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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女항해사, 검찰이 징역 30년 구형하자…

    세월호 女항해사, 검찰이 징역 30년 구형하자…

    세월호 이준석(68) 선장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 구형된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어린 학생 등 300여명의 승객을 놔두고 탈출한 이 선장 등 선원들의 행동은 국민적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검찰은 선박 재난 시 모든 지휘 역량을 발휘해 승객 구조에 나서야 하는 총체적 책임자로서 선장의 역할을 저버린 책임을 ‘살인 행위’로 규정했다. 무기징역이 구형된 강원식(42) 1등항해사 등 3명도 선원법 등 각종 법률에 규정된 승무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결국 300여명의 목숨을 앗아 간 결과를 빚었다는 판단이다. 검찰은 이미 이 선장을 비롯해 강 1등항해사, 김영호(46) 2등항해사, 박기호(53) 기관장 등 4명을 살인과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이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을지라도 예비적 죄명으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인 도주선박(도주선박의 선장 등에 대한 가중처벌법)과 유기치사상, 업무상과실선박매몰, 수난구호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했다. 1970년 부산~제주를 운항하다 침몰해 326명의 사망자를 낸 남영호 사건에서도 당시 선장인 강모씨가 살인 혐의로 기소됐으나 무죄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해 이 선장 등 주요 승무원들에게 예비적 도주선박죄 등을 적용했다. 이 법률의 최고 형량도 무기징역이다. 이에 따라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검찰은 그동안 29차례의 재판을 통해 이 선장 등 피고인에게 적용된 혐의에 대해 변호인과 법정 공방을 벌여 왔지만 큰 쟁점은 없다는 판단이다. 동영상과 피고인, 피해자, 생존자 진술 등 3200여건의 증거 자료 및 서울대와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등 전문가 집단이 분석한 내용 등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검찰은 이날 결심공판 논고를 통해 세월호의 침몰 원인을 대각도 변침과 복원성 부족 등으로 규정했다.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무리한 선박 증·개축과 부실한 화물 고정, 과적, 평형수 감축, 조타수 실수 등이 겹쳐 배가 침몰했고 그럼에도 승객 구호 의무를 지닌 선장 등이 승객 대피 지시를 하지 않고 ‘나 홀로 탈출’을 감행하면서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검찰은 주요 선원들이 배가 침몰하기 직전에 인근을 지나던 둘라에이스호, 진도VTS, 제주VTS 등으로부터 수차례 승객 탈출 요청을 받고도 “구조선이 언제 오느냐”며 동문서답으로 일관한 교신 내용을 증거로 대며 “승객을 갑판 등으로 유도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자신들만 살아나기 위해 승객 탈출을 유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기관장 등은 부상한 여성 조리원을 발견하고도 방치해 둔 채 배를 빠져나오면서 ‘살인 혐의’가 적용됐다. 이날 검찰이 사형을 구형하자 피고인석에 앉은이 선장은 얼굴이 붉게 변했고, 30년이 구형된 박모(25·여) 3등항해사는 눈물을 흘렸다. 일부 피해자 가족은 “모두에게 사형을 구형해야 한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세월호 승무원 1심 구형] 檢, 승객 버리고 탈출 ‘살인 행위’ 규정… 유족 “사형돼야” 울분

    세월호 이준석(68) 선장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 구형된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어린 학생 등 300여명의 승객을 놔두고 탈출한 이 선장 등 선원들의 행동은 국민적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검찰은 선박 재난 시 모든 지휘 역량을 발휘해 승객 구조에 나서야 하는 총체적 책임자로서 선장의 역할을 저버린 책임을 ‘살인 행위’로 규정했다. 무기징역이 구형된 강원식(42) 1등항해사 등 3명도 선원법 등 각종 법률에 규정된 승무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결국 300여명의 목숨을 앗아 간 결과를 빚었다는 판단이다. 검찰은 이미 이 선장을 비롯해 강 1등항해사, 김영호(46) 2등항해사, 박기호(53) 기관장 등 4명을 살인과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이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을지라도 예비적 죄명으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인 도주선박(도주선박의 선장 등에 대한 가중처벌법)과 유기치사상, 업무상과실선박매몰, 수난구호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했다. 1970년 부산~제주를 운항하다 침몰해 326명의 사망자를 낸 남영호 사건에서도 당시 선장인 강모씨가 살인 혐의로 기소됐으나 무죄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해 이 선장 등 주요 승무원들에게 예비적 도주선박죄 등을 적용했다. 이 법률의 최고 형량도 무기징역이다. 이에 따라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검찰은 그동안 29차례의 재판을 통해 이 선장 등 피고인에게 적용된 혐의에 대해 변호인과 법정 공방을 벌여 왔지만 큰 쟁점은 없다는 판단이다. 동영상과 피고인, 피해자, 생존자 진술 등 3200여건의 증거 자료 및 서울대와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등 전문가 집단이 분석한 내용 등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검찰은 이날 결심공판 논고를 통해 세월호의 침몰 원인을 대각도 변침과 복원성 부족 등으로 규정했다.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무리한 선박 증·개축과 부실한 화물 고정, 과적, 평형수 감축, 조타수 실수 등이 겹쳐 배가 침몰했고 그럼에도 승객 구호 의무를 지닌 선장 등이 승객 대피 지시를 하지 않고 ‘나 홀로 탈출’을 감행하면서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검찰은 주요 선원들이 배가 침몰하기 직전에 인근을 지나던 둘라에이스호, 진도VTS, 제주VTS 등으로부터 수차례 승객 탈출 요청을 받고도 “구조선이 언제 오느냐”며 동문서답으로 일관한 교신 내용을 증거로 대며 “승객을 갑판 등으로 유도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자신들만 살아나기 위해 승객 탈출을 유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기관장 등은 부상한 여성 조리원을 발견하고도 방치해 둔 채 배를 빠져나오면서 ‘살인 혐의’가 적용됐다. 이날 검찰이 사형을 구형하자 피고인석에 앉은이 선장은 얼굴이 붉게 변했고, 30년이 구형된 박모(25·여) 3등항해사는 눈물을 흘렸다. 일부 피해자 가족은 “모두에게 사형을 구형해야 한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해적이 된 불법조업 中선원들

