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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국토기행] 춘향의 고장 남원… 광한루엔 연인들의 ‘사랑가’ 한 자락

    [新국토기행] 춘향의 고장 남원… 광한루엔 연인들의 ‘사랑가’ 한 자락

    전북 남원시는 예로부터 ‘천부지지 옥야백리’(天府之地 沃野百里)라고 했다. 천부지지는 하늘이 고을을 정해준 땅이라는 뜻이고 옥야백리는 넓고 비옥한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다는 의미다. 살기 좋은 곳으로 유명했던 것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전북 5소경의 하나로, 고려시대는 남원부로, 조선시대에는 남원도호부로 전라도와 경상도를 아우르는 중요한 위치였다. 전북의 동남권으로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동으로는 경남 하동, 남으로는 전남 구례, 북동부는 경남 함양과 인접해 있다. 춘향전의 무대로 역사의 숨결이 담긴 문화유산이 풍부하고 먹거리도 풍성하다.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을 끼고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신명 나는 우리 가락 동편제의 본향이기도 하다. 현재 행정구역은 23개 읍·면·동(1읍 15면 7동)으로 구성돼 있고 인구는 8만 5000명이다. 볼거리 ●남한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지리산 지리산은 남한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산이다. 1967년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됐다. 해발 1915.4m의 천황봉을 중심으로 총면적이 440.4㎢이다. 능선의 길이가 동서로 40㎞에 이르는 거대한 산악군을 형성한다. 높이 1500m 이상 봉우리가 18개, 1000m 이상 봉우리는 40개나 된다. 큰 산줄기는 15개, 아름다운 골짜기가 20여개다.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피아골, 뱀사골, 칠선, 한신 등 4대 계곡은 저마다의 특색을 자랑한다. 국보와 보물을 간직한 대사찰과 수많은 암자가 지리산 자락에 안겨 있다. 화엄사, 쌍계사, 연곡사, 실상사 등 대사찰을 비롯해 많은 암자가 남아 있다. 문화재는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12호)을 비롯한 국보 8점, 보물 56점이 있다. 800여종의 식물이 분포하고 400여종의 동물이 서식한다. 천연기념물은 반달가슴곰(329호), 수달(330호), 하늘다람쥐(328호) 등이다. 지리산의 절경은 필설로 다하기 힘들다. 무수히 많은 비경이 사시사철 펼쳐진다. 지리산 둘레길은 3개도(전북·전남·경남) 5개 시·군(전북 남원시, 경남 함양·산청·하동군, 전남 구례군)에 걸쳐 있는 274㎞의 장거리 도보길이다. 정겨운 숲길, 논두렁길, 마을길을 환형으로 연결한다. 남원시에는 둘레길의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4개 구간이 있다. ●춘향전 배경·한국 대표 누각 광한루원 남원은 춘향의 고향이자 춘향전의 발상지다. 광한루원은 춘향전의 배경이 된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이다. 명승 제33호. 경회루, 촉석루,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4대 누각에 들어갈 만큼 만듦새가 뛰어나다. 우리 선조들이 자연을 닮고자 하는 생각을 표현해 낸 정원으로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지상에 건설했다. 하늘나라 월궁을 광한루라 했고 그 아래 천상의 은하수를 상징하는 호수와 오작교를 놓았다. 오작교는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깃든 아름다운 돌다리다. 이곳에서 사랑을 약속하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하다. 신선들이 산다는 전설 속의 삼신산을 연못 가운데 조성했다. 전체적인 구성이 천체우주를 상징한다. 인간이 천상의 세계를 꿈꾸며 달나라를 즐기려고 지었다는 완월정을 비롯해 춘향사당, 춘향관, 월매집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그네 등 전통놀이 체험장도 다양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남원 상징물·위락시설 모인 관광단지 한국관광공사가 남원의 모든 상징물과 위락시설을 모아 놓은 종합관광단지다. 남원시 어현동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춘향전과 관련된 춘향테마파크, 춘향문화예술회관, 국립민속국악원, 남원향토박물관 등 문화시설이 들어서 있다. 춘향테마파크는 춘향전의 스토리를 따라 5개의 장으로 꾸몄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곳이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전’ 세트장도 이곳에 있다. 단심정에서는 남원시를 모두 조망할 수 있다. 숙박업소와 음식점도 잘 갖춰져 있다. ●천년 고찰 실상사와 중요 역사 유적들 남원은 역사를 품 안에 가득 채울 수 있는 여행이 가능한 지역이다.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민족정신이 응집된 역사의 고장이다. 천년 고찰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창건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선종 사찰이다. 백장암 삼층석탑(국보 제10호)을 비롯한 국가지정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만인의총은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1만명의 넋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이성계 장군이 왜구를 물리친 황산대첩비와 피바위, 유구한 세월을 버티며 그 옛날 영화를 말해주려 하는 만복사지는 빼놓지 말아야 할 유적이다. 이 밖에도 용담사 석불입상, 대복사 동종, 선원사 칠조여래좌상 등 많은 유적이 보존돼 있다. ●정겨운 우리 가락 울리는 동편제 본향 우리 가락과 관련된 볼거리도 풍부하다. ‘남원 가서 소리 자랑하지 말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남원은 국악을 낳고 소리를 키운 고장이기 때문이다. 춘향가, 흥부가 등 판소리 동편제 본향으로 국악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보고 즐길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악성 옥보고는 지리산에서 거문고를 완성했다. 조선시대 가왕 칭호를 받은 송흥록의 생가도 보존돼 있다. 송흥록은 민속음악 가운데 가장 느린 진양조를 응용해 극적이면서 예술적인 판소리를 완성했다. 지방무형문화재 류명철씨의 전라좌도 남원농악관과 국립민속국악원이 있어 어딜 가나 정겨운 우리 가락과 풍류를 즐길 수 있다. 최명희의 장편 소설 ‘혼불’의 배경이 된 남원시 사매면 ‘혼불문학관’도 문학기행 코스다. 남원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먹거리 ●‘가을 보양식 으뜸’ 얼큰 구수한 추어탕 남원 먹거리의 으뜸은 추어탕이다. 광한루원 주변에 추어탕거리가 형성될 정도로 유명한 토속 음식이다. 남원 추어탕이 유명한 것은 섬진강 지류인 요천 등 청정 하천 곳곳에서 미꾸라지가 많이 잡혔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추수가 끝나면 통통하게 살이 오른 미꾸라지를 잡아 시래기와 토란대를 넣고 끓여 먹은 전통음식이다. 추어탕을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새집’ 등이 각기 다른 조리법과 맛을 보여준다. 추어탕은 가을 미꾸라지를 최고로 친다. 미꾸라지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가을이면 몸속에 영양분을 가득 저장하기 때문이다. 여름 더위에 지친 원기를 회복시켜 주고 추운 겨울을 든든하게 버틸 힘을 주는 보양식으로 통한다. 남원 추어탕은 미꾸라지와 시래기 등으로만 시원하고 구수한 맛을 낸다. 된장, 들깨 불린 물, 다진 양념을 넣어 걸쭉하게 끓인다. 미꾸라지는 길이가 짧고 몸통이 동글동글한 ‘동글이’를 고집한다. 맛이 좋고 비린내가 적다. 지리산 고랭지에서 재배되는 추어탕 전용 무청도 남원 추어탕의 맛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입맛에 따라 향신료인 제피가루(초피가루)를 뿌려 먹는 것도 특징이다. 추어튀김, 추어숙회도 유명하다. ●‘탱글탱글 감칠맛’ 흑돼지 버크셔K 남원에서 생산되는 흑돼지는 ‘버크셔K’라는 특별한 품종이다. 미국계 버크셔 품종을 들여와 한국 기후에 맞게 육종했다. 2004년 미국에서 유전자원을 도입·개량해 국제식량기구(FAO)에 새로운 품종으로 등재했다. 해발 500m 고랭지에서 기르기 때문에 일반 돼지보다 육질이 부드러우면서 씹는 맛이 고소하다. 탱글탱글한 육질에 부드럽게 녹는 듯 씹히는 비계의 식감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낸다. 백색 돼지와 달리 근섬유의 단면적이 작으면서 수가 많아 촉촉하면서 탄력 있는 식감을 주고 감칠맛이 뛰어나다. 비계도 다른 돼지에 비해 수분이 20% 정도 적고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부드럽고 잡내가 없다. 운봉읍 등 4개 읍·면 흑돼지 사육농가들이 생산하고 있다. 농가들은 엄격한 품질 관리를 위해 법인을 설립하고 공동출하, 공동판매를 하고 있다. 관광산업과 연계시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지리산 나물 풍성’ 한정식·산채정식 남원은 예로부터 음식이 발달한 맛의 고장이다. 지리산을 끼고 있어 다양한 산채가 연중 생산되고 남해안에서 건져 올린 생선류도 전라선을 타고 곧바로 공급되기 때문이다. 한정식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30여 가지의 반찬이 상을 가득 채운다. 고기와 생선은 물론 나물류가 다양하다. 무·배추·파·고들빼기, 물김치 등 여러 종류의 김치와 꼬막, 새조개, 굴 등 다양한 어패류가 상에 오른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얇게 저며 석쇠에 구운 숯불구이가 유명하다. 산채정식은 지리산에서 채취한 향기로운 산나물이 주재료다. 고사리, 취, 미나리, 도라지, 뽕잎, 시래기, 명이, 쑥부쟁이, 곰취, 곤드레, 비비추, 원추리, 땅두릅, 엄나물, 두릅 등을 데치고 말려 고소하게 볶아낸다. 남원시 근교는 물론 지리산 자락인 주천면 고기리 일대에 산채정식 집들이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건배 전통주 ‘황진이’ ‘황진이’는 각종 주류 품평회에서 크고 작은 상을 휩쓴 전통주다. 지리산 자락 농가에서 빚어 오던 오미자 약주를 발굴 계승한 순수 발효주다. 2006년 남북정상회담 건배주, 2007년 전통주품평회 대상, 2007년 제1회 대한민국주류품평회 금상, 2013년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대상 등 화려한 수상 이력을 자랑한다. 청정지역에서 무농약으로 재배한 오미자와 산수유를 쌀과 누룩으로 발효시켜 빚는다. 깊고 풍부한 맛, 환상의 붉은색이 조화를 이뤄 남녀 모두가 즐겨 찾는 남원의 대표 전통주로 통한다. 남원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유일호 부총리 “한진해운 법정관리 신청 후폭풍 최소화에 만전”

