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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예진, ♥현빈 위해 차린 ‘9첩 반상’ 공개… “아주 뿌듯해” 

    손예진, ♥현빈 위해 차린 ‘9첩 반상’ 공개… “아주 뿌듯해” 

    배우 현빈과 결혼한 배우 손예진이 남다른 요리실력으로 주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지난 3월 현빈과 결혼한 손예진은 최근 임신 소식까지 전하기도 했다. 손예진은 17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에 “다들 일요일 저녁 잘 보내고 계신가요? 내일은 다시 한주의 시작이네요. 저번 음식사진을 너무 좋아해주셔서 열심히 만들고 열심히 찍어봤어요. 아주 뿌듯합니다”라며 유명 레스토랑 같은 식탁 사진을 올렸다. 사진에는 김치찌개, 계란찜, 물김치 등으로 차린 한식 상차림부터 샤브샤브, 봉골레 파스타, 샌드위치 등 다양한 스타일의 음식이 등장한다. 손예진의 게시글에는 동료배우들의 호응이 쏟아졌다.이정현은 “우와 예진아 넘 맛있겠다”라며 감탄했고, 이민정도 “아 귀여워ㅋㅋ”라며 호응했다. 결혼 선배 송윤아는 “수업해주세요 선생님~”이라며 극찬했다. 팬들도 “너무 맛있어 보여요” “요리 블로그를 해줘요” “현빈오빠와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라며 호응했다. 손예진의 게시물에는 94만건이 넘는 ‘좋아요’가 달렸다. 한편 손예진은 지난 3월 JTBC ‘서른 아홉’을 마치고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2019)에 함께 출연한 현빈과 결혼식을 올렸다. 지난해 1월 교제 사실이 알려졌으며 지난 3월 웨딩마치를 올렸다.
  • “사회 복귀 못 할까봐 두려워”… 6년 만에 방에서 나온 그가 웃었다[청년, 고립되다]

    “사회 복귀 못 할까봐 두려워”… 6년 만에 방에서 나온 그가 웃었다[청년, 고립되다]

    지난해 외출하지 않고 집에 주로 머무는 청년(만 18~34세) 비율이 5.1%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해당 연령대 인구(약 1088만명) 중 55만명 넘는 청년이 방 안에 외롭게 갇혀 있다는 얘기다. 이 수치는 경기 안양시 인구(약 55만명)와 거의 비슷한 규모다. 17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해마다 진행하는 ‘청년 사회·경제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외출하지 않는 청년 비율은 2017년 3.7%에서 2018년 1.6%로 감소한 뒤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면서 지난해 5.1%를 기록했다. 코로나19 기간을 지나면서 고립청년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고립청년을 직접 찾아가 상담을 하는 광주시 은둔형외톨이지원센터는 학창 시절 왕따와 폭력 경험, 지나친 경쟁의식, 부모의 과한 기대감이 청년을 고립에 빠지게 하는 원인이라고 밝혔다. 특히 학교폭력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채 성인이 됐을 때 학교보다 더 큰 사회에서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겪으며 고립이 시작된다고 봤다. 실제 학교폭력 경험 등으로 마음의 문을 닫았다가 어렵게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온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선생님은 “넌 사회성이 없다”고 했다 송경준(26)씨에게 폭력은 일상이었다. 지독한 괴롭힘이 처음 시작된 것은 중학교 1학년 수련회 때다. 반 인원이 홀수인 탓에 아이들은 버스에서 혼자 앉지 않으려고 자리다툼을 벌였다. 반 아이들의 강요에 떠밀려 결국 송씨가 혼자 앉게 됐고 그때부터 송씨는 늘 혼자였다. 폭력은 송씨가 자퇴를 결정한 고교 1학년 때까지 4년간 이어졌다. 송씨는 “복도에 가만히 있는데 때리고 책상에 낙서하고 실내화와 전자사전을 빼앗아 갔다”며 당시 상황을 털어놓았다. 송씨는 폭력을 피해 중학교와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고교로 진학했다. 그러나 중학교 때 당한 폭력은 잔상으로 남아 송씨를 괴롭혔다. 학교 식당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아 밥도 굶고 교실에서 온종일 엎드려 있었다. 반 아이들이 무서워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 모두가 뒤에서 자신을 욕하며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다른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송씨에게 학교 선생님은 “사회성이 없다”고 했다. 학교 어느 곳에서도 숨 쉴 구멍조차 찾을 수 없었던 송씨는 고교 1학년 겨울 자퇴했다. 그때부터 자신의 방에서 주로 유튜브, 애니메이션을 보며 지냈다. 방을 나서는 건 밥을 먹고 씻을 때뿐이었다.처음엔 답답해하며 화를 내던 부모님과도 점차 대화가 사라졌다. 송씨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방이 가장 평화로웠다”고 말했다. 사회로 나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검정고시를 치고 대학교에 진학했지만 결국 1년 만에 그만뒀다. 2년간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의무를 마친 뒤 다시 방으로 숨었다. 그렇게 6년가량 은둔 생활을 반복하던 송씨는 문득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사회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이후 고립 위기 청년을 돕는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에서 2년간 생활하며 자신과 비슷한 상황의 청년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걷어 낸 송씨는 올해 취업에도 성공했다. 퇴근 후에는 스피치 학원에 다니며 사람들 앞에 서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은둔 초기 주변의 지지를 받았다면” 같은 반 학생이 던진 과자가 툭 소리와 함께 교실 바닥에 떨어졌다. 주워 먹으란 말과 함께 동급생 29명의 눈이 자몽(31·가명)씨를 향했다. “주워 먹으면 덜 괴롭힐까” 자몽씨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반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고교 시절 같은 반 학생들은 이유 없이 자몽씨를 때렸고 등판에 욕설을 썼다. 체육 시간이면 누가 뒤에서 바지를 벗길지 몰라 늘 양손으로 바지 주머니를 붙잡고 다녔다. 졸업만 하면 지옥을 탈출할 수 있으리라 여겼지만 가해자들과 가까운 거리의 대학에 진학하면서 지옥이 다시 시작됐다. 강의실에 앉아 있으면 ‘과제를 대신 해 와라’, ‘밥 먹을 돈을 달라’는 연락이 왔다. 그때부터 자몽씨는 학교에 가는 척 아침에 집을 나선 뒤 비상계단에 숨어 있다가 부모님이 출근하면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12년간 이어진 긴 은둔의 시작이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대인기피증, 공황장애, 우울증이 찾아왔다. 바깥에 나가면 숨이 안 쉬어지고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자몽씨는 자신이 약하고 뚱뚱해서, 괴롭힘을 당할 만해서 당했다고 자책했다. 반려견 ‘자몽’에겐 유일하게 애정을 줬다. 자신의 이름 대신 자몽으로 불리기 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몽씨는 “학교폭력에 대한 기억이 저를 계속 갉아먹으니 어느 날엔 복수하고 싶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해치면 안 되니까 저를 해치기로 하고 모두 제 탓으로 돌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은둔 생활 내내 너무 나가고 싶어 매일 울었다”고 했다. 자몽씨는 집 밖으로 나가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고 여러 번 시도했다. 대학을 자퇴한 대신 약대 편입을 준비했고 공무원 시험을 보러 학원도 다녔다. 2~3년에 한 번씩 용기가 생기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오래전 친구를 찾아 ‘보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낮에 거리로 나가기 위해 새벽에 혼자 길거리를 걸어 보기도 하고 몸무게도 50㎏을 뺐다. 그러다가도 번번이 숨게 됐다. 다시 은둔이 시작될 때마다 학원 강사나 연락이 닿은 친구들, 의사에게 자신의 존재가 드러났다는 게 싫어 번호를 바꾸고 연락처를 지워 버렸다. 그동안 서른 번 넘게 바꾼 전화번호는 재고립의 흔적이자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친 기록이다. 지난 2월 자몽씨는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방송국에서 ‘은둔 청년’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발견하고 자신이 은둔 청년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고 한다. 자몽씨는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고 당신의 탓도 아니라고 말해 주는 사람들이 생겼다”면서 “은둔 초기에 부모님이나 주변의 지지를 받았더라면 이렇게 길어지진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강요된 기준에 끌려가” 2017년부터 주변과의 교류를 끊기 시작한 김선호(30대 초반·가명)씨 역시 학교폭력의 상처가 있었지만 대인 관계를 단절한 것은 그보다 훨씬 뒤였다. 김씨는 사회에서 겪은 해고와 갈등, 스트레스가 고립의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스무 살 무렵부터 13년을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는 김자영(30대 중반·가명)씨는 입시 실패와 할머니의 죽음이 고립에 큰 영향을 미쳤다. 깊은 우울감으로 10년간 은둔한 끝에 취업을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으면서 재고립으로 이어졌다. 김옥란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장은 “어떤 사람은 직장을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고립됐다고 한다”면서 “은둔은 고립의 증상이 발현된 현상일 뿐 사회생활을 하다가도 언제든지 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은둔이 시작되면 씻거나 청소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식사나 수면, 위생 등 생활 습관이 무너지면서 신체 건강이 나빠지고, 정신적·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지면서 가까운 사람이나 부모와의 갈등이 깊어진다. 김 센터장은 “우리 사회엔 이런 학교, 이런 직장을 가야 하고 때에 맞춰 결혼해야 한다는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기준이 있다”며 “자기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니 비전은 둘째 치고 좋아하는 것이 뭔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게 하는 게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 “인터넷·스마트폰 정지, 미디어 과의존 해결에 도움된다”

