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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긴장의 EEZ’ 재발 가능성

    울산앞 바다에서 이틀 동안 벌어졌던 사상 초유의 한·일 경비정 해상 대치사태는 앞으로 한국과 일본 어선들의 EEZ 침범 사례에 교훈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해사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어선의 일본구역 EEZ 침범논란에서 비롯된 이번 한·일 해상대치는 한·일사이 최근 불편한 외교상황과 맞물리면서 자존심 겨루기로 비화되는 바람에 현장에서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으로 풀이했다. 사태 발단에 대해서는 대체로 우리나라 어선이 잘못했다는 의견이다. EEZ를 넘어 항해는 자유롭게 할 수 있으나 어업이나 자원채취를 해서는 안되며 당사국이 EEZ 침범을 이유로 검문을 요구하면 응해야하는데 신풍호가 불응한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더구나 신풍호가 일본 보안관 2명을 태운 채 우리나라 쪽으로 달아나는 바람에 일본 순시선이 끝까지 따라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일본측 순시선도 단속과정에서 과잉행위를 해 사태를 확대시켰다. EEZ구역 안에서 조업하는 모습을 직접 보지 않은 상황에서 어선에 보안관이 강제로 올라타 시설물을 부수고 어민을 폭행까지 한 행위는 분명히 잘못됐다는 것이다. 해경 외사계 관계자는 다른 나라 어선이 EEZ를 침범했을 경우 추격하다 자기나라 해역으로 달아나 버리거나 현장에서 검문을 해 조업증거가 드러나지 않으면 주의를 촉구하고 마무리하는게 통상적인 관례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경우 일본 보안관이 어선에 강제로 올라타 폭행을 하고 우리나라 어선도 보안관을 태운 채 우리나라쪽 해역으로 도망오는 바람에 사태가 커졌다는 해석이다. 해경측은 신풍호가 필사적으로 도주하게 된 데는 최근 일본이 EEZ 침범행위에 대해 강경대응키로 내부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져 어민들이 나포되면 조업여부와 상관없이 일본으로 압송돼 담보금을 내고 풀려나야 하는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판단했다. 해양대학 법학부 이경호 교수는 “이번 사태의 경우 국제관례로 볼 때 양측관련자가 잘못된 부분을 서로 사과하고 우리나라 어선과 선원은 당사국인 우리나라가 데려와 법에 따라 처리한 뒤 결과를 일본측에 통고해 주는 게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으로 판단된다.”면서 “두 나라가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원만한 방향으로 해결한 것은 앞으로 한·일관계를 위해서도 잘된 일”이라고 말했다. EEZ침범여부로 검문에 응하지 않고 달아나다 붙잡히면 ‘배타적경제수역에서의 외국인 어업 등에 대한 주권적 권리행사에 관한 법’에 따라 벌금형 처벌을 받게 된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양국 대형경비정 출동…긴장고조

    우리나라 해경 경비정과 일본 순시선이 울산 간절곶 앞 바다에서 대치하기까지 울산 앞 바다 공해상에서는 한밤중에 2시간 넘게 우리나라 어선과 일본 순시선 사이 추격전이 벌어졌다. ●韓 “한국에 사법처리권” 지난달 31일 오후 11시 27분쯤 일본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이 부산시 기장군 대변항 동방 31마일 해상에 있던 우리나라 장어 통발어선 신풍호가 EEZ 일본구역을 3마일쯤 침범 한 것이 레이더로 확인됐다며 배를 멈추라고 명령한 뒤 나포하려 했다. 150t급 순시선은 우리나라 수역쪽으로 항해하려는 신풍호에 가까이 접근해 보안관 2명이 11시 35분쯤 강제로 올라탔다. 우리나라 어선에 올라탄 보안관 2명은 배를 멈추려고 조타실을 점거하려다 선원들이 문을 닫자 조타실 문 유리를 깨고 갑판장 황갑순(39)씨를 폭행, 황씨는 울산 굿모닝 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신풍호는 일본 순시선의 추격을 피해 우리나라 수역으로 도망오며 이날 밤 0시 45분쯤 이를 해경에 신고했다. 해경은 즉각 경비정이 출동해 오전 1시 55분쯤 간절곶 앞 공해상에서 신풍호와 추격해온 일본 순시선과 마주쳤다. 해경 경비정은 신풍호 옆에 정박해 밧줄로 묶었으며 일본 순시선도 반대편에 배를 대 역시 밧줄로 묶어 서로 어선을 끌고가지 못하도록 한 뒤 대치에 들어갔다. 양측은 경비정과 순시선을 보강해 각 3척씩 배를 묶었다가 오후 5시쯤 다시 1척씩으로 줄였다. 밧줄을 묶고 있는 1척씩 외에 현장 주변에 우리나라는 경비정 5척 일본은 순시선 6척을 대기시켰다. 우리나라가 대치 초반 1500t급 경비정을 현장에 배치하자 이에 맞서 일본측도 오후 7시 25분쯤 3000t급 순시선을 출동시켰으며 우리나라 해경도 오후 9시쯤 부산해경 소속 3000t급 경비정이 출동했다. ●日 “선장 체포·배는 나포해야” 대치상황이 벌어진 뒤 우리나라에서는 김승수 울산해경서장 등 5명, 일본에서는 대마도 해상보안부 구난과장 등 4명이 현장에 출동, 우리나라 1503호 경비정(1500t급)에서 협상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신풍호를 해경에서 검거했기 때문에 사법처리권이 우리나라에 있다며 일본 순시선측에 돌아가라고 요구했다. 또 일본 보안관이 신풍호 유리를 부수고 선원을 폭행한 데 대해 강력 항의하고 우리어선 위반행위가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는 사실도 통보했다. 이에 대해 일본측은 신풍호 선장을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배를 나포해 가야 한다며 버텼다. 한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갑판장 황씨는 “선박 냉각수가 고장나 부산 대변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선장의 말을 듣고 키를 대신 잡고 잠시 조는 틈에 갑자기 조타실쪽에 불빛이 환하게 비치고 일본 순시선 1척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보안관들로부터 헬멧과 봉 등으로 몇분간 마구 맞았다.”고 주장했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韓·日 경비정 해상대치 장기화

    韓·日 경비정 해상대치 장기화

    1일 울산시 울주군 간절곶 앞 16마일(28.8㎞) 해상에서 우리나라 해경 경비정 6척과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7척이 우리나라 어선 1척을 서로 데려가려고 장시간 대치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이해찬총리 “사태 심각” 이번 사건이 조기에 해결되지 못하고 장기화할 경우 자칫하면 한·일간 정부차원의 외교분쟁으로 비화하는 심각한 상황이 우려된다. 이와 관련, 이해찬 국무총리는 이날 저녁 열린우리당 의원들과의 당정간담회에서 “사태가 심각하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사건은 일본 순시선이 31일 밤 11시 27분쯤 부산시 기장군 대변항 동쪽 31마일 해상에 있던 경남 통영선적 77t급 장어통발어선 502 신풍호(선장 정욱현·38)를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침범해 조업한 혐의로 나포를 시도하면서 비롯됐다. 일본 순시선은 순풍호에 가까이 접근한 뒤 보안관 2명이 올라 탔고 이 과정에서 어선 유리창을 부수고 우리나라 어민 2명을 폭행했다. 순풍호는 일본 순시선의 추격을 피해 일본 보안관을 태운 채 우리나라 수역으로 항해하며 이 사실을 해경에 신고,1일 오전 01시 55분쯤 간절곶 앞 해상에서 우리나라 해경 경비정과 추격해온 일본 순시선이 순풍호를 사이에 두고 대치를 시작했다. 우리나라 해경 경비정과 일본 순시선은 순풍호를 서로 끌고가지 못하도록 좌우에서 각각 밧줄로 묶은 채 울산해경 김승수 서장과 일본 대마도 해상보안부 구난과장 등이 이날 밤 늦게까지 바다 위에서 협상을 벌였다. 해경은 이날 오후 5시 40분쯤 신풍호에 타고 있던 선원 8명을 우리측 130경비함으로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등 신병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측과의 충돌은 없었다. 울산 강원식·김상연기자 kws@seoul.co.kr
  • EEZ침범 中어민에 해경4명 부상

    해양경찰관 4명이 서해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불법조업 중인 중국 어선을 나포하는 과정에서 중국 어민들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중·경상을 입었다. 26일 인천해양경찰서에 따르면 해경 경비함 ‘501호(500t급)’는 지난 24일 오전 1시30분쯤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 서방 27마일 해상에서 중국 어선 2척이 우리측 EEZ 1.5마일을 침범한 사실을 확인하고 나포에 나섰다. 해양경찰관과 전경 12명은 보트를 타고 중국 어선 2척에 접근, 어선 1척은 제압했으나 다른 어선에 타고 있던 중국 어민 18명은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검거조 팀장인 최모 경사가 쇠파이프에 얼굴을 맞아 쓰러졌고 중국 선원들은 최 경사를 바다에 던졌다. 최 경사가 바다에 빠지자 나머지 대원 5명은 최 경사를 구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고, 다른 어선에 있던 대원 6명도 보트를 타고 물에 빠진 대원들을 건져올렸다. 중국 어선들은 이 틈을 타 도주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도심속의 출가-안국선원에 들다

