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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록으로 본 김 대통령의 통치철학

    ◎“우리경제 못살리면 역사의 죄인된다”/도도한 개혁의 강물 누구도 막을 수 없다/금융실명제는 반드시 넘어야 할 고빗길 김영삼대통령의 취임 6개월은 정치적 수사보다 실천에 체중을 싣고있다. 그러나 지난 6개월동안 쏟아낸 어록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의 진면목과 인간적 체취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앞으로 개혁의 강도가 어느 정도 될 것이며 개혁의 물꼬가 어떤 방향으로 트일지도 예상이 가능하다. 그의 통치철학이 곳곳에 배어있는 것이다. ▲이제 위로부터의 개혁이 시작될 것이다.(2월25일 취임사) ▲선열들의 숭고한 피에 개혁으로 보답하겠다.(3·1절 경축사) ▲앞으로 정치자금은 한 푼도 받지않겠다.(3월4일 출입기자간담회) ▲꽃샘 추위가 있다고 해서 개혁을 향한 전진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3월8일 재경 언론사사장단과 오찬간담회) ▲나의 취임사 중에 눈물은 반성을,땀은 고통과 인내를 뜻한다.눈물과 땀이 없으면 이 나라는 새로 태어날 수 없다.(3월15일 안기부순시) ▲임기중에 골프를 치지않겠다.(3월17일 금융기관장과 오찬)▲고통분담을 위해 공무원의 봉급을 동결한 것은 참으로 큰 죄를 짓는 것 같은 느낌이다.(3월22일 신경제 1백일보고회) ▲재산공개는 우리역사를 바꾸는 명예혁명이다.(30일 대구방문) ▲사람도 1주일에 한번은 쉬어야 한다.(신문의 날을 하루앞둔 4월6일 출입기자 간담회) ▲재산공개와 관련해서 진정으로 참회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4월9일 민자당 제3차 상무위원회) ▲우째 그런 일이….달리다 보면 돌부리도 나오는 법이다.(4월13일 최형우전민자당사무총장이 대입부정입학과 관련됐다는 보고를 받고) ▲토지·건물등 부동산을 갖고있는 것이 고통이 되도록 하겠다.(4월16일 신경제계획 민간위원과 조찬) ▲도도히 흐르기 시작한 개혁의 강물은 어느 누구도 막을수 없는 역사의 대세이다.(4·19묘역 방문) ▲역사상 가장 정직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길 바라며 조국이 어려울 때 살려낸 대통령으로 평가되길 원한다.(4월23일 미 CNN­TV와 회견) ▲(개혁의 속도를 자전거의 스피드에 비유하면서)너무 급히 달려도 위험하지만 달리다가 멈추면 쓰러진다(5월1일 모범수출업체 대표 20명과 오찬) ▲돈내라는 사람도,갖다줄 곳도 없는데 기업만 하면되지 무슨 걱정이 있느냐.(5월4일 언론사 사회부장과 오찬) ▲오늘의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정부이며 문민정부의 출범과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다.(5월14일 5·18 특별담화) ▲세종대왕이 이루신 위로부터의 개혁에서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우게 된다.(5월16일 세종대왕 탄신 숭모제전) ▲5·16은 분명히 쿠데타라고 생각한다.(6월4일 취임 1백일 기자회견) ▲사정엔 성역이 절대 없다.(6월15일 민주당 이기택대표와 조찬) ▲우리는 그동안 당선만 되면 그만이다는 그릇된 인식속에서 온갖 불법선거가 당연시 되어온 경향이 없지 않았다.(6월18일 중앙선거관리위원 9명과 오찬) ▲백범선생이야말로 우리민족의 지도자이며 민족의 혼을 일깨우고 나아갈 길을 밝혀 주신 분이다.(6월26일 김구선생의 묘소에서) ▲남이야 어찌되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러한 현상들은 우리가 고쳐야 할 한국병의 하나이다.(6월28일 사회자원봉사자와 오찬) ▲누구든 나라를 위해 혼신의 힘을 바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중용할 생각이다.(6월29일 민자당 시도지부위원장단과 만찬) ▲우리는 청년의 나라인데도 노화현상이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6월30일 청년회의소 간부들과 다과회) ▲우리경제를 못살리면 천추의 한이 되고 우리가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므로 다함께 뛰자.(7월2일 재벌그룹총수들과 만찬) ▲선진국과 후진국은 종이 한장의 차이로 우리는 싸우고 싸워서 선진국의 길로 나가야 한다.(7월16일 대전엑스포 현장을 둘러보며) ▲개인이나 집단보다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이 더욱 중요하고 필요한데 최근 애국이라는 말이 사라져가고 있어 안타깝다.(7월22일 체육계인사와 오찬) ▲(여름휴가에 대해)내가 안가면 각료들도 못갈 것이고 차례로 그아래 사람들도 눈치를 보게될 것이다.(7월25일 수석비서관회의) ▲금융실명제는 신한국으로 가는데 반드시 넘어야할 고빗길이다.제도개혁에는 아픔이 따를수 밖에 없다.(8월12일 금융실명제 실시 특별담화) ▲(금융실명제와 관련)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겠다거나 벌어 감춰놓은 사람이 걱정이지 국민 대다수는 구애받을 이유도,걱정할 필요도 없다.(8월20일 구로공단 대륙정밀 방문)
  • “구시대 청산” 곳곳에 신선한 충격/김영삼정부 6개월 분야별 업적

