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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장 “北으로 끌려간다” 아들에 전화

    8일 북한에 나포된 것으로 파악된 포항선적 대승호 선장 김칠이(58)씨 가족들은 김씨의 나포 소식에 충격을 받은 듯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가족들은 북한 측이 한·미 합동군사 훈련을 강도높게 비판한 터여서 더욱 초조해하는 분위기다. 포항시 북구 동빈동 김씨 자택에는 부인 안외생(58)씨, 아들 현수(31·포항수협직원)씨, 그리고 두 딸 등 가족들이 머물고 있다. 부인 안씨는 갑작스러운 비보에 충격을 받아 안정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은 언론이나 외부접촉을 일체 피한 채 가장인 김씨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원하며 애를 태웠다. 55대승호가 북측에 나포된 시점은 이날 낮 12시 직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포항수협 관계자는 “이날 낮 12시쯤 선주 김씨가 위성전화를 이용해 아들에게 불안하고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으나 위성상태가 고르지 않아 끊겼다가 오후 1시쯤 전화가 다시 걸려와 북측 경비정에 의해 북한 원산항으로 끌려가고 있다고 전해 왔다.”고 설명했다. 앞서 대승호는 전날 오후 6시30분쯤 출항지인 포항 어업정보통신국으로 무선을 쳐 “현재 동해 948-1 해구역인 대화퇴 어장에서 조업 중”이라고 위치를 보고했다. 포항수협은 이들의 나포 소식을 접한 뒤 수협 사무실에 비상상황실을 설치, 대책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포항수협의 관계자는 “나포된 어선이 개인 소유라 주소와 연락처 등 정확한 신상파악이 어렵다.”며 “수협 차원에서 정확한 상황을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김씨와 함께 나포된 중국인 선원 3명은 선주 김씨와 월 85만원에 3년 계약을 한 상태로 파악됐다. 중국인 선원 3명 가운데 갈봉계씨는 지난해 7월부터 대승호에 승선했으며 나머지 2명은 지난 6월에 입국, 승선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편 정부의 한 관계자는 “대승호가 북측에 ‘단속’된 좌표는 현재로선 확인되지 않았다.”면서 “추후 대승호가 귀환하게 되면 관련사실을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속’이라는 표현을 감안하면 북측은 대승호가 자국 해역을 불법 침범해 나포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경은 대승호의 정확한 조업 루트와 일정 등을 확인하는 한편 어선이 출발한 동민항과 교신이 직접적으로 이뤄진 어업정보통신국 등에 인력을 급파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포항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대승호는 1995년 건조된 41t급 오징어 채낚이 어선이다. 강화 플라스틱(FRP)으로 제작됐으며 선체 길이 22.15m, 폭 5.3m에 560마력의 디젤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어선 나포일지 ▲2005년 4월13일 황만호, 강원도 제진항 근처에서 선장 만취 상태에서 월북. 5일간 조사받은 후 귀환. ▲2005년 8월28일 북한 성진항 동쪽 북측 수역에서 조업하던 신영호 등 3척 나포. 당일 귀환. ▲2006년 12월25일 우진호, 기관사 만취 상태에서 어선 타고 월북. 18일 만에 귀환. ▲2009년 7월30일 800연안호, 항로 착오로 북방한계선 넘어가 북한 경비정에 나포. 30일간 억류돼 있다 귀환.
  • 어선 동해서 北에 나포

    어선 동해서 北에 나포

    동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우리나라 어선이 북한 당국에 나포돼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한·미 합동훈련을 놓고 북측이 물리력 행사를 강조한 터여서 향후 남북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포항해양경찰서는 8일 “북한의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추정되는 동해상에서 우리 측 어선이 북한 당국에 의해 단속돼 조사를 받고 성진항으로 이동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북한 당국이 조사 중인 우리 측 어선은 41t급 55대승호(선장 김칠이·58)다. 오징어잡이를 위해 지난 1일 포항 동민항에서 출항, 동해 대화퇴 어장에서 조업한 뒤, 9월10일쯤 귀항할 예정이었다. 대화퇴 어장은 북한 수역과 인접한 곳이다. 포항어업정보통신국은 오후 2시35분쯤 위성전화를 이용, ‘대승호’에 “지금 북한 경비정에 끌려가느냐.”라고 물었으며 이에 ‘대승호’에서 “네”라고 답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포항어업정보통신국이 “어디로 가느냐.”라고 묻자 “성진으로 간다.”고 한 뒤 교신이 끊긴 것으로 확인됐다. 성진은 함경북도의 김책시에 있는 항구이다. 대승호에는 김 선장 외에 김정환(52·부산시 영도구 대평동), 공영목(60·포항시 남구), 이정득(48·포항시 남구)씨 등 한국인 3명과 갈봉계(38), 진문홍(37), 손붕(37)씨 등 중국인 3명 등 모두 7명이 승선하고 있었다. 해경 관계자는 “대승호가 북한 수역과 인접한 대화퇴어장에서 조업을 하다 파도에 밀려 북한 수역을 침범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위치 및 시간은 현재 확인 중에 있다.”면서 “정부는 국제법과 관례에 따른 북한 측의 신속한 조치와 함께 우리 선박과 선원의 조속한 귀환을 바란다.”고 말했다. 포항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 “조금만 일찍 출동해 구조활동 폈다면…”

