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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세대 교수 시국선언 “세월호 참사, 스승답지 못한 우리 모습 반성하고 참회”

    연세대 교수 시국선언 “세월호 참사, 스승답지 못한 우리 모습 반성하고 참회”

    ‘연세대 교수 시국선언’ ‘연대 교수 시국선언’ 세월호 참사에 대한 추모의 마음과 함께 정부의 책임 있는 대책을 촉구하는 성명 발표에 대학교수도 동참했다. 연세대학교 교수들은 스승의 날 하루 전인 14일 “스승답지 못한 우리 모습을 돌아보며 겸허히 반성하고 참회하고자 한다”며 이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연세대학교 교수 131명(외국인 교수 15명 포함)은 이날 ‘슬픔을 안고 공동체 회복의 실천으로’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세월호 참사는 분명한 인재였다는 점에서 특별한 반성을 우리 모두에게 요구하고 있다”면서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우리가 동시에 목격한 것은 국가라는 제도의 침몰과 책임의식이라는 윤리와 양심의 침몰이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을 포함한 청해진해운에 일차적 책임이 있지만, 사고 발생 후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구조의 난맥상을 보여 온 정부당국의 책임도 결코 이에 못지않게 엄중할 것”이라며 “세월호 침몰 원인과 대처,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은 한 치의 의구심도 남김없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하고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번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물질적 탐욕에 젖은 나머지 생명의 가치를 내팽개친 황금만능주의, 편법과 탈법의 관행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여 온 결과중심주의에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범적으로 이루어 왔다고 자부해 왔음에도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삶과 생명에 대한 철학 및 성찰이 빈곤한 반인간적 사회인지를 여실히 증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세월호 참사와 함께 국민과 유가족들에게 참담함을 안겨준 우리 언론의 보도행태와 관련해서도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가족을 잃은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일부 언론의 태도와, 무기력하게 대처 과정을 지켜보기만 했던 정치권의 태도는 전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다”며 “언론은 갑갑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신문고의 역할을 제대로 담당해왔는지 겸허하게 자성하면서 불법과 탈법을 적극적으로 고발하고 민주주의를 위한 권력 감시를 올바로 수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이들은 “우리는 과정과 원칙을 무시한 채 결과만을 중시하고 비리와 이권으로 뒤엉켜있는 우리 사회를 질타하고 개혁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방조하며 이에 편승하려 하지는 않았는지 자성한다”며 “스승의 날을 맞이해 우리의 스승답지 못한 모습을 뒤돌아보며 가슴 속 깊이 뉘우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연세대학교 교수들의 성명’은 김왕배(사회학과)·김종철(법학전문대학원)·김호기(사회학과)·방연상(연합신학대학원)·윤혜준(영문학과)·이종수(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교육자로서의 입장을 밝히자는 뜻을 나누면서 준비했다. 이들은 성명서 국문본과 영문본을 완성한 후 연세대 전체 교수들과 공유해 참여 교수들의 서명을 받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미국 교수 등 성명서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에 경종”…해외 학자 1074명 참여

    미국 교수 등 성명서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에 경종”…해외 학자 1074명 참여

    ‘미국 교수 성명서’ 외국에서 활동하는 1074명의 학자들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정부의 책임을 묻고 공익을 위한 규제강화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남태현 미국 샐리스버리 대학 교수 등 5명의 학자들은 13일(현지시각)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에 경종: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와 민주적 책임 결여가 근본적 문제’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낭독했다. 이번 성명에는 교수 577명과 박사후 연구원 163명, 독립적 학자 334명 등이 참가했다. 특히 노마 필드 시카고대 교수, 낸시 에이블먼 일리노이대 교수 등 외국인 교수 130여명도 성명서에 서명을 해 눈길을 끌었다. 특정 사안에 대해 1000명이 넘는 외국 학자들이 서명을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들 교수들은 “세월호 참사는 단순히 비도덕적인 선장과 선원들의 일탈적 행위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최근 진행되고 있는 규제 완화와 민영화, 무능력과 부패에서 비롯된 미비한 구조 노력의 결과”라며 “사회 총체적인 비리와 부실이 신속하게 개혁되지 않는 한 이런 비극은 앞으로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다섯 가지 요구사항을 적시했다. 첫째, 생존자·희생자와 이들 가족에 대한 적극적인 치유와 정당한 배상을 요구했다. 둘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은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의 가장 기본적 의무임을 인식하고 책임을 질 것을 요구했다. 특히, 관련 관료들에 대한 엄중한 조사와 처벌을 요구하고 이들을 관리하는 데 실패한 청와대와 대통령도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셋째, 독립적인 특검 및 특별법 도입을 요구했다. 넷째, 무분별한 공적규제 완화와 민영화 정책을 철폐하고, 사람의 생명과 안전, 삶의 질을 기업 이익과 정부 편의 위에 놓으며, 경제적 이익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섯째, 방송 장악과 언론 통제를 위한 일체의 작업을 즉시 중단하고 언론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성명은 남윤주(버팔로대), 김기선미(라마포대), 남태현(샐리스버리대), 유종성(캘리포니아대-샌디에이고), 한주희(토론토대), 권경아(조지아주립대) 등 북미에서 활동하는 교수 6명이 주도했다. 이들은 지난 7일부터 온라인을 통해 서명을 받았다. 참가한 학자 체류 국가는 미국이 가장 많았고, 노르웨이·대만·벨기에·싱가포르·영국·오스트레일리아·이디오피아·일본·캐나다 등 다양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공권력 우롱하는 유병언 일가 속히 소환해야

    침몰한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제 소유주 유병언(전 세모그룹 회장)씨 일가가 잠적한 채 검찰 소환에 불응하고 있다. 검찰은 어제 이번 수사의 몸통인 유씨에게 16일까지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또 어제 오후 장남 대균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서울 서초구 염곡동 자택에 강제 진입했지만 신병을 확보하진 못했다. 대균씨는 청해진해운 등 계열사의 부실경영에 따른 배임·횡령 혐의를 받고 있다. 미국 등에 체류 중인 차남과 장·차녀에게도 출석을 수차례 요구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멕시코 등 제3국 도피설도 나오고 있다. 유씨 일가가 청해진해운 등 수십 개의 계열사를 사유화해 경영을 악화시킨 정황들은 검찰의 압수수색 등에서 이미 확인된 상태다. 청해진해운의 내부 조직도와 비상연락망에는 유씨가 회장으로 명시돼 있고, 그는 청해진해운에서 매달 1500만원의 고문료를 받았다. 청해진해운은 부실 경영에 따른, 모자라는 수익을 벌충하기 위해 세월호에 규정보다 많은 화물을 실었고, 그만큼의 평형수를 덜 채워 배가 복원력을 잃고 침몰한 원인이 됐다. 이 외에 선실의 구조변경, 선장 등 선박직 선원들의 비정규직 채용 등 사고와 관련한 비리 의혹은 한두 개가 아니다.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를 통해 해외에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도 드러났다. 그런데도 유씨 일가는 검찰의 잇단 소환 요구에 불응하고 있다. 시간을 끌어 형사처벌과 피해자 손해배상 등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증거 인멸과 말 맞추기를 했을 것이란 짐작은 하고도 남는다. 유씨는 그동안 혐의가 드러난 측근들만을 검찰에 출석시켜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의혹을 사 왔다. 사고의 책임을 계열사에 떠넘기려는 ‘꼬리 자르기식’ 꼼수로 여겨진다. 그제는 대검 청사 앞에서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 신도들이 표적 수사라며 시위를 벌였고, 어제는 금수원에 신도들이 집결해 공권력 집행을 방해하려고 했다. 이는 300여명이 희생된 사고를 수사하는 공권력을 우롱하는 행위다. 세월호 참사의 의혹에 국민의 분노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끓고 있다. 수사 협조만이 유가족과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그동안의 소환 불응이 각본이라면 여기서 접는 것이 낫다. 검찰이 출석을 통보한 유씨와 강제 구인에 나선 대균씨는 피의자 신분이다. 하지만 검찰의 강수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제 발로 출석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신도들이 이들의 방패막이용으로 나서 충돌도 우려된다. 하지만 신병 확보는 빨라야 한다.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도 한 달이 돼 간다. 유씨 일가를 하루빨리 소환해야만 사고 원인은 물론 이들과의 연관성을 낱낱이 규명할 수 있다. [반론보도문] 유병언 전 회장 측은 유 전 회장이 청해진해운의 주식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의 실소유주가 아니라고 밝혀왔습니다.
  • 연세대 교수 시국선언 “세월호 참사, 스승답지 못한 우리 모습 반성하고 참회”(전문 포함)

    연세대 교수 시국선언 “세월호 참사, 스승답지 못한 우리 모습 반성하고 참회”(전문 포함)