    김영삼대통령 문민정부의 지난 6개월은 구시대의 청산과 새로운 가치·질서의 확립이라는 2가지 흐름으로 요약할 수 있다.이는 개혁이라는 한마디로 통칭되고 있으며 개혁은 시대적 대의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다.권위주의가 타파되는 대신 개방의 기운이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문민정부 6개월의 성과를 정치·경제·사회등 분야별로 점검해 본다. ◎정치/윗물 맑기 본격화… 깨끗한 정치 구현 정치권은 우선적인 개혁의 대상이었다.그리고 선도세력이기도 하다.공직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정치권과 공직사회는 이미 여러차례 호된 시련을 겪었다.그러나 현재 진행중인 재산등록·공개,금융실명제의 실시는 끊임없이 자기반성과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앞으로도 몇차례의 크나큰 파문이 예고되기도 한다. 새정부 출범이후 정치권과 공직사회에 대한 개혁은 「윗물 맑기 운동」에 의해 이루어졌다.이는 개혁의 최우선 당면과제였던 부정부패척결,국가기강 확립과 맥을 같이했다.고위공직자 재산공개에 뒤이은 사정작업에 의해 구체화됐다. 김대통령은 취임 직후 재산을 스스로 공개했고 정치자금을 단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이는 결과적으로 엄청난 개혁과 변화를 몰고온 사전조치였다. 새로 임명됐던 각료를 포함,무수한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들이 옷을 벗었다.직무상의 비리와 관련,수많은 전·현직 공직자들이 처벌을 받았다. 율곡사업과 평화의 댐 건설의혹을 포함,사회 각분야의 누적된 비리에 대한 척결작업이 줄을 이었다. 군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군 수뇌부에 대한 전격적인 인사조치를 통해 하나회라는 핵심인맥과 관련됐던 정치군인들이 철저히 배제됐다.군을 정치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한 장치들이 단계적으로 강구되기 시작했다. 같은 흐름으로 과거사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이루어졌다.12·12가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된 데 이어 4·19와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새로운 평가가 내려졌다.상해 임시정부선열 5위의 유해를 봉환하고 구조선총독부와 관저건물을 철거키로 하는 등 민족정기 회복을 위한 조치도 병행됐다. 그러나 파문도 크다보니 정치권에서는 인치·법치 논쟁까지 벌어지기도 했다.개혁이 통치권자의 의지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정치실종」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높았다.정치권으로서는 정경유착의 단절에 따른 정치자금조달이 큰 문제였다. 다행히 이른바 기득권층의 금단현상은 서서히 약화돼 가는 듯한 징후를 나타내고 있다.스스로 개혁에 앞서 가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정치권은 깨끗한 정치구현을 위한 제도마련 작업에 착수한 상태이다. 새정부의 향후 과제라고 할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개혁,법과 제도에 의한 개혁을 위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돼 가고 있는 것이다. ◎경제/자리잡는 실명제… 신경제 구체화 개혁 6개월은 우리 경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먼저 경제에 대한 정부와 기업,가계등 경제 주체들의 의식이 크게 바뀌었다.6공 때까지의 흥청망청한 분위기가 사라졌다.아직 「다시 뛰는 분위기」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지만 과소비에 대한 반성은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정부는 단기적인 경기활성화 정책인 신경제 1백일 계획(3월22일∼6월30일)과 과감한 제도개혁을 목표로 한 신경제 5개년 계획(7월1일∼97년말)을 차례로 시행했다.이같이 중·장기 경제정책을 병행한 것은 우리 경제가 구조적인 중병을 앓아왔다는 반성에 기초한다.1회용 대증요법보다는 병의 원인인 환부를 도려내 활력을 되찾기 위한 것이 「신경제」 개혁의 골자인 셈이다. 금융실명제의 전격 단행은 경제개혁을 위한 「혁명」이나 다름 없다.5,6공 정권은 금융실명제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놓고도 두 차례나 시행하지 못했었다. 실명제로 지하에서 얼굴을 드러낼 돈은 30조원 안팎으로 추산된다.지난 해 우리나라 국내 총생산이 2백32조원임을 감안하면 13% 수준이다.이 엄청난 자금이 세척을 통해 산업자금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경제는 정치와는 달리 「빨리 끓지도·식지도」 않는 속성을 갖는다.우리 경제는 아직 지표상으로 회복된 상태가 아니다.수출증가율이 7월 이래 다소 높아졌지만 상반기 평균 증가율에 미치지 못했다.경상수지는 다시 악화됐고 실업률은 6년만의 최고치인 3.2%에 이르렀다. 개혁에 따른 부작용이 없는 것도 아니다.대기업의 투자심리가 아직 본격적으로 회복되지 않고 있다.개혁의지와 사정태풍이 투자를 가로 막는 결과를 빚기도 했다.또 실명제로 성장·물가·국제수지등 정부가 잡아놓은 올해 거시경제 목표가 당초 기대에 훨씬 못미칠 것으로 우려된다.때문에 신경제 5개년 계획에서 설정한 「총량지표 전망」을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 실명제의 부작용이 예상했던 것보다 심한 것은 아니며 신경제의 궤도를 수정해야 할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개혁은 곪은 곳을 수술하는 작업이다.아프고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따라서 경제적 성과를 당장 눈앞의 경제 지표로 연결짓는 것은 성급하다.좀더 차분히 지켜 보면서 구조적·제도적 모순을 바로 잡아 우리의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는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사회/각계 비리척결로 자정바람 도출 6개월동안 숨가쁘게 몰아친 개혁의 성과와 영향이 가장 두드러지게 표출된 분야가 사회부문이다. 과거 권위주의시대에 관행처럼 묵인되어왔던 우리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던 각종 비리가 성역없이 척결됨으로써 개혁의 체감지수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군·검찰·재벌총수등 이전 같으면 접근이 어려웠던 권력 상층부의 비리에 대해서도 예외없는 단호한 법의 적용을 강조,공권력집행의 새로운 면모를 과시했다. 이 때문에 사정 대상자 선별과정에 대한 시비와 지나친 과거 들추기식 개혁이라는 일부의 지적이 있었음에도 불구,새정부의 개혁작업이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기틀을 제공했다. 특히 검찰은 발빠른 개혁뒷받침 수사는 갖가지 비리척결에 크게 기여했고 사법부와 변협등 사회 각 부문에 걸쳐 자정과 개혁의 목소리를 이끌어 내는 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군인사비리사건을 시작으로 율곡사업 비리사건·정보사 민간인테러사건등으로 이어진 군관련 비리에 대한 수사는 문민시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동안 역대 군사정권아래서 군은 사실상 성역으로 치부돼 비리가 있어도 손도대지 못한채 묻혀 지나가기가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3개월 가까이 진행됐던 슬롯머신업계의 비리에 대한 수사는 검은돈과 권력층과의 유착고리를 끊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었다고 볼수있다. 더욱이 이 사건으로 6공의 정계실력자로 군림했던 박철언의원뿐만 아니라 그동안 또 하나의 성역으로 간주돼온 검찰조직의 수뇌부들이 구속·퇴진되는 사태까지 이어져 공직자들의 윤리의식을 되돌아 보는 기회가 됐다는 점도 의미를 부여 할 수 있다. 아울러 일부 대기업 총수들과 변호사들의 비윤리적 불법행위등이 드러나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뼈저린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서울지법 소장판사들의 사법부 개혁 요구에서 비롯한 사법부의 개혁 몸짓과 변협의 자정 노력·각 사회단체들의 광범위한 개혁 동참 움직임은 이같은 정부의 단호한 개혁작업에 대한 각계·각층의 화답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부정부패가 원천적으로 발붙일 수 없도록 하는 제도의 정착과 국민의 의식전환을 위한 개혁작업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 새정부의 개혁활동을 지켜본 국민들의 한결 같은 기대이다.
  • 윤원섭 보훈처 과장/임정선열 5위 봉환·안장 총지휘(얼굴)

    ◎“공직 31년간 가장 의미있는 국가대사 치러 보람” 『국민들의 지대한 성원속에 박은식선생등 임시정부 선열5위의 봉환과 국립묘지안장을 무사히 끝마쳐 더없이 기쁩니다』 지난 임정선열 5위의 국내봉환협상과 안장까지 모든 실무작업을 총지휘한 윤원섭 국가보훈처 선양사업과장(57)은 『공직생활 31년동안 한 일 가운데 이번 일이 가장 보람스러웠다』고 말하고 『덕분에 체중이 4㎏이나 줄어 허리띠 구멍을 새로 냈다』며 웃었다. 윤과장은 지난 5월27일 전기침 중국외교부장의 방한이후 임정선열 5위의 국내봉환협상이 시작된 때부터 이 일에 매달렸다면서 『지난 70여일동안 어려움이 많았지만 불평없이 일해온 직원들에게 우선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임정선열 5위의 봉환및 안장 실무책임을 맡으면서 아침7시에 출근,저녁9∼10시에 퇴근하는 강행군을 했지만 사명감때문인지 힘든줄을 몰랐다』고 했다. 『안장식날도 새벽3시에 일어나보니 비가 와 하늘을 원망하기까지 했다』는 윤과장은 『날씨만 맑았다면 더할 수 없는 「국민제전」이되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윤과장은 임정선열 5위 봉환을 계기로 동작동 국립묘지에 새로 조성된 임정요인묘역 자리를 직접 고른 장본인이기도 하다. 윤과장은 『당초에는 애국지사묘역 왼쪽에 임정요인 묘역을 만드려고 했으나 공사에 따른 어려움이 많아 포기했다』면서 『내가 눈여겨 봐 둔 지금의 자리로 최종 결정이되고 모두들 명당자리라 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윤과장은 이번 「국가대사」를 치르는과정에서 예산이 부족했던 것이 가장 컸던 어려움이었다고 토로하고 『앞으로도 87위의 국외 독립유공자 유해봉환을 계속 추진해야 하는만큼 관계당국이 더 큰 배려를 해 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윤과장은 『이번 임정선열 유해봉환이 국민의 의식변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면서 『선열들의 공적이 후손들을 바르게 살도록 하는데 일조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 선구자의 후손들/김재룡 칼럼니스트·제일증권 전무(굄돌)

    지난주 조국의 광복이 있은지 반세기만에 유해로 환국한 임정지도자 다섯분의 민족혼을 맞으면서 우리는 또한번 통한의 역사앞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그것은 그분 선열들이 꿈에도 그리던 고국에의 환국을 이제서야 실현한 죄스러움이 그 하나요,조국의 광복을 위해 일신의 영화를 버렸던 그분들이나 그 자손들에게 우리는 무엇으로 보답했나하는 부끄러움이 그것이다.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해마다 광복절을 맞으면 달동네 단칸 세방에서 어렵사리 살아가는 독립선열 후손들의 오늘의 처지를 목도하고 비분강개한 사람이 어찌 나 뿐이겠는가.조국의 독립을 위해 풍찬노숙하면서 청춘을 바치고 심지어 목숨을 바친 선구자들의 후손치고 지금 버젓이 잘사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독립운동 하는 사람이 처자식을 제대로 돌보았을리가 없고 제대로 배우지 못한 그 자녀가 출세를 할 수가 없을 것이며 그 자손 역시 열악한 조건에서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이들이야 말로 개인적으로는 조상 한번 잘둔(?)탓으로 대를 잇는 가난과 소외의 삶을 형벌처럼 받고 산 셈이다.이와는 대조적으로 친일 부역의 자손들은 선대가 일구워 놓은 경제력과 출세 노하우를 십분 활용하여 남 가지 못하는 유학 다녀오고 그 손자들은 박사학위 받아 이 사회의 지배계층을 형성했으니 역사에서 과연 정의가 무엇인지 물어 볼 일이다. 민족을 배반하고 일신의 영달을 도모했던 그 무리들은 해방된 조국에서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되어야 했다.그것이 바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어야 하는데 불행히도 우리는 그 기회를 놓쳤다.바로 이 대목이 저 사악한 김일성정권에 비하여도 정통성에서 꿀렸던 이승만정권의 죄과이다. 그렇다면 독립투사들의 후손 만이라도 받들어서 그들이 이땅의 평균치 이상의 삶은 살아가도록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바로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도 순국선열들에게 얼굴을 들 수가 없게 되었다. 이들이 국가로부터 받는 보상이란 건국 이후 군경 상이용사와 그 자녀등 일반 보훈대상자로서 극빈생활자 정도의 생계비지급과 취업시 약간의 배려 정도인데,어찌 이것으로 우리가 할 바를 다 했다고 하겠는가.부끄러운 일이다.
  • 「민족정기 회복운동」 확산/구총독부 철거 계기

