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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일만에 노 저어 태평양 횡단

    |히바오아(프랑스령 폴리네시아) AFP 연합|프랑스 여성 탐험가 모 퐁트노아(26)가 여성 최초로 혼자 노를 저어 태평양 횡단에 성공했다. 퐁트노아는 지난 1월12일 페루의 칼라오 항구를 떠나 8000㎞의 횡단 항해에 나선 지 73일만에 26일 태평양 남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히바오아의 마르키즈섬 북쪽해안에 도착했다. 퐁트노아는 이날 오후 4시(현지시간) 경도 138.5도를 통과하면서 기나긴 고독의 여행을 끝냈다. 보트가 해안에 닿자 300여명의 환영객들이 퐁트노아를 따뜻이 맞았고 그는 전통의상을 입은 원주민의 인도 아래 해변으로 이동,‘타히아’(여왕)라는 칭호를 받았다. 퐁트노아는 “70일 이상을 혼자 있다가 사람의 세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렸기 때문에 즐거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번 횡단기록은 남미 대륙과 폴리아네시아 사이의 적도 해류의 도움으로 당초 계획보다 한달 앞당겨졌다. 지난 2003년 여성 탐험가 라파엘라 르 구벨로(프랑스)가 윈드서핑으로 태평양을 횡단했었으나 여성이 노를 저어 태평양을 건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퐁트노아는 길이 7m의 보트와 위치정보시스템(GPS), 위성통신 장비에 의존한 채 지난 47년 노르웨이 탐험가 토 헤예르달이 5명의 선원과 101일동안 뗏목을 타고 이동했던 경로를 따라 태평양을 가로질렀다. 탐험기간 식사는 냉동건조된 스페인식의 파엘랴와 낚시로 잡은 생선으로 충당했다.
  • “아버지 이중섭 스크린에 담고 싶다”

    이중섭(1916∼1956) 화백의 둘째아들 태성(일본명 야스나리·56)씨가 처음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이 화백의 50주기를 기념하는 사업계획을 밝혔다. 태성씨는 22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망우리 공동묘지에 있는 부친의 묘소 이전 문제와 이중섭 일대기를 다룬 영화제작 계획 등에 관해 설명했다. 일본 도쿄에 거주하고 있는 태성씨는 이날 회견에서 부친의 묘소를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장소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이 화백은 사망한 뒤 화장한 유해의 일부가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히고 또 일부는 부인인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남덕·83) 여사에게 전달됐다. 유족은 이 유해의 일부를 도쿄의 묘지에 안치하고 매년 참배하고 있다고 태성씨는 전했다. 망우리의 묘소는 묘지사용시한이 다 돼 이장을 해야 할 상황. 이 화백 작품을 취급해온 서울옥션 측은 이 화백이 작품생활을 했던 제주도 서귀포로 이장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 화백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는 한국의 튜브픽쳐스와 일본의 마크 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할 계획으로 현재 시나리오 작업중이다. 태성씨는 “너무 어렸을 적에 헤어져 기억이 별로 남아 있지 않지만 아버지가 53년 선원자격증으로 일본에 건너와 열흘 간 함께 보내면서 나를 꽉 안아 주었던 느낌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서 “아버지의 진실한 일대기와 어머니 마사코와의 사랑을 담아낼 이 영화를 통해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수도권플러스] 안산에 외국인 노동자 전용 법당

    경기도 안산시에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법당이 마련됐다. 안산 보문선원(주지 보림스님)은 22일 반월·시화공단에서 일하는 3만여명에 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법회와 한글, 컴퓨터 교육 등을 위해 외국인 노동자 전용 법당을 개원했다고 밝혔다. 법당은 안산시 상록구 월피동 현대쇼핑 3층에 40평 규모로 마련됐으며 법회는 물론 한글과 컴퓨터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책걸상과 컴퓨터 10대가 설치됐다. 법당의 운영은 스리랑카 출신 왓치사라 스님이 맡게 되며 불교국가인 스리랑카나 태국 등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을 위해 일요일은 물론 평일에도 개방된다. 보문선원은 당분간 법회를 한국어와 스리랑카어로 진행한 뒤 신도가 늘어날 경우 국가별로 스님을 섭외하고 프로그램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031)401-2540.
  • [책꽂이]

    ●아들 마음 아버지 마음(김용택 지음, 마음산책 펴냄)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지난 3년 동안 대안학교에 다니느라 집을 떠나 있던 아들에게 보낸 50통의 편지글 묶음.“부모와 자식간의 일이 사사로울지라도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 싶어 편지를 에세이집으로 공개했다.”고 시인은 말했다. 아들에게 크고 밝은 세상을 보여주려는 아버지의 마음이 편편이 곡진하다.8800원. ●로드 짐(전2권)(조지프 콘래드 지음, 이상옥 옮김, 민음사 펴냄) 해양문학을 대표하는 영국 소설가 조지프 콘래드(1857∼1924)가 1900년 발표한 작품으로, 서구 현대소설의 출발을 알렸다는 평가를 받아왔다.‘짐’이라는 이름의 간부 선원이 뜻밖의 사건으로 인생의 부침을 거듭하는 줄거리. 다양한 서술관점, 실험적 내러티브를 주목해야 하는 문학텍스트로 꼽힌다. 각권 8000원. ●아름다운 비상(박명순 지음, 문학시티 펴냄) 한국수필가협회 박명순 이사가 ‘어떤 외출’‘메모리스’에 이어 세번째 내놓은 수필집. 거대도시 속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살아도 여성작가의 감성만큼은 그 삿된 흐름에 휘둘리지 않았다 싶다. 도회풍이되 서정을 견지하는 작가의 펜 끝이 애잔하다.9000원. ●현대시 창작 강의(이지엽 지음, 고요아침 펴냄) 현대시론과 창작기법을 균형있게 조합한 시창작 길라잡이. 시의 정의에서 비롯해 한 편의 시에 쓰는 이의 세계관을 투영시키는 방법론 등 다양한 시쓰기 노하우를 1950∼1980년대 한국의 대표시들을 통해 일러준다. 지은이는 계간 ‘열린시학’ 편집주간.1만 9000원.