    “함께 바다를 지키던 분들이었는데…. 천안함 승조원들이 주검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저려옵니다.” 천안함 침몰 이후 누구보다 앞장서 달려왔던 해경 함정요원, 해군수중폭파팀(UDT) 대원, 전직 UDT대원 등 구조·수색요원들도 천안함 승조원들이 싸늘한 시신으로 인양되는 것을 보고는 하루 종일 마음이 아팠다. 최선을 다해 구조활동을 폈지만 조금이라도 일찍 출동해 구조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사고 직후 천안함 함수에 있던 장병 56명을 구조한 해경 ‘501함’ 고영재(55) 함장은 “실종 승조원들이 무사 귀환하기를 바랐는데 착잡하다.”며 “당시 함미가 이미 가라앉아 이들을 구조할 수 없었던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 함장은 “이들이야말로 국가의 아들이요, 영웅”이라며 “국민들이 이들의 희생정신을 영원히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함미 너무 빨리 침몰 안타까워” 해경은 해군이 펼치고 있는 사고 해역 잔해물 수거 및 유품 수거를 돕는 동시에 실종된 금양호 선원을 찾아내는 데도 주력할 방침이다. 장병 2명을 구조한 옹진군 어업지도선 김정석(56) 선장도 “당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승조원들까지 신경쓸 상황이 아니었다.”면서 “나중에 46명이 가라앉은 함미에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아쉬움을 떨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옛 동료들이 시신으로 돌아온 것을 보는 전직 UDT동지회 회원들도 가슴이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사고 4일째부터 실종자 구조작업에 참여했던 UDT동지회 심현표(57) 회장은 “차가운 바닷속에 전우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하고 철수한 게 아쉬웠다. 고 한주호 준위와 천안함 희생자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울먹였다. 그는 “늦게나마 함체 인양이 이뤄진 것은 다행이지만 사고 원인을 정확히 밝혀 이들의 숭고한 희생이 오랫동안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금양호 인양도 서둘러야” 실종자 구조작업을 폈던 한국구조연합회 정동남(60) 회장은 “실종자들이 주검이 돼 돌아온 것을 보니 구조작업이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면서 “시신이 손상되지 않도록 잘 수습해 유가족을 두번 죽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실종자 수색작업을 폈던 중앙119구조대 최정춘(42) 구조반장은 “실종자를 놔둔 채 구조작업을 종료하고 철수할 때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며 “실종자들이 끝내 시신 상태로 돌아와 안타깝다.”고 말했다. 금양98호 실종자 가족대표 이원상(43)씨는 “천안함 함미 인양을 계기로 천안함 실종자 수색작업을 펴고 돌아가다 실종된 금양호 선원들을 인양하는 작업도 하루빨리 펼쳐달라.”고 요구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모닝브리핑] 이순신함, 소말리아 해안서 철수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삼호드림호를 추적해 근접 감시활동을 펴오던 청해부대 소속 충무공 이순신함이 10일 오후 소말리아 해안에서 철수했다. 이에 따라 삼호드림호 피랍 사태는 선사인 삼호해운과 해적 간 협상 국면으로 전환됐다. 정부 당국자는 11일 “이순신함은 인질로 잡힌 선원들의 안전을 고려해 구출 작전을 포기하고 원래 작전지역인 아덴만으로 귀환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사설] 천안함 참사, 국민통합 계기 될 수 있다

    천안함 침몰참사가 발생한 지 20일이 가까워 오고 있지만 슬픔과 충격은 가시지 않고 있다. 희생과 아픔이 너무 큰 탓이다. 44명의 실종자들과 차디찬 주검으로 돌아온 고(故) 남기훈·김태석 상사, 실종자 수색작업 중 숨진 고(故) 한주호 준위, 수색작업을 돕기 위해 나섰다가 변을 당한 98금양호 실종·사망 선원들. 그리고 가슴이 터질 듯한 슬픔을 당한 실종자 가족들. 그들의 슬픈 사연에 가슴이 미어진다. 그 비통한 심정을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겠는가. 아들과 자식을 잃은 실종자 가족들의 고통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슬픔을 함께 나누고 위로하고자 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한결같다. 천안함 관련 희생자와 유족들, 실종자 가족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작은 정성이라도 보태고 싶다는 국민들의 마음이 성금으로 모이고 있다고 한다. 한국야쿠르트 임직원들이 천안함 희생자와 유족을 위해 1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하는 등 국민들이 각자 작은 정성을 모아 십시일반에 나서는 모습이다. 장례식장에 직접 가보지 못해 미안하다며 성금을 보내오는 시민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어제 실종자 중 한 명인 김선호 상병의 어머니는 손수 잡채를 준비해 해군 2함대 법당에서 열린 실종자 무사귀환 법회 참석자들에게 공양을 했다. 크나큰 슬픔을 겪으면서도 정성을 담은 음식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한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이다. 다른 실종자 가족들 역시 국민의 지지와 격려가 큰 힘이 되고 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비록 슬픈 일을 통해서이지만 이 모든 것이 마음과 마음이 통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남북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지역에서 발생한 이번 참사는 원인불명과 북한 관련 의혹 등 불안과 혼란을 부추길 수 있는 여러가지 요소들을 두루 갖췄다. 국가의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는 초유의 사태였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이번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며 성숙한 사회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 힘들고 위협적일수록 그 일을 극복하는 이는 더 크게 성장한다. 고통이 클수록 그 보답은 크다고 한다. 엄청난 국가적 재난인 이번 참사가 국민 모두에게 큰 고통을 안겼지만 결과적으로 국민통합이라는 소중한 결실을 우리에게 안겨줄 것이라 믿는다.
  •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 주인공 김덕규씨를 만나다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 주인공 김덕규씨를 만나다

