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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경세·문장 모두 탁월… 임진왜란 위기 헤쳐나간 명재상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경세·문장 모두 탁월… 임진왜란 위기 헤쳐나간 명재상

    낙동강 물줄기가 태극 모양으로 감싸고 돌며 수려한 긴 모래사장을 형성한 마을, 고색창연한 한옥과 전망 좋은 정자가 즐비한 마을, 산세가 험하지 않고 그늘이 없이 밝은 마을, 바로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이다. 조선 명재상으로 꼽히는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1542~1607)을 배출한 곳이다.#이름을 짓기 어려운 큰 그릇 조선 중기 4대 문장가로 꼽히는 상촌 신흠은 서애를 수행했을 때 기억을 이렇게 술회했다. “공은 내가 글씨를 빨리 쓴다는 이유로 반드시 나에게 붓을 잡으라고 명하고 입으로 불러주어 문장을 이루게 하였다. 줄줄이 이어지는 문서나 편지를 비바람 몰아치듯 신속히 지었는데, 붓이 멈추지 않고 문장에 점 하나 더하지 않았어도 찬란하게 격을 이루었다. 중국에 보내는 외교문서까지도 또한 그렇게 하였다.” 우리가 이름 정도는 들어보았을 선현 중에는 경세에 능했던 인물도 있었고, 문장에 능했던 인물도 있었고, 학문에 능했던 인물도 있었다. 그러나 한 인물이 두 가지 이상의 분야에서 커다란 능력을 드러낸 경우는 많지 않았다. 문장이나 학문에 능한 사람은 경세나 행정에 어둡고, 경세에 밝은 사람은 문장이나 학문이 얕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서애는 그런 상식에서 예외적인 인물이다. 영의정, 도체찰사(都體察使)로서 위기에 빠진 조선을 구하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경세가이자 ‘맹자’의 문체를 체득한 이름난 문장가였다. 주자학에 깊은 조예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당시 학자들이 이단시하던 육상산과 왕양명의 학설에까지 관심의 범주를 넓혔던 학자이자 병법에 밝은 실무형 이론가이기도 했다.#퇴계 수제자… 병법에도 밝은 실무형 이론가 퇴계 이황의 수제자를 꼽을 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서애다. 21세 되던 해에 처음으로 퇴계의 문하에 들어 ‘근사록’(近思錄) 등 성리서를 배웠는데, 퇴계는 그를 만나 보고 나서 하늘이 낸 인재라고 찬탄했다 한다. 퇴계의 예언대로 서애는 임진왜란 당시 국가가 위난에 빠졌을 때 크게 공을 세웠다. “임금께서 한 발자국이라도 이 땅을 벗어나시면 조선은 더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게 됩니다.” 두려움에 떨던 선조는 여차하면 중국으로 넘어갈 요량으로 국경과 가까운 곳으로 피란하려 했다. 조정의 일부 신하들도 이에 동조하였지만 서애는 극구 반대해 자칫 걷잡을 수 없이 번질 민심의 동요를 잠재웠다. 선조가 장수로 삼을 만한 인재를 천거하라고 했을 때는 지방 수령으로 있던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해 일방적으로 밀리던 전세를 역전시키게 만들었다. 소극적이던 명나라 원군을 설득해 끝까지 왜적을 몰아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명나라의 신병법인 기효신서법을 배워 군사들을 조련했고 훈련도감을 설치해 군사력 향상의 기틀을 마련했다. 당파에 따라 서애의 활약상에 대해 다른 평가를 하기도 하지만 이 몇 가지 사실만 가지고도 그의 탁월한 안목과 기여도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사상의 정수가 담긴 잡저 서애의 문집은 가장 먼저 ‘잡저’(雜著) 부분을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서애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글들을 모아 놓은 곳이기 때문이다. 잡저는 송(宋)나라 역사를 읽으면서 당대에 귀감이 될 만한 사건들에 대한 평설(評說)을 기록한 ‘독사여측’(讀史測) 등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정주학(程朱學) 계통의 이론을 담은 ‘주재설’(主宰說) 등과 양명학을 비판하는 ‘왕양명이양지위학’(王陽明以良知爲學) 등은 서애의 학문적 사상을 논할 때 필수적으로 인용되는 글들이다. 일견 여타의 정주학자들과 비슷한 견해를 보이지만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을 읽어 보면 양명의 주장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을 은연중 보여 주기도 한다. “왕씨의 의도를 잘 살펴보면, 대개 당시 세상의 학문이 외면적인 것으로만 치닫는 것을 경계한 것이었다. 그래서 한결같이 본심(本心)을 위주로 하여, 무릇 마음을 써서 강구하는 행위를 모두 행(行)이라고 여겼던 것이니, 이는 굽은 것을 바로잡으려다가 너무 지나치게 곧게 된 경우이다.” #벼슬을 버리고 은거를 결심하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국정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서애는 부단히도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청했다. 그러나 선조는 계속해서 윤허하지 않았다. “의리상으로는 비록 임금과 신하였으나 정으로 볼 때에는 친구 사이와 같았다. 나만큼 경을 잘 아는 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 당인들은 집요하게 그를 공박했다. 마침내 그가 57세이던 1598년에 파직돼 고향으로 돌아갔다. 한때 관작을 삭탈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애초에 벼슬에 초연했던 서애로서는 이런 일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쟁의 참상을 기록하고 전란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유비무환의 교훈을 담은 ‘징비록’(懲毖錄)을 저술했다. 임진왜란과 관련된 다양한 사실을 담고 있어 숙종 연간에 이미 일본에서 입수해 출판하기도 했다. 이후로 다시는 임금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지만, 나라를 향한 서애의 충정은 죽는 날까지 식지 않았다. “나라 위한 마음은 늙어서도 그대로라 세모(歲暮)에 빈산에서 비장하게 읊조리네 노년이라 매사에 감회가 일어나니 무단히 눈물이 홀연 옷깃을 적시네.” #사관(史官)도 놀란 조문 행렬 대신이 세상을 떠나면 사흘 동안 조정은 공무를 중지하고 시장은 문을 닫는 것이 전례였다. 서애가 고향 풍산에서 세상을 떠났을 때도 그랬는데, 시장 상인들은 애도의 뜻으로 하루 더 문을 닫았다.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선조실록 사관의 평이 흥미롭다. 1000여명이나 되는 조문객이 한때 서애가 살았던 묵사동 빈집에 모여 조곡(弔哭)을 하였던 일을 전례가 드문 일이라고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 인물이 조정에서 발자취가 끊어졌고 상(喪)이 천리 밖에서 났는데도 온 성안 사람들이 빈집을 찾아 모여서 곡을 하였으니, 아마도 시사(時事)가 날로 잘못되어 가고 민생이 날로 피폐해지는데도 후임으로 수상(首相)이 된 자들이 모두 전 사람만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추억하기에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의 백성 역시 불쌍하다.” 선조실록은 북인이 중심이 돼 기술했기 때문에 서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내용이 많았던 것을 고려하면 당시 사람들이 서애를 얼마나 높이 평가했는지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권경열 한국고전번역원 성과평가실장■ ‘서애집’은 서애집(西厓集)은 조선 선조 조의 명재상이었던 류성룡의 시문집이다. 원집(原集) 20권 10책, 별집(別集) 4권 2책, 연보(年譜) 3권 2책 등 총 27권 14책으로 구성됐다. 인조 11년(1633년) 봄에 합천 해인사에서 원집과 별집을 합쳐 초간했다. 고종 31년(1894년) 가을에 하회의 옥연정사에서 연보를 추가 중간했다. 한국고전번역원의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에서 1982년에 번역, 출간했다. 류성룡의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 도봉, 에너지 절약 으뜸구…상반기 에코마일리지 우수 단체 9개 선정

    도봉, 에너지 절약 으뜸구…상반기 에코마일리지 우수 단체 9개 선정

    서울 도봉구는 지역 내 9개 단체가 ‘2018 상반기 에코마일리지 우수 단체’로 선정됐다고 10일 밝혔다. 서울시는 에코마일리지 가입 단체 중 에너지 절약 실천사례 등을 비교해 우수 단체를 선정한다. 도봉구 관계자는 “도봉구는 25개 서울 자치구 가운데 가장 많은 9개 단체가 우수 단체로 선정돼 서울시에서 가장 에너지 절약에 앞장서는 자치구임을 증명했다”며 “특히 도봉구는 2013년부터 서울시의 에코마일리지 평가에서 6년 연속 수상이라는 영예도 함께 안게 됐다”고 설명했다.이에 구는 지난 9일 9개 에코마일리지 우수 단체에 대한 감사장 수여식을 진행했다. 우수 단체들은 최근 2년간 같은 기간(이전해 9월부터 당해 2월까지 6개월) 동안 평균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10% 이상을 감축한 곳들이다. 우수 단체에는 에너지 사용 규모별로 인센티브를 준다. 인센티브의 80%는 에너지 절약을 위한 시설개선비 등에 재투자된다. 도봉구는 9개 우수단체에 모두 520여만원의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우리가 빌려 쓰고 있는 지구를 건강히 지키고 보존하기 위한 에너지 절약에 적극적으로 앞장서준 주민과 사업장에 감사를 전한다”며 “앞으로도 민관이 함께 지속가능한 환경·에너지 정책을 만들어 나가고 실천해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관화미심… 연꽃 보고 있자니 마음도 고와진다