    ‘연세대 교수 시국선언’ ‘연대 교수 시국선언’ 세월호 참사에 대한 추모의 마음과 함께 정부의 책임 있는 대책을 촉구하는 성명 발표에 대학교수도 동참했다. 연세대학교 교수들은 스승의 날 하루 전인 14일 “스승답지 못한 우리 모습을 돌아보며 겸허히 반성하고 참회하고자 한다”며 이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연세대학교 교수 131명(외국인 교수 15명 포함)은 이날 ‘슬픔을 안고 공동체 회복의 실천으로’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세월호 참사는 분명한 인재였다는 점에서 특별한 반성을 우리 모두에게 요구하고 있다”면서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우리가 동시에 목격한 것은 국가라는 제도의 침몰과 책임의식이라는 윤리와 양심의 침몰이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을 포함한 청해진해운에 일차적 책임이 있지만, 사고 발생 후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구조의 난맥상을 보여 온 정부당국의 책임도 결코 이에 못지않게 엄중할 것”이라며 “세월호 침몰 원인과 대처,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은 한 치의 의구심도 남김없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하고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번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물질적 탐욕에 젖은 나머지 생명의 가치를 내팽개친 황금만능주의, 편법과 탈법의 관행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여 온 결과중심주의에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범적으로 이루어 왔다고 자부해 왔음에도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삶과 생명에 대한 철학 및 성찰이 빈곤한 반인간적 사회인지를 여실히 증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세월호 참사와 함께 국민과 유가족들에게 참담함을 안겨준 우리 언론의 보도행태와 관련해서도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가족을 잃은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일부 언론의 태도와, 무기력하게 대처 과정을 지켜보기만 했던 정치권의 태도는 전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다”며 “언론은 갑갑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신문고의 역할을 제대로 담당해왔는지 겸허하게 자성하면서 불법과 탈법을 적극적으로 고발하고 민주주의를 위한 권력 감시를 올바로 수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이들은 “우리는 과정과 원칙을 무시한 채 결과만을 중시하고 비리와 이권으로 뒤엉켜있는 우리 사회를 질타하고 개혁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방조하며 이에 편승하려 하지는 않았는지 자성한다”며 “스승의 날을 맞이해 우리의 스승답지 못한 모습을 뒤돌아보며 가슴 속 깊이 뉘우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연세대학교 교수들의 성명’은 김왕배(사회학과)·김종철(법학전문대학원)·김호기(사회학과)·방연상(연합신학대학원)·윤혜준(영문학과)·이종수(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교육자로서의 입장을 밝히자는 뜻을 나누면서 준비했다. 이들은 성명서 국문본과 영문본을 완성한 후 연세대 전체 교수들과 공유해 참여 교수들의 서명을 받았다. 다음은 연세대 교수 시국선언문 전문. “슬픔을 안고 공동체 회복의 실천으로” 세월호 참사로 숨진 이들의 명복을 빌며 우리 연세대학교 교수 일동은 비탄한 심정으로 참회하고 성찰하는 마음을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꽃다운 나이에 어른들의 구조를 믿고 기다리다가 숨을 거둔 단원고등학교 학생들, 이들과 함께 끝까지 곁에 있다가 유명을 달리한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참담함과 비통함을 금할 길 없습니다. 아들딸의 시신을 붙들고 통곡하는 부모님들, 아직 시신조차 만나보지 못한 채 팽목항을 지키고 있는 부모님들의 처참한 심정에 가슴깊이 동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분명한 인재였다는 점에서 특별한 반성을 우리 모두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본분을 망각하고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도록 방치한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을 포함한 청해진해운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고 발생 후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구조의 난맥상을 보여 온 해경을 포함한 정부당국의 책임도 결코 이에 못지않게 엄중할 것입니다.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가족을 잃은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일부 언론의 태도와, 무기력하게 대처 과정을 지켜보기만 했던 정치권의 태도는 전 국민의 분노를 일으켜 왔습니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우리가 동시에 목격한 것은 국가라는 제도의 침몰과 책임의식이라는 윤리와 양심의 침몰이었습니다. 세월호 침몰의 원인과 대처 및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은 한 치의 의구심도 남김없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하고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이번 참사를 철저히 파헤치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저희들이 보기에, 이번 참사의 근본 원인은 물질적 탐욕에 젖은 나머지 생명의 가치를 내팽개친 황금만능주의, 편법과 탈법의 관행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여 온 결과중심주의에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범적으로 이루어 왔다고 자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삶과 생명에 대한 철학 및 성찰이 빈곤한 반인간적 사회인지를 여실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기력한 국가와 황폐해진 사회의 실상이 여지없이 드러난 세월호의 비극을 전국민적인 참회와 반성의 계기로 삼기를 제안합니다. 먼저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문을 탐구하는 우리 교수들부터 진지하고 겸허하게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과정과 원칙을 무시한 채 결과만을 중시하고 비리와 이권으로 뒤엉켜있는 우리 사회를 질타하고 개혁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방조하며 이에 편승하려 하지는 않았는지 자성합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의 스승답지 못한 모습을 뒤돌아보며 가슴 속 깊이 뉘우치고자 합니다. 나아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책임을 진 모든 이들도 우리의 반성과 참회에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국민의 안전·자유·행복의 보장에 소홀했던 현 정부를 포함한 정치권은 스스로 철저히 반성하면서 원인규명과 대책마련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기업들 또한 공정경쟁을 왜곡하고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있지 않았는지 진지하게 자신들을 돌아보고 정경유착이라는 낡고 잘못된 관행과 결별해야 합니다. 언론은 갑갑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신문고의 역할을 제대로 담당해왔는지 겸허하게 자성하면서 불법과 탈법을 적극적으로 고발하고 민주주의를 위한 권력 감시를 올바로 수행해야 합니다. 침몰한 세월호 안에서 구조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두 손 모아 기도하며 서로의 손을 붙잡고 격려하던 어린 학생들은 엄중한 역사적 숙제를 안기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이들의 죽음 앞에 대한민국의 모든 어른들은 근본적인 참회와 성찰에 기초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으로 응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탐욕과 비리, 생명경시 풍조가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석에서 말끔히 제거될 때까지, 그리하여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인간적인 삶을 누리고 나눌 수 있을 때까지 반성과 개혁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이들에게 엄숙하게 약속해야 할 것입니다. 어린 아들딸을 잃은 유가족 여러분들의 아픔과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고인들의 명복을 다시 한 번 간절히 빕니다. 2014. 5. 14 연세대학교 교수 일동 강상현, 강승혜, 강정한, 고광윤, 권수영, 권영준, 기하서, 김갑성, 김경모, 김도형, 김동노, 김동현, 김동환, 김명섭, 김성보, 김성태, 김세익, 김시호, 김영희, 김왕배, 김용민, 김용준, 김종철, 김준일, 김준환, 김철, 김충선, 김태환, 김택중, 김학진, 김학철, 김현미, 김현숙, 김혜림, 김호기, 나윤경, Linda Kilpatrick-Lee, Michael Michael, 마광수, Mandel Cabrera, 문상영, 문정인, 문창옥, 박경수, 박상영, 박상용, 박애경, 박준성, 박찬웅, 방연상, 백경선, 서상규, 서현석, 서홍원, 설혜심, 손영종, 손창완, 손호현, 송인한, 송현주, 신동빈, Anthony C. Adler, 안춘수, 양재진, 양혁승, 여인환, 오홍석, 원재연, William L. Ashline, 유현주, 윤대희, 윤태진, 윤혜준, 이경원, 이덕연, 이동귀, 이삼열, 이상길, 이원용, 이윤석, 이윤영, 이재원, 이종수(법전원), 이지현, 이진호, 이태정, 이태호, 이한주, 이희경, 장원섭, 전광민, 전수진, 전지연, 전현식, 정석환, 정애리, 정의철, 정종락, 정종열, 정종훈, 정희모, Jen Hui Bon Hoa, 조문영, 조용수, 조재국, 조현수, John M. Frankl, Joseph Hwang, 차혜원, 최건영, 최우영, 최윤오, 최종건, 최종철, 최준호, Carl Sobocinski, Krys Lee, Tae Lee, Terence Murphy, Pearl Kim Pang, Paul Tonks, 하연섭, Hans Schattle, 한균희, 한승헌, 한웅, 허대식, 현승준, 홍길표, 황금중 (외국인교수 15명을 포함한 총 131명)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자녀·측근 잠적에 수사 차질… 검찰 ‘유병언 소환’ 급선회

    자녀·측근 잠적에 수사 차질… 검찰 ‘유병언 소환’ 급선회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 자녀와 측근들이 집단으로 소환에 불응하고 잠적하자 13일 검찰이 결국 유씨 소환 카드를 꺼내 들었다. 횡령과 배임·탈세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자녀둘이 검찰과 연락마저 끊고 사실상 도주한 만큼 이를 총괄 지시하고 관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유씨에 대한 구속수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검찰은 당초 청해진해운의 운영상 비리와 실소유주 유씨 일가 비리를 입증하기 위해 일가의 계열사 대표, 장남 대균(44), 장녀 섬나(48), 차녀 상나(46), 차남 혁기(42)씨를 조사한 뒤 최종적으로 유씨를 불러 조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유씨 자녀들의 잠적과 ‘종교 탄압’ 등을 주장하며 수사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의 반발 등에 따라 유씨를 직접 불러 조사하기로 했다. 검찰은 혁기·섬나씨와 체포 대상에 포함되지는 않은 상나씨도 소환 통보에 불응하는 등 일가 모두가 검찰 수사를 고의적으로 피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날 잠적한 대균씨는 아이원아이홀딩스(19.44%)와 ㈜다판다(32%), 트라이곤코리아(20%), 한국제약(12%) 등 4개 관계사의 대주주로 동생 혁기씨와 함께 계열사 경영에 관여하면서 수백억원대 횡령·배임, 조세 포탈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아직 국내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 대균씨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자택과 경기 안성의 구원파 관련 시설 금수원 등에서 소재 파악에 나서는 한편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혁기, 섬나씨 외 최측근 2명에 대해서는 미 연방수사국(FBI)과 공조해 체포에 나섰다. 한편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지난달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탈출한 기관실 선원들이 부상당한 동료 선원을 목격하고도 이를 무시한 채 탈출한 정황을 포착했다. 합수부는 기관실 선원들로부터 ‘3층 기관부 통로에서 조리원 2명이 부상당해 있는 것을 발견하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조리원들은 몸을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부상이 심했지만 선원들은 이들을 구조하지 않았고, 해경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 조리원들은 결국 구조되지 못하고 실종됐다. 합수부는 기관실 선원을 비롯해 구속된 다른 선원들의 행동이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등에 해당하는지를 검토하고 있다. 합수부는 관련 법리를 검토한 뒤 15일 선장 이준석(69)씨 등 구속된 선박직 선원 15명을 일괄 기소할 예정이다. 인천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서울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목포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한 달에 절반은 ‘1선박 2선장’ 지휘체계 산으로 갔던 세월호

