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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계은퇴 JP 소회 “다 타고 재만 남았다”

    “뭔가 세워놓고 떠나려고 욕심을 부렸는데….” 19일 오전 서울 자민련 마포당사 5층 총재실.김종필 총재가 이인제 김학원 등 4명의 이번 총선 당선자들에게 꽃다발 증정식을 가졌다.그러나 김 총재는 내내 어두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평소 형형(炯炯)하던 눈동자마저 한없이 흔들렸다. ‘영원한 2인자’로 통하는 김 총재는 이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그는 이번 4·15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 등록을 목표로 동분서주했다.78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하며 지원유세에 몸을 아끼지 않았었다.“총선 이후 2선으로 물러나겠다.”며 배수의 진까지 친 그였다. 그러나 유권자의 심판은 냉엄했다.자민련으로서는 ‘얄밉게도’ 4석을 확보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정당 지지도가 조금만 더 나왔더라도 그는 ‘국회의원 10선’이라는 전무후무한 대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개인적인 명예를 달성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기가 사치스러울 정도로 자민련은 추락했고 이는 그의 정계은퇴로 이어졌다. 김 총재는 이날 “노병은 죽지 않고 조용히 사라질 뿐”이라면서 “43년 동안 정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재가 되도록 탄 만큼,여한이 없다.”면서 애써 담담해했다.김 총재는 그러면서도 “세상은 옳든 옳지 않든 바뀌었다.”면서 “뭔가 세워놓고 떠나려고 욕심을 부렸는데,그러지 않았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라면서 착잡한 속내를 숨기지 못했다.5·16쿠데타로 등장했던 그가 43년간의 정치인생을 접는 날은 우연히도 4·19혁명 44주년 기념일이어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실감케 했다. 80년 전두환 정권 이후 한때 정치 규제 등을 당한 그는 87년 대선 때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며 지역 구도의 부활과 함께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했다.90년대 이후에는 김영삼 김대중 나머지 ‘3김’을 나란히 대통령에 올려 놓으며 ‘킹메이커’로 군림했다.그러나 16대 총선 참패,소속 의원들의 잇따른 탈당으로 입지가 크게 약화됐다.이번 총선에서 충청권 민심마저 완전히 등을 돌리면서 사실상 정치적 ‘사형 선고’를 받았다. 선장을 잃은 자민련호의 앞날은 불투명하다.열린우리당 한나라당 양강 구도의 ‘높은 파도’에 맞서 노를 저을 ‘선원’도 딱히 눈에 띄질 않는다. 자민련은 일단 4월 전당대회를 통해 총재를 새로 뽑은 뒤 6월 지방선거 재보선을 준비할 계획이다.그러나 “김 총재도 없는데 4명의 의원 갖고 뭘 할 수 있겠냐.”는 한 핵심당직자의 한탄처럼 당이 공중분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두걸기자 douzirl@˝
  • 건설사도 전문경영인 ‘롱런’ 시대

    건설업체에서도 전문 경영인의 ‘롱런’시대가 열렸다. 작은 기업에서는 오너 겸 전문 경영인으로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많지만 덩치가 큰 건설사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이들은 오너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는 동시에 샐러리맨들의 우상이 되기도 한다. 장수 사장들은 분명 다른 경영자들과 다른 비결이 있다.추진력이 강하다.지나친 몸집 부풀리기보다는 알찬 수익을 우선한다.건설사의 취약점인 현금 위기를 잘 넘기고,수익을 많이 남기는 실력을 지녔다. ●실력+오너의 믿음이 노하우 이용구 대림산업 사장은 지난 2000년 3월 임명된 지 4년이 넘어 장수 길에 접어들었다.직원들은 이 사장의 장수 비결을 객관적인 실력에서 찾는다.이 사장은 99년 166%였던 부채비율을 지난해에는 85%로 낮췄다.주가도 많이 올려놓았고 지난해에는 2196억원 순이익을 기록했다. 대림산업은 단기 경영실적을 따져 갈아치우는 일이 없다.일희일비하지 않고 ‘일단 맡기면 밀어준다.’는 오너의 경영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임승남 롯데건설 사장은 98년 4월 지금의 자리로 옮겨 6년 넘게 롯데건설을 지키고 있다.임 사장은 보수적인 회사 이미지를 공격적인 경영을 펼치는 회사로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택사업도 톱 클래스 수준으로 올려놨다.뚝심과 추진력,여기에 오너의 깊은 신뢰가 오랫동안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비결로 꼽힌다. ●대부분 4~6년차… 영업인사 맹활약 이방주 현대산업개발사장은 현대자동차 사장 출신의 재경 전문가로서 수리에 밝다. 어려운 고비에 직면할 때마다 자동차에서 쌓은 외국자금 유치 등의 노하우를 마음껏 발휘했다.99년 3월 사장 자리를 받고 2001년부터 1000억원대의 순이익을 냈다. ‘기업의 생존 원칙은 이익을 내서 주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주주우선의 원칙을 지킨다.내실 다지기,현금 위주 경영,돈되는 사업만 손댄다.건설업체 출신이 아닌데도 지난 달 한국주택협회 회장에 추대됐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이상대 사장은 93년 제일합섬에 입사했다.98년 4월에 삼성건설 주택부문장으로 사실상 주택업무 선장이 됐고 2000년 1월에 주택부문 대표이사에 올랐다.2002년 건설부문과 주택부문 통합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 이 사장은 인사·교육분야를 주로 다뤘다.하지만 경영자가 된 뒤로는 알아주는 ‘장사꾼’이 됐다.소비자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는 마케팅 전문가인 동시에 우리 나라 주거문화 수준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행처럼 번진 사이버·건강·환경 아파트 등을 잇따라 ‘히트’시켜 업계의 시기와 부러움을 받고 있다.‘래미안’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상품화하는 데도 성공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실종선박 日해상서 좌초 선원 3명사망·1명 중상

    경북 포항 구룡포항을 출항했다가 통신이 두절된 ‘동우호’가 일본 앞바다에서 좌초된 후 선원 3명은 숨진 채 발견됐다. 포항해양경찰서는 11일 오후 5시40분쯤 일본 해상보안청이 순찰을 하다 오오다 앞바다에서 동우호가 바위에 좌초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며 해경에 무선으로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발견 당시 동우호에 타고 있던 선장과 선원 4명 중 3명은 숨졌고 1명은 중상을 입었으나 신원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통보했다. 울릉도 오징어 운반선인 이 배는 지난 10일 오전 10시쯤 시운전 항해차 포항 구룡항을 출항,같은날 오후 10쯤 입항할 예정이었으나 통신이 두절됐다. 김효섭기자 newworld@˝
  • [일요영화]

    ●소유와 무소유(EBS 오후 2시) 험프리 보가트·로렌 바콜 주연.영화 내용을 차치하더라도 두 주연배우의 이름만으로도 눈이 번쩍 뜨인다.제2차 대전중인 1940년,나치에 동조하는 비시 정부와 레지스탕스 사이의 전쟁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카리브해의 작은 섬 마르티니크.이 곳에 사는 해리 모건 선장은 돈벌이를 위해 중립을 지키는 냉철한 인물이다.그러던 그가 마리아를 만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모건은 그녀를 안전하게 고향으로 돌려보낼 자금 마련을 위해 레지스탕스 리더인 부삭 부부를 돕기로 한다. ●바라바(KBS1 오후 11시35분) 예수의 처형을 원하는 군중들에게 빌라도는 예수와 도적 바라바를 두고 누굴 석방하길 원하느냐고 묻는다.군중들은 바라바를 택하고 예수는 결국 십자가에 못박히게 된다.성서에 기록된 이 사건 이후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명배우 앤서니 퀸이 바라바로 나온다.종교적인 메시지보다는 당시 평범한 사람들이 겪은 격동의 세월을 담아냈다.십자가형이 이루어지는 동안 진행되는 개기일식 장면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식을 화면에 담은 것으로 이를 위해 감독은 촬영일정까지 연기했다. 예수 대신 석방된 바라바는 예전의 폭력적인 삶으로 되돌아간다.다시 붙잡힌 바라바는 평생 동안 광산 노역을 선고 받는다.광산에서 만난 기독교도인 사하크와 친구가 된 그는 예수의 희생에 대한 기억으로 고통 받는다.광산에 매몰됐다가 살아난 뒤 바라바와 사하크는 로마 콜롯세움으로 보내져 검투사 훈련을 받게 되고 사하크는 죽음을 당하게 된다.복수를 감행한 그는 사하크의 시신을 기독교 모임으로 옮겨갔으나 그 곳에서 섣부른 신앙심을 내보여 배척받는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 [총선 D-12] 한나라 “지옥이 따로없네”

    한나라당 사람들은 2일 겨울옷을 다시 꺼내 입었다.비온 뒤 기온이 뚝 떨어진 탓도 있다.하지만 여의도 벌판에 부는 바람은 유난스럽다.‘천막당사’,‘컨테이너당사’에는 겨울과 여름이 공존한다.햇빛이 쬐는 낮엔 때론 덥다.오후 4∼5시가 되면 스산해진다.춘사월에 석유 난로가 필수 장비다. ●당직자·기자 모두 ‘피난민 신세’ 한나라당 당사는 ‘준비 안된 당사’다.하드웨어도,소프트웨어도 부실하다.9일째 쉬지 않고 보완해도 모자란다.기존의 초호화 당사와 비교가 안된다.당직자든,기자든 모두가 때아닌 ‘피난민’ 신세다. 기자들은 ‘천막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역시 천막에 설치한 종합상황실도 마찬가지다.기자실에는 바람이 매섭다.황사가 불 때는 노트북PC,책상에 누런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다.입 안에 모래알이 씹힐 정도다.일부 기자들은 마스크를 쓰고 기사를 송고한다. 극심한 소음 또한 참기 어려운 공해다.아파트 모델하우스 철거로 연일 굉음이 요동친다.바람 불면 천막 펄럭이는 소리에 귀가 멍해질 정도다.스피커를 통한 언론 브리핑도 제대로 안 들린다.전화 취재마저 어렵다.“본드를 흡입한 듯 머리가 띵해진다.”는 푸념은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통신 설비는 최악이다.특히 인터넷은 수시로 끊긴다.며칠새 바이러스까지 침투했다.기자들은 급격히 떨어진 인터넷 속도에 속을 태워야 했다.한국이 초고속 인터넷 세계 1위라는 명성도 이곳에서는 예외다.일부 언론사들은 견디다 못해 ‘딴살림’을 차렸다. ●대표실·기자실 ‘빗물 전쟁’ 전날 비가 오자 박근혜 대표실에는 빗물이 줄줄 샜다.천막 속의 기자실,상황실에도 빗물이 고였다.여직원들은 흥건하게 고인 빗물을 빼내느라 하루종일 진땀을 뺐다.사무처 요원들은 뒤늦게 천장을 수리하는 등 부산을 떨어야 했다. 중앙당과 후보간 채널 역시 여의치 않다.각 선거구에서 뛰고 있는 후보들이 중앙당측과 연락하기도 쉽지 않다.처음엔 전화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불편을 가중시켰다.부랴부랴 통신설비를 구축했지만 의사소통 체계는 여전히 불안정하다.책임자가 자리를 비우는 사무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내부에서는 ‘가장 화려한 게 화장실’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는다.하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휴지도 떨어지기 일쑤이고,손 씻을 비누는 이날에야 갖다놨다. ●선장 없는 한나라號 대표실에는 대표가 없다.박 대표는 연일 ‘총선투어’에 몰두하고 있다.박 대표와 ‘투톱’인 박세일 공동선대위원장은 얼굴 보기가 어렵다.불쑥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지는 게 일상이다.이날 오전 몇 시간 정도 머문 게 지금까지의 최장 체류시간이다. 수뇌부의 공백은 중앙당의 통제력을 급격히 떨어뜨리고 있다.지금까지 각 선거구에 지원 보낸 중앙당 요원은 100명 정도.추가 지원요청이 쇄도하지만 결재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결재해야 할 대표도,선대위원장도,총장도,선대본부장도 거의 자리에 없기 때문이다. 윤여준 선대위 부본부장이 상근하는 최고위 간부다.선거전략회의는 실무자들만 움직이고 있다. 조직은 마비 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정상화되는 상황이다.이상득 전 총장이 두 번이나 퇴진 의사를 밝히면서 한때 와해 위기를 맞았다.비례대표 인선 때 사무처 출신이 홀대받자 손을 놓은 요원들이 줄을 잇기도 했다. 게다가 박세일 공동선대위원장의 ‘아픈 한마디’가 사무처 요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린 주요인으로도 꼽힌다.그가 ‘사무처 요원들은 개혁대상’이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자 불만이 팽배해 있다. 박대출기자 dcpark@˝
  • [선대위원장에 등는다] 민주당 추미애