    해적이 된 불법조업 中선원들

    해경은 12일 중국 선장이 총에 맞아 숨지기 직전의 상황이 담긴 추가 채증 영상을 공개했다. 특수기동대원들의 가슴에 찬 카메라에 찍힌 1분 6초짜리 동영상에는 사고 당시 해경대원과 중국 선원들 간의 극한 대치 상황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간다. 신음소리와 함께 급박하게 갑판 위를 질주하는 해경과 반대편에서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 등이 담겼다. 영상은 몇 시간 분량의 영상 가운데 권총 발사 전 나포 어선 갑판에서 벌어진 장면으로 보인다. 영상은 중국 선원의 무자비한 폭행을 고스란히 증명한다고 해경은 설명했다. 해경에 따르면 지난 10일 오전 무허가 조업 혐의로 목포해경 소속 1508함에 나포돼 압송되던 중국 어선을 탈취하고자 좌·우현에 계류하고 있던 중국 어선 4척에서 선원 수십명이 쇠파이프, 칼 등 각종 흉기를 들고 배에 올라타 격투에 가세했다. 선원들은 칼고리, 손전등, 깨진 플라스틱 조각 등으로 검색대원의 머리 등을 내리쳤다. 계류 어선에 남아 있던 선원들은 납추, 철심, 맥주병 등 위험한 물건을 계속 던지며 격렬하게 공격했다. 당시 흉기에 맞아 정모, 배모 순경이 옆구리 등을 다치는 등 5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영상과 이어지는 또 다른 영상에서는 중국 선원들이 윤모 순경을 둘러싸고 목을 조르면서 헬멧을 벗기고 팔을 뒤로 꺾어 눌렀다. 바다에 빠뜨리려고 밀치는 모습도 비쳤다. 윤 순경을 다른 중국 선원과 폭행하고, 한 중국 선원이 영상장치를 찬 대원에게 빼앗은 헬멧을 휘두르는 사이 쓰러진 윤 순경을 바다로 밀치는 하얀 옷을 입은 중국 선원이 숨진 쑹허우모(45) 중국 선장으로 추정된다고 해경은 밝혔다. 채증 영상에는 없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검색팀은 자위권 및 해산 목적 등으로 총기사용 가이드라인을 준수해 공포탄 3발과 실탄 7발을 발사했다고 해경은 설명했다. 해경 확인 결과 1발은 단속 후 총기 안전검사 중 격발된 것으로 드러났다. 목포해경은 이날 대원 폭행에 가담한 우뢰(29) 등 중국선적 80t급 노영어 50987호 선원 3명을 특수공무집행방해와 치상 혐의로 구속했다. 또 압송된 선원 16명에 대해서도 채증 자료 분석 등을 통해 폭행 가담 여부를 정밀분석 중이다. 김수현 서해해경청장은 “중국 선원들의 폭력에 의해 발생한 사건인 만큼 앞으로도 해양 주권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법 집행 차원에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홍도 유람선 ‘제2 세월호’ 될뻔…

    세월호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전남 홍도 해상에서 또다시 여객선이 좌초돼 대형 인명피해가 날 뻔했다. 30일 오전 9시 14분쯤 전남 신안군 흑산면 홍도 선착장 앞 200m 해상에서 홍도크루즈 협업 소속 171t급 유람선 바캉스호가 좌초됐다. 배가 암초에 부딪치면서 승객 나모(49·여)씨 등 4명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이 유람선에는 관광객 105명과 선원 5명 등 모두 110명이 승선해 있었으며, 긴급 출동한 유람선과 어선·해경에 의해 30여분 만에 전원 구조됐다. 이번 사고 역시 30년 전 유람선처럼 바위에 부딪혀 발생한 데다 노후 수입 선박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예견됐다는 지적이다. 김근영(43) 이장은 “그나마 큰 인명피해가 나지 않은 것은 1985년 사고 이후 마을 자체 대응 매뉴얼이 있어 빠른 출동과 구조가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고 지점은 암초 지대로 홍도에서 운항 중인 7척의 유람선도 그곳을 피해 다니는 ‘위험지대’로 알려졌다. 바캉스호는 운항 허가 당시 노후 문제로 주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홍도 청년회원 등 주민 70여명은 지난 3~4월 목포해경에 유람선 허가를 내주지 말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5월부터 운항에 들어갔다. 신안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신안 홍도 유람선 좌초, 유람선 암초에 부딪혀..109명 구조 ‘사상자는?’

    신안 홍도 유람선 좌초, 유람선 암초에 부딪혀..109명 구조 ‘사상자는?’

    ‘신안 홍도 유람선 좌초’ 오늘 오전 홍도 해상에서 유람선이 암초에 부딪혀 좌초됐다. 사고 당시 배 안에는 관광객 104명과 선장 등 선원 5명이 타고 있었는데, 사고 소식을 듣고 인근에 다른 유람선 3척과 민간 자율어선 10여 척이 긴급 출동해 109명 전원이 구조된 것으로 확인됐다. 승객들은 모두 구명조끼를 착용한 상태로 사고 직후 10분 만에 곧바로 구조가 이뤄져 큰 인명 사고를 막은 것으로 보인다. 관광객들은 구조에 나선 유람선에 나눠 타고 홍도 선착장에 도착해 안정을 취하고 있으며, 일부 부상자들은 헬기를 이용해 목포의 병원으로 이송 중이다. 사고 당시 해상에는 높은 너울성 파도가 일고 있었으며, 선미 쪽이 암초에 부딪혀 침수가 시작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고가 난 선박은 승객 350명이 정원인 184톤급 유람선으로 선령이 27년이나 되는 노후된 선박으로 알려졌으며, 해경은 선박이 예인되는 데로 선장 등 선원들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신안 홍도 유람선 좌초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신안 홍도 유람선 좌초..10년 감수했네”, “신안 홍도 유람선 좌초.정말 깜짝 놀랐다”, “신안 홍도 유람선 좌초..도대체 무슨 일이?”, “신안 홍도 유람선 좌초..다행이다”, “신안 홍도 유람선 좌초..암초가 무섭구나”등 반응을 보였다. 사진 = SBS 뉴스 캡처 (신안 홍도 유람선 좌초) 뉴스팀 chkim@seoul.co.kr
  • 여수 폭발사고인 줄 알았지만 암모니아 가스 누출…여수 해양조선소 1명 사망·21명 부상