    유일호 부총리 “한진해운 법정관리 신청 후폭풍 최소화에 만전”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 결정에 따른 경제적·산업적 영향 최소화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유 부총리는 3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채권단이 한진해운에 대해 추가 지원 불가 결정을 내렸고 오늘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신청을 결정했다”면서 “정부는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엄격한 고통분담의 원칙 하에 스스로 생존하고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원칙에 따라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유 부총리는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이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은행 등 금융기관도 이미 대부분의 손실을 인식해 주식·채권시장이나 은행 건전성 등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시장 상황 악화 가능성에 대비해 관계기관 공동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회사채 보유기관 등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한편 주요 협력업체에겐 맞춤형 금융지원을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진해운의 피해 규모에 대해서는 “일각에서는 17조원이라는 분석도 있다는데 그건 너무 극단적”이라면서 “운임이 좀 오를 수 있고 고용도 1000명 이상이어서 그런 부분이 걱정이지만 피해를 최소화하겠다. 지금은 정확한 피해규모를 말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해운·항만 산업의 경우 최소 2∼3개월간은 어려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체선박 투입을 통해 화물수송을 차질없이 진행하고 선원들이 해외에서 억류되지 않도록 하는 한편 환적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프라 개선도 추진하겠다는 것이 유 부총리가 제시한 대책이다. 유 부총리는 지난 13일부터 시행 중인 기업활력법과 관련해 “현재 중소·중견·대기업을 포함한 4개 기업이 사업재편을 신청했다”면서 “조속히 심의·확정하고 적극 지원함으로써 앞으로 더 많은 사례가 나올 수 있도록 각 부처가 적극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9월까지 전문기관의 컨설팅 결과 등을 바탕으로 조선과 해운,철강,석유화학 산업의 경쟁력 강화방안을 구체화하고 ‘산업조정 촉진지역 제도’ 도입 등 종합적인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을 마련해 산업경쟁력 제고와 경제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마지막으로 국회에 계류 중인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의 조속한 처리를 다시 한 번 국회에 촉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나는 눈물의 왕이로소이다…덕수궁의 밤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나는 눈물의 왕이로소이다…덕수궁의 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 -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이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 1922년 9월 <백조 3호>지에 발표된, 일제의 국권침탈에 대한 설움을 토해내던 홍사용 시인의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마지막 시구이다. 눈물의 왕이었다. 고종(高宗)은 덕수궁 함녕전에서 1919년 1월 21일 식혜를 마시고 승하했다. 조선의 제 26대 임금으로, 대한제국(1897~1910)의 초대황제로, 결국은 일본 제국의 이태왕(李太王)으로 조각 구름같은 삶을 정동(貞洞)의 하늘에서 놓았다. 이렇듯 대한제국의 절멸, 고종의 독살(毒殺)설, 3.1운동의 실패로 만들어진 공포와 비애의 감정, 그 시원(始原)이 ‘덕수궁’이다. 비가 내렸다. 엊그제 폭염을 하루 만에 추억으로 만들어 버린 비였다. 덕수궁이 앉아 있는 정동에도 낮 동안 가을 내음, 비가 내렸다. 덕수궁은 비가 어울린다. 덕수궁은 다른 궁과는 달리 눈물겹다. 목이 한껏 메어오는 공간이다. 서글픈 집이다. 누구든 이 궁에서는 주인 자리 한번 제대로 잡지 못한 이야기만 한가득 만들었다. 굳이 지금에서야 벼르고 벼른 듯 덕혜옹주의 삶을, 고종황제의 삶을, 역사적 진위를 확인하지는 않겠다. 왜냐하면 이문세가 노래하듯 이제는 그 때의 모든 것들이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서 이 모든 것들의 덕수궁의 아픔, 그 시간만으로도 늘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궁궐로서의 덕수궁만을 우리는 살펴보자. ● 정릉동 행궁(行宮)이 경운궁(慶運宮)으로 덕수궁은 시청 광장 옆, 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정동에 있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궁궐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사적 제124호이며 면적은 6만 3069㎡에 이르는 서울 도심 속에 위치한 궁궐이기도 하다. 덕수궁은 시민들에게는 늘상 지하철 1호선이나 2호선 시청역에서 내리면 바로 만나게 되는 생활 속의 공간이자, 가을길 은행나무 잎 가득 덮인 돌담길로 연인들을 유혹하는 옛날 궁궐이기도 하다. 대개의 사람들은 덕수궁을 20세기 역사의 언저리에 등장하는 근대의 궁궐로 인식한다. 그러나 애당초 덕수궁은 궁궐이 아니라 세조(世祖)의 큰 손자 월산대군의 저택이었다. 그러다 조선의 역사 한가운데로 급작스레 등장한 시기가 임진왜란 때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의주로 피난을 갔던 선조(宣祖)가 한양으로 돌아와서 승하할 때까지 이곳을 시어소(時御所)로 명하여 거처하는 행궁으로 삼는다. 비로소 왕이 거주하는 궁궐이 되었다. 이후 1608년 선조가 승하한 뒤, 광해군이 이곳에서 즉위하고 경운궁(慶運宮)이라 이름 붙여주게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명명한 경운궁에서, 자기를 쫓아낸 인조가 임금이 된다. 인조는 경운궁에 거처하지 않고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경운궁은 다시 역사의 뒤안길로 조용히 사라져 한적한 별궁으로 변한다. ● 대한제국의 정궁(正宮)에서 덕수궁으로 1897년 2월 20일,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이곳 경운궁으로 옮겨오게 되자 본격적으로 근대 궁궐로서의 기능을 하게 된다. 9월 17일에는 소공동(小公洞)에 위치한 환구단에서 하늘에 고하는 제사를 지내고 드디어 경운궁은 대한제국의 정궁(正宮)이 된다. 그러나 1904년에서 화재가 일어나 궁궐의 상당 부분이 소실이 되고 급하게 선원전(璿源殿)·함녕전(咸寧殿)·보문각(普文閣)·사성당(思成堂) 등이 축조, 복원되었지만 제대로 보수되지는 못한다. 1907년 7월 고종이 퇴위하고 순종(純宗)이 즉위하면서 이제껏 불렀던 경운궁을 덕수궁이라 부르게 된다. 이는 고종의 궁호(宮號)가 '덕수'이기 때문에 지금의 덕수궁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순종은 즉위 후 창덕궁으로 이어(移御)하였고, 이후 1910년에 한성부가 ‘경성부(京城府)’로 바뀌게 되자 덕수궁은 일제 총독부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게 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 1913년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벚나무 500그루가 경성일보 사장 ‘요시노’에 의해 덕수궁 곳곳에 심어졌으며, 1914년에는 대한제국의 원년을 선포했던 환구단 자리에 조선철도호텔이 들어선다. 이후 일제는 193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덕수궁의 색깔을 지우기 위해 많은 공사들을 시행한다. 우선은 1933년에 덕수궁의 주요 전각인 함녕전, 덕홍전, 중화전, 석조전을 제외한 나머지 전각을 철거하거나 그 규모를 축소하고, 공원으로 개조하여 일반에 공개한다. 석조전은 일본근대미술품을 전시하는 ‘덕수궁미술관’으로 개관하고 급기야 1935년 5월에는 돈덕전이 있던 자리에 동물원을 신설해서 옛 궁궐로서의 품격을 완전히 격하시킨다. 그러다 한국전쟁을 거쳐 1955년 6월, 석조전을 국립박물관으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1963년 1월 18일에 사적 제124호로 지정되어 다시 우리 역사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본격적인 수많은 복원 공사를 거쳐 현재 석조전이 대한제국역사관 개관, 운영되는 등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다시 자리 잡게 되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덕수궁에 대한 여행 10문답> -아래 질문은 실제 독자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을 바탕으로 만든 10문답입니다.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인가? -당연하다. 서울 4대 궁궐로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을 들 수 있는 데, 이 중 가장 근대적인 면모를 갖춘 궁궐이다. 특히 석조전, 석어당, 정관헌 등은 기존의 옛 궁궐에서 찾기 힘든 근대 역사 유적으로서 가치가 있다. 한 마디로 궁궐로서의 위엄보다는 생활공간으로서의 친근함이 묻어나는 공간이다. 2. 이 공간을 추천해주고 싶은 사람은? -이제 갓 사랑을 시작한 연인이라면 누구든지. 특히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의 경우 10월과 11월에는 누구든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고즈넉함을 제공한다. 3. 덕수궁 야경이 그렇게 유명해? -말을 할 필요가 없다. 1964년 4월 15일에 덕수궁 야간공개가 시작된 이래 야경투어의 정석이다. 특히 종로의 높은 빌딩과 네온사인들이 결코 부담스럽지 않은 밤풍경을 제공한다. 4. 덕수궁 돌담길을 거닐면 연인들은 진짜 헤어지나? -과거 가정법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지금은 시립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 역시 덕수궁 돌담길을 유명하게끔 만든 재미있는 이야기다. 5. 덕수궁에서 놓치지 말고 꼭 봐야 하는 건축물은? -물론 최근에 복원된 건축물들도 많지만, 근대 건축물로서의 원형이 보존된 곳이 많다. 덕수궁 미술관으로 불리는 석조전, 새로 지어진 석어당, 고종황제가 커피를 즐겨 드시던 정관헌, 덕혜옹주를 위해 유치원을 만들어 주었던 준명당 등이 있다. 6. 홈페이지 주소 및 도움되는 사이트 주소는? -문화재청 덕수궁 http://www.deoksugung.go.kr/ 7. 입장료와 기타 관광지정보는? -25세 이상 개인1000원, 단체 800원이다. 만 24세 이하, 65세 이상은 무료이다. 단, 미술관은 덕수궁의 관람권을 구입하고 난 뒤, 미술관에서 별도의 관람권을 구입해야 한다. 8. 주변에 가 볼만한 다른 공간도 있을까? -정동 주변은 근대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공간이다. 우선, 덕수궁 돌담길을 걷고 난 뒤 성공회 서울 주교좌성당, 예전 대법원과 가정법원자리였던 서울 시립 미술관, 정동제일교회, 배재학당, 러시아 공사관, 세실극장, 김수근의 경항신문 사옥 등등 덕수궁 돌담길은 다른 볼거리도 무궁무진한 진정한 서울 근대 문화유산의 보고(寶庫)다. 9. 이곳에서 꼭 추천하고픈 체험은? -당연히 덕수궁 대한문에서의 수문장 교대 의식이다.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3회 이루어지는데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3시 30분에 의식이 있다. 좀 더 자세한 사항은 02-120(다산콜센터)로 문의하면 된다. 10. 총평 및 당부사항, 기타정보 -모든 궁궐을 둘러보는 것 자체가 역사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지만, 덕수궁은 더더욱 그러하다. 비운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우리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귀한 체험이 될 수 있다. 반드시 문화재해설을 듣는 것을 강추!!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기자 vieniame2017@gmail.com
  • 두달 넘게 비 안 온 섬마을… 생명수 곧 갑니다

