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선장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장면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재검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관심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별교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217
  • 사고없는 설 연휴를 기대한다(사설)

    설 연휴가 시작됐다.직장마다 다르겠으나 올해는 설연휴뒤에 토요일이 끼어있어 많은 직장이 5일동안을 쉰다고 들린다.모처럼 갖는 연휴가 즐거운 나날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연휴가 긴만큼 걱정도 없지않다.연휴뒤끝이 좋았으면 하는 것이고 우리가 매년 되풀이하는 각종 사건,사고가 올해야말로 줄어들었으면하고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교통소통이 원활해 모처럼의 귀성이 편안했으면 좋겠고 고속도로의 쓰레기로 인한 몸살을 올해는 겪지않았으면 하는 기대가 그것이다. 우리는 연휴만 되면 고속도로의 체증으로 소동을 겪는다.이번에도 2천6백만명의 대이동이고 보면 귀성전쟁은 가히 짐작이되고도 남는다.문제는 질서를 지키느냐 하는데 달려있다.승용차운전자들이 제대로 교통수칙을 지킬 때 교통사고가 줄어드는것은 물론 소통도 상당히 수월해지리라 믿는다.교통당국도 매년 연휴때만 되면 수고를 아끼지않고 있으나 더욱 분발하기를 바란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운전자의 협조없이는 안된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명심해야할 것이다. 또하나는 고속도로에서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행위가 이제는 없어져야 한다.언제까지 이런 한심한 행위가 계속되어야 하는가.고속도로에서 쓰레기를 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확실히 하고 출발할 일이다.연휴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비용을 들여 고속도로를 치우고 있는지를 한번쯤 생각해보자. 그러나 무엇보다도 연휴기간동안 각종 대형 안전사고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 지금까지의 사고가 대부분 주의부족으로 인한 인재였음을 상기할 때 더욱 그러하다.지난해 10월의 위도 서해훼리호침몰사고도 선장의 실수로 인한 일요일의 참사였다.열차전복사고,비행기추락사고,폭발사고도 빠짐없이 기본수칙을 안지키는 우리의 그 적당주의에서 일어났다.비슷한 사고가 되풀이돼도 그때뿐이다.지난 7일의 엘리베이터정전사고도 평소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으면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우리가 관심을 갖고 막아야할 것은 바로 이런 안전수칙을 무시하는 행위이다.이번 연휴에는 이런 일들이 없어야 한다.지난 92년 한햇동안 안전사고 피해액이 3천억여원에 달했음을 생각해 볼 일이다. 안전사고에 대비하는 것은 기본수칙을 지키고 방심해서는 안된다는 방법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질서는 그래서 지켜야하는 것이다.우리주변에는 각종 사고의 위험이 수두룩하다는 것이고 보면 더욱 그래야할 것이다. 또하나 연휴기간의 흐트러진 분위기를 틈탄 민생치안 확보에 당국은 각별한 신경을 쓰기 바란다.최근들어 잇단 강도사건이 당국의 단속강화로 주춤하는 때에 연휴이어서 더욱 그럴 필요가 있다고 본다.
  • 설 연휴 고향길 함께 타고갑시다/「귀성 카풀운동」 큰 호응

    ◎“짜증길 해소 큰몫”… 「사랑의 차태우기」/문의전화 하루 1천5백건/탈서울 5천여대 참여할듯/“5만대만 되면 혼잡 크게 덜텐데…” 「고향길을 고향사람들과 함께」 설날을 앞두고 귀성길 카풀운동을 벌이고 있는 서울 성북구 동선동 「사랑의 차태우기 운동본부」(대표 한충희·44)에는 요즘 하루 평균 1천5백여통의 문의·접수전화(922­9700)가 쇄도하고 있다. 명절때만 되면 저마다 승용차를 몰고 나와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다시피하고 귀향길이 고생길이 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한씨는 사재를 털어가면서 5년전부터 「고향에 함께가기」운동을 조용히 벌여 폭넓은 호응을 받고있다. 특히 이번 설날은 9일부터 13일까지 5일동안 연휴가 이어질 것으로 보여 전국적으로 사상최대 인파인 2천6백여만명의 귀성객이 이동할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또 서울을 빠져나가는 귀성객만해도 3백73만명에 이를 전망이어서 어느때보다 심각한 교통체증이 예상돼 자가용 함께타기운동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다. 한씨와 자원봉사단 10여명은 30평남짓한 임대사무실에서 귀성길에 승용차를 「태워줄 사람」과 「탈 사람」을 전화로 접수받아 무료로 연결시켜 주고있다. ○만남의 장소 풀가동 운동본부측은 귀성인파가 크게 몰릴 8일 하오 3시부터 남부시외버스터미널 입구와 중부고속도로 진입로근처에 차표를 구하지못한 귀성객들을 위해 「카풀 만남의 장소」를 24시간동안 운영할 계획이다. 또 고속도로 주변의 쓰레기정리를 위해 쓰레기팩 10만개를 만들어 카풀에 동참하는 차량에 나눠준다. 한씨는 『올 설날의 경우 8일 하오부터 9일까지 서울을 빠져나가는 50여만대의 승용차 가운데 1%정도인 5천대 가량이 카풀에 참여할 것』이라며 『참여율이 10%만 되어도 귀성길이 짜증스럽지 않을텐데…』라고 아쉬워했다. ○쓰레기 봉지도 배포 89년부터 귀성 및 출·퇴근길 카풀운동을 벌여 온 한씨는 75년부터 9년동안 세계 각국을 돌아다닌 원양어선 선장 출신. 한씨는 『6·25때 전사한 아버지와 독립운동가였던 할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무언가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하고싶던차에 선진 외국에서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카풀운동을 벌이는 것을 보고 발벗고 나섰다』고 말했다. 한씨는 지금까지 5년동안 이 운동을 하면서 선장때 모았던 사재 8천여만원을 털어넣었으나 처음 이 운동을 시작했을 때는 주위로부터 『회비가 얼마냐』,『영리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냐』는 등의 비아냥도 많이 받았다.그러나 차츰 카풀운동의 참뜻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동안 12만명이나 동참하고 있다. 한씨는 뜻있는 시민들의 도움으로 올해 수도권 일대에 2천여개의 「사랑의 정류장」을 만들고 3년안에 전국에 3만여개의 정류장을 설치,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게획이다.
  • 선박 충돌 6명 익사/유조선원 19명 검거

    【울산=이용호기자】 경남 울산해양경찰서는 27일 선원 7명이 승선한 선박을 충돌,침몰시켜 6명의 선원을 익사케한뒤 그대로 달아났던 부산시 중구 동광동 동아유조(대표 이명재)소속 6천5백89t급 범일호 선장 윤행원씨(51)등 선원19명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 장터:상/조선왕조 천도후 종로에 시전 설치(서울 6백년 만상:7)