    ‘세월호’ 선장 이준석(69)씨는 정규직 선장인 신보식(48)씨가 휴가를 가 사고 당일 대신 운항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씨는 평소에도 신씨와 함께 선박을 운항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승무원 최모(58)씨는 13일 “이 선장은 신 선장이 한 달에 5일 휴가 갔을 때 외에도 평소 15일가량은 신 선장과 공동으로 운항을 맡아 왔다”고 밝혔다. ‘1선박 2선장 체제’였던 셈이다. 이씨는 2007년 3월부터 2013년 1월까지 오하마나호에서 1등 항해사와 선장으로 근무하다 퇴직한 뒤 세월호 계약직으로 온 ‘객원 선장’이었다. 이씨가 청해진해운 소속 승무원으로는 드물게 기독교복음침례회 신도였기에 선사 측이 배려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신씨가 선배인 이씨를 배려하자 이씨는 상당 부분 선박 운영에 직접 관여했다고 승무원들은 입을 모았다. 하지만 한 배에 선장이 2명 있으면 지휘체계가 분산돼 효율적인 선박 운영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배의 문제점을 고치는 데 소극적인 이씨와는 달리, 신씨는 선사 공무팀에 여러 번 개선을 건의했지만 묵살당했다고 한다. 기관장 출신들로 구성된 공무팀과의 ‘핫라인’은 기관장 박모(54)씨가 쥐고 있었다. 박씨가 선장처럼 행세한 점을 감안하면 ‘한 지붕 3선장’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최씨는 “신 선장 같았으면 그날(4월 15일)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출항을 강행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가 사고 당시 늦잠을 자고 있었다는 구체적인 증언도 나왔다. 이씨의 동선은 사고가 상당히 진행된 오전 9시까지 드러나지 않는다. 이씨는 평소 오전 6시 선원식당 문이 열리자마자 가장 먼저 와 식사를 하곤 했는데 이날은 식당을 찾지 않았다. 승무원 김모씨는 “오전 8시쯤 한 직원이 ‘선장이 아직 자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씨는 뒤늦게 오전 9시 전후 조타실을 찾았지만 위기상황에 적합한 지시를 내리지 못하고 당황한 모습을 보이는 등 지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씨는 결국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며 조타실에 40여분간 머물다 탈출 전 사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선장실로 갔다가 사태가 긴박해지자 속옷 차림으로 해경 구조보트에 올랐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정정 및 반론 보도문] 위 기사와 관련해 이준석 세월호 선장 등 청해진해운 직원의 90% 이상이 구원파 신도라고 볼 수 있다는 관계자 인용 보도는 사실과 달라 바로잡습니다.
  • 연세대 교수 시국선언에 해외학자 성명서까지…세월호 참사 학계 비판 잇따라

    연세대 교수 시국선언에 해외학자 성명서까지…세월호 참사 학계 비판 잇따라

    ‘연세대 교수 시국선언’ ‘해외학자 성명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와 함께 정부의 무능한 대처에 대한 학계의 비판이 잇따랐다. 연세대학교 교수 131명(외국인 교수 15명 포함)은 스승의 날 하루 전날인 14일 “스승답지 못한 우리 모습을 돌아보며 겸허히 반성하고 참회하고자 한다”며 이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슬픔을 안고 공동체 회복의 실천으로’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세월호 참사는 분명한 인재였다는 점에서 특별한 반성을 우리 모두에게 요구하고 있다”면서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우리가 동시에 목격한 것은 국가라는 제도의 침몰과 책임의식이라는 윤리와 양심의 침몰이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을 포함한 청해진해운에 일차적 책임이 있지만, 사고 발생 후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구조의 난맥상을 보여 온 정부당국의 책임도 결코 이에 못지않게 엄중할 것”이라며 “세월호 침몰 원인과 대처,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은 한 치의 의구심도 남김없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하고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번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물질적 탐욕에 젖은 나머지 생명의 가치를 내팽개친 황금만능주의, 편법과 탈법의 관행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여 온 결과중심주의에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범적으로 이루어 왔다고 자부해 왔음에도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삶과 생명에 대한 철학 및 성찰이 빈곤한 반인간적 사회인지를 여실히 증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세월호 참사와 함께 국민과 유가족들에게 참담함을 안겨준 우리 언론의 보도행태와 관련해서도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가족을 잃은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일부 언론의 태도와, 무기력하게 대처 과정을 지켜보기만 했던 정치권의 태도는 전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다”며 “언론은 갑갑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신문고의 역할을 제대로 담당해왔는지 겸허하게 자성하면서 불법과 탈법을 적극적으로 고발하고 민주주의를 위한 권력 감시를 올바로 수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이들은 “우리는 과정과 원칙을 무시한 채 결과만을 중시하고 비리와 이권으로 뒤엉켜있는 우리 사회를 질타하고 개혁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방조하며 이에 편승하려 하지는 않았는지 자성한다”며 “스승의 날을 맞이해 우리의 스승답지 못한 모습을 뒤돌아보며 가슴 속 깊이 뉘우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해외 학자들도 성명서를 내고 세월호 참사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남태현 미국 샐리스버리 대학 교수 등 5명의 학자들은 13일(현지시각)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에 경종: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와 민주적 책임 결여가 근본적 문제’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낭독했다. 이번 성명에는 교수 577명과 박사후 연구원 163명, 독립적 학자 334명 등이 참가했다. 특히 노마 필드 시카고대 교수, 낸시 에이블먼 일리노이대 교수 등 외국인 교수 130여명도 성명서에 서명을 해 눈길을 끌었다. 특정 사안에 대해 1000명이 넘는 외국 학자들이 서명을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들 교수들은 “세월호 참사는 단순히 비도덕적인 선장과 선원들의 일탈적 행위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최근 진행되고 있는 규제 완화와 민영화, 무능력과 부패에서 비롯된 미비한 구조 노력의 결과”라며 “사회 총체적인 비리와 부실이 신속하게 개혁되지 않는 한 이런 비극은 앞으로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다섯 가지 요구사항을 적시했다. 첫째, 생존자·희생자와 이들 가족에 대한 적극적인 치유와 정당한 배상을 요구했다. 둘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은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의 가장 기본적 의무임을 인식하고 책임을 질 것을 요구했다. 특히, 관련 관료들에 대한 엄중한 조사와 처벌을 요구하고 이들을 관리하는 데 실패한 청와대와 대통령도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셋째, 독립적인 특검 및 특별법 도입을 요구했다. 넷째, 무분별한 공적규제 완화와 민영화 정책을 철폐하고, 사람의 생명과 안전, 삶의 질을 기업 이익과 정부 편의 위에 놓으며, 경제적 이익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섯째, 방송 장악과 언론 통제를 위한 일체의 작업을 즉시 중단하고 언론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침몰] 구명조끼 양보 탈출 도운 살신성인… “그 희생 잊지 않을게요”

    “걱정하지 마, 나는 너희를 다 구하고 나갈 거야.” 정부가 12일 의사자로 인정한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22·여)씨와 김기웅(28), 정현선(28·여)씨는 배가 침몰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승객들의 구조를 돕다 목숨을 잃었다. 세월호의 선장 이준석씨가 속옷 바람으로 허겁지겁 탈출하는 사이 이들은 오로지 지켜야 할 승객들만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자신들은 구조되지 못하고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와 가족의 품에 안겼다. 의사자는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행위를 하다 사망한 사람들로,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정부는 분기별로 의사상자심사위원회를 열어 의사자를 정하고 있다. 의사자가 되면 유족들에게 보상금, 의료급여, 교육보호, 장제보호, 취업보호 예우가 이뤄지고 시신은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숨진 박씨는 배가 기울어 가슴까지 물이 차오르는 상황에서도 승객들을 안심시키며 필사적으로 구명조끼를 나눠 줬다. 구명조끼가 부족해지자 한 여학생에게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까지 양보하는 살신성인을 실천했다. 조끼를 건네받은 여학생이 “언니는요?”라고 묻자 박씨는 “선원들은 맨 마지막”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대학에 다니다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신 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세월호에서 일한 것으로 알려져 더 큰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박씨의 어머니는 서울대 미대생들이 모금한 성금을 “더 어려운 처지의 환자와 실종자를 위해 써 달라”며 양보하기도 했다. 김기웅씨와 정현선씨는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로, 함께 승객들을 구조하다 참변을 당했다. 김씨는 사고 당시 자고 있던 동료 선원 3명을 깨워 대피시키고는 정현선씨를 찾기 위해 다시 배로 들어갔다. 정씨와 승객 1명을 찾아낸 김씨는 함께 탈출을 하려 했지만 아직 선내에 있는 승객들을 두고 차마 여객선을 빠져나올 수 없었다. 김씨와 정씨는 동행한 승객을 먼저 탈출시킨 뒤 기울어지는 선내로 다시 뛰어 들어갔다. 인천대 학생이던 김씨는 군에서 제대하고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4년 전부터 선상에서 불꽃놀이 진행 아르바이트를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책임감이 강한 10년 경력의 베테랑 승선원이었다. 김씨와 정씨는 4년간 교제했으며 오는 9월 결혼을 약속했었다. 정부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다른 희생자들의 의사상자 신청서를 보내오는 대로 조속한 시일 내 의사상자심사위원회를 다시 열어 의사상자 인정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실종자 수색과정에서 사망한 민간잠수사 이광욱씨, 제자들의 탈출을 돕다가 사망한 안산 단원고 남윤철·최혜정 교사, 친구들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정차웅·최덕하군에 대한 의사자 인정이 추진될 예정이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열린세상] 안전한 사회를 향한 출구 찾기/강순주 건국대 건축학부 교수