    두달 넘게 비 안 온 섬마을… 생명수 곧 갑니다

    25일 전남 진도군 창유항에서 진도 급수선 707호 선원이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는 내병도에 전달할 물을 배에 채우고 있다. 진도 팽목항에서 뱃길로 25㎞ 떨어진 내병도는 지난 6월 20일 무렵 이후로 비가 한 번도 내리지 않아 마을 샘물이 모두 바닥난 상태다. 진도 연합뉴스
  • 20대 北청년 연평도 앞 표류···구조한 선장 “팬티만 입은 채 손 흔들어”

    20대 北청년 연평도 앞 표류···구조한 선장 “팬티만 입은 채 손 흔들어”

    24일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스티로폼을 붙잡은 채 표류하던 북한 주민을 처음 구조한 이는 조업 준비를 하던 연평도 어민이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연평도 어민 A(53)씨는 다음달 1일부터 시작될 꽃게 조업을 위한 어구를 설치하려고 이날 아침 인천 옹진군 소연평도 인근 해상으로 배를 몰았다. 선장인 A씨 외에도 선원 3명이 어선에 함께 타고 있었다. 오전 7시 10분쯤 소연평도에서 서쪽으로 2㎞가량 떨어진 해상으로 배를 모는데, 약 200m 떨어진 바다에 수상한 물체가 떠 있었다. 어선의 속도를 줄이며 다가가니 한 남성이 스티로폼을 붙잡은 채 손을 흔들었다. 다급한 마음에 A씨는 일단 바다에 빠진 사람부터 살리고 보자 싶어 선원들과 함께 남성을 어선으로 끌어올렸다. A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연평도가 북한과 가깝다 보니 구조한 다음에 곧바로 남성에게 ‘북에서 왔소’라고 물었다”면서 “처음에는 입을 딱 닫고 아무 말도 안 했다”고 말했다. 이어 A씨가 재차 물어보자 이 남성은 다소 알아듣기 힘든 북한 사투리로 대답했다. A씨는 어선을 몰고 연평도로 귀항해 이 남성을 군 당국에 인계했다. 그는 “이북 사투리를 쓰는 것을 보고 북한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면서 “팬티만 입은 차림에 비쩍 말랐다”고 기억했다. A씨가 이날 구조한 남성은 북한 주민 B(27)씨로 확인됐다. 보안당국은 B씨가 스스로 탈북했는지, 해양조난사고를 당한 것인지 등을 조사하며 귀순 의사가 있는지도 확인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연평도에서 북한과 가까운 곳은 불과 10여㎞ 떨어져 있다”며 “조류를 타고 오는 것도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7일에도 북한 주민 3명이 어선을 타고 인천 해역을 지나다가 해양경찰에 발견됐다. 평안북도에서 출발한 북한 주민들은 당시 곧바로 귀순 의사를 밝혔고, 국가정보원 합동신문센터로 넘겨져 귀순 경로 등을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co.kr
  • 여수광양항만공사, 글로벌 종합항만으로 힘찬 도약

    여수광양항만공사, 글로벌 종합항만으로 힘찬 도약

    19일 창립 5주년을 맞은 전남 여수광양항만공사가 국가산업 발전을 선도하는 글로벌 종합항만으로 힘찬 도약을 다짐한다. 여수항과 광양항을 관리·운영하는 여수광양항만공사는 2011년 8월 설립 이후 자립기반 확보와 경영 안정화를 위해 신규 물동량 창출, 항만운영 수익 증대, 금융부채 감축 등의 큰 성과를 거뒀다. 공사는 유관기관 합동마케팅, 포워더 마케팅 등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추진해 2011년 주당 73항 차에 불과했던 항차 수(컨테이너선 기준)를 8월 현재 92항 차로 늘렸다. 그 결과 2011년 2억 3400만t이었던 총 물동량은 지난해 2억 7300만t으로 증가했다. 그 결과 광양항은 부산항에 이어 국내 2위 항만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총 물동량 중 국가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수출입물동량은 출범 이후 줄곧 국내 1위를 자랑한다. 지난해 광양항의 수출입물동량은 2억 700만t에 달했다. 올 들어서도 상반기 동안 총 물동량 1억 3200만t, 컨테이너물동량 116만 3000TEU(6m짜리 컨테이너 한개 단위)를 처리했으며 연간 목표인 총 물동량 2억 8000만t, 컨테이너물동량 250만TEU 달성에 매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195만㎡의 동측배후단지에 32개 기업, 193만㎡ 규모의 서측배후단지에 7개 기업을 유치해 올해 20만TEU의 물동량을 창출할 예정이다. 서측배후단지 입주 완료시점인 2020년에는 연간 70만TEU의 물동량이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공사는 획기적인 부채 감축과 수익 증대 노력을 통해 방만 경영 해소에도 앞장선다. 금융부채 감축에 주안점을 둔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출자회사 지분 매각, 경상경비 절감 노력 등 자구노력을 통해 부채 규모를 획기적으로 축소시켜 왔다. 2011년 8월 출범 당시 1조 812억원에 달했던 금융부채는 지난해 현재 6040억원으로 크게 감소했으며 올해는 5290원으로 줄여 부채비율을 40% 이하로 낮출 계획이다. 공사는 또 청렴·윤리경영 실천을 위해 청렴감시관 제도를 운영 중이다. 배후단지 입주기업 원스톱 서비스 제공, 컨테이너부두 상하차 지연 해소 등 항만 이용자의 편의를 고려한 정부3·0 가치 확산에 노력하고 있다. 이외에도 매년 8월을 사회공헌의 달로 정하고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항만사랑봉사대를 조직해 교육 재능기부, 어촌마을·지역학교 자매결연, 농촌 일손돕기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선원표 여수광양항만공사 사장은 “지난 5년간의 노력과 성과를 바탕으로 보다 나은 항만서비스를 제공해 국가산업 발전을 선도하는 글로벌 종합항만을 만드는데 전 임직원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광양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말레이 해역 유조선 피랍? 알고보니 해프닝