    ◎4개단체서 캠페인·강연/학계서도 일제청산 연구 활발 박은식선생등 임정선열5위의 유해봉안과 구조선총독부건물 해체결정등을 계기로 민족정기를 바로잡기위한 각종민간운동이 활기를 띠고있다. 각종사회단체와 학계등에서는 세미나,강연회,출판사업에서 연극공연,순회계몽활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행사등으로 일제때 왜곡됐던 민족정기를 바로 잡기위한 노력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안중근의사 숭모회는 문화체육부가 지정한 「안중근의 달」을 기념하기위해 17일과 20일 두차례에 걸쳐 안의사의 애국정신과 동양평화사상등을 주제로 특별강연회를 가질 예정이다. 또 새마을운동중앙본부는 광복절인 15일 아침 전국적으로 국기바르게달기 캠페인을 벌이는데 이어 지역별로 민족정기를 끊기위해 일제가 설치했던 각종 시설물,지역역사왜곡등의 실태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한국기독청년회,흥사단등 단체들도 선열들의 독립투쟁정신을 통일열기로 승화시키기위해 15일 「남북 인간띠 잇기대회」를 개최,광복의 의미를 새롭게 돼새길 예정이며 민족정기회복과 건강한 시민사회등의 주제로 각종 강연회등 기획행사도 준비중이다. 이와함께 일제의 잔재를 씻어내기위한 학계 출판계의 움직임도 활발하다.외국어대 사학연구소 박창희교수는 일제때 일왕의 칙령에 따라 결정됐던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우리말인 「어린이학교」로 바꿔야한다며 최근 교육부에 건의문을 내 관심을 끌고 있다. 또 일제때 목숨을 걸고 독립투쟁을 벌였으나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의 전기나 과거 친일행각에도 불구,광복후 독립유공자로 훈장을 받은 인물에대한 고발과 해방정국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소설등도 쏟아져 새로운 역사조명을 기대하는 독자층을 겨냥하고 있다.
  • 문민시대의 광복 마흔여덟돌(사설)

    광복절 아침이다.마흔여덟돌이다.상해 임시정부요인 다섯분 선열의 유해를 봉환하여 국립묘지에 모신지 닷새만이다.서른두해만에 참다운 문민정부가 세워진지 반년만이다.민족의 자존심과 민족정기의 회복을 위해 옛 총독부건물과 한때 청와대본관으로 불리던 그 총독관저를 헐어버리기로 대통령이 결단하고 국민들이 합의한게 바로 엊그제이다. 다시한번 챙겨보는 이 일련의 새로운 일들로 하여 광복 48돌 아침은 새삼 감개가 짙지않을 수없다. ○미완성의 광복 48년전의 광복은 글자그대로 우리에게 빛을 복원해줬다.질곡과 압박에서 해방되었고 감겼던 눈이 틔는 순간이었다.그러나 그것은 처음부터 미완의 것으로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아직도 그것은 미완의 장으로 남아있다. 우리 민족의 광복은 지상의 환희였다.그러나 그것은 곧바로 국토의 단절과 민족의 분단으로 이어졌고 이윽고는 동족전쟁의 시련과 비극으로 연결됐다.광복의 오늘이 아직도 미완인 것은 그로 인한 것이었다.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민족적 대결과 분단의 상징인 휴전선을 부수고 판문점을 열어 민족을 한 띠로 묶는 과업으로부터 「광복의 완성」을 시작해야한다. 하긴 이 역시 쉬운일이 아니다.서울에서 판문점,평양까지 통일기원 인간띠잇기운동이 제의됐어도 저쪽은 외면이다.그러니 이제 미완의 광복은 북쪽 당국자들의 인간성회복과 그쪽 동포들의 인권회복으로부터 비롯돼야 할 것이다. 다시 서른두해만의 문민정부를 얘기할지음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부끄러운 민족으로 살아왔는가를 새삼 새기지 않을 수없다.온통 권위주의색채의 군사문화가 지배한 지난 30여년은 정권의 정통성과 대표성이 항상 의문의 대상이었고 그에따라 민족의 정체성마저 회의를 느낄 지경이었다.문민정부가 값지고 소중한 것은 그런 끊임없던 의문과 회의가 주권자의 판단과 선택으로 완전히 해소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돌아오신 선렬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부끄러운 민족으로 살아왔는가는 고국에 돌아오신 다섯분 선열들이 말없이 증언한다.그러나 그 어른들은 못난 후손들을 책망하기보다 오히려 격려하고 위로할 것이다.선열들을 안장하면서 후손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교훈을 새겨야 했는가.비록 때늦은 봉환이었고 아직도 많은 어른들이 이역땅에 누워있지만 국민들은 이번 임정요인의 봉환을 통해 이렇게들 합의했을 것이다. 첫째 임시정부의 연면하고 정당한 법통을 새 문민정부가 실질적으로 승계했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이다.대한민국 헌법 전문의 정신과 법통성계승을 확인검증한 첫 가시적조처였다고 할수있다. 둘째로 민족정기와 자긍심을 바로 세우는 획기적 계기였다는 사실이다.일제하 국내외 독립투쟁에서,특히 임정요인들의 활약상은 얼마나 우뚝하고 찬연한 것이었던가.앞으로 완성될 광복사는 나라가 쇠했을때 이를 구하고자 감연히 일어서 싸웠고 죽어서도 죽지않고 민족의 정기로 살아남은 이 어른들에 의해 더욱 빛날 것이다. 다음으로 선열의 봉환은 과거 친일의 잔재를 일소하는 계기도 되었다는 점이다.나라를 빼앗겼음도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그보다 더 부끄러운 일은 광복후 친일파들이 활개를 치며 살게했다는 사실이 아닐수 없다.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은 여전히 가난에 허덕였으나 이들은 일제하에서 쌓은 배경으로 흔들림이 없었다.일제잔재 청산의 대상들인 것이다. ○다시 쓰는 현대사 지금은 국립묘지에 편히 잠드신 선열 박은식선생은 그 명저 「한국통사」의 서문에서 『국혼은 살아있다』고 썼고 그것은 이제 그의 비명의 한 구절이 되어있다.말그대로 국혼은 살아있어 분단속에서도 민족은 살아숨쉬고 임정의 법통을 계승한 문민정부는 살아움직인다. 그러니 이제 우리의 광복현대사는 다시 쓰여져야 한다.『과거의 사실이 진실로 어떠했던가』를 밝히는 작업은 역사학자의 본령만은 아니다.그것은 전 민족의 몫이어야 한다.지나간 근 50년동안 타의에 의한 광복을 자의에 의한 발전의 원동력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우리에겐 역사에 대한 강요된 논리나 주장을 감연히 거부할 용기도 부족했다. 변화와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김영삼대통령이 지적한바 「제2의 광복운동」으로서 우리는 이제 새로운 역사탐색으로서 「있었던 그대로」,「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실상을 찾아내어 역사를 바로잡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일에 나서야한다.그리하여 국사를 비롯한 모든 교과서에 광복현대사 굽이굽이마다 왜곡되고 굴절된 민감한 부분을 새로 쓰고 이 사실과 함께 문민시대의 의미와 미래지향의 정신을 넓고 깊게 투영시켜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광복의 의미를 되살리고 완성하는 길은 이 시대의 정신이기도 한 변화와 개혁의 성공을 이루고 궁극적으로는 민족의 통일을 성취하는 일 이외의 다른것이 아니다.남과 북이 통일을 이룰때 애국선열들이 시작한 광복운동은 비로소 대단원을 이루게될 것이다. 모든일의 성취가 결국 사람에 달렸다면 국권상실과 민족분단의 지난 세기를 민족번영과 통일의 새로운 세기로 바꾸는 책임 역시 국민에게 있다.그런 점에서도 2년후에 맞을 광복 50주년은 우리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역정에 한 획을 긋는 해가 되어야한다.
  • 상해임정청사 관리 “엉망”/중국 시 산하 구 문물보호소에서 운영

