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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고래호 낚시꾼 “잘 가고 있다” 인명피해 키웠다..왜?

    돌고래호 낚시꾼 “잘 가고 있다” 인명피해 키웠다..왜?

    제주 추자도 낚시어선 돌고래호 전복 사고의 해경 초동조치가 늦어진 데는 한 낚시꾼의 거짓말이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된 것으로 드러났다. 돌고래호 연락두절 신고를 받은 해경이 승선원 명부에 오른 탑승자들을 대상으로 확인 전화를 하는 과정에서 승선하지도 않은 낚시꾼이 “돌고래호를 타고 잘 가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 돌고래호 사고 당일인 5일 돌고래호(9.77t·해남 선적)와 같은 시각 전남 해남군 남성항으로 가기 위해 추자항(상추자)을 출항한 돌고래1호(5.16t·해남 선적)는 날씨가 좋지 않자 추자항으로 돌아왔다. 추자항에 도착한 돌고래1호 선장 정모(41)씨는 8시께 추자항 추자출장소를 찾아 입항신고를 했다. 정 선장은 입항신고를 한 뒤 출장소를 나와 돌고래호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자 8시 40분께 동료 선장 등과 함께 해경에 정식으로 신고했다. 해경은 V-PASS를 통해 돌고래호의 위치신호가 5일 오후 7시 38분께 추자도 예초리(하추자) 북동쪽 500m 해상에서 마지막으로 잡힌 것을 확인했다. 추자출장소는 상추자도 신양항에 있는 추자해양경비안전센터에 보고했고 해경은 승선원 명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순서대로 연락을 하며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때 실제 돌고래호에 탑승하지 않은 낚시꾼 A씨가 전화를 받았고 A씨는 “돌고래호를 타고 해남 쪽으로 잘 가고 있다. 괜찮다”고 거짓말을 했다. A씨는 승선원명부에 이름을 올려놓고도 배에 타지 않았기 때문에 혹 승선원명부 허위 기재 등 이유로 돌고래호 선장에게 불이익이 갈까 봐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 돌고래호 낚시꾼 A씨의 말을 믿은 추자해양경비안전센터는 돌고래호가 사고가 난 것이 아닌 것으로 알고 A씨의 대화 내용을 추자출장소에 통보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추자도 낚시 어선 전복] 해경 공식 보고 23분 지연하고 승객 대부분 구명조끼 안 입어

    [추자도 낚시 어선 전복] 해경 공식 보고 23분 지연하고 승객 대부분 구명조끼 안 입어

    세월호 참사 이후 해경을 해체하고 국민안전처를 신설했어도 해상 사고 예방 및 사후 대처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6일 제주 추자도 해상에서 전복된 낚시 어선은 출항 시 승선 인원도 파악하지 못했고 해경에 선박 실종 신고를 접수했지만 공식 접수는 23분이나 지연되는 등 안일한 판단으로 실종 선박 수색과 생존자 조기 구조에 실패했다. 사고 어선 돌고래호의 승선 인원이 오리무중이다. 이날 제주해양경비안전서 등에 따르면 돌고래호는 출항하기 전에 승선 인원이 모두 22명이라고 신고했다. 해경은 이 중 13명은 승선한 사실을 확인했으나 4명은 승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생존자 중 1명은 승선 명부에 아예 없었다. 생존자 이모(49)씨는 “선장과 가이드 1명, 낚시꾼 16명 등 모두 18명이 낚싯배에 타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이날 오전 이들을 구조했던 어선 관계자는 “구조 당시 배에 모두 26명이 타고 있으니 빨리 구조해 달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전했다. 해경의 안일한 초기 대응도 화를 키웠다. 해경 추자출장소는 지난 5일 오후 8시 40분쯤 돌고래1호 선장 정모(41)씨가 직접 찾아와 돌고래호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신고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주 해경은 사고 발생 후 경황이 없어 착오가 있었다며 정씨가 전화로 돌고래호의 통신 두절 상태를 신고했다고 해명했다. 신고 당시 정씨는 “오후 7시 38~40분쯤 돌고래호 김모(46) 선장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김씨는 “잠시만”이라는 짧은 대답 이후 연락이 두절됐다고 밝혔다. 추자출장소는 기상 상태 등을 고려해 돌고래호가 목적지인 전남 해남으로 계속 항해 중인 것으로 판단, 목적지인 해남 남성항 등으로 연락을 취했다. 이후 23분이 지난 오후 9시 3분에야 추자해양경비안전센터를 경유, 제주해양경비안전서에 선박 실종을 공식 보고했다. 이평현 제주해양경비안전본부장은 “오후 8시 40분 최초 신고된 것이 맞지만 당시 기상 상황 등이 크게 나쁘지 않아 항해 중이라고 판단, 오후 9시 3분에 제주 해경 상황실에 공식 보고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해경이 어선위치발신장치(V-PASS)로 확인된 돌고래호의 마지막 위치 등을 파악해 수색에 나선 것은 다시 7분이 지난 오후 9시 10분쯤부터다. 그러나 밤이고 추자도 인근 해역에 바람이 초속 9~11m로 강하게 불어 물결도 2~3m로 높았고 비까지 많이 와 사실상 수색 및 구조에 나서지 못했다. 구명조끼 착용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생존자 이씨는 “사고 당시 전복된 배에 선장을 포함해 구명조끼가 없는 사람 6명이 매달려 있었다. 비가 와서 구명조끼가 축축해 승객 대부분이 착용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사고 당시 승객 상당수가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망자 10명도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채 발견됐다. 구명조끼가 젖었다는 진술로 보아 보관 상태도 문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돌고래호 승선자들이 출항 당시 선장으로부터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권고를 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구명조끼에는 통상 호루라기나 구조조명, 조명탄 등 구조 요청을 위한 간이 장비가 함께 들어 있어 어두운 밤에도 신속하게 위치를 알릴 수 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한발 늦은 구조… 한발도 못 나간 안전

    한발 늦은 구조… 한발도 못 나간 안전

    지난 5일 오후 7시 40분쯤 제주 추자도 해상에서 연락이 두절된 낚시어선 돌고래호(9.77t·해남 선적)가 11시간 만에 전복된 채 6일 발견돼 해경 등에서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돌고래호 승선 명단이 부실한 탓에 승선 인원을 확정하지 못하던 해경은 이날 오후 5시쯤 “돌고래호에 21명이 승선했고 3명이 구조되고 사망자 10명, 실종자 8명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 295명의 사망자와 9명의 실종자가 발생한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해난 사고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여전히 안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6일 제주해양경비안전서에 따르면 돌고래호는 5일 오전 2시쯤 부산과 경기도 등지에서 온 낚시꾼을 태우고 해남 남성항에서 출항해 신양항에 도착했다. 파도가 높고 호우가 쏟아지는 등 기상악화로 돌고래호는 오후 7시쯤 남성항으로 돌아가려고 신양항에서 출항했다. 비슷한 시간에 역시 기상 악화로 회항하던 돌고래 1호 선장 정모(41)씨와 전화를 주고받던 돌고래호 선장 김모(46)씨는 오후 7시 40분쯤 “잠시만”이라는 짧은 대답 이후 연락이 두절됐다. 선장 정씨는 이날 오후 8시 40분쯤 제주해경 추자안전센터에 돌고래호의 통신 두절 사실을 신고했으나 해경은 23분이 지난 오후 9시 3분에야 추자해양경비안전센터를 거쳐 제주해양경비안전서에 공식 보고했다. 해경은 돌고래호의 어선위치발신장치(V-PASS)를 통해 오후 9시 10분 사고 선박의 마지막 위치를 추자도 예초리(하추자) 북동쪽 500m 해상으로 확인했으나 기상 악화로 수색에는 나서지 못했다. 돌고래호는 이후 11시간여 뒤인 6일 오전 6시 25분쯤 추자도 남쪽 무인도 섬생이섬 남쪽 1.1㎞ 해상에서 뒤집힌 채 인근을 지나던 어선에 의해 발견했다. 이때 전복된 배 위에서 사투를 벌이던 김모(47·부산), 이모(49·부산), 박모(38·경남)씨 등 생존자 3명이 구조됐다. 이평현 제주해양경비안전본부장은 이날 전복 원인에 대해 “생존자 진술에 따르면 배가 양식장 밧줄 같은 것에 걸려 엔진이 정지되면서 급격히 전복됐으며, 당시 선장이 탈출을 지시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전날 밤 10시 50분부터 돌고래호의 통신 두절 상태를 보고받은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실종자들의 수색과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에게 지시했다고 청와대가 전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추자도 돌고래호, 5년 전에도 표류 사고 “바다 한가운데서 3시간 넘게 표류” 충격

