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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통지도·경비국 통합/총경급 15∼16명 감축/경찰청 추진

    경찰청은 18일 정부조직개편심의위의 직제 개편안에 따라 업무 연관성이 높은 교통지도국과 경비국을 통폐합하고 경무관을 포함, 총경급이상 간부를 15∼16명 줄이기로 했다. 총경은 413명에서 398명 안팎으로,경무관은 42명에서 41명으로 줄어든다. 경찰 관계자는 “시위진압 등에서 경비와 교통기능의 업무협조가 필수적인데다 교통과가 없는 일선서에서는 경비과에서 교통업무를 다루는 사정을 감안,통폐합을 추진키로 했다”고 밝혔다.
  • 부자가 같은 곳서 추락사

    ◎선친 추모 길 나선 아들 능선서 발 헛디뎌 참변 5년전 아버지가 등산중에 추락사한 곳에 추모를 하러 올라갔던 아들이 같은 장소에서 떨어져 숨졌다. 16일 상오 7시30분쯤 서울 강북구 우의동 산1번지 북한산 9부 능선 병풍바위 밑에서 이상엽씨(30·상업·서울 강북구 미아동)가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숨져 있는 것을 매제 최정환씨(34·회사원)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최씨는 “형님이 5년전쯤 병풍바위에 올라갔다가 추락사한 아버지가 간밤의 꿈에 나타났다며 어제 하오 2시쯤 산에 올라갔다”면서 “밤새도록 오지 않아 가봤더니 병풍바위 밑에 떨어져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병풍바위 부근에서 이씨의 옷 등이 발견된 점과 가족들의 진술로 미뤄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석을 보러 올라갔던 이씨가 발을 헛디뎌 추락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 인니,외지인 자카르타 유입 차단

    ◎새 군총사령관 취임 “소요 강경대처 경고 【자카르타 외신 종합】 생필품값 폭등에 항의하는 국민들의 시위가 수도 자카르타를 제외한 지방도시들에서 16일에도 계속된 가운데 지난주 인도네시아의 새 군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위란토 대장은 16일 헌법에 위배되고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어떤 소요에도 강경대처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위란토 총사령관은 이날 대통령궁에서 취임선서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현 위기상황을 통해 이득을 보려는 집단들이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또 하마미 나타 자카르타경찰국장도 이날 정치적 동기를 가진 시위는 어떤 것이라도 분쇄될 것이며 정치적 동기로 시위를 벌이는 자들은 예외없이 1969년 5월 제정된 법률에 따라 최고 5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도네시아 군·경은 이와 함께 지방도시들에서의 소요사태가 수도 자카르타로까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카르타 시계지역에 삼엄한 경계를 펴면서 외부인들의 자카르타 유입을 차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군·경의 강력진압 방침에도 불구,이날도 수마트라주 파가르알람에서 수천명의 대학생들이 생필품 품귀와 가격폭등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는 등 지방도시들에서는 소규모의 시위가 이어졌다.
  • “클린턴 거짓증언 종용”/르윈스키 스캔들 새 국면/NYT지 보도

    ◎커리 개인비서 스타검사에 증언 【워싱턴〓김재영 특파원】 빌 클린턴 대통령의 집무실 담당 개인 비서가 특별검사 측과 비밀리에 만나 클린턴 대통령이 자신에게 대통령과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관계에 대해 ‘진실이 아닌’ 말을 하도록 종용(코치)했음을 털어놓았다고 뉴욕 타임스가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이로써 클린턴 대통령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던 섹스 스캔들이 새로운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 들었다. ABC방송등이 확인해 크게 보도하고 있는 이 뉴욕 타임즈 기사에 따르면 르윈스키와의 성관계 및 위증교사 혐의가 언론에 보도되기 4일전인 지난달 17일 폴라존스 양의 민사소송에 선서진술을 하고 백악관에 돌아온 클린턴 대통령은 즉시 집무실 담당 개인비서인 베티 큐리(흑인·여)를 불러 자신과 르윈스키가 단둘이 있지 않았으며 자신이 르윈스키의 성적 공세에 저항했음을 유난하게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캔들이 폭로된 뒤 연방대배심에 증인출석했던 큐리 비서는 특별검사측 조사관들에게 이 사실과 함께 클린턴과 르윈스키가 종종혼자 있었다고 진술했으며,스캔들후 르윈스키가 클린턴에게 받았던 드레스 등 선물을 큐리에게 되돌려주었는데 큐리는 이를 검사측에 전달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이같은 보도가 나오기 수시간 전 클린턴 대통령은 방미중인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와의 회담에 앞서 성관계 및 위증교사 등의 혐의에 관해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같은 주장은 거짓이라고 이전에 이미 밝혔다”고 말했다. 하루전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을 수사중인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는 이번 성추문의 수사가 급진전을 보이고 있다면서 사건해결의 결정적 계기를 잡았음을 시사,관심을 끌었다. 한편 전백악관 직원 린다 트립은 동료인 모니카 르윈스키로부터 “빌 클린턴 대통령과 성관계를 가졌으나 법정에선 거짓 증언을 할 것”이란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트립은 지난달 21일 폴라 존스측 변호사에게 보낸 서명된 선서진술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보도했다.
  • 대통령취임식 어떻게 진행되나/25일 0시 봉화제로 시작

    ◎합토·합수제 등 식전행사 제15대 대통령취임행사 기본계획이 4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확정됐다. 취임행사는 25일 0시부터 봉화제로 사실상 시작된다.봉화제는 50년만의 정권교체를 알리는 상징이다.광화문이나 인수위 사무실에서 레이저를 쏘아 남산의 봉화대를 맞히면 봉화대는 ‘희망의 불꽃’을 밝힌다.레이저 버턴을 누를 일반시민 대표 12명은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nauguration.go.kr)를 통해 접수된다. 취임식 식전행사의 주제는 ‘화합’과 ‘도약’이다.상오 9시부터 국회 앞뜰에서 3만6천여명의 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중가요가 연주된다.식전행사 하이라이트는 ‘합토·합수제’.16개 시·도와 금강산을 비롯한 이북 5도의 명산과 명수를 합한 행사는 지역감정 해소와 통일 염원을 담는다. 청와대를 출발한 김대중 새대통령이 상오 10시 행사장에 입장해 취임선서를 마치면 15대 대통령을 상징하는 비둘기 1천500마리가 국회를 뒤덮고 21발의 예포가 발사된다.축가를 부를 가수는 조수미씨가 유력하나 뉴욕공연일정과 겹쳐 불투명한 상태이다.시·도와 이북 5도의 풍물패가 ‘국민화합대행진’을 펼치는 것으로 취임식 행사는 끝난다. 김대통령은 단하로 내려와 떠나는 김영삼 대통령을 환송하고 시·도지사와 함께 ‘화합의 나무’를 심는다.합토·합수된 물과 흙이 나무에 뿌려진다.김대통령은 국회 앞뜰의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마포대교까지 행진하면서 초청되지 못한 시민들과 인사를 나눈다.
  • 초대 대선과 첫 조각(대한민국 50년:5)

