3년(683년) 왕비의 폐백 품목으로 오늘날의 메주인 ‘시’(?)를 보냈다는 내용이 삼국사기에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를 거치며 우리 장은 지역별로 다양한 종류가 나왔다. 사시찬요초(四時纂要抄)에는 간장, 된장이 포함된 ‘포장’(泡醬)과 장아찌식 된장류인 ‘즙저’가 기록돼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공장형 일본식 간장과 된장이 보급되기도 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장류 음식인 미소와 낫토는 우리나라에서 전래된 된장과 청국장을 개조한 것이다. 중국의 두시는 삶은 콩을 띄울 때 소금 첨가 여부에 따라 된장과 유사한 ‘함두시’와 청국장과 유사한 ‘담두시’로 구별된다. 두부 표면에 곰팡이를 접종한 후 된장이나 간장덧에 담가 숙성시킨 루푸는 두부가 부드러워져 치즈 같은 질감과 풍미가 있다. 익힌 콩에 종균을 접종해 2일간 발효시킨 인도네시아의 ‘템페’, 삶은 콩을 절구에 찧고 바나나 잎에 싸 건조시킨 인도의 ‘스자체’, 으깬 콩을 바나나 잎으로 덮어 실온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햇볕에 말린 네팔의 청국장 ‘키네마’ 등이 유명하다. 장은 미생물이 만들어낸 보물이다. 발효 미생물 ‘3총사’(곰팡이, 세균, 효모)가 있는 메주로 된장을 담그면 발효균주가 생성되면서 맛과 영양이 살아난다. 된장에 있는 발효미생물인 고초균과 유산균은 우리 몸에 유익하다. 면역 개선과 항암 작용을 할 뿐만 아니라 유해 세균을 억제하고 피로 해소를 도와준다. 또 여성호르몬과 유사한 항산화물질인 ‘이소플라본’은 폐경기 증후군과 골다공증, 심혈관계질환, 유방암, 전립선암, 대장암 예방에 효과가 있다. 농촌진흥청이 국내 재래종 메주 17종을 수집해 조사한 결과 795종의 미생물을 확인했다. 메주에서 유산균이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30% 정도이며 최고 88%에 이르는 것도 있다. 된장의 숨겨진 매력으로 ‘별미장’을 꼽을 수 있다. 별미장이란 메주를 다른 방식으로 띄우거나 밀, 메밀 등의 다른 재료를 섞어 특별한 맛을 낸 장이다. 우리가 잘 아는 청국장도 별미장의 한 종류다. 막된장과 즙장(汁醬), 두부장, 토장(土醬) 등 140여종의 다양한 별미장이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지역별로 풍광과 토양, 토산물이 다르기 때문에 지방마다 독특한 장류가 나왔다. 메주를 만드는 재료와 방법, 숙성시키는 기간에 따라 서울 지역의 무장, 충청도의 예산된장, 전라도의 나주된장, 경상도의 진양된장과 밀양된장, 제주도의 조피장이 있었다. 지역별 장류의 특징을 보면 경상도는 지역에 흔한 밀이나 보리를 첨가했고 전라도는 찹쌀, 충청도는 보리쌀, 제주는 조피 잎을 이용했다. 최근에는 사라진 장류를 복원해 우리의 음식 문화와 정신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2010년에는 농진청이 검정콩과 보리를 이용해 담그는 대맥장(大麥醬)과 좋은 콩과 메밀을 이용해 만드는 생황장(生黃醬) 등을 복원했다. 대맥장은 볶은 콩을 삶아 식힌 이후 보릿가루를 넣고 콩 삶은 물로 반죽해 만든 덩어리를 시루에 찐 후 닥나무 잎으로 덮어 발효시켜 만든다. 생황장은 콩을 삶아 식힌 후 메밀가루와 섞어 갈대자리 위에 두고 보릿짚이나 볏짚, 도꼬마리 잎으로 덮어 발효시킨다. 전통적인 장류를 현대 소비자의 요구에 맞게 응용한 간편·편의 식품도 출시되고 있다. 핵가족과 1인 가구의 증가에 따라 동결건조기술을 이용한 건조 된장, 묽게 하면 차로 마실 수 있는 된장차, 특유의 냄새가 없는 청국장 음료도 개발됐다. 5년 이상 숙성된 된장 유산균 종자는 피부 재생과 관련이 있어 이를 이용한 화장품도 나왔다. 일본식 청국장인 낫토도 섬유질과 미네랄, 비타민, 효소 등이 모발과 두피에 영양을 주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고보습 에센스와 샴푸로 출시되기도 했다. 된장산업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제도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개량 메주를 이용한 대량 생산형 장류에서 소비자 입맛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 또 다양한 별미장을 복원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장류는 지역 기반의 강소농이 성장하기 좋은 산업이어서 전국적으로 흩어진 전통 장류 제조 비법을 발굴한다면 다양한 사업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최혜선 농촌진흥청 발효식품과 농업연구사 ■문의 golders@seoul.co.kr
  • 균형 잃은 공직자는 정보에서 손 떼라/ 김종식(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

    균형 잃은 공직자는 정보에서 손 떼라/ 김종식(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