     장병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는 글을 올려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네티즌 김덕규’는 동아대 의과대학 교수 김덕규씨인 것으로 밝혀졌다.그는 한 언론을 통해 이 글을 쓴 당사자는 자신이라고 밝혔다. 그는 6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 글을 올린 것과 관련, “천안함 침몰 당시 승조원들의 추정 위치와 이름이 쓰여있는 기사를 읽고 있다가 갑자기 가슴에 뜨거워지며 눈물이 쏟아졌다.”고 말했다.이어 “한번도 만난 적도 없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46명 수병의 이름이 순식간에 제 가슴 속에 뛰어 들어왔다.”면서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그 자리에서 내 가슴을 휘젓고 있는 뜨거운 감정들을 자판을 통해 써내려갔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지금 구명활동 상황이 아주 어렵지만 희망이 제로 포인트에 도달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승조원들의 생환에 대한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라면서 “이제는 임무교대를 해 우리가 SOS를 타전하자고 말하고 싶다. ‘SOS’는 구조신호인데 나는 이 SOS를 이렇게 번역하고 싶습니다. ‘Save Our Sailors….우리의 수병을 구원해 주소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러고는 “장병들이 무사히 돌아오게 된다면 우리 기도가 이루어진 것에 대해 먼저 감사를 드리고 싶고, 그들이 생환하게 된 것은 온 국민의 염원과 기도의 결과였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또 “이번 사건은 매우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라면서 “우리 국민들이 국군을 좀 더 많이 격려하고 사랑하고 신뢰했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다음은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 전문  천안함 침몰사고 며칠 후 ‘772함 수병(水兵)은 귀환(歸還)하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 한편이 큰 화제가 됐습니다. 실종 된 장병들에게 무사히 귀환하라는 마지막 명령을 내리는 내용이었는데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대단한 화제의 글이 됐었죠. 도대체 이 글을 쓴 분은 어떤 분일까, 네티즌들 사이에서 궁금증이 쌓여가고 있었는데 저희가 나흘 동안 수소문한 끝에 어렵게 찾았습니다. 감동의 글을 쓴 주인공 김덕규 씨 직접 만나보죠.  -김현정 앵커> 어렵게 모셨습니다?  ▲ 김덕규> 해군이 상중이고 수병들이 안 돌아왔기 때문에 사실 언론에 이렇게 나오는 것 자체가 좀 굉장히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 김현정 앵커> 고민을 하셨군요. 어떻게 이런 글을 쓰고 올리게 되셨습니까?  ▲ 김덕규> 그러니까 천안함 침몰사건 발생 후 3일 째 되는 3월 29일 아침이었죠. 제가 출근해서 연구실에서 인터넷 신문을 보니 기사가 눈에 띄었어요. 그 기사가 아마 ‘대한민국의 수명들의 이름을 다시 부르겠습니다’ 이런 제목이었는데요. 천안함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침몰 당시에 있었을 거라고 추정되는 승조원들의 위치와 각각의 이름을 표시 해 둔 그림이었습니다. 그 그림을 보고 제가 한 사람씩 이름을 읽어 가는데 갑자기 제 가슴 속에 어떤 뜨거운 것이 생겨나더니 온 몸을 휘감았습니다. 동시에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내렸고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제 가슴을 휘젓고 있는 뜨거운 감정들을 자판을 통해서 써내려갔습니다.  -김현정 앵커> 그렇군요. 그냥 가슴에 있는 말씀을 한번에 휙 쓰신 거예요. 일필휘지로요.  ▲ 김덕규> 거의 그렇다고 볼 수 있겠죠. 그래서 제가 한번도 만난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46명 수병들의 이름이 순식간에 제 가슴 속에 뛰어 들어왔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누군가가 46명의 생명을 내 가슴 속에 품게 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 김현정 앵커> 해군 홈페이지에 그 글을 올렸는데 이게 어느 정도 화제가 됐는가 하니 접속자가 폭주해서 사이트가 마비 될 정도였고요. 여기저기 네티즌들이 퍼 나르면서 수백만 명 수천만 명이 봤습니다. 이렇게까지 화제가 될 거라고 예상 하셨습니까?  ▲ 김덕규> 전혀 예측을 못했죠. - 김현정 앵커> 파장이 커서 놀라기도 하셨을 것 같아요?  ▲ 김덕규> 그럼요. 굉장히 놀랐습니다.  - 김현정 앵커> 그만큼 이 시를 읽고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이야기고 저도 읽으면서 울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가슴을 울리는 이런 글을 쓴 사람이 대체 누구냐, 해군 전역자일 것이다, 그런 소문들이 있었는데요. 해군 출신이신가요?  ▲ 김덕규> 그렇지 않고요. 저는 군 생활을 육군에서 했습니다.  - 김현정 앵커> 그렇다면 혹시 글을 쓰는 작가이신가요?  ▲ 김덕규> 그렇지 않죠.  - 김현정 앵커> 실례지만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이세요?  ▲ 김덕규> 저는 동아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진료 연구에 임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앵커> 해군을 잘 아시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인연이 없으신 겁니까?  ▲ 김덕규> 제가 말씀을 드린다면 제가 군의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육군 대위로 군의관으로 임관되어서 동부전선으로 배치되었고요. 저의 가장 친한 친구는 해군 군의관으로 백령도에 배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를 통해서 백령도의 군 생활이 어떤가를 알게 되었고요. 결정적이라고 할까요. 여러분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2002년도 월드컵 당시에 제 2 연평해전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당시에 우리 윤영하 소령 외 5명이 전사하고 상당한 장병들 부상을 당했는데 당시 사상자들과 가족들에 대한 국가의 대접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국민 한사람으로서 이에 대한 울분이 많았습니다. 그 울분들이 점차 해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던 것 같습니다.  - 김현정 앵커> 연평해전 보면서부터, 그때부터 해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생겼다는 말씀이세요.  ▲ 김덕규> 그렇습니다.  - 김현정 앵커> 이번 참사 2주됐는데 지켜보시면서 어떤 부분이 가장 안타까우셨어요?  ▲ 김덕규> 물론 아직 실종자들이 돌아오지 않는 부분은 온 국민들이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일 거고요. 그 외에 구명작전 중에 발생한 고 한주호 준위님의 순직, 금양98호 선원 실종 사망 참 안타까운 일이고요. 또 다른 각도로 제 느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국군을 좀 더 많이 격려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군은 사기가 생명이지 않습니까? 국민들이 군을 좀 더 신뢰했으면 합니다. 국군은 대한민국의 군대입니다. 그래서 국군이 무너지면 우리나라는 그것으로 끝입니다.  - 김현정 앵커> 군인들도 격려 해 달라, 군도 격려 해 달라, 이런 말씀이세요. 가장 힘든 사람은 누구보다 실종자 가족들이겠죠. 가족들한테도 한 말씀 하신다면?  ▲ 김덕규> 아시다시피 지금 구명활동 상황이 아주 어렵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희망이 전무하더라도, 희망이 제로 포인트에 도달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승조원들의 생환에 대한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제는 임무교대를 해야 한다, 이제는 우리가 SOS를 타전하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SOS는 구조신호죠. 저는 이 SOS를 이렇게 번역하고 싶습니다. Save Our Sailors, 우리의 수병을 구원해주소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 김현정 앵커> 들으면서 가슴이 한 번 더 아픈데요. 장병들 이름 하나하나 부르면서 꼭 무사히 돌아오라고 명령을 내리셨는데 장병들 돌아오면 뭐라고 말씀해 주고 싶으세요?  ▲ 김덕규> 참... 그저 우리 기도가 이루어진 것에 대해서 먼저 감사를 드려야 되겠고요. 그들이 생환하게 된 것은 온 국민의 염원과 기도의 결과였다, 이런 말 하고 싶습니다.  - 김현정 앵커> “고생했다 장하다” 이런 이야기 해 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저희가 조사해보니까 의료봉사단체 단장도 맡으시면서 사회봉사활동도 열심히 하시는 그런 분이시더군요. 이 글처럼 무사히 장병들이 돌아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고 또 안타깝습니다. 오늘 아침 귀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청해부대 이순신함 급파… 소말리아 해적 추적

