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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주일의 어린이 책] ‘문명’을 거부한 섬 소년

    [이주일의 어린이 책] ‘문명’을 거부한 섬 소년

    섬 소년은 밤이면 늘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 파도가 흥얼대는 소리를 들었다. 소년은 생각했다. ‘바다 건너편 세상에서 살면 어떨까.’ 어느 날 배를 타고 바다 건너 온 손님들이 소년에게 손짓했다. “우리와 함께 가서 발달된 문명 세계를 경험해 보렴.” 손님들은 소년의 가족들에게 진주 단추를 선물했다. 소년의 이름은 ‘제미 버튼’이 됐다. 어둡고 거친 바다를 오래도록 나아가 낯선 육지에 닿은 소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돌로 지어진 집이 숲 속 나무보다 훨씬 높다니…. 갖가지 옷으로 치장한 사람들과 기기묘묘한 물건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반면 소년은 벌거벗은 자신의 작은 몸이 더 작게 느껴졌다. 곧 제미 버튼도 다른 사람들과 비슷해지긴 했지만 같을 수는 없었다. 호기심 가득한 사람들에 이끌려 왕과 왕비까지 만나지만 고향과 같을 수는 없었다. 먼 나라 사람들은 제미 버튼에게 ‘특명’을 내린다. “고향으로 돌아가 주민들에게 그동안 배운 문명을 가르치라”고. 2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간 제미 버튼은 어떤 활약(?)을 펼쳤을까. 1830년 영국의 로버트 피츠로이 선장은 비글호를 타고 남아메리카 끝자락 티에라델푸에고 섬(불의 땅)에 가닿는다. 선장은 야만인 같은 섬 주민들을 영국 신사로 만들려고 오룬델리코라는 소년을 영국에 데리고 갔다. ‘제미 버튼’은 이 세계사의 단면을 그림책에 담고 싶어 한 미국 화가 제니퍼 우만의 소박한 꿈에서 탄생했다. 원시의 풍요로움을 간직한 숲과 바다를 천편일률적인 도시의 모습과 대비하며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그림이 아름답다. 초등 중학년까지.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공간정보 다른 산업과 융·복합…창조경제·‘정부3.0’ 주도할 것”

    “공간정보 다른 산업과 융·복합…창조경제·‘정부3.0’ 주도할 것”

    대한지적공사(LX)가 ‘한국국토정보공사’(가칭)로 새롭게 도약한다. LX공사는 1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창사 36주년 기념식을 갖고 사명 변경을 선포한다. 변경된 사명에는 지하, 지상을 아우르는 다양한 공간 정보를 창출하고 다른 산업과의 융·복합으로 정부와 민간에 필요한 공적 기능을 확대하는 기관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김영호 사장은 사명 변경과 관련, “지금까지 평면적으로 이용됐던 측량·지적 정보를 다양한 분야에서 입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고급 정보로 발전시키고, LX공사가 국토 정보와 관련한 조사·관리·산업 진흥 업무를 총괄하는 선도 기관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국가와 국민에게 필요한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며 “국토 정보 공유로 창조경제와 ‘정부3.0’을 주도하는 ‘LX공사 3.0 시대’를 열어 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명 변경을 계기로 전체 매출액의 10% 정도에 머물고 있는 공간 정보 사업의 비중이 2030년에는 30% 이상으로 확대될 것”이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간 정보 전문 기관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LX공사는 사명 변경 선언에 앞서 작년 10월 ‘비전 2025’를 통해 ‘LX’(국토 정보의 최고 전문가), ‘LAND 1’(최상의 국토 정보 서비스)을 각각 CI(기업 이미지)와 BI(브랜드 이미지)로 선정했다. 국내 유일의 공간정보연구원을 개원하고, 국토교통부가 설립한 공간정보산업진흥원의 주주로도 참여했다. 재해 대비 및 토지 정보 대국민 모바일 서비스, 문화재 및 자연물 3차원(3D) 측량, 침수 흔적도 및 도로명 주소 기본도 작성, 국유재산 관리 시스템 구축 등 공간 정보 분야에서 기술력과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김 사장은 “LX공사는 그동안 국토 정보 통합 조사, 관리 지원에 필요한 다양한 사업을 발굴·육성하고 공간 정보 산업을 선도했지만 제도적 한계에 막혀 단편적인 역할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며 “앞으로는 선제적이고 주도적인 공간 정보 신사업 발굴과 인프라 구축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과학은 낭만이었다, 18세기엔