    격랑에 빠진 ‘민주호’의 선장이 된 추미애 선대위원장이 30일 선대위 출범식에 앞서 비무장지대 도라산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인터뷰를 갖고 다부진 포부를 밝혔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간의 양강 구도 속에서 민주당의 전략은. -분당 과정에서 수동적·방어적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고 당을 와해시키겠다는 권력에 말살되는 상황이었다.절박한 방어 심리 속에서 탄핵 정국이 시작돼 당이 급격히 위축됐다.방향성 상실로 비쳐질 것이란 내 우려가 당내 논의 과정에서 받아들여졌었으면….막다른 골목에서 선거를 치르게 됐지만 낙관도,비관도 하지 않는다.민주당의 개혁성과 방향성을 회복하면 지지자들이 돌아올 것이다.‘민주당다움’을 복원하겠다. ‘민주당다움’은 무슨 뜻인가. -평화민주개혁 세력의 결집체를 뜻한다.노무현 대통령의 인위적 분당으로 수동적 자세를 가졌는데 이제 적극적으로 임한다는 것이다.또한 당내 화합이 먼저 필요하다. 열린우리당은 ‘민주 대 반민주’,한나라당은 ‘거여(巨與) 견제론’을 내세우는데. -노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고 위하면 ‘민주’이고 나머지는 ‘반민주’라고 설정,민주당 반발을 불러일으켰다.그래서 탄핵으로 귀결됐다.서로 상처를 주는 정치는 바람직하지 않다.지금은 통합이 필요한 시점이다.사회통합과 민족에 대한 비전 제시,6·15정신의 계승,햇볕정책의 발전 등.지난 1년 동안 노 대통령은 반노(反盧)·친노(親盧)로 당쟁을 유발,민주개혁 세력을 다 쪼갰다.국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기준도 없이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당쟁에서 국가와 민생을 건져내야 한다. 햇볕정책에서 열린우리당과 어떻게 차별화되나. -열린우리당은 햇볕정책을 논할 자격이 없다.햇볕 계승 약속을 저버리고 대북송금 특검을 받아들이고 또 친노·반노 이분법으로 혼란을 유발시켰다.통일을 왜 하나.쪼개고 나누는 세력이 통일을 주도할 수 없다. 한나라당과의 탄핵 공조에 대한 입장은. -입장 표명을 한 바 있다.잘못된 방향으로 지지세력을 실망시키고 이탈시킨 데 책임이 있다.탄핵이 아무리 이론상 이유가 있더라도 (민주당이)국민을 외면한 채 감정에 치우쳤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선거의 수단이라는 평가절하의 위험성도 있었다.폭설이 내리던 밤 의총에서 탄핵 4불가(不可)론을 주장했다.대통령이 총선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면 탄핵 표결까지는 안 갔을 것이다. 총선 이후 노 대통령,열린우리당과 함께할 수 있나. -(웃으며)길을 갈 때는 올바른 한 길을 가야 한다. 총선 투어 컨셉트는. -이 땅의 민주화를 사회 저변으로 확대하고 민주화 안된 북한 사회에도 민주주의를 이식시켜 온 민족이 평화와 번영으로 나가겠다는 것이다. 동교동 방문 계획은. -계획하지 않는다.누가 그러더라,DJ 딸 같다고.김대중 전 대통령 때문에 정치를 시작했고 숙명적으로 받아들였다.그런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그분의 정책을 계승하는 적자(嫡子)라는 자부심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민주당 재건과 자부심에 대해 격려해 주실 것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동질감은 당이 어려울 때,선거 때 만났다는 점이다.선거 때 전면에 내세울 때만 (우리들을)찾는다는 것이다.그러나 당 안에서 목소리를 내면 잘 안 듣는다.뒤늦게 그 이야기가 맞다고 알아차린다는 것이다.차이점은 대통령 딸과 세탁소집 딸이라는 점이다. 이두걸기자 douzirl@˝
  • [피플 인 포커스] 뮌터페링 獨사민당 신임 당수

