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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김시습이 눌러앉고 싶다던 청평사… 맑은 기운에 근심 사라지네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김시습이 눌러앉고 싶다던 청평사… 맑은 기운에 근심 사라지네

    춘천 시내에서 청평사(淸平寺)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시내를 남서쪽에서 동북쪽으로 휘돌아 나가는 46번 국도를 타고 소양6교를 건너고 배후령터널을 지난 다음 간척사거리에서 우회전해 배치를 넘는 자동찻길이 있다. 배후령에는 터널에 생겼다지만, 배치는 옛날 한계령보다 더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것 같다. 이 오봉산길의 막다른 골목이 소양호가 내려다보이는 청평리다.춘천 시내에서 멀지 않은 소양강댐 배터에서 유람선을 타는 방법도 있다. 청평사가 없었다면 소양호 유람선은 무척 심심한 뱃길이었을 것이다. 댐 건설 이전의 46번 국도는 수몰된 소양강길을 따라 양구로 이어졌었다고 한다. 46번 국도는 인천광역시 중구 북성동 인천역(驛)에서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을 잇는다. 수수부꾸미와 산채비빔밥, 그리고 소양호 빙어튀김이 유혹하는 사하촌(寺下村)에서 청평사까지는 2㎞ 남짓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관광객이라면 부담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산길에 접어들면 청정한 기운에 몸과 마음이 모두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옛사람들은 이 계곡을 하나의 커다란 정원으로 인식했던 듯하다. 자연의 조화에 군데군데 인공(人工)를 더해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조경사(造景史)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청평사에 애착을 갖는 이유다. 평탄한 오리(五里) 산길을 기분 좋게 걷다 보면,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 아래 여러 단의 석축을 쌓아 조성한 청평사가 눈에 들어온다. 이제는 상당히 복원이 이루어져 제법 규모 있는 절집처럼 보인다. 한때는 221칸에 이르렀다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회전문(廻轉門)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모습이었다. 분단과 전쟁, 그리고 이념이 낳은 상처 때문이었다.청평사의 초기 역사는 1130년(인종 8년)과 1320년(충숙왕 14) 각각 세워진 청평산 문수원기(文殊院記) 비석과 청평산 문수사 장경비(文殊寺 藏經碑)의 비문이 탑본으로 전해지고 있어 알 수 있다. 문수원기에 따르면 청평사는 영현선사가 973년(광종 24) 백암선원(白巖禪院)으로 창건하고, 이의가 1069년(문종 23) 보현원(普賢院)으로 중창한 데 이어 아들 이자현이 1078년(문종 32) 문수원(文殊院)으로 삼창했다. 이의의 아버지, 곧 이자현의 할아버지 이자연은 세 딸을 문종비로 만든 당대 권신(權臣)이었다. 승려가 아닌 이의와 이자현이 중창을 주도했다는 것은 흥미롭다. 불교국가 고려에서 세도가(勢道家)가 사찰을 세우거나 중창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의의 보현원 중창을 집안의 원찰(願刹)은 물론 별서(別墅)를 확보하는 차원이었을 것으로 본다. 이자현의 문수원 삼창 역시 원찰과 별서의 위상을 높이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장경비의 존재는 이전 어느 시기 절 이름이 문수사로 바뀌었음을 알려 준다. 장경비는 원나라 왕후가 보내 준 불서(佛書)를 절에 보관한 내력을 담았다. 청평산이라는 이름은 이자현이 은거하자 도적과 호랑이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청평이란 곡절이 없어 근심이 없는 경지를 가리킨다.이후 청평사로 이름을 고친 것은 조선 명종시대 불교 부흥에 힘쓴 보우(普雨)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청평사지’(淸平寺誌)에도 ‘보우가 1557년 ‘경운산만수성청평선사’(慶雲山萬壽聖淸平禪寺)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적혀 있다. 일제강점기에도 회전문에는 이렇게 쓴 현판이 걸려 있었음을 보여 주는 사진도 남아 있다. 하지만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오래전에 ‘청평사’라는 제목의 시를 지어 ‘띠풀 베어 초가 짓고 높은 곳에 살고지고, 이제부터 다시는 이곳 떠나지 않으리’라고 노래했다. 그는 청평산 아래 세향원(細香院)을 짓고 한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시대가 더 앞서는 여말선초의 문인 원천석(1330~?)의 ‘운곡시사’(耘谷詩史)에도 ‘청평사’라는 시가 실려 있다. 운곡이 춘천 일대를 여행한 때는 1368년이다. 청평사가 이고 있는 산은 오늘날 오봉산(五峰山)이라 부른다. 기기묘묘하게 솟은 봉우리가 다섯 개로 보인다고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경운산이라는 옛 이름은 지금 오봉산의 옆 봉우리가 차지하고 있다. 반면 청평산이라는 이름은 간 데가 없다. 이 산은 산림청의 ‘한국의 100대 명산’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청평사의 대표 문화유산은 아무래도 회전문을 들어야 할 것이다. 이름이 주는 호기심도 한몫을 한다. 회전문은 금강문이나 천왕문처럼 불법(佛法) 수호자를 봉안하는 전각이라고 한다. 윤장대(輪藏臺)의 존재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학계는 본다. 계곡 장유(1587~1638)의 시에는 ‘진락선옹(眞禪翁) 한번 떠나 돌아올 줄 모르고/ 암자 앞엔 전경대(轉經臺)만 외로이 남았구나’ 하는 대목이 있다. 청평사에 전경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진락공(眞公)은 이자현의 시호다. 전경대, 곧 윤장대는 돌릴 수 있게 만든 팔각형 불구(佛具)다. 불경을 넣어 돌릴 때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새겼다는 상징성을 부여한다. 예천 용문사에는 회전문과 짝을 이룬 윤장대를 볼 수 있다. 용문사 회전문은 사천왕상을 모시고 있다. 윤장대는 대장전(大藏殿) 내부에 있다.회전문 앞마당에 좌우로 놓여 있는 비석의 받침돌도 눈여겨봐야 한다. 바로 문수원기비와 장경비의 흔적이다. 문수원기비는 김부의와 혜소국사가 앞뒷면 글을 짓고 탄연이 글씨를 썼다. 김부의는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의 아우이고, 혜소는 대각국사의 제자다. 탄연은 서거정이 ‘김생 다음간다’고 했던 명필이다. 장경비는 앞뒷면 글은 이제현과 성징이 짓고 이암이 썼다. 이제현은 ‘익제난고’와 ‘역옹패설’로 널리 알려진 고려 후기 문인이다. 성징은 원나라 승려라고 한다. 이암 역시 ‘동국의 조맹부’라는 평가를 받은 명필이다. 문수원기와 장경비는 탄연과 이암의 글씨로 유일하게 남아 있다. 문수원기비는 일제강점기에도 손상되기는 했어도 상당 부분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1914년 대웅전에 옮긴 비석은 6·25전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완전히 조각나고 말았다. 이후 1968년과 1985년 발굴조사에서 비편의 상당 부분이 수습됐다. 청음 김상헌은 청평사를 찾은 1635년 ‘동쪽에 장경비가 있고, 서쪽에 문수원기가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런데 약헌 서종화(1700~1748)는 ‘청평산기’(淸平山記)에서 ‘문수원기’를 언급하면서 ‘서쪽 뜨락에 파손되어 읽을 수 없는 비석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장경비’는 이제 받침돌만 남아 있을 뿐이다. 문수원기비는 2008년 복원되어 옛 비석 받침돌 바로 곁에 세워졌다. 장경비도 복원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문수원기비 내용은 문헌에도 보이고 남아 있는 탑본이 적지 않음에도 읽지 못하는 글자도 있어 복원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장경비는 앞면의 경우 그런대로 자료가 남아 있지만, 뒷면은 문장을 재구성하기조차 어려운 상태로 알려진다. 그러니 소박하지만 옛 비석의 받침돌이 오히려 역사의 진정성을 보여 주는 청평사의 유산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홍진호 북한해역 사흘간 조업하다 나포