    과학은 낭만이었다, 18세기엔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통찰했다는 아이작 뉴턴(1642~1727)의 일화는 영감과 창조력으로 충만한 천재 과학자의 면모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정작 뉴턴은 생전에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스물다섯 살의 뉴턴이 흑사병을 피해 고향에 내려가 있을 때 과수원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는 이 이야기는 뉴턴이 사망한 이후인 18세기 중반에야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애타게 앎을 추구하며 홀로 나무 밑을 지키다 한순간 직관의 섬광이 번득이면서 단번에 깨달음을 터득하는 ‘유레카의 순간’은 18세기에 등장한 낭만주의 과학론을 지배하는 개념이었다. 계몽주의 과학의 표상인 뉴턴을 직관과 계시가 중시되는 낭만주의 세대에 어울리게 포장한 셈이다. 영국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도 뉴턴을 낭만주의 과학의 표상으로 바꿔놓는 데 일조했다. 워즈워스는 케임브리지대 재학 시절 트리니티칼리지의 뜰에 서 있는 뉴턴의 대리석상을 바라보면서 “낯선 생각의 바다를 영원히, 홀로 여행하는 정신의 대리석상이 서 있는 그곳이 보였네”라고 노래했다. 낭만주의와 과학.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개념이 행복하게 결합했던 시대가 있었다. 뉴턴, 후크, 로크, 데카르트가 포진했던 17세기 제1차 과학혁명과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과학 사이에 일어난 제2차 과학혁명의 시기다. 외로운 탐험과 무모한 항해의 정서가 지배하는 낭만주의 과학의 특징에 따라 제임스 쿡 선장이 인데버호를 타고 첫 세계일주 여행을 떠난 1768년부터 찰스 다윈을 태운 비글호가 갈라파고스 제도를 향해 출항한 1831년까지를 전성기로 본다. 영국 학술원 회원이자 전기(傳記) 연구학자인 리처드 홈스는 이 시기를 ‘경이의 시대’로 명명했다. 18세기 낭만주의 시대를 이끈 과학자들을 전기 형식으로 조명한 이 책은 무한한 자연의 비밀을 발견하기 위해 무모하리만큼 뜨거운 열정으로 돌진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들려준다.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낭만주의 과학자는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1738~1822)과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1778~1829)다. 이들은 자기 삶을 바쳐서 과학적 발견을 이루는 것을 이상으로 꼽는 낭만주의 과학자의 전형이었다.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수년간 우주를 관찰해 마침내 천왕성을 발견한 허셜은 ‘외로운 천재가 신비로운 계시의 순간을 추구하는 활동이 과학’이라는 이미지를 키웠다. 오빠인 허셜 곁에서 묵묵히 그의 손발이 되어 준 여성천문학자 캐럴라인 허셜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허셜 오누이의 천체 연구는 우주 속에서 상대적으로 미미한 인간의 존재를 새삼 깨닫게 했고, 존 키츠나 바이런 같은 낭만주의 작가의 세계관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화학자 데이비의 과학적 열정도 이에 못지않다. 지적인 야심이 컸던 데이비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여러 종류의 공기를 흡입해 공기와 인간의 폐 속에서 일어나는 호흡 과정을 분석하다가 일명 ‘웃음 가스’로 알려진 아산화질소의 마취 효과를 발견했고, 이는 훗날 마취 기술로 발전했다. 데이비는 또한 탄광에서 사용되는 안전등을 개발하기도 했다. 천문학과 화학 외에도 낭만주의 시대의 과학은 기상학, 전기학, 지질학, 생리학 등 각 분야에서 백화만발했다. 몽골피에 열기구와 샤를 기구의 발명을 계기로 영국과 프랑스 간 열기구 경쟁이 벌어졌고 이로 인해 기압과 구름, 바람 등을 연구하는 기상학이 발전했다. 낭만주의 과학이 경이감과 희망만을 전파한 것은 아니다. 공포감도 그에 따라 커졌다. 인간 생명의 본성을 둘러싼 생기론(生氣論) 논쟁은 메리 셸리(1797~1851)의 소설 ‘프랑켄슈타인, 혹은 근대의 프로메테우스’의 배경이 됐다. 전기와 유사한 생기를 써서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다는 극단적인 생각이 탄생시킨 괴물은 180년이 넘도록 소설과 영화로 변주되고 있다. 사실 책의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 여행가이자 모험가, 식물학자였던 조지프 뱅크스(1743~1820)다. 그는 인데버호 탐험대의 일원으로 타이티를 다녀온 뒤 서른다섯 살에 영국 왕립학회장에 선출됐으며, 이후 40년간 재임하면서 허셜과 데이비를 비롯한 수많은 낭만주의 과학자들을 후원했다. 책은 뱅크스의 인데버호 탐험에서 시작해 그의 사망 이후 등장한 젊은 과학자들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낭만주의 과학자의 노력과 열정, 창조성을 촘촘히 기록한 이 책을 읽고 나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경이의 시대’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새삼 돌아보게 된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공연리뷰] 오영수 주연 연극 ‘배웅’

    “당신처럼 그 자리 사람들 멀쩡하게 나아서 퇴원할 때, 내가 꼭 병원 앞까지 나가서 배웅을 해…. 당신 퇴원할 때도 내가 배웅해 줄게.” 5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극단 실험극장의 2013년 정기공연 ‘배웅’은 병원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두 노인의 새로운 만남과 헤어짐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오랜 기간 병원을 제집처럼 드나든 봉팔, 아내와 사별하고 자녀를 출가시킨 뒤 홀로 인생을 마무리하려 병원을 찾은 순철. 전직 국어교사로 깐깐한 성격의 순철과 외항 선장으로 젊은 시절의 낭만을 간직한 봉팔. 70대 두 노인이 한 병실에 입원하면서 아웅다웅 다투다 화해하고 서로 의지하는 친구가 된다. 극작가 강석호의 200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을 민복기 연출가가 각색했다. 작품은 가족의 해체와 노인의 고독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바탕에 깔았다. 결혼한 딸에게 짐이 되기 싫어 스스로 가족을 떠난 순철과 어렵게 키워낸 아들과 등지고 병원을 떠나지 않는 봉팔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외로운 노인의 모습 그대로다. 하지만 작품은 이런 현실 속에서 노인들이 인생을 마무리하며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이들의 인생 끝자락을 빛나게 한 건 ‘만남’이다. 봉팔은 타고난 유머 감각으로 병원을 거쳐 간 수많은 노인들의 친구가 돼 주었다. 마음을 굳게 닫고 있던 순철은 봉팔을 통해 노년의 낭만을 찾고 가족과도 화해하게 된다. 봉팔의 옆 침대에 10여명의 노인이 거쳐 갔듯 인생 끝자락에서 계속되는 만남과 헤어짐은 지나온 여정을 반추하고 지금껏 스쳐간 수많은 관계의 의미를 묻게 한다. 지금까지 150여편의 연극에서 열연해 온 연극계의 대배우 오영수와 극단 실험극장의 중견 배우 이영석의 연기는 마치 자신들의 삶을 고스란히 무대 위에 올려놓은 듯 가슴을 깊이 울린다. 극적인 요소가 강하지는 않지만 두 배우의 웃음과 눈물, 잔잔한 대화 속에 삶의 무게가 실려 있다. 오는 7월 7일까지 서울 설치극장 정미소. 전석 2만 5000원. (02) 889-3561~2.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피란선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지금…