    “인터넷·스마트폰 정지, 미디어 과의존 해결에 도움된다”

    여성가족부는 미디어 사용조절 능력을 훈련하기 위한 웹기반 프로그램 ‘인스탑’(인터넷·스마트폰 정지)이 시범운영 결과 청소년 미디어 과의존 해결에 효과를 보였다고 17일 밝혔다. 지난해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에서 개발한 인스탑은 두 차례 시범운영됐다. 이후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소년 29명을 대상으로 사전-사후 변화를 측정해 효과를 검증했다. 그 결과 1∼5점 척도의 18문항(총점 범위 18∼90점)으로 구성된 ‘스마트폰에 대한 과도한 기대나 비합리적 신념’ 점수는 평균 43.28점에서 36.44점으로 개선됐다. 9문항(총점 범위 9∼45점)으로 구성된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대처 인식’ 점수는 29.20점에서 31.63점으로 올랐다. 인스탑은 청소년 누구나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 있다. 희망하는 경우 상담 선생님과 청소년이 일대일로 연결돼 프로그램 회차마다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인스탑 프로그램은 총 7회차다. 참여자의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정도에 대한 점검과 미디어 이용습관 개선을 위한 목표 설정, 부정적 감정을 조절하며 구체적인 대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훈련 등으로 구성돼 있다.
  • 12년 동안 세상을 이렇게 바라본 파키스탄 소녀

    12년 동안 세상을 이렇게 바라본 파키스탄 소녀

    파키스탄 신드 지방에 사는 13세 소녀 아프신 굴은 생후 10개월 때 어린 언니가 품에 안고 있다가 떨어뜨리는 바람에 목이 90도로 꺾여 버렸다. 그렇게 평생을 살 운명이었는데 인도 의사의 수술을 받고 새 삶을 얻었다고 영국 BBC 방송이 15일(현지시간) 전했다. 굴은 일곱 남매 중 막내였다. 부모는 목이 옆으로 꺾인 아기를 품에 안고 의사를 찾아가기도 했고, 약도 지어 먹여 봤다. 꺾인 목을 곧추 세운다며 벨트로 묶기도 했다. 하지만 상태는 더 나빠질 뿐이었다. 굴의 어머니 자밀란 비비는 “막내딸은 여섯 살이 될 때까지 혼자 걷거나, 먹거나,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바닥에 누워만 있었다. 가족들이 모든 것을 도와줘야 했다”면서 “치료를 더 받게 하고 싶었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고 돌아봤다. 여섯 살이 돼서야 걷기 시작한 굴은 뇌성마비 진단까지 받았다. 여덟 살 때야 처음으로 입을 떼고 말을 했다. 카라치에서 거의 300㎞ 떨어진 미티에 있는 집에서 식구들과만 어울려 지내는 고통이 12년 동안 계속됐다. 영국 BBC 방가 2017년 굴의 아픈 사연을 보도했고, 그 뒤 파키스탄의 유명 배우 아산 칸이 그녀의 얘기를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며 응원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굴의 어머니는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해 막내딸의 사연을 전했고, 미국에서는 그녀의 수술비를 지원하는 온라인 기부 페이지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수술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파키스탄 의료진은 수술 뒤에도 생존할 확률이 50%라고 말했다. 수술비 마련도 쉽지 않았다. 지방정부가 돕겠다고 했지만 확실하지 않았다. 또 언니의 결혼식도 있어서 여의치 않았다. 해외 의료진을 알아보자는 얘기도 나왔다. 2019년 영국 기자 알렉산드리아 토머스가 굴 가족의 어려운 형편을 보도하며 다시 화제가 됐고, 토머스가 인도의 복합 척추 수술 전문가인 라자고팔란 크리시난 박사에게 굴을 돕자고 제안했다. 크리시난 박사는 수술 전 진단을 통해 굴이 목 손상을 일으키는 척추 질환을 가지고 있다고 결론내렸다. 수술이 결정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지난 3월 크리시난 박사 집도로 델리에서 굴의 꺾인 목을 바로 세우는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 및 치료 모두 무료였다. 수술은 모두 세 차례, 주가 되는 목을 곧추 세우는 수술은 6시간 진행됐다. 수술을 받은 지 4개월이 지난 현재, 굴은 마침내 스스로 걷고, 말하고, 먹을 수 있게 됐다. 평생을 비뚤게 봐야 했던 세상을 바로 볼 수도 있게 됐다.그녀의 오빠 야쿱 쿰바는 “여전히 막내 동생은 몸이 약하고 학교도 갈 수 없지만, 의사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 말했다”면서 “동생이 건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행복하다. 인도의 의사 선생님이 내 여동생의 생명을 구했다. 우리 가족에게 그는 천사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매주 스카이프 영상 통화를 통해 회복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크리시난 박사는 BBC 인터뷰를 통해 “굴이 수술을 받지 않았다면 오래 살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물론 또래보다 성장이 느리다는 단점은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 주호민 “첫째 아들, 3살 때 발달장애 판정”

    주호민 “첫째 아들, 3살 때 발달장애 판정”

    웹툰 작가 주호민이 발달장애 아들로 인해 겪었던 마음 고생을 털어놨다. 지난 15일 유튜브 채널 ‘푸하하TV’의 콘텐츠 ‘심야신당’에는 웹툰 작가 주호민이 출연했다. 영상에서 정호근은 주호근에 대해 “가슴 속에 겪어온 일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다. 굉장히 힘든 10년을 살고 있다. 인기 작가 반열에 올라온 건 맞지만 사람들 생각만큼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리가 아니었다”라고 짚었다. 주호민은 “2005년부터 만화를 그려왔다. 잘 된 것도 있고 안 된 것도 있지만 2010년에 그린 ‘신과 함께’가 인기가 많았고, 영화화가 돼서 많은 관객이 사랑해주셨다”라면서도 “개인적인 문제가 생겨서 작업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은 열망이 있는데 현실이 녹록지 않았다”라고 털어놨다. 두 아이를 잃은 경험이 있는 정호근은 “나와 비슷한 처지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자식에게 걱정이 있는 운명이다. 극복하려고 했지만 마음 속 앙금으로 자리잡았다”라고 말했다. 이에 주호민은 “첫째 아이가 지금 10살인데 3살 때 발달장애 판정, 자폐가 있다. 그때 굉장히 어려웠다”면서 “‘신과 함께’ 영화가 너무 잘 돼서 사방에서 축하를 받을 때였다. 근데 집에 가면 감정의 파도가 너무 큰 거다. 그때가 굉장히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첫째에 관한 질문에 주호민은 “첫째는 장난이 굉장히 심하다. 아무래도 저희는 부모니까 받아줄 수 있는데 아이가 학교에 가서 교실에서 수업 중에 배꼽을 보여주거나 바지를 내린다거나 자폐아들의 돌발행동을 선생님에게 전해 듣을 때가 있다. 또 공개 수업에 갔는데 우리 아이만 동떨어진 섬처럼 있는 모습을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라고 말했다. 정호근은 “저는 아이 둘을 잃었는데 이렇게 되면 부부 사이에도 금이 가게 된다. 저희도 그런 고비를 겪었다”라고 부부 사이에 대해 질문했다. 주호민은 “저희는 대화로 풀어가는 성격이 아니고 둘 다 참는 편이다. 그러다 보면 문제 해결이 어렵고 그런 시간을 오랫동안 보내다가 어느 순간 저희가 각성을 하고 서로 대화의 문을 열고 기꺼이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 중 하나가 작년에 아내하고 발달장애와 우리 가족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 나누는 라디오 콘텐츠를 둘이 만들었다. 그걸 하니까 좋든 싫든 어쨌든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 정도는 진솔하게 얘기하게 되더라”면서 “예전에는 싸우면 일주일 씩도 말을 안 했는데 지금은 그날을 안 넘기고 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월드피플+] 목 90도 꺾인 채 평생을...수술로 새 삶 얻은 13세 소녀 사연