    침몰의 길을 걷고 있는 독일 사민당을 위기에서 구출할 새 선장으로 뽑힌 프란츠 뮌터페링 신임 당수는 전임자들이었던 오스카 라퐁텐이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와 같은 강력한 카리스마는 없지만 겸손하고 친화력이 강한 지도자라는 평을 듣고 있다. 그가 21일 특별전당대회에서 95.1%라는 압도적 지지를 얻은 것도 그의 친화력이 당의 균열을 봉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는 슈뢰더 총리가 화려한 공격수라면 뮌터페링은 독일 축구의 황제 프란츠 베켄바워처럼 수비라인에서 전체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그의 앞길은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우선 야당인 기민당이 48∼50%에 이르는 지지율을 얻는데 비해 사민당의 지지율은 23∼27%에 그치고 있다. 슈뢰더 총리가 추진해온 사회복지 삭감 등 개혁정책의 결과인데 이같은 개혁정책을 계속하면서 떨어진 인기를 회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사민당 당원 수는 약 63만명으로 슈뢰더 총리가 처음 집권한 1998년에 비해 16만명이나 줄어들었다. 뮌터페링은 또 지난달 함부르크 지방선거에서의 참패를 만회,올해 안으로 13차례나 예정돼 있는 지방선거에서 사민당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벅찬 과제도 떠안고 있다. 사민당은 장기 경기불황과 10%를 넘는 실업률 속에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개혁정책이 불가피하다고 역설하고 있지만 이에 불만을 품은 당내 좌파세력은 당 지도부가 개혁정책을 고집한다면 탈당해 새로운 좌파 정당을 만들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다. 뮌터페링 새 당수의 친화력이 이같은 분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낼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 유세진기자˝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3)대원위대감의 생각 (下)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3)대원위대감의 생각 (下)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옥양봉 절골에 있던 가야사 터에다 아버지의 무덤을 옮겨쓴 지 12년 만에 둘째아들 명복을 낳은 것이 풍수설의 힘이라는 증거는 없다.또한 명복이 태어난 지 12년 뒤에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것도 풍수설의 예언이 적중한 것이라는 증거도 없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대원위대감의 그 해괴한 행동이 명복을 왕이 되게 했다고 여겼다.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민중들은 오래된 전통과 관습을 따르게 마련인가보다.풍수지리설은 조선 민중들에게 부정할 수 없는, 이상향을 향한 꿈이었다. ●백성들, 부친묘 옮겨서 덕본 것이라 믿어 이하응이란 파락호(破落戶),궁도령(宮道令)의 둘째 자식이 왕위에 오르고,아비는 대원위대감이 되는 좀체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을 두고 민중들은 마치 자신들의 옹색한 신세가 훤히 펴지기라도 한 듯이 좋아했다.대리만족의 한 극치였다. 대원위대감은 세상의 그런 민심을 정확하게 읽고 있었다.집권 초기부터 과감한 개혁을 단행하여 조선 민중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당색과 문벌을 초월한 인재 등용,탐관오리의 숙청,양반 토호의 면세토지 조사와 세금의 징수,양반에게도 군포를 징수하는 것,복식의 간소화 등 후기 조선 사회가 안고 있던 여러 폐단들을 혁명적으로 개혁해 나갔다. 집권 초반의 개혁 정치가 성과를 거두자 이를 발판으로 삼아 쇠미해진 왕권을 회복하기 위한 정책을 폈다.경복궁 중건을 강행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경복궁 짓는 일로 대원위대감은 그동안 쌓아온 정치적 성과와 지지를 상실하게 되었고,사회 모든 부문에서 지탄받기에 이르렀지만 한 번 권력의 맛을 본 그는 난세의 정략가답게 저돌적으로 일을 밀어붙였다. 그의 저돌성에 희생된 대표적인 경우가 속리산 법주사에 모셔져 있던 청동 미륵장륙상을 헐어다 녹여서 건축자재로 사용하게 한 것이었다. 그의 정치 역정에는 대외적 위협과 난관도 만만치 않았다.천주교와 관련된 외세들과의 갈등이었다. ●정권유지 위해 천주교 탄압으로 급선회 집권 초기 그는 천주교에 대해 나름의 이해를 보였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그랬던 그가 장기간에 걸쳐 천주교 박해를 감행한 것은 서양세력의 침략적 접근에 따른 국가적 위기의식과 정치적 반대세력의 비난에서 벗어나 정권을 계속 장악하기 위한 목적이 감춰져 있었다. 대외적인 첫 위협은 러시아였다.두만강이 러시아와의 국경으로 바뀌게 되자 러시아의 통상요구는 대원위대감을 비롯,정부고관들에게 위기의식으로 다가왔다. 이때 천주교인이자 정부 관리인 김면호(金勉浩),홍봉주(洪鳳周) 등이 오랑캐를 이용하여 오랑캐를 물리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방어책을 대원군에게 건의했고 대원군은 이를 정치적으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분위기는 승지를 지낸 남종삼(南鍾三)이 대원군으로 하여금 한불조약(韓佛條約)을 체결하여 나폴레옹 3세의 위력을 이용,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는 정책을 펴도록 건의하기까지 이르렀다.숨막히는 긴장의 나날이었다. 이같은 정책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조선에 체류중이던 베르뇌(Berneux) 주교와의 만남을 주선하게 되었고,그때 대원군은 만약 러시아를 물리칠 수만 있다면 천주교 신앙의 자유를 허락할 수도 있다는 암시를 주어 천주교인들은 자못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1866년 1월에 북경사신이 보내온 편지가 도착했다.청나라는 천주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이 분위기에 편승한 국내의 반 대원군 세력들은 대원군이 천주교와 불순한 정치적 흥정을 한다며 공세를 취했고 대원군은 정치적 생명에 위협을 느껴 천주교 탄압 정책으로 급선회하게 된 것이다. 1866년 2월 베르뇌를 비롯해 홍봉주,남종삼,김면호를 포함한 수천 명의 천주교인들이 서울과 그밖의 여러 지역에서 체포되어 순교했는데,이때 베르뇌,다블뤼 등 9명의 프랑스 신부들은 서울 새남터와 충남 보령의 갈매못에서 순교하였다. 병인박해로 불리는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그 이후 프랑스 군대와 대원위대감의 지휘를 받은 조선군대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대원위대감은 국가적 위기의식을 고조시키면서 천주교인들을 외국의 적들을 불러들이는 무리로 규정하여 거듭되는 박해로 맞섰다. 서양오랑캐의 발자국으로 더럽혀진 땅은 그들과 내통하는 천주교 무리의 피로 씻어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처형지는 주로 서울과 해안지방으로 정해졌다.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이 계속되자 프랑스는 대원위대감을 기필코 굴복시켜 그들이 겪은 수모를 되갚아주겠다며 방법을 모색했다. 그때 프랑스 신부 페롱(Feron)이 묘안을 내놓았다.그는 1866년 8월 프랑스 제독 로즈가 조선을 공격할 때 뱃길을 안내했던 인물이다.또한 그는 조선의 사정에도 밝아서 대원위대감을 꺾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그는 독일의 무역상인인 오페르트(Oppert,E.J)라는 인물을 끌어들일 궁리를 했다.오페르트는 1866년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친 조선과의 통상교섭에서 모두 실패한 뒤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런 사정을 간파한 페롱은 오페르트를 책임자로 하여 대원군과 정치적 교섭을 벌이면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묘책을 마련했다. 이 묘책을 강구하는 데는 조선인 천주교인도 가담했다.묘책이란 다름 아닌 대원위대감의 아버지 남연군이 묻혀 있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가야사 옛터의 무덤을 파헤친다는 것이었다. 묘를 파헤쳐 시체와 부장품을 미끼로 내걸고 대원군과 통상문제,천주교 신앙의 자유를 흥정하자는 것이었다.조선은 조상의 무덤에 대하여 특별한 관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역이용하자는 극단적인 방법을 내세웠다. 오페르트는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그는 자금을 담당할 인물로 미국인 젠킨스를 끌어들였다.통상교섭이 성공하면 이익을 배당하겠다는 조건이었다. 도굴단이 결정되었다.오페르트,젠킨스,페롱,선장 묄레,조선인 안내자 2명,유럽·필리핀·중국인 선원 등 모두 140명으로 이루어졌다. ●오페르트, 남연군묘 도굴에 실패 1868년 5월 차이나(China)호,그레타(Greta)호 등 1000t급 기선 두 척을 이끌고 일본 나가사키에서 무기와 도굴용 장비를 구입한 다음,5월10일 충남 덕산군 구만포에 상륙했다. 도굴단은 자신들을 러시아인이라고 말하면서 조선인의 안내를 받아 남연군 묘소로 직행했다.덕산 군청을 습격하여 군기를 탈취하는가 하면 민가들을 습격하면서 고의적인 난동을 부렸다. 절골의 남연군묘까지 온 그들은 도굴을 시작했으나 묘광이 워낙 견고하여 그들이 준비해온 도구로는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대원위대감은 마치 이런 날이 오리라고 예측이나 했던 듯 성능이 매우 좋은 폭약을 사용하지 않는 한 묘를 파헤치기 어렵도록 만들어 둔 것이었다. 결국 남연군묘 도굴은 실패했다.오페르트는 돌아가는 길에 인천 앞 영종도에서 프랑스 제독 알리망 명의로 된 협박장을 대원위대감에게 보냈다.남연군의 시체와 부장품이 그들 손아귀에 있으니 교섭에 응하라는 내용이었다.그러나 이 협박문을 접수한 영종첨사는 도굴행위가 인간의 짓이 아니므로 대응할 가치가 없다며 협박문을 되돌려주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젠킨스는 같은 미국인에 의하여 파렴치범으로 고발당하였고,페롱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소환당하였다. ●대원군의 박해로 8000명 이상 순교 대원위대감의 분노는 컸다.조선은 조상숭배 사상이 유별하여 묘를 신성시하는 데다,국왕의 할아버지며 자신의 아버지 묘를 파헤쳤으니 그의 생각은 극단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대원위대감은 덕산군 내포지방 천주교인들을 대대적으로 색출했다. 내포지방은 천주교회 창설기부터 천주교가 전파된 지역이었기 때문에 많은 희생자를 내었고,부근의 지방까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이렇듯 대원군에 의하여 감행된,이른바 병인박해는 6년에 걸쳐 8000명 이상이 순교하는 불행을 낳았다. 한 정치가의 무모한 권력욕구가 불러온 결과는 조선의 세계사 합류를 지연시켜 근대화의 길을 막음으로써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는 비극을 초래했고,나쁜 지도자로서의 선례가 되었다. 그같은 대원위대감은 1871년 무슨 생각에선지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서원산 남쪽 기슭에 자신이 불태웠던 가야사의 3층석탑을 옮기면서 보덕사(報德寺)라는 절을 지었다.아들이 보위에 올랐으므로 보은(報恩)의 뜻으로 절을 지은 대원위대감의 생각은 오늘날 한국 정치지도자들처럼 혼란스럽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3)대원위대감의 생각 (下)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옥양봉 절골에 있던 가야사 터에다 아버지의 무덤을 옮겨쓴 지 12년 만에 둘째아들 명복을 낳은 것이 풍수설의 힘이라는 증거는 없다.또한 명복이 태어난 지 12년 뒤에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것도 풍수설의 예언이 적중한 것이라는 증거도 없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대원위대감의 그 해괴한 행동이 명복을 왕이 되게 했다고 여겼다.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민중들은 오래된 전통과 관습을 따르게 마련인가보다.풍수지리설은 조선 민중들에게 부정할 수 없는, 이상향을 향한 꿈이었다. ●백성들, 부친묘 옮겨서 덕본 것이라 믿어 이하응이란 파락호(破落戶),궁도령(宮道令)의 둘째 자식이 왕위에 오르고,아비는 대원위대감이 되는 좀체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을 두고 민중들은 마치 자신들의 옹색한 신세가 훤히 펴지기라도 한 듯이 좋아했다.대리만족의 한 극치였다. 대원위대감은 세상의 그런 민심을 정확하게 읽고 있었다.집권 초기부터 과감한 개혁을 단행하여 조선 민중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당색과 문벌을 초월한 인재 등용,탐관오리의 숙청,양반 토호의 면세토지 조사와 세금의 징수,양반에게도 군포를 징수하는 것,복식의 간소화 등 후기 조선 사회가 안고 있던 여러 폐단들을 혁명적으로 개혁해 나갔다. 집권 초반의 개혁 정치가 성과를 거두자 이를 발판으로 삼아 쇠미해진 왕권을 회복하기 위한 정책을 폈다.경복궁 중건을 강행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경복궁 짓는 일로 대원위대감은 그동안 쌓아온 정치적 성과와 지지를 상실하게 되었고,사회 모든 부문에서 지탄받기에 이르렀지만 한 번 권력의 맛을 본 그는 난세의 정략가답게 저돌적으로 일을 밀어붙였다. 그의 저돌성에 희생된 대표적인 경우가 속리산 법주사에 모셔져 있던 청동 미륵장륙상을 헐어다 녹여서 건축자재로 사용하게 한 것이었다. 그의 정치 역정에는 대외적 위협과 난관도 만만치 않았다.천주교와 관련된 외세들과의 갈등이었다. ●정권유지 위해 천주교 탄압으로 급선회 집권 초기 그는 천주교에 대해 나름의 이해를 보였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그랬던 그가 장기간에 걸쳐 천주교 박해를 감행한 것은 서양세력의 침략적 접근에 따른 국가적 위기의식과 정치적 반대세력의 비난에서 벗어나 정권을 계속 장악하기 위한 목적이 감춰져 있었다. 대외적인 첫 위협은 러시아였다.두만강이 러시아와의 국경으로 바뀌게 되자 러시아의 통상요구는 대원위대감을 비롯,정부고관들에게 위기의식으로 다가왔다. 이때 천주교인이자 정부 관리인 김면호(金勉浩),홍봉주(洪鳳周) 등이 오랑캐를 이용하여 오랑캐를 물리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방어책을 대원군에게 건의했고 대원군은 이를 정치적으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분위기는 승지를 지낸 남종삼(南鍾三)이 대원군으로 하여금 한불조약(韓佛條約)을 체결하여 나폴레옹 3세의 위력을 이용,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는 정책을 펴도록 건의하기까지 이르렀다.숨막히는 긴장의 나날이었다. 이같은 정책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조선에 체류중이던 베르뇌(Berneux) 주교와의 만남을 주선하게 되었고,그때 대원군은 만약 러시아를 물리칠 수만 있다면 천주교 신앙의 자유를 허락할 수도 있다는 암시를 주어 천주교인들은 자못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1866년 1월에 북경사신이 보내온 편지가 도착했다.청나라는 천주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이 분위기에 편승한 국내의 반 대원군 세력들은 대원군이 천주교와 불순한 정치적 흥정을 한다며 공세를 취했고 대원군은 정치적 생명에 위협을 느껴 천주교 탄압 정책으로 급선회하게 된 것이다. 1866년 2월 베르뇌를 비롯해 홍봉주,남종삼,김면호를 포함한 수천 명의 천주교인들이 서울과 그밖의 여러 지역에서 체포되어 순교했는데,이때 베르뇌,다블뤼 등 9명의 프랑스 신부들은 서울 새남터와 충남 보령의 갈매못에서 순교하였다. 병인박해로 불리는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그 이후 프랑스 군대와 대원위대감의 지휘를 받은 조선군대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대원위대감은 국가적 위기의식을 고조시키면서 천주교인들을 외국의 적들을 불러들이는 무리로 규정하여 거듭되는 박해로 맞섰다. 서양오랑캐의 발자국으로 더럽혀진 땅은 그들과 내통하는 천주교 무리의 피로 씻어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처형지는 주로 서울과 해안지방으로 정해졌다.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이 계속되자 프랑스는 대원위대감을 기필코 굴복시켜 그들이 겪은 수모를 되갚아주겠다며 방법을 모색했다. 그때 프랑스 신부 페롱(Feron)이 묘안을 내놓았다.그는 1866년 8월 프랑스 제독 로즈가 조선을 공격할 때 뱃길을 안내했던 인물이다.또한 그는 조선의 사정에도 밝아서 대원위대감을 꺾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그는 독일의 무역상인인 오페르트(Oppert,E.J)라는 인물을 끌어들일 궁리를 했다.오페르트는 1866년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친 조선과의 통상교섭에서 모두 실패한 뒤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런 사정을 간파한 페롱은 오페르트를 책임자로 하여 대원군과 정치적 교섭을 벌이면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묘책을 마련했다. 이 묘책을 강구하는 데는 조선인 천주교인도 가담했다.묘책이란 다름 아닌 대원위대감의 아버지 남연군이 묻혀 있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가야사 옛터의 무덤을 파헤친다는 것이었다. 묘를 파헤쳐 시체와 부장품을 미끼로 내걸고 대원군과 통상문제,천주교 신앙의 자유를 흥정하자는 것이었다.조선은 조상의 무덤에 대하여 특별한 관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역이용하자는 극단적인 방법을 내세웠다. 오페르트는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그는 자금을 담당할 인물로 미국인 젠킨스를 끌어들였다.통상교섭이 성공하면 이익을 배당하겠다는 조건이었다. 도굴단이 결정되었다.오페르트,젠킨스,페롱,선장 묄레,조선인 안내자 2명,유럽·필리핀·중국인 선원 등 모두 140명으로 이루어졌다. ●오페르트, 남연군묘 도굴에 실패 1868년 5월 차이나(China)호,그레타(Greta)호 등 1000t급 기선 두 척을 이끌고 일본 나가사키에서 무기와 도굴용 장비를 구입한 다음,5월10일 충남 덕산군 구만포에 상륙했다. 도굴단은 자신들을 러시아인이라고 말하면서 조선인의 안내를 받아 남연군 묘소로 직행했다.덕산 군청을 습격하여 군기를 탈취하는가 하면 민가들을 습격하면서 고의적인 난동을 부렸다. 절골의 남연군묘까지 온 그들은 도굴을 시작했으나 묘광이 워낙 견고하여 그들이 준비해온 도구로는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대원위대감은 마치 이런 날이 오리라고 예측이나 했던 듯 성능이 매우 좋은 폭약을 사용하지 않는 한 묘를 파헤치기 어렵도록 만들어 둔 것이었다. 결국 남연군묘 도굴은 실패했다.오페르트는 돌아가는 길에 인천 앞 영종도에서 프랑스 제독 알리망 명의로 된 협박장을 대원위대감에게 보냈다.남연군의 시체와 부장품이 그들 손아귀에 있으니 교섭에 응하라는 내용이었다.그러나 이 협박문을 접수한 영종첨사는 도굴행위가 인간의 짓이 아니므로 대응할 가치가 없다며 협박문을 되돌려주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젠킨스는 같은 미국인에 의하여 파렴치범으로 고발당하였고,페롱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소환당하였다. ●대원군의 박해로 8000명 이상 순교 대원위대감의 분노는 컸다.조선은 조상숭배 사상이 유별하여 묘를 신성시하는 데다,국왕의 할아버지며 자신의 아버지 묘를 파헤쳤으니 그의 생각은 극단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대원위대감은 덕산군 내포지방 천주교인들을 대대적으로 색출했다. 내포지방은 천주교회 창설기부터 천주교가 전파된 지역이었기 때문에 많은 희생자를 내었고,부근의 지방까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이렇듯 대원군에 의하여 감행된,이른바 병인박해는 6년에 걸쳐 8000명 이상이 순교하는 불행을 낳았다. 한 정치가의 무모한 권력욕구가 불러온 결과는 조선의 세계사 합류를 지연시켜 근대화의 길을 막음으로써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는 비극을 초래했고,나쁜 지도자로서의 선례가 되었다. 그같은 대원위대감은 1871년 무슨 생각에선지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서원산 남쪽 기슭에 자신이 불태웠던 가야사의 3층석탑을 옮기면서 보덕사(報德寺)라는 절을 지었다.아들이 보위에 올랐으므로 보은(報恩)의 뜻으로 절을 지은 대원위대감의 생각은 오늘날 한국 정치지도자들처럼 혼란스럽다.˝
  • 드라마 ‘꽃보다‘ 촬영현장서 만난 배종옥 · 박상면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미혼남의 절반이 결혼 상대자로 이혼녀도 괜찮다고 응답했다고 한다.요즘 방영중인 KBS 2TV 수목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극본 노희경 연출 김철규·기민수)의 영향이라면 지나친 생각일까.진지한 재미와 감동으로 가족애를 부각시키고 있는 이 드라마에서 대학강사 노총각 영민과 생선장수 이혼녀 미옥의 사랑과 결혼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당기는 주 요소.최근 시청률이 두자릿수로 뛰어올랐다. ●작가·연기자·감독 삼박자 척척 지난 15일 영민과 미옥의 신혼여행 촬영이 있던 강원도 외포리 동막 해수욕장에서 커플룩 차림의 진짜 신혼부부 같은 박상면과 배종옥을 만났다.극중이지만 어렵사리 결혼에 골인한 소감.“부모님이 청량리 시장에서 갈비집을 운영하는데 아주머니들이 저를 볼 때마다 ‘미옥이랑 결혼하라.’고들 하셔요.(극중)동생 영수로 나오는 동수씨가 강남에서 포장마차를 하는데 약간 술취한 여자 손님이 ‘니가 뭐가 잘났어? 뭔데 상면이 오빠를 괴롭혀.니가 이혼한 사람의 심정을 알기나 해?’이러더래요.그런데 안되면 되겠어요?(웃음)” 시청률 얘기가 나오자 옆에서 새색시처럼 배시시 웃고만 있던 배종옥이 입을 열었다.“저희는 연습을 정말 많이 해요.요즘 정말 힘든 일이죠.그렇기 때문에 드라마가 탄탄한 것 같아요.시청자들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가족의 의미를 진중하게 묻는 작가와,그 의미를 제대로 표현하는 연기자,감독의 몫이 아닌가 생각해요.” 평소 ‘똑소리 난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배종옥.노 작가의 페르소나로 여겨지는 그녀지만 이날은 대변인처럼 여겨졌다.배종옥은 가족의 이야기를 다양한 측면에서 깊이 있게 풀어낸 “노 작가의 결정판”이라고 ‘꽃보다‘를 한껏 치켜세웠다. 특히 과거 어머니 세대의 무조건적인 희생과 모녀 간 애증을 제대로 표현해낸 것이 마음에 든단다.그녀가 꼽는 명장면 하나.영민 집안의 반대에 부닥친 뒤 “미옥이가 엄마(고두심)한테 왜 날 이렇게 키웠냐고 울면서 소리지르고 난 다음 미옥이가 밥 먹을 때 엄마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나와서 김치 주잖아요.”“드라마를 하면서 문득문득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 나 가슴 아플 때가 많아요.” ●“노희경 대본 한줄한줄에 감동” 노 작가와의 만남은 처음이라는 박상면은 “노희경이란 사람을 소문으로만 알았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대사 한줄한줄에 감동을 받아요.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대본을 싸서 보관한다니까요.”이날 박상면은 ‘최고’를 표현할 수 있는 온갖 형용사를 동원하며 드라마와 작가,동료 연기자에 대한 애정을 쏟아냈다.“(촬영장)분위기가 아주 좋아요.드라마를 보면 그런 게 보이지 않나요? 저 사람들 서로 따로 놀지 않고 긴밀하게 대화하면서 교감한다는….(웃음)” “공부 잘하는 것만 빼면 영민은 딱 나”라고 말하는 박상면과 달리 배종옥은 오히려 실제 성격과 달라 연기하는 재미가 더욱 쏠쏠하단다.“이렇게 소리지르는 역할은 오랜만이거든요.소리를 지르면서 속에 쌓인 걸 막 쏟아내니까 카타르시스가 느껴져요.”많은 대사에 치이지 않는다면 더 행복할 거라며 웃는다. 끊임없이 변신의 욕구를 느낀다는 그녀는 영화 ‘젊은 날의 초상’,드라마 ‘행복어 사전’과 ‘바보 같은 사랑’을 자신의 연기 여정에서 방점을 찍을 수 있게 해준 작품으로 꼽았다.영화 ‘질투는 나의 힘’도 잊지 못한다.“내면으로 침잠하는 인물을 매력있게 표현해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갖는다는 배종옥은 “‘토지’의 월선이를 꼭 해보고 싶었는데 건강 때문에 포기했다.”며 아쉬운 표정이다. ●드라마 후반부 며느리도 몰라 드라마 후반부는 인철(김명민)이 미옥의 동생을 죽인 사람으로 밝혀지면서 새로운 갈등에 접어든다.또 엄마가 치매에 걸리는 설정은 앞으로 시청자들의 눈물을 쏙 빼놓을 것으로 보인다.귀띔 좀 더 해주면 안될까.“저도 얘기만 살짝 들었는데 마음이 참 아프다는 것만 알아요.가슴이 울컥하면서 닭살이 살짝 돋는다는 거….(박상면)”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말라는 얘기다. 박상숙기자 alex@˝
  • 파릇한 봄내음 ‘파래’