    피란선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지금…

    한국전쟁의 포화가 한창이던 1950년 12월 남쪽으로 내려가기 위해 목숨을 건 피란민의 행렬이 이어진다. 흥남항에 몰려든 피란민들은 보급선인 매러디스 빅토리호에 타기 시작한다. 고작 3000여명을 태울 수 있다던 배에는 무려 1만 4000여명의 피란민이 올라탄다. 그리고 다리도 제대로 펼 수 없던 좁은 배 안에서 기적처럼 다섯 명의 아기가 태어난다. 미국 선원들은 아기들에게 ‘김치’라는 애칭을 붙여 줬다. 60여년이 흐른 지금 ‘김치1’ ‘김치2’ 등으로 불리던 그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KBS1 TV는 25일 밤 10시 정전 60주년 특별기획 ‘기적의 김치5’를 방영한다. 거제도의 모든 가축을 책임지는 수의사 이경필(63)씨는 매러디스 빅토리호에서 마지막으로 태어난 ‘김치5’다. 평화, 은혜, 나눔의 정신을 강조한 부모님의 뜻에 따라 그는 거제도 주민들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발 벗고 나선다. 제작진은 나머지 김치들을 찾기 위해 거제도와 이북5도청 등 관련 기관을 찾아 수소문했다. 이렇게 ‘김치1’에 대한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 때문에 이북에 남아 있는 형과 누나에게 피해가 갈까 걱정해 취재에 응하려 하지 않았다. 제작진의 끈질긴 설득으로 서울 마포구의 한 사무실에서 김치1을 어렵게 만났다. 매러디스호의 김치들에 대한 소식은 여기까지였다. 대신 다른 피란선에서 태어난 사람들에 대한 제보가 쏟아졌다. 상륙 작전용 수송함인 엘에스티(LST)에서 태어난 이성혜씨는 아직도 천식으로 고생하고 있다. 선장실에서 출산하던 어머니와 아기가 바닷바람을 맞아 두 사람 모두 천식에 걸렸다고 한다. 딸의 병원비를 대느라 자신의 약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어머니는 천식 때문에 일찍 돌아가셨다. 캐니언 빅토리호에서 태어난 이종철씨는 누구도 갖고 있지 않은 ‘출생증명서’를 지녔다. 출생증명서에는 그가 1950년 12월 21일 캐니언 빅토리호에서 태어났다는 선장의 확인이 담겨 있다. 특별한 출생, 고된 피란 생활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을 지켜 준 어머니를 생각하면 이씨는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김치와 같은 새 생명의 탄생은 참혹한 전란 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상징이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식인 상어가 배 위로 점프해 사람 공격 ‘충격’

    식인 상어가 배 위로 점프해 사람 공격 ‘충격’

    미끼에 걸린 식인 상어 한 마리가 배 위로 점프해 사람들을 공격했다. 8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일간 ‘애즈베리 파크 프레스’ 보도에 따르면 6일 대서양에서 스포츠 낚시를 즐기던 두 낚시꾼이 탄 9m짜리 소형 선박 위로 길이 2.5m, 무게 137kg에 달하는 크기의 청상아리가 뛰어들었다. 이러한 황당한 경험을 한 이들은 배의 선장 톰 로스트론 주니어와 동료 낚시꾼 클린트 시멕. 두 사람은 이날 오후 3시 30분쯤 상어가 나타나 배 주위에 있던 미끼 모양의 모든 풍선을 공격했다고 설명했다. 이 상어는 물 위로 5번이나 점프했다. 그 높이는 무려 4.5m에 달했으며 마지막으로 뛰어올랐을 때 뱃머리로 떨어지고 말았다. 상어는 배 위에서도 펄쩍 뛰며 사방에 있던 모든 것을 공격했다. 낚시꾼들은 “뱅스틱을 쓸 여유조차 없었다.”고 밝혔다. 뱅스틱은 상어 등 포식자에 대항하기 위해 끝에 폭약을 넣은 막대를 말한다. 이들은 빗자루 등을 사용해 상어의 접근을 막았다. 로스트론이 갈고리를 사용해 상어의 몸통을 꿴 동안 클린트가 밧줄로 꼬리를 묶어 겨우 제압할 수 있었다. 상어는 출혈이 심한 상태에서도 2시간가량 살아 있었다고 한다. 로스트론은 “청상아리가 잡힐 줄 몰랐다.”면서 “만일 배 위에 한 사람이라도 더 있었으면 우리 중 한 명은 상어 공격에 죽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상아리는 상어 중에서 가장 빠르며 물 위로 9m까지 도약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TOPIC / SPLASH NEWS(www.topicimages.com)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이스터섬 ‘모아이 석상’ 뒤뚱뒤뚱 걸어서 이동했다”

    “이스터섬 ‘모아이 석상’ 뒤뚱뒤뚱 걸어서 이동했다”