    북한 경비정에 붙잡혀 6일간 억류됐다 풀려난 ‘391 흥진호’는 고의로 북한 해역에 들어가 사흘간 조업하다 나포된 것으로 밝혀졌다. 나포 될 당시 북한 경비정이 접근했으나 불법조업 처벌이 두려워 구조요청이나 신고를 하지 않았다. 포항해양경찰서는 선장과 선원 9명을 상대로 조사한 최종 수사결과를 24일 발표했다. 흥진호는 지난달 16일 울릉도 저동항에서 출항해 17일 한일 중간수역에서 조업하다가 복어 1마리밖에 잡지 못하자 18일 오전 5시쯤 북서쪽으로 항로를 변경해 북한 해역으로 50마일 이상 들어가 하루 동안 복어 1t을 잡았다. 19일 오전 3시 30분부터 밤 8시, 20일 오전 4시부터 21일 오전 0시 30분 사이에도 같은 해역에서 각각 1t과 1.5t을 잡았다. 사흘간 불법으로 잡은 복어는 3.5t이다. 선장 A 씨는 이 기간 어업정보통신국에 한일 중간수역에서 정상 조업한다고 허위로 위치를 보고했다. 19일 오후에는 바다에 설치한 어구 150통 가운데 50통가량이 절단된 것을 알고 근처에 있던 북한 어선에 2∼3m까지 접근해 위협하며 마이크로 항의한 사실도 드러났다. 흥진호는 21일 오전 0시 30분쯤 북한 경비정이 사이렌을 울리며 접근하자 1시간가량 도주하다가 나포됐다. A 씨는 도주 당시 북한 경비정이 충돌할 정도로 가까이 접근해 경황이 없었고, 북한 해역 불법조업으로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해경이나 어업정보통신국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흥진호에는 GPS 플로터(내비게이션 기능) 2대와 선박위치식별장비인 AIS, V-PASS, 단거리 통신기 VHF 2대, 장거리 통신기 SSB 2대, 위성전화 2대(1대 고장)가 있으나 출항 당시 AIS와 VHF 2대, SSB 2대는 모두 꺼져 있는 등 대부분 장비가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고 해경은 설명했다. 흥진호 한국 선원 나이는 평균 48세로, 선장을 포함한 5명은 선원 경력이 25년 이상이다. 해경은 이날 선장 A 씨와 허위 위치 보고로 해경 구조세력 업무를 방해한 선박 실소유주이자 전 선장 B 씨를 수산업법 위반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대구지검 경주지청에 불구속 송치했다. 포항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공원으로 전락한 성지 장충단비가 애처롭다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공원으로 전락한 성지 장충단비가 애처롭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4차 ‘남산과 장충동-근대역사기억장소’ 편이 지난 18일 서울 중구 장충동 남산 일대에서 진행됐다. 평소 자주 가는 곳이지만 언제,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의미와 감흥이 다른 법이다. 순국선열의 날(11월 17일) 바로 다음날 대한제국의 현충원 장충단을 찾은 게 공교롭다. 이곳은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을 체결한 일본 측 주역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찰이 세워졌던 장소이기도 하다. 남산 단풍이 최후의 절정을 이루던 날, 베테랑 최서향 서울도시문화지도사가 해설을 맡았다.우리의 삶이 장소로부터 어떻게 영향을 받고 있는지 알려 주는 학문을 인문지리학이라고 한다. 이 중 문화지리학은 장소의 정체성 확보에 중점을 둔다. ‘문화·장소·흔적, 문화지리로 세상 읽기’라는 책에서 영국의 존 앤더슨은 흔적이란 인간의 문화적 삶이 장소에 남은 것이며, 장소야말로 문화지리학의 초점이라고 역설했다. 그렇다면 장충단이라는 장소는 어떤 흔적과 문화적 삶을 우리에게 남겼을까. 장충단이 주는 첫인상은 제단(祭壇)보다는 공원이다. 시민들이 남산공원 일부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장소의 곡절과 인위적인 훼절이 초래한 결과이다. 본래 남산은 공원이 아니었다. 서울 풍수는 궁궐을 위시한 모든 가옥이 백악을 등지고 남산을 향해 남향으로 짓는 게 핵심이다. 남산은 도성민이 고개만 들면 보이는 앞산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진을 친 왜장대를 중심으로 1885년부터 남산 기슭에 집결한 일본인들이 남산을 등지고 백악을 향해 북향하면서 남산은 공원 신세가 됐다. 1897년 왜성대공원에 이어 1910년 한양공원이 들어섰다. 재경성일본거류민단 위락용으로 장충단공원과 남산공원을 조성했다. 1940년 경성시가지 계획에 따라 모두 140개의 공원을 고시하면서 덕수궁, 창경궁과 함께 장충단 역시 공원으로 전락했다. 일제의 극악한 민족정기 말살 정책이다. 이때 41만 8000㎡였던 장충단공원은 1955년 70만㎡로 확장되면서 서울에서 가장 큰 근린공원이었다. 30년 만인 1984년 30만㎡로 절반 이상 쪼그라들면서 남산자연공원에 귀속됐다. 장충체육관, 영빈관(신라호텔 영빈관), 신라호텔, 자유센터, 타워호텔, 국립극장, 재향군인회관(동국대 예술대), 중앙공무원교육원(동국대 농대)등 온갖 시설들이 갖은 명분으로 공원 부지를 해제하고 들어선 탓이다. 장충단공원은 만신창이가 됐다. 사실상 이름도 잃어버렸다.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무지막지한 파괴의 현장이다.대한제국 국립현충원 장충단의 존재감은 파묻혔다. 주위를 둘러싼 엄청난 높이와 규모의 각종 동상과 기념비, 공공건물과 호텔에 파묻혀 왜소한 비석 하나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항일의 성지라는 장소의 역사성을 바꾸기 위해 가해진 극단의 변형 때문이다. 1932년 박문사 조성이 결정타였다. 신라호텔과 영빈관은 대한제국을 망하게 한 최고 공로자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춘무산 박문사가 있던 장소이다. 일제의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고, 이토를 신격화하는 신사이다. 정문은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을 가져왔고, 난간엔 광화문에서 가져온 석재를 쌓았다. 왕의 어진을 모신 경복궁 선원전은 승려 주거용 고리(庫裡)로 사용했다. 환구단 돌북을 안치했던 석고전을 가져다가 종루로 둔갑시켰다. 대한제국의 상징물을 동원해 이토를 장식한 것이다. 1913년 1월 23일자 총독부기관지 매일신보에 ‘늦겨울의 장충단’이라는 기사와 장충단 사진이 실려 있다. 3층 기단에 14칸짜리 품위 있는 건물이다. 봄·가을에 제향과 군악 연주, 조총 발사 등 장엄한 예식이 1910년 폐사되기 전까지 거행됐다. 을미사변을 비롯, 임오군란, 갑신정변 때 숨진 군인들을 위로하는 현충의식이었다. ‘나라를 위한 일에서 죽은 자에 대해 반드시 제사를 지내어 보답하는 게….’ 고종실록에 실린 장충단 건립 목적이다. 또 1901년에 발간한 ‘장충단영건하기책’에는 장충단 축조기록과 의례절차가 전해진다. 장충단 단사는 공원 내 한국유림독립운동 파리장서비 자리에 있었다. 황제가 이름을 짓고, 황태자(순종)가 글을 쓰고, 충정공 민영환이 비문을 지었다. 비운의 장충단비는 신라호텔 뒤에 버려져 나뒹굴다가 1969년 지금 자리로 옮겼다. 장충동이라는 지명이 남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강점기 장충동 일대 신흥 주택단지는 이토의 이름을 따 박문대라고 불렸다. 1970년 시인 김지하는 저항시 ‘오적’에서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동빙고동, 성북동, 수유동, 장충동, 약수동…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고 당대의 도적들을 야유했다. 강남시대가 열리기 전 한때의 만담이다. 잊혔던 장충단제는 1988년 부활했다. 서울 중구는 을미사변일인 1895년 8월 20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매년 10월 8일 장충단비 앞에서 제향을 지낸다. 또 최근에는 장충단비~한국유림독립운동 파리장서비~이준 열사 동상~이한응 열사 기념비~최현배 선생 기념비~유관순 열사 동상~3·1 독립운동 기념탑 등을 돌아보는 답사프로그램 ‘호국의 길’도 만들었다. 하루바삐 장충단사를 복원해야 한다. 마음을 모으면 장소의 역사성은 되살아나기 마련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서울의 멋과 맛 ■일시: 11월 25일 오전 10시 종각역 4번 출구(보신각 앞) ■신청(무료) : 서울시 서울미래유산 (futureheritage.seoul.go)
  • 18세기에 멸종된 초대형 바다소 화석 발견