    바다의 푸른 기운을 머금은 파래.아싹거리며 씹히는 맛과 청량감도 일품인 해조류이지요.김을 해태(海苔)로 부른 것처럼 파래를 청태(靑苔)로 불렀다지요.김과 같은 대우를 받았지요.반면 유럽에선 파래를 더 쳐준답니다.김은 먹지 않지만 파래는 즐겨 먹거든요.또 파래는 위와 십이지장의 궤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물질이 들어있고,담배의 니코틴을 중화하는 데 탁월하다지요.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파래,더욱 맛있어 보이죠? ■파릇파릇 봄내음 몸에도 왔다래 부산 가덕도와 경남 진해 사이의 바다.바다엔 하얀색 스티로폼이 두줄로 쭉쭉 늘어서 끝이 안 보인다.어민들의 텃밭인 파래 양식장의 부표다. “파래로 찌짐(부침개)을 부쳐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요.파래로 못해 먹는 게 없어요.”0.8t급의 FRP(특수 강화 플라스틱) 배인 지원호에서 파래를 뜯는 장채원(64·부산 강서구 천가동),박정남(60)씨 부부의 설명이다.“가덕도 파래는 특유의 향과 담백하면서도 단맛이 최곱니다.”남편 장씨는 파래 자랑을 늘어놨다. 인근에서 파래 발에 붙은 잡초격인 짙은 갈색의 ‘고르메’를 떼어내던 나경호 선장 오영호(41)씨는 “요샌 청둥오리떼가 파래를 뜯어먹어서 물에 가라앉혀두고 있지요.”라고 말했다. 막 건져올린 파래의 물기를 꼭 짜 입안에 넣어보니 미끌거리듯 보드라웠다.천천히 씹어보자 아짝아짝 씹히는 맛이 좋았다.향긋한 향이 느껴지면서 깨끗한 바다 냄새가 나는 듯했다.입안에 달라붙지도 않고 단맛이 약간 나며 개운해졌다.바닷물이 덜 빠진 탓에 물론 짰다.김춘생(67)할머니는 “파래를 깨끗이 씻어 꼭 짜면 소금기가 잘 빠진다.”고 말했다. 가덕도 파래는 자연산이다.갯가의 바위에 붙은 돌파래는 요즘 더 이상 작업하지 않는다.깨끗이 다듬고 손질해도 파래 속에 작은 돌맹이가 끼어있기 때문이다.대신 바다 가운데의 파래 발에서 딴다. 가덕도 파래는 발에 포자를 인공적으로 붙이지 않는다.바다에 떠다니던 포자를 채집하는 방식이다.폭 1m에 길이 70∼90m가량의 그물발에 저절로 붙게 한다.그래서 가격도 잘 받는 편이다.매일 낮 12시 경남 진해시 용원동 의창수협에서 경매한다.35㎏들이 한상자에 요즘 4만원선이다.가격이 잘 나갈 땐 8만원대였다. 15년째 파래 작업을 한다는 선창호 선장 김두현(52)씨는 “가덕도 파래는 비단처럼 보드랍고,검은 빛이 날 정도로 푸르다.”며 “광택이 있어야 좋은 파래”라고 설명했다.파래는 물살이 세지 않으면서도 잘 흘러야 잘 산다.깨끗한 민물도 들어와야 한다.이런 곳으로 가덕도와 진해만 사이가 적격이란 게 어민들의 주장이다. 가덕도에선 파래로 요리하는 것이 많다.기본적으로 무를 채썰어 파래와 같이 무치는 파래 무침,조개와 굴 등의 해물과 파래를 넣어 지져내는 파래 부침개,파래를 간장과 물엿에 재운 파래 짠지,파래를 깎두기처럼 담그는 파래 김치,된장국에 넣는 파래 된장국 등이다.파래(300g)에 달래(100g),배 반개를 섞어 무쳐내도 좋다.양념장으로 진간장과 멸치 액젓을 1큰술씩,다진 파·다진 마늘·참기름·깨소금을 1작은술씩 넣어 손으로 조물조물 섞으면 된다. 박초로 세종호텔 이탈리안식당 피렌체 조리장은 “파래는 유럽에서도 ‘바다에서 나는 양상추’라 하여 즐겨 먹었다.”며 파래 샐러드를 추천했다. “우리 동네에선 속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없어요.다 파래를 먹고 건강한 거지.”30여년째 파래를 한다는 윤유환(50)씨의 파래 예찬이다. 이런 자랑에 근거가 전혀 없는 것만은 아니다.파래에는 비타민U라는 항궤양성 물질이 많이 함유돼 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기 때문이다.위장약으로 쓰이는 비타민U는 궤양을 예방하고 위를 튼튼하게 하는 작용이 있다. 이두석 국립수산과학원 수산연구관은 “파래의 메틸티오닌 성분은 김에 들어있는 성분과는 달리,담배의 니코틴 성분을 해독시킨다.”고 말했다.아무리해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의 밥상에 파래 반찬을 자주 올리는 것이 건강에는 좋은 방법이다. 경남 진해시 용원동 의창수협 주변의 식당가에선 요즘 파래가 밑반찬으로 빠지지 않는다. 남해안에서 나는 새우인 오도리 전문점인 용궁횟집(055-552-0454)은 어떤 음식을 주문해도 밑반찬으로 파래 무침이 맛깔스럽게 나온다.안주인 박정임씨는 경매인을 통해 파래를 매일 조금씩 갖고 온단다.연해산 생선 회 전문점인 김해횟집(055-552-2123)도 괜찮다.아귀와 복 수육 전문점인 먹거리식당(055-552-2672)은 졸복이 아주 괜찮다.1인분(1만 2000원)에 손가락 2개 굵기의 졸복 여남은 마리가 들어가 아주 시원하다.파래와 톳나물 등의 해산물이 밑반찬으로 나와 입맛을 돋운다. ■ 도움말 의창수협(055-552-3093) 글 용원(진해) 이기철기자 chuli@ 사진 오정식기자 oosing@ 사진 용원 왕상관기자 skwang@ ●톳 무침 재료 톳(말린 것 100g) 200g,두부 ¼모,다진 마늘 ½큰술,다진 파·깨소금·참기름 1큰술씩,맛소금 1작은술 만드는 법 (1) 톳은 신선한 것을 선택하여 깨끗이 씻어 준비한다.말린 톳은 물에 담가 20분간 불리면 된다.(2) 끓는 물에 (1)의 톳을 잠깐 넣었다가 냉수에 헹궈 물기를 뺀 다음 줄기에서부터 훑어준다.(3) 두부는 끓는물에 넣고 삶아 건져 면보에 싸서 물기를 꼭 짠 다음 체에 내려 보슬보슬하게 한다.(4) 그릇에 톳과 두부를 담고 마늘·파·깨소금·맛소금·참기름을 넣어 무친다. ●파래 해물전 재료 파래(또는 톳) 100g,작은 새우(또는 조갯살,홍합,굴) 100g,홍고추·풋고추 1개씩,실파 30g,식용유 적당량,반죽(밀가루 1컵,달걀 1개,녹말 2큰술,물 ¾컵,소금 ½작은술),초간장(간장 3큰술,식초 1큰술,설탕 ½작은술) 만드는 법 (1) 파래는 물에 20분간 담가 불려 씻은 후 건져 줄기에서 훑어준다.(2) 작은 새우는 껍질을 벗긴 다음 등쪽의 내장을 제거하고 굵게 썰어 놓는다.(3) 홍고추·풋고추는 길이로 반을 갈라 씨를 털어 짧은 채를 썰고 실파는 송송 썰어 놓는다.(4) 넓은 그릇에 달걀·물·소금을 넣어 푼 다음 밀가루와 녹말을 넣고 반죽하여 파래·새우·고추·파를 섞어 놓는다.(5)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뜨거워지면 (4)를 1큰술씩 떠 놓아 둥글 넓적하게 부쳐 낸다. ●파래 별미밥 재료 불린 쌀 3컵,물(육수) 3컵,파래 120g,조개 20개,청주 1큰술,간장 1큰술,양념 간장(간장 3큰술,고춧가루·다진 마늘·깨소금·참기름 1작은술씩,다진 파·청주 1큰술씩) 만드는 법 (1) 쌀은 불려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2) 파래는 깨끗이 씻어 물기를 꼭 짜 대강 썰어 놓는다.(3) 조개는 신선한 것으로 준비하여 씻어 엷은 소금물에 담가 해감을 시킨 다음 물 4컵과 함께 냄비에 담아 끓여 조개가 벌어지면 건지고 면보에 밭쳐 밥물로 사용한다.(4) 냄비에 쌀·조개 국물·조개·청주·간장을 넣고 끓여 뜸이 들 무렵에 썰어 놓은 파래를 섞어 뜸들여 밥을 짓는다.(5) 양념간장을 만들어 밥을 비벼 먹으면 별미다. ●김 강정 재료 김 10장,대추 2개,실백(또는 잣) ½큰술,강정 양념(국간장·다진 마늘·참기름·통깨·분말 육수·겨자 1작은술씩,물엿 1큰술) 만드는 법 (1) 김은 티를 골라내고 구워 비닐봉지에 담아 비벼 곱게 부수어 놓는다.아주 곱게 부수어야 잘 만들어진다.(2) 냄비에 강정 양념 재료를 담아 불 위에 얹었다가 따끈해지면 불을 끄고 김을 넣어 가볍게 섞는다.(3) 대추는 돌려 깎기하여 돌돌 말아 얇게 썰어 놓는다.잣은 길이로 반을 갈라 놓는다.(4) 도마 위에 은박지를 깔고 (2)의 김강정을 펴서 0.5㎝ 두께로 밀어 2㎝ 네모로 썬다.그 위에 (3)의 대추와 잣을 놓아 예쁘게 담아낸다. ●파래 샐러드 재료 파래 20g,양파·오렌지·노랑 피망·빨강 피망⅓개씩,토마토 2쪽,적채 5g,양상추 10g양념키위 2개,링 파인애플 2조각,마요네즈 3큰술,식초·레몬 주스 1큰술씩,다진 마늘 1작은술,소금·후춧가루·설탕 약간씩 만드는 법 (1) 파래는 설탕과 식초를 섞은 물에 10분간 담가 두었다가 꼭 짜 물을 제거한다.(2) 야채 재료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준비해 둔다.(3) 과일을 갈아서 마요네즈 및 모든 양념 재료와 함께 골고루 섞어 드레싱을 준비한다.(4) 원형 틀에 야채를 예쁘게 색깔 순서대로 올리고 사이사이 (1)의 파래를 넣어준다.(5) 접시에 담아 틀을 살짝 빼고 오렌지 껍질을 고명으로 얹어 모양을 낸 다음 그 위에 과일 드레싱을 솔솔 뿌리면 끝. 안승춘 한국식생활개발연구회장은 68년 조리업계에 뛰어들어 36년 동안 음식을 개발하고 연구했다.한·양·중·일식을 두루 통달해 ‘생활요리의 대가’로 불린다.한국조리직업전문학교(02-833-1623) 이사장도 겸하고 있다. 사진 이종원기자 jongwon@˝
  • [열린세상] 송두율과 알키비아데스/김상봉 민예총 문예아카데미교장