     인도네시아 선적의 유조선이 말레이 반도 동쪽 해상에서 돌연 위치추적장치를 끄고 잠적하자 이를 해상납치로 오인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당국에 한때 비상이 걸렸다.  17일 오후 인도네시아 해군은 전날 저녁 자국 선적 유조선 ‘휘어 하모니’가 말레이시아 영해에서 피랍됐다는 말레이시아 해양경찰청(MMEA) 발표는 사실이 아니라고 발표했다고 BBC 등이 보도했다. 이 유조선에는 인도네시아 선원 10명이 타고 있었다.  에디 수칩토 인도네시아 해군 대변인은 “해당 유조선은 피랍된 것이 아니며 이 배는 바탐 섬에 무사히 도착했다”면서 “선상에서 폭력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당국은 휘어 하모니호 선원들이 고용주와의 갈등 끝에 무단으로 말레이시아 동부 콴탄 인근 해역에서 위치추적장치를 끄고 인도네시아 바탐 섬으로 돌아온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실제 휘어 하모니호의 선장은 해군 측에 “‘내부 경영 문제’ 때문에 두 차례에 걸쳐 고용주에게 바탐섬으로 배를 돌리겠다고 밝혔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말레이시아 당국자들은 고용주 측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아돈 샬란 MMEA 남부지역 소장은 “초동수사 결과 회사 내부에 배가 사라질 만한 재정적 분쟁이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면서 “이 배는 말레이시아 해역을 운항하려면 의무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정부 채권도 구매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휘어 하모니는 2014년 건조된 전장 53m의 소형 유조선으로, 말레이시아 콴탄 항을 떠날 당시 40만 달러(약 4억 4000만 원) 상당의 디젤유 90만 리터를 싣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현지 언론은 임금 체불이 갈등의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휘어 하모니호의 선장은 갈등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인도네시아 해군 당국은 밝혔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독립운동가 조봉암 선생, 생가 복원 언제쯤

    독립 운동가인 죽산 조봉암 선생(1899∼1959)의 강화도 생가 터 복원 사업이 예산 미배정으로 몇년째 제자리걸음이다. 15일 인천시에 따르면 시는 2011년 죽산 선생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차원에서 12억여원을 들여 생가 터 발굴·복원 기념사업, 중구 도원동 거주지 보존사업 등을 민간단체와 공동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13년에는 제68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죽산 조봉암 선생 기념사업중앙회’와 생가 복원을 함께 추진키로 했다. 이에 따라 인천시는 1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죽산 선생의 생가를 복원하고 추모공원도 조성하기로 했다. 당시 기념사업중앙회는 죽산 선생의 생가를 찾아내기 위해 생가터 발굴 조사위원회와 함께 인천시와 강화군 지원을 받아 2012년 9∼11월 기초 조사를 마쳤다. 이어 죽산 선생의 족보·가계 분석, 친족 정보 수집, 문헌 조사 등을 마치고 생가 터를 강화군 선원면 금월리 가지마을로 잠정 확정했다. 사업회는 이러한 사실을 심포지엄에서 밝히고 인천시와 토지 매입 등을 협의하기로 했지만 이후 시 재정난과 서훈 문제가 겹쳐 사업 예산이 책정되지 않았다. 사업회는 2011년 국가보훈처에 죽산 선생의 서훈 신청을 했지만 그가 일제에 헌금 150원을 냈다는 1941년도 ‘매일신보’ 기사를 이유로 신청이 반려돼 지난해 재심 청구를 한 상태다. 결국 죽산 선생 생가 터는 아무런 조치 없이 5년째 그대로 방치됐다. 1898년 강화도에서 태어난 죽산 선생은 일본 동경에서 유학하면서 사회주의 노선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1932년 일본 경찰에 체포돼 7년간 복역하는 등 치열한 항일 운동을 벌였다. 해방 후 국회의원과 농림부장관 등을 지내고 진보당을 창당했지만 1958년 이른바 ‘진보당 사건’으로 체포돼 간첩죄 등으로 기소됐다.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됐으나 2심과 3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재심 청구가 기각되면서 1959년 7월 형장의 이슬이 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7년 죽산 선생의 사형 집행을 ‘비인도적, 반인권적 인권유린이자 정치탄압’으로 규정했다. 대법원이 유족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여 2년여의 심리를 한 끝에 2011년 1월 무죄 판결을 받아 사형 집행 52년 만에 간첩 누명을 벗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미켈란젤로도 반한 ‘미술 보물창고’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미켈란젤로도 반한 ‘미술 보물창고’

    ‘신성한 마리아의 새로운 성당’이라는 뜻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은 겉보기에는 참 심플하다. 피렌체 역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이 성당은 도미니크회 최대 규모의 성당으로 1278년 착공해 1350년 건물이 완공됐다. 파사드(건물 정면)는 100년이 지난 1456년 피렌체의 거부인 루첼라이 가문의 지원을 받아 공사가 시작됐다. 1470년 완성된 성당의 파사드는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가 설계를 맡았다. 알베르티는 금융업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쌓은 알베르티 가문의 서자로 태어나 볼로냐 대학에서 24살에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수재이면서 음악, 수학, 희곡, 그림, 건축을 섭렵한 르네상스형 인간이었다. 그는 두 개의 유명한 저서를 남겼다. 피렌체 대성당의 두오모를 완성한 브루넬레스키에게 헌정한 ‘회화론’에서는 2차원 화면 위에 3차원 공간을 보여 주기 위한 수학적인 설명과 함께 회화와 조각에서 어떻게 이를 구현하는지를 세세하게 설명했다. 최초로 건축이론을 정립한 비트루비우스의 책을 참고로 쓴 ‘건축론’에는 조화와 균형, 비례의 규칙을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로마네스크·고딕·르네상스 양식 조화 이룬 건물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파사드에는 군더더기 없는 형태만으로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알베르티의 건축철학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파사드에는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양식이 조화롭게 섞여 있다. 이런 조화로운 배치를 통해 알베르티는 간단명료하면서도 장식성이 있는 독특한 화면을 만들었다. 은은하고 정결한 아름다움을 지닌 이 성당을 미켈란젤로는 “나의 신부여” 라고 부르며 특히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원근법 정수 ‘성 삼위일체’ 벽 뚫은 듯 착시 일으켜 안으로 들어가 보자.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에는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 조토의 ‘십자가형’, 기를란다요의 ‘마리아와 성 요한의 생애’, 보티첼리의 ‘ 동방박사의 경배’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마사초(1401~1428)의 ‘성 삼위일체’는 브루넬레스키가 발명한 수학적 선원근법을 적용한 혁신적인 작품으로 르네상스 회화의 문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토스카나 지방의 산조반니 출생인 마사초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피렌체와 로마에서 후원자들의 가족 예배당 프레스코화를 제작하거나 성당의 의뢰로 제단화를 그리던 그가 2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건축에서 브루넬레스키, 조각의 도나텔로와 함께 회화에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서 출발한 르네상스 양식의 창시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마사초는 착시 현상을 이용한 중앙 원근법을 능숙하게 구사해 2차원의 평면이지만 물체는 3차원의 공간에 있는 듯이 보이도록 했다. ‘성 삼위일체’는 완숙한 원근법의 정수를 보여 준다. 이 작품은 교회당의 왼쪽 벽 중간쯤에 그려져 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자연광의 효과까지 계산에 넣은 이 그림은 평면에 그렸음에도 가장 안쪽처럼 보이는 천장의 아치모양이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어서 마치 벽을 뚫어 놓은 듯 착시를 일으킨다. 기품이 넘치는 부드러운 색조에 화면 전체는 완전한 대칭을 이루며 가운데에 위치한 그리스도의 얼굴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이를 소실점으로 삼아 그리스도의 뒤에 서 있는 하느님으로부터 빛이 퍼져 나가는 효과를 냈다. 그림 속 건물 안쪽에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는 마리아와 요한이 있다. 이들은 마리아와 요한이 입은 것과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있이다. 마사초는 당시 이탈리아 남자의 평균키 162㎝에 맞춰 눈높이(약 153㎝)를 기준으로 그렸다고 한다. 그 높이가 기증자 부부가 무릎을 꿇고 있는 면과 일치한다. 그림 하단 양쪽(화면 속 예배당 바깥쪽)에는 이 그림을 주문하고 기증한 도메니코 렌지와 그의 아내가 무릎을 꿇고 있다. 그림 아래쪽에는 해골이 누워 있는 석관이 그려져 있다. 해골 위에는 이탈리아어로 이렇게 적혀 있다. ‘나는 과거에 현재의 당신이었으며, 당신 또한 나와 같이 되리니.’ ●한가운데 걸려 있는 조토의 십자가도 볼거리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한가운데 걸려 있는 조토의 십자가 맞은편 벽에 걸린 브루넬레스키의 십자가도 눈여겨볼 거리다. 발길을 붙잡는 또 다른 작품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1449~94)의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다. 질서와 균형이 돋보이고 우아하고 고요한 아름다움이 볼수록 매력적이다. 기를란다요는 미켈란젤로의 스승으로 이탈리아 전역에서 귀족들로부터 부름을 받을 정도로 인기 절정의 화가였다. 메디치가와 사돈 관계인 토르나부오니 집안에서도 최고 인기 화가에게 예배당을 장식할 벽화를 외뢰했다. 기를란다요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중심으로 위쪽에는 성모마리아의 대관식 장면을, 오른쪽에는 마리아의 일생을, 그리고 왼쪽에는 세례 요한의 일생을 그려 넣었다. 인물을 아주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 뛰어났던 기를란다요의 손끝을 통해 완성된 프레스코화에는 르네상스 여성들의 우아함이 그대로 살아 있다. lotus@seoul.co.kr
  •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양식이 조화롭게 섞인 미술사 보고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양식이 조화롭게 섞인 미술사 보고