    18세기에 멸종된 초대형 바다소 화석 발견

    18세기에 멸종된 거대 바다생물의 화석이 발견됐다. 북태평양 북부 베링해에 있는 도만코르스키예 제도에서 발견된 화석의 주인은 길이 6m의 바다소(해우)의 한 종류인 스텔러바다소로, 18세기에 바다에 살았던 해양생물이다. 러시아 전문가들은 정기적으로 베링해 인근에서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화석 발굴을 위한 탐사를 진행해 왔는데, 최근 이 과정에서 발견된 스텔러바다소의 화석은 갈비뼈 27개, 척추뼈 45개로 이뤄져 있다. 연구가치가 높은 머리 부분은 발견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바다소는 몸길이 10m, 몸무게 10t 이상까지 자라며 수명은 약 60년으로 알려져 있다. 스텔러바다소는 1700년대까지 베링해 및 주변 바다에 서식했지만 무분별하게 남획하며 멸종됐다. 이후 스텔러바다소의 화석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는데, 전문가들은 이번에 발견된 것이 비록 머리 부분은 없지만 몸통의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해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연구를 이끈 미국 버지니아주 조지메이슨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1741년 독일 탐험가가 항해 중 스텔러바다소 떼를 발견했으며, 이중 사냥한 한 마리로 한 달 동안 33명의 선원이 식량을 걱정하지 않았을 정도로 몸집이 컸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바다소의 지방에서는 아몬드 오일과 비슷한 맛이 났으며, 살코기 또한 맛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지구상에 생존한 마지막 스텔러바다소가 사냥당한 것은 1768년이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사냥을 멸종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멸종된 거대 바다생물의 화석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바이올로지 레터스’(Biology Letters)에 실릴 예정이며, 복원 작업을 거쳐 러시아 내 박물관에 전시된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민간인 댓글부대 실무 총괄’ 이종명 전 국정원 차장 구속

    ‘민간인 댓글부대 실무 총괄’ 이종명 전 국정원 차장 구속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민간인 댓글부대 활동을 총괄하며 ‘댓글 공작’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이 18일 구속됐다.이 전 차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서울중앙지법 오민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면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 전 차장은 2011년 4월∼2013년 4월 국정원 심리전단을 관할하며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과 공모해 민간인 ‘사이버 외곽팀’ 팀장들에게 수십억원을 지급하는 등 국정원 예산을 목적 외로 사용한 혐의(국고손실)를 받고 있다. 이 전 차장은 외곽팀에 국정원 예산을 부당하게 건넨 혐의로 구속된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의 직속상관으로, 2011년 4월부터 2013년 4월까지 국정원에서 근무했다. 앞서 원 전 원장과 함께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을 위반해 재판을 받은 이 전 차장은 지난 8월 30일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날 이 전 차장이 구속되면서 ‘원세훈, 이종명, 민병주’로 이어지는 당시 국정원 지휘라인이 모두 구치소에 수감된 채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된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이 전 차장은 2011년 합동참모본부 군사기획부장(민군심리전부장)을 지내며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원을 구출한 ‘아덴만 여명 작전’을 지휘한 인물로 같은 해 국정원 3차장으로 발탁됐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살이] 덕수궁 돌담길의 진실