  • 儒林(304)-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304)-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퇴계의 사상은 이처럼 12살 때 깨달은 논어에 나오는 이(理)자 한 자에서 시작되었다. 이란 원래 진리(眞理)를 뜻하지만 원리(原理), 이치(理致) 등으로 말하여지는 일체의 법칙(法則)을 뜻하는 것이다. 퇴계는 12살 때 공자사상의 골수인 이(理)를 타파하여 돈오(頓悟)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옛 성현과 공자의 학문을 그리워하는 모고지심은 퇴계의 평생화두였다. 이러한 마음은 퇴계가 기고봉(奇高峰)에게 준 ‘답기명언(答奇明彦)’에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어려서 바로 산림 속에서 늙어 죽을 계획을 새겨 조용한 곳에 띠옥이나 얽어 놓고 독서와 양지(養志)의 부족한 점을 더욱 구하여 나가는데, 수십 년의 공을 더 하였으면 병도 틀림없이 나았을 것이고, 학문도 틀림없이 성취되어 천하 만물이 내 즐기는 바가 되었을 것인데, 어찌하다 이런 것을 깨닫지 못하고 과거를 보고 관직에나 눈을 팔게 됨으로써 육신만을 위하였는지.…” 실제로 퇴계는 19살 되던 해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학문의 길을 가려는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홀로 오두막에 앉아/만 권의 책을 읽으며/늘 같은 마음으로/십 년을 지내 오니/이제야 우주 만물의 근본을/깨달은 듯싶어/내 마음을 붙잡으니/진리가 보이더라.” ―그러나 나는 뱃전에 서서 이제는 까마득히 멀어진 두향의 무덤을 보며 생각하였다. ―이처럼 19살에 이미 ‘우주 만물의 근본을 깨달아 진리가 보이는 듯하던’ 이퇴계는 그러나 맞지 않는 벼슬을 평생을 통해 일흔아홉 번이나 치사은퇴(致仕隱退)하다가 마침내 단양군수를 끝으로 진리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내가 단양을 찾아온 것은 바로 그러한 퇴계의 치열한 구도정신을 답사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여정에서 뜻밖에도 기생 두향의 무덤을 발견하게 됨으로써 이퇴계의 감춰진 사생활이 드러나게 되었음이니, 그렇다면 두향은 퇴계에게 있어 어떤 존재였던가. 문수보살(文殊菩薩). 석가여래의 왼편에 있는 지혜의 상징으로 연화대에 앉아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지혜의 푸른 연꽃을 들고 있는 화신(化身)인데, 그렇다면 두향은 퇴계에게 지혜의 완성을 인도한 문수보살인 것이다. 심청이가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공양미 삼백 섬에 몸이 팔려 임당수에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죽었다면 두향이도 소복을 입고 남한강 푸른 물 속에 살신공양함으로써 마침내 이퇴계의 눈을 뜨게 하였던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혼자만의 공덕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없고 그 어떤 업도 삼라만상의 인연으로 맺어지는 법이며, 수승(殊勝)한 다보탑도 크고 작은 탑돌이 쌓여져 이루어진 것이니, 두향이야말로 이퇴계를 이룬 공양탑(供養塔)인 것이다. 어느덧 배는 떠나온 선착장에 이르렀다. 선원은 엔진을 끄고 배를 천천히 부교에 접안하였다. 내리기 편하도록 널빤지를 연결한 후 나는 천천히 배를 내렸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고마운 사내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였다. 마주 잡은 손은 따뜻했다.
  • 儒林(302)-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302)-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두향의 죽음은 두 가지의 소문으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유서를 남기고 부자를 달인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소복을 입고 강선대바위 위에서 뛰어내려 남한강에 투신하였다는 것이다. 워낙 물살이 급한 천탄(淺灘)이라 두향의 몸은 사흘 만에 강물 위로 떠올랐다고 하는데, 어쨌든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던 것은 정확한 사실인 듯 여겨진다. 마을 사람들은 두향이 남긴 유언에 따라 생전에 그녀의 초당이 있던 자리에 무덤을 마련해 주었다. 처음에는 해마다 매화가 무덤 주위에서 피어나 봄 소식을 알리곤 하였다는데, 어느새 매화는 사라져버리고 적막강산의 무덤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마시고 남은 술병을 들고 축대를 내려갔다. 가파른 경사를 따라 언덕 아래로 가자 넘실거리는 강물이 암벽을 핥고 있었다. 나는 남은 술을 강물 위에 쏟아 부었다. 그리고 강물 속에 깃들어 있는 두향의 넋을 초혼(招魂)하기 위해서 마음 속으로 두향의 이름을 연거푸 세 번 불렀다. 내 초혼에 화답이라도 하듯 수면위로 갑자기 수상한 바람이 하나 일어서더니 작은 물결을 일으키면서 출렁거렸다. 이로써. 나는 한 방울의 술까지 다 강 속에 쏟아 붓고 나서 두 손을 털면서 생각하였다. 두향의 넋을 달래는 진혼제(鎭魂祭)는 모두 끝난 셈이다. 나는 다시 무덤 위로 올라서서 말하였다. “자 이제 갑시다.” 선원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다 끝나셨습니까.” “모두 끝났습니다.” “그럼 가시지요.” 우리는 무덤가를 벗어나 가파른 산길을 내려갔다. 기슭에 밧줄로 매어놓은 배 위에 올라타자 선원은 밧줄을 풀고 막대기로 바위를 밀어 배를 호수 바깥쪽으로 견인하였다. 발동을 걸자 투투타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배는 진저리를 치기 시작하였다. 방향을 바꿔 배는 순식간에 호수 한복판으로 가로지르기 시작하였다. 나는 물보라 치는 선상에 서서 방금 떠나온 두향의 무덤을 바라보았다. 빠르게 전진하는 배의 속도에 맞춰 그만큼 두향의 무덤도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정오를 넘어있었으므로 정수리를 찌르는 한낮의 햇볕은 호수 수면 위에서 박살난 유리조각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문득 나는 생각하였다. 내가 본 무덤은 실제 두향의 묘가 아니라 어쩌면 신기루(蜃氣樓)가 아니었을까. 일찍이 생텍쥐페리는 ‘인간의 대지’에서 사막에 나타나는 신기루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사막의 지평선에는 광선의 장난으로 좀 더 마음에 걸리는 신기루들이 생긴다. 요새와 회교 교당의 첨탑과 수직선으로 된 규칙적인 건물집단들이다. 또 식물행세를 하는 커다란 검은 점도 발견된다. 그러나 그것은 낮에 흩어졌다가 오늘 저녁에 다시 생겨날 구름 중에 마지막 구름에 덮여 있다. 그것은 층운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층운(層雲)의 그림자. 내가 본 두향의 무덤은 생텍쥐페리의 표현대로 안개처럼 땅에 가장 가까이 퍼져 있는 층운들이 만들어낸 신기루의 그림자가 아닐까.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머리를 흔들며 생각하였다. ―이퇴계와 두향의 사랑은 영원한 것이다.