    [월드피플+] 목 90도 꺾인 채 평생을...수술로 새 삶 얻은 13세 소녀 사연

    목이 90도로 꺾인 채 평생을 살아야 했던 13세 파키스탄 소녀의 수술로 새 삶을 얻었다고 영국 BBC가 15일 보도했다. 파키스탄에 사는 아프신 굴(13)은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하지만 형제들과 달리 학교에 가지도, 또래와 놀지도 못했다. 목이 90도로 꺾인 채 10년을 넘게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프신이 생후 10개월이었던 당시, 어린 언니가 동생인 아프신을 안고 있다 떨어뜨리면서 목이 90도로 구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아프신의 부모는 목이 옆으로 꺾인 아기를 품에 안고 의사를 찾아가기도 했고, 약도 지어 먹여 봤지만 상태는 악화할 뿐이었다. 아프신의 어머니는 “사고 이후 막내딸은 6살이 되기 전까지 홀로 걷거나, 먹거나,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바닥에 누워만 있었다. 가족들이 모든 것을 도와줘야 했다”면서 “치료를 더 받게 하고 싶었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프신은 뇌성마비 진단까지 받았다. 6살이 되어서야 간신히 걷기를 배웠고, 8살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입을 떼고 말을 했다.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었던 아프신은 12년 동안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그러다 영국 BBC가 2017년 아프신의 사연을 보도했고, 이후 파키스탄의 유명 배우가 아프신의 사연을 SNS로 공유하면서 응원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아프신의 어머니는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해 막내딸의 사연을 전했고, 미국에서는 아프신의 수술비를 지원하는 온라인 기금 사이트도 열렸다. 하지만 수술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파키스탄 현지 의료진은 아프신이 수술을 후 생존 확률이 50%라고 말했다. 수술비를 마련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다시 흘렀다. 2019년 영국의 한 언론인이 아프신의 당시 상태와 가족의 재정적 상태를 보도하면서 다시 한 번 화제가 됐고, 이후 인도의 한 의사가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인도의 복합 척추 수술 전문가인 라자고팔란 크리시난 박사는 수술 전 진료를 통해 아프신이 목 손상을 일으키는 척추 질환을 가지고 있다고 진단했다.수술이 결정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지난 3월 인도의 복합 척추 수술 전문가인 라자고팔란 크리시난 박사는 무사히 아프신의 꺾인 목을 바로 세우는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 및 치료는 모두 무료였다. 수술 중 환자의 심장이나 폐가 멈출 수 있는 위험한 수술이었지만, 크리시난 박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도 델리에서 수술을 받은 지 4개월이 지난 현재, 아프신은 마침내 스스로 걷고, 말하고, 먹을 수 있게 됐다. 평생을 비뚤게 봐야 했던 세상을 바로 볼 수도 있게 됐다.아프신의 한 형제는 “여전히 막내 동생은 몸이 약하고 아직 학교도 갈 수 없지만, 의사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거라 말했다”면서 “동생이 건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행복하다. 인도의 의사 선생님이 내 여동생의 생명을 구했다. 우리 가족에게 그는 천사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아프신에게 새 삶을 선물한 크리시난 박사는 BBC와 한 인터뷰에서 “아프신은 수술을 받지 않았다면 오래 살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물론 또래보다 성장이 느리다는 단점은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 정호근, 오은영 부동산 정보 맞혔다…“집 장만 or 병원 증축”

    정호근, 오은영 부동산 정보 맞혔다…“집 장만 or 병원 증축”

    ‘금쪽상담소’ 정호근이 무속인다운 예리한 촉을 발휘했다. 지난 15일 오후 방송된 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서는 배우 겸 무속인 정호근이 출연했다. 이날 정호근은 자리에 앉아 갑자기 허공을 보다 수제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오은영을 빤히 보더니 “오 박사님 뵀을 때 화면이 확실히 실물의 눈과 전혀 다르게 나온다. 실물의 눈은 굉장히 고혹적이시다. 사람의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진다. 선생님 눈이 보물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 장만 혹은 병원 증축하려는 거 같은데 해당사항이 있나”고 기습 질문했고, 오은영은 “있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해 깜짝 놀라게 했다. 올해 38세인 박나래는 결혼에 관해 물었고 정호근은 “기다리세요. 올해와 내년에 인연이 생겨도 눈에 콩깍지가 씌면 안 된다. 덤덤하게 받아들여야 더 좋은 배필로 내 인생이 높이 올라가고 편안해진다”라고 밝혔다. 실망하던 박나래는 “있기는 있네”라며 위안했다. 한편 채널A ‘금쪽상담소’는 매주 금요일 오후 9시 30분에 방송된다.
  • 현빈, ♥손예진 골프 선생님…미국서 라운딩 삼매경

    현빈, ♥손예진 골프 선생님…미국서 라운딩 삼매경

    배우 현빈 손예진 부부가 미국 신혼여행에서도 함께 골프를 즐긴 것으로 전해졌다. 14일 방송된 KBS 2TV ‘연중 라이브’의 ‘SNS 스타’ 코너에서는 ‘골프는 사랑을 싣고’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병헌, 이민정 부부는 골프장 데이트를 자주 즐기며 남다른 골프 사랑을 자랑한 바 있다. 지난 4월에는 4대 메이저 골프 대회인 마스터스 토너먼트 대회의 갤러리로 참여하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기도 했다. 이민정은 SNS 댓글로 “이병헌 씨 자세보단 제가 나은 듯”이라는 댓글을 남겨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구력 4년 차 이민정은 이병헌 뿐만 아니라 오윤아, 백지영, 온주완, 유세윤과도 라운딩에 나서며 열정을 드러냈다. 출중한 골프 실력을 자랑한 소이현의 스승은 남편 인교진이라고. 소이현은 “다른 건 몰라도 골프 만큼은 리스펙이 크다. 범접할 수 없는 천상계 같은 느낌”이라며 남편을 존경했다. 인교진, 소이현 부부는 신혼부부 손담비, 이규혁과 결혼 전부터 골프를 함께 즐겼다. 손담비, 이규혁은 하와이로 떠난 신혼여행에서도 골프를 했다. 특히 손담비는 골프로 인해 다리가 까맣게 탄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 결혼 3개월 만에 2세 소식을 전한 현빈, 손예진 부부는 골프로 인연을 맺었다. 공통 취미 골프를 통해 연인으로 발전했다. 현빈은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골프, 야구를 취미로 즐기며 유명 연예인 골프클럽 멤버이기도 하다. 현빈, 손예진 부부는 미국으로 떠난 신혼여행에서도 골프를 즐겼다고 알려졌다. 또 손예진은 현빈에게 골프를 배우기도 했다고.2년째 공개 열애 중인 이승기, 이다인도 골프로 서로를 알게 됐다. 박세리에게 “엄청 좋다”는 칭찬을 받은 이승기는 아직은 골프와 친해지는 중이다. 김태희의 남동생 이완은 프로골퍼 이보미와 결혼했다. 이보미는 누적 상금 100억원 이상을 달성했다. 이완, 이보미 부부는 비, 김태희 부부와 함께 라운딩을 즐기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 서점·카페·비행기·지하철… 박찬욱이 머무는 곳은 그의 서재가 됐다[김언호의 서재탐험]

    서점·카페·비행기·지하철… 박찬욱이 머무는 곳은 그의 서재가 됐다[김언호의 서재탐험]