    관화미심… 연꽃 보고 있자니 마음도 고와진다

    짧은 장마가 지나가더니 햇볕의 기세가 맹렬합니다. 한증막에 들어선 듯 숨이 턱턱 막혀 이곳이 한국인지 동남아인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무더위에도 제 일에 열심인 꽃이 있습니다. 계절을 아랑곳하지 않고 꽃잎을 틔우는 일에 열중하는 꽃, 연꽃입니다. 연꽃의 고고한 자태와 고운 색을 보노라면 여름이 연꽃의 계절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경기 양평의 세미원에는 지금 연꽃이 한창입니다. 연과 연 사이를 거닐며 연향에 취해도 보고, 넘실거리는 연꽃 바다에 무시로 감탄도 합니다. 이곳은 정말, 연꽃이 한창입니다.수십 가지 연꽃이 활짝… 19일까지 연꽃문화제 ‘관수세심(觀水洗心) 관화미심(觀花美心)’이라 했다. ‘장자’의 말로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는 뜻이다. 세미원이라는 이름은 이 문구에서 따왔다. 세미원은 물과 어우러진 연꽃 정원이다. 6월 중순부터 8월까지 홍련과 백련을 포함해 수십 가지 연꽃이 피는 만큼 여름에 찾는 이가 가장 많다. 세미원 연꽃문화제가 열리는 19일까지는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 문 여는 시간을 연장한다. 세미원이 처음부터 연밭이었던 건 아니다. 연밭 부지는 15년 전만 해도 상류에서 떠내려온 쓰레기들로 가득했다. 상수원 보호구역이라고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두른 철망이 오히려 독이 됐다. 철망에 쓰레기가 걸리며 수질은 더욱 악화됐다. 주민들과 환경단체는 힘을 합쳐 수질 정화 능력이 뛰어난 연을 심기 시작했다. 여기에 경기도의 지원을 받아 2004년, 세미원이 문을 열었다.백자 청아함 닮은 백련지… 한복 차려입은 듯 홍련지 여기도 연꽃, 저기도 연꽃. 어느 곳을 보아도 연꽃이다. 여름 바람이 일렁이자 연꽃들이 일제히 춤을 춘다. 연꽃의 파도가 밀려온다. 세미원에서 연꽃을 볼 수 있는 곳은 크게 세 곳. 홍련지, 백련지, 페리기념연못이다. 홍련지의 붉은 연꽃은 끄트머리로 갈수록 색이 붉어진다. 하얀 듯 불그스름하고 불그스름한 듯 하얗다. 안내판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모습’ 같다는 설명이 있다. 말 그대로다. 홍련은 연지 곤지 찍고 분홍빛 한복으로 단장한 여인을 닮았다. 바라볼수록 우아한 자태요, 뜯어볼수록 오묘한 색이다. 5000㎡ 연못에는 움푹 들어간 나무 데크 두 개가 있어 사진을 찍기 좋다. 이른 아침부터 대포 같은 카메라를 든 사람들도 여럿이다. 백련지의 흰 연꽃은 백자의 청아함을 닮았다. 백련지 가운데에는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 일심교가 놓여 있다. 돌다리는 두 사람이 동시에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폭이 좁다. 딴생각에 빠지지 말고 지금 내딛는 한 발에 집중하라는 의미일 터. 연잎이 워낙 크다 보니 다리를 건널 때 어쩔 수 없이 연잎을 스치게 된다. 바다의 물살을 가르듯 연잎의 바다를 헤치고 나아가는 기분이 근사하다.연꽃 단지 중 유독 사람이 몰린 곳, 세계적인 연꽃 연구가 페리 슬로컴 박사의 이름을 딴 페리기념연못이다. 이곳의 연은 페리 박사가 손수 개발해 세미원에 기증한 것들이란다. ‘미세스 페리 디 슬로컴’, ‘더 퀸’이라는 이름의 연꽃들은 화려한 외양을 뽐낸다. 연보다는 새색시의 부케 같다. 뭉게구름처럼 뽀얀 미색의 꽃잎이 겹겹이다. 그 모습이 어찌나 탐스러운지 카메라를 든 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연못 앞에는 기와지붕을 올린 정자가 있다.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이들의 표정이 평온하다. ‘관화미심’, 연꽃을 보고 저도 모르게 마음이 고와진 탓일 게다. 연꽃만큼 정원의 면면도 어여쁘다. 냇가에 놓은 돌다리 길, 한강 물이 솟아오르는 장독대 분수, 탁족할 수 있는 세족대, 돌 빨래판으로 만든 산책길 세심로, 모네의 그림 ‘수련’을 재현한 사랑의 연못, 나룻배 52척을 연결하고 위에 목판을 얹은 배다리 등 각 구역이 짜임새 있다. 그중 세족대와 세심로는 직접 발을 담그고 걸어 볼 가치가 있다. 더운 날씨에 연꽃을 보겠다고 이리저리 발품을 팔았다면 세족대는 더위를 떨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세족대에는 탁족을 하며 몸과 마음을 씻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발을 씻으며 마음도 가다듬었던 옛 선비들처럼 말이다. ‘관수세심’(觀水洗心)에 걸맞은 공간이다. 세족대 물에 5분만 발 담가도 정수리까지 시원 세족대 물에 발을 담그면 ‘악’ 소리가 난다. 햇볕이 뜨거워도 물은 한겨울 얼음장처럼 차갑다. 5분만 발을 담가도 더워진 정수리까지 시원해진다. 깨끗함은 연꽃의 속성이다.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오물에서 피어도 향기가 그윽하다. 세심로는 빨래판에 옷을 빨 듯 길을 걸으며 마음의 때를 씻어내라 한다. 빨래판 모양의 길을 걷는다고 때 묻은 마음이 금세 깨끗해지지는 않겠지만, 연꽃과 나란히 걸으며 발걸음 하나하나에 집중해 본다. 어젯밤 든 부정적인 생각, 그 전날 내뱉은 가시 돋친 말을 빨래판 길에 툭툭 털어 본다. 맑은 꽃을 닮고 싶다는 마음을 품어 본다. 세미원의 화두, ‘관수세심 관화미심’을 행하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연꽃을 보고 사진을 남기는 것이 아니던가. 세미원은 한낮보다는 이른 아침에 가는 편이 낫다. 연 꽃봉오리가 아침에 열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이 적기 때문이다. 햇빛을 가릴 모자나 양산은 필수다. 글 이수린 유니에스 여행작가·사진 장명확 작가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영원한 ‘별들의 고향’… 경성의 낭만을 소환하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영원한 ‘별들의 고향’… 경성의 낭만을 소환하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3회 극장순례(영화의 고향) 편이 지난 4일 서울 종로와 충무로 일대에서 진행됐다. 여름 야행 두 번째 행사를 맞아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답사단 일행 30여명은 모자와 부채, 손풍선 등으로 완전 무장했지만 쏟아지는 폭염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안전사고를 막고자 도보 코스를 줄이고, 서울신문사에서 때마침 제공한 ‘아이스 쿨 스카프’에 의지해 답사를 마쳤다. 참가자들은 이날 오후 6시 지하철 종각역 3번 출구 앞 종로타워빌딩(옛 화신백화점) 앞에서 집결, 우미관 옛터~인사동 조선극장 옛 터~허리우드극장~단성사 옛터~서울극장~충무로 영상센터 순으로 2시간짜리 극장순례를 다녀왔다. 서울극장에서 충무로 영상센터까지는 지하철로 이동했다. 지난해와 올해를 통틀어 답사 중 첫 대중교통 이용사례다. 해설을 맡은 심흥식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흘러간 추억의 영화는 물론 자신이 경험한 70~80년대 영화의 주제가를 직접 부르면서 영화와 극장 분위기를 전달해 공감과 호평을 얻었다.서울은 극장의 도시이다. 한국영화의 고향이기도 하다. 근대화의 산물이자 대중문화의 상징인 영화는 일제강점기의 수도 경성에서 화려하게 꽃피었다. 1920년대 전후 ‘문화로써 생활의 중심으로 삼는 사상’ 즉 문화주의와 문화운동이 전개되었고, 그 중심에 영화가 있었다. 일제의 통치방식이 ‘무단통치’에서 ‘문화정치’로 색깔을 바꾼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일제의 문화정치는 진정한 의미의 문화주의 정치가 아니라 식민지의 ‘문명개화’(文明開化) 혹은 ‘문치교화’(文治敎化)의 흉내에 불과했지만 500년 봉건왕조의 지배에서 막 깨어난 대중을 유혹하기엔 충분했다. 영화로 대표되는 서울의 대중문화는 양반 선비문화, 고급 엘리트문화에 대항한 문화적 민주주의의 시발점이었다.1930년대 접어들면서 신파극, 뽕짝가요, 영화 등 3대 장르가 주도하는 ‘조선식 대중문화’가 경성에서 폭발했다. 근대화와 식민지 정서가 뒤섞인 독특한 문화양식이었다. 당대 경성의 신인류를 지칭하는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낭만주의적 퇴행성을 대표하는 식민지 근대성의 표식이라면, ‘장한몽’(이수일과 심순애),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홍도야 울지 마라) 같은 신파극은 이율배반적 비극미의 표출이었다. 3대 장르에서 짜내는 부조리한 눈물은 대중에게 위안을 제공했다. 체제 순응이라는 자학적 죄의식을 외면하는 핑곗거리를 제공했다. 대중문화는 정치 이데올로기 전파의 수단으로 사용됐다. 특히 영화(Screen)는 성(Sex), 스포츠(Sports)와 함께 ‘3S’의 대명사였다. 1919년 제작돼 한국영화의 기원으로 간주하는 ‘의리적 구토’는 과도기 성격의 영화이다. 연극 무대에서 구현이 어려운 장면이나 풍경을 활동사진으로 찍어서 중간에 끼워 보여주는 연쇄극이었다. 단성사 사장 박승필은 명월관, 청량리, 홍릉, 장충단, 한강철교 등 경성의 명소를 찍어 단성사에서 공연하는 연극의 중간에 삽입했다. 한국영화의 전성기는 1926년 나운규의 ‘아리랑’과 함께 막을 올렸고, 1937년 나운규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렸다. 최초의 무성영화이자 흥행 대작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암울한 현실과 대중의 민족 정서를 반영한 이 영화는 상영 첫해에 110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아리랑이라는 걸출한 영화 한 편이 영화를 대중문화의 간판산업으로 밀어 올렸다. 1935년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이 히트를 한 이후 1938년 경성 시내에서 영화와 연극관객이 하루 평균 1만명에 이르렀고, 1942년에는 연인원 2000만명이 영화와 연극을 관람했다고 한다. ‘영화 경성시대’였다.한국영화는 1950~60년대 르네상스를 맞았다. 1955년 한형모 감독의 ‘자유부인’은 정비석이 서울신문에 연재한 동명 소설을 영화화해 영화 부흥의 기틀을 마련했다. 교수 부인의 바람은 전통적 가부장제를 밑바닥에서 흔드는 발칙한 소재였다. 1961년 한국영화사상 최대의 문제작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을 시작으로 신상옥, 김기영 감독의 작품이 뒤이었다. 1970년대 유신 시절 침체기에 접어든 한국영화는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 등 호스티스 영화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사회성 짙은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 등으로 되살아났다.극장은 신파극, 뽕짝가요, 영화 등 오락문화를 쓸어 담는 그릇이었다. 본래 연극 공연장이던 극장은 무용·음악·예능 등 무대예술 공연장으로 영역이 확대됐다. 19세기 말 영화의 발명 이후 극장과 영화관이 구별됐다. 무대와 조명을 갖춘 국내 최초의 실내극장은 1902년 서대문밖에 세워진 협률사였다. 로마 원형극장을 본뜬 협률사가 최초의 관립극장이자 서양식 극장이었다면 1908년 신문로에 설립된 이인직의 원각사는 최초의 사설극장이었다. 활동사진 상설극장으로 가장 먼저 개관한 곳은 1910년 종로구 관철동 경성고등연예관이다.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뀐 뒤 1915년 수용인원 1000명 규모의 상설영화관 우미관으로 거듭났다. 판소리와 창극을 공연하던 단성사는 1918년 활동사진 전용관이 되기 전까지 경성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유일한 극장이었다. 무성영화 시절 유명한 변사는 대부분 우미관 출신이었다. 찰리 채플린이 제작·감독·각본·주연을 맡은 무성영화 ‘황금광시대’도 우미관에서 상영했다. 우미관은 단순한 극장이라기보다 종로상권을 넘보는 청계천 이남 남촌에 근거지를 둔 일본 야쿠자의 북촌 진출을 막는 방어선이었다. 종로 주먹 김두한의 사무실이 우미관에 있었다. 영화 ‘장군의 아들’, 드라마 ‘야인시대’의 주 무대이다. 종로2가 길가 화단에 표석이 남아 있다. 답사단이 찾은 종로타워 뒷골목 우미관은 1959년 관철동 우미관이 불타 없어진 뒤 화신백화점 뒤로 옮긴 곳이다. 이전 후에는 이류 재개봉관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1982년 폐업, 지금은 우미관 주차장이 됐다. 1907년에 개업한 단성사는 1919년 ‘의리적 구토’를 시작으로 ‘장화홍련전’과 ‘아리랑’을 상영하면서 장안의 영화 중심가로 떠올랐다. 이후 ‘서편제’ ‘태백산맥’ ‘장군의 아들’ 등을 개봉했다. 1913년 황금연예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한 국도극장은 일본인 거주지역인 을지로를 대표하는 극장 황금좌로 운영되다가 1948년 개칭했다. 지금은 국도호텔로 변신했다. ‘미워도 다시 한번’ ‘별들의 고향’ ‘겨울여자’를 각각 개봉했다. 1922년에 건립된 인사동의 터줏대감 조선극장은 영화상영과 판소리, 가무곡 공연 겸용관이었다. 김기진 등이 신파극에 대항해 근대 신극운동을 펼친 토월회의 창립공연을 비롯해 명창대회가 열린 유서 깊은 장소이다. 1936년 방화로 소실된 뒤 이런저런 장소로 떠돌다가 포장마차 골목으로 쓰이고 있다. 뒷면 대나무 숲 앞에 조선극장 터 표석이 서 있었으나 훼손돼 사라졌다. 황금좌, 우미관, 단성사, 조선극장이 경성의 4대 극장으로 군림했다. 1935년 설립된 연극전용 동양극장은 1976년 폐관될 때까지 서대문을 대중연극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서울의 문학1(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일시: 8월11일 토요일 오후 6~8시 ●집결장소: 청계광장(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5번 출구, 1.2호선 시청역 4번 출구)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 6년간 6000억 투입 국가산단… 영주, 베어링 대표도시로 뜬다