    세계 신(新) 7대 불가사의 후보로 꼽히는 이스터섬 모아이의 비밀이 서서히 베일을 벗고있다. 최근 미국 하와이 대학 테리 헌트 교수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롱비치 캠퍼스 칼 P. 립 교수 연구팀은 모아이 석상의 운반을 둘러싼 새 학설을 재차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 1722년 네덜란드 선장에 의해 처음 발견된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은 무게 40∼50t으로 섬 여기저기에 우뚝 서있어 그 정체에 대한 논란이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특히 수레나 동물의 도움없이 원주민들이 이 무거운 석상을 어떻게 수 km나 운반했는지는 현재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이에 일부 음모론자들은 외계인 제작설을, 원주민들은 ‘모아이가 스스로 걸어서 갔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번에 연구팀이 논문을 통해 주장한 학설은 과거 발표한 연구결과와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해 연구팀은 모아이 석상이 한마디로 ‘걸어서 갔다’는 학설을 제기했다. 당시 원주민들이 인간 만의 힘으로 밧줄을 이용해 모아이를 이동시켰다는 것. 이를 위해 연구팀은 18명의 사람을 2그룹으로 나눠 모아이를 세운 후 한쪽에서 밧줄을 끌고 반대쪽에서 당기면서 석상이 뒤뚱뒤뚱 걷는 것을 시연해 이를 증명했다. 이번에 연구팀이 내놓은 연구결과는 석상의 밑 부분을 굴곡지게 깎으면 더욱 안정된 자세에서 앞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모아이 석상의 밑 부분이 경사져 있어 똑바로 서있지 못하다는 사실에 의구심을 품은 것. 연구를 이끈 헌트 교수는 “당시 원주민들이 나무 등을 이용해 석상을 굴려서 운반했다면 굳이 아래를 굴곡있게 만들 필요가 없었다.” 면서 “로프를 이용해 목적지까지 쉽게 이동시킨 후 세울 때 다시 평평하게 다듬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석상을 옮기기 위해 나무를 무차별적으로 베어 자연이 파괴돼 문명이 사라졌다는 기존 이론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증명된 셈”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한화 비상경영위원장 이라크 출장 왜?

    한화그룹의 임시 선장을 맡은 김연배 비상경영위원회 위원장이 해외 첫 출장지로 이라크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화건설은 이라크 비스야마에서 신도시 건설공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김승연 회장의 경영 공백으로 추가 사업 수주는 여전히 답보 상태에 빠져 있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이 이 같은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이라크를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 9일 한화건설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달 16일 3박4일 일정으로 한화건설이 시공 중인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현장에서 공사 진행상황을 보고받고 임직원을 격려했다. 이어 20일쯤에는 김현중 한화건설 부회장이 이라크를 찾아 이라크 정부 관계자와 추가 수주에 대한 협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건설 임원은 “ 이라크 사업을 전담하고 있는 김 부회장이 지난달 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NIC) 의장 등을 만나 추가 수주를 논의했다”며 “김 부회장이 한국보다 이라크에 더 많이 머물며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김 회장 부재로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 위원장은 이라크 정부 관계자를 만나지는 않고 현장을 방문해 진행상황 등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한화건설은 지난해 5월 80억 달러 규모의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공사를 따냈다. 국민주택 10만 가구 등을 건설하는 사업으로 당시 해외건설 수주 역사상 단일 공사로는 사상 최대다. 하지만 발전소와 정유시설, 병원, 태양광 등 추가 수주 논의는 정지됐다. 이는 김 회장의 부재와 맞아떨어진다. 이라크 신도시 건설 사업은 김 회장이 직접 나서 2년 넘게 진행해 왔다. 이라크 정부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라크를 수차례 방문하는 등 김 회장이 보여준 사업 의지를 신뢰해 추가 수주를 요청했다. 하지만 김 회장의 경영 공백이 길어지자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트롬본 대중화는 내 운명”

    “트롬본 대중화는 내 운명”