    ◎2천간 규모… 관주도 독점상권 형성/어물 등 6개조합… 육의전으로 불려/남대문밖 칠패·동대문 배오개장터 유명 예나 지금이나 장터는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의 숨결이 가장 진하게 스며있는 곳이다. 「남이 장에 가니까 씨 오쟁이 떼어지고 따라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장터에는 모두를 설레게 하는 즐거움이 있는 반면 애환도 많고 또 풍성함의 이면에는 가난한 자의 한숨도 흐른다.한편에서는 흥정이 깨져 고성이 오가고 바로 곁에서는 또 만병통치약장수의 사탕발림 달변에 폭소가 터지기도 한다.소박한 시골아낙들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를 후리려는 야바위꾼과 소매치기들도 설쳐대는 천태만상의 곳이 바로 장터다. 오만가지 인간군상들이 서로 얽혀 어깨를 비벼가며 사는 장터는 한마디로 인생의 축소판이라 할수 있으며 그래서 장터의 역사는 곧 사람들의 삶의 역사를 대변한다.서울 장터의 역사는 한양천도 가까이로 거슬러 올라간다.천도를 단행한 조선왕조는 궁궐과 관아를 지어 정도의 기틀이 어느정도 잡히자 곧 상가건설에 착수,정종 원년(1399)부터 태종 14년(1414)까지 4차례에 걸쳐 2천간 안팎의 시전을 세웠다.현재 보신각이 있는 종로네거리를 중심으로 동서로 연건동과 광화문우체국,남북으로 을지로2가와 안국동에 걸쳐 자리잡은 이들 시전의 관허상인들은 관에 임대료인 행랑세를 내는 대가로 독점판매권(금란전권)을 거머쥐었다.이때부터 종로거리는 전국 최대의 상거래지역으로 자리잡게 되고 인조 15년(1638)에 이르러서는 이들 시전상인들이 취급품목별로 입·면포·내외어물·지·저포·청포전등 6개의 조합을 만들어 육의전으로 불리면서 18세기 초까지 조선의 상권을 지배한다. 이들은 성안 사람들의 생필품을 조달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주로 관의 보호를 받아가며 관수품과 중국에 보내는 진공품의 공급기능을 맡았다. 이들 종로의 시전상인들이 관주도의 상거래를 장악해가는 동안 지방에서는 닷새장제도가 생겨나고 서울에서도 성문근처를 비롯한 도성내 곳곳에 자연발생적으로 장터가 생겨났다.그 대표적인 것으로 동대문근처 배오개장(이현·현 광장시장자리),남대문밖 칠배장(현 봉래동일대)이 있다.이 두 장터의 형성시기는 분명치 않지만 일반적으로는 종로에 시전이 자리잡힌 무렵으로 추정되고 있다.이들은 오늘날의 동대문시장과 남대문시장의 모태를 이루면서 동시에 서민장터의 쌍벽이 되어 한국 상거래사의 한장을 이룬다. 서울의 물산시장을 가리켜 「동부채칠배어」라는 말이 있다.이는 동대문근처 배오개장에는 과일·채소가 많고 남대문밖 칠패에는 생선이 많아서 생긴 말이다.또 「왕십리 미나리장수는 목덜미가 검고 마포 생선장수는 얼굴이 새까맣다」는 말도 유행했다.왕십리 미나리장수는 아침햇살을 등지고 동대문으로 향해 목덜미만 검게 타고 마포 생선장수는 반대로 햇볕을 안고 남대문으로 향해 얼굴이 타서 나온 말이다. 처음 배오개와 칠패장의 상거래는 그다지 활발하지 못했다.시전의 금난전권 행사로 상설점포를 갖지 못한데다 그 위세에 눌려 상품마저 마음대로 팔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난장의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당시의 장터에서는 오늘날 서울시내 거리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목격되는 단속반과 노점상들의숨바꼭질이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전반적으로 사회현상의 변화가 더뎠듯이 상업활동의 변화도 느린 속도로 진행됐다.그러나 18세기에 들면서는 저자거리에도 한바탕 돌풍이 일었다.인구의 증가로 시장규모가 커진데다 금속화폐의 유통으로 상거래형태가 보다 복잡해지자 관주도 상업활동은 한계를 맞을 수밖에 없게 됐다. 시전상인들의 위세에 눌리면서도 꾸준히 부를 축적해온 사상들은 이 때를 맞아 시전상인들의 금난전권에 정면으로 도전,마침내 정조 15년(1571) 신해통공조치로 시전상인들의 모든 특권을 철폐시키기에 이르렀다. 이에따라 18세기 중반부터 서울 상권의 무게중심은 종로로부터 성밖 나루터와 남대문·동대문의 양대장터로 옮겨가게 된다.바야흐로 장터의 남대문·동대문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 문민개방시대 독자 말문도 활짝/서울신문 독자페이지에 실린 여론백태

    ◎가차없는 개혁에 “신바람 난다”/대입부정파동땐 “학력없애라”/UR태풍 불자 “정부대응 미흡”/달아난 재산물의 공직자 “강제 소환하라”/청와대·인왕산 열고 안가 부수자 환영일색 문민시대를 맞아 국민들의 주권의식이 높아지면서 올 한해는 언론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과 기대도 높았다. 특히 올해 독자부를 신설한 서울신문사에는 전국에서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들이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안기부·기무사등에 이르기까지 성역없이 쏟아졌다. ○칼국수점심 “신선” 김영삼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청와대 뒤 인왕산과 삼청동 안가등을 잇달아 개방하고 점심까지 칼국수로 바꾸자 대부분의 독자들은 문민시대를 피부로 느낄수 있는 획기적 조치라고 환영했다. 또 김대통령이 기업인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지 않을뿐더러 재임 동안 골프도 치지 않겠다고 천명하자 독자들의 새정부에 대한 기대도 극에 달해 이를 격려하는 전화가 빗발쳤다. 특히 지난 정권에서조차 눈치를 살피던(?) 일련의 군인사가 전격적으로 단행되자 한 독자는 김대통령을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무서운 대통령」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첫 조각을 한뒤 열흘도 채 안돼 일부 각료들이 도덕성이 문제가 돼 경질되자 임명권자인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아 문민정부의 출범을 실감케 했다. ○군대폭인사 놀라 「개혁과 사정」으로 비리고위공직자들이 물러나자 「쾌재」를 부른 반면 「물의」를 빚고도 해외로 달아난 공직자들을 강제소환하라는 여론도 들끓었다. 또 의외로 많은 공직자들의 재산에 실망했다는 독자도 많았다. ○단독처리는 잘못 12월 들어 민자당이 예산안등을 단독으로 처리하자 이는 과거 군사정권때나 있었던 잘못된 정치행태라는 비난의 소리도 높았다. 올해 초 경원대와 광운대의 입시부정이 드러나자 이를 두고 지금까지 조성돼온 학력위주의 사회풍토를 과감히 고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대학기부금입학제」를 도입하자는 조심스런 제언도 있었는가 하면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반대도 없지않았다. 지난 7월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에 이어 위도 선박침몰사고가 일어났을때는 두 사건 모두가 사전에 조금만 주의를 했어도 막을 수 있었던 「인재」였다며 관계자들을 엄중문책하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인재 엄중 문책을 특히 「사체」로 떠올랐던 사고선박의 선장을 살아있다고 보도한 언론과 수배까지 했던 수사당국을 맹비난한 내용도 많았다. 지난8월 전격 실시된 「금융실명제」에 대한 「보완대책」이 잇달아 발표되자 「본래의 취지가 흐지부지 되는게 아니냐」며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을 꼬집기도 했다. 또한 지난여름 한·약분쟁과 전교조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하자 「집단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대화와 타협으로 난국을 해결해 줄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연말 UR협상이 본격화되면서는 정부의 미진한 대응노력을 성토하는 투고가 이어졌으나 협상이 마무리되자 근본적인 농업발전대책을 세워나가는 것이 시급하다는 쪽으로 급선회하는 여유도 보였다. ○농업발전책 필요 3D기피현상으로 인한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기술연수제를 확대해야한다,개방의 파고를 극복하기 위해선 농업등 각분야에 대한 각종규제를대폭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해왔다.
  • 4백억대 코카인 밀수/선장 등 19명 입건

    【울산=이용호기자】 울산해양경찰서는 24일 4백억원대의 코카인을 배밑에 숨겨 들여온 파나마선적 일본기다우라해운회사 소속 1만7천5백t급 쇼니오션호 선장 김준웅씨(48·서울 강남구 일원동13)등 19명의 한국인선원을 마약단속법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코카인 밀반입경위에 대해 수사를 펴고 있다. 이날 적발된 코카인은 20㎏(시가 4백억원)으로 선박밑바닥의 해수흡입구에 잠수용 산소통 크기로 특수제작된 2개의 플라스틱안에 숨겨져 있었다. 경찰은 항해일지등 관계서류 일체를 확보,화물선의 행적과 코카인 반입경로등을 집중 추궁하고 있다. 경찰은 특히 이 선박의 선원들과 국제 마약밀매조직이 연계돼 있는지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 「서울토박이」(외언내언)