    여수 폭발사고인 줄 알았지만 암모니아 가스 누출…여수 해양조선소 1명 사망·21명 부상

    ‘여수 폭발사고’ ‘암모니아 가스 누출’ ‘여수 해양조선소’ 여수 폭발사고로 알려졌던 사고는 여수 해양조선소에서 수리 중이던 참치운반선에서 암모니아 가스 누출 사고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고로 1명이 사망하고 21명이 부상을 입었다. 31일 오후 4시 13분 전남 여수시 돌산읍 우두리 ‘여수해양 조선소’에서 수리 중이던 참치운반선에서 가스가 누출됐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최초 신고자는 “암모니아 가스가 터졌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고로 진모(60)씨가 숨졌으며 화상이나 질식으로 8명이 중상을, 13명이 경상을 입어 5개 병원으로 나뉘어 후송됐다. 이 가운데는 구조 작업 중 가스를 흡입한 소방관 2명도 포함됐다. 유출된 가스는 방독 마스크를 쓰고도 어지럼증을 느낄 만큼 유독성이 강했다. 필리핀 근로자 2명과 페인트 도색 작업 등 비교적 가벼운 일을 하던 50~60대 여성도 다수 부상했다. 119와 경찰은 급냉동 촉매로 사용하는 암모니아 가스가 누출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현 선수 갑판 아래 냉동고 안에 있는 50㎏들이 가스통 14개 가운데 하나의 하단에서 가스가 샌 것으로 조사됐다. 애초 폭발사고로 알려졌지만 화재나 폭발음은 없었으며 냉매 접촉으로 인한 화상 환자가 다수 발생했다고 119는 설명했다. 119의 한 관계자는 가스통 하단 철판이 폭발흔적처럼 찢긴 것과 관련, “강력한 냉매이다 보니 철판이 약해진 부분으로 가스가 새어 나오면서 찢어졌을 뿐 폭발의 개연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며 “폭발이 있었다면 다른 가스통에서 연쇄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배는 1475t급 키리바시 선적으로 사조산업 소유다. 지난 26일 엔진 등 선체 전반에 대한 수리를 맡아 사고 발생 당시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해 100명 가까운 근로자들이 작업했다. 119 등은 추가 피해에 대비해 잔류가스 제거작업을 벌이고 있다. 여수해경은 조선소 관계자, 공사 감독관, 근로자, 선원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소방헬기 기장과 세월호 선장/문소영 논설위원

    지난 17일 오전 광주 도심에 소방헬기 한 대가 추락했다는 소식에 전 국민의 가슴 한쪽이 슬쩍 더 무너졌다. 세월호 참사 해역 수색을 지원하다가 복귀하던 강원소방본부 헬기로 119 특수구조단 소속 소방관 5명이 모두 숨졌다. 광주 도심에 떨어졌다고 했는데 시민 피해는 부상자 1명에 그쳤다. 헬기 추락지점에서 10m가량 떨어진 버스 승강장에 있던 여학생에까지 파편이 튄 것이다. 추락한 지역은 광주 신흥 택지지구인 수완지구로, 학생 1360여명이 다니는 성덕중학교와 440여 가구의 아파트 단지, 원룸 등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헬기 조종사인 정성철 소방경 등 탑승자들이 탈출해 생존을 도모하기보다 2차 피해를 줄이고자 회피비행을 한 궤적이 드러나는 등 인구밀집 지역을 피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 헬기에 탑승했던 막내 소방관인 이은교씨는 오는 9월 결혼을 앞둔 예비 새신랑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더 가슴이 아프다. 특전사 출신으로 ‘영원히 31살’로 남게 된 그는 지난 14일에 “강원도 119 특수구조단 항공구조대는 세월호 항공수색을 5번째 5일씩 지원합니다.(중략) 오늘도 저희 119 소방관들은 최고가 되겠다”고 다짐을 공개적으로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그는 소방관이 국가직으로 전환되길 소원했고, 국가안전처가 아니라 ‘국민안전처’가 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참사를 피하다가 전원 사망한 소방헬기 기장과 소방대원의 희생을 보면서, 지난 4월 16일 침몰하는 배 세월호에 승객 370여명을 남겨둔 채 자신들만 살아난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을 생각한다. 해양수산부 공무원 등이 민간 이권단체로 이직하는 해피아를 척결하고, 그 과정에서 시민안전을 위협했던 규제완화를 바로잡고, 해경 등이 인명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친 상황을 모두 개선해도 앞으로 영원히 알 수 없는 수수께끼가 승객을 두고 도망친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의 심리와 이유일 것이다. 법정에서 그들은 “살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선장과 승무원이 “객실에 가만히 있어라”가 아니라 “질서 있게 대피하라”는 방송만 했더라면 세월호 희생자는 크게 줄었을 것이다. 선장이 비정규직에 300만원 안팎의 월급쟁이로 알려지자 시민들의 비난은 크게 줄었지만, 직업 윤리의식을 대입시켜도 용서할 수 없는 행위다. 17일 공개된 동영상에서 단원고 학생들은 “선장은 뭐하냐”, “무섭다. 살고 싶다”고 했었다. 위험이 닥쳐도 영웅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문 직업인으로서 사명의식과 습관을 과연 쉽게 저버릴 수 있을까. 소방헬기 기장 등도 살겠다는 본능을 억누르고 살신성인의 길을 택하지 않았을까.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부고]

    ●이성수(건국대 공과대학장) 영자 영숙씨 모친상 조경칠(대한법률구조공단 팀장) 김종석(사업)씨 장모상 2일 한양대병원, 발인 4일 오전 8시 30분 (02)2290-9442 ●한천섭씨 별세 상기 흥기 준기 현옥씨 부친상 이인찬(대한전선 부사장)씨 장인상 2일 한양대병원, 발인 4일 오전 7시 (02)2290-9457 ●김봉수(대한한의사협회 약무이사)씨 장인상 1일 대구 경북대병원, 발인 3일 오전 9시 30분 (053)200-6464 ●윤준현(대한핸드볼협회 대리)씨 부친상 2일 동국대 경주병원, 발인 4일 오전 6시 (054)776-9412 ●김종서(서울대 교육학과 명예교수)씨 별세 정인상씨 남편상 성욱(경희한의원 원장) 성철(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성규(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경희씨 부친상 성욱씨 장인상 정인실 최선원 정경욱씨 시부상 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4일 오전 9시 (02)3010-2631 ●강근택(전 외교통상부 홍콩총영사) 영철(서울대 의약바이오연구단 본부장)씨 부친상 전계수(전 합동약품 사장)정진일(전 경남섬유 공장장) 김중우(전 세양선박 사장)씨 장인상 2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4일 오전 8시 (02)3410-6915
  • “아빠, 배 안에 있어 줘서…이제라도 와 줘서 고마워요”

    세월호 침몰 당시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다가 미처 탈출하지 못했던 조리사 김모(60)씨<서울신문 5월 3일자 6면>가 사고 발생 52일째인 6일 가족 곁으로 돌아왔다. 현재 세월호 참사의 사망자는 290명, 실종자는 14명이 남았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이날 오전 3층 선미 좌측 선원 침실에서 시신을 수습했다. 김씨는 사고 당시 3층 주방에서 설거지한 식판을 나르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시 선체가 갑자기 왼쪽으로 기울면서 돈가스를 튀기던 기름이 쏟아져 화상을 입었고 주방 내 대형냉장고 등이 쓰러져 부상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시간 이준석(69) 선장 등 선박직 승무원들은 5층 조타실에 모였다가 탈출했다. 일부 승무원은 김씨가 다친 것을 보고도 돕지 않고 배를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 진도에 머물고 있는 김씨의 딸(29)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아버지를 꼭 안아 드리고 싶었는데 큰아버지가 만류해 (수습된 시신을) 직접 뵙지는 못했다”며 “대신 시신을 찾았다는 확인서 서류를 지금도 꼭 끌어안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제도 떠내려간 시신이 발견되고, 혹시라도 못 찾게 될까 봐 두려움이 너무 컸다”면서 “모레(8일)가 내 생일인데 아버지가 둘째 딸 생일이라고 나오신 것 같기도 하다. 배 안에 계속 있어 줘서 너무 고맙고 다행스럽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장례 준비를 위해 진도를 떠난다는 김씨는 “경기 안산 단원고 학부모나 승객 가족, 승무원 가족 등이 서로 의지하며 잘 버텨 왔는데 먼저 떠나 미안하다”면서 “나머지 분들도 분명히 찾을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동료로부터 외면 당한 세월호 승무원 침몰 직전에…