    ◎우리말 아는 관리인 없어/싸구려 기념품 판매 열중/유물·유품 전시요청 묵살 중국 상해시의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가 막대한 자금을 들인 복원작업에도 불구하고 관리소홀로 오히려 선열들의 독립정신에 상채기를 내고 있다. 한국측의 재정지원으로 임정청사가 복원된 것은 지난 4월13일.이후 상해시 노만구가 지방문화재로 지정,노만구 문물보호관리소에서 관리를 맡고 있으나 관리소홀과 무신경으로 역사적 의의를 잃어가고 있다.당시 30만달러의 복원비를 지원한 우리측의 삼성물산은 관리권을 우리측에 주도록 요구했으나 외국인의 부동산 소유를 허용하지 않는 중국의 방침에 따라 중국이 관리권을 갖게됐었다. 그러나 노만구는 이후 관리권을 내세워 우리측이 원하는 전시물들을 제대로 진열하지 않는 등 우리측의 계속적인 복원노력을 백안시하며 일방적인 운영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독립기념관측이 관련 유물·유품을 수집,임정청사에 보낼 예정이었으나 중국측의 거부로 무산되기도 했다.중국측은 또 조선족을 채용,안내를 맡도록 약속했으나 현재 임정청사를 관리하는 5∼6명의 직원 가운데 한국말을 하는 사람은 1명도 없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임정청사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들은 전시된 자료와 청사의 구체적인 연원등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하는 등 역사교육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는데도 크게 미흡한 실정이다.임정청사 입구의 안내소격인 「접대소」에서도 우리측이 전달한 사진과 책자등 관련자료는 구비하지 않은채 주로 중국어 서적과 중국제 접시,손수건등 기념품만 판매하는등 역사적 유적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특히 우리측이 제작,VTR과 함께 보내준 독립운동에 대한 기록영화는 당초의 약속과는 달리 『영사기가 고장났다』는 이유로 단 한차례도 상영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임정청사의 복원에 관계해온 독립기념관측은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상해시와 임정청사관리세부협정을 체결할 것을 구상중이나 중국측의 미온적인 태도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의 윤봉석연구원은『중국이 임정청사를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문화재라기보다는 한국 관광객을 상대로 한 관광자원이라는 차원에서 관리한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광복회의 백계현사무총장은 『소유권은 가질수 없더라도 관리권만은 우리가 가질 수 있도록 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 문민정부 첫 광복절에 생각한다(특별대담)

    ◎친일세력 축출이 정기회복 지름길/관료사회서 온존… 국가기강 확립 걸림돌/총독부 청사 철거 현정권 임기중 실현을/임정선열 5위 봉환 역사적 쾌거/문제있는 독립유공자 재심 절실/정신대문제 등 일제만행 규명… 사죄 꼭 받아내야 15일로 광복 마흔여덟돌을 맞았다.특히 문민정부 출범 첫해에 맞이한 광복절은 여느때보다 뜻깊다.상해임정 선열들의 유해가 봉환되고 구조선총독부청사,총독관저가 철거되는 등 일제의 잔재를 일소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잡는 작업이 사실상 처음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문민정부가 처음으로 맞는 8·15 광복절의 역사적인 의미와 우리 민족이 풀어나가야 할 향후 과제를 좌담으로 정리해본다.이날 좌담회에는 김승곤광복회회장과 신용하서울대교수가 참석했다. □참석자 김승곤 광복회 회장 신용하 서울대 교수 ▲김회장=광복을 맞아 12년동안 항일운동을 하며 떠돌던 중국에서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입니다.놀랍게도 친일파들의 권세가 여전하더군요. 더구나 극심한 좌우익 투쟁을 교묘히 이용해 친일파들은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한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했습니다.51년 광주의 한 신문사에 입사할 때도 독립운동사실을 숨겨야만 했을 정도였습니다. 남북분단의 비극이나 순국선열들이 지금껏 이역을 떠돌수 밖에 없었던 것은 지금껏 관료사회를 쥐고 있던 이들 친일파때문입니다. 독립운동을 했다고 떳떳이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몇년 되지 않습니다.독립운동가들이 그동안 제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던 것이죠.그만큼 우리 사회의 친일세력은 뿌리가 깊습니다. 이번 임정선열 5위의 봉환은 친일파들때문에 퇴색해버린 민족정기를 되살릴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또한 이를 통해 국가기강도 바로 세울 수 있게 됐습니다. ▲신교수=우리 헌법 전문은 상해임시정부의 법통계승을 명문화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실제로 정책을 시행하는데는 문제점이 매우 많았습니다. 임정 요인의 유해 5위를 공식적으로 국내에 봉환한 것은 매우 획기적입니다.즉 민족의 정기를 학립하고 국가기강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전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지요.독립정신을 계승 발전해 세계속의 한국으로 발돋움,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정신적인 계기를 마련한 것은 물론이고요. 김영삼대통령이 그동안 논란속에서 미루어 왔던 구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토록 지시한 것은 확실한 용단이라 생각합니다.옛 총독관저의 철거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나 문제는 김대통령의 민족정기 앙양의지와는 달리 일부 세력과 관료들의 개혁의지가 부족하다는데 있다고 봅니다. ▲김회장=총독부 청사의 건립의도부터 생각해봅시다.우리 임금이 살던 경복궁안에 짓지 않았습니까.우리 민족의 맥을 끊기 위한 것이지요.창경궁에 동물원을 세운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총독부 건물은 일제의 상징입니다.해방과 동시에 가장 먼저 철거됐어야 합니다. 물론 이승만대통령때부터 역대 정권들이 철거를 고려했었지요.그러나 지금껏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이는 행정부에 있는 친일수구세력들의 방해때문입니다. ▲신교수=조선총독부를 지을당시 일본의 건축전문가들은 남산이나 서울시청자리를 주장했습니다.그러나 당시 데라우치총독이 영구 통치를선언하는 의미에서 조선왕궁의 정궁인 근정전을 헐고 짓도록 했습니다.즉 일제가 한국 식민통치의 상징을 만든 것이지요.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일은 이를 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한 것입니다.5000년 역사를 일제의 식민통치 상징에 넣어놓았으니 민족적 열등감을 「배양」시키고 일본인에게는 우월감을 조장해 왔습니다.5공때는 철거계획이 한때 검토됐으나 무산됐고 6공때도 연구됐지요.그러나 경비문제를 들고 나온 관료들의 반대에 부딪쳐 철거되지 못했습니다. 당시 관료들이 대통령을 속인 것입니다.뜯어다가 복원하는데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게 반대이유이지만 이 건물은 복원가치가 없습니다.우리 고유의 유물도 아닌데 뭣때문에 복원합니까.정 아쉽다면 모형을 하나 만들어 독립기념관의 일제침략관내에 전시하면 그만이지요.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박물관의 이전시기입니다.정부에서는 2000년까지 완공한다고 발표했는데 김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97년까지 마쳐야 합니다.그렇지 않으면 아직도 막강한 수구세력에 의해 무산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김회장=그렇습니다.김대통령 임기안에 이전해야 합니다.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친일세력들이 남아있습니다.김대통령이 퇴임한 뒤에 이들이 어떤 주장을 내세우며 이전에 반대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화제를 돌려 정신대문제를 한번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최근 일본 연립정부가 우리 한국인 여자들을 강제로 끌고가 위안부로 이용한 사실을 인정한데 대해 마치 대단한 의미가 담긴 양 높이 평가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일본정부가 사과한 것도 아니고 그저 정신대문제에 대해 강제성이 있었다고 인정한 것을 놓고 우리 외무부가 『외교적으로 정신대문제는 청산됐다』고 밝힌 것은 성급한 것입니다. ▲신교수=동감입니다.새로 들어선 일본의 연립정부는 정신대문제와 관련해 전후청산차원이라며 「강제성」만을 인정했습니다.범죄행위에 대해 배상이나 사죄는 없는데 이는 용납할 수 없으며 일본에 휘말리는 우리의 외교정책은 자주외교 대등외교가 아니라고 봅니다.독일은 패전후 즉시 사죄하고 배상금을 물었는데 일본은 이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습니다. ▲김회장=정신대문제를 포함해 일제 만행에 대해 전반적인 진상규명과 일본의 전적인 사죄가 있어야 합니다. 가을로 예정된 김대통령의 일본방문에서는 분명한 답변을 일본정부로부터 반드시 받아내야 할 것입니다. ▲신교수=잘못된 과거역사의 청산은 물론 국제화시대의 대처라는 측면에서도 친일파들에 대한 역사적인 재조명이 시급합니다.민족의식이 소멸되면 강대국에 종속될 수 밖에 없지요.이완용이가 나라를 판 대가인 은사금으로 사들인 땅을 증손이 나타나 법원에 제소,여러건 승소판결을 받았지요.이는 제2의 이완용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을 만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김구선생이 독립운동가들을 잡으러 다니던 친일파에게 암살당하고도 진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이러한 것들은 건국직후 친일파들을 몰아내지 못한 때문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보훈처는 국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포상을 받은 경우라도 친일행각에 문제가 제기되는 부분이 있으면 재심해야 합니다.그러나 그 기준은 엄격하고 과학적,합리적이어야 합니다. ▲김회장=친일파에 대한 재조명이 역사적 과제임은 분명합니다.문제는 현실적으로 친일파를 어떤 기준으로 가려낼 것인가 하는 겁니다.정부로서도 친일파에 대한 역사재조명이 무척 어려울 줄 압니다.그러나 서두르지는 않더라도 꾸준히 작업을 벌여나간다면 소기의 성과를 거두리라 기대해봅니다. ▲신교수=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최근 들어선 일본 연립내각의 핵심인 오자와 이치로는 PKO법안의 초안 배경이 된 「오자와특별조사위」를 이끌어온 인물입니다.이 위원회의 조사보고서는 앞으로 국제사회가 미주권 EC권 일본권 등 3개 블록화되므로 일본이 아시아지역의 통합과 주도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한국은 일본의 아시아정책의 개편대상중의 하나이므로 자칫 말려들면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으로 종속될 위험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김회장=일본은 한일관계를 영원한 동반자인양 표현하고 있습니다.그러나 6백90억달러의 무역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관계가 동반자일수 있습니까. 일본은 한국전쟁을 통해 경제발전을이룩할 수 있었습니다.동북아시아의 전략거점으로 일본을 택한 미국이 각종 기술원조를 아끼지 않으면서 지원했기 때문에 일본의 성장이 가능했던 겁니다. 그러나 일본은 겉으로는 동반자 운운하면서 우리나라에 기술지원을 꺼리고 있습니다.우리나라를 경제협력국이 아니라 시장으로만 여기고 있을 뿐입니다.이런 상태에서 양국이 진정한 협조적 관계를 이루기는 어렵습니다.우리 국민의 반일감정은 정부의 입장과는 달리 그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김대통령의 가을 일본방문에서는 반드시 말뿐이 아닌 실질적인 일본의 사죄를 얻어내야 할 것입니다.이와함께 기술이전과 무역역조시정등에 대한 일본정부의 실질적인 약속을 보장받아야 할 것입니다.
  • 유난히 뜻깊은 올 광복절/「8·15」48주년을 맞으며