    정부는 5일 새벽 삼호해운 소속의 삼호 드림호를 인도양에서 납치한 소말리아 해적을 잡기 위해 청해부대 소속 구축함인 충무공 이순신함을 급파했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선원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판단에 따라 파견을 결정했다. 관계부처끼리 협의했고, 안보 관련 부처들도 동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충무공 이순신함이 피랍 추정 해역을 중심으로 해적이 포획한 유조선의 이동항로를 따라 추격작업을 벌일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소말리아 해적들은 삼호해운 쪽에 몸값 협상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삼호해운은 그러나 브리핑에서 “선원들의 안전을 위해 피랍 신원의 신원을 밝힐 수없으며, 구체적인 협상 진전 여부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선원들의 조기 귀환을 위해 정부와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김상연기자 jhkim@seoul.co.kr
  • “해적이 탑승했다” 마지막 교신

    “해적이 탑승했다” 마지막 교신

    전 세계적인 ‘골칫거리’인 소말리아 해적이 한국인이 탄 선박을 납치한 것은 이번이 여섯 번째다. 2006년 4월 소말리아 근해에서 동원수산 소속 원양어선 동원호가 소말리아 무장단체에 피랍돼 117일 만에 풀려났다. 동원호에는 한국인 8명을 포함해 25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다. 정부와 회사는 여러 차례의 협상 끝에 무장단체 ‘소말리아 마린’과 80만달러를 주고 사태를 마무리했다. 이후에도 한국인이 포함된 피랍 사건은 네 차례 이어졌다. ●외교부 밤늦게까지 대책회의 소말리아 해적의 위협이 계속되면서 지난해 3월 군은 청해부대 1진 문무대왕함을 파견했다. 청해부대 파병은 해군 역사상 첫 전투함 파병이었다. 문무대왕함은 우리 선박 48척을 포함해 300여척의 안전 항해를 지원한 뒤 지난해 9월 귀환했으며 현재는 청해부대 3진인 이순신함이 파견돼 있다. 하지만 피랍 지점과는 1500㎞나 떨어져 있어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삼호드림호는 피랍 당시 “해적이 선박에 탑승했다.”면서 국토해양부에 구조를 요청하는 교신을 보낸 후 연락이 두절됐다. 해적들은 배를 이끌고 본거지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통상부는 밤늦게까지 대책회의를 열었다. ●삼호해운 대응책 마련에 부심 삼호드림호가 소속된 삼호해운은 부산을 거점으로 한 삼호그룹의 모회사다. 삼호해운은 1996년 4월 부산에서 3척의 화학제품 운반선으로 연안해운업을 시작한 후 1998년 해동조선을 인수하며 급성장했다. 화학제품 운반선과 초대형 유조선, 중소형 선박 등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삼호조선, 삼호I&D, 삼호실업 등의 계열사가 있다. 4일부터 천안함 인양작업을 맡고 있는 크레인 ‘삼아 2200호’가 삼호I&D 소유다. 피랍된 삼호드림호는 31만 9316t급으로 한 번에 한국 전체가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원유(31만t)를 운반할 수 있다. 배값만 1억 4000만달러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선박 전문가는 “배 크기에 비해 선원이 적은 것은 배의 시스템이 대부분 자동화돼 있기 때문”이라며 “30만t급 유조선의 경우 24~30명의 선원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삼호드림호는 삼호해운 계열사인 대여회사 SGSM이 관리하고 있다. 이날 SGSM이 입주한 부산 중앙동의 삼호중앙빌딩은 정문을 걸어잠그고 외부와의 연락을 피했다. 이 때문에 피랍 선원 신원은 물론 선원 가족들과의 연락상태 등도 확인이 쉽지 않았다. 외교부는 삼호해운과 해양경철청 등에 피랍 선원들의 신원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호해운 관계자는 전화 통화에서 “2007년 배를 인수한 이후 타이완 회사 등에 주로 임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선박과 선원의 조기 석방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 김정한 서울 오이석 안석기자 jhkim@seoul.co.kr
  • 동진호·국군포로 ‘특수 이산가족’ 재회

    납북자 두 가족과 국군포로 한 가족이 ‘특수 이산가족’이란 이름으로 헤어진 가족을 만났다. 지난 1987년 납북된 ‘동진 27호’ 선원 노성호(48)씨가 26일 금강산면회소에서 남측의 누나를 22년 만에 만나 울음을 터뜨렸다.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마지막으로 배를 타겠다던 노성호씨는 북쪽의 아내와 딸과 함께 누나 순호(50)씨를 맞았다. 순호씨는 멀리서부터 동생을 알아보고 눈물을 훔쳤다. 성호씨도 누나를 보자마자 서럽게 울었다. 그는 누나에게 “여기 와서 장가도 가고 대학도 가고 잘 살고 있다.”면서 “여기 와서 대학 다닌다고 하면 거기서 알고 있던 사람들은 믿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평양에서 어엿한 직장도 다니고 있다고 누나를 안심시켰다. 이에 대해 순호씨는 상봉 이틀째인 27일 기자들과 만나 “동생이 다 나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진 27호’ 선원인 진영호(49)씨는 남측 누나 곡순(56)씨 품에 안겨 통곡했다. 곡순씨는 그런 동생을 다독이며 한참을 울었다. 그는 북쪽 올케에게 자신이 만든 한복을 선물했다. 이들 남매는 27일 “가족끼리 사진이라도 한장 찍어야 한다.”며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어깨동무를 한 채 기념 사진을 찍으며 행복해했다. 동진호 27호는 지난 1987년 1월15일 인천에서 출항했다가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 중 나포됐다. 이후 사건 발생 6일 뒤 북한적십자사는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동진호 송환의사를 밝혔으나 김만철씨 일가족 탈북사건이 발생해 무산됐다. 현재까지 동진호 선원 12명 중 노성호씨와 진영호씨를 포함해 6명이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통해 남쪽에 있는 가족을 만났다. 다른 6명의 생사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국군포로 이쾌석(79)씨는 이번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통해 남측의 동생 정호(76)씨와 정수(69)씨를 59년만에 만났다. 이쾌석씨는 멀리서 걸어오는 동생 정호씨를 알아보고 힘껏 안았다. 쾌석씨는 1950년 6·25전쟁 발생 직후 가족들과 아침밥을 먹다가 징집됐다. 이후 동생 정호씨는 형을 찾겠다며 1952년 자원입대했다. 군에 있는 게 형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1963년 형의 사망통지서를 받고는 제대했다. 쾌석씨는 “13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동생의 말에 “나는 오마니를 한시도 잊지 않았다.”며 울먹였다. 지난해 12월 현재 미귀환 납북자와 생존 국군포로는 각각 494명(어부는 440명)과 560여명으로 추정된다. 이번 추석 상봉을 포함해 2000년 이후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가족을 만난 국군포로는 12명, 납북자는 16명에 불과하다. 금강산 공동취재단·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연안호 선원 30일만에 가족 상봉