    ◎하지 사령관 서재필 대통령 꿈꿨다/암살 겁내 출마거부… 결국 국회 간선서 이승만 당선/초대총리 이윤영 제청,인준 부결 수모… 이범석으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정치적 지도력과 개성에 관해서는 평판이 극명하게 엇갈렸다.“대한민국을 세운 국부”“운산광산을 팔아먹은 매국노”“프린스톤 사람”(무초) “×자식”(하지)….남한에 진주한 미군 사령관 J.R.하지 중장은 애초부터 서재필을 귀국시켜 대통령에 입후보시키려 했다. 그것은 다분히 이승만에 대한 견제의 성격이 강했다.당시 하지의 개인고문으로 일하던 서재필은 이미 암에 걸려 있었다.그는 자신이 살해될 것이라는 피해의식 때문에 입후보를 거절,미국에 돌아간 직후 운명했다. 1948년 7월20일 제헌국회에서 간선으로 치러진 초대 대통령선거에는 결국 이승만과 김구,안재홍 등 3인이 나섰다.이미 예견된 대로 이승만은 196명의 재석의원 중 180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김구는 겨우 13표를 얻었다.그리고 안재홍은 2표,무효가 1표였는데 무효는 미국 국적의 서재필에 투표한 것으로 밝혀졌다. ○7월24일 중앙청서 취임식 압도적인 다수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승만은 1948년 7월24일 중앙청 광장에서 취임식을 가졌다.“죽었던 이 몸이 하나님의 은혜와 동포의 애호로 지금까지 살아 있다가 오늘 이와같이 영광스러운 추대를 받은 나로서는…” 그는 독립의 공을 연합군측에도,상해 임시정부를 비롯한 해외독립운동파에도,국내의 항일투쟁 세력 어느 곳에도 돌리지 않았다.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돌렸다. 이승만은 취임후 곧바로 이화장에서 조각에 착수했다.‘조각의 산실’로 등장한 이화장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73세의 이승만은 철저하게 자신이 신뢰하는 측근만을 각료에 임명했다.그러나 그의 건국 내각은 국무총리 인준을 놓고 출발부터 상처를 입었다.이승만은 북한의 조선민주당 위원장인 조만식의 후광을 내세워 부위원장인 이윤영을 국무총리로 제청했다.하지만 이윤영 총리안은 제헌국회에서 인준이 부결되는 수모를 겪었다. 지면이 거의 없는 이윤영을 내세운 것 자체가 당시 정황으로 볼때 무리였다.한민당의 김성수가 국무총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회의 공론이었다.그러나 이승만은 자칫 한민당에 업힐 것을 우려한 나머지 이를 애써 무시했다.국회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정치적 발판을 국회에 두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초대내각은 결국 항일독립운동가 이범석을 국무총리로 실마리를 풀었다.그리고 내무 윤치영,외무 장택상,국방 이범석,재무 김도연,법무 이인,문교 안호상,농림 조봉암,상공 임영신,사회 전진한,체신 윤석구,교통 민희식,법제처 유진오,공보처 김동성,무임소 이윤영 등으로 조각을 마무리했다.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초대인선은 국회에서 친일논쟁이 가열되면서 실패라는 평가를 받았다.1948년 8월15일 우여곡절 끝에 대한민국은 출범했다.이와 함께 이날 상오 0시를 기해 미 군정은 폐지됐다. 이승만은 모든 관리들을 하향식으로 통제하려고 했다.이와 관련,미 중앙정보부(CIA)는 “이승만은 국무총리를 마치 ‘행정보좌관’처럼 부리고 있다”고 혹평했다.또한 미대사관은 상공부 장관 임영신을 “2다스의 속옷만으로도 매수당하는” 인물로 파악했다.그는 부패로 쫓겨난 최초의 각료라는 오명을 남겼다. 이같은 이승만 정권의 최고 통치방침 가운데 하나는 유엔에서의 승인을 획득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새롭게 출범한 이승만 정부는 미국의 군사적 보호에 계속 의존했던 만큼 합법정부로서의 국제적 승인을 즉각 얻어내지 못했다.1948년 10월19일 재일조선청년단체의 암살 위협 속에 이승만은 일본을 방문했다.목적은 주일 연합군 최고사령관 맥아더를 만나 대한민국의 방위와 국제적 승인문제를 의논하기 위한 것이었다. 초대 주한미국대사 무초에 의하면 이승만은 맥아더를 특별히 존중했다고 한다.그래서 이승만은 자신이 정치적으로 곤경에 빠질 때마다 맥아더를 찾았다.1945년 10월 미국에 머물던 이승만은 환국과 더불어 그를 만났다.1948년 10월 회담은 주한미군 철수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미국이 한국을 지키겠다는 계획을 이승만으로 하여금 내외에 공표토록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것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대한민국 수립에 산파역을 맡았던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TCOK)은 1948년 10월8일 유엔에 제출할 최종 보고서를 채택했다.이 보고서에는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에 의해 성립된 한국정부는 정부의 기능이 점차 개선되어가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모든 유엔 가맹국들은 한반도 전체의 독립과 통일을 이룩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한다는 권고 내용도 포함시켰다.이 보고서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심의에 부쳐졌다.1948년 12월12일 마침내 대한민국은 유엔 총회에서 46대 6으로 승인됐다.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가 된 것이다.그 후 대한민국은 소련과 그 동맹국가들을 제외한,50여개국의 자유진영 국가들로부터 개별적인 승인을 받았다. ○임정 세력 반대속 출범 대한민국의 출범은 민족사적으로 볼 때 커다란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진정한 의미의 민족국가가 비로소 출범한 것이다.우리 민족이 주권확보를 위해 장기간 노력해온 결과로,그 자체가 민족 숙원사업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남북에서는 상이한 정권이 출범했다.그것은 무엇보다 미·소 강대국의 서로 다른 한반도 정책에 기인한다.이는 그 연장선상에서 보면 미국과 소련의 분할점령정책에 있다.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의 반소·반공정책에 의한 남한지역에서의 단독정부 수립을 유엔이 결정한 데서 비롯됐다.당시 유엔은 미국의 대한정책을 그대로 추수하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제헌국회가 남북통일특별대책위 설립안을 부결시켰다는 사실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이는 국회가 남북통일문제를 도외시한 뚜렷한 징표라는 점에서 그렇다.국회소집 무렵 김구·김규식 등은 통일정부 수립을 지향하는 통일독립촉성회를 결성했다.통일운동을 보다 구체적으로 전개하려고 한 이들을 이승만은 공산당으로 몰아부쳤다.그렇듯 대한민국 정부는 김구·김규식을 중심으로 한 임정세력의 반대 속에서 출범했던 것이다. ◎미,이승만 신뢰하지 않았다/본사특별취재반,미 CIA 작성 비밀보고서 입수/“독립위해 최선 다했지만 재난 불러올 행동 가능” “이승만은 한국의 독립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참된 애국자였다.그러나 그는 독립한국을 자신이 차지한다는 의미에서 최선을 다했다.……위험이 도사리고 있다.이승만은 증폭된 자아의식 때문에 재난을 불러올 행동을 하거나 적어도 신생 한국정부와 미국의 이해를 상당히 당혹스럽게 만들 수 있다” 대한민국 수립 직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미국의 직설적인 평가를 보여주는 문건이 발견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워싱턴의 국립공문서보존기록관리청에서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1948년 10월28일에 작성한 2급비밀보고서 ‘대한민국의 생존전망(PROSPECTS FOR SURVIVAL OF THE REPUBLIC OF KOREA)’을 찾아냈다. 이 보고서는 당시 워싱턴 정책담당자들의 상황인식을 그대로 반영한 자료다.이 문건에 의하면 미국은 결국 이승만을 옹립했지만 결코 신뢰하지는 않았다.따라서 미국은 이승만과 그의 각료들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계속했다.또한 미국은 군정이 끝난 후에도 CIC나 G­2,CIA 등을 통해 이승만과 그의 각료들이 행한 부정축재 사실과 같은 부정적인 정보를 모았다. 또 방위와 재원에 대해서도 통제를 가했다. 이 보고서는 제2차세계대전 기간 동안 이승만은 개인적인 이익과 로비활동도 들추어냈다. 워싱턴 임시정부 한국위원회의 수장이었던 이승만은 그 지위를 상당히 이용했다고 밝힌다.사적인 로비활동이야말로 이승만에게는 전쟁이 끝난뒤의 소중한 정치적 밑천이 되었다는 것이 보고서의 시각이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문화부 차장 최병열 문화부 차장급 김종면 문화부 기자 박정현 문화부 기자 서정아 문화부 기자 강선임 DB부 기자
  • 클린턴 사임 위기 고조