    추자도 돌고래호, 5년 전에도 표류 사고 “바다 한가운데서 3시간 넘게 표류” 충격

    ‘추자도 돌고래호’ 추자도 돌고래호가 5년 전에도 비슷한 해역에서 표류하는 사고를 당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6일 한 매체는 바다낚시를 위해 돌고래호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한모(49·수원 거주)씨의 말을 인용, 지난 2010년 3월에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한씨는 “2010년 3월 돌고래호가 추자도 인근에서 낚시꾼을 태우고 해남 남성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며 “그러나 너울성 파도와 폭우로 인해 전자 장비가 고장 나 배가 바다에서 길을 잃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돌고래호는 바다 한가운데서 3시간 넘게 표류했으며 한씨는 “당시 선실에 있었고, 전자장비가 고장 난 것을 확인한 뒤 선장에게 물어보니 ‘길을 잃었다’고 말했다”며 “선장은 당시 나침반도 없이 운항을 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표류하던 돌고래호는 이후 진도 관사도에 정박했고, 승선했던 낚시객들은 이후 다른 배의 도움을 받아 당초 목적지인 남성항이 아닌 진도 서항에 도착했으며 한씨는 “배가 길을 잃은 것을 눈치챈 배 안 다른 낚시객들이 크게 술렁였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오전 6시25분께 제주 추자도 인근에서 낚시 관광객 등 19∼20명(추정)을 태우고 전남 해남으로 가다가 통신이 두절된 낚시어선 돌고래호(9.77t·해남 선적)로 추정되는 배가 추자도 남쪽의 무인도인 섬생이섬 남쪽 1.2㎞ 해상에서 뒤집힌 채 발견, 현재 3명이 구조되고 10명이 사망했다. 추자도 돌고래호, 추자도 돌고래호, 추자도 돌고래호, 추자도 돌고래호 사진 = 서울신문DB (추자도 돌고래호)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돌고래호 낚시꾼 “잘 가고 있다” 거짓말 인명피해 키웠다..대체 왜? 이유보니

    돌고래호 낚시꾼 “잘 가고 있다” 거짓말 인명피해 키웠다..대체 왜? 이유보니

    돌고래호 낚시꾼 “잘 가고 있다” 거짓말 인명피해 키웠다..대체 왜? 이유보니 ‘돌고래호 낚시꾼’ 제주 추자도 낚시어선 돌고래호 전복 사고의 해경 초동조치가 늦어진 데는 승선원 명부에 이름은 올랐지만 실제 탑승은 하지 않았던 한 낚시꾼의 거짓말이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된 것으로 드러났다. 돌고래호 연락두절 신고를 받은 해경이 승선원 명부에 오른 탑승자들을 대상으로 확인 전화를 하는 과정에서 승선하지도 않은 낚시꾼이 “돌고래호를 타고 잘 가고 있다”고 말한 것. 돌고래호 사고 당일인 5일 돌고래호(9.77t·해남 선적)와 같은 시각 전남 해남군 남성항으로 가기 위해 추자항(상추자)을 출항한 돌고래1호(5.16t·해남 선적)는 날씨가 좋지 않자 추자항으로 돌아왔다. 추자항에 도착한 돌고래1호 선장 정모(41)씨는 8시께 추자항 추자출장소를 찾아 입항신고를 했다. 그는 입항신고를 하면서 해경에 “돌고래호 선장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말을 흘렸다. 그러나 연락두절에 대한 정식 신고를 한 것은 아니었다. 추자도 주변에는 전화가 터지지 않는 지역이 많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정 선장은 입항신고를 한 뒤 출장소를 나와 계속해서 돌고래호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역시 연락이 닿지 않자 8시 40분께 동료 선장 등과 함께 해경을 찾아 “(돌고래호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 어선위치발신장치(V-PASS) 항적기록을 보자”며 정식으로 신고했다. 해경은 V-PASS를 통해 돌고래호의 위치신호가 5일 오후 7시 38분께 추자도 예초리(하추자) 북동쪽 500m 해상에서 마지막으로 잡힌 것을 확인했다. 추자출장소는 상추자도 신양항에 있는 추자해양경비안전센터에 보고했고 해경은 승선원 명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순서대로 연락을 하며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때 돌고래호 탑승명단에 있던 낚시꾼 A씨가 전화를 받았다. 돌고래호 낚시꾼 A씨는 애초 돌고래호에 승선하기로 돼 있어 승선원 명부에 이름이 올랐으나 실제는 배에 타지 않고 해남에 남아 있던 사람이었다. 해경의 연락을 받은 A씨는 “돌고래호를 타고 해남 쪽으로 잘 가고 있다. 괜찮다”고 거짓 대답을 했다. A씨는 (자신이) 승선원명부에 이름을 올려놓고도 배에 타지 않았기 때문에 혹 승선원명부 허위 기재 등 이유로 돌고래호 선장에게 불이익이 갈까 봐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돌고래호 낚시꾼 A씨의 말을 믿은 추자해양경비안전센터는 돌고래호가 사고가 난 것이 아닌 것으로 알고 A씨의 대화 내용을 추자출장소에 통보했다. 그러나 해경은 만일에 대비해 다시 승선원 명부에 오른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지만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 같은 시각 돌고래호 낚시꾼 A씨 역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돌고래1호 선장인 정씨에게 전화를 걸었고, 문제가 있음을 예감한 뒤 뒤늦게 추자해양경비안전센터에 자신이 배에 타지 않은 사실을 알렸다. 해경은 이날 9시 3분께 제주해양경비안전서 상황실에 신고했고, 즉각 민간인 자율선박 5척을 동원해 정밀검색에 들어갔다. 추자도 예초리 해상에서 마지막 V-PASS 신호가 잡힌 오후 7시 38분 이후 1시간 20여분이 지난 뒤였다. 허술하게 작성된 승선원 명단, 낚시꾼의 거짓 대답, 악천후 속에서 V-PASS 모니터링과 다각적인 확인 체크를 소홀히 한 해경 등 여러 복합적 상황이 이번 돌고래호 사고에서 큰 인명 피해를 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제주해양경비안전본부 돌고래호 사고 수사본부는 승선원 명단이 허술하게 작성된 경위에 대해 확인 중이다. 한편 돌고래호는 5일 저녁 제주 추자도 신양항에서 출항, 전남 해남 남성항으로 가다가 통신이 끊긴 뒤 11시간 가까이 지난 6일 오전 6시 25분께 추자도 인근 해역에서 전복된 채 발견됐다. 이 사고로 돌고래호 승선자 중 10명이 숨진 채 발견됐고 실종된 8명에 대해서는 수색작업 중이다. 생존자 3명은 현재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네티즌들은 “돌고래호 낚시꾼 거짓말 대체 왜..”, “돌고래호 낚시꾼 거짓말 일을 키웠구나”, “돌고래호 낚시꾼 거짓말 순간적으로 했구나. 안타깝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뉴스 캡처(돌고래호 낚시꾼)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돌고래호 낚시꾼 “잘 가고 있다” 순간적인 거짓말 인명피해 키웠다