    도심속의 출가-안국선원에 들다

    ‘나는 누구인가?’도시 삶에 매몰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한번쯤 품어봤음직한 생각이다. 톱니바퀴처럼 틀에 박혀 돌아가는 삶을 벗어던지고 싶을 때도 한두번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직장이나 가정생활을 뒤로하고 무작정 산사로의 일탈을 감행할 수도 없는 일. 이런 사람은 깊은 산사에서 대중을 향해 도심으로 내려온 간화선(看話禪·화두를 붙잡고 좌선 등에 정진해 깨달음을 얻는 참선법)을 만나보면 좋을 듯하다. 요즘 웰빙 바람을 타고 유행하는 명상이나 요가와는 달리 선지식이 높은 스님으로부터 화두를 받고, 그로 인해 생긴 의단(疑團·의심덩어리)을 참선을 통해 풀어나가는 최고의 마음 공부법. 조계종 고승들의 수행법이지만 종교적인 색채가 적어 비종교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깊은 산사에서 깨달음을 전파하기 위해 도심속으로 내려온 간화선을 체험하러 떠나자. ●도심속으로의 출가 ‘착, 착, 착‘ 오전 10시 서울 가회동 안국선원. 죽비 소리가 4층 법당 안에 세번 울려 퍼지자 선원 전체가 이내 침묵속에 빠졌다. 법당에는 초심자 법문을 끝내고 하안거에 들어간 600여명이 참선을 하기 위해 발디딜 틈없이 빼곡히 모였지만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단정하게 반가부좌를 틀고, 입선(入禪)에 들어간 사람들의 표정은 평온함 그 자체다. 간화선에 갓 입문한 초심자 선방 등 2층에 있는 조그만 선방들은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의 북적거림으로 다소 소음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자세를 흐트리지 않았다. 선원은 마치 깊은 산속의 산사를 도심 속에 옮겨 놓은 듯 고요했고, 수행정진에 빠진 사람들은 사뭇 진지해 보였다. 하안거에 들어간 사람들의 나이와 성별, 직업 등은 천차만별. 최근 웰빙 바람을 타고 명상과 요가 등 자신을 닦는 수행법이 인기를 끈 탓인지 젊은 직장인들이 눈에 띄게 많다. 신도 1500여명 중 30∼40대 젊은 직장인과 대학생이 신도의 3분의 1 가량인 500여명에 이른다. 간화선은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정신적인 깨달음을 주는 것. 참선을 통해 스스로 번뇌를 깨치고 삶의 근원적인 답을 구하는 것이며, 마음의 평안함을 되찾게 만든다. 특허법인 코리아나에 근무하는 김관일(43·법명 인봉)씨는 간화선에 입문했던 당시가 아직도 생생하다. 입문 첫날. 선원장 스님인 수불스님은 법문 말미에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굽혔다 폈다 하면서 ‘누가 이것을 움직이는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를 비롯해 화두 공부를 위해 모인 초심자들 사이에는 “손이 움직이는 것이다.”“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라는 대답이 쏟아졌다. 그러나 스님은 “그렇다면 죽은 송장도 있는데, 그 손은 왜 움직이지 못하는가.”라며 반문하면서 “머리가 없다 생각하고, 다시 답을 찾으라.”라는 질타가 이어졌다. 그는 이후 퇴근후 밤새워 참선을 하면서 알 수 없는 화두 타파에 나섰지만 온몸이 답답해지고 알 수 없는 괴로움이 밀려왔다. 스님과의 화두 공부가 일주일을 넘어서자 어느 순간 가슴에 뭉쳤던 갑갑함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 지기 시작했다.“잉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폭포를 만나면 그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야 용이 된다.”는 스님의 말 속에서 어렴풋한 답을 찾았다. 불교 용어로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뚫었다.’거나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진일보한다.’라는 그 느낌이 몸으로 느껴졌다. 그는 “간화선을 접한 뒤 직장일에 대한 스트레스와 짜증이 줄고, 아내와 가족에 대한 이해심도 높아졌다.”고 회고했다. 간화선에 입문하면 대부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대학생 이아람(23·한세대 피아노 전공 3년)씨도 “마음의 자제력과 자신감이 생겼다.”면서 “연주회 무대에서 전혀 떨리지 않고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변호사 김기현(32)씨도 “나를 괴롭히던 온갖 번뇌가 빠져 나가고, 내 자신에게 무한한 정신세계가 있음을 깨닫게 됐다.”고 체험담을 이야기했다. ●깨달음을 찾아 산사에서 대중 속으로… 간화선은 역사가 1500여년을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된 수행법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수행법이다. 지금까지는 선지식을 쌓은 불교계 고승들이 대개 산사에서 은둔 생활하며 홀로 수행을 해온 탓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 명상이나 요가에 비해 난해함과 더불어 신비함까지 덧붙여 있어 기초 공부 없이 일반인들이 수행하기란 쉽지 않다. 간화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선지식이 높은 스님에게서 화두를 받아야 하고, 화두를 타파하는 과정도 선승의 지도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명상이나 요가와는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스님이 아닌 일반인들이 간화선을 접한 것은 불과 16년전. 안국선원을 만든 수불 스님이 일반인들도 일상 생활을 하면서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 89년 부산에 안국선원을 연데 이어 96년 서울에도 선원을 열었다. 이에따라 산사의 참선법이 도심으로, 대중 곁으로 다가 온 것이다. 깨달음을 얻으려면 안국선원에 초심자 법문을 신청해 한달 가까이 공부를 해야 한다. 일반인들이 초심자 법문을 신청하면 지장제일인 매월 음력 18일 선원장 스님인 수불 스님의 법문을 들은 뒤 관은제일 다음날인 음력 4일 수불스님으로부터 화두를 받는다. 화두는 ‘누가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인가.’ 등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지만, 수행자들은 이 화두를 안고 의심을 거듭해 마침내 의심이 툭 터지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스님으로부터 받은 화두를 의심하고 나아가 체험하는 모습은 수행자마다 천차만별. 화두에 잠긴 초심자들은 업이 녹아 내리는 듯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기도 한다. 수행법은 좌선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선잠을 자거나 걸어 다니면서도 가능하다. 수행자들이 화두 공부방에서 화두 공부를 마치는데만 3∼10일. 이후 법명을 받게 되고 선방에서 참선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불교계 수행법이지만 비종교인이나 타종교인들도 수행에 참여할 정도로 종교적인 색채도 크지 않다. 수행자 중에는 다른 종교를 믿던 사람도 많다. 김성부(64·은암·삼흥컨설팅 대표)씨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기독교 신자. 동국제강 계열 금융회사의 사장을 지냈다. 그는 “금융계 생활 당시에는 비가 와도 물기가 스며들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삭막한 생활을 했는데 간화선을 배운 뒤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고 말했다. 또 천주교 수녀들도 가끔 이 곳에서 수행을 하고 가기도 한다. 안국선원은 특히 “티베트 불교나 남방 불교에 뿌리를 둔 서구식 명상이나 요가 등이 웰빙 바람을 타고 쉽게 상업화됐다.”며 상업화를 지극히 경계한다. 이 때문에 초심자 법문을 듣거나 참선하는데 따로 돈을 받지 않는다. 신도회와 거사회, 보살회 등에서 자체적으로 선원을 운영한다. 이 곳의 또 다른 특징은 산사에서 하는 것과 같이 점심에 발우공양도 제공된다. 김치와 나물, 국 몇가지에 불과하지만 여느 식당 못지않다. 정성이 담겨 맛을 더한다는 게 수행자들의 말. 수행자들이 스스로 조를 나눠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하루 600명 이상 분의 식사를 마련한다. 참선은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대개 새벽반(오전 4시30분∼6시30분), 오전반(오전 10시∼낮 12시), 오후반(오후 2∼4시), 저녁반(오후 7∼9시)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수행시간은 50분 참선에 10분 휴식. 하루 2시간 정도 참선을 하게 되는데 집에서 수행을 해도 된다. 초심자 법문은 서울 안국선원(02-732-0772), 부산 안국선원(051-583-0993)이나 인터넷 홈페이지(www.ahnkookzen.org)로 신청하면 된다. 글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백혈병어린이돕기 자선공연 능인 스님

    백혈병어린이돕기 자선공연 능인 스님

    “신바람나게 찬불가를 부르며 어려운 이웃들도 조금이나마 돕겠습니다.” ‘노래하는 승려’로 알려진 능인(52) 스님이 ‘부처님 오신날’(15일)을 앞두고 10일 거리로 나섰다.‘백혈병어린이 돕기’ 모금을 위한 자선공연을 서울 인사동에서 갖게 된 것. 지난 3년여간 양로원·고아원·노숙자처소 등을 돌며 여러차례 위문공연을 해왔지만 단독 모금 콘서트는 처음이다. 능인 스님은 생활포교를 위해 법어 대신 대중적인 찬불가를 택했다. 트로트와 디스코, 발라드풍으로 찬불가를 직접 작사·작곡한지 벌써 23년째다. 그는 어려운 집안사정으로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음악공부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독학으로 불교경전을 공부하다가 46세에 비로소 금강선원에서 출가한 그가 만든 노래는 친숙한 멜로디는 물론, 교훈적인 가사가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능인 스님은 “수행과 일상생활에서 떠오르는 악상을 흥얼거리다가 가사를 붙여 곡을 만들었다.”면서 “일반인들이 친근하다며 따라부를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주변의 권유로 그동안 만든 노래 중 50곡을 추려 ‘심향(心香)’이라는 제목의 앨범을 3집까지 냈다. 대표곡인 ‘우리 하나가 되자.’와 ‘우리는 형제’,‘웃으며 삽시다.’,‘구름처럼 강물처럼 흘러가는 우리 인생’,‘불신의 벽을 부숴버리자.’,‘님이시여’ 등은 가족간 우애와 중생의 화합, 유혹을 뿌리치는 내용 등을 담았다. 능인 스님은 “그동안 단독 모금공연은 감히 생각지도 못했는데 보다 실질적인 복지포교를 위해 결심하게 됐다.”면서 “작은 도움이라도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어디든지 달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금공연을 위한 시간·장소 허가를 받는 것이 쉽지 않다고 걱정한다. 그는 “앞으로 민요·룸바·왈츠·랩 등으로 만든 찬불가도 선보일 것”이라면서 “궁극적으로는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에 주력하는 복지사찰을 세우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우리가 하나가 되자 능인 우리가 하나가 되자 우리 한마음 되자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우리 하나가 되자 이세상 모든일이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 한마음 한뜻이 된다면 무엇이 두려우랴 그러므로 가장 어려운 것은 우리 모두 하나가 되는것 이것이야 말로 우리에겐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일인 것을…
  • 조계종 ‘간화선’ 지침서 나왔다

    불교조계종 스님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 내려온 핵심 수행법인 간화선(看話禪)이 최초로 문서화돼 대중화와 국제화를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조계종은 3일 오전 서울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에서 간화선 수행지침서인 ‘간화선’(조계종교육원刊 1만 5000원) 편찬을 기념한 봉정법회를 열었다. 산중에 갇혀 수행에 전념하는 선원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에 구두로만 전해져온 간화선 수행법이 체계적으로 정리, 활자화된 것은 조계종 사상 처음이다. 고려 후기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간화선은 부처님과 같은 큰 스님들이 제자들에게 화두(話頭)를 근거로 수행에 정진, 깨달음을 얻어 실천하도록 가르친 수행법. 말과 문자로만이 아니라 실행을 중시함으로써 종단의 근간이 되는 수행법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선원마다 간화선을 문서화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기록되지 못하다가 불교 수행에 대한 대중의 욕구가 높아지면서 간화선의 문서화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다른 수행법보다 깨달음으로 가는 지름길이자 정법인 간화선을 널리 알림으로써 선원의 대중화를 앞당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2002년 8월 총무원 기획실과 교육원 불학연구소가 선원장 스님들을 설득, 편찬에 착수했다.1년간 논의 끝에 2003년 8월 전국선원수좌회가 ‘간화선 수행지침서 편찬위원회’를 발족, 불학연구소와 공동으로 10여 차례에 걸친 편찬회의를 거듭한 결과 약 3년 만에 결실을 보게 됐다. 지침서는 간화선의 기초수행 등을 담은 ‘기초단계’와 화두의 참구, 병통의 극복, 일상생활에서의 화두 참구법 등이 실린 ‘실참단계’, 점검과 인가 등을 기술한 ‘깨달음의 세계’ 등 크게 3부로 구성됐다. 불교사에서 처음으로 고우·무여·혜국·설우·의정 등 대표적인 선원장 스님들이 한자리에 모여 논의, 집필한 점도 주목된다. 불학연구소 관계자는 “화두를 공부하는 수행자는 물론, 수행을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주저했던 재가불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조계종은 간화선 대중화를 위한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며, 홈페이지에 간화선에 대한 각종 정보를 담은 코너도 만들기로 했다. 또 간화선의 정통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내년 중 중국어·일본어 등으로 번역, 국제적인 전문사이트를 운영하는 등 간화선의 세계화도 꾀할 계획이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물질 아닌 참선만이 정신의 궁핍 치료”