     이탈리아 피렌체는 거대한 미술관이다. 피렌체의 상징인 대성당 두오모와 우피치 미술관은 물론이고 자그마한 경당, 성당, 수도원, 궁전과 귀족들의 저택 어디든 르네상스 시대의 아름다운 프레스코화가 벽을 장식하고 있고, 미술책에서 익히 보아 온 거장들의 조각 작품들이 곳곳에 서 있다. 볼 것이 너무 많다 보니 마지막에 가서는 대충 그 성당이 그 성당, 그 궁이 그 궁이겠지 하고 스쳐 지나가 버리게 된다. 그러고는 뒤늦게 “이런 유명한 작품이 있었는데 그걸 몰랐네”하면서 후회하기 일쑤다. 피렌체 역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도 그렇게 놓치기 쉬운 곳인데 미술사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귀중한 작품들이 가득하다.  ‘신성한 마리아의 새로운 성당’이라는 뜻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은 겉보기에는 참 심플하다. 도미니크회 최대 규모의 성당으로 1278년 착공해 1350년 건물이 완공됐고, 파사드(건물 정면)는 100년이 지난 1456년 피렌체의 거부인 루첼라이 가문의 지원을 받아 공사가 시작됐다. 1470년 완성된 성당의 파사드를 설계한 이는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금융업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쌓은 알베르티 가문의 서자로 태어나 볼로냐 대학에서 24살에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수재이면서 음악, 수학, 희곡, 그림, 건축을 섭렵한 르네상스형 인간이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에서 보편타당한 이치를 찾아내 이를 규칙화 하고 이론화 했다. 그는 두 개의 유명한 저서를 남겼다. 피렌체 대성당의 두오모를 완성한 브루넬레스키에게 헌정한 ‘회화론’에서 그는 2차원 화면 위에 3차원 공간을 보여주기 위한 수학적인 설명과 함께 회화와 조각에서 어떻게 이를 구현하는지를 세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최초로 건축이론을 정립한 비트루비우스의 책을 참고로 쓴 ‘건축론’에는 조화와 균형, 비례의 규칙을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파사드에는 군더더기 없는 형태 만으로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그의 건축철학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파사드에는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양식이 조화롭게 섞여있다. 토스카나 지방의 건물에서 자주 보이는 여러 가지 색의 대리석 조합으로 수평 띠를 두른 로마네스크 양식이고, 아래쪽의 뾰족한 아치는 고딕양식에서 따왔다. 위쪽의 사각형, 타원형 무늬는 전형적인 르네상스 양식이다. 이런 조화로운 배치를 통해 알베르티는 간단명료하면서도 장식성이 있는 독특한 화면을 만들었다. 은은하고 정결한 아름다움을 지닌 이 성당을 미켈란젤로는 “나의 신부여” 라고 부르며 특히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안으로 들어가 보자.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에는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 조토의 ‘십자가형’, 기를란다요의 ‘마리아와 성 요한의 생애’, 보티첼리의 ‘ 동방박사의 경배’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마사초(1401~1428)의 ‘성 삼위일체’는 브루넬레스키가 발명한 수학적 선원근법을 적용한 혁신적인 작품으로 르네상스 회화의 문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현존하는 프레스코화 중 최초로 체계적으로 투시원근법을 적용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토스카나 지방의 산 조반니 출생인 마사초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피렌체와 로마에서 후원자들의 가족예배당 프레스코화를 제작하거나 성당의 의뢰로 제단화를 그리던 그가 2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건축에서 브루넬레스키, 조각의 도나텔로와 함께 회화에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서 출발한 르네상스 양식의 창시자로 이름을 남겼다.  마사초는 브루넬레스키가 발명한 원근법에 영감을 받아 이를 체계적으로 이론화했다. 원근법이란 보는 사람을 중심으로 가까운 것은 크게, 먼 것은 작게 그리고 평행하는 선과 면은 무한히 먼 하나의 소실점으로 수렴되어 사라지는 듯이 보이도록 그리는 것이다. 마사초는 착시현상을 이용한 중앙 원근법을 능숙하게 구사해 2차원의 평면이지만 물체는 3차원의 공간에 있는 듯이 보이도록 했다. ‘성 삼위일체’는 완숙한 원근법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교회당의 왼쪽 벽 중간쯤에 그려져 있는데 평면에 그렸음에도 가장 안쪽처럼 보이는 천정의 아치모양이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어서 마치 벽을 뚫어 놓은 듯 착시를 일으킨다. 기품이 넘치는 부드러운 색조에 화면 전체는 완전한 대칭을 이루며 가운데에 위치한 그리스도의 얼굴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이를 소실점으로 삼아 그리스도의 뒤에 서있는 하느님으로부터 빛이 퍼져나가는 효과를 냈다. 그림 속 건물 안 쪽에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는 마리아와 요한이 있다. 그림 하단 양쪽(화면 속 예배당 바깥 쪽)에는 이 그림을 주문하고 기증한 도메니코 렌지와 그의 아내가 무릎을 꿇고 있다. 이들은 마리아와 요한이 입은 것과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있이다. 마사초는 당시 이탈리아 남자의 평균키 162cm에 맞춰 눈높이(약 153cm)를 기준으로 그렸다고 한다. 그 높이가 기증자 부부가 무릎을 꿇고 있는 면과 일치한다.  그림 아래 쪽에는 해골이 누워있는 석관이 그려져 있다. 쌩뚱맞아 보이지만 해골 위에 이탈리아어로 적힌 문장을 읽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는 과거에 현재의 당신이었으며, 당신 또한 나와 같이 되리니’...  언젠가 죽음을 맞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의 메시지를 적나라하게 그려놓은 것 같지만 실은 미사에서 영성체 의식에서 반복되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과 관련된 문구다. 석관은 죽음으로 인간을 구원한 그리스도와 함께 영생을 누릴 수 있는 내세를 암시한다.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한 가운데 걸려있는 조토의 십자가, 맞은 편 벽에 걸린 브루넬레스키의 십자가도 눈여겨 볼거리다. 조토는 마사초가 가장 존경했던 화가이고, 브루넬레스키는 마사초와 함께 당대를 풍미했던 건축가로 두오모의 돔을 완성했다.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에서 발길을 붙잡는 또 다른 작품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1449~94)의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다. 질서와 균형이 돋보이고 우아하고 고요한 아름다움이 볼수록 매력적이다. 기를란다요는 미켈란젤로의 스승으로 이탈리아 전역에서 귀족들로부터 부름을 받을 정도로 인기 절정의 화가였다. 메디치가와 사돈관계인 토르나부오니 집안에서도 최고 인기 화가에게 예배당을 장식할 벽화를 외뢰했다. 기를란다요는 스테인드 글래스를 중심으로 위쪽에는 성모마리아의 대관식 장면을, 오른쪽에는 마리아의 일생을, 그리고 왼쪽에는 세례 요한의 일생을 그려넣었다. 인물을 아주 사실적으로 그리는데 뛰어났던 기를란다요의 손끝을 통해 완성된 프레스코화에는 르네상스 여성들의 우아함이 그대로 살아있다. 기를란다요가 성당의 벽화를 그릴 즈음에 토르나부오니 집안에선 외동딸 조반나의 혼사를 앞두고 있었다. 마리아의 탄생과 성장기, 결혼, 승천까지를 그린 벽화에는 딸의 결혼을 축하하고 건강한 출산을 기원하는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 ‘마리아의 탄생’ 편에서 축하하러 온 귀부인들 일행의 가장 앞줄에 선 젊은 여성이 조반나다.  성모의 일대기 맞은 편에는 피렌체의 수호성인인 세례 요한의 일생을 그려 놓았다. 늙은 제사장 스가랴에게 천사가 나타나 곧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하는 ‘스가랴에게 나타난 천사’에 등장하는 군상은 실제 토르나부오니 가문의 친인척들이라고 한다. 세례 요한은 살로메라는 여인의 간계에 의해 참수당해 죽는다. 이 장면을 그린 ‘헤롯의 연회’는 특히나 어디가 그림이고, 어디가 건축물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눈속임 효과가 뛰어나다. 기를란다요는 산타 트리니타 성당내에 사세티 가문의 예배당에도 아름다운 벽화를 남겼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신안 무역선 발굴 40주년/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신안 무역선 발굴 40주년/서동철 논설위원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는 ‘북유럽 최고의 미술관’으로 꼽히는 국립 미술관과 노벨상의 역사가 담긴 노벨 박물관, 이 나라 출신 록그룹의 활동상을 담은 아바 박물관을 비롯해 박물관과 미술관이 즐비하다. 그런데 한 곳밖에는 갈 수 없다고 하면 스톡홀름 사람들은 바사 박물관을 추천한다. 바사는 1628년 스톡홀름 내해(內海)에서 침몰한 전함 이름이다. 러시아와 맞붙어 발트해 동쪽으로 세력을 넓힌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2세가 건조한 바사호는 길이 69m에 배수량 1210t, 적재 함포 64문, 탑승 인원 450명 규모로 당시로서는 초대형 군함이었다. 그런데 귀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수식을 갖고 첫 항해에 나서자마자 가라앉는다. 설계 하중을 초과한 무기를 갑판에 집중적으로 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사호는 1961년 인양됐다. 차가운 바닷물에 잠겨 있었기 때문인지 부재는 대부분 훼손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고, 선원들의 유골과 유품도 대부분 수습할 수 있었다. 바사 박물관은 스웨덴 국립 해양 박물관 재단 산하로 1990년 개관했다. 배의 높이에 맞춰 4층으로 지어진 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은 건조 당시 바사호의 모습과 선원들의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다. 전함 부문에서 대표적인 수중 고고학의 발굴 성과로 바사호를 들 수 있다면 화물선 부문에서는 단연 신안 해저선이다. 말할 것도 없이 전남 신안의 증도 앞바다에서 발견되어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14세기 중국 무역선이다. 1912년 역시 첫 번째 항해에서 북대서양에 가라앉은 타이타닉호를 인양한다면 여객선 부문의 대표적 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지금 신안 무역선의 발굴 40주년을 기념하는 ‘신안 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회를 찾으면 우선 국내 박물관 전시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압도적인 스케일에 놀라게 된다. 28t에 이른다는 동전은 일부만 전시했음에도 수습한 2만 4000점의 유물 가운데 전시가 가능한 2만점 남짓을 망라했기 때문이다. 사실 복원된 신안선과 출토 유물은 그동안에도 전남 목포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전시관에서 볼 수 있었다. 1975년 해저 유물의 신고가 이루어지고 이듬해부터 발굴 조사가 시작되면서 1981년 목포에 보존처리장이 마련됐고, 1994년 이웃에 해양유물전시관도 세워졌다. 하지만 전시관 규모의 한계로 전체 유물의 10분의1도 내보일 수 없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도자기를 비롯해 신안선 유물의 질은 과장을 보태지 않아도 바사호의 그것을 뛰어넘는다. 다만 신안선은 강한 조류에 휩쓸리는 바람에 상부 구조의 일부가 사라져 버린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특별전을 보면서 이제라도 신안선과 유물로 바사 박물관이 부럽지 않은 대형 박물관을 세우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강남서 만나는 부처님 가르침·인문학