    동료로부터 외면 당한 세월호 승무원 침몰 직전에…

    세월호에서 가장 먼저 탈출한 승무원들로부터 외면당한 동료 승무원 김모(60)씨가 사고 발생 52일 만인 6일 오전 침몰된 배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조리원인 김씨는 지난 4월 16일 사고 당시 이모(51·여)씨와 3층 주방에서 돈가스를 튀기고 있었다. 김씨는 갑자기 배가 기울자 탈출을 시도했으나 굴러서 다치는 바람에 3층 복도에 쓰러졌다. 앞서 오전 8시 30분께 배가 기울기 시작하자 이준석(68) 선장과 기관실 승무원들은 5층 조타실에서 탈출을 모의하고 오전 9시 6분께부터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구조 요청을 했다. 이들 중 기관장 박모(54)씨와 기관부원 6명은 전용 통로를 이용해 3층 승무원실 앞 복도에 일사불란하게 모여 해경 구조정을 기다렸다. 이들은 바로 앞쪽 복도에서 김씨와 이씨가 다친 것을 보고도 30여 분간 구호조치를 하지 않았다. 오전 9시 36분 쯤 가장 먼저 사고 현장에 도착한 구조정에 올라 탄 이들은 해경에 다친 동료들에 대한 구조요청도 하지 않았다. 결국 동료들로부터 외면당한 김씨와 이씨는 실종자가 됐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애초 김씨가 3층 중앙부 주방 옆 통로에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김씨의 시신은 이날 오전 8시 3분 쯤 3층 선미 좌측 선원 침실에서 발견됐다. 대책본부의 한 관계자는 “부상해 복도에 쓰러져 있던 김씨가 선내로 밀려 들어오는 물살에 휩쓸려 선원 침실까지 떠내려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승객과 서비스직 동료 승무원들에게 “그대로 대기하고 있으라”고 지시한 채 자신들만 먼저 탈출한 이준석 선장 등 주요 승무원 15명은 오는 1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첫 재판을 받는다. 검찰은 선장과 1·2등 항해사, 기관장 등 4명에게는 살인 혐의 등을, 나머지 승무원들에게는 유기치사 혐의 등을 적용해 구속 기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0대 女항해사, 배 가라앉는데 한쪽 구석에서…

    20대 女항해사, 배 가라앉는데 한쪽 구석에서…

    선장 등 선원들은 아무도 승객을 구조하지 않고 먼저 탈출하기에 바빴다.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도 퇴선 명령조차 내리지 않았다. 선장 이준석(69)씨는 “내가 살기 위해 배를 먼저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나머지 선원도 승객들보다 먼저 구조선에 몸을 실었다. 배에 갇힌 승객 300여명은 선내 대기 방송만 믿고 있다가 그대로 수장됐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15일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 이들을 살인혐의(미필적 고의) 등으로 일괄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를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 보면 세월호가 맹골수도를 빠져나와 병풍도 인근에 이른 것은 지난달 16일 오전 8시 48분이다. 3등 항해사 박모(25·여)씨는 조타수 조모(55)씨에게 오른쪽으로 5도 각도 변침을 지시했다. 그러나 조씨가 15도가량 대각도로 변침하면서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 당시 선장 이씨는 물살이 거센 맹골수도 항해 때는 조타실을 지켜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침실에 머물렀다. 과적과 결박 부실로 컨테이너 화물들이 쏟아졌고 8시 52분쯤부터는 평형 복원이 안 된 채 표류하며 배가 침몰하기 시작했다. 4~5분쯤 뒤 선장 이씨와 1·2등 항해사, 기관장 등이 조타실로 모였다. 8시 55분 1등 항해사 강모(42)씨는 무선 통신 12번 채널을 통해 제주VTS에 “배가 넘어간다”며 처음 신고를 했다. 2등 항해사 김모(46)씨는 당시 3층 안내데스크 양모씨에게 “선내 대기 방송”을 지시했고 이후 9시 25분쯤까지 승무원 양씨와 박지영씨의 ‘승객 탈출’ 요청을 묵살했다. 침몰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승무원들의 ‘선실 대기’ 방송은 계속됐다. 기관장 박모(53)씨는 사고 직후 선장 이씨의 지시로 배의 엔진을 끈 뒤 기관실 직원들에게 전화로 탈출을 지시했다. 이어 오전 9시 6분쯤 조타실을 빠져나와 3층 복도에서 이미 기관실을 탈출한 기관실 직원 6명과 만난 뒤 구조선이 오기만 기다렸다. 이들 역시 승객 구호 조치는 나 몰라라 했다. 같은 시간 1등 항해사 강씨는 진도VTS와의 첫 교신에서 “배가 침몰한다”며 구조를 요청했다. 그러는 사이 선장 이씨는 우왕좌왕했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당황한 3등 항해사 박씨는 기울어 가는 조타실 구석에서 울고만 있었다. 나머지 1·2항해사 등도 아무런 구호 조치 없이 조타실에서 우물쭈물했다. 이 즈음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 박모(17)군이 촬영한 휴대전화 동영상에서 학생들은 “진짜 침몰되는 거 아냐?”, “자꾸 이쪽으로 쏠려. 못 움직여”라고 말하고 있었다. 움직이지 말 것을 요구하는 선내 방송에 입을 모아 “네”라고 대답하며 자리를 지켰다. 진도VTS는 오전 9시 25분 “선장 판단으로 승객을 빨리 퇴출시킬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아무도 승객 퇴출 방송을 하지 않았다. 이유에 대해 선장 이씨는 “경황이 없었다”고 진술했고 나머지 선원들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오전 9시 34분쯤 배가 기울어 침수 한계선인 1층 D데크까지 물이 차올랐다. 3층에 대기 중이던 기관실 선원 7명은 통로를 따라 선미 쪽으로 몰려갔다. 이 과정에서 선실 통로에 부상을 입고 쓰러진 조리원 2명을 발견하고도 그대로 지나쳤다. 곧바로 밖에서 대기 중이던 해경 단정에 올라탔다. 비슷한 시간 조타실에 모여 있던 이 선장 등 선원 8명은 소방호스를 묶고 탈출을 준비했다. 배는 당시 52도가량 기운 상태였다. 9시 46분쯤 선장 등이 빠져나와 해경 경비정에 옮겨 탔다. 이들 선원은 구조된 이후에도 해경에게 “안에 승객이 갇혔으니 구조해 달라”는 요청조차 하지 않았다. 숨진 단원고생 박모(17)양이 선원 탈출이 시작된 오전 9시 37분~41분 촬영한 동영상에서 선체 내부는 이미 심하게 기울었고 구명조끼를 입은 여학생들은 벽을 바닥 삼아 누워 있었다. 이 영상은 일부가 “살아서 보자. 살려 줘, 살려 줘. 구조 좀”이라고 울먹이며 끝났다. 이 시간 직후 선장 등은 탈출했지만 영상 속 학생들은 구조 헬기를 보고도 끝내 가족들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오전 10시 17분 단원고생의 “기다리래. 엄마, 아빠 보고 싶어”라는 마지막 카카오톡 문자메시지가 전송됐다. 21분쯤에는 배가 수면에서 거의 사라졌다. 이후 단 한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목포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자녀·측근 잠적에 수사 차질… 검찰 ‘유병언 소환’ 급선회