    “디지털시대의 과학과 물질만으로는 정신적인 궁핍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끊임없는 수행과 참선을 통해 지혜를 얻은 자들이 모여야 인간평화, 세계평화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인 종산 스님이 ‘부처님 오신날’(15일)을 앞둔 3일 청주 보살사에서 기자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지난해 4월 원로회의 의장으로 선출된 지 1년여 만에 처음으로 지난 50여년간 쌓아온 수행담과 대중을 향한 가르침을 전했다. 종산 스님은 “기계문명이 발전하고 있지만 인류는 정신적으로 궁핍할뿐 아니라 물질적 불평등도 여전하다.”면서 “우리가 고통받고 있는 오늘의 삶은 눈에 보이는 욕심만 추구해온 데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나와 남, 나와 다른 세계는 늘 함께 공존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면서 “자신이 처한 현실에 만족하고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끊임없이 수행할 때 행복은 찾아온다.”고 강조했다. ●“복을 부르려면 혀·눈·귀 맑아야” 종산 스님은 또 “분쟁과 갈등으로 얼룩진 세계는 평화를 간절히 원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면서 “세계인·국민·불자들이 불교 참선·수행을 통해 반야지혜를 열어야 하며, 보편타당한 반야지혜가 열린 분들이 정치·사회·문화활동에 참여해야 셰계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수행을 원하는 대중들을 향해서는 “책만 공부할 것이 아니라 5분이라도 참선해야 하며,24시간 중 아침에 일찍 일어나 30분이라도 수행하면 편안한 마음을 갖게돼 행복이 온다.”면서 “특히 복을 부르는 ‘삼바라밀’을 지키면 바라는 소망을 모두 이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삼바라밀’이란 망설(妄舌·교만한 마음으로 진실치 않은 말을 하는 것)·망안(妄眼·부정적인 눈으로 인간과 매사를 어긋나게 보는 것)·망이(妄耳·달콤한 유혹에 솔깃해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에 현혹되지 않는 지혜로서, 맑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듣고 말하는 노력을 의미한다. ●“수행해보니 나보다 못한 스님 없어” 올해로 81세를 맞은 종산 스님은 출가 이후 해인사·통조사·동화사·범어사 등 전국 대표 선원에서 수행하면서도 한번도 종단내 주지직은 물론, 어떤 직책도 맡은 적이 없다. 그만큼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수행에만 전념했던 것이다. 특히 범어사에서 수행할 때는 하루에 죽 한그릇만 먹으며 졸음을 쫓기 위해 판자에 못을 박고 정진한 것으로 유명하다. 종산 스님은 “수행 속에서 화두의 시작과 끝이 없는 무한 경계를 만났다.”면서 “이 세상에 나보다 못한 스님이 없고 이 세상 어떤 사람도 나보다 더 공부를 못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종산스님 ‘1000원 세뱃돈’ 영험 소문도 종산 스님은 연말연시에 시민·불자들에게 특별한 세뱃돈 1000원을 보시한다.‘중생에게 부처님의 가피가 흠뻑 내리기를 축원하는 의미’에서라고 한다. 종산 스님의 세뱃돈은 ‘영험’이 있다고 소문이 나 때마다 종교·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보살사가 붐빈다. 최근 조계종에 대한 비판에 대해 종산 스님은 “먼저 내 허물을 보고 참회하고 작은 것부터 실천하며, 계율을 목숨처럼 여겨야 한다.”면서 “서구사회에서 달라이 라마가 큰 역할을 한 것처럼 한국 선불교도 막중한 책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종단의 돈 안쓰는 선거를 위해 선거법 개정을 추진해야 하며, 승풍을 진작하고 승단이 화합해 수행자들이 주지·원장·종회의원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좋은 화상을 찾아 공부해 존경받는 스님들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 청주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불법조업 중국어선 4척 어민들이 잡아 해경에 넘겨

    인천 연평도 어민들이 1일 북방한계선(NLL) 남방 180m 해역에서 불법 조업 중인 중국 어선 4척을 7시간동안 억류하다 인천 해양경찰서로 넘겼다. 해경은 중국 선원을 영해 및 접속수역법 위반 혐의로 입건할 방침이다. 인천 해경에 따르면 연평도 꽃게잡이 어선 30여척은 이날 오전 10시50분쯤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북서쪽 0.4마일 지점에서 중국 어선 4척을 에워싸고 연평도로 예인해 왔다. 중국 어선은 30∼50t급 형망어선으로 선원 25명이 타고 있었다. 연평도 어선들은 이날 조업을 나갔다 중국 어선이 보이자 선박 통신망을 이용, 실력행사에 나서기로 뜻을 모았다. 한꺼번에 조업구역을 벗어나 NLL 남방 180m 지점까지 쫓아가 중국 어선을 붙잡았다.NLL 남방 2마일 해역은 해군조차 접근이 제한된 곳이다. 해군은 어선의 집단행동을 감지하자마자 고속정 4척을 투입했지만 동시에 움직이는 30척을 막지 못했다. 어민들은 한때 중국 선원을 강제 억류하고 해군의 인계 요청을 거부했었다. 중국 어선의 ‘싹쓸이 조업’으로 극심한 꽃게 흉작이 계속되자 어민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인천지역 꽃게 어획고는 2002년 1만 4281t(1180억 4000만원),2003년 6547t(829억 7000만원), 지난해 1390t(292억 8000만원)으로 2년 전에 비해 10분의1 수준으로 떨어졌다. 중국 어선들이 남북 상황을 악용,NLL을 넘나들며 꽃게 등 어족자원을 싹쓸이하기 때문. 낮에는 NLL 위쪽에서 조업하다 밤에 해군의 감시를 피해 한계선을 넘고 있다. 최율 연평어민회장은 “해경이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면서 “앞으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우리 스스로 중국 어선에 대해 강력히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승객들 ‘공포의 2시간’

    여객선이 운항 중 침수돼 승객 등 170여명이 2시간 넘게 불안에 떨다 되돌아오는 사고가 일어났다. 29일 오후 4시40분쯤 부산 조도 동남쪽 10마일 해상에서 부산과 일본 후쿠오카를 오가는 미래고속 소속 쾌속선 코비5호(267t·선장 박근웅)가 정체불명의 물체에 부딪혔다.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배는 오른쪽으로 30도 기울어 기관실과 객실 일부가 침수됐다. 사고가 나자 부산해경 경비정 10척, 해군 3함대사령부 고속정, 경비정 4척, 해경헬기 2대 등이 투입돼 2시간여만에 승객들을 구조했다. 승객 이은희(27·여·부산 사하구 감천동)씨는 “갑자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멈췄고 점점 기울어져 ‘이제 죽는구나.’ 여겼다.”면서 “또 사고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5분 뒤에야 나와 사람들이 한동안 공포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김화영(26·여·부산 영도구 동삼동)씨도 “배가 부딪히자 사람들이 튕겨 나가고 화물까지 마구 쏟아지져 아수라장이 됐다.”고 말했다. 사고당시 선박은 시속 80㎞로 항해중이었으며 선원 7명과 승객 163명 등 170명이 타고 있었다. 승객들은 해경 경비정을 타고 이날 오후 7시쯤 부산으로 돌아왔으며 사고선박은 부산항으로 예인됐다. 해경은 선장 박씨의 말에 따라 고래, 또는 나무같은 대형부유물과 충돌한 것으로 보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인사]

    ■ 정보통신부 ◇국장급 파견△정보통신정책연구원 盧榮圭 ■ 청소년위원회 ◇국장급 전보△활동복지단장 車政燮△청소년보호단장 金斗顯△정책홍보관리관 직무대리 全爀熙◇과장급 전보△행정지원팀장 丁君植△정책홍보관리관 혁신인사기획팀장 申鉉斗△청소년정책단 정책총괄팀장 任寬植△〃 참여개발팀장 朴金烈△〃 교류문화팀장 宋正根△활동복지단 활동기획팀장 安星珍△청소년보호단 보호기획팀장 千相基△〃 청소년성보호팀장 李京垠△정책홍보관리관 재정기획팀장 직무대리 金錫秉△활동복지단 인권폭력대책팀장 〃 金捧浩△청소년보호단 생활환경팀장 〃 崔圭鐘 ■ 수협중앙회 ◇전보(부장급)△회원지원부장 蔣斗時△상호금융〃 金興燮△조합자금〃 徐基桓△경영개선지원〃 宋基春△홍보실장 韓明燮△어업정보통신본부장 李禮薰△연수원장 朴豊圭△수산경제정책연구원 河元埈 (팀장급)△선원관리단장 李圭相△경인공제보험지부장 表應植 ■ 대한건설협회 ◇승진△정책지원본부장 김영덕 ◇전보△기획홍보실장 김기덕△기획팀장 이충렬△홍보팀장 강해성△업무혁신팀장 사상섭△업무지원팀장 이승남△산업제도팀장 조준현△SOC민자팀장 안광섭△회원지원팀장 황재수△기업평가팀장 진장욱△계약제도팀장 한창환△중소기업팀장 이재식△국제협력팀장 신종수△조사금융팀장 김관수△기술제도팀장 김국현△주택지원팀장 최상근△안전환경팀장 한상준△원가조사팀장 김근성△건설하도급분쟁조정협의회 간사 박흥순△외국인산업연수단 국장 홍갑표 ◇신규 임용△기술환경본부장 천태삼 ■ 한화기술금융 △투자본부장 朴興俊
  • [종교플러스] 통도사 서운암 ‘제4회 들꽃축제’

    경남 양산의 통도사 서운암(주지 성파 스님)은 22∼29일 무위선원 특별무대 등에서 ‘사람의 꽃! 인연의 꽃!’이라는 주제로 제4회 들꽃축제를 연다. 행사의 백미는 서운암 인근에 핀 금낭화, 할미꽃 등 50여 종으로 꾸며진 들꽃길을 걷는 것. 서운암은 1만여 평의 꽃밭 사이로 다양한 꽃길을 조성해 관람객들이 들꽃과 한층 가깝게 만날 수 있도록 했다.22일 전야제에 이어 23일 오후 3시 개막법회가 열리고, 같은 날 오후 8시에는 주경중 감독의 예술영화 ‘동승’이 대형스크린을 통해 상영된다. 기획전시로 ‘서양화가 김창한의 통도사 홍매’전(22∼24일), 한국화가 이상열의 ‘서운암 대밭에 부처님 꽃이 피다’전(27∼29일) 등도 마련했다. 축제기간 관람객들에게는 ‘웰빙 들꽃 비빔밤’ 점심을 무료로 제공한다.(055)382-7094.
  • [종교플러스] ‘한암 대종사 선양 수행학림’ 개최

    문수성지 오대산 월정사(주지 정념 스님)는 불교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한암(漢岩ㆍ1876∼1951) 대종사 탄신일(5월5일)을 맞아 5월 5∼6일 경내 적광전 등에서 ‘한암 대종사 선양 수행학림’을 개최한다. 행사는 삼학균수와 승가오칙(僧伽五則, 선·염불·간경·의식·수호가람)의 수행법을 널리 편 한암 대종사의 사상을 재발견하고 한국불교의 바람직한 수행자상을 정립하기 의한 것. 철야 용맹정진할 불자 32명을 초청해 심득수행(心得修行)토록 한다. 무여 스님(축서사 선원장), 현해 스님(동국대 이사장), 정념 스님(월정사 주지), 나우 스님(상원사 주지) 등이 지도스님으로 나선다.(033)332-6664∼5.
  • 상습폭행 아버지살해 여중생 선처 호소

    알코올 중독으로 상습적인 가정폭력을 일삼던 40대 아버지를 목졸라 살해한 여중생 이모(14·강원도 강릉시)양에 대한 네티즌들의 선처 요구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양을 구속한 강릉경찰서 인터넷 홈페이지(http:///kn.kwpolice.go.kr) 자유게시판에는 사건 발생 이후 1500여건이 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네티즌 이정훈씨는 “두 아이의 아빠인 나도 이양 소식을 듣고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어린 아이의 밝은 장래를 생각해서라도 제발 선처해 달라. 나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세 아이의 엄마라는 정귀례씨는 “법에도 인정이 있다고 했다. 어린 아이니 불구속 수사하고 그 아이의 마음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정신과 상담도 간절히 부탁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밖에 “법에도 눈물이 있다.” “이양은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등 선처를 호소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이양은 지난 15일 오후 10시55분쯤 자신의 집에서 아버지 이모(40·선원)씨가 술에 취해 할머니(70)와 할아버지(74)에게 행패를 부리자 아버지를 넥타이로 목졸라 살해한 혐의로 17일 구속됐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이양의 일기장에는 “(아버지가)학원에 술먹고 와서 나를 발로 차고 얼굴을 때렸다. 난 잘못도 안 했는데. 너무 창피하다. 내가 너무 불쌍하다.” “도저히 아빠랑 살 수가 없다. 모든 걸 정리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랑 살았으면 좋겠다.”는 등 내용이 담겨 있다. 연합
  • 근해어선 감척사업 ‘부메랑’