    토박이는 본토박이와 같은 말로 대대로 그땅에 나서 붙박이로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고 국어대사전에 쓰여있다.요즘과 같은 변화하는 세상에 이런 토박이는 없을 것 같다.하물며 변화의 화신과 같은 서울에서야….그래서 「서울토박이」는 거의 없다고 얘기들 한다. 그래서 그런지 서울전래의 풍습도 점점 찾아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각지방에서 올라온 타지역사람들이 많은데다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함께 살면서 그들의 독특한 각지역 문화가 섞여버렸기 때문이다. 각지역의 향토음식들이 서울에 몰려 제맛을 잃고 그런가하면 서울의 표준어에 사투리가 섞이는 갖가지 혼재현상을 보이고 있다.제것도 서울것도 아닌 이상한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가 정도6백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서울토박이찾기사업」을 벌이기로 한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기준시점을 1910년으로 하고 「그이전에 한성부에 정착한 이후 현서울시 행정구역내에서 계속 거주하고 있는 사람」을 「서울토박이」로 규정하고 있다. 1910년은 한일합방의 해로 그때인구이동이 급격히 이뤄지면서 도시규모가 커져 그이전 사람들에 대해서는 검증도 어렵고 또 근거가 될수있는 문서도 없어 최소한 이때부터를 기준으로 한 것이라고 서울 뿌리찾기분과위 관련자는 전한다. 이런 「서울토박이」는 주변에서 흔히 찾을수 있다.옛날에는 이랬는데 요즘은 볼수가 없다거나 물장수·생선장수의 모습을 흉내내고,마포나루터얘기를 신명나게 떠드는 사람들이다.이들로부터 서울의 옛얘기를 듣고 서울말·풍습자료를 모으면 그것만으로도 뜻이 있을 것이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토박이라는 어휘의 약간은 투박하고 시골적인 느낌을 산뜻한 도시감각으로 바꾸면 어떨까.미국의 「뉴요커」,프랑스의 「파리장」,일본의 에도코(강호자)가 있고 우리말로는 서울내기가 있다.
  • 1993년 사건사고 결산/잇단 대형사고… 인재라 더 충격

    ◎열차전복·폐리침몰 등 사회기강해이 탓/한·약분쟁은 “국민 볼모로 업권 싸움” 비난/입시부정·슬롯머신수뢰 등 사회병리현상 노출 문민정부가 출범한 93년은 개혁과 변화의 바람이 세차게 몰아친 한해였다. 지난 시대의 그늘을 제거하기위한 개혁의 돌풍속에서도 구시대의 산물이었던 뿌리깊은 무사안일 풍조때문에 각종 사건과 사고가 꼬리를 무는 이중적인 사회현상이 표출되기도 했다. ○우암아파트 붕괴 경찰과 검찰의 「합작비리」였던 슬롯머신사건,부패한 군 내부의 치부가 드러났던 율곡사업비리,지도층 인사들의 부도덕을 여실히 보여준 재산공개 은폐 및 누락,상아탑의 자존심과 대학인의 긍지에 먹칠을 한 대학입시부정사건 등은 우리 사회의 자정과 개혁을 더욱 가속화시킬 필요가 있음을 입증했다. 또 청주시 우암아파트 붕괴사고에 이어 부산 구포열차전복사고 ,아시아나항공기추락,위도 서해훼리호침몰사고 등 땅·하늘·바다에서 대형사고가 잇따라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적당주의와 인명경시의 비뚤어진 의식,안전에 대한 무감각,관리·감독의 허술등에서 빚어진 인재의 전형이 줄을 이은 것이다. 특히 한·약분쟁사건등에서는 타인의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는 집단이기주의의 극치를 드러내 우리시대의 도덕적 지표를 다시 세워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지난 1월7일 사망자 28명,부상자 48명을 낸 충북 청주시 우암아파트붕괴사고는 70년 일어난 서울 와우아파트붕괴 이래 최대의 복합건물 붕괴사고로 기록됐다. 부실시공이 주원인으로 밝혀진 이 사고로 대형 건축물공사에는 단계별로 책임공무원을 둔다는 제도가 마련됐으나 사고 아파트의 준공검사 과정에서 관계공무원들의 독직 및 직무유기 등 관련부분을 아직 밝혀내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78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3월28일의 구포열차 전복사고 역시 우리 사회의 원시성과 구조적인 무사안일의 병폐를 보여준 어처구니없는 한국철도 1백년사상 최대의 인재로 기록됐다. 이 사고는 결국 노후화된 철도시설과 무분별한 지하터널 굴착공사,하도급비리,행정적당주의등이 문제점으로 떠올라 각종 관급공사에 일대 메스를 대게하는 촉발제가 됐다. ○3부처장관 경질 여기에다 4월19일 충남 논산군 논산읍 서울신경정신과의원에서 발생한 화재는 소외계층에대한 국민들의 무관심이 얼마나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수 있는가를 보여 주었다. 20분만에 진화된 불에 입원한 정신질환자 41명 가운데 34명이 숨졌다.조사결과 병원측이 환자들의 난동을 우려,링거병줄등으로 손발을 묶고 현관문을 잠가 놓는 바람에 피해가 컸던 것으로 밝혀져 정신질환자들의 격리수용등의 안전관리가 치료보다 우선하는 정신병동의 비윤리성을 드러냈다. 그러나 대형사고는 올상반기를 넘어서면서도 끊일 줄 몰랐다. 7월26일 하오 3시40분쯤 승객1백4명과 승무원 6명을 태운 서울발 아시아나항공 733편이 전남 해남군 운거산에 추락,66명의 희생자를 내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기는 악천후로 2차례나 착륙에 실패한뒤에도 무리하게 고도를 낮춘 상태에서 착륙을 강행하다 끝내 추락했다. 이어 가을의 정취가 무르익던 10월10일 일요일 아침,전북 부안군 위도면 앞바다에서 승객과 선원 3백60여명을 태운 서해훼리호가 풍랑에 휩쓸려 침몰했다. ○국회의장 등 사퇴 2백92명의 희생자를 낸 이 사고는 탑승인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구조등 조사작업에 원시성을 보여준 것은 물론 과적,초과승선,국민 특히 서민들의 생명보호에 대한 허술과 해상예보의 부적확,정비불량등 우리 사회의 허점을 총체적으로 보여주었다. 특히 숨진 백운두선장(57)의 생존설에 대한 추측 기사는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여과없이 보여주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대형사고속에서도 당시 여객기가 떨어진 마천의 주민들과 위도면 사람들은 각각 부상자의 구조와 인양에 나서 희생자를 줄이는 한편 자신의 일처럼 부상자들을 돌봐 슬픔속에서도 훈훈한 인간애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와함께 문민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야기된 사회지도층의 도덕성 시비는 김영삼대통령의 첫 조각과 재산공개,대학입시비리등에서 강하게 제기됐다. 조각후 불과 10일만에 보사부장관을 포함,3부처 장관과 서울시장이 도덕성의 도마위에 올려졌다. 따라서 부동산투기가 문제가 된 박량실보사부장관,토지형질변경등의 불법을 저지른 김상철서울시장이,자녀의 특례입학문제로 박희태법무장관이,재직시 비위문제로 허재영건설부장관이 각각 여론의 질책으로 경질되기에 이르렀다. 또 헌정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공직자재산공개는 「공직자청렴운동」이란 점에서 국민들의 큰 관심을 모은 만큼 파장역시 심했다. 두차례에 걸쳐 모두 1천1백67명의 1급이상 공무원들의 재산이 공개되면서 공직자들의 도덕성과 정직성이 심판대에 올랐다. 그 결과 공직자 1인 평균 재산이 14억여원에 이르렀고 당시 박준규국회의장,김덕주대법원장이 재산 축적과정에 대한 충분한 해명 없이 사퇴하는등 엄청난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2월부터 터져나온 대학입시부정은 광운대등 5개 대학이 관련되고 사회저명인사등 1백55명이 개입,이 가운데 59명이 구속돼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교육만능주의와 배금주의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특히 입시부정이 단순히 대학과 학부모간의 연계가 아니라 일선 고교교사와 전문 입시브로커들이 대학생을 고용,대리시험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졌다는점에서 큰 충격을 던졌다. 게다가 지난 5월 전국을 강타한 슬롯머신 태풍은 일확천금의 꿈에 젖은 사람들과 업소들과 유착된 권력층,조직폭력배등으로 뭉뚱그려진 우리 사회의 부정을 그대로 나타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허가된 복마전으로 일컬어진 이 사건은 탈세등 불법을 자행한 정덕진씨와 정씨의 정·관계 배후세력에 수사의 초점이 맞춰져 「5공의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의원이 구속되는 사태로 번졌다. 또 이건개전대전고검장,천기호전치안감,엄삼탁전병무청장,이인섭전경찰청장등이 슬롯머신의 태풍에 휩쓸렸다. ○박철언의원 구속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3백여곳에 이르는 전국 슬롯머신업소를 95년까지 폐쇄키로 하는 한편 검찰은 환부를 도려내는 자정의 불을 댕기기도 했다. 한편 지난 3월15일 정부의 약사법시행규칙의 공포가 몰고온 한·약분쟁은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한 집단이기주의의 전형이었다. 약국들의 한약조제권을 둘러싸고 번진 한의생들의 집단수업거부로 시작된 3천여명의 한의대생들의 유급사태,약국들의 2차례에 걸친 휴업등 한약분쟁은 정기국회말인 지난주 약사법개정안 통과로 어느정도 진정국면에 접어들었으나 여전히 불씨를 안고 있다. 또 연말 제네바에서 불어온 우루과이 라운드협상의 돌풍은 쌀시장개방 절대반대라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케 해 각종시위와 집회등을 전국적으로 촉발시켰다.이밖에 지난 4월 정오 서울 도심을 뒤흔든 육군 임채성일병(20)의 무장탈영 총기난동,6월 서울 은평구 불광동 연신내 네거리에서의 시위학생들에 의한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 김춘도순경(27)의 폭행치사사건,연천 예비군훈련장 폭발사고등도 올해를 특징짓는 사건들로 꼽힌다. 새정부 원년의 국민들은 그러나 입시부정의 근원을 발본색원하려는 의지와 슬롯머신업계비리의 단죄,민생 침해사범의 대대적인 소탕작업등에서 지난날의 어두웠던 부분에 대한 아쉬움보다 앞으로의 희망에대한 기대를 새롭게 하고 있다.
  • 신용조사없이 계약 “눈뜨고 당해”/무기거래사기 전말과 문제점