    강남서 만나는 부처님 가르침·인문학

    ‘서울 강남에서 부처님 가르침과 인문학이 만난다.’ 참불선원(선원장 각산 스님)이 9월 5일~11월 28일 매주 월요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본원에서 불교인문학 강좌를 개설한다고 4일 밝혔다. 지난 5월 강남에서 불교인문학 붐을 조성해 눈길을 끈 데 이어 두 번째 마련한 고품격 연속강좌이다. 율사와 철학자, 심리학자, 불교학자, 힐링멘토들이 강의에 나섰던 지난 강좌 참가자들의 재수강 요청에 따라 다시 열리게 됐다고 한다. ‘열풍! 인문학 오케스트라’ 주제의 가을 강좌에서는 철학·심리·상담·수행 등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강단에 설 예정이다. 조계종 포교연구실장 원철 스님, 행불선원장 월호 스님, 불교신문 사장 주경 스님, 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서광 스님, 참불선원장 각산 스님, 이미령 북칼럼니스트, 박해진 작가, 박광서 서강대 명예교수, 전현수 정신과 전문의, 이규미 전 한국심리학회 회장이 그들이다. 강사들은 부처님의 인생철학을 비롯해 훈민정음의 비밀, 명상체험, 종교와 마음 치유 등 다양한 주제에 철학, 심리학, 문화예술, 과학을 융합해 불교적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강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복잡한 현대사회 속 삶을 성찰하는 명상과 참선의 시간도 마련된다. 인문학 강좌 말고도 안희영 한국MBSR연구소장이 매주 월요일 오후 2시 사티(sati·알아차림), 명상, 스트레스 심신의학을 융합한 미국 매사추세츠의과대학 존 카밧진 박사의 MBSR강좌를 무료로 특강한다. 참불선원장 각산 스님은 “불교 지성문화에 인문학적 관점을 융합해 불자들의 신행 생활에 도움을 주고 싶다”며 “일반인에게도 불교수행과 명상이 현대인의 삶을 얼마만큼 변화시킬 수 있는지 알려주고자 한다”고 밝혔다. 강좌와 강사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참불선원 홈페이지(cafe.naver.com/chambul3280) 참조.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영덕 앞바다 ‘조스 주의보’

    영덕 앞바다 ‘조스 주의보’

    경북 영덕 앞바다에서 상어 1마리가 발견돼 해수욕객의 각별한 주의가 요청된다. 포항해양경비안전서에 따르면 4일 오전 5시 30분쯤 영덕군 강구면 삼사리 1마일 해상에서 조업 중인 어선 D호(24t급)가 쳐둔 그물에 상어 1마리가 걸렸다. 선원들이 길이 150㎝, 둘레 45㎝ 크기의 상어를 죽인 뒤 건져 올려 이날 오전 강구수협을 통해 위판했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이날 포항해경으로부터 상어 종류 조사를 의뢰받아 1차 판독한 결과 동해상에 자주 출현하는 악상어로 밝혔다. 악상어는 성질이 난폭하지만 아직 사람을 공격했다는 기록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 동해안에서는 상어 출현이 잇따른다. 2014년 7월 포항 남구 호미곶면 앞바다에서 105㎝ 길이의 죽은 청상아리 상어가 잡혔다. 2012년과 2013년엔 영덕 앞바다에서 어선이 쳐둔 그물에서 청상아리 3마리가 잇달아 죽은 채 발견됐다. 청상아리는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는 잡식성에 성질이 난폭하고 사람이나 보트도 공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들 지역 해수욕장 순찰 때 수상 오토바이에 상어 퇴치기를 부착하는 등 안전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포항해경 관계자는 “다행히 지금까지 상어 출현에 따른 피해는 없다”면서도 “어민이나 해수욕객이 상어를 발견하면 122로 즉시 신고하고 해수욕을 할 때도 각별히 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현각의 가출/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세종로의 아침] 현각의 가출/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돈 밝히는 기복 한국불교를 떠나려 한다.” 현각스님이 지난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외국인은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며 밝힌 충격선언의 파장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뒤늦게 한 일간지에 전한 “한국불교와 한국을 떠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는 해명에도 관심이 확산되는 추세다. ‘도대체 왜 떠나는 걸까’ ‘정말 떠나는 거야?’…. 외국인 스님의 ‘한국불교 절연’ 소식에 왜 이렇게 흥분해 관심을 쏟는 걸까. 그 관심과 화제의 중심은 ‘왜’ 라는 이유보다 ‘현각’에 치우친 것 같다. 미국 예일대 철학과를 나와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을 전공한 미국인. 로마 가톨릭 신부가 되려다 숭산 스님 강연에 감동하여 조계종에 귀의한 푸른 눈의 납자(衲子). 한국사찰 주지와 화계사 국제선원장을 지낸 인물…. 현각스님의 벽력같은 선언 이후 처음 입장을 낸 조계종 스님의 전언도 일반인의 심중과 별반 다르지 않다. “현각 스님은 제대로 한국말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버드라는 유교문화 속에 존재하는 사대주의와 학벌주의에 의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분이다.” “한국을 선택한 외국인으로서 25년 이상을 산 분의 비판으로는, 이것이 자기 우월주의와 문화적 독선에 빠져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뭣이 중헌디.” 지난 5월 개봉해 이목을 끈 영화 ‘곡성’의 대사를 빌려 무엇이 중요한지 따져보자. 일반 입장에서야 한국불교를 택한 외국인 수재가 독특해 보일 것이다. 범상치 않은 전복(轉覆)의 삶이 관심을 끄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 스님이 한국불교를 떠난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하지만 조계종 입장은 달라야 한다. 지금 당장의 관심은 ‘인간 현각’의 들고 남에 쏠리겠지만, 머지않아 왜 떠났는지의 원인에 모일 게 분명하다. 네티즌 반응도 현각의 한국불교 결별이란 사건에서 왜 떠났는지를 묻는 비판으로 번지고 있다. 현각 스님은 지난해 급작스레 세상을 떠난 대진 스님의 다비장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대진 스님이 숭산 스님과 함께 평생 일궈온 농사를 이어 세계에서 더 많은 꽃과 열매를 맺게 하는 게 대진 스님을 추모하는 방법이다.” 숭산 스님의 미국인 제자였던 대진 스님을 향한 그 추도사는 은사인 숭산 스님이 생전 일갈했던 세계일화(世界一花)의 정신을 잇겠다는 다짐이다. 그랬던 그가 한국불교를 떠난다니 그 만방의 꽃을 피울 화단을 옮기겠다는 또 다른 전복의 시작이 아닌가. “한국불교와 한국을 떠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는 말을 그대로 믿자면 현각 스님의 앞선 선언은 잠시 가출의 변에 머물 수도 있다. 그간 정황으로 보자면 가출한 푸른 눈의 납자가 다시 한국불교로 귀가할 것 같진 않아 보인다. 적어도 조계종단의 품 안에 다시 웅숭그리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런 측면에서 조계종 포교원장을 지낸 스님이 전한 소감이 곧 몰아칠 후폭풍의 예고인 듯해 각별하다. “현각 스님의 탈한국불교 변론에는 양지의 이야기는 덮였지만 한국불교에 ‘신불교유신론’이 되길 기대한다. 재삼재사 신불교유신론이 나오는 도화선이 되길 바라고 싶다.” kimus@seoul.co.kr
  • 현각 스님 “외국인은 장식품… 돈 밝히는 韓불교 떠날 것”