    시민은 국가의 부속품이 아니며,자유 의사에 따라 국가를 선택할 수도 있고 포기할 수도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자유로운 정신의 표현이었다. 개인이든 나라든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대하는 법을 보면,그 나라나 개인의 성숙도를 알 수 있다.추상적으로 말해서 자기 아닌 타자에 대해 얼마나 개방적일 수 있는가를 보면 한 사회의 수준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이를테면 송두율을 감옥에 가두는 한국사회와 알키비아데스(Alkibiades)가 살았던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를 비교해 보라. 알키비아데스는 기원전 5세기 스파르타와 아테네 사이에 벌어졌던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에 페리클레스의 뒤를 이어 아테네를 이끌었던 정치가이자 장군이다.특히 그는 이 전쟁의 분수령이 되었던 이른바 시칠리아 원정을 주도적으로 발의했던 사람인데,원정 부대가 출발하기 직전에 아테네 전역에서 헤르메스 신상이 훼손되는 사건이 있었다.평소에 알키비아데스의 성공을 시기하던 정적들은 터무니없게도 이것을 알키비아데스의 소행으로 몰아 그를 탄핵했다. 그는 이 문제를 깨끗이 마무리하지 못한 채 원정군 총사령관으로 시칠리아를 향해 떠났는데,원정대가 시칠리아 섬에 상륙하자마자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로부터 소환을 요구받았다.상황이 자기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한 알키비아데스는 자기를 호송하는 배가 투리오이에 기항했을 때,배에서 도망쳐 적국인 스파르타에 망명하였다. 전쟁 중에 가장 뛰어난 장군을 적에게 넘겨준 것이 아테네에 어떤 결과를 초래했겠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스파르타는 알키비아데스의 제안에 따라 기민하고도 정확하게 대처하였고,그 결과 시칠리아 원정은 아테네 원정군의 전멸로 끝났다.사실상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승패는 이것으로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알키비아데스는 자유분방한 삶의 방식이 몸에 밴 사람으로서 스파르타에 동화되어 살 수 있는 위인은 되지 못하였다.스파르타의 왕이 전쟁터에 나가고 없는 사이 그의 왕비와 정을 통하여 아들을 낳을 정도였으니,소피스트적 개인주의에 깊이 영향받은 자유분방한 아테네인에게 스파르타는 역시 너무도 적응하기 어려운 획일적 사회였던 것이다. 스파르타를 떠나 아테네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알키비아데스는 당시 스파르타와 동맹관계에 있던 이오니아의 페르시아 태수(太守)에게로 가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스파르타와 아테네 함대 사이에 해전이 벌어졌을 때 아테네 함대를 도와 스파르타 함대를 크게 무찔렀다.이 일이 계기가 되어 우여곡절 끝에 그는 결국에는 개선장군이 되어 다시 아테네로 돌아오게 되었다. 아테네 시민들은 이전에 공연히 죄없는 알키비아데스를 죄인으로 몰아 스파르타에 망명하게 함으로써 시칠리아 원정에서 참패한 것을 후회할지언정 그를 반역자로 몰아 감옥에 가두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도리어 아테네 시민들은 그의 머리에 황금관을 얹어주고 해군과 육군 모두의 전권을 장악하는 장군으로 추대하였다.그리고 과거에 그를 추방하면서 몰수했던 재산을 돌려주었다. 생각하면,아테네 시민들이 한때의 반역자에게 이리도 관대할 수 있었던 것은,나라를 선택하는 것이 시민의 천부적 권리라고 그들이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당시 아테네에는 성인이 된 후에 아테네가 싫으면 자기의 재산을 가지고 가족들과 어디로든 이주할 수 있는 자유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었다.그것은 시민이 국가의 부속품이 아니며,자유 의사에 따라 국가를 선택할 수도 있고 포기할 수도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자유로운 정신의 표현이었다. 요사이 신자유주의다 뭐다 하면서 모든 부문에서 정부의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 유행이다.그런데 다른 일에는 규제 없는 작은 정부가 좋다면서 시민의 사상과 정치 활동의 규제는 왜 풀지 않는가.송두율이 북한을 방문해 노동당 당원이 되었다 한들 그것이 우리들 각자에게 무슨 대단한 피해를 입혔는가.송두율을 석방하고,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시민에 대한 국가폭력의 역사는 지금까지만으로도 충분하다. 김상봉 민예총 문예아카데미교장˝
  • SKT 사장 김신배전무 유력

    ‘포스트 표문수’는 누가되나. 전문경영인 체제로 닻을 올릴 예정인 SK텔레콤의 차기 ‘선장’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하마평이 무성한 가운데 내부 인물이 조직의 안정과 경영의 연속성에서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조정남 부회장이 표문수 사장의 사퇴에 반발하고 있는 노조를 방문,“차기 CEO는 사내에서 추천되는 만큼 회사의 안정을 위해 적극 협조를 해달라.”는 부탁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선방향이 드러난 셈이다. SK텔레콤의 새 경영진 구성은 그룹에 대한 충성도와 전문성 등이 최우선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사실상 전문경영인인 표 사장이 물러나게 된 배경에는 그룹에 대한 비협조와 최태원 SK㈜ 회장에 대한 충성심 부족이 주된 이유라는 게 재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런 관점에서 현 이사진 가운데 대내 업무를 총괄하는 김신배(전략기획부문장)전무가 적임으로 떠오르고 있다.김 전무가 발탁되면 입사 10년만에 매출 10조원대의 초우량 기업의 CEO에 오르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화제를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김 전무는 하나로통신의 윤창번 사장과 처남매부간으로 신세기통신 합병과 하나로통신 외자유치에 상당한 실력을 발휘했다. 특히 최 회장이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 전신)을 인수한 뒤 그를 영입하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김 전무는 무선중심으로 영업전략을 펴온 표 사장과 달리 유선은 물론 방송까지 망라한 신규사업 전략을 직접 짜와 전체적인 사업전략의 수정도 예상된다는게 통신업계의 관측이다. 현재 남아있는 사내이사 가운데 유일한 대표이사인 조정남 부회장은 ‘대표이사 부회장’직을 그대로 유지할 전망이다. 손길승 회장의 사퇴로 불안정한 조직을 재정비하는 데 적임자라는 평이다. 이에 따라 친정체제 구축과 전문경영인을 통한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최 회장의 ‘큰 그림’에 ‘조정남-김신배’ 카드가 가장 적합하다는 해석이다. 김영진 부사장은 직급상 가장 근접해 있으나 재무·인력 등 회사의 전체적인 경영과 관련해 김 전무에 뒤진다는 평이다. 새 CEO의 외부 영입 가능성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SK텔레콤 정관에는 사내외 이사 수를 동수로 두도록 돼 있어 최 회장과 손길승 회장,표 사장의 ‘빈 자리’를 누군가는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자의반 타의반’으로 거론되는 외부 영입 인물은 김수필 SKC 사장과 김대기 전 신세기통신 사장 등이다. 김수필 사장은 통신 전문가로 SK텔레콤 부사장까지 역임했으나 손길승 회장 계열이라는 것이 약점으로 꼽힌다.사내외 이사 동수 규정을 맞추기 위해 표 사장의 복귀를 주장 한 일부 사외이사의 퇴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표 사장의 복귀 가능성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이사회의 강력한 촉구로 입장을 번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표 사장 본인이 거듭 고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최 회장이 밝힌 오너 출신의 경영 참여 배제 방침에 역행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SK텔레콤은 다음달 12일 주총 이후 첫 이사회에서 사장을 선임한다.그전까지 조정남 대표이사 부회장체제로 비상경영을 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김경두기자 golders@˝
  • [부고]

    ●이재만 前국회의원 제6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재만 씨가 22일 밤 교통사고로 별세했다.81세.유족으로는 김혜란 여사와 아들 상선,상진,상호 및 딸 상금,상미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강남 성모병원 2층 영안실,발인 25일 오전 6시,장지는 경기 장호원 진달래 묘원.(02)590-2660. ●李載夏(스포츠투데이 편집국 사진부 기자)씨 빙부상 23일 오전 8시 서울 강남병원,발인 25일 오전 7시 (02)3430-0398 ●朴順培(구세군 정교)씨 별세 李文遠(한경대 대학원장)弼遠(TCMC 부회장)昇遠(주택공사 부장)씨 모친상 鄭然澤(전 명지대 부총장)尹容吉(미국 거주)金宗彦(현대중공업 부장)씨 빙모상 23일 오전 7시 삼성서울병원,발인 25일 오전 9시 (02)3410-6917 ●林亨淳(전 전주MBC 사장)씨 별세 東和(자영업)旭(㈜대상 대리)씨 부친상 朴相茂(한국자산관리공사 해외채권관리부장)씨 빙부상 22일 오전 3시6분 삼성서울병원,발인 24일 오전 7시30분 (02)3410-6920 ●金相允(전 건설교통부 공보관)씨 모친상 22일 오전 3시30분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 24일 오전 7시30분 (02)590-2352 ●許鼎九(세계물산 감사)源九(일본어 프리랜서)用九(조일무역 대표)씨 모친상 趙信完(롯데호텔 부장)씨 빙모상 22일 오후 9시15분 삼성서울병원,발인 25일 오전 9시 (02)3410-6918 ●延康欽(농심 관리과 직원)씨 부친상 朴丙夏(대우증권 동해지점장)씨 빙부상 22일 오전 3시30분 충북 증평군 도안읍 자택,발인 24일 오전 10시 (043)836-8238 ●金鎭石(전북대 교수)씨 별세 房世元(MBC 미술부 직원)씨 빙부상 22일 오전 8시30분 전북 전주시 전북대병원,발인 24일 오전 8시 (063)251-8368 ●李俊昊(비잔티움 팀장)京武(니코텍스타일 대리)씨 부친상 朴聖煥(성십자약품 과장)씨 빙부상 22일 오후 11시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발인 24일 오전 11시 (031)787-1504 ●鄭成植(자영업)相植(펜션빌밸리스 대표)湖植(MBC 시사교양국 차장)씨 모친상 李榮喆(한주상운㈜ 선장)韓宗太(부산 동래수학학원장)權連正(뉴위드개발 전무)씨 빙모상 23일 낮 12시 경남 진주전문장례식장,발인 25일 오전 9시 (055)763-2643 ●金龍安(성광제약 대표)平俊(아산중기 대표)平錫(마천건설 직원)平化(마천건설 대표)씨 모친상 23일 오전 10시11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5일 오전 9시30분 (02)3010-2295 ●金大溶(삼성전자 영업부 차장)俊溶(서울 마노메디비뇨기과 전문의)希珍(서울시립대 영어강사)씨 부친상 李在勳(서울 중구 직원)洪承明(자영업)李善鎔(삼성전자 상무)김주현(육군 소령)씨 빙부상 23일 오전 6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5일 오전 6시 (02)3010-2292 ●洪承仁(경기대 법학과 교수)承勉(자영업)씨 모친상 李鍾大(아시아나항공 기장)趙大龍(서울시의회 사무처장)金明杰(인천시 직원)씨 빙모상 23일 오후 2시17분 삼성서울병원,발인 25일 오전 7시 (02)3410-6916 ●柳魯相(전 외환은행 상무)씨 빙모상 23일 오후 3시 경기 성남시 분당차병원,발인 25일 오전 8시 (031)780-6167
  • [부고]

    ●이재만 前국회의원 제6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재만 씨가 22일 밤 교통사고로 별세했다.81세.유족으로는 김혜란 여사와 아들 상선,상진,상호 및 딸 상금,상미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강남 성모병원 2층 영안실,발인 25일 오전 6시,장지는 경기 장호원 진달래 묘원.(02)590-2660. ●李載夏(스포츠투데이 편집국 사진부 기자)씨 빙부상 23일 오전 8시 서울 강남병원,발인 25일 오전 7시 (02)3430-0398 ●朴順培(구세군 정교)씨 별세 李文遠(한경대 대학원장)弼遠(TCMC 부회장)昇遠(주택공사 부장)씨 모친상 鄭然澤(전 명지대 부총장)尹容吉(미국 거주)金宗彦(현대중공업 부장)씨 빙모상 23일 오전 7시 삼성서울병원,발인 25일 오전 9시 (02)3410-6917 ●林亨淳(전 전주MBC 사장)씨 별세 東和(자영업)旭(㈜대상 대리)씨 부친상 朴相茂(한국자산관리공사 해외채권관리부장)씨 빙부상 22일 오전 3시6분 삼성서울병원,발인 24일 오전 7시30분 (02)3410-6920 ●金相允(전 건설교통부 공보관)씨 모친상 22일 오전 3시30분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 24일 오전 7시30분 (02)590-2352 ●許鼎九(세계물산 감사)源九(일본어 프리랜서)用九(조일무역 대표)씨 모친상 趙信完(롯데호텔 부장)씨 빙모상 22일 오후 9시15분 삼성서울병원,발인 25일 오전 9시 (02)3410-6918 ●延康欽(농심 관리과 직원)씨 부친상 朴丙夏(대우증권 동해지점장)씨 빙부상 22일 오전 3시30분 충북 증평군 도안읍 자택,발인 24일 오전 10시 (043)836-8238 ●金鎭石(전북대 교수)씨 별세 房世元(MBC 미술부 직원)씨 빙부상 22일 오전 8시30분 전북 전주시 전북대병원,발인 24일 오전 8시 (063)251-8368 ●李俊昊(비잔티움 팀장)京武(니코텍스타일 대리)씨 부친상 朴聖煥(성십자약품 과장)씨 빙부상 22일 오후 11시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발인 24일 오전 11시 (031)787-1504 ●鄭成植(자영업)相植(펜션빌밸리스 대표)湖植(MBC 시사교양국 차장)씨 모친상 李榮喆(한주상운㈜ 선장)韓宗太(부산 동래수학학원장)權連正(뉴위드개발 전무)씨 빙모상 23일 낮 12시 경남 진주전문장례식장,발인 25일 오전 9시 (055)763-2643 ●金龍安(성광제약 대표)平俊(아산중기 대표)平錫(마천건설 직원)平化(마천건설 대표)씨 모친상 23일 오전 10시11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5일 오전 9시30분 (02)3010-2295 ●金大溶(삼성전자 영업부 차장)俊溶(서울 마노메디비뇨기과 전문의)希珍(서울시립대 영어강사)씨 부친상 李在勳(서울 중구 직원)洪承明(자영업)李善鎔(삼성전자 상무)김주현(육군 소령)씨 빙부상 23일 오전 6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5일 오전 6시 (02)3010-2292 ●洪承仁(경기대 법학과 교수)承勉(자영업)씨 모친상 李鍾大(아시아나항공 기장)趙大龍(서울시의회 사무처장)金明杰(인천시 직원)씨 빙모상 23일 오후 2시17분 삼성서울병원,발인 25일 오전 7시 (02)3410-6916 ●柳魯相(전 외환은행 상무)씨 빙모상 23일 오후 3시 경기 성남시 분당차병원,발인 25일 오전 8시 (031)780-6167˝
  • 조개 삼합 먹어볼까