    돌고래호 낚시꾼 “잘 가고 있다” 순간적인 거짓말 인명피해 키웠다

    제주 추자도 낚시어선 돌고래호 전복 사고의 해경 초동조치가 늦어진 데는 한 낚시꾼의 거짓말이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된 것으로 드러났다. 돌고래호 연락두절 신고를 받은 해경이 승선원 명부에 오른 탑승자들을 대상으로 확인 전화를 하는 과정에서 승선하지도 않은 낚시꾼이 “돌고래호를 타고 잘 가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 돌고래호 사고 당일인 5일 돌고래호(9.77t·해남 선적)와 같은 시각 전남 해남군 남성항으로 가기 위해 추자항(상추자)을 출항한 돌고래1호(5.16t·해남 선적)는 날씨가 좋지 않자 추자항으로 돌아왔다. 추자항에 도착한 돌고래1호 선장 정모(41)씨는 8시께 추자항 추자출장소를 찾아 입항신고를 했다. 정 선장은 입항신고를 한 뒤 출장소를 나와 돌고래호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자 8시 40분께 동료 선장 등과 함께 해경에 정식으로 신고했다. 해경은 V-PASS를 통해 돌고래호의 위치신호가 5일 오후 7시 38분께 추자도 예초리(하추자) 북동쪽 500m 해상에서 마지막으로 잡힌 것을 확인했다. 추자출장소는 상추자도 신양항에 있는 추자해양경비안전센터에 보고했고 해경은 승선원 명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순서대로 연락을 하며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때 실제 돌고래호에 탑승하지 않은 낚시꾼 A씨가 전화를 받았고 A씨는 “돌고래호를 타고 해남 쪽으로 잘 가고 있다. 괜찮다”고 거짓말을 했다. A씨는 승선원명부에 이름을 올려놓고도 배에 타지 않았기 때문에 혹 승선원명부 허위 기재 등 이유로 돌고래호 선장에게 불이익이 갈까 봐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 돌고래호 낚시꾼 A씨의 말을 믿은 추자해양경비안전센터는 돌고래호가 사고가 난 것이 아닌 것으로 알고 A씨의 대화 내용을 추자출장소에 통보했다. 낚시꾼 A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돌고래1호 선장인 정씨에게 전화를 걸었고, 문제가 있음을 예감한 뒤 뒤늦게 추자해양경비안전센터에 자신이 배에 타지 않은 사실을 알렸다. 해경은 이날 9시 3분께 제주해양경비안전서 상황실에 신고했고, 즉각 민간인 자율선박 5척을 동원해 정밀검색에 들어갔다. 추자도 예초리 해상에서 마지막 V-PASS 신호가 잡힌 오후 7시 38분 이후 1시간 20여분이 지난 뒤였다. 낚시꾼의 거짓 대답이 이번 돌고래호 사고에서 큰 인명 피해를 낸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한편 돌고래호는 5일 저녁 제주 추자도 신양항에서 출항, 전남 해남 남성항으로 가다가 통신이 끊긴 뒤 11시간 가까이 지난 6일 오전 6시 25분께 추자도 인근 해역에서 전복된 채 발견됐다. 이 사고로 돌고래호 승선자 중 10명이 숨진 채 발견됐고 실종된 8명에 대해서는 수색작업 중이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돌고래호, 연락두절 신고 뒤늦은 확인부터 “잘 가고 있다” 거짓 대답까지…총체적 ‘부실’

    돌고래호, 연락두절 신고 뒤늦은 확인부터 “잘 가고 있다” 거짓 대답까지…총체적 ‘부실’

    제주 추자도 인근 해상에서 전복된 돌고래호(9.77t·해남 선적)에 대한 해경의 초동조치가 늦어진 것에는 승선원 명부에 이름이 있었지만 실제로 탑승은 하지 않았던 한 낚시꾼이 거짓 대답을 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이 돌고래호의 ‘연락두절’ 신고를 받고 승선원 명부에 오른 탑승자들에게 일일이 확인 전화를 하는 과정에서 명부에는 있지만 승선하지 않은 낚시꾼이 “돌고래호를 타고 잘 가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승선원 명단이 허술하게 작성됐고, 배에 실제로 타지 않은 낚시꾼의 거짓 대답에 이어 악천후 속에서도 V-PASS 모니터링을 비롯해 다각적인 확인 등을 소홀히 한 해경 등이 총체적으로 이번 사고에서 큰 인명피해를 낸 것으로 지적된다. ●연락두절 신고에 해경은 전화로 확인…타지도 않은 낚시꾼 “잘 가고 있다” 해경은 돌고래호가 연락두절 상태라는 신고를 받은 뒤 승선원 명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순서대로 연락을 하며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당초 돌고래호에 승선하기로 명부에 이름을 올렸으나 실제는 배에 타지 않고 해남에 남았던 A씨가 전화를 받았다. A씨는 해경의 연락을 받자 “돌고래호를 타고 해남 쪽으로 잘 가고 있다. 괜찮다”고 거짓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이 명부에 이름을 올려놓고 타지 않은 것 때문에 ‘승선원명부 허위 기재’ 등으로 선장이 불이익을 받을까봐 걱정돼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추자해양경비안전센터는 A씨의 말을 믿고 돌고래호가 사고가 난 것이 아닌 것으로 알고 A씨의 대화 내용을 추자출장소에 통보했다. 이후 해경이 만일에 대비해 다시 승선원 명부에 오른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A씨 역시 해경의 전화를 끊은 뒤 돌고래 1호(5.16t·해남 선적) 선장인 정씨에게 전화를 걸었고 돌고래호 선장과 연락두절 상태임을 알게된 뒤 뒤늦게 추자해양경비안전센터에 자신이 배에 타지 않았다고 알렸다. 해경은 이날 9시 3분쯤 제주해양경비안전서 상황실에 신고했고, 즉각 민간인 자율선박 5척을 동원해 정밀검색에 들어갔다. 추자도 예초리 해상에서 마지막 V-PASS 신호가 잡힌 오후 7시 38분 이후 1시간 20여분이 지난 뒤였다. 사고가 난 뒤 너무 뒤늦은 시간이었던 것이다. ●연락두절 신고도 동료 선장이 40분 만에 확인 앞서 돌고래호의 연락두절 신고가 접수된 것도 다른 선박의 동료 선장이 한참 연락을 해본 뒤에야 겨우 이뤄졌다. 돌고래호의 연락두절 신고가 접수된 과정은 이랬다. 지난 5일 돌고래호(9.77t·해남 선적)와 같은 시각 전남 해남군 남성항으로 가기 위해 추자항(상추자)을 출항한 돌고래 1호(5.16t·해남 선적)는 날씨가 좋지 않자 추자항으로 되돌아왔다. 돌고래 1호 선장 정모(41)씨는 8시쯤 추자항 추자출장소를 찾아 입항신고를 하면서 해경에 “돌고래호 선장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락두절에 대한 정식 신고는 아니었고 대화하며 말을 흐린 것으로 알려졌다. 추자도 주변에서는 전화가 터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정 선장은 입항신고를 한 뒤 출장소를 나와서도 계속해서 돌고래호와 연락이 닿지 않자 8시 40분쯤 동료 선장 등과 함께 해경을 찾아 “(돌고래호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 어선위치발신장치(V-PASS) 항적기록을 보자”며 정식으로 신고했다. 해경은 V-PASS를 통해 돌고래호의 최종 위치신호가 5일 오후 7시 38분쯤 추자도 예초리(하추자) 북동쪽 500m 해상임을 확인했고, 추자출장소는 상추자도 신양항에 있는 추자해양경비안전센터에 보고했다. 해경이 직접 돌고래호의 상황을 파악한 것이 아니고 동료 선장이 40분 남짓 동안 연락을 시도한 뒤에야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하게 된 것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추자도 돌고래호 전복] 추가 발견 없어, 이틀째 실종자 수색 중