    [열린세상] 안전한 사회를 향한 출구 찾기/강순주 건국대 건축학부 교수

    국민 대부분이 언딘을 알게 됐다. 언딘이 무엇을 하는 회사이고 그 이름이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이름은 안다. 모든 뉴스와 관심이 세월호의 비극적 침몰로 쏠려 있기 때문이다. 먼바다도 아닌 연안에서 300여명의 실종자 중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하고 ‘구조’라는 말만 외치다 수장시킨 현실이 모든 국민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다. 죄책감과 공포, 그리고 불신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우리가 가야 할 출구는 어디인가. 희생자에 대한 예우를 마치고 우리는 또다시 위험하고 믿을 수 없는 사회로 돌아갈 것인가. 그러다 이미 예정된 비극적 사고들을 한 해가 멀다 하고 다시 맞이할 것인가. 청해진해운 관련자들의 사법처리와 희생자들에 대한 예(禮)를 넘어 우리가 가야 하는 방향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일단 국가안전처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단순히 기구의 설치로 안전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믿는 국민은 이제 거의 없다. 기구와 제도를 급조하는 것은 지금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본질적 과제를 못 보게 할 위험마저 있다. 제도를 만들더라도 몇 개월 내에 급조할 게 아니라 본질적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수년의 시간을 두고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서 필자는 세월호 참사를 보며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컨트롤타워 내지 대책본부의 기능 문제다. 그동안 ‘대책 없는 대책본부’에 대한 질타는 수없이 이뤄졌다. 가장 큰 문제는 대책본부가 권한을 갖고 의사 결정을 위한 기능이 전혀 없이, 숫자만 취합하는 구조였다는 데 있다. 법령의 규정과 상관없이 대책본부가 자료의 취합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작동 불능의 기구였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이걸 순조롭게 작동하는 구조로 만드는 게 첫 번째 과제일 것이다. 둘째는 해경의 문제다. 해경이 여러 비판에 직면해 있지만 생각해 보면 해경도 ‘경찰’이다. 한국의 경찰은 기본적으로 진압, 수사, 규제와 통제 그리고 억압의 상징이었다. 아무리 경찰에게 인명 구조를 하라고 임무를 줘도 경찰의 유전자에 ‘구조’란 없다. 육지에서는 119와 소방대가 있지만, 해양사고의 경우 구조를 전담하는 기동대가 없는 셈이었다. 해양경찰에 모든 걸 맡겼지만 구조의 유전자, 의식, 인적 능력, 장비가 안 갖추어졌다는 사실을 이제 와서 확인하고 있다. 셋째는 안전의 구조적인 문제다. 안전사고의 뿌리는 부정부패다. 뇌물, 비리, 관행 의식 때문에 안전은 위협받고 마침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게 된다. 이번과 같은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서 안전 관련 제도와 기구, 시설에만 손을 댈 것이 아니라 먼저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야 한다. 민관의 유착, 관피아의 특권과 횡포를 뽑아내지 못하면 우리에게 안전한 사회는 요원한 과제가 될 것이다. 안타깝지만 또 다른 모양의 세월호가 한국사회의 곳곳에 숨어 있고 구속된 선장과 같은 무책임한 리더들이 여러 분야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배의 방향타를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세월호의 참사 같은 비극적 사건이 또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지럽게 많은 후보자의 이름과 사진이 걸려 있는 걸 보면서 마음이 착잡하다. 너무도 엄숙하고 어려운 책임이 부여된 자리인데 저리도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울 뿐이다. 정당한 수당 이외에 생기는 부정한 반대급부 때문에 공직이 저렇게 인기 있는 거라면 이번 기회에 완전히 그런 사람들을 가려내고 그런 범죄에 연루됐을 때는 철저히 처벌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부패에 대한 관용이 왜 그렇게 너그러운지 이해하기 어렵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진 상황 앞에서 모든 국민이 참담해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출구를 모색하는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우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섣부른 좌우 이념의 접근도 쓰나미 같은 성난 민심에 의해 묻혀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지도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오늘의 눈] 세월호 그 후… 뉴스 프레임 어땠나/오상도 문화부 기자

    [오늘의 눈] 세월호 그 후… 뉴스 프레임 어땠나/오상도 문화부 기자

    참 아팠던 4월이다. 그리고 여전히 잔인한 5월이다. 예전 같으면 푸른 녹음을 노래할 시기이지만, 지금은 상상할 수 없던 참사가 우리의 마음을 짓누른다. ‘세월호 사고’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이를 교통사고에 비유한 것으로 알려진 KBS의 보도국장이 사임하면서 ‘재난보도’와 관련된 안팎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앞뒤 맥락을 거두절미했다는 당사자의 해명이 있었지만, 국가재난방송을 책임진 주관 방송사에서 이 같은 논란이 불거졌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다. 1968년 맥스웰 매콤스와 도널드 쇼는 ‘어젠다 세팅 이론’을 내놨다. 제한된 미디어 효과이론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했으나 오히려 신문과 방송 등 미디어의 주요 이슈가 대중에게 전이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1990년대 중반 이 이론은 ‘프레이밍 이론’으로 진화했다. 미디어가 ‘방향성’을 던진다는 것이다. 뉴스보도의 ‘주관성’을 인정하고 사려 깊은 선택과 보도를 강조했다. 지난달 16일 참사 이후 일부 언론은 몇 가지 프레임에 사로잡혔다. 갈등의 프레임, 책임 강조의 프레임, 전문가 프레임, 경마 프레임 등이다. 이 가운데 책임 강조의 프레임은 선장, 해경, 유병언 전 회장 일가, 정부와 청와대를 넘어서 끝없는 폭탄 돌리기로 이어졌다. 카페리호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해군 관계자나 가짜 여성 잠수사가 등장해 전문가로 행세하는 전문가 프레임도 엿보였다. 속보경쟁에 사로잡힌 일부 방송의 경마 프레임도 도마에 올랐다. 유족들의 분노와 비탄을 가감 없이 시청자에게 노출하며 이번에도 재난보도의 원칙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논란을 불러왔다. 한 종합편성채널이 처음 노출한 화면 상단의 구조자·실종자·희생자 숫자 표기는 때론 민망할 정도였다. 한 지상파 방송은 사고 발생 첫날 보험금을 운운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수일째 뉴스속보가 이어질 무렵 방송사 편집PD들과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서로 치열하게 눈치만 보고 있다. 한쪽에서(속보체제를) 풀면 자연스럽게 따라가려 준비 중이다. 예능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 중견 방송작가는 “사건을 진지하게 되짚으려는 다큐멘터리 기획안이 (상부로부터) 거절당했다”고 전했다. 최근 심야 방송을 시청하다 화면 상단의 노란 리본이 자취를 감춘 사실을 깨달았다.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난 연휴 때는 관광지마다 상춘객이 넘쳐나지 않았던가.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그렇게 잊히는 것일까. 미국은 9·11 사태를 연방정부 차원의 범국가 재난통신망 구축의 계기로 삼았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이를 추진해 온 우리는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등 사고가 터지면 늘 국민 정서가 쉽게 달아 올랐다가 이내 식어버리곤 했다. 1993년 10월, 292명의 귀중한 목숨을 앗아간 서해 훼리호 참사를 우리가 쉽게 잊지 않았다면 세월호 참사는 없었을지 모른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게 만드는 ‘공감의 프레임’이야말로 지금 언론의 사명이다. sdoh@seoul.co.kr
  • 질서가 몸에 밴 아이들이었을 뿐인데…

    질서가 몸에 밴 아이들이었을 뿐인데…

    “단체 수학여행 학생들을 많이 접해 봤지만 단원고 학생들처럼 질서 있고 말 잘 듣는 경우는 처음 봤습니다.”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들과 교사들의 의연했던 행동들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이 생존 승무원들에 의해 나왔다. 학생과 교사들은 위기의 순간에도 질서정연하게 선내방송 지시에 따랐지만 이 같은 행동이 결과적으로 희생을 키웠다는 아쉬움을 지울 길이 없다. 세월호에서 배식을 담당했던 승무원 김모(51·여)씨는 “밥이나 반찬을 더 달라고 하는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면서 “때문에 배식 시간이 다른 때보다 30분이나 빨리 끝났다”고 말했다. 조리장 최모(58)씨는 “교사들도 학생들 뒷줄에 서서 배식을 기다리는 등 그 선생에 그 학생들이었다”면서 “학교 전체가 교육이 잘 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사고 당시 단원고 학생들은 ‘침착하게 대기하라’는 선내 방송에 따라 객실에 그대로 머물렀다. 특히 4층의 경우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탈출이 용이한 브리지(조타실)가 객실 앞쪽에 있었지만, 그곳으로 달려간 학생과 교사는 한 명도 없었다. 객실 옆 승무원실에 있던 필리핀 가수들조차 브리지로 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학생들은 방송 지시대로 자리를 지켰다. 당시 선박 지휘부에 해당되는 브리지에서는 이준석(69) 선장과 항해사·조타수 등이 탈출을 도모하고 있었다. 50대 이상 일반 승객 생존율이 학생들보다 높았던 것은 방송을 믿지 않고 밖에 나갔다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탈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승무원 김씨는 “말 잘듣는 학생들은 희생되고 방송을 믿지 않은 승객들은 살아남은 결과가 됐다”고 탄식했다. 학생들은 탑승 이후 사고 전까지도 반듯한 태도를 보였다고 승무원들은 전했다. 객실 서비스를 보조한 신모(48·여)씨는 “학생들이 불편·불만을 드러내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면서 “학생들은 대개 떠들기 마련인데 이들은 서너 명씩 모여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안내데스크 강혜성(32)씨는 선원들의 탈출 사실을 모른 채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고 대기하라”는 방송을 되풀이하다 나중에 빈사상태로 구조됐지만 검찰에 구속됐다. 구조 매뉴얼상 강씨는 퇴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지위가 아니었지만 대처에 아쉬움이 남는다. 사고 당일 오전 9시 30분쯤 해경 헬기와 함정이 도착해 소음이 심했음에도 강씨는 승객들을 방치하다 10시쯤에야 밖으로 뛰어내리라는 방송을 내보냈지만 이미 배가 80∼90도 기울어져 탈출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한 승무원은 “강씨는 성실했지만 고지식한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원칙을 지켰어야 할 선원들이 유유히 탈출한 뒤 식사 대접까지 받는 순간, ‘배운 대로’ 행동한 학생들은 차디찬 바닷속에서 생명이 꺼져가는 순간 누구를 탓했을까.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세월호 1등항해사가 세월호 실질적 지휘?…이준석 선장은 ‘바지선장’이었나

    세월호 1등항해사가 세월호 실질적 지휘?…이준석 선장은 ‘바지선장’이었나

    ‘세월호 1등항해사’ 세월호 1등항해사가 세월호의 실질적 선장이었을 정황이 포착됐다. 세월호 침몰 원인을 수사 중인 검경합동수사본부(본부장 안상돈 광주고검 차장검사)가 지난 4월 16일 사고 직후 구조 요청과 회사 보고를 담당했던 세월호 1등항해사 강모(42)씨의 역할을 주목하고 있다. 선원들에게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할 경우, 강씨의 말과 행동이 핵심적 증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합수부는 최근 세월호 선원들을 대질신문하는 과정에서 선장 이준석(69)씨가 사고 직후 지휘력을 상실했다는 진술을 다수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사고 당시 조타실을 비웠다가 사고 직후 복귀했지만, 비상조치와 관련해서는 선원들에게 아무런 지시를 내리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해경 구조선이 도착하자 이씨는 속옷 차림으로 가장 먼저 탈출했다. 반면 세월호 1등항해사 강씨는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와의 교신을 담당하고, 청해진해운 관계자들과도 집중적으로 통화했다. 강씨는 진도 VTS와의 교신에서 “해경 구조선이 언제 도착하냐” “선내 방송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강씨가 탈출 직후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모습도 해경의 동영상에 포착되기도 했다. 합수부는 이 같은 강씨의 행동으로 미뤄볼 때, 선장 이씨 다음으로 세월호 탑승 경험이 풍부한 강씨가 선원들의 행동을 실질적으로 통제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선장, 팬티 바람 탈출한 진짜 이유가…