    여기,하루를 열어젖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새벽 5시 전남 여수시 국동 잠수기수협앞 선착장.봄이라곤 하지만 새벽 바닷바람은 여전히 차갑습니다.인적이 뚝 끊어진 포구,주황빛 나트륨등이 여수(旅愁)를 자극합니다.조금 뒤 오가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지럽습니다.6시,사위는 아직도 어둠에 갇혀있지만 잠수기 어선 50여척이 어디론지 나갑니다.상룡호가 도착한 곳은 대경도와 소경도 사입니다.잠수사 신영민씨가 물에 들어가 1시간 정도 있다가 개조개와 키조개를 망태에 가득 채워 나왔습니다.그제서야 해님도 섬산 너머로 떠오릅니다.그가 건져 올린 것이 조개일까요,하루의 희망일까요? 여수 글 이기철기자 chuli@ 여수 사진 안주영기자 jya@ “개조개라고 하면 처음 듣는 사람은 맛이 별로 없는 조개라고 생각합디다.하지만 한번 먹어보면 그 맛에 반하지요.” 전남 여수시 국동항 앞바다 대경도와 소경도 사이.바닷물 속에서 조업선 상룡호(5t급)로 막 올라온 신영민(50) 잠수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개조개를 설명했다.물이 뚝뚝 떨어지는 검은색 잠수복을 입은 그는 마스크를 벗으면서 조업 망태를 풀었다.개조개와 키조개 등이 쏟아졌다.70㎏가량 된다. 개조개나 키조개는 수심 10∼50m의 바닥 구멍 속에서 산다.그래서 잠수사들이 바다 밑바닥으로 내려가 구멍을 보고 고압의 물을 내뿜어 조개가 나오는 대로 망태에 주워 담는다.“물이 차야 조개가 혀를 내물고 있지요.”그래야 맛도 좋고 찾기가 쉽다는 게 잠수사 경력 21년째인 신씨의 설명이었다. 이근민(48) 상룡호 선장은 “요즘 여수 앞바다의 수온이 섭씨 3∼5도로 매우 찬 편”이라며 “찬 물 속에서 작업하는 잠수사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했다. 개조개는 육질이 연하고 담박한 맛을 낸다.예부터 귀한 수산물로 취급받아 왔다. 잠수기수협회센터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최석심(41·여)씨는 “조개탕을 끓일 때 껍데기도 함께 넣으면 보랏빛이 감도는 뽀얀 우윳빛 국물이 우러나온다.”며 “국물은 시원한 감칠맛으로 숙취 해소에 아주 좋다.”고 소개했다. 개조개의 경우 조가비의 안쪽이 보랏빛으로 진할수록 더 맛있단다.그는 “여수에선 산모가 먹는 미역국에 개조개를 넣고 끓인 것을 쇠고기 미역국보다 더 쳐준다.”며 “개조개는 된장찌개·전골·부침을 할 때나 나물을 무칠 때 넣으면 될 정도로 반찬 걱정을 덜어준다.”고 예찬했다.깐 조개를 냉동칸에 넣어두면 1년 내내 먹을 수 있단다. 개조개가 가장 대접받는 곳은 조개구이 전문점이나 포장마차다.큼직한 조개 껍데기는 그릇 대용으로도 쓰인다. 조갯살을 도려내 잘게 다져 파·달걀 등으로 양념해 껍데기째 구워낸 조개구이도 좋다.황선갑(37)잠수사는 “조개를 은박지에 싸서 구우면 누렇게 타지도 않고 국물이 남아있어 더 맛있다.”고 말했다. 양광승(46) 잠수기수협 유통사업과장은 “맛과 영양이 좋은 개조개를 두고 좋지 않은 것을 뜻하는 ‘개’자를 붙였을 리 만무하다.”며 “갯벌 조개라는 뜻으로 ‘갯’에서 ‘ㅅ’이 탈락되고 ‘벌’이 빠져 개조개가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그의 설명이 맞다면 이름으로 인한 개조개의 억울함을 조금 풀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잠수사들이 개조개와 함께 가장 많이 잡는 것이 키조개.모양새가 곡식을 까불러 알곡을 고르는 키를 닮았기 때문에 이렇게 불리지만 여수에서는 ‘게지’라고 한다.크기는 어른 손바닥만하다.경매가는 키조개 중간 크기 1개가 2000∼2500원.개조개는 1000∼1500원. 조개 껍데기를 열고 닫는 기능을 하는 인대인 패주(貝柱)는 부드럽고 졸깃하다.날것으로도 먹고 초밥용으로 이용해도 아주 좋다.주홍빛을 띠는 내장은 버린다.살짝 익힌 개조개는 살이 연하고 부드럽다. 최은주(35)씨는 “키조개의 경우는 회로 먹어도 좋지만 살짝 볶아서 먹는 것이 최고”라고 말했다.이렇게 잡힌 개조개와 키조개는 매일 오후 4시 수협 공판장에서 경매를 거쳐 전국의 고급 일식당과 중식당으로 간다. 여수 득량만 일대에선 요즘 새조개도 많이 난다.자루처럼 생긴 그물에 빗살 모양의 쇠틀을 달아 바다 밑바닥을 끌면서 조업하는데 이를 ‘형망’이라 한다. 물속에서 조가비를 벌리고 ‘발(足)’이라고 불리는 속살을 밖으로 길게 늘여 빼고 있는데,그 발의 생김새가 새의 목과 부리를 쏙 빼닮았다. 그래서 새조개가 됐고,경남 통영에선 갈매기조개,거제에선 오리조개로 부른단다.딱히 꼬집어 말하기 어렵지만 달착지근하면서 구수하고 쫄깃하면서 부드러운 맛이 난다. 새조개를 데쳐 먹고나면 연한 보랏빛이 도는 국물이 남는데 개운한 맛이 그만이다.이계봉(67) 수협 경매사는 “새조개는 지금이 제철”이라며 “알을 낳는 봄이 되면 아린 맛이 난다.”고 말했다. 남도의 끝 여수에서 요즘 한창 나는 개조개·키조개·새조개,어느 쪽이 더 맛있을까.한번 먹어보고 판가름할 일이다. ☎061 여수 조개식당들 잠수사들이 직접 채취한 조개를 바로 그날 맛볼 수 있는 곳은 여수시 국동 잠수기수협회센터.여나믄 식당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곳이 수협 2층의 명궁식당(643-8002). 이 집의 얼굴 메뉴는 ‘조개 삼합’.조개를 삼겹살처럼 불판에 구워 먹는 것이다.육고기나 조개 한가지만 많이 먹으면 질리는 것에 착안해 개발한 메뉴다.삼합은 돼지 삼겹살과 키조개,개조개 이렇게 3가지로 구성된다.삼겹살을 조개와 함께 구우면 조개 물이 삼겹살에 배여 돼지고기의 느끼한 맛이 전혀 없다. 또 한가지 소삼합(소갈비·키조개·개조개)은 2만원이다.안주인 최석심(41)씨는 “조개와 육고기는 맛과 영양이 서로 보완적이어서 궁합이 잘 맞는다.”며 “여수를 찾는 외지인들이 한번씩은 찾는다.”고 자랑했다.육고기를 뺀 조개 모둠은 1만 5000원.또 한가지 별미는 조개 샤부샤부.요즘 한창 나오는 새조개와 키조개가 재료다.조개와 다시마 육수에 양파·무 등의 야채를 넣어 끓인 국물에 새조개와 키조개를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 수협옆의 2호판매장(643-3348)은 조개 요리 외에 전복죽을 1만원에 맛볼 수 있다.맞은 편의 상아식당(643-7840)과 자매식당(641-3992)에서도 조개 요리가 나온다. 여수시 여서동의 바다속으로(654-3787)는 여수에서 가장 오래된 맥반석 조개 생구이 전문점이다.주인 김태구(41)씨가 수협 공판장에서 매일 필요한 만큼의 싱싱한 조개를 사와 내놓는다.조개구이 3만원짜리 한 접시면 3명이 먹어도 푸짐하다.조개구이에는 개조개·키조개·가리비·굴·홍합 등과 함께 새우가 나온다.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한다.식사로는 메뉴판에 없는 조개볶음밥(2000원)이 그만이다.바다속으로 옆에 청정해산물(653-3400)도 최근 조개구이를 시작했다. ☎02 서울 조개식당들 한때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졌던 조개구이 전문점들이 지금은 많이 정리됐다.이유는 조개를 생물로 보관하기 까다롭기 때문이다.잘 보관해야 4∼5일정도.그래서 바닷가가 아닌 서울에서 싱싱한 조개를 맛보기가 수월찮지만 몇 곳이 조개요리 명맥을 잇고있다.서울 무교동의 갯벌타운(725-0556)은 10년째 조개요리를 내놓고 있다.지금은 주로 모시조개와 대합을 쓴다.조개구이 한판에 2만 5000원,조개볶음 1만 8000원,대합전 1만원이다.안주인 홍영애(44)씨는 “조개는 경남 삼천포항 등에서 매일 갖고 온다.”며 “조개를 산 채로 보관하기 위해 바닷물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말했다.이 집 주위의 영보낙지(733-6406)와 우정낙지(720-7991)는 조개탕을 한다.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동국대쪽으로 가면 눈에 띄는 바다구이 목장구이(2278-7936)도 조개구이를 다양하게 내놓는다.모둠 조개를 주문하면 개조개·키조개·가리비·맛 등 5∼6종류를 고루 맛볼 수 있다.구이 큰 것이 2만 5000원,중간 것은 1만 8000원이다.압구정동 시네시티뒤쪽의 주접(515-5078)은 12종의 조개구이가 나온다.오후 6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한다.한접시(3만원)면 4∼5명에게도 푸짐하다. 바지락의 시원하고 개운한 국물맛을 가장 잘 살린 것이 바지락칼국수다.이런 바지락칼국수로 입소문이 난 집이 서울 인사동 스타벅스 맞은편의 갯마늘 밀밭집(737-0229)이다.바지락 자체만으로 육수를 낸 바지락 칼국수는 고소한 맛도 난다.4500원.우리나라 사람들이 바지락 칼국수를 즐기는 것처럼 이탈리아인들도 조개(봉골레)스파게티를 즐긴다.봉골레 스파게티를 잘하는 곳으로 마포 서교호텔 인근의 레뜨레깜빠네(336-3378)를 들 수 있다.9700원. 글 이기철기자 chuli@ 사진 안주영기자 jya@ ■ 장금이 조개요리 안승춘 한국식생활개발연구회장은 68년 조리업계에 뛰어들어 36년 동안 음식을 개발하고 연구했다.한·양·중·일식을 두루 통달해 ‘생활요리의 대가’로 불린다.한국조리직업전문학교(02-833-1623) 이사장도 겸하고 있다. ●조개마늘구이 재료 모시조개(껍데기 있는 것) 1.66㎏,백포도주 ½컵,식빵(바게트빵) 8장,양념(다진 마늘 1큰술,다진 파슬리·버터·올리브 기름 5큰술씩). 만드는 법(1) 모시조개는 소금물에 담가 해감을 시키고 잘 씻어 냄비에 담고 와인을 부어 뚜껑을 덮고 불에 올려 놓는다.(2) 조개 껍데기가 열리면 꺼내어 살이 붙어있지 않은 쪽 껍데기를 떼어버리고 양념을 혼합하여 조갯살 위에 끼얹는다.(3) 오븐에 포일을 깔고 (2)의 조개를 겹치지 않게 놓는다.(4) 예열한 오븐에 약 5분간 구워내어 식빵 토스트와 곁들여 먹는다. ●모시조개 튀김 재료 모시조개(큰 것) 30개,다진 쇠고기 30g,두부 ¼모,검은깨 1큰술,밀가루 1컵,녹말 ¾컵,달걀 1개.소금·식용유 약간씩,양념 (다진 파 3큰술,다진 마늘 1큰술,다진 생강 1작은술,깨소금½큰술,참기름 1작은술,후춧가루 약간). 만드는 법 (1) 모시조개는 엷은 소금물에 담가 해감을 시켜 냄비에 담아 물 ½컵을 붓고 끓여 조개의 입이 벌어지면 바로 건져 조갯살을 꺼내고 껍데기를 떼어내 물기를 닦아 놓는다.(2) (1)의 조갯살을 곱게 다진다.(3) 두부는 물기를 꼭 짜 곱게 다진 조갯살과 다진 쇠고기를 섞어 양념해 놓는다.(4) 그릇에 달걀,찬물과 약간의 소금을 넣고 푼 후 밀가루,녹말을 넣고 가볍게 저어 튀김옷을 만든다.(5) 조개껍데기의 안쪽에 밀가루를 묻히고 (4)를 평평하게 채워 담는다.(6) (5)의 튀김옷을 바르고 검은깨를 골고루 얹은 다음 끓는 식용유에 튀겨 낸다. ●모시조개전 재료 모시조개 400g,두부 ¼모,청·홍고추 2개씩,다진 마늘·깨소금 1큰술씩,청주 2큰술,다진파 3큰술,참기름·맛소금·후춧가루·달걀·밀가루 약간씩. 만드는 법 (1) 모시조개는 살아있는 것을 준비하여 씻은 다음 엷은 소금물에 담가 해감을 한다.(2) 냄비에 (1)의 모시조개를 건져담고 청주 2큰술을 뿌려 불에 올려 잠시 두면 입을 벌린다.(3) (2)의 조갯살을 꺼내어 잘게 다지고 껍데기은 물기를 닦아 놓는다.(4) 두부는 면보에 싸서 물기를 짠 다음 곱게 으깨어 놓는다.(5) 청·홍고추는 반으로 갈라 씨를 털고 잘게 다진다.(6) 넓은 그릇에 (3)의 조갯살과 두부·고추를 담고 양념을 넣어 섞는다.(7) 모시조개 껍데기 안쪽에 밀가루를 묻히고 (6)의 양념한 것을 꼭꼭 눌러 편편하게 담고 밀가루,달걀물을 묻혀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뜨거워 지면 모시조개를 놓아 전을 부친다. ●조개 쑥갓부침 재료 쑥갓(또는 미역,물파래) 50g,깻잎 10장,조갯살(또는 홍합) 50g,청·홍고추 1개씩,실파 2뿌리,다진 마늘 1작은술,달걀 1개,밀가루·식용유·소금·후춧가루·물 적당량씩,초간장 (간장 1큰술,식초 1작은술,설탕 ¼작은술) 만드는 법 (1) 쑥갓은 깨끗이 씻어 작게 썰고,깻잎은 길이로 4등분하여 옆으로 놓고 채썬다.(2) 조갯살은 내장을 제거하고 잘게 다진다.(3) 청·홍고추는 길이로 4등분하여 씨를 털고 옆으로 놓고 채썬다.(4) 실파는 송송 썰어 놓는다.(5) 넓은 그릇에 쑥갓·조갯살·홍·청고추·파를 담고 마늘·소금·후춧가루로 간을 하고 달걀·물·밀가루를 넣어 반죽을 한다.(6)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뜨거워지면 한 숟가락씩 떠놓아 부침을 해서 초간장을 곁들인다. 요리 안승춘 한국식생활개발연구회장 사진 강성남기자 snk@˝
  • 남극 탐험의 꿈/장순근 지음