    서재, 책이 있는 공간은 한 사람의 취향과 관심사, 내면과 정신의 풍경입니다. 우리 시대 대표 출판인 김언호가 한국 사회 각 분야에서 자기 세계를 구축한 명인들의 서재를 찾아 그들의 오늘을 있게 한 책 읽기와 삶에 대한 품격 있는 담론을 펼칩니다. 세계인이 사랑하는 영화감독 박찬욱의 서재 이야기를 시작으로 2주마다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난 6월 29일 편집실 친구들과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을 보았다. 제75회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 작품을 개봉 첫날에 보는 즐거움을 누렸다. 상영시간 138분, 파주 출판도시의 영화관 메가박스, 다른 관객 20여명과 함께 우리는 문제작에 몰두했다. 고수의 뛰어난 연출에 다소 긴장하는 표정들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우리는 카페로 자리를 옮겨 즐거운 합평회를 펼쳤다. “프로이트, 도스토옙스키, 히치콕이 다 녹아 있는 영화야. 사랑이 무엇인지를 박찬욱이 우리에게 묻고 있네.” “마지막 장면, 쏟아져 들어오는 파도가 압권입니다.” “맞아, 롤랑 조페 감독의 ‘미션’. 이구아수폭포 장면을 연상시키는 파도, 그 파도가 순간 멈추면서 영화가 끝나네요.” 나는 이튿날 다시 그 영화관으로 갔다. 자세히 보고 싶었다. 박찬욱 감독의 사랑론, 아니 인간론을 탐구해 보고 싶었다. 역시 그 대사들이 나의 주목을 끌었다. 클래식한 이미지의 대사들. “당신이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당신을 떠났고, 이제 내가 당신을 사랑하려 하니 당신이 나를 떠나네.”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갖고 싶어.” ‘헤어질 결심’을 다시 보면서, 나는 참 시적(詩的)인 영화라고 생각했다. 이 폭풍우 같은 소음의 시대에, 그의 영화는 절제된 언어를 구사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랑과 죄가 무엇인가를 시적 언어로 우리들에게 묻고 있다. 그의 영화는 시적이다.●박찬욱 감독의 영화 또는 인간탐구 15년여 전 나는 헤이리 회원들과 포르투갈을 여행했다. 거장 알바로 시자의 건축들을 보러 가는 것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아버님 박돈서 선생과 동행했다. 포르투의 세랄베스미술관! ‘시적 건축’을 언명하는 알바로 시자의 세랄베스미술관은 한 편의 시였다. “선생님, 건축이 시가 될 수 있군요.” “알바로 시자의 건축미학·건축철학을 실감합니다.”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다운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무엇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순간 나는 추사 선생의 ‘문자향 서권기’(文字香書卷氣)란 말을 떠올렸다. 가슴속의 청고(淸高)하고 고아(古雅)한 뜻은 문자향과 서권기에서 비롯되고, 문자향 서권기는 자신의 서예 작품의 근원이 된다는 추사의 예술정신. 내가 박 감독을 처음 만난 것은 2004년이었다. 1995년부터 시작된 예술마을 헤이리, 나는 2003년에 입주했고 2004년 박 감독도 부모님과 함께 입주한 직후였다. 그때 나는 박 감독에게서 영화 이야기뿐 아니라 책 이야기를 들었다. 1970년대부터 출판과 책은 나에게 운명 같은 주제였다. 박정희 유신 권위주의와 전두환 신군부의 통치시대에, 우리는 ‘위대한 책의 문화’를 주창하면서, 책만들기 책읽기가 우리의 자랑스런 ‘운동’이었다. 1990년대 파주출판도시 건설작업이 한창 진행되던 무렵, 나는 책의 마을, 책방마을을 구상하고 있었다. 열화당 이기웅 사장과 나는 볼로냐 아동도서전을 참관하러 가는 길에, 영국 웨일스 지방, 폐허가 된 탄광촌에 들어선 고서마을 헤이온와이를 찾아갔다. 1994년 봄날이었다. 헤이온와이 ‘고서마을의 황제’ 리처드 부스 선생과의 인연은 그렇게 맺어졌다. 당초 책방마을로 구상된 헤이리에 미술가·도예가·음악가·영화인·인문학자들이 동참하게 되면서 책방마을은 예술마을로 확장되었다. 오래전부터 책의 집, 책을 위한 집은 나의 꿈이었다. 책방과 전시, 담론과 공연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북하우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동아일보사에서 함께 일하다 해직된 독서인 이종욱 시인도 헤이리 만들기에 동참했다. 그의 서재가 북카페 ‘반디’가 되는 것이었다. 황인용의 음악카페 ‘카메라타’와 함께 북하우스와 반디는 영화인이자 독서인인 박찬욱의 열려 있는 서재이자 휴식공간이 되었다. “독서는 내 영화의 원천입니다. 좋은 책 이야기하기는 영화를 잘 찍는 일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영화인 박찬욱에게 서재란 여느 사람의 서재와는 다르다. 세계가 그의 활동영역이 되면서 여유를 갖고 서재에서 한가하게 책 읽을 시간을 내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가 머무는 공간이면 다 서재가 된다. 서점이, 카페가, 비행기가, 호텔이, 지하철이 그의 독서공간이 된다. “저희 집에도 서재라고 부를 만한 공간이 있지만 서재라기보다 서고라고 할까요.”●영화 보는 시간보다 독서 시간 길어 헤이리에 지어 입주한 아버지 박돈서와 아들 박찬욱의 자하재(紫霞齋)는 참 독특한 구조를 가진 주택이다. 건축가 김영준의 작품인 자하재는 한 집인데 두 집이다.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주택. 겉으로는 하나이지만 내부는 독립되어 있다. 현관도 따로따로다. 가운데에 같이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다섯 평짜리 정원부터 반 평짜리 정원까지 정원만 26개나 된다. 대지 130평, 건평 110평이다. 박 감독의 서재 또는 서고는 공공도서관 서고처럼 여러 서가들이 병렬하고 있다. 많은 책은 이렇게 해야 수장할 수 있다. 서가 구석에 작은 탁자와 의자가 있다. 책을 꺼내와 잠깐 보다가 꽂아 놓는다. 더 읽을 책은 거실로 갖고 나온다. 서고 옆에는 작은 영화관처럼 큰 스크린이 있고, 계단식 관람석이 있어 10여명이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들을 수 있다. 박 감독은 오디오 마니아다. 헤이리 회원들은 자하재를 여러 차례 구경하면서 독특한 공간 경험을 하곤 했다. 서울에서, 지방에서 많은 인사들이 견학하러 왔다. 헤이리에는 실험 적인 건축물이 제법 많지만, 자하재는 나에게 영화 ‘공동경비구역’을 떠올리게 한다. 2005년에 한국건축가협회로부터 ‘올해의 베스트 건축’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뉴욕현대미술관의 건축실에 도면과 모형이 전시된 후 소장되고 있다. 박 감독은 자신이 “평범하게, 무탈하게 성장해 왔다”고 하지만, 82학번인 그에게도 1980년대는 ‘격동의 시대’였을 것이다. “사회과학 독서보다는 인문·문학 독서를 했습니다. 조금 외로움을 느꼈지만, 주로 문학에 몰두했지요.” 영화 ‘아가씨’ 같은 경우에도 조진웅 배우가 친일파로서 대부호 역할을 한다. 원작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이야기이지만, 굳이 이야기를 일제강점기의 조선 땅으로 가져와 그 인물과 시대를 보여 준다. 채만식의 ‘탁류’ 같은 소설은 우리 문학사의 빛나는 리얼리즘의 성과다. 그런 작품을 읽은 영화인 박찬욱의 가슴엔 어떤 형태로든 역사 같은 것이 잠재되어 있을 것이다. ‘헤어질 결심’의 조선족 송서래(탕웨이)의 할아버지도 조선 독립운동가로 ‘역사성’이 환기된다. 박 감독의 가슴엔 이문구의 ‘관촌수필’이 선연하게 살아 있다. “이문구 선생의 ‘관촌수필’은 저에겐 아주 결정적인 작품입니다.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이렇게 조탁해서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요. 이런 아름다운 문학예술이 우리에게 있다고 자부합니다. ‘관촌수필’은 영화로 만들지 않고 그냥 보존하고 싶습니다.” 영화인 박찬욱에게는 영화를 보는 시간보다는 책 읽는 시간이 더 길다. 책에 관련된 일에 참여하는 일을 마다한 적이 없다. 좋은 책을 널리 알리는 일은 자신이 제작한 영화를 알리는 일 못지않게 소중하다. 책은 그의 삶에서 가장 즐겁고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건축학자인 아버지가 사다 놓은 ‘을유세계문학전집’은 중·고교 시절 그가 씨름한 주제였다. 그의 문학적 지향을 형성한 책들이었다. ‘삼중당문고’와 ‘동서추리문고’도 그의 취향과 문제의식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책 읽는 집안의 전통 손에 늘 책을 들고 있는 어머니 심성구 여사로부터도 박 감독은 책읽기를 체득했을 것이다. “책이 있는 곳에 찬욱이가 있었어요. 사람들이 내다버린 책더미를 뒤지곤 했어요.” 동생 박찬경도 책 읽기로 자신의 미술세계를 구현하고 있을 것이다. 여동생 박찬희가 영어교육 전문가로 활동하는 것도 독서하는 집안의 분위기에서 기원할 것이다. 시서화(詩書畵)를 즐기는 집안의 전통. 아버지 박돈서 선생도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참 좋아한 독서인이었다. 박돈서 선생은 사시집(寫詩集) ‘인향만리’(人香萬里)와 시화집(詩集) ‘묵향천리’(墨香千里)를 펴낸 시인이기도 하다. 언젠가 박 감독의 영화에 등장할 만한 한 미장센. 노부인이 벽난로 옆에서 무릎에 담요를 덮고 흔들의자에 앉아 추리소설을 읽고 있다. 고양이가 그 옆에서 졸고 있다. 중학생 박찬욱이 언젠가 어머니에게 이야기한 풍경이다. ●진리는 모호한가 박찬욱 영화의 일관된 주제라면,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그러나 정답은 없다. 진리는 모호할 것이다. 참, 박 감독이 주관하는 영화사 이름이 ‘모호’다. 그의 영화철학의 일단일까. ‘헤어질 결심’에서 정훈희와 송창식이 ‘안개’를 부른다. 인간의 삶은 안갯속 같은 것일까. 박 감독이 지금까지 읽은 그 수많은 책 중에서, 우리 젊은이들에게 권독하고 싶은 책 다섯 권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안갯속을 헤매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약간의 가이드가 되지 않을까 해서다. 그가 문자로 보내왔다. 이문구의 ‘관촌수필’, 카프카의 ‘성’, 존 르 카레의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 연대기’, 그레이엄 그린의 ‘브라이턴 록’. 인터뷰하는 그날 박 감독은 ‘강화학파의 서예가 이광사’(이진선 지음)를 구입했다. 북하우스의 그 많은 책들 가운데 ‘이광사’를 딱 집어드는 선책(選冊)의 안목. 나는 연세대 영문학과 이경원 교수가 30년의 연찬 끝에 써낸 거작 ‘제국의 정전 셰익스피어’를 북하우스 방문 기념으로 박 감독에게 증정했다. 그는 셰익스피어를 탐독하는 영화예술가다. 한길사·한길책박물관 대표
  • 생방송 중 감전당했던 배철수 “PD 덕분에 살았다”

    생방송 중 감전당했던 배철수 “PD 덕분에 살았다”