    수천억원을 들인 근해어선(10t 이상) 감척사업이 부메랑이 되고 있다. 톡톡히 보상을 받은 일부 선주들이 이전보다 성능이 좋은 배를 사들여 근해로 나가지 않고 연안에서 불법조업을 일삼고 있다. 그래서 보상도 못받고 어장마저 빼앗겨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 10t 이하 생계형 연안어선 어민들은 “당국의 현장 확인이 엉망”이라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전남 여수항과 완도항구에서 만난 어부들은 “아, 배운 게 도둑질이더라고, 근해어선 보상 좀 받았다고 뱃놈이 고기 안 잡고 산으로 갈 거여.”라며 당국의 허술한 사후관리에 혀를 찼다. 정부는 1998∼2002년 한·중·일 어업협정과 배타적경제수역에 따른 어장축소로 어선이 넘쳐나자 지난 94년부터 지난해까지 근해어선에 대해 감척 보상을 실시했다.3967척 가운데 8077억원을 들여 2052척을 감척했으니 척당 4억원 가까이 지급한 셈이다. 감척사업은 연안 수산자원 보호가 목적이다. 하지만 해상에서는 틈을 비집고 불법이 판친다. 여수 신항과 완도항에서 만난 자망과 안강망 선원들은 “트롤어선들이 조업구역이 아닌 완도와 고흥반도 근해에서 바람이 부는 야간에 배 이름을 가리거나 불을 끄고 고기를 훑어 잡는 일을 일삼고 있다.”고 고발했다. 해경단속 건을 제외하고도 전남도와 22개 시·군의 불법어업 단속건수도 큰 변동이 없다.2002년 529건,2003년 375건,2004년 341건이다. 완도항 근해자망 선장 백모(43·전남 여수시)씨는 “감척 보상비로 더 좋은 배와 어업 강도가 센 저인망 면허를 따로따로 사들인 선장이 내 주위에도 여럿”이라며 “정부가 엄청난 돈을 쏟아서 뭣 때문에 보상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옆에 있던 50대 선원은 “내가 아는 선장도 27t짜리 근해어선 감척 보상을 받아 39t짜리 저인망 어선을 되샀다.”며 정부와 어민들을 싸잡아 비난했다. 근해어선 선주들은 “고기도 안 잡히고 채산성도 없어 배를 정리할 맘을 먹고 있던 선주들이 정부의 감척 보상에 쌍수를 들어 환영했고 추가 감척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며 정부의 허술한 정책을 꼬집었다. 완도항과 국동 어항단지에서 삼삼오오 배에 둘러앉아 헤진 그물망을 손질하거나 출어준비를 하던 이들은 “10t짜리 근해어선을 보상받아 같은 크기의 성능 좋은 저인망배와 면허를 사고도 4000만원 이상이 남는다.”고 거들었다. 완도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어촌은 지금 구조조정중] ②정부의 고테구리 정리계획

    [어촌은 지금 구조조정중] ②정부의 고테구리 정리계획

    정부의 소형기선저인망어선(속칭 고테구리) 정리계획에 대한 어민들의 반발이 심상찮다. 어자원 보호를 위한 정부의 의지가 확고하지만 어민들은 “50여년을 이어온 생존권을 아무 대책도 없이 뺏으려 한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말 의원입법으로 제정된 ‘소형기선저인망어선 정리에 관한 특별법’이 지난 1일 발효됨에 따라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마련하는 등 본격적으로 정리작업에 착수했다. 이 법은 ‘고테구리’어선을 정리해 연근해 어장의 어업질서를 확립, 수산자원을 지속적으로 조성·보호하고, 수산업의 생산성 제고와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고테구리 어선 3100여척 정리 희망 이에 따라 해양부는 앞으로 5년간 연차적으로 20t 미만 고테구리어선을 매입, 폐선시킬 계획이다. 허가폐지에 따른 지원금과 선체보상금을 지급한다. 해양부가 특별법 시행에 앞서 조사한 결과 고테구리어선은 3586척으로 이 중 86.8%인 3114척이 정리를 희망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규모는 5t 미만이 2425척으로 67.6%를 차지하고 있으며,10t 미만은 964척이고 10t 이상은 197척이다. 허가폐지에 따른 지원금은 1000만원을 기본으로 t당 200만원씩 가산, 최고 2000만원까지 지급된다.5t 이상 20t 미만 어선에 대한 지원금은 일률적으로 2000만원이다. 선체는 지정된 감정기관의 평가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키로 했다. 이같은 지원규모가 알려지면서 어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감척어선과 같이 3년간 어업손실액을 지원하지 않는데다 지원금과 선체 보상금이 턱없이 낮다는 것이다. 지난달 21일 경남 사천시청에서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 주관으로 열린 전국 어민간담회에서도 정부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전국어민회총연합 김인규 의장은 “특별법은 어민들의 생존권을 뺏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김 의장은 또 “어업손실액을 보상하지 않으면 정리계획에 응할 어민은 30%가 안될 것”이라며 “실질적인 생계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했다. 이영춘(51) 여수어민회장은 “FRP선의 선체 보상금이 시가인 t당 700만∼800만원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민들은 대부분 4000만원∼5000만원씩 빚을 안고 있어 정부의 방침에 따를 경우 배만 날린다는 주장이다. 실제 선령 5년인 5t어선의 경우 지원금과 선체보상금을 합쳐도 4000만원이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돼 빚갚고 나면 빈털터리가 된다는 것이다. 어민들의 불만외에도 몇가지 문제점이 더 있다. 우선 연차 정리에 대한 문제다. 해양부는 1200여억원에 달하는 예산확보가 어려워 5년간 연차적으로 정리할 방침이다. 이 경우 차례를 기다리며 2∼3년간 생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 뻔해 불법어업 근절이 그만큼 늦어진다. 어민들은 “배운 도둑질이라 배를 몰고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전업 어민 일자리 마련도 어려워 그리고 낮은 지원금에 대한 불만으로 정리계획에 불응하는 어민들의 처리도 간단찮다. 불법어업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단호해 당초 허가업종으로 전업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 어장이 포화상태여서 기존 허가어민들이 이들의 진입을 달갑게 여기지 않고 있다. 따라서 어장쟁탈전은 불가피하고, 어업질서도 무너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은 어민들에게 지급된 보상금에 대한 채권실행을 어떻게 막느냐이다. 금융기관 등 채권자들이 보상금 등에 가압류 및 전부명령을 신청하면 어민들은 한 푼도 손에 쥘 수 없다. 전업 어민들의 일자리 마련도 고민이다. 해양부는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마련, 노동부 등과 협의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고기잡이 외에 아는 것이 없는 어민들이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밖에 폐선 처리비용 및 관리비 등을 지자체에 떠넘기는 문제도 간단치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어업지도선 ‘무궁화28호’ 최재석 선장 “단속 강화로 조기·대구 어획량 늘어” “불법어업의 대명사로 인식되어온 고테구리 어업은 반드시 근절되어야 합니다.” 연·근해 어선들의 불법어로 행위 단속과 지도 업무를 맡고 있는 동해어업지도 사무소 소속 지도선인 무궁화 28호(500t) 최재석(56) 선장은 “바다 어자원 황폐화를 가속화시키는 고테구리 어업 등 불법어로 행위는 반드시 뿌리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의 강력한 단속에 힘입어 불법어로 행위가 거의 사라지고 있으나 아직도 남해안 등 일부 지역에서는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어 감시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단속이 강화되자, 최근에는 단속 취약시간대인 늦은 밤과 기상악화로 단속을 나가지 않는 날에 불법 조업을 하는 등 수법이 날로 교묘해지고 있어 적발에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그러나 “지속적인 단속과 처벌 강화 등으로 인해 불법어로 행위가 지난해 하반기 이후 크게 준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거의 자취를 감췄던 조기, 대구 등 일부 어종의 어획고가 증가하는 등 불법어업 근절에 따른 긍정적인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어 일에 대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최근에는 우리 구역에 들어와 조업하는 중국배들의 단속과 합법어선들의 불법어업 행위 적발에 힘쓰고 있다.”며 “바다는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소중한 재산이라는 인식아래 어민들이 수산자원 보호에 앞장서 줄 것”을 당부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부산 전국어민총연합회를 가보니 “뼈 부러졌는데 약만 발라줘서야” 부산 서구 충무동 자갈치시장 인근 4층짜리 낡은 건물 한 구석에 자리잡은 전국어민총연합회 사무실. 지난달 24일 오후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자욱한 담배연기와 함께 3개의 원탁 테이블에 둘러앉은 어민들의 힘없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10여평 남짓한 사무실에는 오전에 연안쓰레기 청소를 마친 30여명의 소형기선저인망 어민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우리는 어떠게 살라능기요(살아야 합니까), 아무런 대책도 없이 떼밀면 죽어라는 거 아입니꺼(아닙니까).” 이들은 고테구리 어업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단속으로 고기잡이를 아예 포기한 뒤 연안쓰레기 수거작업을 하며 실업자 아닌 실업자로 하루하루를 때우고 있다. 그나마 정부에서 공공근로사업형식으로 연안쓰레기를 치우면 일당 3만원을 주는데 이마저 부산에 배정된 예산과 어민들의 비율로 배분하면 연간 18일밖에 못한다고 한다. 대학생과 고등학생 등 1남1녀를 둔 제1어성호(18t·440마력) 선주이자 선원인 안봉률(51·부산 서구 초장동)씨는 “지난 7개월 동안 수입이 단 한푼도 없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20년 넘게 고테구리 배를 타왔다고 말한 그는 수산업법 위반 전과가 30범이라고 말했다. 안씨는 단속때마다 200만∼300만원씩 낸 벌금만해도 수천만원이 될거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나뿐 아니라 여기있는 사람들 대부분 전과가 20∼40범정도 됩니더.” 1000만원에 월세 20만원인 사글세방에 살고 있다는 그는 “단속전에는 고테구리 어업으로 월 200여만원의 수입을 올려 그럭저럭 가계를 꾸려 왔는데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해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평생 어부로 살아온 그는 육지일은 손에 익지 않는다고 했다. 그나마 노동현장 등에 가면 나이가 많다고 써주지도 않는다는 것. 요즘은 부인이 식당에 취업, 주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근근이 받아오는 일당으로 생활해 오고 있다며 연신 애꿎은 담배연기만 내뿜었다. 40대 중반으로 아직 노총각이라고 밝힌 이모(부산 중구 보수동)씨 역시 안씨의 하루 일과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올해로 배를 탄 지 만 25년째라는 그는 “어서 빨리 감척을 해 보상비라도 몇푼 받아야 빚정리를 하고 이곳을 떠날건데 배를 돌보느라 다른 곳으로 가지도 못한다.”고 푸념했다. 그는 “뼈가 뿌러졌는데 깁스 등 치료는 해주지 않고 약만 발라준다.”며 정부의 대책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대부분 학력이 중졸 이하이며 40∼50대가 주류인 이들은 정부에 대한 원망을 하면서도 하루 빨리 감척과 보상이 이뤄지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어민사무실 창문너머로 보이는 자갈치정박장에 올망졸망 정박해 있는 50여척의 배들은 주인과 자신들의 운명을 알기나 하는지 쉼없이 일렁이는 파도에 힘없이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어촌은 지금 구조조정중] ①어장 황폐화 주범 고테구리