    ‘트롬본 하나로 연주회를 한다고?’ 일반인들이 오케스트라의 뒤편에서 가끔 끼어드는 악기 정도로만 여기는 트롬본을 들고 우직하게 독주회를 이어온 남자가 있다. ‘아웃사이더’라는 불만은 제쳐두고 스스로 ‘금관악기의 대중화’를 선언했다는 트롬보니스트. KBS교향악단 트롬본 수석을 거쳐 지난 3월 연세대 음대 관현악과에 부교수로 임용된 이철웅(48) 교수다. 그가 오는 15일 6번째 독주회를 연다. 2006년 처음 독주회를 시작해 한 해만 건너뛰었을 뿐 매년 그 자리를 지켜왔다. 일반 관객은 거의 없다. 음악인들과 지인들이 대부분이다. “금관악기 연주회는 일반인들이 올 정도로 대중화되지 않았어요. 다들 현악기나 목관악기 쪽으로만 몰리죠. 매니지먼트사에서도 관객 호응 때문에 금관악기와는 협연도 거의 하지 않습니다.” 금관악기의 소외 현상은 관악기·타악기로만 이뤄진 연주단체인 윈드 앙상블 수만 이웃나라들과 비교해봐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윈드 앙상블·오케스트라·밴드 수가 일본은 3000여개, 타이완은 1500여개에 이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300개도 채 안 된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그도 한때는 ‘아웃사이더’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계에 대한 불만도 컸지만 제 스스로 금관악기의 대중화를 선언하고 출연료도 보지 않고 기꺼이 지방 공연을 찾아다녔죠.” 협주도 기회가 있다면 가리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독주회도 시작했다. 특히 그는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곡을 발굴해 관객에게 들려주는 걸 ‘사명’으로 생각한다. 이번 독주회를 채울 7곡 가운데 6곡도 국내 초연 곡이다. 프랑스의 장 미셸 드페이예,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드 사바틸, 영국의 필립 스타크 등 이름도 생소한 현대 작곡가들이다. 20분이 넘는 곡도 있다. 트롬본은 1년에 많아야 한두 차례 독주회가 열리고 고정적으로 독주회를 갖는 연주자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라는 점에서 그의 시도는 용감하다. 유명 국내 금관악기의 저변을 넓히는 데도 직접 발품을 판다. 요르겐 반 라이엔 국제트롬본협회 회장, 단 루커스 미 보스턴대 음대 교수 등 세계 ‘톱5’ 안에 꼽히는 트롬보니스트를 초청해 전공생들을 위한 마스터클래스, 음악캠프 등을 열어 왔다.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가 내한 공연을 하면 직접 관계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단원들에게 학생들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할 정도로 열성이다. 이 교수가 처음 트롬본을 잡은 건 17살 때 성남고 음악부에 들어가면서부터다. “잠잘 때도 어떻게 소리 내나 이 생각밖에 안 났어요. 하교 길에도 연주할 곡의 박자에 맞춰 휘파람을 불며 걸음을 맞춰보다 집에 늦게 오곤 했죠.”(웃음) 연세대 음대, 독일 에센 폴크방 국립음대에서 최고연주자 과정을 거친 그는 1999년 폴크방 콩쿠르에서 금관악기 연주자로는 국내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당시 독일 일간지 베스트도이치알게마이너차이퉁(WAZ)은 “트롬본이 개선장군처럼 승리했다”고 평했다. 이 교수에게 트롬본은 ‘남성과 여성의 음색이 공존하고 남들이 빛날 수 있도록 받쳐주는 악기’다. “학생들에게 더 많은 배움의 기회를 주고 끊임없이 정진하는 연주자이고 싶다”는 그는 어느새 30년지기 트롬본과 닮아 있었다.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3만원. (02)720-3933.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문소영 시시콜콜] 페미니즘 살짝 내비친 손명순 여사 전기

    [문소영 시시콜콜] 페미니즘 살짝 내비친 손명순 여사 전기

    “니, 이리 온나!” 동갑내기이지만 늘 존댓말로 공손한 부인이 저녁상을 물린 직후 이렇게 반말로 내지르면 꼼짝할 수가 없었단다. 거산(巨山)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그림자 내조의 달인’ 손명순(85) 여사의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부생활 이야기다. 손 여사는 YS의 고집을 반드시 꺾어야 할 때나, 중요한 약속을 받아낼 때 이렇게 반말로 담판을 지었다. 철없는 야당 정치인 시절, 확인 안 된 여성 추문들이 들려올 때도 ‘젊은’ 손 여사는 저녁상을 치운 뒤 ‘반말 담판’을 지었단다. “니, 그리해도 좋은데, 밖에서 애만 만들어 오지 마라. 니, 꿈이 대통령 아이가.” 손 여사가 보기에 ‘경상도 섬 사나이 고집쟁이’의 기질을 지닌 YS였지만, 작심한 ‘반말 담판’에는 귀를 기울였단다. ‘상도동 멸치 시래깃국’으로 정치부 기자들에게 사랑받았던 손명순 여사가 이런 일화들이 담긴 YS와 함께한 60년의 삶을 한 권의 책에 담아 6월 말 내놓는다. 영부인의 전기는 윤보선 대통령의 부인 공덕귀 여사와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에 이어 세번째다. 구술·녹취해 작성했다. ‘여성 지도자를 육성한다’는 이화여대 약학대를 나왔지만, 현모양처의 전형이었던 손 여사의 전기에 특별한 것이 있을까. 하지만, 27살에 여당인 자유당의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출발해 이승만의 3선 개헌을 반대하며 야당 의원으로 선회한 YS,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과 1980년대 전두환 정권에서 민주화를 외치던 YS의 삶을 돌보는 아내의 삶도 민주화 투쟁의 연장선상이라는 설명이다. 김정남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YS의 민주화 투쟁에서 손 여사의 내조가 필수적”이었다고 했다.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으로 상도동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 나눔·배려의 따뜻한 마음들이 오갔다는 것이다. 김 전 수석은 “YS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과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허술하고 세상물정을 모른다는 의미다. ‘멸치잡이 선장’ 댁 도련님인 YS의 돈 관념은 희박했다. 있으면 쓰고 없으면 굶는다는 것. 결국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2남3녀의 생활을 책임지고, 상도동 시래깃국과 쌀을 장만한 사람은 손 여사였다. 손 여사가 그림자 내조를 벗어던질 때는 지원유세로 바쁜 YS를 대신해 지역구(부산 서구)에서 선거운동할 때였다. 유권자들이 “영샘이는 코빼기도 안보이고~”하는 불만을 터뜨리기 전에, 불문곡직하고, 먼저 90도로 공손한 인사를 했다. YS를 둘러싼 스캔들, 아들과 가족이야기, 청와대 생활과 1997년 환란 등 공개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았다는 것이 이 책을 집필하는 작가의 설명이다.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국방부, 국내 첫 중증외상센터 만든다