    ◎구총독부 철거 순국선열들도 반길것 오랫동안 새삼스럽지 않던 일이 어느 날 새삼스러워질 때가 있다.내일 맞이하는 8·15가 바로 우리들에게 새삼스러워지는 날이다.1945년이후 근 5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러간 오늘에 이르기까지 올해만치 이날의 의미와 뜻이 새삼스럽게 되새겨지는 날도 별반 없었다는 느낌이 강하다.우리민족에게는 그때마다 새삼스러워야 할 오늘의 의미와 뜻이 국민들의 가슴에 뜨겁게 와닿지 못했던 것은 여러갈래의 해석이 있을 수 있다. 8·15의 의미가 우리들 국민정서를 송두리째 사로잡지 못한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는 해방당시 들어선 정부가 일제의 잔재를 청산시킬 아무런 의지도 갖고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후 48년이란 세월이 흘러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청산의 의지는 별달리 피부에 와닿았던 적이 없었다는 데 있다. 그 청산이란 반드시 피비린내나는 숙청과 보복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일제의 관청에서 관리로 녹을 먹던 사람이 해방된 조국 정부의 요직에 그대로 들어가 앉아 나라의 살림을 도맡아 처리하였고 일제가 쓰던 건물에 그대로 들어앉아 공무를 보았으니 의자나 책상 역시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었다. 독립투사의 후손들은 달동네의 사글세방에서 끼니를 굶으며 병고의 시달림을 받고 있는데 일제에 부역하거나 거기에 빌붙어 호사를 누린 사람들의 후손은 각계각층의 요직에 앉아 권세를 누려왔다.누구도 그런 사람들의 구차스러움과 야비함을 꾸짖지 않았다.심지어는 그런 사람들이 순국선열들의 영령들을 애도하는 행렬의 앞줄에 서서 분향까지 하는 웃지 못할 사태까지도 우리는 여러번 목도해왔다. 아픔도 역사라는 어눌한 궤변과 건축사적 사료가 된다는 이유 때문에 일제의 총독부건물에 나라의 중앙관청이 들어서고 총독의 살림집에 대통령이 또한 살림집을 차려왔다. 이러한 모든 청산의욕의 뜨뜻미지근함은 해마다 맞이하는 8·15의 의미와 뜻을 퇴색시켜온 것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이웃나라 땅에서 올바른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던 선열들의 뼈가 얼마전 환국하여 그분들이 몽매에도 그리던 고국의 땅에 다시 묻히게 되었다. 해방당시 지체없이 결행되어야 할 일이 해방 48년이란 장구한 세월이 흘러간 지금에서야 그 뜻을 받들게 되었다는 것은 부끄럽고 가슴아픈 일이다.그 분향소에만은 일제에 녹을 먹었던 사람들이 출입하지 말았으면 했는데 처음부터 지켜보지 못했으니 그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때늦은 감은 없지 않으나 중국땅에 묻혀 있던 선열들의 영령을 모셔오는 일도 일제의 청산이며 총독부건물과 그 총독의 집이었던 청와대의 구본관을 철거하는 것도 일제청산의 길이다.대청기둥뿌리밑에 숨어 있는 개미집을 발견하여 헐어낸 속시원한 오늘의 8·15로 기억되기 충분하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는 매우 착잡하다.조선시대부터 우리의 선조들에게 총칼을 들이대고 위협과 약탈을 일삼다가 결국은 일제치하 36년이란 치욕스러운 역사를 우리에게 안겨준 일제.그들의 만행이 아직도 우리들의 뇌리에 역력하건만 그들은 망한 적이 없다. 지지리도 못난 꼴을 보이고 망조가 들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이다.사람이 짓는 선악의 업보에 따라 과보가 주어진다는 인과응보란 말 어디를 뒤져보아도 일본이란 나라에 망조가 든 징조는 보이지 않는다.일본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점이 이 시점에서 우리를 당혹스럽게,그리고 착잡하게 만든다. 해방된 지 48년.이젠 경제만이 나라가 살아나갈 일이란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일이 되었다.경제논리만이 오늘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고,이런 논리는 장차도 좀처럼 뒤바꿔질 것 같지가 않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일제의 잔재를 철저하게 청산하되 오늘날 일본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모습을 주의깊게 바라보면서 우리가 섭취해야할 것이 무엇인가를 새삼스럽게 살펴보아야 할 처지에 우리는 놓여 있다.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런 심정적 갈등을 하루 빨리 해소시키기 위해서도 우리들 주변에 버젓이 산재한 일제의 잔재부터 청산하는 일이 시급하다.
  • 등록재산 엄격한 실사로 검증돼야(사설)