    ◎국방부,거래실적 과신하다 화자초/선하증권 하자 대금결제뒤에 발견/은행과의 책임공방 법정까지 갈듯 프랑스 무기거래상의 가짜 선하증권을 믿고 선적도 하지 않은 거액의 무기값을 지불한 이번 국제 무기사기사건은 1차적으론 하자를 면밀히 검토하지 않은 금융기관의 금융사고로 볼 수 있지만 무기도입과 관련한 국방업무체계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이번 사건은 국방부 군수본부가 육군 교육용 90㎜ 포탄 및 1백5㎜·1백55㎜ 포탄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프랑스의 FEC사와 에피코사라는 두 국제 무기상의 농간에 우리나라의 외환금융기관과 국방부 군수본부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방부 군수본부는 이 3종의 포탄 가운데 1백5㎜와 1백55㎜ 포탄은 프랑스의 에피코사와 각각 90년 11월19일과 11월12일에 3천발과 5천1백10발을 1백52만4천달러와 3백61만7천8백80달러에,90㎜ 포탄은 88년 11월24일 프랑스의 FEC사와 4천발을 1백88만3천3백20달러에 구매계약을 체결했었다. 결과적으로 외환은행이 위조선하증권을 믿고 6백67만3천9백40만달러(한화 53억원)를 국제사기무기상들에게 지급한 이 사건은 현재 국방부 군수본부측과 외환은행측과의 책임소재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방부측은 외환은행측이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고금액전액을 국고납입을 제의해 납입방법을 둘러싸고 협의까지 벌였으나 방법이 맞지않아 협의가 결렬돼 지난 11월26일 은행감독원에 금융분쟁 조정신청을 해 놓고 있는 상태라고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의 조사결과 국방부 군수본부가 이들 두 프랑스 무기상들과 계약을 체결한 뒤 두 무기상들은 신용장개설·무기상통보·무기포장·선박회사운송 및 선장에게 인도·선장의 선하증권발행으로 진행되는 국제무기거래에 유령 선박회사를 동원,가짜 선하증권을 만들어 무기계약금액을 가로챈 것으로 보고 있다. 에피코사의 경우 가너스 베리(GUNNERS BURY)라는 선박회사를 운송대리인으로 내세웠으나 유령회사인 것으로 드러났으며 FEC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수표와 똑같이 취급되는 유가증권인 선하증권을 제시하면 신용장을 개설한 은행은 대금을 지급해야 하지만 이 경우 선하증권의 하자 검토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 국방부측의 주장이다. 국방부측으로서도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국방부 군수본부측이 선하증권이 허위라는 사실을 알게된 것은 지난 1월6일 선하증권을 외환은행을 통해 받은지 거의 6개월이 경과한 시점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그러나 이미 무기대금은 지급된 뒤였으며 파리에 상주하고 있는 무관을 통해 두 무기상의 소재를 확인했으나 모두 잠적한 뒤였다.또한 이들 프랑스 무기상의 국내중개상 역할을 했던 광진교역등도 자취를 감춘 뒤였다. 국방부 군수본부가 무기상에 대한 신용조사를 하지 않은 것도 이번 사건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무기상에 대한 신용조사는 연2회 정기적으로 하도록 관계규정이 정하고 있으나 두 국제무기상이 전에 국방부와 무기거래실적이 있다는 점만을 과신,별도의 신용조사없이 무기거래계약을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이번 사건은 은행감독원 산하에 설치된 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신청이 돼있어 그결과에 관심이 쏠리고있다.위원회는 피신청인(금융기관)에 대한 사실조회를 한뒤 그 결과 신청인의 주장이 사실과 다른 경우와 사실이더라도 수사권이 없는 위원회의 속성상 다루기 어렵거나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기각 또는 각하한다. 사실조회가 끝나면 월1회 열리는 위원회에 회부,양측의 주장을 들은뒤 조정한다.조정 결과를 분쟁 당사자 양측이 모두 수락하면 종결 처리된다.그러나 어느 한 쪽이라도 이의가 있으면 아무런 효력을 갖지 못한다.이때는 정식 재판을 통해 해결할 수 밖에 없다. 군수본부와 외환은행간의 위조 선하증권 관련 분쟁의 경우 서류상의 하자 부분에 대해 은행이 수입자에게 통지했는지 여부가 관건이 된다.은행측은 이에 대해 군수본부측 담당관에게 전화로 통지하고 대금지급 의사를 확인했다고 주장하고,군수본부측은 그같은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맞서고 있다.이 부분은 위원회가 사실 여부를 가리기 힘든 사안이어서 결국 법정 다툼으로 갈 공산이 크다.분쟁조정위원회는 감독원부원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변호사 2명과 교수,소비자 대표,감독원 임원,기타 각1명등 모두 7명으로 구성돼 있다.
  • “러 신헌법 부결땐 내전 발발”/옐친 경고

    ◎“국민위한 최선장치” 지지호소 【모스크바 이티르 타스 AFP 연합】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9일 신헌법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될 경우 내전발발 우려가 있다고 경고하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촉구했다. 옐친대통령은 이날 TV방송을 통한 대국민연설에서 『신헌법이 채택되지 않는다면 내전위협이 현실화될 것』이라면서 「평화와 안정」 여부는 오는 12일 실시되는 국민투표에서 1억7백만 유권자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신헙법이 불완전한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이상적인 법제정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점을 고려한다면 국가 및 국민들을 보호하는 데 가장 믿을만한 장치라고 강조했다. 옐친은 또 신헙법이 대통령의 독재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과 관련,강력한 대통령은 결코 절대적이거나 무제한적이지 않으며 헙법에서 이를 잘 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국가통일과 질서 및 법치회복,민주정착을 위해 국민들은 새로운 헌법을 찬성해야 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 대상에 해운부문 최병호씨/3회 교통봉사상 수상자 13명 선정