    [노주석의 서울살이] 덕수궁 돌담길의 진실

    “대한문 앞에서 덕수궁 돌담을 끼고 정동 골목을 쑤욱 들어가노라면 … 경성지방법원 앞까지 와서, 본래 같으면 이화학당 앞을 지나 서대문으로 나가는 길로 들어섰을 것을 … 그 둘은 기약지 않고 좀더 은근한 방송국 넘어가는 길을 택하려 들었다.” 1930년대 경성에서 제일 잘나가는 모던보이 구보 박태원이 단짝 이상을 모델로 쓴 단편소설 ‘애욕’에서 읊은 덕수궁 돌담길 풍경이다. 소설 속 경성지방법원이 대법원을 거쳐 서울시립미술관, 이화학당이 이화여고, 경성방송국이 덕수초등학교로 변했을 뿐 으슥한 길을 찾는 연애 풍속도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그 옛날에는 덕수궁 담 뒤에 있는 영성문 고개를 사랑의 언덕길이라고 일러 왔다. … 남의 이목을 꺼리는 젊은 남녀들은 흔히 사랑을 속삭이고자 찾아왔던 것이다. … 오늘날 이십대의 젊은이들은 영성문 고개가 사랑의 언덕길이었던 것조차 모르게 되었다.” 1954년 정비석이 서울신문에 연재한 ‘자유부인’에도 돌담길이 등장한다. 영성문은 신문로에서 덕수초등학교를 거쳐 미국대사관저까지 이어지는 고갯길이었다. 덕수궁(경운궁)의 북쪽 대문이고 왕의 어진을 모신 선원전이 있어서 사람들은 경운궁을 ‘영성문 대궐’이라고 불렀다. 선원전은 옛 경기여고 터, 덕수초등학교, 구세군중앙회관에 걸쳐 있었다. 덕수궁 돌담길은 어쩌다가 사랑길의 대명사가 됐을까. 멀게는 태조 이성계와 신덕왕후 강씨가 남긴 불멸의 러브스토리가 기원이다. 이성계는 금기를 깨고 경복궁에서 고개만 들면 보이는 곳에 애처의 무덤을 만들었다. 미국 대사관저 하비브하우스가 능침 자리다. 태종 이방원은 계모의 능을 파헤쳐 지금의 정릉동으로 옮기고, 석물은 사람들이 밟고 다니도록 광통교 바닥에 깔았다. 그러나 사랑의 힘은 사라지지 않고 정동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았다. 600년 묵은 원조 사랑길이다. 개화기 서양 문물의 첫 정착지였던 정동에 자유연애의 유전자가 이어진 것도 자연스럽다.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 정동제일교회 예배당을 중심으로 들어서면서 남녀칠세부동석의 엄혹한 윤리가 해체되기 시작했다. 두 학교 청춘들의 애틋한 만남과 헤어짐의 사연이 덕수궁 길에 깃든 것이다. 이별을 강조하는 속설은 다소 근거가 부족하다. 본래 독일영사관이 있던 자리에 경성재판소가 들어선 것은 우연의 일치였다. 실제 그 시절 이혼 재판정이 돌담길의 정체성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 힘들다. 시대를 앞서가는 청춘들의 연애를 시샘하는 사회적 우려와 질투가 만들어 낸 아포리즘이 아닐까. 최근 서울시민이 뽑은 ‘가장 잘생긴 서울’ 1위에 덕수궁 돌담길이 올랐다. 누구나 이 길을 좋아한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길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이 돌담길을 좋아하는 이유는 길에 얽힌 스토리보다 궁 안팎을 넘나드는 절묘한 동선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돌담길 주변은 모두 옛 경운궁 구중궁궐이었다. 고종의 집무실이자 을사늑약이 체결된 중명전이 담 밖에 나와 있는 이유도 덕수궁을 관통하는 남북 간 도로가 궁을 쪼갰기 때문이다. 덕수궁 돌담은 1921년에 놓인 이 신작로의 부산물이다. 정비석이 말한 덕수궁 돌담길, 영성문 고갯길의 선원전이 복원된다고 한다. 영국대사관 소유 미완성 돌담길 70m도 뚫릴 날이 머지않았다. 다만 덕수궁 돌담길은 우리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황제국 대한제국이 남겨 준 값비싼 선물이란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나라 잃은 대가로 누리는 아픈 길이다.
  • 이낙연 총리, 포항 지진 피해현장 방문…“오늘 재난안전특별교부세 40억원 집행”

    이낙연 총리, 포항 지진 피해현장 방문…“오늘 재난안전특별교부세 40억원 집행”

    이낙연 국무총리가 16일 경북 포항 지진 피해현장을 방문했다.이 총리는 이날 오후 포항시청 재난상황실을 방문하고 “재난안전특별교부세는 오늘 중에 40억원을 일단 집행하겠다. 경주보다는 훨씬 더 많은 액수라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포항지진 관련 긴급 관계장관회의와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잇달아 주재한 뒤 곧바로 성남공항에서 비행기를 이용해 포항시를 방문했다. 이 총리는 “관계장관회의에서 (특별교부세 집행을) 행안부 장관에 지시했고 결정을 하고 왔다. 오늘을 넘기지 않고 집행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별재난지역 선포도 기준에 합당하느냐 이것은 거의 논의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며 “포항시가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을 조금 신중하게 지켜보고 있었으나 이강덕 시장께서 명백하게 요청을 하셨으니까 특별재난지역 선포가 되도록, 일정한 절차는 필요하지만, 그런 방향으로 중앙정부도 준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총리는 “큰 변을 당하고 불편하고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포항 시민 여러분, 특히 밤에 집에 못 들어가고 불면의 밤을 지내셨을 이재민 여러분께 뭐라 위로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며 “제 마음만의 위로라도 먼저 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관계장관회의에서 밝힌 대로 피해복구와 시민지원이라는 당면 대응을 하는 데 있어 중앙에서 지시를 남발하지 않고 포항시의 의견을 가장 존중하는 식으로 하고, 매뉴얼과 현장 우선원칙을 지키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이 총리는 “수능 연기 같은 전국적인 문제도 포항의 의견을 존중했던 것처럼 다른 문제는 더욱 그럴 것 아니겠냐. 그렇게 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어 지진으로 뒷담이 무너져내린 포항여고와 흥해읍 대성아파트를 방문해 피해 정도를 직접 둘러봤고, 이재민이 모여있는 흥해실내체육관을 방문해 포항 주민들을 위로했다. 주택 붕괴 우려 등으로 포항 주민 1536명은 흥해실내체육관, 교회, 초등학교 강당, 면사무소 등 13개 곳으로 대피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억류 첫날 호텔 룸 서비스… 강압 조사 없었다”