    [추자도 돌고래호 전복] 추가 발견 없어, 이틀째 실종자 수색 중

    [추자도 돌고래호 전복] 추가 발견 없어, 이틀째 실종자 수색 중 추가 발견 없어 추자도 인근 해상에서 전복된 낚시어선 돌고래호의 실종자를 찾기 위한 수색작업이 6일 밤과 7일 새벽에 걸쳐 계속됐지만 추가로 발견된 실종자는 없었다. 7일 제주해양경비안전서에 따르면 야간 수색에는 해경 경비함정 28척과 해군 함정 5척, 관공선 2척, 지자체 어업지도선 1척, 민간 어선 40척 등 76척과 항공기 4대 등이 동원됐다. 전날 밤 어둠 속에서는 조명탄과 경비함정 조명 등을 이용해 수색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전날(6일) 오후 12시 47분 10번째 시신이 발견된 이후 17시간 넘게 추가로 실종자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해경은 지금까지 사망자들이 추자도 주변 해역 곳곳에서 발견됨에 따라 추자도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수색을 벌이고 있다. 한편 해경은 제주해양경비안전본부에 본부 경비과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수사본부를 차린 가운데 사고 원인과 탑승객 명단이 허술하게 작성된 경위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그러나 선장 김철수(46)씨가 사망했고 생존자 3명도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고 있어 수사는 당분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돌고래호 실종자 추가 발견 없어…사고 원인 등 조사도 ‘난항’ 왜?

    돌고래호 실종자 추가 발견 없어…사고 원인 등 조사도 ‘난항’ 왜?

    추가 발견 없어 돌고래호 실종자 추가 발견 없어…사고 원인 등 조사도 ‘난항’ 왜? 낚시어선 돌고래호 전복사고 실종자를 찾기 위한 수색작업이 6일 밤과 7일 새벽에 걸쳐 진행됐지만 실종자 추가 발견 소식은 없었다. 7일 제주해양경비안전서에 따르면 야간 수색에는 해경 경비함정 28척과 해군 함정 5척, 관공선 2척, 지자체 어업지도선 1척, 민간 어선 40척 등 76척과 항공기 4대 등이 투입됐다. 해가 진 뒤 어둠 속에서도 조명탄과 경비함정 조명 등을 이용해 수색은 계속 이뤄졌다고 해경은 전했다. 그러나 6일 낮 12시 47분 10번째 시신이 발견된 이후 17시간 넘게 추가로 실종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해경은 지금까지 사망자들이 추자도 주변 해역 곳곳에서 발견됨에 따라 추자도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수색을 벌이고 있다. 날이 밝는 대로 전날에 이어 잠수요원을 대거 투입해 수중 수색도 계속한다. 또 전날 제주해양경비안전본부에 본부 경비과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수사본부를 차린 가운데 사고 원인과 탑승객 명단이 허술하게 작성된 경위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그러나 선장 김철수(46)씨가 숨진 채 발견된데다 생존자 3명도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고 있어 수사는 당분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돌고래호, 5년 전에도 사고 “바다 한가운데서 3시간 넘게 표류” 실종자 추가 발견 없어

    돌고래호, 5년 전에도 사고 “바다 한가운데서 3시간 넘게 표류” 실종자 추가 발견 없어

    돌고래호, 5년 전에도 사고 “바다 한가운데서 3시간 넘게 표류” 실종자 추가 발견 없어 ‘돌고래호 추가 발견 없어’ 추자도 돌고래호가 5년 전에도 비슷한 해역에서 표류하는 사고를 당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6일 한 매체는 바다낚시를 위해 돌고래호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한모(49·수원 거주)씨의 말을 인용, 지난 2010년 3월에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한씨는 “2010년 3월 돌고래호가 추자도 인근에서 낚시꾼을 태우고 해남 남성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며 “그러나 너울성 파도와 폭우로 인해 전자 장비가 고장 나 배가 바다에서 길을 잃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돌고래호는 바다 한가운데서 3시간 넘게 표류했으며 한씨는 “당시 선실에 있었고, 전자장비가 고장 난 것을 확인한 뒤 선장에게 물어보니 ‘길을 잃었다’고 말했다”며 “선장은 당시 나침반도 없이 운항을 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표류하던 돌고래호는 이후 진도 관사도에 정박했고, 승선했던 낚시객들은 이후 다른 배의 도움을 받아 당초 목적지인 남성항이 아닌 진도 서항에 도착했으며 한씨는 “배가 길을 잃은 것을 눈치챈 배 안 다른 낚시객들이 크게 술렁였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오전 6시25분께 제주 추자도 인근에서 낚시 관광객 등 19∼20명(추정)을 태우고 전남 해남으로 가다가 통신이 두절된 낚시어선 돌고래호(9.77t·해남 선적)로 추정되는 배가 추자도 남쪽의 무인도인 섬생이섬 남쪽 1.2㎞ 해상에서 뒤집힌 채 발견, 현재 3명이 구조되고 10명이 사망했다. 전복사고 실종자를 찾기 위한 수색작업이 6일 밤과 7일 새벽에 걸쳐 이어졌지만 실종자 추가 발견 소식은 없었다. 7일 제주해양경비안전서에 따르면 야간 수색에는 해경 경비함정 28척과 해군 함정 5척, 관공선 2척, 지자체 어업지도선 1척, 민간 어선 40척 등 76척과 항공기 4대 등이 동원됐다. 해가 진 뒤 어둠 속에서도 조명탄과 경비함정 조명 등을 이용해 수색은 계속 이뤄졌다고 해경은 전했다. 그러나 6일 낮 12시 47분 10번째 시신이 발견된 이후 17시간 넘게 추가로 실종자가 발견되지 않아 가족 등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이들을 애타게 하고 있다. 사진 = 서울신문DB (돌고래호 추가 발견 없어)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돌고래호 낚시꾼 “잘 가고 있다” 인명피해 커진 이유는?

    돌고래호 낚시꾼 “잘 가고 있다” 인명피해 커진 이유는?