    자녀·측근 잠적에 수사 차질… 검찰 ‘유병언 소환’ 급선회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 자녀와 측근들이 집단으로 소환에 불응하고 잠적하자 13일 검찰이 결국 유씨 소환 카드를 꺼내 들었다. 횡령과 배임·탈세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자녀둘이 검찰과 연락마저 끊고 사실상 도주한 만큼 이를 총괄 지시하고 관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유씨에 대한 구속수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검찰은 당초 청해진해운의 운영상 비리와 실소유주 유씨 일가 비리를 입증하기 위해 일가의 계열사 대표, 장남 대균(44), 장녀 섬나(48), 차녀 상나(46), 차남 혁기(42)씨를 조사한 뒤 최종적으로 유씨를 불러 조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유씨 자녀들의 잠적과 ‘종교 탄압’ 등을 주장하며 수사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의 반발 등에 따라 유씨를 직접 불러 조사하기로 했다. 검찰은 혁기·섬나씨와 체포 대상에 포함되지는 않은 상나씨도 소환 통보에 불응하는 등 일가 모두가 검찰 수사를 고의적으로 피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날 잠적한 대균씨는 아이원아이홀딩스(19.44%)와 ㈜다판다(32%), 트라이곤코리아(20%), 한국제약(12%) 등 4개 관계사의 대주주로 동생 혁기씨와 함께 계열사 경영에 관여하면서 수백억원대 횡령·배임, 조세 포탈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아직 국내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 대균씨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자택과 경기 안성의 구원파 관련 시설 금수원 등에서 소재 파악에 나서는 한편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혁기, 섬나씨 외 최측근 2명에 대해서는 미 연방수사국(FBI)과 공조해 체포에 나섰다. 한편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지난달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탈출한 기관실 선원들이 부상당한 동료 선원을 목격하고도 이를 무시한 채 탈출한 정황을 포착했다. 합수부는 기관실 선원들로부터 ‘3층 기관부 통로에서 조리원 2명이 부상당해 있는 것을 발견하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조리원들은 몸을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부상이 심했지만 선원들은 이들을 구조하지 않았고, 해경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 조리원들은 결국 구조되지 못하고 실종됐다. 합수부는 기관실 선원을 비롯해 구속된 다른 선원들의 행동이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등에 해당하는지를 검토하고 있다. 합수부는 관련 법리를 검토한 뒤 15일 선장 이준석(69)씨 등 구속된 선박직 선원 15명을 일괄 기소할 예정이다. 인천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서울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목포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中·베트남 남중국해서 또 충돌

    중국과 베트남 선박이 분쟁 해역에서 중국의 석유 시추를 둘러싸고 지난 7일에 이어 9일 또다시 충돌하는 등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주변 동남아 국가들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베트남 온라인 매체 VN익스프레스는 지난 10일 “베트남과 중국 선박들이 9일 양국 영토분쟁 지역인 파라셀군도(중국명 시사군도, 베트남명 호앙사군도) 해역에서 충돌했다”면서 “앞서 지난 7일에 이은 두 번의 충돌로 베트남 연안경비대원 부상자가 총 9명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충돌은 중국 선박들이 자신들의 석유시추장비 설치를 저지하려던 베트남 연안경비대 초계함을 들이받으면서 발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중국해에서 양국의 충돌이 계속되자 베트남 전역에서 반중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11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 도심의 중국 대사관 주변에서만 시민 500여명이 모여 중국의 시추작업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중국은 선박 90여척과 함께 항공기와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베트남 선박의 접근을 막고 있다. 지난 9일 이셴량(易先良) 중국 외교부 변경해양사무사 부국장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3∼7일 베트남은 35척의 각종 선박을 동원해 중국 선박에 171차례 충돌했다”며 베트남 측에 작업 방해 중단을 촉구했다. 이런 가운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외무장관들은 10일 공동 성명을 내고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남중국해 문제는 중국과 아세안 간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강력 반발했다. 중국과 필리핀의 대립도 심화되고 있다. 필리핀은 분쟁 해역에서 나포한 중국 선원들을 석방하라는 중국의 요구를 묵살하는 한편 분쟁도서 일부 해역을 석유가스 탐사 입찰 대상에 포함시키는 등 반격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물속 동료 손 잡고도 못 구해… 저는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아”

    “물속 동료 손 잡고도 못 구해… 저는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아”