    [어촌은 지금 구조조정중] ①어장 황폐화 주범 고테구리

    어족자원 보호를 위해 해양수산부에서 어선감척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다. 연안어선은 90년대 중반부터 실시됐으며 어장황폐화를 가져온 소형기선저인망어선에 대해서는 이달부터 본격적인 단속과 함께 정리에 들어갔다.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는 어천을 다섯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어장 황폐화를 가져온 소형기선저인망어업은 속칭 고테구리로 불린다. 일제때 우리나라 연안에서 일본인들이 자행한 어법으로 광복이후 국내 어민들도 도입했다. 당시는 무동력이어서 어자원을 고갈시킬 정도는 아니었지만 동력선이 등장하면서 어업생태계를 심각하게 파괴시켰다. 1953년 수산업법이 제정되면서 수산자원 보호를 위해 연안에서의 조업이 금지됐으나 50년이 넘도록 쉬 근절되지 않고 있다. ●전남 1815척… 절반넘어 해양수산부가 소형기선저인망어선 정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조사한 결과 국내 고테구리어선은 3586척. 지역별로는 전남이 1815척(50.6%)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경남((726척)·전북(656척) 등 순이며, 경기에는 단 한척뿐이다. 대부분 어업허가를 갖고 고테구리어업을 하고 있으며, 무허가 어선은 499척에 불과하다. 고테구리 어선들은 경남 홍도 및 남해 세존도, 전남 소리도와 백도주변 해역, 서해안은 전북 위도와 어청도사이 해역을 훑고 다닌다. 지난해 8월 이후 단속이 강화되면서 일부는 제주근해까지 내려가 조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남도 김상옥 어업지도계장은 “도내에 선적을 둔 10t급 고테구리 10여척이 추자도 근해에서 조업한다는 첩보를 입수했지만 꼬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요즘은 주로 야간이나 새벽에 조업하면서 단속을 피하고 있지만 종전에는 주·야간을 가리지 않고 버젓이 조업했다.30∼50척씩 선단을 이뤄 조업하다 단속에 조직적으로 맞서거나 예사로 단속 공무원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어업지도선 고의로 들이받기도 지난해 8월 전북 군산 앞바다에서 불법어업을 단속하던 공무원이 폭행을 당했고,2003년 2월에는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고테구리 어선을 적발한 공무원 3명이 어민 김모(42)씨가 휘두른 흉기에 부상을 입었다. 또 지난해 6월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어업지도선이 고테구리선을 적발, 선원을 검거하려고 하자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 27척이 몰려 방해했다. 고테구리 어선이 어업지도선을 에워싼 채 1척이 돌진, 선박을 파손시켰으며, 다음날에는 여수지역 어민들이 여수신항에 정박 중인 어업지도선을 국동항으로 강제예인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고테구리는 지난 9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 전 해역에서 성행했으나 동해안과 제주해역에서는 7∼8년 전쯤 근절됐다. 강력한 단속과 처벌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해안에서는 여전히 고테구리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불법어업에 대한 당국의 단속은 미온적이었고, 처벌이 가벼웠기 때문이었다. 지역경제를 위축시킨다는 지적에 반짝 단속에 그쳤고, 지난 96년이후 연간 3000여건이 적발되지만 생계형 범죄라는 이유로 벌금형으로 선처,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이에 따라 해양부는 지난해 8월부터 법무부와 검찰, 해양경찰청, 행정자치부 및 지자체 등과 합동으로 불법어업은 물론 불법어획물 유통에 대해 대대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고테구리 조업은 강력한 단속에 크게 위축됐지만 불법조업은 여전하다. 지난달 29일 자망어선 선주 유모(54)씨와 통발어선 선장 제모(51)씨가 고테구리 어업을 하다 통영해경에 긴급체포됐다. ●연안 어업소득의 1.5배 달해 어민들이 고테구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은 손쉽게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테구리 어선의 연간 소득은 2500만∼6500만원으로 여타 연안어업에 비해 1.5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어민회 총연합 김인규 의장은 “수입이 얼마인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한달에 15일정도 조업하는 것으로 보고 판단하라.”며 정확한 수입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관계 공무원들은 부부가 조업하는 3∼5t어선의 경우 한번 조업으로 30만원정도 벌어 기름값 등 경비 10만원을 제하고도 20만원쯤 남긴다고 설명했다.10t이상 대형은 이보다 훨씬 높다. 선원 3명이 4∼5일 조업으로 400만∼500만원을 거뜬히 번다는 것이다. 고테구리 그물에 걸리는 어류는 고급 횟감인 넙치와 돔을 비롯, 새우 문어 등 저서어종. 자연산 선호풍조에 따라 활어는 부르는 게 값이다. 아울러 몸길이 2∼3㎝정도의 치어는 가두리양식장에 넘길 수 있어 판매도 손쉽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고테구리 어업이란 소형기선저인망어업인 고테구리(小手繰)는 주로 20t 미만의 소형어선을 이용, 바다 밑바닥을 그물로 끌어 고기를 잡는 저인망 어업을 일컫는다. 고테구리 어업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25∼30㎜ 크기의 촘촘한 그물망코로 만들어진 어구를 사용, 치어부터 성어까지 온갖 어종을 싹슬이해 자원을 고갈시키기 때문이다. 고테구리는 일제시대때 우리나라 수역에서 불법으로 고기를 잡던 일본 기선저인망 어업이 그 유래다. 당시만 하더라도 조그만 목선인 무동력선을 이용하고 어구나 고기잡이 기술이 원시적인 수준이어서 그다지 문제가되지 않았는데, 광복이후 사회 질서가 혼란한 틈을 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정부는 고테구리 어업을 막고 수산자원 보호 등을 위해 1953년 연안수역에서의 기선저인망 영업을 금지시키는 수산업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정부가 1965년 한·일어업협정때 일본으로부터 지원받은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어민들을 지원하자 일부 어민들이 동력선을 구입, 고테구리 어업에 나서는 등 한때 전국적으로 그 규모가 5000척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어업방법은 비교적 단순하다. 어선 한척이 자루모양의 그물을 로프로 연결해 바닥을 끌면서 고기를 잡는데 어구 입구를 넓힐 수 있는 전개판(展開板)을 달고 있어 어획량이 다른 어업에 비해 월등히 높다. 특히 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어구 끝부분에 자루를 매달아 놓아 치어의 남획은 물론, 어구가 바다 밑바닥을 끌게 돼 생태계를 파괴시켜 연안 어족자원의 씨를 말리는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바다청소선 ‘환경1호’ 홍기주 선장 양식장이 늘고 대형그물 사용 횟수가 증가하면서 바닷속이 쓰레기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해양부는 지난해 조사한 국내 10대 어장의 쓰레기 양은 2만t이고 연안어장으로 확대하면 40만t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수거실적은 2678t이고 이중 폐어망이 2400t에 그쳤다. 올해 정화 사업비는 지난해와 같은 100억원이 책정됐다. 한국해양오염방제조합 소속으로 전남도 내 바다 청소선인 환경 1호(120t급) 선장 홍기주(55)씨는 34년차 선장이다. 유령어업이 무엇인가. -폐그물이 올라올 때면 주렁주렁 걸려 죽은 썩은 고기들의 냄새로 코를 들지 못할 정도로 악취가 심하다. 작은 고기나 게 등이 폐그물에 걸리면 이를 잡아먹으려는 좀 더 큰 고기가 순차적으로 걸려들어 죽어간다. 이를 어민들이 유령어업이라 부른다. 폐그물에 한 번 걸리면 절대 빠져나갈 수가 없다. 불법어구량은. -지난해 여수 관내 거문도 나로도 일대에서만 폐어구와 폐기계 등 800t을 건져 올렸다. 수백년이 가도 썩지 않는다는 양식장에서 버린 10여m짜리 굵은 동앗줄과 여기에 끼어둔 고무, 태풍에 떠밀려 온 그물량이 엄청나다. 또 게나 낚지·문어 등이 들어가는 폐통발이 가장 많다는 게 문제다. 삼중자망은 길이가 200m 폭 20m도 넘는다. 농어잡는 유자망, 피조개와 새조개 채묘틀 그물 등 가지가지다. 단속이 강화되면서 새 그물도 적잖게 올라온다. 아마 달아나면서 잘라버린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작업하나. -한국해양기술원이 음파탐사기로 쓰레기 지점을 파악하거나 어민들 신고로 잠수부가 확인한 뒤 작업에 들어간다. 양식장과 어장이 형성된 곳에 쓰레기도 많다. 지형적으로 완도군과 신안군 해역은 섬으로 둘러싸여 조류의 흐름이 약해 쓰레기가 더 많다. 한 지역에서 3∼4개월씩 작업한다. 수심 7∼40m에 쇠갈고리를 던져 넣어 배를 끌면서 쇠줄로 감아 올린다. 길이 40m 폭 30m 짜리 그물이면 20t도 넘는다. 그물이 바닥 70㎝ 이상 박혀 있다가 배가 끌면서 튕겨 나와 100t이 넘는 배가 기우뚱할 때면 아찔하다. 그물이 크고 엉켜 있다 보면 2∼3일 동안 끌고 다니다 잠수부가 줄을 잘라 올리기도 한다. 이 쓰레기는 바지선으로 옮겨져 운반·처리된다. 여수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연근해 어장에 고기가 없다

    연근해 어장에 고기가 없다

    20년도 넘게 1t짜리 배로 연안에서 고기잡이를 해 온 정인철(47·전남 여수시 화정면 개도리)씨는 10년 전에 비해 어획량이 3분의1로 줄었다고 하소연이다. 그는 “옛날 같으면 부부가 나가 하루 조업하면 노래미·도다리·게 등을 놀면서도 30만원벌이가 거뜬했으나 요즘은 어종 자체가 물메기나 게밖에 없어 절반만해도 다행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연근해 어장에 고기가 없다. 최근들어 온난화 등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 해황으로 회귀어종이 줄고, 생태환경을 무시한 무분별한 개발로 어·패류 산란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어민들도 “먼저 잡으면 임자”라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획을 일삼았다. 또 쓰다버린 폐그물과 통발을 바다에 버려 생활터전을 스스로 오염시켰다. 폐그물을 건져 올리면 뼈만 앙상하게 남은 고기가 쉬 발견된다. 이른바 ‘유령어업’이다. ●낱마리 줍는 낚시어업 경남 사천선적 연승어선 207영남호(46t) 선주 강기호(38)씨는 요즘 맘이 편치 않다. 우리나라 근해의 어황이 안좋아 센카쿠열도부근까지 내려갔지만 선장이 전해주는 소식은 영 신통찮다. 강씨는 “몇년전만 하더라도 꽤 재미가 있었는데 요즘은 낱마리를 줍고 있는 실정”이라며 “재수없으면 하루 1∼2마리 낚는 것이 고작일 때도 있어 손익분기점을 맞추기가 힘들다.”고 푸념했다. 207영남호의 1항차당 조업일수는 45∼50일로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13t정도 어획해야 된다. 요즘 갈치 위판가격이 ㎏당 8만 5000원선이므로 수입은 1억 1000여만원. 여기서 출어경비 7000여만원을 제하고, 남은 금액에서 선주 몫을 떼어낸 뒤 선장을 비롯한 선원 12명이 최소한의 생활비를 나눠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강씨는 “7∼8년전만해도 대형 어군을 만나 선원들이 잠을 못잘 때가 많았다.”며 “그때는 배당금이 인건비를 훌쩍 넘겨 돈 버는 재미에 피로한 줄도 모르고 낚싯줄을 당겼다.”고 전했다. ●미성어 어획비율 81% 6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연근해 어획량은 107만t으로 1995년 어획량 142만t의 75%에 불과하다. 지난 90년 154만t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이다. 국내 수산물 수요량은 연간 300만t정도다. 이중 절반을 연근해어업으로 충당해야 하지만 어획부진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10년 전에 비해 어선과 어구의 성능이 크게 향상됐음에도 어획량이 주는 것은 잡을 고기가 없음을 뒷받침한다. 이를 반증하듯 여수시 화양면·화정도·남면·연도·화태도, 완도군 청산도·고금도·소안도·약산도 등 포구와 선착장에는 매둔 배들로 만원이다. 여수 국동어항단지 주변에도 100t급 이상 대형어선들로 채워졌다. 해수부가 추정하는 올해 우리나라 연근해 어족자원은 790만t에 불과하다. 지난 85년 900만t이었던 어자원이 20년 사이 무려 110만t이 줄었다. 더구나 산란능력이 없는 미성어 어획 비율이 급격히 증가,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연근해에서 어획된 고등어·갈치 등 9개 어종의 미성어 비율이 81%나 된다. 미성어 비율이 높아질수록 어장의 황폐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음을 뜻한다. 미성어 비율은 지난 70년 45%,80년 59%였으나 90년대 78% 등으로 꾸준히 늘었다. 수산과학원 김영섭(50·이학박사) 자원연구팀장은 “이같은 상황을 방치할 경우 10년 후 어획량은 현 수준의 60%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창원·광주 이정규·남기창 기자 jeong@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④-현대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④-현대그룹