    세월호 선장, 팬티 바람 탈출한 진짜 이유가…

    세월호 기관장 박모(54)씨가 실질적인 선장 노릇을 했고, 선원 ‘1호 탈출’을 주도했다는 전·현직 승무원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선장 이준석(69)씨가 사고 당시 팬티만 입고 다급하게 탈출했던 것도 자신이 상황 통제를 하지 못하고 사실상 박씨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세월호 서비스직 승무원인 최모(58)씨와 김모(51·여)씨는 8일 “정규 기술직(선박직)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박씨가 흔히 말하는 실세였고, 직원들 위에 군림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매일 10시쯤 세월호 3층 간이카페에서 열리는 회의에서 계약직 선장 이씨보다 발언권이 강했고, 자신의 영역이 아닌 일에도 간섭하는 등 월권행위가 잦았다고 한다. 세월호 기술직 선원 15명 가운데 정규직은 박씨를 비롯한 4명에 불과하다. 선원 ‘1호 탈출’을 주도한 것도 선장 이씨가 아니라 기관장 박씨인 것으로 밝혀졌다. 세월호 사고 초기 기관사 등 6명은 박씨의 무전기 지시에 따라 3층 갑판에 모였다가 해경에 의해 맨 처음 구조됐다. 선체 밑 기관실에 있던 2명은 3층으로 올라왔고, 박씨와 함께 있던 기관사 이모씨, 기관실 보조원인 조기수 3명 등 모두 7명이 합류해 탈출했다. 이들이 탈출할 당시 선원식당에서 빠져나온 김씨가 “식당에 3명이 갇혀 있다”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박씨는 “조리원들까지 어떻게 신경 쓰느냐”며 서둘러 해경 보트를 탄 것으로 확인됐다. 이 시간이 지난달 16일 오전 9시 30분쯤으로, 선장 이씨 주도로 선원 탈출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9시 37분보다 이른 시각이었다. 박씨는 검찰 수사에서 “배가 많이 기울어 기관실 선원들에게 전화를 해 탈출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선체 맨 위인 5층 조타실에 모여 있던 선장 이씨와 항해사·조타수 등 8명은 9시 45분쯤 2차로 구조됐다. 박씨가 최초 탈출을 주도했다는 것은 선장 이씨가 팬티 차림으로 다급하게 구조보트에 올랐던 사실이 뒷받침한다. 박씨는 업무 외의 사적 영역에서도 횡포를 일삼아 고분고분한 직원에게는 당직 등에서 편의를 봐주는 반면, 밉보인 사람은 심하게 구박해 지난해 말에는 30대 기관사가 견디지 못하고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직원은 “박씨의 행위가 성추행에 해당되는 것도 많았지만 위세가 등등해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관장의 득세는 세월호에 한정되지 않은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청해진해운 전직 간부 최모씨는 “선사의 기형적 직무구조로 기술자인 기관장이 득세하고 선장은 홀대받았다. 이런 구조에서 선장의 책임 있는 위기대응을 기대하기는 힘들었을 것”고 밝혔다. 이어 “선내 위계질서가 엉망이 돼도 기관장 출신들이 잡고 있는 선사 공무팀을 의식해 말도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라며 “선장도 먹고살기 위해 공무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데스크 시각] 단원고 학생들도 ‘의사자’다/조현석 사회부 차장

    [데스크 시각] 단원고 학생들도 ‘의사자’다/조현석 사회부 차장

    얼마 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만난 한 조문객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모두를 의사자(義死者)로 지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세월호 실종·희생자 부모와 비슷한 나이대인 그는 “과거 대형 참사와 달리 국민들의 자존심마저 무참히 짓밟은 참사라 더 가슴 아프다”면서 “학생들의 명예 회복이 우선돼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의사자로 지정되려면 요건이 까다롭다”며 말끝을 흐렸었다. 침몰 순간까지 승객들을 구조하다 숨진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씨 등에 대한 의사자 지정도 구조행위 입증서 등의 문제로 미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쉽게 맞장구를 칠 수는 없었다. 그러자 그는 “선장이 도망가고 구조가 우왕좌왕했지만 학생들은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질서 정연하게 움직였다. 선장의 잘못된 지시였음에도 한꺼번에 몰려나가면 배가 기울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선내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에 따라 아무도 갑판으로 나오지 않았다”며 언론에서 학생들의 의사자 지정을 촉구해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꽃다운 나이에 희생된 학생들의 명예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수차례 더 들었다. 돌이켜보면 학생들은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어느 의사자들 못지않은 의로운 행동을 보여줬다. 많은 학생들이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도 학교에서 배운 대로 어른들의 지시에 따랐고, 숭고한 희생정신을 발휘하기도 했다. 한 희생자 부모가 공개한 동영상에는 학생들이 자신보다 더 힘든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는 등 누구라 할 것 없이 서로를 위하는 장면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자 학생들은 “절대 움직이지 말래”하며 서로를 다독거렸다. 한 학생은 “구명조끼 입어”라며 급박한 상황에서 서로를 챙겼고, 또 다른 학생은 “내 구명조끼 입어”라고 친구에게 구명조끼까지 양보하기도 했다. 혼자 살겠다고 승객들을 내버려두고 가장 먼저 탈출한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의 행동과는 너무나 달랐다. 한 학생은 혼자 탈출할 수 있었음에도 무서워 울먹이는 친구를 다독이며 선실에 함께 남았다는 말도 전해진다. 의사자는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정된다. ‘직무 외의 행위’로 위해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을 구하다가 사망했을 것을 요건으로 하고 있다. 이 같은 까다로운 현행 법으로는 학생들의 의사자 지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의사자 지정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구조행위 입증을 위한 목격자나 증거 자료 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까다로운 잣대를 적용하기에 앞서 꽃다운 나이에 펴보지도 못하고 어른들의 잘못으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학생들의 명예를 회복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관련법을 탄력적으로 해석해 적용해야 한다.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위기가 허술한 경제 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면, 이번 사고는 안전불감증, 민관유착, 책임회피 등 사회 구조와 의식을 바꾸는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학생들의 죽음이 외롭고 쓸쓸하지 않도록, 그리고 영원히 기억되도록 세월호 침몰 사고로 희생된 학생 전원을 의사자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hyun68@seoul.co.kr
  • 실종·구조자 집계 믿을 수가 없다

    세월호 사고 22일째인 7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의 집계 오류로 33명까지 줄었던 실종자가 35명으로 늘어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앞서 대책본부는 지난달 16일 오전 승선 인원을 477명으로 밝혔다가 네 차례의 수정 끝에 18일에 476명으로 정정 발표하는 등 혼선이 끊이지 않아 불신을 자초했다.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은 이날 수색구조상황 중간발표에서 “현재까지 잠정 확인된 인원은 탑승자 476명 중 생존자 172명, 사망자 269명, 실종자 35명”이라고 밝혔다. 탑승자 수에는 변동이 없었지만, 공식 집계보다 구조자는 2명 줄었고, 실종자는 2명 늘어난 것이다. 김 청장은 구조자인 양모씨가 팽목항에 도착한 뒤 구조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양**’과 ‘강**’로 중복 기재한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고, 또 다른 구조자 김모씨는 탑승하지도 않은 형과 함께 구조됐다고 진술한 것을 발견해 구조자 숫자를 정정했다고 설명했다. 또 탑승자 명부와 승선 개찰권에 없던 중국인 이모(38)씨와 한모(37·여)씨의 신용카드 매출전표를 확인, 2명의 실종자가 늘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오후 9시쯤 고명석 대책본부 대변인은 “추가 실종자로 발표한 중국인 두 명은 이미 사망자 명단에 포함됐던 중국동포 연인으로 확인됐다”며 4시간 만에 김 청장의 설명을 번복했다. 또 현장에 투입된 잠수사가 젖병을 목격했고, 실종자들이 전송한 동영상에서 아기울음 소리가 들렸다는 주장에 대해 김 청장은 “영유아 탑승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여일 동안 해경이 사망·구조자 집계 등을 놓고 오락가락한 점을 감안하면 승선자 명단이 또 한 번 바뀔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또한 김 청장은 “사망자 269명 가운데 235명이 구명조끼를 착용한 채 수습됐다”고 밝혔다. 열 명 중 아홉 명은 구명조끼를 입고 애타게 구조를 기다렸던 셈이어서 이준석 선장 등 선박직 선원들의 무책임한 탈출과 해경의 더딘 구조가 아니었다면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는 사실이 또 확인됐다. 한편 전날 구조작업 중 숨을 거둔 민간잠수사 이광욱(53)씨는 산업잠수기사·기능사 등 국가공인 자격증이 없었으며 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김 청장은 “중요한 것은 자격증이 있느냐가 아니라 잠수 실력”이라면서 “워낙 긴급한 상황에서 갑자기 투입되다 보니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진도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檢, 세모 계열사 이사·주주까지 ‘정조준’… 10여명 계좌 추적

    檢, 세모 계열사 이사·주주까지 ‘정조준’… 10여명 계좌 추적

    세월호 침몰 사고와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를 둘러싼 검찰 수사가 선사 청해진해운과 세모그룹 계열사 관계자에 이르기까지 대폭 확대되고 있다. 검찰은 유씨가 경영 개입 창구로 활용한 것으로 알려진 ‘높낮이회’ 모임의 실체 규명에도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승객 구조 의무를 저버린 이준석(69) 선장 및 선원들과 함께 청해진해운에 책임을 묻고 기형적인 문어발식 계열사 경영을 통한 유씨 일가의 비자금 및 은닉재산 조성 과정을 밝혀 이에 가담한 계열사 전현직 임원은 물론 주주까지 전원 사법처리하겠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다. 7일 검찰 등에 따르면 유씨 일가 수사를 진행 중인 인천지검 특별수사팀(팀장 김회종)은 유씨 일가의 계열사인 천해지, 트라이곤코리아, 다판다, 아해, 새무리, 세모, 클리앙, 소쿠리상사 등의 전현직 이사와 감사, 주주 등의 금융계좌를 확보해 거래 내역을 추적하고 있다. 각 계열사 대표에 대한 수사뿐만 아니라 계열사 주요 관계자들의 금융거래 내용까지 확인해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물론 비리 의혹의 정점인 유씨와 장남 대균(44), 차남 혁기(42)씨의 범죄 혐의를 입증하겠다는 복안이다. 검찰은 이를 위해 아이원아이홀딩스 감사 출신의 박승일 천해지 이사와 김동환 천해지 감사, 세모 이사 출신인 황호은 새무리 대표이사를 비롯해 트라이곤코리아 감사 한모씨, 다판다 주주 김모씨, 아해 이사 김모씨와 전 이사 박모씨, 아해 전 감사 전모씨, 클리앙 이사 구모씨, 감사 김모씨, 소쿠리상사 감사 이모씨 등 10여명의 금융계좌를 살펴보고 있다. 검찰은 또 청해진해운 측이 세월호를 증축하는 과정에서 유씨의 지시를 따랐다는 고창환(67) 세모 대표이사의 진술을 토대로 유씨가 공식 직위 없이 사실상 경영에 개입한 혐의에 대해 법리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검찰은 기독교복음침례교(일명 구원파)의 총본산인 금수원에서 높낮이회라는 모임을 열고 유씨가 계열사 대표 지명과 신사업 진출 등을 지시했다는 취지의 관련자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유씨가 높낮이회를 통해 경영에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검찰은 이날 유씨의 측근인 천해지 대표이사 변기춘(42)씨와 세모 대표이사 고씨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 등으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유씨의 차남 혁기씨와 친구 사이로 알려진 변씨는 유씨의 사진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고씨는 유씨를 40년 넘게 수행한 측근으로 한국제약 이사직과 아이원아이홀딩스 이사를 역임했다. 인천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서울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서울광장] ‘캐비닛 행정’과 팽목항의 모래알/정기홍 논설위원