    균형 잃은 공직자는 정보에서 손 떼라/ 김종식(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 정보는 분명 당면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예측하여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반면 정보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그 질적 가치에 따라 흥망이 크게 갈린다는 점이다. 우리 선조가 남긴 잠언 중에 ‘선무당 사람 잡고 반풍수(半風水) 집안 망친다’는 말이 있다. 얕은 생각이나 미완의 정보를 함부로 내세우다가 도리어 일을 망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즉 ‘잘못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는 오늘날 많은 분야에 적용되는 말이지만 정확성과 완전성, 적시성을 근간으로 하는 국가기관의 정보업무나 기업 또는 개인의 정보생활에 특히 부합되는 경구(警句)로 여겨진다. 경제학자 빌프레드 파레토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정보의 80%는 주변에 이미 널려 있다’고 하였다. 우리 주변에 수많은 정보가 범람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그러나 누구나 접근이 가능한 공개정보 중에는 혼란스럽거나 무가치한 것이 많이 섞여 있어 이를 어떻게 취사선택 할 것인지가 정보생활의 최대 관건이 되고 있다. 내가 본 것, 내가 들은 것 그 자체를 대단한 정보인 양 과신하여 바로 행동에 옮기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다가 망신한 사람의 수가 정보의 득을 본 사람의 수보다 많다. 정보는 ‘너무 가까이도 하지 말고 너무 멀리도 하지 마라’는 세속의 경험담이 정보의 속성과 형편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이렇듯 정보의 오류와 함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신뢰성을 높일 이중출처를 활용한다거나 사안별로 ‘그럴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상상력과 함께 ‘그럴 수 있느냐’하는 의구심을 균형있게 가질 수 있는 뛰어난 통찰력이 요구된다. 이를 놓고 볼때 최근의 소위 ‘십상시 문건’ 파문은 첩보수집 또는 정보생산 과정에서 유지되어야 할 상상력과 의구심 간의 균형이 깨진 데서 초래된 정보 참사로 여겨진다. 이 정보보고서를 작성하거나 사용한 그들은 베테랑 정보맨들이었지만 ‘균형감각을 잃은 정보의 위태성’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정보의 생명이 보안이라면, 정보의 가치는 균형에서 나온다는 말은 정보활동을 제대로해 본 사람이라면 실감하고 있다.. 미국ㆍ영국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정치ㆍ사회적 중요 쟁점이 있을때 정보의 평형(平衡) 유지를 위해 국가기관 스스로가 사립탐정(민간조사원)에게 민심이나 특정정보의 수집을 의뢰 하여 비교ㆍ보완 하기도 한다는 간절함은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 크다. 유달리 크고 작은 정보사고가 많았던 2014년을 회고하는 시민과 공직사회 주변에서는 부정확한 정보의 폐해를 빗대어 ‘무정보 상팔자(無情報 上八子)’라는 말까지 회자되고 있다. 이는 밤길에 네온사인 번쩍이듯 난무하는 과장정보나 허위정보, 역정보, 실기(失期)정보 등에 현혹되어 세상을 시끄럽게 했거나 그러한 유형의 일에 연루되어 조직에 누를 끼치는 등 창창하던 앞길을 망친 사람들을 바라보는 뼈아픈 교훈의 말 이다. 차라리 정보가 없었으면 팔자가 좋았을 텐데, 차라리 정보를 몰랐으면 편히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와 탄식이 그것 이다. 그렇다 하여 정보를 외면하고는 하루도 살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세상이다. ‘정보폭발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정보의 양(量)이 아닌 질(質)과의 싸움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않된다. 특히 오늘날 정보맨들은 정보선택의 문제와 함께 정보의 균형감각 유지 역량을 시험받고 있다. 정보는 선택과 균형의 적정 여부에 따라 보약이 될 수도, 독약이 될 수도 있음을 지난해 두눈으로 똑똑히 보아 왔다. 누구든 정보를 탓할 것이 아니라 ‘잘못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현명한 정보관(情報觀)의 재정립이 필요한 시대임을 특히 말하고 싶다. =========================================================== ※‘자정고 발언대’는 필자들이 보내 온 내용을 그대로 전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따라서 글의 내용은 서울신문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글의 내용에 대한 권한 및 책임은 서울신문이 아닌, 필자 개인에게 있습니다. 필자의 직업, 학력 등은 서울신문에서 별도의 검증을 거치지 않고 보내온 그대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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