    북한 수역을 침범해 나포됐다가 1주일 만에 풀려난 ‘391 흥진호’ 선원들이 북한에서의 첫날 밤을 2~3성급 호텔에 해당하는 ‘동명호텔’에서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동명호텔은 북한 원산항 인근에 있는 12층짜리 건물이다. 흥진호 선원들은 14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억류돼 조사받았던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이날 회의에는 흥진호의 실질적 소유자 고모씨, 선장 남모씨를 포함해 기관장 등 선원들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들은 억류된 기간 동안 북한 당국으로부터 강압적 조사나 위해를 받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선원들을 위해 북한은 ‘룸서비스’도 제공했다. 당시 흥진호에 탔던 한 베트남 선원은 “방으로 식사를 제공하고 식사가 끝나면 다시 들어와 식기를 갖고 나갔다”며 “밖에는 나갈 수 없어서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모른다”고 전했다. 또 다른 선원은 “(동명호텔에 도착해) 1시간 반 정도 목욕하고 씻게 했고, 밥을 방으로 룸서비스 해줬다”며 “먹고 약 30분쯤 있다가 선원을 한 명씩 불러가 조사했다”고 회상했다. 흥진호 선장은 “조사는 밥을 먹고 나면 계속 1∼2시간씩 했고, 하루에 약 5∼6시간 물어보고 또 물어봤다”며 가장 핵심적으로 물어본 질문은 “왜 우리(북한) 해역에서 조업하느냐였다”고 설명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北 나포 홍진호 선원 “억류 첫날 호텔 룸 서비스…강압 조사 없었다”

    북한 수역을 침범해 나포됐다가 1주일 만에 풀려난 ‘391 흥진호’ 선원들이 북한에서의 첫날 밤을 2~3성급 호텔에 해당하는 ‘동명호텔’에서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동명호텔은 북한 원산항 인근에 있는 12층짜리 건물이다. 흥진호 선원들은 14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억류돼 조사받았던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이날 회의에는 흥진호의 실질적 소유자 고모씨, 선장 남모씨를 포함해 기관장 등 선원들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들은 억류된 기간 동안 북한 당국으로부터 강압적 조사나 위해를 받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선원들을 위해 북한은 ‘룸서비스’도 제공했다.  당시 흥진호에 탔던 한 베트남 선원은 “방으로 식사를 제공하고 식사가 끝나면 다시 들어와 식기를 갖고 나갔다”며 “밖에는 나갈 수 없어서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모른다”고 전했다. 또 다른 선원은 “(동명호텔에 도착해) 1시간 반 정도 목욕하고 씻게 했고, 밥을 방으로 룸서비스 해줬다”며 “먹고 약 30분쯤 있다가 선원을 한 명씩 불러가 조사했다”고 회상했다.  흥진호 선장은 “조사는 밥을 먹고 나면 계속 1∼2시간씩 했고, 하루에 약 5∼6시간 물어보고 또 물어봤다”며 가장 핵심적으로 물어본 질문은 “왜 우리(북한) 해역에서 조업하느냐였다”고 설명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흥진호 선원들 “북한 억류 첫날 호텔 룸서비스 제공…위해 없었다”

    흥진호 선원들 “북한 억류 첫날 호텔 룸서비스 제공…위해 없었다”

    북한에 나포됐다가 1주일 만에 풀려난 ‘391 흥진호’ 선원들이 14일 국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북한에 억류됐던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흥진호 선장·기관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이날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흥진호의 실질적 소유자도 함께 증인으로 나왔다. 선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북한은 선원들을 강압적으로 조사하거나 선원들에게 위해를 가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흥진호를 나포한 뒤 첫날 밤은 선원들을 ‘동명호텔’에서 재웠다. 동명호텔은 북한 원산항 인근에 있는 건물로, 우리나라로 치면 2∼3성급 호텔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당시 흥진호에 탔던 베트남 선원은 “한 방에 2명씩 묵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어 “방으로 식사를 제공하고 식사가 끝나면 그 분들이 다시 들어와 식기를 갖고 나갔다”면서 “밖에는 나갈 수가 없어서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선원도 “(동명호텔에 도착해) 1시간 반 정도 목욕하고 씻게끔 했고, 밥을 방으로 룸서비스 해줬다”면서 “먹고 약 30분쯤 있다가 선원을 한 명씩 불러 조사를 했다”고 전했다. 흥진호 선장은 “조사는 밥을 먹고 나면 계속 1∼2시간씩 했고, 하루에 약 5∼6시간 물어보고 또 물어봤다”면서 북한이 가장 핵심적으로 물어본 질문은 “왜 우리(북한) 해역에서 조업하느냐였다”고 밝혔다. 북한은 선원들에게 이름·생년월일 등 기초적 인적사항을 확인한 뒤 ‘북한 수역에 들어온 것을 알았는지’ 등에 관해 물은 것으로 나타났다. 선원들은 조사 과정에서 북한이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선원은 “우리나라에서 자술서에 해당하는 ‘비판서’를 썼다”면서 “북한에서 ‘왜 넘어왔느냐’고 묻길래 ‘대화퇴어장에 고기가 없어 넘어왔다’고 말했지만 대화퇴를 모르더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송 국방 “北, 中어선 가장해 흥진호 나포”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13일 북한이 흥진호를 나포하는 과정에서 중국 어선으로 가장한 선박을 이용했다고 밝혔다. 송 장관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비경제부처 예산심사에서 흥진호 나포 사건의 부실한 대응을 지적한 자유한국당 송석준 의원의 질의에 이같이 답했다. 송 장관은 “다시 확인하니까 (흥진호를) 납치한 (북한) 선박은 중국 어선을 가장했다”며 “완전한 군함이 아니고 어선 형태의 선박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군인들이 총을 들이대고 흥진호의 한국 선원과 외국 선원을 선창에 가둔 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데리고 갔다”고 말했다. 송 장관은 또 흥진호 나포를 계기로 북한이 불법 어로 감시를 위해 어선을 가장한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경제수역에서 불법 어로 감시를 위해 어선을 가장해 같이 조업을 한다는 사실을 이번에 새로 발견했다”고 강조했다. 송 장관은 이어 “흥진호 선장과 선주는 통화해서 위치를 속이고 (북한 해역) 안으로 들어가 증거를 인멸하려고 위성항법장치(GPS)를 꺼 놓았다”며 “선주와 선장이 짜고 (북한 해역으로) 들어가 해경청 보고 시스템을 속이는 행태가 드러났는데 (여기에 대해) 군사적·법적 협조체계를 강화해 앞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선원 9명탄 어선 화재…선원 모두 구조