  • 儒林(301)-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301)-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전해 내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두향은 기생 신세를 면하게 되자 이듬해 봄 강선대가 눈 아래 굽어보이는 적성산 기슭에 조그마한 초당을 짓고 은둔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이퇴계가 70세로 숨을 거둘 때까지 두향은 이곳 적성산 초당에서 22년간을 수절하였다. 두향이가 이퇴계를 만난 것이 몇 살 때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이퇴계가 숨을 거뒀을 때에는 아마도 초로의 아낙네였을 것이다. 22년 동안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재회한 적이 없고 서신도 교환한 적은 없다. 다만 이퇴계가 말년에 지은 시 한 수가 두향을 그리워하며 지은 연애시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책 속에서 성현을 만나 보며 비어 있는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 매화 핀 창가에서 봄소식 다시 보니 거문고 대해 앉아 줄 끊겼다 탄식마라.(黃券中間對聖賢 虛明一室坐超然 梅窓又見春消息 莫向瑤琴嘆絶絃)” 이 시의 처음 두 행은 학문에 정진하고 있는 이퇴계의 근황을 알리는 것이지만 뒤의 두 행은 비록 만나지는 못할지언정 함께 매화를 보고 거문고를 타면서 지냈던 아련한 추억을 반추해 보는 사랑 노래가 아닐 것인가. 나는 술을 받쳐 올리고 봉분 앞에 무릎을 꿇고 배를 올렸다. 그러고 나서 술잔에 든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원래 흠향(歆饗)한 술은 음복(飮福)하는 법. 나는 빈 컵에 다시 술을 따라 나를 이곳까지 태워다 준 고마운 선원에게 잔을 내밀며 말하였다. “한잔 드시겠습니까.” 곁에 서서 나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사내가 선뜻 술잔을 받았다. “5월 초에 오셨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요.” 사내는 술을 마시며 대답하였다. “해마다 5월 초면 두향의 무덤 앞에서 추모제가 올려집니다. 그때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고 있지요. 축문도 읽고 분향도 올리지요.” 무덤 앞까지 밀려든 강물은 소용돌이를 치면서 굽이치고 있었다. 선조 3년 경오년(1570년) 섣달 초여드렛날 밤 유시(酉時). 이퇴계는 마침내 7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전해 내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두향은 퇴계가 마침내 숨을 거뒀다는 비보를 전해 듣자 목욕재계하고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 소복까지 준비하고 단신으로 안동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단양에서 안동까지 200리 험난한 태산준령을 여자의 몸으로 나흘 만에 무사히 안동고을을 거쳐 도산서당이 있는 토계리까지 도착한 두향은 집집마다 걸려진 만장(輓章)을 보고 소복으로 갈아입고 유해가 안치된 한서암(寒棲庵)을 보며 밤을 새워 망곡을 하였다고 한다. 퇴계가 서거하자 선조대왕은 특별히 이퇴계에게 영의정 벼슬을 추증하였다. 그런 관계로 장례는 의정예법(議政禮法)에 따라 이듬해 3월에야 거행한다는 말을 듣고 두향은 그대로 단양으로 돌아와 초당에 궤연(筵)을 꾸미고 신주를 모셔 놓은 후에 아침저녁 상식을 올리며 곡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날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긴다. “내가 죽으면 그 시신을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강선대 위에 묻어 주옵소서.”
  • 화물선 침몰 한국인9명 실종

    8일 중국 황해에서 한국 국적 화물선이 마샬군도 선적 선박과 충돌해 침몰했다고 AFP통신이 중국 해상구조당국 관리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이 사고로 화물선에 타고 있던 한국인 선원 9명과 미얀마인 선원 2명이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선원 1명의 시신이 발견됐지만 신원은 즉각 확인되지 않았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새벽 4시쯤 중국 장쑤성(江蘇省) 북동부 롄윈강(連雲港)으로부터 130㎞가량 떨어진 황해 해상에서 한국 국적의 화물선 ‘선크로스(Sun Cross)’호가 마샬군도 선적 선박과 충돌해 침몰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과거분식’ 2년 유예 추곡수매제도 폐지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모두 110건의 법안을 통과시키며 임시국회 사상 최다 법률 처리 기록을 갈아치웠다. 하지만 국보법 폐지안, 과거사법안, 사학법 등은 손도 대지 못했다. 다음은 2일 국회를 통과한 주요 법안 요지. ●증권관련집단소송법(개) 기업의 허위 공시행위가 과거의 분식을 반영·해소할 경우 2년간 집단소송법 적용을 배제하되, 과거 분식으로 계상된 금액을 새로운 분식으로 대체하거나 허위로 가감·수정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새 법을 적용하도록 한다. ●양곡관리법(개)·쌀소득보전기금법(개) 추곡수매제를 사실상 폐지하고 국민식량의 안정적인 확보 차원에서 쌀 600만섬 가량을 시장가격으로 매입하고 판매하는 공공비축제 도입을 골자로 한다. 또한 추곡수매제 폐지에 따라 쌀값이 15%가량 급락해도 가마당 16만 5000원 이상을 보장한다. ●채무자회생 및 파산법 개인 채무자에 대해 파산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채무를 조정, 소액 채무자를 구제한다. ●하도급거래공정화법(개) 중소 하청업체 보호를 위해 용역위탁업을 하도급법 적용대상에 추가하고 하청업체에 비용을 전가하거나 대금을 깎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 ●병역법(개) 병역을 마치지 않은 병역 의무자가 국외여행 허가시 병무청장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귀국보증제도와 이들이 미귀국시 부과하는 과태료제도를 폐지했다. ●선원법(개) 국제기준에 맞는 선원신분증명서 도입과 함께 25t 이상 선박 선원에 적용되던 대상 기준을 20t 이상으로 올렸고, 주 40시간 근무, 쟁의행위 허용 등을 담고 있다. ●독립유공자예우법(개) 독립유공자 중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것으로 확인된 자에 대해 각종 독립유공자 예우를 박탈하는 내용과 해외거주 독립유공자 가족이 국내에 영구 정착할 때 주는 정착금 지급대상을 유족대표 1인에서 가구 수별로 확대한다. ●공중위생관리법(개) 찜질시설 영업을 목욕업종으로 분류하는 내용.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한국불교 미래를 듣는다’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는 13일부터 5월1일까지 매주 일요일 8차례에 걸쳐 경내 대웅전에서 ‘한국불교, 미래를 듣는다’라는 제목의 기획법회를 연다. 부처의 가르침과 수행을 되새기고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조명, 불교가 나아갈 바를 모색하기 위한 자리다. 법회는 ‘여는 마당’‘수행의 마당’‘나눔의 마당’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여는 마당’에서는 생명평화 운동을 실천하고 있는 도법(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스님과 수행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수불(안국선원 이사장)스님이 각각 ‘생명·평화의 불교’(13일)와 ‘불교의 깨달음’(20일)을 주제로 법문한다. ‘수행의 마당’에서는 부처의 제자로서 갖춰야 할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두루 살펴본다.‘계율의 의미’(송광사 율원장 지현 스님·27일),‘현대사회에서의 계율’(해인사 율원장 혜능 스님·4월3일),‘우리들의 가까운 벗, 수트라’(동화사 강주 지운 스님·4월10일) 등으로 진행된다. ‘나눔의 마당’을 통해서는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불교가 어떤 위상과 활동방향을 갖춰야 할지를 고민한다. ‘글로벌 시대의 한국 불교’(중앙승가대 교수 미산 스님·4월17일),‘지역과 함께하는 불교’(수원포교당 주지 성관 스님·4월24일),‘통일시대의 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 명진 스님·5월1일) 등을 다룬다.