    국방부가 총상과 추락, 교통사고에 따른 골절과 출혈을 동반한 심각한 외상환자에게 24시간 응급수술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증외상센터’를 설립하기로 했다. 국방부는 2016년까지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160개 병상을 갖춘 중증외상센터를 설립하기 위해 분당 서울대병원과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고 17일 밝혔다. 국방부와 보건복지부, 서울대 의과대학, 분당 서울대병원이 참여한 협의체에서 논의 중이며 국군수도병원과의 진료 연계도 검토하고 있다. 중증외상센터가 문을 열면 분당 서울대병원과 군 의료진이 함께 수술 및 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민간인 환자도 수용할 예정이다. 국내 중증외상센터 설립 논의는 2011년 1월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전 삼호주얼리호 선장이 국내로 옮겨졌을 때 전문적으로 치료할 기관이 한 곳도 없다는 데서 비롯됐다. 보건복지부는 같은 해 11월 2016년까지 2000억원을 투자해 광역시·도마다 한 곳씩 16곳의 중증외상센터를 설립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우주 최초 뮤비…ISS서 기타연주에 노래까지

    우주 최초 뮤비…ISS서 기타연주에 노래까지

    국제우주정거장(ISS) 선장인 크리스 헤드필더(53)가 ISS에서 기타 연주하며 노래하는 동영상을 남겨 화제가 되고 있다. 이는 이 영상이 우주에서 촬영된 첫 번째 뮤직비디오(이하 뮤비)로 기록됐기 때문. 캐나다 우주비행사 크리스는 ISS의 선장직을 마무리 하게 되면서 이 같은 영상을 남겼다고 12일 영국 일간지 메트로가 보도했다. 뮤비 속 크리스는 영국 록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가 부른 ‘스페이스 오디티’(Space Oddity)를 선곡, 직접 기타치며 노래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이 뮤비는 ISS의 내부 모습은 물론 이곳에서 바라본 우주의 모습 등 다양한 광경을 담고 있다. 크리스 선장은 지난 5개월간 ISS 선장직을 맡았다. 또한 그는 매일 본 우주 행성 등을 사진으로 찍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는 75만 명의 팔로워를 확보하기도 했다. 한편 크리스 선장은 13일(현지시각) 밤 러시아 우주비행사 파벨 피노그라도프에게 선장 자리를 물려주고 지구로 귀환할 계획이다 사진=유튜브 캡처 인터넷뉴스팀
  • “400년 전 美 이주 영국인들 배고파 人肉 먹었다”

    “400년 전 美 이주 영국인들 배고파 人肉 먹었다”

    17세기 초 북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영국인들이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 인육을 먹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의 연구진은 버지니아주 제임스포트에서 발견된 한 유골에서 인간 도축 흔적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제임스포트는 영국이 1607년 북미에 건설한 최초의 식민지인 제임스타운의 일부였다. 연구진은 지난해 제임스포트의 쓰레기 매립장 부지에서 발굴한 400년 전의 이 유골을 분석한 결과 두개골과 정강이뼈 등에서 살이 인위적으로 분리된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나왔다고 밝혔다. 1996년부터 발굴 작업에 참여한 법의학자 겸 인류학자 더그 오슬리 박사는 “두개골 앞뒤에 찍히고 잘린 자국이 무수히 많고 뇌를 추출하기 위해 두개골 왼편에 구멍을 뚫은 흔적도 있다”면서 “당시 사람들이 몹시 힘든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모든 살을 식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이 ‘제인’이라는 별칭을 붙인 이 유골의 두개골에는 머뭇거리며 작업을 한 듯한 흔적이 남아 있어 숙달된 전문 도축업자가 아닌 여성에 의해 작업이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탄소동위원소 분석을 통해 유골의 주인이 14세가량의 소녀이며 1609년 8월 제임스타운에 도착한 식민지 개척자의 딸이나 하녀로, 이듬해 1월 또는 2월쯤 굶주림이나 질병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유골 조사에서 소녀의 영양 상태가 좋고 육류 섭취를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나 부유층 출신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은 1607년 존 스미스 선장의 지도하에 제임스타운에 첫 정착촌을 건설하는 데 성공했고, 이어 1620년에는 영국의 종교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에 가 있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지금의 매사추세츠주에 상륙해 플리머스 식민지를 건설했다. 이후 1733년까지 북아메리카 대서양 연안에 건설된 영국 식민지는 13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영국 최초의 식민지인 제임스타운에 정착한 이주민들은 당시 이 지역의 원주민인 파우하탄족의 도움을 받아 식량 등을 제공받으며 정착했다. 그러나 이주민들이 파우하탄족의 영역을 잠식하면서 관계가 악화됐다. 이주민들은 원주민들에게 포위된 상태에서 식량이 바닥나자 ‘이성’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식량이 떨어진 이주민들은 말을 시작으로 개, 고양이, 쥐, 뱀 등을 차례로 잡아먹다가 급기야 신발 가죽까지 뜯어 먹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남편이 임신한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뒤 소금에 절여 먹기도 했다. 제임스타운의 지도자 조지 퍼시가 1625년 남긴 기록에도 인육과 관련된 내용이 담겨 있다. ‘굶주림의 시대’로 불리는 1609~1610년은 영국의 초기 북미 식민지 역사에서 가장 참혹한 시기로 알려져 있다. 당시 얼마나 많은 사체가 식용으로 처리됐는지, 살아 있는 사람을 죽여 인육을 먹었는지 등은 불확실하지만 유골의 주인공이 유일한 희생자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6개월에 걸친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인육까지 먹으며 버틴 이주민들의 고통은 1610년 델라웨어경이 영국에서 식량과 병력을 싣고 오면서 끝났지만 이주민 300명 가운데 240명은 이미 유명을 달리한 상태였다. 델라웨어경은 도착 직후 폐허가 된 정착지의 ‘청소’를 명령했고, 소녀의 유해도 이때 쓰레기들과 함께 구덩이에 버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세인트 루이스에 등장한 낡은 해적선, 정체는…