    ◎미 언론 67%­“거짓말 드러나면 사임해야”/전 백악관 비서실장­고어 대통령 승계 공개 거론/르윈스키­면책조건 27일 정사 시인 가능성 【워싱턴=김재영 특파원 외신 종합】 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 백악관 인턴직 원르윈스키양과의 섹스 스캔들이 클린턴을 사임의 궁지로 급속히 몰아넣고 있다.미 언론의 여론 조사 결과 ‘대통령이 거짓말을 했다면 대통령직을 자진 사임해야 한다’는 여론이 이미 과반수를 훨씬 넘어섰으며 클린턴 1기 행정부의 비서실장이 클린턴 대통령의 사임과 앨 고어 부통령의 승계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기까지 했다. 미 ABC방송은 24일(미 동부시간)지난 23일 밤 성인 505명을 대상으로 전화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이틀전 조사 때에 비해 크게 떨어졌으며 특히 클린턴 대통령이 르윈스키와의 관계에 대해 위증을 했다면 사임해야 한다는 대답이 67%나 나왔다고 보도했다. 이 조사결과 클린턴 대통령이 거짓말을 사주했다면 ‘사임해야 한다’가 64%,‘탄핵받아야 한다’가 54%,위증을 했다면‘사임해야 한다’가 67%,‘탄핵받아야 한다’가 55%로 각각 나타났다. 클린턴 1기행정부의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냈던 리언 파네타는 24일 미 새너제이 머큐리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스캔들에 뭔가 있다면 그것은 클린턴 대통령을 물러나게 할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한 상황하에서 만약 고어 부통령이 대통령이 되고 새로운 메시지와 인물들이 나온다면 민주당으로서는 차라리 잘된 일이 있을 수도 있다”면서 고어 부통령의 승계 가능성을 거론했다. 한편 스타 특별검사는 클린턴 대통령이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새해 국정연설을 발표하는 오는 27일 르윈스키가 화이트워터 재판 담당 대배심에서 선서 진술을 하도록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25일 알려졌다. 24일 하오(미 동부시간) 르윈스키의 변호인 윌리엄 긴스버그 변호사는 소추면제특권의 제공을 전제로 정사 사실 등을 털어놓을 것을 종용하고 있는 케네스 틀별검사와 벌이고 있는 협상과 관련,“르윈스키가 소추면제 특권을 보장받는다면 진실을 말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수잔 맥두걸 처럼 빠져나가지 않을 것이며 대화를 거부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CNN은 클린턴이 급박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미키 캔터 전 미 재무장관 등 절친한 친구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상담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방송은 클린턴의 친구들은 클린턴이 르윈스키와 관계를 가졌을 거라고 믿고 있으며 사임 가능성에 대해서도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 섹스스캔들 클린턴 탄핵가능성 있나

    ◎르윈스키 침묵땐 ‘해프닝’ 될수도/진술번복해도 테이프내용 입증해야/클린턴 위증교사 사실땐 퇴진 가능성 【워싱턴〓김재영 특파원】 클린턴 대통령은 결국 탄핵을 당하고 말 것인가.아니면 ‘컴백 키드’(재기의 천재)란 별명처럼 이번에도 믿기지 않은 솜씨로 궁지를 빠져나올 것인가. 미국 언론들은 백악관 인턴 섹스스캔들의 사안이 워낙 중대해 클린턴 대통령이 탄핵으로의 낭떠러지를 피할 수 있는 길은 궁지탈출의 묘기가 아니라 무혐의의 사실증명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클린턴은 상황 이틀째인 22일 재차 성관계 및 위증교사 혐의를 부인했고 위증교사의 대리 집행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버논 조던 변호사도 위증종용설을 부인했다.이들의 무혐의 주장은 사실증명이 수반되지 않아 혐의우세의 상황을 반전시키거나 하지는 못했다.오히려 궁지에 몰린 끝에 나온 막다른 강변이란 인상이 없지 않았다.그러나 일면 수동적으로 보이는 클린턴의 초기대응은 고도로 계산된 법적 전략일 수 있다. 지난 7일 폴라 존즈 민사소송에 연관된 1차 선서진술에서클린턴과의 성적 관계를 부인한 문제의 르윈스키가 2차 진술에서도 ‘부인’을 번복하지 않고 유지할 경우,클린턴의 탄핵위기는 ‘해프닝’인 채 상황끝일 수 있다.그러나 이때 르윈스키는 20시간 분의 녹음테이프 고백을 법적으로 무효화해야 한다.“그냥 해본 소리”라며 이 사건을 맡고 있는 케네스 스타 검사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감당하기 어려운 이같은 난관에 직면해 르윈스키는 묵비권을 행사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스타 검사는 1차 진술시의 위증에 대한 형사소추면제 제의로 르윈스키의 부인번복을 시도할 것이다. 조던 변호사는 자신의 위증종용 혐의를 부인하는 자리에서 르윈스키의 능력과 품성을 칭찬했다.르윈스키의 테이프 고백 및 르윈스키 인물 자체의 ‘신뢰성’을 문제삼고 공격하는 것이 클린턴 측의 효과적 대응방안일 수 있는데 조던의 칭찬은 아직 그런 단계가 아님을 말해준다. 르윈스키가 검찰측 증인으로 돌아설 경우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르윈스키를 적으로 돌리지 않고 테이프 고백의 신뢰성을 문제삼을 수 있는 방안은누구나 의문을 가지는,테이프에 나오는 대통령과의 정사가 과연 물리적으로,시간적으로 가능하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스타 검사도 백악관 출입기록에 소환령을 내렸지만 백악관도 이런 기록에서 탈출구가 발견되기를 기대해마지 않는다. 르윈스키와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 트립이란 여성의 지나치게 눈에 띠는 반민주당,반클린턴 성향에 대한 공격도 클린턴 측은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 “클린턴의 여인들”