    “믿겨지지 않았다.” 2003년 8월 4일 새벽. 그룹 비서실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아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훗날 지인에게 “처음엔 얘 아빠(정몽헌 회장)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러나 남편의 죽음을 제대로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시숙(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에게서 그룹을 지켜야 했다. 경영 전면에 나섰다. 스물한살에 현대가로 시집와 30년 가까이 살림만 했는데 세상에 나오는 것이, 그것도 시아버지(고 정주영 명예회장)가 평생을 일군 그룹을 덜컥 떠맡는 게 두렵지 않았을까. 지인의 얘기다.“나도 그 점이 궁금해 언젠가 한번 물어봤었다. 그랬더니 그 때는 (경영권 분쟁으로) 상황이 너무 다급해 두려워할 겨를조차 없었다고 하더라.” 그렇게 현대가의 ‘조용한’ 며느리에서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때가 2003년 10월 21일. 그로부터 1년여.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은 ‘관리종목’의 악몽에서 벗어나 지난해 사상 최대 순익(4279억원)을 올렸다. 금강산 관광사업을 주도하는 현대아산 역시 소폭이나마 첫 흑자(8억원)를 기록했다. 현대엘리베이터(839억원), 현대증권(580억원 추정치), 현대택배(74억원), 현대경제연구원(3억원)도 지난해 흑자로 돌아섰거나 흑자를 지켰다. 그룹 경영을 맡은 지 불과 1년 만에 6개 계열사 모두를 흑자로 돌려놓은 것이다.2010년까지 그룹 매출을 20조원(지난해 말 6조 6400억원)으로 끌어올려 재계 10위권(현재 19위)에 입성하겠다는 현 회장의 ‘2010 프로젝트’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것은 그래서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운’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왕회장(정주영 명예회장) 시절부터 현대에 몸담아온 한 임원의 해석은 다르다. “운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현 회장 취임후) 해운 경기가 살아나면서 그룹의 주축인 현대상선이 살아났으니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있다. 전에 비해 그룹의 방향이 매우 뚜렷해졌다. 현 회장은 한번 결정을 내리면 단호하다. 흔들리지 않는다. 배포와 결단력은 오히려 몽헌 회장(MH)을 능가한다는 게 임원들의 공통된 평가다.” 이와 관련해 또다른 임원의 말이 재미있다.“현 회장을 보고 있으면 사업가 유전자라는게 따로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업가 집안의 둘째딸 현 회장은 1955년 딸만 넷을 둔 사업가 집안의 둘째로 태어났다. 훗날 현대상선에 흡수된 당시 신한해운의 현영원(78) 회장이 아버지다. 일제때 ‘호남의 거부(巨富)’로 이름을 날렸던 현준호씨의 후손이다. 어머니는 김용주 전남방직 창업주의 외동딸인 김문희(77) 현 용문학원 이사장이다. 김창성 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의 친누나이기도 하다. 현 회장에게는 외삼촌들이다. 현대가의 며느리 가운데 손아래 동서 김영명(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의 부인·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딸)씨와 더불어 친정이 가장 화려한 편이다. 현 회장은 그룹 홈페이지에 올린 ‘나의 삶 현대의 길’에서 “기업가 집안의 엄격한 가정교육 속에서 세상의 흐름과 변화에 대한 시각을 조금씩 키워나갔다.”고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임원의 해석처럼 ‘유전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업가 집안의 가풍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현 회장의 자매들 이름이다. 언니가 일선씨, 여동생이 지선씨다. 현 회장의 시조카들과 이름이 똑같다.“정씨 집안과의 혼사는 숙명”이라는 우스갯말이 나올 만도 하다. 언니 일선씨는 수입 침장(沈臧) ‘쉐르단’으로 유명한 홈텍스타일코리아 유승지 회장과 결혼했다. 유 회장은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의 친동생이자 유유산업 창업주인 고 유특한씨의 아들. 현 유유산업 유승필 회장의 친동생이다. 동서지간인 유 회장과 생전의 MH는 나이가 같아 유난히 친했다고 한다.MH가 죽기 직전 가족들과 외식을 할 때도 유 회장이 함께 했었다. ●‘군인’ MH와의 첫 만남 대학(이화여대 사회학과) 4학년때인 1975년 1월 어느날. 현 회장은 아버지를 따라 울산의 현대중공업 선박 명명식에 갔다. 당시 아버지는 사업관계로 잘 알고 지내던 홍콩 행정 장관(C.Y. 퉁)이 방한하자 때마침 열린 선박 명명식에 ‘모시고’ 갔다. 애초 맏딸만 데려갈 생각이었지만 둘째딸의 성화에 딸 둘을 대동하고 나섰다. 몇달 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쪽에서 넌지시 연락이 왔다.“군대간 아들이 마침 휴가 나왔는데 한번 만나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선박 명명식에서 ‘참한 인상의 늘씬한 재원’을 처음 본 정 회장이 단박에 며느릿감으로 점지한 것이다. 이 때가 75년 5,6월께. 현 회장과 MH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언젠가 현 회장이 사석에서 털어놓았다는 MH의 첫인상이다.“요샛말로 필이 꽂히거나 그렇진 않았다. 군인이라 머리도 짧았고…그래도 듬직해 보였다.” 첫 데이트 장소는 ‘군인 커플’답게 서울 태릉사격장. 이듬해 7월 두사람은 결혼했다. ●“나도 내게 이런 속배짱이 있는 줄 몰랐다” 현 회장은 결혼 후 첫딸을 낳고도 남편과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라 페어리 디킨슨 대학원에서 인간개발론을 전공했다. 귀국해서 얘들 키우고 살림하는 동안에도 짬짬이 걸스카우트연맹(이사)·대한적십자사(여성봉사 특별자문위원) 등에서 ‘표 안나게’ 사회활동을 했지만 사업가로 나서게 되리라고는 그 자신 상상도 못했다. 현 회장을 가까이서 지켜본 임원의 얘기다.“그룹 경영을 맡은 지 1년여밖에 지나지 않아 아직 평가를 내리기에는 이르지만 확실한 것은 배포가 여간 아니라는 점이다. 경영 참여를 결심한 것도,8개월에 걸친 경영권 분쟁을 버텨낸 것도 이같은 배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겉으로 보면 전형적인 현대가의 조용한 며느리인데 어디에 그런 배포가 숨겨져 있는지 모르겠다. 본인 스스로도 ‘내게 이런 속배짱이 있는 줄 몰랐다.’며 웃더라.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경영권 분쟁때의)그 지독했던 마음 고생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의지력도 대단하다. 더러 확신이 서기까지 결단을 늦추는 경향이 있어 답답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일단 확신이 서면 무섭게 밀어붙인다. 번복하는 일도 없다.”결단을 내려놓고도 마음이 여려 ‘가신’들의 주장에 흔들리곤 했던 MH와는 대조되는 면모다. 현 회장의 단호함을 보여주는 일화 한가지. 지난해 8월 그룹 비전을 선포할 때의 일이다. 당시는 경영권 분쟁을 매듭짓고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던 때라 사내외에 선언할 ‘비전’이 매우 중요했다. 현 회장은 ‘용기와 자부심의 현대’라고 직접 쓴 쪽지를 내밀었다. 임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살림만 하던 사람이 기업 경영과 직원 심리를 얼마나 알겠느냐.”는 냉소도 은근히 깔려 있었다. 그러나 현 회장은 지금이야말로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용기와 ‘재계 1위 현대’에 대한 자부심이 절실한 때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선언문에는 이 문구가 그대로 들어갔다. 시간을 지체해 물건너갔다고 생각했던 가신그룹(김재수 당시 경영전략팀 사장 등)에 대한 인사도 그 해말 전격 단행해 임직원들을 다시한번 놀래켰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 숙부의 난 현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다른 사람도 아닌 시삼촌과 길고 지루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정상영 명예회장이 2003년 8월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사들이면서 본격화된 경영권 분쟁은 이듬해 3월 30일 현대엘리베이터 주총에서 현 회장이 승리할 때까지 8개월 가까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현 회장은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 집안의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비즈니스가 얽혀있어 개입할 수 없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중립이 현 회장을 도왔다. 현 회장측은 분쟁의 단초가 된 금호생명 대출 200억원에 대한 정상영 회장의 보증과 관련,“정 명예회장은 조카(MH)에 대한 의리라고 주장하지만 처음부터 경영권을 뺏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행보였다.”고 주장한다. 한 측근은 MH가 정상영 명예회장을 인간적으로 따랐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왕자의 난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정상영 회장이 MH의 자금줄을 교묘하게 막았다.”면서 “이 때문에 MH가 ‘그룹을 위해 (내가) 이렇게 희생했는데 상영 삼촌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언젠가 몹시 화를 낸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KCC측에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여전히 팔지 않고 있어 경영권 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싸움이다. ●경영수업 받는 큰딸…‘코디’ 둘째딸… 사격 좋아하는 외아들 시어머니(변중석)가 아이 잘 낳는 보약을 하루가 멀다하고 들이미는 바람에 얼떨결에 일찍 가졌다는 큰딸. 딸을 낳자 시댁보다 딸만 넷인 친정의 실망이 더 컸다고 한다. 그 딸이 지금은 현 회장의 든든한 친구이자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지이(28)씨다. 서울대 고고미술학과와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대학원을 나온 그는 외국계 광고회사에 다니다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지난해 1월 3일 현대상선 재정부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했다. 올 1월 1일 대리로 승진했다. 회사 흐름을 가장 빨리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재정부에 배치한 것을 보면, 제대로 경영수업을 받게 하려는 현 회장의 의지가 읽혀진다. 경영권 분쟁때도 현 회장은 정상영 명예회장 등 시댁 어른들과의 대면 자리에 반드시 지이씨를 데리고 나갔다. 맏이답게 찬찬하고 침착해 현 회장에게는 큰 의지가 된다고 한다.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도 평이 매우 좋다. 