    ‘800연안호’ 선원 4명이 북한에 억류된 지 30일 만인 29일 귀환했다. 선원들은 이날 밤 속초항 근처에서 가족들을 만나 품에 안겼다.연안호와 선원 4명은 앞서 오후 5시쯤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뒤 오후 8시쯤 속초항에 입항했다. 연안호는 지난달 30일 위성항법장치(GPS) 고장으로 동해 NLL을 넘었다가 북한 경비정에 의해 북측 장전항으로 예인됐다.지난 13일 개성공단에서 근무하던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씨가 억류 136일만에 석방된 데 이어 연안호 선원들도 풀려남에 따라 북한 지역에 억류됐던 우리 국민의 귀환 문제는 일단락됐다.연안호는 NLL 이남 0.9㎞ 지점에 대기하던 해군 경비정의 호위를 받으며 속초항으로 이동했다. 선장 박광선씨를 비롯한 선원 4명은 모두 건강한 편이었다. 정부는 국가정보원과 군, 해경 등으로 합동조사단을 꾸려 속초 인근 군부대에서 선원들의 월선 경위와 북한 체류 당시의 생활 등에 대해 짧은 일정으로 조사하고 있다.선장 박광선씨를 속초 면회장소에서 만난 부인 이아나(49)씨는 30일 “면회시간 3분이 너무 짧아 아무것도 물어볼 수 없었다.”면서 “남편은 줄곧 ‘잘 있다가 왔다. 조사가 끝나는 대로 집으로 갈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만 했다.”고 전했다. 선원 이태열씨의 부인 조현옥(45)씨도 “한 달 만에 만난 남편이 어머니 안부를 물으며 눈물을 흘리더라.”며 “결혼생활 21년 만에 남편이 우는 것을 어제 처음 봤다.”고 털어놨다. 대구 김상화·서울 김정은기자 shkim@seoul.co.kr
  • 北, 연안호선원 29일 송환

    北, 연안호선원 29일 송환

    지난달 30일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었다가 북한에 나포됐던 ‘800 연안호’ 선원 4명과 선박이 29일 송환된다. 나포된 지 30일 만이다. 통일부는 28일 “북한이 오늘 오후 군 통신선을 통해 연안호 선원들과 선박을 내일 오후 5시 동해상에서 우리 측에 인도하겠다고 통보해 왔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날 오후 동해지구 군사실무 책임자 명의로 보내온 군 통신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알렸다. 정부 관계자는 “해경이 동해상 NLL 부근에서 선원들과 선박을 넘겨받을 예정”이라면서 “그동안 선원들은 장전항에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개성공단의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씨가 지난 13일 억류 136일 만에 석방된 데 이어 연안호 선원들도 풀려나게 됨에 따라 북한 지역에 억류됐던 우리 국민의 귀환 문제는 일단락되게 됐다. 이날 남북간 이산가족상봉 합의에 이어 연안호 송환을 계기로 현 정부 들어 냉각기를 겪던 남북관계가 해빙의 물꼬를 틀지 주목된다. 29t급 오징어 채낚이 어선인 연안호는 지난달 30일 동해상 NLL을 넘었다가 북한에 예인된 뒤 계속 조사를 받아 왔다. 당시 연안호는 오전 5시쯤 강원 거진항을 출항해 군 레이더 탐지권 밖의 먼 바다에서 조업을 하고 돌아오던 중 위성항법장치(GPS) 고장으로 항로를 벗어났다. 군 당국은 당시 연안호가 강원 고성군 동북쪽 해상 32㎞ 지점의 NLL을 11.2㎞ 정도 넘어간 것으로 파악했다. 해군은 연안호가 예인되기 1시간30분 전쯤 NLL 북방 해상에서 미확인 선박을 식별했고, 미확인 선박이 우리 측 어선인지 확인하기 위해 어선통신망을 통해 호출했지만 응답을 듣지 못했다. 연안호는 당시 GPS가 고장났고 북한의 경비정이 보인다고 우리측 어업정보통신국에 알렸다. 이어 연안호는 북한군에 의해 예인됐고 우리 군은 고속정을 출동시켜 두 차례의 경고 방송을 하며 연안호를 돌려보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북한군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통일부는 사건 발생 이후 남북 해사당국 간 통신을 통해 여러 차례에 걸쳐 연안호와 선원의 송환을 촉구하는 전문을 북한에 전달했지만, 북한은 “해당 기관에서 조사를 한 뒤 결과를 알려 주겠다.”는 답변을 되풀이했다. 통일부는 이날 “늦었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우리측 선박과 선원의 귀환 조치가 이뤄지는 데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면서 “그동안 심려가 많았을 선원 가족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염려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늦었지만 가족 품에 돌아가게 돼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지난밤 꿈에 남편 모습 보이더니…”