    태풍전야같은 긴장감마저 몰고 왔던 공직자재산등록이 마감됐다.이어 김영삼대통령의 첫 공개를 시작으로 앞으로 한달간 6천8백10명의 의무자중 우선 1천1백70명의 재산이 국민앞에 낱낱이 밝혀진다.전례에 비추어 또한차례 파문이 불가피할것이나 그것은 이 시대적 변혁의 과정에서 모두가 치러내야 할 필연적인 통과의례이다.다소의 희생은 무릅쓰고라도 감내해야 한다. ○권력 곧 부란 등식의 차단 등록 마지막 순간까지 재산감량 수단을 총동원하고 끝내는 등록직전에 공직을 사퇴했다는등 숱한 화제도 낳았다.공직자들의 등록재산은 9월11일까지로 예정된 재산공개때까지의 1차 심사와 그 이후 3개월동안 진행될 실사를 예정해 놓고 있다.이러한 업무를 총괄할 각급 2백95개 공직자윤리위가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새로운 공직자윤리법과 그 시행령에 따라 실시되는 이번 공직자재산등록은 초법적이라해서 일부 물의가 있었던 자율재산공개를 법적으로 제도화한 완벽한 장치이다.공직윤리법의 취지는 재산이 얼마나 있느냐를 들추는것보다 재임중 재산증식여부를 판별해 비리를 가려내자는데 있다.지난 32년동안 군사문화속에서 부정부패가 체질화됐던 우리관료 체제를 정화해 권력과 부가 함께 공존하는 등식을 차단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3월의 자율공개를 통해 공직=치부라는 구조악의 현주소를 똑똑히 목도했다.국민을 대표하고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선양과 고위공직자의 부패상을 뼈아프게 체험했고 부패와 부정의 심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끝내 정의에 등떠밀려 자리를 떠나는 장면도 보았다.공직사회의 기강은 그 나라의 흥망성쇠를 가늠할수 있는 척도다.우리는 가까운 역사를 통해 부패가 나라의 멸망까지를 몰고온 사례를 무수히 겪고 있다. 온 국민이 3만4천3백명의 재산등록을 주의깊게 지켜보는 것은 이들이 과연 양심선언의 준칙에 따라 정직하게 의무를 수행하고 있느냐를 알아보기 위함이다. ○부패척결 성패의 열쇠 우리는 결코 합법합리적으로 땀의 대가에 의해 축적한 부까지를 문제삼으려는 것이 아니다.부패추방을 선언하면서 스스로 재산을 처음 공개해 시작을 연 김대통령은 정부공직자윤리위원들과의 만남에서 오히려 청부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우리가 비난하는 대상은 땀의 대가가 아니라 부도덕한 치부와 각종 특혜에 의한 축재등 권력이 부를 만들어내는 도구로 작동했다는 사실이다. 공직에 있으면서 상속을 받았건,개발이익에 편승되어서였건 공직자가 재산을 많이 갖고 있음은 결코 자랑스러운 일이 못된다.그래서 등록을 하면서 마지막 끝까지 한푼이라도 줄이려 안간힘을 했다는 소식에 비애를 느낀다. 김대통령은 정권이 바뀔때마다 있었던 일과성 사정을 결코 용납할수 없음을 기회있을 때마다 분명히 했다.임기가 끝나는 그날까지 부패의 척결은 중단될수 없다는 것이다.재산등록은 이를 실현하는 장치이다.등록이 끝났다면 이제는 이를 차갑게 검증하는 일만 남았다.국민을 대신해 나라를 이끌어가는 이들 고위공직자들이 과연 양심에 따라 정직하게 의무를 다했는지를 실사를 통해 가려내자는 것이다.만의 하나 법의 맹점을 이용해 속이려한 의도로 행여 단순등록이 자행돼 유명무실화 한다면 다시는 부패를 몰아낼 기회를 영원히 잃게 될지도 모른다.따라서 철저·엄격한 실사와 완벽한 검증만이 부정부패척결과 재산등록제 성패의 관건이라는 측면에서도 각급 2백95개윤리위원회 위원들의 역사적 소명의식과 구국의 결단이 요청되는 것이다. ○사회전반 확산의 계기로 역사변혁의 기회는 그리 흔한게 아니다.우리는 오늘에야 비로소 문민정부이후 처음으로 임정선열5위를 고국에 모셔 민족의 정기를 이었지만 과거 청산에 보다 적극적이었다면 그 기간을 얼마든지 단축할 수 있었다는 교훈에서 공직자윤리법의 실행정신을 새기려한다.비록 옥석이 함께 타고 개인적으로 억울함과 손해보는 일이 생기는 한이 있더라도 항구적으로 부패를 막는 이 제도는 정착시켜내야한다. 재산을 지녔다는 단순 사실이 결코 죄가 될수만은 없다는 사실까지도 검증절차를 거쳐 확실하게 하자는 것이다.적극적으로는 과거의 멍에를 벗겨주어 앞으로의 청렴에 더욱 정진할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자는 미래지향의 뜻도 있다.축적된 재산에 「면죄부」를 주어 가와 불가에 명확한 선을 그어 주자는 것이다.납득할만한 소명자료를 갖추지 못한 사람은 액수의 다과에 상관없이 추궁과 인책이 따라야하고 거증이 명확한 경우에는 아예 뒷말을 남기지말자는 것이다.아울러 이 기회에 부도덕한 방법으로 축재한 일이 있는 공직자는 문제가 표면화되기 전에 스스로 용퇴할 것도 거듭 촉구한다. 모처럼 공직사회에 불고있는 이 청렴정신은 비단 공직에 국한될 것이 아니라 공공의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은 물론 사회전반적으로 확산되어야한다.못가진 것이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많이 가진 것이 부끄러운 문명사회가 되어야한다. 권력=부라는 뿌리깊은 부패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은 시간과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전 대상자를 상대한 철저한 실사로만 가능하다.현실타파에는 희생이 따르지 않을수 없는 법이다.
  • 전 광복군 동지회 부회장/김광언옹 숨진채 발견/아파트서 3일만에

    9일 하오 10시쯤 서울 양천구 목동아파트 611동1708호에서 독립운동가이며 광복군 동지회 부회장을 지낸 김광언옹(74)이 숨져 있는 것을 외아들 면성씨(34·대우조선 생산관리실 근무)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면성씨는 『임정선열유해가 봉안됐던 지난 5일 하오 9시30분쯤 부친과 통화를 한후 영결식을 하루 앞두고 부친께 전화를 해도 계속받지 않아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근무지인 경남 장승포에서 급히 올라와보니 부친은 이미 숨진뒤 였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옹이 10여년전부터 심장병과 당뇨병을 앓아왔다는 가족들의 말에 따라 지병으로 숨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중이다. 김옹의 빈소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 강서성모병원 영안실에 마련됐다.
  • 빗속 「선열추념가」… 유족들 오열/임정 5위 영결·안장식 이모저모

    ◎울음섞인 추모사에 참석자들 목메어/소복차림 후손 “할아버지” 절규… 숙연 ○…10일 상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거행된 임정선열5위의 영결식은 전날에 이어 계속내린 비로 더욱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 현충문옆 국기게양대에 걸려있는 태극기가 빗속에 펄럭이는 가운데 국화로 장식된 선열 5위의 제단은 새삼 처연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분위기 시종 엄숙 국민제전위원측은 이날 영결식행사장 주변에 천막30개를 설치했고 참석자들에게는 미리 준비한 우의를 나누어 줘 빗속행사에 만전.또 식순및 행사내용등이 인쇄된 팸플릿이 비에 젖는 것을 막기위해 비닐봉지에 싸 배포하는등 역사적인 행사에 차질을 빚을까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흔적이 역력. ○…이날 영결식장의 종교의식행사에서는 천주교와 불교,기독교외에 대종교가 이례적으로 참석해 눈길.특히 김선적 종무원장(67)은 선열들의 명복을 비는 「봉안 원도문」을 유독 큰소리로 낭송,비교적 낮은 목소리로 의식을 진행하던 다른 종교와 대조를 보여 주목. 김종무원장은 박은식선생등의 독립운동 행적과 대종교의 역할등을 중심으로 추모사를 울음섞인 목소리로 낭독해 유가족들의 눈시울을 적시기도. ○종교의식 시간 걸려 ○…이날 영결식에서 선열추념가를 부른 합창단 1백20명이 무궁화무늬가 새겨진 한복을 입어 눈길. 국립합창단과 함께 조가를 부른 이들은 대전무궁화 합창단(단장 정인자·51)으로 이들은 어제 가사를 팩시밀리로 받아 이날 상오5시 서울에 버스편으로 도착할 때까지 버스안에서 가사와 리듬을 열심히 익혔다고. 정 단장은 『지난7월 26일 효창공원에서 열렸던 백범 선생 추모식 때도 추도가를 불렀다』고 자랑. ○…이날 영결식행사는 당초 예정보다 30분가까이 늦어진 상오 11시 10분쯤 국군 조포대의 조포 21발이 울리는 가운데 종료. 이는 추모사와 종교의식이 예정시간보다 배이상 길어진데 따른 것이라고 행사 관계자가 설명. ○…상오 11시30분쯤 시작된 안장식은 흰보자기에 싼 옥함을 유택에 넣은뒤 가로30㎝,세로90㎝ 정도의 세조각으로 된 「횡대」라는 나무조각으로 옥함을 덮은 다음,횟가루를 유족대표들이 횡대위에 뿌리는등 헌토작업과 봉분을 쌓는 성분작업및 잔디를 입히는 절차로 약20여분동안 진행됐으나 흙바닥이 질어 인부들과 유족들이 애를 먹기도. ○시아버지유택 큰절 ○…소복차림의 박은식 선생의 자부 최윤신 할머니(77)는 비가 와 진흙땅으로 변한 잔디밭에서 시아버지의 유택을 향해 절을 올리며 오열했는가 하면 노백린 선생의 묘역에서도 흰소복차림의 여자 유족이 『할아버지』하며 오열하는등 안장식장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나와 더욱 숙연한 모습. 또 이날 영결식행사에 참석한 중국교포 이소심씨(55·여·의사·중국 사천성거주)는 『오늘 영결식을 보면서 한국인으로서 부러움과 감격스러움을 느꼈다』면서 『앞으로 정부당국이 아직 환국하지못한 다른 선열들의 유해 봉환에도 관심을 기울여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 김 대통령,묘역참배