    【워싱턴 AFP AP 연합】 다음은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섹스스캔들에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6명의 여주인공들이다. ○백악관 무보수 인턴사원 ▲모니카 르윈스키:무보수 백악관 인턴 출신.클린턴 대통령과 21세때부터 18개월 동안 관계를 가졌다고 주장.동료 린다 트립에게 클린턴과의 관계를 고백했으며 트립은 독립검사 케네스 스타에게 이 대화록을 전달.오리건의 대학에서 심리학 전공.백악관에서 일하다 96년 4월 국방부로 자리를 옮겼다. ○“카바레 가수로 12년 관계” ▲제니퍼 플라워스:카바레 가수 출신.클린턴의 첫 대통령출마 유세 때 클린턴과 12년간 관계를 가져 왔다고 주장. ○“91년 성희롱”… 손배소 제기 ▲폴라 존스:클린턴 대통령이 아칸소주지사로 있을 때인 91년 5월 자신을 호텔로 불러내 성관계를 가질 것을 요구했다고 주장.이로써 클린턴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 ○변호사 출신… “30년간 관계” ▲돌리 카일 브라우닝:텍사스주 댈라스 출신 변호사.학창시절부터 30년간 클린턴과 관계를 가져 왔다고 주장.그녀는 인터넷 사이트(www.deardolly.com)까지 마련했으며 존스 재판의 예비심리 과정에서 선서증언한 바 있다. ○“93년 백악관서 키스·애무” ▲캐슬린 윌리:백악관 출신으로 역시 존스 재판에서 증언.93년 클린턴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자신에게 키스하고 애무했다고 주장. ○“아칸소주지사때 첫 인연 ▲수전 맥두걸:화이트워터 재판에서 증언을 거부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복역중.전 남편 짐 맥두걸에 따르면 그녀는 클린턴이 아칸소주지사로 있을때 그의 정부였다는 것.
  • 클린턴 재임 최대위기/백악관 섹스스캔들 수사

    ◎‘위증종용 고백 테이프’ 진실성 최대 관심/거짓증언교사 드러나면 ‘제2 닉슨’ 신세 【워싱턴〓김재영 특파원】 백악관 자원 업무보조원(인턴)과의 성관계의혹 스캔들로 클린턴 대통령은 재직이래 최대의 법적 위기에 봉착했다.이번 의혹은 추문의 색갈도 아주 강렬하지만 냉엄한 법적 측면에서 그의 많은 기존 스캔들을 압도해 버린다. 상대방 인턴이 대학을 갓 나온 21살의 젊은 여성이었고,정사가 18개월이나 계속되었다고 주장되고 있다고 해서 엄청난 것은 결코 아니다.대통령 재직시에 저질러진 개인정사라고 해서 법적으로 문제가 된 것도 아니다.클린턴이 이 여성에게 진실 선서 아래 행해진 법적 진술에서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거짓말을 하도록 했다는 혐의가 이번 의혹의 핵심이고 클린턴 위기의 본질이다.사실이라면 이 여성은 위증죄를 범했고,클린턴은 위증교사의 사법 방해죄를 저지른 것이다.사법 방해 혐의는 워터게이트 스캔들때 당시 닉슨 대통령을 의회탄핵에 내몬 주요 범법행위다. 이 혐의를 다룰 권한을 부여받은 케네스 스타 화이트워터 특별검사는 이 위증교사 여부를 캐기 위해 성관계 의혹을 이잡듯 뒤질 것이다.야당인 공화당이 탄핵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이때까지 ‘스캔들 투성이’의 클린턴을 충성스럽게 옹호하던 최측근들도 처음으로 “이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대통령은 수치스럽게 워싱턴을 떠나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그만큼 사건이 중대한 것이다. 이어 클린턴 최측근들은 이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질 경우에는 이에 관한 수사를 제기한 스타 검사를 차제에 ‘말살시켜’ 버리겠다고 공언하고 있다.클린턴 대통령은 성관계와 위증교사 혐의 모두를 전면 부인했다.사실 규명의 초점은 20시간 분의 대화테이프가 진짜냐,테이프에 수록된 문제 인턴의 고백이 진실이냐에 모아진다.특히 이 인턴의 진실성이 최대의 관건이다. 문제의 모니카 르윈스키는 테이프 고백과는 반대로 법적 진술에서 관계를 부인했다.정사가 사실일 경우 이미 한번 위증죄를 범한 셈인 그에게 스타검사는 형사면소 특권을 주고 고백을 유도할 예상이다.테이프 고백을 입증하기 위해 그의 백악관 출입 및 활동상황이 샅샅이 체크될 것이다. 이 혐의도 클린턴의 다른 스캔들과 비슷하게 ‘이쪽 주장,저쪽 주장’ 수준을 끝내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그러나 만약 분명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대통령이나 특별검사 중 한명은 옷을 벗어야 할 것이다.
  • 김 대통령 청와대 언제 비울까/2월24일 자정 임기 만료

    ◎관례 따르면 25일 상오 취임식 직전에 이사/김 당선자 관저서 임기 맞게 24일 저녁 검토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가 오는 2월25일 0시로 종료됨에 따라 24일 저녁 청와대를 떠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이전에는 25일 상오 10시 대통령 취임식 직전 새 대통령에게 청와대를 비워 주는게 관례였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는 날짜만 정해져 있다.취임선서때부터 대통령 권한이 시작되는 미국과 달리 시간은 모호하다.법학자들은 민법의 규정을 원용,2월25일 0시부터 임기가 시작된다고 해석하고 있다.우리도 미국처럼 법을 바꿔 직무개시 시간을 명시하는 방안도 강구되고 있다. 2월25일 새벽에 전쟁이 난다면 군통수권은 새 대통령에게 있다.새 대통령이 사저에 머물고 있다면 불편하다.때문에 이번에는 임기만료 전에 청와대를 비워주겠다는 것이다. 청와대측은 김대중 당선자가 25일 0시 청와대에서 육·해·공 3군 참모총장으로부터 군통제권 시스템을 전달받는 의식도 검토중이다.그러나 김당선자측이 25일 상오 청와대 입주를 희망한다면 ‘10시간 공백’을 메꾸기 위해 일산 자택에서 군통제권을 넘겨받는 행사를 갖도록 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일산자택과 김당선자 승용차에는 이미 특별비상전화가 설치돼 있어 군통수권 행사에는 문제가 없다.
  • 클린턴 17일 성희롱 증언/백악관서 비디오 녹화

    【워싱턴 연합】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폴라 존스양 성희롱 사건과 관련,오는 17일 피고인으로서 법적인 선서증언을 할 것이라고 미 행정부 관계자들이 7일 밝혔다. 클린턴 대통령은 아칸소 주지사 시절이던 91년 5월 당시 주정부 공무원이던 존스양을 리틀록의 한 호텔로 불러들여 오럴섹스를 요구하는 등 성적으로 희롱한 혐의로 존스양측에 의해 제소된 바 있다.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 법적 송사로 인해 증언하기는 이번이 사상 처음으로,백악관에서 이뤄질 증언은 비디오로 녹화되고 법원 속기사에 의해 증언 내용이 공식 기록된다.
  • 거야 한나라호 앞길 순탄할까