    지난해 12월 젊은 지구과학자 전재규 대원의 목숨을 앗아간 남극 세종기지 조난사고는 우리 극지 연구의 현주소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남극에 세종기지가 세워진 지 올해로 16년.하지만 남극 현장의 연구 여건은 초라하기만 하다.세종기지 대원들이 극지 연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쇄빙선 하나 없이 고무보트로 거친 남빙양을 항해해야 했던 사실이나 낡은 무전설비들 앞에서 동료들의 생사를 몰라 안타까워했던 모습은 우리의 열악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20년간 남극 지킨 저자의 생생한 체험 `남극 탐험의 꿈’(장순근 지음,사이언스북스 펴냄)은 정부 차원에서 ‘극지 연구 활성화’ 방안이 논의되고 이공계 위기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 특히 관심을 끌 만한 책이다.저자(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는 지난 20여년간 남극 탐험의 최전선을 지켜온 극지 연구의 개척자.남극 탐험의 역사와 자연환경,세종기지에 얽힌 이야기 등을 300여장의 현장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책은 먼저 남극의 역사·지리적 배경부터 살핀다.한국의 세종기지가 들어선 킹조지 섬은 남극의 관문인 사우스셰틀랜드 군도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사우스셰틀랜드 군도는 1819년 영국 탐험가 윌리엄 스미스 선장이 최초로 발견했다는 것이 정설이다.그러나 저자는 ‘서인도 기술’ 등의 문헌을 토대로 1599년 네덜란드 출신 도선사 디륵 게리츠가 처음 발견한 것으로 추정한다.스미스가 발견한 것은 사우스셰틀랜드 군도가 아니라 그 남쪽에 있는 리빙스턴 섬이라는 것이다.책은 해표와 펭귄 고기를 먹고 연명하며 전설적인 생존신화를 남긴 섀클턴 탐험대의 이야기도 흥미롭게 전한다. ●`바다의 3대 악당’ 해적·노예선·물개잡이 사우스셰틀랜드 군도는 남극에선 문명세계에 가장 가깝고 얼음의 장애가 적은 편이라 발견되자마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가장 먼저 군도를 찾은 사람들은 물개잡이들.19세기 남극의 물개는 남획돼 거의 멸종지경에 이르렀다.해적과 노예선 선원,물개잡이는 ‘바다의 3대 악당’이라 불렸을 정도다. 현재 남극 대륙에는 한국을 비롯한 18개국이 42개의 상주 기지를 짓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한국은 지난 86년 남극조약에 가입하고 2년 뒤 세종기지를 세워 남극연구 대열에 합류했다.세종기지가 있는 사우스셰틀랜드 군도의 킹조지 섬은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900㎞쯤 떨어져 있다.남극 중에선 그나마 북쪽에 있어 얼음에 덮이지 않은 대지가 있고 연평균 기온도 그리 낮지 않지만 겨울엔 체감온도가 영하 40도까지 떨어진다.또 초속 30m가 넘는 남극의 폭풍 블리자드가 어김없이 몰아친다. ●`탁, 탁’ 노래하는 남극의 얼음 세종기지는 남극의 대기,지질,해양,생물 같은 자연환경에 대한 연구와 남극의 환경변화가 문명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는 것이 주된 임무다.지구상의 대륙 가운데 가장 늦게 발견된 남극은 여전히 미지의 땅이다.1360만㎢의 남극 대륙은 평균 두께가 2000m가 넘는 얼음으로 덮여 있다.남극의 얼음은 동글동글한 공기방울이 들어 있어 아주 아름답게 보인다.그 얼음을 물에 넣으면 ‘탁,탁’하는 공기 방울 터지는 소리가 난다.저자는 그것을 ‘얼음의 노래’라고 부른다.일본에서는 특유의 상혼을 발휘,남극의 얼음조각을 넣은 위스키를 비싼 값에 팔기도 한다. 얼음은 귀중한 연구 재료다.공기 방울 속에 지구의 역사가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남극의 얼음은 물이 얼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눈이 쌓여 생긴 것이다.얼음 속 공기 방울은 눈 결정 사이에 있던 공기로,눈이 쌓일 때의 공기 성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그 공기 성분을 분석하면 당시의 기후와 지형을 알 수 있다. ●눈 속서 자라는 신기한 이끼 `눈조류’ 남극에는 어떤 생명들이 살고 있을까.남극의 혹한 속에서도 꽃이 피고 새가 운다.눈 속에선 눈조류라는 신기한 이끼가 자란다.거대한 코를 가진 코끼리 해표는 기이한 소리를 내고 남빙양 생태계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범고래는 곧추 서 물 밖으로 머리를 내민다.남극이 펭귄의 무대인 것은 물론.저자는 날다 지치면 바다 위에 떠서 쉰다는 국제 보호조 신천옹도 가끔 킹조지 섬 부근에 나타난다고 전한다.책은 이밖에 남극 기지 사람들이 함께하는 남극 올림픽 이야기,영국·칠레·아르헨티나 등이 남극에서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며 분쟁을 벌이고 있는 모습,유럽에선 가장 고상한 취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는 극지 봉투수집 이야기 등도 들려준다.2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개불 먹으러 남해 가볼까

    개불.뒤에 ‘알’자가 안 붙었기에 망정이지 이름이 상당히 망측합니다.생김새 역시 이름 못지않게 흉물스럽습니다.횟집의 수조에서 흐물거리거나 물을 내뿜는 모습을 보면 저걸 어떻게 먹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돕니다.하지만 달착지근한 맛을 한번 보게되면 새침데기 아가씨도 감탄사를 연발합니다.‘맛보기 서비스’로 조금 나오는 개불을 더 달라고 조르지요.이런 개불이 요즘 남해안에서 많이 나옵니다.봄엔 서해안에서도 풍부하고요.미각을 돋우는 개불을 한번 찾아보지 않겠어요? “물보 내리고,칼쿠리(갈고랑이) 올리고.” 경남 남해군 창선면과 이동면을 잇는 창선교 아래의 지족해협.‘손도바다’의 죽방렴 사이에서 개불잡이 어선 10여척이 흰색 천인 물보를 드리우고,쇠갈고랑이를 걷어 올리는 방법으로 개불을 잡고 있다.현지 어민들은 밀물과 썰물의 힘을 이용해 이렇게 조업하는 방법을 ‘끌발이’라고 부른다.최갑룡 남해군수협 계장은 “끌발이 조업을 하는 곳으로는 이곳 지족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끌발이 작업중인 임정수(61) 명선호 선장은 “지난여름 태풍 매미가 바다를 휘저은 탓인지 올핸 개불이 많이 나지를 않아.”라며 쇠갈고랑이에서 개불을 뽑아냈다.그는 개불의 내장을 짜낸 뒤 껌처럼 질겅질겅 씹었다.“개불은 이렇게 먹는 회가 최고지.오돌오돌 씹히는 육질도 일품이지만 달착지근한 맛이 아주 좋아.초장도 필요 없어.그 다음이 구이야.”라고 이었다. 개불은 회로 만들어 먹기가 편하다.깨끗한 물에 대충 씻어 세로로 조금 짤라 검보라색의 내장을 빼내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먹으면 된다.비늘이나 껍질,가시가 없어 손질이 쉽다. 현지 어민들은 갈고랑이로 잡아 몸에 구멍이 뚫린 개불이 가장 맛있다고 주장한다.개불을 갈고랑이에서 빼내면서 내장을 다 제거한다.김윤근 지족마을 이장은 “개불을 잡으면서 내장을 바로 빼버리면 개불이 오돌오돌해진다.”고 말했다.내장을 빼지 않은 개불은 하루만 지나면 아주 얇아지는 반면 내장을 제거한 개불은 3일가량은 수족관에서 보관할 수 있단다. 개불은 그 생김새가 흡사 남자의 상징(?)을 닮았다.그래서 스태미나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여자 관계가 복잡했다는 고려말의 승려 신돈(辛旽)이 개불을 즐겨 먹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한방에선 성기능이 약할 때 개불을 권하기도 한다. 장호빈(64) 어성호 선장은 “개불은 선홍색이 뚜렷한 것이 싱싱해 최고로 친다.”며 “회색 빛깔이 들어간 것은 늙은 놈으로 그다지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족해협을 텃밭으로 삼는 창남어촌계 사람들은 지족 개불 예찬에 끝이 없다.물살이 세 육질이 졸깃하고,오염원이 전혀 없어 개불에서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고 한다.또 오래 씹을수록 단맛이 더 난다는 것이다.특히 해저 생태계가 좋다고 자랑한다.바닥은 갯벌과 모래가 반반쯤 섞인 사니질이다.다른 지역의 경우 일명 ‘머구리’로 불리는 잠수부들이 바다 밑바닥으로 들어가 공기를 강력하게 뿜어 개불·개조개·키조개 등을 닥치는 대로 잡는다.그 바람에 해저 생태계를 버려놓는단다.창남어촌계는 이런 머구리 조업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개불 작업만 수십년째라는 박문필(53) 보영호 선장은 “개불은 해저 구멍속에 들어가 있다가 날이 차가워지면 올라오는데 요즘이 두툼해 가장 맛있다.”고 말했다.그는 개불이 바다 바닥에서 U자형 구멍을 뚫고 2∼3년 정도 산다고 주장했다.또 여름에 나는 개불은 육질이 얇고 금방 녹아없어진단다. 요즘엔 끌발이로 하루 1접(100마리) 잡기도 힘들단다.그래서 남해안 개불의 시세도 덩달아 뛰었다.1접에 13만원선.설 전에 한창 오를 땐 18만원까지 갔다고 한다.비수기인 겨울철에 어민들에겐 짭짤한 수입원이다. 매일 오후 4시면 경남 사천시 삼천포항 수협앞에서 개불 경매가 실시된다.잠수부인 머구리들이 잡은 개불로서 모양이 온전하다.낙찰 가격은 개불 1마리에 작은 것 200원,큰 것 800원 정도로 끌발이로 잡은 것보다 싸다.이렇게 잡힌 개불들은 전국의 횟집과 호텔 등으로 팔려나간다. ■ 개불의 셀프카메라 술을 깨고 간장을 보호하는 데 그만이다.100g에 아스파라긴산이 1560㎎이나 들어있다.단맛이 나는데 이는 글리신과 알라닌 성분 때문이다.개불의 몸은 마디가 없이 하나의 원통 모양으로 된 특유의 조직 때문에 오돌오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과거엔 지렁이와 같은 환형동물로 취급했지만 외관상 체절(몸의 마디)이 없어 의충 동물로 분류된다.혈전을 용해하는 성분이 있어 고혈압 환자에게도 좋다. ● 도움말 국립수산진흥원 ■ 날로먹고 구워먹고 경남 남해군 사람들은 개불을 무척 좋아한다.제사나 차례상에 올릴 정도다.개불 산적을 만들어 올린다.지족마을 창선교 아래의 나룻터횟집(055-867-1557) 안주인 박명숙(45)씨는 개불로 산적을 만드는 요령을 가르쳐줬다.꼬치에 개불과 깨끗이 씻은 김장김치,실파,오징어,돼지고기 등을 차례대로 꿴 다음 끝을 나란히 자른다.이어 밀가루를 묻히고 달걀옷을 입혀 프라이팬에 지져내면 된다. 개불은 회가 워낙 좋은 탓에 다른 요리가 별로 개발되지 못했다.하지만 구이도 괜찮다.석쇠에 은박지를 덮어 갖은 양념을 해 개불을 살짝 익혀 먹는 것.모양이 곱창구이와 비슷하지만 맛은 훨씬 더 고소하다.박씨는 “개불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체하거나 설사를 하는 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나룻터횟집은 요즘 개불 회 한 접시에 5만원.광어나 우럭,잡어 등 여러가지 회 가운데 가장 비싸다.다른 회를 주문해도 개불을 서비스로 내주지 않는다.남편 정갑세(50) 사장은 “개불 회는 초장을 아주 살짝 찍어 먹어야 한다.”며 “초장을 많이 치면 개불의 참 맛이 희석된다.”고 말했다. 겨울 별미로 나오는 물메기탕(6000원)도 담백하면서 아주 시원하다.횟집 2,3층에 여관도 겸하고 있어 숙박도 한꺼번에 해결이 가능하다. 지족해협이 내려다보여 전망이 뛰어나다.지족해협을 사이에 두고 나룻터횟집 맞은 편의 금호비취횟집(055-867-8182)도 겨울 한철 개불을 ‘시가’로 내놓고 있다.또 인근의 1번가 숯불장어구이(055-867-3311)는 바닷장어 전문점이다.이 집의 장어는 일명 ‘아나고’로 불리는 붕장어로서 양념과 소금구이를 한다.1㎏에 2만원.회는 팔지 않는다. 서울에선 고급 횟집이나 일식집에서 개불을 조금씩 내놓기도 한다.하지만 고속철도 민자역사의 중식당 T원(02-392-0985)은 이달 말까지 개불부추잡채를 시판한다.내장을 제거한 개불을 끓는 물에 2,3초간 살짝 익혀 개불과 부추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볶은 것이다.1접시 2만 5000원. 해물이 지겹다면 손두부도 권할 만하다.나룻터횟집 바로 옆의 황토마을(055-867-1759)은 주인 강효선씨가 지역에서 나는 콩으로 직접 두부를 만들어 판다.콩의 고소한 맛이 그대로 살아 있다.콩비지와 된장찌개·손두부가 5000원씩이다. 개불 공판장인 경남 사천시 삼천포항 수협 신용부앞 한밭식당(055-832-7641)의 아귀탕이 좋다.아귀를 흔히 먹는 찜이나 수육이 아니라 청·홍고추를 썰어넣고 맵싸하게 끓인 것이다.안주인 이영희(54)씨가 매일 가게앞 수산물 경매장에서 바로 가져온 재료여서 싱싱하다.삼천포항에 개불 먹으러 왔다는 김효진(28·여·진주시립합창단원)씨는 “개불을 처음 보는 친구들은 기겁을 하지만 한번 맛을 들이면 자꾸 찾는다.”고 말하곤 개불을 천연덕스럽게 들어보였다. 글 창선 이기철기자 chuli@ ■ 굴요리도 같이 먹어볼까 ●굴 피카타 재료 굴 400g,치즈 50g,달걀 2개,파슬리 20g,밀가루·청주·소금·후춧가루·식용유 약간씩 만드는 법 (1) 굴은 엷은 소금물에 씻어 건져 물기를 뺀 후 청주·소금·후춧가루로 밑간을 한다.(2) 치즈는 잘게 다지고 파슬리는 곱게 다져 물에 헹궈 꼭 짠다.(3) 달걀에 다진 치즈와 파슬리 가루를 넣고 잘 섞는다.(4) 굴에 밀가루를 묻히고 (3)의 달걀물을 입혀 식용유를 두른 팬에 노릇노릇하게 지져낸다. ●굴 두부탕 재료 굴 200g,두부 ½모,부추·게맛살 50g씩,실파 30g,생강즙·소금·참기름 1작은술씩,고추 기름 2큰술,청주·녹말 1큰술씩,육수 ½컵,다진 마늘 ½큰술,후추 1/5작은술,식용유 3큰술 만드는 법 (1) 굴은 엷은 소금물에 흔들어 씻어 물기를 뺀다.(2) 두부는 0.5㎝ 두께의 삼각형으로 썰어 소금을 살짝 뿌린 다음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노릇하게 지져낸다.(3) 부추와 실파는 3㎝ 길이로 썬다.(4) 팬에 식용유와 고추 기름을 넣고 뜨거워지면 굴을 넣어 굴이 오그라들면서 익으면 마늘과 생강을 넣는다.(5) (4)에 두부를 넣고 골고루 섞은 후 육수를 부어 끓이다가 부추·실파·소금·후추로 간을 하고 녹말물을 풀어 걸쭉해지면 참기름을 넣어낸다. ●석화 간소 재료 석화 30개,굴 300g,녹말·찹쌀가루 ½컵씩,달걀 1개,치커리잎 5장,다진 치즈 2장,파 1큰술,파슬리·식용유·소금 약간씩,소스(케첩 1컵,물엿 ½컵,고추장·다진 마늘·다진 생강·설탕·레몬즙 1큰술씩,라유 (C)컵,청주·양파·당근·파인애플 다진 것 3큰술씩)(20인분) 만드는 법 (1) 석화는 흐르는 물에 씻어 속을 떼고 껍데기는 끓는 물에 삶고 굴은 소금물에 씻은 다음 청주에 재워 놓는다.(2) 그릇에 물·달걀을 풀고 녹말·찹쌀가루를 섞어 부드럽게 반죽한다.(3) (2)의 반죽에 (1)의 굴을 넣고 버무려 170℃의 식용유에서 튀겨 낸다.(4) 냄비에 라유를 넣고 마늘·생강·양파·당근 다진 것을 넣고 볶다가 청주·케첩·고추장·물엿을 넣어 졸이면서 설탕·소금으로 간을 맞춘다.(5) (3)의 재료를 다시 튀겨 (4)의 소스에 끓여 버무린다.(6) 굴껍데기에 치커리잎을 깔고 (5)의 굴요리를 두개씩 담고 다진 치즈를 약간 뿌린다. ●굴 쌈 냉채 재료 굴 200g,무 ¼토막,배 ¼개,붉은 고추 1개,무순 10g,청주 1큰술,소금·파잎 약간씩,무절임(식초·설탕·물 1큰술씩,소금 1작은술),소스(갠 겨자 1작은술,유자청·레몬즙(또는 식초) 1큰술씩,설탕·소금 ½큰술씩,배즙 2큰술) 만드는 법 (1) 굴은 크지 않은 것으로 준비해 엷은 소금물에 깨끗이 씻어 건진다.(2) 냄비에 물·청주·소금·파잎을 넣고 끓으면 (1)의 굴을 넣어 살짝 데쳐 건진다.(3) 무는 1㎝ 두께로 얇게 원형썰기를 하여 식초·설탕·물·소금을 넣어 10분간 절인다.(4) 배는 5㎝ 길이로 채썰고 무순은 냉수에 담가 싱싱하게 한 다음 건진다.(5) 붉은 고추는 씨를 제거하여 5㎝ 길이로 채썰고 무순은 냉수에 담가 싱싱하게 한 다음 건진다.분량의 재료를 섞어 소스를 만들어 놓는다.(6) 절인 무에 배·무순·굴·붉은 고추를 놓고 꽃다발 모양으로 싼 다음 접시에 보기좋게 담고 소스를 곁들인다. 요리 안승춘 한국식생활개발연구회장(02-833-1623)˝
  • 13번째구단 인천유나이티드FC 출항