    현각 스님 “외국인은 장식품… 돈 밝히는 韓불교 떠날 것”

    미국 예일대, 하버드 대학원 출신으로 조계종단에 출가해 대중에게 잘 알려진 현각 스님이 한국 불교에 실망을 토로하면서 “한국 불교를 떠나겠다”고 밝혔다. 베스트셀러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등으로 주목받아 온 대표적 외국인 납자가 한국 불교와의 결별을 선언한 것으로 파장이 예상된다. 그리스에 머물고 있는 현각 스님은 지난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8월 중순 한국을 마지막으로 공식 방문한다”며 “화계사로 가서 은사 숭산 스님 부도탑에 참배하고 지방 행사에 참석한 뒤 한국을 떠날 준비를 하겠다”고 밝혔다. 환속은 안 하지만 현대인들이 참다운 화두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유럽이나 미국에서 활동하겠다는 계획도 덧붙였다. 현각 스님은 다소 서툰 우리말로 쓴 글을 통해 한국 불교를 향한 실망감을 털어놓았다. 스님은 ‘서울대 왔던 외국인 교수들, 줄줄이 떠난다’는 일간지 기사를 인용하면서 “이 사람들의 마음을 100% 이해하고 동감한다. 나도 이 좁은 정신(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떠날 수밖에 없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특히 “주한 외국인 스님들은 오로지 조계종의 ‘데커레이션’(장식품)”이라며 “이게 내 25년간(한국 불교의) 경험이다. 참 슬픈 현상”이라고 격한 감정을 쏟아 냈다. 현각 스님은 은사인 숭산 스님을 향해선 “45년 전 한국 불교를 위해 새 문을 열었다. (그동안) 나와 100여명의 외국인 출가자가 그 포용하는 대문으로 들어왔다. 참 넓고 현대인들에게 딱 맞는 정신이었다”고 존중했다. 그와는 달리 조계종단을 겨냥해선 “숭산 스님이 세운 혁명적인 화계사 국제선원을 완전히 해체시켰다”며 “한국 선불교를 전 세계에 전파하고 누구나 자신의 성품을 볼 수 있는 그 자리를 기복 종교로 만들었다. 왜냐하면 ‘기복=돈’이기 때문이다. 참 슬픈 일이다”라고 비판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선상살인 베트남 선원 2명 구속기소…비인격적 대우와 가혹행위는 없어

    원양어선 ‘광현호 선상살인‘ 사건 피의자인 베트남 선원 2명이 살인 등 혐의로 정식 재판에 넘겨졌다. 부산지검 형사2부(부장 유병두)는 베트남 선원 B(32)를 살인 혐의로, V(32)를 특수폭행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27일 밝혔다. 공소 사실에 따르면 고종사촌인 이들 베트남 선원은 지난달 19일 오후 6시 20분쯤 광현호 조타실에 들어가 V는 선장 목을 붙잡아 못 움직이게 하고 B는 식당에서 가져온 흉기로 선장을 수십 차례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B는 이어 기관장 침실로 가 흉기로 기관장도 살해했다. B는 범행 전 다른 베트남 선원들에게 살인 범행에 가담할 것을 종용했고, V는 살인 범행 가담을 거부하는 베트남 선원 4명을 때린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이들이 술을 마시고 선장과 말다툼을 하다가 선장 등을 폭행하고 일이 커지자 강제 하선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어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애초 한국인 선장 등의 소통부족으로 인한 비인격적인 대우, 원양어선의 강한 업무강도 등으로 인한 범행이라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조사결과 가혹행위 등은 없었다. 생존 선원들은 선장, 기관장으로부터 가벼운 욕설을 듣기는 했으나 폭행이나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은 없었고, 식사나 잠자리 등도 불편함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선원들은 또 선장이 강제 하선시킨다고 해도 회항 비용이나 조업 손실 때문에 조업 중에는 사실상 강제 하선이 불가능하고 기계화로 인해 어로작업 강도도 지나치지 않았다는게 검찰의 설명이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씨줄날줄] 달라이 라마 효과/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달라이 라마 효과/오일만 논설위원

    국제무역에서 ‘달라이 라마 효과’라는 용어가 있다. 티베트 분리독립을 추진하는 달라이 라마를 만나면 그 국가는 중국에 경제 보복을 당한다는 뜻이다. 독일 괴팅겐대학의 안드레아스 폭스와 닐스 헨드릭 클란 교수가 ‘국제무역에서의 달라이 라마 효과’라는 연구를 통해 제기한 학설이다. 시진핑 주석의 전임자인 후진타오 시대 달라이 라마를 만나면 해당국의 대(對)중국 수출은 무조건 감소했다. 구체적으로 장관급 각료의 경우 무역 감소폭은 8.5%였고 대통령급이 만나면 16.9%로 대폭 줄어들었다. 두 교수가 159개국의 사례를 통해 조사한 결과다. 2008년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달라이 라마와 만난 일이 있었다. 중국은 이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중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진행됐던 에어버스 항공기 150대 구매 협정을 무산시켰다. 프랑스 외무부는 “하나의 중국 정책과 티베트가 중국 영토의 통합된 일부분이라는 것을 재확인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실상 백기 투항이었다. 달라이 라마 효과는 중국의 핵심 이익과 관련이 깊다. 핵심 이익에 대한 정의는 다소 모호하지만 후진타오 정권 시절 당시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상세한 설명을 했다. 2000년 제1차 미·중 전략경제대화를 통해서다. 그는 사회주의 체제 유지와 국가 안보와 영토·주권 수호, 경제·사회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발전을 중국의 3대 핵심 이익으로 제시했다. 하나의 중국 원칙(대만 문제)과 티베트·위구르 분리독립, 서구식 다당제 반대, 남중국해 및 센카쿠 영토 분쟁 등이 해당한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95주년 기념식에서 “그 어떤 외국도 우리가 핵심 이익으로 거래할 것으로 기대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2010년 노벨상위원회가 중국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자 중국은 노르웨이 연어 수입을 금지했고 2010년 9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이 격화될 당시 일본이 중국 어선의 선장과 선원을 억류하자 즉각 희토류 수출을 중단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대구 치맥페스티벌에 참가하기로 했던 중국 칭다오시가 불참을 통보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배치를 둘러싸고 중국의 경제 보복이 아니냐는 보도가 적지 않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날 선 공세도 예사롭지 않다. 중국 정부는 사드 배치와 관련해 핵심 이익이라고 단언하지 않았지만 시 주석은 이미 ‘전략적 안보 이익을 훼손했다’고 규정했다. 중국이 국제 시선 때문에 대놓고 경제 보복을 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카드를 갖고 우리를 흔들 가능성은 크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650년 만에 열린 바닷속 ‘보물창고’