    가수이자 방송인인 배철수가 록밴드 송골매 시절 생방송 중 감전 사고를 당했을 때를 회상했다. 지난 13일 방송된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개척자들’ 특집에는 38년 만에 다시 뭉친 록밴드 송골매의 멤버 배철수, 구창모가 출연했다. 이날 구창모는 송골매의 ‘모두 다 사랑하리’를 듣던 중 1983년 KBS2 ‘젊음의 행진’ 생방송 중 배철수가 감전됐던 사고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 배철수는 기타를 연주하다가 스탠드 마이크를 잡는 순간 전류가 마이크를 타고 흐르면서 감전됐다. 그는 무대에 그대로 일자로 쓰러졌고, 이를 본 스태프들은 무대 조명을 끄고 배철수를 업고 병원으로 옮겼다. 구창모는 “당시 구급차가 없어서 우리 악기를 싣고 왔던 용달차로 애절하게 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때만 해도 1983년이니까 너무 급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이에 배철수는 “나무 막대기 넘어가듯 쓰러졌다”며 “원래 앰프는 다 접지시켜야 하는데 그게 안 돼 있어서 기타와 마이크 사이에 역전압이 벌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구창모는 “전기가 관통했는데 살아난 것”이라며 다시 놀라워했고, 배철수는 “의사 선생님이 ‘심장이 정말 튼튼하다’고 하셨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구창모는 “그때 KBS 플로어에 있던 PD가 정말 순발력 있게 배철수가 잡고 있던 마이크를 발로 찼다”며 PD의 빠른 판단 덕분에 더 큰 화를 면했다고 말했다.
  • 77분간 나 몰라라…‘텍사스 총격 참사’ 속 경찰의 무능

    77분간 나 몰라라…‘텍사스 총격 참사’ 속 경찰의 무능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 등 21명이 숨진 미국 텍사스주 초등학교 총격 참사 당시 경찰의 무능한 대응 영상이 공개돼 공분이 일고 있다. 지난 12일(현지시각) 뉴욕포스트 등 외신은 현지 지역 매체가 처음 입수해 공개한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도했다. 영상에는 지난 5월 24일 사건 당일 유밸디 롭 초등학교 복도의 모습이 담겼다. 총격범 샐버도어 라모스(18)는 오전 11시28분쯤 초등학교 주차장에 나타나 남성 2명에게 총을 발사한다. 이들이 달아난 뒤 한 교사는 오전 11시31분쯤 총격범이 있다고 911에 신고한다. 라모스가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 지 몇 분 만에 경찰관들은 학교에 진입했다. 그러나 경찰관들은 그와 맞서기는커녕 멈춰 서서 복도 주변을 서성거리며 느긋하게 행동했다. 라모스가 소총 한 자루를 들고 교실 복도에 들어서지만 아무도 제지하는 이는 없다. 헬멧과 조끼 등으로 중무장한 한 경찰은 벽에 부착된 손 세정제를 사용하고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여유로운 모습까지 보였다. 심지어 라모스가 2개 교실에서 총 100발을 난사하자, 경찰은 줄행랑치기도 한다. 경찰은 결국 총격 난사가 시작된 지 77분이 지나서야 무고한 아이들과 선생님이 희생된 교실로 진격해 라모스를 사살했다. 해당 영상을 공개한 매체는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편집했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의 도와달라는 외침을 듣고도 경찰관들이 이를 무시했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건으로 11살 딸을 잃은 빈센트 살라자르는 “텍사스주 공공안전부가 이 영상에 나온 상황을 말로 설명하긴 했지만 직접 본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며 “막막한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우리는 모두 경찰이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영상을 보면 그것을 재확인할 수 있다”며 “책임감 없는 사람들은 그 직업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일자 스티브 매크로 텍사스 공공안전국장은 “당시 현장 지휘관이 총기 난사 사건이 아닌 인질극으로 오판해 대응에 실패했다”며 “경찰이 몸을 사린 게 아니”라고 해명했다. 라모스가 학교 건물에 들어선 지 3분 만에 범인을 제압할 충분한 숫자의 무장 경찰이 현장에 배치됐지만 유밸디 교육구 경찰서장이 경찰의 교실 진입을 막았다는 것이다. 매크로 국장은 “당시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경찰이 오기까지) 1시간 14분 8초를 기다려야만 했다”며 경찰의 늑장 대응을 비판했다.
  • [문화마당] 모두 잘 해내겠다는 초심/최나욱 건축가·작가

    [문화마당] 모두 잘 해내겠다는 초심/최나욱 건축가·작가

    영국의 원로 건축가 토니 프레턴은 ‘친절하라’를 우선적으로 가르쳤다. 경쟁적인 건축 분야에서 인간성은 먼저 포기해도 괜찮은 것으로 여겨지지만 한사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럭비선수 같은 체구에 피눈물 없어 보이는 건축 언어를 가진 프레턴은 거장의 허례허식 대신 얄궂은 유머와 함께 친절함을 베푼다. ‘친절하라’ 또한 어느 갤러리 행사에서 어린 동양인이었던 내게 먼저 다가와 멘토를 자처하며 했던 말이다.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반년이 지난 루이비통의 전 아티스틱 디렉터 버질 아블로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 1분 1초를 절약하며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니 ‘사람은 까탈스러웠겠지’라는 추측이 앞설 수 있다. 그러나 아블로 사후 사람들은 그의 대단한 작업들에 앞서 인간성을 말했다. 얼마 전 이화여대 ECC에서 열린 디올쇼를 관장한 ‘뷰로 베탁’의 한 디자이너는 아블로와 루이비통 맨스쇼를 준비하던 일화를 이렇게 소개했다. “지나가다 말을 걸면 친구처럼 편하게 다가오고, 궁금한 걸 물어보면 자세히 모든 걸 얘기해 주려 했다”고. 그와 절친한 카니예 웨스트가 학교를 세우며 “다른 이들에게 무언가를 전해 주는 것도 중요한 프로젝트”라고 웅변했듯 인간성조차 일의 일종으로 여길 때나 가능한 것일까? 치열하고 경쟁적인 일을 하며 주변까지 챙기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능력이다. 으레 예술가는 성격이 괴팍하다는 통념이 있다. 인간적 결함이 있더라도 분야 특성상 그럴 수 있다는 양해가 당연시된다. 심지어는 사람들을 일부러 못살게 구는 예술가들도 있다. 인성과 일의 능력치가 반비례하는 몇몇 거장을 흉내내는 일차원적 퍼포먼스다. 그렇지만 일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성취를 거두는 동시에 인간적인 부분까지 챙기는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둘 살필수록 이 통념이 얼마나 허황됐는지 반성하게 된다.  이제 시작하는 창작자로서 일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조급함과 부족함이 넘쳐난다. 공적 업무와 사적 관계가 뒤섞인 일은 여간 골치가 아니다. “사람은 별로지만 일이니까”, “사람 좋아서 일을 맡겼더니” 등등 인간적 실망과 업무적 재단이 다반사다. 때로는 일련의 통념을 이유 삼아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인간적 잘못을 변명하고 합리화하기도 한다. 둘 다 잘할 수 있다는 처음의 다짐 대신 말이다.하루는 양쪽에서 실수 연발이던 내게 한 선생님께서 이런 조언을 해 주었다. “지금 하는 일이 인생에서 중요한 성취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오히려 일을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거기에서 더 중요한 성취를 발견할 수 있어요. 더 중요한 성취는 그렇게 맺어진 사람들과 이다음에 함께해 나가는 거고요.” 당장 하는 일이 급선무처럼 느껴지지만 다음의 성취가 있다는 것, 그러한 과정에서 함께 가는 사람들을 찾고 챙기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성취라는 것. 눈앞의 일에 허둥대느라 주변 사람들을 살피지 못하고, 나아가 훗날을 고려하지 못하는 것이 더 많은 것을 잃게 한다는 것. 빠른 성공담과 유아독존 일화들이 넘쳐나는 세상을 살아가며 이 이야기를 지면에 소개하고 싶었다. 프레턴이 ‘경쟁적인 분야에서 우선 가치를 고쳐 말하고’, 아블로가 ‘약자의 중요성을 더욱 존중하려는 태도’를 통해 성취해 온 가치를 점점 더 믿게 된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모두 잘 해내겠다는 초심은 잊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꿋꿋이 잘할 수 있다는 선례가 힘을 복돋운다. 이 다짐을 기억하게 해 주는 내 사람들도.
  • 英 육상스타의 고백 “9살에 인신매매…영국 끌려왔다”

    英 육상스타의 고백 “9살에 인신매매…영국 끌려왔다”