    ◎초선·지자제선서 결과가 당 결속력 좌우할듯/지도체제 개편·조직책 정비 씨고 분란소지도 거대 야당으로 전락한 한나라당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불투명하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지난 연말 몰아친 IMF한파로 정치권의 운신의 폭은 더욱 좁아진 느낌이다. 무엇보다 이질적인 세력들이 한 울타리에 있는 관계로 동질성과 결속력에서 커다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집권당이면 이런 약점들이 커버될 수 있지만,야당인 상황에서는 극복하기 힘든 벽이 될 수 밖에 없다. 지난 날 김영삼 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처럼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 없다는 점도 단점으로 지적된다. 더욱이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안정적인 국정운영 차원에서 한나라당 의원 빼가기에 나설 경우 강한 응집력으로 이에 맞설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것도 한나라당의 장래를 우울하게 한다. 까닭에 한나라당이 여당측의 정국주도 플랜에 따라 분당사태까지 맞는 게 아니냐는 성급한 판단을 하는 이들도 있다. 이 경우 기폭제는 내각제 개헌일 공산이 크고 한나라당은보스들의 입장에 따라 뿔뿔이 흩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5월의 지방선거 결과도 한나라당의 단기적인 장래를 예측케 하는 단초를 제공할 여지가 있다. 이런 외부적인 요인 말고도 당 내부도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에 치우칠 경향이 짙어 보인다. 우선 지도체제 개편문제가 분란의 씨앗이 될 것 같다. 현재의 단일지도체체와 집단지도체제로의 변경을 둘러싸고 각 계파간 첨예한 힘겨루기가 새해에는 본격화될 것으로 읽혀진다. 구랍 31일 당내 실세들의 모임에서 집단지도체제 변경에 어느 정도 인식을 같이했으나 합의안이 도출되기 까지에는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조직책 정비도 난관이다. 새해초부터 가동될 조직강화특위는 구성부터 삐걱거릴 소지가 많다. 자파 지구당위원장 숫자는 곧바로 3월 전당대회에서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느냐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대선에서 1천만표를 획득한 이회창 명예총재의 정계일선 복귀도 갈등의 불씨가 될 수가 있다. 하지만 3월로 예상되는 영남권 3곳의 보궐선거와 5월 지방선거에서 예상외의 결과를얻고,새정부가 경제회복에 실패할 경우 한나라당은 집권경험을 가진 거대 야당으로 자리잡을 가능성도 있다. 한나라당이 어떤 모습으로 거듭날지 지켜볼 일이다.
  • 미 필라델피아시 인디펜던스 홀(세계 문화유산 순례:55)

    ◎미 합중국 독립선언 산실/1776년 7월4일 토머스 제퍼슨 “인간은 평등과 권리…” 선언/당시의 테이블·의자 등 보존/“모든 인류는 나면서부터 평등하고 조물주는 인간에게 몇가지 남에게 넘겨줄 수 없는 권리를 주었다” 【필라델피아(미국)〓나윤도 특파원】 “모든 인류는 나면서부터 평등하고 조물주는 인간에게 몇가지 남에게 넘겨줄 수 없는 권리를 주었다.그 권리 가운데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권리가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리인 것입니다.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직하였으며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통치를 받는 국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하는 것입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시 인디펜던스 홀(Independence Hall)에는 토머스 제퍼슨의 그런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배어있는 지도 모른다. 지금으로부터 220여년전인 1776년 7월4일 제퍼슨은 이 홀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그 독립선언서는 지구상에서 처음 인간의 평등과 권리를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정부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지금도 이 기념관에는 당시의 테이블과 의자와 펜,심지어는 녹색 테이블보까지 보존돼 있다. ○녹색 테이블보도 그대로 미국판 독립기념관인 인디펜던스 홀은 미 합중국 탄생의 요람인 필라델피아의 중심에 위치했다.자유의 종(Liberty Bell)과 같은 기념유물들과 주변건물을 함께 묶어 미 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받은 이 지역은 미국의 독립정신과 넋을 일깨우는 성지이기도 하다. 인디펜던스 홀은 원래 잉글랜드 퀘이커교도들이 세운 펜실베니아 식민지의 정부청사다. 이 건물은 1800년 포토맥강 언덕에 새 수도를 건설할 때까지 연방정부 청사로 사용했다.그 이웃 어셈블리 룸에서는 제2차 대륙회의의 집회장소로 사용되었다.독립선언의 채택과 함께 1787년 연방 헌법도 여기서 통과되는 등 미 합중국 탄생지로서의 역할을 다했던 건물이다. 홀 투어코스의 첫방인 인디펜던스 홀 왼편 부속건물에는 화가 에드워드 새비지가 그린 독립선언 채택 당시의 회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벽에 걸려 있다.이 그림에는 제퍼슨과 존 애덤스, 로저 셔만, 로버트 리빙스톤, 벤자민 프랭클린등이 등장한다.5명의 독립선언서 기초위원을 대표한 제퍼슨이 존 행콕 의장에게 초안을 제출하는 동안 각 주 대표들이 상기된 표정을 짓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이 건물은 1732년 당시 변호사이던 앤드류 해밀턴의 설계로 지었다.18세기 조지안 건축양식의 대표적 건물로 꼽힌다. 붉은 벽돌건물 가운데 하얀 시계탑이 우뚝 솟아 매우 정갈한 인상을 안겨준다.중앙건물을 중심으로 좌우에회랑을 통하여 연결되는 부속건물 하나씩을 세웠다.1956년까지 24년 동안 공을 들여 지었다. 이들 부속건물과 약간 떨어진 좌측에는 시청,우측에는 법원 건물이 들어섰다.그러다 식민시대 청산과 함께 필라델피아가 신생 미국의 수도가 되자 대법원과 연방의회로 사용되었다.본래부터 입법 사법 행정 3권의 중심지로 설계된 셈이다.연방의회로 사용한 콩그레스 홀은 워싱턴 대통령의 2차 임기와 2대 대통령 애덤스의 취임선서를 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이후 영국군과의 전쟁에서 내부의 가구 및 장식들은 대부분 소실되었다.그러나 독립선언서와 연방헌법에 서명하기 위하여 대표들이 사용했던 일부집기는 아직 남아있다.의장석의 은제 잉크스탠드와 제헌회의에서 의장 조지워싱턴이 앉았던 태양의 상반부만 조각된 ‘라이징 선’의자 등이 그것이다.미국 역사에서 가장 보배로운 유물이 아닌가 한다. 인디펜던스 홀 앞쪽 몰광장 한가운데는 리버티 벨이 유리전시관에 보존돼 있다.미국의 자유를 상징하는 이 종은 1752년 펜실베이니아 식민지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여 런던에서 주조된 것이다.“온 나라의 국민에게 자유를 선언하노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이 종은 원래 인디펜던스 홀의 중앙 첨탑에 달려 있었으나 건물의 안전을 고려,독립선언 200주년이 되는 1976년 1월1일 현재의 위치로 내려놓고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1,800년까지 연정청사로 자유의 종 말고도 많은 건축물에도 미국 독립의 역사가 어려 있다.영국왕 조지3세의 부당한 탄압에 대처하기 위해 1774년 첫 대륙회의를 열었던 카펜터스 홀,제퍼슨이 머물며 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했던 그래프 하우스가 있다. 심지어는 당시 정치인들이 주로 모이던 선술집인 시티태번에서부터 최초의 도서관인 라이브러리 홀,첫 은행인 퍼스트뱅크와 세컨드뱅크, 화폐주조국,교역중심지의 역할을 담당했던 필라델피아 익스체인지까지 모두 유서깊은 건물이다.신생 독립국의 초석이 된 이들 건물은 인디펜던스 홀을 중심으로 잘 보존되고 있다. 조용한 퀘이커들의 도시 필라델피아가 미 합중국 탄생의 요람이자 미 정치사의 중심축으로 성장한 데에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공이 뒷받침되었다.보스턴 출신이나 일찍 필라델피아로 와서 인쇄공으로 출발한 그는 과학자이자 철학자,언론인으로 또 정치가 외교가로 명성을 떨쳤다.‘필라델피아 가제트’라는 신문사를 운영하면서 최초의 소방서,보험회사,종합병원을 설립했다.그리고 피뢰침을 발명하고 미 철학회도 그의 손에 의해 창립되었다. 그는 미 합중국 독립 당시 워싱턴,애덤스,제퍼슨 등 지도자들보다 한 세대 앞선 원로였다. 2차 대륙회의에 참가,독립선언서 기초위원을 지냈으며 프랑스로 건너가 프랑스와의 동맹설립에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이같은 그의 활동상은 인디펜던스 홀에서 한블록 떨어진 마켓 스트리트에 위치한 프랭클린코트에 잘 보존돼 있다. 인디펜던스 홀 주위에는 ‘상식’이라는 소책자로 식민지의 독립기운을 부추겼던 인사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토마스 페인을 비롯해 페트릭 헨리,알렉산더 해밀튼 등 그 면면이 모두 당시 미국의 지성들이다.그들의 열띤 토론은 오늘날 지구상에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를 정착시키는 초석이 됐던 것이다. ◎여행 가이드/펜실베니아주 동쪽 끝에 위치 ‘형제애의 도시’라는 의미를 가진 필라델피아는 미 대륙 동부 펜실베이니아주의 동쪽 끝에 위치했다.뉴욕과 워싱턴을 연결하는 95번 고속도로의 중간지점쯤 해당한다.인디펜던스 홀은 필라델피아 시가지의 델라웨어강쪽 마켓스트리트와 월넛 스트리트 사이에 있다. 뉴욕이나 워싱턴에서 자동차로 올경우는 95번 고속도로에서 바로 들어오고 앰트랙 기차를 이용할 경우는 필라델피아 중심역인 30번가 역에서 내린다. 그리고 대중교통 편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 꺼질듯 다시 타올랐던 ‘민주화 불꽃’(하의도에서 북악까지:상)