    6년간 6000억 투입 국가산단… 영주, 베어링 대표도시로 뜬다

    ‘선비의 고장’ 경북 영주시가 머지않아 대한민국 대표 베어링 도시로 우뚝 설 전망이다. 영주시는 31일 “민선 7기 출범과 함께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 과제이자 경북 지역 공약 사업으로 선정된 ‘영주 첨단베어링 클러스터’ 조성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고 밝혔다.시의 첨단베어링 클러스터 조성 사업은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조성, 첨단베어링 제조 기반 구축 및 제조기술 연구개발(R&D) 등 2개 분야로 나뉜다. 올해부터 2024년까지 모두 6000억원(국비 4990억원, 지방비 250억원, 민자 760억원)이 투입된다. 영주 지역 산업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꿔 놓을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다.우선 시는 영주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조성 사업이 문 정부의 전국 7개 국가산업단지(세종 첨단부품 신소재, 강원 원주 첨단의료기기, 충북 청주 바이오, 충북 충주 정밀의료, 충남 논산 국방, 전남 나주 에너지) 조성 공약 가운데 우선순위에 선정되도록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이 후보지들을 대상으로 서면평가, 현장실사, 종합평가를 한 뒤 8월 말에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영주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는 국토부와 경북도, 영주시가 2022년까지 5년간 국비 2500억원을 투입해 영주시 장수면 일대 130만㎡에 조성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조성은 베어링만을 위한 최초의 정부 지원 정책으로 주목을 받는다.장욱현 영주시장과 최교일(영주·예천·문경) 국회의원, 김진영 영주첨단베어링클러스터 조성 시민추진위원장은 지난 6월 26일 국토부를 방문, 김현미 장관에게 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조기 조성을 위한 시민 서명부와 건의문을 전달하는 것을 시작으로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시민추진위가 올 들어 벌여 온 서명운동에는 영주 인구의 3분의1이 넘는 4만 2000여명이 참여했다. 건의문에는 “정부 100대 국정 과제 지역 공약에 선정된 ‘영주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조성 사업이 국가 산업경쟁력 강화와 국가 균형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다. 경북도청이 이전한 북부 지역 11개 시·군에 중·대형 산업단지가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경북 북부 지역 발전의 희망이 될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유치를 11만 영주시민들의 염원을 담아 건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어 7월 5, 6일에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함께 국내 베어링 관련 기업체, 연구기관, 대학 등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첨단베어링산업 발전전략 워크숍을 열었다. 참석자들은 영주 첨단베어링산업 클러스터 조성 사업 조기 추진을 위해 고부가가치 첨단베어링 제조 기술 개발, 상용화 기반 구축 등에 상호 협력하기로 뜻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영주 첨단베어링 클러스터 조성 사업이 베어링 국가산업 발전계획과 부합하는 점, 영주가 국내 베어링 산업 선도 도시로 주목받는 점, 중앙고속도로와 철도(중앙선, 영동선, 경부선)가 지나고 중부권 동서횡단철도가 추진되는 교통 요충지임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영주가 투자하기 좋은 도시라는 점도 널리 알리고 있다. 행정안전부와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228개 지방자치단체와 8700개 지역 기업을 대상으로 한 지자체 기업 만족도 조사에서 영주시는 기업 유치 지원, 공장 설립 산업단지 등 6개 분야에서 최고 등급인 S등급을 받았고 창업지원·지역산업 육성 등 4개 분야에서 A등급을 받았다. 시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하는 첨단베어링 제조 기술 개발 및 상용화 사업 등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현재 이 사업들은 타당성 용역이 진행 중이며 11월 경북도가 산업부에 예비 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으로 신청할 예정이다. 시는 우선 다음달 장수면 갈산리 갈산일반산업단지 내에 국내 처음으로 하이테크 베어링시험평가센터를 완공한다. 모두 270억원이 투입돼 부지 1만㎡에 연건평 3000㎡ 규모로 지었다. 9월 문을 열고 국제 규격에 맞는 국내 기업 제품의 성능과 기능 확보를 위해 소재에서 완제품까지 단계별로 8개 항목의 시험평가와 기술을 지원하게 된다. 시는 이에 맞춰 베어링 관련 기업, 대학, 연구소 유치에 나서고 있다. 영주의 첨단 베어링 클러스터 사업이 본격 추진되면 첨단베어링 제조 기반 구축사업과 제조기술 R&D 사업, 알루미늄 융복합부품 양산화 플랫폼 구축사업, 국가산업단지 조성이 추진된다. 1000억원이 투입되는 첨단베어링 제조 기반 구축사업에서는 베어링제조기술센터 건립과 베어링 시제품 제작, 제조용 장비 구축, 베어링 공동설계 가공기술 개발, 전문인력 양성사업이 추진된다. 2300억원이 투입되는 첨단베어링 제조기술 R&D 사업으로는 베어링 핵심 원천기술 확보형 기술 개발, 주력산업 고부가가치 기술 개발, 주력산업 고부가가치 창출형 기술 개발, 제조기술 역량강화 기술 개발 등이 추진된다. 또 200억원을 들여 베어링 전문 인력 양성을 지원한다. 이와 함께 2500억원이 투입되는 국가산업단지 조성 사업이 추진돼 베어링 핵심 기업 및 연구기관 유치가 활발해진다. 첨단 베어링산업 클러스터가 조성되면 전국에 분산된 베어링 생산기업과 협력기업 연구소, 물류센터, 베어링 관련 정보와 지식 등이 밀집돼 핵심부품산업의 거점 역할을 수행할 뿐 아니라 100여개의 기업 유치와 1만 5000여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기대된다. 특히 세계 10위 수준인 국내 베어링 산업이 세계 5대 베어링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전망이다. 또 현재 5조 4000억원인 매출액이 2024년까지 10조원으로 크게 신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적으로 베어링 분야에서 기술력을 갖춘 국가는 일본·중국·미국·유럽 등이다. 현재 우리나라 베어링 분야는 선진국 기술을 단순히 모방해 제품을 생산하는 수준으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국가 차원의 R&D 지원 체계를 갖추는 게 급선무다.베어링은 현대산업에서 반도체만큼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초정밀·초고속·고내구성 기술이 집약된 첨단기술로 꼽힌다. 항공, 우주, 정밀공작기계 등 최첨단 산업 분야에 베어링 제품이 활용돼 향후 첨단산업의 주도권을 판가름할 중요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산업의 쌀’로 불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이미 베어링산업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이 활발하다. 베어링은 회전하는 기계의 축을 일정한 위치에 고정시켜 축의 자중과 축에 걸리는 하중을 지지하며 축을 회전시키고 물체와의 마찰과 소음을 줄여 주는 역할을 한다. 베어링의 대표 산업은 자동차 분야로 베어링의 50%가 자동차와 관련돼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주시는 국내 베어링 산업을 주도하고 신산업 선점을 위해 일찌감치 나섰다. 2011년 세계적 자동차 부품 기업인 일진그룹 계열의 ㈜베어링아트(종업원 810명, 연간 매출액 3100억원)를 장수면 일대에 유치하고 관련 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 지원을 건의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쏟아 왔다. 장 시장은 “영주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조성은 국내 베어링 관련 산·학·연의 집적화로 베어링 산업의 일대 도약과 국가 경쟁력 확보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낙후된 경북 북부권 및 접경(충북 단양, 강원 영월 등) 지역 개발을 통한 국가 균형개발에도 크게 기여할 사업”이라며 “이런 성과를 얻기 위해 영주가 우선 사업 대상지로 선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영주 첨단베어링 산업이 우리나라 신성장 동력 산업이 되도록 육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영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순천 낙안읍성, ‘팔진미 비빔밥’ 레시피 전수

    순천 낙안읍성, ‘팔진미 비빔밥’ 레시피 전수

    “낙안읍성 팔진미를 아시나요” 전남 순천시가 31일 낙안읍성에서 ‘팔진미 비빔밥’ 대중화를 위해 관내 20개 업소를 대상으로 레시피 전수 교육을 가졌다. ‘낙안읍성 팔진미’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낙안읍성을 방문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에게 마을 주민들이 읍성 주변에서 나는 8가지 재료를 이용해 음식을 만들어 대접한데서 유래가 됐다. 팔진미 재료는 금전산 석이버섯, 백이산 고사리, 오봉산 도라지, 제석산 더덕, 남내리 미나리가 들어간다. 추가로 성북리 무, 서내리 녹두묵, 용추천어(불재 용소의 맑은 민물에서 자라는 물고기) 등 8가지를 말한다. 팔진미는 그동안 구전으로만 전해 오다가 2016년 전문가의 연구와 고증을 거쳐 현대인의 취향에 맞도록 팔진미 비빔밥, 선비밥상 등의 메뉴로 개발됐다. 팔진미 식당 비빔밥을 맛본 관람객들은 “조선시대 양반집에서 대접 받은 느낌이 들었다”며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다”고 소감을 보였다. 시는 여덟 가지 음식의 진귀한 맛이라는 뜻을 품고 있는 팔진미를 관내 희망업소가 신청 할 경우 계속해서 요리법을 가르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낙안읍성 대표 음식으로 정착시켜 또다른 관광상품이 될 수 있도록 노력 하겠다”고 밝혔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이색, 여말선초 학계·문학계 ‘태두’… 조선 문학 태동시킨 문인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이색, 여말선초 학계·문학계 ‘태두’… 조선 문학 태동시킨 문인