    “물에 잠겨 가는 동료의 손을 붙잡고도 구해 내지 못했습니다. 살아도 산 것 같지가 않습니다.” 세월호 침몰 당시 서비스직 승무원들 사이에 빚어졌던 또 다른 비극적인 사연이 생존 승무원에 의해 알려졌다. 생존 승무원 가운데 구속되지 않은 단 2명 중 한 명인 조리원 김모(51·여)씨는 7일 악몽의 순간을 떠올렸다. 김씨는 동료 이모(56·여)씨와 함께 지난달 16일 오전 9시 10분쯤 배식을 마치고 세월호 3층 조리실에서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배가 심하게 흔들리면서 겹겹이 쌓아 놓은 식판들이 엎어지고 냉장고와 대형 밥솥 안에 있던 것들이 쏟아져 내렸다. 이들은 선반을 잡고 싱크대 위로 올라가 상황을 살펴본 뒤 심각성을 느껴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어느새 조리실이 50∼60도 기울면서 밖으로 나가는 길목인 선원식당까지 바닥이 언덕처럼 가파르게 기운데다 엎지러진 식용유로 뒤범벅이 되면서 미끄러워 올라갈 수가 없었다. 김씨는 옆에 있는 가스통에 발을 딛고 파이프를 잡고 기어올랐다. 5∼6m 거리였지만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선원식당까지 오르는 데는 성공했지만 도중에 식당 의자가 굴러떨어져 갈비뼈가 부러졌다. 김씨는 이씨에게 빨리 올라오라고 소리쳤지만 이씨는 계속 미끄러지다 결국 빠져나오지 못하고 실종됐다. 선원식당에서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사무장 양대홍(45)씨, 아르바이트생 구모(42·여)씨와 합류했지만 배가 80∼90도까지 기울어진 상태라 갑판으로 통하는 문은 천장처럼 위에 있었다. 벽이 돼 버린 통로에는 손에 잡을 만한 것이 없었다. 보다 못한 양 사무장이 벽에 양다리를 걸치고 지그재그로 움직여 겨우 올라간 뒤 김씨와 구씨에게 올라오라고 하자 김씨는 같은 방식으로 올랐다. 음식점에서 일할 당시 10여년간 바위산을 탄 것이 도움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구씨는 발만 동동거리고 있어 김씨가 재촉했지만, 구씨는 “나는 무서워서 못 가”라며 울부짖었다. 김씨는 급한 김에 허리를 굽혀 손을 내밀었지만 미치지 못했다. 잠시 뒤 식당에 물이 차올라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양 사무장은 손을 내밀어 구씨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구씨의 몸이 물속 무엇인가에 끼여 있어 빠져나오지 못했다. 방법이 없자 양 사무장은 김씨에게 먼저 탈출할 것을 지시했고, 김씨는 갑판으로 나온 뒤 배 우측 꼭대기로 기어올라가 9시 40분쯤 해경 헬기에 구조됐다. 타이타닉호의 최후 순간보다 더 악몽 같은 30분이었다. 양 사무장과 구씨는 아직 실종 상태다. 병원에서 부상 치료와 정신치료를 함께 받고 있는 김씨는 “살아도 산 것 같지가 않다”면서 “구씨가 오히려 ‘언니는 다쳐 어떡하냐’고 걱정하던 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아득하다”고 말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안전 업그레이드] (1) 지하철 - 두 번째 깊은 서울 8호선 산성역 가보니

    [안전 업그레이드] (1) 지하철 - 두 번째 깊은 서울 8호선 산성역 가보니

    세월호 사고로 안전에 대한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아야 할 마당에 황금연휴를 앞둔 2일 서울에선 지하철 추돌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마저 덮쳤다. 언제까지나 ‘소 잃고 나서야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음을 거듭할 순 없다. 국민을 위협하는 대한민국의 총체적인 안전 문제를 부문별로 나눠 점검한다. 서울 지하철 8호선 산성역을 찾았다. 이 역의 심도는 55.4m. 76m에 이르는 부산 만덕역에 이어 우리나라 지하철역 가운데 두 번째로 깊다. 그래서 역 구조가 특이하다. 지하 3층 승강장에서 지하 2층 중간통로까지, 지하 2층 중간통로에서 지하 1층 개찰구까지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 있고 그 옆에는 경사로로 끌어올려지는 엘리베이터까지 설치돼 있다. 유럽 산악 지역 관광지에서나 볼 수 있는 형태다. 막상 올라가 보면 지하 3층에서 지하 2층으로, 지하 2층에서 지하 1층으로 1층씩 올라간다는 표시가 너무 단순해 보인다. 역사 자체가 깊다 보니 1층을 이동하는 게 아니라 3~4층 정도는 충분히 올라가는 느낌이다. 에스컬레이터 길이가 하나는 40m, 다른 하나는 30m가 넘다 보니 탑승 시간만 1개 층마다 1~2분 정도 걸린다. 이 때문인지 에스컬레이터 구간에는 손잡이를 잡으라는 안내판이 촘촘히 천장에 달려 있다. 바쁜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성큼성큼 뛰다시피 에스컬레이터 위를 걸어다닌다. 이렇게 올라가서 1번 출구로 나가 보니 5분. 그런데 역 구조를 확인해 보니 방금 올라온 길이 가장 짧은 코스다. 다시 내려가 가장 긴 코스를 가정했다. 승강장 중간에서 출발, 지하 2층 중간통로를 가로질러 3번 출구로 나가 봤다. 이때는 8분이 걸렸다.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했음에도 그렇다. 비상시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작동이 멈췄을 경우 역사 밖으로 탈출하려면 아무리 빨리 달려도 10분에서 15분은 잡아야 할 것 같다. 키 180㎝대 30대 후반 남자의 경우가 이렇다면 노약자들은 어떨까. 지나가던 심연희(64)씨는 “평소 자주 이용하는데 걸어다니는 데만도 10분 이상 걸리는 데다 에스컬레이터 기울기가 급해서 불안한 감이 있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승강장에서 벗어나는 데 4분, 역사 밖으로 나가는 데 6분 정도의 시간을 비상대피 기준으로 삼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듯 지하철은 대도시에서 아주 유용한 대중교통 수단이다. 지하철 선로 하나가 6개 차로의 도로 같은 효과를 거둔다는 얘기가 이를 반영한다. 이 때문에 대도시일수록 지하철이 크게 불어나고 지하철은 더 지하로 지하로 파묻히게 된다. 수도권 지역 선거공약으로 자주 거론되는 땅속 깊이 고속 열차를 운행하자는 대심도 급행열차의 심도는 50m 정도 수준이다. 이에 비해 서울 지하철은 1호선은 10m 안팎에 그치지만, 4호선은 16.8m까지 깊어지더니 5~8호선은 22~23m에 이른다. 부산 역시 1호선 13.1m에서 3호선 27.2m로 깊어졌다. 대전은 상가와 대전천 아래를 가로지르다 보니 조금 더 깊어서 20m 수준이다. 대피 시간 기준은 2000년대 들어 만들어졌지만 지금의 지하철은 1990년대 말까지 다 지어졌다. 이 문제는 국회 국정감사, 감사원 감사 등에서 늘 거론되는 문제임에도 예산을 대대적으로 투입하지 않는 이상 뾰족한 수가 없다. 서울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 측은 “지상 역을 빼고 비상대피 기준에서 벗어나는 역이 100개 가운데 34곳인데 여기에 들어가는 시설 개선 공사비용만 해도 모두 688억원 규모”라면서 “사업 우선 순위를 따져 단계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5~8호선을 관리하는 서울도시철도 측 역시 “기본적으로 심도가 깊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 제연차단막 같은 보조시설을 꾸준히 늘려 가고 있다”고 했다. 지상 구간도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 자기부상열차도 거론되는데 이 역시 예산 규모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금홍섭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대전의 도시철도 2호선은 고가에 자기부상열차 방식으로 만드는데 중앙에 대피로를 만들지 않으면 운행 중 사고가 났을 경우 10~15m 높이의 철로에서 대피할 방법이 없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예산과 공간이 필요한데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열차 문제도 여전하다. 192명이 숨져 지하철 사상 최악의 사건이라 불리는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싼 열차를 써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진상조사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박창화 인천대 도시환경공학부 교수는 “그때 수출 열차는 불에 타지 않는 난연제품을 100% 써서 차량 한 칸이 18억원씩 했던 반면, 내수용은 예산 제약 때문에 불에 타는 싸구려 재료를 써서 차량 1대 값이 8억원에 불과했다”면서 “이 문제가 집중 거론되면서 그나마 참사 이후 의자와 바닥 정도에는 난연제품을 쓰는 열차가 등장했지만, 벽체와 천장은 여전히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인력보강 문제도 논란거리다. ‘골든 타임’ 때의 초동대처 문제와 직결돼서다.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역사 근무자가 모니터링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한 차량에서 난 불이 다른 차량으로 옮겨 붙으면서 피해가 더 커졌다.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도 선원들의 역량 문제가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도 똑같다. 그럼에도 경영합리화를 이유로 인력을 더 줄이려는 분위기다. 서울도시철도공사노동조합은 기관사 1인 근무, 야간 역사 1인 근무 문제를 꾸준히 비판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가장 최근 생긴 지하철이라 최신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으니 근무자가 줄어도 상관없다는 논리”라면서 “그러나 실제로 운행해 보면 최근에 생긴 지하철일수록 더 지하로 들어가고, 그러다 보니 홀로 어두컴컴한 굴속에서 근무하는 것이어서 근무가 편하기는커녕 더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교통카드 등 자동화로 인해 역사 근무자를 줄인 것 역시 매한가지다. 그러나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는 지난 3월 아예 무인 운전을 도입, 중앙제어센터에만 근무자를 둬 1600억원의 돈을 아끼겠다는 외부 컨설팅 결과를 공개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구 참사 이후 승강장과 역사에 안전장비들만큼은 어느 정도 갖춰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산성역의 경우에도 심도가 깊다는 지적을 의식해서인지 소화기, 비상전화기, 방독면, 터널대피용 비상 사다리 등이 곳곳에 분산배치돼 있다. 경사로 엘리베이터의 경우 사고시 자동으로 승강장 위치로 내려가 대기토록 했다. 각자의 스마트폰에 사고 대응 매뉴얼을 보내 두고 역사별 단독 훈련이나 소방서, 경찰 등과의 합동 훈련도 시행한다. 박 교수는 “세월호 참사가 결국 인재로 판명났듯 관건은 근무자가 얼마나 비상시 행동요령을 숙지한 상태에서 책임감 있게 행동할 수 있느냐다. 이는 평소 교육과 훈련이 결정짓는다”고 말했다. 글 사진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美, 원유싣고 달리던 유조화물열차 탈선, 화재