    김영삼대통령은 10일 하오 임정선열 5위가 안장된 국립묘지 임정요인 묘역을 참배하고 유족대표 박유철씨(박은식선생손자)등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김대통령은 이자리에서 『국내의 여러곳에 흩어져있는 다른 임정요인들의 묘소도 유족들이 원한다면 함께 모시는 방안을 추진하라』고 수행한 이병대보훈처장에게 지시했다. 김대통령은 『아직 해외에 있는 많은 독립유공자들의 유해를 국내 봉환할수 있도록 유족및 관계당국과 적극 협의하라』고 말했다.
  • 국민장이상 수준… 국민적 행사 강조/건국후 처음 「국민제전」

    ◎다른 선열유해 봉환때도 적용될듯 10일 상해임시정부 선열5위의 영결식은 「국민제전」의 형식으로 치러졌다. 「국민제전」이라는 말은 지난 6월 정부가 이들 선열의 봉환을 본격 추진하면서 고심 끝에 만들어낸 장례명칭이다. 「봉환제전」으로 이름붙이는 것도 고려됐으나 국민적 행사임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이같이 결정됐다. 국민장 이상의 수준으로 하면서도 이미 오래전에 고인이 돼 장례를 치른 선열들에 대해 국민장이라는 이름으로 거푸 장례를 지내는 일을 피하기 위해 국민제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따라서 「국민제전」은 건국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명칭이야 어찌됐건 황인성국무총리가 제전위원장을 맡은 것이나 지난 5일 상해에서의 천묘식에서부터 이날 영결식까지 6일동안인 행사기간 등은 국민장 수준과 같다. 정부는 앞으로도 안중근의사등 해외에 묻혀있는 순국선열의 유해가 확인되는 대로 봉환할 계획으로 있어 유사한 국민제전이 더 있을 전망이다. 한편 건국이후 지금까지 치러진 국장과 국민장은 모두 12차례이다.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통령등 국가원수의 사망때 치러지는 국장은 지금까지 박정희대통령 시해때 한차례 거행됐었다. 국민장은 지난 83년 아웅산테러사건으로 희생된 서석준 전부총리등 정부사절 6명의 장례까지 11차례 거행됐다. 이에 앞서서는 74년 8월14일부터 5일동안 거행된 육영수여사 장례로 김종필총리가 장의위원장을 맡았었다. 건국이후 최초의 국민장은 49년6월 26일부터 거행된 김구 상해임시정부 주석의 장례로 7월5일까지 10일동안 거행됐다.
  • “유지 받들어 애국애족정신 실천”/황인성 제전위원장 추모사

    48주년의 뜻깊은 광복절을 닷새 앞둔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열 다섯분의 유해를 멀리 중국 상해에서 모셔와 이곳 국립묘지에 유택을 마련하는 영결의 제전에 머리 숙이고 있습니다. 조국광복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박은식선생님의 그 거룩하신 존명을 다시 불러봅니다.신규식선생님,노백린선생님,김인전선생님,그리고 안태국선생님의 존명을 온 국민과 함께 다시 불러 봅니다. 선열들께서 1919년 4월13일 상해에서 세운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국권회복을 위한 우리민족의 유일한 합법정부였을 뿐만 아니라 오늘의 대한민국에 그 독립정신이 이어지고 있음은 우리 헌법이 밝히고 있는 바와 같습니다. 오로지 조국광복을 위해 싸우시다가 망국의 한을 품은채 이국땅에서 순국하신 다섯분 선열들의 발자취를 이 자리에서 되새겨 보는 것은 다름이 아닙니다.선열들의 유업을 계승하고 그 숭고한 애국애족의 정신을 바르게 따르기 위한 것입니다. 선열들께서 나라잃은 설움속에 와신상담하며 보내신 생애가 얼마나 고난에 찬 것이었으며 몽매에도 잊지 못한 조국광복의 뜻을 끝내 펴지 못하고 객서하신 통한이 얼마나 크셨습니까.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가족은 흩어지고 심지어 자손마저 끊겨 가까운 유족을 볼 수 없는 우리의 가슴은 찢어지는듯 합니다. 바야흐로 김영삼대통령이 이끄는 문민정부는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귀감삼아 신한국 건설의 기치아래 21세기의 번영과 영광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환국하지 못하신 여러 선열들을 하루빨리 조국의 품안으로 모실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이 자리에서 맹세드리며 그리하여 그분들의 고혼이나마 조국에서 평안히 안식하실 수 있도록 해드릴 것입니다.
  • 「민족정기 회복」 불댕기고…/임정선열 5위 국립묘지에 영면

    ◎“그리던 조국에 고이 잠드소서”/국민제전 거쳐 어제 안장 박은식·신규식·노백린·김인전·안태국 선생등 지난5일 환국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선열 5위의 영결식이 10일 상오 10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현충문앞에서 국민제전으로 거행됐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열린 이날 영결식은 제전위원장인 황인성 국무총리,이만섭 국회의장,김덕주 대법원장등 3부요인을 비롯,각계인사와 김승곤 광복회장등 광복회원,유족·일반시민등 3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40여분동안 엄숙하게 진행됐다. 이날 영결식은 국민의례에 이어 고인에 대한 묵념,제전집행위원장인 이병대 국가보훈처장의 약력보고,제전위원장인 황총리의 추모사와 김광복회장의 추념사,종교의식,헌화및 분향,조가,조포등의 순으로 거행됐다. 황총리는 추모사에서 『박은식 선생등 선열 다섯분은 독립운동의 구심체였던 임시정부를 튼튼히 해 조국광복의 토대를 마련한 분들』이라고 말하고 『7천만 한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의 대업도 선열의 거룩한 유지와 보살핌으로 멀지않아 성취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선열의 개인신앙등에 따라 기독교,불교,천주교,대종교순으로 종교의식을 진행한데 이어 3부요인과 유족대표및 여야정당대표순으로 헌화와 분향을 했다. 영결식이 끝난뒤 선열 5인의 유해는 상오11시 10분쯤 새로 조성된 임시정부요인 묘역으로 옮겨져 하관,헌토,성분,조총,묵념의 순으로 안장식을 가진뒤 영원히 조국땅에 묻혔다. 임정2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 선생의 유해는 4단계구조로 된 임정묘역 맨위 상단 정부수반급묘역의 중앙에,국무총리와 의정원 의장을 지낸 노백린,신규식,김인전 선생은 바로 아래 국무위원급 묘역 중앙 장방형의 유택에,안태국 선생의 유해는 애국지사묘역에 각각 모셔졌다. ◎선열87위 봉환 추진/황 총리 황인성국무총리는 10일 『아직 유해가 봉환되지 않은 87위의 선렬에 대해서도 안장실태가 확인되는대로 유족과의 협의를 거쳐 봉환을 추진하거나 유족들이 희망할 경우 현지에서 단장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황총리는 이날 상해 임시정부 선렬 5위유해봉환 국민제전을 마친뒤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감사의 말씀」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선열의 유해 봉환행사를 성공적으로 엄수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국민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 환국 임정선열 5위 어제까지 15만 참배