    선원 9명탄 어선 화재…선원 모두 구조

    동해상에서 선원 9명이 탄 어선에서 불이 났으나 선원들은 모두 구조됐다.동해해양지방경찰청과 속초해경에 따르면 11일 오전 0시 6분 속초시 동방 75㎞ 해상에서 속초선적 99t급 채낚기 어선에서 불이 났다. 해경과 해군은 함정 3척과 헬기 4대, 인근에 있던 어선 2척을 투입해 화재를 진화 중이다. 신고 접수 1시간 30여분 만에 해군 함정이 도착한 데 이어 헬기도 현장에 도착해 화재를 진화하고 있다. 배에 타고 있던 선원들은 오전 3시 구조에 나선 인근 어선에 의해 모두 구조됐다. 현재 동해 중부 먼바다에는 이날 자정을 기해 풍랑경보가 내려져 초속 22m 강풍과 높이 4.5m의 높은 너울성 파도가 일고 있다. 동해지방해경청 관계자는 “선박은 거의 소실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현장 상황이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행히도 선원들은 모두 구조됐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8년 전 아내 살인…감형 출소 뒤 또 동거녀 살해

    28년 전 아내 살인…감형 출소 뒤 또 동거녀 살해

    28년 전 아내를 살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감형돼 출소한 50대 선원이 동거녀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다시 무기징역형을 받았다.인천지법 형사15부(부장 허준서)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선원 A(56)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을 명령했다고 8일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올해 8월 18일 오후 9시쯤 인천 자택에서 동거녀 B(50)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B씨와 지난해 8월부터 동거했다. 그는 범행 당시 금전 문제를 비롯해 B씨의 외도를 의심해 다투다가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1989년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한 혐의(살인)로 기소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2000년 징역 20년으로 감형받아 7년 뒤 출소했다. 2010년에도 동거녀를 흉기로 협박하며 감금한 뒤 4차례 성폭행한 혐의(특수강간)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5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이전 범행들도 수법이 잔혹하고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며 “상당한 기간 수형 생활을 했음에도 교화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의 진술 태도를 봐도 진정으로 잘못을 반성하는지 의심스럽고 피해자의 유족들도 정신적 충격과 고통에 시달리며 강력한 처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비록 자수했고 우발적으로 범행한 점을 고려하더라도 사회로부터 무기한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베트남에 태풍 ‘담레이’ 강타…20명 사망·17명 실종

    베트남에 태풍 ‘담레이’ 강타…20명 사망·17명 실종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개최를 앞둔 베트남에 제23호 태풍 ‘담레이’가 강타, 40여 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5일 베트남통신 등에 따르면 이 태풍이 전날 베트남 중남부 지역에 상륙해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면서 카인호아 성과 푸옌성 등에서 최소 20명이 사망했다. 해안에서는 선박 7척이 침몰해 선원 17명이 실종됐다. 주택 2만 4000여 채가 파손됐으며 주민 3만 5000명 이상이 안전지대로 대피했다. 카인호아 성 등 일부 지역에서는 정전이 발생했으며 홍수로 산사태가 일어나고 농경지도 침수됐다. 여객기 80여 편과 열차 10여 편의 운항이 취소되는 피해도 있었다. 오는 10∼11일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베트남 중부도시 다낭에서는 강풍과 폭우로 APEC 행사 환영 간판을 비롯한 여러 구조물이 파손됐다. APEC 정상회의 개최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다낭 인근 유적지 방문 등 부대 행사는 일부 차질을 빚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정부는 태풍 피해 지역 복구에 가용 인력과 자원을 투입하는 한편 APEC 정상회의 준비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성호 선임기자의 종교만화경] “아름답고 푸른 세상 만드는 방편, 제가 영화 만드는 이유죠”

    [김성호 선임기자의 종교만화경] “아름답고 푸른 세상 만드는 방편, 제가 영화 만드는 이유죠”