    “내 학맥이 해외로 전해질 줄 누가 알았으랴?” 규재 선생 그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건만 근래 들어 다른 물건은 값이 모두 뛰어도 내 글만은 제값 한번 받지 못하누나. -‘목은집’ 시고 13권, ‘일을 기록하다’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이 세상을 향해 푸념을 늘어놓았다. 눈을 돌려 세상을 보면 물가는 예외 없이 뛰고 있는데 심혈을 쏟아 쓴 내 글 값은 오르기는커녕 제값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다. 내가 누군가? 원나라의 큰 학자 규재 구양현(1283~1357) 선생도 인정한 인재 아닌가. 국제적 명성을 얻은들 생계에는 아무 보탬이 안 되는 세상이 답답하다. #고려말의 국제인 자신의 학맥이 고려 사람 목은에게 전해질 거라던 구양현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목은이 세계 제국을 이룬 원나라의 서울에 가서 당당하게 인재들과 겨루어 과거에 급제하고 능력을 인정받은 것만은 사실이다. 그는 원나라에 유학해 성공한 지식인들 가운데서도 발군의 인물이었다. 원나라에서 위축되지 않고 패기 있게 경쟁한 그의 행적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일화가 시화에 전해 온다. 구양현이 자신을 찾아온 목은을 얕잡아 보고 다음과 같이 조롱 섞인 말을 던졌다. “짐승 발굽과 새 발자국이 중국 땅을 마구 밟는군!”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목은은 이렇게 대꾸했다. “닭 울고 개 짖는 소리가 사방에 뻗치는군!” 제법이라 여긴 구양현이 다음 시를 불렀다. “술잔을 들고 바다에 들어갔으니 바닷물이 많은 줄 알렸다!” 목은이 지지 않고 바로 짝을 맞췄다. “우물에 앉아 하늘을 보고선 하늘이 작다고 말하는군!” 구양현은 목은을 오랑캐 나라에서 왔다고 무시했다. ‘중국을 보니 놀랍지’라며 비웃었다. 목은은 바로 ‘개소리 말라’며 인물을 볼 줄 모르는 속 좁은 놈이라 되받아쳤다. 무시하다 되레 당한 구양현이 “그대는 천하의 기이한 재사”라 인정했다는 이야기다. 일화에는 뻣뻣하고 오만한 중국 학자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목은의 패기와 재치가 생생하다. 그러나 목은이 원나라에서 겪은 좌절과 고민을 떠올리면 이 일화는 사실이라 보기 어렵다. 목은은 고려와 원나라에서 최고 지식인 반열에 결코 쉽게 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숱한 좌절과 각고의 노력이 그 바탕에 깔렸다. 원나라 과거에 급제하고 귀국해 큰 인물이 된 목은에게 후대 사람이 건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일화일 뿐이다. #고려말 지성계의 정점 목은은 현재 충남 서천군에 속한 ‘한산’이란 작은 고을 출신이었다. 문벌 귀족 출신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아버지 가정 이곡과 함께 학문으로 고려와 원나라, 두 나라에서 모두 과거에 급제했다. 목은 부자는 당시 실력으로 무장한 신흥 유학자 세력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었다. 공민왕 시대에 성균관을 개편해 시스템을 바꾸려 하였는데, 목은이 그 책임을 져 오랫동안 성균관의 교육을 주관해 ‘유학의 종장’이란 위상을 확고히 거머쥐었다. 그의 위상이 실로 대단해 여말선초 많은 인재, 예컨대 삼봉 정도전, 도은 이숭인을 포함한 대다수 지식인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당시 학계와 문학계에서 ‘태산북두’(泰山北斗, 중국 제일 명산인 태산과 북두칠성을 일컫는 말. 그 분야의 최고란 뜻)였다. 한편, 목은은 신흥 유학자들과 함께 개혁을 추진했으나 나중에는 이성계와 정도전 등 개혁파와 노선을 달리했다. 조선 개국에는 부정적이었다는 뜻이다. 문벌귀족의 정치에 반대하다 고려의 멸망을 앞두고는 보수적 색채를 드러냈다. 혼란이 극심한 시대에 변화의 중심에 서서 괴로워하고 고뇌하는 과정은 고스란히 그의 수많은 시에 나타났다. 그의 시를 추동하는 힘은 혼란한 사회를 헤치고 가는 지식인의 자아였다. 50대 초에 지은 ‘스스로 읊다’ 전반부에서 목은은 당시 사회를 보는 시각을 다음과 같이 드러낸다.인물이 분주하게 같은 길을 함께 가며 부질없이 집안 내세워 문벌을 다투누나. 시서를 읽었다고 다 군자 되지 않나니 정승들도 예로부터 평민에서 나왔다네. 문벌 귀족들이 세력을 다투며 집안을 내세웠다. 향촌 출신 목은은 집안이 아니라 실력을 내세웠다. 집안 좋다고 다 잘나지 않고, 공부 많이 했다고 다 군자가 아니다. 개인을 말해야 하고, 실력으로 승부를 겨뤄야 하는데 당시 세상은 거꾸로 가고 있었다. 그의 시는 당시의 이런 사회를 예리하게 파헤친다. #조선시대 한문학의 개창자 목은이 학문계의 태두인 것은 분명하나 정치적 역량이나 권력에서는 아무래도 한발 물러나 있었다. 활동의 중심은 문학이었다. 정도전이나 정몽주와 같은 인물에 비해 덜 알려졌으나 그는 고려시대에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였다. 깊은 인상을 남길 만한 단행본 저작이 없어서 일반 독자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산문가였다. 생존 시 학문과 문학에서 맞상대가 거의 없었던 위치는 그의 창작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국제적 명성을 지닌 작가로서 글을 많이 쓰고, 또 쉽게 썼다. 목은은 쓰면 곧 글이 되는 작가였고, 어떤 소재든 글로 쓰는 작가였다. 그렇다 보니 때로는 정제되지 않거나 거친 작품도 없지 않았다. 목은의 시는 마치 그의 일기와도 같아서 삶에서 일어난 사건과 생각의 과정을 곧잘 드러낸다. 이런 점이 조선 사대부 문학의 갈 길을 제시했다. 그래서 그는 조선시대 문학을 태동시킨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목은의 시도 훌륭하지만, 그의 산문은 한층 훌륭하다. 많은 작품 중에서 35세 때 쓴 ‘유사정기’(流沙亭記)는 걸작이다.천하를 겉으로 보면, 동쪽 끝으로는 해가 뜨는 부상(扶桑)에 닿고, 서쪽 끝으로는 곤륜산에 닿으며, 북쪽은 초목이 나지 않고, 남쪽은 눈이 내리지 않는다. 이런 지역까지도 성인의 교화가 적시고 뒤덮고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천하가 하나로 통일된 때는 늘 적었고 분열된 때는 항상 많았다. 이야말로 내가 마음속으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인간을 안으로부터 살펴보면, 힘줄과 뼈로 묶여 있고 성정이 약하게 작용하는 중에 마음이 그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우주를 감싸고 있고, 현상과 사물을 접하여 대응하고 있다. 위세와 무력으로도 빼앗을 수 없고, 간교한 꾀와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존재로서 당당하게 서 있는 것이 바로 나 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천하의 한쪽 끝 치우친 곳에 처박혀 가만히 엎드려 숨을 죽인 채 숨어 있다고 해도, 그의 흉금과 도량은 성인의 교화가 미치는 천하 사방 아무리 먼 곳이라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35세 때 외가가 있는 영해에서 동해를 내려다보며 언젠가는 기필코 천하의 중심에 서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아시아 대륙 동쪽 끝에서 젊은 목은은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펼친다. 이 혼란한 세계의 한 모퉁이에 웅크리고 있으나, 천하 사방 어디라도 갈 수 있다고, 우주를 감싸 안으려는 마음이 있는 인간이라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당당하게 세계의 중심에 서라고 권유하는 목은의 목소리가 실려 있다. 국제인으로 살고 싶어 했던 거장의 흉금이 엿보인다. 목은은 종종 글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투덜대며 지식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환경에 불만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의 시와 문장은 글의 내용과 문체의 특징, 그리고 유학을 토대로 한 사상적 경향 등 여러 면에서 조선 500년 문학의 길을 열어 놓았다. 그리고 그는 후배 문인이 배워야 할 모델이 됐다. 게다가 그의 후손은 뛰어난 문인을 많이 배출한 명가로 유명하니, 목은은 글 값보다 더한 보상을 충분히 받았다 하겠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목은집’은 1626년 중간 58권 29책… 詩 4262수 방대 시고 35권, 문고 20권에 목록 3권을 합해 모두 58권 29책이다. 태종 4년(1404년)에 편찬돼 간행됐다. 인조 4년(1626년)에 중간됐다. 시는 4262수, 산문은 232편이 수록됐다. 작품량으로 따지면 그보다 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가 전후에 없을 정도다. 양적으로도 그렇지만 수준에서도 그를 능가할 만한 작가가 많지 않다. 고려 말 정치와 사회, 문화를 이해하는 자료로서 가치 있다.
  • 사자소학 배우는 꼬마 선비들

    사자소학 배우는 꼬마 선비들

    30일 대구 중구 남산동 대구향교 양사재에서 열린 ‘2018년 대구향교 인성교육 및 전통문화 체험교육’에 참여한 초등학생들이 유복과 한복을 갖춰 입고 사자소학을 배우고 있다. 대구 뉴스1
  • ‘국방개혁 2.0’ 발표…2022년까지 장군 76명 줄인다

    국방부는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관하는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2022년까지 장군 정원을 76명 감축하는 내용을 담은 ‘국방개혁 2.0’ 기본방향을 보고했다.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 정경두 합참의장을 비롯해 육·해·공군 참모총장과 각군 주요 지휘관, 국방부 직할부대 부대장 및 기관장 등 군 주요인사 143명이 참석했다. 청와대에서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 19명의 참모들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5월 국방부를 방문해 군 지휘부와 대면하는 자리를 가졌지만, 전군 지휘관회의를 직접 주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방부는 이날 국방개혁의 일환으로 현재 436명인 장군 정원을 2022년까지 360명으로 76명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1970년 중반 수준으로 장군 정원을 줄이겠다는 것으로, 각군별 감축 규모는 육군 66명, 해·공군 각 5명씩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전투부대 중심으로 장군 직위를 우선 편성하고 비전투분야 직위 중 민간 활용이 가능한 직위는 예비역 또는 민간전문가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감축 인원은 육군 1·3야전군 사령부 통합 등 부대 개편으로 인한 자연 감축과 국방부 및 방위사업청 일부 직위의 공무원 전환, 교육·군수·행정 등 비전투부대의 계급 적정화를 통해 이뤄질 예정이다. 다만 국방부는 장군 정원 감축에도 불구하고 군단 및 상비사단 등 전투부대의 부군단장, 부사단장 및 잠수함사령부 부사령관, 항공정보단장, 해병대 1·2사단 부사단장 등은 장군으로 편성해 전투력 유지 및 준비태세 역량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국방부는 부대개편 시기, 인력운영 여건, 법령 개정 소요기간 등을 고려해 올해부터 2022년까지 매년 15명 수준의 감축을 진행할 예정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감축 규모를 기존 2012년 계획인 60명과 2017년 계획인 46명보다 대폭 확대했고, 감축 완료 시기를 2030년 내에서 현 정부 임기 내로 단축했다는 점에서 개혁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또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임기 내 군복무기간 18개월로 단축’을 완료하기 위해 오는 10월 1일 전역자부터 병 복무기간 단축을 단계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이는 입대일 기준으로 지난 1월 3일 입대자부터 적용되며 현재 군 복무중인 현역병도 혜택을 받게 된다. 복무기간은 총 3개월이 단축된다. 이에 따라 육군·해병대는 21개월에서 18개월로, 해군은 23개월에서 20개월로 줄어든다. 다만 공군은 이미 복무기간을 1개월 단축했기 때문에 24개월에서 22개월로 2개월만 단축할 계획이다. 또한 사회복무요원의 복무기간은 24개월에서 21개월로, 산업기능요원은 26개월에서 23개월로 각각 단축할 예정이다. 복무기간 단축은 입대시기에 따라 복무기간에 큰 차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14일 단위로 1일씩 단계적으로 단축된다. 예를 들어 2017년 7월 27일 입대하는 육군병의 경우 당초 전역예정일보다 41일 빠른 2020년 3월 16일에 전역하게 된다. 국방부와 병무청은 이날 홈페이지에 세부 입대 일자별 전역일 도표를 게재하고, 다음달 1일부터는 입대일을 입력하면 전역일을 산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국방부는 이와 함께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을 개정을 통해 현재 합동참모본부의 공통 직위인 장군과 대령 88명, 장성급 국직부대 지휘관 20명에 육·해·공군을 동일한 비율로 균형 편성하고 같은 자리에 동일군이 연속해서 보직할 수 없게 할 방침이다. 육·해·공군의 합동작전능력을 강조해온 합참의 직위는 육·해·공군 2:1:1 비율 편성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그동안 3:1:1 수준으로 편성돼왔다. 이에 따라 특정군의 전담이 필요한 필수 직위의 경우 장군은 육군 6명, 해군(해병 포함) 2명, 공군 2명으로 편성됐고, 대령은 육군 13명, 해군(해병 포함) 5명, 공군 4명으로 구성됐다. 육·해·공군 장교가 공통적으로 보직할 수 있는 공통 직위의 경우에도 장군은 육군 10명, 해군(해병 포함) 4명, 공군 5명으로 구성됐고, 대령은 육군 35명, 해군(해병 포함) 17명, 공군 17명으로 짜여졌다. 3군의 합동성 발휘를 위해 1:1:1 편성을 원칙으로, 동일군이 2회 이상 연속 보직할 수 없는 법 개정이 이뤄질 경우 공통 직위 장군 19명과 대령 69명은 육·해·공군 각각 6명과 23명씩 나뉘어 편성될 전망이다. 그러나 기존 합참의 해·공군 직위 인사에도 각군 본부의 인원 부족으로 인한 고충이 있었던 만큼 향후 균형 인사가 이뤄지기 위해선 해·공군의 장군·대령 정원의 증원이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국방부는 전년 대비 7.0% 인상된 올해 43조 1581억원 규모인 국방 예산을 내년도 8.6% 증가된 46조 9000억원을 기획재정부에 요구하는 한편, 향후 연평균 증가율을 7.5% 산정해 국방 예산을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국방개혁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중기 소요재원은 2019~2023년 5개년 간 270조 7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이중 전력운영비는 176조 6000억원, 방위력 개선비는 94조 1000억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국방부는 전했다. 그러나 현재 61만 8000여명인 상비 병력이 육군 11만 8000명 감축돼 2022년까지 50만명으로 조정되는 상황에서 전체 국방 예산의 대폭 인상을 요구한다는 점에 대해선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남북 군사적 긴장완화 분위기 속에 군 기강 해이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군 조직의 신뢰 회복을 위한 자체 노력에 앞서 ‘전방위 안보위협 대응’과 ‘첨단과학기술 기반의 정예화’, ‘선진화된 국가에 걸맞은 군대 육성‘ 등 3대 목표 달성을 이유로 예산 증가부터 요구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이와 함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한 지휘구조 개편, 전방위 다양한 위협에 신속대응하는 부대구조 개편을 위한 내년 1월 1일 육군 지상작전사령부 창설 및 해군 기동전단과 항공전단 확대 개편 등을 함께 발표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불온(不·On)한 회의] 투신 들어간 기사 제목 자극적…고인 배려 없는 보도 아쉬워