    서울신문사가 교통업무에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있는 숨은 일꾼을 찾아내 사기를 높여주고 올바른 교통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교통부와 공동으로 제정한 제3회 교통봉사상 수상자가 1일 결정됐다. 철도·공로·해운·항공등 4개 부문에 걸쳐 대상·본상·장려상·특별상 수상자 13명을 선정한 이번 교통봉사상에서 영예의 대상은 최병호씨(59·울산지방해운항만청 기능직 6등급 등대장)가 차지했다. 본상은 이천세씨(42·영주지방철도청 영월역장)등 4명이,장려상은 이문희씨(57·부산지방철도청 부산기관차사무소 기술계장)등 7명이,그리고 특별상은 이종훈씨(34·어업)가 각각 차지했다. 대상에는 3백만원,본상에는 2백만원,특별상에는 각 1백만원씩 상금이 주어진다. ◎본사 20층서 9일 시상식 시상식은 9일 상오 11시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갖는다. △최병호 △이천세 △금기중(46·동양고속 안전차장)△양도식(59·대아고속훼리 선장)△김윤태(54·서울지방항공청 항공주사) △이문희△장석영(44·순천전기사무소 철도원)△김정번(53·대한손해보험협회 이사대우)△김원구(54·서울지하철공사 운수과장)△장의섭(59·조양상선 기관장)△안효중(39·우양상선 선장)△손표순(45·한국공항공단 사원) △이종훈 ◎대상 최병호씨/울산해운항만청 기능직 6급/등대지기 38년6개월… “뱃길안전이 보람” 『보잘것 없는 일을 하는 저에게 이런 큰 상을 주시니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서울신문사가 제정한 93년도 교통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된 울산지방해운항만청 간절갑항로표지관리소 최병호소장(59·부산시 남구 민락동 129의16). 최소장은 지난 55년 부산교통고교 항로표지과를 수료한뒤 같은해 5월 부산지방해무청 관내 절영도등대의 등대원으로 바다와 첫 인연을 맺었다.그후 부산의 가덕도·오륙도·서이말도와 마산의 소매물도,울산의 울기·화암추 등 8곳의 등대에서 일해왔다.세상 욕심없이 바다만 보며 살아온 38년6개월의 고독한 등대지기 삶이었다. 최소장의 동료들은 한결같이 그를 등대원의 본보기로 평가한다.인화단결은 물론 항로표지 발전과 해상교통 안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등대의 고장난 시설물을 손수 보수해 2천8백만원의 예산을 절감한 것을 비롯,관광객들이 찾아올 때마다 등대 주변의 송림 보호를 위해 극성스러울 정도로 홍보한 것도 직책에 대한 그의 성실함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사례들이다. 최소장은 이처럼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아내 강난희씨(58)와 함께 2남2녀를 대학과 여고까지 가르쳐 출가시킨 자랑스런 아버지이기도 하다. 『정년이 1년만 더 연장될 수 있다면 「뱃길 안전」을 위해 남은 힘을 모두 쏟을 수 있으련만…』.내년 6월말 정년을 앞두고 등대와 헤어질 일을 못내 아쉬워하는 최소장은 영원한 「바다의 파수꾼」이었다. ▷본상◁ ◎항공분문/김윤태씨 서울지방항공청/관제업무 효율화 기여 서울지방항공청 직원으로 20년을 넘게 근무해오며 항공관제에 관한 업무효율화에 큰 공로를 세웠다. 지난 82년에 제주국제공항이 개설되면서 레이더 운용요원이 시급히 요구되자 이를 위한 교육에 착수,제주공항 전직원을 레이더요원화해 항공사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지난 88올림픽때에도 폭주하는 항공량에 대비,효율적 관제를 도맡아 해냈고 항공정보간행물(AIP)을 발간했다. ◎해운부문/양도식씨 대아고속훼리/11년간 무사고 운행 대아고속훼리선의 선장으로 11년을 근무하면서 울릉도민의 수송은 물론 생필품 공급에 크게 기여했다. 지금까지 단 1건의 사고도 없이 승객 87만4천여명,환자 2백97명을 수송한 경력을 쌓았다. 울릉도주민들에게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인물이며 특히 지난해 10월 오징어잡이어선 제3준양호가 침몰했을때 선원을 구해내 또한번 칭송을 듣기도 했다. ◎철도부문/이천세씨 영월역장/승객 만족 캠페인 벌여 승객을 위한 「고객만족 운동」을 전개,철도의 이미지를 높였다. 역 대합실에 사전 서예작품을 유치해 역사를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활용했으며 「주민과 먼저 인사하기」운동을 벌여 주민과의 거리감을 없앴다. 음악이 있는 역으로 만들기 위해 음악방송을 실시했으며 역 주변의 게시물도 고객위주로 바꿨다. 또 철도의 날에는 승객에게 꽃을 전달하기도 했으며 불우이웃돕기에도 모범을 보였다. ◎공로부문/금기중 동양고속/속도제한운동에 앞장 고속버스업계의 안전성 제고에 큰 기여를 했다. 자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속도 1백㎞제한 운동을 전개했다. 이 운동으로 대형사고는 지난해에 비해 77% 감소,5억3천만원의 사고비용이 절감됐다. 속도제한운동은 현재 10개 고속버스회사 2천대가 동참할 정도로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장려상◁ ◎특별상/이종훈 부안 위도어민/격포 조난자 44명 구조 전북 부안군 위도면에 살면서 고기잡이배인 동국호선장으로 생업을 유지해오다 지난 10월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 소식을 듣고 현장에 달려가 생존자 44명을 구해냈고 사체수색작업에도 자신이 참여했다. ◎항공/손표순씨 한국공항공단/심야 여객수송 체계화 한국 공항공단 직원으로 11년7개월을 근무하며 공항내 교통체계개선과 화물처리에 기여했다. 최근에는 교통사고줄이기운동에 앞장서 성과를 거두는가 하면 심야항공여객의 연계수송대책을 체계화,공항이용객편의에 큰 활약을 보였다. ◎해운/안효중씨 우양상선/20년경력 항해 베테랑 73년 부산해양고를 졸업한뒤배를 타 항해사로 15년간 근무했으며 지난 90년 마침내 선장으로 승진,철저한 근무방침아래 탁월한 지휘능력으로 다른 해기사에 모범이 돼왔다. ◎해운/장의섭씨 조양상선/해상오염 방지에 힘써 해양대를 졸업한뒤 27년동안 배를 타며 무사고 무재해 운항에 노력을 기울였다.특히 유수분리기·폐유소각기 정비기술이 뛰어나 해상오염 예방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공로/김원구씨 서울지하철공사/지하철 안전요원 운영 1백6개 지하철역에 청소원 1천5명을 24시간 배치하고 질서안내원 6백89명을 러시아워때 투입,승객안전수송에 크게 기여했다.역장실을 시민상담실로 운영,시민의 불편을 해소하고 있다. ◎공로/김정구씨 대한손해보헙협회/어린이 윤화예방 교육 교통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곳에 교통안전표지판·도로반사경·머릿돌 충격완화시설 등을 설치,교통사고예방에 힘을 쏟았다. 특히 어린이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캠페인을 펼치고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철도/이문희씨 부산지방철도청/구포사고 복구에 큰공 29년6개월동안 철도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ATS장치등 첨단장비 검수기술 방안을 고안해 고장사고를 줄였다. 구포열차사고때에는 신속히 사고복구 방법을 제시,조기개통에 기여했다. ◎철도/장석영 순천전기사무소/신호보안기 철저 관리 신호직무교육장을 4개월만에 설치해 4천5백만원의 예산을 절감했다. 최근에는 건널목 경보장치 78곳을 특별점검,폭우등으로 망가진 29개 신호보안장치를 교체해 열차안전운행에 기여했다.
  • LPG선 탱크 폭발… 6명 사망/울산 현대미포조선