    지난 9월 중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선 독특한 행사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국회 조찬기도회와 가톨릭신도의원회, 불교신자 의원 모임인 정각회가 함께 마련한 ‘종교화합을 위한 시사회’. 이날 다양한 종교의 국회의원들에게 선보인 영화는 ‘제39회 모스크바 영화제’에 초청돼 호평받은 기독교 영화 ‘산상수훈’이었다. 그 ‘산상수훈’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한 조계종 국제선원장 대해 스님. 그 비구니는 요즘 영화계와 종교계 안팎에서 가장 관심 받고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출가승이 영화를 만든다고?’ ‘비구니가 어떻게 기독교 영화를 만들까?’ 대해 스님에게 쏠리는 관심과 맞물려 번지는 궁금증들이다. 하지만 일반의 궁금함과 달리 대해 스님은 ‘산상수훈’ 말고도 이미 91편의 중·단편 영화를 만들어 낸 수준급 ‘영화쟁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무엇이 진짜 나인가’, ‘이해가 되어야 살이 빠진다’, ‘황금조씨’, ‘아기도 아는 걸….’ UNICA 세계영화제와 영국 BIAFF 국제영화제, 오스트리아 Festival of Nations 등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무려 63회나 상을 받았다. 안목과 실력을 인정받아 사단법인 영화로 세상을 아름답게 이사장과 유네스코 산하 국제영화기구 UNICA 세계연맹 한국본부 회장, UNICA KOREA 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도 맡고 있다.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출가승이면 으뜸의 목표로 삼는 수행 길이다. 스님은 왜 여느 출가승과 다르게 수행 대신 세간 장르인 영화를 택했을까. 설익은 우문에 알 듯 모를 듯한 웃음을 얹어 이런 답을 돌려준다. “어디에 무엇으로 있건 본질은 한 곳으로 통하는 법이지요.” 묵직한 화두에 붙여 들려준 지난 행로가 예사롭지 않다. 1995년 출가 때부터 어길 수 없는 약속인 큰 원을 세웠다고 한다. ‘세상을 아름답고 푸르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아름다움은 무엇이고 또 푸름은 무엇일까. “나무를 들여다보세요. 나무의 ‘푸름’은 뿌리지요. 땅속에 있으니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생명이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은 땅 위에 드러난 나무의 잎입니다. 눈에 보이고, 만질 수도 있지요. 세상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그게 바로 아름다움입니다.”아르헨티나와 중국 선양에서 포교활동을 했던 스님은 귀국 직후 그 서원을 따라 ‘아름답고 푸른 지구를 위한 교육연구소’를 만들었다. 이후 생명의 본질을 사람들에게 알리려 무려 20여종의 생명 교과서를 만들어냈다. ‘언어로 이루는 자기완성’ ‘생명수학의 공리’ ‘공생사회’ ‘아름답고 푸른 과학자’ ‘컴퓨터는 생명의 자동시스템이다’ ‘자기발견과 진화를 위한 역사’…. 그 교과서들은 여전히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판매 중이다. 생명 교과서를 만들면서도 끊임없이 생각을 놓지 않은 게 바로 영화란다. ‘아름답고 푸른 세상을 만들자’는 서원의 바탕인 본질의 발견과 대중 전파의 방편인 셈이다. “혼자만 깨닫고 완성하는 수행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대중들에게 본질을 알리고 널리 전파할 방법으로 영화보다 더 좋은 게 없지요.” 2007년 낡은 6㎜ 카메라를 들고 지하 방에 처박혀 처음 만들어 낸 영화가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다. 이후 직접 쓰고 만든 영화가 91편. 그 영화는 대개 종교의 본질과 메시지를 바탕으로 놓고 있다. 그러면서도 스님은 결코 자신의 영화를 ‘종교영화’로 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인간의 본질을 담은 것이 불경, 성경이라 말할 때의 ‘경’(經)일진대, 스님은 ‘영화경’을 만들고 싶단다. “인간 존재의 근원을 정확히 알고 더 나은 삶을 사는 것, 결국 구원을 원하는 인간이 종교에 기대는 이유는 하나의 본질에 있어요. 그런데 본질을 모르니 고통스러워하지요. 기독교와 불교, 성경과 경전처럼 부르는 명칭은 각기 다르지요. 하지만 삶을 살아가고, 깨달음을 구하는 데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심혈을 기울여 작업 중인 영화가 바로 ‘소크라테스의 증언’ ‘산상수훈’을 포함한 ‘4대 성인 시리즈’이다. 127분짜리 영화 ‘산상수훈’은 신학대학원생 8명이 동굴에 모여 천국, 선과 악, 하나님 등을 소재로 대화하는 형식이다. 마태오복음 5~7장에 기록된 산상설교는 기독교의 모든 것이 압축돼 ‘성경 중의 성경’으로 통한다. 그 산상설교를 통해 종교가 인간에게 던져준 메시지에 가까이 가 보고 싶었다고 한다. 스님이 영화에서 던지는 질문은 역시 본질로 가 닿는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있는데 왜 세상은 엉망진창인가.’ ‘아담이 죄를 지었는데, 왜 내가 죄가 있는가.’ “금기시되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할까요. 분명 존재하지만 아무도 풀려 하지 않고, 풀리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다음은 부처님과 공자에 대한 영화를 차례로 만들겠다고 한다. 세 번째 부처님 편에서는 혜능 대사를, 네 번째 유교 편에서는 공자의 가르침을 실제 삶에 적용해 죄와 업 짓는 일 없이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낼 예정이다. 스님이 세운 서원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예상대로 답은 명쾌했다. “아름답고 푸른 세상이 만들어질 때까지 계속 영화를 만들 것입니다.” 그 서원의 거듭된 다짐 끝에 이런 말을 붙였다. “제가 세운 서원과 해온 일을 집약해 전수할 국제 영화학교를 하나 세우고 싶어요.” kimus@seoul.co.kr
  • [사설] ‘괴담’까지 낳은 정부의 미숙한 흥진호 나포 대응

    복어 잡이 어선 391 흥진호의 북한 나포와 송환,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대응을 놓고 갖가지 의혹과 억측이 난무하면서 그제와 어제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인터넷에는 정부 대북특사가 선원으로 가장해 흥진호를 타고 북으로 넘어가 모종의 비밀 협상을 벌인 것이라는 등의 괴담이 나도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화근은 흥진호 나포 사실을 엿새 뒤 송환 소식을 전하는 방송 보도를 보고 알았다는 송영무 국방장관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겠으나 흥진호가 실종되고 북한이 송환 방침을 발표할 때까지 엿새간 정부와 해경 당국이 보여 준 안이한 대응이 원인이라 할 것이다. 어제 저녁 정부 합동조사단이 발표한 흥진호 나포 경위에 따르면 한국인 7명과 베트남인 3명 등 10명을 태운 흥진호는 지난 21일 새벽 조업 허가를 받은 구역인 울릉도 북방 약 183해리(339km) 대화퇴어장을 벗어나 북방한계선(NLL) 이북의 북한 해역에서 조업하다 북한 경비정에 나포됐다. 우리 해경은 21일 오후 10시 31분 포항어업통신국으로부터 ‘흥진호의 위치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연락과 함께 수색 요청을 받았고 이후 대화퇴어장을 중심으로 수색에 착수하는 한편 해군 동해 1함대사령부에 상황을 알렸다. 이어 이튿날인 22일에는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국정원, 중앙재난상황실, 해양수산부 등에 ‘위치보고 미이행 선박’으로 지정해 실종 사실을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해경 등 관계당국은 이후 북한이 나포 사실과 함께 송환 방침을 발표할 때까지도 흥진호가 북에 억류돼 있던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흥진호 선장이 나포 직전에라도 우리 해경 등에 관련 내용을 통보하지 않은 탓도 있겠으나 우리 당국의 안이한 상황 인식에서 비롯된 결과라 할 것이다. 실제로 해경의 흥진호 관련 보고는 청와대 상황실과 국무총리실 안전환경정책관실 등에 접수된 뒤로 더이상 상부로 전파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위치보고 미이행 선박 보고가 이어지는 마당이어서 흥진호의 북 억류 가능성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나 당시 해당 수역의 파고가 높지 않아 사고 가능성이 크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엿새 동안 10명의 선원이 탄 어선이 사라진 상황에서 정부의 인식과 대응이 턱없이 안이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 국민이 북에 억류돼 있는데도 대통령과 관계부처 장관 모두가 까맣게 모르고 있는 정부를 신뢰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 흥진호 나포 몰랐던 대북정보력 뭇매