  • 집채파도와 사투 71시간 발해 뱃길 증명 또 좌절

    잊혀진 발해의 해상항로를 찾으려는 탐험인들의 기상은 끝내 파도 앞에서 좌절됐다. 지난 19일 통신이 두절됐던 발해뗏목탐사선 ‘발해호’ 대원 4명은 22일 오전 7시 독도 북방 237마일 해상에서 해경 경비정 ‘삼봉호’에 구조된 뒤 탐사를 포기했다. 삼봉호 관계자는 “지원할 것이 없느냐고 묻자 대원들이 인명구조를 요청한 뒤 더 이상 탐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포시에트항을 출발한 뒤 71시간 만이다. 이들은 구조 당시 표류 상태는 아니었다. 풍랑으로 인해 통신기가 고장나 지난 19일 오후 5시40분부터 연락이 두절됐지만 항로를 벗어나지 않은 채 1∼3.5노트로 운항 중이었다. 그러나 길이 11m, 폭 4.5m의 뗏목선은 이틀간 계속된 3∼4m의 파고와 12∼16m의 풍속에 보잘 것 없는 존재였다. 집채만한 파도가 선실을 덮쳐 식량과 통신기기 일부가 유실됐다. 또 탐사대장 방의천(45)씨를 제외하고 나머지 대원은 바다에서의 극한 상황에 대처할 만한 경험이 없었다. 탐사에 동행한 다큐영상프로듀서 이형재(41)씨는 “다용도실에 있던 짐으로 파손된 선실 바닥을 막고 대원 4명이 서로 몸을 비비며 추위와 싸웠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를 대처하는 데 빛을 발한 것은 한국·러시아 공조체제였다. 러시아측은 지난 20일 오전 5시30분 우리나라 해경으로부터 ‘발해호’ 위치확인 요청을 받은 뒤 수색함 ‘라자리트호(1178t급)’ 등 2척을 급파했다.22일 오전 1시 사고해역에 도착한 라자리트호는 2시간여의 수색 끝에 뗏목선을 발견하고 사고해역으로 이동 중이던 해경 ‘삼봉호’에 위치를 통보, 구조하게끔 했다. 러시아는 지난달 20일 우리나라 화물선 ‘파이오니아나야호’가 북한 수역에서 침몰했을 때도 사고해역 인근을 지나던 자국 상선을 투입시켜 선원 4명을 구조한 바 있다. 해경 관계자는 “지난 98년 러시아 국경수비대와 ‘해상공조 체제에 관한 협약’을 맺은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儒林(290)-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290)-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이처럼 신분과 풍습을 초월하여 인간에 대한 휴머니즘으로 가득찬 이퇴계가 두향이가 한갓 미천한 기생의 신분이라 할지라도 그녀를 길가는 사람 보듯 하지 않았을 것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퇴계와 두향의 로맨스는 과장된 헛소문이 아니라 분명한 역사적 사실인 것이다. 그때였다. 짧은 상념에 잠겨 있는 동안 군청에 전화를 걸었던 선원이 내게 다가와 말하였다. “허가가 떨어졌습니다.” 그는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말하였다. “선생님을 모시고 두향의 무덤까지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선착장에는 비상용으로 작은 쾌속정 한 대가 구비되어 있었다. 배를 타기 전 나는 매점에서 간단하게 소주 한 병과 술을 따를 종이컵, 그리고 간단한 안줏감을 사 들었다.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배에 올라타시지요.” 배에 올라타자 사내는 배가 요동치지 말라고 묶어둔 밧줄을 풀었다. 어느 정도 배가 선착장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려 발동을 걸었다. 이내 투투타타― 하는 엔진소리가 터지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배가 출발하였다. 배는 빠른 속도로 사선을 따라서 호수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물의 수면을 떠올라 빠르게 전진하고 있었으므로 물보라가 일었다. 봄이었지만 호수 주위는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으므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었다. “두향의 무덤 앞에는 원래 커다란 바위가 있었습니다. 강선대라고 불리던 바위지요.” 강선대(降仙臺)라면 문자 그대로 선녀들이 내려와 노닐던 바위라는 뜻이 아닐 것인가. “수몰되기 전에는 어른이 수십명 앉아 놀 수 있을 만큼 넓고 큰 바위가 그대로 보였지요. 그러나 지금은 물에 잠겨 볼 수가 없습니다. 조금만 일찍 오셨더라면 겨울가뭄 때문에 수량이 많지 않아 바위가 드러나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잘은 모르지만 이퇴계 선생과 기생 두향이가 주로 이 강선대 위에서 거문고를 타고 노닐었다고 합니다.” 사내는 엔진소리를 이기기 위해서 소리를 높여 내게 말하였다. “따라서 두향의 무덤은 원래 강선대 바로 위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충주댐으로 인공호수가 생기자 물에 잠길 것을 마을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산 중턱으로 이장하였다고 하지요. 만약 이장하지 않았다면 수중무덤이 되었을 것입니다.” 나는 팔짱을 끼고 호수를 바라보았다.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어찌하여 나를 낳은 조국의 산야는 이처럼 금수강산인가. 누더기와 같은 역사와 넝마와 같은 혼란 속에서도 조국의 강산은 어찌하여 이토록 절세(絶世)인가. 순간 내 머릿속으로 이곳을 찾아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렸던 추사 김정희의 시가 한 수 떠올랐다. “명필의 붓처럼 천둥번개에 몰아치듯 뛰어난 운치, 그윽한 정, 먼 물가에 흩어졌구나. 천리 밖에 한 조각 돌 주워가지고 책상 위에 놓으면 이 봉우리는 언제고 푸르리.” 추사의 시는 정확하다. 이 절경의 모습은 천둥번개를 몰아치듯 뛰어난 운치로 창조주가 붓을 움직여 그린 신필(神筆)인 것이다.