    박은식 선생등 임시정부 선열 5위의 유해가 안치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영현봉안관에는 참배 마지막날인 9일에도 4만여명의 조문객이 다녀가 일반인들에게 참배가 허용된 지난6일 이후 모두 15만여명의 각계인사및 일반시민들이 조문·분향을 했다. 영현봉안관에는 이날 상오 현승종 전총리,윤동윤 체신부장관,송종의 서울지검장,김효은 경찰청장등을 비롯한 각계인사외에 국군정보사령부,수도방위사령부등 단체참배객들과 가족단위의 일반 참배객들로 붐볐다.
  • 다섯분 선열 편히 쉬소서(사설)

    환국하신 다섯분 순국선열들이시여. 오늘 우리는 생전의 님들이 일구월심 꿈에도 그리던 고국땅에 님들을 안장합니다.하늘도 울고 땅도 웁니다.구슬피 울려 한강의 흐름따라 굽이쳐 흘러내리는 저 진혼나팔의 호곡소리를 들으십니까.우리들도 비로소 국민된 도리를 뒤늦게나마 한것같은 자창속에서 자책로운 참회의 고개를 숙입니다.그러면서 새삼스럽게 중원땅 누비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바치신 님들의 행적을 기려봅니다. 님들은 평안한 명목이 못된 영면70년에 이제야 평안히 눈을 감을 안식처를 얻으신 것입니다.이제껏 잠들어 계시던곳은 님들이 영원히 누워계실곳은 아니었습니다.그 짧지않은 세월동안 하루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을 고국땅에 이제 누우시게 되었습니다.조국의 땅을 베개삼으시고 조국의 땅을 이불삼으시어 춘풍추우70년의 객지잠을 청산하시게 되었습니다. 다섯분께서 걸어오신 생애는 일일이 매거할수 없을 정도로 애국·우국으로 일관된 형극의 길이었습니다.나라잃은 분통함을 안고 나라를 되찾으려는 일념으로 분골쇄신하며 동분서주하신 평생이었습니다.조국과 겨레에게 영광을 안기고자 일신을 홍모와 같이 여기신 고귀하고 숭엄한 삶이었습니다.민주사위에 영원히 빛날 족적을 남기신 님들을 안장하는 오늘 우리들은 다시한번 님들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기려봅니다. 님들은 이국땅에서 환국하시면서 온국토에 애국혼을 흩뿌려 놓으셨습니다.영현봉안실에 안치되어 계시는 동안 줄을 이은 참배행렬은 님들이 일깨워주신 겨레의 마음이었습니다.님들은 말없이 돌아오셔서도 그렇게 나라와 겨레위하는 마음을 점검해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신 것입니다.나라가 무엇이고 겨레가 무엇이며 이나라의 겨레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또 어떻게 역사의 키를 잡아나가야 할 것인가 함을 가르쳐주신 환국이었습니다.특히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핏줄의 대화로써 이어준 교훈은 컸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다시 일어서고 있는 일본을 보고 있습니다.그들이 우리와의 과거사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 오는가를 보면서 선열들앞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오늘의 시대장황을 헤쳐나가고자 다짐하는 터입니다.님들의 뜻을 받들어 훌륭한 나라로 가꾸어나갈 결의를 새로이합니다.그러는 한편으로 환국하지 못한 순국열사들의 유해와 혼백을 모셔들이기 위해 노력할 것도 아울러 다짐합니다. 다섯분 순국선열들이시여. 이제는 평안히 눈을 감으시옵소서.그럴수 있는 임정의 법통을 이은 땅입니다.그후손들이 이렇게 두손모아 사죄드리면서 명복을 빌고 있습니다.평안히 잠드시옵소서.부디 평안히 쉬시옵소서.
  • 임정 선열 5위 오늘 영결식/국립묘지서 국민제전으로

    박은식선생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열5위의 영결식이 10일 상오 서울 동작동 현충문 앞에서 국민제전위원장인 황인성국무총리,이만섭국회의장,김덕주대법원장등 3부요인을 비롯,각계인사,김승곤광복회장등 광복회원,외교사절·유족·일반시민등 3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제전으로 거행된다. 이날 영결식은 고인에 대한 묵념,약력보고,추모사에 이어 종교의식으로 거행되는데 종교의식은 선열의 개인신앙과 전체신도수등을 고려,기독교 불교 천주교 대종교순으로 진행된다. 선열 5위의 유해는 영결식이 끝난 뒤 이날 낮12시쯤 국립묘지에 새로 조성된 임시정부요인묘역에서 국민제전집행위원장인 이병대국가보훈처장의 주관으로 안치식을 갖고 안장된다.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 뒤편에 조성되는 임정요인묘역은 1천9백평으로 오는 10월 완공될 예정이나 이들 5위의 유택조성은 모두 마무리 됐다. 임정 제2대 대통령을 역임한 박은식선생의 유해는 4단계구조로 된 묘역 맨위 상단 정부수반급묘역 중앙에,국무총리와 의정원의장을 지낸 노백린 신규식선생과 김인전선생은 바로 아래 국무위원급 묘역 중앙에 각각 장방형의 유택이 마련됐다. 임정요인묘역에는 앞으로 현재 국립묘지안에 별도로 안장된 이승만전대통령을 제외한 이상용선생등 임정수반 7분과 국무위원급 26명등 33위의 유해가 추가로 모셔질 예정이다. 한편 보훈처는 임정 선열 5위 영결식에서 사용될 조가로 광복회에서 추천한 「선열추념가」(작사·작곡자 미상)를 최종선정했다고 밝혔다.
  • 환국선열에 참배하는 마음들(사설)

    고국에 봉환된 박은식선생등 임정요인 다섯분의 유해가 안치된 국립묘지 영현 봉안관에 추모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일반인 참배가 시작된 첫날 6일에는 이른 아침부터 정부기관장·정치인·사회단체인사들과 시민들이 몰려들어 실로 70년만에 유해로 환국한 선열들의 높고 거룩한 뜻을 기리며 참배했다.둘째날인 7일에도 주말을 이용하여 더 많은 참배객들이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아와 분향을 했다.사람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는 광경이었다. 임정요인 다섯분의 선열앞에서 경건하게 머리숙인 시민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먼저 조국광복을 위해 한 평생 투쟁하다가 이국땅에서 숨진 선열들의 고귀한 뜻을 되새겼을 것이다.이역 망명지에서 기약없는 세월을 풍손로숙으로 보내며 오로지 나라의 독립만을 위해 애쓰시던 그분들에 대해 흠모의 염이 가슴을 메웠으리라.다음에는 너무나 늦은 환국에 대해 선열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어른들,조국의 광복을 보지못하고 이국땅에서 순국하신지 근 70년이다.조국이 광복된 뒤로도반세기 가까운 연륜이 지나서야 꿈에 그리던 고국땅에 묻히게 된 것이다.상해만국공원묘지에 돌보는 이 없이 쓸쓸히 방치되었다 이제야 모시게 된 것을 우리 국민 모두는 깊은 회한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때늦은 봉환이지만 임정요인의 고국 안장은 두가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로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새 문민정부가 실질적으로 승계했다는 점이다. 물론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대한민국의 법통성이 상해임정에 있다」고 명기하고 있으나 그동안 선언적 의미에 그쳤을 따름이다.이번 유해 봉환은 법통성 계승의 가시적 첫 조처이며 이를 계기로 정부는 임정의 정통성 확립을 위한 각종 시책을 펴나가기로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둘째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획기적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일제치하에서 국내의 많은 지식인과 지도자들이 일신의 영달을 위해,혹은 협박·회유에 넘어가 변절하고 친일했던 경우에 비긴다면 임정요인을 비롯한 독립투사들의 광복투쟁은 얼마나 찬연하고 우뚝한가.우리 역사에서는 나라가 위태로울때감연히 일어서 나라를 구하는 선열들의 항쟁이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연면한 민족정기의 발현이다.우리 후손들에게 자랑스런 민족정기를 전수하는데 이번 행사는 큰 역할을 하게 되었으리라 믿는다.민족정기는 나라를 융성하게 하는 원동력이요,국력의 원천이다. 다섯분의 유해는 10일 국립묘지 임정요인묘역에 안장된다.시민들이 영현 봉안관에 참배할 기회는 오늘과 내일 이틀 뿐이다.방학중인 자녀들의 손을 잡고 엄숙한 역사의 현장에 나서 보자.순국선열의 영령앞에 옷깃 여미고 분향 올리며 그분들의 거룩한 뜻을 되새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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