    제주 추자도 낚시어선 돌고래호 전복 사고의 해경 초동조치가 늦어진 데는 승선원 명부에 이름은 올랐지만 실제 탑승은 하지 않았던 한 낚시꾼의 거짓말이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된 것으로 드러났다. 돌고래호 연락두절 신고를 받은 해경이 승선원 명부에 오른 탑승자들을 대상으로 확인 전화를 하는 과정에서 승선하지도 않은 낚시꾼이 “돌고래호를 타고 잘 가고 있다”고 말한 것. 돌고래호 사고 당일인 5일 돌고래호(9.77t·해남 선적)와 같은 시각 전남 해남군 남성항으로 가기 위해 추자항(상추자)을 출항한 돌고래1호(5.16t·해남 선적)는 날씨가 좋지 않자 추자항으로 돌아왔다. 추자항에 도착한 돌고래1호 선장 정모(41)씨는 8시께 추자항 추자출장소를 찾아 입항신고를 했다. 그는 입항신고를 하면서 해경에 “돌고래호 선장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말을 흘렸다. 그러나 연락두절에 대한 정식 신고를 한 것은 아니었다. 추자도 주변에는 전화가 터지지 않는 지역이 많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정 선장은 입항신고를 한 뒤 출장소를 나와 계속해서 돌고래호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역시 연락이 닿지 않자 8시 40분께 동료 선장 등과 함께 해경을 찾아 “(돌고래호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 어선위치발신장치(V-PASS) 항적기록을 보자”며 정식으로 신고했다. 해경은 V-PASS를 통해 돌고래호의 위치신호가 5일 오후 7시 38분께 추자도 예초리(하추자) 북동쪽 500m 해상에서 마지막으로 잡힌 것을 확인했다. 추자출장소는 상추자도 신양항에 있는 추자해양경비안전센터에 보고했고 해경은 승선원 명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순서대로 연락을 하며 확인하기 시작했다. 사진=뉴스 캡처(돌고래호 낚시꾼)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추자도 돌고래호, 생존자들 “배가 줄에 걸렸다” 시신 10구 수습

    추자도 돌고래호, 생존자들 “배가 줄에 걸렸다” 시신 10구 수습

    ‘추자도 돌고래호’ 6일 오전 전복된 채 발견된 제주 추자도 인근에서 통신이 끊겼던 낚시 어선 돌고래호(9.77t·해남 선적) 사고 원인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사고로 현재까지 3명이 구조됐고 시신 10구가 수습됐다. 나머지 실종자는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제주 해경본부에 따르면 생존자들은 사고 원인에 대해 “당시 기상 상황이 나빴고, 줄에 걸린 것 같다”고 증언했다. 생존자 A씨는 “비가 많이 오는 가운데 출항한지 20분도 지나지 않아 쾅 소리와 함께 배가 기울어졌다”고 진술했고, 또 다른 생존자도 “너울이 많이 쳐서 배가 순식간에 뒤집혔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앞서 5일 저녁 7시께 돌고래호는 제주 추자도 신양항(하추자)에서 전남 해남군 남성항으로 출항했으나 30여분 뒤인 오후 7시 38분께 마지막으로 연락이 닿은 뒤 통신이 끊겼다. 이 배에는 선장 김모씨와 낚시 관광객 18~19명이 탔던 것으로 추정된다. 추자도 돌고래호, 추자도 돌고래호, 추자도 돌고래호, 추자도 돌고래호, 추자도 돌고래호, 추자도 돌고래호 사진 = 서울신문DB (추자도 돌고래호)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추자도 낚싯배 전복 10명 사망, 8명 실종, “한발도 못 나간 안전”

    추자도 낚싯배 전복 10명 사망, 8명 실종, “한발도 못 나간 안전”

    지난 5일 오후 7시 46분 제주 추자도 해상에서 연락이 두절된 낚시어선 돌고래호(9.77t·해남 선적)가 11시간 만에 전복된 채 6일 발견돼 해경 등에서 실종자 수색에 나서고 있다. 돌고래호 승선 명단이 부실한 탓에 승선 인원을 확정하지 못하던 해경은 이날 오후 5시쯤 “돌고래호에 21명이 승선했고 3명이 구조되고 사망자 10명, 실종자 8명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 295명의 사망자와 9명의 실종자가 발생한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해난 사고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여전히 안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6일 제주해양경비안전서에 따르면 돌고래호는 5일 오전 2시쯤 부산과 경기도 등지에서 온 낚시꾼을 태우고 해남 남성항에서 출항해 신양항에 도착했다. 기상악화로 돌고래호는 오후 7시쯤 남성항으로 돌아가려고 신양항에서 출항했다. 비슷한 시간에 역시 기상 악화로 회항하던 돌고래 1호 선장 정모(41)씨와 전화를 주고받던 돌고래호 선장 김철수(47)씨는 오후 7시 46분쯤 “잠시만”이라는 짧은 대답 이후 연락이 두절됐다. 선장 정씨는 이날 오후 8시 40분쯤 제주해경 추자안전센터에 돌고래호의 통신 두절 사실을 신고했으나 해경은 이후 23분이 지난 오후 9시 3분에야 추자해양경비안전센터를 거쳐 제주해양경비안전서에 공식 보고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추자도 돌고래호, “바다 한가운데서 3시간 넘게 표류” 충격

    추자도 돌고래호, “바다 한가운데서 3시간 넘게 표류” 충격

    ‘추자도 돌고래호’ 추자도 돌고래호가 5년 전에도 비슷한 해역에서 표류하는 사고를 당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6일 한 매체는 바다낚시를 위해 돌고래호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한모(49·수원 거주)씨의 말을 인용, 지난 2010년 3월에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한씨는 “2010년 3월 돌고래호가 추자도 인근에서 낚시꾼을 태우고 해남 남성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며 “그러나 너울성 파도와 폭우로 인해 전자 장비가 고장 나 배가 바다에서 길을 잃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돌고래호는 바다 한가운데서 3시간 넘게 표류했으며 한씨는 “당시 선실에 있었고, 전자장비가 고장 난 것을 확인한 뒤 선장에게 물어보니 ‘길을 잃었다’고 말했다”며 “선장은 당시 나침반도 없이 운항을 했다”고 증언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추자도 돌고래호 탑승 21명, 사망 10명·생존 3명 확인… “추가 수색 작업 진행”

    추자도 돌고래호 탑승 21명, 사망 10명·생존 3명 확인… “추가 수색 작업 진행”

    추자도 돌고래호 탑승 21명, 사망 10명·생존 3명 확인… “추가 수색 작업 진행” 추자도 돌고래호 제주 추자도 인근 해상에서 전복된 채 발견된 돌고래호의 최종 탑승자 수가 21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시신을 수습한 사망자 10명의 신원도 모두 확인됐다. 이평현 제주해양경비안전본부장은 6일 오후 브리핑을 갖고 “현재까지 확인된 돌고래호 탑승자는 생존자 3명, 사망자 10명, 실종자 8명 등 총 21명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당초 돌고래호가 출항신고하며 제출한 승선원 명부에는 22명이 기록돼 있다. 그러나 이 본부장은 “명부상에 있던 4명은 배를 타지 않았고 명부에 없던 3명이 탑승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까지 수습된 시신 10구의 상세한 인적 사항도 확인됐다. 사망자 명단에는 돌고래호 선장 김철수(46)씨도 포함됐다.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는 선장 김씨를 비롯해 김모(49·부산 부산진구)씨, 이모(48·전남 영암군)씨, 허모(49·부산 사상구)씨, 이모(62·부산 동구)씨, 전모(51·창원 의창구)씨, 김모(60·부산 사하구)씨, 김모(46·전남 해남군)씨, 전모(38·전북 군산시)씨, 심모(39·부산 사하구)씨, 진모(50·부산 북구)씨 등이다. 이들의 시신은 해남병원, 우리병원, 우석병원 3곳에 나눠 안치됐다. 이 본부장은 “해양수산부와 해남군 주관 하에 유가족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사망자에 대한 신원 확인과 장례절차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구조된 생존자인 김모(47·부산)씨, 이모(49·부산)씨, 박모(38·경남)씨 등 3명은 현재 제주 한라병원에 이송돼 치료 중으로,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경은 추가 실종자 구조를 위해 수색 작업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까지 수색 작업에는 해경 함정 30척, 해군 함정 6척, 관공선 2척, 기타 37척 등 총 75척의 선박과 항공기 5대가 투입됐다. 해경 측은 추자도 인근 파도가 2m 정도로 약간 높지만 조류가 1노트 내외로 비교적 약해 수색에 큰 지장은 없다고 전했다. 다만 해가 진 후 수색 작업을 위한 시야 확보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조명탄 등 관련 자재 확보에 나섰다. 또 실종자가 조류 등의 영향으로 양식장 주변과 연안 해안가로 표류할 것에 대비해 전문잠수요원을 투입, 수색 작업을 강화하고 있다. 해경은 제주본부 경비안전과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사고 원인 조사에도 나설 방침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여수 백도 해상서 어선 화재, “선원 7명 모두 무사 구조” 당시 상황 어땠나?