    “내 진짜 이름은 무함마드 파라가 아닌 ‘후세인 압디 카힌’입니다. 내 부모는 영국에 온 적도 없습니다. 나는 인신매매 형태로 영국으로 와서 노동 착취를 당했고, 가짜 이름과 신분으로 영국 시민권을 얻었습니다.” 올림픽에서 2회 연속 2관왕을 달성한 영국의 육상 스타 모 파라(39·영국)가 힘겹게 털어놓은 과거사다. 2012년 런던 올림픽과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5000m와 10000m를 모두 석권한 파라는 이전까지 소말리아 내전을 피해 부모님과 함께 영국에 온 난민 출신으로 알려졌었다. 그의 아버지는 소말리아 엘리트로, 영국 런던 IT 기업에 다녔다고도 했다. 그러나 파라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나의 아버지는 내가 4살 때 소말리아 내전 중 사망했다. 어머니와 형제는 소말리아 농장에 살고 있다”면서 “내 친부모는 영국에 온 적이 없으며, 나는 9세 때 처음 보는 여성에게 끌려가 비행기를 타고 영국에 왔다”고 밝혔다.납치범은 ‘무함마드 파라’라는 이름이 적힌 가짜 여행 서류를 그에게 줬다. 파라는 “‘네 이름은 파라’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며 “나는 영국에 사는 친척 집으로 가는 줄 알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납치범이 말한 영국에 사는 친척은 없었다. 파라는 “영국에 도착하자 그 여자는 ‘음식을 먹고 싶으면 일을 해야 한다’, ’네 가족을 다시 보고 싶으면,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협박했다”면서 “그 여자의 집에 머무르면서 다른 가족의 아이 돌보는 일을 강요당했다”고 고백했다. 몇 년간 학교에 가지 못했던 파라는 12세 때 처음으로 펠탐 커뮤니티 칼리지 7학년으로 등록했다.  파라는 체육 선생님 앨런 와킨슨의 도움 속에 육상을 시작했다. 협박 때문에 납치됐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던 어린 나이의 파라는 용기를 내 와킨슨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놨다. 이후 와킨슨은 사회복지국에 연락해 다른 소말리아 가정으로 입양될 수 있도록 그를 도왔다. 파라는 “여전히 제 진짜 가족이 그리웠지만, 그 순간부터는 모든 상황이 좋아졌다”고 했다. 육상을 시작한 순간부터 재능을 드러낸 파라는 14세에 라트비아에서 열리는 국제대회 초청장을 받았다. 당시까지 영국 시민권이 없었던 파라를 위해 와킨슨이 적극적으로 나섰고, ‘무함마드 파라’라는 이름으로 시민권을 얻었다. 파라는 “사기 또는 허위 진술로 영국 시민권을 획득한 자는 실제 사실이 밝혀지면 시민권을 박탈당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내 진짜 신분을 속였다”고 고백한 뒤 “여전히 자행되는 인신매매를 막기 위해 내 이야기를 털어놓기로 했다”고 밝혔다. BBC는 “파라의 경우, 어린 자신을 보호할 필요가 있었고 당시 관계 당국에 ‘모 파라는 내 이름이 아니다’라고 말한 증거도 있다”며 파라가 시민권을 박탈당할 가능성은 작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파라는 “다큐멘터리 제작진을 통해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라며 “나는 달리기를 통해 구원받았다. 참혹한 일을 겪은 다른 사람들도 구원받기를 원한다”고 바랐다.
  • [이현주의 박물관 보따리] 칠월은 포도의 계절/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

    [이현주의 박물관 보따리] 칠월은 포도의 계절/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칠월이면 떠오르는 이육사의 청포도란 시다. 시어(詩語)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꼭꼭 씹듯이 외웠었다. 시어를 입속에서 우물거리다 보면 파란 하늘, 초록 잎 그리고 연둣빛의 포도 알맹이가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7월, 유난히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여름을 맞아 전시실에는 포도 그림이 세 점 등장했다. 아, 여름과 딱 맞는 포도그림을 전시하다니. 이렇게 계절과 시절에 따라 소장 중인 유물 중 적당한 것을 골라 전시하는 것도 학예직들의 작업이다. 그날은 전시실을 가다 우연히 어느 학예관을 만났다.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더니 서화유물 교체전시를 하러 간다는 것이다. 그럼 같이 가도 될까? 물론 좋단다. 동원실 일부, 유물을 교체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림을 걸고 가로세로 균형을 맞추고 그림과 설명카드에 조명을 맞추기 위해 큰 키를 적절히 활용하는 다른 연구관의 모습까지 모두 지켜봤다. 전시실의 첫 번째 장엔 왼쪽부터 한국의 포도 그림, 중국의 포도 그림, 일본의 포도 그림을 나란히 전시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최석환(조선 19세기)의 포도다, 두 번째 중국, 세 번째 일본의 포도 그림 작자는 미상이었다. 같은 포도지만 모두 다르게 그렸는데 먹의 농담으로 그린 우리의 포도, 같은 먹색으로 단정하게 그린 중국의 포도, 색을 이쁘게 입힌 일본의 포도 그림이 모두 다 싱그러웠다. 포도는 알알이 맺힌 열매와 긴 줄기가 특징으로 다산과 번성을 상징한다. 기원전 2세기 중국의 사신 장건(張騫)이 현재 우즈베키스탄 지역에서 포도씨를 가져왔고 우리나라에는 고려 때 포도가 전래되었다고 한다. 얼마 전 출근길에 파란 머루 열매를 봤다. 머루 역시 동북아시아에 해당하는 한국, 중국, 일본 등지를 원산지로 둔 포도과의 덩굴식물이다. 머루는 작년까진 보이지 않던 곳에서 자라고 있었다. 온실 선생님들이 이번 해에 새로 심어 놓은 것일까. 알알이 맺힌 파란 작은 열매들이 반가웠다.
  • 오은영에 침 뱉고 손 깨문 금쪽이…오은영 반응은

    오은영에 침 뱉고 손 깨문 금쪽이…오은영 반응은

    초등학교 1학년(8살) 금쪽이가 오은영 박사에게 침을 뱉고 손을 깨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8일 방송된 채널A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 금쪽이의 사연이 그려졌다. 이날 학교에서 수업을 방해한 금쪽이는 탈출을 강행하는 한편 살인과 죽음 등의 단어를 입에 올렸다. 오은영 박사는 금쪽이가 ‘죽음’이란 단어를 자주 말하는 것에 대해 “만 6살이 되면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지만, 금쪽이처럼 ‘살 가치가 없으니 죽어야지’ 이런 생각을 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금쪽이 모친은 “처음에는 그냥 발달이 느린 것 같았는데 지금은 아스퍼거 증후군을 의심하고 있다”며 “기사를 보는데 아이와 증상이 같더라. 최근 상담 센터를 옮겼는데, 선생님이 걸어들어오는 모습만 보고도 아스퍼거 증후군이 의심된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후 키즈카페를 방문한 금쪽이는 먼저 놀고 있던 친구들을 쫓아내거나 친구들이 있는 쪽으로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오은영 박사는 조심스럽게 “아스퍼거 증후군이 맞는 것 같다”며 “보통 만 5~6살 때부터 또래 관계가 중요해지고, 타인을 이해한다. 그런데 금쪽이는 상대와 대화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전달한다. 사회적 관계를 이해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공개된 현장 지도 영상에서도 금쪽이는 오은영 박사의 손을 물고 소리를 지르는 등 다소 과격한 행동을 보였다. 오은영 박사는 금쪽이에게 단호한 표정으로 “앉아. 싫어도 안 되는 거야”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금쪽이는 이번엔 오은영 박사를 향해 침을 뱉었다. 그 가운데 오은영 박사는 계속해서 심각한 표정을 유지하고, 엄마는 눈치만 살피며 침묵해 긴장감을 자아냈다. 오은영 박사는 엄마에게 “분명하게 말해줘야 한다. 금쪽이가 ‘예’라고 안 할 거다. (그럼에도) 안 된다고 분명하게 말해주셔야 한다”고 거듭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금쪽이의 솔루션이 성공리에 끝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섹스리스 부부 초대한 오은영… ‘탈지상파 수위’에 공감·반감 교차 [넷만세]

    섹스리스 부부 초대한 오은영… ‘탈지상파 수위’에 공감·반감 교차 [넷만세]