    [서울광장] ‘캐비닛 행정’과 팽목항의 모래알/정기홍 논설위원

    세월호의 침몰 참사 이후 만났던 전·현직 공직자들이 분개했다. 케케묵은 조직 체계, 변함없는 인사 관행이 공직사회를 무능의 나락으로 빠뜨렸다는 자탄(自歎)이었다. 상주의 심정이어도 모자랄 판국에 이들은 왜 자기 직장을 대놓고 고발할까. 정부수립 이후 60여년이든, 경제개발시대 후의 30~40년이든 뒤틀려 있는 공무원 조직을 지금에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반성과 회한이 깔려 있다. 정무직을 지낸 공직자는 25년 전의 일을 상기했다. “1980년대 말 미국 대학에 국비 유학한 공무원들을 관리한다며 총무처가 직원들을 유학 보냈다”고 개탄하며 “공직 수술의 처음은 조직과 인사 기능”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이런 유물과 같은 관행들이 이번 사고에서 드러났다고 진단했다. 중견 공직자는 안전행정부의 조직 개편을 사례로 지목했다. 명패를 고쳐 달았으면 안전부서의 순위가 먼저여야 하는데도 재난기능이 총무기능에 밀려나고, 시늉만 낸 ‘안전행정’의 틈새가 참사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세월호 참사 20여일은 공직의 안일함과 무능함을 확인시키기에 충분했다. 현장에서 반신불수가 된 국가기관의 뒤뚱거림을 빠뜨림 없이 국민들은 보았다.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 안행부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책임 회피와 이해타산을 드러냈다. 승객을 놔두고 먼저 배에서 빠져나온 선장과 진배없었다. 와중에 진도 해역은 분노와 인내의 끝을 시험하는 가혹한 장(場)이 되고 말았다. 이들의 잘못된 자초지종은 수사로 밝혀질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극을 계기로 국가개조 수준의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총리실 산하에 재난·재해 컨트롤타워격인 국가재난안전처(가칭)를 신설하기로 했다. 행정의 적폐(積弊)는 무엇이고, 재난행정의 현주소는 어디인가를 자문한다. 국민은 ‘셀프 개혁’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곧추세우고 있다. 공직 개혁은 청와대가 주도하고, 조직을 관장하는 안행부는 실무를 맡을 것이다. 1년여 만에 이름을 다시 바꿔야 할 안행부의 처지가 아이러니할 뿐이다. 안행부로선 개혁 과정에 재난분야는 물론 전자정부 등 일부 조직을 다른 기관에 넘겨야 할지 모른다. 눈물을 머금고 수족인 마속을 칼로 밴 제갈량의 심중을 헤아려 개혁에 임해야 한다. 재난안전처의 인력 수급은 특수직렬을 만들어 인사 불이익을 없애야 한다. 재난분야는 전문성을 필요로 하지만 선호도가 낮아 기피돼 왔다. 안행부의 조직 개편이 실패로 끝난 게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국민의 재산과 인명은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다. 이참에 현행 연공서열식 인사 틀인 계급제를 성과제인 직위분류제로 바꾸는 작업도 해야 한다. 공직자의 최고 관심사는 인사다. 능력에 따른 승진 구도가 전제돼야만 열심히 일한다. 인사가 공직의 자양분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년이 보장되거나 ‘전관예우’에 목매어서도, 개방형 직위가 관료 위주여서도 안 된다. ‘관피아’(관료 마피아)가 모피아·해피아로 쪼개지고 공직 기득권의 동아줄을 놓을 줄 몰라서야 되겠는가. 10년 전 정보통신부에서 캐비닛 소동이 있었다. 진대제 당시 장관이 부서를 돌다가 “캐비닛을 열어 보라”고 했다가 “장관이 직원의 캐비닛까지 들여다보냐”는 직원들의 비아냥을 된통 받았다. 보관 시한 3년인 서류들이 8년째 그 안에 쌓여 있었다. 진도 구조현장의 한 공무원은 “3200여개나 되는 현장 재난 매뉴얼이 정부기관의 캐비닛에 쌓여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장 행정의 중요함을 말한다. 공직자의 능력은 행정 현장에서 인정받아야 한다. 공직자란 자리가 가시방석이고 부끄러운 지금이다. 일본은 60년 전 세월호와 같은 대형 침몰 사고로 168명을 잃었지만 해상안전대책을 다지는 계기로 삼았다. 학생들이 수영 미숙으로 사망해 전국 학교에 수영장을 만들어 교육했다. 공직자들은 진도를 기록하고, 진도 팽목항 한 줌의 모래를 사무실에 옮겨놓고 참사를 새기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다. “우리가 속아도 너무 속았다”고 절규하는 유족의 한을 씻는 길이다. hong@seoul.co.kr
  • [안전 업그레이드] (2) 내수면 선박