    여수 백도 해상서 어선 화재, “선원 7명 모두 무사 구조” 당시 상황 어땠나?

    여수 백도 해상서 어선 화재, “선원 7명 모두 무사 구조” 당시 상황 어땠나? 여수 백도 해상서 어선 화재 전남 여수시 삼산면 백도 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저인망 어선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배에 타고 있던 선원 7명은 구명뗏목을 타고 탈출했다가 3시간 20여분 만에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 여수해양경비안전서에 따르면 6일 오전 0시 27분쯤 전남 여수시 삼산면 백도 동방 10마일(18㎞) 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경남 사천 선적 39t급 저인망 어선 ‘205흥성호’가 침수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배에 타고 있던 선장 천모(56)씨를 비롯해 한국인 5명과 베트남인 1명, 중국인 1명 등 선원 7명은 불이 붙은 직후 구명뗏목을 타고 탈출했다가 구조됐다. 선원들은 오전 3시 47분쯤 사고 해역에서 북서쪽으로 10㎞ 떨어진 곳까지 표류하다 인근 해역에서 수색을 벌이던 민간 선단선 ‘208흥성호’에 의해 발견돼 7명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 선원들은 불이 나자 배에 설치된 구명뗏목을 타고 탈출했으며, 건강에는 큰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기관장 최모(50)씨가 수색과정에서 쏜 조명탄이 얼굴을 스치는 찰과상을 당해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선장 천모(56)씨는 해경에서 조업 중 기관실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해 진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하자 구명뗏목을 이용해 해상으로 탈출했다고 말했다. 해경 경비함은 강한 바람과 높은 파도 때문에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오전 7시 16분쯤 진화를 완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스마트폰 위성·원자력 전지… 미래 자원 찾아 ‘문 리버’에 띄운다

    스마트폰 위성·원자력 전지… 미래 자원 찾아 ‘문 리버’에 띄운다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자국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1969년 7월 16일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 마이클 콜린스를 태운 아폴로 11호는 미국 플로리다 케이프커내버럴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됐다. 7월 20일 선장 암스트롱은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기며 이 유명한 말을 했다. 이후 1972년 12월 11일 아폴로 17호의 달 착륙을 마지막으로 달에 발을 디딘 사람은 더이상 없다. 대중의 관심은 줄어들고 유인 우주선 발사에 드는 비용은 천문학적이라는 이유로 외면했던 달 탐사에 대해 최근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우주 선진국들이 다시 관심을 갖고 있다. 최소 1900억원의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 달 탐사에 주요국이 다시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조광래 원장은 “달 탐사 준비 과정에서 첨단 기술들이 대거 개발되는데 이 가운데 민간부문으로 확산(스핀오프)되는 것들이 상당하다”며 “달에는 미래 자원으로 불리는 희토류 같은 것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미래 세대에게 경제적 효과를 물려준다는 차원에서 투자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미래 자원·우주의 기원 ‘두 토끼 잡기’ 현재 달에 궤도선을 쏘아 올린 국가는 미국과 러시아, 유럽, 일본, 중국, 인도뿐이다. 미국과 러시아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달 착륙선을 보낸 나라는 2013년 ‘창어 3호’를 쏜 중국뿐이다. 심(深)우주 탐사와 함께 달 탐사는 우주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는 나라들의 핵심목표 중 하나다. 많은 나라들이 달 탐사를 시도하는 이유는 과학소설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거주 목적이 아닌 달의 자원분포 파악과 우주의 기원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달 탐사 계획에서 가장 앞선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1972년 아폴로 프로젝트가 끝난 지 반세기 만인 오는 2020년까지 다시 달에 사람을 보내고, 2025년에는 달 표면에 유인기지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중국도 2020년에 유인 우주실험실을 만들고, 2025년에 유인 달 탐사선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 일본도 2018년에 달 착륙선 ‘셀레네 2호’를 발사하고 2025년에 달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러시아와 유럽, 인도 등도 달 탐사 계획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역시 2018년 12월 달 궤도 위성 발사를 시작으로 2020년 달 착륙선 발사를 계획하고 있다. 현실성 있는 달 탐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우리나라는 2018년 1단계 계획만 성공하더라도 달 탐사에 성공한 세계 7번째 나라로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된다. ●‘우주인터넷’ 등 한국형 융합연구 성과 기대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15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지난 1년 동안 수행한 달 탐사 기초연구 성과를 공개하는 ‘한국형 달탐사 융합연구 및 우주핵심 기초연구 성과발표회’를 지난 20일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달 탐사선 융합기술, 탑재체 기반연구, 지상국 및 로버(달탐사선) 등 달 탐사에 필요한 핵심기술들이 공개됐다. 우리나라는 2018년까지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도움으로 달에 시험용 궤도선을 보낼 계획이다. 2020년에는 우리 손으로 만든 한국형 발사체(KSLV2)에 달 궤도선과 달 착륙선을 실어 보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2018년 발사될 시험용 달 궤도선은 무게 550㎏으로 1년 동안 달의 100㎞ 상공을 돌며 우주인터넷과 달 탐사용 관측장비를 시험한다. 우주인터넷은 지구와 달 궤도선, 착륙선, 탐사용 로버 사이의 원활한 통신을 위한 필수 기술이다. 이를 위해 지름 26~34m 크기의 심우주네트워크(DSN) 안테나가 2018년 국내에 설치된다. 또 우주인터넷을 실험하기 위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탑재체로 하는 ‘미니 위성’(폰샛) 계획도 진행 중이다. 폰샛은 NASA에서도 시도해보지 않은 기술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이병선 위성시스템연구실장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는 고성능 프로세서가 들어가 있어 웬만한 과학위성 기능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정도”라며 “폰샛은 달 궤도에서 지상사진을 찍고 우주인터넷 품질을 실험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고 설명했다. ●원자력 전지·탐사선 보호 소재기술도 개발 폰샛뿐만 아니라 극한의 우주환경에서 탐사선과 착륙선에 원자력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기술도 국내 최초로 개발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한국전기연구원, 현대자동차는 영하 180도 이하 환경에서 2주간 햇빛을 받지 못해도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원자력 전지를 개발 중이다. 방사성 물질인 ‘스트론튬90’과 ‘이트륨90’에서 발생하는 붕괴열을 전기로 바꾸는 원자력 전지는 달 궤도선과 착륙선, 로버의 전원 공급에 활용된다. 전북대와 서울대 연구진은 달 탐사선이 발사 과정에서 폭발하거나 달 귀환선이 대기권을 들어오는 과정에서 타버릴 경우 원자력 전지 폭발을 막기 위한 보호소재를 개발 중이다. 우주선이 대기권으로 재진입할 때 외부 온도가 수천 도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 소재를 찾는 것이다. 최기혁 항우연 달탐사연구단장은 “달 탐사를 위해 개발되는 소재와 에너지 기술은 대부분 해외에서 이전을 꺼리는 전략기술이기 때문에 향후 우주개발과 국방안보는 물론 무인기나 전기차 등 산업 분야에도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인천상륙작전 D-1 ‘장사상륙작전’ 아시나요