  • 장애인 자살에 강서구청 곤혹

    지난 18일 저녁 1급 장애인 주모(52)씨가 강서구청 현관에서 목을 매 숨지자 강서구청 관계자들이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강서구청 관계자는 21일 “할 도리를 다했다고 변명하거나 유가족에게 누를 끼치려는 것은 아니며 다만 구청의 어려운 입장과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자 해명자료를 낸다.”면서 “고인은 지난 2003년부터 구청장과 공식적인 만남만 12차례를 가졌다.”며 외부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했다. 강서구는 또 “1995년 5월부터 숨진 주씨를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지정하고 생계비 월 67만 6840원을 비롯, 장애수당 9만원과 교육급여, 긴급구조금 등 지난해에만 870여만원을 지원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2003년부터 2년동안 645만원 상당을 별도로 지원했으며 지난해 7월부터는 강서구 사회복지관에서 매일 도시락을 배달했다.”고 덧붙였다. 구 관계자는 “주씨가 구청에 상주하다시피 해서 공식적인 1대1 면담 등 구청장과도 자주 대화를 나눴다.”면서 “목욕비나 전기요금 감면 등 주로 경제적인 요구를 했으며 이를 안타깝게 여긴 구청 직원들이 여러차례 용돈을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강서구에 따르면 주씨는 또 “면담과정에서 수시로 노끈으로 자살을 하겠다.”고 말했으며 이달 초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100만원을 받을 때는 “청사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겠다.”는 각서도 쓴 것으로 알려졌다. 강서구는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무료영구차를 지원하고 장제급여 40만원과 긴급 후원금을 마련하고 있다. 원양어선 선원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한 주씨는 아내가 가출하자 홀로 두 딸을 키웠으며 지난 1985년 사고와 질병으로 장애인이 된 뒤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작은 사냥꾼/보리스 S 지트코프 지음

    꿈, 희망을 아이들의 눈높이 언저리에 심어주려는 동화야 차고 넘친다. 그런데 러시아 아동문학가 보리스 S 지트코프(1882∼1938)의 ‘작은 사냥꾼’(장한순 그림, 문학동네어린이 펴냄)은 다르다. 아이의 심리를 결 하나 다치지 않고 날것 그대로 지면으로 옮겨놨다. ●김영하가 옮긴 어린시절의 ‘금기’ 번역을 맡은 이는 인기 소설가 김영하. 언젠가 미국의 대학도서관에서 이 동화를 처음 접하고는 무릎을 쳤단다.“밝고 화사한 이야기로 넘쳐나는 어린이 서가에서 고고하게 어둠을 뽐내며 꽂혀 있던 책”이라면서 “어린시절 먼지 쌓인 퀴퀴한 다락방에서의 은밀한 기쁨을 다시 맛보게 해주었다.”고 했다. 동화는 ‘금기’와 ‘금지’에 대한 아이들의 본능적인 호기심을 이야기한다. 호기심 하나로 마음속에 자신만의 견고한 성(城)을 쌓아가는 동심의 한 자락을 생생히 묘파했다. ●“내 마음속 증기선 만지지 말라고요?” 주인공은 예닐곱살쯤 먹어 뵈는 꼬마 보류슈카.“아주 어렸을 때, 나는 할머니 댁에서 몇 주 동안 지낸 적이 있다.”로 운을 떼는 동화는 어쩌면 작가의 실제 기억일 것이다. 할머니댁에 들어서자마자 탁자 위 선반에 놓인 작은 증기선 모형에 보류슈카의 시선이 꽂힌다. 그 순간부터 주인공의 세상은 온통 증기선을 중심으로만 뱅뱅 돈다. 이제 어쩌나…. 마음은 송두리째 증기선에 쏠려 있는데, 할머니는 절대 만지지 말라고 엄포를 놓으셨으니. 잠을 잘 때도, 빵을 먹을 때도 보류슈카의 생각은 증기선뿐.‘선실 안엔 소인들이 살고 있지 않을까?’‘(소인들은)성냥개비보다 작을 거야.’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책은 그 꼬리를 따라 한발한발 더 깊이 상상의 늪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끝까지 보류슈카와 할머니뿐이다. 신통한 것은, 그런데도 딴 생각할 겨를 없도록 긴장의 나사를 조여간다는 점이다. 보류슈카가 할머니 몰래 쌓아가는 상상의 성벽은 갈수록 높고 단단해진다. 소인들을 불러내겠다고 증기선 앞에 사탕 부스러기를 흩뿌려 놓더니, 또 다음날은 빵조각을 올려놓기도 한다. 소인은 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걸까. 사탕 부스러기도, 빵조각도 놓아두는 족족 없어지는데 말이다. 흑백 명암이 강조된 세밀한 펜그림이 아이의 심리를 말해 주는 동화에 안성맞춤이다. 갑판 위를 거니는 손마디만한 소인 선원 등 보류슈카의 상상을 채운 그림들에 어린 독자의 눈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아이들의 호기심 아무도 못말려 어른들 방식의 빤한 결론으로 마침표를 찍지 않기에 동화는 한결 더 특별해진다. 보류슈카는 호기심을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 할머니 몰래 증기선에 손을 대고 만다. 어떻게 됐을까. 할머니의 벼락이 떨어졌을까. 거침없이 매끈한 김영하의 번역도 동화의 주제어를 온전히 전달하는 데 큰몫을 했다.6세 이상.8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선승들이 들려주는 ‘일상속 참선’

    선승들이 들려주는 ‘일상속 참선’

    조계종 90여 선방에서는 매년 2000여 스님들이 화두를 들고 수행에 정진한다. 그런가 하면 50여 곳에 이르는 전국의 시민선방들은 수만 명의 재가 수행자들로 붐빈다. 웰빙과 명상 열풍 속에 사회적으로도 다양한 수행 담론들이 넘쳐난다. 그중에서도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단연 간화선(看話禪)과 위빠사나다. 간화선이 하나의 화두를 가지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참선법이라면, 부처가 행한 수행법으로 알려져 있는 위빠사나는 매순간 일어나는 현상의 무상한 특성을 알아차리는 훈련이다.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새로운 선풍이 요구되는 요즘, 한국 불교의 대표적 수행법인 간화선 대법회가 마련돼 관심을 모은다. 부산 범어사와 현대불교신문사가 함께 주최하는 ‘범어사 설선(說禪)대법회’가 그것이다. 설선대법회는 ‘문 없는 문을 열다.’라는 주제로 3월5일부터 5월7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범어사 보제루에서 열린다. 