    ◎노르웨이선 수리대기중 참변/조선소직원 등 10명 중경상/검·경조사반 가스잔류 부실검사 여부 수사 【울산=이용호기자】 29일 상오 10시35분쯤 경남 울산시 중구 염포동 현대미포조선 전용부두에서 수리차 정박중이던 노르웨이 선적 LPG운반선 니하머호(3만9천t급·선장 브라우트·57)의 4번 LPG저장탱크가 폭발했다. 이 사고로 선장 브라우트씨 등 노르웨이인 3명과 한승학씨(35·현대미포조선 현장대리)등 미포조선 직원 3명 등 모두 6명이 숨지고 태성실업 근로자 이차순씨(59·여)등 10명이 다쳤다. 사고는 브라우트씨와 현대미포조선 관계자들이 4번 탱크 위 갑판에서 수리부위에 대한 협의를 하던중 갑자기 탱크가 폭발해 일어났다.사고당시 배에는 선원과 현대미포조선 직원,하청업체 직원 등 30여명이 승선해 있었으나 폭발한 LPG탱크 주변에 있던 16명만 피해를 입었다. 사고가 나자 검찰과 경찰은 합동조사반을 편성,미포조선 직원들과 하청업체인 태창실업 인부들을 상대로 조사에 나서는 한편 30일 상오 가스안전공사 등 6개 기관이 참여한 가운데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키로 했다. 합동조사반은 특히 이 배가 지난 26일 가스제거작업 대행업체인 (주)범한검정으로부터 4개 탱크의 가스잔류 여부 검사를 받고 폭발 위험이 없음을 확인했다는 선박대리점 협운해운과 미포조선측의 주장에 따라 범한검정 관계자들을 상대로 부실검사 여부를 조사중이다.합동조사반은 또 미포조선측이 사고당시 일체의 작업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부 직원들이 『갑판 배관부 노즐과 핸들을 조작하고 있었다』고 진술함에 따라 작업이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니하머호는 지난 25일 하오 9시쯤 노르웨이인 선원 5명과 필리핀인 선원 23명 등 모두 28명을 태우고 입항했었다. 사망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브라우트 ▲포셈(50·니하머호 1항사) ▲옌센(51·〃하역1항사) ▲한승학 ▲조대훈(30·미포조선 기관부대리)▲김종삼(46·〃선체부) ◎“관계자 사법처리” 노동부는 29일 울산 현대미포조선소의 노르웨이 국적 리함바호 폭발사고와 관련,현대미포조선 관계자들을 사법처리키로 했다. 노동부는현대미포조선 근로자들이 LPG가 누출되는 상태에서 사고선박의 LPG 탱크를 용접하다 불이 붙어 폭발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작업과정에서 회사측이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실이 발견될 경우 관계자들을 구속할 방침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3조는 2명이상의 사망사고를 낸 경우 회사대표나 현장첵임자를 구속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편 노동부는 이날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5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중대재해조사기동반을 현지에 보냈다.
  • 검거한 히로뽕 두목/검찰서 놓쳤다 잡아

    히로뽕 밀매조직인 「춘풍파」 두목 이재덕씨(38·일명 이춘풍)가 검찰에 검거돼 수사를 받던 도중 수사관 차량을 탈취,도주했다가 다시 붙잡힌 사실이 12일 뒤늦게 밝혀졌다. 서울지검에 따르면 인천지검에 검거된 이씨는 서울지검으로 넘겨져 지난달 16일 강력부 정선태검사 지휘아래 수사관 차량편으로 밀매조직 접선장소인 서울 강남구 역삼동 J주유소에 도착한뒤 접선순간을 잡기위해 수갑을 풀어준 틈을 타 발목에 족쇄를 찬 채 차량을 탈취해 그대로 달아났다는 것이다. 달아난 이씨는 「춘풍파」에 대한 자체수사를 벌여오던 인천지검에 의해 지난 1일 히로뽕 4백10g을 허리 전대에 찬채 J주유소에서 검거됐다.
  • 위도 지서장을 백 선장 오인(은방울)

    ◎닮은 얼굴보고 “생존” 증언/행적·복장 목격담과 일치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직후 「백운두선장이 살아있다」는 설이 나돌게 된 것은 목격자들이 백선장을 빼어닮은 위도 지서장 장복영경위(47)를 백선장으로 착각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간 「시사저널」(11월4일자)보도에 따르면 장경위는 사고당일 주민 7∼8명과 함께 10t급 흰색 배인 영승호를 타고 사고해역에 갔다가 파장금항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마침 사고해역에서 생존자 한명을 구조한 유진호 선장 최문수씨(30)가 장경위 일행을 목격했다는 것. 장경위는 당시 최선장의 목격담대로 경찰복인 감색잠바와 해양경찰 작업모인 빨간색 모자를 벗어들고 배 뒤쪽에 침통한 표정으로 서있어 목격자들을 착각에 빠지게 했었다고. 키가 1m76㎝로 백선장(1m80㎝)과 몸집이 비슷하고 특히 옆모습이 매우 닮은 장경위는 『위도주민들로부터 백선장과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며 『내얼굴을 잘 모르는 식도주민들이 나를 백선장으로 잘못 알아 이같은 소동이 벌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 일기도의 고려교/박성수 (일본속의 한국문화:8)

    ◎김방경장군이 1274년 왜병 섬멸한 곳/여몽연합군,대마도 이어 공격… 1천명 몰살/일제때 「원구순국비」 건립… 고려군존재 은폐 일기섬은 일본인들도 가보았다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절해의 고도다.그러나 그곳에 고려교가 있었다는 소문을 듣고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던 터라 대마도에 간김에 들러보기로 했다. 고려교가 있다는 곳은 일기섬 북단의 가쓰모토(승본)항.그곳 향토사가 중상사행씨의 안내를 받아 먼저 산성에 올라갔다.본시는 대마도에 있는 백제산성이 아니었나 생각했는데 안내판에는 풍신수길이 우리나라를 치기 위해 전초기지로 사용했다고만 적혀 있었다.이름하여 승본산성.이 산성에서 북쪽바다를 바라보면 대마도가 보이고 세섬이 천연의 방파제 구실을 해주고 있는 가쓰모토항이 내려다 보인다.우리나라 기록인 「고려사」에는 이 항구를 삼즉포라 이름하고 있는데 위구의 소굴로 치부하고 있다.하늘은 푸르고 오징어잡이배가 힘차게 열을 지어 출항하는 광경이 어쩐지 왜구가 떠나가는 것같이 느껴졌다. 1274년 음10월 여몽연합군 9백척이 이 항구를 쳤다.그 상륙지점이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해서 내려가 보았다.시내 한복판 길가에 「문영지역 원군상육지」라는 표석과 이곳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전몰기념비가 서 있었다.물론 대마도의 경우와 같이 1백년전 일제침략자들이 세워놓은 최근작이었다.바로 그 옆에 신공황후를 모셨다는 성모궁이 있어 이 지역 일대가 대한침략의 성지처럼 되어왔던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여기서 필자는 왜 그들이 고려군을 빼고 몽고군(원군)만 이곳에 쳐들어 왔다고 한 것일까를 생각해 보았다.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조선은 약하다고 선전해 놓았는데 그렇게 약한 조선군(고려군)이 여기까지 쳐들어 왔다고 하게 되면 곤란했을 것이다. ○왜장 평경륭 영웅화 그래서 몽고군만 쳐들어온 것으로 하면 그런 모순이 없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그래서 명치정권이 여몽련합군을 원구니 원군이니 하여 고려군의 존재를 말살해버린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항구로부터 차로 2∼3분 걸리는 고려교로 달려갔다.해는 이미 서산에 걸려 자칫하면 사진도 못찍게 될까 걱정이 돼서 먼저 사진을 찍고 중상씨의 설명을 듣기로 했다.작은 구름이 있고 그 아래 골짜기에 「문영지역 고려교 고전장」이라는 표석이 서있었다.대석이 없어서 약간 기울어진 것같았으나 바로 이곳이 우리 김방경장군이 적을 쳐서 전멸시킨 장소라 생각하니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오랫동안 위구에 시달리기만 하다가 적을 응징한 자리.그리고 그 뒤 오랫동안 이곳 사람들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은 고려라는 이름.이 얼마나 장한 일인가.그런데도 우리 국사책에 지워져 없는 역사의 현장이라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 고려교 표석의 유래는 7백년전 지금은 없는 이 다리위에서 고려군과 왜군이 싸워 1천명의 왜군이 쓰러졌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어 있다.「고려사」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재현해 보자. 『몽한군 2만5천,우리 군사 8천 그리고 선장 수부등 6천7백명이 전함 9백척에 나누어 타고 단숨에 합포(지금의 마산)를 떠나 대마도를 치고 일기섬에 이르니 왜병이 해안에 진을 쳤다. 아군이 그들을 쫓으니 왜가 항복을 청하더니 다시 와서 싸우므로 몽고군이 쳐서 1천여명을 죽이고 이어 적을 쫓았다.이때 중군 김방경은 효시를 뽑아 소리를 크게 질러 호령하니 왜가 겁을 먹어 달아났다.왜병은 크게 패하여 시체가 산더미와 같았다』 김방경의 전공은 너무나 컸다.그래서 『몽고군이 잘 싸운다고 하나 고려군에 비길손가』하는 탄성이 나왔던 것이며 이곳에서는 그뒤 이 싸움을 고려교 전투라 치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명치정부는 이 싸움을 신성고전장이라 이름을 바꾸고 고려군과 맞서 싸우다가 자진한 평경륭을 영웅화하였다.아울러 이때 같이 죽은 1천명의 시신을 기려 신성 천인총이라 하였고 신성 언덕위에 신사까지 세워 오늘에 이르렀다.고려교 표석옆에는 지금도 「원관순국충혼비」가 서있고 꽃다발이 생생한데 설명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문영의역 신성고전장(현지정사적). ▲천인총­문영11연10월14일(1274)에 몽고군이 내습하여 상륙하였다.수한대 평경륭은 1백여기로 이틀동안 싸웠으나 원군이 너무 많아 전멸당하였다. ▲신성신사(평경륭의 묘)경륭은 고전끝에 자신의 거관인 신성에 패주하여 다음날 최후의 일전을 시도하다가 일주 모두가 성내에서 자결하였다고 전한다」 ○몽고군 1만명 익사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는 몽고군의 수탈과 삼별초의 항전으로 백성들이 초근목피로 목숨을 부지하던 민식초목지실의 시대였다.그런 속에서 3만여명의 목수들이 징발당해 단 5개월만에 9백여척이나 되는 전선을 만들어 냈으니 스스로 일본정전같은 큰일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 군사들은 물론 목수들까지 극도로 사기가 떨어져 있었다.특히 목수들은 몽고군의 횡포와 강압에 격분한 나머지 불양선함을 만들어내 몽고군이 타고 가다가 모두 수장되기를 바랐다.고려군은 이 사실을 알고 태풍이 불자 재빨리 튼튼한 배에 올라타서 대부분 생환하는데 성공하였으나 몽고군은 이 사실을 전혀 몰라 1만3천여명이 물귀신이 되어 돌아오지 못하였다.따라서 여몽연합군의 일본정벌때 불어닥친 바람은 신풍이 아니라 고려목수들의 바람이었던 것이다. 고려교와 신풍의 왜곡된 현장 일기도는 아직도 안개속을 헤매는한일관계처럼 시정되지 않은채 오늘을 살고 있다 할 것이다.
  • “안전이 제일… 안전조업 하십시오”/김 대통령­선장 무선대화 내용