    ◎망명·투옥 등 역경의 세월/‘40대 기수론’ 정계 새바람/71년대선 95만표차 석패/신군부에 사형언도 받아/3당합당에 92년 또 패배/‘적과의 동침’ 4수끝 집권 후광 김대중.그의 삶은 꺼질듯 하면서도 이내 다시 타오르는 촛불이자,얼은 눈밭에서도 꽃망울을 터뜨리는 인동초이기도 했다. 그의 40년 정치역정은 영과 욕,환희와 좌절이 교차한 한편의 드라마다.특히 유신의 장막이 드리워진 72년부터 6·29선언이 있은 87년까지는 납치와 망명·투옥·연금으로 점철된 가시밭 길의 연속이었다. 그의 민주화에 대한 헌신과 그에 뒤따른 인고의 세월은 11차례나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는 것으로 국제사회에서 먼저 인정 받았고,이제 당당히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국민적인 평가를 받은 셈이다. 정치가로서 김대중의 이력은 해방 직후 몽양 여운형이 주도한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그는 당초 좌우익이 망라됐던 건준의 주도권이 다툼끝에 좌익으로 넘어가자 탈퇴한다.그러나 평생 ‘색깔론’의 꼬리표가 따라붙는 뼈아픈 경력이 됐다.그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눈을 돌린 것은 해운업으로 여유가 생긴 54년이다.정치지망생 김대중은 목포에서 민의원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이어 59년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와 60년 5대 민의원 선거에서도 거푸 쓴잔을 마셨다.그는 4.19혁명으로 다시 치러진 61년 5월 인제보선에서 처음 당선됐다.그러나 금배지는 커녕 사흘만에 5·16쿠데타가 나는 바람에 의원선서도 하지 못하고 의원직을 상실하고 만다.그는 군정 기간 동안 모두 3차례나 투옥되는 등 야당정치인으로 본격적인 고난을 겪기 시작했다.그러나 장면박사를 만나면서 민주당 신파의 맥을 잇는 계기가 된다. 그는 63년 6대 총선에서 훗날 정치적 고향이 된 목포에서 다시 출마해 당선되면서 부터 발군의 지략과 달변으로 각광을 받게 된다.6대 국회 초반 6개월동안 13차례나 본회의 발언을 했고,차관도입과 세제특혜·경제개발계획의 문제점 등을 날카롭게 추궁,야당의 경제통으로 명성을 날렸다. 67년 7대 총선에서 다시 당선된 그는 68년 5월 평생의 정치적 동지이자 라이벌이 된 김영삼과의 첫번째 대결인 원내총무경선에서 패한다.그러나 71년대선을 앞둔 신민당 대선후보 지명경선에서 2차투표 끝에 결국 김영삼을 꺾는 대역전을 엮어냈다.이때 김영삼·이철승과 함께 내걸었던 기치가 바로‘40대 기수론’이다. 김대중 후보는 71년 대통령선거에서 바람을 일으켰으나 공화당 박정희 후보에게 95만표차로 석패하고 만다.‘투표에서 이기고,개표에서 진’ 이 선거는 그러나 혼쭐이 난 박정권이 그에 대한 탄압을 본격화하는 직접적인 계기가된다.이때부터 5년반 동안의 투옥과 3년여의 망명,6년반의 가택연금으로 대표되는 그의 험난한 정치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특히 71년말 교통사고로 위장한 살해기도를 간신히 모면했으나,그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에 장애를 입었다.도쿄에 체류하던 73년 여름에는 중앙정보부원들에 의해 납치되어 수장당할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그는 가택연금중이던 1979년 10·26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면서 사면복권되어 정치일선에 복귀했지만 ‘5·17’을 주도한 전두환의 신군부에 의해 내란음모죄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는다.그는 국제여론과 미국정부의 압력에 힘입어 사형에서 무기,무기에서 20년형으로 감형되어 82년말 죽음의 그림자에서 또 한번 벗어나지만 그 ‘대가’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야 했다.그는 그곳에서 2년2개월동안 망명 아닌 망명 생활을 했다. 그는 미국에 있는 동안에도 고국의 민주화운동에 힘을 바쳐 국내에 있던 김영삼과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결성한다.또 85년 2.12총선을 앞두고 전격 귀국,신민당의 압승을 끌어내는 견인차가 됐다.그의 계속된 민주화운동은 87년 6월항쟁을 촉발시켰고,마침내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는 밑거름이 됐다. 그는 87년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과 함께 이민우의 신민당을 깨고 나와 통일민주당을 창당했다.그러나 김영삼과의 후보단일화에 실패하자 평민당을 창당해 출마하게 된다.그러나 결과는 노태우·김영삼 후보에 이어 3등이었다.대권 재수가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평민당은 88년 4.26총선에서 ‘황색돌풍’에 힘입어 원내 제1야당으로 부상한다.그가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하지만 90년 전격적인 3당 합당으로 입지가 다시 좁아진 결과 92년 14대 대선에 김영삼 후보에게 패해 세번째 도전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오늘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평범한 시민이 되겠다’는 유명한 정계은퇴 선언은 이때 나온 것이다.그는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연구활동에 정진하다 93년 7월 귀국했다.그는 이후 순수한 연구단체를 표방한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하는 등 정치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다. 그는 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조순 서울시장 후보의 연설원으로 정치일선에 재등장하면서 7월18일 정계복귀를 선언한다.9월5일에는 이기택 총재의 민주당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새정치국민회를 창당,제1야당 총재로 정계전면에 공식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96년 4·11총선에서 전국구 14번의 배수진을 치고 내각제 개헌저지선인 100석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79석을 얻는데 그쳤다.‘야권분열의 책임자’라는 비난이 거세게 몰아닥쳤다. 40년 정치역정에서 최대 정적의 한사람이자 이념적 좌표가 다른 김종필이 동지가 된 것은 이때 부터다.그는 15대 국회개원과 함께 김종필이 이끄는 자민련과 공조체제를 구축하여 ‘DJ(김대중) 불가론’으로 대표되는 당내 이상기류를 잠재웠다.15대 대통령선거전이 본격화되자 김종필과는 혈맹의 관계로 발전한다.김대중을 두당의 대통령 단일후보로 하는 이른바 DJP연합이 그것이다. 김대중은 1997년 12월18일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결국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꺾었다. □김대중 당선자 연보 ▲생년월일=25년 12월3일 ▲출생지=전남 신안군 하의면 ▲44년=목포상업학교 졸업 ▲48∼50년=목포일보 사장 ▲51년=흥국해운 사장,해상방위대 전남지구 부단장 ▲60년=민주당 대변인 ▲61년=5대 민의원 보궐선거 당선(강원·인제) ▲62년=이희호 여사와 결혼 ▲63년=6대의원(목포) ▲65년=민중당 대변인 ▲68년=신민당 정책위의장 ▲71년=7대 대선출마 ▲76∼78년=3·1민주구국선언사건 등 주도 및 투옥. ▲80년=사면복권(2월),5·18 내란음모 사형언도(9월) ▲81년=무기 감형,미국 망명 ▲85년=민추협 공동의장 ▲87년=평민당 창당,13대 대선출마 ▲91년=신민당 창당 ▲92년=14대 대선출마 및 정계은퇴 ▲93년=영국 출국 ▲94년=아태재단 설립 ▲95년=국민회의 창당 ▲97년=15대 대선출마 및 당선
  • 민간경제연구소 내년 환율 전망