    [안전 업그레이드] (2) 내수면 선박

    충주호에서 운항하는 유람선과 행정선의 노후 정도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 당시의 선령 규제 완화가 내수면 선박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6일 서울신문 취재 결과 20년 전인 1994년 충주호 유람선 화재사고 당시에도 운항하던 유람선이 지금도 관광객을 태우고 있다. 유람선인 충주1호와 충주2호는 1986년 진수됐고, 충주6호와 단양1호, 청풍1호는 1987년 진수됐다. 최신형이라는 충주9호조차 1993년에 진수돼 20년이 넘었다. 행정선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충주소방서 수난구조대가 운영하는 소방정인 충북701호는 1997년, 충주시가 운영하는 충북507호는 1998년 진수됐다. 충주경찰서 순찰정인 충북102호는 1987년 진수됐다. 내수면 선박에 대한 법 규정도 미비해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충주호에서는 항로지도가 없어 유람선 운영 회사인 충주호관광선이 자체적으로 항로지도를 만들어 사용하는 실정이다. 내수면 선박 선령을 규정하는 근거 규정도 모호하다. 소방방재청에선 “선령 20년, 10년간 별도 검사”로 규정한 해운법 선령 조항이 내수면 선박에도 적용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해운법은 바다를 운항하는 선박에 적용되는 것으로 내수면 선박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 지적에 따르면 내수면 선박에는 선령 규제조차 없는 것이 된다.“20년 전 충주호 유람선에 탔다가 사고를 당한 승객 상당수는 단체관광을 온 노인들이었다”는 얘기를 할 때 전승룡씨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기관사인 그는 충주호에서만 25년간 배를 몰았다. 전씨는 사고 이후인 1997년 ‘충주호 수난구조대’ 창설과 함께 기관사로 특별채용됐다. 수난구조대 사무실에서 호수 맞은편을 바라보면 관광선 여러 척이 정박해 있는 선착장이 한눈에 보였다. 그는 사고 유람선이 속한 회사에서 기관장으로 일했다. 사고 책임을 지고 구속된 선장과 갑판장 등은 모두 그가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었다. 그는 “정원 초과 때문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도 결국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뒤이어 무심한 듯 말했다. “그래도 책임은 져야죠.” 충주호 수난구조대는 대장을 포함해 10명이 일한다. 항해사, 기관사, 구조대원 3명이 한 조가 돼 3교대로 근무한다. 김정식 대장은 근무 순번을 “주간 근무(오전 9시~오후 6시) 이틀, 야간 근무(오후 6시~오전 9시) 이틀, 비번 이틀”이라면서 “주주야야비비”라고 말했다. 하지만 비번이라고 해도 언제든 집합할 수 있어야 하기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상황이 발생하면 근무자 3명은 즉시 고속구조보트를 타고 출동한다. 뒤따라 비번자들이 제트스키, 소방정 등을 타고 충주소방서 소방관들이 도착할 때까지 인명구조와 화재진압을 하도록 돼 있다. 이호천 항해사는 “팀워크가 중요하다”면서 “솔직히 식구들보다 대원들이 더 친하다”고 말했다. 1년에 50차례가량 출동한다. 수난구조대는 외진 곳에 있다. 밥도 직접 지어 먹어야 한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인력 충원이다. 충분한 인력이 없다면 시민안전은 공염불이라고 했다. 초동대응에서 핵심인 고속구조보트에서 항해사는 키를 잡고 있어야 하고 기관사는 기관을 살피면서 인명구조를 거든다. 따라서 초동대응으로 인명구조를 할 수 있는 인력은 1.5명에 불과하다. 소방정은 인명구조와 화재진압을 동시에 할 수 있다. 1분에 3000ℓ를 분사할 수 있는 화재진압 장비 2개를 갖췄다. 하지만 전체 10명 중 먼저 출동한 3명과 고속구조보트 3명을 빼고 나면 승선 인원 16명인 소방정에 탑승할 수 있는 대원은 4명에 불과하다. 한 대원은 “처음 수난구조대 창설을 준비할 때는 18명이 근무하는 방식으로 하려고 했는데 예산 부족을 이유로 9명으로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인력 부족은 수난구조대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충주시는 국내 최대 담수면적(90.5㎢)과 거리(53㎞), 거기다 관광선까지 운행하는 충주호가 있는데도 수상레저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직원이 단 한 명뿐이다. 윤영희 주무관은 3년간 항해사로 상선을 탄 경력이 있는데, 세월호 침몰 이후 현장 점검에 각종 회의, 서류작업 등에 시달리고 있다. 소방방재청 재난대비과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내수면 선박 관리는 일차적으로 지방자치단체 소관이지만 5t 이상 88척의 안전검사 등은 방재청 소관이다. 그 모든 걸 방재청에서 유일한 해양수산직인 주무관이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그도 낮에는 회의하고 밤에는 상부에 제출할 서류 작업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장비 교체를 위한 예산 배정이라고 사정이 좋을 수 없다. 충주호를 운항하는 소방정은 1997년 진수했다. 수난구조대에서 38㎞ 떨어진 장회나루까지 최고속도인 18노트(시속 33.3㎞)로 달려도 68분이나 걸린다. 최고속도 자체가 소방정을 처음 진수했을 때 기준이다. 고속구조보트를 도입한 것도 속력 문제 때문이었다. 가장 빠른 제트스키(54노트)도 장회나루까지 23분 걸린다. 공공기관 행정선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충주시 소속 충북507호는 1998년 건조했다. 충주경찰서 소속 순찰정인 충북102호는 1987년 건조했다. 선령 27년으로 세월호보다 오래됐다. 내수면 선박의 선령은 해운법 규정에 준한다. 세월호 선령 규제를 완화한 악영향이 내수면 선박에도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재향군인회가 대주주인 중앙고속이 운영하는 충주호 관광선은 1994년 화재사고 이후 나름대로 기관실에 폐쇄회로(CC) TV를 설치하는 등 자체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관광선 진수일을 보면 안전관리에 심각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1994년 화재사고 당시 운항하던 관광선이 지금도 운행되고 있었다. 이날 충주호 선착장과 관광선 인근에서는 인적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부정기적으로 운항하는 관광선은 세월호 침몰 사고 이전까진 주말이면 500~600명이 승선했고 주중에도 하루 서너 차례 운항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손님들의 발길이 끊겨 운항을 거의 못 하고 있다. 대략 예전보다 70%가량 손님이 줄었다고 한다. 충주호 관광선들은 2012년부터 매각을 진행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충주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생명의 窓] ‘매뉴얼대로’ 살아보기/김진 가톨릭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생명의 窓] ‘매뉴얼대로’ 살아보기/김진 가톨릭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50대 후반이던 어느 날, 전철 안에서 마주친 아이가 “할아버지”라고 나를 불렀을 때의 당혹감과 서운함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된다. 그래서였을까. 언제부터인가 표정 관리를 위해 틈틈이 거울 보는 습관이 생겼고, 헤어스타일 관리를 위해 더 자주 이발소를 찾게 되었으며, 자꾸만 깊어지는 눈가의 주름살을 없애려 로션도 이것저것 신경 써서 발라보았다. 그러나 무병장수를 꿈꾸며 불로초를 찾던 진시황도 거스를 수 없었던 세월의 흐름을 내가 무슨 재주로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조금씩 포기하면서 그저 젊은 사람들에게 거부감만 주지 않으면 다행이려니 하며 지내던 중, 손녀 쌍둥이를 첫 손주로 보게 됐다. 무뚝뚝한 아들만 둘을 키웠던 나에게 손녀들의 “하버지” 소리는 서운하게 남아 있던 “할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30대 초반에 들었던 “아빠”라는 말이 아버지가 됐다는 뿌듯함과 함께 가정에 대한 책임감으로 인생을 좀 더 진지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줬다고 한다면, 손녀들이 부르는 “할아버지”는 삶의 황혼기에 들어 육체적, 정신적으로 서서히 지쳐가던 나에게 새로운 희망과 함께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줬다. 어느 사이에 손녀들이 초등학생이 됐다. 이제 손녀들의 이러한 신뢰와 믿음이 학교와 사회로 옮겨갈 텐데, 세월호의 사건이 마음을 어둡게 한다. ‘밖으로 나오지 말고 제자리에만 있으라’는 방송만을 믿고 구조를 기다리는 착한 학생들을 저버리고 먼저 탈출해 버린 선장과 승무원의 모습이 나 자신을 포함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바로 우리 어른들의 모습같아 한없이 부끄럽다. 군대 용어에 ‘FM대로 하라’는 말이 있다. 전쟁과 전투에 대한 교과서 격인 야전교범(field manual)의 약자로, 전투에 승리하고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두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다. 최근 우리 모두를 암울하게 만들고 있는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기사에서도 ‘매뉴얼’이라는 용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매뉴얼이란 특별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이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지켜야 하는 지침이다. 하지만, 배를 운전해야 할 의무가 있는 선장은 초보에게 운항을 맡기고 침실에서 자고 있었는가 하면, 승객이 남아 있는지를 확인한 후 제일 마지막에 배에서 내리도록 돼 있는 매뉴얼을 무시한 채 사고가 나자 승객으로 돌변해 가장 먼저 탈출했다. 이처럼 “대한민국에는 매뉴얼도 없고, 매뉴얼이 있어도 한국에서는 쓸모가 없다”는 말이 우리의 부끄럽고 안타까운 현주소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FM대로 사는 사람’이 융통성이 부족한 사람을 뜻하는 일종의 욕이 돼 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나 홀로 원칙을 지키면 바보가 된 듯 눈총을 받게 되고 오히려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씁쓸한 현실이다. 무원칙이 원칙이 되고, FM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무시당하는 사회에 책임, 도덕, 공정, 신뢰는 결코 뿌리를 내릴 수 없다. 조금씩 세상을 느끼기 시작할 우리의 아이들이 이번 세월호 참사를 어떤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걱정이 된다. 컴퓨터 게임에도 아이들 놀이에도 규칙이 있거늘, 어른들이 만들어가는 이 큰 세상에 매뉴얼이 없다는 것을, 아니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혹시라도 알아챘을까 두렵기만 하다. 이틀 뒤면 어린이날이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도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이 맑은 눈빛과 순수한 미소를 잃지 않도록, 그래서 그들이 누리게 될 미래가 우리가 지내온 현실보다는 더 환하고 아름다울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매뉴얼대로 살아가자.
  • [세월호 침몰] 해경 둘러싼 10가지 의혹