    美, 원유싣고 달리던 유조화물열차 탈선, 화재

    지난달 30일 미국 버지니아주 제임스강을 따라 달리던 CSX사 유조화물열차가 린치버그 시내의 선로에서 탈선해 화재가 발생했다. 원유를 싣고 달리던 이 열차는 총 15량의 화물열차로 7량이 탈선, 그중 3량이 강물에 떨어졌다. 열차 탈선 직후, 마찰 때문에 생긴 불꽃으로 시커먼 연기와 함께 커다란 화재가 발생했으며, 탈선으로 흘러나온 기름이 강으로 유입되면서 원유 유출 피해도 커지고 있다. 이번 유조화물열차의 화재로 주변 건물들과 가옥의 주민들에게 한 때 대피령이 내려졌지만, 다행히 부상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선은 오후 1시 30분에서 2시 사이에 발생했으며 탈선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사진·영상=유튜브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하인리히 법칙’ 뭐길래…‘하인리히 법칙’ 무시한 세월호, 결국 대참사

    ‘하인리히 법칙’ 뭐길래…‘하인리히 법칙’ 무시한 세월호, 결국 대참사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하인리히 법칙’이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다. ’하인리히 법칙’은 대형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그와 관련한 작은 사고와 징후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법칙이다. 즉 일정 기간에 여러 차례 경고성 전조가 있지만 이를 내버려 둔 결과 큰 재해가 생긴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 보험사에서 근무하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통계 작업을 하다 산업재해로 중상자 1명이 나오면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경상자 29명이 있었으며 역시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뻔한 아찔한 순간을 겪은 사람이 300명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하인리히는 이 같은 이론을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1931)이라는 책에서 소개했고 그때부터 ‘하인리히 법칙’이 됐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종합하면 세월호는 여러 징후를 무시하다 참사를 빚은 ‘하인리히 법칙’의 전형적 사례로 보인다. 사고 이후 관련자의 증언을 통해 세월호에 크고 작은 징후가 여러 가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청해진해운은 사고 2주 전에 조타기 전원 접속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밝혀졌다. 선사가 작성한 수리신청서에는 “운항중 ‘No Voltage(전압)’ 알람이 계속 들어와 본선에서 차상 전원 복구 및 전원 리셋시키며 사용 중이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치 못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후 조타기 결함 부분에 대해 수리가 완료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조타기는 자동차로 치면 핸들 같은 역할을 한다. 세월호 조타수 조모씨는 “조타기를 돌렸는데 조타기가 평소보다 많이 돌아갔다”며 조타기 결함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세월호의 원래 선장인 신모씨의 부인은 “남편이 선박 개조 이후 여러 차례 선체 이상을 느껴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묵살됐다”고 언론에 털어놓기도 했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일본에서 중고 여객선을 사들여 선실을 확대했다. 개조로 배의 중심이 높아져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것 때문에 급선회했을 때 화물이 쏠리면서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결국 침몰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분석이 현재까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해 5월 제주항에 도착해 화물을 부리다 세월호가 10도 넘게 기운 적이 있다는 전직 선원의 증언도 보도됐다. 선원들은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 탱크나 스태빌라이저에 문제가 생겼을 것으로 보고 사측에 수리를 요청했지만 회사는 조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는 지난 2월 해양경찰 특별점검에서 배가 침수됐을 때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막아주는 수밀문의 작동 등이 불량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세월호 하인리히 법칙 무시 소식에 네티즌들은 “세월호 하인리히 법칙, 사소한 위반들이 쌓여 결국 큰 사고를 일으켰네”, “세월호 하인리히 법칙, 규정대로 하면 사고가 왜 일어나나”, “세월호 하인리히 법칙, 천안함을 겪어놓고 변한 게 없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하인리히 법칙, ‘세월호 침몰 사고’ 결국 예견된 참사 ‘소름’

    하인리히 법칙, ‘세월호 침몰 사고’ 결국 예견된 참사 ‘소름’