지난해 10월 그룹 해체후 처음 가진 신입사원 수련회때는 다른 ‘신참’들과 똑같이 텐트에서 잠을 자고 장기자랑도 마다하지 않아 주위의 경계심을 녹였다.‘싼타페’를 직접 몰고 출퇴근한다. 아직 사귀는 사람은 없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터울이 크면 아들일 확률이 높다.”는 집안 어른들의 압력에 6년 7개월만에 가졌다는 둘째딸 영이(21)씨는 서울 상명여고 1학년때 혼자서 미국 유학을 떠났을 만큼 당차다. 보스턴에서 한시간 거리인 사립 고등학교 ‘쿠싱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현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부에 재학중이다. 언니와 달리 성격이 매우 활달하다. 방학을 맞아 귀국하면 엄마의 의상을 열심히 조언해준다. 막내 외아들인 영선(20)씨는 모 대학 경영학과를 다니다 지금은 휴학한 상태다. 군대를 먼저 다녀온 뒤 미국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아버지 장례식때 고3(경복고) 수험생이었는데도 어찌나 많은 친구들이 빈소로 몰려왔던지 조문객들 사이에 화제가 됐었다. 아버지를 닮아 총쏘는 것을 좋아한다. ●옛 영광 재현 꿈꾸는 핵심 브레인들 경영전략팀이 그룹의 ‘싱크 탱크’다. 다른 그룹으로 치면 구조조정본부에 해당한다. 현 회장 사람들로 전부 세대교체가 이뤄진 점이 가장 눈에 띈다. 최용묵(57) 사장을 사령탑으로 이기승(55) 전무-하명호(47) 상무로 수직 연결된다. 현대엘리베이터 사장도 맡고 있는 최 사장은 경영권 방어전략을 촘촘히 짜 현 회장의 리더십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급진적 개혁보다는 점진적 개선파로, 조직 안정이 최우선 과제인 현 회장 체제에서는 적임이라는 평을 듣는다.76년 현대건설 평사원으로 입사,84년 현대엘리베이터 창립과 함께 관리부장을 맡으면서 조직관리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금도 임직원들과 회사 앞마당에서 족구를 하고 삼겹살 소주 뒤풀이를 즐긴다. 이 전무는 경영권 분쟁을 겪으면서 금융전문가의 보완을 절실하게 느낀 현 회장이 지난해 6월 외환은행에서 영입해온 이다.KS(경기고-서울대 법대) 출신답게 머리회전이 빠르면서도 친화력이 뛰어나 핵심인맥의 자리를 굳혔다. 미국 디킨스대 MBA(경영학석사) 출신인 하 상무도 재무 전문가다. 현대석유화학에서 지난해 말 그룹 심장부로 옮겨왔다. 그룹의 정신적 뿌리인 대북사업은 ‘서울대 트리오’가 이끌고 있다.“대북사업에 인생을 걸었다.”는 김윤규(61) 현대아산 부회장이 단연 첫 손에 꼽힌다. 왕 회장때부터 ‘소떼 방북’ 등을 성사시키며 현대와 동고동락해 온 김 부회장은 MH가 그 앞으로 남긴 별도 유서를 통해 “자주 윙크하는 버릇 고치라.”고 농담을 던졌을 만큼 2대에 걸쳐 각별한 신임을 얻었다. 얼마전 부회장으로 승진해 대북 라인 접촉 등 대외 업무에만 힘을 쏟고 있다. 대내 업무를 떼준 것은 과중한 업무 부담을 덜어주려는 배려이자 ‘거리 두기’라는 해석도 있다. 대내 업무는 윤만준(60) 현대아산 사장의 몫이다. 고문으로 물러나 있다가 김 부회장의 승진과 함께 대표이사 사장으로 발탁된 그는 남북경제협력사업에 초창기부터 관여해 실무에 밝다. 서울법대를 나와 74년 현대중공업에 입사,MH와 함께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일궜다. 김 부회장의 서울대 공대 직속 후배인 심재원(58) 현대아산 부사장은 개성공단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다. 업무처리가 치밀하다. 그룹의 ‘캐시 카우’(돈버는 계열사)인 현대상선은 노정익(52) 사장이 이끌고 있다. 유동성 위기로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던 2002년 9월 사장에 취임해 1000원대이던 주가를 2만원 가까이 끌어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자동차 운반선 매각 등 뚝심으로 구조조정을 밀어붙여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때 들어온 1조원대의 현금이 없었다면 뒤이어 터진 대북송금·분식회계 등의 악재를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얘기다. 취임하자마자 승선 체험을 자청, 선원들과 거센 파도와 싸우며 하나가 된 덕분에 ‘캡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안살림을 꼼꼼하게 챙기는 안홍환(55·부사장) 지원본부장, 회사 매출의 70%를 책임지고 있는 이재현(54·전무) 컨테이너본부장, 일반화물 영업을 이끄는 이동렬(56·전무) 벌크선영업본부장, 해양대 항해학과를 나와 선장으로도 근무한 ‘마도로스’ 신용호(56·전무) 해사본부장 등도 상선의 중추 세력이다. 2003년 6월 부국증권에서 스카우트돼 온 김지완(59) 현대증권 사장은 ‘현투(현대투자신탁증권) 책임분담금’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지어 그룹의 고민을 덜어주었다.‘숙부의 난’때는 오랜 증권업계 경험을 바탕으로 경영권 방어 전략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문이어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하마평에 자주 오르기도 한다. 김 사장을 떠받치고 있는 노치용(53·전무) 도매영업본부장은 그룹 홍보도 겸하고 있어 여의도와 광화문을 오가며 ‘셔틀 업무’를 보고 있다. 경영권 분쟁때 설득력있는 논리로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숙부의 난 당시 격전지(경영전략팀) 한복판에 있었던 현기춘(51) 현 현대엘리베이터 전무도 눈에 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또다른 한 축인 한승준(51) 전무와는 춘천고 같은반 친구이다. 기획·관리 전문가로 ‘선 굵은 CEO’로 불리는 김병훈(55) 현대택배 사장, 경제연구원 최초로 수익모델 창출에 도전한 재무관료 출신의 김중웅(64) 현대경제연구원 회장,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주현(53) 현대경제연구원장 등도 그룹의 핵심 브레인들이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경영권 분쟁이 오히려 약이 됐다. 몽헌 회장의 죽음으로 흔들리던 임직원들이 경영권이 위협받자 현 회장을 중심으로 차돌처럼 뭉쳤다. 이번 기회에 전열을 확실하게 정비해 그룹의 모태로서 옛 현대의 영광을 반드시 재현하겠다.” hyun@seoul.co.kr ■ ‘비운의 황태자’ 정몽헌 현대가 사정을 소상히 알고 있는 한 현대맨은 “90년대 들어 언론에서 빅3(MK,MH, MJ) 운운했지만 그 때는 이미 왕회장이 MH를 후계자로 형제들에게 선언한 뒤였다.”면서 “좀체 칭찬을 하지 않는 왕회장이었지만 MH에 대해서는 심지가 깊은 아이라며 믿음을 내보였다.”고 전했다. 보성고와 연세대를 나와 미국 페어리 디킨슨 대학에서 MBA(경영학 석사학위)를 딴 MH는 귀국후 1983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세워 4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았다. 급기야 2000년에는 그룹 단독 회장에 취임했다. ‘왕자의 난’의 상처를 털고 MH시대를 여는 듯했다. 하지만 2003년 8월 4일 계동사옥 12층 집무실에서 몸을 던지고 만다.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그저 유서를 통해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고만 했을 따름이다. 대북송금 특검 등에 따른 중압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그러나 한 측근은 당시 “극심한 중압감 때문이었다면 가족들이 낌새를 알아챘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일축했었다. 투신하기 직전, 가족과 식사한 것을 두고 미리 자살을 준비했다는 분석도 나왔지만 이 역시 MH가 일요일에는 가족들과의 외식을 즐겼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MH는 바깥일을 집에 와 자상하게 털어놓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가급적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등 가정적인 편이었다. 한 측근의 얘기다.“(대북송금·비자금 수사 등이 진행되자) 나 혼자 책임지겠다는 말씀을 여러번 하셨다. 그때는 혼자 감옥가겠다는 뜻인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살을 염두에 뒀던 것 같다. 그렇더라도 투신하기 두달 전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오자 부인(현 회장)에게 매일 순두부를 끓이라고 했던 점으로 미뤄보아 투신 결심은 순간적으로 이뤄졌던 것 같다.” 소탈하면서도 합리적이고 머리도 좋아 따르는 이가 많았던 MH. 그는 그러나 끝내 아버지의 꿈(대북사업)을 완성하지 못하고 삶을 접었다. 이 때가 그의 나이 55살때였다. hyun@seoul.co.kr ■ 현대家 며느리들 현대가의 며느리들은 4월을 ‘제사의 달’이라고 부른다. 시아버지(정주영 회장)가 생전에 워낙 제사를 중시한 데다 온갖 제사가 몰려있어 4월에는 아예 청운동 시댁 부엌에서 살다시피 했다. 시아버지의 독특한 ‘밥상머리 교육’ 때문에 새벽마다 시댁으로 가 아침식사도 직접 준비해야 했다. 한 며느리는 “새벽 3시반에 갔다는 항간의 얘기는 다소 과장이고 이를 때는 4시반, 보통때는 5시나 5시반쯤 갔다. 시아버님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 새벽마다 수행원들 몫까지 김밥을 엄청나게 쌌던 기억이 난다.”고 털어놓았다. 언젠가 한번은 아들들이 꾀가 나 아침식사 회동에 몇번 빠졌다. 대로한 왕회장이 “모두 들어와 살라.”고 불호령을 내려 1년간 청운동 시댁 주변에 모두 모여산 적도 있다고 한다. 여자들이 나서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왕회장이지만 말년에는 겸상 식사도 허용했다고 한다. 맏며느리 이양자씨는 수도여대를 나와 한때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이씨가 91년 암으로 세상을 뜨면서 실질적 맏며느리 역할을 해온 둘째며느리 이정화(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부인)씨는 당시 명문으로 꼽히던 숙명여고를 나왔다. 빼어난 미모로 유명했던 넷째며느리 이행자씨는 한양대 출신으로 세간에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숙명여대를 졸업했다. 유난히 여대 출신이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여자는 여대를 가야 한다.”는 왕회장의 보수성 때문이었다. 이화여대에 수석 입학해 화제가 됐던 손녀 유희씨(고 몽필씨 딸)도 원래는 연세대 원서를 다 써놓은 상태에서 할아버지에게 ‘보고’했다가 된통 혼이 난 뒤 여대로 틀었다고 한다. 며느리든 딸이든 해외유학까지 다녀오고도 회사 경영이나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이가 거의 없는 것도 유교적 가풍 탓이다. 왕회장은 “살림에만 신경쓰라.”며 며느리들에게 골프도 치지 못하게 했다. 현정은 회장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골프장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월이 훨씬 흐르고서야 뒤늦게 골프를 배웠지만 영 재미가 붙지 않아 골프장에 딱 세번 나가본 뒤 관뒀다고. 오는 10월 ‘금강산 골프장’ 개관에 맞춰 상징 티샷을 날리라는 임원들의 압력이 많아 여간 고민이 아니라고 한다. 한때 기체조를 배웠으며 ‘걷기’ 가 취미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5)통영의 해양문화와 굴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5)통영의 해양문화와 굴