    [불온(不·On)한 회의] 투신 들어간 기사 제목 자극적…고인 배려 없는 보도 아쉬워

    서울신문 온라인뉴스부 기자들은 개성이 넘칩니다. 귀여운 얼굴로 제 할 말 따박따박 다 하는 기자가 있는가 하면 평소 조용한데 ‘꼭지 돌면’ 물불 안 가리는 기자, 온갖 진지모드를 온몸에 장착한 기자, 20대 초반까지 북한에서 산 기자, ‘19금 발언’도 자연스럽게 툭툭 내뱉는 기자가 공존합니다. 투철한 기자 정신에 개성을 얹은 이들이 모여서 이슈를 논하노라면 한두 시간은 정신없이 갑니다. 이런 모습을 지면 중계로 공개합니다. 이 기사를 왜 썼는지, 저 기사는 왜 빠졌는지, 어떤 고민에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독자 여러분께 공개합니다. 온라인뉴스부 기자들의 온라인 밖 회의, ‘불온(不on)한 회의’를 들여다 보세요.<부장白>●7월 24일 오후 2시 20분 회의 시작 부장: 아무래도 노회찬 정의당 의원 얘기부터 해야겠지. 이재명 경기도지사 조폭 연루설도 뜨겁긴 했어. 진호: 그 두 가지만큼 큰 이슈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날 아침을 생각하면, 그저 ‘이게 뭔 일이야’만 연발할 정도로 멍~. 경근: 처음 노 의원 사망 소식 듣고는 동명이인이 아닐까, 오보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너무나 충격적이라 현실 부정이 앞섰달까. 부장: 충격은 잠시였고 사실 확인이 된 뒤에는 각자 기사를 쏟아냈지. 속보에, 네티즌 반응과 과거 ‘드루킹’ 발언 등등. 혜진: 아쉬웠던 건 첫 기사(‘드루킹 정치자금 수수 의혹’ 노회찬 투신 사망)에서, 과연 ‘투신´이라는 단어를 썼어야 했나. 자살 예방을 위한 윤리 강령을 보면 자살 방법에 대한 정보 취득을 할 수 없도록 돼 있거든요. 사망 경위를 설명했어야 한다면 기사 내용에 들어가는 걸로 충분했을 거예요. 제목에 ‘투신´을 넣은 건 다소 자극적이었다고 생각해요. 부장: 자살 보도 권고기준에 따르면 그 얘기가 맞긴 해. 정보 전달과 윤리 준칙 사이의 갈등은 항상 언론의 딜레마지. 진호: 어쩌면 투신이라는 단어가 조금은, 덜 끔찍하게 느껴진다는 함정에 빠졌던 거 아닐까요. 혜진: 2008년 배우 최진실씨 사망 사건 당시 자살 방법에 대해 보도가 많이 나왔어요. 통계를 보면 그해 자살 건수가 1000여건 증가했고, 같은 방법으로 목숨을 끊은 사례가 예년보다 2배 가까이 늘었어요. 유명인의 자살 소식을 접하게 되면 자살에 대한 거부감이 덜해지는데, 거기에 방법까지 알려준다면 자살을 실행에 옮길 가능성이 커질 수 있어요. 최진실씨 사건이 그에 대한 방증이었고요. 달란: 그때 서초경찰서에서 그 사건을 취재했던 기억이 나요. 언론사 취재 경쟁이 어마어마했어요. 도구, 방법 가리지 않고 마치 누가 더 자세히 쓰나 경쟁이 붙은 거죠. 그 후 같은 방식의 자살 사건이 여럿 있었고 언론에 책임을 묻는 비판이 컸어요. 자살 보도에 대한 자성이 나왔던 걸로 기억해요. 유민: 제가 심각하게 느낀 건 많은 언론사가 여전히 자살 보도 권고기준을 무시한다는 거예요. 유가족 등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조항이죠. 노 의원이 몇 층에서 투신했는지, 투신한 아파트에 누가 살고 있었는지. ‘90세 노모를 찾아뵙고 극단적 선택’이라는 제목의 기사도 있었죠. 심지어 TV조선은 노 의원 시신을 이송한 구급차를 뒤쫓는 장면을 생중계했어요. 유족에게 자책감을 안겨 줄 수 있다는 걸 왜 모를까요. 진호: 한 통신사는 노 의원 시신이 이송되는 사진을 보도했다가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의 항의를 받고 내리기도 했죠. 달란: 첫 기사를 쓴 제가 변명해야겠네요. 사실 경찰의 최초 보도자료에 나온 정보를 그대로 옮겼어요. 17층과 18층 사이에 외투와 소지품이 있었다는 대목에선 너무 구체적이라 좀 망설여지긴 했죠. 한편으론 “다른 언론사는 다 쓸 텐데 나만 무슨 선비라고”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거의 모든 정보를 담았습니다. 부장: 자살 보도를 할 땐 항상 한 번 더 고민해야 해. 노 의원 어록에 대해서도 우리처럼 고민한 언론사가 있을까 싶은데. 김종필 전 국무총리 별세 때는 자연스럽게 JP어록을 썼지만, 노 의원의 어록은 망설여지더라고. 경근: 노 의원의 어록은 유독 재치 있고 유머감각이 뛰어나니까요. 정치판을 새까맣게 탄 삼겹살 불판에 비유하거나, 지난 대선 때 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건을 두고 ‘냉면 대장균 단독 범행’이라고 말하는 식으로. 진호: 어록이 기사 가치가 있는 건 그 사람의 면면을 조명할 수 있어서인데, 노 의원이 남긴 말은 위트가 넘치니까 비극적인 죽음과 더 미스매치였어요. ●유전유치(有錢有治) 무전무치(無錢無治) 달란: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정치하는 데 이렇게 돈이 많이 필요하구나, 새삼 느꼈어요. 진호: 노 의원이 ‘드루킹’ 측근 도모 변호사에게 돈을 받은 시점이 야인으로 있다가 창원 지역구에서 총선 출마하기 전 상황이었잖아요. 노 의원마저 정치자금에 발목 잡혔다는 게 안타깝죠. 달란: 정치자금 수수 의혹이 불거졌을 때 노 의원은 한결같이 부인했어요. 2016년에 아예 도 변호사를 만난 적이 없다고 했죠. 차라리 ‘특검 수사에 협조하겠다. 진실은 밝혀질 거다’라는 식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놨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정치인이 한둘도 아닌데. 경근: 노 의원이 미국 워싱턴DC에서 마지막 기자회견을 했을 때 “불법자금은 받지 않았다”고 했던 것 기억하세요? 저는 그걸 나름의 방어막이라고 생각했어요. 자금은 받았지만 불법은 아니라는 뉘앙스로. 부장: 지역 조직이 탄탄해도 지역구에 수십억원을 뿌릴 수 있어야 국회의원 배지를 달 수 있다는 설도 있지. 그렇기 때문에 기반이 약한 정치 신인들에게 돈의 유혹은 더더욱 뿌리치기 힘들 걸. 은수미 성남시장도 그런 의혹 아닌가. 혜진: 정치자금을 검증하는 게 당연한데 선거캠프가 그런 역할을 못하고, 자금 출처를 확인할 새도 없이 막 끌어다 쓰는 게 문제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그알)에서도 그런 지적이 있었어요. 유민: ‘그알’은 은 시장이 차량만 제공받은 게 아니라 조폭회사로부터 출판기념회 행사를 비롯해서 전폭적인 지원을 꾸준히 받았다고도 보도했죠. 후원자의 정체나 후원의 이유를 의심하지 않았다면 이해하기는 어렵죠. 달란: ‘그알’이 은 시장과 이 지사 이슈를 만들었지만, 사실 조금 갸우뚱한 부분이 있어요. 전도유망한 20대 프로그래머가 숨진 채 발견된 ‘파타야 살인사건’으로 시작하면서 사건에 연루된 조폭 국제파를 언급하더니 이 지사와 조폭의 연관성으로 끝났어요. 이 지사가 사건의 공모자거나 방조자는 아닌데 연결고리를 그쪽으로 만든 거죠. 혜진: 조폭, 아수라, 진보정치인…. 자극적인 키워드가 동시에 등장하면서 확실히 관심은 쏠렸죠. 경근: 거기서 PD저널리즘의 한계를 봐요. 이목을 집중시키려 극적인 효과를 곳곳에 배치하다 보니 논점이 다소 흐려지죠. 제작진이 설정한 방향대로 끌고 가면서 반론을 받는 데는 소극적인. 꼭 ‘그알’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뭣이 중헌디… 이재명에 묻힌 ‘계엄령 문건’ 유민: 답답한 건 이 지사와 조폭 연루설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면서 기무사 계엄령 검토 문건 얘기가 완전히 묻혔다는 거예요. ‘그알’ 방송 다음날(22일) 포털 검색어 10위권에 이 지사 이슈 관련 키워드가 5~7개나 있었어요. ‘촛불집회 당시 계엄령이 발동될 수 있었다’는 게 더 소름끼치는 일인데 말이죠. 대중적 이슈를 따르다 보면 더 중요한 사건을 묻어 버리는 건 아닐까 고민이 들기도 해요. 진호: 청와대가 기무사 계엄령 문건을 공개한 게 지난 20일이었기 때문에 관심에서 다소 멀어질 수는 있죠. 반면 이 지사 건은 막 터진 이슈여서 비중 있게 다룰 만했고요. 미래권력을 제대로 검증하는 과정도 필요하니까. 유민: 적폐청산도 중요한 거죠. 계엄령 검토를 지시한 윗선이 누구인지 찾아내서 철저히 단죄해야 하는데 기무사 건은 장기 이슈라 대중들이 피로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어요. 혜진: 기무사 건은 독자가 맥락을 이해하려면 기본 정보를 깔고 있어야 하죠. 반면에 이 지사 얘기는 일단 자극적이잖아요. 조폭과 정치인의 결탁, 직관적으로 시선을 잡아끄니까요. 유민: 그래도 언론이 적폐청산을 지겨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중요하니까 쉽게 풀어서라도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해야겠죠. 회의 종료. 정리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경북도 주최 글로벌 청소년들의 6일간 ‘화합의 여정’

    경북도가 주최하는 글로벌 청소년들의 문화체험캠프’가 지난 22일부터 6일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도는 23일 도청 다목적홀에서 중국·몽골·러시아·배트남 등 4개국 8개 지역 청소년 76명이 참석한 가운데 ‘글로벌 청소년 문화체험캠프’ 환영식을 가졌다. 글로벌 청소년 문화체험캠프는 해외자매우호지역 청소년들을 초청해 경북 문화를 소개하고, 국내외 청소년들의 교류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올해 3회째를 맞았다. 이번 캠프는 6일간 경북 일대에서 지역문화 체험, 전통문화 체험, 지역산업체 탐방 일정으로 진행된다. 캠프 프로그램에는 문경새재, 영주 선비촌·소수서원, 안동 하회마을, 경주 불국사·안압지·국립경주박물관, 청도 와인타널 방문 등이 포함됐다. 특히 경북지역 대학생 10명이 캠프 멘토로 참가해 한국과 경북의 문화를 젊은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자세히 소개한다. 이번 캠프에 참여하게 된 러시아의 이바노바 류보브(19·이르쿠츠크 국립대)는 “평소 K-POP과 한국 드라마에 관심이 많았는데 직접 한국을 찾게 돼 무척 기쁘다. 우리나라로 돌아가서 주변 친구들에게 많은 것을 자랑할 수 있도록 다양한 것을 보고 체험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경북도는 1984년 미국 오하이오주를 시작으로 16개국 26개 단체와 자매결연 및 우호교류협정을 체결, 문화·청소년·체육 분야에서 청소년들의 국제교류 사업을 펼쳐 오고 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1000원 지폐속 이황 초상의 ‘허상’

    1000원 지폐속 이황 초상의 ‘허상’