    ◎상반기 외환수급 어려워 1,000원선서 등락/연말께는 무역수지 개선 등으로 1,200원선 안정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환율은 내년 말에는 1천100∼1천200원으로 안정되지만 연중에는 급등락할 가능성이 커 기업들의 환리스크 대응책이 절실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17일 민간경제연구소들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내년 상반기까지는 국내 경제상황의 불안과 구조조정 진행,수입증가 등의 영향으로 최고 1천400원 내외에서 등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이에 따라 기업들은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환율불안으로 경영에 애로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연구소들은 따라서 내년에는 기업들이 매출증가에 의한 순익 증대보다는 환차손을 감소시키는데 역점을 두고 기업을 경영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최규완 연구원은 “내년 초에는 해외채권을 발행하고 IMF자금도 단계적으로 들어올 것이지만 당장 갚아야할 외채가 1백50억달러나 되는 등 불안요인이 있어 환율이 크게 내려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내년 연말이면 1천50원선에서 안정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정순원 상무는 “내년 말에는 달러당 1천100∼1천200원선에서 안정될 것이지만 연중에는 기업부도나 금융기관 부실,성장률 저하,고금리 지속 등 불안요인 때문에 1천500원까지 등락을 거듭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LG경제연구원 이창선 책임연구원은 “연말까지는 환율이 현재 상태를 유지하겠지만 내년 상반기에는 수입규모가 커지고,IMF의 요구에 따른 기업의 부도와 구조조정 등으로 외국인들의 투자도 관망하는 자세를 보여 환율이 1천450원에 이를 것”이라면서 “그러나 하반기에는 무역수지 개선 등의 영향으로 점차 안정을 찾아 연말에는 1천180원선이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대우경제연구소는 내년에는 경제 환경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워 여건이 좋아진다면 1천원 이하로도 가능하겠지만 나쁘면 1천300원 이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유보적인 입장이다.이 연구소 한상춘 연구위원은 “내년에는 상반기까지는 외환 수급 사정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보고 “IMF의 요구조건을 국민합의에 따라 성실히 이행하고 외국인투자자들이 투자할 메리트를 만들어준다면 환율은 낙관적으로 보아도 좋다”고 말했다.한위원은 그러나 “구조조정작업이 인력감축 등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 치중되고 IMF의 요구사항을 이행하지 못하면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지 못하고 환율은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기업 자금사정 더 나빠진다

    ◎한은 “국제수지 개선·환율안정 위해 통화 긴축운용”/이달 4조7,000억 공급… 금리 25%선서 시장개입 한국은행이 국제통화기금(IMF) 긴급자금 지원에 따라 이달부터 즉각 통화의 긴축운용에 돌입함으로써 시중금리가 급등하고 기업들의자금사정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한은은 4일 앞으로 통화정책의 최우선목표를 국제수지개선과 환율안정에 두고 이달부터 통화의 긴축운용에 들어가 12월 통화증가율을 MCT(총통화+양도성예금증서+금전신탁) 기준으로 작년 동월대비 13% 내외 증가한 수준에서 긴축 운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같은 증가율은 지난달의 13.3%보다 0.3% 포인트가 낮은 것이며 95년 이후 최저수준이다.이에 따라 이달중에는 연말임에도 불구하고 자금 공급이 4조7천억원정도에 그쳐 기업 자금난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박철 한은자금부장은 통화운용기조를 긴축으로 변경함으로써 시장금리(콜금리)가 일시적으로 상승,당분간 연 20%를 넘어서더라도 이를 용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금리가 법정 상한선까지 상승해도 상승압력이 해소되지않아 자금수급의 균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자금공급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해,금리가 연 25%선에 가까워져야 시장에 개입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통화긴축하에서 금리의 상승은 당연한 것으로 상당기간 지속되겠지만 장기적으로 긴축의 효과가 나타나면 떨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박부장은 또 내년에도 통화의 긴축운용은 불가피하다고 말했으나 구체적인 운용 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앞으로 IMF와 계속 협의를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 11월중 통화량(MCT기준)은 작년 동월대비 13.3%가 증가,전달의 13.1%보다 높아졌으며 총통화(M2) 증가율도 18.0%에서 18.5%로 상승했다.
  • 유·무선 사업자 접속료 공방