    지난달 30일 북방한계선(NLL)을 넘었다가 북한 경비정에 예인돼 간 고성 거진선적 800 연안호의 선원 송환소식이 전해진 28일 기다림에 애를 태우던 선원 가족 모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날 오후 선원과 선박 송환소식을 전해 들은 선장 박광선씨의 부인 이아나(49)씨는 “지난 한 달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너무 기쁘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선원과 선박이 돌아온다는 뉴스를 보고 걸려오는 친인척과 주민들의 전화받기에 바쁜 이씨는 “남편과 선원들을 걱정해 주고 석방을 위해 노력해준 정부와 연안호귀환대책위원회를 비롯한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밤 꿈에 남편이 보여 혹시나 했는데 송환소식이 전해졌다.”면서 “집에서 같이 잠을 잔 여동생도 똑같은 꿈을 꿨다는 말을 듣고 내심 희망과 기대를 가졌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동안 몇 차례 희망적인 소식이 전해지면서도 선원들이 돌아오지 않아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면서 “남편이 돌아오면 건강부터 확인하고 챙기겠다.”고 덧붙였다. 이씨의 딸 미령씨는 “아버지 걱정에 지금까지 직장에서 일도 제대로 못 했는데 무사히 돌아오게 됐다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면서 “어서 빨리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선원 이태열씨의 부인 조현옥(45)씨도 “악몽 같은 한 달이 갔다. 선원들이 무사히 돌아온다니 기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조씨는 “남편이 돌아오면 예전보다 더 열심히 살 것”이라며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최영희 연안호귀환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연안호가 무사히 돌아오게 돼 무척 다행이고 기쁘다.”면서 “연안호귀환대책위원회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나 선원과 선박이 송환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은 정부 당국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아울러 “이번 일이 하루빨리 깨끗하게 정리되고 연안호도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저녁 뉴스를 듣고 선장 박씨 집으로 달려온 인근 주민들은 이아나씨와 조현옥씨의 손을 잡고 그동안의 고통을 위로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 주민은 “이렇게 기쁜 소식을 듣고 집에 그냥 있을 수 없어 왔다. 정말 잘됐다.”며 기뻐했다. 고성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北 “연안호 선원 조사중”… 전문가 “석방 임박”

    ‘800 연안호’ 선원 4명이 북한에 억류된 지 24일로 26일째를 맞았다. 사건 발생 이후 북한은 현재까지 ‘조사를 진행 중’이라는 일관된 답변만 내놓고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연안호 선원 석방이 임박했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최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면담에서 김 위원장이 연안호 선원 석방에 긍정적인 답변을 했고 2박3일 일정으로 방한했던 북측 조문단도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나 민주당 정세균 대표 등과의 면담에서 긍정적인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정 대표가 22일 북측 조문단장인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와 면담하면서 “사절단이 귀환하면 연안호 선원을 잘 해결해 달라.”고 말하자, 김 비서는 “안전상 절차에 따라 시일이 걸릴 뿐”이라라고 답했다. 조사 절차에 따라 시일이 다소 걸릴 뿐 반드시 곧 석방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연안호 선원 석방설은 지난 17일 현 회장이 방북 일정을 마치고 귀환하면서 힘을 얻었다. 도착 직후 현 회장은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안호 선원은) 잘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당초 연안호 선원들이 한·미 합동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이 끝나는 27일 이후 석방될 것으로 관측됐으나 북측 조문단이 23일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화답 차원에서 곧 석방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李대통령, 김정일 구두메시지 받아

    이명박 대통령은 23일 청와대에서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등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문을 위해 방문한 북한 사절단을 면담하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 받았다. 이 대통령이 북한 관계자를 접견한 것은 현 정부 들어 처음이다. 이 대통령의 북측 조문단 면담을 계기로 얼어붙은 남북관계가 진전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북한에 억류 중인 ‘800 연안호’ 선원들은 이르면 24일 석방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은 오전 9시부터 30분간 김 비서 등 북한 조문단 일행을 접견했다.”며 “북한 조문단은 남북협력의 진전에 관한 김 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발표했다. 이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 받고 우리 정부의 일관되고 확고한 대북원칙을 설명한 뒤 이를 김 위원장에게 전달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남과 북이 어떤 문제든 진정성을 갖고 대화로 문제를 풀어 나간다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북한 조문단은 “면담 기회를 준 것에 감사한다.”며 “남과 북이 협력해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대변인은 “오늘 면담은 진지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전했다.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됐다는 뜻을 시사한 것이다. 북측 조문단장인 김 비서도 이 대통령 예방을 마치고 숙소인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로 돌아온 뒤 기자들에게 “다 잘됐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는 “좋은 기분으로 (북으로) 간다.”고 말했다. 이날 면담에서 북한 핵과 북한에 억류 중인 ‘800 연안호’ 선원의 귀환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으며, 구두 메시지 외에 김 위원장의 친서는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22일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 면담했다. 현 장관과 김 부장은 이산가족 상봉과 ‘800 연안호’ 선원 석방문제 등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북한 조문단은 당초 22일 오후 2시 평양으로 떠날 예정이었으나 이 대통령과의 면담을 강력히 희망해 이 대통령 예방을 마친 뒤 23일 낮 12시10분쯤 고려항공 특별기 편으로 김포공항을 떠났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오후 귀환한 북한의 특사 조문단이 이 대통령을 면담하고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문제를 토의했다고 보도했다. 이종락 김정은기자 jrlee@seoul.co.kr
  • 대화 물꼬… 관계개선 새 출발점 섰다