    ‘하인리히 법칙’ 세월호 침몰 사고에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 적용된다는 의견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하인리히 법칙’이란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반드시 어떤 징후가 존재한다는 이론으로 미국의 한 보험사에서 근무하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의 이름을 따 만들었다. 지난 1931년 미국의 보험회사 직원이었던 하인리히는 통계 작업 도중 산업재해로 1명의 중상자가 나온다면 그전에는 같은 원인으로 다친 경상자 29명이 있으며 비슷한 상황으로 부상당할 뻔한 사람이 300명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의 이론은 ‘산업재해 예방:과학적 접근(1931)’이라는 책에서 소개됐고 이후 ‘하인리히 법칙’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작은 사고 징후가 여러 번 겹치면서 대형 참사를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청해진해운은 사고 2주 전 조타기 전원 접속에 이상이 있음을 확인했지만 이와 관련한 회사의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월호 이전 선장인 신모 씨의 부인은 “남편이 선박 개조 후 여러 차례 선체에 이상을 느껴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묵살됐다”고 전했다. 또 선원들이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 탱크와 스태빌라이저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 수리를 요청했지만 회사는 이 또한 그냥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해양경찰 특별점검에서 배가 침수됐을 당시 물을 막아주는 수밀 문의 작동이 불량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여러 차례 선체의 문제점을 지적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 선박 개조도 대형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청해진해운은 일본에서 중고 여객선을 사들인 뒤 선실을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배의 중심이 높아졌고, 세월호가 어느 정도 방향을 튼 순간 화물이 쏠리면서 배가 기운 것으로 전해졌다. 네티즌들은 “하인리히 법칙, 소름 돋네”, “세월호 참사, 작은 징후들을 잘 고쳐나갔더라면”, “하인리히 법칙, 결국 예견된 참사였구나”, “하인리히 법칙, 막을 수 있었던 참사인데 안타깝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하인리히 법칙’ 뭐길래…세월호 ‘하인리히 법칙’ 외면하다 결국 대참사

    ‘하인리히 법칙’ 뭐길래…세월호 ‘하인리히 법칙’ 외면하다 결국 대참사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하인리히 법칙’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하인리히 법칙’은 대형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그와 관련한 작은 사고와 징후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법칙이다. 즉 일정 기간에 여러 차례 경고성 전조가 있지만 이를 내버려 둔 결과 큰 재해가 생긴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 보험사에서 근무하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통계 작업을 하다 산업재해로 중상자 1명이 나오면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경상자 29명이 있었으며 역시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뻔한 아찔한 순간을 겪은 사람이 300명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하인리히는 이 같은 이론을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1931)이라는 책에서 소개했고 그때부터 ‘하인리히 법칙’이 됐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종합하면 세월호는 여러 징후를 무시하다 참사를 빚은 ‘하인리히 법칙’의 전형적 사례로 보인다. 사고 이후 관련자의 증언을 통해 세월호에 크고 작은 징후가 여러 가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청해진해운은 사고 2주 전에 조타기 전원 접속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밝혀졌다. 선사가 작성한 수리신청서에는 “운항중 ‘No Voltage(전압)’ 알람이 계속 들어와 본선에서 차상 전원 복구 및 전원 리셋시키며 사용 중이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치 못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후 조타기 결함 부분에 대해 수리가 완료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조타기는 자동차로 치면 핸들 같은 역할을 한다. 세월호 조타수 조모씨는 “조타기를 돌렸는데 조타기가 평소보다 많이 돌아갔다”며 조타기 결함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세월호의 원래 선장인 신모씨의 부인은 “남편이 선박 개조 이후 여러 차례 선체 이상을 느껴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묵살됐다”고 언론에 털어놓기도 했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일본에서 중고 여객선을 사들여 선실을 확대했다. 개조로 배의 중심이 높아져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것 때문에 급선회했을 때 화물이 쏠리면서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결국 침몰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분석이 현재까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해 5월 제주항에 도착해 화물을 부리다 세월호가 10도 넘게 기운 적이 있다는 전직 선원의 증언도 보도됐다. 선원들은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 탱크나 스태빌라이저에 문제가 생겼을 것으로 보고 사측에 수리를 요청했지만 회사는 조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는 지난 2월 해양경찰 특별점검에서 배가 침수됐을 때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막아주는 수밀문의 작동 등이 불량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세월호 하인리히 법칙 무시 소식에 네티즌들은 “세월호 하인리히 법칙, 사소한 위반들이 쌓여 결국 큰 사고를 일으켰네”, “세월호 하인리히 법칙, 규정대로 하면 사고가 왜 일어나나”, “세월호 하인리히 법칙, 천안함을 겪어놓고 변한 게 없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하인리히 법칙’이란? 하인리히 법칙 무시한 세월호 침몰사고

    ‘하인리히 법칙’이란? 하인리히 법칙 무시한 세월호 침몰사고

    ‘하인리히 법칙’ ‘세월호 침몰사고’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하인리히 법칙’이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다. ’하인리히 법칙’은 대형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그와 관련한 작은 사고와 징후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법칙이다. 즉 일정 기간에 여러 차례 경고성 전조가 있지만 이를 내버려둔 결과 큰 재해가 생긴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 보험사에서 근무하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통계 작업을 하다 산업재해로 중상자 1명이 나오면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경상자 29명이 있었으며 역시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뻔한 아찔한 순간을 겪은 사람이 300명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하인리히는 이 같은 이론을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1931)이라는 책에서 소개했고 그때부터 ‘하인리히 법칙’이 됐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종합하면 세월호는 여러 징후를 무시하다 참사를 빚은 ‘하인리히 법칙’의 전형적 사례로 보인다. 사고 이후 관련자의 증언을 통해 세월호에 크고 작은 징후가 여러 가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청해진해운은 사고 2주 전에 조타기 전원 접속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밝혀졌다. 선사가 작성한 수리신청서에는 “운항중 ‘No Voltage(전압)’ 알람이 계속 들어와 본선에서 차상 전원 복구 및 전원 리셋시키며 사용 중이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치 못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후 조타기 결함 부분에 대해 수리가 완료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조타기는 자동차로 치면 핸들 같은 역할을 한다. 세월호 조타수 조모씨는 “조타기를 돌렸는데 조타기가 평소보다 많이 돌아갔다”며 조타기 결함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세월호의 원래 선장인 신모씨의 부인은 “남편이 선박 개조 이후 여러 차례 선체 이상을 느껴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묵살됐다”고 언론에 털어놓기도 했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일본에서 중고 여객선을 사들여 선실을 확대했다. 개조로 배의 중심이 높아져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것 때문에 급선회했을 때 화물이 쏠리면서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결국 침몰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분석이 현재까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해 5월 제주항에 도착해 화물을 부리다 세월호가 10도 넘게 기운 적이 있다는 전직 선원의 증언도 보도됐다. 선원들은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 탱크나 스태빌라이저에 문제가 생겼을 것으로 보고 사측에 수리를 요청했지만 회사는 조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는 지난 2월 해양경찰 특별점검에서 배가 침수됐을 때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막아주는 수밀문의 작동 등이 불량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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