    650년 만에 열린 바닷속 ‘보물창고’

    1975년 8월, 해양 문화재 발굴의 신호탄이 올랐다. 전남 신안 증도 앞바다에서 한 어부의 그물에 도자기 6점이 걸려 올라온 게 계기가 됐다. 어부는 초등학교 교사인 동생에게 도자기들을 보여 줬고, 동생은 이듬해인 1976년 ‘청자꽃병’ 한 점을 신안군청에 신고했다. 전문가 고증 결과 중국 원나라(1271~1368) 때 ‘용천요’(龍泉窯)라는 가마에서 제작된 청자로 드러났다. 뒤이어 신고된 나머지 5점도 마찬가지였다.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은 팀을 꾸려 그해 10월 27일 발굴에 본격 착수했다. 1984년까지 11차례에 걸쳐 배에 실려 있던 각종 물품 2만 4000여점과 28t 상당의 동전을 수습했다. 650년 넘게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던 ‘신안선’ 발굴 비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신안선 발굴 40주년을 맞아 특별전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을 26일부터 9월 4일까지 개최한다. 종류별로 대표성 있는 유물들만 추려 공개했던 기존 전시와 달리 이번엔 신안선에서 발굴된 유물 2만여점을 일괄 전시한다. 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특별전 개막을 앞두고 2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금까지 여러 차례 진행된 전시에서 공개된 신안선 유물들은 발굴품 중 5% 정도인 1000여점에 지나지 않는데 이번 전시에선 신안선 전모를 생생히 실감할 수 있도록 발굴 유물들을 모두 모아 최초로 공개한다”며 “중앙박물관 특별전 역사상 가장 많은 수량의 유물을 선보이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3부로 이뤄져 있다. 1부 ‘신안해저선의 문화기호 읽기’에선 복고풍의 그릇들과 차(茶), 향, 꽃꽂이 등과 관련된 완상품들을, 2부 ‘14세기 최대의 무역선’에선 신안선이 닻을 올렸던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항을 중심으로 이뤄진 교역 활동과 신안선 선원·승객들의 선상 생활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의 백미인 3부 ‘보물창고가 열리다’에선 도자기, 동전, 자단목, 금속품 등 신안선에서 발굴된 주요 유물들이 전시되고 일부 유물은 발굴 당시 상황도 재현한다. 전시 유물 중엔 현존하는 최고(最古) 일본 장기판도 있다. 발굴 당시엔 바둑판으로 분류됐지만 이번에 박물관 측이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에 문의한 결과 14세기 일본 장기판으로 확인됐다. 신안선은 추가 연구를 통해 1323년 중국 저장성 경원(慶元·오늘날 닝보)에서 일본 하카타(博多·오늘날 후쿠오카)를 거쳐 교토로 향하던 무역선으로 밝혀졌으며, 신안선 선체는 현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 전시돼 있다. 국립광주박물관도 10월 25일부터 내년 1월 30일까지 수량과 내용을 조정해 특별전을 개최한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발굴 40주년 기념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 특별전

    발굴 40주년 기념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 특별전

     1975년 8월, 해양 문화재 발굴의 신호탄이 올랐다. 전남 신안 증도 앞바다에서 한 어부의 그물에 도자기 6점이 걸려 올라온 게 계기가 됐다. 어부는 초등학교 교사인 동생에게 도자기들을 보여 줬고, 동생은 이듬해인 1976년 ‘청자꽃병’ 한 점을 신안군청에 신고했다. 전문가 고증 결과 중국 원나라(1271~1368) 때 ‘용천요’(龍泉窯)라는 가마에서 제작된 청자로 드러났다. 뒤이어 신고된 나머지 5점도 마찬가지였다.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은 팀을 꾸려 그해 10월 27일 발굴에 본격 착수했다. 1984년까지 11차례에 걸쳐 배에 실려 있던 각종 물품 2만 4000여점과 28t 상당의 동전을 수습했다. 650년 넘게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던 ‘신안선’ 발굴 비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신안선 발굴 40주년을 맞아 특별전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을 26일부터 9월 4일까지 개최한다. 종류별로 대표성 있는 유물들만 추려 공개했던 기존 전시와 달리 이번엔 신안선에서 발굴된 유물 2만여점을 일괄 전시한다.   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특별전 개막을 앞두고 2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금까지 여러 차례 진행된 전시에서 공개된 신안선 유물들은 발굴품 중 5% 정도인 1000여점에 지나지 않는데 이번 전시에선 신안선 전모를 생생히 실감할 수 있도록 발굴 유물들을 모두 모아 최초로 공개한다”며 “중앙박물관 특별전 역사상 가장 많은 수량의 유물을 선보이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3부로 이뤄져 있다. 1부 ‘신안해저선의 문화기호 읽기’에선 복고풍의 그릇들과 차(茶), 향, 꽃꽂이 등과 관련된 완상품들을, 2부 ‘14세기 최대의 무역선’에선 신안선이 닻을 올렸던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항을 중심으로 이뤄진 교역 활동과 신안선 선원·승객들의 선상 생활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의 백미인 3부 ‘보물창고가 열리다’에선 도자기, 동전, 자단목, 금속품 등 신안선에서 발굴된 주요 유물들이 전시되고 일부 유물은 발굴 당시 상황도 재현한다. 전시 유물 중엔 현존하는 최고(最古) 일본 장기판도 있다. 발굴 당시엔 바둑판으로 분류됐지만 이번에 박물관 측이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에 문의한 결과 14세기 일본 장기판으로 확인됐다. 신안선은 추가 연구를 통해 1323년 중국 저장성 경원(慶元·오늘날 닝보)에서 일본 하카타(博多·오늘날 후쿠오카)를 거쳐 교토로 향하던 무역선으로 밝혀졌으며, 신안선 선체는 현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 전시돼 있다. 국립광주박물관도 10월 25일부터 내년 1월 30일까지 수량과 내용을 조정해 특별전을 개최한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아관파천 현장 옛 러시아공사관 복원

    아관파천 현장 옛 러시아공사관 복원

    덕수궁 선원전 영역도 살리기로 아관파천 120주년을 맞아 사건 현장인 서울 정동 옛 러시아공사관이 원형 그대로 복원된다. 문화재청은 서울 중구청과 함께 사적 제253호인 ‘서울 구(舊) 러시아공사관’을 복원·정비하는 사업을 내년부터 2021년까지 진행한다고 20일 밝혔다. 러시아인 사바틴이 르네상스 양식으로 설계해 1890년 완공된 이 건물은 한국전쟁 때 심하게 파괴돼 16m 높이의 탑과 28㎡ 면적의 지하 밀실만 남아 있는 상태다. 아관파천은 고종이 명성황후가 시해된 이듬해인 1896년 2월 11일 경복궁을 벗어나 러시아공사관(아관·俄館)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이다. 당시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에서 약 1년간 머물며 친위 기병대 설치·지방 제도와 관제 개정에 대한 안건을 반포했고, 민영환을 특명전권공사에 임명해 영국·독일·러시아로 보냈다. 또 대한제국 선포에 앞서 천자의 나라임을 알리기 위해 환구와 사직 등에 지내는 향사(享祀·제사)를 옛 역서(曆書)에 근거해 지내도록 조령을 내리기도 했다. 고종이 아관파천 때 통과했던 미국대사관 관저와 덕수궁 선원전(璿源殿) 사이의 좁은 길인 ‘고종의 길’도 내년까지 복원된다. 약 110m 길이의 이 길은 대한제국 시기에 미국공사관이 만든 지도에 ‘왕의 길’(King‘s Road)로 표시돼 있다. 앞서 미국 국무부 재외공관관리국은 지난 6월 고종의 길 설계안을 최종 승인했고,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9월부터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아울러 고종의 길 옆에 있는 덕수궁 선원전 영역의 복원도 본격화된다. 왕의 초상화인 어진을 봉안하던 선원전은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기 전에 지은 건물로, 고종이 승하한 다음해인 1920년부터 일제에 의해 철거됐다. 문화재청은 선원전을 비롯해 왕과 왕후가 승하하면 시신을 모셔 두는 흥덕전, 발인 이후 신주를 보관하는 흥복전, 선원전 배후에 있는 숲인 상림원 등을 2039년까지 복원할 방침이다. 문화재청은 “덕수궁과 정동은 경복궁 못지않게 중요한 곳으로 대한제국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며 “서구 열강에 의해 분할됐던 덕수궁을 옛 모습으로 되돌리는 작업이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옛 러시아공사관과 고종의 길이 복원되고, 환구단과 덕수궁 선원전 영역이 정비되면 자생적인 근대국가를 이룩하고자 했던 고종의 삶을 이해하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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