선(禪) 중심사찰인 범어사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선승들이 대거 초청된 가운데 열린다는 점에서 이번 법회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경허, 용성, 만해, 동산, 탄허 스님 등 숱한 선사를 배출한 범어사는 1913년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으로 지정된 선수행의 중심도량. 범어사 조실 지유 스님과 동화사 조실 진제 스님이 각각 입재(3월5일)와 회향(5월7일) 법회를 주관하고, 석종사 선원장 혜국 스님(3월12일), 각화사 선덕 고우 스님(19일), 범어사 금어선원 장 인각 스님(26일), 화엄사 선등선원장 현산 스님(4월2일), 조계종 기본선원장 지환 스님(9일), 축서사 선원장 무여 스님(16일), 해인총림 수좌 원융 스님(23일), 봉암사 태고선원장 정광 스님(30일)이 법주로 나선다. 원융 스님이 공개 법회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법회가 특히 주목받는 것은 수행자가 아닌 일반인에게 초점을 맞춘 ‘간화선 대중화’의 자리라는 점. 선승들이 직접 나서 감로 법문에 목말라하는 출·재가 수행자들과 비(非)불교인에게 올바른 간화선 수행법을 전수한다는 방침이다. 법회는 질의 법사와 재가 질의자가 법회별로 한 명씩 지정돼 법주에게 질문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질의 법사는 부처가 생존할 당시 사리불 존자가 대중을 대표해 질문했듯, 법주 스님의 법문에 대해 질의해 대중의 이해를 돕는다. 마지막 회향법회는 지위 고하나 재가ㆍ출가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법을 묻는 무차선법회(無遮禪法會)로 열릴 예정이다. 법회가 끝난 뒤 희망자는 참선(오후 7∼11시)과 철야정진(오후 11시 이후)도 스님들의 지도 아래 행할 수 있다. 전체 법회 참가자에게는 수료증이 발급되며, 참선에 참가한 사람에게는 안거증(安居證)이 주어진다. 범어사 교무국장 성중(聖中) 스님은 “이번 법회는 수많은 참선학인을 배출한 대표적인 선 수행 사찰이 평소에 뵙기 어려운 선 수행 스님들을 모시고 선의 대중화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051)508-3122.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儒林(286)-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286)-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나는 선원에게 내가 찾아온 목적을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선원은 귀를 기울여 들은 후 내게 말하였다. “이곳에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제가 군청에 연락을 해 보겠습니다.” 선원은 휴대전화를 들고 통화를 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난간에 몸을 기대고 담배를 피우며 쪽빛으로 푸른 호수를 바라보았다. 관광객들은 쉴 새 없이 계단을 내려와 표를 사고 유람선에 차곡차곡 승선하고 있었다. ―사실이었을까. 나는 눈부신 봄 햇살이 끓어오르고 있는 수면을 바라보며 생각하였다. ―이퇴계와 두향의 사랑은 과연 사실이었을까. 불과 9개월의 짧은 재임기간 동안 퇴계와 기생 두향의 상사(相思)는 과연 무르익을 수 있었을까. 퇴계가 그처럼 다정다감한 풍류객이라 할지라도 두향은 한갓 미천한 신분의 기생.9개월의 짧은 만남이 50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세기의 로맨스가 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이는 과장된 후세의 조작이 아니었을까. 이퇴계는 당대 최고의 거유이자 명신으로 ‘해동공자(海東孔子)’라고까지 불렸던 성인이었다. 그러한 이퇴계가 쉰에 가까운 ‘지천명(知天名)’, 즉 ‘하늘의 뜻을 알았던 나이’때 미천한 기생 두향과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이 가능하였을까. 퇴계언행록에 기록된 대로 ‘남녀간의 사랑이 비도 오고 바람이 부는 만물의 생성(生成)’과도 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퇴계는 과연 엄격한 신분을 초월할 수 있었을까. 만약 퇴계와 두향의 상사가 떠도는 풍문에 불과한 것이라면 나는 지금 헛소문을 따라서 두향의 무덤을 찾아가고 있음이 아닐 것인가. 그때였다. 문득 내 머릿속으로 하나의 상념이 떠올랐다. 그것은 마치 인도 특유의 세습적인 신분제도인 카스트를 능가하는 엄격한 조선의 신분계급 속에서도 비교적 너그럽고 자유로웠던 이퇴계의 에피소드였다. 인간에 대한 박애정신으로 가득 찼던 휴머니스트 이퇴계. 율법과 형식에 초월하였던 자유주의자 이퇴계. 이퇴계의 그러한 면모를 엿보게 하는 야사 하나가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나는 담배를 피워 물며 그 야사의 내용을 더듬어 보았다. 퇴계가 단양의 군수로 부임한 것은 1548년 정월. 그러나 부임한 지 한 달 만에 이퇴계는 뜻밖의 불행을 겪게 된다. 이때의 고통을 이퇴계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몸이 쪼개지듯 아프다. 지탱하기 힘들다. 원통함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퇴계를 이처럼 고통스럽게 하였던 것은 다름 아니라 그의 둘째아들 채가 21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급사하였기 때문이었다. 퇴계가 둘째아들 채의 죽음을 특히 슬퍼하였던 것은 채가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생모이자 퇴계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허씨가 죽어 유모 손에서 고아처럼 자랐기 때문이었다. 성장해서는 퇴계와 떨어져 외할아버지의 농사일을 감독하며 농사꾼으로 외롭게 자랐다. 그런데 더욱 슬픈 것은 정혼을 해 놓고도 혼례를 올리지 못한 채 숫총각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이때의 비통함을 퇴계는 조카사위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하고 있다. “단양군에 와서 좋은 일이라고는 없고 자식을 잃어 병만 더욱 심하다. 오래 있고 싶지 않아서 두세 번 감사에게 사직을 청하였으나 들어주지 않는다.”