    이명박 대통령이 23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을 위해 방한한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을 만난 것을 계기로 이 대통령 취임 후 경색됐던 남북관계가 개선될 전환점은 마련됐다. 북한 조문단이 귀환 일정을 하루 늦추면서까지 이 대통령을 예방하려고 했던 것은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일단 분위기는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23일로 25일째 북에 나포 중인 ‘800 연안호’ 선원들이 이르면 24일이나 25일쯤 석방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놨다. 일단 바닥을 친 듯한 남북관계가 앞으로 개선될 가능성은 높지만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근본적인 관계개선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실제로 정부는 ‘패러다임 시프트(shift·전환)’를 내세워 속도 조절을 한다는 입장이다. 남북관계가 동족개념을 바탕으로 한 특수한 관계이긴 하지만 국제적인 보편타당한 관계로 발전해야 남북관계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이는 두 차례의 핵실험을 한 북한이라는 상대를 과거 정권처럼 ‘유화적으로’ 대처하기보다는 핵을 포기할 수 있도록 ‘원칙적으로’ 대응할 것이며, 북한도 이런 달라진 패턴에 응해야 한다는 주문인 셈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최측근인 김 비서와 명실상부한 대남 실세인 김 부장이 이 대통령을 예방한 것은 그 장면 자체만으로도 상징성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북한은 지난 4~5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 이후 불과 3개월 전 핵실험(5월25일)을 전후한 남북관계 긴장이 언제 일이었나 싶을 정도의 평화공세를 취하고 있다. 북한은 10~17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평양 초청, 13일 억류 근로자 석방, 17일 현대그룹과의 금강산·개성관광재개, 이산가족상봉 등 5개항 합의, 21일 육로통행 제한 등을 담은 12·1조치 해제 등 대남 유화적인 조치들을 잇달아 내놨다. 북한의 대대적인 평화공세에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도 관심거리다. 북한 조문단의 청와대 예방 이후 정부가 대대적인 대북 접근으로 화답하기보다는 북핵 진전 상황을 봐가며 남북관계의 속도를 조절해 나갈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정부 당국자는 현인택 장관과 김 부장의 면담과 관련, “현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정부의 일관된 대북정책(비핵·개방 3000)을 큰 틀에서 원칙과 유연성 측면에 대해 북측에 설명했다.”며 “이번 면담으로 북한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개선됐다고 보며 북측도 우리 정부의 입장을 잘 이해한 듯싶다.”고 평가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작지만 중요한 출발이었다는 게 정부 당국자의 시각이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을 가장 많이 도울 나라는 한국이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김 비서 등을 만나서도 이같은 점을 강조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 내에 신중한 기류가 있지만 북한 조문단의 이 대통령 예방을 계기로 바닥을 친 남북관계가 정상화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측 조문단이 이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남북관계 개선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것은 남북간 최고지도자 간 간접적 메시지 교환의 의미가 있다.”면서 “이번 면담을 통해 남북관계 복원뿐만 아니라 관계개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조문단이 이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남북 관계개선, 핵문제 등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한 데 이어 양측이 상당부분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을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종락 김정은기자 jrlee@seoul.co.kr
  • 北 억류 유씨 136일만에 귀환

    北 억류 유씨 136일만에 귀환

    북한에 억류됐던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44)씨가 13일 전격 석방됐다. 체제 비난 등의 혐의로 지난 3월30일 북한에 억류된 지 136일 만이다. 북측은 이날 오후 5시10분쯤 유씨의 신병을 현대아산 측에 넘겼다. 유씨는 오후 8시45분쯤 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 “기쁘다. 많은 노력과 관심을 기울여 준 정부 당국과 현대아산, 국민들께 대단히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힌 뒤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밤 정부중앙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유씨는 추방형식으로 석방됐다.”면서 “건강에 특별한 이상은 없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석방과 관련해 대가를 지불한 것은 없다.”면서 “정부는 석방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고 현대도 사업자로서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북측에 사과나 유감표명을 한 사실이 없다.”면서 “다만 현대아산 측은 자사 직원이 장기간 억류된 사건이 발생한 것과 관련, 북한 당국에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800 연안호 선원들도 하루빨리 귀환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유씨는 그동안 개성지역에서 억류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지난 10일 전격 방북하면서 유씨의 석방은 예상됐다. 하지만 현 회장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면담이 늦어지면서 현 회장은 두 차례 체류일정을 연장, 당초 12일 귀환 할 예정이었으나 14일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사진 더 보러가기] 이날 유씨가 석방되면서 일각에서는 현 회장과 김 국방위원장이 강원 원산에서 면담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을 내놓았다. 다만 면담사실이 공식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오후 7시쯤 김 국방위원장이 함남 함흥에서 강원 원산으로 이동해 송도원 청년야외극장을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김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29일 고 정주영 명예회장·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부자와 원산 서호초대소에서 면담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소지섭 “중국어 대사 외우느라 진땀 뺐죠” 정진영 “김민선은 정당했다” 경찰서 유치장이야 호텔이야? 이희호여사가 하염없이 운 이유 사고는 남자가 치고 고민은 여자가? 남잔 축구,여잔 무용…교과서 속 인권차별
  • [北억류 유씨 석방] 클린턴 메시지·현대 물밑접촉 주효

    [北억류 유씨 석방] 클린턴 메시지·현대 물밑접촉 주효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13일 유성진씨가 석방된 주요 배경으로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필요조건 ▲현대아산의 물밑 접촉의 성과 ▲북측의 심각한 경제상황 등을 꼽았다. 이 가운데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이 지난 4일 북측에 억류된 미국 여기자 석방을 위해 전격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하면서 유씨 석방을 요청한 것이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당시 클린턴 전 대통령은 북측에 여기자 석방을 주장하면서도 북·미관계를 개선하려면 유씨를 포함한 한국과 일본 억류자들도 석방해야 한다고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무진 북한 대학원대 교수는 “북한 입장에선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 반드시 유씨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미국의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에 클린턴 전 대통령이 귀국한 뒤 비교적 이른 시일 내에 유씨를 석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처음에는 남북 당국자 간 회담에 초점을 맞춘 정부와 현대아산 차원의 투트랙 전략이 진행됐지만, 막판에 현대아산의 물밑접촉을 매개로 한 남북 당국 간의 간접적인 의사소통이 효과를 본 것도 유씨가 석방된 요인”이라고 말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미관계를 개선하는 데 남북관계가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북측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북한 내부적으로도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선 유씨 문제가 선행돼야 한다는 여론도 어느 정도 (유씨 석방에) 작용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측의 열악한 경제상황도 유씨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식량과 비료 등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개선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여기자를 석방한 상황에서 ‘같은 민족끼리’를 강조해온 북측이 유씨를 계속 억류하는 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석방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장기간 북측에 억류됐던 유씨가 석방되면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북측의 유씨 석방 결정이 냉랭했던 남북관계의 첫 장애물을 해소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최근까지 민간 방북에 제동을 걸고 민간 차원의 인도적 대북 지원까지 제약해온 데에는 북측의 핵실험과 더불어 ‘묻지마식’ 유씨 억류 사건이 큰 빌미가 됐던 게 사실이다. 때문에 유씨 석방을 계기로 정부가 인도적 분야에서 유연성을 발휘, 북측에 유화 제스처를 보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유씨 석방을 통해 남북관계의 전면적인 개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13일 현재까지 15일째 북측에 나포된 ‘800 연안호’ 선원 4명의 귀환 문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 후퇴의 계기가 된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총격 피살사건 등 남북이 풀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사설] 남북, 유씨 석방 계기로 대화 물꼬 트길