    세인트 루이스에 등장한 낡은 해적선, 정체는…

    강가에 너덜너덜한 해적깃발을 단 낡은 선박이 정박해 있다면 신고를 해야할까? 조니 뎁이 주연한 캐리비안 해적과는 상관없는 얘기지만 미국에서 ‘집시 로즈 2’ 란 이름의 해적선이 인터넷에 매물로 나와 화제가 되고있다. 25일(현지시간) 메트로 보도에 따르면 할리우드 영화의 소품처럼 보이는 이 배는 실제 선상생활이 가능한 주거용 보트다. 잭 스패로우 선장도 반할만한 이 배의 가격은 5만 파운드(약 8700만원)를 웃돈다. 온라인 벼룩시장 크레이그리스트에서 보증 판매하는 이 선박은 미주리주 세인트 루이스에 정박중이며, 두개의 침실과 두개의 욕실을 갖추고 있고 선체에는 해골기가 나부끼고 있다. 선상생활과 파티 모두 가능한 이 선박은 광고문에서 2015년 ‘캐리비안 해적 5’ 개봉전에 구입하는게 유리하다고 네티즌들을 유혹하고 있다. 사진=TOPIC / SPLASH NEWS(www.topicimages.com) 인터넷 뉴스팀
  • 신안 앞바다서 예인선 침몰

    27일 오후 11시 36분쯤 전남 신안군 장산면 마진도 남쪽 2㎞ 해상에서 완도선적 72.28t 예인선 102신한호(선장 김종태·58)가 침몰해 선장 김씨와 기관장 김정남(63), 선원 김인창(66)씨 등 3명이 실종됐다. 진도 서망항에서 목포항으로 항해 중이던 신한호는 토사를 실은 부선(금산 3001호)과 연결한 줄이 끊기면서 침몰한 것으로 알려졌다. 102신한호는 수색 하루 만인 28일 오전 9시쯤 사고해역에서 발견됐다. 이 선박에는 충돌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파손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목포해경은 지난 27일 ‘예인선이 좌초했다’는 신고를 받고 경비정 9척, 헬기 1대를 급파해 실종자 수색작업에 들어갔다. 해경은 부선에 탄 선원 최모씨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부고] 독도의용수비대 김영복 선생 별세

    평생을 독도 수호에 헌신해 온 독도의용수비대 김영복 선생이 지난 25일 오후 8시 별세했다. 84세. 담도암을 앓아온 고인은 그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다가 영면했다고 유족들이 전했다. 이로써 현재 생존해 있는 의용수비대원은 5명이다. 고인은 6·25 전쟁에서 부상해 1954년 3월 전역한 뒤 울릉경찰서 경찰관으로 특채됐다. 그해 12월 31일까지 독도의용수비대원으로 독도수호 활동을 해 왔다. 1955년부터는 울릉경찰서 독도경비대원으로 근무했으며 1961년부터 1974년 10월 퇴직 때까지 울릉도와 독도 해상을 경비하는 화랑호 선장과 정장으로 근무했다. 1996년 공로를 인정받아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았다. 빈소는 경북 포항 선린병원 장례식장 2분향소에 마련됐다. 발인은 27일 오전 8시. (054)245-5418. 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344kg 청새치 잡은 암투병 청소년 화제

    344kg 청새치 잡은 암투병 청소년 화제

    암 투병 중인 미국의 한 10대 소년이 일생의 소원인 바다낚시 여행 도중 거대한 물고기를 잡아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 일간 휴스톤크로니클은 24일 ‘호지킨 림프종’이라는 난치병에 걸려 투병 중인 스털링 엘리슨(19)의 사연을 소개했다. 엘리슨은 최근 난치병 아동과 청소년의 소원을 성취해주는 국제자선단체 ‘메이크어위시재단’이 보내준 하와이 낚시 여행 도중 길이 335cm, 무게 344kg의 거대 청새치를 잡아 자신의 소원을 성취했다. 2년 전 호지킨 림프종 진단을 받은 엘리슨은 앞으로 몇 달 안에 뼈 이식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그는 “이른 아침에 낚시를 시작해 긴장이 풀려 있었지만, 그때 낚싯줄이 빠르게 풀려나갔다.”면서 “선장님이 합세했지만, 그 물고기를 잡기까지는 1시간 이상이 걸렸다.”고 말했다. 미국 메이크어위시재단 측은 엘리슨이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바다낚시 여행을 떠나길 원해 이번 프로그램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한편 메이크어위시재단은 1980년 미국 애리조나주(州)에서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었던 크리스 그레이셔스(7)라는 소년이 자신의 꿈을 지역 경찰의 도움으로 일일 체험을 통해 소원을 성취한 뒤 3일 만에 세상을 떠난 것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 재단은 소아암, 백혈병 등 난치병 아동 및 청소년의 소원을 들어주는 국제 소원성취기관으로 국내에도 지부를 두고 있다. 사진=WSOC-TV 캡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아싸~가오리!”…107kg ‘괴물’ 낚였다