  • 儒林(285)-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285)-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택시는 호반을 끼고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이리저리 굽돌아 나가고 있었다. 차츰 호수의 수량이 풍부해져서 주위의 절경과 어우러져 눈에서 비늘이 떨어질 만큼 빼어난 풍광을 연출해 내고 있었다. 한 30분쯤 달렸을까. 운전사는 언덕위 빈터에 차를 세웠다. “장회나루터입니다.” 운전사가 나를 쳐다보며 말하였다. “이곳에서 유람선을 타시면 아마도 두향의 무덤을 먼발치에서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나는 당황하였다. 나루터에서는 옥순봉이나 구담봉 같은 배를 이용해야만 볼 수 있는 단양팔경을 관광객들을 상대로 구경시켜 주는 유람선이 운항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운전사의 말대로라면 아마도 그 과정 중에 두향의 무덤을 먼발치에서나마 볼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두향의 무덤을 스쳐 지나가는 유람선 위에서 바라보기 위해서 이곳을 찾아온 것은 아니잖은가. “한 시간가량 시차를 두고 유람선들이 출발하고 있습니다.” 운전사의 말대로 관광객을 태운 버스들이 서너 대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다. 이제 막 도착한 관광버스에서는 한 떼의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나루터까지 연결된 가파른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짐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과연 언덕길아래 선착장에는 유람선이 서너 척 정박하여 있었다. 아직 이른 철이긴 하였지만 관광객들을 가득 실은 유람선 한 척이 이제 막 뱃고동을 올리며 출발하고 있었다. 나는 일단 나루터까지 내려가 보기로 하였다. 현장에 가서 부딪쳐 보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선착장에는 귀를 찢는 유행가 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막 출발한 유람선을 타고 사라져 버렸고 선착장에는 갓 도착한 사람들만이 옹기종기 모여서 표를 사고 있었다. 나는 선상에 서서 일일이 승객들을 태우고 있는 선원에게 다가가 말하였다. “실례합니다만 두향의 무덤까지 가고 싶은데요.” “두향의 무덤이오.” 선원이 표를 받다말고 큰소리로 내게 물었다. “두향의 무덤을 보고 싶으시다면 유람선을 타십시오. 그러면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게 아니라.” 나는 머리를 흔들며 대답하였다. “나는 따로 배를 빌려 두향의 묘까지 직접 찾아 가고 싶은데요.” 그러자 선원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우리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유람선을 운항하고 있으므로 개인적으로 배를 빌려 드릴 수는 없습니다.” 선원의 말은 정확하였다. 이곳의 선착장은 오직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정기유람선이 운항되는 곳이지 사사로이 특별선이 운항되는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잠깐 기다려 보세요.” 내가 난감한 표정으로 좌석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자 선원은 배에서 내려와 내게 다가와 물었다. “따로 배를 운항하려면 군청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실례지만 어디서 오셨습니까.”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8) 서산 창리 영신제·위도 원당 띠뱃굿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8) 서산 창리 영신제·위도 원당 띠뱃굿

    조상에게 드리는 차례보다 소중히 여기는 제사가 있다. 사람들은 조상 차례가 당연히 중요하다고 여기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유교적 의례가 철저히 요구될 때도 이곳 민중들은 무속적인 굿을 앞 줄에 놓았다.‘동네 제사’라 할 수 있는 마을굿이 그것이다. 지금도 전국의 바닷가에서는 새해 정초만 되면 동제, 동신제, 당산제 따위의 이름으로 마을지킴이를 모시는 제를 올린다.‘못생긴 놈들은 얼굴만 보아도 반갑다.’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오랜만에 똑같이 ‘못생기고’ 낯익은 이웃들이 모여 들었다. 객지로 떠돌다 재산을 몽땅 털어먹고 돌아왔어도, 외항선 선원생활에 몸과 마음이 지쳐 있어도, 당산은 거기 제자리에 우뚝서서 지친 이들을 넉넉하게 품어 주었다. 서해안의 대표적인 설맞이 마을굿을 찾아나섰다. 충남 서산의 부석면 창리 영신제, 태안군 황도의 붕기 풍어굿, 서천군 서면 마량의 도둔리 당제, 부안군 위도의 원당제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마을굿이 설날을 기해 일제히 열린다. 몸이 하나라서 모두 돌아볼 수는 없는 것이 안타깝다. 다행히 각각의 제마다 시간차가 있어 요령있게 일정을 짠다면 두어 군데 정도는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모진 환경이 만든 작품 ‘창리 영신제’ 충남 바닷가에서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창리 영신제는 어쩌면 모진 환경이 만들어낸 ‘작품’일는지 모른다. 천수만 A·B간척지가 조성될 당시 현대건설 간척본부가 부석면의 끝자락인 창리포구에 자리잡았다. 정확하게 공사 중간지점이라서 몸살을 앓았다. 1982년, 처음으로 포구를 찾아 들어갔을 때 한적했던 포구는 중동 공사현장에서 되돌린 엄청난 중장비 덕분에 흡사 기갑부대의 야전사령부 같았다. 얼굴 맞대고 살던 이들끼리 지내던 영신제에 공사장 잡부를 비롯한 외부인의 얼굴도 보이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마을굿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지형이 변했지만, 외딴섬에 자리잡아 최소한 300년 이상 자란 소나무들이 장대숲을 이룬 곳이었다. 당산 꼭대기에는 임경업 장군 내외를 모신 영신당이 자리해 포구를 지켜왔다. 대개의 당산이 그러하듯 이곳의 나뭇가지 하나만 건드려도 탈이 난다. 예전에 비하면 영험이 형편없이 추락한 오늘날에도 함부로 나무를 건드리는 사람은 없다. 섣달 그믐이면 생기복덕을 엄정히 가려서 부정없는 이로 당주를 삼는다. 당주는 부정을 피해 상갓집 문상도 가지 않으며, 추운 겨울에도 얼음물로 목욕재계를 한다. 마을지킴이를 받드는 일인지라 한 치도 마음 놓을 수 없다. 금기는 당주만의 몫이 아니다. 마을 공동체 전체가 성스러운 시간으로 접어든다. 동구와 공동우물에는 금줄을 두르고 황토를 둘러 뿌려 잡귀를 쫓는다. 폭풍 전야의 침묵이라고나 할 고요가 마을을 감싼다. 우스갯소리조차 주고받지 않는다. ●굿당, 에너지 발산하는 해방구 역할 정월 초이튿날, 이윽고 날이 밝으면서 마을 공터에서는 꽹과리 소리 요란하게 새해가 왔음을 알리는 파열음이 터진다. 당줏집 마당에서는 기세를 돋우면서 당줏굿을 친다. 배마다 1개씩 오색기를 앞장 세워 당에 오르는데, 참으로 볼 만한 풍경이다. 당오름 자체가 하나의 경관을 만들어 낸다. 당에 오르면 부정풀이부터 시작해 지토굿, 각시굿, 손님굿, 오방굿 등 각각의 굿거리로 연출되는 영신제가 봉행된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영신제 내내 울려퍼지는 배치기다. 배치기는 만선의 기쁨을 노래하며 ‘배에서 치던 소리’.