    ‘국민 멘토’로 통하는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박사와 ‘섹스리스 부부’(성관계를 거의 하지 않는 부부)의 만남이 최근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MBC 예능 ‘오은영 리포트 – 결혼 지옥’의 ‘섹스리스 특집’에서 출연자들의 내밀한 부부관계에 대한 고민을 오 박사가 상담해주면서다. 지난 4일 방송된 ‘오은영 리포트’ 섹스리스 특집 2주차에는 라디오·유튜브 등의 여러 프로그램에서 ‘소(少)성욕자·왕성욕자’ 커플로 인기를 얻고 있는 결혼 7년차 전민기·정선영 부부가 출연했다. 아내 정선영은 자신들을 ‘정전커플’로 소개하며 “결혼 후 부부관계가 암흑과도 같아서”라고 설명했다. 남편 전민기는 “아예 정전은 아니고 센서등 같다”고 반박했다. ‘19세 미만 시청 불가’를 내걸고 진행된 방송에서 이들 부부는 5개월간 부부관계가 없었음을 밝혔고, 9박 10일간의 신혼여행에서도 잠자리를 갖지 않았다고 해 오 박사 및 출연진을 놀라게 했다.‘소성욕자’를 자처하는 전민기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성욕이 적다. 식욕이나 물욕도 사람마다 다르듯 (성욕이 없지는 않다)”고 주장했지만, 정선영은 “없는 것과 거의 비슷한 상황”이라며 시각차를 드러냈다. 이들은 방송을 통해 서로가 원하는 성관계 횟수와 방법 등을 얘기하고, 서로 몰랐던 자위 횟수를 털어놓으며 솔직한 대화를 통해 부부관계에 대한 고민과 갈등을 풀어가는 시간을 가졌다. 종전 지상파 예능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19금 수위의 발언이 방송 내내 이어지면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5일 ‘디시인사이드’(디씨)의 관련 글에는 1000개 넘는 댓글과 함께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그중에는 “방송이 선 넘네. 이게 공중파 방송 맞나?”, “여기가 북유럽이냐. 말세네”, “무슨 서양처럼 성 개방적이라고 코스프레 억지로 하는 것 같음” 등 지상파 방송에서 방영하기엔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있었다.그러나 대다수 반응은 출연자들의 사연에 집중됐다. 디씨 이용자들은 “40살 넘으면 당연히 섹스리스 되는 거 아니냐”, “일주일에 1회는 의무전 아닌가. 둘 다 극단적이다”, “속궁합 안 맞는 것도 이혼 사유 중 하나 아닌가”, “나도 무성욕 여자 만나고 싶다. 귀찮다” 등 부부관계에 대한 여러 이견을 내놨다. 한 이용자는 “솔직하게 서로 대화하는 게 얼마나 보기 좋냐. 성 엄숙주의는 빨리 사라져야 한다”며 19금 수위 방송을 비판하는 의견을 반박하기도 했다. 방송이 부부관계에 대한 진지한 상담보다 자극적인 면을 부각하기에 급급했다는 비판이 일부 언론에서 나오기도 했다. 한 연예매체는 “남녀관계에서 빠질 수 없는 스킨십 이야기를 거침없이 언급한 점은 신선하다”면서도 “그 수위가 선을 넘은 듯하다”고 비평했다. “몸정, 삽입, 야동 등 낯 뜨거운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며 “남의 집 이불 사정을 전 국민이 다 보는 지상파 방송에서 굳이 심층적으로 깊게 파헤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 비판의 요지다.또 다른 연애매체도 “시청 등급이 19세 이상이지만 TV로 송출되는 만큼 청소년 등 미성년자가 방송을 접할 가능성도 충분하다”며 “그런데도 케이블 방송보다도 자극적이다. 수위 조절이 필요하다고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온라인상에서는 부부관계 고민을 털어놓은 방송을 환영하는 분위기도 많았다. 온라인 커뮤니티 ‘클리앙’에는 “저 정도 이야기도 방송에서 못 하는 사회가 이상한 거다”, “이런 게 살아 있는 성교육이다. 우리 부부를 그대로 대입해 놓은 것 같아 몰입했다”, “자극적인 불륜 재연 프로그램 말고 이런 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등 반응이 많았다. 한편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채널A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 등을 통해 아동 전문가로 인기를 얻은 오 박사가 부부 상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데 대해 일각에서는 비판 목소리도 나왔다. 디씨에는 “(‘오은영 리포트’가) 오은영 선생님을 너무 막 쓰는 거 아니냐”, “예능 너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지금은 (아동 상담 외) 솔루션이 좋은지도 모르겠다” 등 반응도 있었다. 섹스리스 특집이 온라인상에서 화제를 모았지만 ‘오은영 리포트’의 2주간 시청률은 다소 하락했다. 지난달 27일과 지난 4일 방송된 섹스리스 특집 1부와 2부는 닐슨코리아 집계 전국 가구 기준 4.0%와 3.5%를 기록했다. 19금 연령 제한이 걸려 있지 않았던 직전 방송의 6.0%보다 2%포인트 넘게 하락한 수치다. [넷만세] 네티즌이 만드는 세상 ‘넷만세’. 각종 이슈와 관련한 네티즌들의 생생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담습니다.
  • 개그우먼 강유미, 결혼 3년 만에 파경…“합의 이혼”

    개그우먼 강유미, 결혼 3년 만에 파경…“합의 이혼”

    개그우먼 강유미(39)가 결혼한 지 3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7일 방송가에 따르면 강유미는 최근 남편과 합의 이혼했다. 이혼 사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강유미는 지인의 소개로 만난 비연예인 남편과 지난 2019년 8월 결혼식을 올렸다. 같은 해 5월 강유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결혼을 발표했다. 신랑의 직업, 나이, 얼굴은 공개하지 않았다. 강유미는 결혼 발표 당시 “부족한 나를 사랑해주는 고마운 사람”이라며 “웃음 코드가 잘 맞아서 만난지 얼마 안 됐을 때 ‘이 사람이다’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강유미는 2002년 KBS프라임 ‘한반도 유머 총집합’으로 데뷔했다. 2004년 KBS 19기 공채 개그맨이 된 뒤 ‘개그콘서트’에서 ‘사랑의 카운셀러’, ‘분장실의 강 선생님’ 등으로 사랑을 받았다.
  • 유희열 표절 논란…“민망한 수준” 임진모·김태원 소신 발언

    유희열 표절 논란…“민망한 수준” 임진모·김태원 소신 발언

    가수 겸 작곡가 유희열이 최근 수록곡의 유사성 논란이 불거졌던 ‘생활음악’ 프로젝트 음반 발매를 취소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과 음악평론가 임진모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앞서 유희열은 ‘생활음악’ 프로젝트의 두 번째 트랙인 ‘아주 사적인 밤’이 일본 영화 음악의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쿠아(Aqua)’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를 인정하며 한 차례 사과했다. 유희열 “무의식중에 기억” 인정 유희열은 “긴 시간 가장 영향받고 존경하는 뮤지션이기에 무의식중에 내 기억 속에 남아있던 유사한 진행 방식으로 곡을 쓰게 됐다”며 “발표 당시 순수 창작물로 생각했지만 두 곡의 유사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충분히 살피지 못하고 많은 분께 실망을 드린 것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이에 대해 사카모토 류이치는 “모든 창작물은 기존 예술에 영향을 받는다. 독창성을 5~10% 정도를 가미한다면 그것은 훌륭하고 감사할 일”이라면서 “두 곡의 유사성은 있지만, 제 작품 ‘Aqua’를 보호하기 위한 어떠한 법적 조치가 필요한 수준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유희열은 ‘생활음악’ 앨범의 LP와 음원 발매를 취소하며 사카모토 류이치가 표절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해 고마움을 전했다. 유희열은 “류이치 사카모토 선생님의 철학과 배려가 담긴 편지를 받은 후 (그를) 위대한 예술가로서, 그리고 따뜻한 사회의 어른으로서 더욱 존경하게 됐다”면서 “반면, 저 자신이 얼마나 모자란 사람인지 처절하게 깨달았다. 다시 한번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최근 불거진 논란을 보면서 여전히 부족하고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아간다. 창작 과정에서 더 깊이 있게 고민하고 면밀히 살피겠다”며 “치열하게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많은 동료 음악인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유희열은 “저와 함께 하는 젊은 아티스트들을 위해서도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보다 책임감 있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성시경·무한도전 가요제 곡도 논란 2002년 발매한 ‘Happy Birthday to You’와 1998년 발매된 타마키 코지의 동명의 노래 ‘Happy Birthday to You’도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성시경의 곡은 유희열이 작사, 작곡, 편곡을 모두 맡았다. 그런가하면 피아노 작곡가 준조는 유희열의 ‘내가 켜지는 시간’과 사카모토 류이치(모리꼬네) ‘1900’의 유사성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2013년 방송된 MBC 예능 ‘무한도전-자유로 가요제’에서 발표된 유희열의 ‘플리즈 돈트 고 마이 걸(Please Don’t Go My Girl)(Feat.김조한)’과 그룹 퍼블릭 어나운스먼트(public announcement)의 ‘보디 범핀(Body Bumpin)’의 유사성도 제기됐다.김태원 “멜로디 8마디가 똑같다” 김태원은 5일 방송된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아이러니하다. 보통 표절을 한다면 멜로디를 한두 개 바꾼다. 제가 들어본 거는 멜로디가 8마디가 똑같다. 표절하려는 의도가 보이는 거다”라고 말했다. 김태원은 “그분이 스타덤에 오래 계셨다. 옛날부터 곡들이 오르내렸다. 이게 병이라면 치료되기 전에 너무 방관한 게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이 문제가 얘기된 적이 별로 없다. 다 넘어갔다. 그런 케이스가 아닌가”라고 입장을 밝혔다. 임진모는 “유희열은 작곡을 전공하신 분이다. 이 부분에 대해 아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을 거다. 그런데 이런 사건이 터졌다는 건 객관적으로 양심과 의도를 이야기하기 민망할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납득이 안 간다. 충분히 알 사람이다. 도덕적 해이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분명히 잘 알 거다. 재차 사과했다. 메인 테마의 유사성을 인정하고 있다.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 김희철 “나이트 누나와 DVD방 데이트”

    김희철 “나이트 누나와 DVD방 데이트”

    김희철이 방송 편집당한 경험을 말했다. 5일 방송된 SBS ‘신발 벗고 돌싱포맨’에서는 김희철, 효연, 소유가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김희철은 “23살에 데뷔해서 연애 안 해봤냐고 해서 작년에 연애 해봤다고 나이트에서 만난 누나랑 DVD방도 가고 그랬다고 말했는데 방송에 하나도 안 나갔다”고 편집 당한 경험을 털어놨다. 이어 김희철은 “그 당시 아이돌이 DVD방은 말도 안 되는 말을 한 거다. 뾰로통하게 있으니까 이수만 선생님이 ‘너 왜 그러고 있니’ 그래서 저 23살이고 연애 솔직하게 말했는데 예능 나가서 가짜를 해야 하냐고 그랬다”며 이수만과 상담했다고 밝혔다. 당시 이수만은 김희철의 솔직한 말이 캐릭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김희철은 이수만과 상담 후 “‘야심만만’ 나가서 DVD방에서 ‘라이온킹’ 보다가 헤어진 이야기를 했는데 그게 방송에 나갔다”고 말했다.
  • “보훈에 좌우 갈등 없어야… 국격 걸맞게 보훈부로 꼭 승격해야죠” [진경호의 묻고, 답하다]