    ‘짠물 축구가 뜬다.’ 프로축구 13번째 구단이자 세번째 시민구단인 인천 유나이티드 FC가 ‘출항’ 준비로 분주하다.지난해 6월 창단을 선언한 지 7개월여 만인 지난 달 30일 올림픽대표팀의 ‘황태자’ 최태욱(23·전 안양)을 영입하면서 사실상 선수단 구성을 끝내고 올시즌 K-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킬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최태욱이 합류한 이튿날 터키 안탈리아로 전지훈련을 떠나 조직력과 전술을 담금질하고 있다.다음달 1일 일본프로축구 J리그의 감바 오사카를 안방으로 불러들여 공식경기 데뷔전을 치를 예정이다. ●내달 1일 J리그 오사카와 공식 데뷔전 인천호의 첫 선장에는 공격축구의 대명사 베르너 로란트 감독(56).“골을 넣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지난 1992년부터 10년 동안 지휘봉을 잡은 독일 분데스리가 1860 뮌헨을 3부리그에서 1부로 끌어올리는 뚝심을 보여줬으며,지난 해에는 터키 1부리그 페네르바체를 이끌고 준우승을 움켜쥐었다. 선수시절에는 78년부터 4년간 프랑크푸르트에서 차범근 현 수원 감독과 호흡을 맞추며 유럽축구연맹(UEFA)컵 우승(80년)을 이끌기도 했다. 지난 달 24일 그의 축구색깔이 살짝 공개됐다.제주도 전지훈련 과정에서 치러진 대학강호 중앙대와의 연습경기에서 5-0으로 대승을 거둔 것.완전치 않은 팀을 이끌고 거둔 대승이어서 벌써부터 “심상치 않다.”는 평이 무성하다. 로란트 감독이 지난 해 9월부터 전국을 누비며 인천호에 탑재시킨 ‘어뢰’는 모두 31기.100억원 이상을 쏟아 부었다고 하지만 15명의 FA(자유계약)선수를 영입하는 등 결과는 기대이상이었다.내친 김에 목표도 4강 이상으로 상향조정했다.국내 FA사상 최고 이적료인 11억원을 주고 인천 부평고 출신 스트라이커 최태욱을 데려온 것이 하이라이트.최태욱을 앞세워 인기몰이에 나설 참이다. ●물오른 최태욱·터키용병 외잘란 활약도 주목 공격수 가운데 최태욱을 제외하곤 프로무대에서 검증받은 선수가 없는 것이 흠.최태욱이 올 해 자주 국가대표팀에 차출될 것으로 예상돼 공격력이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인천은 최태욱과 ‘투톱’을 맡을 유고 청소년대표팀 출신 라돈치치(19)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190㎝의 장신인 라돈치치는 제주도 전지훈련에서 제공권 장악은 물론,발군의 스피드와 유연성을 뽐냈다. 수비진은 더 탄탄하다.터키 국가대표 출신이자 세계적인 수비수로 2002한·일월드컵 당시 터키를 3위로 이끈 알파이 외잘란(31)이 중심에 있다.성남에서 이적한 중앙수비수 김현수(30)와 미드필더 전재운(25) 등 국가대표급도 그물망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98프랑스월드컵 당시 ‘붕대 투혼’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이상헌(30)도 합류했다. 최근 올림픽대표팀에서 좋은 활약을 한 김치우(21)와 청소년대표의 ‘고교생 듀오’ 이근호(18)·이요한(18)도 ‘젊은 반란’을 다짐한다. “지켜 보세요,올시즌 큰 일 한번 낼 겁니다.”인천 유나이티드 FC가 팬들에게 전하는 당찬 메시지다. 홍지민기자 icarus@˝
  • 美대선 ‘첨단 미디어’ 경연장

    지난달 19일 미국 민주당의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뜻밖의 역전을 당한 하워드 딘 후보는 디 모인의 선거캠프에서 패배를 인정하는 연설을 한 뒤 자신감을 과시하기 위해 청중을 향해 한차례 ‘괴성’을 내질렀다. 현장에서 취재하던 기자들은 직감적으로 ‘물건이 된다.’고 느꼈다.곧바로 주머니에서 ‘블랙베리’와 ‘팜탑’을 꺼내 회사에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딘,괴성 지름.재미있음.기사와 화면 곧 전송.필요하면 NBC 풀(방송사들이 낭비를 줄이기 위해 역할분담해서 촬영하는 체제) 5시40분35초 화면 사용.” 4년전의 선거였으면 기자들은 딘이 연설을 마치고 행사가 모두 끝난 뒤에야 프레스룸으로 이동,송고를 시작했을 것이다.그러나 21세기의 선거에서는 그럴 여유가 없다.신문과 방송,통신과 인터넷 매체,심지어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개인들까지 24시간 내내 분초를 다투며 경쟁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경쟁은 2004년 미 대선현장을 첨단 미디어 장비의 경연장으로 만들고 있다.기자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첨단장비를 다뤄야만 버틸 수 있게 됐다.신문기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장비는 무선전송이 가능한 랩톱컴퓨터와 오디오 파일로 변환이 가능한 디지털녹음기.후보의 연설을 녹음한 뒤 기사를 쓰기에 앞서 랩톱을 통해 무선으로 신문사 데스크로 전송한다.데스크에서는 연설 내용을 편집해 곧바로 웹사이트에 오디오 파일로 올린다. 기자에 따라서는 디지털 카메라와 디지털 캠코더도 주요장비.신문이든 방송이든,취재든 사진이든,기자들은 영역과 관계없이 갈수록 유사한 멀티미디어장비로 무장하고 있다.다만 방송기자에게는 유비쿼터스(어떤 환경에서든 사용이 가능한) 휴대용 디지털 미니카메라가 필수 장비.이를 이용해 대선 현장은 TV를 통해 유권자의 안방까지 생생하게 전달된다.ABC방송의 데보라 앱튼 기자는 “매일 갖고 다니는 디지털 장비만 40파운드(약 18㎏)”라고 말했다. 휴대전화 등을 통해 무선으로 기사와 자료를 전송하는데 주로 쓰이는 모뎀은 ‘에어카드’.카드를 장착하고 한달에 80달러를 내면 미국 전역의 75∼80%에서 무선 인터넷이 가능하다.비행기 안에서도 작업할 수 있다. 멀티미디어 파일의 크기가 늘어남에 따라 기존의 플로피 디스크나 CD는 사라지고 손가락 크기만한 플래시 메모리 스틱이 대용품으로 등장했다. 대용량 메모리스틱 하나면 20시간 연속 녹음이 가능하고,랩톱과 카메라,미니캠,녹음기 등으로 자료를 자유롭게 이동시킬 수 있다.무선장비 사용에는 충전이 문제.이를 해결하기 위해 비행기내에서나 자동차의 ‘시거 잭’을 통해서도 충전이 되는 손바닥만한 충전기가 개발됐다. 케리나 딘 같은 유력후보 캠프에서는 수백명의 기자들에게 전원과 인터넷 접속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다.이를 위해 개발된 것이 ‘소프박스(Soapbox)’.이 장비 하나면 에어카드나 충전지가 없는 기자 150명의 인터넷과 전원을 해결한다. 개발자는 2000년 대선 당시 앨 고어 후보 캠프에서 공보를 담당하면서 전원과 인터넷 연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네이선 네일리이다. 그러나 볼티모어 선의 칼럼니스트 줄스 위트코버(76)는 여전히 볼펜과 수첩이 주요 장비다.다만 빨리 받아쓰기가 어려워 녹음기는 가지고 다닌다.그는 “기자들이첨단장비를 갖고 일일이 기록하기 때문에 후보들이 깊이있는 대화를 나누려 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도운기자 d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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