    조선의 잡지/진경환 지음/소소의책/396쪽/2만 3000원‘양반은 가는 데마다 상이요 상놈은 가는 데마다 일이라’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한다’ ‘가난한 양반 씨나락 주무르듯 한다’…. 조선시대의 지배계층, 즉 양반에 얽힌 비아냥의 말들이다. 상투를 틀어 갓 쓰고, 서책만 끼고 앉아 아랫사람 호통치기 일쑤이고, 끼니 간 곳은 없어도 꼿꼿하기만 하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갖는 양반의 대표 이미지는 여전히 권위와 격식, 체면이다. 양반은 언제나 현실과 동떨어진 채 뜬구름처럼 살아간 이상주의자였을까. 책은 그런 면모와는 영 딴판인 양반들의 민낯을 생생하게 들춰내 흥미롭다. 조선시대 최초의 세시풍속지로 알려진 유득공(1748~1807)의 ‘경도잡지’(京都雜志)를 새롭게 해석해 파헤친 양반의 실상이 색다르다. 18~19세기라면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근대로 넘어가던 과도기. 정치는 물론 사회·문화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은 시기였다. ‘경도잡지’는 그 무렵 조선의 중심지였던 서울 지역 풍속과 양반 생활상을 상세하게 기록한 책으로 점차 실용과 효용, 유행을 따라갔던 양반의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담겼다.원전 텍스트를 풀어내 보여주는 양반들의 삶과 그에 연관된 것들의 유래며 취향은 백면서생이나 딸깍발이와는 전혀 다르다. 놀랄 만큼 현실적이고 여유롭다. 심지어는 과도한 사치며 낭비벽까지 물씬 묻어난다. 신분제 사회의 붕괴와 함께 닥친 근대사회는 개인의 행복을 더 중시하게 마련. 조선의 양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리개나 패물, 말, 집, 혼례, 담배, 문방사우, 꽃과 나무 등 명품 선호와 유행 좇기, 사치 풍조가 절정에 다다랐다. 남들에게 가문을 과시하기 위해 대문을 크고 높게 만들고 처마를 노송취병(老松翠屛·오래된 소나무나 꽃나무 가지를 틀어서 문이나 병풍 모양으로 만든 물건)으로 치장하기는 다반사였다. 서울의 호사가들은 여덟 칸짜리 비둘기집(용대장)을 갖춰 희귀하고 값비싼 비둘기를 더 많이 사들이려 경쟁했다. 쇠로 만든 담배합에 은으로 매화나 대나무를 장식하고 사슴가죽으로 끈을 달아 담뱃대와 함께 말꽁무니에 달고 다니면서 멋을 부렸다. ‘거덜 났다’는 말을 낳게 한 견마잡이(말고삐를 잡아 양반의 행차를 인도하는 사람)의 사치는 또 어떤가. 양반처럼 덩달아 허세를 부려 더 좋은 고삐를 만들어 ‘거들먹’거리고 다닌 결과 알량한 재산이며 살림이 여지없이 허물어졌다.사는 곳에 따라 먹고 마시는 풍속도 갈렸다고 한다. 부귀한 집이 많은 북촌에는 음식 사치가 심했는데 ‘갖은 편’이라 불리는 떡 만드는 솜씨가 발달했다. 그런가 하면 구차한 샌님과 형편이 넉넉지 않은 무반들이 주로 살았던 남산 밑에는 술 빚는 솜씨가 좋았다고 한다. 책에서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잘못 알려진 오류 바로잡기이다. 1000원권 지폐속 퇴계 이황의 복건과 ‘천자문’이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된다. 복건은 양반들이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한가로이 노닐 때 착용한 쓰개로 통한다. 퇴계 이황은 복건을 중들이 쓰는 두건과 같아서 선비나 학인이 쓰기에 적절치 않다며 대신 정자관을 썼지만 1000원권 지폐엔 복건 차림을 한 이황의 초상이 버젓이 들어있다. 한자학습용 으뜸 교재로 통하는 천자문의 오류도 흥미롭다. 천자문은 문장 구성이 시적이고 역사, 천문, 지리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해 초학자들에게 다양한 교양지식과 표현법을 익히게 할 수 있지만 학동들이 읽기엔 어렵다는 주장이다. 양반의 색다른 민낯과 오류들을 세세하게 풀어헤친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왕조시대의 종말과 양반의 몰락이라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은 언뜻 사소해 보이지만 일상적인 변화와 함께 서서히 격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길섶에서] 폭염 나기/이순녀 논설위원

    더워도 너무 덥다. 아침 출근길부터 땀에 흠뻑 젖고 나면 일과를 시작하기도 전에 진이 쫙 빠진다. 그래도 에어컨이 가동되는 사무실에 있는 동안은 무더위를 피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체온을 훌쩍 넘어가는 고온의 야외에서 하루 종일 일해야 하는 이들의 고통에 비하면 출퇴근길 반짝 더위쯤이야 배부른 투정일 게다. 이맘때면 다산 정약용의 소서팔사(消暑八事)가 자주 회자하곤 한다. 여름 더위를 이기는 8가지를 시로 쓴 것이다. 소나무숲에서 활쏘기,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타기, 넓은 정각에서 투호하기, 대자리 위에서 바둑두기, 연꽃 구경하기, 숲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 비 오는 날 한시 짓기, 달밤에 개울가에서 발 씻기 등이다. 조선시대 선비다운 낭만적인 피서법임이 틀림없으나 이 중 몇 가지는 지금 따라 했다간 딱 더위 먹기 십상이다. 옛 성현에게 더위는, 이기는 게 아니라 잊는 대상이었을지 모른다. 활을 쏘든 바둑을 두든, 혹은 연꽃을 구경하든 매미 소리를 듣든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그 행위에 집중함으로써 덥다는 감각 자체를 잊어버리는 몰입의 경지. 에어컨 전원만 켜면 순식간에 더위가 온데간데없어지는 현대에는 누리기 힘든 경지가 아닐는지.
  • ‘김비서’ 강기영 “박서준과 브로맨스, 남자인데도 떨려”

    ‘김비서’ 강기영 “박서준과 브로맨스, 남자인데도 떨려”

    배우 강기영이 스타&스타일 매거진 앳스타일(@star1)과 8월 호 화보 및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영의 위트’라는 콘셉트로 진행된 이번 화보에서 강기영은 특유의 재치와 진중함 사이를 오가며 본인만의 드라마를 표현했다.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에 박유식 역으로 출연 중인 강기영은 극중 박서준의 절친한 친구 사이로 능글맞은 연애 상담을 해주고 있다. “드라마 제작진과의 미팅을 앞두고 원작 웹툰을 먼저 봤다. 확실히 내가 잘 할 수 있는 캐릭터다 싶었다. 또, 박서준과 함께 드라마를 한다는 사실에 남자이고 동생인데도 너무 떨렸다”며 웃어 보였다. 항상 케미 좋은 브로맨스를 보여주는 비결에 대해선 ‘상대 배우와의 사적인 만남’이라 답했다.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얘기와 사석에서 술 먹으면서 할 수 있는 얘기가 다르다. 더 짓궂어지고, 말이 술술 나온다. 그렇게 해서 친해진 배우가 tvN ‘고교처세왕’의 서인국이다”고 말했다. 현재 찰진 브로맨스를 보여주고 있는 박서준과도 사적인 만남을 많이 가지냐는 질문에 “서준이가 워낙 바빠 시간이 많이 나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워낙 개그감이 출중한 친구라 촬영 때 코드가 잘 맞는다. 호응해주는 제스처가 정말 좋다”고 답했다. 그간 드라마에서 감초 역할을 맡아 온 강기영은 지난해, SBS ‘당신이 잠든 사이에’ 살인마 강대희, KBS2 ‘7일의 왕비’의 모범 선비 조광오, MBC ‘로봇이 아니야’의 야심가 황유철 역을 맡으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시청자들에게 유쾌한 이미지로만 기억되는 게 섭섭하진 않냐는 물음에 “모두 소중한 역할들이었지만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라며, “그래서 작년에 다른 캐릭터로의 욕심을 많이 내봤다. 다행히 호평을 받았지만 내 스스로 경직되어 있는 것이 보여 만족스럽진 않았다. 하지만 감초 역할도 내가 처음부터 잘해서 맡게 된 건 아니지 않나. 강기영이 또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 실험해 줄 감독님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며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한편 앳스타일 8월 호에서는 위트 넘치는 강기영의 화보와 더불어 그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존재의 본질’ 치열한 탐구… 조선 양명학 체계를 세우다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존재의 본질’ 치열한 탐구… 조선 양명학 체계를 세우다

    #하곡 정제두 두 번 죽다 하곡 정제두(鄭齊斗·1649~1736)의 일생 동안 죽음은 늘 삶의 등 뒤에 따라붙어 있다가 삶과 경계를 공유하곤 했다. 그는 34세 때인 임술년(1682년·숙종 8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스승 박세채에게 그동안 자신의 입속에서 맴돌던 말을 끄집어낸다. 제가 수년 동안 고심하였던 것을 한번 선생님께 털어놓고 절충을 구하려 하였으나, 이제 할 수 없게 되었으니 유감입니다. 제 생각에 심성의 본질에 대한 왕양명(王陽明)의 학설은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찾지 못하고서는 그대로 잠자코 있을 수 없어서 감히 대강을 말씀해 올리오니 이해해 주십시오. -하곡집, ‘박남계에게 올리려던 글’ 이 글은 양명학자로서 자신에 대한 첫 번째 공식 ‘커밍아웃’이었다. 그는 주자의 성리설과 격물치지설이 성인인 공자의 뜻을 완벽하게 풀어내지 못함을 고민해 왔다. 그러다 그 끝에서 결국 양명학과 만나게 되었음을 스승에게 고백한다. 그러나 이 당시까지 정제두는 아직 양명학에 대한 논리를 완성하지는 못했다. 그는 11세 아들과 30세 된 동생 정제태에게 자신이 수행해 온 미완의 양명학 연구를 이어 나가 줄 것을 당부한다. 그러나 죽음을 예감한 순간 쏟아낸 진솔한 언어들의 수신처는 결국 자기 자신이 돼 버렸다. 그때 죽음의 위기를 넘긴 하곡은 치열하게 양명학에 몰두한다. #존재에 관한 고민, 존재를 위한 번민 하곡 정제두의 초년기는 상실의 연속이었다. 5세 때 부친을 여의고, 16세 때 백부와 조부마저 세상을 떠났다. 23세 때는 부인과도 영결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또 34세 때는 그 자신조차 죽음의 위기에 내몰렸다. 그래서 그의 고민은 ‘존재의 본질’로 향했다. 주자학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목마름을 느꼈다. 그는 1668년(현종 9년) 별시에 급제했지만, 전시에는 낙방했다. 동생 정제태가 급제한 뒤로 모친의 허락을 얻어 경전 공부에만 전념했다. 1680년(숙종 6년) 여름 김수항의 추천으로 벼슬길이 열렸지만 나아가지 않았다. 이후 여러 차례 동지중추부사, 한성좌윤, 이조참판, 대사헌, 우찬성 등 관직에 제수됐지만 역시 나아가지 않았다. 당시 조선은 주자학 허울을 뒤집어쓴 수많은 인사가 주자를 앞장세워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크루스테스’처럼 다리를 잘라 내고 팔을 잡아 늘여 자신들에게 맞는 이들로 무리를 늘리고 있었다. 그들은 권위주의적 폐쇄성 속에서 이른바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용어로 너와 나를 가르고 무리를 지었다. 이런 상황에 관해 정제두는 “오늘날 주자의 학문을 말하는 자는 주자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곧 주자를 핑계 대는 것이요, 주자를 핑계 대는 데에서 나아가 곧 주자를 억지로 끌어다 붙여서 그 뜻을 성취하며, 주자를 끼고 위엄을 지어내 자신의 사사로움을 구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1709년 8월 강화로 거처를 옮기고 본질을 찾기 위한 학문에 매진한다.#그럼에도, 결국 버릴 수 없는 마음 스스로 양명학자임을 표방하고 나서 정제두는 다양한 우려와 공격에 시달리게 된다. 그의 스승 박세채는 ‘왕양명학변’을 지어 양명학을 비판한 뒤 그에게 양명학을 버릴 것을 종용했다. 또 다른 스승 윤증 역시 ‘변설’을 지어 그를 꾸짖었다. 최석정은 ‘변학설’을 지어 그의 양명학에 대한 의지를 비판했다. 민이승, 박심도 그의 양명학에 대한 열정을 우려했다. 그러나 정제두는 양명학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왕양명의 학설에 애착을 갖는 것이 만약 남보다 특이한 것을 구하려는 사사로운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면 결연히 끊어 버리기도 어려운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학문하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성인의 뜻을 찾아서 실제로 얻음이 있고자 할 뿐입니다.” -하곡집 ‘박남계에게 답하는 글’ 스승과 친구, 주변 여러 사람의 회유와 질책에도 그는 성인의 뜻을 찾아서 실제로 얻음을 얻고자 양명학이 보여 주는 길을 선택했다. 주자학이라는 이름의 우상 뒤편이 주는 안락함, 그 아래 무리 지어 있는 대상들과의 동질감, 그것은 그에게 학문적 타협의 이유가 될 수 없었다. 그는 ‘마음이 곧 이치다’(心卽理)라는 양명학의 본질적 명제를 밝히는 데 투신했다. 이후 그는 양명학의 치양지설과 지행합일설을 받아들이고, ‘대학’, ‘논어’, ‘맹자’, ‘중용’ 등 유가 경전을 새롭게 해석해 주자학의 권위에 맞섰다.#강화에 심은 양명학의 씨앗 조선 후기 강화를 거점으로 양명학을 연구·발전시켜 온 학파를 흔히 ‘강화학파’라 칭한다. 강화학파의 다른 이름은 ‘하곡학파’로, 강화의 양명학이 하곡 정제두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증명하는 호칭이다. 실제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문인이 배출됐다. 그리고 그가 강화에서 양명학에 매진한 이후 강화는 조선에서 가장 진보적인 공간으로 거듭났다. 아들 정후일을 비롯해 윤순, 김택수, 이광사 등이 그의 뒤를 이었다. 이들은 정제두의 자장 안에서 역사학과 음운학, 서예와 시문을 발전시켰다. 강화학파의 특징으로는 다양한 학문에 대한 관심을 표방하는 ‘박학’과 ‘실천주의’적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움직임은 우리 문화사에서 다양한 성과로 등장한다. 글씨에 원교 이광사, 역사에 연려실, 이긍익과 황현, 한학에 석천, 신작, 훈민정음 연구에 유희, 문자학에 남정화, 문헌학에 남극관 등이 강화학파의 범위를 확장해 나갔다. 영재 이건창에 의해 계승된 조선 양명학 정신은 민족자존의 주체사상으로 구현됐고, 신채호, 박은식, 정인보 등에 의해 민족주의 사상으로 형성돼 항일운동과 국학 연구에 이바지했다. 하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하곡집은…간행되지 못한 채 총 4종 필사본으로만 존재 정제두가 남긴 문집이다. 그러나 그의 문집은 간행되지 못한 채 필사본으로만 존재한다. 필사본은 총 4종이 전한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22책본, 서울대학교도서관 소장 11책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0책본,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8책본이 있다. 문집이 인출되지 못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양명학에 대한 정제두의 긍정적 시선 때문이었다. 정제두의 현손 정문승은 하곡집의 앞머리에 붙여 “문인으로서 이 일을 맡은 사람도 함부로 손을 대어 말속의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아니하므로”라고 하곡집이 수습되지 못했던 저간의 사정을 증언한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22책본 하곡집은 정집, 부집, 내집, 외집의 4부분으로 구성됐다. 정집에는 편지글과 상소문, 잡저와 시문이 수록됐다. 특히 그의 양명학적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 ‘존언’(存言)과 ‘학변’(學辨)이 저록됐다. 부집에는 신작이 완성한 정제두의 연보 등이 수록됐는데, 이 연보에는 주자학적 측면을 강조하고자 하곡의 양명학 사상을 의도적으로 지우려 했던 흔적도 남아 있다. 내집은 경학에 관한 독립적인 저술로 구성됐다. 그러나 중복되거나 빠진 부분이 많다. 외집에는 하도(河圖)와 선후천도설(先後天圖說)에 관해 다양한 그림으로 풀이한 내용이 실렸다.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새도, 나그네도 쉬어가는 문경새재 도립공원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새도, 나그네도 쉬어가는 문경새재 도립공원