‘연평바다 널린 조기 양주만 남기고 다 잡아들여라, 에~에헤여~에헤에헤.’ 구성진 목소리가 울려퍼지면 ‘칭칭칭칭’ 징소리로 화답하며 밤새도록 그렇게들 논다.‘흑인들은 동일한 곡조를 밤새도록 반복하면서도 지겹지 않게 놀 곤한다.’고 격찬할 때, 잠시 우리의 배치기도 생각해 볼 일이다. 제3세계의 음악이 대개 그러하듯, 그 단순하게 반복되는 곡조만 가지고도 며칠밤을 지새울 수 있는 음악이다. ●“환경이 변하니 우리라도 뭉쳐야죠” 배치기의 신명은 놀이의 해방력을 웅변하며, 엄청난 에너지로 발산된다. 굿당이 해방적 놀이공간으로 변하며 굿놀이 자체가 한판의 열린 신명으로 폭발하는 것. 창리의 영신제가 그러하며 여타 마을굿이 대부분 그러하다. 무엇보다 푸근한 것은 커다란 가마솥에 족히 두어말은 됨직한 떡국을 끓여서 공동체가 나눔의 잔치를 벌인다는 점. 천수만이 막히고 어장이 시들해지면서 더러는 양식업으로 전환하고, 더러는 횟집 운영으로 버티는 까닭에 예전 같은 떠들썩함은 사라졌다. 그래도 면면히 굿의 맥락을 이어감은 주변 환경이 예전 같지 않음에 대한 역반응일 수도 있다.“자꾸 환경이 변해 가니까 우리라도 똘똘 뭉쳐서 지켜야 허지 않겠어유.” 당주를 대물림해 온 김석준씨의 말이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당주를 대물림 받았으니, 그이처럼 대물림으로 당주를 맡는 이들이 많다. 안타깝게도 지난해까지 당을 지켜왔던 배남복(1924년생) 어른이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그 옛날 당제의 전통을 아는 이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있다. 천만 다행인 것은 전통이란 게 묘한 것이어서 외압을 받으면 소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전통으로 지속, 발전해 나가는 양면성을 지닌다는 점이다. ●핵폐기장에 몸살 앓은 ‘위도 띠뱃굿’ 영신제가 간척으로 몸살을 앓아 왔다면, 위도 띠뱃굿도 핵폐기장으로 몸살을 앓았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핵폐기장 수용 여부로 부안 주민들 간에 골깊은 갈등이 빚어졌고 핵폐기장은 끝내 물 건너 갔지만 위도에는 아직도 그 때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았다. 파장금에서 만난 어떤 주민은 “페리호 사건보다 더 큰 상처”라며 머리를 내저었다. 일부 주민들이 핵폐기장을 유치하겠다고 나서면서 육지 주민들과의 갈등은 물론이고 위도 내에서도 패가 갈렸다. 정부야 손을 떼면 그만이지만 계속 그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주민들로서는 엄청난 재앙이 아닐 수 없었다.“격포항에 들어가도 예전처럼 반가워하는 사람이 없다.”는 한 주민의 말에서 핵폐기장이 남긴 상처를 어림할 수 있었다. 이렇듯 같은 부안군민이되, 전혀 이질적인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마을제사는 지내야 했으므로 몸과 마음을 추슬렀고 저마다 제기의 먼지를 털어냈다. 섣달 그믐밤에는 모두 모여 장단을 맞추며 손발을 가다듬기도 했다. 어김없이 배치기 소리가 바다로 퍼져나갔다.‘황금 같은 내조기야 어낭청 가래질이야/어디 갔다 인제왔냐 어낭청 가래질이야/만경창파 너른 바대 어낭청 가래질이야/질을 잊어 인제 왔냐 어낭청 가래질이야.’ ●당산 높아 오르는 것만으로도 장관 지도책을 보면 전라도 칠산바다 너른바다 위에 점으로 나타나는 섬들. 위도, 치도, 식도, 상왕도 등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 중 가장 큰 섬이 위도로, 칠산어장의 전진기지였다. 파장금에서 시골버스를 타고 가면 곧장 대리에 이른다. 칠산은 조기잡이 어장으로 유명했던 곳. 지난 시절, 한반도 최대의 어장답게 칠산바다 위도에는 지금도 대리의 높은 당제봉에 원당이 있어 칠산바다를 지켜준다. 원당마누라와 장군서낭, 애기씨 등 12서낭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제관을 뽑아 정월 초사흗날 오색 뱃기를 들고, 풍물을 치면서 무당과 제관, 짐꾼들이 모두 정갈한 마음으로 당에 올라 제를 모신다. 높은 당산에 오르는 그 일만 해도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산을 오르다 보면 대리포구는 물론이고 칠산바다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 마을공동체가 신년맞이를 이처럼 집단적으로 맞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다. 성주굿, 산신굿, 서낭굿, 깃굿 등 원당굿을 마치면 배마다 돌아가며 축원 덕담과 풍어를 기원해 준다. 굿이 파하면 하산하여 용왕밥을 던지고서 ‘주산돌기’라 하여 마을의 요소요소 지킴이들에게 고하는 절차를 밟는다. 이 때에 맞춰 앞바다에서는 띠배를 만들어 용왕제를 올린다. 띠풀과 짚, 싸리나무 등을 함께 엮어 만든 띠배에는 과일, 떡, 밥, 고기 등 제물을 넣고 허수아비를 여러개 태운다. 물론 돛대도 세우고 닻도 만들어 배 형체를 갖춘다. ●떠나가는 배… 모든 액 싣고 멀리 가기를 띠배는 망망대해로 떠나간다. 저마다 한해 소원을 비는 가운데 온갖 액운을 가득 싣고서 바다로 먼 길을 떠난다. 이때쯤이면 바다가 어둠에 잠겨들고 제축을 끝낸 마을은 다시 일상의 평온함에 묻힌다. 이같은 행위를 띠뱃놀이라 하였으니, 본디는 띠뱃굿이 정확한 명칭이리라. 위도뿐만이 아니라 제주도를 비롯하여 평안도 바닷가에도 이런 유형의 굿놀이가 있었다. 액을 실어보내고, 사해 용왕을 달래서 만선의 풍요와 안전을 기원하려는 신심이 깃들어 있다. 위도 어업의 몰락과 더불어 소박한 민중의 의례조차 점차 사라지고 있다. 마음속으로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를 부르며, 그 띠배에 핵폐기장 문제를 비롯한 모든 재액도 함께 실려 가기를 기원했다. 창리나 위도 어민이 실제 뱃전에서 불러댈 힘찬 배치기를 언제나 들을 것인가. 영영 들을 수 없는 것은 아니며, 또한 이렇게 마을굿에서나 들어야 하는 것인가. 망연한 바다는 말이 없다. 한때 전성기를 구가했던 중선배가 바다 어딘가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만 같은 천수만과 칠산바다에 그 옛날 고기떼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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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선 화재… 1명 사망·5명 실종

    24일 오전 1시10분쯤 제주도 서귀포시 남쪽 40㎞ 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북제주군 한림선적 23t급 연승어선 제23금성호(선장 이종대·49·북제주군 한림읍)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 선원 박진배(48·서귀포시 서귀동)씨가 사망하고 5명이 실종됐다. 8명의 선원중 선장 이씨와 기관장 강범진(43·서귀포시 서귀동)씨 등 2명은 화재 발생 35분 뒤인 오전 1시45분쯤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제3대광호에 의해 구조됐다. 화재가 발생하자 제주해경 경비함과 해군 제주방어사령부 함정 6척이 사고 현장에 도착, 진화 및 인명 구조작업에 나섰으나 사고선박은 화재발생 4시간 만에 침몰했다. 해경과 제주방어사령부는 경비함과 헬기를 추가로 투입, 실종자 수색작업을 계속하는 한편 정확한 화재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실종자는 ▲최승남(45·북제주군 한림읍) ▲이승추(37·〃 조천읍) ▲배대효(47·남제주군 성산읍)▲김성훈(34·〃 〃) ▲이문호(34·〃 〃) 등이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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