    [밀리터리 인사이드] 인천상륙작전 D-1 ‘장사상륙작전’ 아시나요

    9월 15일. 디데이(D-day)라는 암호명으로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더불어 역사적으로 가장 성공한 상륙작전으로 꼽히는 ‘인천상륙작전’이 이뤄진 날입니다. 더글라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 스스로도 ‘5000대 1의 도박’이라고 말했을 만큼 성패를 예측하기 쉽지 않은 작전이었죠. 북한 인민군은 38선에서 낙동강 방어선까지 진격하는데 81일이 걸렸지만, 인천상륙작전 이후 우리 군이 38선까지 돌아오는데 15일 밖에 걸리지 않았을 만큼 전세는 급변하게 됩니다. 허리가 잘린 인민군은 보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급격히 세력이 약화됐고 곧 패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을 실행하기 전 난관이 많았습니다. 당시 인천의 항만은 대규모 함정이 입항하기에는 수로가 매우 좁았고, 조수간만의 차가 7~10m나 돼 안정적인 상륙작전을 벌이기에는 부적합한 곳이었습니다. 특히 작전 당일 인천항의 만조시간은 2시간 밖에 되지 않아 위험부담이 컸습니다. 인민군이 진지를 구축하고 강력하게 저항한다면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죠. 그래서 유엔군사령부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연합군 수뇌부와 마찬가지로 기만전술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양동작전 준비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6개월 전부터 스웨덴, 노르웨이가 있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프랑스 칼레에서 상륙작전이 이뤄질 것이라는 허위정보를 꾸준히 흘렸습니다. 그래서 독일은 1944년 전세를 뒤집기 위한 연합군의 대규모 상륙작전이 이뤄질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고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6·25전쟁 초기 유엔군사령부도 7만명이 넘는 병력과 260여척의 함정이 참여하는 역사적인 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두 가지 묘안을 짜냈습니다. 우선 유엔군이 남쪽인 전북 군산으로 상륙한다는 거짓 소문을 내는 한편 실제로 군산을 포격해 인민군의 주의를 돌렸습니다. 또 상륙이 한반도 동쪽에서도 동시에 이뤄질 것으로 오인하도록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 낙동강 전투가 치열했던 경북에서 상륙작전도 벌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장사상륙작전’입니다. 경북 영덕에서 남쪽으로 15km, 포항 북쪽 26km에 위치한 동해안의 작은 어촌 장사동(현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인천상륙작전 불과 한 달 전인 8월 16일 국군 3사단이 북한군 12사단에 의해 퇴로를 차단당하자 해상으로 철수했던 독석동과 인접한 지역입니다. 3사단 지휘부는 포항여중 전투에서 71명의 학도병이 분전한 덕분에 인민군의 공격을 피해 무사히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이 전투는 330만명의 관객을 모은 영화 ‘포화 속으로’에서 재연돼 국민들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장사상륙작전도 포항여중 전투와 마찬가지로 학도병들의 희생에 모든 것을 맡긴 슬픈 역사였지만 인천상륙작전에 가려 지난 65년 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극비로 수립된 작전명 174호. 9월 13일 오후 부산항 제4부두에는 2700t급 상륙함(LST) ‘문산호’에 탑승할 학도병들이 모였습니다. 육군본부는 상륙작전을 위해 이명흠 대위를 지휘관으로 하는 독립유격대 1개 대대를 차출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보름 훈련받은 10대 학도병, 비밀 작전을 맡다 이름만 ‘유격대’였을 뿐 편성된 이들의 대부분은 경남 밀양에서 불과 보름 동안의 훈련받은 앳된 10대 학도병이었습니다. 실탄을 채 10발도 채 쏴보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었죠. 군에서 보급받은 것이라곤 소련제 장총과 배낭, 인민군 군복, 물 약간, 건빵 한 봉지, 미숫가루 세 봉지가 전부였습니다. 낙동강 전선 후방을 교란하고 보급로를 끊는 작전에 투입된다는 설명이 곁들여졌습니다. 원래 이 작전은 위험한 임무 특성상 미 8군이 수행해야 했지만 미군은 “실패할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우리 군에 떠넘겼습니다.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기 어려웠던 육군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학도병들에게 작전을 배정했습니다. 그렇게 모인 학도병 772명은 전란의 회오리 속에서 오로지 애국심 만으로 군에 자진입대한 이들이었습니다. 수개월째 이어진 전쟁으로 마음마저 피폐해진 그들이었지만 사기만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14일 새벽 상륙함은 드디어 장사해안에 도착했습니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상륙작전은 시작부터 운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태풍 ‘케지아’의 영향으로 거센 파도가 일면서 문산호는 해변에서 30m 가량 떨어진 지역에 좌초되고 말았죠. 바다에 뛰어든 학도병의 60여명이 제대로 전투도 해보지 못하고 물에 빠져 숨졌습니다. 무사히 헤엄쳐 해변에 도달한 이들이 밧줄을 소나무에 연결해 다른 많은 대원이 해안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이날 오전 문산호는 심한 파도에 떠밀려 바다 속에 가라앉았습니다. 고난은 이어졌습니다. 상륙 직후부터 1개 대대 규모의 인민군이 해안 앞 200m 고지에서 공격해왔습니다. 오후 2시 30분 미 해군 구축함 함포지원을 받아 간신히 적을 물리친 학도병들은 빠르게 동해안의 7번 국도를 차단하고 다수의 적 진지를 파괴했습니다. 상륙, 전투 과정에 ‘유격전의 귀재’로 불렸던 군사고문 전성호 대령, 민간인 황재중 선장 등 29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살아남은 이들은 다음날 오전 6시 인천상륙작전이 이뤄진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인민군 5사단 등 적 정예병력을 만나 악착같이 싸웠습니다. 인민군은 대규모 상륙부대가 들이닥친 것으로 판단해 전차 4대를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학도병들이 사용해야 할 탄약 대부분은 배와 함께 물에 가라앉았고, 배낭에 든 보급품은 불과 3일치였지만 전투는 계속됐습니다. ●악착같이 7번 국도를 끊고 임무를 수행한 그들 해군본부는 인천상륙작전 뒤인 16일 해난구조선을 보냈지만 문산호가 너무 깊이 침몰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대로 철수했습니다. 우리 해군의 304정도 출동했다가 극심한 풍랑으로 포항 구룡포로 귀항하고 말았습니다. 해군은 “상륙부대를 구출하려면 증원부대를 보내거나 철수하는 수 밖에 없다”고 육군본부에 연락한 뒤 상륙함 조치원호를 현장에 다시 급파하게 됩니다. 또 상륙 5일째인 18일 수송기를 보내 약간의 탄약과 의료품을 투하했습니다. 상륙 6일째인 19일 드디어 조치원호가 장사해안 인근에 도착했습니다. 민간인 선장은 인민군의 공격이 두려워 침몰한 문산호와 멀리 떨어진 곳에 배를 대려고 했습니다. 미군 고문관으로 참가한 프랭크 스피어 소령이 다그쳐 겨우 문산호 동북쪽 약 400m, 육지에서 300m 떨어진 지점에 닻을 내리고 구조작업에 착수했습니다. 학도병 39명은 적의 공격과 구명대가 유실되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배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이 복귀하지 못하고 적의 포로가 되거나 죽음을 맞았습니다. 일부는 우리 군이 북진하는 과정에 합류하기도 했습니다. 배에 타지 못한 인원 외에도 작전 중 전사한 인원이 총 139명이나 됐고, 90여명이 부상했습니다. 나머지 인원들은 다행히 7시간에 걸친 결사적인 구조작업으로 조치원호를 통해 부산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상륙작전은 군사기밀이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작전 상황이 제대로 명시된 공식문서조차 없었습니다. 생존 대원들의 입을 통해서만 일부 내용이 알려졌죠. 하지만 작전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당시 평양방송은 아군 2개 연대가 동해안에 상륙했다고 보도했을 정도로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죠. 특히 우리 1군단은 인천상륙작전 뒤 교착상태였던 낭동강 전선을 돌파해 북상할 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교란작전 때문에 인민군 5사단과 2군단이 주력부대를 전선에서 이탈시켜 동해안에 집중적으로 배치했기 때문입니다. ●맥아더도 경의를 표한 학도병들의 활약 1997년 3월 해병대원들이 갯벌에 묻힌 문산호를 발견하면서 역사는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역사 재조명 필요성을 느낀 영덕군은 지난해부터 1년 4개월 동안 부산의 한 조선소에서 문산호 복원 작업을 진행해 길이 90m, 폭 30m, 높이 26m의 배를 건조했습니다. 원래 배보다는 길이 10m, 너비 5m 가량을 줄인 축소 모형입니다. 지난 5월 복원된 문산호는 바지선으로 옮겨져 장사해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상륙작전 65년 만의 일입니다. 내달 문산호는 스토리 전시관으로 개관할 예정입니다. 문산호 1, 2층에는 장사상륙작전의 역사적 배경과 200고지를 점령한 학도병 영웅 이야기를 영상물과 디오라마로 만들어 설치하는 등 다양한 콘텐츠로 채워집니다. 4층에는 PX와 군번줄 걸기 등 군 체험코너, 5층엔 조타실과 전망대를 마련할 계획입니다. 역사는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인천상륙작전의 그늘에 가려져 있습니다. 맥아더 장군도 잊지 않은 역사, 우리가 되돌아 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래는 맥아더 장군이 사망하기 4년 전 772 유격동지회에 전한 서한입니다. 이종훈 회장 귀하. 최근에 보내주신 귀하의 편지를 통해 772 유격동지회가 결성된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귀하의 동지들이 수행한 전투는 혁혁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최고의 찬사를 받을만한 것이었습니다. 772 유격대 동지들이 보여준 용맹과 희생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영원히 빛나는 귀감이 될 것입니다. 귀하의 동지들에게 제 진심어린 안부를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들을 충성스럽고 헌신적인 전우로서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1960. 10. 31 더글라스 맥아더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밀리터리 인사이드는 핫한 아이템을 가지고 매주 화요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더 많은 기사를 보시려면 아래 리스트를 보세요. (17)국산 ‘명품 복합소총’ 왜 애물단지가 됐나 (18)“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19)“남침 땅굴, 있다니까요!” 끝나지 않는 전쟁 (20)北 목함지뢰 도발, 과연 이번이 처음일까 (21)당황하셨어요? ‘서울 불바다’ 통하지 않는 이유
  • 무형문화재 침선장의 홍곤룡포 전통복식 전시회