    "과거길 한양길, 조령길 진사길“ 예부터 동래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은 3갈래로 나뉜다. 좌로(左路)는 추풍령 고갯길, 우로(右路)는 죽령 고갯길, 그리고 중로(中路)가 문경새재라 불리는 조령(鳥嶺) 고갯길이다. 이 중에서 가문의 명운을 걸고 과거를 보러 가는 영남 지역 선비들이 일부러라도 넘어가야 하는 고개는 바로 문경에 위치한 조령이었다. 이유인즉슨 간단하다. 추풍령으로 길을 넘으면 과거에서 추풍낙엽처럼 떨어질 것이고, 죽령으로 건너가면 과거에서 죽죽 넘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조령, 즉 문경새재를 넘어가면 ‘귀로 경사소식을 듣게 된다.’라는 ‘문경(聞慶)’의 의미가 청운의 꿈을 품은 과거 응시자들에게는 그리도 크게 와닿으리라. 소백산맥 중에서 1,017m 높이의 조령산을 넘어가는 길목인 문경새재는 조령(鳥嶺)이라는 한자어를 우리말로 불러 ‘새재’라고 부른 것이다. 하늘을 나는 새도 한 번은 쉬어야만 넘어간다는 고갯길, 옛길의 향수가 지금도 남아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문경새재로 가 보자. 경상북도 문경과 충청북도 괴산에 맞닿아 있는 백두대간의 조령산은 예나 지금이나 험한 고갯길로 유명하다. 실제 해발 1,017m에 불과하다하지만 산길의 험준함은 사람과 물산의 교류마저 잘라 놓았다. 하기에 문경새재는 지금도 충청도와 경상도의 도계이기도 한 이유다. 여기에 더 나아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문경새재는 사연도 많다. 후삼국 시절 견훤과 왕건이 이곳에서 합을 겨루었고, 고구려 장수왕도 딱 이곳에 막히어 신라로 쉽게 들어가지 못하였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에는 왜적의 한양길을 막는 군사적 요충지로 적격인 문경새재를 버리고 충주를 선택한 신립 장군을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두고두고 비웃기도 하였다. 여하튼 문경새재는 그 높이와 험준함으로 유명해졌지만 반대로 교통이 수월치못한 시절에는 과거길이나 보부상들 이외에는 이 고갯길을 굳이 넘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러하기에 새재 주변의 대미산, 포암산, 주흘산, 조령산, 희양산, 대야산, 청화산, 속리산 등은 지금도 천혜 자원을 잘 보존하고 있어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문경새재에 남아있는 날의 유지(遺址)로는 봉수터, 성터, 각종 선정비, 공덕비 등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영남 제1관문인 주흘관(主屹關)을 비롯하여 조곡관(鳥谷關), 조령관(鳥嶺關)이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또한 한국방송공사가 2000년 2월에 건립한 오픈세트장이 꾸준한 개보수를 거쳐 현재는 70,000㎡ 부지에 광화문, 경복궁, 동궁, 서운관, 궐내각사, 양반집 등 103동, 초가집 22동과 기와집 5동 등 총 130동의 세트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문경새재를 방문하는 관람객들에게는 또다른 볼거리도 제공한다. <문경새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충청도와 경상도의 도계로 산세가 수려하다. 추천! 2. 누구와 함께? - 가족과 함께 천천히 옛길을 걸어보자. 3. 가는 방법은? -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일원 / 문경버스정류장에서 문경새로 가는 버스 30분 간격 4. 감탄하는 점은? - 드라마 촬영 현장, 녹음 우거진 옛길에서 맞이하는 시원한 바람.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단체 여행객들이 많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옛길 박물관, 드라마 촬영현장, 주흘관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한우등심 ‘대흥식육점’, 고추장 삼겹살 ‘문경식당’, 옛날영양돌솥쌈밥, 진남매운탕, 삼겹살 ‘문경약돌돼지’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s://www.gbmg.go.kr/tour/contents.do?mId=0101010100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옛길박물관, 문경자연생태박물관, 문경도자기박물관, 문경석탄박물관 10. 총평 및 당부사항 - 문경새재는 접근이 쉽지는 않지만 빼어난 산세를 자랑하는 곳이다. 드라마세트장 관람을 포함하여 한나절 여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우거진 녹음과 계곡이 있는 곳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남촌 ‘다크투어’… 일제·독재의 잊고 싶은 기억을 기억하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남촌 ‘다크투어’… 일제·독재의 잊고 싶은 기억을 기억하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9회 서울사방 남촌 편이 지난 7일 중구 필동과 예장동, 회현동 일대 남산 아랫마을에서 진행됐다. 본격적인 여름을 알리는 소서(小暑) 무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만원을 이뤘다. 인터넷 예약에 실패한 네댓 분이 “신문 보고 왔다”며 즉석 합류를 요청해 운영진을 곤혹스럽게 했다. 준비한 오디오 가이드 시스템 40개가 동나는 바람에 진행자용 기기를 양보했다. 많은 인원이 시원한 그늘을 찾아다니다 보니 행렬이 길어지고 시간이 지체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서울미래유산이 비록 국가공인 지정 및 등록문화재는 아니지만, 참가자 본인이 직접 겪고 들은 유형과 무형의 소중한 미래유산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실감했다.남산은 서울의 대표적인 다크투어리즘 코스이다. 다크투어란 인간이나 자연이 저지른 어두운 현장을 찾는 역사교훈관광이다. 이날 참가자들은 남산골한옥마을(청학동, 조선헌병대사령부)을 출발, 필동 예술통(남학당)~서울소방재난본부(중앙정보부 유치장)~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녹천정, 통감관저·총독관저)~문학의 집(중앙정보부장 공관)~서울유스호스텔(중앙정보부 남산본관)~서울애니메이션센터(통감부·총독부)~남산원(노기신사)~한양공원비(왜성대공원)~백범광장(조선신궁)~안중근의사기념관(조선신궁)까지 빡빡한 코스를 2시간 30분 동안 걸었다. 김완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독창적인 관점의 해설을 열정적으로 들려줘 호응을 얻었다. 투어가 끝난 뒤 실시한 설문조사에 참여한 21명 중 6명이 “시간이 짧아서 아쉬웠다”면서 해설시간 연장이나 코스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부분 참가자는 늘 걷던 남산 길의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남산은 상념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서울 어디서나 고개만 들면 보이는 누이 같은 산이고, 서울 바깥에서 봤을 때 서울 진입을 상징하는 표상이다. 서울이 사대문 안을 벗어나 10배 이상 확장되면서 옛 서울의 남쪽 경계였던 남산과 한강이 서울의 중심부가 됐다. 조선 말 고종이 종로구 인사동 194(하나로빌딩)에 세운 서울중심점 표식이 지금은 남산 정상으로 남하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서울의 관문 노릇을 하던 한강 또한 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관통하는 도심 속 하천이 됐다. 남산은 광화문네거리에 솟아 있던 황토마루(黃土峴) 역할을 하는 중앙산이 됐고, 한강은 사대문을 북촌과 남촌으로 나눈 청계천처럼 서울의 강남과 강북 사이 중앙천이 됐다. 한강이 허리띠처럼 감싼 남산은 명실공히 서울을 대표하는 자연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서울의 북쪽을 병풍처럼 두른 삼각산(북한산)이 왕조와 왕을 지키는 장풍(藏風)의 산이라면 남산은 백성과 함께 즐기는 득수(得水)의 산이다. 신라의 고도 경주의 남산, 고려 개성의 자남산에 이어 서울 남산은 한반도를 지배하는 왕조가 백성에게 내준 어울림의 영역이다. 태조 이성계가 경복궁 뒤 백악산(북악산)에 여신 진국백(鎭國伯)을 둔 반면 남산에는 목멱대왕(木覓大王)이라는 남신을 모신 국사당을 세운 데서 나타난다. 남산은 국가의 제례 공간이자 민간신앙의 터전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세워진 삼국지의 영웅 관우를 모신 관왕묘 중 남관묘가 남산에 가장 먼저 건립됐고 제갈공명을 모신 와룡묘도 따라 들어섰다. 남산 범바위를 중심으로 한 무속신앙이 성행한 이유도 남산을 한양도성의 수호신 목멱대왕이 깃든 신성한 산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팔도에서 올라오는 봉수대의 종착 지점을 남산에 둔 까닭이기도 하다. 제왕은 남면(南面)하는 법이다. 남산은 왕이 바라보는 산이다. 이를 쫓아 옛사람들은 마을의 앞산을 남산이라고 불렀다. 남산의 남(南)자는 ‘남녘 남’ 자가 아니라 ‘앞 남’ 자를 썼다. 남산의 다른 이름 ‘마뫼’는 우리 말 ‘앞산’과 동의어다. 목멱이란 마뫼의 이두식 표기다. 남산=마뫼=목멱 등식이다. 남산은 소나무를 베거나 돌을 캐거나 무덤을 두지 못하게 엄히 규제한 사산금표(四山禁標)의 금역이기도 했다. 남산에 소나무를 심었다는 실록 기록이 자주 등장한다. 애국가 가사 중 ‘남산 위에 저 소나무’는 서울사람이 늘 보는 일상 풍경이었다. 남산을 그린 옛 그림 ‘목멱산도’와 ‘은암등록’, ‘장안연우’ 속 큰 소나무 한 그루일 수도 있다. 서울에 사는 남인 양반촌의 시대는 옛 노랫가락처럼 흘러갔지만 남산만큼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칠정(七情)을 제대로 겪은 산이 또 있을까. 남산 아랫마을 중 회현동(호현동)과 필동, 충무로 일대에는 본래 경주 이씨, 동래 정씨, 안동 김씨, 풍산 홍씨 같은 경화사족(京華士族)이 살았다. 서울에 기반이 없던 다산 정약용 같은 ‘남산골샌님’이나 ‘딸깍발이’ 신세의 남인 선비들도 산등성이와 계곡에 초가를 지었다. 연암 박지원이 지은 ‘허생전’의 주인공 허생이 살던 가난한 동네였다. 남산산록을 수놓은 귀록정, 노인정, 청학동, 녹천정, 천우각, 쌍회정은 남산풍류의 본거지였다. 한양의 대표적 경관시 중 하나인 정이오의 ‘남산팔영’은 사실상 한양팔경가였다. ‘장소의 윤회’인가. 조선 건국 초 왜국사신 숙소 동평관을 지금의 인현동에 둔 게 화근이 돼 200년 뒤인 1592년 임진왜란 때 서울을 점령한 왜군이 진을 친 곳이 예장동(왜장대)이다. 또 300년이 흐른 1885년 일본공사관이 녹천정(통감관저 터)으로 틈입하면서 남산은 수난의 그림자에 덮였다. 황현은 “녹천정을 빼앗아 일본공사관으로 삼은 후로 야금야금 주동, 나동, 호위동, 남산동, 난동과 종현, 저동을 가로지르는 진고개 일대를 점거하여 남촌 50개 동 가운데 30개 동이 일본인 촌이 됐다”고 ‘매천야록’에서 절규했다.남촌은 일제강점기 식민통치의 심장부였다. 통감부를 중심으로 통감관저, 헌병대사령부, 정무총감 관저(필동 한국의 집)가 집결했다. 명동과 충무로에 화려한 상가가 들어서고 조선은행과 식산은행, 동양척식회사 등 경제수탈기구가 남대문에 집결했다. 벚꽃 묘목 1500그루를 들여와 왜성대공원(한양공원)에 심은 게 1907년이었다. 한양도성의 수호신 남산은 일본 국교 신도(神道)에 무참히 유린당했다. 1925년 조선신궁이 세워지면서 남산은 정치와 종교, 문화의 지배공간이 됐다. 1932년 남산기슭 장충단 자리는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박문사로 둔갑했다. 남산은 식민지배의 상처를 씻어내지 못한 채 광복과 한국전쟁 그리고 분단, 산업화 과정에서 훼손됐다. 경성호국신사(용산동 2가) 자리에 해방촌이 들어선 데 이어 적산 처리 과정에서 동국대, 서울중앙방송국, 숭의학원, 미군 통신부대, 외인주택 등 각종 정부기관과 학교, 군 및 종교단체가 파고들어 잠식당했다. 동상과 기념물 그리고 터널과 타워는 남북 체제 경쟁과 정치이데올로기 홍보의 상징물이다. 개발독재와 권위주의 시대 중앙정보부는 ‘남산’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예장자락에 무려 41개의 건물을 차지하고 정권의 홍위병 역할을 했다. 그 상처를 씻어내는 진혼곡이 이제야 연주되고 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홍릉산책(홍릉수목원) ●일시: 7월 14일(토) 오전 10시~낮 12시 ●집결장소: 지하철 6호선 고려대역 3번 출구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禮로 마시는 차 한 잔… 道를 지키는 술 두 잔