    ◎내년 시행 ‘상호접속기준 개정안’ 이해 엇갈려/현재 유·무선 통화료 무선어체·접속료만 한통 수익/개정안 유선통한 무선통화시 한통이 통화료 챙겨/유선→무선통화때 무선사업자에 줄 접속료 문제로 한국통신 등 유선사업자와 SK텔레콤 등 무선사업자가 정보통신부가 내년 1월 시행할 예정인 ‘상호접속기준 개정안’을 놓고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상호접속이란 접속교환기 등을 이용,서비스 유형이 다른 통신망을 서로 연결하는 것이다.예를 들어 시내전화와 같은 유선전화로 이동통신에 전화를 걸거나 역으로 이동전화로 유선망에 전화를 걸 수있는 것은 상호접속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지난 95년9월 개정돼 현재 적용되고 있는 접속기준은 유선→무선,무선→유선 양쪽 어느 쪽에서 전화를 걸든지 통화료는 무선 서비스업체가 갖고 이 가운데 접속료를 떼어 내 유선서비스 업체에 주고 있다. 접속료란 유선전화와 이동전화가 통화할 때 상대방의 통신망을 거치기 때문에 전화를 건 쪽에서 상대방의 통신망을 이용한데 대해 지불하는 대가이다. 현재 유선→무선,무선→유선 어느 방향으로 전화를 하든지 이용자들은 1분당 1백56원을 SK텔레콤에 지불하고 SK는 이중 25원을 접속료로 한국통신에 지불한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유선(한국통신)→무선(SK텔레콤) 통화의 경우 통화료는 한국통신이 갖고 이 가운데 무선망 접속료를 SK테레콤에 떼주게 된다.무선→유선 통화때는 지금과 같이 무선사업자가 통화료를 갖고 유선사업자에게 접속료를 지불한다. 따라서 양측 사업자의 첨예한 대립의 핵심은 유선→무선 통화의 경우 유선사업자가 무선사업자에게 접속료를 얼마나 떼주느냐 하는 문제로 압축된다.쉽게 말해 사업자간의 이해 다툼이다. 한국통신은 무선망으로의 접속과 관련된 원가를 계산할 때 접속료 액수를 줄이기 위해 무선망의 기지국 감가상각비를 접속료 범위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이동전화업체들이 기본료를 통해 기지국 감가상각비를 회수하기 때문에 이를 원가에서 빼지 않으면 기지국 감가상각비 회수대금을 두 번 받는 꼴이 된다는 것이 한국통신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SK텔레콤은 “기준이 바뀌어 수입이 줄게 된 상황에서 기지국 감가상각비를 원가에서 빼면 연간 1천5백억원의 수입이 더 감소된다”면서“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개인휴대통신(PCS)을 포함,이동전화 사업자들이 경영위기에 몰릴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정보통신부의 한 관계자는 양측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실제로 한국통신이 무선망의 기지국 감가상각비를 접속료 범위에서 완전 제외할 것을 주장하지는 않고 있으며 SK텔레콤도 감가상각비를 모두 포함해야 한다는 식으로는 말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관계자들은 무선망 기지국 감가상각비의 접속원가반영율이 50%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통부는 양 사업자간의 쟁점이 무선망 기지국 감가상각비의 접속원가 반영율로 압축됐다고 보고 양측의 의견을 두루 반영한 조정안을 마련,통신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이달중순 최종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고졸 행시합격 ‘인간승리’/국제통상분야 김종령씨

    ◎공사장서 막노동하며 주경야독 8년/공고 나와 조선소 노동… ‘외교관 꿈’ 위해 상경/고시원비 없어 공사장 경비… 틈틈이 공부/“무역전쟁 최일선서 국가에 도움되고 싶어”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주경야독’을 해온 고졸출신 34세 청년이 8년만에 행정고시에 합격,인간승리를 일궈냈다. 4일 최종합격자가 발표된 제41회 행정고시에서 국제 통상분야에 합격한 김종령씨(34·서울 관악구 신림9동)의 학력은 부산기계공고 졸업.고졸 출신이 행정고시에 합격한 것은 88년 이후 10년 만이다. 행정고시 응시 제한 연령은 만 35세여서 김씨는 마지막 기회에 꿈을 이뤘다. 김씨의 고향은 전북 부안군 부안면.농사를 짓던 아버지 김장철(80)와 어머니 오기용(75)씨의 7남2녀중 여덟째로 태어났다. 고향의 보안중학교를 전교 1등으로 졸업했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인문계 고교의 진학을 포기하고 형들이 일찌감치 터를 잡은 부산기계공고 기계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고교 졸업후 부산 조선공사에서 병역특례로 5년간 설비사로 근무한 김씨는 89년 외교관이나 국제통상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무작정 상경했다. 서울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부모님이나 형들에게 도움을 청할수 없었던 김씨는 조선공사에서 근무하며 모은 5백만원으로 버텼으나 2년을 넘길수 없었다. 책값이나 고시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막노동판에 뛰어들었다.주로 맡았던 일은 공사장 경비.저녁 6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12시간을 근무했다.“경비를 서는 틈틈이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좋았다”는 설명이다. 퇴근후 아침에는 잠을 자고 하오에는 고시원에서 공부를 한 뒤 다시 공사장으로 향하는 집념의 생활이 6년여동안 계속됐다. 우여곡절끝에 94년에 외무고시 1차에 합격했으나 2차에서 떨어졌다.95년에도 외무고시 1차에 합격했으나 2차에 떨어졌고 나이제한 33세에 걸려 더이상 외무고시를 볼 수 없었다. 방황 끝에 35세가 나이제한인 행정고시로 눈을 돌렸다.결국 지난해 행정고시 국제통상분야 1차시험에 합격했고 나이제한 마지막 해인 이번에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다. 김씨는 “어려운 형편에도 9남매를 키우느라 고생하신 부모님께 조금이나마 효도한 것 같아 기쁘다”면서 “날로 격화되는 무역전쟁의 최일선에서 국제통상 전문가가 돼 국가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 후원회 기부한도 2배 확대/국회본회의 ‘정치개혁법’ 의결

    ◎중앙당 후원금 연200억·시도지부 20억으로 국회는 31일 본회의를 속개,2개월여에 걸친 여야간 협상끝에 이날 최종안을 마련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과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각각 의결했다.〈관련기사 6면〉 이날 본회의에서 통과된 관련법 개정안은 지정기탁금제 폐지,음성적 정치자금(속칭 떡값)처벌조항 신설,후원회 기부한도 2배 상향조정,옥외집회 폐지 등을 주요골자로 하고 있다. 이에앞서 여야 3당총무와 김중위 국회정치개혁특위위원장은 국회에서 정치개혁입법을 위한 ‘4자회담’을 열어 ‘떡값’ 처벌조항 신설과 4급 의원보좌관 증원등에 합의,막판 쟁점사안을 타결했다. 개정된 통합선거법은 대통령선거시 연설회를 옥내집회로 제한하고,횟수도 현행 ‘구·시·군 당 3회이내’에서 ‘시·도 당 2회 이내와 구·시·군당 1회’로 축소했다. 개정된 정치자금법은 ▲지정기탁금제를 완전 폐지하고 ▲정치자금법상의 합법적인 정치자금 이외의 일체의 음성정치자금(민법상 친족에 의한 정치자금은 예외)수수를 처벌하도록 했다. 정치자금법은 또 각 후원회의 기부한도를 현행보다 2배 상향조정했다.이에따라 각종 후원회의 기부한도액은 ▲중앙당후원회의 경우 연간 1백억원에서 2백억원으로(단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의 경우 연간 3백억원에서 6백억원) ▲시·도지부후원회의 경우 연간 10억원에서 20억원으로 ▲지구당후원회는 연간 1억에서 2억원으로 상향 조정됐다.여야간 논란이 됐던 4급 보좌관 증원문제도 1명을 증원,의원의 조사활동비와 연구용역비 부담을 덜어주도록 했다. 그러나 이 항목에 대해서는 ‘돈 안쓰는 정치’를 지향하는 정치개혁의 취지에 반하는 입법이라는 비판도 정치권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한편 신한국당 이만섭 고문의 탈당으로 전국구 의원직을 승계한 김찬진 의원이 본회의에서 의원선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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