    국방, 예술, 수산, 관광, 생태. 이 복잡하고 동거가 불가능해 보이는 항목들이 한 동네에 밀집된 곳을 한 곳만 들라면 나는 주저없이 남해안 통영을 꼽겠다. 무언가 하나쯤이 돋보이는 바닷가는 많지만, 통영같이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곳이 또 있을까. 이름하여 ‘조선의 나폴리’. 섬과 섬이 꼬리를 문 한려수도의 미려한 절경이 펼쳐진 가운데 하얀 집들이 초록빛 바다색과 어우러지고, 비구름이 섬 봉우리를 감싸도는 풍광은 가히 ‘조선의 나폴리’란 별칭이 어울릴 만하다. 솔직히 말한다면 ‘이탈리아의 통영’이란 표현이 오히려 걸맞을 것 같기도 한 곳. ●군사와 예술이 묘하게 어우러진 곳 그래선지 예술가들이 유난히 많이 배출된 곳이기도 하다. 윤이상 김상옥 박경리 유치환. 그들의 고향도 통영이다. 임진왜란의 엄혹했던 시절,‘지고도 이긴 그 전쟁’을 상징하는 세병관이 있는 곳인가 하면, 코 앞에 한산도가 있어 당대의 피어린 해전을 돌이켜보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다 보니 승전무 같은 ‘국방예술’을 비롯, 나전칠기, 통영갓, 소목, 두석 같은 수공업이 발달했다.1604년 통제영이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 육방이 설치돼 군수품·관수품·민수품 등 다양한 수공예품이 생산되었다. 통영오광대, 남해안별신굿 같은 국가 중요무형문화재가 가장 많이 밀집된 곳 또한 통영이다. 군사와 예술이라는, 언뜻 서로 조화될 것 같지 않은 양자가 절묘하게 결합해 예부터 예향의 본거지로 꼽혔다.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한산대첩도 기실 어부 김천손의 첩보에 힘입은 것이었다. 숱하게 왜구에 시달려 온 이곳 어부들은 평소에는 고기를 잡지만 유사시에는 전선에 배치돼 그들을 물리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순신의 전략가적 자질을 과소평가할 수 없지만 그 바탕에 어부들의 숨은 공로가 있음은 무엇을 말하는가. 통영 사람들은 배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방이 바다인 곳에서 살아 바다생활에 체화되었기 때문이다. 태평양 팔라우제도의 원주민들을 보면 그들이 천부적인 뱃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작은 배로 망망대해를 용하게도 떠다닌다. 자잘한 다도해의 섬 사이를 누비면서 거칠 것 없이 달리고, 맘 먹은 곳에 닻을 내리고, 정확하게 낚시를 던진다. 해저 지형은 물론이고 조류, 어종, 바람, 암초 등 선대에게 배우고 스스로 체득한 온갖 바다정보를 유전인자처럼 내장하고 바다삶을 살아가고 있다. 통영사람들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바다를 마당 삼아 살아온 덕분에 왜병을 물리치는 든든한 파수 역할을 해낼 수 있었으리라. 이순신이 새삼 강조되는 시대에, 그 이순신을 가능하게 한 인적 토대로서 바다사람들의 삶을 한번쯤 진지하게 되돌아 봐야 하지 않을까. ●왜란 때 통신수단으로 사용… ‘충무 방패연’ 통영의 삼덕포구, 한산도, 사량도, 견내량, 적덕, 착량, 걸망포 등은 당시 승첩의 현장이거나 함대의 병참·기항지로 제 역할을 다한 곳들이다. 전쟁이 끝나면서 지금의 통영땅 전신인 두룡포에 경상·전라·충청도 3도의 수군을 관장하는 삼도수군통제영이 옮겨오게 된다. 두룡포기사비문에 ‘서쪽으로는 판데목에 의지하고 동으로는 견내량을 끌고 있으며, 남으로는 큰바다와 통하고 북으로는 육지와 이어져 있어 깊어도 구석지지 않고 얕아도 드러나지 않아 진실로 수륙의 형세가 국방의 요충’이라 하였다. 말하자면 임진왜란이란 미증유의 전란을 겪으면서 국가적으로 건설된 계획적인 군사도시가 곧 통영이니, 그로부터 일제에 의해 통제영이 철폐될 때까지 300여년간 지속되면서 독특한 해양문화를 형성해 온 셈이다. 돌이켜 보면 ‘상처입은 용’ 윤이상 선생이 애타게 보고싶어 하던 고향도 바로 통영의 푸른 바다였다. 그는 루이제 린저와의 대담에서도 ‘보고 싶은 고향땅 쪽빛 바다’를 애달프게 증언하지 않았던가. 그는 아마 꿈 속에서 훨훨 날아오르는 유명한 ‘충무 방패연’을 상상했을 것이다. 내륙지방에서 만든 한지 반장짜리 연과 달리 바람이 센 바닷가 통영의 연은 대문짝만 하게 만들었다. 임진왜란 때 통신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유서깊은 그 연 아닌가. 그 연에 날지 못한 윤이상 선생의 비원이 서려 있는 듯하다. ‘통영문화의 지킴이’ 김세윤 문화원장은 “윤이상 선생이 통영에서 살 적만 해도 국악을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며 통영의 문화적 환경을 설명한다. 그의 음악에서 한국적 정서를 읽을 수 있다면 이는 전적으로 고향 바닷가에서 싹 틔우고, 배불린 것이리라. 그는 “통영이 예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통제영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활발한 수산업에 기반한 물적 토대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향’ 만들어낸 또 다른 공신, 굴 옳은 말이다. 수많은 통영의 예술인이 외국 유학을 떠날 수 있는 배경에는 수산업으로 형성된 진취적 기질과 풍요가 바탕이 된 셈이다. 이렇듯 통영의 역사와 문화라는 것도 모두 어업에 종사하며 삶을 일궈 온 통영 사람들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이 배태한 것 아니겠는가. 그들이 전통시대의 뛰어난 해군이자 노련한 어민들이었다는 사실이 곧 이곳의 역사이자 문화인 셈이다. 오늘날의 통영 어업을 이해하려면 통영항에 위치한 ‘굴수하식수산업협동조합’이란 다소 긴 이름의 조합을 찾아가야 한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굴의 80%가 이 조합에서 생산되고 있으니 굴이 없다면 통영경제도 사실상 ‘끝’이며, 도시의 소비자들도 굴 대신 금을 먹는 게 더 쉬울지도 모른다. 굴껍데기를 까는 여성 노동력, 굴 양식에 필요한 자재를 공급하고 판매하는 이들, 굴을 조리해 파는 음식점까지 모두 포함한다면 무려 4만여명이 굴에 생계를 의지하고 있다. 그만큼 굴은 통영 경제에 절대적이다. 20대에 굴조합에 뛰어들어 30년이 넘는 세월을 오로지 굴 하나에 바친 이 조합 이종훈 전무를 만났다. 그에 따르면 굴은 바위에 붙어사는 바위굴, 그리고 줄에 매달아서 물 속에 드리워 키우는 수하식 굴로 나누는데, 바위굴은 전체 생산량의 10%도 안 된다.90%의 굴이 수하식이다. 그런데 그 수하식을 사람들은 ‘양식’이라고 ‘오해’한다. 굴은 엄밀하게 말해 양식이 없다. 긴 줄에 수직으로 매달아 키워낼 뿐 인공 먹이를 주거나 하는 따위의 양식과는 전혀 다르다. 굴은 양식어류와 달리 제공하는 사료가 아닌 자연 플랑크톤을 먹고 성장한다는 아주 간단한 상식을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 한국인의 수산물 선호도는 높아가지만, 정작 수산물 이해도는 아직 낮다. 굴에 대해서도 엄청난 오해를 갖고 있지 않은가. 이곳에서도 처음에는 일본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맹종죽을 이용한 뗏목식 시설을 도입했다. 그러나 비싼 대나무값 때문에 물 속에 줄을 드리워 굴을 매다는 연승로프식인 수하식을 개발했다. 한국 굴의 대부분이 자라는 통영, 거제, 고성, 여수 바닷가에 둥둥 떠있는 긴 줄과 부표들이 바로 수하식 굴밭의 표지판이다.“수하식은 바다면적을 늘리는 일대 전환으로,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 싸게 좋은 굴을 섭취할 수 있는 것도 전적으로 수하식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미국 FDA도 인정한 통영의 굴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바위에 붙은 작은 굴, 즉 석화를 선호한다. 반면에 알이 큰 수하식 굴은 상대적으로 낮게 친다. 바위굴은 썰물 때 성장을 멈추는 반면 수하식굴은 항상 물 속에 잠겨 있어 물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성장한다. 이런 이치를 아는 외국에서는 그래서 우리와 달리 수하식 굴을 더 위로 친다. 실제로 미국 FDA는 매년 조사관을 파견해 통영, 고성, 여수, 고흥, 거제 일대의 굴밭을 샅샅이 조사한다. 미국은 물론 EU 및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수입식품으로 인한 자국민의 공중보건상의 위해를 차단하기 위해 자국으로 수입되는 수산물에 대하여 수출국이 그 위생상태를 보장하여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며 이렇게 현지조사를 벌이고 있으니, 그들의 검증이 곧 상품의 보증이기도 하다. FDA는 고흥, 여수, 남해, 통영, 거제, 고성 등의 남해안 일대를 수출용 패류생산 지정해역으로 설정, 엄정한 검사기준을 적용해 수입을 허가하고 있다. 말하자면, 까다로운 선진 외국에서 그 청정성을 인정해 사들이는 굴이 이곳 남해안의 수하식 굴이며, 국내 소비량도 90% 이상을 이곳에서 공급한다. 한려수도가 한국 최고의 청정해역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씨알 작은 자연산 굴이 아무래도 좋다.”는 오해로는 더 이상 우리의 식탁 안전과 소비량, 낮은 가격 등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이곳에서는 오후 6시면 전국 유일의 굴공판장이 열린다. 저마다 자신들이 생산한 굴을 박스에 담아 낸다. 굴조합 엄철규 과장은 “생산자들의 이름이 모두 등록되며, 같은 굴이라도 실명제로 체크되어 가격도 조금씩 차이가 난다.”고 설명한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굴이 클수록 비싸다. 이곳에서는 ‘벗굴’이라고 부르는, 크기가 주먹만 한 굴을 접시에 올려놓고 칼로 썰어먹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가 선호하는 ‘쪼잔한 굴’은 상품으로 치지도 않는다. 알이 꽉 차서 영양가가 오를대로 오른 큰 굴이 그들의 기호에 어울린다고 믿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예전에 먹던 식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해 전국 생산량의 10%에도 못미치는 바위굴을 선호한다. 사실 바위굴 중에는 깨끗한 곳에서 나는 것도 있지만 갯가의 오염된 환경에서 채취되기도 해 식탁의 안전성을 위협하는 일도 없지 않다. 한국인의 보수성과 과거 집착은 굴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거기에서 비롯된 온갖 편견과 오해가 식탁을 점령하고 있다. 회는 물론 전, 찜, 튀김, 구이, 국이나 죽, 밥, 젓 등 세기조차 어려운 다양한 메뉴가 있지만 굴은 그저 날로 먹는 것으로만 아는 실정이다. 중국에서 선호하는 굴은 말린 건굴이며, 미국인들은 통조림문화에 길들여져 면실유로 만든 통조림을 수입해 간다. 반면 우리는 이만큼 다양한 굴음식을 향유하고 있으니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럼에도 우리의 인식은 이렇듯 보수적이다. 술꾼들 해장용으로 선짓국, 콩나물국 등은 알려졌지만 굴국은 아는 사람조차 드물다. ●철마가 새끼치고, 돌계집은 노래하고 통영을 떠나오면서 습관처럼 미륵섬 미륵사를 찾았다. 조계종 초대 종정이었던 효봉선사가 창건한 절이다. 그가 미륵섬에 온 것은 한국전쟁 때. 도솔암에서 도솔선원을 차려 문제(門弟)들을 거느리고 선정(禪定)에 들었다. 아름다운 다도해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아 미래사라는 현판을 걸었으니, 그도 미륵의 당래하생을 염원했던 것일까. 미래사 입구에 세운 효봉 스님 비문에 담긴 화두를 떠올린다.‘천지가 뒤바뀌고, 철마가 새끼치며, 돌계집은 노래하고, 나무장승 춤을 추다.’ 이 뒤집힘의 엄청난 미학까지 통영 바닷가에서 배우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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