    북한에 억류돼 있던 개성공단의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씨가 마침내 어제 풀려나 남측 땅을 밟았다. 북한 정치 체제를 비판하고 개성공단의 북측 여성 근로자를 변질, 타락시켜 탈북을 책동했다는 혐의로 지난 3월30일 북한 당국이 억류한 지 무려 136일 만의 귀환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이틀씩이나 방북 일정을 연장한 끝에 이뤄낸 결실이기도 하다. 뒤늦게나마 북한 당국이 유씨를 무사히 송환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엉킬 대로 엉킨 남북관계에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 당국은 우선 유씨의 억류 경위와 북한 당국으로부터 그가 어떤 처우를 받았는지 면밀히 조사해 정확한 진상을 가려야 할 것이다. 북측은 그동안 유씨 신변 안전에 대한 확인과 함께 접견권 및 변호조력권을 보장하라는 우리측 요구를 묵살해 왔다. 개성공단 운영과 관련한 남북간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채 미국 여기자 2명과 더불어 사실상 ‘인질외교’를 자행해 온 것이다. 개성공단에 체류하고 있는 남한 기업 관계자들의 안전 확보를 위해서라도 정부 당국은 이번 유씨와 같은 억류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반 조치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유씨가 석방됐다고 해서 남북간 경색 관계가 일거에 풀릴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북측이 미국 여기자 2명에 이어 유씨를 석방한 것은 북·미 대화와 함께 남북 관계의 정상화에 긍정적 신호를 보낸 것임은 분명하다 하겠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 관광, 개성공단 정상화 등 남북간 3대 현안을 풀기 위한 당국간 대화의 모멘텀은 마련된 셈이다. 북한 당국은 지난달 30일 동해상에서 나포한 우리 어선 800연안호 선원 4명도 즉각 송환해야 한다. 우리 정부의 대응을 봐가며 이들의 송환을 대남전략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생각은 접어야 한다. 북한 당국의 그릇된 행동에는 어떠한 보상도 하지 않는다는 우리 정부의 견고한 원칙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 [北억류 유씨 석방] 靑 “늦었지만 다행… 대북정책 기조 불변”

    청와대는 13일 북측에 장기 억류됐던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씨가 전격 석방된 것과 관련,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동관 대변인은 “뒤늦은 감은 있지만 유씨가 가족 품에 돌아가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면서 “우리 정부는 앞으로도 일관된 대북정책 기조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유씨 석방에 대해 일단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장기억류에 대한 유감을 표시하는 한편 이로 인해 대북정책 기조가 이른 시일 내에 변하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청와대의 한 핵심 참모는 “북측이 유씨를 억류한 지 136일 만에야 풀어준 것은 만시지탄이라 할 수 있다.”면서 “아직 지난달 30일 나포된 ‘800 연안호’ 선원 4명의 귀환 문제도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북측이 최근 미국 여기자 2명을 석방한 데 이어 유씨도 풀어준 것은 긍정적인 변화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 “연안호 선원들도 하루속히 풀어줘 이제는 북측이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유씨 석방 직후 참모진으로부터 보고를 받았으나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종락 김정은기자 jrlee@seoul.co.kr
  • 美여기자들 “인생의 악몽 끝났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서울 김정은기자│“돌연 끌려가 문을 여는 순간 클린턴 전 대통령이 우리 앞에 서 있는 걸 보고 정말 놀랐다. 우리 인생의 악몽이 끝났음을 알게 됐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142일 만에 석방된 미국 여기자 로라 링과 유나 리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특별기 편으로 5일 오전 5시50분쯤(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버뱅크 밥호프공항에 도착, 가족들과 상봉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우리가 TV에서 본 재회는 그들 가족들만의 행복이 아니라 나라 전체의 행복”이라며 여기자 2명이 무사히 풀려나 크게 안도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2명의 기자를 석방시킨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탁월한 인도주의적 노력에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날 도착 직후 뉴욕의 클린턴재단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여기자들이 석방돼 매우 기쁘다.”고 밝혔다. 클린턴은 “이들의 고난은 긴 여정이었다.”며 “이들이 이제 집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재회해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또 억류 중인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와 연안호 선원 4명의 문제와 관련, 평양을 방문했을 당시 북한 측에 “석방하면 매우 전향적인 진전이 될 것”이라며 특사를 통한 석방을 강하게 요구했다고 CBS TV 인터넷판이 미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방북에 대해 추후 보고할 것이라고 이날 밝혔다. 기브스 대변인은 그러나 미국이 북한에 사과했고 클린턴이 오바마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북한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는 “메시지도 없었고 사과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 미국 케이블방송 커런트TV 소속 한국계 유나 리와 중국계 로라 링 기자가 탄 특별기는 이날 오전 평양 순안공항을 출발했다. 북한은 지난 6월8일 2명의 여기자에게 조선민족 적대죄와 무단으로 국경을 침입한 죄를 물어 각각 12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했지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4일 클린턴 전 대통령과 회담한 뒤 이들을 특별사면, 석방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미국 여기자 2명이 북한에 불법입국해 반(反)공화국 적대행위를 한 데 대해 심심한 사과의 뜻을 표하고 그들을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관대하게 용서해 돌려보내 달라는 미국 정부의 간절한 요청을 정중히 전달했다.”고 밝혔다. 한편 외교통상부도 이날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과 관련, 대변인 논평을 내고 “정부는 그동안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 기자 2명이 5일 석방돼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귀환한 것을 환영한다.”면서 “정부는 이번 방북과 관련, 미국측과 계속 협의해 왔으며 미국은 이번 방북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뤄진 개인적인 성격의 방문이라고 사전 설명해 온 바 있다.”고 밝혔다. kmkim@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군사작전 방불케 한 쌍용차 2차 진압 자기가 발의한 법안에 반대표 던진 의원들 돈 되는 환자만 가려 받는 몹쓸 병원들 이탈리아 로또 또 이월…당첨금 2033억원 눈만 높은 미혼 남녀들 2019년에는 서울 어디든 30분내 간다 통영vs화천…어디로 휴가 가지? 공무원시험 지역제한 5대 궁금증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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