    禮로 마시는 차 한 잔… 道를 지키는 술 두 잔

    세상에 재미있는 이야기는 많지만, 그래도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 이야기’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의 ‘지역명사 여행’은 전국의 숨은 이야기꾼들의 삶을 끄집어내 소개하는 한 편의 ‘인간극장’이다. 올해 새로 지역명사 여행지 6건이 선정됐다. 이 가운데 경북 봉화 달실마을의 권용철·권재정 종손 부부와 충북 충주 세계술박물관의 이종기 오미나라 대표를 각각 만나 봤다.●전통차를 마시며 듣는 종가의 삶 “흔히 다도(茶道)라고 하면 복잡하게 생각하는데, 진정한 다도는 대화에 의미를 두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봉화 달실마을 청암정에서 만난 권용철씨는 다과를 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오미자 차와 함께 한과, 비스킷 등이 단출하게 마련된 다과는 부인 권재정씨가 준비했다. 부부의 성은 같지만 본관은 각각 안동과 예천으로 다르다.달실마을은 조선 중기 유학자이자 선비인 충재 권벌의 종가 마을로, 권씨 부부는 충재 고택을 지키고 있는 40대의 젊은 종손 종부다. 종가문화를 지역의 관광자원으로 만들고 다양한 전통체험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전통을 현대의 가치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연못 위에 떠 있듯 자리한 청암정은 권벌이 시문을 즐기던 정자다. 이곳에 앉아 정자를 둘러싸고 흐르는 물과 왕버드나무, 소나무 등이 우거진 주변 정취를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세상 번민을 잊게 된다. 널찍한 거북이 등 모양의 거대한 바위가 듬직하게 정자를 받치고 있는 모습도 이채롭다. 거북이 등 위에서 잠시나마 ‘느림’의 의미를 찾고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남명 조식이 쓴 것으로 알려진 청암정 현판과 퇴계 이황, 미수 허목 등 당대 유명한 문인들이 쓴 편액이 눈에 보인다. 50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다가 멀리 차 한 대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서야 현실로 돌아온다. 씨름이라도 했을 법한 건장한 체격의 권씨는 “대학에서 미식축구를 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스스로를 ‘종가의 좌파’라고 칭할 만큼 열린 사고를 갖고 있다. 유교의 허례허식을 반대하는 그는 “제사상 위에 20~30장씩 전을 올릴 필요가 없다. 부모님 살아계실 때 식사를 준비하듯이 제사를 지내면 된다”고 강조한다. ‘좌포우혜·홍동백서’와 같은 예법도 1960년대에나 대중에 퍼진 것으로 원래 우리 전통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달실마을에서는 안동 권씨 집안에서 내려오는 제례체험과 다도체험, 민화 그리기 등 예절과 문화를 가르치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원래 한자 공부 등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권씨는 이 같은 프로그램이 유교문화를 따분하게 느끼게 한다고 보고 프로그램을 체험 위주로 다양화했다.●탄금호 바라보며… 국산 와인 오미자술 한잔 “술을 마실 때는 예로부터 상대에게 세 번을 권하고 세 번을 사양한다고 하지요.” ‘위스키 마스터 블렌더’ 이종기 오미나라 대표가 말하는 우리나라의 주도(酒道), 향음주례(鄕飮酒禮)에 대한 설명이다. 이 대표는 15년간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며 문경의 오미자를 원료로 하는 국산 와인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대표는 오미자 와인 등을 제조하는 경북 문경의 ‘오미나라’와 충북 충주의 술박물관 ‘리쿼리움’을 오가며 명주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오미나라는 겉보기에 중소 업체의 평범한 공장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발효실과 숙성실, 증류실 등 와인 제조 과정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설이 마련돼 있다. 숙성실에 쌓여 있는 수천개의 와인병은 국내와 해외의 술상 위에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미 이들 와인은 세계핵안보정상회의와 평창패럴림픽 등의 만찬장에 건배주로 올랐다. 충주 탄금호 중앙탑공원에 자리한 리쿼리움에서는 이 대표가 수집한 세계의 술과 관련 문화재 등을 볼 수 있다. 다양한 와인과 차 등을 시음할 수 있고, 전통주 빚기, 나만의 와인 만들기 등 ‘손맛’을 느끼게 하는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그가 스코틀랜드에서 공수한 오크통은 술이 실제 숙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관람객의 눈길을 끈다. 술이 숙성될 때 공기 중으로 아주 적은 양이 날아가며 사라지는, 이른바 ‘천사의 몫’(Angel’s share) 현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스토리텔링에 적합하면 지역 명사로 선정 지역명사는 나이나 직업과 상관없이 지역과 스토리텔링이 맞아떨어지면 누구나 선정될 수 있다. 충남 당진의 김금순 할머니는 백석올미마을이라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매실한과 체험 등 30여개의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적극적인 활동으로 우리나라는 물론 베트남, 가나 등의 농업인들에게도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시인의 인문학 여행은 전북 임실을 배경으로 인문학 강의를 운영하는 지역명사 프로그램이다.경북 상주의 허호 장인은 지금은 거의 사라진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비단(명주)을 짜는 현장을 평생 지켜 오고 있다. 허호 장인을 중심으로 인근 누에고치체험학습관, 나비생태원, 옹기촌 등을 연계해 관광객들에게 ‘비단 관광’의 경험을 선사한다.경기 남양주 이하연 명인의 ‘맛있는 김치 만들기’ 프로그램은 우리의 대표 음식 김치를 소재로 한 관광프로그램이다. 김치 연구가 이하연 명인이 직접 강좌에 나서 명품 김치를 만드는 ‘7대3 법칙’ 등을 소개한다. 글 사진 봉화·충주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김태수 서울시의원, 10대 서울시의회 첫 민생 행보 ‘영세 봉제상공인 지원’

    김태수 서울시의원, 10대 서울시의회 첫 민생 행보 ‘영세 봉제상공인 지원’

    서울시의회 김태수 의원(더불어민주당, 중랑2)이 패션봉제산업 활성화 지원을 위해 나섰다. 김태수 의원은 5일 오후 서울 덕수궁길 서울시의원회관 7층 의원연구실에서 서울시 관계 공무원, 중랑봉제협동조합 관계자와 간담회를 가졌다. 이번 간담회는 중랑구 봉제·패션기업이 대부분 영세한 탓에 낙후된 환경으로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를 개선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김 의원은 지난해 말 시의회 예산결산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중랑구 봉제산업 환경개선 사업을 위해 서울시 예산 1억원을 확보해 올해 사업비에 반영했다고 언급하며 많은 업체가 혜택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촉구했다. 봉제협동조합 관계자는 중랑구 봉제 업체가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많아 자치구별로 동등하게 예산을 분배한 것은 오히려 역차별이 되고 있어 업체 수 대비 환경개선비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환경개선사업의 효율성 향상을 위해 △지원 품목 수명 연한 단축 △시공 업체 기준 완화 등을 제안했다. 이에 서울시 관계자는 중랑구 관내 및 인근 지역 봉제 업체업에 대해 실태조사를 하고 관련 기관과 협의해 조속히 지원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김태수 의원은 “선거기간 동안 민원 해결을 위해 봉제 업체들을 찾았는데 미싱 5~6대 두고 소규모로 운영되는 업체들은 조명 등 환경 시설이 매우 열악했다”며 “이들을 위해 환경개선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시공 업체를 여러 곳 선정하고, 이에 따른 설치비용 단가 절감을 유도해 지원 업체를 늘리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끝으로 “중랑구 제조업의 70% 정도를 봉제 관련 기업이 차지하는데 이들 대부분이 임가공 등 OEM(주문자의 의뢰에 따라 주문자의 상표를 부착하여 판매할 상품을 제작하는 방식) 생산을 하는 소규모 영세업체”라며 “제품의 질 향상과 생산성을 높이려면 시설환경 개선 사업이 빠른 시일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갓선비 서포트즈’ 떳다

    ‘갓선비 서포트즈’가 떳다. 경북 영주시와 경북관광공사는 최근 영주시청에서 ‘갓선비 서포터즈’ 발대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고 8일 밝혔다. 갓선비 서포터즈는 대구·경북 관광 활성화를 위해 만들어진 ‘선비이야기 투어카드’ 홍보대사로 20대 대학생 20명으로 구성됐다. 이 카드는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選) 선비이야기 여행 권역인 대구, 안동, 영주, 문경 지역에서 음식, 숙박, 공연, 체험, 쇼핑(일반 제휴점) 등 다양한 서비스와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여행 전용 카드다. 카드에 내장된 캐시비 교통기능을 통해 전국 어디에서나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고, 은행 계좌를 연계하여 충전 사용하는 코나의 선불결제기능까지 담고 언제 어디서나 활용할 수 있다. 또 음식점, 숙박업소, 공연장, 체험시설 등 일반 제휴점에서는 최대 50%까지 할인 혜택을 누릴 수 있고, 코나카드앱에 등록하면 스타벅스 30%, 커피빈 20%, 롯데시네마 30%, GS25 10% 할인 등 더욱 풍성한 혜택 준비돼 있다. 장욱현 영주시장은 “갓선비 서포터즈는 앞으로 온·오프라인을 통해 선비이야기 투어카드 홍보 활동을 활발히 펼치게 된다”면서 “특히 선비이야기 투어카드로 ‘선비의 고장’ 영주를 찾는 관광객들은 편리한 여행과 특별한 혜택을 누리게 될 것으러 기대된다”고 말했다. 영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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