    서울 종로구 종로문화재단은 오는 9월13일까지 전통문화공간인 무계원에서 전통 복식을 소개하는 ‘전통, 침선으로 꽃피우다’전을 연다고 31일 밝혔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1호인 침선장(針線匠) 박광훈의 홍원삼과 활옷, 홍곤룡포 등 전통복식을 볼 수 있다. 궁중복식을 입어보고 기념사진 찍기와 침선장 이수자 조경숙 강사의 지도로 조각사각바늘방석과 원형바늘방석을 만들어보는 침선 체험 등 행사도 함께 열린다. 기념사진 찍기는 체험료 2천원, 침선 체험은 수강료 1만원이다. 전시는 매주 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5시30분 관람할 수 있다. 강의 신청과 체험하고 싶은 사람은 무계원(02-379-7131∼2), 종로문화재단(02-6203-1162)으로 연락하면 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토 다큐] 소중한 군인 생명 살린다 시속 240㎞로 날아간다

    [포토 다큐] 소중한 군인 생명 살린다 시속 240㎞로 날아간다

    따르릉, 따르릉. 의무후송항공대 지휘통제실로 국군의무사령부 의료종합상황센터로부터 직통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전화를 받은 작전장교는 환자의 상태, 인적사항, 위치 등을 전달받고 출동지시를 내린다. 대기실에서 24시간 대기 중인 메디온 후송팀이 지시를 받고 신속한 출동을 위해 뛰쳐나간다. 조종사와 부조종사는 정비를 마치고 세워져 있는 수리온 헬기에 시동을 걸고 출동 준비를 마친다. 군의관과 응급구조사는 전달받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분리형 들것과 같은 장비를 챙기고 헬기에 탑승한다. 관제탑의 안내에 따라 헬기가 환자를 향해 시속 240km의 속도로 날아간다. 출동까지 걸린 시간은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5월 창설한 의무후송항공대 일명 메디온부대(MEDION은 의무(Medical), 후송(Evacuation), 수리온(Surion)의 합성어)의 출동 모습이다. 메디온부대의 창설은 기존에 환자후송 임무를 수행하던 UH60 기종의 의무후송 헬기가 야간이나 악천후 시 비행이 제한되고 다른 임무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부담을 갖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계획보다 3년 앞당겨 이루어졌다. 메디온부대의 후송헬기 6대는 국산기술로 제작된 수리온(KUH1)헬기다. 모든 수리온 헬기에는 응급처치세트(EMS-Kit)가 설치되어 있다. EMS-kit는 들것 지원장치와 환자관찰장치, 정맥주입기, 심실제세동기, 인공호흡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이동 중에도 응급처치를 가능하게 해 준다. 그리고 안전한 환자후송을 위해 자동비행조종장치(AFCS)와 디지털전자지도, 전방관측적외선장비(FLIR), 위성·관성항법장치(GPS/INS) 등과 같은 최첨단 항법 장치도 추가로 장착되었다. 창설 이후 현재까지 3개월 동안 메디온부대는 총 18번의 환자후송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특히 지난 4일 1사단 비무장지대(DMZ)에서 일어난 목함지뢰 폭발로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2명의 장병 후송작전에서는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환자가 과다출혈에 의한 쇼크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포천에서 대기 중이던 메디온부대 헬기가 이들을 약 80㎞나 떨어져 있는 국군수도병원으로 골든타임 내에 안전하게 후송했다. 의무후송항공대 초대 항공대장을 맡은 김구현 중령은 “언제 어디서나 소중한 생명을 신속히 구할 수 있도록 완벽한 출동대기 태세를 구축하고 있는 든든한 부대”라고 자신 있게 메디온부대를 소개했다. 험준한 산악지형이 많은 동부전선 최전방 지역의 환자후송을 책임지는 메디온부대의 더 큰 활약을 기대해 본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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