    ◎“폭풍주의보 내렸는데 어떤가요”/대통령/“우리보다 대통령 건강이 더 중요”/선장 김영삼대통령은 23일 제1회 수산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후 출어중인 전국의 어선과 무선을 통해 대화를 나눴다. 김대통령은 이날 수협중앙회 16층 무선통신국에 들러 출어중인 1천9백83척 어선 모두가 무선을 열어놓은 상태에서 대진수산 소속 123대진호(1백87t)의 윤영택선장과 6∼7분간 교신. 다음은 교신내용이다. ▲김대통령=여보세요.여보세요.여러분 안녕하십니까.동·서·남해에 나가 있는 어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한동안 상대방의 응답 없음)누구 한분 나와보세요.안녕하십니까. (찌직하는 무선음 소리들리다가 윤선장이 나옴) ▲윤선장=저는 대진호 선장 윤영택이라고 합니다.국정때문에 바쁘실텐데… 어민들한테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오바. ▲김대통령=대통령으로서 여러분과 통화하게 돼 기쁘게 생각합니다.현재 위치는 어딥니까. ▲윤선장=여기는 거제도 남방해상 20마일 지점입니다.오바. ▲김대통령=뭘 잡아요. ▲윤선장=고등어 잡는 배입니다. ▲김대통령=얼마나 잡았습니까. ▲윤선장=지금 아직 어장에 도착하지 못하고 항해 중입니다. ▲김대통령=아,항해중이라고요.제일 중요한 것은 어민들의 안전입니다.폭풍주의보가 발령됐다는데 그곳은 어때요. ▲윤선장=여기는 좋습니다.대체로 맑은 날씨에 파고 2∼3m,풍속은 북서풍에 14∼17m 정도입니다.현재 이곳에는 5∼6척의 어선이 항해중에 있습니다. ▲김대통령=2∼3m 파고를 좋다고 하는 용기가 그게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그래도 언제나 안전이 제일 중요합니다.언제나 일은 일어날 수 있는 만큼 안전조업을 우선 해야 할 겁니다.대통령으로서 부탁하는데 안전한 조업을 바랍니다. ▲윤선장=대통령 말씀 명심하겠습니다.직접 저희들을 걱정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김대통령=선원은 몇명이나 됩니까. ▲윤선장=선장외에 10명이 더 있습니다. ▲김대통령=선원들과 이 무선을 듣는 모든 어민들에게 대통령으로서 감사의 말씀과 안부를 전하고 싶습니다.멀리 있더라도 건강한 모습으로 항구로 돌아 오시기를 기원합니다.언제나 건강에 주의하고요…. ▲윤선장=대통령 건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건강에 유의하십시오.오바. ▲김대통령=감사합니다.네,네…. 김대통령은 교신이 끝난뒤 윤선장이 대통령의 건강이 더 중요하다고 한말을 되뇌이며 감사해 했다.김대통령은 이어 지하 1층에 있는 수산물직판장을 둘러보았다.
  • 책임행정구현의 교훈삼도록

    서해훼리호 침몰사고의 책임을 물어 교통부장관과 해운항만청장이 경질되고 내각이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심기일전의 결의를 다짐했다.우리는 정부의 이러한 조치가 3백명 내외의 희생자를 낸 이번 사고수습의 마무리가 아니라 다시는 이런 일이 정말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실질적인 해결노력의 첫걸음이 되어야한다고 믿는다. 지난 8개월간 이런 대형사고로 희생된 인명은 4백여명을 넘는다.세차례의 사고 모두 안전소홀,적당주의,무사안일이 부른 원시적 인재였다.철도및 항공기 사고등 두차례 사고후에도 근본적인 대책은 나온게 없다. 우리사회의 후진성은 해항청뿐 아니라 사망한 선장을 지명수배한 검찰,성급한 오보를 밀고 나간 언론,인양된 사고선박을 침몰케한 대책본부 등 어느 한 분야만의 일이 아니다.민관의 총체적 낙후성과 전사회적 방만성이 위험수준에 이르렀다는 적신호다.이제 차분히 진단과 처방,실천에 국민 모두의 각성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점에서 정부가 민심수습차원의 상징적 개각카드대신 책임행정 구현의 문채 인사에서 접근한 것은 실질적인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행정의 몫에서부터 풀어가겠다는 당연한 선택이다.일부 다른 부처의 장관까지 경질대상으로 하는 것은 내각의 안정을 깨고 문제의 초점을 흐릴뿐 올바른 해결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통관계 행정의 새로운 책임자들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철도 항공 해운 운영체계의 근원적 정비와 근본대책을 마련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문제의 심각함에 비추어보면 지극히 작은 부분일 수밖에 없다.아무리 돈을 투자하고 사람을 갈아도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실효가 없다.먼저 행정이 달라져야 하고 언론이 함께 달라져야하고 그리고 국민 모두가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행정만해도 가장 큰 병폐가 언론이 다루지 않으면 흐지부지 잊어버리는 망각증이다.이번만큼은 보지않는 구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을 떼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이 아무리 안전을 강조해도 그때 뿐이 되고 만다.장관들이 기업체의 회장처럼 아예 일주일에 몇번씩은 현장으로 출근해봄직도 하다.선진국의 내실을 갖추려면 먼저 문제를 끝까지 잡고 늘어지는 치열함과 과학적 조직적 접근자세가 있어야 한다.채임행정이 바로 그런 것이다. 아울러 종합적 안목에서 모든 법규와 관행 의식의 선진화를 위한 특별한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그중에서도 부끄러운 국민성으로까지 고착되고 있는 후진의식을 바꿔야 한다.관계장관의 문책은 공동체의 안전문제를 사회운영의 큰 우선순위로 끌어올려 정부와 사회의 모든 역량을 모으는 의식개혁 운동의 계기가 되어야 할줄로 안다.
  • 서해훼리/“요동심해 자갈 깔고 운항”/검찰 수사