    ”아싸~ 가오리!” 한 낚시꾼이 바다에서 100kg이 넘는 거대 가오리를 낚아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취미로 낚시를 즐기는 영국인 데이비드 그리피스(47)는 스코틀랜드 오번 인근 바다에서 꿈에서만 그리던 ‘대물’을 낚아 올리는데 성공했다. 그리피스가 낚싯줄에 단 고등어 미끼를 덥썩 문 대물은 바로 가오리과의 바닷물고기인 눈가오리. 특히 이 가오리는 무게가 무려 107kg, 길이도 230cm가 훌쩍 넘는 괴물 수준이었다. 그리피스는 “처음 낚싯대에 신호가 왔을 때 무엇인가 큰 놈이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면서 “90분 간이나 가오리와 사투를 벌인 끝에 낚아 올릴 수 있었다.” 고 밝혔다. 이어 “보트가 끌려다니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가오리의 힘이 무척이나 쎘다.” 면서 “가오리 덕분에 난 낚시꾼의 전설이 됐다.”며 즐거워했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그리피스가 잡은 가오리는 비공식적으로 영국에서 가장 큰 놈으로 기록됐다. 보트의 선장은 “그리피스가 잡은 가오리를 다시 바다로 돌려 보내 기록을 인정받지 못했다.” 면서 “그가 행운의 사나이기도 하지만 거대 가오리를 낚아 올린 힘과 기술도 대단했다.” 며 혀를 내둘렀다. 인터넷뉴스팀 
  • 금융위·금감원 직원에 주가조작 수사권 부여

    금융위·금감원 직원에 주가조작 수사권 부여

    금융위원회 주가조작 조사 인력에 특별사법경찰권(특사경)이 부여된다. 금융위에 파견되는 금융감독원 직원에게도 특사경이 부여된다. 금융위 안에는 조가 조작 등 불공정 거래를 담당하는 조사부서가 신설된다. 검찰이 금감원 조사단계를 거치지 않고 즉시 수사에 착수하는 증권범죄 신속처리절차(Fast Track) 제도도 도입된다. 17일 금융위원회와 법무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의 주가조작 근절 종합대책을 18일 발표한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첫 국무회의에서 주가조작 엄단을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우선 논란이 됐던 ‘특사경’은 금융위·금감원 조사 담당자에게 부여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특사경이 부여되면 경찰과 마찬가지로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게 된다. 검사·경찰만으로는 범죄를 수사하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수사권을 줌으로써 사건 수사부터 검찰 송치까지 맡게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조사공무원이 계좌추적, 통신추적 및 출국금지도 요청할 수 있게 된다. 산림보호 업무를 하는 산림청 소속의 산림특별경찰관, 식품안전 등에 대한 고발권이 있는 지방자치단체 특별사법경찰관, 원양어선 선장 등도 특사경을 보유하고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에는 증권선물위원회가 주가조작 행위와 같은 주요 증권범죄 조사를 위해 필요하면 금융위 소속 공무원에게 혐의자를 심문하거나 압수수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수 있지만 유명무실했다. 증권선물위원장 제청으로 2004년 처음 조사공무원 6명을 임명했지만 활동이 거의 없었다. 금융위는 특사경 부여와 함께 조사공무원 제도를 다시 활성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금융위에 조사 전담부서를 신설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주가조작 조사 단계가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지적에 따라 검찰이 직접 수사에 착수하는 ‘패스트트랙’ 제도도 도입하기로 했다. 증선위가 거래소에서 받은 혐의 자료를 분석해 검찰의 직접 수사가 즉시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금감원 조사 없이 바로 검찰에 넘기는 방안이다. 기존엔 거래소 심리, 금감원 조사, 증선위 고발·통보 절차를 거쳐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는 방식이어서 조사와 처벌까지 수년씩 걸리는 일도 있다. 법무부는 합동수사본부를 서울중앙지검에 설치, 거래소와 금감원 직원이 함께 수사하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수사본부는 주가조작 수사를 맡고 그 외 증선위 고발 사건 등은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에서 맡는 식이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사설] 윤 해수부 장관 후보자 거취 시간 끌 일 아니다

    ‘해양수산호’가 선장도 없이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다. 해양강국의 염원 속에 5년 만에 부활한 해양수산부가 닻을 올리기도 전에 이렇게 비트적거리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윤진숙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본부장이 지난 2월 해수부 장관 후보자로 발표됐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가 지방대와 여성이란 벽을 뚫고 직장생활을 하며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해양환경 전문가 정도로만 여겼다. 결정적인 도덕적 흠결이 없으니 인사청문회를 너끈히 통과하고 장관직도 무난히 수행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모래 속에서 찾아낸 진주가 아님이 여실히 드러났다. 부처 핵심 현안은 물론 기초적 현황마저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 여당에서조차 스스로 물러나 줬으면 하고 바라는 지경에 이르렀다. 발목 잡기가 아니라 손목을 잡아주려 해도 기본적으로 자질이 안 되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한탄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해수부가 어떤 곳인가. 국토해양부로 간 해운·항만 분야와 농림수산식품부로 간 수산 분야를 합쳐 1만 3000여명의 공무원을 거느리고 1년 4조원 규모의 예산을 움직이는 슈퍼 부서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지적하듯 윤 후보자가 장관에 임명된다 하더라도 이런 거대 조직을 과연 제대로 장악할 수 있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전형적인 발탁인사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안타까움 또한 크다. 하지만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문제의 답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이를 애써 외면하는 것은 국민에게 이중으로 실망을 안겨주는 것이다. 윤 후보자는 두 차례나 장관 내정을 고사했다고 한다. 다시 한번 자인소(自引疏)를 내는 심정으로 허물을 인정하고 몸을 감춰주기 바란다. 청와대도 이쯤 됐으면 임명을 철회하는 게 옳다. 지금 와서 새 인물을 찾기엔 너무 시간이 걸리니 일단 장관직을 맡겨놓고 진짜 능력을 보자고 하지만, 부실 출범은 지각 출범보다 더 큰 부작용을 낳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아무리 미관말직이라도 공직은 엄중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해양강국의 비전에 부응할 만한 자질이 부족한 이를 굳이 장관직에 앉힐 이유는 없다. 시간을 끌수록 민심은 멀어진다. 윤진숙 카드는 거둬들이고 역량 있는 새 인물을 골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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