    통일부와 국방부를 대상으로 한 31일 국정감사에서는 북한에 나포됐다가 최근 귀환한 어선 ‘391흥진호’ 문제에 대한 정부와 군의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야당은 북한 발표 전까지 정부가 나포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음을 질타했고, 여당 일각에서도 정부의 대북정보력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박병석 의원은 “초기 대응이 미흡했고, 무려 6일간 흥진호의 행방을 몰랐고 북한의 보도를 보고 알았다면 정부의 정보 수집과 파악 능력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소속이자 외통위원장인 심재권 의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야당의 질타는 더 거셌다. 자유한국당 윤상현 의원은 “흥진호가 풀려난 27일은 유엔총회 제1위원회에서 가장 강력한 언어로 북핵을 규탄하는 L35호 결의안에 정부가 기권한 날”이라면서 “교묘하게 날이 같은데 통일부 장관도 모르는 그 위 차원에서 사전 조율이 있지 않았느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 같은 비판에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그런 점은 정부도 아쉽게 생각한다”면서 “관계 기관을 조사한 결과가 조만간 나올 것”이라고 답했다. 국방위 국감에서도 흥진호 문제에 대한 군의 대응을 놓고 비판이 나왔다. 한국당 백승주 의원은 “정부가 최초로 인지한 것이 27일 북한이 방송을 통해 알린 이후”라며 “철저히 조사해서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이와 관련, “북한 수역으로 50마일(80㎞) 진입해 20시간 동안 어로 활동을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흥진호 선원들이) 북한에 침범하지 않겠다는 ‘시인서’를 작성하고 나왔다고 한다. 위치정보장치(GPS)를 껐는지는 발표하지 않아 계속 수사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송영무 국방, “사이버 사령부 부대원 경징계해선 안됐다”

    송영무 국방, “사이버 사령부 부대원 경징계해선 안됐다”

    30일 국방부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군사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국군사이버사령부 댓글공작 의혹을 집중 제기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391흥진호 납북귀환 의혹과 함께 흥진호 귀환 당일 정부가 유엔 군축위원회의 북한핵개발규탄 결의안 투표에서 기권한 것과 관련됐는지를 추궁했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2014년 발생한 사이버사 군무원 김석중씨의 교통사고 사망 사건과 관련해 의혹이 많다”면서 “가해자가 2년 만에 특별사면됐는데 교통사고 사망 사건에서 어떤 권력자도 그렇게 빨리 사면받을 수 없다”며 엄중한 조사를 요구했다. 같은 당 박주민 의원은 댓글공작원들이 징계를 받지도 않고 심지어 승진까지 했으며 국방부 조사본부가 군 검찰에 사건 기록을 넘기면서 댓글 50개 작성으로 송치 기준을 정한 것을 비판하며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그렇게 하겠다”며 재조사할 뜻을 밝혔다. 또 “경징계에 대해 보고받았는데 그렇게 해선 안 됐다”고 한민구 전 장관 시절 일이지만 잘못을 인정했다. 흥진호 납북귀환 사건은 국감장을 뜨겁게 달궜다. 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장관은 어선이 나포된 사실을 언제 알았느냐”며 추궁했다.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도 “흥진호처럼 큰 배가 북한을 넘어갔는데도 해군에서는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질책했다. 송 장관은 “합참, 해경, 해군작전사령부와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고 답변했다가 나중에 “해경과 공조한 종합 결과를 사후에 보고받았다”고 수정, 답변했다.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흥진호 실종 사건은 기본적으로 국방부 업무가 아니다”라며 송 장관을 두둔했다. 일부 한국당 의원은 상대적으로 젊어 보이는 흥진호 선원 사진을 제시하며 ‘북한 요원설’ 등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송 장관은 한국당 정갑윤 의원이 북한의 위협을 평가해달라는 질문을 하자 “제가 북한의 위협을 평가한다면 6·25 이후 최대 위기라 하는데 과언이라고 생각한다”며 “북한은 언젠가는 무너질 정권이라고 이렇게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이명박 정부 당시 합의서에 따르면 제2롯데 건물에 항공기 충돌사고 발생 시 대부분을 국가가 책임지도록 돼 있다”면서 “국가가 모든 사고를 책임지는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며 철저한 경위조사를 촉구했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여수해경, 140억대 불법 환치기 외국인 남녀 검거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대포통장 등을 개설해 주고 140억원을 베트남에 불법으로 송금을 한 외국인 2명이 검거됐다. 여수해양경찰서는 30일 불법체류 중인 베트남 선원의 급여를 부정한 방법으로 본국으로 송금과 환전을 해준 외국인 2명을 검거해 탐(여·37) 모씨를 외국환 거래법을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판(33) 모씨를 입건해 조사 중이다. 탐씨는 A 은행의 외국인 통장 개설 대행사인 B사에 근무하면서 알게 된 베트남인들 인적사항을 무단 도용해 차명 통장 140여개를 개설하고 100억원을 불법으로 송금한 혐의다. 공범 판씨는 40억원을 송금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수해경은 지난달 베트남 국적 불법체류 선원을 수사하던 중 급여를 차명계좌를 이용해 베트남으로 송금한 사항을 확인하고, 한 달여 간의 끈질긴 수사 끝에 붙잡았다. 김정석 정보과장은 “불법체류 외국인이 은행 계좌를 만들 수 없고 환전수수료 등을 절약하기 위해 환치기를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들의 계좌를 수사 한 결과 150여명이 불법체류자들로 추정돼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수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가거도 전복 어선 선장, 숨진 채 발견…4명 구조, 2명 사망, 2명 수색 중

    가거도 전복 어선 선장, 숨진 채 발견…4명 구조, 2명 사망, 2명 수색 중

    가거도 인근 해상에서 지난 27일 전복한 어선의 선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 발생 11시간 만이다.목포해양경찰서는 28일 오전 8시 33분쯤 전복한 선박 내부를 잠수 수색해 선장 한모(69)씨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한씨는 호흡과 맥박이 없는 상태로 발견돼 헬기로 목포지역 병원으로 이송된 후 사망 판정을 받았다. 해경은 배 안에 2명이 남아있었다는 생존 선원들의 진술을 토대로 거꾸로 뒤집힌 어선 내부를 잠수 진입해 수색했다. 그러나 선장은 배 밖 뱃머리 부분의 그물 사이에서 사고 발생 약 11시간 만에 발견됐다. 사고 당시 어선에는 모두 8명이 타고 있었다. 이 중 4명은 사고 직후 주변 어선에 의해 구조됐다. 조리장 박모(57)씨는 사고 발생 2시간여 만에 선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나머지 선원 2명은 전복 과정에서 바다로 추락해 표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은 실종자 2명의 수색작업을 이어가는 한편, 사고해역 기상이 악화해 전복 선박을 가거도로 예인할 예정이다. 또 전남중앙병원에 이송된 생존 선원 4명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경위를 조사한다. 전날 오후 9시 43분쯤 전남 신안군 가거도 북서쪽 18.5km 해상에서 9.77t 연안자망 어선 J호(목포선적)가 전복했다. J호는 그물을 걷어 올리고(양망) 닻을 내리는(투묘) 과정에서 갑자기 오른쪽으로 기운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기관실에 한꺼번에 많은 양의 바닷물이 유입돼 기관고장으로 일으켰고, 배가 멈춰 서면서 전복한 것으로 추정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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