    ◎전북도의원 주장/제작사도 “모래싣게 개조” 시인/승선표 3백24장 묶음 발견/검찰 【전주=특별취재반】 서해훼리호 침몰사고를 수사중인 검·경합동수사본부는 18일 사고배가 좌우요동을 줄이기 위해 선박 뒷부분에 상당량의 모래주머니를 싣고 운항하도록 선체 구조를 개조한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선박이 인양되는대로 이 부분에 대해 집중 수사키로 했다. 서해훼리호 제작사인 군산 대양조선소 김상환사장(45)은 이날 『사고배가 제작때부터 선미쪽이 뜨는 경향이 있어 선미에 모래주머니를 실어 무게중심을 조절할 수 있도록 「밸러스팅」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또 전북 옥구군 옥도면 섬 출신 전북도 도의회의 김철규의원(54)은 『「선장 백운두씨가 평소 무게중심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요동이 심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며 『요동방지를 위해 배밑바닥에 상당량의 자갈을 싣고 다녔다는 확증을 갖고 있다』는 내용을 새롭게 제기했다. 수사본부는 이에따라 선체가 인양되는대로 해양·조선전문가들과 함께 「자갈 운항」을 비롯 ▲사고배의무게중심 조절장치 결함 ▲이를위한 불법 설계 변경여부등에 대해 정밀수사키로 했다. 수사본부는 또 이와함께 배가 침몰하면 자동으로 구조신호를 보내도록 돼 있는 사고선박의 SSB 무전기가 작동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지난달 11일 무전작동상태를 조사한 한국무선국관리사업소 전북지부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한편 수사본부는 이날 사고선박의 1차인양 당시 찍어온 비디오를 검증한 결과 조향타는 오른쪽으로 7도 기울진데 반해 방향키는 20도정도 꺾여진 사실을 밝혀냈다.그러나 이는 침몰로 정전된 상황에서 조향타는 멋대로 움직이게 돼있다는 군산 대양조선소측의 설명에 따라 이번 사고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으로 결론 지었다. 수사본부는 이에앞서 지난 17일 인양된 선체를 수색,일련번호가 3백24번까지인 승선표 묶음과 현금 95만여원이 든 돈가방 그리고 항해일지와 통신일지를 발견했으나 항해일지와 통신일지에는 사고당일의 기록이 전혀 안돼 침몰원인 수사에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 백운두선장의 경우(사설)

    침몰선을 탈출,어딘가로 숨어들었을 것이라고해 지명수배된 상태에서 끝내 사체로 발견된 백운두선장과 갑판장,기관장등 서해훼리호 승무원과 그 유족들에게 우리는 우선 솔직하게 사과의 뜻을 표한다.시신이 인양되면서 이들 승무원들이 끝까지 배의 침몰을 막기위해 몸부림친 것으로 짐작되고있다.장렬한 최후였을 것이다. 그들의 주검은 무책임한 「목격자」의 어설픈 증언과 치밀하고 과학적인 수사와는 동떨어진 검·경의 속단,거기에 경쟁적인 언론들의 성급한 추측보도로 명예까지 짓밟히는 아픔을 겪었다.『살아있다고 오보하는 바람에 사람을 두번 죽였다』고 울부짖는 유족들의 항의에 할말을 잃는다.사람들은 참으로 부끄럽고 어처구니없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사고순간 선장은 긴급구조요청을 하기위해 통신실로 뛰어갔으며 여기서 최후까지 혼신의 노력을 다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2층 갑판위는 얼마든지 탈출할 수 있는 위치이며 구명조끼등 안전장비도 가까운 곳에 있었다.그러나 백선장등은 끝까지 침몰하는 배와 운명을 같이한 것이다.선장및 선원들의 생존설·도피설은 사고직후부터 꼬리를 물고 제기되었다.선장을 직접 구조했다는 사람,위도 파장금항에 내리는 걸 봤다는 「목격자」도 나왔다.심지어 『내가 백선장인데 자수하겠다』는 괴전화까지 수사본부와 방송국에 걸려올 정도였다. 검·경수사본부는 이같은 엉터리 제보를 믿고 처음부터 수사방향을 잘못 잡았다.그 결과 시체가 되어 선실에 갇혀있는 사람을 전국에 지명수배하는 사태도 빚었다.「선원의 98% 생존가능성」을 확신한 수사본부는 선원 가족들에게 『숨겨놓은 남편을 내놓으라』고까지 했다니 얼마나 기가 찰 일이었겠는가.이번 사건수사에 있어서 수사본부의 근시안적이고 성급한 예단은 크게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한동안 끊이지 않던 갖가지 악성 유언비어도 문제였다.대형참사를 맞은 상황에서 주민들의 불확실한 제보나,사실을 왜곡하고 사태를 악화시키는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풍조는 절대로 없어져야만 한다. 끝으로 우리는 선장 생존설을 보도한 언론들도 겸허한 자기반성이 있어야한다고 믿는다.대부분의 언론에서선장과 선원들이 탈출하여 중국으로 도피했거나 내륙 또는 무인도로 은닉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보도를 경쟁적으로 다뤘다.물론 이러한 생존설은 수사본부의 발표에 의존한 것이긴 하나 결과적으로 「죽은자의 명예」를 크게 훼손시켰다는 점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언론이 살아있다고 보도했으니 살려내라』고 절규하는 유족의 항의를 우리는 반성의 채찍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 백 선장,승객구조 최선다한듯/탈출 쉬웠던 갑판위의 통신실서 숨져

    ◎침몰 직전까지 SOS타전 시도 추정 생존·사망설이 엇갈린 가운데 검찰의 전국수배령까지 받아왔던 서해훼리호 백운두선장(56)등 승무원 3명의 사체가 15일 발견됨으로써 이들의 생존설은 터무니없는 낭설이었음이 입증됐다. 이에따라 당시 승선했던 승무원 7명 모두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백선장등의 사체가 발견된 곳은 선박2층 조타실 뒤편 통신실.사체발견 장소는 사고당시 백선장등 승무원의 역할과 관련해 중요한 단서가 된다. 통신실은 갑판위에 위치해 있어 침몰하는 상황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보다도 먼저 탈출할수 있는 곳이다.구명조끼등 안전장비도 어느곳보다도 가까이 있다.그동안 백선장을 포함한 선원들의 생존설이 나돈것도 이때문이다. 이들의 시신이 통신실에서 나온 것은 최후의 순간까지 배와 승객들을 구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했다는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즉 사고순간 구조요청을 위해 선장실 왼쪽에 있는 통신장비쪽으로 달려갔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백선장은 71년부터 선장으로 근무해오다 74년 군산해운항만청에서 5급 항해사자격면허를 받았으며 3년전부터 위도항로에서 일해온 베테랑.위도에서 태어나 평생을 뱃사람으로 바다에서 살아온 백선장을 주민들은 「물개」라고 불러 왔을 정도다. 이같은 증언등을 감안할때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빠져나오지 못하고 배와 승객을 구하기 위해 끝까지 혼신의 힘을 기울이다 배와 운명을 함께 했으리라는 추론이 설득력 있다. 생존설로 한때 곤욕을 치르기도 했던 백씨의 미망인 김효순씨(53)는 『늙어서 키를 잡지 못할때까지 위도노선 운항선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고 평소 입버릇처럼 말해왔다』고 전하면서 『남편때문에 숨진 유족들에게 고개를 들수 없어 남편을 따라 죽고싶은 심정』이라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