    “보훈에 좌우 갈등 없어야… 국격 걸맞게 보훈부로 꼭 승격해야죠” [진경호의 묻고, 답하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키워드로 공정과 상식이 꼽힌다. 그런데 호국보훈의 달인 지난 6월을 놓고 보면 ‘보훈’을 그 반열에 올려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윤 대통령은 6일 현충일 추념식 참석을 필두로 천안함과 제2연평해전 장병 및 가족 오찬(9일),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오찬(17일), 6·25 참전 국군 및 유엔군 유공자 오찬(24일) 등의 보훈 일정을 소화했다. 6·25 당일과 29일 제2연평해전 20주기엔 따로 메시지를 냈다. 윤 대통령과 별개로 부인 김건희 여사는 18일 조종사 고 심정민 소령 추모음악회에 참석했다. 이런 빼곡한 일정을 통해 발신한 메시지는 하나, “제복 입은 영웅들이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호국과 보훈에 대한 그의 의지는 사실 지난해 6월 29일 대선 출마 선언 때 드러났다. 출마 선언문 맨 앞에 ‘천안함 청년 전준영’과 ‘K9 청년 이찬호’의 분노를 끌어 담았다. “국가를 지키고 국민을 지킨 우리를 왜 국가는 내팽개치는 거냐고 이들이 묻는다”고 문재인 정부를 직격했다.윤석열 보훈 행보의 최일선에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있다. 윤 대통령의 검사 후배에다 두 차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라는 그의 스펙은 보훈가족들에겐 기대감으로, 자신에겐 부담으로 작용한다. 검사 출신 정치인이지만 베트남전에서 아버지(고 박순유 중령)를 잃은 보훈가족이기도 한 그를 지난 4일 서울지방보훈청에서 만났다.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보훈’을 그는 어떻게 구현할까. 최대의 화두는 국가보훈처의 부 승격이다. 정부조직개편을 앞두고 내부적으로 유력하게 검토되는 사안이다. 박 처장 역시 간절히 소망한다고 말한다. -취임하신 지 50여일 됐다. 소회는. “어릴 적 선생님이 원호대상자는 손을 들어 보라 했을 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주눅이 들었다.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와 6남매가 단칸방 생활을 하면서 나라의 원호를 받았는데 그게 부끄러웠다. 나라가 미안해야 할 일인데 내가 부끄러웠다. 국가유공자와 가족들이 지녀야 할 감정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긍심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자긍심을 갖고 사는 문화와 제도를 만드는 게 오랜 소명이었다. 이제 그런 나라를 만들겠다. 정부 국정과제에 보훈을 담은 건 윤석열 정부가 처음이다.” -윤 대통령이 보훈과 관련해 특별히 당부한 사항이 있나. “보훈과 국방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게 대통령의 철학이다. 현충일 추념식 등을 통해 여러 차례 강조하기도 했지만 사석에서도 많이 말한다.” 국방과 불가분이라는 보훈은 또 한편으론 국민통합과도 직결된다. 그러나 광복 이후 숱한 굽이를 돌아온 우리 현대사는 보훈이 국민통합의 기제로 작동하기보다는 외려 대립과 반목을 키우는 요인의 하나로 작동했다. 국민의힘으로 대변되는 우파 진영이 6·25 등 호국 보훈에 방점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으로 이어진 좌파 진영이 5·18 등 민주 보훈에 치중하는 현실이 이를 말해 준다. 박 처장의 고민도 이 지점에 있는 듯했다. “6일 민간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보훈자문위원회를 발족한다. 우리나라의 보훈 영역은 크게 독립, 호국, 민주 이 세 가지다. 그런데 사실 이승만 전 대통령이나 홍범도 장군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6·25, 베트남 참전, 5·18 등에 대해 서로의 생각이 다른 게 현실 아니냐. 이런 사회적 간극을 그대로 두고는 통합이 참 쉽지 않다. 그래서 자문위를 통해 각계 입장을 수렴하고 각 인물이나 사안에 대해 어떤 보훈 행정이 적절한지 최대한 공감대를 끌어내 보려 한다. 치열하게 논쟁하다 보면 접점도 찾아지리라 생각한다.”-문재인 정부의 보훈과 윤석열 정부의 보훈이 다른 듯하다. “문재인 정부 사람들은 호국에 대해 알레르기를 갖고 있는 분들이 많은 듯하다. 6·25 얘기만 나오면 ‘전쟁이 그렇게 좋으냐’, ‘군사독재 얘기하느냐’ 식의 프레임으로 공격한다. 문 전 대통령이 2018년 베트남을 방문해 우리나라의 베트남전 참전을 사과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베트남 정부가 요구한 것도 아닌데 ‘우리가 베트남 양민을 학살했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그의 이 말로 인해 당시 8년간 청춘을 바쳐 참전한 우리의 20대 장병 32만 5000명이 졸지에 학살자가 됐다. 많은 사람들이 비분강개했다.” -윤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제복 입은 영웅들이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구체적 복안은. “실용을 중시하는 미국만 해도 6·25 때 한강에 추락한 조종사 유골을 찾겠다고 수십억원을 쓰며 이역만리를 날아온다. 길에서 군인을 만나면 ‘생큐 포 유어 서비스’(Thank you for your service)라고 인사도 건네고…. 제복 근무자에게 감사하는 사회문화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데 이것이 미국이 세계 강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라 생각한다. 반면 우리는 여전히 제복에 대해 ‘군바리’, ‘짭새’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그래서 우선 미래 세대에게 ‘제복에 대한 존중’이 자연스러운 문화로 체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한다. 국가유공자들을 단체로 초청해 프로야구 관객들에게 소개하고 시구하는 행사도 가졌고 6·25 참전용사들에게 품격을 갖춘 여름 재킷을 제작해 선사한 행사도 큰 호응을 얻었다. 현충원도 엄숙한 추모 공간으로만 놔둘 게 아니라 음악회도 열면서 국민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만들 생각이다.” -정부조직개편을 앞두고 국가보훈부 승격 얘기가 나온다. “보훈 현장을 찾을 때마다 듣는 얘기가 ‘보훈부 승격 언제 되느냐’다. 미국만 해도 우리의 국가보훈처에 해당하는 ‘제대군인부’가 국방부 다음으로 큰 부처다. 새해 예산을 발표할 때도 보훈 예산부터 공개한다. 보훈부 승격은 10년도 넘은 숙원이다. 국회에 제출된 법안만도 10건이 넘는다.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으로서 제복의 영웅들을 그에 걸맞게 대우하는 품격을 갖출 때가 됐다. 보훈과 국방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구체화하고 이전 정부와 차별화하는 방안으로 보훈부 승격이 필요하다고 본다. 김형오·문희상 전 국회의장, 김황식 전 총리, 이종찬 전 국정원장 등 여야 원로들께서 많이 지지하고 있다.” -광복회 파행과 관련해 보훈처가 감사에 착수했다. “지난 2월 김원웅 전 광복회장의 국회카페 수익금 부당 사용에 대해 감사를 벌였는데 그것 말고도 회계 비위와 불공정 운영 의혹이 계속 불거져서 전면 감사를 결정했다. 개인 비리에다 자리다툼 같은 구태로 인해 상징적인 보훈단체의 위상을 잃었다. 대대적인 개혁이 불가피하다. 국고보조금 운영 실태를 살펴 예산 삭감 등의 페널티를 부여하고 정관과 선거 규정도 정비하겠다.”  ■박민식 보훈처장은베트남전서 아버지 잃은 보훈 가족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외교부 사무관 3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수석 등 검사 11년, 변호사 5년, 국회의원 8년…. 화려한 스펙이 ‘금수저’를 떠올리게 한다. 한데 일곱 살에 아버지(고 박순유 중령)가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뒤로 홀어머니와 6남매가 부산 구포시장 근처 단칸방에서 살았던 유년 시절을 보면 영락없는 ‘흙수저’다. 검사 시절엔 국가정보원 도청 사건 주임검사로 신건·임동원 전 국정원장 등을 직접 조사하며 ‘불도저 검사’로 불렸다고 한다. 같은 검사지만 정작 윤석열 대통령과는 2006년 9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수석검사로 있다 그만둘 때에야 연을 맺었다. 사법연수원 2기수 선배로, 함께 일한 적은 없던 윤 대통령이 갑자기 자신을 불러내 사직을 만류했고 박 처장은 그의 이런 모습이 “인간적으로 아주 고맙게 느껴졌다”고 회고했다. 이 인연은 7년 뒤인 2013년으로 이어진다. 검찰의 국정원 댓글 의혹 수사와 관련해 여주지청장으로 있던 윤석열이 항명 파동을 일으켜 여당인 새누리당의 표적이 됐을 때 새누리당 소속의 재선 의원이던 박 처장이 페이스북 글을 통해 “윤석열은 제가 아는 한 최고의 검사다. 소영웅주의자로 몰지 말라”고 옹호하고 나섰던 것. 윤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 직전인 6월 6일 현충일에 전화로 박 처장을 찾아 “도와 달라”고 청했고, 박 처장은 그 뒤로 경선캠프 기획실장, 후보 정무특보 등의 직함으로 그를 도왔다. ▲부산(57) ▲외무부 국제경제국 사무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수석검사 ▲제18·19대 국회의원(부산 북구·강서구갑, 한나라당·새누리당) ▲최동원기념사업회 이사장 ▲법무법인 에이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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