    [세월호 침몰] 해경 둘러싼 10가지 의혹

    세월호 침몰 사고의 구조·수색 작업을 총괄하는 해양경찰이 사고 초기부터 총체적인 부실 대응으로 일관했다는 국민들의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사고 직후부터 해경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이른바 ‘골든타임’이 허비됐고, 민간잠수업체 언딘을 먼저 투입하기 위해 해군의 잠수를 막았다는 비난을 받는다.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선장을 유치장이 아닌 경찰 집에서 재운 사실도 드러났다. 많은 해경들이 구조·수색을 위해 17일째 거친 바다에서 고생하고 있지만 해경의 미심쩍은 행태들이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연일 쏟아지고 있는 각종 의혹들은 어처구니없는 대형 참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꼭 풀어야 할 대목이다. 해경을 둘러싼 10가지 의혹에 대해 짚어봤다. 1. 하나마나 관제… 사고 신고접수 때까지 해역 진입 몰라 세월호 침몰 당시 ‘골든타임’(재난 때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유효시간)을 허비한 배경에는 기본적인 관제의무조차 이행하지 않은 전남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가 자리 잡고 있다. 사고 신고가 119와 제주VTS, 해경 상황실 등을 거치면서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으로, 해경의 교신 절차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지난달 16일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한 시간은 오전 8시 48분. 하지만 사고 해역을 관할하는 진도VTS가 신고를 정식으로 접수한 것은 9시 6분이었다. 여객선은 특정 해역에 들어설 때 관할 VTS에 보고하고 관제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합동수사본부가 공개한 진도VTS 교신 녹취록에는 세월호가 진도 해역 진입을 보고했다는 내용이 없다. 당시 세월호가 목적지 관할인 제주VTS에 교신 채널을 맞춰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승무원의 첫 신고도 제주VTS로 접수됐다. 정작 진도VTS는 신고가 접수될 때까지 세월호가 관할 해역에 들어왔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관제사 자격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항만청VTS 관제사는 5급 이상 항해사 자격에 1년 이상 항해 경력이 있어야 하고 퇴직할 때까지 관제 업무만 맡는다. 반면 해경VTS 관제사는 2~3년마다 순환 보직을 하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 민간업체 언딘 우선 투입… 해군·민간잠수사 접근 막아 세월호 실종자 수색 구조작업에 민간업체 ‘언딘마린인더스트리’가 참여하는 과정에도 해경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특히 국방부가 지난달 30일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침몰 사고 이튿날인 지난 17일 오전 해군 특수요원들이 사고 해역에 대기했지만 해경이 ‘언딘이 우선 잠수해야 한다’며 현장 접근을 통제했다”고 밝혀 특혜 논란이 증폭됐다. 국방부는 파문이 커지자 “국회 제출 자료가 잘못 작성됐다”면서 “해경이 잠수 효율성을 위해 잠수부들의 경험 등을 고려해 민·관·군 잠수부들의 잠수 순서를 결정했을 뿐 해군 요원의 잠수를 막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번 불붙은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앞서 민간 잠수부들도 “해경이 우리의 입수는 통제하면서 언딘과 수색할 수 있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또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이 언딘과 구난 계약을 맺는 과정에도 해경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청해진해운 측은 애초 10년간 거래한 인천의 H 구난업체에 사고 당일인 지난달 16일 오후 전화해 “세월호 침몰 현장에 구조요원과 장비를 급파해 달라”고 구두 요청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 “언딘과 계약을 했다”며 계약을 파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해경이 언딘을 청해진해운에 소개해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3. 당직함 출동에 22분 허비… 해상사고 매뉴얼 있긴 있나 초기 대응이 가장 중요한 해상 사고에서 출동하는 데만 22분이 걸린 해경은 늑장 대응을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지난달 16일 사고 당시 목포 해경 당직함은 출동 준비에만 22분이 걸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오전 8시 58분에 신고를 접수한 해경은 목포항 삼학도 해경 전용 부두에 정박 중인 당직함(513)에 출동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당직함은 출동 명령을 받고도 신고가 접수된 시간으로부터 22분이 지난 9시 20분에야 출동했다. 해경은 “항해 장비를 가동하는 시간과 계류색(배와 배를 묶는 줄)을 걷는 시간, 케이블을 해체하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20분이 결코 오래 걸린 것은 아니다”라는 군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해경의 보고 체계와 해상사고 대응 매뉴얼도 부실 그 자체로 밝혀졌다. 해상사고가 발생하면 해경청장이 중앙구조본부장을 맡고, 공석 땐 경비안전국장이 맡도록 돼 있다. 인천 송도에 위치한 해경 종합상황실은 해도와 해상도 등 각종 상황판을 갖추고 세월호가 침몰하는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았다. 그러나 상황실을 지휘해야 하는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이 헬기를 타고 목포를 향하는 도중 세월호는 완전히 침몰하고 말았다. 해경 지휘부가 해상 수색·구조 경험이 없는 해양대와 경찰대, 고시 출신들로 이뤄져 위기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4. 구조동영상 13일만에 공개 “부실 초동대처 숨기려 했나” 해양경찰청이 세월호 침몰 당시 초기 구조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뒤늦게 공개하면서 각종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해경이 사고 당시 이준석(69) 선장 등 선원들의 탈출 장면 등을 촬영해 놓고도 사고발생 13일 만인 지난달 28일에야 공개했기 때문이다. 동영상은 현장에 출동한 해경 경비함 123정의 한 직원이 개인 휴대전화 카메라로 지난 16일 오전 9시 28분부터 11시 18분까지의 장면을 찍은 총 49컷, 9분 45초 분량이다. 동영상에는 기울어진 선체 모습, 선원 탈출과 해경 구조장면 등 당시 모습이 담겼다. 동영상을 공개한 날은 검경합동수사본부가 해경의 초동대처 부실 여부를 수사하기 위해 전남 목포해경 상황실을 압수수색한 날로 일각에서는 “해경이 이 선장을 감싸려고 한 것 아니냐”, “초동 대처에 있어 불리한 장면을 숨기려 했던 것이 아니냐”는 등의 비판이 일었다. 함께 공개된 사진 7장 중 4장이 동영상에 없는 내용이어서 해경이 불리한 내용을 편집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해경은 동영상을 늦게 공개한 이유에 대해 해당 함정이 연일 해상 수색을 했고, 자체 자료전송시스템이 없어 보관 중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또 다른 동영상이 있는지와 동영상 편집 의혹 등은 이후 검찰 수사를 통해 풀어야 할 대목이다. 5. 안전관리 산하단체 뒤 봐주고 간부들은 재취업 기회로 검찰 수사 결과 일부 해경 간부들이 산하단체로부터 명절 떡값 등 ‘관리’를 꾸준히 받아온 정황도 포착됐다. 인천지검 해운 비리 특별수사팀은 한국해운조합 인천지부가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작성한 내부 문건 중 ‘명절 선물 내역’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건에는 조합과 함께 여객선 안전관리를 맡는 인천해양경찰서 등의 간부에게 10만~20만원 상당의 상품권이나 선물을 돌릴 계획이 담겨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경이 조선사와 해운사, 민간 구난업체 등이 속한 한국해양구조협회를 과도하게 지원하고 간부들의 재취업 창구로 활용한 사실도 드러났다. 해양경찰청은 지난해 1월 협회 출범 당시 소속 경찰관에게 회원 가입을 권고했다. 수천명에 이르는 해양경찰관이 회원으로 가입했고 연회비 3만원은 개인 봉급에서 공제된다. 본청 간부 상당수는 연회비 30만원인 평생회원으로 가입했다. 해경이 직원 월급을 떼어 매년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억대의 예산을 지원하는 셈이다. 협회는 해경 퇴직 간부의 재취업 공간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최상환 해양경찰청 차장과 김용환 전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이 부총재직을 맡고 있고, 경감급 6명도 재취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딘마린인더스트리의 김윤상 대표도 부총재를 맡고 있다. 6. 석연찮은 선장 수사… 사고 초기 해경 직원 자택에 재워 해경이 세월호 사고 수사 초기 선장 이준석(69)씨를 조사한 뒤 직원의 자택에 재운 것으로 드러나 개운찮은 뒷맛을 남겼다. 특히 300여명의 승객을 내버려둔 채 먼저 탈출한 이씨를 일반 수사 대상자와 달리 ‘칙사대접’한 사실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고 첫날인 지난달 16일 오후부터 17일 새벽 전남 목포해경에 소환돼 10여 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해경은 이후 이씨를 한 직원의 아파트로 데려가 잠을 재웠다. 2차 조사를 벌인 17일엔 이미 피의자 신분으로 바뀐 터였다. 수사 관계자는 “이씨가 갈 데도 마땅찮고 기자들이 많아 유치장 대신 개인 집으로 데려갔다”고 말했다. 이후 아파트에 있던 한 기관사가 자살 소동을 벌이는 등 선원의 신병에 대한 밀착 감시와 보호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더라도 수사 관계자가 개인적인 판단으로 이씨를 집으로 데려가 잠을 재운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따라서 윗선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의구심을 낳는다. 청해진해운의 계열사 출신 한 간부가 한때 해경 본청의 수사라인에 배치된 점도 이런 의혹을 키웠다. 한 변호사는 “피의자를 집에서 재운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부적절한 처사여서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7. 자체 청해진 수사 했나… 檢 압수수색 전 선사 드나들어 세월호가 침몰 중이던 지난달 16일 오후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 2층 ㈜청해진해운에 해경 관계자들이 진을 쳤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다부진 체격에 사복 차림의 남성 3~4명이 수시로 외부와 연락하며 머물러 있었다. 더러는 “지인의 부인이 그 배에 탔다. 생존자 명단에 있는지 확인해 달라”며 누군가와 통화하기도 했다. 이들은 당일 오후 5시쯤 청해진해운 측 요구로 취재진이 1층 여객터미널 복도로 나간 뒤에도 계속 사무실에 머물렀다. 이튿날 오전 9시쯤에는 정장 차림의 50대 중후반 간부급 경찰관이 일행 1명과 청해진해운의 닫힌 철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검찰은 이날 새벽 청해진해운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결국 세월호가 침몰하기도 전에 해경이 청해진해운 본사에 대해 자체 수사를 벌인 것으로 비쳐지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구조 과정이 담긴 화면을 보면 답답하고 화가 날 만큼 느려 터진 해경이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한 조치엔 가장 빨랐던 셈”이라며 “그 시간 청해진해운 사무실에서 무엇을 했는지 의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해경청 대변인실 관계자는 “당시 청해진해운에 누가, 왜 나갔는지 모르겠다. 답변할 위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8. 세월호 문서 삭제 의혹… 외부 감사·자료요구 대비했나 해양경찰청이 외부기관의 감사나 자료 요구에 대비해 ‘세월호’ 관련 문서들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내부 증언이 나왔다. 하지만 해경청은 역시 부인했다. 2일 제보자에 따르면 해경청은 지난주 초 전국의 일선 해양경찰서에 내부 전산망 문서 제목에서 ‘세월호’라는 글자를 지우라는 구두 지시를 내렸다. 다시 말해 세월호에 관한 검색이 불가능하게 만들려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세월호 안전관리와 지도감독 등에 대한 검찰의 전방위적인 수사가 시작되는 시점이었기에 은폐 의혹이 제기됐다. 해경의 내부 문서 검색은 제목에 있는 단어를 통해 이뤄져 세월호라는 세 글자만 지우면 해당 문서는 검색되지 않는다. 아울러 해경이 일부 문서를 담당자만 열람할 수 있는 보안문서로 분류했다는 의혹도 뒤따랐다. 감사원은 지난 1일부터 해경에 대한 예비조사에 착수했고 국회는 다음주 현안보고를 앞두고 다량의 자료를 요청한 상태다. 따라서 해경 측이 세월호에 대한 감독 소홀 등이 문제될 것을 우려한 끝에 문서 삭제를 시도하지 않았느냐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김송원 인천경실련 사무처장은 “해경은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매지 마라’는 자세로 임해야 불필요한 오해를 막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9. 이해못할 인사 패턴… 이용욱 ‘조함직→ 수사총괄’ 의문 해경에 기술직으로 입문한 이용욱(53·국제협력관) 경무관이 당초 정보수사국장에 임명된 것은 일반적인 인사 패턴과 다르다. 정보 및 해상범죄 수사를 총괄하는 정보수사국장은 대개 행정직이 맡았다. 해경의 직별은 항해, 기관, 행정, 잠수, 조함(造艦) 등으로 구분되는데 이 전 국장은 ‘조함’ 직별 경정으로 특채됐다. 현재 해경의 경무관 이상 간부 14명 가운데 7명이 행정 직별이다. 조함 직별은 이 전 국장이 유일하다. 이 전 국장은 특채 이후 자신의 직별에 맞는 조함기획계장을 잠시 거쳤을 뿐 이후로는 조함직과 관련 없는 업무를 담당해 왔다. 해경 측은 총경(서장급) 이상이 되면 직별 구분이 무의미해져 직별과 상관없는 보직을 맡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이 전 국장은 2004년 총경이 되기 전에 이미 자신의 직별과 관련 없는 해경발전기획단을 거쳤다. 총경 승진 이후에는 전북 군산·전남 여수 해경서장, 동해해양경찰청장을 거쳐 2012년 7월 국장 중에서도 노른자위로 알려진 정보수사국장에 올랐다. 보직 관리가 아주 잘 된 편이다. 때문에 외부 지원설마저 제기되지만, 해경은 본인의 능력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0. 구조예산 부족 타령 헛말… 골프장 건설에 145억 사용 해양경찰청이 예산 부족을 들어 구조장비 도입과 해양사고 대비 훈련일수까지 줄이면서도 골프장 건설에는 145억원을 써 비난을 샀다. 해경은 전남 여수 해양경찰교육원의 함포사격장 부지 40만㎡를 용도변경한 뒤 145억원을 들여 해경 전용 골프장을 세웠다. 때문에 함포사격장은 165㎡의 게임방 규모에 불과한 지하 시뮬레이션 훈련장으로 대체되는 아이러니를 빚었다. 대신 골프장이 버젓이 들어섰다. 지난달 18일로 잡았던 골프장 준공식은 세월호 참사로 열리지 못했다. 해경은 2010년부터 경비함 운항에 필요한 유류비를 제때 지급하지 못해 이듬해로 이월한 뒤 지불해 왔다. 유류비가 부족하자 해경은 지난해 해상종합훈련을 4일에서 2일로 줄였으며 중·대형 함정 운항률을 축소하는 등 ‘유류절약 매뉴얼’까지 시행했다. 전국 241개 해경 출장소 가운데 순찰정·고속보트 등 연안 구조장비를 갖추지 못한 곳이 95개(39%)에 달하고 있다. 특히 세월호 사고 해역을 관할하는 수품출장소와 서거차출장소는 연안 구조장비는 물론 순찰차량조차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진후(정의당) 의원은 “늘 예산 부족을 탓해온 해경이 뒤로는 골프장 짓기에 여념이 없었던 황당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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